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가을 ㅇ - 2

원영애 가을바람으로

유금 강고개를 넘으며

유명숙 - 가을에 남기는 고백

유명숙 - 가을이 잠시라도

유병근 가을 무덤

유소례 가을과 함께

유안진 - 가랑잎

유안진 - 가을

유안진 - 가을 꿈 하나

유안진 가을만이 안다

유안진 - 가을 안부

유안진 - 가을 타고 싶어라

유안진 - 가을만이 안다

유안진 - 가을에는 날마다 떠나간다

유일하 - 가을의 길목

유일하 - 가을 타는 텃새

유재영 가을 시

유종인 가을하늘

유필이 - 가을 그리움의 저편

윤갑수 가을 연인

윤갑수 - 가을이 진다

윤갑수 - 갈바람 빛 가을

윤갑수 - 추수(秋收)

윤갑현 가을 동감

윤동주 -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윤보영 - 가을 그리기

윤보영 - 가을 사랑

윤성택 가을

윤영초 가을 그리움을 보내며

윤영초 가을로 흐르는 사랑

윤영초 가을사랑

윤영초 가을을 보내며

윤용기 그해 가을

윤은기 가을

윤인성 가을 연가

윤춘순 가을 길 가노라며

이가림 - 순간의 가을 - 가을 강

이경순 - 가을은

이경옥 - , 가을아

이경옥 - 어느 가을날의 사색

이경희 - 가을 프리즘

이국헌 가을이 오는 소리

이기철 - 가을이라는 물질

이길옥 - 가을 소고(小考)

이남일 - 가을의 생각

이남일 가을의 소리

이남일 - 가을의 언어

이대준 - 가을 가뭄

이덕규 - 힘이 남아도는 가을

이도연 - 어느 초로의 가을날

이동순 - 가을 소리

이동순 - 가을 저녁

이문자 가을 노래

이문주 가을 서정

이병률 - 가을날

이병주 - 이 가을에도

이상노 - 가을이 떠나려 하네

이상진 - 가을 앞에서

이선명 - 가을 소리

이선명 가을 절벽 위에 핀 꽃

이성구 가을 연가

이성복 - 그해 가을

이성선 가을 편지

이성지 - 어느 가을날에

이성진 - 가을 그리움

이성진 - 가을이다

이세송 - 떠나는 가을

이승복 - 가을 들녘에 서서

이승훈 - 또 가을이다

이시영 - 가을날

이시영 - 가을의 소원

이연빈 가을

이영균 솔로몬의 계절

이영지 - 가을 은행

이영지 - 가을 하늘이 더 높아요

이영춘 슬픈 가을

이외수 - 가을의 창문을 열면

이용악 만추(晩秋)

이우걸 가을 기도

이원문 - 가을

이원문 - 가을 강

이원문 - 가을 고독

이원문 가을 그림

이원문 - 가을 길

이원문 가을꽃

이원문 가을 냇가

이원문 - 가을 들녘

이원문 가을 마음

이원문 - 가을 산사(山寺)

이원문 가을 슬픔

이원문 가을 아이들

이원문 - 가을 역

이원문 가을의 기억

이원문 가을의 소리

이원문 뒷산길의 가을

이원문 딸네내의 가을

이원문 방랑의 가을

이원문 외로운 가을

이원문 장터의 가을

이월순 - 가을

이유리 - 가을로 갈 때는

이은경 가을의 죽음

이은석 산사의 가을

이재무 - 남겨진 가을

이재현 - 가을날의 서정

이재현 - 가을날의 슬픈 아리아

이재현 - 가을 동화

이재환 가을

이재환 가을의 문턱

이재환 - 쓸쓸한 가을

이정규 - 가을날의 하루

이정순 가을빛 속으로

이정순 가을 풍경

이정애 - 가을 약속

이정애 - 가을이 오네요

이정애 - 어느 가을날

이정우 가을 문턱

이정은 가을 행복

이정하 - 내게 있어 첫 계절인 이 가을날

이제민 - 가을 단상

이종범 - 가을이 아름다운 것은

이주희 가을 편지

이준관 - 가을에 사람이 그리울 때면

이지영 - 가을은

이진기 가을이어라

 

 

 

가을바람으로

원영애

 

흐르는 물에 낙엽 띄워

햇살 좋은날

물밑

금모래 흔들어 속삭여 보리

 

숲속 오솔길 지나다

남은 가랑잎 흔들며 가는 길

어디로 가냐고 묻지 마라

 

가다가 힘들면

개여울에 내려

구름 한 줌 끌어다

발 씻는 아가씨

장난이라도 치리

 

마른 꽃

하늘 향해 망각의노래 부르면

향기 떠난 추억에도

그리움은 늘 그렇게

스치는 거라고

말 해 주 리 라.

 

 

 

강고개를 넘으며

유금

 

1

9월이라 호젓한 산중에

패랭이꽃 길가에 피었어라

무심히 한 송이 꺾어

손에 들고 길을 가노라

 

2

맑은 물 속 모래가 희고

가지런한 풀에 저녁 햇빛 선명하여라

산길에는 인적이 뚝 끊어져

나뭇잎이 발자욱 소릴 내누나

 

3

걸어서 산골짝 다 지나고

한낮에 높은 고개 넘어가누나

먼 들에 구름 그림자 아득도 하고

외딴 마을에 닭 우는 소리 고요하여라

 

 

 

가을에 남기는 고백

유명숙

 

살포시 다가와 입맞춤하던 아이

돌아보니 한걸음 달아나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찾아와

살며시 흔들어 놓고 후다닥

어느새 흔적만 남기고 가버린다

언제나 외사랑 이면서

나는 또 사랑에 빠져버렸다

 

차라리 오지나 말든가

그렇게 올 거면 머물기라도 하지

외로움만 남기고 가버리면

가을 앓이에 한동안 가슴만 시릴 텐데

나는 다시 가을사랑에 푹 빠져

쓸쓸한 계절 마음이 녹아내린다

 

 

 

가을이 잠시라도

유명숙

 

새벽바람에 상큼한 가을 냄새가 묻어난다

그거 사나흘 사이 어느새 바람이 서늘해져

무심코 소매 깃을 끌어내리고

여름내 애지중지 한 몸이었던 친구는 버려둔 채

반짝이는 맑은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아도

뜨겁던 태양마저 온화한 햇볕으로 사그라진

싱그러운 가을 하늘이 반기며 웃어 준다

늘 그렇듯 가을은 예고 없이 훅 치고 들어와

많은 이야기들을 토해내고 이내 사라지겠지만

잠시만이라도 가을이 내 마음의 동무이고 싶다!

 

 

 

가을 무덤

유병근

 

비가 지나간 발자국을 찾느라고

길바닥 물벼락은 우왕좌왕이다.

젖은 가로수 잎이 물방울을 거칠게

지상으로 연방 퉁기고 있다.

음표 같다고 나뭇잎이 높고 낮은 악보를

그려낸다. 입속으로 중얼거린다.

과일이 가지에서 떨어지는 순간 또한

가지 끝에 중얼거리는 악보다.

지난가을의 중얼거림은 숙연했다.

물끄러미 가지 끝에 눈을 주었다.

바라보았다. 우러러본다는 말이

입에서 떨어지는 사이 그보다 먼저

숭고하다는 심각한 말이 떠오르는 사이

가을이 뭉글뭉글 지고 있었다.

조금은 느리게 조금은 물 먹은 듯

나뭇잎을 전별하는 가지 끝에서

비 오는 소리가 은근한 줄을 튕겼다.

가을 무덤으로 가는 길이 있다

 

 

 

가을과 함께

유소례

 

가을은 어데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인가

새처럼 깃털을 세워 가을을 타고 떠납니다

 

기차는 고을, 고을 삶의 고랑을 음미하며

스산한 바람 내에 뒤엉켜 달립니다

눈과 귀에 들어오는 시골의 이야기들

마을에서 들에서 산과 강에서

가슴으로 긁어모은 내 이야기 나래가

가억의 창에 곱게 저장되고 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나는 변하고 있습니다

까칠하게 수분이 말라가는 다갈색의 몰락,

숨 막히도록 인적이 멀어진다면

모와놓은 이야기, 줄줄이 풀어

지루한 길, 즐겁게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차는 추수가 끝난 텅 빈 논배미를 지나

오밀조밀 정겨운 시골 마을 산자락을 핥고

도시의 깔끔한 건축물들의 부요한 삶과

어디든 갈 수 있는 도로가 크고 작게 놓여 있고

 

강을 지나 막 언덕에 지천인 억새꽃

하얗게 익은 춤사위가 몸부림하듯

자연의 계절과 인생은 그렇게 닮고 있습니다

 

햇빛이 차창 유리를 뚫고 들어와

짜릿하게 뺨을 찌르는 가을볕의 따사로움,

내 가슴은 농익은 가을이 번지고 있습니다

 

 

 

가랑잎

유안진

 

모르겠다

내사 모르겠다

눈 딱 감고 송두리째

내던지고 싶은 맘일까

가을 나무는

제 몸 제 맘대로 어찌 못하는

멍이 드는 가을 잎

잎 지는 가을 나무를 보면

낭떠러지 저 아래

나 모르는 세상으로

뛰어내리고만 싶어질 뿐

손 털고 일어서

바람에 내어맡기고

어디로든 멀리 사라지고만 싶어질 뿐.

 

 

 

가을

유안진

 

이제는 사랑도

추억이 되는구나

 

꽃 내음보다는

마른풀이 향기롭고

 

함께 걷던 길도

홀로 걷고 싶어라

 

침묵으로 말하며

눈 감은 채 고즈너기

그려 보고 싶어라

 

어둠이 땅속까지

적시기를 기다려

비로소 등불 하나

켜 놓고 싶어라

 

서 있는 이들은

앉아야 할 때

앉아서 두 손안에

얼굴 묻고 싶은 때

 

두 귀만 동굴처럼

길게 열리거라.

 

 

 

가을 꿈 하나

유안진

 

길 떠나기 좋게 가을비가 뿌린다

이별하기 좋게 눈이 젖는다

목젖도 갈앉는다

가을에는 비 뿌리는 가을에는

나그네가 되고 싶다

소년은 어른으로 키워주고

어른은 소년으로 철없게 해주는

길에서 살고 싶다

비안개에 젖으며 손짓하는 길을 따라

자라기 위하여

철없기 위하여

소년이 되자

남자가 되자

아아 소년 나그네의 어머니

그 어머닌 너무 불쌍하여

차라리 나는

아버지를 가진 나그네가 되고 싶다

아내를 가진 나그네이고 싶다.

 

 

 

가을만이 안다

유안진

 

제 슬픔의 키만큼 다 자란 풀밭에

비가 내린다

 

나도 따라 울었다

 

이 완벽한 화음(和音)의 길로

가을이 오고 있다

 

열꽃 앓는 시인이 불러줘서 봄이 왔듯이

시인이 울어야 가을이 오는 줄을

가을만이 알 뿐이다

 

가을에는 귀뚜리가 제일가는 시인이다.

