며칠 후 일행은 경성에 도착하여 금은보화 등의 예물을 실은 수레와 인마는 역관에 머물게 하고, 시진과 소양은 공문을 가지고 먼저 중서성으로 가서 아뢰었다.
“지금 우리 병마가 연경을 포위하여 조만간에 깨뜨릴 상황이었는데, 요나라 임금이 성 위에 항기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지금 승상 저견을 보내 표문을 올리고 죄를 청하며 투항하고자 합니다. 죄를 사면하고 전쟁을 그만두는 일은 저희가 감히 함부로 할 수 없기에, 천자의 성지를 청하러 왔습니다.”
중서성 관원이 말했다.
“그대들은 역관에서 저들과 함께 쉬고 있으시오. 우리가 의논하겠소.”
당시 채경 · 동관 · 고구 · 양전과 중서성의 관료들은 모두 이익을 탐하는 무리들이었다.
한편, 요나라 승상 저견과 관원들은 먼저 연줄을 찾아 태사 채경 등 네 대신을 만나고 또 중서성의 관원들을 만나 뇌물을 먹이고, 조정의 여러 부처에도 예물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조회 때 백관이 조하를 마친 후 추밀사 동관이 출반하여 아뢰었다.
“선봉사 송강이 요군을 물리치고 연경까지 진격하여 성을 포위하고 공격하고 있는데, 조만간에 깨뜨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요나라 임금이 항기를 세우고 투항하고자, 승상 저견을 보냈습니다. 칭신(稱巨)하면서 투항하고 죄를 청하니, 강화를 허락하고 병력을 거두어 전쟁을 그만 둘 것을 애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해마다 공물을 바치고 감히 다시는 위배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폐하께서 굽어 살피십시오.”
천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강화를 맺고 전쟁을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경들의 생각은 어떠하시오?”
태사 채경이 출반하여 아뢰었다.
“신들이 이렇게 의논하였습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사방의 오랑캐들이 모두 없어진 적은 없습니다. 신들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요나라를 존속하게 하여 북방의 울타리로 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해마다 조공을 바치게 하면, 그것도 나라에 이익이 될 것입니다. 저들의 투항을 받아들여, 전쟁을 끝내고 군마를 회군하여 경성을 지키게 하십시오. 신들이 감히 함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페하께서 결단하십시오.”
천자는 채경의 말에 따라, 성지를 내려 요나라 사신을 불러들이게 하였다. 전두관이 명을 전하자, 저견 등 사신 일행이 금전 아래 이르러 절을 올리고 만세를 세 번 불렀다. 시신이 표문을 어안에 올리자, 학사가 큰 소리로 읽었다.
요나라 주인이며 폐하의 신하인 야율휘는 머리를 조아리며 백번 절하고 아룁니다.
신은 북쪽의 사막에서 태어나 변방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성현의 경전을 읽지 못해 삼강오상(三綱五常)의 예(禮)를 알지 못했습니다. 거짓된 글과 잘못된 무예를 배웠으며, 좌우에 이리 같은 마음을 지니고 개 같은 행실을 하는 무리들만 있어 뇌물을 좋아하고 재물만 탐하였으며, 앞뒤에는 모두 쥐새끼 같고 노루 대가리 같은 무리들만 있을 뿐입니다.
소신은 어리석고, 거느린 무리는 미쳐 날뛰는 것들이었습니다. 폐하의 강토를 침범하여 천병(天兵)의 토벌을 받게 되었고, 망령되이 인마를 몰고 갔다가 왕실에서 군대를 일으키는 노고를 겪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개미가 어찌 태산을 흔들 수 있겠습니까? 모든 물은 반드시 큰 바다로 들어가게 마련입니다.
지금 특별히 사신 저견을 보내 하늘같은 위엄을 뵙게 하고 땅을 바치며 죄를 청합니다. 성상께서 미천한 저희들을 가련히 여기시어 조상의 유업을 폐하지 않게 해주시고 지난 과오를 용서해 주시면,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여 변방으로 물러나 영원히 천조(天朝)의 울타리가 되겠습니다. 늙은이든 어린아이든 모두 재생의 은혜를 입은 것으로 알고 자자손손 영원히 감사하며 해마다 공물을 바치고 감히 다시 위배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신들은 두려워 떨면서 삼가 표문을 올려 아룁니다.
선화 4년 겨울. 요나라 임금이며 폐하의 신하인 야율휘 올림.
휘종 천자가 표문을 듣고 나자, 계하의 신하들이 축하를 드렸다. 천자는 어주를 가져와 사신에게 하사하라고 명하였다. 승상 저견이 금은보화를 바치자, 천자는 창고에 넣어두게 하였다. 그리고 해마다 공물을 바치기로 하였다. 천자는 사신에게 비단을 하사하게 하고, 광록시에서 연회를 열어 대접하게 하였다. 승상 저견 등은 먼저 돌려보내고, 천자가 관원을 보내 조서를 내리기로 하였다. 저견 등은 사은하고 조정을 나가 역관으로 돌아갔다.
그날 조회가 끝난 뒤 저견은 또 사람을 보내 관원들에게 뇌물을 주었다. 채경이 저견에게 말했다.
“모든 것은 우리 네 사람에게 맡기고, 승상은 돌아가시오.”
저견은 태사에게 사례하고 요나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채태사는 백관을 이끌고 입조하여, 천자에게 빨리 조서를 요나라로 보낼 것을 주청하였다. 천자는 주청을 받아들여, 급히 한림학사에게 조서를 작성하게 하고, 태위 숙원경으로 하여금 요나라로 가서 조서를 읽어 주라고 하였다. 그리고 조추밀에게 칙령을 내려 송선봉으로 하여금 전쟁을 그만두고 경성으로 회군하게 하라고 하였다.
사로잡은 요나라 장병은 모두 석방하여 요나라로 돌려보내고, 빼앗은 성도 돌려주고 창고에 있는 병기들도 요나라 관원들에게 돌려주라고 하였다. 천자가 조회를 끝내자, 백관은 모두 해산하였다. 다음 날 중서성 관원들이 숙태위의 부중으로 가서 떠나는 날짜를 정하였다.
숙태위는 조칙을 받고서 감히 오래 머뭇거리지 않고, 따라갈 사람과 말을 준비하여 천자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중서성 관원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시진 · 소양과 함께 경성을 떠나 진교역을 향해 출발했다.
때는 한겨울이라 붉은 구름이 짙게 깔리고 서설이 내려 온 새상이 은빛으로 덮였다. 숙태위 일행은 눈보라를 무릅쓰고 꾸준히 전진하여, 눈이 채 그치기도 전에 변방에 접근하였다. 시진과 소양은 먼저 초마를 조추밀에게 보내 알리고, 또 송선봉에게도 통보하였다.
송강은 보고를 받고 곧 술을 마련하여 50리 밖에까지 나와 길에 엎드려 숙태위를 영접했다. 송강이 숙태위를 맞이하여 인사를 마치고 접풍주(接風酒)를 올리자, 모두들 기뻐하였다. 영채로 와서 연회를 열어 대접하고, 조정의 일을 함께 의논하였다. 숙태위가 말했다.
“중서성의 관원들과 채경 · 동관 · 고구 · 양전이 요나라의 뇌물을 받아먹고 천자께 극력 상주하여, 저들의 투항을 받아들이고 전쟁을 그만두기로 하였소. 그래서 천자께서 조칙을 내려 회군하여 경성을 수비하라고 하셨소.”
송강은 그 말을 듣고 탄식하며 말했다.
“제가 조정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세운 공이 모두 헛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숙태위가 말했다.
“선봉은 너무 근심하지 마시오! 내가 조정으로 돌아가면, 천자께서 반드시 중용하도록 하리다.”
조추밀도 말했다.
“내가 보증을 서서 장군의 대공이 헛되지 않도록 하겠소!”
송강이 말했다.
“저희들 108인은 힘을 다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뿐 다른 마음이 없으며 또한 은혜를 바라는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여러 형제들이 고생을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다행으로 여깁니다. 추밀상공께서 주장해 주신다면, 그 후덕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그날 연회에서 모두 술을 마시며 즐거워했고, 밤이 되어 헤어졌다. 그리고 즉시 사람을 요나라로 보내 조서를 영접할 준비를 하라고 알렸다.
다음 날, 송강은 대장 열 명을 뽑아 숙태위를 호위하여 요나라로 가게 하였다. 대장들은 모두 비단 전포와 금빛 갑옷을 입고 무장을 했는데, 임충 · 진명 · 호연작 · 화영 · 동평 · 이응 · 시진 · 여방 · 곽성이었다. 마보군 3천을 거느리고 태위를 호위하여 연경성으로 들어갔다. 연경의 백성들은 수백 년 동안 중국 군대의 위용을 본 적이 없었는데, 태위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나와 향화와 등촉을 밝혀 환영했다.
요나라 임금이 친히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남문으로 나와 조서를 영접하고 금란전으로 인도했다. 열 명의 대장이 좌우에 시립하고, 숙태위는 용정(龍亭)의 좌측에 섰다. 임금과 백관은 계하에 무릎을 꿇었다. 전두관이 절을 올리라고 외치자, 임금과 백관은 조서를 향해 절을 올렸다. 요나라 시랑이 천자의 은혜를 받들어 전상에서 조서를 낭독하였다.
대송황제가 이르노라.
