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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世紀)의 사냥꾼 4 - 2

93. 곰과 개의 사투

사냥 생활 60여 년~그 싸움은 잊지 못한다. 세 마리의 개와 표범의 사투. 가을의 해 질 녁 풍경은 그림 같았다. 하늘의 구름은 찬란했다. 그러나 표범도 화사했다. 표범과 개는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개는 모두 잡견이었는데 두목 에루는 내가 가장 아꼈던 만주개 바둑이의 씨였으며 어미는 함경도 최포수의 시베리아개였다. 에루는 짙은 잿빛 털의 여섯 살짜리 수놈이며 몸통이 보통 개의 두 배나 컸다. 젠은 세퍼드종이어서 날씬했으며 일본 구마모토견인데 에루의 애인이었다. 표범은 전형적인 한국 산이었고 한 달 전부터 그 일대~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산을 누비고 다녔다. 보통, 표범이 마을에 내려오는 것은 늙어서 멧돼지, 사슴과 노루사냥을 못 하기 때문이다. 짐승을 쫓지 못 하게 된 표범이 마을 주위를 돌아다니며 가축을 해치다가 개들과 싸움이 벌어진다. 가끔 표범이 개에게 물려 죽었다는 기사가 나는데 개에게 물려죽은 표범은 병신이거나, 총탄을 맞아 다리나 발에 문제가 있거나, 너무 늙어서 이빨이 다 빠져 싸움을 못 하거나, 오래 굶주려 영양실조가 된 표범이다. 개는 표범의 적수가 아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개를 즐겨 먹는 표범이 개에게 잡힐 리 없다. 또 표범은 돼지를 물고가다가도 개가 짖으면 돼지를 버리고 개를 잡아간다. 그때 양동리에 나타난 표범은 건강한 수컷이었다. 여섯 마리의 개를 물어갔으며 그 개들 중에는 제법 덩치가 큰 개도 있었으나 끽! 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희생되었다. 표범은 예기치 않은 때 나타나 개의 목줄을 물었으며, 세 마리를 죽이고 한 마리를 물고갔다. 며칠 뒤에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개를 물고갔다. 표범은 대낮에 방앗간 마당에서 놀고 있는 개를 덮쳐 물고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사람들이 멍! 하니 보고 있는 사이에 개를 죽이고 물고 가버렸다. 표범은 개뿐만 아니라 닥치는 대로 물어갔는데 돼지 두 마리, 송아지도 한 마리 희생되었다. 사람 희생이 안 난 것만해도 다행이었다. 내가 세 마리의 개를 데리고 마을에 도착했을 떼 사람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 전날 밤 송아지가 희생되었다. 사흘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나타나 가축을 물어갔다. 쉽게 잡을 수 있는 가축에 입맛을 들였고 무력한 사람들을 깔봤다. 마을의 가축을 잘 차려놓은 밥상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 표범을 잡는 데는 위험이 있다고 판단했다. 놈은 사람의 습성을 잘 알고 있어서 함부로 다루다가는 희생이 날 거라고 보았다. 현지에서 몰이꾼을 모집했는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심지어 주재소의 순사들도 외면을 하고 피했다.

, 그놈은 몰이를 할 필요가 없어요. 제 발로 찾아오니까.’

나는 표범을 기다리지 않았다. 이튿날 세 마리의 개를 데리고 산으로 들어갔다. 늦가을 산에는 낙엽이 한 자()나 쌓여있어서 발자국꾼은 무용이고 몰이꾼은 표범의 습격을 받을 수도 있다. 선도의 두목 에루가 얼마 안 가서 표범의 족적과 냄새를 맡았다. 노루사냥을 할 때 개들은 흩어진다. 그런데 표범 냄새를 맡은 개들이 붙어서 행동을 했다. 개들이 본능적으로 하는 행동이었다. 개들은 내가 따라갈 수 있을 정도의 속력으로 달렸다. 두 시간 만에 희생물이 나무에 걸려있는 걸 찾았다. 어젯밤에 없어진 송아지다. 머리와 뒷다리만 남아 4m나 되는 나뭇가지에 걸렸 있었다. 나무에 올라가 고기를 몇 점 잘라 개들에게 던져주었다. 아직 싱싱했으므로 나도 한 점 먹고. 표범이 도둑질한 송아지고기를 먹고 힘을 내서 표범을 잡자는 계산이었다. 여기에서부터 개들이 눈빛이 달라졌다. 야수의 눈빛으로 변했다. 그러나 야수로 돌변한 개는 야수처럼 짖지 않는다. 추적을 알리지 않으려는 속셈이다. 낙엽은 점점 두터워지고 나무는 밀생(密生)하여 전진하는 속도가 늦어졌다. 어느 지점에서 개들이 딱! 멈추며 우르르! 목을 굴렸다. 에루가 선 지점은 내리막길이다. 밑에 표범이 숨어있다는 표시다. 그러나 나는 달려갈 수도 총을 쏠 수도 없었다. 옆으로 돌아 측면에서 공격할 수밖에 없다. 15m쯤 달려 막 내리막길로 접어들었을 때 개들과 표범의 싸움이 벌어졌다. 내리막 밑은 1m 정도의 잔솔과 오리나무숲이다. 표범은 그 잔솔 숲에 숨어 대기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15m를 달려왔을 때 표범은 숨어있었던 숲에서 나와 나를 덮치려고 했다. 날아오는 표범을 단 한 방으로 이마나 심장에 정확하게 맞추지 못하면 죽거나 중상이다. 내가 죽거나 표범이 죽을 위험은 반반이다. 그러나 한 방을 쏠 수도 없었고 죽을 위험도 사라졌다. 표범이 돌진했을 때 두목 에루가 무서운 울부짖음을 치면서 언덕 위에서 표범에게 돌진했다. 에루는 뼈가 큰데다가 평소 고기만 먹었기 때문에 보통 개의 두 배나 컸다. 그래서 그는 사자처럼 상대에게 돌진하여 그 무거운 체중을 상대에게 부딪혀 쓰러뜨리는 전법을 쓴다. 에루가 공중을 날고 있는 표범의 옆구리를 들이받았다. 표범은 에루보다 더 컸으나 위에서 내닫는 에루에게 받쳐 쓰러지고 에루와 한 덩어리가 되어 뒹굴었다. 위치는 표범이 불리했다. 들이받은 충격으로 표범은 누웠고 에루가 올라탔다. 그러나 표범은 놀라운 재주를 부렸다. 쓰러지면서도 탄력 있는 몸을 고무공처럼 움추려 용수철처럼 튀기면서 반격했다. 에루가 밑으로 깔렸다. 아무래도 표범의 탄력성과 투지는 보다 한 수위다. 평소 짐승을 잡아먹고 사는 표범은 살생의 명수다. 살생본능을 잃어버린 개와 차이는 프로와 아마추어 정도다. 서로 아가리를 벌려 상대를 물려고 하자 이빨이 부딪혔다. 죽음의 키스다. 에루의 부하들이 표범에게 돌진했다. 한 마리는 표범을 들이받아 쓰러뜨렸고 또 한 마리는 표범의 뒷다리를 물었다. 나는 한 덩어리가 되어 싸우는 터라 총을 쏠 수 없었고 구경꾼이었다. 어느 한쪽이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다. 개와 곰의 싸움은 단조롭다. 개가 빙빙 돌면서 곰의 힘을 빼고 가끔 튀어 올라 곰의 콧등을 물거나 어깨를 무는 것이 고작이고 개는 곰을 죽이지 못한다. 곰도 개의 재빠른 동작에 어쩔 줄 모른다. 고작 개를 양 앞발로 잡으려고 하는 게 고작. 개가 곰을 잡고있는 사이에 포수가 달려와 마무리를 한다. 그러나 지금은 포수가 개입할 수가 없다. 개와 표범이 한 덩어리가 되었고 잔솔과 오리나무가 밀집하여 조준을 할 수도 없다. 뒷다리를 물려 하반신이 자유롭지 못하고 두 마리의 개에게 상반신을 공격당해 불리한 싸움에서도 표범은 역시 프로였다. 표범은 에루를 앞발로 누르고, 젠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했다. 몸을 움츠렸다가 펴면서 그 반동으로 뒷발을 물고 늘어진 젠을 끌어당겨 젠의 목줄을 물었다. 치명적인 반격이다. 아찔했다. 눈앞이 캄캄했다. 목줄을 물린 개가 빠져나가려고 버둥거렸으나 무위였다. 더구나 표범이 개의 목줄을 물고 흔들었다. 목줄이 뜯겼다. 이때 표범의 앞발에 눌렸던 에루가 간신히 빠져나와 아직도 개의 목을 물고 있는 표범을 들이받아 쓰러뜨렸다. 표범이 벌러덩 쓰러지자 에루가 표범의 목줄을 물었다. 표범이 목줄에서 놓여나려고 빙빙 돌았으나 놓여난 젠이 표범의 뒷발을 물고 늘어졌다. 표범이 두 마리의 개를 떨쳐버리려고 펄쩍펄쩍! 뛰었다. 표범은 두 마리의 개를 끌고 1m나 뛰어올랐으나 개는 목줄을 놓지 않았다. 또 한 마리-표범에게 목줄을 뜯긴 개는 전열에서 이탈했는데 표범에게 물린 목이 뜯겨져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고 심장도 멎어갔다. 그러나 표범도 약해졌다. 에루가 물어뜯은 목의 출혈도 문제지만 싸움에 지쳤다. 표범은 적을 공격할 때 온 힘을 한꺼번에 발산시키기 때문에 폭발력은 세지만 지속력이 없다. 표범은 피거품을 뿜어내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승패는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개들도 부상을 입어 치료해야 한다. 나는 죽어가는 표범의 가슴을 총신으로 찍어누르며 발사했다. 심장을 맞은 표범이 펄쩍! 뛰었다가 보릿자루처럼 늘어졌다. 그때까지 에루와 젠은 표범을 물고 있었다.

에루, 에루. 그만둬!’

내 고함에 에루가 표범에게서 떨어져 나와 표범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 ! !> 싸움이 끝난 걸 알고 개가를 올렸다. 젠은 물고 있던 발을 놓고 증오에 차 표범의 머리를 깨물었다.

, .’

나는 젠을 꼭 안아주었다. 상처를 입지 않은 건 젠뿐이었다. 에루는 앞니가 빠지고 귀가 반쯤 잘렸으며 한쪽 눈도 감고 있었다. 존은 이미 숨졌다. 표범에게 목줄을 깊게 물려 혈관이 끊어졌다. 에루와 젠이 존을 핥고 끙끙대면서 자꾸 나를 쳐다보았다. 주인인 나를 전지전능한 하나님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존을 소생시켜달라는 것이다. 나는 힘없이 머리를 흔들었다. 나뭇가지를 다듬어 괭이를 만들어 존을 땅에 묻었다. 존이 땅에 묻히는 걸 보고야 존이 죽은 걸 알아채고는 존의 무덤을 빙빙 돌면서 구슬프게 짖었다. 에루와 존은 사이가 나빴다. 에루가 젠을 독차지했기 때문에 존은 불만이었고 반항을 했다. 며칠 전에도 젠을 두고 크게 싸웠다. 그러나 표범과 싸움에서 존은 위기에 빠진 에루를 구하고 희생되었다. 에루의 목줄을 더듬었던 표범에게 존이 뛰어들지 않았다면 에루가 죽었을 것이다. 얻은 건 걸레처럼 찢어진 표범값 20(현재 20만 원)이고 잃은 건 컸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의 환호를 뒤로 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 후 표범사냥에는 절대로 개를 데리고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며 결심을 실행했다. 에루는, 이듬해 산돼지사냥에서 다리가 부러져 폐견이 되었고 젠은 사냥개답지 않게 열두 살까지 살다가 병사했다.

 

94. 추적

우리는 이미 사흘 동안이나 추적을 하고 있었다. 하루에 30리씩을 걸었으니 100리를 추적한 것이다. 한국과 만주의 험준한 태백산맥을 타면서 악착같이 추적했다. 산돼지사냥을 하다가 곰의 발자국을 발견했는데 우리는 기겁을 했다. 곰의 발자국이 아니라 괴물의 발자국이었다. 보통 곰의 세 배 크기였으며 아마 400kg이 넘을 것 같았다. 황해도 포수 김상기와 현지 포수 임모 그리고 몰이꾼 다섯 명이 산돼지를 쫓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나타난 발자국을 보고 의견이 엇갈렸다. 나는 그까짓 산돼지를 포기하고 곰을 쫓자고 했고, 한 사람은 산돼지사냥을 계속 하자고 했으며 또 한 사람은 아예 산에서 내려가자고 했다.

이 엄청난 발자국을 봐. 난 며칠 전이 이놈을 본 적이 있어.’

그는 함경남북도가 갈리는 산능선에서 그 괴물을 봤다. 꿩사냥을 하다가 갑자기 머리 위에서 벼락 치는 소리 같은 짐승의 노호를 듣고 머리를 들어보니 커다란 바위 위에 괴물이 서 있었다. 거리는 40m쯤 되었으나 포수로서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임포수는 기뻐하기보다는 등골이 오싹했다. 워낙 큰 불곰이었다. 주변의 산봉우리와 견줄 정도니 짐작할 만하다. 임포수는 <걸음아 날 살려라>고 도망을 치다가 숨이 막혀 멈추었다. 뒤를 돌아보니 곰은 따라오지 않았다. <이젠 살았구나!> 하며 나무뿌리에 걸터앉았는데 그 무서운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펄쩍! 일어나 보니 자기가 가려는 앞길~40m 전방에 괴물 곰이 서 있었다. 임포수를 앞질러 왔던 것이다. 임포수는 자기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계곡으로 달렸는데 마침 열서너 명의 나무꾼을 만나 살았다. 그래서 임포수는 곰사냥은 말 할 것도 없고 산돼지사냥마저 포기했다. 각자 의견에 따라 한 사람은 산돼지사냥을 계속하고, 한 사람은 사냥을 포기하고 나는 용감한 몰이꾼 박서방을 데리고 불곰을 쫓았다. 처음에는 불곰이 동면을 할 동굴을 찾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곰은 북쪽으로 가고 있었다. 추적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뭇 빠른 걸음으로 북쪽으로 가고 있었다. 병풍 같은 절벽을 올라가면 천 길 벼랑을 타고 계곡으로 내려갔다. 급한 경사지에서는 그 거구가 눈 위에 엉덩이를 깔고 미끄럼을 탔으나 사람에게는 그런 재주가 없었다. 우리는 밧줄로 몸을 묶어 한발 한발 절벽을 내려갔다. 게다가 우리는 겨우 하루치 양식뿐이고 장거리 추적 준비도 없었다. 그날 밤 야영에서 박서방이 물었다.

어떻게 하지?’

곰이 죽든지 우리가 죽든지 둘 중 하나야!’

다행히 태백산맥 첩첩산중에는 포수들의 무료숙소가 많았다. 바위산이라서 동굴이 많았다. 동굴입구를 나뭇가지로 막고 안에 마른 낙엽을 깔면 퀴퀴한 냄새가 나는 주막집 이부자리보다도 깨끗하고 편했다. 문제는 식량이었는데 우리가 쫓는 곰이 마련해주었다. 추적 이튿날 곰이 계곡에서 얼음을 깨고 바위를 뒤집은 흔적을 발견했는데 가재들이 우글거렸다. 20cm나 되는 가재를 잡아 불에 구워 소금을 쳐서 먹으니 별미였다. 사흘째는 더 푸짐한 식량을 배급했다. 100kg이나 되는 산돼지였다. 산돼지시체는 내장, 갈비 그리고 허벅다리 고기가 없었다. 흔히 곰을 초식동물이라고 하지만 곰은 잡식성이다. 우리가 쫓는 불곰은 동물성이다. 육식을 못 하면 열매나 나무뿌리를 먹지만 그건 예외다. 우리는 곰이 남긴 산돼지고기를 싫컷 먹고 남은 고기는 포를 떴다. 나흘째 계곡에서 급한 경사를 올라가고 있을 때 앞서가던 박서방이 손짓을 했다.

저것 보슈.’

곰이 산꼭대기 바위 위에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제서야 임포수가 도망을 한 걸 인정했다. 400kg이 훨씬 넘을 것 같았다. 사람은 본디 겁이 많아 상대가 강하면 싸우기 전에 투지를 잃는다. 그럴 때는 아예 항복하든가 도망치는 게 상수다. 손자병법의 36계 줄행랑이다. 나도 언젠가 지리산에서 대호를 보고 겁에 질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 나는 겁을 먹지 않았다. 아무리 커도 곰은 곰이다. 곰의 약점을 이용하면 잡을 수 있다. 다만 라이플이 아니라 산탄총이란 게 좀 걸렸다. 산탄총으로 100m가 넘는 곰을 쏠 수는 없고 쏘아봐야 효과도 없다.

어떻게 할 거요?’

잡아야지, 돌아서 가자구.’

우리는 신중하게 작전을 세워 계곡으로 내려가 산마루로 올라가서 산등을 타고 내려오면서 곰에게 접근하기로 했다. 그대로 올라가다가 곰이 우리를 발견하고 미끄럼을 타고 내려 닥치면 총을 쏠 기회도 없이 곰에게 깔려 죽는다. 나는 흙으로 바람의 방향을 알아보았다. 다행히 바람은 산 위에서 아래로 불었다. 곰은 근시이기 때문에 바위나 나무 뒤로 기어가면 발견될 염려가 없으나 문제는 그 예민한 코였다. 나는 전방 50m를 접근하고, 10m쯤에 있는 바위 뒤에까지 기어가 발사를 하려고 했다. 총은 벨기에제 5연발이었으므로 곰이 덮친다고 해도 네 발은 쏠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사고가 생겼다. 네 뒤를 바짝 따라오던 박서방이 눈에 미끄러져 벼랑 밑으로 굴렀다. 나뭇가지를 잡아 다치지는 않았으니 그 소리를 곰이 듣고 머리를 돌려 우리를 봤다. 벌겋게 충혈된 눈이 살기를 띠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라 판단하고 겨냥을 했는데 곰이 사라져버렸다. 바위 밑으로 숨은 것 같았다.

박서방, 곰이 숨었어. 그쪽으로 오는가 감시해!’

위치로는 우리가 유리했다. 그 걸 아는 걸까? 곰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사람과 곰은 50m 간격을 두고 대치했다. 20여 분을 기다렸으나 곰은 나타나지 않았다. 땅거미가 내리고 있어서 더 늦어지면 불리하다.

(엉뚱한 놈 같으니!)

혀를 찼다. 박서방에게 살살 뒤로 물러나라고 했다. 짐승을 눈앞에 두고 물러선다는 건 자존심 상했으나 죽음을 자초하는 건 어리석다. 무사히 현장을 빠져나와 500m쯤 떨어진 산중턱에서 야영을 했다. 동굴 앞에 불을 피우고 교대로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동굴 주변이 온통 곰의 발자국이었다. 가까운 발자국은 동굴 10m까지 접근했다. 곰은 여전히 함경북도에서 만주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다른 곰들이 동면을 하는 시기에 왜 북쪽으로 가는걸까? 추적 나흘째 또 곰을 봤다. 곰이 잡목림으로 들어갔다. 꽤 넓은 잡목림이었는데 산중턱에서 계곡까지 남향이고 아름드리나무들이 울창했다. 따라 들어가기에는 위험했다. 그래서 산 위에서 곰이 빠져나오는 걸 기다렸다. 근 한 시간을 기다려도 나오지 않았다.

낮잠이라도 자는 걸까?’

날이 어두워졌는데도 나오지 않았다. 또 야영을 했다. 전날 밤의 경험을 되살려 동굴 입구를 통나무와 바위로 막았다. 이튿날 새벽 밖으로 나온 나는 깜짝 놀랐다. 밤새 눈이 내려 온 산이 하얀 눈에 덮였다.

박서방, 이래도 곰 발자국을 따라갈 수 있을까?’

그 녀석이 어젯밤에 도망가지 않았다면 .’

곰이 밤새 도망가버렸다면 눈이 발자국을 덮어 추적이 어렵다. 박서방이 잡목림 주위를 돌면서 조사를 했다. 나온 흔적은 없었다.

이상한데 이 녀석이 밤새 둔갑을 했나? 없어져 버렸어! 사라져버렸어!’

이 말을 듣고 곰이 연사흘이나 달려온 목적지가 여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곰은 대부분 바위 동굴에서 동면을 하지만 흙굴에서 하는 놈들도 있다. 썩은 고목 밑둥에 들어가거나 나무뿌리 밑으로 파고드는 놈도 있다. 그렇다면 잡목림은 곰이 동면하기 좋은 곳이다. 사방에 바람을 막아주는 산으로 둘러싸이고, 남향 양지이므로 곰이 땅속으로 들어가 버린 게 아닐까? 잡목림으로 들어갔다.

?’

눈이 마주쳤다. 박서방은 실망과 안도감이 동시에 나타났다.

(어떻게 하지?)

나는 담배를 태우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나흘 동안이나 추적을 한 곰을 포기할 수 없었다.

박서방, 곰은 이 잡목림에 있어.’

아니, 그렇게 살폈는데도 . 땅속에라도 있다는 거요?’

맞았어. 땅속이야!’

(땅속에?)

박서방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머리를 끄덕였다. 우리는 다시 수색을 시작했다. 그건 죽음의 숨바꼭질이었다. 나무 하나하나를 꼼꼼히 살폈다. 나는 막 박서방이 이상이 없다고 점검한 나무를 다시 살폈다. 비바람에 뿌리 채 뽑힌 나무였다. 가만히 박서방을 불러 그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박서방이 손으로 눈을 쓸었다. 결정적인 흔적은 곰털이었다. 독 안에 든 쥐가 아니라 구멍 속에 든 곰이었다. 동면할 구멍을 찾아 여기까지 와서 내린 눈을 이용하여 감쪽같이 숨었다. 다잡은 거나 마찬가지로 생각했으나 곰의 모습을 볼 수 없었고, 총을 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땅을 팔 수도 없었다. 400kg이 넘는 곰을 건드린다는 것은 자살행위였다. 그래서 나는 곰이 튀어나오지 못하게 총구를 굴속에 대고 박서방에게 통나무로 굴 입구를 막으라고 지시했다. 박서방이 손도끼로 쓰러진 통나무를 잘라 열십자형()을 만들어 굴 입구를 막았다. 한 시간이 걸렸는데 굴에서는 기척이 없었다. 1m쯤 되는 막대기 끝을 뾰쪽하게 깎아 구멍을 쑤셨다. 구멍이 의외로 깊어 막대기가 닿지 않아서 더 긴 장대를 만들어 쑤셨더니 뭔가 보드라운 물체에 닿는 감촉이 왔다.

(옳지!)

더 힘껏 쑤셨다. 막대기가 쑥! 끌려 들어갔다. 구멍이 수직이 아니라 총을 쏠 수가 없었다. 구멍은 다섯 자쯤은 수직이고 왼쪽으로 꼬부라졌다. 그 왼쪽에 곰이 있었다. 불을 피웠다. 숯덩이를 구멍에 던져넣었다. 연기가 나고 노린내가 났는데도 기척이 없었으나 땅이 움직이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울렁거리며 노호가 터져 나왔다. 땅이 갈라지고 거대한 손이 통나무를 잡아 흔들었다. 시커먼 곰 대가리가 불쑥! 솟았다.

이크! 사람 살려라!’

박서방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발사했다. 반사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는데 곰 대가리가 사라졌다. 총신을 구멍 속에 겨누고 연사했다. 구멍을 들여다보았으나 곰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곰은 죽었든지 치명상을 입었다고 확신했다. 총탄이 곰의 살과 뼈를 뚫는 소리를 들었다. 신음소리가 났다. 허파가 새는 소리도 났다. 3~4분 후 조용해졌다. 곰이 죽었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박서방은 어디 갔을까? 나무 위에서 소리가 났다.

이 사람아, 빨리 내려오지 못해!’

그는 뒤통수를 긁으며 내려왔다.

사뭇 도망치려고 했다가 그래도 체면을 생각해서 나무 위로 올라간 거야.’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통나무로 입구를 막아놓고 어젯밤 잤던 동굴로 돌아와 야영을 했다. 이튿날 곰이 도망가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박서방을 마을로 보내 연장과 인부人夫를 불러왔다. 다시 긴 장대를 찔렀으나 반응이 없었다. 나무뿌리가 송두리째 뽑힌 구멍은 4m쯤 되었으며 나무뿌리가 거미줄처럼 얽혀있었다. 곰은 붉은 모랫바닥에 낙엽과 마른 풀을 깔고 엎드려있었다. 습기가 없고 따스웠다. 겨우살이 구멍으로는 과연 명당이었다. 잡은 곰은 어찌나 큰지 죽었는지 알면서도 인부들이 가까이 가지 않았다.

왜들 이러나. 죽은 곰이 겁나나?’

곰이 얼마나 컸는지 네 사람이 들것에 곰을 실어 10리 길을 내려오는 데 10시간이 걸렸다. 소달구지에 실어 역에 운반했는데 소가 겁을 먹고 날뛰어 소동이 벌어졌다. 역에서 화차貨車에 실어 서울로 보냈는데 서울에서는 곰을 구경하려고 인산인해가 되었다.

 

95. 대호 사냥

강원도 포수 추세영씨는 대호를 잡은 포수다. 추포수는 2m에 가깝고 소위 통뼈인 장사다. 총이 고장 나자 150kg짜리 멧돼지를 총대로 때려잡은 겁을 모르는 사나이다.

그는 1922년 강원도 금화에 있는 오성산에서 대호를 잡았다. 오성산은 높지 않은 산이었으나 그해에는 유난히 멧돼지, 노루들이 많았으며 그는 아예 산기슭 마을에서 상주하며 사냥을 했다. 그해 서울의 멧돼지 전문음식점에 판 멧돼지만 열아홉 마리였으며 그 요리점에서는 아예 인부를 마을에 상주시켜 유포수가 잡은 멧돼지를 서울로 운반했다. 멧돼지고기는 네발 달린 짐승 중에서 가장 담백하고 연하고 맛이 있으며 쇠고기보다도 값이 비쌌다. 그래서 멧돼지사냥으로 재미를 보고 있었는데 추위가 한창인 음력 정월에 들어서부터 웬일인지 우글거리던 멧돼지가 일제히 사라져버렸다. 평균 이틀에 한 마리를 잡았던 멧돼지가 일주일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추위 때문에 잠시 피한 것이라고 말했으나 요리점직원들의 독촉이 성화였다. 그래서 야영을 할 각오를 하고 몰이꾼 세 사람을 데리고 원정을 갔다. 오성산에서 큰 영을 다섯 개나 넘고 북쪽으로 깊숙이 들어갔으나 멧돼지가 없었다. 눈 위에 찍힌 발자국도 너무 오래된 것이어서 추적할 가치가 없었다. 몰이꾼들이 돌아가자고 했으나 추포수는 자기를 기다릴 요리점직원을 생각하고 좀 더 깊이 들어가자고 고집을 했다. 그들은 또 영을 두 개 더 넘어 황해도 접경까지 들어갔다. 눈구멍만 트인 방한모를 쓰고 솜바지저고리를 두 겹으로 껴입고도 추위가 스며들어 몰이꾼들이 불평을 늘어놓았는데 몰이꾼들의 앞장을 서서 억지로 이끌던 추포수가 눈 위에 이상한 걸 발견했다. 한 자나 쌓인 눈속에 뻣뻣한 멧돼지털을 발견했다. 가까이 가보니 멧돼지의 시체였다. 멧돼지의 굵은 뼈와 발목 그리고 껍질이었다. 표범의 짓이라고 여기고 멧돼지를 동굴로 끌고갔다. 워낙 큰 멧돼지였으므로 네 사람이 먹을만한 고기가 붙어있었다. 불을 활활 피우고 멧돼지 소금구이를 뜯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환담을 하니 몰이꾼들의 불평이 사라졌다.

이게 다 표범 덕분이군.’

추포수가 몰이꾼을 달래듯 농담을 했는데 김서방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표범이 아닌 것 같은데 .’

김서방은 서울에서도 이름이 알려진 노련한 몰이꾼이었다. 김서방이 굽고 있던 멧돼지의 목뼈를 살폈다.

