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고태위는 경성에서 20여 일 동안 준비했는데, 천자가 칙명을 내려 군사를 일으키라고 재촉하였다. 고구는 먼저 어영군마를 성 밖으로 내보내고, 기방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기녀들 30여 명을 뽑아 군사를 따라가서 위문하게 하였다.
출병할 날이 되자 군기(軍旗)에 제사를 지내고, 천자에게 인사한 다음 마침내 출발했다. 그럭저럭 1개월 정도가 지나, 때는 초가을이 되었다. 관원들이 모두 장정(長亭)까지 나와서 전송했다. 고태위는 갑옷을 입고 황금안장을 얹은 전마를 탔는데, 그 앞에는 다섯 필의 좋은 말이 늘어섰다. 좌우에는 당세영·당세웅 형제가 있었고, 뒤에는 많은 전수부 통제관들과 제할·병마방어사·단련사 등의 군관들이 따라갔다.
고태위는 대군을 거느리고 성을 나와 장정에 당도하여 말에서 내렸다. 여러 관원들과 송별주를 마신 후 작별하고, 다시 말에 올라 제주를 향해 진군하였다. 가는 도중에 군사들이 마을에 가서 제멋대로 노략질하는 것을 방임하여, 백성들이 입은 해가 엄청났다.
한편, 10로 군마는 속속 제주로 모여들고 있었다. 절도사 왕문덕이 경북에서 군마를 이끌고 밤을 새워 제주로 달려가고 있었다. 제주에서 40여리 떨어진 곳에 당도하였는데, 그곳의 지명은 봉미파라는 고개였고 그 밑에는 큰 숲이 있었다.
전군이 막 숲을 지나가고 있을 때 징소리가 울리면서 숲속에서 한 떼의 군마가 나타났다. 앞장선 장수가 길을 가로막는데,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활을 메고 있었다. 화살통에는 작은 황기 두 개가 꽂혀 있었는데 각각 ‘영웅쌍쟁장’ ‘풍류만호후’라고 쓰여 있었고, 양손에는 강쟁을 들고 있었다. 그는 바로 양산박에서 적진을 뚫는 데에 제일인 용장 동평이었다. 동평이 말을 세우고 길을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거기 오는 놈들은 어디 병마냐? 빨리 말에서 내려 포박을 받지 않고 또 어느 때를 기다리느냐?”
왕문덕도 말을 세우고 ‘껄껄껄’ 웃으며 말했다.
“병이나 항아리에도 두 귀가 있는데, 너는 우리 10절도사가 누차 큰 공을 세워 천하에 이름을 날린 것을 듣지 못했느냐? 나는 대장 왕문덕이다.”
동평이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내가 바로 애비를 죽인 미련한 놈이구나.”
왕문덕은 크게 노하여 꾸짖었다.
“나라를 배반한 도적놈이 어찌 감히 나를 모욕하느냐!”
쟁을 들고 말을 박차고 나가 동평에게 달려들었다. 동평도 쌍쟁을 들고 대적하였다. 두 장수가 싸운 지 30합이 되었지만 승부는 나지 않았다. 왕문덕은 동평을 이기지 못할 것 같아 소리쳤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싸우자!”
두 장수는 각자 본진으로 돌아갔다. 왕문덕은 군사들에게 굳이 싸우려 하지 말고 곧바로 적진을 뚫고 나가라고 분부하였다. 왕문덕이 앞장서고 군사들이 그 뒤를 따라 크게 함성을 지르면서 뚫고 나갔다. 동평은 군사를 이끌고 추격하였다. 관군이 숲을 통과하여 달려가고 있는데, 앞에서 또 한 떼의 군마가 나타났다. 앞장선 상장은 바로 몰우전 장청이었다. 장청이 말 위에서 크게 소리쳤다.
“달아나지 마라!”
장청은 손에 쥐고 있던 돌을 왕문덕의 머리를 향해 던졌다. 왕문덕은 급히 피하려고 했지만, 돌은 투구를 때렸다. 왕문덕은 안장에 바짝 엎드려 달아났다. 동평과 장청이 그 뒤를 추격하였다. 점점 추격해 가고 있는데, 옆쪽에서 한 부대가 돌격해 왔다. 왕문덕이 보니, 같은 절도사인 양온의 군마가 구원하러 온 것이었다. 동평과 장청은 더 이상 추격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왕문덕과 양온의 군마는 함께 제주로 들어가서 휴식을 취했다. 태수 장숙야는 각로에서 온 군마들을 접대했다. 며칠 후 고태위의 대군이 도착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열 명의 절도사들은 성을 나가 영접하고, 고태위를 호위하여 성으로 들어갔다. 관아에 원수부를 설치하고 고태위는 거기에 머물렀다.
고태위는 명을 내려 10로 군마는 성 밖에 주둔하면서 유몽룡의 수군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진격하라고 하였다. 10로 군마는 각자 성 밖에 하채하였는데, 가까운 산에서 나무를 마구 베고 인가의 대문이나 창문 등을 노략질해서 영채를 만드는 바람에 백성들에게 엄청난 해를 끼쳤다.
고태위는 성중의 원수부 안에서 토벌에 나설 인마를 선정했는데, 은자를 바치지 않는 자는 모두 선발대로 내보내 교전하게 하고 은자를 바친 자들은 중군에 남겨 공을 세우지 않아도 공을 세운 것처럼 보고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폐단은 결코 일단에 그치지 않았다.
