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武大)가 아내를 얻게 된 경위는 이랬다.
청하현에 한 부잣집이 있었는데, 그 집에서 부리는 종년 중에 반금련(潘金蓮)이라는 스무 살 남짓의 계집이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반반한 까닭에 주인 영감이 집적거리게 되었는데, 그녀는 주인 영감의 말을 들어 주기는커녕 바로 주인마님에게 그 일을 일러바쳐 버렸다. 욕심은 못 채우고 할멈한테 강짜만 당한 주인 영감은 화가 단단히 났다. 어디 너도 한번 당해 보라는 심경으로 반금련을 무대에게 주어 버렸다. 못생기고 가난한 무대(武大)에게 돈 한 푼 받지 않고 반금련을 시집보내 버린 것이었다. 누가 봐도 짝이 기우는 이 부부를 두고 청하현 사람들은 말이 많았다. 특히 고을의 바람기 있는 건달들은 드러내 놓고 무대의 집을 들락거리며 반금련을 후려 내려 들었다. 반금련(潘金蓮)도 매인 몸이라 어쩔 수 없이 무대에게 시집을 왔지만, 그 키 작고 못생긴 신랑을 좋아할 리 없었다. 거기다 원래 바람기가 많은 여자라 찾아오는 건달들과 좋다 하고 어울려 시시덕거렸다.
"좋은 양고기가 비루먹은 강아지 새끼에게 떨어진 꼴이구나!"
건달들은 무대네 집 앞을 서성거리며 공공연히 그렇게 떠들어 댔으나 겁 많고 힘없는 무대로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다. 무대(武大)가 청하현을 떠나게 된 것은 그런 건달들에게서 시달림을 받다 못해서였다. 무대는 양곡현 자석가(紫石街)란 곳에 셋방을 얻어 짐을 옮기고 매일같이 떡을 쪄서 팔아 생계를 이어 나갔다. 그날도 현청 앞으로 떡을 팔러 나왔다가 마침 무송을 만나게 되었다.
"얘야, 나도 며칠 전 거리에서 경양강의 호랑이를 때려잡은 장사의 성이 무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지현께서 그를 도두로 삼았단 말도. 그때 나는 이미 그게 너인 줄 대장 짐작했지. 그래서 오늘도 혹시 너를 만날 수 있을까 싶어 여기로 나왔다가 이렇게 만난 거란다. 떡은 팔지 않아도 되니 나와 함께 집으로 가자."
무대(武大)가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하며 무송의 손을 끌었다.
"집이 어딥니까? 형님."
마침 한가하던 무송(武松)이 한번 가 볼 양으로 그렇게 물었다. 무대(武大)가 손으로 멀지 않은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바로 요 앞 자석가란다."
이에 무송(武松)은 형을 대신해 떡짐을 지고, 무대(武大)는 길을 안내해 자석가로 갔다. 한 군데 골목을 돌아 찻집 곁 벽에 난 문 앞에서 무대(武大)가 크게 소리쳤다.
"여보, 문을 활짝 여시오!"
그러자 문 안에 내려진 발을 걷고 한 부인네가 나오며 심드렁히 말했다.
"아니, 이 양반이 오늘은 어째 이리 빨리 돌아왔나?"
무대(武大)가 기세 좋게 그 말을 받았다.
"시동생이 왔단 말이오. 여보, 어서 나와 시동생을 보시오!"
그리고 무송이 대신 지고 온 짐을 받아 집 안으로 들인 뒤 다시 나와 무송에게 말했다.
"얘야, 어서 방 안으로 들어와 형수를 뵈어라."
형의 부름에 무송(武松)이 발을 걷고 들어가 형수라는 여자를 보았다. 무대(武大)가 무송을 제 아낙에게 소개하며 한층 기세를 올렸다.
"이봐, 경양강에서 호랑이를 때려죽였다는 사람이 누군지 알아? 바로 여기 있는 내 아우라구."
그러자 그 아낙네도 얌전하게 손을 모으며 무송에게 인사를 했다.
"도련님, 안녕하세요?"
무송(武松)이 황급히 옷가짐을 바로 하며 공손히 말했다.
"형수님, 거기 앉으십시오. 제가 예(禮)를 올리겠습니다."
그러고는 땅바닥에 넙죽 엎드려 절을 했다. 아낙네가 호들갑을 떨며 달려와 무송을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도련님, 이러시지 마세요. 제게 지나치신 예는 거북합니다."
"아니지요. 형수님으로서 당연히 절을 받으셔야 합니다."
무송(武松)은 그렇게 우기며 절을 마쳤다.
"저도 이웃집 왕씨 할머니로부터 호랑이를 때려죽인 호걸이 우리 현(縣)에 있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한번 보기나 한다고 현청 앞으로 가 봤지만 너무 늦어 얼굴을 뵙지는 못했지요. 그런데 그 호걸이 바로 도련님일 줄이야. 자, 도련님 어서 올라오세요."
아낙네가 수다 섞어 무송을 불러들여 세 사람은 곧 방 안에 마주 앉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온당찮은 행실은 세 사람이 마주 앉기 바쁘게 튀어나왔다.
"이봐요, 나는 도련님을 대접하고 있을 테니 당신을 가서 술하고 안주 좀 마련해 오세요. 그래야 오랜만에 오신 도련님께 옳은 대접이 될 거 아니에요."
