勸學小詩
讀書萬權未了義 만 권의 책을 읽어도 의의를 깨우치지 못한다면
何畢平原走馬回 들판에서 말을 타고 달리며 노는 것과 뭐가 다르랴.
一字精微誰解得 글자마다 자세하고 세밀한 뜻을 누가 풀어 얻을 것인가
聖賢貴學不貴才 성현은 학문을 귀중히 여기고 재주는 그렇지 않았다.
寄遊湖諸子 호수에 노니는 제자들에게
湖上淸陰護落花 호수 위의 맑은 그늘 떨어지는 꽃 보호하고
出遊無伴坐吟哦 나가도 노닐 친구 없어 앉아서 시만 읊는다.
諸生剩欲來挑興 제생은 모두 와서 흥을 돋우려 하는데
倦客何堪共酌窪 지친 나그네 어찌 함께 술잔 채워 대작할까.
不風微煙橫素鏡 안개와 바람 없어 맑은 거울처럼 비껴있는데
且看完月闖靑螺 둥근 달이 먼 산마루에 떠오름을 보게 되리라.
暮春光景今如許 늦은 봄의 풍경이 지금 저러한데
病與愁纏只自嗟 병과 시름 얽혀 스스로 탄식할 뿐이다.
南樓中望所遲客 남루에 늦게 오는 손님을 맞다
郡芳寂如掃 방초 무리는 쓸어버린 듯 적막한데
春去何促迫 봄은 왜 이리도 빨리 가는가.
幽懷不自寫 깊은 감회를 스스로 쏟지 못해
要此素心客 이럴 땐 마음 맞는 객이 있어야 하네.
遙遙望已久 저 멀리 이미 오래도록 바라보고
徘徊愁日夕 배회하며 해 저물까 근심스러워라.
長湖蘸明月 긴 호수에 명월이 잠겼으니
晤言誰與適 누구와 함께 정담을 나눌 것인가.
微風激樹枝 가는 바람 나뭇가지를 흔들어
瀟瀟助余慼 쓸쓸히도 나의 슬픔 더하는구나.
重城想如咫 여러 겹 성에도 생각은 지척 같아
渺渺雲嶺隔 아득히 구름 낀 산이 격을 만드네.
燈燼欲頻垂 등불 심지는 자주 처지고
園蔬竟虛摘 정원의 채소는 공연히 뜯어 놓는다.
對卷悄無寐 책을 대하고 초조히 잠 못 이루어
微義嗟難析 깊은 글 뜻 안타깝게도 풀기 어렵도다.
頹思遽如何 잊고서 잠들고 싶으니 갑자기 웬일일까
夢裏飜相覿 꿈속에서 도리어 서로 만나보자꾸나.
陶山雜詠
1 도산서당
容膝堂成審易安 작은 집을 이루어도 평온함을 아셨고
陶匏登案足怡顔 소찬이 밥상에 올라도 족히 온화한 얼굴 지으셨네.
優遊卒歲知何事 소요하며 해 마치도록 무엇을 일삼으셨는고?
象在方圓水在槃 형상은 방원에 있고 물은 쟁반에 있도다.
2 암서헌
收身非欲慕逃虛 몸 감춤은 빈 골짝에 도망치는 것을 바라서가 아니고
勵志唯應冀復初 뜻 가다듬는 것은 처음을 회복하기 바라서네.
緬想前修心炯炯 아득히 전현의 마음 밝디밝음을 상상하니
一軒棲息俗緣疎 이 헌함에 거처하며 세속 인연 멀리하리.
3 완락재
涵養宜加靜裏功 함양에는 마땅히 고요할 때의 공부를 더해야 하고
推行還覺動時通 미루어 행하여야 움직일 때 통함을 더욱더 안다네.
須探敬義循環妙 경과 의가 순환하는 묘리를 탐구해야만
方信曾思立敎同 증자 자사가 가르친 것과 같음을 믿게 되리라.
4 유정문
卜築何須强灼龜 살 곳 마련함에 어찌 반드시 억지로 점칠 것 있겠나
江潭延徑入柴扉 강가에서 뻗친 길이 사립문에 들어가네.
幽人恰有潛心地 그윽한 사람이 잠심할 곳 있는 것 같으니
貞吉從敎履道夷 곧고 길해야 가는 길 평탄하다는 가르침 따르리라.
