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베단따 철학
제10장 인도의 시간관과 역사관
제11장 현대 인도 사상
제9장 베단따 철학
‘베단따’ Vedanta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는 ‘베다 Veda의 끝 anta, 베다의 결론부분, 베다의 가르침과 지혜의 절정‘을 뜻한다. 그러므로, 이 용어는 본래 베다기의 마지막 작품인 우빠니샤드 Upanisad를 가리켰다. 그러나 ‘베단따’는 후에 우빠니샤드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이나 해석을 포함하게 되었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베단따의 세 주요 학파, 즉 (1) 샹까라 Samkara의 불이론, Advaita, nondualism, (2) 라마누쟈 Ramanuja의 제한적 불이론 Visistadvaita, qualified nondualism, (3) 마드흐와 Madhva의 이원론 Dvaita, dualism이 나타났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역사적 관점으로부터 우리는 뿌르와 미망사 Purva Mimamas와 우따라 미망사 Uttara mimamsa라는 용어를 쓰는데, 후에 전자는 간단히 미망사로 그리고 후자는 베단따라고 호칭되었다. 미망사는 일반적으로 베다의 가르침 가운데 제의적 측면 karmakanda에 관련되고, 베단따는 철학적, 사변적 측면 jnanakanda에 관련된다고 이해된다 이러한 구분에 비추어볼 때, 위에서 열거된 세 가지 베단따 학파는 우따라 미망사에 속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미망사 학파가 제식에 일차적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해서 사변적, 철학적 문제를 전적으로 회피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착오이다.
정반대로 미망사라는 말은, ‘반성과 비판적 검토에 의한 문제의 해결’을 뜻한다. 따라서, 미망사 학파의 과제는 다음의 두 가지이다. (1) 베다의 복잡하고 외관상 모순되는 제사적 규정들이 조화롭게 해석되고 시행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는 것과 그리고 (2) 베다 제식을 철학적으로 합리화시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목적의 실현은, 필연적으로 미망사 학파를 방법론적, 내용적 양면에서 중대한 철학적 문제에 연루시킨다. 미망사 학파의 철학적 탐구는 막대하고, 그 결과도 중요한 것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인식과 진리, 오류에 관한 그들의 견해이다. 베단따 학파는 미망사 학파에 의해 형성된 ‘인식 방법’ pramana을 인정할 뿐 아니라, 그것을 자신의 체계 내에 합병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망사 학파의 덕을 입고 있다.
1. 베다적 배경
베다는 아마도 인간의 기록된 역사에 있어서 가장 오랜(1500~800 B.C.)경전이다. 그것은 여러 가지 형태의 정통적 힌두교의 신성한 지식과 지혜의 원천이다. ‘베다’ Veda는 어원적으로 ‘지식’을 뜻한다. 힌두들은 베다를 인간의 저작이 아니라 그 기원이 신적인 것이라고 여기며, 따라서 초시간적이고 영원하다고 간주했다. 이것은 인간사의 특정 시기에 베다가 구어적이든 문어적이든 어떤 언어적 형태를 취했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만 베다가 선언한 진리가 영원한 진리이며, 결코 그 기록의 방식이나 시간, 장소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베다엔 리그 Rg, 사마 Sama, 야주르 Yajur, 아타르와 Atharva의 네 가지가 있다. 이들의 각각은 제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처음 세 부분은 의식과 규정에 관계되며, 마지막은 철학적, 초월적 지식에 관계된다. 각 베다의 네 부분은 (1) 본집 Samhita, (2) 제의서 Brahmana, (3) 삼림서 Aranyaka, (4) 오의서 upanisad이다. 여기서 ‘우빠니샤드’의 문자적 의미는, ‘스승 가까이 앉아서 그의 가르침을 경청하기’, 또는 ‘무지와 착각을 파괴하며, 인간을 궁극적 실재로 이끄는 것’이다.
상히따 Samhita란 바람 Vayu, 불 Agni, 비 Parjanya, 천둥 Indra, 태양 Mitra과 같은 여러 가지 신을 찬미하는 시와 찬송가들이다. 신들을 찬양함으로써 그들로부터 재물, 건강, 권력, 명성과 샅은 세속적 은혜를 얻고자 사람들은 그런 찬미가를 불렀다. 브라흐마나(제의서)란 여러 종류의 의식과 제사의 수행을 위한, 그리고 일상생활의 행위를 위한 지침서이다. 그 안엔 서로 다른 신들을 기쁘게 하기 위한 갖가지 의식수행의 절차와 그들에게 제공될 제사의 종류들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또한 사람들 상호간의 행위의 규칙과 의무가 규정되어 있다. 의식과 제사, 의무에 대한 브라흐마나의 지나친 강조는 시간의 경과에 따라 종교적 의식의 타락을 초래하였다. 형식적인 의식이나 행위의 수행, 특정한 주문이나 제사의 송창 따위가 진정한 종교적 정신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공허한 말과 기계적인 동작이 종교생활의 핵심을 구성한다고 생각되기에 이르렀다. 그와 같은 퇴락은 곧이어 막강한 사제계급과 더불어 종교의 경직된 제도화를 출현시켰다. 그러나, 이 말은 브라흐마나가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브라흐마나는 자제를 강조하며, 동물을 포함한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과 친절, 자비를 함양할 것을 권고한다. 더 나아가 그것은 살생과 도둑질, 탐욕, 질투를 금한다. 그러므로 브라흐마나는 그 드높은 윤리적 교설만으로도 권할 만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식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순수하고 숭고한 종교적 정신의 점진적 쇠퇴를 초래하였다.
아란야까(삼림서)도 브라흐마나와 같이 의례와 제식을 다룬다. 그러나 브라흐마나와 달리 이들은 의례나 제식을 넘어서, 참다운 해탈의 지혜란 다만 의식의 수행이 아니라 궁극적 실재에 대한 영적 통찰에 있음을 상기시킨다. 아란야끼는 베다의 규정이나 제식 뒤에 있는 영적 의미를 모색하고 파악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방식으로 아란야까는 베다적 지혜의 꽃인 우빠니샤드에로의 길을 닦는다.
우빠니샤드의 중심적 통찰을 논하기 전에 상히따, 브라흐마나, 아란야까에 있어서의 자연과 인간, 신 개념의 발전을 간략히 살펴보자. 리그베다를 관통하는 관념은, 자연이란 그 모든 다양성과 잡다성에 있어서 카오스가 아니라 기본적인 우주적 법칙, 즉 ‘리따’ Rita에 지배된다는 것이다. 별들의 운행이나 유기체의 출생, 소멸, 죽음뿐 아니라 진리와 정의조차도 이 법칙에 종속된다. 베다사상의 이 단계에서는 많은 신들이 존재한다고 하는 다신교 polytheism가 지배적인 듯 보인다. 신들의 은혜를 얻고자 그들을 찬탄하는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면밀히 음미해보면, 각 신은 그 친미가 속에선 우주의 창조자이며 지고의 주로서 찬양된다. 이 역설적이고 상충되는 믿음과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19세기의 위대한 인도학자인 막스 퀼러는 이런 종류의 믿음과 태도를 다신교로부터 구분지어 교체신교 henotheism라고 지칭했다. 그래서, 다신에 대한 믿음은 다신교나 교체신교 모두에 공통된 것이지만 다만 후자는 개개의 신을 가장 높고 지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개개의 신을 최고의 지위로 올리는 것은, 낭만적인 과장법이거나 이기적 무적에 동기를 둔 기회주의적인 과장과 아첨이라고 반박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는 견지될 수 없다. 왜냐하면, 개개의 신을 최고의 지위로 고양시키는 것은 그 신들이 단일한 실재의 현현이라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일한 실재에 대해 성인들은 여러 가지 이름을 준다. 그들은 그것을 아그니, 야마, 마따리슈완으로 부른다“ 이 말에 비추어 볼 때, 각 신을 가장 높고 숭고한 것으로 여기는 것은 불합리하지도 역설적이지도 않다. 이 해석을 더욱 뒷받침해 주는 것은, 모든 존재의 단일성에 대한 명백한 단언이다. 뿌루샤수끄따(원인가) purusasukta로 알려진 유명한 찬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 개의 머리, 천 개의 눈, 천 개의 발을 가진 뿌루샤(원인)
그는 사방으로부터 대지를 감싸고,
저 높이 서 있었네.
뿌루샤는 과거와 미래, 이 모든 것이니,
(제사의) 음식으로 드높이 성장하는
불사의 주
그의 위대함은 그와 같으나,
그보다 더욱 위대한 것이 뿌루샤이니,
그의 사분의 일이 전존재이고 나머지 사분의 삼은 하늘에 있는 불사로다.
뿌루샤는 사분의 삼이 저 높은 곳에 있고,
사분의 일은 이 대지 위에 솟았네.
그리하여 그는 뭇생명과 무생물이 되어 온 사방에 퍼졌네.
이 찬가의 주제가, 유기체든 비유기체든 모든 존재의 통일성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베다의 성인들은 그러한 단일성을 ‘뿌루샤’ Purusa라고 하는 거대한 이미지로 표현했다. 이 찬가에 따르면, ‘뿌루샤’가 우주와 동등시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뿌루샤는 전 우주에 편재할 뿐 아니라 또한 그것을 넘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적 용어로 말하자면, 최고실재는 내재적 immanent이면서도 초월적 transcendent이다. 모든 존재에 편재함으로써 그것에 단일성을 주기 때문에 내재적이고, 존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기 때문에 초월적이다. 신학적 용어로는, 신은 우주에 편재하면서도 또한 우주 이상이다. 다시 말해서 베다의 신 개념은 범신론적 pantheistic이 아니라 만유재신론적 panentheistic이다(범신론이 신과 우주가 동일하다는 견해라면, 만유재신론은 신은 우주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크며 따라서 그것을 초월한다는 견해이다). 이런 식으로 존재의 단일성에 대한 베다의 통찰은 만유재신론으로 나아가며, 이것은 달리는 존재의 전체가 신 안에 있지만 신과 동일하지는 않다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리그베다가 모든 존재의 기저에서 그것을 통일하는 궁극적 실재를 ‘뿌루샤’(원인)라는 용어로 나타냄을 보았다. 그런데 여기서 이 궁극적 실재의 개념이 의인적 anthropomorphic이 아닌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 문제에 대한 베다의 답변은 분명히 ‘아니오’이다. 유무가 Nasadiyasukta로 알려진 유명한 창조찬가는, 궁극적 실재(=뿌루샤)가 비인격적일 뿐 아니라 모든 이름과 형태 nama-rupa를 넘어선, 불가언표적인 것이라고 명확히 단정 짓고 있다.
그때엔 무도 유도 없었네.
바람도 없었고, 그 위의 하늘도 없었네.
무엇이, 어디에 누구의 방호 속에 있었나?
다만 심연 모를 깊은 물이 있었던가?
누가 아는가? 누가 그것을 단언하겠는가?
어디에서 그것이 생출했으며, 이 피조물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신들도 이 세계의 창조 후에 태어났으니,
어디로부터 이 우주가 생성되었는지 누가 알 수 있으랴?
어디로부터 세계가 나왔는가?
그가 그것을 만들었는가, 아닌가?
아무도 모른다.
드높은 천상에서 살펴보는 자,
그만이 알겠지, 아니 그도 아마 알 수 없겠지.
이 찬가에 따르면, 모든 존재는 사고와 언어를 넘어서 있으므로 기술하거나 규정지을 수 없는 절대자인 단일한 실재의 현현이다. 이 궁극적 실재라는 거창한 개념은 논증이나 철학적 사변이 아니라 드높은 시적, 신비적, 직관적 통찰에 바탕한 것임이 분명하다. 또한 특기할 만한 것은, 이 실재에 대한 비젼은 모든 신들을 넘어서 전 존재의 원초적 바탕으로 귀착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비젼이 바로 우빠니샤드와 베단따적 제학파의 철학적 사변의 정신이다. 요컨대, 우빠니샤드 외의 베다 문헌조차도 실재에 대한 일원론적 비젼을 포함하고 있다. 이에 비추어볼 때,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베다의 찬가를 채우고 있는 종교적 의식이 기껏해야 다신교이며, 최악의 경우 애니미즘과 자연숭배라고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베다 찬가는 실재에 대한 숭고하고 드높은 비젼을 통해서 심오한 종교적 의식을 드러낸다.
2. 우빠니샤드
우빠니샤드 Upanisad는 베다의 결론부이자 베다적 지식과 지혜의 절정이다. 본래 얼마나 많은 우빠니샤드가 있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백 여덟 개의 우빠니샤드가 현존한다. 그중 일부는 산문으로, 다른 일부는 운문으로, 또 어떤 것은 산문과 운문이 혼합으로 씌어졌다. 우빠니샤드의 문체는 직접적이고 강력하며, 흔히 설교적이고 대화적이다. 누가 그것을 지었고, 언제 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깜깜하다. 흥미로운 것은, 고대인도에서는 저자를 익명으로 하는 것이 관례였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중요한 것은 진리이지 저자의 신분이나 경력이 아니라는 강한 신념이며, 저자는 스스로를 비개인적이고 영원한 진리를 전달하는 수레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비상한 통찰로써 우빠니샤드를 형성시켰던 위대한 선인 rsi들이 이름은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게 되었다.
백 여덟 개의 현존하는 우빠니샤드 가운데서 열 개가 우빠니샤드적 교설의 정수로 간주되고 있다. 그들은 이샤 Isa, 께나 Kena, 까타 Katha, 쁘라슈나 Prasna, 문다까 Mundaka, 만두꺄 Mandukya, 찬도갸 Chandogya, 브르하다란야까 Brhadaranyaka, 아이따레야 Aitareya, 그리고 따이띠리야 Taittiriya이다. 이 우빠니샤드들에 대해서는 고대, 근,현대를 통해 수많은 주석서가 씌어져왔다. 그 중에서도 샹까라 Samkara의 주석은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을 가진 것이다.
그런데 유념해야 할 점은, 우빠니샤드는 철학적 논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빠니샤드의 저자들은 스스로를 철학적 체계의 건립자가 아니라 실재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통찰을 전달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따라서, 우빠니샤드 속에서 체계적이고 일관되며 논리적인 사상의 전개를 찾는 것은 헛된 일이다. 분명한 모순이나 일관성 없는 진술, 그리고 때로는 주어진 주제로부터의 전혀 연관성 없는 이탈에 직면할 각오를 해야 한다. 더욱이 우빠니샤드는 자주 반복적이다. 같은 사상이 여러 곳에서 다소간 동일한 형식으로 취급된다. 우빠니샤드의 문체와 짜임새에 있어서 이런 특성을 어떻게 설명할까? 한 가지 대답은, 그것들이 한 사람의 작품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친 여러 사람의 통찰의 집적이라는 것이다. 우빠니샤드의 비체계적인 성격에 대한 또 다른 대답은, 그 저자들은 자질구레한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비젼과 통찰에 대한 포괄적인 그림을 제공하는데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요컨대, 그들의 관심은 부분이 아니라 전체에 있었다. 그러므로 우빠니샤드엔 고무적인 의미로 가득찬 간결하고 경구적인 진술이 많다. 번득이는 예지와 역동적인 직관이 그러한 짧고 강력한 발언 속에 싸여 있다.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우빠니샤드에 대해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고 우빠니샤드 속에 통일성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정반대로, 전 우빠니샤드를 관통하여, 그 내용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몇 가지 기본적인 개념과 사상이 있다. 그러므로 각양의 주석서들은 그 차이가 무엇이든 간에 이들 기본 개념을 공유하고 있다. 이제 그것을 살펴보자.
1) 브라흐만 Brahman
고대 선인들이 그들의 시선을 외계로 돌렸을 때, 그것이 간단없는 변화의 세계임을 발견했다. 엄청나게 다양한 생명 형태들의 탄생과 성장과 죽음, 달의 차고 기움, 계절의 오고 감, 이 모두가 바깥 세계 전체를 지배하는 변화와 변천을 시사했다. 변치 않고 머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같다. 그들을 둘러싼 영속적인 변화와 무상함의 파노라마에 외경심을 품고, 우빠니샤드의 탐구자들은 이같이 물었다. 이것이 이 세계에 있는 모두인가? 변천과 무상, 탄생과 성장, 죽음밖에는 아무것도 없는가? 아니면, 변화하는 세계 속이나 그 배후에 변치 않고 영원히 남아 있는 그 무엇이 있는가? 그들은 유전하는 세계 뒤에 변치 않고 영원한 무엇인가가 있다고 말함으로써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했다. 그 무엇을 그들은 브라흐만이라고 불렀다. 중요한 점은 변화하는 세계의 존재 자체가 바로 리쉬들에게 불변의 브라흐만의 개념을 시사했다는 것이다. 어떤 변화도 없다면, 어떻게 불변하는 것의 관념으로 인도될 수 있는가? 그런데 그들은 곧이어 다음과 같은 절박한 문제에 직면했다. 즉, 불변의 브라흐만과 변화하는 세계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브라흐만과 세계는 두 개의 다른 실재인가? 아니면 그들은 동일한가? 이 문제들에 대한 답은 동시에 ‘브라흐만’과 ‘세계’라는 개념의 명료화이기도 하다.
우빠니샤드에 따르면, 브라흐만은 변화의 세계의 모든 부분과 측면의 기저에 놓인 불멸의 불변하는 실재이다. 다음의 인용을 음미해 보자.
우주에 있는 무엇이든 모든 사물들의 내면에는 주재자가 계신다.
이것이 자연과의 관계에 있어서 브라흐만의 진실이니, 번갯불의 섬광이든 눈의 깜박임이든, 나타난 힘은 모두 브라흐만의 힘이다.
이것이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 브라흐만의 진실이니, 마음의 운동에 있어서 나타난 힘은 모두 브라흐만의 힘이다.
불멸하는 것이 실재이다. 마치 타는 불로부터 무수한 불꽃이 위로 날아오르듯이, 불멸자의 심연으로부터 모든 것이 일어나며, 그들은 다시 불멸자의 심연으로 내려간다.
저 존재는 스스로 빛나며, 무형체이다. 그는 모든 것의 안과 밖에 머문다. 그는 태어나지 않으며, 청정하고 가장 큰 것보다 크며, 호흡도 없고, 마음도 없다.
이상의 문구로부터 브라흐만이 자기동일적 힘이며 부단한 변화의 세계 배후에 있는 불변의 실재임이 분명하다. 이 단계에선 실재에 대한 우빠니샤드적 개념이, 한편으로는 변화하는 세계와 다른 편으로는 불변의 브라흐만이라는 이원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러한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우빠니샤드는 브라흐만만이 유일한 실재라고 지침 없이 강조하기 때문이다. 마치 진흙으로 만들어진 대상들이 다만 그 이름과 형태에서만 서로 다르듯이, 변화의 세계는 다만 이름과 형태의 세계이며, 그 실체 substance만이 실재 즉, 영원, 불멸의 브라흐만이다. “다만 말 혹은 언어만으로 변화가 일어나며, 실재에 있어서 변화라는 것은 없다. 그것은 단지 이름이며, 진흙만이 실재이다.“ 우빠니샤드의 실재 개념이, 변화하는 세계와 불변의 브라흐만으로 구성된 이원론이기는커녕 철저한 일원론이라는 것은 이상의 인용에서 명백하다. 브라흐만만이 유일한 실재인 것이다.
브라흐만은 감관과 이지의 세계와 달리 이름과 형태를 초월해 있다. 따라서, 무엇으로도 브라흐만을 적극적으로 묘사할 수 없으며, 단지 브라흐만이 아닌 것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모든 기술이란 관계인데, 브라흐만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므로 브라흐만은 기술될 수 없다. 그러나 브라흐만은 모든 존재에 편재한 힘이다. 이 점은 다음의 인용에 날카롭게 표현되어 있다.
브라흐만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자이며, 마음도 그에 도달할 수 없어 당혹하여 달아난다.
말로 표현될 수 없으나 그것에 의해 혀가 말하는 것, 그것이 바로 브라흐만임을 알라. 브라흐만은 인간이 예배드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마음으로써 그것을 이해할 수는 없으나, 그에 의해 마음이 이해하게 되는 것, 그것이 브라흐만임을 알라. 브라흐만은 인간이 예배드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눈으로 그것을 볼 수는 없으나 그에 의해 눈이 보게 되는 것. 그것이 브라흐만임을 알라. 브라흐만은 인간이 예배드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호흡이 그것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그에 의해 호흡이 이끌려지는 것. 그것이 브라흐만임을 알라. 브라흐만은 인간이 예배드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그러므로 브라흐만은 표현할 수 없고,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생각도 할 수 없는, 모든 존재의 기반이다. 브라흐만은 남성 he도 아니고, 여성 she도 아닌 중성 It이다. 브라흐만은 인간이 숭배하는 어떠한 유일신이나 다신들과도 동일시될 수 없다. 브라흐만은 감관이나 이지로는 결코 파악될 수 없고, 최고의 신비적 직관의 섬광에서 체험될 수 있는 뿐이다.
요컨대, 변화의 세계와 불변의 브라흐만이라는 두 가지 실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표현 불가능한 브라흐만이라는 단 하나의 실재가 있을 뿐이다. 우리의 감관과 이지의 세계는 브라흐만을 떠나서는 실재성이 없는 이름과 형태의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름과 형태의 다수성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은 실로 브라흐만 그 자체이다. 진흙은 비록 여러가지 이름과 형태를 통해 자신을 나타낼지라도 하나의 실재이며 하나의 실체이다.
