感春
花今衰未問來人 지금 꽃이 시들었는지 오는 이에게 묻노니
恐是城中別有春 성내에는 봄이 따로 있을까 함이였다.
步上東山還大笑 걸어서 東山에 올라 오히려 크게 웃노니
東君何處着嫌親 봄이 어느 곳엔들 친소(親疎)가 있었던가.
遣懷
倏忽百年半 아득히 지나간 반 백 년
蒼黃東海隅 창황하게 동해 모퉁이에서 보냈네.
吾生元跼蹐 우리 삶이 본디 구속이요
世路亦崎嶇 세상길 또한 기구한 것을.
白髮或時有 백발이란 때가 되면 있는 것
靑山何處無 청산이야 어딘들 없겠는가?
微吟意不盡 중얼거리며 읊어도 마음 다하지 못하여
兀坐似枯株 마른나무 등걸처럼 오뚝이 앉아 있노라.
古意
早發莫太早 일찍 가더라도 너무 일찍은 가지 말라
太早令人迷 너무 일찍 가면 남을 미혹케 만든다.
夜半便發靭 밤중에 갑자기 수레가 떠나니
前途互高低 앞길이 모두 울퉁불퉁하구나.
人家在何許 사람의 집들은 어디쯤에 있는지
時聞林外鷄 때때로 숲 밖에서 닭 울음 들린다.
趍岐旣已迷 갈림길에 당도하니 이미 혼미해져서
未辨山東西 산의 동서마져 분별키 어렵구나.
天明始知悔 날이 밝아서야 비로소 뉘우치니
我行何栖栖 내 가는 길이 어찌 이리도 바빴던가.
觀物 만물을 바라보며
大哉觀物處 크도다! 사물이 있는 곳을 바라보니
因勢自相形 형세 따라 절로 형상이 다스려진다.
白水深成黑 하얀 물이 깊어지면 검게 변하고
黃山遠送靑 누런 산이 멀리서는 푸른빛을 보내지.
位高威自重 지위가 높아지면 위엄은 절로 무겁고
室陋德彌馨 집이 누추해도 덕은 더욱 향기롭네.
老牧忘言久 늙은 이 몸은 말을 잊은 지 오래이고
苔痕滿小庭 이끼 자국 작은 뜰에 가득하구나.
觀魚臺小賦
觀魚臺在寧海府 관어대는 영해부에 있는데
臨東海 동해를 내려다보고 있어
石崖下游魚可數 바위 절벽 아래에 헤엄치는 물고기를 가히 헤아릴 수 있어
故以名之 관어대라 이름 하였다.
府吾外家也 영해부는 나의 외가 이기에
爲作小賦 소부를 지어서
庶幾傳之中原耳 중원에 전해지기를 바라는 바이다.
丹陽東岸 영해의 동쪽 언덕
日本西涯 일본의 서쪽 물가에는
洪濤淼淼 큰 파도만 아득하여
莫知其他 그 나머지는 알 수가 없네.
其動也如山之頹 그것이 움직이면 마치 산이 무너지는 듯하며
其靜也如鏡之磨 그것이 잠잠하면 마치 거울의 표면을 간듯하여
風伯之所橐籥 풍백이 풀무로 삼는 곳이요
海若之所室家 해약이 집으로 삼은 곳이라.
長鯨群戱而勢搖大空 큰 고래들이 떼 지어 놀면 기세가 창공을 뒤흔들고
鷙鳥孤飛而影接落霞 솔개가 외로이 날면 그림자 저녁놀에 접하네
有臺俯焉 관어대가 굽어보고 있으니
目中無地 눈에는 땅이 보이지 않으며
上有一天 위에는 한 하늘이 있고
下有一水 아래는 한 물이 있어
茫茫其間 아득히 먼 그 사이가
千里萬里 천 리 만 리나 되는구나.
惟臺之下 오직 관어대 밑에는
波伏不起 파도가 일지 않아서
俯見群魚 엎드리면 떼 지은 고기들이 보이고
有同有異 서로 같은 고기들도 있고 서로 다른 놈도 있어
圉圉洋洋 느릿느릿한 고기들과 활발한 고기들이
各得其志 제각기 그 뜻을 얻었네.
任公之餌夸矣 임공의 미끼는 과장된 것이라
非吾之所敢擬 내가 감히 흉내 낼 바 아니요
太公之釣直矣 태공의 낚싯바늘은 곧았으니
非吾之所敢冀 내가 감히 기대할 바 아니어라.
嗟夫我人 아! 우리 인간은
萬物之靈 만물의 영장이라
忘吾形以樂其樂 내 형체를 잊고 그 즐거움을 즐기며
樂其樂以歿吾寧 즐거움을 즐기다 죽어서 내 편안하리.
物我一心 나와 남(物我)이 한마음이요
古今一理 고금이 한 이치이니
孰口腹之營營 그 누가 구복 채우기에 급급하여
而甘君子之所棄 군자들의 버림받음을 달게 여기랴.
慨文王之旣歿 문왕이 이미 돌아가심을 한탄하네.
想於牣難跂 오인(於牣)을 생각해도 바라기 어렵거니와
使夫子而乘桴 공자로 하여금 떼를 타게 한다면
亦必有樂于此 또한 반드시 여기에 즐김이 있었으리.
惟魚躍之斷章 오직 고기가 뛴다는 짧은 글귀는
迺中庸之大旨 바로 중용의 가장 큰 뜻이니
庶沈潛以終身 종신토록 그 뜻을 깊이 탐구하면
幸摳衣於子思子 다행히 자사자(子思子)를 본받을 수 있으리
予年十七歲 내가 17세 때
赴東堂賦和氏璧 동당시에 응하여 화씨벽부를 지었고
二十一歲 21세에는
入燕都國學月課 연도의 국학에 들어가서 월과를 지었는데,
吳伯尙先生賞予賦 오백상 선생이 나의 부를 칭찬하여
每日可敎 언제나 가르칠 만하다고 하였다.
旣歸 그 후 본국에 돌아와서는
赴癸巳東堂賦黃河 계사년의 동당시에 응하여 황하부를 짓고
鄕試賦琬圭 향시에서는 완규부를 지었으며
會試賦九章 회시에서는 구장부를 지었는데
今皆不錄 지금 모두 기록하지 않는다.
非古文也 이는 고문도 아니요
非吾志也 나의 뜻도 아닌데
非吾志而出身于此 나의 뜻이 아니면서도 이것으로 출신을 한 것은
非此無階於榮養耳 이것이 아니면 부모를 영화롭게 봉양할 계제가 없기 때문이었으니,
嗚呼悲哉 아! 슬프도다.
風伯 - 바람을 맡아 다스리는 신
海若 - 海神
狂吟 미친 듯이 노래하다
我本靜者無紛紜 나는 본래 고요한 사람 분란함이 없는데
動而不止風中雲 움직여 그치지 않는 것은 바람 속 구름이라.
我本通者無彼此 나는 본래 통달하여 이편저편 없는데
塞而不流井中水 막히어 흐르지 않는 것은 우물 속의 물이어라.
水兮應物不迷於姸媸 물은 물건에 따라 곱고 더러운 것에 구애받지 않고
雲兮無心不局於合離 구름은 무심하여 合하고 떠나는 것에 제한되지 않는다.
自然上契天之心 자연적으로 하늘의 마음에 합치되니
我又何爲兮從容送光陰 나 또한 어떻게 하여야 조용히 세월을 보내나.
有錢沽酒不復疑 돈이 있으면 술을 사서 마시는 것 어찌 다시 의심하며
有酒尋花何可遲 술이 있으면 꽃 찾는 것 어찌 주저할 수 있을까.
看花飮酒散白髮 꽃 보고 술 마시며 백발을 흩날리니
好向東山弄風月 좋아라, 저 동산을 향해가 풍월이나 읊으련다.
喬洞
海門無際碧天低 바다는 끝이 없고 푸른 하늘은 나직한데
帆影飛來日在西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돛단배는 나는 듯 돌아온다.
山下家家蒭白酒 산 아래 집집마다 흰 술 빚고
斷葱斫膾欲鷄棲 파 베고 회치고 닭도 잡으려 하는구나.
寄東亭
春深門巷少經過 봄 무르익은 골목에 지나는 사람 하나 없고
桃李花開落又多 복사꽃과 오얏꽃 피었다 떨어지는 것도 많구나.
記得去年亭上坐 지난 해 정자 위에 앉았던 일 기억하니
一簾疏雨酒生波 발사이로 성긴 비 떨어져 술에 물결 모양 일었다네.
記事 사실을 적다
衣鉢誰知海外傳 누가 법통이 해외에 전해진 것을 알리오
圭齋一語向琅然 규재의 한 마디 말씀 구슬 부딪치듯 맑았다.
邇來物價皆翔貴 그 뒤로 물건 값은 모두 오르는데
獨我文章不眞餞 다만 내 문장만 정말로 값이 오르지 않도다.
記安國寺松亭看雨 안국사 송정에서 비 오는 것을 보며 적다
小雨仍村笛 가랑비 속에 마을에서 피리소리 들리고
斜陽又寺鍾 해는 지는 데 또 절 종소리 들려오는구나.
山遙多醞籍 산이 아득하여 지극히 온적하고
水闊自舂容 물이 넓으매 스스로 조용하구나.
爽氣生明月 시원한 기운 밝은 달에서 생기고
寒聲起碧松 찬 소리 푸른 소나무에서 일어나네.
至今心尙悸 지금도 오히려 마음이 뛰는 것은
雷電逐飛龍 번개와 우뢰가 날아가는 용을 따르기 때문이라네.
茶後小詠
小甁汲泉水 작은 병에 샘물을 길어다가
破鐺烹露芽 깨진 솥에 노아차를 달인다.
耳根頓淸淨 문득 귀가 밝아지더니
鼻觀通紫霞 코가 열려서 신령스런 향기를 맡는다.
俄然眼翳消 어느덧 눈에 가리운 편견도 사라지고
外境無纖瑕 몸 밖의 티끌도 하나 보이지 않네.
舌辨喉下之 차를 혀로 맛본 뒤 목으로 내리니
肌骨正不頗 살과 뼈가 절로 바로 된다네.
靈台方寸地 가슴 속 작은 마음자리는
皎皎思無邪 밝고 맑아 생각에 사특함이 없어라.
何暇及天下 그 어느 겨를에 천하를 다스릴 수 있으라
君子當正家 군자는 집안부터 바르게 하는 법 아니던가.