5 정우당
淤泥不染解全天 진흙탕에도 물들지 않아 천성을 보전할 줄 알고
濯濯明姿更可憐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태 또한 어여쁘네.
想得無言相對處 생각해 보니 말없이 서로 대하는 곳에
一團淸興爲君偏 한 줄기 청아한 흥취 그대에 치우쳤네.
6 절우사
壇徑栽培一對三 동산의 오솔길에 하나를 재배하여 셋을 對하니
竹松梅菊便相參 대나무 소나무 매화 국화 곧 서로 어울렸네.
風霜雨露殊榮落 바람과 서리 비와 이슬에 꽃이 피고 짐이 다르니
造化微機幸自諳 조화의 미묘한 기틀 다행히 스스로 알고 있구나.
7 롱운정사
藹藹山頭幾片雲 뭉게뭉게 산머리 몇 조각 구름 떠 있고
每當怡悅輒思君 기쁜 일 있게 되면 번번이 그대 생각하노라.
也知此物難持贈 또 이 물건은 가져다주기 어렵다는 것을 아니
脉脉幽懷自十分 말없이 그윽한 회포 스스로 충분하네.
8 시습재
學習如何取數飛 배우고 익힘 어찌하여 자주 나는 새를 취하나
操存思索諒無時 조존하고 사색함은 참으로 때가 없도다.
須敎浹洽中心悅 모름지기 화흡의 기쁨이 있어야 하니
未必撑眉獨解頤 반드시 눈썹 펴는 것만이 웃는 것 아니로세.
9 지숙료
父生師敎食於君 부모는 낳고 스승은 가르치며 임금은 먹여주고
老少相隨友與羣 노소는 서로 따르고 벗은 더불어 무리 짓는다.
禮有往來情更洽 예의는 오고감이 있어야 정도 흡족하니
講求寧復浪云云 강하고 구함을 어찌 다시 부질없이 운운하리오.
10 관란헌
盈科行險事如何 구덩이를 채우고 험한 곳으로 가는 일 무엇이냐?
志道成章足歎嗟 도에 뜻을 두고 빛남을 이룸은 찬탄할 만하다.
寓目急湍知有本 급한 여울 눈여겨보면 본원이 있음 아나니
仰欽先哲起人多 선철이 흥기시킴 많았음을 공경하네.
11 곡구암
堂舍粗成谷口雲 곡구의 구름 속에 서당를 대강 이뤘으니
更開蘭徑接山門 다시 난초 길 열어 산문에 이었도다.
耕巖名震元非慕 암석 아래 밭 갈고 살며 이름 떨침을 본디 바라지 않았고
出入無虞却可論 나가고 들어옴에 걱정 없다고는 말할 수 있도다.
12 천연대
鳶魚非但指爲然 솔개와 물고기만 지적해서 그렇다고 한 것이 아니라
仰有靑天俯有淵 위로는 푸른 하늘 있고 아래로는 못이 있다는 것이다.
偶上小臺情境妙 우연히 조그만 대에 오름에 정경이 묘하니
向來辛苦對陳編 지난날엔 괴롭게 옛 책만 대하였도다.
13 천광운영대
滄波凝湛寫天光 푸른 물결 맑게 고여 하늘빛 비치었으니
何似當年半畝塘 당시의 반 무 네모진 연못과 어떠하뇨
固是靜深含萬象 진실로 고요하고 깊어 만상을 품고 있으나
誰知溥博發源長 넓고 넓어 발원이 길다는 것을 누가 알리오.
14 탁영담
潭上行吟怳醉醒 못가 거닐면서 읊조리며 멍하게 취했다 깨곤 하니
潛思明訓意無寧 훌륭한 가르침 깊이 생각하면 마음 편치 않네.
縱然自取由淸濁 설령 스스로 취함이 맑고 흐림에 달렸다 해도
今日眞堪濯我纓 오늘은 진정 내 갓끈을 씻을만하네.
15 반타석
金土淪精妙結形 금과 흙이 정기 남겨 묘하게 형체를 이루었으니
隨波隱見理難明 물결 따라 보일락 말락 그 이치 밝히기 어렵네.
狂瀾盪擊終無奈 거센 물결 세차게 부딪쳐도 끝내 어쩔 수 없으니
天許孤根老不傾 하늘이 외로운 뿌리 오래도록 기울지 않게 했구나.
