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동성애를 하는가
남자끼리의 동성애
여자끼리의 동성애
정자 대 난자?
남자는 여자보다 더 공격적인가
말괄량이 소녀들, 12살에 남자가 된 소년들
남자아이들의 수학 점수가 높은 까닭은
섹스, 사냥, 그리고 치명적인 힘
여자 전사들?
전쟁과 남성 우월주의
사람들은 왜 전쟁을 하는가
고기, 열매, 그리고 식인 풍습
지방질 고기에 대하여
사냥감 전쟁?
배고픈 파푸아인 등
여성들이 남자들을 지배하는 곳
여성의 지위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곡괭이, 쟁기, 그리고 컴퓨터
여자는 왜 남자보다 오래 사는가
사나이가 되기 위해 치르는 숨은 대가
인간의 권력욕은 본능인가
우두머리가 된다는 것
빌붙어 먹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나
크게 베푸는 사람의 탄생
왜 동성애를 하는가
최근의 어떤 조사에 따르면 미국 성인 남자 가운데 다른 남자와 성적인 접촉을 하여 오르가즘을 경험한 사람이 20.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적인 쾌락과 원치 않는 출산을 분리시키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을 생각할 때, 동성애가 널리 유행하고 있음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정작 놀라운 것은 혼자서 또는 파트너와 마스터베이션을 즐기고 피임약, 콘돔, 젤리 등을 사용하며 임신을 중절하고 다양한 체위로 성기 이외의 성교를 즐기는 사람들이 동성애를 가리켜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비난하며 경멸한다는 것이다. 동성애와 에이즈가 밀접히 관련된다고 해서 동성연애자들에 대한 극심한 편견이 조금이라도 더 합리화되는 것은 아니다. 의학적인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면, 착하고 깨끗하고 이성애를 즐기는 보통 남녀들도 한때 지금의 에이즈보다 훨씬 공포스런 성병이었던 매독에 걸려 아직도 엄청나게 죽어가고 있었을 것이다.
동성애가 이성애만큼 자연스럽다고 말하는 것을 오해하지 말자. 그것은 대다수 남녀가 이성보다 동성에게서 성적인 흥분과 만족감을 느낀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조금 후에 언급하겠지만 어떤 사회에서는 대다수 남자들이 일생의 많은 기간 동안 동성애를 즐기면서도 여성에 대한 호감을 잃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어느 사회에나 일부 소수의 남녀들은 동성애를 선호하도록 유전적으로 또는 호르몬적으로 타고난다는 증거 또한 많이 있다(그러나 인류학적 관점에서는 대부분의 동성애는 유전적이거나 호르몬적인 요인으로 추적될 수는 없다). 따라서 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성적인 백지상태로 태어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어느 한쪽을 좋아한다고 해서 반드시 다른 쪽을 회피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스테이크를 좋아하면서 또한 감자도 좋아할 수 있다. 이성을 좋아하도록 타고난 사람들이 또한 동성 관계를 혐오하고 회피하는 성향까지도 타고난다는 증거는 없다. 그리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즉, 동성 관계를 좋아하도록 타고난 일부 소수의 사람들이 이성에 대해서 혐오하는 성향까지 함께 타고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화적 규정과 무관하게 절대적으로(생물학적으로 - 옮긴이) 부과되는 양식의 성이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인간의 섹스에는 여분이 있다. 우리는 번식 기간이나 발정 주기로부터 풀려나지 않았는가? 우리 남자들의 성기는 영장류 가운데 가장 크고 고환은 두 번째로 크지 않은가? 우리 여자들의 음핵은 가장 호색적인 침팬지 다음으로 돌출해 있지 않은가? 우리 피부는 특유하게 털이 없고 다른 어떤 털 달린 원숭이보다 성적으로 민감하지 않은가? 피그미 침팬지들은 이성끼리 빈번하게 성기 접촉을 할 뿐 아니라 동성끼리도 교미하는 시늉을 하면서 밀어넣는다. 그렇다면 영장류 가운데 가장 성을 밝히고 상상력이 풍부한 호모 사피엔스가 그들보다 융통성이 덜 하리라고 기대할 이유는 없지 않는가? 사실, 인류의 풍부한 성적 능력을 전환시켜서 동성애를 생각만 해도 거부감이 들도록 만드는 데는 엄청난 훈련과 상황 조성, 부모의 반대, 사회적 조롱, 불지옥의 위협, 억압적인 법률, 그리고 이제 에이즈의 위협 등이 요구된다. 대부분의 사회들은 - 어떤 조사에 따르면 64% - 그러한 거부감을 자아내려고 애쓰지 않으며, 이성애와 함께 어느 정도 동성애를 용인하거나 심지어 사실상 장려하기까지 한다. 은밀하고 비제도화된 체 실행되는 것까지 포함시킨다면 동성애는 거의 모든 사회에서 어느 정도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조금 후에 살펴보겠지만, 상이한 문화적 맥락에 따라 동성애도 이성애만큼이나 다양하게 나타난다. 내 생각에, 그렇듯 놀라운 다양성은 인간의 성적 욕구의 다채로운 잠재력뿐만 아니라, 성욕과 출산 사이의 연결 고리를 끊는 인간 문화의 다채로운 능력까지도 입증하는 것이다.
남자끼리의 동성애
서양의 이성애자들은 남자 동성애자들을 연약한 사람들이라고 싸잡아 분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역사나 인류학적 기록 자료들을 보면 남성 동성애 관계가 제도화되는 것은 미용사나 실내 장식가가 아니라 군인으로 훈련받는 남자들 사이에서 가장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 병사들은 전쟁터에 나갈 때 반드시 어린 소년들을 데리고 가서 군사 기술을 가르쳐주는 대가로 섹스 파트너로 봉사하도록 했다. 북아테네의 초기 도시 국가인 테베에는 성스러운 군단으로 알려진 엘리트 대대 병력이 있었는데, 그들의 그 불요불굴의 용감성은 그 남자 전사 커플들의 단결과 헌신성에서 오는 것이었다.
인류학자들은 다른 여러 사회에서 비슷한 형태의 군대 동성애를 발견했다. 남부 수단의 아잔데족(Azande)은 젊은 독신 남성들로 구성된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 젊은 병사들은 소년들과 (결혼하여) 성적 욕구를 해소하다가 재산(당시에는 소)을 충분히 모으면 여자에게 장가를 든다. 아잔데에서 소년과의 동성 결혼은 장차 여성과의 이성 결혼의 여러 측면들을 반영한다. 독신 남성은 소년 - 신부의 집에 신부대(bride) - price의 표시로 창을 몇 개 준다. 소년은 그 연상의 파트너를 (내 남편)이라고 부르고 마치 아내가 남편에게서 멀리 떨어져 식사하듯이 그도 그렇게 식사한다. 변을 보거나 밤에 잠자리에 들 때, 필요한 나뭇잎을 주울 때도 그렇게 한다. 그리고 소년은 (남편)에게 물과 땔감과 음식을 갖다 준다. 낮 동안에 소년 아내는 전사의 방패를 들고 다니고 밤에는 둘이 같이 잠을 잔다. 그들이 즐기는 성교 형태는 연장자가 성기를 소년의 넓적다리 사이에 삽입하고 (소년은 자기 성기를 파트너의 배나 사타구니에 문질러 한껏 쾌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독신 남성 전사들은 나이가 들면 군사 야영지를 떠나 자기 소년 아내를 포기한 다음 신부대를 치르고 여자 아내를 맞이해 자녀를 낳는다. 그러면 원래 소년 아내들은 독신자 군대에 편입되고, 이제 새로운 소년 아내 병사 견습생들과 결혼한다.
파푸아 뉴기니아 산악 지방에서 소년 견습 병사와 상급 전사 사이의 동성애 관계는 연약한 소년을 용감한 전사로 만드는 정교하고도 기나긴 입문식의 한 부분이다. 길버트 허드(Gilbert Herdt)의 보고에 따르면 호전적인 삼비아족(Sambia)에서는 사춘기도 되지 않은 소년들이 자기 엄마로부터 떨어져 10대에서 20대 초반으로 이루어진 젊은 남자들과 함께 남자들로만 이루어진 클럽에서 살아야 한다. 일곱 살 정도가 되면 어린 소년들은 연장자들과 오럴 섹스를 한다. 연장자가 자기 입속에 사정한 정액을 매일 최대한 자주 그리고 많은 사람으로부터 받아 삼켜야만 소년은 훌륭한 어른이요 남자다운 병사로 성장할 수 있다. 다른 파푸아 뉴기니아인들과 마찬가지로 삼비아인들도 정액을 보유해야만 남자다워질 수 있고, 그 정액은 다른 누군가가 주는 것을 흡입함으로써 가장 잘 얻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정액을 주는 젊은 남자는 25세가 되면 동성애를 끝내고 결혼해서 아기를 낳는 데 정액을 사용한다. 삼비아 남편들은 자기 아내와 너무 자주 성교하지 않으려 조심한다. 여성들이 갖고 있는 오염력에 희생되거나(남성의 정액은 신성하고 여성들은 더럽다는 오염 신화는 많은 부족 사회에서 나타난다 - 옮긴이), 귀중한 남성 물질을 (낭비해) 쇠약해지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삼비아 남자들은 대개가 동성애 활동에 몰입하면서도 어른이 되면 다른 남자와의 오럴 섹스보다는 여성과의 성기 섹스가 더 좋다고 말한다. 이는 조금 전에 언급한바 대부분의 남자들이 이성 간의 성교를 더 좋아하도록 타고났다는 것을 말해 준다.
정액은 소년을 남자로 만들 뿐만 아니라, 아기와 모유를 만들기도 한다. 삼비아 남자들은 자기들이 사실상 여자의 도움 없이 서로를 창조하여 길렀다는 믿음으로 두터운 연대감을 형성한다. 여기에서 한가지 경고해 둘 것은 이렇듯 남성 중심적인 믿음과 동성애적인 규정을 기이한 원시적 심사숙고의 자의적 산물로 간주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삼비아와 그와 비슷한 파푸아 뉴기니아 사회에서 남자들의 클럽 간에 맺어진 유대, 강인함과 남성성을 위한 훈련, 생명을 주는 정액을 나누는 것 등은 전쟁터에서 보답을 받는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언급하기로 하고, 우선 남자끼리의 동성애의 다른 형태에 대해 계속 살펴보겠다.
군사적 지식보다는 철학적 지식을 전수하기 위해 연장자와 연소자 사이의 도제적인 동성애를 변용시킨 것은 고대 그리스의 특유한 문명이었다. 그리스의 유명한 철학자들은 거의 다 젊은 견습생과 동성애 관계를 맺고 있었다. 플라톤의 향연(Symposium)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은 여자와 동침하면 육체를 낳지만 남자와 동침하면 마음의 생명을 낳는다고 믿었다. 제레미 밴담(Jeremy Bentham)이 지적했듯이, 소크라테스, 플라톤, 크세노폰,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모두 <성도착자들>이었다는 주장에 반발했던 빅토리아 학자들에게는 실망스럽겠지만, <모두가 그것을 행했고, 아무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사실, 고대 그리스의 남성 동성애는 대부분 전쟁이나 철학을 위해 연장자와 연소자 사이에 맺어진 도제 관계라는, 불과 그 얼마 전의 관행들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중국, 비잔티움, 중세 페르시아에서처럼 그리스의 동성애도 열등한 지위에 있는 이들의 육체를 착취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 즉 고대 제국의 강력하고 남성 중심적인 지배 계급이 노예와 평민 남녀들을 착취한 것이다. 귀족 남성들은 일시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쾌락에 마음껏 탐닉할 수 있었다. 그래서 자기 아내나 정부나 여자 하인에게 싫증이 나면, 소년들을 일시적인 성적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만일 누군가가 그런 방탕에 대해 비판할만하다고 생각해도 그 집단 내에서만 말이 돌았다.
아잔데, 파푸아 뉴기니아, 그리고 그리스의 다양한 동성애에는 한가지 공통된 것이 있다. 동성애와 이성애를 하고 있는 남자들이 특이하고 비정상적인 충동에 굴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모든 사회에서 보통 남자들은 남녀 양성과 공히 성애를 나눌 수 있다. 아니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 그러나 여러 형태의 제도화된 동성애에서는 <삽입 당하는 쪽>을 - 삽입하는 쪽이 아니라, 이것이 <능동적>, <수동적>이라는 표현보다 더 정확하다 - 특별한 성적 범주에 넣어 비정상적이고 일탈적이라고 이성애자들은 간주한다. 삽입 당하는 쪽과 삽입하는 쪽 사이의 그러한 구분은 미국 남성들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 존재하며, 맥카시 상원 의원과 그의 법률자문 로이 콘이 게이들에게 가한 악명 높은 박해에서도 함축되어 있는 바이다. 맥카시와 로이 콘이 둘 다 남자들과의 동성애에 익숙해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자기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듯이 기념비적인 위선자들이 아니다. 다만 너무 남성적이어서 그 <괴상한 사람들>에 대한 경멸을 과시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일 뿐이다.
어떤 문화에서는 어떤 남자가 다른 남자에게서 삽입 당한다는 사실이 삽입하는 쪽이나 삽입 당하는 쪽 어느 편에게도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로 그는 다만 중간에 있는 제3의 성, 또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사람으로 간주된다. 그 지위를 얻는 남자들은 <(괴상한 사람)으로 괄시받기는커녕 상당한 위세를 만끽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자연과 초자연적 세계 사이를 중재하는 능력을 높게 평가받는다. 예를 들어 시베리아의 남자 샤먼들은 신비감과 다른 세계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여자의 옷을 입고 여자가 하는 잡일을 하며 남성 고객을 위해 삽입 당하는 쪽의 역할을 맡는다. 아프리카계 브라질인들의 마쿰바(macumba)와 콘돔블(condomble)이라는 정령 의식을 주관하는 카리스마 지도자도 역시 대개 동성애를 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와서 분실한 귀중품, 잃어버린 사람, 불운의 원인 같은 것을 찾아 달라거나 질병의 치유를 요청한다. 그런 일을 행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옷을 입고 행동하리라고 기대될 리는 만무하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성으로서 초자연적 재능과 샤먼적 힘을 가지고 존경을 받는 또 다른 경우는 북미 인디언의 베르다쉬(Berdache)라는 동성연애자들이다. 베르다쉬는 여자처럼 옷을 입고 뛰어난 전사들에게 그 실제 아내 또는 아내들과 함께 사실상 <아내>로서 성적인 서비스를 베푼다. 베르다쉬들은 가사에 헌신적이고 구슬 장식이나 깃대를 만드는 데 능숙했기 때문에, 그 본래의 여자 아내들은 그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환영하기까지 한다. 전사의 입장에서 베르다쉬를 두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명예였지, 그의 남성성을 훼손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많은 베르다쉬들은 자기의 초자연적 재능을 이용해 샤면이 되려 했다. 예를 들어오글라라족(Oglala)과 테톤족(Tetons)에서 그들은 젊은 남녀들에게 사춘기, 결혼, 그리고 다른 삶의 위기 때마다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다. 크로우족(Crow)의 베르다쉬는 태양 춤을 위해 첫 나무를 쪼갰다. 체옌족(Cheyenne)의 베르다쉬는 머리 가죽 춤(북미 인디언들은 전쟁에서 노획품으로 적의 머리껍질을 일부 벗긴다 - 옮긴이)을 주관했다. 그리고 나바호, 크릭, 요쿠트 베르다쉬들은 장례식에서 특별한 기능을 행했다. 베르다쉬는 한 번에 여러 전사들을 섬길 수 있었고, 전사들 역시 한 번에 여러 베르다쉬를 둘 수 있었다. 그러나 베르다쉬들은 자기들끼리는 성적인 관심이 없었다. 전사들도 베르다쉬 이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동성애적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민족지적인 사례들의 끝없는 보물 창고인 인도에도 동성애 하는 남자 성인이 없지 않다. 히즈라(hijras)라고 불리는 그들은 해부학적으로는 남자이지만 사실 남자도 여자도 아니 존재로서, 거세를 받아야 히지라 공동체의 일곱 <집들> 가운데 하나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다. 그들은 여장을 하고 머리를 기르며 얼굴의 털을 깎지 않고 뽑는다. 그들은 또한 여자의 이름을 쓰면서 공공장소에서도 <숙녀용>으로 분류된 자리에 앉으며, 전국 인구 조사에서 여자로 분류될 권리를 주장하고 나서기도 했다. 히지라들은 종종 남자 <남편>을 맞기도 한다. 남편들은 결혼해서 자녀도 있지만 꾸준하게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기도 하는데, 이는 그 아내들은 전혀 알지 못하는 성적 기교에 탐닉할 기회를 히지라로부터 얻는 대가이다. 운이 덜 따르고 진취성도 부족한 히지라들은 남창 노릇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한다. 히지라들은 또한 구걸을 통해 수입의 일부를 조달하는데, 빈민 구호품이 당장 나오지 않으면 사리(인도 여성용 겉옷)를 걷어 올리고 겹겹이 싸여 감춰진 성기를 노출시키려 위협한다. 그때 구걸 효과는 가장 크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히지라들은 대부분의 생계를 어떤 의례를 행하는 데서 얻는데, 특히 남자아이가 태어날 때 치르는 의식을 주관한다. 남자아이가 새로 태어난 집에 초빙된 히지라는 아기를 들어 자기 팔에 안고 춤을 추면서 그 성기를 검사하고 다산, 풍요, 건강을 그 아이와 가족에 축복한다.
마지막으로 현대 사회의 게이(gay) 사례가 있다. 이는 최근의 서양 문화를 제외하고서는 아마도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형태로 제도화된 동성연애이다. 게이를 특이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이성애를 하는 대다수 미국인들이 동성애를 표방하는 모든 것을 비난하고 있고,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한 번이라도 동성애를 한 혐의가 있는 사람을 징벌하는 형사법 제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게이들은 자기들에 대한 워낙 줄기찬 증오와 조롱 때문에 마치 소수 인종 집단처럼 따로 공동체를 만든다. 이 점에서 그들은 히지라를 닮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히지라가 보통 남자와 동성애를 할 때 그 남자는 동성연애자가 되지 않는 데 비해, 미국에서는 어떤 남자든 결혼 여부에 상관없이 게이와 성관계를 가지면 사회적 관례상 중간적인 존재로 되어 게이 공동체는 그들을 끌어들이려 하고 이성애하는 대다수는 추방하려고 한다.
어떻게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났는가? <사랑받고 싶은 욕구>라는 장에서 말했듯이 성적으로 왕성한 어른들에게 아이가 필요하지 않는다 해도 사회는 아이를 필요로 한다. 농촌 경제에서 산업 경제로 이행하면서 종족 번식의 실패가 광범위하게 나타날지 모른다는 노파심에서 고용주들은 모든 형태의 비출산적인 섹스를 비난하고 엄중하게 벌하는 법령을 밀어 부쳤다. 이 운동의 목표는 출산을 위해서 성교할 이들에게만 섹스를 하나의 특권으로 사회가 부여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동성애는 비출산적인 섹스의 극명한 예로서 마스터베이션, 혼전 성교, 피임, 임신 중절과 함께 출산 옹호자들의 주요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동성애 여행은 겨우 절반을 넘었을 뿐이다.
여자끼리의 동성애
인류학자들은 거의 남자들끼리의 동성애만 관찰해 왔기 때문에 레즈비언(lesbian) 관행에 대해서는 자세한 내용들이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여자들끼리의 동성애는 남자 동성애만큼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왜 그런지는 조금 후에 설명하겠다.
여성의 입문 의례가 레즈비언으로 귀결되는 경우에 대해 인류학자들이 보고한 것은 극히 적다. 그 가운데 한 가지 예를 들면 서아프리카의 다호메이족(Dahomey)에서는 사춘기 소녀들이 결혼을 준비하기 위해서 여성들만의 입문 학교에 다녔는데, 거기에서 자기 (외음부를 두껍게 만들고) 성교를 행하는 방법을 배웠다.
여성들은 전쟁에서 정면 공격에 맞서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전사로서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동성끼리 에로틱한 도제 관계를 맺을 기회가 적다. 그와 비슷하게 고대 그리스의 아카데미에도 여성들이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에 동성애적인 철학 도제 관계를 가지는 것이 아예 불가능했다. 그리고 남자들이 여자를 성적인 (대상)으로 여겼던 만큼, 지위 높은 여성과 하녀 같은 천한 계급의 여성이 드러내놓고 레즈비언 애정 행각을 벌이는 경우도 결코 많지 않았다. 그보다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역할을 하도록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더욱 일반적이었다. 그들은 남장을 하고 사냥이나 전쟁 같은 남자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중간적 지위를 이용해 샤면으로서의 신임을 구축한다. 미국 서부의 원주민 부족에서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여자들이 여자들과 동성애 관계를 지속하다가 그들과 정식으로 <결혼한다.> 그러나 남자도 여자도 아닌 성 역할을 허용한 문화에서 대부분 레즈비언 관계가 발생했으리라는 짐작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증거들은 희박하다.
제도화된 레즈비언 동성애에 대해 보고된 몇몇 사례들은 남자들이 일하러 멀리 이주하는 것과 연관된다. 카리아코우의 카리비안(Caribean) 섬에서는 남편들이 일년 중 대부분을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내는데, 나이 든 부인들은 어린 부인들을 집에 데려와서 성적인 호의와 정서적인 지지를 교환하면서 남편의 빈 자리를 메운다. 남아프리카에도 비슷한 패턴이 존재한는데, 거기에서는 엄마 - 아기 게임(mummy - baby game)이라고 불린다.
가장 흥미롭게 제도화된 형태의 레즈비언 동성애 가운데 하나는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초엽까지 중국 광동 남부 실크 재배 지역에서 행해졌다. 거기에서는 독신 여성들이 누에 공장의 일을 사실상 전담했다. 임금을 많이 받지 못했어도 장차 남편이 될 사람들보다는 형편이 나았다. 실크를 만드는 그 여성들은 결혼이 중국 여성들에게 부과하는 열등한 지위를 받아들이는 대신, 자기들끼리 반결혼적인 자매애를 형성해 경제적 정서적 지지를 주고받았다. 10만여 명의 자매들이 모두 레즈비언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지만, 두 명 때로는 세 명의 여성들이 포함되는 레즈비언 결혼 생활을 지속하는 것은 일반적이었다.
남성 인류학자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영역이 꽤 있었으리라는 점을 감안한다 해도 여자들의 동성애가 남자들보다는 덜 제도화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그러면 여성들은 남자들보다 동성애를 덜 행했다는 말이 되는가?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여자 동성애는 지하로 내몰렸거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제도화되지 않은 형태로 행해졌을 가능성이 더 많다. 실제 보고된 사례는 많지 않지만, 사춘기는 아마도 전 세계적으로 동성애 실험이 상당히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일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서야 밝혀진 바이지만, 칼라하리 쿵족(Kung)에서 어린 소녀들은 소년들과 성교를 맺기 전에 다른 소녀들과 성적인 놀이에 몰입한다.
