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봄눈

강고진 봄눈

강수정 춘설(春雪)

강영환 봄눈

강윤후 봄눈

강재현 춘설(春雪)

강효수 봄눈이 오네

고명 봄눈꽃눈

고증식 봄날에 눈 내리고

고형섭 봄눈이 내리는 날

곽종철 봄눈

김길남 봄 길에 오는 눈

김덕성 춘설(春雪)

김민지 3월에 내린 눈

김세영 봄눈

김승동 봄눈

김억 춘설(春雪)

김옥춘 봄눈

김용국 - 송어리, 봄눈

김용택 봄눈

김용화 봄눈

김인숙 봄눈

김재덕 봄눈

김정남 - 봄에 내리는 눈

김정윤 봄눈

김홍점 봄날의 눈사람

노강 봄눈

목필균 봄눈

민경대 - 춘설(春雪)

민영 봄눈

박금숙 봄눈

박기섭 봄눈

박성현 봄눈

박인혜 봄눈

박진용 - 이른 봄 진눈깨비

박태강 봄눈

박희홍 춘설

반기룡 춘설(春雪)

서지월 봄눈

손갑식 봄눈

손병흥 춘설(春雪)

손영호 봄눈

신대철 봄눈

신성호 춘설(春雪)

심은섭 춘설(春雪)

오보영 3월 눈(春雪)

오보영 봄눈

오보영 봄눈(春雪) 교훈

윤의섭 봄눈이 내리네

윤의섭 춘설(春雪)

윤희윤 봄눈

이남일 - 봄눈

이문조 춘설(春雪)

이문희 춘설(春雪)

이문희 - 춘분(春分)날의 춘설(春雪)

이민숙 춘설

이숙자 봄눈

이영지 봄눈이 철이 없어

이옥순 춘삼월 눈비

이재환 봄눈

임성훈 봄눈

임재건 봄눈

임재화 봄눈

장승진 봄눈

장유정 춘설(春雪)

장인성 봄눈

전근표 봄눈

전영관 - 춘설유정(春雪有情) 1940

전영금 봄눈

정끝별 봄눈

정세훈 봄눈

정이산 - 춘설(春雪)이 난분분하니

정지용 춘설(春雪)

정한용 봄눈

정해영 - 봄눈

정호승 봄눈

정호승 - 북촌에 내리는 봄눈

조정관 - 봄눈

진태규 - 봄눈 그리워

최보정 봄눈

최홍윤 눈보라 속에 오는 봄

최홍윤 봄눈

평보 - 동행동행(同行同幸)

평보 봄눈

하영순 눈 내려도 봄은 봄이다

하영순 봄눈

허용희 봄눈

홍금자 봄눈

홍사윤 춘설(春雪)

황인숙 - 봄눈 오는 밤

힘난봄볕 봄눈

 

 

 

봄눈

강고진

 

포근한 봄날 하얀 꽃송이

사륵사륵 내린다

온 들판에 깔아 놓은

안개꽃처럼 예쁜 눈송이

수놓은 듯하다

 

따스한 햇볕

산마루에 걸쳐 보고 있더니

얄미운지 뜨겁게

볕을 내리쬐어

사그리 녹여버린다

 

하얗게 펼쳐 젖던 대지

변해버린 들녘은

슬픔에 젖어

서운한지 눈물 흘리고 있네

 

 

 

춘설(春雪)

강수정

 

어제 본 나비야 어데 숨었니,

먼지의 요람 속에 하늘하늘

노랑 물 절인 날개 접어 짚 덤불 속 숨어 있니

모락모락, 산 안개 달콤한 발톱 내밀며 속삭였지

대문 밖이 환하다 빨리 날개를 달아라

행복하다고 믿는 봄볕 때문

문밖 쑤시는 아픔 있는 줄 몰랐지

 

무늬 돋아 꽃 돌아오고 아지랑이 출렁출렁 길 지우는데

 

벚꽃 더미 아래 우체부 아저씨 빨간 마음속

연두빛 질주하고,

노랑 물 흠뻑 들이켜 가는 허리 넌출넌출

바람, 바람은, 산 옆구리 밟고

첨벙, 비어있는 갈비뼈 밑 혀 자국 내며

춘설(春雪)이다

머릿속이 덜거덕거린다 하얗게 도배 된다

새 한 마리 남쪽으로 치닫고

설레던 가슴 기슭을 파헤친다

 

어제 본 나비야 어데 숨어 있니

언 날개 파닥거리며 등이 시리지

꽃은 기다리지 않고 산이 춥구나

 

 

 

봄눈

강영환

 

문밖에 애인을 두고 소녀는 슬프다

호명하여도 대답대신 울먹이는 가슴만 전해주는 아비를 장사 지냈다

가슴 밖으로 끄집어낼 수 없는 슬픔을 묻고 너는 정녕 문밖에 강물로 흐를 수는 없는가

얼어붙었던 강물을 풀어 들판을 일으켜 세우고 버려진 자투리땅에

개나리를 피워 그렇게 아비의 큰손을 만날 수는 없는가

언제까지 서늘한 입술로 산그늘에 숨어 아비 생각으로 4월을 보내고

오월 가까이 슬픔을 뿌릴 텐가

때아닌 바람이 불어 문밖에서 아비 찾는 소리로 눈이 내린다

문밖에 서 있는 애인이 푸른 재가되어 바람이 불 때마다 아랫도리가 조금씩 내려앉는다

 

 

 

봄눈

강윤후

 

단념하듯 봄눈 내린다

가로수들이 속죄하는 모습으로

눈을 맞으며 서 있다 아직

집에 닿지 못한 길들이

새로 갈리며 세상을 넓힌다

추억이 많은 길들은 적막하다

얼마나 많은 일들이 약속도 없이

벌어지고 또 얼마나 많은 약속들이

지켜지지 않았는가 때늦어 당도한 눈발들은

아무것도 확인하지 못한다 다만

하루살이처럼 떠돌며 망각을 부른다

놓은 가지 끝에서 찬란한 빛으로 소멸하는

한 점 눈발을 두고서 나는 이제

다른 예감을 품을 수 없다 언젠가

때가 오면 띄워야 할 訃告(부고)

내게도 있다는 걸 알 따름이다

한 번 갈린 길들은 결코

되돌아올 줄 모른다 나는

세월보다 빨리 늙어간다

 

 

 

춘설(春雪)

강재현

 

화냥년이 흘린 헛웃음처럼

내 가슴 속에 나도 모르게 살아 있던

화냥기가 자꾸 헛웃음을 웃는 날

 

미친년이 흘린 실웃음처럼

내 가슴 속에 나도 모르게 살아 있던

광기가 자꾸 실웃음을 웃는 날

 

눈이 내린다. 빈웃음을 질질 흘리며

내린 눈은 마른 땅을 적시기도 전에

가슴 한 켠을 서늘히 적시고,

감추어진 슬픔에 물꼬를 터놓고,

오래 앓던 실어증으로,

퍼렇게 날 선 하늘 아래

실없이 흩날리다가

저는 내린 흔적도 없이 말라버렸다

 

 

 

봄눈이 오네

강효수

 

잠깐 그러다 말겠지 했어

그 옛날 살짝 토라진 그대처럼

그런데 어머나 펑펑 우네

그칠 줄 모르네

무슨 사연일까 무슨 슬픔일까

하얀 설움이 쌓이네

사연을 맞으러 가야지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심통 부리는 봄눈이 미워

옹기종기 부비부비하는 개나리

하얀 꽃비를 모으던 벚나무

붉으락푸르락 울화통 터지겠어

곧 폭발하고야 말겠어

나는 그들을 달랠 마음 전혀 없네

, 숙녀처럼 조신한 목련은

토끼 꼬리를 감췄다네

 

봄눈 오는 날

나는 첫눈 오던 날을 생각하네

추운 꽃처럼 옷깃 여미고

아주 많은 길을 걸었네

 

 

 

봄눈꽃눈

고명

 

혹시 보셨어요?

