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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적(李彦迪, 1491~1553)

甘浦舟中贈韓子浩      감포 바다의 배 안에서 한자호에게

 

一聲長笛海門秋          멀리서 들려오는 한 가닥 피리소리

杯酒臨分段段愁          한 잔 술을 나누며 이별하려니 굽이굽이 애달프다.

渭樹江雲苦相阻          위수 북쪽 나무숲과 강의 구름 서로 막혔고

天涯此日幸同舟          하늘가 이곳에서 다행히 한 배를 탓구료.

 

 

感興

 

萬象紛然不可窮          만상은 분분해서 다 밝히지 못하니

一天於穆總牢籠          한 하늘의 이치는 깊고 오묘하여 모두 굳게 뭉쳐있다.

雲行雨施神功博          구름이 흘러가 비 되어 내리니 신의 공덕이 넓기도 하고

魚躍鳶飛妙用通          물고기 뛰고 솔개 나는 묘한 이치 통용한다.

雖曰有形兼有跡          형태가 있어 형적이 있다고 하나

本來無始又無終          본래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느니라.

沈吟黙契乾坤理          시를 읊으며 천지의 이치를 가만히 맞춰보고

獨立蒼茫俯仰中          홀로 서서 창망히 하늘을 보고 땅을 굽어본다.

 

 

客中次舍弟韻             객지에서 아우의 시에 차운하다

 

宦遊那禁白雲思          객지 나와 벼슬하니 고향 생각 금할 수 없고

踽踽朝端愧少施          외로운 몸 조정에서 역할 못해 부끄럽네.

鏡裏只添雙鬢雪          거울 속의 모습은 흰머리만 늘어가니

自嗟遲暮病相隨          늙은 몸이 병을 달고 사는 것을 탄식하네.

雲山千里隔萱庭          고향 집이 천 리 멀리 구름과 산에 막혔으니

遠宦何能一刻寧          먼 객지의 벼슬살이 잠시인들 편할쏜가.

投紱喜君留定省          자네 벼슬 내던지고 모친 섬겨 기쁘니

爲祠爲養構茅亭          제사와 봉양 위해 집을 새로 지었어라.

 

 

溪邊秣馬卽事          개울가에서 말에게 꼴을 먹이며

 

下馬坐溪邊              말에서 내려 개울가에 앉아

褰衣步淸灘              옷 걷고 맑은 여울을 걷는다.

灘淺小石露              얕은 여울 작은 돌 드러나고

激激鳴佩環              부딪히는 물소리 옥 소린 듯.

淸飆來水面              맑은 바람 수면으로 불어오니

灑然神骨寒              물 뿌린 듯 신골이 서늘하다.

飄飄若羽化              너울너울 날개라도 돋은 듯

俯仰雲天寬              굽어보고 우러르며 구름 더불어 하늘을 날고 싶다.

仙興浩難收              신선이 된 듯한 흥을 걷잡을 수 없어

沈吟坐石端              바위에 걸터앉아 중얼중얼 시를 읊어본다.

濯足聊自潔              발을 씻고 나니 한결 깨끗한 마음에

超然謝塵寰              초연히 진세를 떠나 본다.

至趣獨自知              지극한 흥취 홀로 즐기며

日斜猶忘還              해 기울어도 돌아갈 생각을 잊었다오.

 

 

孤松

 

群木鬱相遮              온갖 나무 울창하여 서로 막히고

孤松挺自誇              고송은 몸을 빼어 스스로 자랑하네.

煙霞秘斡質              안개와 노을 속에 줄기 간직하고

雨露長枝柯              비와 이슬로 가지를 키웠구나.

千尺心應直              천 척 높이 자랐으니 마음도 응당 곧고

九泉根不斜              구천에 깊이 내렸으니 뿌리 기울지도 않으리라.

棟樑雖有待              큰 재주 있어 비록 나라의 기대가 있어도

斧斤奈相加              도끼와 날이 어찌 서로 더해지는가.

不似巖邊老              바위 가에서 늙어감만 못하나니

含姿歲暮多              해 저물어 가는 겨울에도 언제나 푸른 자태를 갖기를.

 

 

九日無菊                    중양절 무국(無菊)이라

 

欲撤金錢泛酒巵          노오란 동전 같은 국화 따서 술잔에 띄우려

登高空折未開枝          산에 올라 공연히 피지 않은 가지를 꺾어본다.

傾壺漸發愁中笑          술병 기우리며 근심스레 웃음을 지어보고

滿帽難成醉後奇          모자 가득 끼워보나 술 취한 뒤라 좋은 줄 모르겠다.

冷蘂縱能酬晩節          차가운 꽃 술 늦은 계절에 어울린다 해도

淸芬堪歎負佳節          맑은 향기가 좋은 계절을 저버림을 면하기 어렵도다.

仍驚物理渾如許          사물을 놀라게 함이 하나 같나니

吐馥流芳貴及時          향기를 토하여 흘러감이 때에 맞아야 귀하노라.

 

 

勸學者

 

爲學應須學聖人          학문을 하는 것은 성인을 배워야 하니

聖功元是本彛倫          성인이 되는 공은 본래 떳떳한 인륜을 근본으로 삼는 것.

數編格語眞繩墨          몇 권의 격조 있는 말들이 진실로 표준이 되는 것

熟講精通可律身          충분히 익혀서 정통하면 몸을 다스릴 수 있으리.

 

 

金莊寺踏靑

 

川原遠近綠初匂          내와 언덕 멀고 가까운 곳에 푸른 빛 짙어지고

滿眠依然古國春          눈에 가득한 것이 옛 신라의 봄과 같은 것을.

玉笛聲中千古恨          옥피리 속에 천 년의 한을

莫敎吹向踏靑人          보리밭 밟는 농부 향해 불지 않게 하여라.

 

 

記夢

 

殘燈中夜照肝脾          깊은 밤 잔등은 속마음 비추고

屋漏雖幽肯自歎          후미진 방 아무리 깊다한들 내 마음 속일 건가.

枉被人疑渾不動          사람들 잘못 의심하여도 마음 흔들리지 않으리니

此心應有鬼神知          이러한 내 마음을 귀신은 알리라.

一心虛靜自無爲          스스로 할 일 없어 마음은 허전한데

萬變交前孰得移          수만 번 변화가 생기기 전에 누에게 옮아갈까.

雖處至嫌猶不惑          비록 극히 의심스러워도 미혹되지 않으니

夢魂聊與展禽期          꿈에도 오직 전금 유하혜와 함께하길 기약한다.

 

 

寄舍弟                        아우에게 부치다

 

咨詢湖海値淸秋          청명한 가을날에 사방 각지 경내 시찰하며

衰晩猶存進退憂          늙어서도 진퇴를 근심하는 이내 신세로다.

感君愛日投簪紱          날을 아껴 벼슬 버린 자네 뜻에 감동하고

憫我違心强遠遊          맘과 달리 멀리 가는 나를 가련해하누나.

 

 

寄舍弟子容              아우 子容에게 부치다

 

一輪月長共              길이 멀리 떨어져 달을 보았고

千里夢相隨              꿈엔 천 리 먼 길 가서 만나곤 했지.

旅雁分行久              기러기 오랫동안 헤어졌다가

鄕雲入望飛              고향 하늘 구름을 향해서 나네.

