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는 좌우 양편으로 장수들이 씩씩하게 갈라서 있었다. 지휘사(指揮使), 단련사(團練使), 정제사(正制使), 통령사(統領使), 아장(牙將), 교위(校尉), 정패군(正牌軍), 부패군(副牌軍)에 앞뒤로는 백 명의 장교(將校)가 늘어섰고 장대 위에도 두 명의 도감이 마주 서 있었다. 그 두 도감 중 하나는 이천왕이라 불리는 이성(李成)이었고, 다른 하나는 문대도라 불리는 문달(聞達)이었다. 둘 다 만 사람이 못 당하는 용맹을 지닌 장수로 대명부의 수많은 군마를 통솔하고 있었다. 양중서(梁中書)가 대(臺) 위로 올라가자 교련장에 모여 있던 장졸들이 일제히 소리쳐 축원하며 맞았다. 곧 그를 따라 누런 깃발이 오르고 대(臺) 아래 두 줄로 늘어섰다. 고수와 징잡이들이 북과 징을 울렸다. 이어 세 번의 나팔 소리가 울리자 교련장은 엄숙하고 조용해졌다.
다시 대(臺) 위에 붉은 기가 올랐다. 그러자 한 곳에서 북소리가 높게 나며 오백의 군마가 진세를 펼치고 군사들이 각기 병장기를 잡은 채 위엄을 뽐냈다. 그에 맞서듯 대(臺) 위에 또 하나 백기가 오르고, 한 떼의 군마가 나와 맞은편에 자리 잡았다.
"부패(副牌) 주근(周謹)은 나와 내 명을 받으라."
모든 배치가 끝나기를 기다려 양중서(梁中書)가 큰 소리로 주근을 찾았다. 오른편 진(陣)에 섞여 있던 주근이 말을 달려 나가더니 양중서 앞에 이르러 말에서 내리고 창을 땅에 꽂으며 씩씩하게 대답했다.
"주근(周謹)이 명을 기다립니다."
"부패(副牌)가 지닌 무예를 보고 싶다."
양중서(梁中書)가 속셈을 감춘 채 그렇게 말했다. 그 자리를 뺏어 양지에게 줄 생각이라 더욱 내색해서는 안 될 일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근(周謹)은 곧 그 명에 따랐다. 창을 들고 말에 올라 연무장(演武場) 가운데로 나아갔다. 주근(周謹)은 먼저 창 쓰기부터 보였다. 창을 좌로 돌리고 우로 찌르며 솜씨를 보이는데 만만히 볼 무예가 아닌 듯했다. 구경하던 장졸들이 그런 주근에게 떠들썩한 갈채를 보냈다. 주근(周謹)이 창 솜씨를 보이고 돌아가자 양중서(梁中書)는 이번에는 양지를 불렀다.
"동경에서 온 양지를 나오게 하라."
그리고 양지(楊志)가 달려 나와 장대 앞에 서자 큰 소리로 말했다.
"양지, 내가 듣기로 너는 동경 전사부의 제사로 있었다 한다. 비록 죄를 짓고 이곳으로 오기는 했지만, 지금은 도둑 떼가 사방에서 날뛰니 훌륭한 인재는 지난 일을 묻지 않고 써야 할 때라 본다. 어떠냐? 주근(周謹)과 한번 무예를 겨뤄 보지 않겠느냐? 만약 네가 이기면 주근의 자리를 네게 주겠다."
주근(周謹)에게는 야박하게 들릴지 모르나 양지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양지(楊志) 또한 이미 들은 말이 있어 그의 말을 거역하지 못했다.
"대감께서 불러 주셨는데 어찌 크신 뜻을 거스르겠습니까? 오직 따를 뿐입니다."
그러자 양중서(梁中書)는 좌우를 보고 말했다.
"가서 양지가 탈 말 한 필을 끌어내 오고, 그가 입을 갑옷과 쓸 병장기도 갖춰 주도록 하라."
사람들이 그 명에 따라 말과 갑옷과 병장기를 내오자 양지는 갑옷을 입고 말 위에 올라탔다. 양지(楊志)가 갑옷 끈을 여민 뒤 창을 들고 말을 달려 나오자 양중서(梁中書)가 다시 명을 내렸다.
"주근(周謹)과 양지(楊志)는 먼저 창으로 겨뤄 보도록 하라."
