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Ⅸ. 후기 왕조시대

Ⅸ. 후기 왕조시대(Late Period, BC 724 ~ 333)

 

BC 667년에 이집트 전역은 아시리아에 정복당했고, BC 664년에 프사메티코스 1세가 제26왕조를 열고, 아시리아인들이 본국 근처에서 일어난 문제에 부딪쳤을 때 프삼메티코스는 그 틈을 이용해 무력을 많이 사용하지 않고도 아시리아 세력을 격퇴하면서 테베를 포함한 이집트 전체의 왕으로서의 통일왕조를 다시 실현했다. 아시리아는 BC 609년 바벨론에 의해 멸망당한다. 이것이 사이스 왕조(상인왕조), 즉 제26왕조의 시작이었다. 사이스 왕조의 우수한 군대에는 리비아 병사만이 아니라 그리스인과 카리아인 용병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일 삼각주 해안을 습격하던 그리스 해적들은 군대에 용병으로 들어오라는 권유를 받았고, 전략적으로 중요한 삼각주 북서쪽 경계에 세워진 식민지에 정착했다. 이집트와 그리스 사이에는 교역이 발달했고 보다 많은 그리스인이 이집트에 정착했다.

네코 2세 때 이집트는 메디아인과 바빌로니아인의 위협으로부터 방패가 되고 있는 아시리아를 지원했다. 네코는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에서 계속 승리를 거두었지만 BC 605년에 이집트군은 바빌로니아 왕 네부카드네자르에게 참패를 당했다. 네코는 아시아에서 군대를 철수한 뒤 이집트 상업을 발달시키고, 해군을 증강했으며, 나일 강과 홍해를 잇는 운하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아프리에스는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에 대한 바빌로니아의 지배를 끝내려고 애썼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집트군이 아시아에서 철수하자 네부카드네자르는 BC 586년에 예루살렘 신전을 파괴했다. 그가 팔레스타인을 정복한 뒤, 많은 유대인이 이집트로 탈출하여 그 일부가 이집트를 점령한 페르시아군에 입대했다. 그 후 아프리에스 군대는 나일 삼각주에서 서쪽으로 약 990㎞쯤 떨어진 리비아의 키레네에 있는 그리스 식민지를 공격했으나 참패를 당했고, 이 후유증으로 군대 반란과 나일 삼각주의 내전이 일어났다. 아마시스(BC 570~526 재위)는 아프리에스를 추방하고 왕위를 빼앗았다.

BC 526년 아마시스가 죽은 지 6개월 뒤 페르시아의 캄비세스 2세가 이집트로 쳐들어와, BC 525년에는 누비아에 이르렀다. 그는 BC 525~522년 파라오로서 이집트를 다스렸다. BC 522년에 캄비세스를 계승해 BC 486년까지 다스린 다리우스 1세는 신전을 고치고 신전 수입의 일부를 신전에 돌려주었으며 법률을 편찬했다. 이런 행동은 이집트를 오랫동안 페르시아 제국의 일부로 삼으려는 전략에서 나온 것이었다.

BC 490년 페르시아가 마라톤에서 아테네 군에 패배한 사건은 이집트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마라톤 전투). BC 486년에 다리우스 1세가 죽자, 나일 삼각주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그러자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는 이집트를 페르시아 속주의 지위로 떨어뜨렸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BC 465~424년 파라오로 재위)와 다리우스 2세(BC 424~404년 파라오로 재위) 때 이집트의 국내 상황은 불안정했다.

BC 404년 다리우스 2세가 죽자 나일 삼각주에서 반란이 일어나 성공을 거두었다. 사이스 출신의 이집트인인 아미르타이우스(BC 404~399 재위)가 제28왕조를 세웠지만 그가 이 왕조의 유일한 왕이 되었다. BC 4세기 이집트는 비록 독립을 유지했지만 국내에서 왕위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나일 삼각주에서 오랜 기간의 전투가 끝난 뒤 제29왕조(BC 399~380)가 나타났다. 이 왕조시대에 이집트는 페르시아의 적들과 동맹을 맺고 육군과 해군을 증강했다. BC 373년 페르시아 군이 이집트를 공격했다.

이집트는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페르시아 지휘관과 그의 휘하에 있는 그리스 사령관이 전략을 둘러싸고 의견 차이를 보인 데다 나일 삼각주가 때마침 범람한 덕분에 이집트는 귀중한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 치하에서 페르시아 제국이 잠재적으로 해체되었기 때문에 이집트는 더이상 침략당할 걱정 없이 비교적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집트는 제30왕조(BC 380~343) 때 줄곧 번영을 누렸다. 페르시아는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 때 되살아났지만 BC 350년에 이집트를 공격한 페르시아군은 격퇴 당했다.

BC 343년에 페르시아군은 또다시 이집트로 진격했다. 펠루시움에서 벌어진 최초의 전투는 페르시아의 전략이 우세함을 보여주었다. 결국 나일 삼각주가 모조리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이어서 이집트의 나머지 지역도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에게 점령되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는 도시의 성벽을 파괴하고, 신전의 보물을 약탈하고, 경전을 말살하는 등 이집트를 가혹하게 다루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3세가 BC 338년에 암살된 뒤 잠시 혼란기가 계속되었다.

