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애 – 다시 피는 봄
안계종 – 봄은 돌아오리
안계종 – 봄이 오면
안도현 - 봄
안도현 - 봄날, 사랑의 기도
안도현 – 봄 소풍
안도현 – 봄이 올 때까지는
안도현 – 봄 편지
안도현 – 순서
안소연 – 늦은 봄이 질 때
안숙자 - 봄에게
안숙현 – 봄이 쏟아져 내린다
안숙현 – 봄이 오면
안영준 – 봄 올 기미
안영준 - 봄이 오기 전
안영희 - 봄
안용기 - 보옴! 보옴! 봄!
안용기 – 봄을 기다리는 즐거움
안용민 – 봄이 오면
안윤식 – 수락산의 봄
안종환 - 봄날
안종환 - 봄을 기다리며
안희선 - 봄사리
양병우 – 봄이 그립다
양병호 – 봄날은 간다
양선희 – 봄이 올 때까지
양수창 – 봄의 연가
양재성 – 지심도의 봄
양태문 – 봄날의 화공(畫工)
양현근 – 봄을 기다리며
양현주 – 봄이 오는 소리
엄원태 – 봄은 소박하게 질문하다
염경희 – 봄을 부르는 노래
염경희 – 봄 처녀
염경희 – 봄 향연
염규식 – 봄을 기다리며
염인덕 - 봄 봄 봄
염인덕 - 봄의 향기
오광수 – 꿈 같이 오실 봄
오광수 – 아직도 봄을 기다리며
오규원 – 봄과 밤
오남일 – 봄
오보영 – 봄 그리움
오보영 – 봄기운
오보영 – 봄 마중
오보영 – 봄 산책
오보영 – 봄의 변덕
오보영 – 봄 이별
오보영 – 봄 작별
오세영 – 봄날에
오세영 - 봄맞이
오세영 – 봄은 전쟁처럼
오순남 – 봄 길을 거닐며
오순남 – 봄의 창가에서
오순남 - 봄 타는 날
오순화 – 봄이 오는 소리
오순화 – 봄 편지
오애숙 - 봄날이 간다지만
오애숙 – 봄 내음, 환희의 나래
오애숙 – 봄의 숨소리
오애숙 – 봄의 저잣거리
오애숙 – 봄의 함성
오애숙 - 봄이 저마다의 색깔로 피어날 때
오애숙 – 봄 향기로 쓰는 연서
오애숙 – 새봄 속에 피어나는 향그러움
오애숙 - 새봄 속 희망 노래(봄 햇살 살랑이면)
오애숙 – 아, 봄날이여
오애숙 - 유월의 연서
오애숙 – 향그러운 봄 향기에
오정방 – 가는 겨울, 오는 봄
오정방 – 봄이 오는 길목
오탁번 – 봄
옥윤정 – 봄맞이
온기은 – 봄의 왈츠
온기은 – 춘몽(春夢)
용혜원 - 꽃 피는 봄엔
용혜원 - 봄 꽃피는 날
용혜원 – 봄이야
원영애 – 봄
유상옥 – 봄으로 집을 수리하다
유소례 – 봄 냄새
유안진 – 봄
유용선 – 봄은 오더라
유응교 – 봄이 오면
유일하 – 봄꽃이 진다는 건
유일하 - 산비둘기 우는 봄
유자효 – 봄의 메시지
유재영 – 봄의 원근법
유진 - 봄
유필이 – 봄을 안고 당신에게 가리라
유학수 – 봄, 그대는
유희경 – 봄
윤갑수 – 넌 봄을 알까
윤갑수 – 바람난 봄
윤갑수 – 봄
윤갑수 – 봄을 싣고 달리는 기차
윤갑수 - 봄이 오는 길목
윤갑수 - 봄이 오는 소리
윤기명 – 멋진 봄날
윤덕명 – 봄날에
윤동주 – 봄
윤동주 – 사랑스런 추억
윤동주 – 오후의 구장
윤동주 – 종달새
윤만주 – 3월의 봄이 오면
윤무중 – 봄을 듣는다
윤보영 – 봄이 왔다기에
윤성택 – 이른 봄산을 오르다
윤은기 – 봄
윤의섭 – 봄 앓이
윤의섭 – 춘석(春夕)
윤정옥 - 봄 편지
윤준경 – 봄날 단상
윤춘순 – 부활의 봄
윤홍조 – 애타는 봄
이경옥 – 봄맞이
이경옥 – 여전히 봄은 오는가
이계윤 – 봄은 아직
이국헌 – 봄날 산에는
이기철 - 봄 아침
이길옥 – 봄 앓이
다시 피는 봄
안경애
지금도
그 마음 그대로 남아
너무나 곱고
너무나 예쁘게
가슴 뛰던 착한 마음
바람이 건드리면
건드리는 대로
햇살이 건드려도
건드리는 대로
그렇게 살아
곱디고운 수를 놓듯
내 안에 스민 봄빛
수줍은 듯
까르르 웃던 멋진 설렘
두런두런 일어서고
다시 피는 봄처럼
후리지야 그 노오란 정렬
가슴 사이사이 스미어
사랑으로 사르리라
봄은 돌아오리
안계종
여기
계절의 봄
꽃피는 계절은
지나가더라도 다시 돌아오고
나의
인생의 봄
아름다운 계절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은 흐르나니
지금
그대의 시계는 정오
나의 사랑 거룩한 봄이여
영원히 활짝 피어나라
그리고,
봄이 지지 않는
내가 사모하는 그곳으로
에덴의 요단강을 건너시라
봄이 오면
안계종
봄이 오면
생일을 기뻐하는
에덴동산의 행복이 되니
꽃가루가 살포시
사랑의 정원에 날아들면
마음도 꽃밭이 된다네
살며시 다가와
매혹의 꽃으로 노래하면
나는 온몸으로 춤을 추리라
젊음의 푸르름으로
벌, 나비 되어 꽃을 찾으니
산과 들에 새 생명 넘치리라
봄
안도현
제비 떼가 날아오면 봄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은
봄은 남쪽 나라에서 온다고
철없이 노래 부르는 사람은
때가 되면 봄은 저절로 온다고
창가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이 들판에 나오너라
여기 사는 흙 묻은 손들을 보아라
영차 어기엉차
끝끝내 놓치지 않고 움켜쥔
일하는 손들이 끌어당기는
봄을 보아라
봄날, 사랑의 기도
안도현
봄이 오기 전에는 그렇게도 봄을 기다렸으나
정작 봄이 와도 저는 봄을 맞지 못했습니다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당신을 사랑하게 해 주소서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로 해서
이 세상 전체가 따뜻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갓 태어난 아기가 응아, 하는 울음소리로
엄마에게 신호를 보내듯
내 입 밖으로 나오는 사랑해요, 라는 말이
당신에게 닿게 하소서.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남의 허물을 함부로 가리키던 손가락과
남의 멱살을 무턱대고 잡던 손바닥을 부끄럽게 하소서
남을 위해 한번도 열려본 적이 없는 지갑과
끼니때마다 흘러 넘쳐 버리던 밥이며 국물과
그리고 인간에 대한 모든
무례와 무지와 무관심을 부끄럽게 하소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하소서
큰 것보다도 작은 것이 좋다고,
많은 것보다도 적은 것이 좋다고,
높은 것보다도 낮은 것이 좋다고,
빠른 것보다도 느린 것이 좋다고.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그것들을 아끼고 쓰다듬을 수 있는 손길을 주소서
장미의 화려한 빛깔 대신에
제비꽃의 소담한 빛깔에 취하게 하소서
백합의 강렬한 향기 대신에
진달래의 향기 없는 향기에 취하게 하소서
떨림과 설렘과 감격을 잊어버린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 같은 몸에도 물이 차오르게 하소서
꽃이 피게 하소서. 그리하여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얼음장을 뚫고 바다에 당도한
저 푸른 강물과 같이 당신에게 닿게 하소서.
