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국 - 가을날에 내리는 밤비
나상국 – 가을비
나상국 - 가을비 우산 속 바다가 춤을 춘다
나태주 - 사랑한다 말 못하고 가을비가 내린다고 말했습니다
남원자 – 울고 있는 비
남정림 – 가을비 오는 날
도분순 - 가을비
도종환 – 가을비
도종환 – 초가을 비
도지현 - 가을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류근 - 어떤 흐린 가을비
류시화 – 거리에 가을비를 세워두고
마로양 - 가을비 우산 속에
마정인 - 가을비를 맞으며
목필균 - 가을비
목필균 – 가을비 속으로
목필균 – 가을비에 젖어
문재학 – 가을비 내리는 밤
문정희 - 가을비
민경교 – 가을비
민경대 – 가을비
민미경 – 가을비 속으로
박광현 – 가을비
박광현 - 가을비 내리는 날
박금숙 – 가을비
박기동 – 가을비
박기선 – 가을비
박기섭 - 봄비, 가을비
박기원 – 가을비
박동수 – 가을비
박동수 – 늦가을 비
박만식 – 가을비
박외도 – 가을비
박외도 – 만추의 가을비
박인걸 – 가을비
박인걸 – 가을비 당신
박인걸 – 가을비 오던 날
박인걸 – 가을비 추억
박인걸 – 늦가을 비
박인걸 - 추우(秋雨)
박재삼 – 가을비
박종영 - 가을비
박진표 – 가을비
박천서 – 가을비 내리던 날
박태강 – 가을비
박형준 – 가을비
박홍락 – 미운 가을비
박화목 – 가을 빗소리
박흥락 – 가을비
박희홍 - 가을비
반기룡 – 가을비
배갑병 - 나, 가을비야
배인안 - 가을비
배창호 - 가을에 내리는 이 비는
배태성 – 가을비
배태성 - 가을비 속에서
배현순 – 가을비 내리면
백규현 - 가을비
백설부 – 가을비
백승운 – 가을비
백운호 – 가을비가 내릴 때
백원기 – 가을비
변종윤 – 비가 내리면 보고픈 사람
서정주 – 가을비 소리
서현숙 - 가을비 내리는 밤
석옥자 - 가을비 오는 날
성경자 – 가을비
성경자 – 가을비 오는 날에
성낙희 – 가을 밤비
성백군 - 가을비
소예 – 가을비
손병흥 – 가을비
손병흥 - 가을비 내리는 날
손병흥 - 가을비 오는 날
손병흥 – 가을을 재촉하는 비
손석배 – 가을비
송근주 – 가을비
송문헌 - 가을비
송영희 – 가을비
신경림 - 가을비
신경희 – 가을비
신광덕 – 가을비는 어머니 생각나게 한다
신성호 – 가을에 내리는 비
신용목 – 가을비
심경숙 – 슬픈 가을비
가을날에 내리는 밤비
나상국
깊어가는 가을밤
어둠을 적시며 내리는 밤비
어이해 임은 오시지 않고
달빛마저 꼭꼭 숨어버리고
발정 난 고양이만
교미할 짝을 찾는지
아기 울음소리 같은
앙칼진 소리로
온밤을 보챈다
서서히 사위어 가는 가을밤
멈추지 않고 내리던 빗소리는 잦아들고
새벽이 다가오도록
잠을 빼앗은
앙칼진 소리마저 사라지고
허한 마음 달래기라도 하려는지
이불을 치켜들며
있는 힘 다해
박달나무 방망이처럼
용솟음쳐 오르며
단단하게 발기하는 아침
가을밤은 하얀 그리움이어라
가을비
나상국
미처 떨어내지 못한 생각들이
오도 가도 못하고
어두운 골목길에 갇힌 밤
밤마다 늘 찾아와 맴돌며 서성이던
밤손님은 기다려도
오질 않고
저 멀리서 저벅저벅 걸어와
잠들지 못하는 밤의
긴 머리를 감겨주는
가을비
가을비 우산 속 바다가 춤을 춘다
나상국
가을비 우산 속
허기져 쓰러질 듯 무거워진 몸
비바람을 가누지 못하는
번잡한 생각
문득 어디론가 홀연히
떠나고 싶은 날
떠나지 못하고
비 내리는 관매도 바다를
앙망하던 날들
멀리 파도의 높낮이에 맞춰
끼룩끼룩 춤을 추듯 갈매기 날던 바다
어둠이 내린
등대 불빛마저도
빗속으로 젖어드는 밤
절실한 모서리 끝에 매달린 바다가 그리워
줄달음질 쳐보지만
떠나야 할 때
떠나지 못하고
주저 물러앉아
백사장 모래 속
입 다문 조개처럼
쥐 죽은 듯 살아온
마도로스였었던
지아비 잃은 섬 아낙
오랜 고통 속 외로움마저
희롱하는 파도 소리만
절벽을 가파르게 기어오르며
여기가 바다임을 알리듯
여한(餘恨)의 성(性)을 내고 있다
사랑한다 말 못하고 가을비가 내린다고 말했습니다
나태주
사랑한다는 말은 접어두고서
꽃이 예쁘다느니 하늘이 파랗다느니
그리고 오늘은 가을비가 내린다고 말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접어두고서
이 가을에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역에 나가 기차라도 타야 할까 보다고 말을 했지요
사랑한다는 말은 접어 두고서
기차를 타고 무작정 떠나온 길
작은 간이역에 내려 강을 찾았다고
그렇게 짧은 안부를 보내주었지요
사랑한다는 말은 접어둔 채로 그렇게 떠나온
도시에서 이 강물이 그렇게나 그립더니만
가을이라 쓸쓸한 노을빛 강가에 서고 보니
그리운 것은 다른 어느 것이 아닌 사람이더라고
그렇게 당신의 그리움을 전해왔습니다
끝내 사랑한다는 말은 접어두고서
그 강가 갈대숲에 앉아 하염없이
흐르는 강물만 바라보았노라고 말을 했지요
사랑한다는 말은 내색도 없이 접어두고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주문처럼 외웠다 했습니다
강물은 흘러 바다로 간다지
저 강물은 흘러흘러 바다로 간다지
그렇게 흘러가는 강물을 보고 있자니
흐르는 것은 강물만이 아니더라고
나도 흐르고 너도 흐르고
우리 모두 어디론가 흘러가더라고
사랑한다는 말은 접어 둔 채로
그렇게 흐르는 것은 인생이더라
사랑한다는 말은 끝끝내 접어두고서
울고 있는 비
남원자
이른 새벽 동트기 전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보니
가을비임이 하염없이
눈물 흘리고 있다
뭐가 그리도 서러워서
엉엉 소리 내 울고 있는지
천둥도 데리고 와서
우르르 쾅쾅 통곡한다
하늘은 까맣게 잿빛으로
무엇을 삼킬 듯이 어둡게 깔리고
차들은 거북이걸음으로
빨갛게 눈뜨고 기어간다
가을이냐 떠나기 싫은가
눈물을 흘리고 있구나
가을비 오는 날
남정림
가을비 오는 날이면
빗줄기 타고 흘러내리는
네 생각에 첨벙거린다
곁에 있을 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지 못한
맛있는 밥 한 그릇 더 챙겨주지 못한
내 눈물이 손수건보다 먼저 마음을 적신다
너를 사랑했으면서도
너의 우산이 되어 주지 못했던
내 마음의 가을비는 언제쯤 그칠까
후~ 불면 흩어져 버리고 마는
스크린 도어의 빗방울처럼
너무 빨리 떠나 버린 너를
나는 환절기처럼 잃는다.
