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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鄭道傳, 1342~1398)

 感興

 

1

久客尙絺綌              오랜 나그네 신세 갈옷을 걸쳤더니

北風凄以涼              북풍이 서늘하여 을씨년스럽구나.

團團寒露至              방울방울 찬 이슬 내리니

蘭枯謝幽芳              시들은 난초는 그윽한 향기로 보답한다.

悠悠關山遠              고향 산천은 아득히 멀고

行行道路長              가고 가도 길은 멀기만 한데

何以卒歲晩              저문 해는 어찌 마칠거나

歲晩多繁霜              세밑에는 서리도 많이 내릴 텐데.

 

2

冽彼山中泉              청아한 저 산속의 샘은

在山淸且漣              산에 있을 땐 맑고도 잔잔하련만

堤坊一朝決              제방이 하루아침에 터지고 나면

就下何沛然              어찌 그리도 세차게 흘러가느냐.

去山日以遠              산을 떠나서 날로 멀어지니

衆流會其閒              여러 갈래의 물이 빈틈으로 모여든다.

無復向時淸              그 시절의 맑음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지니

逝者何當還              가는 자여 어찌 돌이킬 수 있겠느냐.

我來臨水上              내가 와서 물 위를 내려다보니

不忍聽潺湲              잔원하고 조용히 흐르는 물소리를 차마 들을 수 없구나.

 

3

鳳凰何飄飄              봉황은 어찌하여 질풍같이 날아오르고

高逝不可望              높이 올라서 바라볼 수도 없어라.

飢食靑琅玕              배고프면 푸른 옥돌을 먹으며

渴飮天池潢              목마르면 하늘 못 웅덩이의 물만 마신다.

俯視塵世窄              구부리고 바라보면 티끌 세상이 좁기만 하리니

嗷嗷鷄鶩場              닭과 오리가 꽥꽥거리며 떠들어 대건만

所以久不下              그래도 오래도록 내려오지 않고

徘徊千仞岡              천 길 산등성이를 노닐고 있도다.

 

 

江之水辭

 

江之水兮悠悠                강물은 유장하게 흐르고

泛蘭舟兮橫中流            목단 배 띄워 중류를 가로지르니

高管激噪兮歌聲發        피리는 격해 높아지고 노랫소리 피는데

賓宴譽兮獻酬               잔치 손님은 칭송하며 술잔을 권하고

或躍兮錦鯉                   이따금 뛰는 것은 비단잉어요

飛來兮白鷗                   나는 것은 흰 갈매기며

煙沈沈兮極浦               포구엔 안개 자욱하게 끼어있고

草萋萋兮芳洲               아름다운 모래톱에 초목이 무성하여라.

覽時物以自娛兮            철따라 만물을 보며 스스로 즐기나니

蹇忘歸兮夷猶               늙은 당나귀 돌아가는 것을 잊어버리듯 어슬렁거린다.

景忽忽乎西馳兮            풍광은 급작스레 서쪽으로 달리니

水沄沄兮逝不留            물은 세차게 소용돌이치나 머물지 않고 흐른다.

曾歡樂之未幾兮            일찍이 기뻐하며 즐긴 일이 얼마이더냐

隱予心兮懷憂                숨겨진 나의 마음은 근심을 품는구나.

嗟哉盛年不再至兮         오호라, 젊은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지니

老將及兮夫焉求             늙음이 장차 오니 장부는 무엇을 구할까?

軒冕兮儻來                    고관대작이 갑자기 찾아온다 한들

富貴兮雲浮                    부귀야 뜬구름 같은 것을

惟君子所重者義兮         오직 군자로서 소중함은 의로움이니

名萬古與千秋                천추만세토록 이름을 남기리라.

擧一杯以相屬兮            벼슬아치들이 서로 술 한 잔 들며

庶有企兮前修               바라건대 옛 현인이나 군자를 마음에 두리라.

 

 

癸丑正朝夆天殿口號      계축년 정조(正朝)에 봉천전 구호

 

春隨細雨度天津          봄에 보슬비 따라 천진을 건너가니

大掖池邊柳色新          대액의 연못가에 버들 빛이 새롭도다.

滿帽宮花霑鍚宴          궁에서 사모에 꽃을 가득 꽂고 잔치에 젖어 들어

金吾不問醉歸人          취해서 돌아가는 사람을 금오도 묻지 않는다.

 

 

過古東州

 

遠隨戎旆過東州          병장기 깃발 따라 머나먼 동주를 지나며

晝角聲高欲暮秋          한낮의 나팔 소리 높으니 가을도 저무는가.

徃事奢華無處問          사치스럽고 화려한 지난 일을 물을 곳은 없고

冷煙衰草鎻荒丘          차가운 안개 시든 풀이 황량한 언덕에 엉켜 있도다.

 

曠野天低草木秋          거친 들판에 하늘은 낮고 풀과 나무는 가을이로되

長江女帶繞城流          여자의 띠 같은 장강은 성을 감싸고 흐른다.

將軍此地摧强虜          장군께선 이 땅에서 강인한 오랑캐를 물리치고

仗節重來尙黑頭          병장기 치켜들고 다시 왔지만 아직은 검은 머리로다.

 

 

過文川

 

文州城外草靑靑          문천성 밖, 풀색은 파릇파릇하고

垂柳陰中百鳥鳴          능수버들 그늘 안에 온갖 새가 우짖는다.

不識淸明寒食過          청명과 한식이 다 지난 줄도 모르고

日斜猶自向西行          지는 해도 오히려 서쪽을 향해 가노라.

 

 

過鐵關門

 

雲煙一道滄溟近          외길에 구름 안개 푸른 바다가 가깝고

風氣千年地理分          천 년 바람 기운 지리로서 나뉘었구나.

自笑區區經國志          구구한 경국의 뜻을 스스로 비웃어

從戎又過鐵關門          군을 따라서 또 오늘 철관문을 지나는구나.

 

 

關山月

 

一片關山月              한 조각 관산 달

長天萬里來              높은 하늘 만 리를 둥실 떠오른다.

塞風吹不盡              변방 바람 불어 그칠 줄 모르고

冷影故徘徊              찬 그림자 일부러 돌고 도는구나.

蘇武何時返              소무는 어느 때 돌아올런지

李陵亦未廻              이릉도 역시 가고 돌아오지 않는다.

蕭疎白旄節              성기고 쓸쓸한 깃대 위의 흰 털

寂寞望鄕臺              망향대는 마냥 적막하기만 하다.

豈無南飛雁              남으로 나는 기러기 어찌 없으랴 마는

音信何遼哉              소식이 이다지도 요원한 것인가.

見月三歎息              달 쳐다보며 세 번 탄식하며

搔首有餘哀              가슴에 슬픔이 서려 머리를 긁는다.

 

 

寄贈柏庭禪                 백정 선사에게 기증하다

 

三冬秀色連空翠          삼동 겨울 빼어난 빛은 하늘까지 푸르고

六月淸風滿地寒          육월 여름날도 맑은 바람 땅에 가득 차갑다.

此是柏庭奇絶處          이곳이 바로 백정의 경치 좋은 곳이니

登攀何日好相看          어느 날에야 올라가 서로 좋게 바라볼 수 있을까.

 

 

亂後還松京                 홍건적의 난리 후에 개성으로 돌아와서

 

天水門前柳色靑          천수문 앞 버들 빛은 푸르고

眼明驚見舊都城          눈앞이 밝아지니 옛 도성 놀라서 바라본다.

僕童不識中興事          어린 종은 흥망의 옛일은 알지 못하고

猶說年前喪亂行          아직도 지난해 난리의 피란 길만을 이야기한다.

 

 

箂州城南驛館屛有婦人琴碁書畵四圖戱題其上   내주성남역관에 부인의 금기서화가 있어 희롱삼아 짓다

 

1

芳園春到日初長          꽃다운 동산에 봄이 와 비로소 해가 길어지고

懶整雲鬟倚綉牀          구름 같은 머리를 게을리 손질하고 비단 평상에 기대어있다.