林泉懷舊隱              산천은 옛 은거지 그리워하고

霜露起遐思              상로는 그리움을 일으키는데

秋盡方歸省              가을 다 지나서야 귀성을 하니

荒山宿草垂              산에 묵은 풀이 드리웠으리.

 

 

寄子容                     子容에게 부치다

 

南望千山雪              남쪽을 바라보니 눈 덮인 산들

北來兩鬢斑              북쪽으로 온 뒤로 느는 흰머리

慈闈異鄕滯              어머님 타향에서 머무시는데

遊子旅懷酸              아들은 객지에서 괴로워하네.

歲盡愁多緖              해가 다해 시름은 늘어만 가고

天寒寢未安              날이 추워 잠자리가 편치 못한데

何時舍簪笏              언제나 사직하고 집에 돌아가

歸侍一堂歡              어머님 모시면서 즐거워할까.

 

 

洛中得舍弟書              한양에서 아우의 편지를 받다

 

雁聲今夕客中聞          기러기 울음소리 객지에서 듣는 이 밤

千里晨昏獨倚君          천 리 밖의 혼정신성 아우에게 맡겼구나.

一字萬金愁暫破          천 금 같은 글자 보며 시름 잠깐 떨치노니

二更三點夜將分          시간은 이경 삼점 날이 바뀔 즈음이네.

羈懷耿耿頭催白          객지의 시름 깊어서 흰머리 늘어가고

聖訓悠悠眼欲昏          성훈(聖訓)은 아득한데 눈은 침침해지누나.

歲暮天寒歸思切          해 저물고 날 추워져 돌아갈 맘 간절하니

已將軒冕擬浮雲          높은 벼슬 내겐 이미 뜬구름과 다름없네.

二十年來倦遠遊          이십 년간 객지살이 싫증을 내었지만

自嗟衰晩未歸休          늙어서도 돌아가서 쉬지 못해 한탄하네.

神魂一夜分南北          혼과 정신 오늘 밤에 남북으로 갈라지니

聖寵慈恩兩未酬          임금 은총 모친 은혜 모두 갚지 못했어라.

 

 

獺川 次舍弟韻            달천에서 아우의 시에 차운하다

 

漠漠長空雁去遲          아득하게 긴 하늘에 기러기 천천히 날고

悠悠襟抱有誰知          아득한 이내 마음 누가 알아주려나.

憑高一灑思親淚          산에 올라 어머님을 생각하며 눈물 짓고

天際愁雲滿眼悲          하늘 끝에 시름 겨운 구름 보며 슬퍼하네.

淸時流落遠投邊          맑은 때에 영락하여 먼 변방에 내쫓긴 몸

感汝焚香夜禱天          한밤중에 향 사르고 비는 네가 고맙구나.

冥佑不遲天可必          머지않아 하늘의 보살핌이 있으리니

歸來戱彩一樽前          돌아와서 잔치하며 채무를 추게 되리.

 

 

晩興                            저녁 흥취

 

風定煙消鏡面空          바람도 그치고 물안개 사라지니 수면은 거울 같아

數聲柔櫓夕陽中          몇 소리 부드러운 노 젓는 소리 석양에 들려오네.

却嫌未快湖山眼          눈에 보이는 강과 산의 경치가 아직 마음에 차지 않아

逈立船頭數亂峯          아득히 뱃머리에 서서 여기저기 우뚝한 봉우리만 헤아려본다.

 

 

夢覺有感                     꿈에서 깨어나

 

常思理欲互相勝          항상 천리와 인욕을 생각해보면 서로 이기려하고

幽獨危微倍戰競          홀로 있으면 욕심은 위태하고 근심은 약하니 조심을 배가하라.

一念差來便禽獸          한 생각만 어긋나도 금수같이 되리니

惕然驚起對靑燈          깜짝 놀라 일어나 맑은 등불 바라보라.

長誦虞書十六字          우서(虞書)의 16자를 길이 외워서

一毫人欲便思除          조금이라도 욕심이 생길 생각마저 없애버려라.

工夫尙覺多滲漏          공부에 아직도 삼루한 점이 많음을 깨닫고

知有神明故警余          신명이 고의로 나에게 경고하려함이 있음을 알아라.

 

 

聞慶客館 次舍弟韻      문경 객관에서 아우의 시에 차운하다

 

未盡三春膝下歡          슬하에서 석 달 봄을 못 채우고 떠난지라

夢殘山館亂愁端          산관에서 꿈을 깨니 심란하고 시름 겹네.

簪纓怪我長離側          벼슬하다보니 모친 곁을 오래 떠나 있는 신세라

菽水多君善慰顔          가난해도 자네 봉양 잘하는 게 부럽구나.

 

 

栢栗寺贈韓進士子浩    백율사 한진사 子浩에게

 

苔逕憐曾踏              이끼 낀 좁은 길에 내 발자취 반갑고

松闌憶舊憑              소나무 난간에 서니 옛 놀던 기억 새롭다.

碧山如有待              청산은 나를 기다린 듯 하고

靑眼更無憎              내 맑은 눈에는 다시 싫은 기분 없도다.

草樹千年國              풀과 나무 우거진 천 년 나라에

襟懷一夜燈              가슴 속 회포 하룻밤 등잔불에 태운다.

海臺秋更好              바닷가 누각의 가을 경치가 다시 좋으니

攜酒又同登              술가지고 우리 또 올라가 보세나.

 

 

泛葵溪流                    해바라기를 개울물에 띄워

 

向日丹心鬢欲秋          임 향한 충성심에 귀밑머리 희어지고

朝朝垂淚滿顔愁          아침마다 눈물 흘려 얼굴 시름 겨워라.

如何忽作英州去          어찌하여 갑자기 영주로 귀양가

萬里風波一葉舟          만리풍파에 한 척 배의 처지로다.

西子當年一入吳          서시가 당시에 한 번 오나라에 드니

春風秋月醉姑蘇          봄바람 가을 달에 고소대에서 취하였네.

豈知國破無歸處          어찌 나라가 망하여 몸 붙일 곳 없음 알아

愁把紅顔泛五湖          수심에 홍안을 태워 오호로 배 띄워갔다네.

 

 

病中覽言行錄朱文公傳    병중에 언행록에서 주문공의 전(傳)을 보다

 

病起幽軒雨後天          병상에서 일어난 조용한 집, 밖은 비가 개고

手携黃券對前賢          손에 책을 잡고 옛날 성현을 대한 듯하다.

吾年屈指猶云富          내 나이 꼽아보니 아직도 젊은데

其奈身多疾病纏          몸에 병이 많아 병에 매였으니 이를 어이할거나.

 

 

山堂病起                    산속 집에서 병에서 일어나

 

平生志業在窮經          내 평생의 뜻과 일은 경서를 연구하는 것

不是區區爲利名          구구하게 이익과 명예 위한 것 아니라네.

明善誠身希孔孟          명덕과 선행, 성의와 수신으로 공자와 맹자를 바라보고

治心存道慕朱程          마음을 다스리고 도를 간직한 주자와 정자를 사모하네.

 

 

達而濟世憑忠義          학문에 통달해 세상을 건지되 충의에 따르며

 

窮且還山養聖靈          통달하지 못하면 자연으로 돌아와 마음의 힘을 기르리라

豈料屈蟠多不快          어찌 비굴하게 숨을 것 생각하여 쾌활하지 못함이 많아

夜深推枕倚前楹          밤이 깊어도 잠 못 들고 앞 기둥에 몸을 기대며 보내.

