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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60화

노준의는 크게 노하여 박도를 들고 이규에게 달려들었다. 이규도 쌍도끼를 휘두르며 대적하였다. 두 사람이 싸운 지 3합도 되지 않았는데, 이규가 펄쩍 뛰어 사정권 밖으로 벗어나더니 몸을 돌려 숲속으로 달아났다. 노준의가 박도를 들고 추격했다.

이규는 숲속에서 이리저리 피해 다니면서 노준의의 성질을 돋우더니, 소나무 숲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노준의도 따라서 뛰어 들어갔지만,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몸을 돌리려고 하는데, 소나무 숲 옆에서 한 무리가 나오면서 앞장선 사람이 크게 소리쳤다.

원외는 달아나지 마라!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노준의가 보니, 뚱뚱한 덩치 큰 중이 검은 장삼을 입고 철선장을 거꾸로 들고 있었다. 노준의가 소리쳤다.

넌 어디서 온 중놈이냐!”

노지심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화화상 노지심이다! 군사의 명을 받고 원외를 산 위로 맞이하러 왔다!”

노준의는 마음이 초조하여 욕을 해댔다.

민대가리놈이 어찌 이렇게 무례하냐!”

박도를 들고 곧장 노지심에게 달려들었다. 노지심도 선장을 휘두르며 대적했다. 두 사람이 싸운 지 3합도 되지 않았는데, 노지심이 박도를 밀쳐내고 몸을 돌려 달아났다. 노준의가 추격했다.

한참 추격하고 있는데, 졸개들 가운데서 행자 무송이 뛰쳐나와 두 자루의 계도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노준의는 노지심을 쫓지 않고 무송과 싸웠다. 3합이 되지 않았는데, 무송이 달아났다. 노준의는 하하하웃으며 말했다.

네놈을 추격하지 않겠다! 네놈들은 어찌 다 요 모양이냐!”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산비탈 아래에서 한 사람이 나오더니 소리쳤다.

노원외! 생각이 모자라는군! ‘사람은 시궁창에 빠지는 걸 두려워하고, 쇠는 용광로에 빠지는 걸 두려워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 우리 형님이 계책을 이미 계책을 정해 놓았는데, 당신이 어디로 달아나겠소!”

노준의가 소리쳤다.

네놈은 누구냐!”

그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적발귀 유당이다!”

노준의가 소리쳤다.

도적놈아! 달아나지 마라!”

박도를 들고 유당에게 달려들었다. 3합쯤 싸웠는데, 비탈길에서 한 사람이 내려오며 소리쳤다.

몰차란 목홍이 여기 있다!”

유당과 목홍이 박도를 들고 함께 노준의와 싸웠다. 싸운 지 5합이 채 안 됐는데, 등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노준의가 소리쳤다.

받아라!”

그 소리에 유당과 목홍이 몇 걸음 물러서자, 노준의는 몸을 돌려 뒤에서 다가온 사람과 싸웠다. 그는 박천조 이응이었다. 세 두령이 자로 포위하였는데, 노준의는 전연 당황하지 않고 싸울수록 더 강해졌다. 한창 싸우고 있는데, 산정에서 징소리가 울리자 세 두령은 파탄 난 척하며 일제히 발을 빼고 달아났다.

노준의는 싸우느라 온몸이 땀에 젖어 더 이상 추격하지 않았다. 숲속에서 나와 수레와 일행을 찾았는데, 열 대의 수레와 일행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노준의가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았더니, 멀리 산비탈 아래에 한 무리의 졸개들이 수레를 끌고 가는데 이고 등은 줄줄이 밧줄에 묶여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노준의는 그 광경을 보고 가슴 속에서 불길이 치솟아 연기가 날 지경이었다. 박도를 들고 곧장 달려갔다. 거의 산비탈까지 달려갔는데, 두 사내가 나타나 소리쳤다.

어딜 가시나!”

미염공 주동과 삽시호 뇌횡이었다. 노준의가 그들을 보고 큰 소리로 욕을 했다.

! 이 도적놈들아! 내 수레와 인마를 돌려주는 것이 좋을 거다!”

주동이 손으로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크게 웃고는 말했다.

노원외! 아직도 무슨 일인지 깨닫지 못했소? 이미 우리 군사의 묘계에 빠졌으니, 설혹 날개가 생겨 날아간다 해도 벗어날 수 없소. 얼른 산채로 가서 두령 자리에나 앉으시오.”

노준의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박도를 들고 곧장 두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주동과 뇌횡도 무기를 들고 맞섰다. 싸운 지 3합이 안 됐는데, 둘은 몸을 돌려 달아났다. 노준의는 생각했다.

한 놈이라도 따라가 잡아서 수레와 바꿔야겠다.”

목숨을 걸고 산비탈을 돌아 쫓아갔지만, 그 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산정에서 북소리와 피리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바람에 살굿빛 깃발이 나부끼는데 체천행도(替天行道)’ 네 글자가 수 놓여 있었다. 다시 또 고개를 돌려보니, 붉은 비단 우산 아래에 송강이 있는데, 왼쪽에는 오용, 오른쪽에는 공손승이 있었다. 일행 2백여 명이 일제히 인사했다.

원외님! 별래무양하십니까?”

