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주 - 가을이라 가을바람
강순옥 – 가을바람
강현옥 – 가을바람에 잎새는 이별한다
구분옥 – 갈바람
구석본 – 가을바람
권경업 – 가을바람
권성종 - 가을바람
권오범 – 가을바람
권태인 – 가을바람
기영석 – 갈바람
김경희 – 가을바람이면
김남주 - 가을이라 가을바람
김대식 - 가을바람 그리고 낙엽
김덕성 – 가을바람
김덕성 - 갈바람은 사랑
김동리 – 가을바람
김명희 – 가을바람
김민지 -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김선옥 - 가을바람 부는 날엔
김세웅 – 가을바람에
김수열 – 홀씨 날리는 가을바람
김수잔 – 가을바람
김수잔 – 가을바람에
김승택 - 가을바람
김신오 – 가을바람
김연식 - 가을바람
김지향 – 가을바람
김진학 – 가을바람
김현도 – 가을 찬바람
김형태 – 갈바람 부는 날
김혜영 – 가을바람
노정혜 – 가을바람
노천명 - 추풍에 부치는 노래
도지현 - 갈바람 불어오면
류근택 – 가을바람
류금선 - 가을바람
맹은지 - 가을바람
목필균 – 가을바람
문재학 – 가을바람
박상현 – 가을바람
박인걸 – 가을바람
박재성 - 갈바람에
백원기 – 가을바람
변학규 – 가을바람
사방천 – 가을바람
서현숙 – 가을바람
성경자 - 가을바람 부는 날
성미숙 – 오늘 아침 가을바람에
손미경 – 찾아온 가을바람
손숙자 - 갈바람
송재하 – 가을바람
송정숙 – 가을바람
신진기 – 가을바람
오보영 – 가을바람
오애숙 - 추풍낙엽 사이로
오정방 - 가을바람
오정자 - 가을바람, 그때도 그랬지
원영애 – 가을바람으로
윤의섭 - 가을바람 구름에 실어
윤인환 – 가을바람 부는 날
이남일 – 가을바람
이미순 – 가을바람
이성구 – 갈바람
이세송 - 가을바람과 함께
이영지 - 가을바람이 살포시
이옥순 - 가을바람이 흔든다
이한명 – 시월애(愛) - 가을바람이 불어오니
이해인 – 가을바람
이해인 – 가을바람 편지
임석순 – 가을바람
임석순 - 가을바람 부는 까닭
임석순 - 추풍(秋風)
임숙희 - 가을바람
임영준 – 가을바람
임재화 - 가을바람
임화 – 가을바람
장용순 – 가을바람
장인성 - 이보시게 추풍(秋風)이
전근표 - 이놈의 가을바람
전영금 – 가을 산바람
정세일 - 가을바람이 부는 그 산에 올라가면
정세일 - 가을바람이 부는 산 위에서
정세일 - 가을바람이 흔들리는 곳으로
정세일 - 옥수수가 가을바람을 맞이하면
정재삼 – 가을바람
정태중 – 가을바람
조선윤 – 추풍의 노래
조한직 – 가을바람
주응규 - 추풍(秋風)
채바다 – 가을바람은 편지가 되어
최범영 - 가을바람 속에서
최영미 – 가을바람
최영복 - 가을바람에 실려 오는 당신의 향기
최정순 – 가을바람
하영순 – 가을이라 가을바람
한영택 - 가을바람
한영택 – 가을바람아
허기숙 – 가을바람
허욱도 – 가을바람
허정인 – 가을바람
현혜숙 – 가을바람
홍대복 – 가을바람
홍진숙 – 가을바람
황광주 – 가을바람
가을이라 가을바람
강남주
코스모스를 보아라
그 곁에서 하얗게 빛 바랜
억새풀을 보아라
그들은 가을 복판을
다투지 않고
몸 흔들며 지나가고 있나니.
잠시 쉬었다가
날아오르는 잠자리며
저녁 햇살에
무수히 흩어지는 하루살이들
느끼지 않고도 행복한
충만한 하루.
구름이 가고 또 구름이 와도
무심히 서서 탓하지 않는 산.
그래도 산의 이마, 산의 허리에
풍성히 자라고 넉넉히 흐르는
오, 오, 자연의 섭리.
누구가 누구를 나무라고 있는가
나무라서 얻는 것은
또 무엇인가.
저 산하의
저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며
번잡을 털고 싶은
지친 해 으름.
가을바람
강순옥
가을인갑다
매급시 내 안에 가
성가시게 심장이 뜁니다
외롭다고 말 안 했는데
단풍잎 붉게 물들인 얼굴로
가을이 왔다고 바람이 분다
내심 속 타는 마음 모르면서
콩깍지 씌어 반갱일 날에
산과 바다로 떠나자고
햇살과 바람이 불어 댑니다.
뽀짝뽀작 다가와 건들어
그냥 고백할까 말까
할까 말까 말할까 말까
감성글 익숙해질 때까지
꽃순이 핸드폰만 만지고 있다
지난가을이 얼매나 아름다웠던지
가을바람에 잎새는 이별한다
강현옥
가을바람이
어디쯤 불어오고 있는가
그 푸른 계절의 이야기들이
한 잎 두 잎 지려는지
혈색이 예사롭지 않다
내 부르던 청춘의 연가
지금은 모시조개처럼
쓰디쓴 노래여
흔들리는 잎새들의 여정이
두 갈래 길에서 망서리고 있다
모래 위에
세워진 세상으로
무작정 뽑아 올린
사랑의 우둠지에서 핀 꽃
잔혹한 바람 속으로
길을 열어야 하느니
까마귀 날아와 울고
꽃대만 서서 서리맞을 때
화려하게 흘러버린 길이
산너머에서 울먹인다
가을바람 곧 불어오려나
갈바람
구분옥
파란 하늘에
휴일 맞은 아이처럼
구름이 바람을 탑니다
빨간 태양은
초록빛 사과를
붉게 물들이고
설익은듯 푸른하늘은
갈바람이 불러온
뭉게구름이 풍성합니다
저 파란하늘
저 하얀 뭉게구름이
저에게로 왔다가 님에게로 안깁니다
가을바람
구석본
가을날 초저녁, 골목 안 주점에 앉아
홀로 그를 기다리며 술잔을 기울이다가
유리창 너머 바깥을 무심코 바라보았다
그때, 어둠처럼 무엇인가 스멀스멀 지나갔다
바람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여전히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고
창 밖에서 어둠이 들끓어 오르더니
무엇인가 드르륵드르륵
소리를 내며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형체는 남아 있지 않았다. 역시 바람이었어,
가을바람 부는 소리는 너무 소란스러워,
혼자 중얼거릴 때, 주점의 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기다리던 그가 바람처럼 들어와 내 앞에 앉으며
술잔을 기울이며 혼자 중얼거린다
그가 아니라 바람이었어, 천지에 바람 부는 소리뿐이야,
그는 원래 없었던 거야,
나는 취했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한다
아니야 나 여기 있어, 바로 자네 앞에 있어,
이 자리에 앉아 자네를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지,
나의 목소리에서 바람소리가 드르륵 났다
그가 술잔을 기울이며
가을바람은 소리가 시끄러운 법이야
나는 그를 남겨두고 주점을 빠져나와 가을밤 어둠 속으로
들끓는 바람으로 스쳐 지나간다
아무도 손 흔들어 주지 않는다
나뭇잎 몇 개가 온몸을 흔들며 어둡게 떨어질 뿐이다
그는 골목 안 주점 그 자리에 앉아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스쳐 지나가는 나를 무심히 보고 있었다.