 

 

 

가을 안부

유안진

 

한 장 낙엽에다

피로 써서 묻고 싶네

그대 이 가을은 어떠하신가

얼굴에는 주름살이 늘어만 가도

마음을 구겨 접은 골 깊은 주름살들

도리어 하나씩 펴지고 있나니

그대 가을도 정녕 이러신가

서리 허연 낙엽에다

피로 써서 묻고 싶네.

 

 

 

가을 타고 싶어라

유안진

 

벤치에 낙엽 두 장

열이레 달처럼 삐뚜름 멀찍이 앉아

젖었다 말라 가는 마지막 향기를 나누고 있다

가을 타는 남자와 그렇게 앉아

달빛에 젖은 옷이 별빛에 마를 때까지

사랑이나 행복과는 가당찮고 아득한

남북통일이나 세계평화 환경재앙이나 핼리혜성을

까닭 모를 기쁨으로 진지하게 들으며

대책 없이 만족하며

그것이 고백이라고 믿어 의심 없이

그렇게 오묘하게 그렇게 감미롭게

 

 

 

가을만이 안다

유안진

 

제 슬픔의 키만큼 다 자란 풀밭에

비가 내린다

나도 따라 울었다

이 완벽한 화음(和音)의 길로

가을이 오고 있다

열꽃 앓는 시인이 불러줘서 봄이 왔듯이

시인이 울어야 가을이 오는 줄을

가을만이 알 뿐이다

가을에는 귀뚜리가 제일가는 시인이다.

 

 

 

가을에는 날마다 떠나간다

유안진

 

마지막 한 마디처럼, 안 잊히는 한 구절처럼

매달린 마른 잎이 바르르 떤다

발자국도 잎 향기도 무겁다

가을에는 날마다 떠나간다

가는 이 없이는 가을이 아니니까

가을을 다 가지고 가버린 다음에야

남겨지는 가을이 온다. 나도 가을이 된다.

거리마다 나뭇잎들 다 쓸려가고

그 많던 인파도 떠나고

거리를 치달리는 바람 거슬러

걷고 걸어도 나는 남겨진다.

떠나가는 가을과 남겨지는 가을은

같은 가을일까

떠나가는 웃음이 웃음일까

남겨지는 미소가 미소일까

참지 마라. 울어도 된다.

 

 

 

가을의 길목

유일하

 

아첨하던 잎들이

가혹한 갈림길에 선 처서다

짜증스러웠던 더위가 밀려가고

순번 따라가야 할 인생길

마지막 잎이 되더라도

앙칼지게 매달려 애원해 보자

붙들다 보면 무언가 들려오겠지

황홀한 사랑 멜로디가!

누가 날 보면서

아름답고 화려하다고도 할 거야

인생 뭐 있깐!

푸르게 살다가 찬 서리 마주치면

노랗게 변하는 거지

수많은 바람과 태풍이 몰아쳐도

우린 악착같이 붙들고 살았잖아

맑은 태양 가슴 안고

청명한 하늘 바라보며

방실방실 배시시

정말 멋진 세상이야

붉은 미소 노란 미소

! 청춘의 이데올로기여

하찮게 휘날리며

등산화에 짓밟히지 않고

완전무결한 인품으로

책갈피에라도 슬쩍 숨는 거다

해박한 그대들과 동조하며

한 페이지 장식하는 거다

잔인하고 포악한 겨울이 오기 전에

올가을엔

 

 

 

가을 타는 텃새

유일하

 

갈대 사이로 간드러진 그녀의 눈망울이 보고 싶다

수면에 굴절된 노을빛에 아스라이 떠오르는 형상

고개 숙인 갈대들의 바람결 따라 마음도 흔들흔들

지난날 뜨거웠던 사랑의 추억이 스멀거린다

처연하게 떠난 악보들이 갈대 사이사이마다

음표와 쉼표로 되돌아 반복했던 사랑싸움들이 박혀있다

거슬러 돌아보면 한낱 텃새들처럼 조잘거렸던

멜로디가 잉여 된 시간 속에서 자맥질했던 어제였다

이젠 홀로 저수지를 걸으며 살 비듬 날리는

수면을 바라보면 왠지 가슴이 생채기로 아려온다

조잘거릴 입조차 봉하고 하염없는 빗물만 턱에 흐른다

서럽게 쌓여가는 나이 멀어지는 청춘 너무 아쉬워!

! 방황의 가을

 

 

 

가을 시

유재영

 

지상의

벌레소리

씨앗처럼

여무는

다 못 쓴

나의 시

비워둔

행간 속을

금 긋고

가는 별똥별

이 가을의

저 은입사(銀入絲)

 

* 은입사 : 청동이나 주석 등에 새겨 넣은 은 줄.

 

 

 

가을하늘

유종인

 

하늘이 더 깊어진 것이 아니다

눈앞을 많이 치운 탓이다

 

밥그릇처럼 뒤집어도

다 쏟아지지 않는 저 짙푸른 늪같이

 

떨어지는 곳이 모두 바닥은 아니다

열린 바닥이 끝없이 새 떼들을 솟아오르게 한다

 

티 없다는 말, 해맑다는 말!

가을엔 어쩔 수 없다는 말, 끝 모를 바닥이라는 말!

 

바닥을 친다는 것, 고통을 저렇게 높이 올려놓고

바닥을 친다는 것

그래서, 살찌고 자란다는 것!

 

당신이 내게 올 수도 있다는 것

변명은 더 이상 깊어지지 않다는 것!

 

 

 

가을 그리움의 저편

유필이

 

단풍잎을 시샘이라도 하듯

가을은 붉게 울고 있습니다.

 

조각난 그리움이

층층이 쌓인 낙엽 위에 눕고

바스락거리는 추억의 저편에

아련한 서리꽃 피어있습니다.

 

찬 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쓸쓸함을

빈 술잔에 채우고

 

툭툭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이 가을의 그리움으로 마시렵니다

 

 

 

가을 연인

윤갑수

 

석양 노을빛 강변(江邊)

비스듬히 자란 갈대 미소한 바람결에

황금 머릿결 흩날리우고 인적 드문

둑길을 연인은 앞만 보고 거닌다.

 

고백(告白)을 해야 하는데,

사랑한다고, 결혼하고 싶다고,

입 안에서만 맴돌 뿐

수줍어 말 못하는 충청도 시골 촌놈

애간장만 태운다.

 

헛기침을 하고 다시 맘을

잡아 보지만

자꾸만 초조해지는 눈빛,

내 앞을 스치는 한 쌍의 잠자리마저

날 비웃듯 길고 긴 밀행(密行)을 한다.

 

(낸들 니들보다 못해

속만 태우는 줄 아니)

 

사랑의 춤사위를 뽐내는

그들만 응시하다 용기 내여

저하고 결혼해줘유.!”

그 말에 붉게 홍조된 임의 얼굴

황금 노을빛 되어 웃음으로

화답해준다

 

 

 

가을이 익어 간다

윤갑수

 

갈바람에 망울진 도라지꽃

흐드러지게도 피었다.

봄 가뭄에 애태우고 여름

가뭄에 절망하던 가을이 익어가는

길목 생각보단 豊作이다.

 

가을을 타는 여심(女心)은 한밤

귀뚜라미 우는 소리에 외로움을

달래고

 

가을 이야기 속 동화처럼

청포도 익어가는 포도밭엔

청량하고 달콤한 내음이 진동한다.

 

들려오는 갈바람 소리에

가을이 영글어가고

익어가는 오곡백과의 향기

우린 가을을 먹는다

 

 

 

가을이 진다

윤갑수

 

너울지는 강물이 좋아라 새들은

파고를 넘나들며 물길을 탄다.

들국화 송이송이 피어난 강둑에

해가 기울 듯 가을이 지고 있다

 

누렇게 질린 풀잎은 이미

포기한 채 갈바람 따라

아삭거리며 계절을 곱씹고 있다

 

한가로이 물질하며 노닐다 지친

새들도 강가로 나와 깃털을

정리하며 낮잠을 즐긴다.

 

햇살이 멀어져간 가을 끝자락

절기 따라 생체리듬이 변하듯

우리네 마음도 변해간다

겨울이 다가서는 만추(晩秋)엔 왠지

몸마저 을신년스럽다

 

 

 

갈바람 빛 가을

윤갑수

 

파란 하늘을 닮았나

얼비친 에메랄드빛 금강엔

잔물결들이 사르르 바람 타고

굽이굽이 진 세상을 훑는다.

 

헐렁한 눈빛에 밟힌 계절

허기짐을 유혹하는 욕망의

불꽃은 가슴에서 펄럭이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엔

가을빛이 슬금슬금 물든다.

 

눈부신 햇살이 지나간 자리

들녘엔 허수아비만이 갈바람

타고 살랑인다

 

 

 

추수(秋收)

윤갑수

 

1

춘 사월

간절(懇切)한 마음으로 씨를 뿌린다.

기다림에 새싹이 움트고 비바람,

따가운 햇살 견디며 여무는 길목

너는 나에게 기쁨을 안겨준다.

 

맑고 고운 하늘엔 잠자리 떼를

지어 노닐고 길가에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

흔들흔들 곱게 춤춘다.

 

들녘엔

하루가 다르게 익어가는 오곡(五穀)

올해는 풍년(豊年)일세 풍년이야!

 

조석(朝夕)으로 찬바람 애이면 누렇게

익은 알알이 곡식을 거두는 손길

풍요로운 미소로 마음의 곳간에

기쁨을 차곡차곡 쌓아 놓는다.

 

내년에도 담해도 이만큼만 되길

바라는 작은 소망(素望)처럼

 

 

2

이른 아침 뒷산에

까치가 요란스레 울부짖는다.

감나무엔 어느새 노랗게

주렁주렁 풍요로움이 익어가고,

애들은 사이좋게

홍시 감을 쪼아 먹고 있다.

한가로운 시골아침 단출한 밥상엔

호박잎 된장찌개 내음이

입맛을 다시게 한다.

아침이슬도

지나는 발길에 또르르 땅에 눕고

소 몰고 가던 아버지의 어깨가

오늘은 가벼워 보여 기분이 좋다

어린 나에게도 추수(秋收)하는

기쁨을 알기 때문이다.

정성스레 키워온 곡식들

드디어 오늘 갈걷이를 하는 날

환하게 웃는 아버지 모습에

덩달아 나도 신나게 달려간다

 

 

가을 동감

윤갑현

 

드높아만 가는 밤하늘엔

별빛만 초롱초롱

이슬 내리는 창가에

기대어 밤하늘을 본다.

 

가끔은 달리는 오토바이와

질주하는 밤의 전등 빛과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뭇잎과

고요가 밀려오는 가을밤은

깊어만 간다.

 

이슬 촉촉이 내리는 밤

그리움 밀려오는데

귀뚜라미 여치 풀벌레

소슬 피 울어오는 밤

 

무던하게도 덥던 여름

엊그제처럼 느껴지는

드높이 파란 하늘

뭉게구름 한 자락 펼치면

가을은 성큼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라 하는 말

 

분홍 코스모스꽃 이파리

영롱한 이슬 머금고

한들한들 사랑으로

춤추는 길을 따라나서리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윤동주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가벼운 마음으로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얼른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마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내 삶의 날들을

아름답게 가꾸어야겠습니다.