노준의는 그걸 보고 더욱 노하여 손가락질을 하며 욕을 했다. 오용이 말했다.

원외께서는 잠시 노여움을 가라앉히십시오. 송공명께서 오래 전부터 원외의 위명을 사모하여 특별히 이 오용에게 직접 가서 찾아뵙고 산으로 모시고 올라와, 함께 하늘을 대신해 도를 행하자고 하셨습니다. 하오니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노준의가 큰 소리로 꾸짖었다.

더러운 도적놈아! 어찌 감히 나를 속였느냐!”

송강의 등 뒤에서 소이광 화영이 나오더니, 활에 화살을 얹고서 노준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노원외! 잘난 척하지 마시오! 우선 화영의 신전(神箭)이나 구경하시오!”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화살이 피잉바람소리를 내며 날아와, 노준의가 머리에 쓰고 있는 삿갓의 붉은 술을 명중시켜 끊어 버렸다. 노준의는 깜짝 놀라 몸을 돌려 달아났다. 산 위에서 북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면서, 벽력화 진명과 표자두 임충이 한 떼의 군마를 이끌고 깃발을 흔들고 함성을 지르면서 산 동쪽에서 달려 나왔다. 또 쌍편 호연작과 금쟁수 서녕이 한 떼의 군마를 이끌고 깃발을 흔들며 함성을 지르면서 산 서쪽에서 달려 나왔다. 깜짝 놀란 노준의는 어디로 달아나야 할지 몰랐다.

하늘은 점점 어두워지는데 다리는 아프고 배도 고팠지만, 당황하여 큰 길로 가지 못하고 산간의 오솔길로 무작정 달아났다. 황혼 무렵이 되자 연무가 물처럼 깔리고 짙은 안개가 산을 감추어 달빛도 별빛도 희미하여 풀밭조차 구분되지 않았다.

한참 가다 보니 하늘 끝인지 땅끝인지도 모르는 곳에 당도하였다. 노준의는 알 수 없었지만, 그곳은 압취탄이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갈대꽃만 무성한데 연무가 물 위에 아득히 어려 있었다. 노준의는 그걸 보고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내가 남의 말을 듣지 않아 오늘 이런 낭패를 당하는구나!”

근심하고 있는데, 갈대숲 속에서 어부가 작은 배를 저어 오는 것이 보였다. 어부가 배를 멈추더니 소리쳤다.

나리는 참으로 대담하시오! 여기는 양산박 도적들이 출몰하는 곳인데, 한밤중에 어찌하여 이리로 오셨소!”

노준의가 말했다.

내가 길을 잃어 숙박할 곳을 찾지 못했는데, 나 좀 구해 주시오!”

이곳에서 크게 돌아 나가면 마을이 하나 있는데, 30리쯤 가면 됩니다. 하지만 길이 복잡해서 찾기가 어렵습니다. 수로로 가면 4~5리밖에 안 되니, 10관만 주시면 제가 배로 모셔다 드리지요.”

나를 건네주고 마을의 객점을 찾아주면, 은자를 더 드리겠소.”

어부가 물가에 배를 대고 노준의를 부축해 태우고는, 삿대로 배를 밀어 나아갔다. 4~5리쯤 갔는데 앞의 갈대숲 속에서 노 젓는 소리가 나더니 작은 배 한 척이 나는 듯이 다가왔다. 배 위에는 두 사람이 있었는데, 앞에 있는 사람은 웃통을 벗은 채 삿대를 들고 있었고 뒤에 있는 사람은 노를 젓고 있었다. 앞에 있는 사람이 삿대를 가로로 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내 평생 시서를 읽은 적이 없어

양산박에 와서 사노라.

활을 준비하여 맹호를 쏘고

향기로운 미끼로 자라를 낚는다네.

 

노준의는 노래를 듣고 깜짝 놀라, 감히 소리를 내지 못했다. 또 오른쪽 갈대숲에서 두 사람이 한 척의 작은 배를 타고 나오는데, 뒤에서 노를 젓는 사람은 끼이익하는 노 움직이는 소리를 내고 앞에 있는 사람은 삿대를 가로로 들고 노래를 불렀다.

 

세상에 태어나 부랑자 되고

타고난 성질은 살인을 좋아하네.

황금 만 냥도 원하지 않고

오로지 옥기린을 잡고 싶은 마음뿐이네.

 

노준의는 노래를 듣고 속으로 아이고!’ 비명을 질렀다. 물 한 가운데에 또 한 척의 작은 배가 나는 듯이 다가오고 있는데, 뱃머리에 서 있는 사람이 삿대를 거꾸로 들고 노래를 불렀다.

 

갈대꽃 무성한 가운데 일엽편주

준걸이 문득 이곳에 와서 노니네.

의사가 이 이치를 알 수 있다면

돌이켜 보고 재난을 피하여 근심이 없을 것이라.

 

노래가 끝나자, 세 척의 배에 탄 사람들이 일제히 인사를 했다. 중간에는 완소이, 왼쪽에는 완소오, 오른쪽에는 완소칠이었다. 세 척의 배가 일제히 다가오자, 노준의는 깜짝 놀라며 자신은 헤엄을 칠 줄 모른다는 것을 생각해내고, 어부에게 연신 소리쳤다.

