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영 – 봄에게서 온 편지
고은영 – 봄 편지
고증식 – 봄 편지
곽재구 – 봄 편지
김귀녀 – 어느 봄날의 편지
김덕성 – 봄 편지
김동철 – 봄날의 편지
김두한 – 봄날 띄우는 편지
김수잔 – 보내고 싶은 봄 편지
김지향 – 봄 편지
김초혜 – 봄 편지
류금선 – 봄 편지
목필균 – 봄 편지
문부식 – 봄 편지
박남준 – 봄 편지
박인걸 – 봄에게 쓰는 편지
박찬 – 봄 편지
박현자 – 봄 편지
손병흥 – 봄 편지
송정숙 – 봄 엽서
신성호 – 봄소식 편지
안도현 – 봄 편지
오소후 – 봄 편지
오순화 – 봄 편지
오탁번 – 봄 편지
윤정옥 – 봄 편지
윤효 – 봄 편지
이남일 – 봄 편지
이도연 - 봄아 봄아 봄날을 위한 편지
이문재 – 봄 편지
이순희 – 어느 봄날의 편지
이승철 – 봄 편지
이학주 – 봄 편지
이해원 – 봄에 쓰는 편지
이효녕 – 봄 편지
임계자 – 봄 편지
임금옥 – 봄에 붙이는 편지
정한용 – 봄 편지
조충생 – 봄 편지
주선옥 – 봄 편지
주응규 – 봄 편지
최영복 – 땅끝에서 온 편지
함성호 – 다시 봄 편지
허영숙 – 봄, 본제입납 – 어느 실직자의 편지
황동규 - 2003년 봄 편지
황영순 – 봄 편지
봄에게서 온 편지
고은영
K여
초겨울 해변의 하이얀 풀들은
섬뜩한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웃었습니다
기울어지는 음산한 바람의 갈기에
어김없이 풀들은 시니컬하게 울고 웃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부활을 위한
웃음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입방아 찧던 새들이 놀란 수군거림
겨울의 골목에 새 덫을 치고 기다릴 때부터
결빙되어 굳은 시간의 건너편으로
파도는 다만 조금씩 이동하며 죽은 듯
물 밑의 비밀 한 섹스들을 감추고
어판장을 범하고 싶어 안달을 했습니다
K여
바람이 광기로 번뜩이는 희롱에
성산포의 겨울은 쉬 어두워지고
미끄러지듯 삼십 촉 전구들이 하나둘 점등되면
명월관 붉은빛들이 파도 위에 나열하던 긴 오열 음
그것들은 어촌의 은밀한 성욕들을
날마다 깨우고 있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리곤 겨울이 깊어진 어느 날부터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서
희끗희끗 잔설이 남은 그리움 위로
선혈 같은 동백꽃들이 단두대처럼
댕강댕강 목이 잘려 나가고
대나무 숲을 휩쓸던 바람결에
이곳 일출봉 능선에는
동백꽃을 조문하는 노란 수선화들이
잔설을 베어 물고 싱그럽게 물이 올랐습니다
봄 편지
고은영
제 그늘 가리 우고 한잠 자락으로
풍장에 녹은 무덤 자락 들판을 깨우나니
온새미*로 나뭇잎 뾰족해진 꽃가람*에
진홍빛 서러움 그림자 지고
매미꽃* 가림새* 없이
훌림목*으로 낭창거리거든
흰여울*로 다녀간 흙이랑*에 내 흔적
기억이나 해주소
* 온새미로 : 자연 그대로, 언제나 변함없이
* 꽃가람 : 꽃이 있는 강
* 매미꽃 : 애기똥풀과의 다년초
* 가림새 : 숨기거나 감추는바
* 훌림목 : 애교 띤 목소리
* 흰여울 : 물이 맑고 깨끗한 여울
* 흙이랑 : 물가에 생긴 흙의 주름. 물결의 출렁임에 따라 저절로 생긴다
봄 편지
고증식
혼자 살다 혼자 눈감은
가래울댁 마당에
젤 먼저 배달 나온 개나리꽃
무너진 담장에 깔려서도
이리 끙, 저리 끙,
겨우내 밀어올린 갈라진 입술
축사 문 닫아건 채
밤봇짐 싼 아들네 기다려
추적추적 짓무르던 눈가
마지막 밥숟갈 놓으면서도
끝내 놓지 못하던
저리도 환한
기다림의 뒤안길
봄 편지
곽재구
강에 물 가득
흐르니 보기 좋으오
꽃이 피고 비단 바람 불어오고
하얀 날개를 지닌 새들이 날아온다오
아시오?