 

내 인생의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지금 나는 내 마음의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나가야겠습니다.

 

 

 

가을 그리기

윤보영

 

기분이 좋아요

기분이 좋다는 것은

가볍다는 뜻

 

가볍다는 것은

그리움을

내려놓았다는 뜻입니다

 

내려놓았다는 것은

그리움을 펼침이고

펼침은 넓다는 뜻

 

넓은 가을을 그렸습니다

나보다는

그대가 더 행복했으면 좋겠기에

어제처럼

들꽃으로 그렸습니다

 

기분 좋은 아침에

행복까지

덤으로 얻었습니다

 

 

 

가을 사랑

윤보영

 

이제

가을이라 해도 되겠네요

이렇게 시원한 바람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걸 보니

 

이제

사랑이라 해도 되겠네요

시도 때도 없이 그대 생각이

내 안으로 찾아 드는 걸 보니

 

 

 

가을

윤성택

 

 

 

예전에는 나무가 가을에

벌겋게 취해 있는 줄 알았습니다

 

당신은 가을 나무입니다

손바닥을 활짝 펴면

손금으로 사라지는 가지들,

생명선 줄기 따라

알알이 보이는 붉은 피들이

낙엽입니다

 

무엇이든 취해 돌아보면

가을입니다

 

 

 

가을 그리움을 보내며

윤영초

 

그대 숨소리에 즐겁고

가는 곳 마다 발자국 서려 있는데

가슴에 남은 회환은

아쉬움으로 가득 차 가을 속으로 간다

시간의 덧없음에

서운한 눈물이 된다

 

서로 주고받은 눈빛이

가을 낙엽처럼 퇴색함에

이별을 슬퍼하지 않는다

다시 돌아올 가을이 있기에

안절부절 너를 놓지 못하고

이젠 놓아주자고 한다

 

단풍처럼 화려한 시간

좋은 기억이 되겠지만

돌아오는 시간 다시는

너의 마음을 담지 않으리라

못남 보고픔에

벗어나지 못하고

그리움에 젖어

너를 그리워 만했다

지나고 보니 집착이었음을

 

너만 그렸던 그리움은

지금 낙엽 속으로 흩어져

딩굴지만

훗날 다시 태어나

새싹으로 봄을 맞이하듯이

사랑은 관심이다

 

 

 

가을로 흐르는 사랑

윤영초

 

너를 두고

이제 떠나야 할 때다

가슴으로 빠졌던 늪

 

용서하며 바라보라

네가 나를 비웃는다 해도

너는 내 거울 같은 존재였다

 

물빛 같은 서슬 퍼런 눈으로

바라보며 안쓰러워했던 기억

 

다 지우고 보이지 않는 긴장

불안해하는 것은

질긴 인연이 아니기에

인내하며 떠도는 것이다

 

다시 돌아오는 가을처럼

한때는 목숨처럼

아깝지 않은 사랑

 

우리 오랜 시간을 용서하며

가을로 흘러버리자

 

 

 

가을사랑

윤영초

 

가을아

햇빛 따사로운 빛으로

너의 향기를 뿜어도

뜨거운 열정으로 머무는

한낮의 부는 바람은

네 웃음처럼 싱그럽다

 

사랑아

아픈 가슴으로 일렁이듯

상처로 쌓인 모든 기억들

맨 안쪽 가슴에 자리한

너의 그리움이다

 

보이지 않는

허망한 바람처럼

지워지듯 지나가는

한없이 짧기만 한

능금빛 사랑 같은

가슴 절절한 때가

 

이 가을에

너의 그리움만 흐르는

아득한 시간으로

가을비 내리듯

내 가슴에 스며든다

 

 

 

가을을 보내며

윤영초

 

왔던 길을 뒤돌아 보면

아쉬움으로 점철되지만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평행선 같던 인연

멀어져가는 너의 맘

쫓아갈 수 없어

어둠 속에서 슬프다

 

알 수 없는 것은

많은 날이

내 안에 있는데

망각을 염두에 둬야 한다

 

힘이 들어도

뒤돌아서 흔들어버린 손

집착의 끈을 놓으며

그렇게 보내야 할 시간이므로

아프지 않게 웃습니다

 

 

 

그해 가을

윤용기

 

유난히 가슴 아파 시린 가슴을 저미며

보아도 보이지 않고 만산홍엽의 잔치에도 느낄 수 없는

그해 가을

나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으로

어느새 겨울의 초입에 들어서고

찬 서리가 뒤덮고 얼음이 얼기 시작을 했다.

 

그 누가 말하지 않아도

가라 말하지 않아도

오라 말하지 않아도

가고 오는 것이 계절이건만

유난히

아주

유난히

2010년의 가을의 가을은

깊은 시름과 불면의 밤으로 보내는 까닭은

내 자신과의 처절한 싸움 때문일지라

 

하이얀 밤

까아만 밤이 혼재하는

24시간의 연속에서

네 계절의 혼미함에 취하여 그해 가을은

그렇게 떠밀려 간다

 

 

 

가을

윤은기

 

소쩍새 울어대는 깊은 밤에도

초병의 눈에는 광채가 나고

들판을 지키는 허수아비의 양팔은

얄미운 참새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어제는

먹구름 속에 비겁하게 숨어 있던 태양이

오늘은

풍년을 기도하며 땀을 흘린다

 

파란 화판 위에

뭉게구름이 피카소의 흉내를 내고

검게 그을린 농부의 얼굴에는

풍성한 상상이 수북이 쌓여간다

 

 

 

가을 연가

윤인성

 

곡식이 부산하게 익어가는 황금 들녘에

텅 빈 쭉정이 속은 벼알로 가득 채우며

토실한 모습으로 방긋이 풍년 웃음 짓는다

 

아담한 키에 줄지어 선 나뭇가지 위에서

앙증맞은 재주를 부리며 매달린 예쁜 능금이

붉은 햇살을 볼에 칠한 듯 빨갛게 영글어 간다

 

청명하게 맑아진 쪽빛 가을 하늘엔

고추잠자리가 한 무리씩 떼를 지어서

신명 나게 방실방실 되며 단짝을 찾는다

 

스펀지같이 푸석한 이 가슴속에

올해만큼은

오달진 셋째 계절을 한가득 메워 담고

저무는 노을빛마저 두 눈에 실은 채 휘파람을 불어 본다

 

 

 

가을 길 가노라면

윤춘순

 

꽃보다 더 곱다란

가을 길 가노라면

누군가 함께 있음으로

가슴 따뜻한 해거름으로 해

 

파란 하늘가에 네 눈가가

살살 부는 바람결에 네 살결에

소소히 잠겨든 잔영들 괜스레 가슴 뜀으로

시끗 별*의 왕 삼아 맨 듯 가는 가을 길

 

누군가가 부르는 듯

두리번두리번 그대 갈바람으로

처량하게 들리는 귀또리 울음

갸웃갸웃 그대 그리움으로

 

불타는 능선

붉은 용 긴 꼬리 물며 물며

첩첩이 쌓인 가을길 가노라면

가을길 가노라면 .

 

* 시끗별 : 붉은 용

 

 

 

, 가을아

이경옥

 

아침 안개 자욱한 날

뽀얀 살갗을 내밀듯

고개 들어 바라보는 너는

저 산자락에 달려있는 홍시

주렁주렁 매달린 자태가

만취한 삶의 여정 같구나

 

흐느적거리더라도

굳혀진 다리목에 지탱하며

따뜻한 손길 기다리는 너는

온통 붉어져 떨어지는

이별을 암시하고

홀로 그리움 속으로 들어가네

 

하얀 서리 내리는 날

슬픈 듯 두 눈에 이슬이 맺히고

냉가슴 안아야 할지라도

가슴에 남겨진 뜨거웠던 태양 닮은

너의 눈망울 속에 감춰진

남겨진 사랑 하나 그려본다

 

 

 

순간의 가을 - 가을 강

이가림

 

가랑잎 하나가

화엄사 한 채를 싣고

먼 가람으로 떠난 뒤

 

서늘한

기러기 울음

후두득 떨어져

물거울 위를

점자(點字)인 양 구른다

 

노을 타는

단풍밭

보랏빛 이내에 묻히고

 

깊은 하늘의 이마에 걸린

가버린 누이의 눈썹

그 그늘에 이슬들

아롱아롱 맺힌다

 

가랑잎 하나가

가을의 끝

한 줌 허무를 싣고

먼 어둠으로 떠난 뒤

 

 

 

가을은

이경순

 

이마의 땀방울 훔치고 나니

성큼 가을이 우리 곁에

 

그토록 기다렸는데

가을은 조심스레

한 뼘씩만 자리하네

 

모두의 가슴

고운 시선으로

가을을 바라보는 눈빛

 

-

정녕 목메어 기다리던

가을은 소리 없이

우리 곁에 이렇게

 

 

 

어느 가을날의 사색

이경옥

 

나는

덥다고 하나둘 벗어 던지는데

너는

더운 줄 그늘 지워줄 잎 자꾸 키워가네.

 

나는

갈색으로 갈 옷으로 장만하는데

너는

곱디 고운 붉은빛으로 물들여 가네.

 

나는

춥다고 입은 옷 위에 자꾸 겹입는데

너는

추운 줄 모르고 하나둘 벗어 던지네.

 

나는

나부낄 하얀 눈꽃을 기다리는데

너는

긴 잠 속으로 여행을 준비하네.

 

 

 

가을 프리즘

이경희

 

댓돌에 내려서는 상긋한 가을

아침볕을 따라 돌아서는 해맑은 풀꽃의 얼굴

 

뽀얗게 건조한

마당의 씨멘트 색깔에서

 

풀 먹인 치마폭이

파릇이 살아나는 탄력에서

 

어머님의 손매디가

성큼하게 돋아나는 아픔에서

 

다홍 고추를 다듬는

재채기 소리에서

 

깡마른 호박넝쿨 위에

길게 늘어진 추녀 그림자에서

 

머리 빗으니

무심히 날리는 한 가닥의 새치에서

 

가슴 속

살비듬이 돋아나는 서걱임에서

 

장지문에 비껴드는

아침 빛줄기를 타고 오는 가을

 

이 아침

님의 손은 한결 가슬거린다

 

 

 

가을이 오는 소리

이국헌

 

문득, 골목길에서

신호탄이 울리는 새벽녘

가을이 오는 소리

 

후비진 담벼락 틈에서

누굴 찾는 소리일까

휴대폰 울리는 소리같이

모스부호 날리는 소리같이

알 수 없는 언어로

또록또록하게 날리는 음파

 

새벽을 밀어내는 소리들

보이지 않은 곳에서

초침 꺾는 침실을 향해

가을 군단이 몰려오는 소리

창가를 타고

피아노 건반 위에 구르는 소리같이

 

산발적으로 각개격파 하는

가을 군단의 심장 소리

이미 침실들은 점령당하였다.