가을 잎 아직 다 지지 않은 목련 나무에

보송보송

새 꽃눈이 꼼지락거리고 있는 것을

아기 손가락 살빛이 도는

새 순 속으로 얼마나

뜨거운 피가 숨죽여 맥동 치고 있는 걸까요

꽃이며 토끼며

갓 태어나는 세상의 모든 어린 것들에게

우주의 첫 숨을 불어넣으시는 그분은

하늘의 무슨 비밀한 힘을 주신 걸까요

보세요 저 시퍼렇게 튀는 불꽃들이

눈 아기들이라니요

짧은 봄날을 위하여

스러진 그 자리에서 다시 몸을 일으키는

떨어지는 눈송이마다 펄펄 녹여버리는

아기들의 초록초록 망치질이라니요

 

 

 

봄날에 눈 내리고

고증식

 

우수 지나고

경칩도 지난

삼월의 마지막 하늘에

눈이 내린다

삼동에도 눈 한 방울 없었던

볕살 도타운 땅 밀양에

목련꽃 다 지고

산도화 산벚꽃 볼 붉혀선

양지쪽 환한 자리를 허물며

펑펑 함박눈 쏟아져 내린다

창문을 박차고 날아간 아이들

와글와글 하늘에 달라붙는다

부럽다

처진 어깨 위로 환호성 뽑아내는

저 거침없는 눈발들

분분한 일탈의 자유

 

 

 

봄눈이 내리는 날

고형섭

 

춘설이 슬픈가

그대 님 마음이 슬픈가

겨울내리

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였던

그대 님

마음

아리한 마음이

한숨져

봄이 오는 지 모르고

겨울옷

두꺼이 입고

버티고 있구려

그대

 

 

 

봄눈

곽종철

 

미끄러운데 오지 말지

그래도 보니까 반갑다

내일은 가야 하지

금방 갈 걸 뭐하러 왔나

 

봄눈은,

아쉽고 그리움에 젖은

울 엄마의 목소리인가 봐

 

먼 산은 흰옷을 입었네

바람이 차갑다

개구리 추워서 어떠하나?

꽃망울은 얼지 않을까?

 

봄눈은,

하늘나라에서 자식 걱정하시는

울 엄마의 정인가 봐

 

 

 

 

봄 길에 오는 눈

김길남

 

겨우내

동장군께 주눅 들었던

봄이

다시 겨울비에 놀라

오던 길을 잃어버렸나

아니 아직도 뿌릴 눈이

남아 있는지

오늘 봄 길에 눈이 옵니다

대관령 굽이굽이

돌고 돌면서

혹시나 썰매로 변할까 봐

자동차가 겁을 먹고

엉금엉금 기어갑니다

 

 

 

춘설(春雪)

김덕성

 

아스팔트 눈이 덮이니

하얀 눈길이 새로 생겨나고

 

지붕 위에 하얗게 색칠을 하니

순백의 눈 세상을 이루어져

 

순식간에 눈 세상 만들어 놓으니

성결하고 신성한 설국이 되었구나

 

마음도 하얀 눈이 내려앉으니

내 영혼 하얗게 되살아나는 아침

 

복 있는 자 성경에 이르기를

마음이 청결한 자라 했으니

 

마음에 내린 춘설로 성결해져

모두 복 있는 자가 되었으면

 

 

 

3월에 내린 눈

김민지

 

함박눈이 펑펑 내려와

활짝 핀

꽃송이 위에

 

살포시 내려앉아

하얀 눈꽃 송이로

단장하고

 

살짝살짝

엉덩이 흔드는

요상한 몸짓으로

 

봄바람 난 색시처럼

들뜬 내 마음을

유혹하지만

 

낮 되어 금세

녹아버린 눈처럼

앙금 섞인 내 가슴에

 

겨우내 묵혀두었던

마음의 때도

깨끗이 녹아내린다

 

3월에 내린 눈은

그래서 내게 더욱

찬란하였노라고

 

 

 

봄눈

김세영

 

아픈 기억의 소금물에

배추속대 같은 마음을 절여

뒷뜰 옹기에 담아놓고

 

온 겨울 앙칼지게

가슴살 아리도록

옷고름 매듭 조여 보지만

 

꽃망울 터뜨리며 부르는

따사로운 체취의 목소리에

갓 우화한 나비처럼

서툰 날갯짓만 파닥이다가

 

홍매화 입술 위에서

그리도 쉽사리

옷고름 풀리고

상처의 진물처럼

눈물로 흐르고 말 것을

 

 

 

봄눈

김승동

 

부드럽기로 하자면

솜털 같을까,

그 도톰하고 매끈하고 눈부신 표면에

송글거리는 하얀 촉감은

꽃잎이 태어날 때 내미는

조그만 첫 순처럼

차마 만져 보기조차 조심스러운

연두색 속 맛은

또 내 마른 입술을 대면 금방 물기가

촉촉이 배어날 것 같은

언제나 하늘 냄새가 나는

신비로운 눈길

메마른 땅위에나 훌쩍한 나무 위에

아니 어디에 내려앉아도 녹지 않고

그대로 잎이 피어 자라날 것 같은

가슴 봉긋한

상큼한 꿈

 

 

 

춘설(春雪)

김억

 

녹으랴 오는 눈은 아니련마는

내려선 녹고녹고 그래도 오네

보람없이 태어난 몸도 안언만

님 찾노라 떠돌다 그대로 지네

 

 

하소많은 이맘에 눈이 옵니다

하소많은 이맘에 눈이 쌥니다

양지(陽地)라 진퍼리에 반가운 속닢

님이여, 어느 날야 프르오리까

 

 

 

봄눈

김옥춘

 

심술부리려 왔겠는가?

인사하러 왔겠지

겨울이

가면서 한번

뒤돌아본 게지

눈시울 적신 게지

무서워서 물러났겠는가?

배웅하는 게지

봄이

인사하고 가려고

맘 편히 가려고

기다려 주는 게지

참 구성진 춤판 같구려!

하얀 눈

함박눈

봄눈

 

 

 

송어리, 봄눈

김용국

 

눈꽃이 목련처럼 피고

창문은 한 장,

크리스마스카드 같았습니다.

송어리, 산골, 여산 선생이

난로의 잦은 불에 입김을 불면,

장작에는 연한 불이 새순처럼 돋았습니다.

눈은 산길을 지우고, 덩달아

나도 내 갈 길을 지우며 멈칫하는데

냇물만 봄길 따라 흘렀습니다.

