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압송관은 도중에 노준의에게 잘해 주기도 하다가 악하게 굴기도 했다. 14~5리쯤 걷다 보니 날이 점점 어두워졌다. 앞에 마을이 있어 객점을 찾아 들어갔다. 점원이 뒷방으로 안내하자 보따리를 내려놓고 설패가 노준의에게 말했다.
“이 어르신들이 그래도 관원이니, 죄인의 시중을 들 수는 없는 것 아니냐. 네가 밥을 먹고 싶으면 빨리 가서 불을 피워라!”
노준의는 칼을 찬 채로 주방으로 가서, 점원에게 땔나무를 얻어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점원이 노준의를 대신해 쌀을 씻어 밥을 해주고 그릇도 씻어 주었다. 노준의는 부자 출신이라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땔나무가 젖어 있어서 불이 잘 붙지도 않았고, 불을 붙이려고 입김을 불었더니 재가 날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동초가 뭐라고 구시렁거리며 욕을 퍼부었다.
밥이 다 되자 두 사람이 모두 퍼 가고, 노준의는 감히 밥을 먹겠다는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다 먹고 나서 남은 국과 식은 밥을 노준의에게 먹으라고 주었다. 설패가 또 한 번 욕을 해댔다.
저녁밥을 먹고 나자, 노준의에게 발 씻을 물을 데워 오라고 하였다. 물이 끓자 노준의는 비로소 방 안에 들어가 앉았다. 두 사람은 발을 씻은 다음, 펄펄 끓는 물을 한 대야 들고 왔다. 노준의의 발을 씻겨 주겠다고 속이고서 짚신을 벗기고, 설패가 노준의의 두 발을 끓는 물속에 집어넣었다. 노준의는 고통을 참기가 어려웠다. 설패가 말했다.
“어르신이 네놈 시중을 들어주는데, 왜 도리어 인상을 쓰고 지랄이냐!”
두 관원은 따뜻한 방구들 위에서 자고, 노준의는 쇠사슬로 방문에 묶어 두었다. 새벽에 두 관원이 일어나 점원을 불러 자기들끼리만 밥을 먹고, 행장을 수습하여 길을 떠났다. 노준의가 발을 내려다보니 온통 물집 투성이어서 땅을 디디기도 힘들었다.
그날은 가을비도 추적추적 내려 길이 미끄러웠다. 노준의가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내디디자, 설패가 곤봉으로 허리를 때렸다. 동초는 말리는 척하기만 했다. 노준의는 가는 내내 고통스런 비명을 삼켰다. 객점을 떠나 약 10여 리쯤 가니, 큰 숲이 나타났다. 노준의가 말했다.
“소인은 이제 진짜로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으니, 가련히 여기셔서 제발 잠시만 쉬게 해주십시오!”
두 관원이 노준의를 숲속으로 데리고 들어갔는데, 그때 비로소 동방이 차츰 밝아오기 시작했고 행인이 아무도 없었다. 설패가 말했다.
“우리가 너무 일찍 일어났더니 피곤하다. 이 숲속에서 잠시 자고 가야겠는데, 네놈이 달아날까 걱정이다.”
노준의가 말했다.
“소인이 설홋 날개가 있다 하더라도 날지도 못합니다.”
“네놈은 아무 말도 하지 마라. 네놈을 묵어 둬야겠다.”
설패는 허리에서 밧줄을 풀어 노준의의 허리를 소나무에 묶고, 다리까지도 단단히 묶었다. 설패가 동초에게 말했다.
“형님! 숲 밖에 서 있다가, 누가 오면 헛기침으로 신호하십시오.”
동초가 말했다.
“아우! 빨리 해치우게.”
“염려 마시고 바깥이나 잘 살피십시오.”
설패는 곤봉을 들고 노준의를 보며 말했다.
“넌 우리를 원망하지 마라. 너의 집 집사 이고가, 우리에게 도중에 너를 끝장내 달라고 했다. 사문도에 가더라도 죽기는 마찬가지이니,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나을 거다. 저승에 가더라도 우리를 원망하지 마라. 내년 오늘이 너의 제삿날이다.”
노준의는 그 말을 듣고 눈물을 비 오듯 흘리며 고개를 숙이고 죽음을 받아들였다. 설패가 두 손으로 곤봉을 들고 노준의의 머리를 내리쳤다. 동초는 바깥에 있다가 누군가 땅에 쓰러지는 소리를 듣고 황망히 숲속으로 뛰어 들어와 보니, 노준의는 그대로 나무에 묶여 있는데, 설패가 나무 아래에 쓰러져 있고 곤봉은 그 옆에 내던져져 있었다. 동초가 말했다.
“괴이한 일이다! 너무 힘을 주어 휘두르다가 자신이 되레 맞았나?”
동초가 설패를 안아 일으키고 얼굴을 보니, 전연 움직임이 없는데 입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고 가슴에 3~4촌 길이의 작은 화살이 박혀 있었다. 깜짝 놀란 동초가 소리를 지르려고 하는 찰나, 동북쪽 구석 나무 위에 한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그때 ‘받아라!’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동초는 목에 화살을 맞고 두 발이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땅바닥에 넘어졌다.
한 사람이 나무 위에서 뛰어 내려와 달려오더니, 날카로운 칼을 꺼내 밧줄을 끊고 노준의의 목에 씌워진 칼을 쪼개 버렸다. 노준의를 내려놓고 끌어안고 방성대곡했다. 노준의가 눈을 뜨고 보니, 낭자 연청이었다. 노준의가 소리쳤다.
“연청아! 내 혼백이 너를 만난 것이냐?”
연청이 말했다.
“제가 유수사 앞에서부터 줄곧 이놈들을 따라왔습니다. 이놈들이 주인님을 사신방에 가두어 놓고 이고를 만나 얘기를 나누는 걸 보고, 주인님을 해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성 밖으로 나올 때부터 따라왔다가, 주인님이 객점에 계실 때 저는 바깥에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나가는 걸 보고, 이놈들이 필시 숲속에서 손을 쓸 거라 생각하고 여기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석궁 두 발로 이놈들을 끝장냈는데, 주인님께서는 보셨습니까?”