그렇게 무대를 종 부리듯 시켰다. 무대(武大)가 밸 없이 히죽거리며 일어났다.
"거 좋지, 얘야, 여기 잠깐만 앉아 있어라. 내 얼른 갔다 오지."
무대가 나가고 무송과 단둘이 마주 앉게 되자 무대의 아낙 반금련은 속으로 생각했다.
'무송과 남편은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라는데 어찌 이리도 딴판일까? 무송(武松)은 몸집도 크고 인물도 훤한데 남편이란 작자는 뭐야? 난쟁이 곰보에 생김은 또 사람보다 귀신에 가까우니.... 저 무송 좀 보아. 호랑이를 주먹으로 때려잡았다니 힘인들 오죽 좋겠어? 하긴 장가를 들지 않았다니 우리 집에 와 같이 있게 해 안 될 게 뭐람. 누가 알아. 그게 또 뜻밖으로 좋은 인연이 될지.'
그렇게 생각을 굴린 반금련이 갑자기 눈웃음을 지어 보내며 무송에게 물었다.
"도련님, 여기 오신 지 며칠이나 되나요?"
"이제 한 보름 됩니다."
"어디 묵고 계신가요?"
"현청 안의 관사에 묵고 있습니다."
무송(武松)이 별 생각 없이 그렇게 대답하자 반금련(潘金蓮)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참 불편하시겠어요."
"뭘요, 홀몸이라 음식 해 먹기도 편합니다. 또 얼마 안 있으면 병사들이 와서 시중도 들 거구요."
"병사들이 시중들어 본들 뭘 하겠어요? 그러지 말고 저희 집으로 오세요. 제가 끼니를 돌봐 드리면 그까짓 병사들하고 대겠어요? 도련님께서는 아주 편히 지내실 수 있을 테니 그렇게 하세요."
반금련(潘金蓮)이 이윽고 그렇게 권해 왔다. 무송(武松)은 처음 만났지만 그래도 형수 되는 여자가 인정으로 권하는 것이라 형님네 집에서 지내라는 것을 마다할 수 없었다.
"형수님, 고맙습니다."
무송이 그렇게 대답하자 반금련(潘金蓮)은 한층 대담해졌다. 이번에는 단수를 높여 저 궁금한 것을 묻기 시작했다.
"장가는 드셨어요?"
"아니오, 아직 아내를 얻지 못했습니다."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스물다섯입니다."
"저보다 세 살이 위이시군요. 그런데 이번에 여기는 어떻게 오시게 되었죠?"
"창주에서 한 일 년 지내다 보니 형님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형님이 계시던 청하현으로 가려 했는데 뜻밖에도 형님께선 이곳 양곡현으로 옮겨 살고 계시군요."
무송이 거기까지 대답하자, 반금련(潘金蓮)이 살포시 한숨까지 지으며 자기들이 그리로 옮겨 살게 된 까닭을 밝혔다.
"그건 한마디로 다 말씀드리기 어렵지요. 제가 형님께 시집을 가니까 거기 사람들이 어쨌는지 아세요? 형님을 만만하게 보아 그곳에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요. 정말이지 도련님만 계셨어도 그런 꼴은 당하지 않았을 거예요."
제 못된 짓은 쏙 빼고 하는 소리였다. 무송(武松)이 그런 그녀를 위로한답시고 겸양 섞어 말했다.
"형님이 원래가 착한 분이시라.... 저 같은 말썽꾸러기와는 다르지요."
"그런 소리 마세요. 사람이 뼈대가 굳세지 못하면 몸 편히 쉴 곳이 없다죠, 아마? 거기다가 형님은 너무 답답해요. 그야말로 세 번 불러야 고개를 돌리고 네 번 불러야 몸이 돌아서는 사람이죠."
"그래도 엉뚱한 일을 저질러 형수님을 걱정하게 만드는 일은 없을 겁니다."
가만히 두면 끝없이 쏟아질 것 같은 반금련의 불평을 무송(武松)이 그렇게 막고 있는데 무대가 술과 안주를 사 가지고 돌아왔다.
"어이, 당신이 내려와 좀 장만해 보지 그래."
부엌으로 들어간 무대가 아낙을 보고 그렇게 말하자 반금련(潘金蓮)이 쏘아붙였다.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도 뭘 모르세요? 도련님이 여기 계시는데 그냥 버려두고 내려가 안주나 장만하라는 거예요?"
"괜찮습니다. 저는 상관 마시고 가 보시지요."
아직은 반금련의 속셈을 몰라 그저 좋게만 생각한 무송(武松)이 그렇게 권했다. 그러나 그녀는 무송의 말에는 대꾸 않고 부엌에 있는 무대에게 다시 핀잔 섞어 말했다.
"이웃집 왕씨 할멈은 두었다 뭐해요? 그 할멈 좀 불러다 시키면 안 돼요?"
그러자 무대(武大)는 또 아무 소리 않고 이웃집으로 가 왕씨 할멈을 불러왔다. 안주가 다 장만되어 술과 함께 올라오자 무대가 술자리를 마련했다. 어이없게도 아낙을 가장 윗자리에 앉히고 무송을 그 맞은편에 그리고 자신은 곁자리에 끼어 앉는 것이었다. 무대가 술잔을 치자 반금련(潘金蓮)이 술잔을 들어 무송을 보며 권했다.
"도련님, 대접이 소홀하다 서운해하지 마시고 술이나 한잔 드세요."