바람의 밥이 꽃향기라는 것을
밥을 든든히 먹은 바람이
새들을 힘차게 허공 속에 띄운다는 것을
새들의 싱싱한 노래 속에
꽃향기가 서 말은 들어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 새들의 노래를 보내오
굶지 마오
우린 곧 만날 것이오
어느 봄날의 편지
김귀녀
연둣빛 나뭇잎들이 몸을 털어내는
어느 봄날
학처럼 맑고 선비처럼 곧은
지인의 편지를 받았다
친필로 쓴 편지
지금 시대에서 볼 수 없는 살 냄새나는 편지
남편 시집 선물로 드렸더니
꼼꼼히 챙겨 읽고
감동받으셨다는 그 편지
그분이 살았던 푸른 숲길이 보였다
그 숲에서 햇빛과 공기
알맞은 비 그리고 바람이
신선하게 불어왔다
투명하게 살아온 그분의 눈빛이 보였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던 곧은 삶이 보였다
오늘처럼 따뜻한 봄날
봄볕이 들어오는 창을 통해서
봄눈으로 다시 피어났다
내 몸이 연둣빛으로 물든 것 같았다
봄 편지
김덕성
봄 햇살이 제법 따스하게
시리도록 쏟아지는 날
나무 가지에 비둘기 두세 마리가
눈으로 주고받는 사랑의 교신을 보며
사랑으로 늘 품어 주시며
희망을 주시던 당신을 생각합니다
그날 내게 주신 사랑의 글월
한 송이 사랑의 꽃으로
내 몸에서 아름답게 피워졌고
구구절절 마음 깊이 새기며
얻은 귀한 말씀으로
당신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진한 분홍빛 마음을 열어
드리고 싶은 말
그 한 마디
감히 마음을 열어 편지를 씁니다
진정 당신만을 사랑하노라고
영영 당신만을 사랑하겠노라고
봄날의 편지
김동철
가장 소중함을 느끼는 사람
행복이란 무엇인지 일깨워 주고
빈 가슴에 피어나는
아름다움을 채우는 것은
타인이 아닌 즐거움을 주는
바로 그대입니다
산수유 향기에 젖은
그대의 노오란 물결은
그리움을 찿는 봄입니다
가슴속 깊은 곳에
꺼내려 해도 나오지 않는
그대의 간절한 마음을
생각하면 아슴아슴 다가오는
설레임 그 자체입니다
사랑하면서 맺지 못했던
한마디의 말이 가슴에 박혀
빛을 내지 못한 믿음이
세월속에 묻히리라 믿었건만
함께 하고 싶다는 편안한 마음이
더욱 크게 다가오는 봄날입니다
이해하며 사랑하고
배려하며 행복해야 하는 세상
사계 중 어떤 계절이
가슴을 울리며 사뿐히 다가와도
따뜻한 그대의 향기속에 젖음은
노오란 꽃잎에 실려 오는
찰랑찰랑한 그대의 목소리는
보고 싶은 마음의 소리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그대 곁에 머물고 싶은 마음은
내 인생 최고의 바램입니다
뭉게구름 떼를 지어
파아란 하늘과 동행이 됨은
아직도 그대를 사랑하고 있음을
봄 향기 속에
띄우는 봄날의 소중한
나의 편지입니다
봄날 띄우는 편지
김두환
그 텃밭 양지바른 데는
장다리꽃 곱게 피었죠
그이 가슴팍도 물올라 감들어
산수유꽃들 올려 겨루고 있겠네요
그 집에 가까운 강가엔
피라미들 톡톡 봄물 입질하겠네요
그이 오지랖도 실긋실긋 설레겠지만
봄기운 아지랑일 오착(誤捉)하진 않겠죠
그 집에서 쳐다뵈는 산자락엔 오래 산
텃새들 봄 맘 푸느라 휙휙 뒤넘기 치겠죠
그대 속정도 그런 정경에 취해서
보글보글 석어 향기 뒤발하겠네요
뒷감당에 벌겋게 쏴 돌리는
눈총기 여기 꽂히는가 썩 뜨겁네요
물과 땅은 서로 드티지 않게 또한
무너지지 않게 도모하고 점수(漸修)해서
많은 생물들 키워내듯이 언젠가 날아든
그이 먼빛 지성을 조심조심 키워서
지금껏 화운(和韻) 맞수로 삼고 있네요
가끔 한밤 탄금가 불려 선(禪)에 드네요
만만한 그 더늠 진지하기야 휘어잡네요
보내고 싶은 봄 편지
김수잔
봄바람이 사알~랑 살랑
그리움으로 다가옵니다
봄 향기 물씬한 거리를
사람들은 활기차게 걸으며
만나는 이 서로 몰라도
연둣빛 미소를 지으며
즐거운 얼굴들
생동하고 희망이 넘치는 이 봄날에
그대는
어디쯤 오고 있나요?