이에 양지(楊志)와 주근(周謹)은 각기 창을 꼬나잡고 맞붙을 채비를 했다. 그때 문달(聞達)이 갑자기 둘을 향해 소리쳤다.
"잠깐만, 잠깐만 기다리시오!"
그리고 양중서 앞으로 나아가 조심스레 말했다.
"대감께서는 다시 한번 헤아려 주십시오. 두 사람의 무예는 어느 편이 나을지 모르나, 창과 칼이란 게 원래 눈이 없습니다. 역적을 죽이고 도둑 떼를 쓸어버리는 데 쓰는 것은 좋지만 그중에서 무예를 겨루는 데는 마땅한 물건이 못 됩니다. 한번 그걸로 부딪치게 되면 가벼워야 몸을 다치고 심하면 목숨까지 잃게 되니 그게 어느 쪽이든 쓸데없는 손실이 아니겠습니까? 두 사람의 창끝에는 두터운 천을 감게 하고 마당에는 석회를 뿌린 뒤 시합에 들어가게 하십시오. 그 창끝에 석회를 묻힌 뒤 겨루게 하여 상대에게 흰 석회 자국을 많이 찍은 쪽이 이기는 걸로 하면 될 것입니다."
양중서(梁中書)가 들어 보니 매우 옳은 말이라 그대로 따랐다.
"그럼, 그렇게 하라."
이에 두 사람은 창끝에 두터운 헝겊을 처매고 몸에는 검은 옷을 입혔다. 그리고 헝겊 덮인 창끈에 횟가루를 묻힌 뒤 각기 말에 올랐다. 주근(周謹)이 먼저 말 배를 차고 창을 휘두르며 양지를 덮쳐 갔다. 양지(楊志) 또한 기죽지 않고 말을 박차 마주쳐 나왔다. 곧 엉긴 두 사람은 이리 닫고 저리 뛰며 창을 주고받았다. 위에서 눈부신 재주를 겨루는 두 사람 못지않게 말들도 서로 몸을 맞부딪쳐 가며 힘껏 싸웠다. 두 사람이 엉겨 싸우기를 사오십 합이나 했을까, 먼저 주근(周謹)을 보니 주근은 두부를 뒤집어쓴 듯 횟가루 동그라미가 몸 곳곳 삼사십 군데나 찍혀 있었다. 그러나 양지(楊志)는 한 군데 왼쪽 어깨에만 흰 점이 찍혀 있을 뿐이었다. 양지가 이긴 걸 본 양중서(梁中書)는 몹시 기뻐했다. 곧 주근을 대(臺) 위에 오르게 한 뒤 차갑게 말했다.
"전임 유수사가 너를 군중의 부패(副牌)로 삼은 모양이다만, 네 무예를 보니 그래 가지고서야 어떻게 사방을 평정할 수 있겠느냐? 도대체 그 솜씨로 부패(副牌) 자리를 달라고 할 수 있느냐? 이제부터는 네 자리를 양지에게 넘겨줘야겠다."
그때 병마도감 이성(李成)이 다시 대 위로 올라와 양중서에게 말했다.
"주근(周謹)이 창 솜씨는 비록 뛰어나지 못하나 말 타고 쏘는 활은 매우 솜씨가 뛰어납니다. 그걸로 겨루게 해 보지도 않고 주근을 부패 자리에서 내쫓는다면 군심(軍心)이 흐트러질까 두려우니 양지와 주근을 활로 다시 한번 겨뤄 보게 하심이 어떻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양중서(梁中書)도 주근에게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다가 양지의 활 솜씨도 보고 싶어 이번에도 선선히 이성의 말을 따랐다.
"양지(楊志)와 주근(周謹)에게 이번에는 활로 한번 겨뤄 보라 이르라."
양중서(梁中書)가 그렇게 명을 바꿔 내리자 두 사람은 곧 창을 꽂아 두고 활과 화살을 가지러 갔다. 양지(楊志)는 여러 개의 활이 놓인 곳으로 가 장궁(張弓) 하나와 화살을 고른 뒤 다시 말에 올랐다. 그리고 옷매무새를 단정하게 한 뒤 양중서가 높이 앉은 대 아래로 내려가 공손히 말했다.
"대감, 화살이란 한번 쏘아 보내지면 인정을 모르는 물건입니다. 자칫하면 사람이 다치게 될까 두려우니 깊이 헤아려 주십시오."
