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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날(三伏) 관련

초복

 

김경숙 초복

김덕성 초복을 앞두고

김정환 - 초복

김정환 - 겨울 복날

김진아 초복

김한기 - 계곡 풍경 초복 날

남경식 초복

박태원 - 고추잠자리

송정숙 초복

오애숙 초복 날

유창섭 - 만남

윤의섭 - 초복과 삼계탕

임수현 초복

장종섭 초복

최다원 초복 날

 

 

중복

 

권오범 - 중복허리

김연대 - 중복 근처

나상국 - 중복

안재동 중복(中伏)

윤갑수 중복 날

이승기 - 중복, 끓다

이영균 - 중복

홍해리 - 중복

홍해리 - 매미 울음

 

 

말복

 

고명 - 말복

권오범 - 말복

김덕성 - 친구야 말복이네

김수영 말복(末伏)

김연대 - 말복 근처

김유택 - 철학자의 길고 지루한 여름날의 변증

나태주 - 말복이 내일모레

문성해 - 말복

박경희 - 말복이 처마에 들다

박승미 말복

박승열 말복 더위

손석철 - 말복 오후

손세실리아 말복

안영준 말복 날

윤용기 말복

이동순 말복 무렵

정연복 말복

정연복 말복의 노래

정재영 말복

하영순 말복이다

한영희 - 말복

홍해리 말복

 

 

복날 관련

 

곽진구 - 복날 풍경

권오범 - 삼계탕

권오범 - 인내의 계절

권지숙 삼복

김금자 복날 삼계탕

김남현 - 삼복 혹서

김명인 - 복날

김영수 삼복더위

김홍택 삼복더위

나상국 - 복달임

나석중 복날

도현영 복날

박경원 - 삼복

박외도 - 삼복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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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일 - 복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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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거정 삼복(三伏)

서준석 - 더위 먹은 삼복(三伏)

손병흥 - 복날 풍경

손병흥 - 복놀이

손순미 삼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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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지혜 - 물방울 판타지

안영준 - 불안한 삼복

안영준 삼복의 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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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구 - 복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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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국 - 복날 생각 혹은 다리 밑

이성희 삼복더위

이원문 - 복날(伏一)

이재환 - 삼복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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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종섭 삼복더위

장진순 개도, 팔자 나름

정민기 복날

정연복 - ()날과 복()

정연복 - 이열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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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열 삼복 무더위

조성국 복날이면 생각나는 기억

조하혜 복날

진순 - 복날

최영철 복날

한인수 - ()

허용회 - 삼복더위

홍해리 - 매미 울음

 

 

 

 

초복

김경숙

 

실하다는 토종닭 한 마리

특별 주문해서

저녁상에 올리려다

 

학교에서 급식으로

삼계탕 먹었다는 아들과

탕 한 그릇 비웠다는

남편의 복달임에

 

냉장고 신세를 지게 된

가부좌 튼 벌거숭이

알 수 없는 미소를 보낸다

 

해거름,

무더위에 지쳐

삼키는 울음소리

 

여기저기서 꼬끼오 꼬꼬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멍멍멍

 

 

 

초복을 앞두고

김덕성

 

여름은 익어가는 계절

세월의 흐름으로 여름이 열리니

어제도 그랬듯 오늘도

햇살은 기세당당하게 폭염으로

초복의 문을 연다

 

나무는 꿈을 잃지 않고

여념 없이 바쁘게 움직이면서

초록빛 옷으로 갈아입고 고맙게

햇살을 잠재우며 시원하게

그늘이 되어 준다

 

각박한 세상이라지만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

익어가는 계절인지라

초복에도 더위와 싸워 이겨

시들지 말고 씽씽한 초록빛으로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으로

성숙하게 살면 어떠리

 

 

 

초복

김정환

 

콧구멍으로 땀구멍으로

나는 너를 못살게 굴어야겠다

열려 있는 모든 구멍으로

더위도 이대로는 못 살겠다 하며

펑펑 쏟아지는 초복 더위.

눈물도 못된 것이

슬픔도 못된 것이 비명소리도 못된 것이

펑펑 쏟아져

거리에 홍수 나겄다

구멍이란 구멍은 모두 코를 벌름거리고

이 초복, 푹푹 찌는 더위에

적어도 사랑하고 몸 비비려면

못 져도 후줄근한 장마 지겄다

이렇게 태우고 또 태우다가

사랑은 빈껍데기만 마른오징어처럼 남겄다

요놈아 더위야 이 번잡아

나도 너를 못살게 굴어야겠다

이 여름을 덮친

백주에 날벼락 같은 불볕 속에서

나도 내 몸이 말라 비트는 사랑으로

너를 덥게 푹푹 찌게 만들어야겠다

남아서 못난 사람들끼리

살아서 장한 사람들끼리

사랑하고, 꾀죄죄한 살 비비면서

 

 

 

겨울 복날

김정환

 

세검정 다리 밑에서 허름한 차림의 사내 둘이서

개를 두 마리씩이나 나무막대에 걸어

불에 끄슬리고 있었는데

왜 나는 무턱대고 그것이 훔친 개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을까.

생각했을까, 나를 올려다보는 그들의 눈초리는

내려다보는 나보다 더 의젓해 보였는데

늠름해 보였는데, 해볼 테면 해보라는 듯이

그들의 눈에는 광기가 아닌

또렷한 살기가 번득이고 있었는데

검댕이 묻은 그들의 아직도 배고픈 눈초리에서

내가 본 것은

측은함이었을까, 복수였을까

도대체 왜 나는 그 백주 대낮에, 몰래, 슬쩍, 아니면

재빨리, ..... 이런 따위의 음흉한 말들만 기억에 떠올렸을까

동정이었을까 부끄러움이었을까

하얗게 눈 내려 쌓인 벌판, 모처럼 개울물 풀린 자리 옆에서

끄슬려도 끄슬려도 개의 내장은 더욱 새빨갛고

이빨은 더욱 새하얗고

몸뚱이가 시커매진 개의 시체를 보면서

사내의 억센 두 손이 그 개의 내장 속을 자신있게 휘휘 저었을 때

개고기라면 질색하던 나의 자존심이

흔들렸을까, 왜 그리 침 흘렸을까

도대체 왜 그리 속이 후련했을까

아름다움이란 하나의 습관일 뿐일까

 

 

 

초복

김진아

 

평상 위

발톱 매니큐어 바르는 주인 여자

등살로 밀려드는 뜨거운 햇살

축 늘어지는 옥탑방 강아지다

 

수박 베어 먹는 모습만 바라보며

날름거리는 붉은 혀

아래 층 계단 사이로 느껴지고

구수한 삼계탕 냄새

냉큼 달려 나간다

 

할머니의 대문 앞

오순도순 모여 앉아 먹는 점심

내던져지는 닭고기 한 덩이

그 자리서 먹어 치우고

절뚝거리며 내려오는 주인이다

 

 

 

계곡 풍경 초복 날

김한기

 

자다 깨다 깨다 자다 깨다 자다

바위틈

추운 이불 속에서

검은 밤 내내 잠을 뒤척이다

문득 눈을 뜨니

긴 밤 지나

드디어

날이 어둑어둑 밝아온다

 

산새 소리로 일어나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계곡으로 세수하러 가면

물속에 피래미들이 놀고

물 위로 잠자리들이 떼 지어 난다

 

물가 평평한 바위 위에

담요를 깔아

다리 틀고 허리 세워

명상 속으로 들어가면

어느덧

해가 산 위로 올라와서

옆 나무와 내 앉은 그림자가

앞으로 길게 그림 진다

 

 

 

초복

남경식

 

얼음 가득 진한 칡즙 한 잔

그대와 같이 나누고픈 날

 

뜨거운 유리창 너머엔

우울한 낭만이 끈적이고 있었지

 

어디선가 귓가에선

멜라니 사프카의 더 새디스티싱이

절규로 들리어 온 날

 

, 아직도 난

푸르게 젊었는가

상처 난 스무 살의 나

 

오늘은 초복

잉잉 추운

겨울도 아닌데.

 

 

 

고추잠자리

박태원

 

담장 위에 꽂힌

철근 대 끝에

현실의 고단한 날개를 쉬는

고추잠자리

빨간색이라 열을 품는지

초복의

뜨거운 열기는 따갑다

왕눈을 껌벅이며

달콤한 휴식을 취할려 하니

날개에

바람 몰아들어

들지도 않은 잠을 깨우고

아이도 덩달아 재밌다고

손 내밀고 살금살금

숨을 죽이니

저녁놀

내려앉는 시간에도

수은주는 높은데

밤새 쉴 보금자리 찾지 못해

아직도

하늘을 비행하고 있는

고추잠자리

 

 

 

초복

송정숙

 

타고난 운명은

하늘도 어쩌지 못한다네

알에서 깨어나 종종걸음

이제는 청춘이 코 앞인데

i 좋아 지금이 좋아

뒷덜미 잡혀 와

한 그릇 보신으로

이 한 몸 바쳐

그대가 힘을 얻어

세상에 우뚝 설 수 있다면

내 천당에 가서

어깨에 힘 팍 주고

당당하게 말하리라

몸 보시하고 왔다고

 

 

 

초복 날

오애숙

 

7월 창 활짝 열고 나니

우당탕 타당 한바탕 소나기

퍼부어 주고 있기에

 

경쾌한 속풀이가 되어

몸과 맘 생기 부어주고 있어

온누리가 싱그럽다

 

하나 한쪽 모퉁이에선

하늘 창문이 고장 난 것인지

홍수 범람해 난리 났다

 

항상 이맘때가 돌아오면

물난리에 긴장 끈 놓으면 안 될

우리 대한민국 일부 농촌

 

이맘때 예닐곱 어린 시절

이른 새벽 통째로 집 떠내려 보내

가슴에 비애 물결 일렁인다

 

 

 

만남

유창섭

 

속 깊이 가두어 둔 채

보고 싶단 생각마저도 내색 않고

살다가

충주호 구담봉으로 돌아왔대서

낯 설은 이국에서 돌아왔대서

이제는 한곳에서 꼼짝 않고 있는 데서

찌는 삼복도 초복 날

전화도 못 하고 물어 물어서

찾아간 오후

막 지은 흙집 속에서

국화 한 송이 앞에 놓고 그는

누워있었다 말없이

손 내밀고 소주 한 잔 달라며

누워있었다

 

 

 

초복과 삼계탕

윤의섭

 

이 강산 삼신(三神)

산삼을 내고

고려 인삼은 겨레의

명품일세

인삼과 영계로

삼계탕을 만들어

겨레의 보양식으로

초복을 맞네

더위에 지친 몸

보양식으로

동자도 먹고

어르신도 힘내는

국민 건강의

풍미를 자랑하네.