레즈비언 관계가 꽃필 수 있는 또 다른 조건은 일부다처제이다. 그런 관행은 서아프리카의 누프족(Nupe), 하우사족(Haussa), 다호메이족에서 그리고 동아프리카의 아잔데족과 니야쿠사족(Nyakusa)에서 일반화되어 있었던 것 같다. 중동의 하렘(harems)은 아내들끼리만 기거하는 일종의 규방인데, 거기에서 많은 여성들이 레즈비언 관계를 맺었다. 남성에게 도전하는 그런 행위가 발각되면 가혹한 처벌을 받는 위험을 무릅쓰면서도 말이다.
여성 게이들의 운동을 보면 제도화된 여성 동성애가 남성 동성애에 상응하는 것이 아님을 더 잘 알 수 있다. 하나의 사회 운동으로서의 레즈비언이즘(lesbianism)은 한편으로는 남성 동성애자들의 목소리,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 해방 운동의 정치적 의제 때문에 늘 그늘에 가려 있었다. 남성 게이나 여성 게이 모두 사회적으로 분리된 공동체에 소속되어 정서적이고 육체적인 안정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필수 서비스까지도 조달한다. 그러나 남성 게이 공동체의 네트웍은 멤버도 더 많고 직업의 범위도 더 다양하며 정치적인 입김도 더 강력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것은 남자들이 대개 어릴 때부터 자기 주장하는 훈련을 받은 면에서 유리하고 소득이 높은 직업을 구하기가 쉽다는 사실에서 연유한다. 따라서 <바깥으로 나오는 것>이 남자 게이들보다는 여자 게이들에게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 남자 게이들은 성적인 비정상인으로 배척당하는 것에만 맞붙어 싸우면 되지만, 여자 게이들은 거기에다가 여성으로서 겪는 불리함이 또 하나의 짐이 얹혀지기 때문이다. 에블린 블랙우드(Evelyn Blackwood)가 말했듯이, <강요된 이성애가 여성들을 경제적으로 무력하게 묶어두고, 여성들의 활동을 가정의 영역에 한정시키다.> 남자든 여자든 동성애를 한다는 것은 현대 가정의 기반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더 나아가 레즈비언이 된다는 것은 이성애를 하는 남성들이 여성을 남성만을 위한 성적 대상으로 규정하는 것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여성들은 그 성적인 성향이 어떠하든, 남성 위주로 구성된 여성의 성(gender)을 뒤집어엎는 데서 공통의 목표를 발견했다.
정자 대 난자?
남자와 여자는 동일한 종에 속한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남녀의 외모, 목소리, 행동 등으로 미루어보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남자와 여자는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종인가? 남녀의 성기와 몸은 근본적으로 상이한 성적 특성의 사고 및 행동 프로그램을 내장한 유전적 패키지의 일부분인가?
성적으로 타고난 사고 및 행동 패턴에 대한 오늘날 생물학 이론의 핵심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뚜렷이 다르고 경쟁적인 재생산 전략을 선천적으로 타고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자는 난자의 전략을, 남자는 정자의 전략을 구사한다. 난자 전략은 추정하건대 여성들로 하여금 짝을 고르는 데 보다 까다롭게 굴도록 하고 그래서 짝을 더 적게 두고, 아이를 돌보는 데 남자보다 더 많은 관심과 수고를 들이도록 한다. 정자의 전략은 남자로 하여금 많은 여자들과 닥치는 대로 짝을 짓고 아이를 기르는 데 여자보다 소홀하도록 한다. 그 두 가지 상반된 전략은 정자와 난자가 크기와 양에서 차이 나는 것을 반영한다고 주장된다. 여성은 일생을 통하여 자기 유전자를 후손에게 무려줄 수 있는 기회가 얼마 되지 않는다. 난자의 공급은 제한되어 있고 한 달에 한 번꼴로밖에 사용할 수 없다. 일단 임신하면 적어도 18개월이 지나기 전까지는 다른 아이를 가질 수 없다. 반면에 남자들은 수천만 마리의 정자를 생산한다. 태아를 기르는 임무는 여자의 몸에 맡겨져 있기 때문에, 남자들은 돌아다니면서 여러 여자들에게 값싼 정자를 주입하여 임신시키는 것이 종족 번식에 유리하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나오는 비싼 난자를 가지고 아이를 생산하는 데 여자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남자들은 12명 이상의 아이를 탄생시킬 수 있다. 따라서 여자가 자기 짝에게 원하는 것은 남자가 자기 짝에게 원하는 것과 정반대이다. 여자는 남자가 가까이 머물면서 자기와 아이들을 부양해 주기를 바란다. 남자는 돌아다니면서 가능한 한 많은 여자를 유혹하고 싶어한다. 윌슨(E. O. Wilson)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남자들이 공격적이고 성급하고 변덕스러우며 무분별하게 처신하는 데에는 그만한 보상이 주어진다. 이론적으로 볼 때 여자들은 수줍어하는 것, 그리고 가장 훌륭한 유전자를 지닌 남자 - 수정한 후에도 자기와 함께 머물러 줄 것 같은 남자 - 를 분간해 내는 것이 더 유리하다. 사람은 이러한 생물학적 원리를 충실하게 따른다.> 난자와 정자의 전략은 또한 왜 남자들이 여자들을 강간하는 지에 대해서도 설명해 준다. 부모 노릇 하는 데 의무를 완전히 회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략은 왜 일부다처제가 일처다부제보다 더 일반적인지를 설명해 준다. 남자들은 자기 정자를 하나의 임신에만 투자하기를 꺼리는 것이다. 특히 자기가 어떤 아이의 아버지인가를 확인하지 못할 때 더 그렇다.
이러한 이론들은 내가 이미 반박한 사회생물학적인 일반화, 즉 인간 사회의 출범 이후 종족 번식에 대한 투자가 자원의 할당에서 가장 우선적인 문제로 대두했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재생산 전략에서 비롯되는 상반되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견해를 내가 반박하는 데는 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와 가까운 영장류들을 보면 암컷이 성적으로 수줍어하는 천성을 타고났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 침팬지, 특히 피그미 침팬지 암컷은 성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면에서 수컷만큼이나 드세다. 그들은 여러 수컷들과 돌아가면서 성교를 하고, 또한 암컷과도 다시 성교를 한다. 이러한 행동은 인간과 관련해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피그미 침팬지 암컷이 해부학적인 면에서 성적인 쾌락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 - 클리토스가 겉으로 튀어나온 것과 빠른 템포로 오르가즘을 여러 번 체험할 수 있는 것 - 을 생각해 보면 특히 그렇다. 만일 여자들이 천성적으로 수줍어한다면, 단 한 명의 남자가 줄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오르가즘을 체험할 수 있도록 신체 조건이 갖춰져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게다가 앞서 지적했듯이 여성 중심의 가구를 이루어 살면서 여러 남편들과 일시적으로 동거하다가 헤어지는 것뿐만 아니라 동시에 여러 애인들을 두는 여자들이 수백만 명에 이른다. 그와 비슷하게 얼핏 일처다부제 같은 가구는 세계 곳곳 특히 도시 빈민가에 일반화되어 있다. 남자들이 자기 앞가림하는 것 이상으로 식구들을 위해 돈을 충분히 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그러한 가족 형태가 발전한다. 그러면 이렇게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성 중심적인 가구를 이루고 사는 그 여자들은 가난하기 때문에 보통 여자들보다 더 많은 남자들과 번갈아 가며 살아가는 것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느냐고. 그리고 만일 자기와 아이들을 넉넉히 먹여 살릴 수 있는 부유한 남자를 만나기만 한다면, 그 여자들은 종족 번식의 요구를 따르면서 보통 여자들처럼 한 남편만 두고 살 것이라고. 물론 가난한 일처다부제와 상대적으로 부유한 일부일처제 사이에서의 선택이라면 여성들은 일부일처제를 따를 것이라는 점에 나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상황에 균형을 맞춰보자. 부유한 일부일처제와 부유한 일처다부제 사이에서 선택할 자유가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사회생물학적 견해에 따르면 그들은 일부일처제를 선택할 수 있다면 가능한 한 많은 파트너들을 두는 쪽으로 선택할 것이다. 남자들이 여러 여자들과 섹스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은 최소한 타고났다.
우리가 그동안 이러한 진실을 알지 못했던 것은 여자들이 남자들처럼 여러 성적 파트너들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부자유는 종족 번식을 위한 성적인 전략과는 그 어떤 관련도 없는, 이중 기준의 성 정치(the sexual politics of the double standard)의 산물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것을 통해 남자들은 여성들의 노동력과 출산력을 통제하려는 시도의 일부로서 여성을 지배하고 그 성을 억압해왔던 것이다. 거의 예외 없이, 여성들이 여러 섹스 파트너를 둘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남자들에게 이득이 될 때에 한해서였다. 그 결과 여성들의 무분별한 성교는 창녀들에게서 가장 많이 일어난다. 그들은 물론 불행하게도 자기의 성욕을 위해서가 아니라 - 접객을 많이 하는 창녀들은 성교하는 동안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 미천하게 생계를 잇기 위해서 아무 남자에게나 몸을 내주어야 한다. 국가 수준의 사회에서 보통 남자들은 외도를 즐길 수 있지만, 보통 여자들은 조금이라도 그런 기미를 보이면 가혹한 벌을 받는 것이 거의 일반적이다.
임신, 출산, 수유의 위험과 비용을 치르는 것은 남자의 몸이 아니라 여자의 몸이다. 바로 그 때문에 여자가 남자보다 성적인 문제에서 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효과적인 피임이나 임신 중절이 이루어질 수 없는 상황에서 마구잡이로 섹스를 하는 것은 여자에게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진다. 남자들은 성적인 쾌락을 임신에 이르기까지의 시련과 견주어 생각해야 할 이유도 없고, 아기를 낳다가 죽는 것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가족계획 기관들이 제3세계 국가들에서 발견하는 바이지만, 여자들은 피임에 남편들보다 훨씬 적극적이다. 그것은 여성의 난자 지향적인 재생산 전략을 따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토록 자주 임신하고 출산하는 것이 지긋지긋하기 때문이다. 전통사회에서는 성적인 모험에 대해 여성들이 자연적으로 더 비싸게 치러야 하는 대가에다가, 혼외정사로 임신한 여자들에게 남성들이 가하는 혹독하고 문화적으로 정교한 징벌이 첨가되었다. 외간 남자와 관계를 맺어 임신하는 것에 대해 여성들이 당해 온 집단 강간, 채찍질, 돌팔매질, 이혼 등 온갖 수모를 생각해 보자. 여성들이 남자보다 성적으로 덜 모험적인 것을 단순히 유전적인 것으로만 풀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우리가 여성의 성이 지니는 자연적인 한계를 규명하고자 한다면, 단순히 현실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 여성들만 관찰할 수는 없다. 처녀성과 순결을 지키면서 한 남자만 따르도록 하는 문화적 제약, 여러 남자와 관계하면 화냥년이니 갈보니 색녀니 하는 낙인이 찍히고 사생아가 남자가 아닌 여자에게 도덕적 경제적 부담이 되는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여성의 본성에 대한 추론은 남성 지배의 효과와 완전히 뒤범벅이 되어 혼란에 빠질 것이다.
남성 지배적인 제도와 가치 체계가 워낙 막강하기 때문에 여성의 성적인 자유가 남자의 자유보다 축소되지 않는 사회는 거의 없다. 그러나 그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 정치가 성적인 자유를 남녀에게 똑같이 허용하는 사회들을 제시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이것이다. 여자들은 더 많은 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질 때 그렇게 하는가?
도둑질당한 쾌락
말리노프스키(Bronislaw Malinowski)는 인류학자로서는 처음으로 남성 지배적인 가족 문화가 없거나 약화된 사회에서의 여성의 성에 대해 기술했다. 그의 고전적인 연구인 원시인들의 성생활(The sexual life of savages)에는 메리네시아 트로브리안드 섬의 젊은 소녀들이 젊은 남자들만큼이나 여러 파트너들과 돌아가면서 성적인 장난을 즐기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여자들의 혼전 성교에 대한 제재는 주로 짝을 구하는 데 너무 뻔뻔스럽거나 드러내 놓고 하는 것을 금하는 정도였다. 자기의 매력과 아름다움이 상대방의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한에서, 그들은 신중하기만 하면 혼전 성교를 맺을 수 있었다. 말리노프스키에 따르면 성을 너무 밝히는 여자들이 꾸지람 당하는 것이 발견되었는데, 너무 많은 파트너를 사귀는 것이 나빠서가 아니라, 뻔뻔스럽게 구애하면 에로틱한 매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였다. 너무 색골인 남자들도 마찬가지 이유로 꾸지람을 받았다. 신중하라는 훈계가 자주 내려졌던 것 같다. 그러나 소녀들 가운데는 <적당한 섹스로는 성이 차지 않고 매일 밤 여러 남자가 필요한> 이들이 분명히 있었음에 말리노프스키는 주목하고 있다. 말리노프스키는 그런 소녀들을 <이상 성욕자>로 생각했다. 그러나 트로브리안드 여자들이 보기에도 그러했을까?
마가렛 미드(Margaret Mead)에 따르면 사모아(Samoa)의 젊은 여자들도 역시 여러 남자들과 번갈아 가며 성교를 즐겼다. 누군가의 중매로 이루어지는 밀회는 <야자나무 밑에서> 또는 소녀의 오두막에 <야밤에 기어들어가서> 이루어졌다. 미드는 <그런 정사는 보통 오래 지속되지 않고 소녀와 소년 모두 한꺼번에 여러 번 일을 치른다>고 쓰고 있다. 여기서 지적해야 할 것은 사모아인들이 기독교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기 전에는, 미드가 현지 조사를 했을 당시보다 혼전 성교의 자유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님태평양의 여성들이 전통적으로 어떻게 성생활을 했는지를 더 잘 알기 위해서는 망가이아(Mangaia) 섬으로 가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는 남녀 모두 사춘기 이전에 자유롭게 성이 실험되고 격렬한 혼전 성생활이 만끽된다. 소녀들은 부모의 집에서 구애자를 밤중에 맞이했고, 소녀들은 오르가즘에 얼마나 많이 도달하는가를 놓고 서로 경쟁했다. 망가이아의 소녀들은 낭만적인 무드, 전희나 후희에 관심이 없었다. 그 소녀들은 남자들과의 애정이 싹튼 후 섹스를 하는 것이 아니었다. 거꾸로 먼저 성적으로 만족한 대접을 받으면 그 대가로 마음을 주었다.
먼저 개인적인 애정을 표시하고 나서 성적인 친밀감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이다. 망가이아의 소녀는 성적인 왕성함을 즉각적으로 과시함으로써 남자 파트너가 얼마나 자기를 원하는지를 먼저 테스트하고 자기가 또한 상대를 얼마나 원하는지도 나타낸다. 개인적인 애정은 성적으로 친밀한 행동에서 비롯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후자는 전자의 필요조건이다. 이는 서구 사회의 생각과는 완전히 반대이다.
트로브리안드, 사모아, 망가이아에서는 남녀가 성인이 되어 결혼을 한 다음에는 성적인 모험을 포기하는 것이 기대된다. 그러나 충실한 결혼 생활에 대한 이상은 그것을 어겼을 때 가해지는 징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세계 곳곳에서 번번이 조롱당한다. 여기서도 역시 남녀 사이의 권력 불평등으로 말미암아 외도를 한 여성이 그 상대 남자보다 더 위험한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여성의 혼외 성관계에 대해 연구하기가 극도로 어려운 것이다. 결혼한 남녀가 얼마나 자주 불륜을 저지르는지를 실제 통계로 잡은 연구는 내가 아는 것 가운데 단 하나가 있다. 그것은 토마스 그레고어(Thomas Gregor)가 메히나쿠(Mehinacu) 인디언들이 사는 브라질 중앙의 작은 마을을 대상으로 연구한 것이다. 그 마을에는 37명의 어른이 있었는데, 남자가 20명, 여자가 17명이었다. 그레고어가 머무는 동안 남자는 모두 적어도 한 번 이상 혼외정사를 가지는 반면, 여자는 14명이 엇비슷하게 연루되었다.
개인별로 횟수를 따져보면, 여자는 5.1, 남자는 4.4로서 사실상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많은 혼외정사를 가졌다. 그리고 연루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따져본다면 한 여자당 평균 6.3회였다(정사의 혐의가 없는 여자들은 추정하건대 <노인, 병자, 그리고 너무 못생긴 여자들>로서 그레고어에 따르면 그들은 남자들의 성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것이다).
그레고어도 말리노프스키처럼 자기의 자료가 남자 못지않게 여성이 쾌락적인 관심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을 부인했다. 그에 따르면 <남자들이 정사에 끌려드는 주요한 동기는 성욕이다.> <반면에, 여자들은 그 관계의 육체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그 정사 과정에서 얻게 되는 사회적 접촉과 선물에도 가치를 두는 듯하다.> 그러나 여성이 성관계를 가질 때 어떤 동기가 깔려있는지를 남자들이 설명하는 것은 별로 믿을 수가 없다. 인류학자라고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산족(San)에서 일어나는 혼외정사에 대해 여자가 여자에게 진술한 한가지 내용으로서 마조리 쇼스탁(Marjorie Shistak)의 자료에 더 신빙성을 두고 싶다. 쇼스탁과 개인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으면서 연구의 대상이 된 니사(Nisa)라는 여성에 따르면 <정사를 갖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준 것 가운데 하나이다.> 니사는 20번 정사를 가졌다. 그녀는 자기의 동기가 오로지 성적인 것만은 아니었음을 분명히 밝혔다.
한 남자가 줄 수 있는 것은 매우 적다. 한 남자는 오로지 한 가지 음식밖에 줄 수 없다. 그러나 애인들을 여럿 사귀면, 이 남자는 이런 것을 갖다 주고 다른 남자는 저런 것을 갖다 준다. 한 남자는 밤중에 고기를 가지고 오고, 다른 남자는 돈을 가지고 오며, 또 다른 남자는 구슬을 가지고도 온다.
수렵 채취 생활을 하는 쿵족은 이 캠프에서 저 캠프로 많이 옮겨 다닌다. 니사에 따르면 <여자는 어디에 가든지 애인을 두어야 한다. 그러면 그녀는 구슬, 고기, 또는 다른 음식을 얻을 수 있다.>
처음에는 니사가 섹스보다는 선물 받는 데 더 관심 있는 듯하다. 그러나 여러 애인들이 줄 수 있는 에로틱한 만족에 대해 그녀는 매우 세세하게 알고 있음이 곧 드러난다. 그리고 어떤 남자가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면 선물로 유인해 계속 정사를 맺는 것이 불가능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니사는 말한다. <한 여자의 성욕은 항상 그녀와 함께 있으며 비록 그녀가 어떤 남자를 원하지 않는 경우에도 그녀는 내적인 성욕을 느낀다.> 게다가 애인을 두었다고 해서 자기 남편과의 사랑을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자는 자기 남편과 자기 애인을 똑같이 원해야 한다. 그것인 좋은 때이다.>
다른 모든 지배 집단과 마찬가지로 남자들도 자기들보다 열세에 놓여 있는 여성들의 본성에 대한 이미지를 조작함으로써 현상 유지를 도모한다. 수천 년 동안 남자들은 여자들이 스스로 구현할 수 있는 모습이 아니라, 남자들이 원하는 모습대로만 여자를 보아왔다.
남자는 여자보다 더 공격적인가
페미니스트나 성차별주의적인 남자들이나 모두 한 가지 사실에는 의견을 같이한다. 남자는 선천적으로 여자보다 더 공격적이라는 것이다. 성차별주의적인 남자들은 그것을 근거로 왜 여성들이 정치적으로 종속적으로 종속되어야 하는가를 정당화한다. 페미니스트들은 그것을 근거로 여성들이 정부와 군대를 떠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쪽 다 거기에 깔려 있는 기본 전제는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의 핏속에는 테스토스테론 호름이 여자보다 훨씬 더 많이 있다. 그래서 남자들은 더욱 공격적이다. 고환에서는 테스토스테론이 분비되지 않는가?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일상 언어에서 어떤 용감하고 전투적일 때, <has 'balls'>(이는 속어로 불알을 가린다 - 옮긴이)라고 표현하지 않는가(그러나 여자들도 아드레날선(腺) 바깥 부위에서 적은 양의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한다)? 투우에 나설 만큼 용감한 수소도 거세를 시키면 쟁기를 끄는 유순한 소로 바뀌지 않는가? 그렇다. 맞다. 그러나 인간을 포함해서 영장류를 거세할 때 일어나는 효과는 그렇게 분명하지 않다. 거세당한 붉은털원숭이가 보통 수컷보다 눈에 띄도록 공격성이 덜 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사람에 관한 한 거세가 성욕과 생식 능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격성에 미치는 효과는 지극히 미미하다. 남자나 여자나 테스토스테론이 적어도 얼마든지 난폭해질 수 있다.
공격적인 남자 죄수들을 순화시키기 위해 물리적 또는 화학적인 거세를 시도해 본 적이 여러 번 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만일 그러한 실험을 행했던 교도관들이 환관의 역사를 알고 있었다면 쓸데없는 수고를 들이지 않아도 될 뻔했다. 중국, 고대 로마, 페르시아, 비잔티움에서는 거세당한 젊은 남자들이 아른 나이에 황제를 보필하는 자리에 들어가 두터운 신임을 얻고 많은 일을 책임졌다. 전쟁터에서 워낙 용맹을 떨친 덕분에 그들은 궁정 호위대를 지휘했고 군대에서도 장교나 사령직관에 올랐다. 환관의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가운에 하나인 바고아스는 페르시아 군대의 최고사령관이 되었다. 기원전 343년 이집트를 정복한 바고아스는 알렉산터 3세와 그 아들들을 살해하고 다리우스 3세를 왕으로 추대했다. 그리고 다리우스 3세가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자 그도 살해해 버렸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환관은 정화(鄭化)라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몽골 전쟁에서 수훈을 세운 베테랑으로서 지금까지 중국 역사에서 가장 큰 해군 함대의 사령관이 되었다. 가족 기록에 따르면 정화의 키는 7피트였고 허리 둘레가 약 5피트였으며 눈이 부리부리했고 목소리도 우렁찼다. 그가 지휘하는 함대는 군함 300척과 군이 2만 8천 명을 거느리고 인도까지 나가 해적과 싸우고 적군을 물리쳐 전리품을 가져왔다.
그러나 보통 남자들이 무슨 일로 화를 내고 공격성을 발휘하기 시작할 때 테스토스테론의 양이 늘어나는 것은 확실한가? 그렇지 않다! 공격적인 기질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전형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의 양이 최고로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은 처음이나 중간이 아니라 나중이다. 서로 싸우면서 지배 위계질서를 만들어가는 원숭이들은 싸우는 중이 아니라 싸움에서 완전히 이겼을 때 테스토스테론 양이 늘어난다. 낯선 무리의 공격을 받아 패했을 때 수컷 원숭이들의 테스토스테론 양은 급격히 떨어진다. 물론 이것을 통해 힘이 셀수록 테스토스테론도 많다고 연관 지을 수 있지만, 화력 엔진이 불을 야기하는 것 이상으로 테스토스테론의 양이 권력을 높여 준다는 증거는 매우 희박하다.
