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애 – 봄비
안경애 – 봄비 타고서
안덕상 - 봄비
안도현 – 봄비
안선희 – 봄비
안숙현 – 봄비 내리는 날이면
안정순 – 봄비
안정순 – 봄비를 맞으며
안종환 – 봄비
안종환 - 봄비 내리는 저녁
안태봉 – 봄비는 내리고
안택상 – 얄미운 봄비
안화준 – 봄비
양광모 – 봄비
양광모 – 봄비 내리는 날
양봉선 – 봄비
양수창 – 봄비
양재건 – 봄비여
양채영 – 봄비
양현주 – 봄비
엄도열 - 봄비
여관구 – 봄비
여규용 - 내 마음에 내리는 봄비
염경희 – 봄비 내리면
염인덕 – 봄비
오광수 – 밤에 오신 봄비
오광수 – 봄비라고 믿고 싶은 비가 오는 날
오규원 – 양철지붕과 봄비
오남구 – 봄비가, 몰라 몰라 몸살 친다
오문경 – 봄비
오보영 - 4월 봄비
오보영 – 늦은 봄비
오보영 – 봄비 사랑
오보영 – 봄비의 사랑
오보영 - 봄비의 소명
오보영 – 봄비의 위로
오보영 – 봄비의 축복
오보영 – 봄비의 행복
오석란 - 봄비의 서곡
오석주 – 봄비
오세영 - 너의 목소리(봄비 소리)
오세영 – 봄비
오순남 – 봄비
오순화 – 봄비
오승한 - 봄비
오승한 – 착한 봄비
오애숙 – 3월의 봄비 속에
오애숙 – 4월의 봄비 속에
오애숙 – 봄비
오애숙 – 봄비 내리는 날이면
오애숙 – 봄비 내리는데
오애숙 - 봄비 내리면
오애숙 – 봄비 속에
오애숙 – 봄비 연가
오정방 – 봄비
오정방 – 봄비가 오신다
오정현 – 봄비
오진수 – 봄비
오철수 – 봄비
용혜원 – 봄비
원무현 – 봄비
유명숙 – 봄비 그치고 나면
유순예 – 봄비
유승희 – 봄비가 옵니다
유안진 - 3월가(月歌) · 봄비
유안진 – 봄비 한 주머니
유일하 – 봄비로 대답한 나의 사랑
유일하 - 봄비에 울먹이는 미소들
유일하 – 봄비에 젖는 마음
유일하 – 봄비 오는 길목
유재영 – 봄비 일찍 그치고
유진하 – 당신의 봄비
윤갑수 – 메마른 가슴에 봄비 내리면
윤순찬 - 봄비
윤의섭 - 봄비 오는 날의 우화(寓話)
윤제림 – 함께 젖다
윤춘순 – 봄비 온다
은혜 – 봄비
이가원 - 봄비
이경옥 - 봄비에 젖어
이경임 – 봄비
이경화 – 봄비
이광범 – 봄비
이길선 – 봄비
이길옥 – 봄비 그치면
이남일 - 봄비
이남일 - 봄비 내리던 날
이대형 – 봄비
이동순 – 봄비
이동원 – 봄비
이둘임 – 변심한 봄비
이둘임 – 봄비
이둘임 – 봄비가 된다면
이명순 – 봄비
이문희 – 봄비
이민숙 – 봄비
이민숙 – 생명의 봄비
이병금 – 봄비
이봉우 – 봄비
이사람 – 봄비
이상복 – 봄비
이상철 - 봄비 속에 서 있는 그대에게
이성진 – 봄비
이성희 – 봄비
이소연 – 봄비에
이수복 – 봄비
이순구 – 봄비
이승복 – 봄비 단상
이승복 - 봄비 내리는 오후
이여진 – 봄비
이영균 – 봄비는
이영신 – 봄비 삽화
이영지 – 봄비
이영지 - 봄비 소쿠리
이영지 – 사랑 봄비
이옥림 – 봄비
이옥순 – 봄비 내리네
이우걸 – 봄비
이원문 – 봄비
이원식 – 봄비
이유리 – 봄비
이윤호 – 봄비
이응윤 – 봄비
이인혁 – 봄비 내리는 길
이재무 – 봄비
이재옥 - 봄비에 젖은 사랑
이재현 – 봄비 속의 작은 명상
이재환 – 봄비
이재환 – 봄비 내리는 아침
이정규 – 봄비
이정록 - 봄비
이정록 - 봄비 내린 뒤
이정우 – 봄비가 오는 날
이정우 - 봄비 오는 날, 또 그다음 날
이정은 – 봄비
이재환 – 봄비가 오면
이재환 – 봄비 내리는 아침
이제민 – 봄비
이준후 – 아우라지, 봄비
이진기 – 봄비
이진선 – 봄비
이채 – 봄비 내리는 찻집
이채 - 봄비 맞으며 걷고 싶은 그대
이채 – 봄비 젖은 풀잎 편지
이채 – 연인이 오듯 봄비가 오면
이춘오 – 봄비
이태종 – 봄비
이해인 – 봄비
이해인 – 봄비에게
이향숙 – 봄비 속에서
이향아 – 봄비
이향아 – 오늘 봄비는
이형기 – 봄비
이혜림 – 봄비
이혜민 – 봄비
이호정 - 봄비 그리고 꽃비
이흥우 - 봄비 갠 날 아침
임명자 – 봄비
임미옥 – 봄비 내린 뒤에
임영봉 – 봄비
임영석 – 봄비는 푸른 희망을 잡아당긴다
임영준 – 그래서 봄비
임영준 – 봄비
임영준 – 봄비가 간다
임영준 – 봄비, 그대
임영준 - 봄비 내리던 어느 날
임영준 – 봄비는
임영준 – 봄비는 눈물입니다
임영준 – 봄비 봄비
임영준 - 봄비야
임영준 – 봄비야, 왜
임영준 – 봄비에
임영준 - 어느 날, 봄비
임우성 – 봄비
임재화 – 봄비
임재화 – 봄비 내리는 오늘
봄비
안경애
봉긋 솟은 꽃망울
환하게 꽃등 켜라고
물방울 방울방울
생명을 불어넣듯
뛰어서 간다
달려간다
어우러지는
한바탕 굿거리
지금
창밖엔
온종일
비가 내린다
봄비 타고서
안경애
오늘은
하염없이 비가 내리네
그리움
떨치지 못한 채
아른아른
떠오른 그대 모습
날씨만큼이나 촉촉이
가슴 적시네
외롭고 쓸쓸하듯
아프기에
전하지 못한
내 맘속 이야기처럼
소곤소곤
귓전에서 맴돌고
날씨 탓일까
그리움 때문일까
오늘은
당신 생각에
아무것도 손에 잡히질 않네
봄비
안덕상
벌겋게 타오르는 산불 지지 누르려
너는 주룩주룩 쏟아지지만
너 달려오는 소리에 놀란 뿌리들
검은 산빛 깨뜨리고
더 큰불 지펴 놓고야 말겠다
마른 삭정이도 한껏 젖으며
이 밤 자고 나면
불이야, 크게 소리치며
봄비
안도현
봄비는
왕벚나무 가지에 자꾸 입을 갖다댄다
왕벚나무 가지 속에 숨은
꽃망울을 빨아내려고
봄비
안선희
잿빛 들에
초록이 물들어
밤새 뒤척이다
새벽녘 잠들었다
어스름한 창밖에
비가 내렸다
벌써 여덟 시 십 분 전
머리 질끈 묶고
정문 들어서니
잎새 하나 없는 목련에
솜 배자 입은
아기 봉오리들
봄이 왔다고 옹알옹알
봄비 내리는 날이면
안숙현
우산도 없이
길을 걷는데
때아닌 봄비가 내립니다
회색빛 아스팔트 위에
떨어지며 그려지는
빗방울 방울방울
커다란 동그라미 속에
환하게 미소 짓는
당신 얼굴이 있습니다
오늘처럼
예고도 없이 봄비 내리는 날이면
그리움 같은 당신이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봄비
안정순
터질 듯한 꽃망울
갓난아기 방귀처럼
하나둘 터져 나오고
봄 가뭄에 목말라
마른 입술 핥고 있는
새움과 버들강아지
촉촉이 내리는 단비는
아련한 그리움 속으로
연초록 사랑을 부르고
주룩주룩
봄을 부르는
희망의 노랫소리는
냇가에 버들가지도
목마른 새싹도
함박웃음 짓겠구나
봄비를 맞으며
안정순
화사한 햇살이 몇 번을 오가더니
찬 기운을 저만치 몰아내고
화단 석축 틈
어느새 분홍 잔디꽃을 앉혀 놓았다
옆 뜰에 멋쟁이 수선화
알록달록 앙증맞은 제비꽃이
새벽참 윙크를 보냈는지
밤낮으로 애만 태우고
그 맘을 아는지
며칠을 두고 내리는 단비에
이곳저곳 움쑥움쑥 엿보는 동네 꼬마들
머지않아 황홀한 미소 영산홍이
떼로 몰려올 것도 모르고
사랑의 콩깍지에 먼 길을 떠날 텐데
앞뒤 뜰 소나무 숫총각들
영산홍 눈웃음에
봄날이 신바람 나게 생겼네
봄비
안종환
아내의 얼굴처럼
몇 날 동안
찌뿌드드하시더니
드디어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시네
하늘도
솜사탕 같은 외동딸
멀리 시집보냈나 보다
이 봄에
봄비 내리는 저녁
안종환
차가운 눈물
방울져 흐르는
유리창을 넘어
멀리서
아주 멀리서부터
낮게 깔리어
느릿느릿 걸어 들어오는
저 지친 기적소리
흐느끼며 떠나는
그대의 마지막
긴 한숨 소리
봄비는 내리고
안태봉
우짜란 말인고
아직꺼정 영 걸러묵은
땅을 박차고 일나서
새월을 욕하고
영판 그걸 배울라꼬
참꽃 불그스래한 꽃 대가리가 너무 시려
아무도 모리개 노아버린기다
재 너머 새상 가까운대
대기 아픈 가심 쓸어내리몬서
당신 생각때문에 지나간거
아모리 디다 보아도 모리는갑다
저리도 봄비는 내리 싸는대
니는 어디 갔다가 인자오노
우짜란 말이고
목련 끄트머리버터 내리온 바람
그 바람따라 번뇌망상
들머리 자는 잠에 취해버린거가
저거는 몰라도 너무 몰라
풀빛은 너무 눈알이 시려서
서글펀 심사만 역부러 내어 노안기다
인애는 와 저리
숨소리도 안내고 올라카노
꽃단지에 담기는 저거는 우짜란 말이고
얄미운 봄비
안택상
살랑거리며
설레이는
얄미운 봄비
아낙 옷섶 헤치는
부드러움으로
조심스레
사랑놀이하자며
꽃길 따라
토끼 눈 뜨고
낭창낭창
걸어 나온다
봄비
안화준
바람 타고 성급하게 달려 온 봄비
창문을 두드린다
푸른 나무 머리 위나 산곡 너머까지
그리운 맘으로 적셔
잎새 떨군 가지 끝이거나
애증의 굴레까지
정숙한 동작으로
숨 죽을 때를 기다려
한세상을 만들고
이제 날은 저물어
불빛은 빗속에 찬란하고
평지에 보석처럼 박히네
불어오는 봄바람
아직 차갑기만 하네
봄비
양광모
1
심장에 맞지 않아도
사랑에 빠져 버리는
천만 개의 화살
그대,
피하지 못하리
2
누가 먼 길을 떠나는가 보다
갓 피어난 꽃잎마저
훌쩍 뛰어내려
젖은 길을 촘촘히 수놓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누가
영원히 떠날 수 없는 사랑을 떠나는가 보다
이 비 그쳐도
그치지 않을 사랑 하나
어느 먼 길을 떠나는가 보다
3
세상에서
가장
슬픈
회초리
푸른
멍
가슴에
우거지네
봄비 내리는 날
양광모
후두둑 후두둑
봄비 떨어지는 날에는
깃 넓은 우산 쓰고
빗속 걸어가
노오란 우비 입고
빗속 걸어오는
네 진달래빛 입술
뜨겁게 훔치리
후두둑 후두둑
목련꽃 떨어지기 전에
봄비
양봉선
꽃가루와
황사현상에 시달렸던
모든 만물이여
깨어나라
일어나라
생기 넘치는 대지 위로
푸석푸석했던
들과 산 벗 삼으며
신선한 초록으로 피어나라
나무와 봄비
수런대는 동안
가슴에 고인 푸른 물살 아래
진초록 배인
싱그러운 신록의 계절
생생한 경험 맘껏 누려
푸석푸석했던
들과 산 벗 삼으며
신선한 초록으로 피어나라
봄비
양수창
깊이 잠든 시간에
혼자 울어대는 전화벨 소리에
겨우겨우 눈뜨고
더듬어 수화기를 찾는 몽롱함이다.
밤새 산하(山河)를 울리고, 봄비는
깊은 잠에 빠진 나를
흔들어 깨운다
봄비 오는 날
들판을 바라보고 있으면
요란하게 울어대는 전화벨 소리에
가까스로 눈뜨고 두리번거리는
저 새싹들의 어리둥절함을 본다.
쑥, 달래, 냉이, 민들레
모두 눈뜨고, 흠뻑 젖는다.
봄비는 들판 가득 메운
임의 충만(充滿)함이다
봄비여
양재건
입춘(立春)이 지났느냐.
