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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겨울비 ㄱ ~ ㅅ

강남주 겨울비

강봉환 겨울비가 오더니

강세환 겨울비 내렸을 뿐인데

강인한 겨울비, 하염없이

강자앤 겨울비

강현옥 - 겨울비

강효수 겨울비 내리는 숲

강효수 겨울비 내리는 아침 숲의 소묘

경규민 겨울비

고영 겨울비

고은영 겨울비 그 외로움

고은영 겨울비여, 음산한 도시여

고은영 비 내리는 겨울 풍경

고현영 봄비 닮은 겨울비

공석진 겨울비

곽종철 겨울비

구광렬 - 겨울비

구재기 겨울비

권승주 - 겨울비

권영민 겨울비 내리는 날

권오범 겨울비

권옥희 겨울비

권혁웅 처마 아래서

김경철 겨울비

김관호 겨울비 내리던 날

김광옥 겨울비

김국현 겨울비 오는 날

김근이 겨울밤 빗소리

김길남 봄에 오는 겨울비

김덕성 겨울비

김덕성 겨울비가 내리는데

김덕성 겨울비 내리던 날

김덕성 겨울비 오는 밤

김덕성 - 겨울비인데

김동철 겨울비

김명리 겨울비

김명배 겨울비

김명희 겨울비

김미숙 겨울비

김복수 - 겨울비

김선태 겨울비

김선태 작은 엽서 다시 겨울비

김시양 - 겨울비 내리는데

김영길 겨울비

김영배 겨울비는 내리는데

김영수 - 겨울비

김영자 - 플라타너스 잎사귀에 내리는 겨울비

김영제 겨울 찬비

김용화 겨울비

김인숙 겨울비

김정남 마지막 겨울비

김정택 겨울비

김정택 겨울비 내리는 날

김정호 겨울비

김종석 겨울비

김종순 겨울비

김철현 겨울비는 당신의 눈물인가요

김해인 겨울비

김현주 - 겨울비

김희경 겨울비

김희선 겨울비가 내린다

김희선 차가운 겨울비는 내리고

나상국 겨울비

나상국 겨울비 내리는 날에

나상국 겨울비 내 마음속 고요를 적신다

나상국 겨울비는 내리고

나상국 소한에 내리는 겨울비

나호열 - 겨울비

노연희 겨울비

도분순 겨울비

도종환 늦겨울 비

도지현 겨울비

도현영 겨울비

랑승만 - 겨울비 소리

민미경 겨울비

박고은 - 겨울비

박광호 겨울비 오는 날에

박광호 - 봄을 부르는 겨울비

박남준 겨울비

박명옥 겨울비

박목철 겨울비

박상희 겨울비

박숙경 겨울비는 내리고

박순영 - 겨울비

박인걸 겨울비

박인걸 겨울 밤비

박인걸 찬비

박인걸 초겨울비

박재성 - 겨울비

박정숙 겨울비라도 쏟아지면

박준 겨울비

박진표 겨울비

박태일 축산항(丑山港) - 겨울비

박희자 겨울비

백낙원 겨울비

백설부 겨울비

백승운 - 겨울비

백원기 겨울비

서봉석 겨울비

서봉석 - 봄으로 흐르는 겨울비

서지월 겨울비

성백군 - 겨울비

성백군 겨울 소나기

소순희 - 겨울비

손병흥 - 겨울비

송문헌 겨울비

송영희 너에게 가고 싶다

송정숙 겨울비

송태열 겨울비

신성호 겨울에 내리는 비

 

 

 

겨울비

강남주

 

차가운 벽을 두드리며

스스로 무너지는 화살 끝에서

사계(四季)가 흐느낀다.

젖은 낙엽이

움츠러진 추억으로

까마득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다시 만나지 못할 미련으로

광막한 공간을 금긋고 있다.

 

 

 

겨울비가 오더니

강봉환

 

소슬바람 불어 마지막 잎새마저 떨어져

어느덧 주룩주룩 때늦은 장맛비 같은

금방이라도 하염없이 적셔버리려는 듯

창문 밖 빗줄기 유난히 세차게 내리는데

 

떼 지은 박새무리 재잘거리듯 떠들어대며

제각각 마른 풀, 뿌리 물어 바삐 날라대

추운 겨울 나려는 듯, 둥지로 모아간다.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 피하듯 팔락거리며

요즘 들어 유난히 까치와 함께 설쳐댄다

 

빈집에 홀로 남아 있는 늙은 할멈에겐

긴긴날 소식조차 없는 자식, 깊은 주름만

박새마저도 황망한 겨울을 알아챘다는 듯

새 생명 기다리듯, 뽀얀 눈 세계 맞이하고자

총총히 서둘러 보금자리 마무리하는구나

 

 

 

겨울비 내렸을 뿐인데

강세환

 

겨울비 오는 날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살았다

 

한 번도 울리지 않는 내 휴대폰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소파처럼

식탁과 마주 앉은 빈 의자처럼

혼기 놓친 여자 같은 계간지 표지처럼

뒷마당 대추나무 끝에 글썽글썽 맺혀 있던 빗방울처럼

 

옛 애인 같던 새벽녘 강릉 교동택지 맥줏집도

교항리 간선도로변 생맥주 카스타운도

꾸둑꾸둑 말린 장치찜 큰 축항 월성집도

찬 소주 곁들인 도루묵찌개 주문진 터미널 포장마차도

 

다만 겨울비가 좀 내렸을 뿐인데

겨울비도 나도 변명하고 있었다

너도나도 서로 시절이 어긋났을 뿐이라고

 

 

 

겨울비, 하염없이

강인한

 

초겨울인데 개나리꽃 팔랑팔랑

찬바람에 홑적삼

도망 나온 가시내 가슴처럼

베란다의 철쭉도 꽃망울을 슬쩍.

시절이 왜 이럴까

세월이 거꾸로 가는지 환장을 하였는지.

분 바른 계집애들

치마는 허벅지로 샅으로 자꾸만 올라가고,

날궂이 살인마가 날뛰는 막다른 골목

이 골목인가 저 골목인가.

담배를 개비로 팔고

술도 잔술로 팔고

독한 추억에 취한 그네

시큰한 옛 노래에 실어

내리는 겨울비, 하염없이 늙은

개는 콧등으로 쓰레기 더미를 뒤지네

 

 

 

겨울비 오는 밤

강자앤

 

큰 눈 오는날

하얀 눈꽂 송이님

기다렸는데

 

거샌 비바람만 슬퍼라

나무는 이리저리

휘청거리며

숨 가쁘네

 

내 님 용암처럼 불타는

뿌리

쏟아지는 겨울비를 맞아

벗은 알몸 안아 주기를

 

바우야 어서

오려무나

 

모닥불처럼 활활

타버려라

 

오오 아아

더더더 헉헉헉

하나 되는 것이

 

꿈이던가요

 

 

 

겨울비

강현옥

 

문도 문턱도

없는 벌판으로

한 계절이 지나가면

기다림에 절인 사람들

낙엽을 밟는다

 

찬서리 소리없이 뿌리며

가을은 내 가슴을 밟고

철새처럼 떠나가고

푸른 잎 모두 날아가버린

텅 빈 뜰을 적시며

겨울비가 내린다

 

나의 계절은

어디에서 분해 되어

어디에서 조립되는지

 

철새들이

유리문을 열고

날아와 이리저리

몰려 다니며 또 그렇게

겨울의 노래를 부른다

 

 

 

겨울비 내리는 숲

강효수

 

빈 숲에

차가운 비 내려

속이 쏴 하니

 

빈속에

뜨거운 비 내려

속이 쏴 하니

 

불콰하니

좋다

 

 

 

겨울비 내리는 아침 숲의 소묘

강효수

 

숲은

어떤 가을날부터

비 내리고 있었지

시간이 흐를수록

밤이 깊어갈수록

헝클어진 마음은

점점 더 커져

날카롭게 메말라 소리 없이

미쳐 울부짖고 있었지

 

숲은

밤새도록

잠들지 않았나 보다

정갈하지 못한 조신하지 못한

취한 숙녀처럼

내 아침 창가를 두드리고

잔설 엉긴

내 마음의 숲에도 비 내린다

 

한잔의 커피와

한 모금의 담배 연기로

숙녀를 맞이해야지

숙녀는 처음으로

회색빛 분칠하고

조금 더 미쳐 있을 뿐

어떤 가을날부터 참다 참다

드디어

내 아침 창가에 앉아 있네

 

 

 

겨울비

경규민

 

나목(裸木)에도

대지 위에도

양수(羊水)로 내렸다

 

개구쟁이 손주들 물장난 만드는 비

할머니 추위를 쓸어내리는 비

할아버지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비

 

저 멀리서 기지개 켜고 있는 봄을

넌지시 부르는 손짓

징검다리 놓았다

 

 

 

겨울비

고영

 

아는 길도,

아는 사람도 놓치고

되돌아가는 길에

겨울비 내린다

 

정신 차리라고,

정신 차리라고,

온몸을 찔러오는

날카로운

물의 바늘들

한 땀 한 땀

꿰어오는

이 차가운 박음질

 

 

 

겨울비 그 외로움

고은영

 

나는 얼마나 많은

그리움으로부터의 단절을 원했든가

칠흑 같은 어둠에 겨울비 사방에 넘실댄다

범람하여 밀물로 가득한 그리움

믹서 되어 혼돈의 블랙홀로 흐르는

비의 얼굴, 얼굴들

 

어둠을 부유하며 밤새 시달린 그리움

빗물로 나부끼며 춤추는 동안 빛은

빗물에 몸 풀고 통과하지 못하는

시간 속에 흐느낀다

 

그대 보고파 속절없이 머무는 시간

버리지 못하는

지독한 고질병의 염병할 감수성

나는 버림받은 기분으로 세상을 보고

나를 보았고 또, 너를 보았다

 

일상에서도 다가설 수 없는

건드리면 터질 것 같이 예민한 내 안에

무수한 꽃은 피었다 시들어 가고

가슴엔 언제나 검푸른 네가 있었다

 

온몸을 적시며 끊임없이

나를 자극하는 저 빗물처럼

내 안엔 분신 같은 그리운 네가

지울 수 없는 문신처럼 일렁인다

 

우리가 등을 보이고 뒤돌아서

각자의 삶의 터전을 향하여 가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그리움에 대한 회포도 풀지 못하고

사랑한다는 한마디 못 하고 돌아서야 했다

 

 

 

겨울비여, 음산한 도시여

고은영

 

갈짓자로 먹구름을 몰고 와 거리를 배회하다

주검 같은 불랙톤으로 비가 되어 내리는

겨울 비여 음산한 도시여

질척이는 빌딩들의 회색 그림자를 지워라

, 부재인 사랑도 남김없는 그리움도

애증으로 울고 있는 것들의 회한 속에

저 짜릿한 우울로 젖어들어라

 