여린 개나리 꽃잎 흔드는
바람결에 오시나요?
나는 그 나무 그늘에서
그대를
기다리렵니다.
봄 편지
김지향
들 끝에서
조그만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왔다
내 눈이 주워 먹었다
내 눈엔 뾰족뾰족
샛노란 개나리가 돋아났다
개나리는 시간마다
2. 4. 6 으로 갈라져 흩어졌다
작년에 져버린
들 밖의 봄이
세상 속에 가득 깔렸다
나비는 봄의 배달부였다
봄 편지
김초혜
너를 본다
얼굴이 부서져
흔들리고 있는
너를 만난다
그물을 던져서
건져올린 그대
그대는 적막이구나
네가 떠났어도
나는 나를 떠날 수 없다
너를 어둡게 할 수 없어
나는 너로 산다
봄 편지
류금선
반가운 봄비에 가슴 설레는 산수유
그대 오시는 길 더욱 환하게
노랑 꽃길 만들겠다는 개나리
짧은 생이기에 임 그리워
나비처럼 하늘을 날고픈 목련
산골짜기마다 그대 그리움으로
연분홍 가슴 두근거리는 진달래
수많은 인파의 사랑을 받고 싶다고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
눈시울 속 까마득히
그리운 들꽃 사연들
서로 시샘하며 소식 오건만
아직 준비되지 않은 마음
옹이진 가슴만 태우네
봄 편지
목필균
가슴에 청진기 대고
네 심장소리 듣고 싶다
안개 같은 그리움
전해져 있는지
수없이 수신확인 하며
오늘도 금빛 햇살로
편지를 쓴다
진달래가 능선을 타고
달려오는 것처럼
너도 그렇게 왔으면 좋겠다고
봄 편지
문부식
봄꽃 피면 돌아가리란 약속
지키지 못해 미안하오
모진 겨울 다 지나도
그대 눈엔 눈물꽃만 피었다 지고
겹옷 벗으면 홑옷 입듯
그렇게 또 세월은
무심히 흰벽 사이를 스쳐가리라
봄꽃 피면 돌아가리란 약속
지키지 못해 미안하오
봄은 계절로 오지 않는다고
말 없이 웃는 그대 목련꽃 피우지만
야속한 세월은 할미꽃 피우라고
우리를 흔들고 조롱하며
무심히 흰벽 사이를 스쳐가리라
봄꽃 피면 돌아가리란 약속
허나 너무 아름다워
버리지 못해 미안하오
만날 수 없어 우린 더욱 간절하고
이루어질 수 없어 약속은
캄캄한 세월에 별꽃 피우는 것을
봄꽃 피면 돌아가
낭군꽃 되리라는 약속 아직
지키지 못해 미안하오
봄 편지
박남준
밤새 더듬더듬 엎드려
어쩌면 그렇게도 곱게 썼을까
아장아장 걸어 나온
아침 아기 이파리
우표도 붙이지 않고
나무들이 띄운
연둣빛 봄 편지
봄에게 쓰는 편지
박인걸
경칩에 걸쳐있는 햇살은
겨울을 걷어내는데 힘겹기만 하고
그늘진 가슴을 짖누르는
두꺼운 얼음장을 녹일 봄 바람은
어디서 온도를 가열하고 있는가
살아온 삶이 고달플수록
마음은 만년설 만큼 차갑고
계절의 순환이 해마다 이뤄져도
내 영혼은 언제나 겨울이었오
해빙에 강물이 흐르고
물오른 나무마다 윤기가 돌아도
단단히 걸어 잠근 마음 빗장을
아직껏 풀지 못하는 이유는
내 마음을 녹여줄 봄바람이
나를 잊고 있기 때문이리
언제나 겨울 한 가운데서
그토록 힘겨워 하며
아지랑이 사이로 달려오는
봄을 꿈꾸며 기다렸건만
그대는 번번이 나를 외면하였오
얼음장 같은 마음의 벽을 깨고
고독의 울타리를 활짝 열어젖히며
서러움의 눈물을 닦아내고
당신을 맞이하고 싶소
진달래 소복이 피우며
종달새 노랫소리도 듣고 싶소
봄이여 이제는 내게로 다가와
내 손을 힘있게 잡아 주오
내 가슴에 생기가 돌게 해주오
봄 편지
박찬
안녕하십니까
미황사입니다
잘 계시지요?
