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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규 겨울밤 노래

황인숙 겨울밤

 

 

 

겨울밤

강순옥

 

1

딩동! 언니

들나물 부침 너무 맛있어

반죽 가져왔어요

 

기름에

부치기만 하면 되어요

 

깊어가는 밤 풍경 밀어

 

양파 깻잎

매우 고추 넣었는데

부추 향 꿀꺽꿀꺽 맛을 삼킨다

 

지글지글

콩기름보다 더 고소한 맛이

땅속 깊이 잠든 눈송이 향내일까

 

가슴 깊이 퍼 올린 사랑일까

겨울밤은 불빛에 녹아 봄으로 간다

 

 

2

밤사이 함박눈이 내려

소복소복 쌓일수록

예나 지금이나

설렌 마음은 밖으로 나간다

 

보는 순간 고맙다고 인사하고

산다는 것은 견디는 거야

눈 위에 내 마음 그려놓고

 

산토끼처럼 뛰어 보고

강아지들처럼 뒹굴어 보고

루돌프 사슴처럼 썰매도 타고 싶다

 

배고픈 새는 눈꽃을 쪼아 먹고

마음이 고픈 사람은

눈 위에 발자국 새기며

눈보라 치는 설산에 오른다

 

삶과 죽음 넘나드는

히말라야산맥 산악인처럼

407호 병실에서 등반하듯이

흰 눈 속에 파묻힌 설산 야

 

루프를 잡고 한 발짝

한 발짝씩 옮겨가며

눈 덮인 에베레스트산이

주저앉도록 당기며 오르고 또 오른다

 

 

 

겨울밤

강인호

 

골목길 가로등 불빛 아래

내리던 눈도 이제 그쳤는데

늦은 밤 누군가에게 보내는

애절한 그리움 길을 잃었나

새청거리 지나온 찬바람에

전화선 혼자서 울고 있다

 

 

 

겨울밤을 싣고 열차는 달린다

강현옥

 

달빛의

정화된 야 색을 품고

밤 열차를 탔다

꿈과 신념으로

달리는 열차

전조등이 모든 어둠을 삼키며

끝이 보이지 않는 길

터널과 교각을 지날 때

나의 신념이 덜컹거리면

어색하게 허공에서

서로 상충하며 부서진다

마음에서 마음으로만 오고 가는

무영의 꽃과 향기

마음과 마음에 뿌리를 묻고

살아온 무영의 꽃

달리는 차장으로 갑자기

밀어닥친 그리움의 꽃이

겨울바람 속으로 지려고 한다

모질게 견디어 온 꽃들이

 

 

 

수정동 푸른 밤

고영

 

계단 끝에 지친 달이 걸린 겨울밤

뼈만 남은 연탄재가 건성으로 읽은 책처럼 쌓여가고

나는 비닐장판 위에 검게 눌어붙어

숨 가쁘게 계단을 올라오는 바람을 읽는다

쪽창에 걸려 떠는 은사시나무 그림자

저 그림자를 불러들이기엔 방이 너무 건조하다

나는 건조하다, 문밖엔 십 년 전부터 그대가 서성이고 있다

그대의 발자국에 찍힌 욕망도 건조하다

그대가 처음 내게로 오던 밤 눈이 내렸다

그대의 눈동자 속엔 지금도 건조한 눈이 내리고

나는 무심히 창밖을 본다

내 사랑은 뜨거웠지만 돌아서면 늘 환각이었고

행복은 죽음 뒤에나 찾아오는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죽음을 동경할 수만은 없는 일

이제 그만 그대를 불러들이고 싶다

그대를 십 년 동안이나 문밖에 세워 두었다

-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대의 눈동자 속엔 아직도 마약 같은 눈이 내리고

 

 

 

초겨울 밤 내리는 비

고은영

 

불빛에 노출된 물체의 그림자들

싸늘한 노상에 기다랗게 누웠다

, 선연하게 외로움 타는 어둠도

그리움의 예각을 치켜세우는 모서리

저 끈적이는 빗소리는 왜 이리 적막한 것이냐

비 색깔의 음악을 듣는다

한 많은 여인의 흐느낌 같은 음울한 멜로디

알 수 없는 외로움에 대해 묻고 싶은 밤이여

무채색 표정으로 잃어버린 언어를 되뇌는

너의 무게를 말해다오

크림쇼의 밤 풍경처럼 은유의 시어들이

활자가 되어 밤의 거리를 떠돌지만

작은 조각 하나 알아들을 수가 없다

인제 와서 그리움의 형상들이

명백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나는 왜 울고 싶은 것인가

 

 

 

그해 겨울밤

곽문환

 

어둠이 오면

살아있는 것들은

순례자의 행렬처럼

운명을 보자기에 쌓는다 그리고 시간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시간을 재고 있다

취한 채 떠나고 있다

거칠고 쓸쓸한 말

자만으로 가득찬 미소

아우슈비츠의 유령처럼 창백한 모습으로

서 있다

밤이 오면

 

 

 

겨울밤

곽종철

 

바람조차 문틈을 비집고 밀고 들어오는 추운 밤

외양간에 매여 놓은 얼룩이 수염에 고드름 달리는 밤

 

해님도 추위가 싫은지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황토방 구들장이 지글거리는 세평 남짓한 방에는

오라는 사람도 없지만 갈 데도 없는 온 식구가 모여

오손도손 이야기꽃으로 인생을 가꾼다.

 

화로에서 변신하는 고구마가 나올 때면

구수한 냄새 코끝을 스치고 군침이 입안에 돌면

시원한 동치미 그릇에 연신 숟가락질을 해대고 싶지만

나 아닌 당신 생각에 내 마음을 접는다.

 

온돌방보다 더 따뜻한 정이 흐르는 밤

긴긴밤이 짧기만 하여 호롱불도 밤을 새우는

아주 많은 이야깃거리를 품은 밤이로구나.

 

 

 

겨울밤

권오범

 

심연에서 파닥이는 언어들과 숨바꼭질해도

아까까지 불평 없던 넋

빌어먹을 찹쌀떡소리가 무단출입 해

집중력을 이간질하고 있다

 

메밀묵과 겨끔내기로

인내를 시험하듯

허기를 고래고래 부추기며

아다지오 보폭으로

 

느닷없이 담배연기 따라

시공을 초월해보는 유년의 초가삼간

뒤란에 묻힌 독이 침묵으로 익혀낸

무수대강이 노리끼리한 동치미가 그립다

 

가마솥에 덴 고구마가 제격이었지

찐 감자도 그만이었고

펄펄 끓인 눌은밥생각 굴뚝같아

불쌍하게 구시렁대는 뱃속

 

 

 

겨울밤

권태인

 

소여물 끓이며

군불 땐 방

검게 탄 아랫목

뜨거운 엉덩이

이리저리 옮겨 다닐 때

 

무릎베개한 손자에게

옛날이야기 보따리

풀어내는 할머니와

귀를 쫑긋 세운 손자

 

화톳불에서 익어가는 고구마

옛날이야기 속 그 냄새

구수하게 퍼져나가고

 

마당 지키는 삽사리

뭘 보고 짖는 것인지

할머니의 구수한 이야기에

겨울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겨울밤 단전(斷電)의 어둠

김광섭

 

어느 원인에서 오는

이 처량한 결과들이뇨

마른 가지에 봄을 기다리는

적은 감정들

이 한 둥이에 모여서

헐벗은 새같이 지저귀니

 

저 하늘이 푸르건

저 구름이 어둡건

저 별들이 반짝이건

()함 많은 이 땅에서

자라는 적은 생명들

 

꺼진 등불 아래

꿈은 옛날 고운 옷

그대로 입고 있건만

이 눈물겨운 촛대 위에

불을 켜 줄 사람은 누구뇨

 

 

 

겨울밤

김기택

 

넝마와 깨진 플라스틱, 썩은 음식마다

불꽃들은 튼튼하게 뿌리박고 피어 있네

귀찮았던 무게들이 이렇게 뜨거웠었구나

고약했던 냄새들이 이렇게 환했었구나

남김없이 불을 빼내고도 여전히 차가울 공기 속에서

불을 다 삼키고 나면 더욱 튼튼해질 어둠 속에서

 

 

 

겨울 밤길에서

김덕성

 

햇살이 숨어버린

골목을 빠져나와 큰길 들어서니

칼바람이 불어온다

 

올겨울은 춥지 않아

겨울답지 않다고 하지만

밤은 겨울 추위가 기세당당해

움칫 물러선다

 

차가운 바람길을 막으며

흰 눈은 오지 않아 더 우울해지고

고개 넘어 간간이 들려오는

꽃이 핀 봄소식

 

네온 불 밝은 밤길에는

TV서 전하는 신종 코로나 목소리에

시름만 늘어나 그만

살아가는 의미를 잃은 듯싶은

나그네의 마스크 행렬

 

 

 

겨울밤 연가

김덕성

 

밤하늘에 벌어지는

수없이 많은 별들이 사랑을 나누며

환상으로 꾸며지는 깊은 밤

 

깊어가는 겨울밤인데

잠들은 고즈넉한 밤이라 그런지

깊숙이 무쳤던 그리움이

커피 향에 실려온다

 

하나 둘 생각의 날개를 달고

별빛에 수를 놓으며

기억이 되살아나는 사랑

 

그리움도

사랑이라 했던가

가슴엔 정열의 불길

그녀의 사랑의 노래 들려오는 듯

사랑의 겨울밤

 

 

 

겨울밤의 사랑

김덕성

 

간밤에 잠이 오지 않아

이런저런 생각에 밤은 깊어 가는데

불현듯이 다가오는 그리움으로

사랑의 시를 다시 쓴다

 

세월에 묻혀 살아 온 나날들

아름다운 이야기꽃으로 활짝 피우며

익어가던 사랑

지금은 그리움이 되고

 

지나 간 듯하면서도

가까이 다가와 안기며 속삭이는 그리움

너의 가슴에 품은 진실한 사랑만은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이제라도 다시 와서

사랑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게 지펴 주렴

꺼진 내 가슴에

 

 

 

겨울밤의 세레나데

김덕성

 

겨울밤이었지요.

문득 그녀가 생각이 나

찻집을 찾아 자리했는데

글쎄 내 마음을 알았는지

그녀와 만날 때 마다 들으며

사랑을 나눈 슈베르트 세레나데가

고운 바이올린의 연주로 들려왔어요

난 그만 눈을 감고 깊이 감동에 젖었고

그 바이올린의 감미로운 선율에 매료되면서

커피 향 속에 그녀의 얼굴이 떠올랐고

세레나데가 흘러나오는 동안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지 못하는

황홀한 순간이 흘어 갔지요

쓰고 달콤한 시공이 흐르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젊은 날의 환상적인

추억이지요

 

 

 

겨울밤의 소곡

김덕성

 

깊어 가는 긴긴 겨울밤

날개달린 듯 훨훨 날아오는 환상

되살아나는 기억들

 

울컥해지면서

달빛 향해 날아가며 벌서 가슴에는

불그스름한 노을은 꿈으로 가고

어두움으로 물들인다

 

흑암으로 이룬 세상인양

그냥 밝게 빛나면 잃어버리고 말

그림자를 끌어안은 듯싶은 밤

파도소리 너무 처량하다

 

흑암 속에 사랑의 그리움

이토록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또렷해지는 흘러간 세월

하나 둘 토해내는 그리움은

사랑의 불꽃이 아닐까

 

 

 

겨울밤의 연가

김덕성

 

1

수많은 별들이

사랑을 속삭이며 수놓는 밤

외로움이 깊어가고

 

긴 겨울밤인데

누구도 없는 고요한 밤이라 그런지

깊숙이 무쳤던 그리움이

커피 향에 젖는다

 

그 오랜 시공이

흐르고 또 흘러온 그리움인데

생각의 날개를 달고 하나둘

떠오름은 어쩐 일인고

 

그리움은 사랑

가슴엔 정열도 젊은이 못지않게

화산처럼 불타오르는데

어디선가 세레나데 들려오는

깊어가는 밤

 

 

2

별들의 잔치

밤하늘에 벌어지는지

수없이 많은 별들이 사랑을 나누며

환상으로 꾸며지는 깊은 밤

 

깊어가는 겨울밤인데

고즈넉한 밤이라 그런지

깊숙이 무쳤던 그리움이

커피 향에 실려온다

 

하나둘 생각의 날개를 달고

반짝이는 별빛에 곱게 수를 놓는데

기억이 되살아나는 사랑

 

꿈처럼 떠오르는 정열의 불길

눈빛 빛나는 그녀

들려오는 밤의 세레나데

가슴에는 사랑이 익어 가는데

겨울밤은 깊어가고

 

 

 

겨울밤의 추억

김덕성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는 밤

동네 어디선가 풍겨와

코를 간지럼 피는 군고구마 냄새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려운 시기였지

시꺼멓게 구울 린 손으로

군고구마를 주시던

인자하시던 어머니

 

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호호 불면서 먹던 그 군고구마

노란 빛깔에 말랑말랑했고

달콤한 냄새는 환상적이었지

 

추운 밤 따끈한 군고구마

일품이었던 먹거리

어머니가 그리워지더니

눈물이 맺힌다

 

 

 

겨울밤의 편지

김덕성

 

겨울밤

누구 하나 찾아주는 이 없는

외로움이 왈칵 스며들어도

의욕을 잃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은

사랑이 있기 때문이야

 

어두움이 내리고

세상이 얼어

모두 정체되어 진 엄동설한에

사랑하면서 산다는 것이

아름다운 삶임을

요즘에 와서 더 느껴지는구나

 

이제 우린

이 모습 이 대로 희망을 품고

사랑하면서 정답게 살아 가자구나

생명력 있는 투지로

봄을 기다리면서

 

 

 

겨울밤의 향기

김덕성

 

겨울바람 속에

그대의 사랑이 담긴

사랑의 향기가 불어와 안깁니다

 

그 바람에 실려 오는 향기

그리움으로 귀중하게 간직해 두었던

그리운 그대

 

사람들끼리 어울리면서

사랑으로 다리를 놓아주면서

사랑을 베풀던 그대

 

한겨울 고향 집 아랫목에서

따스하게 꽃피우던 사랑 이야기처럼

정이 넘치던 그대

 

깊어가는 겨울 밤

그리움으로 밀려오는 그 향기는

그대의 향기입니다

 