고태위가 제주에 도착한 지 이틀이 지나지 않아 유몽룡의 전선이 당도하였다. 유몽룡이 원수부에 와서 인사를 마친 후, 고구는 즉시 열 명의 절도사를 불러 계책을 의논하였다. 왕환이 아뢰었다.
“태위께서는 먼저 마보군을 내보내 길을 정탐하게 하고, 적을 유인하여 출전하게 한 다음 전선들을 수로로 보내 적의 소굴을 기습하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여 도적들이 양편으로 나뉘어 서로 돌아보지 못하게 하면 그놈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고태위는 그 말에 따르기로 하였다. 왕환과 서경을 선봉으로, 왕문덕과 매전을 합후로, 장개와 양온을 좌군으로, 한존보와 이종길을 우군으로 삼았다. 항원진과 형충은 전후로 다니면서 접응하게 하였다. 당세웅은 정병 3천을 이끌고 배에 올라 유몽룡의 수군을 도우면서 전투를 감독하게 하였다. 각 부대는 명을 받고 사흘 동안 정비하고, 고태위를 청해 검열을 받았다. 고태위는 성을 나가 일일이 점검한 다음, 삼군과 수군을 일제히 양산박을 향해 진격하게 하였다.
한편, 동평과 장청은 산채로 돌아가 자세히 보고했다. 송강은 여러 두령과 함께 대군을 거느리고 산을 내려갔는데, 얼마 가지 않아 관군이 오는 것이 보였다. 전군이 활을 쏘아 사정권 밖에 양군이 마주보고 진을 펼쳤다. 선봉 왕환이 장쟁을 들고 진 앞으로 나와 말 위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겁대가리 없는 도적놈들아! 죽어 마땅한 촌놈들아! 대장 왕환을 아느냐?”
양산박의 진에서 송강이 나와서 왕환에게 인사하고 말했다.
“왕절도사님! 당신은 이제 나이가 많아서 국가를 위해 힘을 쓰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쟁으로 대적하다가 혹시 조금이라도 실수하여 일세의 깨끗한 이름을 더럽히게 될까 염려됩니다. 당신은 들어가시고, 다른 젊은 사람을 출전시키시지요,”
왕환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욕을 했다.
“네 이놈! 얼굴에 문신을 새긴 아전 놈이 어찌 감히 천병에 항거하느냐!”
송강이 대답했다.
“왕절도사님! 실력 자랑하지 마십시오. 우리 아이들은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하는 호걸들이라 당신에게 지지 않을 겁니다!”
왕환이 쟁을 들고 달려 나오자, 송강의 뒤편에서 말방울 소리가 울리면서 한 장수가 쟁을 들고 달려 나갔다. 송강이 보니, 표자두 임충이었다. 두 사람이 맞붙자, 양군에서 함성이 터져 나오고 고태위도 진 앞으로 나와 말을 세우고 바라보았다. 양군이 함성을 올리고 갈채하는 가운데, 마군들은 말등자를 밟고 일어서서 바라보고 보군들은 투구를 제치고 눈을 들어 바라보았다.
두 장수는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한쪽이 호랑이가 양을 집어삼키듯 달려들면, 다른 한쪽은 독수리가 토끼를 덮치듯 공격했다. 두 사람이 7~80합을 싸웠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양쪽에서 징을 울려 두 장수는 싸움을 멈추고 각자 본진으로 돌아갔다.
절도사 형충이 앞으로 나와 말 위에서 고태위에게 인사하고 말했다.
“소장이 도적놈들과 일전을 겨루어 보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고태위가 허락하자, 형충은 누런 말을 타고 대간도를 휘두르며 달려 나왔다. 송강의 진에는 호연작이 달려 나갔다. 두 장수가 교전한 지 20여 합이 되었을 때, 호연작이 파탄 난 척하자 형충이 대간도로 찌르며 들어왔다. 그 순간 호연작이 대간도를 슬쩍 피하면서 강편으로 형충의 머리를 내려쳤다. 형충은 머리가 깨져 골이 터져 나오고 눈알이 튀어나오면서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고구는 절도사 하나가 죽는 것을 보고 급히 항원진을 출전시켰다. 항원진이 쟁을 들고 말을 몰아 진 앞으로 나오며 소리쳤다.
“어떤 놈이 감히 나와 싸우겠느냐?”
송강의 진에서 쌍쟁장 동평이 달려 나가 항원진과 맞붙었다. 두 장수가 교전한 지 10합이 되지 않아, 항원진이 말을 돌려 쟁을 끌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동평이 말을 박차고 뒤를 추격했다. 항원진은 본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쪽을 돌아 들판으로 달아났다. 동평은 나는 듯이 말을 달려 추격했다. 항원진은 쟁을 안장에 꽂고 왼손으로 활을 들고 오른손으로 화살을 메겨 몸을 뒤집으면서 쏘았다. 동평은 활 시위소리를 듣고 손을 들어 막았는데, 화살이 날아와 오른쪽 팔에 박혔다. 동평은 쟁을 버리고 말을 돌려 달아났다. 항원진은 활을 안장에 걸고 동평을 추격했다. 호연작과 임충이 달려 나가 동평을 구해 본진으로 돌아왔다.
고태위는 대군을 진격시켜 혼전을 벌였다. 송강은 동평을 산채로 돌려보내고, 군마를 내보내 관군을 막게 하였다. 하지만 양산박의 군사들은 관군을 막지 못하고 모두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고태위는 물가에까지 추격해 가서, 거기서 수로로 오는 배들을 접응하게 하였다.