빨리 배를 물가에 대 주시오!”

어부는 하하하웃으며 노준의에게 말했다.

위로는 파란 하늘이요, 아래로는 푸른 물이로다. 나는 심양강에서 태어나 양산박에 올라왔는데, 이름도 바꾸지 않고 성도 바꾸지 않은 혼강룡 이준이오. 원외가 투항하지 않는다면 헛되이 목숨을 잃을 것이오!”

노준의가 크게 놀라 소리쳤다.

네놈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을 것이다!”

박도를 들고 이준의 가슴을 향해 찔렀다. 이준은 노를 등 뒤에 짚고서 훌쩍 공중제비를 돌아 물속으로 들어갔다. 배는 물 위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노준의는 박도로 물속을 이리저리 찔러댔다. 고물 쪽에서 한 사람이 물속에서 솟아 나오더니 소리쳤다.

나는 낭리백조 장순이다!”

장순이 손으로 배 끝을 잡고 누르며 발로 수면을 치자, 배가 뒤집어지면서 영웅은 물속에 빠지고 말았다.

노준의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물에서는 어찌할 수 없었다. 낭리백조 장순이 배를 뒤집는 바람에 물에 빠졌는데, 장순이 물속에서 허리를 껴안고 물가로 헤엄쳐 갔다. 횃불이 켜지면서 5~60명의 사람들이 물가에 대기하고 있다가, 노준의를 둘러쌌다. 요도를 풀고 젖은 옷을 다 벗긴 다음 밧줄로 묶으려 하는데, 신행태보 대종이 나타나 소리쳤다.

노원외를 다치게 하지 마라!”

즉시 한 사람이 비단옷을 가지고 와서 노준의에게 입히고, 여덟 명의 졸개가 가마를 가지고 와서 노준의를 태우고 갔다. 멀리서 한 떼의 인마가 2~30개의 홍사등롱을 들고 북을 울리면서 다가와 영접하였다. 앞장선 사람은 송강·오용·공손승이었고 뒤에는 여러 두령들이 따르고 있었는데, 노준의를 보고 일제히 말에서 내렸다. 노준의도 황망히 가마에서 내렸다. 송강이 먼저 무릎을 꿇자, 뒤에 있던 두령들도 모두 무릎을 꿇었다. 노준의 역시 무릎을 꿇고 말했다.

이미 사로잡힌 몸이니 얼른 죽여주십시오!”

송강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원외께서는 가마에 오르시지요.”

두령들도 일제히 말에 올라, 북을 울리면서 세 개의 관문을 지나 곧장 충의당으로 갔다. 노준의를 대청 위로 청했는데, 등촉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송강이 앞으로 나와 사과하며 말했다.

원외의 큰 이름을 오래 전부터 우레처럼 들어 왔습니다. 오늘 다행히 이렇게 뵙게 되었으니, 평생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여러 형제들이 모독했던 일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용도 앞으로 나와 말했다.

지난번에 형님의 명을 받들어 운수점을 봐준다는 핑계로 원외를 속여 산으로 올라오시게 한 것은, 하늘을 대신해 함께 도를 행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송강이 노준의에게 첫째 자리에 앉기를 청하자, 노준의가 답례하고서 말했다.

재주도 없고 무식하며 무능한 자가 호랑이 같은 위세를 잘못 범했으니, 만 번 죽어도 마땅한데 무슨 연고로 이렇게 놀리십니까?”

송강이 웃으며 말했다.

어찌 감히 놀리겠습니까? 참으로 원외의 덕을, 굶주리며 밥을 찾듯이 갈증이 나서 물을 찾듯이 갈망해 왔습니다. 비록 누추한 곳이지만 버리지 마시고 산채의 주인이 되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희들은 아침저녁으로 엄명을 받들고자 합니다.”

노준의가 대답했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참으로 명을 따르기는 어렵습니다.”

오용이 말했다.

내일 다시 상의하시지요.”

연회를 열어 술과 음식을 대접하였다. 노준의는 하는 수 없이 술을 마셨다. 졸개들이 후당으로 안내하여 휴식을 취하게9 하였다.

다음 날, 송강은 양과 말을 잡게 하고 연석을 마련하여 노준의를 청하였다. 술이 몇 순배 돌아간 후 송강이 잔을 잡고 일어서서 말했다.

어젯밤 무례를 범한 것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산채가 협소하여 머무시기에 적합하지 않지만, 원외께서는 충의두 글자만 봐 주십시오. 송강이 진정으로 자리를 양보하고자 하니 물리치지 마십시오.”

노준의가 대답했다.

두령께서 틀렸습니다! 저는 지은 죄도 없고 가산도 제법 있습니다. 살아서는 대송의 사람이요, 죽어서는 대송의 귀신이 될 겁니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그 말을 따르지는 못하겠습니다.”

오용을 비롯한 여러 두령들이 한 사람씩 권했지만, 노준의는 결코 도적이 되려 하지 않았다. 오용이 말했다.

원외께서 원치 않으시니 어찌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원외의 몸은 붙잡아 둘 수 있지만, 원외의 마음을 붙잡을 수는 없겠지요. 다만 원외께서 어렵게 이곳에 오셨으니, 입당하지 않으시더라도 며칠간 머무시기를 청합니다. 며칠 후에 댁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노준의가 말했다.

