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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신들 4

Iah 달의 신. 뜻은 '달', 야(Yah), 자(Jah), 조(Joh)라고도 적는다. 콘스와 토트가 달의 신이기 때문에 이 두 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Ihi(Ihu, Ehi) 이집트의 성스러운 sistrum(방울, 고대 이집트의 제례 시 사용하는 타악기)의 신. 

 

Iknaton 아케나톤의 다른 이름

 

Imhotep(Imhetep) 

(청동조각, 릴 미술관)

(루브르)

 

이집트의 학문과 의약(醫藥)의 신으로, 임헤텝(Imhetep)라고도 한다. BC 2,650년경 조세르 왕을 위해서 사카라의 계단 피라미드의 집합체를 제작한 건축가인 임호텝은 나중에 인기 있는 치유의 신이 되었다. 임호텝은 무릎 위에 파피루스 두루마리를 펼치고 있는 머리 깎은 승려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임호텝은 학문, 특히 의학의 후원자로서 그리스 인들에 의해 아스클레피오스와 동일시되었다.

 

Imiut 이집트의 명계의 수호신. 뜻은 '싸여진 남자'

 

Imset(Amset) 호루스의 네 아들 중 하나. 미라가 된 시체의 간을 보관하는 뚜껑 달린 항아리의 수호신. 암세트(Amset)·메스티(Mesti)·메스타(Mesta)라고도 한다. 인간의 머리로 상징된다.

 

Inmutef(Iunmutef) 천공의 운반자. 하늘을 떠받치는 신. 임호텝의 다른 이름.

 

Ipet (Ipi) 이집트의 하마의 여신. 하마처럼 생긴 출산의 여신, 아문의 아내. '두 땅(상하 이집트)의 여왕'이라고 불렸다. 그녀는 룩소르의 수호시노가 합쳐져서 대모신이 되었다. 타우레트 참조.

 

Isdes 이집트의 '서역의 군주'이자 죽은 자의 심판관. ‘서쪽 땅의 주인'이라고 불렀다.

 

Isis(Aset, Eset)

 

 

(루브르)

아이를 안고 있는 이시스(돌, 렌 미술관)

 

 

 

비탄에 잠겨 무릎을 꿇고 있는 이시스(BC 332, 조각, 채색, 화장벽토 칠, 나무, 루브르)

오시리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시스(18 왕조, 테라코타, 루브르)

 

호루스, 오시리스, 이시스

(사모스 고고학 박물관, 그리스)

호루스에게 젖을 먹이는 이시스(이시스 신전, 이집트)

코브라를 쥐고 있는 이시스(BC1세기, 로마시대)

 

(바티칸 박물관)    구리질 합금(BC 664년~332년경, 루브르)

왼쪽의 이시스, 가운데의 호루스 - 아스완 필레 신전

아비도스 소신전에서 출토된 람세스 2세 이시스 - 호루스의 부조(Bc 1250년경, 석회암 부조, 루브르)

큰뱀(serpent)의 형태로 나타난 이시스 - 세티 1세의 무덤(BC1300)

갈대 늪 속의 이시스와 호루스

연꽃을 쥐고 있는 이시스 - 필라에 신전

시스트럼(타악기)과 포도주 항아리를 들고 있는 로마 이시스(BC 117년~138년)

시튤라(situla, 철기시대 이태리의 철기용기)를 들고 있는 이시스(2세기경)

요르단 페트라 알카즈네(보물 항아리) 이시스 상

솔개의 모습으로 나타난 이시스

벽화(BC 1360년경)

이시스에게 바쳐진 칼리귤라 사원에 있는 이시스의 바구니

Greco-Roman시대에 그려진 Isis

 

​이시스 (Isis, 고대 그리스어 : Ἶσις)는 원래 이집트어 발음으로는 아세트(Aset) 또는 이세트(Iset)라 부르는데, 여신은 왕좌의 의인화로, 이시스란 이름은 "왕좌"를 뜻하며, 여신의 머리 장식 또한 왕좌인데, 이로 인해 여신은 중요한 파라오의 권능을 나타낸다. 권좌의 상징으로서의 여신의 이름은 아마 은유적으로 "신들의 왕권-어머니(throne-mother of the gods)"를 의미하며 이에 따라 그녀를 모든 신들 중 가장 높고 가장 권력이 센 여신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여신이 처음 언급된 것은 후기 고왕조 시대라 하나 이 가설은 증명되지 않는다. 이시스란 이름에 대한 또 다른 가설은 감추어진 알을 상징한다 하는데, 이집트 창조 신화에서 태초의 물에서 언덕이 솟아오르고 하늘의 새에 의해 이 언덕에 알이 놓여지는데, 알은 태양신 라를 품고 있었으며, 이로부터 태양이 나왔다 한다. 여기서 알은 새 생명을 잉태하는 모성애를 상징하며, 태양신 호루스의 어머니로서의 이시스의 역할을 수반하여 이시스의 이름은 신들의 어머니를 의미하게 되고 나중에는 태양신의 어머니로서의 산화 속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어떤 버전에서는 호루스의 어머니가 이시스가 아니라 하토르(Hathor)라 한다.

