我本靑山鶴
(德川家康) 問.
石上難生草 돌 위에는 풀이 나기 어렵고
房中難起雲 방 안에는 구름이 일기 어렵네.
汝爾何山鳥 너는 어느 산의 새이기에
來參鳳凰群 봉황들이 노는 데 왔느냐.
(四溟堂) 答
我本靑山鶴 나는 본디 청산의 학인데
常有五色雲 오색구름 위에 놀았다.
一朝雲霧盡 하루아침에 운무가 사라지는 바람에
誤落野鷄群 닭들 노는 곳에 잘못 떨어져 왔구나.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와 일본 덕천가강(도쿠가와 이에야스)이 나눈 문답시로 충남 보령시 개화예술공원에 시비에 있음
도쿠가와 이에야스 長子 히데야쓰(32세)는 남달리 선학에 뜻이 있는 사람인데, 조선의 고승 사명대사를 친견하고 느낀 바 있어 스승의 예를 갖춰 가르침을 청하니 대사는 일필휘지로 다음과 같이 교시하였다.
一太空間無盡藏 일태(一太)는 공간이요, 다함이 없고,
寂知無臭又無聲 적지(寂知)는 냄새도 없으며 또한 소리도 없도다.
只今聽說何煩問 지금 말을 듣고 어찌 번거롭게 묻는가
雲在靑天水在甁 구름은 청천에 있고 물은 병 속에 있느니라.
降仙亭
江源西出峽門開 강 근원이 서쪽으로 흘러 협문이 열리니
千樹村邊斷岸廻 일 천 나무 가에 끊어진 언덕이 둘렀구나.
中有高臺三百尺 가운데에는 삼백 척 높은 누대가 있으니
月明時見羽人來 달 밝은 밤에 때때로 신선이 내려온다네.
癸未秋關西途中 계미년 가을 관서로 가는 도중에서
黃雲塞下本無春 변방의 황색 구름 본래 봄이 오지 않는데
桃柳應知別處新 복사꽃 버드나무 다른 지방에서는 새로 피어나리라.
雙鯉不來花又落 편지는 오지 않고 꽃이 또 지니
暮山回首泣孤臣 저문 산에서 머리 돌려 우는 외로운 신하여.
2
黃葉蕭蕭廣陵道 광릉길 낙엽은 쓸쓸하고
夜來風雨滿江津 밤엔 비바람 강나루에 가득하다.
孤舟獨繫西湖柳 외로운 배 서쪽 호수 버드나무에 매여있고
泣向關山憶遠人 눈물 흘리며 관산을 향해 먼 사람 생각한다.
3
塞外孤身夢裏逢 변방 밖 외로운 몸 꿈에서 만나
同遊澤畔語從容 못가에 같이 놀며 조용히 말한다.
覺來依舊關山遠 깨어보니 여전히 관산은 멀고
悄悄無言聽曙鐘 말없이 쓸쓸히 새벽 종소리 듣는다.
過邙山
太華山前多少塚 태화산 앞 수많은 무덤들
洛陽城裏古今人 고금의 낙양성 사람 무덤이라.
可憐不學長生術 가련하다, 무슨 일로 장생술을 못 배워
杳杳空成松下塵 아득한 세월 덧없이 소나무 아래 흙먼지로 되었는가.
過溟洲 명주를 지나며
離山三日到江陵 산을 떠나 삼 일만에 강릉에 오니
逆旅寥寥半夜燈 나그네 적적하고 한밤에 등불만 깜빡인다.
故國千年多少恨 고국 천 년에 맺힌 한이 얼마가
水雲寒雪倚樓僧 물과 구름 그리고 차가운 눈, 누대에 기댄 중 한 사람 있네.
過西都 서도를 지나며
1
國破山河王氣殘 나라가 망하니 산하에 왕기가 쇠잔하고
天孫何處白雲間 왕손은 흰 구름 속 어디에 있는가.
只今宮漏秋鐘歇 지금 궁중의 물시계와 종소리 그치고
千古月明江水寒 천고에 달은 밝고 강물은 차기만 하구나.
2
淸流壁下古今路 청류벽 아래 옛길과 지금의 길에
靑草夕陽人去來 석양에 풀은 푸른고 사람은 오간다.
欲問千秋興廢事 천 년의 흥망의 일을 묻고자 하니
白雲橋畔夜花開 백운교 다리 가에 밤에도 꽃이 피었구나.
