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봉환 – 마음의 열반
고경숙 - 부처님 오신 날
고영섭 - 앉은뱅이 부처꽃
고은 - 초파일 날
권달웅 – 나무부처
권오범 - 구름 위 부처님을 찾아서
김경윤 – 무위사 돌부처
김광규 – 누워있는 부처
김내식 – 부처꽃
김동리 – 초파일 밤
김상옥 -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 석굴암(石窟庵)
김소월 - 합장
김시천 - 달마
김영천 – 난쟁이 부처
김영호 – 돌부처
김정원 - 화엄 세계 읽다
김정윤 – 연등 축제
김종제 - 부처를 찾지 마라
김지하 – 초파일 밤
김진경 - 부처
김환식 – 반가사유상
김희숙 – 열반
나호열 - 마애불을 찾아서
남호섭 - 부처님 오신 날
도지현 - 날마다 흔들리는 마음 - 부처님 오신 날
목필균 – 돌부처의 미소
목필균 - 부처님 오신 날
목필균 - 서운산 청룡사
목필균 - 어둠을 밝히다 - 연등
목필균 – 합장
문성해 - 연등
문정희 – 돌아가는 길
민영 – 초파일
박노해 – 회향
박두규 - 초파일
박목월 – 불국사(佛國寺)
박목철 - 부처님 오신 날
박종대 – 연못가에서
박종화 - 십일면관음보살(十一面觀音菩薩)
박태강 - 부처님의 웃음
박형준 - 초파일
법정 스님 - 여보게 부처를 찾는가?
법정 스님 - 자기답게 사는 길
복효근 – 등신불
서정주 – 부처님 오신 날
서정춘 – 눈물 부처
석지공 – 아기 부처님 오신 날
손병흥 – 부처님 오신 날
손택수 – 부처 바위
송수권 - 백담사 운(百潭寺 韻)
신석종 – 초파일 날
신현배 – 범종
신형식 - 연등
안영준 – 사월 초파일에
안영준 - 연등
여한경 - 갓바위 부처님
염경희 - 연등
오규원 – 부처
유안진 - 미소론
유자효 – 부처님
윤성택 - 사월 초파일, 전봇대
윤중호 - 초파일 연등제
이근배 - 송광사에 와서
이문재 – 연등 축제
이문조 – 연꽃
이상국 - 초파일
이정우 – 사월 초파일
이종숙 - 부처님 오신 날
이진수 - 나무
이춘우 - 돌부처
이태수 – 둥근 길
이태희 – 마음의 부처
이해인 - 부처님 오신 날
이혜민 - 불기 2556년 봉축 헌다례
임보 - 자운영 꽃밭
임영석 - 냄비가 부처 같다
임영조 – 우담바라
장철문 – 부처님 오신 날
전병윤 - 세시풍속 - 사월 초파일
전윤호 - 수면사(睡眠寺)
정두병 – 님 오신 날
정연복 – 예수와 부처
정연복 – 장미의 열반
정우영 - 연등
정종명 - 부처님 오신 날
조남명 – 부처님 오신 날
조남명 – 초파일
조병화 – 부처님
조병화 – 석가의 날
조병화 - 인연(因緣) - 부처님 앞에서
조병화 – 해인사
조용미 – 산중 문답
조위제 – 사월 초파일
조지훈 – 고사(古寺)
조태일 - 연등
조평구 – 바람
주명옥 – 부처님 오신 날
최상고 - 부처님 만나는 나무
최영희 – 부처꽃
한문수 – 부처님 사시는 곳
한재만 - 부처님 전 상서
함민복 – 개밥 그릇
홍사성 – 합장(合掌)
홍은자 – 부처님 오신 날
황다연 – 부처님 오신 날
황동규 - 연등(燃燈)
황인숙 – 사월 초파일
마음의 열반
강봉환
삶을 살아감에
부끄럼이 없고
마음의 병 또한
걸림이 없었으니
두려움마저 없어
잘못된 망상은 떠나고
마침내 우리는
삶의 정점에 이르러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마음의 열반에 이르네
부처님 오신 날
고경숙
우리 엄만 방구쟁이래!
쉬-ㅅ
우리 엄만 방구쟁이다 뭐!
조용히 못 해?
우리 엄만 방구쟁이다 씨!!
내려---
모자의 갈등은 인신공격을 끝으로 하차했다
진위여부에 상관없이 어머니는 얼굴 빨개지고
아이는 얼얼한 등짝 꼬며 따라가는 길,
주렁주렁 매달린 초파일 연등이
울먹이는 아이 얼굴처럼 꽃그늘 아래 빠알갛다
앉은뱅이 부처꽃
고영섭
천지 사방에다 무허가 판잣집을 지은 그는
이름 없는 목수였다
갈 봄 여름 없이
연장통을 옆에 끼고
삼천대천세계를 정처 없이 떠돌았다
깎아지른 벼랑 위에 암자를 지었고
지붕 위로 날려온 흙 위에도 초가를 지었다
눕는 곳이 집이었고
멈추는 곳이 절이었다
몇 달 전부터 요사채 말석에
가부좌를 틀고 웅크리고 앉아
문득 한 소식을 얻었는지
노오란 안테나를 하늘로 띄우며
꽃씨 몇 개 날리며 천리 길을 떠나는 그는
제 앞으로 등기한 집 한 채 없이도
바닥에서 자유롭게 살았다
오늘은 민들레꽃이 세운 집 한 채를 보았다
초파일 날
고은
여울에 빠져 죽지도 않고
그냥 이런대로
밋밋한 물에 떠내려가는 삶으로
살아온 비를
연보라 등꽃 드리워진 꽃그늘에서 살펴보시나요
아니시면, 초파일 날 낮달 자국 심심한
해설피 석양 머리로 굽어보시나요
부처님
초파일 밤 요내가삼 잉잉거리는 수박등 한 덩어리로
세세상상 중생살이 역사의 어느 길목
어둠을 밝혀
겨우겨우 제 걸음 발등이나마 잘못 디디지 않도록
아흐 등불 하나도 대자대비 아니시나요
나무부처
권달웅
불영사 넘어가는 길에
거대한 굴참나무가 누웠다.
지금도 넘어지면서 쿵 하는 소리가
산을 울리는 것 같다.
가지와 뿌리는 벌레들에게 다 주고
반쯤 썩은 몸통에선 다시
새잎이 돋아나고 있다.
까치들이 우짖는 산비탈에는
그 아들 손자의 손자뻘 되는
굴참나무들이 관세음보살처럼 늘어서서
허리를 굽히고 있다.
비바람과 눈보라의 고행 끝에
흙으로 돌아간 굴참나무,
이젠 나무부처가 되어
극락정토에 누웠다
구름 위 부처님을 찾아서
권오범
장맛비 깨지락거리는 중복허리
웃비 걷는 틈 타 발맘발맘 끌어당기는 돌계단
신발창이 깎아 먹은 청석에 미끄러질라
다람쥐야 널랑은 나무로 올라가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중얼중얼
염불 흘리며 축지 걸음으로 멀어지는데
해를 감금한 먹구름 우렁우렁 겁박 질러
금방이라도 무작스럽게 쏟을 것만 같다
나도 모르게 세월이 얼마나 주리 틀었는지
유통기간 지난 단무지같이 흐무러져
스테인리스 난간 잡고 애걸복걸
마음만 데바빠 천근만근인 장딴지
당나귀기침 소리 앞세워
천야만야 단애 위 별천지 밟고 보니
목탁소리 따라 촛불 휘돌다 운무에 섞이는 향연
우바이 우바새들 북새통에 옴나위없는 갓바위
무위사 돌부처
김경윤
어머니, 오늘 하루는 좀 쉬세요
헤진 옷 주름진 얼굴이지만
여기 와서 뵈니 참 보기 좋네요
낮이면 산바람도 쐬고
밤이면 월출산 달구경도 하세요
지친 어머니 얼굴 여기서 다시 뵈니
눈물보다 먼저 반가움이 앞서네요
가부좌로 앉아 계신 우리 어머니
사십년 행상길에 갈라진 발바닥
바셀린 바르고 비닐로 동여매어
양말도 제대로 못 신고
늘 누비 보선에 절뚝이시던
어머니, 오늘 하루는 좀 쉬세요
말씀 없으셔도 어머니 살아온 세월
흰머리 주름진 얼굴에 가득하네요
금난 가사 입지 않고 후광이 없어도
어머니 모습 참 거룩하네요
누워있는 부처
김광규
꼭 무엇이 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그러나
종심(從心)의 나이에 이르러
아직도 되고 싶은 것 한 가지
있음을 깨달았다
한 팔로 머리를 받치고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있는 몸의
부처
나무도 짐승도 사람도 죽으면
어차피 땅 위에 쓰러질 것을
정신의 온갖 질곡 벗어나
살과 뼈와 터럭과 욕망 모두
떨쳐버리고
아무런 자세도 없이 편안하게
땅 위에 누워있는
부드러운 모습
와불(臥佛)을 볼 때마다
아직도 부처처럼 되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한
내 마음 부끄럽다
부처꽃
김내식
성전암으로 올라가는
옥같이 푸른 물에
사월 초파일 연등(煙燈)에 타오르는 촛불처럼
부처꽃이 조롱조롱 매달려
바람에 하늘거린다
참새가 날아가며 머리에 똥을 싸도
천년을 빙그레 미소만 짖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의 인자한 미소처럼 편안하고 소박하게
매미들 우는 소리 들으며
참선하는 스님인가 붉
은 꽃대를 다소곳 숙여
조용히 합장한다
산을 오르는 자는 무엇을 채우려 올라가는지
무엇을 비우고 떠나는지 알 필요 없이
늘 제 자리에 만족하며
때 되면 꽃 피우다 씨 뿌리고 스러져
물 같은 삶을 제시해주는
살아있는 부처이다
초파일 밤
김동리
절 구경 가신 이는 오지 않는다
보리 이삭 오르는 들녘 저편
검은 강물 위로 버들개지가 내리고
보리 밭둑이 있는, 검은 강물이 있는,
어디서는 어린 가시내가 흐느껴 운다
가시내의 흐느낌은 산으로, 또 물로
산에서 들불이 되어 켜지고 싶은데,
강물이 되어, 강물이 되어 흐르고 싶은데
등불이 꽃송이처럼 피어 있는
절은 저승처럼 멀고, 초롱 꺼진
마을 위엔 은하만 차디차다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 석굴암(石窟庵)
김상옥
오줏이 연좌(蓮坐) 우에 발돋움하고 서서
속눈썹 조으는 듯 동해를 굽어보고
그 무슨 연유(緣由) 깊은 일 하마 말씀하실까
몸짓만 사리어도 흔들리는 구슬 소리
옷자락 겹친 속에 살결이 꽤 비치고
되도록 내민 젖가슴 숨도 고이 쉬도다
합장(合掌)
김소월
나들이. 단 두 몸이라. 밤빛은 배여와라.