한편, 유몽룡은 당세웅과 함께 수군을 거느리고 배를 타고 양산박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호수는 아득히 넓은데 온통 갈대가 빽빽하여 물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관군의 배들은 10여 리를 연이어서 줄지어 나아가고 있었다. 그때 산 위에서 한 발의 화포가 터지면서 사방팔방에서 작은 배들이 일제히 나타났다. 배 위에 있던 관군들은 이미 반쯤 겁을 먹고 있었는데, 갈대숲이 워낙 깊숙하여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몰라 더욱 당황하고 있었다.
갈대숲 속에 매복하고 있던 작은 배들이 일제히 나와 관군의 배들 사이를 끊어 놓아, 관선들은 앞뒤가 서로 도울 수 없게 되었다. 관군의 태반은 배를 버리고 뭍으로 달아났다. 양산박 호걸들은 관군의 진이 어지러워지는 것을 보고 일제히 북을 울리며 관군을 향해 돌진했다.
유몽룡과 당세웅은 급히 배를 돌리려고 했지만, 그때는 이미 양산박 호걸들이 배에 싣고 온 땔나무와 풀, 그리고 산에서 베어 온 나무들을 물 위에 흩어 놓았기 때문에 노를 저을 수가 없었다. 관군들은 모두 배를 버리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유몽룡도 갑옷을 벗고 헤엄을 쳐서 뭍으로 올라가 샛길로 달아났다.
당세웅은 배를 포기하지 않고, 수군들에게 물이 깊은 곳을 찾아 나아가라고 소리쳤다. 2리를 채 못 갔는데, 앞에서 작은 배 세 척이 나타났다. 배 위에는 완씨 삼형제가 타고 있었는데, 각각 여뀌잎처럼 생긴 쟁을 손에 들고 관선에 접근해 왔다. 그걸 본 관군들은 모두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당세웅은 창을 들고 뱃머리에 서서 완소이와 싸우려고 했다. 하지만 완소이는 물속으로 뛰어들고, 완소오와 완소칠이 다가왔다. 당세웅은 두 사람을 당해내지 못할 것 같아 창을 내던지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물속에서 선화아 장횡이 나와 한손으로는 당세웅의 머리카락을 잡고 다른 한손으로는 허리를 붙잡아 갈대가 있는 곳으로 집어던졌다. 그러자 그곳에 숨어 있던 10여 명의 졸개들이 갈고리와 올가미로 당세웅을 사로잡아 산채로 끌고 갔다.
한편, 고태위는 물 위에 있는 배들이 어지럽게 흩어지면서 산기슭 쪽으로 가는 것을 보았는데, 배 위에 포박된 자들은 모두 유몽룡의 수군들이었다. 고태위는 수군이 패한 것을 알고 급히 군령을 내려 병력을 거두어 제주로 돌아가려고 했다. 관군들이 퇴각하려고 할 때 날이 이미 저물기 시작했는데, 사방에서 화포 터지는 소리가 들렸는데 송강의 군마가 어느 길에서 오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고태위는 수로의 군사가 패한 것을 보고 회군하려고 했는데, 사방에서 화포가 터지자 급히 장수들을 모아 길을 찾아 달아났다. 원래 양산박에서는 사방에서 화포만 터뜨리고 복병은 두지 않았다. 하지만 제풀에 놀란 고태위는 간담이 서늘해져 쥐새끼가 도망치듯 밤을 새워 제주로 달아났다.
군사를 점검해 보니, 보군은 많이 잃지 않았지만 수군은 절반 이상을 잃었고 전선은 한 척도 돌아오지 못했다. 유몽룡은 목숨을 건져 돌아왔는데, 수군들 가운데 물에 익숙한 자들은 살아 돌아왔지만 물에 익숙하지 못한 자들은 모두 물속에 빠져 죽었다.
고태위의 군대는 위세가 꺾이고 예기가 손상되어, 한동안 성중에 군마를 주둔하면서 우방희가 배들을 모아 오기를 기다렸다. 고태위는 다시 사람을 시켜 우방희에게 공문을 보내, 어떤 배든 막론하고 가능한 모든 배들을 거두어 빨리 제주로 와서 정돈하라고 재촉하였다.
한편, 수호산채에서는 송강이 동평과 함께 산으로 올라가 화살을 뽑고 신의 안도전을 불러 치료하게 하였다. 안도전은 상처에 금창약을 바르고, 동평은 산채에서 요양하게 하였다. 오용은 여러 두령들을 철수시켜 산으로 올라왔다. 수군두령 장횡이 당세웅을 충의당으로 끌고 와 공을 청했다. 송강은 당세웅을 산채 뒤편의 감옥에 가두게 하고, 탈취한 관군의 배는 모두 수채에 들여놓고 수군두령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였다.
한편, 고태위는 제주성에서 장수들을 모아놓고 양산박을 토벌할 계책을 상의했다. 상당절도사 서경이 아뢰었다.
“제가 젊었을 때 강호를 떠돌며 약을 팔다가 알게 된 사람이 하나 있는데, 그는 육도삼략에 통달하고 전쟁에 밝아 손자·오자의 재능과 제갈공명의 지모를 갖추었습니다. 이름은 문환장인데 현재 동경성 밖의 안인촌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약 그 사람을 참모로 삼으시면, 오용의 간사한 계책을 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태위는 그 말을 듣고, 한 장수에게 비단과 말을 가지고 동경으로 가서 문환장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 장수가 동경을 떠난 지 사나흘이 지나지 않아, 송강의 군마가 성에 다가와 싸움을 걸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보고를 받은 고태위는 크게 노하여, 즉시 본부 군병을 점검하여 성을 나가면서 각 영채의 절도사들도 모두 출전하라고 명하였다.