이봐요. 이 목뼈가 이렇게 부러져있는데 표범은 이런 짓을 못 해. 표범 따위가 이 굵은 목뼈를 어떻게 부러뜨린단 말이요?’

그렇다면 멧돼지를 죽인 건 ? 네 사람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소주 때문에 불콰하게 달아올랐던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멧돼지의 목뼈를 부러뜨릴 수 있는 건 대호뿐이었다. 멧돼지의 목줄을 물고 비틀어 단숨에 목뼈를 부러뜨릴 수 있는 힘은 활리이 밖에 없다. 몰이꾼들 사이에 동요가 일어났다.

그렇기에 내가 뭐라고 했어. 이 사냥은 벌써 그만두었어야 했어.’

그러나 이제 와선 그런 소리도 소용없어. 날이 이미 어두워졌는데 오늘 밤은 여기서 새고 내일 떠나자.’

김서방이 그들을 달래면서 추포수의 눈치를 봤다. 슬그머니 내일 돌아갈 걸 제의하면서 그 고집쟁이의 반응을 본 것이다.

! 내일 돌아가? 그건 안 돼지. 멧돼지사냥은 틀렸지만 호랑이 사냥이 남아있잖아?’

! 호랑이사냥?’

모두들 펄쩍! 뛰어올랐다. 그리고 미친 사람 보듯 추포수를 봤다.

그렇지, 호랑이를 잡아야지. 그 한 마리만 잡으면 그깐 멧돼지 열 마리 값이 나올 거야. 모두들 겁이 나는 모양인데 겁나는 사람은 돌아가도 좋아. 나 혼자만이라도 호랑이와 싸울 테니.’

모두들 호랑이의 환각에 잡혀 안절부절하면서 또 소주를 마셨다. 그런데 새벽 두서너 시께였다. 동굴 입구에 피워놓은 통나무 불이 거진 타버려서 통나무를 더 태우려고 동굴 밖으로 나갔던 김서방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되돌아왔다.

추포수! 저 소리를 들어봐!’

추포수는 아까부터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꽤 먼 곳에서 들리는 소리였으나 호랑이 울음소리였다. <우웡! 우웡!> 소리는 온 산을 짓누르는 힘이 있었으며 사람을 미칠 듯 공포에 밀어 넣는 마력이 있었다.

호랑이야. 호랑이가 이쪽으로 오고 있어!’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몰이꾼들이 일어났다.

호랑이가 온다! 이리로 온다!’

겁에 질린 그들은 통나무토막을 마구 불에 던지면서 추포수를 원망했다. 호랑이와의 거리는 1km 이내였다. 날이 밝아오자 그 소리가 뚝! 끊어졌다. 사람들에게는 그게 더 무서웠다. 소리라도 들리면 호랑이가 어디쯤 오는지 짐작을 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호랑이가 어디서 뭘 하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더 불안했다. 금방이라도 덮쳐들 것 같은 환각에 사로잡혔다. 날이 밝은 다음에 <호랑이사냥에 동참하지 않을 사람은 돌아가도 좋다>고 말했으나 아무도 돌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호랑이가 돌아다니는 산중에서 산을 내려갈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총을 가진 추포수와 같이 있는 게 안전하다고 믿었다. 총이래야 구식 무라다 단발 총이었는데도 믿을 건 추포수와 그 무라다 총이었다. 그런 총으로 호랑이와 대결한다는 건 보통 용기가 없으면 불가능했다. 좌우간, 날이 밝자 사람들은 어젯밤 호랑이 소리가 났던 곳으로 가 봤다. 몰이꾼들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추포수의 뒤를 따라갔는데 앞길에 나무나 바위가 있으면 추포수가 지나가고난 다음에야 따라갔다. 하긴 추포수도 긴장했다. 신중하게, 벙어리장갑을 벗어버리고 언제든지 발사할 수 있도록 무라다 총을 겨누면서 전진했다. 나무 하나 바위 하나에도 신경을 쓰면서 나아갔다. 호랑이가 숨어있을 만한 곳은 멀리 돌아서 갔다. 호랑이 발자국을 산마루에서 발견했다. 그 거대한 발자국이 새삼스럽게 사람들의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표범들의 세 배가 넘는 발자국이 넓적하게 묵직하게 찍혀있었다. 추포수는 아무 말 없이 발자국을 따라갔다. 바람을 등에 지고 있으므로 더 신중했다. 그 예민한 코가 사람의 냄새를 맡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김서방이 <바로 따라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돌아서 추적을 해야 한다고 충고했으나 추포수는 경고를 무시했다. 뿐만 아니라 호랑이는 산마루에서 4km나 떨어진 계곡에서 얼씬거리는 토끼를 발견하는 눈과 귀를 지녔으니 어차피 호랑이가 추적자를 알아채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주장이었다. 무모한 추적은 하루 종일 계속되었다. 대호는 추적자를 알아챈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계속 같은 보조로 남쪽을 향하고 있엇다. 추적대는 화전민 마을에서 잤다. 몰이꾼 두 사람이 빠져나갔다. 한 사람은 집에 제사가 있다는 핑계고, 황서방은 배가 아프다고 했다. 황서방이 마을에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난데없이 호랑이 울음소리를 듣고 모두들 불안해했다. 그 마을은 넓은 밭을 일구어 어려움 없이 30여 가구가 살았는데 근래에는 호랑이는커녕 여우나 늑대의 침입도 없어 안심했다. 마을 사람들은 칼, 창과 도끼로 무장을 하고 마을 입구에는 크게 모닥불을 피웠다. 집집마다 불을 켜고 보초를 세웠다. 대호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므로 <대호가 멀리 가버렸다>고 했는데, 그런데 그날밤 개 짖는 소리에 황서방이 눈을 떴다. 개들이 미친 것처럼 짖어대더니 조용해졌다. 조용해진 게 아니라 끙끙거렸다. 극도의 공포를 겪을 때 내는 소리였다. 이윽고 돼지들이 설치고 소가 울었다. 마을에 한 마리밖에 없는 황소는 이웃집 강부자(富者)가 소싸움에서 1등을 한 소이며 이 소가 있는 한 호랑이도 무서울 것 없다고 자랑하는 소였다. 호랑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게 황소라고도 주장했다. 그런데 바로 그 소가 울고 있었다. 황서방이 창을 들고 나섰다. 황서방의 집은 높은 지대에 있었으므로 마을 어귀에서 타는 모닥불이 보였고 길도 환하게 보였다. 황서방이 담장 너머로 머리를 내밀고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 황소가 발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황소가 외양간 벽을 들이받고 문을 찼다. 강부자와 아들이 뛰어나왔다.

이놈의 소기 미쳤나!’

강부자가 외양간 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아이고!> 하는 외침이 들렸다.

어르신 괜찮으세요?’

아이고, 그놈의 소가 나를 밀어붙이고 도망갔어.’

강부자는 다치지는 않은 듯 <저 놈 잡아라!> 하고 고함을 쳤다. 황소가 정말 미친 것 같았다. 외양간 문을 들이받고 나온 황소는 사립문을 짓밟고 바깥으로 달아났다. 황서방이 소를 제지하려고 사립문을 열려고 하다가 움추려버렸다. 황소가 지나간 뒤에 황소를 쫓는 그림자를 본 것이다. 그 그림자는 마치 공중을 나는 것처럼 소리가 없었으나 도망가는 황소만큼이나 컸다. 황소가 마을 입구에 피워놓은 모닥불을 짓밟고 지나갔고 모닥불 옆을 스쳐 가는 거대한 얼룩무늬를 봤다. 대호였다. 그때 대호를 본 것은 황서방만이 아니었고 강부자와 다른 마을 사람들도 서너 명이 대호를 봤으나 소리도 지르지 못했다. 소리를 지르면 대호가 되돌아와 덤벼들 것 같았다.

호랑이다, 호랑이. 호랑이가 우리 소를 쫓아간다!’

강부자의 고함에 황서방이 달려갔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속수무책이었다. 호랑이를 잡을만한 무기가 없는 사람들은 무기력했다. 호랑이에게 쫓겨 달아난 황소의 비명이 들렸다. <호랑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황소며 황소는 호랑이를 이긴다>는 강부자의 말은 터무니없는 말이었으며 호랑이가 좋아하는 먹이는 황소였다. 마을 북쪽 산에서 마을로 온 호랑이는 돼지우리를 그냥 지나고 황소를 노렸다. 호랑이는 외양간에서 20m 떨어진 소나무 밑에 엎드려 냄새를 황소에게 보냈다. 황소를 밖으로 끌어내려는 작전이었다. 호랑이의 냄새를 맡은 황소는 겁에 질려 이성을 잃어버렸다. 미쳐버린 것이다. 밖으로 도망간 황소는 돌아오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황소를 찾아 나서려고 햇으나 아무도 앞장을 서지 않아 망설이고 있을 때 구세주가 나타났다. 호랑이를 쫓는 추포수와 김서방이 대호의 발자국을 쫓아 마을에 들어섰다. 추포수는 대호가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황급히 추적을 했다. 마을 장정들이 뒤를 따랐다. 황소와 대호는 마을을 지나 산중턱에서 대결했다. 대결이 아니라 일방적인 도살이었다. 맹목적으로 내닫는 황소를 쫓은 대호가 황소의 등에 올라타 그 무게로 황소를 넘어뜨리고 목줄을 한 입으로 물어뜯어 버렸다. 대결은커녕 저항도 못 해보고 죽었다. 대호는 400kg이나 되는 황소를 가볍게 물고 100m 떨어진 계곡으로 가서 뜯어먹었다. 소의 시체는 내장과 갈비가 없어졌고 대가리와 네 다리만 남았다. 대호는 거의 자기 몸무게만큼 포식했다. 추포수가 황부자의 양해를 얻어 소의 시체를 그대로 놔두었다. 고기가 남아있는 이상 호랑이는 다시 올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맹수는 포식한 다음에는 으례히 잠을 잔다. 대호가 산 중턱의 소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추포수는 숲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소나무 숲 주위를 돌아봤다. 나온 발자국은 없었다. 소나무 숲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산마루로 올라갔다.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살펴보았다. 겨울이라 잡초가 없었으므로 호랑이가 발견될 것 같았으나 발견되지 않았다.

(이상한데 .)

(도망간 것일까?)

도망간 발자국은 없었다. 추포수는 산정에서 내려와 숲에서 20m쯤 떨어진 바위 위로 올라가 호랑이의 발자국을 더듬어갔다. 호랑이 발자국이 어느 지점에서 끊겼다.

(!)

대호의 발자국이 끊어진 지점에는 두 그루의 소나무가 거의 붙어 서 있었는데 나무 사이에서 번쩍이는 불빛을 본 것이다. 호랑이의 눈이었다. 호랑이는 오래전부터 사람의 추적을 알아채고 주시하고 있었다. 바로 위 바위에 납작 엎드리고 있었던 추포수는 총구를 한치한치 표적으로 당기면서 총구를 호랑이의 눈을 겨냥했다. 그때 추포수의 뒤에 있던 김서방이 긴장하는 추포스를 보고 물었다.

왜 그래, 뭐가 보여?’

얼빠진 물음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으나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절대절명의 순간이었다.

, 왜 그러냐니까?’

그 추위에도 추포수의 이마에는 땀이 흘렀다.

시끄러워! 이 바보야. 저 호랑이가 보이지 않냐?’

마음속에서는 그렇게 외쳤으나 소리를 낼 수가 없었다. 김서방도 그제야 가느다랗게 떠는 추포수의 어깨를 보고 눈치를 채 입을 다물었다. 추포수는 나무 사이에 보이는 호랑이의 눈 사이에 겨냥을 했다. 그러나 발사를 망설였다. 호랑이의 눈이 하나만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총은 단발이었다. 한 방에 호랑이가 죽지 않으면 포수가 죽는다. 그래서 망서렸다. 그때 호랑이가 약간 움직였다. 나무에 가려졌던 한쪽 눈도 보였다. 두 눈이 다 보였다.

(됐다!)

추포수는 두 눈 사이를 겨냥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무라다 총의 굉음과 검은 연기가 피워 올랐다. 연기 때문에 추포수는 호랑이를 볼 수 없었으나 바위 밑의 김서방이 외쳤다.

맞았다, 맞았어. 호랑이가 맞았어!’

그러나 추포수는 재장탄을 서둘렀다. 총신을 꺾고, 탄환 껍질을 뽑아내고, 새 탄환을 집어 넣는데는 아무리 빨라도 4~5초는 걸린다. 그런데 그 4~5초 동안 호랑이는 100m를 달린다. 추포수가 탄환을 재장전하고 있을 때

아이고, 사람 살려라! 저놈이 덤벼든다.’

김서방이 고함을 치며 도망갔다. 호랑이의 돌진에 땅이 울렸다. 그리고 뒤이어 벼락같은 노호가 터졌다. 추포수가 머리를 들었다. 바른 손가락에 탄환이 장전되는 감촉을 느끼며 머리를 들었다. 머리를 든 그의 시야에는 흰 눈가루가 날리며 거대한 얼룩 보자기가 공중에 퍼져있는 걸 보았다. 호랑이가 3~4m 앞에 도약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추포수의 뇌리에는 <늦었다!>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렇게 빨리 재장탄을 했음에도 한발 늦었던 것이다. 대호의 일격을 받을 것을 각오하고 머리를 움츠렸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대호가 추포수가 있는 바위 위로 뛰어오른 게 아니라 바위 옆으로 돌아 김서방을 공격한 것이다. 대호는 자기를 쏜 사람이 김서방이라고 착각했다. 대호가 바위 위에 있는 추포수는 못 보고 고함을 지르며 달아나는 김서방을 본 것이다. 치명적인 순간을 피한 추포수가 바위 위에서 대호를 보고 제2탄을 발사했다. 대호는 <사람 살려라!>고 고함을 치며 달아나는 김서방을 쫓고 있었는데 추포수가 호랑이의 뒤통수를 겨냥하여 발사했다. 대호의 속도가 느렸다. 느린 대호의 동작이 추포수에게 발사의 기회를 주었다. 추포수는 대호의 대가리를 위에서 밑으로 겨냥하여 발포했는데 대호는 달려가는 반동으로 대가리를 눈 속에 쳐넣고 뒹굴었다. 치명타였다. 추포수가 세 번째 장탄을 했으나 발사하지 않았다.

잡았다! 잡았어!’

추포수가 고함을 쳤다. 달아나던 김서방이 뒤돌아보고 대호가 죽은 걸 확인하자 그만 주저앉아버렸다. 젖 먹던 힘까지 내서 도망을 했으므로 힘이 풀려버린 것이다. 오줌을 저렸다고 해도 부끄러울 일은 아니다.

 

96. 도깨비 사냥

사냥꾼이 가장 싫어하는 건 밤과 어둠이다. 특히 맹수 사냥을 하는 포수들은 어둠이 내리면 사냥을 접고 돌아온다. 계곡에 땅거미가 내리고 서쪽 산봉우리가 검붉게 물들면 아무 말 없이 물러서야 하며 어둠의 나라는 짐승들의 나라다. 밤의 수호자 올빼미가 울고 박쥐가 나래질을 하며 동굴에 숨어있던 짐승들이 기지개를 켠다. 그들은 밤에도 빛을 찾아 보이는 눈을 가지고 있으며 바람에 따라서는 4km까지도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냄새를 통해 냄새의 주인공, 크기, 생태까지도 식별한다. 거기에 비해 사람은 무력하며 어둠에서는 까막눈이나 다름없다. 문명 생활을 하며 5감이 퇴화되어버렸다. 그런데 이 엄연한 순리를 어기는 사람이 있다. 황해도의 이백일 포수가 그런 사례다.

192512월 말, 사냥 금지가 막 해제된 때. 이포수가 몰이꾼 세 사람을 데리고 황해도 동쪽 강원도 접경 무명산에서 산돼지사냥을 했다. 정오에 산돼지 네 마리의 발자국을 발견하여 흥분했다. 한 마리는 300kg이 넘는 거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산돼지 발자국 옆에 찍힌 수상한 발자국을 보았는데도 산돼지를 잡을 욕심에 무시했다. 표범의 발자국이라는 걸 알면서도 산돼지 발자국이 뚜렷한 반면 표범의 발자국이 희미하다는 걸 애써 강조하며 무시했다. 계속해서 발자국을 추적했다. 표범이 곁에서 돌아다니는 걸 간파한 산돼지들은 사뭇 내달렸다. 추적하는 포수도 빨랐다. 오후에는 산돼지를 발견했다. 100m쯤 산 아래 계곡에 있는 산돼지를 보았다. 예상대로 300kg이 넘는 수컷이 200kg 정도의 암컷과 조무래기 두 마리를 거느리고 땅거미가 기어드는 계고의 어둠 속으로 들어갔다. 이포수 일행은 흥분했다. 계곡으로 들어간 산돼지를 네 방향에서 포위하면 산돼지는 독 안에 든 쥐다. 다 잡으면 300kg 정도의 살코기를 얻고 서울에서 산돼지고기는 쇠고기보다 비싸다. 그러나 그때 이포수는 때가 하오 4시라는 걸 놓쳤다. 몰이꾼 중 한 사람이 너무 늦었다고 했다.

무슨 소리야! 다 잡은 거나 마찬가진데. 지금 잡지 않으면 내일은 어려워. 저놈들은 밤새 몇십 리나 도망가버릴 거야.’

그래서 무리한 사냥이 계속되었다. 산돼지들은 추격자를 모르고 천천히 가고 있었으므로 이포수가 전속력으로 산마루에 달려가 목을 잡으면 3방면에서 몰이꾼들이 산돼지를 이포수 앞으로 몰아오면 된다. 작전이 결정되자 이포수는 달렸다. 34세의 장년이었던 그는 단숨에 산마루에 올라갔다. 그런데 이포수는 이때 생명을 잃을 모험을 했다. 이포수가 달려간 산마루에 표범이 있었다. 표범도 산돼지들이 산마루를 탈 걸 예상하고 숨어있었다. 표범도 계곡에서 올라오는 산돼지들이 반드시 지나갈 목을 지키고 있었으므로 이포수가 오는 걸 봤을 것이다. 그러나 교활한 표범은 아직 석양이 남아있는 산마루에서 사람과 일대일 싸움이 불리하다고 보고 일단 숨어버렸다. 물론 이포수는 표범을 보지 못했다. 아까 본 표범의 발자국은 이미 3~4일이 지난 발자국이라고 판단하고 오직 산돼지에게만 정신이 팔려있었다. 발사에 방해가 되는 잔솔가지를 쳐내고 겨냥을 해놓고 기다렸는데 올 때가 되었는데도 산돼지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뭘 하고 있는 것일까?)

초조해졌다. 날이 자꾸 더 어두워졌다. 계곡은 이미 깜깜해졌고 산마루도 10m 이상 볼 수 없었다.

(아이쿠, 때를 잘못 잡았구나!)

때 늦게 후회를 한 이포수는 꾸물거리는 몰이꾼을 원망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일어서려는데 뒤에 기척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는데 그 순간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이포수는 대담한 포수였다. 엉거주춤 일어서다가 표범의 일격을 받았으나 총을 휘둘렀다. 총신이 표범의 어딘가를 때렸다. 이포수의 목줄을 노리던 표범이 멈칫했다. 그 사이 이포수는 덮어놓고 방아쇠를 당겼다. 총탄이 표범에게 맞지 않았으나 엄청난 굉음과 불빛에 표범이 일단 물러섰다. 이포수의 총은 총신이 나란히 두 개인 쌍발총이었다. 그래서 이포수는 남은 한 발을 쏠 표적을 찾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표범은 중상을 입힌 이포수 주위를 돌면서 공격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 왼쪽 눈에서 피가 흘러내렸으므로 두 눈이 다 멀어버렸는지 아니면 어둠 때문에 보이지 않은 것인지도 분간이 안 갔다. 당황하고 공포에 싸인 이포수가 고함을 질렀다.

사람 살려라! 사람 살려!’

계곡에서 몰이를 하던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그들도 어둠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어둠이 빨리 내린 계곡은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박서방은 산돼지들이 물을 먹는 소리를 듣고 그쪽으로 다가가다가 이포수의 고함을 들었다.

어디야? 어디!’

대꾸를 하며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기어 올라갔다. 달도 없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두 사람의 몰이꾼도 두 시간 정도 계곡에서 방황하다가 비명을 듣고 달려가다가 한 명이 바위에서 굴러떨어져 도리어 <사람 살려라!>고 고함을 쳤다. 먼저 도착한 박서방이 신음소리를 듣고 가보니 이포수가 쓰러져있었다. 몸을 일으켜보니 온 몸이 피투성이였다.

웬일이요, 웬일!’

박서방이 흔들어서 정신이 가물가물하던 이포수가 의식이 돌아왔다.

안 보여, 아무것도 안 보여 불을 좀 불을 .’

불빛에 보니 이포수는 머리, 어깨와 배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표범이 발톱으로 할퀴고 입으로 물어뜯은 것이다. 숨은 쉬고 있었으나 빈사 상태였다.

어이, 큰일 났다. 이포수가 다쳤어. 빨리 와. 병원에 가야 해!’

주막집 머슴의 말이 들려왔다.

나도 바위에서 떨어져 꼼짝 못 해. 다리가 부러진 것 같아.’

김노인! 김노인! 어디 있소?’

아무 대답이 없었다.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어두워서 혼자서도 길을 찾기 어려운데 중상을 입은 이포수를 데리고 산을 내려갈 벙법이 없었다. 도 부상 당한 사람을 버려두고 가면 표범이 가만 놔둘 리 없다. 사라져버린 김노인도 문제였다. 다행히 다리가 부러진 머슴은 혼자서 기어 올라왔다. 박서방이 날이 충분히 밝아지자 박노인을 찾아 나섰다. 물을 피워 놓고 야영을 한 곳에서 200m쯤 떨어진 곳에 박노인의 모자가 떨어져 있었다. 모자 옆에 핏자국이 있었다. 핏자국에는 살인자의 증거 표범의 발자국도 있었다. 사람들의 고함을 듣고 동쪽으로 도망가던 표범이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며 올라오는 박노인을 발견하여 덮친 것이다. 핏자국을 따라갔는데 끔찍한 광경이 벌어졌다. 바위 위에 박노인이 반듯하게 누워있었다. 묵사발이 된 머리는 겨우 목에 매달려있고, 배가 갈라져 내장이 쏟아져나왔으며, 허벅다리와 팔은 뼈만 남았다. 박서방은 미친 듯이 고함을 쳤다.

사람 살려라! 사람 살려라!’

내가 박서방의 고함소리를 들은 건 한 시간쯤 뒤였다. 나는 그 산에 표범이 돌아다닌다는 말을 듣고 그날 새벽 일본인 다무라포수와 그의 통역이며 사냥 조수인 전봉진과 함께 출동했다가 박서방의 고함소리를 들었다. 온통 피투성이가 된 이포수를 등에 업고 한 발을 절룩거리는 머슴의 손을 끌면서 산을 내려오는 박서방을 발견했다. 우리는 그들을 도와 마을에 안내하고 산으로 갔으나 박노인의 시체를 거두는 일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공교롭게도 눈이 내려 표범의 발자국을 찾을 수 없었다. 밤사냥을 하다가 참변을 당한 이포수는 생명을 건졌으나 한쪽 눈이 멀고 왼손이 마비되어 다시는 사냥을 하지 못하는 병신이 되었다. <밤에는 사냥을 하지 말아라!> 그러나 예외가 있다.

중일전쟁이 일어난 해다. 당시 조선총독부의 촉탁이었던 나는 내무부로부터 덮어놓고 경남 거창으로 내려가라는 지시를 받았다. 거창에 도착하니 마중 나온 군청 직원이 도깨비를 잡아달라는 괴상한 주문을 했다.

도깨비를 ?’

군청 직원이 농담을 하는 게 아니고 진지했다. 그는 면사무소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주었다. 거창군의 박하 마을 뒷산에 공동묘지가 있는데 최근에 공동묘지에 도깨비가 나와 거기에 묘를 쓰면 집안이 망한다는 소문이 퍼져서 군민들이 공동묘지 사용을 꺼렸다. 놀란 면사무소에서 진상을 조사했는데 도깨비를 목격한 사람이 네 사람이 나왔다. 그 중 김진도라는 사람과 그의 여동생이 본 도깨비는, 김진도는 대구에서 장사를 했는데 고향에 남아있었던 아내가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와서는 부모와 여동생이 아내를 박해해서 자살을 했다고 주장했다. 술에 취해서 중언부언하다가 밤중인데도 사죄를 시킨다면서 여동생을 끌고 아내가 묻힌 공동묘지로 갔다.

무슨 놈의 묘들이 이렇게나 많아. 빨리 언니 묘를 찾지 못해!’

겁에 질린 여동생이 묘지 입구에서 서성거리자 호통을 쳤다.

, 빨리 가지 못해!’

사내가 큰소리를 쳤으나 목소리가 모깃소리 같았다. 그때 그들은 묘지에서 달가닥! 달가닥! 하는 소리를 들었다. 소리 나는 곳에는 푸른빛이 명멸했다. 그리고 키득! 키득! 여자 웃음소리도 났다. 남매는 비명을 지르면서 마을로 달아났는데 그 소리가 뒤를 따라왔다. 이튿날 마을 사람들이 묘지에 가봤는데 아내의 묘에서 손과 발이 삐져나와 있었다. 도깨비를 본 사람은 그들만이 아니었고 밤늦게 일을 하고 오던 농부도 같은 얘기를 했다. 윗마을 잔칫집에서 돌아오던 술꾼도 묘지에 푸른빛이 떠돌고 웃는소리가 들렸다고 증언했다. 면사무소에서 직원을 현장에 파견했다. 공동묘지의 묘가 대부분 파괴되거나 구멍이 뚫려있었다. 묘지 여기저기에 인골이 나뒹굴고 인근 산에서도 인골이 발견되었다. 면사무소는 인근 산에 사는 짐승들의 소행이라고 보고 웃음소리도 짐승들의 울음이며 푸른 빛은 인골의 인()이 달빛에 반사되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추정했다. 그 보고서의 내용으로 봐서 내가 할 일은 도깨비처럼 밤에 나타나서 묘지를 훼손하는 밤 짐승을 잡아달라는 것이다.

, 그렇습니다. 그 짐승을 퇴치해달라는 것이죠. 한 가지 더 도깨비 따위를 믿는 농부들의 미신을 일깨우기 위해 공동묘지 현장에서 몇 마리 짐승을 잡아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이것이 도깨비의 정체라고 해명할 수 있을 테니까요.’

밤 사냥을 금기시하는 내가 밤 사냥을 하게된 연유다. 면사무소에서 붙여준 시골 포수를 데리고 현장의 지형을 살펴보았다. 공동묘지는 세 개의 산줄기가 합쳐진 산기슭이며 마을과는 4km쯤 떨어져 있어 짐승들이 나타나기 좋은 곳이었다. 나는 주로 함경도 동북 쪽에서 사냥을 했기 때문에 경남의 산은 서툴렀으나 시골 포수는 산돼지, 노루, 여우, 너구리, 오소리와 족제비들이 많이 서식한다고 알려주었다. 새로 세운 묘들이 있는 산기슭에 움(구덩이)을 두 개 팠다. 움 속에 들어가 밤이 되기를 기다렸는데 열사흘이라 달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날이 흐려 일기가 음산했다. 밤은 뒷산 동굴에서 시작되었다. 어둠이 내리자 동굴에서 자고 있던 수천 마리의 박쥐들이 나래짓을 했다. 박쥐들이 먹이를 찾아 날아간 다음에는 짙은 어둠이 깔렸다. 불과 40여 미터에 있는 묘가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유령이나 도깨비 따위는 믿지 않지만 기분이 언짢았다. 수백 기()의 묘가 있는 곳에 역시 구멍을 파고 들어가 있었으므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시골 포수가 건네준 소주를 병째 들이켰다. 안주 없는 깡소주를 반병을 마시고 나니 기분이 좀 풀렸다. 그리고 노곤해져서 잠이 들었다. 시골 포수와 <어차피 초저녁에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니 12시께 일어나자>고 약속했다. 초겨울이지만 공기가 차가웠다. 약속대로 12시께 일어났다.