彈罷一聲無限恨          거문고 한가락 타고 나니 무한히 한스러운데

不知誰賦鳳求凰          누가 숫봉이 암황을 구하는 것을 시로 지어줄지 모른겠다.

 

2

檻外花枝轉午陰          함 밖에는 꽃가지에 낮 그늘 짙어 가는데

閑敲玉子逞芳心          한가로이 바둑을 두며 꽃다운 마음을 풀어보노라.

輸來莫賭黃金百          지더라도 백 량 황금 줄 필요가 없노니

一笑還應直百金          한 번의 웃음이 도리어 백 량 황금 값어치로다.

 

3

美人如玉罷粧梳          옥 같은 미인이 단장을 마치고

盡日凝眸讀底書          종일토록 곁눈질해보지 않고 무슨 책 읽고 있나.

下女相看亦不語          하녀도 서로 보고 말을 하지 않으니

無由得近遺瓊琚          가까이하여 선물로 경거를 보낼 길이 없도다.

 

4

可憐雲雨夢中人          어여쁘다, 운우의 꿈속의 사람

又向瓊臺寄此身          또 선녀 사는 경대를 향해 이 몸을 붙이었다.

思入丹靑終不應          생각이 단청에 들어갔으나 응하지 않아

謾勞心力喚眞眞          부질없이 마음만 괴롭히고 진진을 부른다.

 

 

渡錦江 

 

扁舟一葉在中流          일엽편주로 강 한가운데를 흐르는데

北去南來集渡頭          북으로 가고 남으로 오는 이들 부두에 운집하여

日暮路長爭競涉          해는 저물고 길은 멀어 다투어 강을 건너며

無人回首見沙鷗          고개 돌려 갈매기 보는 이 하나 없구나.

 

 

途中 

 

曉入城門向夕還          새벽이면 성문에 들어 저녁에나 돌아오니

蒼茫星月動前山          푸르고 아득한 별과 달은 앞산에 일렁인다.

家童不睡遙相望          어린 종은 잠 못 들고 멀리 서로 바라보며

松下苔扉猶未關          솔 아래 이끼 낀 사립을 아직도 닫지 않고 있다.

 

 

到平壤 鄭道傳

 

玉節煌煌遠有華          옥절은 번쩍번쩍 멀리서도 화려하게 빛나고

三行紅粉一聲歌          세 미인이 함께 하는 한 가닥 노랫소리.

使君風采江山勝          사신의 풍채에다 산과 강도 빼어나니

酒滿金觴不飮何          금잔에 술 가득 부어 어이 아니 마실쏘냐?

 

 

到平壤 

 

道里悠悠歲又華          길과 마을은 여유롭고 나이 또한 청춘이나

臨分更聽柳枝歌          헤어짐에 다시 듣는 버들가지 노랫가락.

年年此地多離別          해마다 이 땅에는 이별도 많은데

爭奈紅顔老去何          어찌하여 홍안에 다투고 늙어가니 어이할까?

 

 

頭館站夜詠                 두관역에서 밤에 읊다

 

朔風淅瀝吼枯枝          북풍 불어와 마른 가지 울리고

馬困無聲客臥遲          말은 지쳐 소리도 없고 나그네 잠도 오지 않는다.

明日又從遼海去          내일이면 또 요해를 떠날 것이니

驛亭何處是晨炊          역의 정자 어느 곳이 새벽밥 지어 먹을 곳인가.

 

 

登州待風                 등주에서 바람을 맞으며

 

高閣臨靑峭              누각은 푸르고 가파른 언덕에 있고

洪濤接遠空              큰 물결은 먼 공중까지 치오르는구나.

沙痕問潮水              모래 자국 살펴서 조수를 묻고

雲氣占天風              구름 기운 바라보며 바람을 점쳐 보노라.

客路春將半              나그네 길은 봄이 장차 다 왔는데

鄕關日出東              해 돋는 동쪽이 내 고향이로다.

何當好歸去              어찌해야 마땅히 탈 없이 돌아가

尊酒故人同              친구들과 동잇술을 함께 나눌까.

 

 

挽權寧海 

 

鑑湖秋水倍澄淸          감호의 가을 물은 더욱 맑고 청정해지니

夜夜湖山月正明          밤이면 호산의 달은 참으로 밝지요.

疑是先生舊顔色          이게 바로 선생의 옛 모습인가 싶어서

臨流對月獨傷情          흐르는 물에 달을 보며 홀로 서글퍼지누나.

 

 

聞金若齋在安東以詩寄之    김약재가 안동에 있음을 듣고 시를 부치다

 

1

滄海三年別              창해에 삼 년 동안 떨어져

平原一笑同              평원에서 한 번 같이 웃어보았다.

風塵將歲晩              세상 풍진에 세월은 늦어가고

天地盡途窮              천지간에 가던 길이 다 막혀버렸다.

苦句難成讀              어려운 글귀는 읽기도 어렵고

深情默自通              깊은 정은 말하지 않아도 절로 통한다.

襄陽有山簡              양양에는 산간 있어

共醉習池中              습지에서 함께 술에 취해보노라.

 

贈君詩語苦              자네에게 주는 시 말하기 괴로워

臨別不堪吟              이별에 임하여 차마 읊기도 어렵다.

書劍遠遊客              글과 칼은 멀리 노는 손님이요

乾坤歲暮心              천지는 한 해가 저물어가는 마음이로다.

路長黃葉下              길은 멀고 누른 단풍잎은 지고

鄕近白雲深              고향 가까우니 흰 구름이 깊어진다.

獨立離亭畔              이별의 정자 둑에 혼자 서니

秋天易夕陰              가을 하늘에 저녁 그늘이 쉬이 내린다.

 

 

文中子 

 

紛紛天下事兵爭          천하는 잇달아 전쟁을 일삼으니

尙爲時君策太平          오히려 주군에게 태평책을 건의하기 위하여

講道汾陰從白首          분음에서 백발이 되도록 도를 가르치니

一時諸子盡名卿          한 시기의 제자들이 모두 이름난 벼슬아치 되었도다.

 

 

訪古軒和尙途中 

 

荒坡不盡路無窮          거친 언덕 끝이 없고 가없는 길에

雪滿山深落日風          눈이 가득 산은 깊고 지는 해에 바람 부니

始聽鍾聲知有寺          종소리 듣고서야 절 있음을 알았는데

房櫳隱約碧雲中          난간 방은 푸른 구름 속에 숨어 있으리.

 

 

訪金居士野舍

 

秋雲漠漠四山空          가을 구름 아득하고 온 산이 적막한데

落葉無聲滿地紅          낙엽은 소리 없이 땅을 온통 붉게 물들였네.

立馬溪橋問歸路          다리 위에 말 세우고 돌아갈 길 물으니

不知身在畵圖中          이내 몸이 그림 속에 든 줄을 몰랐네.

 

 

訪金益之 

 

墟烟暗淡樹高低          언덕엔 높고 낮은 나무에 안개가 질펀히 흘러 어스름한데

草沒人蹤路欲迷          사람 다니는 길은 풀이 덮이어 길을 잃어버렸다네.

行近君家猶未識          그대 집 가까이 가고도 아직 알 길 없는데

田翁背指小橋西          시골 노인장께서 손가락으로 서쪽 작은 다리를 가리킨다.

 

 

訪李佐郞崇仁              좌랑 이숭인을 찾아가다

 

獨騎款段似騎驢          느린 말 관단마 홀로 타니 당나귀 같아

醉睡垂鞭任所如          채찍 내리고 졸며 가는 대로 맡겨 두었다.

馬欲駐時仍睡覺          말이 멈추려고 할 때 잠도 깨니

毁垣柴戶是君盧          무너진 담 사립문이 바로 그대 집이로다.