16 동취병산
濃淡山光倚畫屛 짙고 묽은 산색이 그림 같은 병풍에 기대어 있고
烟雲變化任縱橫 안개와 구름은 제멋대로 변화하네.
不應卷石能成大 주먹만 한 돌이 마땅히 큰 산을 이룰 수 없으니
自是天機有廣生 본래 천기가 광대하게 생성한 것이로다.
17 서취병산
偃蹇逍遙萬古屛 한가로이 만고 병풍 사이를 거니노라니
淡烟斜日見林亭 옅은 안개 지는 해에 숲속 정자(애일당) 보이네.
秋霜刻轢冰埋覆 가을 서리 스산하고 얼음에 덮였다가
忽地春回不改靑 갑자기 봄이 되면 푸른 빛 여전하네.
18 부용봉
山形非必似花形 산 모습이 꼭 꽃 모양 같지는 못하지만
深秀猶堪當美名 그윽하고 빼어나니 아름다운 이름 받을 만도 하구나.
更有幽人葆馨德 더욱이 그윽한 사람 향기로운 덕 가득하니
一般佳趣類天成 한결같이 아름다운 취미가 천연 같구나.
余旣爲此 내가 이미 이 시를 지어
欲以呈稟先生未敢 선생에게 감히 올리려 했으나
遽寫諸帖 문득 첩에 쓰지 못하고
懶慢因循 게으르게 있다가
忽遭山頹之慟 갑자기 산이 무너지는 아픔을 만났다.
撫玩遺帖 남아 있는 유첩을 어루만지며
益增悲惋 더욱 슬퍼하였는데
今適入都 지금 서울에 와서
見金君 김군을 만나보고
相與道舊摧咽 서로 옛일을 이야기하며 오연하고
遂出此帖 드디어 이 시첩을 꺼내어
書以歸之 써서 주었다.
抑鄙言雖淺 대저 비루한 말이 비록 천근하지만
而亦有意思 또한 생각은 있는 것이니
如使九原可作 만약 지하에서 일어나신다면
先生必以爲相悉者矣 선생은 반드시 서로 알았다고 하실 것이다.
嗚呼悕矣 아! 슬프도다.
壬申五月日 임신년 5월 어느 날에
奇大升書于漢城終南之寓舍
기대승은 한성 종남산 우사에서 쓰다.
都下梅盆好事金而精付安道孫兒船載寄來喜題一絶云
서울에 있는 분매를 호사 김이정이 손자 안도에게 부탁하여 배에 싣고 보내오니 기뻐서 이를 시제로 삼아 한 절을 읊다
脫却紅塵一萬重 먼지를 뒤로하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서
來從物外伴癯翁 속세밖에 찾아와 여윈 늙은이와 짝을 하네.
不緣好事君思我 안달하는 그대가 이 몸 생각 없었다면
那見年年冰雪容 빙설 같은 그 얼굴 해마다 어찌 볼까.
讀書
讀書求見古人心 글 읽을 때는 옛사람의 마음을 보아야 하니
反覆唯應着意深 반복하며 마음을 깊이 붙여 읽어야 하느니라.
見得心來須體認 보고 얻음 마음에 들어오면 반드시 체험해야 하며
莫將言語費推尋 언어만 가지고서 추리하여 찾으려 하지 말라.
同諸友步月甫山口號 친구들과 함께 보산에서 달빛을 거닐며 소리치다
涼夜與朋好 서늘한 밤 친구들과 함께
步月江亭上 강가 정자에서 달빛을 거닐었네.
夜久風露寒 밤이 깊어지자 바람과 이슬 차가워지니
悠然發深想 나도 몰래 깊은 생각에 잠기었네.
晩望 저물녘에 바라보다
春華到茅茨 꽃은 초가집에도 피었고
三峯住夕暉 산에는 석양 빛 머금었다.
秋天獨倚杖 가을날 홀로 지팡이 짚고 섰노라니
白露濕人衣 맑은 이슬이 옷깃을 적시누나.
古郡無城郭 옛 고을에는 성곽도 없고
山齋有樹林 산 서재에는 수풀만 우거졌네.
蕭條人吏散 쓸쓸히 관리들 흩어진 뒤에
隔水擣寒砧 차가운 다듬이 소리 물 건너에서 들려오네.