 

 

 

초복

임수현

 

언니가 죽었어

요새는 뼈가 타는 걸 보여주더라

마흔다섯이 십 분밖에 안 걸려

너는 입에서 날개뼈를 발라내며 말한다

너는 국물에

소금을 많이 넣는 것 같다

어떤 나라에서는

화약 속에 유골 가루를 넣어 폭죽놀이를 한다지

풍등에 유골 가루를 넣어 날려 보내는 곳도 있어

좋은 곳으로 갔을 거야

닭을 먹으며 닭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잡지와 문학과 세간에 떠도는 불행에 대해

더 넣으면 짜

너는 내게 소금 통을 당겨준다

파리가 젓가락에 붙었다 날아간다

무슨 영혼이라는 듯이

서로 내겠다고 신발을 접어 신고

계산대로 달려가지 않았지만

우리 곁에 잠시

녹는 것 같다 밍밍해서

뭔가 더 넣고 싶어지는 것들과

 

 

 

초복

장종섭

 

온몸은 후끈

달아오르고

빨랫줄이 어울리게

속옷은 젖어 있다

 

임은 덥다는 핑계로

전화 한 통 없건만

저 눈치 없는 해님은

사랑에 빠져 나를 달군다

 

절기를 따져보니

초복 날이다

뜨거워진 이들은 모두

보신을 하러 뛰어갔습니다

 

 

 

초복 날

최다원

 

코로나 확진자가 오늘은 1,300여 명을 넘었다

날은 더웁고

앞은 막히고

자유는 길을 잃었다

 

모두들 비명을 지르지만

무심한 하늘은 그저 흐리다

난 모른다는 듯

난 아무 짓도 안 했다고

침묵하는 하늘은

그저 철새를 옮기고 있다

 

갈대는 손사래를 치고

꽃들은 미소를 짓고

한강 물은 고요히 흐른다

마스크 안에 갇힌 폐부는 할딱이고

나지막한 비명만이 꼬리를 흔든다

 

 

 

중복허리

권오범

 

장마가 낳은 열대야가

날이 갈수록 비대해져

허구한 날 작정하고 쥐어짜

물퉁이가 된 7월 막바지

 

유통기간 지난 구름마저

말끔히 걷어내는 바람에

햇볕이 쏜살같이 뛰어내려

정수리 벗기려 드는 오후

 

질곡의 세월 맥고자로 덮어버린 노인이

산더미처럼 갈무리한 종이박스와 함께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따라

남루한 리어카로 지구를 힘겹게 굴리고 있다

 

봉고차와 동업 중인 확성기도

남산만 한 수박이 오천 원이라고

대목 맞아 북새통인 삼계탕 집에게

언제부턴가 고래고래 호객하고.

 

* 물퉁이: 살만 희고 힘이 없는 사람

 

 

 

중복 근처

김연대

 

개미허리 하나

또 잘려 나가고 있다

산을 이룬 칼 돌

발 하나 들여놓을 곳 없는

펄펄 끓는 화택(火宅)

방초 덮혀

길이 끊어진 비절(非節)

굽은 허리의, 땀만 흘리고 선

여름 민들레

찌르레기 한 마리

불타는 시간의 가지에 앉아

세상을 제소리로 점령하고 있다

지금

천지에 살아 있는 놈은

찌르레기

한 놈뿐.

 

 

 

중복

나상국

 

하지로부터

네 번째 경일이라는 오늘

중복이다

열대야로 잠 못 이룬 밤

바람 한 점 그리워

창문을 모두 열어 놓았지만

바람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콧구멍도 보이지 않는다

벌거벗은 몸 위로

어디서 기어 나왔는지

바구미 한 마리

바람처럼 내달린다

복달임 음식

분명 삼계탕에 들어갈

찹쌀을 야금야금

갉아 먹었을 게다

날도 더운데,

땀으로 눅눅해진

몸뚱아리를

운동장 삼으려는지

수영장 삼으려는지

바구미 한 마리

생을 재촉하고 있다

삼복더위에

닭도

개도

장어도 살기 위해서

몸을 바짝 낮출 텐데

 

 

 

나무

서정우

 

바람 한 점 없는 중복 더위에 불볕 가득한 운동장에 서 보셨나요? 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이 무작위로 내리꽂는 폭서. 때맞추어 아래로부터 푹푹 쪄 오르는 지열. 그래요. 현기증 같은 아지랑이가 온 지천에서 스멀스멀 자라 내게로 만 밀려드는.

수천수만 개의 모공에서 하염없이 묻어나온 신음 같은 땀방울이 골골이 흘러 온몸 적십니다. 정신이 아뜩해지고 나는 문득 푸른 동산에 서 있습니다. 잎새 가득한 건강한 나무, 잎새 흔들어 청량한 바람 동산에 뿌리는, 눈이 큰 짐승과 보다 아름다운 아기가 소리 없이 웃는.

그러나 그뿐, 고개 들면 나는 땡볕 가득한 운동장에 서 있을 뿐입니다. 그냥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한 자리 지키다가 다른 자리로 지정해 옮겨가는 것.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진 데. 세상에! 나는 이제 이곳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일상에 붙박여 있는 것입니다. 선택했었고, 오랜 나날 지켜왔던. 이제는 보다 더 를 대신하는.

 

자리. 하염없이 서 있는.

 

내 발밑에서 뿌리가 내리고 있습니다. 시나브로 시작된 이 작업은 발바닥 언저리 핏줄과 신경을 땅 밑으로 끌어내립니다. 접지된 몸은 뜻과는 상관없이 그 자리 버팁니다. 멍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운동장엔 나무들 저마다의 으로 드문드문 붙박여 있습니다. 더러는 푸른 잎 피워 올리지만

 

나무들. 마음이 탈진되어도 수백 번도 더 탈진되었을.

 

 

 

중복(中伏)

안재동

 

매연으로 시꺼메진 가로수들

"도시의 거리를 더는 지키지 않겠노라!"

숨쉬기조차 힘든 나무들의 반란이다

빌딩 숲도 이글대는 태양광으로부터

도시 사수를 포기하고 만다

중복(中伏)은 용광로보다 뜨거운

갑옷을 입는다

불 칼을 잡고 철길이며 아스팔트며 호수며

크고 작은 산들까지도

사정없이 유린한다

습기와 열로 누근누근해진

어느 생명보험회사의 간판 옆

벽시계의 초침이 멈춘다

웃음 잃은 사람들 여름이 길다

 

 

 

중복 날

윤갑수

 

무더운

한 여름날 물가에

둘러앉아

 

삼계탕에

인삼주라 반주에

흥에 겹네

 

어깨춤

덩실 더덩실 넋을 잃은

중복 날

 

 

 

중복, 끓다

이승기

 

끓어 뚜껑 열은 허공

끓어서 녹아버린 대지

난쟁이 키의 강물

끓어 넘친다. 아파트 속

햇볕의 구름 속 급한 굴절

질투하길 포기한 바람

길바닥 주저앉아 낮잠 잔다.

나뭇잎 위 물방울 하나

나뭇잎 한숨의 소리 한번

본류로 모인 한숨 덩어리

온몸 웅크린 물방울

잎 가장자리 지평선 끝

한숨 수평선을 잇는다

기체 거부한 마음

나뭇잎을 괴롭히고 있다.

중력은 나뭇잎 끌어내린다

나뭇가지도 힘 합친다.

큰 줄기 물방울들 챙긴다.

뿌리도 정강이에 힘을 싣다

기체 안되려는 생각

나뭇잎, 뿌리까지 아수라장

인연 생멸 과정. 개도 한숨 짓다

 

 

 

중복

이영균

 

누군가 우리 모둘 녹이려 듦이 분명하다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지열이 목을 조른다

열 손가락에 힘을 주어

옥죔을 푸느라 애쓸수록

등줄기에서는 고통의 진액이 흥건하다

 

뜨거울수록 문을 꼭 닫아거는 에어컨

고문에 못 이겨 거짓 벗듯

한 겹씩 속살 토설하는 겉옷

한랭기류를 조성하지 않았다면

벌써 오븐 속 통닭이 되었을 터

 

왜 누가 한 꼭절 뜨겁게 사르는 건지

 

불볕더위에 맞서 으르렁대는 견공들

그 뒤를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닭과 오리

심지어 소와 돼지들도 합세한다

하늘이 솥뚜껑을 열어놓고 달아난 듯

김 서림 뒤 잠시 숨통이 풀린다

 

기세에 밀려 쫓겨 가는 무더위

이제 더는 이겨낼 힘은 인내뿐

지열 위로 지열 더더욱 기승을 부리던

불의 철옹성 같던 한나절이

나팔꽃잎 허물어지듯 저물고 있다

 

! 도심의 열 식는 소리

심야 샤워장이 중복(中伏)의 종착역

 

 

 

중복

홍해리

 

한낮

들녘 파아란 하늘

미루나무 이파리

환상의 구름장을 몰아다

등줄기에 쏟는

소나기

쏴아하아,

매미 소리여

 

 

 

매미 울음

홍해리

 

칠 년 대한 마른하늘

하얗게 쏟아지는 소나기 소리

 

노박이로 젓고 있는 나무들

하릴없이 서쪽으로 기울고

 

무더기로 무더기로

침몰하는 중복 날의 구름장

 

한 겹씩 허물을 벗고

황소 가랭이를 빠져나가는

 

소나기 사이

무작정 번쩍이는 번개.

