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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가을 숲, 나무

강한익 - 가을 숲 소묘(素描)

고은영 - 가을 나무들

공석진 - 가을 숲으로 가자

구연배 - 가을 숲에서

구연배 - 가을 숲의 풍경

구은희 가을 숲

권승주 가을 나무

김강좌 가을 숲은

김관호 태동하는 가을 숲

김광협 가을 숲

김덕성 - 가을 나무

김문회 - 가을 숲에서

김수미 가을 숲

김시탁 - 가을 숲을 보며

김용두 가을 나무

김일영 - 가을 숲속에서

김주수 가을 숲

김현주 가을 숲

김현태 - 가을 숲에 핀 당신

나태주 가을 숲

나호열 - 가을 나무에게

노정혜 - 가을 나무

도지현 - 가을 숲, 그곳에서

박광호 가을 숲의 평화

박미리 - 알밤과 가을 숲

박인걸 - 가을 숲

박인걸 - 가을 숲길에서

박정근 가을 나무

박제영 - 가을, 숲에 들다

박종영 - 가을 나무를 위하여

박종영 - 가을 숲에서

반기룡 가을 숲

백낙원 가을 숲에선

백원기 - 가을 나무

백원기 가을 숲

서지월 - 가을 나무가 비에 젖고 있다

석화 가을 숲에 들면

손종일 - 가을 숲을 지나다 보면

안재동 가을 나무

양해선 가을 나무

오길원 - 가을 숲의 비밀

오승한 가을 나무

옥윤정 - 가을 나무 마음

용혜원 - 가을 숲

유소례 - 가을 숲에 빠지다

유안진 - 가을 나무

이도연 가을 나무

이도연 - 가을 나무 빈 바람

이도연 - 가을로 가는 숲

이도연 - 가을 숲으로 가는 길

이도연 가을 숲의 사색

이동희 가을 나무

이민숙 - 가을 숲을 탐닉한다

이옥순 - 가을 나무

이유리 가을 숲

이종숙 - 가을 숲길

이해인 - 내 마음의 가을 숲으로

이훈식 가을 나무

임은숙 - 가을 숲길

임은숙 - 가을 숲에서

임은숙 - 가을 숲에서 답을 찾다

임재화 - 가을 숲의 정취

장근배 - 가을 숲의 반항

장은수 - 가을 나무 아래서

장진순 가을 숲

정세일 - 가을 숲속에 의자 하나

정용진 가을 나무

정재영 - 기도하는 가을 나무

정태현 가을 숲

최동호 가을 숲

최송연 가을 나무

홍수희 가을 나무는

황진성 가을 나무

 

 

 

가을 숲 소묘(素描)

강한익

 

고운 햇살

가을 숲 기웃거리며

어미 품 떠나는 수목(樹木)의 잎새에

이별의 손을 흔든다.

 

한여름

목청 높여 노래 부르던

산새들 어디로 가고

둥지 속에 몸 감춘

까마귀 합창 소리

익어가는 가을 숲에 메아리치며

 

산자락

이름 모를 들꽃은

멀리 떠나버린

벌 나비 불러 보지만

소슬바람만 가슴에 안겨준다.

 

 

 

가을 나무들

고은영

 

아주 작은 목소리

나지막한 속삭임으로 술렁이는 숲속에

눈치 빠른 은행나무가 맨 먼저 가을을 알아채고

누렇게 뜬 얼굴로 가을을 알린다

모두들 낮게 엎드리세요

가을이에요

자작나무 놀란 동공에 청잣빛 하늘이

파랗게 파랗게 내려와 번졌다

 

나무들은 서로를 비벼 본다

갈망하는 생의 본질에 대하여

작별은 늘 반짝하고 타오르는 황홀한 빛

빠른 걸음으로 걷는 바람의 기별에

자작나무 미루나무 느티나무 속이 타는데

저 게으른 플라타너스 나무는 아직까지

무심한 가을의 악보를 믿지 못하고 있다

 

갈대의 첨예한 쇳소리 울음이

가을 강 하구를 온통 휘돌아

속절없이 바다를 울릴 초겨울이 돼서야

파르르 떨고 섰는 플라타너스 나무는

뭉클한 커피색 완장을 차고

서리 오는 골목 눈치 없는 그늘로

아차 싶게 느즈막 가을빛에 제 이파리들을

팔랑팔랑 띄워 보낼 모양이다

 

 

 

가을 숲으로 가자

공석진

 

숲으로 가자

상처뿐인 빈자리

아파서

많이 아파서

신음하는 숲으로 가자

 

바람 이는 소리에

행여 임이 오실까

하얗게 새는 밤

동 터 오는 새벽

사랑은 절망한다

 

하도 그리워

파리해진 낙엽

정이 땅에 떨어져

숨죽이는 숲에

입 맞춘다

 

입술 깨물며

조붓이 닫히는 숲

길 떠나지 못하는

슬픈 가을

숲으로 가자

 

 

 

가을 숲에서

구연배

 

말없이 떠나간 꽃들아

새들아

이별 연습으로 요란했을 그대들의

마지막 날을 나는

귀 기울이지 못했다.

 

눈치 채지 못했다.

나무들도 쓸쓸함을 견디려

옷을 벗어버렸다.

가진 것이 많으면 더 외로워지는 세상

힘이 되어준

따뜻한 그늘을 추억하며

 

꽃자리 언덕에 서서

올려다보는 하늘 저 멀리

날아간 길이 보이고

그 곁에

흰 구름 흘러간다.

 

안개 깔리며

지우고 또 지우는 풍경 속으로

낙엽을 밟으며

 

씨앗을 묻는 흙바람 소리 들리고

아무도 빈 둥지 허물지 않는다.

돌아올 믿음을 간직한 채로.

 

 

 

가을 숲의 풍경

구연배

 

나무를 잡고 우는 바람 소리인지

바람을 잡고 우는 나무 소리인지

마음을 잡아당기는 낭자한 소리

 

생비늘 같던 낙엽과

풍경을 흔들어놓기 일쑤인 바람이

그늘을 내려놓고

적요를 빚고 있다

 

철새들 떠나고

풀벌레 사라진 골짜기에서

생 이끼를 얹고

찬 물에 발을 씻는 바위의 침묵을

한 모금 마신다

 

꽃 피는 아침과

꽃 지는 저녁을 함께한 씨앗들도

제 갈 길로 가버리고

마음의 뿌리만 남아

 

기다림을 믿고

시간과의 싸움을 끝내면

바람도 잎도 다시 오겠지

 

물관을 닫고 빈 몸이 된 나무에

귀를 대면

나이테를 감는 비밀한 시간 소리가 들린다

 

 

 

가을 숲

구은희

 

봄날

이놈 저놈

새벽이슬 빨고 있길래

귀엽다

예쁘다 했더니

금세 자라

 

얼마 전 소나기 먹고 몰라보게 커

청년이 되었더구만

 

오늘 보니 갈바람 났네

저녁 늦게 가을비 마시고 형형색색 부르더니

세월 가는 줄 모른다

저러다 말겠지 했는데

우수수 맛 가네

 

