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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바다 1

강계순 - 다시 바다에 가서

강남주 가을 바닷가

강남주 바다의 말씀

강남주 바다 찾기

강동수 바다가 아프다

강은혜 그리운 바다

강인환 바다의 악보 - Ben Goossens의 바다의 아름다운 노래에 부쳐

강인환 벽에 걸린 바다

강정식 밤바다

강학희 바다, 바다로 가면

강희정 바다가 등을 돌리랴

강희창 바닷가 찻집에서

강희창 한진항 밤바다에서

고은영 그리운 바다

고은영 바다의 푸른 독백

고은영 오라비의 바다

고혜경 여름 바다

공석진 바다 여행

공석진 바다 재회

공석진 밤바다에 누워

곽도경 붉은 바다

곽문환 울부짖는 바다

권갑하 바다 이미지 일출

권선희 춤추는 바다

권승주 바다가 그리워

권영민 바다의 눈물

권영익 새벽 바다

권오범 - 밤바다

권정자 바다로 가는 마차

권태원 그리운 바다 부산포

권태인 그 바다

권태인 바다

김갑숙 바다

김경성 피아노가 있는 바다

김경수 - 기억(記憶)의 바다

김경희 그때의 바다

김광기 - 소금쟁이의 바다

김광섭 여름 바다

김귀녀 - 바다는 누군가를 부른다

김귀녀 봄 바닷길에서

김귀녀 바다를 건너다

김금자 해무의 바다

김기린 바다

김남복 가을 바다

김남복 머언 바다에는 갈매기가 없다

김내식 새벽 바다

김내식 - 태풍이 할퀸 새벽 바다

김대식 바다가 그리워

김대식 - 바다를 앞에 두고 서면

김대원 - 바람아 바람아 바닷속을 흐르는 강 되게 해 다오

김덕성 오월의 바다

김덕성 유월의 바다

김동진 아버지의 바다

김동철 바다의 추억

김득수 그대가 그리울 땐 바다를 찾는다

김말란 바다 사내

김명우 - 바다

김명자 꿈꾸는 바다에서

김명희 바다의 노래

김미선 바다로 간 푸른 말

김미숙 - 바다가 쓴 시()

김민정 바다

김사인 봄 바다

김상미 - 바다로 간 내 애인들

김설하 그 바다에 있을 때

김수현 내 숙명의 바다여

김숙경 겨울에 우는 바다

김승택 6월의 바다

김시천 지난여름 바닷가에서

김영철 가을 바닷가에서

김옥경 - 바다가 없는 섬

김윤진 바다가 우는 것은

김재덕 - 바다

김재덕 바다 사랑

김정택 바다

김정호 바다

김정호 저녁 바다

김종덕 가을 바다

김종석 바다가 달려온다

김종석 바다가 모두

김종석 바다가 움직일 때

김주명 - 바다에게

김준철 그 어둠의 바다

김중식 바다 건너기

김진돈 바다의 문장

김춘수 봄 바다

김태인 내가 본 바다

김토성 바다 이야기

김학산 세상의 바다는

김화순 바다의 여자

김희경 - 바다

김희숙 - 바다

 

 

 

다시 바다에 가서

강계순

 

다시 바다에 갔지

막막한 어둠이 내리 덮인 지평의 끝

상처 입은 짐승처럼 울부짖던 그 바다를

만나러 갔지

극소량의 독물을 마시고 스산한 비를 맞으며

감미로운 파괴를 거듭하면서 철철

피 흘리고 달려와 깨어지던 그리운

그 바다를 만나러 갔지

 

긴 긴 후회의 울음조차 낮게 가라앉아 버린 바다

오래전 이미 굳게 닫혀 버린 한 세계의 문 앞에는

유실된 기억들로 가득 찬 적적한 어둠

아득히 들리는 해조음만 세상 밖에 선 듯

낮게 흔들리고 있었지,

그 곁에 쓸쓸히 작별의 말을 묻어 두고

작게 흐르는 바람으로 등을 식히며

먼바다에 갔다 왔지

오래전에 떠나 버린

눈먼 새의 빈 꿈을 배웅하면서

바다에 갔다 왔지

 

 

 

가을 바닷가

강남주

 

해변의 조약돌이 안간힘을 다하여 여름을 끌어안고 있다

밤이면 싸늘해지는 체온을 끌어안고 안타까운

해체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미역 한 조각이 밀려 나와 긴 文字로 헤엄쳐 가고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잔물결이 큰 소리로 절규하고 있다

수면에서 기우뚱거리는 그림자

검게 탄 여름의 잔해를 안고 자맥질을 되풀이하고 있다

 

 

 

바다의 말씀

강남주

 

수런거리며 내게 와

이르는 말씀

뭐라고 믿어야할지

너는 아는가

 

訥辯이라도

날 닳게 하는

커다란 秩序의 한 가운데서

혼자인 이유를

너는 아는가

 

인기척이 없어도

외롭지 않은

이 한밤의 말씀을

너는 듣는가

 

흔들리던 등불마저 사라져버린

적막 속에 모두가

숨죽인 시간에

저 음성을

너는 듣는가

 

땅 끝에 생명

머물러 있기에

우리의 가슴에다 안겨주는

沈默 같은 사연을

너는 아는가

 

모두가 차례로 돌아가버린

메아리도 대답 없이 비껴가버린

이 한밤의 고요를 어루만지는

보다 더한 그 뜻을

너는 아는가

 

땅덩이를 굽이돌아

다가와 서는

宇宙의 한복판에 나를 세우고

혼자 왔다 혼자 가며

이르는 말씀

너는 아는가

너는 아는가

 

 

 

바다 찾기

강남주

 

1

사모아,

라스팔마스,

그리고 아비잔.

참치어장을 두루 돌며

친구는 트럼프 놀이를 시작한다

 

한 장을 뒤집을 때마다

퍼덕이며 낚여오는 어체(魚體)

 

가능성의 미로(迷路)를 헤매다가

되풀이되는

일몰과 일출.

아내의 장딴지에

선연하게 비쳐온다

 

그는 소리높이 외친다.

전속! 남남동!

그리고

··모어라고.

 

 

2

그를 유()하는 파도

바람아 너도냐?

 

저물었다 지새는

동서남북에서

갈매기가 날개를 뿌리며

몰려든다

 

유혹의 저 바다 밑 소리

몸을 뒤척이게 하는

소리.

순수(純粹)를 뽑으며 나는

날개.

충혈된 눈으로 훑는

바다

 

그 밑에서

촉수(觸手)를 흔들며

일제히 지르는

저 아우성

 

삽질하고

쟁기질하고

단단하고

두꺼운 바다를 깨기 위해

곡괭이질을 한다

 

 

 

바다가 아프다

강동수

 

암 병상에 누워있는 어머니를 흔들어 길을 나섰다

운전하는 옆 좌석에 한줌 가벼워진 어머니를 태워

해안도로를 달리는 오후

나는 자꾸만 바다를 보시라고 재촉를 하고

어머니는 차안으로 고개를 떨구신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저 푸른바다를

사시던 산언덕에서 날마다 보아오던 저 바다를

가슴에 한 번 더 담아드리고 싶은데

썰물처럼 빠져나간 마음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어

어머니는 바다를 내려놓고 싶은 게다

먼저 바닷길을 따라간 자식 생각에

마음속에서 지우려는가 보다

아침마다 수평선을 건너와

산등성이 작은 창문을 두드리던 바다안개가

파도를 타고 넘어와 작별을 나누고 돌아선다

 

긴 해안선을 천천히 달려 돌아오는 길

되돌아보니 바다가 하얗게 울고 있다

잠에서 깨어난

해안선 끝자락을 당겨 눈물을 닦고 있다

 

 

 

그리운 바다

강은혜

 

먼 수평선

한 점 구름 걸려 있다

 

파도가 따라가는

만선의 쪽배 하나

해수를 저어간다

 

나선형 날갯짓 속에

동그란 얼굴 하나 걸려 있다

 

바다보다

그 얼굴이 늘 그리웠다

 

 

 

바다의 악보 - Ben Goossens'바다의 아름다운 노래'에 부쳐

강인한

 

바다가 저만치 물러나자

썰물이 밷어 놓은 모래밭에 악보가 드러났다

당신의 입술은 동그랗게 모음을 발음하다가

그만 악보 받침대에 갇혀 나를 바라본다

 

, 달콤한 붉은 입술은 적포도주를 담은 글라스

아니 두 장의 장미 꽃잎 같다

하지만 오래전 당신은 이 해변을 떠났다

 

저만치 과거로부터 떠밀려온 트렁크에는

자물쇠가 채워졌고 두근거리며

들키기 싶은 당신의 사랑이 들어 있을 것이다

 

두려운 비밀을 향해 걸어가는 내 발자국마다

한 장 두 장 물 젖은 악보가 따라오고

입벌린 소라고둥이 트렁크 위에 앉아 소리친다

이제 곧 태풍이 불어온다고 내 마음 속

잠자는 태풍이

검은 수평선을 끌어낼 것이라고

 

그리운 당신의 기억을

이 해변에 떠도는 세이렌의 노래로 남겨두고서

나는 이제 돌아갈 곳이 없다

돌아갈 곳이 없다

 

* 벤 구센스(Ben Goossens) :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사진작가

 

 

 

벽에 걸린 바다

강인한

 

아버지 내 말 들리세요.

침실 벽에 봄 바다를 걸었어요.

가로는 에메랄드빛 잔잔한 지중해

세로는 지금도 빨려 들어가는 수직의 와류,

백금 장식 액자인 줄 알았는데

아니군요, 궁 안의 누군가 바꿔치기한 모양이네요.

검푸른 산화물로 부식된 알루미늄 액자

네모난 액자를 바라보아요.

침대에 앉아 바라보면 들리지요. 요정들의 노랫소리

너울거리는 파도를 타고 들려오지요.

어디에도 선실 유리창을 깨고 녹슨 꿈을 두드리는

망치 소린 들리지 않고

그림 속을 부침하는 비몽사몽만 껴안고

나는 스르르 잠들어요.