 

 

 

말복

고명

 

하늘이 무너지며 쏟아지는 빗줄기

그치자 풀벌레들 수풀 흔드는 소리,

밤을 밝히며

가을로 건너가는 다리를 놓고 있다

빗줄기의 무차별 사격을

어느 풀잎 밑에서 피하다가

저리 힘차게 연장들을 챙겨

뛰어나왔을까 땀방울을 훔쳐대며

또랑또랑 맑은 목소리로

벌레들이 묻는다

'너는 오늘 하루 무엇을 했냐?'

 

 

 

말복

권오범

 

끈적이게 추근대던 열대야 따라 가출한

입맛 찾아 헤매는 저잣거리

북새통인 삼계탕집 지나

설렁탕, 돼지국밥, 보신탕집까지 뒤졌건만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맥 빠지던 그 순간

무심코 눈이 머문 한우 갈빗집 옆

보리밥집에 들앉아 날 부르는 저 못 말릴 변덕

헐수할수없어 문 열고 들어서자

고소하게 반기는 들기름 냄새

할머니 쥔장이

대중없게 분질러 넣은 열무부터

평소 친근했던 푸성귀 싸잡아

고추장 등쌀에 녹초가 되도록 썩썩 부추기다 보니

어느새 제집 찾아 들어와 추억에 젖어 고분고분

날 닮아 촌티 못 벗은 불쌍한 것

 

 

 

친구야 말복이네

김덕성

 

세월을 꺾을 수 있으랴

순리대로 이루어져 오늘이 말복

폭염은 가고 가을이 오겠구나

아직은 저만치 오는 가을

여름내 요란하게 울던 매미도

끝내 기운이 떨어지면서

곁을 떠나게 되고

가을바람에 살랑대는

가을바람에 살랑대는 코스모스

사랑 찾아 나는 고추잠자리에게

가녀린 허리로 손짓하겠지

이제 우리 여름내 축낸 몸

보양식 삼계탕 나누며 활기 되찾아

하늘 높은 풍요로운 가을을

친구야

희망차게 맞이하자 구나

 

 

 

말복(末伏)

김수영

 

시냇물 소리 푸르고 희고 잔잔한 물소리

숲과 숲 사이의 하늘을 향해서

우는 매미

흙빛 매미여

달팽이는 닭이 먹고

구더기 바람에 우는 소리 나면

 

물소리는 먼 하늘을 찢고 달아난다

바람이 바람을 쫓고 생명(生命)을 쫓는다

강아지풀 사이에 가지(茄子)는 익고

인가(人家) 사이에서 기적(奇蹟)처럼 자라나는 무성한 버드나무

연록색,

하늘의 빛보다도 분간 못 할 놈

 

버드나무 발아래의 나팔꽃도 그렇다

앙상한 연분홍,

오무라질 때는 무궁화는 그보다 조금쯤 더 길고

진한 빛,

죽음의 빛인지도 모르는 놈

 

거역(拒逆)하라 거역(拒逆)하라

가을이 오기 전에는

내 팔은 좀처럼 제대로 길이를 갖지 못하고

그래도 햇빛을 가리킨다

풀잎 끝에서 일어나듯이

테양(太陽)은 자기가 내린 것을 거둬들이는데

시들은 자국을 남기지만 도처에서

도처에서

즉결(卽決)하는 영혼(靈魂)이여

 

완전(完全)한 놈

구름 끝에 혀()를 대는 잎사귀처럼

몸을 떨며

귀 기울이려 할 때

그 무수(無數)한 말 중의 제일 첫마디는

나는 졌노라

자연(自然)은 여행(旅行)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은 말복(末伏)도 다 아니 갔으며

밤에는 물고기가 물 밖으로

달빛을 때리러 나온다

 

 

 

말복 근처

김연대

 

사람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이해에 밝아야 된다고 알고 있지만

실은 그럴수록

행복과는 한 걸음 멀어진다는 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말복 더위를 아지랑이 골에서

혼자 식힐 때

안일사 계곡 쓰르라미는

아낌없이 목숨을 울고 있어도

귀 하나 줄 줄 모르고 서 있는 나무들 보니

내 잊고 있던 비애

다시 밀려온다

한때는 나도

저들 풀벌레처럼 목숨으로 울었고

오늘도 그 여운으로

높아가는 하늘 스스럼없이 바라보지만

저 등 돌리고 서 있는 나무들처럼

돌아서 버린 너를 생각하면

내 시선도 잠시는 흔들리고 만다

바위틈에 버려진 빛바랜 휴지쪽 하나

너의 뒷모습으로 바라보게 한다

 

, 얼마나 더 뜨거워야 가을이 올 것인가

 

 

 

철학자의 길고 지루한 여름날의 변증

김유택

 

여름 끝나는 밤

절기마다 오는 말복은 잊은 지 오랜 세월

그래도 세상은 개와 닭, 오리 냄새뿐이다

너절하게 퍼져 보이는 불빛 새 세상은

개와 닭, 오리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며

끝내 먹고 말려는 질기도록 강한 인간 근성뿐

요즘 줄기세포의 획기적 과학적 발달

먹지 않고도 오래 살 수 있는 문명의 유산은

될 수 없을까

정력제, 병원, 운동 다 필요 없는 삶

줄기세포, 유전자가 어떻든 인간은 진화되고 있을까

여름 끝나는 밤 그 학설을 확인 중이다

철학자 소크라테스 같은 변증론에 맞서

인간의 근성은 왜 질기도록 강한 것일까

신과 인간의 관계, 태곳적부터 따질까

헤겔 철학의 모순과 대립을 지양(止揚)하고

고차(高次)의 인식에 이르는 사고(思考)

접근해 볼까

우리들 사이가 좁아지고 어색해졌다는 요즘 아이

왼쪽 가슴에 콧물 닦는 이름표 같은 커다란

콧수건 달고 다니던 옛적 아이

달라진 건 스테이크, 햄버거 맛을 본 아이와

옥수수빵 배급 타서 먹던 아이

그런 기억이 긴 여름밤 씁쓸하게 한다

옥수수빵 먹고 자란 아이는 병원 안 가고

오늘도 건강하게 살고 있는데

- 무지하게 더운 여름의 끝 밤, 오늘 밤에 -

 

 

 

말복이 내일모레

나태주

 

말복이 내일모레 황소 잔등을 식히려고

오는 비 소발짝비, 성큼성큼 마당을 질러간다,

오동나무 너른 잎을 흔들고

옥수수 붉은 수염을 적시고

 

 

 

말복

문성해

 

비 뿌리는데

둘리 문방구점 평상에

앉아 있는 늙은 사내

앉은뱅이 게임기 위로

철없는 빗방울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다

맞은편 분식점에

무덤처럼 쌓여 있는

도넛들

갑작스레 주어진 형상이 부담스러운

저 단숨에 부푼 구름들

숨겨줄 입을 찾아 간절히

사내를 바라본다

뾰족뾰족 입술을 내민 땅은

빗방울을 잘도 받아먹어 주는데

깡마르고 식욕이라곤 도무지 없어 보이는 저 사내

귀를 먹어버리고

팔다리 신경을 먹어버린 세월에게

언젠가부터 먹이거리로 던져놓은 육신을

오늘은

끈적한 빗방울의 혀가 핥고 간다

 

 

 

말복이 처마에 들다

박경희

 

여자 둘이 사는 집에 술 취한 사내가 대문 밖 진순이와 싸움이 붙었다 갈 길 잃었다고 너는 누구고 나는 누구냐고 팔짱 끼고 서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데 진순이는 허연 이 드러내고 상대가 누가 됐든 집만 지키면 된다고 멍멍 짖어댔다

울안에서는 엄니가 빗자루 들고 소리 지르고 꽁무니바람이 대문 앞에서 서성거렸다 엄니 전화로 자식을 불러들이니 막둥이는 막대기 들고 오고 장남은 뒷짐 쥐고 들었다 넥타이 목 뒤로 돌아간 사내가 덩치 큰 자식들 보더니 고개 돌려 미안하다고 길이 있는 줄 알았다고 사람이 아닌 진순이한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빗자루 들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던 엄니,

"뭐시 문제여. 기냥저냥 살믄 되지. 길은 사방 간 데 널렸으니께 잘 가보더라고."