答東菴禪師
今夕是何夕 오늘 저녁이 어떤 저녁인가
白酒傾金壺 금병에서 흰 술을 기울이노라.
蒲萄結層陰 포도는 겹겹이 그늘을 지었는데
淸風生座隅 맑은 바람은 한 귀퉁이에서 나온다.
東菴三韓秀 동암은 우리나라 삼한에 빼어나고
巉巉玉蘇屠 높고 높은 옥으로 된 소도이다.
游戱於斯文 아, 사문에 유희하여
疊璧聯雙珠 쌓은 옥이 쌍 구슬을 이루었도다.
愧我辱酬唱 부끄럽다 내가 수창함을 욕되게 하니
芝蘭雜軒于 지초와 난초가 악초인 헌우에 섞였구나.
張羅獵佳句 그물을 벌려 좋은 글귀를 사냥하는데
儼開左右盂 엄연히 좌우바리를 열었도다.
疇昔先人在 지난날 선인이 살아있을 때
契深三笑圖 서로의 친분이 삼소도보다도 깊었다.
春風與秋月 봄바람과 가을 달
詩酒爲樗蒲 시와 술로 내기를 했었다.
超然名敎外 교외에 초연하였으니
肯復論肥癯 살찌고 여윔을 어찌 의논하리오.
鶴去雲獨留 학은 가고 구름만 머물렀으니
傷心人世殊 인간 세상의 변천에 마음이 서글프다.
豚犬亦何幸 못난 자식인 내가 무슨 다행으로
藤蔓纏葫蘆 등덩굴이 박 덩굴에 얽히었구나.
巵酒不敢辭 잔술을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詩令不敢逋 시 짓는 규정을 감히 벗어나지도 못한다.
醉吟視萬古 취하여 읊조리며 만고를 훑어보니
擾擾同一途 바쁘고 시끄럽긴 한 길이로다.
答竹磵禪師 죽간선사에게 답하다
山游登崑崙 산을 다니면 곤륜에 오르고
水涉經方壺 물을 건너서는 신선 사는 방호산 지났다.
身行天下半 직접 천하의 반을 다녔는데
跡起東海隅 발자취는 동해의 모퉁이에서 시작했다.
神心馬繫皁 심신은 말이 마구간에 매어 있는 듯하였고
歲月羊趨屠 세월은 羊이 도축장에 가듯 하였도다.
誰謂臭皮袋 더러운 냄새나는 가죽부대 같은 사람의 몸속에
自藏如意珠 여의주를 감추었음을 누가 알겠는가.
淸談極要妙 맑은 얘기는 지극히 오묘한데
戱語還於于 농담은 도리어 과장되고 허탄하도다.
高標山千仞 높은 풍치는 천 길 산과 같고
淡慮水一盂 담담한 생각은 그릇에 담긴 물과 같다.
静室香火冷 고요한 방에는 향불이 찬데
左右書與圖 좌우에는 책과 그림뿐이다.
時時出詩句 때때로 가끔 시를 지으니
易易如樗蒲 쉽기는 마치 저포놀이 하는 것 같다.
源深流不竭 근원이 깊어 흐름이 마르지 않고
道腴身甚癯 도는 살졌으나 몸은 심히 파리하다.
善幻是僧業 선환(善幻)을 잘하는 것이 중의 일인데
妙用隨時殊 묘한 작용이 때에 따라 달라지는구나.
久參庭前栢 오래 ‘뜰 앞의 잣나무’로 참선하여
欲跨江上蘆 달마처럼 강 위의 갈대를 타려 한다.
河壖今苦戰 하연(河壖) 언덕이 지금 전쟁에 고통받아
軍令嚴稽逋 군령은 도망하는 자를 엄하게 단속한다.
遲公飛鍚去 지공은 석장으로 날아가서
感彼歸正途 저들을 감동시켜 정도로 돌아가게 하시라.
樗蒲 - 나무로 만든 주사위를 던져서 그 숫자로 승부를 다투는 놀이
對菊有感
1
人情那似物無情 사람의 정이 어찌 사물의 무정함과 같으며
觸境年來漸不平 심경에 부딪는 일들이 근래에는 점점 불평스럽다.
偶向東籬羞滿面 우연히 동쪽 울타리 향하니 부끄러움이 얼굴에 가득한데
眞黃花對僞淵明 진짜 국화꽃을 거짓 도연명이 마주보는구나.
2
爛熳開時爛熳游 국화 난만하게 필 적엔 사람도 난만하게 노나니
煙紅露綠滿城浮 연기 불그스레하고 이슬도 푸르게 성에 가득하다.
山齋又是秋風晩 이 좋은 산재(山齋), 게다가 가을바람 불어오는 저녁
只有黃花映白頭 오직 노란 국화꽃 있어 내 흰 머리를 비추는구나.
3
仁熈殿北白沙岡 인희전 북쪽 흰 백사장 언덕에
駐蹕群臣獻壽觴 임금의 행차 머무니 신하들 술잔 올린다.
病裏苦吟秋又晩 병중에 애써 시를 읊노니 가을에다 저녁이라
夢中時或侍先生 꿈속에서나 혹 선왕을 모셔보려나.
4
龍沙漠漠又秋風 용만의 모래벌판 아득하고 가을바람마저 부는데
衰草連雲落照紅 시든 풀과 피어오르는 구름은 지는 햇볕에 붉다.
折得黃花誰上壽 노란 국화꽃 꺾어 누가 임금의 장수를 비나
海西千里是行宮 바다 서쪽 천 리 먼 곳에 우리 임금 행궁있다네.
待人不至 기다려도 그 사람 오지 않네
新年無日不思家 새해 들어 집 생각 안한 날이 없네
豈有功夫管物華 세상 화려한 일 참견할 능력이 어찌 있으리
寂寂小村來往斷 적적한 작은 마을 사람 왕래도 끊어지고
西山依舊夕陽斜 서산에는 예처럼 석양이 기우네
讀杜詩 두보의 시를 읽고
操心如孟子 마음가짐은 맹자 같고
紀事如馬遷 역사 다루기는 사마천이라.
文章振厥聲 문장으로 명성을 떨치고
惻怛全爾天 인자한 마음은 그의 천성이어라.
法服坐廊廟 조정의 일에는 원칙 그대로
禮樂趨群賢 예락에도 여러 성현 본받았네.
門墻高數仞 쌓은 경지 높아서 몇 길 담장 높이요
後來徒比肩 뒷사람들 다만 어깨 높이만 겨룰 뿐이라네.
何曾望堂奧 어찌 집안 그윽한 곳을 들어다 볼 수 있으리
矯首時茫然 고개를 고쳐들어 봐도 아득하기만 하네.
2
錦里先生豈是貧 금리선생 두보는 어찌 이다지도 가난한가
桑麻杜曲又回春 두곡의 뽕나무 삼나무 밭에 또 봄이 찾아왔네.
鉤簾丸藥身無病 발을 내리고 환약지으니 몸에는 병 없고
畵紙敲針意更眞 종이에 바둑판과 바늘 두들겨 낚시 바늘 만드니 그 마음 참되도다.
傀値亂雜增節義 우연히 난리 만나 절의를 더할망정
肯因衰老損精神 쇠하고 늙었다고 정신까지덜어지랴
古今絶唱誰能繼 고금의 절창을 누가 이어갈 건가
賸馥殘膏丐後人 남은 향기 남은 기름 후세 사람들 빌리리라.
錦里, 杜曲 -杜甫가 살았던 地名
亂離 - 안록산의 난
讀書
讀書如遊山 글 읽기란 산에 오르는 것 같아
深淺皆自得 깊고 옅음이 모두 자득함에 달려있네.
淸風來徐寥 맑은 바람은 천천히 하늘에서 불어오고
飛雹動陰黑 나는 우박은 어두운 곳에서 내려오네.
玄虯蟠重淵 현규(玄虯)는 깊은 못에 서려있고
丹鳳翔八極 붉은 봉황은 하늘로 날아오르네.
精微十六字 정미한 열여섯 글자
的的在胸臆 분명하게 가슴에 간직하네.
輔以五車書 다섯 수레의 책 읽어서 돕고
博約見天則 능히 하늘의 리치를 본다네.
王風久蕭索 옳은 기풍 오래도록 쓸쓸하고
大道예荊棘 큰 길은 가시나무에 가려있네.
誰知蓬窓底 뉘 알랴, 봉창 아래에서
掩卷長太息 책을 덮고 길이 탄식하는 것을.
獨坐
寂寂虛堂白晝長 쓸쓸한 빈 집에 낮은 길어
乾坤一片黑甛鄕 천지는 한 조각 흑첨향이로구나.
數聲啼鳥南風細 두어 울음 새소리 들리고 남풍은 미세한데
身世悠然墮渺茫 신세는 아득하여 묘망히 떨어지네.
讀漢史 한나라 역사를 읽다
吾道多迷晦 나의 도가 심하게 어두워지니
儒冠摠冶容 갓 쓴 선비들 다 겉만 꾸미는구나.
子雲殊寂寞 양자운이 특별히 적막했다하고
伯始自中庸 백시 호광은 스스로 중용이라고 하였네.
六籍終安用 육경의 책을 마침내 어디 쓰리오
三章竟不從 약법삼장을 끝내 따르지 못했구나.
悠悠千載下 유유히 지난 천 년 뒤
重憶孔明龍 와룡선생 공명을 다시 생각한다.
楊子雲 - 字가 子雲인 한나라 때의 유학자인 揚雄을 가리킨다.
伯始中庸 - 漢 나라 胡廣의 字가 伯始인데, 경학에 익숙하고 나라의 원로로서 삼공의 지위에 있으면서 모든 정무를 잘 처리하였으므로 당시의 사람들이 “모든 일이 처리되지 않거든 백시에게 물어라. 천하의 중용은 호공에 있네.”라 하였다. 그러나 당시에 왕씨가 세력을 부려서 나라를 빼앗았는데도 그는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몸만 보전하니, 후세에서는 이를 “胡廣의 中庸”이라고 기록하였다.
約法三章 - 漢나라 고조가 진나라를 멸한 후 함양 지방의 유력자들에게 약속한 3조의 법.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고, 남을 상해하거나 절도한 자는 벌하며, 그 밖의 진의 모든 법은 폐한다는 것이다.
東山
東山高頂立移時 동산 높은 꼭대기에 오래도록 서있으니
思入鴻濛自不知 생각이 홍몽해 나도 모르겠노라.