제가 여기에 머무는 것은 괜찮지만, 집의 가족들이 소식을 몰라 걱정할 겁니다.”

그건 쉬운 일입니다. 먼저 이고와 수레를 돌려보내면, 원외께서는 며칠 있다 가셔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오용이 이고에게 물었다.

이도관! 당신네 수레와 화물은 모두 있습니까?”

이고가 응답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있습니다.”

송강은 큰 은덩어리 두 개를 가져오게 하여 이고에게 주고, 작은 은덩어리 두 개는 일꾼에게 주었으며, 열 명의 수레꾼에게도 은자 열 냥씩을 나누어주었다. 그들은 감사인사를 했다. 노준의가 이고에게 분부했다.

내가 곤경에 처했음은 너희들도 잘 알 것이다. 집에 돌아가면 아내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라. 4~5일 후에는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고는 단지 탈출할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에 두 말 없이 응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이고는 노준의를 작별하고 충의당을 내려갔다. 오용이 일어나 말했다.

원외께서는 마음 놓으시고 잠시 앉아 계십시오. 제가 이도관을 산 아래까지 전송하고 오겠습니다.”

오용은 이고를 보내고, 먼저 금사탄에 가서 기다렸다. 잠시 후 이고가 일꾼들과 수레를 가지고 산에서 내려오자, 오용이 졸개 5백 명으로 하여금 그들을 양쪽으로 에워싸게 하고 이고를 가까이 불러 말했다.

너의 주인은 이미 우리와 상의하여 둘째 두령 자리에 앉기로 결정했다. 이는 주인이 산에 올라오기 전에 미리 집안의 벽에 반시(反詩)로 써 놓았던 일이다. 내가 너에게 가르쳐 주겠다. 벽 위에 써놓은 28자에서 각 구절의 앞글자만 따서 이어붙이면 노준의반(盧俊義反)’이 된다. 이번에 산에 올라오게 된 까닭을 너희들이 어찌 알겠느냐? 본래는 너희들을 모두 죽여 양산박의 비열함을 드러내고자 했던 것이다. 오늘 너희들을 풀어줄 터이니, 밤을 새워 돌아가되 너희 주인이 돌아오리라고는 생각지 마라!”

이고 등은 단지 절을 하기만 하였다. 오용은 그들을 배에 태워 건네주게 하였다. 이고 일행은 서둘러 북경으로 돌아갔다. 마치 물고기가 낚싯바늘에서 벗어나 꼬리와 머리를 흔들며 도망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오용은 충의당으로 돌아와 다시 연석에 앉아, 교묘한 말로 노준의를 유인하고자 하였다. 밤중이 되어 연회를 마치고 헤어졌다.

다음 날, 산채에서 다시 연회를 열었다. 노준의가 말했다.

여러 두령들의 호의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저는 하루가 1년 같으니, 오늘은 작별을 고할까 합니다.”

송강이 말했다.

재주도 없는 제가 원외를 알게 된 건 천행입니다. 내일 송강이 작은 술자리를 마련하여 얼굴을 맞대고 마음속 얘기를 나누어 보고자 하니, 거절하지 마십시오.”

그날 하루가 지나고, 다음 날 송강이 노준의를 초청했다. 그 다음 날에는 오용이, 또 그 다음 날에는 공손승이 초청했다. 그렇게 상급 두령 30여명이 매일 돌아가면서 노준의를 술자리에 초청하였다.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덧 1개월이 지나갔다. 노준의가 다시 작별을 고하자, 송강이 말했다.

억지로 붙잡아 두려는 것이 아닌데, 어찌 그리 급하게 돌아가려 하십니까? 내일 충의당에서 송별연 자리를 마련하지요.”

다음 날, 송강이 사적으로 송별연을 열자, 다른 두령들이 모두 말했다.

형님이 원외를 십분 공경하신다면, 우리는 십이분 공경합니다! 형님 송별주만 받아 마시고, 우리 송별주는 안 마시겠단 겁니까!”

이규가 소리쳤다.

내가 목숨 걸고 북경까지 가서 당신을 초청했는데, 우리 형제들의 송별주를 안 마신다고? 나랑 당신이랑 눈썹을 치켜세우고 죽기 살기로 한번 붙어 볼까!”

오용이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거칠게 손님을 청하는 것은 본 적이 없네. 원외께서는 너무 나무라지 마시고, 여러 사람들의 성의를 봐서 며칠만 더 머물다 가시지요.”

그렇게 해서 또 생각지도 않게 4~5일이 지나갔다. 노준의는 이번에야말로 단단히 마음을 먹고 떠나고자 했다. 그러자 신기군사 주무가 일반 두령들을 이끌고 충의당으로 와서 말했다.

우리가 비록 서열은 낮지만 형님을 위해 힘을 다했는데, 우리 술에는 독약이라도 탔단 말입니까? 노원외께서 우리 술만 꺼려하신다면, 저야 뭐 괜찮지만 아우들이 뭔 일을 저지를까 염려됩니다. 그때는 후회해도 늦을 겁니다.”

오용이 일어나서 말했다.

