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卷七. 오강(烏江)의 슬픈 노래

섣달의 눈보라가 온 천지를 꽁꽁 얼어붙게 했다. 광무산의 두 봉우리 위에 세워진 한군(漢軍)과 초군(楚軍)의 진채도 더했다. 마주 보고 퍼붓던 욕설도 끊기고 두 진채 모두 매서운 눈보라 속에 납작 엎드리듯 숨을 죽이고 있었다.

광무간(廣武澗)이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마주 보고 있는 두 봉우리 중에 먼저 자리를 잡고 진채를 얽기 시작한 것은 한군이었다. 오창과 이어진 서(西)광무에 자리 잡은 한군은 엄청난 물력(物力)을 들여 그 봉우리를 순식간에 든든한 요새로 만들어 놓았다. 패왕이 이끄는 초나라 군사들의 사나움과 날램을 몇 번이고 뼈저리게 맛본 뒤라서 그런지 튼튼하면서도 빈틈없는 야전축성(野戰築城)이었다.

서광무의 동쪽은 깎아지른 듯한 벼랑으로 되어 있고, 벼랑 아래는 변수((,))란 개울물이 흘렀다. 그리고 백 걸음 저쪽에는 동()광무가 솟아 있는데, 그 역시 서광무와 마주 보는 면은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었다. 이에 한군은 서광무의 동쪽을 빼고는 세 면 모두 녹각(鹿角)과 목책(木柵)을 겹겹이 세우고, 필요한 곳에는 다시 바위로 성곽까지 쌓아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일을 마치고 보니 어지간한 산성(山城)보다 더 든든했는데, 실제로도 뒷날 그곳 사람들은 그런 한군의 진채 터를 한성(漢城)이라 불렀다.

패왕 항우가 이끄는 초나라 군사들이 서광무의 한군 진채로 몰려든 것은 그 모든 채비가 끝난 사흘 뒤였다. 먼저 광무간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본 패왕은 서광무의 서쪽 경사면으로 대군을 몰았다. 하지만 계포가 걱정한 대로, 그쪽 비탈은 가파르지 않은 만큼이나 한군 쪽의 대비가 잘되어 있었다. 촘촘한 녹각과 목책이 앞을 막고, 어렵게 그것들을 타 넘으면 다시 돌로 쌓은 성곽이 솟아 있는 식이었다. 원래 그 봉우리 발치에 있던 산성과 혈창(穴倉) 주변에 둘러 있는 누벽(壘壁)도 봉우리 위의 진채를 지키는 데는 한몫을 단단히 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초나라 군사들을 괴롭힌 것은 싸우기에 너무도 불리한 지형이었다. 서쪽 비탈이 가파르지 않다고 하지만 깎아지른 듯한 절벽인 동쪽 면보다 낫다는 뜻이지, 결코 힘들지 않고 밀고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래에서 쳐 올라가는 초나라 군사들은 창칼만 끌고 가기에도 숨이 차는데, 위에서 막고 있는 한나라 군사들은 들고 있던 통나무만 슬그머니 내려놓아도 그대로 무시무시한 병기가 되어 비탈을 기어오르는 초나라 군사들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패왕은 사흘이나 더 군사들을 서광무 꼭대기로 몰아대다가 죽고 다치는 군사들이 늘어가자 하는 수 없이 군사를 물렸다. 한군이 굴려 대는 바위나 통나무가 닿지 않을 평지에 잠시 진채를 내리게 한 패왕이 오랜만에 장수들을 군막으로 불러 모았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금세 터질 듯한 얼굴로 패왕이 여러 장수를 돌아보며 물었다. 좀체 남에게 묻는 법이 없던 패왕이라 장수들이 놀랍다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래도 아직 패왕에게 제 속을 털어놓는 몇 안 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인 용저가 받았다.

아무래도 계포 선생이 말한 대로 우리 또한 동광무에 진채를 얽는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거기서 광무간을 사이에 두고 적을 내려다보면서 변화를 기다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변화라니?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되었는데 변화는 무슨 변화란 말이냐?”

패왕이 퉁명스레 되물었다. 용저가 제법 생각 깊은 표정으로 말했다.

유방이 제 발로 산을 내려오기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계략을 써서 산 아래로 꾀어내는 수도 있습니다.”

이미 숨을 곳을 보아두었다가 자라 모가지처럼 움츠리고 숨은 겁쟁이가 무엇 때문에 스스로 산을 내려오겠느냐? 또 교활하고 간사하기가 늙은 여우보다 더한 그놈을 이제 와서 무슨 수로 꾀어낸단 말이냐?”

패왕이 그렇게 꾸짖듯 말했으나, 달리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왕의 움직임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늦기 전에 그곳이라도 차지하고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에 패왕은 곧 군사를 동()광무로 움직여 그곳에 진채를 쌓게 하였다.

성벽이나 보루(堡壘)에 기대 지키기만 하는 것은 원래 패왕이 즐겨 하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사정이 뜻과 같지 못하니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깎아지른 벼랑을 사이에 두었다고는 하지만 워낙 100보밖에 안 되는 곳에 한나라 대군이 있어, 초나라 진채도 기습이나 야습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따라서 초나라 군사들도 나무를 베고 바위를 모아 진채를 든든히 했는데, 그 또한 산성(山城)에 견줄 만해 뒷날 그곳 사람들은 그 진채를 초성(楚城)이라 불렀다.

한군 진채가 들어선 서광무 맞은편 봉우리에 진채를 얽자마자 패왕은 군사들을 시켜 한왕에게 온갖 욕설을 퍼붓고 그 장졸들도 아울러 조롱하게 했다. 한왕이 조구에게 했던 것처럼 그렇게 화를 돋워 한군을 산 아래로 끌어내기 위함이었으나 어찌된 셈인지 한군 쪽에서는 대꾸조차 없었다. 모두 귀머거리인 양 진채에 틀어박혀 꼼짝 않고 있었다.

참지 못한 패왕이 다시 용저와 종리매를 내려보내 한군 진채가 있는 서(西)광무의 서편 능선을 한 번 더 건드려 보게 했다. 두 맹장이 날랜 군사 5000명을 가려 뽑아 어둠 속에 산비탈을 쳐올라가 보았으나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조용하던 진채에서 벌 떼처럼 뛰쳐나온 한나라 군사들이 통나무와 바위를 굴리고 화살을 쏘아대 다시 적지 않은 군사만 다치고 말았다. 그 바람에 다시 지루하게 달포가 흐르고 날은 어느새 섣달도 다해 가는 늦겨울이 되었다. 그날도 뜻대로 되지 않는 싸움 때문에 잔뜩 심사가 상해 있는 패왕의 군막으로 치속도위(治粟都尉·군량관)가 찾아왔다.

무슨 일이냐?”

낮술로 불콰해져 있던 패왕이 좋지 않은 예감으로 꾸짖듯 물었다. 겁먹은 치속도위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군량이 다해 갑니다. 사흘 전부터 군량이 이르기를 재촉했으나 끝내 오지 않아 이제 남은 것은 100()도 되지 못합니다. 먹는 양을 절반으로 줄여도 열흘을 버티기 어렵습니다.”

팽성에 있는 것들은 무엇을 하고 있단 말이냐? 왜 제때에 군량을 보내지 않는 것이냐?”

패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더욱 놀란 치속도위가 몸까지 떨며 더듬거렸다.

팽성에서는 넉넉히 거두어 보내었으나, 도중에오는 길에 그만.”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오는 길에 군량을 빼앗겼다고 합니다.”

무어라? 군량을 빼앗겼다고? 그 장수가 누구냐? 어느 미련한 물건이 군량을 뺏기고도 살기를 바라고 돌아왔느냐?”

패왕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금세라도 칼집에서 뽑을 듯 칼자루를 잡았다. 치속도위가 흙빛이 된 얼굴로 바닥에 엎드리며 울먹였다.

제 부관(副官)인데 그는 벌써 죽었습니다. 지난번에도 군량을 빼앗겼다기에 이번에는 호위까지 500명을 붙이게 하였으나 도중에 모진 도적 떼를 만나 그리되고 말았습니다.”

도적 떼라니? 어떤 간 큰 도적놈이 감히 과인의 군량을 넘본단 말이냐? 그게 누구라더냐?”

살아 돌아온 자가 없어 명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땅에서 그리되었다는 소문이니 팽월인 듯합니다. 팽월이 아니고는 그럴만한 세력이 없습니다.”

거기까지 듣고 나니 패왕도 짚이는 데가 있었다. 지난번에 팽월을 잡지 못하고 돌아온 일이 못내 마음에 걸렸는데 기어이 뒤탈을 본 셈이었다.

그 팽가 놈이 또. 좋다. 모든 장수들을 불러라. 내 당장 달려가 이번에는 반드시 그 늙은 도적놈의 목을 베겠다!”

성난 패왕이 그 자리에서 모든 장수들을 불러 모으게 하고 팽월을 잡으러 떠날 의논을 했다. 이번에도 계포가 나서서 패왕을 말렸다.

한왕을 버려두고 이곳을 떠나서는 아니 됩니다. 팽월이 그렇게 날뛰는 것도 한왕이 부추긴 탓이니, 모든 우환의 뿌리는 한왕에게 있습니다. 여기서 한왕과 결판을 지은 뒤에 팽월을 잡으러 가도 늦지 않습니다. 지금 팽월에게 달려가는 것은 한왕의 엉큼한 속임수에 놀아나는 것밖에 안 됩니다. 팽월이 다시 멀리 달아나 숨어버리면 대왕만 고단해질 뿐입니다.”

당장 군사들을 먹일 곡식이 없는데 어떻게 여기서 한왕을 이긴단 말인가?”

신이 팽성으로 내려가 군량을 거두어 오겠습니다. 우선 급한 100()은 신이 팽성에 이르는 대로 수레와 말에 실어 샛길로 보내면 열흘 안에 이곳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군량이 떨어지게 하지는 않을 것이니 대왕께서는 반드시 여기 남으셔서 먼저 유방을 사로잡도록 하십시오.”

계포가 그렇게 나오자 항왕도 무턱대고 팽월을 치러 떠나기를 고집할 수만은 없었다. 간다고 해서 반드시 팽월을 잡는다는 보장도 없으려니와 일껏 산봉우리에 가둬 논 한왕 유방을 다시 놓아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가 계포라면 어김없이 군량을 댈 것 같았고, 군량만 있으면 어떻게 한왕과 결판을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슬며시 마음을 돌리고 계포의 말을 따르려고 하는데, 다시 한 부장(部將)이 나서 귀가 솔깃해지는 소리를 했다.

대왕, 유방의 아비어미와 그 계집은 어디에 쓰시려는 겁니까? 지난번 산동에서 잡아들인 뒤로 군중(軍中)에 끌고 다닌 지 벌써 두 해째입니다. 왜 그들을 내세워 유방을 불러내지 않으십니까?”

그 말을 듣자 패왕은 문득 눈앞이 훤해지는 것 같았다. 군량 걱정이 없어졌을 뿐만 아니라 한왕을 불러낼 방도까지 듣게 된 까닭이었다. 그 자리에서 계포에게 300기를 딸려주며 팽성으로 가게 하는 한편, 한왕의 부모인 태공 내외와 그 정실 여후(呂后)를 끌어오게 했다.

패왕은 한왕 유방의 아버지 태공(太公)을 망보기 수레(巢櫓) 위에 높이 매달았다. 망보는 수레는 새집같이 높다란 망루를 지어 세운 수레를 말한다. 그 망루에 태공이 묶이니 광무간 건너 한군 진채에서도 모두가 바라볼 수 있었다.

유방은 나와 내 말을 들어라. 여기 묶인 게 누구인지 알겠느냐?”

그 수레 곁에서 패왕이 한군 진채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마치 큰 쇠북소리가 한나라 진채를 뒤흔드는 것 같았다. 처음 한동안은 전처럼 못들은 척하던 한나라 군사들이 하나 둘 나와 초나라 진채 쪽을 보더니, 차츰 많은 장졸이 한군 진채 밖에 몰려서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일이 한왕 유방의 귀에도 들어갔는지 한왕도 전과 달리 진채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항왕은 무슨 일로 과인을 찾는가? 누구를 모시고 왔기에 이리도 요란스러운가?”

한왕이 애써 태연한 척 말을 걸어왔지만 그 목소리는 어딘가 떨리고 있었다. 패왕이 한층 기세가 올라 소리쳤다.

이놈 유방아, 너는 부모처자를 과인에게 맡겨 두고 이태가 되도록 찾을 줄 모르더니, 이제는 네 애비조차도 몰라보느냐?”

그제야 한왕이 힐끗 망보기 수레 위를 쳐다보더니 별로 놀란 기색 없이 받았다.

대장부가 큰 뜻을 품고 천하를 내닫다 보면 고향 산천과 부모처자를 떠나 있을 때도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제 항왕은 내 아버님을 모셔와 어쩌겠다는 것인가?”

이상하게도 이번에는 전과 달리 별로 떨림이 없는 목소리였다. 패왕이 그런 한왕을 한 번 더 충동질하듯 목소리를 높였다.

네놈이 한 입으로 두 말을 하면서 여러 번 과인을 성가시게 하였으니, 그 죄를 네 애비에게 물어야겠다. 이제 삶기 전에 칼질부터 하려고 도마에 묶어 두었으니, 어쩌겠느냐? 어서 과인에게 항복해 죄를 빌고 애비를 살리겠느냐? 아니면 애비가 눈앞에서 국거리가 되는 꼴을 보겠느냐?”

그런데 패왕에게는 전혀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한왕이 갑자기 껄껄 웃더니 느긋하다 못해 이죽거리는 듯한 투로 패왕의 말을 받았다.

이놈 항우야. 네 명색 천하의 패왕을 자처하면서 겨우 그 얘기였더냐? 지난날 너와 내가 함께 북면(北面)하여 회왕(懷王)을 섬길 적에 그 명을 받들어 형제 되기를 약조한 적이 있고, 죽은 무신군(武信軍) 앞에서도 또한 형제 되기를 맹서한 적이 있다. 따라서 나의 어버이가 곧 너의 어버이니, 네가 꼭 네 애비를 삶아야겠다면 난들 어쩌겠느냐? 그래도 너와 나는 형제의 의리가 있으니 국이 다 끓거든 나에게도 한 그릇 나눠 주기 바란다.”

그 말을 듣자 패왕은 두 눈이 뒤집힐 만큼 화가 치솟았다. 시뻘게진 얼굴로 한동안 거친 숨만 몰아쉬다가 곁에 있는 장수들을 돌아보며 벼락같이 소리쳤다.

무엇들 하느냐? 어서 저 늙은 것을 끌어내려 가마솥에 삶아라. 저 불측한 장돌뱅이 놈이 제 애비의 고기가 든 국을 어떻게 먹는지 봐야겠다.”

그러자 부장 하나가 망보기 수레 쪽으로 달려가 태공을 끌어내리려 했다. 그대로 두면 바로 태공을 끓는 물에 집어넣을 기세였다. 그때 곁에 있던 항백(項伯)이 나가 말렸다.

대왕, 천하의 일은 아직 어찌될지 알 수 없으니, 얻기 어려운 볼모를 함부로 죽여서는 아니 됩니다. 거기다가 한왕의 말대로, 큰일을 도모하는 자는 자신의 집안을 돌보지 않는 법, 저 늙은이를 죽인다고 대왕께 이로울 것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아비 잃은 원한에 죽기로 덤비면 대왕께 크게 화를 더할 뿐입니다.”

패왕은 전에 홍문(鴻門)의 잔치에서 항백의 말을 듣고 패공 유방을 살려주었다가 몹시 후회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곁에서 끊임없이 그 잘못을 일깨워주던 범증은 벌써 죽고, 항백은 살아남아 자잘한 충성으로 거듭하여 믿음을 사니, 패왕도 차츰 그 후회에서 헤어났다. 거기다가 종성(宗姓)인 항씨(項氏)들에 대한 유별난 편애도 패왕으로 하여금 항백의 말을 따르게 했다.

좋다. 우선 이 늙은 것을 다시 군막에 가두어라. 내 저 애비 어미도 돌보지 않는 짐승 같은 장돌뱅이놈까지 사로잡은 뒤에 가마솥에 함께 삶으리라.”

한참을 씨근거리며 속을 가라앉힌 패왕이 이윽고 그런 명을 내려 태공(太公)을 다시 망보기 수레(巢櫓)에서 풀어 내렸다. 그러나 제 할 말만 마치고 자신의 진채로 돌아가 버린 한왕 유방은 두 번 다시 얼굴을 내밀어 태공의 안위를 살피는 기색조차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다시 한번 짚어 보고 싶은 것은 이 일을 통해 드러나는 한왕 유방의 특이한 개성이다. 사람들은 흔히 그것도 지난날 수수()강변에서 패왕에게 쫓길 때 효혜태자와 노원공주를 수레에서 내던졌던 그 결단과 같은 것으로 본다. 곧 천하를 공변된 것으로 여길(天下爲公) 뿐만 아니라, 자신을 또한 그 천하의 임자로 키워 사사로움을 버리는, 천하의 임금노릇 하는 자(王者)로서의 비정한 결단이라고 한다.

하지만 뒷날 한 고조(漢 高祖)가 된 유방이 태공을 태상황(太上皇)에 봉해가며 극진하게 모신 걸 보면 반드시 그 결단이 아들딸을 적진에 내버릴 때와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날 한왕이 비정하게 태공으로부터 등을 돌린 것은 천하를 위해서는 가족도 희생시킬 수 있다는 공리(公理)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그게 자신과 태공이 아울러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날 한왕이 태공을 살리기 위해 패왕에게 항복했더라면 둘 모두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쨌든 패왕이 태공까지 끌어내도 한왕 유방에게 별 위협이 못되자 동서 광무의 양군 진채는 다시 팽팽하지만 지루한 대치에 들어갔다. 어쩌다 해가 돋고 날이 풀리면 진채 밖으로 나온 병졸들이 광무간을 사이에 두고 욕설이나 주고받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사이 섣달이 다하고 봄 정월로 접어들었다. 싸움 없이 한 달 가까이 지나자 좀이 쑤셨는지 패왕이 다시 나와 싸움을 걸었다.

한왕 유방은 어디 있느냐? 유방은 어서 나와 과인의 말을 들어라!”

패왕이 광무간 저쪽에서 한군 진채로 우레 같은 소리를 내질러 한왕을 찾았다. 한참이나 듣고만 있던 한왕이 마지못해 진문 밖으로 나가 패왕과 마주섰다.

아우가 무슨 일로 과인을 찾는가? 아비 삶은 국을 나눠먹자는 얘기는 아니겠지?”

한왕이 그렇게 이죽거려 패왕의 심사부터 건드려 놓았다. 그 말에 패왕의 눈길이 사나워졌으나 이내 평온을 되찾더니, 어울리지 않게 달래는 말투가 되었다.

포악한 진나라가 망한 지도 3, 아직도 세상이 이리 흉흉한 것은 모두가 그대와 나 두 사람 때문이다. 바라건대 한왕은 나의 도전을 받아들여 단둘이서 자웅을 가리고, 부질없는 전쟁으로 애꿎은 천하 뭇 백성들은 더 괴롭히지 말기로 하자. 어떠냐? 우리 둘만 저 아래로 내려가 당당하게 겨뤄 보지 않겠느냐?”

패왕이 그러면서 채찍을 들어 벼랑 아래 한 곳을 가리켰다. 초군(楚軍)과 한군(漢軍) 진채 사이 광무간(廣武澗)에는 변수((,))라는 개울이 흘렀는데, 변수 서쪽 한군 진채 발치에 제법 널찍해 말을 타고 싸울 만한 공터가 있었다. 패왕은 그곳에서 단병(短兵)으로 승부를 가리자는 뜻 같았다. 한왕이 흘깃 그곳을 내려다보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대는 명색 한 나라의 군왕이 되어서도 어찌 이리 미련하고 어리석은가? 과인은 그대와 지혜를 다툴지언정 힘을 겨룰 수는 없다.”

그리고는 패왕의 다음 말을 기다리지도 않고 몸을 돌려 진채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왕의 그 같은 말에 분통이 터진 패왕은 길길이 뛰며 고래고래 욕설을 퍼부어댔으나 한번 사라진 한왕은 두 번 다시 진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지 않았다.

제가 내려가서 한군에게 한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적장이라도 꾀어 내 그 목을 베어 대왕의 노여움을 다소나마 풀어드리겠습니다.”

패왕 곁에 있던 젊은 부장(副將) 하나가 긴 창을 끼고 나서며 그렇게 말했다. 먼 아우뻘 되는 항탁(項卓)이란 족중(族中) 젊은이였다.

그래라. 네가 만약 한나라 장수의 목을 얻어 온다면 너를 장군으로 삼고 3000()를 내리겠다!”

패왕이 그런 말로 항탁을 격려해 내려 보냈다. 기세가 오른 항탁이 말을 타고 벼랑길을 돌아 광무간으로 내려갔다. 오래잖아 광무간 바닥에 이른 항탁은 거침없이 변수를 건넌 뒤 한나라 진채 앞에 있는 공터로 들어섰다.

한나라 장수들은 듣거라. 너희 임금이 겁이 많아 감히 우리 대왕의 도전을 받지 못하니 세상에 이보다 더 부끄럽고 욕된 일이 있느냐? 예부터 이르기를, 임금이 욕되면 신하는 목숨을 바쳐 그 욕됨을 씻어야 한다고 들었다. 누가 나와서 내 창을 받아 저 겁 많은 임금의 욕됨을 씻어 보겠느냐?”

항탁이 자못 우렁찬 목소리로 가까운 벼랑 중턱에 얽은 한군 진채의 목책 진문(陣門)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그 위세에 질렸는지 한군 진채는 쥐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항탁이 더욱 기세를 뽐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나라에 이리도 사람이 없느냐? 단 하나라도 부끄러움을 아는 자가 있거든 어서 나와 내 창을 받아 보아라!”

그래도 한나라 진채 안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더욱 간이 커진 항탁이 말을 몰아 한나라 진문 아래를 오락가락하며 한나라 장수들의 부아를 질러댔다.

그 아비에 그 자식이라더니, 또한 그 임금에 그 신하로구나. 우리 서초(西楚)에 맞서 명색 천하를 다툰다는 한나라에 이리도 밸 있는 장수가 없단 말이냐? 도대체 네놈들이 들고 있는 창칼은 젓가락이냐? 부지깽이냐?”

항탁(項卓)이 세 번씩이나 약을 올리며 싸움을 걸자 어지간히 참고 있던 한나라 진채에서도 마침내 움직임이 있었다. 비탈 위에 엮은 목책(木柵)이 열리며 장수 하나가 말을 타고 진문을 나왔다. 갑옷투구나 들고 있는 활이 모두 한나라 것이 아니었다.

누번(樓煩)이다. 북쪽 되놈 장수다.”

그 장수의 차림과 활을 알아본 초나라 군사들이 그렇게 떠들면서 곧 벌어질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누번 장수가 말을 박차 앞으로 달려 나가는가 싶더니 갑자기 들고 있던 활에 화살을 먹여 항탁을 쏘았다. 공들여 겨눈 것 같지도 않고 힘들여 시위를 당긴 것 같지도 않는데, 처절한 외마디 소리와 함께 항탁이 화살 맞은 얼굴을 감싸 안고 말 위에서 떨어졌다. 누번의 말 타고 활을 쏘는(騎射) 솜씨가 실로 놀라웠다.

그걸 본 한나라 진채에서는 기뻐하는 외침이 일었다. 그러나 초나라 진채에서는 놀란 외마디에 이어 탄식과 분노의 함성이 터졌다. 특히 항탁이 벼랑을 내려갈 때부터 줄곧 눈길로 그를 뒤따른 패왕은 항탁이 말에서 떨어지는 걸 보자 그냥 있지 못했다.

저놈이.”

이를 부드득 갈며 그렇게 외친 패왕은 몸소 말을 몰아 벼랑을 달려 내려갔다. 광무간으로 내려간 패왕이 그 공터에 이르렀을 때는 그 사이 숨을 거둔 항탁에게로 다가간 누번 장수가 막 그 목을 거두려 할 때였다.

멈춰라! 이놈. 네 무슨 짓을 하려느냐?”

패왕이 말배를 차 앞으로 내달으며 벼락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그 소리에 놀라 돌아본 누번 장수가 다시 화살을 뽑아 시위에 얹고 패왕을 겨냥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전과는 또 다른 쪽으로 어이없고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갑자기 누번 장수가 활과 화살을 내던지고 한군 진채 안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고함 소리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데 다시 시퍼런 불길이 뚝뚝 듣는 듯한 패왕의 두 눈을 마주치자 그 누번 장수는 그야말로 넋이 날고 얼이 모두 흩어져(魂飛魄散) 버렸다. 손에 든 것 다 팽개치고 돌아서 달아나기 바쁜데, 패왕이 한 번 더 벼락같은 외침을 내지르며 그 뒤를 쫓았다.

이놈, 게 섰거라. 어디로 달아나려 하느냐?”

그러나 누번 장수는 뒤 한번 돌아보는 법 없이 진채 안으로 달아나더니, 솔개에 쫓긴 까투리마냥 군막 한구석에 머리를 처박고 감히 다시 나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때는 한왕 유방도 벼랑 위 진채의 장졸들 사이에 끼어 광무간 아래서 벌어지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누번 장수가 초나라 장수 하나를 죽인 걸 기뻐할 틈도 없이 나타난 또 다른 초나라 장수의 엄청난 기세를 보고 크게 놀랐다.

저 장수가 누구냐? 어서 누군지 알아 오너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아 얼른 패왕을 알아보지 못한 한왕이 곁에 있는 군사에게 그렇게 시켰다. 오래잖아 그 군사가 돌아와 말했다.

그가 바로 항왕이라고 합니다.”

그 말에 더욱 놀란 한왕은 그날 이후 더욱 진채 깊숙이 숨어 패왕과 만나기를 피했다.

다시 초나라와 한나라가 동서 광무 꼭대기에서 서로 마주 버텨 서서 노려보는 사이에 열흘이 훌쩍 지나갔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했던가, 패왕 항우가 군사들을 시켜 아무리 욕설을 퍼붓고 싸움을 걸어 봐도 한군이 진채에서 내려와 싸워 주지 않으니 소용이 없었다. 패왕은 다시 마음이 조급해졌다.

계포가 팽성으로 돌아가 돌봐주는 덕분에 군량 걱정은 덜었으나 아주 마음을 놓을 처지는 못된다. 팽월이 언제 다시 양도(糧道)를 끊어 우리를 굶주리게 할지 모르니 이곳 광무에서의 싸움을 하루바삐 끝내야 한다. 무슨 좋은 방책이 없겠는가?”

항우가 장수들을 불러 모아놓고 그렇게 물었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다가 한신이나 진평 같은 인재를 잃고 범증같이 뛰어난 책사(策士)를 상심해 죽게 만들기는 했지만, 패왕도 아직은 생각이 막히면 다른 사람을 불러 그 말을 들을 줄 알았다. 진평의 계략에 걸려 하마터면 모두 내쫓길 뻔하기는 했지만 장수들도 아직은 패왕을 군왕으로 믿고 우러렀다. 이미 스스로 나서 패왕에게 계책을 내는 일은 드물어졌으나 물으면 아는 대로 대답은 했다.

그날도 그랬다. 오래 대답 없이 머뭇거린 뒤이기는 하였으나 말수 적은 종리매가 제법 귀가 솔깃해지는 소리를 했다.

이곳의 싸움은 한군이 산을 내려와 싸워 주지 않는 한 이겨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군은 이미 달포가 되도록 굳게 산성에 들어앉아 지키기만 할 뿐 나와서 싸울 뜻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따라서 지금 이 싸움을 끝내는 길은 뱀의 머리를 자르듯 한군의 머리가 되는 유방을 죽여 서광무의 진채를 쓸모없이 만들어 버리는 것뿐입니다.”

유방을 죽일 수만 있다면 나머지 군사들은 개미나 쉬파리 떼와 다름이 없다. 그러나 저 높고 험한 진채 깊숙이 자라처럼 모가지를 움츠리고 처박혀 있는 유방을 어떻게 잡아 죽일 수 있겠는가?”

패왕이 반갑지만 미덥지 않다는 눈길로 종리매를 바라보며 그렇게 되물었다. 하지만 종리매도 그냥 해본 소리는 아닌 듯했다. 이번에는 별 머뭇거림 없이 패왕의 말을 받았다.

신이 살피니 그동안 유방은 군사를 이끌고 나와 싸우려 하지는 않았으나, 말로 하는 싸움에는 반드시 나타나 대왕께 대꾸해 주었습니다. 특히 광무간을 사이에 두고 하는 말싸움은 한 번도 피하지 않았으니 그 방심을 틈타 보면 어떻겠습니까?”

아무리 유방이 방심하고 있다 한들 100길도 넘는 낭떠러지 저편 진채에 있는 그를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하지만 서광무와 동광무 사이는 넓어야 100걸음을 크게 넘지 못합니다. 강한 쇠뇌로 쏘아붙이면 피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어지간한 갑옷도 꿰뚫을 수 있습니다.”

종리매가 거기까지 말하자 패왕도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들었다. 평소 패왕의 기질대로라면 그런 종리매의 계책은 좀스러운 잔꾀로 여겨 쓰기를 망설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패왕은 조금씩 다급함에 몰리고 있었다. 잠깐 이맛살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더 따지지 않고 말했다.

알았소. 덫을 놓든 올무를 놓든 잡아야 할 여우는 반드시 잡을 수 있는 사냥꾼이 좋은 사냥꾼이오. 한번 그리해 봅시다.”

패왕 항우는 그날로 군중(軍中)에 명을 내려 그 살이 5백 걸음이나 날아간다는 강한 쇠뇌 석 장()을 거두어들이게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서광무와 가까운 벼랑가 한 곳을 골라 그 쇠뇌들을 눈에 띄지 않게 걸어두게 한 뒤, 장졸 중에 가장 뛰어난 궁수 셋을 골라 말했다.

너희들은 내일 새벽 날이 새기 전에 각기 이 쇠뇌들 곁에 몸을 숨겨라. 그리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가 내가 한왕 유방을 저편 벼랑 위로 불러내거든 틈을 보아 쇠뇌를 쏘아라. 유방이 백 걸음 안으로 다가들면 쇠뇌를 쏘되, 모두가 다 쏠 것은 없고 가장 가깝고 겨냥하기 좋은 곳에 자리 잡게 된 자가 천천히 겨눠 쏘면 된다. 만약 하늘이 도와 유방을 잡게 되면 너희들은 모두 만금(萬金)의 상을 받고 장수가 될 것이다. 그러나 때가 되기 전에 인기척을 내어 적병에게 들키거나 유방이 알아차리게 하여 일을 그르치면 아무도 그 목이 어깨 위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다음 날이 되었다. 모든 것이 잘 안배(按配)되었음을 확인한 패왕은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려 쇠뇌가 감춰진 벼랑가로 갔다.

한왕은 어디 있는가? 자라새끼처럼 목을 움츠리고 숨어있지만 말고 과인의 말을 들어라!”

패왕이 그렇게 소리쳐 한왕을 불러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러하듯 한군 진채에서는 한동안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그러다가 제 성을 못 이겨 달아오른 패왕이 이졸들을 시켜 갖은 욕설을 퍼부은 뒤에야 한왕 유방이 맞은편 벼랑 멀찍한 곳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그대는 또 무슨 일로 과인을 찾는가? 공연한 혈기로 애꿎은 장수만 죽이고도 아직 모자라는가? 그래도 기개가 가상하여 시체는 거두어가게 하였거늘.”

한왕이 그렇게 패왕을 나무랐다. 그동안 패왕의 외침 소리나 초나라 군사들의 욕설은 전혀 듣지 못한 것처럼 느긋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실은 패왕의 천둥 같은 고함소리 때문에 광무간이 시끄러워지자 양쪽 진채 군사들이 모두 내다보고 있어 더는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얼굴을 내밀고 말로라도 패왕을 이겨 초나라 군사들의 기를 꺾는 한편 마냥 움츠러들기만 하는 한나라 군사들을 다독여야 했다.

패왕은 한왕 유방이 멀쩡한 얼굴로 이죽거리자 가슴속에 천 길이나 되는 불길이 이는 듯했다. 무섭게 꾸짖어 얼부터 빼놓고 싶었으나 벼랑 구석에 감춰둔 쇠뇌를 떠올리고 참았다.

(네놈이 아무리 엉큼하고 능청스러워도 이제는 끝이다. 이제 다시는 능글맞은 웃음으로 나를 성나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목소리를 가다듬어 점잖게 유방의 말을 받았다.

그래서 이렇게 그대를 불러낸 것이다. 그날 그 누번(樓煩)놈이 그대를 닮아 쥐새끼처럼 머리를 싸매고 달아나지 않았던들 애꿎은 장수가 이쪽 그쪽 둘이나 죽을 뻔했다. 그래서 과인이 다시 말하거니와, 어떠냐? 한왕은 나와 단둘이 겨뤄 자웅을 가려보지 않겠느냐?”

이미 말하지 않았느냐? 내 그대와 지혜를 다툴지언정 힘을 겨룰 수는 없다고. 그대의 귀는 해골이 비고 가죽이 모자라 뚫린 것이냐? 어찌 그리도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늘 그랬듯이 한왕이 다시 그렇게 이죽거려 패왕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하지만 궁수들이 쇠뇌를 쏘기 좋은 자리까지 한왕을 끌어내야 하는 패왕은 이번에도 잘 참았다. 여전히 점잖은 목소리로 한왕의 말을 받았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로구나. 과인은 오중(吳中)에서 몸을 일으킨 뒤 크고 작은 싸움을 일흔 번이나 치렀으되 한 번도 진 적이 없고, 과인을 따르는 강동(江東)의 형제들 또한 싸움터에서 한 번도 지고 물러난 적이 없었다. 이에 천하는 과인에게 무릎을 꿇고 패왕(覇王)으로 받들었으며, 감히 과인에게 맞서던 것들은 아무도 그 목을 지켜내지 못했다. 네가 꾀어낸 경포나 팽월은 지금쯤 사로잡혀 목이 잘렸을 것이고, 제왕(齊王)도 과인을 따르기로 다짐했다고 한다. 그런데 너는 도대체 무엇을 믿고 버티느냐? 무턱대고 떼를 쓰며 버티기만 하면 지혜로운 것이냐?”

그 같은 패왕의 말을 한바탕 웃음으로 지워버린 한왕 유방이 마침 잘됐다는 듯 목소리를 높여 꾸짖었다.

이놈 항우야. 네 미련하기가 소 같고 답답하기가 높은 담장과 마주한 것 같다더니, 실로 그렇구나. 과인은 지금 떼를 쓰며 버티는 것이 아니라 천하의 의기가 하나로 뭉쳐 네가 저지른 열 가지 큰 죄를 다스리기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니라.”

그 말을 듣자 패왕의 가슴속에 일고 있던 천 길 불길이 눈 코 입으로 한꺼번에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도 한왕은 절벽 저쪽 멀찍이 서 있었고, 궁수들에게도 한왕을 겨냥할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못했던 것 같아 패왕은 다시 한번 참았다. 말해 주면 귀담아듣겠다는 듯 몇 발 앞으로 다가가며 소리쳐 물었다.

그 열 가지 죄가 무엇이냐?”

그러자 한왕은 더욱 잘되었다는 듯 자신도 몇 발자국 동()광무 쪽으로 다가서며 이쪽저쪽이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로 외쳤다.

지난날 나와 너는 함께 회왕(懷王)의 명을 받들어서 먼저 관중(關中)에 들어가 진나라를 평정하는 쪽이 왕이 되기로 하였다. 그런데도 너는 약조를 어기고 나를 파촉(巴蜀)과 한중(漢中)의 왕으로 내쫓았으니 그것이 네 첫 번째 죄이다.

또 너는 함부로 칼을 빼어 경자관군(卿子冠軍) 송의(宋義)를 군막 안에서 목 베었다. 회왕께서 엄연히 송의를 상장군(上將軍)으로 세우고 너를 차장(次將)으로 삼았건만, 너는 사사로운 감정으로 상관을 죽이고 그의 군권(軍權)을 빼앗았으니 그 죄가 두 번째다.

네가 조나라를 구원하러 갔을 때 거록(鉅鹿)을 되찾고 진군을 물리쳤으면 회왕께로 돌아가 그 명을 기다려야 했다. 그런데도 너는 멋대로 제후군(諸侯軍)을 위협하여 관중으로 밀고 들어갔으니 그 죄가 세 번째다.

일찍이 회왕께서 이르시기를, 진나라에 들어가더라도 함부로 사람을 해치거나 재물을 빼앗지 말라 하셨다. 그런데 너는 진나라의 궁궐을 불사르고 시황제의 무덤을 파헤쳐 그 재물을 사사로이 차지하였으니 그것이 네 번째 죄이다.

진나라가 천하에 저지른 죄악은 모두가 시황제와 이세 호해(胡亥)의 짓이요, 자영()은 진왕(秦王)이 된 지 겨우 마흔 엿새 만에 우리 회왕께 항복하였다. 그런데 너는 항복한 자영을 까닭 없이 죽였으니 그것이 다섯 번째 죄이다.”

한왕이 그렇게 크고도 낭랑한 목소리로 패왕 항우의 죄악을 늘어놓다가, 잠시 한숨을 돌린 뒤에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어 이어 나갔다.

너는 항복하면 살려준다고 속이고 사로잡은 진나라의 젊은이 20만을 신안(新安)에서 산 채로 땅에 묻었다. 그러고도 그 장수들은 살려 삼진(三秦)의 왕으로 세웠으니 그 모질고 끔찍한 짓이 네 여섯 번째 죄다.

너는 또 여러 제후의 장수들을 좋은 땅의 왕으로 세우고, 원래의 제후와 왕들은 다른 곳으로 쫓아내었다. 그리하여 그 장수들로 하여금 다투어 제 주인을 저버리게 만들었으니, 그 죄가 일곱 번째이다.

너는 의제(義帝)를 팽성에서 쫓아내고 스스로 그곳에 도읍하였다. 거기다가 한왕(韓王)의 봉지(封地)를 빼앗고, () 땅과 초나라를 합쳐 자신의 땅을 넓혔으니 그 죄가 여덟 번째이다.

의제께서는 양치기에서 몸을 일으키셨으나, 어김없이 초 왕실의 적통(嫡統)이요, 온 초나라 백성들이 회왕(懷王)으로 떠받든 분이셨다. 그런데 너는 의제를 강남으로 내쫓고도 모자라 사람을 보내 강물 위에서 무참히 돌아가시게 하였으니 그 죄가 아홉 번째이다.

너는 신하된 자로서 임금을 시해하였으며, 장수되어서는 이미 항복한 사람들을 함부로 죽였다. 패왕으로서 크게 천하에 걸터앉았으면서도 그 다스림은 공정하지 않고 약조를 어겨 신의를 저버린 것은 하늘과 땅이 아울러 용납하지 못할 대역무도함이니 그것이 또한 네 열 번째 죄이다.

나는 의로운 군대를 거느리고 제후들과 함께 그 모진 역적 놈(잔적·殘賊)을 잡으러 왔다. 아직 지은 죄가 남아 군사로 싸우는 자들을 시켜(형여죄인·刑餘罪人) 그대를 잡게 하면 될 것을 무엇 때문에 수고롭게 창칼을 잡고 너와 싸울 것이냐?”

한왕이 그렇게 말을 마쳐 패왕의 속을 있는 대로 뒤집어 놓았다. 거기다가 군사들 중에 가장 낮고 천한 것이 죄 짓고 끌려와 갇히거나 죽는 대신 싸우는 무리였다. 패왕이 더는 참지 못하고 숨어 있는 궁수들에게 소리쳤다.

궁수들은 무얼 하느냐? 저 자발없는 놈의 염통을 찢어 놓아라!”

그러자 진작부터 한왕을 겨누고 조금이라도 가깝게 다가오기를 기다리던 궁수들이 한꺼번에 강한 쇠뇌를 쏘아붙였다. 500걸음을 날아간다는 강한 쇠뇌의 살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공기를 가르고 날아갔다.

한왕이 워낙 조심스러워 동()광무에서 100걸음 안쪽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화살 한 대가 정통으로 가슴에 와 박혔다. 큰 몽둥이로 가슴을 한 대 세게 맞은 듯 숨이 콱 막히며 정신이 아뜩해졌다. 자신도 모르게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지려다가 갑자기 손을 내려 발목을 잡아 쥐었다. 그리고 짜낼 수 있는 힘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짜내 발을 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저 종놈이 내 발가락을 맞추었구나(노중오지·虜中吾指)!”

그리고는 까마득히 정신을 잃어갔다. 그게 한왕 유방이었다. 그로 하여금 고조(高祖)로서 한() 제국 400년을 열 수 있게 한 왕자(王者)의 자질이었다.

(모두 보고 있다. 내가 가슴을 맞고 목숨이 위태로운 걸 알면 적은 두 배나 사나워지고 우리 군사는 그대로 무너져버린다. 결코 들켜서는 안 된다.)

한왕 유방은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속으로는 그렇게 자신을 다잡고 있었다.

남의 신하 되어, 특히 군막에 남아 주책(籌策)을 펼치는 모사(謀士)로서 철저하기는 장량도 그 임금인 한왕 유방의 왕자(王者)다움에 못지않았다. 한왕이 발가락을 맞았다는 비명 같은 외침과 함께 스르르 무너지는 걸 보고 장량은 이내 그 상처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렸다. 달려온 군사들이 한왕을 둘러업으려 하자 나지막한 소리로 꾸짖었다.

대왕을 둘러업지 말고 부축하라. ()광무의 초나라 군사들이 대왕께서 가슴을 맞고 혼절하신 걸 알게 해서는 아니 된다.”

군막으로 돌아간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화살촉도 뽑지 않은 채 뉘어져 있던 한왕이 한 식경이 지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리자 장량이 가만히 물었다.

어떠십니까? 홀로 몸을 움직이실 수 있겠습니까?”

아니요. 꼼짝할 수 없소. 화살이 용케 염통은 피해갔지만 갈비뼈를 맞힌 듯하오.”

한왕이 죽어가는 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그러자 장량이 차갑게 받았다.

그래도 일어나셔야 합니다. 저물기 전에 동서 광무의 이쪽저쪽 모든 군사들에게 대왕께서 건재하심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대로 저물면 서(西)광무는 오늘밤을 맞아서는 견뎌내기 어렵습니다.”

한왕도 장량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은 것 같았다. 그러나 워낙 상처가 무거웠다. 매사에 느긋한 한왕도 더는 견디기 어려운 듯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래서 정신을 잃고 넘어가면서도 발을 싸쥐고 거짓말을 하지 않았소? 그것으로도 아니 된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항왕은 병장기를 잘 알고 또 눈이 밝습니다. 당장은 속아 넘어갔을지 몰라도 끝내 속아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물 때까지 대왕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자신의 계책이 맞아떨어진 줄 알고 반드시 야습을 할 것입니다. 그리 되면 저편은 몇 배나 기세가 올라 서광무로 기어오르겠지만, 우리 군사들은 사기가 꺾여 끝내 버텨내기 어려울 것입니다.”

장량은 아픈 한왕을 위로하기는커녕 오히려 겁을 주고 윽박질렀다. 한왕이 가만히 가슴께를 눌러보다가 다시 숨 넘어 가는 듯한 비명을 지르더니 장량에게 물었다.

저물려면 얼마나 남았소?”

이제 반시진도 남지 않은 듯합니다. 서두르셔야 합니다.”

그러자 한왕이 이를 악물고 방 한구석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저 죽간(竹簡)을 가져다가 내 가슴에 두르고 띠로 단단히 동인 뒤 전포를 입히라. 그리고 안장에 적이 알아보지 못하게 등받이를 세우고 나를 묶은 뒤에 갑주로 가리라.”

시중들던 병사들이 그대로 했다. 하지만 상처가 무거워서인지 한왕은 몇 번이나 비명 같은 신음에 비 오듯 땀을 흘리면서 등받이를 한 말 안장에 올랐다. 어느새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등지고 한왕이 다시 서(西)광무 꼭대기의 진문을 나서자, 그를 알아본 한나라 군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러 반겼다.

한편 패왕 항우는 한왕이 쇠뇌에 맞고도 부축되어 제 발로 걷는 걸 보고 적이 실망했다. 그러나 그 뒤로도 한동안이나 한나라 진중이 무거운 침묵에 휩싸여 있는 걸 보자 다시 슬며시 의심이 들었다.

이상하다. 틀림없이 가슴께로 날아간 것 같은데 발가락을 맞혔다니. 그만한 거리에서 그만큼 강한 쇠뇌로 그토록 오래 정성들여 겨냥해 쏘았는데 빗나가다니. 게다가 유방은 진채 안으로는 제 발로 걸어 들어갔지만 그 뒤 한 식경이 되도록 꼼짝도 않고 있다. 한군 진채가 쥐 죽은 듯 고요한 것도 수상쩍다. 어쩌면 저 능구렁이 같고 여우 같은 유방이 무슨 가슴에 화살을 맞고도 수작을 부린 것인지도 모른다. 해가 저물 때까지도 유방의 움직임이 없으면 오늘밤 서(西)광무를 들이쳐 보자. 만약 우리 쇠뇌가 정말로 유방을 맞힌 거라면, 싸움은 여기서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패왕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장수들을 불러 모아 야습을 준비시키려는데 갑자기 서광무 쪽 한군 진채에서 크게 함성이 일었다.

군막을 나간 패왕은 함성으로 시끄러운 광무간 건너편 한군 진채를 살펴보았다. 한왕이 번쩍이는 투구에 갑옷까지 걸치고 말에 올라 서광무 꼭대기의 이곳저곳을 오락가락하며 손을 들어 군사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었다. 말안장에 꼿꼿이 앉은 걸 보니 화살에 가슴을 상한 사람 같은 데가 조금도 없었다. 서광무 곳곳에 진채를 벌이고 있던 한나라 장졸들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일시에 활기를 되찾아 그런 한왕 쪽을 올려보며 연방 깃발을 흔들고 고함을 질러댔다. 그걸 보자 패왕은 다시 맥이 빠졌다.

역시 쇠뇌의 살이 빗나갔구나. 그렇다면 오늘 밤의 야습도 틀렸다. 억지를 부려봤자 공연히 군사만 다칠 뿐이다.’

한편 한왕 유방은 고통과 오한으로 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도 이를 악물고 버텼다. 하지만 그 또한 피와 살로 된 인간이었다. 두 각()이 가까워 오자 눈앞이 흐릿해지며 자꾸 고개가 꺾여 왔다.

이제 날이 저무느냐?”

한왕이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말고삐를 잡고 군사에게 물었다. 군사가 사방을 둘러보고 대답했다.

해는 졌습니다.”

됐다. 그렇다면 이제는 진채 안으로 돌아가자.”

한왕이 다시 그렇게 말하고는 이를 악물었다. 말고삐를 잡은 군사가 말을 천천히 진채 안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말이 진문 안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한왕의 고개가 먼저 꺾였다. 멀리서 알아볼 수 없게 안장에 등받이를 세워 한왕의 몸을 묶어두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늘 그랬듯 한왕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장량은 초나라 군사들의 눈길이 미치지 않은 곳에 이르러서야 한왕을 말에서 부축해 내리게 했다. 한왕은 다시 정신을 잃은 채 약한 숨결만 내뱉고 있었다. 군막으로 한왕을 옮긴 장량은 갑옷투구를 벗기고 자리에 눕히게 한 뒤 군중(軍中)에 있는 의자(醫者)를 불러 보살피게 했다. 의자가 그제야 화살촉을 뽑고 상처에 고약을 이겨 발랐지만 한왕은 그로부터 사흘 낮밤이나 미음 한 술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펄펄 끓는 몸으로 앓아야 했다. 진작 손을 쓰지 않고 무리하게 진채를 돌아본 게 그러지 않아도 무거운 한왕의 상처를 덧나게 한 것 같았다.

아무래도 대왕을 이대로 두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성고(成皐)로 모셔 상처부터 다스려야 할 것 같으니 선생께서 노관과 함께 대왕을 모시고 광무산을 내려가십시오.”

장수들과 더불어 한왕의 군막을 찾아본 번쾌가 그렇게 말했다. 장량이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가 번쾌를 떠보듯 물었다.

만약에 항왕이 이 일을 알고 전군을 들어 서광무로 밀고 올라오면 어떻게 하시겠소?”

죽기로 싸운다면 지키는 일이야 무어 그리 어렵겠습니까?”

항왕이 동광무(東廣武)를 버리고 성고를 에워싸면 그때는 또 어쩌시겠소?”

장량이 다시 번쾌에게 그렇게 물었다. 번쾌가 전혀 걱정 없다는 얼굴로 받았다.

그쪽이 오히려 더 해볼 만합니다. 내가 서(西)광무에 있는 한나라 군사를 모두 이끌고 내려가 항왕의 뒤를 치고, 성고성에서도 전군을 이끌고 마주쳐 나오면 초나라 군사는 등과 배로 적을 맞는 꼴이라 견디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자 장량도 비로소 안심이 되는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소. 장군의 계책이 그렇다면 한번 해 봅시다. 오늘밤 내가 태위(太尉·노관) 태복(太僕·하후영)과 더불어 대왕을 모시고 성고로 내려갈 터이니 날랜 군사 500과 말 100필만 갈라 주시오. 삼경이 지나면 서쪽 비탈로 내려가 날이 밝기 전에 성고성 안으로 들어갈 것이오.”

군사가 너무 적지 않겠습니까?”

번쾌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장량이 평온한 얼굴로 대꾸했다.

장군이 말한 계책대로 하자면 우리가 데려가는 군사는 500을 넘겨서는 아니 될 것이오. 서광무에 대군을 그대로 남겨 두어야 항왕이 함부로 성고를 치지 못할 것이외다.”

만약 항왕이 이 일을 알고 한 갈래 크게 군사를 갈라 대왕과 선생을 뒤쫓게 하면 어쩌시겠습니까?”

해질녘에 우리 대왕께서 건재하심을 항왕이 다시 보았으니, 오늘밤은 방심하고 있을 것이오. 말발굽은 헝겊으로 싸고 군사들에게는 하무(·)를 물려 조용히 빠져나가면 들키지 않고 성고에 이를 수 있소.”

그와 같은 장량의 말을 듣고서야 번쾌도 마음을 놓은 듯했다. 장량이 말한 대로 날랜 군사 500과 말 100필을 골라 산을 내려갈 채비를 시키고, 자신은 남은 장졸들과 함께 서광무를 지키기로 했다.

그날 밤 삼경 무렵 노관과 하후영이 이끄는 한군 500은 아직도 신열에 들떠 있는 한왕을 들것에 얹어 떠메고 서광무를 내려왔다. 서북쪽 비탈을 통해 초나라 군사들에게 들키지 않고 평지로 내려선 한군은 곧 부근 농가에서 수레를 구해 장량과 한왕을 실었다. 하후영이 수레를 몰고 노관이 500군사와 더불어 수레를 호위하며 성고로 내달았다. 오래잖아 동트기 전의 짙은 어둠이 가시고 날이 희끄무레 밝아 왔다.

노관과 하후영이 한왕을 호위해 성고에 이른 것은 늦겨울 아침 해가 동산 위로 솟아오를 무렵이었다. 성고성을 지키던 한나라 장졸들이 놀라 그들을 맞아들였다. 장량과 노관은 먼저 행궁을 정해 한왕을 눕히고 놀란 성안 군민(軍民)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더 용한 민간의 의자(醫者)를 찾아오게 해 한왕을 돌보게 했다.

한왕 유방이 위급한 병줄에서 놓여나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은 성고(成皐)에 이른 지 이레 만이었다. 그러나 가슴에 생긴 금창(金瘡)이 아물지 않아 바로 광무산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하는 일 없이 성고성 안에 머물러 다시 싸움터에 설 수 있을 만큼 금창이 아물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빈둥거리며 며칠을 보낸 어느 날이었다. 한왕이 갑자기 장량을 불러 말했다.

자방, 여기서 이러고 있느니 차라리 관중(關中)에나 다녀오는 게 어떻겠소?”

관중에는 무슨 일로 가려 하십니까?”

잠깐 생각에 잠겼던 장량이 잔잔히 웃으며 물었다. 좋은 일이지만 그래도 까닭은 들어보아야겠다는 뜻 같았다. 한왕이 칭찬을 기다리는 아이 같은 말투로 대답했다.

오랜만에 도성(都城)으로 돌아가 싸움에 시달리는 부로(父老)들을 위로하고, 과인이 건재함을 보여 백성들을 안심하게 만들고 싶소. 또 소하(蕭何)에게 졸라 군사도 좀 더 얻어내야 광무산으로 돌아갈 체면이 서지 않겠소?”

그러자 장량도 바른 답을 들은 스승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한왕의 뜻을 추어주었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천하에 뜻을 둔 군왕다운 여유와 헤아림이십니다. 군사들로 하여금 내일 일찍 역양(轢陽)으로 떠날 채비를 하게 하겠습니다.”

사수(5) 가에서 얻은 새왕(塞王) 사마흔의 머리도 함께 가져가도록 하시오. 역양은 원래 그의 도성이었으니, 저자거리에 그의 머리를 내걸면 우리 한나라의 위엄을 한층 크게 떨쳐 보일 수 있을 것이오.”

한왕이 그렇게 말해 열흘 전까지만 해도 적의 암습(暗襲)을 받아 죽을 고비를 넘나들던 사람 같지 않은 여유를 보였다.

다음 날 한왕은 광무산에서 데리고 내려온 군사 500과 더불어 성고를 떠나 관중으로 돌아갔다. 태복 하후영이 앞서 수레를 몰고, 많지 않은 기마와 날랜 보졸이 적이 없는 관도(官道)를 달려가는 터라 천리 길을 가는데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함곡관을 넘어서는 쉬엄쉬엄 가도 성고를 떠난 지 열흘 만에는 역양에 이를 수 있었다.

오랜만에 역양 궁궐에 든 한왕은 먼저 태자와 승상 소하의 하례를 받았다. 태자의 몸은 여전히 허약해 보였으나 혼자 관중을 맡아 지키는 그 반년 사이에 얼굴에서는 제법 성숙한 티가 났다. 그러나 진흙으로 빚어 구은 듯한 소하의 얼굴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소식은 들었을 것이다. 과인은 또 광무산에서 항왕에게 몰리고 있다. 관중에서 군사를 좀 더 얻을 수는 없겠는가?”

사흘 말미를 주시면 우선 1만 명은 데려 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보름만 더 주시면 그 갑절을 뒤딸려 보내겠습니다.”

소하가 언제나 그러했듯 할 말만 하고 굳게 입을 다물었다. 한왕도 소하의 말투를 따랐다.

그런가. 그럼 나흘 뒤에 출발할 것이니 먼저 그 1만에게 떠날 채비를 시키라. 나머지 2만도 되도록이면 빨리 관동으로 보내야 한다. 그리고 더 있다. 지금은 오창의 곡식으로 버티지만 한 달이 지나면 군량도 관중에서 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는 옥연(獄椽)을 불러 사마흔의 목 잘린 머리를 내주게 하며 말했다.

새왕 사마흔의 목이다. 이 목을 저잣거리 높이 매달아 우리 한나라를 저버리고 과인에게 맞선 죄가 얼마나 큰지를 모두에게 널리 알게 하라!”

역양의 옥연이 질린 얼굴로 명을 받고 물러나자 한왕은 다시 왕궁 안의 근시들을 돌아보며 호기롭게 말했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크게 잔치를 마련하고 성안의 모든 부로(父老)들을 불러 모으라. 과인은 그들에게 술과 고기를 내려 전란의 시대를 사는 그들의 괴로움과 고달픔을 위로하리라.”

그 역시도 몰리는 싸움을 하다가 크게 다쳐 하마터면 죽을 뻔했던 사람의 것 같지 않은 호기였다. 거기다가 그 호기는 말로만 끝난 것도 아니었다. 한왕은 다음 날부터 잇달아 사흘이나 크게 잔치를 열어 역양(轢陽) 성안의 부로들을 위로했다. 그러다가 나흘째 되는 날에야 소하에게서 새로 얻은 군사 1만을 뒤딸리고 다시 광무산으로 떠났다.

그런데 과인이 돌아갈 때까지 항왕이 정말로 두 손 처매 놓고 기다려줄지 모르겠소.”

함곡관을 나서면서 비로소 걱정이 되는지 한왕이 문득 장량을 돌아보며 말했다. 장량이 차분한 말투로 한왕의 갑작스러운 걱정을 덜어주었다.

그도 여러 번 당해본 터라, 가볍게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어떻게든 광무산에서 때를 기다려 대왕과 결판을 보려 들겠지요.”

그런 장량의 헤아림은 옳았다.

한왕 유방을 쇠뇌로 쏘아 맞힌 다음 날 하루 종일 한왕이 보이지 않자 다시 의심이 든 패왕은 광무간 건너편에서 소리소리 질러 한왕을 찾았다. 그러나 서(西)광무의 한군 진채에서는 한왕 대신 번쾌가 나와 큰소리로 맞받았다.

이놈 항우야. 네 무슨 낯짝으로 다시 우리 대왕을 찾느냐? 사람을 꾀어내 몰래 해치려 하고도 천하를 호령하는 패왕이라 할 수 있느냐? 이제 우리 대왕께서는 너 같은 천장부(賤丈夫)와는 얼굴도 마주하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패왕이 시뻘건 얼굴로 외치는 소리는 들은 척 만 척하며 진채 안으로 돌아가 버렸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연 사흘 같은 소리로 패왕의 부아를 돋우던 번쾌는 닷새째 되는 날에야 이죽거리듯 말했다.

네가 하도 안달을 부리니 일러준다. 우리 대왕께서는 지금쯤 성고성에 내려가 발을 씻으며 쉬고 계실 것이다. 그러니 할말이 있거든 이 번()아무개에게나 해봐라.”

그 말에 분통이 터진 패왕은 그날로 군사를 몰아 성고를 치려 했다. 그때 종리매가 말렸다.

한왕이 성고로 갔을 때는 반드시 무슨 엉큼한 속셈이 따로 있었을 것입니다. 자칫 그 너절한 속임수에 빠질까 두렵습니다.”

속셈은 무슨 속셈. 과인의 쇠뇌 맛을 보고 얼이 빠져 달아났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미 성고성에는 없을 것입니다. 멀리 제 소굴인 관중으로 달아났겠지요. 하지만 더 걱정스러운 일은 유방 스스로 미끼가 되어 우리를 성고로 꾀어 들이려는 것입니다.”

제 놈이 우리를 유인해 봤자 무슨 수가 나겠는가? 우리 강동의 굳세고 날랜 군사들이 벼린 도끼처럼 찍어 가면 성고성쯤은 한나절로 깨뜨릴 수 있다.”

패왕이 아무래도 그냥 있을 수 없다는 듯 그렇게 소리쳤다. 종리매가 다시 말렸다.

대왕, 우리 군사는 겨우내 입성이 부실하고 먹을 것이 모자라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려 왔습니다. 매양 굳세고 날랜 강동의 자제들이 아닙니다. 거기다가 우리가 성고를 칠 때 서광무(西廣武)의 한군이 내려와 우리 뒤를 덮치면 우리는 등과 배로 적을 맞게 됩니다. 먼저 사람을 풀어 살펴본 뒤에 변화를 기다려 움직이심이 좋을 듯합니다.”

그래도 패왕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당장 동광무에서 내려가자고 우기고 있는데 갑자기 산 아래서 파수를 서던 군사 하나가 달려와 알렸다.

제나라에서 급한 사자를 보내와 대왕을 뵙고자 합니다.”

이리 데려오너라.”

줄곧 궁금하던 제나라 일이라 패왕은 두 번 생각해볼 것도 없이 사자를 불러들이게 했다. 오래잖아 한눈에 봐도 행색이 고단해 뵈는 제나라 사자가 패왕의 군막으로 이끌려 왔다. 사자는 패왕 앞에 엎드리자 눈물을 쏟으며 빌었다.

대왕, 우리 제나라를 구해주소서. 지금 제나라의 군신(君臣)은 모두 고밀(高密)성에 갇혀 대왕의 구원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너희 제나라는 과인의 10만 대군에게도 맞서 땅과 백성을 지켰다. 그런데 어찌하여 한신의 몇만 잡병(雜兵)에게 그 꼴이 났느냐?”

패왕이 실로 알 수 없다는 듯 제나라 사자에게 그렇게 물었다. 사자가 눈물을 씻고 이를 갈며 대답했다.

한왕이 역이기를 보내 우리 군왕을 속이고 있는 동안 평원(平原)나루를 건넌 한신이 역하(歷下)를 급습해 전해(田解) 장군과 화무상(華無傷)이 이끈 우리 20만 대군을 흩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대쪽을 쪼개는 기세로 임치(臨淄)를 들이쳐 오니, 저희 군신(君臣)은 제대로 손 써볼 겨를조차 없이 그리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제왕(齊王) 전광(田廣)이 고밀성에 갇히게 된 경과를 상세히 전했다. 다 듣고 난 패왕은 자기 일처럼 화를 냈다.

그 엉큼한 장돌뱅이놈이 또 더러운 잔꾀를 썼구나. 용서하지 않겠다!”

그렇게 소리치고는 제나라 사자에게 다짐을 주듯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 내 반드시 대군을 보내 제나라를 구하고 그대들 군신의 원한을 씻어줄 것이다!”

이어 장수들을 모두 군막으로 불러 모은 패왕은 그들 가운데서 용저(龍且)를 불러냈다.

그대에게 5만 군사를 줄 터이니 고밀로 가서 제왕 전광을 구하도록 하라. 대량(大梁)과 산동을 지나면서 장정을 긁어모으면 20만 대군을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고밀에 이르면 한 싸움으로 한신을 사로잡고 그 더벅머리를 베어 와야 한다. 날을 길게 끌어서는 아니 된다.”

패왕이 그러면서 그날로 용저에게 5만 군사를 갈라주고 제나라를 구원하러 떠나보냈다.

용저가 이끌고 간 5만 군사는 동광무에 자리 잡은 초나라 군사의 절반에 가까웠다. 형양성을 지키는 군사들을 불러들이지 않고는 초군의 머릿수가 성고와 서광무에 펼쳐진 한군보다 너무 적었다. 아무리 패왕이라도 그걸로 험한 지세와 높은 성곽에 기대 지키기만 하는 한나라 대군을 함부로 들이칠 수는 없었다. 그 바람에 광무산에는 한동안 소강상태가 이어졌다.

조나라 승상의 직분을 가지고 제나라로 쳐들어간 한신이 그 도성인 임치(臨淄)에 이른 것은 한 4년 동짓달이었다. 그때 임치를 지키고 있는 것은 제왕(齊王) 전광(田廣)이 고밀로 달아나면서 임시 재상으로 세운 전광(田光)이란 장수였다. 전광은 5000 군사와 더불어 죽기로 임치를 지키겠다고 다짐하며 한신을 기다렸다.

역하(歷下)를 떠난 지 사흘 만에 임치에 이른 한신은 역하에서 전해와 화무상의 20만 대군을 깨뜨린 기세로 성을 에워싸고 제왕을 불러냈다. 그러나 제왕도 재상 전횡도 보이지 않고 전광이란 낯선 장수가 문루(門樓)로 나와 스스로 재상이라 일컬으며 한신을 맞았다. 한신이 전광을 떠보듯 물었다.

제왕은 어디로 갔느냐? 또 상국 전횡은 어찌되고 네가 상국이란 말이냐?”