그날, 밤새도록 가을바람은
내 안에서 드르륵드르륵 불었다
가을바람
권경업
1
얼마나 많은 사연이기에
등 굽은 느릅나무 한 그루
우수수, 바람 편에 제 잎
저리도 띄워 보낼까
보시오, 누군들 저 나이라면
삶의 구비구비 두고 온 사연
구구절절 털어놓고 싶지 않겠소
하물며 다시 봄날로 간다는 바람 앞에
가시다가 부디 내 젊은 날 만나거든
저무는 산자락,
희끗희끗 회한(悔恨)의 머리 저어
오늘은 통음(痛飮)에 젖더라 전해주오
아직도 사랑한다 전해주오
2
황금빛 들녘 가을걷이로 무너져가면
알몸으로 쏘다니던 너는 오리나무숲에서 흐느낀다
황량한 계절이 다가옴을 서러워하여
잎새 저버린 철쭉나무 잔가지로
하얀 서리 돋아나는 새벽이면 소슬바람으로 깨어나
어깨를 감싸 안고 영을 넘자던 너
아스라이 이어진 먼 산구비 위로
티 없이 맑은 하늘 밝은 아침에
억새는 광대를 쫓는 아이마냥 뒤뚱이며 너를 따라 나선다
3
떠나자
여름 그 뜨거운 날들의 무성함 누군들 없었으랴
단풍 화려한 빛깔 스스로 내던지고
비탈의 제 육신 나목으로 세워둔 채
처음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실려 떠나간다
궤적 없이 갈가마귀 어둠으로 돌아가고
쇠기러기 별빛으로 날아가는데
가을에는 모든 것을 버리고 흔적없이 떠나가자
무엇을 망설이느냐
떠나갈 시간이 다다랐다
동행할 바람이 산어귀에서 서성인다
능선에 함박눈 한 길이나 쌓인 뒤
진눈깨비 뿌리는 날은
새파랗게 떨면서 영을 넘어
봄이오는 들녘
풀꽃 바람으로 태어날 날을 위해
가을바람
권성종
바람이
쏴쏴
푸르던 대나무 스치면
비스듬히 쓰러지며 엮이던 가지[枝]
가지의 날개 퍼덕이던 소리
골짜기 아래 떨어져
계곡에 피같이 붉은 옷을 입히더니
빛의 귀를 뽑아 올려
석양 산마루에 낀 오랜 차향을 지우며
잠자리 너풀 가을을 춘다
주름진 나뭇잎
황혼빛 날개
옆의 돌과 풀들의 묵은 흙먼지가 남아
빛으로 씻어도 씻겨지지 않는 그림자 흔적
찬바람이 헤집고
그 그림자 겨울을 꿰어간다
가을바람
권오범
봄날 그렇게도 순했던 것이
한 시절 돌고 돌아
쌀쌀맞게 구는 걸 보니
세상 물정 알았나 보다
고향 등질 때 사근사근했던 나도
한평생 각다귀판 뒹굴며
산전수전 겪다 보니
생파리같이 되바라지더라
열대야에 덴지가 엊그제건만
9월이 호명해 달려온 네가 어쩐지 서름해
조석으로 문단속하기 바쁜
간사한 이 마음
가을바람
권태인
가을바람은
하늘로부터 보내지지 않았다
단지 내 가슴 속에서
거세게 몰아친 폭풍이었을 뿐
가을바람은
바다로부터 밀려오지 않았다
단지 내 사랑의 마음이
세차게 일으킨 열정이었을 뿐
가을바람은
단풍으로부터 날아오지 않았다
단지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은
그녀의 숨결이 일으킨 설렘이었을 뿐
갈바람
기영석
여름이 언제 갔는지
코로나로 숨죽이는 날
잘 가란 인사도 못했네
더위 떠난 자리에
선선한 가을이 자리 잡고
들판의 곡식이 익어가는데
길섶에 코스모스가
실바람에 춤을 추니
아, 가을이 너무 좋구나
가을바람이면
김경희
새벽 별처럼
지나던 길을 묻는다
하얀 달 사이로
풀꽃 나무들은 하룻밤
들고양이
바람에도 갈구하는
기억들마저
가득한 숲속
가을이라 가을바람
김남주
코스모스를 보아라
그 곁에서 하얗게 빛 바랜
억새풀을 보아라
그들은 가을 복판을
다투지 않고
몸 흔들며 지나가고 있나니.
잠시 쉬었다가
날아오르는 잠자리며
저녁 햇살에
무수히 흩어지는 하루살이들
느끼지 않고도 행복한
충만한 하루.
구름이 가고 또 구름이 와도
무심히 서서 탓하지 않는 산.
그래도 산의 이마, 산의 허리에
풍성히 자라고 넉넉히 흐르는
오, 오, 자연의 섭리.
누구가 누구를 나무라고 있는가
나무라서 얻는 것은
또 무엇인가.
저 산하의
저 아름다운 것들을 바라보며
번잡을 털고 싶은
지친 해 으름.
가을바람 그리고 낙엽
김대식
뜨겁게 여름을 달구던 바람이
가을을 발갛게 물들이고
그리움 되어
내 마음에 들어와 있다.
이렇게 가을이 또 지나가면
내 그리움은 어떤 모습으로
어느 곳에 방황하고 있을까.
첫 서리가 내리고
겨울이 문전을 두드릴 때
또 가을바람은 어디로 불어갈까.
내 그리움의 넋은 어디서 서성일까.
잎이 떨어진다.
마지막 남은 한 잎 고독이 떨어진다.
쓸쓸한 내 그리움이
땅 위로 뒹굴다
바람에 실려 간다.
어느 후미진 구석으로
부서지고 뭉개져도 아무도 모를
후미진 구석으로
가을바람
김덕성
그래
네가 아니면
저 뙤약볕을
누가 잠재울 수가 있었겠니
그래도
네가 무더위를 쫓아내니
너무 고맙구나
성큼 다가온 가을
신선한 가을바람 불어오고
햇살로 탄 고운 살결
어루만져 주니
그 감촉
한결 기분이 상쾌하구나
이에 더
큰 행복이
또 어디 있겠니
갈바람은 사랑
김덕성
갈바람이 불어온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뜨겁게 내리는데
사랑으로 시원하게 이마를 스치며
내 뭉친 가슴을 트인다
갈바람은
뱃사람들이 서풍을 이르는 말로
된바람, 마파람, 하늬바람, 샛바람이
이에 속한다고 한다
가을바람의 준말인 갈바람
시원하게 불어오면
꿈처럼 세월과 함께 스치며
뭉게구름을 안고 긴 여행을 떠나다
내게 머문 너
네가 싫고 무서울 때도 있었지만
오늘은 왜 이리 사랑스러운가
가을바람
김동리
내 어린 날에
가을바람이
나를 다쳤네
파란 하늘 아래
고추쨍이를 쫓아
수수잎 서걱이는
밭 이랑을 탔을 때
바람이
아아 가을바람이
내 소매를 치고 갔네
고추쨍이는 사라지고
가을바람이
나를 다쳤네
가을바람
김명희
강물은
조금씩 멍이 들고
풀꽃들은
고개 숙인 채 떨고만 있다
긴 허리를 꼬리문
남한강 물줄기와
그리움처럼
달려드는 꽃잎사귀
구름은 잡초들의 임종을
못 본 채 떠나고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김민지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어색해질 따사로움도
제 빛깔을 다 뽐내고 나면
떠날 채비를 할 것입니다
무더위에 지쳐있던 심신도
그 바람 앞에서는
제풀에 꺾이어
숙연해질 겁니다
가을바람이 불어오면
그 바람에 실려 떠날 건 떠나고
모든 것이 남아 있는 자의
몫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쓸쓸히 남을 나의 고독은
오색단풍을 떠나보낸
텅 빈 나무 아래 품었다가
따사로운 봄을 맞을 겁니다
가을바람 부는 날엔
김선옥
이렇게 서늘한 가을바람 부는 날엔
마을앞 논과 밭을 가로지르고 시냇물 건너가
단풍잎 마구 날리는 산속을 미친 듯 내달리고 싶다
오색으로 쌓인 낙옆 위에 뒹굴기도 하고
빽빽이 뒤엉킨 잡목들 넝쿨 속으로
가시덤불에 긁히고 넘어지고 피가 흘러도
온 산을 내 맘대로 훑어가며 헤매고 싶다
봄 여름 정성껏 가꾸어온 꿈들을 헐어
마구 헤쳐 던지고
지천으로 흩어진 도토리에 미끌어져
밑돌아 흐르는 강물 위에 빠져보고도 싶다
저녁이면 빛나는 노을에 내 삶을 태우며
밤이면 무리져 내리는 별들을 가슴에 받아
우우 울어대는 산짐승들과 얘기하면서
한 해 동안 속으로만 억누르며 울어왔던 무진 서러움을
윙윙 불어대는 가을바람에 날려 보내고 싶구나
이렇게 서늘한 가을바람 부는 날엔
마을 앞 논과 밭을 가로지르고 시냇물 건너가
단풍잎 마구 날리는 산속을 미친 듯 내달리고 싶다
가을바람에
김세웅
가을바람에 모든 것이 녹슨다
매일 타고 내리던 엘리베이터도,
귀뚜라미의 노래도.
구름은 낮게 내려와
山의 이마를 흐려놓고 바람 잡는다
아, 저 구름처럼 모든 것은 장난처럼 시작되어
다짐했던 약속마저 녹슬게 하고
스스로도 녹슬어 주저앉는다.
엘리베이터도, 사랑도 입술도 칼도 녹슬고
잊어선 안 될 슬픔마저도
이슬 맞은 자리마다 녹슨다
녹슬지 않는 유일한 철로처럼
가을 해가 지나는 하늘의 길은
저리도 빛나는데
땅에선 모든 것이 장난처럼 시작되어 주저앉는다
홀씨 날리는 가을바람
김수열
높게도 날던 솔개
어두워 가던 날
짙게 깔린 먹구름
걷어낸 하늘에
아기 솜털 낀 날에
구름에 숨었다가
노을에 흩날리는
그리움 홀씨 하나
피어난 낮달입니다
습기 찬 숲 힘겨워
푸른색 잃어 가는 솔 길
서늘한 바람 등골 타고
힘겹게 오르던 운장산이죠
꺼칠하게 웃자란 풀잎
연노란 빛 입을 때
아려오는 가슴에
그대 핑크빛 입술은
그리움만 남기고 떠나가는
홀씨 바람입니다
가을바람
김수잔
바람아
내 이름은 빨래야
우리 주인은 고운 햇살과
살랑~나뭇가지가 흔들리면 빨래질 하려고
나를 기계에 마구 집어넣고 빙빙 돌려서
빨랫줄에 높게 높게 걸쳐서 훨훨 춤추게 한단다
높은 데서 푸른 하늘과 너를 만나면 기분이 참 좋아
금세 뽀송뽀송 깨끗한 매무새가 되어
네가 날려주는 황홀한 단풍도 보면서
넘실넘실 출렁이는 짙푸르다, 은빛 바닷물결이며
어떤 날은 겨울의 숨을 조금 품고 불어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온갖 들꽃의 향기도 그리움도 실어오는, 너
가을바람아
오색 옷 자랑하는 낙엽 친구들
비록 구겨지고 빛바랜 낙엽 친구들도
많이 데리고 우리 뜰에 놀러 와
함께 어울려 너의 리더에 따라 춤추며
풍성한 들녘 곡식 거두어들이는 계절이라
미소 가득 넘치는 우리 주인의
오손도손 가을 사랑 얘기도
들어보자꾸나
가을바람에
김수잔
붉디붉고 노랑으로 황홀한 단풍도
갈바람에 낙엽 되어 널브러진 산책길에
부서지는 설음에 밟기도 황송해라
그리움 안은 채 흰 구름은 급히 흐르고
세월도 건달아 달리고 달리네
가을아, 너무 급하게 가지 말라
피부에 스치는 싸늘한 바람
깊어가는 가을이 너무 아쉬워
아- 이 가을바람에
나는 무엇인가 말하고 싶다
낙엽 밭에 조용히 앉아
마음을 정리하리라 하늘을 향해
더없이 맑고 순한 파란 하늘
그대를 보는 순간
언짢게 생각했던 것들을
모두 날려 버리리라
힘들다고 투정 부렸던 시간
깊은 뜻이 있었음을 미처 몰랐지
이제, 모든 일에 긍정을 보태
행복했던 마음 모아
거짓 없는 파란 하늘에
숨김없이 말하리라
흐른 세월만큼이나
모든 것이 사랑이요 감사할 뿐이라고
가을바람
김승택
1
머물고 싶었어.