아, 이거 봐, 우거진 나무 아래로 달 들어라.
우리는 말하며 걸었어라, 바람은 부는 대로.
등(燈)불 빛에 거리는 헤적여라, 희미(稀微)한 하느편(便)에
고이 밝은 그림자 아득이고
퍽도 가까힌, 풀밭에서 이슬이 번쩍여라.
밤은 막 깊어, 사방(四方)은 고요한데,
이마즉, 말도 안하고, 더 안가고,
길가에 우뚝하니. 눈감고 마주서서.
먼먼 산(山). 산(山)절의 절 종(鍾)소리. 달빛은 지새어라
달마
김시천
달마는 달을 보지 않았으나
스스로 밝았다
그 마음에 달떴음이라
제 마음에 달 있는 줄
모르는 자
바람 부는 날 솔숲에나
가 보아라 가서 오지 마라
제 마음에 뜨는 달
보기 전까지는
난쟁이 부처
김영천
앉은키가 겨우 한 자나 될까 하는
돌부처
역사(歷史)나 이승의 업이 내내 돌의 무게로
누른다 하더라도
지금은 어느 세상을 꿈꾸는가
아무것도 듣지 않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무표정으로
참 오랜 설법을 한다
불쑥 세상을 털고 일어서면
그 키가 하늘을 닿을라
잔설께를 비추던 암벽의 그림자가
한 자나 멀리 비킨다
나도 서둘러 마음을 비킨다.
돌부처
김영호
나를 우울케 하는 것은
페놀 오염이 아니다.
인신매매가 아니다.
김(金) 교수가 엄숙하게 웃는 일간신문이 아니다.
나를 우울케 하는 것은
돌 속에 갇힌 내 우울이다.
입, 코, 귀 다 잘려 나간
가슴 없는 눈,
눈 없는 가슴,
저 꼴불견의 내 이데올로기다.
나를 우울케 하는 것은
이런 나를 등쳐먹는
나의 식도다
화엄 세계 읽다
김정원
초가집 그을음 새까만 설거지통 옆에는
항시 큰 항아리 하나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설거지 끝낸 물 죄다 항아리에 쏟아 부었다
하룻밤 잠재운 뒤 맑게 우러난 물은 하수구에 흘려보내고
텁텁하게 가라앉은 음식물 찌꺼기는 돼지에게 주었다
가끔은 닭과 쥐와 도둑고양이가 몰래 훔쳐먹기도 하였다
하찮은 모음이 거룩한 살림이었다
어머니는 뜨거운 물도 곧장 항아리에 쏟아 부었다
그냥 하수구에 쏟아붓는 일은 없었다
반드시 하룻밤 열 내린 뒤 다시 만나자는 듯
곱게 온 곳으로 돌려 보냈다
하수구와 도랑에 육안 벗어난 존재들 자기 생명처럼
여긴 배려였으니, 집시랑 물 받아 빨래하던 우리 어머니들 마음,
경(經)도 전(典)도 들여다본 적 없는
연등 축제
김정윤
부처님 오신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태화강에 출렁이는 연둣빛
십 리 대밭
강변 돌아 이어지는
꼬리 달린 연등 행렬
세상사 온갖 희비 구구절절
담아 걸고
바람에 흔들리는 세상 담은
연등 꼬리
무슨 사연 담았길래
간곡 지성 흔들까
어둠과 고통을 걷어내고
지혜와 자비가 충만한 세상
밝혀주소서
봄바람 꽃바람이 강물 따라
불어오고
오월의 봄 꽃향기 가슴에 스며드는
태화강 연등 축제
부처를 찾지 마라
김종제
산중 절에 가서
쇠의 몸에 번쩍번쩍 금옷 입힌
부처를 찾지 마라
길가 교회에 가서
흙으로 빚고 돌로 조각해 놓은
예수를 찾지 마라
살과 피와 뼈 만들어 주고
숨쉬게 해준
네 아버지 어머니가 부처다
무덥고 추운 세상
두 어깨를 펼치고
이파리 무성하게 드리워
그늘 짙게 만든 느티나무 같은
장작이 되어 뜨겁게 불타오른
아버지가 부처다 예수다
연약한 장미꽃 한 송이로 피어
일편단심 붉은 마음 던지며
쓰레기같이 더러운 세상
향기 나게 만드신
어머니가 보살이다 마리아다
이 땅에서 미륵을 찾지 마라
저 하늘에서 천사를 찾지 마라
너의 아버지와 너의 어머니로부터
낳은 네가 낳은
너의 아들과 딸이
장차 이 세상을 구원할 미륵이다
악마와 싸워 이길 천사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로부터
부처를 찾아라 예수를 찾아라
세상의 모든 자식으로부터
미륵을 찾아라 천사를 찾아라
초파일 밤
김지하
꽃 같네요
꽃밭 같네요
물기어린 눈에는 이승 같질 않네요
갈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저기 저 꽃밭
살아 못 간다면 살아 못 간다면
황천길에만은 꽃구경할 수 있을까요
삼도천을 건너면 저기에 이를까요
벽 돌담 너머는 사월 초파일
인왕산 밤 연등, 연등, 연등
오색영롱한 꽃밭을 두고
돌아섭니다
쇠창살 등에 지고
침침한 감방 향해 돌아섭니다
굳은 시멘트벽 속에
저벅거리는 교도관의 발자욱 울림 속에
캄캄한 내 가슴의 옥죄임 속에도
부처님은 오실까
연등은 켜질까요
고개 가로저어
더 깊숙이 감방 속으로 발을 옮기며
두 눈 질끈 감으면
더욱 영롱히 떠오르는 사월 초파일
인왕산 밤 연등, 연등, 연등
아아 참말 꽃 같네요
참말 꽃 같네요
부처
김진경
치자꽃 향기가 좋아
코를 댔더니
그 큰 꽃송이가 툭 떨어지다
귀한 꽃 다친 게 미안해서
손바닥 모아
꽃송일 감추었더니
합장 인산 줄 알았던가?
보는 이마다
합장한 채 고개를 숙이고 간다
어허, 여기선
치자꽃이 부처일세
반가사유상
김환식
천년을 사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긋이 눈을 감은 채
턱을 괴고 앉은 손가락 사이로
천년의 바람도
고스란히 사유하고 갔을 것이다
담담한 미소는
천년을 사유하고도
그 끝을 풀어 볼 수 없는
한 생의 수수께끼
삶이란
우문현답을 사유하는 것이다
열반
김희숙
눈만 뜨면 온 세상이
부처 안의 우주이건만
이유 없는 아픔에 까닭 없는 설움
합장하고 선 중생 내려다보시는
화안 미소에 몸 둘 바 몰라
가슴속 울음 접습니다
경내의 나뭇가지들 자신의 현으로
노래하고, 높이 솟는 불경 소리
가없이 퍼질 때 님의 뜨락에
날개 접고 오수를 즐기고 싶습니다
잠깐이나마 그대 품 안에 들고나면
보이지 않던 사랑 보이고
들리지 않던 기쁨 들리지 않을런지요
고통스런 얼굴 펴지고 진한 한기
사라지지 않겠는지요
곰곰이 생각해도 아직 깨닫지 못한 일
미미하나 조금은 깨우치지 않겠는지요
마애불을 찾아서
나호열
표지판 일러주는 대로 걸었다
길 따라 마음은 가지 않았다
높은 곳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마음속에서
조용히 자세를 세우는
나무들
죽은 듯 살아라 살
아도 죽은 듯 하라
숨죽여 뿌리는 깊어지고
둥글어지고
머리와 멀어지는
아득한 깨우침
낮게 사랑하라
부처님 오신 날
남호섭
앞을 못 보던
우리 할머니
날마다
관세음보살
한숨 대신
관세음보살
아프지 않고 가야지
자다가 그냥 가야지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부처님 오신 날
정말 그렇게 가셨다
날마다 흔들리는 마음 - 부처님 오신 날
도지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연등 밝혀야 하는데
어쩌자고 이렇게
추적추적 비가 오시단 말인가?
