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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

고형섭

 

망해사

심포항

서해바다가 화가 났다

 

사리때라

맑았던 바닷물이

서쪽 하늘에

먹구름이 덮칠 듯이 일더니

굵은 빗줄기가

우두두둑

여지없이 차 지붕을 때리고

이내

회색 뻘물 바다가 되어 버렸다

 

하나

떠 있던 작은 섬들은

파도 안개에

갇혀버렸다

 

파도가

파도를 만들어

어깨동무하고 나란히 오더니

갯뻘에

바위에

부딪쳐

하얀 피를 토해낸다

 

앞뒤 꽁꽁 묶인

통통배들은

연신

엉덩이들을 흔들어 댄다

 

폭풍우에 날개를 맡긴

갈매기들이

방패연처럼

두 날개 쭉 펼치고

바닷물로 곤두박질 친다

 

두 팔을 벌려

비바람을 맞는다

()했던 폐에 시원한 바람이

풍선처럼 가득하고

가뭄 논빼미처럼 쩍쩍 갈라진

내 피부는

비에 적셔 촉촉해진다

 

 

 

장대비

공석진

 

장대 아래

매달린 슬픔이

창처럼 쿡쿡

군데군데 파인

상처를 후비어 팠다

네 잘못은 아니다

나를 아프게 한 건

흐린 날을 갈망하는

내 탓이다

모두 내 탓이다

 

 

 

청천 폭우

공석진

 

비가

쏟아 진다

 

젠장

가뜩이나

우울한 날

 

맑은 하늘에

비람

 

하는 수 없지

맞는 수 밖에

 

무지개를

기다리며

맞는 수밖에

 

어이없게도

세상은

청천폭우(靑天瀑雨)

 

 

 

폭우

공석진

 

경적조차 굴복시키는

낮은 저음

 

찢어지는 하늘의

잿빛 상처

 

우산도 없이 흔들리는

여인의 흐느낌

 

어디선가

들려오는 레퀴엠

 

 

 

장대비

권경희

 

곧은 선을 따라

거칠게 뛰어내리는 빗줄기

야생마로 거침없이 질주한다

 

펄펄 끓던 하늘 강이

열대야의 무게를 감당 못 해

으르렁대던 수문을 열어젖히고

세찬 물 폭탄을 쏟아붓는다

 

화려한 불빛 속으로

도시의 거리가 휘청거리고

삶의 파편들이 흩어지며

젖은 우산이 되어 흠뻑 젖던 밤

공포의 밤은 무너지고

 

여명의 눈동자로

동녘에 내민 붉은 살점 한 덩이

눅눅한 새벽을 걸어 나와

동구밖에 슬그머니 풀어놓는 돋을 볕

 

아무런 일 없었던 것처럼

지구를 군림하는 큰 별의 의연함에

도시의 아침은 민낯을 드러낸다

 

 

 

폭우

권경희

 

곧은 선을 따라

거침없이 뛰어내리는 빗줄기

야생마 같은 기백으로

단거리 달리기를 질주한다

 

혹서로 몸살을 앓던

산천초목들은

생명수 같은 단비를 들이키며

잠든 세포들을 일제히 깨우고

 

폭포수 같은 분노에

나약한 등줄기로 지탱하는

사유 모르는 풀꽃들은

혼비백산 쓰러지고

 

역동하는 자동차를 헤치며

세찬 회초리로 퍼붓는 장대비는

거친 탄산수로 호통치며

삶의 파편들을 씻어내린다

 

 

 

폭우

김경숙

 

점점이 떠있던 구름이

몸을 불려가더니만

끝내 산고를 치른다

 

참았던 통증,

누전된 실핏줄을 타고

굳게 닫힌 빗장을 열면

 

울부짖는 파장

피뢰침에 꽂히어

낙하하는 크고 작은 빗방울

 

어느 봄날

뜨락에 다시 피어날

붉은 꽃송이, 송이들

 

 

 

폭우 속에서

김관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없는

다변(多辯)에 목 말라오는 요즘

사람이 부쩍 그리워

창가, 바람 스치는 나무에

빗소리 그 흐느낌 부럽다

카페 유리창엔

세찬 빗줄기

빨라진 물살

흔들리는 나무

날개 젖은 물새

음악 흐르는 강변

못내 그리운 한 사람

기억 한 자락 움켜쥔 채로

은은한 커피 향에 추락하느니

물살 거스르는 물고기이고 싶다

 

 

 

폭우(暴雨)

김낙필

 

언제 한 번은 쏟아내야 할 말들을

품고만 산다

그 끝의 희열 한 번으로

너무 아쉬울 것 같아서

숨기며 산다

넘쳐나는 비열한 언어들로

피 튀기는 말의 나라

말이 죽어서 똥이 되고

정육으로 말하는 나라

...에서 할 말을 잃고 산다

영혼이 쉴 곳 조차

마땅찮은 거리에서

달랑 깡통 하나 놓고 엎드려

삭신 위로 떨어지는 동전처럼

가물거리는 별빛으로 산다

어처구니 없이

죽었거나 산 사람 흉내를 내며

 

제각기의 목숨들은

나름대로 살아 있다는 표시로

숨을 쉰다

숨통을 벌렁거린다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닌데

구차하게 숨을 구걸한다

이쯤에서

해야 할 말들을 쏟아 버랴야겠다

한 번의 쾌락이라도

만지기 위해서

 

타워크레인 위

미끄러진 것인지 아니면

날아 오르려 한 것인지

장대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목숨이 숨을 거뒀다

파리 날개짓처럼 파르르 떨다가

잠깐 사이에 말문을 닫아 버렸다

해야 할 말들은 죽은척하며

명랑한 노래가 되어 흘렀다

조회 시간에

아이들이 숨쉬는 노래처럼

 

사노라면

사노라면 언젠가는.. 하는

유행가 가사처럼

쏟아내는 말은 다시

할 말을 잃어버린다

 

 

 

폭우 그리고 별밤

김남복

 

우산도 없이 들판에 덩그러니 서서

쏟아지는 뜨거운 독설들 사이로

지나치던 후덥지근한 바람이

무수한 삶의 자국들을 유추하고

마음에 없던 말들의 응어리진 눈물 뒤에

돌아보는 지난 시간

 

독설 퍼부어 박힌 알갱이와

가슴속 촘촘히 박힌 작은 아픔의 모진 말은

울화 끝에 사라진 멍울들과 함께

하늘로 올라간 과거의 아픔들

 

기다림 끝에

꼬여진 매듭

다 풀리고

부드러운 하늘과 빛나는 밤

 

 

 

장대비

김민정

 

장대비가 마치 분노라도 하 듯

지붕을 뚫을 기세로 퍼붓는다

 

화단에 나무들 잘못이라도 한 듯

화풀이 상대되어 뭇매를 맞는다

 

세상의 억울함 다 품어 퍼붓고

대단한 분노로 매질하다

 

계곡 물 되어 흘러 북한강에 닿고

출렁출렁 거센 물결 되어 질주하고

 

산허리에 비구름 모아 장대비 되어

또다시 화풀이 상대 찾고 혹 독한 매질에

 

나뭇가지 부러지고 가녀린 꽃들

눈물바다 되어서 한숨짓는다

 

 

 

폭우

김민정

 

뜨거운 태양과 맞서서 온몸으로

흘러내리는 빗물 같은 땀 흘려

 

일구어 놓은 알토랑 같이 지어놓은 곡식

과일나무의 열매들이

 

쏟아지는 폭우에 휩쓸려

후둑후둑 맥없이 떨어져 낙과되어

 

농부의 애간장은 다 타들어 가고

폭우에 잠겨버린 논과 밭 어이할꼬

 

그렇게 하늘 문을 노크하고 애타게 기다렸던

비는 폭우가 되어

 

놀부의 심보로 애타는 농부의

애간장을 녹이는구나

 

 

 

4월의 장대비

김숙경

 

세찬 바람 가랑이 비집고

넘치는 저 힘찬 저항의 이름

비밀하게 재워 둔 언어

4월의 둑방을 가른다

내성적인 낯가림으로 덮어만 두던 언어

현학의 갈피에서 우두망찰 서있는데

보아라!