 

 

겨울밤의 향수

김덕성

 

찬 바람 부는 겨울밤

거리는 한산한데 거니는 사람마다

옷깃을 여미고

 

바람처럼 살랑거리며

살며시 스미는 애달픈 그리움은

기다리지 않아도 찾아오는

겨울밤의 향수

 

지금처럼 아파트가 아니고

낡고 허루한 오막살이 집인데도

그리 좋을 수가 없었는데

이별의 아픔을 안은 채

눈물로 메운다

 

어느새 꿈이 되어

이슬에 촉촉이 젖어 있는 눈가엔

향수로 떠오르는 어머니와 누나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되고

 

 

 

겨울밤 이야기

김덕성

 

1

눈 내리는 날이면

둘이서 다정하게 눈길을 걸어가던

마음에 담아두었던 그리움

가슴에 자리한다

 

정열이 넘친

고운 사랑의 입맞춤으로

정답게 다가오는 사랑의 미소

그 흔적은 무엇으로도

지울 수 없다

 

겸손한 임의 향기

소박한 사랑이 꿈처럼 흐르는

겨울 들녘에 피었던 이젠

여인이 되었을 그 사랑

 

아련히 떠오르는 사랑

그림자처럼 다가오는 그리움

뜨거운 사랑 이야기

따뜻하게 겨울밤을 데운다

 

 

2

겨울 밤거리에 나가면

얼마 전만 해도 구워 팔던 군고구마

겨울의 명물이었다

 

장작불 훨훨 타는 아궁이에서

구워낸 군고구마

따끈하고 말랑말랑한

노랑 속살 들어 낸 군고구마

 

지난날 어머니께서도

학교에서 돌아 온 나에게

아궁이에서 꺼내어

뜨거운 군고구마를 주셨다

 

어머니께서 주신 군고구마도

기름기가 잘잘 돌았고

어찌나 맛있게 먹던지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가 한 없이 그립다

 

 

 

가을밤의 녹턴

김상훈

 

알 듯 모를 듯한 눈물 한 올 안고

이 계절 처연하게 떨어지는 것들

 

술잔을 높이 들 때마다

조금씩 비워지는 술병처럼

저마다 언어를 하나씩 비워가며

쓸쓸하게 낙하하고 있다

 

계절이 깊어갈수록

바람과 갈잎의 술래잡기 행간에

눈곱 짓무른 그리움

 

청옥의 하늘 이마에 곧

간유리 같은 서리가 낄 것이다

 

추락하는 것은 늘 외로운 혼잣말

갈 때쯤 되고 보니

비로소 알 수 있는 언어

 

그러나 막상 표현할 길이 막막한

, 가을밤의 녹턴이여

 

 

 

겨울 달이 뜨는 밤

김수미

 

앙상한 가지 끝에 걸린

바람 한 조각

 

군에 간 아들생각에

겨울이 마냥 야속한 어머니

 

문풍지를 흔드는 바람소리에

벌컥 이며 냉수 한 사발 들이마신다.

 

군데군데 까맣게 눌어버린 장판지처럼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어머니의 가슴

 

뒷집 누렁이 짖는 소리에

애끛은 타박 한마디 내뱉는다.

 

겨울 달이 뜨는 밤

어머니 한숨 한 자락이 바람 타고

담장을 넘는다

 

 

 

겨울밤에 나무는 뭐 하지

김영수

 

긴긴 겨울밤 어둠속 나무들은 뭐 하지

, 여름, 가을의 흔적을 지우개로 지우고,

어린 나무들은 엄마 나무가 일러준 대로

땅속에 깊이 뿌리를 뻗어 겨울을 준비했겠지

 

한밤중에 나무를 바라보면 느낄 수 있지

서있는 일이 힘들고 바람맞는 일이 고단해

손과 발이 저리면 땅의 기운으로 마사지하고

우걱우걱 신음 소리 내며 고단함을 달래는 것을

 

어쩌면 가을까지 정성으로 키운 나뭇잎을

하나하나 떨구어 이불처럼 포근히 덮고서

나무는 비밀공간에서 귀를 쫑긋 보초 세우고

봄을 맞으려고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

 

봄이 오면 피울 아기 잎순, 아가 꽃순 돌보며

어떤 잎순을 먼저 언제 어디에 어떻게 피울지

꽃은 언제 피우는 게 좋을지 계획을 세우느라

나무의 지끈지끈 머리 앓는 소리 들리는 겨울밤

 

 

 

겨울밤

김용화

 

오늘처럼 숫눈발 푹푹 쏟아붓는 밤이었을 것이다

 

사립 밖엔

하얀 눈 함뿍 쓰고 가을 떡 돌리는 소녀가 있었다

 

더운 김 모락모락 오르는 방금 쪄낸

붉은 수수떡,

 

나풀거리는 석유등 불빛에

살짜기 드러난 그녀의 뺨도 한껏 상기되는 밤이었다

 

 

 

겨울밤에는

김의중

 

겨울밤에는

아득한 전설이 있습니다.

내 생명의 시작에서부터

아버지와 할아버지

증조, 고조로 더듬어 올라가는

가문과 조상들의 까마득한 옛 이야기....

 

겨울밤에는

베개 밑 그리움이 있습니다.

시집장가 가던 날

못 잊을 첫사랑, 정답던 소꿉동무

내가 선택한 운명 속에

아직도 말 못한 은밀한 사연 하나

 

겨울밤에는

문풍지 울리는 바람 소리가 있습니다.

문밖은 차가운 세상

더러는 반짝이는 별처럼 아름답지만

맨몸으로 나서기에는

너무 춥고 어둡습니다.

 

겨울밤에는

홀로 밝혀두는 외로운 전등 하나 있습니다.

긴 밤 다하도록, 시인의 가슴으로 써 내려가는

고독한 사랑 이야기

창밖에는 함박눈이 하얗게

계절을 덮어갑니다.

 

 

 

겨울밤

김인숙

 

겨울에 찾아오는 밤은

눈시울이 젖는다

 

부슬부슬 빗소리 들리면

오지 못한 사람이

기다려진다

 

군고구마 모락모락 향기 오르고

김장김치도 맛있게 익어가는 밤

작은 소리에도 자꾸만

기다림이 깊어간다

 

겨울밤은 따뜻해야 한다

냉골에 누워 있어도

그 기다림으로 자글자글 끓어야 한다

 

 

 

겨울밤

김의중

 

겨울이

하루의 끝에 서서

긴 그림자로

지는 해를 지켜보고 있다.

 

노을은

매정한 한풍(寒風)에 밀려

한껏 펼치고 싶은 날개를 접은 채

어둠의 그늘 속에 소리 없이 묻혀버린다.

 

한 해()가 다 지나도록

동그라미 안에 맴돌던 사연들....

시간을 조각 내어

밤하늘에 하나가득 뿌려본다.

 

나는 다만

이 밤의 적막 속에

따스한 가슴을 그리는

그리움이 타버린

하얀 달빛일 뿐

 

 

 

긴 겨울밤의 그리움

김정래

 

초 심지에 타들어 가는

5촉짜리 불빛으로 새벽을 밝히고

보내 버린 시간들과

지금 오는 시간들을 짝 맞추어

겨울밤의 그리움을 엮어 봅니다

 

아스팔트 위를 뒹구는

낙엽의 바스락거림에

눈물 한 방울 뚝 떨어질 것만 같은

그리움이 조금씩 내려앉은

별빛 위로 가만히 다가섭니다

 

한숨 섞인 나의 새벽 노래가

가만히 어둠 속을 헤집고 지나가면

내 마음 그대 안에 집을 짓고

그대가 내 미는 빠알간 입술에

살그머니 내 입술을 마주 댑니다

 

나 그대 사랑하여

그리움에 취한 나의 애상

세상이 투명한 옷으로 갈아입을 시간은

앞으로도 많이 남았는데

하얀 입김으로 쓰는 긴 겨울밤의 그리움

 

 

 

겨울밤의 독백

김정선

 

스멀스멀 기어들던 땅거미

뱃속 가득 어둠을 채워 넣으면

흔들의자에 앉아 타로 이야기를 듣는다

 

새벽 공기와 서성이는 것

밤새 창밖을 응시하는 것

그런 것들이 별이 되는 과정이란

웃지 못할 말들을 들어가며

진지한 척 앉아 있었다

 

어차피 인생이 속고 속이는 것이라면

망각이란 단어가 존재한다는 것이

참 다행스러운 일 아닌가

그 와중, 흘낏흘낏 도끼 눈으로

나는 창밖을 바라보곤 했다

낮에 보았던 흰 달을 다시 보고 싶었지만

달빛은 어디에도 없다

순간 생각한다

빈 가지만 남겨질 겨울나무처럼

모든 추억을 다 떨구고 난 후

너도 내 안에 빈 가지로 남게 될까?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의문부호로 인해

나는 어느새 별이 되어 있었다

 

타로 이야기처럼

 

 

 

겨울밤이 눈에 묻히다

김지향

 

나는 밤내 눈에 젖는 겨울 한 컷 일기장에 그려 넣는다

 

이제 연거푸 토해낸다 포식한 하늘이 벨트를 풀고

너무 오랜 시간 받아먹은 사람의 아우성, 넋두리, 비명을

비비고 버무려 하얗게 바랜 속 깊은 응어리를 게워낸다

멍울멍울 맺힌 빛바랜 녹말 알갱이를 버티칼 밖으로 부어낸다

사람들의 가슴에서 오래오래 쏘아 올린 토혈이 이제 되쏟아져 내려도

스스로의 가슴에서 쌓인 가슴앓이가 뜯겨져 나간 세포 조각임을

모르는 사람들은 어린아이처럼 입을 열고 창가에 앉아

의미 없는 함박웃음을 밤내 눈 속에 묻는다

 

하늘에 가르마를 탄다 디지털로 가는 바람 갈기 한 줄

손에 든 면도칼로 웅크린 떠돌이별 수염을 깎으려지만

미리 깎여 하얗게 빛 꺼진 별은 뜬 눈 채 잠이 들었다

뼈만 남은 플라타너스가 하늘의 속앓이를 아는지 팔을 치켜든 채

하늘 심장에 바싹 귀를 대고 숨 죽여 얼어 있다

하늘과 땅, 땅과 땅 경계를 넘나들며 조금씩

살을 헐어내고 있는 공기의 폐장도 숨을 몰아쉬고 있다

 

하늘 위의 하늘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퀘이사만이

끝나가는 길고 긴 아날로그의 지상 삶을 알고 있다

언젠가는 팽개치고 돌아설 시간의 속셈도 알고 있다

퀘이사가 알고 있는 시간이 한밤 우주를 붙들고 이제 잠을 씌우는지

이 간이역의 하얀 낙하산 속은 무거운 침묵만 깔려 있다

 

나는 밤내 일기장에서 나체로 있는 침묵 한 컷 집어 먹는다

 

 

 

겨울밤

김지헌

 

먼 항해를 준비합니다.

 

별들이 추워 몸을 움츠리고

숲이 그리워 하나둘씩

나뭇가지 그물에 걸립니다

 

나무를 흔들어 별들을 깨웁니다.

밤의 긴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

하나둘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바람이 스쳐 가는 골목

낯익은 불빛은 발걸음을 재촉하고

비로소 하루의 주름을 폅니다

 

이제는 잠들고 싶습니다

밤의 깊은 속살로 걸어 들어가

별을 이고 따뜻한 슬픔 속에

편안히 잠들고 싶습니다

 

 

 

겨울 밤비

김창환

 

눈이 올 거라고

추워질 거라고

 

아련한 추억

추위 속의 안녕

 

기대 반

걱정 반

 

얼기설기

눈이

밤비가 내린다

 

미리 달려간 뜨거운 가슴이

추억을 녹였나

 

그리운

하얀 밤이 흐른다

 

하얀 비가

가슴에 촉촉히 스민다

 

 

 

겨울밤의 꿈

김춘수

 

저녁 한동안 가난한 시민들의

살과 피를 데워 주고

밥상머리에

된장찌개도 데워 주고

아버지가 식후에 석간을 읽는 동안

아들이 식후에

이웃집 라디오를 엿듣는 동안

연탄가스는 가만가만히

쥐라기의 지층으로 내려간다

그날 밤

가난한 서울의 시민들은

꿈에 볼 것이다

날개에 산호빛 발톱을 달고

앞다리에 세 개나 새끼 공룡의

순금의 손을 달고

서양 어느 학자가

Archaeopteryx라 불렀다는

쥐라기의 새와 같은 새가 한 마리

연탄가스에 그을린 서울의 겨울의

제일 낮은 지붕 위에

내려와 앉는 것을

 

 

 

겨울밤

김태중

 

문틈 창호지에 바스락 겨울밤이

화롯불에 앉았다

토실한 가을이 톡톡 튀면서

고소한 밤을 뜨겁게 달구면

먼 옛날 할배가 들려주던

겨울밤 이야기가 생각난다

 

어느덧

머릿속은 아스라한 기억에 스미고

스르르 눈 감은 마음엔

구수한 고향이 모락모락 피는데

베갯잎 빨아 대는 까칠함은

어렴풋이 추억을 헤매었던가

 

아뿔사

토실하게 익은 밤 송이 벌어지듯

반쯤 열린 문틈같이

해벌쭉한 입가에 겨울밤이

배시시 미소 띠며

쪽잠을 자고 있다

 

 

 

겨울밤

나상국

 

1

어느 해

몹시도 추운 겨울 어느날

옹기종기 모여 앉은 아랫목

화롯불 깊이 묻어둔

아버지의 옛이야기가

군밤 터지듯 구수하게 익어 가던 밤

 

문밖 뜨락에는

늘 찾아와 서성이던

밤손님은 오질 않고

나란히 어깨동무한

검정 고무신과 털신의

발목이 묻히도록 수북히

하얀 눈이 내리고

 

시베리아 벌판에서

철새들 따라서

남방 한계선 넘어 남하한

성깔 사나운 겨울바람

길을 내 주지 않으려

문풍지를 잡고 혼절하도록

다투고 있다

 

밤은 깊어가도 어둡지 않던 밤

귀 쫑긋 세운 이야기 속으로

밤은 잠들지 못한 채

닭의 회치는 소리

화롯불도 재로 사그라진다

 

 

2

무너진 돌담 아래

바람이 몰려와 켜켜이 눕는다

수북이 쌓인 눈

별빛도 얼어버린 호수

산비탈을 타고 내려온

달그림자 빙그르르 미끄럼 타는 밤

굶주린 노루들 물이라도 마시려

숲을 헤치고 내려와 호수를 찾지만

호수는 오간 데 없고

눈밭을 뛰어다니며

달밤에 체조한다

새들이 잠자리 찾아든 대숲

불면증의 밤 뒤척이는 소리

눈꺼풀은 자꾸만 무겁게 내려앉고

귓가엔 대나무의 마디마디

살 섞는 소리

사각사각 사그락사그락

 

 

 

겨울밤 난망

나상국

 

눈 내리는 겨울밤

가만히 떠오르는

아득한 날의

기억의 저편

 

탱자나무 가시울타리 너머

희미한 불빛 아래

몰래 훔쳐본

사춘기 영희의

볼록 솟아오른 뽀얀 젖가슴처럼

 

속살이 꽉 여문

달빛

유유히 세월의 강을 건너

내게로 왔다

 

달빛 안은 내 마음

세찬 강바람에 흔들리며

하얀 눈 덮인 겨울 호수에

아스라이 뒹군다

 

켜켜이 쌓이는 그리움

깊어가는 밤

스스로 야위어 가고

새들도 나무도 사람도

모두가 잠든 시간

저 멀리 불 꺼진

인적도 드문

외딴집

 

컹컹

개 짖는 소리

지축을 흔들며

눈 오는

밤하늘의 고요를

허문다

 

 

 

겨울밤

나태주

 

1

향은 좀 더 먼 곳으로부터

아름다움은 좀 더

가슴속으로부터

 

촛불을 밝히면

조금씩

방안의 어둠이 밀려가듯이

 

찰랑찰랑 치마 아래

새하얀 버선목이

눈부시듯이

 

사랑은

좀 더 아득하게

눈웃음은 좀 더 은은하게

 

풀잎에

맑고 맑은 이슬

맺혀 있듯이

 

저고리 밑에

복주머니 달랑달랑

매달려서 흔들리듯이

 

 

2

아가, 잠자니?