(, 이젠 도깨비들이 나타날 시간인데 .)

아닌 게 아니라 <달가닥! 달가닥!> 소리가 묘지에서 들려왔다. 며칠 전에 새로 세운 묘였다. 나는 노루탄을 장전한 벨기에제 5연발총을 들고 살그머니 움을 빠져나왔다. 심야의 묘지는 무섭도록 고적했다. 사람 허리높이로 자란 잡초가 술렁이고 그사이에 올망졸망한 묘들이 산재해 있었다. 황량하고 음산한 분위기였으며 정말로 도깨비가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포수는 미신보다도 강한 신앙이 있다. 가지고 있는 총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다. <총을 겨냥해서 쏘면 죽지 않는 것이 없다>라는 믿음이다. 비록 그 대상이 도깨비나 귀신이더라도 총으로 쏘면 죽는다는 신념이 있다. 그날도 왼쪽 팔에 쥐고 있는 묵직하고 차가운 총의 감촉의 믿음으로 도깨비에 대한 공포는 없었다. 그런 공포보다는 사자(死者)들과 한 장소 즉 묘지에 있다는 불쾌감이 더 강했고 코에 스미는 고약한 냄새가 싫었다. 나는 오랜 경험으로 그 냄새가 여우나 너구리에서 나는 냄새라고 판단했다. 우리는 소리를 내지 않고 기어갔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여전히 들렸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서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에 접근하자 달그락 소리가 딱! 그쳤다.

(우리의 기척을 알아챈 걸까?)

그러나 곧 다시 들려왔다. 가까이에서 자세히 들어보니 달그락 소리만이 아니라 흙을 파헤치는 소리와 헝겊을 북북 찢는 소리도 들렸다. 바로 뒤에 따라오는 시골 포수에게 발사 준비 신호를 했다. 총신에 매달아둔 전지의 스위치를 켜자 몸서리치는 광경이 나타났다. 어둠을 뚫고 나간 전지 불빛에 악귀가 있었다. 며칠 전에 쓴 묘에서 시체를 꺼내 시체를 감싼 헝겊을 찢고 허벅다리를 뜯어먹는 여우의 모습이 드러났다. 가난한 집에서는 시체를 관에 넣지 못하고 거적으로 둘둘 말아 매장했으므로 여우가 쉽게 시체를 끄집어내서 먹고 있었다. 시체는 여자였으며 허벅다리를 물고 갑자기 켜진 불빛에 놀라 전지 불빛에 드러났다. 전지 불빛이 비치자 여우가 대가리를 쳐들고 으르렁거렸다. 먹이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본능이다. 벌겋게 피로 물든 아가리에서 킥! 하는 소리와 함께 입술을 까 내미는 모습은 악마보다 더 징그러웠다. 웬만한 맹수의 위협쯤에는 놀라지 않는 셈이었지만 그 자그마한 악마의 모습에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 새끼가!’

고함을 지르며 방아쇠를 당겼다. 여우가 킥! 하는 비명을 지르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내 등 뒤에서 시골 포수가 회중전등을 묘지 여기저기로 비췄다. 풀 속에서 달아나는 여우들이 보였고 우리는 연속 발사를 했다. 여우의 시체를 두고 마을로 돌아왔다. 이튿날 마을 사람들과 함께 묘지에 가봤는데 네 마리의 여우 시체가 있었다.

, 이게 도깨비입니다.’

도깨비의 정체는 밝혀졌으나 소탕하는 게 문제였다. 여우 사냥은 어렵다. 여우는 밤의 짐승이며 낮에는 깊은 동굴이나 구멍에 숨어 나오지 않는다. 구멍에 있는 여우를 낮에 어떻게 사냥할 수 있을까? 사냥개다. 여우가 숨어있는 굴을 발견하고 몰아내는 재주는 개들에게만 있다. 영국이나 유럽에서도 여우를 잡을 때는 개를 이용한다. 개들이 여우를 발견하고 몰면 말을 탄 신사들이 쏘아 잡는다. 내가 개가 있어야 여우를 잡을 수 있다고 하며 개를 데리고 오겠다고 제안을 하자 관리들은 내가 여우잡이를 기피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시골 포수 세 명을 동원하여 여우 사냥을 했다. 여우굴에 연기를 피워 잡으려고 했으나 gj탕이었고, 덫을 놔도 잡히지 않았다. 교활하고 의심 많은 여우는 시골 포수들의 잔꾀에 넘어가지 않았다. 세 사람의 포수가 이틀 동안 사냥을 했으나 겨우 한 마리를 잡았는데 그것도 전날 내가 쏘아 부상을 입은 놈이었다. 관리들은 그제서야 내 말을 믿고 비용을 들여도 좋으니 사냥개를 데리고 와서 여우를 소탕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괘씸한 소이로 보면 거절해야 하는데 주민들의 피해를 방관할 수 없어 승낙했다. 나는 여우잡이 사냥개를 알고 있었다. 경성에서 자전거점을 하는 일본인 후루가와가 기르는 개들인데, 유럽에서 여우 사냥 전문 폭스테리아종이다. 언젠가 나는 후루가와와 같이 꿩사냥을 했는데 개들이 꿩사냥을 하다가 여우가 나타나자 꿩을 버리고 여우를 쫓아 후루가와가 노발대발했던 일이 있었다. 후루가와에게 개를 데리고 어라고 전보를 쳤다. 별로 잘하지는 못하지만 사냥을 좋아하는 후루가와는 이틀 만에 사냥개를 데리고 왔다. 사이드카가 붙은 오토바이를 몰고 왔는데 사이드카에는 두 마리의 사냥개들이 얌전하게 앉아있었다. 털이 복슬복슬한 테리어는 사냥개라기보다는 애완용으로 기르고 싶은 개다. 관리들과 시골 포수들은 매우 실망한 표정이었다. 서울에서 데려온 사냥개는 사납고 큰 개들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장난감 같은 개를 데리고 왔으므로 크게 실망하는 눈치였다.

아니, 이 개들이 여우를 잡아? 여우에게 잡아먹히지나 않았으면 .’

그 말을 듣고 발칵! 화를 내는 후루가와를 말리며 내가 말했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지 .’

성미 급한 후루가와는 도착 즉시 산에 올랐다. 테리어는 공동묘지 뒷산에 가자 말자 귀를 쫑긋 세우더니 주변을 빙빙 돌았다. 그러고는 목청이 터지게 짖으면서 산허리로 달려갔다. 포수와 관리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뒤를 따랐다. 테리어가 나무 밑둥에 난 구멍을 들여다보며 짖었다. 서양의 귀부인처럼 품위 있는 개가 털을 곤두세우고 야수처럼 눈빛이 변했다.

겨우 구멍이야? 이 구멍은 우리가 이미 불을 놓았던 구멍인데 .’

누가 아나, 구멍에서 들쥐라도 나올지 .’

그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엉뚱한 곳에서 개가 짖었다. 테리어 한 마리는 구멍을 보고 짖고 다른 한 마리는 구멍 주위를 빙빙 돌고 있었는데 구멍 주위를 돌고 있던 테리어가 갑자기 숲으로 돌진했다. 여우 한 마리가 후다닥! 튀어나와 도망갔다.

?’

!’

난데없이 나타난 여우를 보고 모두 놀랐는데 여우가 숨어있던 굴에는 출구가 여러 개 있었다. 여우굴이 입구와 출구가 다르고 출구가 여러 개라는 걸 모르는 바보는 테리어가 아니라 시골 포수들이었다. 그들이 열심히 불을 피웠으나 이미 여우는 출구로 도망쳐버린 뒤였던 것이다. 숲속에서 뛰어나온 여우는 힘껏 도망치고 있었으나 테리어에게는 여유가 있었다. 여우와 테리어의 경주競走2~3분 후에는 판가름이 날 것 같았다. 여우는 할딱거리면서 속도가 느려지는 데 비해 테리어는 원기가 왕성했다. 여우는 단거리선수였으나 테리어는 장거리선수다. 또한 테리어는 침착했다. 금방 목덜미를 물 수 있었으나 덤비지 않았다. 한 마리는 여우를 뒤에서 쫓고 다른 한 마리가 여우의 앞길을 막아 포수가 있는 곳으로 몰았다. 여우는 테리어에게 몰려 할 수 없이 포수 앞으로 왔다. 우리들이 있는 곳에서 5~6m쯤 와서는 숨을 할딱거리며 벌러덩 누워버렸다. 여우가 쓰려졌으나 테리어는 덤비지 않았다. 오히려 뒤로 물러섰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포수를 쳐다보았다.

, 이젠 쏘시오.’

나와 후루가와가 거의 동시에 발사했다. 불과 5~6m 거리에 벌러덩 누워있는 여우는 끽! 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었다. 정말 훌륭한 사냥개였다. 손뼉이라도 쳐주고 싶은 재주였다. 테리어가 몰아낸 여우는 열세 마리다. 여우는 냄새가 고약한데 독특하며 몸에서 나는 게 아니라 배설물에서 난다. 테리어는 여우의 독특한 배설물 냄새를 놓치지 않았다. 여우 중 한 마리는 테리어를 피해 새끼들을 데리고 인가창고에 숨었는데 테리어는 그놈들도 찾아냈다. 방앗간 볏짚 속에 숨은 늙은 여우와 새끼도 테리어의 코를 속이지 못했다. 늙은 여우는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새끼를 볏짚 속에 숨겨두고 혼자 뛰어나왔으나 어미 여우를 쫓는 건 한 마리고 또 한 마리는 볏짚 속 새끼를 감시하고 있었다. 테리어는 그만큼 영리하다. 공동묘지 여우 소탕 공적으로 총독부로부터 상을 받았는데 그 상은 테리어가 받은 거였다.

표범, 여우 외에도 살쾡이, 너구리, 오소리와 족제비가 밤의 짐승인데 체구가 가장 작은놈이 족제비다. 족제비는 꼬리 길이까지 합해도 60cm 정도다. 그러나 족제비는 무서운 짐승이다. 산간마을에서 가축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히는 게 족제비인데 그 잔인무도한 살육은 하룻밤 사이에 가축을 전멸시킨다. 먹지도 않으면서 그냥 죽인다. 살육본능이다. 그냥 죽이기 위해서 죽인다. 토끼장에 들어가면 토끼를 모두 다 죽이고, 닭장에서도 여덟 마리를 다 죽여놓고 한 마리만 물고간다. 범이나 늑대는 배가 고파야 사냥을 하고 먹을 만큼만 잡는다. 족제비는 재미로 죽인다. 총알처럼 뛰어들어 대뜸 목줄을 물어뜯는다. 닥치는 대로 모두 다 죽이고는 한 마리만 물고간다. 자기보다 채구가 큰 토끼, 장탉 심지어는 양이나 돼지도 물어 죽인다. 족제비는 자기 몸의 두 배가 넘는 뱀과도 싸운다. 뱀은 족제비가 즐겨 먹는 먹이다. 족제비는 두려움을 모른다. 무조건 달려들어 목줄을 물고 늘어진다. 목을 물린 뱀이 꼬리로 족제비의 몸을 감으려고 했으나 족제비가 몸을 땅에 붙여버렸으므로 결국 뱀은 묵이 뜯겨 죽었다.

경기도 평택 부근 야산에서 꿩사냥을 했는데 친지에게 빌린 포인터가 싫증을 냈다. 쫓아서 날릴 꿩이 없자 포인터는 다른 짐승을 쫓았다. 토끼를 쫓아다니고 다람쥐 굴을 들여다보던 포인터가 갑자기 숲속으로 달려갔다. 숲이 두 갈래로 쫙! 갈라지며 누런 짐승이 달려 나왔다. 족제비였다. 포인터는 장난삼아 족제비를 쫓았는데 족제비는 필사적이었다. 쫓기다가 몰린 족제비가 휙! 돌아섰다. 자기 몸무게의 다섯 배가 넘는 개와 일전을 벌이려는 당돌한 태세였으나 개는 무시했다. 포인터는 버릇대로 코를 족제비 앞에 내밀었다. 당돌한 상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려는 태도였다. 그런데 족제비가 총알처럼 뛰어오르며 개의 목줄을 물었다. 개의 비명을 듣고 숲속으로 달려갔을 때 포인터가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포인터의 목에 족제비가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광경이었다. 총대로 족제비를 내리쳤다. 족제비는 3~4m를 날아가 바위에 떨어졌으나 달아났다. 홧김에 발사를 했다. 총탄을 대여섯 개나 맞았으나 서너 발 기어가다가 아가릴 벌리고 죽었다. 독종이다. 포인터를 인근 병원에서 치료했다. 조물주가 족제비의 체구를 작게 만든 게 천만다행이다. 만약 족제비의 체구가 표범만큼 크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밤에 어둠을 타고 스며들어 대뜸 목줄을 물어뜯는 족제비를 당할 동물은 없다. 가축도 사람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표범만큼 큰 족제비는 없었으나 여우만큼 큰 족제비가 있다는 건 밝혀졌다. 지리산에 살고 있다. 담비다. 산간사람들은 담비를 표범보다 더 무서워한다. <담비는 호랑이에게도 덤벼든다>고 말한다. , 돼지는 물론이고 황고에게도 덤벼든다. 답의 습격을 받은 짐승은 살아남기 어렵다.

일본인 포수 오자기는 지리산에서 담비의 습격을 받았다. 오자기는 개를 데리고 꿩사냥을 하다가 큼직한 산돼지를 발견하여 잡았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져 동굴에서 야영을 했다. 개가 산돼지를 지켰다. 12시께 개 짖는 소리에 잠을 깼다. 개의 비명이 들렸다. 개와 싸워서 개가 지는 짐승? 범이 아니면 표범뿐이다. 오자기의 발이 얼어붙었다. 오자기가 연달아 두 발의 공포를 쏘았다. 굉음에도 불구하고 싸움이 계속되더니 개의 신음소리가 약해지고 이윽고 끊어졌다. 오자기가 용기를 내서 전지를 비추었다. 산돼지의 시체 옆에 개가 쓰러져있었다.

마루! 마루!’

개를 부르며 주변을 비췄다. 노르스름한 물체가 스쳐 갔다. 오자기는 그게 범이라고 생각하고 동굴로 들어와 밤새 불을 피웠다. 그러나 이튿날 조사해보니 담비였고, 개는 단 한 군데 목이 뜯겨 절명했다. 담비는 산돼지고기 한 점을 물고갔을 뿐이다.

 

97. 산막의 손님

잘 훈련된 등산가나 노련한 포수 같으면 한국의 산에서는 길을 잃어 죽지는 않는다. 한국의 산은 험준하지만 길을 찾지 못할 만큼 넓지 않다. 나도 짐승을 쫓아다니다가 길을 잃어 좀 헤맸으나 대개 산에서 빠져나왔다. 오랜 사냥 경험으로 평지나 마을로 나가는 길을 찾아냈고 그게 어려우면 높은 산봉우리로 올라가 지형을 살펴보면 나갈 길이 보인다. 그러나 만주의 삼림은 다르다. 만주의 삼림은 너무 광대하다. 산에 올라봐야 보이는 것은 하늘과 산과 나무들뿐이다. 수백 리를 뻗어나간 산과 삼림은 일단 그 속에서 길을 잃으면 빠져나올 도리가 없다. 그래서 만주의 삼림에는 산막이 있다. 만주의 삼림 속에서 사는 여러 주민들이 지어놓은 대피소고 무료 여관이다. 짐승을 사냥하는 포수, 산삼을 채취하는 심마니, 금이나 사금(砂金), 진주를 캐는 광부, 마적과 나무꾼들이 지었다. 산막은 누가 지었든지 모든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공공주택이다. 만주의 삼림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지혜다. 영하 40도의 추위와 눈과 얼음, 범과 늑대들에게서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협동 정신이다. 나는 사슴을 쫓아 빈번하게 삼림을 드나들었는데 때마다 산막의 신세를 졌다. 나무꾼이 지은 산막은 통나무로 지었고, 마적은 총탄이 뚫지 못하게 돌로 지었으며, 사냥꾼이나 심마니는 흙과 돌로 지었다. 온돌로 되었고 창문은 없으며 공기통이 있는 구조다. 한 평짜리에서 열 평짜리까지 다양하다. 맹수의 습격을 막기 위해 튼튼한 통나무 문이 달려있으며 몽둥이나 창칼도 준비되어있다. 화덕과 돌솥도 있다. 그리고 다음 방문객을 위해 땔감과 약간의 응급용 식량~옥수수나 콩, 등유가 마련된 곳도 있다. 산막에 들어간 사람은 누구나 그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불문율의 규칙이 있다. 이용한 사람은 원상복구를 해놓고 가야 한다. 그런 규칙은 아무도 감시하거나 지시하는 사람도 없으나 틀림없이 지켜지고 있었다.

1932년 길림성 동쪽 사오린호산 깊숙이 들어간 일이 있었다. 백인 포수 알렉세이와 그의 조수 중국인과 같이 범을 잡기 위해 철도에서 내려 이틀이나 걸쳐 걸어 들어갔다. 12월 초였으나 사오린호산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으며 시베리아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이 피부에 칼날처럼 파고들었다. 영하 40도 내외였으며 입김이 수염과 방한모에 하얗게 얼어붙고 오줌은 얼어붙었다. 사흘째 되는 날에 눈이 내렸다. 강풍에 섞여 내리는 눈바람에 사람들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그날 오후 추위와 피로에 지쳐 쓰러졌다. 악발이라는 별명을 가진 나도 별수가 없었다. 앞서가던 알렉세이가 내 귀에 속삭였다. 일본말, 중국말과 한국말을 섞어 말했다.

여기서 10리쯤 가면 산막이 있어. 어둡기 전에 도착할 수 있으니 힘을 내!’

그 한 마디가 나를 일으켜 세웠다. 한증막처럼 뜨거운 열기가 화끈거리고 흙냄새가 뭉클한 산막을 그리며 몽유병자처럼 비슬거리며 걸었다.

이제 거진 다 왔어. 고개 너머에 산막이 있어.’

정말 고개를 넘으니 산막이 있었다. 통나무와 흙벽으로 만든 제법 큰 산막이었다. 한발 앞서 도착한 중국인 조수가 불을 피워놓았다. 나는 거적을 깔아놓은 온돌 위에 드러누워 점점 따뜻해지는 등의 감각을 느끼며 정신을 잃었다. 꼬박 반나절을 잤다. 잔 게 아니라 기절했다. 목이 말라 눈을 뜨니 알렉세이는 총을 손질하고 중국인 조수는 화덕에 차를 끓이고 있었다.

그냥 누워있어요. 아직도 열이 대단하니까.’

감기와 몸살을 같이 앓고 있어서 전신의 뼈마디가 쑤셨다. 뜨거운 중국차 한 잔을 마시고 또 기절했다. 눈은 연 이틀간이나 계속되었다. 사냥하기에 딱! 알맞은 날씨였다. 그러나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열은 좀 내렸으나 힘이 없어 거동할 수가 없었다. 상의한 결과 나는 산막에서 푹 쉬기로 하고 알렉세이와 중국인 조수가 범 사냥을 나가기로 했다. 이틀 아니면 사흘 후에 돌아오겠다고 하고 떠났다. 그러나 알렉세이는 5일 후에야 돌아왔고 나는 산막에서 귀중한 경험을 했다. 평생 잊혀지지 않을 사람을 만났다. 알렉세이가 떠난 뒤 곧 산막에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일본인과 두 명의 중궁인 사냥꾼이었다. 일본인을 안내한 중국인 포수가 선객(先客)을 보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사냥꾼의 예의다. 따끈한 중국차를 권했다. 피차 인사를 한 다음 차를 마시면서 일본인 포수가 벽에 걸린 내 총을 힐끗 보더니 공손하게 말했다.

영국제구만요. 좋은 총입니다.’

그의 총도 고급 총이었으나 그보다도 진소우라는 중국인 포수의 총이 더 귀한 총이었다. 러시아군대에서 사용하는 단발총을 개조한 것인데 총자루에 큼직한 호랑이발톱이 세 개 박혀있었다. 자기가 잡은 세 마리 호랑이발톱이다. 만주에서 포수의 품격은 포수가 잡은 호랑이 수에 비례한다. 호랑이를 한 마리 잡으면 프로 포수로 대우를 받는다. 또 한 마리를 잡으면 권위자로 존경받고, 세 마리 이상 잡으면 포수 세계에서 영웅이 된다. 나는 그에게서 포수로서의 품격을 봤다. 그도 내게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알렉세이와 같이 왔다고 하자 머리를 끄덕이며 일본인 포수에게 말했다.

알렉세이가 먼저 왔으니 우리가 방향을 바꿉시다.’

진포수가 첫 호랑이를 잡은 건 밤이었다. 6년 전에 사오린호 산기슭 북쪽에서 산돼지를 잡았는데 날이 어두워져 인근 중국 사당에서 잤다. 산신이나 토지신을 섬기는 중국인들이 작은 집을 지어놓고 제사를 지낸다. 포도씨 한 사람이 오그리고 누울만한 공간이었으나 추운 바깥 날씨에 비하면 궁궐이었다. 등에 지고 다닌 담요를 뒤집어쓰고 눈을 붙이려는데 뭔가 끌려가는 소리가 났다. 진포수는 그 소리를 직감하고 문틈으로 내다보았는데 대호가 산돼지를 끌고 가고 있었다. 대담한 진포수는 총의 장전을 풀고 어둠 속을 살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진포수의 총은 단발총이다. 아무 데나 무턱대고 쏠 수 없다. 만주의 대호는 사람 따위야 우습게 본다. 그러나 진포수는 대호를 포기하지 않았다. 깜깜한 삼림이었으나 고목이 쓰러진 공간으로 달빛이 스며들어 지면에 1m 정도의 밝은 곳이 있었다. 밝다고 하지만 달빛에 눈이 반사되어 희무끄레하게 보이는 정도였으나 대호가 거기를 통과한다면 총을 쏠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았으나 중국인답게 끈기로 버텼다. 마침내 동그란 빛 속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산돼지를 끌고 가는 대호의 꼬리가, 배가 그리고 산돼지의 목덜미를 물고 있는 머리가 나타났다. 발사했다. 빛을 겨누어 총신을 고정시켜 놓은 상태로 머리를 겨냥하여 방아쇠를 당겼다. 단 한 발로 승패가 가름되었다. 정확하게 머리에 맞은 탄환이 뇌수를 뚫고 들어간 소리가 났다.

첫 번째 호랑이는 요행으로 잡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정열과 노력으로 잡았지요. 호랑이사냥에서는 죽을 고비는 넘겼으나 상처를 입지 않았는데 그 요사한 표범-계집년에게는 당했어요.’

진포수의 배에는 30cm의 수술 자국이 있었으며 그건 내장 일부가 보일 정도의 상처였다. 그때 진포수는 표범의 발자국을 새끼 범이라고 오인하여 추적했다. 새끼 범이 산중턱에서 바위 뒤로 숨는 걸 보고 경솔하게 추적했다. 새끼 범을 간단히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하여 큰 바위 위로 올라갔다. 바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새끼 범을 찾아 두리번거렸는데 옆에 있는 다른 바위에서 새끼 범이 튀어나와 달려들었다. 밑에서 위로 거의 수직으로 뛰어오른 범이 진포수의 배에 발톱을 박아넣고 뒹굴었다. 만약 그것이 대호라면 대호가 사람에게 밀착되는 순간 승패는 끝나버린다. 400kg이 넘는 대호에게 밀려 넘어지면 목줄이 끊겨 죽는다. 그러나 다행히 표범이었다. 진포수는 바위 위에 우뚝 선 자세로 버텼다. 두 손으로 표범의 목을 움켜쥐고 힘껏 휘둘러 표범을 뿌리쳤다. 표범이 5~6m 날아갔다. 그리고 도망가버렸다. 그러나 진포수는 중상이었다.

사실 표범은 대호보다 더 무서운 맹수지요. 그런데 형은 한국에서 표범을 여덟 마리나 잡았다니 놀랄 일이요.’

진포수가 거듭 표범의 간악함을 설명했다. 진포수, 일본인 포수 그리고 중국인 몰이꾼은 이튿날 떠났다. 진포수 일행이 떠나고 나서 또 다른 손님이 찾아들었다. 모두 다섯 명이었는데 한꺼번에 들어오지 않고 차례로 들어왔다. 첫눈에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무장을 하고 있었는데 엽총이 아니라 일본군대에서 쓰는 구식장총을 매고 누비이불을 둘둘 말아 엇갈려 맸고 허리에 탄띠를 찼다. 큰 키에 근육질이고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푸른 눈에서는 늑대처럼 냉혹함이 비쳤다. 그래도 선객에 대한 예의는 지켰으며 인사를 하고는 방 한구석에 비스듬히 누웠다. 그들이 도착한 10여 분 뒤 또 두 사람이 들어와 나직히 말을 주고받더니 한 사람은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마적이었다. 나간 사람이 두 사람을 더 데리고 들어왔다. 방에 들어온 마적은 벽에 기대고 누웠으나 말이 없었다. 뜨거운 중국차를 권했는데 두목은 받았으나 다른 마적은 사양했다. 약간 미소 짓는 듯한 표정이었으나 나를 보는 눈매는 날카로웠다. 내가 미리 한국인 포수라고 말했더니 두목이 부하에게 지시했다. 한국말이 나왔다.

한국 어디요?’

고향은 경기도지만 서울에서 삽니다.’

혼자 왔소?’

러시아 포수 알렉세이라는 사람과 같이 왔습니다.’

강한 함경도 어투다.

선생님은 어디지요?’

부하는 내 말을 무시하고 두목에게 보고했다. 두목이 알렉세이라는 말을 듣고 머리를 끄덕이더니 누워버렸다. 몇 시간을 자고는 식사를 했다. 화덕에서 구운 돼지고기 한 접시를 줬다. 긴장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 제일 염려되는 건 벽에 걸린 엽총이다. 그러다 새벽에 깜빡 잠이 들었다. 아주 잠깐이었는데 아무도 없었다. 먼저 벽에 걸린 엽총을 살폈다. 새벽에 소리도 없이 떠난 마적들은 산막 규칙을 철저히 지켰다. 화덕 옆에 장작이 수북이 쌓였고, 방을 말끔하게 청소도 하고, 화덕에 걸린 냄비에는 돼지고기찌개가 끓고 있었다. <만나서 반가웠소, 함경도 친구!> 문짝에 쪽지가 붙어있었다. 만주의 마적은 강도가 아니다. 지방 군벌이나 재벌의 병사였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한 도망자들인데 노략질을 해도 군대, 경찰 등 권력자에게 하고 양민들은 오히려 보호했다. 한국의 독립운동가나 중국의 공산당원도 있었다. 맥이 풀렸으나 바깥으로 나갔다. 바람은 차고 추위는 여전했다. 꽁꽁 얼었다. 하늘, 땅이 모두 얼었다. 하늘이 쳐다보기만 해도 쨍! 하고 깨질 것 같았다. 바깥 추위를 모르고 지낸 산막이 고마웠다. 굵은 통나무로 얼개를 만들고, 나무줄기로 엮은 지붕을 잡초로 덮고, 벽을 돌과 흙으로 이중으로 만들어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고, 온돌로 난방을 한 지혜가 고마웠다. 온돌은 한국인들의 고대 조상 북옥저인들이 발명품이다. 흙벽과 돌벽 사이에는 페치카 같은 구조로 공간이 있어 화덕에서 나온 연기와 열이 방안을 한 바퀴 돌아 굴뚝으로 나가게 되어 이중 난방이다.

(알렉세이가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 .)