2) 아뜨만 Atman
우빠니샤드의 리쉬 rsi들이 주의를 내면으로 돌렸을 때, 바깥 세계와 마찬가지로 부단히 변화하는 또 하나이 거대한 세계를 발견했다. 내적 세계란 감각, 지각, 사고, 감정, 영상, 기억, 느낌의 주마등같은 풍경이었다. 거기엔 영속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는 듯 보였다. 그러자 이런 의문이 제기되었다. 내적 세계란 단지 변천하는 현상에 지나지 않는가? 아니면 그 가운데 영구적이고 불멸하는 무엇인가가 존재하는가? 소란스럽고 격동하는 내적 세계의 가운데 그리고 그 배후에 불변하는 그 무엇이 있다고 그들은 답한다. 그리고 그 무엇을 모든 변화에 대한 고요하고 불멸하는 증자인 아뜨만 Atman이라고 불렀다. 아뜨만은 인간의 가장 내면의 자아이며 따라서 끊임없는 변화에 종속되는 경험적 자아 empirical ego와 혼동되어선 안 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자아’로서 인식하며, 심리학 실험실에서 연구하는 것은 경험적 자아이다. 경험적 자아를 아뜨만과 동일시해선 안 된다는 것은 다음 인용구로도 분명하다.
소금 덩어리를 물에 던지면, 녹아버려서 다시 집어낼 수 없지만, 그 물을 맛보면 짜게 느끼듯이, 오, 마이뜨레이여, 개아가 해소될 때, 그것이 무한하고 초월적인 청정한 의식이며 영원한 것이다. 개체성이란 무지 때문에 진아를 요소들과 동일화함으로써 일어난다. 그리고, 신성한 조명 속에서 다의 의식이 사라질 때 그것도 사라진다. 진아의 의식이 있는 곳엔 개체성도 더 이상 없다.
아뜨만은 태어나지도 창조되지도 않은 청정한 정신 spirit이며, 영원하다. “아, 사랑스러운 마이뜨레이여, 모든 것을 드러내는 지성, 그에 의해 그것이 밝혀질 것인가? 누구에 의해 인식주체가 알려진 것인가? 진아는 ‘이것도 아니다. 저것도 아니다’ neti neti라고 기술된다. 그것은 인식될 수 없으므로 불가사의하다. 그것은 소멸되지 않고, 잡혀지지 않으며, 무한하다.” 아뜨만은 인간 속에서만 아니라 바다, 별, 나무, 천둥, 새, 그리고 짐승 등 모든 존재 가운데 존재한다. 우주 속에 있는 것이면 그 무엇이든 모든 사물들의 심부에 아뜨만이 있다. “아뜨만은 모든 존재의 주인이다. 마치 수레의 살들이 테와 축에 의해 결합되듯이, 모든 존재들, 모든 생명들, 모든 신들과 세계들이 아뜨만에 의해 통일된다.” 현상적 세계란, 한끝에 무생명체를, 다른 한 끝엔 인간을 가진 존재의 위계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그 위계 속의 위치에 관계없이 모든 존재 가운데 아뜨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모든 존재는 그 핵심에 있어서 영적 spiritual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으로부터 분명해진 것은, 우빠니샤드에 따르면, 한편엔 아뜨만이 있고, 다른 한편엔 브라흐만이 있다는 것이다.
브라흐만은 모든 존재의 실체, 즉 불변의 실재이며, 이에 대해 변화의 세계는 다만 이름과 형태 nama-rupa를 통한 현현 manifestation에 불과하다. 아뜨만은 모든 존재 가운데 있는 영구적이고, 고요한 증자 witness이며, 모든 곳에 편재하는 순수정신이다. 더욱이 아뜨만이나 브라흐만 모두가 이름과 형태를 초월한 것이므로 말로 표혈될 수 없고, 오직 직관으로 체험되어질 뿐이다. 양자 모두 불생, 불변, 영원하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내적 세계의 기저에 놓인 아뜨만과 외적 세계의 기반인 브라흐만은 서로 다른 두 실재인가? 만일 그렇다면 아뜨만과 브라흐만 사이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 문제에 대한 우빠니샤드의 답변은 현자들의 위대한 통찰을 나타낸다. 외적 세계의 기저에 놓인 불변의 실재인 브라흐만은 비록 무한하고 영원하지만 영성 spirituality을 결하고 있으며, 반대로 내적 세계의 기저에 놓인 아뜨만은 비록 영적이지만, 무한성을 결하고 있다. 말하자면, 무한한 브라흐만은 순전히 물질적 실재이고, 아뜨만은 유한한 영적 실재라고 생각해도 모순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리쉬 rsi들은 브라흐만과 아뜨만을 동일화함으로써 일격에 아뜨만을 무한한 정신으로 브라흐만과 아뜨만을 동일화함으로써 일격에 아뜨만을 무한한 정신으로 브라흐만을 정신적 무한자로 바꿀 수 있었다. 그리하여 우빠니샤드의 현자들은, 아뜨만과 브라흐만이 서로 다른 두 실재가 아니라, 외적이거나 내적이거나 변화하는 현상계의 기저에 놓인 변하지 않는 단일실재의 두 가지 다른 측면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것이 바로 우빠니샤드적 예지의 핵심인 ‘Tat tvam asi’(그대가 바로 그것이다), ‘Aham Brahma asmi’(나는 브라흐만이다), ‘Ayam Atma Brahma’ (이 아뜨만이 곧 브라흐만이다), ‘Prajnanam Brahma’(순수의식이 곧 브라흐만이다)이다.
우리 내면에 있는 것은 또한 바깥에도 있다. 바깥에 있는 것은 또한 내면에도 있다. 내면에 있는 것과 외부에 있는 것을 다르게 인식하는 자는 죽음에서 죽음으로 한없이 계속된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 모든 것을 인식하며, 그 영광이 우주에 현현된 아뜨만은 바로 브라흐만의 도시인 마음의 신전 속에 살고 있다.
미묘한 본질이며, 만물이 그 안에 존재하는 그것이 바로 진리이며, 아뜨만이다. 그리고 오, 스베따게뚜여, 그대가 바로 그것이다.
비록 형태를 띄고 있지만 그는 무형상이다. 무상의 한 가운데서 그는 영원히 머무른다. 무소부재하고 지극히 높은 것이 아뜨만이다. 자신의 본성을 아는 현자는 모든 슬픔을 초월한다.
3) 지식과 자유 moksa
우빠니샤드는 낮은 지식 aparavidya과 높은 지식 paravidya을 구분한다. 전자는 감각과 사고의 산물이며, 따라서 변화하고 무상한, 유한적 대상계에 제한된 것이다. 다른 한편 높은 지식이란 무한하고 영원한 브라흐만을 성취시켜 주는 것이다.
높고 낮은 두 종류의 지식이 있다. 낮은 것은 베다(=Rig, Sama, Yajur, Atharva)와 음성학 siksa, 제의 kalpa, 문법 vyakarana, 어원학 nirukta, 운율학 chandas, 천문학 jyotisa에 대한 지식이다. 높은 지식은 불변의 실재를 인식하는 것이다. 이에 의해 감각을 넘어서고 원인이 없으며 규정지워질 수 없고, 눈도 귀고 손도 발도 없으며, 무소부재하며, 가장 미묘한 것보다도 더 미묘하며, 영원하고 모든 것의 근원이 되는 것이 현자에게 완전히 드러난다.
최고의 지식은 낮은 것과 달리 비지각적, 비개념적이며, 직관적이다. 그것은 직접적이며, 감관과 사고를 가라앉힌 사람에게만 달성된다. 더욱이 높은 지식은 객관적인 것도 주관적인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식주체, 대상, 인식행위라는 경험적 인식의 세 범주를 넘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의식이나 제사의 수행, 찬송가나 주문의 음송으로는 높은 지식을 얻을 수 없다. “경전의 학습이나 사고력의 훈련이나 학식을 통해서도 아뜨만은 인식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를 연모하는 자에게 그는 알려진다. 실로 그에게 아뜨만은 그 참모습을 드러낸다.“
무지와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moksa는 지금, 여기 바로 금생에서 성취될 수 있다. 육신을 갖고 있으면서 브라흐만 인식을 얻은 자는 생해탈자 jivanmukta이다. 일단 무지와 미망을 정복하면, 그는 생과 사를 넘어서며, 불사를 성취한다. 죽음에서 생해탈자는 생과 사를 초월한 상태, 완전한 자유인 까이왈야 kaivalya를 달성한다. “베단따의 진리를 완전히 확인하고 이해하며, 무집착의 요가를 수행, 청정행을 확립함으로써 이 위대한 자들은 바로 금생에서 불사를 성취한다.” 우빠니샤드의 맥락에서 불사란 우주의 어떤 알 수 없는 먼 구석에서 끝없는 생존을 지속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바탕에 대한 통찰을 획득한 의식상태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한 의식을 획득하는 것이 곧 불사를 획득하는 것이다 불사란 곧 사뜨, 찌드, 아난다(sat=순수존재, cit=순수의식, ananda=순수희열)이다.
브라흐만 실현의 길로서 우빠니샤드는 네 가지 수련을 권한다. (1) 도덕적 청정과 해탈자, 즉 브라흐만과 아뜨만에 대한 인식을 구하는 의지와 함양, (2) 우빠니샤드적 진리를 가르치는 스승 guru을 추종하고 배움, (3) 배운 진리에 대해 심사숙고함, (4) 명상
많은 사람들에겐 아뜨만에 대해서 들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은 그것을 듣고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에 대해 말하는 자는 훌륭하다. 그에 대해 배운 자는 슬기롭다. 좋은 스승에게 가르침을 받고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자는 축복받은 자이다.
아뜨만의 진리는 무지한 자에 의해 가르쳐질 때, 완전하게 이해될 수 없다. 왜냐하면, 그에 관한 견해는 지식에 근거하지 않는 한,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가장 미묘한 것보다 더욱 미묘한 것이 이 아뜨만이며, 모든 논리를 넘어선 것이다. 아뜨만과 브라흐만이 하나임을 아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은 자는 헛된 이론을 버리고 진리에 이른다.
말은 그를 드러낼 수 없다. 사고는 그에게 이를 수 없다. 눈은 그를 볼 수 없다. 그를 진실로 아는 현인의 가르침외에 어찌 그를 인식할 수 있겠는가?
비길 바 없는 활과 봉헌의 날카로운 화살을 우빠니샤드에 고정시키라. 집중된 마음과 사랑으로 가득 찬 가슴으로 화살을 당겨 불멸의 브라흐만이라는 과녁을 맞추어라. 옴 Om이 활이고 화살을 개별적 존재이며, 브라흐만이 과녁이다. 고요한 마음으로 표적을 잡으라. 마치 화살이 과녁과 결합하듯이 그대 자신을 그 안에서 잃으라. 그 안에서 하늘과 땅이 마음과 모든 감관과 함께 얽혀 있다. 오직 아뜨만만을 인식하라. 잡담을 버리라. 그는 불사의 다리이다. 수레의 살처럼 신경이 만나는 그 곳, 마음의 연꽃속에 그는 머물고 있다. 그를 ‘옴’으로 관조하라. 그대는 어둠의 바다를 쉽게 건널 수 있으리라.
이상이 아뜨만과 브라흐만의 동일성이라는 우빠니샤드적 불이론의 가르침이다. 인간의 속박과 부자유 상태는 자신의 참 존재와 본성에 대한 무지에 기인한다. 이 원형적 무지를 파괴함으로써 인간은 스스로를 영원, 무한한 브라흐만이라고 깨닫게 된다.
위대한 현인 라마끄리쉬나의 재미난 우화를 인용함으로써 우빠니샤드에 대한 간략한 논의를 매듭짓고자 한다.
먹이를 구하던 한 마리의 암사자가 양떼에게 접근하였다. 그들 중 한 마리에게 달려들었을 때, 사자는 새끼를 낳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어린 사자는 자신이 사자임을 전혀 모른 채 양의 무리 속에서 풀을 먹고 양처럼 울면서 자라났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마리의 사자가 양떼 가까이 지나다가 풀을 먹으면서 양처럼 울고 있는 커다란 사자를 보고서는 깜짝 놀랐다. 사자를 본 양떼들은 달아났고, 마침 졸고 있던 양같은 사자만이 남게 되었다. 이방의 사자가 양같은 사자에게 ‘그대는 사자이다’라고 알려 주었지만, 아니라고 하고는 양처럼 풀을 뜯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방의 사자는 그를 호수로 데려가서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했고, 양이라고 생각하는 사자는 자신이 모습이 양이 아니라 이방의 사자와 같은 모습임을 알게 되었다. 이방의 사자는 우렁차게 울부짖고는 양과 같은 사자에게도 꼭같이 소리내 보라고 권하였다. 양과 같은 사자가 목청을 돋구자 사자와 같은 웅장한 소리가 나왔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양이 아니었다.
실제로 우리 모두는 브라흐만이다. 그러나 무지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유한하고, 멸망하는 존재라고 착각하고 있다. 우빠니샤드는 우리에게 무지의 구름을 뚫고 우리 자신이 무한, 영원, 불멸의 브라흐만임을 발견하라고 권고한다.
3. 베단따의 학파들
우빠니샤드는 본래 체계적인 철학적 논문이 아니라 궁극적 실재에 대한 직관적 통찰과 직접적 경험에 대한 여러 현자들의 기록이다. 이런 까닭으로 우리는 우빠니사드 안에서 외관적으로는 모순된 진술과, 동일한 관념에 대한 때에 따른 강조의 차이, 때로는 겉보기에 부적합한 이탈에 부딪치기도 한다. 게다가 우빠니샤드의 간결하고 경구적인 문체며 주제의 비교적 성격 때문에 사상을 파악하기가 곤란하다. 그러므로 시간의 경과에 따라 우빠니샤드를 다르게 해석하게 되었고, 따라서 그 기본사상을 체계화하려는 요구가 절실해졌다. 우빠니샤드적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려는 최초의 시도가 바로 바다라야나 Badarayana의 유명한 브라흐마 수뜨라 (또는 Vedanta-sutra, Sariraka-sutra로도 알려짐)이며, 이것은 모든 베단따적 사상의 초석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브라흐마 수뜨라는 크건 작건 모든 베단따 사상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그러나 지적해 두어야만 할 것은, 브라흐마 수뜨라 그 자체도 간결하고 경구적인 진술로 구성되어 있어서 다양한 뜻과 해석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후대의 베단따 사상가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브라흐마 수뜨라와 우빠니샤드를 해석한 정교한 주석서를 저술했다. 이런 식으로 베단따의 여러 학파들이 일어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샹까라 Sankara의 불이론 Adavaita, 라마누쟈 Ramanuja의 제한적 불이론 Visistadvaita, 마드흐와 Madhva의 불이론 Dvaita이다.
4. 불이론적 베단따 Advaita Vedanta
샹까라의 생애와 연대는 전설에 감싸여 있다. 다른 사람의 저작 가운데 나타난 그에 대한 언급에 근거하여, 샹까라가 대략 AD.8세기나 9세기 사이에 활동했다고 추정된다. 샹까라는 오늘날의 께랄라 주에 있는 한 마을인 깔라디의 바라문 가계에서 태어났다. 그는 고빈다빠다 Govindapada의 제자였고, 고빈다빠다는 다시 위대한 가우다빠다 Gaudapada의 제자였다. 일찍이 해탈지를 얻은 후, 샹까라는 아드와이따 베단따를 가르치고 반대자와 토론하면서 널리 여행하였다. 전통에 따르면 그는 서른 두 살의 젊은 나이에 죽었다. 짧은 생애에 비해 샹까라의 성취는 실로 비범한 것이었다. 그는 지적 그리고 종교적 천재이자 시인이며, 신비가, 철인, 성자였다. 그의 저술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브라흐마 수뜨라와 우빠니샤드, 그리고 바가와드 기따에 대한 주석이다.
1) 인식방법 Pramana
아드와이따 베단따는 꾸마리라 밧따 Kumarila Bhatta의 미망사 학파에 의해 정립된 여섯 쁘라마나 pramana를 인정한다. 그것은 (1) 지각 pratyaksa, (2) 추리 anumana, (3) 증언 sabda, (4) 비교 upamana, (5) 상정 arthapatti, (6) 비지각 anupalabdhi의 여섯 가지이다. 지각, 추리, 증언에 관해서는 니야야 학파의 견해와 다름이 없다. 그러나 나머지 세 인식방법에 관해서는 니야야 사상가들과 다소 차이가 있으므로 그에 대해 다음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1) 비교 Upamana
비교는 독립된 인식방법이다. 이것은 지각으로 환원될 수 없는 비지각적 방법이다. 또한 추리와 같은 다른 비지각적 수단으로 환원될 수도 없다. 비교를 통해 도달되는 인식은 ‘A는 B와 같다’라는 판단형식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B는 판단의 때에 지각되는 대상이며, A는 과거 어느 때에 지각된 대상으로서 지금 기억되어 B와 유사하다고 주장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외양간에서 소를 보아 알고 있는 사람이 어느 날 숲에서 들소를 만나자 ‘외양간에서 내가 본 소는 숲에서 지금 보고 있는 들소와 비슷하다‘라고 말한다. 불이론자에 따르면, 이 인식은 지각이 일종일 수 없다. 왜냐하면, 이 판단에 연루된 두 대상 가운데서 오직 하나만이 지금 지각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기억에 근거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지각된 것과 지금 기억되는 것은 외양간의 소이며, 지금 숲에서 지각되는 들소와 그것의 유사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사성은 기억의 대상이라고 말할 수 없다. 또, 비교에 의한 인식은 추리적 인식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추리는 언제나 두 관계 항 사이의 불변적 관계 vyapti를 진술하는 보편적 전제 universal premise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선 그러한 전제가 사용되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숲의 들소가 외양간의 소와 유사하다‘라는 명제로부터 ’외양간의 소는 숲의 들소와 유사하다‘라는 명제를 추리하기 위해서는, 두 대상을 X와 y로 대치할 때, ‘만일 X가 Y에 유사하면, Y는 X에 유사하다‘는 보편적 전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분명 비교에 의한 인식에는 그러한 전제가 사용되지 않는다. 외양간에서 소를 보고 그후에 숲에서 들소를 본 사람은 추리작용이 없이 전자가 후자에 유사하다고 판단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X의 Y에의 유사성은 Y의 X에 대한 유사성과 수적으로 구분된다.
(2) 상정 Arthapatti
상정 postulation은 독립된 인식방법이다. 달리는 설명할 수 없는 관찰된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상정’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밤낮으로 단식을 한다고 말하지만, 체중이 불어남이 관찰된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우리는 그를 낮에만 볼 수 있고, 또 그때 그가 단식을 하고 있었다고 가정하자. 이런 상황에서 그의 체중이 불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는 유일한 길은 그가 밤 동안에 식사를 한다고 상정하는 것이다. 상정은 그가 밤에 식사하는 것을 지각하지 못했으므로 지각이 아니다. 또 체중의 증가와 밤의 식사와의 사이에 불변적 관계가 없기 때문에 추리도 아니다. 상정은 서양논리학에 있어서 가설 hypothesis과 같다. 그러나 둘 사이엔 차이가 있다. 가설은 잠정적이어서 후에 거부될 수도 있는 반면 상정 arthapatti은 관찰되는 사태에 대한 유일하게 가능한 설명이다. 더욱이, 상정이 관찰되는 사실의 설명에 관련됨에 대해, 추리는 관찰되는 사실로부터 결론을 도출하는데 관련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간략히 말해서, 상정이 근거에의 모색이라면, 추리는 근거의 결과에 대한 모색이다.
(3) 비지각 Anupalabdhi
인식방법의 하나로서 비지각은 인식의 일종이다. 그것은 대상의 비존재에 대한 우리의 직접적 인식이다. 이것은 부정적 사실, 즉 대상의 비존재라는 사태에 관련된다. 예를 들어, 서재에서의 코끼리의 비존재는, 서재 안에서의 코끼리 인식의 부재로부터 알려진다. 그러한 비인식을 비지각 anupalabdhi이라고 한다. 불이론적 베단따에 따르면, 비지각은 다른 다섯 pramana의 어느 것으로도 환원될 수 없다. 사물의 비존재가 그 비인식으로부터 추리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추리는 두 관계 항 사이의 불변적 관계 vyapti를 주장하는 보편적 명제를 요구하는데, 서재 안에서의 코끼리의 부재에 대한 나의 지각에는 그러한 명제가 사용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비지각이 추리의 일종이라고 함은, 어떤 것이 지각되지 않을 때 그것이 존재하지 않음을 확립하는, 이른바 선결문제 미해결의 오류이다. 또 비지각이 지각이나 비교, 증언, 상정의 경우가 될 수 없음도 분명하다. 이런 이유로 불이론자들은 비지각을 독립된 인식방법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모든 비지각의 경우들이 반드시 비존재의 경우는 아니다. 즉, 우리는 어두운 방에서 테이블을 지각하지 못하나 그렇다고 이것이 방에 테이블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달리 표현하면, 비지각이 곧 그 비존재를 의미하는 것은, 지각의 조건을 갖춘 상황하에서 대상이 지각되지 않을 때 만이다. 충분히 빛이 있는 방에서 테이블이 지각되지 않을 때, 우리는 방에 테이블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한 비지각의 경우만이 비존재의 인식방법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요컨대 아드와이따 베단따는 여섯 인식방법을 꾸마리라 밧따의 미망사 학파로부터 차용하여 받아들이고 있다.
