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山上垂訓)을 읽을 때면 누구나 그것이 불교의 법구경(法句經)을 요약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 Soma Thera의 [서양 문화에 미친 불교의 영향]
붓다의 도덕적인 가르침과 산상수훈은 대단히 닮았다. - B. H. Streeter의 [붓다와 그리스도]
'원수를 사랑하고, 저주하는 자에게 축복을 내려라. 미운 자에게 선을 베풀고,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내밀어라. 겉옷을 요구하는 자에게 속옷까지 주어라. 원하는 자에게는 모두 주어라.' 예수의 이러한 가르침은 붓다의 가르침일 뿐만 아니라 붓다의 제자들에 의해서 엄격히 실천된 덕목들이다. - S. Radhakrishnan의 [동양 종교와 서양사상]
나는 기독교인이며, 또한 지난 수년간 기독교 사상을 체계적이고 자세히 연구해 왔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다른 종교들, 그중에서도 특히 불교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한 대학의 교수이며, 불교에 대해서는 내 나름대로 깊이 있게 공부를 해 왔다. 그런데 불교를 공부하면서 나는 앞에서 인용한 세 사람의 말과 같은 매우 흥미 있는 주장들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불교가 기독교나 그 밖의 서양의 유일신(唯一神) 사상과 매우 다르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기정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 불교인이고, 기독교인이며, 힌두교 학자인 위의 세 사람은 고오타마 붓다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매우 유사하다는 의견이다.
현대의 어떤 선불교 스승은 "예수는 선사(禪師)였다"라고 말한 바 있다. 선사라는 칭호를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익히 아는 터라서 나는 어떻게 예수에게, 그것도 사후에 선사라는 칭호가 주어질 수 있는지 의아스러웠다.
호기심에 이끌려 나는 일주일 간 시간을 따로 내어서 성경의 산상수훈에 있는 예수의 가르침과 법구경에 담긴 붓다의 가르침을 비교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 비교 작업이 어찌나 흥미로웠던지 나는 완전히 몰두하여서 그것에만 장장 몇 년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처음에 나는 산상수훈과 법구경 두 가지 말씀에 대한 비교만을 시작하였으나, 머지않아 예수와 붓다의 다른 가르침들까지 비교 연구하게 되었다. 이 작업을 통해 나는 두 사람의 삶 자체가 너무나 비슷하다는 더 폭넓은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붓다와 예수의 탄생에 얽힌 일화들이 어떤 면에서 매우 닮았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이제 나는 내가 발견한 사실들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어 갖고자 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전반부(첫째 글과 둘째 글)는 붓다와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을 비교한 글이다. 여기서 나는 불교 사상과 유사한 기독교 사상을 주요 논제로 다루었다. 따라서 불교와 기독교가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는 주제들은 논의에서 제외하였다.
불교는 예수 탄생 이전(기원전) 6세기에 인도 북부에서 시작하였거니와, 자연히 그 지방과 그 시대의 사회 제도와 종교적인 신앙들을 반영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는 오백 년 뒤의 지중해 주변의 국제적인 환경에서 살았던 유대인들의 사회적이고 이념적인 세계관이 반영된 것이다. 이렇듯 상당히 다른 문화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불교와 기독교는 몇 가지 점에서 밀접하게 만나고 있다.
후반부(셋째 글과 넷째 글)는 전반부의 비교 검토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의문 한 가지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 다시 말해 "한쪽의 문명이 다른 쪽 문명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닮은 점이 그토록 많은 게 아닐까?
마지막 글에서 나는 여러 가지 증거를 바탕으로 이 문제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이론을 펴나갈 것이다. 또 맺는말 부분에서는 역사 속에서의 예수를 이해하는 데에 따른 새롭고 폭넓은 의견이 제시될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학자의 글이라든가, 학문적인 성격의 글이 아니다. 그것을 초월해 있다. 따라서 어떤 독자는 이 책을 끝까지 읽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책의 앞부분에서 예수와 붓다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가르침의 내용이나, 또 이 두 스승들에 대하여 전해져 오고 있는 비슷한 일화들을 살펴볼 때는 그래도 이야기의 전개가 확실성이 있고 폭이 넓다.
하지만 책의 뒷부분은 그렇지 않다. 불교의 가르침들이 기독교적인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성경 속에 자리 잡았을 가능성을 살펴볼 때는 이야기의 전개가 훨씬 불확실하고 폭이 좁다.
그렇다면 나 같은 학자가 왜 그러한 위험한 길을 택해야만 했는가? 그러나 그렇지 않다. 원래 아무도 탐색하지 않은 인간 사상의 미지의 길에는 으례껏 아직 탐사하지 않은 많은 동굴과 등반하지 않은 많은 산봉우리들이 있기 마련이다. 또 나는 이 흔치 않은 길로 모험을 떠나는 최초의 사람이 아니다.
사실상 지난 세가 말부터 그러한 모험심 있는 소수의 학자들이 출현하였는데, 이들에 대해서는 〈셋째 글〉에서 언급할 것이다. 이들은 반대 의견의 무게에 압도되어 자취를 감춘 것도, 격퇴당한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이들은 아예 무시당했다고 보는 편이 옳다. 하지만 그들이 첫발을 내디딘 인간 사상의 새로운 분야는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대부분의 학자와 종교인들은 예수와 붓다의 현저한 차이에만 눈길을 돌린다. 반면에 동전의 다른쪽 면도 있는 것이다. 비폭력이라든가 마음의 순결성 등과 같은 동시대의 관심 주제를 다룬 상당수의 비슷한 말씀들이 두 위대한 스승들의 가르침 속에서 발견된다. 이러한 유사성과 그것들이 지닌 의미를 우리는 완전히 무시해야만 하는가? 분명 그것들을 무시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기독교와 불교는 거의 이천 년 동안 한 지구상에 공존해 왔으며,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신자들을 확보해 왔다. 하지만 나는 이 둘의 유사성을 탐색해 보는 것이 불교인과 기독교인 모두에게 유익한 일이라고 확신한다. 우리는 Stephen Leacock이 <작은 마을의 햇빛 스케치>에서 묘사한 인물처럼, 박사학위를 땄다고 해서 "자신의 생각만이 최고이며, 더 이상의 어떤 새로운 의견도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 책의 전반부에서 내가 제시한 두 스승의 가르침과 생애의 유사성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독자에게는 그 유사성이 너무나 포괄적이고 일반적이기 때문에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생각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신께서 모든 참된 예언자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기 때문에, 비록 특수한 부분은 그 예언자의 시대나 청중들의 수준에 맞도록 변경되었을지라도 본질적으로는 똑같은 메시지를 전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아니면 예수나 붓다, 또는 그 밖의 위대한 영적 스승들은 인간들 사이에서 오랫동안 전해져 오는 지혜로운 말들의 공통된 핵심을 끌어내어 완벽한 표현 방식으로 가르침을 펴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러한 주장들이 두 스승의 가르침의 유사성을 모두 해명해 줄 수도 있으나, 또다른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즉 "한 종교가 다른 종교의 지혜를 흡수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 책의 후반부는 바로 그러한 가능성을 탐색한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상당히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그 결론도 일종의 가설일 뿐이다. 어떤 독자는 이 부분에서 혼란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기도하건대, 그 혼란이 다분히 생산적인 혼란이 되길 바란다. 마치 농부가 가을의 수확을 위하여 봄에 땅을 갈아엎듯이…….
내가 이 책의 원고를 끝마쳐 갈 무렵 어느덧 추수 감사절이 되었다. 이 축제 역시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미국 땅에서 발견한 미국의 인디안 정신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한다. 따라서 초기 시대의 또 다른 인디안(인도) 정신과 기독교 사상의 관계를 논하는 이 책을 쓰는 데에 직접적인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를 드리는 일은 지금이 매우 시기적절하다고 생각된다.
이 책을 쓰는 데 있어서 여러 가지 형태로 받았던 도움들에 대하여 깊이 감사드린다. Richard Garbe와 Albert Edmunds 같은 이전의 학자들 덕분에 내 작업이 훨씬 쉬웠음을 밝힌다. 그 밖에도 편집과 교정에 그야말로 헌신적인 도움을 준 이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제1장 두 스승 붓다와 예수의 생애
1. 두 스승은 어떻게 세상에 내려왔는가
예수와 붓다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왔는가? 여기에는 매우 비슷한 이야기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이들 기독교와 불교의 일화들은 그 세부적인 내용들이 주로 일종의 전설적이고 신화적인 틀을 따르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신화의 틀이 이들 일화의 원형(原型)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신화의 틀은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스승은 성적(性的) 교섭이 없이 여성의 순수한 자궁에서 잉태되어 세상에 내려온다. 또한 이 신화에는 천사와 예언자들에 의해서 스승의 탄생과 영광이 묘사되어 있다. 스승들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이 없지만, 성년이 되고 나서의 생애에 얽힌 일화는 매우 풍부하다. 아마도 가장 흥미 있는 일화는 스승들의 영적인 추구와 악마와의 싸움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신화에는 스승들이 죽음을 정복하는 과정이 묘사되어 있다. 비록 그들의 육체는 죽지만, 그들은 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할 추종자 집단을 남겨 두고 떠난다.
고오타마 붓다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전해져 오는 특별한 일화들을 살펴보기 전에 필자는 먼저 이러한 고전적인 신화의 틀 자체에 대하여 언급하고자 한다.
신화의 테마는 주로 구세주(救世主)가 때때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세상에 내려와 악을 물리치고 정의의 시대를 건설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한 사명을 달성하기 위하여 구세주는 먼저 하늘의 어떤 지역 또는 천체를 떠나 지상으로 내려와야만 한다. 이것과 관련된 산스크리트어는 아바타르(avatar)로 '화신(化身)'이라는 뜻이며, 본래는 '하강' 또는 '내려오다'라는 의미이다.
신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온다는 사상은 종교의 역사에 있어서 대단히 진부하고 상식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에덴동산의 이야기에는 하나님이 서늘한 밤에 동산을 찾아와 걷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이러한 장면들에서 하나님은 인간과 똑같은 육체가 아니라 오로지 영적인 모습으로 지상을 방문할 뿐이다.
히브리인들은 다른 어떤 문화권의 사람들보다도 이러한 영적인 존재가 지상에 출현하는 것을 서술하기를 가장 꺼리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이 안개구름 속이나 불기둥, 또는 불타는 덤불에 나타났다고 말하고 있다.
신이 지상을 방문하는 또다른 방식이 있다. 즉 신이 인간의 자궁 속에 내려오는 방식이다. 필자는 이것을 앞의 '영적인 모습의 신'과 구별하기 위하여 '인간의 육체를 가진 신'이라고 부를 것이다.
1) 영적인 모습의 神
초기 힌두교와 불교가 지니고 있던 대부분의 종교적인 개념과 신앙 형태는 기원전 6세기 이전에서 유래하였다. 이때 고오타마 붓다는 북인도의 중부지방에서 살고 있었다. 배경 사상의 몇 가지는 아리안족들에 의해서 인도로 전해졌다. 붓다가 태어나기 몇 세기 동안 아리안족은 북인도 지역을 지배하였었다.
인도의 아리안족들은, 하늘에는 수많은 남신(男神)과 여신(女神)들로 채워진 또다른 아아치형의 하늘이 있어서, 목적에 합당할 때면 이따금 그들이 지상에 모습을 나타낸다고 믿었다. 이러한 신들은 인간의 모습으로 지상에 나타나긴 하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육체가 아니라 영적인 모습을 한 존재들이었다.
나라 왕자와 사랑에 빠진 담마얀티의 이야기를 보면, 네 명의 신들이 나라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지상에 내려오는 장면이 나온다.
한 무리의 왕족 구혼자들 중에서 남편을 선택해야만 했던 공주는 다섯 명의 나라 왕자를 보고 깜짝 놀라 화가 난다. 그녀가 그 신들에게 본래의 신의 모습으로 돌아가 달라고 간청하자 그들은 그 간청을 들어 준다.
이때 그녀는 그들의 영적인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들은 "눈을 깜빡거리지도 않으며, 시들지 않는 화환을 몸에 두르고 있고, 땅을 밟지도 않고 서서 발에 흙이 묻지 않았다"고 한다.
신들이 영적인 모습으로 움직이는 것을 묘사하는 데에 사용된 단어들은 바람이나 빛을 묘사할 때와 비슷하다. 그 네 명의 신들은 단숨에 이곳에서 저곳으로 '바람처럼' 날아갔으며, 전혀 힘들지 않게 궁전의 벽을 통과하였다.
불교 문헌들은 다음의 브라흐마(Brahma) 신에 대한 인용문이 말해 주듯이 이와 비슷한 용어로 지상에 나타난 신의 모습을 자주 묘사한다.
브라흐마 사함파티는 자신의 마음속에 '축복받은 이'의 마음을 느꼈다. 순간 어떤 강력한 존재가 그의 구부러진 팔을 펴거나 또는 펴진 팔을 구부리거나 하자마자 그는 범천(梵天)에서 사라졌다가 그이의 앞에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는 법복(法服) 상의를 한쪽 어깨에 단정히 두르고서 그 축복받은 이를 향해 두 손을 합장한 다음 말하기를…
잡아함경(雜阿含經)
같은 문장에서 우리는 신적인 존재가 어떻게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가를 알 수 있다. "그는 그이에게 경의를 표한 뒤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러한 신화의 틀은 간단명료하다. 인도(또는 그 밖의 다른 곳)의 오래된 믿음에 의할 것 같으면, 신은 당장에 그리고 전혀 힘들지 않게 지상으로 내려와 물질적인 육체의 형태와 색채를 취할 수 있었으며, 또한 내려올 때와 마찬가지로 재빠르고도 신비하게 다시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 이 영적인 존재는 인간의 육체보다 덜 물질적이지만, 신들이 하늘에 거주할 때 취하는 천상의 모습보다는 더 물질적이다.
