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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지 20화

오용(吳用)이 거사에 참여할 인물들을 하나하나 일러 주었다.

"그 세 사람은 형제간으로 제주의 석갈촌에 삽니다. 고기잡이도 하고 장사도 하는데 성은 완()씨지요. 한 사람은 입지태세(立地太歲, 땅에 내려진 태세 신)란 별명이 있는 완소이(阮小二), 다른 하나는 단명이랑(短命二郞, 오래 살지 못할 둘째) 완소오(阮小五)입니다. 나머지는 활염라(活閻羅, 살아 있는 염라대왕) 완소칠(阮小七)이외다. 셋 모두 피를 나눈 형제로, 지난날 내가 그곳에 몇 년 살 때 사귀었지요. 글은 읽지도 쓰지도 못하지만 다른 사람과 사귀는 것을 보면 참으로 의기 있는 쾌남아들이라 가깝게 지냈습니다. 근래 한 이 년은 보지 못했지만 만약 이들을 얻기만 한다면 반드시 큰일을 이룰 것입니다."

"나도 일찍이 그들 완씨 삼 형제의 이름을 들은 적은 있지만 아직 만나 보지는 못했소. 석갈촌은 여기서 백 리 남짓밖에 안되는 곳이니 사람을 보내 그들을 불러 보는 게 어떻겠소?"

조개(晁蓋)가 다시 그렇게 서두르고 나서자 오용(吳用)이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사람을 보내 부른다고 달려올 그들이 아닙니다. 내가 직접 가서 이 썩지 않은 혀로 그들을 달래야만 우리와 한 덩이가 되어줄 겁니다."

"그렇다면 언제 가시겠소?"

"늑장 부릴 일이 아니니 오늘 밤으로 그들을 찾아보고 내일 정오까지는 돌아올까 합니다."

그런 오용의 대답에 조개(晁蓋)는 흐뭇한 빛을 감추지 못했다.

"그게 가장 낫겠소."

그러고는 소리쳐 머슴을 부르더니 술상을 차려 내오게 했다. 몇 잔 술이 돈 뒤 오용(吳用)이 이번에는 유당을 보고 말했다.

"북경에서 동경으로 보내는 거라지만 그 생신강(生辰綱, 생일 선물) 보따리가 어느 길로 갈지 알 수가 없소. 번거롭더라도 유형께서 다시 한번 더 수고해 주셔야겠소. 오늘 밤으로 북경으로 돌아가시어 그 생신강이 언제 떠나며 어느 길을 잡을지를 탐지해 주시오."

"알겠습니다. 오늘 밤 당장 떠나지요."

유당(劉唐)이 시원스레 대답했다. 그러자 오용(吳用)은 문득 무엇이 생각났는지 말을 바꾸었다.

"잠깐, 다시 생각해 보니 그렇게 서둘 필요는 없는 듯싶소."

"채태사의 생일이 유월 십오일이고 지금은 오월 초순이니 내가 먼저 완씨 삼 형제를 만나 본 뒤라도 늦지 않을 것 같소. 내가 갔다 오거든 유형은 그 결과를 보고 떠나도록 하시오."

조개(晁蓋)도 오용과 생각이 같아 대강 그렇게 의논을 맞춘 세 사람은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먹고 마시는 사이에 날이 저물고 밤이 깊었다. 삼경 무렵이 되자 오용(吳用)은 술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낯을 씻은 뒤 가볍게 식사를 하더니 은자 몇 냥을 챙기고 미투리를 꿰었다. 완씨 삼형제를 만나러 떠나려는 것이었다. 조개(晁蓋)와 유당(劉唐)은 그런 오용을 대문 밖까지 배웅했다. 오용(吳用)은 밤새껏 걸어 다음 날 정오 무렵에는 석갈촌에 이를 수가 있었다. 전에 살아 본 곳이라 오용은 누구에게 물을 것도 없이 완소이의 집을 찾아갔다. 사립문 앞에 이르러보니 집 앞 물가 말라죽은 나무에 작은 고기잡이배 몇 척이 매여 있고 울타리에는 찢어진 그물이 널려 있었다. 그 안쪽 산을 등지고 물을 낀 십여 칸쯤 되는 초가가 바로 완소이의 집이었다.

"소이 형, 집에 계시오?"

오용(吳用)이 그렇게 소리치자 완소이가 안에서 달려 나왔다. 찢어진 두건을 머리에 쓰고 헌 옷을 몸에 걸쳤는데 다리는 벌겋게 드러나 있었다. 오용을 알아본 완소이(阮小二)가 반갑게 맞았다.

"아이구, 선생님이 웬일이십니까? 무슨 바람에 쏠려 예까지 오셨습니까?"

"작은 일이 하나 있어 특별히 소이 형을 찾아왔소."

오용(吳用)은 우선 그렇게 둘러댔다. 완소이(阮小二)가 알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일이라니, 저 같은 것한테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어서 말씀해 보십시오."

"내가 이곳을 떠난 지도 벌써 이 년이나 됐구려. 그동안 나는 어떤 부잣집에서 아이들이나 가르치고 지냈습니다. 그런데 오늘 그 집에 잔치가 있어 잉어 여남은 마리가 필요하다면서 나더러 구해 달라고 하지 않겠소. 무게 열댓 근은 나가는 금빛 잉어로다가 말이오. 그래서 내 특히 이리로 온 것이오."

오용(吳用)이 그렇게 능청을 떨었다. 완소이(阮小二)가 뭣 때문인지 한바탕 껄껄거리더니 오용의 옷깃을 끌듯 말했다.

"그런 일이라면 우선 저와 술부터 몇 잔 걸치고 이야기하시지요."

"그것 좋지. 내가 굳이 이곳으로 온 까닭 중에는 완씨 집 둘째와 한잔하고 싶다는 것도 있었소."

오용(吳用)이 그렇게 받자 완소이(阮小二)가 더욱 신바람을 내며 말했다.

"호수 건너편에 술집이 몇 군데 있으니 그리로 가서 마십시다."

"좋고말고. 그런데 다섯째는 집에 있는지 모르겠소. 그 사람하고도 할 이야기가 좀 있는데........."

