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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옥 동짓날 좀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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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이 - 동짓달 기나긴 밤을

 

 

 

동지 팥죽

강고진

 

해마다 동짓날

옛 추억이 그려진다

동지 팥죽을 끓이시기 위해

 

어머님은 새벽부터

부엌에 나가셔서 새알을

만들어 아궁이에

불을 짚 피시고

 

팥죽을 끓이시기 위해

추운 날씨에 손을 호호

불어가며 팥죽을 쑤셨던

동짓날 그날을

 

그리울 때면 어머님의 팥죽을

맛있게 먹었던

옛날이 눈에 선하니

마음속에 그립고 그려진다

 

 

 

동지(冬至)

강성은

 

누군가 내 얼굴 위에 글자를 쓰고 있었다

나는 눈을 감은 채 그 글자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내 얼굴은 얼마나 넓은지

글은 얼마나 긴지

나는 앞서간 글자를 잊고

밤새 그의 손길을 따라갔다

너무 멀리 가서

돌아오지 못할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 사이 누군가 빗자루로 내 잠을 저만치 쓸어놓고

나를 먼 데로 옮겨다 놓고

나는 저만치 쓸려갔다 쓸려오고

그 위로 눈이 쌓였다

그의 밤은 얼마나 긴지

나의 밤은 얼마나 긴지

끝없이 계속되었다

 

 

 

동짓날

강순옥

 

해마다 동짓날이면

소매 걷어붙이고

나이만큼 새알 옹심 만들어

앞 뒷집 채반으로 나르는 날

 

산촌에 달빛이 길어져

햇빛이 짧아지는 것일까

오늘 밤 잠자면 눈썹 희어진다고

어머니는 새알 옹심 만들게 한다

 

아직도 깨알 같은 새알심 추억

산골 담부락 밑에 놀고 있어

집 모퉁이 어슬렁거리는 그림자

팥죽 쑨 날 좀도독 잡는 날이다

 

온 집안 형제자매 나이만큼

밤새워 빚어도 부족한 새알 옹심

어깨너머로 기웃거리는 나이 새알

 

땡 동!

옆집 초인종 울리며

나이 한 살 슬그머니 들어온다.

 

 

 

동짓날 좀도둑

강순옥

 

정성스럽게 쑨 팥죽을

집 안 구석구석 뿌려놓고

 

전염병 퍼트린 몹쓸 귀신

잡귀 물려간다고 하여

작은 설이라 부른다

 

뒤 안뜰 굴뚝새 장관에도

담보 록 밑에 감나무에도

팥죽 올려놓고 쳐다봐도

어느새 없어진다

 

어머니 호랭이 물어갈 놈들

얼뺌이 눈 가지고 있는가 보다

조금 기다렸다 가져가지

금세 가져갔어

 

다시 놓고 지켜봐도

한눈팔면 또 사라진다

 

산촌에 동지섣달 겨울밤은

달빛 산그늘에 가려지면

옆에서 뺨을 쳐도 모릅니다

 

 

 

동짓날 향연

강순옥

 

한해 마무리 양은 대하에

둘려 않아 새알심 만든다

 

안방 건너방 사랑채 촛불 켜 놓고

집집이 장작불에 동지 팥죽

가마솥에 쑤어 한해 마무리한다

 

집안 곳곳에 붉은 팥죽 뿌려놓고

나이만큼 옹심이 새는 오남사녀

무사태평 기원하며 화롯가 모여든다

 

깊은 밤 굴뚝 연기 달빛에 하늘하늘

오동나무에 걸쳐 부엉새 부엉부엉

겨울바람 뿌려놓은 팥죽 망보다가

 

꽁꽁 언 고사리손 볼 비벼 가며

아랫목에 뒤엉켜 밤새워 조잘조잘

군고구마 동치미 곁에 두고

옛이야기 듣는다

 

 

 

아리랑 영감

고은

 

박판술 영감이 지나가면

우리는 육자배기 지나간다고 했지

그가 논두렁에 잠들어 있을 때

우리는 육자배기가 뻗어 있다고 했지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동지섣달에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

그 동지섣달이 뻗어 있다고 했지

육자배기하고

동지섣달하고 그렇게도 잘 부르더니

그 늙은 홀아비 판술 영감은

죽기 이틀 전에도

병든 몸 끌고 토방에 나와

한바탕 진도아리랑 불러댔지

죽 한 사발 끓여줄 사람도 없어서

혼자 기어 나와

죽 끓여 먹고 간장 먹고

앓은 영감

그러던 그 영감 토방에 나왔으니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저 영감 살아나려나 보다

힘차다 했는데

다음 다음날로

그만 힘차게

이 세상 후딱 떠나버렸지

동네 사람들

새로 짠 가마니 두어 장 내다가

둘둘 말아

남생이 언덕 바람 속에

홀아비 송장 묻으며

이구동성으로

날 좀 보소, 불러주었지

그 뒤 괜히 바람 치는 밤이면

남생이 언덕 평토장 한 무덤에서

그 영감 육자배기도,

진도아리랑도 들린다 했지

생전보다 더 기막히게 부르는

진도아리랑 들린다 했지.

 

 

 

동짓날의 추억

고지영

 

아침부터 내린 눈이

하루 종일 내린다

시래기국밥도 감지덕진데

오늘은 동짓날

얼마나 기다린 날이든가

해 질 녘 동무들과 팥죽 동냥 나선다

들통 들고 이집 저집 동네 한 바퀴

똥개에게 쫓기고 그래도 반 통은 얻었다

다들 어렵다는 보릿고개 시절이건만

있든 없든 인심은 참 좋았다

 

자기 발등만 쬐며 졸고 있는 전봇대

골목 처마 밑에 둘러앉아

추위도 아랑곳없이 얻은 팥죽

꽁꽁 언 손으로 퍼서들 먹는다

입가에 팥죽이 뒤범벅 서로 얼굴 쳐다보며

웃는 웃음꽃이 눈 내리는 동짓날 긴긴밤

골목 하늘에 울려 퍼진다

 

 

 

동지여, 가보지 않으려는가

권경업

 

지리산서부터 한 달여를 걸어왔는데도 능선엔 사람 그림자

본 일이 없고 노루 산토끼 오소리 너구리 산돼지들이

까마귀 부엉이 방울새 박새 떼와 어울려 놀고 있는

반도의 등줄기를

동지여

그대 가보지 않으려는가

능선 아래 자락과 골에는

동네마다 때맞추어 저녁연기 피워올리고

거기 동지와 나의 얼굴들이 열심히 살아가고

어매와 아배 이웃과 친구들이 도란도란 정겹게 지내는 곳

우리 손 잡고 가보지 않으려는가

아마 북풍이 멎어들 때쯤이면 우리는 소백산 국망봉을 지나

태백을 넘고 두타 청옥이 보석처럼 빛나는 봄 능선에서

창랑주 먼바다로부터 던져 올려지는

붉은 해를 볼 수 있으리라

붉은 해 더 밝게 뜨는 아침에 통일을 기원하면서

흰머리뫼까지 가보지 않으려는가

설령 그것이 꿈일지언정

우리 가보지 않으려는가

 

 

 

동짓날 그 밤에

권미영

 

시린 서릿발이 뚜벅뚜벅

직립으로 걸어온 동짓날

목줄 풀린 뉘집 개의

간헐적인 울음소리는

애끓는 공명(共鳴)으로

허공에 얼어붙고

길어진 밤의 마디

핏발 세워 보초 선 달이

억수로 쏟아지는 졸음에

허연 배를 깔고 누웠다

 

그리고

그의 등 위로 허기진 바람이

주린 배를 움켜쥐고 휘청대며 간다.

 

 

 

동지

권승주

 

동지섣달 긴긴밤에

아랫목에

익어 가는 옹심이를

가슴에 품고

내일을 기다려

동지

그 긴 사랑

 

가마솥에

곱게 누운 팥죽이

가슴에 타오르는 사랑처럼

부글부글 끓어

동짓날의

팥죽을

액을 축귀하려

부엌에도

장독대에도

대문에도

그리고 내 가슴에도

차려놓으니

 

새해에는 좋은 일만 생기리

시원해지는 가슴 어찌하랴

 

새알옹심이

먹고

나이 한 살 더 먹는

삶도

더 익어

내년에는

복이 산더미만 한 것이

굴러들어 오겠지

 

귀신은

붉은색을 싫어해

팥죽을 먹어

옹심이를 먹어

천사를 내 가슴에

품고 살아가야지

 

 

 

아귀

김경희

 

오늘은 동지제

 

눈물 따위로야 다 채우지 못할

구천의 오장(五臟)은 있어

 

부처님 몸 한 도막씩을

배급받으려는 허기들처럼이나

그렇게 무서운 목숨의

인파, 천파, 만파가 운다

 

내 것이 너의 것이고

너의 것이 내 것인 수저를 달라

붉은 팥죽을 뜨느니

우리는 허공을 떠서 허공을 삼키며

허공에 허공을 흘리우며

가도 가도 아주 가지는 못하고

일백 겁()의 밤을 돌게 되리라니

 

이제, 우리 중에

굶주림을 번쩍 완성하려는 자여,

오늘은 대개심불사(大開心佛事)가 있는 날.