썰렁하구만

 

 

 

가을 나무

권승주

 

그대

가까이 가면 바람에

힘없이 떨어지는

그대의 분신

낙엽에

내 마음이 아파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다가오는

봄이

우리를 꽁꽁 묶어

사랑을

꼭 잡고 있어요

 

 

 

가을 숲은

김강좌

 

부서져

쏟아지던 해맑은 가을볕이

몽실 구름에 반해서 솔바람 따라나서고

 

덩그러니

홀로 선 허수의 어깨 위로

가득 내린 햇살은 붉은 잎 살찌운다

 

탱탱한

몸짓들이 속살거리는 들녘에

저마다의 자태로 금빛 살을 이루고

 

작은 이슬

구르는 새벽이 밝아지면

 

숲길

어디 깨에서 툭 터진 밤송이

또르르 굴러서 하늘 숲에 눕는다

 

그렇게

작은 이슬

빛나는 새벽이 밝아지면

 

붉어진

가을 숲은 올올이 빚어내는

들국화의 숨결로 천년을 혜량한다

 

 

 

태동하는 가을 숲

김관호

 

살랑살랑 춤추는 소슬바람

이냥저냥 흰 구름 한 몫 거드는

가을을 가을 하는 가을날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는

무슨 걱정이 더 있을 것 같은

나무를 나무하는 나무들

 

삼천리 금수강산 줄기 따라

더욱 깊어가는 가을 숲

내밀한 침묵들이 술렁거린다

 

 

 

가을 숲

김광협

 

서리 내린 아침

 

내가 숲길에 섰을 때

초록빛 씩씩하던 나무들은 헐벗고

빈 하늘에 갈가마귀 떼는 우짖으며 날고

연약한 풀벌레는 쌍을 잃고 기어가며

돌멩이들은 흰 서리에 덮여 차겁고

시냇물은 메말라 붙어 고요를 지키며

산 새들은 모두 어데론가 날아가 버리다.

숲은 텅 빈 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가을 나무

김덕성

 

가을 나무를 본다

잎사귀 한 잎이 따뜻한 품을 떠나

바람에 나부끼며 떠난다

 

있는 그대로

구김 없이 의젓한 자세로

한 자리만 고집하며 늠름하게 서서

숱한 강풍에도 이겨내며

살아가는 나무

 

생명처럼 아끼며

따뜻하게 품고 살아오던 잎사귀

가을빛으로 곱게 물들였는데

아쉽게 길 떠나고

 

보내는 마음 얼마나 아플까

허나 아랑곳없이 보내는 나무

그 고운 가을 나무의 마음

난 그 마음을 배운다

 

 

 

가을 숲에서

김문희

 

가을 숲에 서면

나무들의 옷 벗는 소리가 들린다

 

한 시절 살아온 말 없던 삶이

빛바랜 세월을 털고

이 가을, 나무는 정직한 맨몸으로

찬바람 속에 선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확실한 것이던가

추수의 마차들이 숲을 지날 때

지난여름의 셈은 끝나고

돌아오라, 고독한 자유여

 

나무는 저마다 혼자서

 

가을 햇살에 몸을 씻노니

바람이 올 때마다 아픈 손을 흔들어도

가을 하늘 높이에서 아득한

그리운 이름

슬픔으로 수액을 말리고

메마른 육체를 쓰다듬어

겨울 문턱에 서서

나무는

그 싱싱한 내일을 위하여

이 가을, 말없이 옷을 벗는다

 

가을 숲에 서면

나무들의 아픈 숨소리 들린다

 

 

 

가을 숲

김수미

 

숲이 울렁거린다.

뜨겁던 여름이

가을바람에

붉게 오른 열 꽃으로

나뭇잎을 뒤흔들며

계절 앓이를 한다.

 

세월이

여름내 뿌려 놓았던

푸름의 빛을

찬바람에 모두 거두어

계절의 곳간에 모아 들인다.

 

밤 귀뚜라미 울음소리에

자박거리며 가을이 숲에 찾아들고

숲을 붉게 그려놓은

 

가을은

산을 넘어

겨울 속으로 들어간다.

 

 

 

가을 숲을 보며

김시탁

 

고여있는 숲을 바람이 흔듭니다.

산새에 파 먹힌 붉은 시간들이 피를 흘립니다.

붉은 피를 본 소나무 하나가 시퍼렇게 질려 온몸을 떨고 서 있습니다.

제 살을 파 먹는 딱따구리를 고목은 나무라지 않습니다.

숲은 아무도 자기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서로 어깨를 걸고 가슴을 비빕니다.

시린 햇살 한 조각도 나누어 먹으며 한목소리로 소리를 만듭니다.

한 번씩 계절의 불심검문에 숲 속의 나무들도 일제히 고개를 숙입니다.

파란 하늘을 쓱쓱 쓸어 이마가 벌겋게 달아올라도 한 번도 온몸을 눕혀 잠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자기 몫의 바람을 가지에 걸고 숲의 대열을 이탈하지 않습니다.

함께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탈하지 않습니다.

 

 

 

가을 나무

김용두

 

편식으로

하루가 다르게 체중이 준다

영양이 부족해서

온몸에 황달이 퍼진다

바람의 스트레스를 견디다

피골이 상접하다

하늘이 내려준 음식을 먹지 않고

땅의 음식만 폭식한다

파라볼라 안테나처럼 서서

우주의 소리를 들었으나

이제는 땅의 일만 관심한다

햇살들이 돋보기 놀이를 하며

다비식을 치룬다

살이 타들어 가는 역한 냄새

허공에는 남은 뼈들이

부딪히며 달가닥 거린다

길 잃은 자의 절규다

 

 

 

가을 숲속에서

김일영

 

나뭇잎들 떨어지는 무게가 아프다

흑백 초상화가 지켜보는

사진 틀 밖에서도

어머니는 늘 해녀였다

검은 고무옷이

속살보다 부끄러웠다는

당신의 부은 손등 위에

어린 손을 얹으며

나무들은 나이테 속에

봄을 숨긴 채 겨울을 건너왔다

떨어진 날개 쪽으로 기운 몸 이끌며

방바닥 가로지르던 벌레의 행로를

기어코 당신은 묻지 않으셨다

바다마저 늙어 등 돌린 곳에서

마당의 잡초들 흔들리고

가을의 활엽수들 아름답지만

내가 서 있는 숲속에

썩어 싹이 트는 나뭇잎의 이름을

소리 내 말하는 바람은 없다

 

 

 

가을 숲

김주수

 

신선한 바람이 불어와

머금고 있던 나의 말들이 모두

햇살 묻은 솔씨처럼

그 속으로

다 떨어져버렸다

 

 

 

가을 숲

김현주

 

낙엽

바스락바스락

화려한 추억이 밟힙니다

 

만추의 향기를 끌어안고

깊은 잠을 재촉하는 숲에는

어둠이 재잘거리며 다가오고

따닥 딱 딱딱

분주한 딱따구리 부리 소리에

겨울이 곧 오려나 보다

 