아뇨.

여우 우는 소리 좀 들어봐.

아까부터 듣고 있는걸요

나도 여우 우는 소리에 잠이 깨었는데

메마른 울타리가 잠 못 들고

부석대는 밤,

잠 깨인 할머니가 무서우신가

자꾸만 말을 시키신다.

아가.

으응

옛날얘기 하나 해 줄까?

따뜻한 장판방 아랫목

이불 속으로 기어들면서 기어들면서

뒷동산 고목 나무에 부엉이가 우는 밤,

부엉이 따라 여우도 따라와 우는 밤,

겨울밤은 길고 길었다.

 

 

 

오늘 밤에 봄이 오려나

노정혜

 

오색 단풍은 간 곳을 몰라

남은 잎이 초라하다

 

어미 손을 놓기 싫다는 고집

얼마나 버틸까

 

팅 빈 들녘

찬 바람만 쎙쌩

 

벗은 가지에 새 옷을 입어려나

보리밭은 하얀 이불을 기다린다

 

찬 바람만 쌩쌩

 

겨울이 겨울다워야

행복한 봄을 만들지

 

오늘 밤에 눈이 오려나

하늘을 바라본다

 

 

 

겨울밤

노홍균

 

어떠한 난로가 겨울 찬바람 다 밀어낼 수 있겠는가

겨울 밤에는 사람, 사람이 모닥불 되어야 한다.

아린 손 내밀도록 기어코 살아 있어야 한다.

죽도록 추운 날에는 손끝만 따뜻해도 살 것 같지 않았던가

 

 

 

겨울밤

류종호

 

너무 썰렁해요 할머니

보릿고개 쌀독처럼

휑하니 비었어요

애장 무덤 뒤켠

시누대 바람이

오시시 털끝을 일켜요

산드러진 달빛이

시퍼렇게 흡뜬 밤

마실꾼의 발소리가

헛기침을 흘리고

기다림처럼 멀어져 가요

갈 데가 많은지

미끄러지듯 가요

곶감이라도 빼 먹어요

시린 무우쪽이라도 깎아 줘요

 

너무 썰렁해요 할머니

장국 후룩이는 소리

듣고 싶어요

산골 머슴아처럼

가난해도 좋으니

옛날얘기나 해 줘요

새침 없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 살았다는

나무꾼 얘기나 해 줘요

엉기둥 둥기둥

짝짜꿍이나 해 줘요

너무 시려요

정말이지 할머니

속도 모르고 시려요

쑥대 같은 밤이어요

 

 

 

겨울밤

문방순

 

꽁꽁 얼어있는 손발을 녹여주던

엄마의 품속

이 겨울엔

유난히도 그립습니다

 

그 엄마의 자리가

서툴러서일까

늘 자신이 없습니다

아직도

엄마의 품이 그리워 눈물이 납니다

 

아직도

난 엄마보다

그냥 딸이 되고 싶습니다

울 엄마도 그랬을까?

엄마보다

그냥

딸이 되고 싶었을까?

 

잠 못 드는 밤이

늘어 가고 있습니다

겨울은 깊어가고

겨울밤은 더 깊어지고

그리움은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어

눈물이 됩니다

 

 

 

겨울밤 소묘

문재학

 

1

앙상한 가지를 울리는 삭풍(朔風)

매서운 냉기로 얼어붙고

 

요요(寥寥)한 달빛의 긴 그림자

음영(陰影)으로 흔들리는 밤 풍경이

을씨년스런 한밤에

 

활활 타는

따뜻한 임의 품속이

한없이 그리워라.

 

추억의 마디마디마다

떠오르는 아련한 그 모습

 

못 잊어 괴로운 가슴에

터지는 한숨은

깊이를 모르고

 

넘치는 고독으로

잠 못 이루는 기나긴 밤

 

밝은 하늘을 수()놓는

무심한 기러기 떼 울음소리만

처량하게 귓전을 울리네

 

 

2

칼바람으로 우는 겨울밤

나목(裸木)에 걸린 만월(滿月)

잔설(殘雪) 위로

얼음장 빛을 쏟아낼수록

 

꿈결로 살아나는

그리운 임의 숨결

 

애수(哀愁)에 흐느끼는

뜨거운 눈물로 다가온다.

 

창문에 흔들리는

앙상한 달빛그림자

 

윙윙 차가운 바람 소리

텅 빈 가슴을 흔들수록

 

고독으로 얼어붙은 마음은

기나긴 밤

삼경(三更)으로 기울며

하얗게 부서져 내린다

 

 

3

삼라만상(森羅萬象)

적막 속에 얼어붙는

싸늘한 밤

 

쏟아지는 눈부신 만월(滿月)

짙어가는 나목(裸木)의 그림자는

심란(心亂)한 마음을 차갑게 짓누르고

 

꽁꽁 언 수면(水面) 위로

빤짝이는 달빛에 어린

애틋한 임의 환영(幻影)

자꾸만 서러움으로 밀려오는 밤

 

긴긴밤

소용돌이치는 상념 따라

코끝은 붉게 아려오는데

 

쨍그랑 깨질 것 같은

파란 하늘가로

끼룩끼룩 기러기 떼의 군무(群舞)

실루엣을 이루는 아름다운 광경이

한겨울 추위를 녹이고 있었다

 

 

 

겨울밤

문태준

 

저 싸락눈 소리를 내 높은 다락에 두었으면

저 싸락눈 소리를 방울 소리로 흔들었으면

저 싸락눈 소리를 너의 문을 두드리는 소리로 삼았으면

저 싸락눈들을 내 어머니의 내일 아침 그릇에 담았으면

 

 

 

겨울밤

박광호

 

싸늘한 창가에

겨울달이 걸쳐있다

 

백발 성긴 세월이

달빛에 반추되고

애환에 절은

인생여정의 뒤안길에

정체된 생활의 무거운 침묵이

밤과 함께 깊어진다

 

치솟은 키만큼이나

나이테 두른 나목으로

적막한 월야에 고독을 떨구며

삭풍에 허리 휜

갈대의 울음을 듣는다

 

~, 겨울밤은 이토록

품안에 새들 떠나버린

싸늘한 가슴에

눈물의 씨앗 하나 심어지는

외로운 밤인가

 

 

 

겨울밤의 애상

박광호

 

서녘의 검은 산너울엔

붉은 노을띠가 펼쳐 있고

중천엔 초승달이

별 하나 마주하고 떠 있네

 

어제로 소한을 보낸

겨울 밤하늘이 평화롭기도 하련만

거실에서 우러러보는 밤하늘에

그리움 젖어들고

덧없이 흘러간 청춘의 머~언 옛날이

망연히 떠오른다

 

부모님 나이 되어

울며 불러봐도

못 오실 부모님 그리웁고

멀잖은 여생에

하루하루의 삶이 한숨겹다

 

세상을 한하지만 말고

노년을 즐겁게 살자며

이런 저런 삶의 방법을 말들 하지만

내겐 소용이 없는 듯

고독한 겨울밤에

마음속 모닥불을 피워본다

 

 

 

겨울밤의 꿈

박동수

 

잠 설친 겨울 긴긴밤

툇마루 밑으로 눈이 쌓이고

처마 밑으로 스며드는

파란 달빛에 

고향 집 그리운 꿈이

가슴 밑으로 쌓여 드네

 

가고 수만 번 가도

또 가고픈

눈 속에 묻힌 하얀 초가집

겨울밤 꿈속에

고향 옛집이

눈앞을 흐리게 하네

 

 

 

차가운 겨울밤

박동수

 

흰 눈이 내리는 차가운 겨울밤

툇마루 밑으로

눈이 소복이 쌓이는

고향 집 그리움이

가슴 밑으로 쌓이네

 

잠들지 못하는 차가운 겨울 밤

초가집 처마 밑

파란 달빛이 스며드는

고향 집 어린 꿈에

눈앞이 흐려져 오네

 

걸어걸어 수 천 길 걸어간다해도

또 가고 가고픈 곳

눈 속에 묻힌 하얀 초가

고향 집 호롱불 빛이

따스하게 비추어 오네

 

 

 

겨울밤

박목월

 

천장 구멍에서 쥐가

얼굴을 쏙 내밀었다.

두 개의 수염이 짝 뻗은

쪼봇하고 조그많고 놀란 얼굴.

 

쩡쩡 얼음이

어는 밤.

얼음 위에 바싹바싹 달빛이

부서지는 밤.

 

오오 추워라.

아랫목 이불 속에 우리 아기가

고개를 폭 파묻었다.

방에는

일렁일렁 흔들리는 그림자.

아직도 아버지는

글을 쓰시는데

저절로 전등이 흔들리는 밤.

 

천장 구석에 쥐가

얼굴을 쏙 내밀었다.

새까만 두 눈이 또록한

쪼봇하고 조그맣고 놀란 얼굴.

 

오오 추워라

쩡 울린 저 소리는

추위에 날무대가리가 터진 게지.

추위에 독이 갈라진 게지.

새끼 있는 구멍으로

어서 가 자거라

 

 

 

겨울밤 흰 눈 내릴 때

박분필

 

살박살박

머리맡 탁상시계는

밤마다 깊은 독 속에서

시간의 흰 싸라기를 퍼낸다

 

그 흰쌀 퍼내는 소리가

달빛처럼 고요해질 때면

그 밤 내 잠은

숯불 속 군밤처럼 달다

 

 

 

함박눈 내리는 겨울밤

박영춘

 

무던히도 내려 쌓이는 눈

문풍지 하얀 밤

등잔 불빛 아래

무던히 책장 넘기는 학동

 

때 아닌 밤중 벌레 한 마리

문지방 넘으려다 떨어지고

또 넘으려다 미끄러지더니

새벽녘에는 그예 선을 넘었다

 

칠전팔기 벌레의 끈기를 보고

학동은 이를 앙다물었다

그렇다 하면 된다

 

밤새도록 눈은 무던히도 내려쌓였다

등잔 불빛 아래 깨달음 더욱 굳어졌다

벌레 제 세상 제 집 찾아갔다

다음 날 학동

상급학교 진학 시험에 일등 거머쥐었다

 

 

 

긴긴 겨울밤

박외도

 

긴긴 겨울밤은 한없이 추운 밤

빙판을 달려온 바람이 앙가슴 헤쳐

더더욱 고독하고 시린 밤이라

꺼져가는 불씨를 지펴야겠다

 

달그림자 차가운 밤거리에서

길 잃은 철새처럼 이방인이 되어도

잃어버린 꿈과 행복을 찾아

마지막 기회를 움켜쥘 일이다

 

가랑잎 날리던 앙상한 가지에

눈꽃들이 뽀송뽀송 피어나니

죽은 듯 의미 없는 생은 없기에

희망의 꿈들이 다시 태동한다

 

마음을 새롭게 운기조식하고

양말을 고쳐 신고 옷고름 고쳐 매니

황량한 가슴에도 희망의 꽃이 피어

미래의 행복한 꿈 움켜쥐려 한다

 

 

 

겨울밤

박용래

 

잠 이루지 못하는 밤 고향집 마늘밭에 눈은 쌓이리

잠 이루지 못하는 밤 추녀 밑 달빛은 쌓이리

발목을 벗고 물을 건너는 먼 마을

고향집 마당귀 바람은 잠을 자리

 

 

 

겨울밤

박인걸

 

그해 겨울은 긴긴밤이었다

달은 짙은 구름에 파묻혔고

빛나던 별은 눈에 띄지 않았다

끼룩거리며 하늘을 날던 기러기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미친바람은 나뭇가지를 비틀고

얼음장 밑에 갇힌 고기들은

퇴로(退路)를 찾지 못하여 두려웠다

아침 태양이 떠오르려면

아직도 멀기만 한데

한 줄기 빛도 없는 절망의 터널에서

연실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절망의 눈물을 쏟아야 했다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손을 잡아 주는 사람도

아니면 잡을 것을 던져주는 이도 없었다

나 홀로 허우적대며 외쳐야 했다

팔다리에는 거미가 기어오르고

눈에 불을 켠 늑대들은

저만치서 입맛을 다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은 물거품이 되었고

잡았던 외줄은 끊어지려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허공에 나를 던지고 싶었다

더 이상 나의 의지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바람 소리는 사납게 다가왔다.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는 나는

처연(悽然)히 눈을 감을 뿐이었다

어떤 미궁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각혈(咯血)을 하던 겨울밤이었다

 

 

 

그해 겨울밤

박인걸

 

 

퍼붓는 하얀 눈을 흠뻑 맞으며

눈밭에서 뛰어놀던 마을 바둑이

모락모락 오르는 저녁연기에

참새들 굴뚝 곁에 추위를 쫒고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적막한 마을

호롱불 하나 둘 창문 밝히고

화롯불 군고구마 익는 냄새에

재잘재잘 웃음소리 깊어가는 밤

누나 형 재미있는 옛날얘기에

철부지 비몽사몽 헤매던 꿈 길

다듬이 질 멀리서 정적을 깨면

아버지는 장단 맞춰 얘기 책 읽고

끔뻑이는 희미한 등잔 불 아래

양말을 꿰매시던 고운 어머니

이따금 지나가던 짓궂은 바람

문풍지 울릴 때면 무서워 떨던

어릴 적 자라나던 나의 요람아

죽어서도 잊지 못할 나의 고향아

밤눈이 소록소록 곱게 쌓이면

꿈에라도 그곳에 찾아가리라

 

 

2

거칠게 부는 겨울바람에

뒤뜰에 뻗은 산사나무 가지가

귀신 소리를 낼 때면 무서웠다.