사람은 어떤가. 동료 레슬링 선수들을 연구해 보면 테스토스테론의 양은 시합이 끝날 때보다 시합이 시작되기 직전에 더 작다. 그와 비슷하게 테니스 시합에서 상금을 타거나 석사 학위를 받은 직후에는 젊은 사람들의 테스토스테론이 높아진다. 그러나 수술 직전에는 테스토스테론이 급격히 떨어지는데, 이는 마치 베트남 전쟁 때 순찰을 나가려는 병사의 핏속에서 테스토스테론이 적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만일 테스토스테론 양이 공격성의 수준을 결정한다면, 공격성이 발휘되기 시작할 때 혈중에 포함된 양이 적어도 상황이 끝날 무렵의 양 정도는 되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까닭은 무엇인가?
물론 테스토스테론이 공격적인 행동과 무관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 둘 사이의 상승 피드백 작용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미약하고, 그 관계를 압도하고 왜곡하고 억누르는 다른 요인들이 많이 있다. 어윈 베른수타인(Irwin S.Bernstein)의 말을 빌리자면 <호르몬은 영장류의 뇌피질에 동화되면서 그 영향력이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꺾일 것이다.> 그런 현상이 원숭이에게 일어나는 것이 사실이라면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남자들이 테스토스테론이 많기 때문에 여자보다 더 쉽게 공격적인 역할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할 용의가 있다. 그러나 사회생활의 필요에 따라 여자가 공격적인 성 역할을 담당하고 남자가 더 수동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상항이 발생한다면 여자가 그런 성향을 습득하는 데 장애가 되는 호르몬의 장벽이 있을까? 영장류들을 연구한 결과로는 그런 것은 없다. 그러한 성 역할의 변화는 이미 산업 사회에 상당 정도 나타나고 있어서, 맞벌이 가정의 남자들은 원래 전업주부의 몫으로만 여겨져 온 아이 양육을 배우고 있다. 그와 동시에 여성들은 전문직이나 관리직 같은 직위에 오르기 위해 남자들과 경쟁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여기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전문직, 관리직, 기술직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사무직 여성이나 가정주부들보다 테스토스테론이 더 많다는 것이다. 기술직에 입문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런 일에 종사하다 보니 테스토스테론이 많아진 것인가? 그 둘 다 똑같이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올바른 대답이 아니라고 본다. 그 동안 임금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났고, 그에 상응하여 전문직이나 관리직에 오른 여성들도 역시 상당히 늘어났다. 그러한 증가를 두고 여자들이 선천적으로 지니고 태어나는 테스토스테론의 양이 전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굴뚝 산업주의와 남자 혼자 생계를 책임지는 가정을 종식시키는 거대한 사회경제적 변화는 테스토스테론이 급격히 늘어나 여성을 남성화시킨 데서 비롯된 것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탈 굴뚝 산업 사회가 계속 <남성화된> 여성 역할을 선택한다고 할 때, 호르몬의 차이가 그러한 성 역할 변화를 가로막는다고 믿어야 할 까닭은 무엇인가?
말괄량이 소녀들, 12살에 남자가 된 소년들
어떤 과학자들은 주장하기를 자궁 속에 있을 때 테스토스테론에 노출된 남자들은 뇌의 일부가 변형되어 평생 동안 난폭하게 살아간다고 한다. 그들은 그 이론의 근거로서 태아 시절에 남성 호르몬에 과다하게 노출된 소녀 12명을 대상으로 존 몽키(John Monkey)와 앵크 에른하트(Nke Ernhardt)가 연구한 결과를 들이댄다. 그 소녀들은 모두 태어날 때부터 음핵이 컸고, 그 어머니들에 따르면 다른 여자아이들보다 훨씬 남자 같았다고 한다. 그들은 <신체적인 에너지가 많이 요구되는 활동, 특히 남자아이들만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격렬한 야외 놀이와 스포츠 경기>를 즐겼다. 학자들은 그 까닭을 자궁 속에서 자라는 동안 노출된 남성 호르몬이 <태아의 뇌에 가한 남성화의 영향> 때문이라고 규명했다. 그러나 적어도 호르몬의 영향만큼 중요한 사회적 영향도 있었다. 짐작컨대 그 어머니들은 자기 딸들을 보통 여자처럼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성화된 음핵이 어머니들로 하여금 그들을 남자처럼 대하도록 유인한 것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남성화된 소녀들이 어떻게 행동할 수 있으리라는 모종의 기대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그것이 선입관이 되어 어머니와 딸 모두의 말괄량이 판정 기준은 한족으로 치우치는 것이다. 또 하나 섞여드는 요인은 그 소녀들이 모두 음핵의 크기를 줄이는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조치가 비전형적인 행동을 낳은 또 하나의 원천이 되었을 것이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포경 수술을 받은 남자아이들은 보통 아이들에 비해 더 활동적이고 밤잠이 적으로 성미가 급하다고 하는데, 음핵 축소 수술은 포경 수술보다 더 거친 형태의 수술이다.
다른 학자들은 공격성이 높아지는 것 등 행동 성향이 남성화되는 것은 남자아이가 자궁 속에 있을 때보다 사춘기 때 주로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견해를 크게 뒷받침하고 있는 것은 내분비학자 줄리안 임페라도 맥긴리(Julianne McGinley)가 도미니카 공화국 내에 서로 인접한 세 마을에서 19명의 남자들을 대상으로 행한 연구이다. 그들은 유전적으로 테스토스테론이 부족했기 때문에 여자의 성기를 달고 태어났고 여자아이로 길러졌다. 사춘기가 되자 정상적인 남자처럼 테스토스테론이 늘어나게 되어 가슴은 자라나지 않으면서 목소리는 굵어졌고 고환이 커지면서 음핵이 정상적인 남자 성기로 바뀌었다. 맥긴리에 따르면 그 가운데 17명은 12년 동안 여자아이처럼 옷을 입고 그렇게 양육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무렵부터 점점 거칠어지면서 전형적인 라틴 마초(원래는 기백이 있어 보이는 남자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다소 남성 우월적인 기질을 가진 남자들을 가리킨다-옮긴이)가 되어 결혼을 하고는 아이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은 <테스토스테론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어서 여자아이로 키운 것을 능가한다는 것>을 입증한다는 것이다. 더 거창하게 표현하면 <아무리 여자처럼 행동하도록 가르친다 해도 남자는 남자처럼 행동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12살에 남자 성기를 갖게 된 남자아이들을 여자처럼 키우려고 정말로 그렇게 노력했을까? 도미니카 공화국이 라틴의 전형적인 남녀 차별 사회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부모들은 그 <소녀들>이 결국 <소년들>이 되기를 계속 희망했을 것이다. 신체적으로 정상 남자가 된 소년들의 부모들은 그들을 진짜 남자로 만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다 사용하지 않았을까?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훈련이 쉽지는 않았다. 그런 전환이 이루어지는 몇 년 동안 온갖 혼란과 심리적 고뇌가 뒤따랐다. 내가 보기에 이 사례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맥긴리의 주장처럼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이 양육의 효과를 능가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사춘기 시절에는 그 문화가 남녀에게 기대하는 바에 맞춰서 자기 행동을 바꿀 수 있다는 것뿐이다. 사춘기에 갖게 되는 다량의 테스토스테론 때문에 남자가 여자보다 더 공격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뒷받침할 만한 것이 이 연구에는 전혀 없다.
테스토스테론과 공격성 사이의 관계보다 문화가 훨씬 더 큰 임을 발휘한다는 나의 견해가 맞다고 치자. 그러면 거의 보편적으로 남자들에게 공격성이 훨씬 높게 나타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말하자면, 왜 문화는 상황을 좀 바꿔서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더 공격적이 되도록 만들지 않았는가?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꼭 설명하겠다. 그것보다 우선 남녀 간의 선천적인 차이를 주장하는 내용들을 몇 가지 더 논의해 보기로 한다. 남자와 여자는 선천적으로 다르게 생각하는가? 남자는 선천적으로 수학에 더 재능이 있거나 더 지적인가?
남자아이들의 수학 점수가 높은 까닭은
남자는 여자보다 더 똑똑한가? 19세기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여자의 뇌가 더 작기 때문에 틀림없이 남자가 더 똑똑하다. 지금에 와서 우리는 더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의 뇌는 체중에 따라 다르다. 평균 체중에 견주어 보면 여자의 뇌가 약간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IQ 테스트는 어떤가? 가장 널리 사용되는 스탠퍼드-비네(Stanford-Binet) 테스트 결과를 보면 남자와 여자의 평균 점수는 똑같다. 그러나 이것을 가지고 어떤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스탠퍼드-비넷 테스트는 애당초 그런 결과를 도출하도록 설계된 것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심리학자들은 어떤 질문에는 남자가 더 대답을 잘하고 어떤 질문에는 여자가 더 대답을 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테스트 고안자들은 어떤 테스트로도 일반적인 지능을 측정할 수 없다고 결론짓지 않고(그것이 가장 그럴듯한 결론이겠지만), 어려 유형의 질문을 더하고 빼고 하여 남녀의 평균 점수가 똑같아지도록 했다.
남녀의 적성 차이 비교에 관심 있는 심리학자들은 지능의 특수한 측면들에만 초점을 맞추어 왔다. 예를 들어 적성 검사에서 소년과 소녀가 다르게 나타난 결과를 가지고 심리학자들이 남자가 여자보다 더 수학에 더 선천적인 재능이 있다고 결론지었다. 카밀라 벤보우(Camilla Benbow)와 줄리앙 스탠리(Julian Stanlwy)의 연구는 그 견해를 확증하는 듯하다. 그들은 중학교 1, 2학년 학생들의 학업 적성 테스트에서 수학 부문 상위권 3% 권에 든 아이들 만 명의 점수를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남자아이들의 평균 점수가 여자아이들보다 일정하게 높게 나타났고, 이는 똑같은 수의 수학 과목들을 수강한 남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4만 명을 대상으로 적성 검사를 한 결과를 가지고 후속 연구를 하면서 벤보우와 스탠리는 8백 점 만점에 남자는 416점, 여자는 386점을 얻은 것을 알아냈다. 점수가 높을수록 남녀 사이의 불균형은 더 컸다(600점 이상 받은 남자아이들이 여자아이들보다 4배나 많았다).
페미니스트, 사회과학자, 그리고 수학자들은 즉각 지적할 것이다. 벤보우와 스태리는 그 표본으로 택해진 남녀 아이들이 수강한 수학 과목의 수는 통제했으면서 사회화 과정에서 생겨난 차이는 사실상 전혀 통제하지 않았다는 점을 말이다. 젊은이들이 어떤 능력을 계발해야겠다는 동기를 얻고 스스로의 이미지를 형성하며 직업적인 목표를 발전시키는 가족 및 공동체 생활의 커다란 맥락을 그들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전통적으로 아이들의 수학 숙제를 도와주는 것은 엄마가 아니라 아빠였으며, 거기에서 수학이란 모름지기 남자들이 승부를 걸어볼 만한 영역이라는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전달되었다. 전통적으로 학부모와 함께 상담가들과 교사들은 수학적 능력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의 성공에 필수적이라고 규정해 왔다. 이 문제에 대해 연구한 결과를 보면, 수학에 흥미를 가졌던 여자아이 가운데 42%가 수학 과목을 더 수강하고 싶었으나 상담 교사가 만류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벤보우와 스탠리에게 보내는 답변에서 여자 수학 교수 2명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이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실제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페미니스트 과학자 루스 블아이어(Ruth Bleier)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성 역할에 순응하도록 가해지는 압력이 높은 나이에, 여자아이들은 수학과 과학을 ‘남성다움’으로 등치시키는 문화 속에서 자기가 ‘여자답지 못한’ 것으로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러나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는 그 <짜여진 회로>가 서로 다르지 않는가? 사람의 뇌는 좌반구와 우반구가 각기 다른 기능으로 특화되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좌반구는 언어적 적성을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대상과 공간 관계를 시각화하는 능력이 수학적 재능과 관련되어 있다고 볼 때, 우반구를 더 잘 사용하도록 회로가 짜여져 있는 남자들이 더 뛰어난 수학적 적성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나는 그러한 가설들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들을 하나도 찾이 못했다. 여자의 좌반구가 남자보다 더 발달했고 남자의 우반구가 여자보다 더 발달했다는 것을 입증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뿐만 아니라 그 가설에는 논리적인 결함이 있다. 왜냐하면 좌반구와 우반구는 남자와 여자에게 연계되어 추정되는 기능들과 상반되는 기능들을 각기 추가로 특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우반구는 대상을 시각화시키는 <남성적인> 능력을 지배할 뿐 아니라, 총체적이고 직관적인 사고방식을 지배하는데, 이는 통상 여성들에 발달된 측면이라고 여겨진다. 그와 똑같은 혼합이 좌반구에도 있다. 좌반구는 논리적인 분석을 수행할 때 활발한데, 이는 남성적인 능력이면서 동시에 <여성적인> 언어 활동에도 연루된다.
남녀의 심리적인 차이를 너무 세세하게 들여다본 나머지 우리는 중요한 쟁점을 놓칠 수 있다. 문제는 능력, 인내력, 욕구 등에서 남녀 간에 측정 가능한 차이가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다. 더욱 핵심적인 것은 그런 차이들이 성적으로 특화된 사회적 행동 패턴을 만들어낼 만큼 충분히 큰 것이냐는 것이다. IQ와 적성에서 관찰되는 남녀 차이가 일차적으로 뇌의 구조적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치자. 그러나 점수상에서 남녀가 중복되는 분포가, 수학이나 과학이나 공학 분야에서 실제 활약하고 있는 남녀의 분포와 일치되지 않는 것은 왜 그럴까? 600점 이상 받은 남자가 여자보다 4배 많고 그 가운데 절반이 남녀의 유전적인 요인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수학 분야에서 활동하는 남녀의 비율은 2 대 1이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9 대1이다. 문화적인 선택이 생물학과 행위 사이에 개입하면서 실제 존재하는 선천적 차이를 증폭시키는 것이 분명하다.
문화적 선택이 유전적 차이를 그 정도로 증폭시키는 힘을 지녔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문화적 선택은 또한 유전적 차이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부문의 수행 능력에서 날카로운 차이를 창출해낼 수 있는 힘도 지녔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내 생각에 이는 수학적 적성에 관한 문제에서 타당하다고 본다.
사실, 문화적 선택의 힘은 어떤 일을 수행하는 데 유전적으로 유리한 쪽보다 유전적으로 불리한 쪽이 더 좋은 결과를 내게 할 정도로 막강하다. 청각을 예로 들어보자. 음조와 파장을 분간하는 능력으로 볼 때 여성들은 남성보다 더 예민한 청각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남녀 사이의 불균형은 나이가 들수록 커지는 것 같다. 남자는 32살부터 청력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여자는 37살부터 떨어지기 시작한다(물론 이는 남자들이 소음이 많은 환경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남자들이 청력이 많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어느 교향악단의 성비를 보아도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많다. 물론 청각적 예민함이 악기 연주의 필수 요건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유보 조건은 수학적 능력에서처럼 유전적으로 유리한 족이 또한 사회적으로 유리한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단일한 유전적 성향으로 실제 인간의 행위을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여성들은 미각에서도 더 예민한 것 같다. 그래서 단맛, 신맛, 짠맛, 쓴맛 등을 아주 적은 양이라도 분간하는 능력이 남자보다 뛰어나다. 유전만이 중요하다면, 일류 요리사들은 여자가 더 많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최고급 레스토랑의 요리사들은 왜 남자가 더 많은가?
남녀 간에 유전적인 차이가 어느 정도 나타나는 감각으로 시각과 후각을 더 들 수 있다. 남자들은 시각적인 예민함에서 앞서는 반면, 여자들은 피부에 가해지는 압박에 더 민감하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를 가지고 남녀의 보편적인 역할의 측면들을 논의하는 것을 나는 들어보지 못했다. 따라서 얼마만큼의 차이가 문화적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고 또한 얼마만큼이 자연 선택의 결과인지가 가려질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다. 후각의 경우에 흔히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더 예민하다고 알고 있는데도, 대개의 향기를 식별하는 능력은 남자나 여자나 별 차이가 없는 듯하다.
독자들은 이러한 논의에서 남녀 사이의 생물학적 차이가 전혀 무의미하다는 인상을 받지 않기 바란다. 내가 반대한 차이들은 단지 가설적이고 사변적인 차원에 머물 뿐이다. 남녀의 재생산 전략을 위한 유전자, 좌반구와 우반구의 기능을 위한 유전자, 특수한 언어적 또는 수학적 능력을 위한 유전자 등 관찰할 수 없는 존재에 매달리지 말자. 그 대신 남녀의 신체에 관한 해부학적이고 물리적인 사실에 주목해 보자. 그 부문에서 성에 관련된 유전적 특성은 반박할 수 없을 만큼 명백하고,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생물학적 차이들을 가지고 문화적으로 선택된 성 역할에 대해 빈약하나마 설명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섹스, 사냥, 그리고 치명적인 힘
남자의 키는 여자보다 평균 11.6 센티미터 더 크다. 여자들은 남자보다 뼈가 가볍고 지방질이 더 많아서 신장에 비해 체중이 덜 나간다(지방질은 근육보다 무게가 덜 나간다). 근육을 테스트해 본 결과 여자들은 남자보다 3분의 2 내지 4분의 3 정도 힘이 약하다. 가장 큰 힘의 차이는 팔, 가슴, 그리고 어깨에 집중되어 있다. 따라서 육상 경기에서 남자가 여자보다 뛰어난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예를 들어 궁도에서 여자 선수들의 기록은 남자들보다 15% 정도 뒤진다. 혼합궁도에서는 그 격차가 30%나 된다. 창 던지기에서는 20%가 차이 난다. 이러한 차이에다가 단거리 및 중장거리 달리기에서 10% 정도의 차이가 추가되다. 앞서 언급했듯이 마라톤에서는 9%의 차이가 있다. 100 미터 경주에서도 똑같은 차이가 나고 중거리에서는 조금 더 커서 12% 정도 차이가 난다. 훈련 프로그램과 심리적 동기가 여성들의 육상 경주 능력을 향상시키기는 하겠지만, 근육의 힘과 보디빌딩에서 비롯되는 지금의 차이가 크게 줄어들 전망은 거의 없다(언젠가 유전 공학을 통해서 가능하지는 모르겠지만).
인류학자들이 단순한 밴드나 부락 사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 비춰 볼 때, 이러한 차이들은 문화적 도약의 초기 단계에서 큰 짐승 사냥을 위해 남자들이 문화적으로 선택된 데서 비롯되었다고 확신해도 무방할 것이다. 몇몇 예외들은 있다. 예를 들어 필리핀 아그타족의 언떤 여자들은 야생 돼지를 잡는다. 그러나 알려진 사례 가운데 95%는 남자들이 큰 짐승을 잡는데 전문화되어 있다. 사피엔스 이전의 원인류들도 그렇게 노동을 분담했는 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현대의 수렵인들을 그렇게 옛날 사람들과 등치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큰 짐승들을 잡는 데 문화적으로 선택된 것은 그들의 신장, 체중, 그리고 근력의 우세함이 그 일을 수행하는데 여자보다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무기를 손에 쥐고 휘두르는 능력에서도 남성의 키와 체중과 근육의 우세함은 여자들이 임신이나 수유 때문에 거동이 불편한 몇 달 동안 엄청나게 늘어났다.
해부학적이고 생리학적인 성차는 여자들이 어느 정도 사냥에 참여하는 것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고안된 대한으로는 역시 여자보다는 남자를 훈련시켜 큰 동물 사냥을 맡기는 것이다. 이는 특히 여자들이 작은 동물을 잡고 야생 열매 같은 것을 채집하는데 전혀 불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렵인들의 식사에서 그런 음식들은 큰 짐승만큼이나 중요했다.
큰 짐승 사냥에 남자들이 선택되었다는 것은 적어도 구석기 시대부터는 창, 활, 작살, 곤봉, 부메랑 같은 무기를 - 이런 무기들은 동물은 물론 사람을 상처 내고 죽이는 데도 효능이 뛰어나다 - 만들어 사용하는 데 남자들이 더 능숙했음을 의미한다. 그런 무기를 남자들이 다루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남성 지배와 성적인 이중 기준이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남자가 사냥하고 여자가 채집하는 식으로 노동을 성별로 분업화시킨 사회 가운데 상당수가 거의 평등한 남녀 관계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인류학자 엘리아노 리콕(Eleanop Leacock)은 라브라도의 몬타그네-나스카피 수렵인들을 관찰하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그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타인의 개별성을 상당한 정도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내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콜린 턴불(Collin Turnbull)은 자이레의 숲속에 사는 음부티족(Mbuti)을 연구하면서 남녀 사아에 협동과 이해가 매우 잘 이루어지고 있으며, 여성들에게 적지 않은 권위와 권력이 주어지고 있음에 주목한 바 있다. 음부티 남자들은 활과 화살을 능숙하게 다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아내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사냥꾼으로 생각하지만 아내가 없으면 사냥을 하지 못한다. 그리고 비록 덤불을 두들겨 작은 동물을 잡는 것이나 열매를 따는 것보다 사냥이 더 흥미진진하기는 하지만, 자기의 식사 가운데 엄청난 양이 여자들이 채집한 음식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마조리 쇼스탁이 쓴 니사의 전기를 보면 쿵족 또한 거의 평등한 남녀 관계가 유지된 수렵 회였음을 알 수 있다. 쇼스탁은 쿵족에게 남아 선호 관념이 전혀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 아이 양육에 관련된 문제에서 부모 둘 다 자녀를 지도하고 엄마의 말은 아빠의 말과 똑같은 무게를 지니다. 엄마들은 자기 자녀의 배우자를 결정하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며, 결혼 이후에 쿵족 부부들은 처가 근처에서 사는 경우가 남편의 본가 근처에서 사는 만큼이나 흔하다. 여자들은 자기들이 발견하는 음식은 무엇이든 먹어치우며, 적절하다고 생각되면 집으로 가지고 온다. <대체로 볼 때, 쿵족의 여자들은 자기 자신과 아이들에 대해 엄청난 정도로 자율성을 지니고 있다. 공동체 생활에서 자신의 중요성을 존중하면서 자라난 쿵족 여성들은 여러 얼굴을 한 어른이 되며, 자녀 양육과 협동에 밝을 뿐만 아니라 공식적인 일을 수행하고 자기 주장을 펴는 데도 능숙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그렇긴 해도, 수렵 사회에서 성 역할이 완전히 평등했다고 주장하는 리콕과 다른 페미니스트 인류학자들에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현지 조사 결정과 갈등 해결의 영역에서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약간, 그러면서도 매우 중대한 우위의 권한을 행사한다. 쇼스탁이 쿵족에 대해서 지적하듯이 <남자들은 종종 영향력 있는 지위를 - 집단의 대변인으로서 또는 치료사로서 - 차지한다. 그리고 쿵족 생활의 많은 영역에서 남자들이 더 권위를 행사하는 것은 남녀 모두가 똑같이 인정하는 바이다.> 남자들의 입문 의례는 비밀리에 치러지지만, 여자들의 입문 의례는 공개적으로 치러진다. 월경 중인 여자가 사냥꾼의 화살을 만지면, 그의 사냥감은 모두 도망가 버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남자들이 만지면 외면시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분리되어 있지만 평등한 성 역할의 균형을 완벽하게 구현하기에 쿵족은 뭔가 부족했다.