사내 돌아선 자리에 막둥이 막대기 들고 시간 반을 서 있었다

 

 

 

말복

박승미

 

내 이럴 줄 알았지

밑도 끝도 없이 들이닥쳐서는

가진 것 다 내놓아라 하니

내 맘만 믿고, 단속하지 않은

내 탓이나 하지

어쩌고저쩌고 아쉬운 소리 해봤자

편들어줄 사람 없으니

세상 참 잘못 살았다 싶어

한여름 뜨겁게 달구었던

바짓가랑이 붙잡고

매달려 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정 떼자는 데야

그러려니 하면서도

그러고 나면

마음 붙일 곳 없어

풀죽은 삼베 적삼 앞섶만

끌어내리고 있었다

 

 

 

말복 더위

박승열

 

그림을 그리려고 앉았더니 더위가 문제다. 실상은 시를 쓰고 있으면서 왜 그림을 그린다 하는가? 다른 행동을 하는 다른 인물을 써내면서 자판 앞에 앉은 자신을 지우려 함인가? 아니면 그림을 그리듯, 이라는 말처럼 시쓰기에 대한 일종의 비유로 이런 말을 하는가? 지우려 지우려 해도 끈질기게 거기 버티고 있는 자 누구인가? 그림 그리는 자들도 자신을 그림 속 주연으로 그려 넣곤 하는가? 이를테면 외젠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이라는 그림 속에 들라크루아 자신을 그려 넣기, 아니면 자신의 영화에 출연하는 수많은 감독들, 앨프리드 히치콕, 로만 폴란스키, 마틴 스코세이지, 우디 앨런, 쿠엔틴 타란티노, 박찬욱, 봉준호까지도! 이때 끈질기게 이들을 촬영하는 자 누구인가? 거기 절대적인 시선, 누구인가? 역시나 더위가 문제다. 그림을 그려야 할 판에 이런 답도 없는 질문들을 시키는 게 바로 말복 더위다. 그치만 거기, 문 틈새로 또 나를 지켜보는 자 누구인가, 느낄 수만 있고 도저히 그려낼 수 없는 그 시선은 누구의 것인가. 더위처럼 내리쬔다 더위처럼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이 빌어먹을 것 그러나 그것은 실상 나의 시선이다, 하는 시시한 결말이 아니고,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내가 역으로 겨눌 수 없는, 저 빌어먹을 것

 

 

 

말복 오후

손석철

 

멍멍이 제일 많이 희생되는 날

약병아리 찹쌀 배 터지게 먹는 날

여름과 가을이 배 맞대고

마지막 한판 뒤집기 위해

깊은숨 몰아쉬며

씩씩대는 날

 

 

 

말복

손세실리아

 

퇴화된 날개 죽지가

축 처져 녹아내리는 냉동 닭을 손질한다

움츠린 허벅지 사이

말끔히 지워져 버린 수태의 흔적

저 아득함이라니

지상의 어떤 양식으로도

결코 메워지지 않는 썰물이다, 공터다

한 존재를 내려놓고 통과해 낸

지난 세월이 저러했던가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아

그리도 깊고 오랜 절망으로 휘청거렸던가

해체된 닭을 들여다보다

기억의 허방에 잠시 발을 헛딛고 만다

가혹한 쓸쓸함이다

 

 

 

말복 날

안영준

 

찌는 더위에

야근 마친 가로등

묵언 휴식에 눈 감는다

 

백발 안개

산발치로 마실 내려와

한참을 기웃대다가

한 덩이

햇귀에 쫓겨

슬쩍 뒷걸음질한다

 

커다란

장막 속에서

하루를 대하는 말복

배롱나무는

불볕 열기를 이고

목이 짓눌려

가뿐 호흡 헐떡거린다

 

 

 

말복

윤용기

 

더위 중 가장 더운 절기가 말복이라고

오늘이 그 날인데

옛사람들 그 말 거짓이 없네

그래도 이제는

밤기운이 가을을 여는데

여름 내내

작열하는 태양 아래

열심히 노력한 사과며 복숭아

그리고 들녘의 벼가

때가 됨을 알리네.

말복은 더위가 멀지 않았음을 알리니

더더욱 좋다

 

 

 

말복 무렵

이동순

 

말복 앞두고

우리는 벗들과 삼척 덕풍리에서

개장 추렴을 했습니다

팔순이 가까워 보이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묵묵히 수육을 썰며

상차림을 하는 시골 토방

가마솥에선 허연 김을 내뿜으며 국이 설설 끓고

풍뎅이들은 평상에 날아와 곤두박질합니다

마침 비 온 직후인지라

집 앞 개울물은 소리도 요란히 흘러가는데

벗들은 평상에 앉아

산골의 초록을 흠씬 받아들이느라

모두 정신들이 없습니다그려

방 벽에 걸린 부부의 사진을 유심히 보아하니

할아버지는 진작 돌아가시고

필시 부엌에서 일하시는 할머니로 여겨지는

웬 젊은 부인네가 액자 속에 다소곳이

앉아있습니다

사진과 할머니를 번갈아 대조하며

꼼꼼히 이목구비를 보아하니 틀림없습니다

, 이 깊은 산골에도

세월은 백발처럼 많이도 흘러간 것입니다

 

 

 

말복

정연복

 

초복과 중복을 훌쩍 넘어

어제 말복까지 지나고 나니까

찜통더위의 기세가 꺾인 게

오늘은 확 느껴진다.

온통 하양의 물결이던

구절초 덤불 속에도

군데군데 벌써 누렇게

빛바랜 잎들이 섞여 있다.

나무들마다 무성한

초록 이파리들도 가만히 보라

짙푸른 물결 사이사이

희끗희끗 가을이 느껴진다

 

 

 

말복의 노래

정연복

 

초복과 중복 지나

말복까지 이르렀으면

 

더위도

먼 길 온 거다.

 

있는 힘을 다하는

폭염 때문에

 

한동안은 더

땀 흘려야 하겠지만.

 

저만치

여름의 끝이 보이니

 

남은 무더위쯤이야

기꺼이 견디어 주리라

 

내리막길

쏜살같이 달려가

 

조만간 찜통더위

아스라이 멀어질 것을

 

 

 

말복

정재영

 

생애 가장 뜨거운 오늘 하루 가슴에 담아 넘기면

가지 매듭마다 찬바람 스며드는 가을 꽃잎 청초한 들판

이름 모를 꽃들을 세고 있을 거다

 

열정의 지난 잠들지 못한 날 모두

뜨거운 것이 뜨거움을 잉태하는 축제여서

열매를 맺어 풍성한 가을 서늘한 날은

노을 불길이 들판을 태우는 곳도

한상 설렘의 잔치일 거다

 

어느 한순간 축제가 아니었던 날 있었던가

한 장 들판 그림 위에

서로 붙잡은 손길로 붉은 태양을 낙관 삼아

마지막 그림 한 흭을 그어 걸어둘 거다'

 

 

 

말복이다

하영순

 

오늘 나락이 세 살 먹는다는

말복이다

이름값 하느라 새벽 비가 내린다.

폭염도 한고비

그래도 덥다 제아무리 더워도

말 탄 님 곳당도 하겠지

새벽길 걸으면

귀뚜리 소리가 골목을 채운다.

저 미명이 어쩜 절기를 저렇게 잘 알까

미련한 사람만

자연을 순응하지 못하고

에어컨 켜고 온도를 강제로 조종한다

그러나

새벽길 걷기가 한결 좋다

입추 말복 지나고 처서만 지나면

고집 볼통 폭염도 고개 숙이겠지

흰 구름 가마 타고

살랑살랑 오시는 님 기다려 보자

 

 

 

말복

한영희

 

내 이름은 흙구 풍물패 흙무디의 상징이라고 누나가 지어주었어 풍돌이 말복이 똥개 마음대로 부르지만 그래도 나는 흙구

누나는 나를 잘생겼다고 해 사진을 찍어 카카오톡에 올리고 잘생긴 흙구 라고 썼어 흙구야 누나가 부르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45도 얼짱 각도로 고개를 들어주곤 해

내 눈이 슬퍼 보인다고 해 어느 날 형님 누님들의 대화를 듣고 말았어 나를 말복이라 부르는 술고래 형님이 말복 날 솥단지를 걸겠다고 해

누나는

- 걱정 마 말복 전 날 네 목줄을 풀어줄게 하는데

검은 구름은 두렵지 않아 처량한 밥그릇에 코를 박고 꼬깃꼬깃한 미련을 버리지 못할 누나가 발음될 뿐이야 술고래 형님이 미끼를 던져주고 가네

 

덩 덩 쿵따쿵 누나가 장구를 울린다

가락이 눈꺼풀 위에서 춤을 춘다 컹 컹

 

화장실 유리에 낀 습기는 사람들이 놓고 간 똥에서 올라온 근심

시들어 가는 방향제는 구석에 앉아 먼지를 뒤집어쓰고

커져 버린 머리가 기우뚱 멀미를 할 때

서리서리 머금은 통증이 아픈 시간을 핥는다

 

 

 

말복

홍해리

 

드디어

눈이 맑아지고

감청에서 암록으로 다시

기름기가 걷히고 남는

백색 여운

한 시대도

도장(徒長)했던 이파리들도

무덥고 기인 밤이 지나면

제자리로 돌아오고

균형이 잡혀

이마에 와 부딪히는

물빛 바람빛 산빛 구름빛 살빛도

그물에 걸리지 않고

눈으로 가슴으로

햇살이 날아와 꽂힌다

번쩍이는 칼날

똑바로 떠라 똑바로

어쩔 수 없이 여름은 지나가고

하얀 뼈다귀

골목마다 가득히 쌓인다

하늘에 먼저 가을이 와서

구름장마다 가벼운 날개가 돋혀

어두운 우리들의 눈알을 모아

어딘가로 날아가 버린다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복날 풍경

곽진구

 

태풍이 지나간 뒤에도

작살나무꽃이 조용히 피었다

폭염이 살갗을 절이는

그런 따위엔 아랑곳하지 않고

활짝,

조용히 활짝

작은 손에 꽃을 들고

나무마다

위대한 생을 봉헌하고 있었다

바로 그 나무 아래 똥개 한 마리

뜨거운 불에 검게 그을린

작살나무처럼 작살이 나서 생을 지우고

우리는 솥에서 고기와 탕국을 꺼내

재탕 삼탕 보약처럼 먹기를,

아무렇지 않게

내일 같지 않은 내일을 생각했다

해는 여전히 이글거렸고

물은 어제처럼 묵언 묵언 흘러내렸다

 

 

 

삼계탕

권오범

 

수컷 구실 한번 하지 못하도록

애당초 몽달귀로 낙인찍혔다지만

천명이 턱없이 에누리 당해

얼굴마저 저당 잡혀 볼썽사납다

행여 머나먼 저승길 허기질세라

대추 밤 찹쌀 미리 얻어먹고

지옥 물에 목욕 재개하고 나니

골수마저 녹아내려 온몸이 녹작지근하다

어린 것이 다리 꼬고 누워

인삼 하나 끌어안고

남세스럽게 누드 쇼는 하지만

버젓한 한류스타이기에 여한은 없다

저승사자인 인간들이여

마지막 가는 길 부탁 하나 하자

젓가락으로 잔인하게 꼬집어도 좋으니

뼈 마디마디 깔끔하게 추려 해탈시켜 다오

 