"형수님, 고맙습니다."
여러 가지로 눈에 안 차는 일이 많았으나 무송(武松)이 마지못해 술잔을 잡으며 그렇게 말했다. 술잔을 비우기 시작한 뒤에도 무대(武大)는 시중을 든다고 바빴다. 데워 온다, 안주를 더 내온다..... 그러는 동안도 아낙네 되는 반금련(潘金蓮)은 상전처럼 버티고 앉아 술잔만 비웠다. 그 모양을 본 무송(武松)이 유쾌할 리 없었다. 자연 술맛도 떨어지고 안주를 집을 흥도없어 그저 흉내만 내고 있는데 반금련(潘金蓮)이 함빡 웃음 머금은 얼굴로 무송을 보며 물었다.
"도련님, 어째서 생선 한 토막, 고기 한 점 집지 않으세요?"
그러면서 금방 안주라도 집어 줄 듯 아양을 떨었다. 반금련(潘金蓮)은 원래가 남의 집 종년이었던 터라 사람 비위 맞추는 데는 남달랐다. 그러나 무송(武松)은 오직 형수로만 대할 뿐이었다. 술이 몇 잔 들어자 반금련(潘金蓮)은 한층 거침없이 추파를 드러내 보였다. 그제야 무송(武松)도 그녀의 좋지 않은 뜻을 짐작했으나 시작한 술자리라 말없이 술잔만 기울이다 몸을 일으켰다.
"아우, 왜 일어나나? 몇 잔 더 하고 가지 그래?"
무대(武大)가 물색없이 아우를 붙들었다. 무송(武松)이 불편한 속을 드러내지 않고 말했다.
"됐습니다. 다음에 또 뵈러 오지요."
그러면서 집을 나서자 반금련(潘金蓮)이 아쉬운 듯 따라 나오면서 콧소리 섞인 말로 형제 모두에게 졸랐다.
"도련님, 꼭 우리 집으로 옮겨 오셔야 해요. 도련님이 우리 집으로 안 오시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 내외를 비웃을 거라구요. 친형제가 남남처럼 정 없이 지낸다구 말이에요. 그리고 당신, 당신도 빨리 이 집에 방 한 칸 잘 곁들여 보세요. 도련님이 와 계시게. 형제를 길거리 아무 집에나 있게 하는 것 옳지 않은 일이에요."
"네 형수 말이 맞다. 얘야, 부디 우리 집으로 옮겨 이 형이 남의 욕을 안 듣게 해 다오."
무대까지 덩달아 그렇게 나오니 무송(武松)도 어쩌는 수가 없었다.
"형님과 형수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오늘 밤이라도 보따리를 싸서 오도록 하지요."
마침내 무대네 집으로 옮기는 걸 승낙했다. 무대의 아낙이 한 번 더 쐐기를 박았다.
"도련님, 잊으시면 안 돼요. 전 그리 알고 기다리겠어요."
형님댁을 나온 무송(武松)은 그길로 현청으로 돌아갔다. 마침 지현(知縣)이 대청에 나와 현의 일을 보고 있었다. 무송(武松)이 지현 앞으로 나가 아뢰었다.
"저희 친형님이 자석가에 이사를 와서 살고 계십니다. 거처를 형님댁으로 옮기고 싶어 상공의 뜻을 알아보려 합니다."
"형제간의 우애로는 마땅히 그래야 할 것인데 내가 어찌 말리겠느냐? 허나 나가 있더라도 매일같이 현청에는 나와 봐야 한다."
지현(知縣)이 그렇게 허락했다. 이에 무송(武松)은 현청 안의 거처로 돌아가 쓰던 물건이며 새로 지은 옷가지, 이런저런 상으로 받은 상품 따위를 보따리에 쌌다. 무송(武松)이 보따리를 진 병사와 함께 형의 집에 이르니 형수는 밤중에 횡재라도 한 사람처럼 기뻐 어쩔 줄 모르며 달려 나왔다. 무대(武大)가 이미 목수를 부러 위층 방 한 칸을 고치게 한 뒤 침상 하나와 탁자 하나, 의자 둘을 짜게 해 놓아서 묵을 방도 아무런 불편 없게 갖춰져 있었다. 무송(武松)은 그 방에 짐을 풀고 데리고 온 병사를 돌려보냈다. 형과 형수도 첫날이니 쉬라 싶었던지 무송을 찾지 않아 그날 밤은 일없이 지나갔다.
다음 날이었다. 형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숫물을 데운다, 양칫물을 떠온다, 무송을 시중들었다. 머릿수건이며 옷차림까지 꼼꼼히 매만져 준 형수가 현청에 나가는 무송을 문 앞까지 따라 나와 배웅하며 말했다.
"도련님, 식사도 꼭 집에 돌아와서 하도록 하세요. 다른 데서 드시면 안 돼요."
"그러지요."
무송(武松)은 그 살뜰함에 은근히 감격까지 하며 집을 나섰다. 현청으로 아침 문안을 간 무송(武松)이 돌아오니 형수는 어느새 정성 어린 아침상을 봐 놓고 있었다. 세 사람은 상머리에 둘러앉아 맛있게 아침밥을 먹었다. 식사 후 형수는 다시 무송에게 차 한잔을 두 손으로 받쳐 올렸다.