가을비 오는 날이면
가을비
도분순
내 마음속 아지랑이가 꾸물거리며
신기루 같은 간헐적인 그리움을
가을비가 냉가슴을 쓸어내린다
새벽녘에 뿌옇게 피어난 안개를
한 주먹 움켜쥐고 흔들어봐도
남는 건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삶을
가을비는 연연하지도 않았다
행여, 입김으로 달래봐도 흔적 없고
호통을 쳐봐도 아랑곳없던 가을비를
호수는 너그럽게 받아들이지만
그 마음 덧없지 않기를 바라본다
자그마한 손에 앉은 이슬비가
솟아오른 태양의 햇살에
더 깊숙이 호수 속에 스며들어도
내면을 잠재운 포용력, 가을비는 알까
가을비
도종환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
잎들이 지고 있습니다
어제 우리 사랑하고
오늘 낙엽 지는 자리에 남아 그리워하다
내일 이 자리를 뜨고 나면
바람만이 불겠지요
바람이 부는 동안
또 많은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
한 세상을 살다가 가겠지요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
피었던 꽃들이 오늘 이울고 있습니다
초가을 비
도종환
마음 무거워 무거운 마음 버리려고 산사까지 걸어갔었는데요
이끼 낀 탑 아래 물봉숭아 몇포기 피어 있는 걸 보았어요
여름내 비바람에 시달려 허리는 휘어지고
아름다운 제 꽃잎이 비 젖어 무거워 흙바닥에 닿을 듯 힘겨운 모습이었어요
비안개 올리는 뒷산 숲처럼 촉촉한 비구니 스님 한 분
신발 끄는 소리도 없이 절을 돌아가시는데
가지고 온 번뇌는 버릴 곳이 없었어요
사람으로 태어난 우리만 사랑하고 살아가며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만물은 제가 지고 선 세속의 제 무게가 있는가봐요
내리는 비 한 천년쯤 그냥 맞아주며
힘에 겨운 제 무게 때문에 도리어 쓰러지지 않는
석탑도 있는 걸 생각하며
가지고 왔던 것 그대로 품어 안고 돌아왔어요
절 지붕 위에 초가을 비 소리 없이 내리던 날.
가을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도지현
무슨 슬픔이 저리 많은지
밤새 흘리고도 또 온종일
하긴 떠나보낸다고 함은
늘 가슴에 아린 아픔을 주었지
가는 이나 남아 있는 이나
멍울진 가슴에 상처로 머물고
무한 세월 속에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기약 없는 이별에서야 도리가 없지
체념한다 하면서도 남은 미련에야
무상한 세월 속에
또 한 자락의 연민을 남긴다
소리마저도 애를 끓이는지
저물어 가는 시간 적막 속에서
나지막이 흐느끼는 소리가
끝없이 끊임없이 귓가에 맴도는데
어떤 흐린 가을비
류근
이제 내 슬픔은 삼류다
흐린 비 온다
자주 먼 별을 찾아 떠돌던
내 노래 세상에 없다
한때 잘못 든 길이 있었을 뿐
붉은 간판 아래로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같은 추억이
지나간다 이마를 가린 나무들
몸매를 다 드러내며 젖고
늙은 여인은 술병을 내려 놓는다
바라보는 순간
비로소 슬픔의 자세를 보여주는
나무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숙이고 술을 마신다
모든 슬픔은 함부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삼류가 된다
가을이 너무 긴 나라
여기선 꽃 피는 일조차 고단하고
저물어 눕고 싶을땐 꼭 누군가에게
허락을 받아야 할 것 같다
잎사귀를 허물면서 나는
오래전에 죽은 별자리들의 안부를 생각한다
흐린 비 온다
젖은 불빛들이 길을 나선다
아무도 듣지 않는 내 노래 술집 쪽으로 가고
추억 쪽에서만 비로소 따뜻해지는
내 슬픈 잎사귀 또 비에 젓는다
거리에 가을비를 세워두고
류시화
시월은 안사돈들이 나란히 나와서
혼례의 촛불을 밝히는 달,
우리나라의 단풍은 이 한 달을
북에서 남으로 걸어서 내려오느니
휴일에는 한줄금 비를 데리고
빗속에 우산을 들고
플라타너스 잎 지는 거리에 나서면
우중충한 소문들도 잠시 귓전에서 멀어진다
우산 하나로
헛되고 욕된 세상을 비껴갈 수야 없지만
새벽마다 길섶 찬 이슬로
더욱 맑아지던 풀벌레의 울음소리
이 차가운 빗속에
한꺼번에 사라져버린 것은 아니리
거리에 가을비를 세워두고
찻집에 들러 혼자라도 좋으니
잘 끓인 커피 한잔을 천천히 맛보며
월명 시인의 제망매가
몇 구절을 떠올리고 싶느니.
가을비 우산 속에
마로양
잘 지내지요
무던히도 긴 시간이 지났네요
이렇게 가을비가 내리면
어떤 그리움이 돋아나
소소하게 안부를 묻고 싶어집니다.
님께서 계신 하늘쪽을
수도없이 바라보았던 날들
드높은 가을 하늘 아래서
호젓하게 떠나시던
그 그림이 지워지지 않아
참 많이도 힘들었습니다
가을비를 맞으며
마정인
한 잔,
두 잔,
나는 시방 젖고 있다
망둥이처럼 첨벙대며
철없이 엎질러 놓은 지난날
미운 마음 드는 순간마다
켜켜이 주름이 잡혔다
미간의 도랑을 타고
사뭇 적시는 빗물
빈 술통처럼 나는 너에게
갸웃갸웃 노를 젓는다
친구여
너의 발치는 어이 그리 먼 것이냐
창밖의 찬비는 묵은 때를 벗기고
시방 은구슬을 꿰고 있다
너에게 주려고
너에게 주려고.
가을비
목필균
때론 눈물나게
그리운 사람도 있으리라
비안개 산허리
끌어안고 울 때
바다가 바람 속에
잠들지 못할 때
낮은 목소리로
부르고 싶은 노래
때론 온몸이 젖도록
기다리고 싶은
사람도 있으리라.
가을비 속으로
목필균
체온을 낮추고 있다
창문 가득 기웃거리는 빗방울
스치는 찬기로 오소소 돋는 소름
동공속으로 잠기는 우수
온기없이 견디는 밤에
신열이 오른다
따뜻한 목소리
서늘한 눈빛이
포근한 가슴이
만지고 싶다
출렁거리던 그리움
싸늘한 커피잔에 넘친다
추적거리는 비가
선명하게 그려낸 얼굴
맥박이 낮아지고
체온이 떨어지며
넘치는 그리움 속으로
온몸이 내려앉는다
가을비에 젖어
목필균
지천명 가는 길에 비가 내린다
민들레 피어나던 들판을 지나
탁류로 흐르던 여름 강을 건너
자줏빛 국화꽃 한 아름 안고
저물도록 걸어온 불혹의 끝에 선다
늙지 않는 외로움
지병처럼 끌어안고 가는 길에
쉼 없이 비가 내린다
추적추적 - 추적
추적- 추적추적
지천명 가는 길 뒤를 밟히며
비에 흠뻑 젖는 오늘이 시리다
* 지천명 : 나이 쉰 살.
가을비 내리는 밤
문재학
사랑의 불꽃을 피우며 거닐던
그 옛날 골목길에
차갑게 내리는 무정한 가을비
붉은 가로등에 젖어 흐르는
아련한 임의 모습
뜨거운 추억으로 타오르는데
왜 이렇게 옛 상처가
이 밤에 이렇게 아플까
스며드는 추억 눈물로 어리네.