 

한점 내리는 박명의 눈발에도

범종이 울리는 까닭을 듣겠느냐

흐드득! 반쯤은 눈을 뜨느냐

 

열려진 우리 뱃속의, 그 법화경(法華經)

본다 하겠느냐

 

그렇구나, 모든 굶주려함은 법열(法悅)이었어라.

 

 

 

동지 팥죽

김국현

 

동짓날 아침

동치미와

팥죽을 먹었습니다

어린 시절 손꼽아 기다리며 먹었던

그 맛과 다른 것은

어머니의 손길과

할아버지의 포근한 무릎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때 그 시절을 하나,

팥죽 속에 모두 넣어

곱게 포장하여

숙성하였을 때

먹기로 했습니다.

 

 

 

동짓날 풍경

김귀순

 

빛과 어둠이 공평한 동짓날

붉은 팥으로 쑨 새알 없는 걸쭉한

선혈 빛 팥죽을

둥지를 돌며 금줄 치듯 뿌린다

인간 세상을 호시탐탐 엿보려는 잡귀들

범접도 못 하리라

새해도 둥지 안의 삶은 무탈하리라

간절한 염원 주문 외듯 하고

늘어진 몇 가닥 수양버들 가지에

세월의 흔적을 아쉬워하는

그저 바라만 봐도 애잔해지는

평생지기와 마주 앉아

팥죽 한 대접에 노부부는

서로의 측은지심을 담고

듬성듬성한 안타까운 몇 가닥에

미련의 세월 달래본다.

 

 

 

동짓날 밤이 오면

김내식

 

호롱불 심지 끝에

하늘하늘 타는 불꽃

뚫어진 문틈으로 들어온

황소바람에 흔들리고

아랫목은 아이들 차지

청솔가지 매운 연기에

눈물짓는 어머니

샛노란 주둥이 떠올리며

새알 내알, 보글보글

팥죽 끓는다

윗목에서 새끼꼬시던 아버지

귀신이 싫어하는 붉은 죽을

헛간, 굴뚝, 변소 칸

두루 다니며 뿌려

액운을 몰아낸다

날마다 먹는 죽

밥 달라고 투정하면

새알을 안 먹으면

나이가 제자리라니

호호 불어 식혀 먹는다

하늘나라에 눈발이 흩날리고

문풍지 부르르 떠는

동짓날 밤이 오면

산에 계신 우리 부모님

더욱 그립다.

 

 

 

동짓날

김명배

 

할미가 키운

아이

동짓날

팥죽 먹고

동전

한 닢 쥐고

잠들다.

 

어느 시대(時代)

똑같은 방법(方法)으로

눈이 내려

쌓이다.

 

 

 

동지

김민정

 

나는 너를 피해 달아났다. 숨이 가빠 헐떡거리는 사이 너는 나를 따라왔다. 우리는 좋은 친구 사이가 되었고 네 옆에는 자기 개를 발로 차는 여자가 있었다. 개의 목줄을 쥔 건 너였다. 발로 걷어차이면서도 너와 여자 곁으로 자꾸만 개가 왔다. 최대한 몸을 웅크려 제 살집을 딤섬처럼 오그려 빚긴 하였으나 원체 개가 컸다. 들통에야 들어갔겠지만 끓여서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이 겨울 팥죽처럼 환대받을 국물이 되기에 들깨는 지난여름의 향이었던 것이다. 큰 개가 짓는 작은 울상 앞에서 평화는 욕실 욕조에도 거실 천장에도 안방 이불장에도 부엌 개수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다만 오늘 저녁엔 조용해질 것이다. 옆집 남자의 전기톱 소리가 낮부터 엔진에 시동을 걸고 있으니 체크 모포를 두른 채 연신 귤이나 까먹는 나여, 무엇을 기다리나. 싸구려 연애소설 속 야한 페이지에나 끼워 넣던 피비 케이츠 책갈피보다 더 납작 엎드려서는,

 

 

 

동지

김상현

 

새벽녘까지 잠이 없는 밤엔

찬 서리 내리는 뜨락에 나와

새벽달 보듯 하려고

남겨둔 홍시를

무슨 원한이 깊기로

저리도 찍고, 찢고, 헤집어서

내장만 걸어두었는지

까치 소리 요란한 아침은

어수선한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섣달 감나무 피투성이듯

나는 또 뉘 마음을

그렇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생각하느라 뒤척이는 밤이면

까치 소리

마냥 요란한 나날들에 대한 참회가 깊다.

 

 

 

동지(冬至)

김석송

 

차례(茶禮)는 마치었다

우리는 팥죽 상을 받았다

가족일동(家族一同)……

이불 속에서부터

팥죽노래를 부르던

일곱 살 먹은 어린

누이동생까지

 

그러나 미구(未久)

어린 누이동생은

수저를 놓고

우두커니 앉았다-

 

할머니가 보시고

아가 왜 안 먹니?

하고 부르시었다

 

한 그릇 다 먹으면

한 살 더 먹으니까……」

어린 동생은 이렇게 부르짖었다

 

우리는 모다 크게 웃었다

그리고 팥죽은

마침내 부족(不足)했다

 

 

 

동지(冬至)

김소현

 

그리고 울었다 우리가 우리라서 다행인 적이 있었다

그쯤에서 멈췄다

왜 우린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인간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자꾸 코를 훌쩍이게 됐다

꿈에서 넌 분명 죽었는데 나는 가끔 자는 방법을 까먹었다

그럴 때면 숨 쉬는 법까지 모르게 되는 것 같았다

지겹지만 지루하진 않은 불행이 몇 번이고 찾아왔다

거짓말은 하면 할수록 늘었다

어제는 조금 오래 걸었다

바람이 차서 살이 다 아팠다

너는 추워서가 아니라 귀신이 너를 끌고 갈까봐 발까지 이불을 덮고 잔다고 그랬었다

나는 어두운 건 좋은데 깜깜한 것은 싫다고 너에게 말해주었었다

우리는 자주 손을 잡았고 그것을 위로라고 착각한 적도 있었다

그랬었다

나와 너는 서로의 미래에 등장한 적은 없다

끝 이후의 것을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쁘진 않았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산속은 너무 조용해서 눈 내리는 소리도 들린대, 너가 말했었고

나는 들어본 적 없지만 그렇구나 했다

너가 해 준 이야기라서 그냥 믿는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 눈 내리는 소리를 모르기로 한다

궁금해하면서 살기로 한다

미워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는다

 

 

 

동지(冬至) 나물

김시태

 

소한(小寒) 지나 이맘때쯤

흰 눈이 쌓일 때면

그 길고 가느단 꽃대가

곧게 곧게 솟아올라

노오란 꽃 피우는

동지(冬至) 나물!

 

뭐 그리 이쁠 것도

탐스럴 것도 없지만,

그래도 겨울 한철

우리 고장 식탁에선

빼놓을 수 없는

독특한 별미(別味).

 

어쩌면, 내 촌스런 사랑도

바로 그 동지(冬至) 나물 김치의

그 풋풋하면서도 상큼한 맛을

영영 잊지 못하는 것일까.

 

 

 

서리 내린 새벽

김영무

 

동지 가까운 날

서리 내린 새벽

아이들 외갓집에 물

길러 간다

 

머리에 흰 수건 쓰고 이슬보다 먼저

새벽 밭에 나와 앉은

주목나무 향나무 어깨 위에도

서리가 하얗다

 

산비탈에는 늦잠 자는 겨울 잡목들

그 사이로 찬바람이

흰 입김 몰아쉬며

숨가삐 내려오니

 

참나무 가지들이

흰 이빨을 슬쩍 드러낸다

은 잿빛 팔뚝 바짝 당겨

새벽 장작이라도 패려는가

 

 

 

동지(冬至) - 김경숙 언니에게

김영산

 

팥죽을 쑤다 어머니는 우신다

마당 가에 눈이 쌓여 희붐한 저녁나절

시장한 식구들이 안방에 모여앉아

짧은 해처럼 가버린 언니를 생각한다

동생들 학비와 무능한 아비의 약값과 70년대 말

쪼든 양심을 위해

십 년이 지나도록 구멍 난 생계를 뜨개질하지 못한 딸들을 위해

 

긴긴밤 무덤들 위에 목화송이 흰 이불을 덮어주기 위해

 

 

 

동지(冬至)

김옥자

 

첫눈이 펑펑 내리는 동짓날

 

마음은 이미

고향 언덕으로 달려가

포근한 어머님 품에 안긴 듯

 

깊은 밤

참새처럼 지저귀며

구들목에 모여 앉아

 

형제들끼리 지지고 볶고

함께 즐겨 먹던 팥죽의 별미

 

천지신명님께 조상님에게

자식들의 앞길에

식구들의 건강을 사업의 번창을

빌고 또 비시던 어머님 생각

 

꽁꽁 얼어붙은 길고 긴 이 밤

봄을 기다리는 마음

 

우리의 미래에

호화로운 삶보다

소박한 꿈을 키우고 싶어요

 

 

 

아홉 살 할머니

김응

 

하루는 집에 와서

숙제를 하려는데

숙제가 뭐였는지

까먹었지 뭐야!