나목 가지들은

바람의 음률 따라 쉬엄쉬엄 흔들어

구름을 배웅하는 계곡에는

오색 비단을 걸친 물빛의 잔치

 

그리움만큼 경사진 비탈에는

가물가물 안개가 일어서고

마른 몸을 누이려 떨어지는 낙엽에

임에 얼굴이 어리어

물길을 따라 흘러갑니다

 

 

 

가을 숲에 핀 당신

김현태

 

쓸쓸함을 옆구리에 끼고 가을 숲에 갑니다

당신과 더불어 뿌렸던 씨앗

설마, 설마 했는데

그 자리에

당신 닮은 어여쁜 꽃 한 송이

수줍게 피었습니다

세월이란 이렇게

모든 것을 아름답게 포장하는가 봅니다

 

꽃이 필 때까지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던 내가

이제 와서

그 꽃의 주인이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소나무, 수숫대 그리고

강물 줄기가 그의 주인입니다

그의 친구입니다

 

그 꽃을 남기고 돌아오는 길,

바람결에

흔들리는 저 꽃이

마치 당신의 숨소리 같기에

자꾸만 자꾸만

쓸쓸하게 뒤돌아봅니다

 

 

 

가을 숲

나태주

 

숲은 벌써 낙엽들의 나라

숲은 벌써 별들의 마을

밤 사이 낙엽은 이슬에 젖었다,

낙엽을 적시는 이슬은 별들의 눈물.

 

 

 

가을 나무에게

나호열

 

울지 말아라

지난해 움텄던 자리에

다시 새잎이 돋고

슬픔 위에

따스한 손으로

다시 슬픔이 얹힌다

 

갈 곳 없는 산새가 버린

먼 하늘

세상을 가득 채운

수식어가

하나둘

떨어진다

 

 

 

가을 나무

노정혜

 

가을이 좋아 참 좋아

가을 나무 아파

가을 나무 아파하며 곱게 물들어

 

이산 저산

단풍잎 좋아 좋아 함성소리

가을 나무 아파 너무 아파

 

어차피 지워야 한다면

예쁘게 아름답게 물들어

 

단풍잎에 환호하는 소리에

고통도 잊는다

 

지는 모습도 아름다워

땅에 떨어져 뒹굴어도

 

낙엽 밟는 소리

바스락바스락 노래노래 하련다.

 

 

 

가을 숲, 그곳에서

도지현

 

어쩌나

왜 그곳에 갔을까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을

나도 같이 타오르고 싶었을까

가슴이 타버렸다

부나방이 되어 찾아 가

타오르는 불 속에서

완전히 소진해 이제 나는 없다

 

모든 것이 붉게 물들거나

타버린 가을의 숲

그럼에도 불구하고

낭만으로 젖어 드는데

 

다 타고 재가 될지언정

태곳적부터 마음의 고향

의식하지 않아도

발길은 그곳으로 향하는데

 

 

 

가을 숲의 평화

박광호

 

뻐꾸기 울음을 추억하며

산 그림자 끌어안고

서녘 노을 바라보는 가을 숲엔

안식의 평화가 깃든다.

 

산곡을 굽이돌던 개천의 목쉰 소리도

삶의 애환을 토하든 풀숲의 벌레 소리도

다 흘러간

가을 산 능선엔 노을빛 애처롭지만

 

빛으로 낮을 살고

어둠으로 밤을 쉬며

한 세월 제 몫을 다하고

떠날 채비를 하는 잎들의 속삭임

 

가뭄 장마 모진 바람 의연히 이겨내며

불만 없이 살았더라!

떠날 때를 제 스스로 알아

오색찬가로 이별을 환호하는

가을 나뭇잎들

 

 

 

알밤과 가을 숲

박미리

 

까칠한 가시 침낭에서도

시간은 흘러 흘러 가을은 왔죠

풀벌레 우는 달빛에 누워 하루 또 하루

그러다 마침내 나의 계절 가을이 왔죠

 

나처럼 토실해진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굴참나무도

가을을 노래하며 툭,, 또르르

 

바람이 지날 때마다

기별을 넣으면 숲 친구들 몰려와

우리들만의 파티가 시작되죠

 

고생해서 남 주나, 흔히들 그러지만

아무리 좋은 보석도 혼자서는 의미 없죠

잘나고 못남 없이 서로 어우러져

숲을 키우는 아름다운 공생

 

그 기쁨 번질수록

단풍도 불처럼 번져만 가는 가을 숲,

가을 산에는 사람들은 모르는

그들만의 거룩한 축제가 있죠

 

 

 

가을 숲

박인걸

 

시월 숲길 위로

알알이 여문 산 열매들

산 짐승이 거둬갔는가

흔들어도 인색하다.

 

아침 햇살이 드리울 때

늙은 숲이 기지개 켜면

솔가지 작은 새들

조율 음()도 무겁기만 하다.

 

늦깎이 꽃잎마저

모두 떠난 빈 자리

베옷으로 갈아입는 숲

예배 시간처럼 경건(敬虔)하다.

 

지난여름 지날 적에

싱그러움에 감탄했더니

윤기 마른 피부처럼

늙는 데는 별수 없구나!

 

 

 

가을 숲길에서

박인걸

 

산림로(山林路)를 따라 승용차 바퀴는

방금 떨어진 낙엽을 밟으며

오색(五色) 단풍잎 장식된 터널을

황홀하게 통과하고 있다.

 

그 길은 차라리 낙원으로 가는 길이라 하리

도시(都市)에는 없는 별천지가

하늘에서 내려와 전시(展示)되어

그 숲을 지나는 길손의 혼을 뽑아 올린다.

 

감성의 심층(深層)을 자극하는

인조(人造)로 배색(配色)할 수 없는

오묘하고 그윽한 그 색상에

눌러놓았던 감성(感性)이 춤을 춘다.

 

! 너무도 곱고나

여기서 오래도록 살고 싶구나.

사진(寫眞) 속에 갇힌 사람처럼

이곳에 영원히 감금(監禁)되고 싶구나.

 

 

 

가을 나무

박정근

 

달빛 내려앉은 창가

계절을 잃어버린 나무 하나는

앙상해진 빈 가지에 체념한 듯

지친 몸짓으로 어둠에 숨어들어

낯선 계절의 끝으로 걸어간다

 

봄날의 꿈과 뜨겁던 여름

채 하지 못한 가을 이야기는

빈 가지를 붙들고 애원하다가

한 잎 한 잎 남은 미련을 덜어내며

어둡고 긴 침묵 속으로 걸어간다

 

눈썹달 떠오르는 밤이 오면

흑백 사진을 닮은 정물화처럼

초점 없는 눈빛만 창가에 얹어둔 채

불어오는 찬 바람 애써 외면하며

상처로 남겨진 낙엽만 바스락거린다.