 

 

 

가을이라는 물질

이기철

 

가을은 서늘한 물질이라는 생각이

나를 끌고 나무나라로 들어간다

잎들에는 광물 냄새가 난다

나뭇잎은 나무의 영혼이 담긴 접시다

접시들이 깨지지 않고 반짝이는 것은

나무의 영혼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햇빛이 금속처럼 내 몸을 만질 때 가을은 물지 된다

나는 이 물질을 찍어 편지 쓴다

촉촉이 편지 쓰는 물질의 송화는 손의 계보에 편입된다

내 기다림은 붉거나 푸르다

내 발등 위에 광물질의 나뭇잎이 내려왔다는 기억만으로도

나는 한 해를 견딜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오만한 기억은 내 발자국을 어지럽힌다

나무의 유서다

나는 내 가을 시 한 편을 낙엽의 무덤 위에 놓아두고

훍 종이에 발자국을 찍으며 돌아온다.

 

 

 

가을 소고(小考)

이길옥

 

햇볕에 타다 붉어 버린

얼굴

어디에도 더위는 묻어있다.

 

100도 남짓 끓는 정을

홀연히 떠나와서

 

뭉개진 하늘 한 자락을 잡고

열 오르던 네 습성의 비탈에서

풍경은

귀뚜라미의 목젖을 움켜쥐고 있다.

 

혈관을 출렁이던 소망이

바람벽에 걸려

마악

알몸으로 벗어나는

가을의 서랍을 열어놓고

 

나는

네 심장에 어울리며

초토(焦土)의 노랠 빚고 있다.

 

 

 

가을의 생각

이남일

 

반짝이는 호수의 물빛을 봐

햇살이 흐르는 표정을

저건 바람의 물결이 아니야

천천히 천천히 더듬거리는

시간의 흔적이지

가을 햇살은 그렇게

물결 위를 흩어지며

혼자 제 갈 길을 가는

낯선 그림자일 뿐이야.

가슴의 떨림이 잦아드는 밤

사그락 사그락

낙엽이 구르는 소리를 들어봐

머뭇거리는 나뭇잎의 생각을

못내 부스럭거리며 떠나는 소리를

외로움은 바람따라 가는게 아니야

길 위에 발자국 소리가

찬바람을 다독이며

혼자 걷는 생각일 뿐이야

 

 

 

가을의 소리

이남일

 

조용히

풀벌레 소리에 춤추는 별빛을 보라.

눈 비비는 어둠 속 잎 가지에

단풍잎 떨어지는 소리 들릴 것이다.

 

가만히

달빛에 흔들리는 밤이슬을 보라.

달그림자 기우는 길 숲에

밤알 떨어지는 소리 들릴 것이다.

 

모두가 떠나는 밤

홀로 그리움에 불을 댕기면

서리 가슴은 총총히 부서져

문득 별 쏟아지는 소리 들릴 것이다.

 

 

 

가을의 언어

이남일

 

단풍나무 아래 가을은 또

노란 동화책을 읽는다.

 

밤톨 같은 이야기가 툭툭

풀 섶 가득 떨어지고

길가에 찬 서리보다

바람 소리에 휘청대는

코스모스 가는 목이 외롭다.

 

간밤에 별이 내린 흔적처럼

서리 들녘 지천에 피어나는 들국화

땡볕에 터질 것 같은

밭고랑 속 붉은 고구마의 침묵은

온통 가슴 깊이 감출 수도

무심결에 불쑥 내밀 수도 없는

눈물 같은 가을의 언어이다.

 

 

 

가을 가뭄

이대준

 

저수지 바닥이

바둑판을 그리고

어린 배추는

흙으로 돌아갔다

 

비가 오지 않아서

써바이 - 써바이

색시를 얻은

고향마을 길승이나

농사일 힘들어 홀연

자취 없는 새댁이나

그 새댁의 젖먹이나

이 땅에

잡을 자리가 없다

 

옛날에 옛날에는

단비를 기원하는

높으신 분 있어

태종우 뿌렸다는데....

 

주렁주렁 열매 단

뿌리 깊은 감나무는

그늘이나

길게 늘일 줄 알아

 

이제 갓 피어난

여린 목숨들

흙으로 돌아간다

되돌아 간다

 

 

 

힘이 남아도는 가을

이덕규

 

울퉁불퉁한 고구마 자루를 쏟으니

머리 맞대고 담배 돌려 피우던

고등학생 알머리 같은 것들이 우르르

몰려나온다 덩치만 컸지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뭘 봐, 그러면서

학교 앞 짱깨집에서 배갈 각 일 병에

자장면 곱빼기 외상시켜 먹고

뿔뿔이 흩어져 숨었다가 잡혀 온 놈들,

 

복도 마룻장에

우르릉 무릎 꿇는 소리

 

몸에 힘 빼!

 

축구공처럼 딴딴한 엉덩이에서

박달나무 몽둥이 텅 텅 텅

튕겨 나가는 소리

 

파란 가을 하늘에 비행기 편대 솟구치는 소리

 

 

 

어느 초로의 가을날

이도연

 

여름에 왕성한 식욕으로

푸르름 자랑하던 숲은

가을 뜨거운 열정을 태워

홍조로 물들더니

 

새파란 물빛 하늘에

물고기 울음소리를 내며

가을하늘 화폭 삼아

기러기 날자

 

서늘한 가을이 지쳐가며

겨울 숲을 향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며

노을빛으로 걸어간다

 

초로의 노년은

빈 의자에 둥지를 틀고

노랗게 익어 버린 낙엽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푸드덕 날아오르는

산새의 날갯짓에 하늘을 본다

가을 구름 맑고 푸르러

눈마저 시리고

 

숲길을 걷는 연인은

서로의 눈빛으로 체온을 나누며

가을은 또 저만치

계절 속으로 멀어져 간다.

 

 

 

가을 소리

이동순

 

이른 아침

늦가을 햇살이 눈부신데

어데서 무슨 소리가 사륵사륵 들려온다

싸락눈은 분명 아니데

저게 웬 소리

나는 방문을 열고

찬 공기가 왈칵 이마에 들이치는 마당을 내다본다

아하, 느티나무밭에

젖은 가랑잎이 일제히 떨어지고 있었구나

잎이 다 떨어져 내린다고

새들이 안타까운 듯이 지줄대고 있다

나는 아침 한때

넋을 놓고 가을 소리를 들었다.

 

 

 

가을 저녁

이동순

 

오늘은 비가 오고 바람이 불었습니다

길에 떨어진 나뭇잎들이 우수수

몰려다녔습니다

그대에 전화를 걸어도

신호만 갑니다

이런 날 저녁에

그대는 어디서 뭘 하고 계신지요

혹시 자신을 잃고

바람 찬 길거리를 터벅터벅

지향 없이 걸어가고 계신 건 아닌지요

이 며칠 사이 유난히 수척해진 그대가

걱정스럽습니다

스산한 가을 저녁에 아무리 쓸쓸해도

이런 스산함쯤이야

아랑곳조차 하지 않는 그대를

믿습니다

그대의 꿋꿋함을

나는 믿습니다

 

 

 

가을 노래

이문자

 

우리는 모두

무거운 짐을

 

우리는 모두

풀지 못한 문제를

 

슬픔을 아픔을

등에 지고 왔어요

 

그 무게 너무 버거웠어요

 

이 가을

모든 것 내려놓고

 

활짝

웃음 머금고

 

활기찬 걸음으로

함께 걸어요

 

맑고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 나누어요

 

싱그러운 가을

아름다운 이 계절

 

그대와

,

 

그리고

우리

 

 

 

가을 서정

이문주

 

여름 바다는 저 멀리 달아가고

조금씩 줄어드는 인적을 느끼면서

가을이 가까이 와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싱그러움을 더해 주던 여름 산은

몸부림으로 잉태했던 결실을 뱉어

희망을 땅속 깊숙이 묻어두는데

나는 다시 찾아온 계절에 적응해야 한다

 

잎새를 털어내는

나목들은 다음 생을 맞이하기 위해

땅속뿌리에다 자신을 갈무리해 놓고

 

잠들 채비에 바쁜데

나는 잠들지 못한 눈으로

나목이 흘리는 눈물을 바라보고 있다

 

투명한 가을 하늘 아래

투명하지 못한 마음으로 서 있으면서

무엇을 더 요구하겠는가

 

똑같을 수 없는 삶을 살아가면서

모두가 똑같아지기를 꿈꾸는 것은 욕심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삶을 가지도록

운명의 강물은 다른 곳에서 흘렀을 텐데

 

뜨거움에 숨 쉬는 것마저 힘에 겹더니

고마운 가을바람이 불어오지만

마른 풀잎 스치는 소리가 어쩐지 두렵다

 

내 자리를 비켜나기 싫지만

계절은 나를 아랫목으로 옮겨 앉으라 하고

어둠은 길어지는데 낮이 짧아져

누군가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작아진다

 

그 여름의 흔적이

아직도 생생한 기억으로 있는데

나보다 앞서나가는 가을은

성급한 생각으로 겨울을 알리고 있다

 

지난 시간을 잊을 수 없는 가슴은

안타까운 사연이 깃든 추억을 안고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을 찾아 나선다

 

 

 

가을날

이병률

 

이사를 한다

나도 모르는 이사를 하고

싼 적 없는 이삿짐을 푼다

 

언제부턴가 그리 되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의 이사

명치께에서 명치 끝으로의 이사

생각에서 생각으로의 이사

이상하게 그때는 항상 가을이었다

 

그 가을이었다

낯선 곳에다 짐을 내려놓고는

잠깐 자려고 눈을 붙였다가 떴는데

창문 바깥 해바라기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어서 놀랐다

 

벌써 저녁이 넘어가고 있었다

우연히 마주친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해바라기가 잠든 나를 불쌍하다는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거나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찾기 위해 일어나 앉아서는

조금 걸어야 한다고 마음으로만 생각했다

 

해는 없고 해바라기만 떠 있었다

마음에 파고들어 와 아프게 드나드는 그 감정이 하도 쓰르르해서

나는 나를 건드려 발기시켰다

 

 

 

이 가을에도

이병주

 

흘러가 버린 세월

기쁨도 설움도 아닌

사랑만 채우고 싶은 마음

 

이제는

지나온 날보다

짧게 남은 세월이라

억새꽃 살포시 날아오듯이

어쩌면 지금이라도 찾아줄 것만 같아

 

귀뚜라미 우는 서늘한 밤

달빛 드는 창문 열어 놓고

기다리겠습니다.

 

 

 

가을이 떠나려 하네

이상노

 

가슴에 점 하나 콕 찍어 놓은 가을이

한껏 물든 붉은 잎새 앞세우고

어디론가 떠나려 하네.

 

거울처럼 맑았던 가을이

무거웠던 짐 훌훌 털고, 한 편의 시만 남긴 채

어디론가 떠나려 하네.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가을이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아픈 마음 두고

어디론가 떠나려 하네.

 

늙은 나무에 나이테 하나 획, 더 그어 놓은 가을이

잎새마다 붉게 맺힌 사랑 남긴 채 사붓사붓

어디론가 먼 길 떠나려 하네.

