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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58화

관원이 노지심을 계단 아래 무릎 꿇리자, 하태수가 소리쳤다.

너 민대가리 놈은 어디서 왔느냐?”

노지심이 응답했다.

내가 무슨 죄를 범했소?”

너는 사실대로 말해라! 누가 너에게 나를 죽이라고 했느냐?”

(洒家)는 출가인인데, 어째서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하시오?”

태수가 소리쳤다.

조금 전에 네놈을 보니, 선장으로 내 가마를 치려고 하다가 다시 생각하더니 감히 손을 쓰지 못했지. 민대가리 놈아! 빨리 털어놓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난 당신을 죽이려고 하지 않았는데, 왜 나를 붙잡은 거요? 왜 아무 죄 없는 사람을 괜히 괴롭히는 겁니까?”

태수가 큰소리로 꾸짖었다.

출가인이 자신을 주가(洒家)’라고 칭하는 것은 본 적이 없다. 이 민대가리 놈은 필시 관서오로(關西五路)에서 민가를 약탈한 강도가 틀림없다. 사진이란 놈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온 것이다. 곤장 맛을 보지 않고서는 불지 않을 것이다. 여봐라! 이 민대가리 놈을 매우 쳐라!”

노지심이 소리쳤다.

이 어르신을 때릴 필요 없다. 내가 말하겠다. 나는 양산박의 호걸 화화상 노지심이다. 내가 맞아 죽은 것을 우리 형님 송공명이 알게 되면, 네놈들 대가리를 모조리 베어 버릴 것이다.”

하태수는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노지심을 심하게 팬 다음 큰 칼을 씌워 사형수 감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선장과 계도는 창고에 넣어 두었다. 이 일로 인해 화주 관아가 떠들썩했다. 졸개는 소식을 탐지하여 나는 듯이 산으로 달려가 보고했다.

무송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이 화주에 일이 있어 왔다가 한 사람을 잃었으니, 돌아가서 어떻게 여러 두령들을 볼 수 있겠는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산 아래에서 졸개가 올라와 보고했다.

양산박에 온 신행태보 대종이란 두령이 지금 산 아래에 와 있습니다.”

무송이 황망히 내려가 영접하여 산채로 올라와, 주무 등 세 두령에게 인사시켰다. 노지심이 말리는 걸 듣지 않고 갔다가 붙잡힌 사건을 얘기하자, 대종이 크게 놀라며 말했다.

내가 여기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되겠소! 곧장 양산박으로 가서 형님께 보고하고, 빨리 장병들을 파견하여 그를 구해야겠소.”

무송이 말했다.

저는 여기서 기다릴 테니, 형님은 빨리 갔다 오십시오.”

대종은 밥을 먹고서, 신행법을 써서 양산박으로 돌아갔다. 사흘 후에 산채에 도착하여, 조개와 송강에게 노지심이 사진을 구하려고 하태수를 죽이려다 붙잡힌 일을 얘기했다.

송강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두 형제가 위난에 처했으니, 어떻게 구해야 하나? 머뭇거릴 시간이 없으니, 인마를 점검하여 세 부대로 나누어 가야겠다.”

전군의 다섯 장수 화영·진명·임충·양지·호연작이 1천 마군과 2천 보군을 거느리고 선봉이 되어 산을 만나면 길을 열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게 하였다. 중군은 주장 송공명, 군사 오용과 주동·서녕·해진·해보 여섯 두령이 마보군 2천을 거느리고, 후군은 이응·양웅·석수·이준·장순 다섯 두령이 마보군 2천을 거느리고 군량을 호송하게 하였다. 모두 7천의 인마가 양산박을 떠나 곧장 화주로 진격하였다.

하루도 쉬지 않고 빨리 전진하면서, 반쯤 갔을 때 먼저 대종을 소화산으로 보내 알리게 하였다. 주무 등 세 두령은 양··말 등을 잡고 좋은 술을 마련하여 대기하였다.송강의 군마 세 부대가 모두 소화산 아래 당도하자, 무송이 주무·진달·양춘을 데리고 산을 내려와 송강 등 여러 두령들에게 인사시키고 산채로 올라가 좌정하였다.

송강이 성중의 사정을 묻자, 주무가 말했다.

하태수가 두 두령을 감옥에 가두어 놓고, 조정의 명을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송강과 오용이 말했다.

어떤 계책을 써야 사진과 노지심을 구할 수 있겠소?”

주무가 말했다.

화주는 성곽이 넓고 해자가 깊어 공격하기 어렵습니다. 안에서 호응하고 밖에서 공격해야만 취할 수 있습니다.”

오용이 말했다.

내일 성 주변을 둘러본 다음에 다시 상의합시다.”

송강은 저녁때까지 술을 마시고, 날이 밝기도 전에 성을 둘러보러 가려고 했다. 오용이 간하여 말했다.

성중에 두 호랑이를 가두어 놓았는데, 어찌 방비를 하지 않고 있겠습니까? 대낮에 가면 안 됩니다. 오늘 밤은 필시 달이 밝을 것이니, 오후에 산을 내려가 밤에 도착하면 성을 엿볼 수 있을 겁니다.”

그날 오후에 송강·오용·화영·진명·주동 다섯 사람이 말을 타고 산을 내려가 천천히 나아가서 밤중에 화주성 밖에 당도하였다. 높은 언덕에 올라가 말을 세우고 화주성 안을 바라보았다. 때는 2월 중순인데 달이 대낮처럼 밝고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화주성은 사방으로 성문이 있는데, 성벽이 높고 웅장하며 해자는 깊고 넓었다. 한동안 바라보고 있었는데, 멀리 화산이 보였다. 송강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별다른 계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오용이 말했다.

일단 산채로 돌아가서 다시 상의합시다.”

다섯 사람은 밤새 소화산으로 돌아왔다. 송강은 양미간을 펴지 못하고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였다.

오용이 말했다.

일단 10여 명의 날랜 졸개들을 내려 보내 원근의 소식을 정탐하게 합시다.”

이틀 후, 한 졸개가 올라와 보고했다.

지금 조정에서 전사태위(殿司太尉)를 보내 천자가 하사한 금령조괘(金鈴弔掛)를 가지고 서악 화산으로 가서 향을 사르기 위해 황하에서 위하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오용이 듣고서 말했다.

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제 계책이 생겼습니다.”

오용은 이준과 장순을 불러 말했다.

두 사람은 여차여차 하게.”

이준이 말했다.

저희는 이곳 지리를 잘 모르니, 길을 안내해 줄 사람이 하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백화사 양춘이 말했다.

제가 함께 가서 도와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송강은 기뻐하면서 세 사람을 내려 보냈다. 다음 날 오용은 송강·이응·주동·호연작·화영·진명·서녕 일곱 사람과 함께 5백 명을 거느리고 천천히 산을 내려갔다. 위하 나루에 당도하자, 이준·장순·양춘이 이미 10여 척의 큰 배를 빼앗아 대기하고 있었다. 오용은 화영·진명·서녕·호연작은 강기슭에 매복하게 하고, 송강·오용·주동·이응은 배 안에 대기하였다. 이준·장순·양춘은 배를 모래사장에 감추고 있었다.