2) 실재에 대한 샹꺄라의 견해
파기와 존재의 차원
실재에 대한 샹까라의 이론에 중심되는 것은, 파기 sublation라는 개념이다. 파기란 본질적으로 판단의 오류를 수정하고 정정하는 심적 과정이다. 그러므로 전의 것에 상충되는 새로운 경험에 비추어 전의 판단을 그릇된 것으로 간주하거나 혹은 상당한 정도로 그것을 격하시킬 때 우리는 이전에 지녔던 판단을 파기시켰다고 한다. 주어진 판단의 파기가 필연적으로 새로운 것에 의한 대치를 낳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판단뿐 아니라 개념이나 대상, 관계, 그리고 일반적으로 어떤 의식내용도 파기될 수 있다. 샹까라에 있어서 파기가능성 sublatability이 의식의 어떤 내용에 대한 존재론적 위상의 기준이 된다. 파기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파기의 결과로 그것을 대치한 것보다 낮은 정도의 실재성과 가치를 가진 것이다. 샹까라가 그의 존재론적 위계 ontological hierarchy에 이른 것은 파기의 개념을 통해서이다.
파기가능성의 기준에서 샹까라는 실재 reality와 현상 appearanc, 그리고 비실재 unreality를 구분 짓는다. 실재란 어떤 다른 경험에 의해서 파기될 수 없는 것이고, 현상이란 다른 경험에 의해 파기될 수 있는 것이며, 비실재란 파기될 수도, 안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실재, 현상, 비실재
파기라는 행위는 경험자와 피경험자, 주관과 객관, 의식과 의식내용 사이의 근본적 이원성을 전제로 함을 주의하자. 그것은 또한 대상과 개념, 판단, 즉 일반적으로 의식내용의 복수성을 전제로 한다. 주관과 객관 사이의 구분도 파기에 필수적이다. 왜냐하면 대상을 파기하는 것은 주관이기 때문이다. 대상의 복수성이 파기에 필수적이다. 파기란 한 대상이나 경험을 다른 양립 불가능한 대상이나 경험과 대치시키고 처음 것이 나중 것보다 배급이 실재성을 갖는다는 판단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 말에 비추어 볼 때, 실재의 경험이 파기불가능적이라고 말함은, 어떤 다른 경험도 실재의 경험과 모순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 이유는, 실재엔 모든 구분, 즉 한 대상과 다른 대상 사이의 구분뿐 아니라, 주관과 대상, 자아와 비자아 사이의 구분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재의 경험은 모든 구분을 초월하며, 그러므로 주관과 객관, 자아와 비자아 사이의 순수한 동일성의 경험이다. 실재는 어떤 구분이나 대립, 제한, 혹은 관계를 전혀 결여하기 때문에 파기불가능하다. 실재의 경험은 다른 모든 것을 파기시키나, 그 자체는 다른 어떠한 경험에 의해서도 파기될 수 없다.
현상 appearance(플라톤과 칸트의 용어로는 ‘phenomenon’)은 원리적으로 파기될 수 있는 것이다. 순수존재로서의 실재와 대조적으로, 현상은 존재자 existents의 영역으로 생각될 수 있다. 샹까라는 존재자를 참 존재자, 존재자, 환영적 존재자의 세 종류로 나눈다. 참 존재자는 오직 실재에 의해서만 파기될 수 있는 것이다. 실재와 달리 참 존재자는 주객 구분의 틀 속에서 경험된다. 그렇다면, 참 존재자의 경험을 파기할 수 있는 유일한 경험은 주객의 이분법을 초극하는 경험, 즉 실재의 경험뿐이라는 결론이다. 두 가지 예로써 이 점을 설명해보자. 종교적 맥락에서 인간은 자신을 피조물로, 그리고 신은 그가 의존하고 예배, 순종하는 창조주로 경험한다. 샹까라에 따르면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의 이원성의 경험은 다양성과 복수성의 영역내 어떠한 경험에 의해서도 파기될 수 없다. 그것을 파기할 수 있는 것은 이름과 형태, 즉 모든 구분을 초월하는 실재의 경험뿐이다. 다른 예를 들면, 우리는 명제적 진리의 시금석으로서 모순률을 받아들인다. 즉, ‘-P’가 허위인 한 ‘P’를 진리로 여긴다. 인간이 세계에 대한 그들의 경험을 모순률에 따라 조직하는 한, 어떠한 명제, 따라서 그들이 형성한 어떠한 진리도 모순률을 어기거나 파기할 수 없다. 오직 논리와 언어를 넘어선 실재의 경험만이 모순률을 극복할 수 있다. 이 통찰은 과학적 합리적 인식활동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마음은 그 자체도 실재도 파악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구분지음으로써만 가능할 수 있는데, 그 자신을 파악하기 위해선 구분지음이 없이 기능해야만 한다. 요컨대 다른 모든 것을 자르는 칼이 그 자체는 자를 수 없는 것과 같이, 마음도 자체를 파악할 수 없다. 마음은 실재를 파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실재는 구분의 영역, 즉 마음이 영역을 전혀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현상계의 두 번째 범주는 존재자이다. 참 존재자 real existent가 오직 실재에 의해서만 파기될 수 있는데 대해, 존재자 existent는 참 존재자와 실재 모두에 의해 파기될 수 있는데 의해 파기될 수 있다. 존재자의 영역은 상식적, 논리적, 과학적, 사회적 등등의 관행 convention에 의해 합의된 규칙과 틀에 근거한 약정적 지식을 특성으로 한다. 예를 들어 상식적 관점으로부터 나는 나의 책상이 고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상식적 견해는 책상이 끊임없는 운동 가운데 있는 대전체라는 과학적 주장에 의해 파기된다. 즉, 상식적인 고체개념이 움직이는 대전체라는 과학적 개념에 의해 대치된다. 그러나 운동하는 대전체의 개념은 모든 구분을 넘어선 존재로서의 실재 경험에 의해 파기된다. 이것이 바로 존재자는 다른 존재자나 혹은 실재에 의해 파기될 수 있다는 말의 뜻이다. 그러나 모든 참 존재자는 실재에 의해 파기될 수 있기 때문에 ‘파기’란 존재자, 참 존재자, 실재에 관련된 변이적 관계이다. X를 존재자, Y를 참 존재자, Z를 실재로 대치할 때, ‘Z는 Y를 파기하고, Y는 X를 파기한다‘는 뜻이다.
현상이 세 번째 범주는 환영적 존재자이며, 이것은 다른 모든 종류의 경험에 의해 파기될 수 있다. 환영적 존재자는 착각, 환각, 꿈 그리고 모든 그릇된 지각을 포함한다. 환영적 존재자는 경험적, 일상적, 인습적 진리의 기준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예를 들어, 사막을 여행하는 목마른 나그네가 갈증을 식히고자 어떤 지점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그 지점에 도달한 후 그는 그곳에 물이 없음을 발견하고, 그의 물에 대한 지각은 신기루라는 착각이었음을 깨닫는다. 결국 신기루의 경험은 또 다른 경험에 의해 파기되었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는 비실재라는 개념에 부딪힌다. 샹까라에 따르면, 비실재는 다른 경험에 의해 파기될 수도 또 되지 않을 수도 없다. 현실적이든 가능적이든 우리 경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은 비실재적이다. 비실재적 대상이 경험될 수 없는 까닭은, 비실재적 대상이라는 개념은 자기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장방형 원’, ‘불임녀의 아이‘, ’기혼 독신‘ 등은 비실재적 대상의 예이다. 어떤 것이 파기될 수 있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우리 경험의 대상이어야만 한다. 그런데 비실재적 대상은 우리 경험 속에 결코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것들이 파기가능하다.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런 이유로 샹까라는 비실재적 대상이란 파기가능하지도 불가능하지도 않다고 말한다. 지적해 둘 것은, 환영적 존재자가 실재에 있어서 as a matter of fact 우리 경험 가운데 객관적 대응자를 갖지 않는 것이라면, 비실재적 대상이란 원리적으로 객관적 대응자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요컨대, 비실재란 비존재 nonbeing이다.
실체성에 대항 샹까라의 기준에 따르면, 브라흐만(=Atman)만이 실재이자 순수존재이고, 경험적 세계(감각과 오성의 세계)는 현상이며, 비존재는 비실재이다. 그러나 이 주중에 대한 샹까라의 논증을 검토하기 전에 그의 인과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샹까라는 인중유과설 satkaryavada을 지지한다. 인중유과설이란, 결과가 원인과 동일하다, 혹은 원인 가운데 이미 존재한다는 설이다. 이 점에서 샹까라는 샹캬 학파에 동의한다. 우리는 샹캬장에서 인중유과설에 전변설 parinamavada과 가현설 vivartavada의 두 종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자에 따르면, 비록 결과가 원인 속에 선재한다고 할지라도 원인은 결과를 초래함에 있어서 실재적 변형을 겪으며, 후자에 따르면 변형은 실재가 아니라 단지 회관적 apparent일 뿐이다. 샹까라는 전변설을 강하게 거부하며, 가현설을 지지한다. 전변설에 반대하는 그의 논증은 다음과 같다. 만일 전변설이 참이라면, 그것은 인중유과설에 모순된다. 왜냐하면, 만일 결과를 초래함에 있어서 원인이 겪는 변화가 실재적 변화라고 한다면, 결과가 원인과 동일하다. 혹은 원인 가운데 선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불합리할 것이다. 효과인이 질료인을 한 형태로부터 다른 것에로 변화시키는데 기여한다는 것을 샹까라는 기꺼이 인정한다. 그러나 이 사물들은 실체가 아니라 단지 형태에 있어서만 다르다. 이것이 곧, 효과인으로서의 금세공인이 전에 존재하지 않던 형태를 발생시켰다는 뜻인가? 샹까라는 이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부정적으로 답한다. 즉, 효과인 (우리의 예에서 금세공인의 활동)이 한 모든 것은, 질료인 가운데 은닉되어 있던 형태를 현현시킨 것이다. 샹까라에 따르면, 형태가 원래의 질료적 실체 가운데 선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만일 그들이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면, 돌로부터 기름을, 금속으로부터 우유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불가능하고 불합리하다. 그러므로 샹까라는 인중유과설의 전변설적 해석은 자기모순이고 따라서 틀린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원인이 결과를 생산할 때, 그것은 실체에 있어서나 그 형태에 있어서나 아무런 실재적 변화를 겪지 않는다. 우리가 관찰하는 형태의 변화는 외관적 변화일 뿐이다. 원인이 결과를 초래함에 있어 겪는다고 생각되는 모든 변화는 단지 외관적 변화라는 이 견해를 가현설 vivartavada이라고 한다.
샹까라의 가현설은, 형태란 독립된 실재성을 가질 수 없다는 그의 근본적 주장에 기반한다. 샹까라에 따르면, 실체로부터 떨어져 존재하는 형태가 어떤 것인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형태의 변화를 실재로 생각하는 것은, 실체가 실재적 변화를 겪는다고 보는 것과 같다. 그러나 실체란 모든 형태를 통해 동일하게 머물러 있는 것이다. 반지의 금이나 목걸이의 금이나 동일한 실체이다. 그러므로 샹까라는 형태에 있어서의 모든 변화는 단지 외관적 변화일뿐이라고 결론짓는다. 요컨대 형태의 변화는 실재에 있어서가 아니라 현상에 있어서의 변화이다. 형태의 변화의 외관성에 관한 이 논증은 속성에로까지 쉽게 확장될 수 있다. 속성은 실체와 불가분리적이다. 만일 실체와 속성이 두 개의 독립된 실재라면, 실체와 속성을 관계짓는 제3의 실재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제3을 처음 둘과 관련짓는 제4의 실재가 필요할 것이고 그런 식으로 무한히 계속된다. 샹까라에 따르면 무한소급 anvavastha의 위협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유일한 길은 속성을 독립된 실재가 아니라, 유일한 실재인 실체에 의존하며, 그와 불가분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실체에 있어서의 변화만이 참된 변화이다. 그러나 실체는 속성에 있어서의 모든 변화를 통해서 변치 않고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래서 속성에 있어서의 변화란 단지 외관적 변화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된다.
이제, 어떻게 파기 sublation라는 기준과 가현설이, 마야 maya, 무지 avidya, 그리고 가탁 adhyasa이라는 개념과 결합되어, 브라흐만만이 유일한 실재이고, 감각과 오성의 세계는 단지 현상일 뿐이라는 샹까라의 형이상학으로 유도되는가를 논의하겠다.
마야
마야 maya라는 말은 흔히 ‘환’으로 번역된다. 그러나 그러한 번역은 매우 그릇된 것이며, 샹까라의 아드와이따 베단따에 대한 중대한 오해의 근원이 된다. 마야라는 개념은 그 심리학적, 인식론적, 존재론적 의미를 밝힘으로써 명백해진다. 지적할 필요도 없이, 이 세 종류의 의미 사이에는 분석적 연관이 있다. 심리학적으로 말해서 마야란 현상을 실재로(혹은 그 역으로) 보려는 우리의 고집스런 경향이다. 파기가능성이라는 기준에 의하면, 마야란 파기가능 한 것을 파기 불가능한 것으로(혹은 그 역으로) 보려는 우리의 지속적인 성벽이다. 인식론적 관점에서 마야란 현상과 실재 사이의 차이에 대한 우리의 무지 avidya이다. 실재가 어떤 다른 경험에 의해 파기될 수 없는 것이라면, 현상이란 다른 경험에 의해 파기될 수 있는 것이다. 파기란 구분이 있는 곳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실재는 모든 구분을 초월하므로, 실재의 경험은 파기될 수 없다. 다른 한편 현상은 반드시 구분의 영역이며, 따라서 파기가능하다. 결국 한 현상은 다른 것에 의해 파기될 수 있으며, 모든 현상은 실재에 의해 파기될 수 있다. 파기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 사이의 구분을 각성치 못함으로써 인간은 현상을 실재라고 그릇 믿는다. 다시 말하면, 실재의 본성에 대한 무지가 마야의 근본이다. 그렇다면 파기 불가능한, 무차별적인 순수존재가 바로 실재라는 것이 명백하다. 감각과 정서와 오성의 변화하는 세계는 단지 외관일 뿐이다. 샹까라에 따르면, 마야는 시작도 끝도 없으며, 불가사의하고 불가언표적이다. 모든 사고가 그에서 기원되므로 마야는 불가사의하며, 언어가 그에 바탕하므로 불가언표적이다. 그래서 마야는 감각, 오성, 감정의 세계, 즉, 현상적 세계를 짜고 있는 씨줄과 날줄이다.
존재론적 관점으로부터 보면 마야는 실재(브라흐만)의 창조력으로서, 이에 의해 다양성과 다수성의 세계가 발생한다. 때로는 실재의 창조적 힘으로서의 마야를 ‘실재의 우주적 유희 lila’로 부른다.
유의해야 할 점은, 샹까라가 현상적 세계를 환영이라는 의미에서 마야라고 할 때 그는 현상계가 비실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반을 실재에 두고 있는 현상임을 뜻한다. 현상은 비실재와 달리 파기가능하다. 이런 까닭으로 순수 환영과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 모든 환영은 실재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기루를 골방에서가 아니라 특정한 객관적, 경험적 환경 하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다른 말로, 착각과 현상은 비실재와 달리 순수한 무와 비존재가 아니다. 착각이 파기가능하다는 바로 그 사실이, 그들이 바로 우리 경험의 진실된 구성요소임을 보여준다. 샹까라가 현상계를 환이라고 하는 것은, 그것이 비존재이고 비실재라는 뜻이 아님은 분명하다. 정반대로 환영과 같이 현상계도 독립된 실재는 아니지만, 순수존재의 실재성에 철저히 근거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
무지
‘avidya’란 무지를 뜻하며, 실재를 알지 못함, 혹은 현상을 실재로 생각함이 그 특징이다. 흔히 샹까라나 다른 불이론자들은 마야와 무지를 교환가능한 단어로 여긴다. 우리의 고집스런 성향을 가리키므로 무지를 마야와 동의어로 볼 수도 있다. 마야와 마찬가지로 무지도 무시, 무종이다. 논리적 관점에서 마야와 무지는, 한 편이 없이는 다른 한 편도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시간적으로 공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식론적 관점에서는 무지가 마야보다 선행하며, 후자는 전자를 전제로 한다고 생각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무지는 마야의 필수조건이다. 이것은 또한 무지가 실재의 인식에 의해 극복되자마자 마야도 사라짐을 뜻한다. 마술사의 술법이 가장 좋은 실례이다. 마술사가 한 사물을 다른 것으로 나타나게 한다든가 외관상 무로부터 어떤 것을 만들어 낸다고 가정하자. 샹까라는 이것을, 우리가 마술사의 기법에 무지하기 때문에 ‘보이는 것’ appearance을 ‘있는 것’ reality으로 오해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트릭을 부리는 마술사 자신에겐 착각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일단 마술사가 사물을 나타나고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게 하는 기법을 알면, 우리는 더 이상 착각에 희생되지 않고, 마술사의 연기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게 된다. 마치 마술사가 그의 조작력으로 우리 안에 착각을 일으키는 것과 같이 실재(=브라흐만)도 마야라는 창조력으로써 다양성으로 이루어진 현상적 세계라는 착각을 만들어낸다. 일단 무지가 실재의 인식으로 정복되면, 사람은 더이상 마야에 포로가 되지 않는다. 그러면 이 무지는 어떻게 생기는가? 이에 대한 답을 위해 샹까라의 가탁 adhyasa의 개념을 고찰할 필요가 있다.
가탁
‘adhyasa’의 문자적 의미는 ‘가탁’ superimposition으로서, 샹까라는 이것을 ‘전에 보았던 어떤 것이 다른 것에 있는 것으로 기억을 통해 의식에 거짓 나타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하나의 활동으로서 가탁이란 그 대상이 실재로는 소유하지 않은 속성을 갖고 있다고 그릇 생각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가탁이란 의식에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은 속성을, 의식에 직접 나타난 사물에 귀속시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탁의 고전적 예는 뱀-새끼줄의 예이다. 한 사람이 어둠 속에서 새끼줄을 밟고는 그것이 뱀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새끼줄은 의식에 직접 나타난 것이고, 뱀은 과거의 경험의 대상이며, 가탁 adhyasa이란 기억에 남아 있는 뱀의 속성을 새끼줄에 그릇되어 귀속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뱀의 경험은 새끼줄이 없이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누가 등불을 가져와서 자신이 밟은 것이 새끼줄임을 알게 되자, 뱀의 경험이 착각이었음을 깨닫는다. 마찬가지로 경험계도 무차별적이고 파기 불가능한 실재 위에 속성들을 가탁한 결과로 일어난다. 마치 가탁 하에서 새끼줄이 뱀으로 경험되듯이, 이름과 형태를 벗어난 실재가 현상계로 경험된다. 실재의 인식에 도달하자 무지와 마야, 그리고 현상세계는 동시에 사라진다. 가탁이 무지의 근원이라는 것이 이제 분명해진다. 우리는 가탁을 두 가지 의미에서 이야기할 수 있다. 즉, (1) 현상세계에서의 특수한 경험에 관련하여, (2) 현상계 일반에 관련하여, 전자의 경우, 가탁이란 기억된 속성을 지금 경험되는 것에 귀속시킴이다. 후자의 경우, 가탁이란 무차별적, 단일적 실재에 이름과 형태를 부여함이다. 샹까라는 또한 무지를 근본적(보편적) 무지와 개별적(일시적) 무지로 구분한다. 전자는 시작도 끝도 없다면, 후자는 개인이 실재에 대한 인식을 획득하자 종식될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보편적 무지로 인해 공통된 현상계가 나타난다.
이상에서 샹까라의 인식론의 중심 개념들을 해명했으므로 이제 브라흐만, 아뜨만, 그리고 경험계에 대한 그의 입장을 살펴보자.
브라흐만
파기가능성 sublatability의 기준에 따르면, 브라흐만은 어떤 다른 경험에 의해서 파기될 수 없는 유일한 실재이다. 다시 말해서 브라흐만은 주관-객관, 자아-비아의 모든 구분을 넘어서 있다. 따라서 브라흐만은 불가사의하고, 지각불가능하며, 언어로 표현될 수도 없다. 브라흐만은 비지각적, 비개념적, 직접적, 직관적 통찰 insight에 의해서만 경험될 수 있다. 이것은 브라흐만에 대한 우빠니샤드적 설명과 다름없다.
세계
현상계란 마야의 영역이며, 무지의 산물이다. 이 무지는 다시 파기 불가능한 이름도 형태도 없는 단일한 실재(브라흐만)에 이름과 형태를 가탁함으로써 생성된다. 그러므로 경험적 세계란 ‘나타난 것’(현상)의 세계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상계가 곧 비실재라는 뜻은 아니다. 반대로, 현상계는 실재, 소위 브라흐만에 의해 파기될 수 있으므로, 비존재나 비실재가 아니다. 마치 어둠 속에서 새끼줄을 밟은 사람이 무지 때문에 그가 밟은 것을 뱀이라고 생각하듯이 변함없는 실재인 브라흐만에 대한 무지에서 변화하는 현상계를 실재로 생각한다. 그러면 그 사람이 밟았다고 생각하는 뱀의 존재론적 위상 thd ontological status은 무엇인가? 혹은 우주적 척도에서 현상적 세계의 존재론적 위상은 무엇인가? 샹까라에 따르면 뱀은 실재도 아니고, 비실재도 아니다. 우선 그것은 파기될 수 있기 때문에 실재가 아니다. 또 비실재도 아니다. 만일 비실재라고 한다면, 파기될 수도, 파기되지 않을 수도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현상계는 실재도 비실재도 아니다. 그러므로 샹까라에 따르면 존재론적 위계에는 비실재, 실재도 아니고 비실재도 아닌 것, 실재의 3단계가 있다. 새끼줄이라는 경험적 실재가 없이는 뱀의 경험이 불가능하듯이 브라흐만이라는 실재가 없이는 현상계의 경험도 있을 수 없다. 가장 중요한 점은, ‘새끼줄’과 ‘뱀’이라는 서로 분리된 두 실재가 없고, 단지 가탁의 특정한 상황하에서 뱀으로 나타난 새끼줄이라는 단 하나의 실재만이 있듯이, ‘경험적 세계’와 ‘브라흐만’이라는 분리된 두 실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름과 형태의 가탁 하에서 경험적 세계로 우리에게 나타난 브라흐만이라는 하나의 실재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무지와 마야로부터 벗어날 때, 현상계 자체가 브라흐만으로 인식될 것이다. 브라흐만이 곧 현상계의 기저에 놓인 유일한 실재라는 것도 정확히 우빠니샤드의 가르침과 같다.