얼마나 허무한 언어를 뇌까리는 저녁이냐

우울은 깊을수록 더욱 좋고

나는 고독이나 외로움의 거추장스러운

껍데기에 눌리다가 더욱 침울해지고

달콤한 잠에 빠져들 지니

고립된 섬으로 남아 비루한 잠이 들 지니

 

단지 너와 내가 나누는 이 은밀한 대화만으로도

우린 서로에게 얼마나 끈적이는 형체로 젖어들고 있느냐

가난한 사람들의 심장에 을씨년스러운

그리움에 모반을 꿈꾸는 너여

균열로 균열로 마냥 내리다가 어느 선술집

간이 의자에 구부린 등으로 졸고 있는 취객이나

삶이 버거워 생살을 찢는 어느 작부의 등짝에도 서럽게 내려라

 

뭉긋하게 다가오는 수천의 아린 기억의 상처를 들추고

사선으로 흔들리는 빗줄기 따라

무형의 짙은 그리움에 그림자를 지워라

세속에 묻은 것들의 오만한 얼굴을

병들어 지친 정신적 지체에

모든 불구인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여라

 

 

 

비 내리는 겨울 풍경

고은영

 

후두두

빗소리에 점점 민감해지는 마음

할 일 없이 멀거니

창가에 얼룩져 내리는 빗물을 보면

수많은 얼굴이 잡힐 듯 멀어져 가는 일이다

 

음산한 거리 정처 없이 가물거리는

혼미한 그리움만 우산도 없이

푸른 신호등을 기다리는 일이다

흘러가는 사람들 어깨마다

질긴 눈으로 앉은 비에 젖은

고독을 만나는 일이다

 

겨울비는

음산할수록 적체된 가슴에

끝없는 기다림의 전율로 다가와서

뼛속마다 끈적이는 골수들이

흐물흐물 녹아

그리움의 강물로 흐르는 일이다

 

온몸에 피톨들이 남김없이 일어서서

낡은 기억에 흑백 필름을

파스텔톤으로 물들이고

안개비처럼 천천히 스며들어

영혼마저 외롭게 젖어 가는 노스탤지어다

 

 

 

봄비 닮은 겨울비

고현영

 

비가 온다

겨울비가 온다

 

겨울비가 봄비처럼

사부작 온다

 

내 가슴에 모호하니

알 듯 모를 듯한 그리움

 

연초록 새싹들처럼

고개를 내민다

 

비가 온다

봄비 닮은 겨울비가 사부작 스민다

 

 

 

겨울비

공석진

 

그대여

지난가을

이별의 한을 토해

 

먹구름

땅바닥으로

찍어 누르고

 

내 살 베는

칼바람을

핓빛으로 불어댑니다

 

한꺼번에

참았던 울음처럼

간담 서늘하게 몰아쳐

 

어느새

추적추적

겨울비는 지쳐갑니다

 

그대여

애써

외면하지 마세요

 

 

 

겨울비

곽종철

 

1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나뭇가지에 매달린 낙엽은

이별의 서러움에

울고 있네요

 

바람도 데려오지 않고

폭풍의 전야처럼

조용히 내리는 꼴이

북풍한설 몰고 오나 싶어

더 빨리 떠나려는 낙엽

 

비야

제발 새벽이슬 내리듯이

아름다운 꽃비로 내려주소서

슬픈 눈물이 아닌

행복의 꽃이 피어나도록

 

내 태어난 곳으로

함께 가자며 재촉하는 너

우리 미련 없이 땅으로 돌아가

새봄에 다시 돌아오자구나

 

 

2

잔설(殘雪)이 자리 잡고 있는 대지 위에

몸도 마음도 잔뜩 웅크린 채

따뜻한 햇볕을 그리워하는데

때아닌 빗소리에 성큼 다가오는 듯한

또 다른 계절을 넘본다

 

두꺼운 외투 속으로

체온을 맛보려고 파고들던 찬바람은

떠난다는 아쉬움 때문인지

뼛속까지 파고들며

시린 몸을 더욱 떨게 하네

 

그대 그리워 애타게 기다리면서

비가 그린 얼굴에 눈 코 입 그려가며

임 오는 소리 놓칠세라

숨소리마저 죽이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처마 밑에서 홀로 서성인다

 

비야 그만 와다오 바람도 멈춰다오

내 사랑이 찾아올 수 있도록

기다림에 지친 고장 난 벽시계처럼

세월아, 멈춰다오

내 사랑이 머물 수 있도록

 

 

 

겨울비

구광렬

 

겨울비는

우산 없인 맞지 못할 슬픔일레라

그것은 또 비가 아님을

고해(告解)하는 것이니

보아라,

어느 계절의 빗방울이

저리도 아리더냐

다시는 돌려보내지 말자

그것은 본래

하늘의 것이 아니라

하나,

뜨겁게 오르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해 떨어지는

땅의 눈물일지니

 

 

 

겨울비

구재기

 

둑길에 선 나무들이

일제히 한 겹씩

옷을 벗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또다시 풀뿌리를 캐며 씹으며

눈물을 훔쳐내야 하는가

 

퍼뜩 정신이 들어

참으로 오랜만에

쓸쓸한 세상 한가운데에

내가 서 있다

 

둑길에 선 나무들이

저물 무렵

겨울비에 사뭇 젖었다

 

 

 

겨울비

권승주

 

날도 밝지 않았는데

무슨 사연 있길래

처량하게 울고 있어

밤새도록 끊일 줄 몰라

긴 겨울

참았던 눈물

낮에는 더러운 얼굴 보이기 싫어

어둠을 타고

대지 속으로 숨어 버리는

겨울비야

차마

너의 눈물을 보면

마음이 아플까 봐

꼭 닫힌 창가로 흐르는 소리만

구슬프게 들려오니

지난해 고통

모두 녹아내리는

슬픔의 강이 되어

나의 애간장을 태우는

답답한 봄의 문턱에 선

겨울비

 

 

 

겨울비 내리는 날

권영민

 

비가 내린다

겨울비가 내린다

눈이 내리면 좋으련만

즈믄날 하냥 비가 내린다

서연히 비가 내리면

구름처럼 가만히 다가와서

바람처럼 말없이 떠나가 버린

그리운 그 사람 생각이 난다

사랑이여, 너는 어디 있는가

사랑이여, 너는 돌아올 수 없나

너의 뒷모습 바라보며

애타게 부르며 애원했건만

부르는 소리는 속절없이

허공을 배회하며 돌아오누나

겨울비 내리는 날

그리운 그 사랑을 돌아본다

그리운 그 사랑을 외쳐본다

겨울비 내리는 날

내가 울고 있다.

 

 

 

겨울비

권오범

 

1

애먼 날 서슬이 시퍼렇게 설치던 동장군이

하필 제 기념일인 대한도 모른 채

세상이 호졸근하게 젖도록 글썽대고 있으니

무엇이 못마땅한 것이냐

 

그러잖아도 허술해

눅눅하기 그지없는 바람벽 안

간댕거리던 노루잠마저

파도 소리 따라 가출해버리게

 

탁상시계가 또박또박 쏘삭거려

한밤중이던 그리움들이

벌 떼 같이 깨어나

귀살쩍게 톰방대고 있다

 

 

2

살아있는 것들 주눅 들게

독한 입김으로 사나흘 본때를 보이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진종일 주룩주룩 적선하는 소리

 

하기야 가으내 가물었으니

통음한 날 새벽처럼

갈증으로 뒤척이는 초목들에겐

자리끼만큼이나 고마우리라

 

그러나 엉큼한 그 마음 왜 모르겠는가,

성깔 접은 척하다가도

종잡을 수 없게 돌변하는 것이

그대의 본성인 것을

 

세상이 호졸근하게 젖고 나면

여봐란듯이

변방에 대기 중인 칼바람 호명해 데리고 다니며

한 사날 또 인정사정없이 윽박지를 것이다

 

 

3

유통기한 다한 가을이

염치없게 뭉그적거리자

비 앞세워

자리 좀 비켜달라는 겨울

 

처마도 없고 나뭇잎 하나 없는

낙목한천 복판에서

우산 없이 만나 당해보니

독한 걸 알겠다

 

소나기도 아닌 것이

바늘처럼 목덜미 콕콕 쑤셔대고

겹겹의 옷을 빠르게 침투해

오그라드는 마음

 

한장 남은 달력 아랑곳없이

벌써 주인인 양 집집마다 내걸린 내년이

급하다 쏘삭거렸나

갑자기 서두르는 파장이 을씨년스럽다

 

 

 

겨울비

권옥희

 

숱하게 뽑아낸 내 신경줄이

참으로 오랜만에 무료할 때

밀쳐져 있던 심장 가운데를

안쓰럽게 만지작거려 본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흰 눈은 오지 않고

가습기로 마구 물기 뿜어대

마른 잎들만 적당히 풀이 죽는

겨울은 때아닌 비

그렇게 젖고 있다

 

상상력은 이제 사라졌다

있는 그대로 세포분열 되어 껍

질과 속이 고루 단단한 빗방울은

더 이상 부드럽지도 않았다

 

우리들 목구멍에 얼어붙어

뼛속까지 데울 방한복을 준비할 것이고

서너 달 낮은 숨으로 들어오는

그리움마저 아꼈다가

꼭 필요한 날, 몇 조각의 빛으로

맥박 소리 고른 꿈을 빚으라고

너 없는 외로움이 젖고 있다.

 

 

 

처마 아래서

권혁웅

 

겨울비가 손가락을 짚어 가며 숫자를 센다

더딘 저녁, 누군가를 오래 세워 둔 적이 있었나

여러 번 머뭇거린 뒤꿈치가 만든

뭉개진 자리가 나란하다 창밖을 서성대던

들쑥날쑥한 머리통들 가운데 몇몇이

어느새 방 안에까지 들어와 있었나

검게 엉킨 실타래들을 풀지 못해

한 벌 수의도 지어 주지 못했나

나 간다 이번엔 정말 간다고

카운트다운을 하는 겨울비,

반에서 반의 반으로 다시 반의 반의 반으로

끊임없이 숫자를 줄여가는 저 겨울비

 

 

 

겨울비

김경철

 

적막이 흐르는 새벽

하늘에서는

구슬프게도 우는

겨울비가 내린다

 

누구를 위해

그리도

슬피 우는 걸까

 

어둠과 찬바람에

새벽부터 내린 비로

몸은 움츠리고

 

밤이 되어

멈춤을 몰랐던

슬픔도

조금씩 삭으러 든다

 

떠나갔던 임

다시 돌아와서

너를 보며

방긋 웃어 준다면

 

애잔하고

흐느끼며 울던

너의 상처도

더는

아프지 않을까

 

 

 

겨울비 내리던 날

김관호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방울방울 눈물의

이별만을 재촉하는데

 

이러저러지도 못하고

외발로 땅 짚고 서서

소리죽여 울던 나무처럼

 

휘저어 붙잡을 것도

더 이상 기대할 것도 없는

허한 곳에 무얼 남기려나

 

긴긴밤엔

또 무엇을 그리워하며

잠을 청하려나

 

빼앗긴 꿈에

겨울비 눈물처럼 내리는 날

 

 

 

겨울비

김광옥

 

1

새벽잠 드는 머리맡에

너는 앉아 있다.

