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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69화

추밀사 동관은 천자로부터 통군대원수의 직책을 받고 추밀원으로 돌아와, 동경 관하의 8개 주에 명을 내려 각각 군사 1만씩을 동원하여 각주의 병마도감이 통솔하여 경성으로 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경성 어림군 내에서 군사 2만을 선발하여 중군을 수호하게 하였다. 추밀원의 모든 사무는 부추밀사에게 맡기고, 어영(御營)에서 장수 둘을 뽑아 좌우익으로 삼았다. 호령이 떨어지자 열흘 만에 모든 준비가 갖추어지고, 군량을 공급하는 일은 고태위가 보낸 사람이 책임을 졌다.

8개 주에서 온 군마는 수주 병마도감 단붕거, 정주 병마도감 진저, 진주 병마도감 오병이, 당주 병마도감 한천린, 허주 병마도감 이명, 등주 병마도감 왕의, 여주 병마도감 마만리, 숭주 병마도감 주신이었다. 어영에서 뽑은 좌우익 장수는 어전 비룡대장 풍미, 어전 비호대장 필승이었다.

동관은 중군 원수가 되어 삼군에 준비를 명하고, 무기고에서 무기를 꺼내 지급하고 출병할 길일도 선정하였다. 고태위와 양태위가 연석을 마련하여 전송하고, 조정에서는 중서성을 통해 군사들에게 상을 내렸다.

다음 날, 동관은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군마를 통솔하여 성을 나간 후에, 천자에게 절을 올려 작별하고서 말에 올라 신조문을 나갔다. 오리단정(五里短亭)에 당도하자, 고태위와 양태위가 관원들을 거느리고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동관이 말에서 내리자, 고태위가 술잔을 권하면서 말했다.

추밀상공께서 이번에 가시면 필시 조정을 위하여 큰 공을 세우고 개선가를 부르며 돌아올 것입니다. 이 도적들은 물가에 잠복하고 있기 때문에, 먼저 사방의 보급로를 차단한 다음 영채를 굳게 지키면서 도적들이 하산하도록 유인하고서 진격하십시오. 그리하여 한 놈씩 모조리 생포함으로써 조정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하십시오.”

동관이 말했다.

가르침을 잊지 않겠습니다.”

동관이 잔을 비우자, 이번에는 양태위가 잔을 권하며 말했다.

추밀상공께서는 평소에 병서를 많이 읽어서 전략을 깊이 아시니, 이 도적들을 소탕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듯 쉬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도적들이 물가에 잠복하고 있기 때문에 지리적으로 우리가 불리할 수 있으니, 상공께서는 거기에 대해 좋은 계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동관이 말했다.

제가 그곳에 가면 임기응변하여 나름대로 계책을 강구하겠습니다.”

고태위와 양태위가 같이 술잔을 권하여 격려했다.

도성문 밖에서 개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두 태위가 동관을 작별하고 말에 올라 돌아가자, 여러 관아의 많은 관원들이 전송하러 나와 혹은 가까이 혹은 멀리까지 따라와 전송하고 돌아갔다.

삼군이 일제히 출발했는데, 대오가 아주 엄정하였다. 전군 4대는 선봉이 거느리고, 후군 4대는 합후장군이 감독하며, 좌우 팔로군마는 우익기패(羽翼旗牌)가 감독하였다. 동관은 중군에서 모든 군마를 총독했는데, 중군의 어림군 2만은 모두 어영에서 선발한 군사들이었다. 동관은 채찍을 들고 군병의 출발을 지휘했는데, 군용이 정숙하였다.

동관은 동경을 떠난 지 이틀이 되지 않아 제주 경계에 당도하였다. 태수 장숙야가 성을 나와 영접하였다. 대군은 성 밖에 주둔하고, 동관은 경기병을 거느리고 성으로 들어가 관아 앞에서 말을 내렸다. 장태수는 동관을 당상으로 인도하고 절을 한 다음, 앞에 시립하였다. 동관이 말했다.

물가의 도적들이 양민을 살해하고 객상들을 약탈하는 등, 그 저지른 죄가 일단에 그치지 않고 있다. 그동안 조정에서 여러 번 소탕하려 했으나, 마땅한 사람을 얻지 못해 그 세력이 더 퍼져 가고 있다. 내가 이제 10만 대군과 장수 백 명을 거느리고 왔으니, 저들의 산채를 청소하고 도적놈들을 모조리 체포하여 백성을 편안케 할 것이다.”

장태수가 말했다.

추밀상공께 아룁니다. 저들은 물가에 잠복하고 있는 도적이지만, 산림 속의 도적들 중에도 지모가 있거나 용맹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상공께서는 노기로 격분하지 마시고, 장기적인 좋은 계책을 세우셔서 공을 성취하십시오.”

동관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며 꾸짖었다.

네놈들은 모두 나약한 필부들이라, 창칼을 두려워하여 피하며 생을 탐하고 죽음을 무서워하여 국가의 대사를 그르치고 도적의 세력을 더욱 키워 놓았던 것이다. 이제 내가 여기 왔으니 무엇을 두려워할 것이냐!”

장태수는 감히 다시 말하지 못하고 다만 술과 음식을 대접할 뿐이었다. 동관은 성을 나갔다. 다음 날, 대군을 거느리고 양산박 근처로 가서 하채하였다.

송강 등은 이미 세작의 보고를 받고 알고 있었다. 송강은 오용과 상의하여 철통같은 계책을 세워 두고 대군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으면서, 장수들에게 각기 명을 따라 착오가 없게 하라고 알렸다.

한편, 동관은 수주도감 단붕거를 정선봉, 정주도감 진저를 부선봉, 진주도감 오병이를 정합후, 허주도감 이명을 부합후로 삼았다. 당주도감 한천린과 등주도감 왕의를 좌측 척후, 여주도감 마만리와 숭주도감 주신을 우측 척후, 비룡대장 풍미와 비호대장 필승을 중군 우익으로 삼았다. 동관은 원수로서 대군을 통솔하며, 전신에 갑옷을 입고 친히 감독하였다.

북이 세 번 울리자 모든 부대가 출발하였다. 10리도 채 가지 않았는데, 먼지가 일어나면서 양산박의 척후대가 나타났다. 말방울을 울리면서 차츰 접근해 오는데, 30기의 기마병이 머리에 파란 두건을 쓰고 몸에는 녹색 전포를 입고 있었다. 말에는 붉은 끈을 매달았는데 거기에는 수십 개의 구리방울이 달려 있었다. 투구 뒤에는 꿩꼬리를 꽂았고, 가느다란 은빛 긴 쟁과 가벼운 활과 짧은 화살을 들고 있었다.

앞장선 장군은 깃발에 순초도두령(巡哨都頭領) 몰우전 장청이라고 쓰여 있는데, 왼쪽에는 공왕, 오른쪽에는 정득손이 따르고 있었다. 장청의 척후대는 동관의 군대 앞으로 곧장 다가오다가, 백여 보 떨어진 곳까지 와서는 말을 돌려 돌아갔다.

전군선봉의 두 장수는 군령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감히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중군에 보고하였다. 원수 동관이 친히 앞으로 나와 살펴보았는데, 그때 장청이 다시 돌아왔다. 동관이 군대를 내보내 추격하려 하자, 좌우에서 말했다.

저 사람의 안장 뒤에 있는 비단주머니에는 돌이 들어있는데, 백발백중입니다. 추격해서는 안 됩니다.”

장청은 세 번이나 와서 정찰하다가, 동관이 공격해 오지 않자 그냥 돌아갔다. 동관의 부대가 다시 천천히 진격하여 5리를 채 못 갔는데, 산 뒤편에서 징소리가 울리면서 5백 명의 보군이 돌아 나오는데 앞장선 4명의 두령은 흑선풍 이규, 혼세마왕 번서, 팔비나타 항충, 비천대성 이곤이었다. 5백 명의 보군은 산 아래에 자로 늘어서서 방패를 가지런히 세웠다.