알알이 맺힌 서러움
외로움에 젖은 술잔에 타서 마시는 것을
예정을 남기고 떠나간
다시 못 올, 그 임은 아시러나
달랠 길 없는 애달픈 마음
가로등 불빛에 꿈의 조각 흩어지듯
부서져 내리는
방울방울 빗방울
하염없이 바라보니
덧없는 세월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가을비
문정희
가을비는 치과를 다녀오는 노인의 냄새로 다가든다
음울한 북구(北歐)도시 회색 건물과 건물 사이로
무거운 외투를 전생처럼 걸치고
느리게 걷다가
이내 사라지는
어디서 굴러온 지 모르는 전단지처럼
유령처럼
낮은 땅을 쓰다듬는다
노인의 치아는 새싹처럼 다시 돋을 것인가
길고 막막한 기다림처럼
가을비는
움울한 외투를 걸치고
구부정하게 걸어 나온다
차가운 소독 냄새로 지상을 점령한다
가을비
민경교
촉촉이 내리는
가을비 속에
앙상한 가지에
맥없이 걸려있는
슬픈 단풍잎
단풍잎 타고
내려 맺힌 물방울
물방울 속에
찌그러진 얼굴들
세월 따라
흘러가는
우리들의 인생입니다
가을비
민경대
비가 교정에 내리는데
가을을 떠나보내는 눈물인 양
가을비가 마지막 남은 낙엽을 손으로 밀며
지상으로 낙엽도 비가 되어 떨어지는
지변동 교정에 오늘은 무슨 일로
나는 홀로 서서 시간을 타고
경포 바다로 떠밀려 나가는가.
경포호수에도 비는 내리고
아무런 소식도 없이
오늘 수업 시간에 영시 한 부분이
자꾸 눈 속에 들어온다
"큰 여송연 마는 사람을 불러라 근육이 씩씩한 자들"
가을비 속으로
민미경
새벽하늘을 삼키며
가을비 내립니다
가만가만히 내리는 빗소리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더 깊은 향기를 머금으며
빛 고운 햇살 문을 열 때
오색별 하나 둘 셋
그리움 피어나는 가을
해맑은 영혼
어둠 속에도
길을 잃지 않으며 담아내는
안개 자욱한
실빛 그리움까지
너털웃음 지으며
한 잔 그리움의 술
온 가슴으로
마시고 싶은 가을은 익어갑니다
가을비
박광현
1
한기(寒氣)를 느끼면서 비를 맞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걷고 또 걸어 갑니다
내리는 비를 맞고 떨어진 가로수 잎을 밟으며
무작정 걷고 또 걷습니다
가고 있는 길의 끝이 어딘지도 모르고.....
유년시절(幼年時節)의 꿈을 생각하며 걷고 있는 건지도,,,,,
가을비가 우리 모두의 마음을 너무 약하게
하는 것 같아 더더욱 우울해 집니다
어깨위를 적시는 가을비를 맞으며
이 늦은밤 아무런 생각없이 다리가 아파오리만큼
걷고 또 걷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걷고 쉬려 합니다
가을비 원망 하지 않고 비도 맞지않고
쉬려 합니다
빗방울이 굵어져 앞이 보이지를 않네요
2
가을비가 내리는 가을밤
길가를 밝히는 가로등 불빛이
차가운 밤비를 맞으며 밤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비가 그치고 나면 짧은가을은 더욱더
짧아 질테죠?
그래도 가을비가 내리면 좋아지는건 왜일까요
이 비가 그치고 나면 가을은 더 깊어 질테고
붉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은 더 곱고
짙은 색깔의 옷으로 가을을 장식 하겠죠
창밖에 뿌려지는 가을비에
그대향한 그리움을 적셔 보려 합니다
잊으려 노력해도 잊혀지지 않는
그대 향한 그리움을 감추려
오늘 밤 내리는 빗소리에
내 마음 실려 보내려 합니다
가을비 내리는 날
박광현
높고 파랗던 하늘에 어느 틈에 잿빛
구름이 큰 우산을 펼치더니
한두 방울씩 비가 내리기 시작하네요.
아직 꽃을 활짝 피우지 못한 해바라기는
연인인 해님 찿아 헤매는데
가을비 내리는 오늘은 연인 얼굴을
볼 수 없게 되었네요.
짙은 초록 잎사귀 위에 내려앉은
빗방울이 또로록 구르며 가을날의
짧은 여행을 시작하려 합니다.
가을비
박금숙
타들어 가는 목마름 끝으로
시름시름 가을을 앓는
비가 내린다
그립다, 말 한마디 못 하고
또 한 계절 깊어지고 있다
한때 발랄했던 지상의 생물들은
스산한 빗줄기 속에서
꼼짝할 수가 없다
단 한 번의 몸부림도 없이
정해진 운명대로
홀연히 체념해야 한다
고독은 누가 묻지 않아도
그대로의 고독이다
사랑한 적도 없는데
빗물 흐른 자국마다
불같은 상처 입고
풍문에 온몸 떨고 있다
가을비는 저리 내리는데
누구 하나 행적을 묻지 않는다
가을비
박기동
눈치챘느냐, 고?
속초역에서 만난 여자
바다를 배경으로 앉아 있던 그 여자
이 비 그치면
떨어지는 낙엽도
거리마다 지천이겠다
간다
간다 하면서
올해도 이미 늦었다.
굴리던 차도 폐차시킨 터
구룡령 단풍 지는 거
내년이면 볼 수 있을까?
가을비
박기선
때늦은
가을비가 주룩주룩
산과 들을 적신다.
목 느린 벼 이삭
만삭에 허리 펼 날 없고
갈잎은 젖어 지는데
시궁창에 흐르는 물
한줄기 시냇물 되어
송사리 어울려 오르고
한숨 지는
촌부의 가슴
조바심을 아는지
갈걷이
근심 걱정 몰라
비는 내리기만 하여
때늦은 객수(客水)로
알알이 여물어 황금들
씨알은 몸살을 하고 있구나,
봄비, 가을비
박기섭
봄비는 봄비라서
산개울 빗장을 풀고
거년에 이운 꽃을
다시 물어 올리고
파 고추 모종을 내고
상추씨를 뿌리고
가을비는 가을비라서
눈썹을 적시다 말고
잦아든 붓도랑이
혀짤배기 소리를 하고
깨 타작 콩 타작을 하고
저녁밥을 안치고
가을비
박기원
바람 불어요
쉴 새 없이 바람을 읽는
나무와 같이
얼굴은 내 마음을
가을바람의 모습으로 읽고 있어요
비가 올 것 같아요
벌써 떨어진 이파리들은
검은 아스팔트 위를
아프도록 뒹굴고
이 계절을 떠나려 해요
우산도 없이
바람이 쓸고 간
젖은 가슴을 걷고 있어요
벌레 먹은 낙엽의
섬유질 그물 같은
걸어 온 발자국을
바람이 울고 지나가요
이 비가 그치면
찬바람 불어와
예민하여진 감각을
울릴 것 같아요
울음보다도 지금은
비가 오는 것이
눈물 같아요
가을비
박동수
찬 바람 함께
죽죽 내리는 가을비
가을밤
다 비어가는 훤한 가슴
문을 열어놓고
구멍 난 풍선인 양
쏴 바람을 뿜어낸다.