"형수님께서 이렇도록 극진히 대해 주시니 저는 오히려 여기서 먹고 자는 게 불편할 지경입니다. 차라리 병사 한 명을 불러 시중들게 하는 게 영 편하겠습니다."
차를 받아 마신 무송(武松)이 그렇게 말했다. 첫날의 마뜩잖은 인상에다 형수로서는 지나친 친절이 알지 못하게 불안해서 하는 소리였다. 형수가 펄쩍 뛰듯 호들갑을 떨었다.
"도련님, 그 무슨 서운한 말씀이세요? 어찌 그리 저를 남 보듯 하십니까? 내 집안 혈육인데 그만 시중도 못 들어 다른 사람을 집 안에 불러들이다니요. 더군다나 병사를 불러 쓰면 솥이랑 부엌이랑 지저분해져서 안 돼요. 나는 다른 사람이 내 집 안을 어지럽혀 놓는 건 못 봐요."
그녀가 하도 그렇게 도리질을 치고 나서니 무송(武松)도 또 어쩔 수가 없었다.
"형수님이 그러시다면 안 되겠군요. 그럼 신세를 지겠습니다."
그러면서 제 말을 거둬들였다. 무대의 아낙 반금련이 아무리 사내에 환장한 여자라 해도 제 집에 들어온 시동생을 며칠 안에 당장 어찌하려 덤빌 리는 없었다. 그 바람에 며칠은 일없이 지나갔다. 형의 집으로 옮긴 뒤 무송(武松)은 형에게 돈을 주어 떡과 과자와 차를 마련하게 하고 이웃을 불러 대접했다. 이웃은 무송 형제의 우애를 부러워하며 모두 몰려와 다시 함께 살게 된 걸 기뻐해 주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무송(武松)은 고운 비단 한 필을 사서 형수에게 옷 한 벌을 지어 주었다. 형수가 좋아 어쩔 줄 몰라 하며 감사했다.
"도련님, 정말 이러셔도 돼요? 하지만 도련님께서 해 주신 옷인데 어떻게 마다할 수 있겠어요? 잘 입을게요."
집안에 별일이 없으니 무대도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매일 전처럼 찐 떡을 둘러메고 거리에 나가 팔았다. 무송(武松)도 거처가 달라졌을 뿐 전처럼 현청에서 일을 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기야 반금련이 그렇다고 무송에 대한 음심을 버린 건 아니었다. 아침저녁 무송이 현청에서 돌아오기만 하면 솜씨껏 끼니를 대접하고 갖은 아양을 다 떨었다. 그러나 무송(武松)이 워낙 마음이 굳은 사람이라 반금련이 아무리 공을 들여도 그녀를 형수 이상으로 보지는 않았다.
길면 길다 할 수 있고 짧으면 짧다 할 한 달이 지나갔다. 어느새 섣달로 접어들어 연일 매서운 바람이 일더니 두터운 구름이 하늘을 덮고 눈발을 뿌리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내린 눈이 하얗게 천지를 덮은 다음 날이었다. 무송은 일찍 현청에 나가 한낮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고, 무대도 아낙에게 몰려 거리에 떡을 팔러 나가 있었다. 눈 때문에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는지 홀로 집을 지키던 반금련이 오래 별러 오던 일을 기어이 벌이고 말았다. 바로 시동생인 무송을 유혹하는 일이었다. 반금련은 이웃 왕씨 할멈을 시켜 술과 고기를 사 오게 해 술상을 차리는 한편, 무송의 방에 화로를 피워 방 안을 따뜻하게 데워 놓았다. 그녀의 속셈은 이랬다.
'오늘은 그를 한번 건드려 보자. 제가 아무리 철석같은 심장을 가졌다 해도 넘어가지 않고는 못 배길걸...'
거기 맞게 이런저런 채비를 마친 반금련은 창가에 붙어 서서 무송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얼마 안 있어 무송(武松)이 은가루 같은 눈을 뒤집어쓰고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걸 본 반금련은 속으로 가만히 웃으며 발을 걷고 나가 맞았다.
"도련님, 몹시 춥지요?"
"뭘요, 형수님께서 그렇게 걱정해 주시니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무송(武松)은 문밖까지 나와 따뜻하게 맞이하는 형수에게 그렇게 감사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무송(武松)이 눈 맞은 전립을 벗으려 하자 반금련이 다가와 두 손으로 거들려 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벗지요."
무송(武松)은 형수의 도움을 뿌리치듯 전립을 벗어 눈을 턴 후 벽에 걸었다. 이어 무송은 다시 눈 맞은 겉옷을 벗어 방 안에 널었다. 보고 있던 반금련이 다시 다정하게 말을 붙였다.
"도련님, 일찍부터 기다렸는데 왜 아침 잡수러 오지 않으셨어요?"
"현청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이 같이 가자고 해서요. 마침 할 일도 있어 집까지 오기가 번거롭기에 거기 가서 먹었습니다."
무송(武松)이 그렇게 대답하자 반금련이 한층 더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그러셨어요? 어쨌든 도련님 추우실 테니 이리 와서 불 쬐세요."
"좋지요."
무송(武松)이 그런 대답과 함께 젖은 신을 벗고 버선을 갈아 신었다. 무송이 불가에 의자를 갖다 놓고 앉은 걸 본 반금련(潘金蓮)은 살그머니 나가 앞문에 빗장을 지르고 뒷문도 걸어 잠갔다. 뜻밖의 사람이 나타나 제 일을 방해하는 걸 막기 위함이었다. 문을 닫아 건 반금련(潘金蓮)이 미리 마련해 둔 술상을 들고 무송의 방으로 들어가자 무송(武松)이 불쑥 물었다.
