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enkhara
스멘크카레 또는 스멘카레(Smenkhkare)는 아케나텐을 이은 왕으로, 아케나텐의 아들 또는 아멘호테프 3세의 아들로 여겨진다. 그에 대해 알려진 기록은 거의 없으며, 그의 왕비로 알려진 메리타톤은 아케나텐과 네페르티티의 딸이며, 안케세나멘의 친언니였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일부 학자들은 스멘크카레와 네프루네프루 아텐을 모두 한 인물인 네페르티티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Tutankhamun
투탕카멘은 이집트 제18왕조의 파라오이다. 아케나텐의 아들로, 출생 시의 이름은 투탕카텐(아텐의 살아있는 이미지)이었다가 재위 2년에 투탕카멘(아멘의 살아 있는 이미지)으로 개칭하였다. 투탕카몬이라고도 한다. 아마르나에서 왕자로 살아가던 투탕카텐은 아버지 아케나텐과 삼촌인 스멘크카레가 죽은 후 멤피스에서 10세의 어린나이로 파라오의 자리에 오른다. 행정관 아이와 장군 호렘헤브가 이 나이 어린 파라오를 보좌하였다. 또한 이미 출산 경험이 있는 누나인 안케센파아텐과 결혼하게 된다.
재위 2년째에 아케나텐의 아텐 신앙을 철폐하려는 움직임이 공식화되었다. 투탕카텐은 투탕카멘으로, 안케센파아텐은 안케센나멘으로 개명하여 아멘 신앙으로의 복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큰 석비가 세워졌는데, 여기에는 아멘 신앙의 부활과 신전의 재건과 개방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카르나크와 룩소르에서도 갖가지 건축 사업이 진행되었다. 훗날 호렘헤브가 파라오가 되었을 때, 이것을 모두 자신의 업적으로 돌렸는데, 이는 이미 이때부터 호렘헤브 등이 정치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후의 치세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몇 차례의 해외원정에 관한 기록이 남아 있다. 투탕카멘의 무덤에는 왕의 사냥, 전쟁 모습이 담겨 있다. 사막에서 사자 등을 사냥하기도 하며, 누비아와 시리아의 적들을 화살로 공격하기도 한다. 훗날 호렘헤브의 무덤이나, 누비아 총독 후이의 무덤을 통해 이러한 그림들이 실제 사실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투탕카멘 본인이 직접 원정을 이끌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투탕카멘은 근친상간의 혼인에 의해 태어난 자식으로, 오른쪽 다리에는 골질환과 왼쪽 다리에는 선천성 내반족이 있어서 걷기가 아주 힘들었으며, 선천성 기형인 구개열이 있었으며 이로 인한 언어 장애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투탕카멘의 미라를 분석한 연구팀은 유전자 검사로 투탕카멘이 치명적인 말라리아의 원인기생충인 열대열원충에 감염되었었던 것을 밝혀내었다. 결국 여러 가지 유전적 질환으로 면역체계가 약했던 투탕카멘은 다리 골절상을 입은 상태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재위 9년째에 18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고, 1922년 룩소르 '왕들의 계곡'의 무덤군에서 발견되었다. 왕의 장의용 황금마스크와 그 외에도 수많은 부장품들이 발견되었다.