외마디만 창가에 던져두고 투신하고

없다

무시로 여백 앞에 절망하며

허공에다 헛 손사래 치던

긴 통회의 호흡을 위로하더니

한마디 장렬한 외침으로

생애를 마친 4월 장대비

씨앗의 긴 잠을 채근하며

슬프지 않은 탄생이 어디에 있다더냐

주저앉으려는 여린 심정에다 대고

번개 뇌성으로 번뇌를 혼절케 하더니만

제 명을 재촉하여 익사하고 없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

눈을 뜨라 귀를 열라

재촉 하다 하다가

벅차게 즉흥 환상곡의 헌정을 마친

4월의 장대비

드디어 하늘의 무거운 입 열려는가

 

 

 

장대비

김영제

 

우르릉 쾅

우렁찬 굉음 소리와 함께

하늘이 뚫어진 듯

장대비가

메마른 아스팔트를 적신다

 

625 전란을

겪으신 어르신들

그때의 소리가 상기되시는지

밖에 나가면

죽는다며 집에 있으라신다

 

전쟁 아니예요

남하인지 북상인지

메마른 땅이 안타깝다면서

풍년들라고

큰비를 내려 주는 거예요

 

 

 

게릴라 성 호우

김이듬

 

거리의 비는 잠시 아름다웠다

위에서 보는 우산들은 평화로이 떠가는 잠깐의 행성이 된다

 

곧 어마어마한 욕설이 들려오고 뭔가 또 깨고 부수는 소리

옆집 아저씨는 일주일에 몇 번 미치는 것 같다

한여름에도 창문을 꼭꼭 닫을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

 

나는 오늘 한마디도 안 했다

유통기한이 지난 우유를 마시면서 아아 했지만

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는 말이 아니니까

홑이불처럼 잠시 사각거리다가 나는 치워질 것이다

직업도 친구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데

훌륭하다는 생각도 했다

 

작은 배드민턴 라켓 모양의 전자파로 모기를 죽였다

더 죽일 게 없나 찾아보았다

호흡을 멈추면서 언제까지나 숨 쉴 수 있다는 듯이

 

자정 무렵 택배 기사가 책을 가지고 왔다

그것이 땀인 줄 알면서 아직 비가 오냐고 물어봤다

내륙에는 돌풍이 불어야 했다

 

굳이 이 밤에 누군가가 달려야 할 때

너를 이용하여 가만히 편리해도 되는지

내 모든 의욕들을 깨뜨리고 싶다

 

 

 

폭우

김인숙

 

심하게 아픈 기억이

쏟아져 내린다

 

어제도 오늘도

빗소리가 요란하다

들끓는 요동을 이불로 뒤집어씌우고

웅크리고 누워

차차 고요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물러터져 아직 멀었다

세상 물정 모른다

끊임없이 조롱하듯

퍼붓고 있는 저 천둥 빗소리

 

그렇다

저렇게 우겨대며 고함치는

천둥소리의 난동

미친 듯 날뛰는 번갯불을

어찌해야 할지 몰라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하지만 너에게 외치고 싶다

얕잡아 보는 대신

두려워하며 존중해주면 좋겠다

지금까지 너를 묵묵히 참아준 나를

 

 

 

폭우의 눈물

김인숙

 

이 땅은 언제부터인지 돈이 먼저고

사람의 정과 따스한 마음은

휴지 조각만도 못하게 냉정히 버려지더라

속상한 마음

누구에게 이야기한들

더욱 공허하고

담고 있자니 터질 것 같아

저렇게 속수무책

눈물바람 쏟아져 내리더라

아무도 들어 주는 이

반기는 이

편들어 주는 이 없으니

더더욱 큰 외로움이더라

그래

그런 것이더라

맑고 높은 저 하늘도 속이 문드러질 때가 있어

저렇게 빗소리로 울고 또 울더라

폭풍 눈물을 심히 뿌리더라

천둥 번개로 크게 울부짖더라

 

 

 

폭우

김종제

 

지난 밤 사이 그대 안녕한가요

지금은 잠시 주춤해졌지만

오늘 밤부터 시작해서

그대가 영원히 잠드는 새벽녘까지

강한 비구름대가 몰려와

내 가슴 속에 천둥 번개가 쳐서는

그대가 있는 곳으로

사랑이라는 폭우가 쏟아질 것 같군요

시간 당 백 미리미터로 내리는

내 사랑의 강우량에

그대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내 안에 침수되거나

허리가 무너져 매몰될지도 모르니

항상 조심해야 할거에요

그대 곁으로 한 바탕 달려 가기에는

국지성 집중 호우가 가장 좋아서

내 사랑을 핑계 삼아

때때로 여름 한 철 폭우가 되어

쏟아지는 것이지요

한꺼번에 내린 나의 마음을

그대가 감당할 수가 없어서

땅속 누군가의 뿌리를 적시지 못하고

그대의 키만큼 불어난 물살에

강 어딘가로 휩쓸려 간다면

물이 된 나 밖에는 아무도

그대에게 걸어갈 수가 없겠지요

만약 내 사랑의 폭우를 피해

그대가 짙은 안개를 불러들여

그 속에 숨는다면 나는 이제

비바람 흔들면서 찾아가는 것이지요

 

 

 

장대비가 쏟아졌다

김충규

 

장대비가 쏟아졌다

나무들과 함께 나는 후줄근히 젖었다

작살에 살점들이 뚝뚝 떨어져 나갔다

오래전에 떨어진 태양은 먹다 버린 사과처럼 더럽게 뒹굴고 있었다

내 생은 왜 항상 굴욕인가, 내 영혼은 자꾸 작살 같은 질문을 내 몸에서 퍼붓고 있었다

돌들이 일제히 딱딱한 옷을 벗고 맨몸으로 돌아다녔다

세상은 왜 항상 물음표 속에 갇혀 있는가

내 주변에 선 나무들이 물음표로 구부러져 있었다

오래지 않아 둑이 무너져 먼바다에 살고 있다는 흰고래가 지상으로 올라온다면

나는 그놈의 등에 올라타고 지상을 떠나고 싶다

늘 어디로 떠나고 싶지만 떠나지 못함이 목마름이었다

장대비가 쏟아졌고, 그 사이 죽순은 쑥쑥 자랄 것이다

죽순, 그 연약한 짐승의 살갗을 만지고 싶어 한때 대숲에 머문 적도 있었다

대나무들은 다른 나무들과는 달리 물음표로 구부러지지 않았다

대나무들은 늘 느낌표로 꼿꼿하게 서 있었다

대나무, 그 앞에 서면 일종의 경건함을 느꼈다

속이 텅 비었으면서도 그렇게 꼿꼿하게 서 있기가 얼마나 불가해한 일인가

그러나 내 몸은 한 번도 느낌표처럼 꼿꼿하게 서지 못했다

나는 왜 항상 물음표로 서서 세상을 굽어보는가,

이런 나를 사선으로만 퍼붓는 장대비는 비웃고 있었다

비 오는 날마다 비를 맞고 서서 흰고래를 기다리며 한 시절 느릿하게 보내도 좋을 것 같으다 석 달 열흘 동안 쉼 없이 비가 퍼부어서 뭍과 바다의 경계가 지워져 버린다면