아뜨만
샹까라에 따르면, 참된 자아인 아뜨만 Atman은 순수한, 무차별적인 의식이다. 브라흐만과 같이 아뜨만도 이름과 형태가 없고, 따라서 무시간, 무공간적이고, 지각과 사고, 언어적 표현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변화와 현상의 세계에 대한 불변하는 침묵의 증자이다. 브라흐만과 같이 아뜨만도 모든 구분을 뛰어 넘는다. 결국 그것은 다른 어떤 경험에 의해서도 파기불가능한 실재이다. 인간은 무지로 인해 신체나 머리, 마음 따위와 같은 현상(이름과 형태)의 어느 것을 아뜨만이라고 잘못 인식한다. 실재로서의 아뜨만은 이들 중 어느 것도 아니다. 브라흐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뜨만도 현상계 가운데의 어떤 대상이 될 수 없다. 반대로 그것은 모든 사물을 비추는 빛이며,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에 의해 눈이 보는 것이다. 샹까라는 아뜨만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하는가? 그의 논증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Cofito ergo sum라는 데까르뜨의 생각과 유사하다. 샹까라에 따르면, 자기모순에 떨어지지 않고서는 아뜨만을 의심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의심하는 행위가 바로 의심의 주체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논증이 수립해 주는 것은 불변적 자아인 아뜨만이 아니라 변화하는 에고인 경험적 자아 jiva의 존재이므로, 결함이 있다고 논박할 수 있다. 이런 논박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아뜨만은 이름과 형태를 넘어선 것이므로 모든 사고와 논리로 포착되지 않기 때문이다. 경험적 자아인 지와 jiva는 가탁된 아뜨만의 나타남이다. 여기서 한정, 제한조건을 뜻하는 우빠드히 upadhi에 대한 샹까라의 개념을 소개한다. 무한, 영원한 아뜨만이, 현상의 영역에 속하는 심적, 물적 양면의 제한 조건 때문에 유한하고 시간에 얽매인 지와로 나타난다. 그리하여 형태 없고, 하나이며 불가분적인 공간이 물병이나 방과 같은 용기의 형태를 빌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이름 없고 형체 없고 영원, 무한한 아뜨만이 신체와 마음과 같은 제한 때문에 유한한 자아로 나타난다. 가탁과 제한으로부터 야기되는 무지를 극복할 때, 아뜨만을 유일하고 파기불가능한 실재로서 인식하게 된다.
샹까라는 이제 우빠니샤드의 중심적 통찰인 아뜨만과 브라흐만의 동일성을 수립한다. 아뜨만과 브라흐만은 두 개의 다른 실재가 아니라 동일한 실재의 다른 두 차원일 뿐이다. 브라흐만의 인식은 아뜨만의 인식과 일치한다. 우리가 모든 구분, 특히 주관과 객관 사이의 구분을 초월할 때, 브라흐만을 유일하고, 파기 불가능한 실재로서 경험한다. 주관과 객관은 서로 통합되며, 주관이 객관이고, 객관이 주관이다. 그러한 체험 속에서는 변화하는 외적 현상계의 밑바닥에 놓인 불변적 실재인 브라흐만이, 변화하는 내적 현상계의 밑바닥에 놓인 불변의 실재인 아뜨만과 동일하다. 다시 말해서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 사이의 모든 구분이 사라지고 의와 비아 사이의 구분이 사라질 때 우리는 순수존재를 순수의식으로 경험한다. 이러한 경험은 또한 순수희열의 그것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로 아드와이따 베단따는 실재(브라흐만, 아뜨만)의 경험을 사뜨, 찌뜨, 아난다(saccidananda, sat=순수존재, cit=순수의식, ananda=순수희열)이라고 말한다. 아뜨만과 브라흐만의 동일성이라는 샹까라의 명제는, 내적인 것이 바로 외적인 것이고, 외적인 것이 바로 내적인 것이며,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사이에 차별을 보는 자는 영원히 죽음에서 죽음으로 가리라는 우빠니샤드의 가르침에 지나지 않는다. 샹까라의 베단따 학파를 불이론적 베단따 Advaita Vedanta라고 부르는 것은, 아뜨만과 브라흐만, 그리고 아 self와 비아 non-self사이의 어떤 구분이든 철저히 거부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드와이따 Advaita의 의미를 명료히 할 필요가 있다. 아드와이따는 불이를 뜻하며 ‘일원적’ monistic이라고 번역해서는 안 된다. 그 까닭은, 실재에 대해 어떠한 적극적 속성을 기술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그것이 아닌 것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실재가 불이 non-dual라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다. 그러나 이 점을 유의하는 한 샹까라의 교설을 이원론적 베단따라고 해도 잘못은 없다.
3) 두 종류의 인식
우빠니샤드에 따라서, 샹까라는 두 종류의 인식과 진리, 즉 저차의 인습적, 실제적, 상대적, 인식과 진리 vyavaharika-satya와 고차의, 절대적 인식과 진리 paramarthike- satya를 구분한다. 전자는 감각과 오성의 소산 즉 가탁을 통해 획득된 지식이다. 따라서 그것은 변화하고, 유한한 객관적 경험계에 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주객구분에 지배된다. 이 저차적 인식에 대해서는 언제나 ‘인식주체가 누구인가?’, ‘알려지는 것은 무엇인가?’, ‘아는 행위는 무엇인가?’라고 물을 수 있다. 모든 저차적 인식이란 이름과 형태(명색)를 통해 구성된 명제적인 것이다. 요컨대 저차적 인식이란 현상계, 마야의 영역에 속하는 인식이다. 다른 한 편 고차적 인식이란 비지각적, 비개념적이며, 따라서 비명제적이다. 그것은 실재, 즉 브라흐만(아뜨만)에 대한 인식이다. 그것은 요가 수련의 무종자삼매 nirbijasamadhi의 직관적, 신비적 통찰을 통해 달성되는 것이다. 고차적 이식이란 주관적인 것도 객관적인 것도 아니며, 그러므로 저차적 인식의 세 범주인 인식주체, 인식대상, 인식활동을 넘어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저차적 인식은 현상 appearance에 대한 인식일 뿐이라는 샹까라의 교설에 대한 모종의 오해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 고대에서든 현대에서든 샹까라에 대한 반대자들은, 그가 현상계는 환영이며 따라서 그러한 세계에 대한 인식도 그릇되고 무용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한 해석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샹까라는 저차적 인식도 현상의 영역 내에서는 타당하고 실용적 효용이 있다고 분명하게 주장했기 때문이다. 나가르주나와 매우 흡사하게, 샹까라는 주어진 진리가 저차적 진리라고 함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뜻이 아니라 다만 다른 진리에 조건지워진 진리이며, 따라서 절대적 진리(파기불가능한 실재인 브라흐만에 대한 진리)라고 주장될 수 없다는 뜻이라고 강조한다. 샹까라는 저차적 진리가 객관적 현상계를 다루는데 유용하다고 기꺼이 인정한다. 상식, 과학, 논리, 그리고 철학은 경험적 세계의 특수한 영역을 이해하는데 유용하기 때문에 추구되어야 마땅하다. 더욱이 현상계가 환영이라고 함은 그것이 무이고 비존재라는 뜻이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실재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현상계가 환영이다. 혹은 단지 현상이다라고 말할 아무것도 없다. 오직 실재에 대한 체험에 비추어서만이 현상계는 환영이고 ‘나타나 보이는 것’이다. 마치 상상된 것 pratibhasika의 비실재성이 경험적 입장 vyavaharika이 획득에 의해 확인될 수 있듯이, 경험적 관점의 실재도 비실재도 아닌 위상은 절대적 입장 paramarthika의 성취에 의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 절대적 입장을 달성할지라도 경험적 세계는 비실재가 되는 것이 아니며, 단지 하나의 환영(이것은 비존재가 아니다)이라고 깨닫게 될 뿐이다. 그러므로 반대자의 논박과 반대로 샹까라는 경험계의 비실재성이나 경험적 진리의 오류를 가르치지 않는다.
4) 신
현상과 실재 사이의 구분과 일관되게 샹까라는 신에 대해서도 두 가지 개념을 구분 짓는다. 즉 속성을 가진 신 Saguna-Brahman=Isvara과 속성이 없는 신 Nirguna- Brahman이 그것이다. 전자는 저차적, 인습적, 상대적, 실재적 입장에 속하며, 후자는 고차적, 절대적 입장에 속하는 것이 분명하다. 사구나 브라흐만 Saguna Brahman은 우주의 원인, 창조자, 유지자, 파괴자로서 생각된 신이다. 라마, 끄리쉬나, 쉬바, 예수 등 갖가지 이름과 형태로 사람들이 숭배하는 것은 사구나 브라흐만이다. 사랑, 자비와 같은 속성을 부여 받는 것은 사구나 브라흐만으로서의 신이다. 사구나 브라흐만은 인간과 세계의 관계 가운데 존재하는 신이다. 요컨대, 사구나 브라흐만은 인격적 신이다. 그러나 속성과 관계란 오직 현상의 영역에만 속할 수 있기 때문에, 사구나 브라흐만은 실재로서가 아니라 현상으로서의 신이다. 다른 한편 니르구나 브라흐만은 이름과 형태를 넘어섰기 때문에, 우주의 원인도 창조자도 유지자도 파괴자도 아니다. 니르구나 브라흐만으로서의 신은 예배나 기도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니르구나 브라흐만으로서의 신은 순수존재, 순수의식, 순수희열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개아 java와 사구나 브라흐만 사이에,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아뜨만과 니르구나 브라흐만 사이에는 병행적 관계가 있다. 개아와 사구나 브라흐만은 모두 마야의 소산인데 대해, 아뜨만과 니르구나 브라흐만은 마야를 넘어선 것이다. 마치 아뜨만이 신체와 마음의 제한 하에 개아로 나타나듯이, 니르구나 브라흐만이 우주적 무지인 마야로 인해 사구나 브라흐만으로 나타난다.
우리가 전지, 전능, 편재에 대해 말할 수 있고, 따라서 그가 현상계에서의 선과 악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사구나 브라흐만으로서의 신에 관해서 뿐이라는 것은 명백하다. 다른 한 편, 니르구나 브라흐만으로서의 신은 유일한 실재이기 때문에 선과 악을 초월한다.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 순수한 종교적 의식을 일으키는 것으로서 사구나 브라흐만의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을 샹까라는 인정한다. 그것은 니르구나 브라흐만의 실현에 필요한 덕성과 경건성의 함양을 돕는다. 그러므로 사구나 브라흐만은 실재의 인식을 추구함에 있어서 디딤돌 구실을 한다. 그러나 샹까라는 실재의 인식이 사구나 브라흐만을 초월하지 않는 한 성취될 수 없다고 단호하게 주장한다. 니르구나 브라흐만의 인식만이 실재에 대한 인식, 즉 해탈지이다.
5) 속박과 자유 Moksa
인도의 전통적 정신에 충실하게 샹까라는 인간의 속박과 고통상태는 원죄가 아니라 원초적 무지 avidya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무지와 마야, 속박과 고통으로부터의 절대적 자유상태, 즉 해탈 moksa을 달성하는 것은 실재, 즉 범아일지의 인식에 의해 이 무지를 극복함으로써이다. 이런 까닭으로 실재의 인식을 ‘해탈지’라고 부른다. 또 인간을 근본적으로 변형시키는 ‘치유적 인식’이라고도 불리운다. 목샤(해탈)를 성취한 사람은 무지와 망상, 두려움과 집착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 실재의 인식에 의해 무지를 정복함으로써 그는 까르마의 사슬을 종식시키고, 그럼으로써 생사의 윤회로부터 벗어난다. 그는 그리하여 생사를 초월하여 불사를 달성한다. 우빠니샤드에서와 같이 아드와이따 베단따의 맥락에서도 ‘불사’ immortality란 어떤 먼 미지의 세계에서의 끝없는 생존이라는 뜻으로 이해되어선 안 된다. 그것은 차라리 태어남과 죽음이란 현상계에 제한된 마야와 무지의 산물이며, 그 참된 존재에 있어서 인간은 태어남과 죽음에 관계없는 무한, 영원한 것이라는 깨달음이다.
절대적 자유인 목샤란 사후에 기대되는 어떤 상태가 아니다. 반대로 목샤란 우리가 아직도 육신을 가지고 살아 있는 동안, 지금 그리고 여기서 성취되는 범아일지의 지고한 의식상태의 성취이다. 그러한 의식을 성취한 자가 바로 생해탈자 jivanmukta이다. 죽음에서 그는 모든 마야의 족쇠로부터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자유 videhamukti를 획득한다. 목샤를 이룬다는 것은, 모든 존재에 침투해 있는 궁극적 실재로서의 자신에 대한 인식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해탈인이란 무지와 속박 가운데 있는 인간들을 괴롭히는 모든 구별과 대립을 극복한 자이다. 특히 그는 자유와 필연, 선과 악 사이의 대립이라는, 어리석은 철학의 악몽을 극복한다. 실재의 인식을 달성함으로써 그는 모든 형태의 소외, 즉 세계와 다른 사람과 자신으로부터의 소외를 극복한다. 그래서 목샤란 자기인식과 평화, 자유, 그리고 지혜의 상태이다. 한 마디로 해탈인은 순수존재 sat, 순수의식 cit, 순수희열 ananda이다.
불이론적 베단따에 따르면, 목샤는 ‘인식의 길’ jnana yoga을 통해 달성된다. 그리고 그 실천 방법으로 (1) 사만야사 samanyasa, (2) 슈라와나 sravana, (3) 마나나 manana, (4) 드흐야나 dhyana의 네 가지 수행 sadhana catustaya을 권장한다.
사만야사 samanyasa란 다음의 특질을 스스로 함양하는 것이다. a) 실재와 현상과 비실재를 구분하는 능력, 영원한 것과 무상한 것, 무한과 유한을 구분하는 능력, b) 어떤 상황 하에서도 쾌락과 고통에 전혀 무관심함. 모든 세속적 욕망과 집착의 포기. c) 평정, 자기통제, 굳셈, 집중력, 신앙. d) 진정한 자유에 대한 진지한 열망.
슈라와나 sravana는 베단따의 문헌을 공부하고, 또 성인들이 우빠니샤드나 베단따의 진리를 해명할 때 잘 듣고 배우는 것이다. 슈라와나를 통해 우리는 브라흐만이 유일한 실재임과, 아뜨만과 브라흐만의 동일성을 배운다. 슈라와나에서는 해탈인의 살아있는 실례로서 구루 guru의 역할이 매우 크다.
마나나 manana는 반성의 단계로서, 제자는 구루와 성인의 저작으로부터 배운 것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탐구한다. 그는 가르침을 검토하고, 이성과 경험에 비추어 배운 것을 평가하고, 그 진리성을 지적으로 확신하게 된다. 그러나 지적 이해와 믿음은, 아무리 분명하고 굳센 것일지라도 간접적 지식을 제공하는 데 불과하다. 더욱이 지적 이해와 믿음이란 특히 낡은 사고 습관에 밀려 변하기 쉽다. 필요한 것은 지적으로 파악된 간접적 지식을 자신의 직접적 인식으로 변형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그대가 곧 그것이다’ Tat tvam asi라는 베단따의 핵심적 진리에 대해 선정 dhyana을 닦는다. 지속적이고 강력한 선정을 통해 수행자는 마침내 직관의 섬광 가운데서 그 자신이 곧 유일한 실재인 브라흐만임을 깨닫는다.
5. 제한적 불이론 Visistadavata Vedanta
샹까라의 절대적이고 무제한적 불이론에 대해, 라마누자 Ramanuja는 제한적 불이론을 주장했다. 라마누자는 A.D.1017년에 남인도의 슈리빼룸부두르 Sriperumbudur에서 바라문 부모 밑에 태어났다. 그는 베단따를 유신론적으로 해석하는 야다와 쁘라까샤 Yadava Prakasa, 야무나 Yamuna, 빼리아 남비 Peria Nambi와 같은 큰 스승 acarya과 시성 alvar 밑에서 공부했다. 샹까라의 절대자는 경전의 뒷받침도 없을 뿐 아니라, 인간의 종교적 열망도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메마르고 창백한 추상관념이라고 판단한 라마누자는 아뜨만과 브라흐만, 인간과 신 사이의 동일성과 차이를 동시에 보전시켜 주도록 베단따를 해석하는 과업에 착수했다. 이 목적을 위해 라마누자는 몇 가지 저술을 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브라흐마 수뜨라’에 대한 주석인‘Sribhasya’와 ‘바가와드 기따’에 대한 주석인 ‘Gitabhasya’이다. 유신론적 베단따 학자로서 라마누자는 위슈누 Visnu를 신앙하였고, 많은 위슈누 사원을 건립하고, 많은 사람들을 위슈누 교파로 전향시켰다. 그는 1137년에 죽었다.
여기서는 제한적 불이론을 자세히 다룰 수는 없고, 그 중심 교설, 특히 샹까라의 불이론에 대한 비판에 우리의 논의를 한정하겠다.
1) 브라흐만과 자아
브라흐만이 유일한 실재라는 것엔 라마누자도 샹까라와 같은 의견이다. 그러나 샹까라에 있어서 어떠한 구분도 없는 실재로서의 브라흐만이란 차별 없는 순수한 동일성 identity without difference이지만, 라마누자에게 있어서 브라흐만이란 우리의 경험적 세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사물들의 통일이다. 라마누자의 브라흐만은 ‘차별 가운데의 동일’ identity in difference, bheda bheda이다. 헤겔과 매우 흡사하게 라마누자도 순수한 동일성이란 하나의 추상이며 순수한 무이다. 우리는 차별이 있을 때에만 동일성을 말할 수 있다. ‘동일성 없는 차별’과 마찬가지로 ‘차별 없는 동일성’이란 공허한 개념이며, 따라서 어떤 실재도 지시해줄 수 없다. 라마누자는 몇몇 희귀한 우빠니샤드의 구절에서 브라흐만이 ‘차별 가운데 동일성’이라는 그의 주장의 근거를 찾는다. 예를 들어 ‘슈웨따슈와따라 우빠니샤드’ Svetasvatara Upanisad는 절대자를 이루는 세 가지 궁극적 존재들이 있으며, 그것을 영원, 전지, 전능한 신과, 영원하나 무력한 영혼과 영구적 물질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라마누자에게 있어 브라흐만이란 현상계의 여러 자아들과 물질적 사물들의 통일이다. 갖가지 구성요소의 동일성으로서의 브라흐만은 밑바탕에 놓인 기체 substratum이다. 정확히 말해서 라마누자의 동일성의 개념은 단일 unity이 아니라 통합 union이다. 논리적 관점에서 그것은 궁극적으로 구별되고 분리된 부분들로 구성된 존재라고 생각될 수 있는 통합일 뿐이다. 이것은 라마누자의 세 가지 범주적 구분인 기체 adhara-속성 adheya, 통제자 niyamaka-피통제자 niyamya, 주 sesin-종 sesa으로부터 명백히 알 수 있다. 각 쌍의 전자는 브라흐만을 지시하고, 후자는 세계를 지시한다. 다시 말해서 라마누자에겐 브라흐만과 세계의 구분은 궁극적이고 해소불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브라흐만과 우주의 관계가 영혼과 신체의 관계라는 라마누자의 주장으로도 더욱 확고해진다. 마치 사람의 영혼이 그의 신체와 다르지만 신체를 통제하고 지도하듯이, 브라흐만은 우주와 다르지만 그것을 통제하고 지도한다. 그러므로 브라흐만은 세계의 통치자이고 통제자이다. 다시 말해서 실재는 한 인간과 비슷하다. 갖가지 자아와 물질적 대상은 그 신체이고, 브라흐만은 그 영혼이다. 더욱이 한편은 실재이고, 다른 편은 비실재인 두 실체 사이에 어떤 종류이든 참된 관계가 있을 수 없듯이 실재인 브라흐만과 관계된, 다양성과 다수성의 세계도 비록 독립적 실재는 아닐지라도 실재여야 한다. 이것은 개체아와 대상들이 브라흐만의 실재적 속성과 양태라고 하는 말과 같다. 개아와 물질적 대상들은 부분의 전체에 대한 관계로 브라흐만에 관련되어 있다. 각 부분은 구분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 전체와 다르지는 않다. 마치 속성은 실재이지만 실체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듯이, 개아와 사물들은 궁극적 실재의 구분으로서 실재이지만 그에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는 없는. 이런 이유로 라마누자의 절대자는 샹까라의 그것과 달리 무제약적 동일성이 아니라, ‘차별 가운데 동일성’이다. 그래서 라마누자의 베단따는 제한적 불이론 Visistadvaita으로 불리운다. 현상세계가 브라흐만과 같이 실재리고 하는 라마누자의 가르침은 현상계가 가상 appearance이며 실재도 비실재도 아니라는 샹까라의 견해에 정면으로 대립된다. 샹까라의 관점에서 보면, 라마누자의 견해는 사람이라는 개념에 대한 불안정한 존재론적 논증과 우리가 경험하는 방식, 현상계에 대한 인식을 갖는 방식에 대한 부적절한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
샹까라와 라마누자의 두 번째 중대한 차이는 인식에 관련된다. 샹까라는 두 종류의 인식(의식), 즉 인식주체, 인식대상, 인식작용 사이의 구분에 지배되는 저차적 인식과, 이런 구분을 초월한 고차적 인식을 인정한다. 샹까라에 따르면, 경험적 세계의 인식은 위의 구분에 종속되나 주, 객의 구분을 넘어선 실재인 브라흐만의 인식은 순수존재, 순수의식, 순수희열 saccidananda이다. 요컨대 샹까라는 아뜨만을 고차적 인식과 동일시한다. 다른 한편, 라마누자는 인식이란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을 내포하므로, 인식주체나 인식대상과 동일시될 수 없으며, 인식주체가 없는 곳에서는 인식되는 것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결국 실재의 경험이란 자아-비아의 구분이 말살되는 경험이 아니라, 자아가 실재의 단일성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라고 라마누자는 논한다. 요가의 용어를 빌리면, 샹까라는 무종자삼매 nirbijasamadhi를 허용하고, 라마누자는 그것을 거부한다. 다시 한번 샹까라를 변호하자면, 자아가 궁극적 실재의 경험 가운데서도 구분된 채 존재한다는 라마누자의 주장은 경험적 자아와 아뜨만의 혼동에 기인한다. 경험적 세계의 경험에서는 인식 주체와 인식대상 사이의 구분이 지속된다는 것은 옳다. 여기서 인식주체란 아뜨만이 아니라 경험적 자아 the empirical ego이다. 모든 구분을 초월한 실재의 경험에서조차 자아가 구분된 채 남아 있다는 것은 부조리하다고 불이론자들은 말한다. 왜냐하면 그런 경험 가운데는 자아와 대립됨으로써 그로부터 자아가 구분되어야 할 그 무엇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그대가 바로 그것이다’라는 우빠니샤드의 참 정신에 따라 샹까라는 경험적 자아와 아뜨만(브라흐만, 실재)사이를 뚜렷이 구분 짓는다. ‘그대가 바로 그것이다’에서 ‘그것’은 경험적 자아가 아니라 아뜨만을 지시하며, 이것은 대상에 대한 의식이 아니라 순수의식이다.