 

 

蓬萊閣

 

風急扁舟一葉輕          조각배에 바람 부니 나뭇잎처럼 빠르고

八僊祠下是州城          팔선사 아래가 바로 고을의 성이로구나.

晩登高閣還南望          늦어 높은 누각에 올라 다시 남녘을 보니

此去金陵復幾程          이곳 떠나 금릉 땅까지는 얼마나 가야 하나.

 

 

逢春

 

錦城山下又逢春          금성산 아래서 또 봄을 맞으니

轉覺今年物象新          금년에도 물상이 새롭도다.

風入柳條吹作眼          가지로 바람 불어 버들눈 트이고

雨催花意濕成津          비는 꽃을 재촉하여 진액을 만든다.

水邊草色迷還有          물가라 풀색은 없는 듯 있고

燒後蕪痕斷復因          묵정밭 불탄 자국 끊어졌다 이어진다.

可惜飄零南竄客          가련하여라, 남방에 귀양 온 나그네

心如枯木沒精神          마음은 고목처럼 정신이 빠졌도다.

 

 

四月初一日

 

山禽啼盡落花飛          산새 울음 그치고 꽃은 날리는데

客子未歸春已歸          나그네는 못가고 봄만 돌아가네.

忽有南風情思在          홀연히 부는 남풍은 정이 있는지

解吹庭草也依依          불어와 뜰의 풀을 무성히 하네.

 

 

謝恩日奉天門口號 

 

五漏聲高閭闔開          오경 물시계 소리 높아 대궐 문을 여니

金璫玉佩共徘徊          금귀고리에 옥 패물 찬 이들이 함께 배회하는구나.

君王尙軫宵衣慮          군왕께선 오히려 명주옷을 염려해 마음 아파하시며

中使頻催奏事來          내시를 자주 불러 아뢸 일 있으면 찾아오라 재촉하신다.

 

 

山居春日卽事 

 

一樹梨花照眼明          한 그루 배꽃에 눈이 환해지고

數聲啼鳥弄新晴          새 울음 자주 들리고 골목은 말끔히 개었다.

幽人獨坐心無事          숨어 사는 이 일 없는 마음으로 홀로 앉아서

閒看庭除草自生          마당에 절로 자란 풀 뽑는 것을 한가로이 보노라.

 

山中

 

1

山中新病起              산중에서 새로이 병에서 일어나니

稚子道衰客              어린 애는 야윈 길손이라 일컫는구나.

學圃親鋤藥              채소 키우는 일을 배워 약초 밭 김을 제법 매고

移家手種松              집을 옮겨와 손수 소나무도 심었다.

暮鐘何處寺              어느 절에서 들려 오는 저녁 종소리던가

野火隔林舂              들불 건너 숲에선 절구질하는구나.

領得幽居味              그윽이 사는 맛을 이미 깨달았으니

年來萬事慵              지난 몇 해 동안 게을러졌다네.

 

2

弊業三峰下              하찮은 나의 가업 삼봉 아래 있어

歸來松桂秋              돌아와 소나무와 계수나무의 가을을 맞네.

家貧妨養疾              집이 어려워 병수발도 어려우나

心靜足忘憂              마음이 고요하니 근심 잊기 족하다네.

護竹開迂徑              대나무 가꾸려고 길 돌려내고

憐山起小樓              산이 좋아 작은 누각 세웠다네.

隣僧來問字              이웃 중이 찾아와 글자를 물으니

盡日爲相留              하루해가 다하도록 머물러있네.

 

 

書應奉司壁 

 

內溝流水漾漣漪          안의 도랑엔 잔물결이 넘실대며 흐르고

柳線無風直下垂          실버들은 바람이 없어 축 늘어졌구나.

白鳥一雙相對立          백조 한 쌍이 서로 마주 보며 서 있고

滿園纖草雨晴時          동산 가득 가냘픈 풀에 비가 개인 때로다.

 

 

石灘                         석탄에서

 

石面立削鐵              돌 면은 쇠를 깎아 세운 듯

灘流奔長虹              여울 물결은 긴 무지개로 달리는 듯.

灘頭橫漁艇              여울머리에 낚싯배 빗겨 있고

灘上起茅宮              여울 위로 모궁이 우뚝히 솟아있다.

高人抱淸疾              높은 선비 청렴한 높은 선비 병이 들어

歸來臥其中              돌아와 그 안에 누워 있단다.

朝遊欣浩蕩              아침에 놀면 콸콸 흐르고

夕眺驚明滅              저녁에 바라보면 밝았다 어두웠다 한다.

天炎挹孤爽              날 더우면 상쾌한 기운 감돌고

潦盡流皓月              흐린 물 다하면 밝은 달이 흐른다.

春水碧於藍              봄물은 쪽빛보다 더욱 푸르러

何如飄朔雪              북녘 눈발 날릴 때 비하면 어떠한가.

燕坐玩奇變              편히 앉아 기이한 변화 구경하니

逝者無停時              떠나가는 것은 머무를 때가 없구나.

獨有雙白鷗              다만 쌍쌍이 노니는 갈매기들

飛來長在玆              날아와 언제나 이곳을 나는구나.

嗟我不如鳥              어허! 이내 신세는 새만도 못해

未去空相思              떠나지 못해 부질없이 생각만 깊다.

 

 

送盧判官                 노판관을 보내며

 

秋風動高樹              가을바람 나무 끝에 이니

客意已悲凉              나그네 마음 이미 슬퍼진다.

況復當此時              더구나 이러한 때를 당하니

之子歸故鄕              그대 고향으로 돌아가게 한단다.

相對茅簷下              오두막집 처마 아래 마주 앉으니

燈火耿孤光              등잔불은 외로운 불빛 깜박거리고

亦有佳人携              아름다운 여자를 끼고 있으니

滿意傾壺觴              마음껏 술잔이나 기울여 보자구나.

殷勤須盡醉              은근하다, 이 자리 취하지 않으면

明發各茫茫              날 밝으면 각기 아득히 헤어질 것을.

 

 

送等庵上人歸斷俗 

 

等庵上人無住着          등암의 스님은 머무는 바 없으니

秋風北來春又歸          가을바람은 북에서 오고 봄이면 다시 돌아간다.

臨分不用苦惆悵          별리가 닥쳐도 실의에 빠져 괴로워하지 않나니

予亦從今當拂衣          나 또한 이제부터라도 옷을 떨치며 따르리라.

 

 

送偰副令按江陵

 

文星昨夜動光芒          문성이 어젯밤에 찬연히 빛나더니

玉節遙臨碧海傍          옥절을 부여받고 먼 바닷가에 赴任한다.

提學先生遺愛在          제학 선生이 남긴 사랑이 있어

送君今日更霑裳          그대를 보내는 오늘 다시 옷깃 적시노라.

 

關東風氣接蓬瀛          관동의 기풍은 봉래와 영주에 접하나니

草木生成地自靈          풀과 나무는 스스로 신령하게 자라난다.

若得異書須寄我          만약에 기이한 책을 얻으면 나에게 부쳐주게

免敎雙鬢變星星          힘써 배워 귀밑머리 검어질 수 있도록.

 

 

送安定入京              서울 가는 안정을 전송하다

 

我家三峯下              내 집은 삼봉 아래에 있어

寄此林泉幽              그윽한 이 숲에 살고 있다.

蓬蓽生光輝              가난한 집안에 광채가 났으니

之子肯來遊              그대가 기꺼이 놀자고 왔구나.

盤餐愧菲薄              반찬이 박해 부끄럽지만

此意仍綢繆              나의 성의만은 자상하네.

相與歌大雅              마주 보고 서로 대아를 노래하니

亦足忘吾憂              내 근심을 잊기에 만족하였지.

暑雨阻季夏              더위와 비로 늦여름에 한 달을 갇혔다가

節候丁新秋              새로운 가을철을 맞았구나.

感時思高堂              계절에 느끼는 부모님 생각에

凌晨戒征輈              이른 새벽에 떠날 준비를 하였어네.