Tutankhamun과 Ankhesenaten
Tutankhamun의 미라 머리
투탕카멘의 금으로 만든 죽음가면 (카이로국립박물관)
투탕카멘의 dead mask의 뒷모습
3300년 전의 투탕카멘 왕의 얼굴
투탕카멘 왕의 얼굴 모형
투탕카멘의 우샤브티(死者와 함께 부장하였던 소형인형)
투탕카멘의 장례용 작은 상(루브르)
투탕카멘과 왕비 아케자 기원전 1350년
투탕카멘의 무덤에서 나온 안크
투탕카멘의 장기를 담은 카노푸스 상자
투탕카멘 무덤에서 출토된 왕좌
투탕카멘은 합리적이고 예술성이 풍부한 사람으로 알려졌고, 이 왕좌에 새겨진 그와 그의 아내의 모습은 이전의 이집트 미술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아주 약하게 보이는 곡선의 묘사 그리고 자연스러운 모습과 아내와의 크기 묘사의 차이가 없는 게 특징. 투탕카멘의 무덤은 황금관이라고도 불릴만큼 화려하다.(카이로)
'생명'을 상징하는 안크를 들고 있는 독수리 머리에 태양 원반을 얹은 모습의 라(Ra)
투탕카멘의 날개달린 스카라베
우자트 펜단트
투탕카멘 자칼 아누비스
하워드 카터가 투탕카멘의 관을 열고 있다 1922년 룩소르
테베에 있는 투탕카멘 왕 시절 누비아 총독(‘후이’라는 이름의 남자)의 무덤에 그려져 있는 누비아 왕족이 군주에게 조공의 일부로 금 고리를 바치기 위해 행렬하는 모습(이집트 소재 고대유물최고위원회)
투탕카멘 왕의 조모로 권력이 막강했던 왕비 티이는 과연 누비아 혈통이었을까? 세월과 함께 색이 짙어진 이 목제 흉상은 그녀가 누비아 혈통이었다는 주장을 불러일으켰다.(독일 베를린 소재 이집트 박물관)
Ay II(Eya II)
아이는 고대 이집트 제18왕조의 파라오이다. 하이집트의 권세가 유야(Yuya)와 그의 부인 튜유(Tjuyu)의 아들이며, 네페르티티 여왕과 호렘헤브의 왕비였던 무트네드즈메트(Mutnedjmet)의 친정 아버지였다. 또한 아멘호테프 3세의 처남이기도 했다. 아케나텐은 그의 외삼촌이자 장인이었고, 투탕카멘의 왕비이자 이복 여동생인 안케세나멘은 그의 외손녀였다.
아버지 유야는 제사장을 지냈던 하이집트의 권세가였고, 그의 집안은 시리아 계열이었다. 그의 누이인 티예는 아멘호테프 3세의 왕비의 한사람이 되었으며, 아버지 유야는 아멘호테프 3세의 장인이자 아케나텐의 외할아버지로서, 왕의 계곡에 자기 무덤을 두기도 했다. 또한 유야의 손녀이자 아이의 딸인 네페르티티가 아케나텐의 왕비가 됨으로써 왕실과 이중 인척관계를 형성하였다.
그는 왕실과의 혼인 관계로 당대의 실력자였으며, 아케나텐과 투탕카멘의 시대에 정부의 고위 관리이자 자문관이었다. 투탕카멘이 후사 없이 죽자 안케세나멘은 히타이트의 왕에게 청혼하여 왕자 한 명을 이집트로 보내 자신과 결혼시킨 뒤 왕위에 앉힐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안케세나멘의 청으로 히타이트 왕자가 오기 전에 아이는 이집트의 왕좌를 차지하고 파라오가 된다. 그러나 노령에 왕위에 올라 4년이라는 짧은 치세를 통치하였다.