2) 마야
샹까라의 마야 개념에 대한 라마누자의 비판을 논의하기 위해서, 무지와 또한 현상계를 현현시키는 브라흐만의 힘이라는 두 가지 의미에서 마야를 다루고자 한다. 라마누자의 첫 번째 논박은, ‘만일 무지가 세계를 생성시킨다면, 그 무지는 어디에 존재 하는가’하는 것이다. 분명히 그것은 개아 jiva에는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개체성 자체가 무지의 소산이며, 결과가 원인을 생산한다는 것은 부조리하기 때문이다. 또 무지가 브라흐만 가운데 존재한다고도 말할 수 없다. 그럴 경우 브라흐만은 전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이론자는 이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한다. 무지로서의 마야란 다른 존재자들과 공존하는 어떤 존재가 아니다. 오직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만 그것이 어디에 존재하고 무엇이 그들을 만드는가라는 질문이 의미를 갖는다. 무지 자체가 어디에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은 무의미하다. 무지와 개체성은 개아라는 동일 존재의 두 측면이다. 개아 jiva는 브라흐만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개체이다. 또 개아는 그 참 존재에 있어서 유한하고 한정된 것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점에서 무지이다. 경험적 세계를 현현시키는 브라흐만의 힘인 마야는, 우리에게 착각을 일으키는 마법사의 힘이 마법사 자신의 인식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과 같이, 브라흐만의 전지성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라마누자의 반박은 샹까라에겐 무력하다.
두 번째 반박은 다음과 같다. 만일 샹까라가 주장하듯이 무지가 브라흐만을 가리우는 장막이라면, 불이론자의 주장과 같이 브라흐만은 자기 발현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대해 불이론자는 이같이 답변한다. 무지가 브라흐만을 가리운다는 것은, 개아가 자신의 참된 존재를 브라흐만 이라고 깨닫지 못하도록 무지가 개아를 장애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무지가 브라흐만의 실재성을 감소시키거나 혹은 브라흐만을 한정짓지 못한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태양은 자기 발현적이다. 그러나 흐린 날엔 구름이 우리의 시계를 가리기 때문에 태양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구름이 태양의 실재성을 감소시켰다거나 태양의 자기 현현성을 파괴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개아가 브라흐만을 인식할 수 없다고 하여, 그것이 브라흐만의 실재성이나 자기 현현성을 손감시킬 수는 없다.
라마누자의 세 번째 논박은 이와 같다. 샹까라는 무지가 표현불가능하고, 실재도 비실재도 아니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실재도 비실재도 아니다’라는 구절은 모순률을 어기므로 이상하고 불합리한 어법이다. 이상의 논박에 대해 불이론자는 라마누자가 샹까라의 파기 sublation의 기준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답변한다. 어떤 것이 원칙적으로 우리의 경험의 자료가 될 수 있을 때만이 파기 가능하다. 마야는 우리 경험의 자료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파기가능하고 따라서 실재가 아니다. 다른 한 편, 비실재는 우리 경험의 자료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마야는 비실재가 아니다. 이상으로부터 마야는 실재도 아니고 비실재도 아니라는 것이 도출된다. 더욱이 어떤 것이 표현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것이 모순률을 어긴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모순률에 의해 지배되는 우리의 모든 사고의 양태를 무시한다는 말이다. 라마누자의 반박에 근거가 박약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3) 신
라마누자의 브라흐만은 샹까라의 그것과 달리 ‘차별 속의 통일’ unity in difference이며, 따라서, 그 자체 내에 궁극적이고 해소 불가능한 구분을 포함한다. 개체적 자아와 세계의 물질적 사물들은 전체에 대한 부분으로서 브라흐만에 관계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라마누자에 따르면 브라흐만은 무속성적, 무차별적 순수존재가 아니라, 실재적 속성들을 소유한다. 브라흐만의 세 가지 본질적 속성은 실재 satyam, 의식 jnanam, 무한 anantam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샹까라는, 브라흐만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모든 속성을 초월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상인 사구나 브라흐만 Saguna Brahman은 속성을 갖는다고 인정한다. 그러므로 라마누자의 궁극적 실재란 샹까라의 사구나 브라흐만과 다름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라마누자는 샹까라와 달리 신이 이 세계의 창조자이며 유지자이고 파괴자라고 주장한다. 신이 자신의 의지로부터 세계를 창조한다. 그러나 창조란 무로부터의 창조를 뜻하지 않는다. 자아와 물질은 신과 공존하기 때문에, 창조란 신 자신 속에 잠재한 다양성과 다수성의 세계를 표출시키는 것을 뜻한다. 신은 다가 되기를 뜻하여 스스로를 다양한 생물과 무생물로 가른다. 더욱이 창조란 시간 속에서 절대적 시작을 갖는다는 의미에서의 어떤 사건이 아니다. 세계는 까르마의 주인 신이 하고자 하는 바에 따라 창조 srsti와 해체 pralaya의 순환을 반복한다. 해체의 시기엔 신은 세계를 자신 가운데로 후퇴시킨다. 라마누자에 따르면 해체의 상태에서조차 자아와, 무차별적 물질이 브라흐만 가운데 구분된 상태로 머물러 있다. 그 이유는 브라흐만과 같이 물질과 자아도 영원하기 때문이다. 라마누자에 따르면 자아는 미세하고 suksma 극소적이지만 anu 그러나 영원하다. 이것은 자아가 영원할 뿐 아니라 또한 무한 편재하다는 우빠니샤드의 교설(이것은 또한 샹가라의 것이기도 하지만)과 대조적이다. 이로부터 명백해지는 것은, 라마누자의 베단따에서 자아란 아뜨만이 아니라 경험적 ‘나’, 즉 에고 ego라는 것이다. 창조의 시기에 신은 그의 의지로써 스스로를 자아들과 물질적 대상들로 현현시킨다. 하나의 자아가 수용하는 육신의 종류는 자아의 까르마에 달려 있다. 신은 모든 자아에게 의지의 자유를 주며, 따라서 인간이 선행과 악행, 그리고 까르마엔 책임이 없다. 각 자아는, 신이 은혜로써 하사한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하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상태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라마누자는 모든 완전한 덕의 구현체인 신에게서는 세상의 악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신은 완전한 인격이다. 물론 라마누자의 신정론도 전지 전능하고 자비로운 자라는 신개념에 수반되는 모순을 피할 수 없다.
이상의 고찰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샹까라와 달리 라마누자는 인간과 신의 완전한 동일성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라마누자에겐 인간이란, 신이 전 우주에 편재하고 그것을 통제한다는 의미에서만 신과 동일하다. 따라서 ‘그대가 곧 그것이다’라는 우빠니샤드의 선언에 대한 라마누자의 해석을 샹까라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라마누자에겐 ‘그것’이 세계의 무한한 창조자이며, 전지전능한 신을 지시하며, ‘그대’는 인간의 형태, 즉 신체를 구현한 자아로서 존재하는 신을 가리킨다. 따라서 신과 인간의 동일성이란, 특정한 속성을 가진 신과 다른 어떤 속성을 가진 신 사이의 동일성이다. 요컨대 신과 인간은 같은 실체로 이루어져 있으나 다른 속성을 소유한다. 그러므로 라마누자의 베단다를 제한적 불이론 Visistadvaita이라고 명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곧 그것이다’에 대한 라마누자의 해석은 단지 지나치거나, 자의적일 뿐 아니라, 우빠니샤드에 뚜렷이 침투해 있는, 인간과 신의 무제약적, 절대적 동일성의 정신과 전혀 양립될 수 없다.
4) 속박과 구제
라마누자에 따르면, 자아의 육신에의 예속은, 자아가 자신의 참된 존재에 부지함으로써 일어나고, 지속되는 까르마에 기인한다. 무지 때문에 자아는 신체나 혹은 그것의 일부와 동일시되고, 그럼으로써 신체적 존재에 대한 욕망과 집착을 발전시킨다. 자아가 자체를 비아와 동일화하는 일반적 경향을 아함까라 ahamkara라고 부른다.
구제, 즉 무지와 까르마 그리고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는 행동과 지식, 봉헌을 통해 성취된다. 먼저 베다가 권장하는 바에 따라 삶이 단계 asrama와 그가 속한 카스트 varna에 어울리는 의식과 제사를 수행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제한적 불이론자에겐 의식과 의무의 바른 수행을 주심 과제로 삼는 미망사 Mimamsa의 학습이 필수적이다. 그리고 자신과 세계와 신의 참된 본성에 대한 지적 이해를 위해 베단따의 원전을 학습해야 한다. 학습과 반성의 결과로 그는 자신이 신체나 어떤 다른 물질적 실체와 동일한 것이 아니고, 우주의 창조주이자 유지자, 파괴자인 신의 일부임을 알게 된다. 또한 그는 구제가 의무와 제식의 수행이나 지적 이해만으로 달성될 수 없고, 신의 자유롭고 자애로운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인간은 신에 대한 봉사에 자신을 완전히 바쳐야 한다. 따라서 라마누자는, 샹까라의 지식의 길 jnana-yoga에 대해 신애의 길 bhakti-yoga을 구제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긴다. 박띠 요가는 명상 dhyana, 기도 upasana, 봉헌 bhakti으로 이루어진다. 그는 끊임없이 신을 자신의 주이며 구원자로서 기억해야 한다. 또 신의 은혜와 자비를 기원하고, 신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고 자신을 완전히 신에게 복종시켜야 한다. 그런 완전한 자기승복을 쁘라빠띠 prapatti라고 한다. 쁘라빠띠를 통해서만 이간은 신성한 은혜를 받을 자격이 생기며, 그것은 무지와 이기심, 까르마를 파괴시킴으로써 인간을 해방시킨다. 샹까라와 대조적으로 라마누자는, 해탈이 자아나 그 독자성의 말소에서가 아니라 신과의 영원한 결합에서 성취된다고 주장한다. 해탈된 자아는 그 개체성과 의식을 보존하면서, 신의 무한한 영광 속에서 최고의 희열을 영구히 누린다. 라마누자에 따르면 구제란 신과의 통합 unity이 아니라 그와의 영원한 교섭 communion이다.
6. 이원적 베단따 Dvaita Vedanta
이원적 베단따는 바로 그 명칭이 가리키는 바와 같이, 샹까라의 불이론 뿐 아니라 라마누자의 제한적 불이론도 거부하고, 세계와 브라흐만 사이의 철저한 이원론을 표방한다. 이 학파의 창시자인 마드흐와 Madhva는 A.D. 1199년에 남서인도의 빌리그람의 바라문 가계에서 태어났고 아츄따쁘렉샤 Achyutapreksa 밑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베단따에 대한 스승의 불이론적 해석에 만족하지 못하여 스승을 떠났다. 수년간의 독립적 연구와 사색 후에 베단따에 대한 독자적 해석을 기하여 이원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서른일곱 권을 저술했으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브라흐마 수뜨라’에 대한 주석인‘마드호와소, Madhvavhasya’와 ‘바가와드기따’에 대한 ‘기따소, Gitabhasya’이다. 그의 종교는 철저한 이원론에 부합하는 인격적 유신론이다. 그는 위쉬누 Visnu의 형태로 브라흐만을 예배했고, 브라흐마 와이쉬나위즘, 혹은 사드 와이쉬나위즘 Sad-Vaisnavism이라는 교파를 설립했다. 마드흐와는 널리 여행하면서 자신의 철학과 종교를 가르쳤고, 논적과 토론했으며, 1278년에 죽었다.
1) 실재에 대한 이론
마드흐와의 이원론의 철학적 기초는 그의 지각과 인식론이다. 마드흐와에 따르면 지각한다는 것은 어떤 것을 다른 사물뿐 아니라 지각하는 자아와도 다르고 독자적인 것으로 아는 것이다. 참다운 인식이란 사물들 사이의 차이뿐 아니라 사물들과 지각하는 자아와의 차이도 드러내는 것이다. 따라서, 동일성은 긍정하지만 차이를 부정하는 사람은 바로 인식의 토대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 논의의 요점은, 지각이란 지각주체와 지각대상을 서로 구분된 존재로 전제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인식은 아는 것과 알려지는 것에 상대적이다. 그러므로 이런 구분을 거부하는 인식론은 불합리에 빠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마드흐와는 요가의 무종자삼매라는 불이적, 절대적 인식(초월적 의식)을 부당한 것으로 거부한다.
이상으로부터 마드흐와가 인신론적으로나 존재론적으로 실재론자임이 분명해진다. 우리는 세계가 여러 다른 자아들과 물질적 대상으로 구성된 것으로 지각할 뿐 아니라, 실재로 그렇다. 요컨대 경험적 세계는 실재이고 다원적이다. 더욱이 마드흐와에 따르면 세계의 창조자이고 주이신 브라흐만은 세계와 다르다.
그러므로 마드흐와의 철학은 철두철미한 차별의 철학 distinctionism이다. 그는 다섯 가지의 기본적이고 절대적인 구분을 인정한다. (1) 브라흐만과 개아, (2) 브라흐만과 물질, (3) 물질과 개아, (4) 한 개아와 다른 개아, (5) 한 물질적 대상과 다른 물질적 대상 사이의 구분이다. 마드흐와는 우주를 독립적인 것 svatantra과 의존적인 것 asvatantra으로 나눈다. 브라흐만은 유일한 독립적 존재이고, 자아와 물질적 대상들은 그 존재를 위해 브라흐만에 의존한다. 브라흐만은 전지 omniscient하고 어디에나 편재 omnipresent하며 전능 omnipotent하다.
개별적 존재로서의 브라흐만이 어떻게 꼭같이 실재하는 자아와 물질적 대상에 한정되지 않고 편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 자아나 사물들은 브라흐만에 의존해 있으므로 브라흐만을 제한하고 저항할 힘이 없다고 답한다.
2) 신
그러므로 마드흐와에 있어서 실재란 영원하고, 절대적으로 실재하며, 환원 불가능한 세 가지 실체, 즉 브라흐만, 자아, 물질(비록 나중 둘은 브라흐만에 의존하는 것이지만)로 이루어진다. 마드흐와는 샹까라의 무속성적 브라흐만 Nirguna Brahman을 실재가 아니라 공허하고 불합리한 개념으로 보며, 샹까라의 유성성적 브라흐만 Saguna Brahaman을 궁극적 실재로 여긴다. 즉, 마드흐와의 브라흐만은 샹까라의 사구나 브라흐만이다. 마드흐와는 브라흐만이 곧 세계 (자아와 물질)의 창조자, 유지자, 파괴자인 신이며, 까르마의 주라고 가르친다. 신은 그의 의지로 다양성과 다수성의 세계를 현존케 했다는 의미에서만 세계를 창조했다. 세계의 해체기에 신은 모든 물질적 대상을 동질적인 근본물질로, 그리고 자아를 무형적 지성으로 변형시킨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해체상태에서도 자아와 물질, 신 사이의 구별은 존속된다는 것이다. 마드흐와에 따르면 신이란 한 인격이며, 그의 본질은 실재, 의식, 희열이다. 그는 모든 적극적 속성들을 무한히 완벽하게 소유하고 있다. 그는 초월자이자 내재자이다.
3) 속박과 구제
자아는 영원하고 원자적이며, 의식과 희열은 그 자아에 본유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과거의 까르마로 인하여 자아는 신체에 연루되었고, 고통과 비애를 겪는다. 신은 자아에 자유의지를 부여한다. 따라서 각 자아의 현 상태에 대해 책임은 전적으로 자아 자체에 있다. 그러므로 세계의 악은, 모든 덕성을 완벽하게 소유한 신에게 기원하는 것이 아니다. 마드흐와는 영혼을 영원히 해탈된 것 nityamukta, 해탈된 것 mukta, 속박된 것 baddha의 세 가지로 나눈다. 라마누자와 마찬가지로 마드흐와도 구원의 유일한 방법으로서 신에 대한 전적인 봉헌과 자기 방기를 인정한다. 따라서 박띠 요가 bhaktiyoga가 해탈이 유일한 길이다. 인도의 모든 철학적, 종교적 전통을 통해서 마드흐와는 유일하게 영원한 저주의 교설을 가르쳤다.
여기서 이원론에 대한 비판을 상세히 다룰 필요는 없겠다. 다만 이것도,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이원론적 철학(예를 들면 데까르뜨의 그것)이 받을 수 있는 모든 반박을 당할 수 있다는 것만을 지적하고자 한다. 관계개념에 대한 중론학파의 분석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치명적 공박을 할 수 있다. 즉, 만일 브라흐만과 자아, 그리고 물질이 모두 절대적이고 환원 불가능한 개별자라면, 어떻게 그들 사이의 관계가 획득될 수 있는가?
7. 맺음말
베단따의 세 주요 학파 사이의 중요한 차이점과 유사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면서 결론을 맺고자 한다.
(1) 샹까라의 베단따는 절대적 무제약적 불이론으로서, 그에 따르면 실재(=브라흐만, 아뜨만)는 순수한 동일성(차별 없는 동일)이다. 라마누자의 베단따는 제한적 불이론이며, 이에 따르면, 실재(=브라흐만)는 제한적 동일성(차별 속의 동일)이다. 마드흐와의 베단따는 무제한적 이원론으로서, 브라흐만과 세계는 동등하게 그리고 불가환원적으로 구별된다.
(2) 샹까라에 있어서 경험적 세계란 실재도 비실재도 아닌 현상 appearance이다. 따라서 브라흐만과 세계라는 수적으로 구별되는 두 실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이름과 형태(명색, nama rupa)라는 가탁 아래에 세계로서 가현하는 브라흐만만이 있다. 라마누자에게도 역시 브라흐만만이 독립적 실재이나, 브라흐만을 무속성이 아니다. 경험적 세계를 구성하는 자아와 물질적 대상들은 브라흐만의 실재적 속성이며 양태이다. 그러므로 자아와 물질적 대상은 브라흐만으로부터가 아니라 not from, 브라흐만 안에서 within의 차별로서 실재한다. 마치 속성이 실체로부터, 그리고 부분이 전체로부터 불가분적이듯이, 자아와 물질적 대상들은 브라흐만으로부터 독립적인 것이다 아니다. 마드흐와에겐 브라흐만과 자아, 물질이 모두 꼭같이 실재하며 서로 절대적으로 다르다. 그러므로 라마누자에겐 자아와 물질적 대상이 브라흐만 안에서 within의 구별임에 대해, 마드흐와에게 그들은 브라흐만으로부터 from의 구별이다.
(3) 샹까라는 1. 현상계로 자체를 현현하는 브라흐만의 힘, 2. (고차적 인식의 입장에서) 경험적 세계의 환영적 성격, 3. 무지라는 세 가지 의미에서 마야설을 지지한다. 라마누자는 브라흐만의 부분으로서 경험계가 실재라고 가르치며, 따라서 위의 세 의미 가운데서 두 번째 의미에서의 샹까라의 마야를 거부한다. 마드흐와는 어떤 의미에서든 마야를 단언적으로 부정한다.
(4) 인중유과설 satkaryavada 가운데서 샹까라는 가현설 rivartavada의 입장을 취하나, 라마누자는 전변설 parinamavada의 입장을 취한다. 마드흐와는 둘 다 거부하고 인중무과설을 따른다.