삼황(三皇)이 제위에 오르고 오제(五帝)가 계승하여 중화(中華)에 주인이 있게 되었는데, 이적(夷狄)이라고 해서 어찌 임금이 없겠는가? 너희 요나라는 천명을 준수하지 않고 수차 강토를 침범하였으므로 일고(一鼓)에 없애 버리는 것이 마땅하나, 짐이 정성어린 표문을 보고 그 애절함을 가련히 여기고 그 고독함을 불쌍히 여겨 차마 죽이지 않고 그 나라를 보존해 주기로 하였다.
조서가 당도하는 날, 사로잡은 장병들을 모두 석방하여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빼앗은 성도 본국의 관할로 돌려보낼 것이며, 해마다 바치는 조공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하라. 아! 대국을 공경하여 섬기고 천지를 경외하는 것이, 변방 울타리의 직무이니라. 너희는 삼가 행하도록 하라!
선화 4년 겨울
시랑이 조서 낭독을 마치자, 임금과 백관은 재배하고 사은하며 군신(君臣) 간의 예를 다하였다. 조서를 올려놓은 용안을 치우고, 임금은 숙태위와 상견하였다. 예를 마치고 후전으로 청하여 연회를 열어 대접하였다. 산해진미가 갖추어졌고, 요나라 관원들이 술을 가져오고 장수들은 술을 권하였다. 가무가 벌어지고 풍악이 울렸다. 연경의 미녀들이 북방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췄다. 연회가 끝나자, 숙태위와 장수들을 역관으로 안내하여 쉬게 하고 수행한 인원들에게도 모두 상을 주었다.
다음 날, 요나라 임금은 승상 저견에게 명하여 송군 영채로 가서 조추밀과 송선봉을 청해 함께 연경으로 오게 하였다. 송강은 군사 오용과 의논하느라 가지 못하고, 조추밀만 연경성으로 가서 숙태위와 함께 연석에 앉았다.
그날도 요나라 임금은 연회를 크게 열고 송나라 사신 일행을 대접하였다. 포도주가 은항아리에 넘쳐나고 양고기가 금쟁반에 가득하였다. 기이한 과일이 상 위에 쌓이고, 기이한 꽃들이 고운 빛깔을 뽐냈다. 연회가 끝날 무렵 임금은 금쟁반에 보물을 가득 담아 숙태위와 조추밀에게 바쳤다. 술을 마시며 즐기다가 밤늦게 헤어졌다.
사흘째 되는 날, 임금은 문무백관을 소집하여 풍악을 울리면서 숙태위와 조추밀을 전송하였다. 그리고 승상 저견에게 다시 명하여, 소 · 양 · 말과 금은 · 비단 등의 예물을 가지고 송선봉의 영채로 가서 연회를 크게 열어 삼군을 위로하고 장수들에게 상을 주도록 하였다.
송강은 영을 전하여, 천수공주 등 1천 명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게 하고 빼앗았던 단주 · 계주 · 패주 · 유주를 요나라 관할로 돌려보내게 하였다. 먼저 경성으로 돌아가는 숙태위 일행을 전송하고, 그 후에 장수들과 군병, 수레 등을 수습하여 조추밀을 호송하여 떠나게 했다. 송선봉은 영채 내에서 연회를 열어 수군두령들을 위로하고 나서 배를 타고 수로로 먼저 동경으로 가서 대기하라고 하였다.
송강은 다시 사람을 연경으로 보내 좌우 승상을 군중으로 불렀다. 요나라 임금은 좌승상 유서패근과 우승상 태사 저견을 송선봉의 영채로 보냈다. 송강은 두 사람을 장막으로 맞이하여 빈객을 나누어 앉아, 말했다.
“우리 무장병들이 성 아래 임하여 공을 세우는 일이 가까이 다가왔었소. 그래서 본래는 그대들의 투항을 용납하지 않고, 성을 깨뜨린 후에 모두 죽여 버리는 것이 마땅한 이치였소. 그런데 우리 원수께서 그대들의 투항을 받아들이고 조정에 아뢰는 것을 허용하셨소. 그리고 황상께서도 그대들을 가련하게 여기고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발휘하시어, 죽이지 않고 투항을 허락하신 것이오. 이제 우리 임무가 끝나 동경으로 돌아가는데, 결코 송강이 그대를 이기지 못하여 돌아가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시오. 해마다 공물을 바치는 일을 빠뜨리지 않도록 하시오. 내가 이제 돌아가지만, 그대들은 삼가 본분을 지키고 다시 침범하지 않도록 하시오. 천병이 다시 오게 되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두 승상은 머리를 조아리고 죄를 빌며 사례하였다. 송강은 다시 좋은 말로 훈계하였고, 두 승상은 간곡히 사례하고 돌아갔다.
송강은 일장청으로 하여금 한 부대를 이끌고 먼저 출발하게 하였다. 그리고 군중에 있는 석공들을 불러 비석을 만들게 하고, 소양에게 글을 지어 이번 일을 기록하게 하였다. 김대견이 글을 새긴 다음, 영청현 동쪽 15리 지점에 있는 모산(茅山)에 세웠다. 지금까지 그 고적이 존재하고 있다.
송강은 군마를 다섯 부대로 나누어 날을 정해 출발하기로 하였다. 그때 노지심이 문득 찾아와 합장하고 인사하며 송강에게 말했다.
“이 아우가 지난날 진관서를 때려죽이고 대주 안문현으로 도망쳤다가, 조원외가 저를 오대산으로 보내 지진장로께 예를 올리고 머리 깎고 중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두 번이나 선문(禪門)에서 소란을 피워, 사부님께서 저를 동경 대상국사의 지청선사께 보냈습니다. 선사께서는 저를 집사승으로 삼아 대상국사의 채소밭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임충을 구했기 때문에 고태위의 위협을 받아 결국 도적이 되었습니다. 그 후로 형님을 만나 오랫동안 수행하면서 또 수년이 지났습니다. 제가 그동안 사부님을 늘 생각했지만, 한 번도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에게 하신 말씀을 항상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제가 비록 살인 방화하는 심성을 타고났지만, 후에는 반드시 참된 나를 깨달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태평무사한 때가 되었으니, 저에게 며칠 간 휴가를 주시면 오대산으로 가서 사부님을 찾아뵙고 싶습니다. 그동안에 얻은 재물을 모두 보시하고, 사부님께 저의 앞날을 다시 여쭈어 보고자 합니다. 형님께서 군마를 거느리고 먼저 가시면, 아우가 뒤를 따라 가겠습니다.”
송강은 노지심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지만, 묵묵히 생각하다가 말했다.
“자네에게 그런 살아있는 부처님 같은 분이 계셨다면, 왜 좀 더 일찍 말하지 않았는가? 우리도 함께 가서 참례하고 앞날을 여쭈어 보세.”
송강이 여러 두령들과 상의하자, 모두 가고 싶어 했다. 다만 공손승만은 도교의 도사인지라, 가지 않으려 했다. 송강은 오용과 상의하여 결정했다.
“김대견 · 황보단 · 소양 · 악화 네 사람을 남겨 부선봉 노준의와 함께 군마를 거느리고 먼저 떠나게 합시다. 우리는 여러 형제들과 함께 1천 명을 데리고 노지심을 따라 지진장로에게 참례하러 갑시다.”
송강과 여러 두령들은 향 · 비단 · 의복 · 금은 등을 수습하여 오대산으로 떠나갔다.
오대산의 지진장로는 원래 송나라 때 당세의 활불(活佛)로서 과거와 미래의 일을 모두 알고 있었다. 수년 전에 이미 노지심이 깨달음을 얻을 사람임을 알았지만, 다만 속세의 인연이 아직 다하지 못해 살생의 업보를 갚아야 하므로 그를 속세로 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업보가 거의 끝나가고 본래의 도심(道心)으로 돌아가면서 스승을 찾아뵈려는 마음이 생겨난 것이었다. 송공명 역시 평소에 선심(善心)이 있었으므로, 노지심과 함께 지진장로를 찾아뵙게 되었다.
송강과 여러 두령들은 수행인마를 거느리고 노지심과 함께 오대산에 당도하였다. 인마는 산 아래에 영채를 세워 머물게 하고, 사람을 산 위로 보내 알렸다. 송강 등은 모두 무장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서 걸어서 산을 올라갔다.
산문에 당도하자 절 안에서 종소리와 북소리가 나면서 여러 스님들이 나와 영접하고, 송강과 노지심 등에게 인사하였다. 그들 가운데는 노지심을 알아보는 이도 많았다. 그들은 당당한 많은 두령들이 송강을 따라온 것을 보고 모두 놀랐다. 앞장선 수좌가 송강에게 말했다.
“장로께서는 좌선(坐禪) 중이시므로 장군을 영접하지 못하십니다.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수좌는 송강 등을 손님방으로 인도하였다. 차를 마시고 나자, 시자(侍者)가 나와서 말했다.
“장로께서 좌선을 마치시고 방장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장군께서는 들어가시지요.”
송강 등 일행 백여 명이 방장으로 가서 지진장로에게 인사를 올리자, 장로는 황망히 계단을 내려와 맞이하였다. 방장으로 들어가 예를 마친 다음 송강이 장로를 보니, 나이는 예순을 넘어 눈썹과 머리도 모두 백발이었다. 골격은 깨끗하면서 기이하였고, 위엄이 있어 하늘 높이 솟은 산과 같은 모습이었다.
송강은 지진장로를 상좌에 모시고, 향을 피우며 예배를 올렸다. 모든 두령들의 예배가 끝난 다음, 노지심이 앞으로 나아가 향을 꽂고 예배를 올렸다. 지진장로가 말했다.