 

 

인내의 계절

권오범

 

뼈대 있는 가문 자랑하는 굴비 참외 마늘 복숭아 수박과

고장 난 컴퓨터 가전제품 저승사자가 꼬리를 물고

코맹맹이 확성기 소리 무단침입시켜 귀 학대해

후텁지근하다 못해 멍하게 허비한 중복

열대야 못마땅해 상습적으로 가출하는 잠 타일러

함께 샤워한 뒤 부채로 살살 달랬더니

오래간만에 온순해져

막 눈꺼풀 잡아당기려는 순간

술 마시고 개가 된 어떤 여자와 매미가

참 밖 가로등 만나 뭔가 통했는지 번갈아 울고 울어

알 수 없는 소소 곡절들을 내 방으로 스무 가마니쯤

고래고래 밀어 넣다 잠시 멈춘 사이

병든 오토바이들이 잠깨 아침 운동 다니나

더러는 고시랑고시랑 어떤 놈은 콜록콜록

늙어 페인트 화장발로 버텨 명명된 빌어먹을 옆집 도락꾸까지

어제 죽여 놓은 심장 살려보겠다고 아까부터 겔~~~~

 

 

 

삼복

권지숙

 

하루가 먼 산허리마냥 지루하다

여름은 순식간에 왔다가 느릿느릿 지나가고

놀이터의 아이들도 어느새 다 자라 버마재비같이 다리만 길어졌다

날카로운 햇살이 흉기처럼 두렵다

낯설기만 한 내 집 발도 머리도 둥둥 떠다니고

손에 잡히는 건 잘게 부서져 낭자한 바닥 그 위를 겅중겅중 뛴다

밖엔 늙은 개 한 마리 땀 같은 피 흘리고 있다

 

 

 

복날 삼계탕

김금자

 

정오의 직사광선이 나를 짓누르면

물러설 곳도 피할 곳도 없이

납작 엎드러지는 낮은 자세

 

한 뼘의 그늘을 구하나 보이지 않고

머리 위로 지나는 전깃줄의 그늘도 귀한 듯

그 속으로라도 피하고 싶은 땡볕

 

언덕배기의 햇볕을 홀로 지고

꾸역꾸역 오르는 등줄기에 흐르는 땀

여름의 끝을 지나는 말복 날이다

 

삼계탕을 사 왔다는 딸아이의 말에

천근 같던 발걸음에 날개가 달려

가볍게 집으로 와 밥상 앞에 앉았다

 

역시 복날, 몸보신엔 삼계탕이 최고야

 

 

 

삼복 혹서(酷暑)

김남현

 

기록적인 삼복 폭염으로

땡볕이 내리쬐는

메마른 가지마다

불 지피듯 붉게 타니

바람 깃도 허물지 못해

가축, 물고기 떼죽음

처절한 비명소리에

주인은 억장이 무너지고

더위에 무딘 걸음

미소 대신 짜증만 늘어간다

소나기 한줄기 기다리는

깊은 가슴엔

풀벌레 소리만 가득하고

햇살 굴려 가는 벼 논에

거북 등 성형이 선명하다

 

 

 

복날

김명인

 

말복이라 식당 안은

보신하러 온 손님들로 법석인데

온몸 개개풀리는 땡볕 나절을

열사(熱絲) 속으로 꼿꼿이 고개 쳐들고 선

화단의 저 꽃 이름은 무얼까

그 아래 목매아지로 배 깔고 엎드린

황구 한 마리

내가 묻는 것은 꽃말이 아니라 표 나게

삼복을 건너는 제각각의 팔자인데

케케묵은 책력(冊曆)까지 들추고 나와

세상은 그런 것이다 한낮이 패도록 경() 읽어대는

말매미 저 억센 울음

저도 애벌의 시간을 견디고 며칠 동안만

허락받은 그늘 밑의 이려니

넘치도록 그림자 드리운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늘어앉아 식당 쪽을 흘낏거리는

저 노인들도 한때는 어깨가 무너져라

땡볕을 져 날랐으리

 

 

 

삼복더위

김영수

 

부끄러운 민낯으로

오롯이 떠 있는 태양 아래 나서기가 망설여진다

햇살은 나의 모든 것을 하나도 빠짐없이 벗겨낸다

나는 작은 손바닥으로 햇빛을 가리고

바쁜 척 가쁜 숨을 내쉬고 걸어간다

그늘이라도 있었으면 구름이 가려준다면 좋으련만

뙤약볕은 내 머리 위에서 쨍쨍 내리쬐고 있다

아무것도 가릴 수 없는 내 마음과 몸뚱어리가 꿈틀거린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꾸역구역

밖으로 기어 나와 숨길 수 없는 내 마음이 부끄러워진다

나를 감추고, 가리고 싶지만 태양은 이글거리며

s의 모든 것을 투시하며 벗겨내고 있다

지나온 내 삶까지도-

 

 

 

삼복더위

김홍택

 

누가 보기 좋게

초복

중복

말복을 정해놓고

마음으로 산다

 

복날이면

으례히 삼계탕을 먹는다

이열치열이라 했던가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한여름을 보낸다

 

덥다 너무 더워서

등목을 해도 소용이 없다

 

이 지구까지 말썽이다

장맛비를 맞으며

걷고 또 걸었다

 

수수깡으로 안경을 만들고

밤마다 뒤척이며 바로 보는 행복한 잠탓이다

 

 

 

복달임

나상국

 

초복

중복

말복

입추 지나고 처서가 한참을 지나가도록

이제나저제나 기다려 보아도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싱싱하게 물결 거슬러 오르던

민어회 번개는

수면 아래 가라앉아

숨비소리마저도 들리지 않고

행여나 지나가는 바람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아도

가부좌 틀고

뜨거운 물 속에 누워

뼛속까지 녹아내리도록

진한 육수를 공양한

삼계탕 보신탕 소리만

왠지 무덥더라

 

 

 

복날

나석중

 

어머니 한여름 이불 속에

오래 누워 계시고 산 위에

배부른 구름이 흰 봉우리를 낳았다.

다리 아래

시끌벅적 복 그슬리는 연기 날고

 

강가에 맨 흑염소가 낮게 울음을 씹었다.

매미가 감나무에 울음 우표 다닥다닥 붙여도

아버지는

봄날 산 넘어가 당최 오실 줄 몰랐다.

엎드려 때 묻은 죄를 빌고 싶은 날

목구멍에 소주잔만 들어붓는

애꿎은 나는, 나는

 

 

 

복날

도현영

 

아직 더 살고픈데

왜 하필

나를 캑캑

 

덧없이 헤맨 세월

섬뜩한 허무인가

 

참수의 비틀림마저

외면할

굶주림인가

 

 

 

삼복

박경원

 

휴업한 목욕탕은 어둡다

작게 붙인 안내문을 마지막으로 발길 끊긴 갈증이 시작된다

사라진 팔의 불편을 온몸으로 감추며

등에서 둔부 연이어 깎아내던 옆구리의 비만들이

물 끊긴 정적 속에서 비누 향 날개를 펼친다

거품들 사라진 탕 속은 영혼이 빠져나간 공동묘지 같다

누군가의 살 무덤 속에 잘못 묻혀 있을

자신의 팔 한쪽이 물 빠진 환영 속에서 둥둥 떠오른다

거품과 거품을 맞 겹치며 한때의 미끄러움에 살 썰매를 즐기던

근육들의 낮은 봉분들이 빈 바람 소리를 즐긴다

향기 잃은 꽃무늬,

몇 개의 표정을 휴지처럼 구기던 덩치 큰 문신들이

손가락 끝 박피 된 지문 속에서 인광처럼 빛난다

그는 생각한다 거품을 그리워하는 건

아직도 가라앉고 있는 상실의 한쪽을 숨기기 위함이지

일그러진 독백을 향해 밀봉되지 못한 몇 모금 물방울이 떨어진다

종종종 다가온 슬리퍼가 들고 온 바구니를 쓸쓸히 되돌린다

한낮, 탈의실 한켠이 모래를 뱉듯 거품 빠진 몸을 서서히 일으킨다

 

 

 

삼복더위

박외도

 

불가마 뙤약볕 내리쪼이고

늘어진 초록 잎 새

허물 거리며

가쁜 숨 헐떡인다

 

회색 빌딩

칸칸이 설치된 에어컨

환풍구에서 열 바람나고

질주하는 차들의 매연

검은 아스팔트 끓는 지열

훅훅 숨 막힌다

 

목 타는 대지를 걸으면

그대를 향한 극심한 갈증

애타게 그려지는 그리움

계절을 마름질하는 나의 마음은

이글거리는 태양을 향하여

용오름 하나니

 

, 그리운 그대

삼복더위 속에서

거리엔 잔혹한 고독이 쌓여가고

풍성한 수확을 위해

너는 그렇게 더디오나 보다.

 

 

 

도시의 삼복더위

박인걸

 

중천에는 용암이 이글거리고

아스팔트는 엿을 굽는다

빌딩 벽이 손 풀무질을 하니

도시 전체가 찜질방이다

울던 매미도 숨을 죽이고

넉 점 잠자리도 비행을 멈췄다

가로수는 비틀거리고

길 잃은 고양이가 헐떡거린다

햇살은 총알처럼 퍼부어

간간이 불던 바람도 도망을 치고

치열한 전쟁터만큼

오가는 사람들이 위험하다

등골에는 냇물이 흐르고

이마에는 구슬이 맺힌다

물에 잠긴 초벌 빨래처럼

속옷마다 땀범벅이다

자동차들도 발이 뜨거워

징징 울며 뛰어다니고

건물 안에 갇힌 인파들만

물끄러미 창밖을 살피고 있다

팔목의 시계는 오후 세 시인데

도시는 여전히 달아오르고 있다.

