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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도(尹善道)

遣懷                    속마음을 풀다

 

途中逢一犬              길을 가다 한 마리 개를 만났는데

尾長而色白              꼬리는 길쭉하고 털 색은 희었다.

兩日隨我馬              이틀 동안이나 내 말을 따라 다니며

下馬繞我馬              말에서 내리니 내 말 주위를 빙빙 돌아다닌다.

麾之終下懋              손을 내저으며 쫓아도 끝내 달아나지 않고

掉尾如有索              꼬리를 흔들며 무엇을 찾는 듯했었다.

奴婢欣投飯              노비들도 기꺼이 밥을 던져 주었고

爭思逐免策              다퉈 생각해주니 채찍질을 면하였다.

今朝忽不見              그러나 오늘 아침 갑자기 보이지 않으니

一行深歎惜              모두들 깊이 탄식하며 안타까워했다네.

來何不待招              어디서 왔는가 부르지 않았는데

去何不待斥              어디로 가버렸나 쫓지 않았는데.

造物於人世              인간 세상에 만들어진 사물들은

百事渾戱劇              백사(百事)와 혼돈이요 희극이로다.

得之不足喜              얻었다고 기뻐할 것도 없고

失之不足蹟              잃어버렸다고 아쉬워할 것도 없다네.

人之生與死              사람이 살고 죽는 것도

與此何殊跡              그 자취 이것과 어찌 다르리오.

乃知化去兒              이제야 알겠네 세상을 떠난 아이가

是我八年客              나의 팔 년 손님이었구나.

因此頓有悟              이 때문에 문득 깨닫게 되어

塡胸氣始釋              가슴에 응어리진 기운이 비로소 풀리는구나.

無乃舊仙侶              지난 세상 신선 세계의 친구가 아니었던가

哀我悲懷迫              서글픈 생각이 밀어닥쳐 나를 슬프게 하는구나.

爲之遣此物              날 위해 이 아이를 내게 보내어

以開迷惑膈              미혹된 가슴을 열게 하였구나.

路傍沙水明              길가의 모래와 물이 밝게 보이며

我意還有適              내 마음속이 다시금 편안해지는구나.

 

 

樂書齌偶吟

 

眼在靑山耳在琴          보는 것은 청산이요 듣는 것은 거문고 소리

世間何事到吾心          세상 어떤 일이 내 마음 사로잡을까.

滿腔浩氣無人識          내 마음에 가득한 호방한 기운 그 누가 알리

一曲狂歌獨自吟          한 곡조 노래를 나 혼자 미친 듯 읊어 본다네.

 

 

堂城後漫興              당성후의 흥취

 

入戶靑山不待邀          맞아들이지 않아도 청산은 창으로 들고

滿山花卉整容朝          산에 가득한 꽃들은 단정하게 조회하네.

休嫌前瀨長喧耳          앞 여울 물소리 시끄럽다 싫어 마소

使我無時聽世囂          시끄러운 세상 소식 듣지 않게 해준다오.

 

 

對案                    책상 앞에서

 

前山雨後蕨芽新          앞 山에 비 내린 뒤 고사리 새로 나니

饌婦春來莫更顰          料理師여 봄이 왔으니 다시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

滿酌玉泉和麥飯          沙鉢에 샘물 가득 담아 보리밥 말 수 있으니

幽人活計不爲貧          숨어 사는 사람의 살림살이 가난하다 생각마오.

 

 

對月思親                달을 보고 어버이를 생각하며

 

1

雨退雲消月色新          비 개고 구름 걷히자 달빛이 새롭고

靑天萬里淨無塵          푸른 하늘 만 리까지 티끌 없이 깨끗하다.

遙知此夜高堂上          멀리서도 알겠구나 이런 밤 부모님께선

坐對兒孫說遠人          자손들을 앞에 두고 내 얘기 하시겠지.

 

2

楸城明月擧頭看          추성의 밝은 달을 머리 들어 바라보니

月照東湖也一般          동호(자신)를 비춰주는 달빛도 일반이다.

姮娥若許掀簾語          항아가 발 걷고 얘기 들어 준다면

欲間高堂宿食安          어버이 편히 계시는지 물어보고 싶구나.

