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스님과 대왕 범
함경도 무산군 서쪽에 두만강의 지류 서두수가 흐른다. 첩첩산중 계곡을 뱀처럼 꾸불꾸불 흘러 들어간다. 그 서두수의 물줄기가 넓어지고 깊어져 급류가 되어 바위에 부딪히는 곳에 이름없는 야산이 있다. 높이가 2,000m나 되는 주위의 험산과는 달리 그 야산은 높지 않았고 산자락들이 넓게 퍼져 있다. 산자락은 울창한 삼림이고 침엽수와 광엽수가 섞여 있는 잡목림이다.
사냥꾼과 나무꾼들이 그 일대를 짐승의 나라라고 불렀다. 노루, 사슴, 멧돼지들이 우글거렸고 범, 표범, 곰, 늑대 등 맹수도 돌아다녔다. 한국에 사는 짐승 대부분이 살고 멀리 만주나 시베리아에 서식하는 짐승들이 드나들었다.
조선말 나라가 어지러워졌을 무렵, 그곳 야산 중복에 산사가 하나가 있었는데 절이라고 하지만 대웅전이나 부처님도 없고 통나무로 지은 본당에 풀 지붕이다. 멍석이 깔린 본당에는 사람크기만 한 자연석 부처님이 있는데 합장 모습이어서 모셔놓았다. 산사에는 노스님과 젊은 승려 두 명이 있었는데 주지 스님은 짐승 스님이라고 소문났다. 그 일대 삼림에는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았다. 범의 포효가 들리고 늑대울음이 들려오는 곳이라 나무꾼, 약초꾼뿐만 아니라 사냥꾼도 들어가지 않았다. 무산 원시림 주변에 사는 산골 마을이나 화전민 마을에서는 스님들의 목숨이 아직 붙어있는지가 화제다.
‘바위산 불곰이 잠자리를 찾았느냐?’
‘아니요. 아직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작년 굴을 다른 곰이 차지해버려서 아직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곰은 큰 나무 밑둥이나 토굴에서 겨울잠을 잤다. 젊은 스님이 절을 나서려는 주지 스님을 말렸다. 잠자리를 찾지 못한 불곰이 돌아다녔을 뿐만 아니라 불범(표범)의 발자국을 보았기 때문이다. 표범은 좋지 않다. 줄범은 성미가 대범하기 때문에 사람을 해치지 않았으나 표범은 성미가 고약해서 짐승은 물론이고 사람을 덮쳤다.
산골 마을 사람들은 그 표범을 요괴라고 부르며 미워했다. 요괴답게 발자국은 있으나 모습이 없다. 지난해 요괴는 서두수 상류 마을의 나무꾼을 잡아먹었다. 나무꾼 세 사람이 함께 산에서 내려왔는데 맨 뒤에 오던 사람이 없어졌다. 불과 열서너 발 뒤에 따라오던 동료가 사라졌는데도 아무도 몰랐다. 요괴는 단풍이 든 숲에 숨어있다가 소리 없이 맨 뒤의 나무꾼을 덮쳐 목덜미를 물고 끌고갔 다. 끌려간 나무꾼은 비명 한 마디 지르지 못했다. 산골 마을 장정들이 추적을 했으나 시신도 찾지 못했다. 표범은 범 때문에 산중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마을 주변에서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다. 그곳에는 줄범이라고 부르는 만주범이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줄범은 높은 산줄기를 타고 영지를 순찰했는데 10리 정도에서는 토끼 한 마리도 놓치지 않았다. 범은 멧돼지나 사슴 등 좋은 먹이를 발견했을 때도 표범을 보면 표범을 쫓았다. 잡아먹으려는 게 아니고 영토침입 때문이다. 범의 먹이와 표범의 먹이가 같았다. 범에게 쫓긴 표범은 마을을 침입했다. 범이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는 들어오기를 꺼린다는 것을 안다. 간사한 표범이 밤중에 마을의 가축을 약탈했다. 사람이 밤눈이 어둡다는 걸 안다.
사람들은 표범의 약탈을 막으려고 개를 길렀으나 소용없었다. 표범은 개고기를 좋아했으며 도리어 밥으로 삼았다. 산간 마을 사람들은 표범 때문에 가축을 기르지 못했다. 곰, 멧돼지, 사슴과 노루들 때문에 논이나 밭을 경작하지 못한 산골 마을이다. 표범을 잡기 위해 덫을 놓고 독이 든 먹이를 뿌렸으나 그런 것에 걸릴 표범이 아니다. 무산 포수를 불렀으나 신출귀몰한 표범사냥은 몇 날 며칠 헛수고만 했다. 산사의 스님들도 표범에게 당했다. 짐승을 사랑하는 주지 스님이 경내에 짐승들이 들어와도 쫓지 않았고 한겨울에는 사슴과 노루에게 먹이를 주었다. 그래서 사슴과 노루가 평화롭게 경내를 돌아다녔고 새끼도 데리고 온 사슴도 있었다. 그런데 지난해 초봄 표범이 경내에 들어와 사슴과 노루를 덮쳤다. 스님들이 잠든 한밤중에 들어와 사슴과 노루를 물고갔다. 신성한 경내에 뿌려진 피를 보고 주지 스님이 격노했다. 웬만한 일에는 화를 내지 않은 점잖은 스님이 그때는 고함을 질렀다. 표범의 살육이 지속되자 스님들이 몽둥이를 들고 주위의 산을 순찰했다. 주지 스님을 모신 두 젊은 스님은 봉술에 뛰어난 무술 스님이다. 무술 스님들이 사흘 동안 표범을 찾았으나 헛수고만 했다. 또 한 마리 사슴이 잡혀갔다. 무게가 200kg이 넘는 수사슴을 물고갔다. 사슴을 끌고 간 길에 핏자국이 있었다.
표범이 사슴을 숲속으로 끌고 가 배를 가르고 내장을 먹었다. 다리와 머리는 잘라버렸다. 20kg을 먹었는데 표범 몸무게의 1/3을 넘는 먹성이다. 식사를 마친 표범은 먹이를 끌고 산을 두 개나 넘었다. 무술 스님들은 하오께 표범 발자국을 놓쳤다.
(이런, 젠장!)
무술 스님들이 당황했는데 산 아래 계곡에서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표범은 사슴의 시체를 20m쯤 되는 절벽으로 끌고 가 떨어뜨렸다. 힘이 들지 않는 운반법이다. 표범은 그렇게 하여 스님의 눈을 속였으나 속일 수 없는 추적자가 또 있었다. 까치다. 까치가 찌꺼기를 얻어먹으려고 따라왔고, 까치는 또 다른 추적자를 불러들였다. 세 마리의 늑대가 멀리서 표범을 포위하고 있었다. 표범이 고함을 질러 위협했으나 까치도 늑대도 물러서지 않았다. 또 네 마리의 늑대가 합류했다. 늑대가 일곱 마리가 되면 표범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좀 전까지는 곁눈질로 표범을 보고 표범이 다가서면 물러섰던 늑대들이 이젠 똑바로 표범을 노려보면서 입술을 까뒤집어 이빨을 드러냈다. 먹이를 내놓으라는 협박이다. 표범은 먹이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늑대들에게 덤벼들었으나 위장 공격을 통하지 않았다. 앞에선 늑대가 한두 발 뒤로 물러서자 뒤쪽의 늑대가 표범의 꼬리를 물었다. 표범이 펄쩍 뛰면서 늑대를 피했으나 이번에는 앞에 있는 늑대가 덤벼들었다. 늑대들이 즐겨 사용하는 협공이다. 짐승들의 싸움에서는 고군분투가 통하지 않는다. 늑대들과 표범의 싸움에서는 중과부적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늑대는 무리 싸움에 능숙하다.
표범은 늑대에 비해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감한 공격을 하면 한두 마리의 늑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으나 그 자신도 타격을 받는다. 늑대에게도 날카로운 이빨이 있어서 물리면 살점이 떨어져나간다. 대가리나 다리에 부상을 입으면 사냥을 하지 못한다. 정교한 기계처럼 몸의 각 부분이 조화를 이른 표범은 그 어느 부분에 상처를 입더라도 치명상이 될 수 있다. 상처를 입어도 마구 대항하는 늑대들에게 대항할 수가 없다. 먹이를 빼앗긴 표범은 분을 참고 물러나야 했다. 늑대의 승리다.
스님들은 날이 어두워지자 추격을 멈췄다. 표범사냥을 중단했다. 쫓아버리는 걸로 임무를 다 했다. 주지 스님은 표범과 늑대의 싸움 이야기를 듣고 표범이 늑대에게 당했다는 얘기가 고소했다.
‘늑대들이 그렇게 센 줄 몰랐는데 ….’
그러나 늑대들의 승리를 축하해줄 일이 아니다. 늑대들도 표범 못지않은 말썽꾸러기고 무서운 살육자다. 그곳의 늑대는 남쪽의 늑대보다 덩치가 훨씬 크고 힘이 세다. 더 사납고 잔인하다. 산사 주변 바위산에는 가족무리 서너 개가 살고 있는데 그들은 표범뿐만 아니라 곰의 먹이도 약탈한다. 가족무리는 대개 열서너 마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영토싸움을 할 때는 서로 물고 죽이지만 사냥을 할 때는 협동을 한다. 가족무리가 합치면 40여 마리가 되므로 표범이나 곰은 물론이고 그곳을 지배하는 범도 늑대들의 서식지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늑대는 가축을 끌고가고 더러는 아이들을 물고갔으므로 산골 마을 사람들은 늑대도 미워한다. 그러나 늑대가 사람을 잡아먹는 일은 극히 드물다. 스님들은 늑대와 불가침조약을 맺었다. 서로 만나도 모른 체한다. 쓰레기 터에 늑대들이 돌아다녔으나 내버려 둔다.
늑대는 산사의 경내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경내에 사슴과 노루가 있어도 멀리서 주변을 돌아다닐 뿐 산사는 사람의 영토라고 인정했다. 그래서 산사 주변에서는 평화가 유지되었는데 그해 초겨울에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 그날은 북풍이 세차게 불고 초저녁에는 눈가루가 날렸으므로 젊은 스님이 아궁이에 불을 지피려고 법당문을 열었는데 무엇인가가 총알처럼 법당 안으로 뛰어들었다. 사슴 새끼다. 생후 대여섯 달 쯤 되는 사슴 새끼가 법당 구석에서 오들오들 떨었다.
‘문을 닫아! 무엇인가 큰 짐승에게 쫓기고 있어!’
주지 스님의 말이 옳았다. 곧 누군가 법당문을 쿵쿵! 두드렸다. 튼튼한 문이 부서질 것 같았다. 웍! 소리가 났다. 곰이다.
‘네 이놈!’
주지 스님이 목탁으로 놋대야를 치자 조용해졌다. 그러나 곰은 도망치지 않고 법당 주위를 돌아다니고 있다. 그때 곰은 겨울 잠자리를 찾아 들어가야 하는데 동면굴을 찾지 못한 곰이 갑자기 들이닥친 추위에 당황한 것 같았다. 산골사람은 잠자리를 찾지 못한 곰을 겨울 곰이라고 하며 두려워한다. 추위에 떠는 겨울 곰은 성질이 사나워져 눈에 보이는 동물은 무조건 죽인다. 때로는 산골 마을을 짓밟았으므로 마을 전체가 피난을 가기도 한다. 겨울 곰은 그런 행패를 부리다가 대개는 얼어 죽었는데 그 기간이 문제다. 산사에 들어온 곰도 겨울 곰이 될 염려가 있다. 곰은 밤새 경내를 돌아다녔다. 그냥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장작더미를 무너뜨리고 간장독을 깨뜨렸다. 새벽에는 추위에 비명을 질렀다. 자연을 거스른 벌을 받았다. 다음날은 더 추웠다. 곰은 어떻게 되었을까? 스님들이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가서 살펴보았다.
‘주지 스님, 큰일 났습니다!’
경내를 살피러 나갔던 스님이 헐레벌떡거리며 들어왔다. 곰이 뒤뜰에서 땅을 파고 있다고 했다. 뒤뜰에는 무나 배추를 저장하려고 파놓은 구덩이가 있는데 깊이가 약 2m나 되었다. 동면 동굴로 안성맞춤이다. 바닥에 짚을 두껍게 깔아놓았으므로 겨울 잠자리로는 그만이다. 남향이었고 북쪽의 담벼락이 북풍도 막아준다. 젊은 스님들이 몽둥이를 들고 나섰으나 주지 스님이 막았다. 젊은 스님들이 아무리 무술을 연마하고 민첩해도 위험하다. 몽둥이에 맞아 죽을 곰이 아니다. 살생도 스님의 본분은 아니다. 거기다가 곰은 스스로 산사로 찾아왔다. 초청을 하지 않았지만 손님이다. 절을 찾아온 손님을 어떻게 강제로 쫓아내겠는가? 곰은 간밤의 추위에 비명을 질렀는데 주지 스님은 가엽다고 생각했다. 또 그대로 두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곰을 그대로 두시렵니까? 언제 우리를 잡아먹겠다고 덤벼들지 모르는데 ….’
‘아무리 짐승이라고 그런 짓을 하겠는가?’
주지 스님이 웃었다. 며칠 동안 곰이 하는 짓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놈이 설치면 그때 가서 때려죽이기로 했다. 부처님도 못된 짓을 하면 놈을 죽이는 걸 허락해주실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 일이 없었다. 곰은 구덩이를 좀 손질하더니 안에 들어가 입구를 흙으로 덮었다. 구덩이가 조용했다. 사슴 새끼도 나가지 않았다. 법당 한구석에서 스님들이 준 푸성귀를 맛있게 먹었다. 법당문을 열어놓아도 나가지 않았다. 아예 법당에서 겨울을 보낼 생각인 것 같았다. 곰이 구덩이에 들어간 나흘 뒤 주지 스님이 구덩이에 가봤다. 바스락 소리가 났으나 이내 조용해졌다. 동면하는 곰은 가사(假死) 상태다. 완전히 잠들지는 않는다. 자면서도 경계를 한다.
젊은 스님은 불안했다. 언제 뛰어나와 덤빌지 모르는 곰을 옆에 두고 있으니 안심할 수 없다. 사슴 새끼와 동거를 하는 것도 불안하다. 곰의 먹이가 되는 사슴 새끼가 배고픈 곰을 자극할 염려가 있다. 그래서 곳간으로 피신을 시켰는데 밤새 울었다. 추위와 고독에 못 이겨 가냘픈 소리로 밤새 울고 있었다. 그래서 풀어주었다. 자유롭게 산을 돌아다니라고 풀어주었는데 날이 어두워질 무렵 법당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어보니 사슴새 끼가 오들오들 떨다가 법당으로 들어왔다. 마치 어미를 보는 눈망울로 주지스 님을 보았다.
다음날, 산골 마을 사람들이 산사에 몰려들었다. 그 마을은 100여 명이 사는데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며 사냥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창이나 칼을 가지고 있고 화승포를 가진 포수도 왔다. 살기를 띠었다.
‘스님, 그 고약한 불곰이 아직도 경내에 있습니까?’
산사의 스님을 염려했다. 불곰을 죽이든가 내쫓겠다고 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뒤뜰 구멍에서 잠자고 있는데 아주 얌전합니다. 우리를 해치지 않아요. 나는 손님을 내쫓을 생각이 없어요.’
내쫓긴 것은 산골 마을 사람들이다. 경내에서 총질을 하겠다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그런데 산골 마을 사람들이 출동한 이유는 불곰 때문만이 아니다. 괴물이 염소를 물어갔다. 가축을 해친 범, 표범, 곰이나 늑대가 아니다. 포수가 현장을 조사하고는 모르겠다고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다. 괴물이 우리에 들어온 것부터 특이하다. 범이나 표범은 방책을 타고넘어 들어오고 곰은 방책을 쳐서 부서뜨리고 침입하는데 괴물은 방책 밑에 터널을 뚫고 침입했다. 그 터널로 들어와 염소를 끌고 갔다. 어떤 짐승이기에 그런 토목공사를 했을까? 오소리는 땅파기 명수다. 발자국도 오소리와 비슷했다. 족제비과 짐승이 그렇듯 오소리도 사나운 짐승이었으나 터널을 파고 칩입할 정도로 대담하지 못하다. 몸통의 길이가 고작 70cm인 오소리가 어떻게 염소를 물고갈 수 있겠는가? 염소는 뿔이 있고 사나웠으며 오소리에게 쉽게 당할 염소가 아니다. 또 하나 오소리가 아니라는 증거는 죽은 염소의 시체가 내장과 뒷다리 그리고 갈비뼈 일부가 없었다. 약 15kg이나 된다. 몸무게 10kg의 오소리가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없다.
‘그렇다면 오소리가 아니지.’
산사에서 20여 년이나 살고있는 주지 스님은 누구보다도 산짐승을 잘 알았다.
(괴물의 정체라?)
‘염소의 아랫배가 찢겨졌단 말이지? 이빨로 뜯겨진 게 아니라 발톱으로 찢었단 말이군.’
‘괴물의 발자국이 오소리와 비슷하다고 했는가?’
‘아니요. 모양이 비슷하다는 것이지 크기는 전혀 달랐습니다. 오소리보다 열 배는 컸습니다.’
주지 스님이 곰곰이 생각한 끝에 말했다.
‘그건 담보야. 족제비 괴물 담보야.’
사냥꾼들은 담보라는 짐승을 몰랐다. 그러나 주지 스님은 몇 년 전 계곡에서 담보를 봤다. 계곡에서는 커다란 불곰이 노루를 잡아 먹고 있었다. 노루는 다른 짐승에게 쫓겨 달아나다가 언덕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그래서 불곰은 불로소득을 하여 노루의 배를 갈라놓고 식사를 했다. 육식을 하는 짐승이 먹이의 배를 가르면 흥분을 한다. 진수성찬을 받은 기분이다. 그런데 식사를 하려는 차에 어디선가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으며 무서운 살기를 띤 소리였다. 누가 감히 불곰의 먹이를 빼앗겠는가? 담보다. 족제비과 괴물이다. 족제비처럼 생겼으나 족제비보다는 몇 배 크다. 갈고리 같은 발톱과 길다란 이빨을 가졌으며 긴 꼬리가 있으나 커봐야 고작 큰 개 정도고 몸무게는 50kg 정도다. 그래도 불곰과 비교는 되지 않는다. 몸무게 300kg의 불곰과는 비교가 되지 않으며 떡매 같은 앞발치기에 황소도 일격에 목뼈가 부러진다. 삼림 일대를 지배하는 범도 불곰을 피한다. 그런데 그 족제비과 괴물은 불곰에게 덤벼들었다. 불곰의 먹이를 내놓으라고 했다. 불곰이 모처럼 얻은 먹이를 내놓을 리 없다. 불곰이 먹이를 왼발로 누르고 오른발로 건방진 도전자를 후려쳤다. 담보는 빨랐다. 불곰의 앞발치기를 한 발 뒤로 물러서며 피했다. 언덕 위에서 싸움을 구경하고 있는 주지 스님은 담보의 민첩성과 용맹성에 놀랐다. 그러나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일단 뒤로 물러선 담보가 불곰이 헛친 앞발을 바로잡을 틈을 주지 않고 번개처럼 달려들어 앞발을 물었다. 불곰이 펄쩍! 뛰어올랐는데 피가 났다. 불곰이 분노했다. 노루를 놔두고 담보를 덮쳤다. 불곰이 앞발을 휘둘렀으나 담보는 물러서지 않았다. 불곰이 또 펄쩍! 뛰어올랐다. 불곰의 콧등에서 피가 흘렀다. 담보가 불곰의 콧등을 물었다. 콧등은 불곰의 급소다. 신경이 집중되어있다. 불곰이 고함을 질렀는데 오히려 비명에 가까웠다. 불곰이 후퇴했다. 먹이를 내주고 계곡 위쪽으로 도망쳤다.
사냥꾼들이 주지 스님의 얘기를 듣고 놀랐다. 곰의 먹이를 뺏는다는 무시무시한 놈이었으나 그렇다고 그대로 둘 수는 없다.
‘잡아! 끝까지 발자국을 추적하여 잡아.’
사냥꾼을 지휘하는 윤포수가 지시했다. 윤포수는 방아쇠 총을 가지고 있다. 화승포를 개량한 총인데 총신 밑의 방아쇠를 당기면 총탄이 날아갔다. 화승에 불을 붙여 발사하는 총과 달랐고 정확하며 강렬했다. 윤포수는 괴물이 아니라 귀신이라도 잡을 자신이 있다. 사냥꾼들이 그날 정오께 흑염소의 시체를 발견했는데 뿔과 털만 남았다. 괴물은 염소 한 마리를 다 먹었다. 범과 곰도 그렇게는 먹지 않았다. 그래도 배가 차지 않았는지 괴물은 오소리사냥을 했다. 오소리는 필사적으로 도망쳐 바위 밑에 굴을 파고 숨었으나 괴물은 기어코 찾아내 먹었다. 괴물이 오소리를 먹고 있을 때 늑대 서너 마리가 덤벼들었다. 늑대들은 수를 믿고 덤볐으나 괴물은 물러서지도 오소리를 내주지도 않았다. 발자국으로 봐서 늑대가 괴물을 포위했으나 헛수고다. 포위는 상대가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 작전인데 괴물은 도망갈 생각이 없다. 먹이를 빼앗으려면 늑대들에게도 희생이 날 것 같아 늑대는 먹이를 포기했다. 괴물은 오소리 한 마리를 다 먹어 치우고 무산의 원시림으로 도망쳤다. 수해(樹海)다. 만주인들이 슈하이라고 부르는 광대한 나무 바다다. 사냥꾼은 수해에서 발자국을 놓쳤다. 눈 위에 뚜렷하게 찍힌 발자국이 사라져버렸다. 땅굴을 파고 숨어버렸을까? 수색을 했으나 땅굴은 없다. 그때 윤포수는 잡목림에서 큰 새가 움직이는 걸 보았다.
‘저건 뭐지?’
족제비 괴물이다. 놈은 땅을 파는 재주뿐만 아니라 나무를 타는 재주도 있었다. 땅 밑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나무 위로 도망쳤다. 괴물은 이 나무 저 나무를 타면서 날아가는 것처럼 도망쳤다. 윤포수가 방아쇠를 당겼으나 총탄이 닿기 전에 다른 나무로 옮겨가 버렸다. 다시 장탄을 했을 때는 보이지 않았다. 방아쇠 총으로도 괴물을 잡을 수 없었다. 두만강까지 따라가 봐야 소용없을 것 같아 괴물 사냥을 중단했다.
그런데 그 괴물의 정체는 뭘까? 학자들은 대륙 목도리 담비라고 했다. 담비는 몸길이가 60cm였으나 매우 사납고 오소리, 너구리와 노루, 산양을 잡아먹었다. 그러나 직접 괴물을 본 주지 스님이나 사냥꾼들은 대륙 목도리 담비가 아니라고 했다. 몸통 길이가 1m에 가깝고 훨씬 크다. 몸 색깔은 비슷했으나 생김새도 달랐다. 대륙 목도리 담비는 몸통이 길었으나 괴물은 불곰 비슷하다. 또한 대륙 목도리 담비는 서너 마리가 함께 살았으나 괴물은 언제나 혼자다. 일부 학자는 주지 스님의 말이 옳다고 하며 괴물의 정체는 시베리아나 북만주의 타이가에 사는 울버린이라고 주장했다. 울버린도 족제비과 동물인데 족제비과에서 가장 크고 가장 사나웠다. 울버린이 곰의 먹이를 빼앗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북만주나 시베리아에 사는 울버린이 어떻게 조선에 왔을까? 울버린은 행동반경이 매우 넓고 하루에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했으나 조선 땅까지 이동은 무리다. 괴물은 그 후 산사 주변에서 사라졌으나 불곰은 계속 잠을 잤다.
곰은 신비한 동물이다. 어떻게 몇 당 동안 먹지 않고 땅굴에서 잠만 잘 수 있을까? 주지 스님은 가끔 땅굴을 들여다보았는데 곰은 살아있었다. 곰의 체온이 느껴지고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눈이 많이 와서 치워주려다가 그만두었다. 그건 곰과 자연의 관계이므로 자연의 섭리攝理에 맡겨두어야 한다. 그게 부처님의 가르침이기도 하다. 곰은 대한(大寒)이 지나도 건재했다. 봄이 왔다. 땅굴 위에 쌓인 눈부터 녹았다. 봄이 되니 사슴새끼가 좋아라고 경내를 뛰어다녔다. 날씨가 추울 때는 곳간에서 지내고 폭풍과 폭설이 내리면 법당 안에서 주지 스님과 함께 지냈는데 봄이 오자 산사 주변을 뛰어다니다가 사라져버렸다. 작별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가봐야 자연의 품 안이다.
문제는 불곰이다. 땅굴에서 나오면 위험하다. 몇 달 동안 굶주린 곰이 무엇을 할지 모른다. 젊은 스님이 곰이 나올 때까지 별당에서 기거하자고 햇으나 주지 스님이 거부했다. 본당에서 땅굴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무덤처럼 둥그런 지붕에 눈이 녹자 땅굴이 갈라지고 하연 온기가 올라왔다. 주지 스님이 멀찍하게 서서 지켜보고 젊은 스님들이 막대기를 들고 주지 스님을 경호했다. 땅굴의 지붕이 갈라지고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몇 달 동안 땅속에 갇혀 살았던 불곰의 포효다. 구멍 안에서 불곰의 상반신이 나왔다. 눈이 부신 듯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점점 눈이 맑아졌다. 주변을 살피던 곰이 주지 스님을 보았다. 곰은 본디 근시였으나 10m 거리 같으면 시각과 후각을 작동시켜 대상을 파악했다. 곰은 시각보다 후각이 예민하다.
곰은 주지 스님을 알아봤다.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살기가 사라졌다. 곰은 구멍 안에서도 냄새를 느낄 수 있었으며 자기 앞에 있는 사람이 몇 달 동안 자기 주위에 있었던 사람이란 걸 알아봤다. 곰은 상반신을 내민 체 구멍 안에서 나오지 않았다.
(왜 저러고 있을까?)