飛鳥片雲俱縹渺 날아가는 새와 구름 모두 아득하고
連岡斷壟自逶迤 잇닿은 멧부리와 끊어진 언덕들 모두가 구불구불하네.
秋風老杜破茅屋 가을바람에 두보는 지붕이 부서지고
落日山公倒接罹 지는 해에 산간 공은 두건을 뒤집어썼다네.
畎畝忘君非我志 임금 잊고 밭에 사는 것이 내 뜻 아니니
更將餘力念安危 다시 장차 남은 힘으로 나라의 안위를 생각하리.
洞庭晩靄 동정호 저녁노을
一點君山夕照紅 점처럼 작은 한 봉우리 군산에 저녁노을 붉고
闊呑吳楚勢無窮 오나라와 초나라 땅을 삼킬 듯 기세가 끝없도다.
長風吹上黃昏月 불어오는 긴 바람이 황혼녘 달을 불어 올리니
銀燭紗籠暗淡中 은 촛불 비단 등롱 아래에 은은히 비쳐드네.
豆粥
冬至鄕風豆粥濃 나라 풍속 동지에 콩팥죽 짙게 쑤어
盈盈翠鉢色浮空 푸른 사발 그득 담으니 빛깔이 뜨는구나.
調來崖蜜流喉吻 언덕에서 딴 꿀을 섞어 목구멍에 넘기면
洗盡陰邪潤腹中 음사한 기운 다 씻어내어 뱃속이 훈훈하도다.
滕王閣圖
落霞孤鶩水浮空 지는 노을에 외로운 따오기 물위 허공을 날고
畫棟飛簾雲雨中 화려한 기둥과 날리는 주렴은 비구름 속에 있도다.
當日江神知我否 그때의 그 강의 신은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何時更借半帆風 어느 때 다시 반쯤의 돛 바람을 빌려 주려나.
訪蜜城兩朴先生還京 밀성 두 박 선생을 방문하고 서울로 돌아오다
碧桃花下月黃昏 푸른 복사꽃 아래 황혼녘의 달
爭換長條雪灑樽 다투어 긴 가지 잡으니 꽃잎은 눈처럼 술잔에 떨어진다.
當日回遊幾人在 그날 같이 놀던 사람 몇 사람이나 남았는지
自怜攜影更鼔門 그림자 이끌며 다시 문 두드려 보는 내가 가련하여라.
奉寄伯父 받들어 백부님에게
西風昨夜入庭柯 서풍이 어젯밤 뜰 앞 나뭇가지에 불어와
回首思鄕可若何 머리 돌려 고향 생각하는 마음 그 어떠하리오.
藍蒲蓴絲飛醉席 남포의 순나물 술 취한 자리에 나돌고
鎭江秋色滿漁衰 진강의 가을빛 어부의 도롱이에 가득합니다.
兄弟無故歡情足 아우와 형 무고하니 기쁜 마음으로 만족하고
父老相從樂事多 부모님들 서로 만나 즐거운 일 많습니다.
獨恨遠遊心況惡 멀리 있는 마음 옳지 않아 홀로 한스러워
黃塵昧目語音訛 누런 먼지에 눈 흐리고 말소리도 변했습니다.
浮碧樓 부벽루(모단봉아래 절벽 위 누각)
昨過永明寺 어제 영명사를 지나다가
暫登浮碧樓 잠시 부벽루에 올랐네
城空月一片 성은 비어 달 한 조각만 있고
石老雲千秋 오래된 돌에 구름은 천년세월
麟馬去不返 기린은 가고 돌아오지 않으니
天孫何處遊 천손(天孫)은 어디에서 노니는가
長嘯倚風磴 길게 휘파람 불며 바람 부는 돌계단에 기대니
山靑江水流 산은 푸르고 강물은 그저 흘러만 가네
영명사 - 평양에 있는 절 392년 광개토대왕 시기에 건립 아도화상이 머뭄. 부벽루의 서쪽에 있다.
부벽루 - 평양 모란봉 동쪽 청류벽 위에 서 있는 누각 고려 초 영명사의 부속 건물로 건립되었다
기린말 - 동명왕이 평양 영명사 근처 기린굴과 조천석에서 기린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평양지역 전설을 말함
浮生 뜬 구름 인생
浮生安足恃 뜬 구름 인생을 어이 믿으리오
老病競侵尋 늙고 병드는 것이 다투어 침노하는구나.
日月環雙鬢 해와 달은 두 귀 밑머리에 고리를 달고
乾坤矢一心 하늘과 땅은 한 마음에 화살을 쏘는구나.
袖風晴倚杖 소매에 바람 드는 갠 날 지팡이에 기대고
衣露夜鳴琴 이슬에 옷 젖는 밤에 거문고를 울리는구나.
萬慮自此靜 온갖 생각이 이로부터 고요해지니
渺然天地深 까마득하게 천지는 깊기만 하다.
復作遣興 다시 지어 흥을 풀며
賣藥有異人 약을 파는데 이상한 사람 있어
市上常懸壺 시장에 항상 병을 매달고 있다.
指我蓬萊山 나에게 봉래산을 가리키니
迢迢天一隅 멀고 아득하여 하늘 가였다.
汝當戒有欲 너는 마땅히 욕심을 경계하라
神龍猶被屠 신룡도 오히려 도륙을 당하였도다.
授之靑玉訣 청옥결을 주고
贈以明月珠 명월주도 주었도다.
自玆斥繁麗 이로부터 번화한 것을 버리고
高歌于蔿于 우위우(于蔿于)를 높이 노래하였다.
晨登泰山頂 새벽에 태산 마루에 오르니
東海如杯盂 동해가 겨우 사발만하구나.
俯視昔人跡 구부려 옛 사람 자취 보고
流觀輿地圖 여지도를 훑어보았도다.
興亡一軌轍 흥망은 똑같이 밟은 길이요
勝負眞樗蒱 승부는 참으로 도박이었도다.
日月如車輪 일월은 수레바퀴처럼 둥글며
蓋非儒者癯 대개 유자의 파리하게 여윔이 아니도다.
歸來守玄牝 돌아와서 현빈을 지키니
一源分萬殊 한 근원이 만 가지로 나뉘었구나.
靑靑寒磵松 푸르고 푸른 산과 계곡의 소나무
漠漠春汀蘆 멀고 아득한 봄 물가의 갈대로다.
天公囿萬物 조물주에 만물의 우리가 되었으나
達者或能逋 달관한 이는 혹 벗어나기도 한다.
刀圭得仙藥 도규가 선약을 얻으면
駕鶴靑雲途 청운 길을 감에 학을 타리라.
復作絶句 다시 절구를 짓다
絶壁飛湍雪灑矼 절벽엔 여울물 튀고 다리에는 눈 내리는데
氷消春水漲驪江 얼음 녹은 봄물 려강에 출렁이네.
高人獨坐扁舟去 처사가 혼자 앉아 배타고 떠나니
無數靑山自滿牕 무수한 푸른 산들 선창을 스쳐가네.
蟬聲
細泉流月葉號風 샘물에 달빛 흐르고 나뭇잎 바람에 떨 제
欲斷還連乍異同 끊길 듯 이어지고 언뜻 같고 다르네.
曾記客程搔首立 나그네 길에 머리 긁고 섰던 일 기억나니
滿山紅樹夕陽中 온 山 붉은 단풍 숲 우거진 석양 아래서.
秋風吹遍地天中 가을바람은 천지간에 두루 불어 대지만
未必蟬聲處處同 매미 소리는 곳곳마다 반드시 같진 않네.
怨妾逐臣頭盡白 원한의 妾 쫓겨난 신하는 백발이 되었는데
大官豪俠面浮紅 호협한 고관대작은 얼굴에 홍조를 띠누나.
牧翁長嘯振乾坤 목옹의 긴 휘파람 천지에 떨칠 제
山擁高樓柳擁門 산은 누각 감싸고 버들은 문을 감쌌네.
入耳蟬聲水投石 귀에 들리는 매미 소리와는 전혀 교감이 없어
心如灰冷獨忘言 식은 재 같은 마음으로 혼자 말을 잊노라.
心如灰冷 - 장자 齊物論에 “형체를 진실로 말라 죽은 나무처럼 할 수 있으며, 마음을 진실로 식은 재처럼 할 수 있겠는가."(形固可使如槁木 而心固可使如死灰乎)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전하여 마음이 외물에 전혀 동요되지 않음을 의미.
雪軒鄭相宅 靑山白雲圖
山本乎止本乎靜 산은 그침이 본색이고, 고요함이 본색인데
雲可以西可以東 구름이야 동서 어디라도 떠다닌다.
本乎止靜者有體而附地 그침과 고요함이 본색인 것은 형체가 땅에 붙은 탓이고
可以西東者無心而隨風 동서로 떠다니는 건 무심히 바람을 따른 탓이다.
一動一靜將觀物所性 움직이고 쉬는 데서 사물의 성격을 보았네만
或靑或白已累吾之瞳 푸르기도 하고 희기도 해서 내 눈에 누를 끼치네.
小雨 보슬비
細雨濛濛暗小村 보슬비 보슬보슬 작은 마을 어둡고
餘花點點落空園 남은 꽃 점점이 빈 동산에 떨어진다.
閑居剩得悠然興 한가한 삶 여유로운 흥취가 일고
有客開門去閉門 손님 오면 문을 열고 손님 가면 문을 닫는다.
松風軒詩
月入濁水月無影 달이 흐린 물에 드니 그림자가 없고
風觸頑石風無聲 바람이 단단한 돌에 부딪히니 소리가 없구나.
樹木然後風振蕩 수목이 있어야 바람이 진동하고
水泉然後月分明 물 흐르는 샘이어야 달빛도 분명하다.
江於水也最潔淨 강은 물에서 가장 깨끗하고
松於木也尤崢嶸 소나무는 나무에서 가장 우뚝하다.
乃知相遇異於常 서로 만남이 보통과 다름을 알겠으나
豁達之士取之名 확 트인 선비라야 그것 취하여 이름 짓는다.
嬾翁江月似奮白 란옹화상의 강의 달은 예처럼 희고
絶澗松風今又淸 절간의 소나무 바람은 지금도 맑도다.
月白風淸太平曲 달 밝고 바람 맑음에 태평곡 소리
寥寥天地誰能賡 적막한 천지에서 누가 능히 화답하리오.
