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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하(立夏)

강연호 입하(立夏)

곽효환 - 입하

김문철 - 입하

김영천 - 입하(立夏)

김영천 - 오늘은 입하(立夏)

김용화 - 불두화 피는 밤 입하(立夏)

김이상 - 입하

박성우 - 입하(立夏)

박신규 - 입하(立夏)

박종영 - 입하, 여름 시작의 오후

송영희 - 입하(立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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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 봄날 입하

이성하 - 입하와 소만

이채 - 봄과 여름 사이

장광규 - 입하

정학유 - 농가월령가 사월령

최백규 - 입하

 

 

 

입하(立夏)

강연호

 

이팝나무꽃 피면 여름이 온 줄알아라

설마 이팝나무꽃을 보고 배고픈 시절을

떠올리지는 말자 고픔에도 예의가 있다

고픔이 성스러운 시절이 있었다

그저 그렇게만 말해도 될 것 같다

이팝나무 꽃피면 마음 고픈 줄 알아라

새로 도로가 나고 가로수들이 심어지고

그때 무심히 지나쳤던 어린나무들이

오늘 저렇게 한꺼번에 꽃 피워 제 명함을 들이민다

저요 저요, 고른 잇속을 하얗게 하얗게 드러내며

이팝나무를 이팝나무로 알린다

겨울 내내 창백한 얼굴은 불쑥불쑥 방안에

들이밀어 적잖이 당황시키던 햇살도

낮이 길어지면서 이제는 들어올 생각조차 않는다

노숙할 만큼 날이 풀렸다는 것이냐

문득 나도 집으로 가는 길을 놓치고 싶다

시절 다 갔는데, 아직도 간간 마음의 눈곱

언제 다 뗄래!

저기 오늘 밤도 잠들지 못할 주요소가

까칠한 불빛을 깜빡깜빡 대신 쓰다듬는다

어둠이 지루하게 번지는 저녁

이팝나무꽃 피면 꽃그늘 아래 가출한 줄 알아라

 

 

 

입하

곽효환

 

담장 너머 다시 꽃이 피었다 지고

산 너머 봄이 머물다 가면

 

손톱 끝에 봉선화 꽃물

대롱대롱 매달려

아스라이 져 가는데

 

노을빛 고운 저녁 무렵

바람을 타고

 

작은 그리움이 큰 그리움을 부른다.

작은 슬픔이 깊은 슬픔을 부른다.

 

그리고 혹은 그렇게

여름이 왔다

 

 

 

입하

김문철

 

내는

봄이 오는 소리를

내는

봄이 가는 소리를

듣지 못하여

 

입하(立夏)

이때부터 여름이 시작된다고 한다

양력으로 55일경이다

 

밤새

비 오고,

바람 불고 세상 흔들어

무엇인가 하였지요

 

요란스럽게 여름이 오는지라

여름이 오는 소리를

들었지요

너는 장미꽃 피어나면

여름이 오는 것이라고,

내는 이팝나무 피어나면

여름이 온다고 말하고 싶다

 

 

 

입하(立夏)

김영천

 

소리소문없이

홀로 푸르러 와서는

구석 구석마다

우우 달떠 일어나게 한다

숲마다 이렁이렁이며

꽃은 피우고 지고

짝 이룬 둥지마다

햇새끼 깰라

가시 나들이 진작에 참지 못해

맨살로 환히 뛰쳐나가서는

햇살이 외려 부끄러워

쿵쿵 가슴이 뛴다

나는 아직도

봄을 다 여의지 못했는데

그대는 날마다 소문처럼 참

급하다

 

 

 

오늘은 입하(立夏)

김영천

 

어깨에 떨어진

꽃잎을 툴툴 털고 일어서니

우루루 돋아난 새잎들이

모든 길이 된다

 

가고 오는 것들

늘 감회롭긴 하나

꽃 진 자리마다

저 푸른 하늘

 

오늘은 미리 봄을 여의고

새로운 소망처럼

네 안에

불쑥 들어와 설까

 

그 허당 안에

눈물같이

동그랗게

나를 맺는다

 

 

 

불두화 피는 밤 입하(立夏)

김용화

 

워낭 소리 무심히

빈 뜰을

채우는 밤

몽실몽실

달 아래

불두화 벙그는 소리

외양간 소가

귀 열고

가만-

눈 감으시다

 

 

 

입하

김이상

 

비가 내리니

곡우 입하가 생각난다

 

솟은 건 모두가

시멘트의 위용뿐이지만

자잘한 쇠뜨기의 마디마디에서

냉정했던 히말라야 삼목(杉木)

연하디 연한 바람에서도

빌딩을 떠올리게 하는

푸른 생명이 인다.

