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승은 채태사와 작별하고, 1만5천의 인마를 거느리고 세 부대로 나누어 동경을 떠나 양산박을 향해 진군했다.
한편, 송강과 여러 두령들은 매일 북경성을 공격했지만, 함락하지 못했다. 이성과 문달은 감히 출전하지 못했고, 삭초는 화살 상처가 더욱 심해져서 아직 회복되지 않았기 때문에 출전할 사람이 없었다.
송강은 성을 아무리 공격해도 깨뜨리지 못하자, 근심에 빠졌다. 산채를 떠난 지도 오래 되었는데 승전하지 못하고 있어, 그날 밤에도 고민하면서 중군 막사에서 촛불을 켜 놓고 현녀가 준 천서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성을 포위한 지가 오래 되었는데 아직 구원병이 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머리에 떠올랐다. 대종도 돌아와서 구원병을 보지 못했다고 보고했었다. 송강은 그 생각을 하니, 정신이 황홀해지고 불안해졌다. 그때 군졸이 와서 보고했다.
“군사께서 오셨습니다.”
오용이 중군 막사로 들어와 송강에게 말했다.
“우리 대군이 성을 포위한 지 오래되었는데, 어찌하여 구원군도 오지 않고 성중에서는 또 왜 출전하지 않을까요? 얼마 전에 말 3기가 성을 빠져나갔는데, 필시 양중서가 사람을 경성으로 보내 위급을 알렸을 겁니다. 그러면 양중서의 장인 채태사가 분명히 긴급하게 병력을 파견했을 것이고, 그 가운데는 훌륭한 장수도 있을 겁니다.
만약 위나라를 포위함으로써 조나라를 구하는 계책을 쓴다면, 이곳의 위급을 구하러 오지 않고 도리어 양산박의 산채를 공격하러 갔을 것이니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형님께서는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우선 군사를 수습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 퇴각해서도 안 됩니다.”
얘기하고 있는데, 신행태보 대종이 와서 보고했다.
“동경의 채태사가 관운장의 현손인 포동군의 대도 관승을 불렀는데, 지금 군마를 이끌고 양산박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산채의 두령들은 의견이 결정되지 못하고 있으니, 형님과 군사께서는 빨리 병력을 돌려 산채의 위급부터 구해야 합니다.”
오용이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급하게 돌아가면 안 됩니다. 오늘 밤에 먼저 보군을 출발시키되, 군마 두 부대를 남겨 비호욕 양쪽에 매복시켜 두어야 합니다. 성중에서 우리가 퇴각하는 것을 알면 필시 추격해 올 것이니,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아군이 먼저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송강이 말했다.
“군사의 말씀이 지극히 옳습니다.”
명을 전하여 소이광 화영은 5백 군병을 이끌고 비호욕 좌측에 매복하고, 표자두 임충은 5백 군병을 이끌고 비호욕 우측에 매복하게 하였다. 그리고 쌍편 호연작으로 하여금 25기의 마군과 능진을 데리고 성에서 10여 리 떨어진 곳에 풍화포를 설치해 놓고 대기하다가, 추격병이 지나가면 즉시 신호포를 터뜨려 양쪽의 복병이 일제히 나와 추격병을 공격하게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명을 전하여, 앞 부대부터 퇴각하되 깃발을 눕히고 북을 울리지 말고 마치 비가 그치면서 구름이 흩어지듯 적군을 만나도 싸우지 말고 서서히 퇴각하라고 하였다. 밤중에 차례대로 퇴각하기 시작하여, 다음 날 오전에는 이미 보군부대는 모두 퇴각하였다.
성 위에서 송강의 군마를 바라보니, 손으로는 깃발을 끌고 어깨에는 칼과 도끼를 메고서 혼란스럽게 왔다 갔다 하면서 영채를 모두 뽑고 있는 것이 산으로 돌아가려는 모습이었다. 성 위에서 자세히 살펴보고서 양중서에게 보고하였다.
“양산박의 군마가 오늘 모든 병력을 거두어 돌아갔습니다.”
양중서는 보고를 받고 즉시 이성과 문달을 불러 상의했다. 문달이 말했다.
“아마 경성에서 구원군을 양산박으로 보낸 것 같습니다. 저놈들은 소굴을 잃을까 두려워 황망히 돌아간 것입니다. 이 기세를 타서 추격하면 필시 송강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전령이 달려와 경성에서 보낸 문서를 바쳤다. 병력을 이끌고 도적의 소굴을 공격할 것이니, 만약 적군이 퇴각하면 속히 추격하라는 내용이었다. 양중서는 즉시 이성과 문달에게 각기 군마를 거느리고 동서 양로로 송강의 군마를 추격하게 하였다.
한편, 송강은 병력을 이끌고 퇴각하다가, 성중에서 추격병이 나오는 것을 보고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비호욕 근처까지 퇴각했을 때 배후에서 화포소리가 일제히 울렸다. 이성과 문달이 깜짝 놀라 말을 세우고 바라보니, 뒤에서 깃발이 어지럽게 휘날리고 북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이성과 문달이 급히 회군하려 하는데, 좌측에서는 소이광 화영이, 우측에서는 표자두 임충이 각각 5천 군마를 이끌고 공격해 왔다. 이성과 문달은 간계에 빠진 것을 알고 황급히 군사를 돌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앞쪽에서 호연작이 마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이성과 문달은 투구도 날아가고 갑옷도 찢어질 정도로 대패하여 성안으로 퇴각하여, 성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송강의 군마는 차례대로 회군하여 양산박에 가까이 왔는데, 추군마 선찬이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송강은 진군을 멈추고 하채하였다. 몰래 사람을 산간 소로로 보내 헤엄쳐 건너가서 산채로 가서 알리게 하고, 수륙의 군병이 양쪽에서 서로 구원하기로 하였다.
한편, 양산박 수채에서 선화아 장횡이 아우 낭리백조 장순에게 말했다.
“우리 형제가 산채에 온 후에 아무런 공도 세운 적이 없어, 다른 사람들이 공을 떠벌릴 때 우리는 기가 죽어지냈다. 지금 대도 관승이 세 갈래로 우리 산채를 공격하고 있는데, 우리가 먼저 그의 영채를 기습하여 관승을 사로잡아 대공을 세운다면, 여러 형제들 면전에서 기를 펼 수 있지 않겠나?”
장순이 말했다.
“형님! 우리는 수군을 맡고 있는데, 만약 육군과 서로 접응이 되지 않으면 남의 비웃음을 받게 될 겁니다.”
“자네처럼 그렇게 세심해서야 어느 세월에 공을 세우겠는가? 자네가 가지 않겠다면 관두게. 오늘 밤에 나 혼자 가겠네.”
장순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았다. 그날 밤 장횡은 작은 배 50여 척을 점검하고 각 배마다 4~5명을 태웠다. 몸에는 가벼운 갑옷을 입고 손에는 죽창을 들고 납작한 칼을 허리에 찼다. 달빛이 희미하고 찬 이슬이 내려 적막한 틈을 타서 작은 배를 저어 나아가 곧바로 물가에 당도했다. 때는 약 밤 10시경이었다.
한편, 관승은 중군 막사에서 등불을 켜 놓고 책을 읽고 있었는데, 길에 잠복해 있던 군졸이 가만히 와서 보고했다.
“갈대가 무성한 가운데서 작은 배 4~50척이 다가와 양쪽에 매복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장창을 쥐고 있습니다. 무슨 의도인지 몰라, 와서 보고드립니다.”
관승은 보고를 듣고서 희미하게 냉소를 띄고서는, 몰래 영을 전하여 군사들에게 여차여차 준비하라고 일렀다. 삼군은 영을 받고 각자 잠복하였다.
한편, 장횡은 2~3백 명을 데리고 갈대숲 속에 배를 감추고 곧장 영채로 다가가, 녹각을 뽑고 중군으로 달려 들어갔다. 막사 안에 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데, 관승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병서를 보고 앉아 있었다. 장횡은 몰래 기뻐하면서 장창을 들고 막사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순간 징소리가 요란하게 나고 군사들의 함성이 터지는데, 마치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 산이 넘어지고 강이 뒤집어지는 듯했다. 깜짝 놀란 장횡은 장창을 끌면서 몸을 돌려 달아났다. 사방에서 복병이 어지럽게 일어나 장횡을 사로잡았다. 장횡을 따라온 2~3백 명도 하나도 달아나지 못하고 모두 포박되어, 막사 앞으로 끌려왔다. 관승이 그들을 보고 웃으며 꾸짖었다.
“어리석은 도적놈들아! 어찌 감히 나를 얕보았느냐!”
장횡을 함거에 가두게 하고, 나머지 졸개들도 모두 감금하게 하였다. 송강을 잡으면 한꺼번에 경성으로 압송하고자 하였다.
한편, 양산박 수채에서 완씨 삼형제가 상의하여 송강에게 명령을 듣고자 사람을 보내려고 하는데, 장순이 달려와 말했다.
“우리 형님이 내가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고 관승의 영채를 기습하러 갔다가, 사로잡혀 함거에 갇혔네.”
그 말을 듣고 완소칠이 벌떡 일어나 말했다.
“우리 형제들은 함께 살고 함께 죽으며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서로 구해야 하는데, 자네는 친형을 어찌하여 혼자 가게 내버려두어 사로잡히게 했는가? 자네가 구하러 가지 않겠다면, 우리 삼형제가 구하러 가겠네.”