한편, 송강의 군마는 고태위가 병력을 거느리고 오는 것을 보고, 급히 50리를 후퇴하여 넓은 들판으로 물러났다. 고태위가 추격해 가 보니, 송강의 병마는 이미 산기슭 밑에 진세를 펼쳐 놓고 있었다. 홍기부대에서 한 맹장이 나오는데, 깃발에 ‘쌍편 호연작’이라고 쓰여 있었다. 호연작이 쟁을 비껴들고 진 앞에 나와 말을 세우자, 고태위가 말했다.
“저놈은 연환마를 거느리고 왔다가 조정을 배신한 놈이다!”
운중절도사 한존보를 출전시켜 호연작을 대적하게 하였다. 한존보는 방천화극을 잘 썼다. 두 장수는 말 한 마디 주고받지 않고 화극과 쟁을 휘두르며 교전하였다. 싸운 지 50여 합이 되었을 때, 호연작이 파탄 난 척하며 몸을 슬쩍 빼더니 말을 박차고 산 아래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존보는 공을 세우고자 말을 몰아 호연작을 추격했다. 마치 여덟 개의 잔이 철판을 두드리듯이, 여덟 개의 말발굽이 땅을 두드리면서 추격전이 시작되었다. 약 5~6쯤 추격하여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 이르자, 호연작은 쟁을 안장에 꽂고 말을 돌려 쌍편을 휘두르며 한존보에게 달려들었다. 또 다시 몇 합을 싸우다가, 호연작은 쌍편으로 화극을 밀쳐내고는 말을 돌려 다시 달아나기 시작했다. 한존보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저놈은 쟁으로 나를 이기지 못하고 쌍편으로도 나를 이기지 못했다. 이제 저놈을 추격하여 사로잡지 않고서 또 어느 때를 기다릴 것인가!”
한존보가 호연작을 추격하여 산기슭을 돌아가자 두 갈래 길이 나왔는데, 호연작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한존보가 언덕 위로 올라가 말을 세우고 바라보았더니, 호연작이 계곡을 따라 달아나는 것이 보였다. 한존보가 크게 소리쳤다.
“야! 이 도적놈아! 어디로 달아나느냐! 빨리 말에서 내려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호연작은 더 이상 달아나지 않고 한존보에게 욕을 퍼부었다. 그 틈에 한존보는 돌아가서 호연작의 뒷길을 가로막았다. 두 사람은 계곡 옆에서 맞붙었다. 한쪽은 산이고 다른 한쪽은 계류가 흘러, 그 사이의 길은 말을 돌리지도 못할 정도로 좁았다. 호연작이 말했다.
“네놈은 빨리 항복하지 않고, 또 어느 때를 기다리느냐!”
한존보가 말했다.
“네놈은 이미 네 손아귀에 들어온 패장인데, 되레 나보고 항복하라는 거냐!”
“내가 네놈이 여기까지 따라오도록 만든 것은, 네놈을 사로잡기 위해서였다. 이제 네놈의 목숨은 경각에 달렸다!”
“나야말로 네놈을 사로잡을 것이다!”
두 사람은 기운을 떨쳐 다시 맞붙었다. 한존보는 화극을 들고 호연작의 가슴을 향해 빗발치듯 연이어 찔렀고, 호연작은 쟁으로 이리저리 막고 피하면서 바람처럼 찔러 들어갔다. 두 사람은 다시 30여 합을 싸웠다. 싸움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한존보가 화극으로 호연작의 옆구리를 향해 찌르고 호연작은 쟁으로 한존보의 가슴을 찔렀다. 두 사람이 각기 몸을 틀어 피하면서 서로 상대방의 무기를 손으로 잡았다. 호연작은 한존보의 화극을 겨드랑이 밑에 꼈고, 한존보는 호연작의 쟁 자루를 잡았다. 두 사람은 말 위에서 밀고 당기다가, 한존보의 말 뒷발이 계류에 빠지면서 호연작도 말과 함께 계류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두 말은 일어났지만, 두 사람은 물속에서 한 덩어리가 되어 맞붙었다. 호연작이 화극을 옆구리에 낀 채 쟁을 버리고 급히 쌍편을 꺼내려 하자, 한존보는 쥐고 있는 호연작의 쟁 자루를 놓고 두 손으로 호연작의 두 팔을 잡았다. 밀고 당기다가 둘 다 물살에 휩쓸려 내려갔다. 두 필의 말은 계류에서 뛰쳐나와 산 쪽으로 달아나 버렸다. 두 사람은 물속에서 무기도 잃어버리고 투구도 벗겨지고 갑옷은 찢어진 채 맨주먹으로 싸웠다. 그렇게 치고받으면서 깊은 곳에서 차츰 얕은 곳으로 올라오게 되었다.
두 사람이 뒤엉켜 싸우고 있는데, 언덕 위에 한 떼의 군마가 나타났다. 앞장선 대장은 몰우전 장청이었다. 장청은 병사들을 보내 한존보를 사로잡았다. 또 두 필의 말을 찾게 하였는데, 말들은 사람들이 외침소리를 듣고 제 발로 돌아왔다. 계류 속에서 무기를 건져 호연작에게 돌려주었다. 호연작은 흠뻑 젖은 몸으로 말에 올랐고, 병사들은 한존보를 말 위에 꽁꽁 묶어 계곡 입구로 나갔다.