한쪽 무릎을 세우고

무심히 앉아 있는 네 얼굴을

나는 모른다.

 

 

2

가시나무에 걸쳐둔

내 사랑.

얼음 깔린 새벽을 딛고 와

손바닥 가득 박힌 가시에

입 맞춘 후, 몰래 떠나는

네 음성을

나는 듣지 못한다.

 

 

3

잠이 깨면 쏟아지는

사나운 꿈.

흔적뿐인 유방을 내놓은 채

아직 사방에 널려있는 새벽,

어디선가 울고 섰는 겨울을

달래며, 내게로 오는

네 시린 발자국.

 

 

 

겨울비 오는 날

김국현

 

12월 초하룻날

한 해 동안 미처 못 이룬 아쉬움에 하늘은 눈물을 흘립니다

흘러간 세월이 서러워 울고,

못다 준 사랑이 안타까워 흘리는 눈물이며,

별이 되어 반짝이는 당신의

장밋빛 편지였습니다

 

겨울비 오는 날에는

문득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날의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거운 심장을 적시고 있습니다

목멤으로 불러보지만

돌아오는 그리움이 겨울비 되어 흘러내립니다

가을처럼 왔다가 떠난

당신의 자리에 남은 흔적은

세월 따라 조금씩 지워가고 싶지만 야속하게도 지울 수 없는 것은

영화처럼 스쳐 지나간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과

아낌없이 주신 당신의

한없는 사랑이 부족한 가슴에 상처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작은 것이라도 보답하고 십지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당신에게 배운 것은

모든 것을 가을바람에 날려보내고 소슬하게 남아있는 가냘픈 이파리의 외로움과

고통을 이기는 힘이었고

겨울비 맞으며 홀로 걸어갈 수 있는 용기였습니다

그래서

더욱 애틋하게 보고 싶은 당신은 나의

어머니입니다

 

 

 

봄에 오는 겨울비

김길남

 

입춘이 지나고

한참인데도

비가 오니까

겨울비라 합니다

전국적으로 오는 이 비에

백두대간 건너편 어느 곳엔

눈이 오고 있어서 일까

봄에 겨울비가 주루룩

잘도 내리고 있습니다

 

 

 

겨울밤 빗소리

김근이

 

깊은 밤

가로등 불빛에 젖어 내리는

겨울비

창가에 뿌려 놓은

얼룩진 눈물 자국에

묻어나는 숨죽인 흐느낌

그 소리에 끌려

마음은 빗속으로 뛰어든다

 

어느 날

참담했든 이별에

하염없이 해매이던 밤

어깨를 토닥이며

가슴 속으로 파고들든

그 흐느낌의 정감

 

겨울비 내리는 밤이면

사늘하게 연민으로 남은

그 정에 끌려

가로등 아래 서면

스린 마음속을

휘돌아 나가는 소리

불빛에 젖어

흐느끼는 겨울비 소리.

 

 

 

겨울비

김덕성

 

1

겨울비 오면서

첫걸음이 무척 요란스럽다

 

벌거벗은 겨울나무

빗속에서도 의젓하게 서서

추억을 되새기며 아쉬움 없이

보란 듯이 서 있고

 

사랑의 겨울빈가

따스하게 빈 마음에 떠오르는

그리운 그녀

사랑의 노래 들려온다

 

창가에 앉아

따끈한 커피 한잔을 마시며

그 노래에 도취되어

겨울비에 젖는다

 

 

2

영하의 추위로

생각하지 못했는데

가슴을 흠뻑 적시며 오는 겨울비

 

살며시 다가와

아늑하게 웃음지우며 반기는

그 모습은

내겐 명품 중에 명품

 

언제나 올까

오랜 기다림은 아니었지만

마음 한쪽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오늘에야

따뜻한 사랑의 온기로 가득히 채우며

잠자던 내 영혼을 깨우며

비가 내린다

 

얼음장 같은 내 몸

따뜻하게 감싸주며 언 몸을 녹이니

우와- 고마워

오늘은 횡재를 한 셈이네

그대가 내 가슴에 찾아왔으니까

따뜻한 사랑으로

 

 

3

빙판길 위에

찬비가 내린다

추위는 떠날 줄 모르고 기세가 등등한데

 

아직은 아닌데

어쩌자고

벌써 와 창문을 두드리는가

 

겨우내

아픔을 참는 나무

숨죽이고 있는 들꽃

기다리는 그 마음이야

어찌 무엇으로 형용할 수 있으랴

 

이제 머리카락 휘날리며 올 봄 처녀

그 기쁨 소식을

전하려고 온

그대가 아닌가

 

그래

어서 사랑의 단비로 촉촉하게 적셔 주렴

나무에게도

들꽃에게도

아니 얼어붙은 내 가슴에도

 

 

4

새벽인 듯싶은데

베란다 창문을 뚜드리는 소리

단잠을 깨운다

 

창밖에는 단비가 내린다

오랜 가뭄을 뚫고 내리는 반가운 비

겨울비답지 않게

새벽을 비로 곱게 물들인다

 

봄빈지 겨울빈지 아리송하지만

아직 동장군은 머무르는데

나뭇가지에서도 겨울잠을 끝내고

바스락 귀전을 울리는 듯싶다

 

이제 곧 언 땅을 새순들이

땅을 뚫고 올라오고

잔잔한 봄 교향곡이 연주되면서

내 가슴에도

잔잔히 봄이 내리겠지

 

 

5

어젯밤 몰래

겨울은 눈물을 흘렸다

 

내가 미워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떠나기가 아쉬워서일까

 

찬바람이 등을 시리게 해

무척 미워했지만

하얀 마음으로 다가오는 날은

두 팔을 벌리고

안기며 뒹굴며 재롱을 부렸는데

 

이제 어쩌겠나

정든 아쉬움이 있겠지만

그만 눈물 거두고

웃으며 떠나려무나

겨울이여

 

 

 

 

겨울비가 내리는데

김덕성

 

눈이 온다고 예보했는데

잠든 틈을 타 몰래

포실포실 찬비가 내린다

 

나는 거실에서

가려진 커튼 사이로

눈물인 양 내리는

가느다란 찬비에 마음이 젖으며

 

이런저런 상념에 묻혀 있는데

슬며시 떠오르는

그리운 사랑들

 

고즈넉한 겨울밤

추억 속에 담아 두었던

그리운 이들에게

시 한 편씩을 읊으며 겨울비에 띄워 보낸다

 

 

 

겨울비 내리던 날

김덕성

 

겨울은 겨울다워야 하는데

지구의 온난화로 추위가 항복을 했나

창밖엔 비가 내린다

 

어느 여인의 이별 눈물인 양

연 삼일 가을비처럼

슬픈 듯이 부슬부슬 내리는 겨울비

내 마음도 울적해진다

 

제주에는

3.4월에나 볼 수 있는

분홍 진달래꽃이 활짝 피었고

개나리와 매화도 꽃망울을 터뜨렸고

벌도 날아들어 신기한 듯

꽃구경이 한창이란다

 

기후의 변화인가 아니

재앙으로 오는 변화가 아닐까

두려움이 앞서는데

 

 

 

겨울비 오는 밤

김덕성

 

벌써 봄이 오려나

눈은 오지 않고 길을 잃었는지

추적추적 겨울비 내린다

 

지난여름

아쉬움이 있어 그런가

참회의 눈물인 듯싶게 내리며

밤을 외롭게 적신다

 

차가운 사연이

깊숙이 담겨 있는 듯

깊어가는 밤에 안쓰럽게 내리는데

어렵게 살던 시절 떠오르는

그리운 그림자

 

기억에 담아 두었던

고마운 이들에게 해가 가기 전에

감사의 시 한 편을

겨울비에 실어 보낸다

 

 

 

겨울비인데

김덕성

 

봄이 오는 날

마당에 내린 가슴 아픈 눈물로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쌩 하니 찬바람을 몰고 와

등을 시리게 꽃샘추위로 괴롭히더니

원망하는 줄 알고 흘리는

사죄하는 눈물인가

 

떠나기가 아쉬운가 아니면

전염병을 옮겨주고 가기에 미안한가

후회하면서 진심으로 흘리는

아쉬움의 눈물인가

 

꽃 피는 봄에게

양보하는 마음으로 깨끗이 인계

전염병인 코로나와 같이

가증스러운 눈물 거두고

차라리 겨울답게 웃으며 떠나렴

 

 

 

겨울비

김동철

 

1

계절이 넘고 넘듯이

우리의 인생도 넘고 넘어

세월 따라 흔들리며 살듯이

 

고난과 어려움 속에

흔들리며 살아가는 거겠지

 

아름다운 꽃들도

흔들리며 피어나서

줄기를 곧게 세워가고

 

바람도 흔들리면

서산마루에 걸터앉아

잠시 쉬었다 흘러가듯이

 

달님도 흔들리면

지그시 눈을 감으며

구름 속에 살며시 쉬어 가고

 

별님도 흔들리면

반짝이던 빛의 광채도

아스라이 스쳐 가듯 깜박이니

 

끝없이 펼쳐진

세상의 모든 것은

흔들리며 살아가는 거겠지

 

허공을 키질하는

내 안의 헛된 공허함도

막막한 나락의 틀 속에서

 

영혼의 불꽃을 피우려

그리움 속에 흔들거리며

그대의 품속으로 끌려가듯이

 

겨울비를 맞으며

얼마만큼의 삶을 적셔왔는가

미련 없이 떠날 만큼 살아왔을까

 

인생의 끝에서

눈물로 대신한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존재로 간직하고 싶습니다

 

 

2

요란하게 내리는 겨울비

이른 아침 창가에 부딪히는 소리

슬픈 하루를 예고하듯

더욱 거세게 내린다

 

개구리 폴짝폴짝 뛰듯

분주하게 달려 온 한해의 끝자락

돌아보면 설렘보다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한 번쯤

돌아보면 보고 싶은 얼굴들

초조하게 흘러가는

겨울 초침은 느리게 느껴지고

덩그러니 놓여진 사진첩만

그리움을 달래주니

 