漫興
淸晨起對書 새벽에 일어나 책을 대하니
瀟洒志堪舒 산뜻하여 마음을 풀만 하네.
細細梅花落 매화꽃 조용히 떨어지고
霏霏雨點踈 가랑비도 보슬보슬 내리네.
拈毫歌樂只 붓을 잡아 즐거움을 노래하고
飮水沃焚如 물을 마셔 타는 마음 적신다.
自喜幽棲僻 스스로 은거함을 기뻐하노니
松篁擁小廬 송죽이 조그마한 집을 감싸 안고 있네.
細細 - 아주 자세함, 아주 가늘게 이어짐
霏霏 - 눈이나 비가 가늘고 계속되는 모양
梅花
1
粲粲枝頭春有期 산뜻한 가지 끝엔 봄날 기약이 있는데
黃昏獨立淡瓊姿 옥 같은 맑은 자태로 황혼에 홀로 섰네.
相知已撥形骸外 이미 형체를 벗어난 것을 서로 아나니
何似閒吟處士詩 한가로이 읊는 처사 시와 같지 않은가.
2
京洛趍塵誤汝期 서울의 풍진 속에 너와의 기약 어기고
祗今歸對舊冰姿 이제야 돌아와 청아한 자태 대하니
淸香滿樹空相惱 나무에 어린 맑은 향기 마음 설레고
多病其如廢酒詩 어이하랴 병이 많아 시주를 폐했으니.
3
梅下開尊愜素期 매화 아래 술자리 여니 평소의 기대 흐뭇한데
最憐烟外偃風姿 사랑스럽네 안개 밖 바람에 쓸린 그 자태
徘徊不覺衣沾露 이슬에 옷 젖는 줄 모르고 배회하며
一盞傾來一首詩 술 한 잔을 따르고 시 한 수를 짓노라.
4
海山深處似相期 산해라 깊은 곳에 나와 서로 기약한 듯
竹外亭亭立瘦姿 대밭 너머 꼿꼿하게 야윈 자태로 서 있네.
待得月明交送影 밝은 달밤 기다려 그림자 서로 보내며
不妨吟罷數篇詩 두어 편의 매화시를 읊조림도 무방하리.
梅花數枝開亦最晩 吟成長句用破幽寂
매화 몇 가지가 늦게 피었기에 장구를 지어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다
1
簷角寒梅亦自芳 처마 모퉁이 찬 매화 스스로 꽃피우니
夜深來繞意偏長 깊은 밤 와서 보매 의미 또한 깊어라.
踈踈月照尊中影 달은 밝아 술잔에 성근 그림자 비치고
細細風吹竹外香 바람 불면 대밭 가에 은은히 향기 난다.
破臘一枝那得見 섣달에 벌어진 한 가지 어쩌면 얻는담
殿春孤樹最堪傷 봄에 뒤진 외로운 나무 가장 애달프다.
西湖病骨詩難到 서호의 병골이라 시도 짓기 어려우니
准擬明朝醉發狂 내일 아침 술에 취해 매화에 미쳐 볼까.
2
江城春晩雨霏霏 강가 마을 늦봄에 보슬비 내리니
一樹殘梅映短籬 한 그루 때늦은 매화가 울타리에 비친다.
剩欲折來憐雪落 꺾어 오려니 지는 꽃잎 가엾기만 하여
有時看去亂煙披 때때로 구경하느라 연기 헤치기도 하네
小窓對月隨晴影 창가에 달 비치니 그림자 따르고
幽逕傳杯唼玉蕤 오솔길에 술잔 옮기며 옥유를 마신다.
着子會應和鼎實 열매 열면 응당 정실에 섞을 만하니
梢頭靑蔕已離離 가지 끝에 푸른 꼭지 주렁주렁하구나.
3
今年春最晩 금년 봄철이 하도 늦어서
三月梅花開 삼월에야 매화꽃이 피네.
更値寒凝雪 다시 차가운 눈을 맞으니
仍愁落滿苔 이끼에 가득 떨어짐에 시름하네.
酒醒香裏袂 술깨니 향기 옷소매에 남아 있지만
夢斷影交盃 술잔에 그림자 꿈에도 아쉬워하네.
萬里思相贈 만리에 서로 주고 싶지만
攀條首獨回 가지 휘어잡고 홀로 생각해 보네.