우리 대왕께서는 고밀로 가시었다. 그곳을 지키고 있는 대군과 즉묵(卽墨)에 진을 치고 있는 교동장군(膠東將軍) 전기의 군사를 합친 뒤에 너를 잡으러 돌아오실 것이다. 또 우리 상국(전횡)께서는 조금도 다치지 않은 우리 제나라의 기마대를 이끌고 영()()으로 가셨다. 그곳에 흩어져 떠도는 역하의 20만 군을 다시 모아 네 등 뒤를 치기 위함이다. 거기다가 역이기의 속임수에 넘어가 어이없이 내주고 말았지만 제북(齊北)도 곧 대군을 일으켜 너희가 돌아갈 길을 막을 것이다. 나는 그때까지 임시로 재상이 되어 임치를 지키기만 하면 된다. 이만하면 궁금함이 풀렸느냐?”

전광이 감출 것 없다는 듯 그렇게 털어놓았다. 듣고 보니 한신도 적지 아니 난감한 제나라의 대응이었다. 전광의 말대로 된다면 한신의 군사들이 거꾸로 적의 대군에게 사방으로 에워싸이는 꼴이 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신은 내색 없이 전광을 달래보았다.

모두 힘을 합쳐 내게 맞서도 될까 말까 한데, 많지 않은 군사를 잘게도 쪼개 놓았구나. 흩어져 달아나는 토끼는 좋은 사냥개 몇 마리면 모조리 잡을 수 있다. 우리 대군은 이 임치부터 거둘 터인즉, 어떠냐? 어리석은 고집으로 맞서 버티다가 애꿎은 성안 군민들과 함께 죽겠느냐? 아니면 성문을 열고 우리를 맞아 새로운 천하를 여는 일에 끼어 보겠느냐?”

하지만 전광은 제왕이 믿고 임치를 맡길만한 장수였다. 껄껄 웃으며 한신을 내려보다가 준엄하게 꾸짖었다.

너같이 함부로 주인을 바꾸는 종놈에게는 세상 모두가 너같이 비루한 인간으로 보일는지 모르지만 우리 제나라 사람은 그렇지 않다. 10만 군민이 성벽을 베고 죽을지언정 어찌 나라와 임금을 저버리고 살아남아 얼굴을 들 수 있겠느냐?”

그리고는 느닷없이 한군 쪽에다 화살 비를 퍼붓게 했다.

원래 한신은 공성전(攻城戰)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나라 아래위가 짜고 펼치는 계략이 길게 버티며 싸우는 것(지구전·持久戰) 같아 마음이 급해졌다. 우선 도성인 임치라도 빨리 우려 빼고 봐야 한다는 생각으로 다음 날부터 공성에 들어갔다.

하지만 전광이 이끈 5000 군사가 워낙 제 장수를 닮아 죽기로 싸우는 데다 임치의 백성들도 힘을 다해 거들어 성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특히 힘으로 당당히 맞서다가 진 것이 아니라, 한나라의 속임수에 나라가 그 꼴이 났다는 게 성안 군민(軍民)들을 성나 일어서게 만든 듯했다.

임치성을 두고 한신이 이끈 대군과 가임(假任)된 재상 전광(田光)이 이끄는 성안 군민(軍民)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한신이 되도록이면 군사를 다치지 않고 성을 떨어뜨리려는 바람에 싸움은 처음 뜻한 바와는 달리 날을 끌게 되었다. 급격한 공성전(攻城戰)에서 느긋한 포위전으로 전환시킨 때문이었다.

그래도 언제까지고 버텨낼 것 같던 전광이 마침내 임치를 내준 것은 한신이 성을 에워싸고 들이친 지 보름 만인 섣달 초순이었다. 전광은 겨우 5000밖에 안되는 군사로 열 배가 넘는 한신의 대군을 맞아 그토록 잘 싸우고도 남은 군사 3000을 고스란히 빼내 멀리 성양(城陽)으로 달아나 버렸다. 한신으로서는 이기고도 화가 날 만했다. 그러나 오히려 성난 장졸들을 달래 백성들을 다치지 못하게 하고 성안으로 들어갔다.

임치성 안 왕궁 앞뜰에는 제왕이 삶아 죽인 역이기의 시체가 식은 가마솥 안에 담긴 채 버려져 있었다. 처음에는 본보기로 버려두었고, 나중에는 급하게 내몰리느라 미처 치울 틈이 없어 그리된 듯했다. 한신은 사람을 시켜 물러 처져 내리는 역이기의 뼈와 살을 거두게 한 뒤 좋은 관곽(棺槨)에 담아 정중히 장례 지내게 했다.

((,))선생 이기(食其)는 비록 유자(儒者)였으나, 누구 못지않은 맹사(猛士)였다. 그를 저리도 참혹하게 죽게 만들었으니, 이 일로 내가 치러야 할 값도 결코 헐하지는 않겠구나.”

역이기의 상여가 성문을 나가는 것을 보고 한신이 탄식하듯 말했다. 괴철이 곁에 있다가 태연히 받았다.

참으로 매서운 선비는 죽음을 무릅쓰고 뜻하는 바로 내닫는 선비(사비·死士)입니다. 역 선생은 이미 떠날 때 우리 한나라를 위해 제나라를 얻는 일에 목숨을 걸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이렇게 제나라를 거두었으니 유한은 없을 것입니다.”

내가 빌어야 할 사람이 오직 역 선생뿐만은 아니오. 창칼을 쓰지 않고도 제나라 70성을 얻었다고 좋아했던 한왕(漢王)은 어찌할 것이며, 역 선생의 아우 역상((,))은 장차 또 어떻게 볼 것이오?”

천하를 도모하려는 이는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대장군께서도 천하인(天下人)의 반열(班列)에 드시면 사정(私情)에 구구하게 변명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마침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틈타 하는 말인지 괴철이 여전히 태연하기 짝이 없는 어조로 그렇게 받았다. 한신이 놀란 얼굴로 괴철을 쳐다보며 물었다.

천하인의 반열에 든다니 그게 무슨 말씀이오? 그럼 나더러 우리 대왕이나 항왕과 더불어 천하를 다투기라도 하라는 것이오?”

괴철은 그래도 눈 한 번 깜빡 않고 한신의 말을 받았다.

못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아직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닙니다.”

그렇게 여운을 남기고는, 문득 잊고 있는 것을 일깨워 주듯 한신에게 말했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먼저 달아난 제왕 전광과 재상 전횡 등의 남은 세력을 쓸어 제나라부터 온전하게 평정해 두는 일이 급합니다.”

그 말에 한신도 내심으로는 미진한 대로 급한 일부터 처리했다. 곧 장수들을 모두 성안으로 불러들인 뒤 미리 짜놓은 계책에 따르듯 군령을 내렸다.

우승상 조참은 3만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되돌아가 아직도 항복하지 않은 제북(齊北) 여러 고을을 거두라. 저현(著縣)에서 탑음(R)으로 나아가되, 본진과 연결이 끊어지지 않도록 하여 언제든 적이 세력을 집중하거나 다른 곳에서 원병(援兵)이 이르면 나의 부름에 응할 수 있어야 한다. 기장(騎將) 관영은 이끌고 있는 낭중(郎中) 기병에 2만을 보태 줄 터이니, 재상 전횡을 뒤쫓도록 하라. () 땅으로 가서 남아 있는 적의 기마대를 쓸어버리고 전횡을 사로잡되, 또한 나의 본진과 항시 연락이 끊기지 않도록 하여 언제든 적의 집중이나 원병에 함께 맞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신이 그렇게 대장군으로서 군령을 내리자 장수 하나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교동(膠東)에 있는 장군 전기(田旣)나 성양(城陽)으로 달아난 임시 재상 전광(田光)은 어찌합니까? 장군 허장(許章)도 한 갈래 군사를 이끌고 남쪽으로 달아났다고 합니다.”

그것들은 병이라 해도 옴이나 버짐같이 하찮은 살갗의 병이다. 제북의 여러 성이나 전횡처럼 배나 가슴의 중병이 아닌 만큼, 제왕 전광을 사로잡은 뒤 다스려도 늦지 않다.”

한신은 그렇게 대답하고 다시 조참과 관영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만 두 분 장군께서는 되도록 빨리 우리 서북(西北)에 남은 우환거리를 없이하고 돌아와야 하오. 고밀(高密)을 오래 그냥 두면 그 사이 전광이 무슨 요사를 부릴지 알 수 없소.”

그리고 자신은 임치에 머물면서 남은 본진(本陣)을 정비했다. 조참과 관영이 등 뒤를 깨끗이 쓸고 돌아오면 다시 대군을 하나로 모아 고밀성에 들어앉은 제왕 전광을 칠 작정이었다. 조참은 제북을 평정하는 데 보름을 기한하고 임치를 떠났다. 그러나 일찍이 패왕 항우가 10만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넉 달이나 휘젓고 다녀도 온전히 평정하지 못한 제나라였다. 도성 임치가 떨어졌다고는 하나 제왕이 아직 고밀에 버티고 있는데 제북이 순순히 항복할 까닭이 없었다.

조참과 그가 이끈 3만 군사는 아직도 제나라 수장이 지키고 있는 그 현성(縣城)을 떨어뜨리고 저현을 거두어들이는 데만도 닷새가 걸렸다. 그리고 저현에서 살아 도망간 패군(敗軍)을 받아들여 악착스레 버티는 탑음을 힘들여 항복시키고 나니 벌써 기한한 보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다급해진 조참은 무리하게 군사를 내몰았으나 맞서는 제북 군민(軍民)의 기세는 조금도 꺾일 줄 몰랐다. 어렵게 노현(盧縣)을 평정한 뒤 격현성((,)縣城)을 에워쌌을 때는 벌써 한 달에 가까웠다.

어려운 싸움을 하기로는 재상 전횡을 뒤쫓아 박양(博陽)으로 간 관영이 더했다. 전횡은 원래가 패왕 항우와도 맞서 지지 않은 맹장일 뿐만 아니라, 그때까지 별로 손상되지 않은 제나라 기마대를 이끌고 있었다. 거기다가 박양에서 급히 거둬들인 군사가 보태져 보기(步騎) 5만을 일컫고 있었다. 관영이 아무리 승세를 타고 있다 해도 쉽게 이길 수 있는 적수가 아니었다.

그 바람에 박양 성벽에 의지한 전횡의 군사와 녹각(鹿角)을 세우고 누벽을 쌓은 관영의 군사 사이에 지루한 공방전이 몇 날이고 이어졌다. 그러나 전횡과 관영 모두 성격이 곧고 불같은 장수들이었다. 열흘이 지나자 더 참지 못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전서(戰書)를 주고받은 뒤에 성벽과 진채에서 나와 박양 남쪽 들판에서 결판을 내기로 했다.

전서(戰書)로 약정한 날이 되자 전횡과 관영은 각기 거느린 전력(戰力)을 모조리 끌어내 격돌했다. 진법이고 전략이고가 없는 마구잡이 싸움 같았으나, 그러기에 그 어떤 싸움보다 정직한 힘과 힘의 맞부딪침이었다. 먼저 기마대가 나아가 기선을 제압하고, 다시 보졸이 그 뒤를 따라 나아가 형세를 결정하는 식으로 싸움이 벌어졌다.

처음 양편 기마대가 엉길 때만 해도 기세는 어느 쪽도 장담할 수 없는 백중(伯仲)으로 보였다. 하지만 한나라 기마대는 관영이 몸소 앞장서고 있는 데 비해, 제나라 기마대는 전횡이 아닌 다른 장수가 앞장서고 있었다. 제나라의 실권을 가진 재상으로서의 3년이 전횡에게서 몸소 창칼을 잡고 단병전(短兵戰)에 앞장설 수 있는 야성(野性)을 지워 버린 탓이었다.

관영이 불같은 기세로 치고 들어 앞선 적장을 베어 넘기자 그게 바로 승패의 갈림길이 되었다. 다른 한나라 기장들도 저마다 용맹을 뽐내며 베고 찌르니 제나라 기마대는 이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걸 본 전횡이 성급하게 보졸을 밀어내고, 한나라 보졸들도 마주쳐 나왔다.

거기서 다시 한번 싸움은 승패를 가늠할 수 없는 난전으로 바뀌는가 싶었으나 오래가지는 못했다. 제나라 군사들은 어쨌든 도성을 빼앗기고 도망쳐와 태반이 패잔(敗殘)의 상처를 입은 자들이었다. 이미 꺾여 있는 기세에다 기마대의 싸움에서 기선까지 제압당하자 오래 버텨 내지 못했다.

먼저 관영에게 대장을 잃은 기마대가 무너져 내렸다. 관영의 기마대와 맞붙은 지 한 식경도 안 돼 달아날 수 있는 자는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고, 그게 뜻 같지 못한 자들은 말에서 뛰어내리며 창칼을 내던졌다. 나중에 헤아려 보니 관영이 목을 벤 대장 말고도 사로잡은 제나라 기장(騎將)만 네 명이나 되었다.

기마대가 그렇게 무너지자 보졸은 더 말할 나위도 없었다. 저희 기마대의 말꼬리에 매달리듯 뒤를 돌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제야 전횡이 몸소 칼을 빼들고 물러나는 자를 베며 전세를 돌려보려 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모두 물러나라. 성안으로 돌아가자!”

마침내 가망 없음을 안 전횡이 그렇게 소리치며 군사를 거두어 성안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양군이 한 덩어리가 되다시피 엉겨 있어 그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성안으로 들어간다 해도 미처 성문을 닫을 틈이 없다고 본 전횡은 박양성을 버려두고 멀지 않은 영하()로 달아났다.

뒤쫓지 마라. 먼저 박양성부터 거두어라.”

관영이 징을 쳐 전횡을 뒤쫓으려는 군사를 불러들인 뒤에 박양성을 치게 했다. 문루 위에서 싸움을 구경하다가 저희 편이 형편없이 져 쫓겨가는 꼴을 보고 얼이 빠져 있던 성안 군민들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성문을 열었다. 성안으로 들어가 항복한 군민을 안돈시킨 관영은 전횡이 간 곳부터 알아보았다.

전횡은 영하로 갔습니다. 지금은 그 성안에서 패군을 수습하여 정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오래잖아 탐마가 돌아와 관영에게 그렇게 알렸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군사를 내어 영하로 달려가고 싶었으나 관영도 그럴 형편이 못 되었다. 싸움에는 이겼지만 군사들이 뜻밖으로 많이 죽고 다친 데다 아래위 할 것 없이 모두가 너무 지쳐 있었다.

박양성 안에서 이틀을 쉰 관영이 다시 군사를 몰아 전횡을 뒤쫓으려는데 임치(臨淄)에 있는 대장군 한신에게서 전령이 왔다.

제나라 장수 전흡(田吸)이 정병 5000과 함께 천승현(千乘縣)에 진을 치고 있다고 한다. 천승 현성(縣城)은 고원(高苑) 북쪽 25리에 있어 임치의 뒷덜미와도 같은 곳이니, 전흡을 그대로 두고서는 임치를 함부로 비울 수 없게 된다. 전횡은 잠시 버려두고 먼저 천승현부터 거둬들이도록 하라.”

이에 관영은 영하()로 내려던 군사를 돌려 천승현으로 달려갔다.

관영이 천승현에 이르러 보니 그사이 전흡은 군사를 이끌고 현성 안으로 들어가 농성 준비를 마쳐 놓고 있었다. 원래부터 이끌고 있던 군사에다 싸움에 쓸 수 있는 성안 백성들을 모두 끌어내 3만이나 되는 군민이 천승 성벽 위를 뒤덮다시피 했다. 거기다가 현성의 성벽은 높고 두꺼웠으며 성안에 갈무리해 둔 군량도 넉넉했다.

관영은 벌써 이태째 기장(騎將)으로 들판에서만 싸워 왔을 뿐만 아니라 그전부터도 다부지고 재빠름을 바탕으로 한 치열한 전투(질투·疾鬪, 전질력·戰疾力)로 이름을 얻은 장수였다. 그런 그가 다시 농성전이 잘 준비된 성을 치게 되었으니, 이기는 데 시일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절반에 가까운 군사를 다쳐 가며 성을 떨어뜨리고 전흡을 잡아 죽이고 나니, 그 역시도 임치를 떠난 지 어느새 스무날을 훌쩍 넘기고 있었다.

그때 임치에 있던 대장군 한신은 제왕 전광이 달아나 숨은 고밀을 칠 채비를 끝내 놓고 조참과 관영이 어서 빨리 뒤를 깨끗이 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신은 먼저 군사들을 단속해 함부로 백성들을 죽이거나 재물을 빼앗지 못하게 함으로써 성안 민심부터 가라앉혔다. 그리고 다시 백성들에게 제나라 왕실 창고와 임치 부호들에게서 거둔 재물을 나눠 주어 환심까지 샀다. 그사이 싸움에 다치고 지친 군사들도 원기를 되찾았고, 먹을 것과 벼슬에 이끌려 모여든 건달과 뜨내기들로 새로 늘어난 군사도 적지 않았다. 따라서 조참과 관영이 등 뒤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게만 해주면, 대군으로 고밀을 에워싸고 제왕 전광을 사로잡아 제나라 평정을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조참과 관영 모두 기한한 보름을 넘기고 한 달이 가까워도 돌아오지 않자 한신도 슬슬 다급해졌다. 그사이 섣달이 지나가고 정월에 들어 희미하게나마 다가오는 봄기운도 걱정스러웠다. 겨우내 곳곳에서 웅크리고 있던 제나라의 잔여세력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하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데 기다리는 서북쪽의 기쁜 소식은 없고, 동남쪽을 살피러 간 탐마가 먼저 달려와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용저가 이끄는 초나라 군사 20만이 고밀에 이르렀습니다. 벌써 제왕(齊王) 전광의 군사와 합쳐 그 기세가 실로 엄청나다고 합니다.”

교동(膠東)의 전기(田旣)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3만 군사로 동쪽에서 고밀을 도울 거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자 한신도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곧 조참과 관영에게 유성마(流星馬)를 띄워 고밀로 오라 이르고 자신도 다음 날로 대군을 이끌고 임치를 떠났다.

그 무렵 용저는 고밀성 밖에 진을 치고 크게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대량(大梁)과 산동을 지나오면서 긁어모은 장정과 팽성에서 급히 보낸 군사를 합쳐 10만 가까운 대군에다 성안에는 제왕 전광이 거느리고 있는 3만 우군(友軍)이 더 있었다. 밖으로 큰소리 쳐온 20만 대군에는 절반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한신이 이끈 군사들보다는 곱절이 넘었다.

한신이 10만 대군을 일컬으나 실제로는 5만을 크게 넘지 못한다. 그나마 한왕의 고향 산동에서 따라간 군사나 근거지인 관중의 장정은 많지 않고, 그 태반은 조나라에서 급하게 긁어모은 잡병들이다. 한 싸움으로 쳐부수어 한신을 죽이고 제나라를 되찾자.”

용저가 그렇게 말하면서 싸움을 서둘렀다. 용저도 초나라에서는 큰 장수라 그에게도 따라다니며 꾀를 짜내고 슬기를 빌려주는 손(·)이 있었다. 이른바 막빈(幕賓)이었다. 그 막빈들 가운데 하나가 나서서 싸움을 서두르는 용저를 말렸다.

장군, 꼭 한신을 이기시려면 싸움을 서두르셔서는 아니 됩니다. 남과 나를 살펴 싸울 때와 싸울 곳을 고르십시오.”

그게 무슨 말인가?”

자부심과 고집으로는 어느새 작은 항우가 되어 가고 있는 용저가 무뚝뚝하게 물었다. 그런 용저의 반문에 움찔하면서도 내친김이라서인지 그 막빈이 간곡하게 말을 이었다.

한나라 군사들은 멀리서 싸우러 왔으니, 지면 살아 돌아갈 길이 없는 터라 힘을 다해 싸울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과 급히 싸우면 그 날카로운 기세를 당해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제나라와 초나라 군사들은 자기 땅이나 자기 나라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싸우니, 져도 달아나 살길이 많습니다. 따라서 조금만 밀려도 창칼을 버리고 흩어져 달아나기 쉽습니다.

차라리 해자를 깊이 파고 성벽을 높여 지키면서 제왕(齊王)을 시켜 한신에게 잃어버린 성들을 되거두어들이게 하심이 어떻겠습니까? 제왕이 믿는 신하들을 사자로 보내 자신이 건재함을 믿게 하고 또 초나라 대군이 이미 구원을 왔다는 것을 알려주면, 한군에게 떨어진 성안의 군민들은 틀림없이 한나라를 버리고 제왕에게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한편 한나라 군사들은 2000리나 떨어진 제나라 땅에 나그네로 와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제나라 성들이 모두 등을 돌리게 되면 그런 형세 아래서는 한군은 먹을 것조차 얻을 수가 없게 됩니다. 이는 곧 싸우지 않고도 한신의 군사를 이길 수 있는 길을 얻게 되는 셈이니, 장군께서는 부디 깊이 헤아려 보십시오.”

그러자 용저가 혼자 너그러운 척 껄껄 웃고 나서 말했다.

한신의 사람됨은 내가 평소부터 잘 알고 있어 다루기가 쉽다(이여이·易與耳). 그는 빨래를 생업으로 삼고 있는 가난한 아낙네(표모·漂母)에게서 밥을 빌어먹었을 만큼 제 몸 하나 먹여 기를 재주가 없고, 불량배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나가야 하는 욕을 보아야 했을 만큼 몇 사람을 당해낼 용기(겸인지용·兼人之勇)도 없으니 조금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거기다가 제나라를 구원하러 왔으면서 싸우지도 않고 항복만 받아낸다면, 그게 무슨 공이 되겠는가? 이제 한신과 싸워서 이기기만 하면 제나라의 절반을 얻을 수 있는데, 여기까지 와서 어찌 뒷짐 지고 구경만 하라고 하는가?”

용저가 그렇게 나오니 헤아림이 밝은 그 막빈도 더는 용저를 말릴 수가 없었다.

용저는 자신이 이끌고 온 초나라 군사들뿐만 아니라 고밀성 안에 있던 제나라 군사들까지 모두 끌어내 유수() 동쪽에 크게 진세를 벌였다. 유수는 낭야 쪽에서 흘러내려 도창(都昌)에서 바다로 들어가는데 고밀성 서쪽을 지나갔다. 하수(河水)나 제수(濟水)처럼 큰물은 아니었으나 고밀성을 지날 때는 강폭과 수심이 제법 있었다.

한신은 그로부터 사흘 뒤에 유수 가에 이르렀다. 오는 길에도 틈틈이 조참과 관영에게 유성마(流星馬)를 보내어 연결을 끊지 않아, 다음 날이면 그 두 갈래 군사들도 한신의 본진에 이르게 되어 있었다. 한신은 그들을 기다리며 유수 서쪽에 진채를 내렸다.

한신의 군사들이 한창 진채를 세우고 있을 때 앞서 용저에게 농성전(籠城戰)을 권했던 그 막빈이 다시 용저를 찾아왔다.

우리는 먼저 와서 편히 쉰 군사들이고, 적은 이제 막 먼 길을 달려와 고단하고 지친 군사들입니다. 저들이 진채를 제대로 얽기 전에 전군을 몰아 들이쳐 단번에 형세를 결정짓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런 막빈의 말을 용저는 이번에도 퉁명스레 받았다.

탐마(探馬)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적의 군세는 우리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큰 것으로 작은 것을 치는데 암습까지 하라는 것인가?”

그러자 그 막빈이 안타까운 듯 말했다.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가진 힘을 모두 쏟는다고 합니다. 무릇 싸움이란 그런 것입니다. 적을 가볍게 여기면 반드시 큰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적을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니라, 대장부가 되어 승리를 도둑처럼 훔치지 않겠다는 뜻이다. 적이 진세를 가다듬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당당히 싸워 이기자.”

그러면서 한신이 진채를 마저 세우기를 기다려 주었다. 하룻밤이 지나자 유수 동쪽에 한군 진채가 생겼을 뿐만 아니라, 머릿수도 불어나 있었다. 하지만 용저는 그래도 한신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대군을 정비하여 크게 마주쳐 나오기를 기다렸다. 또 다른 막빈이 보다 못해 용저에게 권했다

한신은 물을 잘 쓰는 장수입니다. 벌써 두 번이나 물을 써서 자기보다 훨씬 강한 적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무슨 속임수를 쓸지 모르니 틈을 주지 말고 짓뭉개버리십시오.”

한신이 두 번이나 물을 써서 크게 이겼다는 것은 배 대신 나무로 만든 통을 써서 적이 뜻 하지 아니한 곳으로 하수를 건넌 뒤 위표(魏豹)를 사로잡은 일과 적은 군사로 물을 등지고 싸워 진여(陳餘)20만 대군을 쳐부순 일을 가리킨다. 용저도 그 일을 잘 알고 있었으나 이번에도 막빈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지금이 비록 봄 정월이라 하나, 유량(流量)이 보잘것없는 데다 아직 얼음조차 제대로 녹지 않았다. 그런 유수의 물을 어디다 쓰겠느냐?”

그 며칠 추적거린 때 이른 봄비를 애써 무시하며 그렇게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그때 이미 한신은 바로 그 보잘것없는 유수의 물로 용저의 발밑을 파고 있었다. 전날 유수를 눈여겨 살피던 한신은 조참의 군사들이 고밀에 가까웠다는 전갈을 듣자 가만히 조참에게 사람을 보내 일렀다.

우승상은 바로 고밀로 오지 말고 자루 1만여 개를 마련해 유수() 상류로 가라. 그리고 자루에 흙을 채운 뒤 밤중에 그걸로 그곳 물길을 막으라. 그러다가 내일 아침 유수 서쪽의 우리 진채에서 검은 연기가 오르거든 한꺼번에 둑을 터뜨려 고인 물을 흘려보낸 뒤에 하류로 내려와 싸움을 거들도록 하라.”

이에 유수 상류로 간 조참은 그날 밤 몰래 가져간 1만여 개 흙자루로 둑을 쌓아 유수를 끊었다. 용저와 한신의 대군이 마주 보고 있는 곳으로부터 20리쯤 올라간 상가밀(上假密) 부근 골짜기 사이였다. 정월이라고는 하지만 때 이른 장마로 불어 있던 유수는 밤새 물길이 막혀 너비도 깊이도 반으로 줄어들었다.

날이 밝자 한신은 다시 관영을 불러 말했다.

내가 본부 인마를 이끌고 나아가 용저와 싸울 테니, 장군은 낭중(郎中) 기병들과 군사 1만을 거느리고 진채에 머물러 계시오. 우리가 쫓기더라도 가만히 숨어서 보고 있다가, 우리를 뒤쫓는 용저의 대군이 유수를 반쯤 건넜을 때 강물이 불어나 그 뒤를 끊으면 그때 일시에 달려나와 적을 치도록 하시오. 오래잖아 우승상의 군사들도 합세할 것이니 반드시 유수 서쪽에서 용저를 잡아야 하오.”

그리고 자신은 본진의 부장들을 불러들여 그날 싸울 계책을 가만히 일러 준 뒤, 본부 인마 3만을 모두 이끌고 물이 깊지 않은 유수를 건넜다.

한 식경도 안 돼 초나라 진채 앞에 이른 한신이 소리 높여 용저를 불렀다. 그러잖아도 근질근질한 주먹을 참고 기다리던 용저가 한달음에 문기(門旗) 앞으로 달려나왔다. 한신이 그답지 않게 큰 칼을 빼 들고 앞장서 싸움을 걸었다.

나는 한() 대장군 한신이다. 용저는 어디 있느냐? 애꿎은 군사들은 다치게 하지 말고 나와 단둘이서 자웅을 가려 보자!”

사납고 날래기로 이름난 용저였지만 그때는 이미 초나라의 상장군으로서 창칼을 들고 대군의 앞장을 서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한신이 그렇게 소리치자 참지 못했다. 곧 길이 열 자나 되는 철창을 들고 박차로 말 배를 차며 소리쳤다.

이놈, 네 감히 나를 찾느냐? 그럼 어디 이 창을 한번 받아 보아라!”

그러면서 갈기를 휘날리는 백마 위에 앉아 있는 용저에게는 과연 초나라에서 으뜸가는 맹장의 풍모가 있었다. 한신도 지지 않고 큰 칼을 휘두르며 기세 좋게 말을 달려 나갔다. 하지만 볼 만한 것은 처음 달려나갈 때의 기세뿐이었다.

이놈!”

어딜!”

그렇게 겨우 한 차례 창칼이 부딪는가 싶더니, 그 맹렬한 충격에 팔이라도 빠졌는지 한신이 큰 칼을 끌며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미리 짜고 달려나간 듯 젊은 부장(部將) 하나가 때맞춰 달려나가 뒤를 막아 주지 않았더라면 등에 용저의 한 창을 받을 뻔했다.

용저가 새로 나온 젊은 적장과 맞붙는 것을 보고 초나라 진중에서도 한 젊은 장수가 뛰쳐나왔다. 그러자 한군 쪽에서도 한 장수가 달려나가 잠시 싸움은 장수들의 패싸움처럼 되었다. 하지만 이미 한신 때문에 한군의 기세가 꺾여 팽팽한 균형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나라 장수 하나가 신음과 함께 병장기를 놓치고 달아나면서 전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하나가 쫓기자 다른 장수들도 하나 둘 손발이 어지러워져 허둥대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싸우다 말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는 장수까지 생겼다. 그러다가 그들 가운데 하나가 다시 용저의 창에 찔려 말에서 떨어지자 한나라 장수들은 곧바로 밀리기 시작했다.

기세를 탄 초나라 장수들이 더욱 거세게 한군을 몰아 대고, 다시 사졸들이 가세해 진문을 열고 달려나왔다. 한군 쪽에서도 사졸들이 달려나가 맞섰으나 한번 기운 전세는 바로잡을 수가 없었다. 힘을 다해 싸우기는 해도 한군은 차츰 유수 쪽으로 밀렸다.

한군이 유수 한가운데쯤 밀렸을 때다. 갑자기 한군 진채가 있는 유수 서쪽 언덕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걸 본 한나라 장수들이 갑자기 말머리를 돌리며 사졸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물러나라. 건너편 진채로 돌아가 전열을 정비한 뒤에 다시 싸우자!”

그러자 그때껏 밀리면서도 어렵게 버티던 한군 사졸들까지 갑자기 돌아서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한나라 장졸들이 그와 같이 몰리는 게 자연스럽지만, 실은 모두가 한신이 짜놓은 계책에 따른 것이었다. 한나라 장졸들은 용저의 대군을 상류의 물길이 막혀 얕아진 강바닥으로 꾀어 들이기 위해 거짓으로 이기지 못한 척(佯不勝) 달아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 리 없는 용저는 흐뭇한 얼굴로 좌우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저것 보아라. 저래도 한신이 겁쟁이가 아니냐? 어서 저 겁쟁이를 뒤쫓아 사로잡아라.”

그리고는 앞뒤 없이 대군을 물 마른 유수 강바닥으로 몰아넣었다. 그때 유수 동쪽 진채에 있던 초나라와 제나라의 군사는 합쳐 10만이 넘었다. 옆으로 늘어서서 한꺼번에 뒤쫓지 못하고 앞뒤로 이어 뒤쫓으니 절로 굵고 긴 뱀 모양의 진형(長蛇陣)이 되었다.

앞머리 쪽은 쫓기는 한나라 군사가 되고 몸통은 뒤쫓는 초나라 군사와 제나라 군사로 된 굵고 긴 뱀의 허리가 유수 한가운데 이르렀을 때다. 갑자기 무언가 쏴아 하는 듯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리더니 조금 전까지도 말라 있는 것 같던 유수 상류 쪽에서 벌건 황톳물이 휩쓸고 내려왔다. 용저는 그제야 속은 것을 알았으나 이미 때는 늦은 뒤였다.

모두 물러나라! 어서 강둑으로!”

그렇게 외치며 말고삐를 당겼으나 거센 물결은 잠깐 사이에 10만 제·(齊楚) 연합군을 세 토막으로 갈라놓았다. 곧 앞서 한군을 뒤쫓다가 물을 거의 다 건넌 한 토막과 황톳물에 휩쓸려 간 한 토막, 그리고 뒤따라오다가 유수 동쪽에 그대로 처져 있게 된 한 토막이었다.

앞서 한군을 뒤쫓던 용저는 겨우 황톳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면한 초나라 군사 3만과 함께 유수 서쪽에 남겨졌다. 그러나 아직도 불어나는 물결이 너무 거세 강가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그때까지 달아나기만 하던 한나라 군사들이 일제히 돌아서서 덤비기 시작했다.

겁낼 것 없다. 적은 얼마 되지 않는 잡병이다. 단숨에 쳐부수고 한신을 사로잡자!”

용저가 그렇게 외치며 앞장을 서자 초나라 장졸들도 이내 기세를 되찾았다. 저마다 힘주어 창칼을 꼬나 잡고 한군에 맞서 싸웠다. 그런데 다시 어우러진 싸움이 막 열기를 띨 무렵이었다.

갑자기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멀지 않은 한군 진채 쪽에서 한 갈래 기마대를 앞세운 군사들이 몰려나왔다. 앞서 휘날리는 기호(旗號)를 보니 한나라 기장(騎將) 관영이었다. 용저는 전에 한번 관영의 불같은 기백을 뜨겁게 맛본 적이 있었다. 거기다가 기마대를 뒤따르는 한군 보졸도 놀란 눈으로 보아서 그런지 엄청난 머릿수였다.

내가 속았구나. 간교한 한신이 얽은 덫에 걸려들었다.’

그런 짐작이 들자 어지간한 용저도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그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옛일로 자신을 북돋우며 자꾸만 자라가는 무력감을 추슬렀다.

내가 누구냐? 3만 군사로 진나라의 명장 왕리(王離)20만 대군을 대쪽처럼 쪼개 놓은 천하의 용저다. 또 그때는 당양군(當陽君)이던 경포와 함께 그 험한 함곡관을 한나절에 깨뜨린 나다. 오너라. 얼마든지 오너라.’

그러면서 용저는 한신과 관영의 군사들을 상대로 기죽지 않고 싸웠다. 그렇게 얼마나 싸웠을까. 다시 멀리서 함성이 일며 이번에는 유수() 상류 쪽에서 다시 한 갈래 군사들이 밀고 내려왔다. 몰리는 가운데서도 눈길을 모아 살피니 앞선 기호에는 () 우승상 조참이란 여섯 자가 뚜렷했다. 상류에서 모래주머니로 쌓았던 둑을 터뜨리고 돌아오는 조참의 군사들이었다.

조참까지 대군을 이끌고 달려오자 두려워할 줄 모르던 용저도 비로소 으스스해지며 맥이 쭉 빠졌다. 몸을 뺄 길이 없나 사방을 돌아보았지만, 어디나 한군의 창검과 기치가 겹겹이 둘러쳐져 있었다. 그러다 한 군데 창칼의 숲이 엷은 데가 있어 자세히 보니 유수 쪽이었다. 그러나 유수 바닥은 아직도 벌건 황토물이 거센 물결을 일으키며 흘러가고 있었다.

내가 죽을 곳이 여기었던가. 여기서 이렇게 죽기 위해 그렇게도 맹렬하게 달려온 것일까.’ 이윽고 용저는 그런 자조 섞인 중얼거림과 함께 칼을 쥐고 있는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모아 초나라 군사들을 함부로 죽이고 있는 한군 사이로 뛰어들었다.

초나라에서 으뜸가는 맹장 용저가 죽은 것은 그로부터 반 시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조참과 관영의 군사들이 합쳐진 난군 속에서 피를 뒤집어쓰고 싸우다가 죽은 탓에 누구도 그게 용저인지 몰랐다. 그러다가 싸움이 끝난 뒤 사로잡힌 용저의 부장(副將) 주란(周蘭)이 알려주어서야 용저가 그렇게 죽었음을 알고 그 목을 거두었다.

사기조승상 세가(世家)’에는 용저를 목 베고 주란을 사로잡은 것이 조참이라고 되어 있고, ‘관영 열전(列傳)’에는 관영이라고 되어 있다. 사실(史實)을 기술하는 데 엄밀한 태사공(太史公)이 그렇게 엇갈린 기술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그런 용저의 최후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느 쪽 군사들에게 죽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바람에 양쪽 모두의 공이 된 듯하다.

한신이 용저를 따라 유수를 건넌 초나라 군사들을 모조리 죽이거나 사로잡았을 무렵 해서야 유수의 물도 빠졌다. 이에 한신은 다시 대군을 이끌고 유수를 건너 동쪽 벌판에 남아 있는 초나라 군사와 제나라 군사들을 들이쳤다. 눈 깜짝할 사이에 원군(援軍)의 태반을 황토물에 떠내려 보내고 얼이 빠져 있던 제왕 전광은 그런 한신의 대군과 맞서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은 군사를 이끌고 고밀성 안으로 쫓겨 들어갔다가 그날 밤 어둠을 틈타 다시 멀리 성양(城陽)으로 달아났다.

그때 성양(城陽)에는 임시 재상으로 임치를 지키던 전광(田光)이 임치를 잃고 쫓겨 와 있다가, 고밀을 빠져나온 제왕(齊王) 전광(田廣)을 맞아들여 농성할 채비를 했다. 져서 쫓겨왔다고는 하나 제왕이 데려온 군사는 남은 초나라 원병(援兵)과 제군(齊軍)을 합쳐 3만이 넘었다. 임시 재상 전광이 데려온 군사에다 원래 있던 성양성 안의 군민들과 합쳐 보니 싸울 수 있는 병력만도 5만에 가까웠다.

거기다가 성양은 전에 전횡(田橫)이 패왕 항우와 맞서 몇 달이나 버텨낸 성이었다. 성벽은 높고 두꺼웠으며 성안 백성들도 믿을 만했다. 이에 제왕 전광은 다시 한 번 매서운 전의를 다짐과 아울러 사람을 영하()에 있는 전횡에게로 보내 한신의 등 뒤에서 군사를 움직여 달라고 일렀다.

한편 한신은 고밀성이 떨어지자 그 하루 군사를 쉬게 하고 전과(戰果)를 헤아려 보았다. 한나라 장졸 모두가 힘을 다해 싸웠으나 누구보다도 관영이 세운 공이 컸다. 조참과 협공하여 용저를 목 베고 그 부장(副將) 주란을 사로잡은 것 말고도, 초나라 우사마(右司馬)와 연윤(連尹) 각 한 명과 제나라를 도우러 온 누번(樓煩) 장수 열 명을 사로잡았다.

다음 날 한신은 전군(全軍)을 단 한 갈래도 흩지 않고 한 덩이로 휘몰아 성양으로 달려갔다. 밤낮 없이 닷새를 달려 성양에 이른 한신은 적에게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그대로 성을 에워쌌다. 성안에 있던 제() () 연합군은 만만찮은 투지로 맞서는 제왕 전광을 따라 잘 싸웠다. 제왕 전광이 성양성 안으로 쫓겨든 바로 그 다음 날이었다.

성을 에워싼 한나라 대군의 기세는 엄청났으나 처음 며칠 성안의 제 초 연합군과 그들 편에 선 백성들은 겁내지 않고 맞섰다. 하루에도 몇 번씩 되풀이되는 불같은 공격을 잘 막아냈다. 하지만 성안 군민들의 피를 말리는 듯한 한신의 교묘한 전략과 제나라로 들어간 한군(漢軍)의 전력을 집중한 강공(强攻)을 끝내 견뎌내지는 못했다.

성을 에워싼 지 닷새째 되던 날이었다. 밤새 요란한 북소리와 횃불과 함성으로 번갈아 제나라와 초나라 군사들을 성벽 위에 잡아두었던 한군이 마침내 총공세로 나왔다. 한낮이 되자 성안 군민들이 모두 졸음을 이기지 못해 끄덕거리고 있는데, 한나라 10만 대군이 사면팔방으로 일시에 성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모두 죽기로 싸워 성을 지켜라! 상국 전횡(田橫)이 올 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제왕 전광이 직접 칼을 빼들고 그렇게 소리치며 군사들을 격려했으나 이미 그물에 든 고기 신세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조참과 관영이 앞서 성벽 위로 뛰어오르자, 저희 장수 태반을 고밀에서 잃고 갈팡질팡하던 초나라 군사들이 먼저 창칼을 내던지며 항복하기 시작하고, 지친 제나라 군민들도 하나둘 그 뒤를 따랐다. 성벽 위가 한군의 붉은 기치로 덮여가는 것을 보고 일이 돌이킬 수 없게 되었음을 안 제왕 전광은 하늘을 우러러 길게 탄식했다.

내리는 것도 하늘이고 거두는 것도 하늘이다. 하늘이 제나라에 내릴 것이 이것뿐이었다면 낸들 어찌하겠는가!”

그리고는 들고 있던 칼로 제 목을 찔러 죽었다. 비록 전횡이 세운 왕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천하의 패왕 항우를 겁내지 않고 맞서 싸우다 죽은 산동의 효웅(梟雄) 전영(田榮)의 아들다운 최후였다.

제왕 전광(田廣)이 죽자 그때껏 버티던 성양(城陽)성 안의 군민들도 더는 싸우려 들지 않았다. 임시 재상 전광(田光)이 다시 제나라 군사 수천 명을 이끌고 동문으로 빠져나갔을 뿐, 나머지는 모두 병장기를 내려놓고 땅 바닥에 주저앉았다.

거기까지 따라왔던 초나라 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살아남은 만여 명이 모두 한군에게 항복하니 이로써 패왕 항우가 용저에게 갈라 보낸 5만 별대(別隊)는 한 사람도 본진(本陣)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패왕이 한왕에게 발목이 잡혀 광무산에서 머뭇거리는 그 한 달 동안에 오른팔 같은 맹장 하나와 절반 가까운 병력이 제나라 땅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한신은 제왕 전광이 죽고 성양이 떨어진 뒤에야 다시 군사를 나누어 제나라의 남은 세력을 쓸어 버리게 했다.

전광(田光)은 아마도 전횡이 있는 박양(博陽)이나 영하() 쪽으로 달아났을 것이다. 기장 관영은 낭중(郎中) 기병과 군사 2만을 데리고 전광을 뒤쫓으라. 서둘러 뒤쫓으면 전횡에게 이르기 전에 전광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전광을 사로잡은 그 기세로 내쳐 전횡까지 사로잡아야 한다.”

한신은 먼저 관영을 불러 그렇게 군령을 내린 다음 다시 조참을 불러 명했다.

우승상은 다시 3만 군사를 이끌고 먼저 임치로 가서 부근을 어지럽히는 제나라 장수 허장(許章)을 잡으라. 그자도 전광처럼 제나라 상국(相國)을 자처하며 임치를 되찾겠다고 큰소리 치고 다닌다고 한다. 그자부터 잡아 죽인 다음 군사를 교동(膠東)으로 몰아가 즉묵(卽墨)에 진을 치고 있는 전기(田旣)를 때려죽이면 나머지 제나라 70여 성은 모두 절로 무릎을 꿇을 것이다.”

이에 관영은 다음날로 성양을 떠나 전광을 뒤쫓았다. 한신의 헤아림대로 전광은 전횡을 찾아 영하로 달아나고 있었다. 기마대를 앞세워 지름길로 영하로 가는 길목을 막게 한 관영은 박양 못 미치는 곳에서 전광을 사로잡고 박양성 밖 벌판에 진채를 내렸다.

여기서 며칠 인마를 정비한 뒤 영하로 내려간다. 그동안 너희들은 전횡이 영하 어디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 군세는 얼마나 부풀었는지부터 먼저 알아 오라.”

관영이 영하 쪽으로 탐마(探馬)를 풀면서 그렇게 명을 내렸다.

한편 영하의 전횡도 곳곳에 사람을 풀어 제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세밀하게 살피고 있었다. 용저가 대군을 이끌고 고밀에 이르러 제왕과 합세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제나라를 되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자신도 크게 관영에게 반격을 해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관영이 사라지고 없었다.

고밀로 갔구나. 용저가 뜻밖의 대군을 몰고 오자 한신이 병력을 고밀로 집중하는구나.’

그런 짐작이 들자 전횡은 고밀로 가서 제나라와 초나라 연합군에 합세하는 길과 비어 있는 임치를 되찾아 도성부터 회복하는 길 중 어느 쪽을 골라야 할지 갑자기 망설여졌다. 하룻밤을 오락가락하다가 마침내 임치로 가는 쪽을 고르고 군사들에게 떠날 채비를 시켰다. 허풍이 섞인 말이라 해도 용저가 이끌고 온 대군이 20만이라면, 자신까지 가서 군사를 보태는 게 아무래도 지나친 중복 같았다.

그런데 다음날 전횡이 막 군사를 움직이려는데 좋지 않은 소식이 전해왔다.

제북(齊北)에 가 있던 조참의 군사도 밤낮 없이 고밀(高密)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오늘 내일이면 한신과 합류할 것이라 합니다. 꾀 많은 한신이 관영과 조참과 더불어 세 방향에서 용저를 흔들어 대면 형세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말을 듣자 싸움이라면 한가락 하는 전횡도 슬며시 걱정이 되었다. 임치로 가는 길을 바꾸어 고밀로 군사를 몰고 갔다. 도중에 하룻밤을 쉰 전횡의 군사들이 다시 반나절을 걸어 고밀을 50리쯤 앞둔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한 대의 패군이 허둥지둥 달려오다가 제나라 기호(旗號)를 보고 털썩털썩 쓰러지듯 무릎을 꿇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어디서 싸우다가 이리로 왔느냐?”

전횡이 그 군사들에게 물었다. 군사들 가운데 하나가 반은 얼이 빠진 얼굴로 대답했다.

고밀에서 대왕과 싸우던 군사들입니다. 고밀성이 떨어져서이렇게.”

그리고는 용저가 한신의 수공(水攻)에 걸려 죽은 일이며 제왕 전광(田廣)이 고밀성을 잃고 달아나게 된 경과를 횡설수설 일러 주었다. 듣고 난 전횡이 다시 물었다.

그럼 대왕께서는 어디로 가셨느냐?”

모르겠습니다. 고밀성으로 들 겨를이 없어 한 갈래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서북쪽으로 가신 것밖에는.”

그렇게 되자 전횡은 군사를 영하()로 물리는 한편 사람을 풀어 조카인 제왕 전광이 간 곳을 알아보게 했다. 며칠 안 돼 전광이 성양성으로 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그리고 다시 며칠 뒤에는 제왕 전광으로부터 외응(外應)을 요청하는 사자가 달려왔다.

이에 전횡은 군사를 서쪽으로 돌려 성양으로 달려갔다. 한신의 대군에게 에워싸인 성밖에서 유격(遊擊)으로 그 압박을 덜어 주며 변화를 노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서쪽으로 길을 잡은 지 이틀 만이었다. 박양 쪽에서 땀에 젖은 기마 한 필이 달려와 전횡을 찾았다.

너는 누가 보냈느냐? 어찌하여 나를 찾느냐?”

전횡이 그 기졸(騎卒)을 불러 그렇게 묻자 기졸이 울며 대답했다.

저는 임시로 재상이 되어 임치를 지키던 전광(田光) 장군의 수하입니다. 성양의 참혹한 소식을 전하라는 명을 받고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참혹한 소식이라니? 성양은 어찌 되었으며 대왕은 어디 계신가?”

어제 낮 성양이 한군에 떨어지고, 대왕께서는 스스로 목을 찔러 돌아가셨습니다.”

그 말을 듣자 전횡은 눈앞이 아뜩했다. 제왕 전광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 우러르던 형 전영(田榮)의 아들이요, 자신이 왕으로 세우고도 아끼며 보필하던 조카였다. 반드시 제나라와 함께 지켜 패왕 항우에게 무참히 죽은 형의 한을 풀고, 가문을 한 나라의 종실(宗室)로 번창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전광이 그렇게 허망하게 죽고 말았으니 눈앞이 아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은 지금 어디 있는가?”

지금 박양 가까이 있는데, 상국께로 오고 있습니다. 오늘밤이면 이를 것입니다. 제게 먼저 상국을 뵙고 말씀드리라기에.”

하지만 임시재상 전광도 끝내 오지 못했다.

그날 날이 저물기도 전에 다시 사람과 말이 함께 피 칠갑을 한 기마 한 필이 전횡의 진채로 뛰어들어 헐떡이며 말했다.

전광 장군께서 한나라 장수 관영의 추격을 받아 사로잡혔습니다. 저만 간신히 에움을 빠져나와 이렇게 상국께 위급을 알립니다.”

하지만 그때는 전횡도 이미 어느 정도 분한(憤恨)을 털어내고 마음을 가다듬은 뒤였다.

제나라의 용장들이 모두 가는구나. 이미 사로잡혔다면 구차하게 항복하여 살아남을 광(田光)이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교동에는 기(田旣)가 있고 임치 쪽에는 허장(許章)이 있다. 또 준총(駿])같은 종실(宗室)의 호걸들과 허다한 산동(山東)의 지사들도 때가 되면 힘을 모아 일어날 것이다. 제나라가 결코 이대로 끝나지는 않는다.’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문득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모든 장수를 군막으로 모으라. 한신과 결판을 내기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오래잖아 따르던 장수들이 모두 모이자 전횡이 비장한 어조로 그들에게 말했다.

종형 담()이 적현(狄縣) 현령을 때려죽이고 제나라를 되 일으킨 뒤로 이제 5년 남짓, 이 왕실의 명운이 기구하여 그 사이에 군왕이 바뀌기를 벌써 네 번이나 하였다. 처음 왕위에 오르신 담 종형이 임제(臨濟)에서 장함의 야습을 받아 돌아가시자 종질 불()이 이었고, 불이 왕 노릇을 감당 못하고 죽자 항우 때문에 나누어진 삼제(三齊)를 다시 아우르신 우리 형님 영(田榮)이 왕위를 이었다. 그리고 다시 영 형님이 항우의 핍박을 받아 돌아가시자 내가 성양에서 일어나 조카 광(田廣)을 왕위에 올렸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방금 우리 대왕 광이 성양에서 장렬하게 돌아가셨다는 비보가 왔다. 한신의 대군을 맞아 끝까지 싸우시다 성양 성벽을 베고 자결하셨다 한다.

이제 선왕을 위해 발상(發喪)하고, 전군을 들어 한군을 쳐부수어 그 한을 씻으려 하거니와, 그 전에 먼저 할 일은 끊어진 제나라의 왕통을 잇는 일이다. 하늘에 해가 없을 수 없듯이 나라에는 하루도 왕이 없을 수 없다. 마땅히 모든 종실을 모아 덕망 있고 공업이 높은 이를 왕으로 받들어야 하나 지금은 그럴 겨를이 없다. 부족한 대로 내가 왕위를 맡아 먼저 모질고 간교한 외적을 무찌른 뒤에 다시 우리 제나라 왕으로 합당한 이를 찾아보자.”

전담이 죽자 제나라 사람들이 옛 제왕(齊王)의 아우 전가(田假)를 왕으로 세운 일과 항우가 전가를 내쫓은 전영을 죽이고 다시 전가를 왕으로 세운 일을 더하면, 제나라는 매년 하나씩 왕이 서고 죽은 셈이었다. 그 한이 피맺히는 데다 전횡이 진정을 담아 하는 소리라 그런지 아무도 딴소리를 하는 장수가 없었다. 이에 전횡은 그날로 죽은 제왕 전광을 위해 발상하고, 스스로 제왕이 되어 선왕의 보수(報讐)와 설한(雪恨)을 맹서했다.

먼저 박양으로 간다. 관영부터 쳐부수어 한신의 한 팔을 잘라 놓은 뒤에 다시 한신을 찾아 결판을 내자!”

다음 날 갑옷 투구로 몸을 가리고 스스로 앞장을 선 전횡은 그렇게 외치며 군사들을 이끌고 박양으로 달려갔다. 한번 관영에게 꺾인 군사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직 1만 명이 넘는 제나라 군세였다. 그들을 휘몰아 박양에 이른 전횡은 성밖 벌판에 펼쳐진 관영의 진채를 다짜고짜로 들이쳤다.

그때 관영은 임시 재상 전광을 잡아 죽이고 잠시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박양에서 며칠 쉬었다가 기세를 몰아 전횡이 있는 영하로 밀고들 작정이었다. 그런데 영하로 달아나 숨어있다고 얕보고 있던 전횡 쪽에서 오히려 기습을 해 왔으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겁내지 마라. 적은 얼마 되지 않는다. 궁한 쥐가 고양이를 물려고 덤비는 격이다!”

관영이 칼을 빼들고 군사들을 독려했으나 한번 꺾인 사기는 쉽게 되살아나지 않았다. 끝내 진채를 지켜내지 못하고 20리나 쫓겨가서야 겨우 패군(敗軍)을 수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워낙 승세를 타고 있는 한군인 데다 군세(軍勢)도 전횡이 이끈 제나라 군사들보다는 월등히 컸다. 거기다가 지난번 관영과의 싸움에 지면서 기마대가 꺾여 전횡에게는 제대로 된 기마대가 없었다. 그 때문에 한군은 싸움에 져도 한바탕 고단하게 쫓기는 것으로 그칠 수 있었다.

이번에는 진채를 든든하게 세우라. 녹각과 목책을 빽빽이 두르고 누벽(壘壁)을 높이 해 적의 야습에 대비하라.”

한번 데어 본 아이가 불을 무서워하듯 관영이 장졸들을 다그쳐 전에 없이 든든한 진채를 펼치고 전횡의 추격에 대비했다. 그러나 하룻밤이 지나도 전횡은 관영을 뒤쫓아 오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긴 관영이 탐마를 풀어 알아보게 했다. 오래잖아 탐마가 돌아와 알렸다.

전횡은 어젯밤 영하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대군인 양 위장하고 남아서 뒤를 끊던 제나라의 의병(疑兵)도 오늘 아침에는 영하로 돌아갔습니다.”

전횡이 이기고도 그토록 급하게 돌아간 까닭이 무엇이라더냐?”

빼앗은 우리 진채를 돌아보고 우리 군세를 짐작한 까닭인 듯합니다. 어제 전횡이 이끈 군사는 1만 명을 크게 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절반도 안 되는 병력으로 기마대도 없이 한군을 기습한 셈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석연찮은 데가 있는지 관영이 다시 물었다.

그래도 승세란 게 있지 않느냐? 어렵게 이겨놓고 아무 얻은 것 없이 물러나다니?”

막상 이겨놓고 보니 더욱 비세(非勢)를 절감한 것은 아닐는지요? 거기다가 제나라 왕이 되어 처음 치른 싸움에서 체면치레는 했으니 물러나 지키기로 한 듯합니다.”

그 말이 처음 들어보는 것이라 관영이 얼른 다시 물었다.

전횡이 제왕(齊王)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냐?”

제왕 전광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전횡은 스스로 제왕이 되었다고 합니다.”

탐마로 나간 군사가 알아온 것은 대체로 옳았다. 관영도 거기까지 듣고 보니 전횡이 왜 그렇게 순순히 물러났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관영이 급해졌다. 곧 장수들을 자신의 군막으로 불러 모으게 한 뒤 재촉하듯 말했다.

보기(步騎) 2만을 골라 되도록 빨리 행군을 채비하게 하라. 나머지 노약한 병사와 시양졸(養卒)은 치중(輜重)과 더불어 뒤따라오게 하고, 가볍고 날랜 보기만으로 밤낮없이 달려 영하로 간다. 전횡이 제왕으로서 그 땅에 더 깊이 뿌리를 내리기 전에 싹을 짓뭉개버려야 한다.”

그러고는 그날로 가볍게 차린 보기 2만만 데리고 영하로 달려갔다.

관영이 밤낮없이 달려 영하()에 이르자 이번에는 전횡이 크게 낭패를 당했다. 겨우 전날 저녁 영하로 돌아와 진채도 제대로 세우지 못했는데, 기마대를 앞세운 한군의 매서운 추격을 받게 되니 그 혼란은 며칠 전의 관영보다 더했다. 달포 가까이 머물렀던 인연을 다져 영하를 당분간의 근거지로 삼으려던 꿈은 허사로 돌아가고, 전횡은 다시 얼마 안 되는 군사와 더불어 쫓기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관영이 그런 전횡을 곱게 놓아 보내지 않고 맹렬하게 뒤쫓았다. 그 바람에 산동에서 배겨내지 못한 전횡은 마침내 양() 땅으로 달아났다.

팽월에게나 의지하자. 형님(田榮)의 낯을 보아서라도 우리를 괄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횡이 그렇게 부하 장졸을 달래면서 찾아가자 팽월도 아무 거리낌 없이 그들을 받아들였다. 옛정으로 보아서는 당연한 일 같기도 했다.

3년 전인 한() 원년(元年) 6월의 일이었다. 팽월은 만여 명이나 되는 무리와 더불어 거야택(巨野澤)에 자리 잡고 있었지만, 패왕 항우를 따라 관중으로 가지 않은 까닭에 봉토(奉土) 한 조각 얻지 못하고 누구 밑에도 들지 않은 채(無所屬) 지냈다. 그때 역시 패왕에게 무시당하고 있던 전영이 스스로 제왕이 되어 팽월에게 장군인(將軍印)을 내리고 불렀다.

팽월은 두 말 없이 전영의 부름을 받아들이고 그 장수가 되어 명을 받들었다. 그해 7월 제북(齊北)을 치고 항우가 그곳 왕으로 세운 전안(田安)을 죽였으며, 다시 초나라로 쳐들어가 그 북쪽을 어지럽혔다. 이에 패왕이 소공(蕭公) ()에게 대군을 주며 팽월을 치게 하였으나, 팽월이 오히려 소공 각을 크게 쳐부수어 패왕의 부아를 건드렸다. 전영의 아우 되는 전횡이 팽월과 친교를 맺은 것은 바로 그 무렵이었다.

하지만 관영에게 쫓겨온 전횡을 팽월이 그처럼 받아들인 것이 다만 옛정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때 팽월은 엄연히 한왕 유방을 따르고 있었으며, 그 명에 따라 위()나라 상국으로서 양() 땅을 공략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도 한왕이 보낸 한신에 맞서 끝까지 싸우다가 쫓겨온 전횡을 태연히 받아들인 것은 아무래도 달리 설명되어야 할 것 같다.

팽월이 적지 않은 세력을 거느리고도 봉토도 없이 외톨이로 떠다니게 된 것은 수적(水賊) 떼의 우두머리로 늙으면서 몸에 밴 습성과 무관하지 않다. 거야택 한 구석에서 남의 구속을 받지 않고 살던 그에게 땅과 봉록을 받고 누구 밑에 드는 일이 탐탁스러울 리 없었다. 천하가 어지러워지며 외톨이로는 버텨 낼 수 없어 남의 밑에 들게 되더라도 그것은 어쩔 수 없어 하는 겉치레요 시늉일 뿐이었다.

따라서 팽월은 설령 누구에게서 관작을 받아도 언제나 자신을 따르는 무리만 이끌고 홀로 떠돌며 싸웠고, 그래서 이내 제 주군(主君)을 잊어버리고는 했다. 관영에게 쫓긴 전횡이 그를 찾아갔을 때도 그랬다. 그때는 한왕을 받들 때였으나, 팽월은 별로 한왕을 의식하지 않았다. 마치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또 다른 세력처럼 전횡을 받아들였다.

스스로 왕이 된 전횡마저 양() 땅으로 달아나자 제나라는 모두 평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대() () ()에 이어 제나라까지 한신에게 떨어지자, 그 주군인 한왕 유방은 땅만으로 보면 천하의 셋 가운데 둘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줄곧 패왕에게 유리하던 대세가 비로소 한왕 쪽으로 뒤집힌 셈이었다.

그때 한신은 임치로 돌아가 다시 제나라의 민심을 추스르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러나 아무리 재물을 풀고 형벌을 느슨하게 해도 기질이 억세고 계략에 밝은 제나라 사람들의 마음은 쉽게 한나라로 기울어지지 않았다. 거기다가 그곳 선비들의 마음은 또 전영 전횡 형제가 굳게 사로잡아 한신이 벼슬과 봉록으로 달래도 돌아설 줄 몰랐다.

아직 전횡이 영하에서 스스로 왕이라 일컬으며 버티고 있고, 또 허장(許章)과 전기(田旣)도 각기 적지 않은 군사와 더불어 우리에게 맞서는 중이라 그럴 것입니다. 그들만 잡으면 저들의 기세도 숙어질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신이 은근히 다급해하자 괴철이 그렇게 위로했다. 하지만 전횡이 양() 땅으로 달아나고 조참이 허장과 전기를 잡아 죽여 제나라가 온전히 평정된 뒤에도 산동의 민심은 싸늘하기만 했다. 걱정이 된 한신이 다시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탄식처럼 말했다.

관영은 전횡을 잡고도 본진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별장(別將)으로 떠돌며 제나라 곳곳을 평정하느라 바쁘다. 지금은 노현(魯縣) 북쪽에서 초나라 장수 공고((,))와 싸우고 있지만, 설령 이긴다 해도 그대로 제나라가 조용해질 것 같지는 않다. 거기다가 설현(薛縣)이나 사수군(泗水郡) 쪽으로는 초나라의 세력이 살아 있어 그들에게 기대려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참도 가까운 날 임치로 돌아와 나와 함께 제나라 민심을 안정시키기는 틀렸다. 교동까지 가서 전기를 죽이고 돌아오는 중이라지만 일이 그것으로 모두 끝난 것 같지는 않다. 저번에 평정하다 만 제북(齊北)이 다시 들고일어나 시끄럽다니 이번에도 조참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우리도 항왕처럼 끝내 빈손으로 제나라에서 쫓겨나는 것이나 아닌지.”

마침 곁에 있던 괴철이 뜻있는 웃음과 함께 그 말을 받았다.

사람은 스스로를 업신여긴 뒤에 남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받는다 했습니다. 아직 제나라의 민심이 돌아오지 않은 것은 틀림없으나, 대장군을 미련하고 포악한 항왕에 견주어 그렇게 상심하실 일은 아닙니다. 굵직한 세력은 다 꺾었으니 이제는 저들이 의지하고 따를 임금만 세워주시면 제나라 백성들도 그리 오래 뻗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항왕도 전영을 죽이고 전가(田假)를 왕으로 세운 적이 있소. 그러나 제나라 사람들은 기어이 전가를 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전횡을 도와 항왕과 초나라 군사를 내쫓았소.”

한신이 그러면서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괴철이 가만히 일깨워 주듯 말했다.

항왕은 옛 제나라 왕실의 육친이라고 전가를 왕으로 세웠습니다만, 제나라 왕이 될 자격은 혈통이 아니라 나라를 다스릴 능력입니다. 원래 제나라는 강씨(姜氏)의 것이었고, 전기(田乞)와 전상(田常)은 임금을 죽인 역신이었으나, 결국 그 자손 전화(田和)가 제나라 임금이 된 것은 그들에게 강씨를 대신해 제나라를 다스릴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제나라 사람들이 잘 변하고 속임수가 많다는(다변사·多變詐) 말을 듣게 된 것도 바로 그런 전씨를 군소리 없이 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심사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능력 있는 이가 왕이 되어 제나라를 다스린다면 백성들도 오래잖아 그를 따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소? 그게 누구요?”

한신이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듯 괴철에게 물었다. 괴철이 잠깐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바로 대장군이십니다. 대장군께서 제왕(齊王)이 되신다면 이 땅은 곧 잠잠해질 것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나는 한낱 장수로서 한왕의 명을 받들어 제나라를 평정하러 왔을 뿐이오. 비록 열에 아홉 제나라를 차지했다고는 하나, 나라를 얻는 일이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는 일은 아닐진대 어찌 감히 제나라의 왕위를 넘본단 말이오?”