그때 앞에서 한 떼의 군마가 한존보를 찾으러 와서, 양군이 맞닥뜨리게 되었다. 한존보를 찾으러 온 부대는 두 절도사 매전과 장개였다. 물에 젖은 채 말 위에 묶여 있는 한존보를 본 매전은 크게 노하여 삼첨양인도를 휘두르며 곧장 장청에게 달려들었다. 교전한 지 3합이 되지 않아 장청이 달아나자 매전이 추격하였다. 장청은 이리 같은 늘씬한 허리를 비틀며 원숭이 같은 긴 팔로 돌을 잡아 날렸다. 돌은 매전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았다. 매전은 피를 흘리며 손에 쥐었던 칼을 내던지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장청이 급히 말을 돌리는데, 장개가 장청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장청이 말 머리를 들어 올리자, 화살은 말의 눈에 꽂혔다. 말이 쓰러지자, 장청은 말에서 뛰어내려 쟁을 들었다. 그런데 원래 장청은 돌은 잘 던지지만 쟁을 쓰는 데는 조금 서툴렀다. 장개는 먼저 매전을 구하고 나서, 장청에게 달려들었다. 장개가 말 위에서 쟁을 쓰는 솜씨가 신출귀몰하여 장청은 단지 막아내기에만 급급하다가 마침내 쟁을 버리고 마군 속으로 숨어 몸을 피하였다. 장개는 쟁을 휘두르며 장청의 마군 속으로 뛰어들어 마구 베었다. 장청의 마군들은 장개를 당해내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장개는 한존보도 다시 탈환했다.
장개가 막 돌아가려고 하는데, 함성이 크게 일어나면서 계곡 입구에서서 두 부대가 나타났다. 벽력화 진명과 대도 관승의 부대였다. 두 맹장이 돌격해 오자, 장개는 다만 매전만 보호하면서 달아났다. 양산박의 두 부대는 다시 한존보를 빼앗았다. 장청은 다시 말에 올랐고 호연작도 기력을 회복하여, 네 장수가 한꺼번에 관군을 공격하였다. 관군들은 그 기세를 당하지 못하여 제주로 퇴각하였다. 양산박의 군마는 관군을 추격하지 않고, 한존보만 붙잡아 산채로 돌아갔다.
송강은 충의당에 앉아 있다가 한존보가 포박되어 끌려오는 것을 보고, 군사를 꾸짖어 물리친 다음 친히 밧줄을 풀어 주고 대청 위로 청하여 은근하게 대접하였다. 한존보는 감격하였으며, 먼저 잡혀 온 당세웅을 만나보기를 청하였다. 당세웅을 보니, 역시 좋은 대접을 받은 것 같았다. 송강이 말했다.
“두 분 장군께서는 결코 의심하지 마십시오. 송강 등은 다른 마음이 없습니다. 단지 탐관오리들의 핍박을 받아 이렇게 되었을 뿐입니다. 만약 조정의 사면과 초안을 받을 수만 있다면 국가를 위하여 힘을 다하고자 합니다.”
한존보가 말했다.
“지난번에 진태위가 초안한다는 조서를 가지고 왔을 때에는, 어찌하여 그 기회에 그릇된 길을 버리고 바른 길로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송강이 대답했다.
“조정의 조서가 있기는 했지만 그 내용이 분명하지 않았고, 시골 막걸리를 어주와 바꿔치기 했기 때문에 형제들이 심복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장간판과 이우후가 제멋대로 위세를 부려 여러 장수들을 모욕했기 때문에……”
한존보가 말했다.
“중간에 나쁜 놈들이 끼어들어 국가의 대사를 그르쳤군요.”
송강은 연회를 열어 대접하고, 다음 날 안장을 얹은 말을 내주고 계곡 입구까지 두 사람을 배웅했다. 한존보와 당세웅은 도중에 송강의 좋은 점들을 서로 얘기하면서 제주성으로 돌아갔다. 그날은 이미 날이 어두워져,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은 성으로 들어가 고태위를 찾아가서 송강이 자신들을 돌려보낸 일을 얘기했다. 고구는 크게 노하여 말했다.
“그건 도적놈들이 간사한 계책으로 우리 군심(軍心)을 태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 둘은 무슨 면목으로 날 보러 온 거냐! 여봐라! 저놈들을 끌어내 참수하라!”
왕환 등 관원들이 모두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이번 일은 두 사람이 간여한 것이 아니라, 송강과 오용의 계책입니다. 만약 이 두 사람을 참한다면, 도리어 도적놈들의 비웃음을 살 것입니다.”
고태위는 여러 사람들이 애원하자, 두 사람의 목숨을 살려주되 직위를 박탈하고 동경 태을궁으로 압송하여 죄를 청하게 하였다.
원래 한존보는 한충언의 조카였는데, 한충언은 국로태사(國老太師)로서 조정의 관원들 중에는 그의 문하 출신들이 많았다. 그 가운데 정거충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한충언이 천거해 어사대부로 있었다. 한존보가 그간의 사실을 호소하자, 정거충은 그를 데리고 상서(尚書) 여심을 찾아가 의논했다. 여심이 말했다.
“반드시 태사께 아뢰어야 천자께 상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두 사람은 채경을 찾아가 말했다.
“송강은 본래 다른 마음이 없이 조정의 초안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채경이 말했다.
“지난번에 조서를 찢고 천자를 비방하는 무례한 짓을 저질렀으니, 초안할 수 없고 토벌해야 하오!”