武科錄名圖
高棟深簷敞一廳 높은 기둥 깊은 추녀 온 청사가 넓은데
縓衣髹案凜儀形 붉은 옷, 검은 책상 늠름한 기품이어라.
門前騰蹋鞍鞿耀 문 앞에는 나는 듯한 안장과 굴레 빛나고
階下睢盱面目熒 뜨락에 아래 흘겨보는 눈빛이 번득이누나.
標咎斥停悲墮井 허물을 들춰 물리치니 대열에서 추락됨 슬프고
注名推試喜緣宴 이름을 기록하고 등용되니 합격에 기쁘구나.
那知繪事開丹禁 회사가 궁중에 열릴 줄을 어찌 알았으랴
物色生輝荷寵靈 물색에 빛이 나니 은총에 감사하여라.
訪朴大均
綠江一棹興悠然 푸른 강에서 노를 저으니 흥이 절로 나는데
來訪煙波老病仙 안개 낀 물결은 병든 신선을 늙게 하네.
人事可堪輸白眼 인간만사를 백안으로 보니 어이 견디며
窮通更莫問蒼天 궁하고 통하는 것 다시 저 푸른 하늘에 묻지 말아요.
秋林漠漠風吹急 가을 숲 막막한데 바람은 세차게 몰아치고
寒雨蕭蕭葉殞筵 찬비 쓸쓸하니 나뭇잎 그 자리에 바로 떨어지네.
相對一尊談笑地 서로 만나 한 잔 술로 웃으며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
黃花何意管流年 누런 국화꽃이 흐르는 세월과 무슨 상관이리.
別山 산을 떠나며
扶輿淸淑此焉窮 수레로 아름답고 맑은 이곳에 이르니 길은 다하고
磅礴頭流氣勢雄 크나큰 두류산 기세가 웅장하구나.
萬古橫天瞻莽莽 만고에 비낀 하늘은 볼수록 망망하여라.
三才拱極仰崇崇 삼재가 북극에 공하니 올려보니 높고도 높구나.
元精固護張猶翕 그 원기 굳게 지키니 퍼지다 다시 뭉쳐지고
潛澤流行感卽通 잠긴 은택 흘러내려 느끼면 통하는구나.
多少往來人不盡 많은 사람들 왕래하여 그치지 않으니
却慙靈境祕祝融 축융을 숨긴 신령한 경계가 오히려 부끄럽구나.
浮碧樓錦繡山前寺 금수산앞 영명사
大洞江上樓 대동강 위 부벽루라.
江山自古今 강산은 고금이 그대로인데
往事幾春秋 세월은 얼마나 변하였는가.
粉壁留佳句 장식한 벽엔 좋은 시 남아 있고
蒼崖記勝遊 이끼 낀 바위엔 풍류객 이름이 새겨져있네.
扃舟不迷路 배도 갈 길 잃지 않거니
余亦沂淸流 나도 물처럼 맑게 흘러가리라.
山堂寒日
一室空山裏 외딴집 공산 속에 있으니
蕭條歲欲窮 쓸쓸히 한해도 저물어 가네.
凍泉時自汲 언 샘물 때때로 몸소 길어오고
枯蘖且相烘 마른 등걸들로 불을 사른다네.
靜憩窓間日 조용히 창 사이 햇볕을 쬐고
閒聽谷口風 한가이 골짝 입구 바람 소리 듣노라.
生涯聊可慰 생애를 애오라지 달랠만하니
此意與誰同 이 뜻을 누구와 함께 하오리.
上退溪先生 퇴계 선생께 올리다
寵渥徵金馬 두터운 총애로 금마의 부름을 받아
恩榮覲北堂 성은의 영화로 북당을 뵈었습니다.
塵埃凰短羽 진애에 묻힌 봉황은 깃이 짧아서요
風雨雁聯行 풍우 속에서도 기러기는 줄을 잇습니다.
喜託新知益 기쁘게 새로 사귄 벗들을 의탁하였으니
驚看別語忙 작별의 소리 분망함에 놀라며 보았습니다.
渾深孤露感 혼연히 깊은 외로운 감회가 표출되어
延望疚中腸 목 빼어 바라니 마음속에 병이 났습니다.
狎鷗亭
荒榛蔓草蔽高丘 거친 숲에 엉킨 풀이 높은 언덕 뒤덮어
緬想當時辦勝遊 아득히 당시를 생각하니 명승지임을 알겠다.