我今把筆歌松風 나 이제 붓을 잡고 솔바람을 노래하려니
筆底髣髴松風生 붓 끝에는 솔바람이 이는 듯하다.
松風搖月江湧波 솔바람은 달을 흔들고 강에는 물결이 솟는데
對境淡然忘世情 이 광경을 바라보니 담담히 세상풍정 다 잊는다.
大空至靜萬古碧 허공은 지극히 고요하여 만고에 푸르고
聲色何從而滿盈 소리와 빛은 어디서 따라와 천지에 가득한가.
況今描出影中影 하물며 이제 그림자 속 그림자를 그려내려니
適使外物搖吾精 때마침 외물이 나의 정신을 흔들리게 한다.
且向松風江月兩佳處 솔바람과 강 속의 달 두 가지 아름다운 곳 찾아
高臥鼻息如雷鳴 높이 누워서 우렛소리처럼 코 골며 쉬어보리라.
示子孫 자손에게
形端影豈曲 모양 단정하면 그림자가 어이 삐뚤어지며
源潔流斯淸 근원이 깨끗하면 흐르는 물은 맑기만 하다.
修身可齊家 몸을 닦아야 집안을 다스릴 수 있으며
無物由不誠 어느 물건도 정성에서 나오지 않은 것이 없다.
荒淫喪本性 거칠고 음란하면 본성이 사라지고
妄動傷元精 망령되게 행동하면 근본 정기가 상하느니라.
所以戒自斲 그래서 스스로 제 몸 깎지 말도록 경계해야지
斲根木不榮 뿌리가 깎이면 나무는 번성하지 못하리니.
寢席燕安地 잠자고 편안히 노는 자리에도
天性赫然明 타고난 성품은 언제나 뚜렷이 밝도다.
奈之何忽諸 어찌하여 소홀히 하리오
吾身所由生 내 몸이 난 곳을.
或褻而玩之 혹시라도 몸을 더럽히고 놀면
禽獸其性情 그 성품 금수와 같이 되리라.
嗟嗟我子孫 아아, 내 자손들은
視此座右銘 이 글을 자리 옆에 두고 보아라.
詩酒歌
酒不可一日無 술은 하루도 없을 수 없고
詩不可一日輟 시도 하루도 쉬지 못할 것이라네.
仁人義士心膽苦 어진 사람과 의로운 선비란 본래 마음이 괴롭고
欲寫未寫絶未絶 시를 쓰려 해도 쓰지 못하고 술을 끊으려도 끊지 못하네.
湘魂沈沈水無波 상수에 혼이 잠겨 물결도 일지 않고
蜀魂磔磔山有月 소쩍새(蜀魂)가 울 때 산에는 달이 뜬다.
手引深盃蒼海飜 손으로 깊은 잔 잡으니 창해가 기울어지는 듯
口吟長句飛電決 입으로 긴 글귀 읊으니 번개가 번쩍이는 듯하네.
盡將磊落付雲虛 뇌락한 모든 회포 저 빈 구름에 부치고
不向須臾辨生滅 잠시동안 죽고 사는 것 상관하지 않는다네.
人間詩酒功第一 사람에게는 시와 술의 공이 제일 크니
多少危時保明哲 위태로운 때 몸 지켜준다네.
酒有狂詩有魔 술에는 광이 있고 시에는 마가 있으니
禮法不敢煩麾呵 예법이 어찌 감히 번거롭게 하리오.
自述名網卽樂土 명예를 멀리하면 그게 바로 천국이니
江山風月俱婆娑 강산의 바람과 달과 함께 이 세상을 살리라.
息機 / 機心 기회를 보고 움직이는 마음
往事細如毛 이미 지나간 아주 작은 일들도
明明夢中記 꿈속에선 선명하게 생각이 나네.
操戈欲逐儒 건망증 고쳐 준 사람 창을 들고 쫓아냈다는
此言殊有理 그 말에 참으로 일리가 있네.
徙室或忘妻 아내를 놔두고 이사를 했다는 것도
非徒偶語爾 우연히 한 말만은 아닐 것이네.
一病今幾年 몇 년간 병든 채로 지내온 지금
息機勝藥餌 기심(機心)을 내려놓는 것이 약보다 낫네.
新寓崇德寺 새로 숭덕사에 살면서
千車萬馬九街頭 천만 수레와 말들이 가득한 거리
咫尺祗林境自幽 지척의 숲은 너무도 고요하다.
枸杞暎𡏨紅欲滴 구기자 꽃 섬돌에 비쳐 붉게 물방울 지려는데
葡萄滿架翠如流 시렁에 가득한 포도 흘러내릴 듯 푸르다.
僧窓寄食前生事 중의 방에 기식하며 사는 일 생전의 일인가
客枕思親半夜愁 나그네 누워서도 부모님 생각에 밤을 설친다.
屈指歸軒今到未 손꼽아 돌아갈 생각하나 오늘도 가지 못 하고
鎭江煙雨滿漁舟 진강의 안개비 고깃배에 가득하다.
晨興卽事 아침에 일어나 보니
湯沸風爐鵲噪簷 풍로위에 물 끓고 처마에는 까치가 운다
老妻盥櫛試梅鹽 늙은 아내 세수하고 머리 빗고 음식에 간 맞추네
日高三丈紬衾煖 해는 세 발이나 솟았지만 명주 이불 속은 따뜻해
一片乾坤屬黑甛 한 조각 세상사 모두 늦잠 속에 있는 거지
흑첨(黑甛) - 酣睡, 단잠을 말함
十九日立秋 십구일 입추에
我病思消暑 나 병들어 더위 사라지기 바랐더니
天憐又立秋 하늘이 불쌍히 여겨 다시 입추
蟬聲遶風榻 매미 소리 평상에 맴돌고
雁影近星樓 기러기 그림자 별보는 누각에 가까워
保養當加謹 몸 생각에 마땅히 더 신중해야지
驅馳且少休 마구 달리는 일 이제 좀 쉬면 어떠리
新涼可人意 새 서늘함이 사람의 마음을 좋게 하는데
江上有扁舟 강 위에는 조각배
晨興卽事 새벽 흥을 즐기며
湯沸風爐鵲噪簷 풍로에는 국 끓고 처마 끝에 까치 울고
老妻盥櫛試梅鹽 치장 끝낸 아내는 국물 간을 맞추네.
日高三丈紬衾煖 아침 해 높이 떠도 명주 이불 따뜻해
一片乾坤屬黑甛 세상일 나 몰라라 잠이나 더 자자.
夜詠
消磨豪氣入醇眞 호기를 없애고 순진 한 경지에 들어서니
漸悔高歌動鬼神 소리 높여 노래 불러 귀신 놀래던 일 후회스럽다.
少日賦傳希有鳥 젊어선 세상에 드문 새 부를 지어 전했고
老年說着不祥麟 늘그막엔 상서롭지 못한 기린을 말하는구나.
楚囚吟苦猶思越 초 나라 포로는 괴로워도 越 나라를 생각하고
孔聖名垂尙在陳 공자는 이름을 끼쳤으나 오히려 진에 있었구나.
自念秋風吹又急 생각하니 가을바람 급히 불어오는데
白頭難避庾公塵 백발이 유공이 날리는 먼지 피하기 어렵구나.
夜雨
夜雨空階滴不休 빈 뜰에 밤비 내려 그치지 아니하고
疾餘情興轉悠悠 병이 난 후라 마음이 더욱 아득하여라.
神仙已遠誰靑骨 신선은 이미 먼데 그 누가 신선이며
天地無窮我白頭 천지는 무궁한데 백발이 다 되었네.
頗信殘年如上瀨 여생을 생각하니 세월은 여울물 같이 빨라
可憐當日欲東周 가련하다, 당시에 동방의 주나라를 꿈꾸었다니.
祗今心跡誰能辨 지금의 내 마음 그 누가 알까
高臥元龍百尺樓 원룡의 백 척 누대에 높이 누워 있소.
夜吟
行年已知命 내 나이 이미 오십
身世轉悠哉 신세가 갈수록 망연하구나.
細雨燈前落 등잔 앞으로 가랑비 내리고
名山枕上來 산은 베개머리 앞으로 다가온다.
憂時知杞國 때를 근심하니 기(杞)나라 사람 마음 알겠고
請始有燕臺 시작을 청할 일에는 연나라 소왕의 누대가 있구나.
恰到俱忘處 내 나이 모든 것을 잊는 처지에 이르니
心原冷欲灰 마음 차갑기가 재와 같구나
憶山中
回首山中一惘然 산속의 일을 생각해보니 한결같이 아련하고
分明眼底記當年 눈앞에 생생한 그 해 일을 기억해 보노라.
風淸竹院逢僧話 대나무 뜰 맑은 바람, 스님 만나 이야기 나누고
草軟陽坡共鹿眠 풀 부드러운 양지 언덕에서 사슴과 함께 잤도다.
吹徹紫簫秋景遠 자색 퉁소 다 불고 나니 가을 풍경 멀어지고
讀殘黃卷午陰遷 책읽기를 다하자 한낮이 지나갔도다.
如今眯目紅塵暗 오늘처럼 세속에서 눈이 어두워지면
方寸無端百慮煎 내 마음은 까닭 없이 온갖 근심에 애가 탄다.
鱺江
不是無錢買小舟 작은 배 살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飄然直泝漢江流 표연히 한강 물결 바로 거슬러 오르리라.
只怜當戶龍山碧 다만 문 앞에 용산의 푸르름이 사랑스러워
日日呤詩獨倚樓 날마다 시를 읊으며 홀로 누각에 기대어 본다.
驪江迷懷 려강에서 빠진 마음
天地無涯生有涯 천지는 끝없고 인생은 유한하니
浩然歸志欲何之 호연한 돌아갈 뜻, 어디로 갈까.
驪江一曲山如畵 려강 한 구비, 산은 마치 그림 같은데
半似丹靑半似詩 절반은 단청그림, 또 절반은 시 같구나.
與葉公昭賦靑山白雲圖 섭공소와 청산백운도에 쓰다
風塵漠漠暗銷魂 풍진이 아득하여 은근히 사람의 넋을 녹이는데
獨立乾坤日欲昏 홀로 건곤에 우뚝 서니 해가 저물려 한다.
一望便知山下路 한 번 바라보매 곧 산 밑의 길을 알겠으니
好携藜校過雲門 명아주 지팡이 끌고 구름문을 지나가기 좋구나.