Horemheb
휴네퍼의 사자의 서(대영박물관)
파타우이의 장례용(사암 조각, 루브르)
제 19 왕조(BC 1315 ~ 1201)
용맹한 이집트 통치자를 상징하는 누비아 인을 집어삼키는 사자 장식의 파리채 손잡이(?)(미국 뉴욕 소재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왕족의 프로필이 있는 도편
아비도스 유골함의 그림 습작이 있는 도편(석회암 데생, 루브르)
물고기 문양이 있는 도편(석회암, 데생, 채색, 루브르)
신성체가 쓰여진 양면 도편(석회암, 루브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제(청동조각, 루브르)
콘스메스Khonsumes)의 사자(死者)들 명부(채색 파피루스, 루브르)
마트 여신과 아멘호텝 1세 왕의 상(像)을 들고 있는 사제들의 행렬(석회암 부조, 루브르)
목걸이를 하고 머리를 땋아 늘인 케무아셋(멤피스의 세라피즈 신전, 석회암 부조, 루브르)
네페라부와 그의 동료, 화가 마아니 나크투프(다색배합 석회암 저부조, 렌 미술관)
아몬 우아벳의 여음악가의 이름이 쓰여진, 썰매가 달린 삼중 퍼누 형식의 장례용 작은 궤(화장벽토 칠이 채색된 나무, 루브르)
연꽃 문양이 있는 파란 도기(루브르)
파세르 대신 이름이 새겨진 종지(세라믹, 자기, 루브르)
네페세넷의 이름이 새겨진 측정 막대(나무, 루브르)
콘수호텝과 티피 각추부(석회암 부조, 루브르)
황소, 사자, 표범, 그리폰이 있는 사냥 장면이 묘사된 판(금, 루브르)
아몬의 여가수의 장례용(화장벽토 칠 채색된 나무 조각, 루브르)
판타우의 장례용(이집트 자기, 릴 미술관)
세템프타의 장례용(자기, 릴 미술관)
장례용(채색된 구운 진흙, 릴 미술관)
티히레헤의 장례용(자기, 릴 미술관)
왕실 명칭들의 일부가 묘사된 상감 아플리케(건물 장식, 이집트 자기, 루브르)
오지리스 삼 신에게 받쳐진, 아몬의 화가 수장, 데디아의 석비(섬록암 부조, 루브르)
앙크(Ankh)를 든 미라 덮개(Mummy Board, 사카라 출토, 나무 채색)
제 19 왕조 계보
Ramesses Ⅰ
람세스 1세는 나일 삼각주 동부 출신으로, 이집트의 정치 중심지는 제19왕조가 시작되면서 나일 삼각주로 이동했다. 람세스 1세는 제 18왕조의 마지막 왕이자 군인인 호렘헤브와 매우 친하게 지냈다. 호렘헤브왕은 늙도록 아들이 없자, 죽기 전에 람세스를 공동 통치자로 삼았다. 그 때는 람세스도 나이가 들었지만 그의 아들 세티 1세는 젊을 때였다. 람세스는 기원전 1292년 왕위에 오른 뒤, 곧 아들 세티를 공동 통치자로 삼아 아들에게 왕의 임무를 익히도록 하였다.
세티가 이집트의 옛 영토를 되찾기 위해 시리아로 진격할 것을 계획하는 동안 람세스는 테베에서 이전 왕들이 세워 일부 치장한 민족신 아몬 신을 기리는 카르나크 대신전의 2번째 탑문과 현관 장식을 완성했다.
Seti Ⅰ
세트 신의 이름을 딴 세티라는 이름의 새로운 파라오는 세토스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으며 "레의 정의는 영원하다"라는 뜻의 멘마아트레라는 이름으로 즉위했다. 그는 아버지처럼 재상직과 군사령관 등의 업무를 차근차근 밟아가다 왕이 되었다. 람세스 1세의 아들이자 공동 통치자로 그의 뒤를 이은 세티 1세는 훌륭한 군사 지도자로서 근동 지방에서 세력이 약해진 이집트 제국의 권위를 다시 확립하기 위해 왕위에 오르자마자 시리아 원정 등 여러 차례 원정을 다니곤 했다. 그는 아시아의 지배자가 된 히타이트 왕국을 무력으로 압도했고, 나일 삼각주로 들어오려고 애쓰는 리비아 인들을 무찌르면서 통치 초기에 전 왕조였던 18왕조 말 혼란기에 잃었던 이집트의 영토와 위신을 다시 바로 세웠고 히타이트와 카데슈를 경계선으로 조약을 맺기도 했다. 세티 1세는 치세기간동안 건축 사업을 많이 진행했고 카르나크 신전, 아비도스 신전, 테베 신전 등 많은 신전들을 건축하고 뛰어난 예술품들을 남겨놓음으로써 신앙심을 굳건히 하였다. 이집트의 번영을 위해서 우물을 파고 손상된 신전들을 돌보았고 백성들도 그를 찬양했다
파라오의 왕비로써 내조를 잘했다고 알려진 우아한 왕비 투야는 전차부대 장교인 라이아의 딸이였고 세티와 결혼한다. 그리고 세티와의 사이에서 람세스와 티아, 헤누트미레를 낳는다. 투야 왕비는 세티 1세를 먼저 보내고 람세스 2세의 모후로써 여러 조언을 해주면서 우아한 노부인으로 세티보다 오래 살다가 떠났다.
