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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람은 어디서 오는가

강효수

 

그대는

무엇 그리 바빠

옷깃 세운

고양이 눈빛

고양이 발톱처럼

또각또각 떠나는가

 

헝클어져 버린

천공의 장승만이 홀로

서 있는 거리

멀어져가는 뒷모습

살랑이는 머릿결에

일렁이는 바람만이

 

냉혈한 칼잡이

칼 춤추는 무희던가

서걱서걱

여민 가슴 갈가리 찢어발기는

칼칼한 어느 겨울

그대 곱게 떠나는 날

 

 

 

겨울바람

공석진

 

복면 쓴 자객이

마지막 잎새의

숨통을 누른다

 

죽어가는 그리움

새벽을 가르는 비명

 

차가운 피로

얼룩진 언덕엔

절명하는 고독이

즐비하였다

 

휙휙 담을 넘는

정체불명의 그림자

 

섣달 햇살의

가는 모가지에

날 선 비수를 들이댄다

 

 

 

백두대간 겨울바람 왜 거친 지 아는가

권경업

 

그 순턴 솔바람들

동면(冬眠)에 들지 못해서네

숫눈 아래 은폐(隱蔽)

교활한 아귀(餓鬼)의 아가리, 올가미 벼락들

여리고 착한 목숨 겨냥한 비겁한 자의 총구

비겁하게 버리고 간 쓰레기

쓰레기 같은 놈들에 의해

난자당한 시산(屍山)의 상처 위

어디 몸 누일 곳 있어야 말이지

 

 

 

겨울바람

권오범

 

열대야에 점령당한 여름날엔

문이란 문 다 열어놓고

들어오라고 부채질해도 본숭만숭

동네방네 애어컨 들락거린다는 소문 파다하더니

 

어딜 싸돌아다니다 왔는지

고분고분해도 션찮을 판에 뭘 잘했다고

애먼 뒤꼍 소쿠리부터

닥치는대로 걷어차는 저 성질머리하고는

 

그래도 따듯한 방이 그리웠나 보다

패거리까지 데리고와

문설주 붙잡고 사정사정하다

간간이 대성통곡하는 걸 보면

 

조용한 틈타 머리카락 하나 버리려고 창 열자

이때다 싶어 우르르

못된 낌새 눈치챈 온기가

송두리째 뛰쳐나가버린 살벌한 방

 

 

 

대관령 겨울바람

김내식

 

영마루가 어디인지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는 터널의 숫자를 세는데

백두대간을 넘는 의미를 두다

영하 26도를 기록하며 일주일간 거푸 폭설 퍼붓다

모처럼 날이 개어

능선의 새하얀 풍차

유혹 따라

오르는 대관령 옛길

 

허리까지 파묻힌 대골령 마을 돌아

구불구불 헉헉대는 제설차 뒤를 따라

미끌미끌 오르는 대관령 날망

새하얀 눈가루가 차장을 후려치며

윙윙 씽씽 씨아랑

호곡성이다

그 소리는 겨울바람소리다

아니다 그 소리는 동

파되는 나무들이 자지러지는

처참한 아우성이다

 

무섭기는 하지만

듣기는 그렇게 싫지가 않은 것

그것은, 아마

인간이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순리요

절대자의 뜻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일 게야

 

그렇다

누가 그토록 혹독하게 나의 뺨을

후려치며 욕해도

자연의 섭리로

하나님의 뜻으로 받든다면

지금처럼 값싼 어묵 국물로도 내 속이 온화하고

막걸리 한 통으로

기분이 썩 좋아지리라

아무렴 그렇지

그렇게 살자

 

 

 

초겨울 바람

김내식

 

회색빛 하늘이 몹시 차가워

기러기도 어디론가

흔적이 없다

 

시베리아 벌판에서

대간줄기로 쫓기던 칼바람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마을 대숲에 내려온다

 

바람에 저항하는 파도는

피로의 거품 일으키나

전의를 잃지 않고

틈새의 갈매기

호수로 날아든다

 

호숫가를 걸어가며

내 나이 같은 초겨울이

세월의 바람으로 떠밀어도

두 다리에 힘주고

천천히 걷는다

 

 

 

겨울바람

김대식

 

차가운 눈바람이 몰아칩니다.