장순이 말했다.
“송공명 형님의 군령을 받지 못했으니, 감히 함부로 움직일 수 없네.”
완소칠이 말했다.
“군령을 기다리고 있다가 자네 형님은 여덟 조각으로 찢겨질 것이네.”
완소이와 완소오가 말했다.
“그 말이 옳네.”
장순은 세 사람을 이길 수 없어 그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날 새벽 2시경 수채의 여러 두령들이 백여 척의 배를 몰고 일제히 관승의 영채로 쳐들어갔다. 물가에 있던 관군들은 수면 위에 배들이 개미떼처럼 다가오는 것을 보고, 황망히 달려가 관승에게 보고했다. 관승은 웃으며 말했다.
“미련한 도적놈들! 근심거리도 못 되는군!”
즉시 참모를 불러 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여차여차하라고 일렀다.
한편, 완씨 삼형제가 앞장서고 장순은 그 뒤를 따라 함성을 지르며 영채로 뛰어 들어갔다. 영채 안에는 창칼들과 깃발들은 똑바로 서 있었지만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완씨 삼형제는 크게 놀라 몸을 돌려 달아났다. 그때 징소리가 울리면서 좌우에서 마군과 보군이 여덟 길로 나누어 몰려오는데, 마치 키를 까불어 곡식을 광주리에 담으려는 듯이 겹겹이 에워쌌다.
장순은 선두가 보이지 않자 ‘풍덩’ 물속으로 뛰어들어 헤엄쳐 달아났다. 완씨 삼형제는 길을 뚫고 달아나 물가까지 당도했으나, 추격해온 관군들이 갈고리와 올가미를 던져 활염라 완소칠을 사로잡아 끌고 갔다. 완소이 · 완소오 · 장순은 혼강룡 이준이 동위와 동맹을 데리고 와서 필사적으로 싸워 구해내 돌아갔다.
한편, 수군들이 양산박 산채에 올라가 보고하자, 유당은 장순으로 하여금 수로로 송강의 영채에 가서 보고하게 하였다. 송강은 어떻게 하면 관승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인지, 오용과 상의했다. 오용이 말했다.
“일단 내일 결전을 해서 승부가 어떻게 되는지 보시지요.”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갑자기 북이 일제히 울리면서 추군마 선찬이 삼군을 거느리고 쳐들어왔다. 송강이 여러 두령들을 거느리고 나가 보니, 선찬이 문기 아래 말을 세우고 있었다. 송강이 두령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누가 출전하여 저놈을 잡아오겠는가?”
소이광 화영이 쟁을 들고 말을 박차고 선찬에게 달려들었다. 선찬도 칼을 휘두르며 달려 나왔다. 밀고 밀리며 10여 합을 싸우다가, 화영이 파탄 난 척하며 말을 돌려 달아났다. 선찬이 추격해 오자, 화영이 쟁을 안장에 꽂고 활을 당겨 안장에 비스듬히 누우면서 몸을 돌려 화살을 날렸다. 선찬은 시위소리를 듣고 날아오는 화살을 칼로 막았다. ‘쨍’ 소리가 나면서 화살은 칼에 맞아 땅에 떨어졌다.
첫 번째 화살이 명중하지 못하자, 화영은 다시 두 번째 화살을 메겨 선찬이 가까이 왔을 때 가슴을 향해 쏘았다. 선찬은 등자까지 몸을 내려 화살을 피했다. 선찬은 화영의 활솜씨가 대단한 것을 보고, 감히 더 이상 추격하지 못하고 말을 돌려 본진으로 돌아갔다. 화영은 선찬이 추격해 오지 않는 것을 보고 재빨리 말머리를 돌려 선찬을 추격해 갔다. 그리고 세 번째 화살을 메겨 선찬의 등을 향해 쏘았다. 화살은 ‘땡’ 하는 소리를 울리면서 등의 호심경에 명중했다. 선찬은 황망히 말을 몰아 진으로 들어가, 관승에게 보고했다.
관승은 보고를 받고, 군졸에게 명했다.
“빨리 내 전마를 끌고 오너라!”
그 말은 머리에서 꼬리까지 길이가 1장이고 발굽에서 등까지 높이가 8척인데, 온몸이 잡털 하나 섞이지 않은 숯불처럼 붉은 말이었다. 관승은 갑옷을 입고 청룡도를 들고 말에 올라 진 앞으로 나갔다.
송강은 관승의 의표가 비범함을 보고 오용과 함께 마음속으로 갈채를 보냈다. 송강은 여러 두령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관장군은 과연 영웅이로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임충이 분노하여 소리쳤다.
“우리 형제가 양산박에 올라온 이후로 크고 작은 전투를 5~60회나 치렀지만, 아직 한 번도 예기가 꺾인 적이 없었소! 그런데 오늘은 왜 우리의 위풍을 꺾으려 하시오!”
말을 마치자, 쟁을 들고 곧장 관승을 향해 달려 나갔다. 관승이 소리쳤다.
“물가의 도적들아! 네놈들은 어찌 감히 조정을 배반하였느냐! 송강은 나와 결전을 하자!”
송강은 임충을 불러 세우고, 친히 진 앞으로 나가 몸을 굽혀 관승에게 인사하고 말했다.
“운성현의 소리(小吏) 송강이 인사 올립니다. 장군께서 죄를 물어 보십시오.”
관승이 말했다.
“너는 관리로서 어찌하여 감히 조정을 배반했느냐?”
송강이 대답했다.
“조정이 밝지 못하여 간신이 권세를 잡는 것을 방임하고, 아첨배들이 권력을 농락하여 탐관오리들을 관직에 임명함으로써, 천하의 백성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송강 등은 하늘을 대신하여 도를 행할 뿐 다른 마음은 없습니다.”
관승이 소리쳤다.
“천병이 당도했는데도 오히려 항거하면서, 교묘한 말로 감히 나를 속이려 하느냐! 말에서 내려 항복하지 않으면 네놈들은 가루가 될 줄 알아라!”
벽력화 진명이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낭아곤을 휘두르며 달려 나갔다. 관승도 말을 몰고 나와 진명과 맞붙었다. 임충은 공을 빼앗길까 염려하여 맹렬히 달려 나가 관승에게 덤벼들었다. 세 말이 먼지가 일어나는 가운데서 등불이 돌듯이 뒤엉켰다. 송강은 그걸 보고 관승이 다칠까 염려하여, 징을 울려 군사를 거두었다. 임충과 진명이 진으로 돌아와 말했다.
“막 저놈을 사로잡으려 했는데, 형님께서는 왜 군사를 거두었습니까?”
송강이 말했다.
“아우들! 우리가 충의를 지킨다고 하면서, 둘이서 하나를 공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네. 설혹 그를 사로잡았다 하더라도 그가 굴복하지 않으면 도리어 사람들의 비웃음을 사게 될 것이네. 내가 보기에 관승은 영용한 장수로서, 가문 대대로 충신이며 그의 조상인 관운장은 신으로 추앙받고 있네. 만약 이 사람을 산에 올라오게 할 수 있다면, 송강은 그에게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네.”
임충과 진명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날 양군은 각자 병력을 거두었다.
한편, 관승은 영채로 돌아와 갑옷을 벗어 놓고 가만히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힘껏 싸웠어도 두 장수를 당해낼 수 없어 곧 지게 생겼는데, 송강이 도리어 군마를 거두어들인 것은 대체 무슨 의도였을까?”
군졸을 시켜 함거에 갇혀 있는 장횡과 완소칠을 불러오게 하여 물었다.
“송강은 운성현의 일개 서리에 불과한데, 너희들은 어찌하여 그에게 복종하느냐?”
완소칠이 응답했다.
“우리 형님은 산동과 하북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급시우 호보의 송공명이시다. 너처럼 예의도 모르는 놈이 어찌 알겠느냐!”
관승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두 사람을 다시 함거에 가두라고 명하였다. 그날 밤 답답하여 앉아 있어도 누워 있어도 마음이 불안하여 바깥으로 나와 보니, 하늘엔 달빛이 가득하고 온 땅에 서리꽃이 가득했다. 탄식하고 있는데, 군졸이 와서 보고했다.
“수염난 장군이 필마로 와서 원수를 뵙고자 합니다.”
관승이 말했다.
“누구인지 물어 봤느냐?”
“그는 갑옷도 입지 않았고 무기도 없습니다. 이름을 물어 봐도 대답하지 않고 다만 원수를 뵙겠다는 말만 합니다.”
“그렇다면, 불러 오너라.”
잠시 후 그가 막사로 와서 관승에게 절을 했다. 관승이 그를 보니, 얼굴이 낯익은 듯한데 등불 아래에서는 잘 알아볼 수가 없었다. 관승이 물었다.
“누구시오?”
그가 말했다.
“좌우를 물리쳐 주십시오.”
“상관없소.”
“소장은 호연작이라 합니다. 지난번에 조정에서 준 연환마군을 거느리고 양산박을 정벌하러 갔다가, 뜻밖에 적의 간계에 빠져 패전하고 고향으로 돌아가지도 못하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장군께서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기쁨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전투 중에 임충과 진명이 장군을 막 사로잡으려 했을 때 송강이 급히 군사를 거둔 것은, 장군께서 다치실까 염려했기 때문입니다. 송강은 평소에 귀순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무리들이 따르지 않으므로 혼자서 어쩌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몰래 저와 상의하여 몇 사람과 함께 귀순하고자 합니다. 장군께서 허락하신다면, 내일 밤중에 가벼운 활과 짧은 화살로 무장하고 빠른 말을 타고서 소로를 따라 적의 영채로 돌입하십시오. 임충 등의 도적들을 생포하여 경성으로 압송해 가면 큰 공을 세울 수 있을 것입니다.”