낭자 연청의 석궁 솜씨는 그야말로 백발백중이었다.
노준의가 말했다.
“네가 내 목숨을 억지로 살리기는 했다만, 저 두 관원을 쏘아 죽여 죄가 더욱 무거워졌으니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이냐?”
“애초에 모든 것이, 송공명이 주인님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이제 양산박이 아니면 갈 데가 없습니다.”
“내가 곤장을 맞은 상처가 너무 아프고 발도 피부가 다 벗겨져서 땅을 디디지도 못하겠다.”
“지체할 수 없으니, 제가 주인님을 업고 가겠습니다.”
연청은 관원들의 몸에서 은자를 꺼내 챙기고, 석궁을 차고 요도를 허리에 꽂고 곤봉을 들고서 노준의를 등에 업고 곧장 동쪽을 향해 걸어갔다. 10리를 채 못 가서 도저히 더 이상 갈 수가 없었다. 마침 작은 시골 객점이 눈에 띄어, 방을 얻어 쉬면서 고기와 술을 먹으며 굶주린 배를 채웠다.
한편, 지나가던 사람이 숲속에서 화살에 맞아 죽은 두 관원의 시체를 발견하고, 근처의 마을 이장에게 알렸고, 이장은 북경 대명부에 고발했다. 대명부에서 즉시 관원을 보내 시신을 검사하였더니, 유수사의 관원 동초와 설패임이 밝혀졌다. 보고를 받은 양중서는 대명부 즙포관찰에게 범인을 체포하라고 명을 내렸다. 즙포관찰이 시신을 검사하고 와서 말했다.
“화살을 보니 낭자 연청의 것입니다. 지체해서는 안 됩니다.”
양중서는 1~2백 명의 관원을 각지로 보내 두 사람의 생김새를 그린 고시문을 붙이게 하고, 원근 마을의 객점과 시장 등에 알려 범인을 체포하게 하였다.
한편, 노준의는 상처가 낫지 않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객점에서 쉬고 있었다. 점원은 마을 사람들이 살인사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듣고, 또 두 사람의 생김새를 그린 고시문을 보고서 황망히 이장에서 달려가 알렸다.
“저희 객점에 두 사람이 들었는데, 범인들과 생김새가 비슷합니다.”
이장은 즉시 달려가 관원들에게 알렸다.
한편, 연청은 찬거리가 없어 석궁을 들고 나가 근처에서 작은 짐승을 몇 마리 잡으려고 했는데, 마을에서 함성이 들렸다. 연청이 숲속에 숨어서 엿보니, 1~2백 명의 관원들이 창칼을 들고 에워싸고서 노준의를 포박하여 수레에 실어 가고 있었다. 연청이 뛰어 나가 구하려고 하다가, 손에 무기가 없어 속으로 ‘아이고!’ 비명을 질렀다. 연청은 생각했다.
“양산박에 가서 송공명에게 구해 달라고 하지 않으면, 자칫 주인님의 목숨을 잃게 생겼구나.”
즉시 길을 찾아 양산박을 향해 달렸다. 날이 저물어가고 배가 고팠지만 몸에는 땡전 한 푼 없었다. 한 언덕에 올라보니, 덤불이 무성한데 나무가 몇 그루 있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덤불 속에서 잠을 자기로 했지만, 근심이 가득하여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때 나무 위에서 까치가 ‘깍깍’ 우는 소리가 들렸다. 연청은 생각했다.
“저놈을 쏘아 잡으면, 마을에서 물을 얻어다가 삶아 먹으면 허기를 면할 수 있을 건데.”
덤불 속에서 나와 고개를 들어 보니, 까치가 연청을 보고 지저귀고 있었다. 연청은 가만히 석궁을 꺼내 마음속으로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연청에게는 지금 화살이 하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만약 주인님의 목숨을 구해 주시려면 이 화살이 저 까치를 맞혀 떨어지게 해 주시고, 만약 주인님의 운명이 이제 끝이라면 이 화살이 빗나가 까치가 날아가게 해 주십시오.”
화살을 메기고 소리쳤다.
“언제나 내 뜻대로 되었으니, 이번에도 빗나가지 마라!”
화살이 ‘핑’ 날아가 까치 꼬리에 맞았는데, 까치는 화살이 꽂힌 채로 곧장 언덕 아래로 날아갔다. 연청이 큰 걸음으로 언덕 아래로 뛰어 내렸으나, 까치는 보이지 않았다. 까치를 찾고 있는데, 앞쪽에서 두 사람이 오고 있었다. 앞선 사람은 키 만한 곤봉을 들고 있었고, 뒤에 오는 사람은 등에 보따리를 메고 짧은 봉을 들고 허리에 요도를 차고 있었다. 두 사람은 연청의 어깨에 부딪칠 듯 지나갔다. 연청은 몸을 돌려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내겐 노자가 한 푼도 없으니, 저 둘을 쳐서 넘어뜨리고 보따리를 빼앗아 양산박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
두 사람은 고개를 숙인 채 걸어가고 있었다. 연청은 두 사람을 뒤쫓아 가서, 뒤에 가고 있는 사람의 등을 주먹으로 쳐서 자빠뜨렸다. 다시 주먹을 들어 앞서 가는 사람을 치려고 하는데, 그 사내가 먼저 봉으로 연청의 왼쪽 다리를 쳐서 넘어뜨렸다. 뒤에 있던 사내가 일어나서 연청을 발로 밟고서 요도를 뽑아 얼굴을 내리치려고 하였다. 그 순간 연청이 크게 소리쳤다.
“호걸! 나는 죽어도 괜찮지만, 누가 우리 주인의 소식을 전하겠습니까?”
사내는 칼을 내리더니 연청을 일으키며 물었다.
“네놈이 무슨 소식을 전한단 말이냐?”
연청이 말했다.
“당신이 나한테 뭘 묻겠다는 거요?”
앞서가던 사내가 연청의 손을 끌어당기다가 팔뚝의 꽃 문신이 드러나자, 황망히 물었다.
“당신 혹시 노원외 댁의 낭자 연청 아니오?”
연청은 생각했다.
“이래저래 죽기는 매일반이니, 차라리 다 털어놓고 주인님의 혼백과 함께 해야겠다.”