“제자가 이곳을 떠난 지 수년이 지났는데, 아직 살인 방화하는 태도를 바꾸지 못했구나.”
노지심이 묵묵히 있자, 송강이 앞으로 나아가 말했다.
“장로님의 청아한 덕을 오래 전부터 들었으나, 인연이 없어 존안을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이번에 조칙을 받들어 요나라를 격파하고 이곳에 이르러, 큰스님을 배견하게 되니 평생의 다행입니다. 지심 형제는 비록 살인 방화하였으나, 충심이 있어 선량한 사람을 해치지 않았습니다. 지금 송강과 여러 형제들을 인도하여 대사님을 뵙게 한 것도 바로 지심 형제였습니다.”
지진장로가 말했다.
“고승들이 이곳에 와서 세상일을 들려주기도 합니다. 오래 전부터 장군께서 하늘을 대신하여 도를 행하고 충의를 마음에 지니고 있음을 들어 왔습니다. 나의 제자 지심이 장군을 따라다녔으니, 어찌 잘못된 일을 했겠습니까!”
송강은 감사해 마지않았다.
노지심이 금은과 비단 등을 한 보따리 바치자, 지진장로가 말했다.
“제자는 이 물건들을 어디서 얻었는가? 의롭지 못한 재물은 결코 받을 수 없다.”
노지심이 아뢰었다.
“제자가 여러 번 공을 세워 상으로 받은 것들입니다. 저는 쓸 데가 없으니, 스승님께 바칩니다. 공용으로 써 주십시오.”
장로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쓰기는 어렵겠다. 너를 위해 불경을 만들어 간직해 두마. 죄악을 소멸하고 빨리 선과(善果)을 얻도록 해라.”
노지심은 감사의 절을 올렸다.
송강도 금은과 비단을 바쳤는데, 장로는 한사코 받지 않으려 했다. 송강이 아뢰었다.
“스승님께서 받지 않으시니, 창고에 넣어두었다가 재(齋)를 올릴 때나 스님들의 공양에 쓰십시오.”
송강 일행은 그날 오대산 절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 날 절의 살림을 감독하는 스님이 재를 지낼 준비를 갖추었다. 오대산 절 안의 법당에서 종과 북을 울리자, 지진장로는 스님들을 법당에 모아 설법을 하고 참선했다. 잠시 후 모든 스님들이 가사를 입고 법당에 좌정하고, 송강과 노지심 등 여러 두령들은 양쪽에 시립하였다. 경쇠 소리가 울리자, 두 개의 홍사등롱이 장로를 법좌로 인도하였다. 지진장로는 법좌에 올라앉아 먼저 향을 사른 다음 축원했다.
“이 향을 사르며 엎드려 비옵니다. 황상께서 만수무강하시고 만민이 생업을 즐기게 해주십시오. 다시 한 번 향을 사르며 기원합니다. 재주(齋主)의 신심이 안락하고 수명이 연장되도록 해주십시오. 또 다시 향을 사르며 기원합니다. 나라가 안정되고 백성이 편안하며 해마다 풍년이 들게 해주시고 삼교(三教)가 흥왕하고 사방이 평안하게 해주십시오.”
축원을 마치고 지진장로가 법좌에 앉자, 스님들이 합장 배례하였다. 송강이 앞으로 나아가 향을 사르고 예배한 다음 합장하고 말했다.
“제가 스승님께 감히 여쭈어 볼 말씀이 있습니다. 뜬 구름 같은 세상에서 주어진 세월은 유한한데 고해(苦海)는 끝이 없습니다. 사람의 몸은 미천하지만, 생사가 가장 큰일입니다.”
지진장로가 게(偈)로 대답했다.
육근(六根)의 속박이 여러 해이고
사대(四大)의 얽매임도 오래되었다.
석화(石火) 같은 빠른 빛 속에서
몇 번이나 곤두박질할까?
아!
뜬구름 같은 세계의 중생들이
모래 더미 속에서 울부짖는구나.
(六根은 여섯 가지 지각기관인 눈 · 귀 · 코 · 혀 · 몸 · 의식. 四大는 신체를 구성하는 네 가지 요소인 地水火風.)
장로가 게를 마치자, 송강은 배례하고 시립하였다. 두령들이 모두 앞으로 나와 향을 사르고 예배한 다음 맹세하였다.
“다만 형제들이 동생동사(同生同死)하고 세세상봉(世世相逢)하기만을 원합니다!”
분향을 마치자 스님들은 모두 물러가고, 두령들은 운당(雲堂)으로 가서 재를 지냈다. 재를 마친 후, 송강은 노지심과 함께 장로를 따라 방장으로 갔다. 저녁까지 한가한 얘기를 나누다가, 송강이 장로에게 물었다.
“제자가 노지심과 함께 본래는 스승님을 며칠 동안 따르면서 어리석음을 깨우치려 하였는데, 대군을 거느리고 있어 오래 머물 수가 없습니다. 스승님께서 하신 말씀을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작별 인사를 드리고 경성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저희 형제들의 앞날이 어떠한지 스승님께서 밝게 가르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지진장로는 지필묵을 가져오게 하여, 사구게(四句偈)를 써 주었다.
當風雁影翩 바람을 만나 기러기는 날아가고
東闕不團圓 동궐에 단란히 모일 수 없네.
隻眼功勞足 외눈에는 공로가 족하지만
雙林福壽全 쌍림에 복수(福壽)가 모두 있네.
지진장로는 사구게를 써서 송강에게 주며 말했다.
“이는 장군의 일생을 말한 것이니 깊이 간직하십시오. 훗날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송강은 봐도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어, 장로에게 다시 물었다.
“제자가 어리석어 법어를 깨닫지 못하겠습니다. 스승님께서 명백하게 설명해 주셔서 근심과 의심을 풀어 주십시오.”
지진장로가 말했다.
“이는 선기(禪機)가 감추어진 말이라, 스스로 깨달아야 하지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장로는 말을 마치고, 노지심을 가까이 불러 말했다.
“네가 이제 가면 나와는 영원히 이별이지만, 머지않아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너에게 사구게를 줄 테니, 종신토록 지니도록 해라.”
逢夏而擒 하(夏)를 만나 사로잡고
遇臘而執 납(臘)을 만나 붙잡는다.
聽潮而圓 조(潮)를 들으면 깨닫고
見信而寂 신(信)을 보면 입적(入寂)한다.
노지심은 절을 하고 게를 받아 몇 번 읽어 본 다음 품속에 간직했다.
또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 송강과 노지심 일행은 장로를 작별하고 산을 내려왔다. 지진장로와 스님들이 모두 산문 밖에까지 나와서 전송했다.
송강 일행은 오대산을 내려와 군마를 거느리고 급히 본채로 돌아왔다. 노준의와 공손승 등이 송강 일행을 맞이했다. 송강은 노준의 등에게 오대산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지진장로가 준 사구게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노준의나 공손승도 그 뜻을 알지 못했다. 소양이 말했다.
“선기(禪機)가 숨어있는 법어인데, 어찌 쉽게 알 수 있겠습니까?”
모두 놀라고 궁금해 했다.
송강은 명을 전해 군마를 재촉하여 출발 준비를 하라고 했다. 장수들은 명을 받고 삼군의 인마를 재촉하여, 동경을 향해 출발했다. 군사들은 지나는 지방마다 추호도 백성을 범하지 않았다. 백성들은 노인을 부축하고 어린애들 손을 이끌고 나와서 군대를 구경하면서, 송강을 비롯한 장수들의 영웅적인 모습을 칭송하고 공경했다.
송강 일행은 며칠을 행군하여 쌍림진이란 곳에 당도하였다. 그 고을 주민들과 가까운 시골의 농부들이 모두 나와 군대를 구경했다. 송강 일행이 열을 지어 나아가는데, 문득 전군의 한 두령이 말에서 뛰어내려 구경꾼들 가운데 한 사람을 붙들고 소리쳤다.
“형이 어찌하여 여기 계시오?”
두 사람은 인사를 나누고 얘기를 주고받았다. 송강이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낭자 연청이 어떤 사람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연청이 공수하고 말했다.
“허형! 이 분이 바로 송선봉이십니다.”
송강이 그 사람을 보니, 빛나는 눈에 눈동자가 두 개였고 눈썹은 팔자 모양이었다. 키는 7척 정도인데 세 가닥 콧수염을 길렀으며 머리엔 검은 두건을 쓰고 삼베 도복을 입고 있었다. 결코 평범한 사람 같지 않고, 산림에 숨어 사는 선비 같았다.
송강은 황망히 말에서 내려 몸을 굽혀 인사하고 물었다.
“고사(高士)의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그 사람이 땅에 엎드려 송강에게 절을 하며 말했다.
“장군의 성함을 오래 전부터 들었는데, 오늘에야 뵙게 되었습니다!”
놀란 송강이 얼른 그를 일으키며 말했다.
“하찮은 송강에게 어찌 이런 과분한 인사를 하십니까?”
그가 말했다.
“저는 허관충이라 하며, 대명부 사람인데 지금은 산속에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 연장군과 사귀었는데, 뜻밖에 이별한 지 10여 년이 지나도록 만나지 못했습니다. 후에 제가 강호를 떠다닐 때 연형이 장군 휘하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흠모하여 마지않았습니다. 오늘 장군께서 요나라를 격파하고 개선하신다는 것을 듣고 이렇게 뵈러 나왔는데, 여러 영웅들을 뵙게 되어 평생의 행운입니다. 연형을 저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얘기나 나누어 보고 싶은데, 장군께서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연청 역시 아뢰었다.