자네들은 걱정하지 말게. 내가 원외께 며칠 더 머무시라고 권하면 되지 않겠나? 속담에 이르기를, ‘술을 권하는 데에는 악의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노준의는 거절할 수 없어 또 며칠을 머물렀다. 이렇게 하여 4~50일이 지났다. 북경을 떠날 때에는 5월이었는데, 어느새 양산박에서 두 달을 보내고 선선한 바람이 불고 찬 이슬이 내리는 중추절이 다가왔다.

노준의는 돌아갈 생각밖에 없어 송강에게 하소연했다. 송강은 노준의의 생각이 절박함을 보고 말했다.

알았습니다. 내일 금사탄에서 송별연을 열겠습니다.”

노준의는 크게 기뻐하였다.

다음 날, 처음 올 때 입었던 의복과 칼을 돌려주고 두령들이 산 아래까지 내려와 전송했다. 송강이 금은 한 쟁반을 건네자, 노준의가 거절하며 말했다.

제가 잘난 척하는 것이 아니라, 재물이라면 집에 제법 있습니다. 북경까지 갈 노자는 충분하니, 주시는 물건을 감히 받지 못하겠습니다.”

송강과 여러 두령들은 금사탄에서 작별하고 산채로 돌아갔다.

노준의는 열심히 걸어서 열흘 만에 북경에 당도했다. 날이 이미 저물어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객점에서 하룻밤을 쉬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노준의는 객점을 나와서 나는 듯이 성안으로 달려갔다. 1리도 채 못 갔는데, 찢어진 두건을 쓰고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이 노준의를 보자 땅에 엎드려 절을 했다. 노준의가 자세히 보니, 낭자 연청이었다. 노준의가 물었다.

네가 어찌하여 이런 꼴이 되었느냐?”

연청이 말했다.

여기는 말씀드릴 만한 곳이 아닙니다.”

노준의가 담장을 돌아가서 까닭을 묻자, 연청이 말했다.

주인님께서 떠나시고 보름이 지나지 않아 이고가 돌아와서 부인께 말하기를, ‘주인님께서 양산박 송강에게 귀순하여 둘째 두령 자리에 앉았습니다.’라고 말하고서는 곧장 관아로 가서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그놈과 부인이 한통속이 되어, 제가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다고 꾸짖으면서 문 밖으로 쫓아냈습니다. 게다가 의복을 비롯한 모든 것을 빼앗고 성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모든 친척과 친지들에게 분부하기를, 저를 받아들이는 자가 있으면 가산의 절반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를 관아에 고소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받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성안에서는 머물 곳이 없어 성 밖에서 매일 구걸하면서 잠시 암자에 몸을 피하고 있습니다. 양산박으로 주인님을 찾아갈까도 생각했지만, 감히 함부로 찾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만약 주인님께서 진짜 양산박에서 오셨다면, 제 말을 들으시고 다시 양산박으로 돌아가셔서 따로 상의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만약 그냥 성안으로 들어가시면 필시 올가미에 걸릴 것입니다.”

노준의가 소리쳤다.

내 아내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네놈은 그따위 방귀 뀌는 소리를 지껄이지 마라!”

연청이 또 말했다.

주인님께서 뒤통수에 눈이 없으신데 그걸 어찌 아시겠습니까? 주인님께서는 평소에 기력을 단련하는 데만 몰두하시고 여색을 가까이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부인은 오래 전부터 이고와 정을 통했습니다. 오늘 문을 밀고 들어가 보시면, 그들은 이미 부부가 되어 있을 겁니다. 주인님께서 가시면 필시 독수에 걸려들게 될 겁니다.”

노준의는 크게 노하여 연청을 꾸짖었다.

우리 가문은 5대째 북경에 살고 있어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까짓 이고 놈이 대가리가 몇 개나 된다고 감히 그런 짓을 한단 말이냐? 네놈이 못된 짓을 하다가 쫓겨나고서, 나한테 도리어 반대로 말하는 것이 아니냐! 내가 집에 가서 사실 여부를 알아볼 것이니, 네놈의 말이 사실이 아니면 네놈은 끝장날 줄 알아라!”

연청은 통곡하면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주인의 옷자락을 붙잡고 말렸다. 노준의는 연청을 발로 차 버리고 성큼성큼 걸어서 성안으로 들어갔다. 성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곧장 집으로 들어가니, 일꾼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이고가 황망히 달려 나와 영접하고, 대청 아래에서 엎드려 절을 했다. 노준의가 물었다.

연청은 어디 있느냐?”

이고가 대답했다.

주인님께서는 묻지 마십시오. 한 마디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듣고 노하실까 두려우니, 휴식을 취하신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부인 가씨가 병풍 뒤에서 울면서 나오자, 노준의가 말했다.

부인! 울지 마시오! 연청이가 어떻게 된 건지 말해 보시오.”

가씨가 말했다.

묻지 마세요. 천천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노준의는 마음속에 의심이 생겨 연청에 대해 집요하게 물었다. 이고가 말했다.

주인님께서 옷을 갈아입으시고 아침밥을 드신 후에 말씀드려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음식상이 차려지고 노준의가 막 젓가락을 드는데, 앞문과 뒷문에서 함성이 일제히 일어나며 2~3백 명의 공인들이 집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노준의는 깜짝 놀라 멍하니 바라보다가 공인들에게 포박을 당했다. 공인들은 한 걸음 뗄 때마다 곤봉으로 후려치면서 곧장 유수 앞으로 끌고 갔다.