그래서 그냥 놀았어

온종일 노니까 즐거웠지

또 하루는 엄마가

심부름을 시켰는데

심부름이 뭐였는지

까먹었지 뭐야!

그래서 그냥 안 했어

맘대로 하니까 신이 났지

어느 동짓날 아침

다 함께 팥죽을 먹는데

나이만큼 새알 먹는걸

까먹었지 뭐야!

그래서 그때부터

나이를 먹지 않았지

일 년이 가고

십 년이 가고

오십 년쯤 흘렀을까

칠십 년쯤 흘렀을까

하루는 잠을 자려는데

저녁을 먹었는지

저녁을 굶었는지

까먹었지 뭐야!

그래서 그냥 자 버렸어

배고픈 줄도 몰랐지

또 하루는 손님이 왔는데

딸인지 며느리인지

옆집 아줌마인지

까먹었지 뭐야!

그랬더니 병원엘 데려가네

의사 선생님이 물었어

할머니 몇 살?

그래서 큰 소리로 말했지

아홉 살

 

 

 

동짓날 아침

김재영

 

바람이 낮게 내려 앉았습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팥을 삶아서 팥죽을 쑵니다

새알을 하이얀 알갱이도 넣고

남모를 위안도 주었지만

이내 끓어오르는 팥죽 속에는 산발한 머리칼처럼

흩어지고 있습니다

 

매년 되풀이 하는 손짓인데

꽃 지고 달 지던 때 나의 청춘

정갈한 밥통속에서

익어갑니다

 

이제는 한 살 더 먹게 되었으니

세월이 참 무상하네요

우리네 살림도

그런 것이라고

혼자서 독백하였습니다

 

 

 

동짓날

김지하

 

첫봄 잉태하던 동짓날 자시

거칠게 흩어지는 육신 속에서

샘물 소리 들려라

귀 기울여도

들리지 않는 샘물 소리 들려라

 

한 가지 희망에

팔만 사천 가지 괴로움 걸고

 

지금도 밤이 되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날 뿐

아무것도 없고,

샘물 흐르는 소리만

귀 기울여 귀 기울여 들어라

 

 

 

동지의 추억

김창수

 

세상의 일이 다 그러하듯

길고 짧음이 있고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이 날을 지나면 점차 밤이 길어진다

 

동짓날 아침

어머니가 끓여준 팥죽

세월이 지나도

동치미와 먹던 그 맛

어찌 잊을 수 있을까

 

푸르고 푸른 사람들 어디로 가고

청산의 교회당도 지워져가고

코로나 19로 인해

우리의 가슴도 내려앉을 때

가슴 풋풋하게 다가오는 그대여

바람이 바람을 부른다

 

 

 

동지 팥죽

남원자

 

1

길고 긴 동짓날 밤

어머니가 해 주신 동지 팥죽

군불 지펴서 김이 모락모락

새알 이쁘게 빚어야 이쁜 딸

낳는다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새알을 빚어서 큰 가마솥에

얼은 손 호호 불어 녹이고

아궁이에 군불 지펴서

태양보다 뜨거운 불빛 속에

고구마 구워 먹던 어린 시절

칠흑같이 어두운 골목길 어귀

닭 잡아먹고 동지 팥죽 서리하던

동네 꼬마 녀석들 지금은 어디

추억 같은 불빛들이 아롱져 온다

귀신을 쫓는다고 빨간색 물감

구석구석 신들에게 색칠하고

그림을 그리시는 화가 홍 여사님

요즘은 건강이 좋지 않는다

사이버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그림 속 동지 팥죽을 보면

사랑하는 엄마가 해 주신

동지 팥죽 먹던 시절이 그립다

 

 

2

어린 시절 동짓날이면

어머니가 정성껏

만들어 주신 동지팥죽

 

고운 찹쌀로 새알 만들고

하얀 새알심이 동동

지금도 어머니가 해 주신

동지팥죽 입가에 맴돈다

 

해마다 동짓날은 다가오는데

어머니가 해 주신 새알 동동

동지 팥죽 그리워라

 

긴긴밤 홀로 지새우는

동짓날 달님은 아시지요

뒤창 마루에 얼음 동동

차가운 동지 팥죽의 추억을

 

 

 

동지 팥죽

류인순

 

동지 팥죽 그릇에

새알심 동동

나이만큼 먹는다는

옛 어른 말씀

어릴 적엔

엄마 나이 대신 먹었죠

이젠 한 알

슬쩍 덜어내면

내 나이

한 살 더 젊어지려나

 

 

 

동짓날

묘혜공

 

어제만 하더라도

눈발이 굵게 내렸다

그러나 아침이 되자

쌓인 눈은 사라지고

먼발치에는 하얀 눈이 솜처럼 쌓였다

 

우리 절 옆으로 흐르는 냇물

좀체 그치지 않고

조금 전에 내려간 물길따라

겹쳐 겹쳐 흘러내렸다

 

살얼음은 얼었지만

그래도 냇물은 쉼 없이 흘러만갔다

옛말에 세류성해(細流成海)라 했는데

그 말이 하나도 틀린게 없다

 

세상일이 다 그렇지만

시원(始原)이 없는 게 어디 있겠느냐만

산중생활은 자연의 소리인 양

어디 걸림이 있을소냐

 

혼자 사는 생활 속

금구(金口)는 나의 사상 배경

언제 들어도 좋다

 

때마침 처마 밑에 달린 풍경소리

다시금 나를 일깨운다

 

 

 

동지(冬至)

문신

 

겨울 한 철 울기 위해 기러기는 만리를 날아간다는데

너는 고작 문밖에 앉아 우는구나

 

아들아,

 

속옷바람으로 널 내쫓아놓고 애비는 처마처럼 두 귀가 얼어 네 울음을 듣는다

 

귀밑 터럭이 하얗게 새기가 몇 해짼데

너는 아직 여섯 살

그 사이

우는 것도 공부라고

지난해보다는 운()과 율()이 제법 들어줄만 하구나

 

옛 우물에도 새 물이 찬다는 동지(冬至)

초사흘 달 잔등으로 앉아

 

기러기처럼 목이라도 길게 울 일이지 간신히 어깨만 들썩이는구나, 아들아

 

 

 

동지 팥죽의 추억

문재학

 

사립문 열고 들어서면

한없이 포근한 가족의 온기

초가지붕 위로 피어오르는

아스라한 그 날

도란도란

화롯가에 둘러앉아

환담 속에 굴리던 새알

한 살 더 먹는 나이 수만큼 먹으라는

그 새알들, 동지 팥죽

솥뚜껑 소리에 익어갔다

호롱불에 타던 기나긴 밤

문풍지 울리는 설한풍에

자리끼도 얼던 동짓날

잡귀 물리치려 집안 곳곳에

솔가지로 뿌리던 동지 팥죽

새하얀 눈 위를 붉게 물들였다

가족의 안녕을 비는

어머니 지극 정성에 강추위도 녹았다

세월의 강물에 출렁이는

꿈결같이 아련한

그 시절이 그리워라

 

 

 

동지 팥죽

문정숙

 

이웃들이 함께 소소한 행복을 논하면서 먹는

훈훈한 역사가 깃들어 있고

고향의 호롱불 아래에서 먹었던 아련한 기억도

스멀스멀 끼어들고

혈관에서 달달하고 부드러운 하루가

동글동글 저녁으로 모이고 있다

감나무에 흰 눈이 쉴 새 없이 쌓인 밤이면

동치미 국물과 함께 하얀 어둠도 함께 마시면서

동짓날 긴긴밤이 건너가는 시간이다

시장 죽집 부엌의 풍경들이

벽화로 박제되어서

하늘이 열리는 동안

빨간 자전거 타는 아저씨

아름다운 이야기 배달하고 걸어가고 있다

시장에서 어머니와 함께 허기를 채우던

내 유년이 따뜻하게 데워지고 있었다

 

 

 

동지(冬至)의 시

민영

 

나무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지난봄

수많은 푸른 잎 사이로

비단 같이 보드라운 꽃을 피우던

나무들은 시방

바람이 불어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줄기 사이로 새봄을 준비하는

꽃 몽우리를 속껍질 속에 숨긴 채

난세를 참고 견디는 선비같이

눈을 감고 있다, 말없이!

