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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필(權韠, 1569~1612)

感懷                감회

 

今日忽不樂     오늘 홀연 마음이 즐겁지 않아

杖策登北林     지팡이 짚고서 북쪽 숲에 오르니

雪消遠山淨     눈 녹아 먼 산은 말끔한 모습

日落浮雲陰     해가 지니 뜬구름은 어둑해라

蕭蕭叢薄間     숲 사이로 바람은 소슬히 불고

磔磔喧衆禽     새들은 짹짹거리며 우는구나

衆禽各有侶     새들은 저마다 짝이 있건만

客子方獨吟     나그네는 홀로 시를 읊노라

美人在天端     그리운 님은 하늘 저편에 있으니

悵望傷我心     서글피 바라보매 내 마음 아파라

巾車欲有往     건거(수레)를 타고서 가고 싶지만

道路多嶇嶔     도로가 몹시 험준한 곳 많고

朅來理舟楫     돌아와 배와 노를 수리하지만

滄海闊且深     푸른 바다가 넓고도 깊구나

坐看高飛鴻     앉아서 높이 나는 기러기 보며

涕下沾衣襟     흐르는 눈물로 옷깃을 적실 뿐

夜歸寒檐臥     밤에 돌아와 추운 방에 누우니

夢行湘水潯     꿈속에 상수 가를 거닐었어라

臨水弔楚魂     물가에서 초나라 넋을 위로하니

碧水空沈沈     푸른 물만 속절없이 깊고 깊구나

回首叫虞舜     고개 돌려 우순을 소리쳐 부르니

但見雲外岑     보이느니 구름 저편 산봉우리뿐

古有遠別離     예로부터 먼 이별이 있었으니

此恨寧獨今     이런 한이 어찌 지금뿐이리오

去去勿復念     가고 가서 다시는 생각지 말고

芳樽聊自斟     향긋한 술 스스로 부어 마시자

 

黃雀何翩翩     참새 왜 저리 파닥거리는가

寄巢枯葦枝     마른갈대에 둥지 틀더니

江天喟然風     강가에 바람 세차게 불어오자

葦折巢仍欹     갈대 꺾이고 둥지마저 쓰러졌구나

巢破不足惜     둥지 부서진 거야 아까울 것 없지만

卵破良可悲     알이 깨진 건 참으로 슬프구나

雄雌飛且鳴     암수 날아다니며 울부짖나니

日夕無所依     해 저물어도 깃들 곳 없네

君看彼黃雀     그대여, 저 참새를 보게나

物理因可推     세상 이치 미루어 알 수 있나니

結巢豈不固     둥지 튼 것이 어찌 단단치 않았겠는가

所託非其宜     둥지 튼 곳이 마땅치 않아서지

種蘭盈九畹     구완에 난초를 가득 심으니

雨露日芳菲     비와 이슬 젖어 날로 자라누나

坐冀枝葉茂     잎새 무성하길 앉아 바라노니

庶用充佩幃     이 난초를 허리춤에 차리라

嚴霜昨夜下     그런데 간밤에 된서리가 내려

百草倏已腓     온갖 풀들이 갑자기 시들었네

杉篁尙不免     소나무 대나무도 못 견디는데

況乃蕙茝微     하물며 미약한 난초 혜초임에랴

仰視白日光     밝은 햇빛을 우러러보노라니

有淚霑我衣     눈물이 흘러 내 옷깃 적시누나

豈徒感時節     어찌 시절을 슬퍼할 뿐이랴

君子有所思     군자는 생각하는 바가 있도다

 

 

江口早行         강 입구에서 일찍 출발하며

 

雁鳴江月細     기러기 울고 강가의 달 얇은데

曉行蘆葦間     갈대 사이를 새벽에 출발하네

悠揚據鞍夢     흔들흔들 안장에 의지해 꿈꾸다가

忽復到家山     문득 다시 고향에 도착했지

 

 

江都 與韓別坐瓘 金判官止男 尹正字民逸 邊秀才慶胤 夜酌 강도(江都)에서 한 별좌(韓別坐) 관(瓘), 김 판관(金判官) 지남(止男), 윤 정자(尹正字) 민일(民逸), 변 수재(邊秀才) 경윤(慶胤)와 밤에 술을 마시다.

 

邂逅連宵話     뜻밖에 만나 밤을 이어 얘기하노니

天寒葉擁門     날씨는 추워 낙엽이 문밖에 쌓였어라

白頭俱絶域     백발의 몸으로 모두 절역에 있으니

靑眼且深尊     반가운 눈길로 큰 잔에 술을 마신다

畫角山樓逈     화각 소리에 산루는 아득하고

寒雲水國昏     찬 구름에 수국은 흐릿하여라

明朝各漂轉     내일 아침이면 저마다 떠나리니

愁絶更堪論     깊은 시름을 어이 차마 말하리오

 

 

客懷                객지에서 느끼는 쓸쓸함

 

絶岸斜陽盡     깎아지른 벼랑에는 석양이 지고

孤城畫角終     외로운 성에는 화각 소리 그치도다

密雲陰不雨     짙은 구름 어둑하고 비는 안 내리는데

喬木暮多風     높은 나무에는 저물녘 바람이 많아라

世事悠悠裏     세상사는 그저 하염없는 것

人生忽忽中     인생은 홀홀히 흘러가누나

向來江海志     종래에는 강해의 뜻 품었으니

歸夢水連空     고향 꿈길에 물은 하늘에 잇닿았다

 

 

建除體述懷                       건제체에 대해 술회를 풀어놓으며

 

建德豈吾土 幷州非故鄕     건덕이 어찌 나의 땅이겠는가? 병주는 고향이 아니라네

除此勿復念 念之令人傷     이 마음 없애고 다신 생각지 말자 생각하면 사람에게 속상하게 하니

滿酌金叵羅 浩歌情激昂     금파라에 가득 술 따라 호탕하게 노래 부르니 정이 격앙되네

平生請纓志 皎皎懷剛腸     평생 청영의 뜻 두었더니 강장에 품은 마음 환희 빛나네

定分不可逃 間關趨路傍     정해진 분수 피할 수 없어 험난함 겪으며 길가를 가노라

執殳免卒伍 飮瓢甘士常     창 잡던 졸개의 대오 면하고서 표주박물 마시는 것이 달디 단 선비의 떳떳함

破屋只容膝 生理餘藤床     부서진 집은 다만 무릎을 용납할 정도이고 살아갈 이치는 남은 등나무 평상

危時合隱淪 貴富安足望     위태로운 때 은둔하는 게 합당하니 부귀 어찌 족히 바라랴

成虧終一軌 萬古俱亡羊     성공과 실패 결국 하나이니 만고에 모두 같은 것이라네

收心養太和 方寸發天光     마음 거두어 조화로움 기르면 방촌에서 천광이 발하리

開卷對聖賢 永晝燒淸香     책 펴고 성현을 대하고 긴 낮엔 맑은 향기 태우네

閉戶了一生 勞枯都兩忘     문 닫고 일생 마치리니 영고성쇠 모두 잊어버리리

 

 

姑惡                       시어머니는 독해

 

姑惡姑惡                시어머니는 악독해라, 시어머니는 악독해라

姑不惡婦還惡         시어머니가 악한 것 아니라 며느리가 악하다네.

摻摻之手可縫裳     고운 손으로 치마를 꿰매고

桑葉滿筐滿箔         뽕잎은 광주리에 가득하게 누에는 잠박에 가득하게

但修婦道致姑樂     다만 며느리 덕을 닦아 시어머니 기쁘게 해야하는데

何須向人說姑惡     어찌 남들에게 시어머니만 나쁘다고 하는가

 

 

哭具金化喪柩于楊州之山中 因日暮留宿 天明出山     양주 산중에 김화 현감 구용의 관에서 곡하고 저물녘에 유숙하며 하늘이 밝자 산에서 나오다가

 

幽明相接杳無因     이승과 저승이 아득해 만날 길 없더니

一夢殷勤未是鎭     생사의 경계가 어찌 차분히 받아지겠는가

掩淚出山尋去路     눈물 닦으며 산을 나서 갈 길을 찾으니

曉鶯啼送獨歸人     새벽 꾀꼬리 울며 홀로 가는 사람 보내네

 

 

過松江墓有感        송강 묘를 지나며

 

空山木落雨蕭蕭     빈 산 나뭇잎 지고 비는 부슬부슬

相國風流此寂寥     재상의 풍류 이로부터 적막하여졌네

惆悵一杯難更進     슬프구나 한 잔 다시 올리기 어려우나

昔年歌曲卽今朝     옛 노랫가락은 곧 지금의 노랫가락이구나

 

 

過坡州 有懷牛溪    파주(坡州)를 지나며 우계(牛溪) 선생을 생각하다

 

跡屈世爭笑            자취 굽혔다 세상이 다투어 비웃지만

義高誰得知            의리 높은 것을 그 누가 알 수 있으랴

人心入于彼            인심은 저쪽으로 들어갔으나

天道至於斯            천도는 여기에 이르렀어라

寂寞溪堂路            적막하여라 계당의 길이여

凄涼山月詩            처량하여라 산월의 시여

秋風滿眼淚            가을바람에 눈물을 흘리노니

不獨爲吾私            나의 사사로운 정 때문만은 아닐세

 

 

觀禁獨酌         혼자 술 마시는 것 금하기

 

觀禁獨酌         혼술 금하라 하였는데

數日留連飮     수일 머물며 연달아 마셨네

今朝興又多     올 아침 흥 또 많네

卿言也復是     그대 말이야 다시 옳지만

奈此菊枝何     이 국화 가지가 마시게 하니 어찌하겠소

 

 

觀瀾亭                  관란정

 

踏石穿林一徑遙     돌 밟고 숲을 지나니(뚫어) 한 가닥 길 먼데

忽看危構勢矜驕     으스대는 듯이 높은 누각이 홀연 보여라

烟中樹色分回渚     안개 속 나무색은 굽이 도는 물가를 나누네

雨外帆風逐暮潮     빗줄기 너머 돛단배는 저녁 조수를 좇누나

二月鸎花渾滿地     이월이라 꾀꼬리꽃이 온통 땅에 가득하고

千峯蒼翠欲摩霄     천봉에 푸르른 빛은 하늘에 닿으려 하도다

主人飽受淸閑福     주인은 청한한 복을 실컷 받고 있나니

長把琴尊了夜朝     늘 거문고와 술병 가지고 밤낮을 보내누나

 

 

관반(館伴) 이오봉(李五峯) 호민(好閔) 상공이 주신 시에 삼가 차운하다

 

步屧乘淸曉     나막신 신고 맑은 새벽에 나서니

風欹鬢上紗     바람에 머리털 위 사모가 기우뚱해라

敲門看脩竹     문을 두드리며 긴 대나무를 보고

歸路踏殘花     돌아오는 길에 떨어진 꽃잎 밟는다

野店深春雨     들 객점에는 봄비가 흠뻑 내리고

江天薄暮霞     강 하늘에는 저녁노을이 엷어라

此時沖逸老     이러한 때에 충일로의

書札到貧家     서찰이 가난한 내 집에 이르렀다

 

 

驅車兒                  수레 모는 아이

 

三十四十猶總角     3~40살이어도 여전히 총각이겠지

有廬不居田不耕     오두막 있으나 거처하질 못하고 밭 있어도 갈지 못한 채

年年伐木在山谷     매년 나무 베느라 산골짜기에 있을 테니까

借問伐木何所用     묻노라 “나무 베어 어디에 쓰는고?”

長安城中起樓閣     서울 성안엔 누각이 세운다 하네

樓閣連雲山木盡     누각은 구름에 닿을 정도로 산의 나무 사라졌지만

官家催促無虛日     관가는 재촉하길 비는 날이 없다네

城南昨夜飛雨滑     성의 남쪽에 어젯밤 날리는 비에 미끄러워

陌上春泥深沒膝     길 위 봄 진흙의 깊이가 무릎을 빠뜨릴 정도였다네

竟日十步五步間     온종일 걸어봐야 10걸음 5걸음

牛飢無草兒不食     소는 굶주려도 풀 없고 아이도 먹질 못하지

兒不食尙可            아이가 먹지 못하는 건 오히려 괜찮다 해도

牛飢恐失足            소가 굶주려 발 빠질까 걱정되네

驅車兒兒有辭         소 모는 아이야 너한테도 할 말 있겠지

傍人問之亦悽惻     곁에 있는 사람이 그걸 물으니 또한 처량하고 측은하네

兒驅牛牛駕車         아이는 소를 몰고 소는 수레 몰아

牛蹄趵趵車轆轆     소의 발이 흔들흔들1 수레는 삐걱삐걱2

轆轆趵趵十餘歲     삐걱삐걱 흔들흔들한 지 십여 년인데

兒身無子牛無犢     아이는 자식이 없고 소는 송아지 없구나

一朝牛斃兒亦死     하루아침에 소가 죽고 아이도 죽는다면

官家何處施鞭朴     관가는 어느 곳에서 채찍질하려나?