음부티족도 마찬가지다. 턴불에 따르면 <사냥꾼들(즉 남자들)은 캠프의 정치 지도자로 여겨지는 것 같고, 이 점에서는 여자들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거의 비슷하게 남자들과 대등하다>고 한다. 그러나 <여자가 맞받아칠 것이라고 예상되는 경우에도> <어느 정도의 아내 구타는 좋은 것으로 여겨지면> 아이들에게 <엄마는 사랑으로 연상되는 반면, <아빠는 권위로 연상된다.>
리차드 리(Richard Lee)는 쿵족에서 맨손으로 치명적이지 않을 정도로 싸우는 사례를 34건 기록했다. 그 가운데 14건은 남자가 여자를 공격하는 것이었고, 여자가 남자를 공격하는 것은 단 1건이었다. 리에 의하면 남자가 먼저 공격하는 것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받아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의 남성들은 새로 배치된 정부 치안 공무원의 눈치를 보느라 무기를 사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리는 자신이 현지 조사를 하러 들어가기 전에 22건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해자 가운데 여자는 하나도 없었고 두 명의 여성 피해자가 있었을 뿐이다. 리는 이것을 가지고 남자들이 정말로 억압적인 남녀 차별 사회에서처럼 마음대로 여자를 희생시킬 수 없었다고 해석했다. 또 다른 해석은 더 그럴듯해 보인다. 쿵족 여자들은 치안 공무원이 가까이에 없었던 과거에는 겁이 더 많아서 남자와 맞붙어 싸우지 못했다. 남자들이 창이나 독화살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렵인들의 공적인 권위와 갈등 해결에서 여성들이 남성들에 비해 거의 비숫하기는 하지만 충분히 대등하지는 못한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보기에 그것은 오로지 남자들만이 사냥 무기를 만들고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독점은 체중, 신장, 그리고 근력에서의 유리함과 결부되어 있다. 소년 시절부터 치명적인 무기로 동물 사냥을 훈련받아 온 남자들은 남녀 사이에 갈등이 생길 때 여자보다 더 위험할 수 있고 따라서 더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다. <나는 사내다. 나에겐 화살이 있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언쟁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격렬해지기 시작할 때 쿵족 사냥꾼이 한 말이다. 이것이 짐승 사냥 훈련을 받은 남자들의 반응이라면, 살인을 훈련받은 사람들은 어떻게 할까? 사냥꾼들이 서로를 사냥하는 판에 여자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여자 전사들?
전쟁을 격렬하게 치르는 밴드와 마을 어디에서나, 여성은 정치와 가정의 영역에서 혹독하게 종속된다. 이 이론은 시몬 프레이져 대학의 인류학자 브라이언 하이든(Brian Hayden)이 수집한 33개의 수렵 채취 사회 자료들에서 입증되고 있다. 여성의 낮은 지위와 전쟁에서 죽는 사람의 숫자 사이의 상관관계는 <기대 이상으로 높았다.> 하이든이 지적하듯이 <전쟁이 심한 사회에서 남자의 권력이 압도적인 이유는 비교적 명백해 보인다. 집단 성원들의 생명은 남자들 그리고 사회 정치적 상황에 대한 남자들의 판단에 더욱 많이 좌우된다. 전쟁 기간동안 남자가 하는 일은 사회 전체를 위해 여자가 하는 일보다 훨씬 더 중대하다. 게다가, 전쟁으로 인해 발동이 걸려 남자들이 공격성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자들의 결정에 대해 여자들이 섣불리 반대하고 나서는 것은 부질없을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남자는 여자와 달리 전사로 훈련되었고 그래서 더 공격적이고 겁이 없으며 다른 사람들을 몰인정하게 사냥하고 죽이는 데 더 능숙하다. 남자들이 전사로 선택된 것은 동물 사냥에 유리한 해부학적, 생리적 특성이 사람 사냥에도 유리하게 선택되었기 때문이다. 무기를 손에 들고 근력으로 싸우는 전투를 치를 때, 또는 육상 경기에서 남자가 여자보다 10 내지 15% 정도 더 우세하다는 것은 생사가 걸린 문제가 된다. 반면에 임신으로 인해 생기는 여성의 신체적 제약은 사냥에서보다 전쟁에서 더욱 커다란 핸디캡으로 부각된다. 효과적인 피임기구가 없었던 산업 사회 이전에는 특히 그러했다.
아니, 더 진화된 사회에서는 여성들이 전투 부대를 형성해 남자들과 함께 게릴라와 테러리스트로 싸웠다는 것, 그리고 여성들은 이제 경찰, 간수, 그리고 사관 학교 생도로서 상당히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베트콩이나 게릴라 운동뿐만 아니라 러시아 혁명군과 제2차 세계대전 중 러시아 군대에서 수천 명의 여성들이 복무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밴드 사회에서 남녀 사이에 위계 구조가 생기는 데 전쟁이 지니는 중요성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이 그렇게 맹렬히 참여한 전투에서 사용된 무기는 총기류였지 근력을 쓰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19세기에 서아프리카 다호메이 왕국을 위해 싸운 유명한 여자 군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단지 2만 명의 다호메이 군인 가운데 남자가 1만 5천 명이었고, 여자는 5천 명이었다. 그러나 많은 여자들은 직접 전투하기보다는 비무장으로 척후병, 짐꾼, 군악대 등으로 복무했다. 여성 전투 부대의 엘레트들은 - 1천 내지 2천 명 사이였다 - 왕궁 내부에 살면서 마치 왕의 친위대처럼 행동했다. 기록된 몇 차례 전투에서 여자 전사들은 남자 못지않게 용감하고 효과적으로 싸운 듯하다. 그러나 그들이 사용한 주요 무기는 창과 화살이 아니라 총이었다. 거기에서는 남녀 사이의 신체적인 차이가 최소화된다. 뿐만 아니라, 다호메이의 왕은 여자 전사들의 임신을 자기 안전에 심각한 위협으로 생각했다. 그들은 비록 왕과 결혼하기는 했지만, 왕은 그들과 성교를 갖지 않았다. 그리고 임신한 여자는 간음으로 정죄되어 처형당했다. 다호메이 왕국은 여자 전사들에게 의존할 수 있었지만, 전쟁을 치르는 밴드 사회는 초보적인 수준에서조차도 그렇게 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왜 그랬을까? 그런 사회는 인구가 너무 적어 남자든 여자든 전문 상비군을 둘 수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그런 상비군을 훈련시키고 먹이고 합숙시키는 데 필요한 중앙 리더쉽과 경제적 자원이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의 군사력은 총이 아니라 창과 화살과 작살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 결과, 밴드 사회에서는 전쟁이 잦을수록 여성들이 남성의 억압에 더 시달렸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전쟁과 남성 우월주의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무장된 전사의 팀이 있어야 한다. 리차드 리가 보고한 살인 사건 가운데 전사 팀의 습격 중에 일어난 것은 하나도 없고, 따라서 그것들은 전쟁 행위가 아니었다. 리에게 제보한 원주민 가운데 두 명은 베추아나랜드 보호 경찰이 그 지역에 들어오기 오래전에 무장 전사 팀의 습격이 일어났다고 말해 주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상습적이거나 격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만일 그러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따라서 쿵족에 습격이나 그 밖에 전쟁 같은 것이 사실상 없었던 것은 그들의 평등한 성 역할과 맞물려 있는 것이다.
쿵족은 무기를 가지고 조직적으로 싸우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엘리자베스 토마스(Elizabeth Thomas)의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들(The Harmless People)」이라는 책에서 묘사된 평화의 모범이 될 정도는 못 되었다. 리차드 리가 방금 언급했던바, 50년 동안 일어나 22건의 살인 사건을 다른 식으로 환산해 보면 1년에 인구 10만 명당 29.3명꼴이다. 이는 디트로이트의 58.2명에 비해 상당히 적은 것이지만, F.B.I가 잡은 통계인 미국의 10.7명보다는 훨씬 많다. 칼라하리 사막이 에덴동산이 아님은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리가 지적하듯이, 현대 산업 국가의 살인율은 법무부의 공식 통계보다 훨씬 높다. 이는 특이한 의미론적 기만에서 비롯된다. 현대 국가가 전쟁 중에 <적들>을 죽인 것은 살인으로 계산되지 않는 것이다. 군인이나 민간인을 대상으로 자행한 군사 행동으로 인한 죽음을 모두 포함시킨다면 현대 국가 사회의 살인율은 사실상 전쟁이 없는 쿵족을 훨씬 웃돌 것이다.
쿵족과 달리 많은 밴드 사회들은 어느 정도의 전쟁을 치르며 또한 거기에 상응하여 더 뚜렷한 남성 우월주의를 드러낸다. 호주 원주민들이 유럽의 과학자들을 처음 접했을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호주 동북부 퀸스랜드의 원주민들은 4, 50명의 밴드로 조직되어 있었고 수렵 채취만으로 생계를 이어갔는데, 이들은 정기적으로 전사팀을 파견해 적대적인 밴드의 잘못을 응징하였다. 눈으로 직접 목격한 바에 따르면 집단 간에 살인이 매우 고도로 조직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살인은 포로를 요리해 먹는 데서 절정에 달하는데, 이는 오로지 남자 전사들만을 위한 보상이지만 그 희생양이 되는 것은 주로 여자나 어린이였다.
이러한 호전적인 관심과 더불어 그 원주민들은 매우 발달된, 그러나 그렇다고 극단적인 형태는 전혀 아닌 남성 지배 구조를 보유하고 있었다. 나이 든 남자들에게 일부다처제는 보통이었고 어떤 남자는 아내를 네 명이나 두고 있었다. 남자들은 음식을 분배하는 데서 여자를 차별하였다. 칼 룸홀츠(Carl Lumholtz)의 보고에 따르면 어떤 남자는 <고기를 저 혼자만 먹는 반면, 아내와 아이들은 주로 식물로 연명하였다.> 성적인 이중 기준은 만연해 있었다. 남자는 간통한 아내를 때리거나 죽였지만, 아내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남녀 간의 노동 분업은 전혀 평등하지 못했다. 룸홀츠의 말을 들어보자.
“힘든 일은 모두 [여자들이] 해야 한다. 바구니와 막대기를 들고 나가 과일을 따고 뿌리를 캐고 나뭇가지를 잘라 유충을 잡는 등 [여자들은] 하루 종일 어깨에 어린아이를 짊어지고 다니다가 땅을 파거나 나무에 오를 때만 내려놓는다.....집에 돌아오면 또 다른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덤불을 두들겨 작은 동물을 때려잡고, 음식을 굽고, 종종 독성이 들어 있는 과일즙을 담그는 일 같은 것이다. 오두막을 짓고 그 재료들을 모으는 것도 여자들의 몫이다... 또한 물과 연료도 구해야 한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는 모든 짐을 여자들이 짊어져야 한다. 그래서 남자는 창, 작살, 부메랑 같은 가벼운 짐만 들고 앞서가고, 그 뒤에는 그의 아내가 마치 짐 나르는 말처럼 음식 담은 바구니를 다섯 개나 지고 가낟. 그 바구니 가운데 하나에는 작은 아이가 들어 있을 때가 많고, 좀 큰 아이는 목마를 타고 간다.”
이것은 몰인정한 여성 지배의 전형적인 예이다. 호주 북부에 사는 호전적인 수렵인 집단인 먼진족(Murngin)에서의 성 역할에 대해 를로이드 워너(Lloyd Warner)가 말해야 했던 바는 퀸스랜드 원주민에 대하여도 적용된다.
아내는 상당한 정도의 독립성을 갖고 있다. 그들은 옛날 호주를 연구한 인류학자들의 이론에 나오듯 호되게 취급받는 여자들이 아니다. 그 여자들은 자기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보통이다. 먼진 사회에서 여자들은 남자들보다 입김이 더 세다. 남편들이 너무 오랫동안 외박했을 때, 그리고 그들이 무슨 비밀스런 일을 벌였을까 두려울 때 아내들은 종종 음식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그 남편들을 징계한다.
초보적인 농경으로 생계의 일부를 충당하는 촌락 사회에서는 수렵을 하는 밴드 사회보다 전쟁을 자주 일으키고 남성 지배도 훨씬 극단적이다.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사이 국경 지대에 사는 야노마미족의 사례를 통해 그러한 대조를 예시해 보겠다. 야노마미의 소년들은 이른 나이에 전쟁 훈련을 받기 시작한다. 인류학자 자크 리조(Jacques Lizot)에 따르면, 작은 소년들이 서로 싸울 때 그 엄마들은 한 방 맞으면 맞받아서 똑같이 한 방 때리라고 명한다. 아이가 어쩌다가 얻어맞아 쓰러져도 엄마는 멀리서 <맞고만 있지 말고 너도 때려, 어서!>라도 소리를 친다. 리조는 어떤 아이가 다른 아이를 이빨로 무는 것을 보았다. 물린 아이의 엄마는 달려와서 다들의 울음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상처를 입힌 아이의 손을 자기 아들의 입에다가 집어넣고는 말했다. <이제 네가 물어뜯어!> 어떤 아이가 자기 아들을 막대기로 때리면, 그 엄마는 <그 막대기를 아들 손에다가 쥐어주고, 필요하면 자기가 직접 그 팔을 움직인다.> 야노마미 소년들은 동물을 대상으로 잔인성을 배운다. 리조는 몇몇 소년들이 상처 입은 원숭이를 둘러싸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그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상처를 후비고 뾰족한 막대기로 눈을 찔렀다. 원숭이가 서서히 죽어가면서 <뒤틀리고 경련을 일으키는 모습 하나하나는 소년들을 자극하고 웃음을 자아낸다.> 그렇게 자라난 소년들은 어른이 되어 전쟁터에서도 적을 그와 똑같이 취급한다. 어떤 싸움에서는 공격하는 쪽에서 한 남자를 상처 입혔는데, 그 포로는 물에 뛰어들어 도망치려고 했다. 리조에 따르면 그 공격자들은 그 뒤를 쫓아 물에 함께 뛰어들어 물가로 끌어올렸다. 그러더니 화살촉으로 살을 찢고, 그 뺨을 막대기로 뚫고 활 끝으로 눈을 후벼 팠다.
야노마미족이 좋아하는 전투 형태는 새벽에 갑자기 습격하는 것이다. 어둠이 깔려 있는 동안 공격하는 쪽에서는 적 마을의 통로 하나를 찍어서 자리를 잡고 동이 틀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사람을 노린다. 남자는 최대한으로 죽이고 여자들은 포로로 잡아간다. 그리고 마을 전체가 발칵 뒤집히기 전에 그곳을 유유히 떠난다. 또 어떤 경우에는 마을에 한껏 가까이 다가가서 반격이 나오기 전에 화살을 소나기처럼 퍼붓는다. 한 가지 치명적인 공격 형태는 명백하게 친선을 목적으로 손님이 마을을 방문할 때 벌어진다. 일단 손님이 자리에 앉아 무기를 내려놓으면 그 주인은 그를 공격한다. 또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마음을 푹 놓고 있던 주인은 친구로 여기던 손님에게 어이없이 당하는 것이다. 습격, 반격, 매복 등으로 희생되는 야노마미인의 숫자는 상당히 많다. 성인 남자의 사망 가운데 33% 정도가 무장한 전쟁에서 일어나는 것인데, 이는 일 년에 10만 명 가운데 166명이 사망하는 꼴이다.
이렇듯 격렬한 전쟁 형태를 유지하는 동안 야노마미 남녀 사이에는 현저하게 위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관계가 형성된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일부다처제적이다. 잘 나가는 남자는 대개 한 명 이상의 아내를 두고, 어떤 남자는 한꺼번에 6명까지 두기도 한다. 남편이 죽을 경우에 여자는 때때로 그 형제를 두 번째 남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남편은 아내가 고부고분하지 않을 때, 특히 간통을 했을 때 구타한다. 집안에서 말다툼을 할 때, 남편들은 아내의 귀에 구멍을 뚫어 장식한 나무줄기를 홱 잡아당긴다. 인류학자 나폴레옹 샤농(Napoleon Chagnon)은 남편이 가혹한 폭력을 행사하는 몇 가지 사례를 수집했다. 아내의 귀를 잘라낸 남편, 아이의 팔을 잘라낸 남편, 불로 달군 막대기나 도끼를 휘두르는 남편, 갈고리 달린 화살을 다리에 쏘고 그러다가 실수로 위를 뚫은 남편........
야노마미 남자들은 자기 딸이 아직 어린아이일 때 사윗감을 고른다. 그러나 실제 약혼은 바뀔 수도 있고 한 여자를 두고 라이벌 구혼자들끼리 겨루기도 한다. 남편이 되고자 하는 두 남자가 한 소년의 팔을 한쪽씩 붙잡고 반대 방향으로 끌고 가고 그러는 사이에 여자아이는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는 장면을 리조와 주디스 샤피로(Judith Shapiro)는 각각 따로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야노마미족이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이고 가장 지독한 남성 우월주의자들은 아니다. 그런 악명의 혐의는 파푸아 뉴기니아 고원에 있는 촌락 사회들에서 발견된다. 그들은 나마(Nama)라고 하는 남성 입문 의례를 거행하는데, 거기에서 남자들은 용감한 전사가 되는 것과 동시에 여자를 지배하는 것을 훈련받는다. 의례가 행해지는 집 안에는 어떤 여자도 들어갈 수 없는데, 나마 남자들은 그 안에 신성한 피리를 보관하고 있다. 그 피리 소리는 여자와 아이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그 소리를 내는 것이 육식을 하는 초자연적 새가 아니라 자기 아버지와 형제들이라는 사실은 남자 입문자들만 배우게 된다. 그들은 그 비밀을 우연히 알게 된 여자나 어린아이들을 죽여버리기로 맹세한다. 그들은 여자와 접촉하면 자기가 더러워진다고 믿기 때문에 입문자들은 주기적으로 억지로 코피를 흘리고 구토를 함으로써 그 오염을 씻어낸다. 그들에게는 신부가 하나 주어지는데, 그들은 어른으로 나타난다. 그들은 그 여자의 넓적다리에 화살을 쏨으로써 <자기의 막강한 힘을 과시한다.> 여자들은 마당에서 일한다. 돼지를 기르고 온갖 더러운 일들을 도맡아 한다. 반면 남자들은 둘러서서 잡담을 나누고 연설을 하며 물감, 깃털, 조개 껍질 등으로 장식을 한다. 시드니 대학의 대릴 페일(Daryl Feil)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간음을 한 여자에게는 가혹한 벌을 내린다. 불타는 막대기로 성기를 찌르거나 남편에게 죽임을 당한다. 또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경솔하게 말을 하거나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주제넘게 나서서 말을 했다가는 채찍으로 얻어맞았다. 그리고 부부간에 말싸움이 벌어지면 심하게 구타당했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다룰 때 결코 약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남자들은 특별한 사건이나 이유 없이도 여자들을 때린다. 그것은 일상의 자연스런 흐름 가운데 한 부분이다. 의례와 신화에서 그것은 세상사의 핵심으로 묘사된다.”
가장 지독한 이들은 파푸아 뉴기니아 동부 고원에 사는 삼비아인들이다. 정액과 동성애에 대한 그들의 집착에 대해서는 몇 페이지 전에 언급했다. 거기에서 남자들은 자기네들의 신성한 클럽 하우스에 여자들이 접근하는 것을 막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자들의 숨결과 성기 냄새를 어찌나 두려워하는지, 마을 전체를 남녀 구역으로 나누어 놓고 다니는 길까지도 완전히 분리시킨다. 삼비아 남자들은 아내에게 말과 주먹으로 공격하며 마치 적이나 반역자가 되는 양 하찮게 취급한다. 많은 여성들에게 자살만이 유일한 탈출구였다. 삼비아 남자들 앞에는 신체적인 위험이 겹겹이 놓여 있다. 매복 습격을 당할 수도 있고, 전쟁에서 칼에 맞아 쓰러질 수도 있으며 마당에서 도끼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 그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어는 일생 내내 신체적 힘과 스태미너를 기르고 남근 지배를 확실하게 정립하는 것이다. 여성은 그 일차적인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전쟁은 <전면이었고 살벌했으며 영속적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방어 울타리로 보호를 받기는 하지만, 워낙 습격과 반격이 잦다 보니 남자들은 식사를 할 때마다 자기 어깨너머로 감시를 해야 하고, 아침에 집 바깥에 나가 소변을 볼 때마다 어디서 화살이 날아올까 불안에 떨어야 한다. 베나 베나족(Bena Bena)에서도 습격이 너무나 빈번해서 이빨까지 무장한 남자들이 아침에 울타리를 나서는 여자들을 삼엄하게 경호하고 그들이 밭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동안 내내 지키고 서 있다. 그 집단에서 살해로 희생된 숫자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에 대한 신빙성 있는 자료는 없다. 아마도 야노마미족 보다는 훨씬 많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구 2백 명인 마을 전체가 이따금씩 싹쓸이되었기 때문이다. 뉴기니아 고원의 다른 지역에서 나온 숫자들을 적용한다면, 삼비아의 살인율은 1년에 10만 명당 5백 명이었다고 주장되는데, 이는 쿵산족보다 17배나 많은 숫자이다.
여기에서 그러한 사례들을 근거로 우리는 전쟁이 - 적어도 밴드 및 촌락 사회에서는 - 남녀 위계의 변이들을 예측하고 이해하는데 핵심 변수라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만족스러운 느낌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대답을 또 하나의 매우 중요한 질문을 잉태하기 때문이다. 만일 전쟁이 밴드 및 촌락 사회의 성차별을 설명한다면, 전쟁 그 자체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사람들은 왜 전쟁을 하는가
전쟁에 대해 설명하면서 선천적인 공격성을 들먹이는 이론은 내가 보기에 성차별을 선천적인 유전자로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설득력이 없다. 성차별과 전쟁이 어느 정도라도 존재하기 위해서는, 선천적인 공격 능력이 분명 인간 본성의 일부이어야 한다. 그러나 문화적 선택은 그러한 원초적인 능력을 촉진 또는 억제하고, 그것이 어느 특정한 문화적 표현으로 나타나도록 채널을 만드는 능력을 발휘한다(만일 그렇지 않다면, 쿵산족은 평화와 평등을 지향하는 유전자를 가졌고, 삼비아인들은 전쟁과 불평등을 지향하는 유전자를 가졌다고 말해야 할까?).