 

 

山堂卽事

 

禪房高枕隱              승방에 베개 높이 베고 은둔하니

山色曉窓多              산색은 새벽 창에 짙어온다.

林底幽禽語              숲 속에는 그윽한 새소리 지저귀고

風中輕鷰斜              바람 속에 가벼운 제비소리 비껴든다.

翠巖留宿霧              푸른 바위에 안개 서리고

深峽鎖朝霞              깊은 협곡에 아침노을 가득하다.

誰識此中趣              그 누가 알까, 여기서 사는 멋을

閒雲嶺上過              한가한 구름은 고개 위로 지나간다.

 

 

山中卽事 

 

1

雨後山中石澗暄          비 갠 산속에 골짜기 물 요란하고

沈吟竟日獨憑軒          생각에 잠겨 시를 읊으며 종일토록 집에 있네.

平生最厭紛囂地          평생에 가장 싫은 일은 분분한 세상사이고

惟此溪聲耳不煩          오직 계곡 물소리만은 듣기도 좋구나.

 

2

臥對前山月色新          누워서 앞산을 보니 달빛도 새롭고

天敎是夕慰幽人          하늘이 오늘 저녁 숨어사는 나를 위로하누나.

沈痾忽去神魂爽          묵은 병 물러가니 정신도 상쾌하고

胸次都無一點塵          가슴 속에는 한 점 티끌도 없어라.

 

3

幽鳥聲中午夢闌          그윽한 새소리에 낮 꿈을 깨어

臥看巖上白雲閑          누워서 바라보니 바위 위엔 흰 구름이 한가롭다.

年來世事渾無意          해마다 세상일에 아무 생각 없고

吾眼猶宜對碧山          내 눈은 여전히 푸른 산만 바라보노라.

 

淸晨梳罷快憑欄          맑은 새벽 빗질 하고 상쾌히 난간에 기대니

細雨隨風滿碧山          가랑비는 바람 따라 푸른 산에 가득 내리네.

野遠靑煙橫一抹          들판은 아득히 먼데 푸른 안개는 조금 횡으로 뻗혔고

林深幽鳥語千般          숲은 깊어 그윽한데 온갖 새소리는 끝이 없다.

忘機與物聊同樂          이해득실을 따지려는 마음 잊으니 모든 것이 즐겁고

安分於時獨自閑          때에 맞게 분수를 지키니 스스로 한가롭다.

乘興渺然迷出處          흥에 겨워 아득히 출처를 잃고

却疑身誤出人寰          내 몸 세상에 잘못 들었나 도리어 의심스럽다.

 

 

上洛路上卽事             낙동으로 가는 길에

 

大塊之中萬象藏          대자연에 만상이 감춰 있고

廓然悠久更無疆          확연한 진리는 유구하고 끝이 없어라.

江河山岳長流峙          강과 산은 영원히 흐르고 치솟아 있고

日月星辰互隱彰          해와 달과 별들은 서로 숨기고 나타내고

古往今來觀世變          전에 갔다가 지금에 나타나는 세상의 변화를 보이고

春生秋殺見天常          봄에 낳았다가 가을에 죽여 버리는 하늘의 법칙을 보이노라.

箇中何物能爲此          그 중에 어느 물건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을까

一本昭昭獨主張          하나의 밝고 밝은 진리가 홀로 이를 주관하리라.

 

 

設壽酌 次舍弟韻 癸卯    수연 석상에서 아우의 시에 차운하다. 계묘년

 

遠宦何能一日寧          먼 객지의 벼슬살이 하루라도 便할쏜가

簪纓不識世間榮          고위 관직이 세상의 영화인 줄 모르노라.

春風舞彩多傷感          춘풍에 채무(彩舞) 추며 슬픈 감회 많은데

鶴髮今踰七十齡          백발 모친 연세가 칠십 세가 넘었구나.

 

 

小峯臺

 

地角東窮碧海頭          땅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乾坤何處有三丘          천지의 어느 곳에 세 언덕이 있단 말인가.

塵寰裨隘吾無意          티끌세상 비루하고 좁은 일 내 마음과 무슨 상관이리

欲駕秋風泛魯桴          가을바람에 노중련의 배를 띄워 떠나고 싶어라

 

 

新雪

 

新雪今朝忽滿地          오늘 아침 첫 눈이 온 천지 가득하니

怳然坐我水精宮          황홀히 넋을 잃고 수정궁에 앉았다네.

柴門誰作剡溪訪          그 누가 내 사립문 섬계처럼 찾아줄까.

獨對前山歲暮松          홀로 앞산 세밑의 소나무를 마주 보네.

 

 

驪州路寄舍弟             여주 노상에서 아우에게 부치다

 

沿路芳春百物榮          길옆에는 봄을 맞아 초목들이 한창인데

我懷緣底苦難平          내 마음은 어찌하여 편안하지 못한 건가.

客愁不逐江煙散          객지 시름 강 안개가 흩어지듯 하지 않고

幽恨紛如野草生          깊은 한은 들풀이 자라나듯 어지럽네.

鶴髮頻揮憶遠淚          백발 모친 멀리서 자주 눈물 뿌리시고

鴒原又喪哭兒明          령원(鴒原)은 또 자식 잃은 슬픔으로 통곡하네.

此行已決歸休計          이 번 길에 사직하고 귀향할 뜻 정했으니

軒冕如今一羽輕          높은 벼슬 나에게는 깃털처럼 가볍다네.

 

 

烏川路上

 

揮鞭發海隅              말을 채찍질하여 바다로 떠나

擡眠極平蕪              눈 들어 바라보니 넓고 아득하여 끝이 없도다.

新綠千山遍              신록은 온 산에 가득하고

殘紅一點無              붉은 꽃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구나.

樂時渾物我              즐거운 시절 물과 내가 온통 하나가 되어

探勝歷江湖              좋은 경치 찾아서 강과 호수를 두루 다닌다.

安得携知己              어찌 마음 맞는 친구를 데리고

臨流倒百壺              냇가에 나가 백 병의 술이라도 기울이지 않으리.

 

 

元朝 五箴               27세 새해 첫날 오잠(五箴)을 지어 자신을 경계함

 

1 畏天箴

天生我人                하늘이 우리들 사람 낳으매

付畀者大                참으로 부여하신 바가 크도다.

明命赫然                밝디 밝은 천명이 환히 드러나

罔有內外                안과 밖에 차이가 있지 않도다.

悖凶修吉                거스르고 닦는 것에 길흉 갈리니

敢不祗畏                어찌 감히 경외하지 않을 수 있나.

不言而信                말을 하지 않아도 미덥게 하고

不動而敬                행동하지 않아도 존경케 하며

無微不察                작은 일도 살피지 않음이 없고

無隱不省                드러나지 않은 것도 살펴야 하리.

從事於斯                여기에 부지런히 노력하면서

潛心對越                차분한 마음으로 상제 대하고

一動一靜                한 번의 동(動)함과 정(靜)함이라도

順帝之則                한결같이 상제의 법칙 따르면

永言配命                영원토록 천명에 부합이 되어

俯仰無怍                천지간에 부끄러움 없게 되리라.

斯須有間                짧은 순간이라도 틈이 있다면

便是自絶                문득 명을 스스로 끊는 것이니

罔而幸免                정직하지 않으면서 죽음 면하면

生也可愧                살아 있다 하더라도 부끄러우리.