願將此意叫天閽     이 뜻을 가지고 대궐3에 절규하여

及時下令除苦役     적시에 명령을 내려 고역을 덜어낸다면

兒但與牛相對眠     아이는 다만 소와 서로 대하고서 잠자고

日長村巷桑麻綠     해가 긴 시골엔 뽕나무와 삼만이 푸르길 원하네

 

 

宮柳詩                   궁궐에 핀 버들나무

 

宮柳靑靑花亂飛     궁궐의 버드나무 하늘하늘 어지러이 날리니

滿城冠蓋媚春暉     온 도성 내의 고관대작들이 임금님의 은혜라 아첨하는구나

朝家共賀升平樂     조정에선 태평성세의 즐거움이라 함께 치하하나

誰遣危言出布衣     누가 지조 있는 말을 포의에게서 나오게 했나

 

 

權汝章             허균이 권필에게 준 것

 

石洲天下士     석주는 천하의 선비였어

其才寔王佐     그 재주 참말로 왕을 보좌할

抱負不肯施     포부 베풀려 하지 않았어

甘爲窮谷餓     기꺼이 달게 궁핍한 계곡에서 굶주림이 되었어

爲詩透天竅     시로 하늘 구멍을 뚫었어

絶唱有誰和     그 누가 벽을 이루리

王孟合在後     왕유와 맹호연 합해도 뒤로

顏謝亦虛左     안연지와 사령운 역시 빈 좌측이네

戈鋋列電霜     창과 칼에 번개 서리 나열했고

珠玉霏咳唾     주옥같은 기침 가래가 마구 쏟아지누나

至今四十年     지금 40년

泥塗飽轗軻     질퍽한 진흙길에 불우하고 뜻대로 안 되는 것만 배불리 드셨구먼

平生膠漆義     평생 아교 칠 같은 의리

略我風塵過     나의 풍진(宦路, 塵世)에서의 잘못을 넘겨주었기에 가능했네

愈郊僅駏蛩     한유와 맹교 겨우 일러 거공이랄까

其敢曰兩大     어찌 감히 둘 다 위대하다 하겠는가

時逢隻字警     때로는 한 글자로 경계하기도 하고

心膽覺先破     간담이 서늘해짐을 먼저 깨닫네

素期在林泉     본래는 자연에서 함께하길 기약했는데

不決吾眞懦     결단 못 한 나는 참으로 겁쟁이

 

 

記夢                      꿈을 기록하다

 

夜夢靑童引我去     밤에 꿈속에서 푸른 동자가 나를 이끌어 가더니

忽到雲霞最深處     갑자기 구름 노을 가장 깊은 곳에 이르렀네

仙樂風飄自帝所     신선의 풍류가 황제가 있던 곳으로부터 바람결에 불어오고

玉樓十二高入天     옥루 12개가 높이의 하늘에 솟아 있었네

五色靄靄煙非煙     오색구름이 빼곡하게 껴 연기인 듯 연기가 아닌 듯하여

攝身飛上身飄然     몸을 집어 날게 하니 몸이 나부낀다네

金支翠蓋相後先     금지와 취개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左右環佩羅群仙     좌우엔 패옥을 두른 뭇 신선들이 벌려 서 있네

余乃長跪玉皇前     내가 이에 옥황상제 앞에 길이 무릎 꿇고

焚香敬受長生編     향을 사르며 공경히 장생편을 받고서

一讀可度三千年     한 번 읽으면 3000년이 지낼 만하다네

簷間語燕聲呢喃     처마 사이에는 말하는 제비의 소리가 재잘거리고

破牕透雨寒𩁺𩁺     깨진 창엔 비가 스며 차갑게 부슬부슬

招魂不復煩巫咸     넋 불러도 돌아오지 않고 무함(巫咸)만 번거롭고

此身兀兀仍世間     이 몸만 우뚝하게 세상 사이에 남았네

眼前萬事頭欲斑     눈앞 뭇 일에 머리가 어지러워지려 하니

幾時長往巢神山     어느 때에 길이 가서 신선의 산에 깃들꼬

 

 

記夢(기몽)                          꿈을 기록하다

 

夜歇葛院村(야헐갈원촌)     밤에 갈원촌에서 유숙했는데

鷄鳴逐羣動(계명축군동)     닭이 울자 만물이 부산하구나.

荒林十里陂(황림십리피)     황량한 숲속 십 리 비탈길 가며

駞褐冒寒霿(타갈모한몽)     허름한 털옷 입고 찬 서리 맞는다.

頹頹據鞍睡(퇴퇴거안수)     한가로이 안장에 앉아 졸았나니

歷歷還家夢(역력환가몽)     집에 돌아가는 꿈이 역력하여라.

斑衣上北堂(반의상북당)     색동옷 입고 북당에 올라가

侍立雙手拱(시립쌍수공)     공손히 손 모으고 어머님 모셨지.

山妻語音好(산처어음호)     수수한 아내는 좋은 말 건네며

春螘方浮瓮(춘의방부옹)     막 익은 술을 동이로 내오네.

小女始扶床(소녀시부상)     어린 딸은 이제 상을 잡고 서는데

婭奼極可弄(아타극가롱)     재롱 부리는 게 너무도 귀여워라.

中堂鋪綺席(중당포기석)     중당에다 고운 비단 방석 깔고

棣萼羅伯仲(체악나백중)     우리 형제가 함께 나열해 앉는다.

雕觴湛琥珀(조상담호박)     조각한 호박 술잔은 맑은 빛이고

畫燭生螮蝀(화촉생체동)     고운 촛불에는 무지개가 이는 듯하네.

簪纓雜諧笑(잠영잡해소)     벼슬아치들이 뒤섞여 담소하고

粉黛多迅衆(분대다신중)     기생들은 출중한 미색이 많구나.

孰知一餉間(숙지일향간)     뉘라서 알리오 한 식경 사이에

喜事紛總總(희사분총총)     즐거운 일들이 분분히 많구나.

耳邊溪水急(이변계수급)     귓가에 급한 시냇물 소리 들리고

逸響風吹送(일향풍취송)     좋은 음향을 바람이 불어 보내네.

形開境忽移(형개경홀이)     잠에서 깨어 눈앞의 광경 바뀌자

行色方倥傯(행색방공총)     이내 행색 바야흐로 몹시 바쁘구나.

浮生百年內(부생백년내)     덧없는 우리 인생 백 년 안에

生死等蠛蠓(생사등멸몽)     살고 죽음이 하루살이와 같구나.

覺夢豈兩般(각몽기량반)     생시와 꿈이 어찌 두 갈래일까?

悲歡本一種(비환본일종)     슬픔과 기쁨이 본래 하나인 것이네.

不能自解脫(불능자해탈)     스스로 굴레에서 해탈하지 못하니

更覺塵緣重(경각진연중)     속세 인연이 무거움을 더욱 깨닫겠네.

攬轡三歎息(남비삼탄식)     이에 고삐 잡고 세 번 탄식하니

林端初日湧(임단초일용)     저 숲 위로 아침 해가 막 솟는구나

 

 

寄呈二梧亭主人     이오정(二梧亭) 주인에게 부쳐 드리다

 

處世享淸福           세상에서 청복을 누리기로는

主人眞少儔           주인은 참으로 그 짝이 드물어라

傾家買絶境           가산을 기울여 절경의 땅을 사

卜宅近滄洲           맑은 물가 근처에 집을 지었지

院靜桐陰夕           고요한 뜰엔 저물녘 오동나무 그늘

池涼荷氣秋           서늘한 못에는 가을 연꽃 기운

鳴琴與斟酒           거문고 울리고 술을 따르니

無事不風流           무슨 일이고 풍류 아닌 것 없어라

 

 

南山讌集歸路有作     남산(南山)에서 연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짓다

 

十里煙花春近遠         십 리 길에 꽃 경치 봄은 원근에 왔나니

一樽香碧玉東西         한 동이 향긋한 술은 옥동서에 따랐어라

歸時月出重城閉         돌아올 때 달은 뜨고 겹겹 성은 닫혔는데

燈火千家路欲迷         집집마다 등잔 불빛에 자칫 길을 잃겠어라

 

 

轆轤詩                    녹로시(詩)

 

滿園鬪艶不勝嬌     정원에 가득히 아름다움 다투어 교태를 못 이겨

羅綺叢中綠扇搖     비단 펼치고 풀떨기 속에서 푸른 부채 흔드는 듯

麗共韶光三月好     고운 빛 함께 하여 춘 삼월처럼 좋은데

紅薔薇映碧芭蕉     붉은 장밋빛 푸른 파초에 비치는구나

 

 

大風 用玄翁韻     대풍(大風) 현옹의 시운을 사용하다.

 

萬里塵沙漲     만 리에 먼지 모래가 일어나고

千山鳥獸號     천산에 새와 짐승이 울부짖는다

江河飜地脈     강하에는 지맥이 뒤집혀지고

林谷吼天牢     임곡에는 천뢰가 울려 퍼지네

向晩聲初壯     저물녘에 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더니

中宵勢益高     한밤에는 형세가 더욱 거세어지누나

幽人坐深室     유인은 깊은 방 안에 앉아서

不寐聽松濤     잠 못 이루고 송도 소리를 듣는다

 

 

悼亡寄示李正郞子敏                         죽은 이를 애도하며 정랑 이자민에게 부치어 보이다

 

親知零落已無存(친지영락이무존)     친구들 다 죽어 이제 아무도 없으니

萬事人間只斷魂(만사인간지단혼)     인간 만사 오직 애끊는 고통뿐이로구나

爲問如今風雨夜(위문여금풍우야)     묻노니, 오늘같이 비바람 치는 밤

也應重夢具綾原(야응중몽구릉원)     반드시 구능원의 꿈을 다시 꾸겠지요

 

 

途中               길 가다가

 

日入投孤店     해가 져 외딴 주막에 투숙하니

山深不掩扉     산 깊어 사립문도 닫질 않네

鷄鳴問前路     닭 울자 앞길 물으니

黃葉向人飛     누런 잎사귀만 나를 향해 날아오네

 

 

途中               길 가다가

 

暮經潺水驛     저녁에 잔수역을 지나고

宵越宿星山     밤에는 숙성산을 넘었노라

自分長辛苦     늘 신고를 겪는 건 나의 분수

那辭此險艱     이 험난한 길을 어이 사양하랴

澗寒氷折骨     시내는 차가워 얼음이 뼈를 꺾는 듯

風緊雪吹顔     바람은 세차서 눈발은 얼굴을 때린다

更想吾廬好     다시금 생각노니 내 집이 좋아라

爐薰晝掩關     화로 피우고 낮에도 문 닫고 있었지

 

 

途中遇小雨 宿天燈村     도중에 가랑비를 만나 천등촌에 유숙하다

 

朝來暑氣忽凄淸     아침 되자 더운 기운은 홀연 서늘해지고

小雨冥濛滿去程     가랑비 내려가는 길 온통 흐릿하여라

着霧始憐纔有色     안개 끼니 비로소 색채 띠는 게 예쁘고

入林還覺細無聲     숲에 드니 도리어 빗줄기 가늘어 소리 없어라

簷間語燕應愁濕     처마 사이 지저귀는 제비는 몸 젖을까 걱정하고

葉底鳴鳩末喚晴     잎새 아래 우는 비둘기는 맑은 날씨 못 부른다

夜宿田家聞喜語     날 저물어 농가에 유숙하며 기뻐 얘기하는 소리 듣노니

不知行客怯晨征     길손 새벽길 나서길 겁내는 줄 모르네

 

 

讀杜詩遇題            두시(杜詩)를 읽다가 우연히 짓다

 

杜甫文章世所宗     두보의 문장은 세상 높이 받드나니

一回披讀一開胸     펼쳐 읽을 때마다 가슴이 열리도다

神飆習習生陰壑     신령한 바람 서늘하니 골짝에서 이는 듯

天樂嘈嘈發古鐘     하늘의 음악 요란하게 고종에서 나오는 듯

雲盡碧空橫快鶻     구름 걷힌 푸른 허공 송골매 힘차게 나는 듯

月明滄海戲群龍     달빛 밝은 푸른 바다에 뭇 용들이 장난을 치는 듯

依然步入仙山路     그대로 걸어 신선 사는 산에 들어가서

領略千峯更萬峯     천 봉우리 구경하니 다시 또 만 봉우리 있는 것 같구나

 

 

讀書有感               주자(周子)의 《통서(通書)》와 소자(邵子)의 관물편(觀物篇)을 읽고 느낌이 있어 짓다

 

禮門仁宅久榛蕪     예문과 인택이 황폐해진 지 오래다가

千載歸來得大儒     천년 이후에야 대유가 나타났으니

霽月光風周茂叔     제월광풍은 주무숙이요

天心水面邵堯夫     천심수면은 소요부라

當時獨解先天學     당시에 홀로 선천학을 알았고

後世空傳太極圖     후세에 공연히 태극도를 전한다

小子秪今迷所向     소자는 지금 가야 할 방향을 모른 채

茫茫歧路泣楊朱     아득한 기로에 서서 양주의 눈물 흘리네

 

 

獨酌有詩 三首     홀로 술을 마시며 시를 짓다 3수

 

春雨細如霧     봄비가 안개처럼 내리니

好花開滿枝     예쁜 꽃 가지에 가득 피었네

忽忽感時物     홀연히 앉아 계절을 즐기며

濁酒聊自私     탁주 홀로 마시네

竟日臥南榮     종일 남쪽 창가에 누워 있으니

擧目多好詩     눈을 뜨면 좋은 시가 많네

人生貴適意     인생은 귀하고 뜻있는 것

局束欲何爲     쪼잔하게 살아 무엇 하겠는가

寄語同心子     마음 맞는 이에게 말하길

莫孤林下期     숲에 살자던 약속 버리지 마소

百年任醒醉     평생 취하건 깨건 상관없으니

人知我是誰     남들은 나를 어떤 사람으로 알까

 

少也待佳節     소싯적에는 명절 오길 기다리며

長恨日月遲     늘 일월이 더디 간다 원망했는데

及壯念衰老     장성해서는 노쇠할까 염려하여

坐嘆年光馳     세월이 빠르다고 앉아서 한탄한다

努力愛紅顔     부디 노력해 홍안 시절 아껴서

莫忘歡樂時     즐겁게 놀 때를 잊지 마시라

眼前不自覺     눈앞에선 깨닫지 못하다가

後來徒自悲     후일에 가서 스스로 슬퍼지게 되지

孰云貴賤殊     그 누가 귀천이 다르다 하였는가

貴賤皆若斯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가 이 같은 것을

但願百年內     그저 원하느니 백 년 평생 안에

有酒勤相持     술 있으면 부지런히 서로 권하자오

 

昨日盡日風     어제 진종일 바람이 불더니

今日盡日雨     오늘은 진종일 비가 내리누나

天道豈無意     하늘이 하는 일 어찌 뜻 없으랴

陰晴自有數     흐림도 맑음도 본래 정해진 운수

幽人念時節     유인은 시절의 변화를 생각하며

擁褐開北戶     허름한 옷 두르고 북쪽 문을 여니

曖曖近村烟     가까운 마을 연기는 아른거리고

蒼蒼遠湖樹     먼 호수의 나무는 푸릇하구나

所懷不在此     이내 생각은 여기에 있지 않으니

閑情向誰吐     한가한 정을 누구에게 말할거나

幸有一樽酒     다행히 한병의 술이 있어

可以慰遲暮     세모의 적적함을 달랠 만해라

書詩記朝夕     지은 시를 아침저녁 기억하지만

不是要佳句     좋은 시구를 얻고자 함은 아닐세

 

 

讀杜詩偶題            두보 시 읽다 우연히 지음

 

杜甫文章世所宗     두보 문장 세상의 으뜸이로다

一回披讀一開胸     한번 읽고 나면 가슴이 뻥 뚫려

神飆習習生陰壑     그늘진 골짜기에 신령스런 바람 일고

天樂嘈嘈發古鐘     예스런 쇠북에서 하늘 풍류 울리는구나

雲盡碧空橫快鶻     구름 다한 푸른 하늘엔 비스듬히 횡으로 빨리 나는 독수리

月明滄海戲群龍     푸른 바다 맑은 달에 뭇 용들 노니네

依然步立仙山路     의연히 걷다가 신선 사는 산길에 섰다

領略千峯更萬峯     대략 천 봉우리 거느렸나 했는데 다시 만개 봉우리

 

 

龍灣 逢仲氏                      의주에서 둘째 형을 만나고서

 