밴드 및 촌락 사회에서 전쟁을 일으키는 이유는 간단히 설명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음식 공급의 원천이 되는 흙, 숲, 사냥감을 둘러싸고 경쟁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원들은 고갈되거나 인구 증가로 인해 또는 그 두 가지가 겹쳐서 부족해진다. 그때 지역 집단들은 인구 증가율을 줄이거나 아니면 음식 소비를 줄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산업 사회적인 피임 기구나 중절 수술 같은 것이 없는 상황에서 인구를 줄인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리고 음식 소비의 질과 양을 줄인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성원들의 건강과 원기를 떨어뜨려 영양 부족, 굶주림, 질병 등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다.
이러한 대안들에 직면한 밴드 및 촌락 사회에게 전쟁은 매혹적인 해결책으로 다가온다. 어떤 집단이 그 이웃 집단을 내몰거나 그들을 복속시키면, 땅, 나무, 흙, 물고기, 짐승 등의 자원이 더 많이 승자에게 돌아올 것이다. 밴드 및 촌락 사회에서는 전쟁으로 인해 양쪽 모두 멸족하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에, 각 집단들은 이웃의 인구 밀도를 강제로 줄임으로써 자기들의 생활 여건을 개선시키는 기회를 얻기 위해 전쟁의 치명적인 위험을 합리적으로 수용한다.
파푸아 뉴기니아 서부 고원의 마에 엥가족(Mae Enga)의 전쟁을 연구한 머빈 메지트(Mervyn Meggitt)에 따르면, 전쟁에서 공격자들의 75% 정도는 적의 땅을 상당한 정도 획득하는 데 성공한다. <전쟁을 먼저 일으키는 것이 보통 공격자들에게 그만한 대가를 가져다준다면, 대체로 마에인들이 전쟁을 인간의 목숨을 희생시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겼다는 것은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메지트의 말이다. 인류학자 캐롤(Carol)과 멜빈 엠버(Melvyn Ember)는 186개 사회를 대표적인 표본으로 삼아 자세하게 연구한 결과, 산업 사회 이전에는 돌발적인(만성적이 아니라) 식량 부족의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 그리고 승자는 패자로부터 거의 언제나 얼마의 자원을 빼앗아 간다는 것을 밝혀냈다. 가뭄, 홍수, 폭풍, 살인적 추위, 벌레의 습격 등으로 인한 식량 생산의 차질, 그 빈번하면서도 예측 불가능한 사태를 미리 알고 거기에 맞춰 인구 수준을 조절하기는 대단히 어렸웠다. 그런데 엠버 부부는 이것을 가지고 전쟁의 유행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인류학에 알려진 사회는 대부분 전쟁을 치렀다. 즉 영토 단위들(밴드, 마을, 그리고 그것들의 집합체들) 사이의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 전쟁은 아마도 현대 사회에서 보다 훨씬 빈번하게 일어났을 것이다. 평화 조약이 맺어지기 전까지 우리가 본 사회들 가운데 거의 75%가 적어도 2년에 한 번씩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단순하게 이웃 집단을 격퇴시키고 그 자원을 취하는 것만으로는 자원에 맞추어 인구의 균형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여자의 출산력은 워낙 커서 비록 습격을 통해 영토의 인구 밀도를 반으로 줄인다 해도 25년만 아무 제약없이 자손을 번식시키면 인구 밀도는 옛날 수준으로 되돌아가 버린다. 따라서 전쟁을 치른다고 해서 절제, 수유의 연장, 중절, 유아 살해 같은 값비싼 대가를 치름으로써 인구를 조절해야 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정반대이다. 인구학적 효과를 가장 효과적으로 기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값비싼 관행 -여아 살해-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늘이는 것이다.
전쟁과 그 남성 중심적인 편견이 없으면 두드러진 남아 선호 관념도 없을 것이고, 유아 살해의 남녀 성비도 비슷해질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예비 전사들의 수를 최대화하는 쪽에 프리미엄을 준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남아 선호 관념이 생기고 직접 간접의 여아 살해 비율이 높아진다. 그래서 많은 밴드 및 마을 사회에서 전쟁의 가장 커다란 인구 조절 결과는 습격의 단기적 효과가 아니라, 여아 살해 및 여자에 대한 전반적인 학대의 장기적인 효과에서 비롯된다. 왜냐하면 인구 성장의 조절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남자의 숫자가 아니라-일부다처제라면 하나 혹은 둘로 족하다-여자의 숫자이기 때문이다.
윌리엄 디바엘(William Divael)과 내가 112개 사회를 표본으로 연구한 바에 의하면 전쟁이 직접 간접의 여아 살해율을 높인다는 주장이 일리가 있다. 식민 정부의 지배를 받기 전까지 0세에서 14세에 이르는 연령 집단에서 남녀 성비가 127 대 100이었던 것을 우리는 발견했다. 그런데 전쟁이 억제된 이후 그 집단의 성비는 104 대 100으로 현대 사회의 보통 수준이 되었다.
다시 말해 밴드 및 촌락 사회에서의 전쟁은 단순히 인구압에서 발생한 공포와 좌절의 배출구가 아니다. 자원에 대한 인구 밀도를 낮추고 출산율을 떨어뜨림으로써 전쟁은 그 자체로 지역적인 인구압의 상승을 완화시키거나 뒤집는 작용을 한다. 그리고 밴드 및 촌락 사회의 진화 과정에서 전쟁이 빈번하게 선택되어 온 것은 바로 그렇듯 체계적인 생태학적이고 인구학적인 이점 때문이지, 유전적 명령때문은 아니다.
나의 의도는 전쟁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경우 벌어질 다른 몇 가지 사태보다 덜 혹평하는 것뿐이다. 밴드 및 촌락 사회에서 행해지는 전쟁은 인구압에 대처하기 위한 낭비적이고 혹독한 방법이었다. 그러나 효과적인 피임이나 의학적 중절이 불가능했던 상황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낳을 경우 닥치는 일들 역시 낭비적이고 혹독했다. 그 일들이란 영양 결핍, 기아, 질병, 모두의 짧고 비참한 생애다. 물론 효과의 바람직한 균형은 패자보다는 승자에게 훨씬 많이 이뤄진다. 그리고 갈등이 너무 일상화되고 무모해서 어느 누구도 승자가 아니고, 영양 결핍으로 죽는 것보다 전쟁으로 죽는 수가 더 많을 때는 그러한 균형은 어느 쪽에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시스템도 안전장치는 아니다.
여기서 잠깐 멈추어 몇 가지 개념적인 문제를 더 생각해 보자.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인구압이라는 것이 정태적인 조건이 아니라,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투입하는 노력과 그 산출 결과 사이에서 점점 불리한 균형이 발전하는 과정이라는 점이다. 그 과정은 사람들이 쏟아부은 노력에 비해 돌아오는 결과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을 만나자마자 시작된다. 예를 들어 사냥꾼들이 예전에 잡던 만큼의 동물을 잡는데 더 많은 시간과 고생이 요구되는 때이다. 만일 사람들이 그 과정을 늦추거나 역전시키지 않으면, 그 과정은 결국 동식물의 멸종이나 다른 재생 불가능한 자원의 고갈로 인해 그 서식처가 영원히 퇴화되는 단계로까지 전개된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다른 생계 수단을 찾지 않을 수 없다.
또 하나의 쟁점은 기아와 영양 결핍의 신호가 어떻게 인구압과 관련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들 사이에 일 대 일의 상관관계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더 열심히 일하고 아이들을 적게 양육함으로써 밴드 및 촌락 사회의 어른들은 기아와 영양 결핍의 임상적인 신호를 보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 인구압의 유일한 지표는 양육하는 아이의 수를 제한하는 데 사용되는 수단이다. 여기에는 한 가지 가정이 깔려 있다. 유아 살해, 중절, 금욕 등의 값비싼 관행들은 집단이 그 자원의 한계에 웬만큼 압박을 가하지 않는 한 채택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사람들이 유아 살해, 중절, 오랜 금욕 등을 시행하면서도 영양 결핍과 기아의 징후가 뚜렷하다면, 그 집단의 인구압은 더욱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끝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인구압과 사회의 전반적인 인구 밀도 사이의 관계이다. 사회학자 그레고리 리비트는 온갖 유형의 사회 133개 표본을 근거로 정착지의 크기와 전쟁 사이에 높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했다. 보통 우리는 정착의 규모가 크고 평방 마일당 인구가 많을수록 필수 자원에 대한 압박도 항상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다. 그러한 관계는 비슷한 생계 양식을 가진 사회끼리 비교하는 경우에 한해서 타당하다. 네덜란드의 인구 밀도는 평방 마일당 900명이다. 그렇지만 인구 밀도가 40명인 자이레, 또는 1명도 채 안 되는 어떤 수렵 사회에 비교해 볼 때 인구압은 오히려 더 작다. 식물을 재배하고 동물을 기르는 집단은 수렵 채취 집단보다 대체로 인구 밀도가 높다. 그러나 두 집단 모두 인구압에 시달릴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물론 어느 정도 인구밀도에서 인구압이 나타나느냐에서는 차이가 나지만 말이다.
이렇듯 복잡하기 때문에 각기 다른 사회에서 인구압이 정확하게 어느 정도 되는지를 제시할 수는 없다. 대충 근사치면 족할 것이다. 그러나 긴장과 스트레스의 누적적인 표시를 통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밴드 및 촌락 사회에서 인구와 식량 자원 사이의 균형을 취하는 데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쟁은 그 대가의 일부이다. 이러한 설명은 지금 논의 중인 사례들에 얼마나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가?
고기, 열매, 그리고 식인 풍습
앞서 내가 정의한 바대로라면 쿵산족은 인구압에 노출될 가능성이 가장 적을 듯하다. 그들은 생계의 상당 부분을 단백질과 지방질이 풍부한 몽공고 열매에서 충당하는데, 그 나무는 황량항 야생에서 숲을 이루어 자란다. 몽공고 나무는 너무 풍성해서 땅에 떨어진 열매조차 일 년 내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야생의 열매들을 다양하게 채집하는 것을 벌레의 침입이나 식물의 질병이나 고약한 날씨로 인해 도대체가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한때 풍성했던 열매들이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영구 정착지가 없는 쿵족은 숲에서 숲으로 우물에서 우물로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식물성 주식을 보완하는 큰 짐승을 사냥한다. 야생 멧돼지나 영양이 그 서식지에서 가장 흔한 동물이다. 1년 중 가장 생산이 적은 두 달 동안은 쿵족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적게 먹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대부분 기간 동안에는 비록 칼로리에서는 좀 부족하지만 식사는 적절하게 균형 잡혀 있다. 게다가 그들은 가족의 크기를 조절하기 위해서 주로 수유기간을 연장하는 방법을 쓰지, 금욕, 중절, 유아 살해 같은 더 값비싼 대안을 피한다(단 쌍둥이일 경우에는 유아 살해를 행한다). 사실상 전쟁의 부재, 분리되어 있지만 평등한 성 역할, 그리고 음식 결핍이나 그 외에 인구압의 증상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것이 그 배경이다.
칼라하리 사막에서는 인구압으로 인한 불만이 전쟁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미 인정했듯이 칼라하리 사막은 결코 에덴동산은 아니다. 사실 하나의 먹구름이 얼핏 행복해 보이는 쿵족 위를 드리우고 있다. 쿵족은 유아 살해는 행하지 않지만, 인구 기록을 보면 어린아이의 약 절반 정도가 어른이 되기 전에 죽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희생은 영양학적인 요인으로 설명해야 한다. 아마도 문제는 앞서 언급했듯이 만 4살까지 계속 젖을 먹이는 데 있지 않을까 한다. 모유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칼로리 결핍은 물론 어린 나이에 철분 부족으로 인한 빈혈로 이어질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쿵족의 수유는 처음 보기보다는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퀸스랜드 원주민처럼 호전적인 수렵인들과 비교해 볼 때 쿵족은 정말로 그 정도로 혹독한 압박을 받는 것인가?
퀸스랜드 원주민들도 쿵족처럼 몇 년 동안 아이들에게 젖을 준다. 그러나 거기에 더하여 여자들은 수유 기간 동안 성관계를 갖지 않는다. 그 결과 아내를 여럿 두고 있는 남자가 아니라면 남자나 여자나 한꺼번에 몇 달씩 성적으로 금욕해야만 했던 것이다. 쿵족과 대조적으로 그들은 또한 직접적인 유아 살해, 특히 여아 살해를 자행했다. 일부다처제의 관행과 함께 여아 살해는 젊은 남자들의 만혼 내지 독신을 낳았다. 게다가 퀸스랜드 원주민들은 적절한 식사를 조달하는 데서 쿵족보다 더 어려움을 겪은 듯하다. 1년 중 어떤 기간 동안에 그들은 짚으로 만든 영구 오두막에서 4, 50명씩 무리를 지어 마치 마을처럼 살았다. 그들은 또한 칼로리의 대부분을 열매 - 몽고가 아니라 야생 호도나 알몬드 같은 것- 에 의존했는데, 열매로 주식을 충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확실한 것인가에 대해 앞서 언급한 내용은 여기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러나 그들의 우림 서식지에는 쿵족이 살아가는 탁 트인 초원에 비해 동물 사냥감이 더 적다. 아마도 너무 사냥을 많이 해서 그런 모양이다. 그들은 뱀, 딱정벌레 유충, 쥐, 나무, 캥거루, 물고기 등을 먹기는 하지만, 그들은 고기, 특히 지방질이 풍부한 고기는 전혀 충분히 먹지 못하는 듯하다. 이런 문제는 남자보다는 여자에게 더 심각한 문제를 유발한다. 왜냐하면 앞서 언급했듯이 남자들이 사냥에서 돌아와 고기를 분배할 때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배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퀸스랜드 원주민들에게 인구압을 나타내는 가장 뚜렷한 증세는 적의 여자와 어린아이들을 잡아먹는 것이다. 사람은 동물성 지방질과 단백질을 얻는데 가장 값비싸고 위험한 원천이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냥으로 잡는 큰 동물이나 사육하는 짐승에게 단백질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사회에서는 적을 잡아먹는 것을 회피해 왔다. 비록 전쟁의 부산물로 시체를 그렇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큰 짐승이 별달리 구해지지 않는 상황에서는 식인이 거의 뿌리칠 수 없는 대안으로 다가온다. 사람은 단순히 커다란 동물이 아니다. 사육되는 대부분의 동물처럼 우리 몸에는 야생 동물보다 지방질이 훨씬 많다. 사실 퀸스랜드 원주민들이 콩팥 부근의 지방질을 가장 귀하게 여긴다거나, 여자나 어린아이를 노골적으로 선호하는 것은 성인 남자보다 훨씬 풍부한 지방질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다. 식인 풍습에 대해서는 뒤에 가서 따로 자세하게 논의하겠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풀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동물성 음식을 적게 먹는 것이 보통 인구압의 증상이 되고 이웃 집단을 공격하는 원인이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지방질 고기에 대하여
사람은 잡식성이라서 식물과 동물을 다 먹는다. 그러나 대부분의 우리 영장류 친척뿐만 아니라 사실상 모든 인간 집단이 고기나 그 밖에 다른 동물 음식들을 생산하고 교환하고 소비하는 데 호들갑을 떤다(인도의 브라만이나 자이나교도들도 우유나 버터를 식물성 음식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긴다). 그렇다고 해서 사자나 독수리 등 진짜 잡식성 동물들이 고기에 혈안이 되는 것처럼, 우리도 유전자 프로그램에 의해 동물성 음식을 찾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 인류의 특유한 생리와 소화 과정이 우리로 하여금 고기를 더 선호하는 것을 배우기 쉽도록 성향을 만들었다고 보는 편이 더 타당하다. 우리와 영장류들이 고기를 유난히 밝히는 것은 그것의 영양가가 탁월하기 때문이다.
고기들은 단백질의 구성 인자인 필수 아미노산이 어떤 식물보다도 집중적으로 함유되어 있다. 그 단백질은 몸의 구성 인자(보디빌딩)이면서 동시에 몸을 조절하는 기능을 갖는다. 게다가 고기에는 비타민 A와E, 그리고 B-12를 포함한 비타민 B 전체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 그런 성분들은 식물에서는 전혀 얻을 수가 없다. 그 밖의 모든 비타민과 필수 아미노산 역시 고기 속에 들어 있다. 아마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고기에 지방질이 풍부하다는 점일 텐데, 비타민 A, D, E의 흡수와 전달에 필수적인 이 성분은 식물에서는 얻을 수 없다.
고기를 밝히고 기기에 흥분하는 것은, 산업 사회 이전 사람들이 고급 단백질과 지방질이 하나의 패키지로 가득한 음식에서 그만큼 각별한 영양학적인 이점을 얻었음을 반영한다. 배가 고픈 사람의 몸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무슨 음식을 먹든지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고기가 조금밖에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단백질은 보디빌딩과 신체 조절 기능으로서가 아니라 에너지로 사용된다. 고기 속에 있는 단백질을 <아끼는> 한 가지 방법은 칼로리가 풍부한 녹말 음식과 함께 섞어서 먹는 것이다. 예를 들어 스테이크와 감자, 치킨과 쌀, 스파게티와 고기 완자, 돼지고기와 덤플링을 함께 먹는 것이다. 야노마미족도 마찬가지로 고기와 열대 과일을 조합하여 단백질을 아꼈다. 언젠가 케네스 굿(Kenneth Good)이 내게 말하기를, 야노마미족은 고기 없이는 열대 과일을 먹을지언정, 열대 과일 없이는 절대로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단백질을 절약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지방질이 풍부한 고기를 먹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방에는 그램당 칼로리가 녹말 음식보다 두 배나 더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지방질 많은 고기가(또는 목축민들에게는 고지방질 우유가) 산업 사회 이전의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보디빌딩과 신체 조절 기능을 위한 단백질 보존의 문제와는 상관 없이, 지방질의 근원으로서 고기가 가져다주는 이점이 또 하나 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배고픈 시기를 일정하게 경험하고 음식 조달이 들쭉날쭉한 사회에서는, 사정이 괜찮을 때 칼로리를 몸의 지방질로 전환시켜 놓음으로써 혹독한 시기를 대비하는 것이 매우 긴요하다. 그런데 만일 지방질로 전환해야 할 음식이 녹말 음식이라면, 그 칼로리 가치의 거의 4분의 1은 전환과 소화 과정에서 그냥 버려지고 만다. 그러나 저장되는 지방질의 원천이 지방질 그 자체라면, 소화된 칼로리의 3%만이 소실될 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체중을 줄이고 콜레스테롤과 포화지방산을 낮추려고 온갖 애를 쓰는 상황에서는, 고기라는 것이 그토록 분투해서 획득할 만한 자원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산업 사회 이전의 사람들에게는 콜레스테롤과 포화지방산을 너무 많이 섭취할 위험이 전혀 없었으며, 동맥경화증으로 요절하는 일도 없었다. 그들이 사냥한 동물들이라고 해봐야 사료를 잔뜩 먹여 살 찌운 요즘 동물에 비하면 훨씬 말랐으며, 고기가 전혀 나오지 않는 식사라는 것이 예외가 아니라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현대 국가들이 자동차 가솔린을 얻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상기해 보라. 밴드 및 촌락 사회에서 고기를 확보하고 저장해 두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뭐 그리 놀라운가?
이제 야노마미족의 인구압 이야기를 계속해 보자.
사냥감 전쟁?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을 충분히 확보하는 문제는 야노마미족의 격렬한 전쟁과 남성 우월주의 콤플렉스 밑에 깔려 있는 원인으로 보인다. 쿵족이나 퀸스랜드인들과 달리 야노마미족은 원시적인 형태로나마 농사를 짓는다. 그들은 한꺼번에 몇 에이커의 숲을 태워 개간한 다음 니트로겐이 풍부한 그 잿더미에 바나나 같은 열대 과일을 심는다. 야자수처럼 단백질과 기름이 풍부한 야생 식물은 숲에서 저절로 자라나기는 하지만, 그것은 간헐적으로 또는 특정한 계절에만 얻을 수 있는 것이어서 고기를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효과가 떨어진다.
흔히 아마존 지대에는 커다란 사냥감들이 많이 서식하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탁 트인 초원보다는 더 희귀하다. 정글에 많은 동물종은 곤충과 지렁이다. 원주민들은 특정한 계절이 되거나 다른 동물 고기들이 마땅히 주어지지 않을 때 그 벌레들을 잡아먹는다. 후천적으로 획득한 입맛에 대한 논의에서 지적했듯이 밴드 및 촌락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커다란 동물을 선호하는 것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벌레들을 잡아서 커다란 동물과 똑같은 음식 가치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야노마미족은 영양 상태가 그다지 나쁘지 않은데도 여아 살해를 수없이 자행하는데, 그 결과 0세에서 14세까지의 남녀 성비는 130대 100이다. 이는 사냥에 들인 노력보다 돌아오는 대가가 점점 줄어드는 상황을 완화시키거나 역전시키려는 시도인 듯 보이고, 그들이 드넓은 정글을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겪는 극심한 인구압을 반영하는 듯하다.
야노마미 마을이 점점 커지면서 사냥감은 더욱더 먼 지역에서 찾아야 하고, 1인당 소비하는 고기도 크게 줄어든다. 마을 간에 습격이 일어나면 인구를 분산시킬 수 있고 그럼으로써 그러한 감소를 완화하거나 일시적으로 뒤집을 수 있다.
10년 이상 야노마미족을 연구한 케네스 굿은 그들이 사실상 고기를 일정하게 확보하는 문제에 사로잡혀 있다고 본다. 그들은 <고기에 대한 굶주림>에도 불구하고 평균 일주일에 한두 번 고기를 먹을 뿐이다. 게다가 마을 근처에서는 사냥의 효과가 급격히 떨어지고, 따라서 먼 거리를 오가며 사냥하는 것이 필요해져 마을 전체가 장기 여행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만일 그러한 장기간의 원거리 사냥 여행을 하지 않았다면, 마을 근처의 사냥감들은 금방 완전히 바닥나고 말았을 것이다.
몇몇 아마존 연구가들은 사냥감의 고갈이 야노마미족 전쟁의 원인이라는 이론을 반박해 왔다. 그들은 그 이유로 야노마미족에게서 영양 부족의 임상적 징후를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내세운다. 또한 인구가 35명인 어느 한 마을의 경우, 하루 1인당 단백질 섭취량이 성인의 경우 적어도 75그램으로 이는 식량 및 농업 기구의 권장 기준보다 훨씬 높다는 점도 지적한다. 그리고 단백질을 적게 섭취하는 마을이나 많이 섭취하는 마을이나 전쟁을 벌이는 빈도는 마찬가지라는 점도 제시한다.
그러나 굿의 연구가 보여주듯, 하루에 평균 얼마만큼의 고기를 확보하느냐를 문제로 삼는 것은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사냥하는 동물의 크기와 수가 워낙 들쭉날쭉하기 때문에 일 년 중 대부분은 확보하는 고기가 매우 적거나 전혀 없다시피 한다. 그리고 앞서 미리 경고해 두었지만 영양 부족의 임상적 징후가 없다고 해서 인구압이 없다고 간주할 수는 없다. 1인당 고기 소비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똑같이 전쟁을 치렀다는 사실 역시 그러한 압력이 없었다는 것을 확증시키지는 못한다. 성장과 자원 고갈의 측면에서 각기 다른 단계에 있는 여러 마을들은 필연적으로 전쟁을 통해 서로 대적할 수밖에 없고, 인구는 많으면서 잘 먹지 못하는 집단은 인구가 적으면서 더 잘 먹는 이웃 집단을 공격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다.