한신이 놀란 듯 두 손까지 내저으며 그렇게 소리쳤다. 그래도 괴철은 차분하기만 했다.

죽은 진왕(陳王=진승)은 왕후장상이 어찌 씨가 따로 있겠느냐(王侯將相 寧有種乎)고 외쳤습니다. 진나라 말기 이래로 군왕이 된 사람 중에 처음부터 왕후(王侯)의 피를 받고 난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또 포의(布衣)에서 몸을 일으켜 군왕이 된 이 가운데 대장군보다 더 큰 전공을 세운 이가 어디 있습니까? 내일이라도 한왕께 사자를 보내 제왕의 옥새와 의장을 내려달라고 하십시오. 그 길만이 제나라를 온전히 평정할 수 있는 길일 뿐만 아니라 한왕의 뜻을 잘 받드는 길도 됩니다.”

하지만 그 일의 엄중함을 잘 아는 한신으로서는 아무래도 엄두가 나지 않는 듯했다. 여전히 두 손을 내저으며 괴철의 권유를 물리쳤다. 괴철이 가만히 한신을 바라보다가 한발 물러서듯 하며 말했다.

지금 한왕께서는 광무산에서 항왕에게 적잖이 시달리고 있다 들었습니다. 어서 대군을 이끌고 와서 구해주지는 않고 제나라에 머물러 제왕이 되겠다면 틀림없이 대장군을 원망하고 의심하실 것입니다. 정히 그게 싫으시다면 가왕(假王)이라도 청해보십시오. 그리하면 한왕의 원망과 의심을 줄이면서도 제나라 백성들의 마음을 달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한신도 슬며시 생각이 바뀌었다. 괴철의 말대로 하는 것이 하루빨리 제나라를 안정시키는 길이 될 듯도 하거니와, 자신이 왕이 된다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아 보였다. 이에 다음날로 사자를 광무산으로 보내 한왕에게 그 뜻을 전하게 했다.

<제나라는 속임수가 많고 변덕이 심하여(위사다변) 거슬러 뒤엎기를 잘 하는 나라(반복지국)입니다. 게다가 남쪽으로는 초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언제 초나라와 손을 잡고 불측한 일을 꾸밀지 모릅니다. 임시로 가왕(가왕)이라도 세워 민심을 진정시키지 않으면 불안한 형세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듯합니다. 바라건대 신을 가왕으로 삼아주시면, 제나라를 평정하여 한나라의 동쪽 번국(번국)으로 만드는 일이 한층 쉬워질 것입니다.>

한신의 사자가 대강 그와 같은 글을 들고 광무산의 한군 진채로 찾아든 것은 한군이 아직도 항왕이 이끈 초군에게 몰리고 있을 때였다. 오창의 곡식과 관중의 보급 때문에 먹을 것이 넉넉하고 군사의 머릿수가 좀 많아졌다고는 해도 나아진 것은 별로 없었다. 패왕의 빼어난 무용과 독이 오른 초군의 기세를 당해내지 못하는 한군으로서는 걸어오는 싸움을 못 본 척 피하는 게 상수였다. 그날도 하루 종일 초나라 군사들의 조롱과 욕설에 시달려 불쾌해 있는 한왕에게 사자가 그 글을 올리자 다 읽고 난 한왕이 벌컥 성을 내며 소리쳤다.

과인이 여기서 고단하고 구차하게 버티고 있는지 하마 오래거늘, 빨리 돌아와서 돕기는커녕 이 무슨 되잖은 소리냐? 우리 군사는 자칫하면 아래위가 다 어육(魚肉)이 날 지경인데, 저는 그곳에 편안히 머무르며 스스로 서서(自立) 왕이 되겠다는 것이냐?”

그 소리에 한신의 사자가 놀라 움찔했다. 그때 한왕 곁에 서 있던 진평이 가만히 한왕의 발을 밟아 진정시켰다. 장량이 한왕에게 바짝 다가와 귓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하였다.

지금 우리 한나라는 제 앞도 가리기 어려운 처지에 있는데 어떻게 한신이 왕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차라리 원하는 대로 그를 제왕(齊王)으로 삼고 잘 대접하여 스스로 제나라를 지키게 하는 것이 낫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큰 변란이 일어납니다.”

그러자 한왕 유방의 무서운 정치적 순발력이 일순간에 다시 빛을 뿜었다. 진평과 장량의 뜻을 퍼뜩 알아차린 한왕이 낯빛도 하나 변하지 않고 이어서 한신의 사자를 꾸짖었다.

거기다가 우리 한나라의 대장군이요 조나라의 상국으로서 기상이 그게 무엇이냐? 대장부가 왕을 하면 진왕(眞王)이 될 뿐, 가왕(假王)이라니 무슨 당치 않은 소리냐? 가서 대장군에게 일러라. 과인은 제나라에 진왕 한신을 세울 수는 있어도 가왕 한신은 모른다고. 이미 장이(張耳)도 조왕(趙王)으로 세웠거늘 믿고 아끼는 대장군을 어찌 제나라의 가왕으로 세우겠느냐고.”

그리고는 장량을 돌아보며 능청스레 말했다.

자방은 과인을 위해 제나라를 좀 다녀 오셔야겠소. 제왕의 옥새와 부절(符節) 의장(儀仗)이 갖춰지는 대로 임치로 가서 대장군 한신을 제왕으로 세우고 오시오.”

그 말을 듣자 한신의 사자는 처음 한왕이 성낸 것도 한신에 대한 호의로만 이해했다. 제나라로 돌아가 한신에게 자신이 이해한 대로 전하니 한신뿐만 아니라 함께 듣는 사람 모두가 한왕의 너그러움에 감동한 얼굴이 되었다. 다만 한 사람 괴철만이 싸늘한 미소로 그런 사람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오래잖아 정월이 다 가고 봄 2월이 되었다. 제왕의 옥새를 새기고 왕실에 쓰이는 부절과 의장이 갖춰지자 한왕은 장량을 제나라로 보내 한신을 왕으로 올려 세웠다. 한왕의 그림자 같은 장량이 수십 대의 수레와 수백 명의 시중꾼을 딸리고 임치까지 와서 의례(儀禮)를 주관하니, 한신의 즉위는 그 누구보다 격식과 위의를 갖춘 것이 되었다.

한왕이 장량을 보내 그렇게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것도 실은 한신이 제나라에서 거둔 승리 덕분이었다. 그 사이 패왕 항우에게도 용저가 유수의 싸움에서 한신에게 죽고 이끌고 간 군사들마저 한 사람도 돌아올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곧 그 소문은 몹쓸 전염병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재빠르게 초나라 진중을 돌아 아래위를 가릴 것 없이 모두를 두려워 떨게 했다. 장량 일행이 아무 일 없이 광무산을 빠져 나가 제나라로 갈 수 있었던 것뿐만 아니라, 그 뒤로 한동안 광무산의 한군 진채가 평온했던 것도 실은 그래서 초군의 기세가 한껏 움츠러든 까닭이었다.

하지만 장량은 전혀 그런 내색 없이 의례를 치러 한신에게 한왕의 고단함과 군색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한 사신으로서 오직 한왕의 여유와 너그러움만을 보여주다가 며칠 뒤에야 가만히 한신을 찾아보고 새삼스러운 하례(賀禮)와 함께 말했다.

신이 떠나올 때 우리 대왕께서는 제왕께서 앞으로 초나라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매우 궁금해 하셨습니다. 항왕이 대군을 이끌고 멀리 광무산에 자리 잡은 지 벌써 몇 달, 초나라에서는 군량과 군사만 긁어와 지금 그곳은 속빈 강정처럼 되어 있을 것입니다. 제왕께서는 언제 군사를 내어 초나라를 치고 항왕이 돌아갈 길을 끊으시겠습니까?

겉으로는 조심스레 묻고 있었지만 듣기에 따라서는 나무람 섞인 재촉 같기도 했다.

이미 대왕께 아뢰었듯이 지금 우리 제나라는 아직 대군을 내어 초나라를 칠 형편이 못 됩니다. 민심이 안정되어 나라를 비우고 멀리 군사를 내도 될 만하면 바로 남쪽으로 내려가 팽성을 우려 빼겠습니다.”

한신이 송구스러운 듯 그렇게 대답했다. 장량이 조금 난처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비로소 속을 털어놓듯 말했다.

동해의 바닷물이 아무리 많아도 제때에 이르지 못하면 관중의 작은 불도 끄지 못하는 법입니다. 또 수레바퀴 자국에 사는 미꾸라지에게는 제때에 부어진 넉 되의 물이 사해(四海)에 갈음할 수 있습니다. 지금 광무산을 에워싸고 있는 항왕의 기세가 워낙 사나워 자칫하면 모든 일이 글러버린 뒤에 제왕의 원병(援兵)이 이르게 될까 걱정입니다.”

정히 그렇다면 우승상 조참과 기장 관영부터 대왕께 돌려보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교동에 있는 조참에게 사람을 보내 군사를 정비하는 즉시 서쪽으로 달려가게 만들겠습니다. 조참의 군사들이 제나라를 벗어나면 바로 서초(西楚)의 영지인 산동을 가로지르게 되니 절로 항왕의 뒤를 어지럽히는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때맞춰 대왕의 진채에 이르게 하면 크게 낭패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노현(魯縣)에 있는 관영에게도 사람을 보내 초나라 장수 공고((,))를 쳐부수는 대로 군사를 남쪽으로 돌리게 하지요. 관영의 군사들이 풍패(豊沛)를 거쳐 설() () ()로 내려가면서 팽성과 항왕의 연결을 끊어버리게 하면 그 또한 항왕에게는 적잖은 위협이 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 관영이 대왕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가게 해도 너무 늦어버리는 법은 없을 것입니다.”

한신은 그렇게 말해놓고 다시 미진한 듯 보탰다.

선생께도 날랜 군사 1만을 딸려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리 큰 군사는 아니지만 대왕께 데리고 가서 요긴하게 쓰도록 하십시오.”

장량이 느끼기에도 당장 한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하는 것 같았다.

한편 그때 패왕 항우는 그 일생 별로 느껴 보지 못한 불안과 혼란에 빠져 있었다. 한 팔처럼 여기던 맹장 용저가 유수()가의 한 싸움에서 한신에게 여지없이 지고 목이 베인 일 때문이었다. 오중(吳中)에서 몸을 일으킬 때부터 용저의 무용과 기개를 잘 알고 있는 패왕에게는 그런 용저가 한신처럼 허풍스러운 책상물림에게 갑절이나 되는 군사를 거느리고도 졌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잘못 전해진 소식이거니 하며 꾸짖어 물리쳤으나, 날이 가도 잇달아 전해오는 것은 처음의 소식을 확인해 주는 것들뿐이었다.

이럴 수가 있는가. 정말로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싸움의 이치가 있다는 것인가.’

그날도 패왕은 두렵다기보다는 참으로 알 수 없다는 느낌에 허둥대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용저가 한신에게 져서 목이 잘리고 그가 패왕에게서 받아간 5만 군사도 한 사람 남김없이 죽거나 사로잡혔다는 소문이 어느새 진중을 떠돌아 초나라 장졸의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날이 밝기 무섭게 광무간으로 나가 큰소리로 한군을 놀려대거나 욕설을 퍼붓던 기세는 어디 가고, 불길한 침묵 속에 움츠리고 있다가 겁먹은 눈길로 흘금거리며 추위와 배고픔만 호소할 뿐이었다.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저렇게 허물어져 내리는 장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이윽고 패왕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으나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잘 떠오르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팽성에 있는 계포에게 사람을 보내 군량과 말먹이 풀을 재촉하면서도, 그저 빨리 봄이 가고 밀이라도 익어 군사들이 추위와 배고픔에서 놓여나게 되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런데 미처 그 봄이 다하기도 전에 패왕의 허파를 뒤집는 듯한 소식이 들어왔다.

한왕이 장량을 임치로 보내 한신을 제왕(齊王)으로 세웠습니다. 한왕이 옥새와 백관의 인수(印綬)에다 성대한 의장(儀仗)까지 내려보내 한신의 즉위에 격식과 위엄을 갖춰 주었다고 합니다.”

무어라? 유방 제놈이 무엇이건대 또 함부로 왕을 봉한단 말이냐? 아무데나 왕이란 글자만 새겨 넣으면 옥새란 말이냐? 아무렇게나 용상을 깎아 개나 소나 그 위에 앉히기만 하면 왕이란 말이냐?”

그러지 않아도 몇 달 전 장이를 조왕(趙王)에 세운 일로 한왕 유방을 별러 오던 패왕이었다. 그 전해 여름인가 이미 장이를 조왕으로 세웠다는 소문은 돌았으나 패왕은 그저 말로만 그리 된 줄 알았다. 그런데 그해 동짓달 한왕은 서(西)광무에서 궁색하게 몰리고 있으면서도, 멀리 장이에게 뒤늦게 옥새와 의장을 내려보내 보란 듯이 조왕에 즉위시켰다. 그 방자함만으로도 한왕 유방을 죽일 죄목이 하나 늘었는데, 이제 다시 제멋대로 한신을 제왕에 올려 앉혔다니 그냥 둘 수 없었다.

장수들을 모두 불러 모아라. 내 반드시 유방을 사로잡아 이 방자한 죄를 묻겠다!”

그렇게 소리치며 좌우를 몰아대는데 군막 바깥에서 호위하던 낭중이 들어와 알렸다.

무섭(武涉)이라는 막빈(幕賓) 한 사람이 대왕께 뵙기를 청합니다.”

이름은 귀에 익지만 얼른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막빈이었다. 범증이 죽은 뒤로는 책사(策士)를 믿고 쓰지 않는 패왕이라, 그저 식객(食客)처럼 군중(軍中)을 따라다니는 무리 가운데 하나인 듯했다.

무슨 일이라더냐?”

패왕이 별로 탐탁하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낭중이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제나라의 일 때문이라고 합니다. 새로 제왕이 된 한신에 관해 아뢸 일이 있다고.”

그 말에 패왕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시 온몸이 후끈하며 울화부터 치밀었지만,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화만 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억지로 화를 누르며 무섭을 불러들이게 했다.

네가 한신에 관해 할 말이 있다고 그랬느냐?”

무섭이 군막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패왕이 꾸짖듯 물었다.

그렇습니다.”

무섭이 별로 움츠러드는 기색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그 꿋꿋함이 패왕에게 알 수 없는 기대를 품게 해 험악한 얼굴 표정부터 풀게 했다.

한신을 얘기하려면 먼저 그를 알아야 한다. 너는 한신을 아느냐?”

, 관포지교(管鮑之交)랄 것까지는 아니 되나 그를 잘 압니다.”

그런 무섭의 대답에 패왕이 다시 물었다.

한신과 동향이냐?”

저는 우이(우이)에서 나고 자랐지만 젊은 시절 한때를 회음(淮陰)에서 보낸 바 있습니다. 그때 회음 저잣거리에서 한신과 사귄 적이 있습니다.”

무섭이 별로 내세우는 기색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그 꿋꿋한 자세나 차분한 어조가 허튼 수작을 부리러 온 것 같지는 않았다. 패왕이 한층 눅어든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봤자 한신은 칼을 차고도 백정놈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나간 겁쟁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한신에 관해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냐?”

바로 그것입니다. 한신은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만 있다면, 당장은 아무리 욕된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때 한신이 얻고자 했던 바는 하찮은 인간을 베어 살인자로 쫓기지 않고 떳떳하게 살아남아 장부의 큰 뜻을 펼치는 것이었습니다. 한신은 그걸 이루기 위해 서슴없이 저잣거리 불량배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나갔고, 크게 공업(功業)을 이뤄 마침내는 제왕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신이 헤아리기에 한신의 그와 같은 기상은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얻고 싶은 것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는 세상의 이목이나 사람들의 비웃음 따위는 전혀 돌아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됐다는 것이냐?”

아직도 무섭이 자신에게 하려는 말이 뚜렷하게 잡혀 오지 않아 패왕이 다시 그렇게 물었다.

지금 한신은 한왕의 명을 받들어 조() () ()를 잇달아 쳐부수고 이제는 제왕이 되어 우리 서초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하오나 만약 대왕께서 한신이 원하는 것을 주실 수 있다면, 오히려 대왕께서 그를 손발처럼 부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신은 옛정을 내세우고 한신을 찾아가 대왕을 위해 그를 달래 보고자 합니다.”

과인이 무엇을 주면 한신이 내 사람이 되겠느냐?”

대왕께서 천하의 셋 중에 하나를 한신에게 주신다고 하면 한신도 대왕을 위해 힘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자 그때까지 알 수 없는 기대로 무섭의 말을 듣고 있던 패왕 항우가 갑자기 버럭 소리치며 꾸짖었다.

무어라? 남의 빨래를 해 주고 그 삯으로 겨우 먹고사는 아낙에게서까지 밥을 빌어먹던 그 겁쟁이놈에게 천하의 삼분지 일을 내주라고? 지금 네놈이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냐?”

그래도 무섭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다. 가만히 패왕을 올려보며 해온 말투 그대로 일깨워 주듯 말했다.

대왕의 천하를 보존하기 위한 길인데 아니 될 게 무엇이겠습니까? 더구나 한신은 이미 천하의 셋 가운데 하나를 스스로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패왕이 다시 거센 숨을 고르며 물었다.

지금 한왕 유방은 파촉(巴蜀) 한중(漢中)과 삼진(三秦)을 근거로 삼고 무관(武關)과 함곡관을 나와 한() ()의 옛 땅을 거의 아우르고 있습니다. 천하를 셋으로 나누면 그 하나가 한왕의 것이 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또 한신은 제나라 왕에 지나지 않고 조왕 장이와 연왕 장도가 따로 있으나, () () ()는 이미 한신의 손아귀에 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데 그 세 나라를 합치면 다시 천하를 셋으로 나눈 가운데 하나가 됩니다.

그런 한왕 유방이 제왕 한신을 거느리고 우리 서초(西楚)를 치면, 이는 천하 셋 가운데 둘을 들어 그 하나에 채 못 미치는 것을 치는 격이 되니, 대왕의 신무(神武)하심으로도 끝내 버텨 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신을 한왕에게서 떼어내 대왕의 편으로 만드는 것은 곧 대왕의 천하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거기다가 한신에게 줄 천하의 삼분지 일은 이미 그 자신이 힘으로 차지하고 있는 것인데, 그것을 그에게 내준다 해서 새삼 아까울 게 무엇이겠습니까?”

거기까지 듣자 패왕도 무섭(武涉)이 무슨 말을 하는지 겨우 알아들었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지만, 그래도 불끈거리는 제 성을 이기지 못해 한참이나 씨근대다가 마지못한 듯 허락했다.

좋다. 저 밉살스러운 유방놈을 잡을 수 있는 길이 그뿐이라면 한번 해보자. 하지만 과인을 욕되게 해서는 아니 된다. 반드시 한신을 달래 과인과 함께 유방을 치도록 만들라.”

이에 무섭은 그날로 폐백을 갖추고 거창하게 사신의 행렬을 꾸며 제나라로 달려갔다. 제나라 경계에 이른 무섭이 관을 지키는 제나라 장수에게 일렀다.

나는 서초 패왕의 사신으로 제왕을 찾아뵈러 임치로 가는 길이외다. 먼저 제왕께 그리 연통하고 길을 안내해 주시오.”

그 말에 제나라 장수가 무섭에게 길을 열어주는 한편 유성마(流星馬)를 놓아 임치에 그 일을 알렸다. 연통을 들은 제왕 한신이 한마디로 무섭을 내치게 했다.

항왕의 사신이 과인에게 무슨 볼일이 있겠느냐? 듣는 귀만 시끄러울 것이니 임치로 들이지 말고 초나라로 돌려보내라.”

그때 곁에 있던 괴철이 말렸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 사행(使行)을 그리 함부로 막는 법이 아닙니다. 그 말을 들어보고 내쳐도 늦지 않으니 일껏 찾아온 사신을 만나 보지도 않고 내치지는 마십시오.”

그러자 한신도 못 이긴 척 사신을 받아들이게 했다.

며칠 뒤 임치에 이른 무섭은 사신의 예를 마치기 바쁘게 한신을 올려보며 물었다.

제왕께서는 나를 알아보시겠습니까?”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 듯은 하지만 누군지 잘 기억이 나지 않소. 사신은 과인을 어디서 만난 것이오?”

회음 저잣거리였습니다. 이제는 기억하시겠습니까?”

그 말을 듣자 한신의 얼굴빛이 착잡하게 얽혔다. 회음 저잣거리라면 한신에게는 애틋한 그리움도 있지만 회한도 많은 곳이었다. 마침내 왕업(王業)에 이르게 된 큰 뜻을 키웠지만, 또한 가난하고 이름 없는 시절의 온갖 남루한 기억과 욕스러운 이력을 그곳 사람들의 머릿속에 쌓아간 곳이기도 했다.

만약 한신이 뜻한 바를 다 이루었다고 할 만큼 입신(立身)한 뒤였다면 회음(淮陰)의 저잣거리를 여유롭게 추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뒷날 초왕(楚王)이 된 한신은 회음을 찾아보고 그곳을 떠도는 남루한 기억과 욕스러운 이력들을 너그럽게 감싸 휘황한 추억과 전설로 바꾸어 놓는다.

하지만 무섭이 찾아갔을 때만 해도 한신에게 회음은 아직 들추고 싶지 않은 상처와 회한이 더 많은 땅이었다. 마음 졸여가며 겨우 제나라 왕이 되기는 했지만, 어려웠던 지난날을 그리움으로 돌아볼 만한 여유가 없었다. 따라서 자신의 회음시절을 아는 무섭도 반드시 반갑지만은 않았다.

위로는 천문(天文), 아래로는 지리(地理)라고 하셨던가요? 머리 가득 차 있는 것이.”

한신이 얼른 대답이 없자 무섭이 무언가를 일깨우듯 그렇게 말했다. 그제야 한신이 고개를 끄덕이며 받았다.

가슴에는 큰 뜻이 가득하다고도 했소. 뱃속은 늘 비어 있지만.”

앉아서 천 리, 서면 만 리를 바라볼 수 있다 하셨지요. 아마. 앉으면 무릎 사이가 사해(四海), 서면 어깨에 구름이라고도.”

그렇다면 우리가 만난 곳이 주부(朱負·주씨 성 쓰는 아낙)네 술집이었겠구려. 그때 그 주씨(朱氏) 아주머니 참으로 무던한 사람이었지. 술빚을 많이 졌는데 과인이 다 갚지 못하고 회음을 떠났소.”

한신이 비로소 감회에 찬 얼굴이 되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집 술 외상을 다 갚지 못하고 떠났지요.”

무섭도 껄껄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래도 한신은 여전히 무섭이 찾아온 게 반가워지지 않았다. 자신이 젊은 날에 친 허풍을 잘 기억하는 만큼 그때의 상처와 약점도 많이 알고 있을 것 같아서였다.

벌써 스무 해가 다 돼 가는가.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짓도 많이 했을 것이오.”

한신은 그렇게 앞질러 무섭의 입을 막아놓고 말 머리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옛 사람을 만나니 옛일이 새롭구려. 그래, 이번 사행(使行)길에는 어떤 가르침을 주시려고 오셨소?”

그러자 무섭도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악인도 어린아이가 우물로 기어가는 것을 보면 막는 법입니다. 그런데 한때나마 흉금을 터놓고 지낸 이가 어렵게 높은 자리에 오르고도 죽고 망할 길을 걷고 있는데 어찌 그냥 보아 넘길 수 있겠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오? 누가 죽고 망할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오?”

한신이 무섭의 말뜻을 짐작은 하면서도 짐짓 못 알아듣겠다는 듯 그렇게 물었다. 무섭이 갑자기 근엄한 목소리가 되어 받았다.

바로 제왕 그대(足下·족하)외다. 그대는 한왕을 주군(主君)으로 골라 죽을 길로 접어들었고, 이제는 제나라 왕에 올랐으면서도 패망할 길만 고집하고 있소.”

상국(上國)이랄 수 있는 서초(西楚)의 패왕이 보낸 사자다운 위엄까지 배인 말투였다.

무섭의 말에 한신이 속으로 쓰게 웃으면서도 겉으로는 여전히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오?”

무섭이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했다.

여정(呂政)이 사해(四海)를 아우르고 시황제가 되니 그로부터 여러 해 온 천하 사람들이 진나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였소이다. 이에 참다 못한 호걸들이 모두 들고일어나 서로 힘을 합하여 진나라를 치게 되었소. 그리고 진나라가 무너지자 공을 헤아려 땅을 나누고, 그 나누어진 땅에 왕을 봉하여 다스리게 함으로써 사졸로 싸우던 백성들을 쉬게 하였소.

그런데 오래잖아 한왕 유방이 다시 군사를 일으켜 동쪽으로 밀고 나와 남의 나라를 치고 땅을 빼앗기 시작했소이다. 한왕은 먼저 삼진(三秦)을 깨뜨리고 다시 함곡관을 나와 관동의 제후들을 꺾은 뒤 그 군사들을 거두어 동쪽으로 초나라를 공격하고 있소. 천하를 모두 삼키기 전에는 멈추려 하지 않으니, 한왕이 만족할 줄 모름이 이다지도 심하외다.”

무섭은 먼저 그렇게 한왕 유방의 야심을 나무라고 잠깐 한숨을 돌린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거기다가 한왕은 또 그 사람됨이 도무지 믿을 수가 없소이다. 지난날 그의 목숨이 여러 번 패왕의 손아귀에 들었으나, 패왕께서는 늘 그를 가엾게 여겨서 살려주었소. 그런데도 한왕은 위태로운 지경을 벗어나기만 하면 번번이 약조를 어기고 다시 패왕을 공격하였소. 장부로서 그를 가까이 하고 믿을 수 없는 까닭이 그와 같은 실신(失信)과 번복에 있소이다.

지금 제왕이 된 그대(족하·足下)는 스스로 한왕과 교분이 두텁다 여기고, 그를 위하여 재주와 힘을 다하고 있소. 군사를 이끌고 창칼 아래를 내달아 수많은 제후와 왕을 사로잡고 그 땅을 아울렀지만, 끝내는 저버림을 받아 그에게 사로잡히게 될 것이오. 그대가 이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까닭은 우리 패왕께서 굳건히 버텨 주신 덕분이오. 지금 패왕과 한왕 두 사람의 싸움에서 승리의 저울추가 어디에 놓이게 되는가는 오로지 그대에게 달려 있소. 그대가 오른쪽에 추 하나를 더 얹으면 한왕이 이기고, 왼쪽에 추 하나를 더 얹으면 패왕이 이기게 될 것이오.

하지만 추를 어느 쪽에 얹기에 앞서 그대가 반드시 헤아려 볼 일이 있소. 패왕이 오늘 망하면 한왕은 내일로 그대를 쳐 없앨 것이오. 거기다가 그대는 우리 패왕과 오래된 연고가 있소. 그런데 어째서 한나라를 저버리고 초나라와 화친을 맺어 스스로 살 길을 찾지 않으시는 것이오?”

그 말에 한신이 속을 떠보듯 무섭에게 물었다.

한왕이 망해 없어진 뒤 패왕이 내게 칼끝을 겨누지 않으리라고는 어떻게 믿을 수 있겠소?”

그것은 누가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 스스로 확보하는 것이오. 그대에게 초나라와 화친을 맺으라는 것은 그리해서 패왕 아래로 들어가라는 뜻이 아니오. 지금 그대는 이미 천하의 셋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소. 그걸 밑천 삼아 어느 쪽도 편들지 않고 가만히 지키기만 해도 되는 것이오. 그러면 한왕 패왕과 더불어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그중 하나에서 왕 노릇 하는 셈이 되니 그보다 더 그대를 잘 지킬 수 있는 길이 어디 있겠소? 그런데도 지금 이 호기(好機)를 스스로 버리고 한나라를 믿어 초나라를 치려 하다니, 슬기로운 자는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오?”

무섭(武涉)은 말을 맺고 한신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얼음에 박 밀 듯 거침없는 언변은 아니었으나, 자못 준엄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데가 있었다. 한신의 얼굴에도 잠시 동요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내 담담한 표정이 되어 무섭의 말을 받았다.

사신의 말씀이 사뭇 억지스럽지만은 않지만, 자신의 주장에 이롭게 하려고 이로(理路)를 비튼 데가 있는 성싶소. 과인은 예전에 항왕을 섬긴 적이 있으나, 벼슬은 낭중(郎中)에 지나지 않았고 하는 일도 기껏 극()을 들고 군막을 지키는 것이었소. 거기다가 항왕은 과인이 바른말을 해도 들어주지 않았으며, 그럴듯한 계책을 올려도 써 주지 않아 초나라를 버리고 한나라로 간 것이오. 그같이 불우(不遇)를 입었을 뿐인데, 그걸 어찌 옛 연고라 내세울 수 있겠소?

하지만 한번 한왕의 휘하에 들자 모든 것이 달라졌소. 한왕은 내게 상장군의 인()을 주었으며, 수만 명의 군사를 딸려 주었소. 자기의 옷을 벗어서 나에게 입히고, 자기의 음식을 내게 나눠 주었소. 내 말은 받아들이고 올린 계책은 써 주어 내가 이 오늘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이오. 그런 한왕을 어찌 탐욕스럽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만 나무랄 수 있겠소?

무릇 남이 나를 가깝게 여기고 믿어 주는데 그를 저버리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오. 비록 그로 인해 죽게 될지라도 이 마음을 바꿀 수는 없으니, 나를 위해 항왕께 그렇게 전해 주시오.”

그리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좌우를 돌아보고 말했다.

여봐라. 사신을 객관(客館)으로 안내하여라. 그곳에서 하룻밤 편히 쉬게 한 뒤에 국경 밖으로 모셔 드리도록 하라.”

무섭도 더 매달려 봤자 될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무안한 얼굴로 근시들의 안내를 받아 객관으로 갔다.

제왕 한신이 초나라 사신을 맞아 몇 마디 들어 보지도 않고 객관으로 내쫓았다는 말은 곧 제왕 궁궐 안에 널리 퍼졌다. 괴철이 그 말을 듣고 한신을 찾아갔다. 천하 패권의 향방이 한신에게 달린 것을 새삼 확인하고, 기이한 계책을 써서 한신을 감동시켜 볼 작정이었다.

() 선생은 무슨 일로 과인을 찾아왔소?”

한신이 괴철이 찾아온 까닭을 짐작하고 그렇게 물었다. 괴철이 시치미를 떼고 대꾸했다.

제가 일찍이 관상 보는 법을 배운 적이 있습니다. 군왕께서 궁금한 게 없으신지요?”

선생의 관상 보는 법은 어떠합니까?”

느닷없는 괴철의 말에 한신이 약간 어리둥절해 물었다. 괴철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줄줄 늘어놓았다.

사람이 고귀하게 되느냐 비천하게 되느냐는 골상(骨相)에 달려 있고, 걱정거리가 생기느냐 기쁜 일이 찾아오느냐는 얼굴빛과 모양에 달려 있으며, 뜻을 이루느냐 이루지 못하느냐는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바탕으로 살피면 만에 하나라도 어긋남이 없습니다.”

좋소. 그럼 선생께서는 과인의 관상을 어떻게 보시오?”

이번에는 괴철의 말을 재미있게 여긴 한신이 불쑥 물었다. 괴철이 갑자기 엄숙해진 얼굴로 말했다.

제게 잠시 틈을 주시고, 좌우를 물리십시오.”

다들 물러가라!”

한신이 그렇게 소리쳐 좌우를 물리쳤다. 방안에 두 사람만 남게 되자 괴철이 나지막하지만 진지하게 말했다.

대왕의 상을 보니 높아야 제후에 지나지 않은데, 그나마 위태로워 안정된 상이 못 됩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한신이 떨떠름해져 물었다. 괴철이 몸을 바로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했다.

세상이 처음 어지러워졌을 때, 영웅호걸들이 스스로 왕을 일컬으며 한번 크게 외치자 천하의 뜻있는 선비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이 겹치기는 물고기 비늘 같고 기세는 불길이나 바람처럼 거세게 일어났습니다. 그때 그들이 걱정한 것은 오직 진나라를 쳐 없애지 못할까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진나라가 무너져도 그들의 걱정은 없어지지 않고, 세상은 전보다 더욱 끔찍해졌습니다. 초나라와 한나라가 서로 다투게 되면서 죄 없는 사람들의 간과 쓸개가 땅바닥을 덮었으며, 들판에 나뒹구는 아비와 자식의 가여운 해골이 또 얼마나 되는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초나라 사람 항우가 서초패왕을 일컬으며 팽성에서 일어나, 여기저기서 맞서는 이들을 쳐부수고 달아나는 적을 쫓아 형양(滎陽)에 이르렀을 때는 머지않아 천하대세가 판가름 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가 진나라를 멸망시킨 승세를 타고 멍석 말듯 하는 기세로 곳곳을 휩쓰니, 그 위세는 천하를 벌벌 떨게 할 만큼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그와 같은 항왕의 군사들도 경현(京縣)과 삭현(索縣) 사이에서 곤경에 빠지고 서산(西山)에 가로막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게 된 지 이제 3년이나 되었습니다.

한왕(漢王)은 수십만 대군을 거느리고 공현(鞏縣)과 낙현(洛縣) 사이에서 험준한 산과 물을 방패 삼아 하루에도 여러 차례 전투를 벌였으나 작은 공도 세우지 못했습니다. 군사가 꺾이고 싸움에 져도 누구 하나 달려와 도와주는 이가 없어 형양에서 지고 성고에서 군사를 잃은 채 드디어 완성(宛城)과 섭성(葉城) 사이로 달아났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형양 성고로 돌아가 지금은 광무산 한 모퉁이에 진채를 얽고 있으나, 그 고단함은 원병을 요청하러 달려오는 한왕의 사자로 미루어 군왕께서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슬기로운 한왕도 용맹스러운 항왕도 괴롭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군사들의 날카로운 기세는 험준한 요새를 만나 꺾이고, 양식은 창고에서 다 떨어졌습니다. 둘 사이에 끼인 백성들은 이쪽저쪽이 번갈아 빼앗아 가 날로 원망이 커지고, 민심은 기댈 곳이 없어 흔들리고 있습니다. 신이 헤아리건대, 이러한 형세는 참으로 하늘이 내리신 성현이 아니면 천하를 재화(災禍)에서 구할 수가 없을 듯합니다.”

그럼 그런 성현이 있다는 것이오? 그게 누구요?”

듣고 있던 한신이 불쑥 그렇게 물었다. 괴철의 얘기가 너무 장황하게 변죽만 울리고 있는 것 같아 말허리를 자른 셈이었다. 그래도 괴철은 그때껏 해오던 말투를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더 위압적이 되어 하던 얘기를 이어갔다.

지금 한왕과 항왕의 명운은 모두 그대(족하·足下)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대가 한나라를 편들면 한나라가 이길 것이요, 초나라를 편들면 초나라가 이기게 될 것입니다. ()은 이제 속마음을 터놓고 어리석은 계책을 말씀드리려 하거니와, 참으로 걱정스러운 바는 그대가 그 계책을 써주지 않는 것입니다.”

괴철은 스스로 신()이라 일컬으면서도 제왕 한신에게 그대라는 호칭을 써 자신이 내놓으려 하는 계책에 무게를 더하였다. 한신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다음 말을 재촉했다.

말해 보시오. 그게 어떤 계책이오?”

한나라와 초나라를 함께 이롭게 하고 두 임금을 모두 살려, 천하를 셋으로 나누고 그 하나를 차지하는 계책입니다. 한왕과 항왕에다 그대까지 세 세력이 솥발(정족·鼎足)처럼 버티어 서면 어느 편에서도 먼저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 그대처럼 밝고 어진 사람이 수많은 갑병(甲兵)을 거느리고 강대한 제나라에 의지하여 연나라와 조나라를 따르게 한 뒤, 주인 없는 땅으로 나아가 그들 두 나라의 뒤를 제압한다면 안 될 일이 무에 있겠습니까? 그런 다음 다시 백성들이 바라는 대로 서쪽으로 나아가 초나라와 한나라의 싸움을 끝내게 함으로써 싸움터에서 스러질 무고한 백성들의 목숨을 구해준다면, 천하는 바람처럼 그대에게 달려올 것이요, 메아리처럼 호응할 것입니다. 누가 감히 그런 그대의 명을 듣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큰 나라는 나누어지고, 강한 나라는 약해져 새로운 제후를 많이 세울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제후들이 서면 그곳 백성들은 그 명을 따를 것이요, 그 제후들은 그렇게 된 은덕을 제나라에 돌릴 것입니다. 그때 그대는 교하(膠河)와 사수(泗水) 인근이 옛 제나라 땅임을 내세워 그곳에 자리 잡고 덕으로 제후들을 달래고 끌어들이십시오. 공손히 두 손 모아 읍하면서 겸양의 예를 지키면, 천하의 군왕들이 서로 사람들을 끌고 와서 그대의 제나라에 입조(入朝)할 것입니다.”

괴철이 거기까지 말하자 낯빛이 변해 듣고 있던 한신이 두 손을 내저어 괴철을 말리며 말했다.

선생, 그만 하시오. 항왕이 비록 과인을 제대로 써주지 않았으나 그래도 한때 과인이 주군으로 모셨던 사람이외다. 또 한왕은 과인을 대장군으로 세웠고, 지금은 제나라의 왕위에까지 올려 주신 엄연한 과인의 주군이외다. 어찌 그런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남면(南面)하여 천하를 다툴 수가 있겠소? 특히 한왕께 맞서는 것은 그 대장군이었던 내게는 바로 반역이 되니, 선생은 이제 과인에게 반역을 권하고 있는 것이오?”

한신은 정말로 두렵고 걱정스러운 듯했다. 괴철의 얼굴이 갑자기 굳고 어두워졌다.

옛말에 이르기를, 하늘이 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도리어 그 나무람을 듣게 되고(천여불취 반수기구·天與弗取 反受其咎) 때가 이르렀는데 결행하지 못하면 거꾸로 그 재앙을 입게 된다(시지불행 반수기앙·時至不行 反受其殃)고 했습니다. 아무쪼록 그대는 깊이 헤아려 계책을 고르십시오.”

그렇게 결연히 말하고는 나무라는 듯한 눈길로 한신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한신도 그 같은 괴철의 권유에 대해서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더 깊이 생각해 볼 것도 없다는 듯 바로 그 말을 받았다.

한왕께서는 나를 두터운 은덕으로 대해 주셨소. 자기의 수레로 나를 태워 주었고, 자기의 옷으로 나를 입혀 주었으며, 자기가 먹을 것으로 나를 먹여 주었소. 내가 들으니 남의 수레를 타는 자는 그의 걱정을 제 몸에 싣고, 남의 옷을 입는 자는 그의 걱정을 제 마음에 품으며, 남의 밥을 먹는 자는 그의 일을 위해 죽는다(식인지식자 사인지사·食人之食者 死人之事)고 했소이다. 내 어찌 이익을 바라 의리를 저버릴(향리이배의·鄕利而倍義) 수 있겠소?”

그런 한신의 말을 듣자 괴철의 얼굴은 더욱 굳고 어두워졌다. 이제는 결연한 기세까지 보이며 숨결을 가다듬어 말했다.

그대는 스스로 한왕과 친분이 두텁다 여겨 그를 위해 만세(萬世)가 지나도 잊혀지지 않을 공업을 세우려 하시지만 신이 보기에는 그것이 큰 잘못인 듯합니다. 처음 상산왕 장이(張耳)와 성안군 진여(陳餘)가 벼슬이 없었을 때에는 서로를 위해 목이 잘려도 마다하지 않을 만큼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장염((,))과 진택(陳澤)이 죽게 된 일로 다투게 되면서 서로를 원망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진여가 제나라 왕 전영(田榮)과 짜고 상산왕 장이를 쳐부순 뒤, 그 땅을 빼앗아 헐()을 다시 조왕(趙王)으로 세웠습니다. 그러자 장이는 처음 항왕에게로 달아나려다 오히려 항왕을 저버리고 사자로 온 항영()의 목을 베어 한왕에게로 의지해 갔습니다. 이에 한왕이 장이에게 군대를 나눠 주어 지수((,,)) 남쪽에서 조나라 대군을 쳐부수고 성안군 진여를 목 베게 하였습니다.

상산왕 장이는 이른바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뒤집어 오히려 성안군 진여를 목 베고, 성안군은 아비같이 따르던 상산왕에 의해 머리와 몸통이 따로 떨어지니, 둘 모두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온 세상이 모두 알아줄 만큼 지극하던 사이가 마침내 서로 잡아 죽이려고 하게 된 까닭은 무엇이겠습니까? 걱정거리는 욕심이 많은 데서 생기고, 사람의 마음은 헤아려 짐작하기 어려운 데가 있기 때문입니다(환생어다욕이인심난측야·患生於多欲而人心難測也).

지금 그대는 충성과 믿음으로 한왕과 가까워지고자 하시지만, 아무래도 그 사귐은 장이와 진여가 서로 마음을 터놓고 사귈 때만은 못할 것입니다. 거기다가 그대와 한왕 사이가 틀어질 일은 저 장염과 진택의 일보다는 많고 큽니다. 따라서 신이 보기에는 한왕이 결코 그대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 믿는 것은 크게 틀린 일입니다.

옛적에 대부 문종(文種)과 범려((,,,))는 망해 가는 월()나라를 붙들고 그 왕 구천(句踐)을 도와 패자(覇者)로 만들어, 공을 세우고 이름을 드날렸지만 끝내 자기 몸은 죽게 되었습니다. 들짐승이 다 없어지면 사냥개도 쓸모없어져 삶아 먹히기 마련입니다. 사귐으로 보아도 그대와 한왕은 장이와 진여의 지극함에 미치지 못하고 충성과 믿음으로 보더라도 대부 문종과 범려가 월왕(越王) 구천에게 바친 것보다 못합니다. 따라서 그대는 그 두 가지 일을 거울로 삼아 깊이 살피고 헤아리셔야 합니다.

거기다가 신이 듣기로, 용맹과 지략이 주군을 떨게 하는 자는 그 몸이 위태롭고(용략진주자신위·勇略震主者身危) 공로가 천하를 뒤덮을 만한 자는 그 상을 받지 못한다(공개천하자불상·功蓋天下者不賞)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때껏 말없이 듣고 있던 한신이 불쑥 물었다.

그것은 또 무슨 소리요? 누가 주군을 떨게 하고, 세상을 뒤덮을 공을 세웠다는 것이오?”

그대 스스로 아시지 못하는 듯하니, 신이 대왕의 공로와 용략(勇略)을 하나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처음 그대가 한중(漢中)에서 진창(陳倉)으로 빠져나와 삼진(三秦)을 차례로 우려 뺀 공이나 함곡관을 나와 다섯 왕을 사로잡고 항복 받은 일만 해도 세상을 놀라게 하기에 넉넉했습니다. 어떤 이는 그 공이 무모한 팽성 공략과 이어진 수수()가의 참패로 지워졌다 하나, 그래도 남는 것이 있습니다. 그대가 흩어진 군사를 모아 경현(京縣)과 삭현(索縣) 사이에서 항왕의 날카로운 기세를 꺾고 낙양 서쪽으로 초나라 군사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 공은 오래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그 뒤 그대는 서하(西河)를 건너가서 한 싸움으로 위왕(魏王) ()를 사로잡고, 다시 대()나라로 밀고 들어가 그 상국(相國) 하열(夏說)을 잡아 죽였습니다. 정형()으로 들어가서는 배수(背水) 일진(一陣)으로 조나라 20만 대군을 쳐부수었으며, 성안군을 목 베고 조왕 헐()을 사로잡았습니다. 연나라를 위압하여 항복 받았으며, 역하에서 제나라 대군을 깨뜨리고 전해(田解)와 화무상(華無傷)을 잡아 죽였습니다.

임치를 떨어뜨린 뒤 남쪽으로 내려가 항왕이 보낸 대군을 쳐부수었고, 동쪽 유수()가로 가서는 초나라의 맹장 용저(龍且)를 목 베었습니다. 그런 다음 이제 서쪽을 향해 한왕에게 승리를 아뢰고 있으니, 이는 이른바 공로는 천하에 둘도 없고 지략은 불세출이다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대는 주군을 떨게 할 위엄을 지녔으며, 상을 받을 수 없는 공을 세웠습니다. 그대는 초나라로 돌아가려 해도 초나라 사람들이 믿지 않을 것이고, 한나라로 돌아가더라도 한나라 사람들이 떨며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와 같이 감당할 수 없는 공로와 위엄을 지니고 그대가 갈 수 있는 곳이 어디겠습니까? 남의 신하로 있으면서 주군을 떨게 할 만한 위엄이 있고, 그 이름은 천하가 우러를 만큼 드높아졌으니, 그래서 나는 그런 그대를 위태롭게 여기는 것입니다.”

괴철이 그렇게 말을 마치자 마침내는 한신도 깊이 헤아리고 따져보는 얼굴이 되었다. 한참을 말없이 앉았다가 문득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오늘 참으로 귀한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제 선생께서는 잠시 돌아가 쉬시지요. 과인도 이 일에 관해 곰곰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지만 한신의 마음이 흔들린 것도 그때 잠깐뿐이었던 듯했다. 패왕의 사자로 온 무섭이 떠나가고 며칠이 지나도록 한신은 괴철을 부르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괴철이 다시 제왕 한신을 찾아보고 간곡하게 말했다.

남의 좋은 꾀를 잘 들으면 일의 성패를 미리 살펴볼 수 있고, 헤아림이 좋으면 존망(存亡)의 기미를 알 수 있다 했습니다(청자사지후야 계자존망지기야·廳者事之侯也 計者存亡之機也). 듣기를 잘못하고 헤아림이 틀렸는데도 오래 평안히 지낼 수 있는 이는 드뭅니다. 남의 말을 잘 분별하여 판단을 그르치지 않으면 자잘한 말로는 어지럽게 만들 수가 없고, 헤아림이 앞뒤를 잃지 않으면 교묘한 말재주로는 헝클지 못하는 법입니다.”

선생께서는 대체 과인에게 무슨 가르침을 내리시려는 것이오?”

괴철이 말을 어지럽게 돌려 하자 한신이 말허리를 자르며 가만히 물었다. 그래도 괴철은 해 온 말투를 바꾸지 않고 이어갔다.

무릇 말 기르는 일 따위에 마음을 쏟는 자는 천자의 권위를 잃게 되고(부수시양지역자 실만승지권·夫隨養之役者 失萬乘之權), 한두 섬의 봉록이나 지키기에 급급한 자는 경상(卿相)의 자리를 지켜내지 못한다(수담석지록자 궐경상지위·石之祿者 闕卿相之位)고 하였습니다. 지혜는 일을 결단하는 힘이 되며 의심은 일을 방해하는 걸림돌일 뿐입니다. 터럭같이 작은 일이나 꼼꼼하게 헤아리고 있다 보면 천하대세를 잊어버리며, 깊이 헤아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결단하여 감행하지 않는 것은 모든 일의 화근이 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사나운 범이라도 머뭇거리고 있으면 벌이나 전갈이 쏘는 것만도 못하고, 아무리 준마라도 닫지 않으면 늙고 느린 말이 천천히 가는 것만 못하다. 맹분(孟賁)과 같은 용사도 쓸데없는 의심으로 망설이기만 한다면 어린아이가 일을 내는 것보다 못하고, 순임금이나 우임금 같은 지혜가 있어도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으면 벙어리나 귀머거리가 손짓 발짓으로 말하는 것보다 못하다.’

이것은 무엇이든 결단하여 실행함이 귀하다는 말입니다. 무릇 공은 이루기는 어려워도 그르치기는 쉬우며, 때는 얻기는 어려워도 잃기는 쉽습니다(부공자난성이이패 시자난치이이실·夫功者難成而易敗 時者難値而易失). 좋은 때를 만나기는 두 번 다시 어려우니 그대는 부디 넓게 살펴 결단하십시오.”

그제야 한신은 괴철이 하려는 말뜻을 알아들었다. 하지만 전날과 마찬가지로 한신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선생의 간곡한 뜻은 알겠으나 과인은 차마 한왕을 저버릴 수가 없소. 한왕도 또한 그러할 것이오. 과인이 이제까지 그를 위해 세운 공이 적지 않은데 설마 과인에게 이미 내린 것을 도로 거두어 가기야 하겠소?”

그러면서 괴철의 권유를 물리쳤다. 괴철은 그 뒤로도 몇 번 더 한신을 찾아갔으나 끝내 자신의 말이 받아들여 지지 않자 깊이 탄식했다.

제왕(齊王) 한신은 반드시 한왕에게 사로잡혀 욕스럽게 죽으리라. 그런데 이 며칠 내가 한신에게 하는 말을 엿들은 사람이 적지 않으니, 그가 죽게 되면 틀림없이 내가 그를 부추긴 것도 드러날 것이다. 한신이 죽는 거야 망설이고 머뭇거린 죄라 해도 나는 이게 무슨 꼴이냐. 어리석은 사냥개를 깨우쳐 주다가 간사한 토끼가 죽은 뒤에는 나까지 그 사냥개와 함께 삶기게 되었구나.’

그러다가 괴철은 갑자기 미친 시늉을 했다. 임치 성안을 히죽거리고 돌아다니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이고 다니다가 갑자기 울고 웃고 하며 사람들을 속였다. 나중에는 무병(巫病)이 든 양 점도 쳐주고 푸닥거리까지 해 주더니 어느 날 임치성 안에서 사라져 버렸다.

괴철 선생이 없어졌습니다. 사람을 풀어 찾아볼까요?”

한신이 괴철을 아끼는 것을 잘 아는 장수가 한신을 찾아와 그렇게 물었다. 한신이 가만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럴 것 없다. 괴철은 과인에게서 떠나간 것이다.”

초나라와 한나라 어느 쪽도 자신이 없어 광무간(廣武澗)을 가운데 두고 노려보기만 하는 사이에 봄이 다하고 여름 4월로 접어들었다. 서광무 꼭대기에서 멀리 누렇게 익어가는 벌판을 바라보던 한왕이 곁에 있던 진평을 돌아보며 문득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밀이 익을 때가 가까워 온다. 밀이 익으면 초나라 군사들은 가까운 들판에서도 군량을 거둘 수 있으니 다시 사납고 거세질 것이다. 어찌할 것인가? 이대로 오지도 않는 원병을 기다리며 마냥 버텨볼 것인가? 아니면 초나라 군사가 더 사나워지기 전에 광무산을 빠져나가 공현(鞏縣)과 낙양(洛陽) 사이로 물러날 것인가?”

하지만 진평은 언제나 그렇듯 태평스럽기 짝이 없는 얼굴이었다. 목소리도 유들유들하게 한왕의 말을 받았다.

초나라 군사들 가운데 강동에서 온 자들은 주로 쌀을 먹고 살아온 족속들입니다. 밀만으로는 군량을 삼을 수는 없으니 밀이 익는 것은 그리 걱정할 것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계포가 팽성에서 보내주는 쌀이 있어 초나라 군사들이 맹탕으로 굶고 있지는 아니합니다. 거기다가 항왕이 시퍼런 기세로 그들을 이끌고 있으니, 저들의 에움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조참과 관영이 이르기를 재촉하는 한편 팽월에게도 사람을 보내 좀 더 활발한 유격(遊擊)을 당부하십시오. 팽월이 초군의 양도(糧道)만 온전히 끊어놓을 수 있다면, 대왕께서 구차하게 물러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팽월을 어떻게 믿을 수가 있는가? 겉으로만 과인의 명을 받드는 척할 뿐, 군사를 내고 거두는 게 도무지 제멋대로이다. 거기다가 이제는 한신에게 지고 쫓겨 간 전횡(田橫)까지 받아들여 보살펴 주고 있다. 한신을 대장군으로 부리는 과인에게 대드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한왕이 한층 어두워진 얼굴로 그렇게 탄식처럼 말했다. 이번에는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장량이 나섰다.

그래도 팽월은 대왕께서 보내신 유고(劉賈)와 노관을 받아들여 지금까지 서로 도우며 잘 싸워 왔습니다. 우리가 광무산에서 이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도 다 팽월의 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전횡을 받아들인 것은 그 형 전영(田榮)이 살아있을 때의 옛 연고 때문이니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그러고는 한왕 곁으로 다가와 나직하게 일러주었다.

또 팽월이 대왕을 거슬러 전횡을 받아들였다 한들, 이렇게 군색한 처지에 빠져 있는 대왕께서 무얼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칼끝을 거꾸로 겨누고 덤비지 않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고 팽월을 다독여야 합니다.”

한왕도 듣고 보니 장량의 말이 옳았다. 서둘러 위태로운 싸움을 벌이는 대신, 불안한 마음을 누르고 느긋하게 형세를 살피며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 삼경 무렵이었다. 갑자기 진채 안이 술렁거리더니 사인(舍人) 하나가 달려와서 알렸다.

적장 하나가 백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찾아와 항복을 청합니다.”

자리에 누웠던 한왕이 반가움을 감추지 못하고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들게 하라. 과인이 그를 보겠다.”

그러자 오래잖아 한 초나라 장수가 한왕의 군막 안으로 이끌려 들어왔다.

그대는 어디 사는 누구며 항왕 밑에서는 무슨 일을 하였는가?”

한왕이 항복해온 초나라 장수에게 부드럽게 물었다. 그 초나라 장수가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저는 회계(會稽)에서 나고 자란 여마동(呂馬童)이라고 합니다. 일찍이 무신군 항량이 오중(吳中)을 떠날 때 향당(鄕黨)의 또래 백여 명과 함께 말 한 필을 구해 타고 따라 나섰습니다. 그 뒤 항왕을 따라 함곡관 안으로 들어갔고, 다시 팽성으로 돌아와서는 낭중(郎中)으로 항왕을 모셔 왔습니다.”

그렇다면 항왕이 늘 아끼고 내세우는 강동의 자제(子弟)겠구나. 어떻게 하여 이렇게 과인을 찾아오게 되었는가?”

백성들은 먹는 것을 하늘로 여긴다(民以食爲天)는 말도 있습니다만, 군대에게는 먹는 것이 곧 싸우는 힘입니다. 군사들은 먹여주지 않으면 싸우려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싸울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항왕은 이미 군사들을 먹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광무의 초나라 진채에서는 때가 되면 언제나 밥 짓는 연기가 오르고, 초나라 군사들의 사기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항왕이 제 군사를 먹이지 못하고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한왕이 한편으로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믿을 수가 없어 그렇게 물었다. 여마동이 수척한 얼굴을 불빛에 드러내며 힘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지난 가을 계포 장군이 팽성으로 돌아가시어 양도(糧道)를 잇자 초군 진영에도 제때에 군량이 이르게 되었습니다만 그것도 잠시였습니다. 이 겨울 들어 한나라 장수 유고와 노관이 팽월과 연결하여 다시 양도를 끊으니 동광무의 초나라 군사들은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세 끼가 두 끼로 줄고, 군마(軍馬)를 잡아 허기를 돕기도 했으나, 이 봄 들어서는 그마저도 어렵게 되었습니다. 멀건 죽으로도 하루 두 끼를 잇기 어려우니 이미 초나라 군사는 싸울 수 있는 군사가 아닙니다. 그래도 저는 명색이 장수라 견딜 만하지만 저 가여운 사졸들이야 무슨 죄가 있습니까? 거기다가 대왕의 군대는 나날이 강해지고 군량도 넉넉하다 하니 싸우기도 전에 굶어죽게 된 사졸들이라도 살리고자 이렇게 도망쳐 나왔습니다.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거두어 주십시오.”

한왕은 원래가 거창하게 대의명분을 내세우는 유자(儒者)나 세객(說客)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여마동이 솔직하게 배고픔을 앞세우며 빌고 드니 오히려 미덥게 여겨졌다.

사냥꾼도 품안으로 날아드는 새는 쏘지 않는다 했다. 과인이 명색 한 나라의 군왕(君王)인데 갈데없어 찾아오는 그대들을 어찌 내치겠는가. 그대를 기사마(騎司馬)로 삼을 터이니 앞으로는 과인을 위해 힘을 다하라. 그대를 따라온 사졸들도 우리 한나라의 기치 아래 싸우겠다면 모두 받아주겠다.”

한왕은 그렇게 말하며 여마동과 그를 따라온 졸개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음날 일찍 장량과 진평을 불러들이게 해 제법 호기롭게 말했다.

자방, 아무래도 때가 된 것 같소. 내일은 일찍 군사를 산 아래로 내려보내 적의 세력을 한번 떠 봅시다. 광무산에 이렇게 갇혀있기도 이젠 지긋지긋하오.”

대왕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장량이 때 아닌 한왕의 호기에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한왕이 간밤에 여마동(呂馬童)이 항복해 온 일을 말하며 한층 기세를 올렸다. 장량도 그 일을 들은 듯했지만 한왕과는 달리 담담한 표정으로 받았다.

그럴수록 나가 싸워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대왕께서 급히 군사를 이끌고 나가시는 것이야말로 지금 항왕이 가장 바라는 일일 것입니다.”

아무리 천하의 패왕이라지만 굶주려 싸울 힘도 없는 군사를 거느리고 무얼 한단 말이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짐승이 돌아서서 대들 때가 가장 위험한 법입니다. 초나라가 군량이 모자라는 것은 사실이나 아직 싸울 힘까지 모두 잃었을 정도는 아닙니다. 싸움은 한 시진이면 대세가 정해집니다. 항왕은 싸움의 기미에 밝은 사람, 한 시진의 예기를 짜낼 수도 없을 만큼 굶주린 군사를 이끌고 억지를 부릴 사람이 아닙니다.”

장량이 그렇게 말해 놓고 다시 달래듯 덧붙였다.

조금만 더 참고 때가 무르익기를 기다리십시오. 곧 때가 이를 것입니다.”

과인은 벌써 여섯 달째 이곳 광무산에 묶여 몸만 다치고 분주하기만 했을 뿐, 한 발도 동쪽으로 내디디지 못했소. 그런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한단 말이오?”

한왕이 못마땅한 듯 볼멘소리를 했다. 그때 진평이 슬며시 끼어들었다.

그냥 기다리시는 게 아니라 대왕께서 불러들이셔야 하겠지요. 항왕의 군사들이 배불리 먹고도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하는 형세를 만드셔야 합니다.”

이렇게 진채 안에 갇혀 있으면서 무슨 일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한왕이 다시 불평처럼 그렇게 물었다. 진평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우리가 대군을 내어 힘으로 항왕의 군사를 쳐부술 수는 없지만, 항왕 또한 더는 우리를 서(西)광무에 가둬 놓을 힘은 없습니다. 대왕께서는 이제 사방으로 사람을 보내 이 답답한 형세를 우리에게 이롭게 뒤집어 놓으실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 사람을 보낸단 말인가? 어떻게 하면 이 형세를 다시 한번 뒤집을 수가 있는가?”

한왕이 드디어 불평을 거두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진평을 보며 물었다. 진평이 무언가 가슴에 품고 있는 계책이 있어 그렇게 나선 것임을 알아차린 까닭이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구강왕(九江王) 경포를 잊고 계십니까? 경포는 수하(隨何)를 따라 대왕의 슬하로 드는 바람에 처자(妻子)와 나라를 잃었습니다. 거기다가 대왕께서는 그에게 회남왕(淮南王)을 약속하시고 적지 않은 군사까지 나눠 주셨는데, 무슨 까닭으로 그를 불러 쓰지 않으십니까?”

회남은 여기서 먼 데다 경포도 여러 고을을 회복했다지만 구강 땅을 다 차지하지는 못했다. 지난번에 항왕이 용저를 보내 그 땅을 휩쓸며 겁을 준 까닭에 그곳 백성들이 아직 항왕을 두려워하고 있는 까닭이다. 따라서 제 앞을 닦기도 급한데 멀리 군사를 보내 과인을 도울 수 있겠는가?”

한왕이 겨우 그것뿐이냐고 힐문하는 듯 진평에게 그렇게 되물었다. 진평이 조금도 자신을 잃지 않고 한왕의 말을 받았다.

회남왕 경포가 굳이 군사를 이끌고 이리로 와야 할 까닭은 없습니다. 구강 땅은 서초(西楚)로 보면 등줄기나 발밑과도 같습니다. 구강이 적의 땅이 되면 서초는 등줄기에 칼이 들이대이고 발밑에 구덩이가 파이는 것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그 때문에 항왕은 그때로서는 가장 심복이던 경포를 구강왕으로 세웠습니다. 따라서 이제 항왕의 원수가 된 경포가 구강 땅을 온전히 되찾는 것만으로도 항왕의 근거지가 되는 서초에는 커다란 위협이 될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다만 회남왕 경포를 도와 그가 구강 땅을 모두 되찾을 수 있도록 돕기만 하면 됩니다.”

한왕이 다시 그런 진평의 대답에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과인은 여기서 항왕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에도 힘겹다. 무슨 힘으로 멀리 있는 경포를 도울 수 있단 말인가?”

대왕께서는 회남왕 경포를 돕기 위해 용맹한 장수와 날랜 군사를 갈라 보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몇 필의 빠른 말로 두 갈래 사신만 갈라 보내면 회남왕은 오래잖아 구강 땅을 모두 되찾고 서초의 등 뒤를 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두 갈래 사신이란 하나는 회남왕 경포에게로 가는 사신이요, 다른 하나는 양() 땅에 가 있는 장군 유고(劉賈)에게로 가는 사신이었다.

한왕은 전해 경포를 회남왕으로 삼았으나, 말로만 가임(假任)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사신을 보내 제왕 한신에게 그랬듯 경포에게도 격식을 차려 회남왕에 오를 수 있게 해 주었다. 옥새를 새기고 의장과 인수를 갖춰 성대하게 즉위하게 함으로써 구강 백성들에게 왕으로서의 위엄과 정통성을 인정받게 하려 함이었다.

다른 한 갈래 사신은 장군 유고에게 노관과 헤어져 구강으로 가라는 한왕의 밀명을 전하게 했다. 노관은 양 땅에 남아 팽월이 초나라 군사의 양도를 끊는 일을 돕게 하고, 유고는 경포를 도와 구강 땅을 평정하게 함으로써 패왕의 등 뒤를 불안하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진평이 그 두 갈래 사행(使行)의 임무를 차분히 들려주자 한왕도 비로소 그것들이 뜻하는 바를 알아들었다.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에 따를 뜻을 나타냈다. 힘을 얻은 진평이 또 다른 계책을 내놓았다.

() () 사람들이 누번(樓煩) 사람들을 많이 불러 쓰듯 우리도 북맥(北貊) 사람들을 불러 써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들의 효기(梟騎)는 용맹스러울 뿐만 아니라 움직임이 빨라 천리 밖에 있어도 이웃의 병마처럼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 연왕(燕王) 장도()는 비록 우리에게 항복하였으나, 군사를 보내 우리를 도울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연나라에는 장도를 따르기를 마다하는 무리가 작지 않은 세력을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도 사람을 보내 그 기마를 빌릴 수 있다면 장차 크게 쓸모가 있을 것입니다.”

북맥은 동북에 있는 삼한의 족속이며(재동북 삼한지속·在東北 三韓之屬) 동이(東夷)의 하나라고 하니, 바로 옛 고구려를 이룬 족속의 하나이다. 당시에는 요하(遼河) 주변에 흩어져 살던 강대한 기마족으로 때로는 중원의 풍운에도 간여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연왕 장도의 다스림 밖에 있는 기마대를 빌려 쓴 일은 나중에 장도가 모반을 일으키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지만, 그때의 한왕에게는 가뭄에 단비 같은 도움으로만 느껴졌다.