京口分離後 音書久杳茫     한양 입구에서 헤어진 후에 소식 오래도록 아득했지

相思今幾月 茲會却殊方     서로 생각한지 이제 몇 달인가? 도리어 낯선 땅에서 만났네

雪裏生春色 天涯似故鄕     눈 속에 봄빛 생겨나 하늘가는 고향 같지만

仍懷倚門望 喜極輒悲傷     문에 기대 바라볼 어머니 생각에 기쁨 다하여 갑자기 서글퍼지네

 

六月初吉夜夢 入空宅     6월 초 길한 밤 꿈에 빈집으로 들어가니

夕雨霏霏 落葉滿庭        저녁 비 부슬부슬 내려 낙엽이 뜰에 가득해서

如有怨別傷時之感         이별을 원망하고 때를 속상해하는 느낌이 있는 듯했다

口占一絶 覺而記之        입으로 한 절구를 읊조리다가 깨어나 그것을 기록했다

 

空村寂寞掩柴扉     빈 마을 적막해서 사립문 닫아걸고

滯臥殊方故舊稀     타지방에 체류해서 옛 친구도 적다네

送盡夕陽人不到     석양이 다지나도록 사람 이르질 않는데

滿庭紅葉雨霏霏     뜰 가득 붉은 잎에 비만 부슬부슬

 

 

摩尼山                   마니산

 

摩尼山高高揷天     마니산 높고 높아 하늘을 꽂네

上有瑤臺遊羽仙     위로 옥 누대 있고 신선들 노닐며 날것지

溪花笑日知幾重     냇가 꽃 해를 향해 웃고 몇 겹임을 알것네

澗松閱世皆千年     물 골짜기 소나무 세월 천년임이 보여

危峯拔地氣勢雄     가파른 봉우리 땅을 뽑아 땅의 기세 웅장하구나

絶頂四月多寒風     젤 꼭대긴 사월인데 찬 바람 많구나

西南軒豁眼力窮     서쪽과 남쪽 바다는 넓게 틔어 끝이 보이지 않네

碧海萬里涵靑空     푸른 바다 만리 푸른 하늘을 담았네

玉京去此不盈尺     화려한 서울 거리 거기선 지척을 못 채우것지

想聞仙珮鳴玲瓏     신선들이 오가며 울리는 맑은 패옥소리가 들리는 것을 생각하니

琳宮駕虛鐵鳳騰     신선들의 궁궐은 허공을 올라타고 쇠 봉황 치미는 하늘을 뛰어오르겠지

萬壑嵐翠連觚稜     골짜기마다 피어오른 푸른 안개가 지붕 추녀마루에 닿았겠지

晩歸蒲團聞妙香     저녁에 내려와 전등사 방석에 앉아 부처님 법문을 들으니

客塵滅盡神魂凝     나그네 속세 먼지 싹 다 사라지고 정신의 혼 뭉쳐지네

山光雲影繞箱箔     마니산 풍경과 흰 구름이 떠나는 수레를 둘러감는구나

數聲啼鳥留歸客     지저귀는 새들도 떠나는 손님을 붙잡네

向來人事易變改     예로부터 사람 일 쉬 바뀐다네

浮世光陰幾明晦     뜬구름같은 세상 시간 세월 몇 번이나 밝고 어두울까

昨日飛綏拖玉者     옛날에 높은 관직에 올라 갓끈을 날리고 패옥을 늘어뜨렸던 사람들은

今日曾無一人在     지금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모두 떠났네

萬古消沈忽忽間     만고에 사라지고 가라앉음이 홀연 잠간 사이인데

吾生一粟浮滄海     내 생 푸른 바다에 떠 있는 좁쌀 한 알

方丈聞名徒怳惚     공력 높은 스님이 되어 이름을 날려도 모두 잠깐에 지나지 않고

玄圃尋河費時節     신선이 되어 주천(周天)의 하거(河車)를 운행하자니 긴 세월을 보내야겠지

不如卜宅近前峯     차라리 마니산 가까운 봉우리 앞에 집을 짓고

依止老宿求法說     전등사 늙은 스님을 찾아가 설법을 듣는 게 낫겠네

出門一笑歸路遙     전등사 문을 나서니 돌아갈 길이 멀더라도 우습구나

水樹微茫綠如髮     세상일을 생각하니 봄 버드나무들은 옅은 푸른 잎들을 머리카락처럼 늘어뜨렸네

夜來陳迹已空虛     밤새 전등사에서 깨달았던 생각들은 벌써 흘러가서 아예 없어졌고

茅簷祗對山中       다만 초가집에 앉아 마니산에 떠오른 부처님의 둥근 달을 바라볼 뿐이다

 

 

滿月臺                   만월대

 

登臨忽覺意悽悽     대에 오르니 홀연 마음이 처연해져

興廢人間事不齊     인간 세상 흥망성쇠 고르지 않구나

宮樹有霜秋葉落     나무에 서리 내리니 가을 잎 떨어지고

土城無堞暮雲低     토성에 성가퀴 없는데 저녁 구름 나직해

可憐螭陛成樵路     가련해라 궁궐 섬돌 나무꾼 길 되었으니

誰遣龍池作稻畦     그 누가 궁중 연못 벼논으로 만들었나

此地繁華君莫問     이곳의 번화하던 시절 그대 묻지 마오

只今唯見夜烏啼     지금 보이는 건 밤에 우는 까마귀뿐

 

 

漫題                마음대로 적다

 

卜地依淸澗     맑은 시냇가에 집을 지으니

開軒對小塘     헌함 앞에 작은 지당 있어라

窓虛山入座     창이 텅 비니 산이 자리에 들고

簷短雨侵牀     처마 짧으니 비가 침상에 들이친다

得意乾坤闊     득의한 삶이라 건곤은 드넓고

無營日月長     경영하는 일 없어 일월이 길어라

唯餘詩酒習     오직 남았느니 시주의 습관만

老去益顚狂     늙어갈수록 더욱 광태를 보인다

 

 

梅花                                  매화

 

梅                                      매

梅                                      매화

氷骨                                  얼음 뼈

玉腮                                  옥 같은 뺨

臘將盡                               섣달이 다 가고

春欲廻                               봄이 오려 하는데

北陸未暖                           북쪽은 아직 춥건만

南枝忽開                           남쪽 가지 벌써 피었네

烟朝光掩淡                        아침엔 안개가 빛 가리고

月夕影徘徊                        저녁엔 달그림자 배회하네

冷蘂斜侵竹塢                    차가운 꽃술 대숲은 넘나들고

暗香飛入金罍                    그윽한 향기 금 술잔에 스며드네

始憐的皪凌殘雪                흰 꽃잎 추위에 떠는 모습 안쓰럽고

更惜飄颻點綠苔                바람에 날려 이끼에 지니 애석하구나

從知勁節可比淸士             굳은 절개 맑은 선비에 견줄 만함 알겠고

若語高摽豈是凡才             드높은 기개는 어찌 뭇 사람에게 비유하랴

愛幽獨尙容詩人看去         홀로 있기 좋아서 시인이 오는 것은 용납하지만

厭喧鬧不許狂蝶尋來         드러남을 싫어하여 미친 나비 찾아옴은 허락지 않네

試問登廟廊而調鼎鼐者      묻노라 묘당에 올라 정사를 맡아 권세를 누리는 것이

何似西湖之上孤山之隈      어찌 임포가 놀던 서호의 귀 고산의 구석만 하겠는가

 

 

沔陽 示李子敏       면양(沔陽)에서 자민(子敏) 이안눌(李安訥)에게 보이다

 

雪深虛館不勝寒     눈 쌓인 빈 객관 추위 이길 수 없는데

慚愧情人數往還     자주 와 보는 다정한 그대에게 부끄럽다

末路困窮唯我獨     말로에 곤궁한 신세는 나 뿐이고

丈夫軒輊似君難     장부의 드높은 기개 그대 같기 어려워

孤燈說舊夢中夢     외로운 등잔 아래 옛 얘기는 꿈속의 꿈

落日望鄕山上山     지는 석양에 고향 바라보니 산 위의 산

聞道驛梅春欲動     듣건대 역매가 봄에 꽃 피우려 한다니

可能交轡向長安     말고삐 나란히 장안으로 갈 수 있겠소

 

 

募歸                       저녁에 돌아오며

 

夕日已入羣動息     석양은 서산에 지고 사방은 고요할 제

烟沙露草迷荒原     안개 낀 모래톱 이슬 젖은 풀에 들판은 황량해

虎嘯陰壑夜風烈     범은 어둔 골짝에서 울어 밤바람 세차고

狐鳴空林秋月昏     여우는 빈 숲에 우는데 가을 달 흐릿해

流螢閃閃疑鬼火     반딧불 반짝 나는 것은 귀신불인 듯

老樹曖曖知山村     고목 아련히 보이니 산촌인 줄 알겠네

家僮出迎把兩炬     가동이 두 자루 횃불 들고 마중 나오니

枝間寒雀驚飛翻     나뭇가지 사이 참새들 놀라 날아가네

 

 

夢得一小冊 乃金德齡詩集也 其首一篇曰醉時歌 余三復得之 其詞曰  꿈에 작은 책자 하나를 얻으니 바로 김덕령(金德齡)의 시집이라 그 중 첫 편이 <취시가(醉時歌)였는데 세 번 읽고서야 그 뜻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 내용은

 

醉時歌此曲無人聞            취시가여 이 곡조 아무도 들은 이 없다네 아는 사람이 없다네

我不要醉花月                   나는 꽃과 달에 취하려 하지 않으며

我不要樹功勳                   공훈도 세우려 하지 않노라

樹功勳也是浮雲                공훈을 세움도 뜬구름이고

醉花月也是浮雲                꽃과 달에 취함도 뜬구름이네

醉時歌無人知我心            취시가여 내 마음 알아주는 이 없어라

只願長劍奉明君                단지 장검 차고 명군(明君)을 받들었으면 하네

旣覺悵然悲之 爲作一絶    꿈에서 깨어난 뒤에 서글프게 여겨 다음의 시 한 수를 읊는다

 

將軍昔日把金戈     장군은 예전에 병기를 잡았는데

壯志中摧奈命何     장한 뜻 중도에 꺾이니 천명을 어찌하랴

地下英靈無限恨     지하의 영령 끝없는 한(恨)

分明一曲醉時歌     취시가 한 곡조에 역력하네

 

 

無題                       무제

 

江潭芳草綠萋萋     강의 방초는 푸르고 우거져

別恨撩人路欲迷     이별의 한이 사람을 부추겨 길에서 헤매게 하네

想得洞房春寂寞     생각해보니 잠자던 방의 봄은 적막했고

杏花零落子規啼     살구꽃 지자 소쩍새 울었지

 

 

訪神光寺途中作 入寺 示李德餘     신광사를 찾아가는 도중에 지어서 절에 들어가 이덕여에게 보이다

 

騎驢向山寺     ​나귀를 타고서 산사로 가노라니

落日古城西     옛 성 서쪽으로 석양이 지는구나

怪石斜侵逕     괴이한 바위는 삐죽이 길을 침노하고

危橋仄渡溪     위태한 다리는 비스듬히 시내에 걸쳤네

洞深人未到     골짜기는 깊어 사람이 오지 않고

林暝鳥初栖     숲은 어둑해 새가 막 둥지에 깃든다

更覺諸天近     제천에 가까움을 다시금 깨닫노니

伽陵逼耳啼     가릉이 바로 귓가에서 우는구나

 

 

題邊秀才慶胤南華經後 수재(秀才)     변경윤(邊慶胤)의 남화경(南華經) 뒤에 적어 주다

 

道本無始終     도는 본래 시종이 없는 법

物豈有生死     사물인들 어찌 생사가 있으랴

適來適去間     우연히 왔다가 우연히 가느니

何者主張是     그 누가 이것을 주관하는가

鼠肝卽鼠肝     쥐의 간은 그저 쥐의 간이요

蟲臂卽蟲臂     벌레의 팔은 그저 벌레의 팔

何爲何不爲     무엇은 되고 무엇은 되지 않으랴

待彼而已矣     그저 조물주의 처분을 기다릴 뿐

 

 

別顧天使(天峻) 代遠接使作     고 천사(천준)에게 증별하다가 원접사를 대신하여 짓다

 

江頭細柳綠烟絲     강가의 실버들 가닥가닥 푸르러

暫住蘭撓折一枝     잠시 목란배를 멈추고 한 가지 꺾네

別語在心徒脈脈     이별의 말은 맘에 둔 채 한갓 그저 바라만 보며

離杯到手故遲遲     이별의 술잔 손에 이르자 일부러 머뭇머뭇

死前祗是相思日     죽기 전엔 다만 그대를 그리워할 날뿐이리니

送後那堪獨去時     보낸 후에 어찌 홀로 떠나는 걸 감당하려나

莫道音容便長隔     목소리와 얼굴 곧 길게 떨어진다고 말하지 마오

百年還有夢中期     한평생 도리어 꿈속 기약 있을 테니

 

 

別子敏 用次韻       자민(子敏)과 이별하며 앞의 운자를 사용하다

 

臥病殊方歲已闌     타향에 병들어 누웠고 한 해 저무는데

可堪今夕送君還     오늘 밤 그대 보내는 것 어이 견디리

人生到此分離苦     인생이 이에 이르니 이별이 괴로운 일

塵世從前會合難     진세는 종전부터 만나기가 어려웠어라

日下故園千里夢     해 아래 고향은 천 리 밖 꿈속이요

天涯歸路萬重山     천애 먼 귀로에는 만 겹의 산이로세

秦中舊侶如相問     진중의 옛 친구가 내 소식 묻거든

終作遼東管幼安     마침내 요동의 관유안이 되었다 하오

 

 

白蓮寺夜坐書懷     백련사에 앉아 회포를 쓰다

 

院靜僧初定            절은 고요해 중은 막 선정에 들고

山晴月更多            산은 맑으니 달빛이 더욱 많아라

踈螢依亂草            성근 개똥벌레 어지러운 풀에 붙었고

暗鳥集深柯            어둑한 새는 깊은 가지에 모였어라

壯志餘孤釰            장한 뜻은 외로운 검에 남겨두고

窮愁且短歌            궁핍한 우수 근심에 단가를 부르네

京華有兄弟            서울에 형제들이 있지만

消息定如何            소식이 어떠한지 궁금하기만 하네

 

 

飜俗傳紙鳶歌        민간에 전하는 ‘종이 연’ 노래를 번역함

 

我家諸厄爾帶去     우리 집 모든 재앙을 네가 몽땅 싣고 가서

不落人家掛野樹     남의 집에 앉지 말고 들 나무에 걸렸다가

只應春天風雨時     봄이 와 바람 불고 비가 내릴 그때쯤엔

自然消滅無尋處     찾아도 찾을 수 없게 확 사라져 버리거라

 