관승은 크게 기뻐하며 술을 내어 대접하였다. 호연작이 말하기를, 송강은 오로지 충의만을 생각하는 사람인데 불행하게도 도적이 되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 충정을 토로하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다음 날, 송강이 군사를 일으켜 싸움을 걸어 왔다. 관승은 호연작과 상의하였다.
“오늘 먼저 승전을 해야, 밤에 계책을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호연작이 갑옷을 빌려 입고 말에 올라 진 앞으로 나서자, 송강이 큰 소리로 호연작을 꾸짖었다.
“산채에서 너를 조금도 홀대하지 않았는데, 너는 어찌하여 심야에 몰래 도망갔느냐?”
호연작이 말했다.
“네놈들은 도적인데, 무슨 큰일을 이루겠다는 거냐!”
송강이 진삼산 황신에게 출전하라고 명을 내리자, 황신은 상문검을 들고 말을 몰아 곧장 호연작에게 달려들었다. 두 말이 부딪치면서 싸우다가 10합이 채 되지 않아 호연작이 강편을 들어 황신을 내리쳐 말에서 떨어뜨렸다. 송강의 진에서 군사들이 달려와 황신을 구하여 돌아갔다. 관승은 크게 기뻐하면서 삼군에게 일제히 돌격하라고 명하였다. 호연작이 말했다.
“추격하면 안 됩니다. 오용이란 놈은 기략이 많아, 추격하다가 계략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관승은 그 말을 듣고 급히 군사를 거두어 본채로 돌아왔다. 중군 막사로 돌아와 술을 대접하면서 진삼산 황신에 대해 묻자, 호연작이 말했다.
“그 사람도 원래는 조정의 관원이었습니다. 청주의 도감이었는데, 진명·화영과 함께 도적이 되었습니다. 오늘 먼저 그놈을 죽여 위풍을 꺾어 놓았으니, 오늘 밤 기습은 필시 성공할 겁니다.”
관승은 크게 기뻐하며 군령을 내려, 선찬과 학사문은 양로로 접응하게 하고 자신은 가벼운 활과 짧은 화살로 무장한 5백 마군을 거느리고 호연작을 앞세워 기습하기로 하였다. 밤 10시경에 출발하여 자정 전후에 송강의 영채에 당도하면, 화포 소리를 신호로 하여 안팎으로 호웅하면서 일제히 돌격하기로 하였다.
그날 밤은 달빛이 대낮처럼 밝았다. 황혼 무렵에 말방울을 떼고 군사들은 가벼운 갑옷을 입고 막대기를 입에 물었다. 호연작이 앞장서서 길을 인도하고 군사들은 모두 그 뒤를 따라갔다. 산길을 돌아 약 1시간쯤 나아갔을 때, 앞의 길목에 매복하고 있던 4~50명의 군졸들이 나와서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거기 오시는 분은 호장군 아니십니까? 송공명이 저희들을 보내 영접하게 하였습니다.”
호연작이 말했다.
“떠들지 말고, 내 뒤를 따라 오너라!”
호연작이 앞서 가고 관승은 그 뒤를 따라갔다. 다시 산모퉁이를 하나 돌아가자, 호연작이 창끝으로 한곳을 가리키는데 멀리 붉은 등불이 하나 보였다. 관승이 말을 세우고 물었다.
“홍등이 있는 곳이 어디요?”
호연작이 말했다.
“저곳이 바로 송공명의 중군입니다.”
급히 인마를 재촉하여 홍등이 있는 곳으로 접근해 갔다. 화포 소리가 울리자 군사들이 관승을 따라 앞으로 쳐들어갔다. 홍등이 있는 곳에 당도해 보니,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호연작을 불러 보았지만, 그 역시 보이지 않았다. 관승은 깜짝 놀라며 계책에 빠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황망히 말을 돌리는데, 사방의 산 위에서 일제히 북과 징이 울렸다. 관승의 군사들은 당황하여 길을 찾지 못하고 각자 달아나기 바빴다. 관승도 황망히 말을 돌려 달아났는데, 겨우 몇 기의 마군만 따라올 뿐이었다. 산기슭을 막 돌아가는데, 숲속에서 또 화포 소리가 들리더니 사방에서 갈고리가 일제히 나와 관승을 말에서 끌어내렸다. 청룡도와 말을 빼앗고 갑옷을 벗기고, 앞뒤로 에워싸고서 본채로 끌고 갔다.
한편, 임충과 진명은 군마를 이끌고 가서 학사문을 가로막았다. 임충이 소리쳤다.
“너의 주장 관승은 계략에 빠져 사로잡혔다! 너는 무명 소장인데, 어찌하여 말에서 내려 포박을 받지 않느냐?”
학사문은 크게 노하여 곧장 임충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이 한참 동안 싸우자, 화영이 쟁을 들고 임충을 도왔다. 학사문은 더 이상 당할 수 없어 말을 돌려 달아났다. 그때 뒤편에서 여장군 일장청 호사람이 붉은 올가미를 던져 학사문을 말에서 끌어내렸다. 보군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붙잡아 본채로 끌고 갔다.
한편, 진명과 손립은 군마를 이끌고 선찬을 잡으러 가다가 길에서 맞닥뜨렸다. 선찬이 큰소리로 꾸짖었다.
“필부 도적놈들아! 나에게 맞서는 자는 죽을 것이고, 나를 피하는 자는 살 것이다!”
진명이 크게 노하여 낭아곤을 휘두르며 곧장 선찬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이 몇 합을 싸웠을 때, 손립이 옆에서 끼어들었다. 선찬은 당황하여 칼 쓰는 법이 흐트러져 진명의 낭아곤에 맞고 말에서 떨어졌다. 양산박 군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어 선찬을 사로잡았다.
한편, 박천조 이응은 군병을 이끌고 관승의 본채로 쳐들어가 먼저 장횡과 완소칠 및 사로잡혔던 수군들을 구하고, 군량과 말들을 탈취하였다. 그리고 사방으로 달아나는 패잔병들을 투항시켰다.
송강은 군사들을 모아 산으로 올라갔다. 그제야 동방이 차츰 밝아오기 시작했다. 충의당에 좌정하자, 관승·선찬·학사문이 차례로 끌려왔다. 송강은 황망히 내려가 군졸을 소리쳐 물리치고 친히 밧줄을 풀어 주었다. 관승을 부축하여 충의당 가운데 의자에 앉히고, 절을 올리며 사죄하였다.
“망명한 미친 무리들이 감히 장군의 위엄을 모독하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관승은 황망히 답례하고서 어찌할 바를 몰라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호연작도 앞으로 나와서 사죄하며 말했다.
“군령을 받았기 때문에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장군을 속인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관승이 여러 두령들을 살펴보니, 모두 의기가 있었다. 선찬과 학사문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사로잡혔으니, 이 일을 어찌해야 하겠는가?”
두 사람이 대답했다.
“장군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관승이 말했다.
“경성으로 돌아갈 면목이 없으니, 우리 세 사람을 빨리 죽여주시오!”
송강이 말했다.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장군께서 미천한 저희들을 버리시지 않는다면, 함께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내키지 않으신다면, 감히 억지로 붙들 수 없으니 지금 바로 경성으로 돌아가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관승이 말했다.
“사람들이 ‘충의 송공명’이라 칭하더니, 그 말이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저희들은 집이 있어도 갈 수 없고 나라가 있어도 의지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휘하의 한 소졸이 되기를 원합니다.”
송강은 크게 기뻐하면서 연회를 열어 축하하였다. 도망친 패잔병들을 불러들여 또 6~7천 명의 인마를 얻었는데, 군사들 가운데 늙은 자와 어린 자들은 은자를 주어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설영에게 서신을 주어 포동으로 가서 관승의 가족을 데려오게 하였다.
송강은 연석에서 말없이 있다가, 노준의와 석수가 북경에 갇혀 있는 것을 생각하고 눈물을 흘렸다. 오용이 말했다.
“형님!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알아서 조치하겠습니다. 내일 군병을 다시 일으켜 북경을 치면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관승이 일어나 말했다.
“소장이 목숨을 살려주신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니, 선봉이 되게 해 주십시오.”
송강은 크게 기뻐하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명을 내려, 관승으로 하여금 선찬과 학사문을 부장으로 삼아 이전의 군마를 거느리고 선봉이 되게 하였다. 이전에 북경을 공격했던 두령들도 한 사람 빠짐없이 모두 동원하고, 이준과 장순도 수전에 대비한 갑옷을 입고 따라오도록 했다. 이리하여 다시 북경을 향해 진군했다.
한편, 양중서는 성안에서 삭초가 병이 나은 것을 축하하며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정찰병이 와서 보고했다.
“관승·선찬·학사문과 많은 군마가 모두 송강에게 사로잡혔는데, 이미 한패가 되었다고 합니다. 양산박의 군마가 지금 또 쳐들어왔습니다.”
양중서는 보고를 듣고 너무나 놀라 눈만 크게 뜨고 멍하니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삭초가 아뢰었다.
“지난번에 도적놈의 화살을 맞았는데, 이번에 복수를 해야겠습니다.”
