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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34화

서문경(西門慶)이 새 두건에 멋진 옷으로 한껏 차려입고 왕씨 할멈의 집을 찾은 것은 점심나절이 가까운 때였다.

할멈의 찻집으로 들어선 서문경(西門慶)은 걸걸한 목청으로 안에다 대고 소리쳤다.

"왕씨 할멈 안에 있소? 어째 요즘은 통 볼 수가 없지?"

방 안에서 반금련의 비위를 맞추고 있던 할멈은 그게 누군지 뻔히 알면서도 능청을 떨었다.

"거참, 누가 나를 찾누? 게 누구요?"

"나요."

서문경(西門慶)이 밖에서 그렇게 대답했다.

그제야 할멈은 반색을 하고 뛰어나가 서문경을 맞았다.

"전 또 누구라구? 나리셨구만요. 마침 잘 오셨습니다. 우선 방안으로 들어오시지요."

말투도 둘이 있을 때 주고받던 것과는 아주 달랐다.

서문경 역시 하룻밤새 사람이 달라지기라도 한 것처럼 점잔을 빼며 공연히 머뭇거렸다.

할멈은 그런 서문경의 소매를 잡아끌듯 방 안으로 끌어 들이더니 거기 앉은 반금련에게 누가 물은 것처럼이나 말했다.

"이분이 바로 그 마음씨 좋은 나리라우. 이 늙은것에게 수의감을 떠 주었다는 그 부자분 말이오."

그런 할멈을 따라 서문경도 무어라고 우물우물 인사말을 건넸다.

갑작스러운 일이어서인지 반금련(潘金蓮)도 약간은 당황스러워했다.

하던 바느질을 멈추고, 낮은 소리로 그 인사말을 받았다.

왕씨 할멈이 이번에는 그런 반금련을 가리키며 서문경에게 말했다.

"나리로부터 어렵게 수의감을 받았으면서도 그걸 일 년이나 그대로 처박아 두었답니다. 제 솜씨가 없으니 어찌해 볼 수가 있어야지요. 그러다가 이 며칠 들어 저 색시가 손을 빌려주는 바람에 수의를 다 짓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바느질 솜씨가 좋은지....... 만들어진 수의가 보기 좋을 뿐만 아니라 마무리까지 꼼꼼하니 그렇게 하기는 참으로 어렵지요. 나리, 한번 보시지요."

서문경은 할멈의 손길을 따라 반금련을 힐끗 본 뒤 느닷없이 그녀를 추켜 주었다.

"부인께서는 어디서 이 같은 솜씨를 물려받았는지요. 참으로 선녀의 솜씨 같습니다그려!"

바람둥이가 반드시 지녀야 할 몇 가지 중의 하나가 거짓말과 여자에 대한 아첨이라더니, 서문경(西門慶)도 그런 점에서는 제대로 갖춰진 바람둥이였다.

또 세상에 음란한 여자가 따로 태어나는 게 아니라 바로 그런 바람둥이의 달콤한 거짓말과 아첨에 잘 넘어가는 여자가 곧 음란한 여자라더니 반금련(潘金蓮)도 거기서 예외가 아니었다.

처음 만난 것이나 진배없는 외간 남자인데도 그 뻔한 칭찬에 넘어가 살포시 웃음까지 지으며 말을 받았다.

"나리가 사람을 놀리시는군요."

그러자 서문경(西門慶)은 다시 왕씨 할멈에게 천연덕스레 물었다.

"할멈, 이런 걸 물어도 될는지 모르겠소만.....저분은 어느 댁 누구의 부인이오?"

", 부러우십니까? 나리."

왕씨 할멈이 묻는 것은 대답 않고 그렇게 빙글거렸다.

서문경(西門慶)이 당황한 체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니오, 나 같은 게 감히 부러워하고 말고가 있겠소."

"바로 이웃집 무 대랑(大郞) 댁입니다. 언젠가 빗장이 떨어져 망건이 찌그러진 적이 있으면서 벌써 잊으셨습니까?"

왕씨 할멈이 한참 뜸을 들인 뒤에야 그렇게 밝혔다.

진작에 알고 있었는지, 그제야 기억해 냈는지 반금련(潘金蓮)이 새삼스레 사죄했다.

"그날은 제가 실수해 그리됐습니다. 잊어 주십시오."

"아닙니다, 별말씀을."

서문경이 그렇게 너그러운 체하는데 왕씨 할멈이 다시 반금련의 귀에 대고 속살거리듯 말했다.

"저분은 원체 사람이 좋으셔서 말이우, 일평생 무얼 꽁하게 기억하는 법이 없으시우.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분이시지."

뚜쟁이로서의 재주를 십분 내보인 셈이었다.

말하자면 양쪽의 좋은 점만 서로에게 치켜세워 뒤이를 분별없는 감정 놀음의 밑자리를 까는 것이었다.

서문경(西門慶)이 그걸 받아 다음번 수작으로 넘어갔다.

반금련에게 무대(武大)를 터무니없이 치켜세워 오히려 무대의 못남을 더 드러나게 만드는 교묘한 말재주였다.

"전날에는 제가 몰라뵈었는데 이제 보니 무 대량의 부인이셨군요. 바깥양반이라면 저도 좀 알지요.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고 있지만 그 양반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벌이도 잘하고 성격도 좋으니 여느 사람과는 다르지요."

왕씨 할멈이 곁에서 맞장구를 쳤다.

"그렇고말고, 실은 이 색시도 무 대량에게로 시집을 온 뒤로 무슨 일이건 남편의 뜻을 따르지 않은 적이 없다오."

할멈의 수작은 반금련과 무대의 금슬을 떠보기 위함이었다.

반금련(潘金蓮)은 두 사람이 내심 바란 대로 새침해 대꾸했다.

"그 사람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에요. 나리, 너무 놀리지 마셔요."

무대의 못난 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것뿐만 아니라 내외간의 금슬도 좋지 않다는 걸 그 한마디로 드러낸 것이다.

외간 남자 앞에서 제 남편을 얕보고 싫어함을 나타낸다는 것은 이미 겉치마를 벗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말도 있다.

서문경(西門慶)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한 번 더 반금련을 충동질해 보았다.

"그건 부인께서 틀리셨습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부드러움은 몸을 일으키는 근본이요, 굳셈은 화를 부르는 씨앗이라 했습니다.

부인의 남편처럼 착하다면 만 길 물이 새거나 줄어듦이 없듯 복이 다함 없을 것입니다."

"옳은 말이야. , 옳구말구."

할멈이 곁에서 또 맞장구를 쳤다.

두 사람이 입을 모아 무대를 치켜세우자 반금련(潘金蓮)은 잠시 어리둥절했다.