"형님은 어디 가셨기에 아직 돌아오지 않으셨습니까?"
"형님이야 매일 장사를 나가야 하지 않아요? 도련님하고 저하고 둘이서만 한잔 마셔요."
그러나 무송(武松)은 아무래도 형수와 단둘이서 마신다는 게 마음에 걸리는 듯했다.
"형님이 돌아오시면 그때 마시지요."
그러면서 사양했다. 반금련(潘金蓮)이 짐짓 새침한 얼굴로 말했다.
"그 양반이 올 때까지 어떻게 기다려요? 그때까진 못 기다려요."
그러고는 술을 데우려고 주전자에 부었다. 무송(武松)이 일어나며 그러는 그녀를 대신하려 했다.
"형수님, 가만히 앉아 계십시오. 제가 데우지요."
"아녜요, 도련님, 제가 하는 게 편해요."
반금련(潘金蓮)은 그런 말로 무송을 앉혀 놓고 술을 데운다, 탁자 위에 술상을 벌인다, 한참 부산을 떨었다. 이윽고 술상이 차려지고 술이 데워지자 반금련(潘金蓮)이 술 한 잔을 가득 따라 무송에게 내밀며 말했다.
"도련님, 이 잔은 단번에 쭉 비우셔야 해요."
무송(武松)은 하는 수 없이 그녀가 주는 잔을 받아 단숨에 쭉 비웠다. 반금련(潘金蓮)이 다시 한 잔을 쳐서 무송에게 주며 권했다.
"날씨도 차고 하니 도련님, 한 잔 더 드세요."
"그러지요, 형수님."
이번에도 무송(武松)은 그 잔을 마다하지 못하고 비웠다. 그리고 답례로 술 한 잔을 그녀에게 따르자 그녀는 단숨에 비우고 다시 잔을 채워 돌려보냈다. 그렇게 몇 번 술잔이 오간 뒤에 반금련(潘金蓮)은 한층 대담하게 나왔다. 일부러 취한 척 옷깃을 벌려 가슴께를 내비치고, 머리를 풀어 교태를 더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얼굴 가득 요염한 웃음을 띠고 슬슬 수작까지 붙여 왔다.
"제가 어떤 사람에게 들으니 도련님께는 여자가 있다던데요. 현청 동쪽에 산다든가....그게 정말이세요?"
"차암, 형수님두. 그런 되잖은 사람의 말은 듣지도 마십쇼. 저는 그런 인간이 아닙니다."
무송(武松)이 펄쩍 뛰며 부인했다. 반금련(潘金蓮)이 여전히 헤실헤실 웃으며 덮어씌웠다.
"못 믿겠는데요, 아무래도 도련님 입하고 머릿속이 다른 거 아녜요?
"형수님께서 정히 못 믿으시겠으면 형님께 물어보십시오."
"그 양반이 그런 걸 어떻게 알겠어요. 그걸 다 알면 떡이나 팔고 다니지는 않을걸요."
"그건 그렇고 자, 도련님 술이나 한 잔 더 드세요."
그 바람에 무송(武松)은 다시 술 서너 잔을 거푸 마시게 되었다. 그럭저럭 반금련도 석 잔이나 마시게 되자 그러잖아도 남다르던 화냥기가 그대로 넘쳐흘렀다. 시동생인 무송을 상대로 한다는 소리가 모두 남녀 간의 일에 관한 것뿐이었다. 그제야 무송(武松)도 형수의 속셈을 어렴풋이 알아차렸다. 그러나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가 없어 말없이 머리를 수그리고 듣고만 있었다. 그사이 술이 다 되자 반금련(潘金蓮)은 다시 술을 데우러 일어섰다. 무송(武松)은 화롯불이 사그라드는 것 같아 부젓가락으로 불을 쑤셔 일으켰다. 얼마 안 있어 반금련(潘金蓮)이 데운 술 주전자를 들고 방으로 되돌아왔다. 그녀는 한 손으로는 주전자를 든 채 다른 한 손으로 무송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이런, 도련님 좀 봐. 아직도 옷을 그냥 입고 있네. 차갑지 않으세요?"
말은 젖은 옷을 걱정하는 듯했으나 실은 노골적으로 남자를 꾀는 수작이었다. 형수 되는 여자가 그렇게까지 염치없이 나오자 무송(武松)은 차츰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한층 굳어진 얼굴로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무송의 반응이 없자 반금련(潘金蓮)은 한층 더 유혹의 강도를 높였다. 이래도냐, 하듯 무송에게로 다가가 그가 잡고 있는 부젓가락을 뺏으며 콧소리를 냈다.
"아이 도련님두, 불은 살려 뭣하게요. 저와 도련님이 불을 일으키면 이까짓 화로하고 견주겠어요?"
그렇게 마구잡이로 감겨드는 말에 무송(武松)은 드디어 화가 났다. 하지만 아직은 형수라 억지로 속을 누르고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때 이미 반금련의 음심(淫心)은 불같이 달아 있었다. 무송이 화를 내거나 말거나 제 욕심만 앞세워 수작을 이어 갔다. 무송에게서 뺏은 부젓가락을 화로에 던져두고 술 한 잔을 따르더니, 제가 한 모금 먼저 마시고 나머지를 내밀었다.