그런데도,
발이 시리고 코끝이 찡하다
모든 계절의 서사(敍事)는 북쪽에 있는가
명멸하는 수천 년의 절기에
누군가 안타까워 눈물을 흘리는가
빙하기가 오기 전에
가자! 얼음의 나라로
누구도 모르는 계절의 전이(轉移)
그런데도
왜곡되어 비가 내리고
겨우내 움츠렸던 살과 뼈가 요동치며
물살 가르듯 정수리를 향해 솟구쳐 올랐을까
밤새도록 아파서 끙끙 앓는 비통한 모습 말고*
누군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듯
그렇게 그렇게, 그르렁거리며
맑은 문장이라도 되어 더 세차게 울어다오
봄비여
* 이기영의 '아픈 발을 끌며 진창을 뛰어가네' 변용
봄비
양채영
우리가 너무 참는 것도
심장병(心臟病)이 되는 걸 이제사 알았다.
검은 밤 혼자 누운 뼛속으로
우리나라 텃새는 와서 울고
봄비는 이 세상 궂은 것들을
가지가지 움트게 한다.
신방(新房)의 불빛도
저 헤아리지 못하는 들녘의
한바탕 개구리 울음소리와
깊은 사연이 있으려니
봄비
양현주
튀김옷 입은 비
자동차 위에서 튀겨지고 있다
고소하게 익어 가는 빗소리 듣는다
장대비 쏟아지는 빗길
종이 박스를 뒤집어쓰고 걸어가는 여학생
뜰에 둔 우산을 번쩍 들고 토끼다가
그만 들켜 버렸다
화들짝 놀란 하늘이 천둥을 친다
이렇게 비 오는 날이면
나도 이유 없는 도벽증이 생겨
담장 넘어
그대의 마음을 훔치고 몰래 훔치고 싶다
봄비
엄도열
긴 겨울 실핏줄 땅속에 묻고
오돌오돌 떨며
숨죽이고 기다렸던 시간을
꺼내고 있다
내리는 봄비는 매마른 대지에
수혈을 하며 기다린다
생채기 사랑을 끝내고
응어리진 한을 풀어 내려는 듯
봄비는 그렇게 내리고 있다
봄비
여관구
비가 가늘어서
가시 사이로
숨어 내리는 이른 아침
젊음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싶은
둥치 굵은 탱자나무는
무슨 옷을 입을까 고민이다.
마음이 깎이어
피부마저 얇아져서
추위를 막을 수 없더니
가는 비에
튼 살 사이로
진통을 새싹으로 밀어낸다.
가시 끝 봄비에는
눈물 맛이 섞여 있다
내 마음에 내리는 봄비
여규용
후두둑-
창가에 눈물처럼 내리는 빗물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봅니다
아직도 고요한 잠 속에 있는
내 맘속에 사랑을 깨우기 위하여
하나둘 스쳐 지나가는
그리운 얼굴을 다시 생각이라도
나게 하려는지
쉬지 않고 창문을 두들겨 깨웁니다
창밖으로 내리는 봄비가
한동안 조용히 지내던 내 맘속의 풍금을
잔잔한 사랑의 소리로
일깨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그립다 불러보는 이름이지만
당신은 언제나 대답이 없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나를 아주 잊은 것은 아닐 진데
불러도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오늘은 내 맘속에
봄비가 눈물처럼 내립니다.
당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봄비가 눈물로 되어 흐릅니다
봄비 내리면
염경희
봄비 내리면
봄비 내리는 날이면
괜스레 눈물이 난다
처마 밑
낙숫물 떨어지는 소리에
괜스레 눈물이 난다
봄비 내리면
봄비 내리는 날이면
옛사랑이 그리워진다
가로등 불빛이
비바람에 흐느적거리면
자꾸만 더 눈물이 난다
이젠 그만 울어야지
창문을 활짝 열어
비라도 흠뻑 맞아 보자
봄비
염인덕
창문 두드리는 소리
겨울과의 이별의 노래인가
얼었던 대지를 촉촉이
적셔주는 춘삼월
추위에 가난한 마음 이기고
넓은 마음으로 돌아와
묵은 나무 새 옷 갈아입고
꽃잎에 풀잎 비단 방석 깔아 놓았는데
버들강아지는 실눈을 뜨고
물오른 산수유는 산허리에 자리를
잡고 벌 나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수줍은 새색시처럼 찾아온 한 줄기
온 땅이 희망으로 넘치듯
나도 꽃잎 가득한 봄날처럼 살아가고 싶다
밤에 오신 봄비
오광수
창밖에서 들려오는
꿈결 같은 이 소리는
자박자박 마당 밟는
그리운 님 발소린데
반가워 너무 반가워
날으듯 문을 여니
별님 달님 숨긴 밤이
내 님도 숨겨 놓고
먼 길 걸어 온 봄비만
마루에 앉아 쉬고 있네
봄비라고 믿고 싶은 비가 오는 날
오광수
조금 맞으며 걷겠다
아직은 큰 용기가 없어서
옷깃은 세우고 고개는 조금 아래로 숙이고
혹여나 흙탕물이 바지에 튀는 게 싫어 살살 걷겠다
그렇지만 청승스런 모습으로 보이는 건 싫다
큰길로 나오자
쫓기는 차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비가 오면 사람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그래도 건널목 신호등이 빨간색이 아닌 것이 다행이다.
황색신호야 금방 바뀔 테니까
가로수가 모델 같은 포즈로 젖은 나신(裸身)을 드러낸다
내민 젖꼭지들은 꼭 우리 푸들 것만큼 작은데,
얼마나 많은 마음들을 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은 소망들을 보게 할까?
경이로움에 얼굴을 드니 안경이 빗물에 잠긴다
이것이 봄비라고 믿고 싶다
들판에서 요동치는 삶의 춤판을 정말 보고 싶고
겨드랑이 속으로 허락 없이 들어오는 따슨 바람도 느끼고 싶다
그리고
비를 맞고도 아내가 걱정하던 감기에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양철지붕과 봄비
오규원
오래된 붉은 양철지붕의 반쯤 빠진 못과 반쯤 빠질 작정을 하고 있는 못 사이
이미 벌겋게 녹슨 자리와 벌써 벌겋게 녹슬 준비를 하고 있는 자리 사이
퍼질러진 새똥과 뭉친 새똥 사이
아침부터 지금까지 또닥또닥 소리를 내고 있는 봄비와
또닥또닥 소리를 내지 않고 있는 봄비 사이
봄비가, 몰라! 몰라! 몸살친다
오남구
관악산 까치고개에
피리리- 새소리가 간다
반짝이는 물방울 아픈 햇빛이다
상수리 나무의 붉은 잎들의
아우성 풍금소릴 듣는다
간밤엔 남해의 바람일지
버들가지의 잎겨드랑이마다
흰 고기떼들이 파도를 친다.
가늘은 몸짓 봄비가
몰라! 몰라! 몸살 친다
피리리- 새소리가 가고
파아라니 피가 돌면 피가 돌면
깍! 깍!
몇 점 꽃이 빛났다
봄비
오문경
소록소록, 사뿐사뿐
그대 땅으로 젖어 오시는 길
새 부리가 아닌 말씀으로
물 데워 오시나요
불 녹여 오시나요
오시는 길 먼저,
나무엘랑 들렀다가 오시나요
그래도 난,
그대 오시길 기다리고 있을래요
오시는 몸 먼저,
흠뻑 젖지나 않으신가요
날은 춥고 배는 고파 졸리운데
행여, 이 밤에 오신다면 아아, 얼마나 좋을까
오셔요. 부드럽고 둥근 그대 속살
쉬어가며 오소서. 쉬엄쉬엄
사나흘 묵혀 내려오시나요
오늘도 난,
빈 의자 함께 젖어봅니다
우산도 쓰지 않고
4월 봄비
오보영
1
들떠있던
마음을
가라앉혀 주려고
메말라진
가슴을
적셔주고 싶어서
소리 없이 네 곁으로 다가왔단다
우리 서로
차분히
돌아보면서
못다 피운 초록 잎새
돋우자구나
2
짓누르는 무게
헤집고 나오기가 조금은 버거워서
예상보다 너무
딱딱하게 굳어 있어서
님 곁으로 오기가
올핸
유난히도 힘들다고 느껴졌는데
흠뻑 내려주는 당신 사랑 덕분에
모든 게 한결
부드러워졌어요
이젠 내 힘만으로도 거뜬히
이미 날 막아설 기력을 잃은 흙덩이
가볍게 밀치어 내고
연초록 얼굴
원래 내 모습 그대로
기다리는 님에게
한껏 보여줄 수 있게 되어
기쁘답니다
늦은 봄비
오보영
등 돌리고
저만치로
멀어져간 봄
아쉬움에
봄비 줄기
쏟아붓는 건
덜 식혀진
님 향한
열정이어라
덜 아물은
님 보낸
아픔이어라
봄비 사랑
오보영
1
어젯밤 깊이 잠든 사이
당신
살포시 몰래 다가와 주고 간 풍성한 선물로 인해
오늘 아침 내가
다시금 생기를 찾고 새 힘을 얻어
오신 님 두 팔 벌려
환한 미소로 맞을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사랑이 많은 당신
늘
심한 갈증으로 지쳐있을 때마다
기꺼이 찾아와
날 가득 채워주시는 당신
언젠가는 꼭 오실 줄은 알았지만
당신의 큰 사랑을 다시한번 확인한
오늘
보다 활기 찬 모습으로
나도 당신에게
온 마음을 담은 사랑을 전해드립니다
2
그간 네가
많이 보고 싶었는데
너 오기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오늘은 네가
전혀 반갑지가 않구나
내 가까이로 오는 네가
오히려
부담스럽기까지 하구나
보이는 겉모습은 그대로인데
네 맘이
달라졌다는 말을 듣고 나니
네 가슴에
다른 이를 품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덜 반갑구나
3
봄비 사랑
오보영
오늘은 너도
나만큼이나 촉촉이
젖어 들면 좋겠다
늘 목말라하면서도
앞으로 잘 나서지를
못하는 여린 성격 탓에
뒤늦게서야
남에게 스미고 남은
빗방울로 겨우 몸 적시우는
네가 많이 안쓰러웠는데
이번 비는
모두에게 다 흡족하리만큼
충분히 내렸으니
주저하지 말고
어서 네 온몸 젖게 해
너도 남처럼 진한 초록 빛깔로
당당히 네 모습 드러내거라
봄비의 사랑
오보영
오늘도 나
네게로 왔단다
네가 보고 싶어서
네 모습이 안쓰러워서
너무 자주 찾는다고 못마땅해하지 말거라
여전히 난
네 옆에 있어야만 하니까
여린 새싹 서둘러 더 돋우어야 하고
덜 피어난 꽃망울도 터뜨려야 하고
네겐 아직 내 손길이 필요하단다
네 몸 아직 내 입술로 축여줘야 한단다
푸른 잎새 네 온몸 감쌀 때까지는
가슴 속살 온전히 차오를 때까지는
봄비의 소명
오보영
님 보다
한걸음
앞서 왔다오
님 곧 당도하심
알려주려고
님 맞이하는 당신 좀
도와주려고
님 오시기 전
미리 좀 서둘러 왔다오
님 머무를 곳 한가득 채워놓으면
넉넉한 마음으로 당신
님을 맞아서
주시는 복 풍성하게 누릴 수 있으니
아낌없이 줄줄 쏟아붓고 있다오
봄비의 위로
오보영
너를
북돋우러 왔단다
네게
힘을 주려 왔단다
나 때문에
날 반겨 맞으려다
변덕쟁이 꽃샘몸살에 뒷덜미 잡힌
네게
생기 넣어주려고
따사한 볕 밀쳐내고
서둘러 왔단다
봄비의 축복
오보영
1
기다리던
당신
흡족히 내려
풍성하게 채워주시니 감사합니다
그간
몰아치던 황사바람에
숨 막히던 미세먼지에
몸도 마음도
많이 메말라 있었는데
오늘
당신 베풀어준 아낌없는 은총에
모처럼 심호흡을 하며
맑게 개인 하늘을
한껏
올려다봅니다
2
지금 내가 내리고 있는 건
단단하게 굳어 있는
네 몸을 녹여
내님
세상 향해 나오느라 지쳐있는 님에게
원기 돋워주려 함이라
연초록 여린 내 님
더 힘을 내어
회색빛 세상
어서
푸르게 바꿔달라고
촉촉이 널
적시우는 거란다
봄비의 행복
오보영
오늘 난
네게로
올 수 있어서
행복하단다
널
북돋을 수 있어서
행복하단다
널
축복할 수 있어서
행복하단다
아주 흡족하게
널 채워줄 수 있어서 행복하단다
봄비의 서곡
오석란
이제 막 벙그는가 했는데
나뭇가지 아래로
하나씩 둘씩 추락하는 꽃잎들
꽃향기를 탐내던 봄비가
유리창에 무수한 보표를 그려 음표로 매달리고
지나는 바람이
슬쩍 와 타주하듯 들려주는
봄비의 서곡