3
落月孤雲渺南國 지는 달 외로운 구름 남녘 땅 아득하고
羈愁獨上望鄕臺 나그네 수심겨워 홀로 망향대에 오른다.
秋風黃葉不歸去 가을바람 불고 단풍이 져도 돌아가지 못하고
空館夜聞寒雨來 공허한 여관에서 차가운 밤비소리 듣는다.
過善竹橋
山川如昨市朝移 산천은 어제 같은데 세상은 변하고
玉樹歌殘問幾時 궁중의 소리 들린 지 얼마나 되었는가.
落日孤城春草裏 봄풀 속 쓸쓸한 성에 해는 지는데
祗今惟有鄭公碑 지금은 삼가하와 정몽주 공의 비석만이 남았구나.
過震川 진천을 지나면서
古驛重陽抱劍悲 옛 역에서 중양절을 맞아 칼을 안고 슬퍼하노라니
病身唯有月相隨 병든 몸에 오직 달만이 서로 따르누나.
衡峯燒芋眞吾願 형봉에서 토란 굽기가 참으로 내 소원인데
官路乘肥豈我宜 벼슬 길과 살찐 말타기가 어찌 내게 맞으리.
瘴海十年空遠戍 장독 바다에 십 년토록 헛되이 먼 변방 지키니
香城何日定歸期 산으로 돌아갈 날 언제일까.
天淸一雁江東遠 맑은 하늘 한 마리 기러기 멀리 강 동쪽으로 날아가는데
明滅燈前攬弊衣 가물거리는 등불 앞에서 헤진 옷 집어 드네.
衡峯에서 土卵 굽기 - 중국 당나라 때 이필이란 사람이 도를 묻기 위해 형악사에 남이 먹고 남은 밥을 먹고 사는 나잔이란 수행자를 찾아갔다. 그는 마침 토란을 굽고 있다가 이필을 보고 재상 노릇이나 한 십 년 하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있다.
過咸陽
眼中如昨舊山河 둘러보니 어제 같은 옛 산하여
蔓草寒煙不見家 우거진 덩굴풀, 찬 연기에 집들은 보이지 않네.
立馬早霜城下路 서리 내린 성 아래 길목에 말을 세우고
凍雲枯木有啼鴉 차가운 구름 서린 고목에 까마귀가 울고 있네.
歸鄕
十五離家三十四 열다섯 살에 집을 떠나 서른 살에 돌아오니
長川依舊水西來 긴 내는 옛날과 같은데 냇물은 西에서 흘러온다.
柿橋東岸千條柳 감나무 다리 동녘 언덕에 우거진 이천 그루 버드나무는
强半山僧去後裁 절반이나 산승이 간 뒤에 심은 것이로구나.
己丑橫罹逆獄 기축년에 엉뚱하게 역옥에 걸려들다
蛾嵋山頂鹿 아미산 위의 사슴
擒下就轅門 사로잡혀 원문에 내려왔구나.
解網放還去 그물을 풀고 달아나니
千山萬樹雲 온 산에 나무숲과 구름이네.
寄春州刺史 춘주자사에게
遙望春城雁不來 봄날 성을 멀리서 바라보니 기러기 날지 않고
幾番風雨暗書灰 몇 번이나 비바람에 책의 재처럼 바래어졌던가.
只今獨坐舡潭上 지금은 홀로 앉아 강 위의 배를 보며
空憶當時勸酒杯 당시에 술 권하던 일 공연히 생각해 본다.
謹奉洛中諸大宰乞渡海詩 일본으로 사신을 떠나면서 서울에서 여러 대신들을 모시고
年來做錯笑餘生 몇 년 동안 엉뚱한 짓 하여 여생이 우습게 되었는데
數月荷衣滯洛城 수개월이나 수행복 차림으로 서울에 머물렀네.
愁病平分送春恨 근심하는 내 분수는 봄을 보내는 한이요
歌吟半惱憶山情 노래하는 괴로움은 산을 생각하는 정이라.
浮杯謾道堪乘海 잔 하나 띄우고서 감히 바다를 건넌다고 말하고
飛錫初羞誤說兵 지팡이 날려 병사를 잘못 말함이 먼저 부끄럽네.
爲國重輕諸老在 나라를 위하는 온갖 일은 여러 노장들이 있으니
願承珠唾賁東行 원컨대 아름다운 시로써 동쪽(일본) 걸음 빛내 주소서.
유정이 임진왜란이 끝난 후인 1604년에 일본으로 사신을 가서 전쟁 포로 삼천 오백 명을 데리고 돌아왔다.