呼兒强扶病              아이 불러 병든 몸 부축받으며

送子登崇丘              높은 언덕 올라 그대를 전송하리.

珍重一盃酒              진중하게 한 잔 술 받아들고

爲我暫遲留              나를 위해 잠깐만 머물러 주게나.

 

 

送李浩然赴鎭邊幕 

 

十萬貔貅氣勢獰          십만의 날랜 병사 기세도 드높은데

從容談笑一書生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이야기하는 선비 한 분.

遙知檄罷高臺臥          미리 알아 격문으로 물리치고 높은 누대에서 휴식을 취하니

蒼海無風月正明          푸르른 바다에 바람은 자고 달도 정녕 밝도다.

 

 

送人

 

1

蕭蕭海上風              바다 위 바람은 소소하고

杳杳山頭雨              산마루에 비는 아득하다.

風雨無休時              비바람은 쉬임 없고

行人發前浦              길손은 앞 포구를 떠나간다.

 

2

祇愛嶺頭雲              언덕마루 구름은 정겨운데

生憎山下水              산 아래 흐르는 물은 싫어라.

雲去復回山              날아간 구름은 산에 다시 오지만

水流無回沚              흘러간 강물은 물가로 결코 오지 않으니.

 

 

水原途中望金摠郞家      수원 도중에서 김총랑의 집을 바라보며

 

半嶺疎松夕照明          산허리 성긴 솔에 낙조가 밝고

孤村深樹斷煙生          외로운 마을 깊은 숲에 간간이 연기 난다.

茅茨處處多相似          여기저기 새집이라 서로 같아서

爲問君家止復行          그대 집을 묻으려고 멈췄다 갔었도다.

 

 

宿原堂寺

 

古寺何年構              어느 해 지은 옛 절인지

殘僧寄此生              늙은 스님 이곳에 사는구나.

石峯危欲墜              아슬아슬 돌 봉우리 넘어질 듯

樵徑細難行              나무 길은 좁아서 가기도 어렵구나.

松雪晴猶落              소나무에 쌓인 눈, 날 개어도 떨어지고

苔扉晝尙傾              이끼 낀 사립문은 낮에도 닫혀 있구나.

禪窓報初日              선방 창가에 해가 막 오르니

山下午鷄鳴              산 아래는 낮 닭이 우는구나.

 

 

順興府使座上賦詩        순흥부사 좌상에서 시를 부하다

 

路長山有雪              길 멀고 산에는 눈이 있고

村暝水生煙              마을 어둑하매 물에서 안개가 인다.

乘興尋安道              흥취해 대안도를 찾고

吟詩似浩然              시를 읊음에는 마치 맹호연과 같도다.

別離三載外              이별한 지 삼 년이 지났는데

談笑一尊前              웃고 말하며 한 술甁 앞에 앉아있다.

此曲難堪聽              이 곡을 차마 듣기 어려우니

蒼茫歲暮天              창망하도다, 한 해가 저무는 날이로구나.

 

 

新宮凉廳侍宴作 

 

禁院春深花正繁          안 뜨락에 봄은 깊어 꽃이 만발하였다며

爲招耆舊置金尊          늙은 벗을 위해 금동 술을 차려놓고 초청하시었다.

天工忽放知時雨          자연도 비 올 때를 알아 문득 꽃을 피우나니

便覺渾身雨露恩          비와 이슬의 은혜를 온몸으로 익히 깨닫는다.

 

 

夜雨

 

昨夜前山雨              어젯밤 앞산에 비 내려

溪村水半扉              개울가 마을 사립문 반쯤 잠겼다.

漁翁新理艇              늙은 어부 새로 거룻배 손질하고서

却向海門歸              도리어 바다 어귀를 향하여 돌아간다.

 

 

夜坐 

 

小屋如舟月似波          작은 집은 배와 같고 달빛은 물결 같은데

淸風一陣滿烏紗          한 줄기 맑은 바람 비단 모자에 가득해라.

都城五月江湖興          서울의 오월이라 세상은 흥에 겨워

露坐中庭放浩歌          마당 가운데 앉아 호탕하게 노래 부른다.

 

 

御駕遊長湍作 

 

秋天澄澄碧似天          가을 하늘 맑고 맑아 하늘같이 푸르나니

君王暇日御樓船          군왕께선 한가한 날에 다락배로 나들이를 하시었다.

篙師莫唱長湍曲          사공은 고려조의 ‘장단곡’을 부르지 말게나

此是朝鮮第二年          이제는 바야흐로 조선 개국 2년째로다.

 

 

詠梅

 

1

渺渺江南夢              아득히 먼 강남의 꿈이여

飄飄嶺外魂              질풍에 방황하다 재를 떠난 넋이여.

相思空佇立              서로 생각하며 헛되이 머물며 서 있느니

又是月黃昏              달빛이 또 다스려 누렇게 날이 저무네.

 

2

泠泠孤桐絲              외로운 거문고 줄 맑고 시원한 소리

裊裊水沈煙              간들간들 물에 잠긴 듯 아리땁구나.

皎皎故人面              밝고 하이얀 옛 어른의 모습

忽到夜牕前              깊은 밤 창 앞에 갑자기 이르렀네.

 

3

窮陰塞兩間              하늘과 땅 사이가 겨울철의 궁함에 막히니

何處覓春光              어느 곳에서 봄빛을 찾을거나?

可憐枯瘦甚              몹시 가늘고 야위어 불쌍하지만

亦足郤氷霜              얼음과 서리의 틈에서도 쉬이 머무네.

 

4

著屐踏殘雪              나막신을 신고 잔설을 밟으며

行此江之濱              이 강의 물가를 돌아보네.

忽然逢粲者              뜻하지 않게 갑자기 고운 것을 만나니

聊可慰幽人              유인의 울적함을 편안히 들어주네.

 

5

一曲溪流淺              한 굽이 얕게 흐르는 시냇물에

三更月影殘              깊은 밤 달그림자 남아있구나.

客來吹玉篴              나그네 돌아와 옥 피리를 불다가

獨立不勝寒              추위를 이기지 못해 홀로 서 있네.

 

6

嶺外疊峯巒              고개 너머 봉우리와 산등성이 겹치고

巖邊足氷雪              바위 옆에는 얼음과 눈이 머물고 있네.

玉魂落遐荒              아름다운 넋이 허황되이 멀리 떨어지니

相看兩愁絶              끊어진 양쪽 시름을 서로 바라보는구나.

 

7

久別一相見              오랜 이별 뒤에 한 번 자세히 보려니

草草著緇衣              검은빛이 덮힌 간략한 모양이 드러나네.

但知風味在              그렇지만 풍미가 있음을 알기에

莫問容顏非              모양이 어긋나게 드러나도 묻지를 않네.

 

8

遠使何時發              먼 곳의 사신은 어느 때에 나타날까?

初從萬里廻              비로소 먼 거리를 돌아와 다가서네.

春風也情思              봄바람 또한 정을 생각하여

吹入手中來              손안에 바람이 들듯 돌아오는구나.

 

9

鏤玉製衣裳              옥을 깎아 옷을 지었고

啜氷養性靈              얼음 먹고 넋을 길렀다.

年年帶霜雪              해마다 눈과 서리 맞으며

不識韶光榮              봄볕의 영화는 모른다.

 

10

夜靜雲初霽              밤은 고요한데 눈이 처음 개니

淡月橫半天              맑은 달이 하늘 공중에 비끼었구나.

腸斷江南客              애간장 다 끊어진 강남 나그네

哦詩獨不眠              시를 읊으며 홀로 잠 못 이룬다.

 

11

婆娑廣寒夜              파사함이 광한전의 밤이면

冷淡楚澤秋              냉담함은 초택의 가을이로다

一般淸氣味              기미가 맑기야 같다지마는

獨自占風流              풍류는 나 혼자 차지했노라.