완소이를 따라나서면서 오용(吳用)이 슬쩍 물어보았다. 다섯째란 완소오(阮小五)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완소이(阮小二)가 어려울 것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럼 가는 길에 그 녀석도 찾아 함께 데리고 갑시다."

그러고는 물가의 말라 죽은 나무께로 가 거기 묶인 배 한 척을 풀더니 오용을 부축해 태웠다. 완소이(阮小二)가 나무뿌리 근처에서 찾아낸 노로 배를 젓자 배는 금세 호수 가운데로 들어갔다. 한참 노를 저어 가던 완소이(阮小二)가 문득 노질을 멈추고 앞을 향해 소리쳤다.

"일곱째야, 너 다섯째 못 봤냐?"

오용(吳用)이 보니 갈대를 헤치고 배 한 척이 나타나는데 노를 젓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완소칠(阮小七)이었다. 완소칠(阮小七)은 검은 해가리개를 쓰고 바둑판 무늬의 옷을 걸친 데다 허리에는 막베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흔들흔들 노를 저어 오며 대답 대신 되물었다.

"형님, 소오 형은 무엇 땜에 찾으십니까?"

"여보게, 일곱째, 내가 특히 자네들하고 할 이야기가 있어 그러네."

오용(吳用)이 완소이를 대신해 소리쳤다. 그제야 오용을 달아본 완소칠(阮小七)이 반가운 소리를 내질렀다.

"아이구, 선생님 용서하십시오. 참으로 오랫동안 못 뵈었습니다."

"나도 반갑네. 자네도 소이 형과 함께 한잔하러 가세."

오용(吳用)은 그렇게 완소칠도 자연스럽게 술자리로 끌어들였다. 완소칠(阮小七)은 기꺼이 응했다.

"저도 선생님과 한잔하고 싶었습니다만 한번 헤어진 뒤로는 어디 통 뵐 수가 있어야지요."

그러면서 노를 저어 형과 오용(吳用)이 탄 배를 뒤따랐다. 두 척의 배가 나란히 노를 저어 나아간 지 오래잖아서였다. 사방에 보이는 게 모두 물뿐인 높은 언덕이 나타났는데 그 위에 일여덟 칸 초가집이 한 채 서 있었다. 그 초가집 아래 배를 댄 완소이(阮小二)가 큰 소리로 물었다.

"어머니, 다섯째는 어디 갔습니까?"

그러자 한 늙은 아낙네가 마당으로 나와 거칠게 대꾸했다.

"말도 마라. 고기는 안 잡고 매일 노름만 하는구나. 돈을 모두 잃자 이제는 내 머리의 비녀까지 뽑아 노름방으로 갔다."

그 말을 들은 완소이(阮小二)가 껄껄 웃으며 뱃머리를 돌렸다. 뒤따르던 완소칠(阮小七)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형님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군. 노름을 하기만 하면 잃으니 욕을 먹게도 됐지. 형님이 이렇게 잃다간 나까지 발가벗기고 말겠는걸."

그 말을 들은 오용(吳用)은 속으로 가만히 생각했다.

'일이 내 뜻대로 잘 풀리겠구나.'

그는 형제의 처지가 궁할수록 자기들이 꾸미는 일에 끌어들이기가 쉬울 것 같아서였다. 두 척의 배는 다시 석갈촌 부두로 뱃머리를 돌렸다. 반나절 가까이 노를 저어 독목교(獨木橋, 외나무다리) 근처에 이르니 한 사내가 동전 두 꾸러미를 들고 물가로 내려와 배를 풀고 있었다.

"다섯째가 저기 있군."

완소이(阮小二)가 그 사내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용(吳用)이 보니 떨어진 두건에 헌 옷을 걸친 완소오가 가슴에 아로새긴 문신을 번들거리며 서 있었다. 오용(吳用)이 그를 향해 소리쳤다.

"다섯째, 요사이 재미가 어떤가?"

"아이구, 선생님 아니십니까. 한 이태 안 보이시더니..... 그렇지 않아도 낯익은 모습들이라 다리 위에서 한참이나 내려다보고 있었지요."

완소오(阮小五)도 그렇게 오용을 반겼다. 그때 완소이가 끼어들었다.

"나하고 선생이 너희 집에 널 찾으러 갔더니 어머니 말씀이 네가 노름하러 갔다기에 이렇게 함께 찾아왔다. 우리 어디 가서 술이나 몇 잔 걸치자."

그 말을 들은 완소오(阮小五)가 얼른 물가로 와 배에 오르며 깃 삿대를 잡았다. 세 척으로 늘어난 배는 나란히 노를 저어 물가 주막으로 향했다. 얼마 뒤 주막 앞에 이른 완씨 삼 형제는 배를 묶어 놓고 오용을 부축해 뭍으로 올랐다.

", 선생님 이 윗자리로 오르십시오."

술집 안으로 들어가 붉은 옻칠한 상 앞에 자리를 잡으며 완소이(阮小二)가 오용에게 권했다.

"내가 어찌 높은 자리에 앉겠소."

오용(吳用)이 두 손을 저으며 사양했다. 그러자 완소칠(阮小七)이 끼어들었다.

"형님이 주인 자리에 앉고 선생께서는 손님 자리에 앉도록 하십시오. 저희들은 편한 대로 앉겠습니다."

"일곱째가 역시 시원스럽구먼. 우리 그렇게 합시다."

오용(吳用)이 그렇게 받아 자리는 그대로 정해졌다. 네 사람은 자리를 잡고 앉기 바쁘게 술집 주인을 불러 술 한 통을 청했다. 심부름하는 아이놈이 큰 잔 네 개와 나물 네 접시를 상 위에 벌여 놓고 술 한 통을 내오자 완소칠(阮小七)이 물었다.

"이 집에 먹을 만한 게 뭐가 있소?"

"새로 잡은 황소 고기가 있습니다. 경단처럼 고기가 연하지요."

아이놈이 그렇게 대답하자 완소이(阮小二)가 대뜸 소리쳤다.

"큼직하게 썰어 열 근만 가져와."