"당신 이 나머지 잔 마저 마셔 보지 않겠우?"
이제는 말투도 형수가 시동생에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술잔을 나눠 마신다는 것은 그렇고 그런 사이의 남녀나 하는 짓이니, 무송(武松)이 어찌 그냥 있을 수 있겠는가.
"형수! 부끄러움을 좀 아시오!"
더 참지 못한 무송(武松)이 그녀가 내민 술잔을 빼앗아 방바닥에 내던지며 소리쳤다. 그러고는 매달리는 반금련을 뿌리치며 성난 목소리로 보탰다.
"이 무송은 부끄러움 없이 하늘을 이고 땅을 밟는 대장부요. 형수가 생각하는 그따위 파렴치한 개돼지가 아니란 말이오! 형수, 제발 부끄러움을 아시오. 만약 앞으로 조금이라도 이 비슷한 소문이 난다면, 내 눈은 형수를 알아볼지 몰라도 이 주먹은 형수를 알아보지 못할 거외다! 부디 행실을 조심하시오. 그럼 나중에 다시 봅시다."
무송이 그같이 을러대는 소리에 반금련(潘金蓮)은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나 화냥기 있는 여자가 또한 밝은 게 잔꾀라, 얼른 수작을 바꾸었다.
"장난으로 해 본 소린데 왜 화는 내고 그러세요? 정말로 한 소리가 아니니 걱정 마세요. 원, 사람의 정을 몰라주어도 분수가 있지...."
그러면서 반금련(潘金蓮)은 오히려 새침해져 술상을 치웠다. 반금련(潘金蓮)이 더는 눌어붙지 않고 술상을 거둬 내려가자 무송도 그쯤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마음속은 불쾌하기가 그지없었다.
오래잖아 날이 저물고 장사 나갔던 무대(武大)가 돌아왔다. 집 안에 떡짐을 내려놓은 무대(武大)가 부엌으로 가니 반금련이 독 오른 암쾡이처럼 앉아 있는데, 몹시 울었는지 두 눈이 불그레했다. 무대(武大)가 놀라 물었다.
"아니, 왜 이러나? 누구와 싸웠어?"
"도대체 당신이 칠칠치 못하니 온갖 사람들이 나를 업신여기잖아요!"
반금련(潘金蓮)이 그렇게 쏘아붙였다. 무대(武大)가 더욱 알 수 없어 다시 물었다.
"어느 놈이 감히 당신을 업신여긴단 말이야?"
"꼭 알고 싶어요? 바로 당신 동생 무송이지 누구겠어요? 나는 그 사람이 눈을 맞고 돌아왔기에 술상까지 차려 줬는데 이건 뭐 눈앞에 사람이 없다니까. 나를 마구 희롱하려 들잖아요? 사람을 어떻게 보구...."
반금련(潘金蓮)은 모든 걸 거꾸로 무송에게 덮어씌웠다. 그러나 아우의 사람됨을 잘 알고 있는 무대(武大)는 그런 아내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뭘 잘못 알았겠지. 내 아우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목소리 높이지 말라구. 이웃 사람이 들으면 웃겠어."
그렇게 아내를 달래 놓고 무송의 방으로 들어갔다.
"얘, 아직 저녁 안 먹었거든 나와 같이 먹자꾸나."
무대(武大)가 그렇게 불렀으나 무송은 어찌 된 셈인지 대답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참 뒤에야 무송(武松)은 무슨 생각에선지 넣어 둔 옷과 신발을 꿰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무대(武大)가 그런 무송에게 물었다.
"어딜 가려고?"
그러나 무송(武松)은 여전히 대답을 않고 휑하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무대(武大)가 부엌에 있는 아내를 향해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내가 부르는데 이번에는 대답 없이 나가 버리네. 현청으로 가는 건 알겠지만, 이건 무슨 일이야? 영 모르겠는걸.... 이 멍텅구리 같은 양반, 그렇게두 눈치가 없우? 무슨 일은 무슨 일. 저도 낯짝이 있으니까 감히 당신을 마주 볼 수 없어 그렇게 달아난 거지. 난 이제 다시는 당신이 그 사람을 내 집에 들여놓지 못하게 할 거예요. 알겠어요?"
반금련(潘金蓮)이 더욱 마음 놓고 제 편한 대로 무송을 헐뜯었다. 이번에는 무대(武大)도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으나 아직은 무송을 편들었다.
"만약 아우가 보따리를 싸서 나가면 이웃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비웃을걸.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도 마세요. 그 사람이 나를 희롱하려 드는 것은 이웃이 비웃지 않구요? 딴소리 말고 당신이 그사람에게 말하세요. 나는 그런 사람 다신 못 받아들인다구. 아니면 내게 이혼장을 써 주고 그 사람을 받아들이든가."
계집이 그렇게까지 독을 뿜으며 나오자 무대(武大)도 더는 우기지 못했다. 무송을 의심해서라기보다는 계집에게 들볶일 일이 두려워서였다. 두 사람의 말다툼이 그렇게 해서 수그러들 무렵 무송(武松)이 다시 돌아왔다. 병사 하나를 데려온 그는 아무 말 없이 제 방으로 가더니 보따리를 쌌다. 무송이 병사에게 짐을 지워 나가는 걸 보고 무대(武大)가 뒤따라가며 물었다.