천하는 모두가 함께 쓰는 물건이라고 들었다. 구이(九夷)에게인들 천하가 다르랴. 항왕의 포악한 다스림으로부터 함께 지켜내야 할 것이다. 그러하되 만약 북맥(北貊)과 연나라의 효기(梟騎)가 와서 과인을 도운다면 그것은 모두 진() 호군의 가르침 덕분이다.”

한왕은 그렇게 말하며 진평이 시키는 대로 사신을 흩어 보내게 했다. 장량도 한왕이 제쳐놓고 있던 군세 한 갈래를 깨우쳐 주었다.

이미 한()나라에서 관중으로 쳐들어갈 적은 없으니 왕릉(王陵)도 무관(武關)에서 불러내도록 하십시오.”

왕릉은 한왕과 같은 패현(沛縣) 사람으로 한왕이 저잣거리 건달 유계(劉季)였던 시절에는 형으로 모신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뒤에 패공(沛公)이 되어 그를 불렀으나 그 밑에 들기를 마다하다가, 패공이 한왕이 되어 패왕 항우를 치러 함곡관을 나왔을 때에야 비로소 무리를 이끌고 한왕을 따랐다. 왕릉이 한왕을 위해 먼저 하게 된 일은 가만히 풍읍(豊邑)으로 가서 태공 내외와 한왕의 가솔들을 구해 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패왕이 알고 그 어머니를 인질로 잡은 뒤 왕릉을 제 편으로 불렀다. 놀란 왕릉이 패왕에게 사자를 보내 어머니를 만나 보게 하였으나, 그 어머니는 오히려 사자 앞에서 목을 찔러 왕릉에게 한왕을 섬기도록 권했다. 이에 왕릉은 태공 내외와 한왕의 가솔을 보호해 관중으로 들어갔다.

한왕은 왕릉의 장재(將材)를 높이 치고, 그 어머니의 일을 안타깝게 여겨 장군으로 삼았다. 그러나 옛적과 아래위가 바뀐 사이의 어색함이 있는 데다, 왕릉은 또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리는 옹치(雍齒)와 몹시 친한 터라 곁에 두고 부리기가 마땅치 않았다. 한왕 막하에 들기는 하였으나 한왕 가까이 다가들지는 못하고 겉돌기는 왕릉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한왕은 왕릉에게 군사 1만을 주고 무관(武關)에 머물러 한() 땅으로부터 관중으로 침입해 오는 적을 막게 하였다. 그러나 한나라는 한왕(韓王) ()이 패왕에게 사로잡혔다가 도망쳐 온 뒤로는 줄곧 한왕 유방의 세력 아래 있어 무관에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알겠소. 이번에는 왕릉도 불러내 쓰도록 하겠소.”

진평 때문에 귀가 열린 한왕은 장량의 말도 기꺼이 따랐다. 사람을 무관으로 보내 왕릉과 그 군사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여름 6월에 먼저 왕릉이 1만 군사를 이끌고 무관을 나와 광무산 아래에 이르렀다. 왕릉은 오창 남쪽에 새로 진채를 세워 서(西)광무에 있는 한왕의 진채와 기각지세(角之勢)를 이루게 했다. 그 사이에 번쾌가 지키는 산성이 있어 한왕의 진채는 이제 한 겹 두꺼운 철갑을 더 두른 듯했다.

가을 7월에는 경포()가 떠들썩하게 회남왕(淮南王)에 올라 새로운 기세로 구강 땅을 휩쓸어가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초나라 대사마 주은(周殷)이 경포를 잘 막아내고 있었으나, 한왕 유방이 사신을 보내 경포를 왕으로 삼자 경포를 보는 구강 사람들의 눈길이 달라졌다. 거기다가 다시 양 땅에 있는 장군 유고(劉賈)까지 구강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소문이 돌자 민심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시 8월에는 북맥의 효기 3000이 달려와 한나라 진채에 들었다. 연왕(燕王) 장도를 따르지 않는 무리 5000도 기마를 갖춰 한왕을 찾아와 돕기를 원했다.

그 모든 일이 있게 한 장량과 진평에게서 배웠는지 한왕도 눈길을 안으로 돌려 남의 임금노릇 하려는 자로서 해야 할 일을 스스로 찾아냈다. 사방의 민심을 끌어 모으고 장졸들의 충성을 북돋울 일들이었다. 어느 날 한왕이 가까이 두고 부리는 이졸들을 불러 말했다.

지난겨울부터 이 여름까지 이 부근에서 싸우다 죽은 장졸들을 알아보고 먼저 그 시신부터 거두어들이도록 하라. 그들을 정성 들여 염습(殮襲)하고 좋은 수의를 입힌 뒤 관()에 담아 고향집으로 보내 주어라. 뒷날 이 고약한 싸움이 끝나면 여기뿐만 아니라 모든 싸움터에서 과인을 위해 죽은 이들의 유해를 거두어 그 부모처자에게 돌려보내리라.”

한왕이 그렇게 영을 내리자 이졸들이 광무산 아래위와 형양 성고 부근까지 뒤져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한군의 시체를 거두었다. 그리고 한왕이 시킨 대로 염하여 관에 넣은 뒤 고향집으로 돌려보냈다. 그걸 본 한나라 장졸들은 눈물을 흘리며 다짐했다.

죽어 쓸모없는 주검까지 저리 인정을 베푸시니 살아 대왕을 위해 싸우는 우리들에게는 어떠하겠는가. 이 한 몸 돌보지 않고 싸워 반드시 우리 대왕의 날을 보리라!”

한왕은 또 자신을 위해 공을 세우고 죽은 이들에 대한 보훈(報勳)에도 힘을 쏟고 정성을 다했다.

한왕은 먼저 지난해 형양성에서 자신으로 가장하고 거짓 항복으로 패왕을 속인 뒤에 붙잡혀 불타 죽은 기신(紀信)의 혈육을 찾아보게 했다. 안타깝게도 군중(軍中)에는 기신에게 가까운 피붙이가 전혀 없었다. 이에 한왕은 그 고향집에 사람을 보내 그 가솔들에게 많은 금은을 내렸다.

한왕은 그 다음으로 역시 형양에서 끝까지 성을 지키다가 패왕에게 사로잡혔으나 끝내 항복하기를 마다하고 솥에 삶겨 죽은 주가(周苛)의 혈육을 찾아보게 하였다. 마침 진중에는 주가의 종제(從弟)인 주창(周昌)이 중위(中尉)로 일하고 있었다. 한왕은 주창을 어사대부(御使大夫)로 올려 세움으로써 그 종형 주가의 공을 기렸다.

역상((,))을 양나라 승상으로 올려 세우고 4000()의 식읍(食邑)을 약속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한왕을 위해 제나라를 달래러 임치로 갔다가 뜻하지 아니한 한신의 공격으로 화가 난 제왕에게 삶겨 죽은 그 형 역이기((,)食其)에 갈음한 포상이었다. 뒷날의 일이지만, 역이기의 아들 개()도 장수로 싸웠는데, 크게 세운 공이 없이도 자주 후한 상을 받고 제후로 봉해졌다.

한왕은 주가와 함께 형양성을 지키다가 역시 함께 패왕에게 사로잡혀 죽음을 당한 종공()도 잊지 않았다. 진중을 뒤져 종공의 혈육을 찾다가 끝내 가까운 혈육이 없자 기신에게 했듯 그 고향집에 후한 포상을 내려 보냈다. 그리고 이름이 크게 알려지지 않은 다른 많은 영령들도 크게 제사를 올려 위로한 뒤 울며 다짐했다.

만일 하늘이 도와 과인이 천하를 평정하면 이들을 위해 사당을 세우고 사철 향화(香火)가 끊어지지 않게 하리라.”

그걸 보고 있던 장상(將相)과 사대부들까지 새삼 옷깃을 여미며 각오를 새롭게 했다.

지사(志士)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 했다. 이제 우리는 우리를 알아주는 주군을 만났으니, 간과 뇌를 쏟아 땅을 덮고 죽은들 아깝고 두려울 게 무엇이겠는가!”

이렇게 되자 한군의 기세는 안팎, 아래위로 다시 크게 떨쳤다. 한왕이 호기를 되찾아 패왕의 진채를 바라보며 말했다.

됐다. 이만하면 한번 군사를 내어 항왕과 겨뤄볼 만하다. 반드시 싸워 이기지는 못한다 해도 이 지긋지긋한 에움에서 벗어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어두운 표정이 되어 한탄하듯 이었다.

하지만 초나라 군중에 붙잡혀 계시는 아버님 어머님 때문에 그도 어렵겠구나. 실로 이 일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때 한나라 군중(軍中)에는 육고(陸賈)란 막빈(幕賓)이 있었다. 육고는 초나라 사람으로 유자(儒者)였으나 구변이 좋아 늘 한왕 곁에서 일했다. 그 육고가 세객(說客)을 자청했다.

신이 항왕을 찾아보고 태공(太公) 내외분과 왕후마마를 돌려보내도록 달래 보겠습니다.”

원래 한왕은 유자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입만 살아 있는 나약한 자들이라 하여 그 관에 오줌을 누며 짓궂게 놀린 적도 있을 만큼 유자를 얕보았다. 하지만 기신과 주가가 자신을 위해 죽은 뒤로 한왕은 그들을 달리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역이기가 제나라에서 삶겨 죽은 뒤부터는 유자를 함부로 대하는 일이 아예 없어졌다.

그 미련하고 사나운 항왕이 공의 말을 들어 주겠는가?”

오히려 걱정하는 눈으로 육고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육고가 늠름하게 대답했다.

비록 인욕(人慾)의 검은 구름에 가려져 있으나 항왕에게도 보름달같이 밝고 이지러짐 없는 본성(本性)이 있을 것입니다. 오상(五常)의 이치 가운데 으뜸인 효()로 달래 인욕의 검은 구름을 걷어내면 본성의 제월(霽月)이 환히 드러날 것입니다. 아무리 미련하고 사나운 항왕이라 하나 어찌 성현의 가르침을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는 다음날로 말 한 필에 시중꾼 하나만을 딸린 채 초나라 진채로 갔다. 평소 그의 능란한 언변을 잘 알고 있는 한왕은 걱정스러운 대로 한 가닥 기대를 걸고 패왕에게 보낼 예물을 갖춰 육고를 보냈다. 육고가 초나라 진채로 가는 까닭을 아는 한나라 장졸들도 그가 태공 내외와 여후를 무사히 되찾아오기를 한결같이 바랐다.

그런데 한 사람 싸늘한 눈초리로 그런 육고를 바라보는 이가 있었다. 산양(山陽)에서 온 후성(侯成)이란 사람으로, 육고처럼 한왕의 막빈이었다. 후성은 자()를 백성(伯盛)이라 썼는데, 군중에서는 모두 그를 후공(侯公)이라 불렀다. 그날도 일없이 진중을 어슬렁거리다가 진문을 나서는 육고의 뒷모습을 보며 차갑게 쏘아붙였다.

저 덜된 선비놈이 제 잘난 척 우쭐거리며 충신효제(忠信孝悌)를 떠들다가 공연히 풀숲을 건드려 뱀만 놀라게 하겠구나. 세 치 혀만 믿고 나서는 모양인데, 그 혀나 성하게 돌아와도 그보다 더한 다행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이졸이 있어 가만히 장량에게 전해 주었다. 듣고 난 장량이 무슨 까닭인지 갑자기 엄한 표정을 지으며 그 이졸을 단속했다.

육고에게는 육고의 수단이 있을 터, 두 번 다시 후공이 한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둘 사이를 이간시키는 일이 없도록 하라.”

그리고는 한왕과 함께 육고의 일이 어찌 되는가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때 패왕 항우는 아직도 동()광무에 머물러 한왕 유방의 본진이 든든한 산성(山城)으로 바꿔놓다시피 한 서(西)광무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처음 한왕과 광무간(廣武澗)을 사이에 두고 맞서게 된 날로부터 열 달이 넘고, 맹장 용저가 한신에게 죽은 날로부터도 여덟 달이 가까이 지난 때였다.

그런데 뒷사람들에게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은 한나라와 초나라 양군 사이의 그와 같이 길고도 지루한 교착(膠着)이다. 그 열 달 남짓 한왕은 곧 죽어가는 시늉을 하고, 때로는 온 세상이 다 들을 만큼 비명을 질러대면서도 끝내 서(西)광무를 끌어안고 있었다. 패왕은 패왕대로 금세라도 전군을 들어 서 광무를 때려 엎을 듯한 기세였지만, ()광무를 버리고 한왕과 결판을 내려들지는 않았다.

거기다가 더욱 기가 막히는 일은 그런 외형과는 상반된 그 교착의 결과였다. 언제나 밀리고 쫓기면서도 그 열 달 한왕은 실상 사방에 자기 사람을 풀어 천하를 주무르고 있었던 셈이었고, 기세는 요란해도 패왕은 그 사이에 손발 같고 날개 같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꺾이며 시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패왕을 아끼는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움을 넘어 어떤 불길한 주술에라도 걸려든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이해 안 되는 패왕의 주저와 부동(不動)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기억이나 기록은 일쑤 이긴 쪽에 유리하게 편성된다. 거창하게 역사를 승자의 전리품이라고 단언하지 않아도, 그와 같은 시대감정이 역사에 착색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데, ‘사기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사마천의 엄정한 붓끝도 다 드러내지 못한 그 시대의 진상은 있을 것이고, 뒷사람은 어쩔 수 없이 그 행간(行間)에서 그걸 읽어내야 한다.

여러 가지로 미루어보면 패왕 항우는 전투에는 타고난 감각을 지니고 있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걸 잃지 않았던 듯하다. 따라서 패왕이 군사적 재능에 대한 자부나 자기 무오류(無誤謬)의 고집에 갇혀 자기도 모르게 내리막길로 굴러 떨어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때 패왕을 돌이키기 어려운 국면으로 몰아간 주저와 부동은 유별나게 뛰어난 전투감각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광무산에서 서로 견고한 진채를 세우고 맞서게 되면서부터 패왕은 본능적으로 그러한 상태가 자신에게 유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그 때문에 패왕은 여러 번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를 한다. 그러나 그때 이미 패왕의 전투력은 개별적인 전투에서도 한나라에 비해 압도적인 우세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패왕 쪽에 기회가 있었다면 양 땅에서 팽월을 멀리 쫓고 돌아온 처음 한 달 안팎이었다. 그때는 이기고 돌아온 기세에다 후방의 안전과 양도(糧道)가 확보되어 들판에서의 전면전이었다면 패왕은 한왕의 대군을 이길 수 있었다. 그러나 한왕은 서광무에 견고한 진채를 세워 급전(急戰)을 피하고 싸움을 지루한 진지전(陣地戰)으로 이끌었다.

그 다음으로 패왕에게 다시 기회가 있었다면 한왕 유방을 유인해 쇠뇌로 가슴을 맞혔을 때였을 것이다. 그때 한왕이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해 한나라 군사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또 패왕이 그걸 알아차려 맹렬하게 치고 들었다면, 일시적 우세를 넘어 철저하게 한군을 쳐부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한왕은 교묘한 연출로 한군의 동요를 막았고, 패왕까지 속여 위기를 넘겼다.

한왕 유방이 성고 성안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을 때 패왕이 전력을 모아 성고성을 들이쳐 보는 것도 한왕을 사로잡아 전국(戰局)을 유리하게 돌려놓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며칠 머뭇거리는 사이에 제나라의 사신이 달려옴으로써 패왕은 그 기회를 잃고 말았다. 용저가 제나라를 구하기 위해 5만 군사를 빼내간 뒤로 초군의 압도적 우세는 두 번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그런 패왕에 비해 그 열 달 한군은 계속해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먼저 관중으로 돌아간 한왕이 보름도 안 돼 군사 1만을 이끌고 나와 성고 성에 보태더니 다시 보름도 안 돼 소하가 보낸 2만 군사가 광무산에 이르렀다. 그리고 2월에는 제왕이 된 한신이 장량에게 1만 군사를 딸려 보내 서(西)광무에 더했다.

물론 패왕도 그동안 두 손 묶어 놓고 구경만 한 것은 아니었다. 밀이 익어가면서 군량이 여유가 생기자 패왕은 곧 이전의 투지와 자신감을 되찾았다. 패왕은 먼저 팽성에 사람을 보내 그곳을 지키는 계포와 항타에게 더 많은 군사와 물자를 보내주기를 재촉하는 한편, 날카롭게 변화를 살피면서 자기에게 유리하게 판을 흔들어볼 전기(戰機)를 노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별난 패왕의 전투 감각이 무리한 출격을 막았다. 그 사이 한군의 세력은 초나라가 형양에 있는 종리매의 군사들까지 다 동광무로 긁어모은다 해도 스스로 지켜내기조차 어려울 만큼 부풀어 있었다. 거기다가 그때는 이미 패왕에게도, 초나라 장졸에게도 3만 군사로 하루 아홉 번의 싸움을 치르며 왕리(王離)20만 군을 쳐부수던 거록(鉅鹿)의 기세와 투지를 바라기는 어려웠다.

그리하여 괴롭게 바라보고 있는 사이에 한군은 또 한번 부풀어 올랐다. 6월에 무관을 지키던 왕릉이 군사 1만을 이끌고 오창 남쪽에 진채를 벌였고, 8월에 접어들기 바쁘게 북맥(北貊) 기마대와 연나라 군사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왕을 도우러 왔다. 거기다가 양 땅에서는 팽월이 다시 노관과 함께 양도를 끊고, 구강에서는 경포가 유고와 손잡고 움직인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떻게 보면 패왕 항우의 비극은 진나라 말의 왕조교체기에서 전투력이 정치적인 역량보다 우위였던 국면이 끝나면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관중에서 나온 뒤의 지난 3년은 패왕의 눈부신 전투력이 획득했던 모든 것을 정치력의 부재로 잃어가는 과정에 지나지 않은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패왕은 아직도 막연하게 불길한 예감뿐, 자신이 무엇을 왜 잃고 있는지 뚜렷이 알지 못하였다.

그런데 그해 8월 중순 패왕에게도 드물게 기쁜 일이 있었다. 팽성에 가 있던 계포가 주국(柱國) 항타()에게 팽성을 맡기고 1만 군사와 더불어 쌀 3000()을 운반해 왔다. 초나라 군사들로 보아서는 참으로 오랜만에 있게 되는 병력증강이요, 넉넉한 군량 보급이었다. 육고가 패왕을 찾아간 것은 그 때문에 동광무 진채가 한창 들떠 있을 때였다.

한왕의 사신이라고? 내일이면 모두 사로잡혀 땅에 묻힐 놈들이 사신은 무슨 놈의 사신이냐? 흠씬 두들겨 내쫓아 버려라!”

육고가 왔다는 말을 듣자 다시 천길 만길 호기가 치솟은 패왕이 그렇게 말했다. 그때 계포가 가만히 패왕을 말렸다.

창칼이 부딪치고 화살과 돌이 날고 있는 가운데라도 사신을 막는 법은 아닙니다. 한왕이 무슨 소리를 하려는지 한번 들어 보고 사신을 내쫓아도 늦지 않습니다.”

팽성에서 군사와 군량을 끌고 먼 길을 온 공이 있어서인지 패왕이 그런 계포의 말을 선선히 받아들였다.

좋다. 그럼 한왕의 사신을 들게 하라.”

그렇게 육고를 불러들였으나, 그의 말을 귀담아들을 마음은 애초부터 없었다. 패왕은 육고가 군막 안으로 들어서자 눈을 부라리며 윽박지르기부터 했다.

한왕은 어찌하여 항복하지 않는가? 기어이 그 목이 성고성 문루에 높이 매달려야 천명을 깨달으려는가?”

군명(君命)을 받고 온 사신에게 온당한 물음이 못됩니다만 물으시니 대답하겠습니다. 천명은 호기나 허세로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육고가 조금도 겁먹는 기색 없이 그렇게 받았다. 큰 키와 희멀쑥한 얼굴도 육고의 응대에 알 수 없는 품위를 더하였다. 패왕이 무턱 댄 윽박지름에서 벗어난 말투로 다시 물었다.

그럼 천명은 어떻게 정해지는가?”

남의 왕 노릇을 하는 이(왕자·王者)에게는 반드시 그렇게 된 까닭(소이연·所以然)이 있고, 또 반드시 가야 할 길(왕도·王道)이 있습니다. 그 까닭을 갖추고, 그 길을 가는 이에게 마침내 천하가 돌아가는 법입니다.”

틀림없이 그대는 실속 없이 말만 많은 유가(儒家)의 무리 가운데 하나이겠구나. 그대는 한왕을 위해 과인에게 인의예지라도 가르치러 온 것이냐?”

그와 같은 육고의 말에 패왕이 다시 실쭉해진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그래도 육고는 별로 움츠러드는 기색 없이 받았다.

우리 대왕을 위해서가 아니라 천하 창생을 위해서입니다. 또 인의예지가 아니라 왕도를 말하고자 함입니다.”

말하라. 무엇이 천하 창생을 위한 왕도냐?”

그러자 육고가 기다렸다는 듯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했다.

지금 천하는 무도한 진나라의 폭정에서 벗어나자마자 모진 전란에 휩쓸려 여러 해째 시달리고 있습니다. 땅은 애꿎은 젊은이들의 피로 젖고, 하늘은 집과 재물을 불사르는 연기로 어둡습니다. 이때 천하 창생의 임금 노릇을 할 수 있는 이는 무엇보다도 먼저 전란의 고통으로부터 창생을 구해 주는 이일 것입니다. 왕도가 달리 있지 아니합니다.”

외손바닥으로는 손뼉 소리를 낼 수가 없다. 전란이라면 맞서 싸우는 쪽이 있기 마련, 혼자서는 그만두지 못한다. 그런데도 전란을 끝내라면 누가 누구에게 항복하라는 것이냐?”

패왕이 다시 무언가를 참아 주고 있다는 얼굴로 그렇게 물었다. 육고가 어딘가 허둥대는 목소리로 받았다.

어느 한편이 항복하는 것이 아니라 화평을 맺고 각기 군사를 물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태여 사신을 보내 화평을 요청할 것도 없지 않느냐? 한왕이 스스로 군사를 물려 관중으로 돌아간다면 이곳의 싸움은 끝난다.”

우리 대왕의 부모님 되시는 태공 내외분과 왕후 되시는 여후(呂后)께서 초나라 군중(軍中)에 갇혀 계신 지 벌써 두 해가 넘었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 화평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태공 내외분과 여후께서 풀려나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은?”

또 초나라와 한나라 두 군대 사이에 화평이 믿을 수 있게 되려면 서로 돌아서는 등 뒤를 치지 않는다는 약조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싸움터에서는 속임수를 마다하지 않는다 하였으나, 화평에는 속임수가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육고가 거기까지 말하자 패왕이 이제는 완연히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렇다면 과인은 일껏 손에 넣은 귀한 볼모를 모두 놓아 보내고, 제 소혈로 달아나는 너희를 쫓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해야 한다는 말 아니냐? 그게 네가 말한 왕도며 천명을 받는 길이란 말이냐?”

육고가 무언가에 움찔하는 것 같으면서도 애써 기죽지 않은 목소리로 언변을 풀었다.

군자는 남의 사친(事親)을 가로막지 않고 오히려 그 효도를 이루게 하며, 그 지아비 지어미를 가르지 않아 부부의 도리를 다하게 돕는다고 하였습니다. 하물며 남의 임금노릇 하려는 이이겠습니까? 거기다가 패왕과 우리 대왕께서는 돌아가신 무신군(武信君) 앞에서 형제의 의를 맺은 적이 있습니다. 어찌 태공 내외분과 여후가 한낱 볼모에 그치겠습니까? 화평의 약조도 그러합니다. 지금 천하 뭇 백성들은 제후들이 전쟁을 멈추고 싸움터에 끌려간 자식과 형제와 지아비가 돌아올 날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화평을 이루는 것은 곧 민심에 따르는 것이요, 민심을 따름은 또한 천명을 받드는 일입니다.”

그때 갑자기 패왕이 시뻘건 얼굴로 소리쳤다.

닥쳐라. 그 머리를 어깨 위에 붙여 돌아가려거든 이제 더는 혀를 놀리지 말라!”

그리고는 육고가 무어라 대꾸할 틈도 없이 벼락 치듯 꾸짖었다.

네놈이 사신이 아니었더라면 과인은 네놈을 목 베어, 임금을 속이고 윗사람을 놀린 죄를 벌하는 본보기로 삼았을 것이다. 돌아가거든 네 주인 유방에게도 전하거라. 과인은 반드시 이 싸움을 끝내고 천하를 평온하게 할 것이나, 그날은 유방의 목이 저잣거리 높이 매달리는 날이 될 것이라고. 또 전하거라. 과인의 칼이 더러워지지 않게 유방은 그 목을 씻고 기다리라고. 여봐라. 무엇들 하느냐? 어서 저놈을 끌어내 광무간 아래로 내던져 버려라!”

패왕은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불길이 뚝뚝 듣는 듯한 두 눈을 부릅떠 육고를 노려보았다. 그 바람에 육고는 다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만큼 무참하게 초나라 진채에서 내쫓겼다. 육고가 무안한 얼굴로 돌아가자 한왕의 얼굴은 실망과 걱정으로 어두워졌다. 그때 장량이 가만히 한왕을 위로했다.

태공 내외분을 구하고 화평을 얻어 관중으로 돌아가는 일이라면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무엇 때문에 그토록 뻗대는지 알 수 없으나, 머지않아 항왕은 싫어도 대왕의 뜻을 받들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오? 어째서 그리 될 수 있단 말이오?”

한왕이 다시 기대에 찬 눈빛으로 장량을 보며 물었다. 장량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조참과 관영의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지금 두 길로 서초의 가슴이나 배 같은 땅을 가로질러 오고 있는데 그 기세가 볼 만한 모양입니다. 조참은 제북에서 하수(河水)를 따라 내려오며 서초(西楚)의 서북 변두리를 휩쓸고 있고, 관영은 설군(薛郡) 쪽으로 내려가 서초 동남의 여러 성을 떨어뜨린 뒤, 이제는 회수(淮水)를 건너려 하고 있다고 합니다. 관영에게 사자를 보내 팽성을 들이치게 하시면 항왕은 이곳 광무산에서 더 버티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장량의 말은 옳았다. 장량이 동광무에서 한왕 유방에게 조참과 관영의 움직임을 그와 같이 들려주고 있을 무렵 서광무의 패왕 항우는 팽성의 항타가 보낸 유성마를 통해 한층 자세한 그곳의 전황을 듣고 있었다.

제왕 한신이 한나라 장수 조참과 관영을 풀어놓아 산동(山東)이 어지럽기 짝이 없습니다. 조참은 제북에서 내려와 창읍(昌邑)과 안양(安陽)을 휩쓴 뒤, 정도(定陶)를 노리고 있는데 그 기세가 여간 날카롭지 않습니다. 대군을 원병으로 보내지 않으면 정도는 곧 서초의 땅이 아니게 됩니다.

한나라 기장(騎將) 관영은 한왕을 구하러 광무산으로 가지 않고 설군으로 밀고 들어 그 군장(郡長)을 쳐부수고 기장 한 명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이어 관영은 사수군을 가로지르며 부양(傅陽) 하상(下相) () 취로(取盧)를 휩쓴 뒤에 회수를 건너 광릉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신은 항성(項聲)과 설공(薛公) 담공()에게 군사를 주고 회수 북쪽으로 보내 관영을 막게 하였으나, 그 군세가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하비() 남쪽에서 관영을 막지 못하면 다시 팽성이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말을 듣자 계포가 군사들을 이끌고 군량을 날라 와 치솟았던 패왕의 기세는 일시에 가라앉았다. 곁에서 장졸들이 듣고 있는 것도 잊고 큰 소리로 탄식했다.

쥐새끼 같은 것들이 사방에서 날뛰는구나. 과인의 사나운 장수들과 날랜 병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어찌 이리도 과인을 외롭게 하는가!”

그러면서도 광무산의 진채를 거두고 근거지인 서초로 돌아갈 생각은 않았다. 그 바람에 광무간을 사이에 둔 초() () 양군의 억지스러운 교착 상태는 다시 이어졌다. 폭발적인 전투능력은 탁월하나 긴 전쟁을 경영할 능력이 없는 패왕 때문에 이전과 마찬가지로 날이 갈수록 초군만 사그라지고 말라가는 묘한 소강상태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팽성에서 온 증원군은 틀림없이 초나라 장졸들의 사기를 올려주었으나 오래가지는 못했다. 나날이 부풀어 오르는 한군의 군세가 실감되면서 자라난 두려움과 불안이 그 효과를 지워버린 탓이었다. 3000()의 군량도 이미 오랫동안 굶주려 온 10만 가까운 대군에는 대단한 것이 못 되었다. 처음 쌓아 두었을 때는 산더미 같던 쌀가마는 열흘이 안돼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거기다가 다시 팽성에서 날아든 소식이 광무산에 있는 초군의 사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 사이 회수를 건넌 관영은 초나라의 여러 성을 차례로 떨어뜨리며 오중(吳中)으로 내려갔다. 광무산에 묶여 있는 한왕 유방에게는 당장 도움이 되지 않았으나, 초나라의 심장부를 휩쓸고 다님으로써 멀리 나가 있는 패왕을 혼란시키고 불안하게 만들 수는 있었다. 그런데 광릉(廣陵)에 이르렀을 무렵 탐마가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해 왔다.

팽성을 지키는 초나라 주국(柱國) 항타()가 장군 항성과 설공(薛公), 담공()을 회수 북쪽으로 보내 우리가 돌아갈 길을 끊으려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관영은 얼른 군사를 돌려 회수를 건넌 뒤 다시 탐마(探馬)를 풀어 초나라 군사들이 있는 곳을 알아보게 했다. 오래잖아 탐마가 돌아와 알려 주었다.

담공과 설공은 하비() 남쪽에서 나누어 진채를 벌리고 있고, 항성은 하비 성안에서 그 둘과 호응하는 형세를 이루고 있다고 합니다.”

하비라면 팽성에서 날랜 군사로 하룻길이면 달려갈 수 있는 거리였다. 항타가 하비에다 세 갈래 군사를 모두 몰아 두었다는 것은 그만큼 팽성이 위협을 느낀다는 뜻이었다.

하비를 팽성의 동쪽 외성(外城)쯤으로 쓰려고 하는구나. 하비성만 떨어뜨려도 광무산의 우리 군사들이 받고 있는 압력은 크게 줄어들겠다.’

관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군사를 몰아 먼저 하상(下相)으로 달려갔다. 얼마 전에 한번 관영의 군사들에게 떨어져 본 적이 있는 하상은 아무 저항 없이 그들을 받아들였다. 관영은 거기서 하루 밤낮 군사들을 편히 쉬게 한 뒤 그 특유의 불같은 투지를 되살려 벼락같이 하비로 치고 들었다.

관영이 이끄는 군사들은 한나라의 낭중(郎中) 기병을 주력으로 하고 있어 남다른 기동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성안에서 푹 쉰 인마를 휘몰아 하비까지 100리도 안 되는 길을 새벽같이 달려가니 그들이 오고 있다는 소문보다 인마가 빨리 하비에 닿았다.

그때 담공과 설공은 하비 성밖 30리 되는 곳에 각기 진채를 벌리고 서로 의지하는 형세를 이루고 있었다. 동쪽에 있던 담공의 진채에서 풀어 놓은 탐마가 먼저 관영이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 저희 장수에게 달려가 알렸다. 그러나 그때 이미 관영이 이끄는 기마대의 선두는 탐마의 꼬리를 물고 달려 온 듯 담공의 진채로 뛰어들고 있었다.

관영이 멀리 광릉에서 올라오자면 며칠은 걸리리라고 보아 느긋하게 진채를 벌리고 있던 담공은 그 갑작스러운 강습에 크게 놀랐다. 겨우 갑옷 투구를 걸치고 말위에 올랐으나 홍수처럼 진채를 휩쓸고 있는 관영의 기마대를 보자 맞서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10리도 안 되는 설공의 진채에 전갈을 보낼 겨를도 없이 진채를 버리고 달아났다.

설공도 느긋하게 기다리기는 담공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담공보다 10리 서쪽에 진채를 내린 바람에 담공보다는 조금 일찍 관영이 쳐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관영의 군사들에게 담공의 진채가 무너지면서 일으키는 소란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로 보아서는 관영이 오는 것을 담공보다 미리 안 것이 설공에게는 오히려 재앙이 되었다. 설공이 겁먹고 놀란 군사들을 꾸짖어 관영의 군사를 막아 보려 했으나 이미 담공의 진채를 짓밟고 덮쳐 오는 그 기세를 당해 낼 수 없었다. 오래잖아 진채는 무너지고 설공은 관영에게 사로잡혀 목이 잘렸다.

관영이 설공의 잘린 머리를 창대에 꿰어 앞세우고 하비성을 에워싸니 성을 지키던 항성은 겁을 먹었다. 겨우 이틀을 버티다가 밤중에 몰래 성을 버리고 팽성으로 달아나 버렸다. 팽성을 지키던 항타가 항성의 말을 듣고 놀라 그 소식을 패왕에게 전하니 동()광무의 초군은 더욱 기세가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동광무의 초군 진채와는 달리 서광무의 한군 쪽은 그 며칠 사이에도 하루하루 눈에 띄게 기세가 살아났다. 그리하여 강한 적군에게 에워싸여 있는 답답함과 억눌린 느낌이 차츰 은근한 사기로 바뀌고 있는데, 다시 산 아래 왕릉의 진채에서 뜻밖의 전갈이 왔다.

옹치(雍齒)가 군사 500명을 이끌고 항왕에게서 달아나 신의 진중으로 찾아왔습니다. 지난날 대왕께 거역한 일을 진심으로 뉘우치며 받아들여 주시기를 간절하게 빌고 있습니다.”

옹치란 이름을 듣는 순간 한왕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었다. 가슴에는 그대로 활활 불길이 이는 듯하고 얼굴의 살점이 떨려 왔다. 돌이켜 볼수록 끔찍한 악연(惡緣)이었다.

패현 저잣거리를 떠돌던 무렵부터 옹치는 한왕에게 숨어있는 저주와도 같은 존재였다. 저잣거리 건달들이 한왕의 기이한 풍채나 출생의 신비 같은 것에 하나같이 감탄할 때도 옹치는 싸늘하게 비웃음으로 쏘아볼 뿐이었고, 가깝게 둘러싼 무리 모두가 한왕의 너그러움이나 알지 못할 기품에 고개 숙일 때에도 옹치만은 빳빳이 머리를 쳐들고 그 무리를 겉돌았다. 왕릉은 하늘같이 여기면서도 한왕은 손위인 것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한왕이 패공(沛公)에 추대되자 옹치는 겨우 그 밑에 드는 시늉을 했으나, 그 시늉마저 오래가지는 못했다. 한왕이 믿고 맡긴 풍읍(豊邑)을 들고 위나라에 항복해 버려 천하를 향해 내닫던 한왕의 불같은 기세에 찬물을 끼얹었다. 풍읍을 되찾으려는 한왕을 그렇게 격분하게 만들던 옹치의 집요하고도 간교한 저항. 그 밉살맞은 옹치를 잡기 위해 한왕은 마음에도 없는 경구(景駒)를 찾아가고 스스로 항량(項梁) 밑에 드는 굴절을 겪어야 했다.

한왕이 항량의 군사를 빌려 풍읍을 되찾은 뒤에도 옹치의 저주는 이어졌다. 위표(魏豹)에게로 달아났다가 위표와 함께 패왕 밑에 들게 된 옹치는 한왕이 몰리던 지난 3년 내내 무슨 악몽처럼 곳곳에서 나타나 괴롭혔다. 한왕이 수수() 가에서 쫓길 때 초나라 장졸들을 이끌고 앞장서 뒤쫓은 것도 옹치였고, 패왕이 태공(太公) 내외와 여후(呂后)를 사로잡으려 군사를 풍읍으로 보냈을 때 그 길라잡이 노릇을 한 것도 옹치였다. 한왕이 형양과 성고를 오락가락하며 어렵게 버티던 시절뿐만 아니라 광무산에 갇혀 보낸 지난 1년도 옹치는 얼마나 자주 악몽과도 같은 그 모습을 초군 선두에 나타내어 한왕의 가슴을 섬뜩하게 했던가.

어떻게 할까요?”

한왕이 생각에 잠겨 말이 없자 왕릉의 사자가 기다리다 못해 그렇게 물었다. 퍼뜩 정신이 든 한왕은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살피는 눈길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장량과 진평의 모습이 먼저 들어왔다. 다른 장수들도 궁금하게 여기는 눈치로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듯했다. 그런 그들을 보자 그때까지의 격렬한 감정과는 전혀 다른 자각이 한왕을 일깨웠다.

나는 저들의 임금이다. 이 세상 모두의 것(공기·公器)이라는 천하를 다투려 한다. 사사로운 감정을 앞세워 어찌 공변된 천하를 얻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자각이 그동안의 치열한 원혐과 분노까지 한꺼번에 씻어내지는 못했다.

옹치를 당분간 왕릉 장군의 진채에 머무르게 하여 과인의 눈에 띄게 하지 말라. 그리고 옹치에게도 일러라. 공을 세워 죄를 씻은 뒤에야 과인을 볼 수 있으리라고.”

겨우 그와 같은 절충으로 옹치를 받아들였으나, 그때 이미 한왕에게는 왠지 환하게 밝아 오는 동녘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관영이 설공을 죽이고 하비()를 차지했다는 소식은 8월이 다하기도 전에 서(西)광무에도 전해졌다. 옹치가 돌아온 일로 은근히 기세가 올라 있던 한왕은 그 소식을 듣자 장량을 불러 말했다.

자방(子房)이 원하는 대로 일이 되어 가는 것 같소. 관영이 하비성을 떨어뜨렸다면 팽성 옆구리에 창끝을 들이댄 것이나 다름이 없소. 관영에게 사람을 보내 팽성을 들이치라고 재촉하고, 다시 항왕에게 사람을 보내 달래 보는 게 어떻겠소? 부모님을 과인에게 돌려보내고 화평을 맺은 뒤 각기 군사를 거두어 봉지(封地)로 돌아가자고 하면 아무리 항왕이라도 이제는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이오.”

대왕께서 바로 보셨습니다. 신도 막 대왕께 그 일을 권하려던 참입니다.”

이번에는 장량도 그렇게 선선히 대꾸했다. 그때 한왕이 무엇을 생각했는지 문득 이맛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하지만 누구를 사자로 보냈으면 좋겠소? 원래 이런 일은 역((,)) 선생 이기(食其)나 수하(隨何) 같은 사람들이 잘 해냈으나 하나는 과인을 위해 나섰다가 이미 죽었고, 다른 하나는 지난번에 관중으로 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소. 또 구변 좋은 육고(陸賈)조차 달포 전에 항왕을 달랜답시고 갔다가 욕만 보고 돌아왔으니, 이번에는 누굴 보내야 될지 모르겠구려. 그렇다고 자방 선생이나 진()호군을 보낼 수도 없고.”

장량이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었던 듯 별로 망설이는 법 없이 한왕의 말을 받았다.

신이 한 사람을 천거하겠습니다. 마치 이 일을 하기 위해 지금까지 군중(軍中)에 붙들어 둔 것 같은 사람입니다.”

그게 누구요?”

한왕이 한편으로는 반갑고도 다른 한편으로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렇게 물었다.

막빈(幕賓)으로 있는 후공(侯公)입니다. 틀림없이 항왕을 달래 낼 수 있을 것입니다.”

후공이라, 막빈으로 있는 후공이라, 후성(侯成). 그 비쩍 마르고 눈빛이.”

한왕이 그러면서 여러 막빈 중에서 후공을 따로 기억해 냈다. 그러나 그 얼굴빛은 별로 밝지 않았다. 한참이나 이름에 이끌려 나온 인물을 머릿속에서 살피는 듯하더니 별로 탐탁잖아 하는 목소리로 다시 장량에게 물었다.

자방은 어째서 후공이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다고 보시오?”

후공은 지난번 육고가 우리 진채를 떠날 때 이미 일이 잘되지 않을 것임을 알아보았습니다. 육고는 공연히 숲을 헤쳐 뱀만 놀라게 할 것이며, 어깨 위에 목이 남아 돌아오면 다행일 것이라고 공언했다고 합니다.”

남이 하는 일을 두고 등 뒤에서 이러쿵저러쿵 함부로 말하기는 쉬운 일이오. 또 그 말이 용케 맞아떨어졌다 하더라도, 그게 반드시 후공의 성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잖소?”

그렇지 않습니다. 후공이 그렇게 엄중한 일을 군중(軍中)에서 공공연하게 떠들어 댄 것은 나름대로 그 일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정히 궁금하시면 그를 불러 물어보신 뒤에 사자로 보내셔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자 한왕도 후공을 불러 보아 밑질 게 없다는 생각이 든 듯했다.

그렇다면 후공(侯公)을 불러들여라.”

한왕이 좌우를 돌아보며 그렇게 명을 내리자 곁에 있던 군사들이 달려가 후공을 찾아왔다. 후공이 비쩍 마른 몸에 후줄근한 차림으로 불려오자 한왕이 더욱 탐탁지 않아 하는 눈길로 내려다보며 따지듯 물었다.

과인이 듣자 하니, ()은 지난번 육고(陸賈)가 항왕에게 사자로 가려고 우리 진중을 떠날 때 이미 일이 이뤄지지 않을 것임을 여럿 앞에서 잘라 말한 적이 있다고 했소. 그 까닭이 무엇이오?”

후공이 불길하게 느껴질 만큼 검고 깊은 눈길로 한왕을 마주보며 대답했다.

주고받을 것이 있는 두 진중(陣中)을 오가며 사자 노릇을 하는 것은 사고팔 물건이 있는 두 물주(物主) 사이를 오가며 거래를 성사시키려는 거간과 같습니다. 주고받을 것에는 반드시 값이 있기 마련이며 수단 좋은 거간이 하는 일은 양쪽이 모두 흡족해하는 값을 찾아 서로에게 권하여 거래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때 대왕께서 사고자 하신 것은 태공 내외분과 여()왕후였고, 그 두 기화(奇貨)를 군중에 가두고 있는 항왕은 진작부터 높은 값을 불러왔습니다. 그런데 미련하고 덜 떨어진 선비 육고는 대왕께서 치르실 수 있는 값도 물어보지 않고 실속 없이 요란하기만 한 유가(儒家)의 인의효제(仁義孝悌)만 떠들썩하게 앞세우고 갔습니다. 곧 치러야 할 값도 알지 못하면서 귀한 물건을 거간하러 간 셈이니 어찌 그 거래가 성사될 수 있겠습니까?”

한왕도 포의(布衣) 시절에 장터 바닥을 오래 헤맸으나 사사롭게는 부모와 처자의 생사가 걸린 일이요, 크게는 천하의 형세가 걸린 일을 후공이 오직 거간이 물건 사고파는 일에 비해 말하자 적지 아니 기분이 상했다. 애써 성난 기색을 감추고 다시 후공에게 무슨 다짐이라도 받듯이 물었다.

그럼 공이라면 그 거간을 성사시킬 수 있겠는가?”

대왕께서 넉넉한 값만 치르시겠다면 반드시 못할 것도 없습니다.”

한왕의 심사가 별로 좋지 않은 것을 아는 것 같으면서도 후공이 한결같은 말투로 받았다. 그 음침하리만치 어둡고 표정 없는 얼굴에 더욱 심사가 뒤틀린 한왕이 한층 거칠게 물었다.

그럼 공은 과인이 얼마를 주면 과인의 부모님과 한() () 두 나라의 화평을 항왕에게서 사 올 수 있겠는가?”

홍구(鴻溝) 이동(以東)의 땅을 주십시오. 대왕께서 그 땅을 항왕께 값으로 내놓으시겠다면 이 거래를 성사시켜 보겠습니다.”

후공이 이번에도 움츠러드는 기색 없이 그렇게 대꾸했다. 한왕이 문득 알 수 없다는 눈빛으로 후공을 보며 물었다.

홍구 이동이라고? 그 땅이 어떻게 되는가?”

홍구는 형양 동쪽 20리 되는 곳에서 동남쪽으로 이어져 회수(淮水)와 사수(泗水)로 들어가는 사람이 만든 물길(溝渠)입니다. 대량성(大梁城)을 가운데 두고 남북 둘로 나뉘는데 그 북쪽은 시황제가 판 것으로 하수(河水)의 물을 끌어들여 대량에 물을 대는 홍구(洪溝)이고, 남쪽은 동쪽으로 이어지다 양무현(陽武縣) 남쪽에서 관도수(官渡水)가 됩니다.”

그렇다면 홍구 동쪽은 이미 초나라 땅이거나 항왕이 힘으로 차지하고 있는 땅이다. 과인이 그걸 준다고 항왕이 비싼 인질을 내놓고 과인과 화평을 맺겠는가?”

한왕 유방이 들을수록 의심쩍다는 듯 그렇게 물었다. 후공이 오히려 차분해진 목소리로 한왕의 물음을 받았다.

얼른 보아서는 대왕의 말씀과 같지만 가만히 따져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 동북의 조() () ()는 모두 대왕께서 세우셨거나 대왕께 항복한 왕들이 다스리고 있고, 가운데 양() 땅은 팽월이 휘젓고 다니고 있으며, 남쪽 구강(九江)도 경포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거기다가 동쪽 하비에는 또 관영이 팽성을 엿보며 기세를 떨치고 있으니 결코 항왕의 다스림 아래 있는 땅이 못됩니다. 대왕께서 홍구(鴻溝) 이동의 땅을 내놓겠다는 말에는 제왕(齊王) 한신과 조왕(趙王) 장이를 불러들이고, 연왕(燕王) 장도와 양() 상국 팽월, 회남왕(淮南王) 경포를 단속하겠다는 약조가 담겨 있는 셈이라 항왕도 무시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래도 그 땅은 애초부터 항왕이 차지하고 있던 것이었다. 항왕의 끝 모를 자만으로 보아, 겨우 원래의 제 것을 되찾기 위해 두 번 다시 잡기 어려운 귀한 볼모까지 내놓고 화평을 맺는 것이 당키나 하겠는가?”

한왕이 다시 무슨 심술이나 부리는 것처럼 후공에게 그렇게 따져 물었다.

그래도 군왕의 체면을 지킬 만한 구실은 될 것입니다. 거기다가 거간꾼에게는 거간꾼의 수단도 있지 않겠습니까?”

거간꾼의 수단이라. 그래 후공은 거간으로 어떤 수단을 부릴 작정인가?”

그제야 한왕도 조금씩 기대하는 눈빛을 드러내며 물었다. 후성이 서두르는 기색 없이 대답했다.

속임수와 감추거나 부풀리는 것만이 거간꾼의 수단은 아닙니다. 올곧게 알려 주고 일깨우는 것이 가장 좋은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올곧게 알려 주고 일깨운다고?”

그렇습니다. 항왕이 반드시 대왕의 흥정을 받아들여야 함을 일깨워 줄 작정입니다.”

그게 무엇인가?”

항왕이 지금 같은 형세로 이곳에 머물기를 고집하면 죽을 길밖에 없고, 대왕의 흥정을 받아들여 동쪽으로 물러나면 살길이 열릴뿐더러 다시 대왕과 천하를 다투어 볼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곧 초나라 군사는 여기서 억지로 버티다가는 천천히 말라죽어갈 뿐이지만, 돌아가 대오를 정비하고 양도(糧道)를 확보하면 이내 옛날의 눈부신 전투력을 회복하여 홍구 서쪽의 땅을 다시 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은 그 일을 항왕에게 일깨워 주려 합니다. 아무리 우직한 항왕이라도 그 뜻을 알아들을 것입니다.”

후공의 그와 같은 말에 한왕은 갑자기 가슴이 섬뜩하였다. 패왕이 후공의 말을 따라 물러났다가 다시 힘을 기른 뒤에 관중으로 밀고 든다면 그때는 정말로 당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당장 급한 일은 볼모로 잡혀 있는 부모와 아내를 되찾고 코앞에 들이댄 듯한 패왕의 칼날을 피하는 것이었다. 후공만이 그 일을 해낼 것 같아 마지못해 사자로 삼았으나, 마음 한구석은 왠지 개운치 못했다.

부모님을 구하고 화평을 끌어내는 일이 급해 후공을 사자로 쓰기는 하지만 왠지 마음은 어둡기 짝이 없구려. 후공이 항왕에게 해주려는 말은 바로 항왕에게 훌륭한 헌책(獻策)이 될 수도 있소. 항왕이 그대로 따르면 우리 한나라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워질 수도 있으니, 그 올곧음이 참으로 과인을 위해 부리는 수단인지, 이쪽저쪽에 양다리를 걸치는 것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소. 틀림없이 후공은 그가 사는 나라를 평안하게 할 수도 있지만, 기울게 할 수도 있는 사람일 것이오.”

한왕은 후공이 군막을 나가기 바쁘게 장량을 보고 탄식처럼 말했다. 장량이 그런 한왕을 위로하듯 말했다.

후공이 항왕을 달랠 수만 있다면 우리 한나라로 보아서는 어김없이 나라를 평안하게 한 사람이 됩니다. 그때는 평국군(平國君)으로 세워 그 공을 기려야 할 것입니다.”

한편 사자로 뽑힌 후공은 길을 떠나기에 앞서 상복부터 한 벌 마련했다. 그리고 그 상복에다 상장(喪杖)까지 갖추고 비틀거리는 나귀에 오른 뒤 시중꾼 하나만 딸리고 동()광무의 초나라 진채를 찾아갔다. 파수를 보던 초나라 군사가 그런 후공을 진문(陣門) 곁에 잡아두고 패왕에게 달려가 알렸다.

한나라 진채에서 다시 사람이 와서 대왕께 뵙기를 청합니다.”

한왕 유방이 보낸 사자라더냐?”

패왕이 별생각 없이 물었다. 그런데 그 대답이 괴이쩍었다.

사자가 아니라 대왕께 문상(問喪)을 왔을 뿐이라고 합니다.”

무어라? 문상을?”

. 상복을 입고 상장을 짚었는데, 그 정상(情狀)이 자못 구슬픈 데가 있습니다.”

그 말에 잠시 어리둥절해 하던 패왕이 이내 굳어진 얼굴로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세객(說客)이 온 모양이로구나. 여봐라. 어서 군막 앞에다 큰 솥을 걸고 물을 채운 뒤 불을 지펴라. 제 놈이 괴이쩍은 복색으로 왔으니 과인도 별난 자리를 마련해 맞아야겠다.”

이윽고 상복을 갖춰 입은 후공이 패왕의 군막으로 불려 왔다. 패왕이 먼저 서슬 퍼런 어조로 물었다.

너는 어디서 온 누구며, 무엇 때문에 과인을 찾아 왔느냐?”

신은 산양(山陽)에서 온 후() 아무개란 떠돌이 서생입니다. 오늘 특히 대왕의 장례가 가까운 걸 보고 그냥 있을 수 없어 이렇게 문상을 왔습니다.”

후공이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그렇게 대꾸했다. 패왕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겁을 주었다.

진중에서는 장졸의 사기를 해치는 죄가 그 어느 죄보다 크다는 것을 너도 알 것이다. 그런데 너는 불길한 상복에 상장까지 짚고 와서 요망한 소리로 우리 장졸들의 사기를 해쳤다. 하나 비록 네 말이 요망스럽다 해도 이치에 닿으면 살려주려니와, 다만 유방의 세객으로 우리 군심(軍心)을 어지럽히러 온 것일 뿐이라면 너는 저 가마솥에 삶기게 될 것이다. 말하라. 어째서 과인의 장례가 가까웠느냐?”

그러나 후공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검고 깊은 눈을 크게 부릅떠 패왕을 보다가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했다.

신은 여러 대를 산양(山陽) 땅에 살아온 옛 초나라의 유민으로서 부조(父祖)로부터 물려받은 간절한 염원은 초나라가 망국(亡國)의 한을 씻고 다시 일어나 번성하는 것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 일어나시어 진나라를 쳐 없애시고 서초(西楚)를 일으키시니 일생의 한이 풀리는 듯했습니다. 비록 몸은 구차한 식객(食客)으로 한왕의 막하에 빌붙어 지내나 마음은 언제나 조국 초나라의 천하 제패(制覇)를 빌었습니다.

그런데 이 몇 달 가까이서 살펴보니 초나라의 군사는 장마철 길 위의 수레바퀴 자국에 사는 미꾸라지 같은 신세가 되고, 대왕께서 위태롭기는 불붙은 섶 위에 취해 잠드신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비가 그치고 수레바퀴 자국의 물이 마르듯 그때그때 겨우 대던 군량마저 끊어지면 범 같은 강동 용사들의 의기도 아무 쓸모가 없으며, 이미 대왕의 섶에 옮아 붙은 한신과 경포 팽월이 지른 불길은 이대로 두면 머지않아 대왕까지 살라버릴 것입니다.”

후공이 거기까지 말했을 때 패왕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소리쳤다.

닥쳐라! 그 무슨 무엄한 소리냐? 곱게 삶기기가 싫어 혀까지 뽑히려 드느냐?”

벽력같은 고함이었지만 후공은 몸도 한번 움찔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패왕의 말을 받았다.

신의 말이 틀렸으면 무사들을 수고롭게 할 것 없이 스스로 가마솥에 뛰어들 것이니, 대왕께서는 부디 신이 하는 말을 마저 들어 주십시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하루빨리 한왕과 화평을 맺으시고 팽성으로 돌아가 뒷날을 기약하지 않으십니까? 기름진 오초(吳楚)의 땅으로 군사를 물려 오래 굶주린 그들을 배불리 먹이면 저 거록(鉅鹿)을 구하고 함곡관을 깨뜨릴 때의 투지와 기백을 되찾기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진나라의 원교근공(遠交近攻)을 배워 먼저 가까이 있는 경포와 팽월부터 잡아 죽이고 다시 동쪽으로 한신을 쳐부수면 홀로 남은 한왕 유방을 사로잡는 일은 손바닥에 침 한번 뱉는 것으로 넉넉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왕께서는 쌀 한 톨 없는 동()광무 꼭대기에 굶주린 대군을 묶어놓으신 지 벌써 열 달이 넘습니다. 한왕이 자리 잡은 서(西)광무는 오창이 멀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대로 큰 뒤주 같은 혈창(穴倉)을 품고 있어 군량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거기다가 한왕은 관중(關中)과 산동(山東)뿐만 아니라 북맥(北貊)에서까지 군사를 끌어와 한군은 머릿수로도 초군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또 신이 알기로 한왕은 사방으로 제후들을 꾀어 초나라의 양도(糧道)를 끊고, 대왕의 근거가 되는 팽성까지 위태롭게 만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왕께서는 굶주린 군사로 배부른 군사를 에워싸고 계시며, 적은 군사로 많은 군사를 에워싸고 계시며, 돌아갈 땅마저 위태로운 군사로 든든한 제 땅을 등지고 싸우는 군사를 에워싸고 계신 꼴입니다. 하지만 그나마 이제 대왕의 날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초군의 군량이 다하고 구원하러 올 우군(友軍)도 없다는 것은 한왕도 잘 알고 있습니다. 팽성이 떨어지기를 기다려 대군으로 동 광무를 에워싸고 거꾸로 쳐 올라오면, 굶주린 데다 돌아갈 곳 없어 의기마저 상한 초나라 군사가 어떻게 그들을 당해내겠습니까? 아무리 천신(天神) 같은 대왕의 무용인들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지 않는 바에야 어찌 이 높은 광무간을 뛰어 내려 빠져나가시겠습니까? 이에 신은 감히 대왕의 장례가 멀지 않았다고 아뢰는 것입니다.”

말을 마친 후공은 패왕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상복을 훌훌 벗어던지며 이제 막 끓기 시작하는 가마솥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런 후공을 오히려 다급한 목소리로 불러 세운 것은 패왕이었다.

멈춰라. 너는 아직도 과인에게 할 말을 다 하지 않았다.”

패왕은 그렇게 소리쳐 그냥 두면 곧장 가마솥 안으로 뛰어들 것 같은 후공을 멈춰 세운 뒤에 다소 눅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는 한왕의 세객(說客)으로 과인을 달래러 오지 않았느냐? 분명 얻고자 한 것이 따로 있었을 터인데, 그것도 밝히지 않고 죽음만을 그리 서두르느냐?”

그러자 이제 막 속옷까지 벗으려고 가슴을 풀어헤치고 있던 후공이 하늘을 쳐다보며 껄껄 웃다가 말했다.

신은 목숨을 걸고 대왕과 초나라 군사를 문상하러 왔을 뿐 한왕의 세객은 아닙니다. 그러나 대왕께서 이곳을 벗어나 뒷날을 도모하고자 하신다면, 신도 잠시 구차한 목숨을 살려 대왕의 사자가 되어 드릴 수는 있습니다.”

네가 과인의 사자가 되어 주겠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냐?”

패왕이 알 수 없다는 눈길로 후공을 쳐다보며 물었다. 후공이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받았다.

한왕의 군막에서 여러 해 식객 노릇을 한 인연이 있으니 대왕을 위해 한왕에게 화평을 권해 보겠습니다. 홍구(鴻溝)를 경계로 하여 서로 화평을 맺고 각기 군사를 돌리기로 하면, 대왕께서는 팽성으로 돌아가시어 재기(再起)를 꾀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홍구를 경계로 한다?”

그렇습니다. 홍구는 대략 천하를 동서로 나누고 있으니, 그것을 경계로 서쪽 땅은 한왕이 차지하고 동쪽은 대왕의 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미 홍구 동쪽에서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한신이나 장이 팽월 경포 등은 어찌 되느냐?”

그야 당연히 한왕이 불러들여야겠지요. 또 한왕이 약조를 어기더라도 대왕께서 한번 팽성으로 돌아가시기만 하면, 한신이나 팽월 경포 따위는 등에나 쉬파리 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한 번에 하나씩 가까이 있는 것부터 쳐 없애시면 오래잖아 홍구 이동(以東)은 쥐죽은 듯 조용해질 것입니다.”

그러자 패왕이 다시 의심쩍다는 눈으로 후공을 쳐다보며 꾸짖듯 물었다.

네 말대로라면 과인은 이미 외로운 군사로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신세요, 한왕은 느긋이 기다리기만 해도 머지않아 우리 초나라를 쳐부수고 천하를 차지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천하의 절반을 내놓고 과인과 화평하려 들겠느냐?”

하지만 대왕께는 한왕이 비싼 값을 물고서라도 화평을 맺고 사들이지 않으면 안 될 기화(奇貨)가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대왕께서 군중(軍中)에 데리고 계시는 한왕의 부모와 그 처인 여씨(呂氏)입니다.”

그 말에 다시 패왕이 잔뜩 이맛살을 찌푸리며 받았다.

하지만 한왕 유방은 천하를 차지하려는 욕심에 눈이 멀어 부모처자를 지푸라기보다 못하게 여긴다. 지난번에도 저희 부모를 삶아 죽이겠다고 겁을 주며 항복을 권해 보았으나, 유방은 되레 과인에게 아비 어미를 삶은 국물이나 한 그릇 나눠 달라며 야유만 보냈다.”

그것은 한왕이 비정해서가 아니라 어쩔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한왕이 항복했다고 해서 대왕께서 과연 한왕의 부모처자를 돌려주고 한왕을 살려 두셨겠습니까? 항복해 봤자 양쪽 모두 죽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한왕은 오히려 부모처자를 하찮게 여기는 척함으로써 양쪽을 모두 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화평을 맺고 서로 군사를 물려 돌아가는 것이라, 자신도 살고 부모처자도 구하는 길이 되는데 한왕이 어찌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후공이 그렇게 말하자 패왕 항우도 잠시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이내 사람이 달라진 듯 무겁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인이 보니 그대는 틀림없이 한왕이 보낸 사자이다. 간과(干戈)를 맞대고 있다 해도 사자를 함부로 죽일 수는 없는 법, 그대는 잠시 객사(客舍)에 머물며 과인의 결정을 기다리라.”

그리고 한 식경이나 홀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후공을 불러들이게 했다.

돌아가 한왕에게 전하라. 초나라와 한나라는 화평을 맺고 홍구(鴻溝)로 천하를 나누어 앞으로는 서로 침범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또 태공(太公) 내외와 여후(呂后)는 우리가 동()광무를 내려가는 날 돌려보낼 터이니 그대를 보내 바꾸어 가라고. 그리고 그대도 알라. 만일 한왕이 터럭만큼이라도 약조를 어기면 그대는 바로 임치성의 역이기 꼴이 날 것이다.”

패왕은 그런 말과 함께 후공을 한왕에게로 돌려보냈다. 그때 패왕을 그와 같은 결정으로 몰아간 것은 후공이 말한 대로 패왕을 도와주러 올 우군이 없는 데다 서광무의 군량이 떨어져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걱정은 한신의 대군이 초나라로 밀고 드는 일이었다. 패왕은 조참과 관영의 군사를 제왕(齊王) 한신의 별대(別隊)로만 보고 있었다.

후공이 한군 진채로 돌아가 화평이 이루어진 것을 전하자 한나라 장졸들은 아래위를 가리지 않고 환성으로 그 일을 반겼다. 육고를 비롯한 막빈들도 후공의 유세 수완에 진심으로 갈채를 보냈다. 그러나 한왕만은 왠지 기뻐할 할 수만은 없었다.

저잣거리의 흥정에서는 양쪽 모두가 이문을 남기는 수가 있지만, 싸움터에서는 양쪽 모두가 이기는 법이 없다. 병진을 오가는 사자의 교섭도 싸움의 일부인데, 이번에 후공이 성사시킨 것은 양쪽 모두가 좋아하니, 후공은 패왕과 과인 중에 누군가를 속이거나 우리 둘 모두를 속이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를 평국군(平國君)에 봉하지만, 그의 능변은 자칫 그가 거처하는 나라를 망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후공에게 상을 주고 작위를 내리면서도 그렇게 마뜩지 않은 심사를 드러내었다. 그 말이 귀에 들어간 것인지 하루아침에 제후에 오른 후공도 전혀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

화평의 약조를 다짐하며 서로 사자가 오가는 며칠 사이에 8월이 다하고 9월로 접어들었다. 패왕이 마침내 사자로 온 후공을 초나라 군중에 남기고 태공 내외와 여후를 한왕에게로 돌려보냈다. 태공 내외와 여후가 수레를 타고 한군 진채로 돌아오자 한나라 군사들이 모두 만세를 외쳤다. 한왕도 맨발로 달려 나가 태공 내외를 맞고 눈물로 불효한 죄를 빌었다.

한편 패왕 항우는 태공(太公) 내외와 여후(呂后)를 한왕 유방에게 돌려보낸 다음 날로 군사를 거두어 동쪽으로 떠났다. 그때 초나라 군사는 형양에 있던 종리매의 대군까지 끌어와 겉으로는 10만을 일컫고 있었으나 실제로는 5만 남짓했다. 그나마 시양졸(養卒)에 행궁(行宮)의 시중이 또 1만 명에 가까웠다. 남장(男裝)을 한 우()미인이 패왕의 군막에 함께 기거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초나라 군사의 긴 행렬이 반나절이나 걸려 광무산을 벗어나자 패왕은 그때껏 군중에 데리고 있던 후공을 불러오게 했다.