다음 날, 날이 밝아오자 멀리서 징소리와 북소리가 들려오면서 세 척의 관선이 다가오는데, 배 위에 펄럭이는 황기에 성지를 받들어 서악 화산에 향을 사르러 가는 태위 숙원경이라 쓰여 있었다.

송강은 그걸 보고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어젯밤 꿈에 현녀(玄女)가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宿)을 만나 기뻐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오늘 그 사람을 보게 되었으니 필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

태위의 관선이 나루에 접근하자, 주동과 이응이 각각 장창을 들고 송강과 오용의 배후에 섰다.

태위의 관선이 나루에 당도하자, 배 안에서 자줏빛 적삼을 입고 은색 허리띠를 한 우후 20여 명이 나와 소리쳤다.

너희들은 무슨 배이길래, 감히 대신의 배를 가로막느냐?”

송강이 골타를 손에 쥐고 몸을 굽혀 인사하자, 뱃머리에 서 있던 오용이 말했다.

양산박 의사 송강이 삼가 인사드립니다.”

배 위에서 객장사(客帳司)가 나와 대답했다.

조정의 태위께서 성지를 받들어 서악 화산에 향을 사르러 가는 길인데, 너희 양산박 도적들이 무슨 연고로 길을 가로막느냐!”

오용이 말했다.

저희들은 태위의 존안을 뵙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객장사가 말했다

네놈들은 어떤 놈들인데, 감히 태위를 뵈려고 하느냐!”

양쪽의 우후들이 소리쳤다.

목소리를 낮춰라!”

송강이 말했다.

잠시 태위께서 뭍으로 올라오시면, 상의드릴 일이 있습니다.”

객장사가 말했다.

헛소리 마라! 태위는 조정의 대신이신데, 네놈들과 뭘 상의한단 말이냐!”

송강이 말했다.

태위께서 만나지 않겠다고 하시면, 저희 아이들이 태위를 놀라게 할까 두렵습니다.”

주동이 창끝에 달린 작은 깃발을 흔들자, 기슭에서 화영·진명·서녕·호연작이 마군을 이끌고 나와 나루 앞에 배열하더니 일제히 활에 화살을 먹여 겨누었다. 배 위에 있던 사공들이 모두 깜짝 놀라 선창으로 숨었다.

객장사가 당황하여 안으로 들어가 아뢰자, 숙태위가 뱃머리로 나와 좌정하였다.

송강이 몸을 굽혀 인사하고 말했다.

저희들이 어찌 감히 함부로 굴겠습니까?”

숙태위가 말했다.

의사는 무슨 연고로 배를 가로막는 것인가?”

저희들이 어찌 감히 태위를 가로막겠습니까? 태위께서 잠시 기슭에 오르시면 따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런 것뿐입니다.”

나는 지금 성지를 받들어 서악 화산에 향을 사르러 가는 길인데, 의사와 무엇을 상의할 것이 있겠는가? 조정 대신이 어찌 가벼이 기슭에 올라갈 수 있겠는가?”

태위께서 들어주시지 않으면, 저희 동료들이 용납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이응이 창을 들어 신호하자, 이준·장순·양춘이 일제히 배를 저어 다가왔다. 숙태위는 그걸 보고 크게 놀랐다.

이준과 장순이 번쩍거리는 날카로운 칼을 손에 들고 관선으로 뛰어올라 우후 둘을 붙잡아 물속에 거꾸로 던져 버렸다.

송강이 황망히 소리쳤다.

함부로 귀인을 놀라게 하지 마라!”

이준과 장순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두 우후를 배 위로 끌어올리고, 마치 땅 위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손쉽게 자신들의 배로 올라갔다. 깜짝 놀란 숙태위는 혼이 달아나는 것만 같았다.

송강이 소리쳤다.

너희들은 물러가라! 귀인을 놀라게 하지 마라! 내가 천천히 태위께서 기슭에 오르시도록 청하겠다.”

숙태위가 말했다.

의사는 무슨 일이 있으시오? 여기서 말해도 괜찮소.”

여기는 말씀을 나누기에 적당한 장소가 아닙니다. 삼가 태위를 산채에 모시고 가서 아뢰겠습니다. 해칠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만약 그런 마음을 품었다면 화산의 신령이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숙태위는 할 수 없이 배에서 내려 기슭으로 올라왔다. 사람들이 말을 한 필 끌고 와서 태위를 부축하여 말에 태우자, 태위는 어쩔 수 없이 동행할 수밖에 없었다. 송강은 화영과 진명에게 태위를 모시고 먼저 산으로 올라가게 하고, 관선 위에 있는 사람들과 어향·제물·금령조괘 등을 모두 수습하여 산으로 올라가게 하였다. 이준과 장순은 백여 명을 거느리고 배에 남아 있게 하였다.

일행이 산채에 도착하자 송강은 말에서 내려 숙태위를 취의청으로 안내하여 가운데에 좌정하게 하고, 여러 두령들은 양변에 시립하였다. 송강이 아래에서 절을 네 번하고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송강은 원래 운성현의 아전이었는데 관아의 핍박을 받아 부득이 산림에 들어왔습니다. 지금 잠시 양산박을 빌어 피난하고 있지만, 조정에서 초안을 내리기만 하면 국가를 위하여 힘을 다할 것입니다. 지금 두 형제가 아무런 죄도 없이 하태수의 함정에 빠져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태위의 어향·의장과 금령조괘 등을 빌려 화주를 속이고자 하는데, 일이 끝나면 돌려드리고 태위의 신상에도 아무런 해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태위께서는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숙태위가 말했다.

자네에게 어향 등의 물건을 빌려준다 하더라도, 훗날 일이 탄로 나면 반드시 나도 연루될 것이오.”

송강이 말했다.

태위께서는 동경으로 가시면 모든 것을 송강에게 미루시면 될 겁니다.”

숙태위는 양산박 두령들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송강은 연회를 열어 태위를 대접했다. 태위가 데리고 온 사람들의 의복을 빌려, 졸개들 가운데 용모가 준수한 자를 골라 코밑수염을 깎고 태위의 의복을 입혀 숙원경으로 변장시켰다. 송강과 오용은 객장사로 변장하고, 해진·해보·양웅·석수는 우후로 변장하였다. 졸개들은 모두 자줏빛 적삼과 은색 허리띠를 매고, 깃발 · 의장 · 어향 · 금령조괘 등을 들게 하였다. 화영 · 서녕 · 주동 · 이응은 호위병으로 변장했다. 주무 · 진달 · 양춘은 태위와 수행원들을 잘 대접했다. 진명·호연작이 한 부대를, 임충·양지가 또 한 부대를 거느리고 양로로 나누어 성을 공격하게 하였다.

무송은 미리 서악문 아래에서 대기하다가 신호를 보면 움직이게 하였다.