 

病中幽懷               병중의 유회(幽懷)

 

春來伏枕動經旬     봄 들어 침상 누운 지 열흘이 넘어

藥餌扶吾備苦辛     약물로 지탱하느라 갖은 신고 겪는다

晨旭入簷禽語好     아침 햇살 처마에 드니 새소리가 좋고

午風吹樹雨聲新     한낮의 바람 나무에 부니 빗소리 새로워

書空咄咄憐浮世     허공에 돌돌 쓰니 덧없는 세상 가련해

合眼依依夢故人     눈 감으면 어른어른 꿈에 뵈는 친구들

誰識病中危得道     뉘 알리오 위태한 때 도를 얻는 줄을

此心隨處露天眞     이 마음 곳곳에 천진한 본성 드러낸다

 

 

病中幽懷        병을 앓고 있는 동안에 감회가 일어

 

偶嬰漳水疾     우연히 풍토 때문에 병이 걸려

鬱鬱度晨昏     울울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노라

今朝試脚力     오늘 아침엔 한 번 걸어 보려고

杖策登西園     지팡이 짚고서 서원에 오르니

春光欲淡沱     봄빛은 맑고 깨끗해져 가며

日色和且溫     햇살은 부드럽고 따스하여라

羃地芳草積     땅에는 두루 방초가 덮였고

滿林幽鳥喧     숲에는 가득 새들이 우는구나

觸物已生感     사물을 보면 슬픔이 이나니

好懷寧復論     좋은 심정을 어찌 다시 말하리오

蜘蛛網詩篋     거미는 시 상자에 줄을 쳤고

塵土生酒尊     술 단지는 비어 먼지가 인다

平生放浪意     평생에 호방하게 놀던 기상이

消落無餘存     다 사라지고 남은 게 없어라

因思浿水上     이에 회상하노니 패수 가에서

千古勝事繁     천고에 좋은 모임이 많았었지

靑山麟馬窟     청산에는 기린굴이 있고

明月大同門     명월은 대동문에 비추었지

歷歷舊遊地     옛날 노닐던 곳이 역력하니

悠悠勞夢魂     이내 그리움은 하염없어라

惜哉不得往     애석하여라 가보지 못하니

泯默更何言     침묵할 뿐 무슨 말을 하리오

 

 

附次韻                   차운(次韻)한 시를 첨부하다

 

惜別燈前語夜闌     등잔 앞에 석별의 정 나누며 밤늦도록 얘기하노니

故都千里一身還     그리운 도성 천 리 먼 곳을 일신으로 돌아가노라

同憂已是兼衰疾     근심 같이해 이미 쇠병을 겸하였지만

相呴誰能救急難     서로 보살펴 그 누가 급난을 구제하랴

交道唯吾淡若水     교우의 도는 내가 물처럼 담담한데

人情乃爾陰於山     사람들의 정은 이렇게 산보다 음험하여라

何當共作潯陽隱     그 언제나 함께 심양에서 은거하여

容膝蝸廬占易安     무릎이나 들어갈 작은 집에서 편안히 살꼬

 

古林風叫夕陽寒     옛 숲에 바람 불고 석양은 차가운데

烟外雙雙宿鳥還     안개 저편 쌍쌍이 보금자리 찾는 새들

聖世只今戎馬亂     성세인 때에 융마의 전란 일어났으니

故人於此別離難     벗님과 이곳에서 이별하기 어렵구나

孤舟泛泛天連海     외로운 배 떠날제 하늘 바다 잇닿았고

匹馬遲遲雪滿山     한 필의 말 느릿한데 눈은 산에 가득

惆悵水雲相望處     슬퍼라 수운 저편 서로 바라보는 곳에

定應無使報平安     틀림없이 안부 알리지 말라고 하겠지

 

 

삼가 탄은(灘隱)에게 주다 종실인 석양정(石陽正)으로 묵죽(墨竹) 그림이 당대에 으뜸이다.

 

翩翩佳公子     편편한 풍모의 좋은 공자여

標致逈絶代     풍채가 당대에 우뚝이 빼어났어라

超然厭濁世     성품이 초연해 혼탁한 세상 싫어하고

遐擧謝流輩     고상하게 살며 속된 무리 멀리했어라

胸中千畝竹     가슴속에는 천 이랑의 대가 있어

歲寒常不改     세한에도 늘 푸르름 변치 않도다

平生三昧手     평소 삼매에 든 뛰어난 솜씨라

自有能事在     절로 훌륭한 그림을 그려내지

融心造化屈     마음이 무르녹으매 조화가 굽히고

用意烟霞外     의사를 쓰는 것은 연하 저편이어라

方將下筆時     바야흐로 붓으로 그리려 할 때엔

神與境俱會     정신과 경계가 서로 합일하여

須臾風動壁     잠깐 사이에 바람이 벽에 불면

爽氣欲生籟     시원한 기운에 대 소리 이는 듯

向來文湖州     예전에 대를 잘 그린 문 호주도

更覺才力退     오히려 이보다 재주가 부족하지

不惜傳世人     세인에 전해지는 건 아깝지 않으나

但恐泣眞宰     다만 진재가 울까 그게 걱정이로세

遺我以醉墨     나에게 이렇게 취묵을 주시니

行李頓生彩     이내 가는 길 몹시 빛이 난다오

他年開展處     후일 이 그림을 펼쳐 볼 때면

眉宇宛相對     흡사 그대 얼굴 보는 듯하겠지

勉率留詩章     마지못해 시를 지어 드리지만

拙語無足採     서툰 솜씨라 보실 게 없으리라

 

 

嬋娟洞                   선연동에서

 

年年春色到荒墳     해마다 봄빛이 황량한 무덤에 찾아오면

花似新粧草似裙     꽃은 남은 화장인 듯 풀은 치마인 듯

無限芳魂飛不散     무한한 꽃다운 넋들이 흩어지지 않아서

至今爲雨更爲雲     다만 지금은 비가 되었다가 다시 구름이 되었다가

 

 

城山過具容故宅     성산에서 구용의 옛집을 지나며

 

城山南畔是君家     성남의 남쪽 언덕 이곳이 그대 집이지

小巷依依一逕斜     작은 마을 어렴풋하게 하나의 길이 갈라지네

浮世十年人事變     뜬 삶 10년에 사람의 일은 변했지만

春來空發滿山花     봄이 와 부질없이 산의 꽃만 만발했네

 

春陰漠漠向黃昏     봄 그늘 어둑어둑 석양을 향하니

空巷無人雀自喧     빈 거리엔 사람 없어 까치만 절로 우짖네

獨有山陽舊儔侶     홀로 산양의 옛 벗이 있어

不聞隣笛也消魂     이웃집 젓대소리 듣지 않아도 혼을 시름겹게 하는구나

 

 

松棚                소나무 시렁 선반 사다리

 

小屋茅簷短     작은 초가 띠집 처마도 짧네

偏愁溽暑侵     다만 걱정은 여름 찌는 더위에 젖을까

聊憑歲寒葉     애오라지 기대는 건 세한의 이파리(서늘한 솔잎으로 햇살을 가려)

偸得午時陰     한낮 그늘 훔쳐 얻었네

露曉看瓔珞     새벽이슬 목걸이로 보이네

風宵聽瑟琴     밤바람은 거문고 소리로 들리네

却憐卿相宅     정승 집 도리어 가련해보여

徙倚盡堂深     옮겨 기대는 곳 모두 집이 깊네

 

 

송로당(送老堂)에 제하다. 행촌 주은(杏村酒隱)을 위해 지었다.

 

此老今誰似     이 어른만 한 이 지금 누가 있으랴

能知養拙尊     양졸이 존귀한 줄을 능히 알았도다

行藏桃竹杖     행장은 도죽장 지팡이요

身世杏花村     신세는 행화촌 마을이로세

地僻山圍屋     땅이 외져 산이 집을 에워쌌고

沙虛水到門     백사장은 비어 물이 문에 이른다

茲焉可卒歲     이곳에서 세월을 보낼 만하니

餘事任乾坤     나머지는 건곤에 맡겨 두노라

 

 

水宿風餐                물에서 자고 바람을 밥으로 먹다

 

故知天意薄浮生     그리하여 알았네 하늘의 뜻이 각박하고 뜬구름 같은 생임을

險阻艱難實飽更     험한 방해 간난 실로 배불리 드셨구먼

萬事升除都外物     만사 오르게 하고 없애봐야(헤아려 봄) 모두 외물이로다

一身譽毁摠虛名     일신의 명예 훼손 모두가 허명이로세

 

 

數詩夜坐詠懷(수시야좌영회)     시 몇 편으로 밤에 앉아 회포를 읊음

 

一尊對明月(일존대명월)     한병의 술 놓고 밝은 달 마주하여

獨酌還獨謠(독작환독요)     홀로 자작하고 또 홀로 읊조린다

二儀自高下(이의자고하)     천지는 절로 높고 낮은데

星河光動搖(성하광동요)     은하수 별빛은 일렁이누나

三更萬籟寂(삼경만뢰적)     삼경 만물 소리 적막한데

忽覺超塵囂(홀각초진효)     문득 시끄러운 속진을 벗어난 듯

四顧但茫然(사고단망연)     사방을 돌아봐도 그저 망연하고

江海何迢迢(강해하초초)     강과 바다는 얼마나 먼지

五年別故國(오년별고국)     다섯 해 동안 고향을 떠났더니

身似秋蓬飄(신사추봉표)     이내 몸은 정처 없는 가을 쑥대

六韜抱奇策(육도포기책)     육도삼략 기이한 계책을 품었건만

奈此雙鬢凋(나차쌍빈조)     머리털이 세었으매 어이하리오

七尺土木骸(칠척토목해)     이 칠 척의 토목과 같은 몸뚱이

秪合歸漁樵(지합귀어초)     어부나 나무꾼 노릇이 제격이지

八荒盡征戍(팔황진정수)     온 세상이 죄다 전란의 와중이니

何地着簞瓢(하지착단표)     그 어느 땅에 단표(가난한 생활)를 붙일거나

九關守虎豹(구관수호표)     아홉 겹 관문을 범과 표범이 지키고 있으니

仰望空雲霄(앙망공운소)     우러러보매 높은 하늘은 공활하여라

十書竟無益(십서경무익)     열 번 서찰을 보내도 결국 소용없으니

天涯甘寂寥(천애감적요)     먼 천애 벽지에서 적막하게 살 수밖에

 

 

宿大津院                대진원에서 묵으며

 

夕投孤館抱鞍眠     저녁에 외딴 여관에 투숙해 안장을 안고 자니

破屋疏簷仰見天     낡은 집과 엉성한 처마로 올려다보면 하늘이 보인다네

聽得廚人連曉語     부엌 사람들 새벽까지 말하는 것 들어보니

艱難各說壬辰年     힘들게 겪어온 임진왜란 때 일을 각각 말하는구나

 

 

述懷                술회

 

朝日自何來     아침 해 절로 어디서 오며

夕日向何去     저녁 해는 어딜 향해 가는가

一朝復一夕     하나의 아침 하나의 저녁

白髮遽如許     어느덧 이처럼 백발이 되었구나

少年志氣壯     어린 시절 뜻의 기상 씩씩하였고

長嘯望伊呂     이윤 여망을 바라며 길게 읊었지

方圓豈相謀     모난 것과 둥근 것 어찌 서로 도모되리

與世實鉏鋙     세상과는 실로 어긋났네

始也多毁譽     처음엔 비방 칭찬 많았지만

終焉寡儔侶     끝낸 무리 친한 벗 적어졌네

況逢干戈際     하물며 전란의 시점 만났으니

漂泊忍羈旅     나그네 신세 견디며 표류하며 묵었지

溝壑幸而免     객지에서 죽음은 요행 면했지만

疾病固其所     질병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

皎皎平生心     밝고 깨끗한 평소의 마음을

壹鬱誰與語     하나의 울적함 누구와 더불어 얘기하리

手掇秋菊英     손으로 국화 꽃잎을 따서

願貽高丘女     고당의 여인에게 주고자 하지만

佳期未易得     좋은 만남은 기약하기 어려워

歲暮徒延佇     세모에 그저 우두커니 서성거릴 뿐

두보는 詩를    탐냈고 잠생은 술을 좋아했네

 

 

僧軸                       스님의 시축

 

疎雲山口草萋萋     산 어귀에 구름은 듬성듬성 풀은 무성한데

夜逐香煙到水西     밤에 향연기 따라 물가의 서쪽에 이르렀다

醉後高歌答明月     취한 후 크게 노래하여 밝은 달에 답하니

江花落盡子規啼     강가의 꽃은 떨어지고 소쩍새는 울어대는구나

 

 

詩酒歌                              시주가

 

杜子耽佳句 岑生嗜醇酎     두보는 詩를 탐냈고 잠생은 술을 좋아했네

而我何如者 愛詩兼愛酒     그런데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詩도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는가

擧世盡趢趗 二老可尙友     세상 사람 모두 국량이 좁으나 이 두 분이야말로 친구 할 만하네

人生快意貴目前                 인생은 지금 좋은 게 가장 귀하니

何用浮名萬歲後                 무엇하러 덧없는 이름 만세 뒤에 남기랴

我筆不去手 我杯不離口     내 붓은 손에서 떠나지 않고 내 잔은 입에서 떠나지 않으니

岑生在吾左 杜子在吾右     잠생은 내 왼쪽에 있고 두보는 내 오른쪽에 있구나

一生如此又如此                 이제껏 이와 같았고 또 앞으로도 이와 같으리니

詩凡幾首酒幾斗                 지은 시가 몇 수이며 마신 술이 몇 말이더냐

不管人間寒暑換                 인간 세상 추위 더위가 바뀌는 것 아랑곳하지 않고

不問天上日月走                 해와 달의 운행도 묻지 않으리

不是堯與舜 不非桀與紂     요순 임금을 옳다 않고 폭군 걸주를 그르다 않으며

不悲貧賤夭 不喜富貴壽     빈천과 요절도 슬퍼하지 않고 부귀와 장수 또한 기뻐하지 않으리

或登山臨水 或訪花隨柳     가끔 산에 오르고 물에 가고 가끔 꽃을 찾고 버들을 즐기며

有興輒醉醉即吟                 흥이 일면 마시고 취해 노래 하리니

萬物於我知何有                 만물이 내게 다 뭐란 말이냐

 

 

示玄翁           현옹(玄翁) 조찬한(趙纘韓)에게 보이다

 

問子何來此     묻노니 그대 어이 여기 왔는가

空山白竹扉     빈 산에 흰 대로 만든 사립문이라

夢中鄕路近     꿈속에서 고향 가는 길 가깝고

江外故人稀     강 저편에는 벗님들이 드물어라

歲暮鳥烏瘦     한 해가 저무니 까마귀 여위고

天寒燈燭微     날씨가 차니 등잔불 희미하다

相看俱白髮     서로 보매 모두 백발이라

重覺寸心違     촌심이 어긋났음을 거듭 깨닫노라

 

 

室人勸我止酒詩以答之     아내가 내게 술을 그만 마실 것을 권하기에 시로써 답하다

 

數日留連飮     며칠 동안 연이어 술을 마셨고

今朝興又多     오늘 아침에는 흥이 또한 많아라

卿言也復是     당신의 말도 옳기는 옳지만

奈此菊枝何     이 국화꽃을 두고 어이 마시지 않으리

 

 

十七字詩        열일곱 자 시

 

攜手上河梁     같이 손잡고 냇가 다리 위에서

見舅如見娘     외삼촌 보니 친정어머니 본 것 같아

兩人齊下淚     둘 함께 흘리는 이별의 눈물

三行                세 줄기

 

 

夜雨雜詠               비 내리는 밤에 읊다

 

春宵小雨屋簷鳴     밤에 봄비 내리고 처마엔 물 뜯는 소리

老子平生愛此聲     노자는 평생 동안 이 소리를 좋아했다오

擁褐桃燈因不寐     베옷 입고 등불 돋워, 잠은 오지 않고

對妻連倒兩三觥     아내와 마주 앉아 두세 잔, 술잔을 기울이네

 

 

夜坐書懷        밤에 앉아서 회포를 쓰다

 

世事有如此     세상의 일은 이와 같은 것

流光無奈何     흐르는 광음을 어이할 수 없어라

菊花秋後少     국화는 가을 뒤에 적어지고

蟲語夜深多     벌레 소리는 밤 깊을 제 많구나

悄悄月侵牖     쓸쓸한 달빛은 창에 들어오고

蕭蕭風振柯     소슬한 바람은 나뭇가지 흔든다

關心十年事     지나간 십 년 세월의 일 회상하면서

坐數撲燈蛾     등잔불에 부딪히는 나방 앉아서 세노라

 

 

夜坐 又示玄翁     밤에 앉아서. 또 현옹에게 보이다.