하얀 눈이 펑펑 내려 준다면

묵은지 같던 마음도

어린 시절로 돌아가

케롤에 맞추어 엉덩이도

들쑥들쑥 해보고 싶었건만

 

야속하게 내리는 겨울 비

무심히 바라보는 유리창에

그리움만 방울방울 맺혀 놓습니다

 

추억을 그리며

주륵주륵 흘러내리는

빗방울의 아련함에

들릴 듯

말 듯

들려오는 아름다운 선율은

 

구세군 자선냄비

나눔의 케롤송이 비를 헤집고

나를 부릅니다

 

 

3

철을 모르는

교만한 빗줄기가

질척질척 뿌려지네

 

겨울을 음미하는

함박눈을 기대했던 밤

 

머리가 닿는 다락에서

크지 않은 키를 숙여가며

희뿌연 세상을 들여다본다

 

쉼 없이 내리는 빗줄기

멈출 줄 모르는 교만함에

무정한 시간만 꼿꼿이 가르고

 

가난으로 찌든 어두움

언젠가 벗어나리라 했지만

지금도 가난은 다락에서 잠들고

 

닿을 수 없는 꿈과

잡을 수 없는 희망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며 바스러진다

 

위를 올려다보며

사랑하며 살아야지 했건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지

 

난 어찌

가시 같은 삶을 사는가

 

가난한 식사 앞에서

밤이면 고요히 기도하며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지

 

사랑했던 사람아

그대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뽀송뽀송한 별처럼 박혀있고

 

나는 박힌 별들이

돌처럼 너무 무겁게 아파져

한 생애를 허둥거리며 살아가네

 

어느 날

하얀 꿈속에서

하얗게 몸부림치다가

불붙는 키스에 넘어지며

이슬 같은 눈물도 적셔보았지

 

이 밤도

아늑한 겨울비 속에

가시 같은 삶의 꿈속으로 잠드네

 

 

 

겨울비

김명리

 

멀리... 자정에 가까울수록

구겼다 다시 펼치는 은박지 소리로

겨울비 쏟아집니다

흩어졌다 모이는 물새들의 발자욱

슬픔들 기쁨들 떼로 몰려

기억의 뒤란 봉당 왁자히

궂은비 겨울비 쏟아집니다

, 흩어졌다 모이는 물새들의 발자욱

내 마음

그대 비애의 푸른 물이랑 가까이

소라고둥처럼 열리며 여울지며

나아갑니다

 

 

 

겨울비

김명배

 

겨울비가 앞서서

바다를 건너가시네

 

이승 길

하룻밤 길 배 띄우시고,

배따라기 목청 찢어

펄럭이게 두시고

 

겨울비가 앞서서

바다를 건너가시네

 

깨진 달, 외짝 신발

구름 속에 버리시고

별당에 촛불

그냥 켜 두시고

 

 

 

겨울비

김명희

 

때로는

기대고 싶은 가슴 한켠에

숨겨 두었던 이야기들이

비처럼 내린다

 

종종 걸음으로 지나가는 세월속

인연은 겹겹으로 채워져도

 

그래서

더 그리운 얼굴들

동그란 빗방울 되어 기억속에 메달려

그네를 탄다

 

겨울비

이리 내리는 날

 

멀리서

봄기운 같은 사람들이

 

가슴 안에

찬찬한 걸음으로

겨울비처럼 걸어온다

 

 

 

겨울비

김미숙

 

떠났다

피라칸타 붉은 열매

겨울 지키는 새벽

구겨진 신문지가 비에 젖어

창살에서 흩날리고

스물일곱

찬란한 네 얼굴에

흰옷을 덮으면서도

우리는 너를 위해 울지 못했다

목메인 동백꽃 혼자

제 설움에 겨워 돌아누울 뿐

 

 

 

겨울비

김복수

 

누가 뭐랬나? 저리도 구시렁거리게

칭찬보다는 잔소리를 더 많이 듣는

부엌어멈 삼돌네처럼

겨울비가 밤새 구시렁거리며 내린다

 

시인은 말 한다

하얀 눈이 펑펑 내려야 겨울이라고

하얀 눈이 소복이 쌓여야 겨울 같다고

 

그런데

누가 겨울비를 반길까

누가 귀를 열고 경청을 할까

 

궂은일은 혼자 도맡아 하고

욕은 바가지로 먹고

 

내가 그랬다

너도 그랬다

 

그러나 자고 나 봐야 안다

저 미끄러운 눈길을 밤새 누가 다 치웠는가를

 

불러라 불러보아라

구시렁거림은

너에 한 많은 노래다

너에 슬픈 노래다

 

 

 

겨울비

김선태

 

1

이렇게 떨리는 손끝으로

그대의 야윈 어깨를 두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차고 맑은 목소리로

먼 곳에 있는 그대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지금 세상은 눈으로 덮이고

들판 위로 바람은 끝없이 헤어지는데

모든 죽어가는 것들의 기억을 일깨우며

이렇게 때아닌 눈물로

세상에 내리고 싶었습니다

이제 모든 길은 지워지고

이미 떠나버린 그대

오래도록 돌아올 수 없음을 알아

빈 호주머니 속 남은 손 시린 사랑을 만지작거리며

이렇게 잠든 세상의 끝에서

언제까지나 그대를 기다리고 싶었습니다

 

 

2

겨울비 온다

살아생전 마주친 눈동자들이 떨어져 내린다

투둑투둑, 지난 시간의 어깨를 친다

땅바닥에 으깨어져 사방팔방으로 튄다

추적추적, 서로 부둥켜 안고 운다

천지간에 울음소리 낭자하다

차갑게 스며드는 비애

검게 번들거리는 저주

겨울비 온다

 

 

 

작은 엽서 - 다시 겨울비

김선태

 

오늘도 저무는 겨울 거리에

, 느닷없이 쏟아지는 그리움

누구 하나 다가와 씌워 줄 우산이 없는

빛바랜 군복 같은 내 청춘

연탄불 꺼진 지 오래인 자취방

늘 저 혼자 떨고 있는 싸늘한 촛불

 

 

 

겨울비 내리는데

김시양

 

눈이 내리다 못해

굵은 눈물 되어 떨어지는데

겨울비라고 부르는가?

이 눈물을.

하얗게 색칠되는 계절

까만 눈빛의 너는

어디에도 있었지.

펑펑 쏟아지는 첫눈을 늘 고대하면서

둥그렇게 맺혀 떨어지는

추운 계절의 빗방울.

이 밤, 추우면 얼리려는가?

너에게로 난 모든 길을.

하얀 눈꽃만을 기다릴

그리운 사람에게

따뜻하게 흐른다.

빗방울 하나로

 

 

 

겨울비

김영길

 

가을이 저물고 입동이 되는 날

겨울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저 내리는 비속에 찬 기체와

 

기후가 바람과 합류하여 나무들이

춤을 추니 단풍잎이 떨어진다.

 

단풍잎이 나무와 떨어지기 섭섭하여

매달려 안간힘을 다해 버텨보아도

 

베에 젖은 단풍은 몸무게가 무거워

바람에 견딜 수 없어 땅에 떨어진다.

 

단풍의 아름다움에 샘이 났는지

겨울비 바람은 겨울이 오기를

 

재촉하는 듯 거센 바람으로

찬 공기를 몰고 다니는 듯하다.

 

가뭄의 단비가 반가운 마음에

비를 맞는 기쁨도 한없는 자연의

 

고마움에 감사하며 모두들 환영하는 듯

얼굴들의 표정이 환하게 보인다

 

 

 

겨울비는 내리는데

김영배

 

넘겨놓고 받아놓고 벌써 1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바랐는지

알 수가 없네

 

준다고 마지못해 받았더니만

돌아온 건 쓰라린 아픔뿐

상처받은 임들과 같이 울고 있다

 

할 말조차 입 다물게 하는

배려 없는 당신이기에

눈물 훔치고 있다

 

갈무리도 가시지 않은 동트기 전

가로등도 두 눈 멀뚱히 떠 있고

푸근함 속에 겨울비는 내리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

갈 곳조차 알 수 없는 나는

홀로 외롭게 방황하고 있다

 

 

 

겨울비

김영수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겨울비라니 섬찟하다

몸이 부르르 떨린다

 

이불을 끌어당겨

머리 위까지 덮는다

 

이불 속에서 최대한

버틸 생각이었지만

 

점점 더 또렷해지는

빗방울 소리에 자리를 뜨고

 

아쉬운 눈은 창문을 향하지만

다시 전해오는 싸늘한 전율

 

겨울비는 심술궂은 시어머니

차가운 눈빛처럼 섬뜩하다

 

 

 

플라타너스 잎사귀에 내리는 겨울비

김영자

 

겨울비가 일어선다.

벽돌 빛 보도 위에 죽은 자처럼 눈을 감은 플라타너스 잎사귀 하나

그 잎사귀 한쪽 끝을 밟고 일어서는 겨울비가 낮은 목소리로 묻는다

갈색 우산 속에서 너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작은 몸을 숨기며

어둠의 창을 하늘처럼 열면 시간의 어깨 너머로 눈부신 빛줄기 몰려올까

광화문 골목 한쪽 낙서로 덮인 카페의 사방 벽면을 바라보다가

돌아오는 길 떨어진 잎사귀 끝에 내려앉는 젊은이의 기타 소리가

카페의 문을 밀고 따라 나왔을까 아직은 먼 풀빛 내며 겨울비 속에서 솟아오르니

 

 

 

겨울 찬비

김영제

 

똑같은 시간

똑같은 장소에서

해의 길이만 바뀌었을 뿐인데

일 년도 못 채우고

세상과 안녕함에

너무도 억을하다면서

슬피 울며 마지막까지 남았던 삶

그마저 채찍 치며

잔인하게 송두리채 뺏아간

매정한 겨울비여

너두 어차피 언젠가는 떠나야 할 텐데

너무 한다고 생각지 않니

 

호하며 뿜은

뿌여언 하얀 입김

나와 창문사이에 비가 되어 내리고

하얗게 성에맺혀

얼어붙은 창문은

바람이 데리고 온 눈에 파묻혀 간다.

푸르렀던 꿈

푸르렀던 계절

모두가 한순간이야

또다시 돌아 올 수 없는 슬픔속에

한 잎 두 잎 떨어지면

내 몸도 쇠하고 내 맘도 쇠하게 하니

난 네가 정말 싫어

 

 

 

겨울비

김용화

 

겨울에

비가 내린다

까맣게 떼 지어 가는

비오리 떼

 

드넓은 삽교 평야가

흠뻑 젖는다

 

돌팔매를 던지면

옴츠리며 날아가는

 

술친구 만나서

섯다판이나 벌일까

 

배추밭에 소변보던 옥련이를

생각하며

 

싸리밭에 식식대는

멧돼지 꿈이나 꾸어 볼까

 

 

 

겨울비

김인숙

 

차가울 것만 같은

인정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 같은

 

낯설고 시린 그대가

창문을 두드리네요

 

눈물을 삼킨 탓이겠지요.