일행은 산채를 떠나 나루로 가서 배를 타고 곧장 서악묘로 가면서, 화주에는 알리지 않았다. 대종은 화산의 도교 사원 운대관(雲臺觀)의 주지와 사당 관리자에게 알려, 배가 도착하자 나와서 영접하게 하였다. 향화와 등촉, 깃발과 보개 등을 앞에 배열하고 먼저 어향을 정자에 올려놓고, 사당의 인부들이 금령조괘를 받들고 인도했다. 주지가 나와 태위를 알현하자, 오용이 말했다.

태위께서 도중에 병환이 나서 편치 않으시니, 가마로 모시시오.”

좌우에서 부축하여 태위를 가마에 태우고, 서악묘 안의 관청으로 모셔가 쉬게 하였다. 객장사 오용이 주지에게 말했다.

성지를 받들어 어향과 금령조괘를 가지고 금천성제(金天聖帝)께 공양하러 왔는데, 본주 관원들은 무슨 까닭으로 태만하여 영접하러 오지 않았소?”

주지가 대답했다.

이미 사람을 보내 알렸으니, 곧 올 겁니다.”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화주에서 먼저 보낸 관원 하나가 6~70명의 공인을 데리고 술과 과일을 가져와서 태위를 뵙고자 하였다. 태위로 가장한 졸개는 비록 외양은 비슷했지만 태위 같은 말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병이 났다는 핑계를 대고 침상에 이불을 둘러쓰고 앉아만 있었다.

관원이 보니 깃발이나 의장 등이 모두 조정에서 만든 것들이어서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객장사가 거짓으로 두 번이나 들락거리면서 아뢴 다음에, 관원을 들어가게 하여 멀리 계단 아래에서 알현하게 하였다. 가짜 태위는 다만 손짓만 하여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을 수가 없었다. 오용이 관원을 나무랐다.

태위께서는 천자를 가까이에서 모시는 대신으로 천리를 멀다 하지 않고 성지를 받들어 여기까지 향을 사르러 오셨는데, 생각지도 않게 도중에 병환이 나서 아직 낫지 않았소. 그런데 본주의 여러 관원들은 어찌하여 멀리까지 나와 영접하지 않았소!”

관원이 대답했다.

앞서 지나오신 관아에서 보낸 공문이 본주에 오기는 했지만, 최근에는 보고가 없었고 게다가 예기치 않게 태위께서 먼저 사당으로 오셨기 때문에 미처 영접하러 나가지 못했습니다. 본래는 태수께서 오셨어야 하지만 소화산 도적들이 양산박 도적들을 규합하여 성을 공격하고 있기 때문에, 매일 방비하느라 함부로 자리를 떠날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소관을 먼저 보내 술과 예물을 바치게 하고, 태수께서는 뒤이어 알현하러 오실 겁니다.”

오용이 말했다.

태위께서는 지금 술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하는 상태이니, 태수를 빨리 불러와서 제례를 상의하도록 하시오.”

관원은 즉시 술을 꺼내 객장사와 수행원들에게 잔을 바쳤고, 오용은 다시 들어가 아뢰고 열쇠를 받아 나왔다. 관원을 데리고 가서 상자의 자물쇠를 열고 비단 주머니에서 금령조괘를 꺼내 대나무 장대에 거는 것을 보게 하였다.

이 금령조괘는 동경 황실관청의 최고수 장인이 만든 것으로, 칠보진주를 박아 넣고 중간에 홍사등롱을 매달아 성제전 중앙에 걸어 놓는 것이었다. 황실관청에서 가져온 것이 아니라면 민간에서는 만들 수 없는 것이었다.

오용은 관원에게 보여주고 난 다음, 다시 상자에 넣고 자물쇠를 채웠다. 그리고 중서성에서 보낸 여러 공문들을 관원에게 건네주면서, 빨리 태수를 불러 날을 잡아 제사지내는 일을 상의하라고 하였다. 관원과 많은 공인들이 모두 여러 물건들과 공문을 다 본 다음, 화주부로 돌아가 하태수에게 보고하였다.

송강은 암암리에 갈채하며 혼자 말했다.

저놈이 비록 교활하다 하더라도 눈앞이 어질어질하여 속아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때 무송은 이미 사당 문 아래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오용은 또 석수에게 날카로운 칼을 감추고 있다가 무송을 도와주도록 했다. 그리고 대종도 우후로 변장하게 하였다.

주지가 음식을 올리고, 일꾼들에게 사당 앞에 의장을 진열하게 하였다. 송강이 한가롭게 거닐면서 서악묘를 구경해 보니 과연 잘 지은 건물이었다. 전각이 평범하지 않은 것이 참으로 천상세계 같았다. 송강은 정전에서 향을 사르고 재배하며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관청으로 돌아오자 문지기가 보고했다.

하태수께서 오십니다.”

송강은 화영·서녕·주동·이응 네 호위병을 불러 각기 무기를 들고 양변으로 늘어서 있게 하고, 해진 · 해보 · 양웅 · 대종은 각기 무기를 감추고 좌우에 시립하게 하였다.

한편, 하태수는 3백여 명을 거느리고 사당 앞에 당도하여 말에서 내리고, 사람들에 둘러싸여 안으로 들어왔다. 가짜 객장사 오용과 송강이 보니, 하태수가 3백여 명을 거느리고 왔는데 모두 칼을 든 공인들이었다. 오용이 소리쳤다.

조정의 태위께서 이곳에 계시니, 잡인들은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불허한다!”

공인들이 모두 발걸음을 멈추고 하태수가 혼자 앞으로 나오자, 객장사가 말했다.

태위께서 태수를 들라 하십니다.”

하태수가 관청 앞으로 들어와 가짜 태위에게 절을 하자, 오용이 말했다.

태수는 자신의 죄를 아는가?”

태수가 말했다.

하모는 태위께서 오신 것을 몰랐습니다. 용서하십시오.”

오용이 말했다.

태위께서 칙서를 받들어 이곳 서악에 향을 피우러 왔는데, 어찌하여 멀리까지 나와 영접하지 않았는가?”

화주에 당도하셨다는 보고를 최근에 받은 적이 없어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오용이 소리쳤다.

잡아라!”

그러자 해진 · 해보 형제가 단도를 뽑아 들고 달려들어 하태수를 발로 차서 넘어뜨리고 머리를 잘라 버렸다. 송강이 소리쳤다.

형제들! 해치워라!”

태수를 따라왔던 3백여 명이 깜짝 놀라 멍하니 있는 동안, 화영 등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허수아비를 베듯 모두 베어 쓰러뜨렸다. 절반 정도는 사당 문 아래로 달아났지만, 무송과 석수가 칼을 휘두르고 사방에서 졸개들이 공격하여 3백여 명이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다. 뒤이어 사당에 도착한 자들도 모두 장순과 이준에게 죽음을 당했다.