 

靜念平生事          고요히 평생의 일을 생각하니

于今幾折肱          지금까지 몇 번이나 절굉했던고

空山十月雨          빈 산에는 시월의 비가 내리고

破壁二更燈          깨진 벽엔 이경의 등잔불 비친다

心似傷弓鴈          마음은 활에 다친 기러기와 같고

形如入定僧          모습은 선정에 든 중과 같아라

那堪正寥落          어이 견딜꼬 낙엽 지는 가을에

離恨暗相仍          이별의 한이 가만히 이어지는걸

 

 

夜坐醉甚走筆成章     밤에 앉아 취하여 심히 붓을 놀려 문장을 지음

 

我本無心人                나 본디 무심한 사람이로세

願得無言友                말 없는 친구 얻기를 바랬다

同遊無有鄕                함께 무유향에서 노닐고

共醉無味酒                맛 없는 술로 함께 취하세

 

 

夜坐醉甚走筆成章

 

昔余夢爲鳥     지난날 꿈에 한 마리 새가 되어

飛入白雲鄕     백운향으로 날아들었다.

又嘗夢爲魚     또 일찌기 꿈에 한 마리 물고기 되어

潑剌游滄浪     발랄하게도 창랑의 물에 노닐었다

 

 

憶成川                   성천이 그리워라

 

雲雨高唐夢裏還     비구름 자욱한 고당을 꿈 속에 돌아가보니

滿空蒼翠是巫山     하늘에 가득한 푸른 빛, 이곳이 바로 무산이로다

至今最有關心處     지금껏 가장 내 마음 끄는 곳

人在樓臺漂緲間     아득한 곳, 누대에는 그 사람 와 있겠구나

 

 

詠史                오늘의 역사

 

戚里多新貴     외척들 가운데 귀하게 된 사람 많아

朱門擁紫微     붉게 칠한 대문이 궁궐을 둘러쌌네

歌鍾事遊讌     노래하고 춤추며 잔치만 일삼고

裘馬鬪輕肥     가벼운 갖옷과 살찐 말을 다투어 사들이네

秪可論榮辱     잘 사느냐 못 사느냐만 따질 뿐이지

無勞問是非     옳으냐 그르냐는 문제 삼지 않으니

豈知蓬屋厎     그들이 어찌 알겠나 쑥대지붕 아래서

寒夜泣年衣     추운 밤 쇠덕석 덮고 우는 백성들을

 

 

偶題               우연히 쓰다

 

老去仍多病     늙어갈수록 병이 많아지니

生涯任陸沈     이내 생애야 몰락하건 말건

雲山千里夢     아득한 운산은 천리 밖 꿈이요

霜鬢百年心     흰 머리털은 백 년의 마음일세

曉雨鸎聲滑     새벽 비에 꾀꼬리 소리 매끄럽고

春江柳色深     봄 강에 버드나무 빛이 깊어라

如何豔陽節     어이하여 이 아름다운 봄날

悄悄動悲吟     쓸쓸히 슬픈 노래를 부르는가

 

 

雨行                       빗길을 가며

 

不堪歸興太生濃     돌아가고픈 흥 너무 일어 못 견디겠기에

蓐食催程趁曉鍾     서둘러 조반 들고 새벽종 울 때 길 재촉했지

短夜齕箕羸馬倦     짧은 밤 동안 여물 씹어 여윈 말은 힘겹고

崇朝躋險小僮慵     아침나절에 험한 곳 오르니 아이종이 지쳤다네

崩沙擁路還登岸     무너진 모래 길을 막아 도로 언덕에 오르고

急雨渾山不辨峯     소낙비에 산이 흐릿해 봉우리 분간치 못하겠네

回首偶看雲缺處     고개 돌려 우연히 구름 사이 틈을 보니

忽驚斜日已高舂     석양이 이미 서쪽에 기울었기에 홀연 놀라노라

 

 

幽居漫興               숨어 사는 곳의 느긋한 흥취

 

老去扶吾有短筇     늙어감에 모지라진 지팡이 나를 부축하니

林居無日不從容     숲속 살림 한가하지 않은 날이 없다네

淸晨步到澗邊石     맑은 새벽 시냇가 바위까지 걸어가

落日坐看波底峯     해지도록 물 밑의 봉우리 우두커니 보노라

 

池岸纔容人往還     연못 언덕은 겨우 사람 다닐 만하고

兩池分蘸一邊山     한쪽 산은 두 연못에 나뉘어 잠겼는데

靑荷葉小不掩水     푸른 연 잎사귀 작아서 물을 덮지 못하니

時見魚兒蒲葦間     가끔 어린 물고기 잡풀과 갈대 사이로 보이네

 

引水作潭聊自娛     물을 끌어 못 만들어 즐기려니

平地波濤遽如許     평평한 곳에 물결이 갑자기 이는구나

飛湍落石風雨喧     여울물이 날아 돌에 떨어져 비바람 요란하니

隔岸人家不聞語     언덕 저편 마을의 말소리도 들리지 않는구나

 

當日溪流深尺餘     비 오던 엊그제 시냇물 한자 남짓 깊어지고

兩岸狹窄纔容車     양쪽 언덕 비좁아져 겨우 수레 지나더니

今朝化作滄浪水     오늘 아침 맑고 푸른 창랑의 물이 되어

已有水禽來捕魚     하마 물새 찾아와 물고기를 잡는구나

 

 

有木不知名 效白樂天     나무가 있는데 이름은 모르겠고 백낙천을 본떠 지음

 

有木不知名     나무가 있지만 이름은 모르겠고

三株互蟠結     엉긴 나무도 더러 있네

地高偏受露     지대가 높아 이슬 받는 게 편애 같아

陰重巧遮日     그늘 두터워 교묘히 해를 가리네

群蟻喜心空     뭇 개미들이 즐겨 구멍을 파고

衆鳥欣葉密     뭇 새들 빽빽한 잎을 기뻐하네

兼爲魍魎宅     또한 귀신들의 집이 되어

百怪中夜發     밤중에 온갖 괴이한 일이 일어난다

有人不量力     사람이 자신의 힘은 헤아리지 않고

持斧擬剪伐     도끼 들고 찍어내려는데

爲近社壇下     토지신 사당 단 아래 가까이 있어

欲進還股慄     앞으로 나가려다 멈칫 다리를 떠네

一朝霰雪繁     하루아침 눈이 펑펑 쏟아지면

天道有肅殺     하늘은 모든 것을 죽이리니

豈若澗底松     어찌 저 골짜기의 소나무

千載自蕭瑟     천년을 홀로 쓸쓸히 섰을까

 

 

遊摩尼山用觀燈行韻     마니산(摩尼山)에 노닐면서 관등행 운을 사용하여

 

玉京去此不盈尺            옥경(달)과 한 자도 떨어지지 않아

想聞仙佩鳴玲瓏            신선의 패옥 소리 영롱하게 울리는 듯해라.

琳宮駕虛鐵鳳騰            범궁(절간)은 허공에 솟아 쇠 봉황이 튀어 오른 듯하고

萬壑嵐翠連觚稜            일만 골짝의 남기(산 기운)는 처마 모서리에 이어졌네.

晩歸蒲團聞妙香            저녁나절 돌아와 포단에 앉아 신묘한 향을 맡으매

客塵滅盡神魂凝            객 살이 티끌은 다 없어지고 정신이 집중되는군.

山光雲影繞箱箔            산 빛과 구름 그림자는 바깥채 주렴에 감돌고

數聲蹄鳥留歸客            서너 곡조 새 울음은 길손의 발걸음을 머물게 하누나

 

 

尹而性有約不來獨飮     윤이성 약속 있는데 오도 않고 홀로 퍼네

 

逢人覓酒酒難致            사람 만나 술 찾으면 술은 닿기 어렵고

對酒懷人人不來            술 대하면 사람 그리운데 사람은 오질 않네

百年身事每如此            백 년간 내 일이 늘 이렇도다

大笑獨傾三四杯            크게 웃고 홀로 기울이며 서너 잔 쭉

 

 

林下十詠               숲에서 열 개를 읊다

 

早春                       이른 봄

早春林木澹孤淸     이른 봄 숲의 나무들 조용히 고고하고 깨끗한데

無數山禽下上鳴     수많은 산새들이 내려앉았다가 날아오르며 울어대네

昨夜無端南澗雨     어젯밤에 까닭없이 남쪽 산골짜기에 비 내렸으니

澗邊多少草芽生     시냇가에 어느 정도로 풀싹이 돋아났네

 

暮春                       늦봄

疏籬短短兩三家     성근 울타리 무척이나 낮은 두세 집

水滿池溏吠亂蛙     연못에 물이 가득해서 개구리를 어지럽게 뛰노니 개가 짖네

山客夢回山鳥語     산사람이 꿈에서 깨니 산새가 지저귀고

曉風催發碧桃花     새벽바람은 벽도화를 재촉해 꽃을 피우네

 

悶旱                       가뭄 걱정

春事闌殘雨不來     봄이 저물어 가는데 비가 오지 않으니

野田無水起黃埃     들에 있는 논에는 물이 없어 누런 먼지만 이네

老農淸曉開門出     늙은 농부는 맑은 새벽에 문을 열고 나와서

山下尋泉午未回     산 아래서 샘을 찾느라 낮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네

 

喜雨                       단비

澗邊靑草漸看長     시냇가 생풀을 바라보니 점점 자라고

階上閑花滿意香     섬돌 위 한가롭게 핀 꽃을 보니 향기가 가득하네

蓬戶捲濂終日雨     초가집 발 걷어 올리니 온종일 비가 내려

小池鳧浴綠汪汪     작은 연못 가득한 푸른 물에서 오리가 몸을 씻고 있네

 

無爲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음

避俗年來不過溪     세상 피해 올해는 개울 넘지 않고

小堂分與白雲棲     작은 집 나누어 구름과 산다.

晴窓日午無人到     창밖은 한낮인데 찾는 이 아무도 없고

唯有山禽樹上啼     산새만 나무 위에서 울어댄다

 

觀物                       사물을 보며

鳶魚飛躍太和中     솔개 날고 물고기 뛰는 조화로움 속에

萬物浮沈一氣融     만물 뜨고 가라앉음에 한 기운이 융합되네

春雨歇時庭草綠     봄비 그친 때에 정원의 풀 푸르니

這般生意與人同     이러한 일반적인 생생한 뜻이 사람과 같다네

 

溪亭                       시냇가 정자

林下淸溪溪上亭     숲 아래 맑은 개울, 개울 위엔 정자

亭邊無數亂峰靑     정자 주위에 무수한 푸른 봉우리 봉우리들.

幽人醉臥日西夕     사람은 취하여 눕고, 해는 뉘엿뉘엿

萬壑松風醉自醒     골짝에 부는 바람 취기가 절로 깬다.

 

獨樂                       혼자 즐김

已將身世寄山樊     나 이미 내 몸 산기슭에 붙어사니

俗客年來不到門     세상 손님 한 해가 다 되어도 찾는 이 없네.

四壁圖書燈一盞     사방 벽에 가득한 책과 등불 하나

此間眞意欲忘言     이 가운데 참된 뜻, 말하려 해도 할 말을 잊었네.

 

觀心                       마음을 살피다

此心非色亦非空     이 마음은 색도 아니고 공도 아닌데

方寸之間萬理融     마음속에 수많은 이치가 다 녹아들었네

本地風光誰解得     타고난 심성을 누가 깨달아 알까

向來都在寂然中     본디 사람의 마음은 모두 고요하고 맑은 상태인 것을

 

存養                       본심을 잃지 않게 성품을 기름

世間萬事摠相忘     세상의 여러 가지 온갖 일을 다 잊어버리니

顔氏簞瓢一味長     변변찮은 음식도 맛있게 먹는 안연의 그 뜻이 오래도록 이어졌네

淸曉卷書聊合眼     맑은 새벽 책을 덮고 애오라지 눈 감으니

一簾微雨可燒香     주렴 너머 이슬비 내리는데 향을 피울 만하네

 

 

林處士滄浪亭        임처사의 창랑정에서

 

蒲團岑寂篆香殘     부들 자리 적막하고 피어오르는 향기 스러지는데

獨抱仙經靜裏看     홀로 신선의 경전을 끼고 조용한 곳에서 읽는구나

江閣夜深松月白     강가의 누각에 밤 깊고 소나무 사이로 달빛은 흰데

渚禽飛上竹闌干     물가의 새들이 대나무 난간으로 날아오르는구나

 

屋下淸江屋上山     집 아래에는 맑은 물 집 위로는 산

道人生計山水間     도인의 삶의 뜻은 산수간에 있구나

應知靜坐飜經處     응당 아노니, 조용히 앉아 경전을 읽는 곳

潭低神龍夜叩關     못 속의 신령스런 용이 밤에 빗장을 두드리네

 

 

入山作            산에 들어가

 

落日靑驢瘦     석양 질 때 여윈 나귀 타고

登登一逕危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오르네

溪聲如昨夢     시냇물 소리는 어젯밤 꿈 같고

山色可新詩     산의 빛은 새 시 짓기에 좋네

寺在蟬吟處     절은 매미 우는 곳에 있고

鍾鳴客到時     종은 길손이 올 때 울리네

向來幽興熟     오는 동안 느낀 그윽한 흥을

不遣外人知     외인들은 알지 못하게 하리 

 

 

自遣效白樂天         스스로 번민을 달래다. 백낙천(白樂天)의 시를 본받아 짓다.