동관이 그걸 보고 총채를 한번 휘두르자 관군의 대부대가 앞으로 돌격하였다. 그러자 이규와 번서는 보군을 두 갈래로 나누어 방패를 거꾸로 들고 산모퉁이를 돌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동관의 대군이 추격하여 산모퉁이를 돌아가자 넓고 평평한 들판이 나타났다. 동관은 군마를 벌려 진세를 취한 다음에 이규와 번서를 찾게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고개를 넘어갔는지 숲속으로 들어갔는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동관은 중군에 지휘대를 세우게 하고 법관 둘이 그 위에 올라가, 상하좌우로 깃발을 흔들면서 사문두저진(四門斗底陣)을 펼치게 했다.

관군의 진세가 완성될 무렵 산 뒤편에서 화포가 터지면서 한 떼의 군마가 나타났다. 동관이 지휘대에 올라가 살펴보았다. 산 동쪽에서 한 갈래의 군마가 나오는데, 1대는 홍기, 2대는 잡색기, 3대는 청기, 4대는 잡색기를 들고 있었다. 또 산 서쪽에서도 한 갈래의 군마가 나오는데, 1대는 잡색기, 2대는 백기, 3대는 잡색기, 4대는 흑기를 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편에는 모두 황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대규모의 부대가 쏟아져 나와 들판 가운데를 점거하면서 진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남쪽의 부대는 모두 불꽃 같은 붉은 깃발을 들고 붉은 갑옷과 붉은 전포를 입고 붉은 가슴걸이를 한 붉은 말을 타고 있었다. 앞에 세운 붉은 깃발에는, 위에는 금박으로 남두육성(南斗六星)이 새겨져 있고 아래에는 주작의 형상이 수 놓여 있었다. 그 깃발 아래 서 있는 대장은 선봉대장 벽력화 진명인데. 왼쪽의 부장은 성수장군 단정규, 오른쪽의 부장은 신화장군 위정국이었다. 세 장수가 각기 무기를 들고 붉은 말을 타고서 진 앞에 서 있었다.

동쪽의 부대는 모두 파란 깃발을 들고 파란 갑옷과 파란 전포를 입고 파란 가슴걸이를 한 파란 말을 타고 있었다. 앞에 세운 파란 깃발에는, 위에는 금박으로 동두사성(東斗四星)이 새겨져 있고 아래에는 청룡의 형상이 수 놓여 있었다. 그 깃발 아래 서 있는 대장은 좌군대장 대도 관승인데, 왼쪽의 부장은 추군마 선찬, 오른쪽의 부장은 정목안 학사문이었다. 세 장수가 각기 무기를 들고 파란 말을 타고서 진 앞에 서 있었다.

서쪽의 부대는 모두 흰 깃발을 들고 흰 갑옷과 흰 전포를 입고 흰 가슴걸이를 한 흰 말을 타고 있었다. 앞에 세운 흰 깃발에는, 위에는 금박으로 서두오성(西斗五星)이 새겨져 있고 아래에는 백호의 형상이 수 놓여 있었다. 그 깃발 아래 서 있는 대장은 우군대장 표자두 임충인데, 왼쪽의 부장은 진삼산 황신, 오른쪽의 부장은 병울지 손립이었다. 세 장수가 각기 무기를 들고 흰 말을 타고서 진 앞에 서 있었다.

후면의 부대는 모두 검은 깃발을 들고 검은 갑옷과 검은 전포를 입고 검은 가슴걸이를 한 검은 말을 타고 있었다. 앞에 세운 검은 깃발에는, 위에는 금박으로 북두칠성(北斗七星)이 새겨져 있고 아래에는 현무의 형상이 수 놓여 있었다. 그 깃발 아래 서 있는 대장은 합후대장 쌍편 호연작인데, 왼쪽의 부장은 백승장 한도, 오른쪽의 부장은 천목장 팽기였다. 세 장수가 각기 무기를 들고 검은 말을 타고서 진 앞에 서 있었다.

동남방의 문기 아래에 있는 부대는 파란 깃발을 들고 붉은 갑옷을 입었다. 앞에 세운 깃발에는, 위에는 금박으로 손괘(巽卦)가 새겨져 있고 아래에는 비룡(飛龍)이 수 놓여 있었다. 그 깃발 아래 서 있는 대장은 호군대장 쌍쟁장 동평인데, 왼쪽의 부장은 마운금시 구붕, 오른쪽의 부장은 화안산예 등비였다. 세 장수가 각기 손에 무기를 들고 전마를 타고서 진 앞에 서 있었다.

서남방의 문기 아래에 있는 부대는 붉은 깃발을 들고 흰 갑옷을 입었다. 앞에 세운 깃발에는, 위에는 금박으로 곤괘(坤卦)가 새겨져 있고 아래에는 비웅(飛熊)이 수 놓여 있었다. 그 깃발 아래 서 있는 대장은 표기대장 급선봉 삭초인데, 왼쪽의 부장은 금모호 연순, 오른쪽의 부장은 철적선 마린이었다. 세 장수가 각기 손에 무기를 들고 전마를 타고서 진 앞에 서 있었다.

동북방의 문기 아래에 있는 부대는 검은 깃발을 들고 파란 갑옷을 입었다. 앞에 세운 깃발에는, 위에는 금박으로 간괘(艮卦)가 새겨져 있고 아래에는 비표(飛豹)가 수 놓여 있었다. 그 깃발 아래 서 있는 대장은 표기대장 구문룡 사진인데, 왼쪽의 부장은 도간호 진달, 오른쪽의 부장은 백화사 양춘이었다. 세 장수가 각기 손에 무기를 들고 전마를 타고서 진 앞에 서 있었다.

서북방의 문기 아래에 있는 부대는 흰 깃발을 들고 검은 갑옷을 입었다. 앞에 세운 깃발에는, 위에는 금박으로 건괘(乾卦)가 새겨져 있고 아래에는 비호(飛虎)이 수 놓여 있었다. 그 깃발 아래 서 있는 대장은 표기대장 청면수 양지인데, 왼쪽의 부장은 금표자 양림, 오른쪽의 부장은 소패왕 주통이었다. 세 장수가 각기 손에 무기를 들고 전마를 타고서 진 앞에 서 있었다.

이렇게 팔방으로 배치한 진세는 철통과 같았다. 각 진문 안에는 마군은 마군대로 보군은 보군대로 줄지어 각기 창칼과 도끼 등을 들고 있었고, 깃발이 정연한 가운데 대오가 위엄이 있었다. 팔진의 중앙에는 행황기(杏黃旗)가 세워져 있고 그 주위에는 금박으로 64괘를 새긴 64개의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64괘 깃발을 지키고 있는 두 명의 장수는 미염공 주동과 삽시호 뇌횡인데, 그들이 거느리고 있는 인마는 모두 누런 깃발을 들고 누런 전포를 입고 누런 가슴걸이를 한 누런 말을 타고 있었다.

중앙의 진에 네 개의 진문이 있는데, 동문은 금안표 시은, 서문은 백면낭군 정천수, 남문은 운리금강 송만, 북문은 병대충 설영이 지키고 있었다. 중군 가운데는 체천행도라고 쓰여 있는 큰 행황기가 서 있고, 깃대는 네 개의 밧줄을 묶어 네 명의 건장한 군사가 붙잡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 깃발을 지키는 장사는 험도신 욱보사였다.

행황기 뒤에는 화포들이 늘어서 있는데, 굉천뢰 능진이 20여 명의 포수를 거느리고 포가를 둘러싸고 있었다. 화포 뒤에는 갈고리와 올가미 같은 적을 사로잡는 무기들을 든 부대가 있고, 또 그 주위에는 잡색 깃발들이 일곱 겹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또한 28(宿)의 별을 수놓은 깃발이 사면을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가장자리에 진주가 박혀 있고 꼭대기에는 꿩꼬리를 꽂은 누런 수자기(帥字旗)가 서 있는데, 그 깃발을 지키는 장사는 몰면목 초정이었다. 수자기 옆에는 깃발을 호위하는 두 장수가 전마를 타고 손에는 강쟁을 들고 허리에는 날카로운 검을 차고 있는데, 모두성 공명과 독화성 공량이었다. 그 앞뒤에는 낭아곤을 든 24명의 철갑군사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중군을 수호하는 장수가 네 명 있었는데, 소온후 여방과 새인귀 곽성이 화극을 들고 방천화극을 든 24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고, 양두사 해진과 쌍미갈 해보가 강차를 들고 보군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들 뒤에는 비단 안장을 얹은 말을 타고 있는 두 사람의 문사가 있었는데, 문서를 관장하는 성수서생 소양과 상벌을 담당하는 철면공목 배선이었다. 또 그 뒤에는 자줏빛 옷을 입고 형벌을 집행하는 칼을 든 24명의 회자수(劊子手)들이 있고, 그 가운데에 철비박 채복과 일지화 채경이 비단옷을 입고 서 있었다.