전생의 그대를 사랑하다 죽은

나의 바람이지요.

 

하얀 눈 소복으로 하얗게 입고

그대 그리워 떠도는 바람이지요.

산다 한들 또 그대는 나의 상사병

귓전을 스치는 나의 그리움

 

봄이 와 꽃피어도

나를 위해 피는 그대 꽃은 아닌 것을

꽃피고 잎 진다 해도 나와는 무관한 것

기다림은 두꺼운 얼음장

 

그대 그리다 이승에도 이미 죽은

차갑게 몰아치는 겨울 눈바람

그대 곁에 서성이는

나는

 

 

 

겨울바람

김명배

 

몽고(蒙古) 가락이 아니다.

 

갈비뼈가 드러난

고려(高麗)의 지붕 위에서

칙서(勅書)를 읽는

겨울바람.

 

휘파람을 불다가

입이 길어진

빈 소주병(燒酒甁)

 

곁에서 밤새 춘향전(春香傳)

봉서(封書)를 읽는

겨울바람.

 

시베리아 가락이 아니다.

 

수용소(收容所)

천막촌(天幕村) 하늘에 쓴

이형(李兄) 김형(金兄)

친서(親書)를 읽는

겨울바람.

 

귀신(鬼神)의 가락이 아니다.

동상(銅像)이 듣는

겨울바람

구절(句節) 구절(句節)

수절(守節)하는 마을의 긴 긴

열두 밤을 넘긴다.

 

 

 

겨울바람 마조 포구에서

김영언

 

아담한 고요가 정갈한 노을로 깔리는

남해의 끝

조금씩 마모되는 꿈에 기대어

낡은 어선 몇 척 흔들흔들 정박해있던 곳

어디로부터 날아왔는지 이따금

몇 무리의 낯선 물새들

거센 바람 한 줄기씩 베어 물고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언 날개를 묶는

어스름이 유난히 포근했던 곳

지상의 끝을 다정히 감싸 안고

은밀하게 달아오르던 노을 속에

긴 겨울밤 내내

방파제 품안에 외로운 몸 찰싹여대던 파도를 닮은

서늘한 눈매의 情婦 하나 숨겨 놓고 싶은 곳

미처 녹지도 않은 아침 햇살을 서걱서걱 걸치고

어디론가 출항해버린 작은 어선들이

공연스레 공허하던 곳

부시시한 표정으로 황망히 떠나오던 길목

저멀리 하얗게 넘어지며 손 흔들던 남해 바다가

가야만 하느냐 하느냐 간간이 배어나오는 눈물을 섞어

듬성듬성 눈발을 끼얹어대던 산모퉁이

웬 바람은 또 그리도 거세게 발을 걸던지

넘어져 상처투성이인 마음은 이미 휘청휘청

절벽 아래 방파제 끝에 노을로 얼어붙어

언제까지나

그 미조의 파도빛 눈매를 기다리고 싶었다네

간혹은 철렁 까닭 모르게 일상을 주저앉히고

보송보송한 바람 두어 자락 머플러처럼 두르고

불현듯 찾아가

몇 줌의 눈발에 발길을 묶고

노을과 더불어 마냥 주저앉고 싶을 것이라네

 

 

 

겨울바람

김수잔

 

밤사이

나무마다

순백 꽃송이

만발했는데

 

잠깐 사이

다 져 버렸다

 

바람

너의 소행이지

아무도 널 본 이는 없지만

 

애처롭게 흔들리는 나뭇가지

바람

바로 너였지

 

 

 

겨울바람

김용택

 

당신과 헤어져 걷는 길에

겨울 찬 바람이 붑니다

내 등 뒤에

당신이 꼭 계실 것만 같아

뒤돌아보면

야속한 바람만 불어댔지요

 

뜨거운 눈물 삼키며

휘청이는 내 발등 위로

억새 꽃잎 같은 눈발이 서성거렸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행여 당신 모습 잡힐랑가 뒤돌아보면

 

섬진강 갈대들이

몸 비비고 사노라고

그러노라고

무수히 손을 흔들었습니다

 

그 갈대밭에

내 까칠한 머리 풀어놓고

걷자 걷자

당신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

 

 

 

만리포에 겨울바람

김용호

 

출렁이는 바닷물처럼

내 가슴도 고독으로 출렁거린다.