양중서는 삭초에게 상을 내리고 본부 인마를 거느리고 성을 나가 적을 맞이하게 하고, 이성과 문달은 뒤를 따라 접응하게 하였다. 때는 한겨울이라 날씨가 차갑고 연일 구름이 잔뜩 끼고 삭풍이 불어댔다. 송강의 군병이 당도하자, 삭초는 비호욕으로 가서 하채하였다.
다음 날, 송강은 여방과 곽성을 데리고 높은 언덕에 올라가 관승이 쳐들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다. 북이 세 번 울리자 관승이 출전하였고, 맞은편에선 삭초가 출전하였다. 당시 삭초는 관승을 보고도 누군지 알지 못했는데, 따라온 군졸이 말했다.
“저 사람이 바로 이번에 배반한 대도 관승입니다.”
삭초는 그 말을 듣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서 곧장 관승에게 달려들었다. 관승도 청룡도를 휘두르며 달려 나왔다. 두 사람이 10합을 채 싸우지 않았는데, 중군에 있던 이성이 삭초의 도끼가 관승을 이기지 못하는 것을 보고 쌍도를 휘두르며 달려 나와 관승을 협공하였다. 저쪽에서는 선찬과 학사문이 그걸 보고 각각 무기를 들고서 싸움을 도우러 나왔다. 다섯 장수가 한 덩어리가 되어 싸움을 벌였다.
송강이 언덕 위에서 보고 있다가 채찍 끝으로 가리키자, 양산박의 대군이 땅을 말듯이 대거 공격했다. 이성의 군마는 대패하여 7~8할이 죽고 성안으로 퇴각하여 성문을 굳게 닫고 나오지 않았다. 송강은 성 바로 밑에까지 쳐들어와서 군마를 주둔하였다.
다음 날, 삭초가 군마를 이끌고 성을 나가 돌격하자, 오용이 보고 장수들에게 적당히 싸우는 척하다가 적이 추격해 오면 퇴각하라고 명하였다. 삭초는 일전을 이기고 좋아하면서 성으로 돌아갔다.
그날 저녁 붉은 구름이 사방에서 몰려들더니 눈이 펄펄 내리기 시작했다. 오용이 이미 한 계책을 생각하고, 몰래 보군을 보내 북경성 밖의 산비탈 밑에 있는 계곡 좁은 곳에 함정을 파고 흙으로 덮어 놓게 하였다. 그날 밤은 눈이 많이 내리고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약 두 자 정도 눈이 쌓였다.
성 위에서 바라보니, 송강의 군마는 두려운 기색이 있고 동서로 뻗은 목책이 불안정해 보였다. 삭초는 그걸 보고, 3백 군마를 점검하여 성 밖으로 돌격해 나갔다. 송강의 군마는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수군 두령 이준과 장순만 가벼운 갑옷을 입고 쟁을 들고 말을 달려와 대적하였다. 하지만 두 사람도 삭초와 교전하게 되자 쟁을 버리고 달아나면서, 삭초를 함정으로 유인하였다. 삭초는 성미가 급한 사람이라, 자세히 살피지 않고 곧장 추격해 갔다. 한쪽은 길이고 다른 한쪽은 계곡인데, 이준이 말을 버리고 계곡 안으로 뛰어 들며 앞을 향해 소리쳤다.
“송공명 형님! 빨리 달아나시오!”
삭초는 그 외침을 듣고,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서 나는 듯이 적진을 통과해 계곡으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 산 뒤에서 화포 소리가 울리면서 삭초와 말은 함정으로 떨어졌다. 뒤에 매복해 있던 복병이 일제히 달려들어 삭초를 사로잡았다.
오용이 한 바탕 큰 눈이 내린 것을 이용하여 삭초를 사로잡자, 나머지 군마들은 모두 달아나 성안으로 들어가 삭초가 사로잡혔음을 보고하였다. 양중서는 보고를 받고 당황하여, 장수들에게 굳게 지키기만 하고 출전하지 말라고 명을 내렸다. 노준의와 석수를 죽이고 싶었지만, 오히려 송강을 더 격노하게 만들까 봐 두려웠다. 게다가 조정에서 구원병도 보내주지 않고 있는데, 화가 더 빨리 닥칠지도 몰랐다. 그래서 두 사람을 잘 지키라고 명하고, 다시 경성에 보고하여 채태사의 처분을 기다렸다.
한편, 송강이 영채에 당도하여 중군 막사에 좌정하자, 복병들이 삭초를 끌고 왔다. 송강은 삭초를 보고 크게 기뻐하면서 병사들을 물리치고 친히 밧줄을 풀어주고, 막사 안으로 청하여 술을 대접하며 좋은 말로 위로하였다.
“장군께서 보시다시피 우리 형제들도 대다수가 조정의 군관이었습니다. 조정이 밝지 못하여 탐관오리들이 세도를 부리는 걸 방임하여 양민들을 해치고 있습니다. 장군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면 함께 하늘을 대신하여 도를 행하길 청합니다.”
양지도 앞으로 나와 인사를 하고 권하였다. 삭초 역시 본래 천강성의 일원이라 자연스럽게 뜻이 맞아 송강에게 투항하였다. 그날 밤 막사 안에서 술을 마시며 축하하였다.
다음 날, 성을 공격하기로 상의하고, 며칠 동안 공격했지만 성을 깨뜨리지 못하였다. 송강은 근심하였다. 그날 밤 막사 안에서 베개를 베고 누워 있었는데, 홀연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면서 차가운 기운이 엄습했다. 송강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조개가 나타났는데 막사 안으로 들어오려다가 들어오지 못하고 소리쳤다.
“아우! 자네는 돌아가지 않고 어느 때를 기다리고 있는가?”
송강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 물었다.
“형님은 어디서 오십니까? 형님께서 억울하게 돌아가셨는데, 아직 원수도 갚지 못하고 있어 밤낮으로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지난번에는 제사도 지내지 못했는데, 이렇게 현성하신 것은 필시 질책하실 일이 있는 것 아닙니까?”
조개가 말했다.
“그 일 때문이 아니네. 아우의 등 뒤에서 양기가 나와 나를 핍박하고 있어, 내가 감히 가까이 갈 수는 없네. 내가 지금 자네에게 특별히 알려줄 것이 있어 왔네. 아우에게 피 흘리는 재앙이 있을 것인데, 강남의 지령성(地靈星)이 아니고서는 치료할 수 없네. 자네는 빨리 병력을 철수하는 것이 상책일세.”
송강은 다시 자세히 묻기 위해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형님의 혼이 여기까지 오셨으니, 진실을 말씀해 주십시오.”
조개가 확 떠밀어 문득 깨어보니,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다. 송강이 오용을 불러 꿈을 얘기하자, 오용이 말했다.
“조천왕께서 현성하셨으니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금 날씨도 춥고 땅도 얼어 군마가 오래 머물기가 어렵습니다. 일단 산채로 돌아갔다가, 겨울이 끝나고 봄이 와서 눈과 얼음이 녹으면 그때 다시 성을 공격하러 와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송강이 말했다.
“군사의 말씀이 옳습니다. 하지만 노원외와 석수 형제가 감옥에 갇혀 하루를 1년 같이 보내면서 우리가 구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대로 그냥 돌아가면, 저놈들이 두 사람의 목숨을 해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참으로 진퇴양난(進退兩難)입니다.”
그날은 결론을 내리지 못하였다.
다음 날, 송강이 일어나 보니 정신이 피로하고 몸도 욱신거리면서 머리는 마치 도끼로 쪼개듯 아프고 온몸에 열이 나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두령들이 모두 와서 바라보고 있으니, 송강이 말했다.
“등에서 열이 나고 몹시 아프네.”
사람들이 살펴보니, 등에 번철 같은 붉은 종기가 나 있었다. 오용이 말했다.
“이것은 단순한 종기가 아니라 악성 종기입니다. 내가 의서를 보니 녹두 가루가 심장을 보호하고 독기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한답니다. 빨리 녹두가루를 구해서 드시도록 해야 합니다.”
한편으로 사람을 구해 약을 구해 치료하였으나 호전되지 않았다. 낭리백조 장순이 말했다.
“제가 예전에 심양강에 있었을 때, 모친이 등에 종기가 생겨서 어떤 약으로도 치료하지 못했는데, 건강부의 안도전(安道全)이란 의원이 와서 치료했습니다. 그 후로 은자가 좀 생기면 그에게 보내고는 했습니다. 지금 형님의 증세가 그와 같습니다. 동쪽으로 아주 먼 길이어서 급히 가더라도 제때 도착하지 못할까 염려됩니다만, 형님을 위한 일이니 밤을 새워서라도 달려가 그를 데려오겠습니다.”
오용이 말했다.
“형님의 꿈에 조천왕이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재앙이 있는데 강남의 지령성이 아니면 치료할 수 없다.’고 하셨다는데, 바로 그 사람이 아닐까요?”
송강이 장순에게 말했다.
“아우! 그런 사람이 있다면, 고생스럽겠지만 빨리 가서 그 사람을 데려와 내 목숨을 구해 주게.”
오용은 의원에게 줄 황금 1백냥과 노자로 쓸 은자 2~30냥을 주면서 장순에게 분부했다.
“지금 당장 출발하되,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와 함께 돌아와야 하며, 절대 그르치지 말아야하네. 우리는 지금 영채를 거두어 산채로 돌아갈 것이니, 자네는 그와 함께 산채로 오게. 빨리 갔다 오게.”