사냥감 전쟁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 나폴레옹 샤농은 야노마미족 남자들이 종족 번식을 최대화하기 위해 전쟁을 벌인다는 이론을 내놓았다. 전사들은 여자들을 잡아다가 아내로 삼을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 용맹을 떨침으로써 전사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겁을 주어 조혼을 하고, 더 많은 아내를 둠으로써 더 많은 자식을 낳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는 결함이 있다. 종족 번식이 과연 문화적 선택의 중재자인가에 대한 앞서의 문제 제기는 별도로 하더라도, 야노마미족의 엄청난 여아 살해는 종족 번식을 최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화하는 데 지극히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야노마미 남자들이 여자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남자보다 여자를 더 많이 기르는 것이리라. 그런데 실제로는 왜 정반대인가?
그 까닭은 밀림에서 고생하며 돌아다니는 수고에 비해 그 대가로 얻는 적절한 고기의 양이 이미 감소하기 시작하는 시점을 지났기 때문이고, 따라서 인구 성장을 제한해야 하는 압박을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압박이 그들을 그토록 호전적으로 만들었을까? 그리고 그 호전성 때문에 그들이 그러한 남성 우월주의자가 되었을까? 이 논리를 훨씬 호전적이고 성차별적인 파푸아인들에게 적용시켜 보자.
배고픈 파푸아인 등
무엇보다도 사냥에서 얻는 대가가 줄어드는 데서 호전적인 파푸아인들이 받은 스트레스는 야노마미인보다는 덜 했으리라. 왜냐하면 그들은 감자를 재배해서 먹고 돼지를 사육해서 지방질을 섭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고원에 사는 집단의 인구 밀도는 아마존의 어떤 마을보다도 높다(아마존이 1평방 마일당 1명이 채 안 되는 반면, 파푸아는 30명이나 된다). 그로 인해 음식 자원과 동물성 지방 및 단백질 사이의 관계는 야노마미족보다 더 걱정스러운 상태가 된다. 게다가 파푸아인들은 사냥의 대가가 줄어드는 상황에 직면했을 뿐만 아니라, 기본 자원들의 심각한 고갈에 맞서 싸워야 했다. 야노마미인들처럼 파푸아인들도 나무숲을 태운 재를 자양분으로 농작물을 재배했다. 태울 나무가 없는 한 그들은 농작물을 재배할 수도, 또 그 농작물로 돼지를 키울 수도 없다(적어도 그들이 훨씬 집약적이고 복합적인 형태로 농사를 바꾸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 농경 방식에서는 한 번의 추수가 끝나고 그 다음번 추수 때까지의 공백을 충분히 둠으로써 나무들이 떨어지고 타버린 후에 다시 서서히 소생하도록 기다려 주어야 한다. 그러나 인구 밀도가 너무 높은 그들은 그럴만한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 결과 광범위한 숲이 평지로 변했다. 그리고 그들이 치르는 격렬한 전쟁의 일차적인 목표는 경작하기 좋은 땅을 강탈하는 데 있었음이 분명하다. 바로 여기에 단백질-칼로리의 결핍 징후가 농후하다. 어린아이, 여자, 그리고 노인들은 특히 더 영양이 부족했다. 그들은 섬유질에다가 단백질이 적은 고구마를 주로 먹으면서 아주 가끔씩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출산을 제한하기 위해 아주 값비싼 방법을 쓰고 있었다. 가후카-가마족에서는 한 가족에 아이가 평균 한 명밖에 없었는데, 남자들은 여자들이 임신할 때마다 태아를 지우든지 내어난 아이를 죽일 것으로 의당 믿고 있었다. 그 옆에 있는 베나 베나족에서는 여아 살해를 행했는데, 그에 대해 그들은 여자아이들이 전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붙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동부 고원에 사는 많은 집단이 일 년 중 상당한 기간을 남녀 간의 성교를 금지하면서 남자들의 의례중에 동성애를 강요하는 것으로 대체했던 사실 또한 떠올려 보자.
파푸아인들은 고구마와 사육 돼지에서 얻은 것만큼을, 한때 숲에 서식했던 야생 동식물에서는 잃고 있었다. 그래서 비록 돼지를 사육하고 있었으면서도 동물 고기의 꾸준한 확보에 야노마미인들보다 훨씬 더 집착했던 것이다. 남자들은 돼지고기를 독점했기 때문에 여자와 어린아이들보다 더 잘 먹었다. 여자와 어린아이들은 고기에 대한 굶주림을 충족시키기 위해 곤충, 개구리, 쥐 등을 먹었다. 기어다니는 것은 그 어느 것도 그냥 버려지지 않았다. 산파들은 심지어 신생아의 태반까지 먹었다. 동물성 지방과 단백질에 어찌나 탐닉했던지 포족(Fore)의 여자들은 죽은 친척들의 썩은 시체 일부를 파내어 그 살점을 발라 먹었다. 그들은 또한 심지어 구더기까지 먹었는데 그들 사이에서 그것은 대단히 맛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아마 그 때문에 시체를 먹기 전에 썩게 하도록 했던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옆 마을 사람들을 죽이고 그 땅을 빼앗는다는 것이 놀라운가?
전쟁과 성차별의 관계에 대해 앞서 논의한 것이 잘못 이해되고 있기 때문에, 전쟁이 많을수록 성차별도 심하다는 공식은 밴드 및 촌락 사회에서는 타당하지만, 군장 사회나 국가 사회에서는 맞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해 두고자 한다. 밴드 및 촌락 사회와 달리 군장 사회는 멀리 있는 적과 전쟁을 벌인다. 이는 여자의 지위를 악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선시킨다. 그리고 국가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남자들이 훈련을 받거나 무기를 휴대하지 않기 때문에 야노마미나 삼비아에서처럼 무시무시한 상대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장거리 전쟁이 남녀 위계질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먼저 살펴보기로 한다.
여성들이 남자들을 지배하는 곳
파푸아 뉴기니아와 야노마미족의 사회에서 여성들의 삶을 더욱 어지럽게 만드는 것은 부거제이다. 다시 말해 여자들은 결혼할 때 자기의 본가를 떠나 남편의 집으로 가서 사는 것이다. 그 때문에 여자들은 자기의 가장 가까운 친척들로부터 고립되고 결국 시집에서 잘못 대접받아도 나서서 해결해 줄 사람이 없는 것이다.
부거제 사회에서 여자들은 이중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셈이다. 왜냐하면 여자들은 대개 다른 마을로부터 오고 따라서 자기 남편의 가족뿐만 아니라 동네의 여자들끼리도 서로가 상대적으로 낯설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남자들은 모두 어릴 때부터 함께 살아온 터라 서로가 매우 친근한 사이이다. 그러한 마을에서 부거제 관행은 전쟁의 영향으로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전쟁에서의 승리는 전투 팀을 어떻게 짜느냐에 좌우되고, 그 팀을 구성하는 남자들은 함께 훈련받고 서로 신뢰하며 동일한 적에 대한 적개심을 공유해야 한다. 이런 기준에 맞아떨어지는 팀을 만들기 위해 아버지, 아들, 형제, 삼촌, 친사촌 등으로 구성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그러나 결혼한 이후에도 계속 함께 지내기 위해서는 그러한 친가 쪽 남자들은 아내의 집에 가서 살지 않고 아내를 데려와 함께 살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결점이 있다. 습격에 성공하는 것은 잘 조직된 팀웍만이 아니라 전투력의 크기에도 좌우된다. 작은 마을에 사는 집단에게 전투력을 증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웃 마을과 동맹을 맺는 것이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군사적 동맹은 단일한 마을의 정치적 단위들이 더 커다랗고 더 복잡한 마을들의 연합인 군장 사회로 변형되는 과정에 있어 부분적으로는 그 원인이자, 부분적으로는 그 결과이다. 이러한 변형이 진행되면서 동맹을 맺지 않은 마을들은 멀리 밀려나고, 며칠을 여행해서 가야만 만날 수 있게 된다. 몇백 명의 남자들로 구성된 마을 연합 전투력은 이제 한 번에 몇 달씩 싸움터에 나간다. 그들은 멀리 있는 임자 없는 땅에서 사냥하고, 먼 마을과 교역을 하며 적의 창고를 습격하는 기회를 호시탐탐 노린다.
그러나 남자들이 자기 땅과 곡식과 창고를 떠나 멀리 여행하는 것은 한 가지 딜레마를 야기한다. 자기가 없는 동안 누가 그 재산을 관리할 것인가? 아내는 별로 믿을 만하지 않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다른 마을 출신인 그녀는 시집보다 친정에 더 충성할 것이기 때문이다. 남자들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여자는 아무래도 그 누이이다. 오로지 그녀만이 아버지의 땅과 재산에 공통된 이해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몇 주 내지 몇 달 동안 마을을 떠나 돌아다녀야 하는 남자들은 자기 누이들이 부거제 규칙을 따르지 않도록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매형될 사람이 처가쪽에 와서 살지 않고 누이를 데려가 살겠다고 고집을 피우면 결혼 자체를 아예 거부해 버린다. 점점 더 많은 남매들이 이 전략을 채택함에 따라 부거제는 서서히 그 반대인 모거제로 대체된다. 모거제를 몇 세대에 걸쳐 일관성 있게 따르다 보면 어머니, 자매, 딸 들이 연속성 있게 동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남편들은 아웃 사이더가 된다. 여기에서는 아내가 아니라 남편이 소외감을 느끼고, 줄곧 함께 살아온 여자들의 결속에 대응해야 한다. 따라서 모거제가 우세한 곳에서는 여성들이 가정생활의 전체를 관장하게 된다. 남편들은 영구 거주자가 아니라 방문객처럼 보이고, 이혼도 쉬워서 남자를 위해서 행해지는 것 못지않게 여자를 위해서도 쉽게 행해진다. 남자가 아내를 학대하거나 여자 쪽에서 남자에게 싫증이 나면 여자와 그의 어머니, 자매, 이모들이 모두 나서서 남자가 짐을 챙겨 본가로 돌아가도록 한다. 그리고 그가 자주 외박을 한다는 사실이 이혼을 그만큼 쉽게 만든다.
모거제가 여성의 지위에 끼치는 영향은 가정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남자들이 자기 땅을 경작하는 책임을 여자 친척들에게 넘기게 되면서, 여성들은 정치, 군사, 종교의 차원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수단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일반적 요점을 하나의 특수한 사례를 통해 밝혀 보겠다. 모거제를 행하는 이로코이 인디언들은 뉴욕 북부의 울타리 쳐진 마을에서부터 퀘벡과 일리노이까지 500명의 남자로 구성된 군대를 파견해 습격했다.
이로코이 전사들은 본거지로 돌아오면 마을의 공동주택에서 자기 아내와 아이들과 합류한다. 이러한 공동 거주는 그 아내의 외가 쪽으로 가까운 인척인 연장자 여성의 감독 아래 행해졌다. 공동주택의 여성들이 집과 들에서 행하는 노동을 조직하는 것은 바로 그 연장자 여성의 몫이었다. 그녀는 추수한 곡식을 저장하고 필요에 따라 그것을 요구하는 일을 떠맡았다. 남편들은 원정을 나가지 않을 때에는 여자가 가장인 공동주택에서 먹고 잤다. 그러나 자기 아내가 어떻게 살고 일하는 지에 대해서는 사실상 전혀 관여하지 못했다. 만일 남편이 권위를 부리거나 비협조적일 경우, 그 연장자 여성은 언제라도 담요를 싸가지고 나가라고 명령한다. 그렇게 해서 떠나가면 아이들은 그 아내나 공동주택의 다른 여자들의 손에서 길러진다.
공적 생활로 눈을 돌려보자. 이로코이족에게 정치 권력의 공식적인 정점은 여러 마을에서 선출된 남자 추장들로 구성된 연장자 회의였다. 공동주택의 연장자 여성들은 이 회의의 멤버들을 지명하고 자기들이 반대하는 어떤 남자가 참석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그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가정경제를 통제함으로써 그 회의의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공동주택의 연장자 여성들은 제안된 조치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는 저장된 음식, 조가비 벨트, 깃털 장식품, 모카신 구두, 짐승 가죽, 짐승 털 같은 것을 내주지 않을 수 있었다. 남자들이 여행중에 먹을 수 있도록 여자들이 바구니에 마른 콘과 꿀을 채워주지 않으면 남자들은 외교적인 모험에 착수할 수 없었다. 종교적인 축제도 여자들이 창고를 열어 필요한 물품을 내주지 않으면 거행될 수 없었다. 연장자 회의조차도 여자들이 일시적으로 음식을 동결해 버리면 열릴 수가 없었다. 그러면 그 모든 점들을 다 고려해 볼 때, 파푸아 뉴기니아 고원 마을에서 남성 쇼비니스트들이 여자들을 지배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로코이 여자들은 공동주택과 생산의 제반 요소들을 통제하면서도, 남자들을 모욕하고 격하시키고 착취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적인 영역에 관해서 내가 기껏 말할 수 있는 것은 여자들도 거의 남자들과 비슷하게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간접적인 수단을 통해서만 가능했다는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
모거제가 부거제의 복합적인 현상을 완전히 뒤집어놓은 것으로 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인가? 왜 그런 비대칭이 나오는가? 가부장제는 있으면서 가모장제는 왜 없는가?
내가 받아들일 수 없는 한 가지 답변은 남자들이 자기들에게 행한 것을 남자들에게 거꾸로 행하지 못하도록 여자들의 여성적인 본성이 가로막는다는 설명이다. 이런 생각은 모거제 사회에서 적의 포로를 다루는 데 여성들이 담당하는 역할을 보면 금방 반박된다. 예를 들어 브라질의 투피남바족에서는 전쟁 포로들을 고문하고 팔다리를 자르고 먹기까지 했다. 그러한 관행은 몇 가지 기능을 담고 있었다. 그것은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려는 심리전의 한가지 형태였다. 그리고 그것은 장차의 전사들이 사람에게 고통를 가하는 데 모진 마음을 먹도록 단련시키는 것이었다. 또한 그것은 가하는 데 모진 마음을 먹도록 단련시키는 것이었다. 또한 그것은 적 또한 또로를 그렇게 잔인하게 취급할 것이라는 예상을 심어줌으로써 전사들이 항복은 아예 생각지도 못하도록 만드는 장치였다. 여자들은 이러한 고문에 열심히 참여하여 묶인 포로들에게 겁을 주고 불타는 막대기로 성기를 쑤시며 그 포로가 마침내 죽어 잘라 먹을 때가 되면 환호성을 질렀다. 따라서 가모장제가 없는 것이 잔인함과 무모함에 대한 제약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에 나는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남자들이 무기와 무장한 전투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한, 여자들은 가부장제와 정반대로 남자들을 지배하고 격하시키고 착취할 수단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여자들이 상황을 역전시키지 못한 것은 남성성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 권력의 결핍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마치 전쟁이 모거제로 가는 조건을 창출했듯이, 전쟁은 또한 모거제의 연장자 여성들이 남자들을 전쟁터에서 거꾸러뜨리지 않은 채 그들을 지배하는 데에 제약을 가하기도 했다.
여성의 지위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밴드 및 촌락 사회와 평등한 군장 사회는 지배 계급 및 중앙집권화된 정부로 특징 지워지는 계층화된 군장 사회와 국가로 진화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조금 후에 이러한 변형에 대해 살펴보고 왜 그것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설명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에 수반되는 여성 지위의 변화에 대해 말해야 할 것 같다. 계층화된 사회는 계급이 없는 사회에 비해 군대가 더 크고 훨씬 더 거대한 규모로 전쟁을 벌인다. 그러나 전쟁이 여성에게 끼치는 영향은 부거제적인 밴드 및 촌락 사회에 비해 덜 직접적이고 덜 고약하다. 그 차이는 군복무라는 것이 전문 직업군인의 몫으로 된 데서 온다. 남자들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사람 죽이는 훈련을 받지 않으며 심지어 동물을 죽이는 훈련도 받지 않는다. 그 대신 대다수 남자들은 무기가 없는 농부가 되는바, 직업적인 전사들에게 위협을 느끼는 점으로는 그 아내나 아이들과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조건 밑에서 성과 성 역할의 다른 결정인자들이 부각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쟁터에서 싸울 남자들에게 더 이상 야성적인 기질이 요구되지 않게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여자들은 대부분 전쟁터에서 길러진 남편의 폭력에 대처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여자들의 지위는 다른 상황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했다.
산업 사회 이전 군장 사회와 국가 단계에서 여성에게 유리한 남녀 관계가 나타난 것은 서아프리카의 숲 지대였다. 요루바, 이보, 이그보, 다호메이족에서는 여성들이 자기 소유의 밭을 가지고 경작을 했다. 그들은 지역 시장을 쥐고 흔들었으며 교역에서 엄청난 부를 획득할 수 있었다. 서아프리카에서는 남자들이 결혼하려면 신부대를 치러야 하는데 이는 결혼 당사자들과 그 집안 식구 모두가 신부는 매우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교환이다. 실제로 여자 쪽 집안에서는 그녀의 경제적이고 출산적인 능력에 대해 보상을 받지 않으면 신부로 내주지 않았다. 사실, 서아프리카인들은 달을 많이 두면 부자라고 믿고 있었다.
남녀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이중 기준은 없었다. 설혹 남자들이 아내를 여럿 둔다 해도, 가장 나이 많은 아내와 상의하여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했다. 여자들은 장터에 제 마음대로 나다닐 수 있었는데, 거기에서 혼외정사를 많이 가졌다. 뿐만 아니라 서아프리카의 많은 군장 사회와 국가에서는 여성들 스스로가 신부대를 치르고 다른 여자들에게 장가갈 수 있었다. 다호메이족에서는 여자 남편이 자기를 위해 집을 손수 짓고 남자 짝을 한 명 배정하여 그녀를 임신시킨다. 야심 만만한 여자들은 이렇듯 몇몇 아내들을 위해 신부대를 치름으로써 지역을 통제하고 부강하게 된다.
서아프리카 여인들 역시 가정 바깥에서도 높은 지위를 획득했다. 그들은 여성 클럽과 비밀결사에 가입하고, 마을회의에 참여하며, 어떤 여자가 남자에게 학대를 받으면 힘을 모아 응징한다.
나이지리아의 이그보족에서는 여자들끼리 만나는 회의가 있어서 거기에서 자기들의 교역, 농사 또는 아내 노릇에 관련된 일들을 토론한다. 여자들의 시장 규칙을 어긴다든지 아내를 계속 학대한다는지, 또는 어떤 남자의 염소가 어떤 여자의 곡식을 먹는 경우 집단적인 보복을 각오해야만 한다. 여자들은 잘못을 저지른 남자를 한밤중에 깨워 오두막에서 두들겨 팼다. 그들은 음란한 춤을 추면서 그의 남자됨을 비웃는 노래를 불렀으며, 그가 버릇을 고채겠다고 약속할 때까지 그의 뒷마당을 변소로 사용했다. 그들은 이것을 가리켜 남자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서아프리카의 군장 사회 및 국가에서 최고의 규칙을 정하는 것은 거의 언제나 남자들이었다. 그러나 그 어머니들과 누이들 그리고 다른 여자 친척들은 상당히 막강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남녀 모두에게 큰 힘을 휘둘렀다. 요루바의 어떤 왕국에서는 왕의 여자 친척들이 주요한 종교 의례를 감독하고 왕궁을 관리했다. 의례를 개최하거나 축제를 벌이거나 공동의 노동 집단을 소집하고자 하는 이는 누구든지 먼저 이 강력한 여자들과 교섭한 다음이라야 왕을 접견할 수 있었다. 요루바족 여성들은 모든 여자들의 어머니라고 알려진 자리를 차지했다. 그것은 여성들 위에 군림하는 여왕으로서 정부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조정하고, 법정을 개최하며 분쟁을 중재한다. 또한 시장을 열고 유지하는 데서 여성들이 어떤 지위를 차지해야 할지를 결정하고, 세금과 사용료를 징수하며 전쟁을 선포하고 그 밖에 중요한 공적 쟁점들에 개입한다. 그리고 요루바 왕국 가운데 적어도 두 곳, 이예사와 온도에서는 여성들 위에 군림하는 여왕의 지위는 남자들 위에 군림하는 왕의 지위만큼이나 막강했다. 남자들의 왕 밑에는 남자 추장들이 등급별로 위계 지워져 있었는데, 그에 상응하여 여자들의 여왕 밑에도 똑같은 등급으로 여자 추장들이 있었다. 그들은 남녀별로 각각 자기들의 추장 회의에서 만나 국가의 일을 논의하고, 자기 추종자들이 충고한 내용을 보고한다. 그리고 그 정보를 회의에 전달하고 행동을 취하기 전에 가결될지 부결될지를 기다린다. 남자 쪽과 여자 쪽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자료는 유감스럽게도 나에게 없다. 내 짐작으로는 남자들이 군대를 통솔했던 만큼, 막판에 가서는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다른 농경 군장 사회나 국가와 비교해 볼 때 서아프리카의 남녀평등이 상당한 정도로 실현되고 있었음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북인도를 예로 들어 보자. 서아프리카에는 여아 살해율도 높지 않고, 「종족 번식의 실패」라는 장에서 언급했던 남아 선호 관념도 없다. 이와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는 곳이 북인도로, 그쪽 남자들은 딸을 많이 둔 것을 경제적인 횡재가 아니라 경제적 재난으로 여긴다. 북인도 아버지들은 딸을 시집보낼 때 신부대를 받기는커녕 거꾸로 혼수와 지참금을 바리바리 싸준다. 최근에 와서는 그런 예물에 불만을 품거나 단순히 탐욕이 많은 남편들이 혼수와 지참금을 더 가지고 오라고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 때문에 신부 분신이 엄청나게 자행되고 있다. 즉 그런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못한 아내들에게 남편들은 등유를 끼얹고 불을 지른 다음, 마치 아내가 요리를 하다가 사고를 당한 것처럼 위장하는 것이다. 북인도 문화에서는 과부의 분신에 관한 한 언제나 몰인정했다. 과거에 과부들에게는 죽은 남편의 장례 화장 더미에서 함께 불타 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재혼의 희망도 없이 고립되어 살아가야 하는 삶, 자신을 거의 아사 상태에 이르게 하는 음식 금기, 가족 사제와 남편 친척들의 강요 같은 것으로 인해, 많은 과부들은 독신으로 살아가기보다는 차라리 불타 죽는 편을 택했다. 그에 비해 서아프리카에서 과부들이 어떻게 대접받았는가를 보면 아주 대조적이다. 서아프리카 과부들은 죽은 남편의 형제와 결혼하는 경우가 흔했고 이런 제도를 레비레이트라고 한다.