위는 아름다운 여인, 아래는 말의 다리가 달린

켄타우루스가 저예요.

아버지는 천상의 어둠에 절반,

나머지 절반은 광명한 인간계에 나와서

지금도 탕탕탕, 총알구멍으로

날마다 일곱 시간 동안 피를 흘리고 있나요.

더럽고 비참한 추억이

언제나 머리맡 오르골에서 핏빛으로 풀려나오는

내 방 침실,

나는 저 액자를 보아요, 그 검푸른 바다를 향해 걸어가요.

일곱 나라 일곱 난쟁이들처럼

서로 다른 말로 서로를 부르며 물어뜯는

이빨이 톱니처럼 사나운 저 물고기들 이름이 무얼까요.

보랏빛 모차르트의 레퀴엠 긴 허리띠로 서로의 몸에 감고

사라져 간 열일곱, 열여덟의 소년과 소녀

그들이 벗어놓은 달콤한 잠을 내 눈 속에 부어주세요.

아버지 나를 데려가 주세요.

아주 멀리 나를 구름처럼 데려가 주세요

 

 

 

밤바다

강정식

 

한증막 열기처럼

어둠은 한꺼번에 덮쳐 와

가슴도, 별빛도, 가로등도 어둠이 들어찼고

바다는 검은 파도를 밀고 들어와

한 치의 모래사장마저 빼앗고 있었다

그래도 밀물은

어둠처럼 거만하지는 않았고

거세지도 않았지만

아무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가끔씩 반짝이는 별과

가끔씩 솟아오르는 불꽃을 제외하면

어디서나 어둠이 뚝뚝 떨어져

절망도, 희망도, 시간도 멎어 있었다

검은 앙금이 사방으로 가라앉는다

점령군처럼 위세를 부리던 밀물

소리 없이 서둘러 갯가를 내어 주면

축축한 밤안개가

갯가의 생명들 다독일 즈음

침묵의 갯벌에서는

무수한 작은 생물들이 억압을 풀며

참았던 숨을 토해 내고

위태로운 자유를 살금살금 도둑질한다

밤바다는 너그러움으로

그들의 은밀한 몸짓을 눈감아 준다

 

가슴속

검은 앙금 밑에서도

떨어지는 별똥별처럼

작은 물방울 봉긋 솟아오른다

 

 

 

바다, 바다로 가면

강학희

 

분노의 무리 망나니 춤추며 너울대면

기만(欺滿)하다

기만하다 시퍼런 칼날 되어

바다, 바다로 가면

 

허옇게 밀려오는 물의 세상

억겁의 매 순간 다른 얼굴이어도

배반이 없는 도시

급살맞은 물결 파도로 눕는다

 

시공(時空)을 잃고

하늘과 바다 닿을 때까지 침수되면

그제야 익사체 하나 떠오르고

내 뭍의 도시 서서히 침몰을 시작한다

 

바다보다도 깊은 가슴에 벼린 칼

하나둘 수평선 너머 사라지는

태양 속으로 자맥질하고

물속 깊이 누운 칼

 

별빛으로 잠잠한 빈 배 하나

유다의 도시에

만선의 노랫가락 들려주러

회항을 시작한다

 

 

 

바다가 등을 돌리랴

강희정

 

바닷물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슬프다

누구나 물이 되고 싶어 한다

해일보다 빨리 다가가

바다가 되고 싶어 한다

바다 외로이 지키는 솟대도 인간만큼 외롭지는 않다

때론 바다 날으는 갈매기 내려앉는다

누가 외롭게 하는가

동해바다 출렁이는 물결

내가 사랑했다 내가먼저 사랑했다

먼저 그대 등을 돌려도 그대를 사랑한 것은 나였다

눈이 오는데 그대 등을 돌려도

나 울지 않으리라

내가 사랑한 그대이므로

 

 

 

바닷가 찻집에서

강희창

 

모이 쪼는 갈매기 되어 바닷가 찻집에

홀로 앉아 새까만 고독을 달여 마신다

잔이 비워짐에 조금씩 흔들리는 영혼, 그것은

식어가는 몸속에 깃든 온기 같은 것

정녕 너는 어떻게 사라져 가는 것이냐

 

바다쪽, 무수히 반짝이는 은빛 아우성을 들으며

하늘 끝으로 가물가물 멀어지는 고깃배를 보며

언제쯤 내 몸이 이 세상에서 식어 갈 때에

나의 영혼은 어떻게 떠나갈지를 생각한다

 

저 아우성치는 바다 위로 야트막이 날아

빛살 속 은빛 언어들의 노랫소리 들으며

순백의 갈매기 날개깃이 물결 스치듯

그렇게 그렇게 나의 영혼은 떠나 갔으면

 

한 소절 소망을 그윽한 눈빛에 실어 주고

식어가는 찻잔을 두 손으로 꼬옥 감싸 안으니

갈매기 한 마리 날래게 물차고 날아 오른다

 

 

 

한진항 밤바다에서

강희창

 

전희인 듯 황혼이 부끄러워

어둠은 밀어처럼 덮어와서는

서로 사무치게 달구었다

 

불빛들은 수심 깊이 뿌리를 내리고

가시촉수 돋워 가며

바다의 전율을 감지하고 있다

 

알몸을 리듬에 내맡긴 채

철썩임으로 접할 때마다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끈적한 해초내음,

 

때로는 거칠다가 잔잔하게

더 없이 황홀한 물안개가

피었다가 사라지는

! 뜨겁고도 짭짤한 사랑

 

숨이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뒤척이더니 기어이

백중 지난 밤 항구 앞자락에

달덩이 하나 낳았다

 

 

 

그리운 바다

고은영

 

영혼의 태고(太古)를 본다

너를 안으면 별이 보이고

네가 숨겨놓은 이름 없는 우주

조금도 거짓 없는 물결이 된다

 

수천수만 날을

너로부터 도망하여 몸부림치던

개념 없는 시간의 지층마다

욕망의 도착을 위해

노력도 없는 게으름은

또 얼마나 두려운 오늘을 낳은 것이냐

 

사랑의 이름으로 널 부르면

도발적인 향수의 어지럼증

고독을 대변하는 선착장에서

지금은 내가

더욱 푸른 항해를 위해 돛을 올리리니

 

한없는 고요와

때론 거친 숨결을 더듬어

물살을 타고 오르는

너의 부드러운 젖무덤이 열리고

묻혔던 신비가 한없이 드러나리니

 

그때 나의 여린 심장이 찔리면

하늘을 열어다오

박제되어 인화된 한 점 흔적이어도

실종된 빛을 고집하지 않으리

 

너에게 들어가 너에 취하면

영원한 너의 입맞춤이 되리니

뜨거운 오감을 헌납할 것이며

영혼을 뭉뚱그려 빻고

한 줌의 재로 너의 제물이 되리니

 

 

 

바다의 푸른 독백

고은영

 

하루종일 햇볕에 그을린 자국엔

성난 종기처럼 일어서는 내 안의 물보라

내 속이 온통 파란 것은

하늘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원형의 모습 그대로

태고의 사랑을 잃지 않는 것

파도의 줄기 따라 여린 결에 달빛을 심는 밤

온종일 멀미에 시달리던 영혼을 풀고

별들을 베고 누우면 수면을 표류하는

빛의 냄새 냄새들

비로소 착지한 고요가 평화로 충일하고

저 멀리 어촌의 불빛들이 깜박깜박 졸고 있다

 

 

 

오라비의 바다

고은영

 

고향 바다

이제 사랑이 없어도 물결들은

자기 형상을 버리지 못하네

오라비는 만선을 끌고

꿈을 지피던 바다로 영원히 떠났다

분열된 삶의 조각들을 팽개쳐버리고

출구가 봉쇄된 심연으로

열두 살 소년처럼 무겁게 가라앉던 마른 뼈 자리

유난히 큰 심장 소리로 여름밤을 가르던

멸치잡이 배들이 휘황한 불을 밝히면

불빛에 찔린 어둠이 저만치 달아나고

애마 명진호를 타고

-잔 되살아나는 오라비

멸치들은 열두 살 아이처럼

저승 꽃을 입에 물고 입술을 쫑긋거리며

가난을 이겨 보겠다던 오라비 가슴에

푸른 미소로 달려들었다

여름밤 달빛을 머리에 이고

물결에 떠내려가는 댓잎처럼

가볍게 그렇게 가볍게

그 알싸한 순비기 보랏빛 꽃이

지천으로 성산포를 불 지르던 밤

눈물을 실어 나르던 소년의 애마 명진호

멸치들은 빛의 길을 밟고

큰 오라비 조타실까지 넘치고 넘쳐 넘실거렸다

아이가 죽은 자리 허망 한 바람이 쉬는 자리

열두 살 아이 같은 저승 꽃 입에 물고

그저 가볍게 가볍게

 

 

 

여름 바다

고혜경

 

용광로를 다 쏟아 놓은

무섭기만 한 저 열정 좀 봐

철없는 모래 마냥 즐겁고

돌 바위 핏줄에 일어서고

잎을 떨군 나무

시름에 돌아눕고

빈 하얀 껍질

온몸 녹아

짠 소금밭으로 질주하는

저 모래들의 아우성

겨울 바람 어디로 갔는지

매서움 앞에 그리도

냉정한 가슴 보이더니

널 부르며 돌아눕는구나

해 저물면 돌아오려나

별빛으로 넉넉해지는 인정

땅 위의 사람들

남기고 간 아픔

밤새 씻어

죽도록 보고 싶은

마음

하나 갖고

새로 태어나는구나

그래

너는 살아 있었구나

여름 바다

 

 

 

바다 여행

공석진

 

검푸른 세상에 체념하듯 몸을 던지면

한 길 낭떠러지로 쑤욱 빠져드네

, 또 다른 세상이 여기에 있구나

 