생각은 쭈그러들고
늦가을 비
박동수
아파트 길
붉은 단풍 잎 사이로
씨앗을 위해 핏물을 뿌린
숨겨둔 긴 이야기가
쏟아 지고 있다
속 시원한 빗줄기의 언어
후두둑 후두둑
太古 적부터 쌓아둔
가슴속의 말
지칠 줄 모른다
붉은 잎 사이
익은 열매의 속내가
우리의 사랑과 애환의 씨앗
뒤엉킨 추억들이
그리움의 전설이 되어
낙엽 사이로
빗줄기로 쏟아진다
가을비
박만식
잠든 변산의 꼬리뼈 더듬으며
곰소항 지나 내소사에나 가야
열린 귀 다시 닫힐까
어판장에 갇혀 살아
못나 터졌다는 줄포 댁이
함지박에 왕소금으로 밴댕이 뒤섞는,
추분 무렵 샐비어 꽃밭 앞에서
국화 문양 넣어가며
창호 문에 몽당비 풀칠하는,
열무 겉절이 버무리고
확독 헹구는, 빗소리
……가을 빗소리 들으면
닫힌 귀 다시 열릴까
가을비
박외도
가을비가 연 이틀째
하염없이 내린다
귓바퀴에 매달리는 빗소리
연인의 속삭임처럼
달콤하게 마음을 적시고
때로는 가슴 깊숙이 파고들어
엄마의 사랑을 보채는 아이처럼
온종일 징징댄다
가을비가
이별의 아쉬움에
가슴을 적시듯
쉼 없이 숨죽여 내린다
아픈 영혼의 생채기
폐부 깊숙이 갱이처럼 박혀
짙은 가슴앓이로 채운다
녹색의 청춘
얼마 남지 않았노라고
속으로 곰삭히는 눈물이다
덧없는 생을 향한
질곡의 눈물이다
한없는 사유(思惟)에 대한
회환의 눈물이다
만추의 가을비
박외도
오솔길 수북이 쌓인
융단 같은 낙엽 위로
가을비 겨울을 재촉한다.
빈 가슴 횡 하니 비어
오색단풍잎 시린 한기로
마른 잎 되어 바스러질 때
손에 쥔 것 아무것도 없이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라고
늦은 가을비는
그렇게 온종일 슬픈 애가를 부르며
하염없이 내립니다.
낙엽을 밟으며 걸어온
계절의 흔적으로
여위고 주름진 가슴 위에
남은 잎마저
한잎 두잎 떨어질 때
이생에 연모하던 모든 것 떨쳐버리고
부활의 그 날을 기대하며
미련 없이 살다 가라고
만추의 가을비는
늙어가는 가슴에도
소망의 노래로 위로하며
끊임없이 내립니다,
가을비
박인걸
1
그리움에 지쳐
빗물이 눈물 되어
가슴으로 흘러내려
영혼을 적신다.
그해 가을에 떠난
단발머리 손녀가
비가 내릴 때면
이리도 생각날까.
못다 핀 꽃잎 위에
슬픔이 고이고
비 맞은 새의
울음도 서럽다.
산허리의 안개는
가슴을 끌어안고
바람마저 잠들어
애타는 맘을 안위한다.
그 긴 세월에도
가을비에 흠뻑 젖어
그리워할 이 있으니
행복이 아닐는지
2
가을 빗물이
가슴을 촉촉이 적실 때
묻어두었던 그리움이
바위 이끼처럼
파랗게 살아나고 있다.
그 해 가을비를 맞으며
그녀와 오솔길을 거닐 때
마주치던 눈동자에서
나는 사랑에 흠뻑 젖었다.
세월의 뒤안길에
잊어버린 아련한 추억
빗소리에 떠오른 그대 생각
보고파 눈물이 핑 돈다.
가을비는 이렇게
그리움만 싣고 오는가.
며칠 전 내릴 때는
어머니 생각을 싣고 오더니
3
가슴을 적시는 가을비가
멈추지 않고 사흘째 내린다.
언저리에 묻은 삶의 얼룩이
절어 붙어 지워지지 않아서다.
한 시절을 지나오던 때
우리는 얼마나 치열했던가.
경쟁의 대열에서 뒤처지기 싫어
미움과 질시와 증오와 원망
부끄러움으로 뒤범벅이 된 삶
덮기보다는 들춰내고
용서하기보다는 정죄하고
이해보다는 부추기고
사랑보다는 정죄하며
양보하기보다는
상대방을 짓밟으며 살아온
온갖 부끄러운 오욕들을
말끔히 씻어내려고
가을비는 이렇게 쉬지 않는다.
맑은 가을 하늘 아래
새하얀 국화 앞에서
떳떳하게 얼굴을 들게 하려고
가을비는 가슴을 씻고 있다.
4
이른 새벽부터
차분히 내리는 가을비는
텅 빈 내 가슴을
충만하게 채우고 있다.
치열하게 달려 온
한여름의 고달픔으로
나는 누군가의
위로가 절실했나 보다.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해갈되지 않는 목마름으로
시들어 버린 풀처럼
지쳐버린 영혼에
적절하게 찾아와
구석구석 흩뿌리며
이토록 감격하게 하는
당신은 과연 누구십니까?
5
단풍을 재촉하는 비가
거룩한 의식(儀式)을 베푼다.
곱게 늙는 초목에
성례수가 관수(灌水)될 때
나무들 마다 목례를 하고
뒤늦게 피는 들꽃은
마주 보며 찬양을 한다.
사납던 들 바람은 묵상을 하고
시끄럽던 세상이
주일 예배처럼 경건하다.
가을이 올 때면 이렇게
성우(聖雨)를 쏟아 부어
오염된 세상을 정화한다.
이런 날이면 나는
들길을 걸으며 비를 맞는다
가슴으로 내리는 빗물이
겹겹이 쌓인 오욕(汚辱)들을
말끔히 씻어내면서
마음을 단풍빛으로 물들이라 한다.
풀잎에 묻은 얼룩을 보면
오늘의 성례는 길어질 모양이다
가을비 당신
박인걸
목이 메도록 기다렸는데
오늘에야 오시는군요.
가슴은 설레고
맥박은 빨리 뜁니다.
그토록 기나긴 세월
소식 없어 애태우시더니
홀연히 찾아온 당신 사랑이
내 가슴을 흠뻑 적십니다.
어느 땅을 밟으시며
누굴 만나다 오셨나요.
하늘 저 너머 어디에
피치못할 일이 있으셨나요
속삭이는 당신 음성은
고운 음악만큼 감미롭고
가슴에 스며드는 향기는
커피향보다 더 짙습니다.
발길을 돌리지 마세요.
나를 두고 가지 마세요.
당신을 마음껏 느끼도록
며칠이고 내려주세요.
가을비 오던 날
박인걸
하염없이 내리는 가을비는
복잡한 세상을 차분하게 하고
무덥고 지루했던 여름의 열기를
단번에 삭히고 있다.
지나간 1년의 시간들은
입사 경쟁만큼 치열했고 복잡했다.
코로나 19와 싸우느라
정신은 혼곤하고 몸은 곤비하다.
안연했던 때의 비 오는 가을엔
그리운 사람 한없이 그리워하며
빗방울만큼이나 많은 추억을
찻집 창가에 앉아 되새겼는데
이렇게 가을비가 곱게 내려도
좀처럼 감성이 휘둘리지 않는다.
파김치마냥 늘어진 몸을
사우나에 깊이 담그고 싶을 뿐이다.
가을비 추억
박인걸
추적이며 내리는 가을비는
옛 추억을 가득 싣고 온다.
보랏빛 쑥부쟁이 함초롬히 피던
그 해 가을이 생각난다.
비에 흠뻑 젖은 네가
까만 눈동자로 나를 바라볼 때
나는 너에게 우산이 되어
끝까지 그 길을 걷겠다 고백했다.
고된 바람이 발걸음을 붙잡고
폭우(暴雨)가 길을 지우면
그 위에 한 척을 배를 띄워
지평선 끝까지 함께 가기로 했다.
나는 손을 내밀어 너는 붙잡았고
너는 전혀 뿌리치지 않았다.
들국화 같은 둘의 사랑은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이 되었다.
홍수(洪水)도 삼키지 못한 사랑은
죽음보다 더 강했고
몹시 아껴준 서로의 마음이
생(生)의 가을 길을 아직 걷게 한다.
늦가을 비
박인걸
늦가을 찬비가 내리면
가슴 지층에 가득 고인다.