 

 

 

가을, 숲에 들다

박제영

 

단풍이란 빛이 바람에 삭힌 제 뼈를 이윽고 드러내는 일이란다

아버지를 따라 가을, 숲에 들었네

 

짐승의 발길이 잦아들면 숲의 길도 지워지는 법이란다

아버지를 따라 가을, 숲에 들었네

 

낙엽이란 죽음의 전조가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징후란다

아버지를 따라 가을, 숲에 들었네

 

그늘이 좋구나 잠시 쉬었다 가자꾸나

술 한 잔 다오

 

아버지, 가을 숲에 들었네

 

 

 

가을 나무를 위하여

박종영

 

한철 끝물에 마른 목숨 내놓고

뒹구는 낙엽이야 제 몸 바삭거리는 아픔 추수려

다시 올 푸른 날 기억되게

잘게 부서지는 일이다.

 

풍요한 날이 많다 해도

가난은 더 큰 가난을 덧칠하는 것이어서

배고픈 사람 허리띠 졸라매는 허기 알아차리는

굴참나무 잘 익은 열매 한 개

, 떨어뜨리는 지혜,

그거 무거운 짐, 가볍게 나눠 갖는 일이다.

 

이렇듯 골고루 나눠 먹는

세상이 올 때쯤이면

곱게 바라보는 꽃이라도 배부른 턱이 될까?

 

이 가을에, 아주 얇은 가슴을 하고

숲의 축축한 나무뿌리를 실한 볕에 말리는 일이

곧 나를 다스리는 일로 위안이다.

 

 

 

가을 숲에서

박종영

 

노란 얼굴이 오솔길에 뒹군다

작년 이맘때, 혼자 감당하던 너의 울음을

오늘은 너보다 더 슬픈 사연으로 함께한다

 

추위 타는 열매의 처지를 뒤로하고

더러는 짚고 넘어가야 할 외로운 나무의 생각을 외면한 채,

 

꽃등 환한 곳으로만 마음 돌리고

무례하게 네 얼굴의 자부심을 짓이겨

나로 하여 슬퍼지는 일이 없기를 당부한다

 

바람에 휩쓸리는 안간힘의 소리,

수많은 발자국을 밀어내지 못하고

잘게 부서지는 울먹임을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마른 잎은 길 위에서 길을 헤매고,

푸른 여름의 기억을 줍다가 다시 길을 잃고,

들꽃의 바삭거림이 짙은 색깔로 손짓하는 사이

 

잎 떨군 알몸의 나무 긴 여행길 추스르는

해맑은 초겨울 햇살,

한 움큼 추억으로나 비길까?

 

 

 

가을 숲

반기룡

 

가을 숲에 드니

산새들 우짖고

풀벌레 합창 소리 드높다

단풍으로 옷 갈아입은 나무들마다

일렬횡대로 어깨를 나누고

햇살이 내리는 틈마다

야생화 지천이다

서걱이는 억새가

바람의 세기에 따라

4분음표 8분음표로

고개를 휘저으며

낮은음자리로

혹은

높은음자리로 변주곡처럼 연주한다

 

가을 숲은 모두 소리의 샘이다

 

 

 

가을 숲에선

백낙원

 

가을 숲에선

과일 익는 냄새가 난다

 

쑥부쟁이 억새꽃

금빛물결 파도치고

머루다래가 낯을 붉히는 다솜

 

가을 숲에선

사랑 익는 냄새가 난다

 

밤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속삭이든 옛 임의 목소리

그 체향까지 실어다주는 그미

 

가을 숲에선

울 엄마 젖 내음이 난다

 

무턱대고 파고들어도

더없이 넉넉한 품으로

오롯이 감싸 주는 아람치.

 

* 다솜 : 애틋한 사랑

* 그미 : 그 여자.

* 아람치 : 자기의 차지가 된 것

 

 

 

가을 나무

백원기

 

나뭇잎들이

점점 물들어 가지만

또 한 편에선

한 잎 두 잎 떨어진다

물들어 떨어지는 낙엽이

소리 내 울지 않아

착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측은하고 슬퍼 보인다

 

열심히 부지런하게

지내왔었고

어렵고 힘든 과정 넘어서며

무럭무럭 자라나던 나무

 

이제는

앙상한 나뭇가지만

고이 간직해야 할 우울한 계절

재롱에다 재주 부리던 나뭇잎은

매정하게도 떨어뜨려야 하니

 

 

 

가을 숲

백원기

 

1

수채화 가을 숲 벤치에 앉아

화려한 작품 감상의 한 낮

수런거리는 나무 마을은 분주한데

이따금씩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온갖 사연을 안고 떨어지는 나뭇잎

 

봄과 더불어 하나씩 쌓아 올리던 블록

한여름에는 맘껏 절정에 올랐었지만

자전공전의 수레바퀴에 휘말려

힘없이 추락하는 말 못할 사연

 

울긋불긋 땅 위에 떨어질 때면

밟는 이의 귀만 즐겁게 할뿐

애환의 세월은 알리지도 못한 채

쓸쓸한, 나목의 겨울을 맞으려 한다

 

 

2

바람은 불고

나뭇잎은 떨어지고

부산스러운 숲속은

바라볼수록

걱정 근심이 떠날 줄 모른다

 

단풍 가득하더니

어느새 수북한 낙엽

애지중지 키웠던

자식 같은 나뭇잎은

무엇이 못마땅해

나무에서 멀리하려는가

 

뛰어내리듯 바닥에 떨어진

바싹 마른 잎사귀가

행인의 발걸음에 부서지면

아파 부르짖는 소리에

나무는 홀로 운다

말없이 속으로 흐느낀다

 

 

 

가을 나무가 비에 젖고 있다

서지월

 

뒷산 수풀에 일제히 찬바람 듣는가 했더니

오늘은 가을나무가 비에 젖고 있다

길게 풀려나온 시간의 묶음들이

속절없이, 때 맞추어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에

두 귀 쫑긋 세우며 넘쳐나는

저 그릇의 우수를 본다

지금 가을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열매들의

징역시간은 또 얼마나 빛나는 보석으로 갈무리 될지

늘 그랬듯이 나는 꿈속에서

보았던 사람의 머리카락 흩날리는 방향을 좇아

예까지 흘러왔건만

문 밖에는 잎이 지는가 했더니

이제는 가을나무가 꼼짝없이 비에 붙들려 있다

아아, 하늘의 뜻인 이 땅위의 事物들이여

자리 털고 일어나 丑方을 보라

눈 뜬 가지와 눈 감은 뿌리 사이

해일(海溢)이 몰려오고 있지 않은가

빠알간 시간의 눈금은

싸늘한 접시 위에 놓여있다

 

 

 

가을 숲에 들면

석화(石華)

 

물소리 맑은 골짜기와

장꿩 한 마리 솟아오르는

하늘 저 끝까지

익어가는 가을

가을 숲에 들면

설익은 것 나 하나뿐

낯이 뜨겁다

고로쇠나무의 등을 타고

뻗어 오른 넝쿨들마저도

봄내 여름내

그리워하던 이름들을

무르익히여

머루로 다래로 주렁지게 하는데

아직도 낯이 푸른

한 알의 돌배

물기 어린 눈빛에 안쓰럽다

가을 숲에 들면

 

 

 