봄 소풍
안도현
점심 먹을 때였네
누가 내 옆에 슬쩍, 와서 앉았네
할미꽃이었네
내가 내려다보니까
일제히 고개를 수그리네
나한테 말 한번 걸어보려 했다네
나, 햇볕 아래 앉아서 김밥을 씹었네
햇볕한테 들킨 게 무안해서
단무지도 우걱우걱 씹었네
봄이 올 때까지는
안도현
보고 싶어도
꾹 참기로 한다
저 얼음장 위에 던져놓은 돌이
강 밑바닥에 닿을 때까지는
봄 편지
안도현
점심시간 후 5교시는 선생 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숙직실이나 양호실에 누워 끝도 없이 잠들고 싶은 마음일 때,
아이들이 누굽니까, 어린 조국입니다
참꽃같이 맑은 잇몸으로 기다리는 우리 아이들이 철 덜 든
나를 꽃피웁니다
순서
안도현
맨 처음 마당가에
매화가
혼자서 꽃을 피우더니
마을회관 앞에서
산수유나무가
노란 기침을 해댄다
그다음에는
밭둑의
조팝나무가
튀밥처럼 하얀
꽃을 피우고
그다음에는
뒷집 우물가
앵두나무가
도란도란 이야기하듯
피어나고
그다음에는
재 너머 사과밭
사과나무가
따복따복 꽃을
피우는가 싶더니
사과밭 울타리
탱자꽃이
나도 질세라, 핀다
한 번도
꽃 피는 순서
어긴 적 없이
펑펑,
팡팡,
봄꽃은 핀다
늦은 봄이 질 때
안소연
늦은 봄 어느 날
당신 생각에 잠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당신을 처음 만났던
봄이 지고 있어 그런가 봅니다
이 마음이 전해졌는지
하늘에선 빗방울을 떨어뜨려
옅은 기대를 무너뜨립니다
무너진 기대가 낯설어지면
나에게서 당신을 다시 떠나보냅니다
오지 않을 당신이지만
다시 돌아올 늦은 봄 어느 날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봄에게
안숙자
찬바람 휘감고 도는
비탈길을 지나
그대 어디쯤 오시는지
두꺼운 외투 자락을 젖히며
성에 낀 가슴에 대고
호오, 입김을 불어 편지를 써요
실핏줄 같은 발가락
얼음장을 딛고
숨골 여린 머리로
어둠을 헤치며 봄볕에 서는 날
두 발을 감싸고
언 손을 녹이려
아지랑이 피어나도록
들판에 불을 놓아야겠어요
봄이 쏟아져 내린다
안숙현
무겁다 무거워
무너져 내릴 만큼
견디기 힘들게 무겁다
크게 뜨고 힘을 주어도
스르륵 스르륵
내려 감기는 눈꺼플
나른한 봄처럼
나도 닮아서
봄이 쏟아져 내린다
봄이 오면
안숙현
하얀 눈이 녹아
시냇가에 물이 흐르면
맑은 새소리와 함께
초록의 나뭇잎이 돋아나겠지
나뭇잎이 바람결에 흔들리고
아지랑이 피어오르면
은은한 향기를 가득 안고
예쁜 꽃이 피어나겠지
실바람이 꽃향기를 전해주면
나비들이 숨박꼭질 하듯이
봄이 오는 동산에서
그리운 친구들과
뛰어놀고 싶어라
봄 올 기미
안영준
봄 마중하는 는개는
누리에 양분을 뿌리고
하늘을 받친 운무는
가위눌림에 몸부림한다
대나무 정수리를 때린
굵은 빗줄기는 시치미 떼고
정적만을 남긴 체
발등에 올라앉았다
추녀 끝을 의지하고
비지땀 흘리던 수정은
곡풍 오던 그날
비명을 지르며 낙하한다
길고 짧았던 월동은
크고 작은 여운을 남긴 체
지워지고 새봄은
동공 안에서 반짝거린다
봄이 오기 전
안영준
백설이 걸터앉았던
마른 가지는
산고의 아픔을 당하고 있다
눈 덮은 하얀 골짜기
외로운 복수초는
눈만 살포시 내밀고
눈치껏 세상을 엿보고 있다
밤새 왔다 간 는개는
언 땅을 해동하고
어린 생명을 기상하게 한다
발길이 뜸한
산사 뒤꼍에는
한 덩이 큰바람 지나고
힘 빠진 가랑잎은
때 묻은 거미줄에 묶여있다
봄
안영희
1
꽃장수의 수레가
내 방 창 밑으로
화분을 가즈런히 부려 놓은 아침
햇살과 눈시울에 물들어 오는
철쭉 꽃빛
네가 보고 싶어
나는 돌아서서 열무김치를 담갔다
우우우, 일어서는 그리움의 새 순들 분질러
소금을 지르고
칼을 들어 풋고추 파 마늘 잘게 다졌다
톱밥처럼 썰어
속으로 삭이는 이 안간힘
꽃빛의 고춧가루 한 사발 퍼담아
이 봄날 나는 열무 김치를 담갔다
2
열쇠 꾸러미를 풀고
그중 큰 것을 골라
맨 처음 당신은
대지(大地)의 문에 꽂았다
강물 풀리고
마른 풀숲 차고 오르는 할미새
그리고
우리들의 눈물에다
엷은 물감을
풀기 시작하는
당신
보옴! 보옴! 봄!
안용기
여기저기 새로이 보옴! 보옴! 봄!
여기저기 보옴 보옴 보옴~~~ 꽃 흐드러지네!
새로이 단장한 꽃으로 만발하고들 있구나!
소생의 아름다움이여!
너는 세상의 아름다운 꽃이로구나!
다시 아름다운 꼿으로의
환생이
우리가
거듭나는 아름다운 꽃이어라!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그리운 찬구님들이시여!
우리가 아름다운 꽃으로
다시금 환생하는 즐거움은
바로!
너는 나의 꽃으로
나는 너의 꽃으로
아름다운 인생으로 행복한 삶으로
사는 것이란
새로운 모습으로
설레이는 마음으로
그냥
너 와 나
나 와 너로서
여기저기서 설레엠 넘쳐나는 보옴 보옴 봄하는 것일 뿐이어라!
봄을 기다리는 즐거움
안용기
이 차디찬 꽁꽁 얼어버릴 겨울에도
이미 다 털어버리고 한겨울 한가운데 나신으로 섰는데
무얼 더 버리고 벗어야 한다는 말인가?
나에게 영혼이라도 남아 있다면
잡히지도 간직해야 할 이유도 없는 그것마저 내놓아야 동사하지 않을 것이라니
내 몸안 생명의 씨앗 수분마저 대지와 허공에 흩뿌려 놓고
영혼마저도 바람에게 넘겨주었느니
그것이 정녕 부활을 약속받는 서약인 것이라니
온 세상이 차디찬 한겨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중이어서
나에게로 향하는 온기 어린 시선 한번 없을 것이지만
나는 동사하지는 않을 준비된 외로움으로
다가오고만 있는 샛노오란 생명으로만 살아남을 것이다
더더욱 차겁고 냉기 품어 서걱대는 눈비 바람 때려대는 언덕으로 언덕으로
오르고 또 올라
고독!
그리고 동면!
외로움의 무게로 가득 차 얼어붙은 영혼 덩어리 동토의 봇짐마저
온기의 씨앗으로 품어내어 외로이 즐기고 노래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려 보리라
봄이 오면
안용민
겨울
견딘 자들의
봄 인사는 아름답고
양지바른 산마루에
분홍빛 입술을
내미는 진달래
담장 넘어 안쪽에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새하얀 목련화
어디선가 자꾸
꽃봉우리는
터지는데
곳곳에 봄은
베일을 쓰고 숨어 있다
봄이 오면
내 여인의
따스한 손 잡고
그들을 마중하러 가려네
뜨겁고
긴 입맞춤으로
그들의 질투 사려네
님이여
두꺼운 외투 벗어버리고
하늘하늘 흩날리는
소라빛 옷자락으로
나를 유혹하소서
오수에 졸립던
고양이 눈 확 뜨고
두 팔 벌려
그대를 맞으리니
수락산의 봄
안윤식
철 늦은 눈이
봄바람에
살그머니 하품을 하더니
햇살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겨울 끝자락이
애써 하늘에
차가운 입김을 불어 보지만
봄이 왔음을 아는 듯
휘파람에 취한 산새
치마바위 소나무
물오른 솔잎이
가녀린 몸매를 뽐내는 시간
바람이 미안한 듯
봄을 나르고 있다
봄날
안종환
황금빛 실타래가
꽃나무들 목을 껴안고
야들야들 간질이자
가지들마다
키득키득 환한 웃음 터뜨린다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
엄동설한 칼바람에
윙- 윙-
아픈 울음 울더니만
활짝 웃는 모습 아름다워
봄볕도 행복하다
나도
하늘 우러러
가만히 웃는다
봄을 기다리며
안종환
죽음이 아니었어요
새 생명을 꿈꾸는
오랜 침묵이었을 뿐
이제
동녘의 빛처럼 일어나
잠자던 시체들 깨우시고
신비한 생명 불어넣으시며
초침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오세요
음울하고 냉랭한 어둠 스러지고
온 누리에 상서로운 빛 가득해
불신의 벽에
사랑과 평화가 여울지게 해 주세요
메마른 가슴
외로운 가슴에
당신의 꽃
활짝 피는 날이면
아!
화사한 봄날
작은 천국이지요
봄사리
안희선
세상엔 온통 파릇한 함성,
먹은 귀가 따갑다
꽃시샘 윙윙 바람 부는 대로
피(血) 어리는, 꽃송이
질질 끄는 낡은 신발이 무거워,
아직도 추운 내 그늘
그래도 무심(無心)한 봄볕 한 점 들어
반짝이는 뼈, 부끄럽다
아무도 몰래,
박제된 눈물
봄이 그립다
양병우
요즘엔
봄이 그립다
슬퍼 뵈는 나무들
여린 잎새가 보고싶다
파아란 하늘에
하얀 구름 흐르는 날
햇빛 밝은 그 날에
겨울을 훌훌 털어내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들 부는 바람 맞으며
긴 휘파람으로
봄을 부르고 싶다
봄날은 간다
양병호
청보리 빗질하며
칼바람 서슬 죽더라
殘雪 사이 청산
몽고반점 짙어지더라
입맞춤 혀 내밀 듯
민들레 싹 트더라
하늘의 무게 받아내며
모란꽃 몸 열더라
꿀과 독침 버무려
암펄 수펄 닝닝닝
취한 듯 꽃가루 섞더라
절벽 메아리치는 향기
어영차 함성으로 터지더라
연분홍 옷고름 휘날리며
복사꽃 하염없이 지더라
떨어지는 꽃잎 데불고
시냇물 아득히 흘러가더라
그러면서 봄날은 가더라
뉘엿뉘엿 흘러가더라
봄이 올 때까지
양선희
엄마,나 좀 밟아주세요.
더 깊은 땅내가 필요해요
곧 내가 동사하겠어요.
이제 봄이래요.
진짜 봄이 오면
내 몸의 일부가 피리가 되는
내 몸 어딘가에 새 둥지를 품는
들쥐도 새끼 치는
꿈을 이룰 거예요
진짜 봄이 올 때까지
제발 엄마, 나 좀 꼭꼭 밟아주세요
봄의 연가(戀歌)
양수창
동면(冬眠)을 깨치고 나온
나비여,
의지(意志)의 나비,
너는 어느새
또 날아왔는가
어느덧
철근더미에 묻힌
나의 긴 긴 잠 깊이 들어와
가로 세로
훨훨 날고 있다
어디에 앉을까,
어디에 앉을까,
곳곳에 방치(放置)된 생활(生活)이 녹슬고
이미 녹슨, 마른 풀들이 그 옆에서
기진(氣盡)한 하루를 다독거리며
더 깊은 잠 속으로
눈을 감는다
무한한 햇빛 속을 지나 온
나비 은(銀)나비.
너의 등 너머 끝없이
출렁이는
은빛 바다, 출렁이는
하늘
깊은 잠의 담을 넘어
다시 날아간다.