(5) 샹까라에 따르면 보통 종교에서 말하는 신이란 사구나 브라흐만이며, 실재가 아닌 현상이다. 니르구나 브라흐만만이 실재이다. 라마누자와 마드흐와는 샹까라의 니르구나 브라흐만 차이 속의 동일을 실재가 아니라 공허한 개념으로서 거부하고, 샹까라의 사구나 브라흐만을 실재로 본다. 그들에겐 신으로서의 브라흐만은 실재적 속성과 양태를 갖는다. 그는 세계의 창조자이며 유지자, 파괴자이다.
(6) 진정한 불이론의 정신에서 샹까라의 신은 비인격적 절대자인 브라흐만이다. 라마누자와 마드흐와에게 신은 완전한 인격이다
(7) 샹까라에 따르면 구원은 브라흐만의 인식, 즉 아뜨만과 브라흐만의 동일성에 대한 인식을 통해 획득된다. 따라서 지식의 길 jnana yoga이 해탈의 방법이다. 이에 대해 라마누자와 마드흐와는 각각 제한적 불이론과 이원론에 부합되게 인간과 신의 무제한적 동일성이라는 샹까라의 교설을 거부하고, 인간은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의 은혜를 통해서만 구제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들은 봉헌의 길 bhakti yoga, 신에의 완전한 자기방기를 해탈의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한다.
(8) 샹까라에게 구원이란 비인격적 절대자 속에 인격적 자아와 개체성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이다. 라마누자와 마드흐와에 있어서 구원이란, 자아 혹은 개체성의 상실을 초래하지 않는다. 반대로 해탈된 자아는 그 개체성과 의식을 유지하면서 신의 무한한 영광 속에서 영원한 희열을 누린다.
(9) 라마누자에 따르면, 자아는 해탈에서 신과 동일하게 되지 않아도 유사하게는 된다. 마드흐와에 따르면, 해탈된 자아는 오직 부분적으로 신과 유사하다.
(10) 인도의 전통을 통해 마드흐와는 유일하게 신이 일부 자아들에게 영원한 저주를 내린다고 가르쳤다. 마드흐와가 그 근본적 이원론과 실재론, 그리고 영원한 저주의 교설을 주장하는 점에서 기독교 전도사들에게 영향 받았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제10장 인도의 시간관과 역사관
우리는 이상에서 정통적, 비정통적 양편에 걸쳐 인도의 다양한 철학 체계들을 공부했다. 그러나 우리가 아직 논의하지 못한 두 가지 중요한 주제, 즉 시간과 역사의 문제가 있다. 하나의 문화가 시간과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는가 하는 것은, 그 문화의 기본적인 철학적 개념과 전제, 특히 존재론에 속하는 전제들에 달려 있다. 우리는, 인도의 다양한 철학학파들의 특수한 교설을 위배함이 없이 샹까라의 아드와이따 베단따 Advaita Vedanta가 사상과 정신 양면에서 인도의 전통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이다.
(1) 샹까라의 아드와이따 베단따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우빠니샤드적 통찰의 가장 체계적인 표현이다. 그러한 만큼 그것은 다른 모든 정통적 체계 가운데 최선의 것을 자체 내에 포섭한, 힌두 지혜의 꽃이다.
(2) 그것은 인도 철학의 살아 있는 흐름 가운데 가장 지배적이고 영향력이 있으며, 대부분의 힌두들의 세계관이기도 하다. 요컨대, 샹까라의 아드와이따 베단따는 힌두문화의 피와 살이다. 우리는 또한 불교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불교와 아드와이따 베단따가 일반적으로 경쟁적 학파로 여겨지긴 하지만, 양자가 동일한 시간과 역사 개념을 갖고 있음을 보이고자 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이들 개념을 전체로서의 인도전통의 특징으로 간주해도 좋다.
1. 아드와이따 베단따의 기본 개념들
아드와이따 베단따의 중심 개념들은 브라흐만 Brahman, 아뜨만 Atman, 무지 avidya, 마야 maya, 해탈 moksa 그리고 지식 vidya이다. 예비지식으로서 이들 개념을 간략히 설명하겠다.
(1) 브라흐만이란 다양하고 다원적인 현상계의 기저에 놓인 불변의 실재이다. 브라흐만은 영원하며, 불생, 불변이다.
(2) 아뜨만은 인간의 가장 내면의 자아이다. 그것 역시 영원, 불생, 불변적이다. 지속적인 변화를 특성으로 하는 경험적 자아 the empirical ego와 그것을 혼동해선 안 된다. 더욱이,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브라흐만과 아뜨만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즉, 그들은 동일한 궁극적 실재의 다른 두 측면이다. 브라흐만은 이름 nama과 형태 rupa를 넘어선 것이다. 브라흐만은 창조주, 혹은 신으로 생각되어선 안 된다. 브라흐만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그것 Tat이다.
(3) 무지 avidya는, 한편으론 경험적, 현상적 자아가 궁극적 실재라는,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감각과 이성을 통해 획득되는 세계에 관한 우리의 지식이 궁극적 실재라는 그릇된 생각이다. 무지란, 비록 시작이 없는 anadi것이긴 하나 종식될 수 있다. 무지의 종식은 아뜨만과 브라흐만의 동일성의 체득이고, 그와 더불어 경험적 자아를 포함한 현상계의 특징인 개별성이 비궁극적임을 깨닫는 것이다.
(4) 마야 Maya는 브라흐만의 힘으로서, 그에 의해 브라흐만이 스스로를 현상적 세계로 현현시킨다. 그것은 브라흐만 자체와 공존하기 때문에 시작도 끝도 없다. 그러나 이 말을 브라흐만과 마야라는 두 가지 궁극적 실재가 있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커다란 잘못이다. 왜냐하면, 마야는 브라흐만과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흔히 현상계를 마야라고 지칭하며, 또 마야를 환영 illusion이나 비실재로 번역함으로써 아드와이따 베단따가 현상계를 환상이나 비실재로 주장한다고 말한다. 아드와이따의 마야 개념에 대한 그러한 해석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드와이따 베단따는 현상계와 그 실재성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정하는 것은 다만 그 궁극성일 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드와이따 베단따에 있어서 실재란, 그 자체 외의 어떤 다른 것에 의존함이 없이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직 브라흐만만이 실재이며, 현상계는 브라흐만에 의존하므로 궁극적이 아니다. 그러한 비궁극적인 존재를 아드와이따 베단따 학파는 ‘실재도 비실재도, 그리고 양자 모두도 아닌 것‘으로 기술한다. 즉, 그것은 궁극적으로 실재하는 것도, 전적으로 비실재적, 환상적인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는 여기서 아드와이따 베단따 학파의 그 유명한 새끼줄-뱀의 비유와, 그리고 순수한 착각이란 있을 수 없고, 모든 착각은 실재에 바탕하고 있다는 통찰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5) 까르마 karma란 인간의 무지로부터 일어나는 속박상태로서, 사람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위에 의해 생성되며, 재생을 통해 까르마는 독특한 심리-도덕적 지속성을 얻는다. 까르마 즉, 속박은 아뜨만과 브라흐만의 동일성에 대한 각성을 통해 소멸되고 종식될 수 있다. 해탈은 까르마와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며, 궁극적 실재에 대한 인식을 통해 성취된다. 해탈은 사후에 기대되는 그 무엇이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달성되는 것이다. 그것은 달성한 자를 생해탈자 jivanmukta라고 하며, 현상계의 일부로 존재하면서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자를 뜻한다.
(6) 인식과 진리엔 낮은, 속제적인 것 vyavahara과 높은, 승의적인 것 paramartha의 두 종류가 있다. 첫째 종류의 인식과 진리는 감각과 사고의 산물이며, 이름과 형태(명색)가 그러한 인식과 진리를 이루는 재료이다. 결과적으로 대립과 상대성, 제한적 타당성, 파기성이 낮은 단계의 인식과 진리의 본질이다. 다른 한편 고차의 인식과 진리는 절대적이고 비파기적이다. 그것은 감관과 사고의 산물이 아니라, 존재의 본성에 대한 근본적인 직관적 통찰의 산물이다. 통일과 비상대성, 절대적 확실성, 그리고 비파기성이 그것의 특성이다. 그러한 인식과 진리는 모든 구분과 대립을 넘어선다. 더욱 중요한 것은, 속제적 인식이나 진리와 달리 승의적 인식과 진리는, 그것을 달성한 사람에게 완전한 변화를 일으킨다. 한마디로 그것은 우리에게 지혜와 평화, 자유를 가져오는 것이다.
2. 불교의 기초개념
불교의 형이상학적 기본개념은 존재, 괴로움 duhkha, 무지 avidya, 까르마, 열반 nirvana, 각 buddhi과 같은 것이다.
(1) 불교도에게 있어서 존재란 순수한 흐름으로서, 인간 속에나 밖에나 영원, 불변의 실체는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실체를 만들어내고 지속시키는 것은 탐욕 trsna이다. 불교도에게 존재는 무상이다.
(2) 무상하므로 실존은 고통이며, 육체적, 도덕적, 심리적 등등 모든 종류의 괴로움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고라는 말은 이런저런 개별적인 고통의 의미로가 아니라, 모든 존재의 무상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3) 무지란 실재에 대한 인식의 결여일 뿐 아니라, 또한 인간의 고통, 속박상태의 원천이기도 하다.
(4) 까르마의 법칙이란 보편적인 인과성의 원리이며, 그에 따라 모든 사건은 생각이든 말이든 행위든 결과를 낳게 되고, 그것은 다시 또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까르마는 무지, 즉 실존의 본질에 대한 인식의 결여로 생긴다. 까르마는 재생을 통해 심리-도덕적 지속성을 얻는다.
(5) 열반 Nirvana, 즉 무지와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은 실재에 대한 통찰의 획득에 의해 지금, 그리고 여기서 달성될 수 있다.
(6) 인식엔 낮은, 세속적인 것 samvrti satya과 높은, 승의적인 것 paramartha satya의 두 종류가 있다. 전자는 감각과 사고의 산물로서, 상대적이고, 대립과 제한된 타당성에 지배된다. 후자는 비개념적이며, 비상대적, 직관적이나 상대적인 것에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속제와 달리 전제는 우리에게 깊은 변화를 일으켜 고요한 희열과 지혜, 자유로 이끈다.
3. 역사에 대한 관련
이상의 아드와이따 베단다와 불교의 형이상학적 개념은 어떠한 시간관과 역사관을 내포하고 있는가? 분명한 것은 아드와이따 베단따와 불교가 모두 현상계를 다원성과 분열, 대립, 갈등, 긴장, 고통, 비애에 의해 특징지워지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현상적 존재의 무상성과 변천성은, 죽음의 불가피성에 의해 절실히 느껴진다.
죽음이란, 현상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한없는 고통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결정적인 상기자이다. 왕이든 거지든, 권세가든, 약자든, 평민이든 귀족이든 모두가 죽음 앞에선 무력하며, 권력도 영광도, 부나 학식도 죽음과 그 공포에 아무런 지배력이 없다.
어떤 순간에도 때려눕힐 태세를 갖추고서 끊임없이 위를 맴돌고 있는 죽음에 직면하여 인간은 자신과 인간의 실존이 도대체 어떤 의미와 의의가 있는가 깊이 회의하게 된다. 그는 그 대답을 찾고자 하나하나씩 탐색한다.
그러나 그가 발견하는 것은 이 불안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이런저런 활동에 몰두함으로써 변화시킬 수 없는 곤궁을 일시적으로 잊게해 주는 것일 뿐이며, 곧 다시 그 강도가 배가된 소멸에의 두려움에 부딪히게 된다.
아드와이따 베단따와 불교는, 현상적 존재에 속하는 방법으로 고통과 죽음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실패하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노력 자체가 현상적 실존의 본성에 대한 이해의 결여를 노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본성이란 무엇인가? 아드와이따와 불교에 따르면, 현상적 존재란 모든 것을 소멸시키는 시간성 temporality, kala에 사로잡힌 존재이다. 다시 말하면, 시간 가운데 존재하는 모든 것이 바로 그 존재의 본성에 의해서 변화와 소멸, 죽음에 종속된다. 그러므로 그 자체가 시간에 속박된 수단과 방법에 의해 고통과 죽음을 극복하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하도록 결정되어 있다.
인간이 고통과 죽음, 그리고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고 그로서 불사 immortality를 획득하는 것은, 다만 시간적 존재의 특성을 초월한, 그리고 시간에 속박된 존재의 기반에 대한 통찰을 통해서일 뿐이다. 즉, 인간을 시간의 사슬과 족쇄로부터 해방시켜주는 것은 현상적, 시간적 존재의 영원한 기반에 대한 인식이다.
달리 표현하면, 인간은 영원과 비시간에 대한 인식에 의해서 시간속박적 실존의 고통과 비애를 극복한다. 브라흐만은 모든 존재의 비시간적이고 영원한 근거이다. 따라서 인간을 시간의 손아귀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은 브라흐만 인식이다. 그러면 어떻게 브라흐만을 인식하는가?
아드와이따 베단따에 따르면, 브라흐만과 아뜨만은 동일하므로, 인간이 가장 깊은 내면적 자아인 아뜨만을 인식함으로써 브라흐만을 알게 된다. 불교의 경우에도 같은 논리가 통한다. 다만 여기선 해탈의 지혜가 브라흐만이나 아뜨만에 관한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기저에 놓인 근본적 공성 sunyata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것이 바로 니르와나, 즉 현상적 존재의 고통과 비애로부터의 해방이다.
여기서 지적해 둘 것은, 아드와이따 베단따의 브라흐만과 불교의 슈야따가 많은 점에서 다르지만, 또한 그 둘 사이엔 놀라운 유사성이 있다는 것이다. 양자 모두 논리와 언어를 무시하며, 따라서 모든 이름과 형태를 초월하여, 다만 부정적 방식으로만 기술될 수 있다.
그러므로 양자 모두의 인식은 비개념적이고 직관적이다. 더 나아가서 그 자체로 비상대적, 절대적, 비시간적인 브라흐만과 슈야따는, 모든 시간속박적 존재의 기반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아드와이따 베단따에 따르면, 브라흐만과 현상계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존재론적 영역이 아니다. 정반대로 이 둘은 높고 para 낮은 apara 두 가지 다른 관점으로부터 보여진 동일한 실재이다. 이름과 형태의 베일을 뚫고 보여진 현상계가 곧 브라흐만이며, 역으로 이름과 형태에 가려진 브라흐만이 현상계이다.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도 윤회 samsara, 즉 현상계와 열반 Nirvana은 각각 낮고 높은 관점으로부터 보여진 하나의 실재이다. 그렇다면 분명한 것은, 아드와이따 베단따와 불교 모두에 있어서, 시간이 현상계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현상계는 독립적 실재성을 갖지 않기 때문에, 시간 또한 독립적 실재가 아니다. 시간과 현상계는 마야의 소산으로서, 우리의 감각과 개념, 상상적 구성을 통해 작용한다.
칸트와 같이 아드와이따 베단따와 불교는 시간을 감성적 직관의 아프리오리 apriori 한 형식으로 보며, 그것은 현상계에 대한 우리의 경험 가능성의 전제이다. 승의적 parmartha satya의 관점으로 보면, 시간은 본유의 실재성(자성, suabhava)을 갖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현상계의 본질이기 때문에 후자 또한 승의적 차원에선 본유의 실재성이 없다.
다시 말해서 아드와이따 베단따와 불교 모두에 있어서 시간은 존재론적으로 궁극적 위상이 없는 이차적이고 의존적인 실재이다. 역사는 시간속박적 존재인 현상계의 일부이다. 우리는 ‘역사’라는 말 속에 온갖 종류의 역사, 즉 천계와 지상의 그리고 생물학적, 특히 인간적 역사를 포함한다.
모든 역사가 시간속에서 일어난다는 말은 동어반복이다. 시간 밖의 어디에 역사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시간이란 역사가 간직되는 주형이다. 그러나 만일 시간에 어떠한 궁극적인 존재론적 위상이 없다면, 역사 또한 어떤 궁극적인 존재론적 위상을 가질 수 없다는 결론이 뒤따른다.
현상계의 다른 모든 측면과 같이 역사도 단지 이차적 실재일 뿐이다. 따라서 아드와이따와 불교는 역사를 통해서 해탈의 인식 (즉, 모든 현상적 존재의 기저에 있는 궁극적, 비시간적, 영구적 실재에 대한 인식)을 얻고자 하는 유혹에 대해 우리를 경고한다. 그 역사란, 무상성, 문명의 흥망, 인간의 탐욕과 비참, 전쟁, 천재, 열병, 죽음, 그리고 수천 년에 걸친 기술과 지식의 축적의 결과로 발명된 무기에 의한 인류의 자멸 가능성 따위, 시간의 줄기찬 타격으로 상처받은 동물처럼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
이상의 분석에 비추어 볼 때, 아드와이따 베단따와 불교에 따르면, 역사의 연구가 우리에게 드러내 주는 것은 그 본래적 실재에 있어서의 인간이 아니라 속박속의 인간이며, 해탈한 인간이 아니라 무지상태에서의 인간이다. 더 나아가서, 역사적 존재가 궁극적이라는 착각으로 역사를 통해 자유를 추구하는 한 인간은 무지와 속박속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전통적으로 인도는 역사와 그 내적 힘인 이른바 시간성에 이차적 의의만을 준다.
이제, 비록 진부하고 낡긴 했으나 아직도 매우 유행하고 있으며, 이상에서 논의된 시간과 역사에 관한 인도의 입장에 대한 비판으로서 주장되고 있는 몇 가지 생각을 검토할 때이다.
우리는 흔히, 인도 사상은 현상계, 즉 시간과 역사가 비실재적이고 환상적이라고 가르치며, 그러므로 인도인은 역사의식을 전적으로 결여하고 있다는 비난을 듣고 한다. 인도문화에 대한 어떠한 서양서적이든 펼쳐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으므로 구태여 이런 비난에 대한 증빙 서류를 제시할 필요도 없다.
그러한 비판은 인도의 철학적, 그리고 종교적 전통 양자에 대한 심대하고도 개탄할 만한 무지를 노출하는 것임을 먼저 지적해두자. 그러한 비난이 아드와이따 베단따나 불교, 혹은 인도의 다른 철학적, 종교적 전통에 어떤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인가?
샹까라는 현상계가 환영도 비실재도 아니라고 가르친다. 그것은 일상적 실재 practical teality이며 궁극적 실재 ultimate reality는 아니다. 왜냐하면 현상계가 의존하는 무차별적, 통일적 브라흐만만이 궁극적 실재이기 때문이다. 마치 상상적 관점 pratibhasika의 비실재성이 경험적 관점 vyavaharika으로부터만 판단될 수 있듯이, 후자의 실재도 비실재도 아닌 지위는 궁극적 관점 paramarthika으로부터만 판단될 수 있다. 궁극적 관점을 달성하지 못한 자는 현상계가 비실재라고 단언할 자격이 없다. 그러므로 인도의 철학과 종교가 현상계는 비실재적이고 환영이라고 가르친다는 비판은 아드와이따 베단따의 입장에서도 근거 없고 그릇된 것이다.
그러면 이제 불교와 관련해서 살펴보자. 히나야나(Hinayana)학파는 현상계가 비실재적이라고 가르치기는커녕, 그것이 특정수의 다르마 dharma, 즉 존재의 기본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분명하게 주장한다.
마하야나(Mahayana)는 그 가장 극단적 형태인 중관학파 Madhyamika에 있어서조차 경험적 세계가 비실재라거나 환영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정반대로 아드와이따 베단따와 매우 유사하게 중관학파도 낮은 관점과 높은 관점을 구분하여, 현상계는 상대적 실재성을 갖고 있으며, 세계에 대한 우리의 합리적, 과학적 지식은 특수한 경험적 영역 내에서는 분명히 타당하고 실용적이라고 가르친다.
다른 한편, 고차의 진리는 모든 다르마의 공성에 대한 비개념적, 비상대적, 직관적인 통찰이다. 그렇다면 인도가 현상계를 비실재이고 환영이라고 본다는 낡아빠진 비판의 근거가 도대체 인도 사상 중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와 관련하여, 이 터무니없고 비합리적인 비판 뒤에 있는 근본적 혼동을 밝혀 두는 것이 중요하다. 인도 사상이 현상계를 단지 의존적이고 이차적인 실재로 봄으로써, 그것에 존재론적으로 궁극적 위상을 거부함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경험계란 지속적인 변화와 상대성, 갈등, 대립, 긴장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경험계에 관한 우리의 인식 samvrti satya은 이름과 형태에 기반을 둔 것이고, 그러한만큼 거기엔 다양한 지식체계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해탈적 인식은, 일상적 인식에 대립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그와 다른 것이므로, 경험계에 대한 연구(그 연구가 아무리 강력하고 철저한 것이라고 할지라도)를 통해선 달성될 수 없다.
진제는 다만 경험계의 시간속박적 실존을 초탈함으로써만 성취될 수 있다. 즉, 역사와 경험적 세계는 모두 시간속박적이므로, 속박과 무지로부터의 해탈과 자유의 수단이 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목샤와 니르와나의 관점으로부터는 역사와 현상적 세계란 다만 이차적이고 실용적인 의의만을 가지고 잇다.
그러나 이것이 곧 역사와 경험적 세계가 비실재이고 환영이라는 뜻은 아니다. 짐머 Zimmer 교수는 그의 <인도의 철학>에서 시간의 철학 the philosophies of time과 영원의 철학 the philosophies of eternity에 대해 말하면서 이 점을 바로 파악하고 있다.