그러나 양중서(梁中書)는 그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무슨 소린가? 무사가 시합을 하면서 어떻게 상처 입는 걸 걱정하는가? 그러다가 화살에 맞아 죽는대도 할 말이 없는 것이지."
그렇게 말하고 시합만 재촉했다. 양지(楊志)는 하는 수 없이 제자리로 돌아가 주근을 기다렸다. 생각 깊은 이성(李成)이 방패 둘을 가져다가 양지와 주근에게 나눠 주었다. 방패를 받아 쥔 양지(楊志)가 주근을 건너보며 말했다.
"당신이 먼저 화살 세 대를 쏘시오. 나는 그 뒤에 세 대를 쏘겠소."
이를테면 먼저 양보하는 여유를 보인 셈이었다. 주근(周謹)은 그게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저자를 화살 한 대로 꿰어놓을 수 있을까?'
'저 양지란 자는 한낱 군관 노릇만 해 왔다니까 이것저것 잘한다 쳐도 모두 다 잘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마음을 다지고 있는데 장대 위의 푸른 기가 올라왔다. 시합을 시작하라는 신호였다. 그 깃발을 본 양지(楊志)는 남쪽을 바라보고 말을 달렸다. 주근(周謹)이 그런 양지를 뒤따르며 안장에서 몸을 세워 활과 화살을 잡았다. 왼손으로 활을 잡고 오른손으로 화살을 시위에 잰 주근(周謹)은 시위를 힘껏 당겨 양지의 등판을 겨냥하고 화살을 날렸다. 양지(楊志)는 등 뒤에서 시위 소리를 듣고 주근이 활을 쏜 걸 알았다. 안장에 찰싹 달라붙듯 몸을 숙이니 주근(周謹)이 쏜 화살은 허공을 가르고 지나가 버렸다. 주근(周謹)은 첫 화살이 빗나가는 걸 보고 적잖이 당황했다. 얼른 화살통에서 두 번째 화살을 꺼내 시위에 얹은 뒤 다시 양지의 등을 겨냥해 쏘았다. 양지(楊志)는 등 뒤에서 두 번째로 화살이 날아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말 등에 붙어 화살을 피하는 대신 자신의 활을 들어 날아오는 주근의 화살을 쳐 냈다. 양지의 활대에 맞은 화살은 저만큼 퉁겨져 나가 풀밭에 떨어졌다. 주근(周謹)은 두 번째 화살까지 양지가 피해 버리자 더욱 당황했다. 그때 이미 양지의 말은 교련장 가장자리에 이르러 양중서가 있는 대(臺)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었다. 주근(周謹)은 자신의 말 배를 걷어차 그런 양지를 뒤쫓았다. 푸른 풀밭을 말 두 마리의 여덟 개 말발굽이 한동안 쫓고 쫓기며 내달았다. 어느 정도 알맞은 거리가 됐다 싶자 주근(周謹)은 세 번째 화살을 꺼냈다. 그리고 양지의 등을 노려보며 평생의 기력을 다해 힘껏 시위를 당겼다 놓았다. 세 번째 시위 소리를 들은 양지(楊志)는 더욱 대담한 솜씨를 보였다. 몸을 휙 뒤틀어 돌아보더니 날아오는 화살을 널름 받아 쥐었다. 그리고 그대로 양중서(楊中書) 앞으로 말을 달려 그 화살을 바쳤다. 양중서(楊中書)는 그 화살을 받고 몹시 기뻐했다.
"이제 네 차례다. 너도 세 대를 쏘아라."
주근은 조금도 생각해 주지 않고 그렇게 재촉했다. 때마침 양지(楊志)가 쏠 차례임을 알리는 푸른 깃발이 장대 위에 올랐다. 그걸 본 주근(周謹)은 활과 화살을 던지고 방패를 고쳐 잡은 뒤 양지(楊志)가 하던 것처럼 교련장 남쪽으로 말을 달렸다. 가만히 보고 있던 양지도 말을 박차 그 뒤를 따랐다. 그러나 양지(楊志)가 활을 쏘는 방식은 주근과 달랐다. 양지(楊志)는 먼저 활을 꺼내 화살도 없이 시위만 한번 힘껏 퉁겼다. 등 뒤에서 시위 소리가 나는 걸 들은 주근(周謹)은 얼른 방패를 들어 막았으나 날아오는 화살이 없었다.