상반신을 내밀고 있던 곰이 다시 땅굴로 들어갔다가 잠시 뒤에 나왔는데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다. 강아지만 한 걸 가슴에 안고 있었다. 곰은 소중하게 가슴에 안은 걸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곰 새끼다. 구멍 안에서 새끼를 낳아 데리고 나왔다. 또 한 마리는 제발로 기어 나왔다.
‘저런 저런!’
주지 스님이 손뼉을 쳤다. 그러나 곰은 비틀거렸다. 그러나 새끼들은 눈이 보이는지 호기심이 찬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하필 주지 스님이 있는 곳으로 왔다. 새끼들이 주지 스님의 곁을 지나갔으나 어미는 보고만 있었다. 어미도 주지 스님의 곁을 지나갔으나 적의나 경계심은 없었다. 곰은 주지 스님을 지나 산사를 떠났다. 계곡의 얼음이 녹아 졸졸 흐르고 나뭇잎들이 녹색으로 변하고 있다. 그런데 자연은 언제나 그렇게 평화로운 것만이 아니며 첩첩산중에 봄이 오자 또 일이 벌어졌다.
산사에서 불곰이 새끼를 데리고 나간 지 사나흘쯤 되었을 무렵, 밤중에 우어우엉! 하는 범의 포효가 들렸다. 꽤 가까운 거리였으나 주지 스님은 목탁木鐸을 두드리며 염불만 계속했다.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니다. 그맘때쯤에는 의례 범이 돌아왔다. 범은 몇 백km²나 되는 광대한 영토를 가지고 있으며 겨울에는 자기 영토를 돌아다니며 먹이를 구했고 산사 주변에는 오지 않았다. 초봄에는 멧돼지나 노루들이 산사 주변에 나타났으므로 돌아왔다. 산날을 돌아보며 포효를 했다. 자기 존재를 과시한다.
다음날 정오께 약초꾼 두 사람이 산사에 뛰어들었다. 벌벌! 떨었다.
‘스님, 멧돼지가 죽었습니다. 한쪽 귀가 잘린 그 늙은 멧돼지의 배가 갈라져 죽었습니다.’
주지 스님도 그 멧돼지를 알고 있다. 황소만 한 멧돼지였는데 산골 마을 사람들은 산지기로 치부했다. 귀가 찢겨진 건 몇 년 전에 표범과 싸우다 입은 상처다. 산지기와 싸운 표범은 아랫배가 찢어져 죽었다.
‘산지기는 콧등에 상처가 있었습니다.’
누가 산지기를 죽였는지 알만하다. 황소만 한 멧돼지의 코를 물고 배를 가를 짐승은 범 외에는 없다. 그 일대를 다스리는 대왕 범만이 그런 짓을 할 수 있다. 약초꾼들은 탐스러운 멧돼지고기 몇 점도 떼어내지 못하고 도망쳤다. 대왕 범은 떠나지 않았다. 매일 밤 포효했다. 뭔가 신경질적이다. 영토에 다른 범이 들어왔거나 사냥꾼이 돌아다니는지고 모른다. 주지 스님은 사흘 후 약초꾼을 데리고 산사를 나섰다. 무술승과 나무꾼 두 명이 따라나섰다. 범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눈 녹은 땅 위에 엄청나게 큰 발자국이 뚜렷하게 찍혔다.
‘좀 서둘러야겠어.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밤나무숲 숯꾼 영감의 산막까지 도달해야 한다. 짐승들은 낮에는 사람에게 덤벼들지 않지만 밤에는 다르다.
‘스님, 저기 보세요.’
무술승이 산마루를 가리켰다. 얼룩무늬가 석양빛을 등에 업고 우뚝! 서 있다. 웅장하다.
‘그대로 가! 범을 보지 말고 천천히 걸어.’
범을 보자 반사적으로 도망치려던 나무꾼들도 멈췄다. 범이 뒤에서 덮칠 것 같아 공에 떨었으나 주지 스님이 뒤에서 천천히 따라왔다. 사실 주지 스님과 범 사이에는 불가침조약이 맺어져 있었다. 10년 가까이 그 삼림에서 살아온 주지 스님과 범은 그동안 서너 차례 조우한 적이 있다. 몇 년 전 주지 스님이 막 산마루를 넘어서자 바로 앞 바위에 범이 앉아있었다. 범도 놀라고 주지 스님도 놀랐다. 범이 반사적으로 뒷발에 힘을 주고 일어서려고 했다. 긴 꼬리가 뻣뻣하게 섰다. 먹이를 덮칠 때 버릇이다. 거리는 불과 열서너 발, 범이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덮칠 수 있는 거리다.
‘어험!’
주지 스님이 헛기침을 하고 범과 마주친 시선을 돌렸다. 주지 스님은 먼 산을 보면서 천천히 걸었다. 범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게 범과 주지 스님의 인사법이다. 범이 긴장을 풀었다. 범이 꼬리를 내리고 옆으로 누웠다. 나도 당신에게 관심이 없다는 태도다.
주지 스님은 젊은 스님과 나무꾼을 데리고 범의 존재를 무시하고 산을 내려 갔다. 날이 어두워질 무렵 숯꾼 영감의 산막에 도착했다.
‘어서 오십시오, 스님.’
영감이 발자국 소리를 듣고 마중 나왔다. 첩첩산중에서 홀로 사는 영감의 귀는 토끼 귀처럼 예민하고 코도 늑대처럼 민감했다.
주지 스님은 산막에서 자고 다음 날 두만강 지루 서두수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갔다. 나무꾼을 산간마을에 데려다주고 무술승만 같이 왔는데 시주자루가 가벼웠다. 돌아오면서 양식이 떨어진 산간마을 사람들에게 얻은 시주를 나눠주었기 때문이다.
‘스님 마침 잘 오셨습니다.’
영감이 밤을 새웠다고 한다. 멀지 않은 바위산에서 밤새 짐승이 다투는 소리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싸우는 소리는 새벽까지 계속되었다.
‘범이 다른 짐승을 덮친 것 같습니다.’
‘범이 싸웠다면 큰 짐승일 텐데 ….’
‘곰의 소리였습니다.’
‘곰이라고?’
주지 스님이 긴장했다. 산사에서 동면을 한 어미와 새끼가 아닐까? 다음날 새벽에 주지 스님이 영감과 무술승을 데리고 바위산에 갔다. 까치가 수십 마리 모여들었고 늑대들도 있었다. 곰의 시체가 있었다. 조심스럽게 살펴본 무술승이 말했다.
‘스님, 아닙니다. 어미 곰이 아닙니다. 새끼들의 시체도 없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부처님 고맙습니다.’
주지 스님이 합장을 했다.죽은 곰은 거대한 수놈이다. 영감이 죽을 만하다고 혀를 찼다. 그 갈색곰은 닥치는 대로 살육을 했다. 동족을 덮쳐 어미와 새끼를 가리지 않고 잡아먹었다. 몇 년 전에는 나무꾼이 잡아먹혔다. 갈색곰의 죽음은 예고된 일이다. 범의 영토에 들어와 설치는 곰을 범이 그냥 놔둘 리 없다.
영토에 들어와 설친 곰을 죽인 범은 며칠 후 돌아갔다. 그러나 짐승들의 싸움은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이제는 표범이 나올 차례다. 그 표범은 가축을 물고갔고 나무꾼도 잡아먹었다. 숙적인 범이 사라지자 표범의 세상이 되었다. 그런데 그 표범이 멧돼지에게 당했다. 그리 크지 않은 젊은 멧돼지라 표범은 멧돼지를 얕보고 콧등을 물었다. 콧등은 멧돼지의 급소다. 그렇게 멧돼지를 잡앗으나 몸과 몸이 부딪혔을 때 멧돼지의 어금니가 표범의 어깨를 스쳤다. 그저 스쳤을 뿐이었으나 멧돼지의 어금니는 면도칼처럼 예리했다. 표범이 늙어서 실수를 한 것인데 상처가 치명적이다. 표범은 상처를 입고도 자기 몸무게보다 더 무거운 100kg이 넘는 먹이를 나무 위로 4~5m나 끌어올렸다. 그런데 그걸 보고 늑대들이 나무를 포위했다. 열 마리가 넘는 무리였으므로 표범은 나무에서 내려가지 못했다. 까짓 늑대 열 마리쯤이야 대수롭지 않았으나 어깨에 상처를 입어 늑대와 싸울 수 없다. 봄이었으므로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곪았다. 늑대들은 집요하다. 한 번 노린 먹이는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늑대들은 점점 수효가 늘어나 서른 마리가 교대로 나무를 지켰다. 표범이 견디다 못해 멧돼지의 시체를 아래로 떨어뜨렸다. 먹이를 내준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늑대의 수가 워낙 많았다. 수십 마리의 늑대는 멧돼지를 다 뜯어먹고도 나무에서 떠나지 않았다. 표범마저 먹어야겠다는 집념이다. 결국 표범은 처참하게 죽었다. 상처가 곪아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사흘 만에 나무에서 떨어져 늑대 밥이 되었다. 주지 스님이 합장을 했다. 인과응보.
138. 노루 괴담
조선 말엽, 한양에서 북쪽 의정부 쪽으로 얼마간 가면 수락산 등 그리 높지 않은 야산들이 있다. 높이 500m쯤의 야산으로 산자락에는 마을도 있고 밭도 있었다. 산들은 잡목림이었으므로 멧돼지 노루 등 야생짐승들이 서식했다. 가끔 표범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야산들 중에 귀신 산이라고 불리는 산이 있었다. 주위의 높은 산들에 둘러싸여 그늘이 드리워져 있는데 예부터 귀신이 산다는 소문이 있어 마을 사람들은 물론이고 나무꾼이나 포수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귀신 산 중복에 초가가 한 채 있었다. 나무와 밥초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으나 꽤 큰 집이다.
5월 단오가 지난 어느 날 밤 그 집에 열 명이 넘는 남녀가 도착했다. 비단옷을 입은 중년 여인이 가마를 타고 나머지는 여인을 모시는 사람들이다. 집주인이 주위를 살피며 손님들을 안방으로 모셨다.
‘자네가 피리 영감인가?’
‘녜, 그렇습니다만 어디서 오신 분들입니까?’
‘황달인을 아는가?’
그러지 피리 영감이 경계심을 풀었다.
‘아, 그렇습니까. 말씀을 들었습니다.’
관아의 아전으로 보이는 그 사나이도 경계심을 풀었다.
‘마님, 안으로 드시지요.’
아직 서른이 넘지 않았을 여인은 하녀의 시중을 받으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그 산중에까지 가마를 타고 온 것으로 보아 예사 여인은 아니다.
‘귀하신 분이니 잘 모시도록 하시오.’
‘며칠 동안이나 유하실 것입니까?’
‘그야 모르지. 약효가 나타날 때까지 노루 피를 마셔야 하니까, 노루 피는 언제쯤 마실 수 있나?’
‘사나흘에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세 마리는 마셔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름쯤이면 되겠군.’
피리 영감이 잠시 생각했다. 보름 안에 노루 세 마리를 잡아야 한다.
‘노루란 워낙 조심스럽고 빠른 짐승이라 장담은 못 하겠습니다만 그렇게 되도록 힘쓰겠습니다.’
아전이 머리를 끄덕이고 묵직한 돈주머니를 건넸다.
귀신 산에 있는 노루 사냥집에서 좀 떨어진 숲속에는 반쯤 땅속에 묻혀있는 움막이 있는데 열 평이나 되었으나 외부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웠으나 다섯 명의 사냥꾼들이 기거했다. 세 명은 활잡이, 한 명은 창꾼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짐승의 피를 뽑고 껍질을 벗기는 백정이다.
‘어험, 모두 일어나시오.’
피리 영감이 동이 트지 않은 새벽에 그들을 깨웠다.
‘보름 안에 노루 세 마리를 잡아야 한다구요? 가회동 마님에게 드릴 두 마리까지 다섯 마리로구만.’
활잡이 한서방이 말하자 백정 정서방이 대꾸했다.
‘아니지, 수원의 윤대감댁 작은 마님에게 드릴 두 마리를 합치면 일곱 마리지.’
‘그쯤은 잡을 수 있겠지?’
피리 영감의 말끝에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야, 영감님에게 달렸지요. 영감님의 피리에 유혹되어 오기만 하면 잡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알았어, 우선 오늘 한 마리 잡아야겠어. 궁중에서 오신 높은 부인에게 드려야 해. 그런데 담배 좀 작작 피워. 독한 담배 냄새에 오던 노루가 달아나버려. 지금부터는 술도 안 되고 잡담도 하지 마!’
사냥꾼들이 사냥터로 나갔다. 멀지 않았다. 움막에서 십 리도 떨어지지 않은 산기슭이다. 모두들 목을 잡았다. 활잡이는 모두 내노라 하는 명사수다. 노루쯤이야 서른 발 안에서는 놓치지 않았다. 강궁이었으므로 단 한 발에 쓰러졌다. 창꾼은 활잡이를 보호하는 일을 맡았다. 거친 멧돼지와 표범들 맹수로부터 경비를 했다. 화승총은 사용하지 않았다. 화약 냄새가 나고 총소리를 들으면 사냥감이 멀리 달아나버린다. 해가 올랐으나 귀신 산은 조용하고 안개가 흐르고 있다. 사냥꾼들은 죽은 듯이 풀밭에 엎드려 있다. 어디서 끼억끼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애처러운 음조다. 어미를 부르는 노루 새끼의 소리다.
그 무렵의 노루 새끼는 초여름에 태어났으며 보통 한배에서 한두 마리가 태어나는데 약육강식의 산림에서는 태어나자마자 제힘으로 살아야 한다. 노루는 사슴과 짐승이며 어깨높이 70cm, 몸무게는 20kg도 안 된다. 노루는 외적과 싸울 무기도 힘도 없었고 오직 빠른 주력으로 삼십육계 줄행랑만이 목숨을 지키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래서 노루는 새끼를 숲속에 감추어두고 나들이를 했는데 새끼가 배가 고프면 끼억끼억! 운다. 가냘픈 소리였으나 어미는 10리 밖에서도 듣는다. 그런데 그 끼억 소리는 새기의 소리가 아니라 피리 영감이 부는 피리 소리다. 손가락 굵기의 대나무로 만든 피리 소리는 어미조차도 새끼 소리와 구분하지 못했다. 영감의 피리가 얼마나 정교했던지 피리 소리를 듣고 어미가 코앞까지 접근하면 활잡이가 노루의 뒷다리나 엉덩이에 화살을 명중시켰다. 노루의 심장이나 머리를 겨냥하지 않는 건 노루를 살려서 가지고 가 살아있는 신선한 피를 마시기 위해서다. 노루 피는 부녀자에게 효험이 있다. 노루가 음지의 짐승이기 때문이다. 허약한 여자가 건강해지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는다. 피뿐만 아니라 수컷의 뿔도 녹용 같은 효용이 있고 뼈도 골다공증 등에 이롭다. 그래서 부녀자들이 노루 피를 마시고 노루 곰탕을 먹으려고 피리 영감네에게 왔다. 궁중 여인, 양반집 규수들, 부잣집 마나님들이 은밀하게 드나들었다. 전날 아전이 안내한 젊은 여인은 왕실의 소실이다.
나흘 전에 고양군의 아전 박수문은 은밀한 지시를 받았다. 극비리에 왕실의 부인을 노루 사냥집으로 안내하라는 지시다. 그런 일은 극비리에 해야 한다. 본당 마님이 알면 집안이 뒤집어진다. 다른 소실들도 가만있지 않는다. 노루 피를 마신 여인이 위험해진다. 목숨을 잃기도 한다. 박수문이 안내한 여인에게는 자객이 붙을 수도 있다. 그래서 아전 박수문은 피리 영감을 잘 아는 황달인에게 부탁했다. 황달인은 웅담, 녹용을 사고파는 장사꾼이며 피리 영감과는 비밀 거래를 한다.
첫날 노루사냥은 실패했다. 피리 영감이 사냥터에 노루가 있는 걸 파악하고 피리를 불었으나 노루가 오지 않았다. 피리 영감이 주변 숲을 살폈다. 핏자국이 있었다. 노루 새끼 피다. 늑대의 소행이다.
‘이런 젠장!’
피리 영감이 혀를 찼다.
‘앞으로 늑대를 보면 무조건 쏘아! 그놈들이 설치면 노루사냥을 못 해!’
다음날 사냥터를 옮겨가 노루 한 마리를 잡았다. 모닥불을 피우고 삼엄한 경계 아래 사냥꾼들이 노루를 운반했다. 노루는 뒷다리에 화살 두 대를 맞았으나 살아있었다. 백정이 목을 따 바가지에 피를 받아 여인에게 바쳤다. 시뻘건 피에서는 하얀 증기가 오르고 비린내가 났으나 여인은 피를 마시고 사내아이를 낳아야 한다. 본당 마님을 몰아내고 시끄럽게 구는 첩실들을 꼼짝 못 하게 눌러야 한다.
‘마저 마시세요.’
시녀의 충고대로 여인은 바가지에 남은 피마저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마셨다.
나머지 노루 피는 별당의 가회동 마님이 마셨다. 서른대여섯쯤 되어 보이는 여인은 겉으로는 노루 피를 마시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윤기가 흐르고 식욕도 왕성하다. 아이가 없었기 때문에 노루 피를 마시려고 했으나 아이가 없는 이유는 여인 탓이 아니라 20리쯤 떨어진 곳의 멧돼지 사냥터에 머물고 있는 남편에게 있다. 남편은 멧돼지 피를 마셨다. 음의 짐승 노루는 여인에게 효험이 있고 양의 짐승 멧돼지 피는 남자가 마셨다. 사냥터에서는 멧돼지를 쫓았다. 멧돼지와 노루는 조선에서 가장 흔한 짐승이다. 서식지도 같았다. 멧돼지 사냥꾼과 노루 사냥꾼들이 만났다. 멧돼지 사냥꾼들이 화를 냈다.
‘이게 무슨 짓들이야, 빨리 돌아가!’
멧돼지 사냥꾼들이 먼저 멧돼지를 쫓고 있었으므로 사냥터의 불문율에 따라 사냥을 방해하면 안 된다. 우락부락한 멧돼지 사냥꾼을 노루 사냥꾼 두목이 달랬다. 돈을 줄 테니 양보를 해달라고 했다.
‘안 돼, 이 멧돼지는 160kg이나 되는 놈이야. 우리는 어제부터 놈을 쫓았어.’
‘섭섭찮게 드릴 테니 양보해주시오.’
‘돈, 돈 하는데 얼마를 주겠다는 거요?’
‘얼마나 받을 생각이요?’
멧돼지 사냥꾼 두목이 잠시 의논을 하더니 말했다.
‘서른 냥을 주시오.’
터무니없는 요구다. 서른 냥이면 멧돼지 두 마리를 살 수 있다. 상대가 깎을 줄 알고 미리 높여 부른 것인데 노루 사냥꾼 두목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정말로 은화 서른 냥을 내놓았다. 노루 사냥꾼이 선뜻 흥정에 응한 것도, 사냥을 하면서 그런 대금을 가지고 다니는 곳도 이상했으나 아무튼 흥정은 이루어지고 멧돼지 사냥꾼들이 물러섰다.
‘됐어, 이젠 이 발자국을 추적해. 놓치면 안 돼. 아주 조심해야 돼.’
그대 사냥꾼들이 추적하는 건 예사 노루가 아니다. 그렇다면 보노루인가? 고라니라고 불리우는 보노루는 노루보다 발자국이 작다. 수컷에게도 뿔이 없고 송곳니가 주둥이 밖으로 삐어져나와 있다. 흑갈색이어서 황갈색인 노루와 구분된다. 고라니의 피도 노루에 비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 사냥꾼들이 쫓는 발자국은 고라니 발자국보다도 훨씬 작았다. 사향노루 발자국이다. 사냥꾼 두목은 사향노루라는 걸 알고 있었다. 보노루라면 사흘 동안이나 집요하게 추적하지 않는다. 보노루는 노루보다 값아 더 싸다. 사향노루는 값이 노루의 몇십 배다. 매우 귀한 노루다. 사향노루도 고라니처럼 송곳니가 주둥이 밖으로 삐져나왔으나 몸통은 짙은 갈색에 작고 흰 반점이 있다. 사향 노루 피는 노루 피처럼 효험이 없다. 고약한 냄새가 나서 마실 수 없다. 고기도 질기고 맛이 없어 먹지 않는다. 그런데 사향노루의 가치는 바로 그 고약한 냄새다. 아랫배에서 고린내가 나는데 냄새를 맡으면 정신이 어지럽다. 사냥꾼들은 사향노루 배꼽 주변에 사향주머니가 있다고 하는데 실은 생식기 주변에 냄새가 나는 액체가 말라붙어 있어 사향노루 아랫배 전체가 약으로 쓰였다. 신비한 약이다. 실신한 사람을 아주 적은 약으로 빈사 상태의 환자를 소생시킨다. 사향은 그렇게 응급약으로 쓰였으나 다른 용도에도 사용했다. 흥분제 최음제다. 양기가 부족한 남자들에게 사용한다. 뭇 여인을 거느린 궁중의 남자들에게 사용된다.
그래서 궁중의 여인들은 어마어마한 돈을 내고 사향을 구했다. 사향을 자기 몸의 은밀한 곳에 바르거나 이부자리에 발라 양기가 부족한 남자들을 유혹했다. 사향노루의 신비한 효험이 궁중 여인들 사이에 전해지고 그 효험으로 궁중의 역사가 바뀌는 일도 있다. 노루 피로 몸을 풍만하게 만들고 사향으로 남자를 유혹하면 아들을 낳았다.
사향노루를 쫓고 있었던 사냥꾼들은 특명을 받았다. 궁중에서 나온 여인이 노루 피를 마시면서 사향노루를 구하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사향노루는 부르는 게 값이다. 그래서 사냥꾼들은 피리 영감의 지시로 사흘 동안이나 사향노루를 쫓고 있었으나 발자국을 찾지 못했다. 사향노루는 일반 노루와 달리 높은 산에 산다. 인적이나 외적이 없는 높은 산에서 산다. 일부일처제고 부부가 새끼들과 함께 산다. 사향노루는 매우 조심스럽게 도망을 가고 있었으나 냄새만은 없앨 수 없다. 추적 사흘째 사냥꾼 두목이 흥분했다. 암컷 발자국이다. 암컷 발자국에는 젖이 떨어져 있다. 새끼를 키우고 있다. 일행과 떨어져 있는 피리 영감에게 사람을 보냈다. 사향노루는 활로 잡기 어렵기 때문에 피리로 유인하여 잡을 생각이다. 새끼가 있으면 피리로 유인할 수 있다.
피리 영감이 네 명의 사냥꾼들을 목에 배치했다. 좀 불안한 표정이다. 영감은 사향노루를 피리로 유인하는 데는 자신이 있었으나 이틀 전 사냥을 나갈 때 아전이 한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조심하게나, 우리를 미행하는 자가 있는 것 같아.’
궁중 마님을 경호하는 무사가 자기들을 뒤따라오는 사람을 발견했다. 전문 경호인 무사는 마님을 그림자처럼 경호하는데 수상한 자가 그림자처럼 따라오는 걸 발견했다. 그자는 자기가 발각되었다는 걸 알고 슬그머니 사라졌는데 경호무사가 발자국을 확인해보니 고무바닥 신을 신었다. 그렇다면 자객이다. 자객은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값비싼 고무바닥 신을 신었다. 본디 궁중은 음모의 소굴이며 정적을 죽이려는 자객들이 암약했고 그걸 막기 위해 경호원들이 있었다. 그 마님에게도 정적이 있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정실부인, 정실부인 곁에 붙어 측실 마님을 감시하는 다른 여인도 있다. 2중 3중으로 얽혀있다. 측실이 사내아이를 낳으면 왕족 가문의 승계자가 된다. 측실이 경계가 엄중한 궁중을 떠나 산중에 들어왔으므로 자객에게는 좋은 기회다. 피리 영감은 불안했으나 사향노루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사향노루는 몇 년에 한 번 만날 수 있을까 말까 한 귀중한 사냥감이다.
‘이봐, 수상한 사람을 만나면 주저하지 말고 쏘아죽여!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사향노루사냥이 사람사냥이 될지도 모르나 영감은 풀숲에 잠복했다. 사향노루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잡아야 한다. 그놈만 잡으면 한양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사들여 젊은 첩과 함께 살 수 있다. 위험한 노루사냥 따위는 안 해도 된다. 밤이 깊어갔다. 곧 새벽이 된다. 노루는 새끼를 풀숲에 숨겨두고 새벽에 돌아온다. 밤새 충분히 먹이를 먹고 새끼들에게 돌아온다. 짙은 어둠이 물러가고 있을 때 피리 영감이 피리를 불기 시작했다. 끊어질 듯 말 듯 한 소리였으나 노루는 10리 밖에서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미를 찾는 새끼의 소리다. 피리 소리는 사람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으나 가까이에서는 들렸다. 만약 자객이 가까이 있다면 피리소리가 자객을 불러들일 것이다.
피리 사냥이 노루만 불러들이는 게 아니라 노루의 천적을 부르기도 한다. 범, 표범과 늑대들이다. 표범은 노루가 새끼를 풀밭에 숨겨두고 멀리 나갔다가 새끼의 울음소리를 듣고 찾아오는 걸 알고 풀밭에 숨어있다가 새끼를 찾아오는 어미를 덮친다. 피리 영감은 5년 전에 그런 표범에게 당했다. 마침 가까이에 있던 사냥꾼이 단검으로 표범을 찌르자 표범이 도망을 쳐서 목숨을 건졌다. 그때 표범이 눈을 공격해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영감은 그 사냥 이후 권총을 구입했다. 왕족으로부터 비싼 값으로 사들였다.