알렉세이는 이튿날도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다른 방문객이 들었다. 무척 강건하게 보이는 머리가 하얀 노인이었다. 그는 산막에 총을 가지고 있는 선객을 보고 조금 놀랐으나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띠우며 인사를 했다. 중국인이어서 말은 통하지 않았으나 그는 모피상-주로 족제비 가죽을 수집했다. 노인의 배낭에는 노란 족제비 가죽이 삐쭉이 삐져나와 있었다. 내가 그걸 주시하자 노인은 얼른 쑤셔 넣었다. 족제비 가죽은 꽤 비싼 물건이었고 노인은 그걸 강탈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나는 손짓발짓을 섞어 중국말로 내 신분을 밝혔는데 그 의지가 통한 듯 노인이 미소 지었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안 노인이 대뜸 인삼이라고 글짜를 써 보이며 머리를 흔들었다. 인삼은 약효가 없고 산삼만이 영약이라고 했으며, 산삼은 한국에도 있으나 여기 만주에 많다고 했다. 올해도 세 뿌리를 캤으며 봄에는 심마니를 한다고 했다. 가죽 장사가 부업인 것 같았다. 한국에서는 꿈에 계시를 받아 캐는데 만주에서는 기도를 드린다. 몇 날 며칠 기도를 하는데 먼저 산삼을 잉태시키는 하늘의 벼락에게 드리고, 다음에는 그 씨를 받아 산삼을 키워주는 자비로운 땅의 신에게 드린다. 그리고 산삼을 캐러 다니는 동안 자기를 보호해줄 범의 신에게도 드린다. 심마니들은 몸에 쇠붙이를 지니지 않고 그 무서운 밀림 속을 돌아다닌다. 지닌 것은 기다란 지팡이뿐인데 그래도 심마니가 범에게 물려 죽은 일은 별로 없다. 간혹 희생자가 생기는데 그건 부정한 행위를 하여 신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부정행위란 살육, 간음과 무기를 지니는 것이다. 노인은 부정행위를 저지르지 않으면 범은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라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올여름에도 호랑이를 만났으나 무사했다. 노인은 대낮에 불과 10여 미터 거리를 두고 범과 만났다. 그해에는 며칠 동안 기도를 해서 수신(修身)을 했고, 또 범의 신에게도 며칠 전에 양의 대가리를 바쳐 기도를 드렸기 때문에 범을 만났을 때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노인은 경건한 마음으로 범을 바라보면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목덜미에 갈기가 무성한 시베리아 대호였는데 그도 한참동안 노인을 바라보고 있다가 가벼운 헛기침을 하더니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거짓말이 아니라고 확신했다. 노인의 표정으로 봐서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고, 범이 사람을 보고도 공격하지 않은 사례는 많다. 특히 상대가 도전적이지 않거나 배가 고프지 않으면 죽이지 않는다. 노인의 말은 거짓말은 아니나 범의 행동에 대한 해석에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범이 자기를 공격하지 않은 게 자신의 기도 때문이라는 말을 구태어 반박할 필요는 없다. 며칠 전에 호랑이 사냥꾼들이 떠났다는 말을 듣자 노인은 얼핏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공손히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렸다.

불손하고 경망스러운 죄인을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노인은, 이 산에는 호랑이 중에서도 왕 호랑이 왕대(王大)가 살고 있으며 왕대에게 덤벼드는 건 스스로 화를 자초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노인은 밤새 촛불을 켜놓고 기도를 드렸으며, 자신뿐만 아니라 포수들의 안녕을 위해서도 기도를 했다. 그리고 <내가 기도를 드리기는 했지만 그 뜻이 범의 신에게 통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하면서 산막을 떠났다. 나는 노인의 말에 가슴이 답답해지고 불안한 마음이 생겼다. 노인이 떠나고 채 한 시간이 못 되었을 때 바깥에서 고함소리가 났다. 일본말이었다.

사고가 났으니 도와달라!’

사흘 전에 산막에서 자고 간 일본인 일행이었다. 들것에 피투성이가 된 사람이 실려있었다.

(누굴까?)

중국인 진포수가 안 보였다.

표범에게 당했어! 기습을 받았어!’

중상이었다. 얼굴은 표범이 할켜 두 눈을 감고, 콧등이 없어졌고, 왼팔도 물려 상처가 깊었다. 피가 엉켜 눈코 분간도 어려웠다. 뜨거운 물로 씻어냈는데 왼눈을 실명되었고, 오른쪽 눈도 퉁퉁 부어 어찌 될지 몰랐다. 상처에 옥도정기(머큐롬)를 부었으나 생명이 위험했다.

표범은 참말 교활했소.’

새벽에 산막을 떠나 알렉세이와 반대 방향-서북방으로 들어갔다. 눈이 소복이 쌓여 토끼, 꿩의 발자국들이 선명했다. 그날 오후 시베리아 대호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몇 시간 전이었다. 추적했다. 무서울 것이 없는 제왕은 산마루길-호도(虎道)를 탔다. 호랑이가 산마루를 유유히 걸어가고 있었다. 너무 흥분했다. 일본인 포수가 총을 들었으나 사정거리 밖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발자국 추적을 버리고 지름길 추적을 결정했다. 계곡을 올라가 범의 앞을 막아 범과 정면 대결을 하겠다는 것이다. 진포수가 앞장서서 달렸다. 천천히 걷는 것 같아도 대호의 걸음은 빨랐으며 범의 앞길을 막겠다는 작전은 어긋나버렸다. 진포수는 초조해서 뒤따라오는 일본인 포수에게 빨리 오라는 손짓을 하고 대호의 뒤를 따랐다. 그런데 진포수의 뒤를 따르던 일본인 포수와 몰이꾼은 무서운 광경을 목격했다. 난데없는 표범 발자국이 발견됐다. 표범은 대호를 피해 바위틈에 숨어있다가 대호를 추격하는 진포수를 발견하고 슬슬 뒤로 물러났다. 표범의 발자국과 진포수의 발자국이 평행이 되어 산중턱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래서 일행은 진포수가 표범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표범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대호의 추적에 온 정신을 쏟는 진포수는 표범의 출현을 몰랐다. 표범은 진포수가 계속 따라오자 뒤돌아섰다. 더 이상 올라가다가는 대호와 부딪칠 염려가 있었기 때문에 바위 뒤에 숨어 추적자를 기다렸다. 진포수가 헐레벌떡거리며 바위 밑을 지나가는데 공교롭게 눈에 미끄러져 총을 든 왼손으로 땅을 짚었다. 표범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바위에서 뛰어나오며 얼굴을 할퀴었다. 맹수의 공격본능이다. 상대의 눈을 먼저 무력화시키는 전법이다. 진포수가 그 충격으로 엉덩방아를 찧자 총을 든 팔을 물어뜯었다. 역시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전법이다. 총이 무기라 걸 아는 전법이다. 진포수는 용감한 포수였으나 표범의 첫 번째 공격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비명을 지르며 일행이 올라오는 비탈로 굴렀다. 비명을 들은 일본인 포수가 달려가면서 공포를 쏘았는데 표범은 공포를 듣고 마지막 공격을 포기하고 도망쳤다. 빨리 병원으로 가야 하는데 밤새 들것을 들고 온 일행이 지쳐 움직이지 못했다. 눈과 바람도 다시 시작되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알렉세이가 곧 돌아올 것이니 기다리자고 했다. 러시아군 장교 알렉세이는 의술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이 있었으며 그의 응급 구호 상자에는 외과용기구가 있다. 알렉세이 일행은 밤에 돌아왔다. 눈사람이 되어 돌아온 일행은 시무룩했다. 범 사냥이 실패한 것이다. 알렉세이는 산막에 부상자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우리는 모두 왕대 놈에게 조롱을 당했어. 우리가 쫓은 왕대를 이 사람들이 가로막아 쫓다가 표범에게 당한 거야.’

알렉세이 일행은 오후 늦게 왕대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왕대가 동북방으로 서서히 갔으므로 바짝 쫓았다. 추적 이틀 만에 왕대가 계곡으로 내려가는 걸 보고 계곡으로 따라갔으나 왕대가 사라져버렸다. 왕대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사흘째 되는 날 다시 왕대를 발견했다. 산양을 잡아먹고 자고 있었다. 좋은 기회다. 배가 부르면 경계를 늦춘다. 살살 기어 다가갔다. 40m 거리에서 발사했다. 그런데 총이 고장이었다. 애용하는 윈체스터에 눈이 묻어 물이 흘러 들어가 얼어버렸다. 총을 닦고 있는데 잠에서 깨어난 왕대가 도망가버렸다. 이후 알렉세이는 두 번째 실수를 했다. 이튿날 대호가 산봉우리 바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걸 발견했다. 멀었으나 사정거리 밖은 아니었다. 마치 나를 쏴보라는 듯 우뚝 서 있는 대호에게 발사했다. 그러나 연달아 두 발을 발사했는데도 대호는 그대로 서 있었다. 총소리 나는 곳을 힐끔 보더니 유유히 사라졌다. 알렉세이는 비상한 총솜씨를 가진 포수였는데 두 발이 다 빗나가버렸다.

그 왕대 놈에게는 무슨 귀신이 붙어있는 것 같았어. 사람의 손에는 죽지 않는 놈이야.’

왕대에게 기도를 드린 중국 노인이 생각났다. 두 번 실패에도 추적을 계속했다. 왕대는 발자국이 발견된 지점으로 되돌아와 서북방으로 갔다. 이제 진포수 일행의 발자국도 발견되었다. 진포수가 알렉세이의 사냥을 가로막아 방해를 한 셈이었다. 그러나 고집불통의 알렉세이는 추적을 계속했다. 대호와 진포수의 발자국을 뒤따라갔다. 그리고 총소리를 들었고 핏자국을 발견했다. 총소리에도 왕대는 자극을 받지 않고 여전히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그따위 총소리에 놀랄 왕대가 아니다. 아무리 고집쟁이라고 해도 다시 눈이 내려 발자국이 사라져버리자 추적을 단념했다. 닷새 동안 왕대에게 조롱만 당했다.

알렉세이가 진포수의 상처-얼굴에 열두 바늘, 팔에 여덟 바늘을 꿰맸다. 수술이 잘 되고 피가 멈췄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으나 한쪽 눈은 실명되었다. 눈이 계속 내려 사흘이나 산막에 갇혔다. 식량 걱정은 없었다. 눈에 갇힌 건 우리들뿐만이 아니었다. 눈보라 속에서 사슴, 산양과 토끼가 산막 주변을 우왕좌왕했다. 산막에서 지낸 6명의 8일은 평생의 추억이었다. 한국인, 중국인, 러시아인과 일본인들이 국경을 초월한 공동생활을 했고, 마적들도 참여했다. 영하 40도의 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원시생활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이었다. 사흘 후에 눈이 그쳐 산막을 떠나면서 산막의 주인들은 이별의 아쉬움을 산막에 남겼다.

 

98. 산새-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새 사로잡이

두륜산은 함남과 함북에 걸쳐있는 높이 2,500m에 면적도 넓다. 산중에 마을이 많은데 사냥을 업으로 산다. 1930년대, 나는 몰이꾼 박서방과 첩첩산중 마을을 찾아갔다. 마을은 산에 둘러쌓였는데 만주와 한국을 드나드는 짐승들의 통로였다. 사슴이나 산돼지들은 추위를 타는데 겨울이 오면 남쪽으로 내려가는 통로가 두륜산이다. 먹잇감 짐승들이 이동하면 범과 표범도 따라서 이동을 한다. 두륜산 산마루에서 천천히 내려갔는데 박서방이 잘못하면 목숨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마을 사람들이 곳곳에 함정이나 덫, 올가미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박서방이 알려주지 않았다면 함정을 모르고 지나갈 뻔했다. 함정은 산돼지가 다니는 길목에 깊이 3m, 넓이 1m의 함정을 파고 그 위에 풀로 짠 거적을 덮어 흙을 뿌려 감쪽같이 위장했으며, 그 위에 낙엽이 쌓이고 눈이 덮이면 만든 사람도 빠진다고 했다. 함정은 사람이 빠져도 위험이 크지 않으나 나뭇가지를 휘어잡아 끝에 달아놓은 올가미는 위험했다. 올가미에 산돼지나 사슴이 걸리면 목줄이 죄이며 휘어 넣은 나뭇가지가 튀어 오르는 탄력으로 목이 부러져 대롱대롱 매달린다. 작년에 산골에 세금을 매기겠다고 들어왔던 관리가 올가미에 걸려 목숨을 잃을 뻔했다. 다행히 목이 걸리면서 팔이 함께 걸려 질식을 면했으며 <사람 살려라!>는 외침을 들은 나무꾼이 살렸다. 우리는 박서방 덕분에 무사히 마을에 들어갔으며 마을 출신 박서방이 데리고 온 우리들도 따뜻한 대접을 받았다. 아직도 상투를 틀고 댕기 머리를 했다. 시골에서 흔히 보는 영양실조가 없고 건강한 몰골이다. 모두 아홉 집인데 인구는 50여 명이고 박씨가 다섯 집인 걸로 보아 박씨촌으로 짐작되었다. 원시공동체 생활을 했다. 수확물을 공평하게 나누고 제사나 초상도 함께한다. 서울에서 온 포수 양반으로 소개된 나는 촌장집으로 안내되어 사랑방에 들었는데 방바닥에는 커다란 곰 가죽이 깔렸고 벽에는 여우, 너구리 가죽이 매달렸다. 초장 박순달 영감은 작년이 환갑이었다는데 나이보다 훨씬 젊게 보였다. 박영감은 평생 사냥을 했으며 대호 한 마리와 표범 세 마리가 있으며 산돼지 따위는 몇백 마리도 넘을 거라고 웃었다.

범을 어떻게 잡았냐고?’

1914년 늦가을, 마을 사람들이 산마루에 올가미를 설치했다. 세 장정이 나뭇가지를 휘어잡아 올가미를 걸었으므로 엄청난 탄력이 있었으며 올가미를 산마루에 설치한 것은 큰 짐승을 잡기 위해서다. 그런데 설마 범이 걸리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올가미를 걸어놓은 날 밤 벼락치는 것 같은 노호가 터졌다. 호랑이가 펄쩍펄쩍 뛰는 소리와 나무가 통째로 흔들리는 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 10분 후에는 조용해졌다. 호랑이가 도망간 것 같았다. 이튿날 마을 사람들이 특공대를 조직했다. 모두 긴 창을 들었으나 박촌장도 총을 들고 합세했다. 총이라고 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화약통이었다. 기다란 철통에 화약을 넣고 심지에 불을 붙여 폭발하여 탄환이 날아가는 장치였다. 방아쇠가 없어 간편했으나 심지에 붙은 불이 화약에 닿을 때까지 기다리는 단점이 있었다. 따라서 대상 짐승에게 소리를 쳐 짐승이 멈칫 서는 사이에 발사되어야 성공이다. 만약 화약이 폭발하기 전에 달려들면 낭패다. 만약 화약이 폭발하기 전에 대상 짐승이 달려들면 창을 든 조수들이 사냥꾼을 보호해야 한다. 그날 아침의 조수는 모두 다섯 명이었고 마을에서는 내노라 하는 장정들이었다. 올가미 주변이 쑥대밭이었다. 올가미를 걸어놓은 나뭇가지는 어른 팔뚝보다 큰 가지인데 생체로 찢어져 없어지고 올가미도 없었다. 올가미에 걸린 호랑이가 펄쩍펄쩍 뛰면서 발악을 했다. 올가미는 명주실을 꼬아 만들었으므로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호랑이는 1m나 되는 올가미와 팔뚝만 한 나뭇가지를 목에 달고 갔다. 나무토막이 끌려간 자리는 비로 쓴 것처럼 명확하게 자국이 뚜렷했다. 나무토막이 풀에 걸리면 풀이 통째로 뽑혔다. 잔솔에 걸리면 한바탕 지랄을 쳤다. 한 시간쯤 후 김이 나는 호랑이똥을 발견했다. 호랑이가 추격대를 발견하고 솔밭으로 숨었다. 솔밭이 어두워 호랑이가 보이지 않았다.

이젠 독 안의 쥐야.’

박촌장이 중얼거렸으나 호랑이와 쥐가 다르다는 것은 그가 더 잘 알고 있었다. 박촌장이 화약심지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어슬렁어슬렁 솔밭으로 들어갔다. 그의 좌우에는 긴 창을 든 장정들이 박촌장을 보호했다.

(어디로 갔을까?)

비린내가 났다. 가까운 데 있다는 증거다.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주변을 살폈다.

! 저기다.’

불과 10여 미터 거리에 커다란 고목이 있었는데 그 뒤에 호랑이 꼬리가 보였다.

이놈! 썩 나오지 못할까?’

옆 사람이 기절을 할 정도로 고함을 쳤다. 호랑이가 으르렁거렸다. 나직하지만 등골이 오싹해지는 소리다. 나무 뒤에서 일어선 호랑이가 상반신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쏘아봤다. 황소만 한 놈이었고 파란 눈빛이 사람들을 마비시켰다. 대담무쌍한 박촌장도 팔다리가 와들와들 떨렸다. 그러나 그에게는 촌장이라는 책임과 어른이라는 명예가 있었다. 어른이 호랑이에게 벌벌 떨었다면 자손대대로 치욕이 될 게 아닌가? 박촌장은 떨리는 손으로 화약심지에 불을 붙이려고 더듬거렸다. 철통에는 구멍이 있는데 그 구멍에 불이 붙은 심지를 집어넣어야 화약이 폭발한다. 그런데 호랑이와 마주 보고 있는 눈을 돌리면 호랑이가 덮쳐들 것 같아 눈을 돌리지 못해 심지 구멍을 찾지 못했다. 당황한 박촌장이 다시 고함을 질렀다.

불 받아라! 호랑아.’

고함을 치며 얼핏 심지를 구멍에 쑤셔 넣었다. 철통을 호랑이 가슴으로 쑥 내밀며 한 발 앞으로 나갔다. 천만다행이었다. 사실 호랑이는 그 이전에 벌써 몸을 날렸다. 그런데 나무토막이 나무뿌리에 걸려 상반신만 우뚝 서고 뛰어나가지 못했다. 총성이 울렸다. 어마어마한 굉음을 내며 철통이 불과 연기와 납덩이를 한꺼번에 토했다. 유연화약에서 나오는 시커먼 연기가 연막처럼 주변을 뒤덮었다. 박촌장은 총의 반동으로 엉덩방아를 찧으며 뒤로 벌러덩 나자빠졌으나 이내 일어서며

이놈! 불맛 봤느냐?’

고 외쳤다. 박촌장의 탄환이 엉거주춤 일어선 범의 심장에 명중했다. 그러나 호랑이는 집요했다. 연가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또 무서운 광경을 보았다. 호랑이가 길길이 뛰어올랐다. 그러나 나무토막이 나무뿌리나 잔솔에 걸렸다.

모두들 물러서! 뒤로 물러나!’

박촌장이 소리치기도 전에 사람들은 이미 물러섰다. 아니 도망을 쳤다. 그러나 호랑이는 뛰다가 자그마한 나무 밑둥에 줄이 감겨 꼼짝도 못 했다. 그때 물러섰던 장정이 창으로 호랑이의 심장을 찔렀다. 대호는 무게 300kg의 수컷이었으며 140(현재가치 1,400만 원)에 팔렸다.

그건 내 총이 잡은 게 아니라 올가미와 총이 합작해서 잡았어. 그러니 총을 나는 숱한 멧돼지를 잡았어.’

진돗개를 시켜 멧돼지를 꼼짝 못 하게 몰아놓고 쏘았다. 유연화약을 한 주먹이나 넣는 거라 관통력이 대단했다. 앵두만 한 납덩이가 멧돼지의 뼈를 부수고 몸을 뚫고 나올 때도 있었다. 총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철통에 금이 갔다. 그래서 굵은 철사로 철통을 감아서 사용했는데 손에 화상을 입었으므로 그 총은 헐값으로 팔고 마을 공동기금으로 최신식 총을 구입했다. 곰 한 마리를 판 값에 5원을 더 얹어주고 일본인 자전거 상에게서 산 총은, 내가 보기에는 일본군대가 사용하는 구식 무라다 단발총이었다. 얼마나 사용했던지 네모 노리쇠가 동그랗게 닳았다.

이것뿐인 줄 아슈? 또 한 자루 있어요. 그건 비밀이요.’

또 한 자루의 총은 일본군대에서 사용하는 구식장총을 개조한 것이다. 총신을 짧게 잘라내고 개머리판도 깎았다. 일본군대가 알면 압수당하기 때문에 감춰두었다가 산돼지사냥에만 사용했다. 며칠 전에는 나무꾼의 정보를 듣고 뼈다귀산 동굴에서 그 총으로 곰사냥을 했다. 마을의 장정 다섯이 나섰다. 박촌장은 뼈다귀산 중턱 참나무숲에서 곰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곰이 동면을 하기 위해 좋아하는 도토리를 따먹은 흔적도 있었다. 나무꾼의 정보는 정확하지 않고 과장된 정보도 많았다. 호랑이가 살쾡이가 되고, 곰이 오소리로 변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동굴은 남향이고 동굴 주변이 깨끗이 청소가 되어 있었다. 곰은 남향을 좋아하고 동면하기 전에 발자국을 지우려고 주변을 청소하는 버릇이 있었다. 세심하게 동굴을 조사한 박촌장이 빙그레 웃었다. 동굴에서 3~4m 떨어진 곳에 낭떠러지가 있었는데 쓰레기 하치장처럼 지저분했다. 낙엽과 마른 풀, 짐승의 똥과 곰털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의 곰사냥은 예부터 전승되어온 방법이다. 동굴 앞 10m 지점에 창꾼 둘을 배치하고 그 가운데 박촌장이 총을 가지고 대기한다. 동굴에서 나온 곰에게 발포하고 다음에는 창꾼들이 처치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잡목림에서 마른 나뭇가지를 가지고 와서 굴 입구에 쌓아놓고 그 위에 청솔가지를 덮어 불을 피우면 엄청나게 연기가 나오고 그 연기가 바람의 방향에 따라 굴로 들어가면 곰이 견디지 못하고 뛰어나온다. 바람의 방향에 맞춰 불을 놓아야 한다. 불이 붙고 바람의 방향이 맞으면 긴 장대로 불더미를 굴에 밀어 넣는다. 그러나 일단 굴속에 숨어있는 곰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청솔가지가 동원된다. 청솔가지에는 관솔이라는 송진이 있어 불이 붙으면 새카만 연기가 난다. 그 연기는 단 1분만 쏘여도 숨이 막힌다. 곰은 인내심이 무척 강하다. 그러나 그 인내심도 한계가 있다. 격노한 곰이 웍웍거렸다.

됐어! 나무꾼들은 비켜!’

창꾼들이 한 발 앞으로 나선다. 강한 바람이 한 줄기 불어와 연기가 통째로 굴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동굴의 고함소리가 딱! 멈췄다. 위험신호다. 검은 연기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대포알처럼 퉁겨 나왔다. 불붙은 나뭇가지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박촌장이 한쪽 무릎을 꿇은 자세로 발사를 했다. 그 자세는 정확하게 사격을 하는 데는 유효하나 맹수 사냥에서는 매우 위험한 자세다. 맹수가 돌격을 하면 피할 수가 없다. 박촌장이 쏜 총탄은 곰의 어깨를 뚫고 아랫배로 들어갔다. 그 타격으로 곰이 굴렀다. 창꾼들이 곰에게 덮쳤다. 첫 번째 창은 빗나가 곰의 팔을 찔렀으나 두 번째 창은 정확하게 곰의 심장을 찔렀다. 곰이 발악을 했다. 노호를 하며 뛰어올랐다. 그 바람에 창꾼이 나가떨어졌다. 창꾼 한 사람은 스스로 굴러 낭떠러지 밑으로 굴렀으나 또 한 사람은 나무뿌리에 걸려 벌러덩 넘어졌다. 위험했다. 두 개의 창을 몸에 꽂은 곰이 일어섰다. 그대로 두면 창꾼은 걸레처럼 찢어진다. 절대절명의 순간, 박촌장의 제2탄이 발사되었다. 곰이 스르르 주저앉았다.

그래도 요즘에는 총 덕분에 사람이 죽거나 다치는 일은 별로 없지만 옛날에는 죽은 사람도 있었어.’

곰사냥을 하다가 한 사람이 죽고, 세 사람이 병신이 되었으며, 가벼운 상처를 입은 사람은 부지기수였다. 대나무창으로 곰을 잡는다는 말을 믿을 수 없었으나 사람들은 곰의 버릇을 이용했다. 본디 곰이 싸움을 할 때 고약한 버릇이 있다. 상대를 끌어당겨 죽이는 방법이다. 자기 힘을 믿고 상대를 제압하려고 한다. 또 동작이 느려 떨어져 싸우면 불리하다. 곰의 앞발에 끌려들면 호랑이도 허리가 꺾인다. 늑대 같은 짐승은 양다리를 잡아 쭉! 찢어버린다. 허리를 껴안고 물면 뼈까지 잘려 나간다. 그래서 옛사냥꾼들은 곰의 힘을 역이용했다. 창으로 곰을 찌르면 곰은 창을 빼지 않고 오히려 자기 앞으로 잡아당긴다. 배에 찔린 창을 잡아당기면 창끝이 배를 뚫고 등으로 튀어나온다. 곰 굴에 연기를 피워 넣으면 견디지 못한 곰이 나온다. 창꾼들이 창을 던진다. 곰은 몸에 박힌 창을 모두 다 잡아당겨 스스로 죽는다. 박촌장의 밤새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박촌장이 삼촌을 따라 첫 사냥을 나갔다가 표범을 잡은 얘기를 해주었다. 표범이 마을을 침입하여 닭장을 털어갔다. 다음날에는 돼지를 물고가고 그다음 날에는 양을 잡아갔다. 그래서 사냥대를 조직하여 표범을 쫓았는데 표범이 나무 위에 숨어있는 걸 사냥대의 지휘자였던 박촌장의 삼촌이 발견하여 창을 날렸으나 창이 표범의 양 다리 사이에 끼었다. 표범은 사람들을 보고 달아나려다가 창에 다리가 걸려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렸다. 삼촌 옆에 있었던 박촌장이 주저 없이 창을 날렸다. 그때쯤 달리는 토끼를 쫓아 창으로 명중시키는 솜씨였다. 박촌장의 창이 표범의 옆구리를 뚫었다. 표범이 삼촌과 박촌장이 코앞에 떨어져 덮쳐왔다. 삼촌이 박촌장을 뒤로 밀어냈고 사냥대가 들이닥쳐 표범을 난자 했다.

, 이 사람들아, 그만들 둬!’

표범은 가죽도 못 쓰게 난자당했는데 가축을 죽인 마을 사람들의 분노였다. 그 일로 박촌장은 열다섯 어린 나이에 마을의 영웅이 되었다. 맹수 사냥에서는 박촌장이 으뜸이지만 꿩이나 날짐승을 잡는 데는 황노인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다. 황노인은 까투리 울음소리를 흉내 내서 장끼를 불러들이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숲속에 숨어 새울음 소리를 내서 새들을 불러들여 그물을 던져 새를 잡았다. 명주로 짠 그물은 납덩이를 달았는데 황노인이 던지면 그물은 화살 속도로 10m나 날아가 공중에서 낙하산처럼 퍼졌다. 메추리 같은 새는 한 번에 대여섯 마리가 잡혔다. 황노인은 새들의 습성을 연구하여 꿩이나 메추리는 물론이고 오리나 기러기도 잡았다. 또 긴 장대 두 개에 그물을 묶어 세워 새들이 날아다니는 길목에 세워두고 새를 잡고, 멀리 호수나 강에 가서 물새를 잡기도 했다. 물새는 총은 물론 그물도 없이 손으로도 잡았다.

정말이냐?’

고 물었더니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이지. 허나 듣고 보면 아무것도 아냐.’

새들은 봄 또는 여름에 털갈이를 한다. 야생동물처럼 옷을 바꿔 입어야 된다. 물새들 중에는 옷을 바꿔 입다가 날개털이 너무 많이 빠져 날지 못하는 바보들이 있지. 새털이 나오기까지 날지 못하는 새를 잡는 거야. 황노인은 꿩알을 마치 닭장에서 달걀을 가져오는 것처럼 줍는다. 꿩은 초여름에 산란을 하는데 황노인은 산란장소를 꿩 보다 더 잘 안다. 해마다 때가 되면 마을 사람들은 꿩알을 먹는다.

그까짓 꿩알쯤이야 얼마든지 주워올 수 있지만 너무 주워버리면 씨가 마르지. 또 부화된 꿩알은 손대지 않아.’