낯선 이의 침범에 텃세를 부릴 만도 하지만

괜스레 나만 잔뜩 긴장하고

토박이들은 환영 일색일세

 

거북이가 등을 태워 오픈카를 제공하고

길가의 해초가 한들한들

손을 들어 반기네

 

편안한 아저씨 문어는

세상 근심 걱정 없는 표정으로

번쩍이는 머리를 긁적이며

 

트럼펫 피쉬가 나팔을 불어

신바람 나는 풍악을 울리며

코상어의 나른한 잠을 깨우네

 

덩치 큰 나폴레옹 피쉬는

수줍은 미소를 보내며

주춤주춤 다가설라치면

 

돌고래가 애교부리듯 꼬리를 치고

슬그머니 지켜보던 산호초는

화려한 꽃단장으로 유혹하네

 

친구들의 환대에 흥분도 잠시

힘깨나 쓰는 조류라는 놈은 질투를 부리듯

나를 멀리 밀어내어 허겁지겁 정신을 차리면

 

순식간에 기암절벽이 펼쳐지고

그 아래 가라앉은 배를 놀이터 삼아

둥실 두둥실 해가는 줄 모르네

 

무릉도원이 대수더냐

극락 천국이 좋다더냐

파라다이스가 따로 없구나

 

이제 바다 밑에 깃발을 꽂는다

어느 것이 이보다 황홀할까

어느 것이 이보다 짜릿할까

 

어느새 떠날 발걸음을 머뭇거릴 때쯤

바다는 어여 가게나 어여 가게나

아쉬워 가기 싫은 등을 떠미네

 

 

 

바다 재회

공석진

 

너울만 보다 왔습니다

허구한 세월 기다림도 헛되이

밤새도록 광풍을 몰아쳐

재회를 방해하는

하늘의 시샘을 원망했습니다

 

잠 못 이룬 밤을 곱새기며

방파제 모퉁이에 걸터앉아

흰 이빨 드러내는 해파를 바라보며

턱 괴고 하염없이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립니다

 

가뭇가뭇 색 바랜 하늘도

거먹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어

주위를 기웃거리다

더 그리워 더 아파하라고

이별을 재촉하는 비를 뿌려댑니다

 

그따위 시샘이 당신을 자극하여

본의 아닌 생떼를 부려

은밀히 다가오는 흔적조차

몇 겁의 파도줄기로 밀어낼수록

더욱 지독한 그리움으로 다가섭니다

 

순간의 정사를 꿈꾸는 이방인들의

에로티시즘이 부담스러워

마음에 단단한 장막을 치신다면

망각의 잔으로 취하도록 마셔

굴곡진 수평선을 넘겠습니다

 

격랑으로 몸부림치는

당신의 아픔을 위로하여

영원한 사랑으로 노도를 치유하는

큐피드의 화살을

당신의 심장 복판에 보내겠습니다

 

 

 

밤바다에 누워

공석진

 

그리움 가득한

절경에 취해

첫 만남이 설레는 은하수

밤바다에 누워

 

쪽빛 속옷 여미는

바다를 향해

수직으로 쏟아지는

은보라 축제를 벌인다

 

초라함이 측은하여

은파만경(銀波萬頃)으로

사랑을 속삭이는 오로라

나신(裸身)을 지그시 바라보다

 

눈자위 저리저리

쏟아내는 눈물은

질투하는 너울 때문이

정녕 아니리

 

비상하는 루체비스타

탐닉하는 시선

합궁(合穹)의 절정은

비로소 생사를 넘나든다

 

 

 

붉은 바다

곽도경

 

날마다 사랑을 하는 바다 꽃지는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지우며 한 몸으로 뜨겁다

 

바닷물이 거짓말처럼 빠져나간 자리

스물다섯 사내와 스물다섯 계집애가

서로의 허리 휘감은 채

잠시 붉은 해를 가리며 지나가는 사이

붉디붉은 하루가 저문다

 

내 마음이

네 마음에 가닿는 데 걸리는 시간

2억 년

여전히 출발점에 서 있는 마음 하나

붉은 노을에 발 묶여

 

부치지도 못할 긴 편지만

물결 위에 썼다 지우고

또 썼다 지운다

 

 

 

울부짖는 바다

곽문환

 

바다는

언제나 거기 있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소리로 울부짖고 있었다

조물주의 뜻과 언약으로

수많은 밤을 지새웠으니

칠흑 같은 밤을 잉태하기 위하여

몸부림친다

수간마다 영원으로 흐르는 소리

 

바다는

울부짖고 있었다

바람이 쓸고 지나가 버린 개펄에

빨아들이고 뚫으며 몸부림치다 낑낑거리며

연약한 생명 하나

개똥 마을에 모기들이 춤추고

은하는 땅에 떨어져

나뭇잎 하나 쓸어안고 서서히 깊은 공간으로

출렁이며 사라지고 있었다

 

 

 

바다 이미지 - 일출

권갑하

 

아득

어둠 밑바닥

창세의 바람이 일고

 

뜨거운 불길을 삭혀

피워 놀리는 피빛 구름

 

이제 막

열리는 광야

산맥들도 불려 나오고.

 

또 한 겹 베일 벗기면

너는 하늘

나는 바다

 

절로 가슴 떨리는

갈매빛 당신 앞에

 

왁자한

빛살의 하객

밤새 달려온 섬.

 

눈 감으면 저 마법의 눈

마침내 빗장 풀고

 

푸드득

새가 날듯

깊은 침묵 깨고 오는

 

피돌아

눈부신 생성

! 찰라의 황홀

 

 

 

춤추는 바다

권선희

 

파도가

오래된 포구나무 사는 마당까지 밀려와

창문을 두드리면

목젖 부풀리며 열리는 아침

 

허파꽈리처럼 오종종 매달린 골목은

아홉 살 사내아이들처럼 바다로 달려 나가고

물빛 깊은 눈망울 모여든 어판장에는

비늘 돋는 삶이 뛴다

 

돛을 찢는 노대바람* 당당하게 넘어 서면

상처 깁는 명주바람* 불어 온다고

팽팽하게 당겼다가 느슨하게 놓아주며

춤추는 바다

 

고래가 새끼를 낳고

은빛 새가 날아오르는

푸른 경전(經典)의 음절들 타고 넘으며

살아라 살아라

온 몸으로 살아라

춤추는 바다

 

다시 만조(滿潮)에 붉디붉은 석양을 풀고

새들 무리져 둥글게 날아가는 그 곳에

해바라기처럼 둘러 선 사람들

깊고 너른 장단(長短) 따르며

바다처럼 살고 있다

 

* 노대바람 : 내륙에서 아주 드물게 나타나는 강한바람으로, 24.5~28.4 m/s(48~55 kn)의 속력으로 분다. 나무가 뽑히고, 상당한 건물의 피해가 발생한다.

* 명주바람 (명지바람) :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

 

 

 

바다가 그리워

권승주

 

저 시퍼런

끝없는

바다

파도가 되어

하얀 뱀처럼

몸을 비틀며

육지로 오르려 하얀 거품을

뱉고 있다

내 심장 뛰는 소리

희미해져

너에게 안길 수 없다

하늘을 찌를듯한 절벽아래

파도는

온종일 떠나지 못하고 있다

네가

머물러야 할 운명이기에

바다가 육지를 그리워하 듯이

나는 바다를 그리워한다

그리고

사랑한다

 

 

 

바다의 눈물

권영민

 

파도가 운다

천년의 바람을 이고

속살 깊이 스며드는

핏빛 가슴,

 

시퍼렇게 살아 오르는

눈물 삼키며

파도가 운다

 

울다 울다가

지쳐 쓰러져

잠이 드는 바다

 

 

 

새벽 바다

권영익

 

수평선 너머 멀리 밝아오네

어두움을 밀어내고

명암의 질서가 바뀌어지네

 

산새 들새 합주에 눈을 여네

밀려드는 잔잔한 물결 빛

선선히 보이기 시작하니

 

물결 위에 햇살에 따사로움

어두움 이기는 햇살무늬

눈앞에 밝아오는 오묘함에

 

에메라드 푸른빛에 비하랴

수정에 맑아짐에 비하랴

흠도 티도 맑기만 하여라

 

 

 

밤바다

권오범

 

해넘이 파도에 소라껍데기 하나

저만치서 뒹굴고

갯바위에 오롯이 서서

침묵을 지키던 갈매기도

땅거미에 쫓겨 제갈 길 가버렸다

하늘을 전부 끌어안아

별과 달을 보듬은 다소곳한 밤

난 바다에 불덩이들만 줄 맞춰 떠 있어

어디선가 문어나 해달이

월광 욕을 즐길 것 같은 고요

가만히 소라껍데기 귀에 대니

울음소리가 들린다

인간들이 삶의 찌꺼기들을 싣고 와

공해에 마구 버려 심해가 썩고 있다고

바다가 잉잉 우는 사이사이

돌고래 떼가 타전하는

중독된 아련한 음파 쉰 소리

 

 

 

바다로 가는 마차

권정자

 

비 오는 날은 방안에 있어도

젖는다 취한다 가라앉는다

한없이 가라앉아 바닥의 부드러운

우울을 껴안으며 잠들고 싶어진다

날아가는 찻잔의 향기, 이 세상에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애통함도 노여움도 서리 맺힌 마저도

빗줄기 따라 평화롭게 떠나보내야 한다고

빗방울이 가서 닿을 따스한 바다에

언젠가는 나도 가서 누워야 한다고

 

 

 

그리운 바다 부산포

권태원

 

부서진 돛대 위에 걸쳐 있는

바다로 떠난 형님의 마지막 유품을 바라보는

형수님의 한숨은 유난히도 반짝인다

 

산은 산대로 물 위에 앉아 숨결을 느낀다

쏘가리, 버들치, 가물치, 은어

농어, 미꾸라지, 헤기들이

미친 여자의 젖가슴처럼 막 풀어헤쳐 나온다

 

보이지 않는 바다의 언어들이

안개 속을 이리저리 굴러다녀도

하늘은 미세한 그물을 투망한다

 