날아가는 너의 뒤엔
아른 아른 아른
아지랑이만, 너의 사랑만.
빈 껍질의 살을 벗고 나도
아지랑이 속으로 날아간다
지심도의 봄
양재성
갓 피어난 아리따움과
피 끓는 청춘들이며
뭍의 알곡과 땅속의 금붙이
바닷속까지 고대구리로 다 쓸어 가고
만선의 돛을 펄럭이던 바람마저 끌려가
피에 주린 일장기를 흔들어야 했던
서러운 아픔들은 해풍에 삭고
시름없이 또 그렇게 잊혀가는데
한 맺힌 넋들 해마다 이맘때면
망부석에 수를 놓던 새색시의
찔린 손가락 끝 선혈 같은
선홍의 동백꽃으로 다시 피어
현해탄 너머의 망언에 분노하다 말고
무심한 상춘객들 애써 반겨 맞는
지심도의 봄
아, 아, 동백꽃
봄날의 화공(畵工)
양태문
산수유 매화 도화 벚꽃에 개나리
사방이 꽃 천지라 봄날이 아니든가
벌 나비 사랑놀이에 하루해가 짧다오
산과 들 도화지에 붓놀림 바쁘다네
노란색 초록색에 빨간색 파란색이
밤낮을 그려내어도 쉴 틈조차 없다오
꽃 그려 잎 그려 향기 불어 넣으면
은은한 살 내음을 바람이 실어주니
봄 동산 아지랑이에 화공조차 취하오
봄을 기다리며
양현근
스물스물 쓸쓸한 감성이
담벼락 한 귀퉁이
남루한 전단지에 갇혀있습니다
스물스물 젖고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눈길을 거두어도
오래 잊혀지지 않는 것들은
모두 눅눅한 빛깔입니다
울어 버리든가
아니면 조심스럽게 불러보아도
따뜻한 웃음은 조립될 수 없습니다
허술한 마음의 이음새마다
푸른 별들은 초저녁부터 못을 박아대고
오늘 밤은
먼 곳에서 불쑥 달려올지도 모를
그리운 날들을 위하여
잎넓은 창문을 활짝 열어두고
밝은 꽃등 하나
그렇게 밤새 밝혀두렵니다
세상은 그렇게 이유없이 밝아올 겁니다
봄이 오는 소리
양현주
산자락 타고 들려오는
봄 소리에
대지에 숨어있던 희망은
밝은 햇살 아래 눈을 뜨고
하늘아래 가만히 내려앉았다
작은 생명이
숲 속 어두운 길을 건너
향기로운 꽃잎 입에 물고
살며시 고개를 든다
갈색 빛 잎새
잃었던 모습을 찾고
움터오는 새싹들 노래 소리에
내 가슴에 봄이 흐른다
고독의 계곡을 힘겹게
넘은 바람소리는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는데...
꽃처럼 아름답고 달콤한
봄 내음은
흰 치맛자락 펄럭이며
향기로운 님의 모습 노래한다
봄에 소박하게 질문하다
엄원태
몸 풀린 청량천 냇가 살가운 미풍 아래
수북해서 푸근한 연둣빛 미나릿단 위에
은실 삼단 햇살 다발 소복하니 얹혀 있고
방울방울 공기의 해맑은 기포들
바라보는 눈자위에서 자글자글 터진다
냇물에 발 담근 채 봇둑에 퍼질러 앉은 아낙 셋
미나리를 냇물에 씻는 분주한 손들
너희에게 묻고 싶다, 다만, 살아 기쁘지 않으냐고
산자락 비탈에 한 무더기 조릿대
칼바람도 아주 잘 견뎠노라 자랑하듯
햇살에 반짝이며 글썽이는 잎, 잎들
너희들에게도 묻고 싶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폭설과 혹한, 칼바람 따윈 잊을 만하다고
꽃샘추위며 황사 바람까지 견딜 만하다고
그래서 묻고 싶다, 살아 기쁘지 않느냐고
봄을 부르는 노래
염경희
새하얀 솜사탕 사르르
대지를 깨우니 소슬바람에
봄 내음 살랑살랑 일고
갈대숲에 숨어든 바람도
사각사각 봄 노래를 부르니
참새들은 데굴데굴 굴러다닌다
반짝이는 햇살 등에 지고
비상하는 철새들의 날갯짓이
봄을 부르듯 화려하다
파란 하늘이고 흐르는 시냇물은
구름 따라 바람 따라 졸 졸졸
남으로 남으로 봄 마중을 한다
봄 처녀
염경희
참 곱기도 하다
별들이 잔치를 벌였구나
봄맞이 축제로구나!
구름 덮고 잠자던 반 반달이
눈이 부신 듯 내려보고
산허리 베고 누운 밤안개는
별을 쫓아 부서진다
봄바람에 햇살이 너풀거려도
는개 비 추적추적 흩날려도
거울 속 소녀는 칠보단장을 한다
요리보고 조리 보고 토닥토닥
두 볼엔 연분홍 볼연지 찍고
립스틱 짙게 바르니 천생 봄 처녀로구나
활짝 웃는 하얀 목련꽃처럼
새초롬 이 고개를 내미는 들꽃처럼
옴폭 패인 보조개엔 웃음꽃 만발했다
별들이 춤을 추는 날이면
수줍은 봄바람도 달빛에 살랑살랑
봄 처녀 가슴에도 사랑 꽃핀답니다
봄 향연
염경희
겨울 목 시냇가
뽀얀 운무 타고 내려앉는 햇살
수정처럼 반짝이며 봄을 부르네
저만치 봄이 오는 소리에
눈깔사탕 물고 있는 아기 볼처럼
수줍었던 꽃망울 화들짝 미소 짓는다
꽃망울들은 기지개를 켤까 말까
올망졸망 모여앉아 말 꽃으로 피어나고
노랑나비 흰나비 이리 살랑 저리 살랑
꽃망울의 웃음소리는 나무초리에 걸리고
봄바람의 기지개에 꽃들은 피어나니
묶은 옷 벗어 낸 봄 향연이로구나
봄을 기다리며
염규식
호젓한 산기슭 모퉁이
돌담 사이에서
곱게 피어나는 이름 모를 들꽃
꿈같이 지친 세상살이
울긋불긋 멍든 가슴
고운 봄꽃 되어
긴 겨울 언 입술 깨문다.
창공을 나는 새처럼
푸른 하늘을 비행하고 싶지만
봄이 와도 여전히 차가운 삶의 그늘은
곳곳에 흩어져있다
그대를 기다리는 따스함의 정령은
머지않아 품에 돌아오지만
겨울의 아픔까지 보듬을 수 있을는지
봄 봄 봄
염인덕
한발 내디디고
두 발걸음 걸었는데
어느새 봄이 왔네요
설한을 이겨내고
조심스럽게 다가와
입술을 내민 홍매화꽃
꽃봉오리 톡톡 틔우는 소리에
나비 한 마리 앉아 있는 모습
어느 댁 규수처럼 예쁘네요
꽃향기에 봄 햇살도
꽃잎 속에 잠이 들고
흰 구름은 친구 되어 쉬어 가네요
봄의 향기
염인덕
세월의 물살에
휩쓸리는 아침
잠을 깨우는 무지갯빛
실개천 버드나무
흐르는 물에
거문고를 타고
목련꽃 피는 곳에
봄 마중 나온
작은 새들의 흥겨운 왈츠
기다리는 여백에
꿈틀거리는 봄의 향기
희망을 꿈꾸는 봄이로라
꿈같이 오실 봄
오광수
그대!
꿈으로 오시렵니까?
백마가 끄는 노란 마차 타고
파란 하늘 저편에서
나풀 나풀 날아오듯 오시렵니까?
아지랑이 춤사위에
모두가 한껏 흥이 나면
이산 저 산 진달래꽃
발그스레한 볼 쓰다듬으며
그렇게 오시렵니까?
아!
지금 어렴풋이 들리는 저 분주함은
그대가 오실 저 길이
땅이 열리고
바람의 색깔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어서 오세요.
하얀 계절의 순백함을 배워
지금 내 손에 쥐고 있는
메마름을 버리고
촉촉이 젖은 가슴으로
그대를 맞이합니다.
그대!
오늘밤 꿈같이 오시렵니까?
아직도 봄을 기다리며
오광수
대운산 고운 손길에
회야강 마른 들풀들이 모두 눈을 뜨고
할 일 찾은 작은 바람은
시린 손끝에 앉아 땀을 부른다
산 꿩 울음소리 아직 잔잔히 남아있는
굽은 길 돌면
마른 얼굴에도 웃고선 진달래가
그 사람 미소 같아 고맙다
허기진 땅의 가슴속에
저수지를 뚫고 나온 물소리가 핏줄이 되고
그리운 이가 부르는 노래는 생명이 되어
황토 누운 길 따라 피어오르는 여린 불씨
그러나 남아있는 부끄러움 때문에
하얀 목련이 쑥스럽지 않게
아지랑이 하나라도 그냥 보내지 않고
회색 심장에다 나만의 풍선을 달고 있다
봄과 밤
오규원
어젯밤 어둠이 울타리 밑에
제비꽃 하나 더 만들어
매달아 놓았네
제비꽃 밑의 제비꽃 그늘도
하나 붙여놓았네
봄
오남일
1
하이얀 속옷을 벗고 누운
철쭉 빛 떨리는 입술과
유채꽃 분을 바른 고운 살결은
조용히 당신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살아야 한다는 건 기다림의 연속이라지만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는
풍만해져 가는 육체의 고통을
어찌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나가 될 수 없는 운명이라서
알몸이 부끄럽고 서럽다면
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눈빛으로
깊은 한숨을 이야기하겠습니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고
잡으려 해도 잡을 수가 없기에
눈물만
아지랭이 속에 자지러집니다
2
어렴풋이 당신이 다가오심을 느낍니다
하지만, 당신 앞에 선 저는
사랑의 말이 어찌 시작되는지를 잊었습니다
하늘빛 시간 속에 흩어진 말들.