가을 숲을 지나다 보면

손종일

 

나무들이

일어서 다투어 해를 먹고

겨울을 잉태한 것이 못내 부끄러

 

얼굴 붉히는

가을 숲을 지나다 보면

나도 부끄러워집니다

 

내가 잉태한 과거에

그렇듯 얼굴 붉혀야 할 습성들은

숲으로 와서 올올이 풀려나와

 

가을 숲은 붉어도

저 혼자만 멍이 되어

시퍼렇게 나무는 일어서고

 

더 사랑하지 못한 이웃에게

이유 없이 등 돌리던 습성들도

숲으로 와서 깨우침이 되어

 

가을 나무는 키가 커도

저 혼자만 나무들 사이로 낮게 엎드리는

이끼 같은 작은 후회도 보여집니다

 

남을 배려하지 못한 이기와

남을 용서하지 못한 시기에만

늘 당당하게 앞으로 나서던 걸음이

 

가을 숲에 서면

훌훌 옷을 벗을 채비를 하는

나무들처럼 나도 알몸이 되고

 

탈만큼 타서

익을 만큼 익어서 마침을 준비하는

가을날 가을 숲을 지나다 보면

이미 작아져 있는 내가 보입니다

 

 

 

가을 나무

안재동

 

습기로 누글누글하던 여름 달이

봉평 메밀밭에서 이지러지고

우아하고 성글성글한 가을 달이

어전마을 대나무밭에서 쑤욱

얼굴을 내밀었다.

 

가을이 걷는 마을의 길목마다

감나무면 감, 대추나무면 대추,

다양한 열매들이 저마다

조금의 수줍음도 없이

탱실탱실 부푼 몸매를 자랑한다.

 

가을 나무는 자신의 몸에서

풍성하게 과실을 여물게 하고

보는 이가 즐겁도록

자신의 몸을 형형색색으로 가꾼다.

 

가을 나무는 그렇게

여느 때보다 동작이 부산하지만

길 떠날 채비하는 집시처럼

속마음 오지게 쓸쓸해짐을 아는가.

 

위로하듯, 풀벌레들 곱게 노래하고

그 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땐

나무는 수의조차 걸치지 못한 채

모질게 찬 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조용히 잠들 준비를 해야 하지.

 

 

 

가을 나무

양해선

 

철 늦은 천둥번개

지난밤을 흔들더니

이 아침 시린 바람에

상한 옷을 훌훌 벗는다,

가벼워져야 가벼워질

겨우살이를 위하여

 

강 저편 안개 속에서는

욕심사나운 무리들이

번쩍이는 옷들을

겹겹이 껴입는다,

두껍게 더욱 두껍게

 

 

 

가을 숲의 비밀

오길원

 

가을이 깊어가면

나무는 매혹적인 붉은 입술로

뭇 새들을 유혹하고

 

새들은 붉은 색깔에 상기되어

흔쾌히 나뭇가지를 오르내리며

빨간 열매로 배를 채운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머나 먼 미지의 세계로

새들의 등에 업혀 날아가고픈

나무들의 소박한 소망도

 

어찌 보면

이 땅에서 오래 살아남기 위한

눈물겨운 몸부림일 터

 

그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나무와 새는 공생의 좋은 관계지만

감출 수 없는 본디 속마음으로

붉게 물든 가을 숲은 황홀하다

 

입술이 마른 초야의 초조함에

홍당무가 된 얼굴로 애간장을 태우는

새색시의 부끄러움처럼

 

 

 

가을 나무

오승한

 

한 잎 잎새도 남기지 못한

고독한 나목은

휘젓는 바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린다

 

북풍한설은 칼날을 퍼렇게 세우고 하얀 속살을 향해 겨누고 있다

 

하이선을 돌려세운

탄탄했던 울타리는

넘어질 듯 금이 가고

우환의 세균은 숨통을 조인다

 

모순으로 자란

부정한 가지의 난립에

탄탄하던 뿌리가 병들었다

 

!

혹독한 겨울을 어찌 견딜꼬!

봄을 다시 만날 수 있으려나,

 

공평한 햇살을 짓밟은

추악한 가지를 잘라내고

공정한 치마 속 온기로

꽃피는 자유의 봄을 기다린다.

 

 

 

가을 나무 마음

옥윤정

 

기쁨에 불태우던 마음

즐거워 바람에 날리며

춤추던 그 시간들

흐르는 시간 잡지못하는 아쉬움

 

하나 둘 너의 향기를

내려 놓기 시작 하였구나

즐거움 하나

행복 둘

보내고 난 후

허전함 외로움은 어찌할고

 

빈 가지 늘어뜨리고

오롯이 너이기를 바라는것은

너와의 추억이 있기에

기약 없는 만남을 기다린다

 

 

 

가을 숲

용혜원

 

소낙비 흠뻑 맞아도 식지 않고

심장까지 불타던 사랑도 잊지 못한다

 

가슴에 타던 그리움을

잎새 잎새마다 붉게 물들이더니

모든 것을 다 잊으려는 듯

잎새를 다 떨군다

옷을 다 벗는다

나목이 된다

 

똑같은 사랑을 반복하면서도

빠질 때마다 열정을 쏟아

지칠 줄 모르고 빠져들고 만다

 

이 가을이 떠나버리면

한겨울 그 혹독한 추위에도

발 한번 들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사랑이 다시 돋아나는

사랑이 꽃 피어나는 봄을 기다린다

 

 

 

가을 숲에 빠지다

유소례

 

샛노랑 가을 냄새에 마취된 그 날

비틀비틀 은행나무 숲에

나를 잃었다

 

어린 노랑나비가 되어버렸다

노랗게 쏟아지는 꽃잎을 쫓아

해넘이를 잊고

가을 편지를 주워 모았다

 

책갈피에 곱게 말려서

별이 된 그대에게

그림자 같은 순이에게

내 가슴을 다 털어 주어도

모두 담고 있는 너에게

소녀시절을 기억해 주어야지

 

바람 한 자락 목덜미에 감긴다

오스스 떨린다

마취가 깬다

 

가슴 안에 유년의 추억 한 아름

나는 아직도

가을 잎에 넋을 빼앗기는 소녀

 

은행나무 숲

노랑 융단길을 걸어 나온다.

 

 

 

가을 나무

유안진

 

버려라

채워도 채워도

차지 않는 욕심

젊은 한때를 빛내고 싶던

진실도

거짓도

살점까지도

마저 털어버려라

흙에서 비롯한 목숨마다 지닌

아프고 아픈 인연을

스스로 끊고

서릿바람

칭칭 감기는 채찍에다

벗은 몸을 맡겨

형벌의 계절에

구도로 건지려는

아아, 이 목숨.

 

 

 

가을 나무

이도연

 

가을 숲의 나무들은 시간이 없다

겨드랑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여름내 빛과 바람과 비로 일구어 온

그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시간

푸르른 이파리를 떨군다

 

잘 익은 열매를 땅에 숨겨

동장군의 눈을 피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계획을 세워야 하며

 

보내야 할 것들을 먼저 보낸 나무는

마르고 헐거운 몸을 말려

눈 감아 소리쳐 지나는 바람을 외면하고

 

거칠게 몰아붙이는 계절풍 앞에

시치미를 떼며

동면의 밤을 맞이한다.