연등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만 오시면 마음마저 젖어
허공에 둥둥 뜨는 눈망울
이 마음은 또 어찌해야 하나?
뿌리 깊은 나무 되게 해주시라
부처님 전에 빌고 또 빌었건만
이렇게 비가 오시니
또 뿌리가 생기다 만 나무가 된다
그 마음 하나 단속하지 못하는
설 생긴 가슴 때문에
밀면 밀리고, 당기면 당겨지는
바람 잘 날 없는 꼴 사나운 모양인데
돌부처의 미소 - 용화사 미륵존불
목필균
부안 바다에 정박했던 바람이
미륵골 대숲에서 수런거리며
천수경을 읊는다
아들 점지해주던 영험도
입으로 지은 허물 닦아주던
진언도 생매장되어
안으로만 내공을 쌓았는지
코가 떨어져 나가도
귓불이 잘려 나가도
기척도 없다
땅속에 묻히고도
다시 세상 빛을 봐도
묵언수행
오가는 사람 덧없어
……. …….
천이백 년 고행길
안으로 삼켜지는 목탁 소리
풍화되지 않은
돌부처의 미소만이
한겨울 눈부신 햇살로 돋아난다
부처님 오신 날
목필균
햇살이 세상을 고르게 밝히듯이
시방 삼세를 두루 살피시는 부처님
생사를 윤회하면서 지은 죄업은 모른 채
제 복만 비는 어리석은 중생들을 위해
룸비니 동산에 탄생하심을 다시 가슴에 새깁니다
탐욕의 끈을 놓지 못하고
풀리지 않는 세상사에 쉽게 분노하고 좌절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무량한 가피를 내려주소서
불자들 가슴마다 절을 지어놓고
물질도 마음도 이웃과 나누는 공덕 쌓으며
전생에 지은 죄업도 참회하며
불법에 따라 낮은 자세로 살아가게 하소서
부처님 오신 날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그릇된 길에서 벗어나기를
바른 믿음으로 실천하기를
무릎 끓어 절하며 절절하게 다짐합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서운산 청룡사
목필균
구름을 타고 내려왔다는 청룡의 전설이
나옹화상 목탁 소리로 흐르는 도량에는
대웅전 부처님 내려다보며
진흙탕에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연꽃같이 살라 한다
대웅전 지붕과 공포를 수백 년 떠받친
자연목 기둥은 허술한 듯 견고하게
정진의 불심을 지켜왔는데
세월 따라 부는 바람이야 어쩌랴
전국을 돌아다니며
춤과 노래, 곡예로 살아가는 남사당패를
남루한 탁발승 발걸음으로 품어 안은
청룡사는
누구라도 마른 목축이게 하는
옥천수 같은 자비로움으로
두 손 모으게 한다
어둠을 밝히다 - 연등
목필균
무명을 깨워서 지혜롭게 살겠다는 발현으로
연꽃 피워 부처님께 공양하네
관세음보살 옷자락처럼 아름다운 꽃등이
어둠이 내려앉은 산사에 은은히 빛으로 발하면
고요한 부처님의 미소가 피어나네
발걸음마다 손길마다 쌓아지는 공덕이
어찌 화려하고 요란하겠냐고
지혜 광명을 얻어 일체중생을 어둠에서 구하고자
공양한 연등만이 끝까지 꺼지지 않았다는데
해탈을 구하는 사람들 길을 밝혀주고
마음으로 등잔이 되어
믿음으로 심지를 삼아
계향이 늘어가는 것을 힘으로
지혜를 밝히고
자기 수행을 통해서야 만이
마음에 행복을 품는다고 한다
합장
목필균
대웅전 문턱을 넘어서도
모르는 척 미동 없이
연꽃잎만 헤아리는 부처님
지은 죄업의 손과
죄업을 사하는 손이
마주한다
묻지도 답하지도 않는
금빛 침묵
오면 간다던가
가면 온다던가
어둠을 비워내는
촛불이 흔들린다
구정물로 빠져나가는
모진 세상살이
찰나의 평온함이
가슴에 피어난다
연등
문성해
이 나이 되도록
나는 한 번도 연등을 달아본 적이 없네
연등을 다는 자의 간절한 마음이 되어 본 적이 없네
연등을 다는 일은
나를 작게 둥글려 연등 속에 넣고
바람과 빗속에 흔들리는 일
방에 돌아와 누워도
흔들리는 연등을 생각하는 일
어떤 자는 제 몸을 활활 불사르고
어떤 자는 일찍이 심지를 끄고
어떤 자는 바람에 균형을 잡고
나는 그중 가장 나중의 자가 되고 싶어
꺼질 듯 꺼지지 않는
연등의 시절이 오면
나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사립문짝에
발그레 뺨 붉힌 그것을 매달고 싶어
등불 위로 뜨거움을 참고 내려앉는 어둠을
내가 나를 보듯 들여다보고 싶어
연등을 켜고 끌 때
내 얼굴을 웃음을 숨소리를
생각하고 싶어
돌아가는 길
문정희
다가서지 마라
눈과 코는 벌써 돌아가고
마지막 흔적만 남은 석불 한 분
지금 막 완성을 꾀하고 있다
부처를 버리고
다시 돌이 되고 있다
어느 인연의 시간이
눈과 코를 새긴 후
여기는 천년 인각사 뜨락
부처의 감옥은 깊고 성스러웠다
다시 한 송이 돌로 돌아가는
자연 앞에
시간은 아무 데도 없다
부질없이 두 손 모으지 마라
완성이라는 말도
다만 저 멀리 비켜서거라
초파일
민영
진달래꽃 피었다 지고
유채꽃이 피었습니다
유채꽃이 피었다 지고
함박꽃이 피었습니다
함박꽃이 피었다 지면
제비붓꽃 피어날까요?
하늘과 땅에
청노새빛 햇살 퍼지고
바다 건너 서천(西天)에서
아기 부처님 목소리 들려옵니다
회향
박노해
부처가 위대한 건
버리고 떠났기 때문이 아니다
고행했기 때문이 아니다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다
부처가 부처인 것은
회향(廻向)했기 때문이다
그 모든 것을 크게 되돌려
세상을 바꿔냈기 때문이다
자기 시대 자기 나라
먹고 사는 민중의 생활 속으로
급변하는 인간의 마음속으로
거부할 수 없는 봄기운으로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욕망 뒤얽힌 이 시장 속에서
온몸으로 현실과 부딪치면서
관계마다 새롭게 피워내는
저 눈물 나는 꽃들 꽃들 꽃들
그대
오늘은 오늘의 연꽃을 보여다오
초파일
박두규
초파일, 등 하나 달러 간다
어느 옛적 고단한 비구니도 올랐을 비탈길 돌아
휘파람새 소리 섧던 이승의 꿈도 지나
초저녁별 틈새에 꽃등 하나 건다
세상에 끌려다닌 이름 석 자는 말고
막 이승의 잠에서 깨어났을 이름 뒤의 그대와
그대 떠난 빈자리, 계수나무 깊은 그늘도 건다
이고 지던 보따리도 없이 꽃길을 잘 가시는가
산사의 밤은 깊어 별빛도 사위는데
잘 가셨는가
불국사(佛國寺)
박목월
흰 달빛
자하문(紫霞門)
달안개
물소리
대웅전(大雄殿)
큰 보살
바람 소리
솔 소리
범영루(泛影樓)
뜬 그림자
흐는히
젖는데
흰 달빛
자하문
바람 소리 물소리
부처님 오신 날
박목철
1
언제 오시는 겁니까?