봄이 봄에 겨워 잠시 조을 때

봄꽃 위에 봄눈이 무량(無量)으로 내려

더 황홀한 봄이 되는데,

봄눈, 송어리에, 나는

크리스마스카드 속 소년처럼

영영 갇히고 싶었습니다

 

 

 

봄눈

김용택

 

눈 온다

눈은 어디에 가 앉지 못하고

허공을 떠돌다

내 안에서 깜박 꺼지고

 

저기

핀다

한 점 매화

 

 

 

봄눈

김용화

 

봄눈 내리는 날엔

반가운 손님 찾아올 것 같다

 

첫사랑 그녀가 흰 눈 털며

환한 얼굴로

 

고향 집 토방 올라설 것 같다

 

 

 

봄눈

김인숙

 

1

따뜻하고 행복하게 잘 살라며

쓸쓸히 떠난 겨울

 

너 떠난 후 허전한 맘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내 맘 알아주었을까

너도 내가 보고 싶었나 보다

 

이 봄날 새벽같이

눈꽃 되어 찾아온 걸 보니

 

너도 나처럼

정말 많이 보고 싶었나 보다

 

 

2

봄에 자리 내놓고

이제는 떠나간다던 겨울

 

봄날처럼 따뜻하게

잘 살라고 행복하게 지내라고

매몰차게 떠난 겨울

 

너 떠난 후 허전한 맘

잠 못 이루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데

 

내 맘 알아주었을까

너도 내가 보고 싶었나 보다

 

이 봄날 새벽같이

눈꽃 되어 찾아온 걸 보니

너도 나처럼 많이 그리웠나 보다

 

 

 

봄눈

김재덕

 

빗방울 눈을 품어

쌀알로 몸 바꿔

봄 산을 덮는다

 

봉긋한 꽃 가슴

할퀴듯 쓸며 지나는

꽃샘바람도 서러운데

 

애처롭게 줄행랑 놓는

개구리의 꽁무니에

찬 기온 묻었다

 

봄소식 온대 없고

날벼락 폭설에

꽁꽁 언 새싹들

고개 숙인다

 

 

 

봄에 내리는 눈

김정남

 

햇볕이 쨍쨍 비춰

겨우내 얼었던 나무를 조명하면

팝콘처럼 하얗게 터져 나온

봄 벚꽃의 운율이 춤을 춘다

 

두 팔 벌린 날갯짓에 꽃잎은

온 세상에 향수되어 흩날리고

하얀 봄눈 되어

겨울인 양 의시댄다

 

사르르 떨어져 쌓인 봄꽃 어깨에

두 손 살며시 올리우면 분홍빛 가슴

수줍어 고개 돌려

살랑살랑 나부낀다

 

조심조심 두 손 한가득

꽃가루 모아

하늘 향해 던지우면

그는 온 세상을

훨훨 날아가는 나비가 된다

 

봄에도

눈이 온다

하얀 봄눈이

 

 

 

봄눈

김정윤

 

갈라진 틈새에 간신히

뿌리를 박고 모진 풍화를 견디며

벼랑 끝에 선 노송

휘어진 등에 봄눈이 쌓였다

 

천길 절벽 아래를 향해

두 팔을 뻗은 노송의 팔을 밀치고

벼랑 끝 아래를 바라보고

소스라치게 놀란 봄눈

 

노송의 등에 찰싹 달라붙어

부들부들 몸을 떨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기어 내린다

 

구름 사이로 봄볕이 쏟아진다.

눈 속에 갇힌 새싹들이 살아난다

 

 

 

봄눈

노강

 

겨울나무 아래 쌓인 눈

밟고 가다

문득 발에 전해지는 숨결 있어

발길 멈추고 손을 갖다 댄다

, 아직 살아 있다

시리면서 뭉클한 것

죽어가면서 포근한 것

산 등줄기 흰 이불 덮어주시고

하얀 유방 꺼내어

겨울나무 젖 먹여 다독이시고

조용히 가신다

우리 어머니

 

 

 

봄눈

목필균

어머, 눈이 왔네

3월 첫날에

 

어제

안간힘으로 노랗게 꽃 핀

산수유꽃 보이지 않네

, 추워. 숨어버렸네

 

곧 따뜻한 햇살이 찾아올 거야

마른 대지 숨구멍마다

조금씩 조금씩 스며들어 가면

 

깊이 잠든 씨앗도 눈 비비고

햇빛 찾아 고개 내밀게 되겠지

 

어머, 눈이 왔네

3월 첫날인데

 

너무 놀라지 마

스르르 녹아들 봄눈이야

 

 

 

춘설

민경대

 

춘설

 

눈도 그치고 봄 같은 오늘

어젯밤 꿈은 가위 반쪽 짤린 뾰족한

끝으로 위협하는 불안한 꿈

 

신문에서 본 문자들

발밑에 깔아뭉개고

나는 하차한다

무거운 어깨에도 무지개는 피고 얼어붙은 대지에도

봄은 온다

 

 

 

봄눈

민영

 

봄눈 내리네

겨울은 모로 누웠네

그대 허리에 찬

사슴의 가죽

물오른 가지마다

우레 터지네

 

 

 

봄눈

박금숙

 

좀 늦었으면 어떤가

차가운 세상 차마 두려워

어두운 뒷골목 서성이다

때늦은 참회의 눈발인 것을

 

너와 내가 오가는 길목

한 번은 마주쳐야 하고

냉정히 돌아설 수 없는

질긴 인연이었거니

 

비록 메마른 길 끝에서 만나

함께할 수 없는 운명일지라도

마지막 화해와 용서의 눈물로

새롭게 눈뜨는 사랑 하나

푸르게 일어서리라

 

 

 

봄눈

박기섭

 

나의 어린 신부는 흰 나귀를 타고 갔다

탱자나무 울을 지나 흙먼지 에움길을

툭 터진 괴춤 사이로 마른 뼈가 드러났다

젖은 손수건이 첨탑 위에 떨어졌다

눈물이 마르면서 다시 낯선 밤이 오고

혼자서 서녘의 불빛을 느루 셀 듯싶었다

나의 무지 끝에서 너는 늘 반짝였거늘

어찌 몰랐을까 쉬흔 해가 저물도록

다 못 간 세상의 저녁에 너는 왔다, 봄눈처럼

 

 

 

봄눈

박성현

 

당신을 보내고 온 날 온종일 눈이 내렸습니다

처마에 매달린 구릿빛 풍경이 고드름 녹듯 뚝뚝 떨어졌습니다

발자국이 어지러웠습니다

발목까지 쫓아온 발자국을 떼어내며 나는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습니다

태반이 멀리 가지 못해 그 자리에 주저앉았습니다

오월에 큰 눈이 내렸다는 말은 신문을 뒤져봐도 깜깜했지만 하루에도 몇 시간씩 눈을 맞았습니다

처마에 매달린 구릿빛 풍경이 당신의 기척을 들었습니다

눈을 푹푹 밝으며 부산했습니다

나는 바싹 마른국수처럼 비좁아져서는 봄눈 속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습니다

발목까지 쫓아온 발자국을 떼어냈습니다

 

 

 

봄눈

박인혜

 

어둠을 뚫고 내린 하얀 눈이

맥없이 사그라든다

 

무슨 소리에도

그 자리에 웅크리고 앉아

 

 

 

이른 봄 진눈깨비

박진용

 

공수래(空手來)

이른 봄 진눈깨비

 

높은 산 묏뿌리

구름 젖힌 만년설에

고고 유유 무심 소일하다

 

지나는 봄바람

짙은 향 유혹에 끌려

마음 주고 설레어 날려왔나

 

공수거(空手去)

이른 봄 진눈깨비

 

봄맞이 짙은 흙

파릇 내미는 어린싹

차마 눈 서릿발로 덮지 못하고

 

휘청 바람 따라

날리는 자락비 되어

밀리어 가네, 비바람 따라가네

 

 

 

봄눈

박태강

 

1

따스한 햇살

해맑은 하늘빛

땅속 물 흐르는 소리

벌레 기어 다니는 소리

 

풀은 물 머금고

노란 새싹

나무는 봉우리 눈 숨기고

가만가만 눈치 보는데

 

불한당 같은 놈

하얀 놈

내 몸을 덥친다.