 

 

 

동지 밤

박남준

 

개울물 소리 저리 시리도록 푸르른가

동지 까만 밤 부쩍이나 귀는 밝아져서

산 아랫마을 뉘 집 개가 짖는다 먼 장닭이 운다

눈이 오는가 누가 오는가

처마 끝 알전구 불을 밝혀두었나

심심한 날이 또 밝아오는가?

 

 

 

오늘은 동지(冬至)

박노해

 

오늘은 동지(冬至)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날

차가운 어둠에 얼어붙은 태양이

활기를 되찾아 봄이 시작되는 날

나는 눈 내리는 산길을 걸어

찢겨진 설해목 가지 하나를 들고 와

방안 빈 벽에 성탄절 트리를 세운다

그 죽은 생 나뭇가지에 오늘 이 지상의

춥고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을 걸어둔다

해가 짧아지고, 해가 길어지고,

모든 것은 변화한다

모든 것은 순환한다

절정에 달한 음은 양을 위해 물러난다

오늘은 동지(冬至)

신생의 태양이 다시 밝아오는 날

숨죽이고 억눌리고 죽어있던

모든 것들이 새롭게 살아나는 날

 

 

 

동지 팥죽

박모경

 

세월의 끝

저쪽 산마루의 나무는 흔들리지 않고

내가 먹은 나이만큼

새알이 모여

팥죽을 파고든다

 

평온이 찾아온 솥

가장자리에는 숨 쉬는 걸쭉한 팥 내음

너무 외로워

삶의 무게까지 갈아앉혔다

 

일 년에 한 번

결코 돌아오지 않는 그 날

밤낮의 길이보다 더 깊게

어둠을 타고 내리는 숨결

 

마음은 항상 그곳에 잠겨

망향의 서러움을 달래며 기다렸다

날 저물면 애기 동지는 그렇게 흘러가고

 

 

 

동짓날

박미향

 

겨울의 깊이가 절정에 가까워지고

팥죽 한 사발에

긴긴밤 부엉이 울음 소리 들으며

창문 밖을 연신 확인해도

여명은 물러날 기미 없이

깜깜하기만 하다

 

가족의 무탈함을 기원하시던 어머니

행여 귀신이라도 붙을까 봐

팥죽에 나이만큼 넣어주신 새알심

부모 형제 모두 모여 웃음꽃 피는 날

우리 가족 행복한 잔칫날이다

 

 

 

시락죽

박용래

 

바닥난 통파

움 속의 강설(降雪)

꼭두새벽부터

강설(降雪)을 쓸고

동짓날

시락죽이나

끓이며

휘젓고 있을

귀뿌리 가린

후살이*

목수건(木手巾)

 

* 후살이 : 여자가 다시 시집가서 사는 일 (재가)

 

 

 

동짓날 밤에

박재성

 

여름날엔

꽃잎에 앉아

어둠 줍던 달빛이건만

담장에 올라

까치발로 동동거린다

그런 긴 밤

된서리에 가슴 내밀어도

그리움도 사랑인지라

식을 줄 모르더니

열병 앓듯 지나온 시간에

그리움 안은 달빛이

창가를 떠나가면

달빛 흔적 위로

싸늘한 성에꽃이 피어난다

 

 

 

동지

박형준

 

어느 추운 겨울밤, 머언 옛날이었습니다

서울역 지하도에서 할머니가 박스로 을 만들어

그 안에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계단으로 눈발이 비치기 시작하더니,

무를 밭에서 막 뽑아낸 듯 사정없이 바람이 허벅지를

도려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갈 곳이 없어 할머니의 성에 하룻밤 묵어가기를

청했습니다

 

그 안엔 한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할 수 없이 성 담벼락,

할머니의 등 뒤에 쪼그려 앉아 밀려드는 졸음을 참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어느새 나를 향해 돌아앉아 불을 켜고 있었습니다

성냥을 그을 때마다

계단으로 밀려드는 눈발이

새벽의 어둠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품 안에 돋아나는 불꽃이

저의 곱은 손과 차디찬 허벅지에

흰 속살인 듯 속삭이고 있었습니다

 

눈을 떴을 때 박스로 만든 성안에는

매운 재만 폭삭 내려앉고 있었습니다

 

 

 

동짓날

배종대

 

주름진 할머니 손

흰 구슬 만들고

 

손자 놈들 구슬 짓눌러 얼

굴에 분 바르며

 

크다고는 하지만 큰 것도 없고

작다고는 하지만 작지도 않은데

서로 내가 크다며 흰 구슬에 때 묻히고선

 

할아버지 만든 목욕탕에

와르르 뛰어들어

북 치고 장구 치며 날뛰니

주걱 들어 때릴 듯 시늉하는 할머니

 

장죽에 불붙여 한 시름 내 젖는 할아버지

뉘엿뉘엿 지는 해 쳐다보다

할머니 주름진 얼굴에 빙긋

 

 

 

동지 팥죽

백낙원

 

하얀 눈 덮인 두레마을

오두막집 굴뚝에선

뽀얀 연기

유령처럼 피어오르고

 

동구 밖에 붉은 황토

길가에 뿌려지면

왼 새끼에 묶인 고목

동장군 휘파람에 목메어 운다.

 

팥죽 같은 땀 흘리시며

정성스레 빚은 동지 팥죽

신주(神主)단지에 넣어 두면

엄마 몰래 퍼먹든 개구쟁이.

 

썰매로 얼음 지치고

쥐불놀이하던 코흘리개

희수(喜壽) 지나 솔수(率壽)이니

성성한 백발 눈처럼 날리네.

 

* 희수(喜壽) 77. 오래 살아 기쁘다는 뜻

* 솔수(率壽) 80. () 자는 팔십을 의미함

 

 

 

동지(冬至)의 시()

서정주

 

시베리아의

카츄샤 마슬로봐의

2(二萬) 명분(名分)

남긴

호흡 같은 날.

길 뜬 지 달포가 넘는 내 석류(石榴) 가지의 루비들은

얼마 전 무욕(無欲) 색계(色界)의 그 친정에 들러

골방 금침(錦枕)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고,

간 봄의 내 초원장제(草原長堤)의 쑥대밭의 비취(翡翠)들은

몇 달을 가서 쉬고

무운천(無雲天)에서 다시 내려올 채비들을 하느라고

수런거려 쌓는다.

아아 내 키만큼 한 비취(翡翠)의 공규(空閨).

아아 내 아내의 키만큼 한 비취의 공규(空閨).

친정 간 내 아내와 남은 내 키만큼 한 비취(翡翠)의 공규(空閨).

아아 내 아들의 키만큼 한 루비의 공규(空閨).

아아 내 며느리의 키만큼 한 루비의 공규(空閨).

친정 간 내 며느리와 남은 내 아들의 키만큼 한 루비의 공규(空閨).

돋아날 민들레의 장래(將來)의 육신(肉身)을 재고 있는 대신

천리(千里)의 동지(冬至) 여행(旅行)을 나도 다니어 오리.

 

 

 

동천(冬天)

서정주

 

내 마음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오동지 할아버님

서정주

 

콩으로는 메주를 쑬 것이구요.

팥으로는 팥죽을 쑬 것입니다.

아무리 일러 드려도 곧이 안 듣는

오동지 할아버님 고드름 수염.

빳빳이만 뻗어 난 고드름 수염.

눈 감으면 코 베어 먹어 코 베어 먹어.

그래서 동지섣달 첫새벽부터

담뱃대로 재털이만 또드락거리는

오동지 할아버님 안 감기는 눈

감으려도 감으려도 안 감기는 눈

 

 

 

동짓날

서현숙

 

어둠이 내려앉은

동짓날 저녁

 

어릴 때 학교 갔다

언 손을 호호 불며

집에 오면은

 

어머니는

붉은 팥 삶아

찹쌀가루 뭉쳐서

새알 만들고

 

커다란 가마솥에

액운을 떨쳐버릴

팥죽을 쑤어

 

온 식구 둘러앉아

먹었던 그 맛

동짓날 긴긴밤에

그리움 되어 떠오른다

 

 

 

동지 팥죽

손병흥

 

무명 번뇌 참회하는 긴긴 밤

어린 시절 떠올려보는 동짓날

따끈한 팥죽 한 그릇 먹고서

아낌없이 묵은해 돌이켜보며

업장참회 기원해보는 시간

 

옛 인정 나눔 베풂마저도

점차 메말라 가는 세태 속

실의 좌절 딛고 새 삶 가치 찾아

민들레처럼 꿋꿋이 살아왔던 세월

더욱 정겨운 햇살로 다가서는 계절

 

설날 떡국처럼 새알 옹심 먹는 날

동짓달 상순에 들면 애동지(兒冬至)

동짓달 하순에 들면 노동지(老冬至)

역질 사귀 물리치려 문간에 바르고

집안 당산나무 등에 뿌려 악귀 쫓는

상징 주술적 의미 깃든 우리네 풍습

 

 

 

동지(冬至)

송광근

 

미즈근한 핫팩을 만지작거리며 버티는

겨울은 거리에서 굴뚝에서

모진 찬바람으로 지나갑니다

파랗게 질린 느티나무 꼭대기에

길을 가다 목을 맨

검은 비닐봉지가 펄럭이고

실외 공동화장실도 얼어버렸습니다

사시사철 찬바람에 갇힌 길들은

늘 동지(冬至) 아니었는지요

저 멀리 도토리를 다 떨어낸

상수리나무 끝 까치집이 휘청입니다만

붉은 팥죽 위로 새알이

별처럼 떠오릅니다

 

내일부터는 낮이 더 길어집니다

 

 

 

안성(安城) 장터

송수권

 

장터 마당에 눈이 내린다.