바닷물은 모래 놀이터와의 재회는

내가 모를 다정함이리라

 

믿기 어려운 이 아름다운 통로에

누구와 다정치 못하고

나는 마음 저려옴을 느끼며

서럽게 혼자 왜 여기 머물고 있는 것일까

 

만리포에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기다렸던 끈질긴

행운의 바람 이였으면 좋겠다.

 

만리포에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더 애태우지 않고 꿰어놓을

기대해도 될 인연의 바람 이였으면 좋겠다.

 

만리포에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내 뇌리에 포만(飽滿)한 아름다운

시심을 몰고 오는 바람이었으면 좋겠다.

 

 

 

겨울바람

김인태

 

겨울바람 윙윙

벌거벗은 나무들

생존을 위한

 

외로움은

차마 그리움을

감추지 못하고

 

뚝뚝 떨어지는

맑은 눈물로

겨울을 만나는

바람이여

 

 

 

겨울바람

김정호

 

강둑 가장자리에

밤새 윙윙거리는 소리 들리더니

황량한 들판을 지나자

넋 놓아 우는 바람 떼

겨울바람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도 잠들지 못하고

노랑 햇살이 모여들기만 기다렸다

비수처럼 날카로운

바람이 달려들 때마다

툭툭 터져 내리는 아픈 기억들

첫눈이 내려도 소리치지 못해

단내나는 신열이 목구멍을 타고 오르면

빈 가슴에 가득 찬 것은

더 이상 아픔은 아니다

그것은 서럽도록 차가운 기억을

하나하나 지워가며

하늘에 파란 기억을

심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 바람이 지나고 나면

한 번쯤 너를

사랑했다 말 할 수 있을까

 

 

 

술 취한 겨울바람

나상국

 

바람이 빠져나간 빈 가지

살찐 달빛 날개가 걸려

아등바등 나뭇가지와 씨름을 하며

벌거벗은

겨울밤을 희롱하고 있다

 

흰눈으로 빛을 잃은

가로등 불빛

길 모롱이 돌아

한적한 돌담 아래

길게 기대선 그림자 하나

몸을 가누지 못하고

하얀 눈발위에

비틀비틀 휘갈겨 쓰는

몸부림의 필체들

왔다 갔다

필름 끊긴 지 오래인 듯

주저 물러 앉아

겨울 찬바람을 희롱하네

 

 

 

겨울바람

노정혜

 

곱디 고운 가을

여운 남기고 떠난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곡예를 하고 있는 마지막 남은 잎새

겨울바람 불면 막을 내려야 하겠지

 

가을 하늘 높고 아름다웠다

 

겨울은 동장군을 불러

흰 눈 내리는 하얀 세상

겨울이 주는 행복이지

 

떠나는 가을은 아쉬움 남기고

오는 겨울은 꿈 안고 달려온다

 

12월이면 성탄의 즐거움

 

올해는 성령이 임하셔

지구 곳곳마다 성탄 축복 함께하시길

 

징글벨 징글벨

거리마다 거리마다 울려 퍼졌으면 좋겠다

 

겨울에는 겨울에는

즐거운 소식들로 채워지면 좋으리

 

 

 

겨울 손님

도현영

 

삭풍이 매섭게 불어오던 밤

가로등 희미한 불빛만이

종종거리는 그림자를 쫓는다

 

떨어진 낙엽을 벗 삼아

춤추는 듯 요란한 소리는

화음을 맞춘 듯

 

앙상한 나목을 흔들어대며

찾아온 불청객

 

대문을 박차고 들어와

문풍지를 마구 두드리지만

 

외면하며 푸대접하는데도

창문 틈새로

비집고 들어온다

 

꿈속

아름다운 날개 천사 품에 안겨

고이 잠들고 싶은데

 

콧잔등

간질간질 약 올리는 심술쟁이 넌,

진짜 밉상이구나!