人事百年能幾許 인간의 일백 년 그 얼마나 되는가
滿江煙景入搔頭 강에 가득한 안개 풍경 번잡한 머리에 든다
夜成 밤에 짓다
寒夜不成夢 차가운 밤에 꿈도 꾸지 못하고
孤吟對短檠 외로이 읊으며 등잔불 마주보네.
月上照疏竹 달 떠올라 성긴 대밭을 비추니
窓明分細蝱 창은 밝아져 작은 벌레도 보이네.
隣犬元多警 이웃 개들은 원래 깨우침 많고
村舂自送聲 마을에선 방아 찧는 소리 저절로 들리네.
黙黙誰開抱 침묵만 흐르니 누구와 회포를 나눌까
悠悠百感生 내 마음에 아득히 온갖 감회가 생겨나네.
歷訪朴孝伯 박효백을 찾아가다
逢君話疇昔 그대를 만나 옛이야기 나누면서
濁酒聊自斟 애오라지 탁주를 스스로 따르네.
微風動新竹 가는 바람 대숲에 일자
時有一蟬吟 때때로 매미 소리 들려오네.
歷訪 - 여러 곳을 차례로 방문함
疇昔 - 지난날, 멀지 않은 과거
練光亭
城上高樓眼豁然 성채 위 높은 누각은 시야를 확 트이게 하고
澄光如練靜江天 맑은 빛은 연정강 위의 하늘과 같도다.
殘樽更惜餘霞散 남은 술도 적어지고 저녁놀이 사라짐도 다시금 아쉽고
銀燭高燒照綺筵 은촉대에서 활활 타는 촛불은 비단같이 아름다운 이 자리를 비추도다.
邀月亭韻
夫君才氣合乘車 그대의 재주와 기운은 수레를 탈 만한데
遁跡江湖放浪餘 강호에 숨어 방랑한 나머지 자취를 감추었네.
載酒引船風色嬾 술을 싣고 배를 타니 풍색은 조용하고
藝花扶杖月華虛 꽃 심고 지팡이 짚으니 달빛도 밝다.
經心舊學惟心也 옛 학문에 마음을 다스리니 오직 한 마음
脫手新詩更賁如 새로운 시에 손을 대니 다시 흥겨워지네.
雨露九天應下漏 하늘의 비와 이슬은 당연히 내려오려니
直長威望壓周廬 직장의 위엄과 명망이 주려를 압도하리라.
又奉一律倂祈笑攬 또 율시를 올리며 웃으며 보아주시기를
竄逐歸來鬢欲蒼 쫓겨나 돌아왔을 때 귀밑털은 하얗게 되려 하였고
二人相見喜何量 두 사람의 서로 만나는 기쁨 어이 다 측량하리오.
恩催驛馬班初綴 성은이 역마를 재촉하자 관복을 처음 입게 되어
夢繞庭闈路正長 부모 계신 가정을 꿈속에 맴도니 갈 길은 정말 멀다.
奉養難便堪愛日 봉양이 편치 못하니 가는 해가 아쉽고
經綸未展足迴腸 경륜을 펴지 못해 응당 마음속이 괴로워진다.
東風解凍晴江闊 봄바람에 얼음이 풀려 강물이 활짝 트이고
扶老還京事不妨 늙은 몸 이끌고 서울로 가는 일 방해받지 않으리라.
偶吟
1
春到山中亦已遲 산중이라 봄도 늦게 오고
桃花初落蕨芽肥 도화 지자 고사리는 살찌는구나.
破鐺煮酒仍孤酌 깨어진 냄비에 술 데워 독작하고
醉臥松根無是非 취하여 솔뿌리에 누우니 시비도 없단다.
2
報本空餘詠采蘋 조상 제사엔 공연히 채빈의 제사만 남았고
故山遙憶露濡春 고향 산을 아득히 생각하니 이슬 젖은 봄이었네.
棲遲且作塵中客 깃들어 사는 것은 아직 세상 속의 나그네요
歸去聊憑夢裏人 돌아감은 애오라지 꿈속의 사람에게 의지한다네.
古木蒼松誰是主 고목된 푸른 소나무 누가 주인일까
淸溪白石久無隣 맑은 시내 흰 돌에는 오래도록 이웃도 없구나.