毫釐有差                털끝만큼이라도 차질 있으면

便是獲罪                곧바로 죄를 얻게 되는 것인바

禱旣無所                신명에게 빌 수조차 없을 터이니

盍反諸己                어찌 자기 자신을 반성 않으랴.

克己復禮                사욕을 이겨 예로 돌아가는 걸

是曰無墜                천명을 실추함이 없다고 하며

存心養性                마음을 보존하고 성품을 기름은

所以順事                살아서 하늘을 순순히 섬김이라오.

不顯亦臨                드러나지 않은 곳도 굽어보시니

其敢或欺                어찌 감히 혹시라도 속이겠는가.

日乾夕惕                밤낮으로 힘쓰고 두려워하여

于時保之                이로써 하늘의 명을 보전하리라.

 

2 養心箴

惟心之德                마음의 덕이란 건

至虛至靈                지극히 허영하니

原其本體                본체를 논하자면

廣大高明                광대하고 고명하네.

內具衆理                안으로 이치를 두루 갖추어

外應萬變                밖으로 만 가지 변화에 응해

放之六合                놓으면 우주를 가득 채우고

斂之方寸                거두면 방촌에 들어가나니

善養無害                잘 기르고 해치는 일이 없으면

與天地似                고명하고 광대함이 천지와 같네.

養之伊何                기르는 건 어찌하나

曰敬而已                오직 경에 달렸을 뿐

敬之伊何                경은 어찌해야 하나

惟主乎一                전일하게 할 뿐이네.

當其不動                마음이 동하지 않았을 때는

渾然太極                혼연한 태극의 상태이므로

敬以一之                경하여 전일하게 보존해야만

其體乃直                본체가 바름을 얻게 되는 것.

不偏不倚                치우침도 기울임도 없도록 하고

無貳無適                의심 않고 딴 곳으로 가지 않으며

勿忘勿助                잊지 말고 조장도 하지 말아서

從容自得                조용히 자득하게 해야 하리라.

廓然大公                확연히 대공무사함에 이르면

鳶飛魚躍                연비어야(鳶飛魚躍) 이치를 깨닫게 되니

洞開重門                겹겹의 문이 활짝 열어젖혀져

不見邪曲                바르지 않은 것이 없어지리라.

天理以全                천리가 이로써 온전해져서

人欲不萌                인욕이 싹트지 못하게 되고

大本旣立                대본이 확고하게 수립이 되어

達道乃行                달도(達道)가 저절로 행해지는 것

惟敬之妙                오직 경의 묘리가

宅心之地                마음을 써야 할 곳

久而旣誠                오래도록 경에 힘써 성실해지면

純乎一理                한 이치를 온전하게 깨닫게 되니

位育極功                천지 만물 위육(位育)하는 지극한 공효

實本於此                실제로 여기에서 근본하도다.

人生稟賦                사람이 태어날 때 부여받은 건

初無二致                애당초 두 가지가 아니었는데

一指肩背                손가락 하나와 어깨와 등의

鮮知貴賤                귀하고 천함 아는 사람 적도다.

養小失大                작은 것을 기르고 큰 걸 잃으면

禽獸不遠                금수와 그다지 큰 차이 없으니

我旣知此                내가 이미 이러한 사실 아는데

敢不自勉                스스로 노력하지 않을 수 있나.

造次顚沛                경황없고 위급한 순간이라도

服膺勿失                가슴에 새겨 잊지 말아야 하리.

一念或怠                한 생각이 혹시라도 태만해지면

神明在側                신명께서 곁에서 지켜보리라.

 

3 敬身箴

我有我身                내가 가진 나의 몸은

至重至貴                지극히 귀중한 것

受之父母                부모에게 받았으며

命於天地                천지가 명하여서

參爲三才                삼재에 참여하니

匪萬物比                만물 중에 으뜸이네.

旣知其然                이미 그런 줄 아는데

敢不自敬                감히 공경 않을쏜가.

敬之伊何                공경하는 방법은

持之以正                바른 몸가짐이로다.

容貌必莊                용모는 반드시 엄숙히 하고

衣冠必整                의관은 반드시 단정히 하며

視聽有則                보고 듣는 데에는 법칙이 있고

言動有法                말과 행동 법도에 맞아야 하네.

淫樂慝禮                부정하고 간특한 음악과 예는

不接心術                마음에 접하는 일 없어야 하고

姦聲亂色                간사하고 어지러운 소리와 색은

不留耳目                눈과 귀로 보고 듣지 말아야 할 터

非禮之地                예에 맞지 않는 곳과

非正之所                부정한 장소에는

足不敢履                감히 발을 딛지 않고

身不敢處                몸을 두지 않으리라.

進退周旋                진퇴와 주선은

必於理合                반드시 도리에 맞도록 하고

出處行藏                출처와 행장은

一以義決                오로지 의로써 결단하리라.

富貴不動                부귀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貧賤不移                빈천에도 변치 않는 굳은 절개로

卓然中立                중심 잡고 우뚝 서서

惟道是依                오직 도에 의지하리

是曰能敬                이를 일러 경신(敬身)이라 하는 것이니

不辱不虧                자기 몸을 욕되거나 훼손치 않고

無忝所生                낳아 주신 부모에게 욕 끼침 없이

庶全而歸                온전하게 생 마치고 돌아가리라.

惟彼衆人                오직 저 중인들은

昧於自持                몸가짐에 어두워서

淫視傾聽                흘끗흘끗 곁눈질에 말을 엿듣고

惰其四支                사지를 움직이길 게을리 하여

褻天之畀                하늘이 부여한 몸 함부로 하고

慢親之枝                부모에게 받은 신체 태만히 하네.

營營食色                식욕(食慾)과 색욕(色慾)에 정신이 팔려

無廉無恥                염치없이 행동하고

遑遑利名                이익과 명예를 추구하느라

無命無義                의리를 무시하며

不有其躬                몸을 돌볼 생각 않고

惟欲之汩                욕망에만 빠져드네.

我其監此                내가 이를 거울삼아

惕然自飭                스스로 경계하며

洞洞屬屬                공경하고 근신하니

臨深履薄                깊은 못에 다다른 듯 살얼음을 밟은 듯

聖賢有訓                성현의 가르침에

曰誠曰修                정성으로써 자기 몸을 닦으라 하니라.

敢以此語                내가 감히 이 말씀을

爲終身憂                평생의 근심거리로 삼고자 하네.

 

4 改過箴

人非上聖                사람이 상성(上聖)이 아닌 다음엔

誰能無過                과실이 없는 자가 있으랴마는

過而能改                과실이 있더라도 고쳐 나가면

其過斯寡                과실이 적어지게 되는 것이니

寡之又寡                과실을 줄이고 또 줄여 간다면

可至於無                종래에는 과실 없게 할 수 있을 터

無過曰聖                성인은 과실이 없는 반면에

多過曰愚                어리석은 사람은 과실 많은데

爲聖爲愚                성인 될지 어리석은 사람 될지는

在我而已                모두가 나의 손에 달린 것이네.

是以君子                그 때문에 군자는

必誠其意                반드시 그 뜻을 성실히 하여

心無過念                잘못된 생각 없게 노력하는데

矧有過事                더구나 잘못된 행동을 하랴.