대부분의 이집트 신들은 가장 먼저 각 지역의 컬트로 부터 숭배되기 시작하며 나중에 전역으로 퍼져나갔어도 원래 지역의 컬트에는 잔존해 있어 그 신들의 고향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이시스 여신의 경우는 여신의 컬트에 기원이 어디인지 명확치 않다. 이에 대해 마리아 뮨스터(Maria Münster)나 얀 아스만(Jan Assmann)같은 이집트 학자들은 후기 고왕조 시대 이전의 이집트 고고학적 증거물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이유에서라 말한다. 이시스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는 5왕조시기로 파라오 니우세르레의 태양 신전에 여신이 이름이 나타나고 있으며 또한 6왕조 초기에 숭배 받던 사제 펩피 안크(Pepi-Ankh)의 상에 ‘이시스와 하토르의 대사제’라 기록되어 있다. 이시스 신화의 전형적인 형태는 대지의 신 게브(Geb)와 하늘의 여신 누트(Nut)의 딸로 에파고메노스의 네 번째 윤일에 델타 지방의 저습지에서 태어났으며, 오빠인 오시리스의 아내로 택해진 그녀는 그녀와 더불어 살아있는 사람들을 다스리는 왕좌에 앉아 오시리스의 개화사업을 도와, 여자들에게 곡식을 빻고 삼으로 실을 만들어 옷감을 짜는 방법을 가르쳤다. 또 그녀는 남자들과 여자들을 결혼시켜 가정생활을 하게 했다. 오시리스가 세계를 평화적으로 제패하기 위해 떠난 후 이시스는 이집트의 통치자로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그 왕국을 현명하게 지배했다.

그런데 그들의 형제, 즉 난폭한 세트가 오시리스를 죽였다는 통지를 받았을 때 이시스의 비탄은 뭐라 형용할 수 없었다. 그녀는 즉시 머리카락을 자르고 옷을 찢은 다음 '착한 존재' 오시리스가 들어 있는 관(棺)을 찾으러 나섰다. 반역자들은 그 관을 나일 강에 던져 버렸던 것이다. 나일강의 지류인 타니스의 하구로부터 바다로 흘러든 그 관은 파도를 타고 페니키아의 해안에 있는 타마리스크(버드나무의 일종) 밑에 닿았다. 놀라운 속도로 자라는 그 나무는 그 관을 줄기 속에 완전히 감추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 나무는 뷔블로스의 왕 마르칸드로스의 명령으로 베어져 그의 궁전의 지붕을 받치는 기둥이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신비스런 나무는 야릇한 향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 소문을 들은 이시스는 곧 그 까닭을 알게 되어 그 즉시 페니키아로 떠났다. 그곳에서 이시스는 아스타르테 여왕이,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왕자에 대해 근심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시스는 그 왕자를 영원히 살 수 있는 몸으로 만들어 주기로 했다. 그러나 그녀가 그 왕자의 몸을 깨끗이 하게 하기 위해 불로 목욕시키는 것을 본 여왕이 너무나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질렀기 때문에 주문의 힘은 깨어지고 말았다. 그래서 이시스는 여왕을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그곳을 찾아온 이유를 밝혔다. 그런 다음 궁전의 지붕을 받치고 있는 타마리스크의 신비스런 기둥을 넘겨받아 거기서 남편의 관을 꺼내고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후 이집트로 가지고 왔다. 그녀는 세트의 음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관을 부토의 저습지에 감추었는데 세트는 우연히 자기 형의 시체를 다시 찾아내어 그것을 열 네 토막을 내어 사방에 뿌렸다. 이시스는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그 귀중한 잔해를 여기저기서 찾아내어 거의 다 모았다. 이시스는 시체 토막을 교묘히 이어 붙여서 오시리스의 몸을 본래의 상태로 만들었다. 이어서 누이동생 네프티스, 조카 아누비스, 죽은 오시리스의 재상 토트, 그리고 아들 호루스의 도움을 얻어 죽은 시체에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는 의식을 처음으로 행했다. 이어서 그녀는 세트의 노여움을 피하고, 또 아들 호루스를 세트에게 복수할 수 있을 만큼 키우기 위해 부토의 저습지에 숨어 살았다. 어머니의 주문 덕분으로 호루스는 어떤 위험한 재난이라도 면할 수 있었다. 사실 이시스는 뛰어난 주술사였기 때문에 신들까지도 그 저주를 면할 수 없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가 태양신 라의 시중을 드는 아직 어린 소녀에 불과했을 때, 그녀는 라에게 그 신비스런 이름을 물려달라고 간청했다는 것이다. 태양신은 이미 늙고 쇠약하여 머리가 흔들리고 입에서는 침이 줄줄 흘러내리는 형편이었으므로, 이시스는 그 점을 이용해서 침이 밴 흙으로 독사 한 마리를 만들어 태양신이 다니는 길목에 놓았고 독사는 태양신 라를 심하게 물었다. 그 뱀의 유래를 모르는 라는 그 상처를 치료할 방법을 몰라 이시스의 주문에 의지해야 했다. 그러나 이시스는 그 독액을 좀처럼 제거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태양신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그 신비스런 이름을 입 밖에 내고 말았다. 그래서 그 이름은 다른 신이 모르는 사이에 라의 몸에서 이시스의 몸으로 옮겨갔다. 오시리스의 신화에서 이시스는 매년 나일 강의 범람에 의해 기름지게 되는 이집트의 토양을 상징하고 있으며 나일 강을 나타내는 오시리스나 기름진 토양인 이시스와는 정반대인 세트는 사막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이시스는 흔히 그 이름의 표의문자인 왕좌를 머리에 얹은 여자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훨씬 뒤의 일이지만 때로는 두 개의 깃을 달고 - 달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 쇠뿔 사이에 원반을 얹은 관을 머리에 쓰고 있고, 때로는 인체에 쇠머리를 얹은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런 뿔이나 동물의 머리는 당시 사람들이 이시스와 하토르를 동일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대체로 이시스는 조각이나 그림에는 오시리스와 함께 표현되어 있다. 그녀는 죽은 자들에게 대하듯 오시리스를 그 날개가 붙은 손으로 어루만져 떠받들고 있거나 돌로 만든 관 밑에서 울거나 혹은 항아리를 지켜보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빈번히 볼 수 있는 표현으로 어머니로서 호루스를 키우는 모습과 나중에는 호루스를 데리고 세트와 싸우는 묘사도 있다. 