동백이 많이 피었습니다
매화도 피었고요
문득 한번 내려오시지요
봄 편지
박현자
꿈에 종일토록 우물을 팠습니다
퍼내도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샘가로
싱싱한 푸성귀 같은 언어들을 이고
모여드는 사람들
열심히 푸성귀를 씻습니다
빨래를 합니다
그 곁에서 두레박질을 하는 어린나무들
정갈한 언어를 건져내며
고만고만한 기쁨에 익숙해집니다
곧이어 치아를 드러낸 채 웃으며
문을 여는 가지 끝으로 길이 보이고
연두빛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내내 봄빛 푸르기를 기원합니다
봄 편지
손병흥
이내 봄 소식 전해주는 꽃망울로
철 맞추어 어김없이 꽃을 피운 뒤
연이어진 화창해진 날씨와 함께
화사하게 피어나는 꽃내음 가득한
온종일 마음마저 들뜨게 해주듯이
아름다운 봄꽃 온천지 어우러진 세상
생명의 기운이 넘쳐나는 이 계절
연달아 봄빛도 완연한 꽃들의 향연
꽃향기 전해주던 나비 사뿐히 날아와
포근한 햇살아래 살포시 불어오는 바람
한동안 잊고 있어도 다시 찾아오는 봄
꽃단장 고운숨결로 다가선 향기 품고서
꽃 한잎 햇살 한 줌에 내 마음 담아다가
초록의 풀과 나무와 꽃으로 그려보는 봄날
봄 엽서
송정숙
1
잔설 사이 진달래 피니
지평선 느릿느릿 걸어오고
확인 할 수 없는 희망
팻말로 우두커니 서 있다
잠들지 못한 사람이나
잠든 사람 모두
빈 술병 속에서 꿈꾸리니
작은 우체통 엽서 한 장
축하 합니다 합격을
2
봄노래 부르기 싫어
바람은 차고
가난한 이의 일기장에
옷깃 여미며 고개 숙인 봄
꽃잎이 지레 질려 시들었다
은사시나무 숲
붉은 노을 지는데
시간, 숨고르기를 하다
촉수 낮은 모습으로 찬바람에 떤다
봄소식 편지
신성호
봄이 왔다고
어떻게 전해야 할지를 몰라
망설이다가
카톡으로 전할까
메세지로 보낼까
아니면 0.5미리 볼펜으로
곱게 써서 편지로 보낼까
어떻게 보내든 봄내음 가득담아
내 마음까지 보낼 수 있다면 좋지
훈풍이 불고
봄비가 내리고
홍매화가 곱게 핀 사진도 첨부해서
없던 용기도 주고
새로운 희망도 보여주어
새롭게 신나게
그리고 멋지게 한해를 시작하자고
내 친한 친구에게
허물없이 그냥 전해주고 싶다
진정 답장은 안 해줘도
나는 기뻐할 수밖에
봄 편지
안도현
점심시간 후 5교시는 선생 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숙직실이나 양호실에 누워 끝도 없이 잠들고 싶은 마음일 때, 아이들이 누굽니까, 어린 조국입니다 참꽃같이 맑은 잇몸으로 기다리는 우리 아이들이 철 덜 든 나를 꽃피웁니다
봄 편지
오소후
얼마나 아름다운 바다인가
그대는
홀로 바다 소리를 듣는
외딴 오두막으로 낡아 가고 싶다고
지금 그대에게 편지를 쓰네
얼마나 그리운 바다인가
그대는
'코리아 파이어'동백꽃
나의 꽃가루
동박새 부리에 묻혀 편지를 봉인하네
얼마나 황홀한 바다인가
그대는
'영원히 사랑한다'
지금 나는 이 말을 쓰고 있네
봄 편지
오순화
지천이 봄이래요
연분홍 참꽃은 엊그제 피었고요
휘영청 노란개나리 님마중 나갔지요
간밤엔
달빛아래 하얀 목련도 첫사랑 순정에
그만,
방긋 입을 벌리고 말았네요
종일 봄비가 나린 오늘은
조급증에 잠못이룬 벚꽃마저
피멍 같은 꽃망울 피웠습니다.