그때 북경 유수 양중서는 공청에 좌정하고 있었는데, 호랑이나 이리 같은 관원 7~80명이 좌우에 두 줄로 늘어서 있었다. 노준의가 공청 앞에 끌려나오고, 가씨와 이고는 옆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대청 위에서 양중서가 크게 소리쳤다.

네놈은 북경의 양민으로서 어찌하여 양산박에 투항하여 도적이 되고 둘째 두령 자리에 앉았느냐? 지금 다시 온 것은 안팎으로 호응하여 북경을 치려고 하는 것이겠지! 이제 잡혀 왔으니 무슨 할 말이 있느냐!”

노준의가 말했다.

소인이 잠시 어리석었습니다. 양산박의 오용이 점괘를 봐주는 도사로 변장하여 집에 찾아와, 거짓말로 선량한 마음을 선동하여 미혹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그 말에 속아 양산박까지 갔다가 두 달간 연금되었는데, 오늘 다행히 그곳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결코 나쁜 뜻은 없었으니, 상공께서는 밝게 살펴 주십시오.”

양중서가 소리쳤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네가 양산박에서 그놈들과 뜻이 통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있을 수 있었겠느냐! 너의 아내와 이고가 제출한 고발장이 여기 있다. 이것이 거짓이냐?”

이고가 말했다.

주인님! 이제 이렇게 되었으니 자백하십시오. 집의 벽에 써 놓으신 반역시가 명백한 증거이니, 여러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씨가 말했다.

우리가 당신을 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때문에 우리까지 연루되는 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한 사람이 반역하면 구족을 멸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노준의가 대청 아래 무릎을 꿇은 채 억울함을 하소연하자, 이고가 말했다.

주인님이 억울하다고 하소연해도 소용없습니다. 진실은 없애기 어렵고 거짓은 쉽게 지워지는 법입니다. 빨리 자백하고 고통이나 면하도록 하시지요.”

가씨가 말했다.

여보! 거짓은 관아에서 통하지 않고, 진실은 막기 어려운 법입니다. 당신이 만약 일을 저질렀다면, 제 목숨도 끝장났을 겁니다. 사람에게는 정이 있지만, 곤장에는 정이 없어요. 당신이 자백하기만 하면, 약간의 처벌만 받게 될 거예요.”

이고가 이미 위아래로 돈을 썼기 때문에, 장공목(張孔目)이 아뢰었다.

저놈은 뻔뻔하고 고집이 센 놈이라, 맞지 않으면 자백하지 않을 겁니다.”

양중서가 말했다.

그 말이 옳다! 여봐라! 저놈을 매우 쳐라!”

좌우의 관원들이 노준의를 땅에 엎어놓고 다짜고짜 몽둥이로 두드려 팼다. 피부가 찢어지고 살이 터져 선혈이 줄줄 흘러내렸다. 서너 번이나 혼절했다. 노준의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였다.

내 운명이 비명횡사하리라는 것이 맞았구나! 자백하겠소!”

장공목은 즉시 진술서를 받아내고, 백 근짜리 칼을 씌워 사형수감옥에 가두었다. 관아 앞뒤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은 차마 눈뜨고 보지 못했다. 감옥에 들어가자 또 살위봉 30대를 맞고, 절급 앞에 끌려가 무릎을 꿇었다. 절급이 노준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넌 내가 누군지 아느냐?”

노준의가 그를 쳐다보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감옥을 관리하면서 망나니도 겸하고 있는 이 절급의 이름은 채복(蔡福)이고 북경 토박이였다. 실력이 고강하여 사람들은 무쇠팔철비박(鐵臂膊)’이라고 불렀다. 그 곁에는 친동생인 옥졸 채경(蔡慶)이 서 있었는데, 꽃가지 하나를 들고 다니는 걸 좋아해서 사람들이 일지화(一枝花)’라고 불렀다. 채경이 곤봉을 들고 형 옆에 서 있었는데, 채복이 말했다.

넌 이 사형수를 감방으로 데리고 가거라. 나는 집에 잠시 갔다 오겠다.”

채경이 노준의를 데리고 가고, 채복은 일어나 감옥 문을 나갔다. 관아 앞 담장 아래에 한 사람이 오고 있었는데, 손에는 밥통을 들고 있었고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채복이 알고 있는 낭자 연청이었다. 채복이 물었다.

자네가 어쩐 일인가?”

연청이 무릎을 꿇고 두 눈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절급 형님! 소인의 주인이신 노원외를 가련하게 여겨 주십시오. 억울하게 형벌을 받았는데 밥을 넣어드릴 돈도 없습니다. 소인이 성 밖에서 구걸하여 이 밥통 반밖에 얻지 못했지만, 이거라도 주인님의 굶주림을 채워드리고자 합니다. 절급형님께서 편리를 좀 봐주십시오!”

말을 마치자 눈물을 비 오듯 쏟으면서 땅에 엎드려 절을 했다. 채복이 말했다.