 

풀들도

잎새들도

모두들 하늘을 향하지만

캄캄한 땅속

펄럭이는 아우성에

자꾸만 작아지는 나의 그림자

빗소리에 여름서는 소리가 무성하다.

 

 

 

입하(立夏)

박성우

 

새너디 할매가 마늘밭 풀을 맨다

 

일자도 장소도 틀림없이

지난해와 똑같은 날, 똑같은 밭이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미숫가루 한 그릇 타드리고

쑥떡 한 덩어리 얻어먹는데,

해지기 전에 비가 칠 것 같다는

한 소식 전해 주신다

이런 날 모종이 잘된단다

그래요?

 

부랴부랴 읍내 종묘상 다녀와서

고추 모종을 한다

가지 모종을 한다

수박 모종을 한다

호박 모종 심는다

단호박 모종도 단단히 한다

어라, 진짜네?

 

해지기 전 비가 쳐서

강변에 매어 놓은 염소 먼저 들인다

 

굵은 비 아까워서

물외 모종 심는다

참외 모종 심는다

토마토 모종 심는다

빗방울도 방울방울

방울토마토와 같이 심는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저녁 무렵 입하비가

마늘쫑 뽑는 소리처럼 온다

 

 

 

입하(立夏)

박신규

 

총상화서로 번진 파국,

땀내 찌르는 미련처럼

자욱하다 아까시 찔레 향기

변심한 너의 꽃결 냄새

세상 망가졌다, 죽겠다

쓴다 마지막 편지

하이고메 정신 나갔는갑서야

고향 집 담을 넘어오는 미영이 어메 탄식,

찔레 가고 아까시아 지는디

깨도 안 숭구고……

 

다 가고 지는 봄날에는

깨를 심어야 한다

정신 나간 편지를 찢고

봄비 긋는다

 

 

 

입하, 여름 시작의 오후

박종영

 

뒷산이 쩌렁쩌렁 울리게

산 꿩이 훼()를 친다

신방을 차리자는 장끼의 유혹인가,

까투리 곰곰이 생각하다 풍만한 가슴을

장끼에게 내민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여름 시작의 오후는

초록 그늘에서 저것들의

야릇한 유희(遊戱)를 만끽(滿喫)하게 하고,

청보리 익을 무렵,

어느새 회색 알을 깨고 나온

현란한 장끼를 닮은 꺼병이가 줄줄이

이랑 따라 펼치는

작은 천국의 풍경들,

가는 봄이 아쉬운가

산 바위 가슴에 봄의 무게를 잡아매는 더운 바람이

연초록의 산그늘을 펼치는데,

우리는 어찌해야 너희

장끼 가족의 빛나는 요정(妖情)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가.

 

 

 

입하(立夏)

송영희

 

소식이 없어 혈관마다

터질 것만 같았다

조금씩 부풀리다

활짝 핀 햇살

길가엔 종일 눈부신 풍선들만

가득했다

끝내 간간히 흔들리며

산당화 붉은 속잎 떨구고

그 작은 어깨 너머로

산으로 올라가는

초록의 시간들이 보였다

 

 

 

입하

윤보영

 

오늘부터 여름이다

봄꽃이 너무 많아

아직 다 데려오지 못해

아침 기온이 서늘한 여름이다

내 안에

마중 나와 데려온

네 생각이 무성하게 들어찬

여름이다

꽃 보다

네가 더 보고 싶을

여름이다.