 

들었든 얼굴 숙이고

신음하며

또 기다린다 봄을

 

안달하는 풀 나무

너의 고약한 심술에

고개 숙이는 봄

 

 

2

겨우내

메서운 추위 속에

참고 또 참아

 

봄 햇살 맞아

새악씨 가슴 마냥

봉긋 봉우리

 

곧 터질

부푼 가슴

콧노래 소리

 

봄 시샘하는 눈

소복히

쌓이는 날

 

봉우리 속

품었든 멋

가슴으로 안으며

 

푸른 하늘 보고

원망의 눈물

흘린다오

 

 

 

봄날의 눈사람

박홍점

 

신발을 바꿔 신고 오느라 늦었다

빨간 나비넥타이를 매고 오느라

 

어머니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느라

즐겨 듣던 음악 같은 손들에게 악수만도 해가 짧아

 

마당가에 열린 눈물을 닦느라 늦었다

웃으세요, 웃으세요 일제히 사진을 찍느라 늦었다

목이 긴 젊은 아내가 울었다

 

넓고 넓은 바닷가 눈물로 빚은 몽돌들 지고 오느라 늦었다

태풍을 예고하는 놀란 쥐 떼들 달래느라

 

스무 살 아기에게 불린 젖을 먹이느라 늦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이 눈치 저 눈치 제 몸이 먼저 무거워서 늦었다

 

노를 저어 줄 사공이 탈이 나서

겨울 지나고도 유난히 그늘이 짙었다

헐레벌떡 봄꽃 준비하던 나무들 눈을 흘겼다

 

 

 

춘설

박희홍

 

4월 식목일

한기를 느끼게 하는

백설이 난분분하게 휘날린다

 

진달래꽃

하얀 면사포를

쓰고서 오들오들 떨고 있다

 

햇살이

깔딱 고개를 넘어오자

눈 녹아내려 활기를 되찾는다

 

흐드러지게 핀 벚꽃

잔바람 따라

함박눈이 되어 나풀대며 온다

 

 

 

춘설(春雪)

반기룡

 

손님이 오셨어요

하얀 손님이 너울대며 하늘 감싸고

땅으로 땅으로 빗금 내리긋고 있어요

시간의 더께가 얄팍하게 묻어

비스듬히 기울어진 몸뚱어리마다

하얀 진액으로 무장하고

소복 풀어 헤친 채 하롱하롱 내리고 있어요

때 늦은 도착이라 조금은 수줍은 듯

옷깃 툭툭 건드려보기도 하고

불어 터진 몸을 비벼보기도 하지요

하늘에서 지상으로

떨어지자마자 혼곤한 듯 시냇가로

방향 돌려 합수 이루며 씽씽 달리지요

겨우내 쌓였던 묵직한 상념들을

너울너울 견인하고 있는 듯해요

물 위의 길마다

백옥처럼 멍이 들어 있네요

 

 

 

봄눈

서지월

 

봄눈이 온다. 봄눈이

온다. 미친 봄눈이 괴나리봇짐 싸들고

실눈으로 온다. 와서는

이 세상 어디 배불리 먹을 곳 있느냐며

내 살던 고향의 산천을 뒤덮고

복사꽃 가지 끝에 와서는 풀어내는

거짓 향기

호오이 호오이 손 시리고 발 시리던 우리들 사랑 앞에

게으른 겨울잠 속에 빠졌다가

미나리꽝 새길 난 길 위로 봄눈이

순이의 물동이를 적시고

우리가 사는 이 거리 진흙 위에도

미친 바람과 함께 내린다

언 가슴 마른 풀잎 위에 싱싱한

바다 어제 우리가 지나온 길 위로

잽싸게 달려온 한파와 함께

봄눈 속에 네가 쓰러지고 내가 쓰러지고

일으켜 세운 하늘이 쓰러진다

 

 

 

봄눈

손갑식

 

신문쟁이들과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 위로 봄눈이 내린다

봄눈이 세상 속살을 얼추 가려

깜박 새하얀 역사이려니 속을 뻔했다

수천, 수백 년 전부터

눈이 내릴 때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과거는

하얀 역사가 되고

피로 물들었던 전사들의 과거는

검게 탄 전설이 되었다

하여 신문쟁이들은

하얀 역사를 싣지 않는다

남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검게 탄 전설을 하얗게 감싼다

처음 하얗던 역사가

검게 탄 전설로 채색되고

드디어 검게 탄 전설이

하얀 역사로 변색되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왜곡(歪曲)’이 한 번 더 덧칠된다

 

 

 

춘설(春雪)

손병흥

 

1

그리운 가슴 꿈같은 세월 물린 채

때아닌 삼월에 흰 날개 달고 내리는

발걸음마다 축복 가득한 참 좋은 느낌

온통 하얀 빛 하얀 세상 늘 정겨운 풍경

 

융단처럼 하얗게 펼쳐진 창밖 설원으로

마음 가득이 쌓여지는 설렘 잔잔한 감동

봄의 서곡 알리는 여리고 고운 모습 보며

맑고 깨끗한 영혼 오래도록 간직하고픈 하루

 

새삼 떠오르는 소중했던 어릴 적 꿈 추억들이

움트는 새싹 생긋 미소 짓는 꽃잎 되어 피어나

소복하게 쌓인 눈처럼 무척이나 감흥에 젖어든

저토록 마음 평화로운 순백의 정경 행복한 아침

 

 

2

봄소식에 화들짝 놀라 피어난

동백꽃 매화 산수유 꽃들의 향기

 

시샘하는 듯 내린 돌담길 따라

새하얀 얼굴로 수려함 자아내는

 

엊그제까지 봄 햇살 가득했던 날에

좀처럼 보기 힘든 함박눈이 내린 봄날

 

이내 계절이 겨울로 돌아서버린 풍경

눈도 눈이지만 세찬 바람마저도 불어와

 

한껏 움츠렸던 가슴 다독 이게 하는 모습

먼 산자락마다 슬며시 흰 옷고름 헤집은 채

 

흰 구름처럼 일어나 봄눈 녹듯이 다가선

산 아래 마을 찾아 정겨움 안겨준 꽃샘추위

 

온몸 파고드는 외로움에 속살 다 내보이며

난데없이 급작스레 다가와 봄철에 내리는 눈

 

 

 

봄눈

손영호

 

솜이불처럼 나붓이 깔린

백설

가녀린 붉은 꽃 가지에

하얀 눈꽃 송이 되었네

 

동면의 꿈을 깨고

언 땅 위로

살포시 고개를 내민

여린 풀잎에 꽃잎들

살갗에 부딪힌

차가운 백설의 냉기에 깜짝 놀라

느닷없이

계절의 망각이 되고 말았다

 

열정의 몸부림으로

땅 위로 피어오른

봄 사랑의 열병이

천사 같이 밝게 쌓인 흰 눈을

금세 사르르

다 녹이고 마는구나

 

 

 

봄눈

신대철

 

내 등은 물인가요?

모래에 기대면 모래가 무너져요.

 

내가 기댈 때

비로소 따뜻한 등을 갖는 자

그대는 살아 있나요?

어디에?

나와 한 핏속에?

꿈이 생()인가요?

 

나는 흐른다,

칼끝뿐인 땅을 뱃바닥으로

오래 흐른다

 

 

 

춘설(春雪)

신성호

 

처마 끝에 걸린 고드름이

떠나는 겨울을 아쉬워하며

찾아오는 봄을 마중하고 있다

 

담장 밑 따사로운 양지밭에

봄볕을 받아 막 피어나는 새싹도

해맑은 얼굴 하나에 미소를 짓고

 

먼 길을 떠나려는 나그네 뒷모습처럼

떠나보내기엔 서운하고 아쉬워서

돌아서 흐르는 눈물이 춘설이 되어

 

흐느끼던 이별의 슬픈 마음마저

하얗게 변해 하얀 눈꽃으로 피어나

나그네 가는 길을 환하게 밝혀주고

 

절기 따라온 입춘대길을 기원하며

무언의 현란한 몸부림도 없이

이른 봄 끝에 말없이 떠나가려나 보다

 

 

 

춘설(春雪)

심은섭

 

겨우내 그리도 할 말을 빠트렸는가.