그들의 속셈을 몰라 얼른 답을 못하고 있는데 서문경이 슬그머니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왕씨 할멈은 무대 이야기는 그쯤이면 됐다 싶던지 거기서 말머리를 바꾸었다.

문득 턱짓으로 서문경을 가리키며 반금련에게 물었다.

"그런데 색시, 색시는 이 나리가 누구신지 아우?"

"전 잘 모르겠는데요."

반금련이 그렇게 대답하자 왕씨 할멈은 때를 만났다는 듯이 이번에는 서문경을 치켜 세웠다.

"이분은 우리 고을의 큰 부자 어른이신데 지현 상공과도 가깝게 지낸답니다.

사람들은 보통 서문 대관인이라 부른다우. 엄청난 재산을 가진 분으로, 지금은 현청 앞에서 생약포를 내고 있지만 집 안을 들여다보면 색시도 놀랄 거야.

돈은 산더미처럼 쌓였고, 곡식은 창고에서 썩을 지경이우. 누르면 금이고, 희면 은이며, 둥글면 구슬이요, 빛나면 보석이지.

어디 그뿐인가. 비싼 무소뿔이며 코끼리의 엄니까지 없는 게 없을 지경이라우..."

할멈은 우선 서문경의 재산을 그렇게 부풀려 놓고 서문경을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그러나 떡 장수 무대의 아낙으로 가난에 찌든 반금련(潘金蓮)은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걸 감추려고 짐짓 머리를 수그리고 바느질에 정신이 빠진 척하고 있었다.

서문경의 눈에는 자신의 상황을 감추려고 하는 반금련이 더욱 예뻐 보였다.

당장 어떻게 해 보지 못하는 게 한()일 따름이었다.

그때 왕씨 할멈이 일어나더니 차 두 잔을 따라 와 서문경과 반금련 앞에 한 잔씩 놓았다.

서문경(西門慶)은 마음이 급했다. 반금련의 눈치로 보아 일이 반은 된 것 같아 더욱 마음이 급해진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일부러 모시러라도 갈 판에 나리께서 와 주셨으니 이것도 인연인가 봅니다.

옛말에 한 손님이 두 주인을 번거롭게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더니, 이 늙은이가 바로 그 고약한 손님이 된 듯하군요. 나리께서는 돈을 내어 옷감을 끊어 주시고, 색시는 솜씨를 빌려주어 수의를 짓게 됐으니 이 늙은것의 저승길이 편하게 되었습니다그려.

마침 저 색시가 여기 와 있으니 나리께서 이 늙은이를 대신해서 좀 대접해 주시구랴."

서문경의 마음속을 들여다본 듯이나 왕씨 할멈이 슬슬 본판으로 들어갔다.

서문경(西門慶)이 기다렸다는 듯 선뜻 전대를 끌러 주며 말했다.

"내가 미처 생각 못했소. 여기 돈이 있으니 할멈이 어떻게 해 보구려."

"아녜요, 그럴 거 없어요."

반금련(潘金蓮)은 그렇게 왼고개를 틀었으나 몸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왕씨 할멈이 서문경의 전대에서 은자를 꺼내 들고 방을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없는 방 안에 서문경과 단둘이 남게 될 게 뻔한데도 반금련(潘金蓮)은 몸을 일으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색시, 색시가 조금만 나리를 모시구 있으시우."

방을 나가던 노파가 한 번 더 떠보듯 반금련에게 말했다.

"할머니, 이러시면 안 돼요."

이번에도 반금련(潘金蓮)은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으나 몸은 꼼짝도 않았다.

서문경(西門慶)은 왕씨 할멈이 나가자 한층 대담해져 두 눈으로 지그시 반금련을 바라보았다.

반금련(潘金蓮) 역시 얼굴을 들어 빤히 서문경을 마주 보았다.

노파가 치켜세운 재산뿐만 아니라 생김까지도 마음에 들었으나, 아무래도 여자라 먼저 수작을 부리지는 못하고 다시 머리를 숙여 바느질에 열중하는 체했다.

오래잖아 왕씨 할멈이 살찐 오리와 삶은 짐승 고기에 이런저런 과자까지 한 상 차려 들고 왔다.

"할머니가 이리 와서 나리와 같이 드세요. 제가 어떻게 나리와 마주 앉을 수 있겠어요?"

할멈이 탁자 위에 음식을 다 차리자 반금련(潘金蓮)이 먼저 그렇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몸은 여전히 탁자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할멈은 펄쩍 뛰듯 받았다.

"이것은 색시를 대접하려고 차린 상인데 그 무슨 소리유? 같이 들어요."

그러고는 의자를 끌어 탁자에 붙여 앉았다.

서문경(西門慶)이 잔을 가득히 채워 반금련에게 권했다.

"부인, 이 잔은 남기지 말고 비워 주시오."

"나리의 후의에 감사드립니다."

반금련(潘金蓮)이 사양은커녕 생긋 웃음까지 지어 보이며 잔을 받았다.

왕씨 할멈이 곁에서 또 거들었다.

"나도 색시가 한 잔씩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 속을 확 열고 이 한 잔 더 받으시우."

"할멈, 나를 대신해 이 부인에게 안주도 권해 주시구려."

할멈은 그 말대로 맛난 안주를 반금련에게 권했다.

반금련(潘金蓮)은 그것도 납죽 받아먹었다.

그럭저럭 서너 순배 술이 돌자 할멈이 술을 더 데워 오려고 방을 나갔다.

방 안에 단둘이 남게 되자 서문경(西門慶)이 수작을 붙였다.

"부인,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시오?"

"쓸데없는 나이가 벌써 스물셋이랍니다."

반금련(潘金蓮)이 발그레 술이 오른 얼굴로 그렇게 대답했다.

서문경(西門慶)도 제 나이를 밝혔다.

"그럼 내가 다섯 살 위로군요."

"나리의 연세야 저 같은 것과 비할 수 있겠습니까?"

반금련(潘金蓮)이 그렇게 받고 있는데 할멈이 들어오며 턱도 없이 반금련을 치켜세웠다.

"색시, 대단하우. 바느질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성현의 말씀까지 훤하구랴."

"정말이오. 무 대랑은 정말로 복도 많은 사람이군."

서문경(西門慶)이 그렇게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할멈이 슬쩍 말머리를 돌렸다.

"이 늙은 게 시비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 생각하면 나리도 안됐우. 집안에 어디 이 색시보다 나은 사람이 하나라두 있습니까?"

"그 이야기라면 할 말이 없구려. 내가 복이 없어 여자 같은 여자는 하나도 없소."

"그래도 첫째 마님은 좋은 분이었던 것 같던데."