 

 

 

입하(立夏)

이기호

 

산장의 논배미에서

개구리가 울고

지렁이가 꿈틀댄다

철새는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아내는 볼가심*으로

쑥 버무림 부침개 저냐*

마련의 분주 하구나

나들이 가지 말라 한다

외양간 처야 하고

광 방 정돈하고

농기구 찾아 챙겨두고

할 일이 많다 한다

출출하다 말하소

잘 드시어야

여름지이 하시니 그러지라.

* 볼가심 : 적은 음식으로 시장기나 면하는 음식.

* 저냐 : 물고기나 쇠고기 붙이를 얇게 저민 뒤에 밀가루를 바르고 달걀을 씌워서 번철에 지진 것.

 

 

 

봄날 입하

이문재

 

초록이 번창하고 있다.

초록이 초록에게 번져

초록이 초록에게 지는 것이다.

입하다.

늦은 봄이 넌지시

초여름의 안쪽으로 한 발

들여놓은 것이 아니다.

여름이 우뚝 서는 것이다.

아니다.

늦어도 많이 늦은

떠났어도 벌써 떠났어야 하는

늦은 봄이 모르는 척

여름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것이다.

초록이 초록에게 져주는 것이다.

죽는 것은

제대로 죽어야 죽는다.

죽은 것은 언제나 죽어 있어야 죽음이다.

죽어서 죽는 것은 기적이다.

 

초록에서 초록으로

이별이 발생한다.

이토록 신랄하고 적나라하지 않다면

이별은 이별이 아니다.

오늘 여기 입하

지금 여기 이렇게 눈부시다.

 

 

 

입하와 소만

이성하

 

바람조차 푸르다

해 뜨면 나비 날아들고

산마다 소나무꽃 송홧가루

으아리 꽃향기 날고,

들에는 노란 아제비 꽃

여름 기운 일어서는 곳

뻐꾸기 뻐뻐꾹

구슬피 울어대면

오솔길에 홀로 누운

언니 생각이 나

가슴은 눈물범벅

진달래 한 묶음 꺾어 드니

무수한 풀빛 위에

초여름 산들 빛이

내려와 날개 펴들고

한 줄기 바람에

채우고 여물어가니

땅의 세월이나 사람의 세월

다른 것이 없네

저만치 물러나 앉은

바다의 기억들도

푸르게 싱싱한 오월

예스러운 자리

그곳에 가면

깨끗한 자아를 만나

입하 소만의 푸른 그늘 아래

풍요의 삶을 노래하고 싶다

 

 

 

봄과 여름 사이

이채

 

겨울은 덥지 않아서 좋고

여름은 춥지 않아서 좋다는

넉넉한 당신의 마음은

뿌리 깊은 느티나무를 닮았습니다

더위를 이기는 열매처럼

추위를 이기는 꽃씨처럼

꿋꿋한 당신의 모습은

곧고 정직한 소나무를 닮았습니다

그런 당신의 그늘이 편해서

나는 지친 날개 펴고

당신 곁에 머물고 싶은

가슴이 작은 한 마리 여름새랍니다

종일 당신의 나뭇가지에 앉아

기쁨의 목소리로

행복의 노래를 부르게 하는

당신은 어느 하늘의 천사인가요

나뭇잎 사이로 파아란 열매가

여름 햇살에 익어가고 있을 때

이 계절의 무더위도 신의 축복이라며

감사히 견디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입하

장광규

 

옛날엔

24절기 중 하나인

입하(立夏)가 되면

빠르지도 않고

늦지도 않게

여름이 찾아왔다

 

지금은

입하가 있는지

입하가 언제인지

여름은

제 멋대로 왔다

제 맘대로 간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4월령

정학유

 

사월이라 맹하(孟夏) 되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

비 온 끝에 볕이 나니 일기도 청화(淸和)하다

떡갈잎 펴질 때에 뻐국새 자로 울고

보리 이삭 패어 나니 꾀꼬리 소리 난다

전사(田事)도 한창이요 잠전(蠶田)도 방장(方長)이라

남녀노소 골몰(汨沒)하여 집에 있을 틈이 없어

적막한 대사립을 녹음(綠陰)에 닫았도다

면화(棉花)를 많이 갈소 방적(紡績)의 근본이라

수수 동부 녹두 참깨 부룩을 적게 하소

무논을 써을이고 이른 모 내어 보세

전량(田糧)이 부족하니 환자(還子)를 타 보태리라

 