젖은 대기를 뚫고 날아오르던
새 한 마리
깃털이 젖는 줄도 모르고
봄날의 파적 삼아 적요를 쪼고 있다
봄비
오석주
봄비가
하늘에서 내려온
천상의(天象儀) 화음이 어우러져
낙숫물이 고요한
자장가 소리로
내 귓가에 맴도네
가끔
소나기로 쏟아져
발 디딜 틈 없이
힘차게 가슴 두드려
거침없이 내리는
삶으로 살라 하네
빗줄기가
세찬 바람과
앙상한 나뭇가지 흔들며
춤을 추기도 하고
천상의 음악 소리로
지나가는 이 웃음 짓게도 하네
너의 목소리(봄비 소리)
오세영
너를 꿈꾼 밤
문득 인기척 소리에 잠이 깨었다
문턱에 귀대고 엿들을 땐
거기 아무도 없었는데
베개 고쳐 누우면
지척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
나뭇가지 스치는 소매깃 소리
아아, 네가 왔구나
산 넘고 물 건너
누런 해지지 않는 서역 땅에서
나직이 신발을 끌고 와
다정하게 부르는
너의 목소리
오냐, 오냐
안쓰런 마음은 만릿길인데
황망히 문을 열고 뛰쳐나가면
밖엔 하염없이 내리는 가랑비 소리
후두둑
댓잎 끝에 방울지는
봄비 소리
봄비
오세영
꽃 피는 철에
실없이 내리는 봄비라고 탓하지 마라
한 송이 뜨거운 불꽃을 터뜨린 용광로는
다음을 위하여 이제
차갑게 식혀야 할 시간
불에 달궈진 연철도
물속에 담금질해야 비로소
강해지지 않던가
온종일
차가운 봄비에 함빡 젖는
뜨락의
장미 한 그루
봄비
오순남
밤새 내리는 봄비 소리에
창문을 열어보니
동그랗던 그리움 하나가
봄 숨결 속으로 스며들고 있네
늘 설레임의 별 하나
꽃처럼 피어나더니
수줍어하던 봄꽃 향기가
그리움의 편지를
밤새 써 내려가고 있어라
봄비
오순화
물안개 피어나는 강가
서릿발도 사그라진 작은 오솔길
합장한 소나무 잎이 기지개 펴고
하늘은 처녀의 봉긋한 가슴처럼 야무지다
올해는 내가 먼저 마중가려 했는데
당신 그리움 커피한잔에 타서
입맞춤하는 사이 보슬보슬
또 지각하고 말았다
어쩌면 당신은
나의 첫사랑 같은지요
세월이 가고 해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신선한 감동
어쩌면 그렇게 당신은
나의 첫 키스를 닮았는지요
고요하던 가슴 봄비소리에 놀라 천둥치고
들킬까봐 숨죽이고 숨 막히던 순간
사랑은 끝이 아니라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라고
이별은 너에게로 다시 돌아오는 약속
노점을 차린 초록바구니에 희망이 가득하다
봄비
오승한
겨우내 얼고, 움츠리고,
쌓고, 쌓았다
씻어라, 씻어다오
밤새 내리고 온종일 씻는다
꽃망울만 남겨놓고
걱정도, 슬픔도,
미움도 모두 씻어다오
비가 그치면 파란 하늘에
노란 햇살로 피어나는 망울엔,
연분홍 사연, 활짝 미소 짓겠지
착한 봄비
오승한
도톰한 껍질 속
얼음 바람 피해
꼭꼭 숨어 숨죽인
꽃잎과 초록 잎
톡톡톡
두드리는 소리에
뾰족한 껍질 살며시 들추고
빼꼼히 밖을 살피네
봄비가 찾아왔다
꽃잎도
초록 잎도
도톰한 껍질 훌훌 벗는다
빛나는 보드라운 살결에
뭉클뭉클 설렘
콩닥콩닥 가슴이 뛴다
예쁜 얼굴 뽐내려고
촉촉이 목욕 단장
연지곤지 치장하네
향긋한 흙내음 눈을 감는다
초록비 핑크비
마음 고운 착한 봄비
자상도 하여라
응달 구석에
얼어붙어 숨어있는
겨울도 소리 없이 녹여주네
3월의 봄비 속에
오애숙
봄비가
소리 없이
대지 적실 때
우산도 없이
걷는다
때 되면
봄비 알아서
희망 선사하는데
그때 그 사람
어디 있나
비 속에
비발디의 사계
봄 여름 갈 겨울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젊은 날
추억의 날들
3월 속 봄비 타고
맘에 그리움
일렁인다
4월의 봄비 속에
오애숙
비 오면 땅 젖으나
쨍하고 해가 뜨면
굳은 날 오리리니
인생도 그런 날이
곧 오리란 그 희망
바라보며 삽니다
내 가는 이 좁은 길
협착해 불편하나
감사로 가는 이맘
내 님의 사랑 인해
그날 기대함으로
앞만 보며 달려요
봄비
오애숙
1
희망이 봄비 타고 내려
동토의 언 땅 녹이어서
촉촉이 대지 적시어 줘
소망의 씨앗 뿌리고 있어
새순에 초록 물감 흩뿌려
들판에 싱그러움 휘날리고
삭막한 마음에 꽃잎의 소리
봄비 속에 희망 속삭이네요
보슬보슬 밤 사이 내린 비
소리 없이 맘에 꽃비 내려
희망을 꿈꾸게 하는 봄비
삶의 환희에 생명참 줘요
2
봄비 속에 활짝 봄 열릴 때
봄비 타고 사랑도 내리는지
새 순에 초록 물감 흩뿌려
대지 촉촉이 적셔주는 비
맘속 스미어 삭막한 심연에
첫사랑의 향그럼 피어나고
들판에 싱그러움 휘날리듯
사랑의 씨앗 심연에 싹 터
그대 그리움 일렁이는 물결
첫사랑의 입맞춤 살랑이며
밤암새 꽃잎 속삭이는 소리
맘속에 물결쳐 부메랑 되어
엄동설의 긴 겨울잠 깨우는
아침창 여는 싱그러운 미소
옛사랑 가슴 열어 봄비 속에
입 맞춰 그리움을 노래해요
봄비 내리는 날이면
오애숙
봄비 내리는 날이면
떠오르는 그대의 얼굴
처음 우리 만났던 어느 봄
그대는 그날 기억하고 있는지
여의도 그 옛날 가로수변 추억
벚꽃 피어 흐드러 물결치던 날
우리 슬픔 예고 하듯 보슬보슬
봄비에 꽃비 흩날리던 추억
그대 향기 스며 옵니다
봄비 내리는 날이면
세월 지나도 그때가 생각나
젊은 날 아름다운 추억의 물결
절절히 흘러넘쳐 피어나고 있어
가끔 그날이 휘날려 우산도 없이
지금도 봄비 내리면 하염없이
꽃길 걸어가며 그때 그 시절
휘도라 보슬보슬 내리는
빗속을 홀로 걷네요
수줍던 융숭 진 깊은
추억의 멍울 하나 꺼내어
봄비로 녹여 시어 날개 펼쳐
한 송이 장밋빛 서정시 피워내
그대 창가에 앉아 노래하고픈
이 마음 그대가 정령 영원히
모르고 계신다고 할지라도
영원한 내 사랑, 사랑을
봄비 속에 피우고파요
봄비 내리는데
오애숙
봄비 내리는데 그대 떠난 창가에
나 홀로 앉아 그리움에 젖어 드네
빗방울 망울망울 창가에 떨어지는
그 소리 포효의 울음 목울음 되어
가슴에 쏟아져 내려오는 눈물이
내 눈물이련가 그대 눈물이련가
봄비 내리는데 그대 떠난 창가에
홀로 앉아 그리움에 시울 불키네
삭망이 오면 사윈 들녘에 봄비 내려
푸른 희망 속에 꽃물결 피어나건만
그댄 다시 돌아올 줄 모르고 있어
창밖의 빗방울 가슴으로 내린다네
봄비 내리면
오애숙
신록이 무르익는다
간밤에 내린 꽃비로
온 누리가 반짝이네
오뉴월 내리는 비
거름 되는 개똥처럼
많은 비 좋은 장마라
속담 춤춰 인사하면
아까시나무에서는
함빡 웃음꽃 피우며
튀밥 팡팡 튀어나듯
나무 머리 위 흰구름
향그럼으로 날 보라
5월을 나팔 불면서
노래로 연회 베푸네
봄비 속에
오애숙
남몰래 흐르는 눈물인가
밤사이 싹 튀우려 내렸나
아직 잊지 못한 맘인데
내 마음 알고 있었는지
그저 밤하늘의 흑빛 속에
아픔 덮으려 홀로 흘리어
날 보듬으려는 사랑의 꽃
화알짝 피우려 함인지
새봄 속 환희의 날개로
푸르름 날개 깃 피어올라
휘파람으로 희망 속삭여
밤새 흑빛 속에 울었는지
3월 속에 내 마음 열어서
연초록의 향연 속에 피어
어느 사이 아문 상처 위에
봄의 향그러움 물결치네
봄비 연가
오애숙
밤새 소리 없이 내린 봄비
향그러운 봄꽃 피우려 시린 겨울
가슴에 녹이여 내 나목의 성긴 가지 끝
간지럼 태우며 살며시 동면 깨워
사랑을 속삭이려 노래하는가
동장군에 의해 하늘빚장
걸어 잠겨진 문 사르륵 열고서
겨우내 불모의 산과 들녘 위에다
푸른 꿈 파라란이 사랑 속삭이려
물결치며 노래하는가
산기슭 겨우내 숨죽이던
각종 야생초 봄비 연가 부를 때에
알록달록 꽃망울 망울망울 피어나서
벌과 나비에게 휘파람의 노래 손짓해
부르는 새봄의 향기런가
새봄 알리는 봄의 전령 봄비
언 폭포 녹이어 시냇가 송사리 떼도
봄비 연주할 때 작은 연못가 붉은 금빛
잉어 한 쌍도 제 세상이라 살랑이며
행복 꽃 피워 사랑 속삭이네요
밤새 봄비 연가 부르는 산과 들
향그러운 봄꽃 피우려 시린 겨울을
가슴에서 녹이여 내 나목의 성긴 가지 끝
간지럼 태울 때 내 맘속 동면 깨우니
사랑 속삭여 꿈 노래하게 합니다
봄비
오정방
봄비가 오신다
반가운 봄비가
숨죽이며 오신다
온갖 수목들
봄비로 목욕하며
고스란히 그대로 서 있다
하염없는 저 봄비
하마
깊이깊이 대지를 적신다
어느덧
마음마저 젖어 드는
봄비 오시는 오후
봄비가 오신다
오정방
봄비가 오신다
겨울에 내리던 비
봄에도 오신다
새싹을 틔우려고
새순을 터치려고
봄비가 오신다
겨우내
눈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오늘도 봄비를 맞는다
봄비
오정현
엄마의 술병은 손바닥만 한 방에서
엄마가 잠들어 있는 머리맡을
오래된 술친구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술병에 봄비가 촉촉이 내릴 때면
엄마의 눈가에도 비가 내렸다.
거리를 헤매고 집으로 돌아오는 빗방울이
엄마의 술병을 채우고
꽃바람 부는 밤바다에서
술병은 꼬꾸라져 철썩거렸다.
나는 술을 따르다
확 쏟아 버렸다.
엄마의 술병은 영취산에
진달래꽃을 피우러 가고 없는데
봄비가 내린다
봄비
오진수
굽이굽이
천신만고 끝에
하늘 맞닿은 동네
골목길에 어리는 무심하고 낮은 빈 창틀 위로
비는 게을리 내린다
방금 지나는 오토바이 굉음
자옥하던 티끌도 폴폴 하여 가라앉았다
여울져 가는 움 터엔
이 여망도 가련타 하여
동그랗게 열 지어 총총히 지나가지만
메마른 길가
신문지 위에 오롯한 냉이 서너 촉
안쓰러운 할머니 손에 오르내리나
지나는 사람 눈길 한번 없다
그대여
당신의 눈망울 뿌릴 때를 기다리며
그 나들목에 서서
오늘도 한없이 보오만은
봄비
오철수
어제
진종일
마파람 불어오더니
추적추적
봄비 내린다.
초옥(草屋) 고향
남새밭 귀퉁이
매화 가지가 젖고 있다
귓속 간지러운 소리로
소곤소곤
내 마음도
함께 적시는 봄비
봄비
용혜원
봄비가 내리면
온통 그 비를 맞으며
하루 종일 걷고 싶다
겨우내 움츠렸던 세상을
활짝 기지개 펴게 하는
봄비
봄비가 내리면
세상 풍경이 달라지고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내 마음에도
흠뻑 봄비를 맞고 싶다
내 마음속 간절한 소망을
꽃으로 피워내고 싶다
봄비
원무현
빈 들에 봄비
혈 꽉꽉 막힌 몸뚱어리에 침이 꽂히네
병든 몸이 허준을 만난 듯
저들은 믿네 봄비의 침술 능력
한 보름 잊고 지내다 보면
막힌 혈 활짝활짝 열린 몸에선
쑥이니 냉이니 파릇파릇 돋을 것을 의심치 않네
나는 고것들 눈여겨 두었다가
소쿠리 가득 캐서는 데치고 무쳐서
겨우내 시달린 입 안에 소태 말끔히 씻어내야지
빈 들에 봄비
깔끔해진 입에서 향긋한 말들이 돋아나길 고대하는 나는
온몸으로 맞이하네 은빛 강림
봄비 그치고 나면
유명숙
차창 밖 떨어지는
빗방울 바라보며
왠지 스산해지는 마음
옷깃 여미게 한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여름 장맛비야
그저 우산 속에 가려진
작은 몸 하나 적실 뿐이지만
소리 없이 내리는 차디찬 봄비는
마른 가슴속에 스며든다
바람에 흩어지는
가느다란 빗줄기 그치고 나면
이슬 머금고 피어나는 꽃잎처럼
마음 한 켠
작은 공간 채우고 싶다
봄비
유순예
겨우내 움츠렸던 대지에는
비가 내립니다
아버지의 고추밭에도
비가 내린다 하십니다.