 

 

 

가을 나무 빈 바람

이도연

 

만추가 바람 속에서 비 되어 날리다

찻잔 속에 가을 한 잎

툭 하고 떨어진다

 

붉으락 푸르락

성급하게 물드는 아이가

바람을 흔들고

 

갈잎으로

노랗게 익은 황혼은

소리 없이 낙화한다

 

우수수 계절이 바람을 몰고

바닥은 온통 가을의 융단으로 부풀고

나무는 헐거워진 몸을 흔든다

 

나무의 행보는 가벼운 마음으로

소리 없는 울음을 삼키며

겨울을 향해 간다

 

나무와 낙엽이 떠난 빈터에서

홀로 남은 나는 한 겹의 나이테를 더 두르고

서서히 고목이 되어간다.

 

 

 

가을로 가는 숲

이도연

 

한여름

요란하게 달구던 숲에 정적이 오면

가을 숲으로 떠난다

 

산란기 물고기처럼

수많은 이파리를 잉태하여

숲이 부풀어 올라

심장은 깊은 곳에 감추어

힘차게 펄럭여 햇살을 즐기더니

 

가을이 오면

절정의 숲은 몸을 흔들어

서서히 울긋불긋한 빛으로

변신을 준비한다

 

숲은 하늘만큼 땅만큼

높이 자라고 커지기를 다하고

자신의 분신을 잉태하기 위한

숭고한 작업을 진행하는 순풍산부인과

 

열매는 달고 주렁주렁 넘쳐나는

가을의 숲은 아름답고 고결하다

 

숲에 깃들어 사는 생물과 동물도

덩달아 바쁘고

동면을 향한 부지런을 떤다

 

가을의 숲은

준비운동을 하는 운동선수처럼 비장하고

여름 숲의 절정의 끝에서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서걱거리는 바람 소리조차 바쁘다

 

가을 숲을 사랑하는 이유는

꽉 찬 숲에서 풍요를 즐기다

기꺼이 자신의 몸을 흔들어 가벼이 할 줄 아는

지혜를 알아 결코 욕심내지 않는다

 

자연에서 와서 땅으로 순환하는 질서를

비껴가는 법이 없으며

스스로 낮추어 무소유의 헐거움으로

겸손할 줄 안다

 

가을 숲은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소슬바람을 거울삼아

멋을 부리고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린다

 

무대의 주인공처럼 화려한 옷을 갈아입고

바람의 대사를 읊조리는

숲의 아름다움을 향해 걷는 발끝에서

나뭇잎이 일어서는 소리가 들린다.

 

 

 

가을 숲으로 가는 길

이도연

 

사람이 길을 만들면 길은 사람을 키우고

가을로 걷다 보면

만추의 숲을 가로지르는 길이 열린다

 

사람의 발자국 위에

또 다른 발자국을 더하면

숲에는 시간 위를 걷는 길이 난다

 

찰나의 시간이 영겁으로 이어지고

숲의 길에서 생명이 상생하고

소멸을 거듭하며

 

잉태의 출발점에서 울고

소멸의 끝자락에서 눈을 감지만

만산홍엽의 향연을 즐긴다

 

아름드리나무에서

홍엽이 팔랑팔랑 바람을 타며

가을에 이별을 예고한다

 

고목은 수많은

숲의 이야기를 간직한 채

지난가을처럼 그 자리에 서 있다

 

그 아래 능선을 돌아가는 길이 있어

내 지난 발자국에 세월을 포개어

노을빛 붉게 물드는 가을을 걷는다.

 

 

 

가을 숲의 사색

이도연

 

고요의 숲

파란 가을 하늘 구름이

물감처럼 흩어지고

그 사이를 파고드는 햇살이

투명한 부챗살로 퍼진다

 

비탈 위 바스락거리는

산비둘기 소리

도토리 떨어지는 나뭇가지에

청설모 까만 눈이 반짝반짝

 

파란 깃털로 바람 저어

푸드덕 공간에 그림 그려

무리 지어 놀고 있는

물까치 소리에

가을 숲이 소란스럽다

 

마른 잔가지 밟혀

바스러지는 소리 숨죽여

그들의 유희에 관음증을 앓는다

 

느릿하게 흘러가는

무성영화의 한 장면으로

사색의 숲들이 구름처럼 일어난다

 

 

 

가을 나무

이동희

 

하얀 눈송이를 머리에 이지 않아도

가을 나무는 공중의 바람들을 잘도 불러세운다.

쌀쌀해진 세상을 감싸안듯

따뜻한 색으로 제 머리를 물들였기에

그 황금빛 머리칼을

그 붉디붉은 머리칼을

바람은 괜히 한 번 쓸어보고 지나간다.

 

무성한 녹음에 꿈쩍도 않던 바람은

이제야 그 머리칼을 흩트려놓고

가을바람이 된다.

 

가을나무는 그저 여름과 겨울의 사이에 서 있다.

텁텁한 맛의 더위가

아린 맛의 추위로 변하는 것,

온통 푸른빛의 세상이

서서히 붉은빛으로 변해가는 것은

서러울 것도, 놀라울 것도 없다는 듯이…….

 

새삼스럽게 여기지 않으면

새삼스럽지도 않을 그 모습이

아주 잠깐 모습을 드러내었다 사라져 간다.

 

 

 

가을 숲을 탐닉한다

이민숙

 

가슴 시린 서늘한 가을

차갑게 식어가는 심장처럼

칼날 같은 외로움 삭이며 숲길을 걷는다

 

한때 가슴에서 자살한

독소처럼 퍼졌던 악에 받친 그리움

붉은 낙엽처럼 골 깊게도 깔렸다

 

나는 무소유 숲으로 은닉해

아픔을 자근자근 밟듯

붉은 물 흐를듯한

단풍 밟으며 가을 숲을 탐닉한다

 

 

 

가을 나무

이옥순

 

그 여리고 예쁜 새싹을 틔워

비바람 그 뜨거운 태양 아래

밤낮으로 감싸며 품어 안고

한 잎 한 잎 돌보며 지켜온

사랑으로 키워낸 그 많은 나뭇잎

 

이별의 아쉬움 꽃단장시켜

오색빛 가을 단풍 잔치

깊은 산중 나무들 우리를 부르고

곱게 꽃핀 얼굴 기쁜 만남

청아한 새들 노래 맑은 물소리

곳곳에 다람쥐 두 손 모아 인사하네

 

생기 넘치는 우리 땅 산천

자연의 오색빛 찬란한 가을 나무

뜨거운 사랑 붉게 태운다

너도나도 함께 가는 나그네

아름답게 펼쳐놓은 단풍꽃 잔치

손잡고 너울너울 이 기쁨 만끽해보자.