송강은 급히 어향과 금령조괘 등을 수습하여 배에 싣게 하고 화주로 갔다. 화주성 안에서는 이미 두 군데서 불길이 치솟고 있어, 일제히 성안으로 쳐들어갔다. 먼저 감옥으로 달려가서 사진과 노지심을 구하고, 창고를 열어 재물을 털어 수레에 실었다. 일행은 화주를 떠나 배를 타고 소화산으로 돌아왔다.

송강은 어향 · 금령조개 · 깃발 · 의장 등을 돌려주고, 숙태위에게 절을 했다. 그리고 금은 한 쟁반을 태위에게 주고, 수행원들에게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금은을 나누어주었다. 산채에서 송별연을 열어 태위에게 사례하고, 두령들이 산 아래까지 내려와 전송하였다.

송강은 숙태위를 전송하고 소화산으로 돌아와, 소화산 네 두령과 상의하여 재물과 양식을 수습하고 산채는 불태워 버리고 양산박을 향해 떠났다.

한편, 숙태위가 배에서 내려 화주성으로 들어가 보니, 성은 이미 양산박 도적들에게 함락당해 많은 병사들이 죽고 창고는 약탈당하고 말도 모두 빼앗긴 상태였다. 서악묘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숙태위는 화주의 관원에게 공문을 작성하여 중서성에 보고하게 하였다. ‘송강이 도중에 어향과 조괘 등을 강탈하여, 그로써 하태수를 속여 사당으로 오게 한 다음 죽였다.’는 내용이었다. 숙태위는 사당으로 가서 어향을 사른 다음 금령조괘는 운대관 주지에게 넘겨주고, 밤새워 급히 동경으로 돌아가 모든 일을 천자에게 아뢰었다.

한편, 송강은 사진과 노지심을 구하고 소화산의 네 두령과 함께 이전처럼 세 부대로 나누어 양산박을 향해 가면서, 지나는 고을에서 추호도 백성을 범하지 않았다. 먼저 대종을 산채로 보내 알렸기 때문에, 조개 등 두령들이 산에서 내려와 송강 등을 맞이하였다. 일동은 산채로 올라가 취의청에 모여 서로 인사를 나누고 연회를 열어 자축하였다.

다음 날, 사진·주무·진달·양춘이 재물을 내어 연회를 열고 조개와 송강을 비롯한 여러 두령들에게 사례하였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한지홀률 주귀가 산채로 올라와 보고하였다.

서주 패현 망탕산에 새로운 도적이 나타났는데, 무리가 3천 명입니다. 두령은 도사로서 이름은 번서(樊瑞)인데 비바람을 부르고 용병이 귀신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혼란하게 하는 마왕이란 뜻으로, 혼세마왕(混世魔王)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수하에 항충(項充)과 이곤(李袞)이라는 부장이 둘 있습니다. 항충은 방패를 잘 쓰는데 방패에는 비도(飛刀) 24개가 꽂혀 있고 손에는 철표쟁(鐵標鎗)을 든다고 합니다. 불교의 수호신인 나타에 비교하여 팔이 여덟 개 달린 나타라고 하여 팔비나타(八臂那吒)라고 불립니다.

이곤 역시 방패를 잘 쓰는데 방패에는 24개의 표창이 꽂혀 있고 손에는 한 자루의 보검을 든다고 합니다. 제천대상(帝天大聖)이라 자칭했던 손오공에 비유하여 하늘을 나는 손오공이라는 뜻으로 비천대성(飛天大聖)이라 불립니다.

이 셋이 의형제를 맺어 망탕산을 점거하고 민가를 약탈하고 있는데, 게다가 그놈들은 양산박 대채를 병탄할 생각까지 하고 있답니다. 저는 그 얘기를 듣고, 보고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송강이 그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말했다.

그 도적놈들이 어찌 그리 무례하단 말인가! 내가 다시 산을 내려가야겠다!”

구문룡 사진이 일어나 말했다.

저희 네 사람은 지금 대채에 와서 아직 조그만 공도 없습니다. 저희들이 본부 인마를 이끌고 가서 그 도적놈들을 잡아 오겠습니다.”

송강은 기뻐하면서, 사진에게 본부 인마를 내주었다. 사진은 주무·진달·양춘과 함께 무장을 하고서 송강을 작별하고 산을 내려와 금사탄을 건너 망탕산을 향해 달려갔다. 사흘이 지나지 않아 망탕산이 보였다. 그곳은 예전에 한고조(漢高祖) 유방이 백사(白蛇)를 참하고 대의를 일으킨 곳이었다. 삼군 인마가 산 아래 당도하자, 길에 매복해 있던 졸개가 산에 올라가 보고하였다.

사진은 소화산에서 데리고 온 인마를 벌려 세우고, 불타는 듯한 붉은 말을 타고서 진 앞에 나섰다. 손에는 삼첨양인도를 비껴들었고, 등 뒤에는 세 두령이 있었다. 중간에는 쌍도를 든 신기군사 주무, 위쪽에는 점강쟁을 든 도간호 진달, 아래쪽에는 대간도를 든 백화사 양춘이 말을 타고 서 있었다.

네 두령이 진 앞에서 바라보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망탕산에서 한 떼의 군마가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앞장 선 두 사람 중 하나는 서주 패현 사람 항충이었다. 왼손에 든 방패에는 비도 24개가 꽂혀 있는데 백보 떨어진 사람도 백발백중이었다. 오른손에는 한 자루 철표쟁을 들고 있었고, 뒤에 있는 군기에는 팔비나타라고 쓰여 있었다.

또 하나는 비현 사람 이곤이었다. 왼손에는 방패를 들고 등에는 24개의 표창이 꽂혀 있었는데 역시 백보 밖의 사람도 백발백중이었다. 오른손에는 보검을 들고, 뒤에 있는 군기에는 비천대성이라고 쓰여 있었다.

항충과 이곤은 말을 타지 않고 걸어서 내려왔는데, 사진·주무·진달·양춘이 진 앞에 말을 타고 서 있는 것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졸개들이 징을 울리자, 둘은 방패를 휘두르며 일제히 쳐들어왔다. 사진 등은 그 기세를 막지 못하여, 후군이 먼저 달아났다. 사진의 전군이 적을 막았지만, 주무의 중군은 함성을 지르며 흩어져 달아났다. 이른바 사람은 달아나지 않으려 했지만 말이 먼저 달아나는 형세였다. 사진 등은 3~40리를 퇴각하였다.

사진은 자칫 비도에 맞을 뻔했고, 양춘은 몸을 돌려 피했으나 말이 비도에 맞아 말을 버리고 달아났다. 사진이 인마를 점검해 보니, 절반을 잃었다. 사진이 주무 등과 상의하여 양산박에 사람을 보내 구원을 청하려고 하는데, 군사가 달려와 보고했다.

북쪽의 대로에서 먼지가 일어나면서 약 2천의 군마가 오고 있습니다.”

 

사진 등이 깜짝 놀라 바라보니, 양산박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앞장선 두 대장은 소이광 화영과 금쟁수 서녕이었다. 사진이 맞이하고, 항충과 이곤이 방패를 들고 쳐들어왔는데 군마가 막지 못한 상황을 설명했다. 화영이 말했다.