그 뒤에는 양쪽으로 금창(金槍)을 든 24명의 병사와 은창(銀槍)을 든 24명의 병사가 늘어서 있는데, 왼쪽 금창 부대 앞에는 손에 금쟁을 든 금쟁수 서녕이 전마를 타고 서 있었고 오른쪽 은창 부대 앞에는 손에 은쟁을 든 소이광 화영이 준마를 타고 서 있었다.

그 뒤에 또 도끼를 든 24명의 병사들과 채찍을 든 24명의 병사들이 두 줄로 서 있는 가운데 자로 세 개의 산개(傘蓋)가 나란히 서 있고 아래에 세 필의 준마를 탄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 세 사람 앞에 또 두 사람의 영웅이 서 있는데, 왼쪽에는 신행태보 대종, 오른쪽에는 낭자 연청이었다. 대종은 손에 자 깃발을 들고 대군 속을 왕래하면서 군정을 전하고 장병을 파견하는 등의 일을 맡고 있었고, 연청은 등에 강궁을 메고 손에 긴 봉을 들고서 중군을 수호하고 있었다.

중군의 산개 아래 준마를 타고 서 있는 세 사람 가운데, 오른쪽에는 비바람을 부르고 귀신을 부를 수 있는 입운룡 공손승이 등에 두 자루의 보검을 메고 있었고, 왼쪽에는 육도삼략에 능통한 군사 지다성 오용이 손에 우선(羽扇)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중앙의 홍라산개 아래에는 통군대원수 급시우 호보의 송공명이 손에 보검을 들고 금안장을 얹은 조야옥사자를 타고 서 있었다.

송공명 뒤에는 4~50명의 아장(牙將)들이 장창을 들고 활을 메고 전마를 탄 채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고, 또 뿔피리와 북을 든 24명의 병사들이 늘어서 있었다. 진의 후방에는 유병(遊兵) 두 부대가 양측에 매복하여 중군을 수호하는 우익이 되어 있는데, 좌측에는 몰차란 목홍이 소차란 목춘과 마보군 15백을 거느리고 있고, 우측에는 적발귀 유당이 구미귀 도종왕과 마보군 15백을 거느리고 있었다.

후진에는 음병(陰兵) 즉 여자로만 이루어진 부대가 하나 있는데, 세 사람의 여두령이 이끌고 있었다. 중앙에는 일장청 호삼랑, 왼쪽에는 모대충 고대수, 오른쪽에는 모야차 손이랑이었다. 그리고 그녀들 뒤에는 세 사람의 남편인 왜각호 왕영, 소울지 손신, 채원자 장청이 마보군 3천을 거느리고 있었다.

추밀사 동관은 진중의 지휘대 위에서 양산박의 병마를 보고 있었는데, 잠깐 사이에 구궁팔괘진(九宮八卦陣)으로 변하는데 군마는 모두 호걸이고 장사들은 모두 영웅이었다. 동관은 깜짝 놀라 혼비백산(魂飛魄散)하고 심장과 간이 철렁하여 저도 모르게 혼자 말했다.

지금까지 저들을 토벌하러 왔던 관군들이 왜 대패하고 돌아왔는지 이제야 알겠다. 원래 저렇게 대단한 놈들이었구나!”

동관이 넋을 잃고 한동안 바라보고 있는데, 송강의 군중에서 싸움을 재촉하는 징소리와 북소리가 울리며 함성이 터져 나왔다. 동관은 지휘대에서 내려와 전마에 올라 전군의 장수들을 불러 물었다.

누가 나가서 저놈들과 말싸움을 해보겠는가?”

선봉대에서 한 맹장이 말을 몰고 나와 말 위에서 동관에게 인사를 하고 말했다.

소장이 나가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동관이 보니, 정주도감 진저였다. 흰 전포에 은빛 갑옷을 입고 붉은 가슴걸이를 한 파란 말을 타고 있는데, 손에는 한 자루의 대간도(大桿刀)를 든 부선봉이었다. 동관이 명을 내려 북이 세 번 울리자 지휘대 위에서 홍기가 휘날리며 진문이 열렸다. 진저가 말을 몰아 문기 아래로 나서자 양군에서 일제히 함성이 울렸다. 진저가 말을 세우고 대간도를 비껴들고서 큰소리로 외쳤다.

겁대가리 없는 도적놈들! 나라를 배반한 미친 놈들아! 천병이 당도했는데도 어찌 투항하지 않느냐! 네놈들의 뼈와 살이 모두 잘게 다져진 다음에는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송강의 남쪽 진영에서 선봉 진명이 나오더니, 아무 말 없이 낭아곤을 휘두르며 곧장 진저에게로 돌진하였다. 두 말이 서로 얽히고 무기가 서로 부딪혔다. 한 사람이 낭아곤으로 머리를 부수려 들면, 다른 한 사람은 대간도로 목을 베려고 하였다.

두 장수가 이리저리 돌고 몸을 이쪽저쪽으로 뒤집으면서 20여 합을 싸웠는데, 진명이 파탄 난 척하면서 진저가 파고 들어오도록 유도했다. 진저의 대간도가 허공을 가르는 순간 진명의 낭아곤이 진저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진저는 투구를 쓰고는 있었지만 정수리에 낭아곤을 정통으로 맞고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그러자 진명의 두 부장 단정규와 위정국이 달려 나와 진명을 접응하고 진저의 말을 끌고 돌아갔다.

그때 동남방의 문기 아래 있던 쌍쟁장 동평은 진명이 첫 번째 공을 세우는 걸 보고 생각했다.

대군이 이미 적의 예기를 짓밟았으니, 이때 돌격하여 동관을 사로잡지 않고 어느 때를 다시 기다리겠는가!”

동평은 큰소리를 지르면서 양손에 두 자루의 쟁을 들고서 말을 박차고 벽력같은 기세로 달려 나갔다. 동관은 그걸 보고 말을 돌려 중군 속으로 달아났다. 그때 서남방의 문기 아래에 있던 급선봉 삭초가 소리쳤다.

지금 동관을 사로잡지 않고 어느 때를 기다리느냐!”

삭초는 큰 도끼를 휘두르며 동관의 진으로 돌격했다. 그러자 중앙에 있던 진명도 양쪽의 장수들이 돌격하는 것을 보고 본대의 홍기 군마를 몰아 동관을 사로잡기 위해 적진으로 일제히 돌격하였다.

송강의 진중에서 선봉 세 부대가 칼과 도끼를 휘두르며 돌격하자, 동관의 삼군은 대패하여 열에 일고여덟이 죽거나 부상을 당하면서 별똥별이 우수수 떨어지고 구름이 흩어지듯 달아나기에 바빴다. 군사들은 징과 북은 물론이고 칼과 창도 내던지고 아들을 찾고 아비를 찾으며 형을 부르고 동생을 부르며 달아났다. 만여 명을 잃고 30리를 도망가서야 비로소 멈추었다.

오용은 진중에서 징을 울려 군사를 거두고 명을 내렸다.

끝까지 추격하지 말라! 저들에게 맛만 보여주면 된다.”

양산박의 인마는 모두 산채로 돌아가 각자 공을 아뢰고 상을 청했다.

한편, 동관은 일전을 패하여 많은 인마를 잃고 퇴각하여 영채를 세우고 휴식을 취했다. 동관은 마음속에 근심이 가득한 채 장수들을 모아 상의하였다. 풍미와 필승이 말했다.

상공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도적놈들이 관군이 온다는 것을 알고 미리 저런 진세를 펼쳐 두었는데, 우리 관군은 이곳에 처음 왔기 때문에 적의 허실을 알지 못하여 간계에 빠졌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저 도적놈들은 산에 의지하여 진세를 펼치고 군마를 많이 배치하여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부린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시적으로 지리적 이점을 잃었던 것뿐입니다.