갈매기는 끼룩끼룩 높이 날아다니고, 아무도

바다의 뒷모습을 보지는 못한다

아침이면 파도는 바다를 잠재우지만,

말 없는 바다는 끝내 잠들지 않는다

 

불쑥 솟아오르는 섬과 섬 사이로

갈기 세운 파도는 울부짖고 있다

집을 떠난 바다 사내들은

머나먼 바다를 향해 노를 저어갔다

 

시골 장터보다 먼저 산이 어두워지고

조금씩 우는 법을 배우며

뜨거운 하루가 무너지고 있다

아 아, 그리운 바다 부산포여

 

 

 

그 바다

권태인

 

그 여름

파도 소리에 꼭 잡은 손

 

긴 머리는

내 가슴 흔들었었는데

 

추억 그리워

다시 찾은 그 바다

 

그러나 노을은

바다만 남기고 떠나버린다

 

 

 

바다

권태인

 

양떼구름 솜털 구름

모두 모아 얼음 산맥 만들고

거친 물결 흰 파도와 바다 만들었다

 

차가운 빙벽 끝없이 펼쳐지고

흰 파도 한없이 사납기만 한데

그 위 외로운 돛단배 하나 띄웠다

 

빙벽을 넘고 또 넘고

거친 파도 헤치고 나아가도

망망대해 끝은 보이지 않는데

 

풀 한 포기 섬 하나 없는

새하얀 산맥과 고요의 바다 위에

흰 꼬리 길게 남기는 외로운 돛단배

 

 

 

바다

김갑숙

 

그 오랜 시간의 흘러감 속에

단 한 번도 뾰족하지 않았다

내치지 않았으므로

오직 받아들임으로

자꾸만 넓어지는 가슴에 바람이 일어도

넉넉한 가슴이라야

꽃이 피고 열매도 맺지

소소한 이야기도 지나치지 않아

먼 길 지나온 하찮은 경험도

결코 헛되지 않다고

그래그래 받아 주지

넘치도록 많은 물도

처음은 방울방울이었으리

처음 그 방울의 소중한 기억 하나하나

생생히 살아 있기에

변함없는 넉넉함으로

출렁이는 어머니 가슴

저 넓디넓은 망망대해

가없는 충만함이다

 

 

 

피아노가 있는 바다

김경성

 

음계를 읽어가던 손이 사라졌다

얼굴이 사라지고 목이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가슴이 사라졌다

 

빗물 먹은 악보가 눈물처럼 번져있다

바람과 바다가 연주한다

오래전에 떠난 당신의 그림자가 한참이나 머물다 간다

 

바다가 연주하는 곡이 건반마다 새겨져서 그토록 깊고 푸른 통음이었을까

바닷속까지 뒤집히는 격정적인 연주는 바다의 울음이었을까

당신의 울음이었을까

몸으로 읽은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바다 깊숙이 가라앉았던 낡은 피아노가 월정리 바닷가에 나와 있다

갈매기 한 무리가 피아노 건반에 앉아서 붉은 눈을 비비고 있다

 

교향곡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억(記憶)의 바다

김경수

 

소주병이 사람을 기울이고

구두가 발을 벗고 사라진다.

기억의 그물망에 걸린 문화대혁명

문학이 죽고 철학이 묻히고

만리장성은 영생불사(永生不死)의 천국으로 가는 신기루인가?

기호에 뜻을 입히니 보기에 좋더라.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하늘에도 때가 묻어

다리가 긴 비가 하늘 몸을 씻어내린다

그녀에 대한 기다림이여, 의자에 앉아 커피나 한잔하시게

 

나무가 자라는 책상 위에 앉아있는 새에게

기억의 바다라는 이름을 달아준다.

아카시아꽃이 구멍 난 마음을 정원에 던졌다.

누가 다시 보이지 않는 슬픔을 찾아올 수 있을 것인가?

빈집 속에서는 빈 새장이 울고

누군가 자정의 종을 칠 때

지나간 시간이 새처럼 다시 날아오려고 하면

눈 없고 코 없고 귀 없는 아이가 땅바닥에 버려져 논다.

밤거리에 쏟아지는 검은 새의 깃털이 이룰 수 없는 인간의 꿈이었구나

시계를 거꾸로 돌린들 과거는 돌아올 수 없고

현재 그 시각의 인상을 사랑한 인상주의 화가가

하늘을 나는 나부(裸婦)를 그린다

 

 

 

그때의 바다

김경희

 

그리워지는 이름 순간순간 비가 오나요

이른 시간 카페에 앉아

여유로운 그대 있으리

 

차 한 잔으로

파도가 포효하는 소리

시간을 끌어안고 진한 향수를

자극합니다

 

모래사장 길 따라

조가비 줍던 어린 소녀

폴짝 뛰어놀던 때가 생각납니다

 

하얀 파도가 출렁이는

바닷가에서 만난 그 마음이 되살아나

모래섬 위에 작은 들꽃

한 송이라도

 

포말의 거품이 일면 옛 추억이

되살아나 풋풋한 첫사랑 설렘

안고 피식 웃음이 납니다

 

 

 

소금쟁이의 바다

김광기

 

지금, 여기까지는 가능했을 것이다.

여름과 겨울이 서로 섞일 수 없듯이

접점에 있는 시간이 그 경계를 사뿐히 스쳐갈 뿐,

하늘을 나는 새들의 날갯짓이나

사념 없는 몸을 길게 누이고 바람 따라

흔들거리고 있는 새털구름 같은 것,

어정쩡하게 하늘에 다리를 꽂고서

어디로 입수해야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잠수부,

저 깊은 속을 온전히 믿어야

바다는 제 품을 투명하게 비춰줄 것이지만

색색의 산호와 조개들이 입을 열고

해초와 불가사리마저 자신들의 세상을 보여줄 것이지만

공간과 시간조차 분별하지 못한 생애는

비극적으로 놀라운 연민을 낳기도 하거니와

심해의 컴컴한 어둠만을 두 눈에 담고

온 생애를 추종하며 두려워하고만 있는데

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소금쟁이,

헛발을 디디고 헛꿈을 꾸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분명, 여기까지는 가능했을 것이다

시공간이 혼합되는 가끔씩은

짙은 빛깔이 물들어 있기도 하겠다

 

 

 

여름 바다

김광섭

 

바람은 풀잎에 자고

여름은 바다에 반짝인다

바다는 인간의 고배를 마신다

바다는 노래의 바람

원색의 남녀가

태고의 사장(砂場)에서 딩군다

아이들은

조개를 주워 모래에 파묻고

파도를 막다가 더워서

시원한 물결을 타고 먼바다로 간다

가다가 큰 사람들이 빠져

바위가 되어 깔앉으면

잔잔한 물결만 해심(海心)으로 간다

해심(海心)에는 사람도 없고

죽음도 없고 바위도 없고

원초의 바람과 물결과

뜨거운 태양만이 노래한다

해심(海心)에서 바다는 바다에 이어지고

물결은 물결을 밀어

세계의 바닷가에

거품이 퍼진다

 

 

 

바다를 건너다

김귀녀

 

쪽빛 물이다

 

명주처럼 화사한

가을 바다

 

바다 위에 서서

저녁이 내리는 시간을 기다린다

 

바다의 잔물결이

노을빛에 부서져 자잘한 큐빅이다

 

눈이 부시다

바다도 늘 파도 속에서 시달린다

 

 

 

바다는 누군가를 부른다

김귀녀

 

저녁 산책길에 나선 바닷가 모래밭

외로운 사람들의 발자국을 지우고

물러나는 파도의 아쉬움이

모래톱으로 매듭진다

외로운 쇠 갈매기 한 마리도

언제나 고독한 바위 끝에서

어둡고 구슬픈 목소리로

누군가를 부르고

만남과 사랑 말고는 채울 수 없는

텅 비어 있는 마음속으로

온갖 외로움을 홀로 껴안고

함께 울어주는 저 바다

깊고 푸르고 싶은 내 마음도

바다가 나를 불러주는 소리 따라

한결같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늘 변치 않고 살고 싶다

 

 

 

봄 바닷길에서

김귀녀

 

죄를 범했네

거제도 공곶이* 찾아가는

봄 바닷길에서

 

수선화 만발해

향기와 꽃을 탐했네

 

몽돌을 덮치는 봄 바닷길에서

옥빛 바다와 봄바람을

 

내 마음에서 만든 내 상처 하나

아는 듯 모르는 듯

 

죄를 범했네

뜻밖의 봄날

몽돌 해안 봄 바닷길에서

 

꽃에게 죄를 물어

나는 아물어 갔네

 

* 경남 거제시 일운면

 

 

 

해무의 바다

김금자

 

흐린 하늘이 포개진 듯 희뿌연 바다

 

동경하던 아름다운 윤슬도

뛰는 돌고래와 갈매기 날갯짓하는

그림 같은 거친 바다를 둘둘 말아

너울 속에 던져놓은 해무

 

치열한 먹이사슬 생존경쟁에서

물결이 흙탕물로 변해도

유유히 어우르는 어머니 같은 바다

 

서서히 안개를 삼키는 해가 솟으면

파도는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고

밤마다 상처를 씻는 몽돌의 비애와

모래를 뱉어내듯 고시랑대는 조개 소리

삶의 애끓는 신음으로 들린다

 

차라리 아프고 힘든 세상에

눈 가려 줄 해무 낀 바다가 좋을 듯하다

 

어쩌랴, 바다같이 흘러가는 인생살이

 

물보라도 없건만 흐릿한 배 한 척

춘곤증을 못 이긴 듯 해무에 갇혀

기억 속의 춘몽을 즐기나 보다

 

 

 

바다

김기린

 

바다여

 

얼마나

갖고 싶기에

가슴이 그리 넓은가

 

얼마나

하고 싶기에

할 말이 그리 많은가

 

얼마나

원통하기에

끝없이 그리 울먹이는가

 