두 사람이 다시 말했다.
“지난번에 초안했을 때에는, 애석하게도 초안하러 간 사람이 조정의 은덕을 베풀며 어루만지지 못하고 좋은 말은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위협만 했기 때문에 성사시키지 못했던 것입니다.”
채경은 비로소 승낙했다. 다음 날 아침 조회 때 도군황제가 대전에 오르자, 채경은 다시 조서를 내려 초안할 것을 상주하였다. 천자가 말했다.
“지금 고태위가 사람을 보내 안인촌의 문환장을 참모로 쓰겠다고 청하였소. 그를 군대에서 쓰기 전에 먼저 사신과 함께 양산박으로 보내시오. 만약 저들이 투항하면 본죄를 면해 주겠지만, 투항하지 않는다면 고구에게 모조리 소탕하고 돌아오라고 이르시오.”
채태사는 조서를 쓰는 한편, 문환장을 불러 연회를 열었다. 원래 문환장은 유명한 선비여서 조정대신들 가운데 그를 아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술과 음식을 갖추어 영접하였다. 연회가 끝난 후 문환장은 행장을 수습하여 사신과 함께 제주로 떠났다.
한편, 고태위는 제주성에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문지기가 와서 보고했다.
“우방희가 돌아왔습니다.”
고태위는 우방희를 불러들여 물었다.
“배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우방희가 아뢰었다.
“도중에 모은 크고 작은 배가 1천5백여 척이 됩니다. 모두 물가에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고태위는 크게 기뻐하며 우방희에게 상을 내렸다. 고태위는 명을 내려 배들을 모두 넓은 나루터로 끌어오게 하여, 세 척을 하나로 묶어 그 위에 널빤지를 깔고 못질을 한 다음 선미는 쇠사슬로 묶게 하였다. 보군은 모두 배에 오르게 하고, 마군은 물가 근처에서 배들을 호송하게 하였다. 그리고 군사들이 배 위에서의 싸움에 익숙해지도록 훈련을 시켰다. 그러느라 보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한편, 양산박에서는 고태위가 하는 일을 다 알고 있었다. 오용은 유당을 불러 계책을 주고, 수로에서 싸우는 일을 관장하게 하였다. 여러 수군 두령들도 각각 작은 배를 준비하여, 뱃머리는 철판을 씌우고 선창에는 갈대와 마른 땔감을 싣고 거기에 유황과 염초 같은 인화물질을 부어 두었다. 포수 능진은 사방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산 위에 화포를 설치하여, 포를 터뜨려 신호하게 하였다.
물가에 나무가 많이 우거진 곳에는 나무마다 깃발을 매달고 징과 북, 화포 등을 배치하여 마치 인마가 주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임시로 성루를 만들어, 공손승이 거기서 바람을 부를 수 있게 하였다. 지상의 부대는 크게 셋으로 나누어 서로 접응하게 하였다. 이 모든 것은 오용이 계획하고 지시한 것이었다.
한편, 고태위는 제주에서 군마를 일으켰다. 수로의 군사는 우방희가 유몽룡·당세영과 함께 관장하게 하였다. 고태위는 갑옷을 입고 전고를 세 번 울렸다. 나루터에 있던 배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고, 육지에서는 말들이 출발했다. 배는 화살처럼 빨리 나아가고 말들은 나는 듯이 달려, 양산박을 향해 진격하였다.
수로로 진격하는 관군의 배들은 줄지어 징과 북을 울리며 서서히 양산박 깊은 곳까지 나아갔는데, 한 척의 배도 보이지 않았다. 점점 금사탄에 접근하자, 연꽃이 넓게 피어 있는 가운데서 두 척의 어선이 나타났다. 각 배에 두 사람씩 타고 있었는데, 박수를 치며 크게 웃고 있었다. 맨 앞의 배에서 유몽룡이 활을 마구 쏘게 하자, 어부들은 모두 물속으로 뛰어들어 버렸다. 유몽룡은 배들을 급하게 재촉해 금사탄에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금사탄 일대에는 녹음이 우거진 버드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나무에는 황소 두 마리가 묶여 있고 푸른 풀밭에는 서너 명의 목동들이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 또 한 목동이 황소를 거꾸로 타고서 구성지게 피리를 불며 오고 있었다. 유몽룡은 선봉대에서도 용맹한 자들을 먼저 뭍에 오르게 하였다. 그러자 목동들이 벌떡 일어나 ‘깔깔깔’ 웃으며 모두 버드나무 그늘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5~6백 명의 관군이 뭍에 오르자, 버드나무 그늘 아래에서 포성이 터지고 양변에서 북이 일제히 울렸다. 왼쪽에서 붉은 갑옷을 입은 군대가 튀어나오는데, 대장은 벽력화 진명이었다. 오른쪽에서는 검은 갑옷을 입은 군대가 튀어나오는데, 대장은 쌍편 호연작이었다. 각각 5백 군마를 이끌고 물가에서 공격했다.
유몽룡은 급히 군사들을 배에서 내리게 했는데, 먼저 내린 군사들은 이미 절반이 죽은 뒤였다. 우방희는 앞에서 함성이 일어나는 것을 듣고 뒤에 있는 배들을 후퇴시키려고 했는데, 산정에서 연주포 터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갈대숲 속에서 바람 부는 소리가 우수수 들려왔다. 공손승이 머리를 풀어헤치고 검을 짚고 북두칠성을 밟고서 산정에서 바람을 일으킨 것이었다. 처음에 바람은 숲을 뚫고 오더니 다음에는 자갈과 모래를 날리기 시작했다. 잠깐 사이에 흰 물결이 하늘까지 치솟고 검은 구름이 대지를 덮었다. 붉은 해도 빛을 잃고 광풍이 크게 불어대기 시작했다.