 

 

挽鄭生                  정생(鄭生)에 대한 만사(挽詞)

 

天邊獨樹吾新寓          하늘가의 한 그루 나무는 나의 새 집터

山下孤煙子舊莊          산 아래 외로운 연기는 그대의 옛 별장

草閣幾蒙驪馬枉          초당에 검은 말 타고 얼마나 찾아주었던가

詞壇又識白眉良          사단은 또 흰 눈썹 랑(백미, 마랑)인 줄 알고 있었다오.

膏肓鬼入悲無奈          고황에 마귀가 들었으니 이 슬픔 어이 하랴

薤露歌成涕自滂          해로의 노래 들려오니 눈물이 절로 흐르누나.

四子衆孫同擧櫬          네 아들과 손자들이 함께 영구 들었으니

何哀六十四年光          예순네 해의 광음을 어찌 슬퍼하리오.

 

詞壇 - 문인들이 모여 형성된 집단이나 단체

 

 

木槿                    무궁화

 

甲日花無乙日輝          첫날 핀 꽃은 없고 다음 날 핀 꽃이 빛나니

一花羞向兩朝暉          한 꽃은 부끄러이 두 날에 빛나네.

葵傾日日如馮道          무궁화는 날마다 바뀌어 풍도와 같으니

誰辨千秋似是非          누가 천추에 사이비를 가려내겠는가.

 

 

墨梅

 

物理有堪賞              사물의 이치에는 감상할 만한 것도 있어

捨梅聚墨梅              매화 대신 먹으로 그린 매화 그림을 취했네.

含章知至味              깊은 의미를 함축한 표현은 지극한 멋이 있으니

令色豈良材              겉 모양만 화려하다고 어찌 다 좋은 재목이리요.

自晦追前哲              스스로를 감추고 옛 성현들 따라

同塵避俗猜              세속에 함께 묻혀 시기 질투 피하네.

回看桃與李              화려한 복숭아와 오얏나무를 돌아보면

猶可作輿臺              오히려 그것이 시중을 든다네.

 

 

聞蟬

 

流火初三月              칠월 초사흘 날

聞蟬第一聲              처음 듣는 매미 소리.

羇人偏感物              귀양 사는 몸이라 그 소리 느꺼운데

塞俗不知名              변방 백성들은 이름조차 모르네.

飮露應無慾              이슬 먹고 살아서 욕심도 없으리니

號秋若有情              가을에 우는 매미 소리 마음 아파라.

還愁草木落              초목이 지는 소리 도리어 근심되어

未喜夕風淸              시원한 저녁 바람도 기쁘지도 않네.

 

 

思新舊                  오늘과 지나간 날을 생각하며

 

靑丘絶塞北              우리나라와 떨어진 변방 북녘

蝸室小城隈              작은 성 모퉁이 조그만 성

風雪春猶壯              봄인데도 눈보라 일어

柴莿晝不開              사립문은 낮에도 닫혀있네.

時聞隣犬吠              때때로 이웃의 개 짓는 소리 들려

還訝故人來              옛 친구가 찾아오는가 생각했네.

千以高山隔              천 길 높은 산으로 막혔으니

何由把一杯              무슨 일로 한 잔 술 나눌 수 있으리.

 

 

謝沈希聖辱和            심희성의 화답에 사례하여 짓다

 

且喜塵裾還一摻          소매 한 번 잡은 것만도 기쁜 일인데

何須淚眼更雙滋          어찌 또 두 줄기 눈물 흘릴 것까지야.

諸人未解歸心決          돌아가려는 내 마음을 사람들은 모르는데

惟子能諳去路遲          떠나는 발길 더딘 것을 그대만은 아는구려.

萬毁千誣那可較          온갖 비방과 모함 어찌 다 따지리

七顚八倒不爲疲          아무리 구르고 넘어져도 끄떡없소이다.

滄洲吾道由來久          원래 오래전부터 창주를 지향하였나니

張翰孤帆固所期          진정 기약하는 바는 장한의 돛단배 하나.

 

滄洲 - 숨어 살기 좋은 해변의 유벽한 승경을 가리키는 시어이다.

張翰孤帆固所期 - 장한처럼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가서 풍류를 즐기고 싶다는 말

 

 

西瓜                    수박

 

團圓入眼破吾顔          둥근 수박 보자마자 내 얼굴이 활짝

燥吻煩腸已覺寒          타는 입술과 답답한 속이 벌써 시원해지네.

安得沃心同此物          어찌하면 수박처럼 마음을 적셔줄

轉成明主壽民丹          세상사람 위로할 영약을 만들까?