우리는 마보군 장병들을 다시 조련하면서 사흘 정도 휴식을 취함으로써 예기를 기르고 전마들도 쉬게 다음에, 모든 부대를 동원하여 장사진(長蛇陣)을 펼쳐 한꺼번에 공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장사진은 머리가 공격당하면 꼬리가 대응하고, 꼬리가 공격당하면 머리가 대응하며, 가운데가 공격당하면 머리와 꼬리가 함께 대응하는 진입니다. 그렇게 하면 부대 간의 연락이 끊어지지 않기 때문에, 이 진을 펼치면 반드시 대승할 것입니다.”

동관이 말했다.

그 계책이 묘하다. 내 뜻에 합치된다.”

즉시 명을 내려 삼군을 정비하여 훈련을 시켰다.

사흘 후, 새벽에 밥을 지어 장병들은 배불리 먹고, 갑옷을 입고 칼·도끼·활 등의 무기를 챙기고 말에게도 갑옷을 입혔다. 대장 풍미와 필승이 앞장서서 대군을 거느리고 호호탕탕(浩浩蕩蕩) 기세를 떨치며 양산박을 향해 진격했다. 팔로군마를 좌우로 나누고, 전면에는 3백 명의 철갑 척후병을 내보내 길을 탐색하게 하였다. 척후병이 돌아와 중군에 있는 동관에게 보고했다.

지난번의 전장에는 단 하나의 군마도 보이지 않습니다.”

동관은 보고를 받고 의심이 들어, 전군으로 가서 풍미와 필승에게 말했다.

퇴각하는 것이 어떻겠나?”

풍미가 대답했다.

퇴각할 생각은 마십시오. 우리는 오로지 돌격해야 합니다. 장사진을 펼치고 있는데, 겁낼 게 뭐 있습니까?”

관군이 천천히 진격하여 호숫가에 당도해 보니, 진짜로 군마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아득히 넓은 호수에 갈대만 무성하고 연기가 자욱히 끼어 있었다. 멀리 보이는 수호산채의 정상에도 행황기만 바람에 펄럭이고 있을 뿐 역시 아무런 동정이 없었다.

동관은 풍미·필승과 함께 대군 앞에 말을 세우고 멀리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갈대숲 속에 작은 배 한 척이 눈에 띄었다. 배에는 한 사람이 타고 있었는데, 머리는 대나무 껍질로 만든 삿갓을 쓰고 몸에는 녹색 도롱이를 입고서 뱃전에 비스듬히 기대어 언덕 쪽으로 등을 돌리고서 혼자 낚시를 하고 있었다. 동관의 보군 하나가 소리쳐 물었다.

도적은 어디 있나?”

어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동관은 활을 잘 쏘는 병사를 불러 활을 쏘라고 명하였다. 두 기병이 곧장 호숫가로 달려가 말을 세우고 어부의 등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화살이 어부의 삿갓에 명중했는데, ‘하는 소리가 울리면서 화살이 튕겨나가 물속으로 떨어졌다. 다른 기병이 다시 화살을 쏘아 이번에는 어부의 도롱이를 맞혔는데, 역시 하는 소리가 울리면서 화살이 튕겨나가 물속으로 떨어졌다. 이 두 기병은 동관의 군대에서 활을 가장 잘 쏘는 병사들이었다. 두 사람은 깜짝 놀라 되돌아와 동관에게 말했다.

두 개의 화살이 모두 명중했지만, 뚫고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놈이 몸에 무엇을 입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동관은 다시 강궁을 든 병사 3백 명을 호숫가로 보내 일제히 어부를 향해 활을 쏘게 하였다. 화살이 어지럽게 날아오는데도 어부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날아간 화살들은 물에 떨어지거나 배에 꽂힌 것도 많았지만, 어부의 도롱이와 삿갓에 명중한 것도 있었는데 모두 튕겨나가 물속으로 떨어졌다.

동관은 활은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헤엄을 잘 치는 병사들로 하여금 갑옷을 벗고 헤엄쳐 가서 어부를 잡아오게 하였다. 4~50명의 병사들이 배를 향해 헤엄쳐 가기 시작했다. 어부는 선미 쪽에서 첨벙거리는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헤엄쳐 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조금도 당황하지 않으며 낚싯대를 내려놓고 노를 집어 들었다.

병사들이 배 가까이 다가오자 병사들의 이마, 머리, 얼굴 등을 노로 내려치기 시작했고, 노에 얻어맞은 병사들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뒤따라 헤엄쳐 오던 병사들은 그걸 보고 급히 언덕으로 되돌아와 갑옷을 찾아 입었다.

동관은 크게 노하여, 이번에는 5백 명의 병사들을 물속으로 몰아넣으면서 반드시 어부를 잡아 오라고 명하였다.

만약 그냥 돌아오는 놈은 일도양단(一刀兩段)할 것이다!”

5백 명의 병사들은 갑옷을 벗고 함성을 지르며 물에 뛰어들어 일제히 헤엄쳐 가기 시작했다. 어부는 뱃머리를 언덕 쪽으로 돌리더니 동관을 손가락질하며 큰소리로 욕을 퍼부었다.

나라를 어지럽히는 적신(賊臣)! 백성을 해치는 짐승아! 목숨을 바치러 와 놓고서, 어디서 뒈질 줄은 모르는구나!”

동관은 크게 노하여 마군으로 하여금 활을 쏘게 하였다. 어부가 껄껄껄웃으며 말했다.

저기 군마가 오고 있다!”

어부는 손가락으로 한곳을 가리키더니, 도롱이와 삿갓을 벗어던지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헤엄쳐 가던 5백 관군이 거의 배 가까이 다가갔는데,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물속으로 끌려들어가기 시작했다. 그 어부는 바로 낭리백조 장순이었으며, 머리에 썼던 삿갓은 겉은 대나무 껍질이었지만 안에 구리판을 댄 것이었고 도롱이도 마찬가지여서 마치 거북이 등껍질을 뒤집어쓴 것과 같았기 때문에 화살이 뚫지 못했던 것이다.

장순은 물속으로 들어가 요도를 뽑아 관군들의 목을 베어 물속 깊이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호수에는 핏물이 흘러넘쳤다. 장순의 손에서 벗어난 관군들은 죽어라 헤엄쳐서 물가로 도망쳐 나왔다. 동관은 언덕 위에서 얼이 빠져 그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한 장수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산정에서 황기가 휘날리고 있습니다!”

동관은 정신을 차리고 바라보았지만 그게 무슨 의도인지 알 수가 없었다. 여러 장수들도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풍미가 말했다.

일단 3백 명의 철갑 척후대를 양대로 나누어 산 뒤편 양쪽을 살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척후대 두 부대가 산 앞으로 달려가자, 갈대숲 속에서 굉천뢰포가 터지면서 불길이 치솟았다. 척후대는 재빨리 돌아와 복병이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동관은 적잖게 놀랐다. 풍미와 필승은 양쪽으로 사람을 보내 군사들이 동요하지 못하게 하는 동시에 칼을 뽑아 들고 군사들 사이를 왕래하면서 소리쳤다.

먼저 달아나는 놈은 참할 것이다!”

삼군의 인마를 안정시키고서, 동관은 여러 장수들과 함께 말을 세우고 살펴보았다. 그때 산 뒤편에서 북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함성이 하늘까지 울리면서 한 무리의 군마가 튀어 나오는데, 모두 황기를 들고 있었다. 두 명의 효장(驍將)이 황종마를 타고 앞장섰는데, 미염공 주동과 삽시호 뇌횡이었다. 두 사람은 5천 인마를 이끌고 곧장 관군을 향해 돌격해 왔다.

동관은 풍미와 필승을 내보내 대적하게 하였다. 두 사람은 명을 받고 쟁을 들고 말을 몰아 나가면서 소리쳤다.

겁대가리 없는 도적놈들아! 빨리 투항하지 않고 또 어느 때를 기다리느냐!”