그의 앞날은 북인도 과부의 앞날처럼 그렇게 어두운 것만은 아니었다.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곡괭이, 쟁기, 그리고 컴퓨터
군장 사회와 국가에서 여성의 지위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남자들이 자기의 근육과 신장의 유리함을 활용하여 전쟁과 생산 모두에 핵심적인 테크놀로지 과정을 통제할 수 있었던 정도에 따라 좌우된다. 군사와 생산 업무를 수행하는 데서 남녀의 능력이 똑같이 발휘돌 경우, 여성의 지위는 남성과 동등한 수준으로 올라간다. 그러나 남자가 여자보다 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면이 있는 경우, 여성의 지위는 내려갈 것이다.
서아프리카와 인도 북부에서 나타나는 대조적인 여성의 지위는 이원리를 뒷받침하는 사례이다. 이 두 지역의 농사와 노동의 분업은 매우 다른 양상을 띤다. 서아프리카에서는 남녀가 똑같은 능력을 발휘했고 인도 북부에서는 남자가 육체적인 면에서 결정적으로 유리했다. 서아프리카에서 농사의 주된 도구는 인도 북부에서처럼 암소가 끄는 쟁기가 아니라 손잡이가 짧은 곡괭이였다. 서아프리카에서 쟁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습기가 많고 그늘진 지역에서 창궐하는 체체파리로 인해 쟁기 끌 동물을 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아프리카의 흙은 인도 북부에서처럼 말라서 딱딱해지지 않기 때문에 여자들은 곡괭이만 가지고도 남자 못지 않게 밭을 잘 갈 수 있었다. 인도 북부에서는 남녀가 농사에 기여하는 바에서 여자가 더 불리했다. 남자들은 소가 끄는 쟁기를 독점했고, 그 도구들은 딱딱하게 굳은 땅을 가는 데 필수품이었다. 남자들이 그것을 독점한 것은 사냥과 전쟁 도구를 독점한 것과 분질적으로 똑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들은 신체적인 힘이 더 좋았기 때문에 여자보다 15-20% 더 효율적으로 일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 정도의 유리함은 굶어죽느냐 사느냐를 결정할 정도로 중대한 것이었다. 특히 가뭄이 오래 지속되어 쟁기날이 땅 밑을 파 들어가는 1인치, 한 쌍의 소가 밭을 가는데 들이는 1분, 1초가 습기 보존에 결정적인 때에는 더욱 그렇다. 남캐롤라이나 대학의 모간 맥클라클란 교수는 카르나타카주에 있는 어떤 마을의 성별 노동 분업에 대해 연구한 결과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발견했다. 문제는 인도 농촌의 여성이 쟁기나 소를 다루도록 훈련받았느냐가 아니라, 대부분의 가정에서 남자에게 그것을 훈련시키면 수확이 더 늘어나고 더 안정적이냐이다. 맥클라클란은 쟁기가 대개 40파운드 나가고, 한 쌍의 작은 암소는 약 180파운드의 끄는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쟁기를 끄는 사람은 꼬박 하루를 그 거대한 소와 쟁기를 거의 20마일 가까이 앞뒤로 끌고 다니면서 밭고랑을 똑바로 그리고 최대한 깊이 일정하게 파야 한다. 맥클라클란에 따르면 어른만한 힘이 없는 소면들도 잠깐 동안은 그 작업을 잘 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몇 시간이 지나면 쟁기는 비틀거리면서 땅 바깥으로 튀어 오르기 시작하고, 밭고랑은 비뚤어지기 시작한다.
다른 형태의 농경이 남녀 위계질서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인도 안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최첨단에 있는 지방에는 북부의 남성 지배를 규정하는 거친 특징이 없다. 특히 강력한 여성 중심의 가족생활과 상호 보완적인 성 역할로 유명한 케랄라같은 지역에서는 북부보다 비가 더 많이 오고 건조기도 훨씬 짧으며, 주된 곡식이 밀이 아니라 손바닥만한 논에서 자라는 쌀이다. 일을 시키는 동물도 보통 소가 아니라 주로 물소이며, 그 주된 기능은 쟁기를 끄는 것이 아니라 무릎까지 차오르는 물속에서 진흙을 섞고 짓이기는 일이다. 이런 동물을 끄는 데는 여자나 어린아이도 성인 남자보다 뒤지지 않는다. 그런 사정은 모내기에서도 마찬가지다. 몸을 잔뜩 구부리고 섬세한 손재주로 쌀 묘목 뭉치를 뽑아 솎아낸 다음 진흙 속에 다시 심는 일이기 때문이다.
쌀논 생계와 상호 보완적인 남녀 지위 사이의 상관관계는 케랄라 남부 및 동부뿐만 아니라 광대한 지역에도 적용된다. 스리랑카, 동남아시아 그리고 인도네시아 등의 농업 국가들은 모두 젖은 쌀 생산에 생계의 기초를 두고 있다. 거기에서 중요한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 여자들은 적어도 남자들과 비슷한 비중을 가지며, 바로 이 지역에서 예로부터 여성들이 가정적으로는 물론 공적으로도 엄청난 자유와 권력을 만끽해 왔다.
쟁기에 대한 남자의 통제처럼 하나의 단순한 요인만 가지고 여아 살해, 지참금, 과부 분신 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쟁기 끄는 것이 농사 자체에 끼친 직접적인 영향만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한 남성의 전문성은 추가적인 전문화의 기폭제가 되어, 인도 북부나 그와 비슷한 형태로 농사를 짓는 산업화 이전의 사회에서의 열악한 여성의 지위를 설명해 준다. 쟁기 끄는 방법을 배운 남자들은 소들에게 쟁기를 씌워 몰고 가는 방법도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바퀴가 발명되면서 남자들은 소의 멍에를 수레에 연결하여 우마차를 움직이는 데 전문성을 획득하였다. 그로 인해 남자들은 곡식을 시장에 운송하는 일을 떠맡게 되었고, 거기에서 몇 단계 지나지 않아 지역 내에서 그리고 장거리로 이루어지는 교역과 상업을 지배하게 되었다. 교역과 상업이 점점 중요해지면서 기록이 보관되어야 했는데, 그 임무를 떠맡은 것은 역시 교역과 상업에서 활동적인 남자들이었다. 따라서 쓰기와 산수가 발명되면서 남자들은 첫 번째 서기와 회계사로 전면에 등장했다. 거기에서 더 확대되어 남성들은 첫 번째 서기와 회계사로 전면에 등장했다. 거기에서 더 확대되어 남성들은 여성과 달리 문자를 해독하고 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처음 알려진 철학자, 신학자, 수학자 들이 여성이 아니라 남성인 까닭도 바로 그것으로 설명된다.
게다가 쟁기 끄는 것의 그러한 간접적인 영향은 전쟁의 남성 중심적인 영향이 지속되는 것과 맞물려 작용했다. 남자들은 무장 군대를 통솔하면서 국가 종교를 포함한 정부 최고위의 행정부서들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자 전사들의 징집이 계속 필요해지면서 공격적인 남성다움으로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지금까지 알려진 모든 국가와 제국에서 국가 정책의 초점이 되었다. 그리고 근대의 여명기에 기본 식량을 동물이 끄는 쟁기에 의존하는 곳은 어디에서든 남자들이 정치, 종교, 예술, 과학, 법, 산업, 상업 그리고 무장 군대를 지배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러한 추론이 이른바 가부장제적 제도의 진화를 설명한다면, 그것은 또한 선진 산업 사회에서 그러한 제도가 지금 쇠퇴하고 있는 까닭도 밝혀 주어야 할 것이다. 나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근력의 전략적 가치가 떨어지면서 여성의 권리에 대한 자각이 높아지고 있지 않은가? 생산의 결정적인 과정이 자동화된 공장에서 일어나고, 사람들이 컴퓨터화된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마당에 10% 내지 15% 더 나은 근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남자들은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계속 싸우고는 있지만, 여성들이 서비스와 정보 분야에서 남자보다 더 낮은 임금으로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게 되면서 남자들은 그동안의 아성 여기저기에서 퇴각당해 왔다. 서아프리카 시장에서 힘을 발휘하는 여성들보다 오히려 오늘날의 선진 산업사회 여성들이 남편이나 다른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기 생계를 꾸릴 수 있는 능력에 기반해 남녀평등을 가로막는 마지막 장애물이 한 가지 있다. 전쟁에서 거친 힘의 중요성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는 해도, 여성들은 전투력에서 여전히 배제되고 있다. 대륙간 탄도 미사일, 신예 폭탄, 그리고 컴퓨터화된 화기 시스템으로 싸우는 전투에서 여성들은 남성 못지않게 유능한 군인으로 훈련될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전쟁터에서 기회를 동등하게 나눠 갖기 위해서, 더 밀어부쳐야만 할까? 아니면 뭔가 다른 것을 위해 매진해야 할까? 여성들은 결정해야 한다.
지금으로서는 남자들이 자기들의 기득권이 사라지는 것을 후회하지 않는 게 좋다. 다음에 설명하겠지만, 남자들은 빛나는 람보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생각보다 더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있다.
여자는 왜 남자보다 오래 사는가
산업화된 세계에서 여자들이 남자보다 4년 내지 10년 더 오래 사는 까닭은 무엇인가? 20세기에 들어와서 평균 수명은 남자나 여자나 모두 늘어났지만, 여자가 훨씬 더 늘어났다. 1920년대까지만 해도 당시 태어나는 백인 여자들의 기대 수명은 백인 남자보다 겨우 8개월 정도 더 길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6.9년이나 더 길다. 그동안 남자들이 17년 더 늘어난 반면, 여자들은 23년 늘어난 셈이다. 흑인들의 경우 1920년에는 남자가 여자보다 오래 살았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의 흑인 여성들은 흑인 남성보다 8.4년 더 오래 산다.
4년 내지 10년의 세월이란 그만큼 더 살 수 없는 남자에게는 결코 우스운 문제가 아니다. 그만큼 더 살 여자에게도 그것은 전혀 희소식이 아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일찍 죽는 것 때문에 젊어서 과부가 된 여자들의 결혼 전망은 희미해지고, 건강하고 더 나이 많은 여자들은 자기 생의 상당 부분을 병든 남편을 간호하는 데 보내야 한다. 그 인구학적 영향이 축적되면서 수명의 차이는 미혼녀, 과부 그리고 이혼녀들의 하위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그들의 생활양식은 남자들을 공유하거나 아예 남자 없이 지내는 쪽으로 맞추어져 있다.
나의 우편함에는 온갖 차별 – 세대 차, 계층 차, 인종 차, 그리고 임금과 취직 기회로 말하자면 성차도 당연히 들어간다 - 로 고통받는 가난하고 아프고 집 없고 배고픈 사람들을 도와 달라는 호소문들이 매일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남자의 수명을 여자의 수준으로 끌어올리자는 호소문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자연이 그렇게 만든 것이므로 별수 없다고 사람들은 생각하는 모양이다. 여자들은 생물학적으로 더 건강하기 때문에 자연히 더 오래 산다고 여기는 것이다.
남자들은 생명을 확고하게 획득하는 데 여자보다 선천적으로 불리해 보이는 것을 이미 태아 시절에 드러내고 있다. 임신 당시로 따져보면 남자 태아는 여자 태아보다 115 대 100으로 더 많다. 그러나 자궁에서 남자 태아가 더 많이 죽는 결과, 출생 시에는 105 대 100으로 줄어든다. 남자아이는 태어난 이후에도 계속 허약하다. 여자아이들보다 영아 사망률이 더 높은 것이다. 이것은 남자가 여자보다 선천적으로 더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인가? 아니다. 다른 설명이 제시될 수 있는 한 그렇지 않다. 남자 태아 및 신생아가 여자 태아 및 신생아보다 더 크기 때문에 임신과 출생 시에 산모에게 더 커다란 부담을 준다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남자 태아들이 겪는 축소의 고통이 정확하게 무엇 때문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손상으로 이어지는 난산은 남자아이들의 미숙아 탄생과 영아 사망의 비율을 높이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유럽에서는 임신 말기의 태아와 신생아의 사망률의 남녀 차가 그다지 뚜렷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아마도 산부인과 기술이 개선된 덕택이리라.
그렇다면 X와 Y의 염색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인간 세포의 핵 속에 있는 23개의 상이한 염색체 가운데 X와 Y로 불리는 염색체를 제외하면 모두 짝이 있다. 여자에게는 X 염색체는 있으면서 Y 염색체는 없고, 남자에게는 그 둘 다 하나씩 있다. X 염색체는 다른 X 염색체와 짝을 맺기 때문에 여자는 설혹 X 염색체에 결함이 있어도 해로운 결과에 이를 위험 부담이 적다. 정상적인 유전자를 지닌 다른 X 염색체가 (백업 back-up)해 줄 수 있고 그 결함을 압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짝이 없는 X와 Y 염색체에 유전적 결함이 있는 남자는 그러한 백업의 능력이 없다. 바로 그 때문에 남자들이 X 관련 유전병에 더 많이 걸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근육위축증은 X 유전자에 있는 유전자의 결함에서 비롯된다. 남자가 여자보다 병에 더 잘 걸리는 것은 결함 있는 변이를 물려받을 경우 정상적인 유전자로 대체해 줄 X 염색체 짝이 없기 때문이다. X와 Y 염색체가 있는 정상 유전자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지식의 범위 내에서 보자면 기껏해야 1-2주 정도의 수명 차이밖에는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여기에서 또 한 가지 가능성으로 제시해 볼 수 있는 것은 여성의 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혈류 속에 저밀도 지방질과 콜레스테롤의 수준을 떨어뜨림으로써 심장병을 예방하는 반면, 테스토스테론 같은 남성 호르몬은 그 반대의 기능을 한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에스트로겐이 전적으로 축복만은 아니다. 그것은 미국과 다른 산업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장 치명적인 암인 유방암을 촉진하는 것이다. 게다가 수많은 연구에서 밝혀지듯이 혈류 속에 과다한 콜레스테롤과 저밀도 지방질이 생기는 일차적인 원인은 남성 호르몬이 아니라 고콜레스테롤 음식이다.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은 또한 면역 반응 체계에도 다른 영향을 끼칠 것이다. 암컷 쥐에게 엔드로겐을 투여하면 항체 생성이 줄어드는 데 비해 수컷에게 투여하면 늘어난다. 그러나 만일 여성의 면역체계가 남성보다 더욱 강력한 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 역시 순수한 축복만은 아니다. 류머티스성 관절염이나 피부결핵 같은 것은 남자보다 여자에게 3배나 더 많이 일어나는 과잉 면역 반응에서 비롯되는 질병이다. 한마디로 말해, 남자와 여자는 사망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유전적인 특성을 각기 다르게 보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성이 전적으로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남녀의 기대 수명에 영향을 끼치는 내적 요인들의 균형은 아직 모호한 상태이다. 그러나 설령 그 균형이 여성에게 유리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오늘날 존재하는 수명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는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여성의 수명이 변화한 것은 전적으로 문화변동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 변화란 공중보건의 전반적 개선, 여성의 역할에 대한 높은 평가, 임신의 감소, 임신에서 출산 이후에 이르는 기간의 몸조리의 개선 등을 말한다. 이렇듯 문화적으로 선택된 변화들이 없었다면, 여성들의 수명은 지금보다 더 짧았을 것이고, 어쩌면 남자보다도 더 짧았을 것이다.
인도,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이란 등 적어도 10여 개의 제3세계 국가들에서는 출생 시에 남녀의 기대 수명이 똑같거나 아니면 여자가 약간 더 높을 것이다. 알려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사례들이 더 있을 것이다. 제3세계 국가들의 센서스 수치에는 여자의 출생 시 평균 수명이 과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아시아에서는 딸을 무시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어서 부모들은 생후 몇 달 안에 죽는 여자들은 등록하거나 헤아리지 않는다. 따라서 지극히 일찍 죽은 여자들은 어린아이로 자라난 여자에 비해 실제 통계에서는 적게 나타날 것이다. 그러므로 많은 나라에서 여자들의 실제 평균 수명은 공식 자료보다 훨씬 짧을 것이다. 그와 대조적으로 제3세계 부모들은 일찍 죽은 아들을 오래도록 기억하면서 센서스 조사자에게 보고했을 것이다.
남자가 여자보다 더 수명이 긴 남아시아에서 임신 및 출산에 관련된 사망 하나만으로도 45세 이하 여성 사망의 25%가 설명되고, 여성의 사망률이 남자보다 더 높은 것의 33%에서 100%가 설명된다.
선진국에서 여성의 늘어난 수명을 돌아와 보면, 그러한 증가를 설명할 수 있는 어떤 유전적 변화를 여성들이 체험한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선진국에서 20세기에 들어와 여성의 평균 수명이 늘어난 것 전부는 물론이거니와, 선진국과 후진국 여성의 평균 수명의 차이도 역시 모두 문화적 선택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에 가장 궁금하게 떠오르는 문제는 남자가 선천적으로 여자보다 짧게 살도록 되어 있느냐의 여부가 아니라, 왜 남자의 평균 수명은 여자의 펼균 수명이 늘어난 만큼 늘어나지 못했는가. 그 실패의 문화적인 요인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다음 장에서 이야기하겠지만, 그 실패는 남자 수명의 생물학적 한계에 도달한 결과가 아니라, 남성 우월주의적 성차별주의의 문화적 결과이다.
사나이가 되기 위해 치르는 숨은 대가
남자의 평균 수명이 여자만큼 빨리 늘어나지 못한 것도 역시 개선 가능한 사회적, 의학적 관행의 맥락에서 모두 설명될 수 있는가? 그렇다. 남자는 여자보다 술과 담배를 많이 하고 고기를 더 많이 먹으며, 더 독한 약물들을 흡입한다. 또한 산업 사회의 독성 물질들과 작업 도중의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며, 자동차를 더 거칠게 운전하고 총과 같은 치명적인 무기를 더 많이 휴대한다. 그리고 경쟁심을 더 쉽게 체득하여 긴장을 자초한다. 그 결과 심장마비, 뇌출혈, 혈관 계통 질병, 폐암, 간 경변, 교통사고 및 산업 재해, 타살이나 자살 등으로 죽는 일이 남자들에게 훨씬 많다. 흡연 하나만으로도 오늘날 남녀 수명의 차이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나 비애의 무용담 뒤에는 하나의 냉엄한 아이러니가 깔려 있다. 즉 그것은 전통적인 사나이로서의 성 역할을 충실하게 표현한다는 것이다. 우리 젊은 남자들은 어떻게 자라났는가? 남자는 모름지기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하고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피워야 하며 친구와 술을 잘 마셔야 한다고. 또한 고통을 무시하고, 위험을 무릅쓰며, 총을 잽싸게 뽑을 수 있고 겁먹는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도록 자라나지 않았는가? 그렇게 생각해 보면 수명의 차이를 둘러싼 그 이상한 침묵 자체가 사나이 증후군의, 그리고 그것이 남녀 사이에 일으킨 적대 감정의 비의도적 부산물이 아닌가 하고 의심하게 된다. 남자들은 (남자다운) 일들을 단순하게 해오면서 투덜대거나 불만을 갖지 않기로 결심했는가?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는 대상은 남자들 자신뿐이다. 여자들은 자기들이 더 오래 사는 문화적 비결을 보여줄 만큼 주도권을 가지고 있다고 기대할 수는 없다. 여성들이 성차별주의의 희생자라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들에게 여자가 남자보다 오래 산다는 사실은 정치적으로 불편함을 초래한다. 노예들, 농부, 식민지 백성들, 추방자들, 프롤레타리아 같은 피억압자들이 억압자들보다 더 오래 살았다는 말을 들어 보았는가? 그리고 자기 배우자가 일찍 죽는 것을 모든 여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특히 보험에 잔뜩 들어 있는 남성 쇼비니스트 남편일 경우에는.
수명 차이를 얕보는 것을 하나의 사회적인 쟁점으로 어떻게 설명하든 간에, 남녀 모두 그 실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남자들이 XY 염색체를 가지고 태어나기 위해 치러야 했던 대가가 아니라, 남자에 대해서 문화적으로 구성된 사나이 이미지에 맞춰 살아가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이다.
이 대목쯤에서 다양한 남녀 차별 및 종속 관계가 왜 자연 선택이 아닌 문화적 선택의 결과인지가 분명해지리라고 믿는다. 우리는 일반적인 계급 구분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한편으로 고귀하고 힘 센 그룹, 다른 한편으로 미천하고 나약한 그룹으로 나뉘어 살도록 유전자의 명령을 받고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상하 위계 서열이 우리 삶에 그토록 만연해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인간의 권력욕은 본능인가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없이도 인간은 존재할 수 있는가? 정치학의 선구자들은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모든 인류가 공유하는 일반적인 성향 하나가 있다. 줄기차고 무모하게 힘을 추구하는 욕망, 죽어서야 비로소 끝이 나는 권력욕이 그것이다)라고 토마스 홉스는 단언한 바 있다. 이렇듯 선천적인 권력욕 때문에 국가 이전의 (또는 그 이후의) 삶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고독하고 궁핍하며, 추잡하고, 야만적이고, 비명횡사하는- 이었다고 홉스는 생각했다. 그는 파벌 짓기 좋아하는 자기 동포들에게 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전능한 영국의 리바이던 왕과 사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홉스는 옳았는가? 사람들에게는 억누를 수 없는 권력욕이 있어서 강력한 지배자가 없으면 불가피하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이어지는가? 현존하는 밴드 및 촌락 사회의 예를 가지고 판단해 보건대, 선사 시대 인류의 대부분은 리바이던 왕이나 사신은 커녕 막강한 추장조차 없이도 아주 잘 살았다.
민주적인 형태의 정부를 가진 현대 국가에서는 세습적인 리바이던이 필요 없다. 그러나 엄청나게 복잡한 형법 체계에 의해 뒷받침되는 부와 권력의 불평등 없이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지는 못했다. 그러나 문화적 도약이 일어나 이후 3만 년 동안 인류의 삶은 어떤 형태의 지배자도 없이 영위되어 왔다. 왕, 여왕, 수상, 경찰, 보안관, 사령관, 장군, 각료, 주지사, 시장, 지방 검사, 법정 서기, 순찰차, 죄수 호송차, 감옥, 고해 신부.... 그 어느 직책도 필요 없었다. 우리 조상들은 그러한 시스템 없이도 어떻게 집 밖으로 나설 수 있었을까?
작은 인구 집단이 그에 대한 답을 일부 제시해 준다. 한 밴드 당 50명 또는 한 마을당 150명 정도의 인구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친밀하게 알고 지냈다. 그래서 호혜적인 교환의 유대가 사람들을 결속시킬 수 있었다. 사람들은 뭔가를 줄 때 그에 대한 보답을 기대하고 뭔가를 받을 때 또한 보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물 사냥, 식물 채집, 원시적인 농경의 성공에는 우연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어느 날 운 좋게 큰 수확을 올린 사람은 이웃에게 나누어 줄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불가피하게 맞이할 운 나쁜 날을 대비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관대하게 베푸는 것이다. 인류학자 리챠드 굴드의 표현에 따르면, (위험 부담이 크면 클수록, 나눔의 폭도 커진다.) 호혜성은 소규모 사회의 은행인 셈이다.