"말도 마시오. 전처가 죽은 뒤로는 집안에 안주인이 없어 뒤죽박죽이오! 명색 계집이라고 네댓 밥은 먹이고 있지만 하나도 뭘 제대로 해 나가는 위인이 있어야지."

얼핏 보기에는 둘이 주고받는 것 같지만 실은 반금련이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다.

본처는 죽고 첩들은 보잘것없다는 서문경의 한탄에 반금련(潘金蓮)은 과연 귀가 솔깃해졌다.

이야기를 듣다 말고 살몃 끼어들었다.

"나리, 본부인께서 돌아가신 지는 몇 해나 되는지요?"

"선처 말이오? 비록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왔지만 정말 밝고 똑똑한 여자였소. 모든 걸 나 대신 척척 해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불행히도 죽은 지 벌써 삼 년이 되었소. 그 뒤로는 집안이 엉망진창이 돼 버렸으니 내가 어찌 바깥으로 나돌지 않겠소? 집에 들어앉아 있으려면 구역질이 날 지경이라오."

자신의 불행을 과장하는 것도 여자의 환심을 사는 방법의 하나인지 서문경(西門慶)이 그렇게 받았다.

왕씨 할멈이 곁에서 다시 서문경의 수작을 거들었다.

"나리, 늙은것이 바로 말하자면 돌아가신 마님의 바느질 솜씨도 저 색시만은 못했우."

"예쁘기도 여기 이 부인만은 못했지."

서문경(西門慶)이 얼른 그렇게 받았다.

그러자 할멈이 문득 심술궂은 웃음과 함께 딴 걸 물었다.

"나리, 동쪽 거리에 첩을 하나 두셨지요? 그런데 왜 이 늙은이를 불러 차도 한 잔 내지 않우?"

", 노래하는 정석석(張惜惜)이 말이오? 그거야 길거리로 나선 여잔데 내가 무에 그리 귀하겠소?"

서문경(西門慶)이 별로 숨기려는 기색 없이 그렇게 대꾸했다.

할멈이 또 딴 여자를 끌어냈다.

"이교교(李嬌嬌)하고는 오래되었지요?"

"그 여자는 집에다 들였지. 만약 그 여자가 여기 이 부인만큼만 돼도 벌써 본처로 삼았을 거요."

이번에도 서문경(西門慶)은 숨김이 없었다.

음란한 여자에게는 바람둥이 남자가 오히려 매력 있어 보인다더니, 어쩌면 왕씨 할멈이 노리는 게 바로 그것인지도 몰랐다.

그쯤에서 반금련의 흥미를 일으켜 놓고 다시 다른 화제로 넘어갔다.

"만약 마음에 드시는 색시가 있다면 나리 댁에 찾아가 중매를 서도 괜찮겠우?"

왕씨 할멈이 그렇게 묻자 서문경(西門慶)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본처가 죽었는데 나 말고 누가 나서 아니 된다 할 수 있겠소?"

이어 서문경과 왕씨 할멈은 한참이나 그렇고 그런 이야기로 죽이 잘 맞아 돌아갔다.

그러다가 문득 왕씨 할멈이 술병을 흔들어 보고 말했다.

"한창 술맛이 나려는데 술이 없군요. 술 한 병 더 사 오면 어떻겠우?"

서문경(西門慶)이 좀 전에 끌어 놓았던 전대를 다시 노파에게 밀며 호기롭게 말했다.

"여기 은자 다섯 냥이 들었소. 모두 드릴 테니 술 한 병 더 사 오고 남는 건 모두 할멈이 가지시오."

그 말에 할멈은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을 나서면서 힐끗 반금련을 보니 그녀는 벌써 춘심(春心)이 일었는지 가만히 머리를 숙이고는 있어도 자리를 뜨려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할멈이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반금련에게 말했다.

"술 한 병을 더 사 와 색시와 마시고 싶으니, 색시는 수고스럽지만 나리를 잠시만 대접하고 앉아 있으시우. 주전자에 술이 좀 남았을 테니 나리와 함께 마셔요. 좋은 술을 사자면 현청 앞까지 가야 하니 시간이 좀 걸릴 거요."

"그럴 것 없어요. 더 필요 없는데...."

반금련(潘金蓮)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전히 자리를 뜰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 둘을 두고 방을 나온 왕씨 할멈은 방문을 밖에서 잠그고 집 밖으로 나갔다.

할멈이 방을 나가자 서문경(西門慶)은 드디어 마지막 시도에 돌입했다.

몇 잔 술을 권하기도 전에 소매로 젓가락을 쓸어 탁자 아래로 떨어뜨렸다.

두 사람의 인연이 묘해서인지 젓가락은 공교롭게도 반금련의 다리 곁에 떨어졌다.

젓가락을 줍는 척 몸을 수그린 서문경(西門慶)은 곁에 떨어진 젓가락 대신 반금련의 다리를 더듬어 올라갔다.

그녀의 수놓은 신발을 거쳐 매끈한 종아리로 주물러 올라가자 반금련(潘金蓮)이 깔깔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나리, 장난치지 마셔요. 정말로 나를 얻고 싶으세요?"

나무라는 기색은커녕 오히려 기다리고 있었다는 투였다.

서문경(西門慶)이 털썩 그 앞에 무릎을 꿇으며 빌었다.

"부인, 제발 나를 살려 주시오!"

반금련에게는 꼭 마음에 드는 구애 방식이었다.

그러잖아도 서문경 못지않게 몸이 달아 있던 그녀는 그런 서문경을 가만히 안아 일으켰다.

그러자 두 사람에게는 말이 더 필요 없었다.

뛰듯이 왕씨 할멈의 침상으로 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옷을 벗어부쳤다.

고을에서 이름난 바람둥이와 소문 안 난 화냥년이 알몸으로 침대에서 만났으니 그다음은 말 안 해도 뻔했다.

각기 그동안 익힌 그 방면의 재주를 다해 온몸으로 엉겼다.

구름이 서로 엉키고 비가 흩뿌리듯 한바탕 질탕한 정사(情事)가 있은 뒤였다.

두 사람이 겨우 정신을 차려 옷을 꿰려 하는데 왕씨 할멈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잘들 놀아나는구나?"

할멈이 느닷없이 그렇게 성난 소리를 내지르는 바람에 서문경(西門慶)과 반금련(潘金蓮)은 깜짝 놀랐다.

할멈이 틈을 주지 않고 먼저 반금련부터 몰아붙였다.

"잘한다 잘해. 내가 너보고 옷 좀 지어 달라구 했지, 언제 사내하고 붙어먹으랬냐?

무대(武大)가 이 일을 알면 틀림없이 내게 따지고 들 게다.