송공명 형님이 자네들을 보내고 나서 마음이 놓이지 않아, 우리 두 사람을 보내 돕게 하였네.”

사진 등은 기뻐하면서, 병력을 합쳐 하채하였다.

다음 날, 날이 밝자 병력을 일으켜 적과 싸우려 하는데, 군사가 달려와 보고했다.

북쪽 대로에서 또 군마가 오고 있습니다.”

화영 · 서녕 · 사진이 말에 올라 바라보니, 송공명이 친히 오용 · 공손승 · 시진 · 주동 · 호연작 · 목홍 · 손립 · 황신 · 여방 · 곽성과 함께 3천 인마를 거느리고 왔다. 사진이 항충과 이곤의 비도와 표창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고 인마를 잃은 상황을 자세히 보고했다. 송강이 크게 놀라자, 오용이 말했다.

일단 군마를 영채에 머물게 하고, 따로 상의하십시다.”

하지만 송강은 마음이 급해 병력을 일으켜 곧장 산 아래로 진격했다. 때는 이미 날이 저물었는데, 망탕산 위에는 청색 등롱이 켜져 있었다. 공손승이 그걸 보고 말했다.

저 산채에 청색 등롱이 켜져 있는 것은, 필시 요술을 부리는 자가 있는 겁니다. 일단 퇴각했다가, 내일 빈도가 진법을 펼쳐 그 두 놈을 사로잡겠습니다.”

송강은 크게 기뻐하며, 군마를 20리 후퇴시켜 영채를 세우고 주둔하게 하였다.

다음 날 새벽에 공손승이 진법을 그린 그림을 내놓았다.

공손승이 송강과 오용에게 진법 그림을 보여주며 말했다.

이것은 한나라 말 제갈공명이 돌을 배열하여 보여준 진법입니다. 사면팔방에 8개 부대씩 64부대를 배치하고 중간에 대장이 자리 잡습니다. 그 형상이 머리 네 개에 꼬리 8개 모양인데, 좌우로 돌면서 천지풍운(天地風雲)의 작용과 용호조사(龍虎鳥蛇)의 형상을 나타냅니다. 적이 산을 내려와 진 안으로 쳐들어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양군이 일제히 진문을 열어 줍니다. 칠성기가 올라가 신호를 하면 진은 장사(長蛇)의 형세로 변합니다. 빈도가 도술을 부리면, 그 세 사람은 진중에서 전후로 길이 없어지고 좌우로도 나갈 문이 없게 됩니다. 함정을 파 놓고 곧장 그들을 몰아넣은 다음, 양변에 매복한 갈고리 든 병사들이 사로잡으면 됩니다.”

송강은 듣고서 크게 기뻐하며, 곧 명을 전하여 대소 장교들은 군령에 따라 행하라고 하였다. 그리고 8명의 맹장 호연작·주동·화영·서녕·목홍·손립·사진·황신은 진을 지키게 하고, 시진·여방·곽성은 중군을 임시로 맡게 하고, 송강·오용·공손승은 진달을 데리고 깃발로 지휘를 하기로 했다. 주무는 군사 5명을 데리고 근처 높은 언덕에 올라가 진의 움직임을 보고하게 하였다.

그날 아침 양산박 군사들이 산 근처에서 진세를 벌리고, 깃발을 흔들고 북을 울리며 싸움을 걸었다. 망탕산 위에서 2~30개의 징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더니, 세 두령이 일제히 산을 내려와 3천여 인마가 진을 벌렸다. 좌우에는 항충과 이곤이 있고, 가운데에는 혼세마왕 번서가 검은 말을 타고 진 앞에 서 있었다.

번서는 복주 사람으로 어린 나이에 전진교(全真敎) 도사가 되었고, 강호에서 무예를 배웠다. 말 위에서 유성추(流星鎚)를 잘 썼으며 장수를 베고 깃발을 빼앗는 것이 신출귀몰하여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요술도 잘 부렸지만, 진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송강의 군마가 사면팔방으로 진세를 벌리고 있는 것을 본 번서는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생각했다.

네놈들이 진세를 벌리면, 내 계략에 빠지는 것이다!”

번서가 항충과 이곤에게 분부했다.

바람이 일어나면 자네 둘은 칼을 든 5백 군사를 이끌고 적진으로 돌진하게.”

항충과 이곤은 명을 받고, 각각 방패를 쥐고 표창과 비도를 들고서, 번서의 요술을 기다리고 있었다. 번서가 말 위에서 왼손으로 유성추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혼세마왕 보검을 짚고서 입속으로 주문을 중얼거리다가 소리쳤다.

가라!”

그러자 광풍이 사방에서 일어나면서 모래와 돌이 날리고 천지가 깜깜해지면서 해가 빛을 잃었다. 항충과 이곤은 함성을 지르며 칼을 든 5백 군사를 이끌고 돌진했다. 송강의 군마는 적이 돌진해 오는 것을 보고, 양쪽으로 벌리며 길을 열어 주었다. 항충과 이곤이 진 안으로 들어오자 양쪽에서 강궁과 쇠뇌가 발사되어, 4~50명만 안으로 들어오고 나머지는 모두 본진으로 돌아갔다.

송강이 높은 언덕 위에서 항충과 이곤이 진 안으로 들어온 것을 보고 진달로 하여금 칠성기를 흔들어 신호하게 하자, 진세가 어지럽게 움직이더니 장사진(長蛇陣)으로 변하였다. 항충과 이곤이 진 안에서 동분서주하고 좌우로 돌아 봤지만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높은 언덕 위에서 주무가 작은 깃발을 들고, 항충과 이곤이 동쪽으로 가면 동쪽을 가리키고 서쪽으로 가면 서쪽을 가리켰다. 공손승이 송문고정검(松紋古錠劍)을 뽑아 들고 입속으로 주문을 외우다가 소리쳤다.

가라!”

그러자 항충과 이곤의 발아래에서 바람이 휘말려 일어났다. 둘이 진 안에서 보니, 천지가 깜깜해지고 해도 빛을 잃었는데 사방에 군마가 하나도 보이지 않고 검은 기운만 감싸고 있었다. 뒤를 따라오던 군사들도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항충과 이곤은 당황하여 길을 찾아 본진으로 돌아가려고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데, 갑자기 우레 소리가 크게 들렸다. 둘은 아이고!’ 비명을 질렀는데, 두 다리가 들리더니 공중에서 뒤집어져 거꾸로 구덩이 속으로 처박혔다. 양쪽에서 갈고리가 나오더니 끌어당겨 밧줄로 꽁꽁 묶어 언덕 위로 끌고 갔다.

송강이 채찍 끝으로 가리키자, 삼군이 일제히 돌격했다. 번서는 인마를 이끌고 산 위로 달아났는데, 군사의 태반을 잃고 말았다. 송강은 군사를 거두었다. 여러 두령들이 막사 앞에 앉자, 병사들이 항충과 이곤을 끌고 와서 휘하에 무릎을 꿇렸다. 송강은 그걸 보고 황망히 밧줄을 풀어주고 친히 잔을 권하여 말했다.