何時得遂田園興 어느 때 전원의 흥취 이루어
兄弟相看一笑新 형제끼리 서로 보며 한 번 웃어볼까.
3
落日悠悠獨倚欄 지는 해에 유유히 홀로 난간 기대니
眼中人事似飛湍 눈앞에 사람의 일들이 나는 물결 같구나.
衛生誰蓄三年艾 병을 고쳐 삶을 지키려 누가 삼 년 된 쑥을 비축하나
謀食爭緣百尺竿 식록을 꾀해 다투어 백 척의 간두를 타는구나.
萬里雲山空疊翠 만 리에 구름과 산 헛되이 푸르름 쌓였고
幾家高閣謾流丹 몇 집의 높은 누각 단청이 흐르는구나.
衰榮不覺同歸盡 쇠하고 영화로움 깨닫지도 못하고 모두 다하리니
堪笑吾生作計難 나의 생애 계획하기 어려움은 우습기만 하구나.
偶題
庭前小草挾風薰 뜰 앞 작은 풀에 훈훈한 바람 감도는데
殘夢初醒午酒醺 남은 꿈 갓 깨자 낮술에 취하였네.
深院落花春晝永 깊은 정원에 꽃 지고 봄날은 긴데
隔簾蜂蝶晩紛紛 발 넘어 벌과 나비 늦도록 윙윙대며 날고 있네.
雨中
只今身世已迷津 지금 이 몸은 이미 건널 나루터를 잃고
獨臥空堂雨襲人 빈집에 홀로 누워 비에 젖는다.
日暮未堪長鋏拔 날 저무니 긴 칼을 뽑지 못하고
夜深猶許短檠親 밤이 깊어 오히려 등잔불과 가깝구나.
疎煙漠漠疑封戶 안개도 자욱하여 문을 닫은 듯
密葉陰陰欲蓋隣 나뭇잎은 어둑하여 이웃 고을 가렸구나.
幽興撩詩應爛熳 그윽한 흥취 시흥을 돋우어 氣分 좋으니
一杯相屬趁芳辰 한 잔 술을 서로 권하며 좋은 계절 즐겨보세.
圍棋 바둑을 두며
空堂閑坐且圍棋 빈방에 한가히 앉아 바둑판 둘러싸고
撥得幽懷自一奇 그윽한 회포 풀어보니 저절로 하나의 기이함이로다.
蜩甲形骸眞欲幻 허물 벗는 매미처럼 진지하게 탈 바꾸려 하고
蛛絲意緖政堪遲 거미가 줄 치듯이 생각의 실마리는 신중하구나.
涪翁妙句心能會 부옹의 묘한 글귀 속으로 짐작하며
商皓神機手已知 상산 네 호탕 선비의 신기한 기미도 손이 벌써 알았구나.
戲罷一場成浩笑 한 판 끝내고 크게 웃으니
綠楊黃鳥亂啼時 푸른 버들 속 꾀꼬리가 어지럽게 우는 때로다.
遊七頭草亭 칠두 초정에서 놀다
溪行盡日寫幽襟 종일토록 개울 거닐며 마음속 회포 푸는데
更値華林落晩陰 다시 화려한 숲에는 저녁 그늘이 깔리는구나.
稿薦石床人自夢 돌상에 짚방석에 누우니 저절로 꿈에 들고
遠山疎雨一蟬吟 먼 산에 잠깐 비 내린 뒤 매미가 울어댄다.
臨流亭 나주 박산에 있는 정자
松梢淸月上悠悠 솔가지 끝에 달린 맑은 달이 한가로워
把酒臨流散百憂 온갖 근심 떨쳐 버린 임류정의 술자리
人世幾看榮又悴 인간사 흥망성쇠 그 얼마나 보아왔던가
醉中渾覺此生浮 이 인생이 헛되다는 것 취중에도 알겠네.
鄭孝子詩
巍然錦城山 우뚝한 금성산이
南紀鎭爲雄 남쪽 땅 지덕을 눌러 웅장하구나.
名都據形勝 이름난 도읍이 명승지 차지하니
物産不獨豐 물산만 풍부한 것만이 아니도다.
村村自喬木 마을마다 큰 나무 서 있고
下維德人宮 그 아래에는 덕 있는 사람들의 집이 몰려있구나.
事親極其孝 부모님을 섬김에 그 효심 지극하니
精誠與天通 그 정성 하늘에 통하는구나.