동생 세트에 의해 살해된 오시리스를 마법의 주문을 읊어 부활시켰는데, 이 신화는 그리스-로마 시대에 죽음과 부활에 대한 상징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러한 이시스 숭배는 그리스 로마 시대에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며 이교 숭배로 여겨지기 전까지 확산되었다. 이시스의 가장 인기 있는 모티브는 어린 호루스에게 젖을 주는 모습으로 이 도상학은 그리스도교에서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에게 젖을 주는 장면으로 전해진다. 또한 이집트어로 어머니 신에 대한 수많은 호칭들이 성모에게 사용된다. 아버지 오시리스와 아내 이시스, 아들 호루스는 이집트의 삼주신(三主神, Tritimuty)을 이루며, 이는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사상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고왕조 시기 동안에는 이시스가 죽은 파라오의 부인이나 조력자로서 여겨진다. 하여 파라오의 장례와 연결되어지며 파라오의 장례 문서인 '피라미드의 서'에 이름이 80번이나 언급된다.

 

Isis, this your brother is here,

Osiris, whom you have preserved alive.

He lives! He lives! This Unas lives!

He is not dead, this Unas is not dead!

He is not gone down, this Unas is not gone down!

He has not been judged,

this Unas has not been judged!

He judges, this Unas judges!

 

이시스 여신이시여, 이곳에 당신의 오빠가 있습니다.

오시리스여, 생명을 유지시켜 주시는 이여

살아있도다 !, 살아있도다!, 여기 우나스 왕께서 살아있도다!

왕은 죽지 않으셨다. 여기 우나스 왕은 죽지 않았다!

그는 내려가지 않는다. 여기 우나스 왕께선 내려가지 않는다.

그는 심판받지 않는다.

여기 우나스 왕께선 심판받지 않는다!

그가 심판하신다. 여기 우나스 왕께서 심판하신다!

-  우나스 왕의 피라미드 텍스트, 발화(發話) 219, 119번

 

이러한 파라오 부인으로서의 조합은 호루스의 부인으로 여겨진 것이, 호루스가 파라오 자체를 의미하는 것과 일관된 해석이며, 신들이 파라오의 수호자로 여기다 나중에는 파라오 자신이 신격화 한다. 여기에 여신은 미라화 과정에서 내장을 담는 카노푸스 단지(canopic jars)를 수호하는 호루스의 네 아들의 어머니로서 나타내진다. 특히 간을 담는 단지의 수호신(liver-jar-deity)인 임세티(Imsety)의 어머니로 여긴다. 장례 문서는 처음에 파라오 피라미드에 쓰여진 '피라미드 서'가 점차 귀족들까지 쓰여지다가 중왕조 시기에 이르면 장례 문서는 이집트인 전체로 확산되며, 이에 따라 죽은 자들의 보호자로서의 이시스의 역할이 귀족들들 뿐 아니라 서민들의 보호자로서 확대된다. 신왕조 시대에서는 이시스가 죽음의 신인 남편 오리시스 보다 현저하게 여러 지역에서 나타내지는데, 파라오의 어머니로서, 종종 파라오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그간의 여러 컬트들이 좀 더 정형화된 이집트 종교로서의 중심적 컬트로 치환됐음을 나타낸다고 이론적으로 해석된다. 태양신 라에 대한 컬트가 헬리오폴리스(Heliopolis)를 중심으로 현저히 유행되었을 때, 라는 비슷한 신성의 호루스와 같이 규정되었다.

그리고 하토르(Hathor)는 일부 종교에서 신들의 어머니로서 여기며 라의 부인이 되었고, 이시스는 호루스와 짝을 이루면서, 호루스는 태양신 라가 되고 이시스는 하토르와 합쳐지며 이시스-하토르(Isis-Hathor)가 된다. 이렇게 하토르와 합쳐지며 이시스는 호루스의 부인이자 어머니가 되었다. 그러면서 점차 어머니 역할이 부인의 역할을 대신하여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아내이자 호루스/라의 어머니가 된다. 이러한 이들의 위치 조정은 '이시스와 오리시스의 신화'로 발전하게 된다.