흰고래 성큼 내 앞에 헤엄쳐와 등을 낮추리라

아아, 부질없는 짓 다 집어치우고 죽순처럼 단순하게 쑥쑥 자라기라도 했으면

 

 

 

폭우 속으로

김혜천

 

오랜 가뭄으로

모두 갈구하던 비가 내린다

시원스레 내린다

목마르던 초록이 고개를 들고

비의 젖꼭지를 빠느라 분주하다

우산을 들고 잇었지만

쓰지 않은 채

폭우 속을 천천히 걸었다

최근

산만하고 소란스런 일상에서

겹겹이 쌓인 먼지가 씻겨나가고

첫 시집을 낸 이후

이런저런 감정의 낭비로 전소되어

바싹 마른 나무의 물이 차오른다

 

 

 

장대비

나영애

 

개울에 고인 물

냄새 고약한 가뭄 끝에

장대비 죽창으로 쏟아진다

시끌벅적했던

세상의 입술에 자물쇠 채우고

쏴아, 힘찬리듬이

어둠을 깨운다

 

보도블럭, 건물들

골골이 박힌 미세먼지까지

쫙쫙 후벼 비질한다

 

푸새들 말갛게 웃고

숨쉬기도 힘들었던 물고기

이리저리 뛰며 야단났겠다

 

편견으로 닫힌

내 몸속의 퇴적물

혹시 쟁여 둔 게 있었나

 

누런 이끼 덮이기 전

가슴 열고 장대비 밑에 누울까

창자 뒤집어 탈탈 씻어낼까

 

비 갠 뒤 나무들

말간 싹

한 자나 빼 올리듯

나도 맑아져야지

 

 

 

장대비

남연우

 

물로 만든 죽창들이 쏟아집니다

먹구름 뒤에 참호를 파놓은 그대가

일제히 수직 관통상을 입힙니다

 

뇌우가 거처하는 하늘 아래

숨을 곳이라곤, 허허벌판

무작정 뛰다가 허우적 걷다가

 

비닐우산을 잃어버린 머리카락 끝에

슬픔의 촉이 뾰족한 빗방울들이

습한 습성을 파쇄하는 소리

 

그대 창가에도 들리나요

하룻밤 새 장대높이뛰기 한

우후죽순들을 바라보나요

 

백련이 오소소한, 나의 여름은

연잎을 스쳐 간 장대비가 부러집니다

한차례 잔물결이 일렁입니다

 

 

 

장대비 속의 하루

노현숙

 

서랍 속에 잠들어 있는

시간을 꺼내

더듬어 보는 하루

 

곪아 터지지도 못한 채

아스팔트 위에 튕겨 오르는 남루한 욕망

젖은 우산 아래

젖은 어깨끼리 흔들린다

 

채우고 싶어도 채울 것이 없어

깡소주와 새우깡을 쏟아 붓고

네가 축구공처럼

나를 골대 안으로 차 버려도

다시 일어서 달려들지 못하는

맨홀로 추락하고 싶은 하루

, 그 속에서

부패한 욕망의 악취에 내 몸을 길들일 수도 있으련만

 

아직은, 책상 위

일곱 송이 아이리스가 싱싱한

우윳빛으로 서 있는

장대비 속의 7

 

 

 

폭우

류금선

 

무슨 업보가 그리 많아

저리도 통곡일까

 

제미움이 쌓인

황량한 슬픔

 

바람에 찢기는

숨구멍마다

소스라치는 비명

 

 

 

폭우

문저온

 

죽순은 1에서 2를 꺼낸다

2에서 3, 3에서 4, 드디어 18에서 19를 꺼낸다

 

간밤 폭우 속

부릅뜬 기록원의 너덜너덜한 눈알

 

순은 19에서 18을 꺼낸다 18 17, 17 속 마침내

1을 꺼낸다

 

우후의 죽순은 직립한 뱀처럼 버틴다

 

성기를 뽑아 들고

쩔쩔매는

기록원의 너덜너덜한 눈금

 

너는 0에서 1을 꺼낸다 너는 0에서 10을 꺼낸다 우리는 다시 0에서,

 

죽순은 치솟고

꼭대기는 꼭대기

 

꼭대기는 꼭대기

밖에 없다

 

 

 

장대비 멎은 소읍

문태준

 

땅이 소란스러운 때를 보냈으니 누에가 갉아먹다 남긴 뽕잎 같다

장대비가 다녀가셨다

복사꽃처럼 소담한 놈도 개중에는 있었고

귓볼이 도톰하고 거위 소리처럼 굵은 울대를 가진 놈도 다녀가셨다

비 내린 땅은 돌꽃마냥 곳곳이 파인 얼굴이다

팔랑팔랑 하얀 나비 새로이 나는 것으로 장대비 멎은 줄 아는 것이지만

집을 주섬주섬 나오는 촌로들은 늙고 초췌하다

 

 

 

장마철 폭우

박복미

 

우르렁 쾅

하늘에 괴성과 번개불

앙상한 가지에 잎 하나

파르르 떨고 있네

 

비바람 앞에

버티려고

발버둥 치나 보다

 

외로운 인생길에

서산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면

붉게 물들어 가는

생이라도 서글픈데

 

마음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잦아들기는 커녕

장대비로구나

 

빗줄기 사이에서

부질없는 생각 접고

온갖 시련과 고통

잘 이겨내고

의젓하게 잘 버티라

 

가끔씩 비 그치고

하늘의 구름이 속삭이네

 

 

 

폭우

박복미

 

하늘이 정신 나갔나 봐

연일 이어지는 폭우에

일상은 흩트러지고

감각이 무디어간다

 

수 없이 반복되는 일상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

고달픔을 달래주지 못 하나

너까지 마구 눈물 뿌리는가

 

문뜩 바라본 하늘은

또다시 울고자 짙어지는

모습이라

 

어제도 비가 내렸고

오늘도 비가 내리며

내일도 비가 내린다고

 

밤잠 설쳐

육신은 피곤한데

어느새 새벽은 깨어나

 

졸린 눈 비비며

또 비오는 하루를

맞이한다

 

 

 

장대비 내리던 날

박언지

 

배냇골 가는 길

800고지

운무에게 내어준

산허리에 장대비

후미진 계곡과 숲을

출렁이는 바다를 만든다

 

바람에 부서지는 적락운운

빗물 사이로

떠돌던

소나기의 회한인가

산꼭대기의 물상을 지운다

 

숲을 헤집고 길을 찾는

계곡물은

산허리를 껴안으며

수심을 모르는 바다가 된다

 

바다는 산사에서

가부좌하고

오랫동안 염주를 돌리는

할머니의 회심곡이 된다

 

 

 

장대비

박용래

 

밖은 억수 같은 장대비

빗속에서 누군가 날

목놓아 부르는 소리에

한쪽 신발을 찾다 찾다

심야의 늪

목까지 빠져

허우적 허우적이다

지푸라기 한 올 들고

꿈을 깨다, 깨다.