때늦게 나풀나풀 남사스럽네

 

보는 이 눈살 어찌하려고

앉을 자리 누울 자리 눈여겨보고

 

보고파 찾아온 이 만나거든

숨겨진 사연 풀어놓고

뜬눈 밤새워 되새겨 보렴.

 

짓궂은 바람아 심청마라

길 잃어 남에 뜰에 떨어지면

빗자루 험한 손에 볼기 맞을라

 

철부지 옛적 그리며

못 본 채 눈 한번 감아주렴

 

 

 

3월 눈(春雪)

오보영

 

이미 멀리 가 있어야 할 네가

느닷없이 쏟아져 내려

모두를 당혹하게 하는 건

 

최소한의 도리가 아님을 알고는 있는 거니

 

옥죄이던 찬기를 떨쳐버리고

이제는

다가온 봄기운에 새 활력을 얻어

새싹도 돋우고

꽃망울도 피우고..

 

앞만 보고 향해 나갈 일 하기도 벅찬데

 

몰래 되돌아와

뒷덜미를 잡으려하는 건지

도저히

평범한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누나

 

그런다고

너의 그 얕은 술수에 놀아날 꽃들 나무들

아무도 없긴 하지만

단지

 

아무 때나 분별없이 설쳐대는

네 하는 짓이

 

너무 불쌍해서 하는 얘기다

 

 

 

봄눈

오보영

 

1

흩날리다

금방

 

사라져 버려도

 

순간

물이 되어

 

흘러내려도

 

여전히 넌

하얀 모습

 

눈이었구나

 

한결같은 마음

해맑은

 

눈이었구나

 

 

2

네 때가 아닌데

 

네가 설칠 때는

이미 지나갔는데

 

미련 못 버리고

느닷없이

 

오는 봄비

가로채어

 

길 막아서는

못된 네 심술이

 

심히 못마땅하다 못해

불쌍하기조차 하구나

 

봄비 반기던 중에

뜬금없는 너를 대하니

문득

 

지난겨울 내내

얼어붙게 했던

 

못된 행태들이 떠올라

더더욱

 

맘이 상하고

미간이 찌푸려지는 걸 어찌하랴

 

당연히

봄기운에

 

금방

녹아 없어지긴 하겠지만

 

 

 

봄눈(春雪) 교훈

오보영

 

한순간이네요

 

줄줄

쏟아져 내리던 빗줄기가

밤새

눈송이로 변해 흩날리어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어버리는 걸 보니..

 

하늘의 뜻이라면

세상 일

일순간에 바뀔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되네요

 

힘 조금 가졌다고

인간이

섣불리 설치지 말라는

 

경고를 주는 것 같아

큰 교훈을 얻게 되네요

 

 

 

봄눈이 내리네

윤의섭

 

겨우내 없던 눈이 내리네

나뭇가지에 봄눈이 내리네

메마른 대지를 넉넉하게 덮으니

소나무 뿌리에 수분이 들어가네

 

수상한 세월에 반가운 눈이 왔네

배고파 울던 나목의 뿌리에도

빈자의 한숨이 있는 낮은 곳에도

봄눈이 펄펄 만건곤 만건곤(滿乾坤)하였으면

 

 

 

춘설(春雪)

윤의섭

 

강물이 고요하게

나루 앞을 지나고

물 먹은 버들가지 보이네

 

언덕 위의 매화 꽃잎

조용히 날려지는

정자의 난간에 춘설이 내리는가

 

지나간 겨울바람

고난이 묻어 있는

고목의 밑동에 이끼가 덮여있네

 

실망에 젖었고

좌절에 눌렸던

겨울의 빙편을 녹여내는

연한 흰 살의 춘설이 내리는가

 

 

 

봄눈

윤희윤

 

금방 가야 할걸

뭐 하러 내려왔니

우리 엄마는

시골에 홀로 계신 외할머니의

봄눈입니다

눈물 글썽한

봄눈입니다

 

 

 

춘설(春雪) 뉴스

이길선

 

영동지방에 춘설(春雪) 뉴스로 호남지방을 걱정하며,

영남지방에서 화들짝 가슴앓이하는 착한 오지랖,

 

널 만날 기다림은 해마다 곡우를 기다리고

절기를 체크하며 손꼽아 기다리는 신차(新茶) 소식의 오심(吾心)

 

인류가 바이러스와 싸우는 이 무서운 현실 긴장감에

춘설 소식은 차농(茶農)들에게는 또 하나의 근심이 아닐런지,

 

신차(新茶) 마중에 분주할 차농들의 얼굴에

신차(新茶)의 색향미(色香味)를 기다리는 다인(茶人)들의 얼굴에

 

어느새 한가득 근심이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의 명언을 노래하고,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는 사람들과

춘설에서 이겨내야 할 널(새순) 생각하며

 

어처구니없는 와 사람의 동병상련(同病相憐)으로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명언의 합리화를 부른다.

 

차가운 하얀 눈이 쌓여도 분명 녹아내릴 봄이라

이 순간은 분명 지나갈 것이고,

 

점차 줄어드는 바이러스 확진자 숫자에

결코 즐길 수는 없지만 안도의 한숨은 허락되리라

 

 

 

봄눈

이남일

 

햇살 맞은 앵두나무

붉은 눈을 뜨고

 

봄비 맞은 쥐똥나무

초록 눈을 뜬다

 

, 터질 것 같은

그 눈빛에

나는 그만 눈물이 난다

 

 

 

춘설(春雪)

이문조

 

겨우내 눈 한번 없던

이곳에

우수경칩 다 지난 춘삼월에

눈이 내린다

 

떠나기 싫어

앙탈 부리는 동장군의

시샘인가

 

풀어지는 마음

다잡으라는

경고의 메시지인가

 

분분히 날리는

눈발 속에서

마음의 끈 동여맨다

 

 

 

춘설(春雪)

이문희

 

서산마루에 새벽달 기울고

뜬눈으로 새운 하얀 밤

간절한 그대 그리움에

사르륵사르륵 대숲이 울던

 

겨우내 눈 시리게 기다려도

좀채로 오지 않던 그대

꽃 몽우리 탯줄 자르기 바쁜

춘 시절에 살포시 왔네

 

나비처럼 춤추는 춤사위

앙가슴에 안아보고 싶은데

텅 빈 잿빛 하늘 어느 곳에

흔적 없이 스며들고 마는가?

 

독두산 재 넘어

산꿩이 우짖는 양지바른 곳

하얀 이불 비집고 살며시

고개 내민 어린 보릿잎

 

메마른 가지 끝에

봉긋이 솟아오른

매화나무 꽃봉오리

봄눈 녹듯 활짝 반기네

 

 

 

춘분(春分)날의 춘설(春雪)

이문희

 

반가울 수 없는 불청객

지구촌 큰 잔치 올림픽대회 치루고

패럴림픽 대회까지 말끄미 치룬

성화대의 타는 불은 꺼지고 없다

 

온 세상 어두운 그늘 벗겨내시고

백의의 금수강산 펼치시어

어린. 어른들 모두가 한 마음 되어

반기던 그때가 언제였을까

 

때아닌 환절기의 시샘이

어찌 춘설의 탓일까마는

 

아무리 빈객이라 할지라도

앉고 설 자리도 모르고서야

융숭한 대접이 인색한 새상

차갑고 혹독한 실상이어늘

 

원망도 미움도 내 마음탓

부덕함도 모두가 내 탓일진대

눈물 나게 고마운 백의의 천사.