두 분 장사는 너무 나무라지 마시오. 전쟁 중이라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 송강은 오래전부터 세 분 장사의 이름을 들어 왔기에, 예로써 청하여 함께 대의를 행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기회를 얻지 못하여 이렇게 일이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만약 저를 버리지 않으시고 함께 산채로 가 주시면, 천만다행이겠습니다.”

두 사람은 그 말을 듣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말했다.

급시우라는 큰 이름을 들은 지 오래였습니다만, 인연이 없어 아직까지 뵙지 못했었습니다. 과연 형님께서는 대의를 지닌 분이십니다! 저희들이 호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하늘의 뜻을 어기려 하였습니다. 오늘 이미 사로잡혔으니 만 번 죽어도 마땅한데, 도리어 이처럼 예로써 대해 주시고 목숨을 살려주시니 목숨 바쳐 큰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번서 그 사람이, 저희 둘이 없으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의사께서 저희 하나만 풀어 주시면, 돌아가서 번서를 설득하여 투항하게 하겠습니다. 두령님의 뜻은 어떠하신지요?”

송강이 말했다.

장사! 한 사람이 여기 남을 필요도 없습니다. 두 분은 함께 산채로 돌아가십시오. 송강은 내일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두 사람은 절하고 말했다.

진정 대장부이십니다! 만약 번서가 투항하지 않으려 하면, 저희가 붙잡아 두령님 휘하에 바치겠습니다.”

송강은 크게 기뻐하며, 중군으로 청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새 옷을 갈아입게 한 다음, 창과 방패를 돌려주고 말을 내 주어 산채로 돌아가게 하였다.

두 사람은 돌아가면서 송강의 은혜에 감사해 마지않았다. 망탕산 아래에 당도하자, 졸개들이 깜짝 놀라며 맞이하여 산채로 올라갔다. 번서가 어떻게 돌아오게 된 것인지 묻자, 항충과 이곤이 말했다.

우리는 하늘을 거역한 사람들이니 죽어 마땅합니다!”

번서가 말했다.

형제들은 어찌하여 그런 말을 하는가?”

두 사람은 송강이 얼마나 의기가 있는 사람인지 자세히 설명했다. 번서가 말했다.

송강이 그처럼 어질고 의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하늘을 거역하지 말고 일찌감치 내려가 투항하세.”

두 사람이 말했다.

저희도 그래서 온 겁니다.”

그날 밤 산채를 수습하고, 다음 날 날이 밝자 세 사람은 산을 내려가 곧장 송강의 영채 앞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절했다. 송강은 세 사람은 일으키고 막사 안으로 청하여 좌정하게 했다. 세 사람은 송강이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것을 보고, 피차간에 진심을 토로하고 평생 품어 온 뜻을 얘기하였다.

세 사람은 양산박 두령들을 망탕산 산채로 초청하여, 소와 말을 잡아 융숭하게 대접하고 삼군에 상을 내려 위로하였다. 연회가 끝나고 나서, 번서는 공손승을 스승으로 모셨다. 송강이 공손승에게 오뢰천심정법(五雷天心正法)을 번서에게 전수하라고 권하자, 번서는 크게 기뻐하였다.

며칠 후 번서는 인마를 수습하고 산채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수레에 싣고 산채는 불태우고, 송강을 따라 양산박으로 갔다.

송강의 군마가 양산박에 당도하여 막 건너가려고 하는데, 갈대숲 옆 큰길에서 한 사내가 나타나 송강에게 절을 올렸다. 송강이 황망히 말에서 내려 그를 일으키고 물었다.

족하는 누구시오? 어디서 왔소?”

사내가 말했다.

소인은 단경주(段景住)인데, 머리털이 붉고 수염이 누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금모견(金毛犬)이라 부릅니다. 탁주 사람으로, 평생 북쪽 변경에서 말을 도둑질하며 살아왔습니다. 올해 봄에 창간령 북쪽에서 좋은 말 한 필을 훔쳤는데, 잡털이 한 올도 섞이지 않고 온몸이 백설 같은 말입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길이가 1장이고, 발굽에서 등까지 높이가 8척입니다. 하루에 천리를 달릴 수 있는데, 북방에서는 조야옥사자(照夜玉獅子)로 불리는 유명한 말입니다. 금나라 왕자가 타던 말인데, 창간령 아래에 풀어 놓은 것을 소인이 훔쳤습니다.

강호에서 급시우라는 큰 이름을 들었는데 찾아뵐 길이 없어, 이 말을 두령님을 뵙는 예물로 바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능주 서남쪽에 있는 증두시를 지나다가 예기치 않게 증가오호(曾家五虎)라는 자들에게 탈취당하고 말았습니다. 소인이 양산박 송공명의 말이라고 했는데도 그놈들은 더러운 욕을 해댔는데, 소인이 감히 입에 담지도 못하겠습니다. 겨우 탈출하여 이렇게 와서 아룁니다.”

송강이 그를 보니, 비쩍 마르고 기괴하게 생겼지만 평범하지는 않은 것 같아 마음속으로 기뻐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일단 산채로 가서 상의합시다.”

단경주를 데리고 일동은 배를 타고 금사탄으로 건너갔다. 조개와 여러 두령들이 맞이하여 함께 취의청으로 가서 좌정하였다. 송강이 번서·항충·이곤을 두령들에게 인사시키고, 단경주도 두령들에게 인사했다. 연회를 크게 열어 자축하였다.

산채에 많은 인마가 늘어나고 사방에서 호걸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에, 송강은 이운과 도종왕에게 집을 더 짓고 사방의 방책을 더 세우는 일을 감독하게 하였다. 단경주가 그 말의 장점을 다시 애기하자, 송강은 신행태보 대종에게 증두시로 가서 말이 어디 있는지 탐지해 오게 하였다. 대종이 4~5일 후에 돌아와 말했다.

증두시에는 3천여 가구가 사는데, 그 안에 증가부라는 가문이 있습니다. 그 가장은 원래 금나라 사람으로 증장자(曾長者)라 불립니다. 아들 다섯은 증가오호라 불리는데, 증도·증밀·증삭·증괴·증승입니다. 그리고 사문공이라는 사부와 소정이라는 부사부가 있습니다. 증두시에서는 6~7천 인마를 모으고 방책을 세웠으며 50여 개의 함거를 만들어 놓고서, 우리 양산박과는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 두령들을 사로잡겠다고 큰소리 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야옥사자라는 천리마는 지금 사문공이 타고 있습니다. 또 하나 참을 수 없는 것은, 이런 노래를 지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한 겁니다.”

 

말방울 소리가 울리면 귀신도 모두 놀라네.

쇠수레에 쇠자물쇠 아래위로 뾰족한 못이 박혀 있네.

양산박을 소탕하고 조개를 붙잡아 동경으로 보내자.

급시우를 생포하고 지다성을 사로잡자.

증가오호가 태어나 천하에 이름을 날리네.