극락정토(極樂淨土) 미륵 님은,
곧 오신다던 예수(耶蘇)님
가신지 2천 년이 지났는데,
미륵 님,
오십육억 칠천만 년 후에 오신다지요,
십자가에 불 밝히고 기다리듯
연등이 가득합니다
제 생일도 못 챙기는 중생이
-南無阿彌陀佛-
부처님 오신 날에,
2
오신 뜻이 고마워
또, 가신 임이 아쉬워
꽃등이 화려합니다
아직
이루지 못한 불국(佛國)의 소망
가득 매달린
중생의 백팔번뇌(百八煩惱) 아프시겠지요
이기심이라 꾸짖지 말아 주세요
건강, 사랑, 돈, 진학, 출세
움켜쥔 업(業)들
꽃등에 매달린 소망 되어 펄럭이지만,
누구도 이룬 이 없는
그래도 놓지 않는
바람이 곱지 않습니까?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
연못가에서
박종대
넓죽한 잎 펼쳐 놓고
어서 오게
하시는데
연꽃 말씀 받아 오실
그런 분
안 계신가
저 위에
사뿐 올라앉을
이슬방울 같은 사람
십일면관음보살(十一面觀音菩薩)
박종화
1
千年(천년) 大佛(대불)을
聖處女(성처녀)로 모시우다
胡蘆(호로) 한병으로
東海(동해) 물을 불리시다.
웃는 듯 자브름하신가 하면
조는 듯이 웃으셨네
담은 듯 열으신 듯 어여쁜 입술
귀 기울여 들으면
향기로운 말씀
도란도란 구으는 듯하구나
2
원광보관(圓光寶冠)이 모두 다 거룩하다
부드러운 두 볼
날씬한 두 어깨
춘산아미(春山峨眉)가 의젓이 열리셨네
결곡하게 드리우신 코
어여쁘다 방울조차 없구나
3
고운지고 보살의 손
돌이면서 백어(白魚)같다
신라(新羅) 옛 미인(美人)이
저렇듯이 거룩하오?
무릎 꿇어 우러러 만지면
훈향(薰香)내 높은 나렷한 살 기운
당장 곧 따스할 듯하구나
부처님의 웃음
박태강
오랜 수행으로 깨달은 부타
인생(人生)이 무엇인지
삶이 무엇인지
부처님의 잔잔한 미소(微笑)
세상(世上) 악은 물러나고
오직 참만이 흐르나니
부처님의 미소는
마음을 안정시키고
생각을 화평하게 한다
세상사 모두가 마음속에
있어 참마음 찾으면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고 웃으신다
나쁜 마음은 욕심(慾心)에서
나오나니 욕심을 버리면
누구나 부처님의 웃음을 가진다
부처님 웃음은
남을 탓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마음에서 나오는 것
허황(虛荒)에서 벗어나
마음을 참으로 하면
부처님의 웃음을 웃을 수 있나니
진실한 웃음은
진정(眞正)한 복(福)을 가져다주니
소욕(小慾)으로 부처님 웃음을 본받자
초파일
박형준
바닥에서 연꽃을 주웠다
물이 없고 다만 자갈뿐인 강 속으로 걷는다
모래내시장 가는 길
등불이 거리에 걸려 있고 비가 내린다
길은 바닥이 드러난 심연으로
곤두박질친 연꽃을 위해
등불 속에 비친 실밥 같은 빗줄기에 젖는다
강바닥 위로 흐르는 내부순환도로,
교각은 지옥을 떠받들고 있는 역사(力士)들이다
빗물에 섞인 빛이 교각에 힘줄처럼 꿈틀거린다
여기는 자갈만 있고 물이 없다
모래내시장 가는 길
등불이 거리에 걸려 있고 나는 다만
허연 강바닥에서 실밥 같은 연꽃을 떼어낸다
여보게 부처를 찾는가?
법정 스님
여보게 친구
산에 오르면 절이 있고
절에 가면 부처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절에 가면 인간이 만든 불상만
자네를 내려다보고 있지 않던가
부처는 절에 없다네
부처는 세상에 내려가야만 천지에 널려 있다네
내 주위 가난한 이웃이 부처고
병들어 누워있는 자가 부처라네
그 많은 부처를 보지도 못하고
어찌 사람이 만든 불상에만
허리가 아프도록 절만 하는가
천당과 지옥은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는가
천당은 살아 있는 지금이
천당이고 지옥이라네
내 마음이 천당이고 지옥이라네
내가 살면서 즐겁고 행복하면
여기가 천당이고
살면서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하면
거기가 지옥이라네
자네 마음이 부처고
자네가 관세음보살이라네
여보시게 친구
죽어서 천당 가려 하지 말고
사는 동안 천당에서 같이 살지 않으려나
자네가 부처라는 걸 잊지 마시게
그리고 부처답게 살길 바라네
부처답게
자기답게 사는 길
법정 스님
사람은 누구에겐가 의존하려는 버릇이 있다
부처님이라 할지라도 그는 타인,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에 따라 자기 자신답게 사는 길이다
그러므로 불교란 부처님의 가르침일 뿐 아니라
나 자신이 부처가 되는 자기실현의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의지할 것은 부처님이 아니라
나 자신과 진리뿐이라는 것
불교는 이와 같이 자기 탐구의 종교다.
자기 탐구의 과정에서 끝없는 이웃(衆生)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 대승 불교이다
초기 불교가 자기 자신을 강조한 것은
자기에게서 시작하려는 뜻에서이다.
자기에게서 시작해 이웃과 세상을 도달하라는 것
자기 자신에게만 갇혀 있다면 그건 종교일 수 없다
인간에게 있어 진실한 지혜란
이웃의 존재를 보는 지혜다.
자기라는 표현이 때로는
만인 공통의 "마음"으로 바뀐다
등신불
복효근
중앙성당 앞 길가에
졸고 있다
다 팔아도 2만 원어치가 안 될
푸성귀를 늘어놓고 파는 할머니 한 분
양버즘나무가 제 그림자를 끌어당겨 덮어주려 하지만
8월 오후 세 시의 햇볕이
속살까지 구워내는 등신 불상 하나
-한 찰나라도 먼저 56억 년 저쪽에 이르기 위해
자동차들이 질주해가는 동안
이미 용화세계에 들었을까
가끔 꿈결에 깨어
경전을 넘기듯 무심히 몇 가닥씩 다듬어놓는
우엉경 열무경 부추경 상치경
이 지옥이 저로 하여 눈부시다
부처님 오신 날
서정주
사자(獅子)가 업고 있는 방에서
공부하던 소년들은
연꽃이 이고 있는 방으로
1학년씩 진급하고,
불쌍한 아이야.
불쌍한 아이야.
세상에서 제일로 불쌍한 아이야.
너는 세상에서도 제일로
남을 불쌍히 여기는 아이가 되고,
돌을 울리는 물아.
물을 울리는 돌아.
너희들도 한결 더 소리를 높이고,
만 사람의 심청이를 가진
뭇 심봉사들도
바람결에 그냥 눈을 떠 보고,
텔레비여.
텔레비여.
도솔천 너머
무운천 비상비비상천 너머
아미타 불토의 사진들을 비치어 오라, 오늘은…….
삼천 년 전
자는 영원을 불러 잠을 깨우고,
거기 두루 전화를 가설하고
우리 우주에 비로소
작고 큰 온갖 통로를 마련하신
석가모니 생일날에 앉아 계시나니
눈물 부처
서정춘
비 내리네 이 저녁을
빈 깡통 두드리며
우리 집 단칸방에 깡통 거지 앉아 있네
빗물 소리 한없이 받아주는
눈물 거지 앉아 있네
아기 부처님 오신 날
석지공
영겁 전에도 사바에 나투신 몸
비록 자그마한 체구 속
팔만 사천의 말씀 담은 채
소리 없이 내리던 꽃비처럼
사방을 물들게 했습니다
우리는 내 속의 불성을 모르고
미망에서 깨어나지 못하였으니
아기 부처님 오신 날 아침
새벽 종성은 더 날카로웠습니다
천지를 깨우고는 남은 법력
일곱 걸음으로 세상을 밝혔으니
거룩한 몸짓
너무나 아름다워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고뇌에 찬 우리들을 일깨워 주시려
짐짓 인간사
그 모습 하나로
먼 길을 열었습니다
오늘 사월 초파일
성전의 팔륜을 돌리며
다시금 오실
님을 되새겨 봅니다
부처님!
우리들의 부처님이시여
부처님 오신 날
손병흥
수행자였던 싯다르타 왕자가
비로소 부처의 경지에 도달한
음력 사월 초파일인 공휴일
석가모니의 탄생 기념하는 날
길거리 사찰마다 연등 달리고
당일 전후로 용맹정진 참선수행
크고 작은 법회가 북적이며 열리는
자비 지혜 불빛처럼 따뜻한 봉축 행사
부처 바위
손택수
경주 남산 스님 한 분 바위 속에 갇혀 있다.
반야 나무 망고나무 잎 아래 결가부좌 튼 채 안으로
금이 가고 금길 따라 빗물이 흘러드는 소리를 엿듣고 있다.
죽어서 바위는 모래알을 남기고 고승은 사리알을 남긴다는데……
천년 비바람에 가사 옷 주름이 지워지고
얼굴선이 희미해지면서 둘은 이제 어지간히 닮아도 보인다.
그러나 바위가 사리알이 되기까지,
스님이 모래알이 되기까지 크낙한 저 침묵은 또 천년을 살아야 한다는 것일까.