뇌횡이 말 위에서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필부가 죽음이 눈앞에 있는데도 아직 모르고 있구나! 감히 나와 결전해 보겠느냐?”

필승은 크게 노하여 쟁을 들고 말을 박차고 곧장 뇌횡에게 달려들었다. 뇌횡도 쟁을 들고 나와 대적했다. 두 말이 엇갈리고 무기를 부딪치며 20여 합을 싸웠는데 승부가 나지 않았다. 풍미는 필승이 이기지 못하는 것을 보고 칼을 휘두르며 말을 박차고 싸움을 도우러 달려 나갔다. 주동이 그걸 보고 크게 소리치면서 칼을 휘두르며 달려 나가 풍미를 대적하였다. 네 장수가 둘씩 짝을 이루어 진 앞에서 싸움을 벌였다. 동관은 그걸 보고 갈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싸움이 치열해지자 주동과 뇌횡은 파탄 난 척하며 말을 돌려 본진을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풍미와 필승은 두 사람을 놓칠세라 말을 박차고 추격하였다. 그러자 양산박 부대가 함성을 지르며 모두 산 뒤편을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동관은 추격하라고 소리쳤다.

관군이 있는 힘을 다해 양산박 부대를 추격하여 산허리를 막 돌아갈 때, 산정에서 뿔피리소리가 일제히 울렸다. 관군들이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앞뒤에서 두 개의 화포가 포탄을 쏘기 시작했다. 동관은 복병이 있음을 알고 더 이상 추격하지 않고 군마를 멈추게 하였다. 그때 산정에 행황기가 나타나 펄럭이기 시작했는데, 거기에는 체천행도네 글자가 쓰여 있었다.

동관은 다시 군대를 재촉하여 산기슭을 지나갔는데, 이번에는 산 위에 잡색 깃발들이 휘날리는 사이에 운성현의 개세영웅(蓋世英雄) 산동 호보의 송강이 나타났다. 그 뒤에는 군사 오용과 공손승 그리고 금창수와 은창수를 거느린 화영과 서녕이 있었다.

동관은 송강을 보고 크게 노하여, 송강을 잡으라고 명을 내렸다. 관군의 대부대가 두 길로 나누어 산을 올라가는데, 산 위에서 북소리가 하늘을 울리더니 양산박의 호걸들이 마구 웃어댔다. 동관은 더욱 노기가 치밀어 이빨을 부드득 갈면서 소리쳤다.

저 도적놈들이 감히 나를 희롱하다니! 내가 친히 저놈들을 잡으러 가겠다.”

풍미가 간했다.

상공! 저놈들에게 필시 계책이 있을 겁니다. 친히 험지로 가시면 안 됩니다. 일단 회군했다가, 내일 다시 저놈들의 허실을 탐지한 다음에 진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동관이 말했다.

헛소리 마라! 일이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어찌 퇴각한단 말이냐! 밤을 새워서라도 도적놈들과 싸워야 한다. 이미 적을 보았으니, 기세로 보아서도 퇴각할 수는 없다.……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후군에서 함성이 울리면서 척후병이 달려와 보고했다.

서쪽 산 뒤편에서 한 떼의 군마가 튀어나와, 후군을 공격하여 둘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동관은 크게 놀라 풍미와 필승을 데리고 급히 후군을 구원하러 가려고 했는데, 그때 또 동쪽 산 뒤편에서 북소리가 울리면서 한 부대가 나타났다. 절반은 홍기를 들었고 절반은 청기를 들었는데, 두 대장이 5천 군마를 거느리고 돌격해 왔다. 홍기를 든 부대의 대장은 벽력화 진명이었고, 청기를 든 부대의 대장은 대도 관승이었다. 두 대장이 말을 몰아 공격해 오면서 소리쳤다.

동관은 빨리 수급을 바쳐라!”

동관은 크게 노하여, 풍미를 내보내 관승을 대적하게 하고 필승을 내보내 진명을 대적하게 하였다. 동관은 후군에서 계속 긴급한 함성이 들려오자, 징을 울려 군대를 거두고 퇴각하고자 하였다. 그때 주동과 뇌횡이 다시 황기를 든 부대를 이끌고 양쪽에서 협공해 왔다. 동관의 군병들은 혼란해지기 시작했다.

풍미와 필승은 동관을 보호하여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한창 달아나고 있는데, 비탈 위에서 또 한 무리의 군마가 달려 나왔다. 그 군마는, 절반은 백기를 들었고 절반은 흑기를 들었는데, 두 호장(虎將)5천 군마를 거느리고 길을 가로막았다. 흑기 부대의 대장은 쌍편 호연작이고, 백기 부대의 대장은 표자두 임충이었다. 두 장수가 말 위에서 소리쳤다.

간신 동관아! 어디로 달아나느냐! 빨리 죽음을 받아라!”

두 장수가 돌격해 오자, 수주도감 단붕거가 달려 나가 호연작과 교전하고, 여주도감 마만리가 임충을 대적하였다. 마만리는 임충과 싸운 지 몇 합 되지 않아 기력이 달려 달아났다. 그때 임충이 큰소리로 외치면서 쟁으로 찌르자, 마만리는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단붕거는 마만리가 임충에게 찔려 죽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싸울 마음이 없어져 호연작의 쌍편을 밀어내면서 말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호연작은 더욱 용맹을 떨쳐 추격해 갔다.

양군이 혼전을 벌이는 사이에 동관은 길을 뚫고 달아나기에 바빴다. 그때 전군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나면서 산 뒤편에서 한 떼의 보군이 나타나 곧장 관군 가운데로 돌격해 왔다. 앞장선 중 하나와 행자 하나가 군병을 이끌고 오면서 크게 소리쳤다.

동관이 달아나지 못하게 하라!”

그 중은 불경도 읽지 않고 참회도 하지 않으며 오로지 사람 죽이는 것만을 좋아하는 화화상 노지심이었고, 그 행자는 경양강에서 호랑이를 때려잡은 수호산채의 최고영웅인 그 유명한 행자 무송이었다. 동관의 군대는 노지심과 무송이 이끄는 보군의 공격을 받고 산산이 부서졌다.

관군들은 앞으로 나아가려 해도 길이 없고 뒤로 후퇴할 수도 없었다. 풍미와 필승이 겨우 두터운 포위를 뚫고 혈로를 뚫어 산 뒤편으로 돌아갔다. 숨을 헐떡이며 잠시 쉬려는 찰나, 또 포성이 천지를 진동하고 북소리가 일제히 울리면서 두 맹장이 한 떼의 보군을 이끌고 나와 길을 가로막았다. 양두사 해진과 쌍미갈 해보가 강차를 들고 보군을 이끌고 동관의 진중으로 돌격해 들어왔다.

동관의 부대는 그들을 막을 수 없어 포위를 뚫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다섯 방면의 양산박 마군과 보군이 일제히 추격하여 공격하자, 관군들은 별똥별이 우수수 떨어지고 구름이 흩어지듯 사방으로 패주하였다. 풍미와 필승은 힘을 다해 동관을 보호하며 달아나다가, 강차를 휘두르며 돌격해 오는 해진·해보 형제와 맞닥뜨렸다. 동관은 급히 말을 박차고 산비탈을 향해 도주하였고, 풍미와 필승이 그 뒤를 따라 달렸다. 당주도감 한천린과 등주도감 왕의가 또 그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네 사람이 힘을 합쳐 겨우 포위를 벗어난 듯했는데, 헐떡이는 숨을 채 그치기도 전에 전면에서 먼지가 일어나고 함성이 치솟으면서 푸른 숲속에서 한 떼의 군마가 튀어나와 길을 가로막았다. 앞장선 맹장은 쌍쟁장 동평과 급선봉 삭초였다. 두 사람은 아무런 말없이 곧장 동관에게 달려들었다. 왕의가 쟁을 들고 맞섰지만, 삭초의 도끼에 맞아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또 한천린이 왕의를 구하러 달려가다가 동평의 쟁에 찔려 죽었다.