먹뱅이 남사당패 어디 갔나

남사당은 내 고향

내 몸은 아프다

소리소리 치며 눈이 내린다

설설 끓는 동지 팥죽

저녁 한 끼 시장한 노을 위에

식어가는 가마솥 뚜껑 위에

安城 세지 목화송이 같은 흰 눈이 내린다

비나리패 고운 날라리 가락 속에

눈물범벅이진 네 얼굴

곰뱅이 텄다 곰뱅이 텄다

70년대를 한판 걸죽하게 놀아보자던

네 서러운 음성 위에

동녹이 슬어가는 유기전 놋그릇들 위에

눈이 내린다

어스레기 황혼을 부르는 말뚝 위에.

 

 

 

동짓날 밤

안행덕

 

마른 바람이 삭정이를 흔들며

외로운 듯 천천히 지나가는 밤

동지 팥죽에 생의 무딘 이야기 한 술

집어넣고 휘휘 저어본다

 

그때는 고운 수수 빛깔 술 한 모금에

세상이 다 내 것인 줄 알았지

긴긴날 수없이 길어 올리고 풀어낸 세월이건만

동짓날 밤은 어쩌라고 잠마저 달아나는지

 

어둠을 지우면 또 새날이 온다며

곡절 많은 사연일랑

달아나는 밤바람에 던져주고

아늑하고 따듯한 고향으로

돌아오라 말하던 널 그리며

내 나이만큼 새알심을 세어본다

 

오늘도 동지 팥죽 한 그릇 비워 내며

덧없이 흘러간 세월을 헤아려 보는데

섬섬閃閃히 늑골 사이로 빠져나가는 바람

겨울바람 소리에 묻혀 사라지네

 

 

동지(冬至)

오보영

 

님이여

오늘은 유난히

당신이

더 보고 싶습니다

더 그리워집니다

그간

아무리 다가가려 해도

점점 멀어져만 가던 당신이었지만

오늘부턴

비록 조금씩이긴 하지만

당신에게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맘이 설렙니다

곧 당신

내가 많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당신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맘이

조급해지기까지 합니다

 

 

 

동짓날 팥죽

오정방

 

짧을 때보다 밤이 5시간이나 더 긴 동짓날

속까지 다 시원할 동치미를 곁들여

저녁상에 팥죽 한 그릇 별미로 올라왔다

설탕을 조금 뿌릴까 말까 하다가

몸에 이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올라온 그대로 먹어보기로 했다

맛이 없지 않았다

맛이 참 좋다고는 말하였으나

새 맛에 길들여진 내 혀 탓인가

어린 시절에 먹어보았던 기억 속의

그런 꿀 같은 맛은 아닌 듯싶었다

팥죽 속에 틈틈이 박혀 있던 새알심은

벌써 부화해서 모두 어디로 날아갔는지

별로 눈에 뜨이지도 않는다

재료도 틀리지 않고 색깔도 비슷한데

옛날과 같은 그 맛은 결코 아니었다

 

몇 숟갈 뜨기도 전에 갑자기

오래전 돌아가 다시 손맛을 볼 수 없는

참 인자하셨던 울 어머니 생각이 떠올랐다

 

 

 

동지 설

오지선

 

미리 세는 동지 설

반가운 소식

미리 듣는 동지 설

 

동지 팥죽 한 그릇씩

뚝딱 먹는 동지 설

 

솜이불을 덮어써도

문풍지 사이로

새어드는 세찬 바람

 

겨울밤은 깊어만 간다

 

 

 

동지(冬至)의 시

우영규

 

동지에 달이 뜨니 여인은 황진이의 시가 된다

고매(高邁)한 어머니의 팥죽처럼

달빛에 황진이의 시가 주르르 흘러내린다

낙엽이 구르며 컹컹 짖어댄다

싸리울 같은 달무리가 개 말뚝에 매달린다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켜든 나는

비로소 달의 섬에서 이탈해 있는 걸 안다

그리고 달의 불완전 낙하를 목격한다

드디어 지족선사가 벽을 타고 허물어진다

 

달을 휘돌며 지나간 울음

황진이의 명찰을 달고 서럽게 우는 여인

깊은 수심처럼 알길 없는 사연

말뚝에 마음을 묶어놓고 서럽기만 하다

동지의 달이 우주에서 탈출한 후

여인을 고문하던 조선의 서경덕이

화툿장의 공산을 들고 터벅터벅 내려온다

달빛을 핥던 개가 밥그릇을 치우고 잠이 든다

 

 

 

동지(冬至)

유창섭

 

긴 터널을 지나는 중입니다

저 끝에는

늘 푸른 바다에서 빨간 태양이

솟아오르고 있을까요

투명한 하늘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앞뒤도 보이지 않는

지독한 어둠, 그 터무니없는

붙잡아 둘 수 없는 생각들 쫓다가

석 잠인지 넉 잠인지 자다가 일어나

다시 환생하는

하얀 햇살 안고 들어가

문을 닫은 숱한 사연의 고치들

수북이 쌓아 놓고

갈 길 찾아낼 수 있기를

빌면서

그 터널을 지나는 중입니다

 

눈발, 어둠으로 쏟아져도

아무 데에나 닿을 수 있는

하얀 길이 보이는 밤입니다

 

 

동지

윤보영

 

동짓날이라고

특별히 액운 쫒는 행사를

할 필요는 없어

네 생각이 다 막아 줄테니까.

내년에도 올해처럼

그대 생각 내 안에 담고

부지런히 살다 보면

행복하게 지나갈 테니까.

그래도

팥죽은 먹어야겠지?

 

 

 

동지 연가

윤보영

 

동짓날은

팥죽까지 먹어가며

액운을 막아야 한다지요

들어오는 액운을 막으려면

문도 닫아걸어야 하고.?

하지만 저는

문을 활짝 열어두겠습니다

설령 액운이 왔다 해도

감동하고 돌아가도록

그대 생각 더하겠습니다

 

 

 

동지 행복

윤보영

 

동짓날은

밤의 길이가 제일 길잖아.

길어진 만큼

너를 생각하는 내 생각도

길어지겠지.

보고 싶은 마음에

고생은 하겠지만

고생한 만큼, 내 안의

널 만나는 행복도 늘어나겠지

 

 

 

동짓날의 커피

윤보영

 

오늘따라 손님이 많이 찾아왔는데

하루 종일 눈까지 내렸어

그 덕분에

낮에는 여러 잔의 커피를 마셨어

동지가 되면 항상 그랬던 것처럼

오늘 밤도

너를 생각하는

내 생각의 길이도

한층 더 길어지겠지

보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길어진 내 생각만큼 늘어날 내 행복

- 달콤해

동짓날의 커피

 

 

 

동지(冬至)

윤춘순

 

해 짧은 겨울 녘

커다란 가마솥에다

대식구의 팥죽을 쑤든 어머니

 

나이 한 살 더 먹는다고

두 알씩도 비비며 동굴 동글

새알에다 소원을 담았지

 

붉은 팥물 끓어오르면

새알 속의 희망이 동동

 

해거름 녘

긴 그림자 드리우면

옹기종기 그릇마다

담기는 청운의 꿈 한 그릇

 

수십 번의 강산이 바뀌어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동짓날의 팥죽

그리움에 젖는다

 

 

 

 

謝順菴冬至豆粥 兼呈朴敬軒(사순암동지두죽 겸정박경헌)

이곡(李穀)

 

陽復堅氷事已非(양부견빙사이비)

曉窓冬粥莫予違(효창동죽막여위)

咄嗟金谷味雖好(돌차금곡미수호)

倉卒滹沱功不微(창졸호타공불미)

香積共分來紺宇(향적공분래감우)

侯鯖誰羨出朱扉(후청수선출주비)

何當鋤豆南山下(하당서두남산하)

草露霑衣帶月歸(초로점의대월귀)

 

 