鹿門長川別門下諸公 녹문장천에서 문하의 제공과 이별하다
山到西江路亦分 산이 서강에 이르니 길 또한 나눠지고
楊花愁殺別離魂 버들꽃은 이별하는 마음을 수심으로 죽이네.
日斜獨出瞿塘峽 해는 지는데 혼자 구당협에 나와
回首千峰萬樹雲 돌아보니 봉우리마다 숲과 구름뿐이로다.
登香爐峯
山接白頭天杳杳 산은 백두산에 접하고 하늘은 한없이 높고
水連靑海路茫茫 물은 푸른 바다로 흐르고 길은 아득하기만 하다.
大鵬備盡西南闊 대붕이 날아갈 만큼 서남은 광활하니 갖춰있고
何處山河是帝鄕 산하의 어디쯤이 곧 천제의 사는 곳일런지.
萬瀑洞
此是人間白玉京 이곳은 인간의 백옥경이요
琉璃洞府衆香城 유리동의 관청이요 온갖 향기의 성이구나.
飛流萬瀑千峰雪 날아 흐르는 온갖 폭포는 온 산봉우리의 눈이라
長嘯一聲天地驚 길게 한 번 소리치니 천지가 놀라는구나.
東林寺秋夕夜半 동림사 추석날 밤에
東林月出白猿啼 동림사에 달뜨고 흰 원숭이 울고
丹桂淸霜夜色凄 붉은 계수나무 맑은 서리에 밤빛 처량하다.
獨倚香臺鐘鼓靜 홀로 향대에 기대니 종과 북소리 맑고
天風吹棄見禽棲 바람은 나뭇잎에 불어 둥지의 새가 보인다.
謾書 아무렇게나 쓰다
藏舟計拙事多違 서툰 계책을 쓰다 보니 어그러지는 일이 많고
坐到更深不掩扉 앉은 채로 사립문도 닫지 않은 채 밤이 깊었네.
細數三千八百策 삼천 팔백의 계책을 자세히 살펴보니
方知四十九年非 사십구 년의 세월이 잘못되었음을 알겠네.
秖今穿耳人誰在 지금 시대에 귀가 뚫린 이가 누가 있으며
從古枯禪世所稀 옛날부터 올곧게 참선하는 이 세상에 드물었다.
鐘盡月沈天欲曙 종이 울리고 나니 달 지고 하늘 밝아오는데
始驚寒露濕蘿衣 비로소 차가운 이슬에 옷이 젖는 것을 알고 놀라네.
귀가 뚫린 이 - 영리한 사람, 불법을 이해하는 사람
鳴沙行 명사로 가면서
細雨鳴沙三月時 가는 비 내리는 명사 땅 삼월에
杏花零落客思歸 살구꽃 떨어지니 고향 생각나는 나그네.
鄕關猶隔一千里 고향은 아직 천 리 아득한 곳
愁見河橋靑柳絲 강 다리 푸른 버들을 수심 겨워 보노라.
別松庵 송암과 이별하며
去歲春風三月時 지난해 봄바람 부는 삼월에
一回相見語相思 한 번 만나보고 그립다 말을 하네.
如今又向南天遠 지금 또 남쪽을 향하여 멀리 떠나는데
依舊垂楊生綠綠 수양버들만은 옛처럼 푸르기만 하여라.
別松庵陪尊祖西行 송암이 존조를 모시고 서행함을 이별하다
別路寒松日欲斜 지는 해에 차가운 소나무 길에서 이별할제
碧雲殘雪有啼鴉 구름은 푸른고 잔설 속에 갈가마귀 울음소리 들린다.
西行想渡浿江水 서행길에 대동강을 건널 일 생각하니
落盡春風處處花 곳곳에 꽃잎들이 봄바람에 다 떨어지지 않을런지.
奉錦溪沈明府 금계 심명부에게
當時一別漢東寺 한양 동쪽 절에서 헤어지고 보니
空悲歲徂靑眼稀 친구는 드물고 가는 세월을 슬퍼한다.
隨緣江海無定所 인연 따라 푸른 강과 바다 정처 없이 다니다가
轉蓬復此西南飛 구르는 쑥대처럼 여기 서남으로 찾아왔소.
知音賴有沈休文 마음 알아주는 친구 심휴문이 있어
八月南渡瀟湘浦 팔월에 남쪽으로 소상포를 건넌다.