차마 표현을 못 한 모습이겠지요.

 

그대라고 어찌

살그머니

애교부리고 싶지 않을까요

 

강렬하게 뜨거워지고 싶지 않을까요

 

감성을 적시는

분위기 품고 싶지 않을까요

 

어찌 차갑기만 하겠어요

외로운 마음

이미 그대에게 젖어

 

이렇게 그리운 눈물

비처럼 쏟아지는데요

 

 

 

겨울비

김재덕

 

함박눈이 내릴 것 같은 하늘

차디찬 가랑비가 얼굴에 스미어

잠자던 감성을 깨운다

 

에둘러 전하던 진심이

차가운 메아리에 흐느끼지도

고개 숙이지도 않던 문명의 이기심

 

하늘의 슬픈 메시지를 알면서도

자연과 환경을 제쳐놓고

죽을 둥 살 둥 지옥문 두드리는 인간

 

아서라,

소한 집에서 염치없이 날궂이 하는데

동동주 권하며 반길 일인가

 

새소리가 사라지고

꽃과 단풍을 볼 수 없다면

계절마저 기억에서 사라질 텐데

 

춥지 않은 소한에

빗방울 소리가 달갑지 않은 것이

나만의 애먼 예감일까

 

 

 

마지막 겨울비

김정남

 

얼음 같은 빗줄기가

차가운 공기와 함께

현란한 몸부림으로

봄날의 푸릇한 세계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먼동 튼 아침,

기나긴 어둠을 뚫고

여정의 빚을 사모했지만

빗줄기의 발소리에

수다 스럽던 자신의 옛 마음들은

어디론지 다 사라져 버리고

추위를 순간 잊은 듯

잠시동안 어지러움에

현기증을 느낀다

 

100년도 아닌 잠시만의

색채를 드러내는 겨울의 서정이

이리저리 휘저어 찾아오는

꽃샘추위의 출발선 앞에

맥을 잃은 빗줄기의 눈빛으로

오늘 하루도 맞춰 가며 살아가라고

내 안에 풍운을 던진다

 

 

 

겨울비

김정택

 

세월을 느껴보는 이른 잠

깨어보니

형산강 넉넉함이 새벽을

품어 안고

창밖에 낙수 소리가 지난 추억

두들기네

 

내리는 빗소리는 차가운

바람 몰아

떨어진 낙엽 위에 깊은 정

스며들어

지난날 사연 하나를 더듬어서

회상한다

 

 

 

겨울비 내리는 날

김정택

 

가지 끝

낙수 소리

이별의 노래인가

 

가야 할

운명 앞에

매달린 잎새 하나

 

보내야

다시 또 오는

인연의 슬픔인지

 

 

 

겨울비

김정호

 

밤사이

아무도 모르게

소리 없이 내리는

그대는

내 사랑입니다

 

빛깔도 없이

투명한 눈물로

살며시 다가와

내 마음 흠뻑 적시는

그대는

내 그리움입니다

 

 

 

겨울비

김종석

 

겨울비는 따뜻하다

아직 봄이 오기는 이르다

빗속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비를 맞으며 걷는다

 

비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오랜만에 맞는 비

지난날의 모든 것이

잊혀져 가는 듯하다

 

겨울비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은 실비로 변해 주었다

 

새로 태어나는

마음으로 살기로 했는데

지난날을 모두 기억에서

지워 버려야 할까요

 

그녀는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짧은 만남

그것만 남기고

모든 걸 지워야겠다.

 

 

 

겨울비

김종순

 

겨울비

아직은 떠나기를 거부한 잔설을

묵은 부스럼 같아 껍질을 벗긴다

 

덧입은 옷을 벗어 하늘을 가린다

고독이 겹겹이 빗물처럼

우산 꼭지에 내려 산산이 부서지면,

빗소리는

귓불을 향해 귀고리처럼 매달린다

촉촉이 젖고 싶단다

으스러지게 감아오는 거리를

쏘다니고 만다

 

겨울비는 밤을 잊고 산다

바람도 잊는 날이면,

도란도란 사랑방 사람 냄새가 그립다

추억을 굽는 밤을 재촉하며

새벽을 쉬어 가겠지.

 

 

 

겨울비는 당신의 눈물인가요

김철현

 

당신의 슬픔이라 여기겠습니다.

눈이 비 되어 내리는 슬픈 사연을

 

먼저 돌아서는 뒷모습은

절대 보이지 않을 거라던 그 약속이

헛되어 버리던 날

씁쓸한 미소 속에 남아 있던

그 눈물이라 여기겠습니다.

 

나이 들어 기력이 쇠할지라도

그저 함께만 있어 주면 좋겠다던

어렵지 않은 부탁을 남기고

미처 곁에 있어 주지도 못했는데

떠나야 했던 그 아픔이라 여기겠습니다.

 

당신의 눈물이라 여기겠습니다.

나를 잊지 않으려 눈이 비 되어 내리는 사연을

 

 

 

겨울비

김해인

 

비가 오는가

굴고개 구비진 언덕 위에

검게 그슬린 아스팔트 덮인 찻길에

고드름 늘이우는 낙엽송 가지에도

겨울비는 내리는가

빈속에 털어 넣은 소주

빗줄기 따라 내려오는 불빛아래

오르다 멈추어선 명치끝이 쓰린데

어쩌자고 잠 을 깨어

이 밤 빗소리를 듣는가

개울섶에 숨어자는 청둥오리

멀고 먼 고향하늘이 젖어 들 까

나래에 앉은 빗방울을 털어내고

쭉지속에 머리 감추어 잠 을 청할 때

검불이된 여뀌잎도 드러 눕건만

비 가 오는가

아무 듣는 이 없는 이 밤에

누구를 얼리우려 겨울비 내리는가

잠 못 들어 붉어진 두 눈 가에

겨울비 주룩주룩 밤새워 내리는가

 

 

 

겨울비

김현주

 

찬 공기가

스며드는 이른 새벽

창문을 두드리면서

어둠 속의 공연

이보다 완벽한 무대는 없으리

 

날개 접고

움츠렸던 겨울 나목

산과 들이 들썩이고

씨앗들 꼼지락거리는 소리

 

몸살을 앓고 있는 목련 나무

화들짝 기지개를 편다

 

흥겨운 비의 난타

봄길을 여는 소리

설레는 마음으로 마중하리

 

 

 

겨울비

김희경

 

가벼이 나리는 눈이 되지 못하여

그림내 그리는 눈물이 되었습니다

구름 망루에서야 비로소 깨닫는 참회비 되었습니다

 

당신의 겨울 창에 부딪는 비 되어서라도

젖은 무거움 부서지는 일이라면

수백 번, 수천 번이라도 부딪치겠습니다

 

보이지 않는 모습을 간과한 시선 속에

많은 오류와 시행착오의 시간 속에

흐릿한 세상을 탓한 흐려진 나 속에

정작 부서져야 할 것은

내 안의 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파져서야 사랑인 줄 알게 된 뒤늦음도

슬픔에 직면해서야 눈물 많은 세상을 알게 됨도

보이지 않던 곳을 살피는 가슴이게 한다는 것을

부서진 맑은 낮아짐으로 하여 진정

아름다움도 피어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여, 수만 번 수억 번이라도 부딪치겠습니다

 

혹여 당신의 겨울 창에

아직 남은 미련이 하얗게 머문다 해도

선연한 미소, 그 온기만으로도 녹는 이내 가슴

아래로 아래로 기꺼이 흐르겠습니다

 

가벼이 나리는 눈의 하얀 나비 숨 되진 못하였으나

가벼이 부서져 나비 깨우는 봄의 숨 되겠습니다

 

 

 

겨울비가 내린다

김희선

 

검은 하늘에서

추적추적

몸서리치도록 서럽게

겨울비가 내린다

 

영정사진 속

꽃같이 고운 모습

가엾어서 어이할꼬

 

서른여섯

못다 한 짧은 생애

애달프다

 

이 겨울비가 그치고 나면

머지않아 새봄이 올 텐데

그 아픔 다 녹여줄 텐데

 

조금만 더 참지

조금만 더 기다리지

 

 

 

차가운 겨울비는 내리고

김희선

 

차가운 겨울비를 맞으면

뼛속 깊숙이까지

한기가 스며든다

 

무심한 너의 흔적은

폐부 깊숙이 파고들어

통증을 일으킨다

 

추억이 데려다준 거리에는

음악조차 흐르지 않고

황량한 마음 밭에는

차가운 겨울비가 내린다

 

애당초

기대하지 않았다면

실망해야 할 것도 없겠지만

 

비우고 덜어내어도

다시 샘솟는

너를 향한 그리움

차가운 겨울비에 젖는다

 

 

 

겨울비

나상국

 

어두운 밤부터

하늘 깊숙이 언 땅 밀어내고

비는 내린다

 

차갑게 차갑게 어둠을 적시며

내린다

저렇게 눈이 시리도록 겨울비가

 

밤이면 늘 찾아와

밤새도록 창문에 서성이며

잠든 머리맡을 맴돌던 밤손님은

오늘은 왠지 오지 않고

 

나 홀로 외로이 잠든 밤

긴 잠 흔들어 깨워 놓고도

아직 멍한 가슴을 향해 내린다.

 

성에가 껴 흐릿한 창문 넘어

노원 정보 도서관 앞

작은 공원의 배롱나무

맨몸으로 비에 젖는 아침

 

약수터 옆 매실나무

단풍나무

칠엽수

발목에 걸린 눈은 녹지 않고

시린 발끝 모아 서로 의지하며

서로의 체온을 공유하며

꼿꼿이 서 있는데

 

겨울비는 쉬지도 않고

밤을 지새워 눈물이 되어 내린다.

 

저리도 서럽게

눈물이 되어 내린다.

 

 

 

겨울비 내리는 날에

나상국

 

아무런 예보도 없이

거리에

겨울비가 내리네요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옷이 다 젖어

온몸이 비에 젖네요

이 비를 맞으며

내 마음도

당신 생각으로

따뜻하게

흠뻑 젖어 들고 싶네요.