선정에 든 바위에서 흐르는 눈물, 모래 쓸리는 소리가 아릿하다
백담사 운(百潭寺 韻)
송수권
변산 뻘에 절인 소금기 씻으러
불원천리 열여섯 시간을 달려
백담사 무금당(無今堂)에 들렸더니
무금당은 비어있고 인기척은 없었다
신발짝 하나 놓이지 않은
댓돌이 그리 허전할 수 없었다
은산 철벽을 날아올라
무산(霧山)은
저 월명(月明)을 깨뜨리려
동해에 나간 것일까
댓돌을 두어 번 쾅쾅 내리치며
냇물로 내려서서 이(李) 시인, 나(羅) 시인, 나 셋이서
별이 총총한 밤하늘에다 무슨 원 그리 깊어
견우직녀처럼 만나
또 부질없는 돌탑 백 개를 쌓았다
절 고랑 풍경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
백 개의 못물이 푸르러 백담(百潭)을 이룬들
사람 없이 만인산을 뒤집어쓴
절집은 무에다 쓰랴
내년 여름, 만해 시인학교엔 결단코 오지 않으리라
초파일 날
신석종
공영주차장을 건너
24시 편의점 앞마당으로
기웃기웃 들어서는
편백나무 그림자를 따라
자리를 옮겨가며, 나는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웃다가 울다가 했었지
범종
신현배
꼿꼿이 등을 세우고
종각 안에 앉은 범종
천년을 살았지만
주름 하나 없습니다
수없이 울고 울어도
눈물 자국 없습니다
연등
신형식
두 손 모아
등 하나 밝혀두고
내려오는 길
가슴 깊은 곳에
꽃불 지펴두고
돌아 나오는 길
걸음걸음마다 빨간 꽃 피어
어두운 길 가로등 되고
잠든 밤 취침등이 되며
낯선 도로 위의 신호등 되길
염화미소 짓는 여인의 등 뒤로
온 산 밝은 미소 물들어
굽이굽이 따라 돌고 있는
간절한 탑.돌.이.
지지 말거라
꺼지지 말거라
사월 초파일에
안영준
동틀 녘 솔바람 불어
화사한 연꽃 피었습니다
겹겹이 쌓인 시름
부처님 방에서
하나씩 풀어 올려 봅니다
풍파가 닥쳐도
맞서 이길 자비와
부질없는 인간사
천지 만물 원력을 빕니다
생채기를 보듬는 독경은
촛불에 녹아들고
거룩함을 토합니다
부처님 전에
짊 풀어 시름 달래니
바람결에 풍경이 웁니다
연등
안영준
좌절과 번뇌와 불행은
떨쳐버리고
용기와 희망과 행복과
동행 하고파
등불을 켭니다
작지만
소중한 하나
그 등불 속에
내 모든 걸 담았습니다
마음 가난하고
배고픈 이의
간절한 소원도 모두 다
실어 봅니다
한 가닥 빛이 있는
그곳에 불씨는
여전히 꿈틀거립니다
갓바위 부처님
여한경
그까짓 이름이야
아무라면 어떠냐.
팔공산 관봉(冠峯) 정수리에
높이 홀로 앉아서도
눈시울 내리깔고는
아래로만 내려보는 부처님
구름처럼
벌떼처럼
하늘마당에 모인 사람들
촛불 연등 밝혀놓고
축원 염불 밤낮으로 시끄럽지만
모두를 굽어보며
모두를 헤아리며
광명(光明)으로 이끄시는 부처님
하늘보다
드높아만 보이시네
연등
염경희
비비고 비벼 주름잡아 곱게 포갠 마음
두둥실 오색구름 하늘 높이 걸어 놓은
그 모습
큰 가르침 부처님 오신 날을
앞장서서 알리네
부처
오규원
남산의 한중턱에 돌부처가 서 있다
나무들은 모두 부처와 거리를 두고 서 있고
햇빛은 거리 없이 부처의 몸에 붙어 있다
코는 누가 떼어갔어도 코 대신 빛을 담고
빛이 담기지 않는 자리에는 빛 대신 그늘을 담고
언제나 웃고 있다
곁에는 돌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고
지나가던 새 한 마리 부처의 머리에 와 앉는다
깃을 다듬으며 쉬다가 돌아앉아
부처의 한쪽 눈에 똥을 눠놓고 간다
새는 사라지고
부처는 웃는 눈에 붙은 똥을 말리고 있다
미소론
유안진
국보 제78호
삼국시대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은
한 장 사진만으로도
새 정토(淨土)이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아름다운 극치
극치의 신비 신비로운 절대
이 미소 이상은 모두가 게거품질이고
이 미소 이하는 모두 딸꾹질이다
안면근육 경련이다
부처님
유자효
기다리지 마
다음이란 없어
탁발 스님을 보았을 때 시주를 하고
걸인을 만났을 때 동전 하나라도 던져야 해
부처님은 다시는 오지 않아
오직 한 번
네 앞에 모습을 나타내신
그때를 놓치지 마다
음이란 없는 게야
다음이란
사월 초파일, 전봇대
윤성택
한때 나는 건너왔다가 건너가는
이별의 것들만 가슴에 세웠다
그 떨림, 차들이 지나칠 때마다
땅 깊은 곳으로 뿌리내렸다
내 둥근 여백의 벽보 숫자들
나로 인해 기억되는 일이 있다면
편지함 같은 변압기로
골목마다 환한 사연을 전해주고 싶었다
언젠가 푸른 신호가 들 때까지
청년의 한쪽 어깨를 받아주다가
같이 길을 가고 싶어
웅웅 소리 내었던 것인데
왜 청년은 고개 숙여 흐느꼈던 것일까
그때 나도 한 번쯤은 별빛을 따라
스스로 빛을 내며 걸어가고 싶었다
그 꿈이 어디로 전송되어진 것일까
밑줄 같은 전선 줄에 괄호처럼 새들이 앉았을 때
어제는 누군가
사다리를 타고 올라와
등을 매다는 것이었다
그 저녁부터였다, 그때부터 나도,
등불이 되고 연등이 되어
내 안 뜨거운 전류를 타고
온 마을을
걸어갔던 것이었다
초파일 연등제
윤중호
법수 70세로, 초파일 이레 전에
연등 만드시다 저절로 입적하신 지연스님, 제가
물정 모르는 젊은 치기로
살 맞은 산짐승처럼 나뒹굴 때면
- 세상 미워 말구 측은지심으로 대해……
말갛게 웃으시며 등 쓸어주시더니
이제, 20년이 더 지난 지금에서야
스님의 웃음소리 들리는가요
쯧쯧, 혀 차는 스님의 말씀 들리는가요
송광사에 와서
이근배
아직도 흐르고 있느냐
조계산이 온몸으로 끌어안던
밤이 살냄새를 다 씻지 못하고
물소리는 저대로 치닫고만 있느냐
피가 비칠 세랴
뼈가 드러날 세랴
사랑은 숨죽여 안개 속에 묻히더니
그 입덧은 자꾸 기어 나와
국사전 뒤뜰에 부스럼 같은
상사화로 피어 있구나
눈에 보이는 것은
본래 없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름이야 열 번 백번
바뀐들 어떠랴
산에 오면 나도
산이 되어야 할 텐데
감로탑 앞에 서면 나도
머리 깎은 돌이 되어야 할 텐데
왜 내겐 물소리뿐이지
저 삐죽삐죽한 상사화들이
내 잃어버린 사랑으로 보이지
왜 나는 물소리가 되지 못하지
헛것들에 갇혀서
돌아오는 길을 잃고 있지
연등 축제
이문재
등나무 그늘 아래
누워 등꽃을 본다
하얗게 피어난 등꽃을 올려다본다
오월 한낮
오월 한가운데
이렇게 오래 등꽃에다 눈길 주는 까닭은
등꽃이 애써 태양을 외면하기 때문
굳이 대낮에 등을 밝히기 때문
봄꽃들 다투어 하늘 바라볼 때
봄꽃들 뒤질세라 태양과 눈을 맞출 때
등나무 그늘에 매달린 하얀 등꽃
땅을 향해 피어난다
등나무 그늘 아래
가지런히 누워있다 보면
저게 꽃의 고드름 아닌가 생각하다가
아니지, 풍등 같다는 생각
땅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수천수만의 풍등 같다는 생각
그러다 보면 등꽃 향기에 취해
오월 한낮이 새카매지고
가까운 지구 밖 어디선가는
내가 이렇게 누워있는 이 땅이
하늘의 끝, 천장일 수도 있겠거니 하다가
아니지, 모든 나무의 하늘은
여기 땅이 마땅할 수도 있겠거니 하는 생각
아니지, 등나무가 땅속에서 수고하는
모든 뿌리를 위해 걸어 놓는
연등일 수도 있겠거니 하는 생각
연꽃
이문조
연잎에 맺힌 이슬방울 또르르 또르르
세상 오욕에 물들지 않는 굳은 의지
썩은 물 먹고서도 어쩜 저리 맑을까
길게 뻗은 꽃대궁에 부처님의 환한 미소
혼탁한 세상 어두운 세상 불 밝힐 이
자비의 은은한 미소 연꽃 너밖에 없어라
초파일
이상국
화암사 갔다가 등을 걸었습니다
작은 등 내 이름 옆에
아내와 아이들 이름을 적었습니다
등을 걸고 바라보니
부처님이 큰아버지처럼 보였습니다
사월 초파일
이정우
부처님 오신 날 옥천암 앞마당은
언제부터인가 수몰민들의
만남의 광장이 되었다