2) 인간의 육체를 가진 신
이제 갠지스 강가를 따라 형성되어 불교와 다른 인도 사상에 자리를 잡은 신앙에 대하여 살펴보자. 불교 문헌에는 고오타마 붓다 말고도 그 이전에 존재했던 많은 붓다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붓다들의 일대기 가운데 가장 초기에 쓰여진 일대기가 있는데, 이것이 그 이후에 나타난 모든 붓다들의 전기의 스타일을 결정지었음을 알 수 있다[장아함경]. 고오타마 붓다의 탄생과 어린 시절에 관한 일화들도 갠지스 강가를 따라 형성된 아주 초기 불교나 또는 고오타마 탄생 이전의 신앙들에서 물려받은 붓다 일대기의 뼈대에 살을 붙인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붓다들의 일대기의 교과서 격이랄 수 있는 이 문헌에는 모든 붓다들이 거치는 과정이 하늘에 존재할 때부터 지상에 내려와 제자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전할 때까지 단계별로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모든 스승들이 이러한 형식에 따라 세상에 태어난다고 하는 사상에는 깊은 의미가 있다. (나는 여기서 스승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원래의 문헌에는 보디사트바, 즉 '보살'로 표현되어 있다. 보살은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존재라는 뜻이다.)
(1) 스승은 무의식 상태가 아닌, 의식이 깨어있는 상태에서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침착하게 들어온다. 이것이 첫 번째 법칙이다.
(2) 스승이 내려올 때는 우주 전체에 그 사실이 공표된다. 모든 신들의 영광을 능가하는 무한하고도 찬란한 광채가 나타난다. 이것이 그다음 법칙이다.
(3) 스승이 내려올 때는 네 명의 대천사(大天使)가 그를 수호하기 위하여 지구의 네 방위에서 나타나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이 붓다와 붓다의 어머니를 해치지 못하도록 하라!" 이것이 그다음 법칙이다.
(4) 스승의 어머니는 타고난 성품이 깨끗하다. 생명 있는 것을 취하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갖지 않으며, 거짓말하지 않고, 음란한 행위를 하지 않으며, 독한 술에 탐닉하지 않는다. 이것이 그다음 법칙이다.
(5) 임신한 동안이나 출산 후에 스승의 어머니는 순결을 지킨다. 왜냐하면 그녀는 본래 남자와 감각적인 쾌락에 빠지려는 욕망이 없으며, 어떤 남자가 유혹한다 해도 죄를 범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다음 법칙이다.
(6) 이 무렵 어머니는 매우 행복하다. 자신의 모든 욕망이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다음 법칙이다.
(7) 그녀는 아이를 임신한 동안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않으며, 자신의 자궁 속에 붓다가 완전한 신체 기관을 갖추고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이 그다음 법칙이다.
(8) 스승의 탄생 칠 일 후에 스승의 어머니는 죽어서 천상으로 올라간다. 이것이 그 다음 법칙이다.
(9) 다른 여자들처럼 스승의 어머니도 아이의 임신 기간이 꼭 열 달이다. 이것이 그다음 법칙이다.
(10) 다른 여성들이 앉거나 누워서 아이를 출산하는 반면에 스승의 어머니는 그렇게 하지 않고 서서 아이를 출산한다. 이것이 그다음 법칙이다.
(11) 아이가 태어났을 때 맨 먼저 네 명의 대천사들이 그를 받아 찬양의 노래를 부른다. "기뻐하라, 여인이여! 그대에게서 태어난 아이에게 권능이 있으니!" 이것이 그다음 법칙이다.
(12) 스승은 태어날 때 조금도 더렵혀지지 않은 순결하고 오점 없는 상태로 세상에 나온다. 이것이 그 다음 법칙이다.
(13) 하늘에서 두 줄기 물이 쏟아지는데, 한 줄기는 차갑고 다른 한 줄기는 뜨겁다. 이 물로 어린 스승과 그 어머니를 목욕시킨다. 이것이 그다음 법칙이다.
(14) 태어나자마자 어린 스승은 두 발로 당당히 서서 얼굴을 북쪽으로 향하여 크게 일곱 걸음을 걷는다. 이때 흰 햇빛 가리개가 그의 머리 위에 걸린다. 그는 사방을 둘러본 뒤 황소 같은 목소리로 이렇게 외친다. "천상천하유아 독존이라! 세상에 나보다 높은 자는 없노라! 세상에 나보다 나이 많은 자는 없노라! 세상에 나보다 앞선 자는 없노라!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탄생이다! 나는 이제 두 번 다시 세상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그다음 법칙이다.
(15) 스승이 탄생할 때 온 세상에 신들의 영광을 능가하는 무한하고도 찬란한 광채가 뻗친다. 이것이 그다음 법칙이다.
이 전기 교과서는 초인(超人)임을 나타내는 32가지의 특징을 몸에 지니고 태어난 그 아이가 속세의 삶을 선택한다면 위대한 왕이 될 것이요, 속세의 삶을 떠나 진정한 종교를 가르치는 떠돌이 스승의 삶을 선택한다면 위대한 스승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러한 목록은 고오타마 붓다에 대한 일화들이 생겨난 다음에 문자로 기록되었겠지만, 아무튼 구세주의 전기가 어떤 틀을 취해야 하는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이 틀을 이런 식으로 간추릴 수 있을 것이다.
하늘에 계신 신적인 존재는 인간이 겪고 있는 문제를 잘 알고 있다. 지상에 내려오는 일은 재빨리 이루어지지만, 진짜 인간의 육체로 내려와야만 하기 때문에 그는 한 여성의 자궁에 태아의 형태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 잉태 과정에는 남성이 개입되지 않으며, 천사들의 도움도 성적인 도움도 아니다. 아이는 거의 정상적인 방식으로 태어나, 먼저 천사들의 찬양을 받고, 그다음에 인간의 찬양을 받는다.
예언자들은 그 아이가 위대한 영적 스승이 되어 인간의 고통을 바로잡아 주리라고 예언한다. 이야기는 계속해서 그 위대한 인물의 사명과 가르침에 대하여 언급하며, 가장 높은 하늘 또는 불교의 용어로 하면 열반(涅槃)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러한 형태는 하늘에서 사라진 신이 순식간에 다 성장한 인간과 똑같은 영적인 모습으로 지상에 나타나는 형태와는 아주 다르다. 정상적인 인간과 똑같이 여성의 몸에서 잉태된 이 신은 진짜 인간의 육체를 하고서 먹고, 울고, 병들고, 점차로 지혜로워지며, 나이를 먹고, 마침내 죽는다.
갠지스강 유역의 신앙이-여기에 대해서는 둘째 글에서 자세히 언급할 것이다-구체화됨에 따라 신의 화신(化身)인 구세주 사상이 인도 전역과 그 너머로 퍼졌다. (자이나교와 그 밖의 다른 인도 종교들 역시 이 화신 사상을 사용하고 있다.)
이 구세주 사상은 수 세기 동안 수백만의 신자들을 가졌던 크리슈나 신앙과 불교 신앙에 집중되어 있다. 비쉬누 신을 숭배하는 힌두교, 그리고 불교와 기독교는 각각 하늘에서 내려와 정신적으로 순결한 여성의 몸에서 태어나고 영적인 스승으로 성장하여 자신의 인류 구원의 사명을 이룩한 뒤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이러한 신의 화신인 구세주 사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러나 이들 세 종교의 구세주 사상에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초기 불교도들은 붓다를 신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신의 화신이라고 믿고 있는 반면에, 불교도와 힌두교도들은 세상에는 지금까지 수많은 붓다들과 비쉬누(신의 화신)가 내려온 것으로 믿고 있다.
비록 각각의 전통과 문화 배경에 따라서 신의 화신이라는 사상이 구체화되긴 했지만, 신앙심이 깊은 추종자들은 스승의 생애 전반에 얽힌 일화를 기적적인 사건들로 장식하지 않고는 못베겼을 것이다. 그래서 영적인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나는 신과 관련된 사상들이 인간의 육체를 한 신에게도 적용되었다. 이렇게 두 가지 방식의 이야기가 혼합됨에 따라서 자연히 스승의 육체를 신성시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 이야기의 전개에 모순이 생겼다.
어떤 불교도들은 고오타마 붓다가 땀도 흘리지 않고 대소변도 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그는 붓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어떤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진짜로 고통받지도 않았으며, 죽지도 않았다고 추측한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단지 세상 사람들 눈에 스승의 육체가 세속적인 사람과 똑같은 것으로 '비쳤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생각은 계속해서 불교와 기독교를 따라다녔으며, 마침내 한편으로는 스승의 육체를 둘러싼 기적들을 주장하는 일종의 절충안이 나오게 되었다.
왜 이러한 절충안이 나오게 되었는가? 그것은 스승이 먹고 마시고 피곤해하던 등등의 기억이 너무나 강렬하여 이 영적인 육체를 가진 신의 사상이 완전히 승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불교 양쪽에 걸쳐서 이러한 절충안이 현재까지 지배적이다. 이 관점은 스승들이 완전한 인간이었지만 때로는 물 위를 걷는다거나 몸에서 광채가 나는 등의 초자연적인 육체적 힘을 연출한 능력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3) 이야기를 미화시킴
군중 속에서 한 위대한 지도자가 출현한다. 그리하여 전쟁이나 정치, 예술 또는 종교 분야에서 남다른 두각을 나타낸다. 그러면 그 추종자들은 당연히 그 지도자의 탄생 과정이나 어린 시절을 전설화시킴으로써 이야기를 더 아름답게 미화하려는 충동을 느낀다.
지도자의 업적을 미화시키는 한 가지 대표적인 방법은, 그의 인생 출발을 과장해서 표현하는 일이다. 모세나 에이브러햄 링컨의 일화가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잘 쓰는 방법이 또 하나 있다. 그 영웅이 성년이 되어 발휘한 뛰어난 인격과 능력이 이미 어린 시절부터 존재했었다고 믿는 일이다. 이 방법은 이를테면 힌두교의 신의 화신인 어린 크리슈나나 어린 무하메드, 또는 어린 조오지 워싱톤의 일화에서 사용되고 있다.
영웅의 유년기에 얽힌 또 다른 전설들은 더 많은 환상적인 주장들을 동원하여 청중을 흥분시킨다. 한 가지 공통된 주장은 그 영웅이나 영웅의 부모가 인간과 동물의 유전학적인 혼합체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종족의 탄생을 설명할 때에 자주 사용된다. 이를테면 스리랑카(실론)의 아름다운 섬에 인류의 씨앗을 뿌린 '사자족'의 신화나, 곰이 등장하는 한국의 단군 사상에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 방식은 그 종족의 시조(始祖)가 인간과 동물 사이에 다리를 놓았음을 상징한다.
어린 종교 지도자가 연결시켜야만 하는 훨씬 더 큰 심연이 있다. 이름하여 하늘과 땅,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이다. 이러한 과업을 달성하는 데에 가장 효과적인 상징법이 있다. 그것은 그 영웅이 최종적인 종합, 즉 신과 인간의 결합에서 탄생한 자손이라고 묘사하는 방법이다.
고오타마 붓다와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에 관한 이야기는 어떻게 그 스승이 지상으로 내려와 가장 도덕적인 품행을 갖춘 한 여성의 자궁에 기적적으로 잉태될 수 있었는가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서로 반대되는 두 세력의 결합'을 의미하며, 그럼으로써 인간에게 구원을 베푸는 사명이 가능하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이것이 예수와 붓다의 탄생 일화에서 맨 첫 번째로 유사한 점이며, 또한 가장 충격적인 내용이다. 양쪽 모두 남녀간의 성적 접촉이 없이 잉태가 이루어진다.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동정녀 잉태라고 부른다.
마야 부인은 고오타마 붓다를 임신하기 전에 처녀가 아니었지만, 불교에서는 그녀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남자와의 성적 접촉이 없이 임신했다고 말한다.
(1) 왕비 마야 부인은 여름 축제 기간에 포함된 여드레 동안 특별히 경건한 신앙심으로 몇 가지 수행을 했다. 물론 이 수행에는 성적 교섭이 금지되었으며, 살생 금지와 같은 불교적인 계율이 엄격히 지켜졌다.
(2) 마야 부인은 신비의 흰 코끼리가 그녀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이 꿈을 꾼 뒤 그녀는 무척 기뻤다.
(3) 그녀는 다시는 성적인 쾌락에 빠지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이제 그러한 무한한 기쁨을 체험한 터라 그와 같은 세속적인 쾌락이 온당치 못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4) 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동안 왕비는 자신의 몸속에 있는 태아를 알아볼 수 있었다. 또한 아무런 병도 나지 않았으며 전에 없이 건강하고 즐거움이 넘쳤다.
예수와 붓다의 탄생 일화의 세부적인 이야기 방식은 다를지 몰라도 공통적으로 그들의 영웅이 자신의 사명을 시작하기 위하여 지상에 내려와 영적으로 순결한 여성의 자궁에 기적적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신적인 존재가 내려오는 매개체로 선택된 그 여인은 다시는 남자와 성적인 접촉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사상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신약성서 자체에는 그러한 이야기가 없지만, 잘 알려진 바대로 마리아는 영원한 동정녀라는 사상이 발달하였다. 예수의 형제들이 신약성서에 언급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점에서 불교 측 이야기는 붓다의 어머니가 출산 후 칠 일 만에 죽어야만 하는 이유가 더 이상의 성적 접촉의 가능성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진 않지만, 분명 그러한 점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인간의 의식 깊은 곳에 잠재된 무엇인가가 성적 접촉은 신성한 것과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두 어린 구세주들의 운명을 출발시키고 지시하는 역할을 천사들이 맡는다. 불교 측 이야기에서는 네 명의 신적인 존재들이 나타난다. 이들이 바로 필자가 대천사(大天使)라고 부르는 존재들이다. 그들은 마야 부인을 따라다니고, 그녀의 침대에서 잠을 자며, 그녀의 임신 장소에 모습을 나타낸다. 그녀가 임신해 있는 동안 그들은 계속 그녀를 지켜보며, 아이가 태어났을 때 맨 먼저 그 아이를 받는다.