 

 

新居對中秋月            새 거처에서 중추의 달을 바라보며

 

1

去歲中秋在南海          지난해 중추에는 남쪽 바닷가 있으면서

茅簷待月水雲昏          수운의 저녁 초가에서 달을 기다렸지.

那知此夜東溟上          어찌 알았으랴 오늘 밤은 동쪽 바닷가에서

坐對淸光憶故園          맑은 달빛 대하고 앉아 고향 생각할 줄을.

 

水雲 - 물과 구름의 고향이라는 뜻의 수운향의 준말.

 

2

雲消風定絶纖埃          구름도 없고 바람도 자고 티끌 하나 없으니

正是幽人玩月來          지금은 바로 유인이 달 구경하기 좋은 때라.

敢爲淸遊煩嘿禱          어찌 감히 청유 위해 번거롭게 묵도할까

龍鍾應被海仙哀          노쇠한 이 몸 해선의 동정을 받을 터인데.

 

 

與友遊孤山墅自內殿有酒饌之賜    친구들과 고산 농막에 놀았는데 내전에서 주찬을 보냈다

 

刺舟尋故園              배를 저어 옛 동산을 찾으니

山色正黃昏              산 빛은 마침 황혼이네.

宮壺誇釣叟              궁중에서 내린 주찬은 낚시꾼을 우대하고

仙樂動江村              신선놀이는 강촌을 움직이네.

誰知三日樂              누가 사흘 동안의 즐거움을 알겠는가

摠是九重恩              이 모두가 임금님의 은혜일세.

終南長在望              남산은 길이 보이는 곳에 있고

還向上東門              돌아와 동대문으로 오르려 하네.

 

 

五雲臺卽事 

 

雲臺高枕臥              오운대 높이 베고 누웠더니

山外浮雲過              산 너머 뜬구름 지나고

絶壑有松聲              골짝 끊어진 곳에 솔바람 소리

淸風來我左              이윽고 맑은 기운이 내 곁에 닿는구나.

 

 

偶吟 

 

金鎖洞中花正開          금쇄동 안 꽃이 한창 피어나고

水晶巖下水如雷          수정 바위 아래 물은 우레 같이 쏟아진다.

幽人誰謂身無事          숨어 사는 사람 일이 없다 누가 말하나

竹杖芒鞋日往來          대지팡이에 짚신 신고 날마다 오간다네.

 

이 시는 우연히 읊조린 것으로, 59세 때 지은 것이다. 금쇄동에 은거할 때 그 가운데 꽃이 바야흐로 피고, 수정암 아래 물은 우레같이 세차게 흘러간다. 은자가 할 일 없다고 누가 말했는가?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짚신 신고 날마다 왕래한다. 도연명의 「歸去來辭」에 “늙은 몸을 지팡이에 의지한 채 이리저리 소요하다가 아무 곳이나 내키는 대로 앉아 쉬기도 하다(策扶老以流憩).”의 시상과 일치한다.

 

 

玩月

 

玩月蒼巖下              푸른 바위 아래서 달구경 하려는데

飛蚊作雷聲              앵앵대는 모기 소리 천둥 울리듯 하네.

畏之欲入室              물릴까 싶어서 들어갈까 했지만

無由抱秋明              들어가면 가을 달을 품을 길 없네.

寧將遍身癢              온몸이 가려워 긁는 한이 있더라도

博此一心淸              맑은 마음 탁 트이게 할 수만 있다면야.

啖咋任汝爲              네 맘대로 실컷 뜯으려무나

霜風會有時              서릿발 칠 때도 分明 오리니.

 

 

臨湍道中

 

暮色千林樹              온 숲의 나무들은 황혼에 물들고

秋光一嶂楓              한 봉우리의 단풍나무엔 가을빛이 서렸다.

江煙橫遠抹              안개는 멀리 강을 가로질러 깔리었는데

夕雨下濛濛              저녁 비만 부슬부슬 내리는구나.

 

臨湍 - 지금 파주 근처

 

 

次班婕妤韻              반첩여 시에 차운하다

 

1

只歎妾命薄              첩의 운명이 기박함을 탄식할 따름이요

不怨君恩疎              임금의 총애 멀어짐은 원망하지 않았네.

誰識老宮女              누가 알리오 늙은 궁녀가

嘗辭共玉輿              옥수레 함께 타기를 사양했음을.