세티 1세에 의해 카르나크 신전의 '대열주 홀'을 건축하기 시작하였다.
Seti 1세
메리엔프타
세트 신의 사람, 프타의 사랑을 받는 이
토트 신에게 지혜를 전수받는 세티 1세(세티 1세 신전)
하토르와 세티 1세(채색된 석회암 부조, 루브르)
오시리스 앞에 있는 세티 1세
전쟁 후 개선하는 세티 1세 (카르나크 신전 부조)
마트 여신의 법을 따르는 모습으로 표현된 젊은 날의 세티 1세
세티의 부인이었던 무트-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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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티의 차남이자 훗날 람세스 대왕이 되는 람세스 2세와 함께 조각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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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도스 신전의 기록의 홀에서 어린 람세스에게 역대 파라오들의 카르투슈를 익히게 하고 있는 세티 1세
(카르투슈 : 고대 이집트어로 "셰누"라고도 함, 이름을 상형문자로 표기하고 둘레를 둥글게 감싼 이름표들을 뜻한다.) 18왕조 말기 아톤을 유일신으로 섬기는 종교개혁에 관련된 왕들의 이름과 하트솁수트 여왕의 이름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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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티 1세와 상이집트와 하이집트를 상징하는 파라오의 왕관을 쓰고 있는, 두 개의 땅의 주인 호루스 신
오시리스에게 봉헌하는 세티1세, 의자에 앉아 있는 오시리스, 그 뒤는 호루스, - 아비도스 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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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벽화들이 새겨져있는 이집트 아비도스 신전
이 신전은 세티 1세 때부터 짓기 시작하였으나 세티는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었고 세티의 뒤를 이어 파라오가 된 람세스 2세가 신전을 아름답게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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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티 1세의 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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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티 1세의 장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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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아트의 봉헌물 바치는 왕(금, 은, 도금, 조각, 루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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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 당시 세티 1세의 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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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미라들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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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의 관계
재위 순서대로 세티 1세 람세스 2세 메렌프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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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와 기록 등을 참고하여 그려진 세티 1세의 초상화
Ramesses Ⅱ
즉위 명인 우세르마아트레 세테펜레는 "레의 정의는 강력하다, 레가 선택한 자"의 뜻이다. 위대한 파라오였던 세티 1세의 뒤를 이어 25세의 나이로 왕위를 이어받은 람세스 2세는 이집트 역사상 두 번째로 긴 재위기간에 있었고 90세가 넘어서까지 장수했다. 본래 아버지 세티 1세와 어머니 투야 사이에는 람세스의 형인 이름 모를 장남이 있었으나 일찍 죽어버렸고 그 때문에 람세스는 어린 시절부터 큰 아들 노릇을 하며 열 살 때 "왕의 장남"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자신의 할아버지 람세스 1세와 같은 이름을 이어받은 람세스는 왕자시절에 군사적 전통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십대 때부터 아버지와 함께 원정에 자주 참여했다.
섭정공이 된 젊은 왕자는 노련한 아버지 곁을 보좌하면서 아버지에게 국가경영을 배웠다. 세티의 대 건설 사업에서도 활동하며 오시리스를 기리는 아비도스 신전을 짓기도 했다. 람세스는 아버지가 못다 지은 아비도스 신전에 이전 왕들의 묘지건물이 폐허가 된 것을 보고 놀라 어전회의를 소집하여 아비도스에 세티신전 완공의사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 주군이 직접 어린 나를 위대하게 키워 나에게 통치를 맡기셨다. 나는 장남이 되어 왕세자로서 땅의 신 게브의 자리에 올랐다. 세티 - "내가 그와 함께 살아있는 동안 그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그에게 왕의 관을 주어라." 세티께서는 나에게 여자들이 있는 후궁을 주셨다. 그것은 왕궁의 후궁만큼 아름다웠으며 남과 북의 여자들이 내 발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 어전회의는 무척 성공적이었으며 왕의 제안은 신하들에게 갈채를 받으며 승인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이집트 역사상 최고의 왕으로 기록되는 제 19왕조의 람세스 2세는 당시 소아시아의 힛타이트 제국의 남진정책에 대항하여 시리아의 카데쉬에서 전투를 벌였고 결국 세계 최초로 두 세력 사이에 평화조약을 체결하기도 하였다.