 

 

 

겨울바람

박금숙

 

타협할 수 없는

냉혹한 시련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피 한 방울 돌지 않은

빙판에 나를 세우고

허리뼈를 할퀴고 간 그가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미움보다 사랑이 더 뜨거워

매운 눈물 속 불씨 같은

희망은 버리지 않았다

 

때가 되면 그도

수그러진 빗줄기 몰고 와

멍 푸른 내 어깨에

젖어 들 날 있으리니

 

 

 

겨울바람에게

박덕중

 

너 가는 길에

이 세상 사람들은

때때로 대문을 닫는다

방문도 걸어 잠근다.

 

그럴 때 너는

마른 나뭇가지 끝에서

슬피 울었다.

 

네가 싫어

이 세상 사람들은

두텁게 두텁게

옷을 껴입는다.

등을 돌린다.

 

인정을 구하러 골

목길을 헤매이며

어느 문간 집을 노크도 했지만

대문은 열리지 않았다.

 

너는 문틈만 기웃거리다가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마을마다

인정을 구걸했지만

그때마다 거절 당한

차거운 겨울바람아,

 

 

 

겨울바람

박인걸

 

1

찬 바람이 나무 위를 걸으며

칼을 휘두를 때면

지켜보던 나무들마다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소슬바람도 화가 나면

잔인한 폭군이 되고

산들 바람도 한 겨울에는

악마가 되기도 한다.

 

자연에 빛과 어둠이 있다면

마음에는 양과 승냥이가 공존하며

사나움이 발동하는 날이면

칼바람 되어 자른다.

 

여린 가슴을 난도질 하고

쌓아온 신뢰를 박살내며

순수(純粹)를 빼앗아 가는

겨울바람이 얄밉기만 하다.

 

 

2

온순하던 바람이

갑자기 사나워진 것은

함께 하던 저녁 햇살이

서산 너머로 도망쳐서다.

 

홀로 남은 겨울바람은

방향을 잃고 질주하다.

전깃줄에 매달려서

하염없이 슬피 운다.

 

길 잃은 바람은

겨울 강가를 맴돌다

그리움이 차오르면

강물 위로 뛰어내린다.

 

외로움에 떨던 바람은

문틈으로 스며들어

문풍지로 악기를 삼아

뜻 모를 노래도 부른다.

 

바람을 잠재우려면

아침이 와야 한다.

햇살이 쓰다듬기 전에는

아무도 말릴 수 없을 것이다.

 

 

3

()가 고압 전깃줄에

감전된 겨울바람이 비명을 지른다.

깊이 잠든 도시를 뒤흔들며

바람은 술 취한 듯 비틀거린다.

이맘때면 찾아오는 훼방꾼은

기어이 이 밤에 또 난동을 부린다.

칼바람이 휘젓는 동안

폭군(暴君)에 놀란 가슴은 불안하다.

하늘의 별들은 암운(暗雲)에 숨고

도시 비둘기들도 숨을 죽인다.

옆집 함석 간판의 외마디 소리에

불안한 예감이 뇌리를 스친다.

겨울이면 되살아나는

잊히지 않는 아픈 기억들이

켜켜이 쌓인 가슴에는

분노(忿怒)가 송곳처럼 치민다.

상처 입은 가슴을 포근히 감싸던

그 하얀 폭설이 마냥 그리운데

격렬한 바람만 요동(搖動)치니

이 밤은 상당히 지루할 것 같다.

아직은 내 마음이 너그럽지 못해

광풍(狂風)을 포용하기엔 좁다.

시련을 몇 차례 더 겪으면

동풍(冬風)도 감싸 안을 수 있으리.