 

슬픔이 물든 가슴에

소리 없는 눈물만 흐르네 그려

 

 

 

가을 앞에서

이상진

 

계절의 문을 열고

가을 앞에 섰다

여름의 습한 열기는

바람 스미는 자리마다

그 뜨거움을 내려놓고

 

아직은 못다 한

열정의 한낮 뜨거움은

푸른 들판을

노오랗게 물들이고

 

산자락

원두막 곁 알알이 맺혀

수런수런 되던 열매들 속으로

빨갛게 숨어든다

 

어둠이 골짜기를 번져 갈 때

아쉬운 미련의 끝이

산꼭대기 붉은 석양이 되어

하나둘 소멸하는 여름

 

그 무리한 정열도

이젠 냉철한 이성 앞에

고개 숙여 익어가야 하는

가을 앞에 섰다

 

 

 

가을 소리

이선명

 

바람이 분다

강은 흐르고

낙엽이 구른다

 

코스모스 흔들리고

갈대가 울고

노란 은행잎이 떨어지고

삭막한 도시에도 가을이 온다

 

여행을 떠나는 이들의 웃음소리

기차의 설렘과

산길을 오르는 숨소리

사람들의 무심한 마음에도 가을이 온다

 

비가 내린다

창을 두드리는 추억

따뜻한 커피와 라디오 소리

사람이 그리운 내 마음에도 가을이 온다

 

바람이 분다

강은 흐르고

낙엽이 구른다

 

 

 

가을 절벽 위에 핀 꽃

이선명

 

생명이 피어나는 가을 절벽

누군가를 기다리며 만들던

여름날의 지루한 녹색 껍데기를 벗고

황토 빛 보드라운 꽃이 피었다

 

별들이 고여 있는 은하수를 바라보며

언젠가 눈물짓던 한 사랑을 생각하고

핀 꽃 위에 사연을 덮어

향수 가득 나를 쏟아내 본다

 

광야의 끝 절벽에 가을이 오고

꽃은 피어 옛사랑을 위로하지만

지우지 못할 고된 사연은

모래 바람이 되어 내 마음을 앞 못 보게 한다

 

흐르고 흘러도 씻지 못할 흔적

어느 날의 해후를 꿈꾸는 엷은 달은

쓸쓸히 빈 가을 하늘에 걸리지만

가을 절벽엔 그립다 외치는 내 향기만 가득하다

 

 

 

가을 연가

이성구

 

바람에 실려오는 가을 향기가

코끝에 퍼져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붉은 빛깔을 토해내는

가을 서정에 취해본다

 

인적 없는 불 꺼진 밤 가로등 홀로

무거웁게 꾸벅꾸벅 졸고

짙은 어둠이 깔린 밤하늘에

저 별들은 있는 듯 없는 듯 소곤소곤

대화의 소리로 속삭인다

 

이름 모를 풀벌레 울음소리와

귀뚜라미 귀뚜르르 날개짓에 정적을

깨는 노래를 연주한다

짝을 잃어 애타게 부르는 소리인가

 

가을 연가의 애절함에 추억을 남겨놓고

그리움과 기다림의 끝자락에서

시월의 밤은 깊어가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해 가을

이성복

 

그해 가을 나는 아무에게도 편지 보내지 않았지만 늙어 군인 간 친구의 편지 몇 통을 받았다 세상 나무들은 어김없이 동시에 물들었고 풀빛을 지우며 집들은 언덕을 뻗어나가 하늘에 이르렀다

그해 가을 제주산 5년생 말은 제 주인에게 대드는 자가용 운전사를 물어뜯었고 어느 유명 작가는 남미기행문을 연재했다 아버지, 아버지가 여기 계실 줄 몰랐어요

그해 가을 소꿉장난은 국산 영화보다 시들했으며 길게 하품하는 입은 더 깊고 울창했다 깃발을 올리거나 내릴 때마다 말뚝처럼 사람들은 든든하게 박혔지만 햄머 휘두르는 소리, 들리지 않았다

그해 가을 모래내 앞 샛강에 젊은 뱀장어가 떠오를 때 파헤쳐진 샛강도 둥둥 떠올랐고 고가도로 공사장의 한 사내는 새 깃털과 같은 속도로 떨어져내렸다

그해 가을 개들이 털갈이할 때 지난여름 번데기 사 먹고 죽은 아이들의 어머니는 후미진 골목길을 서성이고 실성한 늙은이와 천부(天賦)의 백치(白痴)는 서울역이나 창경원에 버려졌다

그해 가을 한 승려는 인골로 만든 피리를 불며 밀교승이 되어 돌아왔고 내가 만날 시간을 정하려 할 때 그 여자는 침을 뱉고 돌아섰다 아버지, 새벽에 나가 꿈속에 돌아오던 아버지, 여기 묻혀 있을 줄이야

그해 가을 나는 세상에서 재미 못 봤다는 투의 말버릇은 버리기로 결심했지만 이 결심도 농담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떨어진 은행잎이나 나둥그러진 매미를 주워 성냥갑 속에 모아두고 나도 누이도 방문을 안으로 잠갔다

그해 가을 나는 어떤 가을도 그해의 것이 아님을 알았으며 아무것도 미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비하시키지도 않는 법을 배워야 했다 아버지, 아버지! 내가 네 아버지냐

그해 가을 나는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을 다 살아 버렸지만 벽에 맺힌 물방울 같은 또 한 여자를 만났다 그 여자가 흩어지기 전까지 세상 모든 눈들이 감기지 않을 것을 나는 알았고 그래서 그레고르 잠자의 가족들이 매장 끝내고 소풍 갈 준비를 하는 것을 이해했다 아버지, 아버지...... 씹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

그해 가을, 가면 뒤의 얼굴은 가면이었다

 

 

 

가을 편지

이성선

 

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원고지처럼 하늘이 한 칸씩

비어가고 있습니다.

그 빈곳에 맑은 영혼의 잉크물로

편지를 써서

당신에게 보냅니다.

사랑함으로 오히려

아무런 말 못하고 돌려보낸 어제

다시 이르려 해도

그르칠까 차마 또 말 못한 오늘

가슴에 고인 말을

이 깊은 시간

한 칸씩 비어가는 하늘 백지에 적어

당신에게 전해 달라

나무에게 줍니다.

 

 

 

어느 가을날에

이성지

 

단풍잎 떨어지는 산세에

떨어지는 단풍잎 보면

그대가 많이 생각나네요.

 

그대가 없어

몹시 안타까웠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

이 계절에 따뜻한 사랑

나누고 싶어요

 

진정 그대는

어디에 있나요.

많이 보고 싶은데.

 

 

 

가을 그리움

이성진

 

단풍이 물들어 산이 예뻐요

어쩌려고 이리도 고운지요

 

은은한 꽃송이 갈색 나뭇잎은

숨이 막히게 멋져

그리움에 눈시울이 뜨거워

잘 보이질 않아요

 

가을 달에 그대 얼굴 걸려 더 은은한 물빛

마음도 몰라주고 어쩌려고 이리 곱디곱기만

하데요

 

 

 

가을이다

이성진

 

외롭다고 외롭다고 가을이다

낙엽이 거리를 붉게 물들이고

스산한 바람은 이마를 스친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쓸쓸하다고 쓸쓸하다고 가을이다

 

매일 한 뼘씩 단풍이 물드는 가을

길가에 코스모스 울긋불긋한 가을

저녁 강가에 국화꽃이 피어나는 가을

 

수많은 빗방울이 가슴을 후비고

찰지게 젖은 나뭇잎이

운치 있게 길가를 수놓는다

 

 

 

떠나는 가을

이세송

 

어느덧 가을은

고운 단풍으로 물들여 놓고

깊은 사랑 나누던 자리 남겨둔 채

이제 먼 곳으로 떠날 채비를 하는지

앙상한 가지에 남겨 두었던 마지막 잎새도

깊어 가는 저녁노을 속으로 날려 버립니다

 

떠나는 가을 아쉬워하는 둥근 달은

조금 이라도 더 함께 하고 싶은지

먼 산 너머 긴 그림자로 눕는

어둠을 조금씩 지우며

 

희미한 달빛 속에서 가을을 품에 안고

오랜 포옹으로 따뜻한 이별에 정을 나눕니다

 

하늘 가득 은하수 긴 물결 이루는 그 속에서

작은 별님 반짝거리며 사랑노래 불러 주고

큰 고목 에 사는 늙은 부엉이

부엉 부엉 이별 서러워하며

다람쥐 토끼 고라니는 바위 위에 서서

떠나는 가을 잘 가라며 손 흔들어 줍니다

 

 

 

가을 들녘에 서서

이승복

 

붉은 깃발 노란 깃발이 휘날려

산에서 엉금엉금 내려와

풍성한 가을 노래를 합창할 차례에

구겨놓고 가버린 여름 빗물로

살아남은 농작물은 금값이 되어

도시 서민을 괴롭힌다

 

비싸서 좋겠다고 던지는 말마다

녹아버린 채소밭에 눈 못 떼고 속 타는

민초 맘을 뉘라서 알리오

비가 오면 속 시원한 날이 있고

눈이 와 더 좋은 날들이 있듯이

순응할 수밖에 없는 나약함이다

 

곱게 빗은 물안개 금물결 이는

곡식 낱알을 쓰다듬어 위무하는 기운이

황금빛 여울로 가득히 들어서지만

오늘 굴곡진 생이 내일일진대

바뿐 들녘의 짧은 하루가

산그늘 뒤집어쓴 오두막집에 묻힌다.

 

 

 

또 가을이다

이승훈

 

피는 불이 되고

불은 연기가 된다

이제 나는 연기다

나는 풀풀 풀 날린다

시간이 딸꾹질하는 뇌에는

연기만 가득하다

또 가을이다

 

 

 

가을날

이시영

 

잠자리 한 마리가 감나무 가지 끝에 앉아

종일을 졸고 있다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차가운 소나기가 가지를 후려쳐도

옮겨가지 않는다

가만히 다가가 보니

거기 그대로 그만 아슬히 입적하시었다

 

 

 

가을의 소원

이시영

 

내 나이 마흔일곱,

나 앞으로 무슨 큰일을 할 것 같지도 않고

(진즉 그것을 알았어야지!)

틈나면(실업자라면 더욱 좋고)

남원에서 곡성 거쳐 구례 가는 섬진강 길을

머리 위의 굵은 밀잠자리 떼 동무 삼아 터덜터덜 걷다가

거기 압록 지나 강변횟집에 들러 아직도 곰의 손발을 지닌

곰금주의 두툼한 어깨를 툭 치며

맑디맑은 공기 속에서 소처럼 한번 씨익 웃어보는 일!

 

 

 

가을

이연빈

 

텅 빈 교정(校庭)

가을 몇 잎을

나비 한 마리 흔들어놓고

엽맥(葉脈) 사이로

웬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거짓말같이 내가

나무의 그늘로 서서

오오래 허물어지고 있었다.

 

 

 

솔로몬의 계절

이영균

 

가을,

황금 들녘, 천고마비

풍요의 계절입니다.

 

아닙니다.

추풍낙엽, 스산한 산천

슬픔의 계절입니다.

 

그래요.

희로애락, 풍요와 빈곤

이율배반의 계절입니다.

 

미묘한 생각의 차이가 삶의 무게를 달리합니다.