그 초록의 향내를
당신의 가슴에 안겨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시간이 순간이어서
이별의 눈물이 세월의 아픔과 함께 맺혀도
항상 사랑하는 마음으로 영원토록 사랑하겠습니다
너무 외로워서 너무 그리워서 서러운 밤에는
어렴풋이 오셨듯이 또, 그렇게 가셨음을
괴로운 몸짓으로 사랑하겠습니다
봄 그리움
오보영
너 비록 지금은 조금
멀리에 가 있지만
잠시도 난 널
곁에서 떠나보낸 적이 없단다
지난 세월 내가
너에게서 받은 기쁨이
얼마나 큰데
너로 인해 얻은 행복이
얼마나 깊은데
어느 한순간도 난 널
머리에서 지운 적이 없단다
단지
함께 하지 못하니 이전처럼
그다지 포근하지를 못해서 그렇지
난 널
늘 가슴에 품어 안고
곧 다가올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단다
봄기운
오보영
1
볕은
이미 봄인데
바람은
아직 아니구나
머리는
햇볕 받아
녹여졌는데
가슴은
찬 바람에
얼어있구나
2
그 서슬 퍼렇던
몰아침도
무겁게 짓누르던
숨막힘도
보드라운 입김에
기력을 잃고
감싸도는 온기에
풀이 꺾이어
슬그머니
뒷전으로
물러서누나
3
봄은 왔는데
봄을 느낄 수 없음은
분명
마음이 식어서라
사방 퍼져가는
못된
바이러스에 막혀
검은 까마귀들
탁한
울음소리에 묻혀
새싹 돋아나는 소리
미처
듣지를 못해서라
봄 마중
오보영
그리운 님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서
님 오는 길목 따라 찾아나섰네
먼 길 돌아
님 곁으로 다가왔더니
지친 모습
퀭해진 눈으로 반기어 맞네
오는 길 너무 서두르다가
숨 가쁨에 기력 잃고 멈춰 서 있는
고운 님 얼싸안고 눈물 흘렸네
님 찾아 나서길 너무 잘했네
자칫하면
그리운 님 못 볼 뻔했네
봄 산책
오보영
차가운 바람결로
하얀 눈발로..
온갖 수를 다 써서 가로막아도
어느새 가까이로 다가와 있던 님
개나리 진달래
목련 꽃망울
선물 한가득 품에 안고서
환한 미소로
반갑게 맞아주시네
움츠러진 맘을
활짝 펼쳐주시네
봄의 변덕
오보영
네 변덕이 너무 심하다
감정 따라 조금씩
오락가락하는 건
그런대로 이해를 하겠다만
금새 데워졌다 식었다
조석 변이로 왔다 갔다 하는
네 심보에
어떻게 다 장단을 맞추라는 건지
곧 새싹을 피워올려야 하는 나로서는
예정대로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할지
좀 더 땅속에
머물러 있어야 할지
도대체가
종잡을 수가 없구나
봄 이별
오보영
1
우리 함께 가던 길
아무래도
이젠 여기에서 멈추어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
너무 아쉬워하지 말자구나
단지
가슴이 식었을 뿐
너는 너라서
너의 길을 가는 것이고
나는 나라서
나의 길을 가는 것일 뿐이니..
나뉘어진 채로
가고자 하는 우리 각자의 길을
덤덤히
제대로 된 길 찾아 나아가자구나
2
그 좋아하던
봄기운
제대로 한번 품어보지도 못하고
그 싱그러운
봄내음
제대로 한껏 들어쉬지도 못하고
떠나갔네
애타하던 기다림만 남겨둔 채로
취해있던 그리움만 쌓아둔 채로
멀어져갔네
그 더운 기운
나 혼자서
어찌다 견뎌내라고
그 진한 내음
나 혼자서
어찌다 감당하라고
봄 작별
오보영
어느새 널 보내야할 시간
늘 환한 얼굴로 반겨주었는데
산뜻한 향기 내어 감싸주었는데
이제는 널 가슴에 품어 안고
다시 만날 그때를
기다려야 하는가 보다
고운 모습 내내
그리고 있어야 하는가 보다
봄날에
오세영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것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봄이 오면
잎새 피어난다는 것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잎새 피면
그늘을 드리운다는 것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나, 너를 만남으로써
슬픔을 알았노라.
전신에 번지는 이 초록의 그리움을
눈이 부시게 푸르른 봄날의 그
꽃그늘을
봄맞이
오세영
입춘,
혹독한 겨울은 이로서 끝이다
날씨가 풀렸다.
전국토 춘계대청소 작업에 돌입,
집 안팎,
거리 구석구석에서 그 동안 쌓인 오물들을
털고, 쓸고, 닦고, 빨기에
여념이 없다
집하장의 환경미화원은
수거한 쓰레기를 분류하기에 바쁘다
이놈은 매장,
이놈은 화장,
그놈은 재활용
이윽고
--- 땅땅---
독재 잔당의 형량을 선고하는 법관의
의사봉 소리
겨울옷을 빨래하는 계곡의
방망이질 소리
봄은 전쟁처럼
오세영
산천은 지뢰밭인가
봄이 밟고 간 땅마다 온통
지뢰의 폭발로 수라장이다.
대지를 뚫고 솟아오른, 푸르고 붉은
꽃과 풀과 나무의 여린 새싹들,
전선엔 하얀 연기 피어오르고
아지랑이 손짓을 신호로
은폐 중인 다람쥐, 너구리, 고슴도치, 꽃뱀......
일제히 참호를 뛰쳐나온다.
한 치의 땅, 한 뼘의 하늘을 점령하기 위한
격돌,
그 무참한 생존을 위하여
봄은 잠깐의 휴전을 파기하고 다시
전쟁의 포문을 연다
봄 길을 거닐며
오순남
나른한 들길을
걷노라니
간밤에 떨어진 별들이
꽃이 되어 피어났을까
작은 보랏빛 들꽃들이
봄 햇살에 반짝거린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은
푸석해진 갈대 머릿결을
가지런히 빗어 내려 주고
버들강아지 뽀송 뽀송
버드나무 아래 수줍다
눈웃음치는
아지랑이 불러 세우며
봄 향기에 취한
봄바람이
들판에 누워 한숨 자려나 보다
봄의 창가에서
오순남
바람이
기웃거린다
꽃향기도
서성거리네
흰 구름이 주춤하니
내 마음은 설레인다
창가에 턱을 고인 채
임 그리워하는 마음
살그머니
엿보려는가 보다
봄 타는 날
오순남
산에
산에는
온통 봄꽃들
여기가 저기
저기가 여기인가
길을 잃어버릴지도 몰라
꽃잎을 따서
표시라도 해놓을까
파란 하늘 노니는
흰 구름이라도
불러서
팔짱이라도 껴볼까
아니면
꽃베개를 만들어
봄 그늘 아래
마냥 누워 볼까
타고
타고
또 타도
어지럽지도 않은 그네
아!
나는 봄을 타고 있구나
봄이 오는 소리
오순화
공기가 맛있다
바람이 맛있다
빗소리가 맛있다
햇살이 멋지다
바람이 시원하다
심장이 뛰어오른다
봄날의 오르가즘
공기가 맛있다
봄 편지
오순화
지천이 봄이래요
연분홍 참꽃은 엊그제 피었고요
휘영청 노란 개나리 님 마중 나갔지요
간밤엔
달빛 아래 하얀 목련도 첫사랑 순정에
그만,
방긋 입을 벌리고 말았네요
종일 봄비가 나린 오늘은
조급증에 잠 못 이룬 벚꽃마저
피멍 같은 꽃망울 피웠습니다
꽃이 가는 길을 따라
초록 내음 새록새록 돋아나면
문득문득 꽃 같은 날 그리워
아이가 되어버린 봄날
눈빛마다 전해오는 인사
지천이 봄이래요
봄날이 간다지만
오애숙
싱그럼 일렁이는 아침이다
들판에 새들의 노래 흥겹구나
언 땅 햇살로 녹여 당당하게 피어난
복수꽃의 함성 지나 잎보다 먼저 피어
미소하는 봄 전령사 매화, 개나리 행진
산엔 진달래와 철쭉 안마당에선 웃음 짓는
목련화가 아침 열면 완연한 봄의 속삭임에
봄나들이로 화려한 벗꽃의 찬사 속의 4월
5월엔 계절의 여왕 손짓에 붉게 물든 사랑
장미의 계절이라 선포하고 나서고 있기에
겨우내 움추렸던 마음 허공에 집어던졌네
떠나가는 봄이 해맑게 웃으며 이 봄이 가면
회도라 해가 바뀌어 새봄에 희망의 물결로
생명 찬 환희의 옷 입고 다시 오리라 말할 때
해맑은 사랑 추억의 그림자 살포시 열고서
아- 그리워라 지나간 젊은 날의 내 청춘아
그리움은 사랑이라 아- 나의 풋풋한 사랑아
지난 추억이 해맑은 사랑을 살포시 열고서
가버린 젊은 날의 청춘 부르며 그 그리움
가슴에 일렁이며 내게 사랑을 부른다
봄날이 간다지만 뜨거운 여름 오건만
아- 내 청춘아 너는 어디로 갔는가
봄 내음, 환희의 나래
오애숙
찬란한 새봄의 햇살
설산 녹여낸 계곡의 향연
샤랄랄라 흥겨운 생명참에
피어나는 환희의 길섶
봄 찾는 희망의 심연
싱그런 사랑의 세레나데
공기 한 줌 섞어 가슴으로
풀피리 불고 싶어라