얼마나

살고 싶기에

억만년을 살고도 그리 젊은가

 

 

 

가을 바다

김남복

 

강한 바람과 큰 파도에 부딪혀서

짧은 순간 속절없이 흐려진 시야 뒤

다시 켜진 GPS시스템

 

힘겨웠던 지난 일 뒤

간직하는 좋은 추억은

포근함으로 옷깃을 토닥이며

선선하게 다가오는 바람

 

선저로 전해지는 넓은 바다의 해조음

웃음의 향기 느껴질 때

가을은 깊은 달 속으로 빠져든다

 

 

 

머언 바다에는 갈매기가 없다

김남복

 

갈매기 날던 항구를 떠나오니

푸른 바다와 활기찬 파도

운항중인 P.C선의 선실

조용함만이 반복되는 시간

낭만으로 느껴지던 것들도

조금씩 사라지고 그리움만 남는다

내가 그 땅에 발을 딛고 살아왔듯이

그 누군가에도 기거할 곳이 필요하고

서로를 그리워할수록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밤

손전화의 전파가 잡히지 않는 곳

육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깊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지는 태양은

뜨거운 그리움을 보듬고 있다

머언 바다에는 갈매기가 없다

 

 

 

새벽 바다

김내식

 

바람 없는 열대야에

창 너머 바라보는 새벽 바다

수평선의 오징어 배 집어등이

별처럼 영롱하니 초승달과 아우르고

하늘의 마음을 읽어내려

제 심사를 드러내는

단순한 파도 소리 듣고 있어도

한 번도 싫증이 난다거나

짜증스런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기왕이면 운명으로

운명이라면 기쁨으로

수용하여 자족하는 것이라네

어차피 행복이란,

마음속에서 내가 키우는

평화의 비둘기

더운 날씨에 푹 삶긴

둥글고 무른 사고의 콩으로

순하게 키울라네

 

 

 

태풍이 할퀸 새벽 바다

김내식

 

태풍과 드잡이하느라고

밤을 찢던 파도의 거친 숨결이

칼날로 지구의 심장을 파고드는

새벽 바다에 날이 밝는다

생다지 투정도 언제나 말없이

포근히 받아주는 모래사장에

전장에서 튕겨 나온 해초의 파편

산산이 너부러져 밀려들고

갈매기는 혼비백산

어디론가 종적이 없다

하늘이 태풍의 눈으로 그리던 얼굴

슬며시 지우며 활짝 웃으나

한 번 솟구친 파도의 성깔

스스로 고요하게 수습 하자면

시앗을 본 아낙네 마음으로

2-3일은 족히 끙끙대며

신음을 하지 싶다

 

 

 

바다가 그리워

김대식

 

바다가 그리워

바다엘 갔습니다.

언제나 어머니 품속 같은

한없이 넓은

한없이 푸른 바다가

너무나 보고팠습니다.

 

바다를 가슴에 담고

오고 싶은데

그러기엔 내 가슴이 너무 작아

겨우 파도소리만 담았습니다.

 

버리지 못한 욕심으로

채워도, 채워도 차지 않던 가슴이

집착으로 가득 차 있음을

파도소리를 담으면서 알았습니다.

 

작은 가슴에

바다를 담으려면

비우고, 또 더 비워야 하나 봅니다.

 

그러나 내 가슴에 둥지를 튼 집착이

그럴 수 없다 합니다.

 

언제나

더 사랑하고

더 비우며 산다 하고선

지나온 자취마다

모래 위에 내 이름자 쓰고 온 일이었음을

 

부끄러운 그 이름

파도가 다 지운다는 걸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바다를 앞에 두고 서면

김대식

 

바다를 앞에 두고 서면

늘 그대가 그립다.

그대 속에 바다가 있는지

바닷속에 그대가 있는지

 

그대를 기다리는 내 마음은

언제나 항구다.

오고 가는 이 없는 항구에서

언제나 홀로 선 갯바위

 

그대는 늘 파도만 보낸다

무슨 소식을 싣고 오는지

무슨 소식이 듣고 싶은지

 

보고 싶은 건 그대인데

듣고 싶은 건 그대의 목소린데

밀려와 부서지는 건

파도

파도 소리뿐

 

바다만 바라보다

수평선만 바라보다

기다림은 언제나

파도 소리에 잠든다

 

 

 

바람아 바람아 바다 속을 흐르는 강 되게 해 다오

김대원

 

너와 나의 만남은 바람 때문이었다

하늘에서 살다 땅과 입맞춤하고 파 회오리를 찾아 오른 나는

높고도 높은 바다였다

후회의 산맥 일렁이는

욕망의 골 깊은 담장 밑에는

누더기 예복 걸치고 구걸하다 쓰러진 공자님이 보인다

쇠파리 무리에게 흡혈 당하는

창백하게 굳어진

석가모니 보인다

송장 잡고 불을 품다

쓰러져 피 토하는 예수님의 땀방울이 보인다

내 앉았던 초원은

물안개로 오색 무지개 수놓은 하늘에 잠긴 바다인데

저 눈앞에 출렁이는 아픔의 메아리

허상(虛想=虛像)?

실상(實狀=實像)?

-

내 설 땅은 항상

엉뚱하다

저 만치서 저 만치서...

잡히지 않는

신기루다, 혼돈이다

능욕(凌辱. 陵辱) 당하면서 바람에 흩날리는 바다여

새벽을 담는 계절은 여지껏 오늘인데

저 속을 요동치며 솟아오르는 참샘은

어느 빛으로 숨어 내 바다를 여기 옮겨 불태우려나

바람아 바람아

땅과 나의 입맞춤이

너로 인한 각본이었다면

사랑의 계절을 열기 위해

행복이 바다를 가꾸기 위해

바닷속을 흐르는

강 되게 할 순 없니

 

 

 

오월의 바다

김덕성

 

훤히 트인 동해바다

꿈이 서려 있고

구름 한 점 없는 데

쏟아지는 은빛 햇살

훈풍으로 봄이 내리는 바다

사랑스럽게 쓰다듬어 주듯이

처얼 썩 처얼 썩 밀려오는

사랑하는 여인을 그리워하는 그리움

 

달려오다 끝내 놓치고 돌아서는

수 없이 반복하는 그 애처로움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좌절하지 않는 기백

요즘 쉽게 변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메시지가 아닐까

임을 향해 다가오는 파도에게

사랑의 악수를 보낸다

 

 

 

유월의 바다는

김덕성

 

유월의 바다는 한적하다

곧 고요가 떠나고 인파 밀려온다

그 바닷가에 섰다

 

세상일 잠시 접어놓고

넓게 트인 무한한 바다에 안기면

넓어진 가슴에 시름 사라지고

희망의 꿈을 만난다

 

미래가 열린다

하늘 바다를 몽땅 안으면

심장 뛰는 생명의 약동이 시작되고

수없이 도전하는 하얀 파도처럼

유월 접고 칠월에 도전한다

 

태양이 떠오른다

뜨거운 정열에 원기 회복한 나

축복처럼 태양은 내 가슴에 안긴다

사랑으로 빙그레 웃으며

 

 

 

아버지의 바다

김동진

 

한적한 바닷가

비릿한 갯내음

좁은 황톳길 따라

춤추는 갈대숲

 

떼 지어 나르는 갈매기

물 빠진 갯바닥

달랑게들 제 굴속을

바쁘게 드나들고

 

얕은 물구덩이엔

작은 물고기들

발자국 소리에 놀라

수초 속으로 숨는다

 

어린 눈에

이 모든 것들이

다 신기하고 낯선 풍경

벌써 벌겋게 취한 아버지의

얼굴과 함께 오랫동안 각인되었다

 

육십여 년 세월을 지니

그때 아버지보다 더 늙은 얼굴로

다시 찾은 다대포

상전벽해(桑田碧海)라더니

예전의 갈대숲 사라지고

 

시원스레 뚫린 도로

낯선 콘크리트 건물들이

나를 허탈케 한다

아버지의 바다가

저 멀리 달아나버렸다

 

 

 

바다의 추억

김동철

 

인생이 꼬이고

문장이 뒤틀리며

살아온 세월도 험난하다

 

고요한 바닷가

수평선을 바라보며

바다를 품는 이유를 느낀다

 

굳은 언약

흩어지는 포말 속에

어쩌면 삶이 답답하고

어쩌면 자유롭기도 하다

 

출렁인다 해서

부질없는 것이 아니었음을

철썩거리며 부서지는 파도에 느낀다

 

굳은 땅이

페이고 갈라진 흔적

세월은 인연도 깊어져

그리움이 가랑비에 옷 젖듯

고스란히 추억으로 쌓여간다

 

쉬지 않고

흐르는 강물처럼

슬픔으로 얼룩진 상처는

광활한 세월의 바다에 이르고

 

뒤틀린 세월도

엉키고 꼬인 매듭도

인생의 종착역을 만나 평안하니

 

살갑게 스치는 바람도

온화한 소통을 느낄 수 있어

소소한 것도 추억이라고 생각을 하네

 

돌아보면 남보다 못해도

가끔 돌아보면 생각이 많아지는 게

그게 사랑했던 사람인가 보다

 

 

 

그대가 그리울 땐 바다를 찾는다

김득수

 

내 맘이 너무나 아파서

겨울 바다에 마음을 내려놓고

눈물이 쏙 빠지도록

파도에 서글픈 마음을 씻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보고 싶고

그리울 때엔 내 맘을 받아 줄 수 있는

드넓은 바다를 향해

그 사람을 불러봅니다,

 

그 사람과 나 사이가

요즘 이토록 멀게만 느껴지는지

물결치는 바다에 서글픈 마음 지우며

사랑하는 그 사람을 그립니다,

 

오늘도 겨울 바다를 찾아

그리움을 내려놓지만,

파도처럼 밀려오는 그리움은 날 바보처럼

먼바다만 바라보게 합니다

 

 

 

바다 사내

김말란

 

까칠함과 다정함

싹싹함과 고지식

이것이 그 사내가 가진

최고의 재산이다

 