유몽룡이 급히 배를 돌리려고 할 때, 갈대숲 속 깊숙이 연꽃이 피어 있는 좁은 물길에서 작은 배들이 노를 저어 와 관선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북소리가 울리자 작은 배들에 일제히 불이 붙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큰 불길이 되어 화염이 하늘까지 치솟았다. 불은 관선들에 옮겨 붙었고, 관선들은 불이 붙은 채 사방으로 흩어졌다.
모든 관선들이 불길에 휩싸이고 금사탄 나루터도 불바다가 되자, 유몽룡은 갑옷과 투구를 벗어 버리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감히 뭍으로 올라가지는 못하고, 물길이 넓은 곳을 찾아 헤엄쳐 갔다. 그때 갈대숲 속에서 한 사람이 혼자 작은 배를 저어 왔다. 유몽룡이 물속으로 들어갔는데, 누군가가 허리를 끌어안고 배 위로 끌어 올렸다. 배를 저어 온 사람은 출동교 동위였고, 물속에서 유몽룡을 잡은 사람은 혼강룡 이준이었다.
한편, 우방희는 사방의 관선들이 모두 불길에 휩싸이자 갑옷을 벗어던지고 물속으로 뛰어들려고 했는데, 뱃머리에 있던 사람이 갈고리를 던져 머리를 걸어 거꾸로 물속으로 끌어들였다. 그 사람은 선화아 장횡이었다. 양산박의 수면에는 시체가 즐비했고 핏물이 넘쳐흘렀으며, 머리가 탄 관군들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당세영만은 작은 배를 저어 달아났는데, 갈대숲 속 양쪽에서 날아온 화살을 맞고 물속으로 떨어져 죽었다. 물에 익숙한 관군들은 목숨을 건져 달아났지만, 물에 익숙하지 못한 관군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다. 사로잡힌 관군들은 모두 산채로 끌려갔다. 이준은 유몽룡을 사로잡고 장횡은 우방희를 사로잡았는데, 산채로 끌고 가면 송강이 또 살려서 보내줄 것 같아 아예 수급을 잘라서 산채로 가지고 갔다.
한편, 고태위는 군마를 거느리고 물가에서 접응하려고 했는데, 연주포가 터지고 북소리가 끊이질 않는 것을 듣고 물 위에서 싸움이 벌어진 것을 알았다. 군마들을 모아 산을 등지고 서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관군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물속에서 나와 뭍으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자기편 장교 하나를 알아보고 고구가 어떻게 된 일인지 묻자, 배들은 모두 불타 버리고 군사들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고 대답하였다. 고태위는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더욱 당황하였다. 함성은 끊임없이 울렸고 검은 연기가 하늘에 가득 찼다.
고태위가 급히 군사를 이끌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려고 할 때, 산 앞에서 북소리가 크게 울리면서 한 떼의 마군이 나타나 길을 가로막았다. 급선봉 삭초가 큰 도끼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고태위 옆에 있던 절도사 왕환이 쟁을 들고 나가 삭초와 교전하였다. 싸운 지 5합이 되지 않아 삭초가 말을 돌려 달아나자, 고태위는 군사를 이끌고 추격하였다. 산허리를 돌아가니 삭초는 보이지 않고, 뒤에서 표자두 임충이 군사를 이끌고 추격해 왔다.
관군은 임충과 한바탕 싸우다가 달아났다. 6~7리를 채 못 갔는데, 뒤에서 청면수 양지가 군사를 이끌고 추격해 왔다. 관군은 양지와 한바탕 싸우다가 또 달아났다. 8~9리를 채 못 갔는데, 뒤에서 미염공 주동이 추격해 왔다. 관군은 또 주동과 한바탕 싸웠다. 이는 오용의 추격 계책으로, 앞을 가로막지 않고 뒤에서만 추격하는 계책이었다.
패전한 군사들은 싸울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저 달아나기만 할 뿐 후군을 구원해 주지 못하였다. 그렇게 고태위는 쫓기기만 하여 제주까지 달아났다. 성에 들어갔을 때에는 이미 자정이 지나 있었다. 그때 성 밖의 영채에서 불길이 치솟으며 함성이 끊이지 않았다. 원래 석수와 양웅이 5백 보군을 거느리고 매복해 있다가, 서너 군데에 불을 지르고 가만히 돌아가 버렸던 것이다.
깜짝 놀란 고태위는 혼이 몸에 붙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사람을 보내 정탐해 보게 하였더니, 양산박 군사들이 불을 지르고 돌아갔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고태위는 비로소 마음을 놓았는데, 군마를 점검해 보니 태반을 잃었다.
고구가 고민하고 있는데, 멀리 정탐을 나갔던 군사가 돌아와 보고하였다.
“천자의 사신이 왔습니다.”