相看切切語相思 절절히 서로 보며 그리웠던 지난 얘기 나누고
上房數夜同淸晤 몇 날 밤을 상방에서 함께 지냈네.
天涯佳節近重陽 하늘 끝 아름다운 때 중양절이 가까운데
零露瀼瀼荷欲老 차가운 이슬은 내리고 연꽃은 시드는구나.
平明却有故山思 날이 밝으니 도리어 고향 산천 생각나
獨望白雲山外路 나 홀로 흰 구름 저 넘어 먼 산을 바라본다.
奉全羅防禦使元長浦 전라 방어사 원장포에게 드림
百歲三分已二分 백 년을 삼분하여 벌써 이분이 지났는데
袛今行止更如雲 지금도 나의 행동거지 구름과 같구나.
何時高臥崇山室 어느 때나 숭산의 방에 편안히 누워
鷄唳猿啼半夜聞 반야에 학과 원숭이 울음소릴 들어볼 거나.
浮碧樓用李翰林韻 부벽루에서 이한림의 운을 따서
三國去如鴻 옛 삼국의 영화도 그렇게 가고
麒麟秋草沒 성인들도 가을 잡초더미에 묻혀있구나.
長江萬古流 긴 강물은 영원으로 흐르고
一片孤舟月 쪽배같은 외로운 달만 하늘에 걸렸구나.
寫懷 생각을 쓰다
邇來多病歎龍鐘 요즈음은 병이 많아 탄식하며 눈물 흘리고
親友凋零半已空 친우들도 세상 떠나 반이 이미 없어졌네.
獨有雲松與麋鹿 오직 구름과 소나무와 사슴만이 있어
暮年相伴老重峯 늘그막에 서로 벗삼아 겹겹 봉우리 속에서 늙어가네.
山居集句四 산에 살며 집구(集句)한 4수
1
無媒經路章蕭蕭 지름길 찾는 이 없어 글 읽기 외롭고
門掩空庭思寂廖 대문 닫힌 빈 뜰은 생각하면 쓸쓸하기만 하다.
百鳥不來春又過 온갖 새 날아오지 않았는데 봄은 또 지나가고
庵前時有白雲朝 암자 앞에는 때때로 흰 구름만 보이는구나.
2
閉門春盡綠煙消 문 닫으니 봄은 가고 푸른 기운 사라지니
眞性如空不動搖 진성은 허공 같아 움직임이 없도다.
世出世間俱打了 세상을 벗어나고 세상에 있는 것 모두 떨쳐버리니
那知今夕與明朝 오늘 저녁 일 내일 저녁 일을 어찌 알리오.
3
白雲何計是生涯 흰 구름 속의 생애가 어찌 생애라하리
朝抱陳編至日斜 아침에 오래된 책 잡으면 해질 때까지 가는구나.
門外啼鵑天寂寂 문 밖에 두견새 우는데 날은 적적하고
東風吹落刺桐花 봄바람은 불어와 오동나무꽃을 떨어뜨리는구나.
4
近思丙子重陽日 병자년 중양일을 생각해 보니
寒雨獨登浮碧樓 찬비 속에 혼자 부벽루에 올랐네.
今夕又經長慶路 오늘 저녁 다시 장경로를 지나니
黃花依舊去年秋 노란 단풍잎 지난해와 같은 가을이구나.
山中
柴門終日獨徘徊 혼자 사립문을 종일토록 오가니
秋雨寒煙首屢回 가을비에 차가운 안개 머리 위를 도는구나.
只尺相思不相見 지척에 두고도 생각만 하고 만나지 못하니
暮雲孤鳥倦飛來 저문 구름에 외로운 새는 지쳐서 돌아온다.
西風
西風吹動雨初歇 하늬바람 불자 비는 벌써 그쳤고
萬里長空無片雲 넓은 하늘엔 구름조각 하나 없구나.
虛室戶居觀衆妙 빈 방에 앉아 온갖 묘한 이치를 보나니
天香桂子落紛紛 하늘의 계수나무 향기(달빛) 어지러이 떨어진다.
送昱山人還海西 욱산인을 보내고 서해로 돌아가다
沓盡天南吳楚間 하늘 남쪽 오나라 초나라 사이를 다 밟아보고
逢春還鄕海西山 봄을 맞아 고향 바다 서쪽 산악으로 향하는구나.
落花啼鳥東風裏 봄바람 부는데 꽃은 떨어지고 새가 우니
知子香爐獨掩關 자네가 향로끼고 홀로 문 닫고 있는 것을 알겠구나.