과인이 그대를 군중에 머물게 한 것은 결코 태공이나 여후에 갈음하는 볼모로 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대는 한왕의 사람이지만 과인을 밝게 깨우쳐 주고 어려움에서 건져냈다. 우리 초나라가 다시 크게 기세를 떨치게 되고 마침내 과인이 천하를 얻게 된다면 그것은 모두 그대의 가르침 덕분이다. 하나 그대의 주인인 한왕은 다를 것이다. 당장은 부모와 처자를 되찾은 기쁨으로 그대에게 재물과 벼슬을 내리겠지만, 뒷날 그대가 오히려 과인을 깨우쳐 어려움에서 구해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두고두고 그대를 미워할 것이다. 어떠냐? 한왕에게 돌아가지 말고 차라리 과인과 초나라를 위해 그 능란한 언변과 빼어난 주책(籌策)을 펼쳐보지 않겠는가?”

패왕이 그렇게 달래자 후공이 어둡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직 신에게 감사하기에는 이릅니다. 여기서 팽성까지는 1500리가 넘는 길, 대왕께서는 외로운 군사를 이끌고 적지(敵地)나 다름없는 그 먼 길을 헤쳐 나가셔야 합니다. 거기다가 이미 한신의 군사가 하비()에까지 이르렀다 하니, 대왕이 이르실 때까지 팽성이 버텨낼 수 있을지는 하늘만이 아실 것입니다. 저는 다만 대왕의 과분한 지우(智愚)만 가슴에 새겨 길이 간직하겠습니다.”

그 말에 패왕도 가슴이 섬뜩해 더는 후공을 붙들지 않았다. 그길로 후공을 한나라 진채로 돌려보내면서 좋은 말과 많은 금은을 내려 고마워하는 뜻을 드러내려 했다. 후공이 이번에도 어두운 웃음으로 사양하며 말했다.

이 또한 신이 감당할 수 없으니 다만 대왕의 두터운 정만 거두어들이겠습니다.”

그리고는 늙은 말 한 마리만 얻어 타고 한나라 진채로 돌아갔다.

후공을 보낸 패왕은 곧 계포를 불러 말하였다.

장군에게 날랜 군사 1만을 떼어줄 터이니 밤낮을 가리지 말고 달려 팽성으로 돌아가시오. 가서 주국(柱國·항타)을 도와 팽성을 지키되 과인이 이를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되오.”

아무래도 팽성을 지키는 종질 항타가 못미더운 듯했다. 계포가 명을 받고 물러나자 패왕은 다시 종리매를 불러 말했다.

장군은 군사 5천을 이끌고 인근을 뒤져 곡식을 거둬들이도록 하시오. 이제부터 팽성으로 돌아갈 때까지 우리가 먹을 군량은 그때그때 민가에서 거둬들여야 할 것이오.”

그만큼 초군(楚軍)은 군량이 급했다. 달포 전 계포가 싣고 온 군량 3천곡()은 이미 바닥을 보여 대군이 한두 끼를 때울 양도 남아 있지 않았다. 거기다가 조참과 관영이 팽성을 위협하고 있어 팽월에게 빼앗길 위험을 무릅쓰면서라도 군량을 보낼 여유조차 없었다.

철은 늦은 가을 9월도 하순이라 벼농사가 많은 오초(吳楚) 땅이라면 한창 쌀이 넉넉할 때였다. 아직 벼농사가 그리 많지 않은 하남(河南)이지만 가을걷이가 끝난 뒤여서 어디든 뒤지기만 하면 군사들을 먹일 것이 넉넉하게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종리매가 아무리 군사를 풀어 부근 인가를 뒤져도 군량을 제대로 거둘 수가 없었다.

초나라 군사들이 광무산 부근에서 곡식을 거두기 어렵게 된 것은 두 나라가 거기서 일년 가까이나 대치하며 전투를 벌이는 바람에 백성들이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고약한 것은 민심까지 초나라를 떠나 곡식이 있는 백성들도 선뜻 내놓으려 하지 않는 일이었다. 군량이 넉넉한 한군(漢軍)에 비해 언제나 굶주리는 초군(楚軍) 쪽은 자주 무자비한 약탈로 군량을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부근 백성들로 하여금 초군을 원수 보듯 하게 만든 탓이었다.

가자. 조금만 더 참아라. 팽성에만 가면 쌀밥과 고기로 너희를 배불리 먹여주겠다.”

패왕은 광무산을 내려와서도 여전히 굶주린 장졸들을 그렇게 달래며 군사를 동쪽으로 몰아갔다. 그러나 초나라 대군이 박랑(博浪)에 이르러도 군량다운 곡식을 거두지 못하고 팽월의 무리가 출몰하는 양() 땅으로 접어들자 형세는 급속하게 나빠졌다. 무리를 지어 진채에서 빠져나가는 군사들이 갑자기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초나라 군사들이 무리지어 달아난 일은 광무산에서도 있었다. 처음에는 굶주림에 지친 군사들이 밥을 얻어먹기 위해 몇 명씩 한나라 진채로 넘어가더니, 나중에는 옹치(雍齒) 같은 장수까지 수백 명을 거느리고 항복해 가는 일도 생겼다. 그러나 양 땅에서처럼 하룻밤에도 수백 명씩 줄어드는 일은 없었다.

싸움에 져서 쫓기는 것도 아니고, 팽월이 대군으로 길을 막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오래된 굶주림과 막연한 불안만으로 군사들이 초나라의 깃발 아래서 빠져나가고 있었다. 대개는 산동이나 하북(河北)에서 패왕의 위세를 보고 따라붙은 유민(流民)들이라 강동(江東)에서 따라온 용사들과는 견줄 수 없었으나, 아침마다 군사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자 패왕은 참을 수가 없었다.

까닭 없이 진채에서 달아나거나 대오에서 빠져나가는 자는 모두 목을 벤다!”

패왕은 불같이 성이 나서 그렇게 엄명을 내렸으나, 마음 한구석으로는 불길한 예감도 없지 않았다. 초나라 장졸들을 재촉해 팽성으로 돌아가는 길을 더욱 서둘렀다.

그때는 한군도 관중으로 돌아가는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한왕은 패왕의 대군이 멀리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에야 광무산에서 내려와 서쪽으로 길을 잡았다. 광무 산성(山城)에서 번쾌가 이끄는 군사들이 내려오고 왕릉(王陵)의 군사들도 한왕과 합세했다.

하룻밤이 지나자 다시 주발이 오창(敖倉)을 지키던 군사들을 이끌고 따라온다는 전갈이 왔다. 거기다가 관중에서 소하가 뽑아 보낸 1만 군사가 다시 이르러 한왕의 군세는 며칠 사이에 10만으로 부풀어 올랐다. 아직 떠나지 않고 있던 북맥(北貊) 기마대와 연나라 군사들이 그제야 머뭇거리며 각기 제 땅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장량이 그들을 말려 놓고 진평을 찾아가 말했다.

()호군은 나와 함께 대왕을 찾아보지 않겠소?”

그러지 않아도 자방 선생을 찾아뵈려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럼 함께 가시지요.”

진평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장량이 오히려 어리둥절해하는 눈으로 진평을 보고 물었다.

그렇다면 진호군도 나와 같은 뜻이었소?”

. 진작부터 대왕께 항왕을 뒤쫓자고 권하고 싶었으나 자방 선생께서 아무 말씀이 없으시기에 기다리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장량이 손뼉을 치며 감탄한 듯 말했다.

어질고 밝은 사람의 헤아림은 언제나 같다 하니, 진호군께서 그렇게 보신다면 이제 나도 마음이 놓이는구려. 그렇소이다. 이제는 우리 대왕으로 하여금 항왕을 뒤쫓아 천하 형세를 결판 짓고 이 고약한 전란의 시대를 끝내게 해야 하오.”

그리고는 어깨를 나란히 해 한왕의 군막을 찾아갔다. 그새 마음이 느긋해진 한왕이 마침 산과 바다에서 난 맛난 음식을 한 상 가득 받아 놓고 즐기다가 두 사람이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고 수저를 놓으며 물었다.

어서 오시오. 오늘은 무슨 일로 두 사람이 나란히 과인을 찾아오셨소?”

장량과 진평 모두 얼굴이 굳어 있어 그런지 한왕도 왠지 긴장한 얼굴이었다. 장량이 먼저 나서서 말했다.

대왕. 어서 빨리 대군을 내어 항왕을 뒤쫓아야 합니다. 이번에 항왕을 놓아 보내면 두 번 다시 그를 사로잡을 기회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자방 선생. 우리 한나라 군사들은 며칠 전까지만 해도 광무산에서 항왕의 군사들에게 에워싸여 곤란을 겪었소. 저들은 강하고 우리는 약한데 어떻게 저들을 뒤쫓고 사로잡는단 말이오?”

한왕이 어림없다는 얼굴로 그렇게 되물었다. 장량이 한층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한나라는 천하를 셋으로 나눈 것의 둘을 가졌고(태반·太半=삼분유이·三分有二) 제후들도 모두 대왕을 따르고 있습니다. 거기 비해 초나라는 군사들은 지치고 식량은 다했으니 이는 하늘이 초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때입니다. 이 틈을 타 초나라를 쳐 없애지 않고 이대로 놓아 보낸다면 이는 바로 호랑이를 길러 스스로 걱정거리를 남겨 두는 것이나(양호자유환·養虎自遺患) 다름없습니다.”

그 말에 한왕의 얼굴이 다시 굳어지며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이내 장량 곁에 있는 진평을 돌아보며 물었다.

진호군도 그리 생각하는가?”

그렇습니다. 대왕께서는 초군(楚軍)의 강함을 말씀하시나, 이미 초군은 지난 열 달의 피로와 굶주림으로 속빈 강정이나 다름없고, 당장 강해 보이는 것도 꺼지기 전의 촛불이 오히려 휘황해 보이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지금 초군은 항우 한 사람의 기력과 무용으로 허장성세(虛張聲勢)하고 있는 갈까마귀 떼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왕께서 전군을 들어 한번 힘주어 후려치시면 초군은 질그릇처럼 부서지고 말 것입니다.”

진평이 그렇게 말하자 한왕은 다시 한번 생각에 잠겼다.

좋소. 그렇다면 한번 해봅시다!”

이윽고 한왕이 그렇게 말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칼자루를 움켜잡으며 좌우를 돌아보고 기세 좋게 소리쳤다.

모든 장수들을 이리로 불러 모아라.”

이에 군사들이 진채 여기저기로 내달아 장수들을 모두 한왕의 군막으로 불러들였다. 오랜만에 적의 포위공격에서 벗어나 마음 느긋하게 쉬고 있던 장수들이 놀라 달려왔다. 그새 전포에 갑주까지 걸친 한왕이 그들을 맞아들여 큰 소리로 말했다.

이제 항왕을 추격한다. 초나라 군사는 아무도 팽성에 돌아가게 해서는 아니 된다. 저들을 놓아 보내는 것은 다 잡은 범을 다시 산중으로 놓아 보내는 격이다. 범을 길러 걱정거리를 남기지 말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태공 내외와 여후(呂后)를 구하고 탈 없이 광무산에서 빠져 나가기만 하면 더 바랄 게 없다는 듯 패왕에게 화평을 빌던 사람 같지 않은 호기요, 과단성이었다. 장수들이 어리둥절해 바라보고 있는데 한왕이 다시 추격의 진용까지 짜 나갔다.

선봉은 오창에서 돌아온 주발이 맡는다. 날랜 군사 1만을 거느리고 앞서 항왕을 뒤쫓되, 함부로 초군과 싸움을 벌이지는 말라. 싸움터는 과인이 따로 정할 것이다. 번쾌는 예전처럼 중군(中軍)에 남아 과인과 더불어 나간다. 장졸 3만으로 중군을 삼고 북맥(北貊)과 연인(燕人) 효기(梟騎)도 모두 머물러 중군의 발톱과 이빨이 된다. 왕릉은 좌()장군이 되어 중군의 왼쪽 날개가 되고, 역상은 우()장군이 되어 오른쪽 날개를 맡으라. 어사대부 주창은 후군(後軍)을 이끌고 치중과 병참을 돌보며 대군의 뒤를 지키라.”

패왕 항우를 뒤쫓기로 마음을 굳힌 지 한시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마치 전부터 생각해둔 것이 있는 것처럼 짜임새 있는 진용이었다. 추격을 권한 장량과 진평까지도 속으로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이어 한왕은 장량과 진평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조참과 관영에게 다시 사람을 보내 돌아오기를 재촉하시오. 항왕과 결판을 내려면, 그들이 거느린 두 갈래 군사에 못지않게 조참과 관영의 불같은 전투력도 꼭 불러들여야 하오. 제왕 한신에게도 다시 사람을 보내 어서 군사를 내게 하시오. 이제 더는 머뭇거려서는 아니 되니 제나라 정병을 모두 이끌고 서쪽으로 나오라 하시오. () 땅으로도 사람을 보내 노관을 불러들이고, 팽월도 그 대군과 함께 우리 진중으로 끌어들여야 하오. 팽월이 초군의 양도를 끊어준 것은 고마우나, 항왕을 사로잡으려면 그것만으로는 아니 되오. 전군을 이끌고 과인과 힘을 합쳐 초나라 본진을 쳐부수어야만 이 싸움을 끝낼 수가 있소. 또 남쪽으로 경포()와 유고(劉賈)에게도 사람을 보내 잠시 구강 평정을 미뤄두고 회수(淮水)를 건너 북상하라 이르시오. 바로 항왕의 등 뒤를 위협하면 구강 땅을 모두 회복하는 것보다 더 큰 위협이 될 것이오.”

그러자 장량이 나서서 조심스레 말렸다.

조참과 관영은 그대로 서초 북쪽과 팽성을 노리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들이 지금과 같은 기세로 항왕의 본거지를 휩쓸면 항왕이 이끈 초나라 군사는 절로 어지러워집니다. 그들이 한 갈래 대왕의 군사가 되어 한바탕 용전(勇戰)하는 것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조참과 관영은 그대로 초나라 군사들의 부모형제와 처자가 있는 서초(西楚) 땅을 치게 하십시오. 만약 관영이 팽성이라도 떨어뜨리게 되면 10만 정병이 대왕의 본진에 들어 항왕과의 싸움을 거드는 것보다 나을 것입니다.”

진평도 옆에서 그렇게 장량을 거들었다. 한왕이 이내 그 두 사람의 말을 알아들었다. 깊이 생각하는 기색도 없이 조참과 관영에게 보낼 전갈을 고쳤다.

우승상 조참은 그대로 산동을 휩쓸어 초나라 수장(戍將)들을 제 성읍에 묶어 놓으라. 그리되면 항왕에게 원병을 보낼 엄두를 못 낼 것이니, 항왕은 언제까지고 외로운 군사[고군]를 이끌고 싸워야 할 것이다. 또 하비에 있는 기장(騎將) 관영도 과인에게로 달려오느니보다는 있는 힘을 다해 팽성을 치게 하라. 항왕이 이르기 전에 팽성을 떨어뜨릴 수만 있다면, 초군의 날갯죽지를 꺾어 놓은 것과 다름이 없다. 아무리 사나운 강동의 병사들이라 해도 돌아갈 곳이 없어졌는데 무슨 간담으로 싸우겠느냐?”

그러자 장량이 다시 말했다.

팽월과 한신을 불러들이는 일도 기한과 장소를 정해야 합니다. 일시에 세 곳의 군세를 한곳에다 모아야 아직도 엄청난 항왕의 기세를 꺾을 수 있습니다.”

너르고 너른 땅에 제멋대로 내닫는 항왕의 군사들이 언제 어디로 갈지를 어떻게 알 수 있소? 팽월과 한신이 먼저 과인을 찾아와 군세를 하나로 아우른 뒤에 항왕을 찾아 뒤쫓는 수밖에 더 있겠소?”

그렇지 않습니다. 수풀 속을 함부로 내닫는 토끼에게도 제 길이 있듯이 군사를 움직이는 데는 반드시 정해진 길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치에 맞게 헤아리고 사람을 풀어 그 뒤를 수소문해 보면, 지금 항왕이 잡고 있는 길을 알기도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자방이 보기에 항왕이 어디로 해서 팽성으로 돌아갈 것 같소?”

신이 헤아리기에 항왕에게는 지금 어서 본거지로 돌아가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쉬게 하여 대군의 기세를 회복하는 일이 급합니다. 따라서 항왕은 팽월이 길을 끊고 있는 양() 땅을 길게 가로지르려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람을 풀어 알아보니 항왕이 이끈 초나라 군사들은 박랑(博浪)에서 홍구(鴻溝)를 따라 남으로 내려갔다고 합니다. 아마도 곧장 남쪽으로 달려 대량(大梁)을 지난 뒤에 양하(陽夏)쯤에서 동쪽으로 길을 잡으려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되면 팽월이 가로막고 있는 양 땅을 단숨에 뚫고 지나간 셈이 되어, 팽성까지 남은 700리는 서초 땅만을 밟고 지날 수가 있습니다.”

거기까지 듣자 한왕도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한신과 팽월을 양하로 부르면 되겠구려. 날은 언제쯤이면 되겠소?”

그것은 서로 맞춰 봐야 되겠지요. 그게 어긋나면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장량이 그렇게 대답하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내일 모레면 겨울 10월로 접어듭니다. 겨울 행군이라 팽월과 한신 모두 채비에 시일이 걸릴 것입니다. 하지만 너무 늦출 수도 없으니 보름을 기약해 보시지요. 두 곳에 사자를 보내 보름 안으로 대군을 이끌고 양하에 이르라 하십시오. 항왕이 이끄는 초나라 군사가 서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뒤쫓아 쳐부수어야 합니다.”

이에 한왕은 한신과 팽월에게도 장량과 진평이 시키는 대로 전갈을 보냈다. 그날 안으로 여섯 갈래 유성마(流星馬)가 사방으로 달려 나가고, 진채에 남아 있는 한군 장졸들은 패왕을 추격할 채비로 분주해졌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간밤에 평국군(平國君) 후공(侯公)이 없어졌습니다. 삼경 무렵 말 한 필에 올라 북쪽 진문을 빠져나갔는데 날이 밝아도 돌아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왕이 잠에서 깨어나기 바쁘게 군막 안을 지키던 낭중 하나가 그렇게 알렸다. 파수를 서다가 후공을 알아보고 진문 밖으로 내보내 준 군사가 날이 밝아도 후공이 돌아오지 않자 제 발 저린 나머지 새벽부터 달려와 알린 듯했다.

한 이름 없던 식객이었던 후공이 패왕을 달래 태공(太公) 내외와 여후(呂后)를 구해 냈다는 소문은 한나라 진중을 우레처럼 떠돌았다. 그가 하루아침에 평국군에 올라 제후가 되고 만금을 상으로 받은 일은 한신이 제왕(齊王)에 오른 것 못지않게 휘황한 전설이 되었다. 그런데 그 후공이 깊은 밤에 갑자기 사라지고 없으니 이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일은 후공이 없어졌다는 말을 들은 한왕의 태도였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란 떨지 말라. 원래가 그만한 헤아림은 있는 사람이었다. 후공은 제 갈 길을 갔다.”

이 일에 대한 사기의 기록은 두 줄인데, 양의성(兩意性)과 애매함에 갇혀 아직도 뒷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 한 줄은 후공이 태공 내외와 여후를 구해 오자, ‘한왕은 이에 후공을 평국후에 봉하고, 다시는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라고 기록한 것인데, 그 가운데 다시는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익불긍복견]’란 구절의 해석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한왕 유방이 후공을 다시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후공이 상을 받지 않으려고 다시는 한왕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해석이다.

사기는 또 한왕이 후공을 두고 이르기를 그는 천하의 능변가로서 그가 거처하는 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므로 평국군이라 일컫는다라고 했다 전하는데, 이 말도 두 번이나 앞뒤가 맞지 않아 한왕의 참뜻을 헤아릴 수 없게 한다. 첫 번째는 천하의 능변가와 그가 거처하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 사이에 논리적인 연결이 없는 것이고, 두 번째는 또 제가 거처하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사람과 평국군이란 호칭이 잘 연결되지 않는 점이다.

흔한 해석은 후공이 초나라 사람으로 초나라를 망하게 했으니, 비록 한나라를 위해서는 공을 세웠으나 한왕이 그를 못마땅히 여겨 비꼰 것으로 본다. 뒷날 한왕이 위기에 몰린 자기를 살려준 초나라 장수 정공(丁公)을 오히려 패왕에게 불충했다 하여 죽인 일과 연관시킨 해석이다.

하지만 정공보다 훨씬 더 패왕에게 불충했던 셈인 항백(項伯)이나 몇몇 초나라 장수들까지 한왕이 감싸 안은 것을 보면 반드시 그런 대의 때문에 후공을 못마땅히 여긴 것 같지는 않다. 그보다는 패왕을 달랠 때 쓴 계책이 실은 한나라와 초나라를 모두 벨 수 있는 양날의 칼이었다는 점에 후공이 그렇게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곧 패왕을 그대로 놓아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아차린 한왕이 뒤늦게 추격에 나서자, 패왕에게 그걸 일깨워 준 후공도 더는 한군 진중에 남아 있을 수가 없어 몸을 뺐다고 보아야 한다.

그해따라 겨울은 빨리 깊었다. 겨우 시월 초순인데 매서운 북풍이 몰아쳐 굶주린 데다 입성까지 신통치 못한 초나라 군사들을 괴롭혔다. 그렇게 되자 행군은 더 더뎌지고 그만큼 길은 늘어났다. 박랑(博浪)에서 30리도 안 되는 곡우(曲遇)에 이르러 하룻밤을 지새운 초나라 군사들은 다시 이틀을 더 걸어서야 대량(大梁)에 이르렀다.

성안을 뒤져 곡식을 거두어 오라. 곡식을 숨기고 내놓지 않는 것들은 죽여도 좋다.”

패왕이 그런 명을 내려 곡식을 거둬들이게 했다. 대량은 한때 위나라의 도읍이었을 만큼 큰 성읍이었다. 굶주림에 눈이 뒤집히다시피 한 초나라 군사들이 성안을 비로 쓸 듯 긁어 모으자 비로소 전군이 며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군량이 거두어졌다. 하지만 그러잖아도 별로 좋지 않던 대량의 인심은 그날 이후 패왕과 초나라에서 영영 돌아서버렸다.

, 이제 진류(陳留)로 가자. 진류도 작은 성이 아니니 거기 가면 다시 우리 대군이 배불리 먹을 곡식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옹구 고양 외황 수양까지 하룻길로 큰 성읍들이 이어져 있다. 거기서 기력을 길러 우() ()으로 나아가면 그 다음은 바로 팽성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다.”

대량 성밖에서 군사들을 배불리 먹이고 하룻밤을 쉬게 한 패왕이 다음 날 일찍 장수들을 모아 놓고 그렇게 말했다. 종리매가 나서서 그런 패왕을 말렸다.

아니됩니다. 대왕께서 말씀하시는 그 성읍들은 모두 근년 팽월이 휘젓고 다닌 곳입니다. 작년에 대왕께서 몸소 평정하셨으나, 그 뒤 다시 팽월의 입김이 닿아 우리 양도(糧道)마저 끊기고 말았습니다. 우리 군사가 지나간다는 것을 팽월이 알면 결코 그냥 보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늙은 쥐새끼부터 잡고 가자. 숨은 곳을 뒤져 찾기라도 해야 할 판에 제 발로 과인 앞에 나타난다면 그보다 더 잘된 일이 어디 있겠느냐?”

그게 꼭 그렇지 못합니다. 지금 팽월은 작년 대왕께서 뒤쫓던 그 팽월이 아닙니다. 우리 대군이 광무산에 묶여 있는 지난 열 달 동안에 다시 기세를 회복한 팽월은 거느리고 있는 군사만도 3만이 넘게 불어났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우리 군사는 또 작년 팽월을 쫓던 때의 그 정병 5만이 아닙니다. 머릿수는 아직도 5만을 일컫지만 그 실상은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근거지로 내몰리고 있는 잡군(雜軍)입니다. 팽월의 날카로운 기세를 전처럼 쉽게 꺾어 낼 수 있을까 걱정됩니다. 거기다가 우리가 팽월과 싸우는 동안 한왕이 대군을 몰아 우리 등 뒤를 들이치기라도 하는 날이면 팽성으로 돌아가 뒷날을 기약하기는 어려워집니다.”

그 말을 듣자 패왕도 속으로는 으스스했다. 그러나 타고난 기백이 그런 종리매의 말을 그냥 참고 들어 넘길 수 없게 만들었다.

과인은 지난날 3만 군사로 한왕이 이끈 56만 대군을 깨뜨렸다. 사수(泗水)가 저들의 붉은 피로 물들고 수수()가 저들의 시체로 막혀 흐르지 못하던 것을 그대도 보지 않았는가? 더군다나 한왕은 과인에게 화평을 애걸하고 제 아비어미와 계집을 찾아갔다. 그런데 어찌 감히 약조를 어기고 과인을 뒤쫓는단 말이냐?”

그렇게 종리매에게 꾸짖듯 말했다. 워낙 처지가 고약하게 되어서인지 종리매가 움찔하면서도 할 말은 다했다.

대왕께서는 그렇게 속고도 한왕 유방을 모르십니까? 자신이 불리하면 금방 숨이라도 넘어가는 것처럼 대왕의 발밑을 기다가도 돌아서면 대왕의 발뒤꿈치를 물려 드는 것이 바로 유방입니다. 거기다가 꾀 많은 장량과 엉큼한 진평이 곁에 붙어 있는데, 그 약조를 어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며칠 전에 돌려보낸 후공도 걱정입니다. 어쨌든 그도 한왕이 보낸 사람, 우리 진채의 사정을 소상히 보고 갔는데 그냥 모르는 척 할 수 있겠습니까?”

그때 그런 종리매의 말을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환초(桓楚)가 나와서 말했다.

오늘 새벽 후진(後陣)으로부터 들어온 전갈에 따르면 어젯밤부터 수상쩍은 마필이 따라붙고 있는 기척이 있다고 합니다. 한군(漢軍)이 보낸 탐마(探馬)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패왕의 얼굴이 금세 분노로 벌겋게 달아올랐다.

유방 이 아비 셋 가진 종놈이 이럴 수가 있느냐? 아니 되겠다. 모두 싸울 채비를 갖춰 서쪽으로 돌아가자. 내 이번에는 반드시 유방 그놈의 질긴 목을 잘라 멀리 팽성으로 돌아갈 것도 없이 천하대세를 결판 짓겠다!”

그러면서 칼자루를 움켜잡았으나, 오래 전쟁터를 누빈 터라 감정에만 휘둘리지는 않았다. 남다른 장수의 자질로 이내 평정을 되찾은 패왕은 군사를 남쪽으로 돌려 양하(陽夏)로 향하게 했다. () 땅을 남북으로 짧게 가로질러 바로 서초 땅으로 접어들기 위함이었다.

양하는 진() 북쪽에 있는 현()으로 팽월이 휘젓고 다니는 양 땅을 막 벗어난 곳이었다. 거기서 팽성까지 5백리는 서초 경내(境內)라고 할 수 있었다. 패왕 항우가 한나라 대군이 뒤쫓고 있는 것을 확연히 알아차린 것은 바로 그 양하 부근이었다. 멀리 북쪽 하늘에 아련히 먼지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고 패왕이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미 떨쳐버리고 가기 어렵다면 우리가 먼저 싸움터를 골라야겠구나. 여기서 적의 예기를 꺾어 두어야 서초 땅이 한군에 짓밟히는 욕을 면하겠다.”

그리고는 양하에 군사를 멈추게 한 뒤 사방을 돌아보며 크게 싸울 만한 곳을 찾았다.

오래잖아 패왕의 전투 감각에 꼭 들어맞는 싸움터가 나타났다. 양하 서남에 있는 고릉(固陵)이란 큰 마을 부근이었다. 그 고릉에서 홍구 쪽으로 대군을 끌어들이기 좋은 들판이 펼쳐져 있고, 또 그 들판 곳곳에는 숲과 야트막한 언덕이 있어 군사를 매복시키기에도 좋았다. 패왕은 양하 현에 주동()이란 장수와 5천 군사를 남겨 한군을 꾀어낼 미끼로 삼고, 자신은 고릉으로 물러나 무시무시한 함정을 파고 한왕이 걸려들기를 기다렸다.

한편 대군을 이끌고 패왕을 뒤쫓던 한왕은 초군이 양하 성안에 머물자 한군도 양하 북쪽 30리 되는 곳에 멈추게 했다. 하지만 자신이 거느린 군사만으로는 싸움을 시작할 자신이 없었다. 한신과 팽월이 오기를 기다려 패왕과 결판을 낼 심산으로 진채를 든든하게 세우게 했다. 그때 번쾌가 한왕을 찾아와 말했다.

제가 탐마를 풀어 알아보니 적의 대군은 어젯밤에 남쪽 고릉으로 내려가고 양하 성안에 남은 초군은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일껏 키워 온 우리 대군의 사기를 여기서 머뭇거려 꺾이게 할 수는 없습니다. 제게 군사 1만만 주시면 내일 아침 양하 성을 쳐서 적의 형세를 가늠해 보겠습니다.”

한왕도 그 말을 듣고 보니 한번 해볼 만한 일 같았다.

그렇다면 번() 장군의 뜻대로 해보는 게 어떻겠소?”

한왕이 마침 곁에 있는 장량에게 물었다. 장량이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함부로 항왕과 싸워서는 아니 됩니다. 아직 제왕(齊王) 한신과 상국 팽월의 군사가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번쾌가 다시 우기고 나섰다.

항우가 흉악하나 이미 막다른 골짜기로 몰리는 짐승입니다. 그렇게 두려워하고만 계시면 언제 때려잡으실 수 있겠습니까?”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인데 하물며 천하의 맹장인 항왕이겠습니까? 막다른 골짜기로 몰리고 있기에 오히려 항왕이 더 두려운 것입니다.”

장량이 한 번 더 그렇게 말렸으나 한왕의 마음은 이미 번쾌 쪽으로 기운 뒤였다.

하지만 여기까지 따라와 눈앞에 적을 두고 물러날 수는 없지 않은가? 전군을 들어 항왕과 결판을 내는 것도 아니니, 한번 부딪쳐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성싶다. 번 장군은 정병 1만을 이끌고 양하 현을 들이치되 뜻과 같지 않거든 얼른 군사를 물리도록 하라.”

그리고 번쾌에게 군사 1만을 갈라 주었다. 장량도 그런 한왕을 더는 말리지 못했다.

정히 그러시다면 본진이라도 굳게 단속하시어 만일을 대비하십시오. 항왕이 앞장선 초나라 대군의 돌진을 막아낸 군대는 아직까지 아무데서도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기세 좋게 달려 나가는 번쾌를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장량의 그런 걱정은 쓸데없는 기우였다. 그날 해가 지기도 전에 번쾌가 보낸 군사가 달려와 알렸다.

번 장군이 양하성을 떨어뜨렸습니다. 성을 지키던 초나라 장수 주동()과 군사 4000을 사로잡고 대왕께서 이르시기를 기다립니다.”

그 소식을 들은 한왕은 한창 진채를 얽던 대군을 거두어 양하로 달려갔다. 가보니 정말로 들은 대로였다. 항복한 장수가 변변찮고 사로잡힌 군사들이 한결같이 노약한 것이 마음에 걸렸으나, 번쾌가 힘들여 싸워서 성을 뺏은 것만은 틀림없었다. 한왕이 주동을 장수로 거두어들이고 물었다.

항왕은 어디로 갔는가?”

전군을 이끌고 고릉 북쪽으로 갔습니다.”

주동이 전날 들은 대로 대답했다. 한왕이 알 수 없다는 눈길로 물었다.

항왕은 어찌하여 동쪽 팽성으로 달아나지 않고 오히려 서쪽 고릉으로 갔단 말이냐?”

그것은 신도 알지 못합니다. 다만 장졸을 그리로 몰아갔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때 마침 한왕 곁에 있던 진평이 까닭 모르게 굳은 얼굴로 주동을 바라보며 물었다.

항왕은 여기서 바로 고릉으로 갔소? 아니면 군사를 멈추고 이것저것 살피다가 땅을 골라 그쪽으로 갔소?”

한나절 몸소 기마대를 이끌고 여기저기 살피다가 고릉을 골랐습니다.”

이번에도 주동은 보고 들은 대로 대답했다. 그러자 진평이 문득 한왕을 바라보며 말했다.

대왕, 이는 마음먹고 되받아칠 작정이란 뜻입니다. 항왕이 미리 쳐놓은 그물로 뛰어들어서는 아니 됩니다.”

진 호군(護軍), 그건 또 무슨 소린가? 항왕이 쳐 둔 그물로 뛰어들다니?”

한왕이 진평을 쳐다보며 물었다. 진평이 잠시 뜸을 들여 생각을 가다듬은 뒤에 말했다.

항왕이 서쪽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동쪽 고릉으로 간 것은 서초 땅 밖에서 한번 크게 우리 한군을 쳐부수어 추격의 기세를 꺾어 놓으려는 속셈 때문입니다. 그러려면 제왕 한신과 팽월의 군사들이 이르기 전에 한군을 꾀어내어 단 한 번의 싸움으로 여지없이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양하에 한 갈래 나약한 군사를 남겨 먼저 한 싸움을 내 준 것은 우리를 방심하게 만들기 위함이요, 되도록 서초 땅에서 떨어진 고릉에다 싸움터를 고른 것은 우리가 한신과 팽월의 군사를 기다리지 않고 뒤쫓아 오기를 바라서입니다. 그런데 그곳으로 대군을 몰아가는 것은 항왕이 쳐 둔 그물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나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하지만 항왕의 군사는 우리 한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데다 굶주리고 지쳐 있다. 그들이 동쪽으로 간 것은 정신없이 쫓기다보니 그리된 것일 뿐이다. 무엇이 두려워 그들을 뒤쫓지 못한다는 말인가?”

대왕께서는 벌써 수수()의 싸움을 잊으셨습니까? 그때 우리는 56만 대군으로 편히 쉬고 있다가 천리를 달려온 항왕의 정병 3만에 대패하여 시체로 수수의 물길을 막았습니다.”

진평이 그렇게 일깨웠으나 어찌된 셈인지 한왕은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오히려 못마땅한 표정으로 진평을 나무라듯 말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차일시피일시]. 어려웠던 옛일을 들추어 군중(軍中)의 사기를 꺾는 것은 병가(兵家)가 꺼리는 바 임을 모르는가?”

그리고는 무슨 오기라도 부리듯 소리쳤다.

오히려 그때 그랬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이겨 그 치욕을 씻어 보자. 장수들을 모두 불러 모아라!”

이에 장수들이 모두 한왕의 군막으로 불려오자 바로 고릉으로 쳐들어갈 의논을 시작했다. 뒤늦게 한왕의 군막에 든 장량이 진평을 편들어 한왕을 말려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오기인지 호기인지 한왕은 부득부득 싸우기를 고집했다.

자방, 과인도 싸움터를 떠돈 지 그럭저럭 여덟 해째요. 무릇 군사를 부리는 데는 전기(戰機)란 것이 있소. 그런데 지금이 바로 항왕을 잡는 데 놓쳐서는 안 될 그 전기요.”

그러면서 기어이 군사를 냈다. 마침내 말리기를 단념한 장량이 진평에게 무언가 눈짓을 하더니 다시 한왕에게 말했다.

그렇다면 진 호군과 제게도 한 갈래 군사를 남겨 주십시오. 만약에 대비해 고릉 동쪽에다 든든한 진채를 구축해 놓겠습니다.”

장량의 말이 간곡해서인지 한왕도 그것까지는 마다하지 않았다. 왕릉의 군사를 후군(後軍)으로 남겨 장량과 진평에게 맡기고 자신은 나머지 장졸을 휘몰아 고릉으로 달려갔다.

이때 패왕 항우는 탐마를 풀어 한군의 움직임을 살피면서 고릉 북쪽에다 한바탕 무시무시한 반격전을 펼칠 채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양쪽으로 골이 깊은 구릉과 큰 숲을 끼고 있는 들판을 싸움터로 고른 패왕은 그 들판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산기슭에 본진을 내렸다. 그리고 먼저 항양(項襄)에게 한 갈래 군사를 나눠 주며 말했다.

대사마 항양은 군사 1만을 이끌고 나아가 한군(漢軍)을 맞되, 구태여 죽기로 싸울 것은 없다. 한번 창칼을 맞대 보고는 그 엄청난 군세에 놀란 것처럼 되돌아서 달아나면 한군은 겁 없이 뒤쫓을 것이다. 그때 잡힐 듯 잡힐 듯하며 달아나 한군의 본진(本陣)까지 저 들판으로 끌어들이도록 하라. 그러다가 과인의 복병이 크게 일거든 돌아서서 과인의 뒤를 받치라.”

패왕은 이어 종리매와 환초(桓楚)를 불렀다.

종리(鍾離) 장군은 날랜 군사 5천을 이끌고 저기 보이는 저 들판 왼쪽 숲 속에 매복하라. 군사들을 단속하여 한군의 본진이 지나가도 들키지 않게 숨어 있다가 과인이 적을 받아치거든 군사들을 휘몰아 적이 물러날 길을 끊어라. 되도록이면 북소리와 함성을 크게 내어 앞서나간 적을 겁먹고 혼란되게 해야 한다.

환초 장군은 날랜 군사 5천을 이끌고 들판 왼쪽 골 깊은 구릉에 숨으시오. 역시 종리 장군처럼 조용히 숨어 있다가 과인이 적의 중군을 들이치거든 뛰쳐나와 적이 돌아갈 길을 끊으시오. 하지만 적의 대군이 사나운 기세로 몰려들면 굳이 막아설 것은 없소. 한쪽으로 비켜섰다가 과인과 합세하여 적을 뒤쫓으며 죽이면 되오.”

그리고 자신은 강동의 자제들만으로 된 1만 군사와 함께 야트막한 산 뒤에 숨어 한군이 거기까지 뒤쫓아와 주기만을 빌었다. 패왕이 숨길 군사는 숨기고 미끼로 내보낼 군사는 내보내 대강 싸울 채비가 갖춰졌을 무렵 탐마가 달려와 알렸다.

한군이 오고 있습니다. 양하를 떨어뜨리고 오는 것 같습니다.”

군세는 얼마나 되더냐?”

양하가 떨어졌다는데도 패왕이 오히려 반가워하는 얼굴로 물었다. 그러나 정탐을 나갔던 군사는 무엇에 겁을 먹었는지 표정이 밝지 못했다.

먼빛으로 보아 자세히 알 수는 없으나 엄청난 대군이었습니다. 누른 덮개를 드리운 수레(黃屋車)로 미루어 한왕이 몸소 이끌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패왕의 얼굴은 더욱 활짝 펴졌다. 솟구치듯 오추마(烏騅馬) 위로 뛰어오르며 소리쳤다.

하늘이 우리 초나라를 영영 망하게 하지는 않을 모양이로구나. 내 오늘 반드시 유방을 사로잡아 그 흉물스러운 머리를 어깨에서 떼어 놓으리라!”

그리고 시퍼런 철극(鐵戟)을 꼬나든 채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오래잖아 동북쪽 하늘 가득 부연 먼지를 피워 올리면서 한왕이 이끈 10만 대군이 위세 좋게 밀려왔다. 벌판 가운데로 나가 있던 항양의 군사가 그런 한군을 맞아 달려나갔다. 그러나 어찌된 셈인지 한군 선봉과 부딪히기도 전에 사람과 말이 모두 등을 돌리고 서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선봉을 맡아 달려오던 번쾌가 따르는 군사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뒤쫓아라! 머지않아 홍구(鴻溝)가 앞을 가로막을 터이니 초군은 이미 독안에 든 쥐다.”

그리고 스스로 앞장서 항양의 군사를 뒤쫓기 시작했다. 부장 하나가 그런 번쾌를 말렸다.

적의 속임수가 있을지 모릅니다. 본진을 기다려 나아가시지요.”

하지만 아직도 전날의 승리에 취해 있는 번쾌는 그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속임수는 무슨 속임수냐? 이 허허 벌판에다 대군을 숨기겠느냐, 불을 지르고 물을 가두겠느냐? 거기다가 우리 대왕께서 10만 대군으로 뒤따라오시는데 겁날 게 무엇이냐?”

번쾌가 핀잔하듯 그렇게 받으며 그대로 군사를 몰아나갔다. 같은 일은 한왕의 황옥거(黃屋車) 부근에서도 일어났다. 번쾌가 무턱대고 적을 뒤쫓아가는 걸 보고 수레를 몰던 하후영이 한왕을 돌아보며 말했다.

쇠를 쳐서 번() 장군을 불러들이지요. 적의 매복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한왕은 느긋하기만 했다.

과인은 벌써 다섯 해째 항왕과 맞서 싸워 왔고, 예전에는 한편이 되어 싸운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항왕이 잔꾀를 쓰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언제나 허허실실로 자신의 용력과 장졸들의 기세에 의지해 치고들 뿐이었다. 범증이 살아 있고 한신과 진평이 곁에서 거들어 준다면 모를까, 그 혼자서는 결코 그런 계책을 꾸미지 못한다. 아마도 방금 나왔다가 달아난 것은 적의 선봉이 아니라 뒤를 끊는(단후·斷後) 부대일 것이다. 항왕은 형세가 불리함을 느끼고 달아난 것임에 틀림이 없다.”

마치 싸움의 이치에 통달한 사람처럼 그렇게 말하면서 그대로 10만 대군을 몰아 들판을 덮듯 앞으로 나아갔다.

패왕 항우는 단기(單騎)로 산기슭에 나와 한군의 움직임을 살피다가 그 본진까지 들판 가운데로 밀고 드는 걸 보고 지금까지 쫓기던 사람 같지 않게 기뻐했다.

만약 저 누른 덮개 있는 수레에 정말로 한왕이 타고 있다면 이 싸움은 이미 이긴 것이나 다름없다. 북소리가 울리거든 모두 과인을 뒤따라 벼락같이 한군을 친다. 먼저 본진 가운데로 쪼개고 들어가 한군을 두 쪽 내고, 종리매와 환초의 군사들이 일어 적이 어지러워지면 종횡무진 쳐부순다. 거기에 다시 항양의 군사들이 돌아서서 우리 뒤를 받치면 적은 사나운 사냥개에 몰린 양떼나 다름없다. 십만이 아니라 백만이라도 우리 3만 정병에게 몽둥이 맞은 수박처럼 으스러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는 꼬나 쥔 철극(鐵戟)을 높이 쳐들어 숨어 있는 장졸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곧 요란한 북소리와 함께 크게 함성이 일며 얕은 산그늘에 엎드려 숨어 있던 초나라 군사들이 일시에 몸을 일으키고, 나무 그늘 아래 감추어 두었던 기마대도 분분히 달려나와 패왕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모두 나를 따르라. 오늘은 반드시 한왕을 잡아 천하를 우리 것으로 만들자. 이 싸움만 이기면 비단옷 입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리운 부모처자와 함께 편히 살 수 있다!”

패왕이 앞장서 말을 달려나가면서 그렇게 외쳤다. 초군 1만이 한 덩어리가 되어 함성을 지르며 그 뒤를 따랐다.

패왕이 이끄는 초나라 군사가 먼저 맞닥뜨린 한군은 번쾌가 이끈 선봉 5천이었다. 신나게 항양을 쫓던 번쾌는 갑작스러운 함성과 함께 뛰어나온 초군을 보고 은근히 놀랐다. 군사를 숨기기 마땅찮은 야산이었는데 길을 막고 나서는 걸 보니 자기가 이끈 군사들보다 훨씬 많았다. 거기다가 앞장을 선 장수가 다름 아닌 패왕 항우임을 알아보자 번쾌는 독한 술에서 깨어난 것처럼 정신이 홱 돌아왔다.

모두 멈추어라. 함부로 뒤쫓지 말고 대왕께서 이끄는 본진이 이르기를 기다리자.”

번쾌가 말고삐를 당기며 그렇게 소리쳤으나, 달려온 기세가 있어서인지 한군 선봉은 얼른 멈출 수가 없었다. 놀라고 겁먹은 채로 멈칫멈칫 나아가고 있는데 패왕의 초군이 한 덩이가 되어 덮치고, 한군 선봉은 마치 쇠뭉치에 얻어맞은 흙덩어리처럼 부스러졌다.

얼결에 난군 한가운데 떨어지게 된 번쾌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정신없이 큰 칼을 휘두르며 초군에 맞섰으나 처음부터 어림없는 싸움이었다. 기세가 꺾인 사졸들이 거미 새끼처럼 뿔뿔이 흩어지는 데다 멀리서는 달아나던 항양의 군사들까지 되돌아서서 덤벼들고 있었다.

속았다. 모두 물러나라! 본진으로 돌아가 대오를 가다듬고 다시 싸우자.”

번쾌가 그렇게 외치며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그러나 그런 번쾌를 따라 본진으로 되돌아간 한군은 몇 되지 않았다. 거의가 거세게 치고 드는 초군의 흐름 속에 휩쓸려 죽거나 항복하는 바람에 한군 선봉 5천은 고스란히 사라져 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패왕이 이끄는 초나라 군사들이 먼저 앞을 가로막는 한군 선봉을 쓸어버리고 나니, 바로 훤한 벌판이 열리고 한왕이 이끄는 10만 대군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방이 탁 트여서 그런지 벌겋게 들판을 덮고 있는 한군의 위세가 실제보다 훨씬 더 엄청나게 느껴졌다.

한군이 치고 들어가는 자기들보다 여남은 배는 많아 보이자 어지간한 초나라 군사들도 주춤했다. 그걸 보고 다시 패왕이 범이 으르렁거리듯 외쳤다.

강동의 용사들이여, 거록(鉅鹿)을 잊었는가? 거기서 우리는 하루에 아홉 번을 싸워 아홉 번을 이기고 왕리(王離)20만 대군을 쳐부수었다. 그때도 우리 군사는 3만을 크게 넘지 않았다!”

패왕이 이끌고 있는 1만은 대개가 강동(江東)의 자제(子弟)들이었다. 셋 가운데 둘은 직접 거록의 싸움을 겪었고, 그 나머지 하나도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어 자신이 겪은 싸움처럼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패왕의 외침은 눈부신 전설을 재현하여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자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모두가 갑자기 숙연해져 잠깐이나마 두려움에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았다.

멈칫했던 1만 명의 초나라 군사가 다시 한 덩어리가 되어 뛰쳐나갔다. 그렇게 되자, 초군은 앞장서서 말을 달리는 패왕 항우를 첨단(尖端)으로 삼는 거대한 쐐기꼴이 되어 한왕 유방이 이끈 10만 대군 한가운데를 쪼개고 들었다.

멀찍이서 바라보고도 앞장선 패왕을 알아본 한왕 유방은 가슴이 섬뜩했다. 거기다가 믿고 내보낸 번쾌마저 데리고 간 군사 5천을 모두 잃고 기마 여남은 기()에 싸여 쫓겨 들어오는 것을 보자 비로소 장량과 진평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얼른 하후영에게 수레를 멈추게 하고 소리쳤다.

저 흉악한 도둑이 또 제 죽을 줄 모르고 날뛰는구나. 누가 나가서 항우를 잡아오겠느냐?”

당장은 기죽은 꼴을 보이기 싫어 그렇게 큰소리를 쳤으나, 머릿속에서는 지난날 패왕에게 당한 갖가지 낭패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때마침 수레 주위에 와 있던 주발이 나서서 한왕의 말을 받았다.

신이 한번 나가 보겠습니다.”

한왕 유방이 패왕을 뒤쫓으려 광무산을 떠날 때 주발은 한군의 선봉이었다. 그러나 양하에 이르러 번쾌가 먼저 나가 공을 세우는 바람에 선봉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 때문에 실쭉해 있던 주발은 번쾌가 군사를 잃고 쫓겨 오자 호기를 만난 듯 제자리를 되찾았다.

주발이 오창을 지키던 군사 1만을 이끌고 기세 좋게 말을 달려나갔으나, 패왕의 강병(强兵)을 막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역상((,))과 근흡((,)), 시무(柴武)가 중군 3만을 모두 끌어내 한왕 앞을 겹겹이 막아섰다. 거기다가 번쾌가 다시 중군으로 돌아와 한왕의 수레 곁에 붙어 서자 한왕도 비로소 마음이 좀 놓이는 듯했다.

큰칼을 울러 메고 가서도 잡지 못하고 되쫓겨온 걸 보니 항씨(項氏) 성을 쓰는 개가 몹시 사나운 모양이구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숨을 고르고 있는 번쾌를 보고 그렇게 우스갯소리를 했다. 번쾌가 옛날 저잣거리에서 개백정을 한 이력을 들먹인 놀림이었다. 하지만 그런 한왕의 여유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곧 함성과 함께 양군이 어우러지는가 싶더니 주발과 그가 이끌고 나간 군사들이 사태 나듯 뭉그러져 쫓겨왔다.

한왕이 놀라 뒤쫓는 초나라 군사를 살펴보았다. 어느새 되돌아온 항양(項襄)의 군사들이 보태져 패왕이 몰고 오는 군사는 전보다 갑절이나 부풀어 있었다. 놀란 한왕이 부장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무엇들 하느냐? 전군을 내어서라도 적의 예기를 꺾어야 한다. 모두 나가 적을 막아라!”

그 소리를 들은 역상과 근흡, 시무 등이 주발의 뒤를 받치듯 앞으로 몰아낸 장졸을 꾸짖어 밀려드는 초군을 막게 했다. 3만이나 되는 한군이 맞받아치니 밀고 들던 초군이 잠시 주춤했다. 번쾌도 다시 기세를 되찾아 큰칼을 휘두르며 달려나갔다.

그 바람에 잠시 한() () 양군 사이에 어지러운 싸움이 벌어졌다. 한군의 머릿수가 원체 많아 그대로 가면 패왕의 맹렬한 공격을 버텨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한군 왼편 숲에서 함성이 일더니 한 갈래 군사가 뛰어나와 대뜸 한군의 등 뒤를 돌았다.

복병이다. 돌아갈 길이 끊겼다!”

한군 후진의 군사들이 그렇게 겁먹은 목소리로 외쳤다. 그때 다시 오른쪽 나지막한 언덕 사이에서 솟아오르듯 한 갈래의 군사가 뛰어나와 한군의 등 뒤를 돌았다. 조금 전에 숲 속에서 나타난 군사들과 엇갈리게 도는 것이 꼭 몰이꾼들이 짐승을 모는 것 같았다.

또다시 초나라 복병이 나왔다. 우리는 사방 적에게 에워싸였다!”

한군 후진에서 그렇게 한층 다급해진 외침이 들려왔다. 그러자 초나라 군사들의 날카로운 기세를 더 많은 머릿수로 버텨내던 한군 중군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패왕이 그 작은 기미를 놓치지 않고 그곳에서 얽혀 싸우는 모든 군사들의 귀가 멍멍할 정도로 크게 외쳤다.

항복하지 않는 놈은 모두 죽여라! 이번에는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마치 다 이긴 싸움을 마무리 짓는 것 같은 소리였다. 그러자 그 소리에 홀리기라도 한 듯 초나라 군사들이 전에 없던 기세를 올렸다. 커다란 쐐기처럼 한군 중군을 쪼개고 나가 잠깐 동안에 한군을 두 토막으로 내 놓았다.

중군(中軍) 한가운데가 돌파당하자 한군은 더욱 큰 혼란에 빠졌다. 그때 다시 한군의 뒤를 돈 환초와 종리매의 군사들이 한군의 좌우 옆구리를 찌르고 들어왔다. 각기 5000밖에 안 되는 군사였지만, 이미 놀라고 겁먹은 한군에는 둘 모두 몇 만 대군처럼 보였다. 한왕조차도 그 뜻밖의 대군에 놀라 탄식하며 말했다.

팽성에서 원병이 왔구나. 내 차마 이리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는 얼른 수레에서 내려 말로 갈아탔다. 그때 한왕 등 뒤에서 커다란 구리종을 두드리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유방은 달아나지 말라. 오늘은 네 목을 거두어 이 지저분한 싸움을 끝내리라.”

한왕이 돌아보니 중군을 갈라놓고 되돌아온 패왕 항우가 한왕을 보고 내지르는 소리였다.

패왕의 시뻘건 눈길에서는 그대로 불길이 뚝뚝 듣는 듯했다. 뱃심 좋고 느긋하기에는 한왕만 한 이도 드물었으나 그런 패왕의 눈길을 보자 흉내로라도 맞서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허리에 찬 보검을 빼어 들 겨를도 없이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패왕이 그런 한왕을 곱게 놓아줄 리 없었다. 오추마를 박차 한왕의 뒤를 따르는데, 10만이 넘는 대군이 맞붙은 싸움터를 무인지경 가듯 하였다. 번쾌가 제때 돌아와 패왕을 가로막아 주지 않았으면 패왕의 창끝이 한왕을 꿰어 놓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군 가운데 으뜸가는 맹장 번쾌도 패왕의 적수는 못되었다. 큰칼로 여남은 번은 패왕의 창을 받아내었으나 이내 허둥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시무(柴武)가 어디선가 때맞추어 나타나 번쾌를 거들었다. 그러자 위태롭게 기울었던 싸움이 그럭저럭 볼 만해졌다.

한쪽으로 비켜선 한왕이 겨우 한숨을 돌리려 하는데 갑자기 또 다른 고함소리가 들렸다.

누가 감히 우리 대왕께 덤비느냐?”

한왕이 보니 우람한 몸매를 갑옷투구로 가린 종리매가 한 마리 가라말(여구·驪駒·검은 말)을 휘몰아 달려오고 있었다. 이번에는 주발이 돌아와 종리매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한왕이 안도의 한숨을 쉬기에는 아직 일렀다.

서초의 대장 환초(桓楚). 유방은 어서 항복하지 못하겠느냐?”

또 한 갈래의 초군이 한군의 옆구리를 째고 중군 가운데로 뛰어들며 앞선 장수가 소리쳤다. 한왕의 군막을 지키던 젊은 도위(都尉)가 얼결에 달려 나가 맞섰으나 오래 버텨 낼 것 같지 않았다.

아니 되겠습니다. 적이 대왕만을 노려 이 수레가 있는 곳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잠시 뒤로 물러나 계십시오.”

수레를 몰고 있던 하후영이 한왕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낭중(郎中) 기병들을 불렀다.

내가 이 수레를 몰고 나가 적장을 막아 보겠다. 너희들은 대왕을 모시고 후진으로 가라.”

그리고는 말고삐를 왼 팔목에 감더니 방패를 찾아 들고 긴 창을 빼들었다.

하후영이 바람처럼 수레를 몰아 환초에게로 달려가는 것을 한왕이 멍하니 보고 있는데 낭중 기병들이 재촉했다.

대왕. 이만 물러나시지요. 저희들이 모시겠습니다.”

그제야 겨우 정신을 가다듬은 한왕이 뒤늦게 보검을 빼들며 허세를 부렸다.

장졸들이 피 흘리며 싸우는데 어찌 과인만 피한단 말이냐? 저들과 함께 여기서 싸울 터이니 너희들이나 후군으로 처진 왕릉(王陵)에게 달려가 얼른 이리로 군사를 내라 이르라.”

한왕이 그렇게 말하면서 뻗대는데 갑자기 패왕 항우가 내지르는 기합소리가 들렸다. 한왕이 놀라 보니 패왕의 철극에 어디를 맞았는지 병장기를 떨어뜨린 시무가 왼팔을 감싸 안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고 있었다. 홀로 남은 번쾌도 더는 버틸 수 없었던지 오래잖아 큰 칼을 늘어뜨리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놈 번쾌야, 네 어디로 달아나려느냐?”

패왕이 그렇게 외치며 번쾌를 뒤쫓으려다 문득 오추마의 고삐를 당기며 한왕이 있는 쪽을 노려보았다. 시퍼런 불길이 이는 듯한 패왕의 눈길과 부딪히자 억지로 쥐어짠 한왕의 허세도 바닥이 났다. 덜컥 겁이나 말고삐를 당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장 덮쳐오는 패왕의 무시무시한 기세보다 더욱 한왕의 얼을 빼놓는 것은 싸움의 형세가 이미 글러버린 일이었다. 어느새 한군은 장졸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서 짐승처럼 내몰리고 있었다.

그때 다시 우레 같은 패왕의 외침이 한왕을 화들짝 놀라게 했다.

저기 유방이 있다. 모두 유방을 잡아라. 유방을 목 베거나 사로잡는 자는 만금(萬金)을 내리고 상장군으로 삼겠다!”

한왕은 그런 패왕의 고함을 뒤로하며 말머리를 돌렸다. 유방이 달아나기 시작하자 그길로 승패는 확정되었다. 고릉 북쪽의 벌판은 곧 무자비한 사냥꾼처럼 뒤쫓으며 죽여 대는 초나라 군사들의 함성과 힘없는 짐승처럼 내몰리며 죽어가는 한나라 군사들의 신음으로 뒤덮였다. 뒤쫓는 초군은 고작 3만이요, 쫓기는 한군은 10만이나 된다고는 아무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어이없고도 처참한 패배였다.

그렇게 한 10리나 쫓겼을까, 싸움터가 된 그 벌판을 겨우 벗어난 한왕이 한 산 밑에 이르렀을 무렵이었다. 이제는 어지간히 추격을 따돌렸다 싶어 한숨 돌리려 하는데, 갑자기 초나라 기마대 수십 기()가 한왕의 앞을 막았다. 한왕을 호위하며 달아나던 낭중 기병 대여섯이 돌아서 그들을 막았으나 워낙 머릿수가 모자랐다. 두세 갑절로 한나라 기마대를 맞고도 남아도는 초나라 기마대 여남은 기가 틈을 타 달아나는 한왕에게 따라 붙었다.

다급해진 한왕이 보검을 뽑아 그들의 창칼을 쳐내며 달아나는데 다시 오금이 저리게 만드는 호령이 들렸다.

이놈 유방아. 어서 말에서 내려 항복하지 못할까?”

한왕이 움찔하며 소리 나는 곳을 보니 오추마가 빨라서인지 어느새 앞을 가로막는 한나라 군사들을 흩어버리고 다시 한왕을 따라잡은 패왕이 저만치서 한왕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기마대를 뿌리치기도 어려워 진땀을 흘리는데, 패왕까지 이르자 한왕은 온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역시 패현 저잣거리를 떠난 것이 잘못이었던가. 터무니없는 꿈을 꾼 대가를 이렇게 치르는가.’

점점 어지러워지는 손놀림으로 겨우겨우 한 몸을 지키며, 한왕이 속으로 그렇게 탄식했다.

그때 가까운 산기슭에서 한 떼의 인마가 뛰쳐나오며 앞장 선 장수가 소리쳤다.

누가 우리 대왕을 핍박하느냐? 어서 무례한 손길을 멈추지 못하겠느냐?”

그리고 달려와 한왕을 에워싸고 있던 초나라 기병들을 쫓아 버린 장수는 뜻밖에도 왕릉이었다. 장량과 진평이 졸라 왕릉을 후진(後陣)으로 남기고 어려울 때 대군이 의지할 진채나 얽게 하였는데, 때맞춰 구원을 나온 셈이었다. 한왕이 너무 반갑고 고마운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왕형(王兄), 고맙소. 실로 옛적과 다름없이 무리의 큰형다운 식견과 짐작이오.”

옛날 패현 저잣거리에서 왕릉을 형으로 모시던 때의 말투였다. 늙은 어머니가 죽어가며 한 당부 때문에 한왕을 섬기게 되기는 했으나 어딘가 겉도는 것 같은 데가 있던 왕릉의 눈길에서도 일순 감동하는 빛이 어렸다. 하지만 왕릉에게는 그 감동을 드러낼 겨를이 없었다.

이놈 왕릉아, 네 감히 과인의 앞을 가로막으려 드느냐? 어서 유방을 내놓지 않으면 그 목을 베어 죽은 네 어미 곁에 나란히 묻어 주겠다.”

멀리서 왕릉을 알아본 패왕이 그렇게 외치며 더욱 힘차게 오추마를 박차 뛰쳐나왔다. 그 소리를 듣고 패왕을 노려보는 왕릉의 두 눈에서도 불길이 철철 흘렀다. 날이 뱀처럼 길고 구불구불한 창[사모]을 움켜잡고 말배를 차며 맞받아 소리쳤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항적(項籍), 이 모질고 독한 종놈아, 너 잘 만났다. 내 오늘 네 간을 씹어 돌아가신 어머님의 한을 풀어드릴 것이다!” 그러면서 한왕도 못 본 척하며 패왕 항우를 향해 달려 나갔다.

곧 벼락 치듯 하는 소리와 함께 패왕과 왕릉이 단기(單騎)로 부딪혔다. 왕릉은 원래 무용으로서는 패왕의 적수가 못되었으나, 워낙 골수에 맺힌 한이 깊어 그게 힘이 되었다. 패왕과 단둘이 맞붙어서도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한군의 전세가 기운 뒤여서 거기까지 뒤쫓아 온 초나라 장수가 패왕 하나만이 아니었다. 몇 번이고 한군 사이에 뛰어들어 짐승 몰 듯 한군을 흩어 버린 종리매가 패왕을 뒤따라 한왕을 추격하기 시작했고, 항양과 정공(丁公)도 그 뒤를 따라왔다. 그 바람에 왕릉은 곧 외로운 처지로 내몰리고 한왕도 다시 위태롭게 되었다.

그때 왕릉의 부장(部將) 하나가 기마 여남은 기를 이끌고 달려와 소리쳤다.

대왕, 신을 따라 오십시오. 진채가 멀지 않습니다.”

다급한 가운데도 그 목소리가 귀에 익어 힐끗 건너보니 그 부장은 바로 옹치(雍齒)였다. 옹치를 알아보자 한왕은 일순 숨이 멎는 듯했다. 목숨이 오락가락할 만큼 위급한 순간에도 옹치가 일생 저지른 밉살맞은 짓들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풍읍(豊邑)을 들고 위나라에 항복한 뒤에 저지른 온갖 몹쓸 짓뿐만 아니라 그 이전 건달 시절에 속 썩이던 일들까지 눈앞에 선했다.

그 바람에 한왕은 고맙기는커녕 들고 있던 보검으로 단칼에 베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느라 쩔쩔 맬 지경이었다. 하지만 옹치는 태연하기만 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굳어 있는 한왕 곁으로 다가와 여느 장수들과 다름없는 어조로 한 번 더 재촉했다.

어서 신을 따르십시오. 형세가 몹시 위태롭습니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어 한왕의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 이놈 옹치.”

못 이기는 척 말고삐를 잡혀 끌려가면서도 한왕이 옹치를 노려보며 꾸짖었다. 너무도 오랫동안 벼르고 이를 갈아 와서인지 그렇게 위급한 마당에서도 선뜻 그를 따라나서고 싶지 않았다. 그때 왕릉을 에워싸고 있던 초군 한 갈래가 왕릉을 놓아 주고 다시 한왕을 뒤쫓아 왔다.

뒤쫓는 초나라 기병 선두가 창을 길게 내지르며 한왕에게 닿을 만한 거리로 따라붙자 옹치가 문득 곁에 있는 병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대왕을 모시고 먼저 진채로 돌아가거라. 내가 뒤를 끊어 보겠다.”

그러고는 홀로 뒤처지더니 따라오는 초나라 기병들을 막아섰다. 옹치가 힘을 다해 그들과 맞서는 걸 보자 한왕도 비로소 그가 자기 밑으로 돌아왔음을 조금씩 실감하기 시작했다.

이 마당에도 나를 위해 선뜻 온몸을 던지는 것을 보니 옹치같이 영악한 놈도 필경에는 내가 이길 것이라고 믿는구나. 이제 천하는 내게로 다가오고 있는가.’

그런 느낌과 함께 무언가 눈앞이 훤해 오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그때 번쾌가 어디선가 군사 약간을 이끌고 달려와 옹치를 에워싼 초나라 기병들을 흩어 버리고 소리쳤다.