호혜적 교환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많이, 정확히 얼마만큼을, 또는 언제 돌려받을지를 명시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거래의 질을 더럽혀 단순한 물물교환이나 구매 비슷하게 될 것이다. 그렇듯 호혜와 거래 사이를 구분하는 것은 다른 형태의 거래가 지배적인 사회, 심지어 자본주의 사회에도 존재한다. 우리들도 비공식적이고 비계산적이고 인정이 넘치는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들 사이에서는 거저 주고받는 것이다. 십대 청소년들은 집에서 식사하는 것이나 아버지 승용차를 사용하는 데 대해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아내는 식대를 남편에게 청구하지 않고 친구들끼리는 생일이나 성탄절에 선물까지 주고받는다. 그러나 대부분은 우리의 인정이 감사의 표시로 인정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그 순수함이 손상된다. 정말로 호혜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인정을 당연시하는 것이 에티켓이다. 로버트 덴탄은 중앙 말레이시아 세마이족을 조사하면서 사냥꾼들 사이에 고기를 거저 주고받으면서 고맙다는 말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을 발견했다. 뜨거운 사막을 뚫고 하루 종일 돼지 한 마리를 끌고 집에 온 사냥꾼은 그 고기를 똑같은 크기로 분할해 집단 전체에게 분배한다. 덴탄에 다르면 만일 거기에서 고맙다는 말을 한다면 그것은 그 사냥꾼이 스스로 얼마만큼 주고받는지를 꼼꼼히 계산하는 몰인정한 사람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이 맥락에서 고맙다는 말은 매우 무례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첫째 자기가 선물의 양을 계산했다는 뜻이고, 둘째 자기는 그 사냥꾼이 그토록 인정 많을 줄 몰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의 인정 많음에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은 다른 사람이 그에게 빚졌고, 그래서 그는 되돌려받으리라고 기대한다는 것을 뜻한다. 평등주의적인 사람들은 자신에게 인정이 베풀어지고 있다는 것이 암시되는 것만으로도 불쾌하게 여긴다.
리차드 리는 한 가지 의미심장한 사건을 통해 호혜성의 그런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그는 쿵조글 기쁘게 해주기 위해 커다란 소를 사서 도살해 선물로 나누어주기로 했다. 며칠 동안 반투 농촌을 돌아다니며 가장 크고 살찐 암소 한 마리를 구해 주었다. 그러나 그의 쿵족 친구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바보같이 속아서 완전히 엉터리 소를 샀다고 비웃었다. (물론 우린 그것을 먹기는 먹을 겁니다. 그러나 배가 부르지는 않을 겁니다. 그걸 먹고 집에 가서 잠을 자면 배가 울렁거릴 겁니다.) 그들의 말이었다. 그러나 리가 구해서 가져가 암소를 도살해 보았을 때, 그 속에서는 두꺼운 지방질 층이 가득 들어 있었다. 나중에 쿵족 친구들은 자기들이 그 동물의 가죽에 대해서 리보다 더 잘 알고 있었으면서 왜 그의 선물에 대해서는 그렇게 깎아내렸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그렇습니다. 어떤 젊은이가 고기를 많이 잡아 오면 그는 자기가 추장처럼 대단한 사람인 줄로 생각해요.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을 자기보다 못한 걸로 알아요.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겁니다. 우리는 잘난 체하는 놈은 못 봐 줍니다. 그 오만이 언젠가 다른 사람을 죽일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가 잡아 온 고기에 대해 항상 무시합니다. 그런 식으로 우리는 그의 가슴을 식히고 그를 예절 바르게 만들지요.
리는 남녀로 이루어진 작은 집단이 매일 저녁 자기들이 사냥하고 수집한 동물과 열매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것들을 동등하게 분배했다. 심지어 뒤에 남아서 잠만 자거나 단지 그들의 도구와 무기를 지켰던 사람들에게도.
가족만이 하루의 생산을 하나의 풀에 모아서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라, 캠프 전체도 -거주자든 방문객이든 똑같이- 음식 전체를 동등한 양으로 나눈다. 어느 한 가족의 저녁 식사는 각기 다른 가족원들로부터 전달된 음식들로 구성된다. 음식은 그냥 날것으로 분배될 수도 있고, 아니면 채집한 이가 요리까지 해서 분배될 수도 있다. 각종 열매와 뿌리들은 한 가족에서 다른 가족으로 끊임없이 흘러 다닌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거주자들은 똑같은 양의 음식을 갖게 된다. 그다음 날 아침 사냥꾼들은 새롭게 조를 짜서 캠프를 떠난다. 밤 늦게 돌아오면 음식의 분배는 반복된다.
홉스는 한 가지를 깨닫지 못했다. 국가 이전의 소규모 사회에선 서로가 자연 서식처에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는 것이 작자의 최대 이익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홉스적인 권력욕으로 가득 찬 쿵족 사람 하나가 동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고 한번 가정해 보자. (이제부터 이 땅과 여기에 있는 모든 것은 내 소유이다. 그러니 반드시 내 허락을 받아야만 거기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또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자네들이 그곳에서 잡고 채집하고 기른 것은 모두 내가 우선 차지해야 한다.) 이 말을 들은 동료들은 그가 갑자기 미쳤다고 생각하고 얼마 디지 않는 자기 짐을 싸 가지고 2~30마일을 걸어 나가서 새로 캠프를 만들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평등한 호혜성을 생활 속에 구현할 것이다. 왕이 되고자 했던 그 사람은 혼자 남아서 부질없는 지백권을 휘두르게 될 것이다.
단순한 밴드 및 촌락 사회에 정치적 리더쉽이 존재했다면, 그것은 우두머리라고 불리는 개인에 의해 행사된 것인데, 그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자기 명령을 따르도록 강요할 힘이 없다. 그러나 리더라는 사람이 힘이 없으면서 집단을 이끌 수 있을까?
우두머리가 된다는 것
우두머리가 명령을 할 때 그는 거기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제재할 물리적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가 그 (직책)에 계속 앉아 있고 싶은 한 명령은 거의 내리지 않는다. 그와 대조적으로 진짜 지배자의 정치 권력은 명령을 거스를 것 같은 개인이나 집단을 즉각 추방하거나 제거할 수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어떤 에스키모인들 집단은 뛰어난 사냥꾼을 따르면서 사냥 지점을 선택하는 일에 관한 한 그의 의견을 존중한다. 그러나 다른 문제에 관해서는 그 (지도자의) 의견은 다른 사람의 의견 이상의 비중을 갖지 못한다. 그와 비슷하게 쿵족에서는 각 밴드마다 (지도자들)이 있고 거의 남자들이다. 그 남자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발언을 더 많이 하고, 그의 말이 약간 더 존중되기는 한다. 그러나 그들은 어떤 공식적인 권위를 지닌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설득만 할 수 있을 뿐, 결코 명령을 할 수는 없다. 한번은 리가 쿵족 사람에게 강력한 추장이라는 의미에서 (우두머리)가 당신들에게 있는냐고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흥미로웠다. (물론 우리에게는 우두머리들이 있지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우두머리거든요... 우리 각자는 스스로에게 우두머리라구요.)
우두머리가 된다는 것은 짜증 나고 귀찮은 일이 될 수 있다. 브라질 인디언들에게 우두머리란 밤에 야외에서 음식을 해 먹는 동안 열심히 정찰해야 하는 임루를 연상시킨다. 우두머리는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서 마을 광장 한가운데 서서는 소리를 지르며 동료들을 깨운다. 무슨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그 일을 먼저 시작하는 것은 우두머리이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해야 하는 것도 우두머리다. 그는 열심히 일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때, 그 일을 먼저 시작하는 것은 우두머리이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해야 하는 것도 우두머리다. 그는 열심히 일하는 것뿐만아니라 인정을 베푸는 것에서도 모범을 보인다. 고기잡이나 사냥 탐험에서 돌아오면 그는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자기가 잡은 것을 나눠준다. 그리고 다른 집단과 거래를 할 때도 가장 좋은 것을 자기 것으로 챙기지 않도록 조심한다.
저녁이 되면 그는 광장 한가운데 서서 사람들에게 착하게 살아가고 권면한다. 성욕을 다스리고, 열심히 일하며 강에서 자주 목욕하라고 요구한다. 낮에는 잠을 자지 말고,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한다. 시종 그는 어느 특정한 개인의 잘못을 비난하지 않으려 매우 조심한다.
로버트 덴탄은 말레이사아의 세마이족에서도 비슷한 패턴의 리더쉽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한다. 외부에서 세마이족 리더들의 권력을 강화하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그 우두머리는 단지 동료 집단에서 가장 위신 있는 인물에 지나지 않았다. 덴탄에 따르면, 우두머리는 강요가 아니라 회유를 통해서 평화를 도모한다. 그는 인격적으로 존경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은 그를 떠나가 버리거나 그에 대한 관심을 서서히 거두어 갈 것이다... 더 나아가 훌륭한 우두머리는 거의 언제나 어떤 쟁점에 대한 성원들의 일반적 느낌을 짐작하고 거기에 기초해 자기 결정을 내린다. 그러니까 그는 여론을 형성한다기보다는 여론의 대변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인류의 본성에 위계적인 집단을 만들고자 하는 필연성이 있다는 말에 더 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겠다. 만일 누군가가 문화적 도약이 일어난 직후 인류의 삶을 직접 관찰했다면, 그는 우리 인류가 성과 연령을 제외하고서는 어쩔 수 없이 평등주의적이도록 운명 지워졌다는 결론에 쉽게 도달할 수 있었으리라. 당시 이후 인간 사회에서 펼쳐진 일을 증거로 놓고 볼 때, 언젠가 먼 훗날(그러니까 지금) 이 세상이 귀족과 평민, 주인과 종, 억만장자와 거지로 이분화되리라는 것은 인간 본성에 완전히 반대되는 것으로 여겨졌으리라.
빌붙어 먹는 사람들을 어떻게 하나
호혜적인 교환과 평등주의적인 우두머리가 우세한 상황에서는 개인과 가족은 물론 밴드나 촌락보다 작은 집단도 스스로의 힘으로 강, 호수, 해안, 밭, 동식물, 땅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었다. 간간이 예외적인 사례들이 보고되기는 했지만 자세하게 검토해 보면 모두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났다. 한때 인류학자들은 캐나다의 수렵 채취인들의 경우에는 가족 심지어 개인도 사냥터를 사유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소유 패턴은 식민지의 모피 거래와 연관되어 최근에 생겨난 것일 뿐, 원래 존재하던 것은 아님이 드러났다.
쿵족의 경우 특정한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자기들이 그 우물과 사냥의 권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연히 그곳을 방문한 사람이나 일시적으로 거기에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그 소유권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웃 집단 사람들은 결혼을 통해서 다 연관이 있기 때문에, 서로 종종 방문해 몇 달씩 눌러앉곤 한다. 그때 그들은 미리 허락을 맡을 필요도 없고, 필요한 자원도 마음대로 사용한다. 아주 멀리서 온 사람들이 다른 밴드의 영토를 사용할 때는 미리 요청을 하지만, (소유주들)이 그 요구를 거절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토지와 기타 핵심적인 자원에서 사적인 소유가 없다는 것은 선사시대 수렵 채취 사회에 일종의 공산주의가 존재했으리라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고 그것이 사적인 소유를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다. 단순한 밴드 및 촌락 사회에 살던 사람들은 무기, 옷, 그릇, 장신구, 그밖의 도구에 대해 개인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물건들을 훔치려는 사람들은 없다. 숲에 캠프를 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는 가외의 소유물이 필요 없다. 그리고 집단의 수가 얼마 안 되고 모두가 모두를 알고 지내는 만큼, 훔친 물품은 익명적으로 사용될 수가 없다. 뭔가가 필요하다면 그냥 달라고 하는 편이 낫다. 호혜성의 원리에 따라 그런 요구는 거부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미화하지는 말자. 평등주의적인 밴드 및 촌락 사회라고 해서 소유물을 둘러싼 분쟁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사회 집단에서나 다 그러하듯이, 삐딱하고 늘 불만에 차 있는 사람들은 그 시스템을 제 이익만을 위해 악용하느라 다른 사람들에게는 폐를 끼쳤다. 주는 것보다 더 많이 받으려는 사람, 동료들이 일하는 동안 그물침대에서 빈둥거리는 사람들은 늘 존재했다. 비록 형사 재판체계는 없었지만, 그런 행동은 결국에 징계당했다. 밴드 및 촌락 사회 사람들은 죽음과 불행이 마법사의 사악한 음모 때문이라고 널리 믿는다. 그런 나쁜 짓을 누가 행하는지를 집어내는 것은 집단 샤먼들의 책임이다. 그들은 신성한 황홀경 속에서의 여론을 책임진다. 타인들의 호감을 사고 자기 가족으로부터도 강한 지지를 받는 사람들은 샤먼이 자기를 찍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툭하면 시비를 걸거나 까다로운 사람, 받기만 하고 주지는 않는 사람, 공격적이고 거리낌 없이 자기 말을 다 해버리는 사람들은 조심하는 편이 좋다.
우두머리에서 대인까지
평등주의적인 밴드 및 촌락 사회에서 호혜성(reciprocity)만이 교환의 유일한 형태는 아니었다. 인류는 오래전에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의 다른 방법을 발견해 냈다. 그 가운데 재분배(redistribution)라고 알려진 교환 형태는 군장 사회와 국가가 진화하는 동안 계급 구분을 창출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재분배가 일어나는 방식은 이러하다. 사람들은 음식이나 기타 귀중품들을 우두머리 같은 위신 있는 인물에게 양도하고, 한데 합쳐진 그 물품들은 다시 일정한 양으로 분할되어 여러 사람들에게 나눠진다. 그 최초의 형태는 아마도 보통 때보다 음식이 풍부해지는 계절적인 사냥과 추수기에 맞춰졌을 것이다. 호주 원주민들의 관행에서 예시되듯이, 야생의 씨앗이 무르익고 사냥감이 풍부해지면 이웃한 밴드들은 함께 모여 한바탕 잔치를 벌인다. 춤과 노래가 어우러지는 그 의례를 통하여 집단의 정체성이 갱신된다. 사람들이 늘어나고 고기와 기타 맛있는 음식들이 캠프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호혜적 교환의 일상적인 채널만 가지고는 모든 사람들이 공정하게 대접받고 있다는 확신을 갖기 어렵다. 아마도 연장자 남자들이 나서서 사람들이 먹는 몫을 보충하고 재분배하는 일을 떠맡았을 것이다. 동료와 친족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해서 더 거창하게 잔치를 벌이자고 부추기는 열성적인 (정찰대장) 우두머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초보적인 재분배자가 나타난 것이다. 우두머리이자 재분배자인 그들은 자기의 소명에 충실하느라 추종자들보다 더 열심히 일할 뿐 아니라, 다른 누구보다도 아낌없이 나눠주고 제 몫으로는 작고 가치가 덜한 것을 챙긴다. 따라서 우선 재분배는 호혜적 교환에 관련된 정치 경제적 평등을 도모했다. 재분배자들은 순전히 존경으로만 보상받았는데, 그것은 거창한 잔치를 베풀고, 다른 누구보다 더 많이 기여하며, 그런 수고에 대한 보답을 거의 요구하지 않는 등의 태도에 달려 있다. 애당초 이 모든 것은 호혜의 기본 원리가 순수하게 연장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시작하고 있는지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던가!
한 우두머리가 잔치를 베푸는 것이 좋은 일이라면, 몇몇 우두머리가 더 나서서 잔치를 베풀면 왜 안 되는가? 또는 잔치를 주최하고 베푸는 것을 가지고 우두머리로서의 정당성을 가늠하면 더 좋지 않은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조건이 허락되거나 부추겨지는 곳에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조금 후에 설명하겠다- 몇몇 우두머리 지망생들이 나타나 서로 경쟁적으로 가장 화려한 잔치를 베풀고 음식 등의 귀중품을 가장 많이 재분배하려고 한다. 이런 식으로 리차드 리의 제보자가 경고했었던 강정 - (대인)이 되고자 하는 젊은이 - 이 나타났다.
대인에 대한 고전 인류학적인 연구는 더글라스 올리버(Douglas Oliver)의 남태평양 솔로몬 군도의 슈아이족(Suiai)에 대한 연구에서 이루어졌다. 슈아이족에서는 대인을 무미(mumi)라고 부른다. 슈아이 소년들의 가장 큰 야망은 무미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그는 우선 결혼을 하고 열심히 일하면서 고기와 코코넛의 소비를 제한한다. 그의 아내와 부모는 그의 진지한 의도에 감명받아 그의 첫 잔치 준비를 돕겠다고 맹세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지지자들의 범위는 넓어지고 그는 클럽 하우스를 지어 그의 남자 추종자들이 빈둥거릴 수 있고 손님들이 먹고 즐길 수 있도록 한다. 그는 클럽 하우스의 봉헌 의례 때 잔치를 베푼다. 그것이 성공하면 그를 위해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범위는 넓어지고 그는 무미로 불러지기 시작한다. 잔치가 점점 커진다는 것은 무미가 자기 추종자들에 대해 요구하는 것이 더 까다로워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무미가 (크게 베푸는 사람)으로서의 명성을 유지하거나 더 높이고자 하는 한 계속 충성한다.
마침내 새로운 무미가 나타나 옛 무미에게 도전장을 던진다. 그가 개최한 무미들의 축제에서는 돼지고기, 코코넛, 아몬드 등을 한가득 쌓아 놓고 주최 측 무미와 그 추종자들이, 초대받은 무미와 그 추종자들에게 나눠준다. 그렇게 대접받은 쪽에서 일 년 정도 이내에 그만큼 푸짐한 잔치를 베풀지 못하면, 그 무미는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당하면서 즉각 무미의 자격을 박탈당한다.
성공적인 잔치가 끝난 뒤에도 가장 큰 무미는 개인적인 수고를 계속 감수해야 하고, 그 추종자들의 의향에 좌지우지된다. 무미가 된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강제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생활 수준이 다른 사람들보다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사실, 거저 베푸는 것이 무미가 되는 첫 번째 핵심인 만큼, 큰 무미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고기 같은 맛있는 음식을 덜 먹는다. 이안 호그빈(H. Ian Hogbin)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솔로몬 군도의 카오카족(Kaoka)에게는 (잔치를 베푸는 사람은 뼈다귀와 상한 빵을 먹고, 고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간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소니(Soni)라는 무미가 베푼 큰 잔치에는 무려 1100명이 초대되어 엄청난 양의 아몬드에다가 돼지 32마리를 먹어치웠다. 소니와 그의 가까운 추종자들은 쫄쫄 굶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말했다. (우리는 소니의 명예를 먹고 살지요.)
크게 베푸는 사람의 탄생
호혜성과 재분배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스스로를 뽐내는 것을 리더의 속성으로서 받아들이냐의 여부가 그 증후적인 차이를 가장 잘 나타낸다. 호혜적인 교환에서는 겸손함이라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하는 반면에, 재분배에서는 그것을 명백하게 깨뜨리면서 재분배자가 인정 많고 크게 베푸는 사람임을 공공연하게 천명한다.
스스로 뽐내는 것의 극단적인 형태는 뱅쿠버 섬의 콰키우틀족이 행한 포트래치(Potlatches, 콰키우틀족에서 성행했던 잔치로서, 손님들에게 막대한 양의 음식을 대접하거나 소중하게 모아둔 물건들을 나누어 주거나 또는 그들 앞에서 모조리 파괴함으로써 주최자의 부와 지위를 과시하는 이벤트)라는 경쟁적 잔치에서 나타났다. 콰키우틀 재분배자 추장은 스스로의 중요성에 도취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위대한 추장으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한다...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질투심이 감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계속 행하는 것을 보는 사람들은 얼굴을 손으로 감싸게 된다. 모든 부족에게 (생선) 기름 잔치를 거듭 베푸는... 나는 유일하게 거대한 나무이다... 부족들이여 그대들은 내 휘하에 있다... 나는 그대들에게 처음으로 재산을 주는 자이다. 나는 그대들의 독수리! 부족들이여 그대들의 재산을 헤아려 보라. 위대한 구리 제조자인 이 추장으로부터 받은 재산이 얼마나 많은가. 끝이 없을 것이다.
재분배는 사람들이 마음 내키는 대로 선택하는 자의적인 경제 양식이 아니다. 왜냐하면 재분배자의 성공은 생산을 증대시킬 수 있는 능력에 근거를 두기 때문이다. 오로지 가외의 노력이 정말로 효과를 거두는 조건에서만 재분배는 선택된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일을 더 열심히 하라고 독촉하는 것은 오히려 생산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쿵족과 같이 단순한 수렵 사회에서는 개개인이 동물 사냥과 식물 채집을 더 집중적으로 했다가는 자칫 동물을 지나치게 죽이고 식물을 고갈시킬 위험이 있다. 쿵족 사냥꾼에게 무미처럼 행동하라고 부추겼다가는 자칫 그와 그의 추종자들이 당장 굶어 죽을 수가 있다. 그와 대조적으로 슈아이족이나 카오타족 같은 농경민들에게 고갈은 그다지 절박한 위협이 아니다. 곡식은 종종 넓은 지역에 파조오디어 보다 세심하게 경작되어 수확될 수 있고, 당장 고갈될 위험이 없는 여분의 물과 비료의 도움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수렵 채취 생산 양식과 농경적 생산 양식 사이의 형식적인 구분을 너무 강조하지 않는 편이 좋다. 콰키우틀족은 농경민은 아니었지만, 그 생산 양식은 고도로 집약적이었다. 그들은 식량의 대부분을 해마다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수많은 연어와 빙어로 충당했다. 그리고 그들이 고유의 그물만 사용하는 한, 그 물고기들이 당장 고갈될 위험은 없었다. 따라서 포트래치는 그 나름의 형태로 생산을 자극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콰키우들족처럼 많은 사회에서는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도 불평등한 계급으로 특징 지워지는 영구적인 공동첼르 이루어 살았다. 콰키우틀족처럼 어떤 사회에는 심지어 노예 비슷한 하급 평민도 있었다. 불평등한 수렵 사회는 대부분 연안이나 강가에서 발달한 듯하다. 그런 곳에서는 조개의 서식지가 많고 물고기나 바다 포유류가 집중되어 영구적인 정착지가 잘 만들어지고, 가외의 노력이 생산성을 높여준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집약을 위한 여유가 가장 큰 곳은 역시 농경 사회이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재분배 시스템의 농경적 토대가 집약적일수록, 계급, 부, 권력을 뚜렷하게 구분하는 잠재력도 크다. 그러나 무미가 섬기던 사람들이 무미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 경위를 이야기하기 전에 잠시 다른 문제로 넘어가고자 한다. 무미가 생산에 도움이 되었다고 치더라도 그것이 무미 스스로에게 도움이 된 까닭은 무엇인가? 왜 사람들은 자기가 얼마나 많이 베풀 수 있느냐를 가지고 그토록 잘난 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