 

 

 

가을 은행

이영지

 

은행에 은행잎이 차곡차곡 싸입니다

더러는 알을 들고 떠나는 사람도 그냥 나둡니다

노오란 은행을

노오란 잎을 더러는 밟고 지나가지만 여전히 길가 은행에는 노오란 바람이 앉아서

가딱가딱 즐거운 노래를 부릅니다

은행에 은행잎이 차곡차곡 싸입니다

 

길가 은행을 드나는 문은 언제나 늘 열려 있습니다

바람이 들 때는 노오란 미소로 살짝 웃고

웃음이 드나들 때는 길가가 웃음꽃이 일고

 

 

 

가을 하늘이 더 높아요

이영지

 

하나님

나에게도 그리움 주세요오

땅보다 하늘이 더 높아요 감나무도

어저께 심었는데

열리네요

하나님

 

감나무 주렁주렁 돌 감을 달아가며

뛰기도 걷기도 해 달리는 열매들이

하늘에 빨갛게 달려

열리네요

하나님

 

나무잎 그 안에서

쏘 오옥 내밀어 본

가슴꽃 빠알간 숨

하늘이 땅 보다도

더 높아

별미의 맛이

열리네요

하나님

 

 

 

슬픈 가을

이영춘

 

쨍그렁 깨질 듯한 이 가을 하늘

눈물겹다

무거움의 존재로 땅 끝에 발붙인 짐승

부끄럽다

멀리 구름은 유유히 흘러가고

가을 잠자리들 원 그리며 무리 짓는다

유리구슬처럼 반짝이는 이 가을 햇살 아래

, 아프구나! 가볍지 못한 존재의 무게가

 

제 무게 이기지 못하여 모두 털고 일어서는 이 가을날에

나는

무엇이 이토록 무겁게 허리를 잡아당기고 있는가

 

 

 

가을의 창문을 열면

이외수

 

어디쯤 오고 있을까

세월이 흐를수록

마음도

깊어지는 사람 하나

단풍나무 불붙어

몸살 나는 그리움으로

사태질 때

 

 

 

만추(晩秋)

이용악

 

노오란 은행잎 하나

호리호리 돌아 호수에 떨어져

소리 없이 호면(湖面)을 미끄러진다

또 하나 -

조 이삭을 줍던 시름은

요즈음 낙엽 모으기에 더욱더

해마알개졌고

하늘

하늘을 쳐다보는 늙은이 뇌리에는

얼어 죽은 친지 그 그리운 모습이

또렷하게 피어오른다고

길다란 담뱃대의 뽕잎 연기를

하소에 돌린다

돌개바람이 멀지 않아

어린 것들이

털 고운 토끼 껍질을 벗겨

귀 걸개를 준비할 때

기름진 밭고랑을 가져 못 본

부락민 사이엔

지난해처럼 또 또 그 전해처럼

소름 끼친 대화가 오도도오 떤다

 

 

 

가을 기도

이우걸

 

달빛을 밟으며 묵묵히 뜰에 서보면

당신은 너무나 잃은 것이 많은 남자

계단을 스쳐 흐르는 저 시간의 물소리여

 

들어와 소등(消燈)을 한다 얼굴을 가리기 위해

가을밤은 그러나 그림자를 키우고

나는 또, 우수(憂愁)를 이겨

한 편의 시를 쓴다

 

생각하면 적요란 빈자가 누리는 일등(一燈)

영원을 꿈꾸며 잠들고픈 머리맡에

오늘은 또 누가 와서

꽃씨를 두고 갔으면

 

 

 

가을

이원문

 

버리고 잊은 마음

무엇으로 채울까

여름날 그 뭉게구름

하늘 높이 흩어지고

쓸쓸한 바람결

가는 곳마다 따라온다

 

없는 들녘 먼 옛날

회상의 그 들녘들

지금쯤 논밭으로

하루를 잃는 그 날인가

우물물 퍼 올리니

움김이 있어 다르고

 

앞 뒷산 나뭇잎

단풍 준비에 다르다

추수 끝난 며칠 후

울긋불긋 그 단풍들

홍시에 꿈 묻고 알암에 잠들던 날

쓸쓸한 이 가을 마음도 쓸쓸하다

 

 

 

가을 강

이원문

 

찾아온 강 언덕

강바람에 여름은 시원했는데

가을 강의 가을바람은

왜 이리 쓸쓸하기만 한 것인지

씨앗 매달고 늘어진 풀

퇴색되는 나뭇잎들

이 가을 더 깊으면 단풍 들 것이 아닌가

그러면 억새꽃 피어 바람에 눕고

잃어도 얻어도 강물에 녹은 세월

누구의 시간을 저 강물이 빼앗았나

흐르는 강물 위 건너는 구름 산 넘고

인생 띄워 바라보니 거스르지 못한다

강물에 마음 섞어 바라보는 강

석양의 이 인생 나 어디에 데려왔나

 

 

 

가을 고독

이원문

 

메뚜기 참새 떼

흩어진 새털구름

그 곱다 하던 가을 단풍도

이제 모두 지워지는가

 

고향도 들어 있고

먼 훗날도 들어 있었다

가을 단풍과 물들여진

추억의 그날도 들어 있었다

 

걷는 길 수북히

떨어진 낙엽들

밟히고 차이는 그날의 꿈이었나

불어오는 저녁 바람 낙엽 굴려 모은다

 

 

 

가을 길

이원문

 

걷는 길 하늘 높이 옛 하늘 같고

돌아보면 온 길보다 인생 길이 더 길다

굽이굽이 걸어온 언덕 많은 비탈길

이 길은 한 굽이에 돌뿌리도 없것만

지나온 그 길은 왜 그리 돌뿌리가 많었던지

 

멈춰서 보는 하늘 그 비탈길 얹어지고

옛 생각에 마음 울컥 그날이 떠 오른다

이런 일 저런 일 미움에 오해 많었던 일

다 잊고 버려도 차였던 돌뿌리는 안 뽑히는 것인지

이 가을 낙엽 주워 벌레의 흔적 메운다

 

 

 

가을꽃

이원문

 

옛 초가을 뒤 가을꽃은

흔히 부른 이름인데

언덕배기 냇둑꽃은

들국화밖에 모른다

 

여기저기 노란 들국화

그 향기 그윽하여

쓸어 안던 들국화

다른 꽃도 많으련만

 

그 꽃 이름 가물대고

모양새에 붙인 이름

어찌 그 꽃을 잊을까

관심 없이 지나친

 

어릴 적 고향의 꽃

눈물도 기쁨도

함께 했던 고향 들꽃

이 가을 그 꽃에 꿈을 묻는다

 

 

 

가을 냇가

이원문

 

한여름 풀숲들 그렇게 푸르더니

물부터 차갑고 풀잎마다 시든다

가을 더 깊어 낙화의 꽃은 어떠할까

씨앗에 남은 꽃 서리 내릴까 두려운지

못다 핀 꽃 추운 꽃 여미고 있다

 

누운 억새꽃 억새꽃은 안 추울까

그날이 그리운 듯 바람 멎기를 기다리고

놀던 고기 올려보며 양지녘 찾는다

삐뚤은 징검다리 니끼 입은 징검다리

누가 딛어 어디로 가야 할 이 징검다리일까

 

물도 바람도 멎지 않아 차갑고

때 잃은 꽃 낙화에 그 한 세월 돌아본다

때 되면 이렇게 다 잃어야 하는 건가

풀잎의 빗방울 이슬 같이 맺히더니

이제 젖어 들어 그 바닥에 눕힌다

 

 

 

가을 들녘

이원문

 

덥다 하는 그 여름의 약속인가

뜸북새의 고향 참새 떼 날아들고

수수밭 옆 멀리 황금물결 이룬다

봄부터 저 들녘이 있기까지

보람의 황금 들녘 가을 하늘 더 높아라

여기저기 새 쫓는 소리 허수아비의 잠 깨운다

 

가을바람에 참새 떼의 즐거운 들

아이들 나뉘어 메뚜기 따라 뛰는 들

길목 한곳 코스모스 가냘피한들대나

벼 베기 끝나 바닥 드러나면 어쩌나

메아리에 실리던 작년의 궁굴통 소리

그때처럼 그렇게 가느란히 들리겠지

 

 

 

가을 마음

이원문

 

산과 들이 알리는 마음

오늘도 아니고

어제의 마음도 아니다

손꼽아 기다리는

기다림도 아니다

 

그저 텅 빈 가슴 한곳

채워야 할 그리움만 가득

무엇을 잃었는지

잃은 것만 같고

흐려진 기억만 스쳐 간다

 

그 옛날을 잃었는지

어제를 잊었는지

무엇을 찾으려

바라보는 하늘인가

걷는 길 코스모스

또 한 걸음 더 멀어진다

 

 

 

가을 산사(山寺)

이원문

 

이 산 오르며 차이는 돌뿌리들

흐르는 세월이 계절에만 있겠는가

여기 이 돌 드러나기까지 얼마만큼의 시간이었나

패여 나간 자리 생명의 싹 시들고

검은 바위 세월의 때 그 시간을 알려준다

오색단풍 나뭇잎 맺은 열매의 끝맺음

오르는 길 방초 잎마다 시들지 않은 것이 없고

찾은 산사 앞 뒤뜰 서늘히 고요하다

들리는 물소리 내려보는 산새들

물소리 듣는 산새 무엇을 배우나

법당 안 거미줄 시간 잡아 매달고

들리는 풍경 소리 그 시간 모아준다

 

 

 

가을 슬픔

이원문

 

바람 부는 양지녘 억새꽃 눕고

이슬 마른 풀잎마다 시들어 간다

시드는 것이 풀잎뿐이겠는가

그 시간이 모은 세월

저 풀잎과 무엇이 다를까

시도 때도 다 놓치고 하루 해에 얹는 인생

호칭 없는 그냥 사람 누가 나에게

젊은 호칭을 붙여 주겠나

그것도 아닌 욕심 늙은이라 하지 않겠나

 

웃으니 예쁠까 울으니 예쁠까

젊음은 그래도 모두가 예쁜데

예쁜 것은 그만두더라도

냄새 난다 하면 어떻게 하나

내가 맡아도 그런데 또 그럴 것이고

씻고 가꾸어도 속일 수 없는 세월

양지녘 저 억새꽃 따뜻하기만 할까

오늘따라 올려본 하늘 구름 한 점 없고

이 마음 구름 되어 단풍의 먼 산 넘는다

 

 

 

가을 아이들

이원문

 

여름의 냇가로

그리 시원했던

아이들이었는데

이 가을은 들녘으로

저리도 좋을까

 

신발 벗어들고

수수밭 지나는 길

또 한 곳 가지밭

잠깐 멈춰서고

논둑으로 누가 먼저

 

놀랜 메뚜기

이 논 저 논 넘나드나

메아리에 새 쫓는 소리

누구네의 식구일까

지금도 들린다 그 새 쫓는 소리

 

 

 

가을 역

이원문

 

바람 쓸쓸히

열차 오는 소리

가을 역은 언제나

쓸쓸해야 하는 것인지

 

이 몸 싣는 듯

내려앉는 마음

바라보는 먼 철로 위

오던 열차 스쳐 간다

 

뒷 꼬리의 그 시간

허무함에 보는 마음

그렇게 빠르게

순간일 수 있나

 

스치는 줄 알면서

멈출 것 같은 마음

어디론가 가고 싶은

이 마음이었을까

 