 

 

 

겨울바람

박진표

 

바람이 분다

 

겨울을 몰고 오는 바람

겨울 냄새가 난다

 

산도 나무도

겨울옷 갈아입고

화장을 한다

 

낙엽이 떠난 자리

그렇게 쓸쓸하지는 않다

 

엄마의 품처럼

겨울은

가슴으로 모든 것 품어주겠지

 

계절의 시계는 겨울로 가고

알토란 군밤과 군고구마

모락모락 익어가는

정겨운 겨울을 바람이 데려온다

 

하얀 눈과 수정 고드름

너희들 찾아오면

나 반갑게 맞아주리라

 

바람아

바람아

겨울바람아

 

앞으로

우리 친하게 지내자

 

 

 

텐진(天津)의 겨울바람

백수인

 

한겨울 오후 텐진 메이두 호텔 앞, ‘풍구(風口)'에 세워 둔 자전거는 앞바퀴의 살들이 차분하고 선명히 빛나 보인다. 한 어린 소녀가 그걸 타고 긴 머리칼 날리며 즐비하게 널려 있는 노점상 할머니들의 깊게 패인 주름살 사이사이를 달려간다. 생계의 가느다란 비탈길이다. 페달에 감기는 것은 바람처럼 차가운 운명이다.

우두커니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니, 그 자전거 바퀴살들은 하나도 예외 없이 모두 튕겨져 나와 가녀린 노을빛을 따라 날아다닌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는 바람이다.

늙은 콘크리트 건물과 건물 사이로 보이는 손거울처럼 작은 하늘을 저승인 냥 날아다니는 잿빛 비둘기 떼가 되었는지. 난카이 대학의 얼어붙은 호숫가에 축 늘어진 버들가지가 되었는지.

이튿날 아침 눈을 툭툭 털고 시장 모퉁이 만두 가게에 들어서니, 그 바퀴살들이 '빠오즈(包子)‘ 속에서 김을 모락모락 내고 있었다. 만두를 쪄내는 한족 아주머니의 하얀 앞치마에 밀가루 반죽으로 묻어 따뜻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겨울바람

서정윤

 

1

추웠다

그 겨울에서 가장 추운 바람이

우리의 아픈 데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용서하고 싶었다

아무도 그의 허락 없인

울지 못해도, 우리들은

빈틈없이 그 겨울을 채우고 있었다.

 

바람이 아팠다

나는 모래처럼

그 바람에 무너지고 있었다

흔들어버리고 싶은 하늘

도저히 나의 것이 될 수 없는

하늘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바로 그 소리였다

방금 헤어진 소리로 나는

떨리고 있었다

내가 용서할 수 있는 건

바람뿐이었다

그는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살아 있었다

아직 사랑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말인가?

 

 

2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미처 고개도 들 수 없이

그 바람을 맞고만 있었다

아무도 나눠가질 수 없는

차가운 배경이 모래의 뒤편에서

바람에 무너지고 있었다

내가 아니었다, 쓰러지는 건.

전혀 낯선 얼굴로 나는 가버리고

소리도 없이 날아가는 그 배경

나의 어떤 외침에도

그들은 무관심한 표정으로

미소 짓고 있다

바람이 너무 깊이 파고든다

고 느낄 때는 이미

나의 전부가 노출되어 있다

누구의 죽음도

나도 감동시키지 못하고

시간은 그냥 숨죽이고 있었다

바람이 부는데

바람이 부는데 내가 아픈 건

죽여 흐느끼는 내 속의 울음이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3

들어가고 싶어, 너에게

너의 깊숙한 틈 사이로

혼자 바쁜 심장, 속 영혼이 있는 곳까지

들어가 나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바늘구멍 문풍지를 흔들며

황소 떼를 몰고 들어오듯이

붉은 단풍 색깔이 물관을 타고 올라와

잎맥 구석구석 퍼져 나오듯

너의 온몸 은밀한 곳까지

나의 표식을 칠하고 싶어.

남기고 싶어

물길 떨어지는 자리의 바위보다 더

너의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나의 체취를 남기고 싶어.

그래서

너의 전신으로 행복해지는 소리를

나의 속에 가두어 오래오래

가지고 싶어.

 

 

 

겨울바람

소재호

 

바람을 맞으면

돌 속에 잠든 구석기 시대

골천 사람들 목소리가 들린다.