 

譽毁紛紛奈我何     칭찬과 비방 분분한들 나를 어이하랴

仰天時復一高歌     하늘 우러러 때로 한 번 고가를 부른다

歡隨好事年年減     기쁨은 좋은 일 따라 해마다 줄어들고

病逐窮愁故故多     병은 시름 따라서 자주 많아지는구나

濁酒數盃聊獨自     탁주 몇 잔 애오라지 홀로 마시노니

白頭千事已從他     백발에 모든 일들 이미 아랑곳 않노라

誰人更問揚雄宅     그 누가 다시금 양웅의 집 방문할거나

門巷兼無雀可羅     문에는 그물로 잡을 참새조차 없어라

 

 

自嘲                스스로를 조롱함

 

白髮平凉子     백발의 평량자여

生涯爛醉中     흠뻑 취해 살았구나

世間知我者     세상에 날 알아줄 이

唯有主人翁     천지 주인옹뿐이도다

 

 

昨夜                어젯밤

 

昨夜西園醉     어젯밤 서쪽 정원에서 술에 취하여

歸來對月眠     돌아와 달 보며 잠이 들었네

曉風多意緖     새벽바람 이리저리 심란한 생각

吹夢到梅邊     매화꽃 핀 고향 꿈을 꾸었네

 

 

再宿靈通寺            재차 영통사에 묵으며 절이 병화(兵火)로 소실되어 전각(殿閣) 하나만 우뚝 남아 있다.

 

昔年曾向此間行     ​예전에 이곳을 와 본 적 있었나니

夜上西樓聽水聲     밤에 서루에 올라 물소리 들었었지

溪月欲沈秋樹黑     시내에 달 잠기려 하고 가을숲 어둑한데

佛燈初盡曉鐘鳴     불등은 막 꺼지고 새벽 종소리 울렸네

塹灰過劫驚浮世     못 속의 재 겁을 지나니 덧없는 세상 놀라고

塵路關心歎此生     홍진 세상 마음 쓰이니 인생을 탄식한다

山意似知曾宿客     산의 뜻이 예전에 묵었던 사람 아는 듯

故將雲雨掩歸程     짐짓 운우를 가지고 돌아가는 길을 막누나

 

 

滴滴                눈물이 방울지네

 

滴滴眼中淚     뚝뚝 떨어지는 눈 속의 눈물

盈盈枝上花     나뭇가지에 송이송이 맺힌 꽃송이

春風吹恨去     봄바람에 마음속 한을 불어내어

一夜到天涯     하룻밤에 하늘 끝까지 가버렸구나

 

 

切切何切切     절절하절절

 

切切何切切     절절함이 어찌 그리 절절하던지

有婦當道哭     한 여인 길에서 곡을 하네

問婦何哭爲     묻노니 부인 어찌 그리 곡을 하시오?

夫婿遠行役     남편이 멀리 군역을 나갔는데

謂言卽顧反     곧 돌아올 것이라 하였건만

三載絶消息     삼년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답니다.

一女未離乳     젖도 못 땐 딸이 있는데

賤妾無筋力     천첩은 근력도 없고

高堂有舅姑     집에는 시아버지, 시어머니 계시는데

何以備饘粥     무슨 수로 죽이라도 준비하겠습니까?

拾穗野田中     이삭이라도 주을까 들밭에 나갔는데

歲暮衣裳薄     저문 한 해 추위에 옷도 얇아

北風吹郊墟     북쪽 바람 빈 들에 불어오고

寒日慘將夕     추운 해도 참혹하게 저물어 저녁까지 되어

獨歸茅簷底     홀로 쓰러져가는 집에 돌아오니

哀怨豈終極     슬픔과 원통함이 언제나 끝나겠습니까?"

 

 

靜中吟             고요한 중에 읊조리며

 

意實群邪退     뜻이 차니 여러 사심이 물러나고

心虛一理明     마음 비우니 하나의 이치 분명해지네

靜時觀萬物     고요할 때 만물 보노라니

春氣自然生     봄기운이 절로 생겨나네

 

 

征婦怨                   원정 보낸 아내의 원망(수자리 사러 간 남편에 대한 아내의 원망)

 

交河霜落雁南飛     지나다니는 강에 서리 내리고 기러기 떼는 남쪽으로 나네

九月金城未解圍     구월 금성 포위망 풀리지 않는구나

征婦不知郞已沒     원정 보낸 아낸 신랑 죽은 줄도 모르는갑다

夜深猶自擣寒衣     밤 깊은데 오히려 스스로 추운 겨울옷 다듬이질 하나 보다

 

 

題桐葉            오동잎에 쓰다

 

晩携綠綺琴     저물녘 거문고를 가지고서

愛此梧桐影     이 오동나무 그림자 좋아 왔노라

坐待月華生     여기 앉아 달 뜨기를 기다리니

夜深風露冷     밤 깊어 바람과 이슬이 차갑구나

 

 

題沈尙志郊居     심상지(沈尙志) 엄(㤿) 의 교거(郊居)에 제(題)하다

 

客自水站來         내가 수참으로부터 와서

淸曉叩門板         새벽에 대문을 두드렸더니

主人去京華         집주인은 경성으로 가서

歲暮猶未返         세모에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네

園丁慣看客         머슴은 늘 이런 손님 보아온 터

迎我笑而莞         나를 맞이하며 빙그레 웃는구나

開室掃華簟         방문을 열고 좋은 대자리 깔고

戒廚供白飯         부엌에 당부해 쌀밥을 지어 오네

居然飽我飢         주린 배를 그득히 채우고 나니

不愁前路遠         갈 길이 멀어도 걱정이 없구나

顧謝汝園丁         돌아보며 머슴에게 사례하노니

何以報深懇         무엇으로 깊은 정성에 보답할꼬

留詩牕壁間         창가 벽에 시를 지어 남기노니

要掛主人眼         주인 눈에 보이게 하려는 걸세

 

 

題沈尙志幽居     심상지(沈尙志)의 유거(幽居)에 제(題)하다

 

特地孤村僻         외로운 마을 특히 궁벽한데

緣溪一徑斜         시내 따라 길은 비스듬하여라

柳晴纔弄色         맑은 날 버들이 막 푸른빛 띠자

蒲暖已抽芽         따스한 날 부들이 벌써 싹을 틔웠다

歸客欲騎馬         돌아가는 길손이 말을 타려 하니

主人留煮茶         주인은 만류하며 차를 달이누나

不辭鷄黍約         계서의 약속은 사양하지 않으나

唯恐失桃花         다만 복사꽃을 잃을까 걱정일세

 

 

題畵六絶爲韓宜仲作     그림에 여섯 절구를 쓰고 한의중을 위해 짓다

 

春                    봄

春服初成後     봄옷이 막 지어진 뒤에

山蹊獨立時     산길에 홀로 서 있네

直須忘去路     곧바로 갈길을 잊었는데

詩在好花枝     시(詩)는 아름다운 꽃가지에 있네

 

夏                    여름

露髮烏巾小     오건(烏巾)이 작아 머리털이 드러났는데도

哦詩對曲塘     굽은 연못과 마주하여 시를 읊네

耽看荷色淨     정신없이 맑고 깨끗한 연꽃 빛을 바라보느라

不覺柳陰凉     버드나무 그늘 시원한 줄도 모르네

 

秋                    가을

爲愛霜楓晩     철 늦게까지 매달려 있다가 서리 맞은 단풍잎이 사랑스러워

維舟古樹根     오래된 나무의 뿌리에 배(舟)를 매어 두었네

深知重釣意     낚시 드리운 뜻을 잘 알겠으니

只是佐淸尊     단지 맑은 술 마시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라네

 

冬                    겨울

皎皎梅梢月     매화나무 가지 끝에 무척이나 밝고 맑게 뜬 달

淸宵分外寒     맑게 갠 밤은 유달리 춥네

猶嫌未奇絶     여전히 경치가 신기하고 기이하지 않아서 싫으면

更向水中看     다시 물속을 향해 보시게나

 

古松                늙은 소나무

秀色滿空天     빼어난 자태가 텅 빈 하늘에 가득하니

寧知是粉繪     어찌 이것이 색칠한 그림인 것을 알까

無論枝幹奇     가지와 줄기가 기이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已似聽寒藾     벌써 차가운 솔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하네

 

倒松                넘어진 소나무

怪此蒼髥老     괴이하게도 이 푸른 구렛나루의 노인이

長身醉不扶     키가 큰 몸으로 취했는데 부축도 받지 않네

唯知直幹好     오직 곧은 줄기만 좋은 줄 알았으니

杜子一何愚     두보는 어찌 그리 어리석었을까

 

 

早渡碧瀾                이른 아침에 벽란(碧瀾)을 건너며

江上嗚嗚聞角聲     강가에는 화각 소리 구슬피 울리는데

斗柄揷江江水明     북두성 자루는 강에 꽂혔고 물은 맑아

早潮侵岸鴨鵝亂     아침 조수 기슭을 침노하니 오리 떼 어지럽고

遙舍點燈砧杵鳴     먼집엔 등잔불 켜고 다듬이 소리 들리네

客子出門月初落     나그네 문을 나서니 달이 그제야 지고

舟人掛席風欲生     뱃사공 돛 펼치니 바람이 일려고 하네

西州千里自此去     서주라 천 리 길을 여기서부터 가노니

長路險艱何日平     험난한 긴 여정 어느 날에 평탄해질꼬

 

 

早發龍泉         아침 일찍 용천(龍泉)을 출발하며 짓다

 

一宿龍泉舘 ​    한 번 용천의 객관에 유숙하고

鷄鳴更問歧     닭이 울 무렵 다시 길을 나선다

谷虛人語響     골짜기 비어 사람 소리가 울리고

橋拆馬行危     다리 갈라져 말 걸음이 위태해라

俗學終何賴     속된 학문 끝내 무슨 소용 있으랴

浮名只自欺     덧없는 명예는 자신을 속일 뿐이지

前途猶萬里     앞길이 아직도 만 리나 남았으니

不敢計歸期     돌아올 기약은 감히 생각지 않노라

 

 

酒席贈梁子漸     술자리에서 자점(子漸) 양경우(梁慶遇)에게 주다

 

會心爲至樂         마음 맞는 게 지극한 즐거움이요

無事是良辰         일없이 한가한 게 좋은 날이어라

偶得一尊酒         우연히 한병의 술을 얻었더니

更逢千里人         게다가 천 리 밖 반가운 벗 만났구나

 

 

舟次豆毛浦 登申景昇亭子 次壁上韻     배를 두모포(豆毛浦)에 정박하고 신경승(申景昇)의 정자에 올라 벽상(壁上)의 시에 차운하다

 

浮生苦樂劇紛然     뜬 인생의 고락이 극히 어지러워도

取捨由人不在天     취사(取捨)야 사람 탓이니 하늘에는 있지 않네

要識世間眞富貴     세간의 참된 부귀 알려고 하거든

試看湖上小神仙     호숫가 작은 신선 시험 삼아 보시오라

樓前月色半江水     누대 앞의 달빛은 반강(半江)에 비치었고

門外笛聲何處船     문밖의 피리 소리 어느 곳의 배이던고

十載奔忙吾欲老     십 년간 분망하여 이 몸 장차 늙어가니

肯容風榻片時眠     바람 드는 평상에서 쪽잠인들 자겠는가

 

 

舟次餠潭         배를 병담(餠潭)에 정박하고

 

薄暮投魚店     저물녘 어촌 객점에 투숙하고

平明問水程     동이 틀 무렵에 물길을 물었지

經過知俗態     지나는 곳에서 세속 태도를 알겠고

飄蕩愧浮生     떠돌아다니니 덧없는 인생 부끄럽네

宿霧輕初散     간밤 안개는 가볍게 막 흩어지고

晴灘淺更鳴     맑은 여울은 얕고 울며 흐르누나

華山看漸遠     화산이 볼수록 점점 멀어지니

回首一含情     고개 돌려 한 번 아쉬운 정 느낀다

 

 

贈天香女伴            기생 천향에게

 

仙姿不合在風塵     선녀 같은 그대 모습 티끌 세상 마땅찮아

獨抱瑤琴怨暮春     홀로 거문고 안고 청춘을 원망하는가?