이시스 숭배는 전형적으로 나일 강의 삼각주 중앙 북부의 호루스 신 신앙의 제 1중심지인 그리스 명으로 이세이온(Iseion), 현지 명 바흐비트 엘 히가라(Bahbît el-Higâra)에서 행해지는데, 여기서 이시스는 일일 공양과 같은 다른 이집트 신들과 같은 종류의 제례를 받는데, 남사제와 여사제가 여신의 컬트 역사를 통하여 집전한다. 그리스-로마 시대에 이르러 이들 남녀 사제들이 지혜와 치유 능력이 있으며 또한 머리를 빗지 않은 머리를 꼬거나 하여 꿈 해몽과 날씨를 조정하는 특별한 능력을 내보인다고 여겼는데, 이는 훗날 매듭이 마법의 힘을 지니고 있다 믿게 된다. 이시스와 오시리스 컬트는 450년까지 나일 강 상류 필라에(Philae)에서 진행되었는데, 4세기경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며 이교도 신들의 사원이 폐쇄됨에 따라 사라지게 되었다. 따라서 마지막 주요 고대 이집트 신전이었던 필라에 신전도 문을 닫고 말았다. 매듭이 마법의 힘을 지녔다는 믿음으로 이시스의 상징은 티엣(tiet) 또는 티앳(tyet)이라 하는데, 이는 "안녕/생"을 의미하며 또한 이시스의 매듭(Knot of Isis), 이시스의 허리띠 죔쇠장식(Buckle of Isis), 또는 이시스의 피(Blood of Isis)라고도 하는데, 이는 장례 부적으로 쓰이는 붉은 색에 대한 의미로 보인다. 이시스의 매듭 - 티엣은 장례 부적으로 쓰이는데, 주로 붉은 색의 나무나 돌, 유리로 만들어진다.

오시리스의 육화라 여기는 오리온 별자리의 소티스(Sothis) 별은 해마다 5월10일~7월 18일까지 70일 간은 보이지 않다가, 7월 19일경을 전후하여 이른 새벽 동쪽 하늘에 나타나는데, 이 별이 나타나며 나일 강의 홍수가 범람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왼쪽 아래 빛나는 시리우스(Sirius) 별은 부인 이시스 여신의 육화라 믿었다. 이 모든 생명의 새로운 부활이 시작되는 이날을 새해의 첫날로 정하였다. 하여 이시스 여신 또한 죽은 자들의 수호자로서 환생과 부활의 여신으로 여겼다. 예술적 표현에서 이시스는 왕관을 쓰고 긴 드레스를 입은 여인으로 묘사되는데, 종종 연꽃이나 무화과나무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투트모세 3세의 무덤에는 무화과나무에서 젖을 먹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하토르의 신성을 흡수한 이후로는 여신의 머리 장식은 둥근 태양원에 소의 뿔이 달린 장식으로 바뀐다. 그리고 종종 원래의 왕권 위에 둥근 태양 디스크관이 달린 태양관이 세워진다. 또한 여신은 소나 소의 머리로도 나타내지며 왕관을 쓰고 어린 호루스(파라오)와 같이 독수리를 데리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또한 오시리스의 몸 위를 나는 연으로 표현되거나 죽은 오시리스에게 마법으로 부활시키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중 주로 표현되는 모습은 생명을 상징하는 앙크(ankh)를 들고 있는 모습이나 후에는 성스런 악기 시스트룸(sistrum)을 딸랑이거나, 하토르와 연관된, 다산을 상징하는 메나트(menat) 목걸이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장례 문서 '낮에 나옴에 관한 서(The Book of Coming Forth By Day)'에서 이시스는 태양선 뱃머리에 서서 두 팔을 펼치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구왕조 동안 이집트의 각 도시들에 개개의 신들 별로 각각의 신전이 세워졌는데, 5왕조 시대에 이르러 이시스 여신은 헬레오폴리스 신전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때 여신은 대지의 신 누트와 하늘의 여신 게브의 딸이자 오시리스, 네프티스, 세트의 동생으로서였다. 이시스와 네프티스 자매는 관에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있는 묘사되어 지는데, 이는 악마에 대항하는 수호신으로서 나타내짐이다. 장례의 예신으로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오시리스와 결합되어 지하 세계의 왕비로 표명된다. 후대의 신화에서 오시리스의 권위가 점점 더 강해지면서 아누비스(Anubis)가 등장하는데, 아누비스 신화를 보면 네프티스는 세트가 아이 갖기를 거절하다가 네프티스 성화에 할 수 없이 한 번 잠자리를 허락한 후 태어났다고 한다. 이에 화가 난 세트에게 목숨을 위협받게 되자 쌍둥이로 속이고 이시스가 키워줬다고 한다. 그리고 오시리스의 양자가 되는데, 이는 아누비스 또한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신임을 나타내며 또한 아누비스가 오시리스의 왕좌를 계승하지 못하는 가를 설명하고 있다.