차라리 내가 먼저 찾아가 사실대로 일러바치는 수밖에 없다!"

그러고는 홱 돌아서서 방을 나가려 했다.

급한 대로 대강 옷을 꿴 반금련(潘金蓮)이 뛰어가 할멈의 소매를 잡으며 빌었다.

"할머니, 부디 이번만은 너그럽게 봐주세요!"

"할멈, 목소리라도 좀 낮추시오!"

할멈의 돌연한 변화에 어리둥절해 있던 서문경(西門慶)도 계집을 거들어 사정했다.

그러자 할멈이 차게 웃으며 말했다.

"내 입을 막고 싶으면 두 사람 모두 한 가지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그럴 수 있느냐?"

"한 가지가 아니라 열 가지라도 하겠어요."

급한 반금련(潘金蓮)이 그렇게 앞발 뒷발 다 들고 나왔다.

할멈이 엄한 얼굴로 죄인 다루듯 을러댔다.

"너는 오늘부터 따로이 약속이 없더라도 매일 내 집으로 와서 저 나리를 모셔야 한다. 만약 하루라도 오지 않으면 나는 당장 무대에게 이 일을 일러바칠 테다."

"그러구말구요. 할머니가 시키는 대로 할게요."

반금련(潘金蓮)이 그거야 어려울 것도 없다는 듯 머리까지 수그리며 대답했다.

계집의 항복을 받아 낸 할멈은 다시 서문경을 향했다.

"나리도 똑똑히 들어 두시우. 긴말할 것도 없이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우.

만약 딴마음을 먹으면 단박에 무대에게 뛰어가 죄다 불고 말 테니까!"

"할멈, 그 일은 마음 놓으시오. 결코 내 입으로 한 말을 어기지는 않겠소."

서문경(西門慶)도 그렇게 줄항복을 했다.

양쪽 모두에게서 거듭 다짐을 받은 뒤에야 왕씨 할멈은 낯을 풀었다.

이어 술을 데워 온다, 안주를 더 내온다 해서 다시 술자리를 살렸다.

셋이 앉아 몇 잔 나누기도 전에 어느덧 해가 기웃해졌다.

반금련(潘金蓮)이 가만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남편인지 나발인지, 곧 돌아올 때가 되어서...... 전 이만 가 봐야겠어요."

그러고는 얼른 뒷문을 통해 제집으로 돌아갔다.

계집이 막 발을 내리고 앉았는데 때맞춰 무대(武大)가 돌아왔다.

술 냄새는 풍겨도 계집이 워낙 앙큼을 떠니 어수룩한 무대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한편 반금련이 나간 뒤 왕씨 할멈이 씽긋 웃으며 서문경에게 말하였다.

"어떠우? 내 수단이."

"정말 할멈을 다시 봐야겠는걸. 내 집으로 돌아가는 즉시 큼직한 은 한 덩어리를 보내리다."

"주겠단 재물도 떼먹지 않을 테니 결코 의심하지 마시오."

서문경이 헤벌어진 입으로 그렇게 받았다.

왕씨 할멈도 마음 놓고 히히덕거렸다.

"눈은 열녀각(烈女閣)을 보고 있어도 기다린 건 임 소식이란 말두 있잖우?

계집이란 게 다 그런 게지. 그건 그렇구, 이왕 관값을 물려거든 장례비까지 인심을 쓰시구랴."

서문경도 마음에 드는 계집을 품어 본 뒤에 후해져 그런 할멈의 욕심을 나무라지 않았다.

마냥 허허거리며 맞장구를 치다가 저문 뒤에야 일어나 제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부터 반금련(潘金蓮)은 왕씨 할멈이 시킨 대로 매일 아침 무대가 집을 나가기 무섭게 그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매일같이 서문경과 어울리는데 그 정분이 풀칠한 것 같고 아교로 붙인 듯했다.

옛말에 이르기를 '좋은 소문은 문밖을 넘지 못하지만 나쁜 소문은 천 리에 퍼진다.' 더니, 서문경과 반금련의 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둘이 어울린 지 보름도 안 되어 그 소문은 고을 전체에 퍼졌다.

그걸 모르는 것은 불쌍한 무대뿐이었다.

그때 양곡현에는 교()씨 성을 가진 열댓 살의 소년이 하나 있었다.

운주(鄆州)에서 자라 운가(鄆哥)라 불렸는데 식구라고는 늙은 할아버지뿐이었다.

그러나 머리가 잘 돌고 바지런해 술집을 돌며 햇과일을 팔아도 두 식구 살이는 어렵지가 않았다.

하루는 그 운가(鄆哥)가 잘 익은 배 광주리를 들고 서문경을 찾았다.

평소 서문경이 귀엽게 봐주어 몇 푼씩 던져 준 터라 그날도 좋은 배가 나오자 그부터 먼저 찾은 것이었다.

그러나 좁은 고을을 다 뒤져도 서문경을 찾지 못해 여기저기 묻고 다니는데, 어떤 말 많은 사람이 대답했다.

"꼭 그를 찾겠다면 일러 줄 곳이 있지."

"아저씨, 그게 어딘지 좀 알려 주세요. 그분에게 몇십 전어치는 팔아야 할아버지를 모실 수 있어요."

운가(鄆哥)가 그렇게 매달렸다.

수다스러운 사람이 이죽대며 일러 주었다.

"서문경, 그 사람은 요즘 찐 떡 장수 무대의 아낙하고 한창 열을 올리고 있지.

매일 자석가에 있는 할멈의 찻집에 들어앉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닥거리고 있으니 그리로 가 보렴. 너 같은 어린애가 찾아가는 거야 안 될 게 뭐 있겠냐?"

그 말을 들은 운가(鄆哥)는 곧 광주리를 둘러메고 자석가로 달려갔다.

운가가 찻집 안으로 뛰어드니 왕씨 할멈은 작은 의자에 앉아 실을 잣고 있었다.

운가(鄆哥)는 과일 광주리를 내려놓고 할멈에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운가구나. 무슨 일로 여길 왔으냐?"

할멈이 반갑잖은 눈길로 물었다.

운가(鄆哥)가 찾아온 까닭을 밝혔다.

"나리를 뵈러 왔어요. 과일이나 몇십 전어치 팔아 달라구요."

"나리라니? 어떤 나리 말이냐?"

할멈이 대뜸 눈길이 실쭉해져 물었다.

"할머닌 누군지 잘 아시면서요. 그분 있잖아요? 그분."

"그분이라니? 그게 누구든 성하고 이름이 있을 거 아니냐?"

", 왜 두 글자 성 가진 분 말이에요."

"그 두 글자 성이 뭔데?"