연청이 말했다.
“그래! 내가 노원외 댁의 낭자 연청이다! 지금 양산박으로 가서 소식을 전하고 송공명에게 우리 주인님을 구해 달라고 할 참이다.”
두 사람은 그 말을 듣고 ‘하하하’ 크게 웃더니 말했다.
“당신을 죽이지 않은 게 다행이군. 정말 연청 형이었네. 우리가 누군지 알겠소?”
앞서가던 사람은 병관색 양웅이고, 뒤에 가던 사람은 반명삼랑 석수였다. 양웅이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은 지금 형님의 명을 받들어, 북경으로 노원외의 소식을 알아보러 가는 중이오. 오용 군사와 대원장 역시 우리 뒤를 따라 산을 내려와 소식을 기다리고 있소.”
연청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두 사람에게 모두 얘기하자, 양웅이 석수에게 말했다.
“일이 그렇게 되었으니, 나는 연청과 함께 산채로 가서 형님께 보고하여 다른 방도를 찾아야겠네. 자네는 북경으로 가서 소식을 정탐하고 돌아와 보고하도록 하게.”
석수가 말했다.
“그게 좋겠습니다.”
석수는 보따리를 연청에게 넘겨주고 양웅을 따라 양산박으로 가게 하였다. 연청은 송강을 만나 그동안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송강은 크게 놀라 여러 두령들을 모아 계책을 상의하였다.
한편, 석수가 북경성 밖에 당도했을 때는 이미 날이 저물어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성 밖 객점에서 하룻밤을 잤다. 다음 날 아침, 밥을 먹고 성 안으로 들어갔는데 사람들이 탄식을 하면서 슬퍼하고 있었다. 석수는 의심이 들었다. 시내에 들어가 보니, 집들이 모두 문을 닫고 있었다. 석수가 한 상점에 들어가 물었더니, 노인이 말했다.
“손님은 잘 모르겠지만, 북경에 노원외라는 부자가 있는데, 양산박 도적들에게 사로잡혔다가 도망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고발을 당해 사문도로 유배를 가게 되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도중에 관원 두 사람을 죽였다고 합니다. 어젯밤에 붙잡혀 왔는데, 오늘 오시 삼각에 저잣거리에서 참수한다고 합니다. 손님도 한 번 가 보시오.”
석수가 그 말을 듣고 저잣거리로 가 보니, 십자로 어귀에 주루가 하나 있었다. 석수는 주루로 올라가 거리 쪽에 있는 작은 방에 자리를 잡았다. 점원이 와서 물었다.
“손님! 다른 분을 기다리실 겁니까? 아니면 혼자 술을 드실 겁니까?”
석수가 눈을 부릅뜨고 말했다.
“술은 큰 사발에 가져오고, 고기는 큰 덩어리로 가져오너라. 그냥 가져오면 되지, 뭘 묻고 지랄이냐!”
점원은 깜짝 놀라 술 두 병과 소고기 한 쟁반을 가지고 왔다. 석수는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었다. 잠시 앉아 있다 보니, 주루 아래가 시끌벅적했다. 석수가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보니, 집들은 모두 대문을 닫았고 상점들도 문을 닫고 있었다. 점원이 올라와 말했다.
“손님! 취하셨습니까? 아래에 공사(公事)가 있으니, 빨리 술값을 계산하시고 다른 곳으로 피하십시오!”
석수가 말했다.
“난 무서운 게 없다! 이 어르신께 두들겨 맞고 싶지 않으면 썩 꺼져라!”
점원은 감히 아무 말도 못 하고 내려갔다. 얼마 후에 거리에서 징소리와 북소리가 천지를 진동했다. 석수가 창문으로 바깥을 내다보니, 십자로의 형장에 10여 명의 망나니들이 칼을 들고 에워싸고 있는데 노준의가 포박을 당한 채 끌려와서 주루 아래에 무릎을 꿇었다. 철비박 채복이 칼을 들었고, 일지화 채경이 노준의가 목에 찬 칼끝을 짚으면서 말했다.
“노원외! 당신이 잘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우리 형제가 당신을 구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일이 잘못되어 이렇게 된 것이오. 저 앞의 오성당(五聖堂) 안에 내가 당신의 위패를 이미 모셔 놓았으니, 혼이라도 그곳에 가서 편히 쉬시오,”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오시 삼각이오!”
채경은 노준의의 칼을 벗기고 머리를 붙잡았고, 채복은 칼을 높이 쳐들었다. 담당 공목이 죄목을 읽자,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그때 주루 위에서 석수가 그 소리에 화답하듯이 요도를 빼어 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양산박 호걸들이 모두 여기에 있다!”
채복과 채경은 노준의의 밧줄을 풀어주고 먼저 달아났다. 석수가 주루에서 뛰어 내려 요도를 휘둘러 마치 참외를 자르고 채소를 썰듯이 사람들을 죽였다. 미처 달아나지 못한 사람들 10여 명이 쓰러졌다. 석수는 한 손으로 노준의를 잡고 남쪽으로 달아났다.
원래 석수는 북경의 지리를 모르는 데다, 노준의도 깜짝 놀라 정신이 멍했기 때문에 어디로 달아나야 할지를 몰랐다. 양중서는 보고를 받고 크게 놀라, 즉시 군관을 불러 인마를 이끌고 가서 체포하라고 명하였다.
석수와 노준의는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달아날 길이 없었다. 사방에서 인마가 몰려와 갈고리와 올가미를 던졌다. 가련하게도 용맹한 영웅도 중과부적이라, 두 사람은 사로잡히고 말았다. 양중서는 형장을 습격한 도적을 끌고 오라고 명하였다. 석수는 대청 앞으로 끌려가자, 눈을 부릅뜨고 큰 소리로 욕을 했다.
“네 이놈! 나라를 무너뜨리고 백성을 해치는 도적놈아! 나는 형님의 명을 받고 왔다! 조만간 형님이 군대를 이끌고 와서 이 성을 짓밟아 평지로 만들어 버리고, 네놈을 세 토막으로 잘라 버릴 것이다! 이 어르신을 먼저 보내 네놈들에게 알리게 한 것이다!”