철로에 돋아난

방초 같은 마음

끄을린 코스모스

이 마음을 아는 듯

 

휭하니 떠난 자리

아무 흔적 없고

끊어지는 기적 소리

한 번 더 울고 간다

 

 

 

가을의 기억

이원문

 

바람 솔솔 높은 하늘도

그때 그 가을

누구의 그림이

이 나의 그림만이나 할까

 

잃어버린 뒷동산

그 넓은 들녘

다랑이논 기슭까지

다 어디 갔나 어디로

 

녹두밭 수수밭

묶어 세운 참깨단

넝쿨 뻗은 고구마밭

그 콩밭은 안 그렇겠나

 

저녁이면 꺾어온 콩

마루 끝에 앉아 까 밥에 넣고

한낮의 고된 시름

지례 먹이 밥이 달래어 주었지

 

해 넘어 밤이면

마지막 귀뚜라미 울음

달이라도 떠오르면

이슬에 장독대 흠뻑 젖었고

 

넘어온 가을 보릿고개

메뚜기는 알려나

툇마루 끝 기러기 울음

그 달빛에 멀어졌지

 

 

 

가을의 소리

이원문

 

모두가 조용히 숨죽인 세상

여름 잃은 나뭇잎 오색 물들이고

끝맺음의 풀숲마다 씨앗 영글리기에 바쁘다

움츠러드는 사람의 마음인가

바람의 부채질에 시드는 세상

 

들려오는 소리마다 조용히

고향의 먼 소리도 함께 섞이고

서산 넘는 기러기 떼 귀뚜라미의 밤

바람도 쓸쓸히 옛 바람인 듯

깊어 가는 가을 불어오는 바람 차갑다

 

 

 

뒷산길의 가을

이원문

 

내려오며 보는 들

벼 이삭으로 가득 차 있고

바라만 보아도 배부르던 날

노을에 저무는 길 안은 바람 차가웠다

 

그 잠깐 며칠일까

귀뚜라미 울음 잦아들더니

논 바닥 드러난 메뚜기의 고향

언저리의 억새꽃만 이리저리 누웠다

 

드러난 바닥의 들

보는 곳마다 허전한 마음

바라만 보아도 배고프던 날

저문 길에 찬바람만 옷깃에 스쳐 갔다

 

 

 

딸네내의 가을

이원문

 

절기에 넣고 뿌린 씨앗

그렇게 더웠었나

한여름 춥네 덥네

비 많이와 걱정 가물어 걱정

부채 내려놓으니 이렇게 잠깐인 것을

뜸북이 뻐꾹새 떠난 지 며칠 됐나

추석에 에미 보고 간 아이들 보고 싶구나

늙어보니 사람이 그립고 산 설고 물 설구나

잠 안 오는 긴긴밤 누가 나를 찾을까

아이들 생각하니 미안하기만 하고

못 가르친 글공부에 죄가 되는구나

높은 핵교(학교) 문턱에 가고 싶다는 아이들

핵교(학교) 대신 공장으로 남의 집 밥떼기로

저희들이 벌어 시집가겠다는 아이들이었는데

공장 다니며 연애질 한다 이웃들의 흉이 얼마나 많았나

있다고 무시하며 모여 짓거렸던 사람들

지금은 처지가 바뀌어 자기네 자식들이 어떻게 됐나

인생이란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인데

그렇게 몰아세워 흉들을 보았는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 그저 죄가 되는구나

뒤척이는 밤 잠깐의 단몽에 에미 찾는 아이들

내일은 꿈적거려 텃밭에 나가 고추 잎 좀 따고

들깨 털어 기름 짜놓았으니 한 병씩 돌릴까

뭐하고 밥 먹나 삭힌 고추 좀 나누어 담아야겠구나

쌀 말은 무거우니 내려오면 들려주고

참 고추가루 빻아놓았으니 어디에 담을까

떨어진 동부 이삭 고추대에 매달린 고추 끝무리들

모두 이 소쿠리에 담았으니 올 한 세월도 끝나나

곱던 단풍도 눈에 안 들어오고 쓸쓸하기만 하구나

이 밭 오르내리며 텃밭 가꾸며 보낸 세월

내가 먹어야 뭘 얼마나 먹겠나

아이들 생각에 더 심고 많이 뿌렸는데

가방 대신 공장 변또(도시락) 옷 못 사입혀 밥떼기로

아이들아 너희들이 무엇을 원망하였겠니

이제 다 잃어버리려므나 에미가 잘못했다

그 흉도 흉이 아니고 너희들이 찾아야 할 운명이었어

오늘도 저문 하루 늦가을 저녁이 저물면 이렇게 쓸쓸한 거냐

불어오는 바람까지 이 산 단풍 터는구나

 

 

 

방랑의 가을

이원문

 

바람 쓸쓸히

내일이 없는 인생

산 넘어 산 어디로 가야 하나

꿈 묻은 짚까리 두고 까치 짖어 나서는 길

 

허기진 아침

밥 한술에 서롭다

오늘도 그 하루 더 가야 하나

어느새 저무는 길 서산마루 해 떨어진다

 

 

 

외로운 가을

이원문

 

낙엽 한두 잎

힘없이 떨어지고

떨어진 낙엽

엎어져 밟힌다

 

그래도 봄은

찔레꽃에 새소리

여름날 찾은

뻐꾹새의 울음

 

이 늦가을의

오르는 기슭에는

그마저 없고

적막에 떨어진

 

낙엽 소리의

그 소리만 들린다

저무는 가을

저물면 그런가

 

빨간 열매에

찔레꽃의 그 날들

늦가을 기슭

하루가 저문다

 

 

 

장터의 가을

이원문

 

벼 이삭 누런히 고개 숙이고

벼베기의 날 가까워

내놓을 반찬 걱정된다

품앗이에 다닌 집

그리 반찬이 좋던데

벼 베는 날의 우리 집은

무엇을 내놓아야 하나

 

부끄럽지 않게 내놓을 반찬에는

비린내 나는 생선 꽁댕이가 좋은데

김 구워놓고 그리고 또 뭐있나

고기는 아이 아범이 몇근 사올 것이고

모은 돈 몇푼에 계란 꾸러미

좀 모자라면 쌀 됫박이나 낼까

내일이 장날인데 무엇을 살까

 

아침 일찍 다녀올 장 준비 하고 나서니

가는 길 응달녘 이슬에 차이고

한 바퀴 돌아본 장 살 것이 너무 많다

돈이 있어야 많이 사고 쌀 말이나 펐어야 많이 사지

이리저리 둘러본 장 마주친 눈 부끄럽고

돈 몇 푼에 생선 꽁댕이 그리고 김 서너 톳

나머지는 이 돈으로 어림도 없다

 

둘러보는 장터 안 눈 안의 아쉬움

그 잠깐 약 장사 입담에 웃고 돌아섰지만

벼베기의 날 반찬에 걱정이 앞선다

아이 아범 술 먹고 고기 못 사 오면 어떻게 하나

저물녘 뒷산 길 저녁 바람 불어 오고

사람 마주칠까 장터 길옆 돌아오는 길

가벼운 생선 꾸러미 노을에 젖는다

 

 

 

가을

이월순

 

해마다 다가왔다

흔들고 지나가는 가을이지만

지금 내 앞에 다가온 이 초가을은

유난히도 조용한 적막이 흐른다.

 

거실 창밖으로 펼쳐진 초원의 집들도,

화사한 햇빛 아래 왜 이리 적막이 흐를까

 

창틈으로 도둑같이 스며드는 산들바람

내 앞에 잠시 잡아 놓은 긴박한 세월을

기어코 흔들어 잡아가려나

 

낙엽 지는 가을이 오기 전에

나도 할 일을 해야지.

 

 

 

가을로 갈 때는

이유리

 

빈 바다

예고 없는 파문으로

불현듯 일어서는 슬픔

질퍽한 세상으로 밀어 넣고 가자

 

잿빛 하늘

눈물을 토해 낼 듯 내려앉으면

숨 막히는 틈새로

먹구름 한 점 고통으로 일그러지는데

 

하루를 망연자실하게

뒤흔드는 그리운 이 있어도 설

움이 야릇한 미소로 유혹해 와도

돌아서서 눈물 훔치지 말자

 

사랑이라 이름 붙힌 그대 향해

그리움 자박자박 밟으며

나의 전부를 그대로 물들이는 날

 

쪼개어진 그리움들은

뜨거움으로 묻어만 두고

우리

싱그런 풀잎 같은

설레임으로만 안기로 하자

 

 

 

가을의 죽음

이은경

 

나의 사랑아! 가을이란다

어이하여 나의 아들은 여전히 아들의 나이밖에 안 되고 같이 사는 사내도 저 나이의 아이 같은지

360도 돌아버리겠다. 아프고부터 필수품을 잊었다

손목시계. 벤치에 앉아 교재 보며 읽던 내 친구

이제야 좀 살아있는 거 같네

지남 봄은 이상한 날들이었다

휴대폰에서 이상한 것들이 나의 시 세계 원고를 빌미로 시 운운했다

올해 국경일 이제 없지? 한글날

욱 골치 아프게 생겼군

, 좀 산뜻한 거 없어?

내가 죽고 이 세상 안에 더 이상 존재치 않아도 거리의 아이들은 자전거를 탈 것이다

내가 저승으로 연 날리며 떠가도 아무도 모르리

나의 사랑아.

난 그게 슬프다

 

 

 

산사의 가을

이은석

 

불식간

스쳐 가는

애잔한 기억들을

 

산사의

바람결에

말끔히 흩뿌리니

 

청량한

풍경 소리에

안온함이 깃드네

 

 

 

남겨진 가을

이재무

 

움켜쥔 손안의 모래알처럼 시간이 새고 있다

집착이란 이처럼 허망한 것이다

그렇게 네가 가고 나면 내게 남겨진 가을은

김장 끝난 텃밭에 싸락눈을 불러올 것이다

문장이 되지 못한 말들이

반쯤 걷다가 바람의 뒷발에 채인다

추억이란 아름답지만 때로는 치사한 것

먼 훗날 내 가슴의 터엔 회한의 먼지만이 붐빌 것이다

젖은 얼굴의 달빛으로 흔들리는 풀잎으로 서늘한 바람으로

사선의 빗방울로 박 속 같은 눈꽃으로

너는 그렇게 찾아와 마음이 그릇 채우고 흔들겠지

아 이렇게 숨이 차 사소한 바람에도 몸이 아픈데

구멍 난 조롱박으로 퍼 올리는 물처럼 시간이 새고 있다

 

 

 

가을날의 서정

이재현

 

안개

자욱한 새벽길 저편

 

코스모스 꽃잎이

슬픈 기억처럼 파어나면

 

마른버짐 핀 바람 한 점

목마르게 배회합니다

 

초가을 아침햇살 아래

풀잎에 연 이슬은 그대 눈빛

 

영롱하게

빛날 때면 그대 향한

내 그리움도 영글어 가겠지요

 

그대가

떠나간 자작나무 숲

조붓한 오솔길로 산새 소리

 

갓 물든 단풍잎에 굴러

그대의 뒷모습인 양

곱게 얼비쳐 옵니다

 

차츰 가을은 깊어가

서산마루 타오르는 노을빛이

 

하 고와서 아쉬운 날에

내 그리움의 한숨이라 여겨

 

그대 불 꺼진 창가로

곱게 깔아 두겠습니다

못 잊을 그대여!