그리고 시킨 대로 고기가 나오자 그들 삼 형제는 굶주린 이리나 호랑이처럼 먹어 치웠다. 오용(吳用)도 그들을 따라 몇 번이나 고기를 집었으나 아무래도 질겨 잘 삼킬 수가 없었다. 어지간히 먹고 마셨다 싶을 무렵 완소오(阮小五)가 불쑥 오용에게 물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선생께서 요즘 어떤 부자 댁에서 그 집 아이들을 가르치며 지내신다더군. 오늘은 잉어 여남은 마리를 구하러 특히 우리를 찾아오셨다는 게야. 금빛 나고 무게 열댓 근은 되는 놈으로다가."

완소이(阮小二)가 오용을 대신해 대답했다. 완소칠(阮小七)이 가벼운 한숨과 함게 끼어들었다.

"예전 같으면 열댓 마리 아니라 쉰 마리라도 어려울 것 없었습니다만 요즘은 그렇지가 못합니다."

"열댓 근이라니요? 우리도 열 근 넘는 잉어는 본 지 오랩니다."

"선생님이 멀리서 오셨으니 대여섯 근짜리라면 한 열 마리 구해드리지요."

완소오(阮小五)도 그렇게 아우를 거들었다. 오용(吳用)이 짐짓 우겨 보았다.

"값을 치를 은자는 여기 넉넉히 가져왔소. 그러나 작은 것은 필요 없소. 반드시 열댓 근은 나가는 잉어라야 하오."

그러자 완소칠(阮小七)이 답답한 듯 말했다.

"선생님, 안 될 말씀은 그만하십시오. 다섯째 형은 대여섯 근짜리를 구해 준다 했지만 그것도 며칠을 기다려야 잡힐까 말깝니다."

"마침 내 배 안에 산 물고기 몇 마리가 있으니 그거나 갖다 먹읍시다."

그리고 배로 가더니 잔고기 몇 마리를 갖다가 제 손으로 회를 떠왔다.

"선생님 이거나 잡숴 보십쇼."

완소칠(阮小七)이 그 말과 함께 회 접시를 내오자 넷은 다시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완씨 삼 형제와 오용(吳用)이 회와 함께 술을 먹기 시작하니 차츰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오용(吳用)은 속으로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이런 술집에서는 이야기하기가 나쁘구나. 오늘 밤은 이 사람들 집에서 자고, 거기서 그 이야기를 해 봐야겠다.'

오용(吳用)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완소이(阮小二)가 먼저 말했다.

"오늘은 이만 날이 저물었으니 저희 집으로 가서 하룻밤 묵으시지요. 잉어 구하는 일은 내일 다시 의논해 봅시다."

"내가 이번에 어려운 길을 왔으나 다행히도 여러분 형제와 이렇게 한자리에 앉게 되니 기쁘기 한이 없소. 이 자리의 술값은 내가 내고 싶은데 어떠시오? 그리고 오늘 밤은 둘째 형 댁에서 자고 싶으니 내게 술이나 한 독 더 사 가지고 가게 해 주시오. 고기도 좀 더 사고 마을에서 닭이라도 한 마리 구하면 밤새 마실 수 있을 거요."

오용(吳用)이 얼른 그렇게 받았다. 어떻게 입을 떼나 하고 있는데 완소이(阮小二)가 먼저 정해 주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완소이(阮小二)가 어림없다는 듯 말했다.

"선생은 여기서는 돈 낼 생각은 아예 마시오. 우리 형제가 알아서 할 것이오. 내 집에 가시겠다면서 그게 무슨 말씀이오."

"형제분들께 부탁이 있어 찾아온 것은 나외다. 만약 내가 돈을 내는 게 못마땅하신다면 나는 이만 돌아가겠소."

오용(吳用)도 그렇게 뻗댔다. 곁에 있던 완소칠(阮小七)이 형을 말렸다.

"이왕에 선생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에 따라 마시는 게 옳을 듯합니다. 따지는 일은 다음에 하기로 하지요."

"역시 일곱째가 시원스럽다니까."

오용(吳用)은 그런 말로 맞장구를 치며 은자 한 냥을 꺼내 완소칠에게 내밀었다. 주인을 부른 완소칠(阮小七)은 그 돈으로 술 한 독과 삶은 쇠고기 스무 근, 큰 닭 한 마리를 샀다.

술집을 나선 네 사람은 배로 돌아가 술과 고기를 싣고 배를 풀었다. 마신 술에 흥이 솟아 힘껏 노질을 하다 보니 어느새 완소이네 집 앞이었다. 배를 댄 네 사람은 물가 마른 나무줄기에 배를 묶은 뒤 술과 고기를 지고 집 안으로 몰려 들어갔다.

"등불을 내오너라."

모두가 집 뒤뜰로 들어서기 바쁘게 완소이(阮小二)가 집 안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원래 완씨 형제들 중에서 가솔을 거느린 것은 완소이뿐이었다. 완소오와 완소칠은 아직 장가를 들지 않은 까닭이었다. 집 안에서 등불이 나오자 네 사람은 완소이의 집 뒤 물가의 정자에 자리를 잡았다. 닭을 잡은 완소칠(阮小七)이 형수와 조카를 불러 안주로 장만해 주기를 청했다. 오래잖아 안주로 가득한 술상이 정자 위에 차려졌다. 오용(吳用)은 그들 형제에게 몇 차례 술을 권한 뒤에 다시 잉어 사는 일을 꺼냈다.

"여러분이 이런 곳에 함께 계셔도 그래, 큰 물고기 몇 마리 구할 수 없단 말이오?"

"결코 선생께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선생께서 구하는 그런 큰 물고기는 양산박에나 있지, 이 석갈호는 좁아서 없습니다."

완소이(阮小二)는 답답하다는 듯 그렇게 대꾸했다. 오용(吳用)이 슬쩍 그런 완소이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그 양산박(梁山泊)이랬자 여기서 뻔히 건너다보이는 곳이고 멀지도 않은 곳이잖소? 물길도 통하는데 왜 거기 가서 물고기를 잡지 않소?"

"말도 마시오. 그곳은................"