각처에 사는 고향 분들 만나니
반갑기 한이 없네
마당에 채울 치고 부처님께
기도드리고
비빔밥을 나누며
화기애애하게 이야기
꽃을 피웠네
오색등에 촛불 켜고
산사를 내려오며 생각하니
이 아픈 몸을 끌고
몇 번이나 올 수 있을는지
부처님 오신 날
이종숙
연등 꽃 송이송이
나뭇가지에
임 오시는 길 못 찾아오시려나
천지에 정성 모아
부처님 영전에 무릎 조아려
각 심 소원 담아 불 밝히니
스님의 목탁 소리
가슴에 맺혀있던 응어리
각산진비* 되어 사라지고
연화 춤 동작에
번뇌의 깨달음으로
뭉클해지는 가슴 다독거리며
가기*를 담아
부처님 영전에 공양하니
그 염원 따뜻한 손길
허허공공*하다
* 각산진비 : 저마다 따로 흩어져 모두가 감
* 가기 : 곱고 맑은 기운
* 허허공공하다 : 끝없이 넓고 크다
나무
이진수
사람이 아둔한 제 머리통 대신 어째서
목탁을 두드리고 그 목탁 왜 나무로 만드는지
이제야 짐작하겠다 나무에는 나라고 하는 게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나무(無)이기 때문이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불호를 외치다
나무 속 아미타와 따악 마주친 아, 나무
돌부처
이춘우
비바람 눈 서리
얼굴 때려도
해(日) 오고
달(月) 갈 때
마음 씻어
연화 반석 위에 핀
혜안(慧眼)의 미소
부귀도
권세도
구름이라 이르네
둥근 길
이태수
경주 남산 돌부처는 눈이 없다
귀도 코도 입도 없다
천년 바람에 껍데기 다 내주고
천년을 거슬러 되돌아가고 있다
안 보고 안 듣고 안 맡으려 하거나
더 할 말이 없어서가 아니다
천년의 알맹이 안으로 쟁여 가기 위해
다시 천년의 새 길을 보듬어 오기 위해
느릿느릿 돌로 되돌아가고 있다
돌 속의 둥근 길을 가고 있다
새천년을 새롭게 열기 위해
둥글게 돌 속의 길을 가고 있다
마음의 부처
이태희
어디에 있을까. 어느 늦가을이었습니다
부처를 만나고 싶어 경주 남산을 찾았습니다
산길로 접어들 때, 돌부처를 닮은 한 여인이 스쳐 갔습니다
돌 주름이 얹힌 초로의 이마가 빛나는 듯도 하였습니다
산새 한 마리 날지 않는 호젓한 산길을 올랐습니다
모퉁이 돌아가면 어딘가에 부처가 서 있을 것 같았습니다
군데군데 절벽 바위를 지났지만, 부처는 보지 못했습니다
비탈길 오르고 바위 틈새를 지나 정상에 이르도록
부처를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길을 잘못 든 탓일까
발길 되돌려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산자락 낮은 곳에 이르렀을 때였죠
어디선가 물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오를 땐 보지 못했던 개울물이
낮은 음정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마른 솔잎 켜켜이 쌓인 오솔길도 보였습니다
이제 흔들림 다하고 내려앉는 산
그곳을 빠져나오며 돌아보았습니다
그때 비로소 보았습니다. 거기,
남산(南山)만 한 부처가 서 있었습니다
저녁노을이 후광으로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이해인
부처님
당신께서 오신 이날
세상은 어찌 이리 아름다운 잔칫집인지요
당신의 자비 안에
낯선 사람 미운 사람 하나도 없고
모두가 친구이고 가족입니다
모두가 도반이고 애인입니다
세상이란 둥근 연못 위에
한 송이 연꽃으로 피고 싶은 사람들이
연꽃을 닮은 꽃등을
거리마다 집집마다 달고 있네요
절망을 넘어서는 희망
미움을 녹이는 용서
분열을 메우는 평화만이
온 누리에 온 마음에 가득하게 해달라고
두 손을 활짝 펼쳐 등을 달고 있네요
그 따뜻하고 진실한 염원의 불빛들이 모여
세상을 환히 밝혀줍니다
때로는 힘겨워 눈물 흘리면서도
각자가 최선을 다하는 삶의 자리에서
부처님을 닮게 해달라고
성불하게 해달라고
정갈하게 합장하며
향을 피워 올리는 이들의
어진 눈길을 사랑합니다
맑은 음성을 사랑합니다
부처님
당신께서 오신 이날
세상은 어찌 이리 겸손한 도량인지요
산처럼 깊고 바다처럼 넓은
당신의 자비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 먼저
감사하다고 두 손 모으네요
서로 먼저 잘못했다 용서 청하며
밝게 웃을 준비가 되어 있네요
진정 사랑으로 거듭나면
정토가 되는 이 세상
오늘은 당신 친히
가장 큰 연꽃으로 피어나
그윽하고 황홀한 향기로
온 세상을 덮어주십시오
웃음을 잃은 이들 세상에
거룩하고 환한 웃음으로 오시어
우리를 기쁨으로 놀라게 해주십시오
부처님 오신 날은 또한 우리의 생일
평범한 일상에서 충만한 법열을 맛보는
날마다 새날 날마다 좋은 날
청정한 마음으로 가꾸어
청정한 삶 이루어 가게 해주십시오
불기 2556년 봉축 헌다례
이혜민
부처님
오늘도 차관에 끓어오르는 찻물로
산 같은 마음 하나를 담고
두 손을 고이 움켜쥐고 차를 올립니다
임이시여
우리가 사랑한 임이시여
산은 산대로
사랑을 품은 채
좀체 나투지 않는 몸짓으로
다시 차를 올립니다
지심귀명...
아, 임은 보이지 않고
제 탓만 하다가 앵돌아 앉아 버렸습니다
아닙니다. 하늘에다 이름 하나만 적고
이내 돌아 나왔습니다
온기 남은 찻잔에는 단정한 임의 미소
그것이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자운영 꽃밭
임보
저 시방정토 밝은 세상에
웬 연등들을 저리 내걸었나?
팔만 보살님들
붉은 가슴들을 열고
젖 보시 경쟁이다
모여든 꿀벌들
야단법석
왁자한
극락이다
냄비가 부처 같다
임영석
펄펄 끓는 물을 보니
냄비가 부처 같다
펄펄 끓는 물을 안고
움직이지 않는 저 힘,
부처가 연꽃에 앉아
번뇌하는 기도 같다
우담바라
임영조
청계사 극락보전 삼신불 앞에
낯선 새 떼들 왁자지껄 붐빈다
네가 곧 부처다
네 마음이 절이다
아무리 읽어줘도 못 알아들으니
답답하신 부처는 문뜩 우담바라
스스로 이마 찢고 꽃을 피웠다
앞뜰 냉이 꽃다지도 덩달아 피고
저 아래 마을에선 입이 싼
풀잠자리 웃음소리 자지러지고
오늘도 무사히 봄날은 간다
부처님 오신 날
장철문
할머니 먼 절에 등 켜러 가던 날을
산허리에 진달래꽃 다 지고
철쭉 피던 날을
강변으로 소 몰아내는 아버지를 따라가며
허위허위 푸른 산길 오르는 할머니를
그려보던 날을
등촉 같은 할머니의 합장을 가늠하던 날을
그 마음에 가보고 싶던 날을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부처님 오신 데 가보자고
손을 끄는 딸아이에게 끌려 나서며
가닿을 수 없는 그 날을
가늠할 수 없던
그 마음을
볕 바른 연둣빛 새잎에나 가늠해보다가
그 해던가
그다음 해던가
뒤란에 묻은 진달래꽃 파내던 날
뭉그러진 꽃잎의 탈색보다도
꽃빛의 약주보다도
가늠할 수 없는 그 냄새에 취하던 날
쥐어지르는 할머니의 주먹 앞에서도
코를 벌름거려
그 냄새에 가보고 싶던 날을
철쭉꽃 곁에나 서성이며
가늠해보다가
빨리 부처님 오신 데 가보자고 성을 가시는
딸아이의 가슴을 꼭 눌러
가리킨다
먼 나라에까지 가서도 가닿지 못한 그 마음을
세시풍속 - 사월 초파일
전병윤
남풍 먹은 가로수가 연둥 명줄을 흔든다
은하에서 내려온 별들은 연등에
불을 하나씩 달고
부처님 오시는 길을 환히 밝히고 있다
부처님은 악의 씨앗 태우려고,
살아 있는 것들의 길을 밝혀주려고 헤매다
초파일엔 이 땅엘 찾아오신다
선과 악은 연등 속에 녹아 촛물로 섞이고
동자승은 부처님 닮으려고 떼를 쓴다
염불 소리, 목탁 소리 하나하나 주워서
합장한 손에 한 움큼 쥐고
이 땅에 선사들의 발자국은 많다
부처님은 해마다 오시지만
룸비니* 허허한 배는 어쩌지 못하고
초파일 상현달만 인도 하늘을 보고 있다.