그 덕에 비닐하우스에서 길러낸 고추모를
내다심을 준비가 다 되었다 하십니다
야위었던 저수지가
볼 살이 도톰해졌다 하십니다
봄이면 입맛을 잃어버리는
아버지 허기진 가슴에도
비가 내린다 하십니다.
그 비에 밥 한 공기 다 비웠다 하십니다
빈 마당에서 홀로 늙어가는
배나무가 파릇해졌다 하십니다
봄비가 옵니다
유승희
창밖엔
소소리 바람
어깨동무하고
파삭한 대지 위로
푸슬푸슬 내려
촉촉이 적셔줄
비가 옵니다
잎망울 하나 없는
나뭇가지 마디마디 뾰족 내민
보송보송한 꽃망울들
흠씬 젖어들어 벙글어 갈
봄비가 옵니다
이 비 그치면
천지간에 봄 향기 야울야울 번져
너 나 없이 환장할
꽃, 줄레줄레 피어나겠지요
3월가(月歌) · 봄비
유안진
봄아
내 마른 입술로
너를 부르면
갈증이 가시어지는
아프고 쓰린 기쁨은
한 생애를 꽃웃음에
밝히고 싶구나
한 생애를 꽃향기에
까무치고 싶구나
한 생애를 기쁜 울음에
적시고 싶구나
생활의 빈틈에선
피리 부는 네 목소리
술렁대는 소문 듣고
젖은 가슴 말려주며
꽃수레 달려오는 길목
먼지일라 뿌리는 눈물
봄비 한 주머니
유안진
320밀리리터짜리
피 한 봉다리 뽑아 줬다
모르는 누구한테 봄비가 되고 싶어서
그의 몸 구석구석 속속들이 해돌아서
마른 데를 적시어 새살 돋기 바라면서
아냐 아냐
불현듯 생피 쏟고 싶은 자해충동 내 파괴본능 탓에
멀쩡한 누군가가 오염될라
겁내면서 노리면서 몰라 모르면서
살고 싶어 눈물나는 올해도 4월
내가 할 수 있는 짓거리는 이 짓거리뿐이라서
봄비로 대답한 나의 사랑
유일하
봄비야!
너에게 절규했던
내 간절한 사랑이 스멀스멀 다가와
볼때기를 타고 가슴팍을 후리며
대지에 젖어 가느냐!
마음에 스며오는 것이더냐
말을 해다오
봄비야!
별에게 호소했던 내 간절한 사랑이
힘차게 빠져나와 천상서 지상까지
별똥별들로 에워싼 사랑 파편이
대지로 박혀가는 것이냐!
마음에 도사리려 하는 것이더냐
말을 해다오
봄비야
곱씹은 고추의 매콤한 진액으로
흐르는 눈물이라면 돌아앉아라
진정 보고픔에 사무친 눈물이라면
내 눈망울로 스며와 목젖을 타고
뛰는 심장에 자리하여
생혈이 식을 때까지
사랑하자꾸나
그래 줄 수 있지
봄비에 울먹이는 미소들
유일하
꽃눈으로 날리어
촉촉한 대지에 뿌려진 너
화사했던 미소의 향연은
샘이 난 구름이 울어서
화가 난 바람이 울어서
속절없이 널 허무하게 한 거야
세상을 미워해도 그들은 몰라
때마침 지나간 봄비를 미워해
넌 내년에 다시필 수 있지만
난 다시올 수 없는 과거를
묻을 수밖에 없어!
다음 생에는
너처럼 꽃으로 태어나
벌들과 달콤한 사랑할 거야
그때는 너희들의
단란한 친구가 되겠지
그러니 슬퍼하지 마
봄비에 젖는 마음
유일하
먹먹한 내 마음에
아릿하게 스민 안개여
망각의 저편 기억 속
가물가물 사라진 날
차갑게 흔들려도
고삐 풀린 소같이
이젠 울지 않으며
더 이상 찾지도 않으리
꽃망울 붉게 맺힌
진달래 동공처럼
마음에 앉혀놓은
허황된 추억들까지
언젠가 펼쳐 보일
숨은 사랑 오롯이
산자락 안개 쓰고
사알 살 옷 벗으리
봄비 오는 길목
유일하
봄비가 지나는 자리마다
뚜렷이 다가서는 그대 모습
때로는 자그마한 떡잎에
애교 어린 눈물로 노래하고
가슴 속 깊은 슬픔을
솔잎 끝에 머금은 상태로
그리우면 그리운 대로
보고프면 보고픈 대로
우린 각자의 길에서
서로를 간구(懇求)하며
봄비가 내리는 길목에
나무처럼 서서 꽃 피우리라
봄비 일찍 그치고
유재영
봄비 일찍 그치고
귀 밝은 멧새 한 쌍
포로롱 날아간 곳
목 없는 돌미륵
쑥뜸 놓은 자리처럼
번져 가는 잿빛 이끼
지난 밤 초승달
잠기던 개여울
중고기 아랫배가
어제보다 볼록했다
당신의 봄비
유진하
봄비가 내립니다.
당신의 빗방울
천근만근 무게로
가슴 흔들어 놓고 지나갑니다.
이제 겨우
낙화(落花)의 한 고비 지났을 뿐인데
벌써 낙엽 진 어깨 위로
당신의 무게가
고이지 않는 물처럼 떨어집니다.
당신 보내고,
지금도 아니 보낸
당신 떠나가고
밤늦도록 울어대는 낙숫물 소리 앞 세워
두 번 째 찾아 온
당신의 봄입니다.
찻집에 앉아
유리창 너머로 당신을 봅니다.
하얀 우산 하나로도
세상 가장 작은 집을 만들며
다정스럽게 지나가는
먼 옛날의 당신을 내다봅니다.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미안하다고 전화하는 사람을 보며
미안하다 말할 대상 있는
저 사람,
행복해 보인다는 생각보다는
부럽다는 생각 먼저 들어
창밖으로 지나가 버린 당신을
눈물 속에 담아 두었습니다.
봄비가 내립니다.
당신이 갈라놓은 길 덮어
당신이 그어 둔
서러운 별리의 선 지우며
당신의 짧은 한숨이
가슴을 스칩니다.
나는,
언제쯤이면
이 계절에 무심해질 수 있습니까,
언제쯤이면
당신 기억으로부터
눈물 없이 돌아 나올 수 있습니까 …
막막한 어둠에
빗물이 흘러내립니다.
당신의 빗줄기
두 번째 돌아온 봄 따라
사방을 온통 오열로 채웠습니다.
봄비가 내립니다.
가장 가슴 아픈 이별을
가장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긴
당신의 흔적이
한 장 한 장 낙화(落花) 되어
가슴에 쌓입니다.
창문 열면 눈 맞닿는 포구,
지금도 보내지 못한 당신을
바람결에 날려보낸
당신의 마지막 그 포구에는
비 젖어 무성한 갈대
어제처럼 나를 가두고 있습니다.
창밖으로
또 하나의 당신
봄비가 지나갑니다
메마른 가슴에 봄비 내리면
윤갑수
뻐꾸기 울다 지쳐 주저앉은 고목
고독한 세월을 보낸 흔적을
지우려는 듯 우듬지엔 연푸른 잎
고깔 눌러쓰고 수줍게 하늘거린다
민둥산 철쭉은 분홍빛 빛깔로
화려한 수채화를 그려놓고 자태를
뽐내지만, 인적 드문 산길엔
나비들만 오락가락할 뿐, 고독함이
바람처럼 휭하니 스쳐 간다
메마른 대지는 목마른 굶주림에
허기진 배 속을 채워 보려 하지만
얄미운 임은 오지 않고 타들어 가는
갈증과 현기증에 시달리는 속세를
비웃기라도 하듯 야윈 몰골에
쨍쨍한 햇살만 내려앉아 목마름의
빛을 떨군다
한 모금 감로수를 애타게 기다리는
수많은 나신의 애절한 기도 소리
하늘 끝에 닿을 수 있기를
이 몸은 살아서 고목이 되어 늘 푸른
그늘이 되어 주리
봄비
윤순찬
작은 고양이 한 마리
눈을 반짝인다
광기 어린 갈망
지붕에서 땅으로
허공을 한 바퀴 휘 돌아
나뭇잎 하나의 높이에서
멈췄다
내린다
일 센티도 안되는
작은 소리
귀를 세운다.
살금살금
톡
톡
본능적이고 기계적인 반복
다이야몬드 눈
빛 나는
광기
광기는 광기를 불러
다시금 미친 영혼을 땅에서 부르고
고무줄 같이 당겼다.
스프링처럼 펴지는
백 팔 개의 관절
마른 흙이 미친다
봄비 오는 날의 우화(寓話)
윤의섭
봄비가 내리니
나무도 젖고
새도 비를 맞네
흙먼지 씻어내니
진실한 몸뚱이에
생기 나는데
우산을 쓴 사람은
비를 피하듯
세파에 찌든 때를
씻지 못하고
거짓을 감추려 하네
진실은 울고
거짓이 즐거우니
우화(寓話)가
살판났네
함께 젖다
윤제림
봄이 오는 강변, 빗속에
의자 하나 앉아 있습니다
의자의 무릎 위엔 젖은 손수건이 한 장
가까운 사이인 듯 고개 숙인 나무 한 그루가
의자의 어깨를 짚고 서 있지만
의자는 강물만 바라보고 앉았습니다
영 끝나버린 사랑은 아닌 것 같은데
의자는 자꾸만 울고
나무는 그냥 듣고만 있습니다
언제나 그칠까요
와락, 나무가 의자를 껴안는 광경까지
보고 싶은데
손수건이 많이 젖었습니다
그새
봄비 온다
윤춘순
메마른 대지
탈착한 감로주
꿀떡꿀떡 목 넘김이 좋아라
새순마다
연녹색 차려입고
팔랑귀 꿈꾸다 여기저기 토도독
나목마다
은구슬 대롱대롱
미끄럼 타다 또르르 똑똑 소리난다
봉긋한 몽우리
금구슬 한껏 머금고
샛노란 산수유 팝콘 터지듯 타닥, 탁.
봄비 내린 산하
만물이 생동함으로 초대
봄 신고식 한번 거나하게 취하네
봄비
은혜
낮게 낮게
고개를 낮추고 허리를 낮추고
생각을 낮추어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메마르고 푸석거리는 마음밭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봄비
이가원
살짝이
살짝이 오세요
서두르지 말고
달려오지 말고
돌아보지도 마시고
사뿐 사뿐
사뿐히 오세요
그대 오시는 길에
예쁜 꽃잎 다칠까 봐
그대 오시는 길에
그 꽃잎 아플까 봐
그대 오실때
그 꽃잎 떨어질까 봐
봄비에 젖어
이경옥
보슬거리며 내리는 빗방울이
내 작은 어깨 위로 흐르면
난, 그대의 가슴으로 파고들고픈
구멍 꿇린 마음이 된다
어쩌면 어제의 아픔보다
오늘의 행복함에 젖고 싶어서일까
내리는 빗방울 바라 보는 눈빛에서
그대를 더욱 생각게 하는 것은
하지 못하는 말을 품은
그대의 마음을 알게 되어서일까
어제처럼 오늘도 비가 내리면
난, 그대의 생각 속에 머문다
봄비
이경임
새벽 2시에서 3시를 향해 움직이는
커다란 초침 소리처럼
나의 출생신고에 사용된 숫자들처럼
나의 사망신고에 사용될 숫자들처럼
천진한 울음처럼
발랄한 체념처럼
그렇게 무엇인가가 땅으로 내려와
하늘을 향해 속삭였다
시계 우물 속 개구리처럼
마음 우물 속 개구리처럼
분주하게 폴짝거리며 힘 빼지 말고
하늘을 꼭 껴안고 더 많이 놀아야지
땅과 뒹굴며 더 많이 놀아야지
차갑고 메마른 입술 위로
흘러내리는 봄비의 촉감처럼
죽음의 촉감과 더 친밀해져야지
봄비
이경화
1
대지의 마른 혈관을 타고
흐르는 그대 숨결은
신성한 피가 되어
차가운 심장을 다시 요동치게 하고
끝없는 갈증으로 쓰러져 가던
초목들을 소생시키고
고독한 영혼들을 흔들어 깨운다
생명수로 깊이 목을 축인 봄의
뜨거운 가슴으로 싱그럽게 피워낸
형형색색 그리움의 조각들
짙어가는 초록 향기
환희의 물결로 출렁이는
꽃들의 환호성 속에
찬란한 봄의 향연 시작된다
2
춘풍에 몸을 실은 먹구름
무지갯빛 부푼 꿈을
흐린 하늘가에 걸어 놓고
숨겨왔던 욕망을
거침없이 토해내며
허공을 가르는 본능의 질주
어둠 속 긴 터널을 지나온
고단한 대지 위에
촉촉한 눈빛으로 다가온 그대
살포시 옷고름을 풀어
허기진 봄의 입술에
신선한 젖줄을 깊이 드리울 때
꿈틀대는 생명의 숨결이
온 산야를 흥분으로 들뜨게 한다
봄비
이광범
비에 적혀있는 봄을 매만지다가
고운 선율 귀를 문대며 들어섰다
여름 소나기 지붕을 콩 볶는 열정도 제맛인데
가랑비 귀지 파대는 손놀림에 간지러움 냉큼 흩뿌린다
우산 걱정 덜 하면 되지
처마와 처마를 잽싸게 내달리면 될 일
혹시라도 그녀와 함께 갈 길이면
몸이 우산 되어도 둘 마음 멀쩡할 것 같았다
봄비 되어 내리고
이길선
봄바람으로 그 언덕 넘어서서
하늘 향해 외치는 소리 들리니 봄날인가 보다
긴 시간의 기다림은 헛되지 않고
반짝이는 이파리들 너울춤 함께 추며
봄이 왔네! 봄이 왔어
그때처럼 외치며 엉키어서 부르짖는 감동을
끌어당기다 놓아버린 고무줄처럼
멀리도 가까이도 아닌 지금 여기에
밤의 영역을 가로질러 새벽을 가르고
헤집고 또 헤치며 달려온 봄의 전령을 반긴다
봄비 그치면
이길옥
곱게 접어두었던 일들이
부산해진다
앞다투는 소리들로 분주한
가지 끝이나
밀치기로 시끄러운
양지쪽에서
봄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들썩인다
야무진 놈들이 먼저 나와
봄볕에 데워진
아지랑이 가슴을 파고든다
젖은 날개 다 말린
종달새
출렁
하늘을 휘젓는다
봄비
이남일
때가 되면
무엇인들 오지 않겠는가
이별인들 없겠는가
오면 가고
가면 다시 온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인연 따라 세월 따라
올 땐 오더라도
먼저 간 슬픔 때문에 오는
봄비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봄비 내리던 날
이남일
잊고 있었습니다.