완소이(阮小二)가 말하다 말고 한숨부터 길게 내쉬었다. 오용(吳用)이 알 수 없다는 듯 완소이에게 물었다.

"둘째 형은 무엇 때문에 그리 한숨을 쉬시오."

"선생께서는 아직도 모르시는구려. 우리 형제도 한때는 양산박에 밥줄을 걸고 있었소만 이제는 감히 갈 수 없는 곳이 돼 버렸소."

"아니, 그건 왜 그렇소? 관가에서 고기잡이를 금하기라도 했단 말이오?"

"관가에서 그럴 리야 있나요. 다만 살아 있는 염라대왕이 그곳에 들지 못하게 하니 어쩌겠소."

"관가에서 금하지 않았는데 왜 못 간단 말이오?"

오용(吳用)이 아무래도 알 수 없다는 듯 다시 그렇게 묻자 완소이(阮小二)가 다시 긴 한숨과 함께 말했다.

"선생께서 까닭을 모르시는 듯하니 내 다 말씀드리지요."

"나로서는 아무래도 알 수 없구려. 무슨 일인지......"

그때 완소칠(阮小七)이 형을 대신해 나섰다.

"양산박 이야기는 말로 다하기 어렵습니다. 거기 한 떼의 도둑이 들어 고기잡이를 못하게 하는 거지요."

"내가 그걸 몰랐구려. 그런데 도둑 떼가 양산박에 들었다는 건 또 처음 듣는 소리요."

오용(吳用)이 놀란 척 그렇게 말하자 이번에는 완소이(阮小二)가 받았다.

"그 도둑 떼의 우두머리는 과거에 낙제한 선비로 백의수사(白衣秀士)라 불리는 왕륜(王倫)이란 자외다. 둘째는 모착천(摸著天, 두루뭉수리) 두천(杜遷)이란 자며, 셋째는 운리금강(雲裏金剛, 구름속 금강야차) 송만(宋萬)인데 그 밖에 한지홀률(旱地忽律, 마른 땅 악어) 주귀(朱貴)란 자가 더 있지요. 보통 주귀(朱貴)는 이가도구(李家道口)에 술집을 열고 이런저런 정탐을 하느라 나와 있어 무리와 함께 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또 한 사람 호걸이 양산박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동경에서 금군교두 노릇을 하던 표자두(豹子頭) 임충으로, 무예가 대단하단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들이 무리 육칠백을 모아 마을을 들이치고 길 가는 나그네를 터니 우리는 벌써 일 년이 넘도록 그 근처에 얼씬도 못하고 있지요. 그곳 물고기로 밥과 옷을 바꿔 오던 우리로서는 밥줄이 끊긴 거나 다름없는 셈입니다. 말로 다 못한다는 이야기는 바로 그겁니다."

그 말을 들은 오용(吳用)은 한편으로는 안 됐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완소이(阮小二)의 말에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오용(吳用)이 물었다.

"알겠소. 그런데 관가에선 왜 그것들을 잡아들이지 않는답니까?"

그러자 이번에는 그때껏 옆에서 듣고만 있던 완소오(阮小五)가 나섰다.

"모르시는 말씀, 만약 관군이 온다면 먼저 해를 입는 것은 백성들입니다. 지나는 마을마다 백성들이 기르는 돼지나 닭, 오리를 모조리 잡아먹을 뿐만 아니라 재물까지 털어 가니 그런 관군에게 도적 잡아 주기를 어떻게 바랄 수 있겠습니까? 오히려 그들이 도적을 잡으러 온다는 말만 들어도 백성들은 오줌을 찔끔찔끔 쌀 판이죠. 감히 눈 똑바로 뜨고 그들을 쳐다볼 수나 있는 줄 아십니까? 거기다가 우리가 그곳에 들어가면 설령 큰 물고기를 잡지 않았다 하더라도 적잖은 세금을 내야 하오."

완소이(阮小二)가 다시 한마디 보탰다. 오용(吳用)이 무슨 생각이 났는지 문득 말투를 바꿔 물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거리낄 게 없겠소이다. 그렇지 않소?"

"그들은 하늘도 두려워하지 않고, 땅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관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생긴 금은은 저울로 나누고, 술은 동이로 마시며, 고기는 덩이째 뜯어먹지요. 그런 그들에게 거리낄 게 무엇 있겠습니까? 우리 삼 형제가 생기는 것도 없는 고기잡이에 얽매여 그들을 따르지 못하는 게 다만 한()일 뿐입니다."

완소오(阮小五)가 양산박 도둑 떼에 대한 부러움을 감추지 않고 그렇게 대답했다. 완소칠(阮小七)도 그런 형과 생각이 다르지 않은 듯 거들었다.

"사람의 한평생이나 들풀의 한가을이 다를 게 무어겠소! 우리도 고기잡이만 하지 말고 단 하루라도 그들처럼 살아 보았으면 좋겠소."

"여러분이 뭣 때문에 그들을 본받는단 말이오. 맞아 죽을 죄를 지어 가며 위세를 뽐내 본들 무슨 소용이겠소."

"관가에 붙들려 가서 매 맞을 소리 하지 마시오."

오용(吳用)이 기쁜 속마음을 감추고 짐짓 그렇게 말했다. 그들 삼 형제의 마음가짐이 그러하다면 자신이 목적하고 온 일은 다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처자가 있고 나이 지긋한 완소이(阮小二)까지도 그런 아우들을 편들었다.

"까짓 놈의 관가가 무얼 한단 말이오. 천만 가지 하늘을 찌를 듯한 죄가 저질러져도 그저 덮을 공사로만 때워 갈 뿐인데. 우리 형제가 지금은 비록 고기나 잡아먹고 살지만 어디 그럴듯하게 받아 주는 곳만 있으면 당장 때려 엎고 가겠소! 나도 늘 우리 형제가 하고 있는 일이 우리에게 맞다고는 생각지 않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가 우리를 알아주어야지요!"

완소오(阮小五)가 다시 울분 섞인 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오용(吳用)은 때가 무르익었다고 보고 슬며시 물었다.

"만약 당신네 형제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들은 가겠소?"