“아우가 허형과 이별한 지 오래 되었는데, 여기서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형님께서 허락해 주시면, 한번 갔다 오겠습니다. 형님께서 먼저 가시면, 아우가 곧 뒤따라가겠습니다.”
송강이 문득 생각이 나서 말했다.
“연청 아우가 항상 선생이 영웅답다고 말했었는데, 송강이 운이 없고 인연이 없어 만나지 못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뵙게 되었으니, 우리와 함께 가시면서 가르침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허관충이 사양하며 말했다.
“장군께서 충의를 중시하시니 저도 오래 전부터 가까이서 모시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노모께서 연세가 칠순이 넘어 감히 멀리 떠날 수가 없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그렇다면 억지로 권할 수는 없겠지요.”
송강이 또 연청에 말했다.
“아우는 빨리 돌아오게. 그래야 내가 마음을 놓을 수 있으니. 게다가 이제 곧 경성에 당도할 것이니, 천자를 알현해야 하네.”
연청이 말했다.
“아우가 감히 형님의 명령을 어기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연청은 다시 노준의에게도 아뢰고, 작별했다.
송강이 말에 올랐을 때, 앞서 가던 두령들은 이미 화살 날아갈 거리만큼 가고 있었는데, 송강이 허관충과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말을 세우고 기다리고 있었다. 송강이 말을 달려가자, 모두 함께 출발하였다.
한편, 연청은 가까이 따르던 군졸 한 명을 불러, 행장을 챙기게 하고 따로 말 한 필도 준비하게 하였다. 자신의 준마는 허관충이 타게 하였다. 가까이 있는 주점에 들어가 무장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두 사람은 말을 타고 앞서 가고, 군졸은 행장을 짊어지고 뒤를 따라갔다. 쌍림진을 떠나 서북쪽으로 작은 길을 따라 갔다.
작은 마을을 지나고 숲이 우거진 언덕을 넘어가자, 꼬불꼬불한 산길이 나타났다. 두 사람은 옛정을 생각하며 흉중의 얘기를 나누었다. 좁은 산길을 벗어나고 큰 계곡을 돌아가 약 30리쯤 가자, 허관충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높은 산중에 내 집이 있소.”
다시 10여 리를 가서 산중에 당도하였는데, 산세가 수려하고 계곡물이 맑아 연청은 경치 구경을 하느라 날이 저무는 것도 알지 못했다.
원래 그 산은 대비산이라고 불렸는데, 아주 옛날에 우(禹)임금이 황하를 다스릴 때 이곳에 온 적이 있었다. 서경(書經)에 ‘대비(大伾)에 이르렀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지금은 대명부 준현 지방에 속해 있었다.
허관충은 연청을 인도하여 몇 개의 산굽이를 지나 오목한 곳에 당도하였는데, 넓이가 4~5리 정도 되는 넓고 평탄한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 숲 속에 세 채의 초가가 눈에 띄었는데, 그 가운데 남쪽 개울가에 몇 칸짜리 초가가 있었다. 대나무 울타리가 둘러 있고 사립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주위에는 곧게 뻗은 대나무와 푸른 소나무, 단풍나무와 측백나무들이 울창하였다.
허관충이 손가락을 그 집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가 나의 누추한 집이오.”
연청이 대나무 울타리 안을 들여다보니, 머리카락이 누런 시골 아이 하나가 베옷을 입고서 땅에 널린 마른 소나무 가지들을 주워 처마 아래에 쌓고 있었다. 아이는 말발굽 소리를 듣고 일어나 바깥을 내다보고는 이상하다는 듯이 소리쳤다.
“저기 말이 오고 있다!”
그리고는 자세히 보다가 말을 타고 뒤에 오는 사람이 주인인 것을 알아보고, 황망히 문 밖으로 달려 나와 두 손을 모으고 서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처음에 말을 타고 떠날 때 허관충이 말방울을 떼고 가자고 했던 이유를, 여기에 와서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말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고, 군졸은 말을 묶어 두었다.
두 사람은 초당으로 들어가 주객이 자리를 나누어 앉았다. 차를 한 잔 마신 다음, 허관충은 따라온 군졸에게 말안장을 내리고 말을 뒤편의 초방으로 데려가게 하였다. 그리고 아이를 불러 말에게 풀을 먹여 주라 하고, 군졸은 곁방에서 쉬게 하였다.
연청이 허관충의 노모에게 절을 한 다음, 허관충은 연청을 이끌고 서쪽에 있는 동향의 초가로 갔다. 뒤쪽 창을 열자 한 줄기 맑은 개울이 흘러가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허관충이 말했다.
“우리 집이 작고 누추하더라도, 형은 웃지 마시오.”
연청이 대답했다.
“산수 경치가 수려하여 구경하기 바쁩니다. 참으로 이런 곳은 보기 어렵습니다.”
허관충이 요나라 정벌에 관해 묻자, 연청이 얘기하느라 제법 시간이 흘렀다. 아이가 등불을 가져오고 창문을 닫고서, 탁자를 펼쳐 음식을 차렸다. 채소 대여섯 접시와 닭고기 한 쟁반, 생선 한 쟁반, 그리고 집안에 저장해 두었던 산과일을 차려놓았다. 그리고 술을 내놓았다. 허관충이 한 잔을 따라 연청에게 권하며 말했다.
“형을 여기까지 모셔 와서는, 시골 탁주와 야채뿐입니다. 손님 대접이 소홀해서 죄송합니다.”
연청이 사례하며 말했다.
“제가 도리어 폐를 끼쳐 미안합니다.”
술을 몇 잔 마시는 사이에 창밖에 달빛이 대낮처럼 환해졌다. 연청이 창을 열고 바라보니, 또 다른 경치가 펼쳐졌다. 구름은 가볍게 떠 있고 바람은 잔잔한데, 달은 희고 개울은 맑으며, 산 그림자가 물에 비쳤다. 연청이 칭찬하며 말했다.
“예전에 대명부에 살 때 형과 가장 막역했는데, 형이 과거를 보러 간 후로 보지 못했죠. 그런데 이렇게 좋은 곳을 찾아 살고 있으니 참으로 그윽하고 우아합니다! 그런데 저는 동쪽으로 서쪽으로 뛰어다니고만 있으니, 어느 때나 이렇게 깨끗하고 한가하게 지낼 수 있을까요?”
허관충이 웃으며 말했다.
“송공명과 여러 장군들은 모두 세상을 뒤덮을 만한 영웅으로, 하늘의 별자리에 응하는 사람들이오. 거기다 이제는 그 위세가 강한 오랑캐들까지 복종시켰소. 나같이 달팽이처럼 산에 엎드려 사는 자가 어찌 한 터럭이라도 형에 미칠 수 있겠소? 나는 또 시의에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오. 간사한 무리들이 권력을 전횡하면서 조정을 가리고 있는 것을 보고 벼슬에 나아갈 뜻을 잃어 강호를 떠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이르렀소. 나도 꽤나 소심한 사람이오.”
말을 마치고 크게 웃었다. 그리고 잔을 씻고 다시 술을 따랐다. 연청이 백금 20냥을 꺼내 허관충에게 내밀며 말했다.
“작은 예물이지만, 내 성의입니다.”
허관충이 한사코 받지 않자, 연청이 말했다.
“형은 재능이 있으니, 이 아우와 함께 경성으로 가서 출세할 방도를 찾아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허관충은 탄식하며 말했다.
“지금 간사한 자들이 득세하여 현명한 사람과 재능 있는 사람을 시기 질투하고 있소. 귀신같은 자들이나 사람에게 독기를 쏜다는 물여우 같은 자들이 모두 높은 관을 쓰고 넓은 띠를 매고 있으며, 충량하고 정직한 사람들은 모두 감옥에 갇혀 있거나 해를 입고 있소. 벼슬하려던 내 생각은 이미 오래 전에 재가 되었소. 형도 공명(功名)을 성취하는 날 마땅히 물러날 길을 찾으시오. 옛말에 이르기를, ‘독수리가 없어지면 좋은 활도 창고에 감추어진다.’고 하였소.”
연청도 고개를 끄덕이며 탄식하였다. 두 사람은 밤늦게까지 얘기를 나누다가 잠을 잤다.
다음 날 아침 세수하고 아침밥을 먹은 다음, 허관충은 연청을 데리고 산 구경을 나섰다. 산봉우리가 겹겹이 가로막고 사면이 모두 산이어서, 오직 날짐승의 울음소리만 들릴 뿐 인적은 보이지 않았다. 산중에 살고 있는 인가는 모두 20여 가에 지나지 않았다. 연청이 말했다.
“여기가 무릉도원보다 낫겠습니다.”
온종일 산 경치를 구경하다가 저녁이 되어 돌아와, 또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 날, 연청은 허관충을 작별하며 말했다.
“송선봉께서 염려하실까 걱정되니 이만 작별해야겠습니다.”
허관충이 문 앞까지 배웅 나왔다가, 말했다.
“잠깐만 기다리시오!”
잠시 후 아이가 두루마리 하나를 가지고 나왔고, 허관충이 그걸 연청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건 내가 근래에 그린 졸렬한 그림인데, 경성에 가거든 한번 세밀히 보시오. 나중에 혹 쓰일 데가 있을지 모르겠소.”