"얘야, 무엇 때문에 이렇게 떠나느냐?"
그제야 무송(武松)이 한숨 섞어 대답했다.
"형님 묻지 마십시오. 말해 봐야 형님께 창피만 될 테니까요. 이대로 그냥 떠나게 해 주십시오."
그 표정이 얼마나 굳은지 무대가 더 어떻게 말을 붙여 볼 엄두가 안 날 정도였다. 하릴없이 팔짱을 끼고 무송이 짐을 옮겨 가는 걸 보고만 있는데, 계집이 안에서 악다구니를 했다.
"잘한다. 하나뿐인 친형제라더니 형수를 잘 돌봐 주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헐뜯어?"
"빛 좋은 개살구라더니 꼭 그렇구나. 갈 테면 가라지. 오히려 천지신명께 고마워할 판이라구."
무대(武大)는 아내가 그렇게 욕을 퍼붓자 정말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음이 즐겁지 않은 대로 멀거니 아우를 떠나보냈다. 형의 집을 나간 무송(武松)은 전처럼 현청 안의 거처에서 묵었다. 무대(武大)도 전처럼 거리를 다니며 찐 떡을 팔았다. 원래 무대는 현청으로 무송을 찾아가 형제간에 못다 한 이야기라도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계집이 워낙 표독을 부리며 무송을 만나 보지 못하게 닦달하는 바람에 감히 그를 찾아보지 못했다. 다시 세월은 물같이 흘러 그 눈 오던 날로부터 열댓새가 지났다. 양곡현 지현(知縣)은 이곳에 부임한 지 이 년 반이 넘도록 동경에 있는 친족들에게 아무것도 보내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그동안 모은 적지 않은 금은을 보낼 생각이 있었지만 걱정은 산골마다 들어앉은 도둑 떼였다. 자칫하다간 가는 길에 도둑들 좋은 일만 시킬 판이었다. 그래서 어찌할까 궁리를 하던 지현(知縣)은 문득 무송을 떠올렸다.
'그래, 그를 보내면 되겠다. 그만한 호걸이면 탈 없이 해낼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날로 무송을 불러 말했다.
"내 친척 한 분이 동경성 안에 사시는데, 그분에게 예물을 보내고 싶네. 글도 한 통 올려 문안도 드리고 싶고.... 그런데 걱정은 도중에 좋지 못한 일을 당하는 것이네. 자네 같은 호걸이 무슨 수를 내줘야겠네. 부디 싫다 말고 나를 위해 한번 가 주게. 다녀오면 후하게 상을 주겠네."
그러잖아도 마음이 어수선하던 무송(武松)은 기꺼이 지현의 말을 따랐다.
"제가 상공의 은혜를 입어 도두(都頭)로 일하게 되었는데 어찌 그만 일을 마다하겠습니까? 이왕에 보내시려면 하루라도 빨리 보내주십시오. 마침 동경은 아직 가 본 적이 없는 곳이라 이번 길에 그곳 구경이나 좀 하고 오겠습니다. 떠나는 것은 내일이라도 어렵지 않습니다."
지현(知縣)은 무송의 그 같은 말에 기뻐해 마지않았다. 상으로 술 석 잔을 내리고 모든 것을 무송의 뜻대로 하게 맡겼다.
지현 앞을 물러나온 무송(武松)은 자기 거처로 돌아오기 바쁘게 병사 하나를 불러 은자 몇 냥을 내주며 술 한 병과 고기 따위의 안줏거리를 사 오게 했다. 병사가 저자로 가 무송이 시킨 것을 사 왔다.
무송(武松)은 그 술과 안줏거리를 싸들고 자석가로 달려갔다. 형 무대의 집을 찾아보려 함이었다. 무송(武松)이 형의 집에 이르러보니 마침 무대도 떡 장사를 마치고 돌아와 있었다.
무송(武松)은 문간에서 병사를 부엌으로 들여보내 안주를 장만케 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형수 반금련(潘金蓮)은 무송이 훤칠한 모습으로 들어서자 다시 미련이 생겼다. 거기다가 무송이 술과 안주까지 마련해 온 걸 보고는 모든 걸 저 좋도록만 생각했다.
'저 사람이 나를 생각해 다시 온 게 아닐까? 그때 일을 다 잊은 모양이지. 이따가 한번 물어봐야겠다...'
생각이 그렇게 돌아가자 그녀는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얼른 위층으로 올라가 분을 바르고 머리를 빗은 뒤 옷까지 곱게 갈아입고서야 아래층으로 내려와 무송을 맞아들였다.
"도련님, 무얼 잘못 아신 게 아니세요? 요즈음은 통 찾아오시지 않는 게 저를 영 잘못 아신 것 같군요. 저는 매일 형님께 현청으로 가서 도련님을 찾아보라 했건만 형님은 찾을 수가 없다고만 하시더군요." 그런데 오늘 이렇게 찾아 주시니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반금련(潘金蓮)이 절까지 나부시 하며 그렇게 말을 붙여 오자 무송도 심통만 부릴 수가 없었다.
덤덤한 얼굴로 형수의 말을 받았다.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형님과 형수님께서 아셔야 될 일이라....."
"그렇다면 우선 올라오세요.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하도록 하세요."