꽃이 가는 길을 따라
초록내음 새록새록 돋아나면
문득문득 꽃 같은 날 그리워
아이가 되어버린 봄날
눈빛마다 전해오는 인사
지천이 봄이래요
봄 편지
오탁번
무당새가 우편함에 또 알을 깠다
올해는
큰 우편함 작은 우편함
양쪽에 다 둥지를 틀었다
주근깨 나란한 하늘빛 알이
다섯 개씩
앙증맞은 둥지 안에
반가운 편지처럼 다소곳하다
무당새가 우편함에 둥지를 틀면
우체부 아저씨는 골치 아프지만
할아버지는 싱글벙글한다
우편함 대신으로
대문 옆에 갖다 놓은 항아리 안에
편지를 넣던 우체부가
우리 할아버지 흉을 본다
- 어르신은 꼭 애들 같아요
예쁜 무당새가
아기자기 봄소식 전해주는
애련리 198번지
우리 할아버지 집
봄 편지
윤정옥
목련 나무에 함박웃음이 가득 매달렸어요.
아름다운 사람의 미소는
아마 저런 백목련 빛일 거예요.
발밑 땅속으로 핏줄이 흐르고 있어요.
초록의 혈관을 지나 개나리 줄기로 오르네요.
아, 오랫동안 막혔던 땅과 나무와의 사이
현기증 같은 노란 개나리꽃이 피네요.
열꽃이예요
겨울바람에 벗은 몸 맡기고
늘 똑같이 들여다봤지요, 유리창 너머의 당신
이렇게 꽃분홍 열꽃에 휩싸인
홍매화 그늘로 당신의 찬 손, 내밀어 주세요
봄 편지
윤효
물푸레 이파리 한 잎 동봉합니다
사발에 띄워 머리맡에 두시기 바랍니다
그대 그리워하는 마음 아직도 그 물빛입니다
푸르스레 번져가는 그 물빛입니다
봄 편지
이남일
봄마다
가슴에 피는 꽃이 있어
보이지 않아도
미풍은 봄비를 뿌리고 가고
말하지 않아도
그리운 언덕에는
잊지 않고 향기를 피우고 갑니다.
함께 실어 보낸
싱그러운
버들 잎 편지도 감사합니다.
그리운 날
봄비 속으로
그대가 오는 저녁이면 좋겠습니다
봄아 봄아 봄날을 위한 편지
이도연
소박한 풀꽃을 사랑하는 친구야
너는 축복의 땅 시골이라는 신의 성지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아니
인간이 만들어 놓은 땅인 도시라는 곳에 풍요는
보이지 않는 치열함과 경쟁이 낳은 산물이라는 걸
누런 지퍼같이 펼쳐진 도시 길가에 피는 꽃은 힘겨운 신음으로 꽃을 피운단다
시골살이
조금은 불편해도 봄에 실루엣이 상앗빛으로 스미던 날
흙을 가꾸며 들꽃 속에서 박꽃같이 행복한 미소를 짓던 아름다운 친구야
지금은 잊힌 동토의 계절
들판은 황량하고 능선의 나무는 썰렁한 바람 둘러업고
일없이 흔들리며 사금파리 뾰족한 결핍의 계절일지라도
친구야
함박눈 오는 날이면 백옥같이 고운 빛 들판은
얼마나 아름답더냐
눈 덮인 산하 상고대 눈꽃 나무는 또 얼마나 장엄하고 듬직하지 않더냐
은둔의 계절인 겨울에도 흙 속에 잠자는 씨앗의 숨결을
너는 들었을 테지
잠자는 대지의 호흡을 말이야
오감을 동원해도 회색빛 도시에서는 들을 수 없는 전설이란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시련이라는 자양분 없이
잉태하지 않는다더니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춘 추위는 꿔다 가도 한다는 속담을
증명하듯 찬바람이 날을 세우더라
추위 속에서도 친구가 사는 남도의 향기로운 봄소식은 어여쁘다
눈 속에 설중매나 붉은빛 동백이 피어나는 소식이 있던 날은
얼마나 찬 바람이 불던지
결핍의 계절을 건너온 꽃망울이 귀하고 사랑스럽다
봄 햇볕에 그을린 친구의 황톳빛 손아귀에
우직하게 걸려 있는 호미 끝에서 봄이 송알송알 솟아나겠지
친구의 겨울 봄꽃이
어서 잠에서 깨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까만 밤 하얗게 지새워 봄바람에 향기를 띄운다
봄 편지
이문재
사월의 귀밑머리가 젖어 있다.
밤새 봄비가 다녀가신 모양이다
연한 초록
잠깐 당신을 생각했다
떨어지는 꽃잎과
새로 나오는 이파리가
비교적 잘 헤어지고 있다
접이우산 접고
정오를 건너가는데
봄비 그친 세상 속으로
라일락 향기가 한 칸 더 밝아진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으려다 말았다
미간이 순해진다
멀리 있던 것들이
어느새 가까이 와 있다
저녁까지 혼자 걸어도
유월의 맨 앞까지 혼자 걸어도
오른켠이 허전하지 않을 것 같다
당신의 오른켠도 연일 안녕하실 것이다
어느 봄날의 편지
이순희
늘 흙을 밟고 사는 데도
편안함을 주는 흙
빈 밭의 흙을 밟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겨우내 추위와 힘 겨룬
흙 한줌 집어 들어 보십시오.