* 룸비니(Lumvini) : 석가모니가 탄생한 고향
수면사(睡眠寺)
전윤호
초파일 아침
절에 가자던 아내가 자고 있다
다른 식구들도 일 년에 한 번은 가야 한다고
다그치던 아내가 자고 있다
엄마 깨워야지?
아이가 묻는다
아니 그냥 자게 하자
매일 출근하는 아내에게
오늘 하루 늦잠은 얼마나 아름다운 절이랴
나는 베개와 이불을 다독거려
아내의 잠을 고인다
고른 숨결로 깊은 잠에 빠진
적멸보궁
초파일 아침
나는 안방에 법당을 세우고
연등 같은 아이들과
잠자는 설법을 듣는다
님 오신 날
정두병
부처님 부처님
우리 부처님
우리 엄마 얼굴 같은
우리 부처님
나의 소원 우리 소원
이루어 주신 우리 부처님
영원토록 나의 부처님
영원토록 우리 부처님
부처님 부처님
우리 부처님
우리 아빠 말씀 같은
우리 부처님
기쁜 마음 바른 마음
알려 주시는 우리 부처님
영원토록 나의 부처님
영원토록 우리 부처님
예수와 부처
정연복
예수와 부처가 만나
무척 반가워하면 안 될까
기독교와 불교가
다정히 손잡으면 안 될까
크리스천과 불교도가
뜨겁게 포옹하면 안 될까
교회당과 법당이
나란히 서 있으면 안 될까
하느님 나라와 극락정토가
함께 있으면 안 될까
구원과 열반이
동시에 이루어지면 안 될까
묵주와 목탁이
같이 놓여 있으면 안 될까
십자가 둘레를 연꽃으로
수놓으면 안 될까
장미의 열반
정연복
한철 통째로 불덩이로 생명 활활 태우며
한밤중에도 치솟는 송이송이 불면의 뜨거운 불꽃이더니
이제 지는 장미는 살그머니
고개를 땅으로 향하고 있다.
불타는 사랑은 미치도록 아름다워도
이 세상에 영원한 사랑이나 아름다움은 없음을 알리는
자신의 소임 하나 말없이 다하였으니
그 찬란한 불꽃의 목숨 미련 없이 거두어들이며
이제 고요히 열반에 들려는 듯
연등
정우영
내 몸이 아프고서야
비로소 목숨 귀한 줄 알다
흘리듯 지나친 숱한 생명들
꽃, 풀, 새, 나무, 물고기……그리고 사랑까지
어느 것 하나 새삼 소중치 않은 것 없다.
내 숨구멍에서 하! 하는 탄식음 터지자
내 몸 저 깊은 곳까지 한 우주가 팽창한다.
병이 내게로 온 까닭은
이렇듯 내 마음자리에 맺히는 인연마다
연등 하나씩 골고루 걸어두라는 뜻인가
부처님 오신 날
정종명
적막강산이던 산사에는
며칠째 부산한 발걸음 오가고
오색연등 주렁주렁 중생 소망
불 밝혀 불야성을 이룬다
노승의 둔탁한 목탁 소리 따라
낭랑한 염불 소리 계곡에 흘러
산천을 덮고 중생의 마음 밝혀
번뇌 망상을 벗어나고자
발원 울림 되어 가슴을 엔다
부처님 오신 날 맞아 내 마음의
법당에 참회와 욕심 버리고자
소망의 축원을 세운다
나약한 불심 다잡고자
법당에 무릎 꿇고 일심 발원
칼날처럼 푸르다
절집마다 봉축의 발걸음
인산인해 소원 발원 담아
연등 불 밝혀 참배의 엎드림
간절함에 부처님 지그시
눈 감고 염화미소로 할(喝) 하시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부처님 오신 날
조남명
물속에서 나온 연꽃
대웅전 천정에도
앞마당에도
부처님의 지혜 일렁인다
어둠을 걷어내
지혜의 세상 밝히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의 마음
혼자 우는 풍경
그 깊은 속은 부처님이 알고
검버섯 수놓은 구릿빛 범종
텁텁한 소리는 경내를 흔든다
북적거리며
두 손 모은 행렬
나뭇잎도 일천 배를 한다
중문 활짝 열고 앉으신
듬직한 부처님
만일이 오늘 같았으면
지긋이 실눈 뜨고 보신다
초파일
조남명
연꽃이 물속에서 나와
대웅전 천정에도
앞마당에도
부처님의 지혜가 일렁인다
어둠을 걷어내
지혜로 세상을 밝히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의 마음이다
혼자 우는 풍경
그 속 깊은 아픔은 부처님이 알고
검버섯 수놓은 구릿빛 범종의
텁텁한 소리는 경내를 먹는다
북적거리는 두 손 모은 행렬에
나뭇잎도 일천 배를 한다
중문 활짝 열고 앉으신
한번 안아보고 싶은
듬직한 부처님
만일이 오늘 같았으면 하며
지긋이 실눈 뜨고 만족해 하신다
부처님
조병화
부처님, 제가 부처님께 하는 치성이
부처님 마음엔 차지 않으실는지는 모르나
저는 온 정성을 다하여
부처님을 치성껏 섬기고 있습니다
부처님, 그래도 더욱더 네 마음의 치성을 보여라!
하실는지는 모르나
저는 더이상은 부처님께 보여 드릴
제 마음의 치성이 없습니다
그래도 더 네 마음의 치성을 보여라! 하신다면
저는 더이상은 부처님께 보여 드릴 것이 없어
제 텅 빈 가난한 마음의 바닥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 그래도 더 네마음의 치성을 보여라! 하신다면
저는 더이상은 보여 드릴 것이 없어
너무나 가난해서 부끄러운
제 마음의 문을 닫을 수밖엔 없습니다
석가의 날
조병화
부처님은
아카시아꽃이 피어 만발한
향기로운 꽃의 파도를 타시고
올해는 이곳에 오셨구나
오월 하늘이 높게 높게 솟은
푸른 곳에, 훤히
흰 꽃 너울너울 향기의 파도를 타시고
빙그레 웃으시며
어머님도 같이 오셨구나
아, 무한한 이 기쁨,
사람의 작은 가슴으로 어찌 다하리
이곳은 이렇게 아직도 어수선합니다
그러나 오월은 세월 중 가장 좋다는 달
편히 쉬시다 돌아가십시오
번뇌로운 불안이 가시지 않는
우리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인연(因緣) - 부처님 앞에서
조병화
부처님, 저는
당신이 기분 좋으신 얼굴로 보일 땐
저의 기분도 청명무량하게 개어집니다
그러나 당신이 기분 좋지 않는 얼굴로 보일 땐
저의 기분도 무량우울하게 흐려집니다
그리고 당신이 슬픈 얼굴로 보일 땐
저의 가슴도 헤아릴 수 없이 슬퍼집니다
그러다가 당신이 눈물 어린 얼굴로 보일 땐
저의 작은 가슴은 담당할 수 없이 무너져내립니다
아, 부처님, 저는 어쩌다가 그렇게
어머님으로부터 변하기 쉬운 여린 마음과
약한 눈물을 많이 타고나 온가 봅니다
부처님, 저는
당신이 까닭 모르게 눈물을 흘릴 땐
그대로 무너져내리는 눈물이옵니다
해인사
조병화
큰 절이나
작은 절이나
믿음은 하나
큰 집에 사나
작은 집에 사나
인간은 하나
산중 문답
조용미
아무리 예쁜 보살들이 찾아와
온갖 방법으로 유혹해도
눈길 한번 안 주는 부처님을 애인 삼은
비구니 스님
그 비법이나 한 수 적어볼까 싶어
노트북 들고 찾아간 작은 암자
플러그를 꽂는 순간
암수가 만나면 전기가 통한다는
세속의 이치 비웃으며
노트북 전원이 확 나가버린다
웬일인가 싶어 어리둥절하는 사이
가부좌 풀고 달아나는 부처님 봤냐며
밭에서 금방 따온 풋고추에 된장 올린
밥상이나 받으란다
사월 초파일
조위제
산사를 오르는 길목
해맑은 꾀꼬리 소리
줄지어 매달린 연등
스님의 목탁 소리 메아리 속에
지팡이 짚으신 꼬부랑 할머니
힘겨운 걸음으로
무슨 소원을 비시려고
오직 한마음, 자식 잘되라고
두 손 가지런히 합장하시고
나무 관세음보살, 나무 관세음보살
고사(古寺)
조지훈
목어(木魚)를 두드리다
졸음에 겨워
고오운 상좌 아이도
잠이 들었다.