상금(尙今)도 밖은

장대 같은 억수비

귓전에 맴도는

목놓은 소리

오오 이런 시간에 난

, 우니라

상아(象牙)빛 채찍

 

 

 

폭우(暴雨)

박인걸

 

1

가슴에 낀 흑운(黑雲)

한낮도 밤이 되고

치미는 울화(鬱火)

폭발해야 풀린다.

가슴 태우는 섬광이

두 눈에 번뜩이고

길길이 날뛰며 구르려야

분이 가라앉는다.

 

삶의 무게에 짓 눌려

용신(容身)도 못 해

만수위(滿水位)에 오른

서러움의 눈물들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개폐기(開閉器)를 열고

하루 온종일 너는

이렇게 쏟아붓는구나

 

땅 위에서 으깨지며

산산이 부서져도

오히려 가슴 후련한

무한한 자유(自由)

또 다른 삶의 경험들이

두려움으로 다가와도

몽땅 비워 버린 지금

푸른 하늘이 보인다

 

 

2

지겨우리만큼 비가 내린다

산사태가 비탈진 밭을 덮칠 때

두려워 떨던 어릴 적 기억에 소름이 돋는다

세찬 바람에 비가 섞여 내릴 때면

나무가 아닌 산이 흔들렸다

병들지 않은 나뭇잎들이 맥없이 떨어지고

지축을 흔드는 천둥소리에 맞춰

눈 깜짝할 사이에 벼락이 나무에 쏟아졌다

비명을 지르며 부러지던 노송 앞에서

나는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강물이 교량을 집어 삼키고

소들이 지붕위에서 방황하고 있다

경찰정이 전복하여 가족들이 아우성이다

나는 비의 무서움을 안다

비는 눈물도 피도 인정도 사정도 없다

세월이 흘러도 비는 변하지 않았다

비는 그냥 물일뿐이다

비를 무서워하지 않는 인간이 바보이다

폭우가 내리는 날이면 긴장하고

퍼붓기 시작하면 나는 대비한다

비가 때로는 낭만과 서정을 자아내지만

장마철에는 무서운 괴뢰군이다

지금도 전쟁은 진행 중이다

밖에는 총알처럼 비가 쏟아진다

쫄딱 맞고 서 있는 나무들이 불쌍하다

어디선가 폭우를 맞으며 걸어갈

어린아이들이 눈에 밟힌다

 

 

 

호우주의보

박준

 

이틀 내내 비가 왔다

 

미인은 김치를 자르던 가위를 씻어

귀로 뒤덮은 내 이야기들을 자르기 시작했다

 

발 밑으로 떨어지는 머리카락이

꼭 오래전 누군가에게 받은 용서 같았다

 

이발소에 처음 취직했더니

머리카락을 날리지 않고

바닥을 쓸어내는 것만 배웠다는

친구의 말도 떠올랐다

 

미인은 내가 졸음을

그냥 지켜만 보는 것이 불만이었다

 

나는 미인이 새로 그리고 있는

유화 속에 어둡고 캄캄한 것들의

()가 자라는 것 같아 불만이었다

 

그날 우리는 책 속의 글자를

바꿔 읽는 놀이를 하다 잠이 들었다

 

미인도 나도

흔들리는 마음들에게

빌려온 것이 적지 않아 보였다

 

 

 

장대비

반기룡

 

빨래를 말리려고

빨랫줄에 장대를 받쳤다

잠시 후

장대 같은 장대비가 마구 쏟아졌다

장대가 하늘을 콕콕 찔렀나 보다

 

 

 

폭우

배성희

 

여기는 폐소 공포지대, 풍경이 없는 육면체를 견디고 있다 나는 중력의 바깥을 떠돌고, 구름은 어둡기를 기다려 모여든다 내게로 구름은 내게로 스미고 싶어 한다 비가 온다 내린다 여름비 소낙비가 쏟아진다

내 안의 바람과 물의 힘은 구름을 부르고 비와 조우한다 세찬 비를 고스란히 받아준다

내 방과 옆집의 돌벽 사이 그 비좁고 냄새나는 바닥에 버려진 정체불명의 사물이 하나 둘 꿈틀거리며 살아나 신호를 보낸다

백 년 묵은 끔찍한 일상이, 집요한 벌레에게 파먹히며 썩어가던 땅이, 썩었기 때문에 그래서 오히려 되살아난다

물컹한 흙 심장근육이 모든 각도의 체위로 푸르르 떨다가 두근두근 뛴다 이미 뛰고 있었다 후드득, 후드득, 뚜루룻뚜두, 채쟁챙, 들리나요 나 죽지 않고 숨 쉬어요 살아 있어요

아직 썩지 못한 것들 뒤집어진 양철 냄비 깨진 유리병 삭아가는 골판지 사발면 찌꺼기 알미늄캔 검정비닐 짝짓기하던 고양이털 그리고 썩어가는 것들 비린 냄새들이 구멍을 열고 아우성친다

붉은 벽돌에 스며든 수액은 풍경이 없는 육면체 아랫도리부터 흔들어댄다 이제 움직이는 벽은 바깥으로 나가는 계단이다 진폭이 커다란 함수의 싸인 곡선이다

핏물 머금은 치맛자락처럼 펄럭이던 벽 그 각진 돌 하나하나가 액체 혓바닥이 되어 사방으로 흐트러진다 물의 혓바닥 뾰족한 혓바늘이 꼼꼼하게 피부를 핥으며 거듭 속삭인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나는 모든 세상을 속일 수 있*어 미궁의 늪에 빠져 시멘트처럼 굳어 있던 관절마다 섬모가 돋아나 하늘거린다

말미잘 촉수처럼 길게 자라 춤춘다 알몸의 오필리아 나는 물에 반쯤 잠겨 실눈을 뜨고 있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예민하게 열리고 있는 음순 사이로 순결한 물이 스며든다

천 개의 손발은 지느러미처럼 움직여간다 원하는 곳으로 서서히 조금 더 멀리 흘러간다 계곡을 지나 강을 지나 우리의 먼바다로

 

* 허수경, 레몬에서

 

 

 

장대비가 내리는 날은

서복길

 

장대비가 한없이 내리면

가슴에 진 응어리

다 휩쓸고 지나가리라

 

서럽던 마음아

천둥이 칠 때 큰 소리로 울어라

켜켜이 쌓였던

단단해진 응어리 풀어지게

 

아팠던 마음아

번개 칠 때 모두 토해내라

깊숙이 박혔던

상처 자국 남아 있지 않도록

 

시냇물 흘러 강물이 범람하듯

가슴 시린 아픔 다 휩쓸려 갈 테니

태풍 지나간 자리

잠잠해진 바다처럼

평온하고 고요해질 것이니

 

장대비가 내리는 날은

깊은 속 씻어낼 수 있어

아무도 모르게 울기 좋은 날이다

 