 

12

明牕橫棐几              밝은 창에 빛난 책상 비껴있으니

不許素塵侵              흰 먼지 앉는 것조차도 허락하지 않는다.

燕坐讀周易              조용히 앉아 주역을 읽어보노라니

端的見天心              그야말로 하늘의 마음속을 보고 있도다.

 

 

詠柳

 

含烟偏裊裊              안개 머금고 마음껏 살랑이며

帶雨更依依              비 맞아 더욱더 무성해졌구나.

無限江南樹              그 많은 강남 땅 버드나무로

東風特地吹              봄바람이 유난히도 불어오는구나.

 

 

詠物                            사물을 노래하다

 

嬋姸玉質近人傍          곱고 고운 옥바탕 사람 곁에 가까워

一片丹霞染素裳          한 조각 붉은 노을 흰 치마를 물었다.

今日始知眞隱逸          오늘에야 참으로 숨어 사는 멋 알았으니

自將貞白鬪氷霜          스스로 지조를 지녀 얼음 서리에 견주는가.

 

 

嗚呼島弔田橫          오호도에서 전횡을 조상하다

 

曉日出海赤              아침 해 붉게 바다 위로 나와

直照孤島中              외로운 섬 안을 바로 비춘다.

夫子一片心              선생의 한 조각 붉은 마음은

正與此日同              바로 이런 바다의 아침 해 같구나.

相去曠千載              몇 천 년이나 아득히 서로 떨어졌지만

嗚呼感予衷              아아! 나의 충정이 느껴지는구나.

毛髮竪如竹              대나무같이 머리털이 치솟고

凛凛吹英風              늠름히 영명한 바람 불어오는구나.

 

 

 

雨聲偏好處              빗소리 유달리 좋은 곳은

茅屋午眠中              초당에서 낮잠 잘 때로다.

亂灑侵寒浦              좍좍 흘러 개울로 모여들고

斜飛逐細風              비껴 날아 약한 바람에 흩날린다.

柳低含晩翠              버들은 늘어져 늦 푸른빛 머금고

花重濕鮮紅              꽃은 무거워 선홍빛 젖어있다.

田父笑相對              늙은 농부들 웃고 마주보며

家家望歲功              집집마다 풍년 들기 바라고 있다.

 

 

又赴咸州幕都連浦途中     또 함주막도연포에 이르는 중에

 

湖光天影共蒼茫          호수 물빛도 하늘 그림자도 가물거리고

一片孤城帶夕陽          외로운 한 조각 성곽은 석양을 띠었구나.

忍向此時聞舊曲          이때를 당해 차마 옛노래 들을 수 있을까

咸州原是國中央          함주는 원래부터 이 나라의 중심부이로다.

 

 

偶題

 

零落唯餘方寸心          영락한 신세지만 생각은 남아

年來憂患又相尋          연내에 근심 걱정 또다시 찾아든다.

冬寒冽冽風霜苦          겨울 추위 차갑고 바람서리 괴롭고

春暖昏昏瘴霧深          어둑한 봄은 따뜻하고 안개 자욱하구나.

山上豺狼長怒吼          산에선 시랑이 오래 성내어 으르렁대고

海中寇賊便凌侵          바다에선 도적이 수시로 얕보고 침략한다.

思歸却是閒中事          돌아가자는 생각이 도리어 한가한 일

一夜安眠直萬金          하룻밤 편안한 잠값 만 금이나 되는구나.

 

 

雨中訪友

 

門掩人家笑語稀          문 닫힌 인가에 웃음소리, 말소리 드물고

靑靑楊柳雨交飛          푸른고 푸른 버드나무 숲에 비가 흩뿌린다.

披簑偶爾尋柴戶          비옷 차려입고 우연히 싸리문 찾아드니

還似漁村煙暮歸          도리어 저녁 연기 이는 어촌에 온 것 같구나.

 

 

 

浮雲多變態              뜬구름 변한 모습 너무도 많아

舒卷也飄然              걷히고 펴지는 모습 날씬하도다.

閒繞遙岑上              한가로이 먼 봉우리 둘러보고

纖籠淡月邊              가늘게도 맑은 달을 감싸기도 한다.

迢迢風共遠              아련히 바람과 함께 멀어지고

漠漠雨相連              멀고도 아득히 비와 서로 잇대기도 한다.

亦解尋逋客              숨어 사는 선비 찾을 줄도 알아

朝來入侗天              아침에 큰 하늘로 떠오는구나.

 

 

遠遊歌 

 

置酒賓滿堂              주연을 차리니 손님이 대청마루에 가득하고

起舞歌遠遊              일어나 춤추고 노래하며 멀리 나가 노닌다.

遠遊亦何方              멀리 나가 노니는 곳은 또한 어드메이뇨

九州復九州              구주 다시 옛 중원 대륙이로다.

朝枻洞庭波              아침에 동정호 물결에 노를 젓고

暮泊易水流              날이 저물매 역수의 흐르는 물에 배를 댄다.

四顧騁遐矚              사방을 둘러보고 말을 달려 자세히 살펴보며

想像雍熙秋              빛나는 역사를 상상하며 기뻐하노라.

翼翼唐虞都              번성한 요순시절의 도읍이여

崇崇夏殷丘              높고 높은 하나라와 은나라의 언덕이로다.

歲月曾幾何              세월이 일찍이 얼마이드뇨

邈矣不可求              아득하여 구해볼 수 없구나.

登車復行邁              수레에 올라 다시 멀리 나아가니

翩翩逝宗周              날렵하게 주나라 종묘로 가는구나.

峨峨靈臺高              위엄 서린 영대는 하늘 높이 솟아있고

靄靄祥雲浮              몽실몽실 상서로운 구름이 떠 있도다.

鳳凰鳴高岡              봉황은 높다란 산등성이에서 울고

關睢在河洲              관휴는 황하의 모래섬에 있도다.

緜緜千載後              끊기지 않고 천 년을 면면히 이어온 후에도

綽有無疆休              강역은 멈춤이 없이 너그러이 존속되었다.

繼世何莫述              어찌하여 대를 이어 계승하지 말라 하는가?

王風日以偸              왕업의 풍속이 날로 구차해졌도다.

祖龍呀其口              용의 시조인 시황이 그 입을 딱 벌리어

一擧呑諸侯              일거에 제후들을 삼키었도다.

阿房與天齊              아방궁을 하늘과 더불어 동등하게 하였고

兀盡蜀山頭              촉산의 꼭대기를 없애 평평하게 하였으니

禍在魚狐間              재앙은 물고기가 여우 앞에 있는 格이 되어

一朝輸項劉              하루아침에 항우와 유방에게 내어 주었다.

孰非出民力              백姓에게서 나오지 않는 힘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得失如薰蕕              얻고 잃음이 향기로운 풀과 누린내 나는 풀과 같을지니.

徘徊感今昔              이리저리 나다니다 예와 지금을 느껴보며

日晏旋我輈              해는 저물어 내가 끌채를 돌리니

滿堂賓未散              대청에 가득한 손들은 아직 흩어지지 않고

擧酒相獻酬              술자리가 무르익어 서로 잔을 돌린다.

高歌未終曲              고상한 노래 곡조를 마치기도 前에

雙涕爲君流              그대를 위하여 두 줄기 눈물을 흘리노라.

 

 

月夜奉懷東亭          달밤에 동정 염흥방을 생각하며

 

半夜獨起立              한밤중에 홀로 일어나 서성거리니

長空澹自寂              만리장천은 공활한데 홀로 적막하여라.

一片海上月              한 조각 달은 바다 위로 떠올라

萬里照茅屋              만 리나 먼 오두막을 비추어 주리라.

冷影故依依              차가운 그림자 짐짓 어른거리고

還如憐竄客              귀양살이 나그네를 가련하다 여기는 듯.

爲憶東亭翁              미루어 동정 염흥방을 추억해보면

應共此幽獨              응당 이러한 쓸쓸함을 함께 맛보리라.