봄 햇살 검불 헤치고
황금 너울 써 웃음 짓는
그대들 미소는 내 안에서
백만 불짜리 희망 물결
동면의 희뿌연 안개
허공에 던지라 눈웃음치며
날 보러 오라 윙크하고 있어
생그럼 퐁퐁퐁 넘치누나
봄의 숨소리
오애숙
새봄의 옹알거림
시냇가 흥겨움 속에
나목에선 싹이 트고
들판에선 각종 새가
정겹게 지저긴다
여기저기에서
날 좀 보라 춤추며
휘파람의 노랫소리
새꿈과 희망참 속의
살폿함 정겨웁다
산마다 붉게 물든
진홍빛 그리움 사랑 되어
새봄 속에 사랑의 기쁨을
가슴에 박제시키려 해
설레이게 하고 있어
설렘의 숨소리
겨우내 잠겨있던
맘속 창가 두드리며
문 화알짝 열라고
하늬바람 분다
봄의 저잣거리
오애숙
봄은 봄인데
새봄의 환희 맛보지 못하고 있어
하현달의 서글픔이런가
사윈 들녘에선
너도 나도 달빛 가슴에 담아
윤슬에 피어올라 앞 다퉈 옹알거리며
날이 가고 달 차 올라 삭망 회도는 하현달이
상현달 되어 싱그럼에 웃음짓는 들판
들판은 봄동산인데
하현달의 서글픔 고랑에 파고들어
심연엔 새봄의 환희 맛보지 못하고 있을 때
화상으로 보는 소식통에 화들짝 놀라 동면에서
눈 비비고 깨어 맘의 창문 활짝 연다
왕벚꽃의 향그럼
한 통의 화상에 피어난 향기롬인가
여기저기 피어나는 벚꽃의 화사한 꽃망울 속에
새봄 활짝 열며 날 보러오라 손짓 하는 메시지
이역만리까지 휘날려 깨우고 있다
봄의 거리 용광로구나
사윈달 뜨겁게 달궈낸 상현달의 눈부심에
생명참의 환희 앞 다퉈 피어난다
봄의 함성
오애숙
기나긴 겨울 동안
겹겹 쌓아 올려 놓은 담
그리 높은 줄 몰랐었는데
스르륵 처마 밑 고드름
봄햇살 금빛 물살 속에
녹아내리듯 녹는 맘
삶과 죽음 사이에
조여들었던 숨통 사이
새봄의 향그런 물결이
심연에 물고 틀고서
하늬바람 살폿하게
살랑이는 따사롬
수난의 봄속에서
5월 향해 깊어가는 봄
코로나 19 노려 보면서
당당히 맞서 보기 위해
온누리 황금너울 쓰고
쫓아내련 봄의 함성
코로나 바이러스
하늘 높이 땅 넓힐 기세
잔인한 사월 만들었으나
금빛 햇살 깊어진 봄향기
자 내 세상 만들었노라
고함치고 있네요
봄이 저마다의 색깔로 피어날 때
오애숙
살포시 여명을 연다
찬란한 햇살이 아름답다
한겨울 거둬 낸 까닭인지
잿빛 구름 음예 공간으로
제 세상 만들던 눈먼 겨울
줄행랑치며 달아났다
보리 새싹에 눈이 간다
모진 풍파에서 잘 견디어내
온통 푸르른 물결의 메아리
자연은 저마다의 자기 빛깔로
자기 보호하거나 드러내는데
나의 색깔은 무엇인가
잠시 찬란한 햇살 속에
반짝이는 윤술 사이 사이로
반짝반짝 얼굴이 빛나고 있어
현미경으로 이 잡듯 분석하다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로 보다
거울로 들여다 본다
어느새 세파 속에서
휘둘린 몰골이 되어 있다
과연 무엇 위해 달려 왔는가
낙엽 진 벌거숭이 나목마다
새순들이 돋아나고 있어
회도라 망원경 꺼낸다
봄 향기로 쓰는 연서
오애숙
봄 햇살로 나 그대에게 편지 써요
곱게 피어나는 빨간 장미 향그럼
가슴에 슬어 울 넘는 이 마음으로
봄 햇살로 나 그대에게 편지 써요
햇살 가득 에머란드빛 파란하늘 속
한 마리 작은 새의 노래로 창 두드려
봄 햇살로 나 그대에게 편지 써요
하늘 호수 수정빛 해맑음 웃음으로
그대를 향한 하늘빛 연정 속에서
새봄 속에 피어나는 향그러움
오애숙
내 삶이 당신으로 새롭게 피어나니
가슴에 봄비 내려 말갛게 눈물 괴듯
살포시 스미기에 벅차오르는 맘입니다
그대의 연둣빛의 그 향기 내 안 가득
차올라 해 오름의 생명 찬 메아리로
삶 속의 향그러움이 가슴 속에 핍니다
여러 달 생명 부지 생으로 마감하듯
간신히 산소 공급받기를 위하여서
장착해 연명하던 지난날 떠오릅니다
사윈들 활짝 열고 연초록 향연 펼쳐
새 꿈을 열고 싶어 떠나간 제비들이
하나둘 돌아오면 그대 그리워집니다
지나간 세월 속에 수많은 시간들이
한순간이었음을 가슴에 느끼는 감사
새봄이 내게 또다시 주어져 눈물납니다
새봄 속 희망 노래(봄 햇살 살랑이면)
오애숙
사윈 들녘 모진 설한풍
불어오면 나목엔 희망이
없어 보일 수 있다지만
어느 사이 봄 햇살 살랑이면
살그머니 꽁무니 뺀 동장군
"아이고! 나 살려라" 천리 밖
줄행랑치는 게 자명한 이치
어느 사이 하늬바람 불어와
'침묵 깨라'고 살폿시 대지에
입 맞출 때면 잠자던 나목과
동면의 동물들 잠에서 깬다
긴 동지섣달 얼어붙었던
동네 꼬마 녀석들 생명 참에
노래하며 휘파람 분다
아, 봄날이여
오애숙
꽃비가 살랑이는
실바람 타고 훠이얼 나비 되어
이 내 마음속에 휘날려 들더니
기어이 휘이 저어 그 옛날 그때
그 젊은 시절로 날 이끌고 가
풋풋함에 생그럼치누나
연분홍빛 가슴에
피어나는 그 시절 아름드리
생글생글한 꿈에 뒹굴던 시절
생생한 웃음 속에 자지러지며
행복 피어나고 있는 그 시절
미소 띠며 다가오네
구비구비 세상 여울목
휘돌아 멀찍이 세월 강 뒤에
아~아 그리워라 내 청춘이여
풋풋한 꽃 망울망울 피던 봄아
내 인생 속에 피었던 봄 물결아
회돈 맘에 그리움 일렁이누
아 내 생애의 봄날아
유월의 연서
오애숙
정오의 햇살로 갈맷빛 푸름
들판에 붓 들어 채색해 갈 때
농부는 땀방울의 유월이다
삼 년 동안 등교하였던 학생들
졸업의 한 아름 여울진 꽃다발
기쁨에 엄마의 입 귀에 걸렸다
졸업은 또 다른 시작의 의미라
무엇 하든 만끽하길 바라는 맘
담장 넘어 곱게 피는 장미처럼
사회에서 요구하는 자로 곧게
잘 자라주기 바람은 동서고금
막론하고 우리네 부모의 마음
유월의 뜨거운 태양처럼 작열한
한 해의 획 만드는 하반기로서
가을 풍요에 휘파람 부는 것처럼
유월의 햇살로 나르샤 하자고
연서 곱게 써 한 장은 아들에게
한 장은 맘에 곱게 접어 넣는다
향그러운 봄 향기에
오애숙
봄볕에 향그럼이
철창 밖에서 노래 부르네
동녘이 밝아 왔다고
죽었던 나목에
버들강아지 움터
향그럼이 버들피리 부네
새가 나뭇가지에 앉아
향그러운 봄기운에
소리쳐 노래 부르는 정오
겨우내 움츠렸던 맘
살랑이는 향그러운 봄 향에
마음 열어 춤추고 있네
가는 겨울, 오는 봄
오정방
겨울의 끝은 봄의 시작이다
봄의 시작은 겨울의 끝이다
때로는 겨울 속의 봄,
봄 속의 겨울로 동거하기도 한다
꽃이 피는데 눈이 내리고
눈이 쏟아지건만 꽃망울은 터진다
꽃이 핀다고 내리던 눈이 돌아가겠느냐
주춤할지언정 피던 꽃은 계속 피어난다
봄이 오는 길목
오정방
겨울이 깊을수록
새봄은 가까운데
저절로 가는 계절
올해도 어김없네
눈 덮인
매화 등걸에
찾아오는 봄소식
봄
오탁번
소쩍새는
밤 이슥토록 울고
조롱조롱 금낭화
붉은 꽃잎이 짙다
너비 바위틈에 피어난
개미 딸기
오종종오종종
노란 꽃잎이 여리다
하늘 높이 뜬
솔개 눈씨에
참새도 오목눈이도
찔레 넝쿨 사이로 숨는다
하느님이
수염에 묻은 황사를 턴다
붕어들이 알 낳느라
몸을 떨며 피 흘린다
봄맞이
옥윤정
먼저 봄을 알고 맞이하는 건
내 몸이다
콧물이 쭉 흘러내리고
눈은 슬픈 척 눈물이 앞을 가린다
새싹은
겨울 땅속 이야기를
그리운 이들에게 전하러 고개를
내밀며 속삭이기 시작한다
거리의 사람들 얼굴엔
생기를 띄며 웃음들이 피어난다
긴 겨울의 무거운 외투
따스한 햇볕에 말리며
봄의 여신에 행운을 부탁해 본다
봄의 왈츠
온기은
금잔디
아가씨여!
인제 그만
잠에서 깨어나요
벌 나비도
인제 그만
눈 비비고
잠에서 깨어봐요
봄 마중
갈 거예요
저기 좀 봐요!
개울가
맑은 시냇물
둥둥 북을 치며
살얼음 깨고 일어나
벌써! 노래하고요
버들 아가씨
수줍은 미소 지으며
하늘 선녀처럼
춤을 추네요
아지랑이 너울거리는
봄의 왈츠를
춘몽(春夢)
온기은
밤새
내리던 빗소리
현실의 한 모퉁이에
노란 장미 한 송이
꼬물꼬물 입술을 내밀어
벌 나비 따라가는 꿈을 꾼다
천둥소리
바람소리 요란해도
허기진 빈가슴
훑고 지나간 그 길목에서
알알이 맺힌
산수유 꽃 망울이
입술을 꼭 다문 채 떨고 있다
꽃향기 가득한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꽃 피는 봄엔
용혜원
봄이 와
온 산천에 꽃이 신나도록 필 때면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리라.