그렇게 고인 빗물은
오래전에 고인 빗물과 곶자왈이 되어
이따금 밖으로 솟구친다.
깊이 고인 빗물에는
고운 추억이 분자(分子)로 떠돌고
혹은 슬픈 입자(粒子)로 방황하다
오늘 같은 날에는 같은 類와 만나
가슴을 뒤흔들며 치솟아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빗물에 젖은 나뭇잎에 동정을 느끼며
지층은 서서히 허물어지고
바람이 없어도 한쪽으로 쏠리며
그리움의 출처로 달려가고프다.
비가 세차게 내릴 때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가을비는 그리움 병을 도지게 한다.
추우(秋雨)
박인걸
1
어스름한 미명(微明)에
추우(秋雨)는 연실 추적이며
의식이 혼곤(昏困)한 자아를
아프게 흔들어 깨운다.
하절(夏節)과 작별하고
추계로 들어섬이 슬퍼 설까
낙루(落淚) 같은 빗물이
애련(哀憐)하게 파고든다.
소중(所重)했던 시절에
꽃 타래처럼 엮은 추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이별을 맞음은 애달픔이다.
그러나 애착(愛著)하지 않으리.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으리.
헤어지고 난 이후에는
더 큰 인연(因緣)이 오더라.
간다면 미련 없이 보내리.
온다면 가슴을 열고 맞이하리.
세월처럼 강물처럼 흐르며
아무 속박(束縛) 없이 살리라.
2
얼마 전 대관령을 지날 때
가을이 들국화와 함께 웃더니
며칠 만에 경읍(京邑)에도
염섬(廉纖)이 가을을 재촉한다.
수억(數億)의 목엽마다
추우(秋雨)는 온종일 염색하고
들풀까지 샅샅이 수색하여
고운 물감을 뿌린다.
시기를 감지(感知)한 듯
잎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사제(司祭)들이 서품 받듯
분위기가 매우 성스럽다.
각기 살아온 혼(魂)들을
색깔로 드러내 보이는
평전(評傳)의 품평(品評)을
가을 빗소리는 고지(告知)한다.
가을비
박재삼
가을 아득한 들판을 바라보며
시방 추적추적 비 내리는 광경을
꼼짝없이 하염없이 또 덧없이
받아들이네
이러구러 사람은 늙은 것인가
세상에는 별이 내리던 때도 많았고
그것도 노곤하게 흐르는 봄볕이었다가
여름날의 뜨거운 뙤약볕이었다가
하늘이 높은 서늘한 가을 날씨로까지
이어져 오던 것이
오늘은 어느덧 가슴에 스미듯이
옥타브도 낮게 흐르네
어찌 보면 풀벌레 울음은
땅에 제일 가깝게 가장 절절이
슬픔을 먼저 읊조리고 가는 것 같고
나는 무엇을 어떻게 노래할까나
아, 그것이 막막한
빈 가을 빈 들판에 비 내리네
가을비
박종영
스산한 산기슭 해 질 무렵
추적추적 가을비가 흩뿌린다
산비탈 은밀한 덤불 속으로
기나긴 이별의 눈물길을 만들어 숨어든다
산 아래 절간 초라한 법당 안의 열린 창으로
부처의 자비가 자유롭게 드나드는지
엎드려 합장하는 소복 여인의
얇은 미소가 열반에 드는가, 곱다
고요 속으로 저 혼자 젖어가며
누구나 첫사랑은
짝사랑이어야 한다고 귀띔하는 가을비,
어둠이 내리고 빗소리의 흐느낌이 아득하다
가을비
박진표
1
하나둘
떨어지는 낙엽
촉촉히 내리어
생명의 마중물
먹여주는 아침 이슬
하루의 축복 위에
오늘이 일어나
아침을 맞는다
하늘의 아들
생명의 딸들아
가을비 타고
무지개 데려와
겨울이 오기 전에
익어가는 가을
토실토실 살찌워라
가을은
가을은
착한 가을은
내리는 가을비
젖물려 안아주네
2
아낌없이 내주고
기쁨의 눈물로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이별을 준비하는 그대
그 뜨겁던 태양 속에
황금 들녘을 품어
넉넉함과 겸손을 가르친
당신을 배움 합니다
이제 비 되어
대지의 생명들
목축여 주시고
그리움 남기고 떠나시려 합니까
이별은 또 다른 만남을 준비하고
나는 그 비를 맞으며
가난한 마음을 채우며 씻으렵니다
늘 처음처럼 그렇게 그렇게
가을비 내리던 날
박천서
바람은 부지런히 가을을 쓸어 담는다
빗방울 무게에도 버티기 힘든
단풍은 쓰러져
아스팔트 바닥에 아스라한 슬픔을 그리고 있다
떠나기 위해 옷 갈아입는 계절
가야 하는줄 알면서도 낙엽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허물로
마지막 사연 전하려 애쓰는 모습이 가련하다
서둘러 제 갈길로 각기 사라지는
사람들 틈사이로
엉겁결에 피신한 지하도 계단의 낙엽들
가을이 지나는 마지막 길목에서
철저한 타인으로 외면당하는 아픔이 서럽다
가을비
박태강
비 내리는 소리 음악 되어
조용한 내 가슴 찾아
내 마음 풍선처럼 부푸네
푸르른 삶은 활력으로 가득하고
무디어진 나의 가슴
지난날 어린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초가지붕 흐르는 빗물
언제나 그 자리 떨어져
소록한 모래덤 되고 파여
순으로 흐르는 물
바위를 뚫고
작은 낙수가 구멍을 내듯
언제나 바른 한마음 한뜻으로
노력하고 노력하면
이루지 못 할 일 없다던 선생님 말씀
비오는 날 그리움
나의 가슴 깊은 곳 정이 되어
애타는 보고픔으로 피어나네
가을비
박형준
창문을 여니
비에 떨어져 나가는
잎새 사이로 반짝인다
빈 길을 걸어
돌아오는 이의
작은 기침
오래 집을 나간 사람
돌아보게 만드는 가을비
미운 가을비
박흥락
고운 편지지에
하트 하나 그려서
가을바람에 실어
그대에게
편지 한장 보냈는데
가을비에 다 젖어서
그대에게 배달이나 될까
그대 읽을 수 있을까
가슴으로 보낸
편지인데 안 보여도
그대
가슴에 새기겠지
가을 빗소리
박화목
간 밤에
찾아 올 사람 없는 나의 객창(客窓)에
누가 몰래 와서 자꾸만 두드리더니
흐느끼듯 기타의 외로운
가락을 울려 들려주더니
밤 새 담쟁이 가랑잎들이
비(悲)에 홈빡 젖어, 이 아침
이별을 결심하고 찾아온
마지막 시간의 그 여인처럼
아무 말이 없다
비는 그쳤어도 피부 속 스며드는
싸늘한 한기(寒氣), 가슴 속에도 병든
가랑잎들이 이리저리 구을르고 쫓기다가
담장 밑이나 그런 구석진 곳에
웅크리고들 있을 테지
잠시나마 종말(終末)의 화사한 볕이
그들의 못다한 생명의 보람을
쓰담는가 했는데, 아
조국의 자랑이라는 가을 하늘이 다시
흐리어, 창 밖에 가을 빗소리
이 마음 하염없이 얼룩이 진다
낙엽이 쌓인다
가을비
박흥락
하루 종일 처마 끝에
매달린 당신
조그마한 그리움이
커져서 빗방울 되어
그리운 목소리로
그대 부르네
부르고 또 불러도
그리운 그대는
가슴속 깊이 머리 숙이고
두 주먹 움켜쥐고
흐느끼고만 있는데
당신은 밑으로만 떨어져
소리 지르며
흘러 흘러가네
가을비
박희홍
부슬부슬 쉬엄쉬엄 비가 내리니
가을이 깊어가려는가 보다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방울도
헤어져야 할 때를 아는지
또르르 구르지 않고 머뭇거린다
담 틈새에서 귀뚜라미 울어대니
가을이 점차 깊어가려는가 보다
짝을 위해 꾸민 신방에
빗물이 스며들어 신접살림 다 망쳐났다며
귀뚤귀뚤 원망스럽게 목 놓아 운다
살살이 꽃이 비에 처량하게 떨어대니
가을이 더욱더 깊어가려는가 보다
꿀 품은 노란 보석 젖으면 벌 나비 슬퍼하고
꽃잎 사라지면 모두가 허전할 것이니
어서 해님 활짝 웃으며 떠오르길 기다린다
가을비
반기룡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양철 지붕을