前魚固宜棄              전어는 버려짐이 원래 당연하고

團扇有時疎              둥근 부채도 시절 바뀌면 멀어지는 것.

自分如螢火              반딧불 같은 처지임을 잘 아는 터에

何心奉日輿              무슨 마음으로 태양 수레를 모시리오.

 

班婕妤 - 반첩여는 한 성제의 궁인으로, 시가에 능하여 총애를 많이 받았다.

前魚 - 앞에 잡았던 물고기(여기서는 총애를 잃고서 버림받는 것을 뜻한다)

 

2

當辭金輦時              임금님 황금 수레 사양할 그 당시에

豈料銀甁絶              은병 줄 끊어질 것을 어찌 알았으랴.

篋裏有羅衣              상자 속에 간직한 비단옷에서는

御爐香不滅              어로의 향내 아직도 남아 있는데.

舞袖麝臍消              춤추던 소매에선 사향의 향내 사라지고

臂紗紅縷絶              팔에 묶었던 깁은 붉은 실이 끊어졌네.

團扇獨徘徊              단선을 손에 들고 홀로 배회 하노라니

靑燈乍明滅              푸른 등잔불만 명멸을 거듭하누나.

 

銀甁絶 - 영영 버림받는 신세를 뜻한다. 백거이의 시에 “우물 밑에서 은병을 끌어올리는데, 은병은 올라오려 하나 줄이 그만 끊어졌네(井底引銀甁 銀甁欲上絲繩絶)”라는 말이 나온다.

臂紗紅縷絶 - 진 무제가 낭가의 자녀를 궁중으로 뽑아 들일 적에 자신이 직접 미녀를 골라낸 뒤에 붉은 깁을 팔에 둘러 묶어 주었던 강사계비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次韻答人

 

花落林初茂              꽃 지자 숲 무성해지고

春歸日更遲              봄 지나자 해는 더욱 길어지네.

一元宜靜覩              자연의 원리 자세히 살펴보니

四序任遷移              계절의 법칙에 따라 옮아가네.

燕語薔薇架              제비는 장미 가지에서 지저귀고

鶯歌楊柳枝              꾀꼬리는 버드나무 가지에서 노래하네.

光風隨處好              경치는 처한 장소에 따라 좋기만 한데

佳興少人知              흥취를 아는 사람은 적구나.

 

 

次早發韶州韻            조발소주에 차운하다

 

踏月辭茅店              달그림자 밟으며 모점을 떠나

侵霜渡板橋              서리 깔린 판교를 건너기보단

何如北窓睡              북창 가의 한 잠이 훨씬 낫겠기에

歸隱不須招              부르지 않아도 돌아와서 숨었다오.

 

早發韶州 - 당나라 송지문의 오언고시

茅店 - 띠풀로 지붕을 인 초라한 객점

 

 

秋夜偶吟 次古韻

 

秋夜疏篁動曉風          가을밤 새벽바람에 성긴 대숲 흔들리고

一輪明月掛遙空          둥글고 밝은 달은 아득히 하늘에 걸렸구나.

幽人無限滄浪趣          유인은 물결같이 사는 정취 흥겨워

只在瑤琴數曲中          아름다운 거문고로 몇 곡조 뜯어본다.

 

 

被謫北塞                북쪽 변방으로 귀양 가며

 

歎息狂歌哭失聲          탄식하며 미친 듯 노래하고 실성한 듯 울어봐도

男兒志氣意難平          사나이 품은 뜻 펼치려니 너무 어려워라.

西山日暮群鴉亂          서산에 해지려니 까마귀 떼 어지럽고

北塞霜寒獨雁鳴          변방 서리에 날씨 차고, 기러기 울음소리만 들려오네

千里客心驚歲晩          천 리 먼 곳 나그네 한 해가 감을 아쉬워하고

一方民意畏天傾          이 지방 백성들은 하늘의 뜻 기울어짐을 걱정하네.

不如無目兼無耳          눈도 없고 귀도 없는 듯

歸臥林泉畢此生          시골로 돌아가 한 平生 살고 싶어라.

 

 

閑居春日卽事

 

濛濛細雨煙山暮          가랑비 부슬부슬 내리는 산엔 날이 저물고

漠漠天涯海日斜          하늘가 아득한 수평선으로 해가 기운다.

風欞一枕高欄倚          격자 창가에 잠시 누웠다 높은 난간에 기대어

捲箔疏簷松落花          발을 걷으니 성긴 처마로 송홧가루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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