황노인의 재주 중에서 가장 신기한 건 채찍으로 토끼를 잡는 방법이다. 토끼는 겁이 많은 짐승이며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매나 독수리다. 그들이 덮쳐들면 토끼는 오금을 못 펴고 앞발로 머리를 감싸며 눈을 감아버린다. 황노인은 그런 토끼의 습성을 이용하여 토끼를 잡았다. 휙휙소리가 나는 회초리 소리가 마치 매가 달려들면서 내는 소리와 같아 회초리 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리면 토끼는 매가 덮쳐드는 걸로 알고 머리를 감싸고 오금을 못 펴고 주저앉아 있는 토끼를 아들이 달려가서 사로잡는다. 사로잡은 토끼를 토끼 농장을 만들어 길렀다. 늑대, 너구리 등 야수 토끼농장을 침입해서 실패했지만 한때는 토끼농장이 번성했다. 황노인은 최근에 새로운 새잡이 방법을 개발했다. 잠자고 있는 새들을 찾아 갑자기 전등 불빛을 들이대면 새들은 일순간 눈이 멀어 땅에 떨어진다. 떨어진 새들을 주워온다. 맹수 사냥의 박촌장, 새잡이 황노인 그리고 또 하나 덫이나 틀을 만드는 곰보 박영감은 얼굴이 많이 얽은 곰보이며 오른손 손가락이 두 개 없었으나, 목수 아버지 밑에서 사냥연장-, 창과 칼을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마을의 무기 책임자가 되었는데 마을의 생계 태반을 책임지고있었다. 그가 함정이나 틀 설치한 곳에는 반드시 X자 기호가 표시되어있다. 가까이 가지 말라는 위험신호이며 그 기호를 무시했다가는 봉변을 당한다. 그가 만든 함정이나 덫을 사람들도 식별할 수 없다. 그가 덫을 설치할 때는 아들들 이외 아무도 데리고 가지 않는다. 곰보 영감은 짐승들이 물을 마시러 다니는 길, 짐승들이 먹이를 찾아다니는 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려놓고 세심하게 지형을 살펴보고 집에 돌아가 덫을 만든다. 한나절에 걸쳐 덫이 완성되면 덫을 놓을 짐승 길목을 찾아 적당한 나무를 골라 세 사람이 휘어잡는다. 휘지 않으면 관솔불로 지지고 깎아내서 휘어잡아 명주실을 꼬아 만든 줄에 철사 올가미를 걸어 나무 끝에 설치한다. 그리고 말뚝을 박아 올가미를 걸고, 올가미를 건드리기만 하면 낚싯바늘이 자동으로 튕겨 나가 올가미가 작동을 한다. 올가미에 걸린 짐승은 나무가 퉁겨져 오르는 탄력으로 올가미에 목이 조여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다. 몇번이나 실험을 하며 완성되어야 설치를 한다. 설치 후에는 짐승들이 올가미가 있는 길로 가도록 주변의 나뭇가지를 쳐내기도 하고 돌로 옆길을 막는다. 그래서 짐승들은 자연스럽게 그 길로 가고 때로는 세금을 걷으러 온 면 직원이 걸리기도 했다. 지나가던 나무꾼이 발견을 못 했으면 면 직원을 잡을 뻔했다. 곰보 영감은 여우, 족제비나 너구리를 잡는 틀도 만들었다. 짐승들은 원래 네모반듯한 걸 싫어하고 회피한다고 절대로 네모 틀은 만들지 않았다. 동그란 원형틀에 짐승들이 걸렸다. 틀에 먹이를 놓고 강력한 용수철로 먹이를 연결해서 주둥이가 먹이에 닿는 순간 용수철이 퉁겨져서 자동으로 문이 닫힌다. 곰보 영감은 마을 주위에 함정 여섯 개, 덫 여덟 개 그리고 틀 서른 개를 설치했다. 그는 매일 날이 밝으면 아들들을 데리고 함정 순례를 하는데 그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어젯밤 꿈에 멧돼지가 보였는데 .)

(며칠 전에 본 은색 여우가 혹 .)

평균 한 달에 멧돼지 네 마리, 노루 다섯 마리 그리고 토끼가 마흔 마리 정도였다. 재수 좋은 날은 곰보 영감만 행복한 게 아니다. 곰보 영감의 아들들이 멧돼지를 들것에 매고 돌아오면 마을 사람들은 환호성을 올렸고 마을에서는 잔치가 벌어진다. 맹수 사냥꾼 박촌장, 새잡이 황노인 그리고 틀잡이 곰보 영감은 마을의 중추中樞였으나 문제는 세 어른들이 사이가 썩 좋지는 않았다. 특히 박촌장과 곰보영감은 친척인데도 입씨름이 잦았다. 사사건건 의견 충돌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반대를 위한 반대가 심했다. 싸움의 원인은 총질이었다. 마을 주변에 함정을 만들어놓은 곰보 영감은 총질을 싫어했다. 총소리에 짐승들이 달아나버리는 게 이유였다. 박촌장도 인정하고 되도록 마을 주면에서는 총질을 삼갔으나, 바로 눈앞에 집채만 한 멧돼지가 지나가는데 총을 든 포수가 보고만 있으라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총을 쏘고는 걱정이 앞선다.

(그 신경질 영감이 또 삿대질을 하고 덤비겠지 .)

나는 그 영감들의 인심을 얻으려고 담배, 설탕과 화약을 선물로 주고 술을 마시면서 그들의 환심을 샀다. 내가 그 마을을 찾아간 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당시 나는 영국 왕실박물관의 지정 엽사였는데 박물관에서 필요한 동물수집이 내 임무였다. 도쿄에 있는 영국 대사관 직원이 나를 찾아와 아주 어려운 청탁을 했다. 한국에서 서식하는 여러 들짐승, 날짐승을 되도록 많이 생포해달라는 청탁이었다. 그러나 나는 짐승을 총으로 쏘아 잡는 포수이지 생포를 할 수 있는 틀잡이가 아니다. 박물관에서는 내가 사슴을 사로잡았다는 얘기를 듣고 나에게 부탁하면 어떤 짐승이라도 사로잡아주리라고 판단한 모양인데 그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수소문한 결과 두륜산을 찾아간 것이다.

산새를 사로잡아달라고?’

그물 던지기 명수 황노인이 내 말을 여러번 되풀이하더니 담배를 한 모금 빨며 생각에 잠겼다. 무리한 부탁임에 틀림없다. 산새는 꿩 비슷한 새다. 크기, 생김새와 습성도 같다. 뚜렷이 다른 게 꼬리다. 꿩 보다 훨씬 길고 아름답다. 그리고 산새는 인가 부근에서 사는 꿩과 달리 깊은 산속의 산림에서 살며 동작이 훨씬 민첩하다. 나래를 펴고 나는 모습이 화살처럼 빠르며 눈 깜짝할 사이에 수백 미터를 날아간다. 따라서 산새는 총으로 잡기도 매우 어려운 새인데 하물며 그 산새를 사로잡아달라고 했으니 황노인이 선뜻 답을 못한 것이 무리가 아니다. 담배를 태우며 생각에 잠겨있던 황노인의 대답은 내가 예상한 바와 달랐다.

산새를 잡으려면 하루 종일 걸려야 될 걸 . 왼종일 그놈만 따라다녀야 된단 말야.’

황노인이 선뜻 대답을 하지 않은 것이 <왼종일이 걸린다>는 것이었다. 잡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왼종일> 품이 든다는 문제였다. 시간과 허비하는 그 하루가 문제였다. 나는 웃었다. 산새를 잡으면 십 원을 내겠다고 했다.

십 원?’

황노인의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당시 십 원이면 쌀 두 가마니값이었다.

이튿날 황노인은 울긋불긋한 채색 단장을 하고, 어깨에 그물을 메고 허리에 자루를 차고 나타났다. 채색옷이 가을 낙엽과 어울려 뒤를 따라가는 내가 황노인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꿩은 막되먹은 쌍놈이야. 산새가 고고한 선비라치면 .’

꿩은 마을 가까운 들산에 살면서 낮에는 산중턱의 모래밭에서 놀다가 아침저녁이면 마을에 나타나 콩이나 옥수수를 훔쳐먹고 지렁이 개미 등 곤충을 잡아먹는다. 장끼는 여러 마리의 까투리를 거느리고 4, 5월의 생식기가 되면 까투리 쟁탈전도 벌어진다. 장끼는 영토를 넓히려고 영토 위를 날아다니며 운다. 그때쯤이면 황노인은 장끼 울음소리를 흉내 내면 미련한 장끼가 자기 영토를 침범한 줄 알고 노발대발하여 덤벼든다고 하며 웃었다.

꿩은 미련해. 그저 많이 처먹고 덮어놓고 계집질이나 하는 잡놈이지. 그러나 산새는 꿩과는 사촌지간이라도 처신이 깔끔해.’

산새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심산유곡에서 고고하게 산다. 바위 이끼, 열매나 씨를 먹는다. 물을 좋아한다. 하루 한 번씩은 계곡에 내려와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고 모래찜질도 한다. 일부일처다. 여러 마리가 데를 지어 사는 꿩과 달리 산새는 깊은 산중에 홀로 산다. 그 아름다움은 꿩과는 비교될 수 없다. 황노인은 산새의 습성을 잘 안다. 산새는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때문에 푸른 산림 위에서 나는 그 화려한 모습은 선명하다. 그래서 포수는 산새가 사는 곳을 알게 되고 깔끔한 성미 때문에 사는 곳이 일정하다. 하루 한 번은 반드시 물을 마시러 계곡을 찾는데 그 장소도 일정하다. 특히 그물로 산새를 잡으려면 그런 계곡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정오께 산새가 사는 산림에 도착했다. 심산유곡이었으며 아름드리 고목이 울창한 숲이다.

지금쯤 산새들이 계곡에서 물을 마실 때야.’

아주 좁은 계곡이었다. 도끼로 바위를 찍어 갈라놓은 듯 계곡의 사이가 10m도 못 된다. 내가 계곡으로 내려가 산새를 몰면 바위 위에서 기다리는 황노인이 그물을 던져서 잡는다. 황노인은 네발로 기더니 나중에는 납작 엎드려 뱀처럼 기었다. 황노인이 벼랑 가까이 기어가 벼랑 밑 계곡을 내려다보았다. 머리를 흔들었다. 따라오라고 신호를 보내고 30m쯤 가서 다시 목을 내밀고 계곡을 보았다. 이번에는 자라처럼 목을 움츠리더니 신호를 보냈다. 내려가서 산새를 몰아라는 신호였다. 황노인처럼 기어서 맑은 물이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기어갔다. <산새다!> 숨이 확! 막혔다. 아름다웠다. 노랑 파랑 빨강 그리고 초록색이 치장한 산새는 꿩이라고 보기보다는 공작에 가까웠다. 산새~털은 열대지방의 새들 같은 원색이 아니고 색깔이 융화되었으며 그 찬란한 꼬리는 30cm가 넘었다. 감각이 예민한 산새가 느낌만으로 긴장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이내 나를 발견하고는 순간적으로 하늘로 날아올랐다. 총알처럼 빨랐다. 논 깜박할 사이에 10m나 되는 계곡을 단숨에 돌파하여 공중에 높이 솟아올랐다. 바로 그때, 산새가 계곡을 벗어나려던 찰라 황노인의 그물이 하늘에 뜬 구름처럼 펼쳐졌다. 산새가 빨랐지만 황노인의 그물이 더 빨랐다. 산새가 날아가는 바로 머리 위에 그물이 펼쳐졌다. 낙하산처럼 펴진 그물에 산새가 뛰어들었다.

잡았어! 잡아!’

황노인이 고함을 쳤다. 아이들처럼 흥분한 고함소리였다. 새를 총으로 쏘아 잡는 기분과 사로잡는 기분은 전혀 달랐다. 황노인은 계속 내가 사로잡아달라는 새들을 조달했다. 들꿩, 멧돼지, 맷비둘기, 도요새와 까마귀 등 모두 열세 마리를 사로잡아주었다. 틀잡이 곰보 영감도 내 요구에 맞추어 틀과 덫을 만들어 다람쥐 두 마리, 토끼, 너구리, 오소리, 족제비와 여우를 잡았다. 노루와 멧돼지 새끼도 두 마리 잡았다. 노루와 멧돼지 새끼는 런던의 왕실박물관에 보냈는데 런던의 유명한 리젠파크 동물원의 간청으로 인계됐다. 그 공로로 왕실국립박물관에서 감사장을 받았다. 내가 약 한 달 만에 두륜산을 떠나려고 한 날 눈이 내렸다. 마을 사람들이 하루만 더 있어 달라고 간청했다. 송별 잔치를 한다고 했다. 마침 눈이 내렸기 때문에 훑치기사냥을 해서 잔치에 쓸 짐승을 잡을 계획이었다. 눈이 내리면 의례히 훑치기 시냥을 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남녀노소 총동원되어 작은 산을 포위해서 몰이를 하여 포위된 짐승을 모두 잡는다. 나는 잔치보다도 그 사냥에 흥미가 있었다. 마을 사람 50여 명이 총동원되었다. 이미 새벽에 박촌장은 사냥터로 떠나 짐승들이 많이 모인 사냥터를 물색했다. 산을 네 개나 넘었을 때 박촌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올해도 풍년이야. 멧돼지, 노루들이 꽤 많아. 여름 장마를 염려했는데 가을 날씨가 좋아 짐승풍년이 되었어.’

사람들은 긴 장대나 대나무창, 나팔이나 꽹가리를 들었다. 박촌장의 지휘로 짐승을 골짜기로 몰아넣고 북쪽 산으로 몰아 올릴 계획으로 작전을 짰다. 북쪽 산마루에는 길이 20m의 그물이 짐승 길목에 펼쳐졌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곧 토끼들이 먼저 튀어나오고 산돼지 모습도 보였다. 노루도 있었다. 산돼지 두 마리, 노루 한 마리 그리고 토끼는 20마리 정도였는데, 산돼지 한 마리는 200kg이 넘는 거물이었다. 산돼지는 몇 번이나 포위망을 뚫으려고 돌진하다가 쫓겼다. 사냥이 고비에 이르자 몰이꾼들은 바다의 어망을 좁히듯 몰이를 했고 토끼는 산마루에 친 그물에 메뚜기처럼 뛰어들었다. 그런데 거물급 산돼지가 발악을 했다. 그물에 돌진했다가 코가 그물에 걸렸다. 미련한 산돼지는 뒤로 빠져나갈 생각을 못 하고 계속 그물을 밀어부쳤다. 그물이 위험했다. 박촌장이 발사했다. 멧돼지의 어깨에 맞았다. 내가 네덜란드제 5연발로 연거푸 세 발을 쏘았다. 산돼지가 무릎을 꿇었다. 마을 사람들은 연발총의 발사를 처음 보았다. 산돼지가 거꾸러지자 환성을 질렀다. 그 사이에 박촌장이 재장탄을 하고 노루에게 발사했다. 산돼지 두 마리, 노루 한 마리, 토끼 열여덟 마리와 오소리도 잡혔다. 마을 사람들은 정말 훌륭한 사냥꾼들이었고 송별 잔치는 밤이 깊도록 이어졌다. 내년에 꼭 다시 오라고 간청을 했다. 약속은 지키지 못했으나 추억은 오래도록 남았다.

 

99. 윤원술 포수

사냥~특히 맹수 사냥을 할 때 같이 하기 싫은 포수가 있다. 경험이 없는 포수, 경망스러운 포수와 허풍이 심한 포수와 사냥은 위험하다. 총을 함부로 다루는 포수를 등 뒤에 두고 사냥을 하는 것은 맹수 사냥보다 더 위험하다. 반대로 경험이 많고, 침착하거나 노련한 포수와 같이 사냥을 하면 위험성이 반감된다. 윤원술 포수는 포수의 귀감이다. 윤포수는 나 보다 여덟 살 많고 함경북도 무산 출신이다. 무릇 포수의 자격은 그의 총을 보면 아는데 윤포수는 고급 총을 가지지는 않았으나 늘 잘 손질을 했다. 서양에서 수입한 총은 한국인의 체구에는 맞지 않았다. 윤포수는 총대를 깎고, 증기로 찌기도 해서 자기 몸에 딱 맞게 개조했다. 총포상도 가치를 인정했다. 총뿐만 아니라 데리고 있는 개들도 혈통을 자랑하는 고급 개가 아니었으나 훈련이 잘되어 민첩하고 용감했다. 내가 윤포수와 처음 만난 건 무산에서 산돼지사냥을 할 때다. 초거물급 산돼지를 추적하고 있었는데 400kg이 넘는 그 산돼지는 가슴팍에 총탄을 맞고도 필사적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나는 산돼지가 흘린 피를 보고 어차피 죽을 거라고 판단하여 천천히 추적을 했다. 산돼지는 고통과 분노로 사나워져 덮어 넣고 뛰었으며 산을 하나 넘고 계곡으로 도망갔다. 산봉우리에서 보니 산돼지가 잔솔이 밀생한 산중턱을 내려가고 있었다. 허나 거리가 너무 멀어 발사를 주저하였는데 그때 계곡에서 윤포수가 나왔다. 윤포수의 위치에서는 충분히 쏠 수 있었는데 윤포수는 겨냥만 하고 쏘지 않았다. 산돼지가 더 접근해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침착한 포수였다. 산돼지는 10m 거리에서 윤포수를 발견했다. 윤포수에게 돌진했다. 발사했다. 정확한 솜씨다. 산돼지가 폭 꼬꾸라졌다. 윤포수는 제2탄을 쏘지 않고 산돼지를 살피고 있었다. 산돼지는 한 발의 총탄으로 죽지 않는다. 앞발을 내밀고 엎드려있다가도 돌진하여 포수를 들이받는다. 윤포수는 산돼지가 죽었는지 아직 살아있는지를 살폈다. 죽은 산돼지를 놓고 윤포수와 나는 미묘한 관계에 놓였다. 첫 탄을 쏘아 중상을 입힌 건 내 총탄이고 윤포수의 2탄은 산돼지를 절명시켰으므로 누구의 소유인가? 윤포수가 죽은 산돼지의 가슴에 박힌 총탄을 확인하더니 웃었다.

공연한 헛수고를 했군.’

산돼지를 포기하고 돌아섰다. 사냥꾼다운 깨끗한 태도였다.

아닙니다, 이 건 반반으로 합시다.’

당황해서 내가 말했다. 그러나 윤포수는 머리를 저었다. 그래서 서로 주장을 되풀이하다가 날이 어두워졌으니 일단 산돼지를 운반해놓고 보자는데 의견이 일치되었다. 산돼지를 윤포수 집으로 운반했다. 윤포수의 집에 들어서자 그가 평범한 시골 포수가 아닌 걸 알았다. 마당이 넓은 기와집이었는데 서너 마리 사냥개들이 주인을 환영했다. 사랑방에는 표범과 곰 털이 깔렸고 총이 다섯 자루 걸려있었다. 윤포수는 부유한 지주였으나 농사는 집사에게 맡기고 사냥을 직업으로 하는 프로 포수였다. 그때부터 사냥 친구가 되었는데 다음 해 가을 사람을 서울로 보내 초청을 했다. 무산 북방 아미산 부근에 곰들이 설치고 있으니 같이 사냥을 하자는 초청장이다. 나는 유명한 몰이꾼 정춘섭씨를 데리고 갔다. 윤포수의 사랑방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서 순사, 면 직원, 일본인 목재회사 이와다 상회 간부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곰 때문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었다. 이와다상회는 아미산에서 춘양목(한국 소나무)을 벌채하여 함흥으로 운반할 계획이었는데 곰 때문에 나무꾼들이 산에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함경북도 도청에 진정을 했고 그 진정서 때문에 현지의 순사와 면 직원이 상부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 그래서 그날도 순사가 화풀이를 했다.

도대체, 나무꾼들이 겁쟁이요. 그깐 곰 때문에 산에 들어가지 못한단 게 말이 돼나?’

그깐 곰이라니요. 사람을 잡아먹겠다고 덤비는데 어쩌란 말이요?’

, 사람이 셋이나 있었는데 곰 한 마리를 보고 도망을 쳐?’

나무꾼들은 마쓰무라 순사처럼 용감하지 못하니까요.’

마쓰무라 순사는 그 말을 못 들은 체하고 나에게 술잔을 내밀며 말했다.

이제 서울에서 포수 양반이 왔으니까 문제없어. 그렇지요?’

그때 아무 말 없이 총에 기름칠을 하고 있던 주인 윤포수가 참견을 했다.

서울 양반은 몸에 철판이라도 두른 줄 아시오?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곳은 지형이 아주 고약해서 이번 사냥은 위험합니다. 우린 물론 최산을 다하겠지만 너무 큰 기대는 마시오.’

윤포수의 말은 옳았다. 이튿날 새벽에 현장에 도착한 나는 울창한 삼림을 보고 위험을 직감했다. 사람들이 돌아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나무가 밀생하고 낙엽은 발목이 빠질 정도였기 때문에 곰사냥에는 매우 불리한 조건이었다. 개를 풀었다. 개들이 신중하게 추적을 했다. 4~500m쯤 나가더니 맹렬히 짖었다. 정서방이 곰이 방금 지나간 자국을 가리켰다. 잡목이 부러지고 낙엽 위에 발자국들이 있었다.

역시, 한 마리가 아니군.’

윤포수가 말했다. 곰은 세 마리였는데 어미 곰과 새끼 곰 두 마리다. 두 마리의 새끼도 다 자란 놈들이다. 잘못 걸렸다. 새끼를 데리고 있는 곰이 가장 위험하다. 본디 검은 곰은 함부로 사람에게 덤비지 않는다. 그러나 새끼를 데리고 있으면 예외다. 곰들은 도토리를 따 먹다가 개들이 오는 걸 알고 부근 가시덤불로 피했다. 가시덤불은 가시나무와 나무뿌리들이 철조망처럼 얽혀 접근할 수 없다. 개들도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주위를 빙빙 돌면서 짖기만 했다. 몇백 평이나 되는 넓은 곳이기 때문에 곰들이 보이지도 않았다. 윤포수가 정서방에게 높은 나무로 올라가 돌팔매질을 하라고 지시하고는 사냥개들에게도 숲속으로 들어가라고 지시했다. 개들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 숲속으로 들어갔고 곧 곰과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곰과 개들의 부르짖는 소리가 온 산에 울려 퍼졌다. 개들이 불리해진 듯 개의 비명이 들렸다. 개의 비명소리에 초조해진 내가 가시덤불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기다려요. 곰은 결국 쫓겨 나올 거요.’

라며 옷깃을 잡았다. 곰들이 숲속에서 튀어나왔다. 한 마리는 산봉우리로 또 한 마리는 산마루로 도망갔다. 윤포수가 산마루를 맡고 나는 산봉우리로 달려갔다. 산봉우리에는 나무나 바위 같은 장애물이 없었고 또 내 총은 맹수용 라이플이었기 때문에 장거리 사격이 가능했다. 단숨에 산봉우리까지 달려간 나는 곰을 찾다가 깜짝 놀랐다. 산봉우리를 넘어 산비탈로 도망갈 줄 알았던 곰이 바로 내 코앞 바위 뒤에서 불쑥 나타났다. 나는 본능적으로 한발 물러서면서 겨냥을 했으나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곰이 먼저 내 총신을 후려쳤다. 다행히 총을 꼭 쥐고 있었으므로 총을 놓치지는 않았으나 곰이 후려치는 힘으로 쓰러졌다. 그때 나는 <!> 하는 탄환 소리를 들었고 또 정서방의 외침도 들었다.

조심해! 큰곰이 거기로 간다!’

무의식중에 몸을 돌렸는데 곰이 바로 내 등 뒤에 서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큰놈이었다. 나는 쓰러진 자세로 두 마리의 곰에게 협공을 당한 처지였다.

(이젠 죽었구나!)

그때 또 <!>하는 소리와 동시에 내 총신을 쳤던 곰이 비틀거렸다. 곰이 엉덩방아를 찧고 주저앉았다. 그사이에 나는 일어섰다. 웬일인지 멍! 하니 서 있는 곰에게 연속 두 발을 쏘았다. 그러나 도망가다가 역습을 당했던 곰이 또 뒤에서 덮쳐들었다.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충격에 뒹굴었다. 개들의 짖는 소리, 총소리 그리고 사람들이 고함치는 소리를 희미하게 들으면서 의식을 잃었다. 곰의 앞발치기에 뒤통수를 맞아 뒹굴면서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의식을 잃었다.

학봉이! 학봉이!’

정서방이 부등켜 안고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들었다.

정신이 들었소!’

(살았구나!)

윤형, 어떻게 된 거요?’

어떻게 된 거라니! 곰 두 마리 다 잡았소.’

두 마리의 곰이 내 옆에 누워있었다. 가시덤불에서 개들에게 몰리자 어미가 개들을 붙들고 있는 동안에 새끼 두 마리가 달아났다. 윤포수와 내가 쫓은 곰들이다. 윤포수는 새끼 곰을 쫓다가 개들이 숲에서 계속 짖는 소리에 어미 곰이 숲에 남아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새끼를 쫓는 내 뒤를 어미가 쫓아가는 걸 보았다. 그래서 쫓던 새끼를 놔두고 어미를 추격했다. 나는 등 뒤에서 추격하는 어미를 모르고 있었으나 새끼는 그걸 알고 갑자기 돌아서서 나에게 반격을 했다. 내가 앞뒤에서 곰의 협공을 당하게 되자 윤포수는 40m의 원거리에서 어미 곰을 쏘아 이마에 명중시켰다. 어미 곰이 나를 덮칠 수 있는 거리에 있었는데도 멍! 하니 서 있었던 것은 윤포수의 총탄에 맞아 방향감각을 잃었기 때문이다. 윤포수는 어미 곰을 쏜 다음 새끼 곰이 내 뒤통수를 쳐 내가 쓰러지는 걸 보고 또 발사했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윤포수가 피가 흐르는 내 뒤통수에 옥도정기를 부어 치료를 하고는

정서방, 이 친구를 돌봐주시오.’

하면서 또 한 마리 새끼 곰을 잡으러 갔다. 윤포수가 떠난 지 약 1시간 후 총소리가 들렸다. 두 발이 연달아 울리고 잠시 후 또 한 발이 울렸다.

잡은 것 같은데 .’

윤포수가 개들을 이끌고 돌아왔다.

잡았어. 계곡으로 도망가는 놈을 산 위에서 쏘았어.’

어미 곰은 무려 400kg이 넘는 거물이었고 새끼들도 200kg이었다. 우리가 세 마리의 곰을 소달구지에 싣고 돌아오자 마을은 온통 축제 기분이었다. 목재회사의 현장감독이 술도가의 술을 통째로 사 잔치를 벌였고 지서 순경도 술에 취해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윤포수는 담담한 표정이었고 곰을 잡은 경위도 간단하게 설명했다.

어떻게 잡았냐고? 그야 총을 쏘아 잡았지. 아무리 큰 곰도 총에 맞으면 죽어.’

자기 자랑도 싫어하고, 허풍도 잡담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중에 나에게만은 실토를 했다.