 

조개는 듣고서 크게 노하며 말했다.

그 짐승들이 어찌 감히 그렇게도 무례한가! 내가 친히 가서 그놈들을 사로잡지 못하면, 맹세코 산채로 돌아오지 않겠다!”

송강이 말했다.

형님은 산채의 주인이시니, 가벼이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이 아우가 가겠습니다.”

조개가 말했다.

내가 아우의 공로를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네는 그동안 여러 차례 내려가서 싸웠기 때문에 몹시 피곤할 거니까 이번에는 내가 자네 대신 가겠네. 만약 차후에 무슨 일이 있으면, 아우가 내려오게.”

송강이 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고, 조개는 분노하여 20명의 두령과 5천 인마를 일으키고, 나머지는 송공명과 함께 산채를 지키게 하였다.

조개는 임충·호연작·서녕·목홍·유당·장횡·완소이·완소오·완소칠·양웅·석수·손립·황신·두천·송만·연순·등비·구붕·양림·백승 등 20명 두령과 삼군 인마를 거느리고 증두시로 진격하기로 하였다. 송강·오용·공손승과 여러 두령들은 금사탄까지 내려와 전송했다. 술을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한 줄기 광풍이 일어나더니, 조개가 새로 만든 군기의 깃대가 부러졌다. 이를 본 두령들은 모두 얼굴빛이 변했다. 오용이 말했다.

이는 불길한 징조입니다. 형님께서는 다른 날 출전하십시오.”

송강도 권했다.

형님께서 막 출전하려는데 바람이 군기를 부러뜨린 것은, 군대에 이롭지 못합니다. 며칠 더 기다렸다가 그놈들을 치러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조개가 말했다.

바람 부는 것이 뭐가 이상한가? 마침 따뜻한 봄날에 그놈들을 잡지 않고 내버려 뒀다가, 그놈들의 기세만 더 키워 놓으면 나중에는 때가 늦네. 자네들은 나를 막지 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난 이번에 가야겠네!”

송강은 더 이상 말리지 못했고, 조개는 병력을 거느리고 호수를 건너갔다. 송강은 근심을 떨쳐 버릴 수 없어, 산채로 돌아오자 대종을 불러 내려가서 소식을 탐지하게 하였다.

조개는 5천 인마와 두령 20명을 거느리고 증두시 근처에 당도하여 마주보고 하채하였다. 다음 날, 조개는 두령들과 함께 말에 올라 증두시를 살펴보았는데, 과연 험준한 곳에 위치하고 방어가 철통같았다.

그때 버드나무 숲속에서 한 떼의 인마가 나는 듯이 달려 나왔다. 7~8백 명을 거느리고 앞장선 자는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었으며 손에는 점강쟁을 든 증가의 넷째 증괴였다. 증괴가 소리쳤다.

나라를 배반한 양산박 도적놈들아! 그렇지 않아도 내가 네놈들을 붙잡아 관아로 끌고 가서 상을 청하려 했는데, 하늘이 네놈들을 보내주셨구나! 빨리 말에서 내려 포박을 받지 않고, 어느 때를 기다리느냐!”

조개가 크게 노하여 고개를 돌려 두령들을 보니, 이미 한 장수가 증괴와 싸우러 달려 나갔다. 그는 양산박에서 처음 결의한 표자두 임충이었다. 두 사람이 교전하여 20여 합에 이르렀는데 승부가 나지 않았다. 증괴는 임충을 이기지 못할 걸 알고 말을 돌려 쟁을 끌면서 숲속으로 달아났다. 임충을 말을 세우고 추격하지 않았다. 조개는 말을 돌려 영채로 돌아와 증두시를 공략할 계책을 상의하였다. 임충이 말했다.

내일 곧장 증두시로 쳐들어가 싸움을 걸어 허실을 살펴본 다음, 다시 상의하시지요.”

다음 날 새벽 조개는 5천 인마를 이끌고 증두시 어귀의 넓은 들판에 진세를 펼치고 북을 울리며 함성을 질렀다. 증두시에서 포성이 울리더니 대규모 인마가 달려 나와 일곱 명의 호걸이 자로 벌려 섰다. 중간에는 사부 사문공, 위쪽에는 부사부 소정, 아래쪽에는 장자 증도, 좌측에는 증밀과 증괴, 우측에는 증승과 증삭이 있는데, 모두 갑옷을 입고 있었다. 사문공은 왼손에는 활을 들고 오른손에는 방천화극을 들고서 조야옥사자를 타고 있었다. 북이 세 번 울리자 증가의 진에서 함거 몇 대가 나와 진 앞에 늘어섰다. 증도가 함거를 가리키며 욕을 했다.

나라를 배반한 도적놈들아! 이 함거가 보이느냐? 우리 증가부가 네놈들을 죽이지 못하면 호걸이 아니다! 내가 네놈들을 한 놈씩 사로잡아 이 함거에 실어 동경으로 압송하여 만 갈래 찢어 죽일 것이다! 네놈들이 빨리 투항한다면, 그때는 다시 생각해 보마!”

조개는 듣고서 크게 노하여 쟁을 들고 말을 몰아 곧장 증도에게 달려들었다. 여러 두령들이 조개가 실수할까 염려하여 한꺼번에 돌격하여, 양군은 혼전을 벌였다. 증가의 군마는 한 걸음씩 마을 안으로 물러났다. 임충과 호연작은 조개를 호위하면서 이쪽저쪽으로 달리며 싸웠는데, 길이 좋지 않음을 보고 급히 병력을 거두어 철수하였다. 양쪽이 모두 군사를 조금 잃었다.

조개는 영채로 돌아와 근심하고 있었다. 여러 두령들이 말했다.

형님! 근심하지 마시고 마음 놓으십시오. 몸 상하실까 염려됩니다. 송공명 형님과 출전했을 때에도 불리한 적이 있었지만, 결국 승전하고 산채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혼전을 벌여 각각 군마를 약간 잃었지만, 아직 패전한 것은 아닙니다. 뭘 그렇게 근심하십니까?”

그래도 조개는 마음이 우울하였다. 사흘 동안 매일 싸움을 걸었지만, 증두시에서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나흘째 되는 날, 불현듯 두 명의 승려가 조개의 영채로 와서 투항했다. 군사들이 중군 막사 앞으로 데리고 오자, 두 승려가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소승들은 증두시 동쪽에 있는 법화사 승려들입니다. 요즘 증가오호가 수시로 본사에 와서 소란을 피우고 금은과 재물을 요구하면서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소승들은 그들이 드나드는 곳을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두령님께서 기습하여 그놈들을 없애 주시면, 저희 절로서는 천만다행이겠습니다.”

조개는 기뻐하면서 두 승려를 청하여 자리에 앉게 하고 술을 내어 대접하였다. 임충이 간했다.

형님은 저들의 말을 믿지 마십시오. 그 속에 속임수가 있을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승려가 말했다.