장순은 두령들을 작별하고, 보따리를 메고 떠났다.
오용은 장수들에게 군대를 철수하여 산채로 돌아간다는 명을 내렸다. 송강을 수레에 싣고 밤을 새워 철수하였다. 북경성에서는 한번 복병에 당했었기 때문에, 또 유인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여 감히 추격하지 못했다.
다음 날, 양중서가 보고를 받고 말했다.
“저들이 떠난 것이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네.”
이성과 문달이 말했다.
“오용이란 놈은 궤계가 많아, 굳게 지키기만 하고 추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한편, 장순은 송강을 구하기 위해 밤새워 길을 재촉했다. 때는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어서 비가 오지 않으면 눈이 내려 길을 걷기가 아주 고생스러웠다. 게다가 급히 서두르느라 비옷도 챙겨오지 않았었다. 10여 일을 걸어 양자강변에 당도하였다.
그날은 북풍이 몰아치고 눈구름이 낮게 깔리며 큰 눈이 내렸다. 장순은 눈바람을 무릅쓰고 강을 건너기 위해 사력을 다해 걸어갔다. 하지만 강변에는 배가 한 척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고’ 비명을 지르며 강변을 돌아다니다 보니, 갈대가 쓰러져 있는 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장순이 소리쳤다.
“뱃사공! 빨리 나룻배를 가져와서 나를 태워주시오!”
갈대숲 속에서 ‘쏴쏴’ 하는 갈대 스치는 소리가 나더니 한 사람이 나왔는데, 머리에는 대껍질로 엮은 삿갓을 쓰고 몸에는 도롱이를 입고 있었다. 사공이 물었다.
“손님은 어디로 가려 하십니까?”
장순이 말했다.
“강을 건너려고 합니다. 긴급한 일이 있어 건강부로 가는 길인데, 뱃삯은 많이 드릴 테니 날 좀 건네주십시오.”
“손님을 태워 드리는 건 상관없지만, 오늘은 너무 늦어서 강을 건너가도 쉴 곳이 없습니다. 오늘밤은 제 배에서 쉬시고 내일 새벽에 바람이 그치고 달이 밝을 때 건네 드리겠습니다. 뱃삯이나 많이 주십시오.”
“그렇게 합시다.”
장순이 사공과 함께 갈대숲으로 들어가 보니, 물가에 작은 배 한 척이 묶여 있었다. 배 지붕 밑에는 비쩍 마른 청년 하나가 불을 쬐고 있었다. 사공은 장순을 부축해 배에 태우고, 선창에 들어가 입고 있는 젖은 옷을 벗게 하여 청년에게 불에 말리게 하였다. 장순은 옷 보따리를 풀어 솜이불을 꺼내 몸에 말고 선창에 누워 사공에게 말했다.
“여기 술을 파는 곳이 있습니까? 한 잔 마셨으면 좋겠는데.”
사공이 말했다.
“술을 파는 곳은 없고, 밥은 한 그릇 드릴 수 있습니다.”
장순은 밥을 한 그릇 얻어먹고 드러누워 잤다. 연일 걷느라 피곤한데다 긴장이 풀려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화로 앞에서 옷을 말리고 있던 청년이, 장순이 잠든 것을 보고 사공에게 말했다.
“형님! 그거 보입니까?”
사공이 몸을 돌려 장순의 머리맡에 놓인 보따리를 한번 만져 보더니, 재물이 든 것을 확인하고 손을 흔들며 말했다.
“넌 배를 띄워라. 강심에 가서 손을 써도 늦지 않다.”
청년이 지붕을 밀어 열고 언덕에 뛰어 올라가 밧줄을 풀고 다시 배에 올라와 배를 삿대로 밀었다. 그리고는 ‘삐걱삐걱’ 노를 저어 강심으로 나아갔다. 사공은 선창에서 닻줄을 꺼내 가만히 장순을 꽁꽁 묶고서 배 밑바닥에서 칼을 꺼냈다. 장순은 잠이 깼지만 두 손이 묶여 있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사공이 칼을 들고 장순의 몸에 걸터앉았다. 장순이 말했다.
“호걸! 돈은 다 줄 테니, 목숨만 살려 주시오!”
사공이 말했다.
“돈도 주고 목숨도 다오!”
장순이 소리쳤다.
“날 죽이더라도 몸만 온전하게 해 주면, 원귀가 되어 당신을 괴롭히지는 않겠소.”
사공은 칼을 내려놓고 장순을 물속에 ‘풍덩’ 밀어 넣었다. 사공은 장순의 보따리를 열어 금은이 많은 것을 보고는, 청년과 나눠가질 마음이 없어졌다. 사공이 청년을 불렀다.
“다섯째야! 할 말이 있다.”
청년이 선창으로 들어오자, 사공은 한손으로 멱살을 잡고 칼을 들어 목을 베어 버렸다. 그리고는 물속으로 집어넣고 배 안의 핏자국을 지우고 배를 저어 가 버렸다.
한편, 장순은 원래 물속에서 사나흘도 숨어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 한순간 물속으로 빠뜨려지기는 했으나 강 밑바닥에서 밧줄을 이빨로 물어뜯고 헤엄을 쳐서 남쪽 언덕으로 갔다. 물가에 올라와 보니, 숲속에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장순이 몸에서 물을 뚝뚝 흘리면서 숲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시골 주점이 있었다. 주인이 밤중에 일어나 술을 짜느라, 깨진 벽 틈으로 불빛이 새어나온 것이었다. 장순이 문을 열라고 소리치자, 한 노인이 나왔다. 장순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노인이 말했다.
“당신은 혹시 강에서 재물을 빼앗기고 도망쳐 온 사람 아니오?”
장순이 말했다.
“어르신께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건강부에 일이 있어 가던 길이었는데, 날이 저물어 강가에서 배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악당 두 놈을 만나 의복과 금은을 모두 빼앗기고 물속에 던져졌습니다. 다행히 저는 물에 익숙하기 때문에 도망쳐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어르신께서는 저 좀 살려주십시오.”
노인은 장순의 말을 듣고 뒷방으로 데리고 가 옷을 내주면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말리게 해주었다. 따뜻한 술도 한 잔 주면서 노인이 말했다.
“이보게! 자네 이름은 뭔가? 산동 사람이 여기는 무슨 일로 왔는가?”
장순이 말했다.
“저는 장가입니다. 건강부의 안태의(安太醫)가 저의 형제인데, 그를 찾아보려고 왔습니다.”
“자네가 산동에서 왔다면 양산박을 지나왔는가?”
“예, 지나왔습니다.”
“그 산 위의 송두령은 왕래하는 길손을 약탈하지 않고 사람의 목숨을 해치지 않으며,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한다고 하던데…”
“송두령은 오로지 충의를 근본으로 하여 양민을 해치지 않습니다. 다만 탐관오리를 미워할 뿐입니다.”
“이 늙은이가 듣기에, 송강이란 도적은 인의를 실천하여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노인을 돕는다고 하던데, 그가 이곳의 도적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만약 그가 이곳으로 온다면 백성들도 즐겁게 살면서 저 탐관오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지도 않을 건데!”
장순이 그 말을 듣고서 말했다.
“어르신!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낭리백조 장순입니다. 우리 형님 송공명이 등에 종기가 생겨 저에게 황금 1백 냥을 주면서 안도전을 데려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방심하고서 배 안에서 잠이 들었다가, 그 두 도적놈에게 두 손이 묶여 강물 속으로 내던져졌습니다. 이빨로 밧줄을 물어뜯고서 여기까지 헤엄쳐 왔습니다.”
“자네가 그런 호걸이라면, 우리 아들을 불러내 자네를 만나게 해야겠네.”
잠시 후 뒤편에서 한 청년이 나와 장순을 보고 절하며 말했다.
“형님의 큰 이름을 오래 전부터 들었지만, 인연이 없어 만나 뵙지 못했습니다. 저는 성이 ‘왕’이고 항렬은 여섯째입니다. 달리기를 잘해서 사람들이 활섬파(活閃婆) 왕정륙(王定六)이라 부릅니다. 평소에 수영과 봉술을 좋아하여 여러 사부를 모셨으나 제대로 전수받지 못하고, 잠시 강변에서 술을 팔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좀 전에 형님을 약탈한 두 놈은 제가 아는 자들입니다. 한 놈은 ‘강에서 도적질 하는 귀신’ ‘절강귀(截江鬼)’ 장왕이고, 비쩍 마른 놈은 화정현 사람으로 ‘기름 속의 미꾸라지’ ‘유리추(油裏鰍)’ 손오입니다. 그 두 놈은 항상 강에서 사람들을 약탈하고 있습니다. 형님은 마음 놓으십시오. 여기 며칠 머물다 보면, 그놈들이 술 마시러 올 겁니다. 그러면 제가 형님을 대신해 복수하겠습니다.“
장순이 말했다.
“아우의 호의는 고맙지만, 나는 송공명 형님을 위해 하루라도 빨리 산채로 돌아가야 하네. 날이 밝으면 성으로 들어가서 안태의를 모시고 가야 하니, 다음에 만나세.”
왕정륙은 자기 옷을 꺼내 장순이 갈아입게 하고, 술을 가져와 대접했다.