기독교 측 이야기에서도 한 천사가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주요 역할을 맡는다. 누가복음에서 누가는 그 천사를 가브리엘 천사와 동일시하고 있다.
불교와 기독교의 이야기 모두에서 독자는 그 천사들에게 통보된 하나의 계획, 하나의 정해진 운명이 미리부터 있었으며, 천사들은 그 계획이 달성될 때까지 그것을 지켜볼 책임이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4) 탄생
누가복음에만 예수의 탄생에 대한 실제적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누가복음 2장에 설명된 예수의 탄생과 불교 문헌들에 언급된 석가모니 붓다의 탄생을 비교해 보자.
처음 읽어서는 이야기의 닮은 점보다 차이점이 지배적인 듯하다. 붓다의 경우 상당한 재산과 지위를 가진 왕가의 집안에서 한 왕자로 태어나지만, 반면에 예수는 아무런 사회적 지위도 재산도 갖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난다.
어린 고오타마는 그 시대의 중요한 인물들에게 찬양을 받지만, 어린 예수는 로마나 히브리 지도자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비슷한 점들이 있다. 두 아이 모두 그들의 위대성을 특징짓는 몇몇 인물들과 사건들로 둘러싸여 있다. 둘 다 어머니가 여행 중에 출산되었다. 양쪽 모두 집안에서 태어나거나 하녀의 도움을 받지도 않았다.
고오타마는 룸비니 동산이라는 넓은 야외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애의 주요 사건들의 대부분의 나무들이 우거진 숲 같은 곳에서 일어났다.
예수는 마구간 안에서 탄생한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은 마리아가 그들을 받아줄 여인숙이 없어서 아기 예수를 말구유 안에 눕혔다고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5) 천사들의 기쁨
누가복음이 들려주는 다음 사건은 양치기에게 나타난 천사에 관한 것이다. 그 천사는 신비로운 광채와 함께 나타나 양치기에게 그 위대한 사건의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아래에 누가복음에서 인용한 관련 구절과 그것과 유사성이 있는 붓다의 전기에서 따온 구절을 나란히 적어 보았다. (이후부터 불교의 문헌에서 인용한 구절은 밑(황금색)으로 배치하였다.)
천사가 그들에게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세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 스도 주님이니라 너희는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누가복음 2:10-13]
탄생하는 바로 그 날에 삼십삼 천 상계의 수많은 신들이 모여 크게 기뻐하며 꽃다발은 흔들면서 말하기를, 카필라 왕국의 슛도다나 왕에게 한 아들이 태어났도다. 이 아이는 깨달음의 자리에 올라 부처님이 될 것이다. [본생경(本生經)]
20세기의 시각으로는 천사와 역할을 이해하기가 어렵겠지만, 옛날엔 일을 성사시키는 데에 천사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들의 주된 업무는 신적인 존재에 대한 찬양의 노래를 부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붓다와 예수의 탄생 때에도 천사들은 찬양의 노래를 부른다.
양쪽 이야기에서 그들은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아이가 태어나는 도시 이름과 탄생 장소, 아이의 부모, 아이의 영광된 미래에 대한 예언 등 그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정보를 알려 준다.
이야기의 차이점은 천사들의 출현에 대한 세부적인 묘사에 있다. 불교 측 설명에서는 한 늙은 현자(賢者)가 이 천사들을 알아보고 그들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이 현자는 오랜 명상의 결과 비범한 영적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하늘에서 들리는 천사들의 찬양과 축복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천사들에게 기뻐하는 이유를 물어 슛도다나 왕에게 아들이 탄생했다는 내용의 위에 인용한 메시지를 받게 된다.
6) 아기에게 경의를 표함
그 인도 현자는 당장에 아기에게 경의를 표시하러 간다. 이것은 성경에서 양치기들이 아기 예수에게 경배하러 가는 것과 같다.
하지만 현자 아시타와 아기 붓다의 만남은 성경의 시므온(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는 계시를 받았으며, 성전 안에서 아기 예수에게 축복을 내린 인물)의 일화와 더 깊은 유사성이 있기 때문에 결론은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하자.
여기서는 다만 구세주가 지상에 내려와 인간 세상에 탄생했을 때 몇몇 사람이 경의를 표하러 왔음을 불교와 기독교의 이야기가 청중들에게 전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일단 아이가 태어나자, 불교 측 이야기는 아버지의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어머니의 역할은 사라진다(실제로 마야 부인은 출산 칠 일 후에 세상을 떠났다). 이것은 기독교 측 이야기와 매우 다르다.
기독교 측에서는 어머니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아버지는 예수가 사명을 개시할 때까지 전혀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어린 고오타마는 응석받이 왕자로 자란다. 하지만 우리는 로마인들이 지배하는 한 작은 유대의 어촌에서 보낸 예수의 어린 시절이 왕자의 그것과는 영 딴판이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7) 아이에게 이름 지어 주기
누가복음의 이야기에 기록된 다음 사건은 전통적인 할례 의식과 이름 짓기인데, 이것은 유대 전통에 따라 예수 탄생 8일째 되는 날에 행해졌다.
인도에는 할례 의식이 없지만, 고오타마의 이름을 정하는 의식이 탄생 닷새째에 행해졌다(고오타마는 성이다). 그에게는 싯달타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이 이름은 '성공'이라는 뜻이며, 그가 자신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할 것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 사명의 내용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고오타마가 탄생하자 몇 명의 학식있는 바라문들이 몰려와 그의 신체에 나타난 특징을 살펴보았다. 마침내 그들은 고오타마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이 되리라는 것을 말해 주는 32가지의 특징을 갖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단 하나의 의문점은 그의 위대성이 세속적인 영역(일반적인 군주)에서 발휘될 것인가, 아니면 영적인 영역(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붓다)에서 발휘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느 쪽이 될 것인가를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 한 젊은 바라문 승려가 말했다. "여기를 보라! 이 아이의 몸에는 32가지의 주요 특징 외에도, 여덟 가지의 작은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이 아이는 결국 붓다[覺者]가 될 것이다." 왕은 그 왕자가 권력 있는 군주가 되기를 원했다. 그래서 왕은 영적인 추구의 발단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왕자를 격리시켰다.
바라문 승려들은 왕에게 이렇게 충고하였다. "한편에서 노인과 병자와 시체를 목격하고, 다른 한편에서 출가한 수도승의 평온한 마음을 보게 된다면 왕자는 인생의 큰 의문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왕궁의 쾌락으로 가득찬 삶을 떠날 것입니다." 그래서 왕은 그러한 장면이 젊은 아들의 눈에 띄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물론 인생의 실존적인 문제로부터 예수를 보호하기 위한 그러한 시도는 행해진 적이 없다. 고오타마는 부유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왕궁에서 성장하였으나, 결국에는 영적인 만족을 찾아서 그러한 환경을 모두 거부하였다.
예수는 정치적인 힘이나 경제적인 안정과는 거리가 먼 고난의 시대 속에서 성장하였으며, 그의 가정은 다분히 힘들게 일해야 먹고 사는 계급에 속했다. 예수가 집을 떠나 방랑의 길을 떠났을 때, 그가 뒤에 버리고 떠난 어린 시절은 붓다의 어린 시절과 백팔십도 다른 것이었다.
다른 불교 문헌은 궁정의 바라문 승려들의 입을 빌어서가 아니라, 붓다에게 경의를 표시하러 찾아간 늙은 현자 아시타의 입을 빌어 아이가 장차 붓다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려주고 있다. 아시타의 역할은 성경의 늙은 현자 시므온의 역할과 자주 비교되어왔다.
누가의 설명에 따르면, 시므온은 성전에서 아기 예수를 축복한 인물이다. (뛰어난 종교학자 알버트 에드먼즈가 지적한 한 가지 유사점은 기독교와 불교 양쪽 이야기 모두 현자들이 마술적인 공중비행을 통해 그 마음에 접근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특별히 달인(達人)의 경지에 도달한 마술사만이 공중을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마술적인 공중비행이 가능하다 해도, 기독교 측에서는 그 이야기가 애매모호하다. 이제 인용하게 될 시므온의 일화에서 시므온이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라고 되어 있지만, 문자 그대로의 가장 정확한 번역은 "공중을 날아 성전에 들어가매……"이다. 여기서 '공중'에 해당하는 단어는 pneumati이다. 이 단어는 '영(靈)'이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어서, 앞에 '성스러운'이라는 단어가 없으며, 단지 기독교에서 통상적으로 pneumati를 '성령'으로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추측컨대, 만일 누가복음이 여기서 지적적인 공중비행을 뜻하고 있었다면 좀더 강한 표현을 썼을 것이다.)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받음을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주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편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하게 여기더라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누가복음 2:25-35]
그 수행자는 지나간 마흔 번의 전생과 앞으로 올 마흔 번의 인생, 두 합쳐 여든 번의 인생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었으며, 그 아기 붓다가 그러한 특징들을 몸에 지니고는 것을 보자 아기가 장차 붓다가 될 것인지 아닌지를 기억해 내었다 아기가 확실히 붓다가 되리라는 것을 안 그 수행자는, 이 아이는 실로 위대한 인물이다 라고 말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 다음 아기가 붓다가 되었을 때 자신이 그 붓다를 볼 수 있을지 없을지를 투시력을 해 알아보았다. 그런데 자신이 생전에 그 붓다를 볼 수 없으며, 이미 죽었기 때문에 일백 명 또는 일 천명의 붓다들을 통해서도 깨달음을 얻을 수 없고, 무형(無形)의 세상이다. 그러자 이 위대한 인물이 붓다가 되었을 때 내가 그를 볼 수 없으니, 이 얼마나 참으로 큰 손실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슬피 울었다. 어른이시여, 조금 전에는 미소 짓더니 이제는 우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존귀하신 아기에게 어떤 불행이 닥치게 됩니까? 대답하기를 아니다. 이분께는 아무런 불행도 닥치지 않을 것이다. 분명코 이분은 붓다가 되실 것이다. 다시 묻기를, 그렇다면 왜 그렇게 슬피 우십니까? 대답하기를, 이분께서 붓다가 되셨을 때 내가 이분을 뵙지 못하게 될 것을 생각하니 실로 내 손해가 안타깝고 내 자신이 애석하여 우는 것이다. [본생경]
양쪽 이야기에서 모두 한 나이 많은 현자가 맨 처음으로 아이의 부모에게, 또는 아버지에게, 아이가 평범한 아기가 아님을 알려 준다. 이야기의 문맥으로 보아 이렇게 추측할 수 있다. 현자는 올바른 수행을 통해 영적인 능력을 쌓았기 때문에, 다른 구경꾼들은 알아보지 못하는 그 어린 스승이 지니고 있는 특수성을 간파하고 식별하는 초자연적인 분별력을 발휘한다.
두 일화에서 현자의 임박한 죽음이 언급되고 있지만, 불교 측 이야기에서만 그 늙은 현자는 아이가 성장했을 때까지 자신이 살지 못할 것을 한탄하고 있다.
8) 현자가 아이에게 경배함
마태복음의 설명은 누가복음의 설명과 아주 다르다. 마태는 마리아가 성적 교섭이 아니라 영적으로 예수를 잉태했다는 말로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이 점은 누가복음의 이야기와 일치한다. 하지만 마태복음은 탄생 시의 상황에 대해서는 그것이 베들레헴에서 일어났다는 것 외에는 모든 세부적인 상황을 생략한 뒤, 곧바로 동방박사들의 방문에 대한 유명한 이야기로 옮겨간다.
동방박사(magi)는 페르시아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점성술과 마술을 포함한 그 시대의 과학을 추구하는 학자계급에 붙여진 칭호이다. 초기 기독교와 그 무렵의 유대교에서는 이 동방박사라는 용어가 언제나 나쁜 의미로만 사용되었다. 그 의미는 우리가 흑마술사(黑魔術師)를 칭할 때의 의미와 비슷하다. 하지만 마태의 이야기에는 그 단어가 매우 긍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당시 수 세기 동안 점성술이 과학으로 발전된 동방에서 온 이 점성술사들은 타지방에서 수입된 학문의 위대한 업적을 상징한다.
또한 베들레헴의 말구유 속의 아기가 매우 특별한 아이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히브리인들이 아니라 바로 이들 타지방 사람들이었다. 후대에 와서 기독교 사상은 마태의 뼈대뿐인 이야기에 살을 붙였다. 그 현자들은 왕이었으며, 모두 세 명이었고-보다 초기 시대에는 네 명이었던 것 같다-이름과 나이와 국적이 그들에게 붙여졌다.
마찬가지로 어린 고오타마 역시 그의 출산 과정을 관장한 대천사들인 네 명의 신적인 왕들에게 맨 먼저 찬양을 받는다. 이 일화에 덧붙여 어떤 불교 전기들은 나중의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공중을 날아다니던 몇 명의 현자들이 어린 고오타마에게 경배하기 위하여 근처의 땅으로 내려왔다는 것이다. 고오타마의 아버지는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왕은 대개 성자(聖者)에게만 경배를 하는데, 그들이 자진해서 그의 어린 아들에게 절을 하였기 때문이다.