모진 눈바람과 된서리로 몇 날 몇 밤
홀로 지새웠을까요
상처투성이의 흙은
강인함으로
또 하나의 우주가 되어
새로운 생명체를 수태할 준비로 바쁘고
생명의 작은 풀꽃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않는 힘으로 품어 안겠지요
제 살덩이에서 떼어낸 제 핏덩이처럼
사춘기 소녀의 젖 망울 마냥
매화꽃망울이 몽실 거립니다.
고운 햇살 몇 가닥 실컷 빨아들이면
투명한 연분홍 신호탄을 공중에 쏘아 올리겠지요.
봄의 탄성이 하늘을 가르는 날
겨우내 미루었던 나들이가렵니다
통통거리는 아이의 발걸음과
피어오를 웃음소리가
매화 향기보다 더욱 진할 듯싶습니다
흙을 만지며
갖은 상처를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지혜를 배우고 싶습니다.
아니 닮기라도 했으면 합니다
봄 편지
이승철
엊그제 눈발 속에
섞여 내린 편지 한 통
"지금 떠나도 될까요"
쩌 - 억 짜르르
북쪽 멀리 어디선가 얼음 녹는 소리
기다리던 철새들
날갯짓에 힘이 솟고
아 _ 함 잘잤다
땅 밑 여기저기
기지개 켜는 소리
성미 급한 목련이
미소 짓다 움츠리고
아직은 찬바람으로
옷 여미는 숲속에
지으신 이의 은밀한 속삭임
"자! 이제 모두 일어나거라
내가 새 생명을 주리니!"
봄 편지
이학주
그 우라질놈의 추위가
아무 죄도 없는 나를 벌벌 떨게 하더니
갔어
안가겠다고 끈질기게 버티더니만
가고 말았어
계절이 밀어냈거든
봄이 왔어
여기저기 봄이 보이지?
일찍 일어난 개구리
기지개 켜고 하품하고
도약을 준비하는 늠름한 저 모습 보이지?
저기 나비도 날아가네
지조도 없이
이꽃 저꽃 다 건드리는 바람둥이
작년에 본 그 나비 맞아?
어매, 여기 복사꽃도
허벌나게 피었구마잉
여보
지난해 빚은 두견주 들고
우리 봄 마중 갑시다, 그려
봄에 쓰는 편지
이해원
얘들아
냉이를 밟으며 뛰어 다니지 마라
호미날로 흙을 놀라게 하지 말고 실뿌리도 다치지 않게 살살 뽑아라
산들바람이 머리카락을 어루만지듯 흙을 만져보고
바닥에 떨어진 새소리도 바구니에 넘치도록 담아보고 싶구나
찔레순처럼 훌쩍 키만 커버린 아파트에서 잔고가 쌓여도 마음은 적자였다
미아방지용 목걸이를 걸고 걸음마를 배우고
방과 후 목에 걸린 열쇠로 빈집 현관문을 열던
그 허전한 추억을 기억하느냐
정이 없는 아스팔트에서 자라 흙길을 모르는 너희는
작은 풀꽃도 친구가 되는 것을 모를 것이다
아들아, 딸아
나는 이 푹신한 침대보다 군불 지핀 아랫목이 더 좋다
계산된 식판의 음식보다 쌉싸래한 햇나물에 비빈 봄을 떠먹고 싶다
링거액보다 계곡의 물소리를 내 몸에 들이고 싶다
한 움큼의 알약보다 귀로 먹는 새소리가 약이 되는 것을
장미꽃보다 찔레꽃을 좋아하는 나에게
에어컨도 산바람 강바람만 하겠느냐
목련꽃 누런 딱지는 떨어진 지 오래인데 내 상처는 왜 이리 아물지 않느냐
봄 편지
이효녕
얼었던 땅위에 아지랑이
눈 속에 잠자던 하얀 꿈을 부르니
문을 열면 앞산이 달려와
내 가슴 어느 듯 흔든다
부드러운 사랑만큼 순한 미풍
눈을 뜨고 눈을 감고
내게 걸머진 삶의 무게
남쪽 향해 허리 굽힌다
잃어버린 길을 찾아와 기웃거리며
기도로 머물어
다시 햇볕을 소유한 하늘 몇 평
봄날은 그대 가슴에 가까이 있다
봄 편지
임계자
봄이 되면 땅은
몹시 바빠집니다
깊숙이 숨겨둔
온갖 보물들을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겨울의 먼 길을 걸어 나와
오랜만에 만나는 이들에게
안부 편지를 띄웁니다.