자식들 움켜쥐고 식식거리던

아낙네 하얀 두개골,

빗살무늬 토기를 이고

원시인들 또

남문시장 거리거리에

조개무지를 쌓는다.

 

연탄재가 부스러진다.

화석이 되어 있었던 옛날 목소리,

화전민 불길이 바람에 흩어지고

타박타박 무릎 아픈 소리가

잠 속에서 일어난다.

 

조상들이 처음 만났던 바람 그대로

문패 걸린 우리 작은 집들을 흔들고,

구석기 시대의 목청 그대로

뼈만 남은 나무들을 스치는 바람은

이 겨울 칠흑 같은 추위를 뿌린다.

 

 

 

겨울바람

손숙자

 

그리움.

그 스산한 바람 속에

켜켜이 채워 갈 곳 없는 마음

떨어지는 잎새에 눈물 쏟는다

 

겨울 채비 서두르는

나뭇등걸에 알 수 없는

아쉬움. 걸어두고 설국 찾아

먼 길 나서 볼까

 

시린 마음은 모질게

나를 잡고 흔들어 놓아

붉어지는 눈시울 속절없이

발걸음만 재촉한다

 

 

 

겨울바람

안재동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겨울바람이

숨을 씩씩거리며 이 집 저 집 대문을

황급히 두드리다가

집집마다 꽉꽉 걸어 잠근 문틈으로

비집고 들어가려 갖은 기를 쓰다가

성난 듯

허공에다 연방 주먹질 발길질을 하면서

골목으로 벌판으로 달려간다

 

여름이면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던

사람들의 변심에 속상해하면서

주위 나무들의 어깨를 툭 툭 건드리며

"여름내 화려하던 너의 옷을 누가 걷어갔니"

약 오른 아이처럼 심술궂게 빈정댄다

 

사람들은 때론

화가 아주 잔뜩 나 몸부림치는

겨울바람을 좋아한다

 

가슴속에서 잘 태워지지 않고 애먹이는

사랑의 숯을 활활 태워 버리려 혹은

손으로 마음으로 서로 따뜻한

느낌을 나누기 위해

바닷가나 야외로 나가

겨울바람을 기다리기도 한다

 

 

 

겨울바람

유안진

 

하늘에도 땅에서도

발붙일 데 없는 죄인

 

잠들지 못하는

이 몸짓

이 목청

 

물에 물 탄 듯한

산다는 맛에

식은땀 흘리며

꿈꾸던 사람아

 

허쩌다가 허허로이

허공에 쫓겨나

 

손가락에 불을 켜도

비쳐오지 않을

낯선 그림자 지나간 벌판에서

 

너만 우느냐

혼자 우느냐.

 

 

 

겨울바람

이도연

 

겨울바람의 자취는 울음이다

나뭇가지 끝에서

목놓아 울다

쓰러지는 흔들림

 

나무가 우는 것인지

바람이 우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다만

바람이 흩고 지나간 자리에

휑한 외로운 적막이

선명하게 흐르고 있을 뿐

 

바람 끝에 머무는 시선은

텅 빈 들녘에 흐르는

부재의 자유로움

 

나도 바람의 일부가 되어

그 속에 깃들여 있는

외로움을 본다.

 

 

 

겨울바람처럼

이병주

 

너에게 주는 작은 사랑이지만

포근한 마음으로 끌어 안아주고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고운 눈빛으로 지켜 주더니

 

고운 마음 한 조각 남기지 않고

가슴에 안겨줄 그날도 예약도 없이

얼어붙은 너의 마음은

까만 눈마저 외면하고

 

아물지 않은 마음의 상처였기에

잊어야할 마음 준비도 못 했는데

휘몰아치는 겨울바람처럼

차가운 정만 남기고 훌쩍 가려 하는구나

 

 

 

겨울바람

이의자

 

앙상한 가지 사이로

하얀 창 벽을 뚫고

스쳐 지나오는 바람

외롭게 몸을 지탱하는

나뭇잎

 