석수가 대청 앞에서 양중서에게 도적놈이라고 외치면서 욕을 해대자, 대청 위의 모든 관원들은 깜짝 놀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양중서도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두 사람에게 큰 칼을 씌워 사형수감옥에 가두라고 명하고 채복에게 잘 감시하여 실수가 없도록 하라고 분부하였다. 채복은 양산박 호걸들과 친분을 맺으려고 두 사람을 한 감방에 넣고 매일 좋은 술과 고기를 대접하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더 이상 고통을 당하지 않고 도리어 몸을 잘 보양하였다.
한편, 양중서는 신임 왕태수를 불러 사건을 처리하게 하고, 성중의 피해 상황을 점검하게 하였다. 죽은 사람이 7~80명이고, 넘어져서 머리를 다치거나 부딪쳐서 피부가 벗겨지거나 다리가 부러진 사람은 부지기수였다. 양중서는 관아에 보고한 사람들에게 돈을 지급하고, 다친 사람은 의원을 불러 치료하게 하고 죽은 사람은 화장하게 하였다.
다음 날, 성 안팎에서 보고가 들어왔다.
“양산박에서 뿌린 전단 수십 장을 수거했는데, 감히 감출 수 없어 바칩니다.”
양중서는 전단을 읽고서 너무 놀라, 혼백이 구천 밖으로 날아가는 것 같았다. 전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양산박 의사 송강은 북경 대명부와 천하에 포고하노라.
지금 대송의 조정은 탐관오리들이 정도를 가로막고 권력을 멋대로 휘둘러 양민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만백성이 도탄에 빠져 있다. 북경의 노준의는 천하의 호걸로서, 이제 산으로 청하여 함께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간사한 뇌물을 받고서 선량한 사람을 살해하려고 하느냐!
내가 특별히 석수를 보내 먼저 알렸건만, 예기치 못하게 두 사람이 사로잡히고 말았다. 만약 두 사람의 목숨을 살려주고 음부와 간부를 바친다면, 내가 쳐들어가지 않겠다. 하지만 팔다리 하나라도 상하게 한다면, 산채의 전 병력을 동원하여 한 마음으로 원한을 갚을 것이다. 대군이 당도하는 곳에는 옥석을 가리지 않고 모두 불태울 것이며, 간사한 놈들을 제거하고 우둔한 놈들을 모조리 멸할 것이다.
천지가 우리를 도울 것이며, 귀신도 함께 할 것이다. 담소하며 입성하되 결단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의로운 장부와 절개 있는 여인, 효성스런 자손들, 선량한 백성, 청렴한 관리들은 놀라거나 당황하지 말고 각자 직업을 지켜라. 모두에게 효시하노라.
양중서는 전단을 보고 나서, 왕태수를 불러 상의하였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왕태수는 본래 겁이 많은 사람이라, 양중서에게 이렇게 아뢰었다.
“양산박의 도적들은 조정에서도 몇 차례 군대를 보냈지만 체포하지 못했는데, 하물며 우리 같은 일개 군(郡)의 힘으로 어찌하겠습니까? 만약 저 도적들이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올 때 조정의 구원병도 오지 않는다면, 그때는 후회해도 늦습니다. 소관의 어리석은 생각으로는, 일단 두 사람의 목숨을 살려두고서, 첫째로는 조정에 보고하고, 둘째로는 채태사께 서신을 올려 알리고, 셋째로는 본처의 군마를 성 밖에 하채하게 하여 방비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북경도 무사히 보존하고 군인과 백성도 다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저 두 사람을 죽여 도적들이 쳐들어온다면, 첫째는 구원병이 없고, 둘째는 조정에서 문책할 것이며, 셋째는 백성이 놀라고 당황하여 성중에 소란이 일어날 것이니 결코 편안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양중서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태수의 말이 옳소.”
양중서는 먼저 절급 채복을 불러 말했다.
“저 두 도적은 결코 가볍게 여길 놈들이 아니다. 네가 너무 엄하게 구속하여 목숨을 잃게 해서도 안 되고, 너무 너그럽게 대하여 도주하게 해서도 안 된다. 너희 형제 둘이서 아침저녁으로 엄하면서도 너그럽게 대하며 견고하게 관리하면서 판결을 기다리도록 하라. 한 순간이라도 태만해서는 안 된다.”
채복은 그 말을 듣고서 마음속으로 몰래 기뻐하였다.
“내 생각과 맞아떨어졌구나.”
채복은 명을 받고 감옥으로 돌아가, 두 사람을 위로하였다.
한편, 양중서는 병마도감 대도(大刀) 문달과 천왕(天王) 이성을 불러 상의했다. 양중서가 양산박의 전단과 왕태수의 말을 자세히 얘기하자, 이성이 말했다.
“그까짓 도적놈들이 어찌 감히 소굴을 함부로 떠날 수 있겠습니까? 상공께서는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제가 재주도 없이 봉록만 많이 받았는데, 아무런 공도 세우지도 못하여 은덕에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이제 견마지로를 다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성 밖에 나가 하채하겠습니다. 만약 도적놈들이 오지 않으면 다시 상의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도적놈들이 운수가 다해 함부로 소굴을 떠나 쳐들어온다면, 소장이 허풍떠는 것이 아니라 단 한 놈도 돌아가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양중서는 그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면서 즉시 두 장수에게 비단을 하사하였다. 두 장수는 양중서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각자 영채로 돌아갔다.
다음 날, 이성은 장수들을 소집하여 상의하였다. 그 옆에 위풍이 늠름하고 풍채가 당당한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급선봉(急先鋒) 삭초(索超)였다. 이성이 명을 내렸다.
“송강 도적놈이 조만간 우리 북경을 치러 올 것이다. 자네들은 본부 군병을 점검하여 성에서 35리 떨어진 곳에 하채하라. 내가 군사를 거느리고 뒤따라 갈 것이다.”