람세스 2세는 통치 제 5년(기원전 1275)에 4개의 사단(아문, 라, 프타, 세트) 2만 명의 병력을 이끌고 시리아의 오론테스 강 유역에 위치한 카데시에서 무와탈리스의 힛타이트 군과 전투를 벌였다. 힛타이트 군대는 시리아 지역을 이집트로의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2,500대의 전차부대와 37,000명의 대규모 군대를 거느리고 카데시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 히타이트의 위장 스파이 작전으로 이집트 군이 한때 위기에 몰렸지만 전투는 결국 무승부로 끝났다. 람세스 2세의 업적 중 가장 위대한 것으로 여겨지는 이 전투 장면은 그가 세운 대부분의 신전들(아비도스 신전, 룩소르 신전, 카르나크 신전, 라메세움, 아부 심벨 신전)의 탑문이나 벽면에 예외 없이 새겨져 있다. 카데시 전투 16년 후인 람세스 통치 제 21년에 히타이트는 사신을 이집트에 파견하여 평화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 조약문은 룩소르의 카르나크 신전과 람세스 2세의 장례 신전인 라메세움 벽에 기록되어 있다. 이 평화조약문서에 의하면 두 제국은 서로의 영토를 침범할 수 없고, 한쪽이 위기에 처했을 때 군사적 원조를 해야 하며 상대국의 정치적 망명자를 받아주지 않는 등 모두 3가지 조약이 등장한다. 토판문서에 히타이트 쐐기문자로 기록된 카데시 평화조약은 오늘날 터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람세스 대왕은 치세 기간 동안 거의 이집트 전역 곳곳에 신전과 자신의 기념물, 자신의 모습을 조각한 상들을 심어놓으면서 즉위명인 우세르마아트레를 새겨 넣었다. 카르나크, 룩소르, 아부심벨, 아비도스, 라메세움 등등, 부왕이었던 세티1세가 완공을 못 보고 떠난 아비도스의 신전까지 훌륭하게 완성해내었고 그 근처의 자신의 신전도 건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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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표시 위에 앉아 있는 어린 시절의 람세스 2세(석회암 부조, 루브르)
호루스 신이 어린 람세스 왕을 보호하는 걸 묘사한 조각상
신들 사이로 들어온 람세스 2세(벽, 석회암 부조, 루브르)
람세스 2세
라메세스 메리아멘
레가 그를 만들었다, 아멘이 사랑하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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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도스 소신전에서 출토된 람세스 2세 이시스 - 호루스(석회암 부조, 루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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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르 여신을 포옹하고 있는 람세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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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리스 신과 람세스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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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들을 치는 모습으로 표현된 람세스
세티 1세는 예리한 눈으로 진취적인 젊은이들을 골라 람세스와 함께 자라게 했고 자라서는 그를 보좌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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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이트와의 카데슈 전투에서의 람세스
람세스는 힛타이트와 평화 조약을 맺었고 두 명의 히타이트 공주들과 결혼하면서 히타이트와의 동맹을 굳건히 하고 시리아를 견제하였다. 그리고 위대한 대왕의 사랑을 받았던 네페르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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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2세가 가장 사랑하고 아꼈다는 제 1왕비 네페르타리.