絃到斷時腸亦斷     거문고 줄 끊길 때 애간장도 끊어지나니

世間難得賞音人     세상에 그 누구도 날 알아주는 이 없음을

 

 

贈秋娘                   추낭에게

 

楊州一夢杳難追     양주의 꿈은 아득하여 쫓기가 어려워

此地琴尊本不期     여기서의 술자리 본래 기약하지 않았다네

莫唱江南斷腸曲     강남의 단장곡은 부르지 말아요

向來存沒不勝悲     지난 생사의 일, 그 슬픔 견디기 어렵다네

 

 

秦始皇            진시황

 

焚書計太拙     분서갱유는 참으로 졸렬하나니

黔首豈曾愚     백성들이 어찌 그리도 어리석었는가

竟發麗山塚     끝내 여산의 무덤을 파헤친 것은

還非詩禮儒     오히려 시 짓고 예 따르는 선비 아니었나

 

 

卽事                       곧바로 짓다

 

秋陰散盡月華淸     가을 그늘이 다 흩어지니 달빛 청명하여

一夜天公似有情     한 밤의 하느님 정이 있는 듯하네

何處片雲來作孼     어느 곳에서 조각구름이 와서 재앙을 일으켜

便敎蟾兔不分明     곧 달 토끼에게 분명하지 않게 했구나

 

 

次使相韻                사상(使相)의 시에 차운하다

 

俗語令人頭觸屛     속된 말은 병풍에 머리 부딪치게 하니

麴生聊可與忘形     술이 그런대로 허물없이 대할 만하네

百年憂樂身如夢     백년 근심과 즐거움에 몸은 꿈만 같고

萬事乘除髮欲星     만사 이리저리 헤아리다 머리털 세겠네

只把詩篇供謾興     다만 시편을 지니고 흥취를 즐기면서

要尋泉石寄餘齡     천석을 찾아 남은 생애를 보내야겠네

中宵坐念平生計     한밤중에 앉아 평생의 일을 생각할 제

風滿踈簾月滿庭     바람은 주렴에 가득 달빛은 뜰에 가득해

 

 

次山人處英詩韻     산인(山人) 처영(處英)의 시에 차운하다

 

有物絶名相     ​한 물건이 있어 명상이 끊어졌으니

所以能物物     그런 까닭에 능히 물물할 수 있어라

心如寒江水     마음은 마치 차가운 강물처럼 맑아

印得空界月     허공의 달이 그대로 비칠 수 있는데

一自混沌死     한번 혼돈이 죽은 뒤로부터

萬法從此別     만법의 차별이 이로부터 생기지

諸佛亦微塵     모든 부처님도 하찮은 티끌이요

群經皆妄說     모든 경전들도 허망한 말씀이라

何人强解事     어느 누가 이러한 이치 잘 알아

作此淡生活     욕심 없는 담박한 생활을 할꼬

 

 

次友人韻                우인(友人)의 시에 차운하다

 

澤國春深鴈影稀     택국에 봄은 깊어 기러기 그림자 드문데

遠人猶着臘前衣     먼 타향 나그네 아직 겨울옷 걸쳤어라

鄕關渺渺無消息     고향은 아득하여 소식이 없건만

塵世紛紛有是非     진세는 분분하여 시비가 있구나

何處小桃臨水岸     어드메 복사꽃이 물가에 섰는고

卽看新燕入山扉     새 제비가 사립에 들어오는 게 보인다

晴窓忽作還家夢     맑은 창가에서 홀연 고향집 꿈을 꾸니

門外垂楊綠已肥     문밖의 수양버들 이미 녹음 짙었어라

 

 

次鄭公述湖亭韻     정공술(鄭公述)의 호정(湖亭) 시를 차운하다

 

沙村臨水水侵門     사촌(沙村)은 물가여서 물이 문에 들어오니

獨愛茲亭近白雲     이 정자 흰 구름에 가까움을 아끼노라

一鳥去邊天遠大     한 마리 새 가는 저편 하늘은 멀고 크고

群山盡處地橫分     뭇 산들 다한 곳에 땅은 가로 나뉘었네

世間得失看棋局     세간의 득실이야 바둑판 구경이요

身外悲歡付麴君     몸 밖의 기쁨 슬픔 술에다 맡기노라

秪許風煙生眼底     바람 안개 눈 아래서 이는 것 허락하며

竹床梧几了晨曛     대나무 상 오동 안석 하루를 마치시리

 

 

滄浪亭                   창랑정에서

 

屋下淸江屋上山     집 아래엔 맑은 강 집 위엔 산이라

道人生計水雲間     도인의 살 계책은 물과 구름 사이에 있구나

應知靜坐翻經處     응당 알겠네 정좌하고 책 해석하는 곳이

潭底神龍夜叩關     못 아래 신룡이 밤에 문 두드리는 곳이란 걸

 

蒲團岑寂篆煙殘     부들포 자리 아주 적막하고 꼬여 올라가던 분향 향기는 가물거리네

獨抱山經靜裏看     홀로 산해경을 안고 고요한 속에 보고

江閣夜深松月白     강가의 누각 밤이 깊자 소나무에 걸려 있는 달은 환하여

渚禽飛上竹闌干     물가의 새는 날아 대나무 난간으로 오른다

 

 

天何蒼蒼 醉中走筆(천하창창 취중주필) 1     하늘은 어쩌면 그리도 푸르며 취중에 주필(走筆)로 짓다

 

天下蒼蒼(천하창창)             하늘은 어쩌면 그리도 푸르며

地下茫茫(지하망망)             땅은 어쩌면 그리도 아득한가

山岳何崒崒(산악하줄줄)     산악은 어쩌면 그리도 우뚝하며

江海何洋洋(강해하양양)     강해는 어쩌면 그리도 드넓은가

堯舜何巍巍(요순하외외)     요순은 어쩌면 그리도 높고 컸으며

孔孟何遑遑(공맹하황황)     공맹은 어쩌면 그리도 바빴으며

盜跖何以壽(도척하이수)     도척은 어이하여 오래 살았으며

顏淵何以殤(안연하이상)     안연은 어이하여 일찍 죽었으며

寗子何爲愚(녕자하위우)     영자는 무엇 때문에 어리석었으며

箕子何爲狂(기자하위광)     기자는 무엇 때문에 미친 척했는가

萬物盡如此(만물진여차)     만물은 죄다 이와 같은 법

此理誰能詳(차리수능상)     이 이치를 뉘라서 알 수 있으랴

 

 

天何蒼蒼 醉中走筆(천하창창 취중주필) 2     하늘은 어쩌면 그리도 푸르며 취중에 주필(走筆)로 짓다

 

君不見(군불견)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楚國群陰蔽明月(초국군음폐명월)     초나라의 간신들이 밝은 달빛을 가리니

屈原懷石沈江湘(굴원회석침강상)     굴원이 돌을 품고서 상강에 빠져 죽은 것을

又不見(우불견)                                  또 보지 못했는가

漢廷諸公惡年少(한정제공악년소)     한나라 조정의 제공들이 연소한 이 싫어하니

賈誼去傅長沙王(가의거부장사왕)     가의가 조정을 떠나 장사왕의 태부가 된 것을

鳳翔千仞竟焉往(봉상천인경언왕)     황이 천 길을 날아 마침내 어디로 갈 것인가

慧樹百畝空餘芳(혜수백무공여방)     백 이랑에 심은 혜초 향기만 속절없이 남았어라

 

 

天何蒼蒼 醉中走筆(천하창창 취중주필) 3     하늘은 어쩌면 그리도 푸르며 취중에 주필(走筆)로 짓다

 

有才不必用(유재불필용)                   재주가 있어도 반드시 쓰이는 것 아니고

有德不必彰(유덕불필창)                   덕이 있어도 반드시 드러나는 것 아닐세

李斯入關秦乃帝(이사입관진내제)     이사가 관문에 들어가자 진나라가 제국이 되었고

孔明出廬漢終亡(공명출려한종망)     공명이 초려에서 나갔으나 한나라는 끝내 망했나니

世間成敗本如此(세간성패본여차)     세간의 성패는 본래 이와 같은 것이라

力耶命耶誰主張(력야명야수주장)     힘인가 운명인가 누가 이를 주관하는가

酈生舌下七十城(력생설하칠십성)     역생은 혀로 칠십 개의 성을 항복받았건만

不免身作鼎中烹(불면신작정중팽)     그 자신은 솥에 삶겨 죽고 말았으며

淮陰戰勝功必取(회음전승공필취)     회음은 전쟁을 하면 반드시 승리했건만

不免身死女兒手(불면신사녀아수)     그 자신은 여자의 손에 죽임을 당했어라

智巧不可恃(지교불가시)                   지모는 믿을 것이 못 되나니

從古有如此(종고유여차)                   예로부터 이와 같은 법이지

 

 

天何蒼蒼 醉中走筆(천하창창 취중주필) 4     하늘은 어쩌면 그리도 푸르며 취중에 주필(走筆)로 짓다

 

爲問白日金殿上(위문백일금전상)                   묻노라 백일의 금전 위가

何似淸風北窓裏(하사청풍북창리)                   어찌 청풍의 북창만 하랴

況復長安大道多險巇(황부장안대도다험희)     더구나 장안의 대로에는 위험이 많아

前有太行山(전유태행산)                                  앞에는 태항이란 산이 있고

後有巫峽水(후유무협수)                                  뒤에는 무협이란 물이 있으니

魍魎嘯林蛇出竇(망량소림사출두)                    도깨비는 숲에서 나오고 뱀은 굴에서 나오며

熊羆西咆虎東踞(웅비서포호동거)                    큰 곰은 서쪽에서 울부짖고 범은 동쪽에 앉았네

水鏡俟人影(수경사인영)                                  수경은 사람 그림자 기다리고

天螻錄人語(천루록인어)                                  천루는 사람 말을 기록하며

羉罿罣兩肩(란동괘량견)                                  그물이 양쪽 어깨에 걸려 있고

矰隿罥雙脚(증익견쌍각)                                  주살이 양쪽 다리를 얽어맸으니

寄立尺寸地(기립척촌지)                                  척촌의 좁은 땅에 겨우 발을 붙여

進退俱不得(진퇴구불득)                                  진퇴가 모두 자유롭지 못하지

人生莫向此間行(인생막향차간행)                    사람이 이런 곳에서 다니지 말지니

 

 

天何蒼蒼 醉中走筆(천하창창 취중주필) 5     하늘은 어쩌면 그리도 푸르며 취중에 주필(走筆)로 짓다

 

富貴向來生五兵(부귀향래생오병)     부귀는 예로부터 오병을 낳는 법

所以江東張季鷹(소이강동장계응)     그러기에 강동의 장계응은

但愛一杯酒(단이일배주)                   다만 한 잔의 술을 사랑하고

不願千載名(불원천재명)                   천년의 명성을 원치 않았지

去子驕氣與多欲(거자교기여다욕)     그대의 교만한 기운과 많은 욕심 없애고

不用多言與多力(불용다언여다력)     많은 말과 많은 힘을 쓰지 마시라

驕則不自保(교칙불자보)                    교만하면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欲則不知止(욕칙불지지)                    욕심을 부리면 그칠 줄 모르나니

言終裂蘇秦(언종렬소진)                    말은 끝내 소진(蘇秦)을 거열(車裂)시키고

力不救任鄙(력불구임비)                    힘은 임비를 구제하지 못하지

莫愛采石江上月(막애채석강상월)     채석강 위의 달을 좋아하지 말고

莫愛灞陵橋上雪(막애파릉교상설)     파릉교 위의 눈을 좋아하지 말라

蹇驢覓句只冷淡(건려멱구지랭담)     절름발이 나귀 타고 시구 찾기란 쉽지 않고

長鯨登天終怳惚(장경등천종황홀)     큰 고래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걸 믿을 수 없지

 

 

天何蒼蒼 醉中走筆(천하창창 취중주필) 6     하늘은 어쩌면 그리도 푸르며 취중에 주필(走筆)로 짓다

 

不如樹樗無何鄕(불여수저무하향)     차라리 무하향(無何鄕)에 큰 가죽나무 심어 놓고

游居寢臥于其傍(유거침와우기방)     그 곁에서 한가히 노닐며 잠자는 편이 나으리

六合爲室(육합위실)                           육합을 방으로 삼고

萬物爲糧(만뭃위량)                           만물을 양식으로 삼고

星辰爲佩(성진위패)                           성신(星辰)을 패옥으로 삼고

雲月爲裳(운월위상)                           운월(雲月)을 치마로 삼으며

塞兌閉門(새태폐문)                           욕망의 문을 막고 닫아서

與道翶翔(여도고상)                           도와 더불어 한가히 노닐며

下跐黃泉(하차황천)                           아래로는 황천(黃泉)을 밟고

上登太皇(상등태황)                           위로는 태황(太皇)에 오르나니

男兒到此(남아도차)                           남아가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卽是大休歇(즉시대휴헐)                    이것이 바로 대휴헐(大休歇)이니

何用在世長蹩躠(하용재세장별설)     무엇 하러 이 세상 바득바득 살까

 

 

淸明                      청명

 

東風吹暖艶陽天     햇살 고운 봄날 동풍이 따스하게 부니

病後逢春却自憐     병든 뒤 봄을 만나니 외려 가련하구나

燕子入簷仍舊壘     제비가 처마에 드니 옛날 살던 집이라

家僮乞火是新烟     가동이 불을 빌려 새로 밥 짓는 연기일세

催花小雨知佳節     꽃소식 재촉하는 가랑비에 좋은 시절임을 알겠고

鬪草閑遊記少年     풀싸움 한가한 놀이에 소년 시절 기억한다

景物不殊人已老     경물은 변함 없으나 사람이 늙었으니

更能聞健向尊前     다시 술동이 놓고 마실 수 있을까

 

 

倩婦呼詩韻     아내가 시의 운을 부르네

 

睡起仍無事     잠깨어 일어니 할 일도 없어

開窓面小園     창문 열고 작은 뜰만 내려다보네

雨餘觀草性     비 내린 뒤 풀을 보니

林晩聽禽言     저무는 숲에 새들 지저귀는 소리

倩婦呼詩韻     아내는 시의 운을 부르며

敎兒進酒樽     아이더러 술잔을 올리라 하네

牛羊各歸巷     소와 양들도 집으로 돌아오고

吾亦閉柴門     나도 사립문을 닫는다

 

 

靑春曲 3首            청춘곡 

 

春尙早                   봄은 아직도 이른데

已覺年芳好            벌써 봄빛 꽃다움을 알겠도다

輕香澗底梅            가벼운 향기는 시냇가의 매화요

嫩色原頭草            보드라운 빛은 언덕의 풀이로세

美人踏靑誇錦襪     미인이 답청하며 비단 버선 자랑하니

多情却被春心惱     다정함이 도리어 춘심의 괴로움이어라

 

春欲晩                    봄이 저물어 가니

年芳無近遠             봄빛은 원근이 없구나

花發五城樓             꽃은 오성루에 피었고

鶯啼上林苑             꾀꼬리는 상림원에서 울도다

繁華一夢那足恃      번화한 경치도 한바탕 꿈, 어이 믿으랴

令人暗起傷春恨      가는 봄에 상심하여 남모르는 원한이 이네

 

春已去                   봄이 이미 가버렸으니

年芳竟何所            봄빛은 결국 어디 있는고

茫茫千里外            아득한 천 리 밖 저 편

目極但平楚            시야엔 그저 드넓은 들판뿐

綠樹陰陰簾幕靜     푸른 나무 우거지고 주렴 장막 고요하니

思量別是風流處     생각건대 이 또한 특별한 풍류로운 곳일세

 

 

秋日山齋                가을 산재

 

木葉蕭蕭正着霜     나뭇잎에 쓸쓸히 서리 내리고

相如多病臥虛堂     사마상여 병이 많아 빈 당에 누웠구나

土階荒草秋猶碧     섬돌에 거친 풀은 가을인데도 파랗고

石澗黃花晩更香     시냇가의 국화꽃은 저녁에 더욱 향기롭다

日色映雲明遠昊     해는 구름 살이로 비쳐 먼 하늘을 밝히고

天風吹雁途高岡     바람은 기러기에 불고 높은 언덕으로 난다

山村覽物驚時晏     산촌에서 만물을 보니 때가 늦어 놀라니

安得蛬聲不近床     어찌해야 귀뚜라미 소리 멀리 쫓아낼 수 있나

 

 