소승들은 출가인인데 어찌 감히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양산박은 인의의 도를 행하고 지나는 곳마다 백성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오래 전부터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투항하였는데, 무슨 까닭으로 장군을 속이겠습니까? 하물며 증가는 필시 두령의 대군에 패할 것이 분명한데, 무엇 때문에 의심하십니까?”

조개가 말했다.

아우는 괜히 의심하여 대사를 그르치지 말게. 오늘 저녁에 내가 한번 가 보겠네.”

임충이 말했다.

형님은 가지 마십시오. 저희들이 인마 절반을 이끌고 기습할 테니, 형님은 바깥에서 접응하십시오.”

내가 가지 않으면, 누가 기꺼이 앞장서려고 하겠는가? 자네가 절반의 군마를 거느리고 바깥에서 접응하도록 하게.”

형님은 누구를 데리고 가시렵니까?”

열 명의 두령과 25백 인마를 데리고 가겠네.”

열 명의 두령은 유당·완소이·호연작·완소오·구붕·완소칠·연순·두천·송만·백승이었다. 그날 저녁 밥을 지어 먹고 말방울을 떼고 군사들은 소리를 내지 않게 막대기를 입에 물고 캄캄한 밤에 승려들을 따라 법화사로 달려갔다. 오래된 절이었다. 조개가 말에서 내려 절에 들어가 보니 승려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조개가 두 승려에게 물었다.

이 큰 절에 어째서 승려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거요?”

승려가 말했다.

증가의 짐승들이 하도 괴롭혀서 부득이 각자 환속하여 떠나가고, 장로와 몇몇 시자만 남아 탑원 안에 살고 있을 뿐입니다. 두령님께서 잠시 인마를 주둔하고 밤이 더 깊어질 때까지 기다리시면, 소승들이 그놈들 영채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놈들의 영채가 어디 있소?”

그놈들에게는 네 개의 영채가 있는데, 북쪽 영채가 증가형제들이 주둔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 영채만 공략하면 나머지는 절로 무너질 것입니다.”

언제 공격하는 것이 좋겠소?”

자정이 되기를 기다렸다가 공격하면, 그놈들은 대비하지 못하고 있을 겁니다.”

 

증두시에서 자정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리고, 다시 한 시간이 지나 북소리가 또 울리더니 아무 소리도 나지 않고 고요해졌다. 승려가 말했다.

군인들이 모두 잠든 것 같습니다. 지금이 공격할 때입니다.”

승려가 앞장서 길을 인도하자, 조개와 두령들은 말에 올라 병력을 이끌고 법화사를 나와 승려를 따라갔다. 5리를 채 못 갔는데, 두 승려가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전군은 감히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사방을 둘러보니 길이 복잡하고 인가도 보이지 않았다. 군사들은 당황하여 조개에게 보고하였다.

호연작은 급히 말을 돌리고 오던 길로 돌아가라고 명했다. 백 보를 채 못 갔는데, 사방에서 징소리와 북소리가 일제히 울리고 함성이 천지를 진동하면서 횃불이 사방을 밝혔다. 조개와 두령들은 군사를 이끌고 길을 찾아 달아났다. 굽은 길을 두 번 돌았을 때, 한 떼의 군마가 나타나 화살을 어지럽게 쏘아댔다.

그때 예기치 않게 화살 하나가 조개의 얼굴에 꽂히면서, 조개는 말에서 거꾸로 떨어졌다. 호연작과 연순이 목숨 걸고 싸워 적을 물리치는 동안 뒤에서 유당과 백승이 조개를 구하여 말에 태우고 마을을 뚫고 내달렸다. 마을 어귀에서 임충 등이 군사를 이끌고 와서 접응하여, 비로소 적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양군이 혼전을 벌이다가 날이 밝아오자, 각자 영채로 돌아갔다.

임충이 영채로 돌아와 점검해 보니, 완가 삼형제와 송만·두천은 살아서 도망쳐 왔는데 데리고 간 25백 인마 중에 12백만 구붕을 따라 돌아왔다. 두령들이 조개를 살펴보니, 화살이 뺨에 꽂혀 있었다. 급히 화살을 뽑았더니, 출혈이 심해 조개는 기절하고 말았다. 화살을 보니, ‘사문공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임충이 금창약을 발랐지만, 그 화살에는 독약이 발라져 있었다. 조개는 중독이 되어 이미 말도 못하는 상태가 되었다. 임충은 조개를 수레에 태우게 하고, 완가 삼형제와 두천·송만에게 먼저 산채로 돌아가게 하였다. 나머지 15명의 두령들이 영채에서 상의했다. 임충이 말했다.

이번에 조천왕 형님이 산에서 내려왔는데, 생각지도 않게 이런 상황이 발생했소. 갑자기 바람이 불어 군기를 부러뜨린 조짐이 딱 들어맞았소. 증두시는 급하게 취할 수 없게 되었으니, 병력을 거두어 돌아가는 것이 좋겠소.”

호연작이 말했다.

송공명 형님의 명령을 기다렸다가 회군해야 합니다.”

그날 두령들은 근심하여 마지않았고, 군사들도 더 이상 싸울 마음이 없어 모두 산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날 밤 10시경, 15명의 두령들은 영채 안에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마치 머리 없는 뱀이 움직이지 못하고 날개 없는 새가 날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은 형편이었다. 깊은 탄식을 하고 있으면서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길에 매복해 있던 병사가 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전면의 다섯 개 길에서 군마가 오고 있는데, 횃불이 그 수를 헤아리지 못할 정도입니다.”

임충 등은 보고를 받고서 일제히 말에 올랐다. 삼면의 산 위에서 횃불이 일제히 밝혀지는데 마치 대낮처럼 밝아지고, 사방에서 일어나는 함성이 영채로 다가오고 있었다. 임충은 적과 맞서 싸우지 않고 여러 두령들과 영채를 뽑아 말을 돌려 달아났다. 증가의 군마가 뒤에서 추격해 왔다.

양산박의 군대는 한편으로 싸우면서 한편으로 달아나, 5~60리를 달아난 뒤에야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인원을 점검해 보니, 6,7백 명을 잃었다. 대패하여 급히 오던 길을 되돌아 양산박으로 돌아갔다. 중간쯤 왔을 때 대종이 와서 군령이 전하기를, 두령들은 군대를 이끌고 산채로 돌아와 다시 계책을 상의하자고 하였다.

두령들은 양산박 산채로 돌아와 조개를 보러 갔다. 조개는 음식은커녕 물도 마시지 못하는 상태였고 온몸이 퉁퉁 부어 있었다. 송강이 침상 앞을 지키면서 울고 있었다. 송강이 손수 약을 먹여 주었지만, 조개는 한 모금도 삼키지 못하고 다 흘러내리고 말았다. 여러 두령들은 휘장 앞에 지키고 서서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날 밤 자정, 조개는 병세가 더욱 위중해지자 고개를 돌려 송강을 보면서 부탁했다.

아우는 몸조심하게. 나를 화살로 쏘아 죽인 자를 잡거든, 그 사람을 양산박의 주인으로 삼아 주게.”

말을 마치자, 조개는 눈을 감고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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