오시리스-이시스 신화 중 가장 널리 일려져 있는 1세기 경 그리스어로 쓰여진 라틴어 제목 '데 이시대 엣 오시리데(De Iside et Osiride) - 이시스와 오리시스'의 플루타르크(Plutarch) 버전에 의하면, 왕인 오시리스의 동생 세트는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오시리스를 시기하여 그의 왕좌를 차지하고자 에디오피아 여왕과 72명의 공모자들과 함께 공모하여 오시리스를 죽일 음모를 꾸민다. 그리고는 오시리스를 위한 잔치를 열어 신들을 초대하고, 모든 신들이 갖고 싶어 하는 레바논 백향목으로 만든 관을 하나 준비했는데, 세트는 형 오시리스 몰래 그의 신체 사이즈를 측정해 만든 것으로, 세트는 관과 정확히 몸의 크기가 맞는 신에게 선물하겠다 말한다. 여러 신들이 그 관에 들어가 보았지만 크기가 맞지 않았다. 그러나 오시리스가 들어가니 꼭 맞았다. 그 순간 세트와 공모한 자들이 달려들어 관 뚜껑을 닫고 못질을 하고는 갈대로 묶어 나일 강에 띄워 보냈다. 오시리스를 실은 관은 흘러 지중해를 지나 페니카아 만의 레바논 비블로스(Byblos) 항구에 떠밀려 도착했다. 그리고 오시리스의 시신이 담긴 관 주위로 커다란 백향목이 자랐는데 비블로스의 왕은 그 나무를 잘라 자신의 궁을 만드는 기둥으로 삼았다.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관을 이집트로 가져와 갈대숲에 숨겨놓았다,

어느 날 세트는 밤에 사냥을 나갔다가 오시리스의 관을 발견하고는 오시리스의 몸을 14조각으로 갈기갈기 찢어 이시스가 다시는 찾지 못하게 온 이집트에 흩어 놓았다. 이시스와 여동생 네프티스는 흩어진 조각들을 찾아다니며 모았으나 13조각뿐이었다. 나머지 한 조각인 음경은 나일 강의 메기가 먹어 버렸다. 마술의 신 토트의 도움으로 이시스는 황금 음경을 만들어 붙인 다음 연으로 변하여 토트의 마법의 도움을 받아 어린 호루스를 임신하였다. 후기 신화에서는 좀 더 상세하게 오시리스 사후에 진행되는 이시스의 모험을 전하는데, 처녀의 몸으로 마법의 힘에 의해 잉태된 호루스가 태어난 곳이 나일 강 삼각주의 캠미스(Khemmis)이며, 호루스가 태어난 뒤 많은 위험들이 뒤따르자 이시스는 갓 태어난 호루스를 데리고 남편을 살해한 세트의 분노를 피해 달아난다. 그간 이시스는 전갈에 쏘인 호루스를 낫게 했다거나 호루스의 비석과 석판에 관련된 기적을 행하는 등 이시스가 호루스를 보호하며 길러 충분히 자신의 아버지의 살해범에 대한 복수를 할 수 있게 성장하기까지의 이야기들과 복수를 한 후에 전체 이집트의 파라오가 되는 과정을 전한다.

신화에서 신들에게는 비밀 이름이 있는데, 이를 알면 신의 권능을 빼앗을 수 있다 여겨서, 이시스는 태양신 라의 비밀 이름을 알아내자고 진흙으로 뱀을 만들어 라의 발꿈치를 물게 만들었다. 신들 중에 이시스만이 해독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태양신의 비밀 이름을 알아낸 이시스 여신은 라를 능가하는 권능을 지니게 되었다 한다. 이 비밀 이름은 훗날 이집트 마법 주문의 중심을 이루게 된다. 그리스 로마인들의 통치가 끝나고 후기 이집트 역사 시기에, 이시스 여신은 가장 중요하고 강한 신으로 등극하게 되는데, 이는 여신이 가지고 있는 마법의 능력 때문이다. 마법은 이집트의 다른 어느 신들 보다 이시스 신화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으므로, 여신은 이집트 마법의식과 주문, 특히 치료와 보호에 관한 마법의 중심을 이룬다. 이시스 여신의 많은 마법 주문의 힘들은 아들 호루스의 것과 함께 합쳐진다. 하여 호루스의 마법을 할 때는 이시스 여신의 마법이 반드시 같이 수행된다. 이집트 역사에서 성처 입은 호루스 이미지는 강력한 치유의 힘을 지니고 있다 믿는 이시스의 젖을 갈구하는 이시스 주문에 대한 정형적 이미지가 된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서의 이시스는 5세기경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투스(Herodotus)의 비교방법론으로서의, 소위 안터프레타티오 그레이카(Interpretatio Graeca) - '그리스 식 이해'를 통해 이시스를 데메테르(Demeter)와 비교하는데, 이 '그리스 식 이해' 이론은 어느 지역에서 특정 임무를 맡은 신은 다른 지역에서 다른 이름으로 비슷하게 알려진 신과 같다는 해석으로 그리스 엘루시스(Eleusis) 신비주의의 이 여신은 그리스 신화의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하데스의 부인으로 이시스의 그리스 버전으로 헤로도투스는 "이집트인들과 마찬가지로 이시스 여신은 그리스인 모두에게 숭배되는 유일한 여신"이라 말하고 있다.

알렉산더 대제의 이집트 정복과 이집트인들의 헬레니즘화 이후, BC 3세기경 이집트를 다스리던 그리스인 통치자 프롤레마이오스 I세 소테르는 자신이 다스리는 왕국 내의 그리스인들과 이집트인들 간의 폭동을 진압하는 것 보다 더 용이하게 왕국을 다스리기 위해 이들의 통합을 위해 그리스 신의 정형적 모습을 지닌 오시리스와 신성한 황소 아피스가 결합된 세라피스를 만드는데, 이때 이시스 여신은 '천상의 여왕(Queen of Heaven)'으로 여겨진다. 데메데르(Demeter), 아프로디테(Aphrodite)와 같은 지중해의 여신들은 이시스와 동일시되며, 이시스와 비슷한 이름을 지닌, 이슬람교 이전의 아라비아의 여신으로 금성(Venus)의 의인화로 여기는 알 우짜(Al-‘Uzzá) 역시 어원과 속성이 이시스로 부터 비롯되었다 여겼다. 마케도니아 공화국 오리드(Ohrid)에서 발굴된 3세기 경 세워진 이시스의 설화석고 상은 1996년 발행된 마케도니아 10데나르(denar) 지폐 앞면에 그려져 있다.