 

 

 

겨울비 내 마음속 고요를 적신다

나상국

 

곤한 밤 뒤척이다가

무심한 잠결에

들은 소리

 

사그락사그락

눈 내리는 소리였을까

가슴속 깊은 우물을 만들며

살며시 저며 드는

빗소리였을까

 

새벽에 진눈깨비가 내렸다는데

빗소리였고

눈 내리는 소리였었나 보다

 

창문 밖

해가 뜨지 않은 거리

쓸쓸히 내리는 저 겨울비

유리창에 얼비치는

내 마음속

고요를 차갑게 적신다

 

 

 

겨울비는 내리고

나상국

 

입동 지나고

며칠째

뼈마디가 욱신거린다며

어머님 몸져누우시고

끄물끄물한 날씨

비가 올 것 같다더니

저렇게 비가 내린다

빨랫줄에 널어놓은

빨래도 겆지 않고

외출한 사이를

비집고 굵은 비가 내린다

기분이 낮게 가라앉은

거리에 쏟아지는 빗방울

붉게

노랗게

파랗게

쉼 없이 떨어진다

오가던 그 많던 사람은

보이지 않고

경적 소리만 요란한

자동차 행렬이

비와 몸싸움을 하면서

거리를 가득 채운다

벌거벗은 나무

줄지어 서서

온몸에 전율이 일도록

겨울비를 맞고 있다

 

 

 

소한에 내리는 겨울비

나상국

 

입동 지나고도

한참

추워야 한다는데

추워야 제맛이라는데

이름값도 못했다는

소한에

삼일 간이나

눈이 아닌 비가

겨울비가 내린단다

대한이 소한 집에 놀러 왔다가

얼어 죽었다던데

얼어 죽기는커녕

비에 홀딱 젖어서 왔다 갈 것 같다

하긴 겨울나무들도

저렇게

옷을 홀딱

홀라당 벗고 서서

눈 아닌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비에 후줄근하게 젖고 있다

 

 

 

겨울비

나호열

 

오랜만에 아궁이에 불을 지피나 보다

저 푸스무레하고 아스무레한

턱없이 부족하지만

온 가족이 둘러앉아 몇 숟갈 들 수 있는 눈빛으로

한 봉지쌀을 일고 있나보다

눈물도 가난해져서 뜨물같이 얼굴 가리며 내리는 비

내 몸의 꽃눈을 짚으며

멀리서 오는 사람처럼

달그락거리며 그릇 부딪는 소리

남은 허기는 아직 남은 따스한 냄새를 채우고

조금씩 귀가 커져가는 듯한

이월의 예감처럼

떠오를 듯 말 듯 아련한 이름처럼

아직도 남은 반만큼의 허기로

겨울비 내린다

 

 

 

겨울비

노연희

 

낮과 밤 짙은 구름

들어찬 하늘도 젖어

분수처럼 내려오고

 

수척한 추억

거슬러 오르자

꿈조차 타 버린다

 

가지를 떠나 길바닥에

풀칠한 듯 달라붙은

은행잎 서로 꿰어 주고

 

흐드러진 공간 속에서

손도 발도 몸도

고인 허물 씻어 내린다

 

 

 

겨울비

도분순

 

창문을 두들기는 빗소리

봄을 부르는 겨울비이려나

촉촉이 가슴을 적신다

 

나목에 속삭이며 인사를 하지만

헐벗은 채 많이도 추웠을 건데

오들오들 떠는 모습이 안쓰럽다

 

겨우내 목마름 달래는 듯

보슬비 가득 안아주는

나목의 또 다른 모습은

인생살이 참모습의 표출이런가

 

마음껏 품은 사랑에 보답하듯

흐느끼는 가지마다

눈물을 뚝뚝 떨구는 나목

 

냉가슴 앓던 외로움과 그리움에

사무친 마음 빗물에 정화되어

아픔 속에 꽃봉오리 피우나 보다

 

아직, 차가운 바람과 햇살인데

겨울비가 반가운 것은

가슴에 남은 그리움인가 봅니다

 

 

 

늦겨울 비

도종환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고 있습니다

애들에게 찬송가를 가르치는 아보님 목소리가

빗소리 속에서 두런두런 들려옵니다

당신을 가슴 아프게 했던 사람들을

나는 용서합니다

나도 용서받아야 할 많은 일들 속에 살았었음을

너무도 크게 아는 까닭입니다

당신의 머릿속에 잊혀지지 않는 많은 시간들을

당신도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이 비가 그치고 이 땅에도 또다시 맑은 날이 오면

온통 뜬 바람뿐이던 당신과 나의 삶에도

봄은 새 떼처럼 돌아올 겁니다.

얼었던 땅을 녹이는 당신의

빗줄기 같은 마음 받아 두 손을 씻고

눈물 없는 기도를 올릴 수 있는

그런 날은 올 겁니다.

 

 

 

겨울비

도지현

 

시계(視界)가 어둡다

어디서부터가 시작이고

어디까지가 끝인지

가늠할 수 없는 곳

모든 것이 질척인다

 

싸늘하게 식어가는

겨울의 차가운 공기보다

더 싸늘해진 가슴

이제 가슴에까지

싸늘한 비가 내린다

 

시계時計의 똑딱하는

그 소리마저 공허하고

차가운 공명으로 울리는

긴 한숨 소리

겨울비와 함께 동행하는데

 

 

 

겨울비

도현영

 

스산한 바람을 따라온 겨울비

내 마음을 알아주는 듯

촉촉이 가슴을 적신다

 

동풍으로 내리던 비가

역풍을 맞은 빗줄기 되어

바람결에 부딪혀 기세에 눌린

찬 바람이 비 사이로 불어와

그 옛날 그리움 몰고 온다

 

떨어진 빗방울

아스팔트 위 나뒹굴고

움츠린 육신을 오들 하게 흔들어 댄다

 

요리조리 춤추는 듯한 모습으로

휘날리던 빗방울은

한 폭의 수채화가 그려져 가는

 

우산 속 여인의 가슴에 안긴 추억을

빗방울이 삼켜버린다

 

봄비를 기다리는데

처량하게 내리는 겨울비는

여인의 영혼마저 적시려는 듯

세차게 몰아친다

 

갈 길이 아직 먼 여정

허벅지 밑에서 아우성이다

 

 

 

겨울비 소리

랑승만

 

추우신가요.

가슴이 떨려요.

 

떨리시는가요.

가슴이 설레여요.

 

차라리 고요하신가요.

마음이 오히려 따뜻해져요.

 

겨울비 소리에

숨어서 우시는 달빛 한 줄기.

 

온 우주(宇宙)를 아프게 적시는

춥디추운 나그네 구름 소리

 

 

 

겨울비

민미경

 

초연히 저물어가는 세상

 

겨울비 내리며

그리운 이름

지울 수 없는 이름

 

빗물로 지웠다가

다시 빗물에 써보기를

진종일 반복하는

마약 같은 사랑

 

흔들리는

젖은 눈망울

별빛으로 여울지는

언제나 그 자리에

 

등 넝쿨 흔들리며

가슴은 벌써

빗물 넘쳐흐른다

 

 

 

겨울비

박고은

 

애타고

그립고

보고파

남몰래 숨겨둔 열정

 

비구름 피어

그대의 뜨락에

 

그만 떨구는 빗방울

 

외면치 말고

온몸으로,

 

그대

받아주실래요

 

 

 

겨울비 오는 날에

박광호

 

세상 살아가는 삶의 질도 달라지고

구세대 신세대 사고의 방식도 달라지는데

사계절 기후조차 달라지는가?

 

소한 지난 이틀에 비가 억수로 내리고

제주엔 유채꽃 만발하고 홍매화 피어나며

때아닌 코스모스도 피었다네.

 

어릴 적 겨울은 청명한 하늘에 맑은 공기

삼한사온이라 하였거늘

지금은 삼한사미란 새로운 말에

미세먼지 천지가 돼버렸으니

 

이 나라 이 지구의 기후변화가

어떻게 달라지고 어떤 재앙을 불러올지

정말 염려스럽고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봄을 부르는 겨울비

박광호

 

기진한 환자 링거를 맞듯

메마른 대지에 겨울비 내려

몸은 비록 헐벗어 여위었지만

새 생명 탄생의 수혈인 양

숲들의 숨결은 가쁘다

 

잿빛 하늘로 무거운 한 낮

바람은 잠들고

봄을 부르는 겨울비에

여린 나뭇가지마다

은구슬 열리는데

마음은 왜 이리 애달픈 것일까

 

무상한 세월에

허전한 마음 구석 있음인데도

그 무엇 채울 수 없는

여린 가슴의 설움

 

이래저래 심란한 마음 밭에

겨울비 내려

 

봄을 기다리는 여윈 가슴에

희망의 꽃망울 안아본다.

 

 

 

겨울비

박남준

 

세상은 왜 이리 눈물만 나는지

속절없이 쓰러져 쓰러져 울며

당신께 보내는 나의 눈물방울

뚝뚝, - 흐를 길 없는

 

 

 

겨울비

박명옥

 

어스름한 불빛따라

마음을 여는 사내가 있다

외길을 걷고 걷다가

생각만큼 멀쑥하니 키만 커버린

그 사내

젊었을 때는 휘날리는 창칼이 되어

뭇 밤길 밟는 여성들, 가슴도

숱하니 도려냈을 법도 했건만

오늘 밤에는

갈기갈기 찢겨진 포스터만 휘날리면서

나의 맨 가슴 적시며 후드기고 있다

떠돌던 봄의 향취 아주 잠깐

그리워한 죄밖에 없는데

 

 

 

겨울비

박목철

 

오키나와 여행길에

무너져 흔적만 남은 고성(古城) 터에서

한 송이 벚꽃을 보았다

잎새도 다 떠나버린 앙상한 가지에

애잔하게 매달려

화려한 봄날의 추억을 잊지 못하는

 

겨울비가 내렸다

소설(小雪) 대설(大雪) 지난 겨울의 중턱에

계절을 헛짚은 미안함에

머뭇대듯 내리는 진눈깨비가 아니다

주룩주룩

당당한 겨울비

 

촛불 잔치가 요란하다

 

나라님은 잡범(雜犯) 반열에 오르고

 

저마다 대권(大權) 주자(走者)라 떠벌리는데

목구멍에 거미줄 치게 생겼다는 바닥 것들 아우성

빗소리에 묻혀 아스라하다

 

비를 내려? 눈을 뿌려?

구름인들 제정신이 있을까

우리의 자화상(自畵像)같이 추적대는 겨울비가 애끓다.