그녀는 13살 때, 15살의 람세스와 혼인하였고 람세스가 파라오가 되자 이세트노프레와 함께 람세스의 왕비가 되었다. 부인과 자식이 많았던 람세스에게 가장 중요한 8명의 왕비들만 보더라도 그녀에 대한 람세스의 총애는 누구의 것보다도 막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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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루스 신의 안내를 받는 네페르타리
별명 ; 미의 여인, 신의 아내 왕의 위대한 부인, 선천적으로 고귀한 여인, 두 땅의 여주인(이 칭호는 왕의 왕비들에게 대대로 이어오기도 한다.) 신들을 만족시키는 여인, 그녀를 위해 태양히 비추는 여인, 달콤한 사랑,, 위대한 아름다움, 매력의 여인, 풍요로운 찬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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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오기의 머리를 한 지혜의 신 토트에게 그의 그릇과 서기관의 팔레트를 줄 것을 간청하는 모습 간절히 바라던 마법의 공식을 얻기 위해 토트에게 마법의 힘을 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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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역대 왕비들의 무덤 중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지어준 람세스 2세, 그리고 그녀의 무덤에 그려져 있는 벽화, 네페르타리 왕비가 세네트 게임을 하고 있다. 집중력과 도전에 대한 적극적인 해결력, 자립심, 환희와 여유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세네트 : 고대 이집트에서 모든 신분계층이 좋아했던 놀이로 오늘날에 체스와 비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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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르 여신과 네페르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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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스 여신과 네페르타리
이시스는 본래 계단 혹은 의자 모양의 머리장식을 한 모습이지만 종종 하토르와 같은 원반 모양의 뿔을 쓰는 모습으로도 그려지기에 헷갈리므로 상형문자로 쓰여진 카르투슈로 이를 구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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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화된 아메스 네페르타리 왕비의 작은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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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모제 서기관(석회암 조각, 루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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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2세와 네페르타리의 자녀는 맏아들이자 왕세자였던 아문-헤르-케페셰프와 딸 메리타멘이 있다. 그러나 장수한 람세스 덕분에 왕위는 열세 번째 아들이자 이세트노프레의 아들인 메렌프타(메르넵타)가 넘겨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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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페르타리와 람세스의 딸 메리타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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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타몬(메리타멘)
아몬신의 사랑을 받는 여자
굉장한 미인이였다고 전해지며 어머니인 네페르타리를 쏙 빼닮았던 것으로 유명한 딸. 어머니가 죽고 나서 아버지와 결혼하게 되는데, 이는 정치와 제사를 위해서 형식적으로 올린 혼인이라고 한다.(특히 왕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의미의 왕위 갱신제 같은 행사를 할 때가 대표적인 예)
신전 등등의 기념품에 종종 가장 사랑했던 부인 네페르타리의 모습도 함께 조각되어 있다. 역대 왕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이런 전례들은 람세스가 네페르타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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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피스 황소에게 올가미를 던지는 람세스 2세와 그의 장남 람세스의 허리춤 쪽에 둘러진 천은 람세스의 생식력과 힘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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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스핑크스 하마키스에게 물과 향을 봉헌하는 람세스 2세(석회암 부조, 루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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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왕 중의 왕 오지만디아스, 강한 자들이여 내 업적을 보고 절망하라!"