춥다고 움추려 신음하는
꽃잎들에게
따사한 봄 햇살로
눈 속에 묻어 두었던 이들과
이별도 해야 합니다.
마침내 여기 앉아 있네
꽃 잎 속에 피어나는
봄의 향기를
편지로 전해주기 위해
봄에 붙이는 편지
임금옥
작은 창
새어나는 불빛을 따라
골목을 휘어 도는 연둣빛 향기
아직은 이른 새벽
안개에 잠겨
여명을
기다리며 떨고 있는데
바람은
차창 곁을 스쳐 지나고
봄 아침 기대어선 나는 창에다
부치지 못할 편지
써 내려 간다
햇살이
미소 띠면 사라진대도
봄 편지
정한용
두 점 사이에 우린 있습니다
내가 엎드린 섬 하나와
당신이 지은 섬 하나
구불구불 먼 길 돌아 아득히 이어집니다
세상 밖 저쪽에서 당신은
안개 내음 봄 빛깔로 써보냅니다
잘 지냈어......보고픈......나만의......
그건 시작이 아니라 끝, 끝이며 또한 처음
맑은 흔적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혹시 압니까
온 세상 왕창 뒤집혀 마른잎 다시 솟고
사람들 이마에 꽃잎 날릴 때
그 너울 사이사이
흰 빛 내릴 때
그쪽 섬에 내 편지 한 구절 깊숙이 스미고
이쪽 섬에 당신 편지 한 구절 높이 새겨져
혹시 압니까
눈물겨운 가락이 될지 섭리가 될지
아프게 그리운
한 흙이 될지
봄 편지
조충생
잔설이 흩어지는 길가에
외롭게 불 밝히며 홀로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은 희미한데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국은 선명하고
발자국 흔적따라 세월은
허공에 공전하듯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새벽 동녘 창에
그대에게 띄운 봄 편지는
내용은 간절한데 전할 수 없어
허공에 머물고
때 이른 훈훈한 바람은
그대의 두터운 옷고름 풀기에
충분하다
차가운 별빛에
빛 한 줌 담아 방황할 적에
그대 향한 사랑의 불 밝히면
사랑 식은
그대 차가운 가슴에
내 사랑으로 봄꽃처럼
아름답게 수놓고 싶다
봄 편지
주선옥
긴 겨울밤 시린 별빛이
그대 창가에 다소곳 내려
두근거리는 가슴
거친 숨결로 기다립니다.
더러는 부풀고
더러는 두꺼운 껍질 속
기어이 깨어나지 않을 듯
그 숨소리마저 깊이 재웠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대 안에서
연두빛 휘파람 소리
연분홍 꽃 내음으로
눈 뜨고 나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작은 샘처럼 솟은 그리움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오직 그대를 향해
두려움 없이 흐르는 강물인 것을
그대는 아시나요?
봄 편지
주응규
밀려왔다 밀려가는 그리움을
눈물로 피웠다 지우기를
반복하며 편지를 씁니다
먼 날에 숨겨놓았던
사랑 이야기가
봄물에 씻겨나
삽시간에 번져납니다
햇볕을 머금어 찰랑대는
초록빛 물결을 축여
발그레 꽃물 듭니다
가슴 마디마디에 꽃망울 져
발록발록 터지는
야린 사랑의 숨결로
그대의 메마른 가슴에
봄꽃을 피우겠습니다
땅끝에서 온 편지
최영복
산 넘고 물 건너 땅끝 동네에서
동무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왔습니다
많이 보고 싶다는
담장 밖 함께 심었던 과수원에는 복사꽃이 피고
살구나무는 볼그스레 달아 오른 꽃망울이
마음을 점점 설레게 한답니다
땔감을 구하기 위해
매일 오르던 뒷산 연분홍 진달래꽃이
어서오라 부르는 메아리 소리와 졸졸졸 흐르는
맑은 계곡 물소리를 함께 봉하였으니
올 봄은 꽃구경도 같이 하고
은은한 보름달 하나 소주병에 담아내어
그동안 말 못하고 꼭 묶어 놓은 사람 사는 이야기
밤새 풀어가며 한번 마셔보자 합니다
삶이 무겁고 지쳐서
무언가 너무나 간절할 때 채워 주고 비워주는 게 고향이니 버릴 것이 있다면 버리고
유년의 맑고 깨끗한 마음만 담아 가라 합니다
다시 봄 편지
함성호
날이 많이 풀렸지요?