驪興淸心樓題次韻 여흥 청심루 시를 차운하여
恨無樓記冠篇端 청심누기도 없는 추녀머리 한스러운데
誰名淸心闕署顔 누가 청심이라 이름 하여 편액을 빠뜨렸나.
捍水功高馬岩石 물 막는 공적 큰 것은 마암석이요
浮天勢大龍門山 하늘에 뜰 듯한 큰 기세는 용문산이로다.
燠居雪落軒窓外 따뜻한 아랫목에 있으니 눈은 창 밖에 내리고
凉臥風來枕簟間 베개와 대자리 사이로 바람 불어와 서늘한데 누우니
况是春風與秋月 더구나 봄바람과 가을 달까지 있어
賞心美景更寬閑 아름다운 경치에 마음이 즐겁고 또 여유롭도다.
燕山歌
燕山之陽雲如堆 연산의 북쪽, 구름이 무더기로 쌓여서
龍飛鳳舞源源來 용이 날고 봉이 춤추듯 산세는 멀리서 뻗혔구나.
長城中斷居庸關 만리장성 중간에 끊어진 곳이 거용관이요
春風秋月軒轅臺 봄바람 가을 달은 헌원대로구나.
昭王一去亦已矣 연 소왕이 한 번 가서 다시 오지 않으니
黃金千載空塵埃 황금대가 천 년 동안 먼지로 되고 말았구나.
天旋地轉光嶽合 하늘 돌고, 땅이 돌아 삼광ㆍ오악이 合하여
土圭日影明堂開 토규(土圭)로 터를 잡고 명당을 열었도다.
四方漕廥蓄山海 사방의 조운으로 산해의 산물이 쌓이고
萬國玉帛馳風雷 만국의 옥백이 풍뢰처럼 달려오는구나.
吾聞在德不在險 덕망에 있고 험난함에 있지 않다는 말 들었으니
傳世百萬何疑哉 백만 세 누릴 것을 어찌 의심하리오.
秦皇唐明共一轍 진 시황ㆍ당 명황은 나라 잃기 한가지인데
不是驪山爲禍胎 려산만이 재앙의 원인이 된 것이 아니로다.
臨風獨立意蒼莽 바람 앞에 홀로 서니 뜻이 창망해지는데
日暮車馬爭喧豗 날은 저물고 수레와 말들이 왁자지껄 시끄럽다.
嶺南樓
嶺南樓下大川橫 영남루 아래 큰 물 비껴 흐르고
秋月春風屬太平 가을 달 봄바람이 태평이로다.
忽得銀魚森在眼 문득 눈앞에 삼삼한 은어
斯文笑語可聞聲 사문(斯文)의 웃음소리 귀에 들리는 듯.
斯文 - 유학, 사림(士林)
詠雪 눈을 노래함
松山蒼翠暮雲黃 송산 푸르른 데 저녁 구름 노랗더니
飛雪初來已夕陽 첫 눈 어지러이 날리고 이미 석양이 진다.
入夜不知晴了未 밤 되면 혹시나 이 눈 그치려나
曉來銀海冷搖光 새벽이 오면 은색 바다에 별빛이 차겠지.
靈芽茶
同甲老彌親 동갑내기는 늙은이라 더욱 친하여
靈芽味自眞 영아차의 맛은 절로 좋구나.
淸風生兩腋 양 겨드랑이에 바람 이나니
直欲防高人 바로 고상한 사람 찾아뵙고 싶구나.
詠流頭會 유두회에 대하여 읊다
爽然今日自無邪 기분 상쾌한 오늘은 절로 나쁜 기운 없어
冷徹肝腸絶滓査 뱃속까지 시원하고 티끌 한 點도 없다네.
灩灩玉盃傾竹葉 출렁출렁 옥 술잔엔 죽엽청을 기울이고
深深銀鉢吸瓊花 깊디깊은 은 사발엔 좋은 차를 마시자면
宛如明月雙溪水 완연히 밝은 달밤 쌍계의 물과 흡사하고
絶勝淸風七椀茶 맑은 바람 일곱 사발 차보단 월등히 나으리
爲問菜園羊在否 위하여 묻노니 채소밭에 양은 있었던가
氷漿雪餅亂交加 찬 음료랑 흰 떡만 어지러이 놓여 졌겠지.
用前韻 앞의 시의 운을 사용하다
僻近城南山更幽 성 남쪽 가까이 후미지고 산 또한 깊은데
誰歟千載獨忘憂 천 년의 근심 홀로 잊은 이가 그 누구던가.
天人對策治安日 천인대책 시절은 다스려져 편안한 날이요
前後出師危急秋 전후 출사할 때는 존망이 달린 시기였네.
深樹流鶯欹晝枕 깊은 숲에서 꾀꼬리 울 땐 낮잠을 자고
片雲飛鳥倚晴樓 조각구름에 나는 새 보며 누각에 기대기도 한다네.
無從陶寫心中興 마음속 깊은 흥취를 쏟아낼 길이 없으니
欲向禪窓擧話頭 선방에 가서 화두 들고 참선이나 하고 싶네.
雨暗江林 비 내려 어두운 강 수풀
天低山遠樹浮雲 하늘 낮고 산 멀어 나무 위엔 뜬 구름
政是江天日欲曛 바로 지금 강 위로 날이 저무는구나
虎嘯猿啼愁不盡 호랑이 소리 원숭이 울음소리에 근심은 끝이 없고
逐臣騷客苦思君 쫓겨난 신하와 문인들 임금 생각에 마음 괴로워라.
偶吟
桑海眞朝暮 상전벽해도 아침저녁의 일
浮生況有涯 덧없는 인생 하물며 끝이 있음에야.
陶潛方愛酒 도잠은 술을 좋아했고
江摠未還家 강총은 아직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네.
小雨山光活 가랑비 내려 산 빛은 살아나고
微風柳影斜 미풍은 버들그림자를 쓸어내리네.
句回還遊意 마음을 굽혀 돌아와 놀고 싶어
獨坐賞年華 홀로 앉아 한해의 화려한 풍경을 즐긴다.
偶題
李杜文章繼者稀 이백과 두보의 문장 잇는 자가 드무니
鳳凰何日更雙飛 봉황이 다시 쌍쌍이 나는 날이 그 언제일까.
功名滿世今難致 공명은 세상에 가득해도 지금은 이루기 어렵고
道德離倫古亦稀 도덕도 우뚝한 것은 옛날도 어려웠어라.
陶寫性情堪自養 성정의 도야는 스스로 감당할 수 있으며
敷陳政化有誰非 정치 교화를 꾀하는 일을 누가 비난하리오.
病餘詛嚼侍中味 병 앓던 끝에 되새겨 보는 시속의 맛
遇興時時筆一揮 흥을 만나면 때때로 붓 한 번 휘둘러보노라.
有感
1
非詩能窮人 시가 사람을 궁하게 할 수 없고
窮者詩乃工 궁한 이의 시가 좋은 법이다.
我道異今世 내 가는 길 지금 세상과 맞지 않으니
苦意搜鴻惃 괴로이 광막한 벌판을 찾아 헤맨다.
氷雪硇肌骨 얼음 눈이 살과 뼈를 에이듯 해도
歡然心自融 기꺼워 마음만은 평화로웠지.
始信古人語 옛 사람의 말을 이제야 믿겠네
秀句在羈窮 빼어난 시귀는 떠돌이 궁인에게 있다던 그 말.
2
天地宰洪爐 천지가 홍로를 주장하니
鼓鑄一何勞 만물 만들어 내기가 얼마나 수고로웠을까.
理以爲之主 이치로써 주장을 삼고
氣以分其曹 기운으로 그 무리를 나누었다네.
少或似麟角 적은 것은 혹 기린의 뿔 같지만
多奚趐牛毛 많은 것은 어찌 소의 털 뿐이겠는가.
仁義是膏粱 어진 마음과 의리를 고량으로 여기고
禮法爲笏袍 예법으로 홀과 도포를 갖추었다네.
粲然被天下 빛나게 천하에 두루 입혔으니
吾生安所逃 우리 사람들 도망할 곳 어디일까.
3
先生未必是淸流 선생이 반드시 청류가 아닌 것은 아니니
白髮蕭然獨倚樓 백발로 쓸쓸히 혼자 누각에 올랐도다.
晉相自尊寧仕宋 진 나라 재상 자부심에 어찌 송나라에 벼슬할까
韓仇已報可封留 한의 원수를 갚았으니 유후로 봉함이 마땅하다.
赤松鬱鬱寒雲晩 빽빽한 붉은 소나무 저녁 무렵에 찬 구름 일고
碧柳依依細雨秋 하늘하늘 푸른 버들에 가랑비 내리는 가을날이로다.
畢竟安心無寸地 필경 편안한 마음 한 곳도 없으니
每從天際望歸舟 매번 하늘 가 따라 돌아가는 배를 바라보노라.
4
病餘身世兩蘧蘧 병 앓은 후 나의 신세 모두가 아득하고
白髮如今數丈餘 흰 머리 지금 같이 자란다면야 몇 발이나 되리라.
豪氣何曾妾換馬 나의 호기로 어찌 첩을 말과 바꾸며
道情還似子非魚 도심으로는 도리어 자네는 물고기 아닌 것 같아라.
雲煙暗淡埋靑嶂 구름과 안개 암담하여 푸른 산 묻혔고
樹木參差際碧虛 나무들은 들쭉날쭉 푸른 하늘에 닿았다.
欲學蓋公淸淨處 개공(蓋公)의 청정한 곳을 배우려 하나
自憐衰老負吾初 노쇠하고 늙어 처음 뜻 저버림이 안타까워라.
5
新年寂寂掩柴扉 새해 적적히 사립문 닫고 있으니
當日親交亦漸稀 매일의 친교 역시 점점 드물어지네
不是老來忘物我 늙어서 사물과 나를 분별 못해서가 아니라
飄然久已向漁磯 훌쩍 떠나 낚시터로 향할 생각 오래라 그렇소
楡關小憩寒松禪師沽酒 유관에 잠깐 쉬니 한송선사가 술을 사왔다
寒風吹雪滿楡關 찬 바람이 불어서 눈이 유관에 가득하고
氷結疏鬑馬不前 성긴 수염에 얼음 얼고 말은 나가려 하지 않는다.
賴有吾師三昧手 우리 스님 삼매경의 솜씨 힘입었으니
破囊擎出醉鄕天 주머니 풀어 취향의 하늘을 집어 내셨구나.