피리 영감이 권총을 쥐고 있었다. 자객이든 표범이든 보이기만 하면 죽일 생각이다. 새벽에 소리가 들렸다. 열 발 가까이까지 노루를 유인하기 위해 계속 피리를 불었다. 열 발짝, 활을 쏠 거리가 되었는데도 영감이 신호를 하지 않았다. 영감은 실망했다. 냄새가 없다. 발자국 소리는 분명했으나 사향노루 특유의 고린내가 없다. 사향노루가 수컷이 아니라 암컷이라는 뜻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기대를 하며 계속 피리를 불었으나 날이 밝을 때까지도 수컷은 나타나지 않았다. 암컷은 보호해야 한다. 영감은 자리를 떴으나 다음날 다시 와서 조사를 했다. 암컷이 젖을 먹인 흔적이 있다. 그리고 멀리 떨어진 곳에 수컷의 발자국이 있었다. 수컷이 새끼들에게 다가오지 않은 이유가 밝혀졌다. 주변에 늑대 발자국이 있었다. 사향노루 수컷은 냄새가 나는 자기가 새끼들에게 가면 암컷과 새끼가 위험하다는 걸 알고 멀리 떨어져서 늑대와 외적을 살피면서 가족을 지켰다. 영감은 사냥의 방해가 되는 늑대를 죽이든가 멀리 쫓아버리라고 지시를 하고 자기는 다른 사냥터로 갔다. 노루 사냥집에 많은 여인들이 노루 피를 기다리고 있다. 영감이 다음날 새벽에 노루를 잡았다. 피는 궁중 여인이 맨 먼저 마셨다. 여인은 산에 온지 1주일이 채 되지 않았으나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다. 몸이 풍만해지고 피부가 윤택해졌다. 여인의 몸에 물이 오르고 있었다. 여인이 아전을 불러 지시를 했다.
‘사향노루는 어떻게 되었소?’
‘좀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언제쯤이요?‘
‘사나흘쯤입니다.’
‘사향노루는 효험이 있소?’
‘그럼요. 환갑이 넘은 노인도 그 냄새를 맡으면 생기가 돌아옵니다. 잠자리를 한 여인이 견디지 못합니다.’
곁에서 그 말을 들은 여인이 가느다랗게 웃었다. 요기가 느껴지는 웃음이다. 그런데 그날 밤 무서운 일이 벌어졌다. 한밤중에, 여인을 경호하던 칼잡이가 옆방의 아전을 깨웠다. 노루 사냥터에서 얼마 안 덜어진 산마루에 피가 묻은 거적에 덮인 시신이 있었다. 가슴팍을 칼에 찔렸다.
‘자객입니다. 마님을 노렸습니다.’
자객은 산마루를 넘어오다가 풀밭에 잠복한 칼잡이에게 당했다. 시퍼런 비수를 품고 있는 걸로 봐서 자객임은 틀림없으나 신분증은 물론이고 아무 증거도 없다.
자객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들은 남의 목숨을 노렸으나 그 자신도 늘 죽음 옆에 있다. 그래서 일체의 신분 노출을 하지 않았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의 지시를 받아 누구를 죽였는지는 영원한 비밀로 남아야 한다. 경호하는 칼잡이도 자객을 찾아내서 죽이는 일을 맡았고 역시 비밀 속에서 움직였다. 음지의 사람들이다. 낮에는 숨고 밤에는 활동했다. 영감이 다시 사향노루 사냥터로 돌아왔다. 피리 영감을 돕는 사냥꾼들이 늑대 세 마리를 잡았다. 늑대들은 어미가 풀숲에 숨겨놓은 멧돼지와 노루 새끼를 노렸다. 늑대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활이 무엇인지를 알고 늘 사정거리를 유지한다. 대여섯 마리의 늑대들이 사냥터를 돌아다녔다. 사냥꾼들을 곁눈질하며 사정거리 밖에서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 사냥꾼들은 예사 사냥꾼이 아니다. 50m나 되는 거리에서 수박을 맞추는 활꾼이다. 사냥꾼들도 주변을 맴도는 늑대를 곁눈질하며 모여 앉아서 잡담을 했다. 잡담을 하는 척 하고있었다. 최대한 늑대를 끌어들여 놓고 일제히 사격을 했다. 세 마리가 쓰러지고 나머지는 도망을 쳤는데 추적을 해서 바위산의 늑대소굴을 덮쳐 새끼 네 마리를 비롯하여 전멸시켰다. 영감이 다시 사향노루사냥을 시작했다. 다음날 새벽, 먹이를 찾으러나갔던 박쥐들이 굴로 돌아올 때 영감이 새끼노루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굶주림에 지친 애절한 호소다. 피리를 불 필요가 없다. 이슬에 젖은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냄새가 났다. 수컷이 풍기는 고린내다. 어둠이 걷히고 아침 안개가 흐르고 있을 때 어미가 앞장서고 애비가 따라가는 두 마리의 노루가 발견되었다.
피리 영감이 하얀 횟가루 칠을 한 오른손바닥을 들어 올렸다. 잠복한 사냥꾼들에게 쏘라는 지시다. 새끼 울음소리에 정신이 팔려 주변 정탐을 게을리했던 노루가 이상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었다. 화살이 일제히 날아갔다. 수컷이 목과 대가리에 살을 맞고 쓰러졌다. 놀란 암컷이 폴짝! 뛰어올랐다. 암컷은 살려두어야 한다. 몇 년 후 새끼를 낳으면 기다려 수컷을 잡는다. 영감이 기름종이로 수컷을 몇 겹으로 싼 다음 보자기로 쌌다. 냄새가 날아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귀중하게 다뤘다. 사향노루는 처리하기 어렵다. 숙련된 사냥꾼이나 한약상만 처리할 수 있다. 또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상해버렸다. 영감은 즉시 사냥집으로 달려갔다.
‘빨리 궁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처리와 사용 방법을 알려주었다. 여인의 비밀스런 곳, 겨드랑이에 바르고 이부자리에도 바른다. 방문을 닫고 상대 남자 외에는 출입도 금해야 한다. 몇 년 전에 여인의 시중을 드는 고자가 냄새에 홀려 모시는 여인에게 덤벼드는 기상천외한 불상사가 있었다. 사향을 궁중으로 반입하는 일도 어렵고 위험하다. 사향을 소지하거나 반입하는 것이 금지되어있다. 위반하면 엄한 처벌을 받거나 처형된다.
피리 영감이 마님에게 빨리 떠나라고 했으나 마님이 노루 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몸에 열이 난다고 다음 날 아침에 떠나겠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마님은 그날 밤 경호인 칼잡이가 안내하는 비밀스러운 곳에 갔다. 사냥꾼의 움집이다. 한 사람이 드러누우면 꽉 차는 움집이다.
밤 짐승들이 어둠 속을 돌아다니는 밤, 마님이 움집에 혼자 누워있을 때 칼잡이가 총각을 데리고 왔다.
‘들어가!’
칼잡이는 총각을 움집으로 들여 민 다음 숲으로 사라졌다. 움집에서는 강력한 냄새가 났다. 남자를 기다리는 여인의 몸냄새다. 다섯 마리의 노루 피를 마셔서 터질 듯 물이 오른 여인의 냄새다. 여인이 남자의 손을 끌어당겼다. 총각은 가느다랗게 떨고 있었다. 총각은 왜 무엇을 하러 여기에 온 줄을 몰랐다. 그는 화전민 마을에 사는 총각이다. 부모가 없으며 마을에서 좀 떨어진 오두막에서 혼자 살았는데 며칠 전 관아에서 나온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생전 처음 보는 은화 몇 개를 주면서 자기 말을 들으면 그런 은화를 더 주겠다고 했다. 그만한 돈이면 큰 집도 사고 장가도 갈 수 있다. 그래서 총각은 남자가 시키는 대로 움막집으로 끌려왔다. 여인의 몸은 점점 더 뜨거워졌으나 총각은 아무것도 할 줄 몰랐다. 여인이 팔로 총각의 상체를 안고 다리로 하체를 감았다. 총각은 그제야 여인이 실오라기도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몸이라는 알았다. 여인이 총각의 손을 끌어당겨 자기의 젖무덤에 올려놓았다. 여인의 젖무덤이 파도처럼 울렁거렸다. 총각의 손을 쥔 여인의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갔다. 그제야 총각은 자기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아챘다. 한참 나이 총각의 몸은 쇠붙이처럼 탄탄했다. 앗! 하는 순간, 총각의 몸이 여인에게 닿자마자 사정을 해버렸다. 여인이 실망했다. 여인의 남자는 50이 못 되었으나 뭇 여인을 상대하였으므로 남자구실을 하지 못했다. 시달리기만 했다. 그러나 움막에 들어온 총각은 새처럼 빨랐다.
‘안 돼!’
여인이 몸 위에서 내려가려는 총각의 허리를 잡았다.
여인이 실망했으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뱀처럼 총각의 몸을 감고 있었던 여인은 총각의 몸이 되살아나는 걸 느꼈다. 뜨거운 몸이 식기도 전에 사정을 해버렸던 총각은 사정이 끝나자 말자 다시 일어섰다. 총각은 여인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여인이 신음했다. 간헐적으로 신음을 하던 여인이 고함을 질렀다. 여인은 그래도 총각을 놓아주지 않았다. 아직 밤이 새지 않았다. 확실하게 수태를 해야 한다. 왕족의 피가 흐르든 말든 아이를 낳으면 된다. 사향으로 늙은 영감을 유혹하여 하는 시늉만 하고 아이를 낳으면 왕족이라고 할 수 있다. 영감이 먼저 자기 아이를 주장할 것이다. 사람들은 코나 이마가 닮았다고 할 것이다. 날이 밝아왔다. 총각이 여인의 얼굴을 보면 안 된다. 여인은 날이 새기 전에 총각을 돌려보내고 칼잡이를 따라 사냥집으로 돌아왔다. 사냥집은 깊은 잠에 빠져 사람들은 마님의 외박을 모른다. 마님은 아침에 사냥집을 떠났다. 그러나 사냥집의 음모와 살육은 끝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이틀 후에 사냥집에서 10리쯤 덜어진 화전민 마을에 늑대들이 나타나 젊은 총각을 잡아먹었다. 마을에서 좀 떨어진 움막에 사는 부모도 없는 총각이 나무를 하러 나갔다가 늑대들에게 당했다. 흔히 있는 일이다. 총각의 시신은 늑대굴 가까운 바위틈에서 발견되었다. 피리 영감도 그렇게 알았다. 좀 의심스러운 점이 있었으나 그렇게 믿었다. 마님이 약속한 금화를 받았다. 마님은 번쩍번쩍한 금화가 묵직한 비단 주머니를 주었다.
피리 영감은 흥분했다. 주머니에는 생전 만져볼 수 없는 누런빛 금화가 열여덟 개나 들어있다. 그 돈이면 이제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편하게 살 수 있다. 몇 년 전에 알게 된 젊고 예쁜 계집도 집안으로 불러들일 수 있다. 별당을 한 채 지어 살게 하면 늙은 마누라도 잔소리는 하지 않을 것이다. 영감은 3, 4일 후에 산을 내려가 한양으로 갈 생각이다. 그러나 그 동안이 불안하다. 금화가 자기에게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안 된다. 산중에서 약육강식의 법칙은 짐승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영감이 활잡이 정서방 형제를 자기 옆방에서 기거하게 했다. 형제에게만 자기에게 돈이 있다는 걸 얘기하고 경호를 시켰다. 영감은 금화 주머니를 이불 안에서 품고 잤다. 권총을 품속에 넣고 잤다. 옆방에서 술을 마시던 정씨 형제는 잠이 든 것 같았다. 자정에 잠이 들었으나 곧 깨어났다. 소리가 들렸다. 영감의 귀는 짐승들처럼 예민했다. 영감의 귀는 피리 소리에 이끌려오는 노루 발자국 소리도 들었다. 발자국 소리다. 아주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옆방에서 자고 있는 정서방 형제를 깨우려다가 더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판단하여 그만두었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졌다. 바로 문 밖이다. 권총을 들어올렸다. 방문이 열리는 순간 총을 쏠 것이다. 방문 고리를 걸었으므로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판단이다. 상대는 암살자다. 암살자가 문 밖에서 오줌을 누었다. 오줌으로 방문 창호지를 적셔 문고리를 열었다. 오줌에 젖은 방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찬바람으로 문이 열리는 걸 알아챈 영감이 권총을 들었으나 총을 발사할 틈도 없이 암살자의 칼이 영감의 심장에 박혔다. 치명상이었으나 고함을 지르자 옆방의 정서방 형제가 뛰어나왔다. 그러나 이미 암살자는 금화 주머니를 들고 튀어버렸다.
‘잡아, 저놈들을 꼭 잡아! 그리고 금화를 찾아.’
영감이 마지막으로 중얼거리고는 이내 숨이 끊어졌다. 정서방 형제가 영감을 끌어안았으나 영감은 문밖을 손가락질하며 숨이 넘어갔다. 피리 영감을 사냥집에 맡기고 형제는 암살자를 추적했다. 암살자의 거동은 짐승처럼 빨랐다. 높지 않은 산이었으므로 쉽게 한양으로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충 방향을 잡고 어둠을 뚫고 나갔다, 그는 궁중 마님을 경호하였으므로 산세를 대충 짐작했다. 그는 마님의 지시로 마님과 하룻밤을 지낸 총각을 죽여 늑대 굴 앞에 던져놓았다. 미행하는 자는 뒤에서 덮쳐 칼로 죽였다. 거기까지는 마님의 지시다. 총각을 죽이고 은화를 뺏은 그는 피리 영감의 금화를 욕심냈다. 그 돈이면 어디서든지 편하게 살 수 있다. 은화에 이어 금화까지 빼앗은 칼잡이는 자기가 성공했다고 생각했으나 그는 칼은 잘 썼으나 산을 모른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산에서 내려갈 수가 없다. 정서방 형제의 신속한 연락에 의해 열서너 명의 활잡이들이 산을 포위했다. 마치 짐승을 사냥하는 몰이 방법으로 요소요소를 지켰다. 칼잡이는 그 포위망을 뚫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으나 산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오히려 산 위로 도망을 쳤다. 날이 밝자 활꾼이 칼잡이를 발견했다. 밤새 뛰어다닌 칼잡이는 기진맥진해서 기어가고 있었다. 수십 개의 화살이 날아갔다. 칼잡이는 금화 주머니를 꽉! 쥔 채 죽었다.
마님이 사냥집에 머무르는 동안 네 사람이 죽었다. 마님을 뒤따르던 암살자가 마님을 경호하는 칼잡이에게 죽었다. 칼잡이는 마님과 동침한 화전민 마을의 총각을 죽였다. 입을 막았다. 은화를 탈취했다. 여기까지는 마님의 지시다. 칼잡이는 피리 영감을 죽이고 금화를 빼앗았다. 그래서 세 사람이 죽었다. 네 번째는 자기 자신이다. 활꾼들에게 포위되어 처참하게 죽었다. 활꾼들이 피리 영감이 피살되었다는 일을 관아에 고발했다. 양주 관아에서 포리들이 나와 조사를 했다. 칼잡이의 신원이 밝혀지고 그가 저지른 일도 밝혀졌다. 궁중에서 나온 마님은 궁중에 돌아가지 못했다. 마님은 친정에 머물렀다. 의금부에서 관리가 나왔다. 마님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영리한 여인이며 궁중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었다. 마님의 음모는 완벽했다. 칼잡이가 피리 영감을 죽이지만 않았더라면 마님의 음모는 감쪽같이 성사되었을 일이다. 왕실의 피를 타고난 대감은 사향노루의 향기로 정력을 되찾았을 것이고, 정력을 되찾지는 못해도 마님과 교접하는 시늉은 했을 것이다. 그러면 마님이 낳은 아이는 대감의 아이로 인정을 받고 어쩌면 대권 즉 왕권을 이어받을 수도 있다. 그러면 마님은 궁중을 휘어잡는다. 의금부에서 나온 관리는 마님을 구하지 못했다. 여인이 독을 마시고 자결했다. 왕족의 명예가 더렵혀질 염려가 있었으므로 수사는 거기쯤에서 끝났다. 여인은 친정에 갔다가 병을 얻어 죽었다.
139. 맹수들의 영지
1928년 7월, 아프리카 서남부 앙골라에 있는 모코산 남쪽 기슭에 높이가 10m쯤 되는 관망대가 설치되었다. 관망대는 영국 왕실박물관 소속 학자들이 설치했는데 그 밑에는 포르투갈의 관리들이 주둔하고 있는 야생동물 관리소가 있었다. 본디 그 일대는 바위산들과 반사막들이 퍼져 있었으며 원주민들이 농사도 지을 수 없는 불모지다. 그러나 남쪽 구앙고강이 흐르는 일부 사바나지역은 달랐다. 몇십만 평쯤 되는 사바나에는 땅에 습기가 있어 풀들이 무성했으며 드문드문 나무도 자랐다. 그곳에는 많은 야생동물들이 모여들었다. 영양과 얼룩말 등 대형 초식동물들이 떼를 지어 살고 그들을 노린 사자, 표범, 하이에나 등 육식동물들이 돌아다녔다. 잡식성인 비비 무리들도 나무에서 내려와 그 사바나의 일각을 차지했다. 그래서 영국의 여류학자 세실 여사는 그곳에 높은 전망대를 만들어 그들 동물을 관찰했다. 침팬지 등 유인원 전문 연구가 세실, 그의 조수 대학원생 인겔드양과 사진작가 파튼은 거의 하루종일 전망대에 올라가 있었다.
‘저 사람들은 밥도 먹지 않을 작정인가?’
저녁 식탁에서 기다리던 관리소장 루이스가 밥을 먹자고 소리를 쳤다.
‘사자들이 다가오고 있는데 비비들이 아직 남아있어요.’
금발의 인겔드양이 긴장했다. 아무래도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았다. 그곳에는 수컷 네 마리, 암컷 여덟 마리, 새끼 열 마리로 구성된 사자무리가 살고 있는데 그들은 평소에는 비비를 공격하지 않았다. 비비들이 사바나 북쪽에 있는 산림뿐만 아니라 사자들이 살고 있는 동쪽 초원에까지 들어와 살고있어도 사자는 비비를 덮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은 상황이 좀 달랐다. 날씨가 흐리고 무더웠다. 사자는 그런 날씨를 싫어했다. 더구나 그날은 원주민 소몰이꾼들이 소 떼를 몰고 사자의 영지를 지나갔다. 그럴 때는 사자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져 으르렁거렸다. 그까짓 소들이야 당장 찢어 죽일 수 있어도 긴 창을 쥐고 경호를 하는 원주민사냥꾼들이 마음에 걸렸다. 원주민들과 싸울 수는 없다. 그들의 동족들이 그리 멀지 않은 마을에 살고 있으며 싸움이 벌어지면 동족들이 벌떼처럼 덤벼들 것이다. 그래서 사자들은 다른 데서 화를 풀 염려가 있었다.
‘비비들도 쉽게 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관리소장 루이스는 비비들을 잘 알았다.
사자와 비비의 싸움은 그 결과가 뻔할 것 같았다. 덩치, 힘, 속력 어느 것을 봐도 아프리카의 사바나에서 사자와 싸워 이길 짐승은 없다. 강가 습지에 사는 물소나 사바나 북쪽 덤불 숲에 사는 코뿔소는 덩치가 크고 힘이 세지만 사자의 먹이에 불과하고, 가끔 나타나는 코끼리도 덩치 값을 하느라고 사자를 위협하기는 했으나 싸우고 안 싸우는 건 사자들에게 달렸다. 사자는 가끔 코끼리 새끼를 잡아먹었다. 흔히 하이에나가 사자의 경쟁자라고 알려져 어쩌다 하이에나가 겁 없이 사자들의 식사 판에 끼어들어 사자의 신경을 건드리기는 해도 그것도 사자들이 얼마나 참느냐에 달려있다. 인겔드양과 파튼은 참다못한 사자 두목 검은 갈기가 하이에나 두목을 쫓는 걸 목격했다. 수십 마리의 하이에나들이 사자들의 잔치판 바로 앞에 다가와 구걸이 아니라 위협을 하는 걸 참지 못한 검은 갈기가 하이에나를 덮쳤다. 하이에나는 검은 갈기가 추격하다가 지치면 돌아갈 줄 알았으나 검은 갈기는 하이에나 두목을 끝까지 추격했다. 하에나는 고가가 질겨서 잡아봤지 먹지도 못하기에 멀리 쫓아버리면 그만인데, 또 여러 마리에게 협공을 당하면 다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쫓아내는 걸로 그만인데, 그러나 그날은 소 떼를 모는 원주민과 신경전을 벌여 심기가 좋지 않았다. 검은 갈기는 하이에나 두목을 끝까지 추격하여 200kg이나 되는 무게로 눌러 깔아뭉갰다. 그리고 목덜미를 물어 흔들었다. 하이에나 두목은 목줄기가 찢겨 죽었으나 검은 갈기는 하이에나를 걸레로 만들었다. 화풀이다. 그래서 인겔드양은 비비들이 당할줄 알았다. 사실 하이에나가 사자를 괴롭히는 것 이상으로 비비들도 사자들의 신경을 건드렸다. 비비는 사자의 영지에 바짝 다가와 영토를 넓혔다. 비비는 풀밭에서 부드러운 풀을 골라 먹고 그 열매나 씨를 찾고 곤충을 먹었다. 그러나 비비는 잡식성이므로 동물도 먹었다. 야생동물 관리인 루이스는 비비들이 영양 새끼를 즐겨 잡아먹는다고 했다.
루이스는 그날 총을 들고 학자들의 뒤를 따라갔다. 학자들은 사자외 비비의 싸움을 관찰하려고 했는데 그건 위험하다. 동물들이 신경과민상태이기 때문에 싸움의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사자들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검은 갈기가 앞장서고 젊은 두 마리가 뒤를 따랐는데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우두머리가 앞장을 섰다는 게 싸움을 예고했다. 사자의 사회에서 우두머리가 하는 일은 외적을 물리치는 일이다. 먹이 사냥 등 일상적인 일은 모두 암컷들이 한다.
사자들이 천천히 비비들에게 다가갔다. 천천히 다가가는 것은 비비들에게 물러날 여유를 주려는 것이었는데 비비들이 물러나지 않았다. 비비무리의 우두머리인 폭군이 흰개미집에 올라가 사방을 살피고 있었고, 그 옆에 친위부대인 젊은 수컷 서너 마리가 붙어있었다. 비비 두목 폭군이 사자들을 발견했다. 사자 두목 검은 갈기와 시선이 마주쳤다. 폭군은 물러나지 않고 검은 갈기의 시선을 피하지도 않았다. 거리가 20~30m로 단축되어도 폭군은 사자들을 무시했다. 어쩌자는 것일까? 그만한 거리면 사자는 단숨에 비비들을 덮칠 수 있다. 출발부터 폭발적인 속력을 내는 사자는 1, 2초 이내에 비비들을 덮칠 수 있다. 그런데도 폭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비비는 나무에서 내려와 땅에서 활동하는 원숭이이므로 꽤 빨리 달릴 수 있었으나 사자에게 비할 속력은 못 된다. 폭군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폭군은 몸무게가 60Kg이나 나가는 큰 원숭이였고, 어깨에 근육이 불거지고 긴 갈기가 있다. 폭군은 다부지고 당당했다. 사자들을 보는 폭군의 태도는 상대를 위협하는 싸움꾼의 태도다. 덤빌 테면 덤비라는 시위다. 어이없다. 여류학자들은 무서운 참사를 예감했다. 도대체 무엇을 믿고 비비들이 저러는 것일까? 사자와 비비를 잘 아는 루이스는 여류학자들에게 비비들이 쉽게 사자들에게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사자들을 보는 폭군의 눈빛에는 오만과 경멸이 섞여있었다.라는 경멸 어린 눈빛이었다. ‘까짓 무식한 놈들이 뭣을 하겠다는 것인가?’ 어께에 잔뜩 힘을 주고 있는 태도에는 호기가 있었다.
‘내가 누군데 …’
라는 호기가 폭군의 태도에 나타나 있었다.
검은 갈기가 으르렁거렸다.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귀가 납작하게 붙었고, 꼬리가 뻣뻣하게 일어섰다. 드디어 뒷발로 땅을 찼다. 공격 개시다. 그때 폭군이 아가리를 벌리고 고함을 질렀다. 폭군이 아가리를 벌리면 어금니가 들어난다. 길이가 6cm나 되는 무시무시한 이빨이며 그 이빨에 찔리면 어느 동물이라도 치명상이다. 폭군의 그런 반항을 보고 검은 갈기가 주춤했으나 그렇다고 공격을 중지할 검은 갈기가 아니다. 검은 갈기가 다시 도약을 했다. 폭군도 날카로운 고함을 질렀다. 그리고 폭군과 그 친위대가 뒷걸음질 쳤다. 비비들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후퇴했다. 폭군은 사자들과 사람들이 있는 곳의 중간거리를 가늠하며 반격을 하는 시늉을 했고, 그 광경에 사자들은 주춤거렸다. 빕들은 사자들이 주춤거리는 틈에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그것은 미리 계산된 작전이다. 영리한 비비 두목 폭군은 같은 영장류인 사람의 힘을 빌리려고 했다. 그놈은 사람들이 자기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같은 사람이라도 원주민은 비비들과 적대관계였으나 피부가 흰 사람들은 그동안의 관찰 결과 자기들에게 적대심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사자들이 공격을 중단했다. 도망가는 비비들을 따라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뛰어들 수는 없다. 검은 갈기는 몸을 돌렸다. 검은 갈기는 체면을 살리려는 듯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기들의 영지로 돌아갔다. 빕들도 날이 어두워지자 산림 안으로 돌아갔다. 본디 비비들은 그곳에서 10리쯤 떨어진 바위산에 영지가 있었으나 바위산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위산과 사바나 사이에 있는 잡목림으로 들어갔다. 잡목림에는 키가 5, 6m쯤 되는 나무들이 드문드문 서 있었는데 비비들은 나무 위로 올라갔다. 바위산까지 갈 것 없이 나무 위에서 밤을 지새고 날이 밝으면 다시 사바나를 점령할 생각이었다. 빕들은 산림과 사바나 일부까지 자기들의 영지로 간주했다. 빕들은 모험을 했다. 원숭이 종류인 비비가 나무에서 내려와 초원에서 살겠다는 자체가 모험이었다. 그 건 같은 조상을 갖고 있는 인간들이 오래전에 시도했던 진화의 과정이었는데 비비가 과연 인간 다음으로 그 과정을 밟을 수 있을지? 바위산으로 돌아가지 않고 사바나와 산림의 중간지점에서 밤을 새우겠다는 작전도 위험했다. 비비는 인간처럼 밤눈이 어두웠으나 사바나에는 밤에만 사냥을 하는 밤 짐승들이 있다.