如或有之                잘못된 행동을 혹 했다 하여도

卽改不吝                주저 않고 곧바로 고쳐 나가면

過消善全                잘못이 없어지고 선을 회복해

其德日進                그 덕이 하루하루 향상되는 법

胡彼衆人                그런데 어찌하여 저들 중인은

知過者鮮                과실을 아는 자가 적은 것인가

知且憚改                알더라도 고치려고 하지 않는데

矧曰遷善                더구나 선한 데로 옮겨 갈쏜가

恥過作非                허물 부끄러워하면 잘못이 되고

過久成惡                잘못을 오래 두면 악이 되나니

我其監此                나는 이런 것들을 거울삼아서

不遠而復                허물을 바로바로 고치려 하네.

一念之萌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리거나

一言之發                한 마디 말을 입에 올리는 것도

必思合理                반드시 도리에 맞도록 하고

惟恐有差                행여라도 빗나갈까 두려워하며

夜以思過                밤이면 잘못한 일 돌이켜 보고

晝以改之                낮에는 노력하여 고쳐야 하리

武公自悔                무공은 스스로 허물 뉘우쳐

賓筵是作                빈지초연(賓之初筵)이라는 詩를 지었고

蘧瑗欲寡                거원(蘧瑗)은 허물 적게 하려 했기에

知非五十                오십에도 이전까지 잘못 알았네.

子路喜聞                자로(子路)는 허물 알면 기뻐하였고

顔淵不貳                안연(顔淵)은 같은 잘못 거듭 안 했네.

聖賢猶戒                성현도 항상 이를 경계했는데

矧余愚鄙                나처럼 어리석고 비루한 자랴

齒之尙少                나이 아직 어릴 때는

庸有不知                모를 수도 있겠지만

今其壯矣                이젠 어른 되었는데

曷不自規                어찌 단속 않겠는가.

 

5 篤志箴

人有厥性                사람의 성품이란

本乎天理                천리에 근본한 것

初無不善                애초에는 선하지 않은 이 없어

孰愚孰智                어리석고 지혜로운 구별 없으니

乃知聖賢                이를 통해 알 수 있네 성현이라도

與我同類                우리들과 동일한 사람이란 걸

求之則得                타고난 선한 성품 구하면 얻고

不求則失                구하지 않을 때는 잃고 마는데

其機在我                관건이 전적으로 내게 있으니

敢不自勖                어찌 감히 노력하지 않을 수 있나

成湯日新                성탕(成湯)은 날로 덕을 새롭게 했고

仲尼忘食                중니(仲尼)는 발분하여 먹길 잊었고

文王亹亹                문왕은 쉬지 않고 노력하였고

伯禹孜孜                백우(伯禹)는 부지런히 힘을 썼도다.

矧余後學                더구나 이 몸은 후학으로서

志大力微                뜻은 크나 힘은 매우 미미하므로

一墮悠悠                느긋한 마음 한 번 먹게 된다면

造道可期                도에 이를 기약을 할 수 없을 터

井不及泉                우물 파되 샘의 근원 찾지 못하면

九仞奚益                아홉 길을 팠더라도 소용없으며

學不希聖                학문하되 성인되길 추구 않으면

是謂自畫                스스로 선을 긋는 행위라 하네.

欲罷不能                그만두려 하여도 할 수 없음은

顔氏之竭                안연이 있는 힘을 다함이었고

任重道遠                짐 무겁고 갈 길은 멀다고 한 건

曾氏之篤                증자의 독실한 자세였어라.

我師古人                나는 예전 성인을 스승 삼아서

死而後已                죽음에 이르도록 노력하리니

彼何人哉                저분들은 대체 어떤 사람이었나

爲之則是                노력하면 그 경지에 도달하리라.

 

 

無爲                            하지 않다

 

萬物變遷無定態          만물이 변함은 일정하지 않으니

一身閑寂自隨時          이 몸도 한적하여 때를 따르는데

年來漸省經營力          근래는 점차 일하려는 마음 줄어드니

長對靑山不賦詩          오래토록 청산 마주하면서 시도 짓지 않는다

 

- 이 시는 1530년 관직에서 쫓겨나 경주 옥산에 독락당을 짓고 칩거할 때 지은 것

 

 

立箴

 

恭聞仲尼                공손히 듣건대 공자께서는

十五志學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至于三十                십오 년 뒤 서른에 이르러서는

乃克有立                能히 서게 되었다고 말씀하였네.

曰立伊何                선다고 하는 것은 무얼 말하나

心定道得                마음이 정해지고 도를 터득해

充實於內                내면은 충실하고

直方於外                외면은 방정하며

卓然不倚                우뚝 서서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居廣行大                넓은 집에 거하여 대도 행하며

富貴不淫                부귀해도 마음에 방탕함 없고

貧賤不易                빈천해도 지조를 바꾸지 않아

天下萬物                이 세상의 그 무엇도

莫我撓屈                나를 꺾지 못함이네.

是謂能立                이러한 경지를 섰다고 하니

進聖之基                성인이 되기 위한 기초로서

繼天建極                하늘의 뜻을 이어 법을 세움이

實本於斯                실제로 여기에서 근본하도다

閔余後學                안타깝게 이 몸은 후학으로서

惟聖是慕                성인을 진정으로 흠모하지만

志學苦晩                뒤늦게야 학문에 뜻을 두었고

聞道亦暮                도를 들은 것 또한 늦어서였네.

功疏力淺                공부가 성글고 힘이 부족해

學未收效                배움의 효과 아직 못 거뒀는데

任重道遠                책임은 막중하고 갈 길 멀지만

志猶不舍                그래도 뜻을 버릴 수가 없기에

援聖比度                성인에게 언제나 견주어 보며

反躬省過                돌이켜 나의 허물 반성하노라

驗之於心                차분히 내 마음을 고찰해 보면

能立耶否                섰다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涵養未充                함양하는 공부가 불충분하고

操存不固                마음을 보존함이 굳지 못하여

天理流行                천리의 유행에는

未免違失                어김이 없지 않고

人欲消去                인욕을 제거해도

有時萌起                때로 다시 생겨나네.

驗之於身                차분히 내 몸을 고찰해 보면

能立耶未                섰다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氣習稍化                기질과 습관은 좀 변화됐으나

義理猶弱                의리는 아직까지 미약한 탓에

言行多過                언행에 허물 많고

表裏未一                표리가 같지 않아

事物外撓                사물이 밖에서 흔들어 대면

酬應或差                수응함에 차질을 빚기도 하네.

驗之於行                차분히 내 행실을 살펴보면

立耶未耶                섰다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爲臣爲子                신하 되고 자식 되어

不盡其職                본분을 다 못했고

爲禮爲義                예절과 의리 또한

不用其極                극진하지 못했도다.

動靜語默                동정과 어묵이

多不中節                절도에 맞지 않은 경우 많으며

進退周旋                진퇴와 주선이

或失其則                법칙을 잃은 적도 없지 않도다.

歲月如流                세월은 흘러가는 물과도 같아

一往不復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인데

究我年數                가만히 내 나이를 헤아려 보니

奄迫三旬                내일이면 어느새 삼십이로다.

及此未立                그러니 이때에 서지 못하면

寧免衆人                어떻게 범인을 벗어나겠나.

是用自省                이 때문에 스스로를 돌아보느라

竟夕不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는구나.

鍾鳴山寺                산사에 종 울리면

又是新年                또 한 해가 시작되니

天道旣變                천도의 변화 따라

時物亦遷                계절도 바뀌리라.