네 가슴 어딘가에
희망을 묻고
지푸라기 물어다가
집을 짓고 싶었지.
떠난다는 것은
자유로운 만큼 아픈 거야
비가 오는 날이면
젖은 날개를 파닥이며
뿌리를 내려야 한다는 생각을
수없이 되뇌곤 했지.
하지만 소용이 없었어
브레이크가 없었던 거야
그댈 향한 나의 가슴처럼.
2
널 만난 뒤의 기분은
늘 유쾌하다거나 신나는 것이 아니다.
너의 눈물을 내가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내 눈물을 네가 본것 같기도 하고
날 사람답게 대해주는 너에게
자꾸 빚만 지는 것 같다.
어김없는 것은 시간
이 소슬바람이 멈추면
두꺼운 외투의 깃을 올리며
깊은 은백(銀白)의 침묵으로 돌아눕겠지.
하지만 난 널 기억할 거야
무심코 갈비뼈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일지라도
만날 때마다 순간순간 사랑을 속삭이는
원색의 단풍잎으로.
살점이 다 뜯긴
청명한 하늘이
나의 아침을 깨우면
게으른 하품을 하며 일어나
거울을 닦을 거야.
날 연민하는 널 위해.
가을바람
김신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제 마음
알지 못하고
종일 웅크리고
어수선히 떠는 너는
참지 못한 눈물이다
내숭 떨던 너도
소리 없이
버스럭거리는구나
문 닫지 마라
어물쩍거리다
허리 잘릴까 염려된다
가을바람
김연식
갈바람 불어오니
갈대밭 주저앉아
서걱서걱 우는 잎새
푸르름 사라지니
서글퍼 저리 우나
울지마라
갈대야
서걱서걱 울지마라
푸르던 옛이야기
뜨겁던 옛이야기
바람에 날리울까
우매한 인생
차지게 살았는데
후회하면 무엇하나.
가을바람
김지향
1
가을바람은
불씨를 갖고 있다
바람이 건드리는 풀잎마다
불이 켜지고
풀잎을 따는 가슴마다
불에 덴다
가을 바람은 머리가 없고
가슴만 솟아나 있어
가을 가슴에 우리 가슴이 얹힐 때
우리는 없어져 버린다
세상은 온통 불덩이로 떠오르고.
2
허공에 바람이 지나간다
새까만 가르마를 긋고 가는
서리 까마귀 날개가 기웃둥거린다
바람이 지나간다 허공에
구불텅구불텅 낙서를 그려놓은
구름이 삼나무 다발처럼 도르르 말린다
바람이 지나간다 구름 위에
한 롤씩 말린 검은 낙서 다발 아래
소나기가 지나간다
말갛게 씻긴 나뭇잎을
땅 위에 내려놓은 소나기 떼가
토닥토닥 나뭇잎과 구슬치기 한다
문득 새살이 돋아난 허공
이마가 훤하다 사람의 머릿속도 한바탕
가을바람이 지나가면 새살이 돋는다
3
바람이 풍선을 타고 하늘을 건너간다
풍선은 달의 품에 안겨 느긋하게 날아간다
풍선이 달의 닮은꼴이냐고 바람에게 물어본다
그때 달은 구름 속에 숨어버린다
바람이 풍선을 놓친 줄 모르고
달을 끌고 까불까불 산을 넘어간다
이윽고 달이 산속에 몸을 숨기며 바람을 내버린다
하늘에서 쫓겨난 바람이 사과 송이를 풍선인 줄 알고
사과의 뺨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논다
사과 송이가 새빨갛게 얼굴을 붉힌다
가을바람은 눈이 멀어 분별력이 없다
자꾸자꾸 몸이 싸늘하게 식어갈 뿐
가을바람
김진학
시간의 흐름 위로 부는
계절의 바람은
어디서 오나
인연마다 진실의 탈을 쓴
위선의 바람들 보다는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가을바람이 더 진실이다
파도를 스쳐 온 갈대의 노래가 흐르는
그 바닷가의 바람이 더 진실이다
솔잎을 지나온 그 산의 바람이
겨울을 불러온다 해도 더 진실이다
얼굴까지 가려진 상복을 입고
생을 다하는 날까지 통곡을 하며 울어도
못다한 슬프고 서러운 이야기들로
가득한 눈물들이
가을바람에 실려
날아가고 있다
하늘 높이
하늘 높이
가을 찬바람
김현도
아름다운 여인
붉은 치마 차려입고
임 마중 나간다
기다리는 임은 오시지 않고
심술 궃은 가을 찬 비바람만
여인의 가슴에 부딪힌다.
찬바람의 심술에
붉은 치마 휘말려서
속치마만 보이게 하네
가을 찬 비바람이
야속하기만 하다
기다리는 임은 언제나 오시련지
꽃피고 새우는
봄이면 오시겠지
오늘도
붉은 치마 입은 여인은
임 마중 나간다
갈바람 부는 날
김형태
간밤에
왕벚이 그리 울어대더니
꽃 지운 자리에서
잎새마저 털어내누나
은행나뭇닢 노랑빛은
원래 저리 슬픈 것이더냐
빈 가슴골 끝에서 속절없이 떨어져
허물어진 나를 덮는다
지난 시절
미처 담아내지 못하고 흘려버린
아쉬운 청춘아
여름 내내 멍든 얼굴을 파 먹히고
잎맥만 남은 플라타너스 낙엽에 발을 묻고는
어느 외진 강변에 홀로 서서
갈대를 흔드는 바람마다
나를 실어 보냈다
가을바람
김혜영
가을 하늘 파란 도화지에
구름 색연필로
그림을 그립니다
구름으로 그리는 엄마 얼굴
구름으로 그리는 아빠 얼굴
가을바람 살랑와서
구름 엄마 구름 아빠 데려가도
괜찮아요
또 그리면 되잖아요
가을바람
노정혜
가을바람 지나간 자리마다
고운 옷 갈아입네
시원하게 부는 가을바람
가슴마다 시원하다
가로수 은행잎 노란 옷 갈아입고
바람에 산들산들
노란 은행잎 곱기도 하다
가을바람
바람이 닿는 곳마다 가을꽃 핀다
코스모스 산국화 갈대꽃
이대로 마냥 가을이면 좋겠다
오면 가야 하네
때가 되면 모든 것 지우고 가야 하네,
추풍에 부치는 노래
노천명
가을바람이 우수수 불어옵니다
신이 몰아오는 비인 마차 소리가 들립니다
웬일입니까
내 가슴이 써-늘하게 샅샅이 얼어 듭니다
"인생은 짧다"고 실없이 옮겨 본 노릇이
오늘 아침 이 말은 내 가슴에다
화살처럼 와서 박혔습니다
나는 아파서 몸을 추설 수가 없습니다
황혼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섭니다
하루하루가 금싸라기 같은 날들입니다
어쩌면 청춘은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었습니까
연인들이여 인색할 필요가 없습니다
적은 듯이 지나 버리는 생의 언덕에서
아름다운 꽃밭을 그대 만나거든
마음대로 앉아 노니다 가시오
남이야 뭐라든 상관할 것이 아닙니다
갈바람 불어오면
도지현
자지러지던 매미 소리 잦아들고
쪽 머리 진 달빛 처량하게 비치면
어디선가 풀벌레 울어 예는 소리가
허전한 가슴에 파고든다
고독이 어디선가 밀려오면
흔들리는 마음
자꾸만 아래로, 아래로 침잠하는데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바람과 함께 들려오면
가슴에서도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런 때는
역마살이라도 들었는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가방을 챙긴다
길을 나서도 갈 곳도 없으면서
바람에 나뒹구는 낙엽처럼
이리 갔다 저리 갔다 부유하는 마음
가을바람
류근택
바람은
억새풀 사이로 다가가
서릿발 서린
차가운 가을 되어
늙은 농부의
골 깊은 이마로
불어든다.
두께 앉은 손등이
삶의 징표라면
그 나이
가늠하기 어렵다
손등은 손등일 뿐
나이는 아니다.
단풍 들어 세상 붉어
가슴으론 각혈하고
들판의 오곡백과
바람처럼 신음한다
품 떠난 자식일랑
훠어이 훠어이
새 떼처럼 날아간다.
바람은 가을이여
가을은 시절이여
가는 이 가슴엔
눈물이여
오는 이 가슴엔
사랑이여
어둠은 물러가고
밝은 햇살 아래
노래는 불러보자
갈바람이여
칼바람이여
가을바람
류금선
숲길을 거닐다가
지그시 몸을 낮추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을 소리
내 등을 타고 흐르는데
구멍 숭숭 뚫린
낙엽은
어떤 사연이 있을까
오동나무 텅빈 속처럼
허망한 가슴
계절을 바꾸기 위해
찬비를 몰고 오는
바람의 붉은 흐느낌
가을바람
맹은지
바람이다.