酬李公求語 이공이 한 마디 말을 구하기에 답하다
懸崖峭壁無棲泊 깎아지른 높은 절벽 발붙일 곳 없어도
捨命忘形進不疑 목숨 걸고 몸을 잊고 의심 없이 나아가라.
更向劍鋒飜一轉 다시 칼끝 위에서 한 번 뒤집어야
始知空劫已前時 공겁 이전의 나를 비로소 알 수 있도다.
宿般若寺
古寺秋晴黃葉多 옛 절에 가을 날씨 맑으니 나뭇잎이 누렇게 물들고
月臨靑壁散棲鴉 달이 푸른 벽에 비치니 잠자던 까마귀들 흩어진다.
澄潮煙盡淨如練 맑은 호수에 안개 걷혀 비단같이 맑고
夜半寒鐘落玉波 밤이 깊어가니 차가운 종소리 옥 물결에 떨어진다.
宿佛頂庵
琪樹瑤袋桂影秋 기수와 요대에 계수나무 가을인데
蓬上宿客思悠悠 봉래산에 묵는 나그네 생각도 아득하네.
西風一夜露華冷 서풍에 하룻밤 이슬도 차가운데
玉磬數聲人猗樓 몇 가닥 옥경소리 들으며 누대에 기대선다.
十王洞
王子何年築此城 왕자는 어느 해에 이 성을 쌓았던가
玉峰依舊老蓂靈 옥봉은 옛과 같은데 명령 나무는 늙었구나.
鳳凰一去無消息 봉황은 한 번 가고 소식 없는데
金井千秋瑤草生 우물 난간에는 천 년 동안 요초가 돋아난다.
嶺南金烏下臥病憶雲中寸調
영남 금오산 아래서 병으로 누운 운중 촌조를 생각하며
一從恩譴度流沙 한 번 은견을 쫓아 유사를 건넌 뒤
望盡三年鬢已華 삼년 동안 바라보다 이미 귀밑머리 희어졌네.
怊悵東湖去時路 슬퍼도다, 동호로 그제 떠나던 길은
春風依舊長新莎 봄바람에 옛날처럼 잔디가 새로이 돋는구나.
己亥秋 奉別邊注書 1599년 가을 변 주서와 이별하며
恭承朝命下轅門 공손히 조정의 명령 받고 군문으로 내려오니
夷夏山河到此分 오랑캐와 중화의 땅이 여기에서 갈라졌네.
四海風塵猶轉戰 온 세상에는 전란이 여전한데
十年征戍更從軍 십 년 동안 변방 지키다 또다시 종군하네.
城隅落照看廻鳥 성 모퉁이 낙조에 돌아오는 새 쳐다보고
天外歸心望去雲 하늘 바깥의 돌아가고픈 마음에 구름만 바라보네.
掃盡妖氛定何日 요사한 기운 쓸어버릴 날 언제일까
撥灰金鴨細香焚 화로에 재 헤쳐서 향을 피우노라.
注書 - 조선시대 왕의 명령 내용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담당하던 관리
在南原驛 남원 병영에 있으면서
碧油幢幕夜凄凄 벽유 당막에 밤은 처량하고
刁斗無聲月欲低 조두 치는 소리 없고 달은 지려 하는구나.
壯志未酬驚歲晏 장한 뜻 펴지 못하고 놀랍게도 올해가 다 가니
手持雄劒聽莏鷄 큰 칼을 손에 쥐고 귀뚜라미 소리 듣는다.
在東溟舘云云二 동명관에서
風動葉聲驚宿鶴 잎사귀에 이는 바람 소리에 자던 학은 놀라고
月高汀樹散栖鴉 달은 높고 물가 나무 들까마귀들 흩어지네.
不眠夜靜天河轉 잠 못 드는 이 밤 저 멀리 은하는 기우는데
獨步中庭把菊花 홀로 뜰을 서성이며 국화를 매만지네.
在馬島館 庭菊大發 感懷 대마도 여관에서 뜰에 국화가 가득 핀 것을 보고
蕭蕭落葉下汀洲 쓸쓸히 낙엽은 모래톱에 지고
天末歸雲海北秋 하늘 끝 돌아가는 구름에 바다 북쪽은 가을이다.
節過重陽不歸去 절기는 중양절을 지났건만 돌아가지도 못하는데
黃花空遣遠人愁 누런 꽃은 공연히 멀리 온 사람을 시름겹게 하네.