람세스 2세 석회암
람세스 2세의 이름이 새겨진 화병(자기, 루브르)
파세르 대신의 이름이 새겨진, 이시스 여신과 네이트 여신이 있는, 풍뎅이가 장식된 흉갑(청금석, 금, 루브르)
람세스 2세의 이름이 새겨진 원구형 화병(백대리석, 루브르)
우넨네페 벽기둥(루브르)
람세스 2세의 아들, 캐무아셋 왕자의 장례용(편암 조각, 루브르)
케무아셋의 장례용(루브르)
카에무아셋 왕자의 장례용 가면(사카라의 세라페움에서 발견, 금, 루브르)
카데시 전투에 참전한 람세스 2세
적들을 도륙하는 파라오 (람세스 2세) 앞에서 찬미하는 라메스 서기관의 석비(석회암 부조, 루브르)
대사제 우넨네페와 유유의 장례 석비(석회암 부조, 루브르)
비비 원숭이 형태의 토트 신의 보호를 받고 있는 람세스 2세의 왕실 총책 서기관(현무암 조각, 루브르)
무릎을 꿇은 라모제 서기관(채색된 석회암 조각, 루브르)
세네드젬의 장례용 작은 궤와 세네드젬과 카베켄트(석회암, 나무 조각, 루브르)
로마의 알바니 빌라에서 나온, 앉아 있는 황실 거대상(백대리석 조각, 루브르)
사카라의 카에무아섹의 묘에서 마리에트가 발견한 람세스 2세의 이름이 새겨진 흉갑(색유리, 다색배합, 호박금, 루브르)
람세스 2세의 반지
람세스 2세와 왕비 네페르타리의 이름이 새겨진 반지 금과 홍옥수
숫양의 머리를 한 독수리 형태의 흉갑(터키옥, 청금석, 홍옥수, 칠보, 금, 루브르)
부적 : 뱀 모양의 휘장
카무아세트(Khaemouaset) 왕자 부적
파세르 대신의 이름이 적힌 심장 풍뎅이(아마조나이트(amazonite), 루브르)
파세르 대신의 이름이 새겨진 보호 상징 부적(파피루스 줄기, 아마조나이트(amazonite), 금, 루브르)
람세스 2세의 아들, 카에무아셋의 장례 장식물 : 목걸이와 부적들(홍옥수, 금, 루브르)
람세스 2세의 하르페 칼 : 단검들(상아, 청동, 루브르)
파이 이름이 새겨져 있는 아메넴헤트의 팔레트(나무, 루브르)
목걸이를 하고 머리를 땋아 늘인 카무아세트(Khaemouaset) 왕자(멤피스의 세라피즈 신전)
아비도스 신전
람세스 2세의 장례신전 라메세움
카르나크 신전
룩소르 신전
람세스 2세가 사랑하는 아내 네페르타리를 위해 건축한 아부심벨
누비아 원정을 자주 떠나곤했던 람세스는 아름다운 장소에 자신과 자신의 왕비의 사랑을 기리기 위한 신전을 건축하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이집트를 대표하는 건축물 중 하나인 아부심벨
아부심벨에 있는 람세스 2세 대신전
태양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람세스, 아부심벨에 새겨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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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페르타리 왕비
네페르타리 왕비는 람세스의 가장 큰 건축 사업이었던 아부심벨의 완공을 보고 왕의 신전과 자신의 신전에서 봉헌식을 마쳤지만 기원전 1255년으로 람세스 대왕의 어머니였던 투야의 사망 후 3년 뒤인 이듬해에 세상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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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세스 2세의 미라, 매부리코가 잘 보존되어 있는 이유는 람세스의 미라를 만들 때 굵은 후추 열매들을 코 안에 잔뜩 넣어놓았기 때문에 붕대로 칭칭 감싸서 콧대가 무너지는 여느 미라들과는 달리 모양이 잘 유지되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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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neptah
메르넵타는 "프타의 사랑을 받는 자"라는 뜻이며, 람세스 2세의 13번째 아들로, 리비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다. 메르넵타의 치세를 기록한 비문 가운데 하나는 "이스라엘 왕국은 황폐하여 뿌릴 씨앗이 전혀 없다"는 유명한 구절이 들어 있는 승리의 시로 끝난다. 유대인이 이집트에서 탈출한 사건은 람세스 2세 때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 비문은 이스라엘을 언급한 가장 오래된 문헌이다.
메렌프타를 묘사한 스핑크스
Amenmessu
아멘메세스는 "아멘이 만들었다"라는 뜻이다.