불교와 기독교의 일화가 청중들에게 심어 주려고 했던 인상은 같은 것이었다. 학식있고 마력을 지닌 인물들까지 아이에게 경배를 하기 위하여 멀리서 찾아왔으니 얼마나 불가사의한 일인가!
그 동방박사들이 보았던 별의 의미는 오늘날의 독자에게 대부분 무시되고 있다. 배들레헴의 밤하늘에서 밝은 빛을 비추고 있는 큰 별 하나가 그려진 상투적인 그림을 잠시만 잊자. 그러면 우리는 마태의 이야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읽을 수 있다. 그리하여 그 일화가 구세주의 탄생을 알려줄 새로운 별을 찾기 위하여 밤하늘을 관찰하고 있던 몇 명의 점성술사들을 묘사하고 있음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이와 똑같은 점성술적인 측면이 불교 측 이야기에도 나타난다. 그들은 아기 붓다가 보름날에 태어났으며, 그날 어떤 특정한 별자리가 특별한 위치에 있었다고 말한다. 또한 석가모니 탄생 시에 불가사의하고 초자연적인 빛이 우주 전체에 퍼졌으며, 다양한 초자연적인 존재들이 그 빛을 목격하고서 위대한 사건을 찬양하였다고 한다.
마태의 현자들이 아기 예수에게 했던 것처럼 앞에서 언급한 인도의 현자들은 아기 붓다에게 선물을 바치지 않았다. 하지만 앞서 말한 현자 아시타에 관한 어떤 이야기에는, 왕이 아시타에게 예의상 선물을 주자 아시타는 당장에 그 선물을 아기에게 바친 것으로 되어 있다. 아기의 훨씬 위대한 가치를 상징하기 위하여 세상의 가장 가치 있는 물건들이 바쳐진 것이다.
예수는 황금과 유향과 물약을 예물로 받았다. 이것들은 동서양 무역로에서 거래되던 주요 품목들이었다. 한편 아기 붓다도 이와 비슷하게 값비싼 보석들과 값나가는 물건들을 받았다.
두 스승이 지상에 내려와 탄생하는 과정의 이러한 비교 분석은 두 이야기 속의 몇 가지 사실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다. 따라서 그 이후의 생애 속에 나타난 유사성을 검토하기 전에 이 이야기들의 몇 가지 차이점에도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다.
불교에는 있지만 성경에는 없는 한 가지 예가 있다. 불교 측 전기들은 한결같이 붓다의 탄생시에 지진이나 초자연적인 광채와 같은 몇 가지 우주적인 사건들이 발생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환상적인 대목은, 해와 달과 강물과 일꾼 등 삼라만상이 일제히 정지하였다는 묘사이다.
스승의 생애에서 그 결정적인 사건이 그토록 중요하기 때문에 우주 전체가 이에 반응한다는 사상은 신약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성경은 이와 유사한 지진 같은 현상이 예수가 죽을 당시에 일어났다고 묘사하고 있다.
예수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고오타마의 또다른 일화가 있다. 마야 부인의 몸에서 태어난 땅에 내려놓자마자 고오타마는 북쪽으로 일곱 걸음을 걸어가 큰 소리로 자신이 세상의 왕이라고 외치면서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탄생이다"라고 선언하였다. 기독교의 문헌들은 갓 태어난 예수가 걷고 말할 만큼 비범한 능력을 지녔다는 주장을 삼가고 있다.
불교의 이야기들은 또 고오타마 탄생과 동시에 일곱의 또 다른 중요한 존재들이 탄생했다고 말한다. 이 일곱 존재들은 붓다의 후반부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로 되어 있다. 이들은 그의 미래의 아내, 그의 마부, 궁전의 귀족, 그의 코끼리와 말, 그가 깨달음을 얻을 나무, 그리고 보물로 가득 찬 네 개의 항아리 등이다.
성경에는 이 테마에 대한 묘사가 없다. 다만 누가복음에서 세례 요한의 탄생을 예수와 연결시키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요한이 예수와 같은 날 태어난 것은 아니다. 누가복음이나 불교의 문헌들이 이러한 묘사를 하고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스승이 탄생한 역사적인 의미를 높이려는 효과이다.
고오타마의 몸에 있는 식별 가능한 육체적인 특징들은 불교 측 이야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것은 또 불상(佛像) 조각 금지령이 해제된 이후부터 불교 미술에서 한 몫을 차지해 왔다.
초기 기독교 사상은 자신들의 스승의 신체적인 모습에 대해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아주 초기의 불교도 이와 마찬가지였는데, 붓다의 신체적인 묘사가 주로 후대의 전기들과 예술 작품들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마태복음에는 불교에 없는 몇 가지 사건들이 언급되어 있다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불교 측 뿐만 아니라 다른 복음서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마태의 설명에 따르면, 예수는 폭군 통치자 헤롯 왕의 복수에 불타는 분노를 피해 잠시 이집트에 간 것으로 되어 있다.
불교 측에는 그러한 일화가 없다. 그럴 것이, 고오타마의 아버지가 바로 통치자였기 때문이다.(붓다나 예수와 마찬가지로 갓난아기의 모습으로 세상에 태어난 힌두교의 신 크리슈나의 전기를 보면, 크리슈나의 가족이 칸사 왕의 복수에 불타는 분노를 피해 피난을 가야만 했다는 일화가 나온다. 칸사 왕은 크리슈나로 착각하고 한 갓난아기를 살해한다. 어떤 학자들은 이 이야기가 마태복음의 내용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고 보는 반면에, 다른 이들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믿는다.)
2. 두 스승은 어떻게 살았는가
두 스승은 유년기에서 영적인 깨달음을 얻기까지 어떤 인생을 살았는가? 불교와 기독교 문헌에는 여기에 대한 일화가 한 가지밖에 기록되어있지 않다. 하지만 두 경우 모두 그 일화는 스승이 미래에 펼쳐나갈 인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거의 영적인 첫 출발인 셈이다.
일화는 한 가지 내용이지만, 이 사건에 대한 불교의 이야기들을 전부 다 합치면 실로 방대한 양이다. 그러나 모두가 붓다의 설법 속에 담긴 어떤 간단한 자서전적인 발언에서 유래한 것들로 보인다. [중아함경]
깨달음에 대한 의문에 사로잡혀 있을 무렵 젊은 고오타마는 깊은 절망과 좌절에 빠졌다. 그래서 영적인 수행법으로 택했던 금식 고행을 포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문득 어린 시절에 있었던 한 가지 유익한 경험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문득 나는 어린시절에 있었던 한 가지 경험이 떠올랐다. 나의 아버지께서 정원에서 일을 하고 계시고(대개의 번역본에는 '일을 하고'가 아니라 '쟁기질을 하고'로 되어 있다. 이때 고오타마의 아버지 슛도다나 왕(淨飯王)은 '농민의 날' 행사에 참여하였다. 농업국인 카필라에서는 왕이 그해 봄에 첫 삽을 꽂음으로써 밭갈이가 시작되었다-옮긴이 주) 나는 서늘한 사과나무 아래 앉아 있었다.
그때 나는 감각적인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차단되고, 온당치 못한 모든 생각들로부터 해방된 상태에서 그 나무 아래에 앉아 최초로 고요한 명상 상태에 들어갔었다. 그리하여 나는 온갖 속세를 떠난 상태에서 찾아오는 행복과 기쁨을 생각하고 탐구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바로 이것이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아닐까? 그러자 그 추억과 함께 이거야말로 깨달음으로 가는 길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유년기의 추억 덕분에 고오타마는 육체를 학대하는 것도 아니고, 육체에 탐닉하는 것도 아닌 중도(中道)의 길을 걷게 되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그는 영적인 수행법으로 택한 엄격한 금욕생활을 청산하고 외떨어진 장소에 편안히 좌선하고 앉아서 고통 따위의 인간의 실존적인 문제에 대하여 고요히 명상을 시작하였다.
예수의 어린 시절 중에서 유일하게 알려진 사건은 물론 예루살렘 성전에서 학자들과 벌인 장시간의 토론이다. 이 사건을 충분히 감상하기 위해서는 마을의 초라한 기도소(시나고그)와 거대한 석조건물인 예루살렘의 성전 사이에 좋든 나쁘든 큰 차이가 있었음을 알아야만 한다.
예루살렘의 성전은 내부의 지성소 안에 하나님을 위한 옥좌가 놓여 있고, 성전 뜰에서는 동물의 희생물을 바치는 제단이 있는가 하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직자들과 율법학자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 일화에 따르면 예수는 이곳에서 종교적인 토론에 참여하여 경전의 내용을 생활에 적용시키는 그들 나름대로의 이론적인 게임에서 히브리 학자들을 납작하게 만들거나 아니면 최소한 놀라게 함으로써 뒷날 자신이 펼쳐 나갈 가르침의 윤곽을 어느 정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불교와 기독교의 이들 두 일화는 실제로 완전히 내용이 다르지만, 둘 다 스승들이 어렸을 때부터 이미 영적인 추구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음을 전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위대한 인물이 되리라는 예언이 일찍부터 선언되었고, 갓난아기 때 이미 경배를 받았으며, 간략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정신적인 문제에 도전을 시도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오타마와 예수는 거의 서른 살이 가까워서야 비로소 진지하게 영적인 탐구를 시작하였다. 유아기 때의 일화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최초로 탐구의 길을 떠날 때의 몇 가지 일화에는 유사한 내용이 많다.
고오타마의 아버지가 고오타마를 보호하기 위하여 설치해 놓았던 방패막이가 드디어 무너지는 날이 찾아왔다. 그 방패막이가 무너지는 날 고오타마는 출가의 길을 떠났다. 대부분의 설명에 따르면, 인생의 여러 문제를 천진난만하게만 바라보던 고오타마는 어느 날 궁전 근처의 동산으로 말을 타고 가다가 그 유명한 '네 가지 장면'을 목격하였다. 그리고는 압도당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못하도록 그의 아버지가 철저히 지시를 내렸지만, 고오타마는 우연히 병자(病者)와 허리가 꼬부라진 노인과 죽은 시체를 목격하게 되었다. 이 장면들이 그에게 인생의 문제들을 일깨워 주었다. 이제 이 생로병사(生老病死)야말로 어떻게든지 그가 물리쳐야만 할 적(敵 )이 되었다. 그가 네 번째로 목격한 마지막 장면은 한 출가 수행자의 평온한 모습이었다. 이것은 고오타마에게 문제의 해결을 암시하였다. 그는 세속을 떠나기로 결심하였다. 집과 행복과 안정된 세계를 떠나기로 맹세하였다. 그리하여 문 밖에 거처하면서, 인간 윤회의 원인이며 모든 인간을 괴롭히는 생(生)과 고(苦)와 사(死)의 바퀴를 깨뜨리기 위한 영적 수행에 인생을 바치기로 하였다.
고오타마는 기원전 6세기경 인도에서 더 차원 높은 지식을 찾는 모든 진지한 구도자들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탐구의 길에 들어섰다. 그는 먼저 집과 가족을 버리고 떠나서 누더기 옷 혹은 수행자의 복장인 황색 옷을 걸치고 갠지스강 유역으로 여행을 떠났다.
갠지스강 유역에는 여러 지역에 걸쳐 영적 스승들이 모여 있었다. 고오타마는 자신의 엄격한 고행을 실행하기 앞서서 이들 다양한 떠돌이 스승들의 제자가 되었다. 그다음 6년 동안 그는 뜨거운 태양 아래와 살을 에이는 혹독한 비바람 속에 벌거벗고 앉아 있거나 또는 그 밖의 방식으로 영혼을 위해 육체를 학대하면서 금식과 금욕 생활을 실천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그 혹심한 고행을 포기하고 적당히 음식을 섭취하면서 명상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한 외떨어진 곳의 보리수나무 아래에 앉아 영적인 광명을 얻게 되었다.
붓다가 경험한 이러한 사건들 대부분은 예수의 일화에서 비슷한 내용을 찾기가 어렵다. 누가복음의 예수 생애는 곧바로 요단강의 세례 요한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그 무렵 요한에게는 성령이 강림하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계시가 전해진다. 그 다음의 예수 생애의 일화는 금식기간과 홀로 영적인 탐구를 하는 내용이다.
1) 의문과 유혹
아마도 우리가 가진 가장 오래된 복음서인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다음에 곧바로 성령에 의해 광야(사막)로 인도된다. 예수가 광야에서 머문 기간은 40일이며, 그 기간 동안 사탄이 그를 유혹하였고, 맹수 떼가 그를 위협하였지만 천사들이 도왔다.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의 설명은 훨씬 자세하며, 고오타마가 받은 유혹과 비교할 만한 두 가지 요소가 첨가되어 있다.
마가의 이야기에 덧붙여 누가와 마태는 그 거친 광야에 머무는 기간 동안 예수가 금식을 행하였다고 전한다. 이것은 고오타마가 6년 동안 실천한 혹독한 금식과 고행의 시기와 비교된다.