바닷가 출신이 아님에도

해병대 출신이라는 이유로

자칭 바다 사내라 우긴다

 

작은 체구에 불을 내뿜었다

순간 봄 눈 녹듯 녹아

잔잔한 강물 되어

작은 돛배를 띄운다

 

춘삼월 바람에 흔들리는 새싹처럼

여린 심성에 애교가 넘쳐나니

모른 척 엄지를 들어준다

 

후레지아처럼 은은한 향기 품고

강인한 사내라 인정받으려 애쓰는 모습

해맑은 아기의 재롱 같아

햇살 퍼지듯 웃음이 핀다

 

 

 

바다

김명배

 

어둠을 긷는

물소리에

잠을 깨다

 

()밖 아침

해의 주변(周邊)에 모이는

청동색(靑銅色) 생명(生命)

사금파리

 

어려서 육지(陸地)를 떠난

거대(巨大)한 동경(憧憬)

죽어서

바다 위에 뜨고

 

집을 나간 게의

손을 들게 한

질문(質問)

한 둘이

 

흰 돛을 올리고

돌아온다

돌아온다

 

 

 

바다

김명우

 

그립다고 하기엔 너무 이른 여름이다

눈부심으로 맞아야 하는 너를

이렇게 축축한 숨결로 부르는 것이 부끄럽구나

어쩌면 너도 그렇게 천천히 오려 하는지도 모르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메꾸어 이렇듯 큰 상념의 호수를 만들었을까

네 손가락 제일 짧은 엄지 걸고

매일매일 널 그리워하지만 언제나 네게는 푸념일 뿐

 

그래도 바람이 서늘한 것이 변함없는 사랑

여름이 오기 전에 이마에 땀 훔치는 것은

절실함에 대한 유일한 나의 표현

 

지독한 기다림을 놓아버린 네 사랑이

오히려 이토록 큰 수평선을 그엇구나

물결 위로 구르는 파도를 만들었구나

 

 

 

꿈꾸는 바다에서

김명자

 

눈부신 태양 아래서

고뇌의 눈빛으로 노래하는

이름모를 섬 하나

 

흩어진 파도 사이로

주인 없는 언어들이

무반주로 속삭이고 있다

 

만날 수 없어 더욱 그리운 이별은

무수한 발자국만 남겨두고

추억만 남겨두고

가슴 아프게 헤어지는 것을

 

꿈꾸는 바다에서

멀리 떠나간 사랑

다시 찾을 수 있을까

 

 

 

바다의 노래

김명희

 

바다는 나를 흔들고

나는 바다를 삼킨다

떠나가라

절망의 알갱이마저

바람아, 껴안고 멀리

떠나가거라

 

이제 태풍의 눈도 잠든 바다

검은 바위의 무게까지

떠밀어 올리는 그 거센 바람

그 몸짓

 

오늘, 하늘까지 삼켜버리는 바다

움직이는 그 파도에

내가 부서져도

 

그대는

아직 바윗덩어리로

여기 버티고 있다

그렇게 있어야 한다

 

 

 

바다로 간 푸른 말

김미선

 

통통거리는 작은 배

그 푸른 말

평생 타고 다니셨다

날마다 말 등에 실려서

몇 날 며칠, 끝없던

검푸른 사막

가도 가도 쉴 곳 없는

천지 사방 물 무덤뿐인 불안 속

닻을 내리셨다

바다 깊숙이 던져 넣은 통발

내일을 당겨 올려

물칸 가득 붕장어 싣고

만선의 깃발 통영항구 드나들었다

, 한 번 간 적 없지만 초조한 마음

늘 안방처럼 드나들던 동지나해

아버지

청마 갈기 세우고 만파 박차고 다니셨다

 

 

 

바다가 쓴 시()

김미숙

 

빗줄기 따라 길을 나서 바다로 간다

그 바다에는 비가 내리고

내 마음에도 비가 내린다

 

스스로 열정을 이기지 못해

바다로 뛰어들었다

가슴속으로 스며드는 고요한 바다

파도는 달려와 나를 껴안는다

 

바다에 가는 것은

상처 받은 나를 바라보기 위해서

고독과 마주하기 위해서

 

바다에 가면 바다가 되고

나무를 보면 나무가 된다고

 

일상이 무뎌지고 메마를 때

혼자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흔들릴 때

홀로 찾는 바다가 있다면

 

바다가 들려주는 시를 들으며

마음껏 울음 울 수 있기에

 

 

 

바다

김민정

 

흰 거품

물고 오는

한 마리 물새였네

 

오장육부

드러내며

온몸으로 와서 우는

 

내 죽어

촉루로 빛날

그대 하얀 가슴 속

 

 

 

봄 바다

김사인

 

구장집 마누라

방뎅이 커서

다라이만 했지

다라이만 했지

 

구장집 마누라는

젖통도 커서

헌 런닝구 앞이

묏등만 했지

묏등만 했지

그 낮잠 곁에 나도 따라

채송화처럼 눕고 싶었지

아득한 코골이 소리 속으로

사라지고 싶었지

 

미끈덩 인물도 좋은

구장집 셋째 아들로 환생해설랑

서울 가 부잣집 과부하고

배 맞추고 싶었지

 

 

 

바다로 간 내 애인들

김상미

 

내 애인들은 모두 죽었다

캄캄한 하늘에 아주 높이, 아주 멀리로 오줌발을 갈겨대던

내 애인들은 모두 죽었다

 

나는 애인 없이 아픈 배를 타고 바다로 간다

아무리 노력해도 살릴 수 없는 내 애인들아

사랑에는 더 높고 더 낮은 자리가 없다는데

나는 너희들을 너무 높은 자리로, 너무 높은 자리에만 앉혔던 것 같다

단 한 번의 실수로 너무 높은 자리에서 너무 낮은 자리로 떨어진 너희들은

그 때문에 모두 산산조각 나 모두 죽어버렸다

 

미안하다, 내 애인들아

나는 너희들을 내 자궁처럼 푸른 바다에 묻기 위해 바다로 간다

너희들이 하늘로 쏘아올린 오줌발에서 떨어진 눈물방울들이

싱싱한 물고기가 되어 헤엄쳐 다니는 푸른 바다

이 지상에서 내가 천상인 듯 여기는 유일한 바다

그곳에다 너희들을 묻기 위해 바다로 간다

 

사랑을 사랑할 줄밖에 몰랐던 찢어진 내 가슴에

너희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늘을 입혀다오

나는 이제 모든 하소연도 버리고 입에 문 칼도 버렸다

그토록 아끼던 뜨거운 키스도, 서쪽 달과 하나 되어 격렬했던 밤도 버렸다

너무나도 오래 운 애끓는 행복한 날들도 모두 버렸다

 

그러니 너희들이 짜고 버린 내 불행은 더 이상 내가 아니다

드넓은 바다 위에 너희들을 묻으며 나는 나에게로 귀향한다

 

광야에서 소리치는 사람처럼 외로웠던 내 사랑이여,

죽어서도 펄펄 뛰며 아무런 흔적 남기지 않으려 애쓰지 마라

사랑의 폭군, 비애의 전리품들은 어차피

어제도 죽고, 오늘도 죽고, 내일도 죽을 하얗게 바랜 뼛조각들

더 이상 아무것도 지배하지 못한다

그러니 잘 가라, 내 애인들이여, 그동안 정말,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 바다에 있을 때

김설하

 

그 바다에 있을 때

나는 파도를 읽었고

물살의 소리를 담아서

오래도록 마음을 씻었다

그리고 수평선 그 아득한 이야기

눈물 건너간 끝에서 희망을 보았다

 

그 바다에 있었을 때

나는 갈매기의 눈으로

철썩이는 파도와 싸웠고

모래톱 아픈 사연과 내통하였다

그리고 곤한 새벽을 깨워 떠나는 나룻배의

잃어버린 사랑 그 야속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바다를 두고 오면서

내 가슴에도 파도가 철썩였고

수없이 찍었던 발자국 물살이 지울까

갈비뼈마다 새긴 그리움을 데리고 왔다

그리고 늑골로 소금물 흐르는 사연

가끔 만 떠올리자고 적었다

 

그 바다를 담아두면서

삶이 버겁고 힘겨울 때

너른 바다 훨훨 날아다니는 나는 갈매기

은빛 출렁이는 파도와 통정했고

수평선 끝에 걸린 태양의 붉은 눈처럼

잠시만 아주 잠시만 그렇게 통곡하노라

 

 

 

내 숙명의 바다여

김수현

 

신비로운 바다

위태한 그물 속으로

고통스런 한판 승부

 

집채만 한 파도에

한없이 미끄러지는

허우적대는 나의 삶이여

 

때로는 절망을

때로는 풍요를

다양하게 풀어놓는

삶의 소용돌이

 

오늘도

산목숨 눈물마저

윤기 반짝이는 비늘에

저당 잡힌 채

 

쉴 새 없는 그물의 향연

내 숙명의 바다에

밤과 낮을

번갈아 숨을 쉰다

 

살아 날뛰는

갑판의 분주함 속에

피로와 고통

단숨에 사라지고

 

향긋한 비릿내음

풍요의 엔진 소리에

아침 바다 요란하다

 

 

 

겨울에 우는 바다

김숙경

 

날 선 외롬에 부둥켜 울다 울다가

속수무책으로 시간을 주워 먹던 그대

바윗돌로 머리를 부딪쳐도 갈증만 느는

애욕의 몸뚱이 다아 부수려 드는

그대 본심을 엿본다

 

사유하며

없는 듯이 도리질해 봐도

웃음기 헤프게 퍼 올리던 유약한 변명의 계절

지욕도 넘치면 화가 된다고

침잠에의 초대 잊지 않더니

반란의 씨앗 빌리지 않고

분노의 근원을 내색도 않고 있다가

가학적 울음으로 이제 홀로 포효하는 바다

 