'쟤가 창은 잘 써도 활은 영 쏠 줄 모르는 것 같구나. 두 번째도 빈 활을 쏘면 크게 꾸짖어 창피를 줘야지.'
모든 걸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해석한 주근(周謹)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말을 달렸다. 주근의 말은 이내 교련장 끝에 이르렀다. 이제는 양지처럼 말을 연무청 쪽으로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양지(楊志)는 주근이 말 머리를 돌리는 걸 보고 좋은 때라 여겨 화살 한 대를 화살통에서 뺐다.
'내가 등을 쏘게 되면 저 사람은 목숨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나와 저 사람이 원수진 일이 없으니 화살을 맞아도 목숨이 위태롭지 않은 곳을 쏘아야겠다.'
양지(楊志)는 그렇게 생각을 정하고 활에 살을 먹였다.
왼손은 태산을 밀치는 듯하고, 오른손은 아기를 안듯 하며 한껏 시위를 당겨다 놓으니 화살은 유성처럼 주근의 왼쪽 어깨에 꽂혔다. 은근히 방심하고 있던 주근(周謹)은 화살을 맞자 그대로 말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임자 잃은 말이 놀라 달아나고, 구경하던 군사들이 우르르 달려가 주근을 부축했다. 일이 그렇게 끝나자 양중서(梁中書)는 아무 거리낌 없이 양지를 주근의 자리에 채운다는 문서를 만들게 했다. 그러나 양지(楊志)는 별로 즐거운 빛도 없이 말에서 내리더니 양중서 앞으로 가 고마움의 뜻을 표했다. 양지(楊志)가 예를 마치고 계단을 내려올 때였다.
갑자기 왼쪽 줄에서 한 사람이 나오며 소리쳤다.
"아직 그 자리를 받았다고 고마워할 것 없다. 나와 겨뤄 본 뒤에 주근(周謹)의 자리를 차지하거라."
양지(楊志)가 그 사람을 보니 키는 일곱 자 남짓 둥근 얼굴이요, 귀가 크고 입술이 두꺼우며 입이 모난 사내였다. 뺨에 구레나룻은 없었으나 모습이 여간 위풍 있고 늠름해 보이지 않았다. 그가 양지를 제쳐 놓고 양중서 앞으로 나가더니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근(周謹)은 병들었다가 아직 다 낫지 않아 몸도 마음도 온전치 못한 까닭에 시합에서 졌습니다. 제가 비록 재주 없으나 양지와 한번 겨뤄 보고 싶습니다. 만약 제가 조금이라도 뒤진다면 주근을 내쫓지 말고 양지에게 제 자리를 내어 주도록 하십시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설령 죽는 한이 있더라도 원망이 없을 것입니다."
그 소리에 양중서가 보니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대명부 유수사의 정패(正牌)인 삭초(索超)였다. 삭초(索超)는 성질이 급해 화가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나라에 일이 있으면 매양 앞장서 뛰쳐나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급선봉(急先鋒)이라 불렀다. 이성(李成)이 다시 삭초를 편들어 양중서에게 권했다.
"상공, 양지(楊志)는 전사부의 제사로 있었던 자라 무예가 뛰어납니다. 애초부터 주근(索超)은 적수가 못 된 듯하니 삭초(索超)와 다시 한번 겨뤄 보게 하시지요."
'내가 양지(楊志)를 쓰고 싶어도 여러 장수들이 따라 주지 않는구나. 양지가 삭초까지 이겨야 일이 풀리겠다. 삭초(索超)는 죽어도 원망이 없다 했으니 이번에 또 양지(楊志)가 이기면 다시는 딴소리를 않겠지.'
그리고 양지를 불러 물었다.
"어떠냐. 다시 한번 삭초(索超)와 무예를 겨뤄 보겠느냐?"
양지(楊志)도 자신이 몸 둘 곳을 얻으려면 삭초와의 싸움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은상께서 내리시는 영이라면 제가 어찌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응낙의 뜻을 나타냈다. 양중서(梁中書)가 반가운 얼굴로 그런 양지에게 일렀다.
"그렇다면 가서 옷을 바꿔 입고 오너라. 갑옷을 단단히 여며 입어야 한다."
그리고 창고를 지키는 관리를 불러 양지에게 갑옷과 병기를 갖춰 주라 명했다. 뿐만이 아니었다. 다시 곁엣사람들에게 큰소리로 자신의 말을 끌어오게 한 뒤 양지에게 내어 주며 말했다.