날 설레게 만드는 이.
손가락 마디마디 간질이 듯 간질이 듯
머리칼 한올한올 휘감돌 듯 휘감아돌 듯
연갈빛 바람이 부는가 하면
그 바람은 이내 청량한 하늘빛이 된다.
하늘을 닮은 그 빛은 이내 시리도록 내 가슴을 파고든다.
시린 그 빛에
나는 또 한번 벅차오른다.
날
설레게 만드는 이,
파고드는 그 빛은
바람이었다.
가을바람
목필균
1
어느새 여름이 흘러갔다
형벌처럼 견디기 힘들던 열대야도
구멍 난 여름을 둘둘 몽치고 갔다
튼실한 결실을 받들고
누렇게 사그라진 풀밭에 이는 바람 사이로
초로의 나를 블로그에서 찾아보고
다복한 가족사진 속에 안부를 그렸다는
카톡카톡 소식이 들어왔다
아 ~ 그 사람
아득히 묻어둔 속 이야기 꿈틀거리며
고개 내미는 계절 품으려고
어제 독감 예방 주사를 맞았나 보다
2
지금쯤
어느 모퉁이 돌아가고 있을까
이정표 없이 길 떠나던 날
산허리에 걸터앉아 울어주던
산새 소리 뒤따라오고
한여름 흐르던 푸른 혈맥
곤두박질치며 흐르다가
시린 가슴 붉게 물들인다
가을바람
문재학
살랑이는 가을바람이 분다.
황금물결 파도를 일으키는
풍요의 바람이
청명한 창공에는
맑은 영혼을 흔드는
사유(思惟)의 바람이 되고
어스름 저녁 그림자 짙어 가면
풀벌레 울음소리
더욱 애처롭게 흔드는
스산한 바람이 된다
가냘픈 코스모스에도
서걱이는 갈대숲에도
가을 향기를 뿌린다.
산하(山河)를 휘감아 돌며
우수수 오색단풍잎을
서럽게 흩날리면
고독은 심한 가슴앓이를 한다
가을바람
박상현
별빛 사이로 새어 나오는 바람이 가을바람입니다
억새꽃에 맺힌 흰 바람이 가을바람입니다
가난한 시인의 몽당연필에 매달린
작은 그림자가 가을바람입니다
코스모스의 가녀린 허리 안고
왈츠 춤을 추는 바람이 가을바람입니다
당신이 머물다 일어선
빈 의자에 쓸쓸히 자리를 지키는 바람이 가을바람입니다
이제는 나무와 이별하는 잎새에
작은 침묵의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 가을바람입니다
줄지어선 벼 이삭 사이로 흘러내리는 희디흰 달빛 위로
저 산머리 붉은 불꽃을 피우는 바람이 가을바람입니다
가을바람
박인걸
붉게 익은 나뭇잎을
가을바람은 자꾸 흔드는가.
설익은 잎도 없건만
왜 재촉을 하는가.
억새꽃 은빛 물결을
정신 못 차리게 휘젓는가.
부딪치며 서걱이는
비명이 안 들리는가.
붉게 불타는 시절도
한 뼘 안팎이고
첫서리마저 두려운데
빨리 가자고 보채는가.
한 잎 두 잎 지고 나면
엉성한 가지만 남아
고운 추억마저 앗아가니
바람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갈바람에
박재성
한 뼘 높아진 하늘에
두 뼘 멀어진 태양
그 공간에
싸늘해진 갈바람 지나간다
지나간 추억에
눈시울 붉어진 단풍을
저리도 흔들어대며
11월
역모로도 돌릴 수 없는
아쉬운 가을 낙엽이기에
멀뚱 쳐다만 보는 넋의
빈 머리가 시리다
당신 없는
가슴처럼
가을바람
백원기
문틈으로 스며드는 가을바람
계절이 가고 오는 길목
오싹 소름 끼치는 스산한 바람에
우수의 쓸쓸한 고개를 넘는다
무례했기에 떠나야 할 계절이
어김없이 가고 와야 하는 약속
무너뜨릴 수 없는 단정한 모습으로
묵묵히 여름자리에 앉는 가을
개선장군처럼 추풍이 불어오면
떠날 채비에 어수선한 여름
생각의 더미 속에 더딘 손으로
하나둘 무거운 짐을 억지로 꾸리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 안녕을 고한다
가을바람
변학규
결실을 축복하고 사멸(死滅)을 홍소(哄笑) 하는
악마의 몸부림 가을바람 때 만났다.
바람이 바람을 타고 가니 가슴 절로 바람이네.
가을바람
사방천
푸른 강변 늘어진 버드나무 그늘에 서서
바람결에 일렁이는 물결 바라보니
옛 추억이 아련히 떠오르며 명상에 잠기니
바람은 흐르는 강물 타고 말없이 지나가고
강변의 갈대숲은 바람과 입맞춤하며
즐거운 듯 몸을 흔들며 애교를 부리니
바라보던 기러기 춤을 추며 저갈 때같이
세상살이 바람처럼 물결치는 대로
근심 걱정하지 말고 자연을 벗 삼아
더불어 살아가면 되는 거라 하며
맑은 하늘 흰 구름 떠가는 강물 위에
기러기 창공을 나르며
마음에 모든 잡념 다 흐르는 강물에 털어버리고
자연을 벗 삼아 흐르는 물같이
세월 따라가는 것이 인생 삶에 주어진 순례라 하네?
가을바람
서현숙
솔숲 사이에 핀
청순한 구절초의
그윽한 향기
아프고 깊었던
흉터 남긴 여름을
또다시 잊힌
계절 속에 묻어버리는
가을의 바람
옷깃 속에 파고들어
스산한 마음
내려놓게 하고
떨어지는 단풍잎으로
고운 옷 만들어
입혀주려무나
가을바람 부는 날
성경자
상큼한 갈바람에
머리카락 날릴 때
내 마음 한 줌 보이면
나의 콩콩 뛰는
여심의 심장 소리에
화들짝 놀라 달아난다
퇴색된 나뭇잎 사이
알알이 분홍빛 감이
가을 햇살에 익어가고
빙그레 웃는 허수아비
두 팔 벌린 옷깃 사이
가을바람이 스쳐 간다
오늘 아침 가을바람에
성미숙
꽃잎 떨어져 '바람인가 했더니
세월이더라
차창 바람 서늘해 가을인가 했더니
그리움이더라
그리움 이 녀석 와락 안았더니
눈물이더라
세월 안고 눈물 흘렸더니
아! 빛났던 사랑이더라
찾아온 가을바람
손미경
가을이
성큼 다가와
문을 열어 달란다
눈치 없는
열대야
집안에서 버티더니
푸른 들판으로
줄지어 밀려오는
가을바람 소리에
풀벌레 울어대는
이 저녁에 살며시
꼬리를 감추는 열대야
갈바람
손숙자
갈바람이
낙엽 한 잎 실어다 놓으면
난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
진저리치듯
외로움에 떨다 그리움 담고
흔적 없이 사라질 모진 삶
지독히도 아픈
어떤 연민 한 가닥 그리움은
나를 위해 울어주던 인연
갈바람에
어디론가 실어 보내고픈
지쳐 가는 내 짧았던 사랑아
가을바람
송재하
가을바람은 지난 일들이 사연이 되어
나를 만나러 오는데
내 가슴에 비어있는 그릇에
맑은 추억으로 가득 채우고.
가을바람이 노을빛을 받아
코스모스를 그리는 마음으로
가을을 한 아름 끌어안고
저만치 단풍 속으로 달려옵니다.
가을바람은 구름에 수놓았던
그곳에서의 사연을 안고
들국화를 만나면 반가움과 기다림이
엇갈림 속에 가을은 깊어갑니다.
가을바람은 단풍을 잔뜩 삼키고
풀잎들의 아름다운 몸짓에 취하고
시냇물의 찰랑이는 소리에 반해서
솔밭에서는 말없이 눈물만 쏟아놓고.
가을바람은 가파른 산을 넘어
단풍으로 물든 온산을 어루만지며
풀잎의 사랑마저 버리고
그리움과 외로움을 남긴 채 그는 갑니다.