旅遊心緖亂如麻 나그네 마음은 난마와 같이 어지러워
落日空瞻北去鴉 떨어지는 해에 북으로 가는 까마귀만 부질없이 바라보네.
誰道山僧無顧念 누가 산승은 돌아보는 마음이 없다고 하였는가
夢魂頻度漢江波 꿈속에서 혼영이 자주 한강의 물결 넘는 것을.
錦屛回夢夜蒼蒼 꿈 깨고 보니 비단 병풍에 밤이 어둑어둑한데
雲盡天晴碧海長 구름 다한 하늘은 맑은데 푸른 바다는 아득하네.
門掩候蟲殘月曙 문 닫히고 가을벌레 우는데 새벽달 밝아오고
寄衣無處有淸霜 옷은 보내올 곳도 없는데 맑은 서리만 내리다니.
對馬島 - 한국의 부산과 일본의 후쿠오카 사이에 있는 섬. 조선 시대에 두 나라를 오갈 때 반드시 이 섬을 거쳐서 다녔다.
在本法寺 除夜 본법사의 섣달 그믐날 밤
四海松雲老 이 넓은 세상에 이 늙은이는
行裝與志違 차림새와 생각이 서로 어긋나네.
一年今夜盡 한 해도 오늘 밤으로 다하는데
萬里幾時歸 만 리 먼 땅 돌아갈 날 언제이리.
衣濕蠻河雨 옷은 오랑캐 나라의 비에 젖는데
愁關古寺扉 오래된 절의 사립문이 닫힌 걸 근심하네.
焚香坐不寐 향을 피우고 앉아서 잠들지 못하는데
曉雪又霏霏 새벽 눈만 펄펄 내리는구나.
本法寺 - 일본에 사신으로 갔을 때 들른 절
題降仙亭 항선정에 쓰다
三峽客歸去 삼협으로 나그네 돌아가니
龍臺生遠愁 용대에는 먼 근심 이는구나.
靑山雲色暮 청산에 구름 빛 저무는데
丹穴水聲幽 붉은 굴에선 물소리 그윽하다.
在竹島 有一儒老 譏山僧 不得停息 以拙謝之
죽도에 있을 때 어떤 늙은 유학자가 산승이 쉬지도 못한다고 꾸짖기에 서툰 솜씨로 사례드리다
西州受命任家裔 서주에 명을 받은 임씨 가문의 후예로
庭戶堆零苟不容 집안이 영락하여 잠시 몸 둘 곳도 없었네.
無賴生成逃聖世 의지해 살 데가 없어서 세상을 피하여
有懷愚拙臥雲松 어리석음과 못남을 품고서 구름과 소나무에 누웠네.
山河去住七斤衲 산과 강을 오가는 데는 일곱 근 장삼이요
宇宙安危三尺筇 우주의 안위에는 세 척의 지팡이라.
是我空門本分事 이것이 우리 불가의 본분인데
有何魔障走西東 무슨 마귀의 장애가 있어서 동서로 달리는가.
題降仙亭
白首關河夜 흰 머리로 변방의 물가에 있으니
傷心遠客愁 애끊는 마음 먼 나그네의 수심이라.
相思無限意 한없이 서로를 생각하며
明月獨登樓 밝은 달빛 아래 홀로 누대를 오른다.
贈蘭法師 난 법사에게 주다
萬疑都就一疑團 만 가지 의심을 한가지 의심에 뭉쳐서
疑去疑來疑自看 의심해 오고 의심해 가면 스스로 보리라.
須是拏龍打鳳手 용을 잡고 봉황을 치는 솜씨로
一拳拳倒鐵城關 한 주먹으로 철성관을 넘어뜨려라.
贈白蓮寺和尙 백련사 스님에게
佳節年年客中過 해마다 좋은 때에 나그네 신세
故山花謠夢携筇 고향 산의 꽃 노래를 꿈속에서 부른다네.
會遊到處有芳草 모여 놀던 곳 풀 향기 가득한 곳이었건만
此日來時迷舊蹤 오늘 와서 보니 옛 자취 찾을 수 없네.
塞上羈愁猶亂緖 변방 떠도는 나그네 마음 어지럽기만 한데
鏡中衰鬢匕成蓮 거울 속 귀밑머리 순식간에 연실이 다 되었네.
天涯迢遆不歸去 그곳은 하늘 끝 바다 먼 곳을 돌아가지 못하고
坐聽白蓮精舍鐘 앉아서 그저 백련사 종소리만 듣고있다.