툭툭 건드리며 하염없이,
어느 때는
라르고로 아디지오로
어느 때는
모데라토로 비바체로
가을비는 영물인 듯합니다
음악의 빠르기를 이미 몸에 익힌 듯
박자를 맞추며 대지를 애무합니다
그 소리도 다양합니다
후두둑 후두둑
살랑 살랑
부슬부슬
주룩주룩
오늘은 가을비를 바라보며
노래 연습을 항하사처럼 했습니다
나, 가을비야
배갑병
후두두 싸아악
그만큼만 내린다
한 달여 기다림에
지치고 패인 몸뚱이
이제는
안식하라 내린다
나,
가을비야
가을비
배인안
추억처럼 내리는 가을비에
마음도 따라 젖네
농익은 초록 잎 수줍은 듯
발그레 물든 꽃단풍이
사분사분 내리는 빗물 타고
홀홀이 떨궈지다
거미줄에 걸린 단풍 한 잎
마지막 잎새처럼 매달려
떨궈지지 않으려는
안간힘 애잔타
한바탕 휘도는 바람에
저 잎새마저 떨어지면
가을은 저만치 멀어지겠지
밤은 무심히 깊어만 가고
가을비는 추적추적 하염없어라
가을에 내리는 이 비는
배창호
저물녘 가을을 적시는 이 비는
짧은 만큼 아쉬움도 크다
언덕 위 싸리 꽃나무
노랗게 변한다는 건
소슬하게 짙어 가는 것
앞산,
한 소절(素節) 열정만큼이나
빨간 산 감도
연연한 미련이 남아돌아서
오늘같이 가랑가랑 진 날에는
질척거리는 침묵이
숙연한 애달픔이 되었어도
막상 닿고 보니 저미도록 아프게 한다
갈꽃도 한때라고 하마하마
속절없이 목메게 하는 이 비가
보고 싶게 한다
하염없이!
가을비
배태성
가을비는
반겨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감나무도
밤나무도
떨떠름한 눈치고
논밭에서
추수 기다리는
농민들도
눈살을 찌푸리고
재활용품 줍는
등허리 휜 할머니도
못 마땅해한다,
다들 싫어하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밤을 새운다
눈치도 없이.
가을비 속에서
배태성
해가 뜨지 않는
하늘을 바라봅니다,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만
슬픈 세월만
이 아침에 머뭅니다,
뿌연 먼지 덕지덕지
억 겹의 한처럼
주루룩 창문에 흐르고
그래도 깨어난 외로움이
밖을 내다봅니다,
오늘도 그대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가을비 내리면
배현순
가을비 내리면
가슴 파고 드는 찬바람
겨드랑이 훑고
폐부를 멍들일 것을 알지
가을비 떨어질 때
양철지붕이 울고
엉금엉금 기어드는
청개구리 발자국
먼 산 바라보는 눈망울만
스며 젖고 스며 젖는
억새의 흔들림
곁에 있는 것들 모두 떠나가는 계절
그 계절이 오는 거야, 가을비 내리면.
가을비
백규현
너를 만나고 난 뒤
나는 또 비가 되어 울었다
우르릉 쾅쾅 뇌성벽력 속에
온 세상 적시는 여름비로 울지 못하고
마른 풀잎 한 웅큼 적시는
가을비로 그렁그렁 울었다
갈래야 갈 수 없고
올래야 올 수 없는
아픔으로 쌓인 산 앞에서
어쩌면 꿈일지도 모른다는
하얀 환상을 쫓으며
울어서 채우지 못한
서러움의 갈증은
먹장구름 덮힌 가슴속을
마른번개로 찢었다.
가을비
백설부
가을비는 그리운 사람의
뒷모습을 닮았습니다
아련해서 하염없이
바라보게 만드는
마력을 가졌습니다
혹여 뒤돌아보려나 하는
바람으로 시선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가을비는 외로운 남자의
눈물을 닮았습니다
바라만 보아도
너무 서늘해서
가슴 무너지는
쓸쓸함이 느껴집니다.
혹여 내 눈빛으로
덜 외로우려나
덜 쓸쓸하려나 하는
바람으로 시선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가을비
백승운
비가 처량하게 온다.
가을을 잡아먹을 나쁜비가
얼마나 어디를 쏘다니다가
지금까지 처벅처벅 오는지
확 뺨이라도 갈겨주고픈
나쁜 비가 새벽부터 온다
뚝뚝 떨어지는 낙엽은
나의 슬픈 눈물처럼
메말라 바싹이며
그렇게 힘없이 떨어져 내려
아무곳에서 뒹굴고 있는데
비는 그것마저도 허락을 하지 않는다
가을비가 내릴 때
백운호
안녕하세요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립니다
처량하기도 하고
을씨년스럽기도 합니다
이런 날은 죠지 윈스턴의
음악보다는 차라리 조용필의
노래를 듣는 게 마음 편합니다.
가을을 발라드의
계절이라고도 하죠
그의 노래 어떤 노래 몇 구절은
그 어떤 시보다
그 어떤 그림보다 호소력이 있습니다
커피를 한잔 태우세요
그리고 낙엽 뒹구는 교정을
내려다보며 또 커피 한잔을 태우세요
그리고 누군가와 마주 보며
따뜻한 갈색 커피를 마시며 말없이
바라보고 나지막이 이야기해보세요.
그리고 볼륨을 조금 올리고
조용필의 노래를 들어보세요
그의 Q라는
노래를 아세요?
사랑 눈감으면 모르리
사랑 돌아서면 잊으리
사랑 내 오늘은 울지만
다시는 울지 않겠다
그래요
눈감고 잊어버립시다
돌아서서 잊어버립시다
다시는 울지 맙시다
하지만 그게 쉽지 않네요
커피잔이 줄어듭니다
가을이 어디론가 가고 있습니다
낙엽은 비가 그치면
어디론가 정처 없이 떠날 것입니다
가을비
백원기
1
깊어 가는 가을
뿌옇게 습기 찬 날씨
아침부터 울먹거리더니
기어코 터뜨린 눈물
심술쟁이 아이처럼
눈물 뚝뚝 비가 내린다
멈출 듯하다가
추적추적 내리는 비
그칠 줄을 모른다
지나간 여름보다
다가올 겨울이 싫다고
투정 부리는 비가 차갑다
떠나야 하는 가을은
서러움에 젖어
차가운 눈물비 훌쩍이며
억지 발짝을 뗀다
2
가을바람 솔솔 불더니
차가운 비가 내린다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로
상념의 시간이 흐르면
한가위 강강술래가 보이고
교통지옥이 보인다
가을이 오면
겨울도 머지않은데
추적추적 비까지 내리니
이해도 다 갔다는 생각
나도 너도 모두
쓸 데 있고 없는 정신에
팔려 가다 보니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세월만 덧없이 흐르나 보다
3
한밤중에
누군가 두드리는 소리
잠은 깼지만 아무도 없고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만 장단을 맞춘다
겅중겅중 뛰어다니는
귀뚜리 한 마리가
잠든 사이 몰래 들어 왔는지
마루에 놓인 관음죽 이파리에 숨어
귀뜰귀뜰 울음소리 청아하다
가을비는 길을 깨끗이 씻어놓아
등굣길 아이들이 신이 나고
빨강 우산 노랑 우산 파랑 우산
색색의 우산이 귀엽기만 하다
여름으로 달궈진 땅
축 늘어젔던 나뭇잎이
생기를 얻고 바짝 고개를 든다
소리 없이 걸어오는 가을 발걸음 소리
가까이서 들려오누나
비가 내리면 보고픈 사람
변종윤
가을비가 내리는 날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괜스레 두 눈 가득
눈물 머금었다가
주르륵 쏟아내고 싶은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등이 젖고 어깨가 젖고
마음마저 흠뻑 젖어버려도
바라보면 행복하던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생각만 하여도
뜻 모를 설움이 파고들어
이별의 두려움에 울어야 했던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모래알같이 쌓인 추억
한 줌 남기지 않은 채 빗
물에 뿌리며 떠난 사람이
빗물 속에 다시 그리워집니다.