가을바람
송정숙
가을바람은 햇살 흔들며
느낌표, 마침표를 번갈아 가며
찍으려는 아침, 어느 때보다
조심스럽고 사람을 피하지만
서로 걱정하며 안부를 물어본다
코로나로 봄꽃 곁도 못 가고
여름 바닷가도 맘껏 못 누려도
가을은 바람으로 힘내라고
다 지나갈 것이라고
꽃피워가며 다독여준다
가을바람
신진기
젖가슴 드러난
꺼진 조명 아래
밤편지 곱게 접어
바람에 흘리고
눈을 감고
엊그제 끼워 둔
원고 한 장
파도를 탄다
밤편지에 고요한 아이들은
내려지는 쌀알에 어깨를 흔들고
책갈피는 흔들리는 나에게
영혼의 사랑스러움에 어깨 흐느낀다
풍요로운 빛과 찬란한 짠내는
아름다운 아이들에게
푸른 안개에 숨은
쌀알을 뿌려 댄다
그래도 미련한 놈은
편지를 받아들고는
따뜻한 커피 한 장을
아이에게 건넨다
세상에 파도가
조금 잠잠해지기를 바라며
가을바람
오보영
1
불현듯
네가
보고 싶어졌단다
불쑥
너에게로
오고 싶어졌단다
변함없는
내 마음
전해주고 싶어서
기다리는
네 마음
달래주고 싶어서
2
어디든지 간단다
열려만 있으면
누구든지 좋단다
반기어 맞아주면
막히면
돌아가고
닫히면
피해 가는
언제든
필요한 곳 찾아
꼭
가야 할 길 가는
자유로운 존재다
추풍낙엽 사이로
오애숙
휘날리다 나뒹구는
만추의 거리마다
추억 물결치고 있다
하늬바람 속에선
휘파람 불더니만
갈바람엔 다르네
계절은 잎이 나올 때
나목 통해 소망의 꽃
선사하고 있으나
단풍의 화사한 거리
젊은 날 교정의 추억에
살며시 윙크하는 맘
서녘의 해 걸음 뒤로
아쉬움이 추풍낙엽에
서걱이는 것은 뭔지
그저 만추의 거리
가을비에 사라져 가는
찬란했던 젊음인가
젊은 날의 아쉬움
심연에 추억의 그 거리
모락모락 피어난다
가을바람
오정방
서늘한 가을바람 얼굴을 스쳐 가서
여태껏 남은 잎새 조용히 흔들더니
보란 듯 흥얼거리며 산마루를 넘누나
가을바람, 그때도 그랬지
오정자
아지랑이가 장딴지를 거웃처럼 감아 올랐을 때
사윈 햇살들이 풀무치들을 밟고 있었을 때
사뭇 그런 예감이 있었다
무구한 시간들이 주춤대는 것을 보았을 때
에푸수수한 머리칼로 나대고 싶었을 때
나침반을 버리고 길 잃으려 했을 때
희망조차 결별을 속삭였을 때
잠든 너의 아름다움을 묻지 않았다
베돌던 바람의 뒤통수를 보았을 때
개펄의 해산물 같은 약속을 남겼을 때
시린 잎사귀들을 보았을 때
떠나는 것들아 낯붉히지 말라 했었다
멈추지 말고 총총 흩어지라고
소멸의 강줄기로 사라지라고
벗겨진 어둠을 맛보리라고
상사(想思)에 죽어갈 나무가 될지라도
권태로운 빛의 알갱이들 한 계단씩 이동하고 나면
시골 정류장 같은 곳에서 다시 만나자고
그렇게 어둠 속에 어둠 속에
보석들의 광채를 길이 담아 둔
밤과 같은 당신에게
가을바람으로
원영애
흐르는 물에 낙엽 띄워
햇살 좋은날
물밑
금모래 흔들어 속삭여 보리
숲속 오솔길 지나다
남은 가랑잎 흔들며 가는 길
어디로 가냐고 묻지 마라
가다가 힘들면
개여울에 내려
구름 한 줌 끌어다
발 씻는 아가씨
장난이라도 치리
마른 꽃
하늘 향해 망각의노래 부르면
향기 떠난 추억에도
그리움은 늘 그렇게
스치는 거라고
말 해 주 리 라
가을바람 구름에 실어
윤의섭
북두칠성 밤하늘에 수를 놓았고
가을바람 구름 타고
앞뜰에 내려오네
바람 바람 가을바람
네가 무엇을 가지고 왔느냐
갈등을 풀어 줄 화기(和氣)를 넣었느냐
민족 평화의 문 열쇠를 담았느냐
그도 저도 아니면 시련에 지친 이의
사랑의 묘약이라도 지어 왔느냐
오곡백과 결실하게 바람아 불어다오
가을바람 부는 날
윤인환
추적이던 가을비 그치고
철없던 추억인 듯
낙엽들 떼구르르 뒹구는 날
휭한 쓸쓸함을 견딜 수 없어
안부의 문자를 띄우고 전화를 해도
떨리는 건 내 손끝뿐 당신은 묵묵부답이더이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나요?
질긴 삶의 벼랑 끝에서
나처럼 찬바람과 맞서고 계신가요
아니면 사각 벽에 갇혀
곤한 잠이라도 청하고 계신건가요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고혹한 물매화 꽃잎인 듯 긴 여행이라도 떠난 건가요
오늘처럼
포도를 쓸고 가는 성성한 바람 부는 날
갈잎의 떨림으로 몸부림을 쳐 봅니다
촉촉한 대지에 선을 그어 봅니다
잊혀질 수 없는 당신을 그립니다
푸른 허공 끝 하얀 구름으로 피어오르는 당신
당신을 불러 봅니다
아!
울담의 모과는 이 밤도 농익어 가는데
당신은 지금 어느 하늘 아래 있는건가요
시방,
내가 밟고 서 있는 이 땅에 있기나 하신 건가요
가을바람
이남일
그대는 잊었지만
나는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한 방울 눈물이 남긴 상처까지도
가슴에서 지울 수는 없었습니다.
마음은 떠났지만
추억이 걸린 정원에는 아직
그대의 미소가 남아 있습니다.
나뭇가지가 숨죽여 우는 것도
단풍잎이 놓고 간 향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나 봅니다.
밤하늘을 보며 오늘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함께 걷던 오솔길을 걷습니다.
어둠 속에 사랑하는 나의 별이
아직 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을바람
이미순
잊을 만하면 도져 왔다.
꼭 이맘때쯤이면
더듬더듬
발음조차 알아들을 수 없는
반벙어리인 그가
알알이 영글어가는
결실들의 춤사위 앞에
순서대로 불러 세우는
암호 같은 호명 소리
누구의 이름을 부른 것일까
주변은 군데군데
열병의 흔적들이 남아
불그스레 물들기 시작하고
그때마다
서걱거리며 지나가던 바람 한 줄기
가슴 속 응어리로 남아
나를 아프게 한다
갈바람
이성구
갈바람 불어오면
코스모스 연분홍 향기에
길을 따라 고운 빛깔로
저만치 오라고 손짓하네
갈바람 불어오면
가을색이 짙어지고
국화향기 퍼져가는
그리움 흔들어 깨운다
갈바람 불어오면
허전함 빈 가슴을
파고들어 옷깃을
여미게 하네
갈바람 불어오면
허공에 불어오는
마른 바람이
몰려가면서
가을 빛 향연에
내 마음도 따라 물든다
가을바람과 함께
이세송
하루가 다르게 산자락이 변한다
푸르던 초록에 물결은
뜨거운 태양 아래 무르익어서
어여쁜 새색시 곱게 단장한 모습으로
나를 반기고 인사를 한다.
다람쥐 토끼 고라니는
새색시 꽃단장에 시샘이라도 하는 듯
이리저리 뛰고 숨고 나뒹굴며 숨바꼭질하고
풀숲에 숨어 사는 여치는
벌과 나비 불러서
곱게 핀 들꽃 향기 맡으며
서서히 떠나려는 마지막 여름
아쉬운 이별이 서러워 노래 불러주고
솔솔 불어주는 고운 손길
나뭇가지 잡고 지휘자가 되어
하늘 높이 날아오른 고추잠자리
찾아온 가을을 반기며 빙빙 돌아
바람과 함께 춤을 춘다.
가을바람이 살포시
이영지
서해안 진주 바다 접하는 외변산과
내륙에 깊숙이도 앉았는 내변산의 채석강
내소사에는 직소폭포 낙조다
정말로 쪽빛 바다 멧방석 만큼만큼
커다란 해가 돌아 잠겨든 황홀함이
길목에 가을바람을 살폿살폿 포시시 걸었다
수만 개의 기왓장 쌓아 올린
닭이봉 둘레둘레
닭이봉 물이든
둘레둘레의 해수욕장 펼치며
머리엔 푸른 송림 살 개미
해수욕장 고아라 고운 모래
디디며 넘나들며 물 맑은 갯벌 체험이
해넘이 된 닭이봉
꼭대기 햇살에만 반짝일 바다 햇살
살포시 찍어내는 바다의 은색 카펫
가을의 바람거리가
해가 비칠 바람물
바다는 금빛은빛 주홍빛 진홍빛을
섞으며 출렁출렁 흐르는 숲길 폭포
하늘로 쭉 뻗은 전나무 더디더디 살포시
가을바람이 흔든다
이옥순
가을 하늘 아름다워 그대 그리운 날들
찬란하게 물들이는 가을빛
백일홍 꽃가지 가을바람에 마음 흔들고
푸른 잎 사이사이 빨갛게 물들이는
탐스러운 석류가 눈길을 끈다
코스모스 분홍빛 설렘은
스며드는 젊음 가슴에 피여
국화 향기 가득 싣고 가을바람 타고 오른다
시원한 가을바람 보고 싶은 그대
잔잔한 운율로 달래 보지만
멈추지 않는 그리움 강물 되어
바라봄도 그리움도 사랑으로 물든다
그대와 함께하는 이 가을
찬란한 단풍 속에 세월의 깊이 배우며
눈으로 볼 수 없는 드넓은 마음 밭에
깊이 뿌리내린 애틋한 사랑
날마다 가슴에 안고 가을바람에 익어간다
시월애(愛) - 가을바람이 불어오니
이한명
얼굴에 와 닿는 햇살
따가운 날에
바람 한 자락 다가와
짙게 내려앉은
가을 한 귀퉁이 서성이다
슬금슬금 들어와
마음 밭을 넓혀주고
옆자리를 차고 앉는다
..바람.. 가을빛이.. 온몸으로 보고 느끼지 않아도 좋을 이 계절...
그냥 마음으로 들고 나는 바람길만 열어 두면 족하리라
나는 빈 술잔 가득
그대를 담고
그대는 하늘 지나는 바람 한 줄기
몸에 두르고
내 곁에 내려앉으리
어제는 향기로운 가을
꽃자리로
오늘은 폭군인 듯 거친 메마른
가지 위로
풀벌레 소리. .나뭇잎 소리.. 쓸쓸히 지나가는 바람 소리...