한숨이라도 쉬어가면

좋으련만

빨리 가자 재촉하니

다듬고 지나가는 바람아

 

어디 메서 쉬어가려나

내 발길 닿는 곳이

나의 쉼터

그리운 임 예쁜 볼에

입맞춤으로 쉬어 가리

 

 

 

겨울바람

이재천

 

빈 겨울은

바람 소리도 처랑 타

 

숨죽여 숨어 있는

야생화의 고뇌

머지않아 다시 피련만

황량한 바람 속절없기만 하다

 

들꽃 숨죽일 때면

마른 바람꽃이라도 봐야 한다

 

 

 

겨울바람

임영준

 

강 건너 불빛이

아름답게만 보였다

시들한 가락들이

화려한 변신을 부추겼다

상궤(常軌)를 떨치고

날아오를 꿈에 부풀어

억지춘향가만 불렀다

 

그런데

간밤에 삭풍이 닥쳤다

몽롱한 등불들을

모두 꺼트렸다

웅심雄心을 건드려

버릴 것은 버리게 했다

피안彼岸의 언덕이라

앞서 우기게 했다

 

 

 

겨울바람

정민기

 

실로폰 채로 실로폰을 연주하듯

겨울바람에 흠씬 두들겨 맞는다

때론 나도 몸으로 연주를 하고 싶었다

비닐봉지 하나가 드론처럼 날아다닌다

겨울이 거느리고 다니는 무리 중에서

겨울바람은 바람피우는 데는 일등이다

작은 항구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휘파람을 분다

하늘은 우윳빛 구름을 덮었다

바다 물길 위에 파도가 상심한 듯 뒹굴고 있다

오늘도 바람 패딩을 껴입고 출근하는 남자가

구멍 난 아침을 낮달 호빵으로 때우며 걸어간다

 

 

 

겨울바람이 부는 곳

정세일

 

사랑하는 나의 당신이여

당신의 그리움은 다시 안녕하신가요.

꿈을 만들어서 봄의 피아노에게

그리움이 시작을

싸리나무의 보라색

순수의 깨달음을 연주해야 하듯이

바람사이에

나비들은 비단 같은 실을 매어놓아

구름이 스치기만 해도

소낙비 같은 노랫소리는

별처럼 온 하늘에 쏟아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당신이여

그래서 봄이 마음이 이토록

당신 앞에서 애태우고 그리워하고

거친 광야 같은

겨울바람이 부는 곳

하얀 눈이 내리는 동안에도

이슬비 외투를 벗지 않고 있는 것은

거친 호흡과

나목처럼 가진 것이 없어도

단 하나 그리움의 심장만 가지면

때로는 혼자

갈수 있는 길을 버리고

둘이서 손을 잡고 갈수 있어서입니다.

바람과 별처럼

당신의 먼 길에서 안개처럼 동행하는

발자국 소리를 잊어버리지 않고

그리움이 두 손으로 치고 있는 피아노 소리가

길이 되고 생명의 소리가 될 수 있도록

 

 

 

겨울바람

정재영

 

벼 잘려 나간 텅 빈 들판 길

그루터기를 밟으며

 

함께 고함질러

새 떼 쫓아내던

아우의 이름을 불러보면

 

논바닥 전봇대 위

옷 벗은 전선 결 따라 달리는

 

바람 소리 보다

더 크게

 

눈발들 보다

더 빠르게

 

워이

워이

어린 소리들이

역류하여 달려온다.

 

 

 

겨울바람

정찬열

 

간밤에

도둑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내려온 하얀 천사들

온 세상에 하얀 이불 펼쳤다

 

이른 아침

동녘에 내어 비추는 햇빛

도배된 눈 위에 은백색 덧칠한다.

 

하얀 금발의 세상을

은근살짝 슬그머니 비추는 햇볕

구름은 아니 된다며 볕을 가릴 때

말리는 심술인 양 밀어내는 바람

 

밀려나는 구름도 한술 더 뜬다

바람의 심술에 나뭇가지 내린 눈

모두가 떠밀렸다며 응수를 한다

네 탓 내 탓 공방으로 떠밀치는 아침

 

나뭇가지 사이로 달아나는 바람은

그도 민망한 듯 휘파람을 불어댄다

묵묵히 지켜본 동살 녘 햇볕은

방긋한 웃음으로 아침 햇살 퍼붓는다.