가을비 소리
서정주
단풍에 가을비 내리는 소리
늙고 병든 가슴에 울리는구나
뼈다귀 속까지 울리는구나
저승에 계신 아버지 생각하며
내가 듣고 있는 가을비 소리
손톱이 나와 비슷하게 생겼던
아버지 귀신과 둘이서 듣는
단풍에 가을비 가을비 소리
가을비 내리는 밤
서현숙
별도, 달도
숨어 버린 캄캄한
가을비 내리는
밤하늘에는
까닭없는 눈물이
한없이 흐르고
떠나간 사람도 그립고
미워한 사람도
사랑한 사람도
모두가 그립습니다.
거울 속에 서 있는
저 낯선 여인의 모습은
아! 나로구나!
나뭇잎은 우수수
떨어져 굴러
덧없는 세월 앞에
난 무릎을 꿇었다.
가을비 오는 날
석옥자
오늘은 그대와 운치 있는 낭만을 찾아
로맨스를 먹으려 무작정 떠나기로 약속한 날에
짓궂은 비가 옵니다,
가을바람에 나부끼는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어느 가을날
우리 둘이서 어깨동무하고 꽃길을 걸었던
그 찻집 커피 향기 풍기는 찻잔에
사랑을 담았지요,
그 푸른 시절에 그대와 나 속삭이고
낭만이 손짓하는 꽃길이 있던 그 길을 찾아서
떠나면 달콤하고 아름답던 그 추억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을비
성경자
한 조각, 한 조각
숨은 그림 조각처럼
계절이 점점 깊어간다
내리는 비에
새 단장 하고 우리
꽃이 되고, 바람이 되어
황금빛 옷자락
적시는 가을 소리에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문턱 넘어오는
고운 당신의 향기에
내 마음은 들꽃으로 남으리
가을비 오는 날에
성경자
감나무 잎 사이로 흐르는
시린 가슴에 뜨거운 눈물은
가을비 타고 한없이 흘러내린다.
찌든 마음과 멍든 가슴을
가을비로 예쁘게 몸단장하고
처연히 들꽃으로 피어나고 싶다.
들길에 허수아비 옷깃 적시는
가을비에 흔들리는 들꽃처럼
풀벌레 울음소리에 가을이 온다.
초가을의 문턱 너머 저만치
그리운 그대 오시는 길목에서
들꽃 향기 가슴에 안고 기다릴게요
가을 밤비
성낙희
목숨은 불이랑인가.
산천 굽이굽이
풀잎들 몸 부벼 쓸리고
바람 여전 자지 않는다.
살아생전
고요한 가슴
고요한 하늘
한 자락 누리기
쉽지 않으리라만
빛이란 빛
모두 일어서는 가을 벌판
청쑥들 부딪쳐 별자리 찾던
그 숲에 가자.
거기서야
하늘이 얼마나 가까우랴.
그 옛날 잃어버린
앳된 메아리도
와와 돌아오지 않으랴
살아있다는 것은
이렇게 사뭇 젖어서
설레이는 것인가.
창밖에 서늘한 가을밤
비가 내린다.
가을비
성백군
1
주인인 줄 알았는데
손님이었습니다
안에서 서성거리더니
어느새 밖으로 나와
산야를 두루 돌아 계절을 건너갑니다
내친걸음 멈출 수가 없다고
돌아보며
힐끔힐끔 헛발질합니다
길가 코스모스 흔들고 단풍잎 떨어뜨려 보지만
하늘은 구름을 걷어내며 파랗게
높아만 갑니다
안 갈 수는 없지만
괜히, 서둘렀다고
가을비 잎 떨어진 나뭇가지에 방울방울
나그네 눈물처럼 달려 있네요
2
빗방울이
나뭇잎에 떨어집니다
가을 하늘의 주문입니다
더 맑아 사라지기 전에
너무 높아 멀어지기 전에
미리 찍어놓은
그리움의 낙관이지요
파란 하늘의 눈물에
울긋불긋
가을 단풍이 멍드네요
떠나가는 하늘과
떨어지는 낙엽, 사이에서
누구의 슬픔인지 알 수 없다고
바람이 지나가면서 흐느낍니다.
가을비
소예
밤길 찾아온 쓸쓸한 그대
빗물이 되어 슬피 우는 날
마음속 깊이 파고들어 와
애달픈 심정 전하는 이 밤
그대 눈물에 녹는 내 심장
창문 두드려 부르는 소리
가냘픈 그대 어찌 할까요
내 곁에 조금 더 있어 줘요
다시 오시면 모든 걸 잊고
맨발로 나가 맞이하리다
가을비
손병흥
아득히 흘러가 버린 옛 시절
문득 떠오르는 흐릿한 추억 따라
몹시도 가을비 부슬부슬 내리던 날
가끔씩 그냥 비를 맞아 보고픈 마음
귀 모퉁이 창가에 홀로 가만히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천천히 음미하며
하염없이 나뭇잎에 뚝뚝 떨어지는
가냘픈 빗줄기 묵묵히 바라보다
나름대로 창문 밖 풍경에 취해보는
비 내리는 날 더욱 아름다운 하늘로
촉촉이 젖어들던 내 감성 자극하는
스산토록 아른하게 피어나는 망상의 늪
순수한 멋 낭만 한없이 철철 넘쳐나던
켜켜이 묻어나는 가을비 우산 속처럼
온종일 궂은비 대지를 적셔주던 하루.
가을비 내리는 날
손병흥
만추를 재촉하는 가을비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
소소한 풍경이 더욱 가슴 와 닿는 고독의 계절
문득 떠오르는 옛 추억들 오래도록 회상해 보다
나처럼 애처로이 비에 젖어버린 저 잎사귀처럼
그렇게 다짐해도 잊지 못해 그리움에 잠겨버린
그대 작은 가슴 하얀 미소 정다웠던 그 눈길
오늘같이 시린 바람 불고 날씨 스산할 때면
새삼 갈잎 배 되어 더욱 또렷이 생각나는
왠지 가슴 한켠 되뇌이던 잊혀진 그 얼굴
어김없이 찾아 듣게 되는 미묘한 그 노래
가을비 우산 속에 이슬 맺힌다는 대중가요
애잔한 마음속 한없이 스며드는 이 가을날
유난히 그리운 사람 그리워해 보는 빗방울.