贈浮休子 부휴자(부휴선수)에게
別傳敎外眞消息 가르침 밖의 참 소식 있어
專義須還古丈夫 온전한 뜻 옛 장부에게 돌아가리.
後五百年誰繼此 뒷세대 오백 년 누가 이어 갈까
拈花一脈落嗚呼 진리의 한 맥락이 탄식 소리에 떨어진다.
贈洛陽士 낙양 선비에게
春愁無禁閉南關 봄 시름 참을 수 없어 남쪽 문을 닫으니
佳節悤悤欲已闌 좋은 계절은 그리도 빨리 이미 끝나가는구나.
霽後終南開晩眺 비 갠 뒤의 종남산을 문 열고 바라보니
落花芳草滿長安 꽃은 져도 향기로운 풀이 장안에 가득하다.
贈默山人 묵 산인에게 드림
參禪不用多言語 참선하는 데 많은 말이 필요 없으니
只在尋常默自看 다만 평소에 말없이 스스로를 살피면 된다네.
趙州無字如忘却 조주의 무(無) 자를 잊어버린다면
雖口無言我不干 비록 입이 말을 하지 않아도 내 간섭하지 않으리.
我師天竺金仙氏 나의 스승은 인도의 부처님이니
直使跉跰返故園 절름발이도 곧바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시도다.
自是不歸歸便得 이로부터는 돌아가지 않아도 곧 돌아감을 얻으리니
月臨靑桂有啼猿 달이 푸른 계수나무에 떠오르고 원숭이 울음 있도다.
贈白蓮僧二 백련암 스님에게
秋深南渡下黃葉 가을이 깊어 남으로 내려가니 낙엽이 떨어지고
別路霜華已滿衣 이별하는 길에는 서리꽃이 옷자락에 가득 찬다.
此去蓬山一千里 여기서 봉래산은 일천 리나 떨어져 있는데
碧雲何處更追隨 푸른 구름을 그 어느 곳으로 다시 찾아가야 하는가.
2
節過重陽雁影高 계절은 중양절을 지나 기러기 그림자 높아져
霜楓昨夜入麻袍 지난 밤 서리 맞은 단풍나무 삼베 도포에 날아드네.
客行更覺江東遠 나그네 가는 길의 강동은 너무나 멀어
海上靑山夢憶勞 바다 위 푸른 산은 꿈속마저 피곤하여라.
贈成秀才
天寒歲暮峽中村 차가운 날씨에 저무는 산골마을
籬落蕭蕭掩竹門 울타리 쇠락해 쓸쓸하니 대나무 사립문 걸어닫았다.
高臥北窓閑夢破 북창에 높이 누워 한가한 꿈 깨니
任地風雪亂黃昏 임지의 눈바람이 황혼에 어지럽다
贈承兄
雨餘庭院淨沙塵 비 온 뒤 뜰에는 먼지 하나 없고
楊柳東風別地春 바람 부는 버드나무 봄빛 저리 곱구나.
中有南宗穿耳客 여기 귀 열리고 눈 열린 나그네 있어
世間皆醉獨醒人 세상 사람 다 취해 있건만 그만 홀로 깨어 있네.
贈靈雲長老 영운 장로에게 주다
千魔萬難看如幻 수많은 마귀와 어려움을 허깨비로 보면
直似灘頭撤轉船 여울머리에서 배를 돌리는 것과 같도다.
呑透金剛竝栗剳 금강과 밤송이를 모두 삼켜버려야만
方知父母未生前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나를 알 수 있다.
贈圓長老
巖畔雲松巖下泉 바윗가 구름 낀 소나무, 바위 아래 샘
焚香洗鉢過蕭然 향 사르고 바리 씻으며 깨끗하게 살아간다.
十年不下香爐頂 십 년 동안 향로봉 정상을 내려오지 않고
石塔靜看秋水篇 돌 탑 아래에서 고요히 추수편을 읽는다.
贈閑長老
衣下麽尼依舊在 옷 아래 마니주를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으니
不須虛認鏡中頭 거울 속의 모습을 진짜인 줄 착각하면 안 된다네.
翻身直到故園裏 몸 돌려 곧바로 고향의 뜰에 이르면
一見爺孃方始休 비로소 부모님이 쉬고 계신 걸 한 번 보리라.
摩尼珠 - 용왕의 뇌 속에서 나왔다고 하는 보주. 악을 물리치고, 흐린 물을 맑게 하며, 화를 없앤다고 한다. 마니라고도 한다.