연청은 감사인사를 하고 군졸에게 행장 속에 갈무리하게 했다. 두 사람은 차마 헤어지기 아쉬워 1~2리를 같이 걷다가, 연청이 말했다.
“‘천리를 배웅해도 끝내 이별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멀리 나오지 마시고, 나중에 다시 만납시다.”
두 사람은 아쉽게 작별했다. 연청은 허관충이 멀리까지 돌아간 뒤에야 비로소 말에 올랐다. 군졸도 말에 올라 함께 달려가 하루도 안 되어 동경에 도착했다. 마침 송선봉은 진교역에 주둔하고서 천자의 성지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연청은 영채로 가서 송선봉을 뵈었다.
한편, 먼저 돌아온 숙태위와 조추밀의 중군 인마가 도성으로 들어와, 송강 등의 공로를 천자에게 아뢰었다. 그리고 송선봉과 여러 장수들이 병마를 거느리고 돌아와 관외에 이미 당도했음을 보고하였다.
조추밀은 천자 앞에서 송강과 여러 장수들이 변방에서 고생한 일을 자세히 아뢰었다. 천자는 그걸 듣고 크게 칭찬하면서, 황문시랑에게 성지를 내려 송강 등은 갑옷을 입고 도성으로 들어와 천자를 알현하게 하라고 명하였다.
송강과 여러 장수들은 성지를 받들어 갑옷을 입고 천자가 하사한 금패나 은패를 걸고 동화문으로 들어가, 문덕전에 이르러 천자를 알현하고 절을 한 다음 만세를 세 번 불렀다. 황제가송강 등을 보니 모두 영웅으로 비단 전포를 입고 금띠를 둘렀는데, 오용 · 공손승 · 노지심 · 무송만은 본래 복장이었다. 천자는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과인은 경들이 변방에 나가 적과 싸우느라 노고가 많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부상을 입은 자가 많다고 하니, 과인이 심히 걱정된다.”
송강이 재배하고 아뢰었다.
“성상의 홍복 덕분에, 신들이 비록 다치기는 했으나 모두 무사합니다. 이제 조정에 거역하던 오랑캐들이 투항하여 변경이 편안해졌으니, 실로 폐하의 위덕 덕분입니다. 신들이 무슨 노고가 있었겠습니까?”
송강은 재배하고 칭사하였다. 천자는 중서성 관원들에게 명하여 관작 봉하는 일을 의논하라고 하였다. 태사 채경과 추밀사 동관이 상의하여 아뢰었다.
“송강 등의 관작은 신들이 의논하여 다시 아뢰겠습니다.”
천자는 그렇게 하라고 이르고, 광록시에 명하여 연회를 열게 하였다. 송강에게는 비단 전포 한 벌과 황금 갑옷 한 벌, 명마 한 필을 하사하였고, 노준의 이하 장수들에게는 황금과 비단을 상으로 내렸다.
송강과 장수들은 천자에게 사은하고 궁궐을 나와 서화문 밖에 주둔하면서 성지를 기다렸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채경과 동관 등이 관작 봉할 일을 의논하지 않고 시간만 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송강은 영채에서 한가하게 군사 오용과 고금의 흥망성쇠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대종이 석수와 함께 평복 차림으로 와서 말했다.
“영중에서 가만히 있자니 무료해서, 오늘 석수 형제와 함께 나들이나 할까 해서 형님께 아뢰러 왔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갔다가 빨리 돌아오게. 함께 술이나 한 잔 하세.”
대종은 석수와 함께 진교역을 떠나 북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저자거리 몇 개를 지나 걷다 보니, 문득 길가에 큰 비석이 하나 서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비석에는 ‘조자대(造字臺)’라고 쓰여 있고, 그 위에 작은 글자가 몇 줄 쓰여 있었는데 풍우에 깎여 분명히 보이지가 않았다. 대종이 자세히 보고 말했다.
“창힐(蒼頡)이 문자를 만들었던 곳이군.”
석수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는 별로 안 쓰는 것이지요.”
두 사람은 웃었다. 또 걸어가다가 어떤 큰 공터에 다다랐는데, 땅바닥에 온통 기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북쪽에 돌문이 하나 있고 거기에 가로로 석판이 하나 걸려 있는데, ‘박랑성(博浪城)’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대종이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원래 이곳이 한(漢)나라 유후(留侯) 장량이 역사(力士)를 시켜 철퇴로 진시황을 공격했던 곳이로군.”
대종이 칭찬하여 말했다.
“유후는 훌륭한 분이었지!”
석수가 말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철퇴가 명중하지 못했죠!”
두 사람은 탄식하면서 또 북쪽을 향해 걸어갔는데, 어느덧 영채에서 20여 리나 떨어졌다. 석수가 말했다.
“벌써 반나절이나 지났네요. 어디 가서 술이나 한 사발 하고 영채로 돌아갑시다.”
대종이 말했다.
“저 앞에 있는 것이 주점 아닌가?”
두 사람은 주점으로 들어가 창가 밝은 곳에 자리 잡고 앉았다. 대종이 탁자를 두드리며 소리쳤다.
“술 가져오너라!”
점원이 채소 몇 접시를 탁자 위에 갖다놓으며 물었다.
“나리! 술을 얼마나 드릴까요?”
석수가 말했다.
“먼저 술 두 병 하고 안주거리 가져오게.”
잠시 후 점원이 술 두 병과 소고기 · 양고기 · 닭고기를 한 쟁반 가져왔다. 두 사람은 술을 마시면서 한담을 나누고 있었는데, 그때 한 사내가 우산과 곤봉을 들고 주점으로 들어왔다. 등에는 보따리를 지고 허리에는 전대를 차고 있었는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우산과 곤봉, 보따리를 내려놓고 자리에 앉아 소리쳤다.
“빨리 술과 고기를 가져오너라!”
점원이 술 한 병과 채소 세 접시를 갖다놓자, 사내가 말했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빨리 고기 한 접시 썰어 오너라. 얼른 먹고 성으로 들어가 볼 일 봐야겠다.”
그리고 술을 따라 벌컥벌컥 들이켰다. 대종이 사내를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저자는 공인 같은데, 무슨 일로 저렇게 급할까?”
대종은 사내 앞으로 가서 공수하고 물었다.
“형씨! 무슨 일이 있길래, 그렇게 서두르시오?”
사내가 젓가락을 내려놓고 입을 닦고서, 대종에게 말했다.
“하북(河北)의 전호(田虎)가 난을 일으켰는데, 아십니까?”
대종이 말했다.
“나도 조금은 알고 있소만.”
“전호란 놈이 고을을 침략하여 빼앗고 있는데, 관군은 막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근래에는 개주를 깨뜨렸고, 조만간 위주도 공격할 겁니다. 성안의 백성은 밤낮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고 성 밖의 백성은 사방으로 도망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부에서 나를 중서성으로 보낸 것입니다. 위급을 고하는 공문도 있습니다.”
말을 마치자, 사내는 일어나서 보따리를 지고 우산과 곤봉을 들고, 급히 계산을 한 다음 문을 나서면서 탄식하여 말했다.
“참으로 관아의 심부름은 못해 먹을 노릇이구나! 우리 가족도 모두 성중에 있는데. 황천이시여! 구원병이 빨리 가도록 해주십시오!”
사내는 도성을 향해 달려갔다.
대종과 석수는 그 소식을 듣고 바로 주점을 나와 영채로 가서 송선봉에게 그 일을 보고하였다. 송강이 오용과 상의하며 말했다.
“우리 장수들이 여기서 한가하게 지내고 있는 것이 마땅치 않은 것 같소. 차라리 천자께 아뢰어 병력을 일으켜 전호를 정벌하러 가는 것이 좋겠소.”
오용이 말했다.
“그 일은 숙태위가 아뢰어야 될 것입니다.”
장수들을 소집하여 상의하자, 모두 기뻐하였다.
다음 날, 송강은 관복을 입고 수십 기를 거느리고 성으로 들어가, 곧장 숙태위의 부중을 찾아갔다. 마침 숙태위가 부중에 있어, 사람을 시켜 알렸다. 숙태위는 황망히 불러들였다. 송강이 당상에 당도하여 재배하자, 숙태위가 말했다.
“장군은 무슨 일로 이렇게 오셨소?”
송강이 말했다.
“상공께 말씀 올립니다. 제가 들으니, 하북의 전호가 반란을 일으켜 고을을 점거하고 멋대로 연호를 고쳤다고 합니다. 개주를 이미 침략하였고, 조만간에 위주를 공격할 것이라고 합니다. 송강의 인마가 오래도록 한가하였으니, 저희가 병력을 거느리고 가서 전호를 정벌하여 진충보국(盡忠報國)하자고 합니다. 상공께서 천자께 아뢰어 주십시오.”
숙태위는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며 말했다.
“장군께서 이처럼 충의의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힘을 다하시겠다니, 내가 마땅히 힘써 천자께 아뢰겠습니다.”
송강이 사례하며 말했다.
“저희들이 누차 태위의 두터운 은덕을 입으니, 각골명심(刻骨銘心)하더라도 보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숙태위는 술을 내어 대접하였다. 저녁에 송강은 영채로 돌아와 여러 두령들에게 숙태위와의 대화를 얘기해 주었다.
한편, 숙태위가 다음 날 조정에 들어가니, 천자는 피향전에 있었다. 중서성에서 하북의 전호가 반란을 일으켰음을 아뢰었다. 5주(州) 56현(縣)을 점거하고 연호를 고쳤으며 스스로 왕이라고 칭하고 있는데, 지금 능주와 회주를 공격하고 있다고 하였다. 놀란 이웃 주에서 위급을 고하는 공문이 올라왔다고 하였다. 천자는 크게 놀라 문무백관에게 물었다.