삭초는 명을 받고 다음 날 본부 군마를 점검하여 35리를 나아가 비호욕이란 곳에 산을 의지하여 하채하였다. 그다음 날, 이성이 편장들을 거느리고 성에서 25리 떨어진 괴수파라는 곳에 하채하였다. 주위에 창칼을 엄밀하게 배치하고, 사방에 녹각을 깊이 묻었으며, 삼면에 함정을 팠다. 군사들은 주먹을 문지르며 단단히 벼르고 있었고, 장수들도 동심으로 협력하여 양산박 군마가 오면 공을 세우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편, 원래 그 전단은 오용이, 연청과 양웅에게 소식을 듣고 또 대종이 노준의와 석수가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듣고 왔기 때문에, 가짜로 전단을 만들어 사람이 없는 곳에 뿌리고 교량이나 길거리에 붙여 일단 노준의와 석수의 목숨을 보존하고자 한 것이었다.
대종은 양산박으로 돌아가 두령들에게 사실을 자세하게 알렸다. 송강은 듣고서 크게 놀라 충의당에 두령들을 소집하였다. 대소 두령들이 서열에 따라 자리에 앉자, 송강이 오용에게 말했다.
“애초에 군사는 좋은 뜻으로 노원외를 산으로 초청하여 뜻을 함께 하고자 한 것인데. 이제 생각지도 않게 고통을 당하게 하고 또 석수 형제까지 함정에 빠졌으니, 어떤 계책으로 구하면 좋겠소?”
오용이 말했다.
“형님은 마음 놓으십시오. 제가 재주 없지만 한 가지 계책을 내놓겠습니다.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북경의 돈과 식량을 취하여 산채의 비용으로 쓰도록 하겠습니다. 내일이 마침 길일이니, 형님께서는 두령의 절반은 산채를 지키게 하고 나머지 절반은 함께 북경성을 치러 가도록 하십시오.”
송강이 말했다.
“군사의 말씀이 옳소.”
송강은 철면공목 배선을 불러 파견할 군병을 배정하여 내일 출발할 준비를 하라고 명하였다. 흑선풍 이규가 말했다.
“내 쌍도끼가 오랫동안 실력 발휘를 못했는데, 이제 북경을 친다는 애기를 듣고 아주 기뻐하고 있습니다. 형님이 저한테 졸개 5백 명을 주시면, 북경으로 달려가 양중서를 다진 고깃덩이로 만들어 버리고 이고와 부인을 붙잡아 만 조각을 내 버리겠습니다. 그리고 노원외와 석수를 구하는 것이 내 소원입니다.”
송강이 말했다.
“아우가 용맹하기는 하지만, 북경은 다른 곳과는 비교할 수 없네. 양중서는 채태사의 사위이고, 또 수하의 이성과 문달은 만 사람도 당할 수 없는 용맹을 지니고 있어 가벼이 대적할 수 없네.”
이규가 소리쳤다.
“형님은 늘 이렇게 남의 용기는 칭찬하면서 자기편의 위세는 꺾어놓더라! 이 아우가 가면 뭐가 어떻다는 거요? 내 만약 지면 맹세코 산채로 돌아오지 않겠소!”
오용이 말했다.
“자네가 그렇게 가고 싶다면 선봉으로 삼겠네. 군사 5백을 줄 테니 앞장서서 내일 산을 내려가게.”
그날 저녁 송강과 오용이 상의하여 인원을 배정하고, 배선에게 명하여 각 영채로 알리게 하고 순서대로 시행하되 시각을 어기지 않도록 하라고 하였다. 때는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이라, 군사들이 갑옷을 입기도 좋고 전마들도 살쪄 있었다. 군졸들도 오랫동안 싸우지 않아 모두 투지가 넘쳐나고 원수를 갚겠다는 생각이 가득 차 있었다. 선발된 사람들은 모두 기뻐하면서 무기를 수습하고 안장을 단속하면서 주먹을 비비며 단단히 벼렸다.
제1대는 선봉 흑선풍 이규와 군졸 5백. 제2대는 양두사 해진, 쌍미갈 해보, 모두성 공명, 독화성 공량과 군졸 1천. 제3대는 여두령 일장청 호삼랑, 부장 모야차 손이랑, 모대충 고대수와 군졸 1천. 제4대는 박천조 이응, 부장 구문룡 사진, 소울지 손립과 군졸 1천. 중군은 주장 송강과 군사 오용, 그리고 소온후 여방, 새인귀 곽성, 병울지 손립, 진삼산 황신.
전군두령은 벽력화 진명, 부장은 백승장 한도와 천목장 팽기. 후군두령은 표자두 임충, 부장은 철적선 마린과 화안산예 등비. 좌군두령은 쌍편 호연작, 부장은 마운금시 구붕과 금모호 연순. 우군두령은 소이광 화영, 부장은 도간호 진달과 백화사 양춘. 포수 굉천뢰 능진과 함께 군량을 접응하고 군정을 정탐하는 두령은 신행태보 대종.
군병의 배정이 끝나자, 새벽에 각 두령들은 차례대로 출발했다. 부군사 공손승과 유당·주동·목홍은 마보군을 통솔하여 산채를 지키고, 세 관문과 수채는 이준 등이 지켰다.
한편, 삭초가 비호욕 영채에 앉아 있는데 유성마가 달려와 보고했다.
“송강의 군마가 오고 있는데 그 수를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 영채에서 2~30리 떨어진 곳에 있는데, 곧 당도할 겁니다.”
삭초는 보고를 받고 괴수파 영채의 이성에게 재빨리 보고했다. 이성은 성중에 보고하는 한편 전마를 타고 곧장 앞의 영채로 달려왔다. 삭초가 맞이하여 자세히 설명했다. 다음 날 새벽에 밥을 지어 먹고 날이 밝자 영채를 뽑고 출발하여 유가(庾家)라는 곳에 당도하여 진세를 벌리고 1만5천 인마를 배치하였다.
이성과 삭초는 갑옷을 입고 전마를 타고서 문기 아래 서 있었다. 동쪽을 바라보니 멀리서 흙먼지가 일어나면서 약 5백 명이 나는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이성이 채찍으로 가리키자, 병사들이 쇠뇌와 강궁을 겨누었다. 양산박의 군대는 유가에서 ‘一’ 자 모양으로 진세를 벌렸다.
동쪽의 양산박 진영에서 한 호걸이 말을 타고 나오는데, 바로 흑선풍 이규였다. 손에는 쌍도끼를 들고 두 눈을 부릅뜨고서 이빨을 부드득 갈며 소리쳤다.