"만약 우리를 알아준다면, 물로 뛰어들라면 물로 뛰어들 것이요, 불로 뛰어들라면 불로 뛰어들 겁니다. 하루라도 제대로 쓰여 본다면 죽어도 얼굴을 펴고 죽겠습니다!"

완소칠의 그 같은 대답에 오용(吳用)은 속으로 더욱 기뻤다.

'이 세 사람 모두 그런 일에 뜻이 있다. 이럴수록 천천히 달래 끌어들여야지.'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우선은 그들 삼 형제에게 술잔만 거듭 권하였다. 한참 말없이 술만 마시던 오용(吳用)이 다시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불쑥 물었다.

"당신들 삼 형제는 차라리 양산박으로 가 그 도둑 떼를 잡아 보는 게 어떻소?"

그러나 완소칠(阮小七)이 삐딱하게 받았다.

"가서 그들을 잡아 상을 타라구요? 온 세상 호걸들에게 비웃음을 당하면서?"

"내 짧은 생각일지 모르지만, 이왕 거기서 고기잡이를 못 할 바에야 가서 한패가 되는 건 어떻고?"

오용(吳用)의 그같이 돌려 묻는 말에 완소이(阮小二)가 지긋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선생, 우리도 여러 번 그들과 한패가 되는 걸 생각해 보았지만 들은 게 있어 가지 못했소. 백의수사 왕륜(王倫)이 속이 좁아 쓸 만한 사람이 드는 걸 꺼린다는 거요. 지난번 동경에서 임충(林沖)이 왔을 때도 왕륜은 갖은 핑계를 대 그를 되쫓으려고 했다는 소문이오. 우리 형제는 그 꼴을 보고 양산박으로 갈 마음이 싹 가시더구려. 그들이 형님처럼 강개할 줄 안다면 얼른 우리 형제를 반기겠지요. 만약 왕륜(王倫)이 선생님만큼만 되어도 우리 형제는 벌써 그리로 갔지 오늘까지 여기 이렇게 쭈그리고 앉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를 위해 기꺼이 죽으려 들겠지요."

완소오(阮小五)와 완소칠(阮小七)이 그렇게 형의 말을 거들었다. 오용(吳用)이 그들의 치켜세우는 말에 멋쩍어져 겸양을 부렸다.

"나 같은 거야 일에 올릴 거리나 되겠소? 산동과 하북 땅만 해도 얼마나 호걸이 많소?"

"호걸이 얼마나 많은지는 몰라도 우리 형제는 아직껏 이렇다 할 호걸을 만나보지 못했소."

완소이(阮小二)가 한숨 섞어 오용의 말을 받았다. 오용(五用)은 이때라 생각했다. 그때껏 참아 오던 조개의 이야기를 넌지시 꺼냈다.

"운성현 동계촌에 조보정이란 분이 있는데 혹 들어들 보셨소?"

", 거 탁탑천왕이라고 불리는 조개(晁蓋) 말입니까?"

완소오(阮小五)가 그렇게 알은 체를 했다. 오용(五用)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소. 형제분들께서는 그를 아시오?"

"여기서 백오십 리밖에 되지 않는 곳에 사시지만, 그분의 이름만 들었을 뿐 아직 만나 뵙지는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완소칠(阮小七)이 나서서 대답했다. 오용(五用)이 애석한 일이라는 듯 조개를 조금 자세히 설명했다.

"그 사람은 의로운 일이면 재물을 아끼지 않는 호걸이오. 그런데 아직 만나 보지 못했다니................"

"우리 형제가 동계촌에 일이 없어 일찍이 그곳에 가 본 적이 없소. 그러다 보니 절로 그분을 만날 수 없었던 것이외다."

완소이(阮小二)가 다시 아우들을 대신해 까닭을 일러 주었다. 오용(吳用)은 자기가 완씨 삼 형제에게 찾아온 속셈을 밝혔다.

"나는 이 몇 해 조보정(晁保正)의 장원 부근에 있는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있었소. 그러다가 큰 재물이 지나가니 그걸 뺏는 걸 도와 달라기에 특히 여러분 삼 형제를 찾아보고 의논하러 왔소. 우리 함께 힘을 합쳐 도중에서 그 재물을 가로채는 게 어떻겠소?"

"안 될 것도 없지요. 그분이 이미 의()를 위해서는 재물을 아끼지 않으신다니 한번 우리를 팔아 보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이 그걸 알면 비웃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지나가는 재물을 가로채자는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지 완소오(阮小五)가 그렇게 말했다. 오용(吳用)이 정색을 하고 털어놓았다.

"내 바른대로 말하리다. 여러분도 도와주실 마음이 있다면 그 일에 관해서도 털어놓지요. 실은 나는 지금 그 일로 조보정댁에 머물고 있소이다. 보정(保正)은 여러분 삼 형제의 큰 이름을 듣고 나를 보내신 거요."

그러자 완소이(阮小二)가 들을 것도 없다는 듯 결연히 말했다.

"더 들을 것도 없겠소. 우리 형제는 조금도 거짓이나 꾸밈없이 진정으로 끼고 싶소. 조보정(晁保正)도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그 일을 꾸민다면 어떻게 우리 형제를 끌어들이려 하겠소? 일단 선생께서 오셨으니 우리 형제는 이 일로 목숨을 잃는다 해도 원망하지 않겠소. 우리가 이 맹세를 저버린다면 온몸이 병들어 짓무르고 비명에 죽게 될 것이오! 좋습니다. 온몸 가득 뜨거운 피가 쓰일 곳을 찾아 들끓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완소오(阮小五)와 완소칠(阮小七)도 형 완소이(阮小二)가 열을 올리고 나서자 아무런 이의 없이 따를 뜻을 밝혔다. 오용(吳用)이 그들을 한 번 더 안심시키려는 듯 조개(晁蓋)가 꾀하고 있는 일을 상세히 밝혔다. 채태사의 사위 양중서(梁中書)가 장인의 생일을 위해 값진 보물을 마련한 일이며, 유당(劉唐)이 그 일을 알고서 조개를 찾아온일. 그리고 그 둘과 자신의 논의 끝에 완씨 삼 형제를 찾기로 한 경위 등이었다.