뒤안에
봄비가 내리던 날
앵두꽃 눈망울에
봄이 뭉클 피어나던 것을
내내 잊고 있었습니다.
고향에
봄비가 내리던 날
복사꽃 언덕 위에
봄이 새빨갛게 피어나던 것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날
등교 길 아이들 얼굴에
봄비 맞은 웃음이
새봄처럼 환히 피어나던 것을
봄비
이대형
1
떨어진 벚꽃 위로 내리는 비
아름답던 봄은 그렇게 가고
영원한 인연도 때가 되면
비와 함께 사라져 가고
봄비는 오후의 쓸쓸한 노래도
떨어져 흩날린 오랜 연민도
꽃잎처럼 씻어 버릴 것이다
온종일 적적한 봄비에
빛바랜 그리움들을 흘려보냈다
애처로운 벚꽃잎에 담긴 바람
그리고 예스러운 추억 한 조각도
2
이른 새벽 봄비는
쓸쓸히도 내리고
바라보는 이
적적한 마음도 내리고
이른 창밖 봄비는
추적추적 먼 산도 적시고
맑은 공기 바라는
답답한 이 두 눈에
고스란히 추억으로 내리고
새벽 내내 그리운 추억은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처럼
온몸을 이리도 흔들어만 댄다
봄비
이동순
겨우내
햇볕 한 모금 들지 않던
뒤꼍 추녀 밑 마늘 광 위으로
봄비는 나리어
얼굴에
까만 먼지 쓰고
눈감고 누워 세월 모르고 살아 온
저 잔설을 일깨운다
잔설은
투덜거리며 일어나
때묻은 이불 개켜 옆구리에 끼더니
슬쩍 어디론가 사라진다
잔설이 떠나고 없는
추녀 밑 깨진 기왓장 틈으로
종일 빗물이 스민다
봄비
이동원
잠들었던 대지에
부풀어 오르는 꿈의 눈물을 흘린다
그 눈물에 바람이 부추겨
꽃비가 대지를 덮어 봄이란 까치집을 짓고
목련의 숭고한 이치를 깨워라 말하고 있다
창을 기대듯 우두커니 선 몇 그루
아기 주먹만 한 꽃봉오리 흔들며 발버둥 치는
민족의 함성과 허기진 뜸닭의 숲이
물배미 논두렁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로 요동친다
꽃봉이 터지고 피었다가 떨어지는 한숨 소리
그래 그것도 봄의 생동인데
나는 어찌 슬퍼라 어미의 자취 같아 아프다
울어라
통곡하라
너의 외침이 대지를 푸르게 하리니
솥뚜껑만 한 꽃봉에 앉아서
이 땅에 나를 서게 한 어미를 찾아나서
어둠을 담지 마라 세상 살피리다
변심한 봄비
이둘임
그녀는 늘 조용조용
덕성스럽게 다가와 입맞춤하며
부드럽게 안아주었지
왈가닥 시끄럽게
변심한 여인 같은 서먹한 얼굴
미세먼지 덮인 대기 화풀이하는지
소리소리 지르며 돌풍 몰고 찾아왔네
산등성이 푸른빛 새살 돋아나고
갓 깨어난 여린 잎새 숨차게 빗물 들여 마시며
자란다고 으쓱이는데
상처 줄까 얼떨결에 껴안는 대지
토닥여도 유난스럽다
사나워진 그녀
변해버린 성질 불안한데
보슬보슬 젖어 들며 상큼한 향으로 다가와
꽃비처럼 내려주오
애타게 기다렸는데
봄비
이둘임
어두움 속
창에 맺혀 흐르는 눈물
미세먼지에 지친 마음 쓰다듬고
방울방울 흘러내린다
메마른 대지 위로 세차게 내려라
잠자는 눈 깨어나
땅속이 요동치고
푸른 용솟음 하도록
하얀 밤 지새우며
너의 입맞춤에 수줍은 대지
생글생글 생기 돋고
퇴색해간 봄의 설렘은
보슬보슬 다시 내 마음에 젖어 들고
새벽녘 떠나가며 화사한 봄 재촉하네
봄비가 된다면
이둘임
봄이 살찌도록
주룩주룩 종일토록 울고 싶어라
우울한 거리 말끔히 씻어내어
초록빛 세상으로 물들이고
화사하게 반겨
나무 눈 깨워주듯
생동감 불어넣고
만물이 깨어나
잠자는 마음
얼어 버린 마음
닫혀 있는 계절 열게 하리
봄은 오고 있지만
노고지리 오지않아
인파의 향기 사라져가고
역동의 계절이 멈추었네
울고 싶어라
가슴에 맺힌 빗방울
흠뻑 취하도록 적시어
병란도 씻어내고
마음의 창 열고
봄과 호흡하며
봄맞이하게 하리
봄비
이명순
고요한 달빛이 흐르는 뜨락에
목마른 그리움으로 하얗게 지샌 밤
속절없이 내리는 봄비가
절절한 떨림으로 적셔옵니다
타는 그리움 스미는 숨소리
손끝 스치는 전율 타오른 불길
재가되어 발아래 흩뿌렸네
자작자작 적시는 봄비가
이별처럼 울고 있어요
봄비
이문희
1
고목 나무 마른 가지에
부풀어 오른
수줍은 꽃망울
분홍빛 미소가
보슬보슬
소리 없이
봄비 내리는 날
싱그러운
살
내음
가슴에 몽실몽실
님 그리움
발바닥 저리게
눈물 고이네
2
상서(祥瑞)로운 손님
깡마른 피부를 일깨우고
말라붙은 혈관을 데우는
새 생명의 배냇물이 흐른다
움츠린 꽃몽오리 터지는 소리
얼어붙은 무거운 지구를 이고
고사리 귀연 손길. 예쁜 미소가
깊은 계곡 산울림 되는
눈 쌓인 개울 속. 새 생명의
아우성 소리 듣는다
예쁘고 고운 아씨
산고(産苦)의 거룩한 고통
희열의 몸부림이 혈관 속으로
전류 되어 흐른다
봄비
이민숙
1
얼음 녹은 호수에
동그라미 그리며
활짝 활짝 웃어요
시냇가 송사리 떼
기다리던 봄비에
꼬물꼬물 춤춰요
풀잎 끝에 보석빛
방울방울 맺히니
시원하다 웃네요
우산 위에 톡톡톡톡
노랫소리 장단 맞춰
콧노래로 걸어요
2
창을 열어 놓기를 잘했어요
기척 없이 내리는 청아한 소리는
전주곡 선율처럼 토독토독 연주합니다
가슴을 열어 놓기를 잘했어요
멍울져 아파하는 곳마다
그대 손길로 촉촉이 적셔
보슬보슬한 마음밭에 파르란 싹을 틔우네요
고개 떨군 햇살이 참 예쁘네요
그 긴 겨울을 지우기에 버거운 햇살은
토닥토닥 내리는 빗물을 받아
온 누리를 씻어 쓰다듬고
온전한 봄을 일으켜 세우네요
물길을 열어두길 참 잘했어요
더없이 흥건하게 내리어
뿌연 먼지를 말끔히 거두고
퍽퍽한 가슴에 차란차란 흘러
후련한 단비가 되어주네요
생명의 봄비
이민숙
촉촉하게 내린 봄비 달게 마신
만삭의 버들강아지도
지천으로 움 틔우는 야생화도
앞다투어 피어오르기에 분주하다
양수 같은 단비 받아 흙을 쪼아대며
실핏줄과 혈관을 열어 놓고
용솟음치며 봄을 밀어 올린다
초록의 혁명은
연두빛 채색으로
계절의 깃발을 쫓아 돋아 오르고
외진 그늘에 핀 은방울꽃도
민들레 홀씨도
돌 틈 한 줌 흙에서 기어이 돋아나고
사방에 가시로 둘러싸인
덤불 속 탱자꽃도 눈을 뜨고
언덕배기 찔레꽃도 주저 없이
햇살을 덥석덥석 베어 물었다
고군분투하는 야생화를 보라
폴짝폴짝 노처녀가 될까
토지의 시간을 부여잡고
뽀드득뽀드득 생명을 씨방을 튀운다
봄비
이병금
꽃 진 길 위를
하루와 함께 걸었습니다
가랑비를 지팡이 삼아
낡은 옷 속
길 밖의 날들이
솜이불 되어
스스로 길이 되어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해묵은 한숨을 피워올립니다
젖은 몸을 들어 올려
두 눈에 차오르는 맑은 샘물을 바라봅니다
봄비
이봉우
물 화살
자유낙하
겨우내 시린 땅
속으로 스며들어
땅속 생명 깨우는
상처 없는 격돌
봄비는
파란 세상
숨 막히는 격정을 몰고 온다
봄비
이사람
밭일 오가며
알고 지냈는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봄이면
엄마 무덤에
들꽃 몇 송이
두고 간다
봄비
이상복
누군가 창밖에서
경쾌한 물의 왈츠를 추고 있다
피아노 건반의
때론 강하게 때론 약하게
사분의삼박자 리듬에 맞춰
부드럽게 발끝을 바닥에 사선으로
톡톡 치며
가볍게 손바닥을 터치하며
한 바퀴 커다랗게 둥근 원을 그리고 돌며
서로가 서로를 적당한 거리에서
상냥하게 바라보며 보듬으며
반갑다고 꾸벅 대지에 인사하며
자박자박 똑똑 딱딱
잠의 메마른 대지의 감성을 일깨우는
섬세하고 따사로운 어머니의 손
봄비 속에 서 있는 그대에게
이상철
속살거리는 봄비에
목련이 꽃 깍지를 벗듯이
따스한 내 입김에
그대 두꺼운 옷을 벗으려오
투둑 거리는 봄비에
애기 꽃이 꽃망울을 부풀리듯
따스한 내 눈길에
그대 가슴에 불 지피려오
꽃밭에 튀는 봄비에
새싹이 떡잎을 벌리듯이
나로, 나로 하여금
그대 두 팔에 안기게 하려오
봄비
이성진
지난가을
홀연히 떠난 인연들
미처 전하지 못한 사연
색바랜 낙엽 위 빼곡히 적어서
가장 아릿날 불어오는 바람결에 띄우고
마침내 왔던 길 되돌아갔는데
절절 하였든가
가슴 속 일렁이는 파문
뿌리에 닿게 하였든가
밤새
자작자작 내리는 비
화르르 화르르 그꽃들
살아나야 한다고
젖은 버선발로 안부 전하는
이 아침
봄비
이성희
따스한 대지를 저기압으로 짓누르더니
후닥닥 후닥닥 낮은 곳을 향해
냉냉한 회초리로 후려대누나.
눈물 젖은 대지는 하얀 입김
토하지만 때를 안단다.
두렵지 않느냐 저들의 발란
허공 향해 창과 칼 푹푹 찔러댈
저들의 반항.