我其法天                나 이제 하늘의 덕을 본받아

思新厥德                그 덕을 새롭게 하려 하노라.

滌去舊習                묵은 습성 말끔히 씻어 버리고

一遵聖法                오로지 성인의 법도 따르며

矯輕警惰                경박함을 바로잡고 나태함 버려

人一己百                남들보다 백 배는 더 노력하리니

眞積力久                성심 다해 오래도록 힘을 기우려

期入聖域                성인의 영역으로 들어가리라.

自今以往                지금부터 세월 흘러

四十五十                사십 오십 되는 날도

又無幾何                또한 그리 멀지 않아

轉眄忽及                눈 깜빡할 순간일 터

到此無聞                그때도 알려짐이 없다고 하면

已矣可追                후회해도 아무런 소용없으리.

是用耿耿                이 때문에 잠 못 들고 근심하다가

箴以自規                잠을 지어 스스로를 바로잡노라

標志誓心                마음에 맹서하고 뜻을 세워서

爲終身事                목숨 다할 날까지 힘쓰려 하네.

上帝實臨                상제께서 굽어보고 계실 것이니

我心敢貳                나의 마음 어찌 감히 변하겠는가.

 

 

林居 十五詠

 

1 感物                         사물에 느껴서

卜築雲泉歲月深          자연에 집을 짓고 세월만 깊었는데

手栽松竹摠成林          손수 심은 솔과 대가 온통 숲이 되었구나.

烟霞朝慕多新態          아침저녁 안개와 노을의 모습 변하여도

唯有靑山無古今          저 푸른 산만은 고금이 한결샅구나.

 

2 溪亭                         개울가 정자

喜聞幽鳥傍林啼          그윽한 새소리 숲가에서 기쁘게 듣고

新構茅簷壓小溪          새로 만든 초가집이 작은 개울을 누른다.

獨酌只邀明月伴          혼자 술을 따르며 밝은 달 맞아 벗하여

一間聊共白雲棲          한 순간 에오라지 흰구름 함께하여 깃든다.

 

3 觀物                         사물을 보고

唐虞事業巍千古          당우의 사업은 천고에 위대하나니

一點浮雲過太虛          한 점 뜬 구름이 우주를 지나간다.

蕭灑小軒臨碧澗          소쇄한 작은 집이 푸른 골짝 곁에 있어

澄心竟日玩游魚          맑은 마음은 종일토록 물고기 구경한다.

 

4 觀心                         내 마음을 살피며

空山中夜整冠襟          한 밤중 빈 산에서 의관을 바로잡으니

一點靑燈一片心          한 점 푸른 등잔 불빛은 한 조각 내 마음이라.

本體已從明處驗          본체는 이미 밝은 곳을 체험하여

眞源更向靜中尋          참된 근원을 더욱 고요 속을 향해 찾아간다.

 

5 獨樂                         홀로 즐기다

離群誰與共吟壇          무리를 떠났으니 누구와 같이 시를 읊을까

巖鳥溪魚慣我顔          바위의 새와 개울의 물고기 내 얼굴을 익혔구나.

欲識箇中奇絶處          그 중에서도 특별히 좋은 곳을 알고 싶은데

子規聲裏月窺山          두견새는 울고 달은 떠올라 산을 엿보는구나.

 

6 冬初                         초겨울

紅葉紛紛已滿庭          붉은 단풍잎 떨어져 뜰에 가득하고

階前殘菊尙含馨          섬돌 앞에는 국화꽃은 여전히 향기롭다.

山中百物渾衰謝          산속 온갖 생물 모두가 시드는데

獨愛寒松歲暮靑          찬 소나무 세모에도 푸른 것이 좋아라.

 

7 暮春                         저무는 봄날

春深山野百花新          봄 깊은 산야에 온갖 꽃이 새롭고

獨步閑吟立澗濱          홀로 걸으며 한가히 읊으며 개울가에 선다.

爲問東君何所事          봄의 신에게 묻노니, 섬기는 분이 누구신가?

紅紅白白自天眞          붉고 흰 온갖 빛깔 천진한 마음에서 난 것이리라.

 

8 無爲                         하는 일 없이

萬物變遷無定態          만물의 변천에는 일정한 양상 없으니

一身閑寂自隨時          이 한 몸 한적하게 때를 따르노라.

年來漸省經營力          근래는 점차 살아가는 힘이 줄어

長對靑山不賦詩          늘 푸른 산만 바라보나 시를 짓지는 않는다.

 

9 悶旱                         가뭄 걱정

農圃年年苦旱天          밭에는 해마다 가뭄이 걱정이라

邇來林下絶鳴泉          근래에 숲에는 샘물 소리 끊겼구나.

野人不識幽人意          시골 사람들 내 마음 알지 못하고

燒盡靑山作火田          푸른 산을 불살라 화전을 만드는구나.

 

10 早春                       이른 봄날

春入雲林景物新          봄날 구름 나는 숲에 드니 경물이 신선하고

澗邊桃杏摠精神          개울가의 복사꽃, 살구꽃이 모두가 신령하다.

芒鞋竹杖從今始          짚신에 죽장 짚고 막 출발해

臨水登山興更眞          물을 보며 산에 오르니 흥취 더욱 새롭다.

 

11 存養                       내 몸의 양지를 보존하며 기르다

山雨蕭蕭夢自醒          소소한 산비에 절로 꿈을 깨니

忽聞窓外野鷄聲          창밖에는 문득 꿩 우는 소리 들린다.

人間萬慮都消盡          인간의 온갖 생각 모두 사라지고

只有靈源一點明          오직 신령한 근원만 한 점 밝게 빛난다.

 

12 初夏                       초여름

又是溪山四月天          이것이 사월의 골짜기와 산

一年春事已茫然          일 년의 봄날이 이미 아득하다.

郊頭獨立空惆愴          들판에 홀로 서니 휑하고 쓸쓸한데

回首雲峯縹緲邊          고개 돌려 봉우리 바라보니 아득히 멀구나.

 

13 秋葵                       가을 해바라기

開到淸秋不改英          맑은 가을 하늘 열려도 꽃빛은 변하지 않아

肯隨蹊逕鬪春榮          기꺼이 오솔길 따라서 봄의 번성과 타투어본다.

山庭寂寞無人賞          산 뜨락 적막하여 감상할 사람 아무도 없어도

只把丹心向日傾          다만 온통 붉은 마음을 해를 향하여 기울어본다.

 

14 秋聲                       가을 소리

月色今宵分外明          오늘 밤 달빛은 너무도 밝아

憑欄靜聽已秋聲          난간에 기대니 고요히 가을소리 듣는다.

商音一曲無人會          상음 한 곡을 아는 사람 아무도 없고

鬢上霜毛四五莖          네 댓 가닥 귀밑머리만 서리 맞았구나.

 

15 喜雨                       단비가 내린다

松櫺一夜雨聲紛          소나무 창가에 온 밤 비 내리는 소리에

客夢初驚却喜聞          꿈 속 나그네 놀라 깨니 단비소리 들린다.

從此靑丘無大旱          지금부터 푸른 산에 큰 가뭄은 없으리니

幽人端合臥巖雲          숨어사는 나는 단정히 바위 구름에 눕는다.