이 동안에는 누비아의 한 군주가 이집트에 대한 지배권을 장악했던 것 같다. 페르시아는 다리우스 3세 코돔마누스 때인 BC 335년에 이집트에 대한 지배를 다시 확립했다. 그러나 이 지배는 3년밖에 계속되지 않았다.

 

제 26 왕조(사이스 왕조, BC 664 ~ 525)

제 26왕조는 이집트의 쇠미기에 새 기풍을 가져왔다. 사이스의 태수(太守) 느고의 아들 프삼메티코스 I세(Psammetichos I)는 당초 앗슈르바니발의 예하에 있었다. 또, 데베스 지방은 에디오피아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래서 그는 우선 앗슈르바니발의 밑에서 벗어나 에디오피아의 세력을 일소하고 국가의 통일을 실현하였다. 그는 헬라인, 카리아(Caria)인, 유대인 등의 용병(漏兵)을 가지고 그의 힘을 배경으로 하여 자치주화 하고 있던 노모스의 제 세력을 폐하고, 왕국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그것을 통치시켰다.

프삼메티코스의 사후 느고 II세가 즉위했는데, 그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바로 느고이다. 느고는 실지 회복을 노리고 수리아, 팔레스틴에 파병하여 유대 왕 요시야는 므깃도에서 그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바벨론에서도 영웅 느부갓네살이 대두하여 마침내 BC 605년의 갈그미스 대회전 결과 이집트군은 패배하였다. 수리아, 팔레스틴은 바벨론 군에게 정복되고 마침내 BC 587년 예루살렘이 함락하고 제 1차 포로가 시작된다.

그 이후 느고의 아들 프삼메티코스 II세는 누비아에 원정하고, 다시 수리아로 진군했다. 그의 아들 하아 압 라(H˙aa ab ra, 구약성경의'바로 호브라', 헤로도터스의 '아프리에스', Apries)의 초년에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포위했으나, 그 때 그는 유다에 원군을 보내 일시적으로 바벨론을 물리쳤다. 그러나 재차 바벨론군은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유다는 멸망, 제 2차 포로가 되었지만, 그때 유대의 일부는 이집트로 도망가 엘레판티네(Elephantine)에 거주하였다.

아아흐메스(Aahmes) 시대에 이르러 이집트는 헬라와 적극적으로 교류하여 구브로를 병합하는 등 다시 번영을 되찾았으나, 그의 아들 프삼메티코스 Ⅲ세 시대에 이르러 바사 왕 캄뷰세스에게 정복되어 마침내 바사의 속국으로 되었다. 이후 이집트에는 200년간 바사의 지배가 계속되고 겨우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바사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보호 상징 눈이 그려진 허리 판(부적, 루브르)

사자(死者)들의 명부 삽화 : 뱀을 죽이는 사자(死者)(루브르)

프사메티크사네이트 장군의 이름이 새겨진 화병-장례용 토기들(루브르)

파쉐리(Pachéry) 미라(루브르)

타세레르파안 이름이 새겨진 미라 장정제조(루브르)

누트 여신을 묘사한 테네타피 귀부인의 석관 뚜껑 내부(현무암 조각, 루브르)

보호기원을 담은 거미발 기사 반지(금, 루브르)

사메틱, 두아무테프, 하피의 이름이 새겨진 장례용 토기함(나무, 루브르)

사메틱, 쿠베세누프, 암셋의 이름이 새겨진 장례용 토기함(나무, 루브르)

나크토레브(석영암 조각, 루브르)

남자 상반신(편암 조각, 루브르)

봉헌물을 보여주는 파라오(구리질 합금, 루브르)

난쟁이(적철과 나무류 조각, 루브르)

장례용 작은 상(像), 작은 상의 발(릴 미술관)

남자 두상 형태의 조형 화병 : 아켈루스(이집트 자기, 루브르)

제 26 왕조 계보

Ammeris

Stephinates

Nekaub

Nekau I

Psametik I

뱀 석관

대 투사(침적암의 일종, 렌 미술관)

향 봉헌을 받는, 파디프타의 이름이 새겨진, 아피스 황소의 석비(루브르)

 

앙코르의 장례용(이집트 자기, 루브르)

Nekau II

Psametik II

오늘날 수단에 위치한 누비아의 수도 카르마에 매장된 채 발견된 최고 3m 높이에 이르는 누비아 왕들의 석상들은 BC 593년경 이집트 왕 프삼티크 2세가 남쪽으로 쳐들어왔을 때 파손되었다가 복원(수단의 카르마 박물관)

팔을 들고 향수 화병 (분실되었음)을 보여주는 왕족 스핑크스

Psametik 2세 왕의 이름이 새겨진 판을 지닌 남자 상(像)(편암 조각, 루브르)

 

 

Apries

팔을 들고 향수 화병 (분실되었음)을 보여주는 왕족 스핑크스(구리질 합금, 루브르)

로마의 알바니 빌라에서 출토된, 엘레판틴 세 쌍을 들고 있는 네소르(Neshor, 현무암 조각, 루브르)

Amasis(Ahmosis)

민용 파피루스 : 아마시스 통치 시대의 토지 대여 증서(루브르)

아마시스의 이름이 새겨진 심장 형태의 부적(금, 청동, 상감기법, 루브르)

대지 증여 석비(루브르)

Psametik I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