그 사이에 풍미와 필승은 사력을 다해 동관을 보호하여 달아났다. 사방에서 징소리와 북소리가 어지럽게 일어나는데 도대체 어디서 군대가 오는지 알 수 없었다. 동관이 언덕 위에 올라가 말을 세우고 바라보니, 사면팔방을 네 부대의 양산박 마군이 에워싸고 있는데 또 양옆으로 두 부대의 양산박 보군이 밀려들고 있었다. 양산박 군마가 일제히 돌격해 오자, 동관의 군마는 거센 바람에 낙엽이 떨어지고 구름이 흩어지듯 이리저리 쫓겨 흩어지며 혼란에 빠졌다.

그때 산기슭 밑에서 한 떼의 인마가 달려 나오는 것이 보였는데, 깃발을 보니 진주도감 오병이와 허주도감 이명의 부대였다. 하지만 두 장수가 이끄는 부대는 모두 칼도 잃어버리고 창도 부러진 패잔군마로서 양산박 군사들에게 쫓겨 임랑산 쪽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동관은 사람을 보내 그들을 불렀다.

달아나던 두 장수가 언덕으로 올라가려고 급히 인마를 정돈하고 있는데, 또 산허리에서 함성이 일어나면서 한 떼의 군마가 달려 나와 관군을 향해 돌격해 갔다. 앞장선 두 맹장은 청면수 양지와 구문룡 사진이었다. 양지와 사진은 칼을 휘두르며 오병이와 이명의 관군을 가로막고 공격했다. 이명은 쟁을 들고 양지와 싸우고, 오병이는 방천화극을 들고 사진과 싸웠다. 네 사람은 언덕 아래에서 밀고 밀리며 이리 돌고 저리 돌면서 각기 평생 익힌 무예를 겨루었다. 동관은 언덕 위에서 싸움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네 사람이 교전한 지 30여 합이 되었을 때, 오병이가 화극으로 사진의 가슴을 찌르며 들어가자 사진이 슬쩍 피하면서 화극이 자신의 겨드랑이 사이로 빠지게 하였다. 오병이가 사진에게 가까이 다가가게 되자, 사진이 칼을 휘둘러 오병이의 목을 베었다. 오병이의 목에서 한 줄기 피가 뿜어져 나오면서 투구를 쓴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이명은 오병이가 죽는 것을 보고 말을 돌려 달아났는데, 그때 양지가 크게 고함을 질렀다. 깜짝 놀란 이명은 혼비백산하고 간담이 서늘하여 손에 쥐고 있는 쟁이 거꾸로 되어 있는지도 몰랐다. 양지는 이명의 정수리를 향해 칼을 내리쳤는데, 이명이 살짝 피하는 바람에 칼은 말 엉덩이를 찍고 말았다. 엉덩이에 칼을 맞은 말이 뒷다리를 치켜들자, 이명은 말에서 뛰어내려 손에 쥐고 있던 쟁도 내던지고 달아났다. 하지만 양지가 곧바로 뒤따라가 재빨리 칼로 베었다. 가련하게도 이명의 반평생 군관생활은 남가일몽(南柯一夢)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관군의 두 장수는 모두 언덕 아래에서 죽고 말았다. 양지와 사진이 패전한 관군을 공격하는데, 마치 오이를 베고 박을 자르듯 하였다.

동관은 풍미·필승과 함께 언덕 위에서 그 광경을 보고 있었지만, 감히 내려가지도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세 사람은 어떻게 하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지 상의했다. 풍미가 말했다.

상공께서는 마음 놓으십시오. 소장이 살펴보니, 남쪽에 우리 관군 큰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데, 깃발이 아직 꺾이지 않았으므로 우리를 구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필도통께서는 여기서 상공을 보호하고 계십시오. 제가 길을 뚫고 가서 군마를 이끌고 상공을 구하러 오겠습니다.”

동관이 말했다.

날이 저물고 있으니, 빨리 갔다 오게.”

풍미는 대간도를 들고 나는 듯이 언덕 아래로 말을 몰아 길을 뚫고 남쪽으로 달렸다. 남쪽 진영에 당도하여 보니 숭주도감 주신의 부대였는데, 진영을 둥글게 펼쳐 놓고 사력을 다해 적군 가운데서 버티고 있었다. 주신은 풍미를 진 안으로 맞이하여 물었다.

상공은 어디 계시오?”

풍미가 말했다.

저 앞의 언덕 위에 계시는데, 당신의 군마가 와서 구원해 주기만 기다리고 있소. 지체해서는 안 되니, 빨리 갑시다.”

주신은 명을 내려, 마군과 보군이 서로 협력하여 대오를 흩트리지 않으면서 나아가게 하였다. 두 대장이 앞장서자 군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적진을 뚫고 언덕을 향해 나아갔다. 언덕까지 화살이 닿을 정도의 거리에 이르렀을 때, 산비탈에서 한 떼의 군마가 달려왔다. 풍미는 칼을 휘두르며 나아가 대적하려 했는데, 알고 보니 수주도감 단붕거의 부대였다. 세 사람이 군대를 합쳐 언덕 아래까지 진격하자, 필승이 내려와 맞이하였다. 동관은 함께 상의하며 말했다.

오늘 밤에 빠져나가는 것이 좋겠는가? 아니면 내일 아침까지 기다렸다가 빠져나가는 것이 좋겠는가?”

풍미가 말했다.

저희 넷이서 사력을 다해 상공을 보호할 것이니, 오늘 밤에 포위를 뚫고 나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점점 밤이 다가왔지만, 사방에서 함성은 끊이지 않았고 징소리와 북소리도 계속 어지럽게 들렸다. 10시쯤 되자 별빛과 달빛이 밝았다. 풍미가 앞장서고 장수들이 동관을 에워싸고서 일제히 언덕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 그때 사방에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동관을 놓치지 마라!”

관군은 오로지 남쪽 길을 향해서만 돌진해 나갔다. 계속 혼전을 벌이면서 나아갔는데, 새벽 2시경이 되었을 즈음에야 비로소 적진 속에서 벗어난 것 같았다. 동관은 말 위에서 손을 이마에 올려 천지신명께 예를 올리며 말했다.

부끄럽습니다! 이제는 큰 어려움에서 벗어났습니다!”

동관은 장병을 재촉하면서 제주를 향해 나아갔다. 하지만 동관의 기쁨이 다하기도 전에, 앞의 언덕 위에서 횃불이 나타났는데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배후에서도 함성이 일어나면서 횃불 가운데 두 사람의 호걸이 박도를 나타났는데 ,그 뒤에 또 백마를 타고 점강쟁을 든 대장이 있었다. 말을 타고 있는 대장은 옥기린 노준의였고, 그 앞에 박도를 들고 있는 두 호걸은 병관색 양웅과 반명삼랑 석수였다. 세 사람이 3천 인마를 거느리고 길을 가로막았다. 노준의가 말 위에서 소리쳤다.

동관은 빨리 말에서 내려 포박을 받지 않고, 또 어느 때를 기다리느냐!”

동관은 장수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앞에는 복병이 있고 뒤에는 추격병이 있으니, 어찌하면 좋은가?”

풍미가 말했다.

소장이 목숨을 버려 상공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여러 장수들은 상공을 보호하면서 길을 뚫고 제주로 가시오. 나는 여기서 적들과 싸우겠소.”

풍미는 말을 박차고 나가 대도를 휘두르며 노준의에게 달려들었다. 교전한 지 몇 합도 되지 않아, 노준의가 쟁을 내지르며 풍미의 대도를 제치고 바짝 다가갔다. 한 손으로 풍미의 허리를 붙잡고 말을 발로 차 버린 다음 풍미를 사로잡아 버렸다. 양웅과 석수가 접응하면서, 군사들이 풍미를 묶어서 끌고 갔다.

필승 · 주신 · 단붕거는 사력을 다해 동관을 보호하면서 길을 막고 있는 양산박 군병들을 뚫고 한편으로 싸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달아났다. 배후에서는 노준의가 추격해왔다. 패주하는 동관의 군대는 마치 상가(喪家)에서 제대로 얻어먹지 못한 개처럼 비참하고 그물에서 막 벗어난 물고기처럼 마음이 급했다. 날이 밝을 무렵 겨우 추격병에게서 벗어나 제주를 향해 달아났다.