“양산박 호걸 흑선풍 이규를 아느냐?”
이성이 말 위에서 이규를 보더니, 삭초를 돌아보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맨날 양산박 호걸이라고 떠들어대더니, 원래 저런 추잡한 도적놈들이었구먼! 말할 가치도 없는 놈들이야. 선봉! 뭘 보고 있는가? 빨리 가서 저 도적놈을 사로잡지 않고서?”
삭초가 웃으며 말했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사용하겠습니까? 공을 세우고자 하는 장수가 있을 것입니다. 주장께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삭초의 뒤에 있던 왕정이 장쟁을 들고 부하 1백 군마를 이끌고서 난 듯이 달려 나갔다. 이규가 대담무쌍하고 갑옷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기는 했지만, 마군이 돌격해 오자 당해내지 못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삭초가 군마를 이끌고 곧장 유가를 지나 추격해 갔는데, 산비탈 뒤에서 징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면서 두 부대가 튀어 나왔다.
왼쪽에는 해진과 공량, 오른쪽에는 공명과 해보였는데, 각각 5백 군졸을 이끌고 돌격해 왔다. 삭초는 접응하는 군마가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더 이상 추격하지 않고 말을 돌려 회군하였다. 이성이 물었다.
“어찌하여 도적을 잡아 오지 않았는가?”
삭초가 말했다.
“추격하여 산을 지나 막 잡으려고 했는데, 저놈들에게 접응하는 군마가 있었습니다. 복병이 일제히 일어나는 바람에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저까짓 도적놈들이 뭐가 두렵단 말인가!”
이성은 전군(前軍)을 모두 이끌고 유가로 돌격해 갔다. 앞쪽에서 깃발이 휘날리고 함성이 들리면서 북소리와 징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한 무리의 군마가 나타났다. 앞장선 장수는 호삼랑이었는데 붉은 깃발에 ‘여장수 일장청’이라 쓰여 있었다. 왼쪽에는 고대수, 오른쪽에는 손이랑이 1천 군마를 거느리고 있는데, 모두 사방팔방에서 모여든 각양각색의 오합지졸 같았다.
이성이 보고 말했다.
“저런 군인들을 어디다 써먹겠나! 선봉은 앞으로 나가 대적하라! 나는 병력을 나누어 사방의 도적들을 사로잡겠다!”
삭초가 명을 받고 손에 큰 도끼를 들고 말을 박차고 앞으로 달려 나가자, 일장청은 말머리를 돌려 산의 오목한 곳을 향해 달아났다. 이성은 인마를 나누어 사방으로 추격하였다, 그때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고 안개가 뿌연 가운데 한 무리의 인마가 나는 듯이 쫓아왔다. 이성은 급히 14~5리를 퇴각했는데, 머리와 꼬리가 서로 돌아볼 겨를도 없이 유가로 퇴각했다.
왼쪽에서는 해진과 공량이 인마를 이끌고 돌격해 오고, 오른쪽에서는 공명과 해보가 인마를 이끌고 돌격해 왔다. 세 여장수도 말머리를 돌려 뒤에서 추격해 왔다. 이성의 군마는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영채 가까이 돌아오자, 흑선풍 이규가 앞을 가로막았다. 이성과 삭초가 겨우 길을 뚫고 달아나 영채에 이르렀을 때에는 군사의 절반을 잃었다. 송강의 군마는 더 이상 추격하지 않고 병력을 철수하여 영채를 세우고 휴식을 취했다.
한편, 이성과 삭초는 황망히 사람을 성중으로 보내 양중서에게 보고하였다. 그날 밤 문달이 본부군마를 거느리고 싸움을 도우러 왔다. 이성이 맞이하여 괴수파 영채 내에서 적병을 물리칠 계책을 상의하였다. 문달이 웃으며 말했다.
“피부병 정도밖에 안 되는 놈들을 뭐 그리 걱정하시오! 내가 내일 결전을 하여 전승을 올리겠소.”
그날 밤 상의가 정해지자 군사들에게 명령을 전했다. 다음 날 새벽에 밥을 지어 먹고 날이 밝자 진군했다. 북을 세 번 울리고 목책을 뽑고 유가까지 진군했다. 송강의 군마도 바람처럼 진격해 왔다.
문달은 군마를 벌려 세우고 강궁과 쇠뇌를 발사하여 적의 진격을 막았다. 송강의 진중에서 한 대장이 나오는데, 붉은 깃발에 ‘벽력화 진명’이라고 쓰여 있었다. 진명이 말을 세우고 소리쳤다.
“북경의 탐관오리들은 들어라! 오래 전부터 너희 성을 치려고 했었는데, 선량한 백성이 다칠까 염려되어 미루어왔다. 노준의와 석수를 보내주고 음부와 간부를 함께 끌고 오면, 우리는 퇴각하여 전쟁을 끝내고 다시 쳐들어오지 않겠다고 맹세하마! 하지만 만약 깨닫지 못하고 고집을 부리다가, 언덕에 불길이 치솟으면 옥과 돌이 모두 불타게 될 것이다. 이미 눈앞에 다가왔으니, 할 말이 있으면 빨리 하고 꾸물대지 마라!”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문달이 크게 노하여 장수들에게 물었다.
“누가 저 도적놈을 잡아 오겠느냐?”
이성의 등 뒤에서 말방울 소리가 울리면서 한 대장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북경의 상장 삭초였다. 그는 성질이 급해서 사람들이 ‘급선봉’이라 불렀다. 삭초가 진 앞으로 나와 큰 소리로 외쳤다.
“네놈은 원래 조정의 관리였는데, 국가가 네놈에게 뭔 해를 끼쳤다고 도적이 되었단 말이냐! 내 오늘 너를 붙잡아 만 조각으로 찢어 버릴 것이니, 죽더라도 날 원망하지 마라!”
진명 또한 성질이 급한 사람이라, 삭초의 말을 듣자마자 마치 화롯불에 숯을 집어넣고 불 위에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말을 박차고 낭아곤을 휘두르며 곧장 달려 나갔다. 삭초도 말을 몰고 나와 진명과 맞붙었다. 두 필의 사나운 말이 서로 뒤엉키고 두 무기가 서로 부딪치자, 양군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20여 합을 싸웠는데 승부가 나지 않았다.