흰 꽃 피워 그대에게 한 송이
보내고 싶은 정옵니다
꽃은 시들겠지만 하고, 이어서는
(영원한 것을 묶어 두는 문장이어야겠지만)
나의 아트만도 내일이면 시드니
그대가 오늘 이 꽃을 보면
우리의 생이 다하도록
- 하겠습니다
다시 추위가 있을까요? 하는
질문은 가능하겠지만은
그건 모르는 일이겠지요
종이꽃에 물을 주는 아이를 보세요
때로는 쇠락함이, 다시 그럴수 없는
영원을 보여주기도 합니다만
그것도 원래 나타나지 않았던 듯
- 하겠습니다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꼴이 마음에 드나요?
아직 불러줄 노래도 많은데
짧게, 우리 서로의
눈 속에 잠깐, 아름답게
- 있었지요
봄, 본제입납 - 어느 실직자의 편지
허영숙
봄은 땅을 지펴 온 산에 꽃을 한 솥밥 해 놓았는데 빈 숟가락 들고 허공만 자꾸 퍼대고 있는 계절입니다
라고 쓰고 나니 아직 쓰지 않은 행간이 젖는다
벚꽃 잎처럼 쌓이는 이력서
골목을 열 번이나 돌고 올라오는 옥탑방에도
드문드문 봄이 기웃거리는지,
오래 꽃 핀 적 없는 화분 사이
그 가혹한 틈으로 핀 민들레가 하릴없이 빈둥거리는 봄볕과 일가를 이루고 있다
꽃들이 지고 명함 한 장 손에 쥐는 다음 계절에는 빈 손 말고
작약 한 꾸러미 안고 찾아 뵙겠습니다 라는 말은
빈 약속 같아 차마 쓰지 못하고
선자의 눈빛만으로도 당락의 갈피를 읽는 눈치만 무럭무럭 자라 빈한의 담을 넘어간다 라고도 차마 쓰지 못하고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다 그치는 봄날의 사랑 말고 생선 살점 발라 밥숟갈 위에 얹어 주던
오래 지긋한 사랑이 그립다 쓰고
방점을 무수히 찍는다. 연두가 짙고서야 봄이 왔다 갔음을 아는
햇빛만 부유한 이 계절에,
* 본제입납(本第入納) : 자기 집에 편지할 때에 겉봉 표면에 자기 이름을 쓰고 그 밑에 쓰는 말
2003년 봄 편지 - 퇴직 전 마지막 봄, 김수명 선생에게
황동규
오늘이 오늘 같지 않습니다
진달래는 마음먹고 눈 주기 전에 사라지고
라일락 향도 열어논 연구실 밑을 그냥 스쳐가고
신록도 안구(眼球) 몇 뼘 앞에서 맴돕니다.
연못가에 영산홍이 가화(假花)처럼 낯설게 피어 있군요.
이번 주말엔
얼마 전 항구 일 치웠다는, 이십 년 전에 들어가본
서해안의 조그만 포구에 가겠습니다.
배들이 사라졌더라도 배 매던 자리는 남아 있겠지요.
바다가 숨을 죽일 때
콘크리트 4발이들을 얽어 만든 엉성한 방파제 앞 술집에서
주꾸미 안주로 소주를 마시다 나와
밀물이 밀어오는 걸 보겠습니다.
조개, 게, 물새 들이 뻘 위에 새겨논 온갖 형상들이
물 맞고 풀어지는 것을 보겠습니다.
사라지기 직전까지만 보겠습니다.
나머지는
평생을 허리 구부리고 보낸 할미꽃 막판에 꼿꼿이 서듯
느낌도 흐느낌도 없이 표표히 서서 망각하겠습니다
봄 편지
황영순
나는 꽃씨입니다
아름다운 호미질을 기다려 온
흙 속의 꽃씨입니다
추운 들녘에서
얼지 않고
쓰러지지 않으려고
모진 결심으로 혈서를 쓰면서
긴 눈물로 왔읍니다
슬픈 내 피 늦게야 이곳
이곳으로 와서
지녁마다 금빛 도리깨로
곤한 잠 깨우고
어두움을 털어내고 있읍니다
오늘은
하나의 우주가 열리고
누군가 어둠 속에서
커다란 기침으로 올 것 같은
향그러운 새날입니다
꿈길로 바람 소리 파도 소리 밀려오는
풍란처럼
풍란처럼
숨어서도 눈부시게 행복한
나는 꽃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