 

 

폭우

성백군

 

햇볕을 과식한

신록의 배탈이다

 

산이 설사하고

강이 배설물을 토한다

 

열 받은 소나기

아무 곳이나 사정없이 두들겨 패지만

더 열 받아, 네 탓 내 탓에

장마는 길어지고

 

서민들

밥그릇에 담긴 홍수

그늘이 깊다

 

 

 

집중호우

손은주

 

끈이 풀린 운동화는 생각의 뒤만 볼 뿐,

앞의 이야기를 쓸 줄 모르고,

그녀의 집에서 피어나지 않는 것들을 찾아

지구본을 거꾸로 돌려본다

매일 같은 바람이 싱크홀 속으로 빠지면

몸에서 빠져나간 중력은 적막이 되는 걸까

파생된 슬픔은 저녁이 되면 화석 발자국을 만들까

부재중 푯말처럼 낯설게 떠나간

그녀를 안치하고 몇 년을 앓고 난 후

깊은 울음이 창가에 머물다가 사라졌다

볼에서 피어난 밤 12,

싱크홀이 깊어질수록 슬픔의 무게가 자란다

너비 2m 깊이 3m쯤 되는 상흔으로 빚은

빨간 구두를 선물 받는다면

허공으로 흩어진 그녀의 향기를 담겠다

바짝 마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붕괴된 쪽은

이편의 나였을까

집중호우,

젖은 것들의 눈빛이 촉촉하다

그녀가 떠난 날의 무게를 안아본다

 

 

 

폭우 지난

신철규

 

나는 지은 죄와 지을 죄를 고백했다

너무나 분명한 신에게

 

빗줄기의 저항 때문에,

노면을 가득 메운 빗물의 저항 때문에,

핸들이 이리저리 꺾인다

지워진 차선 위에서 차는 비틀거리고

 

빗소리가, 비가 떨어져 부서지는 소리가,

차 안을, 메뚜기 떼처럼, 가득 메웠다

내 가슴을 메뜨기들이 뜯어 먹고 있다

 

뻑뻑한 눈

비틀거리는 비

폭풍우를 뚫고 가는 나비처럼

바닥에 떨어져 젖은 날개를 퍼덕이는 몸부림처럼

 

목에 숨이 들어가지 않는다

들어찬 숨이 나오지 않는다

 

너무나 분명한 신

너무나 많은 숨

 

이미 울고 있었지만 울고 싶었다

이미 살아 있었지만 살고 싶었다

이미 죽었지만 죽고 싶었다

 

운전석 천장에 물방울이 맺힌다

추위에 몸이 떨린다

 

컴컴한 방, 손전등을 입에 물고 두 손으로

 

비밀 금고의 다이얼을 돌리는 도둑처럼 앞으로 전진

 

나는 다시 신을 잊었다

 

 

장대비

신홍섭

 

직행 버스 정류장 찻집

눅눅한 옷자락을 타고

커피 향이 스멀스멀 기어 다닌다

 

비를 노 맞은 사람

비 마중하러 차에서 내리는 사람

 

차들은 아스팔트길을

써레질 하고

손님들은 수다를

빗물에 방울방울 흘려보낸다

 

너와 나

가야하고 있어야 할 시간에

표도 끊지 않은 채,

비 내리는 창가에 앉아

하얀 비가 그리는 빗발 무늬를 본다

 

선녀와 나무꾼,

백조의 호수도

산골 소녀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더니

드디어 해도 그리고 달도 그렸다

 

우산을 빙그르르, 빗물을 털지만

사랑은 열매 되어 구심점을 맴돌 뿐

떠나지를 못하네

 

소낙비 뒤편 파란 하늘

너와 나의 쌍무지개

가득한 환희

 

 

 

폭우

안영미

 

개인지 고양이인지 아니면 다른 짐승인지 털 가진 짐승 한 마리가 길에 누워 차가 지나갈 때마다 물벼락을 맞고 있다 그 자리에 누운 지 오래되었는지 금방인지 아니면 다른 세계인지 가늠이 안 되는 형상이다

처참한 것은 죽은 짐승이 아니라 그것을 목격한 나일 테니, 내 몸에 깃들어 목 놓아 우는 것은, 아니 울 때마다 잘 번지게 하는 것은 물벼락일까 흘러내린 핏자국일까

물벼락을 맞는 털 가진 짐승의 횡격막에서는 마지막 숨소리가 빠져나오고 견갑골 사이사이 깃털이 바짝 곤두서서 극적인 장면에 닿아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데 비만 계속 올 때 나도 슬그머니 그러고 싶다 슬픔은 투명체가 되어 달아나고 봇물 터지듯 서러움이 터질 때 나도 영락없는 한 마리 짐승일 테니 모든 걸 다 잊고 비명(非命)이고 싶다

어디에 묘혈을 파야 할까 내 몸속엔 구덩이가 너무 많고 당신을 향해 끝없는 목격자가 돼야 하는데 구덩이가 비로 다 채워진다 이대로 그냥 질식할까

 

 

 

폭우

안영희

 

스미지 못하는 물들이 모여 폭포가 된다,

고 지질학자가 말했어

 

나도 폭력이 되고 싶지 않았어

짓밟고 뒤집어엎으며 돌아가는

미친 흙탕물이고 싶지 않았어

 

터질듯한 가슴 풀어내야 할 순한 자리

조금만 내어주었더라면

 

오래 떠돌다 돌아오는 이

무심히 쉬어가라 버려만 두었더라면은

내 가슴에 그리 단단한 것들이 뭉치지 않았어

성난 테러리스트들이 자라지 않았어

 

느리게 혹은 빠르게

휘고 돌아서 가는 순리

직선으로 획일화하고

콘크리트 계엄령 상주시킨, 저 눈먼

편의와 기능 교도(敎徒)들이 아니었다면

 

강 허리 부드럽게 감아 돌며

더러는 푸른 풀밭을 낳고

하얀 해오라기 떼 키우고 싶었어

목마른 땅 혼절할 듯 전율케 하는 저 힘찬

소나기이고 싶었어

나직나직 지친 영혼에게

노래로 스미고 싶었어

 

어둠 속 불행한 호치민이고 싶지 않았어

않았어, 나도

 

 

 

장대비 내립니다

양재건

 

꼭두새벽부터 장대비 내립니다

이렇게 하면 속 시원하냐 하며

으스대듯 내립니다

 

숨도 제대로 내쉬지 못하는 강바닥을 위해

시름의 눈길로 창밖을 내다보는 환자들을 위해

너희들 울음 쌓느라 애쓰고 애썼다며

으스대며 장대비 시원하게 내립니다

 

하나에도 벅차고 지키기 힘든 사랑도

장대비 같이 와~하며 몰려와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여름은 이래서 좋고

장대비도 이래서 더욱 좋습니다*

 

* 김수영의 '여름밤'에서 변용

 

 

 

폭우(暴雨)

오경택

 

떠돌이 중놈의 속곳 같은 하늘

헤진 구멍으로

연신 울분을 쏟아내고

 

눈물에 막혀 그어진 도로

`진입금지, 우회요망`

 

세월로도 못다 토해낸

내 욕정의 무게는

또아리 튼 배암

 

주리 튼 몸뚱아리는

날밤을 지새우고도 부족함인가

 