 

 

在洛寄舍弟 壬寅         한양에서 아우에게 부치다. 임인년

 

平生枉被虛名誤          평생을 분수에 넘게 헛된 명성 누려온 몸

遊宦多年戀故林          벼슬살이 오래하여 고향 산천 그리노라.

臨鏡頻驚衰鬢改          거울 보면 노쇠해진 내 모습에 놀라고

寄書難禁別懷深          편지 쓸 땐 깊어지는 이별 회포 못 금하네.

喜君投紱承親志          아우가 사직하고 모친 모셔 기쁘거니

愧我縻官拂素心          나는 뜻을 거스르며 관에 매여 부끄럽네.

忠孝由來無二致          충과 효는 본래부터 두 가지 일 아니니

恐虧天畀日思欽          천성을 어길까 봐 늘 두렵게 생각하네.

多病年來鬢添雪          병이 많아 연래로 흰머리가 늘어가고

夢魂夜夜繞園林          밤마다 꿈속에선 고향 동산 맴도노라.

望雲眼共南天遠          구름 보는 눈길은 남쪽 하늘 멀리 있고

愛日情同北海深          날 아끼는 정성은 북해처럼 깊어라.

齟齬未酬經世志          경세제민 뜻 어긋나 이루지 못하였고

怡愉徒切奉親心          어머님을 봉양하고 싶은 마음 간절할 뿐.

思歸軒冕輕如羽          귀향할 생각 깊고 벼슬에는 맘 없으니

未暇都兪輔舜欽          요순 같은 임금님의 정책 도울 겨를 없다네.

 

 

齋舍次友人韻             서재에서 벗의 시에 차운하다

 

多謝諸君佩酒來          그대들 술 들고 찾아오니 무척 감사하여

一軒相對穩開懷          마루에서 마주하여 편안히 회포를 푸세나.

莫嫌歲暮山光淡          세밑이라 산빛이 엷다고는 꺼려하지 말게

春色先從面上廻          봄빛이 먼저 얼굴위에 돌아오고 있으니.

 

 

在山堂寄舍弟 丙午       산당에서 아우에게 부치다. 병오년

 

愁邊索寞度殘春          시름 속에 쓸쓸하게 남은 봄을 보내다가

暫別萱庭恨轉新          잠시 모친 곁 떠나니 한이 더욱 새로워라.

疏雨滿山天欲暮          보슬비는 산에 가득하고 날은 곧 저물 텐데

依依去住共酸辛          작별하는 아쉬움에 형제가 괴롭구나.

綠暗紅殘已盡春          꽃은 지고 녹음 짙어 봄이 이미 다해 가니

淸和光景滿庭新          뜰 안에는 따사롭고 맑은 경치도 새롭도다.

溪山幽靜渾如舊          그윽한 산과 시내 이전과 똑같은데

世味蓼蟲久厭辛          세상 맛은 쓰디써서 신물이 난 지 오래구나.

 

 

丁酉冬 上洛贈鄕友

 

陰盡陽廻萬物春          음이 다하고 양이 돌아오니 만물이 봄인데

強將衰朽入紅塵          쇠한 몸 억지로 이끌고 홍진으로 들어가네.

莫言輔主無才調          임금님 돕는데 재주 없다 말하지 말라

一片丹心老更新          일편단심 늙어 더욱 새롭다오.

 

 

舟中卽事

 

列峀蜿蜿去不留          뭇 산들 구불구불 지나가 머물지 않고

悠然自在水中流          나도 아득히 물 따라 흘러간다.

錦屛影裏孤帆暮          비단 병풍 드리운 산 그림자 속을 황혼에 외로운 배 떠가고

綠鏡光邊兩岸秋          거울 같은 푸른 물결에 비친 언덕 가을이 짙었구나.

雲盡碧空悲一雁          구름 걷힌 푸른 하늘을 애처로운 외기러기 날고

波恬斜日戱群鷗          잔잔한 물결 석양빛에 뭇 갈매기 뛰어 논다.

胸中浩渺無涯興          가슴 속에는 넓고 아득한 끝없는 흥취 일고

獨立蒼茫聘遠眸          혼자 서서 창망히 먼 곳으로 눈을 돌려 바라본다.

 

 

贈別舍弟                     작별하며 아우에게 주다

 

遠送山亭鶴髮垂          백발 모친 산정까지 따라 나와 전송하니

尊前忍涕黯然時          앞이 캄캄해져 술잔 들고 애써 눈물 삼킨다.

去留是日情無盡          떠나가고 보내는 날 이별의 정 무한한데

況乃音書別後稀          헤어지고 난 뒤에는 서신마저 드물 것이라.

士生唯貴善名垂          선비에게 귀한 것은 좋은 이름 남김이요

伸屈榮枯自有時          굴신과 영욕이란 본래 때가 있는 것.

順志辭官人共慕          뜻을 따라 사직하여 사람들이 사모하니

能知輕重似君稀          아우만큼 경중을 아는 사람 드물 것이라.

慰親留別强登峯          어머님을 위로하고 집을 떠나 산에 올라

百里山光滿眼濃          바라보니 백 리의 푸른 산빛만 가득하네.

去住魂消天欲暮          작별 앞에 혼은 녹고 하늘은 저물려 해

遲遲驅馬恨纏胸          천천히 말을 모니 가슴엔 한이 맺히누나.

 

 

贈別舍弟                     아우와 작별하며 주다

 

今朝堂上慘慈顔          오늘 아침 어머님의 얼굴에는 슬픔 가득

游子臨離暗涕潸          객지로 갈 아들은 눈물 몰래 흘리누나.

此日情懷殊罔極          이날의 슬픈 심정 자못 끝이 없으니

我行唯欲未秋還          내 이번엔 갔다가 가을 전에 돌아오리.

鶴髮登亭望遠行          백발 모친 정자에서 먼 행차를 바라보시니

悠悠無盡去留情          가는 사람 남는 사람 슬픈 심정 한이 없네.

故山漸遠頻回首          멀어지는 고향 산을 자꾸 돌아보는데

山路冥冥日欲傾          산길은 어둑하고 해는 지려 하는구나.

 

 

贈舍弟                        아우에게 주다

 

蕭蕭華髮映靑山          성글어진 흰머리가 푸른 산에 비치는데

故國猶榮建節還          고향에선 감사 되어 돌아온 걸 기뻐하네.

遊官幾年勞遠夢          벼슬하며 몇 년이나 먼 고향 꿈꾸었던가

觀風是日慰衰顔          관풍하는 이날에 쇠한 얼굴 활짝 펴네.

秋晩高堂鶴髮明          늦은 가을 고당에서 백발 모친 하직하니

臨分不忍兩傷情          헤어지는 두 사람의 가눌 길 없는 슬픔이여.

自慙縻世長離側          부끄럽게 세상일로 오래 곁을 비웠는데

喜汝投簪一羽輕          기쁘게도 자네는 벼슬을 깃털처럼 버렸구나.

 

 

次寄舍弟                    차운하여 아우에게 부치다

 

靑燈空館照孤心          빈 객관의 푸른 등이 외로운 맘 비추는데

憂世思親此夜深          세상 근심 모친 생각 이 밤에 깊어지네.

軒冕如雲歸思苦          고위 관직 부질없고 고향으로 갈 마음뿐

春來幽興自難禁          봄이 오니 깊은 흥취 절로 금치 못하겠네.

久違親側聽無聲          모친 곁을 떠나 음성 못 들은 지 오래이니

梅塢春深已落英          매화 동산 봄이 깊어 꽃이 이미 졌으리라.