겨우내 얼었던 가슴을
따뜻한 바람으로 녹이고
겨우내 목말랐던 입술을
촉촉한 이슬비로 적셔 주리니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리라.
온몸에 생기가 나고
눈빛마저 촉촉해지니
꽃이 피는 봄엔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리라.
봄이 와
온 산천에 꽃이 피어
님에게 바치라 향기를 날리는데
아! 이 봄에
사랑하는 님이 없다면 어이하리
꽃이 피는 봄엔
사랑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리라.
봄 꽃피는 날
용혜원
봄 꽃피는 날
난 알았습니다
내 마음에
사랑 나무 한 그루 서 있다는 걸
봄꽃 피는 날
난 알았습니다
내 마음에도
꽃이 활짝 피어나는걸
봄꽃 피는 날
난 알았습니다
그대가 나를 보고
활짝 웃는 이유를
봄이야
용혜원
봄이야
만나야지
바람 불어 꽃잎을 달아주는데
너의 가슴에
무슨 꽃 피워줄까?
봄이야,
사랑해야지
춤추듯 푸르른 들판이 펼쳐지는데
목련은 누가 다가와
가슴 살짝 열고 밝게 웃을까?
봄이야,
시작해야지
담장에선
개나리꽃들이 재잘거리는데
두터운 외투를 벗어버리고
우리들의 이야기를 꽃피워야지
봄
원영애
그대 소식이 궁금할 때
색 고운 옷 다 꺼내놓고
걸쳐 볼까나
그대 우리 곁으로 오실 때
무슨 꽃잎부터 그려 넣을까
민들레 꽃다지 그려 보았소
그대 가까이 왔을 때
이 마음 무엇을 보여 드릴까
설레는 가슴
꽃을 담고 나비를 날리고
흔들려 볼까나
그대 오신다는 길 몫에
동백 머리 풀면
붉게 피어난 두견
으스러지게 껴안아
두 가슴 붉은 물 드려볼거나
봄
유금옥
성냥개비처럼 마른 오빠가
손바닥에 동백꽃을 한 움큼 토해 놓고 죽었다
봄이었다
꽃들이 마구 전염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날려 다니며 뒤섞이며 웅성거리며 도망치는 봄이었다 하얀 마스크를 쓴 구름이 소독차를 몰고 지나다니는 골목, 둘째야! 양지 상점에 가서 외상으로 담배 한 갑 사 오너라 아버지가 개나리 진달래 피우는 봄
외상 장부같이 귀퉁이가 너덜너덜한 골목 우리 집은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있었다 꽃잎들 기침 소리가 들리고 꽃술이 붉은 꽃잎에선 비린내가 났지만 어린나무들은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그다음 해 봄에도 키 작은 동백나무 등 굽은 살구나무, 복숭아나무들이 차례로 전염되었고 자주 흰 구름이 들려 종달새를 풀어놓던, 종달새가 물어 온 양지쪽이 그늘을 전염시키던, 환하게 오빠가 사그라지던 봄, 성냥곽 같은 창문을 그으며 지나가고 있다
성냥개비는 가늘지만 뜨거웠고
동백꽃이 지나간 자리에선
한동안 화약 냄새가 난다
봄으로 집을 수리하다
유상옥
건축 자재값이 우환 폐렴처럼 열기가 높아
앞 잇빨이 헐어버린 한옥 대문을 열다가 닫는다
마침 아는 동산지기 할아버지가
키가 수북한 봄 나무 한 쌍을 내려놓는다
재료가 샛노란 색깔로 봄바람 한 가닥은
막을 만하다 길래 고마운 마음에 개나리라고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랬더니 찬 기운은 수그러들고
앞마당 절반은 수리된 것 같다
마당 한 쪽에 햇살 다발이 기침에 허물어진
수선화 방 한편을 유리 창으로 수리하고
진달래 아직 수선스럽게 뒷발만 들어 올린다
아무래도 올해는 수리 비용이 수월찮다는 해외 소식에
잎사귀 넓은 자료는 뒤로 미루고 일찍 구할 수 있는
키 낮은 것이지만 물구멍이 확 트인 것들을
마당에 내려놓았다
그만하면 시들한 벽도 환하게 꾸미고
지붕도 물 샐 틈 없이 꽃 그늘로 덮을 수 있다
올해는 수리가 끝나면
제비꽃, 꽃마리, 팽이밥, 양지꽃은 물론이고
할미꽃 불러서 젊어서 좋은 시절 들어보고 싶다
아직 수리할 곳은 많지만, 꽃 같은 벗들 생각에
게으름만 피운다
봄 냄새
유소례
겨울잠을 자던 땅의 핏줄들이
불끈 힘을 주어 기지개를 켭니다
베란다의 영산홍이 연지곤지 찍고
날아갈 듯 날개를 펴 자랑하고 있습니다
유리창을 뚫어 쓰다듬는 햇살이
꽃들과 사랑의 대화를 합니다
창틈으로 기어드는 소르륵 바람은
휘파람으로 봄을 전합니다
봄의 내음이 내 옷깃을 타고 올라와
지루한 시간을 곱게 물들여 줍니다
창밖은 뽀얀 물보라가
응달진 겨우살이 동상을 녹여 냅니다
대자연의 신비 속에서 당신을 만나면
나도 가슴에 불꽃 같은 꿈이 피어납니다
봄
유안진
저 쉬임 없이 구르는 윤회의 수레바퀴 잠시
멈춘 자리 이승에서, 하 그리도 많은 어여쁨에
홀리어 스스로 발길 내려놓은 여자,
그 무슨 간절한 염원 하나 있어 내 이제
사람으로 태어났음이랴
머언 산 바윗등에 어리 운 보랏빛, 돌담을
기어오르는 봄 햇살, 춘설을 쓰고 선
마른 갈대 대궁 그 깃에 부는 살 떨리는 휘파람
얼음 낀 무논에 알을 까는 개구리
실뱀의 하품 소리, 홀로 찾아든 남녘 제비 한 마리
선머슴의 지게 우에 꽂혀 앉은 진달래꽃······
처음 나는 이 많은 신비에 넋을 잃었으나
그럼에도 자리 잡지 못하는 내 그리움의 방황
아지랑이야 어쩔 셈이냐 나는 아직 춥고
을씨년스러운 움집에서 다순 손길 기다려지니
속눈썹을 적시는 가랑비 주렴 너머
딱 한 번 눈 맞춘 볼이 붉은 소년
내 너랑 첫눈 맞아 숨바꼭질 노니는 산골짜기에는
뻐꾹뻐벅꾹 사랑 노래 자지러지고 잠든
가지마다 깨어나며 빠져드는 어리어리 어지럼증
산 아래 돌부처도 덩달아 어깨 춤추는
시방 세상은 첫사랑 앓는 분홍빛 봄
봄은 오더라
유용선
잔 정 진 정 다 버리고
봄이사 내사 처박아 버리려 하였으나
봄은 오더라
도시 엉뚱하게도 안으로부터 오더라
들숨 날숨 다 얼어붙고
겨우내 종내 추위와 살 섞었으나
봄은 오더라
금시 꺼지겠지만도 단물 오르더라
단꿈을 거느리고 봄은 오더라
두려움 없을 신혼의 아내처럼
풍만한 가슴을 열고 안기더라
진한 입술로 내 온몸을 쏘다니더라
봄이 오면
유응교
1
봄이 오면
세상이 환해져요
모두가 노랗게
해님 닮아요
담 너머 개나리도
노랗게 피고
담장 밑 병아리도
노랑 옷 입고
엄마 품의 아가도
노랑 옷이죠
봄이 오면
세상이 환해져요
모두가 노랗게
해님 닮아요
2
봄이 오면
강물이 풀리듯
봄이 오면 내 마음도
그대 향해 쉬이 열리겠지
봄이 오면
새싹이 돋아나듯
봄이 오면 내 영혼에도
작은 소망의 불 환히 켜지겠지
봄이 오면
꽃들이 피어나듯
봄이 오면 내 가슴에도
향긋한 시 하나 건지겠지
봄이 오면
벌 나비 찾아오듯
봄이 오면 내 슬픈 사랑도
돌아서서 웃으며 다시 오겠지
봄꽃이 진다는 건
유일하
화창하던 꽃의 의미를
알기도 전에 꽃은 지고,
시간을 다투는 꽃이 또 피고,
저희끼리 수런거리며
속삭이는 산책로
봄비를 한껏 머금은
수많은 꽃잎을 본다
우리가 죽고 살아가는
의미를 결부하며
은밀하게 피었다가
초라하게 질 내가 그렇듯
언젠가 가지를 떠나
외로운 길로 떠날 테지
빗방울이 어이없게
꽃잎을 퉁기며
한 생명을 빼앗아 간다
눈망울 그렁그렁 맺힌
찬란했던 어제의 시네마스코프
보잘것없는 모습인들 어찌하리
유혹의 팔자가 네 몫인 것을
산비둘기 우는 봄
유일하
아련한 산들바람
간들간들 불어오면
침잠하게 깔린 마음
소록소록 깨어나요
꽃망울
마른 가지에
팝콘처럼
톡 볼가지듯
산 안개 자욱하게
텁텁한 지난사연
솔가지에 걸어 놓고
봄바람 이랑 타고
산 까치
몸치장 맵시
곱디곱게 다듬듯
산비둘기 구구대며
목청 높여 우는 날
임 떠난 언덕에서
또다시 불러보아도
허전한
바람 소리만
덩그러니 남는 봄
봄의 메시지
유자효
설레고 싶다
달뜨고 싶다
신경을 올올이 곤두세우고 싶다
이국의 나무 냄새 같은 것
이방의 언어 같은 것
바다의 바람을 돛폭 가득히 안은
범선의 출항 같은 것
낯선 것은 언제나 신선하고
여행을 생각할 때마다
영혼은 때를 벗는다
모험을 도전하는 젊음에 의해
역사는 절망을 이겨 왔었고
세계는 생명의 자양을 얻었다
서투르고 싶다
어리고 싶다
순수를 제대로 볼 수 있을 때
금강석처럼 투명하게 빛나고 싶다
꿈꾸고 싶다
봄의 원근법
유재영