윗방 낡은 문틈으로 바람이 새면

문풍지는 늙은 목소리로 울고

아이는 두려움에 엄마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양말을 꿰매시던 어머니는 나를

먼 꿈나라로 데려가곤 했다.

어떤 겨울 목침을 밴 아버지가

구슬픈 은율로 류충렬전을 읽을 때면

()이 구슬꿰미 같던 어머니는

옷소매로 연실 눈물을 훔쳤다.

무말랭이를 간식으로 먹었어도

가난이 서러운 줄 몰랐던 아이는

서울에는 초콜릿이 있는 줄 몰랐다.

제풀에 죽은 바람이 어디론가 떠나고

장작불에 구들장이 달아오르면

낡은 이불로 벗은 발만 덮어도

긴긴 겨울밤은 어머니 품만큼 따스했다.

이제 내 아버지보다 더 늙은 나는

아직도 그 해 겨울밤에 갇혀있다.

오늘 밤은 별들이 바람에 스친다

 

 

 

겨울 밤바다에서

박창기

 

그날 밤바다는

하얗게 울고 있었다

속살로 빚어낸 합창을

밀려가는 물결에 얹어 주면서

메시지를 흘리고 있었다

 

이따금

뭍을 두드리는 힘찬 팔매질

애써 외면하는 무딘 세월의 심사를

새벽을 붙잡고 물어도 대답이 없다

 

그래도 꺼져 가는 희망의 끝을 잡고

끝내 밤을 샌 눈에는

피빛 졸음이 하품을 하고

동행의 의미를 찾지 못한 발자국따라

나른한 의문이 함몰되고 있었다

 

 

 

그해 겨울밤은

박효찬

 

한라산 기슭

폭설로 인도가 차단되었다는 소식에

아버지는

먼 길 떠날 채비를 했다

옆집 홀로 사시던 할아버지

표고버섯밭 지기로 가 계신 곳 걱정으로

 

며칠이 지나도 소식조차 없으신 아버지

어머니의 걱정거리는

하얗게 내리는 눈과 함께

저녁놀 한숨 소리로 젖어 들고

꼬마 녀석들 웃음소리 뒷전으로 밀리고 나면

여기저기 너부러져 잠든 어린 자식들 모습

 

지붕을 삼켜버린 눈을 파내어 동굴을 만들고

백설같은 눈을 솥에 넣어 삶아 물을 만들고

온 세상의 하얀 눈으로 덮어버린 어둠에 갇힌

돌아온 아버지의 봇짐 속을 엿보며

화롯불 고구마 내음으로

그 해 겨울밤은 그렇게 깊어갔는데

 

"아버지 다음에 가실 때는 우리도 꼭 데리고 가주세요." 하며

 

 

 

겨울밤

박후식

 

눈이 내린다.

빈 뜰을 사색하는 나무 위에

나의 등불 위에

어둠을 쪼으며 눈이 내린다.

겨울 가지에

아득히 불을 밝히는 밤의 눈발

그 눈발에 섞이어

나의 등불은 밤을 떠난다.

무수한 밤의 낙서들이

나의 편린들이

불 꺼진 뜨락에 울고 있다.

밤새운 밤의 눈들이

가슴 찍힌 내 아낙들이

까만 선창에 끌려와 있다.

뱃전에 부딪는 파란 물빛과

달빛에 빛나는

바다 먼 비둘기의 발목.

그 슬픈 항로를

나는 끝내 버리지 못한다.

하현 새벽달이

바다의 옆구리에 떨어진다.

머리빗은 아낙들은

타버린 수평 끝에 울고 있다.

밤은 나의 갱도(坑道)에서

수심 깊은 항해를 계속하고

, 어디선가 얼음 깨는 소리

()을 깨는 소리

꽃들은 소리하고 있다.

눈이 내린다.

빈 뜰을 사색하는 나무 위에

나의 등불 위에

 

 

 

겨울밤이면

박희홍

 

세월 멈출 수 없다면

바람이라도 멈출 수 있다면

좋으련만 방법이 없다

 

홀로 지새우는 밤의

처량함에서 고요함은 오나

연륜의 지혜로움을 간직한

 

대숲은

청정함을 닮아보라며

사각사각 노래를 부르고

 

추워도 추운지 모르고

긴 밤 지새우려는

외로운 푸른 잎새

 

굿뜰이와 함께

바람 장단에 가무를 즐기니

흥이나, 날 새는 줄 모르네

 

* 굿뜰이 : ‘귀뚜라미의 방언

 

 

 

겨울밤

배갑병

 

추워 파란 별들이

들창 등불 가까이

옹기종기 모여있네

 

창문 너머

새근새근 잠든 아기

부럼부럼 하는구나

 

 

 

겨울밤이

배창호

 

그믐달이 초승달을 재촉하고

눈꽃은 삭풍에 침묵으로 일관해도

때 되면 환한 네,

일탈이면 어떠냐며 빙점을 찍었다

 

놓을 수 없는 질곡을

꼭 붙잡아 동동 걸어두고 싶어도

이별은 만남을 위한 준비라지만

영원한 게 없다는 것이 당연한 이치인데,

 

져버릴 수 없는 그리움이

날 어쩌지도 못한

몹쓸 정이란 놈을 차마 어 이하리야

 

날 새면

통정(通情)하길 바라는 마음인데도

내 안에 직관이 꿈적도 하지 않으니

온통,

눈꺼풀만 하얗도록 무겁다

 

 

 

동야(冬夜)

배창호

 

솔가지에 걸려있는 저녁놀이

토담 벽의 온기처럼 여울지는 그런 날,

이내 으스름 땅거미 내려놓자

아궁이마다 붉게도 몽글몽글 넘쳐흐른다

 

세한(歲寒) 바람이야 상고대

뼛속까지 파고들어 낯설지 않건만

뒤안길 접어든 냉소로

서슬 푸른 골바람 그저 시절 인연에

얹혀 가는 세월의 한 장일 뿐이다

 

겨우내 깊어가는 동지섣달 긴긴밤

어쩌랴 이미 기울어진 엄동(嚴冬)설한을

통속이라는 가지마다 늘어놓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네, 지천을 깔았어도

침묵으로 묵언하는 사방이 야멸차다

 

 

 

하얀 겨울밤

배창호

 

아린 바람이 대숲을 마구 휘젓고 있습니다

엊그제까지만 하여도 환한 만월이

이제 기력이 다했는지 칠흑을 배회하고

드문드문한 별 무리조차

처마 끝 날 선 고드름이 되었습니다

 

상고대 핀 가지마다

시린 밤이 얼고 녹기를 담금질하고 있으니

침잠으로 정체성을 휘둘리고 싶지 않았겠지만

이미 눈 멀었으며속절없이

마음마저 동결된 사투의 연속입니다

 

곁에 있을 때는 몰랐겠지만

마지막 한 잎조차 떨어진 교목을 보고 있으면

황량한 벌판에

으스러진 억새의 침묵이 눈물겨울 뿐입니다

 

허허벌판에는 밤새 훑이고 간 흔적들만

하얗게 내려앉아

송곳니 같은 한기는 분신을 쫓고 있어

툇마루에 내리쬘 한 줌 볕이 참 그립습니다

 

 

 

겨울밤

백원기

 

머지않아

핑크색 봄빛이 물들려는데

사랑하는 영혼 그대 눈동자

아직도 빛나던 밤

 

천상의 여자처럼

성스럽고 아름다웠지요

고운 손마디 마다 피던 꽃

그 향기에 나는 무너졌더랍니다.

 

다가서려던 내 마음

꺼질 줄 모르게 타오르면

마주치는 눈빛에

반짝이던 별빛

 

해넘이 사라진 밤하늘에

눈웃음 짓는 초승달 하나

차가운 밤하늘에 조각배 되어

감미롭게 흘러오던 밤이었어요

 

 

 

겨울밤 노래

변학규

 

강줄기 산을 타고 내려 쌓인 모래톱에

이웃도 낙엽 지는 호롱불에 타는 심사

울타리 뻗어간 박손 서리 묻은 화석 무늬.

 

골짝에서 밀려 나와 여울지는 솔밭 바람

고려쩍 별이 나도 영창빛은 뼈가 시려

새도록 나무를 타고 풀무하는 먼 산맥.

 

석새베 솜이불 무릎 가린 구둘막에

물레 젖는 방그림자 먼데 소식비는 손에

한밤내 언 쪽달빛에 바위 놓는 땅울림.

 

사람 없는 밤을 타고 하늘 닿은 어둠인데

서리바람 짐승 모는 고목나무 아린 동공

밤돋아 기승 부리는 눈발, 가지마다 내가 운다

 

 

 

겨울밤

복효근

 

감나무 끝에는 감알이 백서른두 개

그 위엔 별이 서 말 닷 되

고것들을 이부자리 속에 담아 와

맑은 잠 속에

내 눈은 저 숲 가에 뒹구는 낙엽 하나에까지도 다녀오고

겨울은 고것들의 이야기까지를 다 살아도

밤이 길었다

 

 

 

겨울밤

서흥열

 

밤새 눈이 내리고

매몰찬 바람이 능선을 따라 분다

깊은 밤 어머니 생각

동짓달 눈보라 치던 밤

쑥 들어가 자거라

아랫목으로 밀어 주시던 내 어머니

 

눈을 밀고 온 찬바람이 창가에 나를

안으로 안으로 밀어댄다

바람. . 그리고 검은 것에 덮인 어둠뿐

무서우리 만큼 손은 부풀어 오르고

고요와 적막에 마음은 고뇌로 딩군다

 

어둠에 쌓여가는 눈만큼

가슴에 아품은 짙어만 가고

"향 원 당"*

아품의 상처가 치료되는 날

나를 품었다 뱉어낼 집

하얀 눈만큼 내가 너를 기억에 남기리라

 

* 향원당 전남 담양 남면 존재. .한방

 

 

 

겨울밤

성낙희

 

무슨 잘못 많아서

강물은 밤내

수천수만 새의

떼 울음 소릴 내는지

 

무슨 잘못 정말 많아

또 바람은 밤내

대숲 같은 넋을 풀어

저리 설레이는지

 

, 아무래도 잘못

잘못 감아온 시간

잘못했다 잘못했다

살도 뼈도 깨어서

함께 우는 밤.

 

잊어라 잊어라

잊어서는 안 된다

일어나 생각하라

눈감아 다시 생각해라

아아, 이 하얀 밤

 

 

 

겨울밤을

송근주

 

빛나는 겨울 밤

겨울 비는 밤을

작년의 겨울 밤을

기억하고 있었다

 

어둠이 내린 겨울 밤

겨울이 오는 비를

작년의 겨울 밤을

추억하고 있었다

 

별이 빛나는 겨울 밤

겨울이 왔다는 비를

작년의 겨울 밤을

그리워하고 있다

 

달이 빛을 밝히는 겨울 밤

겨울이 깊어가는 비를

작년의 겨울밤을

사랑하고 있다

 

기억하고

추억하고

그리워하고

사랑한다

겨울 밤을

 

 

 

겨울밤

송문헌

 

얼어붙은 서울의 한밤중 속으로

멀어져가는 저 소리

먼먼 고향으로 날 데려다 주고

잊었던 골목길엔

떠나간 동무들이 하나둘 모여드네

웅이, 석주, 명희, 걸구,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할까?

찹싸알- !”

되돌아 달려오는 아득한 옛 시절

 

 

 

겨울밤

송커라

 

너랑 같이 놀아요

서로의 맨손을 잡기에 손가락이 시리군요

우산을 펼까요?

 

이곳이 알래스카만큼 하얗고 광활해지는 걸

지켜볼래요?

에스키모인들은 고래 갈비뼈로 집을 지었대요

죽은 고래 품에서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고 다시 사냥을 하고

싸우고 죽이며 협박하며

 

우리도 그렇게 살아 볼까요?

서로의 살을 태우는 냄새를 함께 맡으며

 

수은처럼 눈이 오고 있어요

동동 떠다니다 녹아내릴 것들에

자꾸만 눈()이 가요

 

우산 아래 우리 둘

 

어깨가 기울어져 있는 우리 둘

쌓이다가 녹아내리고

까맣게 흘러내리는 눈과 같군요

 

당신을 똑바로 본 지 얼마나 되었나요

밥이라도 먹을까요?

오늘 밤은 누구를 도마 위에서 잘라 볼까요

같이 걸어가 볼까요?

배가 부르면 우리

다시 쓸쓸해질까요

 

 

 

겨울밤

신경림

 

우리는 협동조합 방앗간 뒷방에 모여

묵내기 화투를 치고

내일은 장날, 장꾼들은 왁자지껄

주막집 뜰에서 눈을 턴다.

들과 산은 온통 새하얗구나, 눈은

펑펑 쏟아지는데

쌀값 비료 값 얘기가 나오고

선생이 된 면장 딸 얘기가 나오고

서울로 식모살이 간 분이는

아기를 뱄다더라. 어떡할거나.