먼저 대왕을 모시고 진채로 돌아가시오. 뒤쫓는 적병은 내가 맡겠소!”

이어 하후영이 맹렬하게 수레를 몰고 적을 가르며 뛰쳐나오더니 다시 옹치를 보고 외쳤다.

앞서 길을 이끄시오. 대왕의 뒤는 내가 지켜보겠소!”

그 말을 들은 옹치가 앞장서서 길을 잡으니 한왕은 앞뒤로 호위를 받으며 큰 어려움 없이 싸움터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20리나 달렸을까, 한 군데 산굽이를 돌아서자 산을 등지고 세운 진채 하나가 나타났다. 녹각(鹿角)과 목책(木柵)을 빽빽하게 두르고 다시 그 안으로 방벽(防壁)과 보루(堡壘)를 잇다시피 한 것이 어지간한 성곽 못지않을 성싶었다. 장량과 진평이 그 원문(轅門) 앞에 서 있다가 한왕을 맞아들였다.

진채 안으로 들어간 한왕이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흩어져 쫓기던 한나라 장졸들이 하나 둘 진채로 돌아왔다. 먼저 왼팔을 감싸 쥔 시무(柴武)와 역상이 쫓겨 오고, 이어 주발과 번쾌가 왕릉과 함께 패군을 수습해 돌아왔다. 장수들은 그럭저럭 몸을 빼 나온 셈이었으나 사졸들은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항왕이 곧 대오를 정비해 무섭게 들이칠 것이다. 모두 녹각과 목책을 닫고 방벽과 보루에 의지해 적을 막을 채비를 하라.”

장량과 진평이 진채 안을 뛰어다니며 그렇게 소리쳤다. 원체 든든하게 얽은 진채가 있어서인지 한군은 방금 형편없이 지고 온 패군 같지 않게 기력을 되살렸다. 저마다 병장기를 매만진 뒤 방벽과 보루에 붙어서 초군이 쳐들어오기를 기다렸다.

한편 패왕 항우는 강병(强兵) 맹장(猛將)으로 한왕의 대군을 앞뒤 좌우로 토막 낸 뒤 마음껏 짓밟았다. 굶주리고 지친 3만 군사를 분기시켜 10만이 넘는 대군을 여지없이 쳐부순 또 한번의 빛나는 승리였다. 하지만 원래 노린 바대로 한왕을 잡아 죽이지 못하자 패왕은 또다시 다급해졌다.

한왕은 어디로 갔느냐? 군사들을 모두 거둬들이고 한왕이 간 곳을 알아보라.”

저마다 흩어져 한군을 쫓고 있는 장수들에게 전령을 보내 그렇게 명했다.

오래잖아 종리매와 환초 항양 정공 등이 각기 군사를 이끌고 패왕 항우 쪽으로 모여들었다. 가장 멀리 한왕을 뒤쫓았던 종리매가 아는 대로 말했다.

한왕은 고성 북쪽으로 달아났습니다. 탐마가 알아본 바로는 여기서 20리쯤 되는 곳에 한군 진채가 있는데, 한왕이 그리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 여기서 20리밖에 안 되는 곳이 한군의 진채라고? 언제 여기 그런 게 있었단 말인가?”

대왕께서 여기에 매복계(埋伏計)를 펼치는 동안에 한군 한 갈래가 몰래 얽은 것인 듯합니다. 하지만 오늘 싸움에 이리 지게 될 줄 알기라도 한 것처럼 높고 두꺼운 방벽과 보루까지 갖춘 성곽 같은 진채라고 합니다.”

그 말을 듣자 패왕의 이맛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지난 1년 붙잡혀 있었던 광무산의 진채가 떠오른 까닭이었다. 금방이라도 한군 진채를 짓밟고 한왕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혀 에워싸고 있는 사이에 초나라는 천천히 줄어들고 말라붙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고단하고 외로운 신세로 오히려 뒤쫓기게 되고 말았다.

그곳도 광무간(廣武澗)처럼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 있고 가파른 산비탈에 의지하였다던가?”

패왕은 일이 그렇게 된 것이 모두 종리매의 탓인 양 못마땅한 얼굴로 그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종리매가 떨떠름한 얼굴이 되어 들은 대로 전했다.

벼랑은 끼지 않았고, 진채가 의지한 산비탈도 녹각(鹿角)과 목책(木柵)만 없으면 기마(騎馬)로 쳐올라갈 수 있을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자 패왕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유방이 드디어 거기서 죽기로 작정한 모양이로구나. 좋다. 이제부터 전군을 이끌고 그리로 달려가 그것들을 짓밟아 버리자. 여기서 적어도 군사 절반을 잃었을 것이니, 녹각과 목책만 불태워 버리면 여기서보다 쉽게 그것들을 이길 수 있다.”

패왕이 그렇게 말하면서 군사들에게 쉴 틈도 주지 않고 한군 진채로 몰아갔다.

패왕이 한군 진채 앞에 이르러 보니 들은 대로 진채에는 녹각과 목책이 빽빽이 둘러쳐져 있었다. 집중과 속도를 바탕으로 적을 쪼개고 갈라 친 뒤, 사나운 장수와 굳센 사졸들로 한 덩어리가 된 초군 부대가 토막 나 쫓기는 적을 하나하나 망치로 때리듯 쳐부수는 게 그때까지 패왕이 이겨 온 방식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기마대를 앞세운 돌격전 형태로 시작되는데 녹각과 목책이 그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녹각과 목책을 불살라 버려라!”

패왕이 그렇게 명을 내리자 미리 섶과 장작 따위를 준비해 온 초나라 군사들이 그대로 따랐다. 젖은 밧줄로 묶은 섶단이나 기름 부은 장작에 불을 붙여 한군의 녹각과 목책에 내던졌다. 녹각과 목책만 불타 버리면 바로 기마대를 앞세워 짓밟아 버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장량과 진평이 걱정하여 꼼꼼하게 대비한 것이 또한 그런 사태였다. 장량은 목책과 보루 뒤에 궁수들을 숨겨 불붙은 섶단이나 장작을 들고 다가오는 초군에게 화살 비를 퍼부었다. 용하게 한두 군데 불타 버린 녹각 사이로 초군이 뛰어들어도 앞서 들판에서 싸울 때와는 달랐다. 방벽과 보루 뒤에 숨은 한군이 활과 쇠뇌를 쏘아붙이다가 가까이 다가가면 일시에 뛰쳐나와 맞받아쳤다.

녹각과 목책을 뚫고 지나느라 느려지고 흩어지게 된 초군은 방벽과 보루를 하나하나 넘는 동안에 더욱 속도가 느려지고 머릿수는 잘게 나뉘어졌다. 그런 초군을 숨어 있던 한군이 뛰쳐나와 일시에 들이치니 싸움의 양상은 거꾸로 뒤집혔다. 뭉쳐 숨어 있던 한군이 나뉘어 느릿느릿 기어오르는 초군을 하나씩 쳐부수는 격이었다.

징을 쳐서 군사를 거두어라. 내일 채비를 갖추어 다시 친다.”

처음 한군의 진채로 뛰어든 1만 가운데 3천이나 그대로 녹아 버린 듯 돌아 나오지 않자 사정을 짐작한 패왕이 그렇게 외쳤다. 날이 저문다는 핑계로 군사를 거둔 것이었으나, 그때 이미 패왕은 불길한 예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건 아니다. 일껏 이겨 놓은 싸움이 다시 꼬여 가는 것은 아닌가. 유방, 이 흉측하고 교활한 늙은 것이 여기다 무슨 수작을 부려놓은 것인가.’

그날 밤 장졸들을 쉬게 한 패왕은 다음 날 다시 채비를 갖춰 한군 진채를 공격했다. 밤새 마련한 방패를 군사에게 넉넉하게 나눠 주고, 불화살을 쏘아붙일 망보기 수레(巢車·소차)까지 지어 앞세웠지만, 한군 진채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다시 군사만 몇천 잃고 물러나게 되자 패왕은 광무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알 수 없는 수렁에 빠져드는 것 같아 차츰 초조해졌다.

또 전투에서는 이기고 전쟁에서는 지는 꼴이 나는 것은 아닌가. 나는 3만 군사로 10만 대군을 쳐 그 절반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패잔병을 이 궁벽한 골짜기로 몰아넣었다고 믿었는데 도대체 어찌된 셈이냐. 유방은 처음부터 짜고 나를 꾀어 들인 것처럼 태평스럽지 않으냐? 이 싸움을 길게 끌다가는 또다시 우리만 외롭고 고단해지는 것은 아닌가. 이게 무슨 병법인지 도무지 알 수 없구나.’

패왕이 그런 생각으로 불안해하고 있는데 다시 고성 마을에 남겨 둔 본진에서 놀라운 전갈이 날아들었다.

한군 한 갈래가 고성 마을에 있는 우리 후군(後軍)을 급습하여 군량을 불태우고 시양졸(養卒)과 행궁(行宮)의 사람들을 많이 해쳤습니다. 항장(項莊) 장군께서 남은 인마를 보호해 이리로 오고 있는데 추격이 자못 사납습니다. 대왕께 구원을 청합니다.”

패왕은 한왕을 복격(伏擊)하러 떠날 때 항장에게 군사 5천을 주고 후군으로 남겨 고성 마을에 모아둔 군량과 패왕의 집안 친지 및 행궁의 시중들과 잡일꾼들을 지키게 했다. 말할 것도 없이 그들 가운데는 남장을 한 우()미인도 섞여 있었다. 그런데 그 후진이 한군의 기습을 받은 것이었다.

지난 1년 광무산의 뼈저린 경험으로 군량의 중요함을 배운 패왕은 그 뜻밖의 소식에 적잖이 기가 꺾였다. 거기다가 드러내 놓고 묻지는 못해도 우미인의 안위 또한 걱정이었다. 얼른 정공(丁公)에게 한 갈래 군사를 나눠 주며 항장부터 구원하게 했다.

오래잖아 정공이 항장의 후군을 구해 돌아왔다. 다행히도 우미인은 터럭 하나 다치지 않고 시양졸 사이에 섞여 있었다. 패왕이 안도하는 낯빛을 감추며 항장에게 물었다.

한군은 모두 저기 저 진채에 들어앉아 있는데 누가 그리로 가서 분탕질을 친 것이냐?”

왕릉과 옹치였습니다. 아마도 우리 사정을 잘 아는 옹치가 꼬드겨 일을 낸 것 같습니다. 우리 군량을 태우고도 급박하게 뒤쫓는 척하다가 슬며시 사라졌습니다.”

불탄 것은 초군이 고릉에 들면서 인근 민가의 곡식을 털다시피 해서 모아둔 며칠분의 군량이었다. 당장 3만이나 되는 군사의 다음 끼가 걱정이 아닐 수 없었다. 광무산에서 배운 대로라면 패왕은 거기서 군사를 물리고 서초로 돌아가는 길을 재촉해야 했다.

적은 이미 마음먹고 방벽을 쌓고 보루를 높여 진채를 굳건히 했습니다. 하루 이틀 싸움으로 뺏을 수 있는 진채가 아닙니다. 군량도 없이 날을 끌며 에워싸고 있다가 광무산에서와 같은 낭패를 되풀이할까 걱정됩니다. 우선 팽성으로 돌아가 기력을 회복한 뒤에 다시 유방을 잡도록 하시지요.”

항양 항장 같은 피붙이들도 그렇게 패왕에게 권했다. 하지만 패왕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모처럼 한왕 유방을 벌판으로 끌어냈고, 또 한바탕 복격전(伏擊戰)으로 여지없이 때려눕힌 뒤였다. 이제 한칼만 내뻗어 숨통을 끊어버리면 모든 일이 끝날 것 같은데, 다시 놓아 보낼 수는 없었다.

여기는 광무산이 아니다. 한군 진채는 벼랑 위에 세워지지도 않았고, 또 우리 땅 서초도 여기서 멀지 않다. 우리가 군량이 없으면 우리에게 에워싸여 있는 저들은 더욱 궁색할 것이다. 하늘이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면 오히려 재앙이 이른다 했다. 이번에 또 유방을 놓아 보내면 하늘도 나를 버릴 것이다. 날랜 말을 팽성에 있는 계포에게 보내 군량과 군사를 보내오게 하라. 그리고 당장의 군량은 군사 500명을 서초로 들여보내 가까운 곳에서 긁어모아 보게 하라. 한신이나 팽월의 원병이 오기 전에 여기서 유방을 끝장내야 한다.”

패왕은 그렇게 우기면서 고집스레 한군 진채를 에워싼 채 풀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팽성으로 유성마(流星馬)를 띄우고 다른 한편으로는 군사를 풀어 성부(城父) 쪽에서 군량을 긁어모으게 했다.

다시 고릉의 진채를 두고 한군과 초군 사이에 며칠이나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졌다. 하지만 어차피 오래가지는 못할 싸움이었다. 떠난 지 사흘도 안 돼 돌아온 유성마가 패왕에게 기막힌 소식을 전했다.

팽성이 떨어지고 주국(柱國) 항타()는 관영에게 사로잡혔습니다. 관영은 패현(沛縣) 설읍(薛邑) 유현(留縣)을 차례로 휩쓴 뒤에 소성(蕭城)을 떨어뜨리고 상현(相縣)으로 향했다고 합니다.”

계포는 어찌 되었느냐? 광무산에서 떠난 지 보름이 넘었는데 아직 팽성에 이르지 않았단 말이냐?”

계포 장군은 우현(虞縣)에서 한나라 상국 조참의 군사를 만나 일진(一陣)을 크게 지고 근처의 작은 산성(山城)에 들어 농성 중이라 합니다.”

하지만 패왕은 도무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제 막 한왕 유방의 숨통을 끊어놓으려 하고 있는데 누가 감히 자신의 도성을 치고 봉지를 휩쓸고 다닌단 말인가. 도대체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비굴하고 천박한 데다 교활하기까지 한 유방 같은 자를 주인으로 모시는 하찮은 것들이. 감히.

그런데 다음 날 다시 군량을 거두러 성보 쪽으로 갔던 군사들이 돌아와 패왕에게 더욱 기막힌 소식을 전했다.

한나라 기장(騎將) 관영의 군사들이 벌써 성보로 밀고 들어 왔습니다. 그 기세가 하도 사나워 감히 그곳에서 곡식을 거두어들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쫓겨 왔습니다.”

하지만 전날과 마찬가지로 패왕은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 어제는 주국(柱國) 항타가 10만 군민(軍民)과 더불어 지키던 팽성이 한낱 유방의 기장(騎將)에게 떨어지고, 계포 같은 대장이 옥지기[옥리]에 지나지 않았던 조참에게 크게 져서 작은 산성(山城)에 갇혀 있다더니, 오늘은 또 서초의 가슴 같고 배 같은 땅이 그새 모두 관영에게 넘어갔다는 것이냐? 과인이 남겨 둔 여러 성읍(城邑)의 수장(戍將)들은 머리가 몇 개나 있는 놈들이냐? 과인이 맡긴 땅과 백성을 잃고도 그 머리가 어깨 위에 성하게 붙어 있기를 바란단 말이냐? 그들과 더불어 성읍을 지키던 군민들도 그렇다. 어떻게 되찾은 초나라 땅인데 그리 쉽게 내어 준단 말이냐?”

그렇게 소리치며 분을 못 이겨 몸까지 떨었다. 그 바람에 초군의 고단한 처지는 장졸들에게 더욱 널리 알려져 그 사기를 꺾어 놓았다. 보다 못한 종리매가 나서서 패왕을 말렸다.

대왕께서 그리 노하신다 하여 이미 일어난 일을 돌이킬 수는 없습니다. 고정하시고 앞날을 헤아려 대세를 만회할 계책부터 세우십시오.”

이미 팽성이 떨어지고 산동과 서초의 심장부가 적에게 빼앗겼는데 앞날은 무슨 앞날이냐? 이제부터 전군을 들어 한군을 치고 힘이 모자라면 산기슭을 베개 삼아 죽는 길 뿐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일시 우리 초나라가 몰리고 대왕께서 고단하시나 앞날은 다릅니다. 잠시 물러나 군사를 기르고 기력을 회복하신 뒤에 유방과 싸워도 늦지 않습니다. 대왕의 초절한 무용과 초나라 용사들의 매서운 기세가 되살아나 합쳐지면, 진나라를 쳐 없애고 천하를 호령하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종리매가 그렇게 간곡히 말하자 패왕도 조금 진정했다. 이윽고 깊은 한숨과 함께 종리매에게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먼저 군사를 물려 진성(陳城)으로 옮기십시오. 진성은 지난날 진왕(陳王=진승)의 장초(張楚)가 도읍을 삼았던 곳으로 그리로 가면 당분간 군사들을 먹일 곡식을 얻을 수 있고, 또 그 든든한 성벽에 의지해 군사를 쉬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먼 길을 갈 만큼 군사들의 기력이 회복되면 우선 회수(淮水)를 건너 구강(九江) 땅으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 경포()가 분탕질을 치기는 하지만 구강 땅의 대부분은 아직 대사마 주은(周殷)이 잘 지켜 내고 있습니다. 거기에 자리 잡으신 뒤 오중(吳中)에 사람을 보내 쓸 만한 강동의 자제들을 몇 만 명 더 모아 오면, 우리 초군이 옛날의 기세를 되찾기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 종리매의 말에 패왕은 그답지 않게 깊이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 한참이나 말없이 눈을 감고 있다가 이윽고 눈을 떠서 말했다.

좋다. 그럼 우선 진성으로 가자. 군사들을 물려 진성으로 가되, 적이 뒤쫓아 오면 언제든 맞받아칠 수 있도록 하라.”

그렇게 되자 꺼지기 전에 한번 빛나는 촛불처럼 세차게 타올랐던 기세는 급작스레 사그라지고 초군은 다시 쫓기는 느낌으로 진성을 향했다.

그 무렵 한왕 유방은 고릉 북쪽 진채 안에서 어렵게 하루하루를 버텨가고 있었다. 한신과 팽월은 오지 않는데 패왕의 공격이 길어지니 무엇보다도 군량이 걱정이었다. 오창을 끼고 있던 광무산과는 달리, 진채 안에 갇힌 채 며칠이 지나자 갈무리된 곡식이 넉넉하지 않기는 한군도 초군이나 다를 바 없었다.

진채도 서(西)광무에 비하면 못미덥기 짝이 없었다. 녹각과 목책을 두르고 다시 두꺼운 방벽과 든든한 보루를 쌓았다고는 하지만, 광무간의 벼랑이나 광무산 서록(西麓)의 가파른 비탈과는 견줄 바가 아니었다. 언제 패왕이 눈에 불을 켜고 뛰어들지 몰랐다.

그런데 방벽 안에서 버틴 지 엿새째인가 이레째가 되는 날이었다. 갑자기 초나라 진채가 웅성거리더니 다음 날이 되자 초나라 군사들이 차례로 진채를 버리고 남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번쾌가 달려와 말했다.

적이 달아나는 것 같습니다. 군사를 내어 뒤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가볍게 움직이지 말라. 이는 필시 항왕이 우리 한군을 진채 밖으로 꾀어내려는 수작이다.”

한번 데어본 아이가 불을 두려워하듯 한왕이 그렇게 말하며 번쾌가 뒤쫓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때 마침 한왕을 찾아온 장량이 번쾌를 거들 듯 말했다.

적은 우리를 꾀어내기 위해서가 아니고 정말로 물러나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한왕이 알 수 없다는 듯 장량을 바라보며 물었다. 장량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제 밤 우리 군사 한 갈래가 가만히 산을 내려가 고릉에 있는 적 후군을 들이치고 그 군량을 태워버렸습니다. 적은 당장 다음 끼니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 일을 어찌 과인에게 말하지 않았소? 누가 그런 큰일을 했소?”

오래 항왕 밑에 있어 초진(楚陣)의 정황을 잘 아는 옹치가 그 꾀를 냈고, 왕릉이 늘 이끌던 군사를 데리고 그대로 해냈습니다. 대왕께서 옹치를 못마땅히 여겨 허락하지 않으실까 아뢰지 못했을 뿐입니다.”

옹치란 이름을 듣자 이맛살부터 찌푸린 한왕이 그 일은 더 따지지 않고 말머리를 돌렸다.

과인이 여러 번 겪어보아 잘 알지만, 항왕은 병장기를 휘두르고 군사를 부리는 일만 싸움의 전부인지 아는 위인이오. 까짓 군량 좀 잃었다고 군사를 물릴 리가 없소이다. 틀림없이 우리 군사를 유인해 내려는 계책일 것이오.”

항왕도 지난 일년 광무산에서 군량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신도 군사를 내어 항왕을 급하게 뒤쫓는 일은 말리고 싶습니다. 섣불리 뒤쫓다가 항왕에게 다시 반격의 기회를 주어서는 아니 됩니다. 잠시 기다려 세력을 크게 모은 뒤에 뒤쫓아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때 마치 장량의 말을 뒷받침하려는 듯 탐마가 달려와 알렸다.

동쪽에서 대군이 달려오고 있습니다. 붉은 깃발로 보아 우리 편 같습니다.”

그렇다면 제왕(齊王) 한신이 온 것이로구나. 과인이 몸소 나가 맞아야겠다.”

한왕이 반가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장량을 돌아보며 이제 다 알았다는 듯 말했다.

항왕이 저렇게 물러나는 것은 군량을 잃었기 때문이 아니라 한신이 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오. 용저가 죽는 걸 보고 천하의 항우도 두려움을 배운 것 같소.”

그런 다음 한왕 유방은 하후영을 불러 황옥거(黃屋車)를 내게 했다. 그리고 급히 뒤따라 나선 장수들과 함께 한신을 마중 나가려 했다. 그런데 한왕이 진문(陣門)을 나서기도 전에 저편에서 먼저 전령이 달려와 알렸다.

우승상 조참이 대왕께 문후 여쭈라 하셨습니다. 우승상께서는 한 식경이면 2만 군사와 더불어 진중으로 들게 될 것입니다.”

과인은 우승상이 아직 산동을 평정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떻게 이처럼 갑자기 오게 되었는가?”

조참이 온 게 뜻밖이라 한왕이 놀라며 물었다. 전령이 자랑스레 대답했다.

지난해 교동(膠東)에서 제나라 장수 전기(田旣)를 잡아 죽이신 우승상께서는 그 뒤 제북(齊北)으로 가서 남은 제나라 세력을 쓸어 없앴습니다. 그러다가 대왕께서 광무산에서 어려움을 겪고 계신다는 소문을 듣고 지난 6월에 이미 광무산으로 떠났습니다마는 산동을 가로지르는 동안에 다시 여러 달을 지체하게 되었습니다. 곳곳에서 항우가 남겨 놓은 수장(戍將)들이 길을 가로막은 탓입니다. 우승상께서는 산동의 초나라 세력을 쓸어버리는 것도 팽월이 양() 땅에서 양도를 끊는 것과 마찬가지로 광무산의 대왕을 돕는 일이라 보아 싸우기를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항보(亢父) 창읍(昌邑)을 거쳐 정도(定陶)에 이르는 동안에 열 한 성읍(城邑)을 쳐부수거나 항복받고, 다시 안양(安陽)을 거쳐 우현(虞縣)에서 계포가 이끄는 초나라 군사를 크게 무찔렀습니다. 그런데 문득 한나라와 초나라가 화평을 맺었다는 소문과 함께 대왕의 사자가 달려와 우승상은 그대로 산동에 남아 초나라 세력을 쓸어버리라 하셨습니다. 이에 군사를 율현(栗縣)으로 옮겨 그 현성(縣城)을 치고 있는데, 다시 대왕께서 초군을 뒤쫓다가 고릉에서 낭패를 보았다는 소문이 들려 왔습니다. 우승상께서는 그 소문을 듣자 급한 김에 대왕의 부르심을 기다리지 못하고 밤낮없이 이렇게 달려오는 길입니다.”

다음 날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동쪽에서 탐마가 돌아와 또 다른 원병(援兵)이 다가오고 있다고 하기에 한왕은 이번에도 한신이나 팽월인가 여겼으나 그게 아니었다. 그날 달려온 것은 관영이었다. 본대에 앞서 달려온 전령이 알렸다.

관영 장군이 기마 3천에 정병 1만을 재촉하여 달려오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 이향()을 지났으니 오래잖아 이곳에 이를 것입니다.”

관영 역시도 한창 팽성을 치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갑자기 나타나니 반가움보다는 궁금함이 앞섰다. 한왕이 그 경위를 묻자 전령이 기세 좋게 말했다.

관영 장군은 이레 전에 팽성을 떨어뜨리고 그곳을 지키던 초나라 주국(柱國) 항타를 사로잡았습니다. 그 뒤 하루도 군사를 쉬게 하지 않고 곧장 서쪽으로 달려, 소성(蕭城) 상현(相縣)을 떨어뜨리고 성보(城父)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서 갑자기 대왕께서 고릉에서 낭패를 당하셨다는 소문을 듣자 서둘러 이렇게 달려온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한왕은 조참과 관영이 그렇게 와 준 것이 반가웠다. 하지만 그 반가운 만큼이나 큰 것이 그때까지도 올 줄 모르는 한신과 팽월 때문에 생긴 걱정이었다.

과인은 자방의 말을 듣고 항왕을 뒤쫓고 있으나, 애초에 이 일은 과인 혼자 힘만으로는 될 일이 아니었소. 제왕(齊王) 한신과 위()상국 팽월 같은 제후들이 대군을 이끌고 과인을 도와야만 초군을 쳐부수고 항왕을 이길 수 있소. 그런데 한신과 팽월이 약조를 어기고 오지 않으니 실로 걱정이오. 이번 고릉의 싸움에서 낭패를 본 것도 우리 힘만으로 항왕을 이기려다 이리 된 것이오.”

한왕이 장량을 불러 놓고 푸념처럼 그렇게 말했다. 장량이 담담하게 받았다.

우리가 초나라에 한 싸움을 내준 것은 사실이나, 대왕께서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그래도 평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곳에서 급하게 얽은 진채에 의지해 항왕의 강습을 물리쳤으니, 그 일만 해도 지난 일년 광무산에서 겪은 궁색함과는 비할 바가 아닙니다. 거기다가 싸움에 져 흩어졌던 우리 군사들이 다시 찾아오고, 어제 오늘 우승상 조참과 어사대부 관영의 군사가 보태져 한군은 다시 10만 군세를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우리를 이긴 초군은 곡식 한 톨 없이 추운 겨울 들판을 헤매며 의지할 곳을 찾고 있습니다. 이대로 버려두어도 초군은 머지않아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도 제후들이 약조를 따르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겠소?”

딴청을 부리는 것 같은 장량의 말에 한왕이 답답한 듯 다시 물었다. 그제야 장량이 한왕의 물음을 정색으로 받았다.

초군이 곧 무너지려 하는데도 한신과 팽월이 오지 않는 데는 까닭이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한신을 제나라 왕으로 세웠으나 마지못해 그리 했을 뿐, 대왕께서 원래 뜻하신 바는 아니었습니다. 한신에게 내리신 것도 제나라 왕의 인수(印綬)와 의장(儀仗)뿐이었고, 도적(圖籍)과 명부(名簿)를 내리고 땅을 갈라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다 한신이 제 힘으로 차지한 땅도 아직은 그 다스림이 굳건하게 뿌리 내리지 못했습니다.

또 팽월은 벌써 세 해째 양 땅을 치달으며 항왕의 양도를 끊고 초군의 뒤를 시끄럽게 하여 대왕을 도왔으나, ()나라 상국이란 허울뿐 땅 한 뙈기 얻은 바 없습니다. 원래 팽월을 위왕으로 삼지 못한 것은 위표(魏豹)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위표는 죽었고, 팽월도 오래 전부터 왕이 되기를 바랐으나 대왕께서는 아직도 그 바람을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무슨 신명으로 대군을 모아 먼 길을 달려오려 하겠습니까?

만약 대왕께서 천하를 그들과 함께 나눌 수만 있으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한신과 팽월을 이리로 불러들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수양() 북쪽으로부터 곡성(穀城)에 이르는 땅을 갈라 팽월을 그곳 왕으로 삼으시고, 제왕 한신에게는 진현(陳縣)에서 동쪽으로 바닷가까지 그 봉지를 정해 주십시오. 특히 제왕 한신은 집이 초나라에 있어 고향을 되찾으려는 간절한 뜻이 있을 것입니다.

대왕께서 이 땅을 잘라 한신과 팽월에게 내주기를 허락하실 수 있으면, 그 당장이라도 두 사람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나, 그러실 수 없다면 앞일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그 두 사람에게 땅을 내리시어 각기 스스로를 위해서 싸우게 하십시오. 그리 하시면 초나라를 무찌르는 일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진작부터 먹은 마음이 있는 듯한 대답이었다.

한왕 유방이 곰곰 장량의 말을 곱씹어 보니 굳이 마다할 까닭이 없었다. 그날로 한신과 팽월에게 사자를 보내 한왕의 말을 전하게 하였다.

두 분은 힘을 합쳐 초나라를 치시오. 초나라를 쳐부수면 진현에서 동해에 이르는 땅은 모두 제왕(齊王)에게 줄 것이며, 수양 북쪽에서 곡성까지의 땅은 모두 팽()상국에게 주고 그 땅의 왕으로 삼을 것이오.”

사자가 달려가 그렇게 전하자 대답은 장량이 헤아린 대로였다.

삼가 대왕의 뜻을 받들겠습니다. 당장이라도 군사를 내겠습니다.”

한신과 팽월 모두 한 입에서 나온 듯한 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사자가 돌아와 그렇게 두 사람의 대답을 전하자 한왕이 무엇 때문인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 좌우를 돌아보고 물었다.

항왕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간세(奸細)를 풀고 탐마(探馬)를 내는 일을 언제나 꿰고 있는 장량이 대답했다.

항왕은 지금 진성(陳城)에 들어 있습니다. 성안을 뒤지듯 곡식을 거두고 백성들을 끌어내 줄어든 군세를 부풀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지금 당장 장졸들을 일으켜 다시 한번 진성을 들이쳐 보는 것이 어떻소?”

한왕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장량에게 그렇게 말했다. 실로 종잡을 수 없는 한왕의 위축과 분발이었다. 며칠 전만 해도 당장 죽을 듯 엄살떨던 일을 까맣게 잊은 사람처럼 그렇게 호기를 부리고 나섰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장량이었다. 한군의 형편이 전보다 크게 나아진 것이 없는데도 이번에는 전혀 말리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어딘가 빙글거리는 말투로 한왕을 떠보듯 물었다.

이곳에서 가만히 기다렸다가 제왕과 팽상국의 대군이 이르면 힘을 합쳐 진성을 쳐도 늦지 않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우리 군사만으로 서둘러 싸우려고 하십니까?”

우리가 여기에 웅크리고 있으면 한신과 팽월도 살피고 또 살피며 천천히 움직일 것이오. 그러나 힘들더라도 한번 항왕을 꺾어 우리 힘을 보여 준다면 저들도 닿기를 배로 하여 과인과 합세하려 들 것이외다. 전번과는 달리 우리에게는 조참과 관영이 돌아왔으니 한번 해볼 만한 일이 아니겠소?”

그러자 한왕이 옳은 답을 바로 맞혔다는 듯 장량이 가볍게 손뼉까지 치며 웃고 말하였다.

역시 천하의 주인이 되실 만한 헤아리심입니다. 항왕도 외로운 진성에서 오래 버티려 하지는 않을 것이니, 힘을 다해 들이치면 아니 될 일도 없습니다. 그런 다음 천천히 우리 전군을 모아들여 크게 몰이를 할 수 있는 궁지(窮地)로 초군을 몰아넣으면, 항왕을 사로잡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장량의 칭송을 듣자 한왕은 더욱 기세가 살아났다. 다시 싸움은 혼자 아는 양 장수들을 불러 모아 놓고 소리쳤다.

이제부터 항우가 처박혀 있는 진성을 친다. 우리가 먼저 항우를 쳐부수어 강함을 보여야 한신도 팽월도 그만큼 빨리 달려올 것이다. 모두 있는 힘을 다해 진성을 쳐라!”

이에 한군은 오랜만에 진채를 나와 진성으로 쳐들어갈 준비를 했다.

진성은 고릉에서 백리길이 안 됐다. 다음 날 일찍 길을 떠난 한군은 짧은 겨울 해가 지기도 전에 진성 아래 이를 수 있었다. 한왕은 새로 도착한 조참과 관영의 군사들을 진성 북쪽 20리 되는 골짜기에 숨겨 놓고 나머지만 진성 아래 벌판에 진채를 세우게 했다.

한편 진성으로 물러난 패왕 항우는 성안의 곡식을 거두어 주린 군사들을 먹이고 민가를 비워 여러 날에 걸친 싸움에 지친 몸을 쉬게 했다. 며칠 안 돼 초나라 군사들은 날카로운 기세를 되찾았으나 곡식을 뺏기고 제집에서 쫓겨난 성안의 인심은 말이 아니었다. 원래도 별로 좋지 않던 초군의 평판은 한층 엉망이 되고, 창칼이 무서워 머리를 수그린 백성들도 속으로는 저마다 패왕과 초군에 이를 갈았다.

고릉 북쪽의 진채를 빠져나온 한나라 대군이 진성 밖 벌판에 다시 진세를 벌인 것은 패왕이 이끈 초군 3만이 그 성안으로 든 지 이레 만이었다. 해질 무렵 성 밖이 수런거리는 소리에 패왕이 문루 위로 올라가 살펴보니 어느새 달려온 한나라 군사들이 성 밖 들판을 뒤덮고 있었다. 하지만 그 군세는 처음 고릉으로 밀려들 때의 절반밖에 안 돼 보였다.

이것들이 나를 너무 작게 보는구나. 바로 며칠 전에 이 곱절의 대군을 가지고도 한 싸움에 깨진 질그릇꼴이 나놓고 이제 그 절반의 군사로 우리를 뒤쫓으려 하다니. 이번에는 모조리 때려잡아 갑옷 한 조각 찾아가지 못하도록 만들어 놓아야겠다.”

울컥 화가 치민 패왕이 그대로 전군을 몰고 나가 한군을 짓밟아 버릴까 하면서 한 번 더 주변을 살폈다. 눈여겨보니 북쪽 하늘로 엷은 먼지가 치솟으며 은은한 살기(殺氣)가 뻗치고 있었다. 본능과도 같은 패왕의 전투 감각에 잡힌 병진(兵陣)의 기운이었다.

그 사이에 적의 원군이 이르렀구나. 저 능구렁이 같은 유방이 원군을 감춰 두고 나를 꾀어내려고 수작을 부리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함부로 성문을 열고 나갔다가는 뜻밖의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여러 번 한왕 유방의 계책 같지도 않은 계책에 말려 어려움을 겪은 뒤라 패왕도 적잖이 신중해졌다. 그런 헤아림으로 앞뒤 없이 치솟는 울화를 억누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장수들을 모두 과인의 군막으로 들게 하라.”

이윽고 패왕이 좌우를 돌아보며 그렇게 시켰다. 그리고 장수들이 모두 모이자 평소의 그답지 않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드디어 진성을 떠날 때가 온 것 같다. 원래부터 오래 머물려고 우리가 이 성에 든 것은 아니다. 이제 군사들은 충분히 쉬었고, 성 안팎에서 긁어모은 군량도 당분간은 버틸 만하다. 하지만 우리가 이대로 성을 빠져나가면 적은 더욱 기세가 올라 오히려 그 추격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또 한번 여지없이 적을 쳐부수어 우리를 뒤쫓을 엄두가 나지 않게 만들어야만 강동으로 돌아가는 남은 길이 편안할 것이다.”

그런 다음 패왕은 종제인 항장(項壯)을 불러 명을 내렸다.

네게 군사 3천을 줄 터이니 너는 싸움에 보탬이 되지 않는 노약자들과 군중의 전곡(錢穀)을 보존하여 먼저 동쪽으로 떠나도록 하라. 내일 새벽 남문으로 나가 성부(城父)로 가되 과인이 뒤따라 잡기 전에 성안으로 들지는 말라.”

항장이 명을 받고 물러나자 패왕은 이어 다른 장수들을 돌아보았다.

그대들은 내일 해가 뜨는 대로 과인과 함께 성을 나가 적을 친다. 모두 각자의 군막으로 돌아가 군사들로 하여금 내일 있을 한바탕 모진 싸움을 채비하게 하라. 먼저 군사들에게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이고, 오늘밤은 초경부터 잠자리에 들게 해 넉넉히 쉬도록 하라. 그리고 내일 아침에는 보기(步騎)를 가리지 않고 되도록 몸을 가볍게 하여 성을 나가게 하라. 벼락처럼 치고 들고 바람처럼 빠져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날 밤은 자신도 일찍 군막에 들어 태평스레 잠들었다.

다음날 날이 밝았다. 새벽에 항장이 군중의 재물과 곡식을 수레에 싣고 노약자를 보호해 가만히 남문을 빠져 나갔다. 그 노약자 속에는 남장(男裝)한 우()미인도 섞여 있었다. 그 사이 남은 초나라 장졸들도 일찍부터 그날 있을 싸움을 채비했다. 패왕이 주력을 이끌고 북문을 나갈 작정이다 보니 그쪽이 수런거려 한군의 주의는 절로 북문 쪽으로만 쏠렸다.

이윽고 아침 해가 떠오르면서 진성의 북문이 열렸다. 성문을 나서기 전에 패왕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장졸들을 모아놓고 다짐하듯 일러주었다.

적은 따로 한 갈래를 숨겨놓고 거짓으로 진 척 우리를 그리로 꾀어가려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당백(一當百)의 정예이고 적은 갈까마귀 떼나 다름없다. 복병이 일더라도 두려워할 것이 없다. 먼저 성 밖의 적진을 쓸어버리고, 속은 척 뒤쫓다가 적의 복병이 나오거든 힘을 다해 들이쳐라. 그 복병마저 꺾어 놓아야 우리가 돌아가는 우리 길이 편해진다.”

초나라 장졸들이 함성을 질러 그런 패왕을 향한 믿음을 드러냈다. 그리고 성난 물결과 같은 기세로 패왕을 따라 북문을 나왔다. 번쩍이는 갑옷투구로 몸을 싼 패왕 항우가 오추마에 높이 올라 앞장을 서고, 종리매와 환초를 비롯한 여러 장수가 옆으로 늘어선 뒤로 3만 대군이 쏟아져 나오는데, 그 어디에도 밀리고 쫓기는 군사 같은 티는 전혀 없었다.

저만치 한군의 원문(轅門)이 보이는 곳에 이르자 패왕 항우가 범이 울부짖듯 큰 소리로 한왕 유방을 불러냈다.

한왕은 어디 있느냐? 아직 목이 붙어 있거든 나와서 과인의 말을 들어라!”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원문이 열리며 태복(太僕)의 복색을 갖춘 하후영이 모는 수레 한 채가 느릿느릿 모습을 드러냈다. 누른 비단 덮개를 하고 휘장을 드리운 것으로 보아 한왕이 탄 황옥거(黃屋車)였다.

그 황옥거 곁으로는 한다하는 한나라의 맹장들이 말을 타고 펼쳐서 있었다. 큰 칼을 든 번쾌와 강한 활을 안장에 건 주발을 비롯해 왕릉 역상 주창 근흡 시무 등이 말위에 높이 올라 앉아 있는데, 관영과 조참을 빼고는 한나라의 장수 모두가 나선 듯했다.

초왕은 무슨 일로 과인을 찾는가? 이제라도 항복하여 천명(天命)에 따르려는가?”

한왕이 황옥거의 휘장을 걷고 얼굴을 내밀며 그렇게 능청을 떨었다. 그 소리에 벌써 패왕의 눈이 뒤집혔다. 한왕을 충동질해 보려다 제 속이 먼저 뒤집혀 목소리를 높였다.

네놈은 두더지처럼 방벽과 참호 안에 숨어 비루한 목숨이나 보존하는 것이 마땅하거늘, 또 무슨 요행을 바라고 여기까지 과인을 쫓아왔느냐? 기어이 그 늙은 머리를 과인에게 바치러 여기까지 왔느냐?”

이놈, 미련한 항우야. 그래도 한때 과인과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싸운 정이 있어 스스로 깨닫기를 바랐더니, 아무래도 너는 목에 시퍼런 칼날이 떨어져야 비로소 네가 죽는 줄을 알겠구나.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하늘의 호생지덕(好生之德)을 빌기는커녕 오히려 이 무슨 방자한 헛소리냐?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느니라.”

그렇게 갑자기 사람이 바뀐 듯 엄하게 패왕을 꾸짖는데 묘하게도 전에 없던 위엄이 넘쳐흘렀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들은 패왕은 더 참지 못했다. 한왕의 말은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좌우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가자. 내 오늘 저 주둥아리만 살아 있는 늙은 장돌뱅이놈을 죽이지 못하면 결코 초나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그리고는 전군을 휘몰아 한군을 덮쳤다. 전처럼 3만이 한 덩어리가 되어 한왕을 노리며 벼락 치듯 쪼개고 드는 방식이었다.

하도 여러 번 되풀이당해 온 전법이라 한군도 대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한왕이 탄 수레는 뒤로 빠지고 철기(鐵騎)와 보갑(步甲)을 이끈 한나라 장수들이 겹겹이 막아섰다. 그러자 한군의 전면은 그야말로 철벽이 가로막은 듯하였다.

하지만 성난 패왕이 벼락같은 고함과 불길이 뚝뚝 듣는 듯한 눈길로 앞장을 선 데다, 살아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매섭게 전의를 다진 초나라 장졸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그 뒤를 받치니 아무리 철벽이라도 소용이 없었다. 대쪽이 쪼개지듯 이내 한군 한가운데가 큰길이라도 난 듯 갈라졌다. 놀란 한나라 장수들이 저마다 군사를 꾸짖어 패왕의 앞길을 가로막아 보려 했으나 그저 그 닫는 속도를 조금 늦출 수 있을 뿐이었다.

오래잖아 패왕이 이끄는 초군 선봉에게 아직 싸움터를 빠져 나가지 못한 한왕의 수레가 저만치 보였다. 패왕이 다시 벼락같은 호통으로 근처에 있는 한군의 얼을 빼놓았다.

유방은 어디로 달아나느냐? 어서 그 늙은 목을 내놓지 못하겠느냐?”

그러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머릿수만 믿고 기세를 올리던 한군은 한층 더 겁먹고 어지러워졌다. 숱한 한나라의 맹장들도 초군의 매서운 공세에 몰리다 이리저리 흩어져 더는 한왕의 방패가 되지 못했다. 거기다가 뒤를 가려주는 군사도 엷어 자칫하면 한왕의 수레가 패왕의 오추마에게 따라잡힐 판이었다.

싸움을 거기까지 몰아간 패왕 항우는 더욱 힘이 솟았다. 잘 되면 바로 한왕 유방을 잡아 죽여 모든 일을 끝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칠십 근 철극을 부젓가락 놀리듯 휘두르며 누런 덮개를 씌운 한왕의 수레를 뒤쫓았다.

하지만 그 싸움에서 패왕이 바로 헤아리지 못한 게 하나 있었다. 한왕이 진성 북쪽에 남겨둔 관영과 조참의 군사가 그랬다. 3만은 패왕이 짐작한 것처럼 그곳에 매복하고 있으면서 초군이 유인책에 말려들기를 기다리는 군사들이 아니었다. 패왕의 전법을 오랫동안 살펴온 장량이 바로 그렇게 한군이 몰리게 되는 때를 위해 남겨두도록 권한 병력이었다.

바로 지금이오. 어서 가서 적을 맞받아치시오. 항우가 아무리 날뛰어도 결코 밀려서는 아니 되오. 두 분 장군께서 급한 물머리를 막아주지 않으면 우리 한군은 모두 초군의 흉흉한 기세에 휩쓸려 무너져 내리고 말 것이오.”

초군과 한군이 어울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진평과 함께 뒤처져 있던 장량이 그렇게 관영과 조참을 재촉해 내보냈다. 관영이 이끌고 있던 군사는 낭중(郎中)기병으로 이루어진 기마대가 주력이었고, 조참의 군사도 변화에 재빨리 응하기 위해 한껏 몸을 가볍게 하고 있던 정병들이었다. 머물고 있던 곳에서 뛰쳐나가 너무 늦지 않게 싸움터에 이르렀다.

관영과 조참이 이끈 두 갈래 군사가 갑자기 뒤에서 치고 나오자 기세 좋게 밀고 들던 초나라 장졸들도 잠시 움찔했다. 하지만 이미 그들이 있다는 것을 패왕에게서 들어 알고 있어서인지 겁먹거나 움츠러들지는 않았다. 밀고 나오던 기세 그대로 관영과 조참이 이끈 군사를 맞았다.

관영과 조참 모두가 불같은 전투력으로 이름을 얻은 장수들이었다. 거기다가 장량의 당부까지 듣고 싸움에 나선 터라 그 기세들이 여간 매섭지 않았다. 패왕이 몸소 이끈 초나라 선봉과 맞닥뜨리고도 두려움을 몰랐다. 성난 외침으로 군사들을 휘몰아 맞부딪쳐 갔다.

곧 여러 해에 걸친 한나라와 초나라의 쟁패전에서 가장 처절한 싸움이 진성 북쪽 성벽 아래서 벌어졌다. 어느 쪽도 가볍게 물러설 수 있는 처지가 못 되었다. 이제는 기세로 밀고 밀리는 싸움이 아니라, 그야말로 피가 튀고 살과 뼈가 흩어지는 피투성이 난전이 되어갔다.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팽팽하게 맞서자 차츰 한군의 머릿수가 힘을 쓰기 시작했다. 패왕과 초군의 일격을 받고 흩어졌던 한나라 장수들이 다시 군사를 수습해 관영과 조참을 거들면서 군사가 적은 초나라 쪽이 몰리는 기색을 드러냈다.

패왕의 본능적인 전투감각도 곧 자기편의 비세를 알아차렸다.

한왕이 이끈 대군과 북쪽에 매복하고 있던 대군을 하나씩 따로 쳐부수려 했는데, 오히려 차례로 불러내 우리가 거꾸로 몰리게 되고 말았구나. 크게 잘못 되었다.’

패왕은 속으로 혀를 차면서 재빨리 싸움터를 둘러보았다. 그 사이 대오를 수습해 되몰려든 한군들로 3만도 안 되는 초군은 차츰 외로운 섬처럼 에워싸여 갔다. 그걸 보자 패왕은 좌우를 돌아보며 미련 없이 소리쳤다.

이제 이곳을 빠져 나간다. 그러나 돌아서는 것이 아니고 앞을 막은 적을 뚫고 나간다. 과인이 앞설 터이니, 죽기로 싸워 길을 열라. 결코 적에게 등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앞을 가로막는 한군 속으로 성난 범처럼 뛰어들었다.

오직 살기 위한 길을 열려는 싸움이 되자 초나라 장졸들의 기세도 이전과 견줄 바가 아니었다. 군신(君臣) 장졸(將卒)이 한 덩어리가 되어 맹렬하게 치고 드니 힘을 다해 버티던 관영과 조참의 군사들도 흠칫했다. 그들이 자신도 모르게 한쪽으로 밀리며 내준 길로 패왕 항우가 이끈 초나라 군사들이 바람처럼 빠져나갔다. 애초부터 그런 때를 위해 한껏 몸을 가볍게 한 초군들이라 빠져나가는 기세가 마치 매섭고 빠른 회오리 같았다.

어렵게 북쪽으로 뚫고 나간 패왕은 곧 군사들을 남쪽으로 몰아 새벽에 먼저 떠나보낸 항장(項壯)의 뒤를 쫓게 했다. 하지만 관영에게는 날랜 기마 5천이 있었다. 그들이 악착같이 뒤쫓으며 몰아치니 아무리 패왕이 이끈 정병이라 해도 희생과 손실이 없을 수 없었다.

가까스로 한군의 추격을 뿌리친 패왕이 군사를 수습해 보니 그 사이에 입은 손실이 만만치 않았다. 초나라를 편들어 싸우던 누번(樓煩) 장수 두 명이 목숨을 잃고, 기장(騎將) 여덟 명이 관영의 군사들에게 사로잡혀 갔다. 군사도 5천 넘게 줄어 있었다.

그래도 오늘 싸움으로 유방은 다시 한번 간담이 서늘하였을 것이다. 이제는 함부로 우리를 뒤쫓지 못하리라.’

패왕은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길을 동쪽으로 잡았다.

해질 무렵 항장의 군사들을 따라잡은 패왕은 그들에게서 다시 분통 터지는 소리를 들었다. 진현(陳縣) 현령으로 세워 진성에 남겨둔 초나라 장수 이기(利機)가 한왕에게 항복해 버린 일이었다. 농성전으로 며칠이라도 한군의 발목을 잡아줄 줄 알았는데, 싸움 한번 없이 성문을 열고 한군을 맞아들여 버리자 초군은 더욱 뒤가 허전해졌다. 밤길을 재촉해 한 발자국이라도 멀리 진성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패왕이 군사를 쉬게 한 것은 성보(城父)에 이른 다음이었다. 관영이 급히 한왕에게로 돌아가느라 비워두다시피 한 그곳으로 밀고 들어, 높고 든든한 그 성을 차지한 다음에야 비로소 초군은 하룻밤 다리 뻗고 잘 수가 있었다. 그런데 이기의 배신에 심기가 흔들린 탓일까, 다음 날 패왕은 갑자기 마음이 바뀐 듯 말했다.

어찌되었든 먼저 팽성으로 가보자. 팽성을 되찾고 흩어진 군사들을 모아 서초를 다시 일으켜 보자. 그게 정히 아니 되면 그때 강동으로 돌아간다.”

그러고는 전날 진성을 나설 때 한 말과는 달리 군사들을 내쳐 동쪽으로 몰았다. 패왕의 몰락을 점점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몰아가는 결정이었다.

한편 관영과 조참의 분전으로 또 한번의 참패를 면한 한나라 장수들은 패왕이 길을 앗아 달아나자 비로소 기세를 되찾았다. 뒤늦게 한왕을 찾아가 전군을 들어 패왕을 뒤쫓자고 졸라댔다. 패왕의 무시무시한 투지와 엄청난 돌파력에 다시 한번 질렸는지 한왕이 무겁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됐다. 우리가 이겼다는 소문만으로 넉넉하다. 이 소문이 귀에 들어가면 한신과 팽월은 시각을 다투어 과인의 군막으로 달려올 것이다. 호랑이 사냥은 그때 다시 시작하자. 전력을 모아 한 싸움으로 항우의 숨통을 끊어 놓아야 한다.”

그리고는 술과 고기를 내어 장졸들을 먹인 뒤 편히 쉬며 한신과 팽월이 대군을 이끌고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때 멀리 회남(淮南)에서 노관과 유고가 보낸 사자가 이르렀다.<() 노관과 유고는 회수(회수)를 건너 수춘(수춘)을 에워싸고 있고, 회남왕 경포는 육현(육현)을 치고 있으나, 구강(구강) 땅을 평정하는 일은 뜻 같지가 못합니다. 특히 초나라의 대사마 주은(주은)이 대군을 이끌고 서현(서현)에 머물러 있어 언제 그 사나운 이빨과 발톱을 드러낼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주은이 지금까지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곳 싸움의 승패를 살피고 있는 듯하니, 형세가 나은 대왕께서 사자를 보내 그를 한번 달래 보시는 것이 어떨는지요.>

회남에서 보내온 글의 뜻은 대강 그랬다. 그때 한왕은 사람을 끌어들여 제 편을 늘리는 일에 한창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특히 적을 꾀어 제 편을 만드는 것은 꾀어 들인 세력의 두 배를 얻는 것과 마찬가지라, 어디든 틈만 보이면 비집고 들 때였다. 그날로 군중에서 말주변 좋은 빈객(賓客) 하나를 골라 예물을 갖춰주고 서현으로 달려가게 했다. 주은이 귀순하면 내리겠다고 약조한 봉작(封爵)이 엄청났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그 무렵 팽월은 패왕 항우가 한왕에게 끌려 다니느라 비워둔 양() 땅으로 다시 돌아와 크게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수양()에서 대량(大梁)에 이르기까지 스무 개가 넘는 성을 빼앗고 널리 군사를 긁어모아 그 위세가 옛적 위왕(魏王)에 못지않았다. 그러나 한왕의 간곡한 부름을 따르지 않고, 무리와 더불어 대량에 머물면서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하게 천하의 형세를 살피고 있었다.

팽월이 한왕 유방이 내린 관작을 받고 그를 주인으로 받들게 된 것은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고(無所屬) 떠돌면서 받은 설움 때문이었다. 별것 아닌 것들이 패왕의 눈에 들어 왕이니 제후니 하는 동안에도 1만이 넘는 정병을 거느린 팽월은 여전히 이름 없는 토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한왕 아래 든 뒤에도 오래 야도(野盜)와 수적(水賊)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며 늙어오는 동안 팽월의 몸에 밴 습성은 누구에게 얽매이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명분만 한왕과 군신(君臣)으로 해놓고 언제나 한나라를 겉돌았다.

한왕의 잦은 군사적 패배도 팽월이 모든 것을 걸고 그 밑으로 드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허울뿐인 한나라의 관작을 받은 뒤로 팽월은 한번도 한군이 통쾌하게 이겼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한왕에게서 달려오는 사자마다 죽는 소리요, 도와달라는 당부뿐이었다. 초나라의 양도(糧道)를 끊어 달라, 패왕의 뒤를 유격(遊擊)해 다오, () 땅을 어지럽게 만들어라. 따라서 이미 여러 해 패왕 항우를 괴롭혀 온 터라 결코 그와는 손잡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닌데도, 팽월은 선뜻 전군을 들어 한왕 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서 살피기만 했다.

그 무렵도 그랬다. 팽월은 마지못해 한왕의 본진에 군량 10만 곡()을 보내 준 걸로 체면치레만 하고, 아직도 잘 가늠이 되지 않는 승패의 향방을 주의 깊게 헤아리고 있었다. 그런데 다시 고릉 싸움에서 크게 진 한왕이 팽월에게 사람을 보내 출병을 재촉해왔다. 이번에도 팽월은 위나라가 아직 안정되지 못했다는 구차한 핑계로 출병하지 않고 버텼으나 왠지 마음이 편치 못했다. 그래서 더욱 세심하게 변화를 살피게 하고 있는데, 갑자기 유성마가 달려와 알렸다.

진성(陳城) 아래 싸움에서 한군이 마침내 초군을 무찔렀습니다. 항우가 몸소 앞장서 용맹을 떨쳤으나 한나라 장수들이 모두 달려 나와 그 돌진을 막아냈다고 합니다. 특히 관영과 조참은 기우는 전세를 역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달아나는 초군을 뒤쫓아 적지 않은 장졸들을 사로잡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팽월은 그 말을 얼른 믿을 수가 없었다. 다시 사람을 풀어 자세히 알아보게 하고 있는데, 제왕(齊王) 전횡(田橫)이 찾아왔다. 전횡은 한신에게 제나라를 빼앗긴 뒤로 따르는 무리 수천과 더불어 팽월의 군중(軍中)에서 식객 아닌 식객 노릇을 하고 있었다.

이제 상국(相國)과 작별할 때가 된 듯하오. 그러나 막상 떠나려 하니 그동안의 두터운 보살핌을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소.”

전횡이 무거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갑작스러운 말이라 팽월이 놀란 눈길로 물었다.

제왕께서는 그 무슨 말씀이오? 가신다니 어디로 가신다는 말씀이오?”

과인도 들었소. 드디어 한왕이 혼자 힘으로 항우를 꺾었다지요? 그렇다면 상국도 이제 더는 한왕의 부름에 따르기를 미룰 수 없을 것이오. 더 늦기 전에 대군을 모아 한왕에게로 달려가도록 하시오. 과인은 산동(山東)의 지사(志士)들과 더불어 동해 바닷가로 숨으려 하오.”

그제야 팽월은 전횡이 왜 그러는지 짐작이 갔다. 그러나 아직도 궁금한 게 남아 있어 그것부터 먼저 물었다.

더 늦기 전에라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오?”

이 소문이 귀에 들어가면 한신은 틀림없이 대군을 이끌고 길을 재촉해 한왕에게로 달려갈 것이오. 그때 만일 상국이 한신보다 늦으면 틀림없이 한왕의 의심을 사리다. 그리하여 한왕과 한신이 항우을 이기고 나면 그 다음은 누구보다 먼저 상국을 칠 것이오. 만일 상국이 홀로 힘으로 그들을 당해 낼 수 있다면 모르거니와, 그렇지 않다면 하루라도 빨리 한왕에게로 달려가도록 하시오. 늦기 전에 한왕의 믿음을 사서 그가 약조한 땅과 왕위를 상국의 것으로 굳히도록 하시오.”

전횡이 담담한 얼굴로 그렇게 일러 주었다. 팽월이 그 말을 못 알아들을 사람이 아니었다. 가벼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어두운 표정으로 전횡의 말을 받았다.

이 늙은이가 한왕에게로 갈 때는 제왕도 당연히 함께 가는 것으로 알았소. 한왕은 너그러운 사람이오. 거기다가 제왕이 맞선 것은 군왕의 뜻을 어기고 갑자기 군사를 낸 한신이지 한왕이 아니지 않소? 차라리 제왕도 나와 함께 한왕에게로 갑시다.”

설령 한왕이 과인을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해도 한신은 어찌할 것이오? 그는 여전히 한왕의 으뜸가는 공신이니, 그와 나란히 서서 한왕을 받드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이겠소? 거기다가 대장군 역상((,))도 있소. 그 형 역이기를 가마솥에 삶아 죽여 놓고 어찌 한 주인을 섬기며 살기를 바라겠소? 차라리 동해 바닷가로 가 숨느니만 못할 것이오.”

옛말에 이르기를 하늘 아래 땅치고 왕의 땅이 아닌 곳이 있으랴[보천지하 막비왕토]’라 하였으니, 만일 천하가 한왕에게로 돌아간다면 동해 바닷가에 숨는다 해서 그 다스림을 피할 수 있겠소?”

팽월이 그런 말로 전횡을 넌지시 붙잡아 보았다. 하지만 전횡은 이미 뜻을 굳힌 듯했다.

동해 바닷가로 나가면 관부(官府)의 손이 닿지 않는 이름 없는 섬이 많이 있다 하오. 뜻 맞는 이들 몇과 그곳에 조용히 숨어 살면 이 한 몸 곱게 늙어죽을 수는 있을 것이오.”

제왕(齊王) 전횡이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그렇게 말을 받더니 갑자기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상국에게 당부할 일이 하나 있소. 들어주시겠소?”

무엇이든 말씀하시오.”

팽월이 그렇게 받자 전횡이 눈시울까지 붉히며 말했다.

지난해 과인이 상국께로 의탁해 올 때 과인을 따라온 제나라 장졸이 1만에 가까웠소. 그러나 이제 과인이 가려는 동해 바닷가 외로운 섬까지 그들을 데려갈 수는 없소. 그중에서 우리 전씨(田氏) 족중(族中)과 함께 죽겠다고 따라나서는 몇 명만 데려갈 작정이니, 나머지는 상국께서 거두어 주시오. 오랫동안 과인을 믿고 싸워 온 용사들이오.”

그 말을 듣자 팽월도 알지 못할 강개(慷慨)에 젖었다. 하지만 당장은 전횡의 당부를 기꺼이 들어주는 것 외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알겠소. 내 중군(中軍)에 거두어 대택(大澤)에서부터 나를 따라온 젊은이들과 다름없이 보살필 것이니 마음 놓으시오.”

하지만 전횡이 제나라의 장졸을 모아놓고 그들의 뜻을 묻자 놀랍게도 모두가 전횡을 따라 동해 바닷가로 가려 했다. 다시는 부모처자에게로 돌아올 수 없는 길임을 내세워 그들을 달랬으나 소용이 없었다. 이에 전횡은 그날 밤 몰래 그들 중 500명만 골라 팽월의 진채를 빠져나갔다. 뒷날의 일이지만, 그렇게 따라간 산동의 지사(志士) 500은 결국 한 사람 남김없이 전횡과 죽음을 같이하게 된다.

팽월은 전횡이 떠난 다음 날로 정병 5만을 모아 한왕이 머물고 있는 진성으로 내려갔다. 한왕이 크게 기뻐하며 팽월을 양왕(梁王)에 가봉(假封)하고 그가 이끌고 온 군사를 한군의 나래로 삼았다. 그때 이미 10만을 넘어서고 있던 한군은 팽월의 대군이 더해지자 한층 기세가 치솟았다. 장수들이 다시 한왕에게로 몰려가 그 기세를 타고 패왕 항우를 뒤쫓자고 우겨댔다. 그래도 한왕은 여전히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호랑이가 토끼를 잡을 때도 온힘을 다한다고 한다. 하물며 항우 같은 맹장을 잡으려는 우리이겠느냐? 제왕 한신이 대군을 이끌고 이를 때까지 기다려라.”

그렇게 장수들을 말리며 한신의 대군이 마저 이르기를 기다렸다. 제왕 한신이 가려 뽑은 군사 5만을 이끌고 달려온 것은 팽월이 한왕의 군중으로 든 날로부터 사흘 뒤였다. 한신은 팽월보다 며칠 늦은 대신 곱절의 대군을 이끌고 온 것으로 낯을 세웠다.

“10만 대군을 일으키느라 늦었습니다. 남은 5만은 부장(部將) 공희(孔熙)와 진하(陳賀)가 이끌고 산동에서 내려오고 있습니다. 어디든 항우를 잡을 싸움터가 정해지면 늦지 않게 우리 군중에 닿을 것입니다.”

마침내 한신까지 대군을 이끌고 오자 한왕은 비로소 군사를 움직일 채비를 했다. 먼저 한신 팽월 장량 진평 등을 불러 모아 놓고 물었다.

회남왕(淮南王) 경포가 이미 노관 유고와 더불어 구강(九江) 땅을 치고 있는 데다, 다시 제왕(齊王)과 양왕(梁王)이 대군을 이끌고 과인의 군중에 이르렀으니, 이는 천하의 모든 제후가 모인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 과인은 크게 군사를 내어 초나라를 쳐 없애고 항왕을 사로잡아 오랜 전란의 시대를 끝내고자 한다. 그 뜻을 이루자면 먼저 어떻게 해야 좋겠는가?”

그러자 제왕 한신이 나와 말했다.

대왕께서 뜻을 이루심이 쉽고 어려움은 항왕이 장차 어떤 계책을 고르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만일 항왕이 남은 대군을 이끌고 강동(江東)으로 돌아가 거기서 재기(再起)를 도모한다면, 이는 상책(上策)을 고른 것으로서 대왕의 뜻을 이루시기는 아주 어려워집니다. 항왕이 강수(江水)에 의지해 지키며 오월(吳越)의 인재(人才)와 물산(物産)을 밑천 삼아 다시 힘을 기르면, 대왕께서 천하를 하나로 아우르는 날은 쉬이 기약할 수 없습니다. 그 다음으로 항왕이 남쪽 회수(淮水)가로 내려가, 지키기도 좋고 나아가기도 편한 요해처에 자리 잡고 흩어진 초나라 장졸들을 모아들인다면 이는 중책(中策)이 됩니다. 그래도 한때 천하를 호령했던 서초의 대군이라, 쪼개져 흩어졌다 해도 항왕이 굳건히 자리 잡고 모아들이면 그 세력이 만만찮을 것입니다. 따라서 또다시 한바탕 천하를 건 힘든 싸움을 치르고 적지 않은 군사와 물력(物力)을 소모해야만 대왕의 뜻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하책(下策)은 항왕이 아직도 자신의 처지를 깨닫지 못하고 팽성으로 달려가 그곳을 근거로 다시 서초를 일으켜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팽성은 사방으로 열려 있는 땅이라, 설령 항왕이 쉽게 회복한다 해도 기대할 뒷날이 없습니다. 이미 산동과 서초 땅 거의가 우리 세력 아래 들어 있어 항왕의 군사는 외로운 섬처럼 우리 대군에 에워싸여 있다가 끝내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스러져 갈 것입니다.”