모래무지가 물살을
빤히 쳐다보다가
괜시리 화들짝 놀라
바위 틈으로 숨는 그 시간,
느릅나무 나이테는
남쪽으로 조금 더 기울었다
봄
유진
먼발치에 눈더미 풀썩풀썩 내려앉을 무렵
더는 볕이 들지 않는 식탁 위에서
한줌의 산국이 아프게 시들었지
켜켜이 저민 푸른 먼지의
티끌까지 털어 내고
씨앗 하나로 남겨진 시간
눈 속에 깊숙이 파묻혀
마술피리의 음률을 들으며
죽음보다 고즈넉한 삶을 보냈지
비상구를 열면
새로운 길이 있음을 알았지만
질척한 세월을 달리거나
가로지르지 않았으므로
들판을 지나고 강을 건널 때
잔주름 깊은 물 위로
다리가 흐르는 것을 보고
시 한 줄 가슴에 받아 안았지
빛의 한 모서리에 접혔던 기억 하나
갖은 봄의 색으로 피어오르고
모든 생명들 다투어 제 몫을 챙기느라
세상까지 온통 출렁거릴 때
나지막한 식탁 위에 한줌의 꽃다지가
창밖에서 서성이던 햇살을
살금살금 당겨 들이고 있었지
봄을 안고 당신에게 가리라
유필이
머리에 봄을 이고
가슴에 봄 향기 품고
사랑하는 당신에게 가리라
겨우내 잠자고 일어난
당신 나무에
봄을 올려놓고
메마른 가지마다
봄 향기 뿌려
파릇파릇
사랑이 돋아나게 하리라
봄 햇살에 몸을 맡긴
여린 잎이 쑥쑥 자라면
난 파랑새 되어
당신 나무에 걸터앉아
봄을 노래하리라
봄, 그대는
유학수
꽃 피고 진
눈 덮인 산골짜기에 찾아온 그대
그대, 아시는가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 마음을
꽃 지면 그대는 아픔이고
그대는 허허한 그리움이더라
봄
유희경
겨울이었다
언 것들 흰 제 몸 그만두지 못해
보채듯 뒤척이던 바다 앞이었다
의자를 놓고 앉아 얼어가는 손가락으로 수를 세었다
하나 둘 셋, 그리 熱을 세니 봄이었다
메말랐던 자리마다 소식들 닿아,
푸릇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제야 당신에게서 꽃이 온다는 것을 알았다
오는 것만은 아니고,
오다 오다가 주춤대기도 하는 것이어서
나는 그것이 이상토록 좋았다
가만할 수 없이 좋아서 의자가 삐걱대었다
하나 둘 셋, 하고 다시 열을 세면
꽃 지고 더운 바람이 불 것 같아,
수를 세는 것도 잠시 잊고 나는 그저 좋았다
넌 봄을 알까
윤갑수
진달래꽃 여민
산기슭에 두견 조
읊조리는 노랫가락
바람이 흩어지니
하늘은 마알게
햇살이 춤을 춘다
땅강아지 툭 세상
밖으로 나와
빛을 보고 놀라더니
햇살 드리운
꽃그늘에 잠시 머물다
익숙한 고향으로
내 달음질친다
꽃피는 춘 사월
꽃 세상에서 만나
고향의 품으로
달려간 넌 봄을 알까
바람난 봄
윤갑수
지는 꽃은 희망을 자라게 한다.
시들어가는 꽃의 운명(運命)은
바람과 비에 의해 떨어질지라도
사랑을 얻기 위한 몸부림이다
봄에 피는 꽃은
그리움의 씨앗을 얻기 위해
벌 나비를 유혹하는 봄 향기
그것은 풍성한 열매를 얻기
위함이다.
가을에 피는 꽃을 봐라
태어나 딱 한 번밖에 없는 사랑
그 꽃을 피우기 위해 몸부림치며
빛을 발하는 것은
천사들의 유혹일 뿐이다
따스한 햇살 열정을 토해내는
살구꽃 피는 바람난 봄
우리 고향 꽃동네가 되었네
봄
윤갑수
우윳빛 구름 하늘
그을린 태양의 그림자는 파묻혀
봄이 오기를 기다린다
강추위에 꽁꽁 얼어버린 마음을
녹인 뜨거운 입김 그다지
보듬지 못하고 이는 바람 따라
세월을 조용히 묻고 천천히
다가와 방긋 웃는다
질기고 질긴 생명이 꿈틀거리는
대지의 용트림, 하나둘 꿈에서
깨어나 기지갤 피우면 아지랑이
너울너울 어릿광대 춤사위를
뽐내며 하루가 다르게 예쁜 얼굴
들이밀라 재촉한다
하지만 동장군이라는 놈은 실신한
대지를 깨우기를 싫어한다
그래도 봄은 세상에 희망을 주는
새싹으로 태어나도록 따스한
빛을 아낌없이 드리운다
바람에 걷어 채인 차디찬 얼굴엔
밝은 미소 가득하다
봄을 싣고 달리는 기차
윤갑수
봄을 싣고 달리는 기차
긴 잠자던 봄의 새싹들이
바람에 놀라 파릇이 눈을 뜬다
아지랑이 너울대는 언덕 위
염소 한 마리 햇살 바라기에
망중한이다
쉼 없이 오물오물거리며
되새김질하는 아련한 추억들
하얗게 퇴색된 젊음을 지우려
바람처럼 휘이익 지나간다
칙칙폭폭 봄을 싣고 달리는
기차 굉음 소리가 촉촉이 적신
가슴에 몸부림으로 다가온다
봄이 오는 길목
윤갑수
산들산들 이는 바람결에
봄을 재촉하는 비바람이
몰려온다
봄비(春雨)는
그대의 잠을 깨우는 생명의
불침번(不寢番)이다
비나리는 어느 봄날
겨우내 설 잠자던
나목(裸木)들을 깨우고
몸부림치며 세상 밖으로
삐쭉 내민 새싹들
어느새 꽃 몽우리 여미우고
봄꽃 축제를 하려 한다.
유채꽃 향기가 코끝에
맴돌다 가슴 깊이 스며든
언저리엔 오랫동안
꽃내음은 떠나지 않고
봄은 내 마음에 조용히
다가온다
봄이 오는 소리
윤갑수
꽃샘추위가 덜덜 봄을 춤추게 한다.
얼어붙은 마음 살갗 에이듯,
얼빠진 바람에 돋아난 새싹들
설빙(雪氷)에 빠져 시름시름
엄살을 부리고 있다
햇살도 비스듬히 얼비추면
날 선 장도(長刀)에 잘려
버리는 서릿발, 땅 위로 솟구쳐
올라와 흰 이빨 들이대며
으르렁대고 있다
내 곁을 지나칠 때면
아우성치는 너를 베이지 못한
설움에 그만 부러진 서릿발,
칼날을 바라보며 흐느낀다
절기상 봄은 왔건만 아직은
때가 아닌가 보다.
그대 마음에 케케묵은 슬픈
눈물 사르르 녹아 흘러내릴 때
봄이 오는 소리 들려온다
멋진 봄날
윤기명
봄은 여인의 옷차림을
가볍고 발랄하게 하지만
어느 멋진 봄날
사나이도 화려한 변신을 합니다
꽃을 찾는 나비처럼
밝은 바바리 코드를 입고
엷은 핑크빛 남방에
땡땡이 스카프로
날아가는 남심은 여인을 부릅니다
안경 너머로 꽃을 기억하며
새봄으로 향하는 발길에
툭 걸려 넘어진 겨울도
땅속에 숨은 얼음을 녹이고
꽃씨를 터트리는 어느 멋진 봄날
봄날에
윤덕명
해맑은 햇살이 살포시
호랑나비의 나래 달고
연둣빛 물결로 나부끼네
아지랑이 넘실거리는
자운영 꽃밭 벌 나비가
날 오라 기뻐 손짓하네
연분홍빛 진달래꽃이
그리움의 사랑 머금고
짙은 향수로 피어나네
샘도랑가 물오른 갯버들
강남 간 제비가 그리운 듯
파르르 떨며 깨춤을 추네
봄
윤동주
1
봄이 혈관 속에 시내처럼 흘러
돌, 돌, 시내 가차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삼동(三冬)을 참어온 나는
풀포기처럼 피어난다.
즐거운 종달새야
어느 이랑에서나 즐거웁게 솟쳐라.
푸르른 하늘은
아른아른 높기도 한데......
2
우리애기는
아래발치에서 코올코올
고양이는
부뚜막에서 가릉가릉
애기 바람이
나뭇가지에서 소올소올
아저씨 햇님이
하늘 한가운데서 째앵째앵
사랑스런 추억
윤동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조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렛홈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들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 동경 교외 어는 조용한 하숙방에서, 엣 거
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 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 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까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오후의 구장
윤동주
늦은 봄 기다리던 토요일 날
오후 세시 반의 경성행 열차는
석탄 여기를 자욱이 풍기고
지나가고
한몸을 끄을기에 강하던
공이 자력을 잃고
한 모금의 물이
불붙는 목을 축이기에
넉넉하다
젊은 가슴의 피 순환이 잦고
두 철각이 늘어진다
검은 기차 연기와 함께
푸른 산이
아지랭이 저쪽으로
가라앉는다
종달새
윤동주
종달새는 이른 봄날
질디진 거리의 뒷골목이
싫더라.
명랑한 봄하늘
가벼운 두 나래를 펴서
요염한 봄노래가
좋더라.
그러나 오늘도 구멍 뚫린 구두를 끌고
훌렁훌렁 뒷거리길로
고기새끼 같은 나는 헤매나니.