 

 

 

가을 숲

이유리

 

가을 숲이 그리움으로 쌓인다

한때는

누군가의 가슴에

불꽃으로 피어올랐을 뜨거움

 

온통 사랑의 열병처럼 앓던

계절 앞에

울먹이던 이름하나

마음을 헤집고 뛰쳐나오면

바람이 속삭인다

 

만남 뒤엔 이별이라는

무언의 공식들이

펑펑 울지도 못하게

옥죄여 오는 거라고

 

쌓여만 가는 저 숱한 그리움은

또 어쩌란 말인지

가을 숲이 흐느낀다

 

 

 

가을 숲길

이종숙

 

발소리가 난다

많은 사람의 소리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며

다녀갔을까

 

아이의 눈과 어른의 눈에서 담은 숲길의 단풍

얼마나 붉었다가 떨어졌을까

희로애락이 뒤엉켜 숲을 채운다

 

묵묵한 길

마음만 주었을 뿐인데

제각기 다른 상념으로

한 잎 주워 든 색깔

설렘으로 간직한 추억들의 기억

 

기다리게 하고 눈물 나게 하고

사랑하게 하는 숲길

 

오늘도 어제같이 바람이 분다

 

 

 

내 마음의 가을 숲으로

이해인

 

1

하늘이 맑으니

바람도 맑고

내 마음도 맑습니다

 

오랜 세월

사랑으로 잘 익은

그대의 목소리가

노래로 펼쳐지고

들꽃으로 피어나는 가을

 

한 잎 두 잎

나뭇잎이 물들어

떨어질 때마다

 

그대를 향한

나의 그리움도

한 잎 두 잎

익어서 떨어집니다

 

 

2

사랑하는 이여

내 마음의 가을 숲으로

어서 조용히

웃으며 걸어오십시오

 

낙엽 빛깔 닮은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우리, 사랑의 첫 마음을

향기롭게 피워 올려요

쓴맛도 달게 변한

오랜 사랑을 자축해요

 

지금껏 살아온 날들이

힘들고 고달팠어도

함께 고마워하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조금은 불안해도

새롭게 기뻐하면서

 

우리는 서로에게

부담 없이 서늘한 가을바람

가을 하늘 같은 사람이 되기로 해요

 

 

 

가을 나무

이훈식

 

뿌리 내리는 곳에

척박을 따지지 않고

 

뿌리 내리는 것만큼

가지 뻗어온 자리에서

 

사위여 가는 붉은 노을을

바라 볼 때마다

 

깨어 있으되 말하지 않았고

침묵하였으되 잠들지 않았던

옹이진 가슴을 그렇게

문질러대더니

 

가지 부러지던 날에도

대지의 정기를 수액으로

빨아 들여

싹 띄우던 잎시귀마다

 

선혈이 물들어

온 산을 물들이고 있다

 

 

 

가을 숲길

임은숙

 

추억이

묻혀 있는

단풍 고운 숲속 길을

 

나 혼자

가고 가도

서럽지 아니함은

 

이 가을

풍요로움 속에

그대 향기 있으매라

 

 

 

가을 숲에서

임은숙

 

방향을 가늠키 어려워라

사면이 노을빛이다

여기저기서

우수수 날 부르는 소리

가을의 숲은

곳곳에 너를 숨기고 있다

와버린 기억은

밀어낸다고 가지 않고

외딴 벤치에

어둠이 내린 지도 이슥하건만

날 부르는 다정한 음성

그치지 않더라

날리는 기억에

설움은 한 가득인데

종내 드러나지 않는 너의 모습은

어느 하늘 아래

찬바람 속을 서성일까

 

 

 

가을 숲에서 답을 찾다

임은숙

 

그 숱한 질문에

미처 답을 못할까 봐

이파리 하나하나에 적어서 준다

빈손에 받아든

묵직한 마음들을 잊은 건 아닌지

외로운 이에게

어둠 속에서만 볼 수 있는

마음의 빛을 전해준 적이 있는지

과욕으로 타인에게

아픔을 주지는 않았는지

일정한 시간을 사이 두고

질문 하나씩을 던지는 나무와

가을빛에 무거워지는 나

수북이 쌓인

낙엽 위로 노을이 짙다

 

 

 

가을 숲의 정취

임재화

 

미처 단풍이 찾아오지 못한

고산준령을 굽이 돌아 넘는 길에서

가을 숲의 정취를 느껴봅니다.

 

멀리서 다가오는 가을 숲속에

보랏빛 구절초 바람에 하늘거리고

졸참나무 가지에 가을 향기가

수줍게 걸려 있네요

 

높은 산 고개를 넘을 때

산 중턱 통나무 오두막 카페 지붕에는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고

 

지나던 길손들 옹기종기 둘러앉아서

당귀차, 솔잎차, 그리고 커피까지

하얀 종이컵에 숲의 향기를

함께 담아서 음미합니다.

 

울긋불긋 등산복 차려입은 사람들

부지런히 등산로를 찾아가는데

산 중턱에 시원한 약수가 흘러내립니다.

 

먼 산 능선에서 바람이 불어오면

하얀 파도처럼 흔들리는 갈대의 모습

불어오던 바람이 다시 잔잔해지면

가을 햇볕은 몹시도 따갑습니다.

 

 

 

가을 숲의 반항

장근배

 

지팡이 짚은 하늘님이 문()을 엽니다

흰 구름 수염 날리며 숲을 향해

추상(秋霜) 같이 꾸중하십니다

 

- 가을 숲은 왜 몸치장을 하는가

- 노안인 내겐 극히 현란하구나

- 숲의 나무들은 화장을 멈추거라

 

혼잣말로 투덜거리던 숲 속 나무들

바람이 전하는 귀엣말 주고받더니

벌떼처럼 일어나 궐기대회 열었습니다

 

- 무지개나 노을로 하늘님도 치장한다!

- 숲이 낮다 해도 권리는 동등하다!

- 숲속 나무에게도 멋 낼 자유를 달라!

 

이마 질끈 동여맨 색색의 머리띠들

숲의 함성이 온통 붉거나 노랗습니다

개구장이 바람은 살랑살랑 놀려대고요

 

숲에서 숲으로 번지는 아우성

온통 열이 올라 횃불처럼 타는데

바늘잎만 귀 막고 모른 척합니다

 

 

 

가을 나무 아래서

장은수

 

샛노란 새색시들이 그네를 타다가

바람이 줄을 자르면

아스팔트 위에 곤두박질친다.

 

어젯밤 소리 없이 뿌리고 간

가을비의 뜻을 알 수가 없고,

바람의 사연도 알 수가 없어

세상을 체념하고

그저 몸부림으로 나뒹굴며

처참히 아픔을 삼킨다.

 

여름으로 달려가는 은행잎이

찬 바람 불어올 것은

미처 예비하지 못하는 저 나무들

 

 

 

가을 숲

장진순

 

가을 숲속에

곤충들이 모여든다.

 

넓이뛰기를 하는 메뚜기

뛰어오르며

날개를 펴고 날아가 착지하자

반측을 선언하는 심판

 

높이 오르기에 출전한

개미가, 갈대 꼭대기까지 올라가

두 손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부르다 추락한다.