지금 항왕은 어디에 있소?”

한신의 말을 듣고 마음이 급해진 한왕이 군중에 앉아서도 그런 일을 꿰고 있는 장량에게 물었다. 장량이 가만히 웃으며 대답했다.

제왕의 말씀대로라면 대왕께는 다행스럽게도 항왕은 하책을 고른 것 같습니다. 듣기로 항왕이 이끄는 군사는 동쪽으로 달려갔다고 합니다. 자세한 것은 탐마(探馬)가 돌아와 보아야 알 수 있으나 아마도 항왕은 먼저 팽성을 되찾고 거기서 다시 세력을 모아 보려는 뜻 같습니다.”

그 말을 듣자 가슴을 쓸어내리며 갑자기 서두르기 시작했다.

어서 모든 군사를 움직여 항왕을 뒤쫓도록 하시오. 항왕이 이끈 군사는 달리 도우러 올 우군(友軍)이 없는 외로운 군대[고군]. 팽성에 가둬놓고 먼저 우리 30만 대군으로 에워싼 뒤에 천하 제후의 군사들을 모두 불러 모으면, 항왕은 날개가 있다 해도 거기서 벗어날 길이 없을 것이오!”

그러면서 장수들을 재촉해 군사를 움직이게 했다. 이에 다음날로 진현(陳縣) 성 밖에 모여 있던 한왕의 세 갈래의 군사는 팽성 쪽으로 길을 잡았다. 합쳐 20만이 넘는 대군이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이라 마치 거센 홍수가 동쪽으로 휩쓸고 내려오는 듯했다.

한왕 유방을 따르는 세 갈래 군마가 진성을 떠난 지 닷새째 되는 날이었다. 워낙 대군이라 움직임이 느려 아직 수양() 남쪽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는데, 회남왕 경포가 보낸 사자가 달려왔다. 경포가 아직 구강(九江) 땅에 머무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성보(城父)에서 보낸 사자였다.<() 영포는 노관 유고등과 더불어 대왕께 아룁니다.

초나라의 대사마 주은(주은)이 대왕의 뜻을 받들어 한나라에 귀순해 왔습니다. 주은은 서현(서현)의 군사들을 이끌고 구원하러 온 척하며 신이 치고 있던 육현(육현) 성안으로 들어가, 성을 지키던 초나라 군민을 모두 죽이고 성문을 열어 신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바람에 힘들이지 않고 도성 육()을 회복한 신은 주은과 군사를 합쳐 노관과 유고가 에워싸고 있는 수춘성(수춘성)으로 달려갔습니다. 노관과 유고의 군사도 당하지 못해 성문을 닫아걸고 지키기만 하던 성안 군민들은 신과 주은이 대군을 몰고 가자 더 싸울 마음을 버리고 성문을 열어 항복했습니다.

대사마 주은이 한나라로 귀순한 데다 육성이 떨어지고 수춘이 항복하니 인근의 다른 성읍들도 다투어 항복해 와 구강은 이미 평정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에 신은 구강을 잠시 장수들에게 맡겨 지키게 하고, 노관 유고와 함께 회수(회수)를 건너 진성으로 달려갔습니다. 항왕을 잡는 대왕의 손톱과 이빨[조아]이 되고자 함이었으나, 대왕께서 이미 동쪽으로 떠나신 뒤였습니다. 도중에 그 소식을 들은 저희들은 길을 바꾸어 대왕을 뒤따르다가 성보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성보는 대왕께 져서 쫓기던 항왕이 동쪽으로 달아나는 중에 잠시 거두어 머문 적이 있는 성입니다. 항왕이 떠나면서 따로 장졸 약간을 남겨 지키게 한 곳인데, 그것들이 높고 든든한 성벽만 믿고 감히 저희들의 길을 막으려 했습니다. 신은 노관, 유고와 더불어 하루 밤 하루 낮의 싸움으로 성보를 떨어뜨리고 성안에서 우리 군사에게 맞선 초나라 군민들을 모조리 죽여 인근 성읍에 매운 본보기를 보였습니다. 이제 다시 군사를 진발시켜 왕사(왕사)를 따라잡게 하면서, 간략하게 그간의 경과를 아룀과 아울러 저희가 반드시 이르러야 할 곳과 때를 듣고자 합니다.>

경포가 보낸 글은 대강 그랬다. 읽기를 마친 한왕은 연방 터져 나오는 기쁜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제왕과 양왕이 온 데다 이제 구강이 평정되어 회남왕까지 과인에게로 오고 있다면 천하 대세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마냥 기뻐할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직 경포의 사자에게 답을 주어 보내기도 전에 동쪽으로 갔던 탐마가 다시 새로운 소문을 듣고 왔다.

줄곧 팽성을 향해 내닫던 항왕이 갑자기 군사를 돌려 길을 남쪽으로 잡았습니다. 지금 기현(近縣) 쪽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끝내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한왕은 자신도 모르게 낯빛이 흐려졌다. 며칠 전 제왕 한신이 한 말 때문이었다. 그 자리에 있는 한신을 돌아보며 걱정스레 물었다.

항왕이 스스로 하책(下策)임을 깨닫고 길을 바꾼 것은 아니요?”

그렇지는 않을 듯합니다. 항왕은 타고난 무골(武骨)로 한 싸움 한 싸움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뿐 길게 보고 계책을 짜낼 머리가 없습니다. 방금도 팽성에 가까워지면서 점차 강해지는 저항에 본능적으로 불리함을 감지하고 길을 바꾼 듯합니다. 곧 뜻밖으로 완강하게 버티는 우리 수장(戍將)들과 뒤쫓아 오는 대왕의 대군에 앞뒤로 협격(挾擊)당하는 게 싫어서 잠깐 비껴선 것입니다.”

제왕 한신이 그렇게 별로 걱정하는 기색 없이 한왕의 말을 받았다. 한왕이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표정으로 물었다.

만약 항왕이 회수(淮水)를 건넌 뒤 다시 동으로 강수(江水·장강)를 건너 강동으로 돌아가게 되면 이는 바로 제왕이 말한 상책(上策)을 고르는 셈이 되오. 그리 되면 어찌하겠소?”

그 일은 막아야지요. 대왕께서는 추격의 완급을 조절하시어 항왕으로 하여금 중책(中策)을 고르도록 몰아가셔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항왕을 회북(淮北)에 잡아둘 수 있겠소?”

먼저 대왕께서는 되도록이면 군사를 천천히 몰아 항왕에게 흩어진 서초의 군사들을 다시 모아들일 틈을 주셔야 합니다. 그 다음에 회남왕을 시켜 구강에 남은 군사들로 하여금 강동으로 가는 길목이 되는 회수 나루를 막게 하십시오. 그러면 세력이 불어난 항왕은 구태여 회수를 건너지 않고 회북에서 싸우기 좋은 땅을 골라 한 번 더 대왕과 결판을 내려 할 것입니다. 그때 대왕께서는 대군을 쪼개 여러 길로 나누어 천천히 그곳으로 다가들게 하십시오. 그러다가 그곳에 이르러 재빠르게 에워싸도록 하면 항왕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대군이 친 그물 한가운데 놓이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대답하는 제왕 한신의 목소리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한왕은 팽성 부근에서 패왕 항우를 협격하지 못하게 된 게 못내 아쉬웠으나, 이미 일이 그렇게 된 마당에는 달리 어찌하는 수가 없었다. 한신의 계책에 따르기로 하고 그날로 경포가 보낸 사자에게 답신을 주어 보냈다.

회남왕은 구강에 급히 사람을 보내 강동으로 돌아가는 길목이 되는 회수 나루를 막게 하라. 나루마다 높은 곳에 군막과 깃발을 벌려 세워 대군이 지키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배를 거두어 남북으로 오가는 뱃길을 끊어버려라. 회북에 있는 회남왕의 군사가 이르러야 할 곳과 때는 일후 다시 사람을 보내 일러줄 것이다.’

이어 한왕은 하루 행군 거리를 절반으로 줄여 대군을 이끌고 천천히 동쪽으로 나아가면서 패왕 항우의 움직임을 살폈다. 다시 열흘이 지나자 기다리던 소식이 왔다.

팽성 남쪽에서 흩어진 초군을 모아 세력을 불린 패왕 항우는 남쪽으로 내려가 해하(垓下)에 자리 잡았습니다. 성곽을 크게 고치는 한편 성 남쪽에 높은 방벽과 든든한 보루를 두른 진채를 세우는 것이 성안과 기각지세(角之勢)를 이루어 그곳에서 한바탕 크게 싸워볼 작정인 듯합니다.”

탐마로부터 그와 같은 말을 들은 한왕은 한신의 다음 계책을 따랐다. 먼저 대군을 다시 나누어 자신과 한신, 팽월이 각기 한 갈래를 이끌고 동 서 북 3면으로 가만히 다가가 해하를 에워싸기로 했다. 그리고 경포에게도 사람을 보내 기현 남쪽 길로 해하에 이르게 했다.

그 사이 한() 512월이 되었다. 그해 따라 추위가 길어 계절로는 이미 늦겨울에 접어들었는데도 해하(垓下)에서 방벽과 보루를 쌓고 참호를 파는 초나라 군사들에게는 아직 한겨울이었다. 하지만 몸소 돌과 통나무를 나르며 군사들을 다그치는 패왕 항우의 질타는 그런 날씨보다 더 엄중하고 혹독했다. 조바심과 울화 때문이었다.

삼촌 항량을 따라 오중(吳中)을 떠난 지 8년째, 패왕은 언제나 앞서 내달으며 대군을 휘몰아 쥐새끼처럼 흩어져 달아나는 적을 뒤쫓아 왔다. 성곽이나 방벽 뒤에 숨어 있는 적을 비로 쓸 듯 쳐 없애고, 쉬파리 떼처럼 모여들어 왱왱거리는 것들을 한 싸움으로 흩어버렸다. 그런데 이제는 패왕 자신이 오히려 쫓기고 방벽을 쌓아 지켜야 하는 고약한 처지에 떨어지고 말았다. 한왕의 대군에 에워싸여 천천히 말라죽지 않으려면 급급히 사람을 풀어 사방으로 흩어진 서초의 군사들을 모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거록(鉅鹿)에서는 유민군(流民軍) 5만으로 왕리가 이끄는 진나라 대군 20만을 묵은 기왓장 부수듯 쳐부수었고, 수수()가에서는 정병 3만으로 한왕이 이끄는 다섯 제후의 56만 대군을 깨뜨려 그 시체로 강물을 막은 나다. 두 달 전 고릉(固陵)에서도 3만이 못되는 군사로 유방의 10만 대군을 깨뜨려 유방으로 하여금 두더지처럼 땅을 파고 숨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거기다가 지금 내게는 5만 대군이 있다. 오너라. 얼마든지 오너라. 모조리 때려잡아 그간에 쌓인 울분을 한꺼번에 풀어 보겠다.’

패왕은 속으로 그렇게 벼르며 방벽을 쌓고 있는 군사들을 몰아댔지만 마음은 왠지 무겁기만 했다.

한 달 전 진성(陣城) 아래에서 처음으로 한군에 한 싸움을 내준 패왕은 성보에서 하루를 쉰 뒤 곧장 팽성으로 달려갔다. 진성에서는 다급한 김에 바로 강동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성보에서 하룻밤을 쉬고 난 뒤 갑자기 마음이 달라진 까닭이었다. 진성을 맡긴 이기(利機)가 싸움 한번 않고 한왕에게 항복한 일에 심기가 상한 데다 한군에 성을 잃고 떠돌다가 소문을 듣고 모여든 서초의 패군(敗軍)들로 다시 3만의 군세를 회복하게 된 것이 패왕의 전의(戰意)를 되살려낸 듯했다.

서초 땅으로 들어가면 더 많은 우리 장졸들이 관영과 조참에게 성을 뺏기고 의지가지없이 떠돌고 있을 것이다. 그들만 거두어들여도 금세 우리 군세를 키울 수 있다. 그들을 휘몰아 팽성을 되찾고 그곳에 머물면서, 용저(龍且)가 죽은 뒤에 이리저리 흩어진 군세까지 모아들이면, 다시 한번 패업((,))을 되살릴 수 있을 것이다. 멀리 강동까지 물러나지 않고도 까마귀 떼 같은 한군을 한 싸움에 쳐부수고 유방을 잡아 죽일 수 있을지 모른다.’

그때 패왕이 마음속으로 헤아린 바는 그랬다.

하지만 점점 팽성에 가까워지면서 패왕은 전에 겪지 못한 강한 저항과 반발을 느끼기 시작했다. 제나라를 차지한 한신은 그 사이 조참과 관영을 앞세워 서초 땅인 산동 남쪽까지 세력을 떨치고 있었다. 한신의 별장(別將)처럼 그 일을 해낸 관영과 조참도 그냥 서초의 심장부를 가로질러 한왕에게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둘 모두 소박한 대로 점령정책을 펴 곳곳에 제법 완강한 수비세력을 키워놓고 있었다.

알아보게 변한 천하의 민심도 서초 땅을 점령하고 있는 한나라 세력 못지않게 강한 저항과 반발로 느껴져 패왕을 섬뜩하게 만들었다. 그때까지 패왕이 한왕 유방과의 싸움에서 진 것은 진성(陳城) 아래에서 단 한번뿐이었고, 그것도 보기에 따라서는 반드시 진 것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무엇 때문인지 천하의 민심은 끝내 한나라가 이길 것이라는 믿음 위에서 움직였으며, 심지어는 서초 땅의 백성들까지도 패왕이 돌이킬 수 없게 몰리고 있다고 여기는 눈치였다. 모두가 패왕이 되돌아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이기고 있는 한나라 쪽에 붙어 살아남는 길을 찾기 바쁜 듯했다.

그런 민심을 느끼자 패왕은 갑자기 팽성이 한군의 철옹성(鐵甕城)이라도 되는 듯 떨어뜨릴 자신이 없어졌다.

아니 되겠다. 자칫하면 제나라 쪽에서 내려온 한나라 세력과 진성에서 뒤쫓아 오는 한왕의 대군 사이에 끼어 낭패를 당할 수도 있다. 차라리 군사를 남쪽으로 빼내 등 뒤의 걱정이라도 더는 것만 못하다. 팽성 남쪽에서 지키기도 좋고 나아가기도 좋은 땅을 골라 그곳을 근거지로 삼고 세력을 키워 보자. 시간을 벌고 지리(地利)를 얻은 뒤에 한왕의 대군을 그리로 불러들여 결판을 내는 것도 좋은 계책이 될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바꾸고 유심히 지세를 살피다가 해하(垓下)를 알맞은 땅으로 골랐다.

해하는 패군(沛郡) 효현(Q)에 있는 큰 읍락(邑落=聚邑)이다. ()는 제방()의 이름이라고도 하나 어떤 이는 깎아지른 듯한 바위로 이루어진 높은 언덕(高岡絶巖·고강절암)의 이름이라고 한다. 그 언덕 곁으로 읍락이 펼쳐지고 제방이 나 있어 부근 땅 이름이 해 아래곧 해하가 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해하는 남쪽으로 회수(淮水)가 멀지 않아 등 뒤에서 강한 적이 나타나는 것을 걱정할 일이 없을뿐더러 몰리는 군사들에게는 오히려 배수(背水)의 각오를 다지게 할 수도 있었다. 또 서초에서 강동으로 빠져나가는 길목이면서 한편으로는 강동에서 서초로 밀고 드는 발판이 될 수도 있는 땅이었다. 거기다가 인근에는 넓은 벌판이 있어 대군이 회전(會戰)할 수도 있고, 허물어졌지만 고치면 쓸 만한 성곽과 방벽이나 보루를 쌓으면 적은 군사로 지키기에 좋은 지세도 있었다.

해하에 자리 잡은 패왕은 낡은 성곽을 고치고 사방에서 오는 적을 막기에 좋은 곳에 든든한 진채를 세우게 했다. 특히 그 진채는 두꺼운 방벽을 두르고 높은 보루를 쌓아 웬만한 성채 못지않게 만들었다. 초군의 형세가 클 때는 고친 성곽과 더불어 기각지세를 이루며 적의 대군과 맞서고, 형세가 불리할 때는 그 진채 안으로 들어가 굳게 지키는 데 쓰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한번 살펴볼 것은 패왕이 그렇게 해하에서 버티기로 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뒷사람들의 논의이다. 곧 그와 같은 결정이 바로 패왕이 지금껏 떨치던 기세에 비해 너무도 급속하고 허망한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고 하는 주장이 그러하다.

그들에 따르면, 패왕은 이미 팽성이 떨어졌을 때 강동으로 물러났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강수(江水)를 방벽 삼아 지키면서 세력을 회복해 다시 북벌(北伐)에 나섰으면 천하쟁패의 향방은 달라졌을 거라고 한다.

패왕이 진작 여음(汝陰)에서 회수를 건너 육현(六縣)으로 가는 것이 옳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때는 아직도 대사마 주은(周殷)이 한나라에 항복하지 않은 때라 그와 더불어 경포를 물리치고 육현을 구했으면 구강(九江)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 뒤 한왕의 대군이 회수를 건너느라 시일을 끄는 동안 동쪽으로 강동과 연결하여 세력을 키우고 맞섰으면 넉넉히 한왕을 물리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그들이 안타까워하는 까닭이다.

처음부터 패왕에게는 달리 선택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곧 진성의 싸움 뒤로 줄곧 몰리다가 해하에서 한나라 대군에게 포착되어 섬멸 당했을 뿐이라고 보는 사람들이다. 자치통감(資治通鑑)이나 사기(史記)항우 본기로만 본다면 해하(垓下)의 결전같은 것은 없었다고 하는 이들이 옳은 듯도 하다. 양쪽 모두 패왕은 군사가 적고 먹을 것이 떨어져[병소식진]’ 해하 진채의 방벽(防壁) 안으로 쫓겨 들어갔다가 이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되는 것처럼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사기의 고조 본기회음 후 열전은 또 다르다. 그 싸움의 자세한 경과와 거기서 쓰인 전략전술까지 기록하고 있어 해하에서 치열한 결전이 있었음을 전해 준다.

거기다가 패왕 항우의 성품으로 미루어 보아도 해하를 결전의 장소로 삼은 것은 그의 선택이었음에 틀림없는 것 같다. 불같고 직선적인 패왕의 성품에 지구전(持久戰)이나 장기적이고 정밀한 전략은 맞지 않는다. 설령 그의 본능적인 전투감각이 그 유리함을 감지했다 해도 그대로 따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너무 급작스러운 형세의 역전도 냉철한 퇴각 결정을 막았을 것으로 보인다. 비세(非勢)로 몰린 게 어이없을 만큼 갑작스러운 데다 아직 그리 오래되지 않아 패왕은 그 비세를 실감하기는커녕 인정하기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따라서 그런 패왕에게 중원을 버려두고 강동으로 물러나 뒷날의 기약을 바랄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해하에 자리 잡은 패왕이 사방에 사람을 풀어 흩어진 서초의 군사들을 거두어들이게 하자 초군의 세력은 급속하게 불어났다. 보름도 안돼 여기저기서 찾아든 장졸이 2만이 넘어 어느새 패왕의 군세는 5만을 헤아리게 되었다. 그게 다시 패왕의 자신감을 키워 해하를 반격의 거점으로 삼는다는 결정을 더욱 흔들림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그날 다시 패왕과 초나라 군사들의 기세를 크게 드높여 준 일이 생겼다. 몸소 방벽 쌓는 일을 도우며 군사들을 다잡던 패왕이 군막으로 돌아와 쉬려 할 때였다. 멀리 북쪽을 살피러 나갔던 탐마가 급하게 돌아와 들뜬 목소리로 알렸다.

대왕, 기뻐하십시오. 계포 장군이 3만 군사를 모아 돌아오고 계십니다. 지금 30리 밖에서 군사들을 쉬게 하면서 먼저 대왕께 소식 전하라 이르셨습니다.”

광무산을 떠날 때 패왕은 계포에게 군사 1만을 갈라 주며 관영의 공격을 받고 있는 팽성을 구하라고 먼저 보냈다. 그러나 계포는 산동 남쪽을 지나는 중에 조참의 대군을 만나 한 싸움을 크게 지고 우현(虞縣) 부근의 작은 산성에 갇혀 있다고 듣고 있었다. 그 계포가 원래보다 몇 배나 되는 대군을 이끌고 적지나 다름없는 몇 백리를 돌파해 패왕을 찾아왔으니 반갑고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계포에게는 그렇게 돌아온 것이 결코 자랑일 수만은 없었다.

우현(虞縣)의 한 산성에 들어 조참의 예봉을 피한 신은 어렵게 적진을 헤치고 팽성에 이르렀으나 그때는 이미 모든 것이 늦어 버린 뒤였습니다. 팽성을 지키던 항타는 관영에게 항복하여 한왕에게로 끌려가고, 그가 거느리던 대군은 흩어져 팽성 부근을 떠돌고 있었습니다. 이에 신은 그중에 2만을 거두어 대왕께로 데리고 왔습니다만 팽성을 구하라는 군명(軍命)을 받들지 못한 죄는 면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래잖아 진채에 이른 계포가 부끄러워하는 낯빛으로 그렇게 죄를 빌었다. 그러나 패왕은 전과 달리 그런 계포를 별로 꾸짖지 않았다. 오히려 그가 이끌고 온 3만 군사를 둘러보며 추어주듯 말했다.

그래도 이렇게 돌아왔으니 됐다. 그대가 이끌고 온 군마는 과인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10만 대군을 일컫게 되었으니, 설령 유방이 백만 대군을 이끌고 온다 해도 두려울 것 없다. 여기서 이겨 그동안 잃은 것을 한꺼번에 모두 되찾도록 하자.”

그리고는 술과 고기를 내어 계포와 그가 이끌고 온 군사들을 위로했다.

한편 한왕 유방과 제왕 한신, 회남왕 경포, 양왕 팽월이 이끄는 30만 대군은 그 무렵 천천히 해하를 에워싸고 있었다. 수양 남쪽에서 네 갈래로 길을 나누어 헤어진 지 스무날 만이었다. 그들 모두가 되도록 세력을 감추고 움직임을 조용히 하여 해하로 다가들다 보니 행군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그들 가운데서 가장 먼저 해하에 이른 것은 한신이 이끈 제나라 군사들이었다. 한왕과 헤어진 한신은 5만 장졸과 함께 가만히 서초를 가로질러 팽성 동쪽에서 공희(孔熙)와 진하(陳賀)를 만났다. 따로 제나라 군사 5만을 이끌고 산동으로 내려오던 한신의 두 부장(部將)이었다. 그들을 거두어 10만 대군으로 부풀어난 한신은 그제야 길을 재촉해 해하로 내려갔다. 그리고 그 동북쪽을 멀리서 에워싸듯 진채를 내린 뒤 한왕의 본진이 이르기를 기다렸다.

그 다음에 해하로 온 것은 팽월의 군사들이었다. 한왕과 헤어진 팽월은 곧장 수양()으로 올라가 군사 1만을 더 보탠 뒤에 다시 남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해하 서북쪽 50리 되는 곳을 지그시 내려 누르듯 진채를 내린 뒤에, 조용히 군사들을 쉬게 하며 또한 한왕의 본진이 해하에 이르기를 기다렸다.

경포는 회수를 따라 동쪽으로 가다가 대택향(大澤鄕) 동쪽에 진채를 내려 초군이 강동으로 돌아가는 길을 끊는 형국을 취했다. 그러나 때가 되면 한나절로 해하에 이를 수 있어 경포 역시 남쪽으로 해하를 에워쌌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거기다가 그동안 구강(九江)에서 급히 모아 온 군사 2만이 더해져 패왕이라 해도 곧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세력이 아니었다.

기현(近縣)에 느긋이 머물며 멀리 관중에 있는 소하에게서 군사와 곡식을 끌어와 한층 세력을 키운 한왕 유방이 마침내 해하 서쪽 70리쯤 되는 곳에 이른 것은 한 512월 중순으로 접어들 때였다. 미리 와서 해하 인근의 지세를 샅샅이 살핀 한신이 가만히 한왕에게 사자를 보내 말하였다.

해하 서북쪽 30리 되는 벌판에 대군을 펼쳐 크게 싸워 볼 만한 땅이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그리로 본진을 옮기십시오.”

그리고 팽월과 경포에게도 사람을 보내 그 벌판으로 군사를 이끌고 오게 했다.

며칠 안 돼 해하 서북쪽 벌판에는 30만이 넘는 대군이 한나라의 깃발 아래 모였다. 크게 나누어 한왕이 몸소 이끄는 한군 10만에 한신이 이끄는 제군(齊軍) 10, 그리고 팽월과 경포가 이끄는 두 갈래 군사가 합쳐 10만이었다. 머릿수로만 본다면 3년 전 한왕이 다섯 제후를 모아 팽성을 칠 때의 56만에 크게 못 미쳤으나 실제의 전력(戰力)으로는 그때와 견줄 바가 아니었다. 그때는 마구잡이로 끌어 모아 머릿수만 부풀린 잡동사니 군대였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한왕이 이끈 10만은 태반이 여러 해에 걸쳐 한왕을 따라다니며 크고 작은 싸움으로 단련된 군사들이었다. 거기다가 관영과 조참을 따라다니며 더욱 단련된 3만과 소하가 오래 조련시켜 보낸 관중의 장정들이 더해져 10만 모두가 정병이라 할 만했다.

다른 세 갈래 군사도 정예하기는 한왕의 본진(本陣)에 뒤지지 않았다. 한신의 10만은 예부터 인재가 많고 물자가 풍부한 땅으로 알려진 제나라에서 뽑은 장정과 물자로 짜인 군사였다. 거기다가 그 대부분은 당대 제일의 병가(兵家)인 한신 밑에서 한 해 가깝게 단련을 받아 이제 한창 싸울 만했다.

팽월의 군사는 대택(大澤)에서 따라나선 젊은이들을 뼈대로 하는 1만에다 양() 땅 스무 남은 성에서 가려 뽑은 장정들로 이루어진 4만을 보태 5만이었다. 나중에 기른 4만은 들쭉날쭉한 데가 있었으나, 그래도 벌써 이태째나 팽월을 따라 초나라 군사를 유격(遊擊)하며 떠도는 동안에 제법 쓸 만한 정병으로 자라 있었다.

이끄는 장수의 갈래가 잡다한 데다 갑자기 군사로 뽑힌 생짜가 많기로는 경포의 군사 5만이 심했다. 주은이 데리고 온 초나라 항병이 1만이요, 노관과 유고가 이끄는 한군이 1만에, 경포가 이끄는 구강병(九江兵) 3만도 그중 2만이 새로 뽑은 군사였다. 하지만 맹장(猛將) 밑에 약졸(弱卒)이 없는 법, 천하의 경포가 그 세 갈래 군사를 모두 틀어쥐고 몰아가니 그 기세는 누구도 감히 얕볼 수 없었다.

전군이 모두 진채를 내리자 한왕 유방이 세 제후와 여러 대장을 모두 자신의 군막 안으로 불러들였다. 군례가 끝나고 각기 자리를 정해 늘어서기 바쁘게 한왕이 제왕(齊王) 한신을 보며 물었다.

우리가 네 갈래로 군사를 나눠 천천히 온 것은 가만히 해하를 에워싸 초군의 퇴로를 끊은 다음 일시에 힘을 모아 항왕을 사로잡기 위해서였소. 그런데 이렇게 드러내 놓고 대군을 한군데 모으니 과인은 제왕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소. 항왕이 놀라 강동으로 달아나면 어찌할 작정이오?”

신이 사람을 풀어 알아 보니 항왕은 벌써 한 달 전에 이리로 와 낡은 성곽을 고치는 한편 새로 진채를 세워 두꺼운 방벽과 든든한 보루를 둘렀다 합니다. 거기다가 그동안 흩어져 떠돌던 초나라 군사들을 모아들이고 계포가 다시 3만 대군을 모아 와 이제는 군세도 10만을 일컫게 되었습니다. 항왕의 성품으로 미루어 강동으로 달아날 까닭이 없습니다. 지금은 군세를 둘로 갈라 읍성(邑城)과 진채에 나누어 들어 있는데, 우리가 이른 줄 알면 오히려 먼저 치고 나올 기세입니다.”

한신이 그렇게 대답했다. 그래도 한왕은 못내 알 수 없다는 눈치였다.

항왕도 눈과 귀가 있으니 우리 군세가 얼마나 큰지를 알 것이오. 거기다가 제왕(齊王)과 회남왕 그리고 양왕이 각기 정병을 이끌고 이른 줄 알면 아무리 무서움을 모르는 항왕이라도 움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외다. 또 계포와 종리매가 아직 항왕 곁에 붙어 있는 것도 마음 놓이지 않는 일이오. 초나라 군중에서는 그래도 지모가 있는 자들이라 항왕을 달래 강동으로 물러나게 할 수도 있지 않소?”

한왕이 그렇게 말하며 응원을 구하듯 좌우를 둘러보았다. 장량이 나서서 한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항왕은 계포와 종리매에게 5만을 주어 옛 성곽 안으로 들게 하고, 자신은 정병 3만과 더불어 새로 세운 진채의 방벽 안에 자리 잡았다고 합니다.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 항왕도 전과 달리 신중해진 듯합니다. 이는 성곽과 진채가 기각지세(角之勢)를 이루게 하려는 것으로서, 나아가 싸우기보다는 물러나 지키기를 중시하는 포진입니다.

반드시 제왕께서 잘못 보신 것은 아닌 듯하나 밤이 길면 꿈자리도 사나워지는 법, 차라리 항왕에게 견주고 헤아릴 겨를을 주지 말고 하루빨리 결판을 내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전서(戰書)를 보내 항왕을 격동시키면 우리가 원하는 때, 원하는 곳으로 초나라 군사를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장량까지 나서 슬며시 한왕을 거들자 한신도 제 고집대로만 하려고 들지는 않았다. 장량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받았다.

듣고 보니 자방(子房) 선생의 말씀도 옳습니다. 우리는 멀리서 온 대군입니다. 아무리 병참이 좋고 치중(輜重)이 잘 이루어진다 해도 30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먼 길을 와 싸우면서 날짜를 끌어 좋을 게 하나도 없습니다. 싸움 날을 받는 대로 항왕에게 전서를 띄워 되도록 빨리 결전으로 이끌어 보겠습니다.”

그리고는 한왕을 올려보며 물었다.

대왕께서는 언제쯤 항왕과 결전을 치르시는 게 좋겠습니까?”

한왕이 두 손까지 저어 보이며 엄숙하게 말했다.

그대는 산동으로 물러나 제나라를 다스릴 때는 제왕이지만, 과인의 군중(軍中)에 들어오면 아직도 한나라의 대장군이오. 무릇 위로 하늘에 이르는 자도 아래로 못()에 이르는 자도 싸움터에서는 우두머리 되는 장수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들었소. 싸움터를 고르는 것도 싸울 날을 받는 것도 대장군의 할 일이니 알아서 정하시오.”

그러면서 싸울 때는 늘 그래 왔듯 모든 것을 한신에게 맡겨버렸다. 이에 한신은 장수들과 의논 끝에 사흘 뒤로 싸울 날을 잡고, 곧 글을 닦아 패왕 항우에게 전서를 보냈다.

내 하늘의 호생지덕(好生之德)을 본받아 광무산에서 너를 놓아 보냈으면, 길을 재촉해 강동으로 돌아가 남은 목숨이나 보존했어야 하거늘, 이 무슨 방자하고 해괴한 짓이냐. 버마재비가 수레바퀴를 이기려 하고 달걀로 바위를 쳐도 유분수지, 싸움에 지고 흩어져 쫓겨 다니던 잡군(雜軍) 몇 만을 긁어모았다 해서 과인의 백만 정병(精兵)에 맞서려는 것이냐

한왕 유방의 이름으로 띄운 전서는 먼저 그렇게 시작해 패왕의 부아를 건드렸다. 그리고 다시 그의 별난 자부심을 건드릴 말만 골라 패왕을 이판사판의 싸움터로 끌어내려 했다.

<지난날 너는 과인과 마주치기만 하면 대장부답게 맞서 싸워 당당하게 승패를 가르자고 졸랐다. 과인은 그때마다 터무니없는 군세로 요행을 바라고 기승(기승)을 노리는 네 잔꾀에 말려들기 싫어 노여움을 억누르며 마구잡이 난전을 피해왔다. 그런데 이제 들으니 너는 10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또 먼저 지리(지리)를 차지하여 과인과 대적할 만한 세력을 키웠다고 한다. 그러면서 과인의 대군이 이르렀는데도 당당히 나와 맞을 줄 모르니 이 어찌된 셈이냐? 보잘것없는 성곽과 진채에 기대 한 뼘 땅을 지키며 도둑 떼의 우두머리 노릇에 만족하려느냐? 아니면 강동으로 달아나 겁만 남은 그 목숨이나 건질 궁리에 바쁜 것이냐?

과인이 돌아보니 해하 서북쪽에 백만 대군을 풀어 장쾌하게 천하쟁패의 대전(대전)을 벌일 만한 땅이 있었다. 천하 뭇 백성이 과인과 너로 하여 전란에 시달린 지 벌써 5년째, 이제야말로 우리 둘이 한바탕 당당하게 맞붙어 결판을 짓고 그들을 괴로움과 슬픔에서 풀어줄 때가 아니냐? 이에 날을 정해 전서(전서)를 띄우나니, 네 진정 초나라 명장 항연(항연)의 핏줄이요 한때 천하를 호령한 패왕 항()아무개라면, 두렵고 겁난다 하여 숨거나 달아나지 말라. 전군을 이끌고 해하벌로 나와 과인의 대군과 건곤일척(건곤일척)의 싸움으로 자웅(자웅)을 가려보자.>

이 무렵 패왕 항우는 해하의 낡은 성곽을 다 고치고 진채를 방벽과 보루로 둘러 한숨을 돌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군이 사방에서 소리 소문 없이 몰려들었다. 서쪽으로 한왕이 이끄는 군사만 바라보고 있던 패왕은 한신과 팽월 경포까지 대군을 이끌고 왔다는 말을 듣자 은근히 놀랐다. 종리매와 계포에게 5만을 주어 성곽 안으로 들게 하고, 자신은 3만 정병으로 진채를 지켜 양쪽이 서로 의지하는 형세를 이룬 뒤에, 사람을 풀어 한군의 움직임을 면밀하게 살폈다.

패왕이 먼저 걱정한 것은 진채에 붙박혀 싸우면서 하염없이 시일을 끌게 되는 일이었다. 광무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영문도 모르고 대군이 말라 시드는 꼴을 해하에서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며칠 안돼 반가운 전갈이 왔다.

남쪽에 있는 경포의 군사들을 빼고 한군은 모두 해하 서북의 벌판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30만 대군이 진세를 펼치니 실로 장관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한왕의 뜻이 초군을 에워싸고 싸움을 길게 끌고 가겠다는 것은 아닌 듯했다. 은근히 한시름 놓고 있는데 다시 한왕에게서 뜻밖에도 스스로 싸움을 재촉하는 전서가 왔다.

유방 이놈, 이 겁쟁이 늙은 장돌뱅이가.”

구절구절 부아를 지르는 문면 때문에 패왕은 다 읽기 바쁘게 전서를 내팽개치며 그렇게 욕을 퍼부었지만 속으로는 오히려 기뻤다. 한왕과의 싸움에서 패왕이 늘 속상해한 것은 한번도 한왕의 본진을 마음껏 짓밟아 보지 못한 일이었다. 언제나 멀찌감치 숨어서 바라보며 사람의 화나 돋우다가 정작 쫓아가면 잽싸게 머리를 싸쥐고 달아나는 게 한왕 유방이었다.

좋다. 이번에는 반드시 그 늙은 목을 잘라놓겠다. 30만이 아니라 백만 대군이라 해도 이 전서에 적힌 대로 유방이 나오기만 하면 주머니 속에서 물건 꺼내듯 그 목을 잘라 단번에 전세를 결정하겠다.”

패왕이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장수들을 불러 모으게 했다.

오래잖아 장수들이 패왕의 군막으로 몰려들었다. 패왕이 내준 전서(戰書)를 읽어 본 계포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문면(文面)이 어쩐지 수상쩍습니다. 곳곳에서 일부러 대왕의 심기를 건드려 우리 전군(全軍)을 그 싸움터로 끌어내려는 속셈이 훤히 보입니다.”

종리매도 못마땅해 하는 얼굴로 계포를 거들어 말했다.

신이 탐마를 풀어 알아본 바로 적은 30만이나 되는 데다 그 어느 때보다 정병이라고 합니다. 한왕이 봉지(封地)와 왕위로 달래 한신과 팽월은 각기 제()나라와 양() 땅에서 골라 뽑은 장정들만 데려왔고, 한왕이 몸소 이끄는 10만도 모두가 산동과 관중에서 가려 뽑아 단련한 지 오래된 군사들입니다. 그 날카로운 기세를 얕보아서는 아니 됩니다. 거기다가 적은 모두 먼 길을 온 군사라 오래 시일을 끌수록 불리해집니다. 그래서 싸움을 서두는 것이니 대왕께서는 깊이 살펴 방책을 정하십시오.”

허나 우리도 시간을 끌어 이로울 일은 아무것도 없다. 팽성 부근에서 거두어들일 군사도 이제 더는 없는 성싶고, 멀리서 달려와 도와줄 제후도 없다. 거기다가 군량마저 넉넉하지 못한데 싸움을 질질 끌어봤자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패왕이 알 수 없다는 듯한 얼굴로 그렇게 받았다. 계포가 조심스러워하면서도 한 번 더 패왕을 말렸다.

비록 도성인 팽성을 잃고 많은 땅을 적군에게 짓밟혔지만 그래도 우리는 아직 우리 근거지인 서초 땅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거둬들인 군량이 넉넉하지 않다고 하나, 30만이 넘는 대군을 몰고 천리 길을 달려온 한나라 군사보다야 못하겠습니까? 거기다가 고쳐 쌓은 성곽과 새로 세운 진채의 방벽과 보루도 든든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 두 곳에 서로 의지하는 형세를 이루며 굳게 지키면, 적이 아무리 대군이고 정병이라도 얼마든지 버텨낼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적이 고단하고 지치기를 기다려 들이치면 거록(鋸鹿)이나 수수()의 대승(大勝)을 다시 한번 기약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자 패왕이 갑자기 험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계포와 종리매를 번갈아 쏘아보다가 목소리를 높여 자르듯 말했다.

거록이나 수수의 승리는 우리가 참고 기다려 얻어낸 것이 아니다. 성나 떨쳐 일어나 죽기로 싸운 값이요, 하나가 백을 당할 기백으로 겁 없이 내달은 값이다. 오히려 우리가 진채에 엎드려 참고 기다리다가 얻은 것이 있다면 저 광무산에서의 낭패뿐이다. 과인은 이제 두 번 다시 까닭도 모르게 대군의 예기가 꺾이고 세력이 시들어 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고만 있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는 그날로 진채를 나와 전군을 이끌고 전서에서 일러준 싸움터로 달려갔다. 성곽과 진채에 각각 약간의 군사를 남겨 급할 때는 돌아와 의지할 수 있게 해둔 것이 계포와 종리매의 뜻을 감안한 유일한 조처였다.

한신은 패왕이 전군을 이끌고 정한 싸움터로 달려오자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내 제왕(齊王)에서 한나라의 대장군으로 돌아가 장수들을 한왕의 군막으로 불러 모으게 했다. 장수들이 모두 모이자 한신이 스스로 윗자리에 앉더니 먼저 한왕을 우러러보며 말했다.

대왕께서는 항우가 초나라 군사를 분발시키고 그 세력을 한군데로 집중시키는 표적이 될 뿐만 아니라, 혹시라도 그 집중된 초군의 기세를 당해내지 못해 쫓기시게 되면 그대로 우리 전체 군심(軍心)을 어지럽힐 수도 있습니다. 내일 싸움에서는 후면 멀찌감치 계시면서 저희들이 싸우는 것을 바라보기만 하십시오.”

한나라 대장군으로서 내리는 군령이라 위엄을 세워주고 싶어서인지 한왕이 짐짓 엄숙한 얼굴로 한신의 말을 받았다.

알겠소. 대장군의 뜻을 따르리다.”

그러자 한신은 다시 조참과 관영을 불러 군령을 내렸다.

나는 5만 군사를 이끌고 전군(前軍)이 되어 항우의 본진과 마주보는 곳에 진세를 펼칠 것이다. 그때 우승상 조참과 기장 관영은 각기 1만 군사를 거느리고 내가 이끄는 전군의 선봉이 된다. 가장 먼저 항우의 예봉(銳鋒)을 받게 될 것이니, 장졸 모두 남다른 각오와 다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어 한신은 자신의 부장(部將)인 공희(孔熙)와 진하(陳賀)를 불러냈다.

() 장군은 3만 군사를 거느리고 내 전군 본진 왼편에 진을 치고 진() 장군은 3만 군사로 내 본진 오른편에 진을 친다. 형세를 보아 들고 나되, 특히 전군 본진의 위급에 구응(救應)하는 것이 그대들 두 장군의 막중한 임무이다.”

그런 다음 번쾌와 역상((,))을 불렀다.

장군 번쾌와 역상은 날랜 군사 3만을 이끌고 대왕의 중군(中軍) 앞에 포진하라. 한편으로는 내가 이끄는 전군의 뒤를 받쳐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거기까지 뚫고 들어오는 적군으로부터 대왕의 본진을 지켜야 한다. 우리 30만 대군의 허리와도 같은 막중한 임무이니 터럭 같은 소홀함이라도 있어서는 아니 된다.”

역상에게는 그 형 역이기((,)食其)를 삶아서 죽게 한 미안함이 있을 법도 하였으나 한신의 군령은 매섭기만 했다. 번쾌와 역상이 군령을 받고 물러나자 한신은 다시 주발과 시무(柴武)를 불렀다.

장군 주발과 시무는 각기 1만 군사를 이끌고 대왕의 중군 뒤편에 진을 치고 후군(後軍)이 된다. 대왕의 중군을 뒤에서 받칠 뿐만 아니라, 있을지 모르는 적 기병(奇兵)의 강습(强襲)에서 대왕을 지켜드려야 한다.”

그런 다음 태복 하후영을 비롯한 나머지 한왕의 부장들은 3만 군사와 함께 모두 중군에 남겨 겹겹이 한왕을 에워싸고 지키게 하였다.

대왕의 중군이 흔들리면 그대로 우리 대군의 사기가 꺾이고 만다. 항우가 빠른 속도와 집중된 힘으로 뚫고 들더라도 결코 흔들려서는 아니 된다.”

그게 한신이 그들에게 특별히 한 당부였다. 그렇게 되자 한나라 대군은 열 갈래로 나뉘어 그물을 치고 패왕 항우가 걸려들기만을 기다리는 셈이 되었다. 뒷날 구리산(九里山) 십면매복(十面埋伏)’이란 전설이 나돌게 한 한신의 포진이었다. 얘기를 지어내기 즐기는 사람들은 그 계책의 성사에 광무군 이좌거(李左車)를 끌어대기도 한다. 그때도 한신의 막빈으로 있었던 만큼 이좌거가 그 계책에 관여했을 수도 있으나, 적어도 정사(正史)에는 기록이 없다.

후군(後軍) 좌우를 맡을 장수까지 정한 한신이 잠시 숨을 고르는데 갑자기 군막 한구석에서 으르렁거리듯 외쳐 묻는 사람이 있었다.

대장군께서는 어찌하여 이 팽()아무개를 빼놓으시는 것이오?”

모든 장수가 놀라 바라보니 양왕으로 가임(假任)된 팽월이었다. 한신이 다른 장수들은 다 쓰면서 자신만 따돌리는 데 성이 났는지 희끗한 턱수염이 뻣뻣이 서 있었다. 한신이 갑자기 껄껄 웃으며 팽월의 말을 받았다.

내가 양왕(梁王)을 어찌 빼놓겠소? 다만 맡길 일이 너무 어렵고 힘들어 미루었을 뿐이오.”

그게 무엇이오?”

팽월이 그래도 얼른 속이 풀리지 않는지 퉁명스레 물었다. 한신이 웃음기를 거두고 차분히 달래듯 말했다.

우리 대왕에게 항왕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양왕처럼 유격에 뛰어난 지장(智將)을 한편으로 두신 일일 것이오. 초군의 양도(糧道)를 끊어 항왕의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소용없게 만든 양왕이 아니었더라면 한군이 어떻게 광무산에서의 역전을 이루어 낼 수 있었겠소? 이번에도 양왕께서는 본부(本部) 인마를 이끌고 유군(遊軍)이 되시어 이 싸움의 흐름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끌어 주시오.”

넓디넓은 벌판에서 수십만의 대군이 진세를 벌이고 맞부딪치는데 5만이나 되는 유군을 어떻게 쓴다는 것이오?”

팽월이 조금 수그러든 말투로 그렇게 물었다. 한신이 다시 목소리를 대장군의 군령으로 바꾸어 말했다.

양왕께서는 높은 곳에서 싸움터를 내려 보시다가, 우리 편이 몰리는 곳이 있으면 그곳을 구하고, 적군의 집중이 지나치면 그곳을 들이쳐 흩어버리시오. 특히 종리매와 계포가 이끄는 초군을 눈여겨보시다가, 그들이 패왕의 본진과 갈라지면 곧바로 그 틈을 치고 들어 두 번 다시는 패왕의 본진으로 돌아갈 수 없게 해야 하오. 이는 싸움의 흐름을 잘 살피고, 승패의 기미에 밝은 지장(智將)만이 할 수 있는 일이오. 이번 싸움이 이대로 마지막 싸움이 되느냐, 한나라가 항우를 잡기 위해 다시 수고롭게 대군을 일으켜야 하느냐는 양왕께서 하시기에 달렸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외다.”

평생을 치고 빠지는 싸움으로 늙어 온 팽월이 그런 한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리 없었다. “삼가 대장군의 군령을 받들겠습니다.”

완연히 풀린 얼굴로 그렇게 한신의 말을 받으며 머리까지 가볍게 수그렸다.

팽월을 마지막으로 대장군 한신의 군령이 다하자 장수들은 각기 이끄는 장졸들을 데리고 받은 군령대로 진세를 벌였다. 삼군(三軍) 사이를 그리 넓게 벌리지 않아도 30만 대군을 모두 펼쳐놓고 보니 해하 서북의 벌판은 한군의 깃발로 온통 시뻘겋게 뒤덮였다.

그와 같은 한군에 맞선 초군의 진세도 만만치 않았다. 그새 패왕 항우의 군사적 자부심과 자신감이 옮은 것일까, 초나라 사람 특유의 열광과 투지를 되살린 초군의 기세는 세 곱절이 넘는 한군을 눈앞에 두고도 움츠러들 줄 몰랐다. 패왕은 아직도 살아 있는 전신(戰神)이었으며 그들 자신은 모두가 한 번도 싸움에 진 적이 없는 강동(江東)의 용사들이었다.

양군 모두 진세를 벌이는 동안에 날이 저물고 밤이 왔다. 섣달 중순의 길고 추운 밤이라 양쪽 진채에서 피어오르는 화톳불로 해하의 하늘이 훤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모처럼 격식을 갖춘 대회전(大會戰)이어서인지 양군 모두 자잘한 야습(夜襲) 걱정 없이 편히 쉬었다.

이윽고 결전의 날이 밝았다. 먼저 싸움을 돋운 것은 패왕 항우 쪽이었다. 마지막 판돈을 건 노름꾼이 받아 쥔 패를 서둘러 깨듯 패왕도 자신의 운명에 조급해져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새벽같이 군사들을 깨워 아침을 먹인 패왕은 해가 뜨기 바쁘게 진문(陣門)을 열고 나가 한왕을 찾았다.

한왕은 어디 있는가? 어서 나와 과인의 말을 들으라!”

패왕이 그렇게 소리치자 기다렸다는 듯 한군의 진문이 열리며 한 떼의 인마가 나왔다. 번쩍이는 갑옷투구에 요란한 기치를 앞세우고 있었으나 한왕 유방의 황옥거(黃屋車)는 보이지 않았다. 한왕이 보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벌써 패왕의 눈길이 실쭉해 있는데, 그들 가운데 한 장수가 나와 채찍으로 패왕을 가리키며 비웃었다.

거기 있는 것은 하늘도 몰라보고 땅도 몰라보고 사람도 몰라보는 갓 쓴 원숭이[목후이관]가 아닌가? 무슨 일로 우리 대왕을 찾는가?”

갓 쓴 원숭이란 말은 패왕이 일껏 차지한 함양과 관중을 버리고 팽성을 도읍 삼아 초나라로 돌아가려 하자 그걸 말리다 안 된 어떤 서생이 패왕을 가리켜 한 말이다. 패왕은 분김에 그 서생을 죽이고 말았지만 그러고도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갓 쓴 원숭이란 조롱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패왕의 속을 뒤집어 놓은 것은 그렇게 외치는 장수가 바로 한신이라는 점이었다. 아무리 금은보석을 아로새긴 갑옷투구를 걸치고 은 안장을 놓은 백마에 높이 올라앉아 있어도 일년 넘게 곁에 두고 집극랑(執戟郞)으로 부린 한신을 패왕이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너는 전에 과인의 창이나 들고 다니던 종놈 아니냐? 너같이 천한 것과는 입 섞어 말하고 싶지 않으니 네 주인 유방더러 어서 나오라고 하여라.”

패왕이 대뜸 목소리를 높여 한신을 꾸짖듯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한신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짐짓 차분한 목소리로 한 번 더 패왕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그러니까 세상이 너를 갓 쓴 원숭이라고 욕한다. 하지만 땅을 몰라보아 천하의 도성 함양과 비옥한 관중을 버리고, 사람을 몰라보아 범증의 충의와 내 재주를 받아주지 않은 것은 좋으나, 하늘을 몰라보아서는 아니 된다. 우리 대왕은 하늘이 천하를 맡기려 하시는 분이니 그분이 곧 하늘이다. 네 어찌 하늘을 몰라보고 함부로 오라 가라 하느냐?”

한신의 그와 같은 말에 패왕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패왕은 애써 화를 억누르며 목소리만 한층 높였다.

명색이 한 나라의 군왕(君王)으로서 전서(戰書)내어 싸움을 청했으면 마땅히 유방이 진두(陣頭)에 나와 과인을 맞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데 천한 종놈을 대신 내보내고 군중 깊이 숨어 있으니 아무리 겁 많은 장돌뱅이라도 너무 심하구나.”

그래도 한신은 얼굴색 한번 변하지 않고 듣고 있다가 다시 이죽거리듯 패왕의 말을 받았다.

전에 대왕께서 이미 가르치신 바 있다고 들었는데, 네 어찌도 그리 말귀가 어두우냐? 대왕께서 이르시기를, 너를 죽이는 일이라면 감옥 대신 군역(軍役)을 치르는 죄수(형여죄인·刑餘罪人) 하나만 해도 된다 하셨다. 그런데 대왕께서 무엇 때문에 너와 싸우자고 전서(戰書)까지 내겠느냐? 이는 모두 대장군인 내가 너를 머리 없는 귀신으로 만들기 위해 꾸민 일이다. 그러니 여기 없는 우리 대왕을 내놓으라고 떼쓰지 말고, 네 어깨 위에 남아 있어 봤자 세상만 시끄러워지는 그 머리나 내놓아라!”

그러자 참고 참던 패왕도 더는 그냥 있지 못했다. 불이 철철 흐르는 듯한 눈길로 한신을 노려보며 무섭게 소리쳤다.

내 오늘 너를 사로잡아 그 간사한 혀를 뽑지 못하면 천하의 항우도 패왕도 아니다!”

그러고는 안장에서 긴 철극(鐵戟)을 뽑아 꼬나들며 좌우를 돌아보고 소리쳤다.

저 천한 종놈에게 속지 말라. 틀림없이 유방은 저 안에 있다. 나를 따르라. 오늘은 반드시 유방을 잡아 죽이고 서초의 천하를 되찾자!”

그 목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마치 빈들을 울리는 천둥소리 같았다. 그러자 한신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진문(陣門) 안으로 들고, 대신 관영의 기마대와 조참의 보갑대(步甲隊)가 두껍게 진 앞을 막아섰다. 여러 해 별동대(別動隊)로 격전을 치르고 떠돌면서 단련된 한군의 정예였다. 거기다가 이미 진성 아래의 싸움에서 패왕에게 처음으로 패배의 쓴맛을 보여 준 적도 있었다.

그러나 패왕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군사를 휘몰아 한신의 전군(前軍)을 덮쳐 갔다. 가려 뽑은 정병을 커다란 도끼로 삼고 스스로 그 도끼의 날이 되어 가로막는 적군을 단숨에 쪼개놓고 보는 전법이었다. 그런 다음 패왕은 양 날개를 펼치듯 좌우로 군사를 내어 적의 대군을 가로세로 토막 내고, 쫓기는 짐승 몰듯 짓밟아 버리는 것으로 싸움을 마무리했다.

패왕의 그와 같은 전법은 군사적 책략이라기보다는 그 자신의 개인적인 무용(武勇)과 패기((,))에 의지한 전투력 또는 돌파력에 가까웠다. 어지러운 시대의 유민군(流民軍)이나 망해 가는 나라가 급조한 토벌대를 상대로 싸울 때는 위력이 있었으나, 체제와 규율을 갖추고 잘 조련된 정규군을 만나면 돌이키기 어려운 난국에 떨어질 수도 있었다. 그 첫 경험이 지난번 진성 아래에서의 싸움이었다.

거기다가 패왕이 헤아리지 않고 있는 것은 자신이 같은 전법을 되풀이해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혜로운 장수는 같은 적과 두 번 싸우는 것도 피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패왕은 한군이나 한왕을 돕는 제후의 군사들과 수십 번이나 싸우면서 줄곧 집중과 충격, 그리고 속도를 위주로 한 그 방식으로 상대를 이겨 왔다.

하지만 해하의 싸움에서 초군을 더욱 참담한 수렁으로 밀어 넣은 것은 그 전투에 뛰어드는 패왕의 마음가짐이었다. 그때 패왕에게 필요했던 것은 장수()를 건널 때 보여 주었던 불귀(不歸)의 각오 또는 거록(鉅鹿)의 혈전을 치를 때 초군을 이끌었던 필사(必死)의 결의였다. 그런데 불행히도 패왕은 아직 함곡관을 깨뜨릴 때의 득의, 수수()에서 이겼을 때의 자부와 자만에 차 있었다. 따라서 일이 잘못되었을 때를 위한 배려와 조처가 없었고, 그렇다고 그대로 싸우다 죽을 채비가 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래도 처음 한동안 패왕 항우가 앞선 3만 초군의 돌격은 이전이나 다름없는 위력을 나타냈다. 한번 패왕의 기세를 꺾어본 적이 있는 관영과 조참이 장졸들을 격려하며 패왕과 마주쳐 나갔으나 달포 전의 진성(陳城) 아래와는 달랐다. 5만 전군(前軍)을 등 뒤로 한군의 2만 정병이 힘을 다해 막아도 위기감으로 달아오른 초군의 거센 공격을 오래 버텨 내지 못했다.

관영과 조참이 이끌던 선봉이 무너지자 저절로 뚫린 한나라 전군(前軍) 진문 속으로 3만의 초군이 패왕과 함께 뛰어들었다. 오래잖아 한군이 좌우로 점점 넓게 갈라지며 그 사이로 훤한 길 같은 것이 열렸다. 그 길을 대쪽을 쪼개는 듯한 기세로 내닫는 저희 편 군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종리매와 계포가 각기 목소리를 높여 이끌고 있는 군사들을 휘몰았다.

무엇들 하는가? 우리도 모두 대왕을 따라 한군을 토막 내고 짓밟아 버리자. 이번에는 반드시 한왕 유방을 사로잡아 우리 대왕의 걱정거리를 덜어드리자!”

그러자 남아 있던 초군 5만이 두 갈래로 나뉘어 다시 한나라 전군 속으로 뛰어들었다. 패왕을 뒤쫓아 적진 한가운데에 이른 뒤 좌우로 방향을 바꾸어 치고 나갈 작정이었다. 그리되면 패왕 때문에 좌우로 갈라진 한나라 전군은 다시 전후로 쪼개져 결과적으로는 네 토막이 나게 된다. 그렇게 잘게 토막 난 한군을 토끼 몰 듯 하나하나 짓밟아 가다 보면 싸움의 형세는 그대로 결판나기 마련이었다.

몰리던 적의 전군은 저희 중군에로 달아나게 되고, 그들의 겁과 혼란도 고스란히 중군에로 옮아간다. 그리하여 중군마저 무너지게 되면 그때는 아무리 두꺼운 후군이 있다 해도 대세를 돌이키기는 어려워진다. 잘해야 사람과 물자를 덜 잃고 패군(敗軍)을 수습하는 것이 이미 패왕에게 전군과 중군이 무너진 뒤의 상대편 후군이 할 수 있는 가장 나은 일이었다.

그날 해하의 싸움도 처음 한동안은 그렇게 발전해 가는 듯했다. 조참과 관영이 이끌던 선봉이 무너지고 패왕에게 진문이 돌파 당하자 또다시 수수의 참패를 되풀이하게 되는가 싶어 한신도 가슴이 섬뜩했다. 이끌고 있던 장수들을 모조리 불러내 패왕의 돌진을 가로막게 하며, 부장 공희(孔熙)와 진하(陳賀)가 이끄는 좌우군(左右軍)이 초군의 옆구리를 찌르고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한신이 기다리는 좌우군보다 종리매와 계포가 이끈 초군이 먼저 한나라 전군 속으로 뛰어들었다. 후군처럼 남아 있던 둘이 패왕의 승세를 알아보고 남은 5만 군사를 모두 휘몰아 패왕을 뒤따른 것이었다. 그러자 패왕을 따라 한군을 쪼개 가고 있던 초나라 장졸들은 더욱 기세가 올라 전보다 사납게 한군을 밀어붙였다.

잘못되었구나. 무언가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자칫하면 크게 낭패를 보겠구나.’

앞뒤가 서로를 북돋아 가며 8만의 초군이 한 덩어리가 되다시피 밀고 드는 것을 보고 한신은 잠시 눈앞이 아뜩했다. 절로 터져 나오는 탄식을 애써 억누르며 장졸들을 호령해 어느새 눈앞으로 밀려든 초군을 맞이하게 했다.

하지만 한풀 기세가 꺾여서인지 한군은 차츰 허둥대며 밀리기 시작했다. 그대로 가면 오래잖아 전군(前軍)이 돌파 당해 패왕이 중군으로 뛰어들 길을 내줄 판이었다. 그럴 때 토막 나 내몰리던 한나라 전군이 중군으로 쫓겨 들며 공포와 혼란을 옮기게 되면, 싸움은 초군의 승리로 끝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신이 기다리던 변화가 왔다.

패왕이 한신의 전군(前軍)을 쪼개고 열어놓은 길로 거침없이 쏟아져 들어온 종리매와 계포의 군사들은 전군 가운데쯤에 이르자 각기 좌우로 방향을 바꾸었다. 패왕 때문에 좌우 두 쪽으로 나누어진 한군을 다시 앞뒤로 갈라내 네 토막을 내놓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다시 기세 좋게 한군을 앞뒤로 갈라 가는데, 한나라 전군 좌우에 진세를 벌이고 있던 한신의 부장 공희(孔熙)와 진하(陳賀)가 군사를 이끌고 달려 나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종리매와 계포의 기세에 은근히 내몰리고 있던 한군이 반갑게 길을 열어 공희와 진하의 구원을 받아들였다. 그 두 장수가 각기 3만을 이끌고 좌우에서 함성을 지르며 들이닥치자 오히려 움찔한 것은 종리매와 계포의 군사들이었다. 무인지경 가듯 마음 놓고 내닫다가 만나게 된 적의 원병이라 그런지, 그 군세가 실제보다 몇 배나 크게 느껴졌다.

서로 정해 놓은 방향이 있어 종리매가 이끄는 초군은 공희가 이끌고 온 한나라 전군 좌익(左翼)과 뒤엉키고, 계포는 진하가 이끌고 달려온 한나라 전군 우익(右翼)과 맞붙었다. 이끌고 있는 군사는 양편이 비슷했으나 기세는 처음부터 갑자기 공세에서 수세로 바뀌게 된 초군 쪽이 밀렸다. 거기다가 자기들이 싸우고 있는 곳이 한군의 진세 안이라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면서 초군의 열세는 더욱 뚜렷해졌다.

그와 같은 형세의 역전은 한신이 어렵게 버티고 있는 전군 본진 쪽에서도 일어났다.

패왕의 등 뒤를 밀어주던 종리매와 계포가 각기 좌우로 길을 달리 잡자 한신의 본진을 쪼개려 드는 패왕의 압력은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워낙 무섭게 치고 들던 기세가 있어 한신이 안간힘을 다해 버텨도 패왕은 점점 더 깊숙이 밀고 들어왔다. 그러다가 이대로 가면 한나라 전군이 둘로 쪼개지고 마는 게 아닌가 싶을 때, 홀연 한신의 등 뒤에서 들려온 외침이 있었다.

대장군, 우리가 왔습니다. 항우는 우리에게 맡기십시오.”

한신이 반갑게 돌아보니 한왕이 있는 중군 전부(前部)를 맡고 있던 번쾌와 역상이었다. 한신이 짐짓 놀란 척 물었다.

그대들은 대왕이 계신 중군(中軍)의 방패와 갑주다. 대왕의 어가(御駕)는 어찌하고 이렇게 왔는가?”

대왕의 명을 받고 달려왔습니다. 대왕께서 말씀하시기를 전군이 없으면 중군도 없다 하였습니다.”

입을 모아 그렇게 대답한 두 사람은 이끌고 온 군사를 휘몰아 패왕과 마주쳐 갔다. 그러자 줄곧 밀리기만 하던 전군 장졸들도 스스로를 북돋우는 함성과 함께 되돌아서 패왕의 군사들과 맞섰다.

번쾌와 역상이 함께 패왕의 철극을 받아 내며 길을 막아서자 비로소 패왕의 전진은 멈춰지고 한동안 우열을 분간할 수 없는 혼전이 벌어졌다. 패왕이 성난 범처럼 길길이 뛰며 눈부신 무용을 펼쳤으나, 거기까지 오는 동안의 대쪽을 쪼개는 듯한 기세는 끝내 되살려 내지 못했다. 번쾌와 역상이 분전하는 동안 전의를 가다듬고 몰려온 한나라 장수들이 수레바퀴 돌 듯 돌아가며 싸워 패왕을 한곳에 묶어 두었다.

싸움의 양상이 그렇게 바뀌면서 해하(垓下)에서도 진성(陳城) 아래서와 같은 일이 되풀이 벌어졌다. 패왕의 군사들이 적에게 회복할 수 없는 충격을 주지 못하고 집중과 속도부터 잃어버리자 한군의 머릿수가 위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먼저 패퇴하여 스러진 것은 종리매가 이끌던 25천의 초군이었다. 패왕의 본진에서 떨어져 나와 공희(孔熙)3만 군사에게 발목이 잡힐 때부터 그들은 불길한 예감으로 허둥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자신들보다 몇 배가 넘는 한군에 에워싸이게 되자 이제는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싸워야 했다. 그들은 갈수록 늘어나는 한군 속에서 반나절이나 분전했으나 끝내 살아서 빠져 나간 것은 겨우 3천 남짓이었다.