누가복음과 마태복음을 통해 우리는 사탄의 유혹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고오타마 역시 금식 기간 동안 유혹자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비교를 쉽게 하기 위하여 두 일화를 아래에 인용한다.(성경의 사탄에 해당하는 불교의 유혹자는 죽음의 신 '마라'인데, 여기서는 '나무치'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이 유혹자의 또다른 별명은 '검은 악마'이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느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해서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니라 하였고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누가복음4:1-13]
네란자라 강기슭에서 평안을 얻기 위하여 힘써 닦고 명상하는 나에게 악마 나무치(마왕 파순)는 위로의 말을 건네며 다가왔다. 당신은 야위었고 안색이 나쁩니다. 당신은 죽음이 임박했습니다. 당신이 죽지 않고 살 가망은 천에 하나입니다. 당신은 살아야 합니다. 사는 것보다 더 좋은 길은 없습니다. 살아야만 선한 공덕을 쌓을 수 있읍니다. 와서 이 신성한 삶을 살면서 신성한 불 속에 제물을 올리십시오. 그래야 선한 공덕을 쌓을 수 있습니다. 애써 고생해야 무슨 결과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대답하였다. 게으름뱅이의 친척이여, 악한 자여, 그대는 세상의 선업을 구해서 여기에 왔지만 내게는 세상의 선업을 찾아야 할 필요가 털끝만큼도 없다. 악마는 선업의 공덕을 구하는 자에게 가서 말하라. 내게는 믿음이 있고 노력이 있고 지혜가 있다. 이처럼 전심하는 나에게 너는 어찌하여 생명의 보전을 묻는가? 힘써 정진하는 데서 일어나는 이 바람은 강물도 마르게 할 것이다. 오로지 수도에만 정진하는 내 몸의 피가 어찌 마르지 않겠는가. 너의 첫째 군대는 욕망이고, 둘째 군대는 싫증이며, 셋째 군대는 갈증, 넷째 군대는 애착이다. 다섯째 군대는 권태와 잠, 여섯째 군대는 비겁함, 일곱째 군대는 의혹, 여덟째 군대는 겉치레와 아집이다. 욕되게 얻은 이득과 명성과 존경과 명예와 또한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경멸하는 것. 나무치여 이것들이 너의 병력이다. 검은 악마의 공격군인 것이다. 용감한 사람이 아니면 그를 이겨낼 수 없다. [숫타니파아타(經集) 3.2]
이 두 가지 일화의 무대배경은 거의 동일하다. 두 스승은 삼십대 초기에 장기간 강 근처의 고립된 지역에서 은거 생활을 하였다. 이 은거 기간 동안 그들은 엄격한 금식을 실천하였으며, 또한 악마와 대면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사람이 장기간 먹지 않으면 공포스런 환각 증세를 겪을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이 일화들이 고통 속에 빠진 두 스승의 내면속에서 일어난 현상을 묘사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사실 많은 불교도들은, 또 최소한 몇몇 기독교인들은 이 일화를 심리적인 관점에서 해석한다. 반면에 이 이야기 자체에는 그 사건들이 어떤 심리적인 환상을 묘사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구석이 전혀 없다. 오히려 스승과 악마 사이에 실제적인 대화가 오간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두 일화에서 스승들은 자신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세속적인 목적에 사용하라는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둘 다 거부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영적 능력을 더 차원 높은 목적에 사용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두 스승이 금식으로 인해 몹시 허약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 유혹의 손길은 아주 시기적절했으며, 실제로 전통적인 불교와 기독교는 악마가 인간을 유혹하는 가장 적절한 시기를 잘 안다는 사상을 갖고 있다. (몇 끼니를 굶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 내용을 잘 이해할 것이다.)
하지만 사탄이 사용한 실제 단어들은 마왕의 그것과 상당히 다르다. 사탄은 예수의 금식을 깨뜨리고, 세상을 지배하며, 하나님의 보호를 시험하기 위하여 예수를 유혹하였다. 물론 예수는 거절하였으며, 히브리 경전들에서 인용한 문장으로 악마의 꾐을 일축한다. 예수가 구약의 신명기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자, 악마 역시 시편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여 대항한다.
마왕은 고오타마를 유혹할 때 주로 수행자의 금욕 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가를 지적한다. 나아가 한 나라의 군주나 왕이 되어서도 얼마든지 종교적인 인물이 될 수 있으므로 애써서 그렇게 힘든 삶을 살 필요가 없음을 마라는 역설한다.
사실 은자적인 삶이든 수도원에서의 삶이든 고행 수도적인 생활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이 마왕과 같은 관점을 내세운다. 다시 말해, 사회로부터 동떨어져 혼자 살아가는 것보다는 세상 속에서 바르게 생활함으로써 좋은 일을 훨씬 더 많이 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선한 공덕을 쌓을 수 있다"는 말로써 마라는 당시의 지배적인 종교관을 피력하고 있다. 즉 선한 일을 하면 영적인 능력(공덕)이 쌓이며, 이것은 이생뿐만 아니라 다음 생까지 복되게 한다는 종교관이다.
마왕의 논리를 고오타마는 매우 세련된 은유법을 사용하여 물리친다.
즉 마왕은 한 군대의 우두머리이며, 그 군대는 배고픔과 갈증과 비겁함, 그리고 명성과 영광에 대한 욕망으로 병력이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악마 마왕과 대면한 결과 고오타마는 바로 그러한 충동을 물리치겠다는 결심을 더욱 새롭게 하며, 그래서 마왕은 더 이상 그를 유혹하여 사명을 포기하게 할 수 없었다.
붓다의 전기(傳記)와 법문(法文)들 속에서 고오타마와 마라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여러 차례 만나며, 전기들은 그 일화를 매우 다양하게 그려낸다. 이들 중 어떤 것에서 마왕이 하는 말은 앞에서 인용한 것보다 훨씬 더 성경의 일화에 가깝다.
예를 들어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이나 그 밖의 여러 문헌들은, 악마가 고오타마를 '온 세상의 통치자'로 만들어 주겠다고 유혹했다고 전한다. 이것은 고오타마가 명백히 왕위 계승자이며, 또한 그의 탄생 시 예언자들이 그가 장차 온 사방으로 지구 끝까지 왕국을 넓힐 위대한 왕이 되리라고 예언했기 때문에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그 유혹자 자신이 이 예언을 언급하고 있다.)
또 다른 설명에 따르면, 마왕에게는 세 명의 딸이 있었는데, 어떤 불교 주석자(註釋者)들은 이 딸들이 요염하고 더할 나위 없이 섹시한 처녀의 모습이었다고 전한다. 이들은 고오타마에게 만일 깨달음의 보리수 밑을 떠나 자기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기만 하면 온 세상의 통치자가 되게 해 주겠다고 제안하였다.
우리는 그대에게 약속한다.
사크라 신이 하늘의 통치자이듯이
그대는 사랑스런 처녀들의 손길에 에워싸인
영광스러운 지상의 통치자가 되리라.
아아! 모든 천계의 신들처럼
아무도 그대에게 맞서거나 대적하지 못하리라.
그대 만일 우리의 사랑을 거부하지만 않는다면.
이어지는 이야기는 온갖 위험과 맹수들이 들끓던 요단강 근처의 광야 또는 사막에서 머물던 예수를 자꾸만 생각나게 한다.
오! 석가족의 아들(고오타마)이여! 그대는 아직 젊고 단단한 육체를 가졌다. 가서 그대의 궁전의 달콤함을 즐겨라. 이 거친 사막에는 사람도 얼마 없으며, 맹수 떼들이 먹이를 찾고 있다. 그대의 안전이 염려스럽구나. 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라, 석가족의 아들이여! 이곳을 떠나 그대의 궁전으로 돌아가라. 그토록 발견하기 어려운 지혜일랑 더 이상 찾아 헤매지 말라. 현재의 의문일랑 잊어버리고, 인생의 쾌락에 몸을 던져라!
고오타마는 모든 감각적인 쾌락이 일시적인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유혹에 자신을 내던지지 않았다. 그러한 쾌락들은 수명이 짧다. 마치 나무에 매달린 익은 열매처럼, 한낮의 꿈이나 번개의 불꽃처럼.
마라는 세상이 지금 정의로운 통치자를 몹시 필요로 하고 있다면서 계속 고오타마를 유혹하지만, 그의 목적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최고의 차원에 오르는 것이라면서 유혹을 물리친다.
가장 초기의 불교 전기에 보면 마라가 고오타마에게 산 하나를 황금으로 바꿔 보라고 유혹하는 장면이 있다. 성경과 불경의 연구가 알버트 에드먼즈(Albert Edmunds)는 이것을 사탄이 예수에게 돌을 떡으로 만들라고 유혹한 것과 비교한다.
이 내용의 불교 측 이야기들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고오타마와 마라 사이에 정확히 어떤 대화가 오갔는가를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긴 해도 예수와 고오타마가 받았던 유혹에 대하여 몇 가지 일반적인 비교를 해보는 일은 가능하다. 이미 지적한 바대로, 고오타마의 금식 기간 중에 그러한 유혹이 찾아왔다는 불교 측 설명을 따른다면 유혹의 배경 설정은 거의 똑같다.
유혹자들도 역시 거의 비슷하다. 기독교 측과 불교 측 일화를 토대로 추측하건대, 그 악마는 제한된 방식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 실제적으로 한 영토의 지배자이다. 그 영토에는 이 세상과 세상의 거주자들이 포함된다.
또한 이 지배자는 죽음의 신으로, 어떤 인간도 그 지배권에서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그는 그의 지배에서 벗어나려고 진지하게 탐구하는 사람이 있으면 훼방을 놓는다. 그가 잘 사용하는 수단은 편하고 안전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는 일이다.
그러나 예수와 고오타마는 악마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으며, 오히려 전보다 더 확고해진 결심으로 심적 갈등에서 벗어난다. 이야기의 긍정적인 결말은 마침내 악마조차 더 이상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암시한다.
비교를 계속하기 위하여, 고오타마와 예수가 그들의 서로 다른 문화 배경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악마의 유혹에 반응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류 구원에 관심을 가진 아버지로서의 신을 믿지 않았던 고오타마는 악마의 유혹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대항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운명과 공덕의 배경 위에서 대항한다. 다시 말해, 수천 년 동안 많은 생을 거치면서 힘들게 노력한 결과 자비와 인내와 지혜를 완성한 것은 바로 그 자신이라는 배경 위에서 악마와 맞선다.
이에 반해 예수는 인간의 영적인 추구에 관심을 가진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히브리 경전들에 구체화되어 나타난 하나님에 호소함으로써 보다 더 신학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 일화들은 결론 부분이 유사하다. 두 젊은 스승들은 그 격리된 장소를 떠나 가르침을 펴기 위한 여행의 삶을 시작한다. 한편 악마는 혹시나 그들의 마음이 허약해질 때를 기다리며 그들을 계속 따라다니겠다고 결심한다. (이것은 누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다.)
2) 영적인 깨달음과 가르침
두 스승의 연대기(年代記) 중 바로 이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고오타마의 인생에 일어난다. 왕궁의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떠난 6년 동안 별다른 영적인 깨우침도 얻지 못하면서 온갖 고행을 실천하다가, 인생의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깊이 명상한 끝에 마침내 고오타마는 어느 날 밤 강 근처의 편안한 나무 밑에 앉아서 명상을 하던 도중 여러 생 동안 탐구해 오던 영적인 의문의 해답을 풀고 존재의 절정에 도달하였다.
그날 밤 정신적인 완성을 이루기 위한 그의 힘들었던 노력은 보상을 받았으며, 그는 완전한 깨달음의 차원으로 비약하여 열반의 환희를 맛보았다. 드디어 그는 윤회의 바퀴 속에 끌려다니는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 인간에게 잠재된 가능성을 활짝 꽃피운 '붓다'가 된 것이다. 인간 고오타마 싯달타가 각자(覺者) 붓다가 되었다. 이 사건은 그의 인생에서, 그리고 이후의 불교도들의 눈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예수의 일화 속에는 여기에 필적할 만한 사건이 전혀 없다. 예수의 전환은 과연 어느 시점부터 이루어진 것일까?
자신이 이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펴고 병자를 치료할 준비가 다 되었다는 확신을 예수는 과연 어느 시점에서 가졌을까?
복음서의 저자들은 여기에 대하여 아무 말이 없다. 사람들은 예수의 결정이 예수가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머물던 기간 동안에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또 세례 요한이 체포된 것이 예수의 결심에 큰 작용을 했다는 의견도 있다.
예수의 가르침을 들은 첫 번째 청중은 마을의 시나고그(기도소)에서 열린 안식일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었다. 붓다의 첫 번째 청중은 이전에 그가 금식 고행을 할 때 그와 함께 수행을 하던 다섯 명의 고행자들이다.
붓다와 예수는 이 지방 저 지방을 여행하면서 영적인 가르침을 펴는 스승으로서의 삶의 방식을 택하였다. 이것은 그 당시 인도에서는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는 것이였다. 영적인 스승들은 마을에서 마을로 가르침을 펴고, 질문에 대답하고, 사람들에게 충고를 주면서 여행을 하는 것이 당시의 고정된 틀이었다.
이곳저곳을 방랑하는 성자는 몸에 지닌 것이 최소한의 것밖에는 없었으며,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그의 생계유지를 위해 내놓은 자발적인 기부에 전적으로 의존하였다. 이 기부는 대개 간소한 양의 음식과 옷과 필요할 때는 의약품 등이었다.
이 떠돌이 성자들 중 어떤 이들은 지혜와 법(法) 구하는 제자들을 동반하고 다녔다. 언제부터 인도가 이런 전통이 시작되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고오타마 붓다가 그 전통을 따를 때인 기원전 6세기경에는 잘 확립되어 있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러한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의 생애를 보라. 예수는 인도의 성자들과 똑같은 형태의 삶을 살았다. 그는 순전히 마을 주민들의 접대에 의존하여 먹고 자면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여행을 다녔으며, 기회있을 때마다 가르침을 폈다. 그는 매우 간소하게 생활하였으며, 또 그의 주변에는 일단의 제자들이 따라다녔다.