때때로 가을은
소리로 이별을 전해 오지만
거추장스러웠던 한때의
지난 유행처럼
이 또한 지나리라
드러낸 듯
드러내지 않은 듯
그렇게 지나리라
조그만 창으로 내려다보는 세상이
다는 아니듯
한 시절 그렇게 지나리라
가을바람
이해인
숲과 바다를 흔들다가
이제는 내 안에 들어와
나를 깨우는 바람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놓고
햇빛과 손잡는
눈부신 바람이 있어
가을을 사네
바람이 싣고 오는
쓸쓸함으로
나를 길들이면
가까운 이들과의
눈물겨운 이별도
견뎌낼 수 있으리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사랑과 기도의
아름다운 말
향기로운 모든 말
깊이 접어두고
침묵으로 침묵으로
나를 내려가게 하는
가을 바람이여
하늘 길에 떠가는
한 조각 구름처럼
아무 매인 곳 없이
내가 님을 뵈옵도록
끝까지
나를 밀어내는
바람이 있어
나는
홀로 가도
외롭지 않네
가을바람 편지
이해인
꽃밭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은
코스모스 빛깔입니다.
코스모스 코스모스를
노래의 후렴처럼 읊조리며
바람은 내게 와서 말합니다.'
나는 모든 꽃을 흔드는 바람이에요.
당신도 꽃처럼
아름답게 흔들려 보세요.
흔들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믿음과 사랑의 길에서
나는 흔들리는 것을
많이 두려워하면서 살아온 것 같네요.
종종 흔들리기는 하되
쉽게 쓰러지지만 않으면 되는데 말이지요.
아름다운 것들에 깊이
감동할 줄 알고
일상의 작은 것들에도
깊이 감사할 줄 알고
아픈 사람 슬픈 사람 헤매는 사람들을 위해
많이 울 줄도 알고
그렇게 순하게 아름답게 흔들리면서
이 가을을 보내고 싶습니다
가을바람
임석순
뜨거운 햇볕
뜨거운 바람이 떠나가고
찾아왔으니 떠나지 말아라
어느새 반가운 그대가 찾아왔다
시원한 바람
시원한 가을바람이 속삭이며
코스모스꽃 곁을 스쳐 가고 있을 때
가을 냄새가 코끝을 향기롭게 해준다
가을아
바람아
가을바람아
이 가을에 왔으니
찾아왔으면 떠나지 말아라
그대 있으니 행복이고 기쁨이다
그대가 있으니 이 가을이 풍요롭고 아름답다
가을바람 부는 까닭
임석순
새봄에 푸른 새싹은
그냥, 올라오는 게 아닌가 보다
언제 뿌려진 씨앗이 있었을까.
약속한 적도 없는
가을날 바람이 불어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바람아 불어라 어디서 어디로
가을에 맺어지는 열매.
그냥, 자연스러워 보여
하늘의 싱그러움이 더하여
땅이 흘리는 비지땀.
바지런히 움직이는 수고의 발자국 따라
스스로 출발점과 맺음이 연고(緣故),
바람아 불어라 어디서 어디로
바람이 부는 까닭이었나?
추풍(秋風)
임석순
어젯밤
서늘하여 창문을 닫으려니
귓가에 찬바람이
슬며시 다가와 슬피 우네
지난날
아껴주고
반겨주고
사랑해 주더니
못내 아쉬워
같이 있기를
학수고대하더니
잠시 차가워져
덧없어라
냉랭하게 대하니
이제 이별하자
쳐다보지도 않겠다고
예고 없이
박절하게
속절없이
떠나야 하려니
어느새 찬바람
바닥엔 낙엽 뒹굴고
오라 해도 가라 해도
내 마음만 애가 타네
뜨거운 햇살에
선들거리는 바람
마음 못 잡고 눈길 못 주고
살포시 내 마음 어루만져 보네
이별이 아쉬워 괴로워
가고 있으매 서러워하고
오고 있으매 기뻐하지 못하니
가을바람
임숙희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살포시 눈을 뜨고 열어보니
따가운 햇살이 빙긋이 웃고 있습니다
시간은 어김없이
높고 푸른 하늘을 펼쳐놓고
따가운 햇살이
붉은빛으로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습니다
눈시울 적시는 맑은 하늘에
피어나는 꽃구름 한아름 안고
떠도는 바람따라
내 마음도 하늘거립니다.
어디로 가는지
머물 곳은 어딘지 모릅니다
바람이 흘러가는 대로 흘러가렵니다.
가을바람
임영준
가슴을 파고드는 이 바람을
무엇으로 막겠느냐
깊디깊은 밤의 속삭임을
누구에게 털겠느냐
그저 멍멍한 눈길로
또 더듬고만 말 거냐
사무치는 매혹을 찾아
무조건 저지르라는 것 아니냐
찰나에 스쳐 갈 그 숨결을
꼭 붙잡고 늘어지라는 것 아니냐
가을바람
임재화
한낮에는 매미와 쓰르라미
큰 소리로 울고 있는데
밤이오면 창가에서 귀뚜라미가
귀뚤귀뚤 울고 있습니다
이제는 가을바람 불어오고
아직 떠나기 싫은 늦더위도
마지막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배롱나무에 분홍빛으로
곱게 피워있는 꽃은
새삼스레 눈길을 붙잡아 매고
샐비어 붉은색은
차마 사랑을 갈구하는데
어느새 가을향기가 피어납니다
가을바람
임화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데,
무어라고 네 마음은 종이풍지처럼 떨고 있니?
나는 서글프구나 해맑은 유리창아!
그렇게 단단하고 차디찬 네 몸,
어느 구석에 우리 누나처럼 슬픈 마음이 들어 있니?
참말로 누가 오라고나 했나?
기다리거나 한 것처럼 달아와서,
그리 마다는 나무 잎새를 훑어놓고,
내 아끼는 유리창을 울리며 인사를 하게.
너는 그렇게 정말 매몰하냐?
그렇지만 나는,
영리한 바람아, 네가 정답다.
재작년, 그리고 더 그 전해에도, 가을이 올 적마다,
곁눈 하난 안 떠보고, 내가 청년의 길에 충성되었을 때,
내 머리칼을 날리던 너는, 우렁찬 전진의 음악이었다.
앞으로! 앞으로! 누구가 퇴각이란 것을 꿈에나 생가했던가?
눈보라가 하늘에 닿은 거칠은 벌판도 승리에의 꽃밭이었다.
오늘······
오래된 집은 허물어져 옛 동간들은 찬 마루판 위에 얽매여 있고,
비열한들은 이상과 진리를 죽그릇과 바꾸어,
가을비가 낙엽 위에 찬데,
부리런한 너는 다시 그때와 같이 내게로 왔구나!
정답고 영리한 바람아!
너는 내 마음이 속삭이는 말귀를 들을 줄 아니, 왜 말이 없느냐?
필연코 길가에서 비열한들의 군색한 푸념을 듣고 온게로구나!
입이 없는 유리창이라도 두드리니깐 울지 않니?
마음 없는 낙엽조차 떨어지면서, 제 슬픔을 속이지는 않는다.
짓밟히고 걷어채이면서도, 웃으며 아첨할 것을 잊지 않는 비열한들을,
보아라! 영리한 바람아, 저 참말로 미운 인간들이, 땅에 내던지는 한 그릇 즉을 주린 개처럼 쫓지 않니?
불어라, 바람아! 모질고 싸늘한 서릿바람아, 무엇을 거리끼고 생각할까?
너는 내 가슴에 괴어 있는 슬픈 생각에도 대답지 말아라.
곧장 이 평양성(平壤城)의 자욱한 집들의 용마루를 넘어,
숲들이 흐득이고 강물이 추위에 우(鳴)는 겨울 벌판으로
겨울이 오면 봄은 멀지 않았으니까
가을바람
장용순
가을은
바람을 타고 온다
무더운 날의
땀을 식히며
지친 마음을
달래주려
가을은
서늘한 바람을 타고 온다
바람을 맞이하며
가을 코스모스가 핀다.
이보시게 추풍(秋風)이
장인성
이른 새벽
문밖에 누가 날 부르는고
그대 추풍(秋風)이 아니신가
가을비 오고 난 뒤
설악산에 무서리 왔단 말 넌즛 하고는
병색 짙은 나뭇잎을 흔들어
안부(安否)를 묻는다
이보시게 추풍(秋風)이
올겨울이야말로
지난해 고생했던 고뿔 없는 세상
춘삼월 꽃 필 때까지 잘 부탁하네.
이놈의 가을바람
전근표
이놈의 가을바람
입추, 말복, 처서 지나 추석, 추분 언덕 넘더니
한여름 뙤약볕 아래 적셔진 삼배 적삼 말리고
헝크러졌던 거추장 잎새마저 벗어 던지게 했다
헛간 처마 위 누런 호박덩이 보기도 좋게
과부댁 궁둥이 닮은 양 속살 드러나게 하고
윙 윙 하늘 높이 나는 고추잠자리
안뜰 마당 고추 멍석 위에 친구 삼아 졸고 있다
허드러지게, 꼿꼿이 피어 있는
오솔길 주변 코스모스, 춤추며 마냥 정겹다 하고
실개천 따라 피어난 찬이슬 흠뻑 먹은 들국화
짙은 향기로 막혔던 내 코를 뚫었다
건너편 솔숲 향은 갈참나무 흔들어
우드득~ 득 득, 상수리 밤톨 되어 떨군다
이놈의 가을바람
검푸른 융단 논밭을 황금빛 수의로 입히더니 끝내
무지갯빛 오색단풍과 농익은 감, 대추, 사과, 배
수채화 한 폭을 그려 내 손발을 묶고 내 눈을 멀게 하였다
태양 따라 고개 쳐든 해바라기 너 잘났다 폼 내지만
묵직한 수수 모가지 장대 높이 치켜 벌서게 하고
힘겨운 듯 발아래 붉은 핏빛의 수액을 뿌리고 있다
울퉁불퉁 농토 길
바람 따라 달려가는 경운기 소리, 덜커덩~ 덜컹
그 소리 풍년가 반주였으면 좋으련만
이놈의 가을바람
부는 소리, 서민의 소리, 주름살도 펴 주었으면 좋겠다.