나도 이 일을 알고 있다. 자네가 직접 가서 먹여 드리게.”

연청이 사례하고 감옥 안으로 들어갔다.

채복이 다리를 건너가자, 다방 점원이 큰 소리로 인사하며 말했다.

절급님! 어떤 손님이 소인의 다방에서 절급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채복이 다방으로 들어가 보니, 이고였다. 인사를 나눈 다음, 채복이 말했다.

이도관께서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셨습니까?”

이고가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인의 일은 모두 절급님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오늘 밤에 후환을 깨끗이 처리해 주시면 황금 50냥을 드리겠습니다. 윗분들은 소인이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채복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관아의 경계석(警戒石)아래 백성은 학대하기 쉬우나, 위의 푸른 하늘은 속이기 어렵다.’라고 쓰여 있는 것을 못 봤소? 당신이 양심을 속이면서 하는 짓을 내가 모를 줄 아시오! 그의 가산을 가로채고 아내까지 빼앗고서는, 지금 황금 50냥으로 그의 목숨까지 끝장내려고 하려는 거요! 차후에 감사관이 오게 되면, 난 처벌을 피할 수 없을 것이오.”

적어서 불만이시면, 50냥을 더 드리겠습니다.”

이고! 고양이 꼬리를 자르겠다면서 고양이 밥을 빼앗아 내놓는 거요? 북경에서 유명한 노원외가 황금 백 냥 정도의 값어치밖에 안 나가단 말이오? 내가 그를 끝장나길 당신이 바란다면 나도 당신을 속이지 않을 터이니, 황금 5백 냥을 내놓으시오.”

일단 이것부터 받으시고 나머지는 곧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밤에 일만 잘 처리해 주십시오.”

채복은 황금을 받아 챙기고 일어나며 말했다.

내일 아침 시신이나 들고 가시오.”

이고는 사례하고 기뻐하며 돌아갔다.

채복이 집으로 돌아가 막 문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한 사람이 주렴을 들어 올리며 들어와 말했다.

채절급을 만나러 왔소.”

채복이 보니, 그는 용모가 준수하고 복장도 단정했다. 그가 문 안으로 들어와 채복을 보고 절을 하자, 채복도 황망히 답례를 하고 물었다.

누구십니까? 무슨 일로 저를 보자고 하십니까?”

안으로 들어가서 말씀드리지요.”

채복이 그를 밀실로 안내하여 좌정하자, 그가 말했다.

절급께서는 놀라지 마십시오. 저는 창주 횡해군 사람 시진입니다. 대주(大周) 황제의 적파자손으로 소선풍이라 불립니다. 의리를 좋아하고 재물을 가벼이 여겨 천하 호걸들과 사귀기를 좋아하는데, 불행히도 죄를 지어 지금은 양산박에 살고 있습니다.

이번에 송공명 형님의 명을 받들어 노원외의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그가 탐관오리와 음부(淫婦간부(奸夫)의 함정에 빠져 감옥에 갇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숨이 실에 매달린 것 같은데, 오직 족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특별히 댁으로 찾아온 겁니다. 노원외의 목숨만 살려주신다면 그 큰 은덕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착오가 생기면, 병력이 성 아래에 당도하여 현우(賢愚)와 노유(老幼)를 막론하고 모조리 참수할 것이오. 족하가 의리를 중시하고 충실한 호걸임을 오래 전부터 들어 왔습니다. 여기 황금 천 냥을 예물을 가져왔는데, 만약 이 시진을 체포하고 싶으면 당장 포박하십시오. 눈썹 하나 찡그리지 않겠습니다.”

채복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온몸에 식은땀이 흘러 한동안 응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진이 일어나며 말했다.

호걸이 일을 행할 때에는 주저하지 않아야 합니다. 결단을 내리시지요.”

채복이 말했다.

장사께서는 일단 돌아가십시오. 소인이 알아서 조치하겠습니다.”

시진이 절을 하며 말했다.

이미 승낙하셨으니 마땅히 큰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시진은 문을 나가 따라온 사람을 불러 황금을 채복에게 건네주게 하고, 인사하고 떠나갔다. 시진을 따라온 사람은 신행태보 대종이었다.

채복은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한동안 생각하다가, 감옥으로 가서 아우 채경에게 좀 전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채경이 말했다.

형님은 지금까지 결단을 잘 하셨는데, 이까짓 사소한 일이 뭐가 어렵습니까? 속담에 이르기를 사람을 죽이려면 피를 봐야 하고, 사람을 구하려면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미 황금 천 냥이 있으니, 우리가 아래위로 뇌물을 쓰면 됩니다. 양중서나 장공목은 모두 이익을 좋아하는 무리이니, 뇌물을 받아먹으면 필시 노준의의 목숨은 살려줄 겁니다. 그리고 어디로든 유배를 보내면, 그다음에 그를 구하느냐 구하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양산박 호걸들의 몫이고 우리가 할 일은 그걸로 끝입니다.”

채복이 말했다.

아우의 말이 내 뜻과 일치하네. 자네는 노원외를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쉬게 하고, 아침저녁으로 술과 음식을 대접하여 기력을 회복시키도록 하게. 그리고 이 소식도 전해 주게.”

채복과 채경은 상의가 정해지자, 몰래 황금으로 위아래를 매수하였다.