술에라도 취해 볼거나. 술집 색시

싸구려 분 냄새라도 맡아 볼거나.

우리의 슬픔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닭이라도 쳐 볼거나.

겨울밤은 길어 묵을 먹고.

술을 마시고 물세 시비를 하고

색시 젓갈 장단에 유행가를 부르고

이발소집 신랑을 다루러

보리밭을 질러가면 세상은 온통

하얗구나. 눈이여 쌓여

지붕을 덮어다오 우리를 파묻어다오.

오종대 뒤에 치마를 둘러쓰고

숨은 저 계집애들한테

연애편지라도 띄워 볼거나. 우리의

괴로움을 아는 것은 우리뿐.

올해에는 돼지라도 먹여 볼거나

 

 

 

중앙시장의 겨울밤

신형식

 

가슴에 열십자 성스럽게 긋고

그 기억 정가운데에 판을 펼치면

곰장어집들 꼼지락꼼지락 불을 켠다

 

기역자 하나 때문에

꼼장어, 꼼장어라고 힘주던 적도 있지만

질퍽한 시장 좌판 위에 반듯이 누워

두개골에 못 겸허히 박은 것은

왕년으로 부활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승에서 받은 것

다 벗어줄 연유였으니

멋진 마무리를 위한

스트립댄스 한 판 벌여보자고

 

한때는 이름 석 자 날리던 몸.

홀라당 벗어버리고 나니

꼬이고 맺힌 일보다

핏대 세우며 소리치던 날들이

부끄러워서, 다 부질 없어서

허기진 내장 깊숙이

아둥바둥 꼬리치던

부끄러운 힘줄을 은폐시켜 보는데

 

그래도,

미련의 꼬리일랑은 자르지 못해

불판 위에서 트위스트를 추는

중앙시장의 겨울밤

 

 

 

겨울밤에 시 쓰기

안도현

 

연탈불을 갈아보았는가

겨울 밤 세 시나 네 시 무렵에

일어나기는 죽어도 싫고, 그렇다고 안 일어날 수도 없을 때

때를 놓쳤다가는

라면 하나도 끓여 먹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는

벌떡 일어나 육십촉 백열전구를 켜고

눈 부비며 드르륵, 부엌으로 난 미닫이문을 열어보았는가

처마 밑으로 흰 눈이 계층상승 욕구처럼 쌓이던 밤

 

나는 그 밤에 대해 지금부터 쓰려고 한다

연탄을 갈아본 사람이 존재의 밑바닥을 한다,

이렇게 썼다가는 다시 지우고 볼펜을 놓고

세상을 내다본다, 세상은 폭설 속에서

숨을 헐떡이다가 금방 멈춰 선 증기기관차 같다

희망을 노래하는 일이 왜 이렇게 힘이 드는가를 생각하는 동안

내가 사는 아파트 아래 공단 마을

다닥다닥 붙은 어느 자취방 들창문에 문득 불이 켜진다

그러면 나는 누군가 자기 자신을 힘겹게도 끙, 일으켜 세워

연탄을 갈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리수출지유지역 귀금속공장에 나가는 그는

근로기준법 한줄 읽지 않은 어린 노동자

밤새 철야작업 하고 왔거나

술 한잔 하고도 좆도 씨발, 비틀거리며 와서

빨간 눈으로 연탄 불구멍을 맞추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다 타버린 연탄재 같은 몇 장의 삭은 꿈을

버리지 못하고, 부엌 구석에 차곡차곡 쌓아 두고

연탄냄새에게 자기 자신이 들키지 않으려고

그는 될수록 오래 숨을 참을 것이다

아아 그러나, 그것은 연탄 갈아본 사람만이 아는

참을 수 없는 치욕과도 같은 것

불현듯 나는 서러워진다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눈발 때문이 아니라

시 몇 줄에 아둥바둥 매달려 지내온 날들이 무엇이었나 싶어서

나는 그동안 세상 바깥에서 세상 속을 몰래 훔쳐보기만 했던 것이다

 

다시, 볼펜을 잡아야겠다

낮은 곳으로 자꾸 몸을 들이미는 눈발이

오늘밤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불이 되었으면 좋겠다,라고

나는 써야겠다 이 세상 한복판에서

지금 내가 쓰는 시가 밥이 되고 국물이 되도록

끝없이 쓰다 보면 겨울밤 세 시나 네 시쯤

내 방의 꺼지지 않은 불빛을 보고 누군가 중얼거릴 것이다

살아야겠다고, 흰 종이 위에다 꼭꼭 눌러

살아야겠다고, 흰 종이 위에다 꼭꼭 눌러

이 세상을 사랑해야겠다고 쓰고 또 쓸 것이다

 

 

 

그 겨울밤

안도현

 

한숨 자고

고구마 하나 깎아 먹고

 

한숨 자고

무 하나 더 깎아 먹고

 

더 먹을 게 없어지면

겨울밤은 하얗게

깊었지

 

 

 

겨울 도회지(都會地)의 밤

양수창

 

태고(太古)의 하늘을 한 바퀴 둘러보고

못내 뒤돌아보며 뒤돌아보며 떠난 눈이

이제 막 도회(都會)의 한복판에 내리고 있다

 

흰 두루마기자락 펄럭이며

멀고도 아주 먼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육성(肉聲)을 데리고 내려온다

 

지층(地層)을 들먹이며

밤을 움직움직 떠밀며 환호하는 땅

아스팔트 밑에서 환호하는 땅

 

도회지(都會地) 사람들은

아스팔트 위에 환하게 가로등만 켜 놓고

아무 일도 모르고 잠을 잔다

 

땅을 묻어 놓고

그들도 통행금지에 갇혀버린 채

여관방()이나 아파트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잠들 뿐이다

 

도회지(都會地)의 밤은 그렇게 그렇게 깊어가고

나는 밤새 통행금지의 벽()을 후벼 판다

() 저편에서도 잠을 멀리한 자()들이

()을 허물고 있는, 소리가 들린다.

 

점점 크게 들리는 땅의 환호(歡呼),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육성(肉聲)

더 가까이 바람 소리와 다가와

밤의 껍질을 벗기고 속을 벗기고

 

잠의 유혹을 뿌리치며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내 뒷덜미를 나꿔채며 앙탈하는 밤의 등 뒤에서

통행금지의 벽()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무너져 내리는 빈 공간(空間)마다

어둠을 떠밀고 가득 차는

태고적(太古的) 하늘,

자락자락 눈이 내리고

또 내리고

 

* 당시에는 깊은 밤에 통행금지가 시행되고 있었음

 

 

 

겨울밤

엄원용

 

눈이 내리면

그리움이 왜 자꾸 쌓이나

밤이 깊어지면

서러움이 왜 자꾸 몰려오나

홀로 지새우는 겨울밤

긴 바람소리 왜 자꾸 창문을 흔드나

 

 

 

겨울밤의 애상

염경희

 

살을 에는 바람마저

사립문 넘어서서는 차마

문고리를 흔들지 못합니다

 

고요가 긴 겨울밤을

침묵으로 묵인할 때면

에는 바람보다 더 무서운 게

그리움입니다

 

휘영청 밝은 달그림자 좇아

처마 밑을 배회하던 동장군도

까치발로 사뿐거리는 밤

 

문풍지 흔들어대는 날숨은

그리움을 토닥이고

콩닥콩닥 방앗소리는

임을 부르는 노래입니다

 

밤새도록 달빛이 머물러도

휑한 호수는 채워지지 않고

그리움은 눈물비 되어 내리는 밤입니다

 

 

 

겨울밤

염규식

 

겨울밤입니다

아름다웠던 가을의 전설이 막을 내리고

싸늘한 겨울 빛깔이 우리 가슴을 색칠합니다

 

검푸른 하늘엔 어둠 속을 가르는 불빛처럼

추억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고

오늘도 그리움만 한없이 삭혀내는 밤입니다

 

어느 공간에 그대는 머무는지

찬바람만 가득한 빈 공간위에

무심한 별빛만 가슴을 싸하게 합니다

 

별빛 위에 나타나는 하얀 얼굴 하나

추억의 그림자를 그려보며

흐르는 별빛 따라 그대의 모습을 그립니다

 

그리운 그대는 세상 어느 곳에 있어도

그대 있는 창가에 그대의 별빛 밝아지면

그대를 그리워하는 나의 그리움이라 믿어주오

 

 

 

겨울밤에

염규식

 

겨울밤이면 유독 생각나는 한 사람 있습니다

삶이 왜 이리 공허해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싸늘한 바람이 불고 어두운 밤하늘을 보면

괜스레 마음이 쓸쓸해지는 시간입니다

 

추억으로 흘러간 세월들은 말이 없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망각하고 싶지만

마음 깊이 새겨진 당신이라는 흔적은

쉬 떨칠 수가 없습니다

 

서로가 그리워했고 뜨겁게 사랑했고

미련 없이 헤어진 세월이었지만

가슴 한 편에 깊게 자리한 당신과의 추억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 더 큰 그리움으로 자리합니다

 

때로는 미운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돌아오면 받아주고 싶은

실상은 그대를 많이 사랑했던 모양입니다.

이 겨울밤 홀로 밤길을 거니는 내 가슴에는

싸늘한 바람 타고 희뿌연 안개만이 흐르고 있습니다

 

 

 

겨울밤

오보영

 

넓은 세상

좀 더 두루

돌아다 본다.

 

사람 마음

좀 더 깊이

헤아려 본다

 

스스로를

좀 더 많이

살피어 본다

 

 

 

겨울밤

오석주

 

하늘이 감싸주던 구름은

바닥에서 끌어 올린

서러움을 어루만져주고

 

휘날리는 은빛 눈이 내려면

달빛에 부끄러움 가득

한 아름 안고 있던

쌓인 눈이 몽땅 녹는다

 

침묵의 문을 두드려

별 무리에 놀란 듯 욕심을 걷어

마음을 비운

겨울밤은 아늑함에 잠겨

 

추운 겨울밤에도

온 동네를 돌며 쉬지 않고

말을 건네주는 군아

 

 

 

깊어가는 겨울밤

오석주

 

창문 두드리는

북풍 우는 소리에

잠 못 이루는 밤

겨울밤은 깊어만 간다

 

창살에 반쯤

걸려있는 저 달은

지나온 세월의 그리움

아스라이 비추어 준다

 

달랑 남은 잎새 하나

바람에 질까 봐

이별이 서러워 나뭇가지

윙 윙 소리 내며 운다

 

황량한 달빛만

창백한 그림자 드리우고

삭풍에 잠 못 이루는 밤

달빛에 숨어 하얗게 지새운다

 

 

 

겨울밤

오세영

 

창밖엔 하얀 눈이

내리고

방안의 나는

열에 가무러치며

망연히 내 이름을 불러봅니다.

오늘같이 포근하게 추운 날에는

, 비둘기, 토끼, 노루, 다람쥐들도 어디선가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틀고 있겠지요,

꿩 가족은 아빠가 따온 빨간

산수유 열매를,

다람쥐 가족은 엄마가 물어온 노오란

도토리 열매를

도란도란 까먹고 있을지 모릅니다.

창밖에는 하얀 눈이 소록소록

내리는데

방 안에는 촛불 하나 가물가물

이우는데

땀에 흔곤히 젖은 나는 열에서 막 깨어나

가만히 내 이름을 불러봅니다.

어쩐지 당신의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될 것 같기 때문입니다.

, 비둘기, 토끼, 노루, 다람쥐들도 어디선가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트는

겨울밤,

창밖에는 소록소록 하얀 눈이 내리고

 

 

 

겨울비 내리는 밤

오순남

 

바람이 울먹거리며

창문을 두드린다

 

골목길 가로 등불은

비에 젖은 국화꽃 같다

 

눈을 감으니

바닷가에 온 듯

 

거센 파도 소리가 들리고

비바람 속에 비린내 풍기는

 

겨울비 내리는 밤

비에 젖어 아른거리는

 

도시의 불빛 속에

지쳐버린 시간들이 눈을 감는다

 

 

 

겨울밤 연가

오애숙

 

생각의 날개 펼치면

나르샤 하는 이 긴 밤

 

그 옛날 그토록 뜨겁던

한여름 대낮의 태양광 열

저 멀리 여행 가고 없는데

찬바람에 옷깃 여밀 때면

사무치는 지난날의 추억

맘속 활짝 피어난 향기롬

~날리며 휘파람 불면서

그 옛날을 노래하고 있네

 

뜨거웠던 정열의 긴 밤

용광로에 하나 되던 밤

새까맣게 지나간 날로

이미 가버린 날인 데도

매화꽃 피어나는 모양

성긴 가지 사이사이에

움트는 꽃 향그럼으로

살랑이며 다가 온다

 

생각의 날개 펼치면

꼭 그가 미소 한다

 

 

 

겨울밤의 소묘

오애숙

 

문풍지 사이사이 칼바람 울 때에는

보름달 한겨울에 잔설 위 설빛 속에

잔별들 사이에 눈물 쏟아지고 있는가

 

호수는 살그머니 빗장을 꽉 잠그고

겨울 속 동면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기나긴 동지섣달 속 방파제가 되었누

 

잉어들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면서

제 세상 되었다고 한겨울 기나긴 밤

제 삼경 달그림자 속 숨바꼭질하누나

 

 

 

겨울밤 별 떨기

유안진

 

참말로 서러워라

겨울날 칼날 우는 추위를

두 손 호호 불며

글썽이는 눈으로 내 지켜보는 줄

까맣게 몰라라

 

그대는

혼이여 고운 혼이여

하늘과 땅 사이

그보다도 멀어서

 

인연 닿지 않는 이를

혼자 사랑하고 있는

이 못난 짓

 

못난이의

못난 짓을

 

끊지 못해 서러워라

 

 

 

겨울밤이면

윤갑수

 

살갑도록 차가운 너의 눈길

꽁꽁 언 가슴엔 피가 끓는다

 

햇살이 실려 간 저물녘

어스름 달빛에 서성이다

잔별 따라 반짝이다

멀어져가는 기러기 날개깃처럼

 

동구 밖 홀로선 저 소나무

세월을 좇아

달빛 그림자 유혹하니

 

한밤 지새우는 소쩍새

날 새도록 임 찾는 그리움

한밤을 하얗게 지운다

 

 

 

겨울밤

윤만주

 

일몰의

야성으로

고무줄의 탄력처럼

길게 늘어난 겨울밤

그리움을 당기면

사랑은 줄을 타고

꿈을 비벼 올립니다.