표범들이 돌아다녔다. 표범은 사자처럼 무리 지어 사는 고양이들이 아니기 때문에 사자를 피해 돌아다녔으나 비비들에게는 그게 더 위험하다. 본디 표범과 비비는 원수지간이다. 표범은 비비를 먹이로 알고 곧잘 습격했다. 예민한 눈과 코를 갖고 있는 표범은 비비들을 기습했고, 방심한 비비들이 잡아먹혔다. 그러나 표범들이 함부로 덤비다가는 역습을 당하기도 했다. 여류학자들은 며칠 전에 표범과 비비들의 피비린 내나는 싸움을 목격했다. 아침이었는데 몇몇 비비들이 사바나에 나왔다. 무리의 선발대인데 우두머리 폭군이 주위를 감시했다. 비비무리는 20m 쯤 떨어진 풀밭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폭군과 젊은 수컷들은 나무 위에 올라가 있었으나 사바나의 나무는 키가 크지 않아 지상에서 불과 4m쯤 되는 높이다. 그곳은 감시를 하는 전망대는 되었으나 외적을 피할 수 있는 안전지대는 되지 못했다. 그 때 표범 한 마리가 다가왔다. 밤사냥에 실패한 표범이 먹잇감을 찾고 있었다. 표범은 긴 꼬리를 늘어뜨리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으나 그 의도는 분명했다. 표범은 나무를 잘 탄다. 비비들이 올라간 나무쯤이야 쉽게 올라간다. 폭군이 이빨을 드러내고 표범에게 경고했다. 물러나지 않으면 찢어 죽이겠다는 경고였는데 표범을 그걸 무시했다. 그것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비비의 새끼들이 놀고 있었다. 표범이 비비들이 올라가 있는 나무 밑을 지나갔다. 나무 밑에 가면 비비들이 더 높은 나뭇가지로 올라가 피할 줄 알았으나 그것은 비비를 너무 경시한 처사였다. 비비들 가운데 두목 폭군이 있다는 걸 망각했다. 표범이 나무 밑에 다다르자 포군은 주저하지 않고 나무에서 뛰어내려 표범의 등에 올라탔다. 표범이 당황했다. 설마 원숭이가 선제공격을 할 줄 몰랐다. 원숭이라고 하지만 폭군은 몸무게가 60kg이나 되었으며 폭군은 나무에서 뛰어내린 중력을 최고로 이용하여 표범을 덮쳤다. 표범이 고양이족들의 순발력으로 일어났으나 어느새 폭군이 그 목줄을 물고 늘어졌다. 표범은 폭군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벌써 목에서 피가 솟았다. 단검과 같은 폭군의 이빨이 표범의 동맥을 절단했다.
표범은 힘으로 폭군을 끌고 도망치려고 했으나 나무 위에 있던 비비 두 마리가 동시에 뛰어내려 표범을 짓눌렀다. 젊은 비비들은 표범의 아랫배와 엉덩이를 물었다. 보드라운 표범의 살과 가죽이 찢겨 내장이 쏟아져나왔다. 불과 2, 3분 만에 표범이 치명상을 입었는데 비비들은 죽어가는 표범을 갈기갈기 찢었다. 학자들은 증오에 찬 비비들의 눈빛을 보고 몸서리를 쳤다.
비비들은 무서운 맹수다. 그러나 표범과 비비들의 싸움이 밤이 되면 달라졌다. 표범은 밤눈이 밝은 밤의 야수다. 여류학자들은 가끔 비비들이 자고 있는 나무 위에서 빛나는 파란 불빛을 보았다. 밤사냥을 하는 표범의 눈빛이다. 표범은 그런 밤사냥으로 자기 방어 능력이 없는 비비 새끼들을 잡아먹었다.
그러나 그런 희생에도 불구하고 비비들은 이미 점령한 산림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바위산이나 사바나에서 초원으로 진출한 그곳의 비비들은 다른 지역의 비비들과 달랐다. 학자들은 아프리카 서쪽 지역에 사는 비비들을 차그마 바분이라고 불렀다. 차그마 비비는 체중이 50kg이나 되었고, 70kg이 되는 거물도 있었다. 사바나에 진출한 그들은 나무 열매, 뿌리를 주식으로 먹었으나 다람쥐, 토끼 등 작은 동물과 곤충도 먹었다. 영양 새끼나 다른 원숭이도 사냥했다. 뱀이나 도마뱀도 사냥했다. 나무에서 내려와 살면서 뱀에게 물려 죽었으므로 본능적으로 사람이나 유인원은 뱀을 두려워했으나 차그마 비비는 가장 효과적으로 뱀을 사냥했다. 뱀은 독이 있다는 걸 알고 대가리와 이빨은 피했다. 꼬리를 잡고 빙빙 돌리다가 바위나 나무뿌리에 때려죽였다. 차그마 비비는 무리가 수백 마리이고 호전적이고 단결력이 강하다. 발달된 사회생활을 했다.
비비들은 사람처럼 복합적이고 광범위한 사회구조를 갖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어미와 새끼들로 구성된 가족이었는데 주변에 다른 가족들이 있고 서로 어울려 큰 무리를 만들었다. 서른 마리 정도의 무리에는 한 마리의 수컷이 지배한다. 중간보스들은 서너 마리의 암컷을 거느리고 지배자의 친위대가 된다. 그래서 사자, 표범들도 비비무리를 해치지 못했다. 사자나 표범은 단독생활을 하므로 비비무리들을 해치지 못했고 비비무리는 단결된 힘으로 영지를 늘려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무리 생활을 하는 육식동물이 있었다. 하닝에나다. 먹이를 찾아 수십 마리씩 떼지어 다니는 하이에나는 표범이 잡은 먹이를 빼앗는 약탈자다. 비비와 하이에나는 어떤 관계일까? 하에에나는 표범뿐만 아니라 사자의 먹이도 빼앗았다.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고 사자에게 덤벼들었다. 1 : 1로는 싸움이 되지 않았으나 하이에나무리가 덤벼들면 할 수 없이 애써 잡은 먹이를 빼앗겼다.
그 사바나에서 비비무리와 하이에나무리가 부딪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들은 싸움을 피했다. 쌍방 피해가 난다는 걸 알았다. 그러나 하이에나가 좋아하는 먹잇감인 영양들이 하이에나를 피해서 비비들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문제가 발생했다. 더구나 영양들은 비비가 자기들과 같은 초식동물인 줄 알지만 비비들은 가끔 어미 영양 몰래 영양 새끼들을 잡아먹었다. 비비들이 영양 새끼를 잡아먹으려고 하면 용의주도한 계획을 세웠다. 먼저 서너 마리가 어미 영양의 시선을 막아선다. 그리고는 전광석화처럼 새끼영양의 목을 물어 죽인다. 소리를 지르지 못하게 죽여 납치하여 산림 안으로 도망친다. 어리석은 영양 어미는 나중에야 새끼가 없어진 걸 알고 주변의 하이에나를 의심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하이에나는 비비들과 싸움을 하지 않는다. 집단싸움을 하면 쌍방피해가 나기 때문에 삼간다. 여류학자 세실과 조수 인겔드 양은 그런 비비와 하이에나의 관계에 관심이 컸다. 동물학 연구에 의미가 있다.
발정이 된 암컷 두목은 하루에 다섯 번이나 교미를 했다. 먼저 수컷 두목과 교미를 한 다음 다른 수컷과도 교미를 했다. 그리고 두 시간 후에 또 다른 수컷과 교미를 했다. 또 두 시간 후에는 다른 수컷과 교미를 했는데 아직 어린놈이라 서툴렀다. 그래서 암컷 두목은 신경질이 나서 엉덩이로 수컷의 몸을 마구 밀어부쳐 빨리하라고 독촉을 했다. 그래서 젊은 수컷과는 간신히 교미를 했으나 이제 상대가 없다. 무리 안에는 성숙한 수컷이 없다. 그래서 두목 수컷에게 다시 교미해달라고 했으나 두목 수컷은 응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젊은 암컷이 여두목의 눈을 피해 다른 수컷을 유혹했다. 그 수컷도 여두목과 교미를 했는데도 암컷의 유혹에 빠져 슬그머니 바위 뒤로 들어갔다. 여두목이 그걸 발견했다. 여두목이 고함을 지르면서 달려갔다. 질투에 미친 여두목이 암컷의 목덜미를 물었다. 암컷이 피를 흘리며 비명을 질렀으나 여두목은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암컷이 반죽음을 당해 죽어가는데 여두목은 그 수컷에게 다가가 교미를 요구했다. 그러나 수컷은 여두목의 유혹에 흥미가 없다. 그러자 여두목이 수컷의 성기를 입으로 빨았다. 인간을 비롯한 암컷은 수컷을 강간하지 못하는 걸로 알았으나 하이에나의 경우에는 암컷이 수컷을 강간했다. 여두목의 강요를 받고 겁에 질린 수컷은 혼신의 힘으로 교미를 했다. 연구를 하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참 보기 민망스러웠다. 대학원생인 인겔드 양은 더 이상 여두목이 하는 짓을 보기 민망해서 그 자리를 뜨려고 했는데 세실 빅사가 말했다.
‘여두목이 하는 짓은 일종의 가족 계획이야. 암컷들이 모두 교미를 하면 너무 많은 새끼들이 태어나기 때문에 여두목만 교미를 하는 거야.’
하이에나무리는 새끼가 너무 많이 태어나면 먹여 살리기 어렵다. 하이에는 한 배에 대여섯 마리의 새끼를 낳으므로 가족 계획을 하지 않으면 무리가 다 망한다.
여류학자들은 하이에나의 사회에서 암컷 우위 현상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같은 지역에 사는 비비들의 사회에서는 수컷들이 우위를 차지하여 온갖 횡포를 부리고 있었는데 하이에나의 사회에서는 왜 그런 반대 현상이 나타날까? 우선 비비의 사회에서는 수컷의 덩치가 암컷에 비해 월등히 크나 하이에나는 별 차이가 없다. 또 다른 이유는, 하이에나사회에서 여두목은 서너 마리의 젊은것들을 데리고 있고 그 젊은것들이 여두목 편을 들었다. 여두목의 새끼들이다. 새끼들은 여두목이 수컷과 싸우거나 암컷과 싸우면 집단적으로 여두목 편이 되어 싸웠다. 특히 암컷 새끼는 공주 대접을 받고 여두목이 죽으면 여왕의 자리를 세습했다. 그러나 수컷에게는 그런 친위대가 없다. 수컷 두목은 1년에 한 번쯤 출산하는 새끼들 중에서 자기 피를 구분할 수 없다. 여두목은 여러 마리의 수컷들과 교미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컷 두목은 여두목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여두목 소생의 젊은것들에게 밀려 별 볼 일 없는 위치에 있었다. 비비의 경우는 그 반대다. 비비는 무리 안의 모든 암컷을 독점하고 다른 수컷과는 교미를 하지 못했다. 그런 짓을 하다가는 찢겨 죽는다. 따라서 무리 안의 새끼는 모두 수컷 두목의 새끼다. 그래서 수컷 두목은 힘이 강한 새끼를 옆에 두고 세력을 유지했다.
사람의 경우는 어떤가? 외곽지역에 원주민마을이 있어 몇백 명쯤 되는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는데 여류학자들은 원주민생활을 관찰했다. 원주민마을의 젊은 여인이 이틀에 한 번 야생동물보호소에 신선한 우유와 계란을 가져왔는데 인겔드 양이 그 여인과 친해졌다. 인겔드 양이 아이를 업고 계란을 머리에 이고 오는 여인이 안쓰러워서 마을에 남자는 없느냐고 물었다. 남자들은 소나 닭을 사육하고 우유나 계란을 파는 일은 여자가 한다.
집안을 돌보고 아이 키우는 일은 여자가 할 일이고 마을 주변에 있는 밭을 가꾸는 일도 여자의 일이다. 산림에 들어가 나무 열매나 버섯을 채취하고 땔감을 해오는 일도 여자의 몫이다. 그렇다면 남자들의 일은 무엇인가? 마을을 침공하는 외적과 싸우는 일, 소나 양을 방목하는 일, 야생짐승을 사냥하는 일이 남자들의 일이다. 그러나 인겔드 양은 마을의 남자들이 게으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늘 나무 그늘에 모여 담배를 태우면서 빈둥거리고 있었다. 힘이 드는 일은 모두 여자들이 했다. 마을의 남자들은 보통 서너 명의 마누라를 갖고 있었고 그 마누라들은 하루 종일 일을 했다. 마누라는 일종의 재산이었으며 그 수를 보면 그 집이 얼마나 부자인지를 알 수 있었다.
‘남편이 다른 여자들을 데리고 사는 걸 가만히 보고 있는가?’
인겔드 양이 동물보호소에 계란을 가지고 오는 여자에게 물었다.
‘항의를 할 수 없다. 마을의 전통이다.‘
인겔드 양은 마을의 전통이 어떻게 지켜지는지 알고 있었다. 마을의 여자들은 남편에게 매를 맞았다. 매를 맞아도 싸울 수가 없다. 마을 남자들은 덩치거 여자들의 두 배가 된다. 비비들보다는 덜했으나 거의 두 배다.
‘남편이 다른 여자를 얻는 것은 나에게도 좋은 일이다. 새로 들어온 마누라가 일을 하기 때문에 내 일이 그만큼 줄어든다.’
주민과 비비는 생활양식이 비슷한 무리생활이다. 극소수의 보스가 무리를 지배한다. 일부다처제의 남존여비 관습이다. 그런데 주민들과 비비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비비들이 야금야금 영지를 넓히고 있었고, 주민들이 가꾸어놓은 옥수수밭을 망쳐놓았다. 비비들은 마을에 들어와 염소나 닭을 약탈하기도 했다. 그래서 서른 명 쯤 되는 원주민 사냥꾼들이 사바나에 있는 비비들을 습격했다. 비비들은 마을 가까이에 있는 바위산에 살았으나 바위산은 난공불락의 요새라 비비들을 잡을 수 없었다.
원주민사냥꾼은 사바나에서 채식을 하고있는 비비들을 사냥하기로 했다. 사냥꾼들은 비비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바위산의 퇴로를 막아놓고 풀밭으로 기어갔다. 몰래 기습을 하려고 했는데 구릉 위에서 보초를 선 비비의 눈을 속이지 못했다. 비비의 시력은 사람보다 훨씬 좋다. 비비 두목은 신속하게 지휘를 했는데 비비들을 동물보호소 근처로 피신시켰다. 비비 두목은 같은 사람이라도 동물보호소의 사람과 원주민사냥꾼을 구별했다. 자기 편과 적을 구별할 줄 알았다. 관리소장 루이스는 사무실 앞까지 몰려와 있는 비비들을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비비두목 폭군은 루이스와 다가오는 원주민사냥꾼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어떻게 해주어야 했다. 그곳은 야생동물보호지역이다. 동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자체를 보호했다. 사냥꾼들이 지역에서 사냥을 하는 것은 위법이다.
‘추장! 여기가 보호지역이라는 걸 아느냐?’
루이스가 고함을 쳤다. 마을 젊은이들이 관리소 직원 등 뒤의 비비들에게 활을 겨누고 있었으나 쏘지는 못했다. 관리소 직원들이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기 때문이다. 마을 사냥꾼들은 관리소 직원들에게 욕을 퍼부으면서 돌아갔으나 빕 사냥을 단념한 것은 아니었다. 전날밤 마을에 들어온 비비들이 갓난 송아지를 물고갔기 때문이다. 루이스는 마을 사냥꾼들의 움직임이 심싱치 않은 것을 보고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세실 교수와 인겔드 양도 루이스를 따라갔다. 원주민마을의 젊은이들이 총동원되었다. 이웃 마을까지 가세하여 50여 명이다. 그들은 비비들의 본거지 바위산으로 쳐들어갈 계획이다. 인간과 비비들이 대규모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 루이스는 그 전쟁을 말릴 수 없다. 바위산은 동물 보호구역 밖이다. 원주민들이 바위산에서 사냥을 해도 관할지역이 아니다. 비비도 보호동물이 아니다. 비비들도 죽겠지만 원주민도 죽을 것이다. 비비들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동물보호소는 동물뿐만 아니라 인근의 원주민도 보호해야 한다. 루이스는 사람과 가까운 영장류인 비비들을 보호하려고 했는데 사람은 더 중요한 보호 대상이다. 원주민사냥꾼들이 바위산에 들어가면 안 된다. 5년 전에 바위산에 들어간 원주민 두 명이 비비들의 반격을 받고 죽었다. 비비들은 사람들이 쏘는 화살이나 던지는 창의 한계를 알기 때문에 안전거리를 유지하면서 원주민들과 싸운다. 안전지대 안이라도 바위 동굴이나 틈에 숨어있다가 원주민을 기습한다. 기민하게 움직이는 비비들은 5cm나 되는 어금니로 원주민들에게 치명상을 입힌다. 동굴이나 바위틈에 숨은 비비들에게 활이나 창은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고, 비비들은 흙이나 돌을 던져 원주민들의 시야를 가렸다. 원주민뿐만 아니라 3년 전에 바위산에 들어간 백인들도 봉변을 당했다. 총도 소용이 없었다. 루이스는 바위산에 가겠다는 세실 교수와 인겔드 양을 말렸으나 위험한 지역에는 들어가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따라가기로 했다. 원주민사냥꾼들이 바위산을 포위하고 6, 7명으로 편성된 특공대들이 바위산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이상하다. 바위산이 조용하고 비비들이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활을 쏘거나 창을 날릴 과녁이 없다. 시기도 좋지 않다. 늦은 하오라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사냥꾼들은 그래도 사냥을 중단하지 않았다. 비비는 낮에 활동하는 짐승이라 밤눈이 어두웠다. 사냥꾼들은 날이 어두워지더라도 공격을 할 생각이다. 횃불을 준비했다. 횃불을 던질 요량이다. 그러나 사람들과 가까이 사는 비비는 불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바위산 계곡에는 어둠의 장막이 드리우고 서서히 바위산 위쪽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횃불이 켜지고 밤하늘을 수놓았다.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나운 개가 짖는 소리인데 바위산 꼭대기에 폭군의 그림자가 보였다. 폭군은 사방에서 날아오는 화살을 무시하고 고함을 지르면서 손을 흔들었다. 반격 명령이다. 루이스가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사냥꾼들이 휘두르는 횃불은 비비들이 숨어있는 동굴이나 바위 뒤까지 밝히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횃불을 들고 있는 사람의 위치를 비비들에게 알려주었다. 비명 소리가 일어났다. 횃불의 불빛 속에 도약하는 비비들의 모습이 보였고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사냥꾼들의 모습도 보였다. 난전이 벌어졌다. 비비는 무서운 맹수다. 삼림의 나무에서 내려와 초원으로 진출하려던 비비는 그들의 임시거점인 바위산에서 물러나지 않았다. 횃불들이 공중으로 날아갔다. 사냥꾼들이 비비에게 횃불을 던졌으며 털에 불이 붙은 비비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기대했던 횃불은 기대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꺼졌다. 횃불이 꺼진 어둠 속에서 비비들이 사냥꾼들을 공격했다. 비비들이 수적으로 우세했다. 그리고 비비들은 어둠 속에서도 지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바위 사이를 요리조리 빠지면서 사냥꾼들의 등 뒤에서 덮쳤다.
루이스와 여류학자들은 바위산 기슭에 있었으나 그들도 안전하지 않았다. 세실 여사가 비명을 질렀다. 어느새 뒤로 돌아온 비비가 세실 여사에게 덤벼들었다. 루이스가 공포를 쏘았다. 그 싸움을 그대로 보고있을 수만은 없었다. 루이스가 가지고있던 미국제 6연발 라이플을 연달아 발사했다. 그 굉음이 바위산에 메아리가 되어 을려퍼졌다. 비비들이 그 굉음에 질렸다. 전투 중지를 지시하는 폭군의 고함 소리가 들리자 비비들이 일제히 후퇴했다. 사냥꾼들도 물러섰다. 세실 여사를 덮친 비비가 도망쳤다. 세실 여사가 피를 흘렸다. 웃옷이 찢겨지고 유방에 상처를 입었다. 루이스가 세실 여사의 상처를 소독했다. 비비의 발톱에는 온갖 세균이 묻혀있기 때문에 신속하게 소독을 해야 한다. 세실 여사도 그걸 알고 있어서 반나체가 된 몸을 루이스에게 맡겼다.
처참한 싸움이었다. 젊은 사냥꾼 한 사람이 죽고 추장의 아들을 비롯한 세 사람이 중상을 입었다. 비비들이 바위에서 미끄러져 떨어진 사냥꾼에게 덤벼들어 몸을 갈기갈기 찢었다. 추장의 아들은 팔목이 덜렁거렸고 두 사람의 사냥꾼도 팔의 뼈가 드러났다. 무서운 비비들의 어금니 상처였으며 그대로 싸움을 계속했더라면 더 많은 희생자가 생겼을 것이다.
루이스는 백인들의 도움을 받지 않겠다는 추장을 설득하여 부상자들을 동물보호소로 데리고 갔다. 보호소에는 응급수술을 할 수 있는 의료기구와 수술용 약품이 있다. 그 싸움에서 네 마리의 비비들이 죽고 세 마리가 부상을 입었다. 비비두목 폭군도 허벅지에 창이 꽂혔다. 루이스는 부상을 입은 비비들에게 마취 주사를 놓아 보호소로 데리고 왔다. 다행히 더 이상의 희생자는 없다. 추장의 아들은 신경을 다치지 않아 팔목을 절단하지 않아도 되었고, 다른 부상자들도 경상이다. 비비들도 가벼운 상처다. 폭군의 상처도 봉합해서 사흘 만에 제 발로 일어섰다. 폭군은 치료를 받지 않으려고 몸부림쳤으나 나중에는 얌전해졌다. 사람들이 자기를 해치려는 게 아니라 살리려고 한다는 걸 알아챘다. 나흘 후 폭군은 바위산에 석방되었는데 마치 고맙다는 인사라도 하는 것처럼 뒤를 돌아다보며 천천히 돌아갔다. 전쟁은 끝났다. 동물들 간에 벌어진 영지 전쟁은 기존 질서를 파괴했으나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냈다. 인간과 비비들의 싸움은 어느 쪽이 이겼는지 알 수 없으나 그 후 비비들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나 그 주변의 옥수수밭이나 감자밭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 일대는 사람들의 영지이고 그 영지를 침범하면 사람들이 가만있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또 원주민들과 비비들은 그 싸움에서 얻은 게 있었다. 원주민들은 그동안 야생동물보호지역 외곽에서 불법적으로 개간했던 옥수수밭이나 감자밭을 기정사실화 했다. 보호소가 공식적으로 허가한 건 아니었으나 묵시적으로 인정했다. 법이 어떻더라도 그곳은 원주민의 영지다. 인구가 늘어나는 원주민들은 농업으로 생존권을 확보해야 한다. 루이스가 그렇게 생각했다.
비비들도 싸움에서 얻은 게 있었다. 비비들의 생태를 조사하던 여류학자들은 비비들의 근거지인 바위산과 많은 초식동물들이 살고 있는 초원 사이에 있는 삼림에 심상치 않은 긴장감이 감돌고 있는 걸 느꼈다. 비비들이 어느새 그 삼림까지 점령했다. 삼림을 초원으로 드나드는 교두보로 삼았다. 삼림에서 나무 열매를 따먹고 초원에 나가 연한 풀과 씨앗을 채취했다. 밤이 되면 바위산으로 돌아갔다. 밤에는 야행성 짐승 표범이나 하이에나가 돌아다니며 특히 표범은 비비를 먹이로 삼았다. 그래서 비비들은 달빛이 밝은 밤이 아니면 삼림을 야행성 육식동물들에게 양보했는데 옥수수밭이나 감자밭에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라 밤에도 삼림에서 철수하지 않았다. 먹이가 없는 바위산을 버리고 삼림에서 상주했다.
세실 여사와 동물학자들이 모험을 했다. 루이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학자들은 삼림 안에 잠복관찰소를 설치했다. 깊이 3m, 넓이 4m 정도의 움막집을 만들고 밤에도 관찰을 하기로 했다. 거기에는 표범이나 하이에나들이 돌아다녔으며 그들에게 발견되면 목숨이 위태롭다. 밤의 육식동물은 낮과 다르다. 어둠 속을 소리 없이 돌아다니는 밤 짐승들은 먹이를 가리지 않았다. 밤눈이 어두운 사람은 아주 손쉬운 먹잇감이다. 움막집은 그렇게 위험한 곳에 있었으나 여류학자들은 밤에도 조사를 했다. 어둠 속에서 짐승들의 모습은 볼 수 없으나 소리는 들을 수 있다. 초저녁 박쥐무리가 날아간 다음에 하이에나의 고함이 들렸다. 하이에나는 미친 여자의 울음소리 같은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표범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도 들렸고 개가 짖는듯한 비비들의 고함도 들렸다. 움막집에서 보면 여기저기 나무에 불빛들이 보였다. 요기를 띠고 있는 푸른 불빛은 표범이고, 자그마한 노란 불빛은 비비들이다. 나무 밑에도 수백 개의 불빛이 돌아다녔다. 표범과 비비들의 싸움에서 먹이를 얻으려는 하이에나들이다. 움막집에 들어간 지 사흘 만에 비단을 찢는듯한 날카로운 표범의 비명이 들렸다. 표범이 비비들에게 당한 것 같았다. 밝은 날 여류학자들은 비명 소리가 났던 나무 밑에서 표범의 시체를 발견했다.