송강의 중군 선봉대 안에서 한도가 나와 말 위에서 활을 당겨 삭초를 향해 화살을 날렸다. 화살은 삭초의 왼쪽 팔에 명중했다. 삭초는 도끼를 내던지고 말을 돌려 본진으로 달아났다. 송강이 채찍으로 가리키자 삼군이 일제히 돌격했다. 시체가 들판에 깔리고 흐르는 피가 강을 이루었다. 관군은 대패하여 유가를 지나 괴수파 영채까지 빼앗겼다. 그날 저녁 문달은 비호욕까지 후퇴하여 군병을 점검해 보니, 삼분지 일을 잃었다.
송강은 괴수파 영채에 둔병하였다. 오용이 말했다.
“군병이 패주하게 되면 반드시 마음속에 겁이 생깁니다. 이런 기세를 타고 추격하지 않으면 적이 다시 용기를 기르게 될 겁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이기기 어렵습니다.”
송강이 말했다.
“군사의 말이 옳습니다.”
송강은 즉시 명을 내려, 정예병을 네 길로 나누어 밤을 새워 성으로 진격하게 하였다.
한편, 비호욕으로 후퇴한 문달은 마치 상갓집 개처럼 허둥지둥하고 마치 막 그물에서 벗어난 물고기 마냥 마음이 조급했다. 영채 안에서 계책을 상의하고 있는데, 장교가 와서 보고했다.
“인근 산 위에 횃불이 올랐습니다!”
문달이 말에 올라 군병을 거느리고 나가 보니, 동쪽 산 위에 횃불이 수없이 일어나면서 온 산과 들판을 붉게 밝혔다. 문달이 군병을 이끌고 적을 맞이하러 가는데, 산 뒤편에서 군마가 달려 나왔다. 앞장선 장수는 소이광 화영이었고, 부장 양춘과 진달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문달은 어찌할 바를 몰라 군병을 이끌고 비호욕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서쪽 산 위에서 횃불이 수없이 일어나면서 쌍편 호연작이 부장 구붕과 등비를 이끌고 공격해 왔다. 뒤편에서 또 함성이 일어나면서 벽력화 진명이 부장 한도와 팽기를 이끌고 추격해 왔다.
문달의 군마는 혼란에 빠져 목책을 뽑고 달아나는데, 앞쪽에서 함성이 또 일어나고 불빛이 환해졌다. 굉천뢰 능진이 조수들을 데리고 오솔길에서 비호욕을 향해 포를 발사한 것이었다. 문달은 군병을 이끌고 길을 뚫고 성을 향해 달아났다. 앞쪽에서 북소리가 울리면서 한 떼의 군마가 나타나 길을 가로막았다. 횃불이 환한 가운데 표자두 임충이 부장 마린과 등비를 이끌고 나타나 길을 가로막은 것이었다.
사방에서 북이 일제히 울리고 불길이 치솟자, 관군들은 각자 살길을 찾아 어지럽게 달아났다. 문달은 대도를 휘두르며 길을 뚫고 달아나다가 마침 이성을 만나 병력을 합쳐, 한편으로 싸우면서 한편으로는 달아났다. 날이 밝을 무렵 성 아래에 당도하였다.
양중서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놀라 혼이 달아날 지경이었다. 황급히 군사를 점검하여 성을 나가 패잔병을 접응하여 들어오게 하고, 성문을 닫아걸고 수비만 할 뿐 출전하지 않았다.
다음 날, 송강의 군마가 동문 앞에 하채하고 성을 공격할 준비를 했다.
한편, 양중서는 유수사에서 사람들을 모아 상의했다. 이성이 말했다.
“적병이 성 앞에 당도했으니 일이 매우 급합니다. 지체하다간 필시 함락될 것입니다. 상공께서는 위급을 고하는 서신을 써서 심복을 경성으로 보내 채태사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리고 조정에 아뢰어 정병을 보내 구원하면, 그것이 상책입니다.
두 번째로는 급히 공문을 작성하여 인근 고을로 보내 구원군을 보내 달라고 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는 북경성 안의 장정들을 성 위로 불러올려 동심으로 협력하여 성을 지켜야 합니다. 뇌목과 포석, 강궁과 쇠뇌, 재를 담은 병과 쇳물 등을 준비하여 밤낮으로 방비하면 성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양중서가 말했다.
“서신은 당장 쓸 수 있는데, 누가 가지고 가겠는가?”
그날 왕정이 밀서를 받아 갑옷을 입고 몇 명의 마군을 데리고 성문을 나가 동경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인근 고을에도 사람을 보내 구원병을 요청하였다. 왕태수는 장정을 모아 성 위에 올라가 지키게 하였다.
한편, 송강은 장수들을 배정하여 군사를 이끌고 성을 포위하고서 동·서·북 삼면에 하채하고 남문만 비워 두게 하였다. 매일 성을 공격하는 한편, 산채에 군량을 재촉하여 장기적으로 둔병하면서 북경성을 격파하고 노준의와 석수를 구할 계책을 세웠다.
이성과 문달은 연일 병력을 이끌고 성을 나가 교전하였지만, 승전하지 못했다. 삭초는 화살에 맞은 상처가 아직 낫지 않고 있었다.
한편, 왕정은 밀서를 가지고 동경 태사부에 당도하였다. 문지기가 알리자, 채태사는 왕정을 불러들였다. 왕정이 후당으로 들어가서 절을 하고 밀서를 올렸다. 채태사는 서신을 읽고서 크게 놀라, 자세한 것을 물었다. 왕정이 노준의 사건을 자세히 아뢰고 나서 말했다.
“지금 송강이 병력을 이끌고 와서 성을 포위했는데, 그 세력이 너무 커서 대적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유가·괴수파·비호욕 세 곳에서 벌어진 전투에 대해서도 자세히 애기했다. 채경이 말했다.
“피곤할 테니, 자네는 역관에 가서 쉬고 있게. 내가 관원들을 모아 상의해 보겠네.”
왕정이 다시 아뢰었다.