우산을 펴야 하나 그냥 맞아야 하나,

겨울비에 움츠리는 겨울 남자

 

 

 

겨울비

박상희

 

겨울비 내리는 밤은

창 너머로 들리는 이야기가 길다

 

가로등 불빛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겨울이라 우기는 12월의 첫날

 

마지막 남은 잎사귀를 떨어뜨리며

미워서가 아니라고 정녕 아니라고

 

뚝뚝 흐르는 눈물들을 애써 다독이며

그냥 시간들이 자꾸 가버린 거라고

 

흐르는 것은 빗물이라고 빗물이라고

달래며 들려주는 이야기들이

밤이 깊도록 들린다

 

다소곳이 잠을 청해보지만

처마 끝 떨어지는 빗물

가을을 보내는 젖은 소리가 서럽다

 

긴긴 시간들의 정만큼이나

그리움으로 서러움으로

밤이 깊도록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겨울비

 

 

 

겨울비는 내리고

박숙경

 

대한을 앞에 두고 비 오신다

 

신파조에 적반하장을 버무린 말들이 둥둥 떠다닌다

 

구체적인 슬픔이 아니라

그냥 뭔가가 슬퍼지는 그런 시간이랄까

 

어제는 소용없는 말을 얼마나 했는가

 

지금은 또 얼마나 소중한 순간인가

 

무언가 알 것 같다고 느꼈을 때

이미 세상은 깊은 강물의 소용돌이

강물도 때로는 돌아보고 싶은 순간이 있을 것이다

 

불행하지 않았으니 잘 살았다

 

내가 나여서 얼마나 다행인가

 

누군가를 다독여주는 빗소리엔

바흐의 무반주 첼로음이 잘 어울리는 날이다

 

 

 

겨울비

박순영

 

3, 밖을 내려다본다.

무슨 놈의 겨울비가

이리 거칠게 내린담

 

한 밤 내내

일필휘지로 갈겨쓰는,

그것을 순순히 받아 적는 땅을 바라본다.

머물 수 없음에 스치듯 만나

나를 기억하는 그 짧은 순간에도

저리 거칠게

나도 네 가슴을 후벼 팠으리

 

설령 우리 잠시 머물다 떠나야 하더라도

땅이 가슴 열어 저리 고이 품듯

지금은 순하게 너를 품으라고

겨울비가 나를 고쳐 쓰고 있다

 

 

 

겨울비

박인걸

 

1

나도 가슴이 아픈데

너는 얼마나 더 아프겠느냐?

하늘도 먹빛으로 물들고

가슴에 파인 상처마다

차가운 눈물이 가득 고였다.

이렇게 사방으로 길이 막힐 때면

위로 길이 있다 하지만

하늘마저 내려앉아

허우적거리는 네가

거미줄에 걸린 나비 같아

차가운 겨울비가

뼛속까지 시리게 하나 보다.

산다는 것은 이렇게

빙벽(氷壁)등산객 같아

수없이 미끄러지더라도

다시 로프를 잡아야 하리

체념하라고 말하고 싶어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기에

오늘은 내리는 빗물 만큼

나도 널 위해 실컷 울어주리.

 

 

2

가지 끝에 매달린

마지막 몇몇 잎 새가

겨울비를 맞으며

힘들게 버티고 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매달려 살아온 시간들

무너지기 싫어

끝까지 견디었지만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삶의 한계를 느끼며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운명의 시간 앞에서

 

고독과 외로움의

애처로운 몸부림에도

차가운 겨울비는

긍휼이라곤 없었다.

 

끈질긴 빗줄기에

속절없이 떨어지는

초라한 잎 새가

마냥 가엽기만 하다.

 

 

3

갈비뼈를 시리게 하는 비가

진눈깨비에 섞여 내리는 날이면

묻어버리지 못한 추억이

어느 강가를 떠돈다.

 

숫한 벌판을 건너와

되돌아갈 수 없는 거리에 섰어도

다 타버린 추억에서

조그만 불씨가 되살아난다.

 

거기에 이르는 길목에는

바리케이드가 가로막혀 있지만

이런 날에는 어겨서라도

그 자리에 가고 싶다.

 

새벽녘 열차 기적이

비에 젖은 감정을 크게 흔들고

행선지 없이 떠돌던 가슴은

그대 있는 곳으로 막 달린다

 

 

4

아스팔트를 뛰어다니는

겨울비 발자국 소리가

어렴풋이 잠든 새벽 귓가에

애닮은 리듬으로 들려온다.

 

나뭇잎 모두 떨어져

완충지대 없는 허공에서

곤두박질친 물방울들이

낙엽처럼 낮은 곳으로 쌓인다.

 

추락하면 밑바닥에서

사정없이 뒹굴어야 하는

신분 잃은 어떤 노동자의

눈물만큼이나 차갑다.

 

겨울 빗물은 가슴으로 흘러

폐부 깊은 곳으로 흐르고

sticky floor으로 달려가는

어느 가장의 뒤를 따라간다

 

 

 

겨울 밤비

박인걸

 

까마득한 허공은

비의 고향이 아니다.

그리움이 있는 곳을 향해

일제히 몸을 던진다.

 

한 치 앞이 가늠되지 않지만

겪어본 기억을 되살려

두려움에 온몸이 떨려도

과감히 모험을 택한다.

 

겨울 하늘은 차갑고

곤두박질은 아찔하나

그리움을 찾아가려면

자신을 던져야 한다.

 

존재는 여지없이 흔들리고

산산이 부서지더라도

밤새 목 놓아 울며

목숨을 운명에 신탁(信託)한다.

 

여전히 밤은 깊고

바람은 사나우나

비가 걷는 발자국 소리가

몽롱한 귓전을 스친다.

 

 

 

찬비

박인걸

 

을씨년스런 초겨울 비에

간당간당하던 나뭇잎들이

힘없이 곤두박질칠 때

내 가슴 한편이 서늘하다.

 

못 다한 시간들을 아쉬워하며

잎들은 저항(抵抗)할 틈도 없이

붙잡았던 손을 놓아야 하는

낙엽의 마지막길이 슬프다.

 

어지럽게 널린 잎들은

우아함은커녕 빗물에 젖어

초라한 몰골로 나뒹구니

단풍잎 신세가 너무 가엽다.

 

삶이란 과연 무엇이든가

품위(品位)도 위엄도 유린된 채

순식간에 곤두박질쳐야 하는

가랑잎 같은 것이던가.

 

겨울을 재촉하는 찬비가

잎들을 쓸어 가던 날

()의 깊은 사념(思念)들이

내 안에서 피고 사라진다.

 

 

 

초겨울비

박인걸

 

가을이 떠난 자리에

뒷마무리를 하고 있다.

눌어붙은 앙금과

너절한 추억들도 지운다.

떠날 때는 깨끗이

한 점 미련도 두지 말고

새 세상을 꿈꾸려면

마침표를 찍어야 하리

뼛속까지 씻어 내리는

차디찬 빗줄기는

헝클어진 감정도 추슬러

정신을 번쩍 들게 한다.

지난날은 모두 잊어야지

그리고 맞이해야 하리

혹한(酷寒)의 시련이 덤벼들어도

온몸으로 이겨 내면서

 

 

 

겨울비

박재성

 

예전에 둘이 걷던 길

가로등 하나

 

그리고 빈 가슴

홀로 우는 밤

겨울 너도 우니

 

 

 

겨울비라도 쏟아지면

박정숙

 

가슴 시리게 하는 차가운 감촉의

빗줄기가 몸서리쳐지게 쓸쓸한 날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닌데

괜스레 창밖을 내다보다 젖어 있는

앙상한 나무줄기가 가슴을 시큰거리게 한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서 농익어 간다고 하는데

비를 바라보는 내 눈도

세월이 흐르면서 여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아리도록 시립고 아프게 보이는 건

아직도 나는

나이만 먹었지 마음은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인가 보다

 

지금,

유리창 밖의 풍경에

흔들리는 마음과 눈에 한차례

겨울비라도

쏟아지면 그대로 울어 버릴 것 같다

 

 

 

겨울비

박준

 

비는 당신 없이 처음 내리고 손에는 어둠인지 주름인지 모를 너울이 지는 밤입니다

사람을 잃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광장으로 마음은 곧잘 나섰지만

약을 먹기 위해 물을 끓이는 일이 오늘을 보내는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한결 나아진 것 같은 귓병에 안도하는 일은 그다음이었고 끓인 물을 식히려

두어 번 저어나가다 여름의 세찬 빗소리를 떠올려보는 것은 이제 나중의 일이 되었습니다

 

 

 

겨울비

박진표

 

비가 옵니다

우수가 지난겨울의 하늘이

봄맞이하려고 대청소하는가 봅니다

 

가지마다 청명하게

초롱초롱 매달린

귀여운 아기 빗방울

이쁘고 참 귀엽습니다

 

오는 이 비가

세상 더러운 모든 것

다 씻어주었음 좋겠습니다

 

계절이 바뀌는 길목은

언제나 아쉬움과 미련이

자꾸만 뒤돌아보게 합니다

 

알고 보면 그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음을

가슴으로 느끼며 배웁니다

 

겨울비 내리는 오늘은

빗속을 거닐며

내 마음도 깨끗이 씻을까 합니다

 

계절이 바뀌듯

내 마음도 꽃단장하고서

곱게 오시는

생명의 봄맞이하게 말입니다

 

어렵고 힘든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꿈과 희망이 있기에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눈물이 나도록 말입니다

 

 

 

축산항(丑山港) - 겨울비

박태일

 

늦은 바다에 비 내린다.

수평선을 따르던 갈매기의 물자멱도 그치고

술청의 군데군데 자리를 잡는 사내들.

겨울이 되어 많이 생각하는 사람과

사람의 일들이 빗줄기 사이로 어지러운데

내항(內港)은 갑자기 어두워져서

아슬아슬하게 방파제로 나가는 길도 잃는다.

그렇겠지, 어둠이 내리는 잠시 그 사이

바람에 바람이 빠지는 높이로 알 수 없는

젊음의 낙마.

언제나 모서리로 밀려나는

생생한 기억은 지친다

 

 

 

겨울비

박희자

 

그림자 길게 세운 겨울날

가뭄의 건조함 위에서

()처럼 비가 내립니다

 

지나가는

차가운 바람 소리에

성긴 등 가죽을

덮지 못한 채

서성대는 나목처럼

빨갛게 속살 드러낸

그 사이로

빗물의 냉기가

굽이치며 흘러내리고

서러운 가슴 저려옵니다

 

계절의 인연 따라

이 또한

시간이 지나면

더 맑은 눈으로

그대를 바라볼 수 있는

또 다른 나의 눈이 되겠지요

 

대지가 갈증에

몸부림을 칠 때

시간을 당겨온

보드라운 겨울비가

촉촉한 채움을 내려두고

실비단처럼

소리 없이 지나가네요

 

 

 

겨울비가 내린다

배우식

 

여보!

, 오늘 사진 한 번 멋있게 찍었다!

며칠 후면,

신문에 내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나오겠지?

TV에도 내 얼굴이 빵빵하게 나올 테고그치?

사인해달라고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면? 아이고!