 

당신을 향한 연모

숙원의 기다림은

미로의 밤안개로

눈구름을 만들고

 

초야(初夜)의 호곡 소리

구슬픈 장단은 구만리 정든 님을

일침으로 깨웁니다.

 

숙명으로 다가온 기억의 고무신은

그날의 밤에도 고혹(蠱惑)의 당신을 업고

살포시 어둠을 뒤덮은 흰 눈으로 꽃신을 만들면

 

뽀드득뽀드득 다져가는

언약의 땅울림은 사랑과 행복의 지르박입니다

 

 

 

그해 겨울밤

윤석산

 

1951년 겨울, 꽝꽝 언 한강을 타고

한밤중 우리는 피난을 떠났다

아버지, 어머니, 큰형, 등에 업힌 어린 동생은

턱밑까지 닥친 중공군을 피해, 문수산 곱등고개를 넘어

충청도로 다시 피난을 떠났고,

험하디험한 산고개를 넘을 수 없는

일흔여섯의 할머니와 다섯 살, 아홉 살, 열두 살,

우리는 그렇게 용인에 남겨졌다

엄동의 겨울, 견디지 못하시고

그만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전쟁의 한 복판

어린 손주들만 줄줄이 남겨두고

, 아 할머니, 어떻게 눈을 감으셨을까

칠십 년 전, 어느 몹시도 추운 겨울밤이었다

 

 

 

냉혹한 겨울밤

은별

 

종일 인파로 붐비던

거리가 한산하다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적막이 흐른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이

고요한 길을 밝혀주고 있다

빛과 어둠이 서로를 안고

하얀 밤을 지세운다

심연의 겨울밤은 참으로 냉혹하다

모든 영혼이 육신을 떠나

밤의 또 다른 세계를 지배하듯

차가운 거리 음산한 기운이 감돈다

내 영혼은 나를 떠나

어디를 배회하고 있을까?

현란한 꿈길

미로 속 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구나

, 고단하다

오늘 밤은 참으로

시간이 더디게 흘러간다

 

 

 

모진 겨울밤

은별

 

사납고 모진 겨울밤

윙윙 바람이 울고

하얀 눈이 밤새도록 내렸지

 

눈이 내린 아침

처마 끝에 고드름 주렁주렁

따사로운 햇살 받으며

수정처럼 빛났지

 

꽁꽁 얼어있던 눈 꽃잎들

사르르 사르르

간지러운 해님 미소에

마알간 눈물 되어 떨어진다

 

 

 

겨울 밤길

이길

 

바람의 꼬리를 잡는다

가로등 아래

갈 곳이 없어 차마 떨어지지 못한

마른 잎 하나,

고단한 도시의 시간들이

현란(眩亂)한 불빛에 채이며 흘러간다

동반(同伴)의 끝은 공허한 것

우리의 인연이 막을 내리듯

눈이 내린다

사랑과 미움이 뒤섞인 밤

먼발치 목 메인 자동차 경적

홀로 걷는 나를 흔들고 간다

 

 

 

겨울밤

이남일

 

보고 싶을 때

소쩍새

울음은 길어라.

 

그리울 때

그믐밤

별빛은 멀어라.

 

기다리다

꿈속에

함박눈은 쌓여라

 

 

 

겨울밤

이명희

 

깊고 깊은 겨울밤을

뒤적이면 몸부림친다

조르르 구르는 겨울비

소스라지는 바람 소리

 

귓가에 윙윙거리는데

행여나 내 임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궁금하다

 

밤이슬 맞으시면 별을 찍을까

꽃잎을 새길까

사방팔방 둘러봐도 소리 소문은

없으시니 희소식이겠지요

 

올해도 중순으로 넘어간다

뒤돌아보니 남은 것

보람일까

후회일까

 

후회란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 하지 않나 싶은데

돌아서서 보니 땀방울

 

100통은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정도면 다하지 않았나

싶은데 이것 참

 

후회도 미련도 없다

세월 앞에서 웃는다

내일 또 해가 저물어 간다

 

 

 

겨울밤의 사색

이소연

 

달빛을 이고

바람 부는 눈길을 걷는다

 

혼자 걸으면

허공에 흩날리는 눈발처럼

흩어져 빈손만 남는 길

 

혼자이지 않는 삶이 어디 있나

더불어 홀로 피었다 가는 길에

사랑도 외로운 눈물 한 줄기인 것을

 

속살을 헤집고

불꽃으로 타오르는 생명이여!

지고 나면 꽃잎인 목숨이

빛부신 그 나라에 다다르기까지

 

길을 따라 길을 걸어도

고독하지 않은 인생이 없더라

 

 

 

겨울밤 기억의 편린

이승복

 

밤까지 오그라드는 추위

몸 추슬러 가슴에 파고들어

고개 쳐든 발그레한 얼굴

우아 -

사랑하는 이는 언제 보아도

니 눈에 나만 있어 좋았다.

 

야삼경 먼데 기적이

울라치면 뒤척이는 몸짓이

흰 소금 싸락눈 쌓이는 소리

싸락 -

겨울 한 밤이 푹 절어든다.

 

이 거리 저 거리 헤집으며

찹쌀떡 장수의 목이 쉰 삶

개울 창 얼음 갈라지는 소리

-

하루살이 동행이 슬프구나.

 

눈이 펑펑 쌓이는 겨울밤

태곳적 전설이 깨어나는 밤

가신 엄마 자장가 소리

잘 자라 -

그려봐도 어사무사한 임이

! 보고프오

 

 

 

겨울밤

이시영

 

도봉산 지나 의정부 산골 마을에서 송()과 함께 자취를 한 적이 있다.

건너편 방엔 삼양라면 다니는 처녀 다섯이 묵고 있었다.

야근을 마치고 돌아온 처녀들이 타월로 머리를 묶고

우물가에서 어푸어푸 세수할 때가 좋았는데

그들의 흰 목덜미가 아침 햇살에 눈 시리게 빛났다.

일요일이면 삼양동 사는 양금섭이가 클래식 기타를 들고 찾아와

우리 모두에게 알 수 없는 서양 노래들을 들려주곤 하였는데

노래보다는 평상 위에 곤로의 심지를 잔뜩 올리고 부쳐먹던 감자전 맛이 더 좋았다.

이가 고른 한 처녀는 경상도 산청에서,

또 누구는 ​​인월에서 왔다고 하는데 웃을 때마다 보조개가 깊이 패이는 처녀는

가슴병을 앓고 있다고 했다.

고요해지면 의정부 가는 2사단 장갑차들이 아스팔트를 파며 굉음을 울리고

도봉산 유원지의 전봇대들이 깜짝깜짝 놀라며 키가 클 같은 밤,

이불 속에 각자의 고단한 다리를 넣고 치는 육백은 또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

우리도 모르는 사이 동창이 환히 밝아오기도 했다

 

 

 

겨울밤

이언빈

 

바람이 거세질수록

집들은 기울면서

기우는 만큼

균형을 잡느라 열심이다.

조합장 만나러 간 사내를

소주병들은 합심해서

이 밤도 온몸에 불을 지르는가.

낡은 라디오에서

조용필의 창 밖의 여자가

긴 머리칼 쓸어 올리는 동안

늦은 귀가를 걱정하는

아내의 밥물이 잦아들고 있다.

아궁이 속 장작들이

추억의 실핏줄 선명하게 피워 올리며

화안히 가랭이 뎁히는 동안

길들은 눈에 묻히고

문고리 당기는 바람만

바람만

동그랗게 휜다

 

 

 

하얀 겨울밤

이영지

 

햇빛이 비치면서 잔치로 설레이는

솜털을 가득 품은 나목을 안아주는

밀어로 가지마다에 하얀 입김 남자다

 

얼면서 입어내는 새하얀 너의 옷은.

바람을 받을수록 더욱더 자라면서

나무로 순결 사랑을 담아보는 남자다

 

안개가 달라붙는 하아얀 나무서리

햇빛이 비춰주면 녹아날 하얀 나라

하얀 밤 지새가면서 하얀 입김 넣는다

 

바람에 울고 웃다 피어난 새우 꼬리

얼면서 얼음 나무 서리로 서리 나무

물방울 나무에 달고 나무 기둥 남자다

 

 

 

겨울밤

이원문

 

밤 고구마의 화롯불

달빛에 눈 하얀히

울 뒤 부엉이 울음

언제 멎을까

 

천정 속 쥐 놀이

그 소리 끊임 없고

부엌의 쥐 설거지

그 소리는 안 그런가

 

담 너머 이웃 아가

보채며 우는 소리

굿 한다 소문난 집

징소리에 경 읽는 소리

 

다듬이질 소리 그 한몫

첫닭 울음 들리면

누렁이 소의 워낭 소리

새벽이 밝아 온다

 

 

 

겨울 밤참

이원문

 

어멈들아

저녁들은 먹었니

오늘 밤 우리 집에 오너라

내 화로에 불 가득 담아놓고 기다릴 테니

간난이 어멈은 올때 빈 그릇 하나 들고 오고

무엇들이나 해먹었는지 오늘도 죽 끓였을 텐데

눈 내린 어제오늘은 달도 밝구나

내나 네나 계집 팔자라 하니 된박 팔자가 아닌가

내 너희들 집에 숟갈 종지가 몇 개인 줄 다 알고 있으니

무엇을 속일까 뭐가 부끄럽고 다 그런 거지

그 집들 내력까지 다 알고 지내 왔지

내 팔자는 별다른가 너희들 그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도 굴곡이 심했어 밥술이나 먹는 것뿐이지

너희들은 무슨 복이 많아 시집살이 그 잠깐이냐

말도 하지 마라 말도 하지 마

들어오는 날부터 엊그제까지 그 시집살이 어떻게 말로 다할까

층층시하 구남매 모지리 시동생까지 유난 떠는 시누이 하나는 어떻고

그 시누이 어쩌다 오면 너희들이 보잖니 젊어서는 말도 마라

그 고모부 속 꽤나 황색이 젓 썪듯 썪을 것이다

얼마 전 못 살겠다 연락 오더니 지금은 잘살고 있는지 그 버릇 개줄까

그렇게 한세월 꽃이 몇 번 피었고 낙엽이 떨어졌을까

뻐꾸기 울음에 친정 생각 앞 논에 숨어 우는 그 뜸북새 울음

비 부슬부슬 내리면 마당 끝 맹꽁이 울음에 그리도 슬펐던지

겨울이면 식구 많아 다듬이질 빨래에 손 떨어질 뻔했고

그 고생에 있으면 뭐하니 차라리 없는 것이 낫지

그래 이렇게 저렇게 지난 세월이 오늘이구나

한때는 영감쟁이 때문에 속 썪어 죽을 뻔했지

장날만 되면 그 주막집 년에게 미쳐 안 들어오니

얼마나 속이 썪었겠니 쌀 말이나 퍼 나르고

시어머니 눈치 보느라 쫓아 가보지도 못했어

그랬더니 몹쓸 병이 들어 그렇게 먼저 가는구나

지금 생각하면 그냥 내버려 둘 것을

애 어멈들아

내 이야기만 늘어 놓았구나

밥 넉넉히 해놓았으니 밥 비벼 먹자

너는 김치 광에 들어가 동침이 두서너 사발 퍼 오너라

무 그리고 삮힌 고추 넉넉히 더 띄우고

에미 너는 다락에 올라가 들기름 병 들고 내려오고

막내 너는 찬장문 열어봐

묵은 고추장 퍼놓았으니 그거 들고 오면서 짱아찌 들고와

나는 작년 봄에 뜯어 모은 산나물 볶아 무쳐놓았으니

그거 준비 해놓을께 문밖에 내놓았지

화롯불이 식었으니 그냥 비벼 먹기가 그렇구나

부엌 작은 솥에 불 살짝 집혀 살짝 집히려무나

그리고 아끼지 말고 다 넣고 비벼보려무나

간난 어멈 너는 갈때 들고온 그릇에 가득 담아 가거라

뭘 먹어 아이 젖을 물리니 쌀 됫박 퍼 놓았으니 들고 가고

너희들도 모자라면 오너라

내가 그거 못 퍼주겠니

작년에 고생들 많았다

암 많고 말고 그 바쁜데

이 늙은이 도와주느라 고생들 했다

 

 

 

겨울밤 꿈꾸는 날 오면

이응윤

 

길다면 긴 세월

님 바라기 꽃 대공을 빼 올려

물 켜엔

가득 그리움 물올라

정체 모를 잎 피워

시커먼 속되고

남모른 밤으로

님 계신 곳 노래 부르네

 

겨울밤 꿈꾸는 날 오면

내 님과 하얀 설꽃 집 지어

오색 빛 여울에 춤추며

황홀한 사랑에 취하고 싶다

 

 

 

겨울밤

이재무

 

싸락눈이 내리고 날은 저물어

길은 보이지 않고

목쉰 개 울음만 빙판에 자꾸

엎어지는데 식전에 나간 아부지

여태 돌아오시지 않는다

세 번 데운 황새기 장국은 쫄고

벽시계가 열한 시를 친다

무거워오는 졸음을 쫓고

문고리를 흔드는 기침 소리에

놀라 문 열면

싸대기를 때리는 바람

이불 속 묻어둔 밥

다독거리다 밤은 깊어

살강 뒤지는 생쥐 소리

서울행 기적 소리 들리고 오 리 밖

상엿집 지나 숱한 설움 짊어지고

된바람 헤쳐오는 가뿐 숨소리

들린다 여태 아부지는 오시지 않고

 

 

 

겨울밤에 그리운 당신은

이채

 

내가 당신을 사랑하여

너무도 사랑하여

겨울밤이 깊어만 가고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여

너무도 그리워하여

겨울밤이 길어만 지고

 

내가 당신을 못 잊어

죽어도 못 잊어

겨울밤이 춥기만 하네

 

, 당신은

겨울밤에 그리운 당신은

이 밤 지새도록 그리운 당신은

 

내 전부를 주고도

다 주고도 모자랄 당신을

아직도 죽을 만큼 사랑하는 까닭에

 

 

 

겨울밤, 중년의 쓸쓸한 고백

이채

 

외로움의 부피로

지는 낙엽의 눈물을 보았노라

 

고독의 깊이로

겨울밤의 침묵을 배웠노라

 

세월의 무게로

쌓인 눈의 가벼움을 알았노라

 

바람을 베고 누운 쓸쓸한 밤

내가 덮고 자는 건

이불이 아닌 그리움이다

 

 

 

중년의 겨울밤

이채

 

1

겨울밤이 깊기로 내 마음만 할까

바람 따라 불고 강물 따라 흘러

얼마나 걸어 온 것일까

어떻게 살아 온 것일까

늘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초로의 나그네처럼

 

어느 날의 하루는

아무도 모르는

혼자만의 고독한 눈물도 있었다네

이 밤이 어둡기로 그만이야 할까

집도 절도 없는 외로운 이방인처럼

 

겨울밤이 길기로 떠나간 당신만 할까

아직도 다 묻지 못한 사랑

또 다시 그리워져도

한낱 눈물 속에 흐르다 말

겨울 강에 비치는 초승달 같은 사람이여

 

꿈에라도 나룻배 되어

당신을 싣고 차가운 강을 건너는

중년의 겨울밤

여름 하늘을 덮고 잠을 청한데도

춥기만 한데

 

!