"히야......."

오용의 이야기가 끝나기 바쁘게 완소칠(阮小七)이 그런 괴상한 탄성을 질렀다. 완소오(阮小五)가 어리둥절해 물었다.

"일곱째야, 너 왜 그러느냐?"

"평소에 한 번 해 보고 싶던 일이었는데 오늘 그 소원을 풀게 되었소. 이거야말로 가려운 데를 긁어 주는 격 아니오? 우리가 이런 때를 얼마나 기다렸소. 그래서 지른 소리외다, 다섯째 형."

완소칠(阮小七)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그렇게 대답했다. 오용(吳用)이 술잔을 놓으며 그들 삼 형제에게 조용히 말했다.

"그럼 오늘은 세 분 이만 돌아가시지요. 내일 새벽 일찍 일어나 모두 조보정(晁保正)의 장원으로 가 보도록 합시다."

그 말에 완씨 삼 형제도 기꺼이 따랐다. 그쯤에서 술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다음 날이었다. 완씨 삼 형제는 새벽같이 일어나 아침밥을 먹고 오용을 따라나섰다. 동계촌으로 조개를 찾아 나서는 길이었다. 네 사람은 하루종일 걸어 조가장(晁家莊)이 저만치 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조개(晁蓋)와 유당(劉唐)이 먼저 그들을 보고 반갑게 달려 나와 맞았다.

"완씨삼웅(阮氏三雄)이라더니 정말로 이름이란 게 헛되이 전해지는 게 아니구려. 예까지 와 주시니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소.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합시다."

조개(晁蓋)가 기뻐 어쩔 줄 모르며 그들을 집 안으로 청했다. 오용, 완씨 삼 형제, 유당 등은 그런 조개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뒤채 조용한 방에 주인과 손님이 각기 자리를 정해 앉은 뒤에 오용(吳用)이 그간에 있었던 일을 자세히 말했다. 듣고 난 조개(晁蓋)는 머슴들을 불러 돼지와 양을 잡게 하고 소지(燒紙)를 준비시켰다. 완씨 삼 형제도 조개의 인물이 훤칠하고 말하는 품이 활달한 게 썩 마음에 들었다. 세 사람이 입을 모아 조개(晁蓋)를 만나게 된 기쁨을 표시하였다.

"저희들은 호걸스러운 이와 사귀는 걸 가장 기꺼워해 왔습니다만 멀지 않은 곳에 살면서도 여태껏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여기 이 오용(吳用)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만나 뵈올 영광을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그사이 술상이 들어와 그들 여섯은 그날 밤늦도록까지 먹고 마시며 정분을 더욱 두텁게 했다.

다음 날이 되었다. 그들은 아침 일찍 사당 앞으로 가 촛불을 켜고 향을 사르며 제례를 올릴 채비를 하였다. 이윽고 전날 밤 잡은 양과 돼지가 나오고 소지(燒紙)가 날라져 왔다. 사람들은 조개의 정성 어린 준비에 감탄하며 제단 앞으로 가 맹세의 말을 올렸다.

"양중서(梁中書)는 북경에서 백성을 쥐어짜 모은 재물로 예물을 갖춰, 동경의 채태사에게 보내려 하고 있습니다. 이는 의롭지 못한 재물이니 이제 우리 여섯이 그걸 취하고자 합니다. 저희 중에 감히 딴 뜻을 품는 자가 있으면 하늘과 땅이 아울러 그를 벌해 죽여 주십시오. 천지신명께 굽어 보살피심을 청합니다."

그런 다음 소지(燒紙)를 불살라 맹세를 한층 굳게 나타냈다. 맹세의 제례가 끝난 뒤 여섯 사람은 다시 제례 음식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한참 흥이 오르는데 머슴 놈 하나가 달려와 조개(晁蓋)에게 알렸다.

"문밖에 어떤 도사 한 사람이 와서 동냥을 조르며 보정님을 뵙겠다 합니다."

조개(晁蓋)가 반갑잖은 얼굴로 퉁을 놓았다.

"너는 보고도 모르느냐? 나는 지금 귀한 손님들을 맞아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 쌀이나 서너 되 퍼 주면 될 것을 여기까지 찾아와 묻고 야단이냐?"

"저도 쌀을 주며 보내려 해 봤습니다만 꼭 보정님을 뵈어야겠다고 억지를 쓰고 있습니다."

"쌀이 적어서 그렇겠지. 두어 되 더 퍼 주고 나는 지금 손님이 와서 바쁘니 만나 줄 수 없다고 하란 말이야."

조개(晁蓋)가 그렇게 말하자 머슴은 그대로 나갔으나 한참 있다 다시 돌아와 말했다.

"그 도사는 쌀 석 되를 더 주어도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일청도인(一淸道人)이라 내세우며 쌀이나 돈을 얻으려 온게 아니라 보정님을 뵈러 왔다는 겁니다."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구나. 가서 다시 말해라. 나는 오늘 바쁘니 뒷날 다시 찾아오라구."

조개(晁蓋)가 짜증이 났는지 그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머슴이 답답하다는 듯 그 말을 받았다.

"저도 그렇게 말했습니다만 듣지 않는 걸 어쩝니까? 오히려 그 도사는 보정님께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자신은 동냥을 온 게 아니라 보정님이 의사(義士)라기에 특히 한번 만나 뵈러 온 것이라구요."

"정말 귀찮게 구는구나. 아직도 적어서 그러는 모양인데, 그러면 쌀이나 몇 되 더 퍼 주고나 말지 왜 여기까지 찾아와 알리고 야단이냐?"

"만약 내가 손님들과 술을 마시고만 있지 않다면 당장 달려 나가 만나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네 보다시피 지금 형편이 이러니 네가 나가 달래 보내라. 또다시 돌아와 이 자리를 시끄럽게 해서는 안 된다."

조개(晁蓋)는 애써 기색을 감추고 머슴에게 그렇게 일러 보냈다. 그런데 그 머슴이 나가고 한참 지난 뒤였다. 갑자기 문밖이 시끄럽더니 머슴 하나가 뛰어왔다.