가을비 오는 날
손병흥
가을을 재촉하는 빗줄기가
종일토록 주룩주룩 내리는 날
마치 빗소리와도 닮아버린
부침개 부치는 소리 정겨운 날
따스한 차 한 잔 놓고 음악 들으며
추억들 음미해 그리움에 빠져보는 날
가끔 파전에 막걸리가 땡긴다거나
삼겹살에 소주가 더욱더 생각나는 날
빗방울이 튀거나 옷이 젖어버려 귀찮아서
습도마저 높아 괜스레 우울해지기도 쉬운 날
이내 촉촉하게 젖어버린 마음 담아다가
외롭고 슬프더라도 따스한 온기 나누고픈 날
조용히 비가 내리는 공허한 가슴 속에다
흩어진 눈물 감춰 다시 만나길 기다려보는 날
가을을 재촉하는 비
손병흥
창밖으로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가
나쁨 수준의 미세먼지 씻어 내려주는
기온도 조금씩 내려 급강하시켜버린
늦가을의 쓸쓸한 풍경 더 깊어지도록
어여쁜 단풍 여행길도 시샘하는 듯한
추워질 날씨 대비하라고 하는 손짓처럼
젖은 길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이 계절
움츠려든 가슴에 추억서린 모닥불 지펴 논
차가워진 날씨에 애틋한 이웃사랑 절실해진
어느덧 보여줄 것 많아도 마무리해야 할 즈음
가을비
손석배
소슬한 갈바람이 일렁거리면
높푸른 하늘가에 구름 두둥실
까실한 나무 잎에 구름 그림자
어느새 검은 구름 비 내립니다.
바시락 부슬부슬 두터운 잎에
영그른 도토리도 떨어집니다.
가을비 밤송이에 스쳐 내리면
입 벌려 알밤들이 환호 부르고
붉으레 밝은 모습 감나무마다
갈색의 가을빛이 사뿐 내리면
가을은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백과가 토실토실 익어갑니다.
가을비
송근주
돌덩이 짊어지고 바위 무게 느껴 봐
지게에 들쳐멘 돌 뭉치가 바위 되어
어깨를 눌러오니 살아가기 먹고살기
무겁게 느껴지나 봐
힘들다고 지쳐버리면
안 돼지 안 돼
소리 질러 힘들지 않다고
가벼워
등지게 무게가 구름을 수증기로 만드니
비가 되어 빗물
가을비가 되어
촉촉이 내 등을 안아줘
가을비
송문헌
십일월 첫 눈빛이
바람에 떠돌다 어둠에 젖고 있다
사랑할 누구도
사랑받을 그 누구도 없이
시간은 강 이쪽에서 저쪽으로 나들이를 거듭할 뿐
꾸득꾸득 말라가는 기억 속에서
젖은 목소리 야위어가고
풀려나간 시간의 얼레를 되감을 수 없다
가을비 탓일까? 씻겨나가는
길을 나선다 나는 다시
바람 부는 빗줄기 속으로
가을비
송영희
건강한 이들은 모두 떠났습니다
하고 싶은 말도
받고 싶은 편지도 없는 날
그저 젖어 있는 들국 하나
조용히 바라보는 일입니다
짙푸른 노여움도 흘러가고
그대 젊은 모습도 흘러갔습니다
작별하는 나무들 사이로 그대
절룩이는 뒷모습이 보이고
적막강산 속에서 떠오르는 기찻길
남쪽으로 남쪽으로 사라집니다
시월 상달 텅 빈 들판에
슬기둥 같은 빗소리
배웅하는 일로 하루 해가 저물었습니다
가을비
신경림
1
젖은 나뭇잎이 날아와 유리창에 달라붙는
간이역에는 찻 시간이 돼도 손님이 없다
플라타너스로 가려진 낡은 목조 찻집
차 나르는 소녀의 머리칼에서는 풀 냄새가 나겠지
오늘 집에 가면 헌 난로에 불을 당겨
먼저 따끈한 차 한잔을 마셔야지
빗물에 젖은 유행가 가락을 떠밀며
화물차 언덕을 돌아 뒤뚱거리며 들어설 제
붉고 푸른 깃발을 흔드는
늙은 역무원 굽은 등에 흩뿌리는 가을비
2
장난감 같은 간이역에 울긋불긋한 등산복 소녀들이 다섯
비바람을 타고 날아와 창에 달라붙는 나뭇잎이 새빨갛다
넓적한 플라타너스 잎으로 뒤덮인 역사 밖 천막 매점에서
중년 여자들의 대화가 무르익었다
커피를 파는 젊은 아주머니는 계속 통화 중
얼굴이 단풍빛이다
빗물에 젖은 성인가요는 중년처럼 끈적끈적하다
기차가 언덕을 돌아 장난꾸러기 손자 녀석처럼 뒤뚱거리며 들어서고
젊은 역무원이 스트레칭 하듯 깃발을 흔든다
산골 역에 내리는 가을비가 무겁다
쉰 목소리로 기적이 재촉하는 게 아무래도
기차가 짙은 유화를 몽땅 안고 떠나버릴 모양이다
나만 혼자 그 속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 불안해
서둘러 차에 뛰어오른다
가을비
신경희
당신은 어디쯤에서
걸어오고 계십니까
당신은 어디쯤에서
길을 잃고 계십니까
당신 찾아
숨가쁘게 달려와
나, 여기에
기다리고 있건만
당신은 어디쯤에서 이렇게도
더디게 오고 계십니까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
오늘도
당신은 보이지 않고
가을비가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을비는 어머니 생각나게 한다
신광덕
이파리에 이는 소슬바람
나지막이 창을 두드리면
기다림의 연속이 삶이라던
어머니 생각이 난다
울긋불긋 진달래 피우면 찹쌀에 붉은 꽃무늬
쫄깃한 진달래 떡이 생각난다
고운 진달래빛깔로
살 어라시던 어머니
가을비 내리는 날이면
낙엽 안 서러워 눈물이 난다
가을 문을닫어려하니
떨어져 흩날리는 낙엽을 보면
못다 살고 가신
어머니 생각이 난다
가을에 내리는 비
신성호
무더위가 기약 없이 떠나던 날
반소매 옷깃 여미는 바람의 유혹도
먼 산 짙은 초록 색깔의 정열도
퇴색 되어 가는 모습 속에서
가을비는 어깨 위를 적셔 오고
마음은 아득한 그리움에 묻혀
커피 한잔에 마음을 좌정하고
속삭이는 가을비를 바라 본다
아! 아름답고 사랑스런 가을이여
너를 맞이함이 기쁨 되어 좋구나
가을비
신용목
흙에다 발을 씻는
구름의 저녁
비
거품처럼 은행잎
땅 위에 핀다
지나온 발자국이 모두 문장이더니
여기서 무성했던 사연을 지우는가
혹은 완성하는가
바람의 뼈를 받은 새들이 불의 새장에서 날개를 펴는 시간
고요가 빚어내는 어둠은 흉상이다
여기서부터 다리를 버리고
발자국 없이 밤을 건너라
희미한 꿈이 새의 날개를 빌려 사연을 잇고
흙투성이 바닥을 뒹구는 몸의 문장은, 채찍을 펼쳐
그 얼굴 때리는 일
슬픈 가을비
심경숙
뜨락에 토닥토닥
그린 동그라미 퍼지고
쌓여있는 모든 것을 토해내려는 듯
퍼붓다 못해 쏟아버리는
물 폭탄 같은 빗줄기
하늘의 통곡 소리 들리시나요
슬퍼서 내리고 또 울어대다
그래도 토해내지 못한 슬픔을
천둥 번개로 울부짖는
저 소리가 들리시나요
여름내 용광로처럼 달궈진
대지를 흠뻑 적시고
봇물 터지듯 봇도랑으로
황톳빛 물줄기가 되어
온갖 힘겹던 서러움 휩쓸고
흘러가는 저 빗소리 들으셨나요
다 비움하고 난 후 개운한 듯
흐릿함 속에 내어주는 가을
풀 벌레들도 서글픔을
함께하는 슬픈 가을비가 이 밤을 적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