“경들 가운데 누가 과인을 위해 이 도적을 없애겠소?”
반열에서 숙태위가 나와 엎드려 아뢰었다.
“신이 듣건대, 전호는 파죽지세로 이미 중원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맹장과 웅병이 아니면 치기 어렵습니다. 지금 요나라를 격파하고 돌아온 송선봉이 도성 밖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칙령을 내려 송선봉으로 하여금 전호를 치게 하시면 반드시 대공을 세울 것입니다.”
천자는 크게 기뻐하며 즉시 중서성 관원을 보내 송강과 노준의를 피향전으로 불러오게 하였다. 송강과 노준의가 천자를 알현하고 절을 올리자, 천자가 말했다.
“짐은 경들이 영웅이며 충의를 품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이제 경들에게 하북을 정벌할 것을 명하니, 경들은 노고를 아끼지 말라. 개선가를 부르며 돌아오면, 짐이 중용할 것이다.”
송강과 노준의가 머리를 조아리고 아뢰었다.
“신들은 이미 성은을 입었습니다. 어찌 감히 이 한 몸을 다 바쳐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지 않겠습니까!”
천자는 기뻐하면서 송강을 평북정선봉(平北正先鋒)에, 노준의를 부선봉에 임명하였다. 두 사람에게는 어주, 황금 허리띠, 비단 전포, 황금 갑옷, 비단 등을 하사하고, 나머지 장수들에게는 비단과 은냥을 하사하였다. 하북을 평정하고 오면 공에 따라 상을 주고 관작도 내리겠다고 하였다. 송강과 노준의는 재배하고 사은한 다음 영채로 돌아가, 장수들을 소집하여 전호를 정벌하러 갈 준비를 하라고 명하였다.
다음 날, 궁궐의 창고에서 비단과 은냥이 내려와, 장수들과 삼군에 지급하였다. 송강은 오용과 의논하여, 수군두령들에게 전선을 정돈하여 변하(汴河)에서 황하로 들어가 원무현 경계에 당도하여 대군을 기다렸다가 강을 건너게 하라고 하였다. 또 마군두령들에게는 마필을 정돈하여 수륙으로 함께 전진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명하였다.
한편, 하북의 전호는 원래 위승주 심원현의 사냥꾼이었다. 힘이 세고 무예가 뛰어났는데, 오로지 악한 자들만 사귀었다. 그가 사는 곳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무리가 모이기에 쉬웠다. 또 마침 홍수와 가뭄이 빈번히 일어나 백성들이 곤궁하여, 인심이 반란을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전호는 그 기회를 틈타 도망자들을 규합하고 요언을 날조하여 백성들을 선동하였다. 처음에는 재물을 약탈했지만 후에는 고을을 침략하기 시작했는데, 관병들이 그 예봉을 막지 못했다.
전호는 일개 사냥꾼에 불과했는데, 어떻게 그렇게 창궐할 수 있었을까? 당시 관청을 보면, 문관들은 돈만 요구하고 무장들은 죽음을 두려워했다. 각 고을마다 방어하는 관병들이 있기는 했지만, 모두 노약자들뿐이어서 허깨비에 지나지 않았다. 혹은 혼자서 두세 명의 군량을 타먹기도 했고, 혹은 권세 있는 집안의 자식들이 10여 냥의 보증금을 내고 이름만 달아놓고 군량만 받아먹고서 점고를 하거나 훈련을 할 때에는 고용인을 대신 내보내기도 하였다. 위아래가 모두 깨끗하지 못하여 그런 부조리를 깨뜨릴 수가 없었다.
국가는 돈을 다 쓰고도 결국 조금도 실용성이 없었다. 전쟁터에 나가면 싸울 줄은 모르고, 줄지어 서 있기만 하다가 앞에서 먼지가 일어나고 포성이 울리면, 부모가 다리를 두 개만 낳아준 것을 원망하였다. 당시 몇몇 군관이 병마를 이끌고 전호를 치러 간 적도 있었지만, 아무도 앞으로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뒤로 꽁무니만 빼다가 도망치기 일쑤고, 허세만 부리다가 선량한 백성을 죽여 공을 꾸미기도 하였다. 백성의 원한이 심해져, 관병을 피하고 도리어 도적을 따랐다.
전호가 점거한 곳이 5주(州) 56현(縣)이었다. 위승주는 오늘날의 심주, 분양주는 오늘날의 분주, 소덕주는 오늘날의 노안주, 진녕주는 오늘날의 평양주, 개주는 오늘날의 택주이다. 56현은 모두 5개 주 관할의 현이었다.
전호는 분양에 궁전을 짓고 가짜 문무백관을 설치하였으며, 안으로 재상을 두고 밖으로 장군을 두어 한 지방을 제패하여 진왕(晉王)이라 칭하였다. 병사들은 정예하고 장수들은 용맹하였으며, 산천은 험준하였다. 지금 군사를 두 길로 나누어 송나라를 침범하러 온 것이었다.
한편, 송강은 날을 택하여 중서성 관원들을 작별하고 출발하였다. 숙태위가 친히 나와서 전송하였고, 조안무가 성지를 받들고 영채로 와서 삼군을 위로하였다. 송강과 노준의는 숙태위와 조추밀에게 사례하고 병력을 세 부대로 나누어 전진하였다.
오호장(五虎將)과 팔표기(八驃騎)로 전군을 삼았다. 오호장은 대도 관승, 표자두 임충, 벽력화 진명, 쌍편장 호연작, 쌍쟁장 동평이었다. 팔표기는 소이광 화영, 금쟁수 서녕, 청면수 양지, 급선봉 삭초, 몰우전 장청, 미염공 주동, 구문룡 사진, 몰차란 목홍이었다.
16표장(彪將)으로 후군을 삼았다. 소표장 16명은, 진삼산 황신, 병울지 손립, 추군마 선찬, 정목안 학사문, 백승장 한도, 천목장 팽기, 성수장군 단정규, 신화장군 위정국, 마운금시 구붕, 화안산예 등비, 금모호 연순, 철적선 마린, 도간호 진달, 백화사 양춘, 금표자 양림, 소패왕 주통이었다.
송강 · 노준의 · 오용 · 공손승은 나머지 장수들과 마보두령 등을 거느리고 중군을 인솔하였다. 호포가 세 번 터지고 징과 북이 일제히 울리면서 진교역을 떠나 동북쪽을 향하여 진격했다. 송강의 호령이 엄명하여 대오가 질서정연하였으며, 지나는 지방마다 추호도 백성을 범하지 않았다.
병력이 원무현 경계에 이르자, 현의 관원들이 교외까지 나와 영접하였다. 전군의 탐마가 와서 수군두령이 이끄는 배들이 이미 강가에 대기하고 있음을 보고하였다. 송강은 이준에게 수병 6백을 이끌고 좌우로 나누어 정탐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곳의 배들을 더 모아서 말과 수레 등을 실어 강을 건너게 하였다. 송강의 대군도 차례로 황하를 건너 북쪽 언덕에 당도하였다. 그리고 이준에게 명을 내려 전선을 이끌고 위주의 위하로 가서 집결하게 하였다.
전군이 먼저 위주에 당도하여 하채하자, 위주의 관원들이 영접하였다. 연석을 마련하여 기다리다가, 송선봉이 당도하자 성중으로 인도하여 대접하였다. 관원들이 말했다.
“전호의 병력이 아주 많으므로 가벼이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 택주는 전호의 수하인 가짜 추밀 유문충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의 부하인 장상과 왕지가 1만을 거느리고 본주 소속의 휘현을 공격하러 갔고, 심안과 진승이 1만을 거느리고 회주 소속의 무섭을 공격하러 갔습니다. 선봉께서 속히 구해 주시기 바립니다.”
송강은 영채로 돌아와 두 고을을 구원할 일을 오용과 상의하였다. 오용이 말했다.
“능천은 개주의 요지이니, 먼저 능천을 공격하면 두 현의 포위는 절로 풀릴 것입니다.”
노준의가 말했다.
“제가 가서 능천을 취하겠습니다.”
송강은 크게 기뻐하면서, 노준의에게 마군 1만과 보병 5백을 내주었다. 마군두령은 화영 · 진명 · 동평 · 삭초 · 황신 · 손립 · 양지 · 사진 · 주동 · 목홍이고, 보군두령은 이규 · 포욱 · 항충 · 이곤 · 노지심 · 무송 · 유당 · 양웅 · 석수였다.
다음 날, 노준의는 병력을 거느리고 떠났다. 송강은 장막에서 다시 오용과 진격할 계책을 의논하였다. 오용이 말했다.
“적병들은 그동안 싸움에 이겨서 오만해졌을 것이니, 노선봉이 이번에 가면 필시 성공할 것입니다. 다만 삼진(三晉) 지방은 산천이 험준하니, 먼저 두령 두 사람을 세작으로 보내 산천의 형세를 정탐한 다음에 진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연청이 장막 안으로 들어와 아뢰었다.
“군사께서 애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산천의 형세는 이미 여기 있습니다.”
연청이 두루마리 하나를 탁자 위에 펼쳤다. 송강과 오용이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그건 삼진의 산천 · 성곽 · 관문을 그린 지도였다. 게다가 어디에 군사를 주둔할 수 있는지, 어디에 매복할 수 있는지, 어디에서 싸울 수 있는지가 세세히 그려져 있었다. 오용이 놀라서 물었다.