 

 

遊山寺

 

霧重成微雨              안개 짙어져 이슬비 되니

山寒五月天              때는 오월이나 산이 차갑다.

林深數間屋              깊은 숲에 두어 간 암자

僧住十餘年              중은 십여 년을 머물렀단다.

北壁玉燈火              북쪽 벽엔 옥 등잔이 밝고

西方金色僊              서쪽엔 금빛 신선이 앉아있다.

整襟相對越              옷깃을 여미고 멀리 대면하니

自覺思超然              번거롭던 생각 절로 초연해진다.

 

 

李判書席上同圃隱賦詩 

 

庭院深沈樹色微          뜨락은 깊고 침침하니 나무 빛은 희미한데

駁雲漏日兩霏霏          얼룩 구름 사이로 해는 새어 나가고 눈발이 흩날리는데

一聲瑤瑟美人唱          옥돌 거문고와 미인이 한 소리로 노래를 부르니

酒滿金尊客未歸          금항아리엔 술이 가득하고 손들은 아직도 돌아가지 않았다.

 

 

李判書第次權大司成韻 

 

睡起昏昏眼不開          잠에서 일어나도 혼미하여 눈이 떠지지 않고

扶頭正㤼更臨杯          머리를 바르게 하니 한 술잔을 다시 보기도 겁이 나는데

主人爲解餘酲在          주인은 남은 취기를 풀어준다며

復到槽牀已上醅          다시 술동이를 평상에 올려놓고 거르지 않은 술을 올리는구나.

 

 

日暮 

 

水色山光淡似煙          물색과 산빛은 안개처럼 질펀히 흐르고

羈情日暮倍悽然          타관살이 인정이야 날 저물면 더욱 처연하도다.

蓬蒿掩翳村墟合          쑥 무덤은 일산처럼 가리어 시골 언덕배기와 접하고

籬落欹斜地勢偏          울타리는 기울어지고 지세도 편중되었구나.

遠燒無人延野外          멀리 타는 불길은 사람이 없어 들 밖으로 번지고

傳烽何處照雲邊          어디서 전해 오는 봉화인지 구름가를 비친다.

但看暮暮還如此          저물녘이면 보이는 것은 오직 이와 같을지니

不覺流光過二年          어느결에 흐르는 광음은 두 해를 넘는구나.

 

 

入成均館 

 

十年重到此              십 년만에 또 여기를 왔는데

門外尙盤桓              오히려 문밖에서 머뭇거린다.

猶是舊司藝              여전히 곧 예전의 사예이나

今爲新敎官              지금은 새로 교관이 되었도다.

齋居閉風雨              집들은 비바람에 닫혀 있고

廟貌肖衣冠              묘 모습과 의관은 다름없구나.

獨愛後凋樹              뒷켠에 지는 나무 사랑스러운데

中庭過歲寒              뜰 한 가운데에서 추위를 견뎌왔구나.

 

 

入直 

 

雪壓宮墻面面重          눈에 눌린 궁궐 담장은 면면이 부어 있고

煙光暝色暗相籠          안개 끼고 날은 저무니 거무스름하게 서로 뒤엉켜 있구나.

直廬靜坐銀屛擁          당직실에 은 병풍 끼고 고요히 앉아서

南寺時聞第一鐘          남쪽 관아의 가장 중요한 시계를 때맞추어 듣노라.

 

 

儀眞驛

 

細雨如煙水似天          안개 같은 가랑비, 하늘 같은 물

儀眞湖裏泛官船          의진호 안에다 관가의 배를 띄운다.

可憐鷗鷺渾相識          사랑스런 갈매기 서로 알아보고서

故故飛來近客邊          일부러 날아들어 내 곁에 다가오는구나.

 

 

自詠

 

窮經直欲致吾君          경서에 통달하여 우리 임금님께 바르게 이르고자

童習寧知歎白紛          어려서 익힌 편한 지식이 분명치 못함을 탄식하노라.

盛代狂言竟無用          태평 치세에 허튼소리는 결국은 쓸모가 없나니

南荒一斥離羣群          남녘 거친 곳에 한 번에 쫓겨나 동지들과 헤어졌도다.

 

致君無術澤民難          백성이 어렵건만 주군께서 은택 베풀 방책을 드리지 못하니

擬向汾陰講典墳          분음에 가서 고서를 익힌 고사를 흉내 내어보려 했도다.

十載風塵多戰伐          십 년 풍진 세상의 숱한 전란의 와중에서

靑衿零落散如雲          유생들은 쇠약해져 구름처럼 흩어졌구나.

 

自知儒術拙身謀          자신을 하는 유가의 학통은 사람 다룸에 어두우니

兵畧方師孫與吳          군사 다스리는 방편으로 손자, 오자를 스승으로 삼았노라.

歲月如流功未立          세월은 물처럼 흘러가건만 공은 이루지 못하여

素塵牀上廢陰符          책상 위에 하얗게 먼지 낀 부적을 없앴노라.

 

書劒區區兩未成          글도 검도 졸렬하여 둘 다 이루지 못하니

問歸田舍事躬耕          농가에 돌아가 농사나 지으면 어떨까 물었더니

不堪旱溢年來甚          해마다 가뭄과 홍수가 극심해 견딜 수 없는데

爭奈門前責地征          문전에 날아드는 토지세 독촉을 어찌 다투려 하오?

 

今古都無百歲身          예부터 지금까지 백 세를 넘긴 이 도무지 없나니

休將得失費精神          잃고 얻음으로 정신을 허비하지 말 일이다.

只消不朽斯文在          단지 영원한 이 배움이 필요할 따름이라

後日當生姓鄭人          훗날에도 마땅히 정씨 성 가진 인물로 태어나리라.

 

 

自嘲

 

操存省察兩加功          조존과 성찰(두 왕조) 두 곳에 온통 공을 들여서

不負聖賢黃卷中          책속에 담긴 성현의 말씀 저버리지 않았네.

三十年來勤苦業          삼십 년 긴 세월 고난 속에 쌓은 업적

松亭一醉竟成空          송현 정자에서 한 잔 술에 허사가 되었네.

 

 

題公州錦江樓                  공주 금강루에 제하다

 

君不見賈傳投書湘水流    그대는 못 보았나, 가태부가 상수에 글을 던지고

翰林醉賦黃鶴樓               한림이 취하여 황학루에서 시를 남긴 것을.

生前轗軻無足憂               생전의 불우쯤 조금도 걱정 않고

逸意凜凜橫千秋               호탕한 뜻이 늠름히 천추에 비꼈구나.

又不見病夫三年滯炎州    또 보지 못했나, 병든 몸 삼 년 동안 염주 남방에 묶여 있다가

歸來又到錦江頭               돌아와 또 금강 가에 이른 것을.

但見江水去悠悠               다만 강물이 자꾸 가는 것만 바라보았을 뿐

那知歲月亦不留               세월도 머물지 아니하는 것을 어이 알았으랴.

此身已與秋雲浮               이 몸은 이미 둥실 떠 있는 가을 구름

功名富貴復何求               부귀공명을 어찌 다시 구하리오.

感今思古一長吁               지금 일에 느껴서 옛날을 생각하니 긴 한숨뿐

歌聲激冽風颼颼               노랫소리 사무쳐서 바람도 윙윙 불어오는데

忽有飛來雙白鷗               날아온 한 쌍의 흰 갈매기 갑자기 눈에 보인다.

 

 

題映湖樓 

 

飛龍在天弄明珠          비룡이 하늘에서 밝은 구슬 희롱하다

遙落永嘉湖上樓          영원토록 아름다운 호수 위 누각에 아득히 떨어뜨렸도다.

夜賞不須勤秉燭          밤에 구경하려면 애써 촛불 켤 것도 없나니

神光萬丈射汀洲          신령스러운 빛은 아주 높이 정주를 비추노라.

 

 

題秋興亭

 

金侯有雅尙              금후는 본래 멋을 지녀

歸來山水鄕              산수 좋은 고을로 돌아왔다.