"할머니두 참, 공연히 그러시네. 나는 지금 서문 나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운가(鄆哥)소년은 그렇게 말해 놓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할멈이 그의 옷깃을 잡으며 소리쳤다.

"요 작은 원숭이 같은 녀석이 어딜 가려고? 사람의 집 안으로 들어갈 때는 반드시 남녀를 가리는 법이다."

"방 안에 들어가 나리를 찾아보겠다는데 왜 그러세요?"

운가(鄆哥)가 알 수 없다는 듯 그렇게 물었다.

할멈이 퍼렇게 성난 얼굴로 운가를 몰아댔다.

"요런 못된 녀석, 네놈이 어째서 내 방에서 서문 나리를 찾느냐?"

"할머니 혼자서만 잡숫지 말고 내게도 국물 한 방울은 떨궈 주셔야죠. 나도 알 만큼은 안단 말이에요!"

운가(鄆哥)도 지지 않고 맞받았다.

더욱 성이 난 할멈이 대뜸 욕을 퍼부었다.

"요 원숭이 새끼 같은 놈아, 네놈이 알기는 뭘 안다고?"

"그러지 마세요. 말이 지나가면 발굽 자국이 남고, 아무리 싸도 사향은 냄새가 새게 마련이라구요. 내가 밖에 나가 입만 뻥끗해봐요, 찐 떡 장수 형님이 펄펄 뛰며 덤빌걸요."

운가(鄆哥)가 어린애 같지 않게 대들었다.

그 소리가 틀린 게 아니라 할멈은 한층 울화가 치밀었다.

이제는 욕설을 넘어 악을 써 댔다.

왕씨 할멈은 운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요런 못된 원숭이 새끼가. 이제는 이 늙은것의 가게를 찾아와 개방귀 같은 수작을 다 늘어놓고 지랄이구나!"

"내가 원숭이 새끼라면 할머니는 뚜쟁이라구요, 뚜쟁이!"

만나려는 사람은 만나게 해 주지 않고 할멈이 욕만 퍼부어 대자 운가(鄆哥)도 약이 올라 그렇게 고함을 질렀다.

더 참지 못한 할멈이 그런 운가 소년에게 매운 따귀를 올려붙였다.

뺨까지 맞은 운가(鄆哥)도 가만 있지 않았다.

", 이제는 사람까지 쳐? 어디 내가 가만 있나 봐라!"

그렇게 악을 쓰자 할멈이 잡아먹을 듯한 눈길로 맞받았다.

"오냐, 요 원숭이 새끼야. 마음 놓고 떠들어 봐라. 네놈의 두 귀를 떼어 쫓아 버릴 테다!"

"이 빈대 같은 할망구야, 때리긴 왜 때려!"

운가(鄆哥)가 지지 않고 마구 악을 쓰자 할멈은 그의 머리를 쥐어박으며 집 밖으로 끌어내고 배 광주리까지 내동댕이쳤다.

배가 사방으로 구르는 가운데 길바닥으로 끌려난 운가(鄆哥)가 큰 소리로 할멈을 욕해 댔다.

"늙은 벌레 같은 할망구, 반드시 맛을 보여 줄 테다. 당장 무대(武大)에게 달려가 일러 주지 않는가 봐라!"

그런 다음 바구니에 배를 쓸어 담고 무대를 찾아 달려갔다.

골목 두 개를 돌기도 전에 무대가 떡 짐을 지고 가는 게 보였다.

운가(鄆哥)는 무대에게 다가가 얕보듯 흘기며 말했다.

"오래 못 봤더니 그동안 살만 찌셨어."

어린 것이 다짜고짜 그렇게 빈정거리자 무대(武大)는 어리둥절했다.

지고 있던 떡 짐을 내려놓으며 운가에게 물었다.

"나야 만날 그 모양일 텐데, 살이 쪘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일전에 보릿겨를 사려고 보니 한 군데도 파는 데가 없더군요. 그런데 사람들은 모두 다 당신네 집에 보릿겨가 있을 거라 그럽디다."

운가(鄆哥)는 또 그렇게 알 수 없는 소리를 했다,

무대(武大)가 더욱 어리둥절해 물었다.

"우리 집에는 오리를 기르지 않는데 무슨 보릿겨란 말이냐?"

"보릿겨가 없다면 햇볕을 안 쬐어서 그런가. 뚱뚱해져 거꾸로 세워 놔도 되겠네. 냄비에 넣고 삶아도 괜찮겠우."

무대를 바로 오리로 보고 하는 소리였다.

오리는 원래 암컷이 짝을 가리지 않아 오쟁이 진 남자를 흔히 오리라고 빗대 불렀다.

무대(武大)도 그만한 것은 알아 불끈 성을 냈다.

"요런 못된 자식, 어른을 욕뵈려 들어? 우리 마누라가 샛서방을 본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오리인 것처럼 빈정거려?"

무대가 그렇게 소리쳐도 운가(鄆哥)는 눈도 깜박하지 않았다.

"당신 여편네가 샛서방은 보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군서방은 보았을걸!"

그 말에 성이 난 무대(武大)가 운가의 멱살을 거머잡았다.

"요 녀석, 나를 뭘로 보고 하는 소리냐? 바로 말해!"

"이러지 마세요. 나를 작은 주인처럼 모셔도 모자랄 텐데.

그러지 말고 내게 술이나 한잔 사 줘요. 그러면 다 말해 드릴게."

운가(鄆哥)가 조용히 그렇게 대답했다.

그 말에 뼈가 있어 멈칫해진 무대(武大)가 소리를 낮췄다.

"네가 술을 먹을 줄 알아? 좋아, 내가 한잔 사 주지. 따라와."

무대(武大)는 다시 짐을 지고 운가를 가까운 술집으로 데려갔다.

술집 안에 떡 짐을 내린 무대(武大)는 찐 떡 몇 개를 꺼내고 약간의 고기와 술을 산 뒤 운가에게 권했다.

운가(鄆哥)가 또 되바라진 소리를 했다.

"술이야 더 필요 없겠지만 고기는 몇 접시 더 있어야겠우."

그래도 무대(武大)는 고깝게 여기는 법 없이 운가를 구슬렀다.

"여보게 아우, 그거야 못 사겠나. 대신 빨리 이야기나 해 주게."

"그건 급하지 않아요. 한 잔 마신 뒤에 천천히 이야기해 드리지요.

만약 성이 나신다면 제가 도와 드릴 수도 있어요."

운가(鄆哥)는 그렇게 무대의 궁금증만 키웠다.

무대(武大)는 하는 수 없이 그 어린놈이 술과 고기를 다 먹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녀석이 술 한 잔에 고기 접시까지 비운 걸 보고서야 무대(武大)가 다시 졸랐다.