표범의 시체는 핏덩어리였다. 증오에 찬 비비들이 표범을 걸레처럼 찢어버렸다. 비비의 젊은 수컷 한 마리가 목줄이 끊어져 죽었고 폭군도 어께에 피를 흘렸다. 그 표범은 전날 실수를 했다. 그날 밤은 날이 흐렸으나 그래도 하늘에 달이 걸려있었다. 그래서 비비들은 표범을 죽이기로 계획했다. 비비들은 새끼와 암컷을 높은 나뭇가지에 올려놓고 그 주위에 젊은 수컷을 배치했다. 폭군은 낮은 가지에서 전투지휘를 했다. 비비들이 용의주도하게 전투태세를 갖추고 있었는데 표범은 그걸 몰랐다. 표범이 기습을 하려고 소리 없이 나무에 기어 올라갔으나 나뭇가지 사이로 달빛이 스며들었다. 비비들은 밤눈이 어두웠으나 그래도 표범이 올라오는 나뭇가지의 진동을 느꼈다. 폭군은 그 진동과 희미한 달빛으로 표범을 발견했다. 기습을 하려던 표범이 도리어 기습을 당했다. 폭군이 표범에게 덤벼들었고 폭군과 표범은 서로 껴안고 나무에서 떨어졌다. 폭군 밑에 깔린 표범은 일어날 틈이 없었다. 나무에서 뛰어내린 젊은 비비들이 표범을 찢어 죽였다. 세실 여사는 평소에는 폭군을 미워했다. 놈이 거느리고 있는 대여섯 마리의 암컷을 학대하는 걸 보고 폭군에게 악마라고 별명을 붙였다. 잔인무도한 놈이었으며 암컷들은 늘 피를 흘리면서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러나 세실 여사는 악마가 암컷과 새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표범과 싸우는 것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가족을 지키려는 의무감과 희생정신이 감동적이었다. 악마는 꽤 깊은 상처를 입고 나무 꼭대기에 앉아있었다. 주위를 살피면서 경계를 했는데 그날따라 외롭게 보였다. 대여섯 마리 암컷들 중에 악마를 보살펴주는 암컷은 없었다. 아무도 부상 당한 악마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멀리서 악마를 노려보는 놈이 있었다. 떠돌이 수컷이며 이전에 악마에게 도전했다가 혼이 난 놈이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악마는 어깨에 부상을 입어 팔을 쓰지 못했다. 그날 늦은 하오에 떠돌이가 악마에게 다시 도전을 했다. 떠돌이는 조심스럽게 악마에게 접근을 했으나 악마는 무시했다.
도전하는 떠돌이 수컷은 혼자가 아니었다. 그 뒤를 따라다니는 수컷 두 마리가 있는데 그들은 적극적으로 싸움에 참가하지는 않았다. 폭군에게도 친위대인 젊은 수컷 대여섯 마리가 있는데 그들도 폭군과 도전자의 싸움을 지켜보기만 했다. 그밖에 수십 마리의 암컷과 새끼들이 그 싸움과 무관한 표정으로 관전했다. 두목 자리를 건 싸움은 1 : 1의 싸움이다. 다른 비비들이 그 싸움에 끼어들면 안 된다. 그들은 결과에 승복하면 된다. 도전자가 폭군에게 덤벼들었다. 폭군이 고함을 쳤다. 고함 소리에 뒤로 물러선 도전자는 폭군이 한쪽 팔을 쓰지 못한다는 걸 알고 다시 덤벼들었다. 폭군이 반격을 하고 도전자는 정면 대결을 피해 나무 위로 달아났다. 폭군이 뒤쫓아갔으나 속력이 느렸다. 부상 당한 팔을 쓸 수 없었다. 도전자가 높은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리며 폭군을 덮쳤다. 뒤엉킨 채로 나무에서 떨어졌다. 도전자가 폭군 위에 올라타고 깔아뭉갰다. 도전자가 폭군의 뒷다리를 물었다. 보통 동물들의 지위 다툼은 서로 치명상을 입히지 않았는데 비비들은 달랐다. 비비들은 잔인했다. 도전자는 저항력을 잃은 폭군을 계속 공격했고 폭군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폭군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도전자가 개가를 올렸다. 도전자는 높은 가지 위로 올라가 두 손을 흔들면서 고함을 쳤다.
‘이젠 내가 두목이다!’
폭군의 친위대가 슬그머니 흩어졌다. 도전자의 뒤를 따라다니던 수컷 두 마리가 새 두목에게 축하를 하는 듯 가까이 갔으나 새 두목은 냉담했다. 새 두목이 되기까지는 그들의 도움을 받았으나 새 두목이 되고는 너희들에게 볼일이 없다는 태도다. 늙은 암컷 한 마리가 쓰러져있는 폭군에게 다가갔으나 새 두목이 고함을 치자 물러섰다. 늙은 암컷은 슬픈 표정을 지었으나 죽어가는 옛 두목을 도와주지 못했다. 암컷들 중에서는 벌써 새 두목의 털을 다듬어주는 녀석도 있었다. 인간사회에서도 그런 일은 흔하다.
새 두목은 3, 4일 후에는 두목의 지위를 굳혔다. 새 두목은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 무리들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흰개미집에 올라가 주위를 살폈다. 모두 새 두목을 따랐다. 새 두목을 따라다니던 수컷들이 새 두목에게 무언지 얻을 것이 없나 기웃거렸으니 두목이 냉담하자 그들은 다시 떠돌이 수컷으로 전락했다. 폭군에게 충성했던 젊은 수컷들은 대부분 떠돌이가 되었고 일부는 새 두목에게 아첨했다. 암컷들은 모두 새 두목을 따랐다. 새 두목의 요구에 몸은 바쳤고, 스스로 몸을 바치는 녀석도 있었다. 새끼들을 가지고 있는 암컷들은 새끼들의 안전을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
세실 여사는 새 두목의 행동에 주목하고 있었는데 새 두목이 처음 한 일은 초원에서 철수하는 일이었다. 뜻밖이다. 내치에 중점을 둔 것 같았다. 폭군이 확장해놓은 영지를 다른 동물들에게 넘겨주었다.
비비들이 물러난 초원에는 사자무리가 들어왔다. 사자무리는 수컷 두 마리, 암컷 여섯 마리와 새끼 네 마리였는데 새로 새끼 다섯 마리가 태어났다. 그래서 각종 영양과 초식동물이 많은 초원에 진출했다. 사자들이 진출하자 하이에나들도 따라왔다. 사자들의 찌꺼기를 얻어먹으려는 심산이다. 사자들이 진출하자 초원이 시끄러워졌다. 소 떼를 모는 원주민과 충돌했다. 사자가 소 떼를 습격하여 두 마리를 죽였다. 원주민사냥꾼들이 출동했다. 동물보호소에서는 원주민들에게 영지 다툼이나 사냥을 하지 말고 농업이나 목축을 하라고 권장했는데 그 결과 인구가 늘어났다. 동물관리소는 원주민들에게 보호지역에 들어오지 말라고 경고했으나 원주민들은 경고를 무시했다. 사자가 소를 잡아먹자 흥분했다. 피를 보고 흥분하는 건 야생동물뿐만 아니다.
관리소장 루이스가 부하 네 명을 데리고 급히 현장에 출동했다. 모두 무장을 하고 원주민사냥꾼들이 반항을 할 경우에는 발포를 하라고 지시했다. 현장에서는 원주민들이 사자 사냥을 하고있었다. 스무 명쯤의 사냥꾼들이 사자무리를 포위하였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대여섯 마리 사자들 중에 수컷이 두 마리였다. 사자의 수컷들은 보통 먹이 사냥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외부의 적들에게만 싸움을 했다. 따라서 수컷들이 참여한 그때는 중대한 상황이었으며 원주민들과 결사적인 전쟁이 될 것 같았다. 사냥꾼들이 사자를 돈가(물이 말라버린 하천)에 몰아넣었으나 위험하다. 원주민들은 창으로 사자를 사냥하려고 했으나 그렇게 당할 사자들이 아니다. 사자들이 뛰어다녔다. 사냥꾼이 던진 창에 사자 두목의 등에 꽂혔으나 두목은 쓰러지지 않았다. 피를 본 사자들이 사냥꾼을 사냥했다. 사자의 앞발치기에 맞은 사냥꾼이 팽이처럼 굴러떨어졌다.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사자에게 사람이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다. 루이스가 발포했다. 루이스는 군대에서 사격 교관을 했다. 사격은 정확했다. 쓰러져있는 사냥꾼에게 덤벼들었던 암컷 한 마리가 대가리에 총탄을 맞고 뒹굴었다. 사자들이 주춤했다. 직원들이 가세하여 총을 쏘자 사자들이 도망쳤다. 루이스는 사자들을 쫓아내고 사냥꾼들에게 돌아가라고 고함을 쳤으나 사냥꾼들이 물러나지 않았다. 루이스에게 창을 던졌다. 창이 루이스의 뺨을 스쳤다. 루이스가 잠시 뜸을 들였다. 그 싸움도 영지 싸움이다. 원주민들은 지배당한 백인들에게서 영지를 되찾으려는 싸움이다. 동물관리소는 동물의 멸종을 막고 보호하려고 동물보호 지역을 설치했으나 원주민 입장에서는 침략이다. 그 지역은 몇백 년 전부터 원주민들의 영지다. 루이스는 알단 물러났다. 원주민추장과 교섭을 하기로 했다. 원주민들이 루이스의 제의를 받아들여 부상자를 들것에 싣고 돌아갔다.
루이스가 추장과 담판을 했다. 비비들이 침범했던 마을 주변의 옥수수밭을 원주민들이 경작하게 해주고, 그 대신 원주민들이 소 떼를 초원에 방목하는 걸 금지했다. 옥수수밭이 보호지역 안에 있어 월권이었으나 그렇게 해서라도 전쟁을 피해야 한다. 그러나 초원이 시끄러웠다. 사바나가 시끄러워졌다. 돈가 일대는 사자들이 돌아다녔고 사자들은 관리소 앞까지 와서 포효했다. 뿐만 아니라 수십 마리의 하이에나가 몰려와 초식동물을 덮쳤다. 살기와 피비린내가 떠돌았다. 루이스가 크게 염려했다. 관리소 직원으로 무질서를 다스리기에는 힘이 부쳤다. 그런데 뜻밖에 사자들이 물러났다. 원주민의 공격을 받은 사자두목이 죽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그 싸움판에 표범이 끼어들었다. 대여섯 마리의 표범이 사자새끼를 죽였다. 사자의 주력부대가 원주민과 싸우는 틈에 표범이 사자 새끼를 다섯 마리나 죽였다. 표범은 사자새끼를 먹이로 죽인 게 아니다. 본디 표범과 사자는 앙숙이다. 먹이사슬의 정점이 있는 그들은 서로 보기만 하면 싸웠다. 표범은 사자가 추격하면 높은 나무 위로 피했는데 사자는 나무 아래서 증오 찬 눈으로 버티면서 표범이 나무에서 내려오는 걸 기다렸다. 표범은 일정한 근거 없이 떠돌아다녔는데 사자나 하이에나는 표범의 새끼가 눈에 띠면 어김없이 죽였다. 경쟁자의 씨를 말리려는 의도다. 표범도 사자 새끼를 죽였다. 그때 사자들은 새끼가 다섯 마리나 죽은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두목이 죽은 후 젊은 수컷이 두목의 자리를 이어받았는데 새 두목은 초원에서 철수했다. 새끼를 잃은 암컷들이 초원에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임신한 암컷들도 새끼를 보호하려고 했다. 그래서 사자들이 철수한 초원을 하이에나들이 점령했다.
하이에나들이 초원에 들어오자 그곳에 살던 영양과 얼룩말이 불안해서 신경질이 되었다. 사자나 표범 등 큰고양이과 동물은 배가 부르면 사냥을 하지 않는데 하이에나는 늘 굶주리고 있었으므로 미친 여자처럼 괴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얼룩말이나 영양들의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그 새끼를 노렸다. 하이에나들이 그렇게 돌아다니면 초식동물은 마음 놓고 쉴 수가 없다.
그러나 하이에나들이 초원을 오래 지배하지 못했다. 하이에나들이 초원에 들어온 지 일주일쯤 후 철수했던 비비들이 슬그머니 나타났다. 새 두목이 앞장을 섰다. 비비들은 인간의 공격으로 작전상 일단 후퇴했으나 초원에 진출하려는 야심을 버리지 않았다. 어쩌면 그 게 그들의 진화과정인지도 모른다. 영양들이 비비를 환영했다. 영양은 비비들의 정체를 모른다. 비비는 초식동물이 아니라 잡식동물이다. 영양 어미들의 눈을 피해 양양 새끼를 잡아먹는다. 영양들은 그걸 모른다. 영양은 비비들이 자기들의 친구고 보호해주는 걸로 착각한다. 영양이 비비와 함께 있으면 하이에나들은 공격을 하지 못한다. 비비는 잘 훈련된 전투부대고 길고 날카로운 어금니를 가지고 있다. 그때도 비비들이 몰려들자 하이에나가 물러났다. 수적으로 열세인 비비들과 다투는 것보다는 표범이 멧돼지사냥을 하는 서북쪽 사바나나 사자들이 물소와 싸우는 동쪽 강변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초원의 생태계가 다시 평화를 되찾았다. 자연은 그 자체로 균형을 이루고 평형을 유지했다. 사자들이 힘으로 초원을 차지했으나 표범이 새끼를 죽이므로 물러났고, 하이에나가 사자들이 물러난 자리에 들어왔지만 다시 초원에 진출한 비비들에게 밀려났다. 세실 여사와 학자들도 돌아온 비비를 환영했다. 망원대를 설치하고 비비를 관찰했으나 비비들이 바위산으로 철수를 해서 연구가 중단되었는데 다시 돌아오자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돌아온 비비들이 학자들에게 아는 척했다. 알고 지냈던 암컷들이 새끼를 데리고 망원대 앞까지 와서 인사를 했다.
140. 야수의 본능을 가진 포수
1883년 7월 어느 날, 만주 하얼빈에 있는 러시아인 모피상 사모로위치의 집에서 달란인, 고리드인 사냥꾼 대여섯 명이 모였다. 북방 사냥꾼들이 좋아하는 화주(火酒)에 푸짐한 양(羊)요리 안주가 나오는 술자리였으며 술기가 돈 그들은 사냥 얘기가 무르익었다. 달란인과 고리드 사냥꾼들은 사모로위치와 호피(虎皮), 흑초(黑貂, 수달), 여우 껍질 거래를 하는 사냥꾼들인데 사모로위치는 그들과 오랜 우정의 표시로 잔치판을 벌였다고 했다. 잔치가 한창일 때 중년의 러시아인 남녀가 들어왔다. 사모로위치는 친구라고 말했으나 예사 사람이 아니었다. 우선 미모의 여인이 달란 말을 할 줄 알았고, 웬만한 고리드 말도 알아들었다. 달란인과 고리드 사냥꾼들은 중국말로 사모로위치와 대화를 했으나 서로 중국말이 서툴렀으므로 제대로 대화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나타리나라는 여인은 달란 말을 꽤나 잘했기 때문에 대화가 상세해졌고 활기를 띠었다. 나타리나는 인류학을 전공한 학도인데 그 당시 만주에 진출한 러시아정보부를 돕고 있었다. 함께 온 사모어 소령은 러시아정보부 소속이다. 사모어 소령은 중대한 밀명을 받았다. 북만주 소싱안령(소흥안령, 小興安嶺) 동쪽 일대와 우수리강 유역의 만주와 러시아의 국경지대를 탐험하라는 지시다. 만주를 정복하려고 계획을 세운 러시아는 동북 만주의 지세, 지하자원, 동식물 등을 조사할 대규모의 학술단을 파견하려고 했는데 그에 앞서 사모어 소령에게 예비조사를 시키기로 했다. 당시는 세계 어느 나라 지도에도 그 지역이 백지였다. 그곳이 삼림지대인지, 광야인지, 습지인지도 알 수 없었고, 광대한 지역 어디에 어떤 사람, 어떤 동물이 살고 있는지도 분명치 않았다. 다만 뱀, 곰, 이리, 흑초, 오소리, 여우들이 살고 있고, 사슴, 노루, 멧돼지 등 초식동물이 많다는 정도의 얘기만 떠돌았다. 그 광대한 지역에는 거의 사람들이 살지 않았으나 그래도 일부 산기슭이나 삼림 어구 또는 강 유역에는 만주족을 비롯하여 조선인, 달란인, 고리드인 등 일부 소수 민족들의 마을이 산재되어 있다는 말이 있었다. 그들 소수 민족들은 호피, 흑초, 여우, 범, 곰 등의 껍질을 하얼빈에 가지고 와 러시아 모피상들과 거래를 했는데 사모어 소령은 거기에 주목했다. 그들 소수민족 사냥꾼들과 만나 그들의 협력을 얻기로 했다. 원주민사냥꾼들은 부탁을 받고 흥분했다. 그들은 모두 자기들 민족에 대한 긍지를 갖고 있었으며 다른 민족 특히 러시아와 같은 대국사람들의 부탁을 받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원주민사냥꾼들은 즉시 러시아인들의 요청을 받아주겠다고 말했으나 이내 당황하더니 침묵했다. 단둘이서 광대한 북만주의 국경지대를 탐사하겠다는 러시아인들의 요청이 실현될 수 없는 모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들 러시아인들은 제정신이 아닌 미친 사람 같았으며 미친 사람을 어떻게 도와주겠는가? 원주민들의 침묵은 고통스러웠다. 일단 승락했던 요청을 다시 거절할 수 없다. 그들은 조그마한 소리로 서로 의논했다. 그 결과 그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델수를 찾아야 해. 델수의 도움을 받으면 그런 일도 할 수 있어.’
그들은 모두 협력하여 델수를 찾아주겠다고 약속했다.
델수는 누구인가? 델수 포수는 고리드 사냥꾼인데 그는 이리의 코와 독수리의 눈 그리고 사슴의 귀를 가지고 있었다. 델수는 야수의 본능과 야수의 민첩성, 야수의 끈기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델수는 또한 총을 갖고있었고, 그 총솜씨는 백발백중이었다. 그러나 델수를 찾아내는 일은 어려웠다. 델수는 북만주의 원시림을 혼자서 돌아다니는 사냥꾼이었으며, 그가 잡은 짐승은 한정되어 있었다. 화사한 껍질의 범과 흑초, 주먹만 한 쓸개의 흑곰, 연분홍색 뿔을 가진 초여름의 사슴 등이 델수가 잡는 사냥감이었고 다른 짐승은 눈앞을 지나가도 잡지 않았다. 델수는 그런 짐승을 잡으면 러시아와 만주의 국경 지역에 있는 어느 고리드 마을에 던져놓고 가버렸다. 그 마을에는 델수의 처와 아들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델수가 언제 마을에 들릴지는 알 수 없다. 1년에 한두 번이었는데 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또한 델수의 가족이 살고 있는 고리드 마을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고리드족은 사냥감을 찾아 원시림을 떠돌아다니는 수렵족이었고, 마을의 규모도 서른 명 내외에 불과했다. 따라서 같은 고리드족이라도 어떤 마을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래도 고리드족은 서로 연락을 하는 방법이 있기에 찾을 가능성은 있다. 원시림에서 사냥을 하다가 그를 만나는 원주민사냥꾼도 있고, 그를 만난 심마니도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물어볼 수도 있다. 원주민사냥꾼들이 델수를 찾아주겠다고 약속했고, 그들은 약속을 지켰다. 자기들의 마을에 돌아간 그들은 두 달쯤 뒤에 델수를 찾았다는 소식을 보내왔다. 델수가 가족이 있는 마을에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때가 9월 초다. 곧 겨울의 시기다. 겨울에 탐험을 할 수는 없다.
북만주의 겨울은 죽음의 계절이다. 기온이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며 삼림의 나무들이 쓰러지는 폭풍과 폭설이 불어닥친다. 탐험은 7월 초에 시작하여 10월 말게 끝낼 계획이었는데 그 계획을 두 달 동안이나 늦출 수 없다. 러시아 극동정보국은 사모어 소령에게 탐험을 강행하라고 지시했다. 그 탐험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러시아의 만주 침략계획에 중대한 차질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갑시다. 어차피 죽은 목숨 아닙니까?’
나타리나가 차디차게 말했다. 정보기관에서 일하는 여인이었지만 두려움을 모르는 여자다. 사모어 소령과 나타리나는 사흘 후에 소싱안령산맥 동북쪽에 있는 삼림에 들어갔다. 9월 초였지만 밤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고리드족 마을에서 사냥꾼 델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구레나룻이 짙은 보통 키의 사내였는데 다부진 몸이다. 약간 우울하게 보이는 표정인데 눈이 예사롭지 않다. 야수처럼 날카로운 눈빛이다. 델수는 러시아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뜻밖이다. 목숨이 걸린 위험한 일을 어떻게 그리 쉽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나중에 안 일이지만 델수는 아들을 장가들이려고 했는데, 그 아들은 사냥을 하다가 왼쪽 팔을 잃은 병신이었다. 그래서 며느리를 사 오는데 꽤 많은 돈이 필요한데 러시아인이 제공하겠다는 돈이면 충당할 수 있다. 델수는 본디 말이 적은 사람인데 짧게 말했다.
‘바쁘니까 둘이서 먼저 가시오.’
어떻게 그 광대한 삼림에서 하루 전에 떠난 사람을 찾을 수 있겠는지?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오. 사람이란 두 발로 걸어 다니는 동물이기 때문에 발자국을 남기게 되어있어요. 그 발자국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땅속으로 꺼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는 그걸 찾아낼 수 있소.’
하긴 그 사나이는 발자국 추적의 명수이며 그는 추적한 짐승의 발자국을 지옥까지도 따라간다는 소문이었다.
사모어 소령과 나타리나는 삼림 안으로 들어가 동쪽을 향해 걸었다. 그날 밤에는 바위틈 사이에 모닥불을 피웠다. 송진으로 피운 모닥불이 활활 탔으나 추웠다. 화염을 받은 얼굴은 화끈거리고 등쪽은 얼음짱이었다. 나타리나가 잠자리를 만들었다. 마른 풀을 두껍게 깔고 군용담요 두 장을 나란히 붙여 깔았다. 춥기 때문에 들은 몸을 꼭 껴안고 자야 하는데 나타리아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여인이다.
다음 날 하오 러시아인들이 물이 마른 하천 바닥에서 쉬고 있을 때 등 뒤에서 얕은 기침 소리가 들렸다. 델수다. 델수는 이리 껍질로 만든 외투를 입고 작은 배낭을 멨다. 둘둘 만 밧줄을 어깨에 걸치고 허리에는 작은 손도끼, 왼손에 총을 거머쥐었다. 러시아군대에서 사용하는 구식 단발총인데 총신을 잘라 짧게 개조했다. 손질이 잘 되어 번들거렸다. 걸치고 다니는 이리 껍질 외투는 방수가 잘 되기 때문에 이부자리가 되고, 손도끼로는 나무를 잘라 땔감을 만들고, 이쑤시개도 만드는 등 만능도구였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무기도 되었다. 거리가 20m 이내 같으면 도끼를 날려 토끼를 잡았다. 러시아인들이 불을 피우고 저녁을 준비하고 있을 때 잠시 삼림 안으로 들어갔던 델수가 노루를 한 마리 잡아 왔다. 짐승들이 총소리나 화약 냄새를 싫어하기 때문에 덫을 놓아 잡았다고 했다.
‘여기는 노루 숲이라고 불리지요. 노루들이 많아요.’
그 삼림에서는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꿩이 날아오르고 노루들이 툭툭 뛰어나왔다. 그래서 노루를 노리고 범, 표범, 이리들이 들어왔으나 노루가 잘 잡히지 않았다. 노루는 워낙 청각, 후각이 예민하고 동작이 빠르기 때문에 범은 노루사냥을 하지 못하고, 이리들도 그랬다. 이리는 포위를 해서 노루를 잡으려고 했으나 노루는 껑충껑충 뛰면서 포위망을 뚫었다. 표범이 가장 노루를 잘 잡았는데 추위에 약했다. 그곳은 표범이 북쪽으로 진출할 수 있는 한계선이며 표범은 여름 한 철 나타났다. 털이 짧고 지방층이 얇은 표범은 추위를 이기지 못해서 그곳에서는 살지 못한다. 그러나 표범보다도 털이 짧고 지방층이 얇은 노루는 건재했으며, 추위에 강하다는 이리들이 얼어 죽는 곳에서도 노루는 건재했다. 동양에서 노루는 음지(그늘)의 짐승이라고 불리우며 노루는 날씨가 추워도 햇빛을 싫어하고 그늘을 좋아한다. 노루는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에 동북부 어디에도 살 수 있으며 델수는 노루가 탐험대의 친구가 되리라고 주장했다. 델수가 노루를 요리했는데 그는 우수한 요리사였다. 그의 배낭에는 마늘, 생강, 고추 등이 박혀있는 된장 항아리가 나왔고, 기름, 식초, 화주(火酒)와 말린 버섯도 있었다. 델수는 노루고기를 꼬치에 끼워 양념을 발라 모닥불 가장자리에 꽂아 돌려가면서 구웠는데 하얼빈의 어느 고급요리점에서도 맛볼 수 없는 훌륭한 요리였다.
댈수는 러시아 남녀가 하는 일에 흥미를 느꼈다. 러시아인들은 신문지 크기의 종이에 무엇인가를 기록하였다. 만주 동북부의 지도에는 소싱안령산맥과 우수리강이 나타나 있을 뿐이고 다른 부분은 백지였다. 러시아인들은 그 백지 지도에 자기들이 걸어온 길과 주변 지세를 깨알같이 기록했다. 러시아인들이 델수에게 진행할 길을 손가락으로 그려 보였다. 일정한 목적지가 없이 탐험을 하기 때문에 지그재그로 되어있었다. 델수가 동북 만주에는 들어가면 안 되는 지역이 있다고 하면서 그곳을 손가락질했다. 첫째는 범들의 집결지다. 만주와 러시아에 사는 범들이 1년에 한 번 겨울에는 한군데에 집결했다. 서로 만나 집단으로 선을 본 다음 짝짓기를 한다. 작게는 열서너 마리 많게는 서른 마리나 되는 암수범이 모여드는데, 그때의 범은 모두 신경과민이 되어 눈에 띠는 동물은 무조건 찢어 죽인다. 사람도 포함되기 때문에 그걸 모르고 함부로 들어간 포수, 심마니, 나무꾼은 살아 돌아오기 어렵다. 5월부터 6월까지 초여름에도 들어가서는 안 되는 지역이 있다. 사슴들이 서식하는 곳이다. 그때 수사슴은 묵은 뿔이 떨어지고 새 뿔이 솟아오르는데 그게 녹용이다. 만병통치의 영약이며 호피만큼이나 비싸다. 그래서 그때 수사슴을 잡으려는 포수들이 돌아다녔는데 그 사람들 중에는 포수가 아닌 마적(馬賊)이나 범죄자들도 있다. 마적이나 범죄자들은 수사슴만 노리는 게 아니고 수사슴을 잡은 포수도 노렸다. 사슴을 잡지 않은 포수도 값비싼 총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마적이나 범죄자들은 사람만 보면 무조건 죽였다. 세 번째는 러시아와 만주 국경지대에 있는 높은 산이다. 그곳에는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첩보 기관원들이 숨어있었다. 그 당시 만주는 사실상 중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상태였으며 만주를 침략하려는 여러 열국들이 첩보원들을 보냈다. 특히 러시아와 일본은 자기네 군사요충지를 찾아 상대방을 탐지하려고 많은 첩보원을 보냈다. 그들도 산중에서 사람만 보면 무조건 사살했다. 따라서 사모아 소령이나 나타리나도 일본군만이 아니라 러시아 첩보원에게 사살될 위험이 있다. 자기들 편인가 아닌가를 가리기 전에 총탄이 먼저 날아왔다. 위험지역은 또 있다. 동북 만주의 삼림 여기저기에 있는 마을들이다.