여기에는 몇 가지 설명이 더 필요하다. 예를 들어, 예수와 붓다는 그들을 초대하는 사람의 사회적 지위에는 상관하지 않았다. 한 마을에 들어갔을 때 누구든지 맨 먼저 초대하는 자가 있으면, 그가 어떤 자든지 그의 초대를 받아들였다. 예수와 붓다는 하나의 관례처럼 이것을 행하였다. 사회적 신분을 고려하지 않은 이러한 태도 때문에 두 스승은 당시의 지배계층과 여러 차례 충돌을 겪었다.
붓다는 창녀의 식사 초대를 기꺼이 받아들여서 마을의 귀족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신분 차별 정책에 찬성하는 이 귀족은 붓다가 자기의 초대를 거부하고 먼저 초대를 한 창녀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기로 하자 몹시 기분이 상했다. 붓다는 이따금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초대도 받아들였다. 따라서 그는 신분이나 재산에는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은 듯하다.
이 점에서는 예수도 마찬가지다. 예수는 죄인과 창녀들의 집에서 식사를 하여 주위의 비난을 받았다. 또 예수는 몇 가지 우화적인 가르침을 통해, 부자라고 해서 반드시 하늘나라의 연회석상에서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님을 지적하였다.
3) 우물가의 비천한 여인
멸시받는 천한 계급의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들이 주는 음식을 기꺼이 먹는 두 스승의 태도는 접촉이 금지된 한 여인으로부터 물을 얻어 마시는 다음 일화 속에 잘 나타난 있다.
이러한 일화들을 이해하려면 먼저 음식과 물을 받아먹는 행위가 전통적으로 사회 속에서 어떤 의미를 가졌던가를 알아야 한다. 공식적인 계급차별이 없는 현대 사회에서도 어떤 사람과 먹고 마신다는 것은 곧 그 사람을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함께 먹고 마시는 심리는 오늘날에도 약간 감소되긴 했지만 절대로 사라진 것이 아니다.
실제로, 백인들과 같은 식당에서 식사할 권리를 요구하는 미국 흑인들의 시위에서 그것이 잘 나타나 있다. 그들은 똑같은 수준의 식당 시설이나 환경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한 장소에서 식사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는 것이다.
여러 문화권 속에서, 특히 고대 인도에서는 누군가와 함께 먹고 마시는 행위는 평등성(平等性)을 뜻하기 때문에, 낮은 계급의 사람에게서 음식과 물을 받는 행위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여기에 두 일화가 있다. 하나는 예수의 일화이고, 다른 하나는 승려 아난다의 일화이다. 아난다는 고오타마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붓다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곁에서 수발을 든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또 붓다 사후에 붓다의 모든 가르침을 모아 기록하였다. 붓다의 가르침이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이 사람의 공로가 크다.
예수께서 여행에 지쳐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으며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려니 내가 주는 물을 그 사람 안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4:6-7,9-10,13-15]
탁발에서 돌아와 음식을 먹은 뒤에 아난다는 어떤 우물로 걸어갔다. 바로 그때 한 마탕가(계급에서 추방당한) 처녀가 그 우물로 물을 길러왔다. 그래서 장자(長者) 아난다는 그 마탕가 처녀에게 "자매여, 목이 마르니 나에게 물 좀 주시오"라고 말했다. 이에 처녀는 "아난다 존자님, 나는 마탕가 처녀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아난다는 말했다. "자매여, 나는 그대에게 그대의 가정이나 신분을 물은 것이 아니라, 목이 마르니 물을 좀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처녀는 아난다에게 물을 주었다. 아난다가 물을 다 마시고 떠나자, 아난다의 육체와 입과 목소리 속에서 선함과 훌륭함을 발견한 처녀는 생각에 잠겨 이렇게 생각하였다. "저 귀하신 아난다가 나의 남편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어머니는 훌륭한 마법사이니, 어머니께서 그를 데려올 수 있을 것이다." [비유경(比喩經)]
이처럼 스승과 그 스승의 추종자들이 모든 인간 존재를 사회적인 신분이나 국적에 상관없이 모두 받아들이는 태도는 아주 비슷하다.
4) 기존 사상과의 충돌
가르침을 펴는 기간 동안 붓다와 예수는 방랑하는 스승으로서 많은 명성과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자신의 고향에서는 신통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예수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누가복음 4:24) 예수는 고향에서 거의 살해당할 뻔하기까지 했다.(회당에 있는 자들이 예수의 말을 듣고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누가복음 4:28-29)
또 붓다의 고향마을 사람들 역시, 비록 붓다를 해치려 하진 않았어도 붓다에게 특별한 존경심을 나타내기를 거부하였다. 고향의 몇몇 젊은이들이 승려가 되겠다고 나서자 마을은 붓다를 둘러싸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래서 붓다는, 모든 자녀는 부모의 허락이 없으면 승단에 들어올 수 없다는 규칙을 정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결국 붓다의 아들과, 붓다의 양어머니(이모)는 승단의 일원이 되었다. 예수의 형제들도 나중에 초기 교회의 지도자들이 되었다.
붓다와 예수는 또 예배나 종교의식에 대한 태도 때문에 반대에 부딪쳐야 했다. 둘 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만큼 종교의식의 형식적인 면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붓다는 동물이나 사람을 해치는 일까지 포함된 당신의 바라문들의 종교의식을 모두 개혁할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 시대의 몇몇 군주들은 보다 성대한 제물 의식을 거행하기 위하여 노예들을 무자비하게 다루었던 것 같다.
생명을 해치는 종교의식 대신에 붓다는 사람이나 동물에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 새로운 종교의식, 또한 영적으로 진화한 이들을 존중하는 평화롭고 조화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는 새로운 종교의식을 만들었다.
예수 역시 히브리 전통의 법적인 해석에 저항하였다. 성전의 희생 의식을 무시하였으며,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의 추종자들에게 새로운 종교의식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붓다도 예수도 종교의식의 개혁을 주된 목표로 삼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개혁은 그들의 삶의 방식과 가르침 속에서 자연스럽게 표현된 것이었다.
붓다 시대의 바라문들의 힌두교 사상이나 예수 시대의 유대교 사상은 영적인 순결과 신성모독의 기준을 종교의식의 준수에 두었다. 두 스승 모두 영적인 타락을 방지하기 위해 고안된 여러 금지조항들에 반대하였다.
예수는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또 붓다는 이렇게 말했다. "출생 성분을 묻지 말고, 그 사람의 인격을 물어라."
당시에는 음식에 대한 차별이 많았다. 이 차별 역시 영적인 타락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긴 것이었다. 이 음식 차별에 반대하면서 예수와 붓다는 이렇게 주장하였다. "사람을 도덕적으로 순결치 못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을 먹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 버려지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15:17-20]
사람이 성수로 몸을 씻는다고 해서 순결해지는 것이 아니다…… 작거나 크거나 모든 악을 가라앉힌 사람은 모든 악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성자라고 부를 수 있다. [무문자설경(無問自說經) 33:13]
산 것을 해치는 일, 죽이고 자르고 묶는 일, 훔치고 거짓말 하는 일, 사기와 속이는 일, 그릇된 것을 배우는 일, 남의 아내와 가까이 하는 일, 이것이 바로 비린 것이지, 육식을 하는 것이 비린 것이 아니다. [숫타니파아타[經集]242]
이 두 이야기의 초점은 무엇인가? 불교와 기독교의 스승 모두가 순결성의 문제를 각자의 내면의 마음에 두었다는 점이다. 예수는 음식을 먹기전에 손을 씻는 종교의식이 없어도 무방한 것이라고 결론내렸던 것 같고, 붓다는 육식이 사람을 타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애초에 그 동물을 죽인 행위가 나쁜 것이라고 규정지었다. (숫타니파아타에서 인용한 앞의 글은 원래 붓다 자신이 한 말이 아니라 카사파[魔訶迦葉]가 한 말이다. 하지만 붓다도 같은 식의 가르침을 폈다.)
5) 제자들
또다른 공통된 점은 붓다와 예수가 자신의 제자들을 대한 방식이다. 예수가 제자들을 부른 호칭은 불교와 닮은 구석이 없지만, 그가 제자들에게 내린 지시는 공통된 점이 많다.
예를 들어, 예수는 병자들을 치료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러한 기대는 마태복음 45장에 담긴 마지막 심판에 관한 이야기에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곳에서 예수는 심판정에 섰을 때 놀랍게도 인자(人子)의 칭찬을 듣는 사람들에 대하여 말한다.
여기에 그 이야기의 한 부분과 함께, 붓다가 문둥병 환자의 악취나는 상처를 치료해 준 뒤에 제자들에게 한 비슷한 관점의 설법을 인용한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40]
오,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나를 시중들고자 하는 자는 병든 자를 시중들지어다 [대업일품경(大業一品經)]
붓다와 예수가 제자들에게 요구한 내용들은 자칭 추종자인 체하는 자들에게는 상당히 지키기 힘든 것이었다. 예수는 일단 쟁기를 손에 잡으면 뒤돌아보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하였으며, 붓다는 독신생활을 하는 제자들을 유혹하는 함정들에 대하여 긴 법문을 남겼다.
두 스승 모두 영적인 길이 간단하거나 쉽다는 표현을 절대로 입에 올리지 않았으며, 또한 따르는 무리들이 과거의 생활 방식으로 돌아갈 때면 두 스승 모두 좌절을 맛보곤 하였다. 하지만 심신이 깊은 자들은 끝까지 그들 곁에 남아 있었다.
붓다와 예수의 제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심각했던 장애물은 집을 떠난 생활이었다. 음식과 옷과 잠자리 등 가장 기본적인 필수품이 확보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두 스승은 그러한 출가 생활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한 서기관이 나아와 예수께 말씀하되 선생님이여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쫒으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사람의 아들은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8:19-22]
생각이 깊은 사람은 노력을 다한다. 그들은 집에 머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호수를 등지고 떠나는 백조처럼 그들은 집과 가정을 버린다. 재산을 쌓아 두지 않으며 검소하게 먹는 자 틀에 묶이지 않은 자유와 해탈을 아는 자 그런 사람의 길은 허공을 나는 새의 자취처럼 따르기 어렵다 [법구경 91-92]
두 이야기 모두 참된 추종자는 편안하려는 모든 생각과 감각적인 쾌락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와 붓다는 제자들을 조직하여 사방에 복음 전도자로 내보낸다. 이들은 더 많은 청중들에게 스승의 말씀과 작업을 전하게 된다.
마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특별한 지시와 함께 열 두 제자를 사방에 보낸다. 이들의 목적은 회개를 가르치고, 사악한 영들을 물리치며, 병자(病者)를 치료하는 데에 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도 열두 제자를 보내는 비슷한 설명이 나오는데, 특히 누가복음은 예수가 나중에 일흔 명의 제자들을 임명했다고 전하고 있다. 누가복음의 그 이야기를 아래에 인용한다. 더불어 붓다가 예순 명의 포교사들을 내보내는 장면도 옮겨 적는다.
이 후에 주께서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동 각처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전대나 주머니나 신을 가지지 말며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그 집에 머물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은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놓는 것을 먹고 거기 있는 병자들을 고치고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라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치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털어 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 [누가복음 10:1-11]
그때에 세상에는 예순한 명의 아라한이 있었다. 축복받은 이가 그 비구승들에게 말하였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인간적인 것이든 신적인 것이든 모든 쇠사슬로부터 해방되었다. 이제 세상에 대한 자비심으로 더 많은 이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하여, 인간과 신들의 이익과 평안과 행복을 위하여 떠나라. 처음에도 좋고 중간에도 좋고 나중에도 좋은 진리의 법을 가르쳐라. 완벽하고 순수한 성스러운 생명을 설명하라. 눈에 먼지가 하나도 묻어 있지 않지만 법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길을 잃을 영혼들이 많이 있다. 누군가는 그 법을 이해할 것이다. 나는 그 법을 가르치기 위하여 우루벨라로, 세나니가마로 갈 것이다. [율장(律藏)]
전대(지갑)를 갖고 다니지 말라는 예수의 지시는 비록 위에 인용한 불교 경전에는 없지만 승려들에게 돈(황금 따위)을 취급하거나 몸에 지니는 것을 금지했던 초기 불교의 규칙과 일치한다. 보따리를 갖고 다니지 말라는 조항이 불교에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탁발하러 갈 때는 신발을 신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말라"는 조항은 불교에 없지만, 승려들은 탁발하러 다닐 때 침묵을 지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 집 저 집 옮겨다니지 말라"는 지시는 불교와 정반대로, 불교에서는 적은 양의 음식을 얻으면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다닌다. 음식을 얻을 때에도 강요하거나 요구하지 않고 기꺼이 자진해서 주는 것만을 받는다. 또 붓다는 예수와 달리 제자들에게 그들을 거부한 마을을 저주하라고는 지시하지 않았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회개와 불교의 법(法)에 큰 차이를 두어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 '법'으로 번역된 단어는 산스크리트어로 '다르마(dharma)'이다. 이 다르마에는 올바름과 참된 교리와 진리와 종교 등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다.
초기 불교와 기독교의 이들 메시지의 차이는 법과 회개의 차이가 아니라, "너의 마음을 변화시켜라"와 "하나님 앞에서 너의 마음을 변화시켜라"의 차이이다.
3. 두 스승은 어떻게 돌아갔는가
사명을 다한 뒤, 두 신적인 스승들은 돌아가기 위한 준비 작업에 관심을 돌린다. 이 준비 작업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스승의 부재시에도 계속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제자들을 모아서 교육시키는 일이었다.