"얘야, 이제는 내게 자세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없겠니?"

그러자 운가(鄆哥)가 머리를 앞으로 쑥 내밀며 말했다.

"그 말 듣기 전에 우선 제 머리에 난 혹이나 만져 보세요."

"혹이라니, 혹이 왜 났지?"

무대(武大)가 어리둥절해 물었다.

그제야 운가(鄆哥)가 모든 걸 털어놓았다.

"이제 죄다 말씀드리죠. 오늘 좋은 배가 한 광주리 들어왔기에 저는 그걸 팔려고 서문 나리를 찾았지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없기에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그가 일러 주기를 '그 사람은 왕씨 할멈네 찻집 안방에서 무대의 아낙과 어울려 있을걸. 요즘 매일 거기서 산다니까.'라더군요. 저는 그래도 몇십 전이나마 벌자고 그리로 달려갔지요. 그런데 그 개돼지 같은 할망구가 저를 막고 이렇게 때려 내쫓은 거예요. 제가 아저씨를 찾아 나선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 아저씨에게 그 모든 걸 알려드리려구요. 어때요, 분하지 않으세요?"

"그게 모두 정말이냐?"

아낙의 일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무대(武大)는 운가의 말을 듣고도 믿을 수가 없는지 그렇게 물었다.

운가(鄆哥)가 더욱 무대의 속을 뒤집었다.

"그뿐인 줄 아세요? 아저씨가 그리 멍청하니까 그 두 사람이 마음 놓고 붙어먹죠. 아저씨가 집만 나가면 왕씨 할멈의 집에서 만나 그 짓이라니까요. 못 미더우면 제 말이 참말인지 거짓말이지 아줌마에게 한번 물어보세요."

"실은 말이야, 털어놓고 말하자면 나도 수상쩍게 느껴지는 것은 있었지. 여편네가 매일 왕씨 할멈의 집에 바느질을 하러 간다고 가는데 돌아올 때는 뺨이 붉은 게 술기운이 있었거든. 이제 네 말을 듣고 보니 바로 그것이었구나. 안 되겠어, 여기 떡 짐을 놓아두고 당장 할멈네 집으로 달려가 연놈을 잡아 족쳐야지!"

아무리 속없는 무대라도 더 참을 수가 없더니 그렇게 벼르고 나섰다.

운가(鄆哥)가 그런 무대를 말렸다.

"아저씨는 혼자인데다 그 머리 가지고 뭘 어쩌시겠다는 거예요? 그 개 같은 할멈이 얼마나 영악한데 그렇게 함부로 덤비려 하세요? 그들 세 사람 사이에는 틀림없이 저희들끼리 짜 둔 신호가 있을 거예요. 아저씨가 가 봤자 할멈은 두 사람을 감추고 내주지 않을 거라 이 말입니다. 또 운 좋게 서문경을 잡았다 해도 별수 없을걸요. 아저씨 같은 스무 명이 가도 그는 한주먹에 때려눕히고 말 테니까요. 거기다가 그놈은 돈 많고 세력까지 있으니 아저씨가 무슨 수로 당해 내겠어요? 거꾸로 아저씨를 관청에 고소라도 하게 되면 사실이야 어떻건 죽어나는 건 아저씨 쪽일걸요."

"이보게 아우, 듣고 보니 그 말이 모두 옳긴 한데, 그렇다고 이대로 참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그 할멈에게 된통 맞은 게 분해서라도 아저씨께 수를 가르쳐 드리죠. 이렇게 한번 해 보세요."

"그 할멈에게 된통 맞은 게 분해서라도 아저씨께 수를 가르쳐 드리죠."

운가(鄆哥) 녀석이 그렇게 말해 놓고 침을 꼴깍 삼킨 뒤에 말을 이어 갔다.

"오늘 저녁에는 집에 돌아가시더라도 가만히 계세요. 아줌마가 눈치채게 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이에요. 그리고 여느 때같이 밤을 지낸 뒤 내일 아침에는 떡을 조금만 지고 나오세요. 저는 그 골목에 숨어 있다가 서문경(西門慶)이 할멈네 집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아저씨에게 일러 드리죠. 그러면 아저씨는 떡 짐을 벗어 놓고 저를 따라와 근처에 숨어 있으세요. 그때 제가 먼저 그 할망구를 찾아가 약을 올리면 할망구는 저를 때려 주려고 뛰어나올 거예요. 저는 그 할망구를 되도록 멀리 끌어내 잡아 둘 테니까 아저씨는 그 틈에 집 안으로 뛰어들도록 하세요. 갑자기 방문을 열어젖히고 큰 소리로 외친다면 그 두 사람도 꼼짝 못할 겁니다. 어떠세요? 제 꾀가."

무대(武大)가 밝지 못한 머리로 생각해 봐도 괜찮은 꾀 같았다.

분한 마음을 억누르고 운가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그것참 그럴듯하군. 아우를 다시 봐야겠는걸. 그건 그렇고 내게 돈이 얼마 있는데 가져가 쌀되라도 받도록 하지.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골목 앞에서 네 말대로 기다려 다오."

그렇게 사례까지 했다.

운가(鄆哥)도 별로 사양하는 기색 없이 그 돈과 무대가 따로 싸 준 떡 몇 개를 받아 넣고 제 갈 길로 갔다.

무대(武大)는 술값을 치른 뒤 다시 떡 짐을 지고 거리를 한 바퀴 돌아 집으로 돌아갔다. 원래 무대의 계집은 무대만 보면 욕을 퍼붓거나 무엇이든 탈을 잡아 못살게 굴었다.

그러나 그 며칠은 스스로 지은 죄가 있어서 그런지 전같이 성질을 부리지 않았다.

그날도 그랬다.

무대(武大)가 여느 때처럼 집으로 돌아가자 계집이 물었다.

"당신, 술 마셨우?"

일어나지도 않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목소리는 전에 없이 부드러웠다.

무대(武大)가 치미는 속을 누르며 대답했다.

"그렇소, 저자 사람들과 몇 잔 마셨지."

무대(武大)가 평소에 마시지 않는 술을 마시고 돌아온 게 저와 서문경의 일을 알게 되어서가 아닌가 불안해했던 계집은 그 같은 대답과 표정에 금세 마음을 놓았다.

그렇다면 더 말을 붙여 볼 까닭이 없다는 듯 부엌으로 가 저녁 준비를 했다.

무대도 말없이 앉았다가 계집이 차려 온 저녁밥을 몇 술 뜨고는 곧 자리에 누웠다.

다음 날이었다.

아침밥을 먹은 무대(武大)는 운가의 말대로 떡 짐에 찐 떡을 조금만 담았다.