<자네가 어미 곰을 쓰러뜨린 후 새끼 곰의 공격을 받고 뒹굴었을 때 난 20년 포수 생활의 가장 어려운 고비를 넘겼어. 내가 서 있었던 곳에서 새끼 곰까지의 거리는 30m 정도였는데 나는 자네의 어깨 너머로 곰의 머리 일부만을 볼 수 있었어. 사람과 곰이 거의 한 덩어리가 되어 있었던 거야. 그래서 곰을 볼 수 있는 위치를 찾아 옆으로 돌고 있었으나 아무래도 그런 기회가 올 것 같지 않았어. 동료 포수가 죽어가는데 총을 쏠 수 없는 심정을 알 수 있겠나? 목구멍에서 뜨거운 김이 올라왔어. 초조했지. 그런데 그때 자네가 곰에게 얻어맞고 뒹굴었고 곰의 상반신이 겨냥에 들어왔어. 방아쇠를 당겼지. 사람이 맞을 확률보다 곰에게 맞을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고 당겨버렸는데 그게 맞았어. ! 하하하 .>

윤포수가 내 생명을 구해준 것은 그때뿐만이 아니다. 그로부터 3년 후 나와 윤포수, 일본인 포수 니시무라가 합동이 돼 무산 남쪽에 있는 험준한 산에서 멧돼지사냥을 했다. 여섯 마리 산돼지 떼를 추격했다. 산돼지들이 우리의 추격을 눈치채고 험준한 산골짜기로 달아났다. 윤포수는 산돼지들이 달아나는 곳을 짐작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골짜기는 막다른 곳으로 절벽이 가로막아 산돼지들이 절벽을 기어오르지 않는 한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형으로 봐서 산돼지는 잡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우리는 여유 있게 천천히 계곡으로 들어갔다. 그해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와서 산기슭 마을들은 지붕까지 눈에 묻혔다. 그래서 우리는 설피를 신고 있었으나 그래도 발목까지 눈에 빠졌다. 더구나 산골짜기로 들어서자 무릎까지 눈에 파묻혔다. 그러나 여섯 마리의 산돼지를 골짜기로 몰아넣은 포수들에게 그런 것쯤은 장애가 되지 않았다. 선두는 니시무라 포수였다. 신이 난 니시무라는 눈가루를 날리면서 의기양양하여 전진했으며 4~5m 뒤에 나와 윤포수가 따랐다. 골짜기 깊숙이 들어갔다. 산골짜기는 조용했다. 3면은 병풍 같은 절벽으로 둘러싸이고 절벽에는 눈이 두껍게 쌓였다. 나는 그 절벽을 보고 뭣인가 섬뜩함을 느꼈다. 그래서 윤포수를 보니 윤포수도 정지를 하고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폈다. 그때 앞서가던 니시무라가 고함을 질렀다.

온다, ! 산돼지들이 되돌아오고 있어!’

산돼지들이 무엇에 쫓기는 것처럼 전속력으로 되돌아 달려오고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를 보고도 피하려고 하지 않고 그대로 돌진했다.

요시, 이젠 몰살이다!’

니시무라고 총을 들었다. 그때 윤포수가 나지막하나 단호한 말로 명령했다.

안 돼! 총을 쏘면 안 돼!’

니시무라는 말의 뜻을 못 알아먹겠다는 듯 내렸던 총을 다시 들어 올렸다.

안 된다니까, 이 바보야! 총을 쏘면 눈사태가 일어나 절벽 위의 눈이 쏟아진단 말야!’

<눈사태?>

그제야 말뜻을 알아챘다. 총을 쏘면 3면이 절벽인 골짜기에 총소리가 울려 퍼져 눈사태를 유발한다는 말이었다. 윤포수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얗게 질려있었다. eka무쌍한 그가 그토록 겁을 먹은 표정은 처음 봤다. 그래서 나와 니시무라는 경악했다.

그럼, 산돼지는 어떻게 .’

그따위 산돼지는 내버려 두고 빠르게 가능한 한 빠르게 골짜기를 빠져나가야 한다. 마음이 급해서 넘어지고 쓰러지며 달렸다. 곧 산돼지들이 우리 옆으로 지나갔다. 산돼지는 야수의 본능으로 눈사태의 위험을 알고 입에 거품을 물고 눈이 뒤집혀서 도망하고 있었다. 윤포수는 눈이 많은 지방에서 살았으므로 우리보다 7~8m 앞서 달려가며 가끔 뒤를 돌아다보고 <빨리! 빨리!> 숨 가쁘게 독촉을 했다. 눈 속에서 허둥거리는 니시무라에게 배낭에서 줄을 꺼내 허리를 묶어 끌었다. 그렇게 우리가 골짜기 입구에 도착했을 때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 골짜기 위에서 수백 개의 벼락이 한꺼번에 터지는 굉음이 일어나더니 갑자기 지진이 나서 땅이 울렁거렸다. 뒤돌아보니 절벽의 눈이 바윗덩어리와 섞여 산더미처럼 밀려왔다. 한 곳이 무너져내리자 연쇄반응을 일으켜 엄청난 눈사태가 밀려왔다.

! 눈덩이가 이리 온다!’

놀란 니시무라가 절망적인 비명을 질렀다. 산덩이 같은 눈더미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뭣들 하는 거야! 죽고 싶어?’

윤포수가 고함을 질렀다. 그는 우리의 허리를 묶은 줄을 잡아당기며 계곡 옆 언덕으로 기어 올라갔다. 언덕 위에 높이 3~4m 되는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 위로 우리를 끌어올렸다. 우리가 바위 위에 올라가자마자 눈덩이가 우리들의 발밑으로 지나갔다. 눈가루가 날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숨을 쉴 수도 없었다.

다들 괜찮아?’

시야를 가렸던 눈가루가 사라지자 우리는 또 한 번 놀랐다. 계곡의 지형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우리가 올라가 있는 바위 밑까지 눈바다가 되었다.

이봐,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눈사태는 또 일어날 거야. 한 번 쏟아지면 계속되는 거야.’

그럼, 빨리 도망가야지?’

어디로, 어떻게? ’

단 한 가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눈바다를 피해 높은 곳으로, 암벽을 기어올라 대피하는 것이었다. 등산가들처럼 10m나 되는 암벽을 기어올랐다. 암벽을 올라가다가 동굴을 발견하여 대피했다. 눈사태는 두 번이나 더 일어났다. 바닥이 차고 눈을 뜰 수 없었으나 눈사태가 멎을 때까지 다섯 시간을 견디어냈다. 밤이 이슥했을 때 동굴을 나왔다. 달빛에 눈밭은 대낮처럼 밝았으나 죽음의 나라처럼 조용했다. 나뭇가지로 만든 들판~3m 정도 되는 들판을 교대로 던지면서 들판 위로 걸었다. 한 개를 던져 셋이 올라가고 또 다른 들판을 앞으로 던져 타고 교대로 움직였다. 한 발 한 발 전진했다. 이튿날 새벽에 우리가 마을로 돌아오자 마을에는 구조대가 조직되어있었다. 구사일생이었으며 윤포수가 없었다면, 그의 지혜가 없었다면 우리는 시체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여담이지만, 봄이 되자 등산객들이 골짜기에서 산양과 들돼지를 발견했다. 눈에 묻혀 자동 냉장되어 싱싱했다. 산양과 들돼지의 시체 사이에 우리들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어느 겨울, 윤포수는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했다. 부상 당한 산돼지를 쫓다가 심한 눈보라에 갇힌 적이 있었다. 퍼붓는 눈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날은 어두워져 가고 추위는 맹렬해져 위험했다.

, 이 장골들이 넷이나 있는데 이까짓 눈 때문에 죽기야 하겠나? 눈이 내리면 눈을 피할 집을 지으면 돼.’

그의 배낭에서 자그마한 손도끼, 큰 재크나이프와 긴 줄이 나왔다. 자연생 나무 네 그루를 기둥 삼아 집을 지었다. 나뭇가지와 나뭇잎으로 지붕을 잇고 눈 벽돌로 벽을 치고 방안에 화덕도 만들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나뭇가지를 쳐낸 나뭇가지에서 관솔을 찍어내 불을 피웠다. 모닥불이 활활 타자 추위를 녹였다. 그래놓고 눈벽돌을 만들어 벽을 쳤다. 처음에는 엉성한 것 같았으나 보완작업을 마친 뒤에는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는 그 집에서 들짐승 고기를 구워 소주잔을 기울였다. 노래도 불렀다. 소주 두 병이 동이 났다. 그때 별안간 밖에서

다스께데(살려달라)!’

라는 일본말을 듣고 놀랐다. 문을 여니 눈사람처럼 눈을 뒤집어쓴 일본인들이 들어왔다. 다섯 명이었는데 거의 죽음 일보 전이었다. 우선 기운을 내도록 소주를 먹였다. 그들이 소생했다. 눈은 윤포수의 예상대로 사흘 동안 내렸다. 우리는 협력해서 지붕을 위로 올렸고 바닥에는 통나무로 마루를 깔았다. 식량이 바닥나기 전에 눈이 멈췄으며 출발하려는 대 스키를 탄 구조대가 들이닥쳤다. 우리가 구조한 일행에 일본 육군 소좌가 있었고 일본 대판에서 큰 사업을 하는 장사꾼이 있었다. 그래서 일본대사관과 함흥 사이에 무선 전선이 야단이 나고 경찰은 우리가 모두 죽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내가 50여 년 동안 포수 생활에서 살아남은 것은 한마디로 윤포수의 가르침 때문이다.

 

100. 아이누개

함경북도와 만주의 국경선을 이루고 있는 산악지대에서는 12월 초 눈이 내리면 포수들이 일제히 움직인다. 지방 포수들은 물론 외지의 포수들도 나타나며 총이 없는 몰이꾼들도 단독으로 사냥터를 돌아다닌다. 눈 위에 찍힌 곰 발자국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왼발이 먼저 나온 놈은 수컷이고 오른쪽 발이 먼저 나와 있는 놈은 암컷이다. 곰의 발자국을 발견하면 그게 돈이 된다. 그 발자국을 따라가면 동면하는 곰의 굴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정보를 포수가 산다.

192412월 초, 무산 동북방 만주와 국경지대 무명의 산에 사건이 생겼다. 나는 지방 포수 임재만과 같이 곰 발자국을 찾아다니다 나무꾼들이 지어놓은 집에서 자고 아침밥을 먹고 있었다. 느닷없이 나무꾼이 들이닥쳐 포수냐고 물었고, 곰 발자국을 알려주면 돈을 주겠느냐고 했다. 잠시 생각한 나무꾼은 발자국을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있어도 돈을 주겠느냐고 물었으므로 그건 안 된다고 했다.

나보다 먼저 발견한 사람은 아마도 곰을 잡지 못했을 거요.’

나무꾼이 우물거렸다. 그에 의하면, 사흘 전에 그와 친구 박모는 자른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기 위해 산에 들어왔다가 눈 위에 찍힌 거대한 곰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친구는 발자국을 추적해서 곰의 굴을 알아내 포수를 데리고 와서 곰을 잡자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 제의를 거절했더니 박모 혼자 곰을 추적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모는 사흘이 된 오늘도 돌아오지 않았다. 나무꾼의 말을 들은 우리도 불안했다.

그 친구 혹 다른 데 간 게 아니요?’

갈 데 없어요, 여기 밖에는 .’

곰의 발자국을 발견한 곳을 알려줄 테니 박모를 찾아달라고 했고 곰값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 멀지 않은 곳에 곰 발자국이 있었는데 나는 그 발자국을 보고 사고를 직감했다. 길이 45cm, 폭이 30cm나 되는 거대한 발자국이었고 수컷이었다.

불곰이지요?’

임포수가 놀라 그 거대한 발자국을 보고 있었다. 곰의 발자국 옆에 자그마한 사람의 발자국이 따라갔다. 박모의 발자국이다. 곰은 천천히 걷고 있었는데 곰의 굴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은 종종걸음이었다. 경망한 짓이다. 곰과 사람의 간격이 좁혀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총을 가진 포수도 그런 짓은 안 한다. 곰은 근시다. 그러나 눈보다 날카로운-사람보다 몇 배나 예민한 코와 귀가 있다. 30~40m 이내면 어떤 물체든 쉽게 가려낸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서는 100m까지도 알아낸다. 노련한 포수가 지키는 규칙이 있다. 곰이 가는 방향으로 바람이 부는 쪽에 서지 않는다. 추적자는 바람을 안고 따라가야 한다. 옆바람도 조심해야 하는데 언제 어느 때 바람의 방향이 바뀔지 모른다. 하물며 바람을 등에 업고 곰을 따라가는 것은 자살행위다. 우리들의 예상은 적중했다. 곰이 어느 지점에서 멈추더니 좀 빠른 걸음이 되었다. 막연히 걸어가던 곰이 바위나 나무 뒤로 몸을 숨기면서 걸었다. 추적자를 눈치챈 것이다. 곰은 추적자를 눈치챘으나 추적자는 그걸 모르고 여전히 빠르게 총총걸음으로 곰을 따라가고 있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추적자는 바람의 방향을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지형도 무시했다. 비단 곰뿐만 아니라 맹수를 추적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하는 곳은 능선을 넘어설 때다. 눈으로 발자국을 추적하는 사람은 능선을 넘어설 때는 발자국을 볼 수 없다. 귀도 코도 시원찮은 사람이 발자국마저 안 보인다면 의지할 감각이 없다는 것이고 무방비사태라는 걸 의미한다. 맹수들은 그런 사람의 약점을 알고 능선 너머에 숨어있을 때가 많다. 그도 능선을 넘어오는 사람이 보이지 않지만 코의 냄새로 귀의 소리로 사람의 동태를 눈으로 보는 것처럼 알 수 있다. 몇 번이나 곰이 능선에 숨으려다가 포기한 걸 알고는 우리는 초조해졌다. 추적한지 서너 시간쯤 되었을 때 곰과 사람이 30m 이내로 접근된 것을 알았다. 멀지 않은 곳에 능선이 있었는데 그 능선으로 곰과 사람이 가고 있었다. 나와 임포수가 서로 마주 보았다. 목이 타는 듯 임포수가 눈을 한 줌 먹었다. 능선에 올라서자 역겨운 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한발 앞선 임포수가 우뚝 서더니 비실비실 뒤로 물러났다.

홍형, 홍형! 저것 봐!’

알고 있소. 사고지요?’

처참한 광경이었다. 하얀 눈이 새빨갛게 변색 되었다. 사람의 머리가 뒹굴고, 놀란 눈을 크게 뜨고. 머리는 목에서 잡아 뽑혀 심줄이 길게 달렸다. 굵은 뼈와 발목도 남았다. 너무 처참한 광경이라 넋을 놓아버린 나무꾼이 중얼거렸다.

그러기에 내가 뭐라 그랬어, 이 사람아! 위험하다고 그만두라고 했잖아. 기어이 고집을 부리더니만 .’

살인 곰은 잔인했다. 대개 맹수는 먹이를 잡으면 끌고 가서 먹는데 이 곰은 즉결처분했다. 한 사람을 다 먹었다. 머리와 발목만 남은 시체를 묻었다. 나무꾼이 그제야 통곡을 했다. 마을에 가서 마을 사람들을 총동원해서 원수를 갚겠다고 했으나 그건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방해가 된다. 돕고 싶다면 무산에 가서 윤포수에게 전해달라고 편지를 써주었다. 곰사냥을 하려면 연락을 하기로 했으므로 살인 곰을 잡는데 윤포수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다. 윤포수에게는 북해도에서 구입한 아이누 개 두 마리가 있었다. 아이누 개는 곰사냥 전문 개다. 윤포수는 그 개들을 곰사냥에 부려보고 싶어 금렵이 풀리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곰은 추적자를 처치하고는 천천히 걸었다. 동면 굴을 찾고 있었다. 바위 동굴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고목 뿌리 밑을 헤쳐보기도 했다. 이틀을 따라다녔으나 곰은 마땅한 곳을 차지 못 하고 여전히 돌아다녔다. 잡목림에서는 나무뿌리 밑을 1m나 파고는 포기했고, 바위 동굴에서는 낙엽을 수북이 모아 잠을 잤으나 포기했다. 우리는 곰이 잤던 동굴에서 잤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깜짝 놀랐다. 밤새 눈이 내렸다. 많은 눈은 아니었으나 곰의 발자국을 지워버리기에는 충분하였다. <십 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었다. 눈을 쓸어내며 추적을 했으나 한 시간에 겨우 20m를 전진했다. 조금 더 가자 명당자리가 나왔다. 사방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이고 산 아래는 아름드리 거목이 울창한 밀림이었다. 흙도 곰이 좋아하는 붉은 황토였으며 낙엽이 두텁게 싸여있었다. 그래서 곰이 반나절 동안이나 여기서 머물렀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추적을 할 수 없었다. 되돌아섰다. 살인 곰을 눈앞에 두고 되돌아서는 심정은 비참했으며 마치 패잔병처럼 산을 내려왔다. 그런데 그날 오후 우리는 멀리서 개 짖는 소리를 들었다.

윤포수가 왔다. 개를 데리고 왔구나!’

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는데 저 쪽 능선에서 하얀 개 한 마리가 나타났다. 개가 우리를 보더니 짖는 걸 멈추고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다. 포수를 알아본 사냥개다.

아이누 개다!’

정말 예쁜 개였다. 진돗개보다는 작았으나 하얗고 긴 털이 애완용 개처럼 아름다웠다. 표정도 진돗개처럼 사납지 않고 부드러웠다. 개가 한참 재롱을 떨고 있을 때 개 주인과 나무꾼이 나타났다.

어떻게 됐소? 눈으로 발자국이 없어져 버렸을 텐데 .’

다 틀렸습니다. 되돌아갑시다.’

되돌아가다니 .’

. 발자국이 사라져버렸는데 어쩌겠소?’

윤포수가 웃었다.

여보. 개가 있잖소. 우리도 곰과 여러분의 발자국을 따라오다가 눈이 내려 잃어버렸으나 개가 추적을 했소.’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눈은 발자국을 지워버렸지만 발자국에 남은 곰의 냄새까지 지워버리지 못했다. 아이누 개는 코를 땅에 대고 킁킁거리면서 추적을 했다.

됐어, 됐어!’

내가 안내할 필요도 없었다. 아이누 개가 우리가 따라갔던 길로 정확하게 따라갔다. 그날 저녁에는 우리가 잤던 동굴로도 안내를 했다. 동굴 속에 불을 피우고 잤는데 아이누 개는 동굴 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영하 15도의 바깥에서 잤다. 추운 곳 태생이라 더운 걸 싫어한다고 했다. 이튿날 개의 독촉을 받고 출발했다. 개는 예상대로 산중턱 잡목림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곰이 굴을 찾아 돌아다녔던 코스였다. 개는 보이지 않았으나 가끔 짖어 소재를 알렸다. 20여 분쯤 지났을까? 요란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간헐적으로 소재를 알리기 위해 짖는 소리가 아니었다. 달려갔더니 커다란 참나무 뿌리를 보며 짖고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기괴한 광경을 보았다.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더니 무수한 틈이 생기고 그 속에서 붉은 괴물이 불쑥 머리를 내밀었다. 분노한 곰이 몸을 흔들며 땅 위로 솟구쳤다. 곰이 아가리를 벌리며 개에게 덮칠 자세로 일어섰다. 구경만 하고 있을 포수가 어디 있겠는가? 세 개의 총구가 일제히 불을 뿜었다. 불과 10m의 거리였으므로 빗나갈 이유가 없었다. 충격으로 비틀거렸으나 넘어지지 않으려고 나뭇가지를 잡고 나무둥치에 기댔다. 그러나 곧 주저앉았다. 일어서려고 애를 썼으나 팔다리가 마비되어 말을 듣지 않았다.

관두시오. 죽을 테니까.’

2탄을 장전하는 포수들을 윤포수가 제지했다. 개들이 곰을 둘러싸고 짖었으나 곧 소리가 약해졌다. 곰의 숨소리에 따라 짖는 소리가 작아졌다. 그러다가 곰의 숨이 끊어지자 개들도 짖는 소리를 딱! 끊었다. 정말 영리한 개들이었다. 그 곰은 400kg이 넘었다. 아이누 개가 곰을 잡았다는 소문이 퍼져 새로운 일거리가 들어왔다. 조모라는 몰이꾼이 큰 곰 세 마리가 한 구멍에서 동면하는 굴이 있다고 했다. 그건 드문 일이었으나 예외는 아니다. 어미 곰은 대개 두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2~3년 동안 공동생활을 한다. 그래서 더 상세히 물었는데 우물쭈물했다. 확실히 알고 있는 게 아니라 어림짐작을 했다. 막연한 얘기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이누 개가 있다. 밤새 생각을 한 윤포수가 헛일 삼아 가보자고 했다. 우리를 안내한 몰이꾼이 무산 북쪽 4, 50리 떨어진 돌산에 도착해서는, 여기까지 추적을 했으나 눈이 내려 발자국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벌써 5일이 지났으므로 발자국은 물론 냄새도 지워져 버렸다. 포기하고 돌아서려고 했는데 돌산의 지형에 발걸음이 잡혔다. 돌산이라고 하지만 잡목이 무성했다. 반나절이나 걸어온 수고도 아까워서 일단 지형을 조사해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아이누 개들은 사냥을 온 것이 아니라 놀러 온 것처럼 눈밭에서 뒹굴며 장난을 했다. 우리는 동굴을 하나하나 조사했으나 곰은 없었다. 돌아갈 것인가 야영을 하고 사냥을 계속할 것인가 논의하고 있는데 아이누 개의 태도가 달라졌다. 두 귀를 쫑긋 세워 긴장을 했다. 개가 계곡으로 달려갔다. 잡목림에서 개가 우리를 기다렸는데 곰의 흔적이 있었다. 도토리 나뭇가지가 수북하게 부러져 쌓여있었다. 곰이 도토리를 따 먹은 흔적이다. 우리는 발자국을 조사하고 4~5일 전의 흔적이라고 판단했다. 우리의 조사가 끝나자 아이누 개가 앞장을 섰다. 발자국을 보고 가는 게 아니라 바람을 타고 풍겨오는 냄새를 맡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곰이 이 부근에 있을 것이다. 모두 총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개들의 행동반경이 좁아졌다. 확실한 방향을 잡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고 저녁노을이 검푸르게 변하고 있었다. 개를 불러들이고 동굴에서 야영을 했다. 우리는 추위에 꽁꽁 언 주먹밥을 모닥불에 녹여 먹었다. 고추장을 손가락으로 찍어 핥으며, 그러나 개들에게는 기름진 돼지고기를 줬다. 사냥의 주인공은 개들이고 우리는 보조자였으나 할 수 없다. 총의 손질을 끝내고 잠자리에 눕자 개들이 으르렁거리더니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웬일일까? 추워서 그런 건 아닐 텐데 .’

개가 뒷발로 들어와 입구를 보며 짖었다. 그대 짐승을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곰이다.

싸우는 소리인데?’

두 마리의 곰이 싸우는 것 같았다. 나는 총을 잡아당겼다.

그만둬, 어둠 속에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저건 암수가 정사를 벌이는 소리야.’

정사?’

그렇지, 곰은 생후 3년까지는 어미가 돌보는데, 3년이면 새끼들도 생식능력이 생겨. 성년이 된단 말이지.’

3년이면 새끼 곰은 200kg쯤 된다. 곰의 새끼는 반드시 암수 두 마리다. 이 남매는 한 어미 밑에서 자라고 한 동굴 안에서 컸지만 성숙하면 교미를 하기도 한다. 곰의 세계에 근친상간 같은 법률은 없다. 싸움은 오라비가 누이를 겁탈하는 소리였다. 정욕이 발동한 오라비가 암내를 풍기며 저항하는 누이를 위협하여 겁탈했던 것이다. 암컷의 저항은 점점 약해졌고 끝에는 서로 호응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매는 사이좋게 어울려 떠나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남매와 다른 또 하나의 노호가 들려왔다. 엄청나게 큰 소리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저 건 어미의 소리 같은데 .’

맞아, 어미 소리야.’

어미가 새끼들의 불륜을 꾸짖는 건가?’

아니지, 저건 질투야.’

놀랄 일이다. 어미 밑에서 성장한 새끼는 어미와도 밀통을 한다. 새끼를 잉태한 때부터 과부가 된 어미는 새끼가 성장하면 새끼와 교미를 해서 다시 잉태를 하는 수가 많다. 윤포수는 몇 년 전에 한 동굴에서 세 마리의 곰을 잡은 적이 있었는데 두 마리의 암컷이 새끼를 잉태하고 있었다. 그날 밤 우리는 새벽 서너 시까지도 잠을 자지 못했다. 질투에 미친 어미 곰이 밤새 노호하고, 비탄에 젖어 울부짖었기 때문이다. 세 마리의 곰도 각각 흩어졌다. 어미 곰부터 잡기로 하고 동굴에 가서 아이누 개를 풀어주었다. 개가 짖자 분노가 풀리지 않은 어미 곰이 분풀이를 하려는 듯 튀어나왔다. 개를 우악스럽게 때려잡으려는 태세다. 농구공과 테니스공만큼 차이가 났으므로 전열을 정비할 필요도 작전도 필요 없다. 그러나 영리한 아이누 개는 우리들 뒤로 피신해버렸다. 내가 할 일은 끝났으니 이제 포수들이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사람을 본 곰이 동굴로 들어가 버렸다. 다시 개가 짖으며 날뛰었으나 곰은 꿈쩍도 안 했다. 개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사람이 무서운 것이다. 개와 곰의 줄다리기가 반복되었다. 귀찮게 짖는 개를 쫓아 나온 곰은 굴 입구를 벗어나지 않았다. 방아쇠를 당길 찬스를 잃었다. 아이누 개는 우리를 돌아다보고 <, 쏘지 않았느냐?>는 표정이다. 얄미울 정도로 영리한 개다. 윤포수가 휘파람을 불었다. 다시 동굴로 들어가라는 명령이다. 개가 다시 동굴로 들어갔다. 곰 가까이에서 짖는다. 이래도 안 나오고 배기겠느냐는 투다. 세 번째 곰이 동굴 입구에 모습을 드러냈으나 이내 돌아 들어가려고 몸을 돌리는 순간 개가 곰의 엉덩이를 물었다. 곰의 다음 동작을 예견하고 행동을 한 것이다. 그 아픔과 모욕에 곰이 이성을 잃었다. 곰이 동굴 밖으로 달아나는 개를 덮쳤다. 개는 우리들 앞으로 뛰어오며 옆을 살짝 비켜서 우리들에게 발포의 공간을 만들었다. 개가 옆으로 비켜서는 순간 내 조준에 곰의 대가리가 들어오고 분노에 찬 새빨간 눈이 보였다. 눈과 눈 사이에 납덩이가 파고들었다. 곰이 헤엄을 치듯 휘청거렸다. 그리고 일어서려는 순간 윤포수의 총이 불울 뿜었다. 단 두 발, 우리는 더 이상 총을 쏘지 않았다. 껍질에 구멍이 나는 게 싫었고 자칫 웅담이 상할 염려가 있었다. 300kg이 넘는 붉은 곰이다. 눈을 파서 곰을 묻었다. 하룻밤 사랑으로 어미에게 쫓겨난 암컷은 서북쪽으로 향했다. 영하 30도의 추위에 곰은 동면할 동굴을 찾아야 한다. 암곰은 적당한 동굴을 물색하며 고개를 서너 개를 넘었을 때 아이누 개에게 쫓겼다. 그러나 개를 모르는 곰이 개를 잡아먹으려고 덮쳤다. 개와 곰의 술래잡기가 펼쳐졌다. 쫓고 쫓기고. 그러나 곰이 모르는 게 있었다. 아이누 개는 의도적으로 곰이 모르는 사이에 곰을 사람 쪽으로 한 발씩 유도했다. 그래서 미련한 곰은 영리한 개의 의도대로 포수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걸음이 빨랐으므로 제일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 아이누 개는 내가 도착한 걸 알고 더 힘차게 짖었다. 곰의 정신을 빼놓을 작정이었다. 거리, 20m에서 정지했다. 윤포수에게서 배운 대로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자 개가 곰의 콧등을 한 번 할퀴고는 옆으로 피했다. <, 이젠 쏘시오.>하는 표정이다. 첫 탄은 실수했다. 곰의 목을 뚫었다. 발사하는 순간 곰이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곰이 달아났다. 개가 막는 것도 무시하고 달아났다. 두 번째는 어깨에 맞았다. 그때 곰이 달아나는 방향에서 윤포수가 소리쳤다.

내버려 둬! 내가 쏠 테니.’

새끼 곰은 200kg의 성체였다. 잡은 새끼 곰을 눈 속에 묻고 마지막 곰을 추적하려고 했으나 날이 어두워졌다. 나머지 새끼의 추적은 내일로 미뤘고 어미 곰을 처리했다. 웅담을 빼내고 고기를 잘라 불고기 파티를 했다. 물론 제일 맛있는 부위의 고기는 아이누 개의 몫이었다.