고구는 군마와 절도사들을 거느리고 성을 나가 사신을 영접하였다. 사신은 천자가 초안을 내린 일을 설명하고, 문환장 참모를 인사시켰다. 모두 함께 성으로 들어가 원수부에서 상의하였다. 고태위는 먼저 조서를 자세히 읽어 보았다. 그런데 초안을 받아들이지 않자니 두 번이나 패전하여 수많은 배들이 다 불타 버렸고, 초안을 받아들이자니 경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부끄러웠다. 고태위는 마음속으로 주저하면서 며칠 동안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주에 왕근이라는 늙은 관리가 하나 있었는데, 평생 악독한 짓만 해서 사람들이 ‘심장을 도려 먹는 자’ ‘완심왕(剜心王)’이라 불렀다. 그는 제주부에서 원수부에 물자를 공급하는 일을 맡고 있었는데, 조서의 사본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고태위가 주저하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을 듣고, 원수부로 찾아와 고태위에게 말했다.
“귀인께서는 너무 고민하지 마십시오. 제가 보기에 조서에는 이미 살길이 있습니다. 한림원에서 조서를 쓸 때, 귀인께 도움이 되라고 미리 뒷문을 열어 놓은 것 같습니다.”
고태위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미리 뒷문을 열어 놓은 걸 어떻게 아는가?”
“조서에서 가장 요긴한 곳에 ‘除宋江盧俊義等大小人眾所犯過惡並與赦免’이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구절은 그 뜻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붙여서 읽으면 ‘송강과 노준의 등 대소 인원들이 범한 죄악을 사면한다.’는 뜻이 되지만, ‘除宋江’을 따로 떼어 읽으면 ‘송강은 제외하고, 노준의 등 대소 인원들이 범한 죄악을 사면한다.’는 뜻이 됩니다. 조서를 읽으실 때, ‘除宋江’을 따로 떼어 읽으십시오. 그렇게 저들을 속여 성안으로 불러들인 다음, 송강만 붙잡아 죽여 버리고 나머지는 모두 흩어 버리면 됩니다. 예로부터 이르기를 ‘뱀은 대가리가 없으면 가지 못하고, 새는 날개가 없으면 날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송강만 없으면 나머지 것들이 무슨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생각이 어떻습니까?”
고구는 크게 기뻐하면서, 즉시 왕근을 원수부의 장사(長史)로 승진시키고 문참모를 불러 그 일을 설명했다. 문환장이 간했다.
“당당한 천자의 사신으로서 오직 바른 이치로 상대해야지, 사람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혹시라도 송강의 수하에 있는 지모 있는 자가 간파하게 되면, 일이 뒤집어져서 더욱 어렵게 될 것입니다.”
고태위가 말했다.
“아니오! 예로부터 병서에 이르기를 ‘병법에는 속임수가 있다.’고 하였소. 어찌 공명정대한 방법만 사용할 것인가?”
“병법에는 속임수가 있다 하더라도, 이번 일은 천자의 성지이니 천하에 신의가 있어야 합니다. 예로부터 임금의 말은 곧은 실과 같아서 옥음(玉音)이라 하였으니, 고쳐서는 안 됩니다. 지금 만약 그렇게 했다가 후에 사람들이 알게 되면, 신의를 얻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당장 눈앞의 일이 중요하니, 이치는 나중에 다시 따집시다.”
끝내 고태위는 문환장의 말을 듣지 않고, 사람을 양산박으로 보내 송강 등 모든 두령들은 제주성 아래로 와서 죄를 사면해 준다는 천자의 조칙을 들으라고 하였다.
한편, 송강은 고태위에게 또 일전을 이기고, 불에 탄 배들을 거두어 땔감으로 쓰게 하고 불에 타지 않은 배들은 수채로 보내게 하였다. 사로잡은 장병들은 모두 제주로 돌려보냈다. 그날 송강이 대소 두령들과 충의당에서 상의하고 있는데, 장교가 와서 보고하였다.
“제주부에서 사람을 보내 알려 왔습니다. 조정에서 특별히 천자의 사신을 파견하여, 투항하라는 조서를 내렸다고 합니다. 죄를 사면하여 초안하고 관작을 줄 것이라고 합니다.”
송강은 뛸 듯이 기뻐하면서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여, 제주부에서 온 사람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가 와서 말했다.
“조정에서 초안한다는 조서를 내렸습니다. 고태위께서 소인을 먼저 보내 두령님들에게 알리고, 모두 제주성 아래로 와서 조서를 들으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뜻은 없으니 의심하지 마십시오.”
송강은 군사 오용을 불러 상의하고, 제주부에서 온 사람에게 은자와 비단을 상으로 주어 돌려보냈다. 송강은 명을 전하여, 대소 두령들은 모두 조서를 들으러 가기 위해 모이라고 하였다. 노준의가 말했다.
“형님은 급하게 서두르지 마십시오. 혹 고태위의 수작일지도 모르니 형님은 가시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자네들처럼 그렇게 의심만 하다간 어떻게 바른 길로 돌아갈 수 있겠는가? 어쨌든 가보기는 해야지.”
오용이 웃으며 말했다.
“고구란 놈은 우리한테 당해서 간담이 서늘해졌을 것이니, 계책이 있다 하더라도 쓰지는 못할 것입니다. 여러 형제들은 의심하지 말고 송공명 형님을 따라 산을 내려가기로 합시다. 먼저 흑선풍 이규로 하여금 번서·포욱·항충·이곤과 보군 1천을 거느리고 제주의 동쪽 길에 매복하게 하고, 일장청 호삼랑으로 하여금 고대수·손이랑·왕왜호·손신·장청과 보군 1천을 거느리고 제주의 서쪽 길에 매복하게 합니다. 그랬다가 연주포 터지는 소리가 나면 모두 북문으로 모이게 할 것입니다.”
오용의 배정이 끝나자 여러 두령들은 산을 내려가고, 수군두령들은 남아 산채를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