"이 말을 타고 싸우도록 하라. 부디 조심하고 상대를 얕보지 말라."
양지(楊志)는 그런 양중서의 호의에 다시 한번 감사를 올린 뒤 연무청 뒤로 가 몸단속을 했다. 한편 이성(李成)은 이성대로 가만히 삭초를 불러 다짐을 주었다.
"이번 시합은 다른 데 비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한 것이 됐네. 주근(周謹)이 이미 졌는데 또 자네가 실수라도 하게 되면 양지(楊志)는 우리 대명부의 군관 모두를 우습게 보지 않겠나? 내게 아주 좋은 전마 한 필이 있고 또 훌륭한 갑옷 한 벌이 있는데 그걸 모두 자네에게 빌려주겠네. 부디 조심해서 우리 대명부 군관들의 날카로운 기세가 꺾이는 일이 없도록 해 주게."
이에 삭초 또한 이성에게 감사하고 몸단속을 하러 물러갔다. 두 사람 모두 말과 갑옷을 갖추러 간 뒤 양중서(梁中書)는 몸을 일으켜 계단을 내려갔다. 대(臺) 위에서 멀찌감치 보기에는 너무 무거운 시합이라 월대에서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함이었다. 시중드는 사람들이 그의 은장석(銀裝錫) 교의를 들어다가 월대 난간 곁에 놓았다. 양중서(梁中書)가 교의에 앉자 그 머리 위를 가려 주는 일산(日傘)이며 찻상, 찻주전자가 함께 따라와 그 주위에 펼쳐졌다.
"시합을 시작하도록 하라."
양중서(梁中書)가 그런 영을 내리자 장대 위에 붉은 기가 올랐다. 양편에서 북소리, 징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더니 한 소리 포향(砲饗)이 터지면서 먼저 삭초가 말을 타고 나왔다. 삭초(索超)가 문기 아래 나와 서자 양지가 말을 달려 나왔다. 양지(楊志)가 문기 뒤에 이르렀을 무렵 이번에는 누런 깃발이 장대에 올랐다. 양편의 군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올려 기세를 돋우었다. 이어 다시 징 소리가 한번 크게 울리며 흰 깃발이 올랐다. 갑자기 함성이 뚝 그치며 교련장이 조용해졌다. 그 분위기가 얼마나 엄숙한지 누구 하나 입을 열기는커녕 몸 한번 까딱하지 않았다. 이윽고 장대 위에 푸른 기가 높이 올랐다. 시작하라는 신호였다. 그 깃발에 호응하듯 세 번의 북소리가 나자 왼편 진(陣)의 문기 아래서 정패군 삭초(索超)가 말방울 소리도 요란하게 말을 달려 나왔다. 진(陣) 앞에서 말을 멈춘 삭초의 모습은 과연 영웅다웠다. 머리에는 사자 모양으로 두들겨 뽑은 강철 투구에 붉은 수술을 드리웠으며 몸에는 또한 강철 비늘을 꿰어 만든 한 벌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허리에는 짐승의 얼굴을 새긴 금빛 띠를 둘렀고 가슴 앞뒤에는 청동으로 만든 호심경(護心鏡)을 달았다. 윗도리는 한 벌 붉은 전포요, 발에는 한 켤레 반짝이는 가죽신을 꿰고 있었다. 오른쪽에는 장궁을 차고 왼편에는 화살통을 걸었으며, 손에는 한 자루 금칠 입힌 도끼를 들었다. 그런 삭초(索超)가 이성이 빌려준 눈같이 흰 말을 타고 달려 나오자 맞은편에서도 문기가 열리며 양지가 달려 나왔다. 창 한 자루를 비껴들고 말 위에 높다랗게 앉은 그의 모습 또한 용맹스럽기 그지없어 보였다. 머리에는 빛나는 해 모양의 장식을 단 강철 투구에 푸른 수술을 드리웠으며 몸에는 버들잎 같은 쇠 비늘을 엮은 갑옷에 붉은 가죽띠였다. 가슴 앞뒤를 가린 엄심갑(掩心甲)이며 전포, 가죽신, 장궁, 화살통도 모두 그의 위엄을 더하는 것들이었다. 그런 양지(楊志)가 양중서에게서 빌린 불덩어리 같은 붉은 말을 타고 한 자루 점강창(點鋼槍)을 휘두르며 나오자 양편 군사가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남쪽에 앉았던 상기패관(上旗牌官)이 영자기(令字旗)를 날리며 말을 달려와 큰소리로 외쳤다.