한참 달아나고 있는데, 앞에 있는 언덕 뒤에서 또 보군 한 부대가 나타났다. 군사들은 모두 쇠로 된 엄심갑을 입고 붉은 두건을 쓰고 있었으며, 네 명의 보군두령이 앞장서고 있었다. 이규는 쌍도끼를 들고, 포욱은 한 자루 보검을 들고, 항충과 이곤은 방패를 들고서 마치 불덩이가 굴러 내려오듯 언덕 위에서 아래로 돌격해 왔다. 관군은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동관과 장수들은 한편으로 싸우면서 또 한편으로 목숨만 부지하기 위해 달아났다. 이규는 관군 속으로 뛰어들어 단붕거의 말 다리를 도끼로 찍었다. 말이 쓰러지면서 단붕거가 말에서 떨어지자, 이규는 도끼로 단붕거의 머리를 쪼개 놓고 다시 한 번 도끼질을 하여 목을 베어 버렸다.

한편, 패주한 관군은 제주에 거의 다가갔는데, 투구는 벗겨지고 갑옷도 너덜거리며 군사들은 모두 기력을 잃었고 말도 지쳐 있었다. 개울에 당도하여 군마가 모두 물을 마시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화포가 터지면서 화살이 메뚜기 떼처럼 쏟아졌다. 관군들은 급히 언덕으로 올라갔는데, 숲속에서 한 떼의 군마가 튀어나왔다. 몰우전 장청이 공왕·정득손과 함께 3백 기마병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말들은 모두 방울이 달린 가면을 쓰고 꿩꼬리를 꽂은 붉은 가슴걸이를 하고 있었고 병사들은 가벼운 활과 짧은 화살을 메고 창을 들고 있었다.

숭주도감 주신은 장청의 군마가 적은 것을 보고 나가서 대적하였고, 그 사이에 필승은 동관을 보호하면서 달아났다. 주신이 쟁을 들고 말을 몰아 달려 나가자, 장청은 쟁을 왼손으로 옮겨 쥐고 오른손으로 돌을 던지며 소리쳤다.

받아라!”

주신이 콧잔등에 돌을 맞고 말에서 떨어지자, 공왕과 정득손이 나는 듯이 달려가 강차로 목을 찔러 죽였다. 동관은 필승을 제외한 모든 장수들을 잃고 겨우 목숨을 건져 달아났다. 감히 제주로 들어가지는 못하고 패잔병들을 이끌고 밤을 새워 동경으로 돌아갔다.

원래 송강은 인덕을 지닌 사람이라 평소에 조정에 귀순할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추격할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여러 장수들이 동관을 악착같이 추격할까 염려되어 급히 대종을 보내 명을 전하여 여러 두령들은 각기 군마를 거두어 산채로 돌아와 공을 청하라고 하였다. 두령들은 각처에서 징을 울려 군사를 거두고 개선가를 부르며 양산박으로 돌아왔다.

송강·오용·공손승은 먼저 산채로 돌아와 충의당에 좌정하고, 배선으로 하여금 각자가 세운 공을 알아보게 하였다. 노준의가 사로잡은 풍미를 끌고 와 충의당 앞에 무릎을 꿇리자, 송강은 친히 포박을 풀어 주고 당상으로 청하여 자리에 앉게 하고 술잔을 바치며 사과하였다. 풍미는 송강의 태도에 몹시 놀랐다. 여러 두령들도 모두 충의당에 모여 소와 말을 잡아 연회를 열고 삼군에 중상을 내렸다.

송강은 풍미를 이틀 간 산채에 머물게 한 다음, 말을 준비하여 산 아래로 내려 보냈다. 풍미가 크게 기뻐하자, 송강이 사과하며 말했다.

장군의 위엄을 모독한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송강 등은 본래 다른 마음이 없습니다. 오로지 조정에 귀순하여 국가를 위해 힘을 다하고자 할 뿐인데, 공정하지 못하고 법을 지키지 않는 자들의 핍박을 받아 이러고 있습니다. 장군께서 조정으로 돌아가시면, 좋은 말로 저희들의 사정으로 얘기하여 구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다음에 다시 천자의 은혜를 입게 되면, 죽어도 그 큰 은덕을 잊지 않겠습니다.”

풍미는 살려준 은혜에 감사하며 산을 내려갔다. 송강은 사람을 시켜 경계 밖까지 호송해 주게 하였다.

송강은 충의당에서 오용을 비롯한 여러 두령들과 상의했다. 원래 이번에 사용한 십면매복(十面埋伏)의 계책은 모두 오용의 지혜에서 나온 것이었다. 동관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대군의 삼분지이를 꺾어 놓음으로써 꿈속에서도 두려워하게 만들려는 것이었다.

오용이 말했다.

동관이 경성으로 돌아가 천자에게 아뢰면, 분명히 다시 군대를 일으킬 것입니다. 따라서 한 사람을 동경으로 보내 허실을 정탐해 오게 하여 미리 준비를 해야 합니다.”

송강이 말했다.

군사의 말씀이 내 뜻과 합치됩니다. 형제들 가운데 누가 가겠소?”

그러자 좌중에서 한 사람이 나와 말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모두 말했다.

이 사람이 가면 틀림없을 겁니다.”

송강과 오용이 상의하여, 한 사람을 동경으로 보내 소식을 정탐하여 미리 대비하고자 하였는데, 신행태보 대종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군정을 정탐하는 일은 항상 아우의 덕을 많이 봤네. 또 아우가 가더라도 반드시 도와줄 사람을 하나 데리고 가는 것이 좋겠네.”

이규가 말했다.

제가 따라가서 형님을 돕겠습니다.”

송강이 웃으며 말했다.

넌 사고뭉치 흑선풍이잖아!”

이규가 말했다.

이번에 가면 절대로 사고치지 않겠소.”

송강은 이규를 꾸짖어 물리치고 다시 물었다.

어떤 형제가 같이 가겠소?”

적발귀 유당이 말했다.

제가 대종형님과 같이 가면 어떻겠습니까?”

송강이 기뻐하며 말했다.

좋아!”

그날 두 사람은 행장을 수습하여 산을 내려갔다.

한편, 동관은 필승과 함께 돌아가면서 패잔병들을 모았는데 약 4만 명이 되었다. 동경에 거의 다 와서, 다른 곳에서 불러온 군마들은 원래 소속된 곳으로 돌려보내고 어영군만 데리고 성으로 들어갔다. 동관은 무장을 풀고 곧바로 고태위의 부중으로 갔다. 두 사람은 인사를 마친 후 후당 깊은 곳으로 들어가 좌정하였다. 동관은 두 번의 패전으로 팔로군마와 많은 장병들을 잃었으며 풍미는 사로잡혔음을 자세히 얘기하고, 어찌하면 좋겠는지 물었다. 고태위가 말했다.

추밀상공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 일은 천자께 감추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리가 아니면 감히 누가 아뢰겠습니까! 저랑 같이 채태사를 찾아가 말씀드리고, 다시 방도를 생각해 봅시다.”

동관은 고구와 함께 채태사의 부중으로 갔다. 채경은 이미 동관이 돌아온 것을 알고 있었는데, 승전하지 못했으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동관이 고구와 함께 찾아왔다는 것을 듣고, 채경은 두 사람을 서원으로 불러들였다. 동관이 절을 하면서 눈물을 비 오듯 흘리자, 채경이 말했다.

너무 괴로워하지 마시오. 나는 당신이 패전한 것을 이미 알고 있소.”

고구가 말했다.

그 도적놈들은 호수에 있기 때문에 배가 아니면 토벌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추밀상공은 마보군만으로 저들의 소굴을 공격하려 했기 때문에, 불리한 상황에서 적의 계략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동관이 패전한 일을 자세히 얘기하자, 채경이 말했다.

당신은 많은 군마를 잃고 많은 전비와 군량을 허비했으며, 또 팔로군마까지 잃었소. 이런 일을 어떻게 천자께 감히 아뢸 수 있겠소!”

동관이 재배하고 말했다.

태사께서는 이 일을 덮어 주시고 저의 목숨을 살려 주십시오!”

채경이 말했다.