반금련(潘金蓮)이 그런 무송을 위층으로 이끌었다. 방 안으로 들어간 세 사람은 무대와 반금련이 윗자리에 앉고 무송이 아랫자리에 있는 형국으로 자리를 잡았다.
무송(武松)이 데려간 병사가 술과 안주를 장만해 탁자 위에 벌여 놓았다. 무송(武松)은 형과 형수에게 술을 따르고 자신의 잔도 채웠다.
반금련(潘金蓮)이 줄곧 묘한 눈길을 보내왔으나 무송은 못 본 척 잔만 비웠다. 대여섯 잔을 비운 뒤 무송(武松)은 병사를 시켜 술을 채운 자신의 잔을 무대에게 올리게 하며 말했다.
"형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지현 상공의 심부름으로 동경엘 가게 되었습니다. 내일 아침에 떠납니다. 많이 걸리면 두 달이고 빠르면 사오십 일 해서 돌아올 것입니다. 그런데 형님께서는 힘없고 겁 많으신데다 저까지 없으니, 사람들이 업신여길까 여간 걱정이 아닙니다. 형님, 내일부터는 떡을 열 상자에서 다섯 상자로 줄여 파시고 집은 늦게 나갔다가 일찍 돌아오십시오.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지 말고 집에 돌아오면 곧 문을 걸어 잠그셔야 합니다. 일찍 문을 닫아건다고 남이 흉본다 해도 개의치 마십시오. 또 누가 시비를 걸거든 그와 싸우지 말고 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셔야 합니다. 따질 건 제가 따지지요. 그럼 형님, 제가 시킨 대로 하시겠다는 뜻으로 이 술 한 잔을 비우십시오."
그러자 무대(武大)가 정성 가득한 동생의 말에 감동한 얼굴로 술잔을 받으며 다짐했다.
"네 말이 모두 옳으니 꼭 그대로 하마."
무송(武松)은 무대가 돌려준 잔에 다시 술을 채워 형수에게 권하며 간곡하게 일렀다.
"형수님은 세밀하신 분이니 제가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형님이 사람됨이 소박하고 이치를 따질 줄 모르니 모든 것은 형수님께서 알아서 처리하십시오. 옛말에 이르기를 겉으로 꿋꿋한 것보다는 안으로 꿋꿋한 게 낫다 했습니다. 형수께서 집안을 잘 다스려 가신다면 우리 형님께서 걱정할 게 무엇 있겠습니까? 울타리가 든든하면 개는 들어오지 않는단 말도 있지 않습니까?"
무송이 그렇게 말을 맺자 반금련(潘金蓮)은 부끄럽기도 하고 화도 났다. 낯이 새빨개져서 죄 없는 무대에게 대뜸 퍼부었다.
"당신이 그렇게 흐리멍텅하니 다른 사람들이 별소리를 다 해 나를 이렇게 업신여기지 않나요? 내가 비록 갓 쓴 대장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떳떳하게 시집와 사는 한 집안의 안주인이라구요. 아직 한 번도 외간 남자가 얼씬거리게 한 적이 없는데 이게 다 무슨 소리예요? 무대(武大) 당신에게로 시집온 뒤 개미 한 마리, 어리친 개 새끼 하나 울안으로 기어드는 거 봤어요? 그런데 듣자 듣자 하니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람을 어떻게 보고...."
반금련이 그렇게 형을 들볶아 대는 걸 보고 무송(武松)은 아차 싶었다. 얼른 낯빛을 풀고 허허거리며 말했다.
"형수님께서 그리하셨다면 정말 잘하신 거지요. 입과 머릿속이 다르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자, 그럼 형수님 말을 믿는다는 뜻에서 한 잔 올리니 받으십시오."
그러나 반금련(潘金蓮)은 성을 풀지 않았다. 차갑게 술잔을 밀치더니 발딱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렸다가 층계에서 위를 올려다 보며 무송에게 퍼부었다.
"그렇게 똑똑하고 잘났으면서 맏형수는 어머님과 같단 소리는 왜 못 들었을까? 무대에게 시집올 때만 해도 무슨 도련님 같은 게 있단 소리는 못 들었는데 어디서 불쑥 뛰어 들어와서는..... 내가 한번 성이 나면 모든 게 끝장이란 걸 알아야 해!"
그래 놓고 무엇이 분한지 홰울음을 터뜨리며 아래층으로 내려가 버렸다. 그녀가 갖은 표독을 부리고 갔지만 형제는 별일 없이 남은 술을 다 마시고 헤어졌다.
"얘야, 갔다가 빨리 돌아오너라."
무송이 작별을 하자 무대(武大)가 그렇게 당부했다. 저도 몰래 눈물을 주르르 흘리는 게 무언가 좋지 않은 예감에 쫓기는 듯했다. 형이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무송(武松)이 다시 권했다.
"형님, 차라리 떡을 팔러 다니지 말고 집에만 계십시오. 가용에 쓸 돈은 제가 어떻게 보내 드리지요."
무대(武大)는 자신을 그렇게까지 생각해 주는 동생이 고마워선지 더욱 심하게 눈물을 쏟았다. 문 앞에 이르자 무송(武松)이 떠나기 앞서 한 번 더 다짐했다.
"형님, 제 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꼭 시킨 대로 하십시오."
그리고 데리고 온 병사와 함께 현청으로 돌아간 무송(武松)은 다음날 일찍 길을 떠날 모든 채비를 갖추고 지현을 보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