다음 날은 날이 개이고 눈이 그쳤다. 왕정륙은 장순에게 은자 열 냥을 주면서 건강부에 다녀오라고 했다. 장순이 성안으로 들어가 괴교(槐橋) 아래 당도하니, 안도전이 문 앞에서 약을 팔고 있었다. 안도전은 조상 때부터 내과와 외과 진료에 모두 능통해서 멀리까지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장순이 들어가 고개 숙여 인사하자, 안도전이 물었다.
“아우는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여기까지 왔는가?”
장순으로 안으로 들어가서, 강주에서 한바탕 소동을 벌이고 송강을 따라 산으로 올라간 일을 일일이 얘기했다. 그리고 송강이 등에 종기가 나서 특별히 신의(神醫)를 청하러 왔다가 양자강에서 자칫 목숨을 잃을 뻔하고 그래서 빈손으로 오게 되었다는 것을 모두 털어놓았다. 안도전이 말했다.
“송공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천하의 의사이니, 마땅히 가서 치료해 주는 것이 좋겠지. 하지만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집안에 다른 가까운 사람이 없어 멀리 가기가 어렵네.”
장순은 간곡히 애원했다.
“만약 형님이 거절하고 가지 않으시면, 저도 산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다시 상의해 보세.”
장순이 온갖 말로 애원하자, 안도전은 비로소 승낙했다.
원래 안도전은 건강부의 이교노라는 기생을 자주 찾아가던 중이었다. 이교노는 미모가 뛰어나 안도전이 애정을 갖고 돌봐주고 있었다. 그날 저녁 안도전은 장순을 데리고 이교노의 집으로 가서 술을 마셨다. 이교노는 장순에게 시동생의 예로 절을 했다. 술잔이 서너 차례 돌고 술이 어느 정도 오르자, 안도전이 이교노에게 말했다.
“내가 오늘 밤에는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는 아우와 함께 산동에 다녀와야겠다. 길면 한 달이고, 짧으면 20여 일 걸릴 것이다. 돌아오면 널 보러 오마.”
이교노가 말했다.
“난 당신을 보낼 수 없어요. 만약 내 말대로 안할 거면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마세요!”
“내가 약주머니까지 이미 모두 수습해 놓았으니, 가지 않을 수 없다. 내일 떠날 것이니 마음 편히 먹고 있어라. 내가 가더라도 지체하지 않고 곧 돌아오마.”
이교노가 온갖 애교를 다 떨다가 안도전의 품에 쓰러지며 말했다.
“당신이 내 말을 안 듣고 가면, 당신 육신이 조각조각 나 버리라고 저주할 거야!”
장순은 그 말을 듣고, 이 계집을 한 입에 삼켜 버리지 못하는 것이 한이었다. 밤이 점점 깊어지자 안도전은 잔뜩 취하여 쓰러졌다. 이교노는 안도전을 부축해 방안으로 데리고 가서 침상에 눕혀 주었다. 이교노가 장순에게 말했다.
“당신은 돌아가요. 우리 집에는 잘 데가 없어요.”
장순이 말했다.
“형님이 깨기를 기다렸다가 같이 갈 거요.”
이교노는 아무리 내보려 해도 장순이 꿈쩍도 안 하자, 할 수 없이 문간방에서 쉬게 하였다. 장순은 근심으로 애가 타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한밤중에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장순이 벽 틈새로 엿보았더니, 어떤 사람이 살짝 들어와 기생어미와 얘기를 나누었다. 기생어미가 물었다.
“한동안 안 보이더니, 그동안 어디 있었소? 오늘 밤에는 태의가 취해서 방안에서 자고 있으니, 어떡하면 좋을까?”
“누이가 비녀와 귀걸이 사라고 황금 열 냥을 가져왔으니, 할멈이 어떻게 해서든 누이랑 만나게 해주시오.”
“일단 내 방에 가 있어요. 내가 애를 불러오겠소.”
장순이 등불 그림자 아래를 살펴보니, 바로 절강귀 장왕이었다. 그놈이 그날 강에서 재물을 얻어 여기서 쓰려고 온 것이었다. 장순은 그놈을 보자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억지로 참고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노파가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이교노를 불러 장왕을 대접하고 있었다. 장순은 당장 달려들고 싶었지만, 자칫 일을 그르쳐서 놈이 달아날까 염려되었다.
자정쯤 되자, 주방의 일꾼 둘도 술에 취했고, 노파도 이리저리 비틀거리다가 등불 앞에서 술에 취해 졸고 있었다. 장순이 가만히 방문을 열고 주방으로 들어가 보니, 부뚜막 위에 번쩍거리는 식칼이 놓여 있었다. 노파를 보니, 의자에 엎드려 졸고 있었다. 장순은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 식칼을 들어 먼저 노파부터 죽였다. 일꾼들도 죽이려고 했는데, 식칼이 물러서 한 사람을 벴는데도 칼날이 무뎌져 있었다. 두 일꾼이 소리를 지르려고 하자, 옆에 장작 패는 도끼가 있어 그걸로 둘을 찍어 죽였다.
방안에 있던 기생이 소리를 듣고 황망히 문을 열고 나오다가 장순과 딱 마주쳤다. 장순은 도끼를 들어 기생의 가슴을 쪼개 버렸다. 장왕은 등불 그림자 아래에서 기생이 쓰러지는 것을 보고 뒷창으로 나가 담을 뛰어넘어 달아났다. 장순은 장왕을 놓친 것을 아까워하다가, 옷자락을 찢어 피를 묻혀 흰 벽에 ‘살인자 안도전’이라고 여러 곳에다 썼다.
날이 밝아오자, 방안에서 안도전이 깨어나서 이교노를 불렀다. 장순이 말했다.
“형님! 소리 내지 마시오! 두 사람을 보여 드리리다.”
안도전이 일어나 보니, 시신이 네 개나 있었다. 깜짝 놀라 온몸이 마비되고 부들부들 떨렸다. 장순이 말했다.
“형님! 벽에 쓰여 있는 것 보셨습니까?”
안도전이 말했다.
“자네가 날 죽이는구먼!”
“이제 두 가지 길만 남았습니다. 만약 형님이 소리를 지르면 저는 달아날 겁니다. 하지만 형님이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만약 형님이 아무 일 없으려면, 집에 가서 약주머니를 들고 밤을 새워 양산박으로 달려가 송공명 형님을 구하면 됩니다. 둘 중 어느 길로 가시겠습니까?”
“아우! 어쩌면 이렇게 목숨을 재촉할 생각을 했는가!”
날이 밝았다. 장순은 노자를 거두어 넣고 안도전과 함께 집으로 갔다. 약주머니를 가지고 성을 나와 왕정륙의 주점에 당도하였다. 왕정륙이 맞이하며 말했다.
“어제 장왕이 여기 왔다가 갔는데, 형님을 만나지 못한 것이 애석합니다.”
장순이 말했다.
“나는 큰일을 봐야 하니, 어찌 사소한 복수를 하겠는가?”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왕정륙이 말했다.
“장왕이란 놈이 오고 있습니다.”
장순이 말했다.
“그놈을 놀라게 하지 말고, 어디로 가는지나 잘 보게.”
장왕이 물가에 가서 배를 살펴보고 있는 것을 보고, 왕정륙이 소리쳤다.
“장형! 가지 말고, 우리 친척 두 사람 좀 건네주게!”
장왕이 말했다.
“빨리 오시라고 하게!”
왕정륙이 장순에게 알리자, 장순이 안도전에게 말했다.
“형님! 저랑 옷을 바꿔 입고 배를 타러 가시지요.”
안도전이 말했다.
“왜 그러는가?”
“저한테 생각이 있으니까, 형님은 묻지 마십시오.”
안도전은 장순과 옷을 바꿔 입었다. 장순은 머리에 두건을 쓰고 먼지를 막는 삿갓을 깊숙이 눌러썼다. 왕정륙은 약주머니를 지고 배로 갔다. 장왕은 배를 물가에 대고 세 사람을 태웠다. 장순이 고물로 가서 밑의 널빤지를 들춰 보니 칼이 그대로 있었다. 장순은 칼을 들고 다시 선창으로 들어갔다. 장왕이 ‘영차’ 하면서 배를 저어 나가 강심에 이르자, 장순이 웃옷을 벗어 던지고 소리쳤다.
“사공! 빨리 와 보시오! 선창에 물이 샙니다!”
장왕은 계략인 줄도 모르고 머리를 흔들며 선창 안으로 들어왔다. 장순이 붙잡아 겨드랑이에 끼고 소리쳤다.
“이 강도야! 지난번 눈 오던 날 배 탔던 손님을 기억하냐?”
장왕이 장순을 보고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었다. 장순이 소리쳤다.
“네놈이 내 황금 백 냥을 빼앗고, 내 목숨까지 해치려 했지! 그 비쩍 마른 놈은 어디 있느냐?”
장왕이 말했다.
“호걸! 소인이 재물을 얻자 그놈과 나눌 마음이 없어, 죽여서 강물에 던졌습니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모르겠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나는 심양강변에서 태어나 소고산 아래에서 자라면서, 생선 판매 거간꾼으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강주를 한바탕 소란하게 하고 양산박으로 올라가 송공명을 따라 천하를 종횡하여,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네놈이 나를 속여 배에 태우고 두 손을 묶어 강물 속에 던졌겠다! 내가 물에 익숙하지 않았더라면 내 목숨은 끝장났을 것이다. 오늘 원수를 만났으니, 네놈을 살려둘 수 없다!”