自感
無悶是聖人 고민 없는 이는 바로 성인이요
遣之賢者事 이 근심 버림이 어진 이의 할 일.
戚戚以終身 근심하다가 죽으니
斯爲小人耳 이게 바로 소인의 일이로다.
我學本空疎 나의 배움 텅 비고 소홀하고
我行多乘異 내 행동은 이상한 것 많다네.
有聲觸于耳 소리가 있어 귀에 부딪치면
妄動寧復止 망령되게 움직여 다시 어찌 그칠까.
鶯語融吾神 꾀꼬리 울음은 내 정신을 융합시키고
蟲鳴悽我志 벌레 소리는 내 생각을 처량하게 한다네.
我則踐我迹 내가 내 자취 밟아
歲月其逝矣 세월은 흘러가기만 한다네.
抑戒皎如日 계율을 지킴은 해처럼 밝은 것이니
尙期無自棄 오히려 스스로 버리지 말기를 기약한다네.
自儆箴
五十歲秋九月初吉 쉰 살 되던 해 가을 구월 초하룻날
作自儆箴 나는 자경잠을 지어
朝夕觀之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며
庶以自勉 정성을 다하여 몸소 지키려 하였다.
若近焉而遠之 (그러나) 가까운 것 같다가도 멀어지고
若得焉而失之 얻은 것 같다가도 잃었다.
遠矣而時近也 멀다고 느꼈으나 때때로 가까운 듯하였으며
失矣而時得也 잃었다고 느꼈으나 때때로 얻은 듯도 하였다.
茫乎無所措也 아득하고 막막하여 손길 닿는 바가 없었으나
赫乎如有覿也 불꽃처럼 밝아서 분명히 볼 때도 있었다.
赫乎或昧焉 환하게 밝았으나 때로 어두워 보이지 않았고
茫乎或灼焉 아득히 멀었으나 때로 밝은 빛이 보였다.
將畫也不忍焉 (버릴 것은) 찾아 끝내려고 하였으나 차마 그리 못하였고
將彊也不足焉 (할 일은) 더욱 힘쓰고자 하였으나 끝내는 힘이 닿지 않았다.
宜其自責而恧焉 마땅히 스스로 꾸짖고 또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하리라.
五十而知非 쉰 살이 되어서야 무엇이 잘못인지 알게 되었고
九十而作抑 아흔 살이 되어서야 위무공은 억(抑)이란 글을 지었다 하니
斯吉之自力也 이것이 옛 사람이 스스로 힘쓰며
尙不懈于一息 숨 한 번 쉬는 동안에도 게으르지 않고자 애쓴 까닭이 아닌가!
勉之哉勉之哉 스스로 낙심하여 스스로 저버리다니
自暴自弃 이 자포자기는
是何物邪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衛武公 - 주나라 무왕의 아우
雀噪 새의 저저귐
雀噪茅簷日欲西 참새는 처마에서 지저귀고 해는 지는데
遙憐晏子惜泥谿 아득히 안자가 니계(泥谿)를 아끼던 일이 가엾구나.
王風幸矣興於魯 왕풍이 다행하여라, 노나라가 흥하려는데
女樂胡然至自齊 여악(女樂)이 어찌하여 제나라로부터 이르렀던가.
衰草淡煙迷遠近 쇠한 풀 자욱한 안개에 먼 곳 가까운 곳을 몰라
白雲靑嶂互高低 흰 구름 푸른 산이 번갈아 높았다 낮았다 한다.
鳳歌忽向門前過 봉의 노래가 문득 문 앞을 지나가니
老我方將傳滑稽 늙은 나는 막 붓을 들어 골계전을 지으려한다.
蠶婦 누에치는 아낙네
城中蠶婦多 성안에 누에치는 아낙네들 많고
桑葉何其肥 뽕잎은 어찌 그리 두터운지.
雖云桑葉少 뽕잎이 적다고 말들은 많으나
不見蠶苦飢 누에치기의 고통과 굶주림은 보지도 않네.
蠶生桑葉足 누에가 생길 때에는 뽕잎이 충분했는데
蠶大桑葉稀 누에가 커지니 뽕잎도 부족해지네.
流汗走朝夕 아침저녁 땀을 흘려 일 해도
非緣身上衣 자신의 옷감은 결코 아니라네.
將訪朴挺執義有作 집의 박정을 방문하려고 하면서 짓다.
有意尋人梨峴東 이현 동쪽으로 사람 찾아 가려는데
春寒料峭更顚風 봄추위 어슬하고 다시 심한 바람부네
閤門同列應無幾 같이 벼슬 시작하던 동기들 얼마 남지 않았으리
當日少年成老翁 그때 소년들 늙은이 되었으니
漢江北岸華山東 한강 북쪽 북한산의 동쪽
茅舍高低大野風 띠 집은 높고 낮은데 들판에는 바람
匹馬往年曾過此 필마로 옛적에 이곳을 지났었지만
不知中有柏臺翁 사헌부 늙은이 이곳에 사는지 몰랐네
還笏中朝老海東 원나라 홀을 돌려주고 해동에서 늙는데
白頭門巷又春風 백발로 거리에서 또 다시 봄바람을 맞네
人生難得桑楡景 인생에서 얻기 어려운 것이 늙어서의 호사
晩歲功名憶恥翁 만년의 공명으로 그대 부친을 생각하네
집의 - 사헌부의 정3품 관리(고려) 종3품 관리(조선)
이현 - 현 종로4가 지역. 동대문 시장 부근
합문 - 편전 앞문, 고려 때 의례를 맡던 관아
료초 - 이른 봄의 약한 추위
화산 - 중국 서안의 산 5악의 하나. 여기서는 북한산
상유 - 저녁 해 질 무렵. 뽕나무와 느릅나무에 해가 걸린 모습. 죽음이 임박한 나이
백대 - 사헌부의 별칭. 한나라의 어사대
치옹 - 박정의 아버지 박충좌를 말함 그의 호가 恥菴 고려후기의 문신으로 예안 역동서원에 제향되어 있다.
田家
一犁微雨暗田家 밭갈이에 좋은 가랑비 내리니 농가가 어둑해지고
桃杏成林路自斜 길은 복숭아 살구나무 숲 사이로 절로 비껴있구나.
歸跨老牛蔉半濕 늙은 소타고 돌아오니 도롱이는 반쯤 젖어있고
陂塘處處泛殘花 비탈 못 속에는 곳곳에 시든 꽃잎 떠있네.
煎茶卽事 차 달이는 일
春入溪山畵不如 계곡과 산에 봄이 오니 그림도 이만 못하리
輕雷一夜動潛虛 가벼운 천둥이 밤새 적막함을 깬다.
花瓷雪色朝食後 아침 식사 후 꽃 자기잔에 눈빛 차를 마시고
石銚松聲午睡餘 돌 냄비에 물 끓는 소리에 낮잠을 즐긴다.
弄月宛然親面見 달을 즐기며 친히 완연한 모습을 보고
乘風欲問到頭蘇 바람을 타고 소생한 곳을 묻고 싶구나.
髮絲誰是忘機者 하얀 귀밑머리에 누가 기심을 잊은 者인가
淨洗胸中書五車 흉중의 수많은 글 깨끗이 씻은 이로구나.
絶句
玉堂高處絶塵埃 옥당 높은 곳엔 먼지도 없는데
白日淸風動綠槐 대낮에 맑은 바람 푸른 느티나무 흔든다.
一揖長官終日坐 장관에게 한 번 인사하고 종일 앉아있어도
數聲啼鳥滿庭苔 몇 마디 새소리 들리고 뜰에는 이끼만 가득하다.
貞觀吟楡林關作 정관에 유림관을 읊어 짓다
晋陽公子結豪客 진양공자가 호걸들과 친분 맺어
風雲壯懷滿八極 풍운의 장한 회포 우주에 가득했다.
赫然一起揮天戈 기운차게 한 번 일어나 하늘 병기 휘두르니
隋堤楊柳無顔色 수제의 버드나무 방죽이 빛을 잃었었다.
已踵殷周成武功 은나라와 주나라 본받아 무공을 세웠으니
宜追禹夏敷文德 순임금과 우임금 본받아 문장의 덕을 펴야 하리라.
持盈守成貴安靖 가득 찬 것 지키고 성취 유지함에는 안정이 제일이라
好大喜功多反側 큰 일 즐기고 공로 좋아하면 잘못되기 쉽도다.
三韓箕子不臣地 우리나라는 기자 때부터 중국이 신하 삼지 않던 땅이니
置之度外疑亦得 예외로 하여 그냥 둠이 좋았을 것을
胡爲至動金玉武 어찌하여 금옥과 같은 발걸음을 일으켜
啣枚自將臨東土 말에 재갈 물리고 스스로 동쪽 땅으로 몰려왔던가.
貔貅夜擁鶴野月 날쌘 군사들 달밤에 안시성을 에워싸고
旌旗曉濕鷄林雨 무수한 깃발은 계림에 내리는 새벽 비에 젖었다.
謂是囊中一物耳 주머니 속 물건 취하듯 쉽다고 말하더니
那知玄花落白羽 눈동자 흰 깃에 적중될 것을 그 누가 알았을까.
鄭公已死言路澁 정공이 이미 죽어 언로가 막혔다가
可笑豊碑蹶復立 우습게도 쓰러뜨린 큰 비석을 다시 세우다니.
回頭三叫貞觀年 머리 돌려 정관의 연호를 세 번 소리쳐 보니
天末悲風吹颯颯 하늘 끝에서 슬픈 바람만 쌀쌀하게 불어오는구나.
呈省郞諸賢
宦途今古足危機 옛부터 벼슬길은 위태한 계기 되기에 충분하나니
何怪衰年惹是非 늙으막에 시비에 얽힌 것 무엇이 이상하리오.
再拜聖恩天地大 하늘과 땅처럼 큰 임금의 은혜에 두 번 절하고
萬山殘雪掩柴扉 온 산에는 잔설이 가득한데 사립문을 닫아보노라.
題牧蓭卷 목암의 시권에 제(題)하다
亂山深處路橫斜 어지러운 산 깊은 곳에 길은 횡으로 비껴있고
日暮牛羊自識家 해가 저무니 소와 염소는 집을 알고 돌아온다.
此是老翁眞境界 이것이 곧 늙은이의 참 경계인지라
淡煙芳草接天涯 엷게 낀 안개와 방초는 하늘 끝에 닿았도다.