贈海運
一夜聯床話 하룻밤 상에서 마주보고 이야기하니
鶴峰秋晩時 학봉에는 가을이 무르익었네.
重逢又何日 다시 만날 날은 또 어느 날인가
世事杳難期 세상 일 몰라서 기약하기 어려워라.
贈行脚僧
爾從江海來 네가 강과 바다에서 왔다가
還從江海去 다시 강과 바다로 떠나니
江海路迢迢 강과 바닷길이 멀고도 먼데
重逢又何處 다시 만나는 곳이 또 어딜꼬.
贈許生
休說人之短與長 남의 단점 장점일랑 말하지 말지어다
非徒無益又招殃 무익도 하려니와 또한 재앙을 부르나니.
若能守口如甁去 곧 입조심 하기를 병마개 막듯 하면
此是安身第一方 이것이 제 몸 보전하는 제일의 방책일터.
許均의 언행이 가볍다고 유정 스님이 “말 조심을 하라”며 지어 준 시.
眞歇臺
濕雲散盡山如沐 습한 구름 다 걷히니 산은 목욕한 듯
白玉芙蓉千萬峯 백옥같고 연꽃 같은 천 만 봉우리
獨坐翻疑生羽翼 홀로 앉아 뒤척이니 몸에 날개가 생긴 듯
扶搖萬里御冷風 만 리를 잡아 흔들며 찬 바람을 탄다.
集句
1
山圍故國周遭在 산은 고향 땅을 에워싸고 있고
陵谷依然世自移 언덕과 골짝은 옛날 같은데 세상은 변하였다.
玉輩昇天人已遠 옥수레 타고 하늘로 오른 사람 이미 멀어지고
只今唯有鷓鴣飛 지금은 자고새만 남아 날고 있구나.
2
日暮東風春草綠 해는 저물고 봄바람에 풀은 푸르고
杖藜徐步立芳洲 지팡이 집고 천천히 걸어 향기로운 물가에 섰다.
閣中帝子今何在 누대의 왕족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汀月寒生古石樓 물가의 달빛은 옛 돌 누대에 차기만 하다.
次樂天堂 낙천당에 차운하여
不慍人間人不知 남이 나 알아주지 않음을 성내지 않는데
豈愁軒冕到吾遲 어찌 내게는 벼슬이 더디 온다 근심하는가.
樂夫天命稱君子 천명을 즐기는 자를 군자라 하니
伯玉何須四十非 거백옥은 어찌 인생 사십이 그릇 되었다 고민해야 하는가.
次鄭子韻
歲晏迷歸路 해는 저무는데 돌아갈 길을 잃어
行狀問鄭公 행장을 정공에게 묻는다.
鐘山杳天末 종산은 하늘 멀리 아득한데
衰鬢又秋風 쇠한 귀밑머리 또 가을바람에 날린다.
淸平寺西洞
華表鶴廻天路遠 천 년 만에 화표에 학이 돌아오니 하늘길은 멀고
靑山如昨客初歸 청산은 어제 같은데 손이 처음 돌아왔도다.
淸流白石照明月 맑은 물 흐르는 흰 돌에 밝은 달이 비치고
一夜空攀靑桂枝 하룻밤에 속절없이 푸른 계수나무 가지를 휘어잡는다.
靑鶴洞秋坐 청학동 가을에 앉아서
西風吹動雨初歇 서풍이 불자 비가 처음 개어
萬里長空無片雲 만 리 긴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다.
虛室尸居觀衆妙 빈 방에 일없이 거하며 묘리를 찾으니
天香桂子落紛紛 하늘 향기 계수 열매가 어지럽게 떨어진다.
秋軒夜坐
獨坐無眠羈思長 홀로 앉으니 잠이 오지 않아 나그네 시름만 깊은데
數螢流影度西廊 반딧불 몇 마리 그림자 흘리며 서쪽 회랑으로 지나간다.
崇山月出秋天遠 숭산에 달이 뜨니 가을 하늘 멀고
一夜歸心鬢已霜 온 밤 돌아가고픈 마음에 귀밑머리는 이미 희어졌구나.
出峽憩江花石 협곡을 나와 강화석에서 쉬다
橫塘石路日初斜 가로놓인 못의 돌길에 해가 지려는데
春水微茫生綠波 봄 물은 아득한데 푸른 물결이 이는구나.
回指金仙是何處 금선은 어느 곳인지 돌아보며 가리키니
碧峰千疊五雲多 천 겹 푸른 산봉우리에 오색 구름 자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