앞에 서 있지만

그대를 어르지 못하는 끈 적한 흰 거품

흩뿌리다 흩뿌리다가 다가서지만

격정을 무참히도 썰질 하고 만 그대

쪽빛도 놀라 아슴히 안개로 쫓겨 날고 없다

 

낯선 시간의 머리채를 어루만지는 그대 앞에서

살아 있음으로 거짓스러운 것들 불구덩이에 묻는다

격정의 말을 벼리는 입술에다 꽃술을 달아

나를 이대로 삼켜도 암말 않는다

그대여 슬플 땐 감추지 말고 울어두자 울어나 두자

 

 

 

6월의 바다

김승택

 

바다에 파도가 없습니다

 

바람이 불면

산비탈 콩밭이 너울춤을 추고,

호미에 쪼인 햇살이

주름살에 맺히면

하얀 웃음으로 허리를 펴는

 

어머니

당신의 미소처럼

6월의 바다엔 파도가 없습니다

 

 

 

지난여름 바닷가에서

김시천

 

지난여름 바닷가에서

파도도 말이 없고

나도 말이 없고

그저 어깨만 들썩이다 내려놓고

 

지난여름 바닷가에서

쓰러져 술병도 울고

나도 울고

바람도 울고 깨진 유리조각 하나

햇빛에 빛나고

 

, 지난여름 바닷가에서

사랑하는 이의 이름 하나

끝내 파도가 되어 떠내려가고

 

지난여름 바닷가에서

파도도 말을 잃고

나도 말을 잃고

그저 어깨만 들썩이다 내려놓고

 

 

 

가을 바닷가에서

김영철

 

비밀을 아는 단 한 사람

파도 끝에 매달려 산다

 

구금 풀린 기억 회로에

다시 전류가 흐르고

 

바다도

하늘색도 아닌

흑백영화 돌아간다

 

숨어 살던 뱃고동이

증언을 위해 달려오고

 

레드카드 내보이며

까치놀이 휘슬을 분다

 

물새가

엎치락뒤치락

젖은 노래를 뜯는다

 

 

 

바다가 없는 섬

김옥경

 

마지막 버스를 떠나보낸 정류장

바다가 없는 고요한 섬이다

물빛 하나 보이지 않는

그런 섬이 되어 오는 순간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번진 바닥에

검은 박쥐처럼 펼쳐진 그림자로

어둠의 블랙홀 속에 빠져

나는 허우적거린다

구름과 바다의 풍경이 그려진 창가

섬이 아닌 섬에서

새들의 투명한 울음소리를

환한 불빛에 어두워지는 서글픔을

바다의 아침에 반짝이는 물살을

불빛 끝에서 보고 있는 섬

모든 배가 떠나버린 섬에서

울고 있는 바람

 

 

 

바다가 우는 것은

김윤진

 

겉으론 늘 담담한 얼굴로

태연스러웠던

에메랄드빛 사랑은

잔잔한 호흡까지 마셔버렸다

신실한 출렁임에

살포시 달아올랐던

연모의 정

 

두려움도 없었을까

성큼 다가선 마음의 거리

그리움은 서로를 채우며

형상을 갖춰갔지

운명마저도 닮았다고 느낄 무렵

거센 물살은

투명한 마음속을 훔쳐본 삶은

잔모래 같은 너의 속내를

그만 울리고 말았구나

그래, 바다가 우는 것은

바다가 흔들리는 것은

못다 한 말이 목젖까지 올라와

수면 위에서 맴돌기 때문이었어

 

 

 

바다

김재덕

 

파도는 사람의 속마음 같은지

끊임없이 구시렁거린다

 

부글부글 시동 걸다가

배탈 난 똥구멍처럼 끝내 부딪힌다

 

왠지, 시원섭섭하면서 아프다

 

평온을 찾는 듯하다가도

또 무섭게 화풀이한다

 

바위는 버티고 사람은 참는다

 

알 수 없는 속을 표출하는 파도를

사람들은 묵묵히 정리한다

 

인생사 물거품인 것을 아는지

 

 

 

바다 사랑

김재덕

 

푸른 파도 넘실대는

한적한 해변가 왠지 모를 외로움에

임 찾아 울적한 마음 풀어내련다

 

어서 오라 반기듯 출렁거리는

손짓으로 너른 마음 베푸니

내 마음 그대 품에 녹아들어 가네

 

평온과 위안 주는 임의 자애로움은

세파에 시달린 아픈 상처 감싸 안는

포근함에 가슴이 메어온다

 

묵언 수행자처럼 말없이 들어주며

슬프고 괴로워서 흘리는 눈물마저

따뜻이 받아주는 고마운 임

 

외로울 때도

사랑하고 싶을 때도

그대를 찾을 수 있음에 감사하며

 

어떤 상황이든 어느 때라도

때론 늦은 밤이라도 기다려주는

임을 볼 수 있어 참으로 행복하여라

 

모든 시름 다 품어주는 넉넉함에

내 마음 활짝 열어 그대 품에 안기며

임을 사랑하고 싶네

 

홀가분하게 돌아서는 나에게

밝은 미소 짓는 임 내 삶을 영위하는

그날까지 그대를 사랑하리라

 

 

 

바다의 지진 이후

김정란

 

들끓던

바다의 용암이 손톱을 밀어넣고 있다

여자 하나 파도 위로 나르며

긴 장삼 끝으로 탁탁

아직도 으르렁대는 파도를 가볍게 때린다

이제 그만

그만 힘을 숨겨

지진이 지나갔다

이제 뭘 할 것인가

여자는 바닷가에 내려앉는다

여진(餘塵)이 남은 갯벌 위에서

물고기 몇 마리 뒤채고 있다

깊고 먼바다 뒤집어지며

밀려온 장님 물고기들

여자는 큰 어항을 들고 다가간다

곧 세계의 어부들이 다가오리라

 

 

 

바다

김정택

 

시선 끝

수평선에

흰 구름 한가롭고

 

세월이

희롱해도

청춘은 변함없네

 

지는 해

황홀한 여정

넓은 품에 쉬어간다

 

 

 

바다

김정호

 

남은 사랑

버리지 못한 미움

다 토해버리자

 

부질없는 흔적

애써 남기려 하지 말자

 

아무리 지워도

다시 솟구치는

내 안의 욕망

 

,

죄다

고해 버리자

 

 

 

저녁 바다

김정호

 

수평선 너머 바다가

붉게 타오른다

그 위를 날던 갈매기

불새 되어 노을 속으로 사라지고

태양 끝을 살짝 문 노을은

마지막 몸부림치며

천근 무게로 바다에 눕는다

그 바다로 걸어간 그리움아

한때는 태양처럼

뜨거운 가슴으로 사랑했지만

차디찬 파도에 몸을 식이고

한 떨기 눈물 꽃으로 피는 밤

너도 떠난 후

별빛도 내리지 않는 밤바다에

서러운 기억과

어지러운 세상의 어둠일랑

고요 속에 묻어 두고

나는 또

저녁 바다를 걷는

외로움이 되었다

 

 

 

가을 바다

김종덕

 

바다의 색()

하늘에서 온 줄은 몰랐다

 

가을의 사색(思索)

하늘의 머리를 무겁게 하더니

 

바다에 몽땅

뿌려 놓았다

 

바다는

비어 있던 외로움을

하늘색()으로 채우고

 

별들도

하늘의 뜻을 알까

그 속을 물어본다

 

바다에 스며든 별

엄마의 품속처럼

어리광 부리고

 

맘속으로 비치던 하늘을

가슴으로 품어

고운 가을 하늘의 마음으로

스스로를 더 푸르게

다스리고 있다

 

 

 

바다가 달려온다

김종석

 

푸른 미역 걸치고 성게 들고 달려온다.

출렁이며 파란 바다는 수영복 차림의 나에게 온다.

때로는 은빛으로 때로는 파란색으로 온다.

 

바뀌는 계절엔 내 주위 맴돌며 바람이 유혹하네

바닷가 모래 밭을 걸으면 네 발자국 남지요.

백합처럼 하얗게 밀려와 지워 버립니다.

 

날씨가 싸늘해지고 풍경이 스산해지면 슬픔도 옵니다.

갈매기들은 바다에서 백조 흉내 내며 웁니다.

나는 바람과 함께 걷습니다 바람의 발자국은 없지요.

 

누군가 날 사랑 할 줄 알았습니다 세월은 흐르고

눈 내리는 바닷가를 식당 안 유리창으로 봅니다.

때로는 펑펑 쏟아지기도 합니다 나는 이것을 사랑 합니다.

 

사랑의 계절이 왔습니다. 꽃 향기 만발한 곳에서

나는 사랑을 찾았습니다. 내게 바다가 달려 왔습니다.