朝來 아침이 되어
朝來危坐便題詩 아침에 꿇어 앉아 문득 시를 짓노니
未必衰年耐苦思 노년의 괴로운 생각 잊기 위함만은 아니로다.
有興宛然成好句 흥이 생기면 완연히 좋은 시를 얻으나
只愁平淡格還卑 평담한 시격이 도리어 낮아질까 걱정일 뿐이로다.
早春寄呈伯父
草色靑靑柳色黃 풀은 푸르디푸르고 버들은 황금빛이라
尋春日日祗顚狂 연일 봄 구경이 미치도록 좋단다.
丁寧莫遣花開盡 제발이지 꽃들아! 활짝 피어 지지를 말게나
花欲開時興最長 너야말로 막 피어 날 때가 최고 신나는 때란다.
酒
酒不可一日無 술은 하루도 없을 수 없고
飮不可半盞多 마시면 반 잔으로 많다할 수도 없다.
導行和氣滌邪穢 온화한 기운 운행시켜 더러움을 씻어내니
如洗甲兵挽天河 전쟁을 씻어내려 은하수를 끌어당긴 듯.
或甘於口至於酗 혹 입에서 달아 주정하기에 이르면
百藥無計痊沈痾 깊은 병 고치기엔 백 약이라도 방법이 없다.
仁人義士節以禮 어진 이나 의로운 선비는 예로써 절제하고
狂夫豪客流失和 광기 사나운 호걸객은 휩쓸려 실화를 잃네.
靑山滿座白日靜 푸른 산이 자리 가득하여 대낮이 고요하고
門前或値高軒過 문 앞에는 어쩌다 고귀한 수레가 지나간다.
倒屣相迎石投水 신을 거꾸로 신고 마중하기가 돌을 물에 던지듯 하고
捫蝨坐談霜磨戈 이 잡으며 앉은 좌담도 서리에 칼을 간다.
是誰之力也歟哉 이것들이 누구의 힘인가
麴生之風兮之麴生薖 누룩의 풍류요 너그러움이다.
朝廷燕享天地泰 조정의 잔치나 제사로 하늘땅이 태평하고
六合便爲安樂窩 육합의 우주공간이 곧 안락한 집이 된다.
驅我生靈入壽域 나의 생명 신령을 몰아 수역에 든다면
我亦製進南熏歌 나도 역시 남훈가를 지어 올리리라.
中秋翫月上黨樓上 중추절에 달 보려 당루 위에 올라
去年翫月東樓下 지난해에는 동루 아래서 달구경했는데
柳林缺處金波瀉 버드나무 숲 사이에 금빛 물결이 쏟아졌다.
今年翫月西樓上 금년에는 서루 위에서 달구경하는데
薄雲弄影時滉漾 엷은 구름이 달그림자 희롱하여 때때로 아롱거린다.
主人豪氣蓋一時 주인의 호기가 한 시대를 덮었는데
飮不盡器還能詩 술 마심에는 그릇째로 마시고 시도 잘 짓는다.
憐我老病每相邀 내가 늙어 병든 것을 불쌍히 여겨 매번 서로 만나
歌呼不覺朱顔凋 노래하며 환호하니 얼굴빛 늙어 감을 모르노라.
去年今年一瞬息 지난해와 올해가 한 순간 사이거니
樽前劇談忘得失 술동이 앞에서 득실을 잊은 채로 마음껏 이야기한다.
紛紛世間足榮辱 분분한 세상에서 영욕도 충분하여
吾髮白兮難再黑 나의 머리 백발 되니 다시 검어지기 어려워라.
對月不飮吾則癡 달 보고서도 마시지 않으면 나는 바보이니
我思古人誰我師 옛 사람 생각해보니 누가 나의 스승이던가.
千鍾爲堯百斛孔 천 잔은 요 임금 위해서고 백 섬은 공자 위해서라
匪棘其欲維其時 그 욕심 막지 않고 때 맞춰 마셨도다.
我今不飮月應笑 내가 지금 마시지 못하면 달이 비웃으리라
月且少留吾一嘯 달이 잠깐 머물면 나도 한 번 휘파람 불리라.
嘯如鸞鳳前來天風 난새와 봉황새 같은 휘파람 소리로 불어오는 하늘 바람에
願言駕此遊彼蓬萊中 말하기를 원하노니 이것을 타고 저 봉래산 안에서 놀리라고.
卽事
1
幽居野興老彌淸 야외에 묻혀 사는 흥취가 늙을수록 더욱 많아
怡得新詩眼底生 새로운 시를 쉬이 얻어 눈앞에 펼쳐진다.
風定餘花猶自落 바람이 자도 남은 꽃은 스스로 떨어지고
雲移小雨未全晴 구름이 옮겨 가도 가랑비는 아직 개지 않았다.
墻頭粉蝶別枝去 담장 위 나비들은 꽃가지를 떠나가고
屋角綿鳩深樹鳴 집 모서리 비둘기는 깊은 숲에서 운다.
齊物逍遙非我事 달관의 경지는 내 일과 맞지 않으니
鏡中形色甚分明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면 아주 분명해지네.
2
平淡由來少味 평담함은 원래 맛이 없고
淸新各是多姿 청신함은 각각 많은 모양 있도다.
斧鑿了無痕迹 시문의 기교 같은 흔적 원래 없고
悠然採菊東籬 유연히 동쪽 울타리의 국화꽃을 채집한다.
天寶歌過薊門有感而作 계문을 지나며 느낌이 있어 천보의 노래를 짓다
天寶盛時何昌豐 천보 번성한 때 얼마나 풍성하고
天寶亂時何朦朧 천보 혼란 시에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沈香亭中春色濃 침향정 안 봄빛이 한창 무르익으니
漁陽鼙鼓聲鼕鼕 어양의 북소리 두둥둥 울려왔단다.
馬嵬山下飛塵紅 마외산 아래 먼지가 붉게 날고
天子劍佩鳴瑽瑽 천자의 검과 패옥 소리 울렸단다.
三風十愆在省躬 삼풍과 십건이 몸 살핌에 있나니
宴安鴆毒須愼終 연안은 짐독이라 마지막을 삼가야 하리라.
明皇一念常篤恭 명황의 일념 늘 돈독하고 공손했으면
此胡安敢行狂凶 저 되놈이 어찌 감히 횡포를 부렸으랴.
乃知人事非天窮 사람의 잘못이지 하늘의 궁색함 아님을 알겠으니
不見宮西施半酣歌吹濛 보지 않았나, 오나라 궁궐에 서시가 취하여 노래하고 춤출 때
越兵自渡江無風 월병이 멋대로 건너는데 강에는 바람 하나 없었음을.
天壽節入覲大明殿 천수절에 대명전에 들어가 뵈다
大闕明堂曉色寒 대궐 명당에는 아직 새벽빛 싸늘하고
旌旗高拂玉闌干 깃발은 높게 옥란간에 펄럭이네.
雲開寶座聞天語 보좌에 구름문 열리자 임금님 목소리 들리고
春滿金色奉聖歡 술잔에 봄빛 가득 채워 임금님 기쁨 받드네.
六合一家堯日月 온 세상 한집이니 요순임금 때의 해와 달이요
三呼萬歲漢衣冠 세 번 만세 부르니 한나라의 의관일세.
不知身世今安在 이 몸 지금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겠으니
恐足靑冥控紫雲 아마도 내 발은 하늘에 자색 구름 타고 있는 듯하네.
村家
村家雖索寞 시골집은 비록 쓸쓸하지만
見客便欣然 손을 보고 문득 기뻐하누나.
夜酒三杯穩 밤술은 석 잔이 무난하고
晨餐一味便 새벽밥은 한 반찬이 간편하네.
小泉生石底 작은 샘은 돌 밑에서 나오고
芳草到堦前 향기로운 풀은 뜰 앞까지 났구나.
門巷經過少 마을 앞으로 지나는 이 적어서
農夫政力田 농부는 농사에만 진력하누나.
秋日
曉上高樓獨自憑 이른 새벽 높은 누각에 올라 홀로 서니
白雲靑嶂共層層 흰 구름, 푸른 山이 모두 층층이네
一庭雨遇苔逾長 뜰에 비 내려 이끼 더욱 불어나고
勇里天晴日又昇 하늘이 개이더니 해가 떠오르네.
膽氣崢嶸身老大 기백은 높은데 몸은 늙었고
顔客枯槁鬂鬅鬠 얼굴은 마르고 수염은 희구나.
乾坤幾度秋風起 가을바람 부는데 천지는 몇 번이나 바뀌었나
回首江東憶李鷹 머리를 강동으로 돌려 이응(李鷹) 생각하네.
秋日書懷 가을 회포를 적다
秋雨蕭蕭送薄涼 가을비 소소히 내리니 서늘한 바람 불어오네
小窓危坐味深長 작은 창 아래 자리하고 앉으니 느낌이 그윽하다
宦情羈思都忘了 벼슬살이 객지살이 고달픔 모두 잊고
一椀新茶一炷香 찻잔에 새로 차를 따르고 향 한줄기 피운다
春晩
春晩南城翩綠蕪 늦은 봄 남쪽 성안 여기저기 풀 무성하고
寂寥庭宇鳥相呼 적막한 뜰에는 새들만 지저귀네.
天陰欲雨連山暗 흐려져 비 내리려 하니 온 산이 어두워지고
花落猶風掃地無 꽃은 져도 바람 불어 땅을 쓸어버리네.
放膽幾年揮筆札 호방하게 붓 휘두르기 몇 년이던가
乞身何日向江湖 핑계하고 고향 갈 날 그 어느 해인가.
古來豪傑能經世 고래로 영웅호걸 세상일 가벼이 여겼거늘
自笑區區一腐儒 나 구차한 한낱 썩은 선비임이 부끄러워라.
出鳳城
皇帝龍飛十八春 황제가 용비한지 18년
赫然萬目俱更新 빛나게도 모든 것을 새롭게 하셨다.
夔皐稷契效寅亮 기(夔), 고(皐), 후직(后稷), 계(契)의 인량을 본받아
躋世唐虞堯舜民 세도를 높여 요순시대의 백성이 되었도다.
磨光刮垢無不錄 빛을 갈고 때를 도려내어 기록하지 않음이 없고
黃鍾瓦缶相成倫 황종(黃鍾)과 와부(瓦缶)는 서로 차례를 이루었도다.