삭아 동여진 내 혼()의 노래

머리에서 발끝까지

빗물 타고 흐르고

 

울어 부대낀 설움 보따리

황톳빛 강물에 모아

그렇게

봉일천으로 내지른다

 

 

 

폭우(暴雨)

오보영

 

님이여

진노를 거두어주소서

 

당신의 뜻대로

바르게도

온전하게도

살지 못했음을 고백하오니

님이여 용서하소서

 

당신의 섭리를

거스리지 않고

순리대로 살아가야함을

새로이

깨닫게 하셨사오니

 

님이여

이제는

노여움을 푸시고

 

따사한 햇살로

온화한 바람으로

보듬어주셔서

 

강한 비바람 천둥 번개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주시고

거칠어진 맘을

다독여주소서

 

 

 

폭우 유감

오보영

 

너 꼭 그렇게 왔다 가야겠니

느닷없이

막무가내로

천둥 번개 몰고 와 쏟아져 내려

몸 크게 망가트리고

맘 많이 상하게 한 사람들

가슴에 응어리진

그 깊은 상처를

그 쓰라린 아픔을

어찌 달래란 말이냐

누가 다 보듬으란 말이냐

넌 네 갈 길 그저

훌쩍 떠나고 나면 그만이지만

 

 

 

장대비

오애숙

 

누가 내 맘 알아

하루종일 속 시원히

하늘 우러르며 통곡하라고

하늘 창 활짝 열어젖혔는가

 

누가 내 마음 알아

하루 종일 속 시원히

하늘 우러르며 통곡하라

폭포수 쏟아부으며 서 있는가

 

누가 내 속 알아

심연 저 밑에 수미져 아린

한 맺힌 사연의 응어리 하나씩

빗줄기에 버무려 보내라고 하는가

 

누가 날 위로하려

실컷 울음보 터트려서

종일 장대비 속에 흘려보내라고

창문가에서 통곡의 벽 두드리고 있는가

 

 

 

폭우

원영래

 

비야 내려라

장대비로 내려라

억수장마야 오너라

 

뼈마디 마디 부러진 고통을

시원하게 씻어다오

갈기갈기 찢어진 육신

살이 돋고 피가 돌게 하여다오

짓밟히고 더렵혀진 과거를

깨끗이 지워다오

 

천 갈래 만 갈래 난도질을 하여

누덕누덕 집을 짓고

옆구리 가로질러 구멍 뚫어

선혈 낭자한 길을 내고

허락도 없이 깊은 계곡

마음대로 유린한 후

온갖 쓰레기 다 버리니

비야 내려라

억수장마야 오너라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

비야 멈추어라

억수장마야 멈추어라

죄는 미워도

인간을 미워할 수 없구나

 

 

 

폭우

유희경

 

아이들은 산딸기를 따러 갔다

돌아오는 길에 풀숲에서 구두 한 짝을 발견했다

지난여름 물빛 다발로 쏟아지던 큰비가 벗어둔 것이 분명했다

아이들은 깔깔 웃었다

깔깔 웃던 그중 하나가 구두를 신었다

그중 하나가 산딸기를 쏟았다

그중 하나가 울음을 터뜨렸다

빨간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귀신처럼, 지난 비들이 쏟아진다

하나가 달리자 나머지도 달아났다

구두를 버려두고

붉고 시큼한 맛이었다

 

 

 

폭우

윤재철

 

경칩가절에 부슬부슬

그리움처럼 내리는 가랑비를

고대했는데

 

홀연 비바람 불고

뇌성벽력 치더니 오뉴월 장대 같은 비가

앙칼지게 쏟아진다

 

시절이 하 수상하여 상심한 하늘이

온갖 것 거지투성이 세상

떠나가는 겨울 따라 다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리라고

 

저리도 요란히

채찍을 후리치는 것인가

 

겨우내 쌓인 눈

보슬보슬 내리는 실비에

개울물 돌돌 길섶으로 흘러가고

 

슬며시 기지개 펴는 산하에

향기 머금은 이른봄나물

남녁 화신소식 낭보에

 

이내마음은 이토록 여유로운데

철모른 얄미운 폭우가

다 앗아가 버렸네

 

해맑게 막 움트나는

꽃들의 섬세한 하소연에

차분해지려는 마음도 모르고서

 

 

 

검은 쉼표 실개천에 내리는 장대비

이국헌

 

검은 쉼표 모여 있는

실개천에 내리는 장대비는

틈새 하나 없이 내린다 그 속에

멱살을 잡고 뒤흔드는 바람에

바람 바람 비바람 머릿결 흩날렸다

범람하는 실개천에 거품 물고

누군가의 사랑 노래 들렸다 흩어졌다

피곤한 사랑 알몸 들어갔다 올라왔다

허우적거리다 맴도는 맹물 같은 사랑아

쉼 없이 퍼붓다 냅다 뿌리는 장대비 속에

알몸 둥이 둥실 떠가는 실개천을 눈 빠지게 본다

검은 쉼표처럼 수수방관 나무 아비 타불

가라사대, . . . . 사람들

멀뚱멀뚱 실개천에 내리는 장대비에

영자야, 영자야, 씹 할 개 같은 년

죽어 버릴 거야

때아닌 고백의 장렬한 투쟁이야

콸콸콸 콜록콜록 우르르 꽝광

귓가엔 드라마 효과음이 들렸다 말았다

흩어졌다 쏟아졌다

 

 

 

폭우

이도연

 

그런 날을 보지 못했다

천지가 개벽한다는 단어 앞에 어둠의 세상이 요동치며 비바람을 몰았다

 

푸른 날이 선 칼날을 휘두르는 헤파이스토스*의 불꽃은 장엄하고 커서 표현할 수 없는 카오스를 연출했으며 원죄의 근원을 더듬어 올리는 기도는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눈을 감아도 눈을 크게 떠도 낯선 세상의 풍경 앞에 심장이 졸아들었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노점의 불빛들도 눈을 감았다

 

어둠을 쓸고 가는 물줄기는 놀라 흔들리는 가로등 밑에서 오렌지 빛 물 입자를 튕겨내며 비산하고 생성하며 소멸하고 있었다

 

창에 고여 있는 어둠의 명암에 이방인의 얼굴이 머물다 낯선 표정으로 웃으며

희미한 시선 아래 이내 빗방울로 흘러내린다

 

비와 바람의 조화와 수자폰 저음과 심벌즈의 날카로운 소리의 영혼이 천둥과 번개로 서로를 밀고 당기며 밤의 세계를 지배하는 순간

짧은 내 생의 중심은 초점 없이 흔들리는 촛불 같았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 장엄하고 우렁차게 흔들리는 지축의 공포를 밀어내기 위한 노력은 소멸하는 한줄기 가여운 눈물일 뿐이었다

 

맑게 갠 하늘

천지창조의 빛을 위하여 새로운 세상을 향해 제를 올린다

 

폭우가 지난 아침의 잔해가 부러진 나뭇가지 사이에 널브러져 있어도

치유의 아침은 오리라 긍정의 믿음과 신념은 언제나 옳다.