"상공의 높으신 뜻을 받들어 하는 시합이니 두 사람 모두 힘을 다하라. 잘못이 있으면 책벌이 있을 것이요, 이기는 자에게는 상을 내릴 것이다."
양지(楊志)와 삭초(索超)는 그 영을 받들고 교련장 가운데로 말을 몰아갔다. 두 말이 엇갈리자 제 김에 화가 난 삭초(索超)가 도끼를 수레바퀴처럼 휘두르며 양지를 덮여 갔다. 양지(楊志)도 위엄을 뽐내며 손에 든 창으로 삭초의 도끼를 받았다. 두 사람이 맞붙은 곳은 교련장 한가운데였다. 두 사람이 평생의 재주를 다해 겨루니 둘의 네 팔뚝과 두 필 말의 여덟 개 말발굽이 어지러이 얽혔다. 그러나 싸움이 오십 합이 넘어도 승부가 가려지지 않았다. 월대 위에서 보고 있던 양중서(梁中書)는 그 눈부신 광경에 넋을 잃었다. 양편의 군관들도 연방 탄성을 쏟아냈다.
"우리가 여러 해 군중에 있으면서 숱한 싸움도 겪었지만 이런 싸움은 처음 보네. 정말 대단한 호걸들이군!"
군사들은 그렇게 수군거렸고 이성(李成)과 문달(聞達)도 장대 위에서 감탄을 그치지 못했다.
"좋구나, 정말로 멋진 한판 승부다."
그러나 이성과는 달리 문달(聞達)은 양지가 은근히 마음에 들었다. 둘 중 하나가 다치는 게 아까워 갑자기 깃발 든 패관을 불렀다.
"영자기(令字旗)를 들고 가서 저 둘을 갈라놓아라. 어서 싸움을 말려야 한다!"
그러자 장대 위에서 징 소리가 났다. 싸움을 그치라는 군호였다. 그 소리를 들은 양지(楊志)와 삭초(索超)는 하는 수 없이 싸움을 그치고 각기 말 머리를 돌렸다. 그때 깃발 든 패관(牌官)이 달려와 소리쳤다.
"두 호걸은 싸움을 그치시오. 상공의 분부시오!"
이에 양지(楊志)와 삭초(索超)는 무기를 거두고 본진 쪽으로 돌아갔다. 양지(楊志)와 삭초(索超) 두 사람이 양중서 앞으로 가서 말을 멈추고서 영을 기다리는데 이성과 문달이 달려와 양중서에게 간곡히 말했다.
"상공, 저 둘의 무예는 높고 낮음이 없습니다. 둘 다 무겁게 써도 좋을 만큼 뛰어나니 이만 시합을 그만두게 하십시오."
그 말에 양중서(梁中書)도 기뻐했다. 이제는 장수들도 불만 없이 양지를 받아들일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곧 영을 내려 양지와 삭초를 가까이 부르게 했다. 두 사람이 양중서 앞으로 가 말에서 내리자 소교(小校) 하나가 두 사람의 무기를 거두었다. 두 사람은 계단을 올라가 양중서 앞에 몸을 굽히고 영을 기다렸다. 양중서(梁中書)는 둘에게 은덩이와 비단옷을 내려 상을 준 뒤 군정사(軍政司)에게 명을 내렸다.
"두 사람 모두 오늘부터 관군제할사(管軍提轄使)로 일하도록 문안을 만들라."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도 양지를 쓰는 걸 반대하는 장수가 없었다. 양지(楊志)와 삭초(索超)는 내려진 상과 벼슬에 감사를 올린 뒤 양중서 앞을 물러났다. 두 사람이 갑옷을 벗고 활과 창칼을 끄른 뒤 다시 연무청으로 오르자 양중서(梁中書)는 둘을 불러 새삼 인사를 시켰다. 그리고 크게 잔치를 열어 높고 낮은 군관들과 함께 그 하루를 즐겼다.