여보, 생각만 해도 죽여준다

시집이 너무너무 잘 팔리면

그 돈 다 어디다 쌓아놓지?

, 전업 시인하기를 잘 했다? 그치?

그치? 여보, 저번에 어떤 사람들이

떼돈 벌었다고 부러워했었잖아?

걔네들, 이젠 까불지 말라고 그래! 짜식들말야!

그런데, 여보!

겨울비가 내린다

지금,

뇌종양 사진이 영정처럼 걸려 있는 내 손 위로

겨울비가 내린다

 

 

 

겨울비

백설부

 

겹질린 발로

물빛 꽃신을 신고

 

은백의 일몰을

비올라로 연주한다면

 

영혼까지 스미는

겨울비가 오려나

 

웃자란 허상의

그림자가 현실까지

침범해 오더라도

 

그리운 기억 하나만으로도

비 빛에 감사의

시를 쓰리라

 

 

 

겨울비

백승운

 

자신을 위해

아무 미련 없이

나의 기억 싹 지우고

떠나버린

무정한 당신이여

 

그렇게 사랑한다는

진실한 사랑의 구애

세상에 꽃 피우고

아낌없이 가슴으로

사랑했는데

 

행복의 단꿈

떨어진 낙엽처럼

바람 따라 떠나고

흘리고 가는

사랑했다는 말

 

하얗게 얼어

결국은 깨어지며

갈라져 세상 무너졌는데

아무 일 없다는 듯

차갑게 돌아와

 

떨리는 목소리로

밤새

마음의 문 열어 달라

조르고 있는 너

잠깐 그리움에 울컥

 

달려 나가 안아줄까

손을 내밀다 멈춰서서

촉촉하게 스며드는 눈물

말없이 흘리며

 

다시 또 아픔 만들지 말자며

타버린 가슴으로

시린 그리움을

울컥 토해내면

새로운 아침이 찾아오겠지

 

 

 

겨울비

백원기

 

추운 건지 아닌지 헷갈린다

작년 12월부터 두 달 동안 겪은 한파

무섭게 들이닥치고 쏟아지던 눈

아직도 곳곳에 쌓여 있는 눈

산꼭대기마다 하얀 고깔이 얼어 있다

 

아닌 밤중에 무슨 빗소리냐

낼 모레가 입춘이라 봄 흉내 내느라

주룩주룩 주루 루 룩 비가 온다

반가운 봄비가 아니라

때아닌 겨울비가 음산하다

하도 질려서일까 비가 눈으로 보이니

 

변덕스럽게, 풀리는 날처럼 보여도

절대로 속고 싶지 않기에

보여도 못 본 척 들려도 못 들은 척하련다

너무 오랫동안 거듭된 실망의 날씨

옛날 정겹던 삼한사온 쫓아내고

슬그머니 들어앉은 변덕쟁이 날씨가 밉다

 

 

 

겨울비

서봉석

 

추위가 추위 같지 않아서

눈도 못 되고

시름째로 그냥 내리는 비

세상이 세상 같지 않아서

식은 마음으로 비 내리는 눈

오늘도 어제도 그리고 내일도

진눈깨비나 내려야 할 만큼 척척한 날

눈조차 되기를 잊어버려서

그냥 G 장조로 흐르는

정 이월 무거움

눈으로 내려야 하는데

나는

눈으로 내려야 하는데

횡설수설하는 비

치매 걸린 겨울

외출 중 하늘 기상대

 

 

 

봄으로 흐르는 겨울비

서봉석

 

봄으로 가자 가자 하면서도 겨울비는 우네.

흰 눈밭에

잔설처럼 버린 동백

그 붉던 꽃빛 애처로워서도 울고

먼 산 후미진 길섶

찬바람에 설핏 기대어 놓고

아직도 눈조차 그려 주지 못한

그 겨울 그 눈사람 생각에 운다

벙글며 피려는지 꽃망울 붉던 매화

향기 함께 나누자고 보낸 문안에

아직도 답 없는 그 사람 생각에 울고

더는 늙지 말자고 지워 그린 사진 위로

빗기듯 지나는 일월에도 구겨지는 얼굴

그 주름살 보는 일로 허물어지면서도 운다.

하필이면

비 맞으며 오는 사람보다

빗속을 떠난 뒷모습이 그리워서도 우는,

처마 끝에 내려서 그리움으로 흐르는 빗소리에

쓰다 말다 지워 버린 옛날, 그 글귀가, 뭐라는지

뭐라는지, 희미해서도 운다

지금,

겨울비는 세상으로 내리고

가슴으로는 빗소리가 흐른다.

 

 

 

겨울비

서지월

 

참 좋은 사람들 다 떠나가고

추적추적 겨울비 내린다

 

참 좋은 사람들 다 떠나있는

천리 밖 숲에는 보송보송 흰 눈이 내릴까

 

지금 내 곁에는 아무도 없고

지금 내 곁에는 흐르지 않는 물

 

물대접을 마주하고 시를 쓴다

 

 

 

겨울비

성백군

 

겨울이라 그런지

요 며칠 하와이에서도 춥다

온종일 구름으로 가득한 하늘

내일은 눈이 올라나

 

비다

얼마나 다행인가

어제 예상했던 것처럼 눈이 왔다면

저 푸른 초록들이

어쩔 뻔했겠나

 

풀잎에 앉은 빗방울이

아침 햇빛에 눈을 떤다

바다 건너 조국에서는

한파에, 폭설에, 추워죽겠다는데

여기서는 물놀이 하는 사람들로 해변이 분주하다

 

서로 다르다고 싸울 게 없다.

내 것 가지고 즐기면 감사하기도 바쁜데

창조주 하나님이 세상을 다양하게 만드셨는데,

이 비가 봄, 여름,가을,

세상 사느라고 강팍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겨울비가 되었으면……,

 

주룩주룩 비야 내려라

 

 

 

겨울 소나기

성백군

 

소나기가

빗금을 치며 차창에 떨어집니다

붙어있는 빗방울도 있고

골을 이루며 흘러내리는 빗방울도 있습니다

 

머물고 싶어도

가야 하고

가고 싶어도 머물러야 하는 둘 사이에

내 마음 스며듭니다

 

가만히 귀 기울여

빗소리 더듬으며 되짚어 보면

마른 옥수숫대 서걱거리는 쓸쓸한 풍경과,

화로 속 잉걸불에 언 손가락 펴지는 따뜻한 느낌과,

지내놓고 보면 삶이 다 그리움입니다.

 

살아도 그만

안 살아도 그만인 세상이지만

내 안에 있는 생명이 거룩하기에

겨울 소나기 지나갈 때까지 빗소리 헤아리며

내 삶의 운전석에 앉아 봄을 기다립니다

 

 

 

겨울비

소순희

 

돌아갈 곳도 없다

두려울 것 하나 없는

이 나이 먹고

빈 길에서

오는 비 맞으며

고향의 푸른 보리밭에 내릴

잠언인지

자꾸만

자꾸만 귀를 기울인다

 

 

 

겨울비

손병흥

 

한 자락의 찬바람 홀씨 가득하게 품은 채

시리도록 얼어붙은 나목들 적시는 숨결 같은

실같이 그리운 가슴 속 고독한 외로움의 눈물

 

도무지 모를 목말랐던 애증에 온몸 찬비 맞고서

뒤돌아 얼 만큼 더 기다려야만 방황이 끝날지 모를

여전히 아련해진 그리움 겨울의 초입부터 쌓여만 가는

 

마음속 한켠 귀퉁이 자리한 텅 빈 끝자락 들녘처럼

비로소 자리에 없을 때 느껴 본 깊어져 간 그의 빈자리

기약 없이 삶 전체로 내딛는 닫힌 언 땅 내딛는 인생길

 

아쉬움 가득 찬 내 마음 촉촉이 적시며 씻겨주던 쓸쓸함

미처 감추지 못한 차가움이 떨구어 버린 땅거미 서러운 눈물

얼어버린 추억마저 말없이 냉가슴 어루만져 달래 보는 잿빛 하늘

 

 

 

겨울비

송문헌

 

몸을 드러낸 채 미이라가 되어 젖고 있는

마로니에 가지, 가지마다 낡은

비오롱 소리 빗금 치며 내어 걸리고

겨울비는 칸타타 종일 동숭동에

뼈 속 뼈 속 파고든다

 

사방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너

거리엔 낯선 이들만 가득 오가고

너의 쓸쓸하게 웃는 모습 홀연히

떠오른다 떠오른다

 

누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라 했던가

기다리는 마음 오늘은 비 오는 저 어둠의 풍경을

그 누가 젖은 창밖에 밤새도록 걸어두고 있는가

 

 

 

너에게 가고 싶다

송영희

 

산등성이 노을로 아름다울 때

너를 추억한다

어둑어둑 해 넘어갈 때

가로등 하나둘씩 피어나면

너를 향한 내 마음도

고운 옷 입고 피어난다

 

겨울비 추적추적 내리는 날은

그리운 마음 빗줄기에 싣고

너의 뜰에 소나기처럼 내리고 싶다

한 줄기 바람으로 머물고 싶다

 

회색빛 하늘이 열리고

첫눈이 선물처럼 내리는 날엔

내 마음은 흰 눈이 되고

바람이 되어

순백의 세상에서

다시 한번 너를 꿈꾸어 본다

 

 

 

겨울비

송정숙

 

유리창보다 맑은

고독의 분신

 

무너져 내린 동백꽃이

부르는 노래

 

지리산이 된 사람에게

띄우는 편지

 

 

 

겨울비

송태열

 

눈이 아니고 왠 비일까.

투둑투둑 우산을 때리는 겨울비

따스한 님의 품이 그리운 계절

초겨울 스산함이 가슴을 여민다.

 

이 겨울비는 왠지 낯설다.

움츠린 가슴에 희미해진 꿈

사랑이 넘실대는 우산 속 연인들

아련한 추억 속에 님 생각 절로 난다

 

낙엽 진 길가에 촉촉히 내리는 비

차가운 마음 녹여줄 그대 생각

마음 한켠에 그리움 하나

겨울비에 내 마음은 몹시도 춥다

 

 

 

겨울에 내리는 비

신성호

 

님 그리워 지새는 긴긴 겨울밤에

찬바람이 쉼 없이 불어와서

그리움의 흔적을 지우려 애를 쓰고

 

겨울비는 소리 없이 찾아와서

앙상한 나뭇가지의 마지막 잎새조차

더욱 쓸쓸하게 적셔주고 있구나

 

찬바람과 비에 젖은 초목들은

지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긴 겨울을 이겨 내려 안간힘을 쓰는데

 

겨울비는 그 심정을 짐작도 못 하고

속절없이 밤새도록 내리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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