장순은 장왕을 선창 안으로 끌고 가서 밧줄로 두 손과 두 발을 꽁꽁 묶어 양자강 속에 던져 버렸다.
“나도 네놈에게 칼을 대지는 않겠다!”
장왕은 황혼 무렵에 귀신이 되고 말았다. 왕정륙은 그걸 보고 탄식했다. 장순은 배 안에서 전날의 황금과 은자를 되찾아 보따리 안에 챙겨 넣었다. 세 사람은 배를 저어 강변에 당도했다. 장순이 왕정륙에게 말했다.
“아우의 은혜는 죽어도 잊지 않겠네. 자네가 날 버리지 않는다면, 주점을 수습하고 부친과 함께 양산박으로 와서 대의를 함께 행하세. 자네 마음은 어떠한가?”
왕정륙이 말했다.
“형님 말씀이 제 마음과 똑같습니다.”
왕정륙을 작별하고 장순과 안도전은 길을 떠났다. 왕정륙은 두 사람을 작별하고 다시 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 행장을 수습하여 뒤를 따라갔다.
장순은 약주머니를 지고 안도전과 함께 부지런히 걸었다. 안도전은 글을 읽은 사람이라, 30여 리를 걸어가자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장순은 시골 주점으로 들어가서 안도전에게 술을 대접했다. 술을 마시고 있는데, 바깥에서 어떤 손님이 들어오더니 소리쳤다.
“아우! 어째서 이렇게 늦었는가!”
장순이 보니, 신행태보 대종이었다. 장순이 황망히 안도전과 인사시키고, 송공명의 소식을 묻자 대종이 말했다.
“지금 송형님은 정신이 혼미하고,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죽기만 기다리고 있네!”
장순은 그 말을 듣고 눈물을 비 오듯 흘렸다. 안도전이 대종에게 물었다.
“피부의 혈색이 어떻습니까?”
대종이 대답했다.
“피부가 초췌하고 밤새도록 비명을 지르는데, 통증이 그치지 않습니다. 목숨을 보존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몸이 아직 통증을 느낀다면 치료할 수 있습니다. 다만 시간이 늦을까 걱정입니다.”
“그건 쉬운 일입니다.”
대종은 갑마 두 개를 꺼내 안도전의 다리에 묶었다. 대종은 약주머니를 지고 장순에게 분부했다.
“자네는 천천히 오게. 나는 태의를 모시고 먼저 가겠네.”
두 사람은 주점을 나와 신행법을 써서 먼저 떠나갔다.
장순이 주점에 이삼일 더 머물고 있으니, 과연 왕정륙이 보따리를 지고 부친과 함께 왔다. 장순이 맞이하고 기뻐하며 말했다.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네.”
왕정륙이 물었다.
“안태의는 어디 계십니까?”
“신행태보 대종이 맞이하러 와서, 모시고 먼저 갔네.”
왕정륙은 부친을 모시고 장순과 함께 양산박으로 갔다.
한편, 대종은 안도전과 함께 신행법을 써서 밤새워 달려가 양산박에 당도했다. 산채의 두령들이 맞이하여 송강의 침상으로 안내했다. 송강은 침상에 누워 실낱같은 숨만 쉬고 있었다. 안도전은 진맥을 하고 나서 말했다.
“두령들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맥은 무사합니다. 병이 위중하기는 하나 생명에 지장은 없습니다. 제가 큰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열흘 안으로 회복되실 겁니다.”
두령들은 그 말을 듣고 일제히 절을 했다.
안도전은 먼저 쑥뜸으로 독기를 빼낸 다음에 약을 먹였다. 겉으로는 고약을 붙이고, 안으로는 기력을 회복하는 약을 복용하게 하였다. 닷새가 지나자 피부에 점점 붉은 기운이 돌아오고 육체에 윤기가 나면서 음식도 조금씩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열흘이 지나자 종기가 완치되지는 않았지만 이전처럼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장순이 왕정륙 부자를 데리고 와서 송강과 여러 두령들에게 인사시키고, 양자강에서 약탈당했던 일과 복수한 일을 얘기했다. 두령들이 모두 칭찬하며 탄식했다.
“자칫했으면 형님의 병을 치료하지 못할 뻔했네!”
송강은 병이 호전되자, 북경을 쳐서 노준의와 석수를 구할 방안을 오용과 상의했다. 안도전이 말했다.
“장군께서는 아직 종기가 다 낫지 않았기 때문에 함부로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움직이시면 완치되기 어렵습니다.”
오용이 말했다.
“형님은 너무 근심하지 마시고, 편히 쉬시면서 원기를 회복하도록 하십시오. 제가 비록 재주 없지만 봄이 되면 북경성을 쳐서 노원외와 석수를 구하고 음부와 간부를 사로잡아 오겠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군사께서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는 비록 죽어도 눈을 감을 수 있겠소.”
오용은 충의당에서 명령을 전했다.
오용이 송강에게 말했다.
“이제 다행히 형님께서 무사하시고 또 안태의가 산채에 있으면서 병환을 돌봐 주니, 이는 양산박으로서는 천만다행입니다. 형님께서 병석에 누워계실 때 제가 누차 사람을 보내 북경성의 소식을 정탐했는데, 양중서는 우리 군마가 쳐들어올까 봐 밤낮으로 근심하고 있습니다. 사람을 보내 북경성 안팎의 저자거리에 출처가 없는 고시문을 두루 붙여, 원한에는 각기 갚을 대상이 있고 빚에는 각기 채무자가 있으니 대군이 당도해도 원수는 따로 있으므로, 주민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알려 두었습니다. 그래서 양중서는 더욱 속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동경의 채태사는 관승이 투항했다는 소식을 듣고, 천자 앞에서 감히 말도 못 꺼내고 초안을 해야만 무사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차 양중서에게 서신을 보내, 노준의와 석수를 살려두라고 하였습니다.”
송강이 그 말을 듣고 빨리 군마를 보내 북경을 공격하라고 재촉하자, 오용이 말했다.
“지금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조만간 원소절(元宵節)이 다가오는데, 북경에서는 해마다 등불을 많이 내걸고 있습니다. 이 기회를 틈타서 먼저 성안에 사람을 매복시켜 놓고 바깥에서 대군으로 공격하면, 안팎으로 호응하여 성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그 계책이 참으로 묘합니다! 군사는 즉시 시행하시오.”
“가장 중요한 일은 성중에서 불을 질러 신호하는 일인데, 형제들 가운데서 누가 그 일을 행하겠소?”
그러자 계단 아래에서 한 사람이 나서며 말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사람들이 보니, 고상조 시천이었다. 시천이 말했다.
“제가 어릴 때 북경에 가 본 적이 있는데, 성안에 취운루라는 누각이 하나 있습니다. 누각 아래위에 크고 작은 방이 110개 정도 있는데, 원소절 밤에는 필시 소란할 겁니다. 제가 몰래 성으로 잠입해서 정월 보름 밤에 취운루에 올라가 불을 질러 신호할 테니, 군사께서는 인마를 동원하여 감옥을 습격하십시오. 그것이 상책일 것 같습니다.”
오용이 말했다.
“내 생각이 바로 그렇네. 자네는 내일 새벽에 먼저 산을 내려가서, 원소절 밤에 누각에 불을 지르게. 그러면 큰 공을 세우게 되는 것이네.”
시천이 응낙하고 명을 받아 떠났다.
다음 날 오용은, 해진과 해보로 하여금 사냥꾼으로 변장하고 북경성으로 들어가 관원부에 야생동물 고기를 바치게 했다. 그리고 정월 보름 밤중에 불길이 오르는 것을 신호로 하여, 유수사 앞으로 가서 일을 보고하는 관병을 저지하라고 하였다. 두 사람은 명을 받고 떠나갔다.
두천과 송만은 쌀장수로 변장하고 수레를 끌고 성중으로 들어가 쉬다가, 원소절 밤에 불길이 오르는 신호를 보면 먼저 동문을 점거하라고 하였다. 두 사람은 명을 받고 떠나갔다.
공명과 공량은 하인으로 변장하고 북경성 안의 소란한 저자거리 처마 아래에 쉬고 있다가, 누각에 불길이 오르는 신호를 보면 두천과 송만을 접응하라고 하였다. 두 사람도 명을 받고 떠나갔다.
이응과 사진은 나그네로 변장하고 북경성 동문 밖에 쉬고 있다가, 성중에 불길이 오르는 신호를 보면 먼저 동문을 지키는 군사들을 베고 동문을 빼앗아 탈출로를 확보하라고 하였다. 두 사람도 명을 받고 떠나갔다.
노지심과 무송은 행각승으로 변장하고 북경성 밖의 암자에 있다가, 성중에 불길이 오르는 신호를 보면 남문으로 달려가 대군을 가로막고 달아날 길을 저지하라고 하였다. 두 사람도 명을 받고 떠나갔다.
추연과 추윤은 등을 파는 객상으로 변장하고 북경성 안으로 들어가 객점에서 쉬고 있다가, 누각에 불길이 오르는 신호를 보면 사옥사(司獄司) 앞으로 달려가 접응하라고 하였다. 두 사람도 명을 받고 떠나갔다.
유당과 양웅은 공인으로 변장하여 북경성 관아 앞에서 쉬고 있다가, 불길이 오르는 신호를 보면 보고하러 가는 인원을 저지하여 머리와 꼬리가 서로 구원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다. 두 사람도 명을 받고 떠나갔다.