그러나 계집은 오직 서문경만 생각하느라 무대가 떡을 조금 담는지 많이 담는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대(武大)는 여느 때와 같이 떡 짐을 지고 집을 나섰다.

계집은 무대가 골목에서 채 사라지기도 전에 왕씨 할멈의 집으로 뛰어갔다.

거기 가서 서문경과 어울리기 위함이었다.

한편 무대(武大)는 자석가를 채 벗어나기도 전에 골목 모퉁이에서 기다리고 있는 운가 소년과 만났다.

녀석도 여느 때처럼 과일 광주리를 메고 있었다.

"얘야, 어찌 됐니?"

무대(武大)가 사정을 묻자 운가가 찡긋 눈짓을 보내며 대답했다.

"아직은 좀 이른 것 같아요. 아저씨는 거리를 한 바퀴 돌고 오세요. 그때쯤이라야 될 것 같은데요."

이에 무대(武大)는 마음에도 없는 떡 장수로 고을을 돌기 시작했다.

무대가 고을을 한 바퀴 돌아오자 정말로 운가의 말대로 되어 있었다.

"됐어요, 제가 먼저 그 할망구네 찻집으로 들어갈 테니 아저씨는 여기서 기다리세요. 그러시다가 제가 광주리를 내던지고 달아나거든 그때 집 안으로 뛰어드시는 겁니다."

무대(武大)는 그 말에 따라 등에 진 떡 짐을 내려놓았다.

그사이 왕씨 할멈의 찻집 앞으로 달려간 운가가 광주리를 멘 채 안으로 들어가며 냅다 고함을 질렀다.

"이 돼지 같은 할망구야, 어제 나를 때렸지!"

그러자 안에서 할멈의 악쓰는 소리가 맞받아 쏟아졌다.

"요 원숭이 새끼 같은 놈아, 나와 너는 아무것도 걸린 게 없는데 무엇 때문에 또 와서 욕질이냐?"

"이 순 뚜쟁이 할망구가 오리발이네. 늙은 개방귀 같은 소리 마라."

운가(鄆哥)가 그렇게 맞받자 할멈은 더 참지를 못했다.

우르르 달려나와 운가를 후려쳤다.

"오냐, 마음대로 때려라!"

운가(鄆哥)가 그렇게 악다구니를 쓰며 과일 광주리를 길거리로 내동댕이쳤다.

할멈이 그런 운가를 잡고 한층 맵게 후려쳤다.

운가도 가만히 맞고만 있지 않았다.

할멈의 허리띠를 잡고 나동그라지며 머리로 할멈의 아랫배를 들이받았다.

할멈이 비틀하고 자빠졌다가 벽에 의지해 일어나며 운가의 머리칼을 움켜잡았다.

그런 할멈의 눈에 갑자기 무대(武大)가 뛰어드는 게 보였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덤벼드는 게 예사롭지가 않았다.

할멈은 그 와중에도 어떻게 무대를 막아 보려 했다.

그러나 운가와 엉켜 있어 얼른 몸을 뺄 수가 없었다.

막아 볼 틈도 없이 집안으로 뛰어드는 무대의 뒷모습을 보며 안방 쪽에 대고 꽥 소리를 쳤다.

"무대다!"

그 소리에 방 안에서 한창 열을 올리고 있던 반금련(潘金蓮)과 서문경(西門慶)은 깜짝 놀랐다.

계집은 벗은 몸으로 문고리부터 닫아 걸고 사내는 침상 밑으로 기어 들어가 숨었다.

그때 방문 앞까지 달려온 무대(武大)가 손으로 문을 밀어젖혔다.

계집이 걸어 놓은 문이라 쉽게 열릴 리가 없었다.

"무슨 짓들이냐?"

무대(武大)가 금방이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올 듯 고함을 질렀다.

계집은 급했다.

무슨 수가 없나 싶어 방 안을 둘러보다가 침상 밑에 숨은 서문경이 눈에 들어오자 한심하다는 듯 쫑알거렸다.

"이봐요, 당신 평소에는 주먹깨나 쓴다고 자랑자랑이더니 그게 무슨 꼴이에요? 당장 급할 때 아무 소용 없다면 그거야말로 종이호랑이 보여 준 꼴이지."

바로 말은 안 해도 서문경에게 무대를 때려눕히고 달아나라고 꼬드기는 것이나 다름없는 소리였다.

서문경(西門慶)도 그 소리를 듣자 번쩍 정신이 들었다.

급한 김에 침상 밑에 숨기는 했지만 따져보니 달아날 길은 계집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침상에서 빠져나온 서문경(西門慶)은 문 앞으로 달려가 활짝 문을 열어젖히며 소리쳤다.

"문은 고만 두드려!"

멈칫하던 무대가 그런 서문경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더 빠른 것은 서문경의 발길질이었다.

제법 자랑깨나 해 온 서문경의 오른발이 무대의 가슴께를 걷어차니 무대의 작은 몸집은 볼품없이 발랑 나가떨어졌다.

서문경(西門慶)은 무대가 나자빠지자 그래도 길을 앗아 달아났다.

찻집에서 할멈과 엉켜 있던 운가가 그를 보았으나 미처 소리 한번 지르지 못했다.

그저 할멈의 갈퀴 같은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가 급해 안간힘을 다할 뿐이었다.

서문경(西門慶)이 거리로 뛰어나가자 이웃 사람들도 대강의 사정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누구도 감히 서문경의 앞길을 막지는 못했다.

왕씨 할멈은 서문경이 무사히 빠져나간 걸 본 뒤에야 운가를 놓아주고 안으로 들어갔다. 차게 굳어 서 있던 반금련 앞에 나자빠진 무대가 눈에 들어왔다.

할멈은 얼른 무대를 부축해 일으켰다.

어디를 어떻게 채였는지 무대의 입에서는 피가 흐르고 얼굴은 밀랍처럼 하얘졌다.

할멈이 얼른 반금련을 시켜 찬물 한 사발을 떠 오게 했다.

무대(武大)는 그 물을 한 모금 들이켜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몸을 움직이지 못하기는 정신을 잃기 전이나 다름없었다.

할멈과 반금련은 그런 무대의 어깨를 양쪽에서 끼고 간신히 제집으로 옮겨 눕혔다.

그날 밤은 그대로 지나가고 다음 날이 되었다.

서문경(西門慶)은 일이 별 탈 없이 가라앉은 걸 알자 여느 때처럼 왕씨 할멈의 찻집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역시 여느 때처럼 그곳으로 기어든 반금련과 어울려 즐기면서 무대가 절로 죽어 주기만을 기다렸다.

한편 앓아누운 무대는 닷새가 지나도록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했다.

거기다가 더 기막힌 것은 계집의 행실이었다.