동북 만주 일대의 원시림에는 포수들이 들어가지 않았으나 그래도 범이나 사슴을 쫓는 일부 사냥꾼들이 길을 잃고 들어갔다. 특히 남쪽에 있는 장파이(장백, 長白)산맥에서 범사냥을 전문으로 하던 러시아인 포수들이 그런 실수를 했다. 몇 년 전에도 두 명의 러시아인 포수들이 총탄에 맞아 절룩거리는 범을 추격하려고 삼림에 들어갔다.
‘바로 저쪽 산 중복이었지요.’
델수가 말했다. 델수도 그 때 절룩거리는 범을 발견했으나 그 범을 쫓지 않았다. 동북 만주의 원시림은 약육강식의 무법지대였으나 그래도 포수들 사이에는 지켜야 할 질서가 있다. 오랜 관습에 의해 만들어진 질서이며 어기면 죽임을 당했다. 그 관습법 중 하나는 남이 먼저 손댄 사냥에 끼어들거나 방해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델수는 그래서 그 범을 그대로 두고 산에서 내려오다가 통나무 사냥집을 발견했다. 통나무 사냥집이란 일부 소수민족 사냥꾼들이 폭풍이나 폭설을 만났을 때 피신을 하려고 만든 대피소인데 그 사냥집이 시커멓게 불에 타버렸다. 그리고 그 안에 두 사람의 러시아인 사냥꾼의 시신이 있었다. 러시아인 포수들은 불에 타 죽었는데 이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사냥집의 불은 바깥에서 안으로 타들어갔고 집 주변에 마른 풀이 쌓여있었다. 방화가 분명하다. 죽은 러시아인 포수들의 소지품이 없는 것도 수상하다. 델수가 상세히 조사를 했다. 발자국들이 발견되었다. 고무바닥 가죽신인데 만주인들이 신는 신이다. 더 이상 조사를 하지 않았으나 범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 동북 만주의 삼림 남쪽에는 만주인, 달란인, 고리드인, 조선인들의 마을들이 있었는데 만주인들의 마을이 가장 컸다. 다른 부족의 마을에는 50여 명이 살았으나 만주인들의 마을에는 수백 명이 살았다. 만주인들은 음으로 양으로 관헌의 비호를 받으면서 횡포를 부렸는데 그들이 가장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사람이 러시아인 포수다. 러시아인은 총을 가지고 다녔고 만주인을 대하는 태도도 오만했다. 만주인들은 러시아인들이 범을 잡는 걸 특히 싫어했다. 만주인들은 범을 산신령으로 모셨으며 범을 보면 큰절을 했는데 러시아인들은 그런 산신령을 마구 죽여 껍질을 벗겼다. 그래서 만주인들은 러시아인을 몰래 죽이거나 해쳤다.
델수도 만주인을 싫어했으나 탐험에 나선 지 사흘 만에 어쩔 수 없이 만주인 마을에 들어갔다. 때아닌 비가 내리는 건기(乾期)였다. 델수는 지평선 위에 나타난 시커먼 구름을 보더니 비가 내릴 것이니 남쪽으로 진로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델수는 일기예보 능력이 있어 이번 비가 꽤 오래 내릴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남쪽의 만주인 마을에 머물러야만 한다고 했다. 델수의 예언대로 그날 저녁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남쪽 강변에 마을이 보였다. 만주인 마을에는 두꺼운 흙벽돌로 지은 집들이 서른 채쯤 있었고 굴뚝에서 연기가 올랐다. 일행이 마을에 도착하자 만주인들이 나왔다. 모두 시무룩한 표정이었으며 이방인들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만주인들은 이방인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이방인들은 총을 가지고 있었다. 잘못 대하면 후환이 있을 수도 있다. 러시아는 대국이며 힘이 있다. 만주인 마을 촌장은 어쩔 수 없이 이방인들에게 흙벽돌집 한 채를 빌려주었다. 그 집은 꽤 넓었으나 어두웠고 고약한 냄새가 났다. 겨울 추위에 대비한 집에는 창이 없고 원목으로 짠 문이 하나 있을 뿐이다. 만주인은 본디 목욕을 하지 않았다. 온몸이 짐승들의 비늘처럼 때가 눌러 붙었다. 몸 냄새뿐만이 아니다. 만주인들은 집에서 돼지들과 동거했다. 가족들보다도 많은 돼지가 동거를 했다. 그래서 만주인은 비교적 부유하다. 농사를 짓고 돼지, 당나귀, 염소, 닭을 길렀다. 소수민족을 상대로 장사를 했다. 생활필수품을 비싼 값으로 팔고, 돈이 없으면 빌려주었다. 이자가 원금보다 많은 고리채다. 달란인이나 고리드인들은 수렵인들이라 짐승들이 잡히지 않으면 굶는다. 만주인들은 소수민족이 돈을 갚지 않으면 그들을 노예로 삼았다. 노예에게 일을 시켰고, 쓸만한 여자들은 첩을 삼았다. 탐험대 일행이 유숙한 만주인 마을에도 노예와 여인들이 열서너 명쯤 있었다.
장맛비가 사흘째 계속 내렸다. 러시아인들은 집에서 내뿜는 고약한 냄새에 죽을 지경이 되었다. 더구나 빈대, 벼룩이 들끓었다. 그래서 마을 어귀에 간이천막을 쳤다. 두 사람이 겨우 들어가는 천막인데 빗물이 스며들었다. 그래도 방보다 나았다. 그날 밤 바깥에서 소리가 났다. 다투는 소리와 비명이 들렸다. 얼마 후 델수가 나타났다. 어떤 젊은 남자가 강을 건너와 마을에 들어왔는데 마을경비원들과 싸웠다고 했다. 다음날 진실이 밝혀졌다. 젊은 남자는 달란인이었으며 마을에 사는 달란인 여인을 납치하려다가 경비원에게 발각되어 싸움이 벌어졌다. 달란인 여인은 촌장 집에서 사는 하인이다. 촌장은 빚을 갚지 못한 달란인의 딸을 하인으로 데리고 있다고 했으나 실상은 첩이었다. 세 명의 경비원들이 달란인을 잡으려고 했으나 도망가버렸다. 경비원 한 사람이 달란인을 쫓다가 부상을 입었고, 두 사람의 경비원이 계속 달란인을 쫓았는데 강변에서 갑자기 나타난 정체불명의 사나이에게 기습을 당했다. 촌장은 경비원을 기습한 사나이를 알 수 없다고 했으나 누군가를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나이가 힘이 세고 민첩했으며 경비원 두 명이 달려들어도 당해내지 못했고 했다. 얘기를 들은 사모어 소령도 짐작했다. 이틀 후 비가 그치지 일행은 만주인 마을을 떠났는데 델수가 그제서야 실토를 했다. 마을 어귀에서 천막을 치고 있는 러시아인을 찾아가던 델수는 만주인들에게 쫓기는 달란인을 보았다. 만주인들은 손전등을 휘두르며 달란인을 쫓았는데 총을 가지고 있었다. 그대로 두면 달란인 청년은 죽을 것이다. 그는 약혼녀를 구하려고 만주인 마을에 들어왔다. 델수가 그 청년을 살려주기로 했다. 델수에게 만주인 경비원 두 명을 처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델수는 신속하게 처리했고 경비원들은 누구에게 어떻게 당한 지도 모르고 도망을 갔다. 사모어 소령이 웃었다. 그러나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사모어 소령은 델수가 마을에 침입했던 달란인 청년을 구해주는 것만으로 일이 끝난 줄 알았으나 델수는 만주인 마을의 달란인들을 모두 구하려고 했다. 델수는 그런 계획을 러시아인들에게 말 하지 않았다. 탐험대가 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탐험대는 계속 동북쪽으로 가고 있었는데 그 일대는 사흘 동안 내린 비로 온통 습지로 변했고 무릎까지 차는 물은 점점 더 깊어졌다. 방향을 바꿔 고지대로 올라가야 한다. 날이 어둡기 전에 삼림지대로 올라가야 하는데 물이 점점 깊어졌다. 주위도 깜깜해졌다. 그때 삼림이 있는 곳에서 불빛이 보였다. 횃불이었다. 델수가 공포(空砲)를 쏘았다. 총소리가 나자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왔다. 커다란 뗏목이다.
‘아덴타, 델수!’
누군가 고함을 쳤다. 아덴타는 달란 말로 대인(大人)이라는 존칭이다. 횃불을 든 열서너 명의 달란인들이 뗏목에 타고 있었고 통나무배가 안내를 하고 있었다. 통나무배에 탄 달란인은 어젯밤 델수 포수가 구해준 청년이다. 러시아인들이 뗏목으로 옮겨탔다. 손님을 환영하는 팔과 가슴이 러시아인들을 안아주었다. 아직 따뜻한 주먹만 한 만두도 건네주었다. 만든 지 몇 시간이 지났을 텐데 따뜻했다. 달란인들은 만두를 가슴에 품어왔다. 델수가 통나무배를 타고 뗏목을 지휘했다. 횃불은 꺼졌으나 뗏목은 조용하게 남쪽의 만주인 마을로 향했다. 어쩌자는 것인가? 만주인 마을에는 열 명이 넘는 경비원들이 총을 가지고 있다. 자정쯤 만주인 마을이 보였다. 손전등 불빛도 보였다.
최악의 상황이다. 만주족이 고용한 경비원은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살인자다. 만주족 마을에는 50여 명이 넘는 남자들이 있고, 무기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델수는 단 두 명의 달란인을 데리고 마을에 쳐들어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승산이 없다. 사모어 소령은 불안한 표정을 보고 나타리나가 말했다.
‘염려하지 말아요. 델수는 예사 포수가 아닙니다. 그는 야수의 본능을 가지고 있는 초인적인 포수입니다. 그는 어둠을 꿰뚫는 올빼미의 눈을 갖고 있고, 이리처럼 냄새를 맡는 코를 가지고 있어요. 거기다 표범처럼 빠르지요.’
사모어 소령은 델수가 시킨 대로 뗏목에 머물렀다. 델수가 상륙을 한 지 한 시간이나 되었지만 마을은 조용했다. 그러다 갑자기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경비원들의 총소리와 델수의 총소리다. 델수는 구식 단발 라이플을 가지고 있다. 경비원들이 손전등을 휘두르며 추격을 했다. 델수가 달란인들을 구출하여 마을을 탈출하고 있었다. 경비원만 추격을 하는 게 아니라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이 횃불을 들고 추격을 했는데 그들도 총을 가지고 있다.
‘저놈들을 모두 잡아 죽여라!’
고함 소리가 들렸다. 델수는 달란인 포로들 뒤를 따라오면서 응사를 했는데 혼자서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막아낼 것인가? 도망치다가 총에 맞아 쓰러진 사람이 있었다.
‘다친 사람은 내가 데리고 갈 테니 모두 빨리 뗏목으로 가라!’
델수가 고함을 지르는 사이에 달란인들이 뗏목에 올랐다. 만주족 촌장에게 인질로 잡혀있던 여인도 끼어있었다. 델수는 부상 당한 사람을 데리고 오느라고 변변히 응사도 못 했다. 델수의 단발 라이플로는 그 많은 적을 상대할 수도 없다.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다. 사모어 소령이 발포했다. 사모어 소령의 총은 미국제 최신형 반자동 6연발 라이플이다. 나타리나도 체코제 6연발 권총을 발사했다. 연발 라이플과 권총을 발사하니 마치 기관총 같았다.
만주인 경비대에 집중사격을 했다. 경비원들은 북만주광야를 떠돌아다니는 직업적 살육자들이다. 만주의 지방 토호들이 비적의 습격을 방어하려고 돈을 주고 고용한 살인자들이다. 수감 중인 죄수나 깡패들이다. 러시아인들의 집중사격을 받은 경비대에서 희생자가 났다. 그들은 추격을 포기하고 밭두렁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았다. 본디 돈 때문에 움직였으므로 목숨을 걸고 충성하지 않았다. 50여 명이나 되는 마을 장정들도 싸움을 포기했다.
‘부자는 싸우지 않는다.’는 중국 격언이 있다. 델수와 그가 구출한 달란인들이 다음 날 아침께에 달란인 마을에 도착했다. 부상 당한 젊은이도 경상이었다. 사모어 소령의 탐험대는 임무와 관련이 없는 일을 한 셈이었는데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달란인들이 탐험에 협력했고 큰 도움을 받았다. 달란인들은 수렵족이고 사냥감을 찾아 광대한 삼림을 떠돌아다녔다. 순록과 붉은사슴의 이동 경로를 따라다니고, 폭풍이나 폭설을 피하기 위해 거주지를 옮겼다. 따라서 달란족은 동북 만주의 삼림 지세를 훤히 알았다. 나타리나는 백지 지도에 달란인들의 마을과 사냥집을 그려 넣었다. 달란인들은 친절하고 협조적이었지만 출발한 지 한 달이 되었으며 이제 10월 초다. 북만주에는 가을이라는 계절이 없고 10월 초는 겨울이다. 새벽이면 하얀 서리가 삼림을 뒤덮었다.
달란인들이 탐험대에게 더 이상 북쪽으로 가지 말라고 만류했다. 그들이 떠돌아다니며 만들어놓은 마을이나 임시거주지 사냥집이 있는 삼림까지는 갈 수 있으나 그 이상은 사람들이 드나들 수 없는 죽음의 땅이라고 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광야고 해가 떠오르고 해가 지고 떨어지는 이 세상의 끝이라고 했다. 달란인들은 탐험대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보고 그들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도움을 주었다. 열서너 장의 이리 껍질을 주었다. 이리 껍질은 순록이나 사슴의 껍질에 비해 가볍고 방습성이 좋기 때문에 걸치고 다니다가 밤에는 이부자리로 쓴다. 이리 껍질은 더럽고 털이 밀접하지 않아 상품 가치는 없지만 이리들은 그 껍질로 영하 40도나 되는 북만주의 겨울을 버틴다. 탐험대가 이리 껍질을 걸쳐 입었는데 나타리나가 웃었다. 그때쯤에는 모두 털투성이가 되어있었는데 이리 껍질을 걸치자 고대 원시인 같았다. 탐험대는 사흘 후 사냥집에서 떠났다. 통나무와 흙으로 만든 엉성한 집이었으나 밖으로 나오니까 그 고마움을 알 수 있었다. 추웠다. 영하 5도였으나 체감온도는 영하 10도 아래다. 이리 껍질을 몇 겹으로 껴입었으나 냉기가 스며들었다. 다음 날부터는 지세가 바뀌었다. 타이가(한냉침엽수림, 寒冷針葉樹林) 지역이 툰드라 지역으로 변했다. 타이가는 추위를 견딜만했고 동식물이 있다. 토끼, 사슴, 멧돼지, 노루들은 물론이고 범이나 곰의 울부짖는 소리도 들렸다. 그러나 툰드라(동토, 凍土) 지역은 변두리에만 난쟁이 가시나무나 한랭성 이끼가 드문드문 있을 뿐 동물은 물론 들쥐조차 없다. 하늘을 나는 철새도 보이지 않았다. 툰드라는 죽음의 땅이다. 아직 10월이었는데 땅은 깊숙이 얼어붙었고 간이천막을 칠 쇠말뚝도 들어가지 않았다. 나타리나는 그 광야가 관다(완달, 完達)산맥 북쪽 우수리강 남쪽 일대라고 추측했으나 지도의 백지 부분에는 아무것도 기입할 것이 없었다. 공백을 공백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툰드라의 광야에 들어간 지 사흘째 되던 날 델수가 모닥불을 피웠다.
델수는 돌을 모아 바람막이를 하고 가시나무를 땔감으로 썼다. 모닥불 옆에 이리 가죽을 깔고 잠자리를 만들었다. 간이천막에 들어가는 걸 거부했다. 델수 영감은 야수들처럼 추위에 강했으며 새벽에는 하얗게 뒤집어쓴 서리를 툭툭! 털어내며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탐험대는 계속 동북쪽으로 진입했다. 아직 10월이었으므로 그래도 태양이 올라왔다. 태양은 낮 동안 술 취한 것처럼 비틀거리다가 이내 지평선으로 떨어졌다. 탐험대는 기진맥진했으나 견뎌내고 있었는데 그날 밤 겨울이 갑자기 쳐들어왔다. 폭풍이 몰아쳤다. 기관차 소리처럼 불어닥친 폭풍이 천막을 날려버렸다. 천막은 쇠말뚝 채 폭풍에 휘말려 날아가 버렸다. 모닥불도 꺼졌다. 영하 30도의 날씨에 온몸이 마비되었다. 위기다. 죽음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델수가 고함을 쳤다.
‘괜찮아, 조금만 더 가면 돼!’
델수는 폭풍이 오래가지 않는다고 했다. 단지 겨울의 전령일 뿐이라고 했다. 탐험대는 인근의 하상(河床)으로 내려가 하상의 뚝 밑에 엎드렸다. 높이가 1m쯤 되었으나 북풍을 막아주었다. 이리 껍질이 살려주었다. 얼마 후 바람이 그쳤다. 죽음을 면했다. 델수는 방향을 남쪽으로 바꿨다. 이틀 쯤 내려가면 완다산맥이 나오고 고리드 마을이 있다고 했다. 밤새 걸었다. 나타리나도 따라왔다. 가혹한 첩보훈련을 받은 여인이다. 다음날부터 완만한 기복이 나타났다. 완다산맥의 자락이다. 그날 하오 나지막한 구릉을 넘어서자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반가운 소리다. 2만 년 전부터 사람들과 함께 살아온 개들이 힘차게 짖으며 달려왔다. 유명한 고리드의 사냥개들이다. 탐험대는 개들의 안내를 받으며 고리드 마을에 도착했다. 온 마을 사람들이 나와 손님을 환영했다.
고리드족은 수는 많지 않으나 북만주와 러시아 시베리아에서 살고 있는 소수민족 중에서 가장 우수한 수렵족이다. 그들은 북방의 엄한 자연에 잘 적응했으며 타이가뿐만이 아니라 죽음의 땅인 툰드라에서도 살고 있었다. 고리드 촌장은 동족인 델수의 명성을 듣고 있었으나 그렇다고는 해도 그가 안내하는 러시아 남녀 탐험가들이 광대한 툰드라를 가로질렀다는 말에 크게 놀랐다. 고리드 마을에는 열서너 채의 통나무집이 있고, 50명 가까운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마을에는 붉은 사슴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며칠 전에 얼어붙은 우수리강을 건너오는 사슴 떼를 사냥했다. 탐험대들이 건너온 툰드라에는 짐승들이 살지 못했으나 동남쪽 타이가지역에는 붉은사슴, 멧돼지, 노루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을 노리는 이리나 울부린, 범들도 돌아다녔다. 울부린은 족제비과의 짐승인데 족제비과 동물 중에서는 가장 크고 사나운 포식자다.
탐험대는 고리드 마을에서 며칠 쉰 다음 타이가지역으로 들어가 계속 동쪽으로 갈 계획이었는데 차질이 생겼다. 그때까지 이를 악물고 따라오던 나타리나가 쓰러졌다. 나타리나는 높은 열에 시달리고 있어서 위험한 상태다. 사모어 소령이 그녀의 옆을 지키며 간호를 했는데 석유 드럼통난로가 벌겋게 달아오르는 방안에서도 나타리나는 오들오들 떨었고 헛소리를 했다. 사모어 소령이 밤새 그녀를 꼭 껴안고 밤을 지샜다. 촌장이 곰의 쓸개를 먹였다. 산삼, 녹용과 함께 웅담은 3대 영약으로 알려진 값비싼 약이었으나 촌장은 아끼지 않았다. 웅담은 가을철 동면에 들어가기 전 곰이 동면을 하려고 영양을 잔뜩 채워놓은 가을 곰을 잡아 곰의 쓸개를 채취해서, 전문가가 여러 날 동안 정제를 하여 만든다. 좁쌀 크기의 환약으로 만드는데 그 좁쌀 크기의 웅담 한 알은 집 한 채 값과 맞먹는다. 쓰러진 지 꼭 사흘째 되던 날 하오 혼수상태의 나타리나가 정신이 돌아왔다. 웅담의 효력이다. 정신이 든 나타리나는 사모어 소령이 자기를 꼭 껴안고 있는 걸 보았다. 둘 다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다. 옷이 땀에 젖었기 때문에 벗긴 것이다.
‘정신이 드오?’
사모어 소령의 말에 나타리나가 고개를 끄덕였으나 사모어 소령이 몸을 풀어주려고 하자 떨어지지 않으려고 몸을 더 밀착시켰다. 그들은 함께 죽음의 문턱을 넘었다. 옷을 벗으면서 첩보원 관계도 벗어버렸다.
그날 밤 사모어 소령이 나타라나에게 특별한 치료를 했다. 북방에 사는 소수 민족들에게는 독특한 치료법이 있다. 여인이 중병에 걸렸을 때 여인의 몸에 남자가 정기를 주입하는 치료법이다. 소수민족의 장로들은 여인의 병에는 산삼, 녹용, 웅담보다도 그 치료법이 효과가 크다고 믿었다. 정기 주입은 시들어가는 여인의 몸을 소생시킨다. 사모어 소령은 장로들이 조언한 대로 자연스럽게 치료를 했다. 나타리나도 자연스러운 치료를 받아들였다. 남자의 정기가 몸 안으로 들어오자 나타리나는 신음했으나 고통의 소리가 아니라 기쁨의 신음이었다. 나타리나는 소령의 몸을 놓아주지 않고 새벽에 또 몸과 마음이 어울어진 신음소리를 내뱉으며 자연 치료를 받았다. 다음날 나타라나가 앞장서서 몸이 다 나았으니 탐험에 나서야 한다고 독촉했다. 그러나 고리드 촌장이 경고했다. 전날 붉은사슴의 동태를 살피려고 숲에 들어갔었던 사냥꾼들이 중대한 정보를 가지고 왔다. 범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서너 마리나 되는 범들이 삼림에 모여들었다. 붉은사슴을 쫓던 범들이 사슴을 포기하고 삼림을 돌아다녔다. 범의 번식기다. 범은 한겨울에 일정한 장소에 모여 집단적으로 선을 보고 짝을 골랐다. 범들은 수십km 떨어진 러시아에서 오고 수백km나 되는 조선에서도 모여들었다. 범들의 집단 교미장소는 일정하지 않았으나 올해는 동북 원시림이 될 것 같았다. 범들의 집단장소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 교미기에 신경이 날카로운 범들은 움직이는 물체만 보면 덮어놓고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 먹이가 아니라 살육이다. 그 시기에는 고리드인들도 삼림에 들어가지 않았다. 용감한 사람들이지만 생식기에는 삼림을 피했다. 마을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다. 집집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숨을 죽였다. 마을에는 비상경계령이 내려지고 장정들이 마을 어귀에 모닥불을 피우고 경비를 했다. 일부 생식에 미친 범들이 마을에 들어와 살육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어 마을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다. 델수가 탐험을 연기하자고 했다. 그러나 연기할 시간이 없었다. 이미 11월이었으므로 더 이상 꾸물거리고 있을 여유가 없다.
소싱안령산맥 동북쪽 러시아와 국경지대 광대한 툰드라를 돌파한 탐험대는 계속 동쪽으로 걸어가 한랭산림지대로 들어갔다. 산림지대 어귀까지는 고리드 사냥꾼들이 안내를 해주었으나 그들도 더 이상은 들어가지 못했다. 고리드족 안내인과 헤어진 탐험대는 천천히 산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옷을 껴입었는데 눈을 뒤집어썼으므로 눈사람 같았다. 낮에는 영하 20도, 밤에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갔다. 앞머리에 선 델수는 지형을 살피면서 나무들을 한 그루 한 그루 조사했다. 나무에는 신호가 있다. 범이나 곰이 발톱으로 영역을 표시하고, 이리나 족제비도 표시를 했다. 사람들은 도끼나 칼로 길을 표시했다. 동쪽에 계곡이나 물이 있다는 표시, 폭풍이나 폭설을 피하는 대피소를 가리키는 기호가 있었다. 험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냥꾼들은 민족을 가리지 않고 서로 살기 위해 공동 표시를 남겼다. 델수가 사흘 만에 대피소를 찾았다. 통나무로 지은 움막집에는 화덕과 땔감 그리고 음식이 있었다.
‘러시아 범 사냥꾼이 지은 집입니다.’
델수가 벽에 새겨진 글을 보고 설명했다. 방바닥에 범의 뼈가 있었다. 그날 밤 범이 포효했다. 멀리서 울더니 점점 가까워졌다. 한 마리가 아니다. 산 너머에서도 범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델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범들이 모여들고 있어요. 여기가 범들의 짝짓기 장소인 것 같아요.’
다음 날 아침에는 또 다른 범들이 도착했다. 서로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수컷은 수컷대로 암컷은 암컷대로 마음에 맞는 짝을 차지하려고 싸웠다.
‘여기를 빠져나가야 합니다, 빨리!’
더 이상 범이 모여들기 전에 빠져나가야 한다. 주변은 온통 피바다가 될 것이다. 범들이 미치는 날에는 다른 짐승을 물론 사냥꾼들도 얼씬거리지 못한다.