공손승은 떠돌이 도사로 변장하고 능진은 도동으로 변장하여 풍화포와 굉천포 수백 개를 가지고 북경성 안의 한적한 곳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불길이 오르는 신호를 보면 포를 터뜨리라고 하였다. 두 사람도 명을 받고 떠나갔다.
장순은 연청을 따라 수문을 통해 성으로 들어가 노준의의 집으로 가서 음부와 간부를 잡으라고 하였다. 왕영·손신·장청·호삼랑·고대수·손이랑은 시골 부부로 변장하고 들어가 등을 구경하다가, 노준의 집에 방화하라고 하였다. 시진은 악화를 데리고 군관으로 변장하여 채절급의 집으로 가서 노준의와 석수를 구하라고 하였다. 여러 두령들이 각각 명을 받고 떠나갔다.
때는 정월 초순이었다. 북경의 양중서는 이성·문달·왕태수 등의 관원들을 불러 등불 다는 일에 대해 상의했다. 양중서가 말했다.
“해마다 북경에서는 등불을 많이 달아 원소절을 경축하면서 백성과 함께 즐겼는데, 모든 것이 동경과 비슷했소. 그런데 지금은 양산박 도적들의 침략을 두 번이나 당해, 등불을 달다가 화를 초래할까 두렵소. 내 생각에는 이번에는 행사를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여러분의 생각은 어떻소?”
문달이 말했다.
“저 도적놈들이 몰래 퇴각하고서 출처 없는 고시문만 여기저기 붙여 놓은 걸 보면, 더 이상 계략도 없고 침략할 생각도 없는 것 같습니다. 상공께서는 뭘 근심하십니까? 만약 올해 등불 행사를 하지 않으면, 저놈들의 간첩이 탐지하고서 우리를 비웃을 겁니다. 상공께서는 명을 내려, 주민들에게 작년보다 등불을 더 많이 내걸고 명절놀이도 더 많이 하라고 알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시내에는 자라 모양의 산을 두 개 세우고, 동경의 방식대로 야간통행도 허용하여 13일부터 17일까지 닷새 동안 등불을 달게 하십시오. 부윤으로 하여금 주민들을 점검하여 등불의 숫자가 줄지 않도록 하면서, 상공께서 친히 행차하셔서 백성과 함께 즐기도록 하십시오. 저는 군마를 이끌고 성을 나가 비호욕에 주둔하면서 도적들의 간계를 방비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도감은 철기마군을 거느리고 성을 돌면서 순시하여 백성이 걱정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양중서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관원들은 계획을 정하고 즉시 방을 붙여 주민들에게 알렸다. 북경 대명부는 하북에서 가장 큰 군(郡)으로 요충지였기 때문에, 작 지역에서 장사꾼들이 운집했다. 등을 내건다는 소식이 들리자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성중의 각 모퉁이나 거리들은 관원들이 매일 순시하였고, 명절놀이를 할 수 있는 준비도 했다.
부유한 집에서는 각자 화등(花燈)을 내걸었는데, 멀게는 2~3백 리 밖에까지 가서 사오기도 했고 가깝게는 백리 밖에서 사왔다. 객상들도 해마다 등을 가지고 성으로 들어와 팔았다. 집집마다 문 앞에 등을 걸기 위한 등책을 세우고, 보다 멋진 등과 교묘한 모양의 불꽃을 내걸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집안에는 천막을 치고 오색 병풍의 불꽃을 늘어놓고 사방에 명인들의 서화와 기이한 골동품들을 내걸었다. 성안의 큰 거리는 물론이고 골목마다 집집마다 모두 등불을 켰다.
대명부 유수사 다리 앞에도 자라 모양의 산이 세워졌는데, 그 위에는 홍색과 황색의 종이로 만든 용이 똬리를 틀고 비늘마다 등잔이 하나씩 켜졌으며 입에서는 물을 내뿜었다. 다리 아래 개울 주변에도 아래위로 등불이 켜졌는데, 그 수를 헤아릴 수도 없었다. 동불사(銅佛寺) 앞에도 자라 모양의 산이 세워졌는데, 그 위에는 청룡이 똬리를 틀고 주위에는 수천 개의 화등이 밝혀졌다.
취운루 앞에도 자라 모양의 산에 세워졌는데, 그 위에는 백룡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사방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등불이 켜졌다. 이 취운루는 하북에서 제일 유명한 주루인데, 처마는 삼중으로 되어 있고 대들보와 기둥이 아름답게 조각되어 있는 호화로운 건물이었다. 누각 아래위에 백 개가 넘는 방이 있었으며, 하루 종일 음악소리와 노랫소리가 하늘까지 울려 퍼졌다. 성안 곳곳에 있는 도교사원과 불교사원에서도 모두 등불을 밝히고 풍년을 기원했다. 유흥가는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양산박의 간첩들이 이러한 소식을 산채에 보고했다. 오용은 보고를 받고 크게 기뻐하면서 송강에게 자세히 얘기했다. 송강이 친히 병력을 거느리고 북경을 공격하러 가겠다고 하자, 안도전이 간했다.
“장군의 상처가 아직 완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절대로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노기가 침범하면 치료하기 어렵습니다.”
오용이 말했다.
“제가 형님을 대신해서 다녀오겠습니다.”
즉시 철면공목 배선에게 팔로군마를 배정하게 하였다. 제1대부터 제4대까지는 마군이고, 제5대부터 제8대까지는 보군이었다.
제1대는 쌍편 호연작이 한도와 팽기를 부장으로 하여 앞장서고, 진삼산 황신이 뒤에서 접응한다. 제2대는 표자두 임충이 마린과 등비를 부장으로 삼아 앞장서고, 소이광 화영이 뒤에서 접응한다. 제3대는 대도 관승이 선찬과 학사문을 부장으로 삼아 앞장서고, 병울지 손립이 뒤에서 접응한다. 제4대는 벽력화 진명이 구붕과 연순을 부장으로 삼아 앞장서고, 청면수 양지가 뒤에서 접응한다.
제5대는 몰차란 목홍이 두흥과 정천수를 부장으로 거느리고, 제6대는 흑선풍 이규가 이립과 조정을 부장으로 거느리고, 제7대는 삽시호 뇌횡이 시은과 목춘을 부장으로 거느리고, 제8대는 혼세마왕 번서가 항충과 이곤을 부장으로 거느린다.
이 팔로의 마군과 보군이 각자 길을 취해 출발하되, 시각을 반드시 지켜 정월 15일 밤 10시에 모두 성 아래로 집결하라고 명하였다. 나머지 두령들은 모두 송강과 함께 산채를 지키기로 하였다.
한편, 시천은 본래 처마 위로 날아다니고 벽을 타는 사람이라, 올바른 길로 성으로 들어가지 않고 밤에 성벽을 넘어 들어갔다. 성안의 객점에서는 혼자 온 손님은 받아주지 않아, 낮에는 한가하게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저녁에는 동악묘에서 쉬었다.
정월 13일에 사람들이 등을 내거는 것을 구경하면서 성안을 돌아다니다가, 해진과 해보가 사냥한 짐승을 메고서 성안을 다니며 구경하는 것을 보았다. 또 공연장에서 나오는 두천과 송만도 만났다.
시천은 취운루로 가서 한 바퀴 돌아보다가, 공명을 만났다. 머리를 풀어 헤치고 다 떨어진 양가죽을 입고서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왼손에는 밥그릇을 들고서, 지저분한 모습으로 구걸을 하고 있었다. 시천은 공명의 등 뒤로 다가가서 말했다.
“형님은 혈색이 좋아서 거지 같지 않아요. 북경에는 공인이 많은데, 혹시라도 그들에게 들켰다간 큰일을 망칠 수 있어요. 차라리 어디 숨어 있는 것이 좋겠소.”
말을 하고 있는데, 담장 밑에서 또 거지 하나가 나오는데 공량이었다. 시천이 말했다.
“형님은 얼굴이 눈처럼 희어서 굶주리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아요. 그런 모양으로 다니다간 필시 실패할 겁니다.”
얘기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두 사람이 상투를 붙잡으며 소리쳤다.
“이놈들! 뭐하고 있냐!”
고개를 돌려보니, 양웅과 유당이었다. 시천이 말했다.
“놀라 죽는 줄 알았네!”
양웅이 말했다.
“다들 따라오너라!”
한적한 곳으로 데려가서 양웅이 꾸짖었다.
“자네들 세 사람은 어찌 그리 분별이 없는가! 그런 곳에서 그런 말을 하고 있다니! 우리가 봤으니 망정이지, 만약 눈치 빠른 공인들에게 들켰으면 큰일을 그르칠 뻔하지 않았는가? 우리 둘이 다 살펴보았으니, 자네들은 다시 거리에 돌아다니지 말게.”
공명이 말했다.
“추연과 추연이 길거리에서 등을 파는 것을 보았고, 노지심과 무송도 이미 성 밖의 암자에 와 있습니다. 더 이상 말씀 마시고, 때가 되면 각자 맡은 일을 하기로 합시다.”
다섯 사람이 말을 마치고 한 사원으로 갔는데, 사원에서 나오는 도사와 마주쳤다. 고개를 들어 보니, 입운룡 공손승이었다. 뒤에는 도동으로 분장한 능진이 따르고 있었다. 일곱 사람은 고개를 끄덕여 서로 인사하고 각자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