1세기 경 로마 제국의 역사가 타키투스(Publius CorneliusTacitus, 55~120)는 시저 암살 이후, 이시스 여신을 기리는 사원 제정이 공포되었다 쓰고 있는데, 이는 로마 전통 종교를 회복하고자 하는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보류된다. 칼리쿨라(Caligula) 황제는 이집트 중교를 개방하고는 이시스 여신을 기리는 신비주의 행진 네비지움 이시다그(Navigium Isidis)를 만들어 임기 동안 실시하였다. 유대인 역사가 요셉푸스(Josephus)에 의하면, 칼리쿨라는 여자 복장을 하고 자신이 세운 이 신비주의 의식에 참가하였다 한다. 베스파시아누스(Vespasian) 황제 또한 티투스(Titus)를 따라 신비주의를 만들었으며 캄푸스 마르티우스(Campus Martius)의 로마식 이세움(Iseum)에서 알을 품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도미타아누스는 또 다른 이세움을 세라피스 신전인 세라피움(Serapeum)과 함께 세웠다. 트라야누스 개선문(Arch of Trajan)의 부조에는 황제가 이시스와 호루스 앞에서 포도주를 봉헌하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또한 티부르(Tibur, 티볼리)에 있는 자신의 빌라 장식에는 이시스 숭배 장면이 있으며 갈레리우스(Galerius) 황제는 이시스 여신을 자신의 수호자로 삼았다.

이시스 교는 그리스도교 형성 시기에 로마 제국으로 퍼져 나갔다. 화산 폭발로 인해 그대로 유지된 폼페이에는 여신에 관한 벽화와 오브제들이 이시스 교의 당시 상황을 가늠케 한다. 로마에서는 이시스와 세라피스 같은 사원들과 여신을 기리는 오벨리스크가 세워졌으며 그리스에서는 이시스 컬트가 북부 그리스를 비롯한 아테네, 엘레시우스, 델로스 같은 전통적인 신앙의 중심지에 소개되었다. 이시스 항구가 흑해와 아라비아 해에서 발견되었는데, 명문에는 가울(Gaul), 스페인, 파나노아(Pannonia), 독일  아라비아, 소아시아에 추종자들이 있었으며 포르투갈과 심지어 영국에도 많은 사원들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타키투스는 게르만 족의 수에비(Suebi)여신이 이시스라 설명하고 있다. 수에비의 상징인 브루스 링컨(Bruce Lincoln) 함선은 달아다는 것으로의 수에비 족 여신의 속성을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로마의 작가 아펠레이우스(Apuleius)는 자신의 소설 '황금 나귀(The Golden Ass)'에서 2세기경의 네비지움 이시다그를 비롯한 이시스 컬트의 양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주인공 루치우스는 이스시 여신을 레지나 챌리(Regina Caeli), 즉 '천상의 모후'로 기도하고 있다.

이집트 창조신화에서 '카오스의 물'인 누(Nu)로 부터 태양신 라(Ra)가 스스로 태어나고 대기이자 공간인 슈(Shu)와 습기인 테프누트(Tefnut)를 만든 후 아툼은 젭 테피(시간) 즉 '태초의 시간'에서 혼자였다. 완전한 휴식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으며 이것이 그를 매우 지치게 만들었다(관구문, Coffin Text 80번. 하여 아툼은 그의 한쪽 눈을 보내어 슈와 테프누트를 다시 그에게로 돌아오게 하여 다시 합치를 이루고자 했다. 보내진 아툼의 눈은 끝없는 물, 누 속에서 무력해져 있는 슈와 테프누트를 발견하고는 이들의 창조자와의 재합치를 위해 어둡고 위험한 길을 돌아온다. 이들을 찾고 설득하고 노력한 것들(관구문 331번)은 모두 분노로 바뀌었다. 아툼이 또 다른 눈을 자신에 자리에 넣었던 것이다(브렘너 린드 파피루스(Bremner Rhind Papyrus). 질투에 휩싸인 눈을 달래기 위해 아툼은 그 눈을, 목을 한껏 부풀리고 똑바로 서있는 코브라로 변신시켰고, 하여 우라에우스 뱀(Uraeus-serpent)은 라의 왕관을 보호하면서 라의 통치가 계속될 수 있게 하였다. 그래서 우라에우스 뱀은 방어적인 모습의 코브라, '이아레트(iaret) - 솟아 오는 자(she who mounts)'라는 뜻의 이아르트(iart)로 불리며, '라'와 파라오의 적에게 치명적인 불을 뿜기 위해 서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하부 이집트에서는 이 코브라 여신을 '웨자트(wDt)'라 부른다. 이 우라에우스 뱀은 오직 이시스 여신의 마법의 주문으로만 움직일 수 있다.