전자에서 인도 사상은 쾌락이며 성공, 정치, 경제, 그리고 시간적 존재에 고나한 다른 문제들에 관해 많은 말을 한다. 그들의 존재론적 위계에 맞추어서 인도 사상가들은 또한 영원의 철학, 즉 영원에 대한 인식을 통해 인간으로 하여금 시간성을 초월하고 자유를 얻게 함을 목적으로 하는 철학들을 발생시키고 체계화시켰다. 이제 우리는 인도전통이 세계를 비실재로 본다는 비난 뒤에 놓인 혼동의 원인을 지적할 수 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인간이 다른 철학이나 문화의 이해에 있어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오해가 그토록 오랫동안 시정되지 않고 계속될 수 있으며, 또 서양의 인도학 학계에서 영속적이고 확고한 지위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인도인이든 서양인이든)은 싫든 좋든 역사 속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은 누구에나 분명하다.
따라서 역사와 현상계, 그리고 시간 자체가 비실재이고 환영이라고 가정할 수는 없다. 엘리아데 M. Eliade 교수의 말을 인용해 보자. 그러나, 우리는 인도와 인도의 정신성에 대한 서양의 왜곡된 이해를 하나 지적해야만 하겠다. 우주적 환영의 발견과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모색이, 인도에선 삶에 대한 전적인 평가절하와 보편적 공허성에 대한 믿음으로 표현된다는 것은 전혀 옳지 않다.
우리는 이제 비로소 인도의 문명이 다른 어떤 문명보다도 더욱 생을 사랑하고 중시하며, 모든 차원에서 그 삶을 향수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마야란 부조리하고 근거 없는 우주적 환상이 아니므로, 어떤 유럽 철학자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무에서 나와 무로 간다는 인간존재의 부조리성이 아니다.
인도 사상에 있어서 마야란 신적 창조이며 우주적 유희로서, 그 목적은 인간적 경험이자 그 경험으로부터의 구제이다. 우주적 환영을 자각한다는 것은, 인도에선 모든 것이 허무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나 역사 속에서의 어떠한 경험도 존재론적 타당성을 갖지 않고, 따라서 우리의 인간적 조건 그 자체를 목적으로 보아선 안 됨을 뜻할 뿐이다.
그러나 이것을 꺠달은 후에도 힌두는 세계로부터 후퇴하지 않는다. 만일 그랬다면 인도는 오래 전에 이미 역사로부터 사라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인도인들이 마야의 개념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역사주의 파라독스’ paradox of historicism라고 하는 것에 대해 일단의 소견을 피력함으로써 결론을 맺고자 한다. ‘역사주의’란 역사가 궁극적 실재라는 견해나 태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역사주의적 문명이란 그러한 태도를 견지하는 문명이다.
이 정의에 의하면 서양문명은 두드러지게 역사주의적 문명이다. 서양문명을 역사주의적으로 만드는 신념이란 다음과 같다. 즉, 역사란 예를 들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라는 기독교적 드라마와 같이, 하느님의 뜻과 목적의 전개이며 실현이라는 것이다. 하느님이 역사속에 개입하여 인간사와 갈등에 스스로 연루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는 신성화되고, 궁극적 실재의 위상이 인정되며, 가장 숭엄한 것으로 보여진다. 만일 역사가 궁극적 실재라면, 그보다 더 인간이 주의와 노력, 헌신을 기울일 만한 것은 있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은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아직 최고의 완성을 달성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역사를 통해서만 그 목표를 향해 전진해야 한다. 왜냐하면, 역사만큼 인간이 그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영역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으로 진보와 천년지복설과 유토피아의 교설이 역사주의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역사주의의 파라독스‘란 강경하게 역사주의적인 문명들이, 역사를 통한 완성의 추구에 있어서, 역사 자체가 그 역사주의적 문명들에 의해 폐기될 위험에 처한다는 기이한 사실을 의미한다. 이 파라독스를 어떻게 설명할까?
이 문제에 답하기 전에, 인도와 중국 같은 비역사주의적 문명은 이 파라독스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또 그들은 긴 역사를, 역사주의적 문명의 그것보다 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 주의하자. 강조해야 할 것은, 역사주의의 파라독스가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반대로 그것은 역사주의적 태도 그 자체의 분석 결과이다.
그리하여, 일단 우리가 역사를 하느님의 개입에 의해 신성화되고, 궁극화된 것으로 보게 되면, 역사와 시간적 존재를 역사주의적 태도 그 자체의 범주에 의해 이해하고 평가할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만약 역사가 근본적이고 최고의 실재라면, 역사의 본성과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의탁 할 수 있는 더 높은 실재가 무엇이겠는가? 이 점을 예시하는 비유로서, 과학의 방법으로서의 철저한 경험주의의 곤궁을 생각해보라.
철저한 경험주의에 따르면, 관찰 가능한 것을 통해 그 의미를 남김 없이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용어도 과학에 허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이 규칙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그는 과학을 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관찰가능한 것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그 모두가 관찰적으로 남김없이 해명될 수 있는 용어나 개념으로부터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이론적 용어 없이는 과학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이 가능하기 위해선 과학발전의 어느 단계에서 관찰가능한 것으로 전혀 바꿀 수 없는 실재의 차원을 인정해야만 한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역사에만 남김없이 궁극적 실재들의 위상을 부여해선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
역사적 존재의 본성을 파악할 보다 높은 관점을 갖지 않으면, 우리는 망상과 합리화의 제물이 된다. 역사에서 일어나는 것은 무엇이나 완성을 향한 인간의 전진에 기여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역사를 절대정신의 전개로 보는 헤겔이 ‘실재적인 것은 이성적이고 이성적인 것은 실재적이다’라는, 가장 우스꽝스러운 철학적 표어를 숭고한 진리로 선언한 것도 이상스러운 일이 못된다. 다른 모든 역사주의자와 마찬가지로 헤겔도 역사 속에서 절대자의 빛나는 모습을 응시함으로써, 역사의 살과 피와 뼈를 이루는 탐욕과 비참, 잔인과 무지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헤겔에 따르면, 절대정신이 예를 들면 나폴레옹이라는 형태로 행진할 때, 수백만의 이름 없는 대중들이 그 위엄 있는 발에 짓밟혀야 하는 것이 옳고 이성적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절대정신을 하찮은 인간들에게만 적용되는 도덕의 기준으로 판단할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고통과 죽음은, 인간을 자유의 정점으로 인도하는 변증법, 이념의 변증법에 있어서 필요한 계기라는 것이다. 그러한 것이 바로 역사주의라는 왜곡된 견해의 끔찍한 망상이며 몰염치한 합리화이다.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악에 대항한 역사주의자의 성전의 방식으로 핵무기를 만들고, 사용하고, 축적함으로써 역사주의적 문명은 그 절정에 도달했다. 파라독스는 이제 완벽하다. 왜냐하면, 역사주의적 문명은 이제 집단적 자살을 수행함으로써 역사 그 자체를 폐기시킬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역사주의자들이 역사와 시간적 존재가 다만 상대적이고 이차적임을 알고, 궁극적이고 영원하며, 비시간적인 실재를 희미하게나마 일별할 수 있었다면, 역사와 그 정부인 진보의 여신에 대한 숭배에 제물로 전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인도인과 같은 비역사주의자는 말할 것이다.
그러나 가장 극성스러운 역사주의자와 진보의 예언자일지라도, 역사 속에서의 진보를 통한 완성이, 계속 뒤로 물러나는 신기루 이상의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에 가끔 시달린다. 그리하여 그는 허무주의자가 되고, 부조리와 불안과 허무의 철학의 제창자가 된다.
비역사주의적 문명들은 역사보다도 더 근본적인 실재에 대한 통찰이 삶과 역사를 지탱하며, 또 허무주의자나 부조리자가 되는 것을 방지한다고 가르친다.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알게하고, 역사적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해토록 하는 것은 비시간적 실재에 대한 직관적 비젼이며, 그로써 그가 건전하고 너그러우며, 자비롭고, 현명하고, 자유롭게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유신론적 역사주의자는, 자신은 역사 뒤의 그리고 역사 너머의 궁극적 실재로서 하느님을 인정하고 있다고 응수하겠지만 그것은 정당치 못하다. 왜냐하면, 일단 역사를 하느님의 무대로 만듬으로써 그것을 성화시키고 나면, 역사도 하느님 자신과 같이 실재이고 궁극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현대 역사주의자는 자신은 더 이상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답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엔 역사가 바로 그에겐 하느님이다. 그 밖에 더 다른 실재가 없기 때문이다.9) 여기서 우리가 답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이 말했던 그가 분명 현자라는 것이다.
‘그대는 역사라는 여신의 제단에서 예배드리지 말지어니, 왜냐하면 그녀는 그대를 유혹하여 삼켜버릴 것이다.’
제11장 현대 인도 사상
이 마지막 장에서는 현대 인도 철학의 상황에 대해 개괄하겠다. 그러나 그전에 인도문명을 현상태로 몰고 온 역사적 세력들을 간략히 기술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한편으론 무슬림의 침략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론 유럽의 침략이 인도문명에 대한 두 개의 가장 강력한 외세이다. 무슬림의 최초 인도 침입은 8세기로 소급되며, 여러 번의 침략 끝에 마침내 무갈제국(A.D.1550~1710)을 이루었다. 초기의 무슬림 침략자와 정복자들은 엄격한 의미에서 왕국의 통치자나 수립자가 아니라 약탈자였다.
A.D. 1192년에 터키의 무하마드 고리 Muhammad Ghori가 힌두 왕, 쁘리티위 라즈 Prithvi Raj에 승리한 후에 비로소 무슬림 문명이 인도에 정치적 통제와 지배를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무슬림 정복자들은 그들의 승리를 공고히 하고, 왕국과 왕조를 형성하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대무갈 제국을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무갈제국의 절정에서 인도의 대부분은 왕조의 지배아래 놓였고, 사회, 정치, 예술, 철학, 종교 등 모든 부문에서 인도와 무슬림 문명 사이에 커다란 교호작용이 일어났다. 악바르 대제는 힌두이즘과 무슬림의 통합을 추구했고, 두 철학적, 종교적 전통을 재해석하여 보편적 믿음 Din-i-Ilahi을 형성하기 위해 학자와 종교지도자들의 위원회를 조직하기까지 이르렀다. 이슬람의 특징인 열광과 광신주의(그 자매 종교인 유태교나 기독교가 그렇듯이)에도 불구하고, 계몽된 무슬림 지도자 아래서 힌두와 이슬람 문화 사이에 진정한 상호 이해가 발전되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무슬림은 우빠니샤드의 심오하고 숭고한 가르침에 대한 통찰을 얻었고, 역으로 힌두는 알라신에 대한 무슬림의 소박한 헌신과 복종에 감동되어 그들 자신의 전통 속에서 신애 요가 Bhahtiyoga를 부활시켰다.
힌두 신애사상의 부활은 까비르 Kabir, 뚤시다스 Tulsidas, 뚜까람 Tukaram, 챠이딴야 Chaitanya, 그리고 우수한 종교문학을 낳았다. 간단히 말해서 그러한 것이 이슬람 정복이 인도에 미친 결과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정복자들은 힌두의 문화나 종교를 파괴하지 못했고, 다만 힌두이즘이 이질적이고 당혹스러우며 때로는 적대적인 세력에 대한 뛰어난 순응력을 발견하는 하나의 기회로서 기여했다.
유럽인의 인도 도래는, 15세기 후반에 시작된 유럽 팽창의 일부였다. 인도에 도착한 최초의 유럽인은 1498년의 포르투갈 원정대를 이끈 바스코다가마 Vasco da Gama였다. 곧 이어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의 원정대가 뒤따랐다. 이들 탐험가의 대부분은 처음엔 다만 인도와의 무역과 사업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무갈 제왕들로부터 교역면허를 얻고자 했으며, 그들은 무역 통로와 전매권의 소유를 위해 서로 싸웠다. 그러므로 제법 오랫동안 인도의 유럽인들은 영토 점거엔 흥미가 없는 무역상인들이었다.
그러나 1707년 아우랑제브 Aurangzeb 황제의 죽음과 더불어 중앙의 정치적 권위는 무너지고, 혼란과 동요의 시대가 되었다. 권력을 위한 처참한 투쟁이 뒤따랐고, 무갈제국의 폐허 속에서 소수 인도의 제후들이 왕국과 왕조를 세우고자 시도했다. 이 시기에 프랑스와 영국이 권력과 부를 위해 겨루는 유럽의 주요 경합자였다.
그들은 서로 간에 싸울 뿐만 아니라, 인도 통치자들 사이의 권력 투쟁에도 끼어들었다. 곧 영국은 다른 유럽 세력을 물리치고 승리자로 부상했고, 인도에 대한 정치적 통제를 획득했다. 여전히 여기저기서 인도인의 반항이 있었지만, 1818년까지는 성공적으로 패퇴시켰다. 이런 식으로 인도에 대한 영국의 제국적 지배권이 시작되었고, 그것은 1947년까지 지속되었다.
영국의 인도 지배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영향은 이슬람이 지배에 의한 것보다 훨씬 더 심대했다. 무슬림과 영국 모두 문화와 생활양식이 인도와 다를지라도, 인도의 영국과의 만남을 역사적이고도 특이하게 만든 것은, 영국이 서양의 현대를 즉, 현대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조직에 부합하는 과학과 기술 문명을 대표한다는 사실이다.
영국통치 아래에서 인도문화에 일어난 중대한 변화는, 바로 당시 비서양적 세계에 전혀 결여된 현대성이었다. 여기서 인도와 서양문화 사이의 깊고도 흥미 있는 상호작용을 상세히 논한다는 것은 적합치도, 또 가능한 일도 아니다. 그러므로 몇 가지 중요한 문화적 만남과 현대 인도를 이해함에 있어 그 의의를 지적하는데 그치고자 한다.
상층힌두, 특히 바라문 계급은 처음으로 서양적 사고 양식이나 조직, 문화적 형태와 접촉한 사람들이다. 그 이유는 전통적으로 상류 힌두들이 고등교육을 받은 도시 중산층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배층인 서양인과 종속적인 토착민 사이의 접촉으로부터 일어나는 문제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서양의 사회적, 정치적 개념들을 공부하고, 흡수하고, 이용하였다.
이런 식으로 인도인들은 외국인들과의 새로운 경험(언제나 유쾌한 것만은 아닌)에 비추어 그들 자신의 문화와 유산을 검토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때마침 인도인들 가운데서 사회개혁가들, 정치지도자들, 종교적 혁신가, 그리고 문명비평가들이 일어났다. 에인슬리 엠브리 Ainslie Embree에 따르면, 인도문화에 대한 서양의 가중되는 충격에 대해 인도인들은 네 개의 다른 종류의 반응을 나타냈다. 이하에서 엠브리의 말을 인용해 보겠다.
하나의 반응은 무관심인데, 이것은 그 결과에 있어서 순전히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힌두전통에 뿌리를 둔 종교적, 사회적 운동은 계속 왕성해졌고, 19세기엔 온갖 종류의 힌두교 종파들이 현저하게 급증했기 때문이다. 비록 이들 운동이 그 동기에 있어서 완전히 토착적인 것처럼 생각되나, 서양의 침입으로 야기된 일반적인 불만을 반영하는 것일 가능성도 충분하다.
다른 하나의 전혀 다른 반응은, 구전통을 거부하고,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서구적인 것을 수용하는 것이다. 이 태도는 그다지 일반적인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시대를 특징 지우는 성장과 변화의 일반적 과정에 뭔가 기여했다. 더욱 일반적이고 커다란 의의를 지닌 것은 서양에 대한 비판적이고 선택적인 반응이다.
전통적인 힌두사회 내의 약함을 알고, 많은 사람들이 서양문화의 특징, 특히 그 정치적 조직과 과학, 혹은 기술을 이용하여 그것을 개혁하고자 하였다. 람모한로이 Rammohan Roy, 센 K.C. Sen, 타고르 가문, 비베까난다 Vivekananda, 오로빈도 고세 Aurobindo Ghose, 고칼레 Gokhale, 라나데 Ranade, 간디 Gandhi와 같은 상반되는 견해를 가진 개인들을 포함하여 넓은 범위의 의견이 이 부류에 포함된다.
네 번째 반응은, 서양적 세계의 가치와 관념에 대한 노골적이고 적대적인 거부였다. -----그러나 여기서도 견해의 차와 거부의 정도가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여러 가지 반응의 결과로서 19세기와 20세기에는 지적,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종교적 등 모든 면에서 서양과 비서양적 전통 사이에 거대하고도 전례 없는 문화적 교류와 통합이 일어났다. 그리고 얼마동안 힌두는 서양문화에 당혹하고 혼란되긴 했으나, 마침내 힌두이즘은 성공적으로 그 문화적 도전에 응전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사실이 ‘힌두전통의 지속적인 풍부성과 다양성’을 증명해준다.
인도인들이 서양문화에 반응하는 동안, 영국은 확고한 정치력을 확립한 후, 인도전통을 여러 측면에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언어학자는 산스크리트가 희랍어와 라틴어, 그리고 현대 유럽어에 놀라울 만큼 유사성을 가진 고대 인도-아리안어라는 발견에 흥분했다. 이런 흥분속에서 인도학 Indology이라는 학문이 탄생되었다.
산스크리트어의 연구는 일단의 서양 인도학자들을 인도의 철학적 문헌의 광대한 보고, 특히 우빠니샤드와 바가와드 기따로 이끌었다. 영국, 프랑스, 그리고 독일의 인도학자들은 인도의 다양한 문헌들을 번역, 편집, 주석하는데 그들의 평생을 바쳤다.
무엇보다도 우빠니샤드와 요가의 발견은 서양에 있어서 고무적인 경험이었다. 우빠니샤드의 찬미자는 유럽에서도 또 신세계에서도 발견된다. 미국에선 우빠니샤드와 바가와드 기따가 에머슨이나, 소로우, 휘트먼 같은 초험주의자 Transcendentalist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유럽의 인도 철학자들은 문학, 논리학, 수학, 형이상학, 인식론, 회화, 조각, 건축, 공예 등 인도문화이 위대한 성과를 밝혀냈다. 이런 방식으로 인도문화에 대한 지식을 넓게 확산되기 시작했고, 처음엔 협소하고 고립적인 소수의 학자들에게 제한되었지만 유럽과 미국의 주요 고등교육기관은 곧 인도 사상과 문화를 진지한 학적탐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인도문화를 연구하는 서양학도들에게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인도심성의 길은 영성 spirituality과 인도 철학과 종교가 지향하는 숭고한 높이였다. 여지껏 가까이 할 수 없었던 원전들에 대한 더욱 상세한 연구와 더불어 서양의 학자들은 철학적 문제의 취급에 있어서 인도 철학자들의 정형적 변증술과 세밀한 논쟁방식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은 무수한 인도학 연구들, 즉 철학자, 논리학자, 언어학자, 역사가, 인류학자, 고고학자, 그리고 문명 연구가들의 노력의 결과로 우리는 전보다 인도문화의 폭과 깊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인도 사상에 대한 더 커다란 이해와 더불어 학자들은 인도와 서양의 사고방식을 비교하는 흥미 있는 작업을 시작했고, 이런 식으로 비교론적 학문이 발생했다.
서양의 인도학 학도들이 인도문화에 영향을 받았듯이, 인도인들도 서양의 지적 전통에 영향을 받았다. 교육받은 인도인들은 서양세계의 고전들이며, 서양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적, 정치적 조직에 노출되었다. 머지않아 샹까라, 나가르주나뿐 아니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도 익숙한 인도인들을 예사로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인도인에 대한 서양과학과 기술의 영향도 똑같이 주목할 만하다. 인도인들 중에서 예를 들면 보세 J.C Bose, 라만 C. V Raman 같은 많은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나타났다.
마찬가지로 주목할 만한 것은 인도 사회에 끼친 서양의 사회적, 정치적 개념의 영향이었다. 간디나 네루같은 인도의 위대한 지도자들은 영국에서 교육받았고, 인도의 사회, 정치적 무대에 혁명을 가져왔다.
그러나 인도의 교육자며 사회개혁가들, 그리고 정치지도자들은 서양의 모든 것을 맹목적으로 수용하지만은 않았다. 반대로, 그들은 인도와 서양의 전통을 가장 보람 있고 의의 있는 방식으로 종합하는 과업에 종사했다. 그래서, 비록 인도인들은 서양의 지식과 제도를 자유롭게 원용하면서도 그들의 개인적인 생활방식이며 가정생활에 있어선 전통적 가치와 풍습을 유지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오늘날 여러 분야에서 인도 지도자들의 주요 목표 중의 하나는, 영국 통치 때에도 그랬듯이 인도와 서양전통 중에서 최선의 것을 통합시킨 인간과 세계에 대한 비젼을 형성하는 것이다.
철학분야에 있어서 인도와 서양 사이의 교호작용은 흥미롭고도 의의 있는 것이다. 서양학도들이 샹까라와의 비교를 통해 칸트에 대한 이해를 깊이하는 반면, 인도인은 그 역의 과정을 밟는다. 또 서양학자들이 인도 철학에 관한 논문을 쓰듯이, 인도학자들은 서양 철학에 관한 논문을 쓴다. 그러한 학적 교호작용의 가장 보람 있는 결과는 비교철학이며, 그것은 상호이해와 평가를 증진시키고 풍성히 해주었다.
여기서 우리는 인도와 서양의 철학적 전통을 종합시킨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두 사상가, 즉 오로빈도 Aurobindo와 라다끄리쉬난 Radhkrishnan의 사상을 간략히 논의해 보자.
1. 스리 오로빈도
오로빈도 고세(1872~1950)는 부유하고 교양 있는 벵갈리 가문 출신이다.