순암의 동지 팥죽을 고마워하며 아울러 박경헌에게도 드리다

이곡(李穀)

 

동짓달에 얼음 어는 것은 잘못되었지만

새벽 창가의 동지 팥죽은 어김이 없네

순식간에 마련한 팥죽 맛이 비록 좋아도

창졸간에 올린 호타의 공도 작지 않았네

감우에서 나온 향적을 함께 나눠 먹으니

주비에서 나온 후청을 누가 부러워하랴

어찌하면 남산 아래 콩밭의 김을 매고

이슬에 옷 적시고 달빛 아래 돌아올까

 

 

 

뜨거운 팥죽을 먹으며

이근화

 

말 위의 사람도 떨어뜨린다는 팥죽 한 사발을 앞에 두고

숟가락이 무겁다 속을 훑어 내린다

입술이 점점 붉어지고

한 숟갈 한 숟갈 당신에게 더해진다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지는 죽음

 

팥죽 한 그릇을 해치우는 데 철학이 필요한 것은 아니지

지나가는 길이었고

모르는 사람이었고

낡은 식당이었는데

남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뜨거워졌다 가라앉았다

허기도 발걸음도 뒷모습도 나는 잘 모르고

반쯤 떠 있는 새알심을 건져 올릴 때

죽은 사람이 죽은 냄새가 죽은 목소리가 떠올랐는데

그것은 왜 뜨겁고 달콤한가

 

낡은 의자가 툭 꺼지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내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는 것일까

뻘건 죽 한 그릇에 돌아가지 못하고

기어이 땅에 떨어지고 만 사람들

 

귀신이 아니라 귀신 같은 얼굴로 뜨거운 팥죽을 먹었다

반쯤 열어 둔 창문으로 찬바람이 밀려들어 왔다

 

 

 

동지

이대연

 

긴 밤

기다림에 지친

세모의

을씨년한 동지(冬至).

 

팥죽 뿌려 액땜하고

새알심 씹어

앙살 풀어도

 

토라진 맘이야

어이

덜렁

풀리랴.

 

속아 산 한해

다시 맞는 절기

 

애끓는 여심(女心)

눈송이로 날린다.

 

 

 

팥죽할멈

이문구

 

팥죽할멈은

옥수수를 좋아해

오막살이 텃밭에

옥수수를 심었지.

줄줄이 총총 박힌

찰옥수수 심었지.

 

앞니뿐인 입

앙다물고

누가 불러도

대꾸조차 않았지.

 

이를 악물고 심어야

줄줄이 총총 박힌다고

다 심을 때까지

한눈 한번 안 팔았지.

 

 

 

동지 팥죽

이문조

 

1

어머니의 팥죽이 먹고 싶다

맛있는 찹쌀 새알이 들어 있는

 

어릴 적 동짓날

나이 수만큼의 새알을 먹었지

 

그때는

나이를 빨리 먹고 싶어

새알을 많이도 먹었는데

 

쉰 개도 더 먹어야 하는

지금

먹어야 할 새알이

너무 많구나

 

나이 더 먹기 싫어

좋아하는 팥죽도

많이 먹지 못하네.

 

 

2

오늘은

동짓날

새알 팥죽 먹는 날

 

처남댁이

팥죽 한 양푼을

쑤어 가져왔다

 

수년 전

남편 여의고

뚫린 가슴으로

한겨울 찬바람이

마구 마구 몰아쳐

가슴이 시리고

아릴 텐데

 

아직도

온기가 남아있는

팥죽 양푼을

받아드니

처남댁의 따뜻한 마음이

그대로 전해진다

 

이젠

떠나간 사람 잊고

시리고

아린 마음

이 팥죽처럼

따뜻해졌으면.

 

 

 

동짓날 저녁

이상조

 

절기상 밤이 가장 긴 동짓날 저녁

어머니의 밥상에 차려진 팥죽

옛이나 지금까지 면면히 내려와

어둠이 깊을수록

외로운 심사는 암울하게 만들었다

아직 시들지 않는 풀잎으로

나에게 다가온다면

저 떠내려가는 구름을 쫓으려

몸을 달군다

동짓날 저녁

하얀 새알을 빚으면서

새해를 생각하고

그동안 묵은 사고

다 내려놓았다

동치미 국물도 좋고

속살 같은 내 심정을 보여주었다

아직도 눈에 선한 어머니의 기도

내 발밑에 묻어둔다

 

 

 

두죽(豆粥) - 팥죽

이색(李穡)

 

冬至鄕風豆粥濃(동지향풍두죽농)

盈盈翠鉢色浮空(영영취발색부공)

調來崖蜜流喉吻(조래애밀류후문)

洗盡陰邪潤腹中(세진음사윤복중)

 

시골 풍속에 동짓날 팥죽을 짙게 쑤니

푸른 사발에 뜬 빛깔이 곱고 아름답네

꿀을 타서 입술과 목구멍에 흘려 내리면

음사를 다 씻고 뱃속도 부드럽게 하겠네

 

 

 

동지 팥죽

이영균

 

저 달은 해마다 동짓날 밤

팥죽 싣고 긴 은하수를 건너간다네

 

애 동지엔

팥죽을 쑤지 않아

불빛 죽여 숨어 가느라 밤이 어둡고

 

중 동지엔

죽 쑤어 사방 나누느라

불 밝혀 가느라 은하수 길 밝고

 

노 동지엔

죽을 많이 쑤어 차고 넘쳐

달빛 가려져 은하수 건너기 캄캄하다네

 

동짓날 죽었다던 망나니 역신

팥죽 먹고 오늘 밤만 피하고 나면

일 년 동안 무병한다네

 

작년엔 먹기 싫어

새알심이 한 알 남겼는데

한 살 더 먹고

 

역신 쫓아버리려면

올 노 동지엔

새알심이 두 알 더 먹어야겠네

 

 

 

동지의 밤

이원문

 

아가야 울지마라

문풍지 운다

아직 춥지 않으니

이제 그만 멈춰다오

 

그믐에 섣달이면

얼마나 추울까

미뤄놓은 쌀자루

저만큼이면 안 추울까

 

섣달그믐 문풍지라

그 정월 초하루

눈 쌓이고 바람 불면

칭얼대는 우리 아가 더 추울 것인데

 

 

 

동짓날

이향아

 

나는 지금 일 년 중 가장 깊고 그윽한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어둠은 팥죽의 새알심보다 든든하고 찰지다

크게 낭패를 당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내놓을 게 없는지

다 저문 녘까지 이루지 못한 꿈을

부끄럽게 진설한 제상 앞에서

이제는 그만 걷어 들이겠노라 인사를 올리고

처음이지만 마지막인 듯이

내가 건너온 그중 푸른 밤을 바친다

촛불은 잊었던 일들 하나씩 만화경으로 피워 올리고

나도 이제 헛된 미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도 같다

 

 

 

동지 팥죽

임석순

 

낮과 밤 사이

밤이 끝이 없나 해도

동구 밖은 밝아온다

 

고수레 나눠주고

팥죽으로 무서움 떨쳐

옛 조상님, 나눔의 지혜

 

일몰과 일출 사이

낮은 끝이 없나 해도

동구 밖 어둠은 밀려온다

 

착한 귀신(鬼神) 인간 사회

찾아들어 함께 나누며

공생으로 지켜낸다

 

* 귀신(鬼神) :

 

 

 

동지(冬至)의 시

임채성

 

절룩대는 걸음 뒤로 손수레가 끌려온다

너태 낀 차도 위를 카펫인 양 지르밟고

뉘엿이 기우는 노을 짐받이에 되작이며

 

한때는 누구라도 물오르는 꽃대였지

하지무렵 망초마냥 다퉈 피는 검버섯들

바람은 무릎 틈새로 칼 끝을 들이밀고

 

한숨처럼 피는 구름 하늘을 바장인다

지상에 내려 쉴 곳 남몰래 기웃댄다

어느새 정수리 위로 쌓이는 하얀 눈발

 

교회당 종루 끝에 불 켜는 개밥바라기

징글맞은 겨울이 징글벨을 타고 올 때

골판지 몇 장에 덮인 성탄절이 저문다.

 

 

 

동지(冬至)

장석남

 

생각 끝에

바위나 한번 밀어보러 간다

 

언 내() 건너며 듣는

얼음 부서지는 소리들

새 시() 같은,

 

어깨에 한 짐 가져봄직하여

다 잊고 골짜기에서 한철

일어서 남직도 하여

 

바위나 한번 밀어보러 오는 이 또 있을까?