그리울 춘설아. 미련 없이 가거라

 

 

 

춘설

이민숙

 

무작정 밀고 들어온 봄에

지키고 서 있던 땅을 까닭 없이

던지고 갈 수 없습니다

 

어떻게 지켜 낸 사랑인데

높아지는 온도에 무너질까요

고통을 나누며 차갑게 다스려

키워온 사랑이 아니던가요

 

못다 한 애증은 눈물로 녹아내려

지키던 자리를 내어 주고

대지에 묻히면 다시 온다 약속이라도 해주오

 

그 약속 믿고 서러워도

흙빛 땅속에서 일 년을 기다리겠소

 

한때는 만년설만 찾던 그대

봄꽃에 묻혀 춘설에 눈 흘기니

아린 마음 애잔히 흐릅니다

 

 

 

봄눈

이숙자

 

마른나무 가지에서

새순이 눈을 뜨고

세상을 본다 하여

봄이라고 하지

 

아가, 너도 봄이로구나!

 

파릇파릇

영롱한 눈을 가진

아가야,

너도 봄이로구나

 

 

 

봄눈이 철이 없어

이영지

 

이 봄에

소매 끝을

꼭 잡아

당기면서

 

이 봄을

찬 찬바람

막아서

덮어주며

 

봄눈의 소매 끝으로 봄을 굽는

이에게

 

이 봄을 놓칠세라 여린 순 에워싸고

여린 순 오르도록 흰 눈을 내래덮는

 

어리디 아린 눈물로 봄을 굽는

이에게

 

 

 

춘삼월 눈비

이옥순

 

사랑 꽃피는 춘삼월 봄날

떠나지 못하는 겨울 님

하얀 눈송이 꽃 속에 휘날리고

 

비바람 이겨낼 인내의 힘

꽁꽁 얼게 했던 매서운 훈련

다시 한번 긴 흔적 남긴다

 

봄 내음 가득한 햇살 퍼지고

창가를 두드리는 아지랑이

화초에 솟아난 새싹의 품은 꿈

반짝반짝 화색이 물오른다

 

저 빛나는 태양 아래

추웠던 날들 망각하고 비바람 불지라도

봄 물결 소리에 그 무엇도 이겨낼

희망의 꽃을 피우려 만물이 움터 나온다

 

 

 

봄눈

이재환

 

봄인데

겨울인 양

눈이 내리네

 

자기 계절도

아닌데

착각하고 있나 봐

 

땅에

떨어지자마자

사라져 버리네

 

봄 눈이

벚꽃처럼

이쁘다

 

 

 

봄눈

임성훈

 

그해 겨울이

그렇게 싫다고 하더니

결국에 북풍이 몰아치고

폭설이 내렸지

 

찬 바람이 지나서야

매몰찬 겨울에

위로가 될 텐데

무심하게 지켜보는 날을

어디 봄이라 말할까

 

간밤에도 살을 에이는

그믐의 밤에

단 한 번

너를 잊었다고 하지 않았지

 

돌아올 거야

저 두터운 구름이 뚫이고

남풍이 오면

시리도록 푸른 봄눈이 오겠지

 

 

 

봄눈

임재건

 

1

계절이 아직 겨울인 양

늦은 눈을 내릴 때

나는 아직 연인인 듯

마저 사랑을 했다

 

 

2

허공에서 피고 진다

바람에 부서지는

하얀 잎

봄날 가장 먼저 지는 꽃

 

 

 

봄눈

임재화

 

아직 이르다고 겨울이 시샘하더니만

밤새 내린 흰 눈이 수북이 쌓이고

이른 아침까지 계속 내리고 있다

 

솜털 벗든 꽃망울 외투 깃 다시 추켜올리고

솔숲에 수북이 쌓인 하얀 눈꽃 송이

인적 하나 없는 너른 벌판도 온통 하얗다

 

때늦은 봄눈일지라도 한겨울 풍경

마음마저 다시 겨울이 찾아온 듯해도

이미 새봄의 기운, 온 누리에 가득하다

 

 

 

봄눈

장승진

 

발레리나,

온몸으로 움직이는

순간이

아름다운 자

 

수 억 명이 한꺼번에 하늘을 메우는 지상 최대의 공연이 어느 봄날 갑자기 펼쳐질 것임.

남녀노소 지위나 신분에 구별 없이 누구나 볼 수 있으며 관람료는 무료.

그러나 춤이 끝난 후에 이 대규모 공연단 단원 중 어느 누구도 만날 수는 없으며

대신에 얼마 동안의 질척임과 흙탕물을 감수해야 할 것임.

그들을 '철모르는 하늘의 꽃송이들'이라 부르는 시인이 있는데,

'짧은 감탄과 오랜 질척임'이 이 공연의 매력이라 평하면서

자신의 삶은 '오랜 질척임 뒤의 짧은 감탄'이 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임.

'노란 봄 하얀 꽃'이란 제목으로 관람권을 만들어 돈을 받고

파는 사기 업체도 있다는 소문이니 속지 않도록 주의를 요함

 

 

 

춘설(春雪)

장유정

 

다정도 병인 냥 꽃잎에 그리움 안고

하얀 눈꽃 시리도록 꽃 피울 때

 

올망졸망 피는 네 꽃에 눈꽃 앉았네

하얀 천국 천사가 다녀가고

 

고운 입술 파르르 떨고 떨어도 나는 좋아라

춘설 향기 더 짖게 꽃 피우네

 

도도한 기품 한 몸에 가득 실릴 때

설중매 향기 드높네 파란 하늘 열리우네

 

 

 

봄눈

장인성

 

1

첫눈 오는 순간

가장 기뻐서 손뼉 치며 환호했던

하얀 꽃으로 온 기쁨을

지상에서 어떤 꽃을

저만큼 설렘에 기뻐했을까

그런 우리는

겨울의 긴긴밤 어느 날

또 다른 세상의 봄()을 꿈꾸며

그대 등을 밀었다

그대는 허공을 떠돌며

봄이오는 길목에서

어디로 갈지를 모르는 아우성

겨울의 남은 눈물인가

폭군처럼 쏟아부으며 떠나려는

올겨울의 마지막 손님

금방 왔다 갈걸 뭤하러 왔누

 

 

2

양지바른

길섶에 봄이 왔는데

금방 왔다 갈걸

뭣 하러 왔니

봄눈 속에 새 생명이

울고 있구나

 

양지바른

나뭇가지에 꽃이 피는데

손님처럼 왔다 갈걸

뭣 하러 왔니

꽃샘추위 어린 생명

떨고 있구나

 

 

3

봄눈아

올 테면 엄지로 오라

손벽 치고 감격할 때

첫 번째 엄지로 오라

 

봄눈아

올 테면 엄지로 오라

너 같은 슬픈 사연이

어찌 너뿐만이랴

 

봄눈아

올 테면 엄지로 오라

나도 너같은 운명인가

같이 울고 있단다

 

 

 

봄눈

전근표

 

꽃잎도 함박눈도 아닌 것이

손에 잡힐까 말까

허공에서 하늘하늘 봄 춤추고 있다

 

하늘 가득 지고 있는 얇은 꽃눈

겨울 내내 메말랐던 가지

꽃눈에 꽃눈이 스며들며

생명의 깊은 잠을 깨운다

 

실바람 타고 너울너울 춤추는

하얀 꽃눈

한 송이 매화 꽃망울 찾아와

살며시 포옹하며 입술을 연다

 

가는 겨울꽃 시샘을 한다

눈 속 헤집고 부풀어 오른 가슴

연분홍 관현악 소리 기다려진다

 

 

 

춘설유정(春雪有情) 1940

전영관

 

황도(黃道)는 경칩 지나 춘분으로 가는 길목

해 꼬리 길어지고 저녁 바람이 무뎌졌다 싶을 무렵에

그대는 나무에 귀를 댄 적 있는지

부글거리는 소리 들어 보셨는지

 