“이 지도를 어디서 얻었는가?”
연청이 송강에게 말했다.
“지난번에 요나라를 격파하고 돌아올 때 쌍림진에서 허관충이란 사람을 만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가 저를 집으로 데려갔는데, 떠날 때 이 지도를 주었습니다. 그는 보잘것없는 그림이라고 말했는데, 제가 영채로 돌아와서 한가할 때 꺼내 보았더니 바로 삼진의 지도였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지난번에 자네가 돌아왔을 때, 마침 천자를 알현하느라 바빠서 자세히 물어보지 못했네. 내가 그 사람을 보니, 호걸이었네. 자네도 평소에 그의 장점을 많이 말하지 않았나? 그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나?”
“관충은 박식하고 재능이 많으며, 무예도 뛰어나고 대담합니다. 그 외에도 거문고도 잘 타고 바둑도 잘 두며 그림도 잘 그립니다. 하지만 벼슬하기를 원치 않아 산속에 숨어 살고 있습니다.”
연청은 허관충의 생활을 자세히 얘기했다. 오용이 말했다.
“참으로 천하의 인재로군!”
송강과 오용은 찬탄해 마지않았다.
한편, 노준의는 병마를 거느리고 능천으로 갔다. 먼저 황신과 손립으로 하여금 3천 병력을 이끌고 능천성 동쪽 5리 밖에 매복하게 하고, 사진과 양지로 하여금 3천 병력을 이끌고 능천성 서쪽 5리 밖에 매복하게 하였다.
“오늘 밤에 병사들은 함매하고 말은 방울을 떼고서 조용히 가도록 하게. 내일 우리가 진격할 때, 만약 적군이 준비가 없어 우리가 쉽게 성을 얻으면 남문에 깃발을 세워 신호하겠네. 그러면 두령들은 군마를 이끌고 천천히 성으로 오면 되네. 하지만 만약 적군이 준비가 되어 있으면 포를 터뜨려 신호하겠네. 그러면 양로에서 일제히 쳐들어와 접응하게.”
네 장수는 명을 받고 떠나갔다.
다음 날 노준의는 새벽에 밥을 지어먹고 해뜰 무렵에 군마를 이끌고 능천성으로 쳐들어갔다. 병력을 세 부대로 나누어 ‘一’ 자로 벌려 세운 다음 깃발을 흔들고 북을 울리며 싸움을 걸었다.
성을 지키던 군사가 황급히 달려가 장수 동징과 편장 심기 · 경공에게 보고하였다. 동징은 유문충의 부하 선봉으로 신장이 9척이고 팔 힘이 아주 세 무게가 30근 나가는 발풍도(潑風刀)를 사용했다. 동징은 송나라 조정에서 양산박 병마를 파견하여 이미 성 아래 당도했다는 보고를 받고, 급히 군마를 점검하여 성을 나가 대적하고자 했다. 그러자 경공이 간했다.
“제가 듣건대, 송강의 무리는 영웅이 많아 가벼이 대적해서는 안 됩니다. 굳게 지키면서 사람을 개주로 보내 구원병이 당도하면 안팎으로 협공해야 이길 수 있습니다.”
동징이 크게 노하여 말했다.
“그까짓 놈들이 감히 나를 우습게보고 우리 성을 치러 오다니! 저놈들은 멀리서 왔기 때문에 피로할 것이다. 내가 나가서 저놈들이 갑옷 한 조각도 가지고 돌아가지 못하게 할 것이다!”
경공이 간곡히 간했지만 듣지 않고, 동징이 말했다.
“정 그렇다면, 1천 군마를 너에게 남겨줄 테니 성을 지키도록 해라. 성루에 올라가 앉아서, 내가 저놈들을 쳐부수는 걸 구경이나 해라.”
동징은 갑옷을 입고 발풍도를 빼어 들고 심기와 함께 성을 나갔다. 성문을 열고 조교를 내린 다음 2~3천의 병마가 달려 나갔다. 송군의 진에서 강궁과 쇠뇌를 쏘아, 사정권 밖에서 대치하였다.
북소리가 둥둥둥 울리더니 능천성 진에서 한 장수가 나섰다. 머리에 쓴 투구에는 붉은 술이 늘어졌고, 연환철갑과 전포를 입었는데, 활을 메고 은색의 권모마(卷毛馬)를 타고 손에는 발풍도를 들었다. 동징이 말을 세우고 큰 소리로 외쳤다.
“물가의 도적놈들아! 죽으려고 왔느냐!”
주동이 말을 몰아 나아가며 소리쳤다.
“천병이 왔으니 빨리 말에서 내려 포박을 받아라! 그러면 죽음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다!”
양군에서 함성을 질렀다. 주동과 동징은 가운데서 맞붙었다. 두 말이 서로 얽히고, 무기가 서로 부딪혔다. 두 장수가 교전한 지 10여 합 만에 주동이 말을 돌려 동쪽으로 달아났다. 동징이 추격하자, 동쪽 진에서 화영이 쟁을 들고 달려 나갔다. 두 장수가 30여 합을 싸웠는데, 승부가 나지 않았다.
조교 곁에 있던 심기가, 동징이 이기지 못하는 것을 보고 번쩍이는 점강쟁(點鋼鎗)을 휘두르며 말을 박차고 달려 나가 싸움을 도왔다. 두 장수가 협공을 하자, 화영은 말을 돌려 동쪽으로 달아났다. 동징과 심기가 긴박하게 추격해 오자, 화영은 말을 돌려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성 위에서 바라보던 경공은 동징과 심기가 추격하는 것을 보고 실수할까 염려되어 북을 울려 병력을 철수하려고 했는데, 그때 송군의 진에서 한 떼의 부대가 튀어나왔다. 이규 · 노지심 · 포욱 · 항충 등 10여 명의 두령이 나는 듯이 달려와 조교를 공격했다. 능천성의 병사들은 그 흉맹한 기세를 당해내지 못하였다.
경공이 급히 성문을 닫으라고 소리쳤지만, 이미 때는 늦어 노지심과 이규가 성안으로 뛰어들었다. 성문을 지키던 군사들이 일제히 앞을 가로막았지만, 노지심이 큰 소리를 지르면서 선장을 휘둘러 두 놈을 쓰러뜨리고, 이규가 도끼를 휘둘러 대여섯 명을 베어 넘겼다. 그러자 포욱 등이 일제히 달려들어 성문을 빼앗고 군사들을 흩어 버렸다. 경공은 형세가 나쁜 것을 보고 급히 성 아래로 내려가 북쪽을 향해 달아났지만, 보군들이 추격하여 사로잡아 버렸다.
동징과 심기는 화영과 싸우다가 조교 부근에서 함성이 일어나는 것을 듣고 급히 말을 돌려 달려갔다. 화영은 추격하지 않고 쟁을 안장에 걸고 활을 당겨 동징의 등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동징은 등에 화살을 맞고 두 다리가 허공으로 올라가면서 말에서 거꾸로 떨어졌다.
노준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군마를 휘몰아 돌격하였다. 심기는 동평의 쟁에 찔려 죽었고, 능천의 병마는 태반이 죽고 나머지는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송군 장수들은 병력을 이끌고 일제히 성안으로 진격하였다. 그때 흑선풍 이규는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베어 죽이고 있었다. 노준의가 이규에게 소리쳤다.
“아우! 백성을 죽이지 마라!”
이규는 비로소 손을 멈추었다.
노준의는 군사를 시켜 빨리 남문 위에 약속했던 깃발을 세워 양로 복병에게 알리게 하고, 다시 군사들을 나누어 각 성문을 지키게 하였다. 잠시 후, 황신 · 손립 · 사진 · 양지의 양로 복병이 모두 성으로 들어왔다. 화영은 동징의 수급을, 동평은 심기의 수급을 바쳤다. 포욱 등은 경공과 부하 두목 몇 명을 사로잡아 왔다. 노선봉은 그들의 포박을 풀어 준 다음 경공을 손님자리에 앉혔다. 경공이 절을 하며 말했다.
“사로잡힌 장수를 어찌 이렇게 후한 예로써 대접하십니까?”
노준의가 경공을 일으키며 말했다.
“장군이 성을 나와 싸우지 않은 것을 보면 뜻이 깊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찌 동징의 무리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송선봉은 어진 사람을 받아들이는 분이오. 장군이 만약 조정에 귀순한다면, 송선봉은 필시 중용해 달라고 조정에 아뢸 것입니다.”
경공은 고개를 숙이며 사례하고 말했다.
“이미 목숨을 살려주신 은혜를 입었으니, 휘하의 소졸이 되기를 원합니다.”
노준의는 크게 기뻐하며, 다시 좋은 말로 두목들까지 위로하였다. 한편으로 방을 내걸어 백성을 안정시키고, 다른 한편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군사들을 위로하였다.
노준의가 경공과 장수들에게 술을 대접하면서, 경공에게 물었다.
“개주성에는 장병이 얼마나 있소?”
경공이 말했다.
“개주는 유문충이 많은 병력을 거느리고 지키고 있습니다. 양성과 심수는 개주의 서쪽에 있어 여기서는 멀고, 고평현은 여기서 60리밖에 안 됩니다. 그 옆에 한왕산이 있는데, 장례와 조능이 2만 군마를 거느리고 지키고 있습니다.”
노준의는 그 말을 듣고 술잔을 들어 경공에게 권하면서 말했다.