겨울밤이 춥기로 못 잊을 당신만 할까

 

 

2

꽃 지고 낙엽도 진 빈터에

초대하지 않은 썰렁한 바람이 지나면

깊은 밤 비집고

소리 없이 들어서는

가슴 후비는 쓸쓸함에

중년의 겨울밤은 외롭기만 합니다

 

바람 앞에 등잔 같은

아련한 그리움

앙상한 가지에 눈꽃으로 피고

달빛 젖어 더 하얀 눈꽃이

바람에 날리어 가슴까지 덮어도

저린 그리움 가눌 길 없습니다

 

옷고름 풀지 못한 사랑

또다시 그리워져도

한낱 눈물 속에 흐르다 말

겨울 강에 비치는 초승달 같은 사람이여!

 

꿈에라도 나룻배 되어

당신을 싣고 차가운 강을 건너는

중년의 겨울밤

여름 하늘을 덮고 잠을 청한대도

춥기만 한데

 

차라리 눈을 감고

꿈에라도 시린 가슴 녹이고 싶은

중년의 겨울밤은 잠들지 않습니다

 

 

 

겨울밤

이해인

 

귀에는 아프나

새길수록 진실인 말

 

가시 돋혀 있어도

향기를 숨긴

어느 아픈 말들이

 

문득 고운 열매로

나를 먹여주는 양식이 됨을

고맙게 깨닫는 긴긴 겨울밤

 

 

 

겨울밤

임영준

 

어스름 달빛

힐끗 옛 그림자

 

쥐불놀이 불티마다 피어오르던 얼굴

어둠길 간드러지던 젓가락 장단

화롯불 쑤석이며 까먹던 날밤

 

날 선 칼바람도 가슴을 데우던

그 걸쭉한 밤

 

 

 

겨울밤

임재화

 

온 세상이 모두 꿈속에 젖어 들고

차츰 주말의 겨울밤은 깊어만 갈 때

홀로 잠 못 이루는 산촌의 깊은 밤

 

며칠 지속한 매서운 한파 때문에

한겨울 찬바람은 잠시도 쉬지 않고

창문 밖에서 불어 젖히고 있다.

 

쨍하고 깨질 것만 같은 날 선 추위

먼 산 능선 위에 쌓인 눈조차도

오들오들 떨고 있는듯싶은데

 

중천에 높이 떠 있는 상현달조차

한겨울 추위에 가슴 시려지는 듯

외로운 마음 감추려고 눈물 삼킨다

 

 

 

눈 내리는 겨울밤

임재화

 

벌써 깊은 밤인데

창밖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이따금 부는 바람에 실리어

창문을 톡톡 두드립니다.

 

따듯한 거실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던 시인

갑자기 찾아온 시심(詩心)

군고구마 향기처럼 다가옵니다.

 

톡톡 창문을 두드리며

눈 내리는 겨울밤

조용히 시상(詩想)에 젖어 들어

말없이 창밖을 쳐다보고 있습니다

 

 

 

깊어가는 겨울밤에

임정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의 몸짓도

허공을 밝히는 우울한 달의 얼굴도

바람, 그 차가운 냉소도 들리지 않는다

 

앙상한 뼈마디를 드러낸

묵묵한 가로수의 잔기침일 뿐이다.

고요가 가져다주는 침묵 옆에

너의 숨결 머물던 손등 위엔

머언 영겁만이 젖어있을 뿐이다

 

진눈깨비 사뿐히 내려앉던 어느 날에도

화사했던 눈웃음 사라져 버리고

수면 위엔 소리 없이 일렁이는

달콤한 꿈의 깨어진 잔해만이

 

어쩌다 마실 나온

앞집 강아지의 허둥댐은 여전하다

듣지 못하는 것은

그것을 피해 멀리 돌아앉았을 뿐이다

 

마음속엔

서서히 잊혀질 그리움 하나

묻어 둘 뿐이다

 

 

 

겨울밤 그대에게

자수정

 

긴긴밤 잠 못 들어

이리 뒤척 저리 뒤척

베갯머리 맡에

남몰래 흘린 눈물

빙산(氷山) 같은 시()가 되었네

 

그대는 깊은 밤

사창가에 들어앉아

희희낙락 즐기지만

창살 없는 빈방에

홀로 지새는 가련한 여인

눈물로 시심(詩心)으로 달래노라

 

창가에 후리치는 바람 소리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

고독으로 몰아가는 저 소리

그리움만 점점 깊어가는 밤

 

잠 못 드는 이 시간

()를 즐기지 않고

()를 쓰지 않았다면

시심(詩心)에 젖어 들지 않았다면

베갯머리 맡에 흘린 눈물

얼음같이 차가운 가슴

무엇으로 달래고 녹여 볼까

 

 

 

겨울 밤바다

자수정

 

서산에 지는 노을 따라

강둑을 걸어 걸어

바다에 도착하니

어느새 머리 위에

초생달이 걸려있네

 

하이얀 눈밭에

은빛 물결 넘실대는

갈매기 벗을 삼고

달그림자 벗하여

눈밭을 걷는다

 

한없이 한없이 걸어가다

지난 온 삶 돌아보니

과거는 모래밭에 묻히고

하이얀 눈밭에 지나온

자욱자욱 눈물 흔적일세

 

 

 

눈 오는 겨울밤

장수남

 

시간이 익어간다.

별 하나 땄다

 

은빛 하얀 밤

하늘은 나지막이

내려앉았다.

 

죽음은 텃밭에서

수확하는 것

 

영근 열매

씨앗이 떨어지면

소리를 높여라

 

하얗게 피운.

포기마다 눈물 꽃

발갛게 젖는다

 

 

 

겨울밤

장유정

 

그리움 창가

당신 생각나서 사색에 잠긴다

지난날 함께했던 시간들

주마등처럼 쌓이고

파도가 출렁일 듯 춤추는 바다

그리움 가득 켜켜이

 

봄빛에 뒤뜰 매화꽃 활짝 꽃피는 봄날

당신을 부르며 웃었지

긴 긴 여름날

허겁지겁 가게로 들어오는 물을 퍼내고

 

단풍이 곱게 물들던 가을

그리움 조각조각 피어나고

하얀 눈 내리면 간밤에 기침소리

더욱더 귓가를 때렸지

 

펄럭펄럭 바람 소리 문풍지에 나라 들고

옛 기와 고택에 추억 서린 곳

이 밤 고요히 옛 생각에 잠긴다

 

 

 

추억의 겨울밤

전해정

 

파르르 떨리는

문풍지 사이로

찬바람이 스며들면

웅크린몸 감싸안고

새벽잠을 깬다

 

서걱대는 찬고구마

광주리째 보듬어 안고

옹기종기 이불속

파고들던 사남매

 

마른 솔가지 불쏘시개로

싸늘해진 아랫목

데워 주시던 어머니

희끗희끗 흰서리가

눈꽃되어 내려 앉았네

 

돌아갈수 없는

유년의 꿈이여

긴 겨울밤 따뜻했던

희미한 기억 속의

그 시절 그리워라

 

 

 

겨울밤

정민기

 

1

밤하늘에 별이 켜지듯

가로등이 하나둘 눈을 번쩍 뜨면

어둠이 저만치 뒷걸음질 친다

저녁 어스름을 꾸역꾸역 삼키고

채 소화하지 못한다

여자 머리처럼 긴긴밤이

단발머리로 바뀐다

손가락처럼 빈 나뭇가지를

늘어뜨린 하늘에

바람의 입김이 날린다

눈 몇 송이로 울고 싶은 밤이다

 

 

2

날카로운 초승달이 무성한 별을 베는 시간, 거리는 가로등이 출근했다

낙엽이 스산하게 발을 옮기는 동안 창문은 빛으로 연주를 한다

밤새 칭얼대던 아기가 연주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긴긴 겨울밤이다

 

 

 

겨울밤이 깊어져 가는 동안

정민기

 

누가 빵을 뜯어 먹다 밤하늘에 걸어 놓았을까

겨울밤이 깊어져 가는 동안

빵 부스러기 깊은 잠이 들지 못하고

반짝반짝 뒤척거리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저만치 달아난 잠이 말똥말똥 눈 뜨고 있다

낙엽이 눈처럼 소복소복 쌓인 거리는 어둡기만 한데

길은 징검다리처럼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엎드려 있다

무작정 빵 가게를 찾아가 밤하늘 같은 높은 데에

빵을 내려줄 때까지 길이 되어 엎드려 있고 싶은 마음

오늘은 마실이라도 갔는지 온데간데없다

복면이라도 쓴 듯 밤하늘은 차가운 눈초리로 바라본다

새우잠에 들었다가 깜짝 놀라 깨어 낮에 걸어 놓은 빵

건빵처럼 딱딱하게 굳어 부스러기가 떨어지지 않는다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물 흐르듯 걸어가는 길

다행히 아직 땅거미가 먹이를 찾지 않는 시간이다

이불 같은 안개라도 덮이면 그 속에서 뒤척거리며 걷는

사람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기댈 곳을 물어물어 찾아간다

얼굴에 놓인 침묵 한 모를 슬픔이라는 양념장에 찍는다

오늘따라 빵 부스러기가 유난스럽게 반짝거리고 있다

 

 

 

찬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밤은 거처를 어디에 두고 있는가

정민기

 

오후의 햇살 계단을 올라 구름 숲에 닿아본다

헛되지 않은 파문이 잠 속의 꿈처럼 퍼져 나가고

그의 행방을 묻는 사람들이 해저 터널을 지키고 서 있다가 사라진다

마른 나비 날개가 강물 위에 흐르고

지저귀는 새의 노랫소리가 해를 가로막자

일식처럼 빛을 가리는 어둠이 날아오른다

쫓다가 쫓겨 달아나는 기이한 현상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진다

 

도마 위의 칼이 도마 아래로 내려가 있는 어처구니 같은

 

 

 

겨울밤에는

정숙자

 

바람 부는 겨울밤에는

정다운 이에게 이야기하자

 

어릴 적 즐겁고 슬펐던 일을

혼자서만 갖고 있던 비밀 얘기를

 

뜨거운 커피잔에 손 녹이며

토옥톡 소리 내는 촛불을 보며

 

별똥별 떨어지는 시골 이야기

귀신 우는 방죽과 무덤 이야기

 

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자

삶과 꿈도 조금은 이야기하자

 

 

 

겨울밤

정연복

 

긴긴 겨울밤을

무얼 하며 보내야 할까

 

추워서 죽겠다고

약한 모습 보이지 말자

 

사랑하는 가족들과

따뜻한 대화의 꽃을 피우자

 

그리운 벗을 생각하며

다정한 편지 한 통을 쓰자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를 읽어보자

 

한파 속에 더욱 빛나는

노점상들의 생명 의지를 기억하자

 

겨울나무의 몸 속에서 자라고 있을

연초록 새순을 마음에 그려보자

 

겨울이 있으니 봄도 있는 거라고

낙관적인 생각을 하자

 

 

 

겨울밤 이야기

정윤목

 

깊어가는 겨울밤

아득히 먼 곳 기억 따라 아련히 걸어갑니다.

 

사랑하는 어머이, 아부지, 할아부지, 할머이

부엉이가 부엉 울고 산 바람 들 바람 문풍지 두드리면

두려움에 차가움은 더더욱 파고들어

어머이 품속 파고들면

어느새 아셨는지

 

"엄마랑 뒷간 갈까?"

 

둘이서 손잡고

안방 문 열고 나서고 유리 현관문 밀고 나서면

뜨락 온통 하얀 별 눈 마당 가득 퍼져 있어

두려움 모두 사라지고 오직 따사로운 온통 사랑, 천사 같은

 

그 시원한 사랑 한 가슴 가득 먹고

다시 돌아와 안방 들어서면

어무이는 콩나물시루에 차가운 물 두어 바가지

 

'콩나물은 저 찬물 먹고 얼어서 죽지는 않을까?'

'방이어도 너무 추운 시골 흙으로 지어 만든 집,'

 

베겟머리에 이마 뉘여

들려주시는 한없이 거룩하신 지성의 기도

아름답기는 지상의 최고 꽃

거룩하기는 내 한 생애의 가장 성스러우심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사람이 걸어가야 할 길

새벽부터 생애 내내 인도하여주시는

나의 어머니

 

"윤목아, 하나님은 널 사랑하신다"

"처음부터 끝날까지 널 사랑하신다"

 

, 어머여!