 

* 헤파이스토스의 : 그리스 로마신화의 대장장이, 불의 신

 

 

 

장대비

이문희

 

칠흑같이 어두운

한밤중

장대비 후려치는 소리

 

가슴 속 얼얼하게

져리어 온다

치마폭 찟기는 듯

아픈 듯도 싶고

 

장대비 억수로

쏟아지는 밤엔

함께 묻어가는 울음소리

 

멍든 마음 후련하도록

습기 머금은 온 밤을

소리내어 울 수 있어 좋다

 

 

 

작달비(장대비)

이미화

 

영롱한 빛으로 살포시 찾아와

아침을 깨우던 햇살도

 

청아한 소리로 합창을 하며

반갑게 인사하던 새들도

 

하늘이 무너진 듯 쏟아져 내리는

폭우에 놀라 숨어 버렸네

 

한여름 무더위 적군을 물리치듯

당당한 소리로 달려드는 작달비

 

창가에 앉아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며 미소도 지어보네

 

 

 

장대비

이재환

 

떠돌이

바람 소리

나무를 흔들어 대고

 

하늘엔

먹구름 몰려오더니

인상을 쓴다

 

짓궂은

먹구름 바람 따라

소나기 심술을 부린다

 

조용하던 세상이

아수라장이 되어

신음을 한다

 

 

 

폭우

이제민

 

갑자기

퍼붓는 장대비

 

여기저기

우왕좌왕하는

사람들

 

따뜻한 보금자리

내팽개치고

몸만 겨우 빠져나간

초라한 모습

 

모두들

하늘만 원망하기엔

상처가 너무나 커

자살하는 사람들

 

해마다

반복되는

슬픈 사연

 

 

 

폭우

이창훈

 

지금껏

나의 사랑은

그런 것이었다

서서히

젖을 새도 없이 젖어

세상 한 귀퉁이 한 뼘

처마에 쭈그려 앉아

물먹은 성냥에

우울한 불을 댕기며

네가 그치기만을

기다리던

 

 

 

폭우

임영준

 

작은 과실에

너무 과한 응징입니다

등 따습고 배부른 자들은

낭만인지 아는데

민초들에겐

고통의 반복입니다

가려 닿을 수 있다면

군데군데 바라는 자리에만

부어주시던가

힘없고 고달프고

서러운 그들에겐

너무도 과한 응징입니다

 

 

 

호우경보

임영준

 

어둠을 할퀴는

죽비소리

뼈저리지 않을까

 

아리송

어긋난 것들 모두

수치의 도랑 패여라

 

일과에 그칠지라도

호되게 들부시고 나면

일말이라도 잡아야 하리니

 

 

 

집중호우

장광규

 

먹구름이 잔뜩 모여들더니

번개가 번쩍 찌르륵

천둥은 우르르 쾅 우르르 콰앙

비는 쉼 없이 주룩주룩

 

어느 곳에 피해가 있는지

어디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

TV를 켜고 신문을 펼친다

어허 그곳에 둑이 무너지고

도로가 떠내려가고

건물이 흙탕물에 잠겼다

 

여름에 찾아오는 장마

장마 속에 끼어드는 집중호우

사람들이 힘을 모아 바삐 움직이고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복구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은 환하게 웃는다

 

 

 

폭우

장광규

 

얼마나 슬프면

저렇게 많은 눈물이 나올까

어디다 간직해 두었던

뜨거운 눈물이 한꺼번에 나올까

 

무엇이 괴로워

저렇게 굵은 눈물을 쏟을까

땅이 멍들 만큼

엄청난 눈물을 쏟을까

 

어디가 아파서

저렇게 끝없는 눈물일까

왜 속에 있는 말 못 하고

바보스럽게 눈물만 흘릴까

 

얼마나 슬퍼서

무엇이 괴로워서

어디가 아파서

저런 모습을 보일까

저 큰 덩치가

 

 

 

폭우 2001

장광규

 

2001714일 오후 늦게부터

715일 오전까지

서울을 비롯한 중부지방에

평균 2mm가 넘게

쏟아진 엄청난 폭우

 

초복을 하루 앞두고 내린 비는

서울 310.1mm

인천 220.5mm

춘천 217.3mm

동두천 175.4mm

홍천 167.5mm

강우량을 보였는데

 

특히 서울은 15일 오전

210분부터 한 시간 동안

무려 99.5mm

장대비를 퍼부었다

이 강우량은

1964913

116mm가 쏟아진 이래

37년 만의 기록이다

 

 

 

장대비

장만호

 

장대비 온다

 

우산을 뚫고

들어와 지금, 내 몸에 박히는 비

 

죽상처럼 떨어져

흥건하게 고이는 비

 

장대비 온다

 

처마 밑에서

비스듬히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이처럼

쭈그리고 앉아

비와 비 사이를 가늠하는 뒷방 할머니처럼

 

제기천변 반지하방 방범창

죽순처럼 삐져나온 얼굴들이

 

걱정스레 마디를 세어 보는 비

장대비 온다

 

 

 

폭우

전홍준

 

허리 부러진 세간살이가

떠내려 간다

난쟁이 같은 희망도

떠내려 간다

 

또 몰리고 쏠리는

이 땅의 그렁그렁한 눈물이여

 

 

 

새벽 호우

정민기

 

소금 간을 하지 않은 고등어처럼

새벽잠에 깊이 취해

비몽사몽 꿈속에서 헤매는 호우

불러 세워놓고 벌이라도 주는지

그 울음소리는 아기의 것보다

더욱 처절하게 저며오고 있다

때는 중복이 지난 어느 새벽녘,

하늘에 있는 개를 다 풀어놓은 듯

울면서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다

저 집요한 비, 잡고

하소연할 수도 없는 노릇

 

 

 

장대비

정민기

 

장대높이뛰기 선수들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저수지는 파동으로

붕어들이 우산을 쓴다

우두두두, 우두두두

지붕 위를 길고양이가

질주하는 듯, 저 소리

가로등은 꾸벅 조느라

듣지 못한다 밤바람

사정없이 불어대고

어둠은 먹물처럼 번진다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는 잎

나풀나풀 나비처럼

소리 없이 날아오른다

빗물은 예약해놓은

하수구를 찾아 흘러든다

바람에 휘청거리며

우산 속으로 비가 들이친다

 

 

 

폭우가 쏟아져도 좋겠다

정태중

 

한번은

속 시원히

쏟아져 내려라

 

알몸이 되어

너를 맞으리

 

두꺼운 갑옷 같은

무게로 짓누르는

허황된 인생 유희

 

다 벗어 던지고

알몸이 되어

너를 맞으리

 

 

 

폭우

조경선

 

토담집 처마 밑 발자국이 깎여 나간다

거미가 쳐놓은 사다리를 삼켜버리고

바람은 방향을 찾지 못해 문을 후려친다

 

빗물이 꼬리를 세워 흙의 비밀을 파고들 때

실족한 오른발은 붉은 피를 파먹는다

한 계절 낱낱이 파헤쳐진 헛소문부터 살냄새까지

 

너는 나에게로 나는 너에게로

그 사이 당신이라는 좌절이 쏟아진다

걸음에 묻어 있던 흙냄새가 허공에서 갈라진다

 

 

 

한 다발 장대비

조말선

 

한 다발의 장대비가 배달되었다

밑동이 바싹 잘린 장대비 머리에 구름을 매단 장대비 구름은 활짝 피어 있었다

포장을 하지 않은 장대비는 노란 리본에 질끈 묶여 있었다

나는 그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그는 용의주도하게 꼬리를 잘라버렸다

뿌리째 보낸 비에 내가 다 젖을까봐?