登高構危亭              높은 곳에 올라 정자를 짓고

日夕此倘徉              밤낮으로 여기서 노닐었다.

仰視峯巒奇              기이한 봉우리 올려보고

俯看江流長              기나긴 강 물결 내려다본다.

禾黍被原野              벼와 기장은 벌판을 덮고

松菊滿道傍              소나무와 국화꽃 길가에 가득하다.

落日淡西浦              서포에 지는 햇빛 엷어지고

素月生東岡              동산에 흰 달이 둥실 떠오른다.

藜杖極孤賞              청려장 짚고 구경나가니

衫袖領新凉              옷깃에 서늘한 기운 스며든다.

秋風無限興              가을바람 무한한 흥취 일어

浩然不可量              넓고 커서 헤아릴 길 없구나.

我家三峯下              삼봉 아래에 내 집이 있어

兩地遙相望              두 곳은 멀리 서로 바라보인다.

何當歸去來              어느 때가 되어야 돌아가서

一笑共深觴              한 번 웃으며 술잔 함께 해볼까.

 

 

題平壤浮碧樓 

 

永明山下大江流          영명산 아래 대동강은 흐르나니

畫舸來尋浮碧樓          그림으로 장식한 배로 부벽루를 찾았도다.

風篴正高天欲暮          댓바람은 정녕 높고 날은 저무는데

煙波渺渺使人愁          안개 낀 수면은 아득하여 시름겨워 하노라.

 

 

題咸營松樹                 함영 소나무에 제하여

 

蒼茫歲月一株松          아득한 세월 한 그루 소나무

生長靑山幾萬重          몇 만 겹 푸른 산에 생장하였구나.

好在他年相見否          다른 해에 좋게 있어 서로 볼 수 있을까

人間俯仰便陳蹤          인간이란 굽어보고 올려보면 묵은 자취인 것을.

 

 

題咸興館

 

三月三日發咸州          삼월이라 삼짇날, 함주를 떠나니

柳色搖黃草欲抽          버들 빛 노랗게 흔들리고 풀싹 뾰족하다.

正値關東好時節          관동의 좋은 시절 바로 만나니

宦遊還是等閒遊          벼슬살이 도리어 한가한 놀이로구나.

 

 

早行

 

月落參橫欲曙天          달 지고 별 비끼어 날은 새려는데

飛霜如雪濟氷堅          눈같이 서리는 나는데 굳은 얼음 건넌다.

行穿林莽疎還密          숲속 뚫고 가니 길 트였다 다시 빽빽하고

望盡雲峯斷復連          구름 봉우리 바라보니 사라졌다 다시 보인다.

擾擾身前多謬計          어지러운 이 몸 이전엔 그릇된 계획 많고

悠悠馬上帶殘眠          아득한 말 위에 앉으니 단잠이 드는구나.

一年四過楊川水          일 년에 네 번이나 양천 물을 건너자니

不待陳蹤却惘然          묵은 자취 안 찾아도 갑자기 아득해진다.

 

 

竹所 

 

高人竹爲所              고상한 사람이 대로 만든 처소

竹與人共淸              대는 이 집 주인처럼 함께 맑구나.

婆娑月夕影              달 뜬 저녁에는 그림자 춤을 추고

淅瀝風朝聲              바람에 아침 대소리는 우수수.

渠心獨自許              제 마음을 홀로 허락하니

苦節乃可貞              괴로운 절개 곧을 수밖에 없어라.

對比成益友              서로 대하면 유익한 친구 되니

聊以寄此生              애오라지 이 생을 여기에 의탁하고 싶구나.

 

 

重九 

 

故園歸路渺無窮          옛 동산 돌아가는 길 아득하여 끝이 없나니

水繞山回復幾重          물은 휘돌아 뫼를 감싸 안으니 몇 겹이더냐.

望欲遠時愁更遠          멀리 바라보려니 근심 또한 멀어질 진데

登高莫上最高峰          높이 오르되 지나치지는 말지어다.

 

 

中秋歌

 

去年中秋翫月時          지난해 한가위에 달 구경할 적에

歌舞縱謔開華筵          빛나는 연회장에 가무와 해학이 있었지.

高堂簾捲夜如晝          당상 높이 발을 걷으면 밤이 낮 같았나니

淸光凝座羅神仙          맑고 빛나기는 신선이 자리함과 같았네.

醉中呼月作金盆          취하여 달 부르니 금항아리로다

玉壺美酒詩百篇          옥호에 향기로운 술로 시 백 편 지었건만

今年遠謫會津縣          올해는 아득한 회진골 귀양살이로세.

竹籬茅屋荒山前          대울타리 초가에 황량한 산 앞에 두고

秋風颼颼動林莽          추풍은 스산하게 숲속을 맴돈다.

物像蕭條何悄然          두두물물이 참으로 초연하고

是時對月倍怊悵          이 밤에 달을 보니 억장이 무너져

迴首舊遊散如煙          돌이키면 노닐던 벗들 연기처럼 흩어지고

此身由來非異身          이 몸 또한 전과는 다른 몸일지니

今年明月似前年          금년의 밝은 달이 지난해와 같을 소냐.

自是人情有異感          자고로 인정이야 느낌 따라 달라지니

造物賦與原非偏          조화옹이 준 뜻이야 본시 치우치지 않으련만.

爲問明月之所照          묻노라, 밝은 달이 비친 곳이 어드메뇨?

幾人歡樂幾人悲          누군가는 즐겁고 누군가는 슬퍼하리.

 

 

贈柏庭遊方 

 

流水浮雲任所之          흐르는 물 뜬구름 가는 대로 맡기어

淸風明月獨相隨          맑은 바람 밝은 달은 오직 서로를 따른다.

遠遊畢竟終何得          멀리 공부를 마치고 얻고자 함이 무엇이더냐

早早歸來慰我思          어서 빨리 돌아와서 내 마음을 달래 주렴.

 

 

次尹大司成詩韻效其體

 

拙學誠難箋國風          보잘것없는 배움으로 국풍에 주석 달기도 참으로 어려워

只吟柳綠與花紅          단지 버들이 푸름과 더불어 꽃이 붉음을 노래하나니

百年天地知音少          천지간에 평생토록 음률에 정통하기는 희박하니

却恐終隨朽壤同          썩은 흙의 무리를 따르다가 마칠까 봐 오히려 두렵구나.

 

龍起雲從虎嘯風          용이 일으키면 구름이 따르고 범이 포효하면 바람은 부나니

萬民皆覩日昇紅          만 백성이 붉은 해가 떠오름을 다 같이 봄이다.

兩間充塞皆生意          둘 사이를 가득 채운 것은 모두가 생기일 따름이니

自是蒸蕕器不同          당연히 누린내 풀 찌는 유기가 같은 것은 아니로다.

 

 

鐵嶺

 

鐵嶺山高似劍鋩          철령 높은 멧부리는 칼과도 같은데

海天東望正茫茫          동쪽 바다와 하늘은 아득도 하네.

秋風特地吹雙鬢          가을바람은 유독 귀밑머리에만 불어오는데

驅馬今朝到朔方          말 몰아 오늘 아침 북쪽 변방에 왔노라.

 

 

村居卽事 

 

茅茨數間屋              띠 지붕 두른 수 칸 집은

幽絶自無塵              그윽하고 빼어나 속기가 절로 없다.

晝永看書懶              해는 길어 책 읽기가 지루해지면

風淸岸幘頻              이따금 두건 쓰고 언덕의 맑은 바람 쐬인다.

靑山時入戶              청산은 때로 방으로 들어오고

明月夜爲隣              밝은 달은 이웃이 되어 있나니.

偶此息煩慮              우연찮게 이곳에서 번잡한 생각을 지우려 할 뿐

原非避世人              본시 세상을 등지려함은 아니지요.