계포가 이끈 초군의 처지는 종리매 쪽보다 훨씬 더 험했다. 진하(陳賀)에게 길이 막힐 때부터 계포는 길을 앗아 달아날 궁리만 했으나, 해질 무렵 겨우 에움을 벗어나 헤아려 보니 따르는 군사는 보기(步騎)를 합쳐 2천을 채우지 못했다. 열에 하나도 제대로 살아나오지 못한 셈이었다.

종리매와 계포는 그래도 에움을 벗어나는 대로 패왕을 찾아가려 했다. 초군이 고쳐 쌓은 성곽이나 방벽과 보루로 두른 진채를 찾아가면 다시 패왕과 세력을 합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어떻게 알았는지 팽월이 군사를 풀어 길을 막는 바람에 둘 모두 그리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뒷날 패왕을 찾아가기로 하고 우선은 한군의 추격을 피해 북쪽으로 멀찌감치 달아났다.

한편 패왕 항우는 종리매와 계포가 남은 군사를 모두 이끌고 합세해 왔을 때 그날의 승리를 자신하였다. 좌우로 나뉘어 한군을 쪼개고 나간 둘이 한군의 기치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도 그들이 그렇게 속도를 잃고 에움에 빠졌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래서 수레바퀴 돌 듯 번갈아 덤비는 한나라 장수들을 상대로 불꽃 튀기는 싸움을 벌이면서도 걱정하거나 두려워할 줄 몰랐다. 종리매와 계포가 토막 난 한군을 짓밟으며 되돌아와 다시 자신의 뒤를 받쳐주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한 식경(食頃)이 지나도 종리매와 계포가 돌아오지 않고, 그들이 간 쪽에서 몰이꾼의 그것과 같은 불길한 함성만 연방 들려오자 패왕도 퍼뜩 정신이 들었다. 갑자기 진성 아래서의 악몽이 떠오르고, 진여(陳餘) 같은 현사와 용저(龍且) 같은 맹장을 한 싸움으로 잡아 죽인 한신의 병략도 뜬소문이 아니라 무슨 섬뜩한 위협처럼 다가왔다.

종리매와 계포가 어찌 되었는지 알아보아라.”

한바탕 위맹한 공격으로 몰려든 한나라 장수들을 물리친 패왕이 곁에 있는 젊은 부장에게 물었다. 한참 만에 피투성이로 되돌아온 그 부장이 다시 한나라 장수들과의 차륜전(車輪戰)에 빠져 있는 패왕의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두 분 장군 모두 한나라의 대군에 에워싸여 있습니다. 에움이 워낙 두꺼워 뚫고 들어가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 말을 듣자 패왕은 갑자기 온몸에서 힘이 쭉 빠지는 듯했다. 그때껏 휘두르던 무거운 철극을 내던지고 허리에서 보검을 뽑으며 나지막하게 소리쳤다.

지금부터 길을 앗아 진채로 돌아간다. 모두 두려워하지 말고 과인을 따르라!”

졌다. 지고 말았다. 내가, 이 항적(項籍), 천하의 패왕이 정말로 싸움에 졌다.’

군막 안에서 보검에 남은 악전고투의 흔적을 지우며 패왕은 줄곧 그렇게 중얼거렸다. 30만 한군 사이를 피투성이 싸움으로 빠져나올 때만 해도 실감되던 패배가 다시 애매하고 추상적이 되어 갔다. 아니, 아직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패왕의 중얼거림은 어쩌면 패배의 실감을 되살리기 위한 주문 같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겹겹으로 에워싼 적진을 돌파하면서 갑주 걸친 장수만도 수십 명을 베어 넘겼건만 칼날은 전설의 보검답게 별로 상한 곳이 없었다. 오히려 격전의 흔적은 튀긴 피가 끈적하게 말라붙은 칼자루나 칼집에서 더 뚜렷했다. 패왕의 갑옷과 투구도 피를 뒤집어쓴 듯 검붉게 얼룩져 있었다. 군막 앞에 안장을 얹은 채 묶여 있는 오추마()도 피를 뒤집어쓴 듯하기는 패왕과 마찬가지였다.

그때 멀리서 군마가 움직이는 소리가 나며 방벽 안 진채가 술렁거렸다. 진채를 에워싸고 있던 한군이 드디어 공격을 시작하려는 것 같았다.

좋다. 다시 한번 싸워 보자. 정말로 너희들이 나를 이길 수 있는지.’

패왕이 지그시 이를 사려 물며 보검을 칼집에 꽂고 군막을 나왔다. 오추마에 뛰어올라 새 철극을 뽑아들고 소란스러운 곳을 바라보니 서북쪽으로 뉘엿한 겨울 해를 등지고 방금 한 떼의 인마가 다가와 진세를 펼치는 중이었다. 사면팔방 중에서 패왕의 진채가 등지고 있는 동남쪽 산등성이를 빼고 유일하게 비어 있던 곳이었다.

두려워하지 말라. 각자 맡은 방벽과 보루만 잘 지켜내면 적은 한 발짝도 우리 진채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패왕은 그런 말로 남은 장졸들을 격려하며 한참이나 한군의 움직임을 살폈다. 종리매와 계포의 군사들이 패왕에게로 돌아가는 것을 팽월이 철저하게 차단하는 바람에 진채 안에는 패왕을 따라 한군을 뚫고 나온 군사 7천이 전부였으나, 넓지 않은 곳에 몰려 있어 그런지 방벽과 보루 사이를 메운 전열(戰列)이 제법 두꺼웠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은 한군이었다. 30만 대군을 모두 그리로 모아들인 듯 겹겹이 초나라 진채를 에워싸고도 해가 질 때까지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저것들이 야습을 하려고 수작을 부리는지도 모르겠다. 방비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라.”

패왕이 그런 명을 내리고 자신도 갑옷투구를 걸친 채로 군막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한군은 그 밤도 조용하기만 했다. 초군의 진채를 에워싼 한군의 화톳불만 겨울 밤하늘을 훤하게 비출 뿐, 새벽까지 화살 한 대 날리지 않았다.

그럭저럭 날이 밝았다. 갑옷투구를 걸친 채 밤을 보낸 패왕이 새벽같이 군막을 나와 방벽과 보루를 돌아보는데 강동에서부터 따라온 젊은 사인(舍人) 하나가 풀죽은 얼굴로 말했다.

대왕께 아룁니다. 밤새 진채를 빠져나간 군사가 적지 않은 듯합니다. 대책을 세우셔야 합니다.”

그 말에 놀란 패왕이 사람을 시켜 헤어보니 달아난 군사만도 3천이 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패왕은 그게 바로 한군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일임을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무엇 때문인지 한군은 북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이윽고 해가 지고 패왕 항우가 한신의 대군에게 에워싸인 채 두 번째로 맞는 밤이 되었다.

그런데 그날 밤은 전날과 달랐다. 날이 저물기 바쁘게 무슨 잔치라도 벌이는지 패왕의 진채를 에워싼 한나라 진중(陣中) 모두가 수런거리기 시작했다. 술 냄새, 고기 굽는 냄새가 바람을 타고 초나라 진채로 날아들고, 왁자한 웃음소리와 흥겨운 노랫가락까지 들려왔다.

간교한 한신이 거꾸로 우리의 야습을 유도하는구나. 속임수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패왕이 그렇게 말하고 초저녁부터 군막에 들어 쉬었다. 그런데 이경(二更) 무렵이었다. 갑자기 사방에서 떠들썩하게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군의 술판이 무르익었구나 싶었는데, 패왕이 가만히 귀기울여 보니 그게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점점 높아지는 노래는 모두 초가(楚歌)였다.

초가는 오유(X) 월음(越吟) 따위 같은 남방의 노래로 정의(情意)를 드러냄이 솔직하면서도 강렬하다. 특히 슬픔이나 괴로움을 노래할 때는 비장하면서도 애절하여 듣는 이의 가슴을 저리게 한다. 그런데 괴이쩍게도 취한 한군이 모두 그 초가를 부르고 있었다.

밤이 깊을수록 사방에서 들리는 초가 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것도 목청 좋은 사졸이 비장하고 애절한 가사만 골라 부르는지 금세 초나라 진채는 한숨과 탄식에 잠겼다. 고향에 계신 늙은 어머니가 병졸로 뽑혀간 아들이 그리워 울고, 홀로 남겨진 젊은 아내가 싸우다 죽은 지아비를 슬피 불렀다. 아들 잃은 늙은 어버이와 아비 잃은 어린 자식이 걸식하며 떠돌고, 손발같이 자란 형제가 싸움터에 끌려나간 혈육을 걱정하며 기다리는 심경이 으스름 달빛 아래 구성진 가락으로 울려 퍼졌다.

굳기가 철석같은 패왕의 심지도 그런 고향의 노래에는 견뎌내지 못했다. 떠나온 고향과 잃어버린 혈육들을 떠올리며 심란해 하고 있는데, 그날 아침에 사졸들이 달아난 일을 알려준 그 사인(舍人)이 다시 패왕의 군막을 찾아와 말했다.

대왕, 큰일 났습니다. 사졸들이 마구 진채를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어서 막아야 합니다.”

그제야 패왕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사방에서 들리는 초가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를 깨닫고 놀라 탄식했다.

한군이 이미 우리 초나라 땅을 다 차지하였구나. 그렇지 않고서야 한군 속에 어찌 저리도 초나라 사람이 많을 수 있느냐!”

그리고는 그 사인을 보며 말했다.

이미 마음이 변해 떠나는 것들을 억지로 붙잡아 무엇 하겠는가? 가고 싶은 자는 가게 버려두고, 나머지 장졸은 모두 과인의 군막 앞으로 모이게 하라.”

젊은 사인이 명을 받고 군막을 나가자 패왕이 다시 시중드는 군사를 불러 술상을 차려오게 하였다. 시중드는 군사가 술상을 차려 내왔을 때는 이미 삼경(三更)이었다. 패왕이 큰 잔으로 연거푸 석 잔을 마시더니 이내 마음을 굳힌 듯 다시 시중드는 군사에게 시켰다.

가서 우()미인을 불러오너라.”

아마도 패왕은 그때 이미 해하의 진채에서 탈출할 마음을 굳히고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겹겹이 에워싼 한나라의 30만 대군을 잘해야 몇천 명으로 뚫고 나가야 하는 처절한 탈출이었다.

3년 전 한왕이 이끄는 제후군 56만에게 팽성을 빼앗기면서 함께 잃을 뻔한 뒤로 패왕은 언제나 우() 미인을 싸움터에 데리고 다녔다. 한군데 멈추어 싸울 때는 가까운 성읍에 옮겨 지키게 했고, 움직이며 싸울 때는 군중(軍中)에 두고 함께 움직이며 시중들게 하였다. 특히 광무산에서 물러나면서부터는 아예 패왕의 군막 곁에 몇 사람의 시중과 함께 따로 한 군막을 썼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패왕이 한군과 대치하며 따로 진채를 유지할 수 있을 때나 가능했다. 진채를 버리고 의지가지없이 쫓기면서 우 미인을 데리고 다닐 수는 없고, 당장은 그녀를 보호해 한군의 두꺼운 포위를 벗어나는 것조차 어려웠다. 따라서 이제 더는 그녀를 데려갈 수 없음을 깨달은 패왕은 그날 밤 나름대로 우 미인과 이별의 의식을 치르려 한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 어떤 예감에 이끌렸던 것인지 우 미인은 단장까지 하고 기다리다가 패왕의 군막으로 불리어 왔다. 우 미인을 보자 말없이 술 한 잔을 더 들이켠 패왕이 비감(悲感)으로 깊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춤을 추라. 내 오늘밤 취하도록 마시면서 그대의 춤을 보고 보리라.”

그 말에 우 미인이 별빛 같은 눈길을 들어 그윽이 패왕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일어났다. 그리고 잠깐 옷매무새를 가다듬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춤추기 시작했다.

초나라 춤[초무]은 남방 특유의 격렬한 정서를 솔직하면서도 관능적인 표정과 동작으로 풀어낸 것이라고 한다. 초나라 노래[楚歌]와 마찬가지로 아름다우면서도 애절하게 호소하는 듯한 데가 있어 당시 널리 사랑받은 듯하다. 한왕 유방에게도 척() 미인이라는 초나라 여인이 있었는데, 한왕 스스로 초나라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그녀에게 초나라 춤을 추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 미인이 춤추는 것을 본 패왕의 시중들이 굵은 촛불을 몇 개 더 가져다 방안을 밝혔다. 거기다가 화사하게 단장한 우 미인이 비단 옷자락을 날리면서 춤을 추니 무겁고 어둑하던 군막 안이 일시에 환한 봄날을 만난 듯하였다. 패왕이 마치 눈시울에 그런 우 미인을 담아가려는 듯 술기운이 어린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았다. 방안에 있던 시중들은 물론 급한 일로 패왕의 군막을 들렀던 장수들까지도 한쪽으로 물러서서 우 미인의 춤을 구경했다.

춤은 갈수록 애조 띤 고혹(蠱惑)으로 군막 안을 채우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금방 타오를 듯한 눈길로 우 미인의 춤을 보고 있던 패왕이 갑자기 보검을 쓸어안으며 읊조리기 시작했다.

힘은 산을 뽑을 수 있음이여, 기개는 세상을 덮었어라.(力拔山兮氣蓋世)

때가 이롭지 못함이여, (=오추마)마저 닫지 않는구나.(時不利兮不逝)

() 닫지 않음이여, 내 무엇을 할 수 있는가.(不逝兮可奈何)

(), (), 너를 어찌할 것인가.(虞兮虞兮奈若何)

마치 크게 상처 입은 호랑이가 깊은 동굴 속에서 울부짖는 것 같았다.

노래를 마친 패왕이 다시 술 한 잔을 들이켠 뒤, 뒷날 해하가(垓下歌)로 불리게 된 그 노래를 한 번 더 되풀이했다. 노래를 마친 패왕의 두 눈에서는 굵은 눈물이 번쩍이며 흘러내렸다. 춤을 추던 우 미인도 울며 그 노래를 따라 불렀다. 곁에서 시중들던 사람들과 무슨 일로 군막에 들었던 장수들도 모두 눈물을 흘리며 차마 패왕을 바로 쳐다보지 못하였다.

온 군막 안이 소리 죽여 울고 있는데 패왕이 다시 한번 상처받은 호랑이가 울부짖듯 해하가를 읊조렸다. 그때 갑자기 춤을 멈춘 우 미인이 자신의 노래로 해하가에 화답했다.

한나라 병졸들 이미 우리 땅을 모두 차지해 (漢兵已略地)

사방에 들리느니 초나라 노래 소리뿐이네 (四方楚歌聲)

대왕의 드높던 뜻과 기개마저 다하였으니 (大王意氣盡)

하찮은 이 몸 어찌 살기를 바랄 수 있으리 (賤妾何聊生)

노래를 마친 우 미인이 갑자기 품 안에서 시퍼런 비수 한 자루를 빼내면서 패왕에게 말하였다.

대왕, 옛 기상 꺾이지 마시고 부디 무사히 강동으로 돌아가소서. 뒷날 반드시 흙먼지 말아 일으키며 다시 돌아오시어[권토중래] 제 죽음이 헛되게 하지 마소서.”

그러고는 그 비수로 자신의 목을 깊이 찌르고 쓰러졌다. 패왕은 일순 몸이 굳어버린 사람처럼 두 눈을 부릅뜨고 그런 우 미인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러다가 미처 숨이 끊어지지 못한 우 미인의 몸이 작은 새처럼 파들거리며 고통에 떨고 있자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보검을 뽑아 한 칼로 그 숨을 끊어주고 군막을 나갔다.

군막 밖에는 남은 장졸들이 그새 모두 모여 있었다. 열사흘 달빛 아래 둘러보니 합쳐 3천도 되지 못했다. 패왕이 보검을 높이 쳐들며 나직하나 힘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들어라. 우리는 이제 강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적의 에움이 두꺼워 성하게 빠져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과인을 따라가고 싶지 않으면 여기 남아 한왕에게 항복해도 좋다. 뒷날 과인이 돌아와도 결코 그 일로 너희를 나무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진채에 남아 있으려 하지 않았다. 이에 패왕은 다시 한번 달래듯 말했다.

우리가 빠져나가는 줄 알면 적은 결코 곱게 놓아 보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 진채에 남아 우리가 빠져나갈 때까지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적을 속여주어야 한다. 거기다가 용케 이곳을 빠져나간다 해도 말이 없으면 곧 뒤따라 잡히고 만다. 말이 없는 군사들은 진채에 남아 아직 우리 대군이 남아 있는 것처럼 꾸미고 있으라.”

그리고 말 탄 8백 기()만 골라 뒤를 따르게 했다. 대개가 강동에서부터 따라온 용사들이었다. 진채에 남게 된 초나라 군사들이 화톳불을 배로 하고 빈 군막마다 등불을 밝혀 형세를 위장하고 있는 사이에 패왕 항우가 이끄는 8백 기는 가만히 진채 남쪽으로 몰렸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열사흘 달이 지고 세상은 날이 새기 직전의 어둠과 고요 속에 잠겨들었다.

가자. 지금이다. 결코 뒤돌아보지 말라. 오직 앞만 보고 내닫되, 가로막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베어 버려라. 바위라도 뚫고 가야 한다!”

패왕이 그렇게 말하며 앞서 말 배를 차자 남은 8백 기가 말없이 뒤따라, 그들은 곧 한줄기 빠르고 거센 바람처럼 남쪽으로 뛰쳐나갔다.

패왕 항우가 해하의 진채를 빠져나가던 새벽 한왕 유방은 그곳에서 20리쯤 떨어진 한나라 중군 진채에서 자고 있었다. 한왕은 패왕을 에워싸고 있는 한군 가까이에 진채를 내리고 대군을 단속하고 싶었으나, 한신이 말려 이번에도 싸움터에 몸소 끼어들 수는 없었다.

막다른 골목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를 무는 법입니다. 자칫 항우에게 판세를 뒤집어엎을 호기를 줄 수도 있으니 대왕께서는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하십시오.”

한신은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한왕의 주변에 5만이나 되는 정병을 남겨 지키게 했다. 거기다가 스무 배가 넘는 대군으로 패왕의 진채를 에워싸고도 이틀이나 결판을 미루자 한왕은 그런 한신이 지나치게 소심해 보였다. 그래서 간밤 불만스럽게 잠자리에 들었는데, 미처 뒤숭숭한 꿈에서 깨기도 전에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더니 군막 밖이 수런거렸다.

밖에 무슨 일이냐?”

한왕이 깨난 기척을 하며 가까이서 시중드는 이졸에게 물었다. 그 이졸이 군막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 말했다.

회남왕(淮南王)에게서 급한 전갈이 왔다고 합니다.”

한왕은 초군의 남쪽 길을 끊고 있는 경포에게서 급보가 왔다는 말에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얼른 잠자리에서 빠져나와 전포를 걸치며 말했다.

들라 이르라.”

오래잖아 젊은 아장(亞將) 하나가 이미 동이 터 훤해진 군막을 제치고 들어와 알렸다.

회남왕께서 이르시기를 조금 전 어둠 속에 한 떼의 인마가 우리 진지를 뚫고 남쪽으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동트기 전의 어둠이 짙은 데다 워낙 거센 회오리처럼 말을 몰고 사라져, 누가 이끌고 머릿수는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으나, 심상치 않은 일로 보입니다. 이에 대장군인 제왕(齊王)의 군막에 알리는 한편 대왕께도 고하라기에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그 말에 한왕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좌우를 돌아보고 소리쳤다.

남쪽으로 뚫고 달아났고, 모두 기마대라면 그 우두머리는 틀림없이 항우일 것이다. 어서 진중의 장수들을 이리로 모아들이라.”

그리고 장수들이 모여들자 그들을 돌아보며 탄식하듯 말했다.

과인은 대장군이 항우를 막다른 곳에 몰아놓고도 날을 끄는 게 걱정스러웠다. 호랑이가 기어이 갇혀 있던 우리를 부수고 달아났으니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그때 장수들과 함께 불려왔던 장량이 잔잔한 말투로 한왕의 걱정을 달랬다.

설령 빠져나간 것이 항왕이라도 대왕께서 조금도 심려하실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는 실로 우리가 바라던 바입니다. 간밤 사방에 초나라 사졸을 풀어 초가(楚歌)를 부르게 한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한왕은 간밤 장량이 군사들 가운데서 초가를 잘 부르는 자들을 골라 한신의 진채로 보내던 일을 떠올렸다. 적잖이 궁금했으나 한번 대장군 한신에게 맡긴 병진(兵陣)의 일이라 굳이 캐묻지 않고 보고만 있었는데, 그게 바로 항우가 달아나게 만들기 위한 계략이었다니 늦었지만 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어찌해서 그렇소?”

지금 우리 대군이 휩쓸고 있기는 하나 아직 이 땅은 서초의 땅이며, 해하의 싸움에서 항왕의 대군이 졌다고는 하나 초나라 군사가 모두 죽어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계포와 종리매를 비롯한 항왕의 맹장들과 수많은 항씨 족중(族中)의 장수가 많건 적건 저마다 한 갈래 군사를 거느리고 이 부근을 떠돌고 있고, 어리석은 백성들 가운데는 아직도 항왕을 저희 임금으로 여겨 초군을 돌봐주는 것들이 적잖이 남아 있습니다. 항왕이 진채 안에서 굳건히 버티고 있으면 떠도는 초나라 장졸들도 힘을 기르며 때를 기다릴 것이니, 그리되면 언제 다시 그들이 합쳐져 큰 세력을 이룰지 모릅니다.

하지만 궁한 적을 급하게 몰다가 낭패를 당할 수가 있어 함부로 우리 대군을 초군 진채로 밀어 넣을 수도 없습니다. 이에 머리를 맞대고 짜낸 것이 항왕을 속여 스스로 진채를 버리고 달아나게 만드는 계책이었습니다. 이미 초나라 땅이 모두 평정되어, 구원하러 올 군사도 없고 군량을 보내줄 세력도 없다고 믿게 되면, 항왕은 이곳을 버리고 강동으로 돌아가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군사가 겹겹이 에워싸고 있어 이제 항왕은 남아 있는 몇천 명도 온전히 보존한 채 빠져나가기는 어렵습니다. 거기다가 바깥에서 구원을 올 군사들은 항왕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게 돼, 겨우 빠져나간 그 미약한 세력마저 외롭기 짝이 없게 되고 맙니다. 그때에는 그야말로 죄수를 잡으러 다니는 군사 몇천 명만 보내도 항왕을 사로잡을 수 있습니다.

어젯밤 신은 군사들 중에 초나라 노래를 잘하는 군사 수천 명을 골라 초군 진채를 에워싸고 밤 깊도록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했습니다. 만약 새벽에 남쪽으로 치고 나간 것이 항왕이라면 틀림없이 사방에서 들려오는 그 초가(楚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항왕은 이미 우리 한군이 초나라 땅을 모두 차지하여 그 장정들을 모두 군사로 끌어냈기 때문에 사방에서 초가가 들린다고 보아 강동으로 돌아가려 한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보기(步騎)를 모두 이끌고는 회남왕의 대군을 뚫고 나갈 자신이 없어, 기마대만을 이끌고 상대가 뜻하지 아니한 곳으로 질풍같이 뛰쳐나갔을 것입니다. 따라서 항왕이 이끌고 간 것은 잘돼야 천 기()를 넘지 못할 터이니 정병 몇 만만 뒤쫓게 해도 넉넉합니다. 거기다가 이미 회남왕이 회수(淮水)의 배들을 거두게 하고 모든 나루를 끊어 놓아 항왕을 놓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한왕의 물음에 장량이 그렇게 길게 대답했다. 한왕은 누구보다 믿는 장량의 말이라 마음을 놓는 듯하면서도 자신의 군막에 그냥 있지는 못했다.

항우가 오늘날 이 지경에 몰린 것은 일을 마무리 지어야 할 때 깨끗하게 마무리 짓지 못한 까닭이오. 나는 그가 한 잘못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소. 이제 남은 일이 자방 선생의 말대로 항우의 일을 마무리 짓는 것이라면, 이제는 과인이 나서 뒷날 뉘우치는 일이 없도록 마무리하여야겠소.”

그러고는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태복(太僕)은 수레를 채비하고 장수들은 모두 과인을 뒤따르라. 과인은 이제 대장군의 군막으로 간다!”

장량도 굳이 그런 한왕을 말리지는 않았다. 이에 한왕은 곧 백여 기() 장수를 이끌고 새벽길을 달려 한신의 군막으로 갔다.

한왕 유방이 대장군 한신의 군막에 이르니 경포의 진채를 뚫고 나간 것이 패왕과 강동병 8백 기()였음을 확인해 주는 것 외에 새로운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항우가 떠난 뒤에도 남아서 진채를 지키던 초나라 군사 2천 명이 마침내 항복해 왔다고 합니다.”

마침 장수들을 불러 모아놓고 있던 한신은 갑자기 들이닥친 한왕에게 군례를 올리기 바쁘게 그 일을 전했다. 그러자 한왕이 갑자기 사람이 달라진 듯 차고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을 모두 끌어내 목 베시오. 여태까지 항우를 따라다닌 자들이라면 우리 한나라의 백성으로 고쳐 부리기는 틀렸소.”

그리고 한왕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리둥절해 있는 한신을 서슬 푸른 명으로 한 번 더 놀라게 하였다.

이제 남은 일이 항우를 잡는 것뿐이라면 과인이 그 마무리를 짓겠소. 먼저 대장군은 들으시오.”

() 한신 삼가 군명을 받들겠습니다.”

한신이 얼결에 머리를 조아리며 그렇게 받자 한왕이 미리 생각해 둔 것처럼 거침없이 말했다.

대장군은 항우가 사로잡히거나 그 목이 군전(軍前)에 이를 때까지는 대군을 유지하고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말라. 곧바로 삼군(三軍)을 진발시켜 회수 북쪽에서 항우를 잡을 수 있어야 한다.”

이어 한왕은 가장 발이 빠른 군사를 거느린 관영을 불렀다.

기장(騎將) 관영은 낭중(郎中) 기병 5천을 골라 뽑아 남쪽으로 항우를 뒤쫓는다. 항우를 사로잡거나 그 머리를 얻어 오는 자는 천금(千金)의 상을 내리고 만호후(萬戶侯)에 봉할 것이다. 공을 다툴 맹사(猛士)들을 뽑아 가되, 초나라에서 항복해 와서 항우의 얼굴을 익히 아는 자들을 데려가 만에 하나라도 어긋남이 없게 하라.”

그리고 관영을 재촉하여 패왕을 뒤쫓게 했다. 이에 관영은 낭중기(郎中騎) 양희(楊喜)와 왕예() 같은 용장에다가 기사마(騎司馬) 여마동(呂馬童)처럼 초군에서 항복해 와 패왕의 얼굴을 잘 아는 장수들을 데리고 5천 기병을 휘몰아 패왕의 자취를 따라갔다.

한편 그 새벽 한군의 에움을 빠져나온 패왕 항우는 한나절을 달려 대택향(大澤鄕)을 지난 뒤 회수가 작은 나루에 이르렀다. 패왕은 새벽부터 달려와 허기진 군사들에게 밥을 지어 먹게 하는 한편 회수를 건널 배를 찾아보게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강가를 뒤져도 작은 쪽배 한 척 찾아낼 수 없었다. 한 고기잡이 늙은이가 그 까닭을 일러주었다.

벌써 여러 날 전에 구강(九江)의 군사들이 배를 타고 몰려와 배들을 모두 회남(淮南)으로 끌고 가버렸습니다. 지금 회북(淮北) 나루에는 고기잡이할 배조차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 다급해진 초나라 기마들은 회수를 따라 오르내리며 감추어 둔 배를 찾는다, 떼를 얽는다, 허둥거렸다. 그런데 어느새 관영의 기마대가 패왕의 자취를 밟아 그곳에 이르렀다. 하지만 초군에는 다행스럽게도 관영이 이끈 한나라 낭중 기병 5천이 모두 그곳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

놀라지 말라. 적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 싸움으로 모조리 때려잡자!”

몰려오는 한군 기마대가 잘해야 1천 기()를 크게 넘어 보이지 않자 패왕이 보검을 빼들고 앞서 달려가며 소리쳤다. 패왕을 따르는 8백 기도 이미 저마다 악에 받쳐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매서운 투지로 내달으니 한군은 그 기세에 놀라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달아나 버렸다.

이제 됐다. 더는 적을 뒤쫓지 말고 배나 거두어들여라.”

추격해 오던 한군 기마대가 달아나는 걸 보고 패왕이 그렇게 소리쳐 군사를 거두었다. 하지만 구강(九江)의 군사들이 얼마나 모질게 인근 백성들을 닦달해 배를 치워 버렸는지 다시 한식경이나 더 회수(淮水) 가를 뒤져도 배다운 배는 나오지 않았다. 강 아래위 수십 리를 이 잡듯 훑어 찾아낸 것이 바닥이 뚫려 버려둔 듯한 거룻배 한 척과 쪽배 네댓 척뿐이었다.

급한 대로 거룻배를 고치니 그래도 사람과 말을 합쳐 여남은 기()가 탈 수 있고, 쪽배도 한두 기는 나를 수 있어 곧 한꺼번에 스무 기는 물을 건널 수 있게 되었다. 이에 패왕은 군사를 갈라 물을 건너기 시작했다. 하지만 회수같이 큰물을 노질로 건너야 하다 보니 오가는 것이 너무 더뎠다. 배들이 겨우 다섯 번이나 회수 남북을 오고갔을까, 갑자기 함성과 함께 다시 한나라 기마대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관영이 이끄는 본진으로, 한번 혼이 나봐서 그런지 5천 기가 한 덩어리가 되어 밀려들었다.

겁내지 말라. 과인에게는 아직 보검과 오추마가 있다. 적이 백만이라도 두렵지 않다. 과인을 따르라!”

패왕이 다시 보검을 빼들고 앞장서며 그렇게 외쳤다. 어차피 회수를 등지고 있어 물러나 봤자 더 갈 곳이 없는 초나라 기병들이었다. 패왕의 외침에 따라 회수 북쪽에 남은 6백여 기가 한 덩어리가 되어 관영의 5천 기마대와 마주쳐갔다.

거의 열 배에 가까운 차이가 났으나 패왕을 앞세운 초군이 워낙 거세게 치고 드니 세력만 믿고 달려오던 한군은 금세 기가 꺾였다. 달려온 기세에 밀려 그대로 부딪치기는 해도 선두는 초군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대로 두면 한군 전체가 조각조각 나 차례로 쓸려버리고 말 것 같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래도 가려 뽑은 낭중 기병 5천이 모두 온 데다 불같은 전투력을 자랑하는 맹장 관영이 그들을 이끌고 있었다. 처음에는 멈칫하며 밀렸으나 한군은 이내 전열을 가다듬고 열 배가 넘는 머릿수에 의지해 포위전을 펼치려 들었다. 초군을 두텁게 에워싼 뒤 여러 갈래 군사들을 차례로 내보내 천천히 그들의 기운을 빼고 세력을 지워가는 방식이었다.

그걸 알아본 패왕이 갑자기 칼을 들어 회수 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모두 물가로 물러나라. 적에게 에워싸여서는 아니 된다. 물을 등지고 반달 모양으로 진세를 벌여 배가 돌아올 때까지 버텨 보자!”

그리고 자신은 뒤에 남아 한군의 급한 추격으로 초군의 전열이 무너지는 것을 막았다. 오래잖아 초나라 기마대는 작은 포구를 삼면으로 에워싸듯 반원진(半圓陣)을 쳤다. 그때 마침 회수 남쪽 나루에 인마를 부려놓고 온 작고 초라한 선단(船團)이 그 포구로 돌아왔다. 패왕은 반원진을 굳게 지키면서 20여 기를 골라 다시 남쪽 물가로 태워 보냈다.

많지는 않아도 초군이 배를 구해 남쪽으로 건너는 것을 보자 관영도 급해졌다. 패왕이 이끈 기마대의 사나운 기세에 주춤해 물러선 낭중 기병들을 무섭게 다그쳐 600여 기()의 초군이 펼쳐 둔 작은 반원진을 들이쳤다.

이번에도 패왕이 앞장서 그 공격을 물리쳤다. 피를 뒤집어쓴 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한나라 기병들을 찍어 넘기니 아무리 한군의 머릿수가 많다고 해도 어찌해 볼 수가 없었다. 거기다가 반원진의 전면이 좁아 한의 대군이 힘을 쓰기도 나빴다.

모두 물러나라. 물러나 강한 활과 쇠뇌를 옮겨 오라.”

마침내 관영이 그렇게 외치며 군사들을 물렸다. 하지만 초군도 손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밀고 밀리는 가운데 죽거나 다쳐 100여 기나 줄어 있었다. 그때 다시 회수 남쪽에서 배가 올라왔다. 이번에는 남쪽 나루에서 찾아낸 것인지 배 몇 척이 불어나 있었다. 하지만 사공들과 함께 배를 끌고 온 이졸들의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남쪽 나루에 무슨 일이 있느냐?”

패왕이 그렇게 묻자 이졸 가운데 하나가 울상을 지으며 대답했다.

구강병(九江兵)이 나타났습니다. 처음에는 나루를 지키던 군사 수십 명뿐이었으나 그새 연락이 갔는지 점점 그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대로 두면 우리 모두가 회수를 건너도 저쪽에 배댈 곳이 없을까 걱정입니다.”

그 말을 들은 패왕은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거기까지 살아서 따라온 족제 항장(項壯)을 불러 말했다.

남쪽 나루에 구강병이 나타났다 한다. 내가 가서 그들을 쫓고 나루를 지키는 한편 큰 배들을 찾아 보내마. 너는 그때까지만 이 포구를 지키며 버텨 보아라.”

그리고는 서른 기를 골라 배를 나누어 타고 회수를 건너갔다.

패왕이 남쪽 나루에 이르렀을 때는 그새 수백 명으로 불어난 구강병들이 나루에 몰려 있는 100여 기 초나라 기마대를 향해 몰려들고 있을 때였다. 배에서 내린 패왕이 바로 오추마에 뛰어올라 우레 같은 고함소리와 함께 뛰쳐나갔다. 온몸에 아직 다 마르지도 않은 피를 함빡 뒤집어쓴 채 불이 철철 흐르는 듯한 두 눈을 부릅뜨며 다가드는 패왕은 그대로 지옥에서 뛰쳐나온 악귀(惡鬼) 같았다. 그 뒤를 기세가 오른 초나라 기마 100여 기가 짓밟아 가자 회수 나루를 지키던 구강 수졸(戍卒)들은 제대로 싸워 보지도 않고 달아나 버렸다.

구강병을 멀리 쫓아 버린 패왕은 다시 그 나루를 뒤져 감추어 둔 큰 배 몇 척을 더 찾아냈다. 그때까지 부리던 배들과 함께 좀 더 큰 선단을 이루어 북쪽 나루로 보냈다. 그런데 한식경도 안돼 돌아온 사공과 이졸들이 울며 패왕에게 알렸다.

한군이 북쪽 나루의 우리 진채에 강한 활과 쇠뇌를 퍼부은 뒤에 돌진하여 남아 있던 우리 군사 대부분을 죽이거나 사로잡아 갔습니다. 저희들은 배를 나루에 대지도 못하고 물위에 떠 있다가, 헤엄을 잘 쳐 강물로 뛰어든 군사 수십 명만 건져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말에 패왕은 우미인의 주검조차 제대로 거두어 주지 못하고 해하의 진채를 떠날 때보다 더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다시 군사들이 벌써 저물어 오는 강물 위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남쪽 나루에 숨겨두었던 구강의 배들이 회수 북쪽으로 몰려가고 있습니다. 곧 적의 대군이 회수를 건너 남쪽으로 내려올 듯합니다.”

그렇다면 2백 기()도 안 되는 군사로 그곳에 뻗대고 있을 수는 없었다. 이에 패왕 항우는 회수를 건넌 백여 기를 재촉해 밤길도 마다 않고 남쪽으로 내달았다. 하지만 모두가 사흘을 잇달아 잠 한번 제대로 자지 못하고 싸우며 쫓겨온 군사들이었다. 삼경 무렵이 되자 말과 사람이 너무도 지쳐 더 움직일 수 없었다.

하는 수 없다. 부근에서 마을을 찾아 말과 사람을 먹이고 잠시 쉬어가자.”

패왕이 그렇게 말하고 가까운 마을에 들어 날이 밝을 때까지 인마를 쉬게 했다. 날이 밝자 패왕은 길을 떠나기에 앞서 좌우를 돌아보며 그곳이 어디쯤인지를 물었다.

음릉현(陰陵縣)입니다. 현성(縣城)은 동쪽 이십 리쯤 되는 곳에 있다고 합니다.”

뒤따르던 군사들 가운데 하나가 마을 사람들에게서 들은 대로 일러주었다. 그 말을 들은 패왕은 동남쪽으로 길을 돌게 해 음릉 현성을 비켜갔다. 이미 경포() 밑에 든 성이라 자신을 따르는 백여 기로 떨어뜨릴 수 없을 바에야 차라리 피하는 게 나을 듯싶었다.

하지만 음릉 성안 군민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호젓한 숲 속으로 돌아가다 그리 되었는지, 패왕과 그를 따르던 인마는 해뜰 무렵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탐마를 풀어 사방을 살펴보게 해도 어딘가 어딘지 알 길이 없어 한식경이나 헤맸다. 그러다가 갑자기 길을 만나 반갑게 내닫는데, 오래잖아 길이 좌우 두 갈래로 나뉘었다.

패왕과 따르는 인마가 어디로 갈지 모르는데 마침 밭에 나온 농부 하나[일전부]가 보였다.

과인은 서초 패왕이다. 회수 북쪽에서의 싸움이 뜻과 같지 않아 강동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강수(江水=長江) 나루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앞서 말을 달려간 패왕이 아직도 백성들을 자기편이라 믿고 망설임 없이 자신을 드러내며 그렇게 물었다. 농부가 흠칫하다가 곧 공손하게 머리를 조아리며 알려 주었다.

왼쪽으로 가십시오. 그리하면 동성으로 빠져 해가 지기 전에 오강정(烏江亭) 나루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는 그 농부의 얼굴은 패왕뿐만 아니라 따르던 백여 기 가운데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만큼 정성스러우면서도 꾸밈없어 보였다.

패왕은 그가 일러준 대로 군사들과 함께 왼쪽 길로 접어들었다. 한군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인마를 재촉하여 다시 한 식경을 가자, 길은 없어지고 큰 늪[大澤]이 앞을 가로막았다. 보이는 것은 늪 사이사이로 이리저리 어지럽게 이어진 둑길뿐이었다. 한왕은 그래도 그 농부를 의심하지 않았다.

이 늪지만 지나면 다시 길이 나올 것이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자.”

그러면서 앞장서 인마를 이끌었다. 보기와 달리 둑길은 길이라기보다는 늪 사이에 남은 질흙 언덕에 가까웠다. 말발굽이 질흙에 빠져 앞으로 나아가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패왕은 급한 마음에 인마를 재촉해 앞으로 내닫기만 했다.

마침내 패왕이 그 농부에게 속은 줄을 깨닫고 군사를 돌린 것은 그 늪지를 반나절이나 헤맨 뒤였다.

속았다. 내 반드시 그 흉악한 늙은이를 잡아 거짓말한 입을 부수어 놓으리라!”

패왕은 그렇게 씨근거리며 인마를 돌려 늪지를 빠져나오고 나니 벌써 짧은 해가 뉘엿했다. 겨우 바른 길을 찾아 동성(東城)을 바라고 달렸으나, 추운 겨울 날 하루 종일 늪지를 헤매며 얼고 떤 인마를 이끌고 밤새워 달릴 수는 없었다. 동성 못 미친 마을에 인마를 멈추게 하고, 민가를 털어 주린 배를 채우게 하는 한편 불을 피워 언 몸을 녹이게 하였다.

하지만 그 농부에게 속아 길을 잘못 들어 헤맨 그 한나절이 패왕의 최후를 더욱 앞당겼다.

그날 새벽이었다. 패왕과 그의 인마가 아직 곤한 잠에 빠져 있을 때 갑자기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크게 함성이 일었다. 그 사이 회수를 건넌 관영의 기마대가 패왕의 자취를 쫓아 그곳까지 이른 것이었다.

깊은 잠에서 놀라 깬 장졸들과 함께 말에 오른 패왕은 힘을 다해 길을 앗아 동쪽으로 내달렸다. 곧 날이 훤히 밝아오며 저만치 동성이 보였다. 뒤쫓는 함성도 멀어져 패왕이 가만히 뒤돌아보니 회수를 건넜던 백여 기() 가운데 겨우 스물여덟 기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래. 강수(江水=장강)만 건너고 보자. 강동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이 고단함과 욕스러움을 몇 배로 적에게 되돌려 줄 수 있다. 모두 이 오늘을 옛말 삼아 자랑할 수 있을 것이다.”

패왕이 그렇게 군사들을 북돋우며 다시 동남쪽으로 내달렸다. 하지만 그사이 관영이 쳐둔 그물은 질기고도 촘촘했다. 갑자기 동성 안에서 수많은 인마가 뛰쳐나와 패왕의 길을 막았다. 전날 패왕이 늪지를 헤매고 있을 때 동쪽으로 먼저 앞질러간 관영의 기마대 한 갈래였다. 바로 낭중기(郎中騎) 양희(楊喜)와 왕예()가 이끄는 6백 기로서, 아무리 더듬어도 패왕이 지나간 흔적이 없자, 길목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때맞춰 달려 나온 길이었다.

그들을 보자 겁을 모르는 패왕도 가슴이 섬뜩했다. 6백 기가 수천 기로 보이면서, 전과 달리 뚫고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잠시 말을 멈추고 앞을 노려보고만 있는데, 다시 등 뒤에서 함성이 들렸다. 패왕이 놀라 돌아보니 어느새 관영의 본대가 부옇게 먼지를 일으키며 뒤쫓아 오고 있었다.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 오늘 이곳에서 빠져나가기는 어렵겠다.’

패왕의 머릿속에 퍼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파국의 예감이 이끌어낸 분발일까, 패왕이 문득 뒤따르던 스물여덟 기를 돌아보며 외치듯 말했다.

내가 군사를 일으켜 천하를 종횡한 지 어느덧 여덟 해가 되었다. 그동안 몸소 나가 싸우기를 일흔 번이 넘었으나 한번도 진 적이 없어 마침내는 천하의 패권을 움켜잡게 되었다. 그런데도 지금 갑자기 이처럼 고단한 지경에 빠진 것은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해서이지 싸움을 못한 죄가 아니다[차천지망아 비전지죄야]. 내 오늘 죽을 각오로 그대들을 위해 통쾌하게 싸워 세 가지로 적 대군을 이겨 보이겠다. 반드시 적의 에움을 흩어 버리고, 적의 장수를 베어 죽이며, 적의 깃발을 찍어 쓰러뜨려, 그대들에게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 못한 죄가 아님을 알려 주고자 한다.”

그리고 남은 스물여덟 기를 일곱 기씩 네 갈래로 나누어 각기 한 방향을 잡게 하였다. 그사이 한나라의 5천 기마대는 산등성이에 의지한 패왕의 군사들을 겹겹이 에워싸고 천천히 죄어 왔다. 그걸 본 패왕이 한나라 기마대로 뒤덮여 있는 산 동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대들은 지금부터 나와 함께 네 방향으로 달려 내려가되 저기 동쪽 산비탈 세 곳에서 나와 만나도록 하자. 첫째 곳에서는 내가 적의 에움을 온전히 흩어버렸음을 보여 줄 것이고, 둘째 곳에서는 적장의 목을 벨 것이며, 셋째 곳에서는 적의 대장기를 베어 넘길 것이다.”

그때 갑자기 한나라 기마대 한 갈래가 패왕을 바라보고 돌진해 왔다. 패왕이 그중에 앞선 한나라 장수 하나를 가리키며 덧붙여 말했다.

마침 잘됐다. 찾아 나설 판에 제 발로 찾아드는구나. 내가 그대들을 위해 저 장수의 목을 베겠다. 그대들도 모두 두려워 말고 쳐나가라.”

그리고 스물여덟 기를 네 방향으로 뛰쳐나가게 한 뒤 패왕 자신도 말을 박차 산등성이를 달려 내려갔다. 패왕이 벼락같이 소리치며 보검을 휘두르자 맞서 달려오던 한나라 기마대는 바람에 초목이 쓰러지듯 모조리 피를 뿜으며 죽고, 그들을 이끌던 장수도 마침내 패왕에게 목이 떨어졌다.

패왕이 훤하게 뚫린 길로 빠져나가 동쪽 산등성이로 내닫는 걸 보고 한나라 낭중기(郎中騎) 양희(楊喜)가 그 뒤를 쫓았다. 패왕이 무서운 눈길로 양희를 노려보며 꾸짖었다.

이놈! 너도 죽고 싶으냐?”

그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양희와 그가 타고 있던 말이 아울러 놀라 십리나 달아나서야 겨우 멈추었을 정도였다. 이어 산 동쪽에 이른 패왕은 거기 모인 스물여덟 기와 더불어 그곳에 진세를 벌이고 있던 한군 기마대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진작 보아둔 한나라 기장(騎將) 하나를 목 벤 뒤 다시 멀찌감치 세워두었던 대장기 하나를 칼로 찍어 넘겼다. 산등성이에서 달려 내려올 때 큰소리친 그대로였다.

그같이 눈부신 패왕의 무용(武勇)과 기백을 두 눈으로 본 초나라 기병 스물여덟 기는 놀라움과 감격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지만 그걸로 패왕과 그들이 고단한 처지에서 온전히 풀려난 것은 아니었다. 패왕의 무서운 기세에 밀려 주춤했던 한군이 다시 대오를 수습해 잠시 뚫렸던 포위망을 새로 얽었다. 그리고 패왕이 있는 곳을 찾아 두껍게 에워싼 뒤 세 갈래 방향에서 대군으로 밀어붙였다.

이제 이곳을 뚫고 나간다. 모두 나를 따르라!”

패왕이 보검을 높이 쳐들고 그렇게 외치더니 세 갈래 한군 가운데 한 갈래를 겨냥해 오추마를 박차고 나갔다. 그 뒤를 새롭게 고양된 초나라 기병 스물여덟 기가 한 덩어리로 뭉쳐 따라갔다.

한나라 도위(都尉) 하나가 멋모르고 패왕을 막아섰다가 어디가 어떻게 베었는지도 모르게 목숨을 잃었다. 이어 재수 없게 패왕의 길목을 막아선 꼴이 된 한나라 기병 100여 명이 가을바람에 잎 지듯 피를 뿜으며 말 위에서 떨어졌다. 그러자 겹겹이 에워싼 한군 사이로 한 줄기 길이 열리고, 그렇게 열린 길로 한 덩어리가 된 초군 스물여덟 기가 거센 바람처럼 치고 나갔다.

이제 더는 뒤쫓는 적이 없다 싶은 곳에 이르자 패왕은 말을 세우고 뒤따라오는 기병들을 모아보았다. 스물여덟 기 중에 단 두 기만 보이지 않았다. 패왕이 그들 살아남은 스물여섯 기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떠냐? 내가 싸움을 잘하지 못해 이리 된 것이 아님을 이제 알겠느냐?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지 않는 한 나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

과연 대왕의 말씀과 같사옵니다. 대왕은 하늘이 내려 보낸 전신(戰神)이십니다.”

그 스물여섯 기병이 모두 말에서 내려 땅바닥에 엎드리며 그렇게 말했다. 패왕도 통쾌한 듯 하늘을 바라보고 크게 웃다가 문득 웃음을 거두고 그들을 재촉했다.

모두 말에 올라라. 어서 나루를 찾아 강수(江水=장강)를 건너야 한다.”

그때만 해도 패왕은 되살아난 재기의 의욕으로 고양되어 있었다. 재기의 발판이 될 강동에 소홀했음을 스스로 뉘우치며 강동 사람들에게 지난 잘못을 빌 여유까지 보였다.

지난날 유방이 그토록 몰리면서도 왜 그리 관중(關中)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는지 이제는 알 만도 하다. 천하를 경영하려는 자는 언제나 근본을 돌아보고 튼튼히 해 두어야 한다. 강동은 나의 근본이었다. 그런데 한번 떠나오고 8년에 가깝도록 한 번도 강동을 돌아보지 않았다. 팽성에 자리 잡고 안겨 오지 않는 중원만을 노려보며 헛되이 분주하였으니, 이제 와서 강동으로 돌아가기 실로 부끄럽다.”

패왕은 그렇게 말하면서 얼굴까지 붉혔다.

동성(東城)에서 눈부신 무용(武勇)으로 한군의 에움을 떨쳐버린 패왕과 그를 따르는 스물여섯 기가 한 식경을 달려 이른 곳은 오강(烏江)이라는 나루[]였다. 오강은 원래 정()이었으나 진()나라 초기에는 현()으로 되고, 오강나루[烏江浦]는 나중에 황률구(黃律口)로 불리기도 했다. 거기서 강수만 건너면 바로 강동 땅이었다.

오강도 음릉처럼 구강(九江)에 속한 땅이었으나, 사는 사람은 모두가 패왕을 속여 늪지를 헤매게 한 음릉의 농부와 같지는 않았다. 특히 오강정의 정장(亭長)은 패왕이 한군에 쫓기고 있다는 말을 듣고 배 한 척까지 구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패왕이 스물여섯 기를 이끌고 배가 대어져 있는 강 언덕에 이르자 정장이 반겨 맞으며 말하였다.

강동이 비록 작으나 땅이 사방으로 몇 천 리요, 백성들의 머릿수 또한 수십만에 이르니, 넉넉히 임금 노릇을 할 만한 땅입니다.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얼른 배에 오르시어 물을 건너십시오. 지금은 부근에서는 신()에게만 배가 있어, 한군이 이곳에 이른다 해도 물을 건너 뒤쫓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알 수 없는 것이 패왕의 희비(喜悲)와 애락(哀樂)의 변환이요, 거기서 비롯되는 분발과 위축의 교차였다. 정장의 충심에 세찬 감동으로 얼굴이 굳어졌던 것도 잠시, 갑자기 하늘을 쳐다보며 껄껄 웃더니 말했다.

하늘이 이미 나를 망하게 하려는데, 내가 구차하게 물을 건너 무얼 하겠는가? 지난날 나는 준총(駿2) 같은 강동의 자제 8천 명과 이 물을 건너 서쪽으로 왔으나, 이제 한 사람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다. 설령 강동의 부형(父兄)들이 나를 가엾게 여겨 다시 왕으로 삼아 준다고 해도 내가 무슨 낯가죽으로 그들을 마주 볼 수 있겠는가? 그들이 두번 다시 그 일을 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 적()은 일생 마음속으로 부끄러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고는 한동안 그윽하게 오강 정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오추마에서 뛰어내리더니 그 말고삐를 내밀며 당부했다.

그대의 마음 씀씀이와 하는 말을 들어 보니 그대가 후덕한 사람임을 알겠다. 나는 지난 5년 동안 이 말을 타고 싸움터를 내달았으나 그 어떤 말도 이 말과 맞설 수는 없었으며, 또 이 말은 하루에 천리를 닫고도 지칠 줄 몰랐다. 내 차마 난전(亂戰) 가운데 죽게 할 수 없어 이 말을 그대에게 줄 터이니 데려가 잘 보살피라.”

오강(烏江) 정장(亭長)이 목이 메어 대꾸도 못하고 오추마의 고삐를 받자 패왕은 다시 거기까지 따라온 스물여섯 기를 바라보며 결연히 말했다.

모두 말에서 내려라. 이제 강동 남아의 용맹과 기백을 보여줄 때가 왔다. 각자 큰 칼이나 긴 창을 버리고 짧은 병기를 뽑아 들라. 나를 따라 적진에 뛰어들어 참된 장부의 죽음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자.”

이 무슨 기이한 감정의 전환과 교차인가. 절망적일 때는 오히려 분발하여 겨우 스물여덟 기로 그 이백 배에 가까운 한군의 포위를 뚫고 나온 패왕이었다. 그런데 재기의 희망이 눈앞에 펼쳐진 오강 나루에서 갑작스레 자신을 내던져 그 불같은 생애를 서둘러 끝맺으려 하고 있다.

자칫 변덕이나 단기(短氣)로 읽힐 수도 있는 패왕의 그 급격한 감정의 변화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군사적 재능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 탓이 아닌가 싶다. 그때가 되어서야 오히려 명백해진 이전의 패배를 그 도저한 자부심이 선뜻 인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아니면 격렬하고 폭발적인 성품으로 너무 심하게 소모된 패왕의 몸과 마음에 그 돌연한 체념의 원인을 돌릴 수도 있다.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해야 하는 피로와 긴장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패왕 스스로 무너져간 것인지 모른다.

더욱 알 수 없기는 거기까지 패왕을 따라온 스물여섯 기()였다. 그들은 모두가 강동의 자제들이었고, 이제 배에 올라 물만 건너면 부모형제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패왕의 끝 모를 군사적 자부심이 그 사이 그들에게도 감염된 것일까. 아니면 조금 전 패왕이 강동의 자제 8천 가운데 살아서 돌아온 것은 아무도 없다고 했을 때 이미 결사의 암시에 걸린 것일까. 말에서 내린 그들은 기창(騎槍)이나 철극(鐵戟)같이 크고 긴 무기를 내던지고 저마다 칼을 빼어 들었다. 그리고 강 언덕에 매여 있는 배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산악처럼 우뚝 서 있는 패왕 주위로 모여들었다.

마침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관영의 추격대가 오강 나루에 이르렀다. 추격대의 선두는 패왕과 그를 따르는 스물여섯을 보자 멈칫하며 말을 세웠다. 그리고 한참을 살피다가 그들도 말에서 내려 두꺼운 사람의 장벽을 이루며 멀찍이서 에워쌌다.

패왕을 중심으로 뭉쳐 있는 심상찮은 기세에 눌렸는지 에워싼 한군들이 함성조차 제대로 못 지르며 머뭇거리고 있는데, 다시 알 수 없는 공수(攻守)의 뒤바뀜이 일어났다.

가자!”

패왕이 범이 울부짖듯 소리치며 앞장을 서고 결사의 의지로 상기된 스물여섯 명이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이 뛰어들자 한동안은 에워싸고 있던 한군이 오히려 밀렸다. 하지만 5천의 한군에 비해 패왕이 이끈 스물여섯은 단병(短兵)으로 맞싸우기에는 너무 적었다. 곧 화톳불에 떨어진 눈송이처럼 하나 둘 자취 없이 스러지고 패왕 혼자만 남았다.

패왕은 앞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이든 보검으로 베어 넘기며 점점 한군(漢軍) 깊숙이 헤쳐 들어갔다. 몸 전체가 바로 빠르고 날카로운 칼이 되어 한군의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것 같았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사람처럼 패왕이 지나가는 길 양편으로 한군의 시체가 줄을 이루었다. 사기(史記)의 기록은 그때 패왕 홀로 베어 죽인 한군이 수백 명이라고 한다.

하지만 패왕을 에워싼 한군도 악착스러운 데가 있었다. 패왕의 목에 걸린 상금과 관작이 자극한 물욕 탓이었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았다는 것 때문일까, 패왕인지 아닌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한군은 불빛에 날아드는 나방들처럼 패왕 곁으로 몰려들었다. 특히 장수들에게는 패왕이 바로 그만 한 크기의 황금 덩어리 또는 제후의 휘황한 인수(印綬) 같았다. 말 위에서 저만치 패왕을 내려보며 사냥개들이 사나운 짐승의 기운을 빼주기를 기다리듯이 병졸들이 패왕의 힘을 모두 짜내 주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 패왕도 온 몸을 여남은 번이나 찔렸다. 그 상처가 점점 무거워지면서 패왕도 마침내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느꼈다. 한 차례 무섭게 보검을 휘둘러 몰려드는 한군을 쫓아버린 뒤에 정신을 가다듬고 사방을 돌아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초나라 기사마(騎司馬)로 있다가 광무산에서 사라진 여마동(呂馬童)이었다. 짐작대로 한나라에 항복해 그 장수가 된 듯했다.

이전의 패왕 같으면 그런 여마동을 먼저 꾸짖고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드디어 죽을 자리를 찾은 것 같은 느낌에 오히려 여마동이 반가웠다. 짐짓 목소리를 너그럽게 하여 여마동을 불렀다.

그대는 예전에 나와 알고 지내던 사람[고인]이 아닌가?”

여마동은 자신의 배반을 꾸짖지 않고 그렇게 에둘러 물으며 아는 체하는 패왕을 감히 마주 바라보지 못하였다.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곁에 있던 낭중기(郎中騎) 왕예()에게 패왕을 가리키며 나지막하게 소리쳤다.

저 사람이 바로 항우요.”

이미 왕예가 짐작하고 있던 일이라 해도, 패왕에게는 그렇게 일러바치는 여마동이 괘씸할 수 있었다. 하지만 패왕은 모처럼 얻은 죽을 자리를 감정에 치우쳐 잃고 싶지 않았다. 여마동의 말을 듣지 못한 척 호탕하게 말했다.

내가 들으니 한왕은 내 머리를 천금(千金)의 상과 만호(萬戶)의 읍()으로 사려 한다고 하였다. 이제 지난날 알고 지내던 정으로 그대에게 은덕을 베풀 터이니, 이 머리를 한왕에게 가지고 가서 상과 벼슬을 청하여라.”

그리고는 들고 있던 보검으로 스스로 목을 베어 죽었다[自刎而死]. 그걸 본 왕예가 잽싸게 달려가 패왕의 목을 자르고 먼저 그 머리를 차지하였다. 그러자 뒤이어 몰려든 나머지 낭중들이 남은 패왕의 몸을 차지하려고 서로 짓밟으며 치고받는데, 그때 저희끼리 다투다 죽은 자가 수십 명이나 되었다. 마지막으로 패왕의 몸은 네 토막이 나서 기사마 여마동과 낭중기 양희(楊喜), 그리고 낭중 여승(呂勝)과 양무(楊武)가 각기 한 토막씩을 차지했다.

실로 비정하다 못해 처절하기까지 한 인간의 물욕이었다. 그리고 죽음을 맞이하는 패왕 항우가 보여 준 기이한 정신적 고양에 견주면, 그 물욕은 끔찍한 자기 모독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인간성의 추락이었다. 진정 이 세상의 무엇이 고귀하고 무엇이 하천(下賤)한가. 사람의 무엇이 위대하고 무엇이 비소(卑小)한가.

태사공(太史公=사마천)은 항우의 죽음을 놓고 이렇게 말하였다.

<항우는 쳐부수고 이긴 공을 스스로 자랑하며 사사로운 지혜를 내세워, 옛것을 스승삼지 아니하고 패왕의 공업만을 일컬었다. 힘을 써 정벌하는 것으로 천하를 경영하려 하다가 5년 만에 마침내 나라를 망하게 하고 그 몸은 동성(東城)에서 죽었다. 그런데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를 꾸짖을 줄 모를 뿐더러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한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하지 못한 죄가 아니다고 하였으니 어찌 잘못된 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뉘 알랴. 이 또한 패자(敗者)에게 내려진 역사의 비정한 선고문이 아님을.

왕예를 비롯한 다섯 사람이 패왕 항우의 몸 한 토막씩을 들고 한왕의 진중으로 가서 상을 청했다. 한왕이 그들이 가져 온 것을 맞추어 보게 하니 과연 패왕 항우의 주검임에 틀림없었다. 이에 상으로 내건 금도 땅도 다섯으로 나누어 왕예를 두연후(杜衍侯)로 봉하고, 여마동을 중수후(中水侯), 양희를 적천후(赤泉侯), 여승을 열양후(涅陽侯), 양무를 오방후(吳防侯)에 각기 봉하였다. 한왕다운 포상이었다.

한왕은 패왕이 죽은 걸 확인하고서야 군사를 나누어 초나라 땅을 평정하게 했다. 그러나 그때부터는 맞서다 항복해도 용서하지 않아, 초나라 땅이 모두 평정될 때까지 보름도 안 되는 동안에 한군이 목 벤 사람이 8만 명이나 되었다. 어찌 보면 그 또한 한왕다운 징벌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 한 예외가 노현(魯縣) 사람들이었다.

초나라 모든 성이 한군에게 항복했는데도 오직 노현만이 성문을 닫아걸고 버틴다는 말을 듣자 한왕은 몹시 성을 냈다.

노현을 도륙하여 천하에 본보기를 보이리라!”

한왕이 그렇게 말하며 몸소 대군을 이끌고 노현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그 성 아래 이르러 들어 보니 적군에게 에워싸인 성 같지 않게 현() 뜯는 소리와 글 외는 소리가 그윽하게 들려왔다. 그제야 한왕은 노현이 옛 노나라 때부터 예의를 숭상했던 땅으로서, 이제 제 주인을 위해 죽음으로써 절개를 지키려 한다는 걸 알았다. 예전에 초 회왕이 항우를 노공(魯公)에 봉한 적이 있어 그때 이후로 노현 사람들은 항우를 주인으로 알아 왔기 때문이다.

이에 한왕은 군사를 몰아 성을 치는 대신 사람을 보내 패왕의 머리를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노현의 부형(父兄)들에게 그 머리를 보이며 달래자 마침내 노현 백성들도 성문을 열고 한왕에게 항복했다. 한왕은 그들을 용서하고 패왕을 노공의 예우로 곡성(穀城)에 장사지내게 하였는데, 노현을 떠날 때는 패왕을 위해 큰 소리로 울며 갔다[哭之而去]고 한다. 한왕 유방에게도 패왕의 죽음을 바라보는 나름의 감회는 있었을 것이다.

그때 제후들은 모두 제 봉지로 돌아간 뒤였다. 경포는 구강으로 돌아가고 팽월은 양()땅으로 돌아갔으며 한신도 제()나라로 돌아갔다. 그런데 거기서 한왕은 천하를 차지하여 새 제국을 열 왕자(王者)다운 비정과 결단을 다시 한번 섬뜩하게 보여 준다. 노현을 떠난 한왕은 한신이 대군을 이끌고 아직 정도(定陶)에 머물고 있다는 말을 듣자 갑자기 군사를 그리로 돌렸다. 그리고 불시에 한신의 진채를 덮쳐 그의 군사를 모두 뺏은 뒤 제왕(齊王)의 왕위까지 거두어 버렸다.

한왕 유방의 천하통일은 제왕 한신을 다시 한 무력한 신하로 곁에 묶어둠으로써 비로소 그 모양이 갖춰졌다. 그제야 천하에서 한왕에게 맞설 만한 세력이 온전히 없어진 셈이었다. 그 뒤 한 달도 안돼 한왕은 한신을 다시 초왕(楚王)으로 세우지만, 그때 자신은 이미 황제로 즉위할 기반을 튼튼하게 다져 놓은 뒤였다.

() 52월 갑오(甲午)일 한왕 유방은 범수(氾水) 북쪽에서 단을 쌓아 하늘에 고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니 이가 곧 한고조(漢高祖). 처음에 잠시 도읍을 낙양에 했다가 함양(뒷날의 장안)으로 돌아가는데, 나중에 낙양에 도읍하게 되는 동한(東漢)과 구별해 그때의 한나라를 서한(西漢)이라 부르기도 한다.<大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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