 

 

 

시린 겨울의 바람

정태중

 

스산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 때

그 빛나던 세월은 민초의 한이 되어

초라한 행인의 발걸음에 묻히고

 

뜨겁던 그 태양은

차디찬 달빛이 되어

한 방울 눈물로 밤을 밝히지만

 

돌아누워 뒤척이는 초라한 몸짓 위로

영혼의 바람은 잠시 머물다

아련한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네

 

다시금 찾아온 햇살은

변함이 없는데

영롱한 이슬의 아침이기보다는

 

퇴색되어 굳어버린 민심의 서리뿐이고

길가게 늘어선 앙상한 가로수는

오색의 찬란함이 머물다간 흔적이지만

 

시린 겨울의 바람은

결코 따뜻한 바람을

동반하지 못하네

 

 

 

겨울바람

주명옥

 

깨어지기 쉬운

꿈길을 헤매고

발가벗은 안쓰러운

들녘엔

 

호젓한 가슴

봄이 그리울 쯤에

마음은 흰 눈 위에

떠 있고

 

옛날의 조각들을

다시 맞출 때

해는 차갑게 기울고

바람이 불어

 

쓸쓸한 유행가의

주인공이 될 때

헤매는 그림자에

어둠이 몰려와

 

방금 헤어진

소리처럼

이미 내 몸에 배어든

기다림의 표정으로

 

날지도 못할 겨울바람이

빈 것을 채우려고

따스함을 곱게

그리고 있다

 

 

 

겨울바람

최순호

 

바람이 분다.

가슴에 부는 떨림도

잔잔한 호수에 퍼지는

물결처럼 번져 나갔지

 

차고도 습한 공기

성에 낀 차 안 유리에

손가락 그림을 그리던 때도

가슴에 부는 겨울바람

나에게도 전해졌어

 

바람에 이는 그리움도

그리움에 보고 싶은 열정도

보고 싶음에 안고 싶은 감정도

사랑에 눈먼 그 겨울 바다

바람에 흔들리는 마음처럼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

 

 

 

겨울바람

하영순

 

그가 흐느낀다

세상엔

못 볼 것이 너무 많아

 

쓸어버리고 싶어

새파란 날을 세워 휘둘려 보지만

 

두둑한

강심장은 끄덕도 않고

 

애꿎게도 약한 자만

벌벌 떨고 있다

가난이 죄라서

 

 

 

초겨울 바람

하영순

 

길바닥엔 낙엽이 뒹굴고

거리엔

호걸이 휩쓴다

 

언젠가는

너나 저와 같을걸

 

한 번쯤 돌아보는 자세가

아쉬운 계절

정지된

보일러는 없는지 산

 

유국 허탕한 기침 소리

간이 시리다

허기진 서민

 

 

 

겨울바람

허정인

 

꽃향기도 없는 들판을 헤맨다

앙상한 나뭇가지들 사이를 나그네 되어 휘돈다

 

시린 날 휘, , 울부짖으며 창문을 두드려도

굳게 닫힌 문들 창백해진 금수강산 헤맨다

 

! 봄이 온다는 확실한 믿음 희망 하나

지친 날개 위로 진눈 개비 몰아친다

 

겨울바람아! 차가운 네 고독이

바다와 들판을 지나 창공을 초속으로 달음질하는구나

 

네가 두드린 창문 흔들림에 너를 외면 하지만

봄이 올 때까지란다 따뜻한 봄이 올 때까지.

 

 

 

겨울바람

홍수희

 

너 날 부르는 목소리인가

온 세상의 겨울을 죄다 몰고 와

지금 내 창 밖에서

한꺼번에 와르르 부서지는 건

그토록 애닯게 너를 불러도

부를 땐 꼭꼭 숨어 잠잠하더니

찾을 땐 머리카락 안 보이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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