 

보물찾기에 나선

, 나비들 냄새 찾아

이곳저곳 돌아다닐 때

쓰레기 더미 속에 감춰진 지폐를

당장 찾아내는 파리

 

경기 끝나갈 무렵

난데없이 쏟아지는 소나기

우왕좌왕하는 곤충들, 그때

우산을 펼쳐 든 숲이 손짓한다.

나뭇잎 아래로 모여드는 곤충들

 

평온해진 숲속에

여인의 샤워하는 소리

 

 

 

가을 숲속에 의자 하나

정세일

 

가을 숲속에는 언제나

당신이 오실 수 있도록

의자가 하나 있습니다

당신이 언제나

그 숲속에서

꿈도 꾸시고 노래도 부르면서

가을 숲속이 들려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떫지만 그래도 고소함을

가지고 있는

키 작은 도토리의 이야기와

떼그르르 굴러서

수풀 속에 숨기를 잘하는

잘 익은 알밤이 들려주는

고소한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꽃처럼 시집가는 풀잎 이야기도

들어주시고

풀잎마다 이슬방울로

아름다움을 비칠 수 있는

목걸이를 만들어

새악시 목걸이를

눈이 부시도록

만들 수 있는

그 아름다움의 꿈이 있는

숲속의 동화 같은 한편의

이야기도 들어주십시오

가을 숲속에 당신을 위한

의자가 하나 놓여있는 곳에서

가을 숲속이 들려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가을 나무

정용진

 

태양빛이 얇아지고

지나는 바람결이 소슬해지면

시냇가에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듯

나뭇잎들을 하나둘 떨구면서

가을 나무가 하는 말이

예사롭지 않다.

 

너무 뜨겁던 날 괴로웠다.

폭풍우가 쏟아지던 밤이 힘들었다.

성숙한 과일들이

지체에서 떨어져 가던 날

마음이 몹시 아팠다.

찬 서리가 내리치던 초겨울

끝내 뜨겁고 붉은 눈물을 흘렸다.

 

가을 나무는 벗은 채

신 앞에 홀로서는

단독자의 자세로

지난 삶을 심판받는다.

내면 깊숙이 고뇌의 흔적으로

가슴 속에 둘려지는 연륜(年輪).

 

가을 나무는

알몸으로 서서 흰 눈을 기다리며

가지마다 볼록볼록

생명의 꽃봉오리를 키우고 있다.

 

 

 

기도하는 가을 나무

정재영

 

뼈 속 깊이 파고들던

햇볕의 뜨거움이

축복이었다는 것을

 

천둥소리 무서웠던 밤

비바람의 괴롭힘도

행운이었다는 것을

 

동짓날 늦은 계절에도

낙엽 덮어 줄 땅을 주신

넉넉한 마음을

알게 하시고

 

한 잎 마지막 잎새까지

스치는 바람에 떨굴 수 있는

남은 힘을 주신 것과

 

차가운 은하수로

눈 내리는 밤

두 손 모두어 올려 기도할 수 있는 믿음과

 

돌아올 양지빛

따스함의 안식을

소망할 수 있는 것은

 

님 때문

님 때문이라고

 

침묵으로 기도하는 나무.

 

 

 

가을 숲

정태현

 

가을날

햇살 눈부신 오후

어여쁜 단풍 숲속엔

황홀하게 나를 부르는 누군가 있다.

 

황갈색빛 길 속으로

미로를 따라가면

그 어디엔 듯 아름다운 요정의

황금궁전이 문 열려 있을 것 같은

 

한번 들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위험한 유혹으로

가을 숲은

나를 부른다.

 

 

 

가을 숲

최동호

 

새 한 마리 우는소리가

도끼로 찍어내듯

고요한 숲의 정적을 깨뜨린다.

 

백년 묵은

나무 뿌리의 향기를

흔들어 깨우고,

 

한해살이 풀잎 사이를 스치는 메아리는

단풍잎 선명한 시냇물 따라

미끄러지듯 낮게 기어가다 사라진다.

 

여름날 하늘을 가르던 천둥소리가

나무들의 뿌리 아래 잠들어

가을 숲 향기가 하늘로 퍼져나간다.

 

수북한 낙엽에 발목을 빠뜨리며

한 아이가

품속에서 날아간 새를 찾는다.

 

 

 

가을 나무

최송연

 

황금빛 잎새들의 슬픈 노래가

빗물처럼 흐르는 들녘 ...

 

떨어져 뒹구는 낙엽 위로

스산한 바람 핥으며 지나가고...

 

서걱거리며 흐느끼는 억새 소리

먼 길을 걸어온 의 탄식이런가...

 

그대,

, 여름, 가을,

그렇게...

온몸의 진액 긁어모아

알알이 영근 열매

생명으로 나누어 주었건만

 

이젠

나뭇잎조차 지탱하기 어려워

모두 떠나 보내야만 합니까

 

그러나 그대여,

오늘 떨어지는 낙엽을

슬퍼하며 울기보다는...

 

차라리

다가올 봄날을 기다리는

화사한 마음 되어 위를 향해

두 손을 힘껏 뻗어보세요

하늘은 언제나 거기 있답니다

 

하늘과 함께 춤추며

서릿발 모진 된서리를 견뎌 낼

준비라도 착실히 하며

그 자리에 굳게 서 있노라면

 

잎새 모두 떠나버린 가을이라 하여

그리 외롭지만은 않으리다

 

 

 

가을 나무는

홍수희

 

나무,

흔들림도 없이

잎을 떨구고 있네

 

바람조차 숨죽인

! 구도(求道)의 가을

 

누가 네 속에서 휘몰아치는

저 버거운 삶의 무게를

보았다 하는가

 

누가 네 안에서 출렁거리는

저 고뇌의 거친 파도 소리

들었다 하는가

 

그저 보이느니

소리 없이 떨어지는

고운 잎새여

 

그저 들리느니

거치른 겹옷을 벗을 때마다

가벼웁게 살랑이는 가지 끝

부드러운 운율(韻律)

 

비워 내는 만큼 차 오르는

그대의 고귀한 평화,

 

너무 꼿꼿한 너의 자태에

누군들

눈부시지 않은 이 어디 있으리!

 

 

 

가을 나무

황진성

 

새들이 날아간 자리 낙엽이 툭, , 진다.

붉음과 노랑의 경계에 서서

하늘의 주름을 잡아 당긴다

부채살로 퍼져가는 햇살

한 시절 잉걸같이 타올랐다

새발에 찍혀 멍이 든 그늘진 자리

낡은 햇살에 부비며

가을의 끝을 견디어 본다

꼭 잡은 두 손 파르르 떨린다

 

주름진 하늘 커텐 사이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

오늘은 구름 위에 앉아 차 한 잔 하고 싶은 날

멀리 있는 그대에게 편지 한 장 쓰고픈 날

괜찮아 수고했어 쓰다듬어 주는 찬바람

나는 비로소 구름이 벗어준

하얀 천상의 옷 한 벌 얻어 입는다

 

시나브로 첫눈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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