 

 

 

복더위

박주일

 

어지간하다

한 점 바람도 없는

이 적막 속을

코 하나 달랑 밀어내 놓고

복날을 넘기는데

매미 울음이 하늘 끝을 돌아나가면서

더위를 감아올렸다가

풀어놓았다가 하긴 하는데

복더위는 복더위다.

 

 

 

()

배종대

 

개 같은 날

정말 개 같은 날

개는 또 다른 개에게

몸뚱어리를 주었다

 

백주에 퍼마신 주독이

빨간 가재의 얼굴이 되어

이리 뛰고 저리 날뛰며

처자식을 쥐어흔들고

술병 나팔을 불고 있다

 

웃긴다!

개가 개를 잡는다

개를 잡는 날이 복()날이다

 

 

 

여름나기

백원기

 

잔설이 녹아내리던

춘삼월 다 지나가고

꽃 마중 나간 지가 엊그제인데

어느새 소서 지나

초복이 짖는 소리 들려온다

 

싸움 싸움해도

뜨건 여름하곤 지겨워

한낮 불볕에 숨 막히다가

열대야 밤이면 끈적대는 몸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잠 못 이루고 만다

 

눈을 떴다 감았다

지루한 밤은 가질 않고

구름 속 보름달만 환한데

어느덧 동터오는 새벽녘

기진맥진 꿈틀대다

가까스로 일어난다

 

 

 

삼복(三伏)

서거정

 

三伏炎雲大地爐(삼복염운대지로)

滿街冠盖汗翻珠(만가관개한번주)

病衰閑寂誰如我(병쇠한적수여아)

北牖淸風颯雪鬚(북유청풍삽설수)

 

삼복이라 더운 구름이 대지를 푹푹 달구니

거리 가득 행인들이 구슬땀을 뚝뚝 흘리네.

늙고 병들어 한적하기 그 누가 나만 할꼬?

북창의 서늘한 바람이 흰 수염을 스치누나.

一椀香茶小點氷(일완향차소점빙)

啜來端可洗煩蒸(철래단가세번증)

閑憑竹枕眠初穩(한빙죽침면초온)

客至敲門百不應(객지고문백불응)

향기로운 차 한 잔에 얼음을 조금 넣어서

마셔보니 참으로 번열을 씻기에 그만일세.

한가로이 죽침 베고 막 편히 잠들어서는

손이 와 문을 두드려도 전혀 대꾸 않노라.

 

疊雪輕衫闊袖裁(첩설경삼활수재)

平鋪竹簟滑於苔(평포죽점활어태)

開䆫拄笏靑山晚(개창주홀청산만)

頭上催詩雨亦來(두상최시우적래)

첩설의 가벼운 적삼은 소매를 넓게 지었고

평평히 편 대자리는 이끼보다 매끄러워라

창 열고 저문 청산 향해 홀로 턱 괴고 있자니

머리 위에선 시 재촉하는 비가 또 오는구나

 

 

 

더위 먹은 삼복(三伏)

서준석

 

7월의 끝자락 마지막 폭염

부채질과 등목으로 여행 간 피서

벌거벗고 여름을 풀어내고 있다

 

욕심을 털어내듯 깡그리 비운 알몸

삼복은 이열치열로 다스린다며

대추와 찹쌀 그리고 수삼 한 토막

과식한 몸으로 펄펄 끓는 가마솥에

사우나 하러 간 통닭

개다리소반에 올라 땀으로 간을 맞추고 있다

 

무더위가 웃통을 드러낸 채

산들바람 집을 잠깐 비운 사이

챙 넓은 밀짚모자 벗어 던지고

사래 긴 텃밭에 괭이를 든다

 

열사병 호출 번호 119

앰브런스 타이어를 갈아 끼우고 있다

 

 

 

복날 풍경

손병흥

 

찌는 듯한 무더위 속 점심나절

삼복더위 시작되는 초복 날 맞춰

시내 유명 삼계탕집 찾아 나섰다가

가는 날이 마침 장날이라는 말처럼

정말 장사진 이루는 여름 진풍경 보며

겨우 번호표 받아든 채 긴 대열에 끼여

거듭 내려쬐는 열기에도 아랑곳없이

원기 회복 악귀 쫓고 무병해 보고자

꽤 오랜 시간 끝에 마침내 별미 맛본

비지땀 흘리고서 이열치열 느껴보던 날

어김없는 삶의 진솔함에 혀 내둘리며

왁자지껄하지만 정겨움으로 다가서던

가슴 벅찬 한 조각 우리네 먹거리 풍경

 

 

 

복놀이

손병흥

 

하지가 지난 넷째 경일 되는 중복 날

원기 회복하고 영양분 보충하기 위해

보양 음식 먹고 물가 찾아 휴식하며

이열치열 땀 내어 무더위 물리쳐 보는

해마다 중복되는 피서철 복달임 시기

 

 

 

삼복

손순미

 

폭포처럼 쏟아지는 햇볕 속으로 꽃상여 들어간다 저승으로 가는 마무리 치장은 화려한 종이꽃이다 살아 있는 자들은 온몸의 구멍을 통해 슬픔을 내보낸다 죽은 이의 생애만큼 더위는 숨이 막히고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곡소리는 벌겋게 익었다 죽은 이의 잠은 고요하고 상여꾼들 불길보다 더한 더위에 제기랄, 진저리친다 산 자의 고통에 죽음이 질질 끌려간다

이런, 여비가 없어 망자가 저승 문을 건너지 못하겠구먼! 시퍼런 만 원권 지폐가 상여를 떠메고 간다

 

 

 

()날에 묻다

신성호

 

오늘이 초복(初伏)

여름날의 절정(絶頂)이다

 

초복(初伏)

중복(中伏)

말복(末伏)은 열흘 간격이다

 

왜일까 싶지만

절기 이치에 맞춘 것이다

 

초복(初伏)이 지나면

가장 무덥다는 대서(大暑)가 있다

 

중복(中伏)이 지나면

가을의 초입 입추(立秋)가 있고

 

말복(末伏)이 지나면

무더위가 꺾인다는

처서(處暑)가 있다

 

처서(處暑)가 지나고

보름이 지나면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白露)가 있고

 

백로(白露)가 지나서

여드레가 지나면

민족의 대명절 추석(秋夕)이다

 

빠른 계절 속의 절기

죄다 세월에 묻히고 마는구나

 

 

 

물방울 판타지

신지혜

 

삼복더위 여름날, 시원한 물 한 대접 받는다.

수천 물방울 차곡차곡 담긴 물이 틈새 없이 빛난다.

촘촘히 짜여진 물의 교직,

서로의 몸 밀착되어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이구나

준 것도 받은 것도 보이지 않는구나

사랑과 증오가 오간 흔적도 없구나

까마득하니, 온 길 간 길 다 한통속으로 뻥 뚫렸구나

네가 앉았던 자리 내가 누웠던 자리 없이 한 자리 되고,

어떤 것은 엎어져 떠받치고 어떤 것은 누워서 떠받치고

어떤 것은 꼿꼿이 마주 보며 서로 떠받치고 있다

어떤 놈도 물의 얼굴이라 부를 수 없고 라 부를 수 없다.

서로 섞이고 다투고 돌아가며 높이 올라간 파도도

다시 한일자 수평으로 일순 고요해지는 다 함께 숨 쉬는 법 안다

물 한 대접 속, 물의 수면 오래 들여다보는데

틈새 없는 저 물방울들 서릿발 번뜩인다

 

넌 무얼 떠받치느냐고

단 한 번도 네가 너 아닌 적 있었느냐고

너 허물고 물 되어 이리저리 흘러본 적 있느냐고

저 물방울들 속에

시시때때로 내가 있다고 우격다짐 내세우던

내 부끄러운 주장자가 간 곳이 없다

 

 

 

불안한 삼복

안영준

 

인간이 되어 어찌

반려를 도축하여

제 목구멍에

집어넣을 수가 있는가

 

최소라면

불쌍히 여기며

고마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여름 이때면

순번을 기다리며

겁에 지려 발발 떨고

숨죽이며 연명하는

가여운 존재들이로구나

 

 

 

삼복의 산마을

안영준

 

불볕이 땅덩이를 작열해도

젖가슴 닮은

산마루는 짙푸르고

골짜기는 마르지 않으며

위풍당당 교태부린다

 

고요 속 청아한 산새 소리

메아리치고

감흥에 도취한 풀과 나무

한 조 되어

어깨 들썩거린다

 

발아래

산마을 굽어보니

송골송골 안개 서리고

가가호호 굴뚝에

모락모락 연기 피어오른다

 

 

 

()

안재동

 

매연으로 시꺼메진 가로수들

"도시의 거리를 더는 지키지 않겠노라!"