누가 막을 수 있으리오
도처에 향기 뿌려 봄바람 나게 하고
공중을 향한 씨알의 낙하산 부대 투입될 때
점령된 너희에게
많은 사람 울린 죄과는
나무와 풀을 지탱하는 물살이 된단다
봄비에
이소연
지난겨울 웅크리던 꿈이 젖고
꿈을 담은 항아리가 젖고
허공에 펄럭이던 깃발이 젖고
깃발을 흔들던 바람이 젖고
나뭇가지에 앉은 새의 노래가 젖고
노래를 듣는 귀가 젖고
나를 바라보던 속눈썹이 젖고
함께 걷던 모래사장이 젖고
나란히 발자국이 젖고
겨울 강을 건넌 봄도 젖고
봄비
이수복
이 비 그치면
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
서러운 풀밭이 짙어오것다
푸르른 보리밭길
맑은 하늘에
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
이 비 그치면
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풀밭 속
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
입안에 타오르는
향연과 같이
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
봄비
이순구
주룩주룩 내리는 봄비
톡톡 튕기는 빗방울들
그 속으로 걸어가 봅니다
마른 잎사귀들 생명수이런가
새싹들이 꿈틀꿈틀 그려요
생명의 존귀함으로
다시 깨어나는 신비로움
메마른 가지마다
봄비가 새록새록 적셔주고
대지 위에 솟은 들풀들
춤을 추듯 흔들흔들 그려요
봄비 내리는 오후
이승복
막 깨어나는 새싹 곁에
봄비가 내리는 오후
생각의 껍질을 벗어
눈감아 침몰하는 나
내게서 사랑은 조용히
먼발치서 흔드는 몸짓
외줄 타는 철 지난 낙엽
애달파했던 허기짐에
몰래 귀동냥하는 사랑
후조의 숨바꼭질 사랑
붉게 그대의 향기가
신기루 되어 보이는
가슴 차고 앉은 빈자리
그림자로 따라붙는
고운 님이 아지랑이처럼
모락모락 피어나는
봄비 내리는 오후
봄비 단상
이승복
막 깨어나는 새싹 곁에
봄비가 내리는 오후
생각의 껍질을 벗어
눈감아 침몰하는 나
내게서 사랑은 조용히
먼발치서 흔드는 몸짓
외줄 타는 철 지난 낙엽
애달파했던 허기짐에
몰래 귀동냥하는 사랑
후조의 숨바꼭질 사랑
붉게 그대의 향기가
신기루 되어 보이는
가슴 차고 앉은 빈자리
그림자로 따라붙는
고운 님이 아지랑이처럼
모락모락 피어나는
봄비가 내리는 오후
봄비
이여진
꽃비가 내립니다
삭막한 대지 위에
포근히 내립니다
내 젊은 어떤날
사춘기이든가 그날
유난히 서럽게도
내 가슴에 젖어 들던
앳띈 소녀의
은은한 미소처럼
창밖에도
내 가슴에도
꽃비가 내립니다
봄비는
이영균
겨우 햇살을 그렸는데 비가 온다
마른 텃밭에
봄비
샤워를 한 뒤 와인 한 잔
구석구석 홀가분한 몸
촉촉함이
저 황망한 들
파랗게 솜털을 세운다
봄비 삽화
이영신
이사 첫날
비좁고 헐은 이 집에는 제격이라고
청우재(聽雨齋)라 이름 붙이고 어질러진
채로 잠들었더니
대번에
정말 비가 찾아 오시는구나
귀 썩 밝으신 비가
봄비
이영지
아직도 긴 잠으로 딩구르 딩구는데
땅속의 전화 소리
따르릉 여보세요
빨라들 서두릅시다 나오세요 오세요
빠알간 파란 잎 중 어떤 걸 무얼무얼
입을까 입어볼까 아유유 같이 가요
큰 햇님 따뜻한 한 날 준비하고 가셔요
봄비 소쿠리
이영지
비
오
며
조잘조잘
봄 밭을 두드린다
두드린 빗소리는 내 귀에 풍덩빠져
그리움 봄비소쿠리
그대 내게
비
오
며
사랑 봄비
이영지
초록의 빗방울에 버튼을 눌러눌러
촉촉히 젖어 드는 풀잎을 모으느라
숨소리 달싹거리며 산들산들거린다
반가운 봄 빗방울 소리로 눌러눌러
봄비로 젖어 드는 나를 본 봄바람이
사랑의 온 둘레들을 산들산들 깨운다
봄비
이옥림
잿빛 하늘이 빗장을 풀고
등불을 끈다
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대지는 행복해하고
빗방울은 맑게 흐른다
때 묻지 않은 꽃망울
수줍은 듯 배시시 웃으며
비를 품는다
비에 젖은 바람은
무거워 허우적거리고
몽롱한 초목은
생기를 돌리고 꿈틀댄다
졸고 있던 종달새
간지러워 깃털만 털다가
옴츠리고 숨어든다
봄비는 꽃등을 켜라고
졸라대며 온종일 속삭이며
나직이 내리고 있다
봄비 내리네
이옥순
회색 구름 밀려와
맑은 하늘 가리고
무거운 기류 흐르니
봄비 주룩주룩
내리는 밤
추억 속으로 달려간다
밤새 내린 빗소리
차곡차곡 쌓아놓은
창밖에 추억
꽃잎 소리 없이
떨어지는 길목에
우산 속 여인 눈물 삼킨다
산하의 힘찬 물소리
꽃가지 연둣빛 피어오르고
햇살에 생명의 숨소리 빛난다
봄비
이우걸
그것은 신의 나라로
열려있는 음악 같은 것,
불타는 들을 건너서, 얼음의 산을 넘어서
돌아와 가슴에 닿는
깊은 올의 현악기
텅 빈 벤치에서도. 시멘트벽 속에서도
수 없이 잊어야 했던
가난한 이름들을
이 밤에 모두 부르며
봄비는 길을 떠난다
봄비
이원문
이슬비 가랑비
바뀌며 내리는 길
보슬비 그 한 몫
바람에 흩어진다
풀잎에 살짝이
송이송이 맺힌 방울
버드나무에 그대로
가쟁이 타고 흐르고
마음 젖으면 어쩌나
걷는 길 하늘 보면
내리는 빗방울
눈언저리 적신다
봄비
이원식
4월이 떠나갑니다
입술 깨문 벚나무
눈물 배인 꽃잎을
하나둘 떼어냅니다
해마다 그러했듯이
하얀 시(詩)를 남길 겁니다
봄비
이유리
돌아서며 흘리는 눈물이었다
아쉬운 마침표로 찍히는
겨울날의 애상
마주 보며 손잡는 환희였다
재회의 기쁨으로 오는
차곡히 쌓였던 그리움들
내 여린 마음 설레임으로 노크하는 봄비
나는,
미세한 흔들림에 무언의 꿈을 꾼다
우리네 삶은
아쉬운 눈물로, 환희의 기쁨으로
봄비처럼 살풋한 작은 소망 있음을
봄비
이윤호
약속이라도 한듯이
주말 내내 비가 내렸다
겨울비라고 할 수도 없고
이른 봄비라고도 할 수 없는
그래도 우수가 코 앞이니
봄비라고 하겠다
농부의 땅이 해갈되어
기분은 좋다만은
내 기분은 영 내키지
않는다
아침부터 영화 한 편보고
커피 한잔 마시고 오자는
마누라의 등쌀이
성가시어
봄비가 우리를 노래하네
이응윤
당신아,
봄비가 우리를 노래하네
하늘엔 구름들이
연둣빛 웃음을 짓고
상큼 향내 나는 봄비가 노래를 하네
우리에겐 푸른 희망이며
사랑의 봄꽃 피우는 단비라는 거겠지
당신아,
내리는 비 그치고 나면
들과 산에 푸른빛 돋으며
고운 꽃들 활짝 피고
벌 나비 날으며
새들 노래하는 축제의 봄이 되겠지
그 속에 당신과 나
넘실대는 봄빛에 젖어
저 하늘 다하기까지
잊지 못할
우리 사랑의 듀엣이 되어보자
늘 내 옆에 있어도
오늘은 더 아름다운 당신이다
봄비가 우리를 노래하네
봄비 내리는 길
이인혁
봄날 그리움이
촉촉이 젖은 길에는
사랑이 식지 않았나 보다.
화사한 봄꽃을 희롱하는
여우비의 웃음소리에
시집 못 간 처녀들이
화들짝 놀라며
넓은 엉덩이 흔들며
급한 걸음으로 가는데
연인(戀人)들은
뭐가 그리 좋을까
재잘거리며, 웃으며 길을 간다.
저 사람들처럼 비를 맞으면
좋은 일이 일어날까
행복한 동행(同行)을 할 수 있을까
비를 맞으며
빈둥거리며 걷는 길
사랑하는 이들과
멀리 떨어져 있음을 느낀다
봄비
이재무
1
봄비의 혀가
초록의 몸에 불을 지른다
보라, 젖을수록
깊게 불타는 초록의 환희
봄비의 혀가
아직, 잠에 혼곤한
초록을 충동질한다
빗속을 걷는
젊은 여인의 등허리에
허연 김 솟아오른다
2
사랑의 모든 기억을 데리고 강가에 가다오
그리하여 거기 하류의 겸손 앞에 무릎 꿇고 두 손 모으게 해다오
살 속에 박힌 추억이 젖어 떨고 있다
어떤 개인 날 등 보이며 떠나는 과거의 옷자락이
보일 때까지 봄비여,
내 낡은 신발이 남긴 죄의 발자국 지워다오
3
나를 살다간 이여, 그러면 안녕,
그대 위해 쓴 눈물 대신 어린 묘목 심는다
이 나무가 곧게 자라서
세상 속으로
그늘을 드리우고 가지마다 그리움의
이파리 파랗게 반짝이고
한 가지에서 또 한 가지에로
새들이 넘나들며 울고
벌레들 불러들여 집과 밥을 베풀고
꾸중 들어 저녁밥 거른 아이의 쉼터가 되고
내 생의 사잇길 봄비에 지는 꽃잎으로
붐비는, 이 하염없는 추회
둥근 열매로 익어간다면
나를 떠나간 이여, 그러면 그대는 이미
내 안에 돌아와 웃고 있는 것이다
늦도록 늦봄 싸돌아다닌 뒤
내 뜰로 돌아와 내 오랜 기다림의 묘목 심는다
봄비에 젖은 사랑
이재옥
아름다운 것은 느리다는 걸 증명하듯
나뭇가지의 졸린 그리움 사이로
추적추적 봄비가 소리 없이 내립니다
당신을 만났던 별빛 쏟아지던 거리와
노을이 뜨거워서 철철 낭만이 흐르던 저녁
혼자 지는 붉은 해를 바라보던 야릇한 미소
알몸 위로 쏟아지던 가냘픈 한숨까지
당신과의 모든 것 지금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자해한 손목 같은 튤립 붉은 꽃잎에
첼로의 저음으로 나부끼는 봄비는
날개 붓을 휘저어 사랑을 적시고
온 세상을 적십니다
고뇌로 점철된 퇴색된 추억이
비바람에 밀려도 아니
폭풍우에 세상 끝까지 실려가 뭉개져도
항거하지 못할 봄비의 의뭉한 허밍에
사랑이 까무룩 잠들 듯 젖어 갑니다
봄비 속의 작은 명상
이재현
보랏빛 꽃구름 일더니 오늘 비가 내린다
색실 같은 빗줄기가 영혼의 빛을 토해 냈다
현이도 비를 좋아 하나요
그녀의 목소리가 빗방울로 번졌다
나는 그저 풀잎처럼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혜미 그 애는 비의 소녀였다
스물넷의 그 해를 채 못다 살고
적어도 그녀가 내 곁을 떠나기 까지는 그랬다
죽어 차가운 땅속 지심이 된 지금
그녀의 목소리가 빗방울에 묻어
내 시린 가슴을 적시고 있다
젖어 오면 올수록 목마름으로 운다
그녀가 산 시간만큼을 더 흐른
무정의 한 세월을 삭혀가며
그리운 얼굴을 떠올리며
창가에 서면
나는 사색의 새가 되어 하늘을 난다
빗줄기 하염없이 내 영혼을 적신다
얼룩진 내 마음의 벽에다
한 폭 그리움의 수채화를 그려놓고
그녀는 가슴으로 우는
긴 강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내 울음 타는 강이 되어 내 곁을 떠날 때
문득 다가온 아내가 커피 한 잔 내민다
봄비
이재환
파릇파릇
봄 향기 가득 품고
촉촉이 비가 내린다
그대의
뜨락에도
예쁘게 비가 내리나요
향기로운 커피 향에
내 마음을 실어
그대에게 보냅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커피가 생각나고
그대가 더 보고 싶다
봄비가 오면
이재환
쌓이고 쌓인
한 많은 설움
시원하게 푸는 거야
힘들게
참고 이겨낸
그리움 꽃 피우는 거야
비우고
또 비우고 나면
웃는 거야 희망의 꽃
봄비 내리는 아침
이재환
새벽녘
연둣빛 나뭇잎 사이로
조용히 비가 온다
전천 변에는
강태공의 낚싯대
불빛이 반짝이고
취입 보 밑에서
물새들이 꼼짝하지 않고
물고기를 노려보고 있다
우산 위에는
빗방울 떨어지고
발걸음은 점점 빨라진다
봄비 속에
몸을 맡기고
분주하게 하루를 연다
봄비
이정규
마음이 젖어 듦에
봄비가 더욱 애달프다
그대가 이 비와 함께 올 수 있을까
봄이 오는 길목
파릇파릇한 새싹처럼
만지면 터질까
불면 사라질까
뽀오얀 그 얼굴
밤새 내린 봄비와 함께 젖어드는 시간의
그리움 속
봄비는 두근거리는 마음 안고
이내 삶의 뜨락으로 안겨온다
이 아름다운 아침
님 마중하러 간다
봄의 향기는
빗속에서 어깨동무하자 앙탈 부린다
봄비
이정록
오늘 내리는 봄비는
안개비라서 보슬비라서
도랑까지 흘러가지 못합니다
병아리 눈꼽만큼 내려서
쥐구멍에 스며들지 못합니다
그런데 겨우
땅만 굽어보던 봄비라서
씨앗의 머리는 톡톡 정확히 맞춥니다
늦잠 자는 개구리 이마는
간질간질 잘도 맞춥니다
보이지도 않는데
땅속 씨앗과 개구리에겐
오늘 내리는 빗소리가 가장 크게 들립니다
개구리가 슬금슬금 기어 나옵니다
씨앗의 귀청이 새파랗게 터집니다
봄비 내린 뒤
이정록
개 밥그릇에
빗물이 고여 있다
흙먼지가
그 빗물 위에 떠 있다
혓바닥이 닿자
말갛게 자리를 비켜주는
먼지의 마음, 위로
통통 분 밥풀이
따라 나온다
찰보동 찰보동
맹물 넘어가는 저 아름다운 소리
뒷간 너머
개나리 꽃망울들이
노랗게 귀를 연다
밤늦게 빈집이 열린다
누운 채로 땅바닥에
꼬리를 치는 늙은 개
밥그릇에 다시
흙비 내린다
봄비가 오는 날
이정우
어머님께서 가톨릭 병원 중환자실에 계실 때
봄비가 오고 있었다.