그 순결한 기도의 문을 이제야 들어섭니다

생애 내내 기도로 이끌어주시는

눈물로 사랑을 가슴 절절이 일깨워주시는

영원하신 불사조

내가 걸어갈 길을 환히 보여주시는 초극

 

 

 

은 가을밤이면

정종명

 

도도한 기세에 두려울 것 없던

만개한 봄꽃 같은 시절

아린 기억들이 앙금이 가라앉듯

선명하게 떠오르며

잠이 오는 길목을 막고 섰다

 

깊어 가는 낭만의 가을밤

하늘엔 뭇별들 조잘대는 수다에

시간은 새벽으로 치닫고

 

청아한 풀벌레 사랑 노래

별빛 속에 황홀한데

홀로 까만 밤 지새야 했던

철없던 시절의 이야기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익어가는 가을밤이면

아련한 추억이 혼돈 속에 찾아든다

 

 

 

겨울밤

정주은

 

미소 가득한

작은 집에도

겨울밤은 찾아오고

빠알간 연탄 아궁이

작은 아랫못 데피고

 

허름한 천장에선

서생원 뛰어 노닐고

 

밤은 깊어 가는데

어이 잠 못 이루고

길을 나서네

 

겨울 밤하늘에

별이 총총하고

찬 서리 내려

내 마음 시려 온다

 

걷던 길 다시 돌아

현관에 들어서니

미닫이 사이로

 

쌔근쌔근

잠든 사랑스런

아이들 모습이

평화롭다

 

겨울밤 작은

지붕 아래도

아름다운 꿈이

자란다

 

 

 

겨울밤

정태중

 

그때는 조용한 것들이 싫었다

 

꽃망울 톡 터지고

둥지 속 퍼덕이는 새의 날개

도토리가 후드득 쏟아지는

그 바쁜 소리가 좋았다

 

지금은 고요하고 차가운 밤이 좋다

 

번뇌를 잠재우고

들뜬 몸을 식혀주는

온 세상이 백지처럼 누운

겨울밤이 너무도 좋다

 

그때는 조용한 것들이 싫었지만

지금은

이대로 잠들어도 좋을 겨울밤이 좋다

 

비우고 덮어주는 겨울

목화 쏟아지는 이 밤이

! 너무 좋다

 

 

 

겨울밤에

조위제

 

문풍지도 울어대는

자정을 넘긴 겨울밤에

촛불을 밝혀 놓고

미련에 매달린

애가 타는 그리움에

그렁그렁 맺히는 이 눈물

나더러 어쩌라고, 어쩌라고

밤바람 너도 따라 우는구나

 

 

 

겨울밤

주명옥

 

초겨울 소리들이

붐비는 이 밤

적요의 이음새는

어찌 해야 되나

 

고요가 내 눈을

허공에 앉히니

기쁨과 슬픔의 골짜기

날 바라보는 이파리 하나

 

풀 벌레 울음이

툭 떨어뜨리고

싸늘한 적막이

둘러싼 울타리

 

야윈 달그림자

창가에 서성이면

가슴은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이다

 

달빛 제집을 찿고

구름 한 웅큼

끌어안고 나면

 

아침을 연

맨 처음 환한 햇살이

내 시린 몸

보듬어 주려나

 

 

 

어느 겨울밤 풍경

주응규

 

인적이 끊어진 삭막한 밤

의지할 데 없어 외로운

창백한 하현달이 쉬어갈 곳 찾아

기웃이 넘겨다볼 적에

 

밤하늘 아스라이 스쳐 오는

귀에 익은

노파의 밭은기침*소리 쫓아

어느 외진 민가(民家)의 처마 밑을

망연히 내려다보고 섰다

 

사방은 적막이 자욱이 깔려

오싹 소름 치는 밤

앙상한 나목들만이

맨몸으로 칼바람에 맞서며

스러질 듯 비틀어 짜는

신음을 토하면서

처연히 달바라기 하고 있다

 

* 밭은기침 : 병이나 버릇으로 소리도 크지 아니하고 힘도 그다지 들이지 않으며 자주 하는 기침

 

 

 

깊은 겨울밤

채바다

 

파도는 파도를 얼싸안고

바람은 바람대로 뒹구는 섬

저들의 입맞춤들을 별빛이라 하자

저들의 노래들을 달빛이라 하자

저들의 사연들을 색종이에 접어

하늘로 하늘로 날려 보내면

깊은 겨울밤 그리운 이

흰 눈이라도 되어 찾아오기나 하련가

 

 

 

겨울밤

최동룡

 

태초에

겨울밤은 시리도록 아팠을까

모닥불 돌아앉아

각혈을 하고

광야는 침묵으로 얼어붙는다

 

애끓는 땅 울음

견우성만 못하여

한점 눈 이슬로도 자리할 곳 없고

떠나갈 시간

초시계만 딸꾹질 해댄다

 

별이 지는 곳엔 언제나

애타는 불꽃이 쓰러져 눕는가

반길 이 없는 불청객은

재촉할 걸음도 없으니

바람도 비켜서 간다

 

별을 바라보며 걷는 얼굴에

이슬이 직녀성으로 피어

바람에 진다

 

 

 

겨울밤

최정순

 

꼬리 없을 것 같은 긴 겨울밤

자유 찾아 와,

감옥 아닌,

감옥 갇힌 아버지

이북 고향 부모 형제 그리움

잊기에 버리기에 너무 마음 쓰라려

눈물 펑펑 쏟으며 처연한 달빛만 보다

고향에서 먹던

절구에 찹쌀 찧어

손바닥만 한 떡 채반 말렸다가

가마솥 참기름 튀겨 자식들 먹였다

사르륵사르륵, 눈 내리는 밤에

 

 

 

겨울밤

최하정

 

살을 에는 삭풍이 몰아치고

쌀쌀한 회색의 적막감은

창살과 문풍지를 넘나든다

 

저 멀리 쏟아지는 별똥별은

잠 못 이루는 시린 겨울밤에

소낙비처럼 내리고

고독을 삼키는 적운마저

외로움의 상처에 생채기를 내듯

가슴에 멍울지게 한다

함박눈이 내릴 것 같은 찬 기운에

넋을 잃고 따라온 상념은

겨울밤의 향연이어라

 

 

 

겨울밤

하은혜

 

무채색으로 내리는

창밖의 겨울밤

 

밤이 깊어갈수록

창 너머 보이는

몇 겹의 산 능선마다

채도를 달리한다

 

창백한 달빛도 힘에 겨운지

'휘영청'

나목의 가지에 걸 터 앉아

쉬고

 

무채색으로 머물던

산 능선 사이로

불빛이 하나 둘...

반짝이며

환하게 점등된다

 

그리움으로

따스하게 피어나는

인정(人情)의 꽃이여

 

 

 

겨울의 밤

한천희

 

바람이 울고 있다

나목의 가지도 울고

낙엽도 따라 운다

겨울이

소리 내어 울고 있다

 

겨울비가 내린다

깜깜한 밤에 내린다

지나온 계절 추억이라

하얀 그리움 숨기고

눈물 보이지 않으려

캄캄한 밤을

뚝뚝 울고 있다

 

낙엽 되어 떨어진 잎새

나그네 되어 떠돌다

잊혔던 눈물에 젖어

발길 멈추고

바람 따라 날아 갈까

물길 따라 흘러 갈까

상념 깊은 겨울의 밤

 

 

 

겨울밤

허기숙

 

포근하다 해도

차가운 겨울바람은

뚜벅 뚜벅 걷는 길이

너무 무겁습니다

 

머리엔 잿빛 그리움으로

가다 서다가

몇 번을 되돌림 합니다

 

가로등 불빛아래

서성이는 그림자의

희미한 뒷모습은

 

삶의 뒤안길

멀고도 긴 터널같은

어둠의 길이기에

 

얼마나 더 아파야

이 길이 가로등 불빛처럼

환하게 웃을지요

 

오늘도

늘 이렇게 지나갑니다

 

 

 

겨울밤의 꿈

홍해리

 

이립리(而立里) 지나 불혹봉에 올라도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고

숲도 눈에 띄이지 않느니

눈이면 다 눈으로 알다

오늘은 온 세상이 칠흑빛

이제야 눈이 트이는 것인지

솔바늘 사이를 가는

헝클린 바람의 투명한 날개

가슴속엔 순진무구의 아이가 살아

그 빛나는 눈빛으로

바람 찬 지창 안에 불을 밝히느니

잃었던 말씀을 모아

집을 이루리라

잠 먼 겨울 들녘 같은 밤

삼경이면 반야의 꽃을 위하여

 

 

 

하얀 겨울밤

황광주

 

식어가는 가슴 하얗게 지새우며

문득 스치우는 그리움을

가만히 빈 가슴으로 소환하는 밤

 

지나간 추억을 더듬다

서쪽 하늘로 슬프게 지는 유성에

놓쳐버린 미완성의 이야기를

나 혼자서 담담히 마무리 짓는다

 

기울었다 차오르던 차가운 달이

소리 없이 넘쳐흐르다

달빛 가리운 구름으로 닦아준다

 

 

 

겨울 밤바다

황금찬

 

겨울밤에

바다를 찾아갔었지

 

바다에 등불은

남김없이 꺼졌고

파도는 잠을 청하고 있었네

 

히미론 계곡에 메아리는 숨고

속삭임도 없이

눈은 내리고 있더이

 

찔레꽃

나는 찔레꽃이 피어 있는

언덕에 서서

하늘의 호흡을

손으로 막고 있었네

 

입술 끝에 와선

부서지고 마는

누구의 이름을

끝없이 끝도 없이 부르고

 

바다는 어느새

잡목이 타고 있는 산장

화덕가에 앉아

이국풍의 차를 마시며

말소리를 기다려

연신 문을 열어 보고 있었네

 

저수지

얼어붙은 국경의 강

그 강물 위에 쏟아져 내리던

달무리, 지금도 그러려니

 

겨울 밤바다엔

찔레꽃이 하이얗게

하이얗게 지고 있었네

 

 

 

겨울밤 05

황동규

 

별을 보며 걸었다.

아파트 후문에서 마을버스를 내려

길을 건너려다 그냥 걸었다.

추위를 속에 감추려는 듯 상점들이 셔터들을 내렸다.

늦저녁에 잠깐 내리다 만 눈

지금도 흰 것 한두 깃 바람에 날리고 있다.

먼지는 잠시 잠잠해졌겠지.

얼마 만인가? 코트 여며 마음 조금 가다듬고

별을 보며 종점까지 한 정거를 걸었다.

 

마을버스 종점, 미니 광장 삼각형 한 변에

얼마 전까지 창밖에 가위와 칼들을

바로크 음악처럼 주렁주렁 달아놓던 철물점 헐리고

농산물쎈터 밭으로 가자가 들어섰다.

건물의 불 꺼지고 외등이 간판을 읽어준다.

건너편 변에서는 신라명과가 막 문을 닫고 있다.

 

나머지 한 변이 시작되는 곳에

막차로 오는 딸이나 남편을 기다리는 듯

흘끔흘끔 휴대폰 전광판을 들여다보고 있는 여자,

키 크고 허리 약간 굽은,

들릴까 말까 한 소리로 무엇인가 외우고 있다.

그 옆에 아는 사이인 듯 서서

두 손을 비비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서리 가볍게 치다 만 것 같은 하늘에 저건 북두칠성,

저건 카시오페이아, 그리고 아 오리온,

다 낱별들로 뜯겨지지 않고 살아 있었구나!

 

여자가 들릴까 말까 그러나 단호하게

이제 그만 죽어버릴 거야’, 한다.

가로등이 슬쩍 비춰주는 파리한 얼굴,

살기(殺氣) 묻어있지 않아 적이 마음 놓인다.

나도 속으로 오기만 와봐라!’를 반복한다.

 

별 하나가 스르르 환해지며 묻는다.

그대는 뭘 기다리지? 안 올지 모르는 사람?

어둠이 없는 세상? 먼지 가라않은 세상?

어둠 속에서 먼지 몸 얼렸다 녹으면서 빛 내뿜는

혜성의 삶도 살맛일 텐데.’

누가 헛기침을 참았던가,

옆에 누가 없었다면 또박또박 힘주어 말할 뻔했다.

무언가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 곁에서

어둠이나 빛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별들이 스쿠버다이빙 수경(水鏡) 밖처럼 어른어른대다 멎었다.

이제 곧 막차가 올 것이다

 

 

 

겨울밤 노래

황동규

 

조금이라도 남은 기쁨은 버리지를 못하던

해 지는 언덕을 오를 때면 서로 잡고 웃던

해서 눈물겹던 사내여 오라

우리 같이 흰 흙을 핥던 오후에는 배가 안 고프고

언덕에서 내려뵈던 깊은 황혼

캄캄하게 그 황혼 속을 달려가던 사내여 오라

 

겨울날 빈터에 몰려오는 바람 소리

그 밑에 엎드려 얼음으로 목을 축이고

얼어붙은 못 가에

등을 들판으로 돌리고 서서

못 속에 있는 우리의 마음을 바라볼 때

몸과 함께 울던 우리의 옷을 보라

 

걷잡을 수 없이 떨리는 손

그 떨리는 손에는 네 목을 잡고

머리칼 날리며 빙판에 서서

서로 마주 보며 네 목을 잡고

내 들려주리

쓰러지지 않았던 쓰러지지 않았던 사내의 웃음을

 

어둡다 말하면 대답 소리 들리는

쇳날을 만지면 살이 떨어지는

그런 떨리는 노래는 이제 우리에게

서로 붙잡은 우리의 어지러움

어지러움 속으로 길은 헐벗고 달려가고

그 길 끝에 열려 있는 술집은 이제 우리에게

 

친구여 너는 술집의 문을

닫아도 좋다.

문을 닫아도 바람 소리 바람 소리

우리 같이 흰 흙을 핥던 오후에는 배가 안 고프고

그때 땀 흘리던 우리의 배를 기억하라.

열린 채 땀 흘리던 우리의 배를 기억하라

 

하면 아침이 눈길 위로 올 때까지

우리 서로 얼음 냄새를 풍기며

때로 주먹으로 벽을 두드리고 기름 냄새를 맡으며

줄어드는 심지를 바라보며

단추 떨어진 우리 젊은 날의

어둡다 말하며 벗어 던진 옷을 말리자

 

 

 

겨울밤

황인숙

 

처음엔 그가

앉아 있는 줄 알았다

다시 어린애인 줄 알았다

낡은 담요 속의

주름진 얼굴

 

아저씨 하필

바람이 쌩쌩이는 골목 어귀에

과자 좌판을 내셨을까

 

푸른 김 발린 부채 과자

설탕 범벅의 원통 과자

유리 상자 속에 가득하다

냉기가 하얗게 피어오른

 

머리 위로

남산순환도로의 푸른 신호종 소리가 달려간다

 

아저씨는 영하 십육 도의

바람이 쌩쌩이는 골목 어귀에

나지막이 카바이드 붉 밝히시고

영원히 서 계실 것 같다

영원히 그 앞엔

아무도 서성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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