가을 산바람
전영금
가을 산머리 단을
모질게 매질하던 가을 밤비
스르르 사라지는 운무
붉게 울먹이는 산
한때 명예롭던
풍경 좋던 자리 내려놓고
싸목 싸목 산허리를 돌아
강가로 내려온 바람 앞에
갈대꽃도 억새꽃도
가을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하얀 머리 풀어 헤치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차가운 달빛에 눕는다.
가을바람이 부는 그 산에 올라가면
정세일
가을바람이 부는 그 산에 올라가면
가을바람에 옷을 갈아입는 나무들의
속삭임이 온숲을 바스락거리고 있어서
숲속에 이제야 찾아온 가을바람은
여름내내 강가에서 쪽빛 물감도 만들고
구름을 가져다가 회색옷감을 만들었지.
가을바람은 그 산 위에 올라갈 때마다
파란 하늘붓을 가지고 있어서
그 숲속에서 꿈꾸는 새들에게는 가을을 알려주고
꽃이 피고 지는 소리에게도 온통 마음으로만
가을을 그릴 수 있다고 가을 소리가 나는 그 숲속으로 가고 있었단다.
그처럼 가을바람은 늘 서늘한 것을 좋아하지만
상큼한 갈색옷을 입기를 좋아해서
숲속에 올 때마다 갈색으로 된 바람을 만들어
고개 너머 산 위에 올라갈수록 이마가 시원한
갈색 바람을 보내주고 있었지.
가을이 그처럼 가을바람이 소리로 찾아오는 것은
바람처럼 가버리는 추억의 꼬리를
어릴 때의 철없는 안타까움처럼 바람처럼
날아갈 수밖에 없는 가을이어서
오늘은 높은 하늘에 티끌도 날리고
공중에 새처럼 빙빙 도는 바람도 날릴 수 있어서
갈색 가을바람의 가을 보내기는 시작이 되고 있었지
가을바람이 부는 산 위에서
정세일
가을바람이 부는 산 위에서
갈잎 소리 나는
산들의 노랫소리로 만나보자
팔라랑 팔라랑 귀 밝은 소리로
나뭇가지에 매달린
얼굴을 간지럽히는 소리로
만나보자
가을바람이 부는 산 위에서
바람 소리에 춤을 추는
갈잎들의 가을운동회에서 만나보자
갈잎들이 가을하늘에 새처럼 날아가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따라 산 위를
달려가는 바람들의 가을운동회에서 만나보자
가을바람이 부는 그곳에서
가을 잎을 가지고서도 소리 나지 않는
나무들의 잎새를 입어보자
새의 깃털처럼 부드럽고
어머니 가슴처럼 푸근한 가을 잎으로 달려가는 바람처럼
산의 얼굴이 보이는 곳으로 날아가 보자
가을바람이 부는 그곳에서
우리 노래를 불러보자
나무들과 손잡고 산등성이를
걸어가면서 노래를 불러보자
가을바람이 부는 그곳에서
우리 그렇게 갈잎 소리 나는
가을 감칠맛 나는 마음으로 이 노래를 불러보자
가을바람이 흔들리는 곳으로
정세일
가을바람이 흔들리는 곳으로
그래 우리 손잡고 달려가 보자
가을바람에 매달리는 수수 대처럼
고개를 흔들며 그래 그래
소리치며 바람처럼 매달려 달려가 보자.
그곳에서 수수 대처럼 키가 크도록
알갱이처럼 마음이 차 오르도록 그
래 우리 달려가 보자
가을바람이 흔들리는 곳으로
그래 우리 손잡고 달려가 보자.
가을 물새소리에 하얀 수염을
털털 날리고 싶은 갈대처럼 갈 대숲이 무성한
강언덕마다 싸오라니
차오르는 강물 소리를 들으면서
풍덩 풍덩 마음이 가을물새 소리로
가득 차는 소리를 내면서
그래 우리 달려가 보자.
가을바람이 강물처럼
출렁이면 우리는 바람 소리처럼
휘-잉 소리로 대답하고
가을바람이 쏴-아 하고
파도 소리처럼 바다 흉내를 내면
우리는 철썩거리는
바다를 기다린 바위소리로 대답을 해보자.
옥수수가 가을바람을 맞이하면
정세일
옥수수가 가을바람에
이가 부딪히는 소리를 내면
다리 건너 외딴집에서
고모와 친구는 옥수수를 솥에 넣어
뜨겁게 노랗게 익혀서
달빛이 비치는 창가에서
호호 입을 불며 먹고 있습니다
오늘같이 창가에 달이 환하게 비치면
고모와 친구는 다리를 바라보며
다리를 건너 걸어오는 달의 소리를
서로 소곤거리며 듣고 있습니다
달이 차고 다시 산 위에 달이 차오르면
고모는 산 너머에 시집을 갑니다
그래서 고모는 달이 걸어오는 소리에
가슴에 고동 소리가 차 오는 것을 느끼면서
친구와 호호 웃으며 옥수수를 먹으며
달이 밝은 창가에서 다리를 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옥수수밭에서 옥수수들도
잠들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리 건너 이웃 동네에서 들려오는
사람들의 달 이야기가 너무나 둥글게
다리 건너 이곳까지 들려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산 너머에 시집을 간 순 이가
예쁜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이어서
다리 끝에 있는 집에서 옥수수를 노랗게 먹는
고모와 친구의 웃음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려오기 때문입니다
가을바람
정재삼
어디서 생겨났는지
지구가 불이 난 듯 이글대던 폭염
쫒아내는 바람이 분다
저들이 갈기를 세우듯 걸어서
나뭇가지를 흔들고
위윙 웅성거린다
앞섶을 스친 바람
사무치도록 그리웠던
가슴 돋울 가을을 담았다
처음 불어온 바람
오곡백과 알알이 매만지어
가을의 준비 한창이어라
오, 저 바람 솔곳이 젖어들어
구름 위를 거닐고
황금 들녘 잘랑거릴 준비를 한다
가을바람
정테중
1
내장사 올라가는 길에
쉬익 하는 소리,
앙칼진 단풍나무 아래에서
그 빨간 입술의 소리 들었는가?
이파리에 난
구멍 틈으로 바람이 들어와
이별이라도 할 듯
온몸 흔들며 손짓을 하네
처음부터 보이지 않은
무색으로 살아야만 되는
혼자이면 아무것도 아니듯이
갔던 길 내려올 때
그 바람소리 들으려
단풍 떨어진 나무 아래서
앙상한 가지를 올려다보면
고요한 바람
내 가슴을 뚫고 지나가듯
구멍 난 이파리 속으로
온몸 흔들며 나도 따라가네
2
걷다가 잠시 멈추어 가로수 잎을 봅니다
바람에 휘는 가지는
낙엽의 길을 만들며 이별의 손짓을 하고
쓸쓸한 길 위 아직은 북서풍에
마지막 잎새의 사연이 매달려
텅 빈 거리에 서성입니다
비우고 남는 것
헐벗은 것은 쓸쓸함이 아니었습니다
흔들리며 소리 내는 것은
이별의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혹독한 북풍의 한기를 견디기 위한
뿌리의 몸부림이기에
가지마다 흔들렸을 뿐이라고
가로수는 소리 내어 웃고 있습니다
가지 끝에서부터 몸통까지
각질을 털어 내는 소리
가을바람은 바스락 소리 내며
길 위에 남겨진 텅 빈 도시와 나를
어둠의 길로 쓸어 가고 있습니다
추풍의 노래
조선윤
저무는 창가에 기대서서
흐르는 계절을 보노라면
푸름을 자랑하던 잎
벌써 낙엽으로 지고
산봉우리 앙상한 가지가 드러났다
눈에 익은 풍경 바뀌어 가고
잿빛 하늘 아래 먹구름
마음에 공허를 불러오고
밖에는 스산한 바람 부는데
빈 둥지 홀로 남은 어미 새처럼
상실감에 존재를 알고
언제나 같은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
투명한 유리창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이 상반된 고요는
어제와 다른 느낌으로
앞으로 펼쳐질 하얀 세상 그리며
새로운 정체성을 시험해본다
인생의 어디쯤인가
내 창을 두들기는 황혼
하루가 천금같이 소중한 지금
오늘도 찬란하게 펼치자
한결 아름다운 내일이 오기를
기도로 부르는 추풍의 노래여
가을바람
조한직
아-
떠나고 싶다
푸른 하늘을 벗 삼아
훌훌 떠나보고 싶다
아니
누가
나를 부르지 않아도 좋다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가볍게
가을꽃들이 피어서 반기는 곳으로
꽃 마중받으며 떠나고 싶다
아-
떠나고 싶다
이 가을 신선한 바람을 타고
가을꽃들의 꽃 속으로 떠나고 싶다
혼자라도 좋다
어디로든 훌훌 떠나고 싶다.