다음날 새끼 곰의 추적은 어려웠다. 그놈은 동면할 생각은 안 하고 무턱대고 북쪽으로 달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작년에 동면했던 동굴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60리나 되는 옛집을 찾아갔다. 이미 날이 어두워졌으나 하룻밤 더 야영할 여유가 없었다. 곰은 우리가 도착하기 전에 동굴에서 나와 개와 술래잡기를 하였다. 잔솔이 깔린 산중턱은 총쏘기가 어려웠고 날이 어두워졌으므로 위험한 사냥이었다. 개 짖는 소리를 찾아 곰에게 접근했다. 곰이 사람을 보고 개를 버리고 잔솔밭을 기어 다가왔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으므로 개 짖는 소리로 짐작을 하였는데 개 짖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10여 미터가 되자 곰이 재빨리 덮쳤다, 아니 곰은 나를 덮치려고 했다. 곰의 발걸음으로는 불과 서너 발 거리였다. 나는 곰이 덮쳐든다는 건 알았으나 어두워 보이지 않았는데 7~8m 앞에서 하얀 개가 도약하는 것과 웍! 하는 개의 노호를 들었다. 개가 곰의 발뒤꿈치를 문 것 같았다. 나는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고 조금 전에 개가 도약했던 곳을 짐작하여 발포했다. 총탄이 부드러운 물체를 뚫는 소리를 들었고 쾍! 하는 비명도 들렸다. 그리고 우지직! 잔솔을 짓밟으면서 도망가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다시 소리 나는 곳을 향해 발포했다. 털썩! 쓰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다시 도망가는 소리가 들렸다. 곰이 부상을 입고 도망갔다. 휘파람 소리를 듣고 잠시 비켜서 있던 개가 요란하게 짖으며 곰을 따라갔다. 개가 멀리 가지 않고 정지하여 짖는 것은 곰이 치명상을 입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얼마 뒤에 개 짖는 소리가 멈춘 건 곰이 죽었다는 말이었다. 몇 분 후에 윤포수와 같이 곰의 주검을 확인했다. 내 생명을 구해준 아이누 개를 꼭 껴안아 주었다.

 

101. 살인자

나는 벌써부터 나의 뒤를 미행하는 인기척을 느끼고 있었다. 오랜 사냥 경험에서 얻은 6감으로 나의 감각은 아주 예민하다. 나라고 눈이 뒤통수에 달린 건 아니지만 네 귀는 발자국소리를 분명하게 듣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무꾼인가 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이내 그게 예사 미행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나무꾼이 발자국소리를 죽여가며 포수 뒤를 따라올 이유가 없다. 게다가 그 발자국소리는 한 사람이 아니었다. 긴장했다. 때가 때였다.

1947년 초겨울이었으니까 산에는 산 사람들-공비들이 출몰하던 때였다. 38선 근접은 물론 경기도, 강원도 일대의 산에는 감히 포수들이 들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경북 청도 부근까지 내려가서 사냥을 했다. 단신으로 너무 깊이 산에 들어간 것 같았다. 작은 들돼지의 뒷다리를 쏘아 쫓는 게 그만 고개를 두 개나 넘었다. 나는 등 뒤에서 겨누고 있을 총구를 피하기 위해 몸을 숨기기로 했다. 바위, 나무 뒤로 가거나 은폐물이 없으면 몸을 굽히고 빠르게 지나갔다. 동물들이 사용하는 은신술이다. 더구나 미행하는 자들이 내가 그들의 미행을 눈치챈 걸 깨닫지 못하게,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긴장했다. 1시간이 지나고도 미행은 계속되었다.

(이렇게는 안 되겠다.)

도대체 어떤 자들인가 알아야 했다. 고개를 하나 더 넘어서자 멈추었다. 100m쯤 떨어진 곳에 앉아 태연히 담배를 피웠다. 큰 소나무 둥치에 몸을 옆으로 기대고 쉬고 있는 모양새였다. 나는 미행자들이 고개를 넘는 걸 옆눈으로 볼 수 있었으나 그들은 내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설사 미행자들이 나를 발견하더라도 쉬고 있다고 알 것이다. 7~8분 후 고개를 넘는 사람 그림자가 보였다. 모두 네 명이었으며 모두 총을 가지고 있었으나 군인이나 경찰은 아니었다. 산 사람들이었다. 나는 불과 몇 초 안에 그들의 정체를 파악하고 몸을 돌려 모른 체했다. 미행자들은 고개를 넘고 10여 미터를 전진하다가 비로소 나를 발견하고 놀라 되돌아갔다. 나는 계속 모른 체하고 담배를 태우고 나서 일어섰다. 물론 미행자들의 총구를 의식하고 나무둥치 뒤에서 움직였다. 나는 그때부터 멧돼지는 포기했다. 멧돼지를 잡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잡히지 않아야 한다. 미행자들과 싸움은 결정적으로 내가 불리했다. 상대는 네 명이고 모두 총을 가졌다. 그들이 가진 총은 군대용 라이플~사람사냥 전용이고 내 총 벨기에 5연발 산탄총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내 총이 유효사거리가 고작 50m인 데 비해 그들의 총은 최소 400~500m이며 700~800m가 될 수도 있다. 사람도 다르다. 총을 쏜다는 점에서는 같으나 저쪽은 사람사냥을 전문으로 하고 나는 짐승사냥 전문가다. 저들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사람을 쏘지만 나는 사람을 쏘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저들과 맞서는 게 아니라 피하는 거다. 나는 미행자들이 나를 발견하고 얼핏 인근의 바위 뒤로 숨는 걸 보면서 빠른 걸음으로 고개를 넘었다. 100m 거리에서는 나를 죽일 수 있는데도 그들은 총을 쏘지 않았다. 내가 은폐물을 이용해서 그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것도 이유였지만 더 접근해서 쏠 작정인 듯했다. 거리를 주면 안 된다. 그래서 다음 고개를 넘자마자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나는 내 다리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무쇠 다리라는 별명을 받고 있었지만 산길을 달리는 데는 어느 누구보다도 빨랐다. 그런 내가 목숨을 걸고 달렸으니 그 속력은 짐작할 만하다. 그래서 미행자들이 고개를 넘었을 때 나와는 500~600m나 멀어졌다. 그들이 고개를 넘어섰을 때는 나는 이미 고개 하나를 더 넘어서 남쪽으로 달렸다. 고개를 넘은 미행자들이 나를 찾느라고 두리번거렸다. 사방으로 흩어져 나를 찾다가 그중 하나가 고개를 넘어서는 나를 발견하고 동료들에게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됐다, 이젠 살았다!)

안심을 했을 때 그들이 총을 쏘았다. 어리석은 짓이다. 600m도 넘는 거리에서 쏘았으니 맞을 리가 없다. 세 발을 쏘았으나 그 총탄은 가까이 오지도 않았다.

(얼마든지 쏴봐라!)

그런 배짱이었는데 얼마 안 가서 그 배짱이 얼마나 무모했던 가를 뼈아프게 실감했다. 그때 엉뚱한 곳에서 쁑! 하고 총탄이 날아와 귓전을 스쳤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인근 바위 뒤로 뒹굴었다. 2탄이 내가 막 뛰어든 바위에 맞아 불꽃을 튀겼다. 새로운 총탄은 추격자들의 반대편에서 날아왔으며 아주 가까운 거리였다. 총성과 총탄이 날아온 시간을 계산하면 50m 이내였다. 그러고 보니 추격들이 아까 쏜 총탄은 나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신호탄이었다. 추격자들은 내가 도망가는 길 앞에 있는 동료들에게 <그리로 도망가고 있으니 잡아라!> 라고 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그 결과 나는 앞뒤에 적을 두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사태는 절망적이었다. 나는 죽음을 각오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다시 한번 정세 판단을 했다.

(도망칠 수 있는 방법은?)

모든 것이 적에게는 유리했고 나에게는 불리했으나 딱! 한 가지 나에게 유리한 것이 있었다. 날씨였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옳지, 날만 어두워지면 .)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자면 지금의 내 위치는 좋지 않았다. 그 장소는 새로 나타난 적에게는 바위로 가려졌으나 추적해오는 적에게는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였다. 앞뒤의 적들에게 안 보이는 은신처가 필요했다. 기어서 이동했다. 바위 밑 비탈에 잔솔이 밀집했는데 거기로 이동했다. 잔솔은 사람 무릎 정도였으나 엎드리면 몸을 숨길 수 있을 것 같았다. 60 여 미터를 기어가서 잔솔밭 움푹 패인 구덩이를 발견하여 숨었다. 재크나이프로 솔가지를 잘라 위장을 하고 적들의 동정을 살폈다. 주위는 조용했으나 사방에서 포위를 좁혀오는 적들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들은 마치 멧돼지를 잡는 것처럼 나를 죽이려고 했다.

(어디 잡으려면 잡아봐라!)

까닭 없이 무고한 사람을 죽이려는 그들에게 증오를 느꼈다.

날은 점점 어두워져 가고 계곡에는 땅거미가 깔렸다. 나는 어둠을 싫어했다. 포수에게 어둠은 사냥을 방해하는 계기였다. 그러나 그때는 어둠이 구세주였다. 어둠은 약자 편이었다. 나를 포위한 산 사람들도 초조한 것 같았다. 무작정 총을 쏘았다. 덮어놓고 난사를 하며 포위망을 좁혀왔다. 졸렬한 전법이었다. 나는 총탄이 바로 옆에 떨어졌어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산 사람들은 총을 쏘아도 반응이 없어 초조해져서 대담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세 명이었다. 추적해오는 네 명을 합해 일곱 명이었다. 쏘고 싶었다. 세 명은 죽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망설이는 건 그들이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비록 내 목숨을 노리는 적이었으나 차마 쏠 수가 없었다.

김동지, 박동지 어디요?’

여기요.’

두 번째 소리는 거리가 30m 이내였다.

그놈이 보이나?’

안 보이지만 산중턱 솔밭에 숨었소.’

그들은 내가 숨어있는 솔밭을 포위했다. 사람 사냥대들이 솔밭에 난사를 했다.

저기야, 저기! 달아나려고 해!’

사냥꾼의 술책이다. 나는 그런 계략에 속지 않았다. 포수 생활 30년의 포수에게는 우스운 일이다.

도망갔나?’

회중전등을 비췄다. 전등 빛이 어둠의 여기저기를 훑었다.

(틀렸구나!)

전등을 든 사람이 잔솔밭 구석구석을 이 잡듯이 비췄다. 나는 모든 걸 단념하고 전등을 든 사람에게 조준을 맞췄다. 그놈을 죽이면 다른 사람들의 집중사격을 받아 나도 벌집이 될 것이지만 나는 죽더라도 몇 놈은 죽이려고 했다. 전등빛이 가까워졌다. 10m, 8m, 5m .

누구야! 전등을 켠 놈이?’

두목인 듯한 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정찰비행기에 들키면 어쩌려고 그래! 빨리 불 꺼!’

불빛이 꺼졌다, 바로 내 코앞에서.

여기엔 없어. 다들 돌아가서 원위치를 지키시오!’

두목이 퉁명스럽게 명령했다. 구사일생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위험이 없어진 건 아니다. 공비들이 지배한 산에서 빠져나가는 게 문제였다. 공비는 경찰이나 토벌대를 막기 위해 산중 도처에 보초를 세워놓고 경계를 하고 있을 텐데 그 경계를 어떻게 무사히 빠져나가는가가 과제다. 공비들이 사라진 뒤에도 나는 약 한 시간 동안 그대로 엎드려있었다. 어둠이 완전히 내리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표범처럼 소리 없이 산을 내려갔다. 300m쯤 내려가니 동굴이 나타났다. 공비들의 본거지다. 나는 그곳을 피하여 계곡 쪽으로 내려갔다. 계곡에도 보초가 있었다. 오래도록 짐승들과 싸워온 나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귀와 코가 작동을 했다. 나는 공비들이 새 우는 소리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것도 알았다. 그들은 꾀꼬리 울음소리를 냈는데 울음소리가 서툴렀을 뿐만 아니라 초겨울에 그렇게 우는 꾀꼬리는 없다. 계곡에서는 물을 떠 오는 공비와 하마터면 부딛칠뻔 했다. 석유깡통을 덜렁거리며 내려온 그는 내가 엎드려있는 바로 옆을 지나갔다. 어둠 속에서 사람의 감각은 무력하다. 만약 그게 범이나 곰이었다면 어림없는 일이다. 나는 사람의 약점 때문에 공비의 소굴에서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었지만 그 산에는 40여 명의 공비들이 있었으며 23중으로 경계를 폈으나 아무도 나를 발견하지 못했고 이튿날 새벽 무사히 산을 내려왔다.

 

102. 신들린 멧돼지

해가 떨어지고 있었지만 아직 빛은 남아있었다. 우리가 쉬고 있는 산마루에서는 아랫마을에서 피어오르는 허연 굴뚝 연기가 한가로왔다. 하루종일 헛수고만 한 우리는 고단했다. 산길을 몇 십 리나 쫓아다녔기 때문에 다리가 막대기처럼 마비되었다.

경북 문경, 1927년 늦가을에는 멧돼지들이 우글거렸다. 농가의 피해가 컸으므로 현상금도 걸렸다. 재수가 없는 날은 어쩔 수가 없다. 그날은 멧돼지 단 한 마리도 구경 못 했다. 우리는 잠시 쉬고 주막집 저녁밥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 일어섰는데 소피를 보러 바위 뒤로 가던 몰이꾼 추서방이 별안간 웍! 비명을 질렀다. 그쪽을 돌아봤을 때 거대한 흙더미 같은 것이 휙! 스쳤다. 그러나 무슨 흙더미가 움직이겠는가? 멧돼지였다. 총을 들어 안전장치를 풀었지만 멧돼지는 이미 계곡으로 달아났다. 그놈은 우리가 담배를 태우고 있을 때 바위 뒤에 웅크리고 있다가 추서방에게 발견되자 냅다 뛰어 달아났다. 내가 앉아있던 바위에서 불과 5~6m, 포수가 멧돼지와 사이좋게 동석을 한 셈이다. 우리는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웃었다. 주막에서 막걸리를 한 사발하면서 추서방이

어 참 .’

기가 막히다는 듯 입을 열었다.

거기 멧돼지가 누워있을 줄 누가 알았겠나?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눈깔은 원족(遠足) 보냈나? 그렇게 큰 멧돼지를 못 봤단 말야!’

동료 몰이꾼이 야유를 했다.

아냐, 너무 커서 산더미만 한 놈이었거든.’

산더미만 한 놈이라는 말에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들어오던 주막 주인이 참견했다.

, 그 멧돼지 . 그놈은 신들린 맷돼집니다.’

신들린 멧돼지?’

주막 주인이 신들린 멧돼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멧돼지를 처음 만난 건 땅꾼이었다. 땅꾼은 뱀을 잡아 대구 약전골목에 팔았는데, 3년 전 문경 부근의 야시(여우)골이라는 야산 계곡에서 백사(白蛇)를 발견했다. 백사는 심마니의 산삼과 같았으며 값도 산삼과 비슷했다. 백사는 크기가 너댓 자(150cm)나 되었으며 바위틈을 빠져 산중턱으로 도망갔다. 땅꾼에게 몰린 백사가 되돌아섰다. 대가리가 삼각형인 걸로 보아 맹독성인데 백사를 겁낼 땅꾼이 아니었다. Y자형 막대기로 백사의 대가리를 눌러 잡으려는데 앞에서 거치른 숨소리가 들려 머리를 들고는 땅꾼이 주저앉았다. 바로 눈앞에 거대한 멧돼지가 덮쳐드는 게 아닌가? 멧돼지는 땅꾼 따위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대가리를 치켜들고 혀를 날름거리는 백사를 주둥이로 밀어부쳐 앞발로 누르고는 주둥이를 감는 백사를 물고 가버렸다. 엉덩방아를 찧은 땅꾼이 일어설 새도 없었다. 백사를 잡아먹은 산돼지는 황소보다 더 큰 놈이고, 털이 못을 거꾸로 박은 것처럼 억새며, 멧돼지가 위에서 바위를 굴려 죽을 뻔한 나무꾼도 있었다. 소문이 나돌자 재작년 늦가을, 경남의 포수가 몰이꾼 두 명을 데리고 왔다. 쉽게 멧돼지를 발견하여 몰았다. <멧돼지가 그리로 간다!> 몰이꾼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목을 잡고 기다리는 포수가 긴장했다. 그런데 몰이꾼들의 외침이 끊겼다. 그리고 아무리 기다려도 기척도 없었다. 몇 시간을 기다린 것 같았다. 사냥터에서 기다림이란 혹독한 고문과 같다. 몇 시간이라는 시간은 불과 7~8분이었다. 포수가 긴장을 풀고 일어서는 순간 멧돼지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산의 능선이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가시덤불의 붉은 흙더미가 크게 부풀어 오르는 것 같더니 7~8m 앞에 집채만 한 멧돼지의 대가리가 나타났다. 마치 <안녕하시오!> 라고 인사를 하는 것 같은 태도였다.

(! 멧돼지다.)

포수가 정신을 차리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멧돼지가 사라졌다.

(아뿔사, 뒤로 물러났구나.)

능선으로 달렸다. 능선 밑 10여 미터에 아른거리는 물체가 있었다. 포수가 이번에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총탄은 명중했다. 그런데 상대가 아악! 하며 소리쳤다. 멧돼지가 아니라 몰이꾼이었다. 몰이꾼은 멧돼지를 포수가 기다리는 능선으로 몰아넣고 총소리를 기다렸으나 총소리가 나지 않았으므로 웬일인가 확인하려고 오다가 총을 맞았다. 총탄이 이마를 뚫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격앙된 몰이꾼이 아직도 바보처럼 멍! 하니 서 있는 포수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쥐고 흔들었으나 포수는 그저 머리만 설레설레 흔들었다. 포수는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그 멧돼지는 마물>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보통 멧돼지는 몰이에 쫓기면 씩씩거리며 달려오는데 그놈은 조용히 왔다가 소리 없이 사라졌습니다. 내가 그놈을 쫓아간 건 불과 10여 초인데 멧돼지는 사라지고 멧돼지가 있어야 할 곳에 몰이꾼이 있었습니다. 10여 미터도 되지 않은 거리에서 사람과 멧돼지를 분간 못 한 것도 그놈의 마력에 홀린 탓입니다.>

신들린 멧돼지 얘기는 더 있다. 작년 늦가을, 일본인 포수 3명과 몰이꾼 다섯 명으로 구성된 사냥대가 문경 서쪽 야산에 나타났다. 장소를 고정하고 하는 사냥이 아니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짐승을 잡았는데 야산에서 신들린 멧돼지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그게 멧돼지인 줄 몰랐다. 멧돼지가 좋아하는 흙탕의 물이 부글부글 끓었는데

저게 뭐야? 온천인가?’

그들은 설마 그런 곳에 멧돼지가 목욕을 하고 있을 줄 몰랐다.

(이상한데 ?)

선두에 선 다지가와가 흙탕의 3~4m 지점에 접근했다. 별안간 흙탕이 부풀어 오르더니 거대한 괴물이 나타났다. 마치 공룡시대의 괴물 같았다. 앞장섰던 다지가와는 벌러덩 누워버렸고 다른 사람들은 도망을 쳤다. 괴물은 그런 포수들의 꼬락서니를 곁눈질하면서 유유히 사라졌다. 포수들은 그 괴물이 황소라고 생각했다. 크기도 그렇고 사람을 보고도 겁내지 않았으며 또 해치지 않고 사라진 것도, 황소가 흙탕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낙엽에 찍힌 발자국을 보고는 멧돼지란 걸 알았다.

멧돼지, 그럴 수가 .’

일본인 포수들은 그때 사냥을 포기하고 산을 내려왔어야 한다. 겁을 먹은 상대에게는 덤비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상대가 멧돼지라는 걸 알자 겁을 털어버렸다. 한 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저걸 보슈. 그 괴물은 육식만 해요.’

멧돼지 똥을 발견한 몰이꾼이 똥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놈은 보통 멧돼지가 아닙니다. 사람도 잡아먹으려고 덤빌지도 몰라요.’

요컨대, 무서워서 몰이를 못 하겠다는 거요? 그럼 우리가 추적을 할 테니 당신들은 여기서 기다려요.’

몰이꾼 없이 사냥이 시작되었다. 멧돼지가 계곡으로 내려가 물에 발을 씻어버렸으므로 추적이 어려워졌다. 비교적 경험이 많은 다지가와 포수가 세 사람이 세 방면으로 흩어져 멧돼지를 산마루로 몰자고 했다. 산마루에는 나무가 없고 바위들만 산재(散在)했다. 그래서 멧돼지를 산마루로 몰아 집중사격을 할 심산이었다. 다지가와 포수는 가운데를 맡아 동료들과 신호를 하며 잡목림을 통과하고 있었다. 잡목림은 나무들이 키가 작아 멧돼지가 숨을만한 곳이 없었다. 중간에 솔가리가 있어 옆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아무것도 없다>는 동료들의 신호가 들려왔다. 동료들의 소리로 봐서 자기가 좀 뒤처졌다고 판단하여 빠른 걸음으로 솔가리를 지나치는데 솔가리가 와라락! 무너져내리며 괴물이 덮쳤다. 다지가와가 발사했다. 맞지 않았다. 2탄을 쏠 여유가 없었다. 솔가리를 뒤집어쓴 멧돼지가 덮쳤으므로 다지가와는 쓰러졌다. 괴물은 쓰러진 다지가와를 다시 들이받았다. 이번에는 치명타였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포수의 옆구리를 깊숙이 찔렀다. 다지가와의 비명을 듣고 달려간 곳에 멧돼지는 없고 다지가와가 옆구리를 잡고 기어 다녔다. 배가 찢어지고 내장이 밀려 나왔다. 동료가 마을로 업어왔으나 의사가 보기도 전에 이미 절명했다. 그놈은 체구나 옷차림으로 사람을 분간했다. 포수가 아닌 나무꾼이나 농부는 본체만체했고 나무꾼이 가까이 오면 위협을 해서 쫓았다. 포수가 오면 달아났다. 경성의 일본인 포수가 개를 두 마리 데리고 와서 추적을 했으나 헛수고였다. 개들의 이빨로는 자기를 해칠 수 없다는 걸 알고 개가 앞길을 막으면 코를 밀고 나갔다. 오히려 개들이 멧돼지를 따라갔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다. 나는 마을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몇 가지 판단을 하고 얘기를 했으나 모두 시큰둥했다. 내가 멧돼지를 잡겠다고 하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총탄을 멧돼지탄으로 바꾸고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몰이꾼들이 한 사람도 없었다. 새벽에 모두 달아나버렸다고 주막 주인이 일러주었다. 사냥꾼은 새벽에 방정맞은 계집을 보면 사냥을 중지한다. 거울이나 유리가 깨져도 사냥을 망설인다. 부적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도 많다. 산신령에게 기도를 드린다. 몰이꾼 없이 혼자 멧돼지사냥을 할 수는 없다. 정말 그 멧돼지는 신들린 멧돼지일까?

 

103. 뱀 할아버지

포수는 짐승을 잡는 사람이며 그래서 짐승을 좋아한다. 그러나 딱 하나 포수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동물이 있다. 뱀이다. 특히 독사다. 범이나 표범이 무섭다고 하나 그래도 그들은 체내에 따뜻한 피가 흐르는 온혈동물이다. 허나 뱀은 차디찬 피가 흐르는 냉혈동물이다. 그들은 팔도 다리도, 소리도 없이 풀숲을 기어 다니다가 예고 없이 사람을 문다. 살무사 같은 독사에 물리면 약도 없다. 포수는 뱀이 사는 풀이나 낙엽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뱀을 싫어하고, 미워하고, 무서워한다. 그래도 좀 다행한 것은 포수가 한참 일을 할 때는 한겨울이기 때문에 뱀이 없다. 가을과 봄이 문제다. 특히 가을이 문제다. 봄에는 뱀이 동면을 하고 막 나온 참이라 비실비실하고 독액도 약하다. 그러나 가을 뱀독은 강렬하다. 동면을 하려고 실컷 먹고 독액을 축적한다. 나도 뱀이 싫고 무섭다. 그래서 경남, 전남 등 남쪽 지방은 피했다.

1937년 가을, 전속 엽사로 일하는 영국국립박물관에서 주선한 포수가 꿩 사냥터에 안내를 부탁했다. 수소문한 결과 서울에서 멀지 않은 경북 김천을 선택했다. 마침 그곳을 잘 아는 몰이꾼이 있어 김천의 단지봉으로 갔는데 도착해보니 좋은 사냥터였다. 울창한 삼림과 단풍경치가 매우 아름다웠다. 영국인은 경치를 보고 <원더풀!>을 연발했다. 그러나 나는 주막집에서 기르는 돼지우리의 먹이통을 보고 기겁을 했다. 주막 주인은 돼지의 먹이통에 쌀겨, 호박 등 사료를 섞어 길다란 줄 같은 걸 사료통에 한 개씩 던져넣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뱀이었다.

아니, 그 뱀들은 어디서 잡았소?’

뱀 말이요? 마을 애들에게 몇 푼씩 주면 얼마든지 잡아 옵니다. 들에도, 강에도, 특히 산에는 뱀들이 우글거립니다. 돼지에게 먹이면 잔병이 없고 잘 큽니다.’

알고 보니 단지봉은 뱀들이 우글거리며 여름이면 전국 각지 땅꾼들이 모여든다고 했다. 나는 저녁에 반찬으로 내놓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사냥터를 옮기려고 했는데 영국인이 단지봉의 아름다운 경치에 취해 기어코 꿩사냥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다음 날 아침 단지봉에 올랐다. 일부러 꿩이 없는 곳을 골라 영국인을 실망시켜서 옮기려는 작전을 세웠다. 그러나 영국인이 데리고 온 테리아종 사냥개가 꿩을 잘 몰았다. 꿩이 있어도 가만히 기다렸다가 사냥꾼이 가까이 오면 일어선다. 그리고 앞발을 쳐들고 천천히 걷는다. 개가 그런 묘한 동작을 할 때는 어김없이 꿩이 날아올랐다. 한꺼번에 여러 마리를 날리지도 않았다. 한 마리씩 한 마리씩 날렸다. 영국인은 서너 시간 동안 열세 마리를 잡았고 나도 그만큼 잡았다. 몇 마리의 뱀을 보았으나 산중턱에 오르니 뱀도 보이지 않았다. 알록달록한 낙엽 속에 있는 뱀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뱀은 잊어버리고 방금 날아 올라간 꿩을 겨냥하고 있다가 좀 더 좋은 위치를 확보하려고 앞으로 2~3m 쫓아가며 발사했다. 발사와 동시에 꿩이 수직으로 떨어졌는데 동시에 한쪽 발목에 따끔한 통증을 느꼈다. 면도칼로 잘린 듯한 아픔이었다. ! 하고 보니 발밑에 뱀이 기어갔다. 살무사였다. 회색 바탕에 동전 같은 검은 무늬가 있는 살무사는 내 발목을 물고 3~4m쯤 가더니 되돌아봤다. 1m쯤 되는 놈이 삼각형의 대가리를 쳐들고 차디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가 문 상대에게 효과가 있었는가를 확인하려는 투였다. 나는 평생 그 살무사의 냉혹한 눈을 잊지 못한다.

저 새끼가 .’

뱀을 쏘았다.

웬일이요? 형님!’

몰이꾼이 달려왔고 살무사에게 물렸다는 말에 영국인도 기겁을 했다. 영국인이 업고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는데 몰이꾼이 말렸다. 우선 응급조치를 했다. 오래 사냥을 한 그는 뱀에게 물린 응급조치를 알고 있었다. 그는 끈으로 발목과 허벅지를 감아 졸라매고 뱀에게 물린 자국을 찾아 입으로 피를 빨아냈다. 그러나 나는 벌써 마비가 오고 정신이 흐릿해졌다.

형님, 자면 안 돼! 정신을 차려요. 얼마 안 가면 뱀 할아버지가 있어요. 거기만 가면 이까짓 뱀독은 고칠 수 있어요!’

뱀 할아버지?’

, 뱀독을 뺄 수 있는 노인인데 그는 어떤 독도 말끔히 빼낼 수 있어요.’

나는 가물가물해지는 의식을 붙잡고 몰이꾼의 등에 업혀 뱀 할아버지의 집에 도착했다. 환갑 전후의 노인이었으며 새카맣게 탄 얼굴에 눈이 매우 날카로웠다. 노인은 내 발목에 소주를 붓고는 혈관을 칼로 따버렸다. 검푸른 피가 쏟아졌다. 피가 나올 만큼 나온 뒤 허벅지와 발목의 끈을 풀었다. 피가 돌았다. 상처에는 고약을 발랐다.