滋泉莘野迹如掃 신야에 샘물 불어 쓸어버린 듯하고
蒯絰牛角流芳塵 쇠뿔을 사초로 꿰매니 향기로운 기풍 흐른다.
天敎小臣生東坰 하늘이 나를 동쪽 들판에 태어나게 하였지만
變化氣質希螟蛉 기질을 변화시켜 백성 해치는 일 적게 할 것이리.
負笈來游壁水下 책궤를 짊어지고 중국에 유학하며
數年聽瑩絃誦聲 몇 년 동안 악기소리 알지 못하였도다.
今朝垂槖故山去 오늘 아침 빈손으로 고향에 가며
騎馬悠悠出鳳城 말 타고 유유히 봉성을 나선다.
醉中歌
先生有手探月窟 선생은 손으로 월굴을 더듬고
先生有足趍天闕 선생의 발로는 천자의 궁궐에 갔다네.
先生自是天帝子 선생은 이로부터 천제의 아들이니
意態乃與塵凡絶 뜻이나 태도 모두 범인과는 다르다네.
遠尋妙道出羲皇 멀리 깊숙한 진리를 찾아 복희씨에게로 나오니
瞠乎灝灝竝噩噩 넓고 넓도다, 엄숙한 글에도 눈을 돌렸네.
旁求精義竝思軻 또 자사와 맹가의 정밀한 뜻도 구하니
中庸一篇眞足樂 중용 한 편을 참으로 즐겼다네.
有時覂駕獨超群 때로 말을 달려 홀로 남에게 뛰어나니
莊騷班馬如飛蚊 장자와 굴원, 반고와 사마천이 모두 모기떼 같았다네.
先生獨笑齒久冷 선생이 혼자 웃자 이가 오래 싸늘하니
孔門諸子屯如雲 공문의 제자들 구름떼 같이 모였네.
雖然陋巷有眞樂 아무리 누추한 마을에 살아도 참 즐거움은 있으니
擧世誰復希淸芬 온 세상에 그 누가 맑은 향기 따르리오.
吾今老矣尙矍鑠 이제 나는 늙었으나 오히려 건강하니
高山仰止奚云云 높은 산을 우러름과 그침을 어찌 말하리.
先生且歌醉中歌 선생은 또 취중가를 노래하니라
天地浩蕩無偏頗 천지가 호탕하여 기울어짐 없었고
頭上日月如飛梭 머리 위엔 해와 달이 나는 북 같이 오고갔다네.
通州早發 통주에서 일찍 떠나
鐘動樓門曉色明 종소리 누각 문에 울리고 새벽빛 밝아 와
獨鞭嬴馬問前程 홀로 여윈 말에 채찍질하며 앞길을 묻는다.
半空白塔見雲影 반공(半空)에 솟은 흰 탑에는 구름의 그림자 보이고
一曲碧江聞棹聲 한 굽이 푸른 강에는 뱃노래 소리 들려온다.
東北山含王氣壯 동북쪽 산은 왕기(王氣) 머금어 장대하고
西南地拱帝都平 서남쪽 땅은 왕도를 끼고 평평하구나.
檣烏接翅桃花漲 돛대의 까마귀 날개를 맞대고 복사꽃은 물결에 흐르는데
穩送番商入鳳城 장사꾼들은 편안히 실려 봉성으로 들어가네.
板橋
板橋江畔草如煙 판교 강가에 풀은 안개처럼 우거졌고
落盡寒潮近午天 차가운 조숫물 떨어지니 낮이 가깝도다.
隔岸小舟呼不應 언덕 너머 작은 배는 불러도 대답 없고
漁人分去賣魚錢 어부들은 생선 판 돈 나누어 돌아가는구나.
韓山八詠
1 (崇井巖松)
峰頭蒼石聳 봉우리 마루에 푸른 돌 솟아있고
松頂白雲連 소나무 끝에는 흰 구름 이어 있다
羅漢堂寥闃 절하나 적막하게 있어
居僧雜敎禪 스님들 여기저기서 불전을 가르친다.
2 (日光石壁)
崔嵬揷平野 높다랗게 들판에 꽃혀 있어
漂渺俯長天 아득히 하늘을 굽어본다
翠壁僧窓小 푸른 벽엔 절의 창문 조그맣고
佛燈空半懸 불등이 공중에 매달려 있다.
3 (孤石深洞)
平野行將盡 평평한 들판 다 지나면
回峯望更高 돌아온 봉우리 돌아보면 다시 높아라.
一區幽僻處 한 구역 그윽하고 치우친 곳에
梵刹本來孤 절 하나 처음부터 외로이 서 있구나.
4 (回寺高峰)
後嶺如三角 뒷 고개는 삼각산 같고
前峰入半空 앞 봉우리는 하늘로 들었구나.
行舟缶鐵砭 지나던 배낚시를 드리우니
遮莫有狂風 아예 미친바람 막아서 불지 않게 하여라.
5 (圓山戌敲)
海嶠傳烽火 바다 속 뾰족한 봉우리 봉화 전하는데
閭閻壓波浪 민가에선 물결 이는 것 싫어하는구나.
百年無事地 백 년 동안 아무 일 없던 땅인데
戍敲夕陽多 수(戍)자리 북이 어이 석양에 시끄럽게 울리는가
6 (鎭浦歸帆)
細雨桃花浪 가는 비 내려 복사꽃 물결 일고
淸霜蘆葉秋 맑은 서리에 갈대 잎은 가을빛이로다.
歸帆何處落 돌아가는 돛단배 어느 곳에 머물려나
渺渺一扁舟 조각배는 아득히 떠나가누나.
7 (鴨野勸農)
川平原似砥 냇가는 평평하여 숫돌 같고
禾稼浩如雲 논의 벼들은 많아서 구름 같구나.
太守催星駕 태수는 말을 재촉하고
巡田欲夕曛 밭에는 석양이 지려하는구나.
8 (雄津觀釣)
馬邑山橫牆 마읍(馬邑)은 산이 가로 둘렀고
雄津水漆苔 곰나루는 물이 이끼에 물들었구나.
釣絲風裏裊 낚싯줄이 바람에 흔들거리고
恰得月明回 흡사 달이 밝아오는 것 같도다.
閑寂詩
夜冷狸奴近 차가운 밤 고양이는 가까이 붙고
天晴燕子高 맑은 하늘 제비는 높이 나누나.
殘年深閉戶 남은 해에 깊이 문 닫아 걸고
淸曉獨行庭 맑은 새벽 홀로 뜰을 걸으리.
漢浦弄月 한포에서 달을 노래함
日落沙逾白 해가 지니 백사장 더욱 희고
雲移水更靑 구름이 지나가니 강물은 더욱 푸르다.
高人弄明月 고인은 밝은 달을 노래하고
只吹紫鸞笙 나는 다만 자난생 피리를 분다.
寒風
1
寒風西北來 찬바람 서북에서 부니
客子思故鄕 나그네는 고향 생각에 잠기네.
悄然共長夜 쓸쓸히 긴 밤 함께하니
燈光搖我床 등불은 내 책상 둘러 흔드네.
古道已云遠 옛 도리는 이미 멀어지고
但見浮雲翔 다만 뜬 구름만 날고 있구나.
悲哉庭下松 슬프도다, 뜰아래 소나무
歲晩逾蒼蒼 날이 늦어 더욱 푸르고 푸르러라.
願言篤交誼 원컨대 사귀는 정이 도타우니
善保金玉相 금옥같은 모습 잘 보전하소서.
2
寒風西北來 찬바람 서북에서 불어
日夜吹不休 밤낮으로 쉬지 않고 불어온다.
雲飛碧空濶 구름이 날아 푸른 하늘 드넓고
樹木聲颼颼 나무 소리만 우수수 들려온다.
早衙有公事 관청에 공사가 있어
策馬披重裘 겹 갖옷에 말 채찍질하여 달려간다.
武夫喝官途 무부는 도로에서 관도소리 내는데
心中焦百憂 마음속에는 백 가지 근심에 초조하기만 하다.
何如日三丈 어떠하리 해가 세 길이나 높이 올랐어도
徐起猶蓬頭 천천히 일어나 머리도 빚지 않고 있다네.
3
寒風西北來 찬바람 서북에서 불어와
漸見層陰結 점점 두터운 음기 쌓인다.
坐知風勢闌 앉아서 풍세 요란한 것 듣겠고
又是天欲雪 또 하늘에선 눈이 내리려 하는구나.
須曳舞萬鶴 잠간동안에 수 많은 학이 춤을 추니
變化眞一瞥 변화란 참으로 눈 깜짝할 사이로구나.
閉戶獨微吟 문 닫고 홀로 고요히 글을 읊으니
途中車軸折 길에서는 수레 굴대가 꺾어지는구나.
時聞楚石琴 때때로 초석금 소리를 들으며
焚香更淸絶 향불을 피우니 한결 맑고 깨끗해지는구나.
曉霧
地氣天不應爲霧 땅기운에 하늘이 응하지 않으면 안개 되고
天氣地不應爲霧 하늘기운에 땅이 응하지 않으면 안개가 된다.
相應則雨又以時 서로 응하면 비가 되고 또 때에 맞게 되나니
在於洪範其徵休 홍범에도 그 징조가 아름답다고 했도다.
乾健坤順化萬物 하늘이 건하고 땅이 순하면 만물이 화육되나니
絪縕舒卷密以周 원기가 펴지고 닫혀지고 하면서 두루 미친다.
使之或沴失本性 간혹 순조롭게 하지 않으면 본성을 잃게 되나니
我不知兮誰之由 나는 모르겠구나, 누구 때문인가를
我不知兮誰之由 나는 모르겠구나, 누구 때문인가를
長吟短命今白頭 길게 읊어보고 짧게 읊어보다 이제 백발이 다 되었도다.
曉雨
其一
淸晨小雨酒茅簷 맑은 새벽 보슬비 처마를 적시니
客興悠然白柄鑱 흰 자루 쟁기에 나그네 흥이 쏠리구나
江上平田煙漠漠 강 위 너른 밭엔 안개가 자욱하고
山崖細逕草纖纖 산 언덕 오솔길에는 풀만 숭숭 돋아있네.
其二
載花侯館初開塢 꽃 실어다 나르는 집에선 맨 먼저 꽃둑을 열고
沽酒詩家欲典衫 시인은 적삼 잡혀 술 마시누나.
最是病夫謨口腹 나는 지금 병든 몸이라 몸 생각하여
海天歸思滿歸帆 바다로 돌아올 생각이 떠나는 배에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