탐험대는 범들의 집합 장소를 피해 남쪽으로 내려갔는데 그날 정오께 앞서가던 델수가 멈췄다. 델수가 어느 나무 밑둥을 보고 있었는데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사람의 시신이다. 찢겨져 신원을 알 수 없었으나 러시아인인 것 같았다. 총이 떨어져 있었는데 총에 이빨자국이 나고 개머리판이 뜯겨져 나갔다.
‘범들의 소행입니다.’
여러 마리의 범들이 사방에서 덤볐을 것이다. 포수는 사냥집에 땔감과 음식을 마련해준 사람일지도 모른다.
‘혼자 범 사냥을 하다니 ….’
땅이 쇳덩어리처럼 얼어서 시신을 묻어줄 수 없다. 탐험대는 불을 피워 시신을 화장하고 뼈와 유품을 챙겼다. 그런데 그 화장을 했던 불이 좋지 않았다. 연기와 냄새가 범을 불러들였다. 저쪽 구릉에 범이 나타나 노려보고 있었다. 어미와 새끼 두 마리다. 새끼도 다 자란 놈이고 생후 2년쯤 되어 보였다. 어미 범은 새끼가 수컷일 경우 2년쯤 데리고 다니고 암컷은 좀 더 오래 데리고 다녔다. 그 어미는 발정이 되어 수컷과 교미를 하려고 왔으나 새끼가 떨어지지 않았다. 어미가 새끼에게 으르렁거리며 위협을 했으나 새끼는 멀리 가지 않고 어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고리드 사냥꾼들은 다 자란 새끼는 어미와 교미를 하고 어미 곁을 떠난다고 하고 있었으나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침팬지의 어미가 새끼와 교미를 하는 경우가 있으나 학자들은 교미가 아니라 교미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하고, 그 교미에서는 사정이 되지 않아 임신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무튼 어미는 신경질이 되어있었다. 다른 수컷과 교미를 새끼가 방해를 했기 때문이다. 델수가 총을 들어 올렸다. 그 범들은 러시아 포수를 죽인 범들이다. 델수는 사람을 죽인 짐승은 반드시 죽였다. 그게 범이든 곰이든 끝까지 추적해서 죽였다. 사람은 산림의 맹주이며 맹주를 해친 짐승은 죽어야 한다. 델수가 범들이 있는 구릉으로 가려고 했는데 범들이 스스로 다가왔다. 첩보원은 총을 지니고 있으나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첩보원은 숨어서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사모어 소령이 총의 안전장치를 풀고 나타리나도 권총을 뽑아 들었다. 두 사람은 발소리를 죽이고 델수의 뒤를 따라갔다. 사람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범들이 멈춰 섰다. 신경질이 난 범들이지만 상대가 만만치 않다는 걸 느꼈다. 만주 삼림의 왕인 범을 보고도 감히 도망가지 않고 덤벼드는 상대는 예사 적이 아니다. 델수가 고함을 쳤다.
‘네 이놈! 사람을 죽이고도 성할 줄 아느냐?’
어미 범이 금방 덤벼들 것처럼 으르렁거렸지만 덤벼들지 않았다. 어미 범은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저 인간들이 덤벼들 것인가? 얼마나 센 적인가?’
범과 인간의 신경전이다. 어쩌면 그 신경전에서 승패가 난다.
‘덤벼! 덤벼들어 봐.’
델수가 또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조금도 두려움이 없는 태도였는데 어미 범이 그 위세에 눌렸다. 어미 범이 뒷걸음질 쳤다. 그런데 젊은 수컷이 일을 벌였다. 그놈은 어미 뒤에 숨어있다가 어미가 뒤로 물러서자 곧바로 앞으로 튀어나왔다. 상대를 모르고 저지른 짓이다. 델수는 총을 들어 올렸으나 쏘지 않았다. 기다렸다. 단 한 발로 범을 죽일 수 있는 거리를 가늠하고 있었다. 젊은 수범이 껑충껑충 뛰어 달려들더니 델수 바로 앞에서 멈췄다. 그렇게 위협하면 적이 도망칠 줄 알았는데 적은 범을 마주 보면서 꼼짝도 않았다. 젊은 범이 당황했다.
‘덤빌 것인가, 도망칠 것인가?’
일순 멍하니 서 있었는데 그건 ‘날 잡아잡슈.’라는 말과 같았다. 델수가 발포했다. 굉음과 함께 콩알만 한 납덩이가 범의 앞가슴을 뚫었다. 총탄이 범의 갈비뼈를 스쳐 심장을 파괴했다. 범이 뒹굴었다. 사냥감 한 마리를 잡는데 단 한 발만 쏘는 고리드 사냥꾼의 철칙이다. 새끼 범이 눈앞에서 죽었는데 어미 범이 덤벼들지 않고 등을 돌렸다. 산 너머에서 수범들의 포효소리가 들렸다. 짝을 부르고 있었다. 어미 곁을 떠나지 않았다가 죽은 새끼는 포기하고 수컷을 받아들이려는 어미의 결단이다. 낳은 자식을 기르는 일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발정이 되어 새로운 자식을 낳는 것이 더 긴박하다.
그러나 델수는 어미 범을 놓아주지 않았다. 러시아 포수를 죽인 범이다. 사냥꾼들에게는 불문율이 있다. 사냥꾼들의 법이다. 델수가 범이 구릉을 넘어서기 직전에 발포했다. 범이 사람들의 동태를 살피려고 구릉에서 잠시 멈춰서 뒤를 돌아다봤는데 총탄이 날아갔다. 100m가 넘는 거리였으나 델수의 사격은 실수가 없다. 이마에 총탄을 맞은 어미 범은 일어나지 못했다.
탐험대는 계속 동쪽으로 걸어갔는데 거기가 어디인지 델수도 몰랐다. 아마도 완다산맥 북쪽일 거라고 짐작했다. 백두산에서 북상하는 장파이산맥과 이어지는 대 산맥인데 지세는 아무도 모른다. 그 지역 동쪽 러시아 땅에는 시호테 알킨산맥이 있다. 블라디보스토크 인근에서 일어난 산맥인데 거기서부터 바로 북상하여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지대에서 우수리강을 사이에 두고 그 서쪽 산자락이 만주 쪽의 완다산맥과 연결되었다.
탐험대 일행은 사흘 후에 원시림에서 벗어났다. 다행히 만주에는 삼한사온이라는 기후변화가 있어 일행은 비교적 추위가 덜한 시기에 산림에서 빠져나왔다. 허허벌판이 나오고 이름 모를 소수민족 마을이 나타났다. 움막집들이 대여섯 채, 서른 명쯤이 살고 있었다. 주위에 나무 한 그루도 없는 허허벌판 동토에 어떻게 사람들이 살 수 있을까? 움막집에 들어서니 수수께끼가 풀렸다. 집안에 놓인 화덕에 불이 벌겋게 타고 있어 견디기 어려울 만큼 더웠다. 화덕에서 타는 것은 나무가 아니라 석탄이다. 주변에 석탄 광산이 있다. 노천광산이다. 평지의 땅이 바로 석탄층이다. 마을주민들은 삽과 괭이로 석탄을 캤다.
‘석탄이 얼마나 많으냐?’는 질문에 주민들은 그냥 팔을 크게 벌렸다. 무진장이라는 말이다. 덕분에 탐험대는 집안에서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다. 주민들은 친절하고 밀가루 음식을 주었다. 몇백 리나 되는 만주인 마을에 석탄을 가지고 가서 바꾼 밀가루다.
탐험대는 그 마을에서 나흘을 지냈다. 체중이 1/3이나 빠졌기 때문에 체력을 보충했다. 마을 사람들은 탐험대가 동쪽으로 간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거기는 광대한 벌판이며 그곳이 바로 세상의 끝이라고 했다. 그래도 탐험대는 출발했다. 이 세상의 끝을 향해 묵묵히 걸어갔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그 벌판은 싱가이(흥개) 광야의 서북쪽이다. 싱가이 광야는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지대에 있는데 바다처럼 넓었다. 벌판은 쇳덩어리처럼 얼어붙었으나 본래는 습지다. 색깔이 검은 것으로 봐서 바닥이 석탄층이다. 그 벌판은 여름철에는 물이 무릎까지 절벅거리는 늪지대고, 겨울에는 쇳덩이 동토다. 이 세상의 끝이라는 원주민의 말대로 그 벌판은 버림받은 땅이다. 그러나 그곳은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지대다. 서북쪽에는 러시아 땅이 중국영토 안으로 들어와 있고, 동남쪽에는 중국 땅이 러시아의 영토 깊숙이 들어 와있다. 군사상 요충지다. 특히 완다산맥의 줄기가 싱가이 광야 안쪽으로 뻗어있는 곳이 중요한 요충지다. 산기슭에서 우수리강 너머 러시아 측 군사 벙커들이 훤히 보였다.
탐험대가 그 산으로 올라갔다. 나무들이 드문드문 있는 바위산인데 델수가 발자국을 발견했다. 노루를 쫓고 있었다. 그곳에 노루가 있는 것도 놀라웠으나 노루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더욱 놀라운 일이다.
‘우선, 노루를 잡읍시다.’
델수의 말대로 노루를 잡아야 한다. 석탄마을에서 얻어온 식량이 바닥났다. 델수가 노루를 잡았다. 발자국을 추적하여 바위틈에 숨어있는 놈을 손도끼를 던져 잡았다. 총을 쓸 수는 없다.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무얼 하는 사람들일까?’
델수는 불도 피우지 않았다. 얼어붙은 몸을 녹이고 노루고기를 구우려면 불이 필요한데 그 건 너무 위험하다. 불을 피우기 전에 그 사람들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다리로 걸어 다니는 동물이면 델수의 추적을 피할 수 없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을 때 델수가 바위산 중복에서 멈췄다. 동굴이다. 동굴 안에 인기척이 있었다. 델수의 코와 귀가 인기척을 탐지했다. 델수가 동굴 쪽으로 소리 없이 기어갔다.
밤 짐승처럼 동굴 앞까지 기어가 웅크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영하 30도나 되는 추위 속에서 델수는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약 한 시간 쯤 지났을 때 동굴 안에서 소리가 났다. 속삭이듯 낮은 소리였으나 예민한 델수의 귀는 소리를 들었는데 델수가 크게 놀랐다.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그가 그때는 마치 감전이 된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동굴 안에서 들려온 말은 고리드 말이었다.
‘덫을 놓은 곳으로 가볼까? 노루가 아니라 토끼라도 한 마리 걸렸으면 좋겠어.’
‘그래, 같이 가보자.’
델수는 그들이 덫을 놓은 곳까지 가도록 내버려 두었다가 조용히 고리드 말로 말했다.
‘동족님들, 놀라지 마시오. 나는 고리드 사냥꾼 델수요.’
‘델수라고? 그 유명한 델수 포수란 말이요?’
‘그래, 그러니 조용히 내 말을 들어요!’
동족이란 한 마디에 위험한 상황에서도 말과 뜻이 통했다. 두 사람의 고리드인이 일본인 사람을 안내하고 있었다. 일본군 정보원이다. 기밀부대원이다. 일본인과 고리드인은 모두 굶주리고 있었다. 나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노루나 토끼도 잡지 못했다. 다행히 동굴을 발견하고 불을 피웠으나 굶어 죽을 판이다. 기력이 쇠진해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델수와 고리드인들이 서로 돕기로 했다. 일본인은 굶주려 죽을 판이고 러시아인은 추워서 얼어 죽을 판이다. 추위에 몸이 마비되었다. 나타리나는 심한 동상에 걸렸다.
델수가 결단을 내렸고 고리드인이 따르기로 했다. 델수는 고리드인의 영웅이고 그의 말에는 천금의 무게가 있다.
‘노루고기를 일본인들에게 나눠주자고?’
델수의 제안을 듣고 사모어 소령이 펄쩍 뛰어올랐다. 이적(利敵)행위였으며 중벌을 받는다. 러시아와 일본은 적대 국가다.
‘그 대신 우리는 동굴 안에 들어가 모닥불 옆에서 얼어붙은 몸을 녹일 수 있다. 이대로라면 얼어 죽는다. 오늘 밤에는 북풍이 불 것입니다.’
‘그렇다면 ….’
사모어 소령이 총을 들어 올렸다. 동굴 안의 일본인 정보원들을 사살하겠다는 말이다. 나타리나도 권총을 뽑아 들었으나 델수의 표정은 차가웠다.
‘우리 고리드인들은 사람을 죽이지 않습니다. 우리 사냥꾼들은 짐승은 잡지만 사람을 잡지 않아요!’
델수 뿐만 아니라 두 명의 고리드인들도 사람을 죽이는 싸움에는 협조하지 않기로 했다. 싸울 테면 당신들 끼리 싸우라는 말이다. 사모어 소령은 생각이 깊었다. 일본인들을 죽이려고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 일본인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그들도 특수훈련을 받은 정보원이며 최신형 무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승패를 알 수 없다. 타협을 할 것인가? 타협을 하면 동굴 안의 일본인들과 러시아인들은 모닥불에 노루고기를 구워먹게 된다. 따뜻하고 배부르게 쉴 수 있다. 본디 간첩이나 스파이들은 서로 타협을 하는 수가 있다. 목숨을 걸고 몰래 거래를 한다. 서로 주고받고 헤어지면 그만이다. 그런 거래를 자주하면 이중간첩이 되지만 한두 번은 나쁘지 않다. 우선 목숨을 유지해야 할 것 아닌가? 그곳에서는 델수를 거역할 수도 없다. 북만주삼림에서 델수와 싸울 수 없다. 명령을 하는 사람은 사모어 소령이 아니라 델수다. 사모어 소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델수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문제는 일본인들이다. 그들이 고리드 사람들의 말을 들을 것인가? 고리드인들이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델수가 밖에서 귀를 기울였다. 만일 일본인들이 반항하면 뛰어 들어가 일본인들을 처치할 것이다. 일본인들은 군기가 엄격했으며 군기를 지키기 위해서는 목숨도 불사한다. 그들은 칼로 배를 그어 할복을 하는 민족이다. 과연 동굴 안에서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러시아인들과 타협하자는 제안을 듣고 분격한 것 같았다. 델수가 총을 들고 동굴로 뛰어 들어가려고 했을 때 또 말소리가 들렸다. 부드럽게 달래는 말이었다. 서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의논을 하는 중이다. 한참 후 고리드인들이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일본인들로부터 받은 장총과 권총을 들고 나왔다. 무기를 델수에게 넘겨주었다. 델수는 러시아인들의 무기도 보관했다. 이로써 러시아인들과 일본인들은 서로 무기를 버렸다. 델수가 러시아인들을 데리고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동굴은 꽤 길었다. 7~8m쯤 들어서자 옆으로 구부러진 곳이 나오고 열 평쯤 되는 공간이 있었다. 모닥불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불 옆에 앉아있는 일본인들의 얼굴이 환하게 보였다. 둘 다 중년이었으며 사복을 입고 있었다. 오래도록 굶은 그들은 얼굴이 창백했고 힘이 없어 축 늘어져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중국말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시오? 러시아 친구들, 고리드 친구들.’
‘안녕하시오, 일본 친구들.’
델수는 좀 떨어진 곳에서 그들을 감시했다. 델수의 손에 손도끼가 들려있었다. 숙련된 사냥꾼이 쓰면 총보다도 더 무서운 무기다. 그러나 인사를 주고받는 그들에게는 살기가 없다.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을 위험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는 목숨을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모어 소령이 어깨에 메고 있었던 노루를 모닥불 옆에 던졌다. 고리드인들이 모닥불을 활활 살리면서 노루고기를 꼬치에 꿰어 구웠다. 다갈색으로 잘 익은 노루고기를 먹은 일본인들의 얼굴에 웃음이 피어났다. 따뜻한 모닥불을 쪼인 러시아인들도 생기가 돌았다.
러시아와 일본 정보원들은 그날 모닥불 옆에 잠자리를 마련했다. 피곤했던 터라 그대로 잠이 들어 다음날 정오께 햇빛이 동굴에 스며들었을 때 일어났다. 그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웃었다. 모든 것이 얼어 붙은 동토에서는 사람들은 피아(彼我) 구분이 없이 서로 협조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새벽에 사냥을 나갔던 델수가 하오께 노루와 오소리를 잡아 왔다. 일본인과 고리드인들이 보름 동안이나 돌아다녀도 꼴도 구경 못 했던 짐승들이다. 그러나 델수는 마치 닭장에서 닭을 잡아 오듯이 잡아 왔다.
‘어떻게 잡았느냐고? 당신들은 엉뚱한 곳에 덫을 놓았어. 노루와 토끼들이 다니는 길에 옮겼지. 덫도 잘못 만들었기에 좀 고쳤고. 노루는 다니는 길이 있어. 그 길목에 덫을 놓아야 해.’
델수는 침엽수잎을 채집했다. 싱싱한 잎은 부드럽고 짙은 향기가 났다. 델수와 함께 있는 한 먹을 것 걱정은 없다. 등이 따습고 배가 부르면 사람은 관대해진다. 서로 적대적인 러시아인들과 일본인들도 그랬다. 그들은 러시아인들이 약용으로 지니고 다니는 알콜을 나눠마시며 담소했다. 정보원이 얼마나 고생스럽고 위험한 일인지 서로 터놓았다. 동병상련. 그런 광경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던 델수가 새로운 제안을 했다. 이제 그따위 일을 집어치우고 돌아가자고 했다. 더 이상 바깥을 돌아다닐 수 없다고 했다. 때는 정월 초 한겨울이다. 시베리아에는 무서운 폭풍이 불어닥쳤다. 마치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동굴바닥이 흔들렸다.
‘앞으로 열흘은 쉬어야 하오.’
그의 말은 옳다. 그렇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들은 맡은 임무를 다 끝내지 못했다. 임무를 마치지 못하고 돌아가면 군법회의가 그들을 기다린다. 중형이거나 시베리아 유배형이다. 델수가 웃었다. 사람은 서로 모여 의논을 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 고리드 격언이다.
일본정보부의 에사기 대위가 말했다.
‘일본에도 세 사람이 모이면 문수보살(文殊菩薩)의 지혜가 생긴다는 격언이 있지요.’
그들은 문수보살의 지혜를 짜냈다. 러시아와 일본인은 그동안 수집했던 정보를 서로 교환하여 아직 미완의 정보를 통합하여 완전한 정보를 만들어내기로 했다. 그동안 러시아의 정보원들은 동북 만주 우수리강의 서쪽에서 동쪽으로 오면서 지형과 각종 정보를 수집했고, 일본 정보원들은 우수리강의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오면서 정보를 수집했는데 그 양측 정보를 통합하면 동북 만주 북방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선 일대의 정보들이 모두 모인다. 정보가 통합되어 완벽한 지도를 그릴 수 있다. 그들은 동굴에서 그 작업을 하기로 했다. 바깥에는 시베리아에서 쳐들어온 동장군이 위세를 떨치고 있었으나 동굴 안은 안전하다. 그 동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었으나 안쪽에 사람과 짐승의 화석(化石)이 있었다. 몇천만 년 전에 있었던 지각변동으로 생긴 것 같았으며 동굴 안의 화석도 몇 만 년 전의 것으로 보여졌다. 창조주가 만든 마지막 은신처인지도 모른다. 델수는 동굴 안의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사냥을 계속했다. 러시아와 일본의 정보원들은 한겨울 툰드라에서는 생명체들이 없다고 생각했으나, 툰드라의 땅 밑이 쇳덩어리처럼 얼어붙었으나 생물이 살고 있었다. 불사조 같은 생명력을 지닌 노루, 하얀 털옷을 두껍게 껴입은 토끼, 눈 속에 사는 뇌조(雷鳥)들이 있고, 그들을 노리는 북극여우와 족제비 종류의 짐승들이 있었다. 델수는 사냥을 계속했고 사람들이 그를 도왔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뇌조와 토끼고기는 세계 어느 음식점에서도 요리하지 못할 맛이다. 러시아와 일본 정보원들이 종합보고서를 만들고 있을 때 바깥에서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우선 나무들이 쾅쾅! 쓰러지는 소리가 사라졌다. 아름드리나무를 쓰러뜨리던 강풍이 힘을 잃었다. 동굴 안의 희미했던 빛도 점점 밝아졌다. 밀려났던 태양이 돌아오고 있었다. 어느 날 바깥에서 돌아온 델수가 웃으며 겨울이 물러가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와 일본 정보원들도 웃었다. 그들은 손을 잡고 작별 인사를 했다.
141. 조선의 늑대
1932년 12월 초, 미키마루오(三木丸雄) 등 일본인 포수 세 사람이 조선인 박순달 포수의 안내로 함경도 무산 압록강 상류에서 멧돼지사냥을 했다. 일행은 멧돼지 두 마리를 잡았는데 멧돼지를 어깨에 메고 오느라고 시간이 걸렸다. 벌써 계곡이 어두워지고 있었으므로 멧돼지를 그냥 두고 가까이에 있는 마을로 피신을 하자고 박포수가 말했는데
‘무슨 말을 하고 있소, 피신이라니 ….’
미키 포수가 고함을 질렀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잖습니까?’
‘그렇다면 야영을 하지. 오늘은 달이 차는 날이 아니오. 바람도 없고 춥지도 않으니 멧돼지를 메고 가다가 어두워지면 야영을 합시다.’
‘이 일대는 범들이 돌아다닙니다.’
‘범이 있어요?’
‘범은 없겠지만 이 일대는 늑대들의 영지입니다.’
‘아, 그까짓 늑대 때문에 도망을 간다는 말이요?’
일본 사냥꾼들이 호기를 부려 결국 바위 밑에서 야영을 했다. 그들의 말대로 그날 밤에는 둥근달이 떠올랐고 그 빛이 싸여있는 눈과 얼음에 반영되어 주위가 낮처럼 밝았다. 불을 피우니 춥지도 않고 위험한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일행이 잠자리에 들려고 했을 때 늑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길게 뻗는 울음소리에는 기분 나쁜 살기가 느껴졌으나 일본 사냥꾼들은 애써 불안감을 감추고 태연한 척했다. 미키는 일본에서 이름이 알려진 직업 포수다. 이어 늑대가 또 울었다. 이번에는 대여섯 마리가 울었다.
‘늑대가 사람도 습격합니까?’
‘무산에서는 범이나 표범에게 물려 죽는 사람보다 늑대에게 잡아먹히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지난해에는 스무 명이 죽었습니다.’
일본 사냥꾼들이 좀 움찔했다. 조선과 만주의 국경지대에 서식하는 늑대는 조선 남쪽의 늑대들과는 달랐다. 소위 삼림 이리들이다. 삼림 이리는 몸무게가 15관(60kg)이나 되었고, 큰놈은 20관이 넘는다. 이리 종류 중에서 가장 크고 무서운 맹수다. 이윽고 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불빛이 비치지 못하는 숲에서 요사한 푸른빛이 명멸(明滅)했다. 몇십 마리가 되는 것 같았다. 일본인들은 그래도 자존심을 세웠다. 박포수가 30m쯤 떨어진 삼림으로 내려가 나무 위로 피신하자고 했는데 일본인이 거부했다. 명색 포수가 늑대를 피해 나무 위로 올라갔다면 웃음거리가 아닌가? 모닥불이 활활 타고 있는 이곳이 더 안전할 것 같았다. 짐승이란 본디 불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늑대들이 불을 타 넘고 습격하지 않으리라고 믿었다.
일본인은 조선의 늑대를 얕잡아봤다. 일본에도 1850년까지는 북해도에 이리들이 살고 있었으나 목장을 지키려는 일본인들이 경찰, 군대를 동원하여 이리들을 멸종시켜버렸다. 그래서 일본 포수는 이리를 전설로만 알았다. 늑대나 이리가 불을 두려워한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마을 가까이서 살면서 불이 무엇인지 사람이 어떤 동물인지 알고 있다.
이리들이 가까이 다가섰다. 불빛이 비치는 데까지 다가왔다. 일본인들은 또 박포수의 의견을 무시했다. 이리는 피를 보면 사나워지는 짐승이라 총을 쏘지 말라고 했는데 일본인이 총을 쏘았다. 위협발사다. 자신들의 불안과 공포감을 떨쳐버리려는 심산이다. 어찌 되었건 그건 큰 실수였다. 이리들은 사람을 노린 게 아니라 모닥불 옆의 멧돼지를 노렸는데 멧돼지가 두 마리였으므로 내버려 두면 멧돼지고기만 먹고 사람들은 해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사격으로 이리가 한 마리 죽자 피를 본 이리들은 멧돼지고기는 그냥 두고 사람들에게 덤벼들어 사람사냥을 시작했다. 피냄새가 이리들의 살육본능을 유발했다. 이리들이 휙휙 바람을 일으키며 모닥불 주위를 빙빙 돌았다. 어찌나 빠르게 도는지 일본인들은 눈이 어지러워 겨냥을 하지도 못하고 총을 마구 쏘았다. 그제서야 일본인들은 이리가 집에서 기르는 개 종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대여섯 마리가 쓰러졌지만 이리들의 수는 줄지 않았다. 원래 이리들은 열 마리에서 서른 마리가 집단을 이루고 살았으며, 서로 영토싸움을 했으나 큰 사냥감이 있으면 다른 무리들과 연합을 했다. 때로는 백 마리가 넘을 때도 있다. 미키 포수가 고함을 쳤다.
‘마구 쏘지 말아, 총탄을 아껴!’
총탄이 바닥나고 있다. 이리들은 총탄이 떨어져 가는 걸 아는 듯 총공격을 했다. 불이 붙은 나뭇가지를 던졌으나 이리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털에 불이 붙어도 사람들에게 덤벼들었다.
진두지휘를 하던 미키 포수가 이리의 두목에게 당했다. 이리 두목은 다른 이리들보다도 덩치가 한 둘레 더 컸기 때문에 식별할 수 있는데 그녀석은 다른 이리를 독려하다가 부하들이 제대로 공격을 못 하자 직접 덤벼들었다. 이리도 미키 포수가 사람들의 두목이라는 걸 알고 두목 대 두목의 싸움을 걸었다. 두목 이리는 미키 포수의 총구를 피해 일단 몸을 옆으로 틀어 위장 공격을 했다가 갑자기 모닥불을 타 넘고 미키 포수의 왼팔을 물었다. 그 일격으로 미키 포수는 총을 떨어뜨렸고 왼팔의 살점이 주먹만 하게 떨어져 나갔다. 이리의 무서운 이빨과 아래턱의 힘이다. 미키 포수의 팔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고 피 냄새를 맡은 이리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다. 미키 포수는 그래도 물러서지 말라고 독려하며 고함을 질렀으나 사태는 절망적이었다. 그때 총소리가 들리고 고함 소리도 들렸다. 저쪽 삼림에서 불빛이 보였다. 횃불이 불티를 날리며 다가왔다.