꽝꽝 언 시 한짐 지고

기다리는 마음

생각느니

 

 

 

팥죽

장성희

 

동짓날 아침

절에 갔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신도님이 종전 같이 앉았다

 

참으로 지독한 놈이다

난 백신을 3차례나 맞았는데

그런데도 다니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액운을 없애고

새로운 시대를 맞이할 양

뜨끈한 팥죽을 먹었다

 

속으로 업장을 녹여야겠다는 생각으로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 귀가했다

 

저녁때의 슬픔은 갖지 말자는 법음

아직도 내 귀에 생생하다

 

 

 

동지

장종섭

 

동치미 한 사발에

찬바람 기웃거려

실 얼음 덮이고

 

한 그릇 퍼 놓은

팥죽 속에

 

홀로 된 이들

뒤척이는 섣달의

긴 밤은 언제 밝으려나

 

 

 

동지(冬至)

장지원

 

빛 바란 추억을

정신 번쩍 나게 깨워주는 절기

붉은 팥 시루떡

수수전병

팥죽

동짓달 이야기가 스멀스멀 살아난다

 

한해의 액운을 주름잡아 놓고

단 번에 떨어내면 만사가 편할 것 같은 어머니의 마음

민간에 소박한 신앙이다

 

동지가 다가오면

잠 못 이루는 밤

어머니 꿈을

연이어 꾸어도 긴긴 겨울밤

동짓달 겨울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면

힘든 한 해도

야윈 어머니의 손끝에서 물러나더라!

 

 

 

눈 녹는 날, 절집

장철문

 

공양주 할머니 마루 훔치는 소리

우리 할머니 태양초 너는 소리

 

어느 해 눈이 많이 온 동짓날

방학식 날

새알 빚던 손으로

언 손을 꼭 싸주셨지

그걸 기억하는 손이 꼬물거린다

 

문풍지에 눈 녹이는 햇살

 

할머니 두란 돌아가는 소리

헛기침 소리

 

마음이 노오란 미영꽃*으로 핀다

 

할머니가 이 몸으로 숨을 쉰다

 

* 미영꽃은 목화꽃의 고향 말이다

 

 

 

동지 다음날

전동균

 

1

누가 다녀갔는지, 이른 아침

눈 위에 찍혀 있는

낯선 발자국

 

길 잘못 든 날짐승 같기도 하고

바람이 지나간 흔적 같기도 한

 

그 발자국은

뒷마당을 조심조심 가로질러 와

문 앞에서 한참 서성대다

어디론가 문득

사라졌다

 

 

2

어머니 떠나가신 뒤, 몇 해 동안

풋감 하나 열지 않는 감나무 위로

처음 보는 얼굴의 하늘이

지나가고 있다

 

죽음이

삶을 부르듯 낮고

고요하게

 

- 어디 아픈 데는 없는가?

- 밥은 굶지 않는가?

- 아이들은 잘 크는가?

 

 

 

동짓날을 기다리며

정민기

 

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

꿈속의 새 한 마리처럼

다가온 그녀는 동짓날에 태어났다

아침에 미역국 대신

동지팥죽을 먹을 그녀가

입가에 팥죽 미소를 묻히고

인사를 해줄 것만 같다

긴긴 동짓날 밤처럼 지루한 어둠은

모든 헛된 꿈을 버리고

이루어질 꿈만 꾸게 한다

그녀는 생일인 동짓날 전에 내 시집

한 권을 받으면 뒤표지부터 볼 것이다

그녀의 이름 석 자가

꿈처럼 뒤표지에 적힌 까닭이다

그녀의 생일인 동짓날을 기다리며

또 나는 긴긴밤에 태어날 시 한 편을 꿈꾼다

그녀만큼이나 따뜻한 그녀의 어머니

 

 

 

마감 뉴스

정민기

 

오늘의 마감 뉴스는

내일은 동지(冬至)이고

 

그녀의 생일이라는

소식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나는 이 소식들을

이미 다 알고 있어서

 

그녀 생각을 덮고

일찍 잠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오늘 밤

꿈속에서

어느 별을 지나게 될까

 

지금 생각해보니

마감 뉴스 후

 

그녀의 마음 날씨를 못 본 걸

밤하늘 떠 있는 별처럼

내내 반짝거렸다

 

 

 

동지 팥죽

정연복

 

어릴 적

동짓날이면

 

외할머니가 정성껏

만들어 주신

 

찹쌀을 동글동글 빚은

하얀 새알심이 든

 

불그스름한 팥죽 맛

지금도 혀끝에 남아 있다.

 

계절은 돌고 돌아

해마다 이맘때면

 

동짓날은

어김없이 찾아오건만

 

외할머니는 이제

내 곁에 없네.

억만금을 주고도

사 먹을 수 없어

 

맘속 추억으로만

되새김질하는

겨울 추위도

잠시 잊게 했던

 

외할머니의 뜨거웠던

동지 팥죽 한 그릇.

 

 

 

동짓날

정연복

 

한 해 중에 밤이

가장 긴

 

오늘이 지나고 나면

내일부터는

 

밤은 짧아지고 낮이

점점 더 길어지리.

 

생의 어두운 밤도

그렇게 가는 것

 

흘러 흘러서 가는

세상살이에

 

끝없는 어둠이나

슬픔 같은 것은 없어

 

내 가슴속 어둠이

절정을 이룬 다음에는

 

어둠은 내리막을 걷고

빛의 시간이 차츰 늘어나리

 

 

 

동지(冬至) 팥죽

정찬열

 

동짓날이면 함께 먹던

어릴 적 생각에 젖게 한다.

찹쌀 농사 귀한 쌀로

곱게 빻아 만들어주신 동짓날 팥죽

 

물에 불린

찹쌀을 물기를 빼고

디딜방아에 찧어다가 가는 체로

체질하여 고운 가루 만들고

빨간 팥을 물에 삶아 팥물 끓여서

 

체로 친

쌀가루로 반죽하여

둥글둥글 팥죽 알 만들어서

끓는 물에 풀어 넣고는

 

행여나

얼멍덜멍 얽힐세라

주걱으로 저어가며 끓인 팥죽을

 

성주 상에

올려놓고 빌고 비신 후

지붕에다 뿌리시며 주문을 외우시고

온 가족이 포식하든 동짓날 팥죽

 

팥죽 손맛이

정성이 그리운 동짓날에

악귀를 쫓는다며 읍을 청하고

공이 듬뿍 정이 뭉쳐진 어머님 동지 팥죽

 

 

 

동짓날

제갈일현

 

어린 시절

어려웠던 그 시절

 

동짓날 저녁이면

이웃집 아지매 기다렸다

 

팥죽 한 그릇

얻어먹을 요량으로

눈길은 자꾸 삽짝 밖을 향하고

 

물만 채운 배에서는

눈치도 없이

자꾸만 꽈리소리가 났다

 

 

 

신축년 동지(冬至)에 부쳐

조동운

 

신축년 동짓날이 1222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짧다는

일양이 시샘하는

음양의 시간이 바뀌는 분기점

이날을 일러 동지라 한다

 

유달리 힘들었던 한해가 또 저물어 간다

어느새 동지죽 한 그릇에 나잇살만 늘어나고

지금도 늘어만 가는 감염병 통계

신축년 모진 풍파 이제는 모두모두 떠나라

 

? ? 이렇게도 경제는 어렵고

삶이 무거운데

더하여 오미크론까지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가?

 

 

 

동지

조용미

 

태양이 죽음으로부터 부활하는 날

우레가 땅속에서

가만히 때를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비익총에 든 두 사람의 뼈는 포개어져 있을까요

생을 거듭한 지금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붉고 노랗고 창백한 흰 달에 이끌려

 

나는 언제까지고 들길을 헤매 다니지요

 

사랑이나 슬픔보다

더 느리게 지나가는 권태로 색색의 수를 놓는 밤입니다

 

하늘과 땅만 자꾸 새로워지는 날

영생을 누리려 우레가 땅을 가르고 나오는

적막한 우주의 한순간입니다

 

 

 

눈 내리는 동지(冬至)

조위제

 

동지 아침에

눈이 내린다.

일 년 중 마지막 절기

동짓날

붉은 팥죽 끓여

집안 곳곳에 뿌려서

잡귀들 몰아내고

장독 위에 정성 한 그릇

두 손 비는 어머님

수건 쓰신 머리 위에

하얀 눈이 내리네

 

 

동지 팥죽

조위제

 

엄동설한

추운 마당 한 편에

가마솥 걸고서

매운 장작 연기 피고,

붉은 겨울이 끓는다.

풀떡, 풀떡

하얀 새알이

고개 내밀어 인사하고

숨어버린다.

붉은 나이를 먹는다.