배가 고프다 해도 미음 한 그릇 쑤어 주는 법이 없고, 목이 마르다 해도 물 한 모금 갖다 주지 않았다. 불러도 대꾸조차 않고, 매일 짙은 화장으로 왕씨 할멈의 집에 가 살다가 돌아올 땐 벌겋게 술이 오른 얼굴이었다.

그 바람에 더욱 화가 난 무대가 몇 번이나 까무러쳤다 깨어났지만 누구 하나 와 보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견디다 못한 무대가 악을 써 계집을 불러 놓고 으름장을 놓았다.

"내가 이리 된 것은 너 때문이야. 네년이 화냥질하는 걸 내 손수 잡으려 했는데, 네년은 오히려 샛서방을 꼬드겨 나를 치게 했겠다. 이제 그놈에게 가슴을 모질게 채여 나는 죽으려도 죽을 수가 없고 살려 해도 살 수가 없이 되었다. 그런데도 너희 연놈은 오히려 잘됐다는 듯 시시덕거려? 내가 죽는 것은 괜찮다만 너희 일이 정말 낭패로구나. 내 아우 무송의 성격은 너두 알지? 이르든 늦든 돌아오기만 하면 가만히 있을 성싶으냐? 조금이라도 내가 불쌍하거든 일찌감치 나에게나 잘해라. 그러면 아우가 돌아와도 이 일은 일절 말하지 않으마. 그러나 네가 계속 이렇게 나를 대하다가는 내 아우가 돌아온 날 어찌 될지 말할 필요도 없을 게다!"

화냥질에 눈이 멀었다지만 귀까지 막히지는 않았던지 반금련도 그 말을 알아들었다.

아무 소리 않고 듣고 있다가 살그머니 왕씨 할멈의 집으로 건너가 서문경에게 그대로 전했다.

서문경(西門慶)도 무송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계집으로부터 무대가 한 말을 전해 듣자 얼음 구덩이에 처박힌 것처럼 번쩍 정신이 들었다.

"큰일 났구나. 나도 경양강 고갯길에서 호랑이를 때려죽인 무송은 알고 있지. 그는 이 고을에서 제일 무서운 호걸이야. 그런데 무대의 여자에게 반해 이것저것 따져 보지도 않고 일을 벌였으니 어쩌면 좋으냐? 이거 정말 큰일이로구나!"

할멈과 둘만 남자 그렇게 반금련을 원망하듯 걱정을 했다.

왕씨 할멈이 차게 웃으며 핀잔을 주었다.

"일을 이렇게 되도록 한 건 나리지만 나도 꽤나 거들었지 않우? 나는 이렇게 가만있는데 나리가 오히려 그렇게 벌벌 떠니 알 수 없구랴."

"어디 애초에 아무것도 모르고 저질렀소? 나도 남아로써 위신이 있지만 워낙 상대가 상대라....할멈, 혹시 무슨 좋은 수가 없소? 이번에는 우리 두 사람을 위해 한 번 더 꾀를 빌려주시오."

서문경(西門慶)이 매달릴 건 거기뿐이라는 듯 왕씨 할멈에게 간곡히 말했다.

할멈이 대답 대신 물었다.

"당신들은 부부로서 오래오래 함께 살고 싶소? 잠시 부부처럼 즐기기만 하면 되오?"

"할멈, 어떻게 하면 부부로 오래 살게 되고 어떻게 하면 잠시 부부처럼 즐기기만 하는 게 되오?"

서문경(西門慶)이 얼른 그렇게 받았다.

할멈이 쥐 같은 눈을 반짝이며 일러 주었다.

"당신들이 잠시 부부간처럼 즐기기만 바란다면 이만큼으로도 넉넉할 거유. 오늘부터 두 사람은 이만 헤어지고 색시는 남편 병구완이나 잘하는 거지. 무대를 구슬려 무송이 돌아오더라도 이번 일을 이야기 않도록 말이야. 그러다가 무송이 다시 어디로 가거든 그때 만나기로 하는 거야. 그렇지 않고 오래 부부로 살고 싶으면 이대로는 안 되우. 매일 한곳에서 만난다 해도 놀랍고 겁나 무슨 재미가 있겠우? 그러러면 달리 계책이 있기는 한데 두 사람에게 일러 주기가 차마 어렵구랴."

"할멈, 그걸 일러 주쇼. 두 사람이 부부로 오래 살 수만 있다면 정말로 고맙겠소!"

"그 계책을 쓰자면 한 가지 물건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딴 사람 집에는 없고 오직 나리 댁에만 있는 거라서....."

"눈알이라도 빼 달라면 빼 주겠소. 도대체 그 물건이 뭐요?"

"마침 무대 그 멍청이가 중병으로 누워 있지 않우. 낭패를 당하지 않으려거든 손을 쓰는 게 좋을 거요. 나리는 댁에 있는 비상(砒霜)을 조금 가져오시고, 색시는 딴 곳에 가서 가슴앓이 약 한 첩을 짓게 해 그걸 함께 먹이는 거유. 그러면 그 난쟁이는 그대로 뻗을 테니, 화장만 해 버리면 일은 깨끗이 끝난단 말씀이야. 무송 제까짓 게 돌아온다 해도 무얼 어쩌겠우? 거기다가 예로부터 형수와 시동생 사이는 내외가 있는 법이고, '첫 번째 시집은 부모를 따르지만 개가는 제 좋은 대로'란 말도 있지 않우? 한 반년 몰래 만나다가 색시가 상복을 벗은 뒤에 나리 댁으로 들어간다면 누가 시비를 한단 말이우? 이게 바로 부부로 오래오래 즐거움을 함께하는 길이지. 이 계책이 어떠우?"

말인즉 생사람을 독살하자는 것인데도 할멈은 낯색 한번 변하지 않고 말했다.

계집에 미쳐 제정신이 아니기는 서문경도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호기라고 아는지 시원시원하게 할멈의 말을 받았다.

"할멈, 됐어. 까짓 죄가 겁나 할 일 못하겠나? 좋아, 그러지."

"풀을 베려면 뿌리까지 뽑아 싹이 못 돋게 하란 말이 있우. 만약 풀을 베고도 뿌리를 뽑지 않으면 봄에는 다시 싹이 돋을 테니. 그럼 나리는 어서 가서 비상을 가져오슈.

나는 색시를 시켜 약을 짓고 손을 쓰도록 할 테니. 그런데 말이우, 일이 잘 끝나면 내게 정말로 두둑이 내놓는 거 잊지 마슈."

"당연하지, 그건 조금도 걱정 말게."

세상에 악한 씨종이 따로 있는지 뭐가 씌었는지 둘은 그렇게 결정을 보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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