‘구조대다!’
박포수가 외쳤다. 일본인들이 용기를 냈다. 이리들이 주춤했다. 이리들은 다가오는 횃불을 보고 도망쳤다.
‘괜찮소?’
네 명의 조선인 포수들이 횃불을 들고 뛰어 들어왔다. 모두 젊은 사람들이었는데 한 사람은 총을 들고 있었다. 당시 조선을 지배한 일본인들은 조선인에게 총기 허가를 주지 않았는데 총을 가진 것으로 보아 그는 예사 포수가 아니었다.
이윤회 포수다. 그는 젊은 나이로 왕실 어용 포수가 되었으나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조선왕조가 없어진 뒤에는 무산에서 사냥으로 소일했다. 부상 당한 포수는 무산에 있는 혜산진의 병원으로 보냈다. 이리에게 물린 미키 포수는 왼팔의 뼈가 들어났다. 구사일생의 위기일발에서 목숨을 부지한 일본인들은 그제서야 삼림 이리의 무서움을 알았다. 미키 포수는 일본으로 돌아간 이듬해에 다시 조선에 왔다. 자기에게 중상을 입힌 조선이 리들에게 복수를 할 심산이었다.
당시 조선총독부는 해수(害獸) 박멸 작전을 폈다. 범, 표범, 곰, 늑대 등 맹수가 산악지대를 돌아다니면서 사람과 가축을 해쳤다. 특히 늑대들에 의한 피해가 컸다. 조선총독부는 늑대들에게 현상금을 걸었다. 일본 돈 5원의 현상금인데 미키 포수는 이윤회 포수와 한패가 되어 함경도 무산에서 늑대사냥을 하기로 했으나 무산의 늑대들이 대부분 만주 땅으로 넘어가 버렸기 때문에 경북에서 늑대사냥을 했다. 경북 칠곡에 사는 이상오 포수의 별장에 머물면서 그 인근 야산에 돌아다니는 늑대를 잡으려고 했다. 이상오 포수는 명문가 출신으로 동물연구를 하면서 사냥도 했는데 오래전부터 이윤회 포수가 이상오 포수의 안내인 역할을 했다. 이상오 포수는 총독부의 늑대 박멸 작전에 참가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했다. 그는 사냥꾼이 아니라 동물학자였으며 야생동물을 함부로 죽이는 것에 반대했다. 그러나 문경군에서 늑대가 아이를 물어간 현장을 보고는 생각을 바꿨다. 현장은 참혹했다. 여름이었는데 두 마리의 늑대가 초저녁에 마을에 침입했다. 늑대는 어느 폐가의 마루 밑에 숨어있다가 날이 어두워지자 마을 안을 돌아다니면서 사람사냥을 했다. 늑대가 마을 안쪽의 농가에 침입했다. 여름이었으므로 젊은 부부가 마당에 멍석을 펴고 잤는데 안주인이 여섯 살 된 딸을 품에 안고 잤다. 늑대는 엄마 품에서 자고 있는 아이의 목을 깨물어 소리도 내지 못하게 하였다. 늑대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아이를 마을 어귀로 물고 나와 목을 잘랐다. 그 자리에서 하반신을 뜯어먹고 나머지는 물고 도망갔다. 이윤회 포수가 멍하니 눈을 뜬 아이의 머리를 보고 눈물을 흘렸다. 잔인무도한 짐승이다. 늑대들은 경북 산악지대 일대에서 1년 동안 서른 명의 아이들을 잡아먹었다. 그래서 이상오 포수가 늑대를 소탕하기로 하고 이윤회 포수를 초청했다. 이윤회 포수와 미키 포수가 도착할 때까지 늑대 포획은 지지부진했다. 경찰과 군대까지 동원했는데도 한 달에 겨우 한두 마리를 잡았을 뿐이다. 사람들은 늑대를 잘못 봤다. 늑대 박멸 작전을 시작할 때 사람들은 그까짓 늑대들을 쉽게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늑대는 늘 마을 주변에서 돌아다녔으며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돌을 던지면 닿을 거리에 있었고 돌을 던져도 도망가지도 않았다. 장난이라도 하듯 힐끔힐끔 돌아다보며 태연히 돌아다녔다. 총독부가 늑대사냥을 하기 위해 지방 포수들에게 총기 사냥을 허가했기 때문에 꽤 많은 포수들이 늑대잡이에 나섰다. 그런데 마을 주변에서 서성거리던 놈들이 토벌 작전이 시작되자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멀리 도망가버린 것일까? 총을 든 포수들만 늑대를 볼 수 없었을 뿐이고 농부나 나무꾼들에게는 여전히 많았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총을 든 사냥꾼을 눈뜬장님이라고 야유를 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늑대들이 총을 든 사냥꾼과 괭이를 든 농부를 식별했기 때문이다. 동물학자인 이상오 포수도 조선의 늑대를 오해했다고 자인했다. 늑대는 예리한 감각과 높은 지능을 가진 고등동물이다. 보통, 짐승들은 시각, 청각, 후각 등 어느 하나가 발달하면 다른 감각은 둔한 법인데 늑대는 오감이 모두 예민했다. 늑대는 그 예민한 오감으로 산꼭대기에서 마을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었다. 사람들은 산꼭대기의 늑대를 볼 수 없었으나 늑대는 마을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훤히 보고 있었다. 포수가 농부로 가장(假裝)하여 짚으로 둘둘만 총을 지게에 숨겨 다녀도 늑대는 쉽게 간파했다. 늑대의 눈은 그걸 간파할 수 없어도 코가 화약 냄새를 맡았다. 늑대의 코는 특히 화약 냄새에 민감하며 500m 이내의 거리에서는 놓치지 않았다. 늑대의 코는 사람들에게 예민하게 반응했고, 귀는 자기에게 몰래 다가오는 포수의 발자국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40여 명이나 되는 포수들이 출동했으나 한 달 동안 경북도에서 잡힌 늑대는 고작 세 마리였다. 농부들에게는 보이는 늑대가 포수들에게는 보이지 않았으므로 포수는 당달봉사라는 야유를 받아도 할 말이 없다. 낮에 포수가 허탕을 치는 동안에도 밤에는 여전히 늑대가 사람사냥을 했다. 포수들이 세 마리의 늑대를 잡는 동안 늑대는 다섯 명의 아이를 물어갔다. 만물의 영장이 그렇게 우롱당했다.
늑대들의 생태를 조사한 이상오 포수는 더욱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 그 당시 조선의 농촌에서는 집집마다 개를 길렀다. 수십 마리의 개들이 마을을 지켰다. 그런데 개가 늑대를 잡았다는 얘기는 없었고 늑대를 쫓아냈다는 얘기조차 없었다. 반대로 늑대가 개를 잡아먹었다는 소문을 들렸다. 늑대가 개와 사촌이기 때문에 서로 싸우지 않는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서 개와 늑대가 어울려있는 것은 보았다. 싸우지 않았다. 늑대는 개와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누워서 하품을 했다. 세밀하게 조사를 한 이상오 포수는 기가 막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 마을 어귀까지 들어와 개들과 어울리는 늑대는 거의 암컷이다. 늑대는 수컷과 암컷의 힘이 거의 대등하고 암컷이 사냥을 주도한다. 암컷이 선발대가 되어 마을의 개들을 처리했다. 늑대의 암컷 - 아마도 발정이 된 암컷들이 개들의 똥오줌을 몸에 묻힌 다음 개들에게 접근한다. 늑대의 암컷은 교미에 방해가 되는 꼬리를 옆으로 말아 올리고 개들 사이에 끼어든다. 늑대의 몸에서 나는 개의 냄새와 암컷이 뿌리는 암내(페르몬)가 개들을 혼란시킨다. 사실 늑대는 개와 교미를 할 수도 있고, 새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리석은 개들은 늑대와 싸우지 않았다. 동족으로 속았다. 교미를 하겠다고 늑대 암컷에게 덤벼드는 수컷도 있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주위에 사람들이 사라지고 날이 어두워지면 상황이 달라진다. 늑대의 암컷이 본성을 드러낸다. 늑대는 단 일격으로 개를 죽인다. 목덜미를 꽉 물고 짓눌렀기 때문에 개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는다. 늑대는 개고기를 좋아한다. 늑대는 동족의 고기도 먹는 데 특히 개고기를 좋아한다. 마을에 침입해서도 아이들을 잡아먹기 전에 개부터 잡아먹었다. 돼지와 개가 있으면 개부터 잡아먹는다. 비가 오는 밤, 폭우가 쏟아지는 밤에는 개들의 후각이 둔해지기 때문에 개가 짖지도 않는다. 야수인 늑대는 개보다 밤눈이 밝았고 송곳니가 길고 날카로왔다. 그래서 경북 산골에서는 개들의 씨가 말랐다.
조선사람들은 늑대는 개와 비슷한 짐승이며 늑대와 개가 싸우면 개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늑대는 외모에서도 개와 다르다. 뒷다리가 길어서 기동력이 빠르다. 아가리가 길고 톱니 같은 이빨이 있다. 턱의 힘이 강해 물고 늘어지면 주먹만 한 살점을 푸줏간의 칼처럼 잘라낸다. 개들은 오래전부터 사람과 살면서 야생이 퇴화해버렸다. 달성의 박포수는 늑대와 싸워본 포수다.
‘늑대와 싸워보지 않은 사람은 늑대가 겁이 많은 짐승이라고 하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박포수는 문경군의 마을에서 네 마리의 늑대가 마을에 들어와 빈집 마루 밑에 숨어있는 걸 알고 마을을 포위했다. 서른 명이 넘는 장정들이 늑대가 빠져나갈 길을 완전히 차단했다. 창과 몽둥이로 무장했다. 모닥불을 피우고 횃불을 들었다. 보름달이었으므로 마을은 대낮처럼 밝아 늑대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보름달 빛과 모닥불과 횃불로 마을 안은 대낮처럼 밝았는데 늑대들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 옆을 휙휙! 스쳐 가는 소리는 나는데 총을 쏘고 몽둥이를 휘두를 대상이 보이지 않았다. 늑대들은 도망가지도 않았고 사람사냥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횃불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머리 위를 타고넘었다. 박포수가 총으로 늑대 한 마리를 쏘았다. 뒷다리에 총을 맞은 늑대가 막다른 골목으로 달아나는 걸 보고 쫓았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늑대가 눈에 푸른 불을 켜고 아가리를 벌렸는데 악마 같았다. 늑대가 창을 든 장정의 팔을 물고 뒹굴었으므로 총도 쏠 수 없었다. 늑대는 결국 도망쳤다. 뒷다리에서 피를 뚝뚝 흘리면서 그놈은 동족들과 함께 마을에서 탈출했다. 그날 밤 늑대는 한 마리도 잡지 못했고,. 세 사람이 늑대에 물려 중상을 입었다.
‘이런, 바보 자식들!’
진두지휘를 하고 있었던 경찰서장이 분통을 터뜨렸다.
경찰서장이 칠곡의 이상오 포수의 별장을 찾아갔다. 전국에서 많은 포수들이 모여있었고 이윤회 포수와 미키 포수도 있었다. 마당에 늑대 세 마리가 거적에 덮여 있었다. 이윤회 포수와 미키 포수가 잡은 늑대다. 경찰서장은 그 집을 늑대박멸본부로 삼기로 했고, 이상오 포수와 이윤회 포수의 지도를 받기로 했다.
‘늑대를 잡으려면 늑대를 알아야 합니다.’
이윤회 포수가 말했다.
‘첫째로, 늑대는 인간이 가지고 있지 않은 기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코입니다. 인간도 겉보기에는 코가 있지만 있으나 마나 한 것이지요.’
늑대의 코는 철붙이의 냄새를 맡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철붙이에서 냄새가 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철에는 냄새가 있고 온도도 있다. 그래서 늑대는 철로 만든 무기를 가지고 있는 포수를 식별했다. 늑대는 화약이나 독약의 냄새도 맡았다. 늑대의 코가 사람과 다른 점은 또 있다. 그건 결정적인 차이였는데 사람들은 그걸 모른다. 사람의 코는 현재 바로 지금의 냄새도 잘 못 맡지만 늑대는 몇 시간 또는 며칠 전의 냄새까지도 맡았다. 며칠 전에 어떤 사람이 어디서 뭘 하고 있었다는 것도 감지했다. 사람들이 며칠 존부터 화약이나 철 냄새가 나는 무기를 갖고 돌아다닌다는 사실이나 사람들이 어디에 덫을 설치했고 독약이 들어있는 미끼를 어디에 놓아두었다는 것도 쉽게 알아차렸다. 조선의 늑대는 사람, 범, 표범들과 싸워온 포식동물이며 그놈들은 놀랄만한 능력과 끈질긴 집념을 갖고 있다고 했다. 늑대들이 사람의 마을을 습격할 때는 며칠 전부터 그 마을을 살피면서 끈질기게 기회를 기다린다고 했다. 치밀한 계획을 세워 사냥을 했다. 이윤회 포수는 그 당시 경북 일대에서 아이 사냥을 했던 늑대 대부분이 경북 도내에서 서식하는 늑대가 아니라고 했다. 그 늑대들은 경남의 지리산에 본거지를 둔 늑대다. 늑대들의 행동반경은 수백km나 된다. 지리산에 있는 동굴이나 토굴에 살면서 멀리 경북으로 원정을 간다. 본거지를 숨기려는 용의주도한 행동이다. 늑대는 하루에 몇백km를 예사로 달린다.
조선의 늑대는 그리 쉽게 잡힐 짐승이 아니다. 늑대는 사람사냥을 할 때 몇 날 며칠 끈질기게 마을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염탐을 하고 기회를 노린다.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산꼭대기 바위틈에서 이틀 동안이나 비를 맞으며 염탐을 한 늑대도 있다.
‘우리들도 그랬지요.’
늑대를 어떻게 잡았느냐는 경찰서장의 물음에 미키 포수가 대답했다. 이윤회 포수와 미키 포수는 늑대를 잡으려고 이틀 동아이나 밤샘을 했다. 이윤회 포수는 반나절을 산을 돌아다니며 늑대가 오가는 짐승 길을 찾았다. 늑대는 아무데나 다니지 않고 늘 다니는 짐승 길로만 다닌다. 몸을 쉽게 숨길 수 있는 바윗길이나 나무 사이의 길이다. 이윤회 포수가 구릉에 잠복소를 만들었다. 1m쯤 땅을 파고 나뭇가지와 잡초로 지붕을 덮었다. 이윤회 포수와 미키 포수는 계곡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흙과 풀을 으깨서 풀즙을 온몸에 발랐다. 냄새를 없애기 위해 총에도 발랐다. 바람이 밑에서 불어오는 고개 밑에 잠복소를 만들었는데 그래서 바람을 등에 받으면서 고개를 넘어오는 늑대는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없다. 그들은 하루 한 끼 주먹밥을 먹으면서 기다렸다. 첫날밤을 보내고 밤샘을 한 다음 날에도 기다렸다. 끈기와 인내의 싸움이다. 사흘째 되는 날 늑대 냄새가 났다. 바람을 타고 오는 늑대 냄새다. 미키 포수는 그 냄새를 식별하지 못했으나 이윤회 포수는 바람결에 실려 오는 노리끼한 늑대 냄새를 맡았다. 파란 불이 나타났다. 불이 여섯 개, 늑대가 세 마리다. 불빛이 눈앞에까지 다가오자 일제히 난사를 했다. 밤에는 조준이 어렵다. 더구나 요사한 파란 불빛은 물체보다 크고 흔들리기 때문에 과녁이 되지 않는다. 그놈들은 어둠을 믿고 대담했다. 사람들의 밤눈을 신통치 않게 여기는 그놈들이 좀 경솔했다. 이윤회 포수의 은신술은 완벽했다. 늑대들은 자기들의 능력을 믿고 경솔했고, 사람들은 부족한 능력을 보완했다. 승패가 그 사이에서 결판났다. 두 포수는 기진한 상황이었고 마을에 돌아오자 마치 죽은 사람들처럼 이틀이나 잠을 잤다.
늑대들이 살고 있는 굴을 찾아내 늑대 일가를 모두 죽이겠다는 작전은 실패했고, 사람들을 동원하여 늑대를 포위하여 잡는 작전도 효과가 없었다. 북만주의 사냥꾼들이 사용하는 소위 타위렵(打圍獵)이었는데 그게 만주에서는 효력을 발휘했으나 조선에서는 소용없었다. 타위렵은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산 전체를 포위하여 늑대를 포수가 자리 잡은 목으로 몰아 잡았는데 만주에서는 가능하나 조선의 늑대는 만주의 늑대처럼 어리석지 않았다. 늑대는 높은 산정에서 사람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포위망을 뚫고 나갔다. 오히려 역이용했다. 문경군의 어느 마을 사람들이 일본 순경의 지휘로 늑대가 출몰했던 야산을 포위했는데 늑대들은 포위망을 벗어 나와 오히려 마을을 습격했다. 마을 장정들이 늑대잡이에 나가 마을을 비운 사이에 아이들을 잡아 걌던 것이다. 다행히 타위렵에 동원되었던 장정들이 망으로 돌아오다가 늑대에게 물려가는 아이를 발견하고 쫓아 아이를 구했으나 아이는 중상을 입었다. 조선의 늑대는 인가와 가까이 살면서 사람의 마음을 읽었다. 또 한 번은 의성장터에서 일어난 일인데, 늑대들이 의성장터에 내려와 개들과 어울려 놀았다. 늑대는 개의 분비물을 몸에 발라 개의 코를 속였다. 장터에 드나드는 사람들도 개와 어울려 노는 늑대 옆을 지나갔으나 아무도 그게 늑대라는 몰랐다. 그래서 경찰은 늑대와 개의 식별법을 알려주었다. 첫째, 세퍼드와 비슷한 개는 의심하라. 둘째, 긴꼬리가 축 처져있는 놈을 주목하라. 셋째, 눈이 번들거리면 그놈은 개가 아니다. 넷째, 뒷다리가 앞다리보다 길고 가슴 폭이 좁으면 그놈은 틀림없이 늑대다. 사람들이 이 기준으로 늑대를 식별하려고 하자 이후 늑대는 장터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늑대 토벌작전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도 경북 서쪽 마을에서는 아이들이 늑대에게 물려가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 지역에서 늑대의 피해는 독사의 피해만큼 컸다. 그래도 토벌대의 작전으로 피해가 줄고 늑대들의 활동 범위가 밝혀졌다. 소굴도 발견되었다. 한꺼번에 소탕할 수도 있게 되었다. 교활한 늑대에게 나쁜 습성이 있는데 사람이 그 습성을 알아냈다. 늑대는 튼튼한 허파와 강인한 발로 하루 사이에도 몇백 리를 이동하는데 그것은 늑대의 장점인 반면에 단점이 된다. 늑대는 새끼들을 소굴에 감춰두고 원거리 사냥을 하는데 사냥터와 소굴까지 가장 빠른 길을 만들었다. 산이나 강을 피했으나 거의 직선 말하자면 고속도로다. 만주에서는 그 길을 늑대 길이라고 한다. 토벌대가 조사해보니 그 길이 소백산맥의 능선을 타고 있었다. 태백산맥에서 소백산맥이 가지를 친 태백산에서부터 멀리 남쪽의 거창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늑대 길이다. 늑대의 소굴은 경상도와 전라도 경계인 지리산이다. 조사를 마친 포수들이 거창 인근에서 야영을 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서쪽 바위산에서 늑대들이 울부짖었다. 대가리를 쳐들고 하늘을 향해 길게 내뿜는 소리다. 남쪽에서도 호응했다. 잠시 후에는 북쪽에서도 또 다른 늑대가 울었다. 이윤회 포수가 말했다.
‘늑대들의 교신입니다.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소리지요.’
조선의 늑대들은 열 마리에서 서른 마리까지 가족을 이루고 사는 데 그사이에 또 다른 가족들이 살고 있고 싫든 좋든 각 무리 사이에는 접촉이 생긴다. 영지를 둘러싼 분쟁을 타협하고 큰 사냥이나 외적에게는 협동작전을 한다.
또 다른 접촉도 있다. 상대편 가족이 잘 있는가? 잘 있다면 발정을 한 암컷이 생겼는가? 이쪽에는 몇 마리가 발정을 했다는 등의 정보교환이다. 그날 밤의 늑대의 울음소리에는 살기가 없고 오히려 청승스러웠다. 이상오 포수 일행은 밤중인데도 울음소리를 따라 남쪽으로 이동했다. 남쪽의 울음소리는 함안군의 백운산인데 가보니 또 다른 데서도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굴이 꽤 많은 것 같았다. 대여섯 개는 되는 것 같았으며 각 소굴의 간격은 대략 10km 정도.
'여기입니다. 여기가 조선 늑대의 본거지입니다.‘
이윤회 포수의 말에 이상오 포수도 동의했다. 늑대들의 피해는 경북의 봉화, 문경, 칠곡, 달성이었으나 원정 사냥이었다. 피해가 많다고 경북에서 늑대사냥을 한 건 늑대의 습성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다. 토벌대를 경상남도로 옮겼다. 토벌대는 지리산 기슭의 늑대소굴을 세밀하게 조사했다. 이상오 포수가 지휘하는 토벌대는 늑대 길을 따라가면서 소굴을 발견하면 세밀하게 관찰했다. 소굴이 보이는 곳에 잠복소를 만들고 망원경으로 관찰했는데 밤에도 쉬지 않았다. 늑대는 날이 어두워지면 굴에서 나와 사냥을 나갔고 새벽에 돌아왔다. 이상오 포수가 그 일대에는 여덟 개의 소굴이 있고, 100여 마리가 살고 있다고 했다. 당시 경북 경남 일대에는 4~500 마리가 살고 있다고 알려졌다. 조선 늑대의 서식지는 경남과 전남의 지리산이다. 늑대토벌계획이 세워졌다.
산골사람들이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자경대를 조직하여 밤이 되면 모닥불을 피우고 순찰대가 마을을 순찰했다. 겨울이 온 것도 늑대들에게는 불리했다. 늑대들이 곤경에 빠졌다. 아이 사냥도 못했다. 해수 박멸 운동으로 범과 표범이 없어지고 늑대가 먹이사슬의 정점이 되었는데 천적天敵이 없어지자 늑대들의 수효가 불어났고 그게 늑대들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먹이가 숨어버린 겨울에 사람사냥을 못 하자 늑대들이 굶주렸다. 새끼들마저 불어나 늑대들이 무리수를 두었다. 대낮에도 사냥감을 찾아 동굴에서 나왔다. 소굴을 파악한 토벌대가 기다렸다가 늑대를 잡았다. 토벌대는 소굴을 감시하다가 새벽에 사냥을 나간 어미들이 돌아와 쉬는 시간에 소굴을 덮쳤다. 늑대에게는 포상금이 걸려있었다. 어미는 5원(현 약 5만 원), 새끼는 2원이다. 가난한 농촌에서는 꽤 큰 돈이다. 농한기의 장정들이 합세했다. 장정들이 소굴을 포위하여 나오는 늑대들을 몽둥이로 때려잡았다. 한 마리도 살아서 도망가지 못했다.
1930년에서부터 40년까지 사이에 조선 늑대는 대부분 잡혀 죽거나 멀리 북쪽으로 도망가버렸다. 얼마나 잡혔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으나 이상오 포수의 짐작에 의하면 한 해 약 100여 마리가 잡혀 죽었다. 멸종이다. 조선총독부가 주동이 된 늑대 박멸 운동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더구나 아이를 잡아먹는 늑대를 그냥 둘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은 범과 표범을 무차별 사냥한 사람들의 탓이다. 천적이 없어지자 늑대가 야수의 정점이 되었는데 무리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고, 새끼를 먹여 살리려고 사람까지 잡아먹게 된 것이다. 원래 이리나 늑대는 사람을 해치지 않았다. 서양에서도 가축을 보호하기 위해 늑대사냥을 했으나 사람은 해치지 않았다. 늑대 박멸 운동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어 조선 남쪽에서, 특히 서식지 지리산에서 늑대가 사라졌다. 그리고 또 생태계의 변화가 생겼다. 늑대가 사라지자 멧돼지가 늘어났다. 산간의 논밭을 망쳤다. 멧돼지는 늑대 못지않은 왕성한 생식력이 있고 무차별 곡식을 먹어 치웠다. 멧돼지가 지나간 논밭은 쑥대밭이 되었다. 농민들이 멧돼지 피해를 막으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산간마을 주민들이 밤을 새워 멧돼지로부터 밭을 지켰으나 소용없었다. 멧돼지는, 모닥불을 피우고 놋대야, 꽹과리를 두들기는 농민을 무시하고 논밭에 들어갔다. 대나무창이나 몽둥이를 들고는 멧돼지와 싸울 수 없고 희생자가 나오기도 했다. 그래서 논밭에 돌벽을 쌓았는데 멧돼지가 콧등으로 한 번 들이치면 돌벽 따위야 쉽게 허물어져 버렸다. 조선 산림에서 늑대가 없어지자 생긴 현상이다. 멧돼지는 한배에 다섯 마리 이상 새끼를 낳았다. 그렇게 낳은 새끼들이 살아남는 것은 불과 20% 내외였는데, 범, 표범, 곰들이 잡아먹어 수를 조절했고, 그들이 사라지자 늑대가 수를 조절했는데 늑대가 사라지자 수를 조절할 수가 없어 멧돼지가 급격하게 불어나고 먹을 것을 찾아 인가를 덮쳤다. 그러나 늑대를 잡지 않았다면 인명 피해 외에 멧돼지나 노루들이 멸종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이상오 포수는 말했다. 한국 산림에서 늑대가 사라져도 안 되지만 멧돼지나 노루가 멸종되어도 안 된다. 자연생태계는 인위적으로 조절해서는 안 되고 자연의 섭리가 작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