속절없이 한 해가 간다

 

 

 

동지섣달 어머니

최명운

 

동지섣달

문풍지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에

호롱불은 꺼질 듯 기울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어머니 심지 같았습니다

 

눈이 하얗게 쌓인 겨울밤

어머니는 다듬이 방망이로

심신(心身)을 다스렸습니다

정겹게 들리다가 갑자기 빨라지며

리듬과 박자를 맞추며 한을 달랬습니다

 

살림이 넉넉하지 못한 쪼들림 때문에

부잣집 옷을 풀칠 다듬이질 해야

그 옛날엔 한 푼을 벌었으며

고구마나 감자가 주식이었으니

 

콩나물밥이나 무채 밥을 그것도 어쩌다

한 번 해줄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 옛날 동지섣달 그때는

정말 눈이 많이 내린듯하고

 

계곡에서 부는 삭풍도

더 차갑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새벽녘 산골짜기 덫에서

산토끼 한 마리 잡아올 때는

 

자식에게 떳떳하지 못한 어머니 심기도

활짝 갠 봄날이었습니다

을씨년스러운 겨울밤

어느 곳 어디 추운 곳에서

 

또 다른 친구가

달을 보고나 있지 않을까요

 

 

 

동짓날

최순명

 

구석진 벽에 뿌려지는

붉은 팥죽 위로

 

천정에 놀던 쥐가

그림처럼 그린

지도가 선명하다.

 

밥상에 둘러앉은

정겨운 모습을 질투하는 백열전구

 

대들보 같은 누렁이와

마당 한쪽 강아지도

배고픔을 달랜다.

 

달과 별이 싱긋 웃는 밤

속삭이듯 계절의 숨소리

 

그 겨울은

벽에 뿌린 죽의 공덕인지

따뜻하기만,

 

매년

팥죽은 먹을 수 있지만

세월 따라 떠난 임은

 

 

 

식은 팥죽

최영호

 

남루한 내리막길

밭고랑보다 깊은 주름진

어머니의 동지 팥죽

아침에도 외면하고

저녁까지 돌아앉은 외톨이 신세

 

왜 그래 세월이 왜 그래 세상이

굳어가는 단련의 시간

소보다 더딘 발걸음

길고 긴 하룻길 어둠만 내린다

 

막걸리와 물김치 쪼가리

비대면 방침의 밤은 처량도 하다

 

식어버린 죽사발

홀로 나이를 먹는지

찌그러진 한해가 나이테를 그리고 있다

 

 

 

동짓날 밤

최홍윤

 

1

해거름에는

눈발이 날렸는데

내가 잠 못 이루는 지금쯤,

고향 집 처마 밑에는 내리는 눈송이만 바쁘겠다

싸늘한 뒤뜰에 적막이 돌고

마당 가에, 감 가지에 쌓이는

눈송이만 외롭겠다.

벌건 장작불에 타던

우리 할머니의 애간장이

아직도, 가마솥 전에 이슬로 흘러내리겠다

이 그리움을 어이 할 거나

이 외로움을 어이 할 거나

날이 밝으면, 눈길 헤치고 저작거리에 나가

팥죽 같은 할머니의 손을 꼬옥 잡고

나잇살이나 더 먹어 볼 거나?

그래도 창가엔

하이얀 소망이 소복이 쌓이는

길고 긴 밤이다

 

 

2

내 묵은 그리움만큼이나

깊디깊은 밤이다.

 

저물녁에 간혹 날리우던 눈발이

목화송이 되어 펄펄 내린다

 

지금쯤

원초적인 내 그리움의 도가니

고향 산하 가곡천 냇가에

내리는 눈송이만 바쁘겠다.

 

팥죽 쑤던 우리 할머니

애간장 태우던 가마솥 걸린 뒷뜰

댓닢에 속삭이며 장독대 위

소복이 내리는

눈송이만 외롭겠다.

 

창밖에

희미한 가로 등불도

가는 세월에 가물거리고

도심에 내리는 눈송이

아득한 그리움에 허공을 휘졌는데

차디찬 외로운 고요에

눈 이슬 맺히는 긴긴밤이다.

 

여명에 저잣거리에 나가

내 할머니처럼 생긴

팥죽 같은 할머니의 손 꼬옥 잡고

팔다 남은 팥죽 다 사오리다

 

오는 길에는 눈싸움하는 아이들

아이들의 까르르 웃음으로

모처럼 우리 동네가

환해지는 아침이면 좋겠다

 

 

 

동짓날 밤에

최홍윤

 

왠지 모르게

잠 못 이루는 긴긴밤이다

해 질 녘에 하얀 눈발이 날렸는데,

 

지금쯤,

고향 집 처마 밑에는

눈송이만 바쁘겠다

 

싸늘하고 적막한 뒤뜰에,

마당가 감가지에,

내려앉는 눈송이만 외롭겠다

 

빨갛게 타는 장작불

할머님이 가슴을 태워 쑤던 가마솥에 팥죽,

난데없는 겨울 밤이슬이 벼개 닢을 적신다

 

이 그리움을 어이할 거나,

저 외로움을 어이할 거나,

 

날이 밝으면

눈길을 헤치고 저작거리에 나가

팥죽 파는 낯선 할머니의

차가운 손을 꼭 잡아볼 거나

 

창가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데

동짓날 나의 밤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동짓날 아침

최홍윤

 

동짓날 새벽 여섯 시

창이 훤해지더니 가는 밤이 아쉬워

갑자기 세상이 또 한 번 캄캄해진다

내려가는 차 소리는

쏴 하게 바람을 몰아가고

올라가는 차 소리는 부렁부렁

어둠을 몰아간다

 

똑딱똑딱 시계 바늘에

세월이 가는 소리

어둠도 미련이 남아 오다가다 하는데

허공에 떠도는 긴긴 밤에 영혼

난들 미련이 없겠는가마는, 이제

짧은 해 다 가고

기나긴 밤도 다 가고 마는 날

그 무엇이 더 남겠는가?

 

날이면

날마다 새날이지만

내일부터는 진정 새날이겠다

실은, 절기로 치면 동지 지나

낮 시간이 길어지는 첫날

바로 내일이 새해 첫날이 아닐까 싶다

여하튼 잠 생이라고 부르는 내게는

짧아지는 밤이 못내 섭섭할 따름이다.

 

 

 

동지

하영순

 

하루는 24시간

일 년은 24절기

그중

오늘이 스물두 번째 절기

낮과 밤이 절정이다

흔히

팥죽을 먹으면 한 살 먹는다고 하지

한 살을 먹었으니

줄어들어야 하는데

줄어드는 것 육신뿐이다

 

 

 

동지 팥죽에 비친 삶

하영순

 

김치에 된장찌개

평생을 길들어진 혀

어쩌다 한번 맛본 외식

아련한 미각도 한두 번

느끼하고 느글거려

담백하고 깔끔한 김치 맛을 돌아본다

외식에 의존하는

직장 생활

때만 되면 어찌 괴롭지 않으리

보글보글 끓는 된장 냄새

사랑이 있고

너그러움이 있는 아늑한 주방

그 속에서

몇 해를 보냈던가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두 손 모아

참회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새알을 비빈다

 

 

 

엄마의 베틀

하영순

 

내 어릴 때 어머니는

동지섣달 긴긴밤 늘 물레를 자았지

솜 꼬치로 실을 뽑아 모아둔

무명실

베를 날아 베틀에 걸어

한 올 한 올 역어 베를 짜서

우리 옷을 만들어주셨지

우리는 호롱불 아래서

그 실로

양말도 짜고 장갑도 짜고

그러다가 나이론 양말이 나왔지

이것이 우리 삶의 역사

천년 섬유

무명이 요즘 다시 좋아 지면서

추억 속의

어머니 베틀이 생각난다.

 

 

 

동지(冬至)ㅅ 달 기나긴 밤을

한명희

 

언니 언니 진이 언니

오늘따라 밤이 왜 이리 길으우

울리지도 않는 전화통

부수지도 못하고 붙어 서 있수

이 뒤숭숭한 심사

아무리 날씨 탓일까

허기사 추적추적 비오는 날은

생각이 갑절로 많다우

하고픈 마음이야

애써 끊어낸다지만

오늘 일당 공친 건 어쩌우

현지처 노릇하는 언니 팔자

부럽수

 

 

 

동지섣달

한재만

 

무성영화의 푸른 필름들이 먼저

하얀 달빛에 빼앗기고 있어요

타다 남은 붉은 노을빛이 길을 잃고

벌거벗은 기억의 살 몇 점마저

길섶 질경이의 뿌리 아래에서

방황해요, 얼굴 없는 바람의 검이 쏜살같이

우리들의 건강한 입맞춤을 가르고

아버지의 아버지 적 풍장이 입을 벌려

한 점 점액을 강탈해 가요

칼바람을 토해내며

거구로 일어서는 저 어둠의 수렁,

봄은 아직도 기별이 없어요

 

 

 

동지(冬至)

함민복

 

한석봉 어머니 깜박 책을 써는 사이

한석봉이 꾸벅 떡을 읽는 사이

 

 

 

동짓달 기나긴 밤을

황진이

 

동지(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어

춘풍(春風) 니블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동짓달 기나긴 밤의 한가운데를 베어 내여

봄바람처럼 따뜻한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정든 임이 오시는 밤에 굽이굽이 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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