메레트세게르 여신을 찬미하는 타레카누(석비, 석회암, 루브르)
네브메투프와 원숭이 톳, 서체의 신관 서기관들의 대주(편암 조각, 루브르)
Seti Ⅱ
세티 2세
세티 2세 거대상(사암조각, 루브르)
카르나크 신전 입구의 세티 2세 오벨리스크
Amenmose
Siptah(Saptah)
Taweseret(Tausret)
제 20 왕조(BC 1200 ~ 1081)
람세스 왕조 후기에는 고위 성직자 가문이 형성되는 경향을 보였다. 이런 가문들 가운데 하나는 제19왕조 후반에 테베에서 생겨났다. 람세스 9세 때 테베의 고위 성직자는 왕보다는 지위가 낮았지만 이미 지방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람세스 11세 때 아몬 신을 섬기는 고위 성직자 헤리호르가 테베에서 권력을 잡았다. 결국 그는 람세스 11세를 배제하고 왕을 자칭하는 대담한 조치를 취했다.
헤리호르는 람세스 11세가 아직 왕위에 있을 때 세상을 떠났고, 피앙키라는 고위 성직자가 그 뒤를 이었다. 이집트가 남부에 대한 지배권을 잃을 무렵 피앙키는 쿠시 총독을 지냈던 사람과 누비아에서 싸웠는데, 테베에서 발견된 일련의 편지에는 피앙키의 이 군사적 모험에 대해 적혀 있다. 람세스 11세가 죽자 타니스 총독인 스멘데스가 왕이 되어 제21왕조(타니스 왕조라고 부름)를 세웠다.
신성체 텍스트와 삽화가 있는 세공 파피루스(루브르)
오우네쿠와 이시스를 언급하는 조각(다색배합 석회암 조각, 렌 미술관)
제 20 왕조 계보
Sethnakhte
세크나크트의 무덤 벽화에 호루스와 게브를 그리다
오시리스를 중재하는 호루스와 아누비스 세크나크트의 무덤벽화
Ramesses Ⅲ
람세스 3세는 신왕국 최후의 위대한 군주였다. 왕위에 오른 지 5년째 되는 해에 그는 삼각주를 대규모로 침략한 리비아 인을 무찌르고 수천 명의 적을 죽였다. 그보다 더 큰 위협은 북쪽에 있었다. 북쪽의 해양 민족들은 동맹을 맺고 이집트를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왕위에 오른 지 8년째 되는 해, 람세스 3세는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지상전과 나일 삼각주의 어귀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그들과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 이집트 국경 밖으로 쫓겨난 해양 민족들은 더 서쪽으로 항해했는데, 그중 일부는 시칠리아인과 사르데냐인 및 에트루리아인이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람세스 3세의 통치 말년에는 행정의 비효율성과 경제적 쇠퇴 때문에 정부가 왕의 무덤을 짓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제때에 식량을 배급하지 못했다. 이들은 시위로 불만을 표시했는데 이것은 역사상 최초의 파업으로 기록된다. 이런 시위는 제20왕조가 끝날 때까지 간헐적으로 계속되었다. 또 다른 종류의 내부 문제는 왕의 하렘(후궁들의 처소)에서 비롯했다. 후궁 1명이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람세스 3세를 죽이려다가 실패했다. 이 음모에는 궁정과 하렘에서 일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정부 관리와 군대 장교도 관련되었으며 모두 사형을 선고받고 처형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그의 아들인 펜다웨어 왕자와 아내에게 목욕 중 칼에 목 앞부분을 깊게 베이는 상처를 입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다.
람세스 3세의 이름이 새겨진 송아지 머리 형태의 추(돌, 루브르)
람세스 3세 장례신전 탑문
람세스 3세 신전
람세스 3세 무덤
람세스 3세의 석관 큰 통(분홍 화강암 부조, 루브르)
고대 이집트와 적대관계에 있던 나라 사람들의 모습
Ramesses Ⅳ
람세스 4세의 무덤벽화
람세스 4세의 반지 (루브르)
람세스 4세의 장례용 작은 상(像)
Ramesses Ⅴ
Ramesses Ⅵ
람세스 6세의 초상 (BC 1143 ~ 1136)
Ramesses Ⅶ
Ramesses Ⅷ
Ramesses IX
람세스 9세
아시안 노예 (루브르 박물관)
Ramesses X
Ramesses 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