“장군은 마음껏 드시오. 오늘 밤 내가 장군이 공로를 세울 수 있게 해줄 테니, 사양하지 마시오.”
경공이 말했다.
“선봉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으니, 경공이 어찌 감히 마음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노준의가 기뻐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우리 형제 몇 명과 장군의 부하 두목들을 딸려 보낼 테니, 여차여차 하시오.”
또 새로 항복한 6~7명의 두목들을 불러 각기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은냥을 준 다음, 공을 세우면 무거운 상을 내리겠다고 약속했다.
술자리를 파한 뒤, 노준의는 이규와 포욱 등 보군두령 7명과 보병 1백 명에게 능천 군사의 갑옷으로 갈아입고 그 깃발을 들게 했다. 또 사진과 양지는 5백 마군을 이끌고 함매하고 방울을 떼고서 경공의 뒤를 멀찌감치 따라가게 하였다. 그리고 화영 등의 장수들에게 성을 지키게 하고, 노준의 자신은 3천 병력을 거느리고 뒤를 따라 접응하기로 하였다.
배정이 끝나자, 경공 등은 계책을 받고 성을 나섰다. 고평성 남문 밖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황혼 무렵이었다. 별빛 아래에서 보니, 성 위에는 깃발이 삼엄하게 늘어서 있고 성중에서 울리는 북소리는 엄명하였다. 경공이 성 아래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능천을 지키는 장수 경공이다! 동징과 심기, 두 장수가 내 말을 듣지 않고 성문을 열고 나가 경솔하게 대적하다가 성을 잃고 말았다. 나는 급히 백여 명을 데리고 북문을 열고 나와 소로로 몰래 여기까지 왔다. 빨리 성문을 열어라!”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횃불을 비춰 보고서, 급히 달려가 장례와 조능에게 보고하였다. 장례와 조능이 직접 성루에 올라가니, 군사들이 횃불로 앞뒤를 비추었다. 장례가 경공에게 말했다.
“우리편 인마이긴 하지만, 명백하게 살펴봐야겠소.”
장례가 아래를 내려다보며 자세히 살폈는데, 능천의 경공이 틀림없었다. 거느리고 온 백여 명의 군졸도 갑옷이나 깃발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성 위의 군사들 중에 경공을 따라온 두목들을 알아본 자들이 있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손여호야!”
“저건 이금룡이네!”
장례가 웃으며 말했다.
“저들을 들여보내라!”
성문을 열고 조교를 내렸는데, 장례는 또 3~40명의 군사들을 조교 양쪽에 늘어세우고서야 비로소 경공을 성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그때 경공의 뒤에 있던 군사들이 한꺼번에 앞으로 밀어닥치며 말했다.
“빨리 가라고! 빨리 가! 뒤에서 적이 추격해 온단 말이야!”
그리고는 경공조차도 밀치면서 앞으로 밀고 들어왔다. 성문을 지키는 군사들이 소리쳤다.
“어딜 가려고? 왜 이리 어지럽게 날뛰는 거야!”
한창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한왕산 기슭에서 불길이 치솟으면서 한 떼의 군마가 나는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앞장선 두 장수가 소리쳤다.
“적장은 달아나지 마라!”
경공의 군졸 속에는 이미 이규 · 포욱 · 항충 · 이곤 · 유당 · 양웅 · 석수 등 일곱 호랑이가 섞여 있었는데, 각기 무기를 꺼내들고 함성을 지르면서 성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백여 명의 군사들도 일제히 그 뒤를 따랐다. 성안의 군사들은 미처 손쓸 새가 없어 성문을 닫지 못하였다. 성문 안팎에서 군사들 수십 명이 쓰러지고 성문을 빼앗겼다.
장례는 급히 쟁을 들고 성 아래로 내려가 경공을 찾다가 석수와 마주쳤다. 4~5합을 싸우다가 장례는 더 이상 싸울 마음이 없어 쟁을 끌면서 달아났다. 그때 이규가 추격해 와서 도끼로 내리쳐 두 동강을 내고 말았다.
한편, 한왕산 방면에서 한 떼의 군마가 달려와 성으로 들어왔는데, 바로 사진과 양지의 군마였다. 조능은 난전 가운데 죽었고, 고평 군사들은 태반이 죽었다. 장례의 가족도 모두 죽임을 당했고, 성안의 백성들은 모두 잠에서 깨어나 통곡소리가 하늘까지 울렸다.
잠시 후, 노선봉이 병력을 거느리고 당도하여 군사들에게 성문을 지키게 하는 한편, 군사들을 내보내 백성을 살해하지 말라고 소리치게 하였다. 날이 밝자, 방을 내걸어 백성을 안정시키고 군사들에게 상을 내렸으며, 사람을 보내 송선봉에게 소식을 알렸다.
노준의가 두 성을 공격하여 그렇게 쉽고 신속하게 격파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전호의 부하들은 사방을 종횡하면서도 오랫동안 적수가 없어서 관군을 경시해 왔으며, 그래서 송강의 장수들이 이처럼 영웅들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노준의는 그걸 꿰뚫어보았고, 그래서 그들이 생각지도 않은 때에 공격함으로써 두 성을 연이어 격파한 것이었다. 그것이 바로, 오용이 ‘이번에 노선봉이 가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까닭이었다.
한편, 송강의 군마는 위주성 밖에 주둔하고 있었다. 송선봉이 장막에서 일을 의논하고 있는데, 홀연 노선봉이 사람을 보내 승첩을 알리고 진병 계책을 다시 의논하기를 청하였다. 송강은 크게 기뻐하면서 오용에게 말했다.
“노선봉이 이틀 만에 두 성을 연달아 깨뜨렸으니, 적들은 이미 간담이 서늘해졌을 것이오.”
얘기하고 있는데 양로의 정찰병이 달려와 보고했다.
“휘현과 무섭, 두 곳을 포위했던 병마가 능천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포위를 풀고 가버렸습니다.”
송강이 오용에게 말했다.
“군사의 귀신같은 계산은 고금에 드물 것이오!”
송강은 영채를 뽑고 서쪽으로 가서 노준의와 병력을 합쳐 진병을 의논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오용이 말했다.
“위주의 왼쪽은 맹문이고, 오른쪽은 태행입니다. 남쪽으로 큰 강에 접해 있고, 북쪽에는 상당이 있습니다. 지리적으로 요충지입니다. 우리 대군이 서쪽으로 간 걸 알고 적군이 소덕을 따라 병력을 이끌고 남하하게 되면, 아군은 동서가 서로 돌볼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어찌하시렵니까?”
송강이 말했다.
“군사 말씀이 참으로 옳소!”
관승 · 호연작 · 공손승에게 5천 군마를 거느리고 위주를 지키게 하고, 수군두령 이준, 장씨 형제, 완씨 형제, 동씨 형제에게 수군의 배를 이끌고 위하(衛河)에 정박하여 성안의 군마와 기각(犄角)을 이루게 하였다.
송강은 장수들과 대군을 거느리고 떠났다. 고평에 당도하자, 노준의가 성을 나와 영접하였다. 송강이 말했다.
“형제들이 연이어 두 성을 얻었으니, 그 공로가 적지 않네. 공적부에 모두 일일이 기록하겠네.”
노준의는 새로 항복한 경공을 데려와 인사시켰다. 송강이 말했다.
“장군이 그릇된 길을 버리고 바른 길로 돌아왔으니, 함께 나라를 위해 힘을 다합시다. 그러면 조정에서 마땅히 중용할 겁니다.”
경공은 절하고 시립하였다. 송강의 인마는 많아서 모두 성안으로 들어갈 수 없어, 성 밖에 주둔하였다. 송강은 오용 · 노준의와 상의하였다. 오용이 말했다.
“개주는 산이 높고 골짜기가 깊으며, 도로가 험하고 좁습니다. 그런데 이미 개주에 속한 두 현을 우리가 얻었기 때문에, 그 세력이 고립되었습니다. 먼저 개주를 취하여 적의 세력을 분산시킨 후에 병력을 두 길로 나누어 협공하면 위승주도 깨뜨릴 수 있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선생의 말씀이 내 뜻과 합치되오.”
시진으로 하여금 이응과 함께 능천을 지키게 하고, 화영을 비롯한 여섯 장수는 본채로 와서 명을 기다리게 하였다. 사진은 목홍과 함께 고평을 지키게 하였다. 시진 등 네 사람은 명을 받고 떠났다.
그때 몰우전 장청이 아뢰었다.
“소장은 이틀째 감기를 앓고 있습니다. 고평에 잠시 머물면서 치료한 뒤에 영채로 가서 명을 받들겠습니다.”
송강은 신의 안도전에게 고평에 남아 장청을 치료하게 하였다.
다음 날, 화영 등이 당도하였다. 송강은 화영 · 진명 · 삭초 · 손립에게 5천 병력을 주어 선봉으로 삼았다. 동평 · 양지 · 주동 · 한도 · 팽기에게 1만 병력을 주어 좌익으로 삼고, 황신 · 임충 · 선찬 · 학사문 · 구붕 · 등비에게 1만 병력을 주어 우익으로 삼았다. 서녕 · 연순 · 마린 · 진달 · 양춘 · 양림 · 주통 · 이충은 후대로 삼았다.
송강과 노준의는 나머지 장수들과 함께 대군을 거느려 중군이 되었다. 이렇게 다섯 갈래의 웅병이 개주로 쳐들어갔는데, 마치 용이 대해를 떠나는 듯 호랑이가 깊은 숲에서 나오는 듯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