나래와 노래가 없음인가
가슴이 답답하구나
3월의 봄이 오면
윤만주
지평선을 밟고
힘차게 내달리는 아침햇살
그 위용도 당당하다
훈훈한 봄바람
입맞춤에 눈을 뜨고
긴 동면으로 깨어나는
새싹들의 기상나팔
생동감에 활기차다
얼어붙은 계곡으로
쏟아지는 물줄기에 발을 담궈면
포말 위로 피어나는 해 무지개
그리움을 물들이고 산모퉁이 누각 아래
홀로 깃든 내 사랑아!!
긴 여정 돌고 돌아
신음의 갈무리로
거센 풍랑 잠재울 때
주름진 밭고랑에 잔설(殘雪)은 녹아들고
생명의 태동으로 대지의 박동 소리 더 높구나
봄을 듣는다
윤무중
지난밤 만났던 연인이
나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매서운 적막을 날리더니
마음 활짝 열어 미소를 던진다
대지는 촉촉한 기운을 품고
온기가 나무에 스며들며
서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얼굴 마주하며 눈빛 건넨다
오늘도 산새 한 마리 봄 찾아
둥지 속에 햇살을 가두고
여기저기 움트는 초록빛으로
내 곁에 다소곳한 봄을 듣는다
봄이 왔다기에
윤보영
봄이 왔다기에
문 열고 나갔다가
그대 생각만 더 하고 왔습니다
안 그래도 보고 싶은데
더 그리워 고생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대 생각이 봄이고
그대 모습이 꽃이었습니다
그립기는 해도
그리운 만큼
기분 좋은 하루를 선물 받았습니다
내 안에 그대를
늘 담고 살기를 잘했습니다
이른 봄 산을 오르다
윤성택
빈 몸으로 초대하는 나무들이 있다
걷다 보면 산은 돌아누우며 어느새
좁은 샛길을 열어 보인다
턱 끝까지 숨이 차올라
오르는 것이 산 앞에 조금더 겸손해 질 즈음
바람은 나뭇가지를 빗질하며
눈부신 햇살을 쏟아 놓는다
좁은 길 하나 사이로 서로 뿌리를 잇대고
가지를 잇댄 나무들
사랑하라 사랑하라
고개를 끄덕이며 귀엣말로 속삭이는 것 같다
언제나 갑갑한 넥타이에 매여
꽉찬 만원버스에 섞여
이정표도 없이
지금껏 얼마나 흘러 왔던가
세상 살아가며..
한 해 한 해 나이테를 생각하며..
봄산에 올라간다. 묵묵히 겨울을 이겨낸
나무들의 수화를 배우러 간다.
층계를 밟아 오르며 나를 짓눌렀던
삶의 무게 떨쳐 버리고 싶을 때
하늘을 나누어 이고
서로 넉넉히 몸 맞대다 보면 알 수 있을까..
저 아래 도시에서 키웠던 허물 많은 것들,
얼마나 어리석었는가를..
얼마나 슬퍼지는가를..
가리울 것 없는 이른 봄산에 올라서면,
나의 황량한 정신에 초록 물을
들이고 싶다.
봄
윤은기
계곡의 얼음이 녹아내릴 때
산수유가 봄의 창문을 열고
미소를 짓는다.
뒤를 이어 수선화 돌단풍 개나리들이
대문을 열고
앵초 동이나물 무스카리 희야신스
들을 불러낸다
이제 잠에서 막 깨어난
많은 꽃들이
서로 나오려고 안달을 한다
각양각색의 봄들이
서로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우리 집 정원은 경기장이다
봄 앓이
윤의섭
남녘 산야의
매화향을 흠뻑 쐬고
돌아와도
온종일 부슬부슬
봄비를 흠뻑
맞아봐도
수정 열풍에
취하려는
복숭아 꽃은
꽃샘추위
거친 바람에
봄 앓이를 하고 있네
춘석(春夕)
윤의섭
으뜸 꽃 화괴(花魁)*는 지고
봄의 저녁을 아쉬워하는
보통 꽃들의 몸치장이 바쁘다
마음이 급해진 목련이
소복을 찢어버리고
화려한 모란은
향기를 시샘하네
곡우(穀雨)가 내리면
나무는 수액을 채우고
옥토에 씨 뿌려야 하는데
잔인한 4월
허성흑풍(虛聲黑風)으로
놀란 농부여
강토에 춘경(春耕)은 언제 갈려 하느냐.
* 화과(花魁) : 매화의 별칭
봄 편지
윤정옥
목련 나무에 함박웃음이 가득 매달렸어요.
아름다운 사람의 미소는
아마 저런 백목련 빛일 거예요
발밑 땅속으로 핏줄이 흐르고 있어요.
초록의 혈관을 지나 개나리 줄기로 오르네요.
아, 오랫동안 막혔던 땅과 나무와의 사이
현기증 같은 노란 개나리꽃이 피네요
열꽃이예요
겨울바람에 벗은 몸 맡기고
늘 똑같이 들여다봤지요, 유리창 너머의 당신
이렇게 꽃분홍 열꽃에 휩싸인
홍매화 그늘로 당신의 찬 손, 내밀어 주세요
봄날 단상
윤준경
나 이 때쯤 죽으려므나
꽃 피고 새 울 때
5월 어느 날
한 닷새 비 안 올 때 죽으려므나
허리 굽지 않고
속옷 정갈히 빨아 입다가
외로움 힘겹기 전, 어느 봄날
한 사날 앓다가 죽어져
샛녹 풀 꽃잎 위에 뿌려지려므나
살가죽 뼈마디 다 흙에 주고
혼이나 살아 이리 기웃 저리 기웃
산이랴 바다랴
목메던 일상 추스려
움츠렸던 날개 활짝 펴고
훠어이 훠어이 날으려므나
부활의 봄
윤춘순
나비로 날아볼까
꽃바람에 춤추는
새하얀 목련꽃
샛노랑
개나리들 합창
분홍빛 진달래도 곱다
심심산천
어디든 연두빛 수줍게
제각기 제모습 ·
나긋나긋 생동하는 봄
겨우내 암울한 마음
춘래이불사춘(春來而不似春)
새벽빛 스미어
새것으로 태어나라 부활의 봄
애타는 봄
윤홍조
훤한 동래 어귀
개 한 마리 달려간다.
앞선 오토바이와 나란히
드문드문 집과 밭들 사이를 한달음에
쏜살같이 마음 길 빠져나간다.
하마 닿을 듯 닿지 않는
저 개와 오토바이의 거리
길의 고무줄 늘렸다 줄였다
무슨 내기 경주라도 하듯이
하나가 하나를 놓기 위해
하나가 하나를 놓지 않기 위해
서로를 밀고 당기는
숨 가쁜 줄다리기
뚝 심장 하나 떼어 쓰다듬어 놓고
조용히 집이나 지키라 일렀거늘
어찌하여 빛 그림자 하나로 내닫는
둘이 곧 하나로
뜨거운 불길로 확
애타게 애타게
봄날은 간다
봄맞이
이경옥
아지랑이 피어오른다
나를 불러 머물게 한다
파릇이 돋아 오르는 물 머금은 나무처럼
새 꿈을 지녀보란다
봄바람 살랑인다
간지럼 피우듯이 손등에 일렁인다
잠시 하늘을 보며
싱그러움 속을 다녀가란다
봄비가 먼저 마중한다
촉촉이 적셔주며 흠뻑 취해보란다
묶은 먼지 씻어내며
맑은 마음이 되라 한다
여전히 봄은 오는가
이경옥
먼 길 떠나 초록의 옷을 입고
아지랑이 너울너울 춤을 추며
저 들녘을 지나
내 고향 앞산 구불구불 산길을 걸어
고단한 듯 하품을 하며
봄볕에 봄맞이한다
나른하여 노곤해진 몸을 이끌고
힘든 여정 겨울 길 떠나
따스한 햇살을 찾아
앞선 걸음 걸으며 내 안의 사랑이 노래한다
기다림 속에
여전히 봄이 오는 것을
봄은 아직
이계윤
하늘가에 늘어진 흰 구름 한 자락을
슬며시 거머쥐고 봄을 찾아 나섰는데
온종일 헤매는 산길에서 들길에서
개나리 진달래 휘둘러 살펴봐도
꽃문은 아니 열고 앙다문 입만 삐죽
봄은 아직 찬바람에 눈물만 흘리네
봄날 산에는
이국헌
봄날 산에는
꽃가지마다 물오른
초경의 고통처럼
탄성으로 피어오른 꽃들의 군무(群舞)
눈을 감았다
밀려오는 파도처럼
산허리를 때린다
산바람 꽃 보라
여인의 실오라기 끝에서
고통도 춤을 추듯
알알이 톡톡 틔우는 새싹
기다림 속에 희망이
깨달음도 침묵으로 꽃을 피운다
봄 아침
이기철
뿌리들이 부스럭거리며
이불 개는 소리
여기저기서 수런거리며
일어서는 들판
이른 설거지 끝에 콧노래 부르며
마실 나오는 개울물
푸른 방석을 깔고 앉아
하늘의 젖병을 빨고 있는 능선들
팔소매 걷어 올리고
햇볕을 수혈하고 있는
어린나무들
봄 앓이
이길옥
마음씨가 물컹하여
조금 큰 목소리에도 눈치 앞세우는
그래서 늘
뒷전에서 투덜대기 일쑤이던 친구가
나를 불러낸다.
아직
냉기가 바닥을 훑고 있는 허름한 술집
삐거덕 관절통을 앓고 있는
낡은 나무의자에 기대앉은 친구의 눈이 풀려있다.
찌그러진 양은 잔 밑바닥에 깔린 막걸리
뜨물 같은 색이
희끗희끗 탈색되고 있는 친구의 코 밑 수염에 달라붙어
입을 들썩일 때마다 위기를 넘기고 있다.
술기운이
친구의 간덩이에 불을 질러
무르디무른 성정을 건들자
지금까지 억누르고 있던 불만이 일제히 일어서서
길길이 날뛰며 목소리에 힘을 심는다.
씨에서 싹이 나듯
마른 가지 끝에 새싹이 돋아나듯이
지금
친구는 막걸리의 위력으로
나약한 성깔에 새순을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