내일 천자께 아뢸 때, 날씨가 너무 뜨겁고 군사들이 그곳의 풍토를 이기지 못해 싸움을 그치고 퇴각했다고 하겠소. 하지만 만약 천자께서 진노하여 이 뱃속에 든 큰 근심거리를 제거하지 못하면 후에 필시 재앙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면, 그때는 어떻게 대답하겠소?”

고구가 말했다.

고구가 큰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만약 태사께서 저에게 그놈들을 토벌하라고 명하시면 일고(一鼓)에 평정하고 오겠습니다.”

채경이 말했다.

태위가 가겠다면 좋습니다. 내일 천자께 아뢰어 태위를 원수로 삼도록 하겠습니다.”

고구가 또 말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군사를 마음대로 일으키고 배도 만들 수 있도록 천자의 성지를 받아 주셔야 합니다. 관아의 배든 민간의 배든 징발하여 쓸 수 있어야 하고, 관아에서 정한 값으로 목재를 사서 배를 건조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수륙으로 함께 진격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채경이 말했다.

그건 쉬운 일입니다.”

애기를 나누고 있는데, 문지기가 와서 알렸다.

풍미장군이 돌아왔습니다.”

동관은 크게 기뻐하였다. 채태사는 풍미를 불러들여 그간의 일을 물었다. 풍미는 절을 하고 나서 말했다.

송강은 사로잡아 갔던 모든 장병들을 죽이지 않고 노자까지 주면서 고향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래서 소장도 이렇게 태사님을 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고구가 말했다.

그게 바로 도적놈들의 간사한 계책입니다. 일부러 나라를 업신여기는 겁니다. 이번에는 경성 근처에서 군마를 선발하지 않고, 바로 산동과 하북으로 가서 군사를 선발하여 가겠습니다.”

채경이 말했다.

이렇게 계책을 정했으니, 내일 만나서 천자께 상주하도록 합시다.”

그날은 그렇게 헤어졌다.

다음 날 아침, 조회를 알리는 북소리가 울리자 대신들은 품계에 따라 계단 아래에 문관과 무관이 나누어 서서 천자에게 절을 올렸다. 채태사가 나와서 아뢰었다.

지난번에 추밀사 동관이 대군을 통솔하여 양산박 도적을 토벌하러 갔다가, 날씨가 너무 뜨겁고 군마들이 풍토를 이기지 못한데다, 도적들은 호수에 살고 있어 배가 없이 마보군만으로는 진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잠시 싸움을 멈추고 각자 영채로 돌아와 쉬고 있습니다. 이에 폐하의 성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천자가 말했다.

날씨가 그렇게 뜨겁다면, 다시 가지 말아야지!”

채경이 아뢰었다.

동관은 지금 태을궁에서 죄를 청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을 원수로 삼아 다시 토벌하러 보낼까 합니다. 페하의 성지는 어떠하신지요?”

천자가 말했다.

그 도적들은 뱃속의 큰 근심거리이니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누가 과인을 위하여 근심을 덜어주겠는가?”

고구가 출반하여 아뢰었다.

소신이 비록 재주 없으나, 견마지로(犬馬之勞)를 다하여 도적들의 소굴을 토벌함으로써 폐하의 성지를 받들고자 합니다.”

천자가 말했다.

경이 과인을 위하여 근심을 덜어주겠다 하니, 군마는 경이 알아서 선발하도록 하시오.”

고구가 또 아뢰었다.

양산박은 둘레가 8백여 리나 되어 배가 없으면 나아갈 수 없습니다. 양산박 근처에서 목재를 벌채하여 배를 건조하고, 관아의 돈으로 민간의 배들을 사들여 전쟁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천자가 말했다.

경에게 일임했으니, 경이 알아서 처리하시오. 준비가 되면 출발하되 백성을 해치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고구가 아뢰었다.

소신이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다만 기한을 넉넉히 허락하시면, 반드시 성공하겠습니다.”

천자는 비단 전포와 황금 갑옷을 고구에게 하사하고, 길일을 택해 출병하라고 하였다.

그날 백관이 퇴청한 다음, 동관과 고구는 채태사의 부중으로 가서 중서성 관리를 불러 천자의 성지를 전하고 군사를 선발하였다. 고구가 말했다.

전에 열 명의 절도사가 국가를 위해 공을 많이 세웠습니다. 서쪽의 이민족 국가인 귀방과 서하를 정벌하기도 했고, 금나라나 요나라와도 전쟁을 치러 무예가 뛰어납니다. 그들에게 명을 내려 장수로 삼게 해 주십시오.”

채태사는 고구의 청을 허락하고, 열 명의 절도사에게 공문을 보내 각각 정병 1만을 이끌고 제주로 와서 명을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 열 명의 절도사는 만만찮은 자들이었다. 하남 하북 절도사 왕환, 상당 태원 절도사 서경, 경북 홍농 절도사 왕문덕, 영주 여남 절도사 매전, 중산 안평 절도사 장개, 강하 영릉 절도사 양온, 운중 안문 절도사 한존보, 농서 한양 절도사 이종길, 낭야 팽성 절도사 항원진, 청하 천수 절도사 형충이었다.

10로 군마는 모두 훈련이 잘 된 정예병이고, 열 명의 절도사들은 모두 예전에 녹림 출신이었다가 후에 초안을 받아 높은 관직에 오른 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용맹하고 공도 많이 세운 자들이었다. 그날 중서성에서 공문을 보내 10로 군마는 기한 내에 제주에 도착해야 하며, 늦는 자는 군령에 의거하여 조치할 것이라 하였다.

한편, 금릉 건강부에 수군부대가 하나 있었는데, 그 통제관은 유몽룡이란 자였다. 그는 태어날 때, 그 어머니가 흑룡이 뱃속으로 날아드는 꿈을 꾸고 잉태했다고 한다. 체격이 장대하고 물의 성질을 잘 알아 서천 협강에서 도적을 토벌하여 공을 세우고 승진하여 통제관이 되었다. 15천의 수군과 전선 5백 척을 거느리고 강남을 지키고 있었다.

고태위는 유몽룡에게 공문을 보내 수군부대와 배를 모두 이끌고 밤을 새워 달려와 명을 기다리게 하였다. 또 자신의 심복인 우방희를 보군교위로 삼아 강가에 있는 배들을 모두 제주로 끌고 오게 하였다.

또 고태위의 수하에는 아장(牙將)들이 아주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당세영·당세웅 형제가 가장 뛰어났다. 그들은 현재 통제관으로서 만부부당(萬夫不當)의 용맹을 지니고 있었다. 고태위는 또 어영에서 정병 15천을 선발하였으니, 각처의 군마를 모두 합치면 13만이 되었다. 사람을 여러 곳으로 보내 군량을 마련하여 도중에 공급하게 하였다. 고태위는 연일 갑옷을 정돈하고 깃발을 제작하는 등 준비에 바빴다.

한편, 대종과 유당은 동경에 며칠 머물면서 자세한 소식을 정탐하여, 산채로 돌아가 그 사실을 보고했다. 송강은 고태위가 직접 천하의 군마 13만과 열 명의 절도사를 거느리고 온다는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오용과 상의했다. 오용이 말했다.

형님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도 오래 전부터 그 열 명의 절도사 이름을 들어 왔습니다. 그들이 조정을 위해 공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그때는 애초에 그들의 적수가 없었기 때문에 호걸의 명성을 얻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에게 이리 같고 호랑이 같은 형제들이 있습니다. 그 열 명의 절도사는 이미 구시대 인물이니, 형님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10로 군마가 오면 깜짝 놀라게 만들어 놓겠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군사는 어떻게 그들을 놀라게 한단 말이오?”

저들의 10로 군마가 모두 제주로 모여들 건데, 우리는 먼저 날랜 두 장수를 제주 근방으로 보내 한바탕 혼쭐을 내서 우리의 실력을 고구에게 보여주는 겁니다.”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겠소?”

몰우전 장청과 쌍쟁장 동평을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다.”

송강은 두 장수를 불러 각각 1천 마군을 거느리고 제주로 가서 정탐하다가, 몇 갈래 군마를 공격하라고 하였다. 또 수군두령들에게 준비하고 있다가 적의 배를 탈취하라고 명하였다. 그리고 산채의 여러 두령들에게도 모두 임무를 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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