"그 도사가 화가 나서 머슴들을 여남은 명이나 때려눕혔습니다."

머슴이 헐떡거리며 그렇게 소리치자 조개(晁蓋)가 놀라 일어나며 그 자리의 사람들에게 말했다.

"여러 형제들은 잠깐 여기 앉아 계시오. 이 조개가 한번 나가보고 오겠소."

그러고는 머슴 놈을 따라 뒤채를 나왔다. 조개(晁蓋)가 대문께에 나가 보니 키가 여덟 자나 되고 도사로서의 기풍이 당당한 사내 하나가 대문 곁 느티나무 아래서 몰려드는 머슴들에게 주먹질을 하면서 꾸짖고 있었다.

"이놈들, 어찌 이리도 사람을 몰라보느냐?"

그걸 보던 조개(晁蓋)가 소리 질러 말렸다.

"선생, 잠시 분기를 가라앉히시오. 선생이 조보정을 찾아온 것은 시주를 받으려 함이 아니었소? 그들이 이미 쌀을 드렸다는데 선생은 어째서 이렇게 화를 내고 있는 거요?"

"빈도(貧徒)는 술밥이나 얻어먹고 돈냥이나 얻어 가자고 온 게 아니외다. 나는 십만 관의 돈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이오! 내가 보정(保正)을 찾아온 것은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인데, 이 촌놈들이 까닭도 모르면서 욕을 해 대니 화가 난 것뿐이오."

도사가 하하 웃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조개(晁蓋)가 더욱 괴상한 느낌이 들어 물었다.

"당신은 조보정과 전부터 아시오?"

"이름은 들었으나 아직 만나 보지는 못했소."

도사가 태연하게 받는 걸 보고 조개(晁蓋)가 스스로를 밝혔다.

"내가 바로 조보정(晁保正)이오. 그런데 선생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뭐요?"

그러자 도사가 한 차례 조개를 훑어보더니 그지없이 공손해진 말투로 나왔다.

"보정(保正)께서는 너무 괴이쩍게 생각지 마시고 빈도(貧徒)의 절을 받으십시오."

조개(晁蓋)는 그의 시원시원한 태도에 호감이 갔다. 절을 하려 엎드리는 그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절이고 뭐고, 안으로 들어가시는 게 어떻소?"

"고맙습니다."

도사가 사양 없이 따라 들어왔다. 두 사람이 뒤채로 돌아오는 걸 본 오용(吳用)은 완씨 삼 형제와 유당에게 눈짓해 슬쩍 자리를 피해 주었다. 조개(晁蓋)는 차를 내오게 해 도사를 대접하며 그가 찾아온 까닭을 밝히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도사는 무엇이 못 미더운지 속을 털어놓기 전에 더 은밀한 자리부터 찾았다.

"이곳은 털어놓고 이야기하기에 마땅한 자리가 못 되는 듯합니다. 어디 달리 이야기할 만한 곳은 없습니까?"

조개(晁蓋)는 그의 뜻을 받아들여 외딴 정자로 자리를 옮겼다. 주인과 손님이 각기 자리를 정해 앉은 뒤에 조개(晁蓋)가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선생의 높으신 이름은 무엇이며, 고향은 어디요?"

"저는 성이 공손(公孫)이며 이름은 외자인 승()입니다. 도호는 일청(一淸)으로 쓰고 고향은 계주지요. 어려서부터 창이며 막대 쓰는 법을 익혔고, 다른 무예도 여럿 배워 사람들은 나를 공손승 대랑(大郞)이라 부릅니다. 또 도술을 배워 바람과 비를 부르고, 안개와 구름을 움직일 줄 아는 까닭에 입운룡(入雲龍, 구름에 든 용)이란 별호도 가지고 있습니다."

공손승(公孫勝)은 그렇게 자신을 밝혔다. 자신을 밝힌 공손승(公孫勝)은 조보정을 찾아온 까닭을 말을 빙빙 돌려 가며 털어놓았다.

"빈도(貧徒)는 오래전부터 운성현 동계촌의 조보정(晁保正)이란 큰 이름을 들었으나, 인연이 없어 만나 뵙지를 못했습니다. 이제 십만 관어치의 금은보배가 있기로 보정님을 뵙는 예()로 바칠까 하는데, 받아들여 주시겠습니까?"

조개(晁蓋)는 금세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껄껄 소리 내어 웃으며 물었다.

"선생이 말하는 그 십만 관의 재물, 혹시 남의 생일 예물이 아니오?"

그러자 공손승(公孫勝)은 깜짝 놀라 조개를 쳐다보았다.

"보정께서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안다기보단......그래, 선생의 생각과 같기는 합니까?"

조개(晁蓋)가 빙글거리며 그렇게 받자 공손승(公孫勝)이 자르듯 말했다.

"이 한 보따리 재물은 결코 그냥 지나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옛말에 이르기를, 마땅히 취해야 할 걸 취하지 않으면 지나간 뒤에 후회한다 했습니다. 보정(保正)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이어 여러 가지 말로 조개를 권하는데 문득 정자 뒤에서 사람 하나가 달려와 공손승의 팔을 꽉 잡으며 소리쳤다.

"히야, 이놈 봐라. 밝게는 왕법(王法)이 있고, 어둡게는 신령이 굽어보는데 네 어찌 그런 엄청난 일을 꾸미느냐. 내 이미 네놈의 수작을 엿들은 지 오래다!"

그 소리에 공손승(公孫勝)의 얼굴은 그대로 흙빛이 되었다. 하지만 소리친 사람은 다름 아닌 오용이었다. 조개(晁蓋)가 껄껄 웃으며 공손승을 안심시킨 뒤 오용에게 말했다.

"선생, 우스갯소리는 그쯤하고 이분과 인사나 나누시오."

그제야 장난기를 거둔 오용(吳用)은 공손승에게 인사를 청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오용이 공손승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입운룡 공손승, 일청도인 공손승 하더니 오늘 뜻밖에도 여기서 뵙는구려."

조개(晁蓋)가 그런 오용을 공손승에게 소개시켰다.

"이분 수사(秀士)님은 바로 지다성 오학구(吳學究)란 이외다."