사내의 가슴에 파묻혀

두 박동이 일치하는 순간을 기다려본 적 있는지

손등의 혈관들이 푸른 밧줄 되어 친친 감겨온대도

까무룩 혼절한대도 그만일 것만 같은 적 있었는지

올올이 강건한 근육의 파도 위에 동동거리는 갈매기 되어

눈꼬리를 흔들지 않았는지

 

작은 새 그녀를 품에 넣고

목을 쓰다듬다가 팔딱이는 경동맥이 짚일 때

아아, 통정의 황홀에 현기증을 느끼지는 않았는지

야윈 채로 창문에 어룽거리는

벚나무 그림자가 꽃으로 만개할 때까지 포옹을 풀지 말자며

검지로 그녀 가르마를 정돈하던 새벽이 몇 번이었는지

 

끓어오르는 소리를 들어주지 못하고

분주한 마음을 매만져주지 못하고

권태롭다 돌아앉은 것은 아닌지

가버리는 사람의 스카프가 저만치 펄럭일 때야

제 안의 부글거림을 느끼고 당황했던 저녁은 아닌지

묻자니 내 사랑 부끄럽고 모른 척

아닌 척 시선을 거두자니 몰락한 날들이 황망한 오늘

 

서둘지 말라고 봄눈 내리네

그런 사랑을 차갑다 절망하지 않았는지

외면한 적 없는지 돌아보라고 봄눈 내렸네

겨울은 지났는데도 찬찬히 물을 올리고 꽃을 피우고

이파리 무성해질 나무에게 배우라고 봄눈 녹아버리네

질긴 겨울이나 지루한 봄이나 모두 다 잠깐이라고

천지간 눈은 흔적도 없네

 

 

 

봄눈

전영금

 

오는구나

첫사랑 같은 봄눈

금방 왔다 갈

순하디 순한

달콤한 입맞춤

 

봄이면

제일 먼저 피었다

금방 왔다 갈

첫사랑 같은 봄눈

순백의 꽃이여

 

 

 

봄눈

정끝별

 

삼월에 눈은 샴페인처럼 솟아

세상 속으로 사라진다

 

하늘 아래 한 송이 늦눈처럼

땅 위 한 싹 꽃눈처럼

원고지 한 칸 모눈처럼

 

눈에 두고 온 것이 있어

길을 잃고 종일 눈을 맞았다

 

눈에 두 이야기가 쓰였다

한 이야기에서 다른 이야기가 돋았다

지는 눈에 피는 눈이 내렸다

 

시리도록 눈이 부셨다

사월에게 갈 수 있겠다

 

 

 

봄눈

정세훈

 

1

나 오늘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봄바람에 살살 녹아나는

저 봄눈 앞에

 

 

2

님이 보내시는가

북망산으로

봄나들이 가신 님이 보내시는가.

 

꽃이 피어 아름답고

새가 울어 섧다는

북망산 봄소식을

폴폴 봄바람에 실어 보내시는가.

 

봄꽃이 좋아서

겨울날에 홀연히 떠난 님이

날더러 못 잊어라 보고 싶어라

하얀 눈물 펑펑 보내시는가.

 

아직은 아득한 겨울 녘인데

 

 

 

춘설(春雪)이 난분분하니

정이산

 

아침에 일어나니

하얀 눈이 소복이 내려서

온 대지가 설국(雪國)이다.

사람들은 겨울 눈이라며

일기 예보를 탓한다.

 

입춘 후 십일이나 지나

늦게야 오신 하얀 손님을

춘설(春雪)이라고 부르는 게

진정 옳은 말이 아닐까

 

과일이나 생선들도

제철에 나는 것을 먹어야

몸에도 좋고 맛있듯이

철이 지난 식품들은

아무래도 제맛이 적고

 

역사도 과거 일이기에

그 당시 사료들을 통해

진실을 밝혀내야 하거늘

후대의 막연한 추론으로

허구나 소설(小說)이 된다

 

 

 

춘설(春雪)

정지용

 

문 열자 선뜻

먼 산이 이마에 차라.

우수절(雨水節) 들어

바로 초하루 아침,

새삼스레 눈이 덮인 뫼뿌리와

서늘옵고 빛난 이마받이하다.

얼음 금가고 바람 새로 따르거니

흰 옷고름 절로 향기로워라.

옹송그리고 살아난 양이

아아 꿈 같기에 설어라.

미나리 파릇한 새 순 돋고

옴짓 아니기던 고기 입이 오물거리는,

꽃 피기 전 철 아닌 눈에

핫옷 벗고 도로 춥고 싶어라.

 

 

 

봄눈

정한용

 

 

길은 존재하지 않는 나무 속에 있다

겨울 피부 거칠게 패인 상처 위로

막 작은 입을 연다

우리들 가슴 한 모서리

아무도 볼 수 없는 그리운 집 저편으로 봄눈 날리고

안개, 그래, 그 불투명이 깊어진다

늙은 어머니 관절염처럼 무릎이 시려오면

때늦은 편지도 쓰기 어려워진다

사연은 길지만

눈발이 우리들 말을 지워버린다

흰 나무 빼곡했던 자리에 일렁이는

눈꽃 빈 흔적

 

 

 

봄눈

정해영

 

곧 사라질 것이라면

아무렇지도 않든지

이렇게 마주 앉아

먹는 흔한 아침밥도

기적이 된다

 

 

 

봄눈

정호승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다른 사람에게 눈물을 보이지 말라

봄눈이 내리면

그대 결코

절벽 위를 무릎으로 걸어가지 말라

봄눈이 내리는 날

내 그대의 따뜻한 집이 되리니

그대 가슴의 무덤을 열고

봄눈으로 만든 눈사람이 되리니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과 용서였다고

올해도 봄눈으로 내리는

나의 사람아

 

 

 

북촌에 내리는 봄눈

정호승

 

북촌에 내리는 봄눈에는 짜장면 냄새가 난다

봄눈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짜장면 배달 가는 소년이 골목 끝에서

천천히 넘어졌다 일어선다

 

북촌에 내리는 봄눈에는 봄이 없다

내려앉아야 할 지상의 봄길도 없고

긴 골목길이 있는 사람의 그림자도 없다

나는 오늘 봄눈을 섞어 만든 짜장면 한 그릇

봄의 식탁 위에 올려놓고 울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짜장면 한 그릇

먹고 싶어한 아버지를 위하여

봄눈으로 만든 짜장면을 먹고

넘어졌다 일어선다

 

 

 

봄눈

조정관

 

날 풀리면 만나자고 약속한 지 언제인데

꽃을 꽂고 버선발로 기다려도 소식 없어

사무치는 그리움에 아픈 가슴 어이 할꼬

그대 올 수 없다시면 내가 몸소 가오리다

거기에만 있으시라 내가 바로 가오리니

하얀 너울 곱게 쓰고 사랑 안고 내려왔소

팔도강산 님 계신 곳 어느 멘가

사방팔방 왔다 갔다 두 눈 씻고 찾아보니

저기 저기 제비꽃밭 어찌 거기 누워 있소

그대 보러 달려왔소 어서 빨리 일어나오

돌틈 사이 새싹들도 허리 펴고 일어나서

까치발로 춤추는데 어찌 아니 일어나오

거기 누워 봄이 되고 흙이 된다 하시오면

나도 그대 따르리라 그대 곁에 누우리라

봄눈처럼 내려서 그대에게 스미겠소

 

 

 

봄눈 그리워

진태규

 

무어가 저리도

서럽고 아쉬운가

찔끔찔끔 눈물반 외로움 반

그리운 봄눈아

겨울 내내 마을 지나는 길

눈 속에 모두 막혀

바깥소식 들을 수 없었나니

 

지친 산비탈 바람도

과수댁 잔기침

소리도

자정이 넘도록

뒤척이다 잠들고

 

봄이 오실까

집 떠난지 수십 년

과수댁 굴뚝에는

저녁마다 군불 때는

열기 피어오른다

 

 

 

봄눈

최보정

 

그건 고맙고 고마운 축복이다

이월에 태어난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눈꽃은 밤사이에

수억개의 궁전을 세우고

그러다가 전선에서 부르르

떠는 눈송이를 맞으며

경계도 없이 낮게 나는

까치 떼 군무를 바라보며

무슨 축복으로

저리도 눈부신 세계를

만들어주는가

찬탄하는 사이 너는 녹고.