다음 날, 이고는 아무런 동정이 없자 채복의 집으로 찾아가 재촉했다. 채경이 말했다.

우리가 손을 써서 그를 끝장내려고 했는데, 상공이 허락하지 않고 또 사람을 보내 그를 살려두라고 분부하였소. 당신이 위에 뇌물을 써서 명령을 내리도록 부탁하면, 우리가 여기서 일을 처리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소?”

이고는 즉시 사람을 시켜 위에 뇌물을 썼다. 중간에 돈을 전하는 사람이 부탁하자, 양중서가 말했다.

그건 감옥의 절급이 할 일이니, 내가 손을 쓰기는 어렵다. 하루 이틀 지나서 그가 절로 죽도록 하면 되지.”

이렇게 양쪽에서 미루고, 장공목도 이미 황금을 받았기 때문에 문안을 가지고 시간만 질질 끌었다. 채복은 또 청탁을 하여 빨리 판결을 내려달라고 하였다. 장목공이 문안을 가지고 와서 아뢰자, 양중서가 말했다.

이 사건을 어떻게 판결하면 좋겠는가?”

장공목이 말했다.

제가 보건대, 노준의는 고발한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습니다. 비록 양산박에 오래 머물렀다 하더라도, 그건 잘못 말려든 것이지 진짜 죄를 범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곤장 40대를 때리고 3천리 밖으로 유배를 보내는 것이 적당할 것 같은데, 상공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공목의 견해가 아주 명쾌하여 내 뜻과 합치하네.”

즉시 채복을 불러 감옥에 있는 노준의를 대청 앞으로 끌어내오게 하였다. 칼을 벗기고 판결문을 읽어 준 다음, 곤장 40대를 때리고 20근짜리 철판 칼을 씌웠다. 동초와 설패로 하여금 사문도로 압송하게 하였다.

원래 동초와 설패는 개봉부의 관원이었는데, 임충을 창주로 압송하던 도중에 임충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돌아가, 고태위가 북경으로 유배를 보냈던 것이다. 양중서는 그들이 능력이 있음을 보고 유수사에서 일을 시키고 있었는데, 이번에 노준의를 압송하게 하였다.

동초와 설패는 공문을 수령하고서 노준의를 데리고 관아를 나와 사신방에 감금해 놓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 행장을 수습하여 길 떠날 준비를 했다.

한편, 이고는 이 사실을 알고 아이고!’ 비명을 지르며, 사람을 보내 두 압송관을 불러오게 하였다. 동초와 설패가 주점으로 들어가자, 이고가 맞이하여 자리에 앉아 술과 음식을 대접하였다. 술을 석 잔 마시고 나서, 이고가 말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노원외는 나의 원수입니다. 지금 사문도로 유배 가게 되었는데, 길은 멀고 그는 돈이 한 푼 없어 두 분이 노자를 낭비하게 될 겁니다. 빨리 갔다 온다 해도 서너 달은 걸릴 겁니다. 제가 다른 건 드릴 게 없고 은덩어리 두 개를 선금으로 드리겠습니다. 먼 길을 갔다 왔다 하지 마시고 한적한 곳에서 그를 끝장내 주십시오. 그리고 얼굴의 문신을 벗겨서 증거로 가져오시면, 두 분께 각각 황금 50냥씩을 드리겠습니다. 문서를 적당히 꾸며 유수사로 가져오시면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동초와 설패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한동안 생각하다가, 동초가 말했다.

그렇게는 못 하겠소.”

설패가 말했다.

형님! 이도관은 호남자이니, 우리가 이번 일로 서로 알고 지내게 되면 위급한 일이 있을 때 우리를 도와줄 겁니다.”

이고가 말했다.

나는 은혜를 잊고 의리를 저버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래도록 두 분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동초와 설패는 은자를 챙기고, 집으로 돌아가 행장을 꾸리고 밤에 길을 떠났다. 노준의가 말했다.

소인이 오늘 형벌을 받아 곤장을 맞은 상처가 너무 아프니, 내일 떠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설패가 말했다.

“x같은 주둥이 닥쳐라! 이 어르신이 네놈 같은 가난뱅이를 만나다니 운수가 사납구나! 사문도를 갔다 오려면 6천리가 넘는데, 노자가 얼마나 많이 들겠냐! 그런데 네놈은 땡전 한 푼 없으니 우리더러 어쩌란 말이냐!”

노준의가 하소연했다.

소인의 억울함을 생각하여 굽어살펴 주십시오.”

동초가 욕을 했다.

네놈 같은 부자들은 평소에 남을 위해 털 하나도 뽑지 않더니, 이제 하늘이 눈을 떠서 응보를 받게 되는구나! 원망하고 슬퍼하지 마라. 못 걷겠다면, 우리가 도와줄 수도 있지.”

노준의는 울분을 참고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동문을 나오자 동초와 설패는 옷 보따리와 우산을 노준의의 칼에 걸었다. 노준의는 일생을 부자로 살았지만, 지금은 죄수가 되어 어찌할 수가 없었다. 때는 늦가을이라 낙엽이 분분이 떨어지고 짝을 이룬 기러기들이 북쪽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리 소리는 더욱 마음을 울적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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