"나도 가량선생의 큰 이름은 오래전부터 들었소만 보정님 댁에서 이렇게 만나 뵙게 될 줄은 또 몰랐소. 보정께서 의()를 위해서는 재물을 아끼지 않으시니, 이렇듯 문하에 호걸들이 몰려드는가 봅니다."

"실은 안에 몇 분 뜻 맞는 이가 더 있소. 모두 뒤채 조용한 곳에 가서 의논합시다."

조개(晁蓋)가 이런 말로 공손승을 뒤채로 이끈 뒤 유당과 완씨 삼 형제를 불러냈다. 공손승(公孫勝)이 그들과도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정해 앉게 되자 여럿이 입을 모아 말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모이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보정 형님께서 제일 윗자리에 앉으십시오."

조개(晁蓋)가 몇 번이나 사양했으나 여럿이 나이와 인품을 내세워 끝내 가장 윗자리에 조개를 앉혔다. 둘째 자리는 오용(吳容), 셋째는 공손승(公孫勝), 넷째는 유당(劉唐), 다섯째는 완소이(阮小二), 여섯째는 완소오(阮小五), 일곱째는 완소칠(阮小七)이었다.

"보정(保正)께서는 꿈에 북두칠성이 이 집 대들보에 내려앉는 걸 보셨다는데, 이제 우리 일곱 사람이 의로 뭉쳐 큰일을 하게 되었으니 이게 바로 하늘의 뜻이 아니겠소이까? 이만하면 그 금은보화는 손에 침 한번 뱉는 힘으로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날 유형(劉兄)이 가서 그 금은보화가 어느 길을 지나게 되는지 알아 오기로 했는데 이제 드디어 때가 된 듯합니다. 오늘은 이왕 늦었지만, 내일은 일찍 길을 떠나도록 하는 게 좋겠소."

자리를 정하고 한동안이나 마시며 떠들던 끝에 오용(吳用)이 그렇게 말했다. 공손승(公孫勝)이 빙긋 웃으며 말렸다.

"그 일이라면 가실 것도 없소. 빈도가 이미 알아 놨소이다. 바로 황니강(黃泥岡) 큰길로 지나간다는 거요."

그러자 조개(晁蓋)가 문득 생각난 게 있다는 듯 말했다.

"황니강 동쪽으로 십 리쯤 가면 안장촌(安漿村)이란 마을이 있는데, 그 마을에 백일서(白日鼠, 낮 쥐)란 별명이 있는 백승(白勝)이란 건달이 살지요. 일찍부터 나를 따르는 사람이고, 이것저것 내게 신세 진 것도 좀 있어서 필요하면 그를 쓸 수도 있을 것이오. 전에 보정께서 꿈에 보셨다는 북두성 위 흰빛이 바로 그 사람을 뜻한 게 아니고 뭐겠습니까? 다 쓰일 데가 있지요. 써야 하구 말구요."

오용(吳用)이 반가운 듯 그렇게 조개의 말을 받았다. 그때 유당(劉唐)이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이곳은 황니강에서 너무 멉니다. 어디 가까운 데 몸을 숨기고 기다릴 만한 곳이 없겠습니까?"

"바로 그 백승(白勝)의 집을 빌리면 될 거요. 보정님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아주 편안히 몸을 숨길 수 있지 않겠소. 또 드럼으로써 백승을 써먹는 셈이기도 하고."

오용(吳用)이 얼른 유당의 걱정을 덜어 주었다. 이번에는 조개(晁蓋)가 밝지 못한 얼굴로 오용에게 물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재물을 빼앗을 궁리인 듯한데......오선생, 어떻게 하실 거요? 꾀를 써서 살살 빼낼 거요? 아니면 힘을 써서 우격다짐으로 빼앗을 거요?"

그러나 오용(吳用)은 어찌 된 셈인지 자신만만했다. 가벼운 웃음기마저 띠며 조개의 물음을 받았다.

"저는 이미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그것들이 오는 꼴을 봐 가며 힘을 써야 하면 힘을 써서 빼앗고, 꾀를 써야 하면 꾀를 써서 빼앗지요. 제게 한 가지 계책이 있는데 다만 여러분의 뜻에 맞을지가 걱정입니다."

"그게 무엇이오?"

여럿이 입을 모아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오용(吳用)은 마음속에 세워 둔 계책을 나직나직 일러 주었다. 실로 절묘한 계책이었다. 다 듣고 난 조개(晁蓋)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무릎을 치며 말했다.

"그거 참 좋은 계책이오! 선생을 꾀 많은 별(智多星)이라 부르는 게 그른 소리가 아니었구려. 정말로 제갈량보다 더한 꾀요, 신기한 계책이야."

그러자 오용(吳用)이 손을 저으며 주의를 주었다.

"그런 말씀을 다시는 입 밖에 내지 마십쇼. 속담에, 담 너머에도 귀가 있고, 창밖에도 사람이 있다질 않습니까? 오직 우리끼리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조개(晁蓋)도 그 말에 정색이 되었다. 이내 무리의 우두머리답게 진중한 어조로 각자의 할 바를 일러 주었다.

", 그렇다면 이제 그때까지 할 일을 생각해 보는 게 좋겠소. 완씨 삼 형제는 잠시 집으로 돌아가 계시오. 때가 오면 우리 장원으로 다시 부르겠소. 오선생도 예처럼 돌아가 당분간 코흘리개들을 가르치고 있는 게 낫겠소. 다만 공손승(公孫勝) 선생과 유당(劉唐)만은 이 장원에 머물러도 괜찮을 것 같소. 내 집을 찾아온 손님이거니와 원래부터가 정처없이 떠돌던 분들이었으니 말이오."

쓸데없이 몰려다니다가 이웃의 의심을 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인 듯했다. 아무도 딴말을 하는 사람이 없어 채태사의 생일 예물 터는 일은 일단 그쯤으로 마무리 짓고 자리는 다시 술판으로 돌아갔다. 큰일이 대강 정해진 다음이라 술판은 한층 흥겨워졌다. 그들 일곱은 권커니 잣거니 밤늦도록 마시다가 각기 정한 방으로 가서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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