한낮도 아닌데 너는 녹고

. 사랑은 간다.

속죄의 눈물 반짝이며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더 이상 나의 언어는 소통하지

않는다

봄을 시작하는

리키다 소나무가

파르르 떤다

 

 

 

봄눈

최홍윤

 

눈이 내리네

하염없이 쏟아지네

삼월 스므레 날 지나 춘분일(春分日) 인데

문득 쳐다본 대관령 지평선 캄캄하게

보이질 않도록 마구 쏟아지는 춘설(春雪)

 

제 이름의 꽃을 피우려

동삼 내내 벼루던 나무들

가지에 삐죽 삐죽 꽃봉오리 맺히더니

꽃 대신 하이얀 눈꽃을 피우고

깊은 시름에 젖었네

 

아득한 고향

토담길 돌아 나가는 도랑물에

도롱뇽이랑 개구리알

차가운 흰 이불로 벌벌 떨겠고

알 낳고는 임 찾아 떠난 개구리

하이얀 대가리 참 우습겠네

 

아롱지는 봄 아지랑이

언제께나 피어 오르고

개골개골 개구리 우는 뜰에

춘 삼월에 내리는 눈은

눈 녹듯 한다 해도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눈에 맺히는 물이

:물인가 눈물일가?

 

세월이

서글퍼서 인지

기억의 저편, 갈빗대엔 진눈개비 같은 곰팡이

모르겠네

도무지 알 재간이 없네

 

 

 

눈보라 속에 오는 봄

최홍윤

 

그제 시작한 눈이

어제도 내리고

내일 모래까지 내린다니

세상은 참 고요하다

 

외딴 산골짝에

꼿꼿한 대숲도 깊이 잠들었고

눈 덮고 졸고 있는 낙락장송에

바람도 쉬어 가 평화롭다

 

춘삼월 경칩이지나

한 댓 새 퍼붓는 눈보라로

길이 허물어진 산골짝에

산토끼가 굴을 파 길을 낸다

 

시름이 깊어서인지

새들의 울음만이 적막을 깨고

시끄러운 새상을 잠재우려

내리는 눈송이만 바쁘다

 

나뭇가지에

터지려다 눈을 감추는 꽃망울

눈을 간질이며 흐르는 냇물이

어렵사리 봄 노래를 부르지만

 

봄은 아직

저만치 멀리서 꿈틀대고 있어

나는 봄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도시의 거리에서

진눈깨비에 구시렁대는 사람들

사람들 하나하나는 봄이었다

 

 

 

동행동행(同行同幸)

평보

 

소복소복 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봄눈이

산수화처럼 덮인 나뭇가지에서

참새들은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름다운 그 길을

노부부가 손을 잡고 걷는다

어깨 위로 스며 녹는 봄눈의 정

여보!!

저분들 봄을 노래하네

평생 동행한 부부를

봄눈이 축복하고 있었다

 

 

 

봄눈

평보

 

여린 새싹 하나가

매화나무에 움 돋았다

소복소복 봄눈이

덮인다

바람에 떨며 새싹은

외치고 있었다

봄눈은 바람을 막아주고

마음을 녹여 사랑의

꽃을 피워내는 거야

 

봄눈이 말했다

새싹아 너를

의지로 꽃피우게

향기로 꽃피우게

시련을 준거야

 

그렇지 인생도 정이

아니고 의지로 사는 거야

눈보라 폭풍의 언덕에서

인고(忍苦)를 이겨가는 거야

 

 

 

눈 내려도 봄은 봄이다

하영순

 

지퍼를 열어 놓고

하루를 걸어도

아무도 말해 주는 사람이 없다

 

길을 잘 못 들면 눈짓이라도 줄만한데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세상인심 자갈밭이다

 

누굴 탓하랴

무두가 내 탓인걸

 

그래도 가끔

꼬집어 주는 고마운 이 있어

정신이 든다.

 

눈 내려도 봄은 봄이다

 

 

 

봄눈

하영순

 

새벽길 나서니 눈이 온다.

펑펑

어린 새싹이 실눈 뜨고

잠에서 깨어나 하품하는데

무슨 심술인가

신은 다른 뜻이 있을 게야

나약하지 말라고

강하게 자라라고

황사 먼지 자동차 매연 할 것 없이

오염된 세상

살아남으려면 강해야 된다고

회초리

사랑의 회초리라 생각하자

오늘 새벽 펑펑 내리는 저 봄눈

 

 

 

봄눈

허용회

 

한식을 하루 앞둔 청명,

봄눈이 꽃비 내리듯 흩뿌린다

 

 

상 이변으로

정신줄 놓은 계절이

바람의 파도에 떠밀려

연 걸리듯, 나뭇가지에 매달리거나

고삿길을 싸돌아다니고 있다

 

절기를 거꾸로 돌려놓은 봄눈은

상춘객 가슴의

빼꼼히 열린 봄 창에 빗장을 지르고

'하늘이 차츰 맑아진다'는 청명

선조의 예지력이 퇴색된 하루

 

 

 

봄눈

홍금자

 

봄눈이 열리고 있다.

매듭 지어진 가슴을 풀며

생의 가파른 고갯길 너머

나뭇잎 하나 달고 있다

 

금원의 고사목

생명이라곤

어느 한 곳에도

남아 있지 않은

너에게

내 더운 가슴 부어

한 잎 꽃잎을 피우게 하리니

 

혼자서

밤새 내리는 비애

겨울 나뭇가지 끝

긴 여정의 허무를 매달고

마지막 안간힘으로

3월의 산고를 맞는다.

 

기다림으로 수런대는

서교동 가로수 위에

봄눈이 내리고 있다

 

 

 

춘설(春雪)

홍사윤

 

겨울이 떠나며

아쉬워 흘리는 눈물

봄비가 아닌

()이 되어

겨울을 위로하는 계절

 

꽃샘추위

눈 이불 덮은 실개천

버들개지의 꽃망울

움츠리게 하며

 

밤하늘 어둠 속에

흘리는 눈물

설한의 눈물인 양

한없는 눈()이 되어

입춘을 망각

 

춘설(春雪)이 내려

그리움에 떠나지 못하는

겨울을 위로한다

 

 

 

봄눈 오는 밤

황인숙

 

길 건너 숲속

봄눈 맞은 나무들

마른풀들이 가볍게 눈을 떠받쳐 들어

발치가 하얗다

나무들은 눈을 감고 있을 것이다

너의 예쁜

감은 눈

. 아니?

네 감은 눈이

얼마나 예쁜지

눈송이들이 줄달음쳐 온다

네 감은 눈에 입맞추려고

나라도 그럴 것이다

. . 예쁜 감은 눈에

퍼붓는 봄눈!

 

 

 

봄눈

힘난봄볕

 

깊은 잠 꿈을 꾸다

지그시 지우리는

봄눈

살금이 문을 열다

세찬 봄 찬바람에 놀란 봄

볏에 내몰이진 볼거리

뒷덜미도 밀어낸 봄

어쩌리 어쩌리

주춤거리다

어리보리

주춤거리다

어찌 보리

놀란 눈 핀다

봄눈

꽃눈 핀다

봄이 핀다



목차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