붉은 해가 서산으로 기울 무렵, 잔치가 끝나고 양중서(梁中書)는 말에 올랐다. 관원들은 모두 부중으로 돌아가는 양중서를 배웅했다. 양중서(梁中書)는 새로이 제할사가 된 양지와 삭초를 데리고 부중으로 돌아갔다. 두 사람의 머리에는 붉은 꽃이 꽂혀 있었다. 일행이 동곽문(東郭門)으로 들어서는데 백성들이 길 양편으로 늘어서 맞았다. 늙은이를 부축하고 어린애를 업은 채 그들을 맞는 백성들이 한결같이 기쁜 표정이라 양중서(梁中書)가 말 위에서 물었다.
"그대들은 도대체 무엇이 그리 기쁜가?"
그러자 늙은이들이 입을 모아 대답했다.
"저희들은 북경에서 나 이곳 대명부에서 오래 살았으나 이 같은 무예 시합은 본 적이 없습니다. 오늘 교련장에서 두 분의 눈부신 무예를 보았고, 이제는 또 두 분 다 제할사로 모시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양중서(梁中書)가 듣기에도 결코 기분 나쁠 것 없는 소리였다.
부중으로 돌아가자 삭초(索超)는 함께 일해 온 군관들이 많아 축하 술을 마시자고 끌고 갔지만, 양지(楊志)는 새로 온 터라 아는 사람이 없었다. 홀로 부중 자기 방으로 돌아가 조용히 쉬었다. 그러나 헝클어진 그의 삶은 그날로 다시 펴진 셈이었다.
그 뒤 양지(楊志)는 성심으로 자신을 알아준 양중서를 위해서 일했다. 양중서(梁中書)도 동곽문의 무예 시합이 있고 난 뒤로 더욱 양지를 아껴 잠시라도 곁에서 떨어져 있지 못하게 했다. 양지(楊志)는 다달이 받는 돈도 생겼고, 사귀기를 원하며 찾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특히 삭초(索超)는 양지의 솜씨가 빼어남을 누구보다 잘 알아 마음으로 그를 높이 보았다.
그사이도 세월은 쉼 없이 흘러 어느새 봄은 가고 여름이 다가왔다. 단오절이 되어 양중서와 채부인은 후당에서 작은 잔치를 벌였다. 술이 몇 순배 돌았을 때 채부인이 양중서(梁中書)에게 물었다.
"상공께서 벼슬길에 오르신 뒤로 이제는 국가의 무거운 직책을 맡게끔 되었습니다. 이 공명과 부귀가 모두 어디서 나온 것이라 믿으십니까?"
뭔가 딴 뜻이 있는 물음이었다. 양중서(梁中書)가 그 뜻을 알고 얼른 대답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책을 읽어 경사(經史)를 아오. 사람이 목석이 아닌 바에야 어찌 장인어른의 태산 같은 은혜를 잊었겠소? 이끌어 주신 은혜 생각만 해도 감격을 이기지 못하겠소."
그러자 채부인이 살풋 웃으며 말했다.
"상공께서 저희 아버님의 은혜를 아신다면 어찌하여 그 생신날을 잊고 계십니까?"
"내가 어찌 장인어른의 생신이 유월 보름이란 걸 잊을 리 있겠소. 이미 사람을 시켜 돈 십만 관으로 금은보석을 사들이게 하고 있소이다. 경사로 보내 장인어른의 생신을 축하드리려 함인데 이제 열에 아홉은 갖춰졌소. 며칠 안으로 챙겨 보고 사람을 시켜 보낼 작정이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은 어떻게 그곳까지 무사히 보내는가 하는 거요. 작년에도 수많은 값진 보물을 싸서 보냈으나 도중에 도적에게 몽땅 잃어버리지 않았소? 아직껏 그 도적을 못 잡고 있는 마당에 이제 다시 보내려 하니 걱정이 아니 될 수 없구려. 그래 이번에는 누구를 보냈으면 좋겠소?"
양중서(梁中書)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그렇게 받았다. 채부인이 가볍게 받았다.
"부리시는 수많은 군교 중에 믿을 만한 이를 골라 보내시지요."
"하기야 아직 사오십 일 남았으니 먼저 예물을 갖춘 뒤 그때 가서 보낼 사람을 골라도 늦지 않을 것이오. 부인께서는 너무 마음 쓰지 마시오. 내가 다 알아서 처리하겠소."
양중서(梁中書)는 그렇게 의논을 그치고 다시 술잔을 들었다. 그때 이미 마음속으로는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으나 아직은 밝히고 싶지 않아 그냥 미룬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