예수의 추종자들의 모임은 '교회'가 되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해석되고 있다. 또 붓다의 추종자들의 모임은 '승단(僧團)'이 되었으며, 이것은 세 가지의 귀한 보배라고 하는 삼보(三寶)의 세 번째이다(다른 두 가지는 붓다와 법이다). 여기에 스승들 자신이 이 중요한 관심사에 대하여 말한 것이 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태복음 24:14]
나의 이 종교가 성공하고 번창하고, 널리 퍼지고, 누구나 알게 되고, 어디에나 있게 되기 전까지는, 한마디로 말해서 모든 이에게 전해지기 전까지는 나는 니르바나(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 [대반열반경(大槃涅槃經)]
1) 모습의 변화
예수와 붓다가 스승의 죽음에 대하여 그들의 제자들을 준비시킨 한 가지 방법은 몇몇 제자들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켜 보인 일이었다.(불교 측 인용문에 나오는 '여래(如來, Tathagato)'는 붓다의 또 다른 이름이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저희 앞에서 갑자기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함께 말씀하는 것이 저희에게 보이거늘 베드로가 예수에게 여짜와 가로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아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리어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 말라 하신대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마태복음 17:1-8]
존자 아난다가 스승에게 황금빛 가사(袈裟)를 갖다 드렸다…… 그 황금빛 가사를 스승의 몸에 두르자, 그 옷은 마치 불이 붙은 듯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아난다가 스승께 나아와 말했다. 훌륭하십니다. 스승이시여 거룩하십니다. 스승이시여! 여래(如來)의 살 빛깔은 당연히 이처럼 순수하고 밝아야 합니다.
스승이 말씀하셨다. 아난다야, 여래의 살 빛깔은 다음의 두 경우에만 순수해지고 밝게 빛난다. 그 두 경우란 무엇이냐? 아난다야, 여래가 더 이상 비교될 수 없는 완벽한 깨달음을 얻은 날밤이 그러하고, 또 여래가 뒤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니르바나(열반)로 들어가는 날이 그러하다. 그리고 이제, 아난다야, 오늘 밤 삼경이 되면 말리안의 사라나무 숲에 있는 쿠시나라의 정원에서, 그 쌍둥이 사라나무 사이에서 여래가 니르바나(열반)로 들어가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장아함경(長河含經)]
몸이나 몸의 빛깔이 변형된 이 두 사건의 주변 상황은 아주 다르다. 특히 제자들의 반응 같은 것이 그렇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같은 것은, 예수와 붓다의 몸에서 초자연적으로 광채가 났다는 사실이다.
기독교의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불경에서도 이러한 '모습의 변화'와 동시에 스승은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사실은 엘리야가 이미 그전에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마구 대접하였을 뿐이며, 예수 자신도 곧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붓다는 몸의 피부가 그렇게 밝게 불타는 일은 한 깨달은 스승의 인생에 두 번 발생하는데, 한 번은 깨달음을 얻을 무렵이고, 또 한 번은 죽기 전이라고 설명하였다.
예수의 모습 변화도 죽음 직전에 일어났다. 그렇다면 예수가 깨달음을 얻을 무렵에도 역시 그러한 변화가 일어났었는가? 그것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매우 비슷한 상황을 발견할 수 있다. 세례를 받을 때 예수에게 비둘기처럼 내려왔다는 성령이 바로 그것이다.
예수에게 강림한 성령, 붓다의 몸에서 방출되는 빛, 이들의 광채나는 모습 등은 두 스승이 비범한 영적인 능력을 지닌 사람임을 나타내 주는 표시이다.
2) 죄인을 용서함
일생 동안 두 스승은 많은 사람들을 악한 삶에서 선한 삶으로 전환시켰다. 그들 자신이 이미 평범한 인간 존재의 자기중심적인 관념을 극복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힘들지 않게 타인을 용서할 수 있었다.
붓다의 접근 방식은 사람들에게 올바른 지혜를 가르쳐서 그들의 인격에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악한 일보다는 공덕이 있는 일을 할 것이고, 그리하여 미래의 벌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예수는 용서를 훨씬 더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그가 볼 때는, 사람은 누구나 인격적인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용서는 붓다와 예수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 속에서 큰 역할을 한다. 붓다는 한 신자(信者)가 잘못 대접한 음식 때문에 그만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제자들에게 절대로 그 음식을 대접한 가난한 사람을 비난하지 말라고 지시한다.
예수 역시 누가복음의 설명에 따르면 그와 함께 십자가에 매달린 두 강도 중의 하나를 용서하고 회개시킨다. 알버트 에드먼즈는 이 죄많은 강도와의 대화를 붓다가 어떤 살인강도와 나눈 대화에 비교한다.
붓다 생존 당시 한 유명한 노상강도가 있었다. 이름이 앙굴리말라(손가락뼈 목걸이)일 정도로 그는 많은 사람을 죽였다. 그는 자기가 죽인 사람들의 손가락뼈를 목걸이로 만들어 목에 걸고 다녔던 것이다.
이 살인강도가 어느 날 숲속에서 붓다와 마주치게 되었다. 강도는 붓다를 죽여 강도질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강도가 아무리 다가가도 붓다는 여전히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서 있었다. 마침내 살인자는 포기를 하고, 그 스승에게 엎드려 도덕적인 가르침을 들은 뒤에 제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새로운 승려를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붓다는 이 승려가 완전한 새사람이 되었음을 그들에게 확신시켰다. 또한 이제 이 승려는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므로 모두가 그를 존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두 이야기는 무대배경도 완전히 다르고 사건 전개도 다르지만, 똑같이 두 스승이 세상에서 가장 나쁜 인간까지도 변화시키는 힘을 가졌음을 말해 주고 있다.
3) 죽음을 정복함
평범한 인간은 죽음에 정복당하지만, 스승들은 죽음을 정복한다. 어느 책에선가 나는 붓다가 제자들에게 한 마지막 말을 다음과 같은 뜻으로 해석한 적이 있다. "죽음은 모든 것을 정복한다. 그러니 죽음을 정복하라."(보통은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 비구들이여, 너희들에게 할 말은 이렇다. 모든 현상은 변천한다. 게으름이 없이 정진하여라."-옮긴이 주)
물론 두 스승은 죽었다. 따라서 죽음을 정복한다는 말의 의미는 육체적인 불멸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야만 할 것이다.
신화적으로 설명하면, 두 스승이 죽음을 정복했다는 것은 그들이 죽음의 신(神)인 악마의 힘과 지배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이다. 어느 쪽 스승도 죽음의 지배에 이끌려 다닌 기록이 없다. 이것은 악마가 붓다를 유혹하는 장면에 잘 나타나 있다(대반열반경 참조).
악마는 붓다에게 쓸데없이 고생하면서 떠돌이 스승이 되지 말고 지금 당장 니르바나(열반)의 기쁨을 즐기라고 유혹한다. 물론 붓다는 이 제안을 거부한다.
이것은 아주 다른 상황이긴 하지만 예수가 핍박과 죽음 때문에 자신의 사명을 포기하기를 거부한 것과 같은 내용이다.("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요한복음 10:17-18)
달리 해석하면, 붓다가 죽음을 정복했다는 말은 그가 다른 평범한 인간들과는 달리 다시는 어떤 육체로도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예수가 죽음을 정복했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뒤에 그가 제자들 앞에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는 이야기 속에 잘 나타나 있다. 또한 그가 다시금 하나님과 함께 있기 위하여 하늘나라로 올라갔다는 믿음속에도 그러한 것이 잘 나타나 있다.
자신들의 스승이 평범한 인간들과는 달리 자신의 운명을 마음대로 다스린다는 주장이 가장 과정되게 표현된 것은, 스승은 만일 자신이 원하기만 한다면 세상 끝날까지도 살아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요한복음 12:34]
아난다야, 이제 여래는 이것들(영적은 일들)을 완성하였다. 그래서 여래는 자신이 원한다면 영원 동안 지상에 머물러 있을 수가 있다. [대반열반경]
요한복음의 희랍어 텍스트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그리스도는 이 세상 끝날까지 머물러 계신다"이며, 이것은 '이 시대가 끝날 때까지' 또는 단순히 '영원토록'의 관용적인 표현법이다. 여기 히브리어 텍스트 속에서 군중들은 경전에 따르면 메시아가 '영원토록' 살기로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학자들은 이것이 정확히 어떤 경전을 뜻하는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이것은 당시의 보편적인 믿음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예수는 이러한 주장을 살짝 비켜나가, 자신이 그들과 함께 조금밖에 더 머물지 못하리라는 말을 반복하였다. 붓다 역시 요한복음 속의 군중들처럼 같은 믿음을 피력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곧 죽게 될 것이라고 아난다에게 말하였다.
4) 지진이 일어남
두 스승의 죽음은 실로 우주적인 사건이었다. 그래서 죽을 때 지진이 일어났다고 이야기는 전한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여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마태복음 27:50-52]
스승께서 열반에 드실 때, 그 열반에 드심과 때맞추어 천지를 진동하는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다. 동시에 천사들의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반열반경]
스승의 인생에서 최고의 결정에 달한 극적인 순간을 강조하기 위하여 불교 문헌들은 한결같이 지진을 언급한다. 성경에서는 마태복음만이 예수를 죽음에 이 소재를 사용한다. 마태복음은 예수가 죽을 때 천둥과 함께 지진이 일어났다고 전하며, 그것이 붓다의 죽음에서는 '천사들의 북소리'로 표현되어 있다.
5) 승천
아바타르, 즉 지상에 내려온 신의 화신에 관한 이야기를 완성하는 데에 가장 필수적인 요건은 무엇보다도 그 신의 승천(昇天)이다. 예수의 승천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붓다가 니르바나에 들어간 것 역시 일종의 승천이라는 점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하지만 두 이야기 자체는 전혀 같지 않다.
예수는 죽음에서 기적적으로 부활한 최초의 인물이며, 그의 무덤이 비어 있었다거나 제자들이 그의 손에 난 상처를 만졌다는 등의 설명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이것을 육체적인 부활로 받아들여야 한다. 부활하고 나서 잠시 지상에 머문 뒤에 예수는 구름을 통과하여 하늘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오른편 보좌에 앉았다고 이야기는 전한다.
붓다의 이야기에는 육체적인 부활이나 육체적인 승천이 없다. 오히려 붓다는 평생동안 '형상으로부터의 해방'을 위해 노력해 왔었다. 따라서 불교 사상의 맥락에서 볼 때는 육체를 가지고 승천하는 것은 실로 터무니없는 발상이다.
불교 사상에서는 '하늘로 올라가는' 사람은 그것에 해당하는 신체를 부여받지만, 영원히 축복의 상태인 니르바나(열반)는 모든 육체적인 차원과 설명을 초월해 있으며, 하늘과 땅을 초월해 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영혼?)이 니르바나로 들어가는가에 대해서 불교는 정확한 설명이 없다. 또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니르바나로 들어간다고 하는 이야기는 그 이야기의 결론 부분을 종합해 볼 때 바로 승천을 상징한다.
죽기 직전에 고오타마는 초월적인 의식의 여러 차원을 오르내리다가 네 번째 차원의 선정(禪定)에 들었다가 곧 니르바나로 들어갔다. 제자들은 그의 몸을 화장하여 유해를 여러 몫으로 나누어 승천을 기념하는 무덤(스투파 또는 파고다)들과 함께 모셨다.
6) 하늘로 돌아간 스승
절과 탑을 세워 붓다를 숭배하는 일이 세월이 지날수록 많아지고 일반화됨에 따라서 불교 사상은 스승의 신적인 측면을 더욱 강조하게 되었다. 이것이 더욱 발전하여 대승불교(마하야나)의 와벽에 가까운 붓다에 대한 신격화(神格化)로 이어지게 되었으며, 이는 초기의 더 보수적인 불교 학파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한 숭배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불교도들은 붓다가 생존시에도 그러한 숭배를 받아들였으며, 그것이 사후의 숭배로 이어지게 된 것 뿐이라고 말한다. 왕자였을 때나 붓다가 되어서나 고오타마는 수천수만의 사람들로부터 높임을 받았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으며, 또 문헌에도 기록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에게 엎드려 절을 하고, 존경심에 가득찬 마음으로 그의 둘레를 시계 방향으로 돌았으며, 오른손은 언제나 그 성자를 향해 있었다. 그가 여행을 할 때면 사람들은 그가 지나가는 길이 좀 더 편하도록 신경을 썼으며, 때로는 꽃과 나무 잎사귀로 길을 뒤덮기도 했다. 또 인간이 그러한 일을 하지 않으면 자연계가 제철이 아닌데도 그를 위하여 꽃을 피우기도 했다.
기독교인들 역시 자기들의 스승을 숭배하기 시작하였으며, 그를 신격화시켰다. 이들도 불교도처럼 그러한 숭배의 전례(前例)를 찾는다. 동방박사의 방문이 여기에 잘 어울리며, 죽기 전에 예수가 종려나무 이파리로 뒤덮인 길을 걸어 예루살렘으로 들어온 이야기도 좋은 전례이다.
이러한 것들 말고도 두 스승의 일대기에는 다른 많은 숭배의 예들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두 스승은 어떤 여성에게서 지극히 숭배를 받는다.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마태복음 7:37-38]
그녀는 얼른 다가와 그의 발목을 껴안고 엎드려 머리를 발 위에 올려놓고서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그를 숭배하였다. [불전(佛典)]
붓다의 발에 엎드려 숭배의 뜻을 나타낸 여인은 바로 붓다의 아내로, 그가 고향을 떠난 이후로 오랫동안 헤어져 있었으면서도 여전히 그에게 헌신적이었다. 반면에 예수의 발을 향유로 닦아 준 여인은 죄인이었다고 전해지며, 이로 인해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은 무척 당황하였다. 또 다른 불교 문헌에 보면 어떤 부드러운 마음씨를 가진 여인이 붓다의 발아래 엎드려 눈물로 붓다의 발을 적셨다는 일화가 나온다.