거리에 나선 나는 눈앞이 흐려
두류 공원을 볼 수가 없었다.
이런 날은
가까운 곳도 이렇게 멀 수가 있읍니까.
이 사순절에 봄비가 오는데,
저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봄비는 왜 또 오는지,
돌아갈 저희 집이 어딘지도 몰라
거리에서 한참 비를 맞으며 섰읍니다.
어머니인 대지가 봄비에 젖고
빗속에서 어머님을 한없이 불러 봅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되찾을 수 없는
한 사람의 일생을
누가 봄비 속에서 거두어 가는 것입니까
봄비 오는 날, 또 그다음 날
이정우
1
오늘 뉴스에서는
비가 옵니다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제 잘못을 알고 애통해하는 사람은
이미 행복하다는 뜻입니다.
비가 오는 날에 나는
나의 잘ㆍ잘못을 헤아려 봅니다
2
오늘 빗소리는 하루 종일
마태오 복음 5장 첫 대목을
자꾸자꾸 외면서 옵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너무 행복하다고
빗소리가 왼종일을 두고
귓속말을 해 주는 것 같습니다
3
비 온 그다음 날 아침엔
하늘색 꽃 몇 송이가 핀 것을 봅니다
자주빛 도는 라일락이 핀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물빛이게도 보입니다
목욕을 한 듯 깨끗하고도 드맑게 뵈입니다
비가 그친 뒤 꽃나무가
더욱 빛나게 환한 모습이듯이
나도 지금부터 그렇게 살고 싶어집니다
봄비
이정은
가냘프긴 하여도
추적추적 이슬비 내 리우더니
밤새 울며
밤비는 이별을 준비하고 운다
소리 없이 말없이
그렇게 활짝 핀 봄꽃들은
밤새 내린 비에
한 모금의 이슬 머금은 듯이
영롱한 아침이슬 눈방울 속에서
고운 빛 찬란함으로
아침을 터트리고
눈부신 무지개 꽃망울로 인사를 하네
봄이라고 봄이 왔다고
인사를 합니다
활짝 꽃망울 터트린 꽃잎 들은 곱게 곱게 피어난 고운 잎을 나풀나풀 흩날리고
봄이 왔어요
노래를 하는데
하얀 이슬 되어 밤이면
내리우는 봄비는
오늘도 무엇이 슬플까
톡톡톡 비를 내려요
꽃들은 봄이라고 신이 났는데
왜일까요
봄은 슬픈가 봅니다
내 마음처럼 슬픈가 봅니다
봄비
이제민
빈 가슴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메말라버린 이파리
두 손 모아 빈 정성
하늘 끝에 다다라
내 마음 적시는 한줄기 단비
갈증을 느낀 이파리
고개 숙이던 여심(餘心)도
촉촉한 봄비에
수줍은 고개를 드네
아우라지, 봄비
이준후
겨우,
한글을 깨친 아이의 책 읽기
초등학교 교실의 받아쓰기
새색시의 도마질
이사 가던 날
처음 보는 맞선, 첫 월급봉투
혁명군의 임시정부
또는,
첫 시집
같은
봄비
이진기
비가 내려요
바람이 부네요
새하얀 손끝으로
꽃샘추위 한 자락 스며들면
사무친 그리움에 창백한 얼굴 위로
슬픔 한 방울 또르르 흘러내려요
비가 그치네요
바람도 멈추네요
굳어버린 손가락 사이로
따스한 봄볕이 살포시 내려앉고
설레는 그리움에 고동치는 가슴속엔
핑크빛 봄이 탐스럽게 망울질 거에요
이렇게
내 마음속에도
비가 내리고, 따뜻한 봄이 오면
그대에게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을 전할게요
봄비
이진선
한가로이 노니는 구름을
포근하게 감싸 안아주는 붉은 노을을
시샘이라도 하듯,
산허리를 휘감아 돌던 회색 바람이
삼켜버렸다
밤새도록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숨죽이며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처마 끝에 뚝, 뚝.
떨어지는 빗소리
아픈 기억들 부서지는 소리
땅속으로 땅속으로 숨어버렸던
가슴의 응어리
아지랑이 되어 피어오른다
산등성이마다 그리움은
매달려 있고
겹겹이 골짜기마다 아픔을
껴안고 있지만,
촉촉이 내린 봄비는 쉬임 없이
계곡을 타고 바다를 향해 내려간다
봄비 내리는 찻집
이채
그칠 줄 모르고 흐르는 음악처럼
종일 봄비가 내리는 날
가까운 길을 가장 먼 걸음으로
빗물을 따라
빗소리를 따라
홀로 찾아온 쓸쓸함이여
봄비 내리는 찻집에서
꼭 그대를 만날 것 같은 느낌으로
유난히 창이 넓어
높은 가지의 나뭇잎이 손을 내미는
봄비 내리는 찻집에는
아직도 그대와의 사랑이
떠나지 않은 진실로 남아
비에 젖은 가슴에 커피처럼 녹아드는데
막 들어서는 문을 놓을 수 없는 눈길
꼭 그대가 올 것 같은 기다림으로
벽에 걸린 마른 안개꽃 한 묶음
어쩌면 나를 닮았을까
내 그리움 한 묶음도 마른 꽃처럼 걸려있네
잔잔한 봄비는 꽃잎을 덮어도
피었다 말라버린 내 사랑은
누구의 봄비에 젖어야 하나요
아름다운 지난날의 추억들이
홀로 앉은 커피잔에 진한 향기로 피어도
봄비 맞으며 걷고 싶은 그대
이채
초록으로 내리는 봄비는
그대있어 나처럼
쓸쓸하지 않아서 좋아요
나에게 그대처럼
부담스럽지 않아서 좋아요
봄비 오는 거리에는
꿈이 있어요
기다림이 있어요
이만큼 내려서 저만큼 흘러야
꽃이 된다는 것 쯤
잎이 된다는 것 쯤 알고 있어요
그대와 나의 지금은
꿈을 꾸는 꽃송이
봄비 내리는 밤뜰의 꽃잎처럼
한잎 두잎 피어나는 사랑으로
봄비 맞으며 그대와 걷고 싶어요
팔짱 낀 그대와 빗속을 둘만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다가
하나 둘 떨어지는 빗방울소리에
어쩌면 나
아직 못한 말
그 말 할지도 몰라요
"사랑해요"라고
봄비 젖은 풀잎 편지
이채
봄비 가녀린 눈물에 풀잎 젖어 들면
한잎 두잎 내 사연도 젖어
빗방울로 조로록 흘러내리는 편지
물오른 잎새마다 누구의 가슴인가요
갓 피어난 햇살을 옆에 두고
그리운 사람아
봄비 젖은 풀잎 편지를 띄웁니다
잔바람에 흔들리는 풀포기가
그대 속눈썹처럼 고운데
가만가만 봄비 내리는 소리에
한 방울 두 방울 내 볼도 젖어
그리운 사람아
촉촉히 흐르는 건 빗물인가요, 눈물인가요
오늘따라 봄비가 못 견디게 내립니다
눈물 한 방울로 여울지는 그대
물빛 긴 그리움으로 젖어 들면
실타래처럼 하염없이 풀리는 가슴이네
내내 그리운 사람아
못다 전한 연초록 내 사연
봄비 젖은 풀잎 편지로 봉하여
이 비 그치기 전에 그대에게 띄웁니다
연인이 오듯 봄비가 오면
이채
갓 피어난 풀잎 한 장 따다가
고운 내 가슴에 심어나 볼까
연인이 오듯 봄비가 오면
촉촉한 가슴에 이슬처럼 맺히는
작은 빗방울 하나
틀림없이 파아란 새싹이 돋아날 거야
이른 봄 창가에 앉았던
여린 햇살도 수줍은 듯
살며시 내 품으로 안겨 와
연인의 숨결처럼 따스한데
아, 나는
연인이 오는 길목에서 봄비를 맞을래요
그리움 한 방울로 가슴 적시는 날
연인이 오듯 봄비가 오면
어떤 웃음 지을까
어떤 옷을 입을까
봄비 내리는 뜨락에
아무도 몰래 꽃잎이 물들어요
차가운 기다림 풀숲에 앉았다가
연인이 오듯 봄비가 오면
멀리서 들리는 발자욱 소리에
울다가 지친 눈물 웃음 되어 피어날까
아, 나는
봄비 오는 길목에서 연인을 기다릴래요
봄비
이춘오
말라버린 나무는 모두 죽은 줄 알았다
겨우내 숨죽인 몸짓
삶을 상실한 줄 알았다
가지를 꺾는다, 가지는 허연 속살을 보인다
흰 피를 흘린다
죽은 줄 알았던 것들은
찬 바람 속에서도 살아 있었다
봄비에 속살을 내보인 가지 끝
처녀젖멍우처럼 튀어 오른 새순을 본다
아! 아직 삶이 남아 있구나
그렇게 뻗대며 살아 있구나
봄비 내리면
이태종
창문을 똑똑똑똑
봄소식 전하네
손님이 오는가
산길을 오르는데
바위틈 파릇한 풀잎
발걸음을 멈춘다
하늘과 땅에는
새 기운 가득하고
나뭇가지 푸른 하늘
손 뻗어 춤추네
봄의 꿈 꾸고 있다가
새 세상을 맞는다
계곡은 물길 틔어
졸졸졸 흐르고
쪼로록 가지에 앉은
산새들 지저귐
해마다 봄비 내리면
노랫소리 퍼진다
봄비
이해인
하얀 민들레 꽃씨 속에
바람으로 숨어서 오렴
이름 없는 풀섶에서
잔기침하는 들꽃으로 오렴
눈 덮힌 강 밑을
흐르는 물로 오렴
부리 고운 연두빛 산새의
노래와 함께 오렴
해마다 내 가슴에
보이지 않게 살아오는 봄
진달래 꽃망울처럼
아프게 부어오른 그리움
말없이 터뜨리며
나에게 오렴
봄비에게
이해인
봄비, 꽃비, 초록 비
노래로 내리는 비
우산도 쓰지 않고
너를 보러 나왔는데
그렇게 살짝 나를 비켜 가면 어떻게 하니
그렇게 가만가만 속삭이면 어떻게 하니
늘 그리운 어릴 적 친구처럼
얘, 나는 너를 좋아한단다
조금씩 욕심이 쌓여
삐딱하고 딱딱해진
내 마음을
오늘은 더욱 보드랍게 적셔주렴
마음 설레며
감동할 줄 모르며
화난 듯 웃지 않는
심각한 사람들도
살짝 간지려 웃겨주렴
조금씩 내리지만
깊은 말 하는 너를
나는 무척 좋아한단다
얘, 나도 너처럼
많은 이를 촉촉히 적시는
조용한 노래를 부르는
봄비가 되고 싶단다
봄비 속에서
이향숙
봄비 속에 난 서서히 젖어 들고
내 숨결마저 젖어 든다
매달려 있는 빗방울에 얼굴을 들이대니
맑은 빗방울 속에
헝클어진 내 머리칼에서
찌든 삶의 냄새가 묻어난다.
서서히 젖어 든 옷의 무게가
내 어깨 위로 전해져 오고
힘겹게 걷고 있는 내 하얀 운동화가 흙탕물에
물들어가고,
손을 내민 처마 안으로 들어가 보지만
한쪽 어깨가 여전히 비에 내맡겨진다.
뿌연 하늘에는 반갑지 않은 구름들이 널려져 있고
솔가지 사이사이에서 묻어나는
솔 향기가 비속에 파묻히고
꽃잎을 다 떨군 개나리도 새파랗게 질려있다.
촉촉이 젖은 숨결로
그대 안의 건조한 갈증을 녹이고 싶다
봄비
이향아
어제 맞은 비가 예사롭지 않다
언 땅에 꽂히는 은 송곳처럼
오늘 아침 뼈마디가 저려오는 것은
칼빛보다 날쌔게 굳은 흙 풀어
연한 허리 새싹을 뽑아 올리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예사롭지가 않다
하늘은 생즙 같은 빗물을 걸러
똑 똑 똑
보통 흔한 소리로 문을 두드리지만
내 몸은 골천 마디 어긋나서 흔들린다
이 비에 견딜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거다
봄비 맞은 삭신이 예사롭지 않다
오늘 봄비는
이향아
의뭉하여라
오늘 봄비는
언 살을 파고들면 뼈도 삭아서
예서 졔서 생손가락 움을 앓는 일
검은 땅에 목매달고 사무치는 일
이러다간 난리가 터지고야 말지
꽃 피는 일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피운 꽃 이울고도 놋날 같은 기운
내 한 몸 무너지기 일도 아니지
그런 것쯤이야 일도 아니지
바람은 빈 가지에 그리운 것 있구나
명주 필에 은장도를 싸고 또 싸서
소리 죽여 흐느끼며 쓰다듬누나
진저리치면서 쓰다듬누나
봄비
이형기
밤,
봄비는 창에 스민다.