 

 

草舍

 

茅茨不剪亂交加          이엉을 자르지 않아 너절하기 그지없고

築土爲階面勢斜          흙을 쌓아 뜰 만드니 그 모양 비스듬하네.

棲鳥聖知來宿處          깃던 새는 지혜롭게 사는 곳 찾아들고

野人驚問是誰家          시골 사람 놀라며 누구 집이냐고 묻네.

淸溪窈窕綠門過          맑은 개울물 고요히 푸른 문 지나고

碧樹玲瓏向戶遮          푸른 나무 영롱하게 문 향해 막혀있네.

出見江山如絶域          나와 보면 자연은 세상과 떨어진 곳인데

閉門還似舊生涯          문 닫고 앉아보면 도리어 옛 생활 그대로네.

 

 

村居友送銀魚書懷謝呈 

 

映湖樓下有銀魚          영호루 아래엔 은어가 있다며

千里來傳故舊書          천 리나 멀리 전해온 옛 벗의 편지

金章紫綬徒爲爾          황금 문장 자색 호패도 부질없나니

淸夢時時繞草廬          맑은 꿈은 때때로 누추한 집에 맴돈다.

 

 

秋霖 

 

秋霖人自絶              가을장마라 사람 절로 끊어지고

柴戶不曾開              사립문 일찍이 열지를 않았구나.

籬落堆紅葉              울 밑엔 붉은 낙엽 쌓였느나

庭除長綠苔              뜰에는 푸른 이끼 길게 끼었구나.

鳥寒相並宿              새들도 추워 몸을 맞대고 잠들고

鴈濕遠飛來              몸 젖은 기러기 멀리서 날아온다.

寂寞悲吾道              적막하여 나의 도도 슬프니

惟應泥酒杯              오직 마땅히 술에 빠져 지낸다네.

 

 

秋夜

 

1

今日非昨日              오늘은 어제가 아닐진대

明朝復何時              내일 아침은 다시 어느 때이더냐.

陰陽無停機              음양은 멈출 기틀이 없고

四時相推移              사계절은 서로 밀치며 옮겨가느니

百年能幾何              백 년까지 능한 이 얼마이더냐

徒令我心悲              무리들로 인하여 나를 서럽게 하노라.

哀哉名利人              슬프도다! 명리를 따르는 사람들이여

至老猶未知              노년에 이르도록 깨닫지를 못하는구나.

貴者自驕固              귀하다 하는 자들은 스스로 교만하고 고루하나

卑者多詭隨              천한 자들은 많이도 속고 따르는구나.

榮華逐電光              부귀영화란 번갯불을 좇음과 같나니

身後有餘譏              죽은 후에는 비웃음만 남으리라.

彼美君子士              저기 아름다운 군자와 선비를 보아라

中心無磷緇              한가운데는 물이 흘러도 검어지지 않는다.

高高雲月情              높고도 높구나! 구름 속의 달 같은 마음이여!

皎皎氷雪姿              희고도 밝도다! 얼음과 눈 같은 자태여!

庶將垂不朽              바라옵건대 영원한 위업을 남길 것을

千載以爲期              천추의 역사에 약속하리라.

感此發長謠              이에 느껴 길게 노래 부르려니

秋風颯凄其              가을바람 소리는 어찌하여 쓸쓸하더뇨?

 

2

以我山野人              나로 말하면 두메산골 사람이나

未償丘壑心              아직도 산골짝의 마음을 갚지를 못했구나.

營營塵土間              속진의 하찮은 것들로 몹시 분주하게 살았고

倦矣不能任              그나마 맡은 일도 능치 못하니 진력이 난다.

嚮晦方就休              그믐이 되어서야 쉴 수가 있어

宴坐到夜深              침실에 앉았더니 밤은 깊어라.

忽有淸商聲              홀연히 서편에서 맑은소리 들리더니

廻薄牕北林              창밖 북쪽 수풀 가까이에서 선회하는구나.

初疑笙鶴來              처음에는 생황 부는 학인가 의심이 나고

又訝虬龍吟              또한 규룡이 신음하는 것으로 의심하였는데

起視意無有              일어나 보니 있고 없다는 생각일 뿐이고

灝氣襲衣衿              맑은 기운이 옷깃에 스며든다.

少焉山月上              잠시 후에 달은 떠오르고

庭柯布疎陰              뜨락의 나뭇가지는 성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恍然沈痾痊              갑자기 오랜 지병이 고쳐지니

冲澹生胸襟              가슴속에 품은 생각은 담백하고 맑아진다.

因之懷舊山              이로 인하여 옛 뫼가 생각나서

彈我牀上琴              평상 위의 거문고를 내가 타 보노라.

秋風吹南去              가을바람 불어오면 남녘으로 갈지니

託此寄遺音              네게 부탁해 죽기 전의 말을 부쳐 보노라.

 

 

春雪訪崔兵部 

 

街頭楊柳欲春風          길 입구의 버들에 봄바람이 일렁이련만

無奈朝來雪滿空          아침부터 하늘 가득 눈발 날리니 어찌할거나?

走向君家急呼酒          그대 집에 달려가 급히 술을 부르니

衰顔憔悴尙能紅          초췌하고 쇠약한 얼굴에 홍조를 띠는구려.

 

 

春日卽事 

 

春到園林淑景明          봄이 오니 동산 숲은 맑고 햇살은 밝은데

遊絲飛絮弄新晴          거미줄 버들개지 날려 골목은 새롭게 밝아온다.

鳥啼聲裏無人到          새 울음소리 나는 곳에 사람은 아니 이르고

寂寂雙扉晝自傾          쓸쓸한 두 사립에 한낮이 절로 기운다.

 

 

春風

 

春風如遠客              봄바람은 먼 곳 손님과 같아

一歲一相逢              한 해에 한 차례 만나는구나.

澹蕩原無定              맑고 넓어 원래 정함이 없지만

悠揚似有蹤              유양하여 그 자취가 있는 듯하다.

暗添花艶嫰              가만히 꽃의 고운 눈 더 보태 주고

輕拂柳絲重              늘어진 버들가지 가볍게 스쳐간다.

獨惜吟詩客              홀로 애닲아서 시 읊는 나그네는

還非昔日容              지금은 도리어 옛날 모습 아니구나.

 

 

出城甲辰春                 갑진년 봄에 성을 나오며

 

出城南望路悠悠          성을 나와 남쪽을 바라보니 길은 아득하고

正是東風二月頭          봄바람 불어와 때는 바로 이월 초순이로다.

誰向都門種楊柳          누가 도성문을 향해 버드나무 심어두어

年年飛絮使人愁          해마다 날리는 버들 솜이 시름 더해 주는구나.

 

 

避寇 

 

避寇離吾土              도적을 피하여 내 땅을 떠나

攜家走異鄕              가족을 이끌고 타향으로 왔도다.

荊榛行自蔽              가시덩굴 걷자니 앞을 가리고

桑梓耿難忘              고향이 눈에 선해 잊기 어렵도다.

世險憐兒少              세상이 험난하니 아이들이 가엾고

家貧仗友良              집안 가난하여 좋은 벗에게 신세지네.

乾坤空自濶              천지는 부질없이 넓기만 하여

獨立興蒼茫              홀로 서니 내 감회 아득하기만 하다.

 

 

寒食 

 

寒食淸明客路中          한식 청명에 길 가는 나그네여

一番煙雨一番風          한 번은 안개비요, 한 번은 바람이 분다.

故園芳草應初綠          고향의 꽃다운 풀은 응당 신록 이리라

萬里人廻遼海東          만 리나 먼 사람도 요해의 동쪽으로 돌아가리라.

 

 

淮陰驛立春                 입춘날 회음역에서

 

淮陰驛裏逢立春          회음역에서 입춘을 맞으니

客子盤中生菜新          나그네 밥상에 생채 올랐구나.

今日故園誰辦酒          지금 고향에선 누가 술 마련하여

尊前應說遠遊人          술동이 앞에서 길 떠난 날 말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