여름이 오면 모래사장에 지워지지 않는 네 발자국 만듭니다

 

 

 

바다가 모두

김종석

 

내가 부르는 노래

푸른 파도 다가와

모두모두 휩쓸어 사라집니다

마지막까지 부르던 노래는

소리 없이 훔쳐 달아나 버립니다

푸르디 푸른 파도는 살랑거립니다

떨어지는 낙엽조차

모두 훔쳐 달아납니다

파도는 방파제를 부딪히며

무언가 찾습니다

어디선가 나에게 편지 한 장 날아오는데

무언가 쓰여진 낱말

아쉽게도 바다에 가라 앉습니다

머릿속에 들어 있는 모든 것 가져갑니다

다시는 부를 수 없는 노래

다시는 기억할 수 없는 날

 

 

 

바다가 움직일 때

김종석

 

바다가 한쪽으로 기울면

태양도 기울어질 줄 알았다

도시도 기울어지고

내 몸도 기울어질 줄 알았다

바닷물은 앞에서 밀려가고

되돌아오곤 했다

 

어부들은 기다림이 있었을 줄 모르지만

바닷물이 되돌아올 땐

새로운 소식 하나쯤 가져다줄 줄 알았는데

그들은 빈손으로 왔다

 

하기야, 내가 빈손으로 보냈는데

바다가 한쪽으로 기울 땐

태양도, 모든 것도 기울 줄 알았다

다만, 출렁이는 내 가슴보다는

기울음의 파장이 적었다

 

 

 

바다에게

김주명

 

새벽이 떠나갈 때 벗어놓은 붉은 옷

마리나 카페, 늦은 점심 위로 쏟아진다

천 년 전

바다 실크로드의 영광을 몸에 새긴 바타비아의 광대는

광장의 마지막 침묵이다

 

온종일 바람 속에 놀다 맨얼굴

핏물 검게 그을려 들어오는 나

먼저 맞이하는 순다왕국 끌라빠항의 바람

까끄라기 몇 개가 느껴졌다

 

째깍째깍, 한참을 쌓여가던 고요는

북받치는 설움덩어리가 뿜어낸 쇳소리에 무너져 내렸고

마주한 어릿광대의 눈동자 속

해마저 붉게 일렁인다

 

뿜어낸 담배 연기로 어룽지는 수평선

까마득히 이어지는 그곳에도

모진 물결 감춰져 있다는데

표정 하나 없는 해

뜨겁게 가라앉아 바다에 번진다

 

뒷덜미까지 쫓아와 하얀 눈물 흥건히 물들인

그날 오후

 

 

 

그 어둠의 바다

김준철

 

유년의 어둠은

죽음이었다

 

목까지 차 오는

그 시커먼 어둠에

발버둥치다

결국 잠겨 버릴

깊은 수면이었다

 

그렇게

긴 시간이 지난 후에

가녀린 햇살 한자락을

붙잡고, 어둠의 깊은 통로를 지나

수면 위로 오를 수 있었다

 

그 후,

선잠뿐이었다

 

함부로 접근할 수 없는

그것은 갈증과도 같았다

사막 안에서

할당된 물을 다 마셔 버려

조갈에 죽음을 그리는……

 

소곤거리듯

내 소매 안으로,

머리칼 상이로,

갈갈하게 들어오는

사막의 바람 속에 섞인 모래알처럼

 

난 그 어둠의 바다에서

익사하고 싶다

 

 

 

바다 건너기

김중식

 

풍 맞은 체위로 물 속을 걷는다

장딴지 근육 파열 탓에

걸음마부터 시작한 재활(再活) 훈련

 

버터플라이 영법으로 수면을 때리는 아이의 어깨가

새싹 모양

돌고래 꼬리 같다

 

나비가 고래 등 타고 바다를 건너려는 듯

 

스스로 건너지 못하게 된다면, 여보

곡기 끊거나

까마귀 많던 산 중턱보다

바다로 갈 터이니

 

나의 고래여

물이 뭍보다 자유로울 때가 있으므로

 

태생이 파도 거품이었으므로

어차피 꺼질 목숨

생이 줄어도 어쩔 수 없으니

수면을 치며 솟구치는 고래야

 

바다를 건널 땐

낙타 배 때려 밤새 달려라

 

 

 

바다의 문장

김진돈

 

펜촉 끝이 젖어 있는 파고는 땅에 바다를 폭로한다 밑줄이 없는 지류(紙類)를 횡설수설하는 손바닥을 만지면 허기가 눌러 찍은 발자국이 행서체로 흥얼거린다

해안선은 혼잣말로 읽어야 하는 문장이다

팔짱을 낀 채 제 젖가슴을 누르며 걷던 한 여자가 걸음을 멈춘다 다음 발자국 자리에 젖 모양의 구멍을 판다 바닷물이 한 홉쯤 고여 있는 원문을 탁본한다

해안선은 여자로 읽어야 하는 수정문이 된다

세 남자가 옆 사람 그림자 언저리에 기둥을 심는다 젖을 닮은 삼각뿔 움막에 불안이 고여 있다 사방으로 불안이 흘러내리는 사이, 경작의 습관이 시작된다

해안선은 채식으로 읽어야 하는 수정문이 된다

테트라포드에 부딪힌 파도가 네 방향을 헤매다 미끄러진다 녹슨 활자처럼 정박한 배들이 마모된 요철을 들썩거리고, 눌러 쓴 흘수를 차압 당한 폐선들, 뭍으로 소외되고 있다

오탈자로 가득한 해안선은 난해한 문장이다

 

 

 

봄 바다

김춘수

 

모발(毛髮)을 날리며 오랜만에

바다를 바라고 섰다

눈보라도 걷히고

저 멀리 물거품 속에서

제일 아름다운 인간(人間)의 여자(女子)

탄생(誕生)하는 것을 본다

 

 

 

내가 본 바다

김태인

 

바다를 찾았다

매번 바다는 말이 없다

어떤 마음인지 나는 안다

내가 기뻐할 때 그도 기뻐하고

내가 슬퍼할 때 그도 슬퍼하고

내가 분노할 때 그도 분노한다

바다, 내게로 들어와 출렁인다

 

 

 

바다 이야기

김토성

 

바람 부는 날

파도와 너울을 찾아 나섰다

 

가막도 돌아 흐르는 물결은

운저리 낚시터를 거스리며

 

오르내리락 흐른다

파도야 파도야

 

불러대는 나에게

쏴 하고 대답하드라

 

줄낚시에 갯 지렁이

통째로 걸쳐놓고 기다리는데

 

운저리 두 마리

어망을 채워주더라

 

파도는 바람 따라

물결을 아우르는구야

 

오늘도 바람 불어

파도와 너울은

 

함께 있어

정겨웁다

 

 

 

세상의 바다는

김학산

 

어머니의 초록 볍씨 같은 어린 시절

벌거벗은 이브와 함께 내달리던 고향의

바닷가는 나의 에덴동산이었다

그 긴 황금 모래톱의 거침없는 행복

우린 두꺼비집에서 스몰스몰 자라던 부끄럼을

서서히 알면서부터

세상의 거친 바다를 향한 배를 띄워야만 했다

저 일만 마디 뼈마디 쑤시는

세상의 바다는 끊임없이 일렁이며

때론, 파도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나를

사정없이 모래톱에 내동댕이 쳤다

그런 날이면

물 위의 부표처럼 정처 없이 떠돌며

깊은 사색에 잠기고는 하였다

행동의 파고와 양심의 수평선, 그리고

그리움의 깊이에 대해서

결론은 뿌리내리지 못한 데 있었다

유능한 선장은 파고를 무서워 않는 법

용기와 사랑, 정의의 구름, 그 씨앗인

에밀리아나 헉슬레이*를 찾아 다시

아름다운 출항이다 태고의 북소리가

인간의 항구를 둥둥

울리고 있다

 

* 에밀리아나 헉슬레이 : 구름의 씨앗이며 그 모태임

 

 

 

바다의 여자

김화순

 

여자가 바위에 앉아 해경을 쑥으로 문질러 닦는다

바다의 속내를 땅보다 더 잘 아는

그녀, 오늘도 허리에 무거운 납덩이를 찬다

저승에서 벌어서 이승에서 쓴다던가

그녀는 정해진 시간만큼 그와 지내고

그는 그녀가 숨을 참은 만큼 몸을 허락한다

늘 거칠고 속내 알 수 없지만

그녀는 나쁜 그 남자가 좋다

그래서 바다의 임계온도 꾹 참아내고

못된 성깔 늘 보듬어준다

그녀는 아파도 물질을 멈추지 않는다

물질을 할 때 비로소 그의 여자이기 때문이다

수장된 엄마가 뿌려둔 것 무궁하고

수장될 그녀가 건져 올릴 것 무진한 그는

그녀의 외사랑, 숨겨놓은 샛서방이다

오늘도 칠성판 등에 지고 그의 품을 찾는다

파도에 떠밀려서,

해초에 걸려서,

문어가 숨구멍을 막아서,

바위에 부딪혀서,

보호 장구가 목숨을 위협해도 무섭지 않다

두려울수록 사랑은 커지기 때문이다

죽어서도 그와 함께할 것이라는 믿는 그녀는

남자의 넓은 가슴 가득 숨비소리 풀어놓는다

 

 

 

바다

김희경

 

바다는 평행선일까

아래로 아래로 골짜기를 두고

품으로 품으로 어둠을 두고

그 마음 흔드는 발림의 바람에도

그저 흐름을 맡겨내는 너. 바다

 

내 속을 녹여낼 듯한 네 속의 소금은

너의 삶이 결코 인내함이라 하리

그 속의 일렁임이 무엇이라 해도

안으로 안으로 삼키는 위대함이라 하리

 

낮고 낮은 곳으로 흐르는 진리도

너에게서 멈춤이고

열병처럼 일렁이는 만물의 고통도

너에게로 가서 길을 물음인가

토함산 석가여래불상도 너를 향해 앉으시고

보리암 해수관음보살도 너를 향해 서 계시니

너는 가히 평행선인가 하리

 

그리해서 바다.

세상을 삼켜낼 듯 일어나면

탐욕의 결과라 말하는가 우리는

욕심도 흘려보내라 꾸짖음인가 너는

그 또한 평행선에 누이라 하는가

 

멀리 수평선에게로 날아가는

갈매기의 꿈인가. 바다

이 작은 미물이 도착해야 할 종착역인가. 바다

내 속의 소금 덩이가 일어나

너의 품을 향해 저벅이며 걷는 이유인가. 바다

 

 

 

바다

김희숙

 

사는 일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

잠시 날갯짓을 접고

드넓은 바다 앞에 내려앉습니다

 

그 시름 잠시 잊고 잉크빛 푸른 바다 앞에 하면

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돌아옵니다

걸어야 할 길이 아직 멀고 험준 하다 해도

이미 그 길 한가운데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가슴속 벗하나 생각나면

소주와 사이좋게 어울리고

그 힘을 이용해 스스로의

눈물 도려내고 밝은 햇살 아래

의연하게 섭니다

 

참으로 슬퍼할 일 많아도

한세상 살다 가는 거

시리고 저린 가슴 어느새 정화되어

새로운 소망 하나 싹 틔웁니다

 

세상 속에 씩씩하고 굳건하게

설 소망 하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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