怪我逢歡歡更少          나는 기쁜 일 만나도 기쁜 줄을 모르는데

知君遇景涕還零          아우는 봄날 경치 보며 눈물 짓고 있으리라.

門衰無計慰慈闈          후손 없어 늙은 모친 위로할 길 없지마는

積善須知是福基          선을 쌓아 나가는 게 복의 기틀 됨을 알겠다.

報國微誠香一炷          나라 은혜 보답고자 나는 향을 사르거니

嘉君晨夕日忘疲          피로 잊고 시봉하는 아우 정성 고맙구나.

 

 

次舍弟韻                     아우의 시에 차운하다

 

還家中夜夢初成          집으로 돌아가는 밤에 꿈을 처음 꾸는데

忽覺依然臥洛城          갑자기 잠깨니 그대로 한양성에 누워있네

落盡山花歸未得          산꽃은 다 떨어지는데도 아직 돌아가지 못하고

樗材還愧玷華淸          재주 없는 이 몸 흠만 뚜렷함이 부끄러워라

親老求歸計未成          부모 늙어 돌아가려하나 계책은 없고

金章那似倅殘城          재상 벼슬은 피폐한 고을 수령 같네

平生心事多違阻          평생의 뜻은 어긋나고 막힘이 많으니

却恨虛名徹穆淸          헛된 명예 버리고 세상 맑아질 길이나 궁리하리

 

경주 독락당 - 그가 벼슬을 그만두고 내려와 있던 곳

次韻(차운) - 시를 지을 때 남의 운을 그대로 순서 바꾸지 않고 짓는 일. 이 시에서의 成, 城, 淸, 城, 淸이 그의 동생이 사용했던 운의 순서 모두 평성 庚운목에 속하는 글자다.

樗材(저재) - 쓸모없는 재목

金章(금장) - 금 도장, 재상의 직책

穆淸(목청) - 임금의 덕으로 세상이 화평함

 

 

次舍弟韻                    아우의 시에 차운하다

 

晴窓竟日對梅兄          갠 창가에서 하루 종일 매화를 감상하고

又見溪山萬樹榮          내와 산의 싱그러운 나무들을 또 보노라.

鶴髮生歡兄病去          백발 모친 기뻐하고 병든 형은 상경하니

知君此日慰安誠          이날 모친 위로하는 그대 정성 알겠어라.

 

 

次李進士定之韻 

 

今春不雨大無麥          올봄 비가 오지 않아 보리조차 없고

又悶西疇少揷秧          서쪽 밭두둑에 민망할 정도로 모내기에 물이 적네.

自愧空疏忝侍從          보잘것없는 재주로 임금을 모심이 스스로 부끄럽구나

凶年無術撫流亡          흉년에 유리망명하는 백성을 구할 재주도 없으니.

 

 

次子容韻                     子容의 시에 차운하다

 

丁寧天語眷痾臣          간곡하신 성상 말씀 병든 신하 돌보시니

報國情懷幾日伸          보은하고 싶은 뜻을 언제나 펴게 될까.

遲遲嶺外星霜變          영남에서 더딘 세월 보내고 있는 것은

爲有高堂八十春          고당에 여든 되신 모친이 계신 때문.

 

 

次曹容叟韻                 曹容叟의 운을 빌려

 

霧拯靑山晩雨餘          안개 걷힌 청산에 늦은 비 내린 뒤에

逍遙俯仰弄鳶魚          이리저리 걷다가 쳐다보고 내려 보며 솔개와 물고기를 희롱한다.

莫言林下孤淸興          숲 속 선비의 외로운 맑은 흥취 말하지 말게

幽鳥閒雲約共棲          그윽한 새와 한가한 구름과 함께 살기로 약속했다네.

 

 

次朱文公武夷五韻調      주문공의 무이오곡의 운을 빌려

 

欽把遺經得味深          남기신 경서를 공손히 잡고 깊은 맛 깨달으니

探眞從古有山林          진리를 찾는 일 예부터 산림에 있었다네.

峨洋絃上無人會          아양현 거문고 소리 알아주는 사람 아무도 없어

獨撫胸中太古心          나 홀로 가슴 속 태고의 순수한 마음 어루만지네.

 

 

聽秋蟲

 

百蟲迎暮苦啾啾          가을 풀벌레 저물어 괴롭게도 울고

晧月揚輝入小樓          희고 밝은 달빛은 작은 누각에 비춰든다.

莫作西風宋玉恨          가을바람에 송옥의 비추부 같은 한스런 글 짓지 말자

任看天地自春秋          천지에 맡겨 생각하면 봄가을도 저절로 오는 것을.

 

 

初夏野興

 

野水潺潺流不盡          들판에는 시냇물이 잔잔히 흐르고

幽禽款曲向人啼          어디선가 날 향해 정답게 지저귀는 새

閑吟閑步仍閑坐          한가로이 읊으며 걷다가 앉아 쉬는데

十里江郊日欲斜          길게 뻗은 강둑으로 해가 기운다.

 

 

醉成 謝殷佐開筵勝境見邀   취한 뒤에 은좌가 경치 좋은 곳에서 연 잔치에 초대해 준 것을 사례하다

 

落照明霞映白尊          저물녘의 붉은 노을 흰 술잔에 비치는데

慇懃携酒送殘春          은근하게 술병 들고 남은 봄을 보내누나.

黃巖綠水渾依舊          누런 바위 녹색 물은 옛 모습 그대로요

素髮蒼顔盡故人          흰머리 푸른 얼굴 모두 옛 친구로세.

性癖由來愛水山          성벽이 본래부터 산수를 사랑하여

每逢佳處便忘還          경치 좋은 곳 만나면 돌아갈 줄 모르노라.

開筵勝日知君意          좋은 봄날 잔치를 연 그대 뜻을 알기에

細酌聊成半日歡          홀짝홀짝 마시면서 한나절을 즐기누나

 

 

閑居卽事

 

種松己作千株擁          소나무 심어 천 그루의 울이 되고

移竹今年始數根          대나무 옮겨 심어 금년에야 몇 뿌리 생겼구나.

四面皆山遮眼界          사면이 산이라 눈앞이 가리고

卜居元是遠囂暄          이곳에 사는 것도 본래 세상의 시끄러움이 싫어서네.

雲斂山開欲曉天          구름 걷히고 산 개어 새벽이 되려하니

半春淸景正悠然          봄 무르익은 맑은 경치 정말로 아득하다.

鐘鳴馳逐終何益          공명에 쫓기는 관직이 내게 무엇이 이로울까

自幸年來臥石泉          몇 년 전에 돌아와 자연에 사니 스스로 다행일세.

 

 

喜晴                         날이 개어 기쁜 날

 

霧盡山依舊              안개 다 사라지니 원래의 산이 보이고

雲收天自如              구름 걷히니 하늘도 처음과 같다.

奇觀森莫數              기이한 경치들 늘어서 있어 다 헤아릴 수 없고

眞象豁無餘              참된 물상은 활달하여 남김이 없다.

一妙看消長              하나의 현묘한 이치로 사라지고 커지는 것 보니

玄機感捲舒              현묘한 기틀은 말리고 펴지는 것을 바로 느낀다.

昏明要不遠              어둡고 밝음은 먼 곳에서 구하지 말아야 하나니

人孰反求諸              사람들은 누가 자신에게서 구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