숨쉬기조차 힘든 나무들의 반란이다

빌딩 숲도 이글대는 태양광으로부터

도시 사수를 포기하고 만다

 

중복(中伏)은 용광로보다 뜨거운

갑옷을 입는다

불칼을 잡고 철길이며 아스팔트며 호수며

크고 작은 산들까지도

사정없이 유린한다

 

습기와 열로 누근누근해진

어느 생명보험회사의 간판 옆

벽시계의 초침이 멈춘다

웃음 잃은 사람들 여름이 길다

 

 

 

채송화

양전형

 

말복이 길길이 날뛰는 날

뙤약볕의 서러움이 온몸이 흐릅니다

꽃 이맘때쯤

허한 뜰 구석에

홀랑 벗고 해를 보채는

밉살스런 채송화가 피어납니다

 

뜨건 햇살에 여우 떨며

달구어진 가슴 어쩌랴 어쩌랴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해지는 건 어찌 잘 아는지

아픔을 뒤로하며

꽃이 아닌 척 어찌나 잘하는지

소갈머리가 빨간 놈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입니다

한라산 꼭두머리에서

반나절을 질펀히 울었을 성싶은 비구름이

잿빛 두루마기자락 날리며

후미진 산굽이를 마저 돌아내려 왔지요

갈증에 떨고 섰는 가까운 솔숲 지나

아직 중천인 시간을 와락 덮칩니다

꽃은, 저런 미쳤거니 미쳤거니 하지만

빗살은 지랄같이도

뜨거움을 사정없이 두드립니다

간살맞은 내 가슴을 엎지릅니다

 

 

 

복을 핥는 여름

여관구

 

복날

혀를 한 뼘은 빼고

헐떡이는 강아지들처럼

 

산 나리꽃은 혀를 빼물고

활짝 웃으며 여름을 핥는다

 

얼굴에 주근깨가 가득한

정겨운 너를 볼 때면

 

그 옛날 꽁지머리 그 아이가

곁에 와 있는 것 같아

 

어릴 적 추억이

나를 덮어쓴다

 

 

 

엘레지

오탁번

 

말복날 개 한 마리를 잡아 동네 술추렴을 했다

가마솥에 발가벗은 개를 넣고

땀 뻘뻘 흘리면서 장작불을 지폈다

참이슬 두 상자를 다 비우면서

밭농사 망쳐놓은 하늘을 욕했다

술이 거나해졌을 때 아랫집 김씨가 말했다

- 이건 오씨가 먹어요, 엘레지요

엉겁결에 길쭉하게 생긴 고기를 받았다

엘레지라니? 농부들이 웬 비가(悲歌)를 다 알지?

- 엘레지 몰라요? 개자지 몰라요?

30년 동안 국어 선생 월급 받아먹고도

'엘레지'라는 우리말을 모르고 있었다니

나는 정말 부끄러웠다

그날 밤 나는 꿈에서 개가 되었다

가마솥에서 익는 나의 엘레지를 보았다

 

 

 

삼복더위

유순호

 

더위가 한창인 칠월 중순에

불덩이 초복이 태어났네

 

초복이는 구슬땀 선물로 받아

산천초목 키우려 불침을 놓아

성장판 열어주고 열흘 키웠네

 

사랑의 불침으로 성장한 초복

중복이 집으로 보내 주면서

그늘막 무대로 만들라 하네

 

청춘을 불태우는 중복이 집은

산천초목 어깨동무 그늘집 지어

매미 합창 장단 맞춰 부채춤 추네

 

스무날을 춤추던 공연 멈추고

등줄기 흐르는 구슬땀 훔치며

터벅터벅 걸어서 말복에 가네

 

삼복이라 불리는 한여름 더위

자연의 섭리로 받아든 선물

구슬땀 날려주는 자연 바람이

삼복더위 이기는 지름길이네

 

 

 

시름한 삼복(三伏)더위

윤갑수

 

막걸리 한잔 들고

한 곡조 읊조리게

 

한여름 매미 소리

장단 맞춰 춤도 추자

 

시름한 불볕더위에

힘든 심신 달래나 보세

 

한세월 보내고 나니

남은 것은 추억뿐이구나

 

친구야 우리도 이제

남은 세월 아껴

두고두고 그리운 정

나누세

 

 

 

복날

윤인구

 

1

예배당 돌담에 서로 엉겨 붙어 나팔꽃이 아프게 피어있다

도깨비시장에서 처음 보는 사람끼리 멱살을 잡고 죽기 살기로 싸우고

아줌마들이 핏대를 올려가며 이혼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아이들 컴퓨터에는 포르노와 hw 바이러스가 우글거렸고

성적이 좀 떨어졌다고 여고생이 15층에서 뛰어내렸다

우리는 강가에서 요란하게 개 한 마리를 먹어 치우고

찝찝거리며 이빨을 쑤셔댔는데

강남역 4번 출구에서 거지가 낮술에 취해 울고 있었다

그린 버스가 찌그러져 침을 질질 흘리며 누워있고

신호등 빨간불 파란불이 열심히 다투고 있었다

여전히 짧은 치마와 배꼽이 유행했으며

상처를 더듬는 연인들 신음소리는 더 깊었다

폭주족 오토바이가 죽음을 무릅쓰고 자장면을 날랐고

노래방에는 늙은 도우미들이 항시 대기했다

높으신 분들도 개처럼 싸웠으며

더운 해는 더 길었다

 

 

2

꼬여도 한참 꼬인 것 같다

상처가 깊어서 쉽게 풀어질 것 같지 않다

내 속에 꼬인 나사못 여러 개 박혀 있을 거라 한다

삼복더위에 찬바람 씽씽 돈다.

큰맘 먹고 사 들고 온 수박 한 덩이

꼭지가 꼬여 있다

머리통만 컸지 세상 물정 모르는 것이

객지로 팔려 나와서 얼마나 마음고생 심했으면

꼭지가 할마씨 심사 꼬이듯 꼬여 버렸을까

열일곱 살 철모르는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까탈스러운 영감 수발하느라고

내 속도 쫙 쪼개보면 이놈의 수박씨만큼이나

까맣게 탓을 거라 한다

눈치 없는 보름달이 철 대문 삼지창에 걸리자

늘어져 있던 개가 연신 짖어댄다

된장 바른다는 것을 잡아놨더니 망할 놈이

멋모르고 피곤해서 졸고 있던 영감 구두짝이 날아간다

이래저래 영감님 심사도 꼬여가는 복날이다

 

 

 

그 여름, 복날에

이길원

 

바로 그 대추나무다

설핏 부는 바람에 곤두박질치던 내 연()

관처럼 쓰고 있던 그 대추나무다

검둥이는 목이 비끄러매인 채 매를 맞고 있었다

누군가가 내게 목소리라도 높이면

으르렁 기세를 세우던 목을

수천 번도 더 쓰다듬었던 목덜미를

머슴들은 매달았다

학교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교문을 나서는 내게

바짓가랑이 잡으며 꼬리치던 검둥이가

그날따라 보이지 않더니

거기 매달려 사정없이 맞고 있었다

누군가가 울며 몸부림치는 내 어깨를 짓눌렀고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검둥이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혼절하고 말았다. 매달린 검둥이처럼

오늘 같은 복날이면

친구들은

뛰는 메뚜기처럼 젓가락을 움직이는데

40년 전 검둥이 눈물이나 떠올리며

내 젓가락은 동그라미나 그린다

 

 

 

복날 생각 혹은 다리 밑

이상국

 

아직도 복()이 되면 다리 밑이 그립다.

어렸을 적 같으면 동네 사람들과 똥개 한 마리 앞세우고

솥단지 뒤를 쭐레쭐레 따라가던 곳

지금은 고향에도 모르는 사람들이 산다

이제 개 추렴 같은 건 너무 촌스럽고 또

반문화적인 데다가

다리도 차가 지나가면 무너질 것처럼

우르릉우르릉하던 옛날 다리가 아니다

어느 해인가 형들이 다릿발에

개를 매달고 두들겨 패다가

목줄을 끊고 달아나는 바람에 한나절

쫓아다니던 때도 있었다

다리 밑은 원래 그늘과 바람의 집이었으나

전쟁이 끝나고 오갈 데 없는 문둥이나

비렁뱅이들이 모여 살기도 했다

처녀를 붙잡아다 애를 만든다고도 했다

복날은 원래 농사꾼들의 명절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장사꾼들 세상이 되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해마다 복은 와서

비어 있는 다리 밑이 너무 아깝다

 

 

 

삼복더위

이성희

 

뜨거운 풍사(風絲)로 엮이는

삼복(三伏)의 시들한 하루

 

가늠할 수 없이

예각으로 흩어지는

참새 떼 같은 생각들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굉음의 드릴 같은

숨 막히는 바람이

지난 자리

채우지 못한

넋 잃은 방랑자여

사랑하는 이여

돌아오라

 

바이러스처럼

우글거리며 증식하는

이 우울의 그리움

너의 삼복(三伏) 바다

한중간에서

상한 심장을

헹구고 싶다

 

 

 

복날(伏一)

이원문

 

덥기도 더운 여름

중복 날이 오늘인가 닭이다 개다

오늘 아니면 몇 번 먹는 고기일까

핑게 삼아 먹는 고기 한 두 번의 복날

일 년 내내 먹어야 몇 번을 먹겠나

세월 저 건너편 그 세월에 우리네 삶

우리의 음식 문화라 하니 그랬지 않았나

 

닭장 안의 닭도 그렇고

문간에 매어 놓은 정든 누렁이 개도 그렇고

복날이면 떠나야 하는 날 닭 개가 알았겠나

그래도 좋다 하고 알 짓는 소리

문간의 개 사람이 좋다 하고 꼬리 치는 모습

앞마당 화둑 솥에 물 끓이는 날

닭은 집에서 누렁이 개는 냇가로 그렇게 끌려갔다

 

 

 

삼복더위

이재환

 

태양을 품은

바다는 잠을 자고

 

시골집 멍멍이는

혀를 내밀고 가쁘게 숨 쉬고

 

텃밭에 농작물은

기진맥진 처져 있고

 

빨랫줄에 앉아있는

빨래는 신나서 웃고

 

마스크 쓴 사람들은

힘들어 말을 못 하네

 

 

 

38도라니 이럴 수가

이혜우

 

여보게 삼복더위 양반님

좀 참으면 안 되겠나

무슨 감정이 그리 서려 있어

복수심으로 그러는가

불쌍한 서민들만 고생하니

좀 연구를 해서

해당자들만 괴롭히지

세상사 하 뒤숭숭하여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네

이제까지 살아오는 동안

이렇게 이유 없이 혹독하지 않고 했다네

아무리 그래봤자 갈 때 되면 가는 것이니

좀 정신 차리시게 이런 찜통이 어디 있나

어차피 갈 것을 복수 당하지 않게 하시게나

너나 할 것 없이 말년이 좋아야지

 

 

 

복중(伏中)

임보

 

경허(鏡虛) 해인(海印)을 가다

복중 산문 밑 계곡에

몇 놈들 개다리 뜯고 있는

형상을 보고

당신도 옛 식성으로

두어 다리 만져도 보고

소주에 황구(黃狗) 울음을 헹구어

냇물에 쏟아도 보고

닫힌 절 문을 쪼개고

법당으로 올라 부처 멱살을 잡고

두어 번 흔들어도 보고

 

 

 

삼복더위

장종섭

 

찜질방을 시작한

밤하늘은 텅 비었다

 

피서 가버린

달과 별을 기다리며

 

속 타는 땀방울이

내 이마를 흐른다

 

 

 

개도, 팔자 나름

장진순

 

후미진 곳에

강아지 한 마리 빨간 줄에 매여

경계의 눈초리로 두리번거린다.