그는 한번도 비를 맞아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군다

비는 바깥에 두는 것이 좋아, 그는 활짝 핀 구름만 보고 버리라 한다

비는 오래 맞을 것이 못 된다고 한다

나는 한 다발의 장대비를 궁리했다

꽃병에 꽂아도 보았다가 거꾸로 매달기도 했다

구름은 점점 허물어졌다

구름은 점점 병색을 띠었다

한번 잘린 구름은 뜬구름이 되었다

한번 잘린 장대비는 쏟아지고 없었다

나는 노란 리본에 질끈 묶여 있었다

 

 

 

폭우, 그 끝

조성례

 

주방에서 무심코 과일을 깎는데

거실, 그녀의 등 뒤로 도랑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니가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시나 보다

주름진 저 손안에서 흘러나오는 긴 소리의 끈들

산골 작은 도랑의 얼음을 껍질처럼 과도로 벗겨내면

샘물의 속살에서도 저런 소리가 날까?

 

칠월, 태양이 꺼진 잿빛 허공 어디쯤

구름들의 모서리에서 뛰어내린 이슬비가 폭우로 변하던

어느 여름의 우기였을 것이다,

산골 도랑의 바위를 굴리고 화전 밭을 뭉개고

산 아래 마을을 초토화시켰던 폭우도,

그랬다 붉은 울음들이 삼키고 떠난 자리들은 모두

길 아닌 길을 허옇게 포태하고 있었다

오래전 그녀의 사내가 저녁 밥상을 내던지듯

골절된 세상의 꿈들을 부셔버렸을 때도

어머니, 그녀의 가슴 안쪽으로 붉은 물이 범람했었다

 

맥없이 뿌리 뽑힌 계절도 소화불량에 걸린 하늘도

상처 입은 것들 모두를 안쓰럽게 끌어안고 이제껏 살아온

저 고요한 뒷모습은, 얼마나 무수한 체념들을 안으로 삼킨 것일까

어머니는 오늘도 여전히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시고

밖은 어느새 찬 바람 부는 시월,

 

나는 붉게 익은 사과 속 단물이 그리워 다시 과도를 든다

문득, 껍질이 잘려 나간 속살마다

노모의 침묵이 벌레처럼 웅크린 채 쓸쓸히 돌아누워 있다

 

 

 

장대비

조용미

 

오래된 쇠못의 붉은 옷이 얼룩진다

시든 꽃대의 목덜미에 생채기를 내며

긴 손톱이 지나가는 자국

아픈 몸마다 팅팅 내리꽂히는

녹슨 쇠못들

떨어지는 소리

하얀 마당에 푹푹 단내를 내며

쏟아지는 녹물들

붉은 빗금을 그으며 머리 위로 떨어지는

닭벼슬! 맨드라미! 백일홍! 해당화! 엉겅퀴! 큰바늘꽃 붉은 잎!

신음 소리를 내며 막 벌어지는

상처의 입들,

눈동자를 붉게 물들이며

나쁜 피를 다 쏟아내는 저녁

 

 

 

폭우

하은혜

 

후끈 달구어진 도심의 한낮에

일제히 튼소리로 폭발해 내리는구나!

희뿌옇게 포말이 되어 쏟아져 내리는구나!

 

무심의 쳇증에 걸린 그녀는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외로웠다고

가슴이 치밀어 오르도록

 

지쳤다고

가슴이 녹아내리도록

 

그녀의 간곡한 하소연에

흠뻑 젖어

 

귀가 후

발포성 위장약을 들이키며

내려놓기로 한다.

보이는 것들을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막힘없는 소통을 바라며

막힘없는 그리움을 바라며

 

 

 

어느 날 폭우

하태수

 

날씨가 찌뿌듯해

온몸이 쑤셔오고

 

하늘 보고 푸념하니

때맞추어 먹구름이

 

울듯 말듯 흐느끼다

찢어질 듯한 비명

 

양수가 터지듯

마구 쏟아부으니

 

개벽의 진통 인지

천지가 몸부림쳐

 

폭우 속에 논두렁

밭두렁의 울음은

 

쪽진머리 옥비녀 끝에

고통스런 잉태

 

 

 

폭우와 어둠 저 너머 시

한택수

 

인간에겐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삶도, 죽음도, 포옹마저도

인간에겐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라고 쏟아지는 폭우와 어둠

 

나는 삶을 돌이킬 수

없다. 나는 삶을

 

단 한 번인 나의 삶을

 

인간에겐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라고 쏟아지는 폭우와 어둠 저 너머 시

 

 

 

폭우 속에서

허민

 

인천대교 따라 영종도 가는 길

앞이 보이지 않도록 세찬 빗줄기

심해의 캄캄함을 뚫듯이

 

내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 빗줄기를 온몸으로 받는 지상이 되듯이

당신은 타닥타닥 어둡게 젖어가겠지

때로 분노하듯 때론 잠시 소곤거리듯

모두 잠든 새벽 내 축축한 이야기를 당신에게

 

나를 삼키며 온몸이 스며들겠지

젖은 낱장의 페이지처럼

당신 가슴의 포근함을 숨기지 못한 흰 티셔츠처럼

 

허나 비에 젖지 않는 메마른

이야기가 닿지 않는 숨겨진 그늘

수 광년의 캄캄한 지붕이 있는 곳

당신이면서 당신이 아닌 그곳이 있어서

 

그래서 나는 사랑을 원했다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장대비

황영칠

 

그대 소식 전하는

긴급 전보가 왔다고

장대비가 창문을

밤새 두드렸습니다

 

끝내 못 들은 척

애써 외면하고 말았더니

당신이 쏟아낸 눈물로

온 세상이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사랑아

창문 열고 소식 차마 묻지 못한 까닭은

그대 마음에 폭풍이 다시 휘몰아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보름달 밤 초가지붕 위 박꽃처럼

환한 얼굴로 하얀 이 드러내고

기뻐하지 못하는 까닭은

내 가슴의 상처가 먹구름이 되어

다시 몰려올까 걱정이기 때문이지요

 

그대여

당신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참지 못한 내 눈물 보가 터지면

고이 잠든 당신의 창밖에도

또 한 번

장대비가 쏟아지겠지요

 

하지만 내 가슴이 너무 아픈 것은

쏟아지는 내 눈물 홍수에

당신의 고운 사랑

영원히 떠내려가 버릴까

그것이 더 두렵습니다

 

 

 

폭우

황인숙

 

여름 한낮의 복판을 질주하여

폭우가 쏟아진다.

나무들이 서슬 푸르게 폭우의 질주를 들려준다.

천둥이 울린다.

이웃 아이들이 신나라 소리친다.

빠방! 꽈광! 빠방!

덩달아 컹컹! 개가 짖는다.

목소리가 굵다. 덩치 큰 검은 개일 것이다.

빠방! 꽈광! 빠방!

아이들이 소리지른다.

천둥이 울리고, 폭우가 신나라 쏟아진다.

의자에 앉아 졸던 나는 멍하니 깨어나

정신없이 단빵을 물어뜯는다.

빠방! 꽈과과광! 빠방!

폭우가 쏟아진다 .

하늘 해방군의 집중 포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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