“태사님! 지금 북경성은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해 있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습니다. 만약 북경성이 무너지면 하북의 다른 고을들도 위험해집니다. 태사께서는 빨리 구원병을 보내 도적을 물리쳐 주십시오!”
채경이 말했다.
“여러 말할 필요 없네. 자네는 물러가게.”
왕정이 물러가자, 채태사는 즉시 추밀원에게 사람을 보내 군사기밀을 상의할 일이 있으니 급히 모이라고 전하였다. 얼마 후, 추밀사 동관을 비롯한 관원들이 절당에 모였다. 채경은 북경성의 위급을 자세히 설명하고 말했다.
“지금 어떤 계책으로, 어떤 장수를 기용해야 적병을 물리치고 북경성을 지킬 수 있을까요?”
채경이 말을 마치자, 관원들은 두려운 얼굴빛으로 서로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때 병마를 관장하는 병마보의사 선찬(宣贊)이 앞으로 나섰다. 이 사람은 날 때부터 얼굴이 솥 밑바닥처럼 시커멓고 콧구멍은 하늘을 향하고 고수머리에 붉은 수염이 나 있었다. 신장은 8척에 표범 같은 체격을 지녔으며, 강철 칼인 강도(鋼刀)를 사용하는데 무예가 출중했다.
이전에 왕부(王府)의 사위인 군마(郡馬)였으므로, 사람들이 ‘못 생긴 왕의 사위’ ‘추군마(醜郡馬)’라 불렀다. 화살로 이민족 장수와 싸워 이기자, 군왕(郡王)이 그의 무예를 총애하여 사위가 삼았었는데, 군왕의 딸이 그의 추한 외모에 한을 품고 죽었다. 그래서 다시 중용되지 못하고 병마보의사에 머물러 있었다.
동관은 아첨하는 무리라, 자신의 능력이 선찬에 미치지 못하므로 항상 그를 시기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선찬이 채태사에게 아뢰었다.
“소장이 고향에 있을 때 알던 사람이 있는데, 한나라 말기 삼국시대 관우의 적파자손으로 관승(關勝)이라 합니다. 생김새가 조상인 관운장과 비슷하고 청룡언월도를 사용하므로 사람들이 대도(大刀) 관승이라 부릅니다. 현재는 포동의 순검으로 말단관료에 불과하지만, 어릴 때부터 병서를 읽고 무예에도 정통하며, 만 사람도 당할 수 없는 용맹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사람을 예로써 초빙하여 상장을 삼는다면, 양산박을 청소하고 미친 무리들을 전멸시켜 보국안민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채경은 그 말을 듣고서 크게 기뻐하며, 선찬을 사자로 삼아 공문과 예물, 말을 가지고 가서 예로써 관승을 불러오게 하였다.
선찬은 공문을 받고 수행원 서너 명을 데리고 말에 올라 출발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포동의 순검사에 당도하였다. 그날 관승은 마침 관아에서 학사문(郝思文)과 고금의 흥망성쇠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동경에서 사자가 왔다는 말을 듣고 관승은 황망히 학사문과 함께 나와 영접하였다. 인사를 나눈 다음 대청에 올라가 좌정하고, 관승이 물었다.
“오랫동안 자네를 보지 못했는데, 오늘은 무슨 일로 이렇게 멀리까지 친히 왔는가?”
선찬이 말했다.
“양산박 도적들이 북경을 공격하고 있는데, 제가 태사의 면전에서 형님은 나라를 안정시킬 계책과 적병을 항복시키고 적장을 참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극력 천거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조정의 칙령과 태사의 명을 받들어 예물과 말을 가지고 형님을 초청하러 왔습니다. 형님께서는 물리치지 마시고 행장을 수습하여 함께 경성으로 가시지요.”
관승은 듣고서 크게 기뻐하며, 선찬에게 말했다.
“여기 이 아우는 학사문으로 나의 의형제일세. 그의 모친께서 정목안(井木犴)이라는 별자리가 모태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잉태하여, 사람들이 정목안이라 부르네. 이 아우는 18반 무예를 못하는 것이 없네. 이제 태사의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 아우도 함께 가서 힘을 합쳐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선찬은 흔쾌히 응낙하고, 출발을 재촉했다. 관승은 가족들에게 뒷일을 분부하고, 학사문과 함께 관서의 호걸 10여 명을 거느리고 선찬을 따라 출발했다.
동경에 당도하여 곧장 태사부로 가서 말에서 내렸다. 문지기가 채태사에게 알리자, 들어오라고 하였다. 선찬이 관승과 학사문을 절당으로 인도하여 절을 하고 계단 아래 시립하였다. 채경이 관승을 보니, 키는 8척 5~6촌에 위풍당당한 체격이었다. 세 가닥의 수염을 길렀고, 양 눈썹이 귀밑머리까지 뻗었으며, 봉의 눈을 지녔고 대춧빛 같은 검붉은 얼굴에 입술은 주사(朱砂)를 바른 듯 붉었다.
채태사는 크게 기뻐하며 물었다.
“장군의 나이는 몇이오?”
관승이 대답했다.
“소장은 32살입니다.”
“양산박 도적들이 북경성을 포위 공격하고 있는데, 장군은 어떤 계책으로 그 포위를 풀 수 있겠소?”
“오래전부터 도적들이 양산박을 점거하여 백성을 놀라게 한다는 것을 들어 왔습니다. 지금 그놈들이 함부로 소굴을 벗어났으니, 그건 화를 자초한 것입니다. 하지만 북경을 직접 구원하는 것은 인력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정병 수만 명을 내주시면, 먼저 양산박을 취한 다음에 도적놈들을 잡음으로써 머리와 꼬리가 서로 돌아보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채태사는 듣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선찬에게 말했다.
“위나라를 포위함으로써 조나라를 구하는 계책이오. 내 뜻과 합치되오.”
즉시 추밀원 관원을 불러 산동과 하북의 정예병 1만5천을 동원하게 하고, 학사문을 선봉으로, 선찬을 합후(合後)로, 관승을 지휘사로 임명하였다. 보군태위 단상은 군량을 접응하게 하였다. 상을 내려 삼군을 위로하고 날을 정해 출발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