* 부룩 : 논밭 두둑이나 주된 작물 사이사이에 딴 작물을 듬성듬성 심는 일

* 써울이고 : 써레질을 하고

* 還子 : 나라에서 농민에게 봄에 빌려 주었다가 가을에 받아들이는 곡식

 

한잠 자고 이는 누에 하루도 열두 밥을

밤낮을 쉬지 말고 부지런히 먹이리라

뽕 따는 아이들아 훗 그루 보아 하여

고목은 가지 찍고 햇잎은 제쳐 따소

찔레꼿 만발하니 적은 가물 없을소냐

이때를 승시(乘時)하여 나 할 일 생각하소

도랑 쳐 수도 내고 우루처(雨漏處) 개와(蓋瓦)하여

음우(陰雨)를 방비하면 훗 근심 더 심 없나니

봄낳이 필무명을 이때에 마전하고

베 모시 형세대로 여름옷 지어 두소

벌통에 새끼 나니 새 통에 받으리라

천만이 일심하여 봉왕(蜂王)을 옹위(擁衛)하니

꿀 먹기도 하려니와 군신분의(君臣分義) 깨닫도다

 

* 우루처(雨漏處) 개와(())하여 : 비새는 지붕에 기와를 갈아 넣어서

 

파일(八日)에 형등(熒燈)함은 산촌(山村)에 불긴(不緊)하니

느티떡 콩찐이는 제때의 별미로다

앞내에 물이 주니 천렵(川獵)을 하여 보세

해 길고 잔풍(潺風)하니 오늘 놀이 잘 되겠다

벽계수(碧溪水) 백사장을 굽이굽이 찾아가니

수단화 늦은 꽃은 봄빛이 남았구나

촉고(數罟)를 둘러치고 은린옥척(銀鱗玉尺) 후려내어

반석에 노구솥 걸고 솟구쳐 끓여 내니

팔진미(八珍味) 오후청(五侯鯖)을 이 맛과 바꿀소냐

 

* 촉고(數罟) : 그물코가 아주 작은, 잔고기를 후리는 그물

* 은린옥척(銀鱗玉尺) : 비늘이 번쩍거리는 펄펄 뛰는 싱싱한 고기

* 노구솥 : 놋쇠나 구리로 만든 작은 솥

* 八珍味 : 8가지 진기한 음식. , 용의 간(龍肝)봉황의 골수토끼의 태(兎胎)잉어 꼬리징경이 구이곰의 발바닥(熊掌)성성이 입술(猩唇)표범의 발굽(豹蹄)

* 오후청[五侯鯖] 청은 산해의 진미를 섞어 끓인 음식

 

 

 

입하

최백규

 

목련 그늘 옆에서 네가 허묘를 파고 있다

착한 아이야 여기 몸을 가지런하게 벗어두고 떠났구나

어린 가지에 걸린 낮달이 해지듯

나는 시름없이 누워 피가 도는 입술을 문 채 앞으로 식어갈 바람 따위를 헤아려 본다

슬하의 산등성이가 뼈와 살을 털고 흰 영혼을 몰아쉴 때까지

백지를 넘기며 싯푸른 목탄 냄새나 맡고 싶다

좋은 날마저 하품하듯 마르고

툭 하니 돌을 골라내는 손을 보면 헛웃음이 샌다

잔풀 아래서 함부로 헤집어지는 일을 열사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새끼를 치는 고라니가 처서 즈음을 건너다보고

그 깊은 눈동자 뒤에서 무언가

무너지고 있다

돌아가자 목이 잠기고 안색이 흐릿하니까

정말로 목련 나무가 마냥 져버렸으니까 우리 인제 그만 모두가 기다리는

집으로 가자

이곳은 내륙인데 여러 물새가 새의 모양을 하고 해안선 너머로 터뜨려진다

숨이 따뜻한 너와 지상에서 만나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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