부처님은 말이 없이
웃으시는데
서역 만리(西域萬里) 길
눈부신 노을 아래
모란이 진다
연등
조태일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속
개복숭아꽃 저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
연분홍꽃
점, 점, 점, 점점이 불 밝혀
화르르 화르르 몸 섞고 있었네.
사월 초파일 날 켠 연등보다
더 환했네. 더 고왔네
오래도록 내 숨결
내 스스로 가빴네
내 스스로 황홀했네
바람
조평구
바람이 억새밭을 스치며
"우리도 일천 배 올리자!"
바람이 낙엽을 굴리며
"우리도 탑돌이 하자!"
바람이 개울물 스치며
"우리도 찬불가 부르자!"
바람이 부처님 되고 싶어
대웅전 쪽으로 몰려갑니다
부처님 오신 날
주명옥
햇살이 참으로 곱다
부산스런 산사행 인파
여린 나뭇잎 떠다니는
저 논물 아래
산은 거꾸로 누워있고
농부들의 손길은
마음과 함께 바빠진다
수년이 넘도록
부처님 전에 가지만
반야심경 한 줄
외울 줄 모르고
오늘은 또
무얼 소원하려나
마음 복잡한 날
쌀가마니 퍼서
부처님 전에 갈꺼나
부처님 미소 담아낼거나
부처님 만나는 나무
최상고
두 팔 벌린 나무 그늘 아래
늙은 아낙네
잘 익은 열매 줍고 있네
내 다만 처음 보는 씨앗
작은 잎사귀조차 신비하여
아하! 아하! 연발케 하는
염주나무 보리수
석가모니 열반의 세계로
부처님 얼굴 같은 나무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부처꽃
최영희
몇 겁의 연(緣)을 살다
탈속하고
부처,,, 꽃
청 빛, 하늘가 연못가 아니하고
덤불 속 편안도 하시구나
칠 선녀 고이 보내
연못 위 선(善)으로 앉히시고
무지렁이처럼 아무렇게나 자란 풀숲
눈에도 잘 뵈지 않는 밥풀 만한 보랏빛
꽃, 부처라 한다
바람이 마구 흔들어 댄다
역시 탈속일까
부처의 미소
참 평안도 하시다
부처님 사시는 곳
한문수
풍경 소리 드리운
부처님 사시는 곳
조계사 주변에는
전투경찰이
왜
보초를 서야 하나
젊음이
해탈문 밖에서
타는 봄날
오늘도
초병의 눈초리에
한 여자가
가슴과 다리를 수색당하고
부처님 사시는
뜨락으로
쫓기듯 종종걸음
부처님 전 상서
한재만
백담사*에 도착한 시간은
녹슨 양철 굴뚝에서
붉은 비린내 울컥울컥 하늘을 가리는
목어(木魚)국 환장할 섣달 어스름 나절이었어요
꽃잎들은 검은 칼바람에 찢기고 쫓기어
안개 자욱한 계곡에서 방황하고요, 그때
중광 땡 스님이 '님의 침묵'을 움켜잡고
화엄당을 도둑고양이처럼 빠져나와
수심교(修心橋) 아래 해우소(解憂所)로 성급히 들어간
까닭을 저는 아직도 몰라요
사방(四方)은 어두워지고 보살님이 배가 고프데요
사천왕은 벌써 칠흑 같은 개흙에
빠졌군요, 부처님도
모르시겠죠?
* 백담사 화엄당은 만해 한용운 스님이 '님의 침묵'을 집필한 곳이며,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2년 동안 은둔생활을 했고, 중광 스님이 말년에 불편한 몸을 의탁했었다
개밥 그릇
함민복
사월 초파일
전등사(傳燈寺)에서 정수사(淨水寺)까지
공양드리러 가는 보살님 차를 얻어 탔다
토마토 가지 호박 늦은 모종을 안고
십 리를 더 걸어와
흙 파고 물 붓고
뿌리에 마지막 햇살 넣고 흙 덮고
해도 등(燈)처럼 물(水)처럼 날이 맑아
개밥그릇을 말갛게 닦아주고 싶었다
부처님 오신 날인데 나도
수돗가에 앉아 도(陶)를 닦았다
고개 갸웃갸웃 쳐다보던 흰 개
없다니까!
그 그림자가 그릇의 맛이야
수백 번 혓바닥으로 핥아도 아직 지울 수 없는
햇살이 담길수록 그릇이 가벼웠다
합장(合掌)
홍사성
순정한 이 마음
두 손으로 감싸 모웁니다
두 손 모아서
연꽃 한 송이 피웁니다
막 피어난 청신한 꽃
당신께 바칩니다
당신은 하늘 아래 땅 위에서
가장 소중한 분
무릎 꿇고 올리는 이 꽃
받아주소서
연꽃 같은 내 마음
받아주소서
부처님 오신 날
홍은자
생각만으로도 뜨거워 손바닥 젖어 드는,
그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이유 무엇인가
고요함 속 은은하게 풍경은 울어 주고
한동안 인등 속 은거했던 자신의 영혼이
언감생심 불경을 삼키는 실수를 범한다.
서두르지 못하여 고개 숙여 조아릴 때
그의 눈빛은 언제나 가늘게 숭엄하여
늘, 외이던 구구단 같은 주문들이
목 안에 잠겨 버리는 사고를 당하고
찰나에도 수만 개의 상념이 들고 난다
물고기 놓아주는 것만 방생이 아니고
남을 용서하는 것도 바로 그러함이니라.
타인을 즐겁게 했을 때 진정한 자유이며
자신이 행복한 것을 불행으로 여기라는
불변의 진리 가슴에 와 박히고 있는데
방약무인한 불자의 가소로운 작렬에
그의 투시는 변론의 의지를 말리고 있다
큰 행사, 급할 때 만 찾는 죄를 빌며
육신으로 행하며 거듭나겠노라고
공을 초월한 그 앞에 되뇌는 모양새란,
해도 어찌하오리까. 길은 하나뿐인 것을
합리화한 변명보다 실천하는 모습으로
좀 더 가까이 가까이로 다가가겠노라고
간절하도록 힘에 겨운 소리 들으시었는지
염화미소 내리고 계시는 불(佛), 그 화안함
부처님 오신 날
황다연
반야 지혜 불 밝혀
우리 님 나투셨다
믿음으로 심지 삼고
자비로 기름 삼아
마음속에 불 밝혀
정진하라 이르시네
연등 불빛
온 세상에
자비 광명 불 밝힐 때
부처님 나투셨어
귀한 설법 주시나니
민초들의 시름 속에
환하게 꽃이 핀다
향기로운 꽃바람도
신이 나서 춤을 추고
주변에 미물들도
쫑긋쫑긋 귀 세우며
설법 듣기 열 올릴 때
자비 광명 희망의 빛
온 누리에 가득하다
연등(燃燈)
황동규
나무들 허물없이 옷 벗을 때
우리 얼굴 벗고 만나고
나무들 옷 걸치고 무리 지어 설 때
우리 다시 귀면(鬼面) 달았다
흘러라 귀면(鬼面)이여, 우리 사랑은
수상하게 사월 파일 연등놀이에도 끼고
긴 줄 서서
마음 독하게 걷기도 하지만
남들처럼 웃으며 걷기도 하지만
불 꺼트리고
길 속에 길 잃고 서서
흐르지 않기도 한다
길 잃은 동안만 우리는 흐르지 않는다
사람들 떠들며 지나가고
커진 불빛들이 스쳐 가고
우리는 말없이 남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물 흐르지 않는 소리
들린다, 우리 감춘 마음도
들린다, 아무것도 없이 허약하게
불마저 꺼트리고,
흘러라 귀면(鬼面)이여, 우리는…….
사월 초파일
황인숙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
입구에서부터 오색의 등들이 화려하다
등의 의미 속에 각자의 소망의 뜻이
담겨 있을 터 치악산 가는 길목
구룡사 찿는 발걸음들
오늘은 특별한 날 차비도 공짜
밥도 공짜로 봉사하네
여기저기 대여섯 군데 줄을 서서
밥 그릇 하나 수저와 젓가락 하나 들고
우리 가족도 줄을 서서
밥 한 주걱 콩나물 무나물 산나물 한 웅 큼씩
고추장 한 수저 밥 위에 얹어 국 한 그릇
절편 한 봉지씩 받아서 여기저기 쪼그리고 앉아서
먹는 사람들 너도나도 맛있게 먹는
그 틈에 끼어 우리도 비빔밥 한 그릇
뚝딱하고 국 한 그릇 후루룩후루룩 마시니
어머니가 담근 고추장 맛과
고소한 참기름 맛이 비빔밥에 맑은 공기도
같이 비벼서 먹으니 금상천하가 내 것이네
물티슈도 한 봉지씩 커피도 공짜로 마시고
부처님 앞에서 절하는 사람들 각자의 마음속에
소원이 아들의 합격을 가족을 치료해 달라고
취업을 사업을 위해 비는 마음들 간절한 마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