됐어, 2~3일은 고생하겠지만 목숨은 건졌어.’

뱀 할아버지의 말대로 나는 몸이 불덩어리처럼 달아오르고 전신이 퉁퉁 부었다. 노인은 열이 심해지면 찬물로 식히고 약초 물을 먹였다. 사흘째 되던 날에는 정신이 돌아왔다. 눈을 아직도 부었으나 정신은 맑았다. 노인은 움막에 살고 있었으나 집은 겉과 안이 달랐다. 겉은 화전민의 움막이었으나 안에는 서너 칸의 방, 응접실 마루, 부엌과 작은 방들이 있었다. 먼 친척 소녀와 살고 있었는데 부족함이 없는 생활이었고 그 수입은 뱀이다. 매일 서너 사람들이 뱀을 구하려고 방문했고, 직접 먹는 환자도 끊이지 않았다. 노인은 환자의 상태를 자세히 듣고 뱀을 고아서 먹이거나 날 것으로도 먹였다. 환자나 고객들에게 동전이나 은전이 아닌 지폐를 한두 장씩 받았다. 땅꾼들은 뱀 할아버지의 재산이 수천 원이 넘을 거라고 귀띰해주었으나 그 말은 틀렸다. 내가 보기에 노인의 재산은 수천이 아니라 수만이었다. 뱀을 잡아 도소매를 하는 재고상품만도 만 원이 넘었다. 재고상품은 움막집 뒤 땅속에도 있었다. 반경 1m 깊이 1m 정도의 땅굴이 여나무 개 있었는데 한 구멍에 약 200여 마리씩, 종류별 크기별 갖가지 뱀들을 수천 마리 기르고 있었다. 도소매상이나 환자들이 방문하면 뱀들을 꺼내 흥정을 하는데 20~30전을 받기도 하고 어떤 뱀은 5~6원을 받았다. 뱀굴에는 두꺼비도 같이 두었다. 독사는 두꺼비를 본체만체한다. 일주일이 가는 때도 있고 한 달이 지나는 때도 있으나 결국 뱀이 두꺼비를 잡아먹고 두꺼비의 독 때문에 뱀도 죽는다. 이른바 두꺼비 뱀 소주인데 소주 항아리에 넣어두었다가 비싼 값으로 판다. 노인의 재고상품은 소주 항아리에도 있었다. 양조장에서 사용하는 열 말들이 소주 항아리에는 독사들이 둥둥 떠있고 샛노란 빛깔이었는데 강력한 강장제라고 했다. 뱀술은 포도주처럼 묵은 술일수록 값이 나간다는데 노인만 마시는 50년 산 특제는 한 되에 50원을 준다고 해도 팔지 않았다.

포수 양반, 당신들은 웅담이나 녹용이 영약이라고 하지만 독사주만은 못 할거요. 뱀고기를 먹고 독사주 마시며 살아온 나를 보시오. 내가 몇 살이나 되었을 것 같소? 환갑이 가깝다고? 허허! 나는 올해 일흔아홉이요.’

놀라운 일이다. 팔순의 노인이 산을 타고 뱀을 잡는다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노인이 뱀을 잡는 걸 보면 더 놀랍다.

포수 양반. 뱀은 추위를 싫어하오. 습기가 없는 건조한 곳도 싫어하지. 그래서 놈들은 지금 저 낙엽 속에 모여들고 있소. 햇볕이 스며들어 따뜻하고 적당하게 습기가 있으니까. 이걸 보시오.’

노인이 끝에 쇠갈구리가 달린 막대기로 낙엽을 쿡쿡! 찌르면서 더듬거리다가 응! 소리를 지르며 막대기로 누른다. 그 자리에 쭈그려 앉아 낙엽 속에 가만히 손을 집어넣더니 손을 뺐는데 노인의 손에 살무사가 한 마리 따라 올라왔다.

위험하지 않느냐고? 세상에서 뱀 같은 바보도 없지. 이놈들은 날개도 없고 발도 없어 이렇게 잡기가 쉬워.’

뱀은 눈이 밝은 것도 아니고 코나 귀가 발달된 것도 아니다. 재주란 고작 독을 뿜는 것과 긴 몸으로 상대를 감는 것뿐이다. 그리고 징그럽다는 혐오감 정도. 따라서 뱀은 이빨에 물리지만 않으면 잡기가 쉽다. 사실 노인이 뱀을 잡는 걸 보면 마치 풀 속에 떨어져 있는 새끼토막을 줍는 것 같았다. 뱀은 노인을 보면 최면술에 걸린 것처럼 도망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덤벼들지도 못했다. 노인이 손에 쥔 막대기로 뱀의 대가리를 가볍게 때리고 막대기로 누른 다음 가볍게 목을 쥐고 잡아 올렸다. 가끔 몸뚱아리로 노인의 팔을 감는 놈들이 있었는데 귀찮은 듯 뱀을 몇 번 흔들면 축 늘어져 조용해져 저항력을 잃어버렸다.

보시오. 뱀은 이렇게 바보요. 또 기르기도 쉽지. 뱀은 먹이를 주지 않아도 몇 날 며칠을 살 수 있어요. 때로는 몇 달도. 그러면서도 자꾸 자라고.’

그러나 노인의 작업에 장애가 있었다. 어느 날 새벽 노인이 허둥지둥 내 방에 뛰어들었다.

여보슈, 포수 양반. 총을 좀 빌려주시오! 도둑놈을 집이야겠소.’

도둑놈이 어디 있습니까? 뭘 훔쳐 갔나요?’

뱀이요. 뱀을 몽땅 훔쳐 갔소!’

노인이 벽에 걸린 총을 쥐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장탄도 안 된 총으로 뭘 하겠다는 말인가? 나도 따라 나갔다. 노인이 움막 뒤 뱀굴로 달려갔는데 뒤따라가던 나는 움칫! 멈췄다. 땅 위에 수십 마리의 뱀들이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니 모두 죽어있었다.

이걸 보슈! 이걸.’

노인이 죽어있는 뱀들을 가리키며 통탄했다. 하기는 뱀을 미워하는 나에게도 처참한 광경이었다.

훔쳐 가려면 곱게 훔쳐 갈 것이지. 뱀을 몰살시킬 게 뭐야?’

노인이 뱀굴을 조사해보더니 피해액이 수백 원이나 된다고 한탄했다.

그래, 그 도둑놈은 어디 있습니까?’

! 그게 확실하면 내가 이러고 있겠소? 당장 이 총으로 .’

노인이 범인은 산 너머 땅굴에 사는 애꾸가 틀림없을 거라고 했다. 그도 뱀을 잡아 파는 놈인데 노인의 텃세에 눌려 장사가 안 되니까 그 앙갚음을 했을 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좀 이상했다. 애꾸가 그랬다면 뱀을 훔쳐 갈 일이지 몇십 마리만 죽여놓고 간 이유가 뭘까? 그리고 죽어있는 뱀들의 상처도 이상했다. 칼이나 낫으로 자른 것도 아니고 돌이나 몽둥이로 친 것도 아니다. 상처를 자세히 살핀 결과 이빨로 물어뜯은 상처였다. 따라서 범인은 사람이 아니고 짐승인데 , 현장에는 범인의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아주 작은 발자국인데 발톱이 길고 나란히 찍힌 발자국으로 봐서 족제비 같았다.

족제비라고?’

, 족제비 소행이군. 족제비가 아니고는 이런 짓을 할 짐승이 없어.’

족제비는 꼬리까지 합쳐 60cm도 못 되는데 뱀을 보면 절대로 그냥 놔두지 않는다. 2m가 넘는 능구렁이나 살모사에게도 달려든다. 날카로운 이빨로 뱀을 난도질해 죽인다. 노인은 피해액이 무려 300원이라고 했다.

, 제가 먹을 만큼만 물고갈 일이지 몰살을 시키다니 .’

족제비는 잔인한 동물이다. 대개 짐승은 먹고살기 위해 죽인다. 맹수도 배가 부르면 덤비지 않는다. 족제비는 살육본능이 있어 재미로 죽인다. 족제비의 살육대상은 토끼, 다람쥐, , 가재, , , 까치와 물고기 등 다양한 소()동물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미워하는 것이 뱀이다. 조사한 바에 의하면 어젯밤 침입을 한 족제비는 서너 마리였고 모두 굴속에 뛰어들어 마음껏 살육을 했다. 수백 마리가 우글거리는 굴속에서 작은 족제비에게 당한 뱀들은 정말 바보다. 노인이 족제비를 소탕하지 못하면 망한다면서 애원을 했다. 노인은 뱀은 잘 잡았으나 족제비 잡는 법에는 속수무책이다. 노인은 내게 생명의 은인이다. 족제비가 번성하면 뱀은 멸종된다. 노인뿐만이 아니라 뱀은 가축 사료였고, 마을 사람들의 부수입원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뱀으로 매년 6만 원(2019년 현재가치 1,000만 원)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 우선 피해를 막기 위해 사육장에 관솔불을 밝혔다. 노인을 마을로 보내 목수를 데려다 구멍에 틀을 씌워 족제비 침입을 막으려고 했다. 그래놓고 움막을 지어놓고 족제비를 기다렸다. 11시경에 족제비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너무 작고 민첩했으므로 겨냥이 어려워서 움막에서 뛰어나와 족제비들이 들어간 구멍으로 다가갔다. 뱀을 물고 나오던 족제비가 나를 발견하자 어이없는 짓을 했다. 깡총 뛰어올라 나에게 덤벼든 것이다. 총대로 후려치고 달아나는 놈을 쏘았다. 7~8m쯤 달아나다가 안전권이라고 판단했는지 뒤를 돌아다본 놈에게 발사했다. 총성에 놀란 놈들이 달아났으나 조용해지자 다시 왔다. 그날 밤에 다섯 번을 발사해서 네 마리를 잡았다. 뱀도 또 열서너 마리가 죽었다. 노인은 또 뱀이 희생된 걸 보고 마음 아파했으나 족제비를 네 마리나 잡은 걸 보고 좋아했다. 거적으로 덮은 뱀굴에 목수들이 만든 나무 뚜껑을 덮었다. 족제비를 잡을 함정과 덫을 만들었다. 족제비는 영리하고 용감했으나 그게 오히려 약점이기도 하다. 몇 개의 뱀 구멍을 깊게 파서 그 중간에 거적을 걸쳐놓았다. 목에 줄을 묶은 뱀을 두서너 마리 거적 위에 놓아두었다. 족제비는 거적 위의 뱀을 보고 거적에 뛰어들었다가 그 무게로 거적이 내려앉았다. 족제비의 재주로도 깊이 2m의 구멍에서 나올 수 없었다. 대나무로 상자를 수십 개 만들어 그 속에 뱀이나 쥐를 넣어두고 족제비가 물면 문이 자동으로 닫히게 하여 잡았다. 첫날 세 마리, 다음날에는 다섯 마리 그리고 다음 날에는 여섯 마리가 잡혔다. 노인은 족제비가 걸려들자 매우 기뻐했으며 그 귀한 독사주를 아끼지 않고 내놨으나 실살 나는 그때 큰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번들거리는 갈색 족제비 털은 1급품이었으며 3~7원을 받았다. 그 사이 집에서는 내가 독사에 물려 죽은 걸로 알고 초상대(初喪隊)를 보냈다. 그날따라 족제비가 무려 열 마리가 걸려 마을 사람들과 축하주를 들고 있는 판에 초상대가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를 하며 들이닥쳤다. 초상대는 오두막에서 벌어지고 있는 잔치판이 초상판이라고 오인하여 곡소리를 냈던 것이나 그건 희극이었다. 죽은 사람이 술을 마시고 있었으니 말이다. 초상대는 일면 울고 일면 웃으며 내 해명을 듣고는 족제비잡이에 참여했다. 나흘 동안에 살무사 스무 마리와 족제비 서른여섯 마리를 잡았다. 200원의 수입인데 서울 장안에서 기와집 한 채 값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그때 잡은 족제비와 뱀들을 산 채로 가져와 영국영사관에 기증했는데 서너 달 뒤에 영사관 직원이 선물을 가져왔다. 영국 런던 리젠트동물원에서 보낸 선물은 기가 막히는, 숨이 딱! 멎는 물건~영국 황실문장이 찍힌 보스사의 엽총이었다. 연발 산탄총이었으며 포수들이 꿈에도 그리는 최고급 총이다. 알고 보니 영국영사관은 내가 기증한 족제비가 너무 아름다워 살무사와 같이 런던의 리젠트동물원에 보냈는데, 세계 최고의 동물원인 리젠트에서는 그까짓 한국의 동물에 대해서는 별로 흥미가 없어 살무사를 뱀 사육장에 던져버렸는데 그 건 실수였으며 사고가 생겼다. 이튿날 우연히 사육장을 지나던 잡지사 사진기자는 커다란 인디어산 킹 스네이크가 뭘 먹고 있는 걸 보았다. 자세히 보고는 기겁을 했다. 다른 뱀을 먹고 있었다. 킹 스네이크는 다른 뱀을 먹는 뱀이다. 직원이 모르고 저지른 실수다. 그때도 킹 스네이크는 다른 뱀을 삼키고 있었으며 불쌍한 희생자는 2/3가 킹 스네이크의 뱃속에 들어갔고 겨우 꼬리 부분만 남아있었다. 사진기자는 그 징그러운 광경을 촬영하고 동물원 직원에게 알렸다. 놀란 직원은 인디아산 킹 스네이크가 먹고 있는 뱀이 멀리 한국에서 온 살무사라는 걸 보고는 다른 직원들과 여럿이 덤벼들어 아가리에서 살무사를 빼냈다. 그런데 놀랍게도 2/3가 아가리에 들어간 살무사는 건재했다. 그러나 살무사를 삼키려던 인디아 킹 스네이크는 몇 시간 후에 죽었다. 사진기자가 산 살무사와 죽은 킹 스네이크를 찍어 보도했는데 리젠트동물원은 독종 한국산 살무사를 보러 밀려든 관람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관람객들로부터 엄청난 수입을 올린 동물원이 감사의 표시로 최고급 총을 선물한 것이다. 살무사에게 물린 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뱀 할아버지는 그 후 20년을 더 살고 근 100세까지 장수했다. 마을은 독사주를 일본과 만주에까지 수출하여 부촌이 되었다.

 

104. 첫 사냥

첫사랑은 평생 잊지 못한다. 사냥을 하는 사람도 첫 사냥은 잊지 못한다. 내 사냥은 어린 시절-겨우 아홉 살 때 시작되었다. 고무줄 총사냥이다. 큰형들의 뒤를 따라다니며 참새잡이를 구경하다가 그만 사냥병에 걸렸다. 고무줄총을 가지고 열심히 참새 뒤를 쫓았으나 고사리손에 잡힐 참새는 없었다. 그래도 실패 후 고무줄 총솜씨는 발전했다. 열 살 때였다. 추석이 지나고 황금 벌이 물결치던 날 오후, 고무줄총을 당기면서 논두렁길을 가던 나는 불과 5~6m 눈앞에서 참새 두 마리가 나래를 파닥거리며 벼 이삭에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걸 보았다. 참새들은 벼 이삭을 먹느라고 고무줄총 사수가 오는 걸 몰랐다. 오동포동 살이 쪘고 예뻤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잡을 수 있다.)

오랜 경험으로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맞겠지 하는 지레짐작으로 쏘는 건 실패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큰놈을 겨냥했다. 천천히 당기다가 마지막 순간에 힘껏 당기면서 탁! 손을 놓았다. 내가 겨냥한 참새는 벼 이삭에서 떨어져 공중에서 나래짓을 하고 있었는데 가슴팍에서 하얀 털이 흩날리며 낙하했다.

잡았다, 잡았어!’

엄청난 환희였다. 단걸음으로 달려가 참새를 주웠다. 이미 눈을 감고 있었으나 몸을 가느다랗게 떨고 아직 체온이 남아있었다. 그때 비로소 고무줄총으로 참새를 잡는 요령을 터득했으며 그 후부터는 어렵지 않게 참새를 잡았다. 그건 엄밀한 의미에서 장난이었고 사냥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듬해 봄, 아버지를 따라 시골 장터 자전거 수리점에 걸려있는 헌 공기총을 봤다. 가게주인은 <그 총은 좀 낡은 총이지만 잘 수리를 했으므로 아주 좋은 총이 됐다>고 하면서 2원에 팔겠다고 했다.

저 총으로 꿩을 잡을 수 있을까요?’

잠시 망설이던 가게주인이 자신 있게 말했다.

물론이지, 잘만 쏘면 꿩이나 토끼를 잡을 수 있지.’

나는 그만 그 총에 홀렸다. 기름칠이 잘 되어 번드레한 총이 꿈에서도 어른거렸다. 용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당시의 2원은 농촌 아이에게는 벅찬 거액이다. 총에 미친 나는 집안 어른들의 심부름도 하고 고철이나 유리병을 모아 팔기도 했으나 한 달 동안 고작 40전을 모았을 뿐이었다. 초조했다. 거의 매일 가게에 가서 총을 보고 주인에게 다른 사람에게 팔지 말라고 애원했다. 가게주인이 내 성의에 감동먹은 것 같았다. 내가 큰할아버지를 졸라 그 가게에서 4원짜리 자전거를 팔아주었더니 그때까지 내가 모았던 130전을 받고 공기총을 내주었다, 총알 한 상자도 끼워서. 하늘을 나는 기분이란 이런 때를 말하는 것이다. 공기총 사냥이 시작되었다. 참새잡이가 장난이 아니었다. 어깨에 참새를 주렁주렁 달고 다니며 장날이면 음식점에 팔았다. 특히 늦가을에는 참새가 잘 팔렸으며 가계에 도움이 되었다. 공기총 세 발에 평균 두 마리의 참새를 잡았다. 명중률 70%였으며 어른들이 놀랐다. 휴일이면 서울에서 오는 대학생들도 내 솜씨를 따라오지 못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불만이 있었다. 꿩이었다. 수없이 꿩을 쫓았으나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꿩은 내가 그를 발견하는 것보다 먼저 나를 발견하여 퍼드득거리며 날아가 버렸다, 날으는 꿩에게 발사를 했으나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열세 살이 되던 겨울, 첫눈이 내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했으며 눈발 속에서 참새잡이를 했다.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면 서울에서는 참새구이가 잘 팔렸다. 참새 열서너 마리를 어깨에 매달고 마을로 들어서던 나는 마을마당에 뭔가 선명한 색깔이 움직이는 걸 발견했다. 꿩이었다. 눈이 내려 먹이를 찾지 못한 꿩이 마을까지 내려온 것이다. 하얀 눈 위에 선명한 색깔의 꿩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어깨에 맨 참새꾸러미를 던져버리고 살살 기었다. 버드나무를 지나고 퇴비 더미 옆으로 한 발 한 발 기었다. 공기총의 유효사거리는 10m 이내다.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눈사람 뒤에까지 접근했다. 9m. 꿩의 자그마한 머리를 겨냥했다. 꼿꼿하게 머리를 치켜들고 수시로 두리번거리는 호두알만 한 머리를 겨냥하기는 매우 어려웠으나 공기총의 한계였다. 몸통에는 맞아봐야 잡지 못한다. 오랜 참새사냥의 숙련된 경험으로 정확하게 머리가 맞았다. 꿩이 머리를 떨어뜨리고 비틀거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꿩이 나래질을 해서 날아올랐다.

(또 놓쳤구나!)

그런데 기적이 알어났다. 공기 총탄이 꿩에게 치명상은 주지 못했으나 상당한 충격을 준 듯 꿩은 방향감각을 잃고 덮어놓고 나래짓을 하다가 연료로 쓰기 위해 타작마당 한구석에 쌓아놓은 솔깽이 다발 속으로 돌진했다. 솔깽이 다발에 머리를 박은 꿩은 날개와 발로 퍼득거렸으나 빠져나오지 못했다. 나도 솔깽이 다발로 돌진해서 두 손으로 꿩을 움켜쥐었다. 꿩을 사로잡았다. 꿩의 묵중한 중량감이 느껴지자 고함을 쳤다.

잡았다, 잡았어! 꿩을 잡았어!’

어깨에 참새를 주렁주렁 매달고 두 손으로 꿩을 붙들고 마을에 들어서자 먼저 아이들이 몰려들었고 구경꾼들이 모였다.

저 녀석! 기어코 꿩을 잡았구만.’

어른들이 격려했다. 공기총으로 꿩을 잡은 후부터 꽤 유명해졌다. 전문적으로 참새를 잡았으며 기회를 내서 산에 올라가 산비둘기나 메추라기를 잡았다. 열다섯 살 때 단골 참새구이 집에 참새를 갖다주고 오는 길에 사냥꾼이 수레에 멧돼지 두 마리를 잡아 오는 걸 봤다. 얼마나 컸으면 소달구지 하나에 한 마리씩 실었을까? 내가 잡은 참새 따위야 수천 마리를 모아도 멧돼지 한 마리만도 못하다. 멧돼지를 잡은 포수들이 부러웠다. 그들이 메고 있는 길고 뭇줄한 총이 한없이 부러웠다. 화약을 넣고 쏘는 총, 방아쇠를 당기면 콩알만 한 납덩이가 굉음을 내며 날아가 범이나 곰의 두개골을 뚫어 쓰러뜨리는 총은 나에게 꿈이었다. 허나 열다섯 살 나이로 무리였다. 비싼 총값도 문제지만 연령제한에 걸렸다. 미성년자에게는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꿈을 버리지 못했다. 마침 내가 참새를 파는 요릿집 옆에 총포상이 있었는데 공기총 탄환을 구입하면서 엽총을 구경했다. 점원과 친해졌으며 엽총에 대한 지식도 얻었다. 점원이 엽총을 분해하거나 수리하는 것을 보고 화약 탄환을 만드는 것도 보았다. 얼마 뒤에는 점원을 도와줄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분해, 수리에 기술자인 점원을 능가했다. 총포상 주인도 인정했다. 그래도 총을 만지작거리기는 했으나 쏘아보지는 못했는데 기회가 왔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총을 구입하려고 와서 <시사(試射)를 해볼 수 없냐?>고 했다. 그들은 값비싼 영국제 산탄총으로 가벼운 사냥을 해보고 구입하겠다고 해서 주인을 난처하게 만들었다. 옆에 있던 내가 서울에서 버스로 한 시간가량 걸리는 의정부 부근 야산에 꿩이 있으니 안내하겠다고 제의했다. 그곳은 내가 공기총으로 꿩을 잡으려고 쫓아다니던 곳이라 꿩들의 생태를 훤하게 알고 있었다. 꿩은 아침나절에는 마을 부근 밭에서 먹이를 주워 먹고 오후에는 산중턱 양지바른 곳에서 모래 뜸질을 했다. 꿩들에게 발견되지 않도록 야산 뒤에 있는 잡목림을 돌아서 접근했다. 짐작대로였다. 잡목림에서 빠져나와 바위에 몸을 숨기고 내려다보니 바로 10여 미터 앞에 서너 마리의 꿩들이 모래 찜질을 하고 놀고 있었다. 대학생들은 꿩들이 날아오르기도 전에 발사를 해서 손쉽게 두 마리를 잡았다. 첫 사냥에 꿩을 잡았으니 대학생들의 기쁨은 말로 할 수 없었으며 그 자리에서 총이 매매되었다. 동행한 점원 또한 기뻐하면서 내일 가게로 나오면 사례를 하겠다고 귀띰했다. 이튿날 총포상에 들렸다. 점원이 눈을 끔벅거리더니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무엇입니까?’

사례금이야. 넣어둬.’

나는 사례금을 받지 않고 부탁을 했다. 몇 달 전에 어느 포수가 윗전을 얹어 총을 교환한 걸 알고 있었다. 총포상은 구식 일제 총과 벨기에제 산탄총을 교환했는데 가격의 차액을 얹어주고 교환했다. 그래서 차액 12원을 가지고 가서 구식 총을 사들인 값에 나에게 팔라고 간청했다. 점원이 <그 건 안 되는 일이다.>라고 잡아뗐는데 내가 실망하자

이봐, 저 총이 그렇게 갖고 싶어. 그럼 우리 주인 몰래 비밀 거래를 하자.’

점원은 그 총을 여기서 샀다는 건 비밀이라고 몇 번이나 다짐을 받고 총을 넘겨주었다, 흑연 화약 한 통과 탄피까지. 성실하게 분해, 수리를 도와준 대가였다. 엽총 불법 소지로 검문을 당하지 않기 위해 총을 완전히 분해하여 갖고 왔다. 밤새 손질을 했다. 날이 밝기도 전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총소리가 들리지 않은 산중으로 들어갔다. 노루탄을 장탄하고 노루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그날따라 노루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주먹밥을 모닥불에 데워먹고 막 일어서려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무슨? 혹시 ?)

가만히 귀를 기울였는데 이번에는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뿌드득! 뿌드득! 눈을 밟는 소리도 들렸다.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으려고 몸을 기대고 있는 바위 뒤 잡목림에서 났다.

(나무꾼일까?)

나무꾼이 이런 깊은 선중에까지 들어올 이유가 없다. 바위 위로 올라가 밑을 살펴보니 바로 10여 미터 앞에서 빤히 쳐다보는 눈이 있었다. 맑은 갈색 커다란 눈이었으며 두 귀가 쫑긋 선 노루였다. 노루도 바위 뒤에서 나는 소리에 놀라 지켜보다가 그만 눈이 마주쳤다. 노루가 놀라 화다닥! 도망쳤다. 그러나 노루 보다 내가 더 놀랐다. 설마 그런 곳에 노루가 있으리라고 생각 못 한 나는 노루가 도망치자 <총을 쏘아야 한다>고 깨달았으므로 바위에 총신을 받치고 노루의 엉덩이를 겨냥하여 냅다 발사했다. 천지가 뒤집어질 듯한 굉음에 나는 바위 밑으로 나가떨어졌다. 떨어지면서 무릎을 바위에 부딪쳐 일어나지 못했다. 발을 질질 끌면서 일어나 노루가 서 있던 참나무숲으로 갔으나 노루는 없었다.

(어디로 갔을까?)

노루는 어느새 잡목림을 빠져 나가 10m 전방을 달리고 있었다. 마치 <날 잡아보슈> 하는 듯 엉덩이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달리다가 정지를 하고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약이 오른 나는 무턱대고 발사했다. 노루는 건재했으며 숲으로 달아나버렸다. 이상한 일이다. 10m 거리면 공기총으로 참새를 잡는 내가 같은 거리에서 산탄을 쏘았는데 노루를 맞히지 못하다니 . 산탄총에서 발사되는 그 많은 총탄은 어디로 흩어져버렸을까? 노루를 놓치고 눈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울고 싶었으나 악발이 별명이 부끄러워 울지는 않았다. 나는 노루가 달아난 산마루지형을 잘 알고 있다. 지름길로 노루를 추격했다. 아픈 다리를 절뚝거리며 정신없이 달렸다. 내 계산대로라면 산마루에서 노루와 만나게 되어 있었다. 노루는 없었다. 또 한 번 실망이었다. 노루에게 총싸움에서 지고 술래잡기에서도 졌다. 지쳤다. 아무리 원기 왕성한 소년이지만 하루 종일 산을 뛰어다녔으므로 다리가 막대기처럼 뻣뻣했다. 이미 해도 기울고 있었으므로 체념을 하고 하산을 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아까 노루를 놓쳤던 잡목림에 왔을 때 노루가 툭! 튀어나왔다. 그놈은 이제는 나를 전혀 업신여기는 듯 옆모습을 보이며 달렸다. 나는 놀라고 흥분했으나 세 번째의 경험이 축적되어 자세를 가다듬을 여유가 있었다. 앉은자세를 취했다. 한쪽 무릎을 꿇고 무릎 위에 총을 든 팔굽을 받쳐 겨냥을 하여 발사했다. 총성과 동시에 노루가 껑충 뛰어올라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일어서려고 바둥거렸으나 이미 다리가 마비되어 일어서지 못하고 눈만 멀뚱거렸다.

(내가 졌다, 이젠 그만하자.)

애원하는 듯한 눈망울이었다. 노루를 잡았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잡았다! 잡았어.’

평생 잊지 못할 첫 사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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