 

 

 

가을날의 슬픈 아리아

이재현

 

보랏빛 안개가

자욱하게 감도는 새벽

 

숲길을 걸어도 볼 테면

나뭇잎 떨어져 쌓이는

저 오솔길로 한 줄기 빛처럼 가면

 

추억인양 하여 가늘게 떨며

당신 그곳에 머물고 있을까

 

영혼처럼

울음 우는 가을 숲이여

사랑의 추억이여

 

흰 뼈를 내보이며

내 슬픈 날들의 추억은

바람에 나부낀다

 

눈물이 난다

저 길로 마냥 걸어가면 있을까

 

내 안에 넘치는

피톨 같은 사랑이여

추억이여

 

저무는 날의 노을은 되지 말자

가슴 열고 토해내던 아리아의

음표들이 낙엽처럼 울음 맺힌 숲

 

오솔길로 채 아물지 않은

상처 가득 가을을 앓고 있구나 !

 

 

 

가을 동화

이재현

 

첫울음처럼 순수한 사랑

가을빛을 닮아 슬픔으로

번지는 하늘가 너의 목소리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참 그립다는 말은 없었지만

 

너를 생각하면 그리움에

가슴이 시려와 눈물이 나

 

우리들의 사랑이 가을 속에 묻혀

영원히 영원할 수는 없을까

 

이 가을이 가면

너는 낙엽처럼 영혼으로 울 테지

 

다시 만날 날이 올까

보고있어도 그리움은 깊어

자꾸 눈물이나

 

눈물 속에 얼룩지는 영상

사랑하는 사람아

가을빛으로 미쳐가는

목숨보다 더 깊은 사랑아

 

창백한 네 손 마디마디

부서지는 내 영혼

널 위해 죽어도 좋아

 

이대로 널 보낼 수는 없어

 

사랑해 사랑해 널 사랑해!

 

 

 

가을

이재환

 

1

폭염과 지루한 장마

태풍이 와도

 

오곡백과는

알알이 영글어 간다

 

높고 푸른 하늘

가을이 고맙다.

 

 

2

논두렁

밭두렁이

알알이 익어간다

 

지난봄 여름

가뭄과 태풍

잘 이겨냈네

 

따뜻한 햇볕

밤하늘에 둥근달

새롭고 고맙네

 

 

 

가을의 문턱

이재환

 

햇볕 따뜻한

언덕배기 공원에

코스모스 활짝 웃고

 

시원한 갈바람

고맙고 반갑다고

손 흔들어 인사하고

 

여름은

할 일 다 했다고

바람과 함께 떠나네

 

 

 

쓸쓸한 가을

이재환

 

어느 산 어디든

물 들지 않는 곳 없네

 

갈바람은 그리움 남기고

가을은 붉은 눈물 흘리네

 

바람결에 뒹구는 낙엽은

내 마음처럼 거리를 헤맨다.

 

 

 

가을날의 하루

이정규

 

홍시가 익어 가는 청명한

가을날의 뙤약 빛은

정갈한 속삭임의 열정인지

 

고운 채색으로 물든

이 가을날에 그대와 내가

한 폭의 풍경화 속으로 동화되어

가을 자락을 함께 수를 놓는다

 

오늘 마음 따라가는 이 행로에

기암절벽에 뿌리내려

풍요로운 이 가을을 만끽하는

노송이 부러웠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와 내가

삶의 굴레 내려놓고

모래알의 꿈일 망정

삶의 향기를 피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이 가을날의 아름다움처럼

 

 

 

가을빛 속으로

이정순

 

하늘이 파아란

옷을 갈아입고 목화 솜 같은

구름으로 배경을 깔아놓으니

 

산천초목도 어느새 갈잎으로

물들어 알알이 익어가는

곡식들이 참새 떼를 불러 모으고

 

알밤 위에 곱게 내린 햇볕이

점점 여물어 가는 알밤을 떨구어

다람쥐 겨울 걱정이 없을 듯하군요

 

기어오른 호박 넝쿨이

익어가는 호박의 무게를 느끼며

가을빛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가을 풍경

이정순

 

바람이

메밀밭에서 일하시는

할머니 머리칼을 휘감아

한 움큼 쥐고 길을 떠나면

 

초가을 하늘빛이

눈을 덮어쓴 듯한 메밀꽃 위로 빛나고

, 나비도 주인공인 듯 춤을 춥니다

 

고추잠자리도 뒤질세라

하늘 높이 날아다니며 가을을 알리면

먼 듯 가까운 듯 뭉게구름 조각이

기산을 안고 뒹굴어 다입니다

 

밤나무 알밤이 입을 벌리고

다람쥐 좋아라. 미소 짓는

가을은 이렇게 물들어 갑니다.

 

 

 

가을 약속

이정애

 

의중에

품은 정이

틈새를 기다리다

 

무언의

약속 지키겠다며

내밀어 본 하얀 구슬 속엔

 

널 사랑해!

영원히! 라고.

 

 

 

가을이 오네요

이정애

 

살금살금 다가옵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산들바람 손을 잡고

 

가슴이 콩닥댑니다

설렌 마음 되어 수줍게 미소지며

 

살랑살랑 춤추던 코스모스는

영문도 모른 채 손뼉을 칩니다

벌과 나비와 함께

 

아이

어쩐 담

어느새 주인인 양

은근슬쩍 자리를 펼치네요

사랑한다 말하면서.

 

 

 

어느 가을날

이정애

 

코스모스 한들한들

춤추는 길목에서

스카프

휘날리며 하늘을 날아본다

 

모경(暮景)

심취되어

해가 진 줄 모른 채

 

스르르

감기던 눈은 미소로 가득 찼지

임을 품어 안고서

 

 

 

가을 문턱

이정우

 

저만치 멀어져 가는

하늘 틈새로

 

상쾌함이 싸아 하게

날아 분다

 

물러가기 아쉬워하는

햇살은

 

한 자락

따사한 미소 내리고

 

들녘은 조용히

감사의 기도 올리며

 

채곡한 열매로

머리 숙인다

 

생의 수레바퀴는

무정하게 돌아가고

 

떠나기 아쉬워하는 나그네는

인정의 미소 지으며

 

사명의

마지막 땀방울을 뿌린다

 

 

 

가을 행복

이정은

 

구름 동동 바람 살살

춤추며 가네

 

말없이 왔다가

심금을 울리고

 

곱디곱게 단장하고

사랑 찾아가고 있고

 

저 푸른 내 안에 한 폭은

 

아름다운

가을 여행으로 행복을

담아 내주네

 

 

 

내게 있어 첫 계절인 이 가을날

이정하

 

보았는지요, 오늘 아침 자욱한 안개 속에 숨어 있던

아직은 설익은 가을을.

 

바쁜 거라고, 몹시 바쁜 거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혹 무슨 일이 생긴 거나 아닌지 쓸데없는 걱정을 하던 참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지금까지 보내온 글 중에서

가장 짧은 그 글이 내게는 가장 반가운 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많이 바쁘다니 난 많이 기쁩니다.

내 짧은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어떤 일에 아주 많이 바쁠 때

그것은 곧 아주 많은 행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았거든요.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는 마십시오.

할 일이 많다는 건 행복한 일이지만

건강보다 더 큰 행복이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사람들은 누구나 사계절을 이야기할 때

. 여름. 가을. 겨울 순으로 말하지만

나는 가을. 겨울. . 여름 순이 더 좋습니다.

내게 있어 첫 계절인 가을,

요즘의 이 계절이 난 몹시도 사랑스럽습니다.

 

 

 

가을 단상

이제민

 

고추 말리는 아낙네의 손

가을걷이하는 농부의 얼굴

가을 햇살은 따사롭기만 하다

긴긴 기다림으로

간절함으로

한 해의 풍요를 기도하던 일

탐스러운 열매가 주렁주렁

가을은 무르익어 가고

이른 새벽부터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가을은 깊어만 가고

하늘 높이 나는 고추잠자리

가을은 높아만 가네

가을 그림자

길게 늘어지면

한 해의 내 그림자도

편히 쉬겠지

 

 

 

가을이 아름다운 것은

이종범

 

낙엽 지는 가을이

왜 아름다워 보이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가을은

퇴색한 자기 빛의 낙엽으로

순응할 뿐,

거스르질 않습니다.

 

그런 낙엽을 보고

사람들은

아파하고 있습니다.

 

희망 싹 틔운

무성한 시절이 흐른 뒤엔

황혼의 언덕에

추억의 꽃이 피어납니다.

 

그 삶의 빛깔대로

 

 

 

가을 편지

이주희

 

편지함 비어있네

가슴도 빈듯하네

나뭇잎 하나

창가로 날아왔네.

무슨 사연일까

살며시 들쳐보니

!

하늘도 비어있는

가을이라네

 

 

 

가을에 사람이 그리울 때면

이준관

 

가을에 사람이 그리울 때면

시골 버스를 탄다

시골 버스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황토흙 얼굴의 농부들이

아픈 소는 다 나았느냐고

소의 안부를 묻기고 하고,

낮모르는 내 손에

고향 불비 같은 감을

쥐어주기도 한다

콩과 팥과 고구마를 담은 보따리를

제 자식처럼 품에 꼭 껴안고 가는

아주머니의 사투리가 귀에 정겹다

창문 밖에는

꿈 많은 소년처럼 물구나무선

은행나무가 보이고,

지붕 위 호박덩이 같은 가을 해 가 보인다.

어머니가 싸주는

따스한 도시락 같은 시골 버스

사람이 못내 그리울 때면

문득 낯선 길가에 서서

버스를 탄다

하늘과 바람과 낮달을 머리에 이고

 

 

 

가을은

이지영

 

네 푸르른 동공은

남태평양 무인도 섬 같다

 

입김만 닿아도 불타오르던

노을보다도 눈부시던

그토록 열정적이던 너

이내 상심처럼 네가

붉게 사위어지던 어느 날

울 너머 벼랑 위에서

나도 떨어져야 했지

 

부디 친구야

삶의 의미에서

조락(凋落)만을 보지는 말자

완숙의 길은 아직도 먼데

푸른 말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마지막 그 한 잎 지는 날까지

우리 함께 가을로 남자.

 

 

 

가을이어라

이진기

 

너는

가을,

가을이어라

 

나뭇잎 시들어

한 잎 지고

두 잎 지고

소슬바람 불어와

이리저리 흩어져 날리네

 

해그림자 길게 드리우고

산허리 휘돌아 짙은 안개 내려오면

빠르게 지는 해가

야속하고 야속하여라

 

열정으로 시붉은 단풍잎은

쌓여만 가는데

사랑으로 샛노란 은행잎은

쌓여만 가는데

 

앙상한 나목은

상념의 노를 저어

추억으로 흐르누나

 

화려함으로 성급히 다가와

쓸쓸한 여운을 남기고 가는,

 

너는

가을,

가을이어라



목차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