 

루키우스, 그대의 기도에 답하는 나를 보아라,

나는 자연이며, 우주의 어머니다.

모든 요소들의 안주인이자, 최초 시간의 아이이다.

모든 영을 다스리는 군주이며, 죽음의 여왕이다.

또한 영구함의 여왕이며, 모든 신들과 여신들에 대한 하나의 표명이다.

나의 손짓에 저 높은 천상은 다스려지고, 유익한 바닷바람이 분다.

하지만 나는 그대들이 알고 있는 무수히 많은 이름들로...

많은 양상으로 숭배되고 있다.

하지만 고대로 부터 나를 알아온 뛰어난 이집트인들은 

나의 진짜 이름...여왕 이지스로 나를 숭배한다.

 

아펠레이우스에 따르면, 이들 다른 이름들에는 풍요와 농사의 여신 세레스(Ceres)와 천상의 비너스(Venus Caelestis), 태양신으로의 아폴로인 포이보스(Phoebus)의 여동생, 그리고 지하 세계의 세 여신인, 에페수스에서 숭배되는 다이아나 또는 아르테미스, 그리스의 페르세포네인 프로새피나(Proserpina)의 표명도 포함하고 있다. 중세 제국시대에는 카일레스티스, '천상의' 라는 타이틀이 붙으며 몇몇 여신들을 동반하고 최고의 천상의 모후로서의 양상을 드러낸다. '천상의 여신' 즉 디에아 카일레스티스(Dea Caelestis)라 부르는 티미스(Themis)여신은 정의를 군형잡히게 하는 신(divine balance of justice)인 천칭좌를 지키고 있는데, 그 옆에 딸 아스트레이아(astraea)를 뜻하는 처녀좌(Virgo) 바로 옆에서 빛을 비춰준다,

고대 이집트 종교에서 숭배되어 오다가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인들 사이에서도 널리 숭배되었으며 나중에는 로마 제국을 통해 그리스-로마 권역으로 여신 숭배가 유행하였으며 오늘날에도 이시스 친교(Fellowship of Isis) 같은 초종파주의 조직이나 여신 운동(Goddess movement) 같은 많은 다신주의자들 사이에 여전히 숭배되고 있다. 이시스는 자연과 마법의 수호여신일 뿐 아니라 이상주의적인 어머니이자 아내로써 존경받고 숭배된다. 학대받는 자들과 노예들, 죄수들, 그리고 직공들의 친구이며, 통치자, 귀족, 부자, 처녀의 기도도 들어준다. 또한 죽은 자들과 야신들의 아이들의 수호신이다.  파라오를 상징하는 호루스의 어머니로, 여신으로 부터 왕좌를 부여받은 파라오들 역시 여신의 아이로 묘사된다. 이시스의 컬트는 이집트 전역에 걸쳐 인기가 높다. 이중 가장 중요한 여신의 신전은 나일 삼각주의 베헤베이트 엘-하가르 (Behbeit El-Hagar)에 있다.

그리스 델로스 섬의 도리스 신전은 로마 시대 초기에 이시스, 알렉산드리아의 세라피스와 하포트라테스( Harpocrates)의 삼주신(三主神)을 숭배하던 언덕 위에 세워져 있다. 델포스는 특히 이시스 여신에게 봉헌된 사원이 세워지기 전에 섬에 오랫동안 있었던 아폴로, 아르테미스 같은 그리스 신들의 탄생지로서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로마 제국에서의 이시스 숭배의 흔적은 폼페이에 잘 보전되어 있으며 유일한 이시스의 성역인 화눔 이시디스(fanum Isidis)가 로만 브리티안이 있던 예전의 런던인 런디니움(Londinium)에 남아있다. 후기 고대시대에 이르면 이시스 컬트는그리스 로마 종교의 혼합주의 풍조로 이시도로스(Isidoros)와 이시도라(Isidora)라는 이름이 붙여지는데, 이는 '이시스의 선물'이란 뜻으로 '신의 선물'이란 뜻의 테오도로스(Theodoros)와 비슷하다.

 

Isten 사자를 심판하는 판사 중 하나인 신. 아스테누 참조

 

Iunmutef Inmutef의 다른 이름

 

Joh(Jah) 이집트의 달의 신. Iah의 다른 이름

 

Juesaes(Jusas, Iusas)

아툼의 아내 유사스

 

'오실 위대한 분'이란 뜻을 가진, 아툼과 관계하여 슈와 테프누트를 낳은 여신이다. 유사세트(Iusaaset), 유에사에스(Juesaes), 아우사스(Ausaas)로 적기도 하고, 그리스 식 이름은 사오시스(Saosis)다. 유사스는 아툼의 그림자나 손으로 표현된다. 또 슈와 테프누트를 낳았기 때문에 모든 신들의 어머니 또는 할머니로 볼 수 있다.

 

Junit 이집트의 여신. 멘투의 시종인 하급 여신. 뜻은 '데려온'. 이름만 알려져 있는 여신. 멘투 옆에 서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Ka 모든 인간에게 내재하는 삶의 생명력을 의미하며, 카와 바(ba)는 둘 다 불멸적인 요소이다. 인간이 태어나면, 그의 카가 같이 태어나고 그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카는 영원의 세계에 남아있다. 그 사람이 죽으면 카와 합쳐진다. 카는 사람이 살아 있을 때나 죽었을 때 수호령으로 활동한다. 카에 해당하는 신성문자는 편 손바닥과 두 팔을 올린 모양이다.