자기 아들이 영국정부의 고관이 되기를 바랐던 오로빈도의 아버지는 철저하게 서양교육을 받도록 그를 어린 나이에 영국으로 보냈다. 그러나 1893년에 인도로 돌아오자 오로빈도는 인도의 민족주의 운동에 깊이 관련되었고,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부상했다.
당시 그의 목표는 모든 외래적 영향에서 벗어나 인도적인 민족주의 이념과 계획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는 정치적 자유를 위한 투쟁과 인도의 과거에 대한 신비주의적 해석이 혼용된 이데올로기를 형성시켰다.
수백만의 인도인들이 오로빈도의 출중한 인격과 결합된 이념의 힘에 이끌렸고 머지않아 오로빈도와 그의 추종자들은 영국통치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영국정부는 오로빈도를 폭력 조장죄로 기소했다.
이 무렵, 그는 돌연히 모든 정치적 활동으로부터 물러나 마드라스 부근의 폰디체리라는 프랑스 식민거류지에 은퇴하여 그의 여생을 공부와 명상, 그리고 요가수행으로 보냈다.
오로빈도는 현대인도의 특출한 신비주의적 철인이다. 철학자 신비가로서 그의 목적은 철두철미하게 존재의 모든 측면에 타당한 인간관과 세계관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오로빈도의 커다란 공적은, 현대세계에 사는 사람을 지도할 수 있는 생의 철학을 형성하기 위해 독창적 방식으로 서양과 힌두사상을 종합한 것이다.
<신성한 삶, The life Divine>은 오로빈도의 걸작이다. 그의 다른 저작으로는 <인간의 순환, The Human Cycle>, <이상적인 인간 통합, The Ideal Human Unity> 그리고 <종합요가, The Synthesis of yoga> 등이 있다.
오로빈도의 철학은 ‘영적 진화주의’ Spiritual Evolutionism라고 명명될 수 있다. 그 중심 사상은, 실재가 본질적으로 영적이라는 것이다.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든 존재는 그 핵심에 있어서 영적이며, 우주 자체가 그 영혼이 여러 가지 형태로 진화하여 나타난 것이라고 보았다. 더욱이, 영혼의 힘이 우주의 다양성의 기저에 놓여 있는 반면, 우주에 통일성을 제공하는 것은 영혼 자체이다.
오로빈도에 따르면, 인간이 무지와 불화에 고통받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의 내면에는 또한 지식에 의해 무지를, 그리고 조화에 의해 불화를 극복하며, 그로써 지고의 영적 목표, 즉 통일과 조화, 지혜와 평화, 희열을 달성하려는 영적 충동이 있다는 것도 똑같이 부정할 수 없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인간은 철학자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종류의 철학이어야 하는가? 오로빈도에 따르면, 사상의 문제는 그러므로 조화의 바른 사상과 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자아에 관한 고대의 영원한 영적 진리를 재진술하여 그것이 심적, 물적 삶을 재포용하고 침투하고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다.
가장 심오하고 활기찬 심리학적 자기훈련과 자기개발의 방법을 발전시켜, 인간의 심적, 심리적 삶이 자신의 풍부함과 힘, 그리고 복합성의 최대로 가능한 확장을 통해서 영적 삶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외적 삶, 즉 사회와 제도가 영혼의 진리 속에서 점진적으로 재형성되고,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통합의 최대한의 조화를 향해 발전할 수 있는 수단과 동기를 추구하는 것이다.
오로빈도의 복잡한 철학체계에 상세히 들어가지 않고, 여기서 다만 오로빈도는 우빠니샤드의 가르침과 완전히 일치하여 브라흐만은 순수존재이며, 유한한 사물과 자아들의 세계로 그 자체를 현현시키는 것은 바로 브라흐만의 힘의 본성이라고 주장한다는 것만 지적한다.
요컨대 우주란 스스로를 현현시키는 브라흐만의 힘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더욱이 우주의 진화는 우연적인 것도 멋대로의 것도 아니다. 정반대로 진화의 과정에서 모든 존재는 그들 존재의 원천인 브라흐만으로 끊임 없이 회귀한다. 존재의 원형적 힘에로의 이 회귀는, 영혼을 더 높은 의식형태에로 진화시킨다.
이 시점에서 오로빈도의 영적 진화론과 다윈이즘을 포함한 다른 진화설 사이의 중요한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자는 후자와 달리, 어떻게 한 종류의 사물이, 예를 들면 무생물이 다른 종류의 사물, 즉 생물로 되는가를 설명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오로빈도에게 있어선 모든 존재가 영혼의 진화이기 때문이다.
그와 같이 모든 존재는 다른 모든 존재와 공동적인 뭔가를 갖고 있다. 낮은 단계의 존재, 예를 들면 식물과 높은 단계의 존재, 예를 들면 동물과의 일반적 구별은 본질적이고 제거불가능한 차이가 아니라 단지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오로빈도에 따르면 낮은 존재는 끊임 없이 높은 곳으로 진화하고자 투쟁하며, 높은 것은 언제나 낮은 것 가운데 반영되어 있다.
요컨대 우주는 낮은 것과 높은 것 사이의 그침 없는 진화적 유회이며, 진화의 절정은 순수존재-순수의식-순수희열 saccidananda의 성취이다. 이 비젼의 인간에 대한 의미는 분명하다.
첫째로, 인간은 이 세계에서 이방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반대로 그는 모든 존재와 친족관계에 있고, 그 친족 관계의 핵심은 영적인 것이다. 두 번째로 현재 있는 바로서의 인간은 그가 될 수 있는 것의 다만 사소한 분량밖에 되지 않는다.
무지속에서 현재 단지 경험적, 이지적 존재로서 한정된 인간은 순수영혼이 될 수 있는 놀라운 가능성을 망각하고 있다. 그 가능성은 감각적, 지적 존재방식을 초월한 의식의 달성에 의해 실현된다.
그러한 의식을 오로빈도는 ‘초월적 마음’ Supermind 혹은 ‘진리의식’ Truth Consciousness이라고 부른다.
초월적 마음을 가진 존재에 있어선 인식적 의식과 의지적 의식이 일상적인 심리 작용에 있어서와 같이 분열되어 있지 않다. 그들은 세 개의 효과적 측면을 가진 하나의 운동이다. 각각이 그 독자적 효력을 가진다.
존재는 실체의 효과를 주고, 의식은 인식과 자기지도와 관념의 형성, 그리고 이해와 인지의 효력을 주며, 의지는 자기성취력이라는 효력을 준다. 그러나 관념이란 다만 그 자체를 조명하는 실재의 빛일 뿐이다. 그것은 심적 사고도 상상도 아니며, 효과적 자아 각성이다. 그것은 실재적 관념이다.
분명히 오로빈도에 따르면, 최고의 영적 존재로 진보하는 것은 인간이 힘 가운데 있으며, 그에 의해 ‘내가 곧 브라흐만이다’ Tat tvam asi라는 우빠니샤드적 진리를 실현하는 것이다. 더욱이, 진리 순수의식(초월적 마음)을 달성한 사람은 그들 자신이 무지와 이기심, 불화로부터 해방되었기 때문에 타인도 그런 의식에 도달하도록 안내할 수 있으며, 그에 의해 자유와 평화 그리고 정의가 충만한 세계질서의 수립을 가능케 한다. 그러한 세계질서는 모든 사람이 실존의 본질적 영성 spirituality을 실현하도록 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 영적 통찰을 달성할 수 있는가? 그것은 ‘통합적 요가’ Integral Yoga의 실천을 통해 달성된다고 오로빈도는 답한다. 먼저 주의해야 할 것은, 통합적 요가란 땀과 눈물의 이 세계를 거부하고, 동국이나 산림에 도피하여 고고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로빈도의 통합적 요가란 인간존재의 어떤 부분도 무시하지 않고, 그 모든 측면을 고려하여 조화롭게 통합시킴으로써 저급한 면은 높은 방향으로 통제, 지양되며, 그리하여 인간이 내면의 영적 법칙에 따라 평화와 기쁨 속에서 살도록 하는 것이다.
오로빈도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에 짓눌려 있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상호적, 물질적 조건엔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고 다만 영성만을 실현하라고 권하는 어떠한 철학도 불합리하고 몰지각한 것으로 생각했다.
따라서, 통합적 요가수행의 필수적 요소는 인간의 물질적, 사회적 복지를 보장함으로써 그들이 신성한 삶의 실현을 추구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사회적, 정치적 질서의 창조를 향해 노력하는 것이다.
오로빈도에 따르면 ‘사회적 복지’란 정의와 자유를 뜻한다. 그래서, 그는 모든 사회의 목적과 목표는 다음과 같아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삶과 성장의 조건을 제공함으로써, 개별적 인간과 종족이 그 개인의 성장을 통해 신적 완성을 향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인류란 일반적으로 신적 완성의 몇 가지 특성에 점점 더 가까이 성장하는 것이므로 인류의 일반적 삶 속에 여지껏 달성되어 온, 그리고 더욱 자유롭고 고귀한 인간성 가운데 스스로를 쏟아붓는 빛과 힘, 아름다움, 조화, 기쁨을 표현해야만 한다.
이제 명백해진 것은, 오로빈도의 철학이 인도와 서양전통의 독창적인 종합이라는 것이다. 그는 현대 서양의 위대한 사회적, 정치적, 과학적 성취와 고대 힌두이즘의 심오한 영적 통찰을 독특한 방식으로 통합시키고 있다. 오로빈도의 신성한 삶을 촉진시키는 비젼은 모든 존재의 통일성에 대한 우빠니샤드적 비젼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영지 Supermind는 정신 spirit의 효과적 원리이며, 영적 존재의 최고의 동력이다. 영지적 개인은 영적 인간의 절정이며, 그의 존재와 사고, 삶, 행동의 모든 방식이 광대한 우주적 영성에 의해 지배될 것이다. ....그의 전존재는 초월적이고 우주적인 자아와 영혼 Atman, Brahman과 하나로 융합된다. 그의 모든 행위는 Atman에 기원하며, 그에 따른다.
오로빈도에 대한 서양의 영향은, 예를 들어, 샹까라 Samkara가 환영론 mayavada을 통해 세계가 비실재이고 환영임을 가르친다는 서양의 지배적인 견해를 그가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쉽게 알 수 있다. 이것은, 오로빈도 자신이 베단따에 조예 깊은 학도라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매우 이상스럽다.
우리는 여기서 오로빈도가 그와 같이 샹까라를 이해하고 해석한 이유를 논의할 여유까지는 없다. 다만 여기서 우리는 샹까라가 어디에서도 이 세계가 비실재적이고 환영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것만 지적할 수 있다. 정반대로, 그는 파기라는 개념을 통해 세계가 실재도 비실재도 아니라고 가르친다.
이것이 참으로 그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것은, 저차적, 고차적 진리의 구분에 의해서도 확인된다. 그와 같이, 샹까라의 베단따가 세계부정적 철학이라는 오르빈도의 규정은 근거가 없는 것이다. 힌두와 서양의 사고방식을 통합하려는 그의 열성에서 오로빈도는 샹까라의 마야 설과 버클리의 주관적 관념론을 성급하게 잘못 동일시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의 비판이 철학자 신비가로서의 오로빈도의 위대성을 감소시키는 것은 아니다. 동서의 종합으로부터 솟아나는 이간과 세계에 대한 오로빈도의 비젼은 지혜와 평화, 조화, 그리고 기쁨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영속적인 갈망이다.
2. 라다끄리쉬난
라다끄리쉬난(Sarvepalli Radhakrishnan, 1888~1975)은 20세기에 있어서 가장 유명한 인도 철학자이다.
남인도의 바라문 가계에서 태어난 라다끄리쉬난은 그의 모국에서 교육받았다. 그의 교육은 인도와 서양의 철학적 전통 모두에 대한 연구를 포괄하였다. 그는 캘커타 대학교의 철학교수로서, 안드라와 바나라스 대학교의 총장으로서, 그리고 옥스포드에서 동양종교학의 교수로서 탁월한 학적 경력을 가졌다. 그러나 그의 경력은 교육분야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1952년엔 인도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것은 마치 철인왕이라는 플라톤의 꿈이 실현된 듯 했다.
교육자, 정치가로서의 라다끄리쉬난은 모국과 세계에 혁혁한 기여를 하였다. 라다끄리쉬난은 타고난 교사였고, 다른 모든 재능 있는 교사와 마찬가지로 그는 그의 생도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주었다. 영어 산문의 대가인 라다끄리쉬난은 탁월한 강사였고 뛰어난 저술가였다. 그는 많은 논문과 책을 썼다.
그의 저작 가운데 잘 알려진 것으로는 <인도철학, Indian philosopy> <이상주의적 인생관, An Idealist view of Life>, <힌두의 인생관, The Hidu view of Life>, <우빠니샤드의 철학, The Philosophy of the Upanisada>, <동양종교와 서양사상, Eastern Religions and Western Thought>과 같은 것이 있다.
라다끄리쉬난의 철학은 본질적으로 현대세계의 상황에 비추어 해석된 샹까라의 불이론적 베단따 Advaita vedanta이다. 샹까라와 마찬가지로 라다끄리쉬난도 궁극적 실재는 절대적이고 분리되지 않은, 통일적 브라흐만이라고 주장한다.
샹까라의 정교한 논박에도 불구하고, 서양에선 흔히 그가 세계를 비실재이고 환영이라고 가르친 것으로 이해하고 해석한다. 철학에 대한 라다끄리쉬난의 주요 공헌 가운데 하나는, 샹까라의 마야 maya설에 대한 권위있고 참신한 해석을 통해 이런 오해를 불식시킨 것이다.
샹까라 베단따의 정신 속에서, 라다끄리쉬난은 우리의 감각과 사고의 세계, 즉 현상계 the phenomenal world를 모든 존재의 기반인 하나의 절대적 브라흐만의 현현으로 보았다. 라다끄리쉬난에 따르면, 궁극적 실재의 체험, 즉 아뜨만과 브라흐만의 동일성이라는 우빠니샤드적 진리의 실현이 삶의 목표이다.
그러므로 라다끄리쉬난으로선 철학의 주요 문제는 한편으로 유한한 사물과 자아로 이루어진 현상계를 설명하는 이론을 구성하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이 세계와 그 기반, 즉 브라흐만과의 관계를 해명하는 것이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러한 이론은, 현상계를 다툼에 있어서 우리의 감각과 사고의 효력과 타당성을 인정해야 할 뿐 아니라, 감각과 사고를 넘어선 신비적, 직관적 통찰도 승인해야 한다.
그리고 베단따에 대한 대담하고도 풍부한 해석에 의해서 라다끄리쉬난은 인식론, 형이상학, 과학, 가치론, 사회 정치론, 그리고 신비주의를 일관성있게 자체 내에 포섭시킨 종교적 철학을 성공적으로 형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다끄리쉬난은 브라흐만에 대해 역동적 견해를 갖고 있다. 유한한 사물과 자아들로 이루어진 현상계는 브라흐만의 힘이 역동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브라흐만은 영구히 활동적이며, 자아와 사물들은 그것의 활동이다. 브라흐만과 브라흐만이 세계로서 발현하는 힘을 서로 다른 두 가지 실재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라다끄리쉬난은 강조한다. 정반대로 힘이 바로 브라흐만 자체이다.
다시 말해서 존재와 브라흐만의 힘은 동일한 것이다. 이 견해는, 현상계의 유한적 존재와 달리 하나님 속에선 실존 existence 과 본질 essence이 동일하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각과 얼마간 유사하다.
그러나 독자들은, 아퀴나스와 라다끄리쉬난 사이의 이 유사성을 지나치게 극대화시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전자가 공인된 존재론적 이원론자이라면, 후자는 철저한 일원론자이기 때문이다. 브라흐만의 힘의 발현으로서의 현상계에 대한 그의 해석에 맞추어 라다끄리쉬난은 현상계의 수많은 자아들은 존재 전체로서의 브라흐만과 같은 것도 다른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브라흐만은 그 특수한 현현자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 현상계의 기저에 놓인 통일체이다.
그러므로 라다끄리쉬난은 자아를 저차와 고차의 자아로 구분하였다. 저차의 자아란 감각적, 논리적 경험양식에서의 인간의 자아이며, 많은 현현자 가운데 하나로서 그것은 브라흐만의 한 국면일 뿐이다. 다른 한편, 고차의 자아는 모든 감각적 논리적 양식을 초월한 자아이며, 따라서 비개념적, 비지각적, 신비적 직관으로만 체험될 수 있다. 모든 결정과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운 고차의 자아는 브라흐만 자체와 동일한 순수 영혼이다.
그러므로 라다끄리쉬난에 따르면, 종교적 모색이란, 저차적 자아로서의 인간이 그 가장 내면적 존재에 있어서 절대정신 Atman, Brahman이라는 진리를 실현하려는 모색과 추구이다. 라다끄리쉬난은, 그러한 실현이 일반적으로 오해하는 바와 같이 자아의 소멸이 아니라 세속적 상태로부터 존재-의식-희열이라는 탈속적 상태로의 변형을 가져온다고 강조한다.
이제 우리는 종교의 본질과 종교적 경험의 본성에 대한 그의 규정을 지적하면서 라다끄리쉬난의 철학에 대한 우리의 간략한 논의를 마치고자 한다.
라다끄리쉬난에 따르면, 종교의 본질은 신학이나 도그마, 믿음, 감정, 그리고 의례나 의식과 같은 외적 부속물과 동일시되어선 안 된다. 또한 도덕이나 철학과 동일시되어서도 안 된다.
종교는 감정, 정서, 정조, 본능, 종파, 의례, 지각, 신조, 신앙과 동일시되어 왔는데 이런 견해는 그들이 부정하는 것에 있어선 틀리지만, 긍정하는 면에선 옳다.
쉬라이어마허 Schleiermaher가 종교적 의식 가운데 감정요인이 지배적이라고 한 말엔 잘못이 없다. 그러나 종교적 감정이란, 다른 종류의 감정과 매우 다르다. 또한 그것은 피조적 의존감과도 동일화되어선 안 된다. ....만일 칸트가 그런 경향을 가졌듯이 경험을 도덕적 의식과 동화시킨다면, 우리는 두 활동간의 다른 성격을 간과하는 것이다.
종교는 단지 가치의식만은 아니다. 그 속엔 도덕적 의식 가운데 결여된 신비적 요소, 실재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 자체를 위한 향유가 있다. 종교는 또한 헤겔이 주장하듯이 지식의 한 형태도 아니다.
종교는 우주에 대한 형이상학적 견해를 내포하고는 있지만, 철학과 혼동되어서도 안 된다. ....종교는 기존의 사회체제를 지켜주는 변증론도 아니며, 사회적 구원에 대한 한갖 도구도 아니다. 그것은 인생의 이상적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시도이며, 헛되고 좀스런 기분의 강압으로부터의 해방을 모색함이다. 전통적 견해를 중단하고, 개인적 경험이 되지 않는 한 참다운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전실재에 대한 전인적 반응이다.
종교적 경험이란 라다끄리쉬난에 따르면 인식주체, 대상, 인식활동의 동일이라는 독특한 의식양태이다. 그것은 감각과 사고를 넘어선 신비적 경험이며, 우빠니샤드의 성인의 존재-의식-희열이라고 부른 것이다.
종교적 경험이란 주객으로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경험의 유형이며, 인간성의 이런 저런 측면뿐 아니라 그의 전 존재가 스스로를 발견하는 듯한 통합적이고 불리되지 않은 의식이다. 그것은 감정들과 관념들이 서로 융합되어, 경계가 깨어지고, 일상적인 구분이 초극된 의식상태이다. 과거와 현재가 비시간적 존재감 속에 소멸된다. 의식과 존재는 거기선 서로 다르지 않다. 모든 존재가 의식이고 모든 의식이 존재이다. 사고와 실재가 통합되고, 주관과 객관이 창조적으로 융합된다. 생명은 그 불가사의한 깊이를 의식하게 된다. 이 생명과 자유의 충만감 속에서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의 구분은 사라진다. 개체아는 개인이 그 자신의 것으로 느끼는 우주아에 의해 파괴된다.
이상으로부터 라다끄리쉬난에 있어서 종교적 체험이란 ‘나는 브라흐만이다’ Aham Brahmasmi, ‘순수의식이 브라흐만이다’ Prajnanam Brahman, ‘이 아뜨만이 브라흐만이다‘ Ayam Atma Brahma, ’그리고 그대가 곧 그것이다‘ Tat tvam asi 등 다양하게 표현된 우빠니샤드적 지혜의 실현과 다름없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라다끄리쉬난 철학의 힘과 보편성, 그리고 고귀성은 모든 시대와 풍토속에서의 인간정신의 다양한 성취와 가능성을 원숙하게 통합시킨데 있다. 로버트 흄 교수의 말을 인용함으로써 인도 철학에 관한 본서의 결론을 삼고자 한다.
우빠니샤드는 의심의 여지 없이 커다란 역사적, 비교적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엔 또한 커다란 현재적 중요성도 있다. 그들의 선조들이 수천 년 과거부터 그 물을 마셔왔고, 또 그들 자신도 그로부터 지적 삶을 도출하고 있는 원천에 대해 뭔가 모르는 사람은 오늘날의 교육받은 힌두의 심성의 움직임과 그 결론들을 이해할 수 없다. 우빠니샤드의 어떤 요소들은 지방적이고 파기적 가치밖에 없는 것이지만, 그 일원론은 서양의 일원론에 영향을 주어왔고, 또 계속 줄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철학자가 경험을 철저히 분석할 때에만 도달할 수 있는 진리속으로 깊이 침투해 들어간 모종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