기다림에 지친 마음에 젖는다
봄,
밤에 내리는 비
반 옥타브 낮은 목소리
물기가 배인 육신의 무게를
가눌 길 없구나
봄밤에 비 온다
먼 사람아 당신의 손길은
봄비와 같이 성가시다
잠재워다오
봄비
이혜림
저 너머 산 그림자
이냥저냥 이울어 갈 때
뿌-연 안개 사이로
새 생명의 환희
불러일으키는
그리운 임 오시는 발자국 소리
이내 사방에 돋아나더니
가뭇없이 젖어오는 한기
그걸 참고 맞으며
기다리는 마음
하냥 그립기도 하지만
그 나머지 추억들은 아직 잠들지 못하고
자지러진 천상의 메아리
내 곁에 서성거렸네
봄비
이혜민
빗방울에 그려진
무색투명한 그림자
그들만의 이름으로
살아 숨 쉬는 듯한 표정
한 마디 말끝으로
물과 빛을 감싸며
내릴 때마다 떠오른
요동치는 회오리바람
먼 여행길에서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
잊고 지내던 이름
눈을 감고 떠올리다
호반의 창밖으로
들려오는 빗소리
말 없는 시어만 머리에서
빙빙 맴돌고 있네
봄비 그리고 꽃비
이호정
바람 불더니 꽃잎 날리고
진자리에 비가 앉습니다
뜨락에 핀 라일락
꽃향기 찬비가 시샘하는지
온종일 향기를 지웁니다
창가에 앉아서
네가 좋아했던 봄비를
내가 좋아했던 찬 빗방울을
헵니다
봄비 갠 날 아침
이흥우
봄비도 너무 내리면
힘이 든다. 적으면 아쉬운 봄비도
너무 내리면 힘이 든다.
보는 나도 힘이 들고 내리는 비도 힘이 든다.
비도 알맞은 비가 좋고 알맞으면서
푸짐한 비 또한 좋다.
푸짐한 봄비가 갠 이른 아침에
골짜기를 흐르는 물이 좋다.
골짜기가 깨끗하면 깨끗해서
깊으면 깊어서 호젓하면 호젓해서 좋고
물은 맑을수록 맑아서 좋다.
흐르는 물소리는 또 소리가 좋다.
물소리를 듣는 귀는 밝을수록 좋고
헤아리는 마음은 맑아질수록 좋고
새기는 생각은 깊어서 깊어질수록 좋다.
그런 일들 모두가 다 알맞으면 더 좋다.
비도 알맞고 흐르는 물도 알맞고
물소리도 알맞고 보는 눈도 듣는 귀도
헤아리는 마음도 깊이깊이 새기는 생각도
다 알맞으면 다, 참, 좋다
봄비
임명자
1
봄비는
꽃속이나
가지 위에나
땅속에도 집을 짓는다
그리곤 등등
온 세상에
노랗고 붉고
하얗고 푸른 멋진 새끼들을 낳아
날개를 달아 놓는다
2
얼음에 가리운 호숫가
마른 풀밭 위로 내리는 안개비
소나무 잎새마다 매달린
푸른 물방울을
사랑하는 이의 가슴속에
묻어두련다
배 개인 어느 날
나 홀로 걷는 길섶마다
흐드러진 풀꽃을
너의 몸짓으로 바라보면
바람에 밀리는 구름이듯
가벼이
이승의 골짜기를 지날 수 있다
봄비 내린 뒤에
임미옥
꿈 깊은 봄밤
아무도 몰래 초야 치른
신랑 신부처럼 천지는 밤새
격정의 노래 함께 부르다가
아침이면 외따로이 떨어져
마음만 주고받는다.
오랜 가뭄 끝의 소낙비 같은
단비가 농악놀이 상쇠잡이
열두 발 상모돌리기처럼
천둥과 번개 울리며
한밤 내 쉼 없이 휘몰아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하늘은 마알간 눈빛 저만치
찬찬히 누리를 굽어보고
사과즙 흠뻑 들이마신
대지는 배가 부풀어
들판 가득 새싹들을 낳는다
흐뭇한 피로에 젖은
천지 부모 꾸벅꾸벅 졸 때에
새싹 같고 꽃눈 같은 아기들
엄마 대지의 너른 품에 안기어
아빠 하늘의 높은 이마 바라보며
실눈을 뜨고서 방긋방긋 웃는다
천지간 그윽한 교감의 물결이
반짝이는 서정의 시냇물 되어
삼중협주곡으로 굽이굽이 굽이쳐간다
봄비
임영봉
봄비 그친 뒤 그대 만나러 가리
초록 풀빛 위로 초록 풀빛 위로
남 들키지 않도록 슬몃슬몃 다가오는
아득하고 캄캄하고 더는 못 참겠는
살의 살에 눈부시어라
맘의 맘에 불 지피어라
꽃도 열매도 그러한 다음에 오는 것
사랑도 그러한 다음에 오는 것
초록 풀빛 위로 초록 풀빛 위로
봄비 그친 뒤 그대 만나러 가리
봄비는 푸른 희망을 잡아당긴다
임영석
봄비가, 딱딱하게 굳어 있는 희망을 잡아당긴다
봄비가, 온몸 다 불태워 쏟아내는 눈물의 힘으로
희망을 잡아당기는 자욱마다 푸르름이 끌려나온다
사랑만 하다가 살겠다는 꽃들도
봄비가, 푸르름 잡아당기는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봄비에 젖어서 나머지 사랑을 무르익힌다
이 봄비, 얼마나 많은 사랑을 이겨냈을까
이 봄비, 중앙선 침범도 서슴없이 한다
이 봄비, 좌회전 금지도 지키지 않는다
이미 하늘에서 뛰어내렸을 때 법보다는
희망 하나 단단히 잡아당기겠다는 각오를
수없이 하고 뛰어내렸을 것이다
버드나무, 그 봄비 따라 나뭇가지를
땅으로 늘어뜨리고 푸른 그네를 탄다
그래서 봄비
임영준
오래 억눌렀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감로주가 되고 싶어
조갈 난 잉걸불 따윈
곁눈조차 주지 않고
뜨거운 피를 거르고
날카로운 소름을 갈고
순서에 따라 다소곳이
스며들어 가려 합니다
버림받은 산내들과
울화에 떠는 강들을
위무만 할 수 있다면
잠시 한번 들러가는
길손일지라도 흐무뭇하게
연두 미소만 남기고
슬며시 사라져버리겠습니다
봄비
임영준
1
잊지 않고
매번 찾아주니
참 고마우이
두 팔 벌려
환하게 반겨주는
어린나무들이
얼마나 보드러운가
겸연쩍은 손짓은
이쯤 하시지
당당한 주인으로
곳간을 열어
확 풀고 가시게나
2
또 한해
습관처럼 걸쳐
지순한 방울꽃들은
어김없이 나를 건드린다
헝클어진 일상을 깨우고
오그라든 뒷덜미를 움켜쥔다
아스라한 이름으로
허박(虛薄)한 창을 두드리며
들뜨고 부풀어
주체할 수 없는 모정(慕情)을
조근 조근 디디고 간다
봄비가 간다
임영준
타박할 거리라도 준다고
원망을 다 짊어지고 간다고
종일 비틀고 지나간다
사뭇 어긋난 일상을
바로잡으라 추적거리며
매사를 가시고 가려는지
잊지 않고 세파를 짊어지고
순일한 추상을 간직하고
원초를 무시로 건드리고 간다
봄비, 그대
임영준
왜 그리 나약한 거니
툭하면 흐느끼고
앙다문 가슴은
어쩌라고
봄비 내리던 어느 날
임영준
추적 추적
봄비 내리던 어느 날
애석한 내 청춘
아연히
어디론가
떠나버렸네
꽃물 듬뿍 들어
하늘바라기만 하더니
기어이
빗물 타고
훌쩍
가 버렸네
봄비는
임영준
분에 차고 넘칩니다
갖추 스며들어
치유가 되고
풀무가 되어
줄기가 되는 것을
잘 깨닫지도 못하고
원망으로 지새며
골만 파고 있는
허접한 변방까지
고루 달래주고
윤회의 손길로
오묘한 토닥임으로
어루만지고 있으니
흐름을 재촉하여
체증도 곧 해소되겠지요
봄비는 눈물입니다
임영준
오랫만에
펑펑 울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허드슨 강안(江岸)에 차를 대고
빗방울에 모두 담아
남김없이 흘려보내고 싶었습니다
허나 껍데기만 남아 있는
이방인의 곡조(曲調)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피안(彼岸)이
강 건너에 어렴풋이 보이고
일렁이는 주마등 속에
그리운 얼굴들이 번갈아
질책하고 함께 흐느끼면서
추억을 적시고
미처 다하지 못한 하소연이
방울마다 절절히 아롱져
한층 고조되고 말았습니다
새삼 깨닫게 됩니다
봄비는 파릇한
청춘의 초상과 어우러져
오랫만에 찾아오는
감루(感淚)였습니다
봄비 봄비
임영준
오늘은
또 다른 가락으로
샛강을 트는가
꽃부리
흠뻑 적시면서
서운한 꿈을
다독 다독이누나
마른 가슴은
비로소
바다로 간다
봄비야
임영준
마음껏 스며들어라
당겨진 시위보다 더
깊숙이 들어와 박혀라
지은 죄가 하도 커
씻어내기 어렵지만
온몸을 관통하여 가장
낮은 곳으로 임하여라
어울렁더울렁 품고 가서
누구의 뿌리던 되어라
봄비야, 왜
임영준
그래서 왜
날 보고 어쩌라고
매몰차게 뿌리치고
가버릴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처마 끝에 걸터앉아
종일 울고만 있는 거니
봄비에
임영준
그렇게 두루두루
보살필 것까지 뭐 있나
딱한 곳만 골라 흠뻑
적셔주면 될 것을
아무리 사근사근 다독여도
결국은 저 잘난 줄 알고
될 대로들 되어버리는걸
그 깊은 마음을 몰라주는
한심하고 어리석은 것들에겐
너무나 아까운 은총이야
어느 날, 봄비
임영준
멀리 있는 그대
잔잔한 눈물인지
비우고 또 비워도
차오르는 미련인지
메마른 가슴 훑는
뾰족한 그리움
같이 울고 싶은 날
주저앉고 싶은 날
봄비
임우성
하얀 침대 위에
그나마도 작은 사람이
습에 눅어 흐늘어진 말린 오징어처럼
납작하게 붙어 있었다
눈이 예쁜 사람이었다
예쁘기도 하지만
맑고 자애롭고 따뜻한 눈이었는데
해동된 동태처럼 짓무르고
초점 흐린 눈망울로
나를 보고 있으나 이미
나를 보고 있지 않은
설사 나를 인지한다 한들
일말의 위로도 되지 못하는
돌이키지 못할
까마득한 거리를 절감했다
머지 않은 날
내 모습일 수도 있겠거니
때가 이르러
가야하는 거 수긍하지만
많이 힘들지나 않았으면 좋겠는데
지쳐 맥을 놓은 사람
두고 돌아서는 병실 창밖에
치미는 울음 앙다물어
소리 죽인
봄비 하염없이 내리고
봄비
임재화
1
어젯밤 내린 봄비에
수양버들 가지 끝에 맺힌
연초록색이 점차로 길어지고
솔잎에 맺힌 물방울도
진주처럼 영롱하게 빛나
고운 봄 향기를 내뿜습니다
자락 봄비가 내릴 때
언덕 위 숲속에도
촉촉이 젖어 드는 오늘 하루
메말랐던 내 마음 밭에도
촉촉한 봄비가 내려
맑은 기운이 흐른답니다
2
조용히 봄비 내리는 오후
은구슬처럼 영롱한 물방울이
가녀린 나뭇가지 끝에서
노란 꽃송이와 함께 매달려있다
이제, 꽃샘추위도 물러나고
온종일 봄비가 내리고 있는데
노란 산수유 꽃송이 곱게 피어나
맑고 고운 향기를 풍기고 있다
촉촉하게 젖어 든 뜨락에서
내 귓가에 다가와 속삭이듯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 소리가
메마른 내 가슴을 흠뻑 적신다
봄비 내리는 오늘
임재화
온종일 봄비 나리면서
창밖에 물방울로
동그라미 그림을 그리는 주말의 밤.
흐드러진 벚꽃도 봄비에
꽃잎이 다 떨어져 내렸고
어느새 라일락 하얀 꽃이
내리는 봄비 속에서 그윽하다.
엊그제 자목련 꽃
우아하게 피어있던 목련 나무에
돋아나는 파란 이파리가 정겹다.
홀로 청승맞게 사택에서
참 이슬 한잔하면서
가슴이 시린 주말의 밤
그래도 다시 용기를 내어
가슴속에 희망을
더욱 처절하게 가꾸어야 하리
봄비 내리는 날에
모처럼 시 한 수를 읊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