 

Kauket 태초의 혼돈을 상징하는 최초의 여신 중 하나이며 오그도아드의 일원이다.

 

Kebechet 물로 정화하는 의식의 여신. 아누비의 딸. 뱀의 모습을 하고 있다. 장례식에서 중요하게 여겼다.

 

Kebechsenef(Kebehsenuf) 매의 머리를 가진 호루스의 아들. 사자(死者)의 내장을 보관하는 뚜껑 있는 항아리의 수호신, 뜻은 '물로 형제를 시원하게 하는'.

 

Keku Kuk 참조

 

Kem 인간과 식물의 생식, 풍요, 추수, 농경의 신, 미라로 묘사된다.

 

Kematef Amun에 해당하는 후기 이집트 명칭.

 

Kemwer(Kemur) 이집트의 검은 황소.

 

Khem Kem 참조

 

Khensit Chensit 참조

 

Khensu Khons의 다른 이름, Khons 참조

 

Khenti-Kheti Chenti-cheti 참조

 

Khentimentiu 사자의 운명을 관장하는 신으로, '사자의 개'로서 수호신의 일종이다. 아누비스와 동일시되었다. 아누비스 참조.

 

Kheper Khepra 참조

 

Khepera Khepra 참조

 

Khepra(Kheper, Khepera, Khepri)

(루브르 박물관)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나온 스캐럽 펜단트

투탕카멘의 날개 달린 스캐럽

(영국 박물관)

(국립 중앙박물관)

갑충석(甲蟲石)으로 된 Ra 신.(역주, Ra sa scarab beetel가 원문인데, 확실하진 않지만 scarabbeetle이란 고대 이집트에서 부적으로 쓰였던 것 같다.)

 

특정한 동물과 관련된 신 중의 하나로 투구풍뎅이의 신이다. 케페라(Khepera), 케페르(Kheper), 케프라(Khepra), 케프레(Khepre) 등으로 적기도 한다. 투구풍뎅이는 말똥구리의 일종으로 이집트 전역에 흔한데 짐승의 배설물에서 투구풍뎅이의 알이 부화하는 것을 보고 갱신, 재생, 부활을 상징하는 동물로 보게 되었다. 투구풍뎅이가 말똥을 동그랗게 말아서 굴리는 것에서 태양과 관련을 갖게 되었다. 케프리는 거대한 투구풍뎅이로 하늘에서 태양을 굴렸다. 투구풍뎅이와 관련된 갱신과 재생은 태양에도 확장되어 케프리가 태양이 져서 떠오르기 전에 태양을 새롭게 하는 것으로 믿어졌다. 투구풍뎅이의 얼굴을 한 사람 또는 투구풍뎅이 장식을 머리에 쓴 사람 등의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Khepri Khepra 참조

 

Kherty Cherti 참조

 

Khnum(Khnemu) 

저승의 배를 타고 있는 크눔(세티 1세 무덤 벽화)

구불구불한 숫양의 뿔을 가진 머리의 남자

숫양의 머리를 한 크눔 아몬(BC 664년~332년경, 상감기법의 금, 청동조각, 루브르)

(BC 664년~332년경, 청동조각, 루브르)

숫양 미라(BC 664년~332년경, 루브르)

 

창조주이자 저승의 신으로, 헤케트의 남편이며, 숫양의 머리를 하고 있다. 토기 굴림판으로 신과 인류의 몸을 만들었다. Khnum은 도공(陶工)들의 휠(도자기 만들 때 쓰는 기구)에서 사람을 만들어 내는 창조신이었으며, 도공들이 나일 강의 진흙을 사용하고 나서부터 Khnum 또한 innunderation과 관련되어있고, 나일 강의 삼각주를 기름지게 하여 경작에 적합하게 만들었다. 그는 보통 숫양 또는 숫양의 머리를 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그는 아누케트, 사티스와 함께 엘레판티네 섬에서 숭배되었다. 그는 또 아내 멘히트와 함께 룩소르 남쪽에 있는 라토폴리스(현재의 에스나)에서도 숭배되었다. 라토폴리스에서 크눔의 신전이 발굴되었다.

 

Khons(Chons, Khensu, Khonsu)

(BC 1550년~1069년경, 릴 미술관)

 

달의 신으로 아문과 무트의 아들로서, 콘수라는 이름은 고대 이집트의 '여행하다'라는 단어에서 파생되었다. 후에 달의 신이라는 개념은 토트에게 옮겨졌다. 테베의 3대 신(아문, 무트, 콘스) 중의 하나이고, '시간의 주인'이며 가끔 토트와 동일시된다. 아이를 옆에 끼고 머리에는 보름달과 초승달을 이고 있는 젊은 미라로 묘사된다.

 

Khonsu Khons의 다른 이름, Khons 참조

 

Kis Kusae의 신으로, 하토르와 동일시되었다. 하토르 참조.

 

Kuk 암흑의 신으로, 세상을 창조했다는 헤르모폴리스의 오그도아드의 하나이자 오래된 신이다. 카우케트의 아버지로서, 카우케트와 함께 태초 혼돈의 어둠을 상징한다. 그들은 빛이 창조되는 곳에서 황혼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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