 

이곳에 팔려오기 전

어미 품에서 주인의 귀염 받으며

살던 때가 있었지

어미 개와 가깝게 지내던

콧대 높던 포메라안

고급 요리 대접받으며

식구처럼 총애 받고 살던 견공,

가끔 TV에도 출연하고

인기 짱 이었는데

 

그 꼴 보며

개만도 못한 신세라며

비관하는 사람들

 

개라 해서

다 같은 팔자는 아닌가 보다

 

 

 

복날

정민기

 

닭장에 피어나 한들거리는 맨드라미를 잡아

찹쌀에 인삼까지 넣어서 김이 모락모락

머리를 풀어 헤치도록 푹 고아 내온 삼계탕집

더위에는 이열치열이라고 이왕에 수건까지

목에 걸고 연신 비 오듯 흐르는 땀을 닦으며

더위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온몸에 닭살이 돋기 전에 닭살을 뜯고 있다

엎드러졌으니 맛보는 것이라고 늘어놓는 감탄

사람들을 창밖 맨드라미가 피어 고개를 빼꼼

한참을 기웃거리느라 허리에 땀띠를 두른다

그동안에 몸보신하고 자동차 몇 대,

구름 건너는 햇살처럼 주차장을 떠났다

한쪽에 묶인 백구 한 마리가 손님이 남긴

국물이라도 구름 같은 혀를 날름거리고 있다

거북이보다 느릿느릿 기어가는 더위

나뭇잎 창문으로 내다보는 푸르디푸른 눈빛

삼복더위 소뿔도 꼬부라지게 하는 힘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여름 한 철이 지나면

넘칠 것 같았던 패기는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날과 복()

정연복

 

더위를 이길 요량으로

개 잡아먹고 삼계탕 먹는

복날은 한 해를 통틀어

딱 세 번

초복과 중복

말복밖에 없지만

날씨가 덥든 춥든

마음 하나 잘 먹으면

일 년 365

매일매일

살아 있음이 기쁘고 감사한

()날이 될 수 있다.

 

 

 

이열치열

정연복

 

찌는 듯한

삼복더위 속에서도

 

지금 어디에선가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리

 

가슴 속 불타는

사랑의 마음을 못 이겨

 

서로의 몸을

뜨겁게 부둥켜안은

 

더운 날씨에

더운 사랑으로 맞서는

 

용맹스럽고도

행복한 연인들이 있으리

 

 

 

다가오는 복()더위 공포

정이산

 

이른 아침에 길을 나서니

이웃 동네로 이어진 시골길에서

대형 트럭의 짐칸 철창 속에

큰 돼지들이 가득 실려서

마을 앞 도로로 다가온다.

 

새벽이슬이 마르지도 않은

안개 낀 국도를 달려서

'대체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이런 생각은 하는 내가

정말 이상한 사람일까?

 

부처님은 게송으로

"인자한 마음으로

생물을 죽이지 않고

항상 제 몸을 잘 단속하면

거기는 죽음이 없는 곳,

어디를 가나 근심 없으리라.

 

인자하여 생물을 죽이지 않고

말을 삼가고 마음을 지키면

거기는 죽음이 없는 곳,

어디를 가나 근심 없으리라."라고

읊으셨고 말한다.

 

'살아 있는 것들을

함부로 살생하지 마라!'라는

붓다의 가르침은 볼 수 없고

생고기, 불고기, 갈비 천국이요

삼복더위가 다가오면

인간들의 몸보신을 위해서

죽음의 공포에 떠는

살아 있는 짐승들이

그 얼마인가 떠올려 본다.

 

피할 수 없는 복더위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공포

사랑하는 그대여!

저 소리를 들어보았는가?

고통으로 울부짖으며

죽어가는 짐승들의 소리를

우리는 무엇을 먹고

몸보신을 해야 하는가?

 

 

 

삼복 무더위

정찬열

 

조금만 움직여도

몇 발자국만 떼어도

등줄기를 흘러내리는 땀방울

시원한 나무 그늘이 그리운 여름

 

섭씨 1~2도 차이를

감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렇게 더운 밤을

열대야가 찾아왔다고 했는가?

 

폭폭 찌는 찜통더위

주체 못 한 땀으로 목욕을 하고 있다

그놈의 어른이라는 체면이 무엇인지

훌훌 벗어던지고 어린애가 되고 싶다.

 

초복과 말복의 틈새에서

선풍기는 돌아도 열풍을 품어내고

후련한 소낙비

뒤끝에도 별반 변화가 없어

 

에어컨을 틀고서야,

~호 소리 절로 내지만

자지러진 매미 소리 귓전에 남길 때

삼복의 무더위는 흰 구름 타고 따라나선다

 

 

 

복날이면 생각나는 기억

조성국

 

셰퍼트가 퍼질러놓은 똥을 더뎌 치우다,

트집 잡혔다

육이오 때에나 감행했던 원산폭격을 몹시 받았다

팔꿈치 물팍이 다 까지도록 기합이란 기합은 죄다 받았다

군대식 물자분류법에 따르면

이등 급 군견보다 팔 등급쯤 된 내가

좆같이 취급당한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곧 폐기처분될 개보다 못한 대우에

싸움 개 으르렁대듯

화딱증이 불끈거렸다

부아가 치밀어 그 개새끼 골통에 늙은 인사계의 이름을 붙여 부르며

개머리판으로 내려찍고는 하였다

제대 말년까지도 나는

수색 나갔다가 산토끼 길목에 올무 덫 놓아, 돌멩이도

소화시킨다는 한참 때의

지독한 식욕을 달래기도 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만, 셰퍼트가 덫에 걸려 뒈져버린 사변이 터진 것이었다

노발대발 인사계는 부대 막사를 이 잡듯이 뒤졌고,

그 식탐의 눈빛을 견디다 못한 군견이 월북했다는 입소문만 무성히 나돌았다

또 그것을 보았다는 중대원들 말에 나는

그저 배시시 웃으며 한랭기단의 새하얀 한파와 눈보라 헤치는

천 리나 먼 행군을 거뜬히 마칠 수가 있었다

 

 

 

복날

조하혜

 

뼈를 우려낸 국물을 훌훌 들이키고도

상 위에 수북이 뼈다귀가 남았습니다

 

어머니,

당신을 참 맛나게 먹었습니다

아무런 말도 하시지 않는 당신의 밥상 앞에서

쪽쪽 뼈들을 발라내고 빨아먹기도 했습니다

 

상 위에 수북이 쌓인 뼈들이

당신인 것을 안 뒤에도 한참을

한 번 소리 내 우시지도 못한 당신,

 

복날이 지나고

가을바람 서걱일 때

텅 비어버린 당신의 뼛속으로

우수수 바람 스며듭니다

 

젓 살 뿌옇게 오른 세계에서

또 아기가 태어나고

나도 늙어 당신의 뼈마디에서 들리는

음악 소릴 연주해 볼 참입니다

 

여름이 곳곳에서 무성합니다

 

 

 

복날

진순

 

빈 밥그릇만 덩그렇게 놓여있는

후미진 곳에

검둥이 한 마리 밧줄에 매여

경계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이른 아침

주인 모시고 산책 갈 때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덩치 큰 옆집 멍멍이

낯선 차에 실려가 소식 없고

같이 놀아주던 주인님

직장 잘리고 시무룩하다

 

복날이 다가오면서

불안해하는 검둥이

여름 날 일이 걱정인지

자꾸만,

하늘을 향해 짖어댄다

 

어떤 견공은 팔자 좋아

고급 요리 대접받으며 총애받고 살고 있는데

 

 

 

복날

최영철

 

헌 달구지 지나간 발자국 멀리

패인 황톳길 복날

칼날처럼 서늘해지는 속을

또 한 번 다치려고

시장 좌판에 앉아 마시는

칼날 지나간 더운 국물,

한은 휨 없이 담금질하는 것

황톳길 달구지 위에

오래 짓눌려

쫄깃해진 피

세파에 절어 단내가 나는

구부정한 서른여덟,

선지에 베어 더 서늘해진 속이

이제 조금 알겠다는 듯

목이 메는 복날

 

 

 

()

한인수

 

하늘엔 구름 걷히고

뜨거운 햇살의 심통은

얼굴을 녹이는 것 같다

 

흐르는 물방울이

얼굴에 솟구치니

등때기에도 물 범벅이 된다.

 

길거리 가로수가

하늘하늘 손짓하여

모르는 척 그늘에 기대니

흐르는 땀이 멈추고

 

살랑대는 바람은

햇살을 부채질하고

지나는 뜨거운 복날을

부채가 밀어제치는구나

 

 

 

삼복더위

허용회

 

삼복 햇살이 골풀무에 녹아내린다

 

인 가죽 눅눅, 끈적이고

물거울의 피사체 윤곽이 또렷하다

 

새벽부터 방죽 물에 몸 불리던 하늘은

뱃살 한번 움직이질 않는다

 

구름이 계곡 주변을 머뭇거릴 땐

잠자리 등허리는 빨갛게 타들어 가고

등가죽이 뜨겁다고 매미가 아우성치면

쌔근쌔근, 감 여물어가는 소리 들린다

 

사람들 북적이는 저- 다리 밑엔

옛 거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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