추풍(秋風)
주응규
가을바람이 외로움을 안고
그지없이 불어와
고즈넉이 잠든 그리움을
흔들어 깨우네
밤새 바람이 드세더니
숲을 흔들어
신열(身熱)이 오른 잎새
봄꽃보다 더 붉네.
가을바람은 편지가 되어
채바다
산이 붉어지는 소리
바람 타고 오고
하이얀 소녀의 머리 위에
국화 한 송이 꼽고 간다
배부른 달빛
수줍음 타고 산 넘어지는데
별들은 포개져 아기 잠들이다
어둠은 밤이슬 곁에
눈을 비비고
단풍이 붉어지는 소리 편지가 되어
겨울 이야기 창틈에 두고 간다
가을바람 속에서
최범영
가을바람에 눈물이 나거든
세상이 그만큼 넓다 생각하렴아
세상이 넓다 보니 모르는 것도 많고
허우적거리다 보면 슬프기도 한 것
그러나 세상 사람을 가족처럼 대하면
어설픈 내 몸짓도 아름다움이 된다네
살 속을 파고드는 바닷바람도
아침에 붉게 뜨는 해를 이야기하듯
삶이 그렇게 아름다움이 되는 것은
내 삶 속에 늘 네가 있기 때문이네
네가 있어 모두가 좋은 나는 바보
바보가 바보로 살 수 있는 세상이 난 좋다
가을바람
최영미
가을바람은 그냥 스쳐가지 않는다
밤별들을 못 견디게 빛나게 하고
가난한 연인들 발걸음을 재촉하더니
헤매는 거리의 비명과 한숨을 몰고 와
어느 썰렁한 자취방에 슬며시 내려 앉는다
그리고 생각나게 한다
지난여름을, 덧없이 보낸 밤들을
못다 한 말들과 망설였던 이유들을
성은 없고 이름만 남은 사람들을
낡은 앨범 먼지를 헤치고 까마득한 사연들이 튀어나온다
가을바람 소리는 속절없는 세월에 감금된 이의
벗이 되었다 연인이 되었다
안주가 되었다
가을바람은 재난이다
가을바람에 실려 오는 당신의 향기
최영복
그대가 보고 싶을 때
잠시 눈을 감고 그리고
가슴을 활짝 펴고
푸른 하늘을 느껴봐요
잠시 바람에 실려 오는 가을 향기
이런 것이 당신의 향기일까요
어쩌면 이리도 예전에
가질 수 없었던 감정들이 줄줄이
엮어 나올까요
숲 속에서 울리는 종소리가
속 깊은 곳을 파고든 것처럼
빗장을 풀어버린 가슴속에
붉게 충혈된 당신의 숨결이
온몸으로 점화되어
타들어 가는 순간부터
내 마음은 잔잔한
호수 위에 떠 있는 하얀 종이배
기억할까요 이런 가을 전설 같은
우리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고개 들어 푸른 하늘을 봐요
손 내면 닿을 듯 가까운 곳에
걸어 놓을 테니
가을바람
최정순
가파른 하늘재 넘어
송림(松林) 사이로
다가서는 한 뭉텅이
감나무 부딪히고 사과나무 얽혀
열매마다 핏빛 멍울 짙게 남기고
단호박 짙게 드리운 주름살 펴며
필사적으로 머물다 간다
회갈색 깊디깊은 구렁이 계곡 따라
인고의 상처 눈물 발 밑 뿌리며
먼저 지나간 인연 허위허위 쫓아와
인적 드문 산등성이 골짜기
이리저리 소요하며 거닐다가
허수아비 혼자 하늘 보고 꺼덕이는
몸서리치게 외로운 텅 빈 들판에도 머물다
콩 줄기 비집어, 비집어 툭툭 건들며
석류알 터져라 사력 다해 불다
겨울로 간다
가을이라 가을바람
하영순
봄이고 싶은 나에게 바람이 불어온다
겨울 찬바람이 아닌
오뉴월 더운 바람도 아닌
시린 가슴 녹여 줄 훈훈한 순풍이다
난 그 바람이 좋다
춥지 않아 좋고
덥지 않아 좋다
태풍일지라도 나쁠 것은 아니다
금년 여름엔 얼마나 기다렸든가
한강의 녹조가
바다의 홍조가
바람 불어,
태풍이 불어 환경오염 정화 시킬 수만 있다면
그 바람을 가슴에 품으리라
입추 말복도 지나고 오늘이 처서
가을이라 이름 불러도 좋을 계절
더위를 몰아낼
아침저녁 시원한 바람이 분다
가을바람
한영택
바람이 불어온다
여인의 숨결처럼
어디서 오는지 아무도 몰라도
저 산, 저 벌판에서
새색시 입 맞추듯
보드랍게 다가온다
초록의 이파리는
달맞이하듯
바람을 감싸 안는다
햇볕에 그을린 나뭇잎
오색고름 달고서
덩실덩실 춤출 때면
시샘을 못 이긴 바람도
질투를 하겠지요
매캐한 소음 몰아내고
사과 향처럼
상큼한 내음
가득 실어다가 주는 바람
먼발치의 산을 우러르며
그 바람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가을바람아
한영택
공원에도 바람이 분다
오가는 기척 소리에
바람의 속살도 풀어 놓는다
낙엽들이 바람에 날리어 춤을 춘다
살랑살랑~ 나폴~
고추잠자리 내려앉는다
낙엽의 걸음이 빨라진다
예상치 못한 돌개바람에
이웃을 만난 기쁨은 잠시
낙엽을 몰고 간
저 바람이 야속하여라.
가을바람
허기숙
바람이 그대에게
가을 그리움을 전하고
바람이 또 나에게
그대 소식을 전하며
가슴에 안기는 잔잔함은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오듯이
자연스럽게 스치는 그리움에
가슴 한쪽에는
작은 초원의 집에
사랑방이 자리 잡고 있다
언제가 될까?
같은 하늘 아래지만
만날 수 없는 그리움이
언제나
기다림으로 다가온다
시간은 잡을 수 없고
주어진 삶의 일상에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환희의 기쁨도
고통의 슬픔도
바람으로 가슴에 안긴다
가을바람 부는 날에는
허욱도
마음은 아직도
어느 청춘에 머무는듯한 계절에
상념 고요히 잠재워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듯
세월이 데려다 놓은
흰머리 중년이
구김살 없이 환한 웃음 담아보려
동그랗게 고개 내밀고
아련한 추억들을 더듬으며
두 팔 벌린
허수아비의 옷깃 사이로
가을바람 타고 날아온 웃음이
빙그레 펄럭이며
빈 가슴으로 사랑하게 소원하는
마음 들판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가을바람
허정인
긴 무더위로
갑갑하던
많은 화분 수석들
절반 비우기로 했다
외로울 때마다
모으기로 채우던 가슴
비대해져 허덕일 줄
몰랐네
예쁜 리본 달아
선물 주고 나눠 주니
내게서 떠나는
외로움 덩어리들
비워낸 공간마다
살랑
살랑
살랑
비워낸 가슴에
솔
솔
안겨 오네 맑은 가을바람이
가을바람
현혜숙
겹쳐지는 가을 볕 여백 들추며
허연 뿌리 들어낼 것 같은 사내
걸어 나오고 있다
목이 없어 쥐어 짜듯 한 울림
빛에 부딪혀 투명한 소리를 낸다
갈잎에 숨으면 갈잎 울음을 내고
더러 어느 생에 머물러
희끗희끗한 물거품처럼
비틀어 본다고 드러날리 없는
제 날개에 포개어지는 난감한 웃음
심장은 파닥거린다
밀려오다 떠밀려가고
몸은 잠시 사라졌다 다시 되돌아오는
아무것도 껴안을수 없는 몸짓
이제 남은 잎사귀에 매인
하늘빛 슬픔 게워낸다
안으로 네 안으로 내통하는
들을 수 없는 신음소리
가을바람
홍대복
가을바람
소슬히 부는 밤
문풍지
울리는 북풍 소리
스산하게
내 마음 후비고 간다
가을밤
추풍(秋風) 속에
불현듯 떠오른
애끊는 심정
뇌리 스치고
창문 틈 풀벌레
애절하게 슬피 운다
사그락사그락
낙엽 지는 소리에
가을은
더욱 외로움만 쌓이고
별빛 속에
가을밤은 깊어만 진다.
가을바람
홍진숙
가슴에 품었던 꿈들은
가끔은 잠들지 못하고
여물어 버린 가을 햇살과
떠도는 바람에도
깨어나 다가오는 것
세상이 녹록치 않음을 몰랐을
모든 것들이 가능하다고 믿던
눈부시던 그 언저리
이미 멀리 와 있는데
세상의 주인이 되어
온몸으로 빛나고 싶던 욕망은
담장 곁 기대어 홀로 핀
해바라기꽃처럼
고립된 꿈이었을지 몰라
끝내 내 것이 될 수 없었던
청춘의 아린 상처
지나는 가을바람이 어루만지면
아직도 파닥이는 푸른 꿈들
이제는 편안히 잠들기를
가을바람
황광주
가을길 앞서 내 달리는
마른 바람은
소쩍새 울고 가는
산골짝에서 내려오나요?
아님, 갈매기 울음 담고
서쪽 바다에서 불어오나요?
가끔은
봄에 다녀간 친구에게
고운 마음 접어서,
애틋한 사연 적어서
가을바람 보내는 그 길에
다시 돌아올 채비 하라고
안부 전해주고 싶네요.
이 바람 자락이 더 식어
그곳에 가고 있는 바람 끝을
잡지 아니했으면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