秋日把酎 感而賦詩     가을날 술을 들며 감회가 일어 시를 읊다

 

手掇秋菊英     손으로 가을 국화 꽃잎을 따니

寒香盈我襟     차가운 향기 내 옷깃에 가득해라

槽床夜來注     밤에 주자로 술을 걸러 내어

洗觥聊自斟     잔 씻고 혼자서 술을 마시노라

輕雲掩淸旭     가벼운 구름장이 아침 해 가리니

古井生微陰     옛 우물에는 흐릿한 기운 생긴다

此時無與語     이때 더불어 얘기할 사람 없으니

眷焉懷所欽     돌아보며 그리운 사람 생각하노라

佳期歲云暮     만날 기약 없고 한 해는 저물어

閉門黃葉深     닫힌 문 안에는 낙엽만 쌓이누나

 

 

秋懷辭                      추회사

 

我所思兮在絶國         내 그리운 사람은 먼 절역에 있으니

山原曠漠兮雲海隔     산과 들판 아득하고 운해에 막혔도다

夢相接兮覺相失         꿈속에 서로 만났다 잠을 깨자 없으니

目眇眇兮人如玉         눈길 아득한데 사람은 옥과 같아라

念疇昔兮同息偃         생각하노니 옛날에는 함께 기거했나니

朝嘻嘻兮夕怡怡         아침저녁으로 늘 기뻐하고 즐거워했지

忽時變兮勢阻             홀연 시절이 바뀌어 운세가 막히니

生且死兮莫相知          살았는지 죽었는지 서로 알지 못하네

音塵絶兮不可通          소식이 아득하여 통하지 않으니

悵此生兮長別離          슬퍼라 이 생애에 길이 이별이로구나

瞻日月兮悠悠              쳐다보면 해와 달은 유유히 흘러

倏三歲兮又以暮          어느덧 삼 년이 지나 한 해가 저물었네

雁嗈嗈兮矯翼             기러기는 울면서 날개를 펼치는데

蟲切切兮欲何訴          벌레는 울어 무엇을 호소하려는가

覽時物兮澹容與          경치를 구경하며 천천히 거니노라니

心結愲兮涕如雨          마음에 번민이 차 눈물이 비처럼 흐르네

山可夷兮海可竭          산이 평지가 되고 바다가 마를지언정

唯此恨兮極終古          이내 한은 영원히 끝나지 않으리라

 

 

春日獨酌有詩    봄날 혼자 술 마시며

 

今日又云暮     오늘 또 날이 저무네

百年能幾何     인생 백 년이래야 얼마나 될까

詩情病後少     병 앓은 뒤라서 시 지을 생각은 없고

樂事夢中多     즐거운 일은 꿈속에서만 많아라

學道蛙聞海     도를 배웠대야 개구리가 바다 있다는 소리를 들은 셈

謀生鼠飮河     생애를 꾸려 봤대야 쥐가 황하물을 마신 격

無人問幽獨     외딴곳에 혼자 살다 보니 찾는 이도 없어

對酒一高歌     술 마주 앉아 큰소리로 노래 부르네

 

 

春日偶題        봄날 우연히 씀

 

老去仍多病     늙어 가매 이에 병만 많아지네

生涯任陸沈     생애를 티끌 세상에 내맡겨 두네

雲山千里夢     구름 산에 천리의 꿈을

霜撗百年心     서리는 백년의 마음을 채웠구나

曉雨鶯聲滑     새벽 비에 꾀꼬리 소린 매끄러웁고

春江柳色深     봄 강의 버들 빛은 깊어만 가네

如何艶陽節     이렇듯 아름답고 좋은 시절에

痗痗動悲吟     어찌하여 구슬피 읊조리는가

 

 

忠州石效白樂天(충주석효백락천)     충주석 백낙천을 본떠서 

 

忠州美石如琉璃(충주미석여류리)     충주 아름다운 돌 유리 같네

千人劚出萬牛移(천인촉출만우이)     수천 명이 찍어내어 수만 소로 실어나르네

爲問移石向何處(위문이석향하처)     어디로 실어 가냐 물어봤더니

去作勢家神道碑(거작세가신도비)     실어 가서 세도가 집 신도비가 된다네

神道之碑誰所銘(신도지비수소명)     신도비의 비문은 누가 새긴 것인가요

筆力倔强文法奇(필력굴강문법기)     필력도 장쾌하고 문장 솜씨도 대단하데요

皆言此公(개언차공)                           한결같이 빗돌에 쓰인 말

在世日(재세일)                                  이 분이 세상에 계실 때엔

天姿學業超等夷(천자학업초등이)     인품과 학문이 워낙 뛰어나서

事君忠且直(사군충차직)                    충성과 정직으로 임금을 섬기고

居家孝且慈(거가효차자)                    효도와 자애로 가정을 다스렸답니다

門前絶賄賂(門前絶賄賂)                    문 앞에는 뇌물바리가 얼씬도 못 했고

庫裏無財貲(고리무재자)                    곳간에는 한 톨 재물도 없었고

言能爲世法(언능위세법)                    말은 능히 세상의 법도가 되었고

行足爲人師(행족위인사)                    행동은 족히 사람들의 스승이 되었다오

平生進退間(평생진퇴간)                    벼슬을 하든 물러나 쉬든

無一不合宜(무일불합의)                    어느 하나 합당하지 않음이 없었답니다

所以垂顯刻(소이수현각)                    그래서 이렇게 자랑스럽게 빗돌에 새겨서

永永無磷緇(영영무린치)                    길이길이 변하지 않도록 전하는 것입니다

此言信不信(차언신불신)                    이 말을 믿든 안 믿든

他人知不知(타인지부지)                    남들 알든 모르든

遂令忠州山上石(수령충주산상석)     충주 골 빗돌산은

日銷月鑠今無遺(일소월삭금무유)     날로 깨고 달로 쪼아 인제 바닥이 났구나

天生頑物幸無口(天生頑物幸無口)     하늘이 돌의 입을 안 만들기 다행이지

使石有口應有辭(사석유구응유사)     돌에게 입이 있었더라면 할 말이 참 많았으리라

 

 

醉吟                       술 취해 읊다

 

三尺太阿劍            석 자 태아검

百年梁甫吟            평생 양보음 읊으리

逢迎多白眼            환영스런 일 만나도 백안시함이 많네

遊說少黃金            유세를 하자니 황금이 적구나

風塵萬事一揮淚     현실 세상의 모든 일에 눈물 함 닦는데

誰知男兒方寸心     누가 알리 남아의 이 짜른 맘을

 

少年學劍不成去     소년 시절 검술배워 이루지 못하고

屈跡淮陰屠市中     자취를 굽혀 회음의 도시에 살았지

愁來飮酒一百榼     시름이 오면 술 일백 잔 마시고

醉吐長虹撑碧空     취하여 긴 무지개 토해 푸른 하늘 떠받친다 

 

 

醉後 命室人呼韻     술 취한 뒤 실인(室人, 아내)에게 운을 부르게 하다

 

睡起仍無事     잠 깨니 일 없이 한가하여

開牕面小園     창 열고 작은 정원을 마주한다

雨餘觀草性     비 온 뒤에 풀의 성품을 보고

林晩聽禽言     숲이 저물 때 새소리를 듣노라

倩婦呼詩韻     아내를 시켜 시운을 부르게 하고

敎兒進酒樽     아이로 하여금 술병을 올리게 한다

牛羊各歸巷     소와 양들 각각 집으로 돌아가니

吾亦閉柴門     나도 내 집의 사립문을 닫노라

 

 

鬪狗行                   개싸움을 읊음

 

誰投與狗骨            누가 개에게 뼈다귀 던졌나

群狗鬪方狠            뭇 개들 사납게 저리 다투는가

小者必死大者傷     작은놈 꼭 죽겠고 큰 놈도 다쳐

有盜窺窬欲乘釁     도둑은 엿보아 그 틈을 타려 하네

主人抱膝中夜泣     주인은 무릎 안고 한밤에 우니

天雨墻壞百憂集     비 맞아 담 무너져 온갖 근심 모여드네

 

 

寒食                       한식날

 

祭罷原頭日已斜     제사 끝난 산언덕에 날은 저물고

紙錢飜處有鳴鴉     종이 돈 펄럭이는 곳에 갈가마귀 우짓는구나

山蹊寂寂人歸去     사람들 다 돌아가고 오솔길 적막한데

雨打棠梨一樹花     비 내려 팥배나무 한 떨기 꽃잎을 때린다

 

 

行路難                               살아갈 길 팍팍해라

 

吳歈且勿叫 蜀絃且勿彈     오나라 노래1 또한 부르지 말고 촉나라 거문고 또한 타지 말며

四座各傾耳 聽我行路難     네 방향에서 각각 귀를 기울여 나의 살길 팍팍한 얘길 들어보라

何處路最難 最難在長安     어느 곳 길이 가장 어려운가? 가장 어려운 길은 장안에 있다

長安大道傍 甲第遙相望     장안의 큰길가에 큰 집들이 아득히 서로 바라보이니

借問誰所居 許史與金張     누가 사느냐고 묻는다면 허사와 김장이 산다네

軒車溢閭巷 絲竹鳴中堂     수레로 여항은 좁은데 관악기가 중당에서 울리네

手握造化關 天地隨低昂     손으로 조물주의 기관 잡으니 천지가 높고 낮음을 따르는구나

笑或吐春華 怒或飛秋霜     웃으면 혹 봄볕 뱉어내고 화내면 혹 가을서리 날린다네

一言不相入 瞬息成禍殃     한마디 말이 서로 들어맞지 않으면 순식간에 재앙이 된다네

嗟爾遠方士 營營欲何求     아! 먼 지방의 선비들이여 바삐 움직여 무얼 구하려 하는가?

歸去復歸去 桂樹山之幽     돌아가라 또 돌아가라 계수산의 깊숙한 곳으로

 

 

湖亭八景               호수 정자의 8경

 

雨後濃雲重復重     비 갠 뒤 짙은 구름 뭉게뭉게

捲簾晴曉看奇容     발 걷으니 갠 새벽의 기이한 풍경이 이네

須臾日出無踪跡     잠깐 사이에 해가 나와 종적조차 없어져

始見東南兩三峯     비로소 동남의 두세 봉우리 보이네(삼각산의 비 갠 구름 右三角晴雲)

 

 

寒食                      한식일에

 

祭罷原頭日已斜     제사 마치니 언덕머리에선 해가 이미 저물어

紙錢翻處有鳴鴉     지전 사른 곳에선 까마귀 우네

山蹊寂寂人歸去     적적한 산길엔 사람이 돌아가고

雨打棠梨一樹花     비는 팥배나무 때리니 한 나무에 꽃이 피었네

 

 

戲題                      장난삼아 짓다

 

自憐書劍兩無成     책과 칼 둘에서 성취 없음1이 스스로 가여운데

四十蹉跎未策名     40살에도 차질 빚어 명부에 이름 올리지 못했네

志在經綸身短褐     뜻은 나라 다스리는데 있었지만 짧은 갈옷을 몸에 걸쳤고

學窮今古號狂生     학문은 고금을 궁리했지만 미친놈이라 불리지

詩能遣悶時拈筆     시는 번민 펼쳐낼 수 있기에 때때로 붓을 잡고

酒爲澆胸屢擧觥     술은 흉금 엷게 하니 자주 술잔 든다네

不似靑雲夸奪子     청운 벼슬에 명라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九衢塵土滿簪纓     도시의 먼지가 비녀와 갓끈4에 가득한 것만 못하네

 

 

解職後題                해직된 후에 짓다

 

平生樗散鬢如絲     평생 쓸모없이 버려졌는데 귀밑머리마저 새었고

薄官凄涼未救飢     말단 관직으로 처량해서 굶주림도 못 면하니

爲問醉遭官長罵     묻겠노라 취한 채 상관의 욕을 먹는 것이

何如歸赴野人期     어찌 야인으로 되돌아가길 기약하는 것만 같을까

摧開臘甕嘗新醞     재촉해 섣달 항아리 개봉하여 새로 익은 술을 맛보고

更向晴簷閱舊詩     다시 맑은 창문 향하여 옛 시를 읽으며

謝遣諸生深閉戶     재생을 사절하고 깊이 문 걸어 닫은 채

病中唯有睡相宜     병중에 오직 잠을 자는 게 제격이로구나

 

 

兄弟相逢         형제 상봉

 

京口分離後     서울 입구에서 서로 헤어진 뒤로

音書久杳茫     소식 서찰 오래토록 아득

相思今幾月     그리워한 지 지금 몇 달인가

玆會却殊方     이 만남은 도리어 먼 외지일세

雪裏生春色     눈 속에서 봄빛이 생겨나니

天涯似故鄕     하늘 끝 벼랑이 고향 같네

仍懷倚門望     이에 문에 기대 바램을 품는다네

喜極輒悲傷     몹시 기쁘다가 문득 슬퍼지누나

 

 

和子敏絶句            자민 절구에 화답

 

朱鉉淸唱對金尊     주현의 맑은 선창이 금준을 상대하니

一夜風流抵十分     한밤의 풍류가 절정에 이르렀네

却恨詩翁乘興到     아쉬워라, 시옹이 흥을 타고 왔건만

主人沈醉已昏昏     주인은 술 취해 이미 정신이 혼몽하였으니.

 

 

曉踰車嶺         새벽에 차령(車嶺)을 넘으며

 

人生無賢愚     인생살이 잘난 이 못난 이 없이

爲口長營營     먹을 것을 구하느라 늘 바쁘구나

處世豈免俗     세상에 살며 어찌 시속을 벗어나랴

也復勞此行     나 또한 고생스레 이 길을 가노라

中宵發古館     한밤중에 허름한 객관을 출발하여

策馬西南征     말을 채찍질해 서남쪽으로 가니

地傾崖石大     땅은 기울어졌는데 벼랑 바위 크고

天寒沙水淸     하늘은 차갑고 백사장에 물은 맑네

凌晨越車嶺     이른 아침에 일어나 차령을 넘으니

左右山崢嶸     좌우로 산들이 높이도 솟았어라

松風何喧喧     솔바람은 어쩌면 저리 시끄러운가

怪鳥時一鳴     이름 모를 새 때때로 우는구나

斜月隱奔峭     지는 달은 높은 봉우리에 숨어들고

鬼火林間明     도깨비불은 숲 사이로 반짝이도다

我僕泣且僵     내 하인은 무서워 울며 꼼짝 못하고

我馬行復驚     내 말은 가다 놀라 멈춰 서누나

險艱不可道     험하고 어렵기 이루 말할 수 없으니

斯路何時平     이 길이 그 언제나 평탄해질꼬

長歌苦寒行     고한행 노래를 길게 부르노니

古人同此情     고인도 이내 심정과 같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