지금까지 두 스승의 생애를 비교하면서 필자는 주로 유사한 점들에만 초점을 맞추었으며, 전체적인 면에서 붓다와 예수의 생애를 비교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두 스승의 생애에 나타난 몇 가지 차이점을 살펴보는 것으로 이 첫째 글을 마감하고 싶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예수가 가르침을 펴기 시작한 지 이삼 년 만에 갑자기 인생을 마쳤다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새로운 사상을 채 뿌리지도 못했었다. 또한 그의 제자들도 붓다와는 도저히 비교가 안 될 만큼 조직화되지 못하였다. 그는 대중의 눈에 나타나자마자 곧바로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붓다와는 좋은 대조가 될 정도로 매우 적은 양의 가르침만이 기록되거나 전해졌다.
예수는 붓다처럼 그를 지지해 줄 통치자나 주요 도시를 발견할 만큼 오래 살지를 못하였다. 또한 그는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폭넓은 지침들을 남겨 놓을 수도 없었다. 만일 예수가 붓다처럼 여든 살 정도로 살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 있는 일이다.
두 스승의 죽음은 이토록 형태가 다르다. 따라서 그들에 대한 신자들의 이해도 달라지게 되었다. 고오타마 붓다는 많은 나이를 살았으며, 그의 가르침도 뿌리를 잘 내렸다. 따라서 그의 죽음은 전혀 비극적이거나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다.
그 결과, 내 느낌으로는, 깨달음이라는 보다 초기의 사건에 초점이 맞추어지게 되었다. 붓다의 모든 일대기들은 주로 그 사건에 초점을 맞추어 씌어졌다. 물론 죽음도 중요한 사건이고 두꺼운 책자(대반열반경)의 주제가 되었다. 그러나 깨달음이야말로 불교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장 본질적인 사건이었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반면에 예수의 죽음은 훨씬 더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 죽음은 비극적이고 극적이었다. 신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는 그 사건이야말로 인류 구원의 핵심이었다. 초기 기독교의 복음서는 아마도 예수 생애의 마지막 주간, 특히 죽음과 부활에 초점을 맞추어 씌어졌을 것이다.
둘을 비교해서 말하면, 기독교에는 불교의 깨달음에 해당하는 사건이 없으며, 마찬가지로 불교에는 기독교의 십자가나 부활과 짝을 이루는 사건이 없다.
또다른 차이는 고오타마 붓다는 출가하기 전에 결혼을 했는데 반하여 예수는 결혼에 대한 아무 이야기가 없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서 결혼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차이 역시 매우 중요한 것일 수 있다. 이 점을 차근차근히 살펴보자.
붓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집과 가정을 떠나 그의 새로운 운동에 참여하라고 권유하였다. 하지만 이 때문에 기독교와 불교가 오늘날처럼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데에는 몇 가지 뚜렷한 이유가 있다.
첫째로, 예수도 이 점에서는 붓다의 생각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예수 역시 필요하다면 집과 가정을 떠날 것을 주장하였다. 예수는 "죽은 자는 죽은 자에게 맡기고 너는 집을 떠나 나를 따르라"라고 말했다. 이것은 불교에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말이다.
둘째로, 초기 교회 시절 적어도 상당 부분에서는 이 출가(出家)와 독신(獨身)의 개념을 채택하였다는 사실이다. 이 새로운 신앙을 따르는 성직자들은 마땅히 금욕과 독신생활을 해야만 했다.
따라서 오늘날은 성직생활과 독신생활을 두고 목사와 승려가 차이를 보이지만, 당시로서는 그 문제에 대하여 인도와 이스라엘이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인도와 그밖의 불교가 전파된 나라에서는 전통적인 가족의 개념과 이 불교의 수도원 생활이 충돌하여 긴장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 긴장을 줄이기 위하여 수도원 생활에 약간의 변화가 찾아왔다.
예를 들면 불교 승려들은 전처럼 계속해서 떠돌아다니지 않고 주로 인구가 밀집한 지역 근처의 절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승려가 된 아들을 둔 가족들은 전처럼 그다지 심한 이별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또 어떤 나라에서는 모든 남자가 몇 달 또는 몇 년간 승려생활을 한 뒤에 다시 세상으로 돌아와 가정을 이루는 풍습이 생겼다.
신(神)과 내세(來世)에 대한 아주 다른 개념들이 붓다와 예수의 삶을 결정지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러나 배경이 그처럼 다르다고 해도, 그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또 많은 저자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그렇게 두 스승이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다.
7) 제1장 글의 맺음말
지금까지 우리는 두 스승의 탄생과 가르침과 죽음에 얽힌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았다. 이제 이 글의 서두에서 말한 영적인 모습을 한 신과 인간의 육체를 가진 신(아바타르, 화신)의 이야기로 돌아가도록 하자. 이러한 신의 화신 사상이 두 종교에서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가를 우리는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형태의 신앙이 동양과 서양에서 두 개의 중요한 새로운 종교를 탄생시키게 되었을까?
사회적으로 또 이념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길래 종교에서 인간의 육체가 이토록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요소들이 관계가 있다.
먼저 영웅들의 전설적인 이야기와 관계가 있다. 신의 화신 개념은 영웅 전설들 속의 공통된 줄거리를 사용한다. 전설 속의 영웅들처럼 그 신의 화신은 어린시절에 악한 세력의 위협을 받지만 마침내 그 세력을 정복한다.
또한 그는 평범한 인간들처럼 모든 인간적인 감정과 육체적인 제약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악마는 그 약점을 이용하여 그를 유혹한다. 다시 말해 영웅적인 사명보다는 그 자신의 인간적인 욕망에 충실하도록 유혹하는 것이다.
그는 온갖 좌절과 고통을 겪지만 끝에 가서는 승리한다. 그리고 물론 그는 평범한 인간들처럼 어쩔 수 없이 죽긴 하지만 그 죽음은 절대로 평범한 죽음이 아니다.
신의 화신 사상은 인간을 신과 동일시하게 해 준다. 신의 화신은 성장하고 유혹을 물리치고 악마와 싸워 이기고 진리를 깨달으며, 또한 신처럼 용감하게 죽음과 대면한다. 인간의 육체를 한 신은 하늘에 계신 신보다 더 인간적이고 친숙하다.
신의 화신 사상은 또한 신화적인 모티브를 빌려온다. 고대 신화의 신들처럼 그 화신은 사악한 세력과 맞서기 위하여 여행을 떠나며, 그 세력에 대항하여 격퇴한다. 그리고는 평화로운 하늘을 다스리기 위하여 승리의 개선을 한다.
신의 화신 사상은 또한 선과 악의 투쟁이라는 우주적인 차원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신화에서의 우주적인 갈등과는 달리 신의 화신 사상은 선과 악의 대결을 구체적인 시간과 구체적인 장소 속에서 진행시킨다.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 하늘로 되돌아갈 때 그 신의 화신은 지상에서 계속 신의 업무를 해나갈 조직을 남겨 놓는다. 예를 들어 붓다의 제자들에게는 불(佛), 법(法_), 승(僧)이라는 붓다와 그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따르는 공동체라는 세 가지 소중한 보물, 즉 삼보(三寶)가 있다.
기독교 역시 그리스도와 그의 가르침과 교회를 가지고 있다. 하늘에만 거주하는 신들은 그러한 조직을 그토록 쉽게 확립시킬 수가 없다.
다음으로 신의 화신은 여러 물체 속에 구체화되어, 사후에도 그의 추종자들에게 그 물체가 남겨진다. 이 중에서 불교가 발전하는 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바로 붓다의 화장한 유골이다. 이 유해들은 여러 몫으로 나누어져 도시마다 사리탑(舍利塔)에 모셔졌으며, 이 도시들은 중요한 성지 순례지가 되었다. 나아가 그 사리탑과 사리탑 주변의 물건들이 불교도들에게는 붓다라는 신적인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 되었다.
옛 신화에 나오는 하늘의 신들도 별자리를 바꾼다거나 계절의 변화를 통해 자신들의 업적을 표시할 수 있었지만, 그러한 것들은 숭배의 장소에 세워진 구체적인 사리탑에 비하면 훨씬 거리감이 있는 것들이었다.
기독교 역시 물고기라든가 빵과 포도주, 특히 십자가와 같은 자기들의 신의 화신과 관련된 신성시된 물건들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 신의 화신의 탄생과 죽음은 그들의 예배의 중심이 되었다. 초기 불교의 성소(聖所)에서 사리탑이 중심 요소가 되었듯이 기독교에서도 그들의 스승의 죽음에 큰 역할을 한 십자가가 신성시되어 교회의 정면에 위치하게 되었다.(불교에서는 후기에 와서 사리탑 대신 깨달음을 얻은 날 밤의 붓다의 조각상이 불교의식의 중심 요소가 되었다.)
또 양쪽 종교에서 두 신의 화신의 탄생일은 가장 중요한 축제일이 되었다. 석탄일과 크리스마스에 사람들은 스승이 지상에 내려온 것을 축하하기 위하여 선물을 교환하고, 특별한 종교 행사를 치르며, 우주적으로 거듭난 느낌을 갖는다.
인간으로 화신하지 않은 신들의 예배에서는 그러한 탄생 축제가 있을 수 없다. 계절의 신들에 한해서는 다른 형태의 탄생과 죽음의 축제가 벌어지긴 하지만 그것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신의 화신이 오래 전부터 내려오던 동물 희생제의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것은 매우 흥미있는 사실이다. 흰두교와 유대교 문화에서는 오랫동안 동물 희생제의를 광범위하게 사용해 왔었다. 그런데 두 신의 화신을 추모하기 위하여 발전된 새로운 종교들은 동물 희생제의를 비난하였다.
불교는 동물의 생명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할뿐더러 신학적으로도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동시에 종교적으로 중요한 것은 사람의 마음 상태라고 여기게 되었다.
기독교 측에서는 동물의 희생제의가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이해하는 것 속에, 또는 성체 성사 속에 상징적으로 녹아들어 가게 되었다. 하지만 전과 같은 의미에서의 희생제의는 불교처럼 기독교에서도 사라졌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수 세기 동안 동물의 생명을 바침으로써 신에게 접근해 왔는데, 왜 이 두 종교 문화는 갑자기 그러한 종교의식으로부터 등을 돌렸을까?
나는 위에서 말한 신학적인 이유에 덧붙여 문화적인 이유를 언급하고 싶다. 다시 말해 두 종교가 나타날 당시의 사회가 농경문화의 기반으로부터 서서히 벗어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농경문화에서는 희생제의가 대단한 의미를 가진다. 희생제의란 바로 농부나 목축업자들과 관련된 종교의식이었다. 희생제의를 통해 그들의 생계의 수단이 가능하게 된다고 그들은 믿었다. 그래서 자신들이 잡은 짐승이나 처음 수확한 곡식을 신에게 바쳤으며, 이것이 더 많은 짐승과 더 많은 곡식을 얻게 해달라는 신에게의 주문이었다.
그런데 붓다 시대의 갠지스 강 유역과 예수 시대의 지중해 주변에 큰 도시들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목축이나 농사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상업과 제조업, 서비스업 등의 새로운 직종이 생겨나 많은 사람에게 생계를 제공하였으며, 따라서 이들에게는 동물이나 최초의 곡식을 바치는 희생제의가 다분히 형식적이고 심지어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렸다.
바로 이때 새로운 종류의 희생제의를 가르치는 두 스승이 나타난 것이다. 그들은 땅의 곡식이나 짐승 대신에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치는 희생제의를 가르쳤다.
두 신의 화신, 즉 붓다와 예수를 중심으로 발전한 두 종교는 이제 전세계에 보편적인 종교가 되었다. 다시 말해 엄청난 수의 신자들을 가지고 있을뿐더러 모든 서민 대중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붓다와 예수는 사회의 모든 계급, 사회의 전체 구성원들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놓았다. 이들 새로운 종교는 어떤 특정한 사람과 특정한 계급을 위한 종교가 아니라, 부자든 가난한 자든, 높은 자든 낮은 자든, 누구나 종교적으로 따를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
두 신의 화신이 인간의 육체로 구체화되어 나타났다는 것을 두 종교가 진지하게 받아들이긴 하지만, 그들의 신학은 그 육체 자체보다는 육체 속에 담긴 정신에 집중되어 있다.
죽음에 대한 불교도들의 자세를 다룬 책자에서 필자가 밝힌 적이 있듯이, 불교도들은 생명을 대단히 존중한다. 인도에서 그들과 짝을 이루는 힌두교들과는 다르다. 동물의 생명을 바치는 사람은 '동물로 구체화된 생명'과 그 자신의 생명을 하나의 연속선상에 놓고 시작한다.
하지만 불교도들은 생명을 취하기를 피한다. 왜냐하면 '동물의 정신'과 그 자신의 정신을 하나의 연속선상에 놓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차이가 비록 매우 사소한 것일지라도, '피로써' 신에게 접근하느냐, 아니면 '깨끗한 마음'으로 신에게 접근하느냐 하는 대단한 차이를 낳는다.
두 스승의 대부분의 힘은 그들의 메시지와 작업에 담겨 있다. 이제 다음 글에서 나는 여기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이 주제를 다루는 학자와 종교인들이 세상에는 많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붓다와 예수의 메시지의 차이점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은 붓다가 허무적이고, 부정적이고, 무신론자이고, 세상을 거부하는 반면에 예수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유신론자이고, 세상을 긍정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렇게 구별하는 것에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을 것이지만, 그것은 너무 확대 해석한 것이다.
필자는 이제 진리의 다른 쪽 면을 살펴보겠다. 동시에 두 스승의 가르침 속에 담긴 유사성들에 관심을 일깨우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