耈壽錫無疆 장수를 누림도 끝이 없어
八十顔始紅 나이 팔십에도 얼굴이 붉으시다.
時從鄕老會 때로는 시골 노인들과 함께 모이니
儀度儘躬躬 예의가 모두 다 참으로 공손하도다.
怡怡談故事 기쁘게 옛일을 이야기하니
白叟皆趨躬 백발노인들 모두 몸소 모여드는구나.
太守竦且敬 태수도 어려워하고 존경하여
意欲達黈聰 임금에게 아뢰려고 하였다네.
小子未有知 소자는 아는 것이 없지만
卓行徒仰嵩 높은 행실만 우러를 뿐이로세.
綴詩挹餘光 시를 지어 남은 빚 거둬들이니
萬古垂高風 만고에 높은 바람 드리우리라.
題扇
鑠景流空地欲蒸 쇠가 햇볕에 녹아 흐르고 땅도 찌는 듯한데
午窓揮汗困多蠅 점심 때 창가에서 땀을 뿌리며 몰리는 파리가 성가시다.
憐渠解引淸風至 저 부채가 청풍을 끌어올 줄 아니 기특한바
何必崑崙更踏氷 어찌 반드시 곤륜산에 가 얼음을 밟아야만 하랴.
團扇生風足 둥근 부채 바람을 잘 일으키니
秋來奈爾何 가을이 오면 너를 어이할까.
爲君多少感 너를 위해 다소간 느낌이 있나니
寒熱不同科 차고 더움이란 본래 같이 논할 수는 없는 것이네.
從牧伯飮 목백과 술을 마시며
風靜天開矢道明 바람 자고 맑은 날 활쏘기 시합 하니
傳觴破的善哉爭 술잔을 돌리며 과녁 맞히기 좋은 경쟁이로다.
罰籌已覺蝟毛積 벌주가 한도 없이 쌓였음을 알고
定是寒儒浪自驚 빈한한 선비가 바로 부질없이 놀래는구나.
縱筆
淸風動萬松 맑은 바람에 소나무들 물결치고
白雲滿幽谷 흰 구름은 그윽한 골짜기에 가득 하구나.
山人獨夜步 산 사람 홀로 걷는 밤길에
溪水鳴寒玉 찬 개울 옥수만 소리 내어 흐르누나.
舟中醉氣
江頭盡醉偶佳期 나루터에서 우연히 술 취하기 좋은 때 만나
杯酒淋漓欲濕衣 잔술이 흥건하여 옷을 적시려 하는구나.
牽興不須愁日晩 흥에 겨워 저무는 것도 근심되지 않아
題詩且可餞春歸 시를 쓰면서 봄을 전송하며 돌아가련다.
風煙冉冉猶相惹 바람에 날리는 물안개 하늘하늘 일어나고
花絮紛紛只自飛 꽃 같은 버들 솜 분분히 날아다닌다.
仙夢一宵超物外 신선의 꿈 하룻밤에 속세을 벗어나니
世間塵土莫來圍 세간의 흙먼지여 나를 에워싸지 말라.
次 松川韻
最愛桐花照酒杯 오동나무꽃이 술잔에 비치니 너무도 사랑스럽고
笑談應得鬱懷開 웃으며 이야기하니 울적하고 답답한 마음 풀만도 하네.
江頭細路渾疑暗 강가의 오솔길 모두 어둑하니
策馬猶須信轡回 말에 채찍질 말고 가는 데로 맡겨 돌아가리라.
次吳牧使韻 오목사의 운을 빌려
自喜文翁化 스스로 문옹의 교화를 기뻐하다가
還應託有隣 도리어 의탁하는 이웃이 되었다네.
笑談蠡測海 웃으며 이야기 나누나 전복껍질로 바다를 알겠는가
酬唱蘖生春 시를 주고받음 움나무 봄을 만났구나.
曜德輝南極 밝은 덕은 남쪽 끝에 빛나고
懸情拱北辰 매달린 정은 북극성을 끼고 있구나.
風雲他日會 다른 날에 풍운 되어 모이면
洪量鎭甘辛 넓은 도량으로 달고 씀을 진정시키리라.
千山雪漲溪 온 산의 눈으로 개울물 불어나
風墮千山雪 바람이 천 산의 눈 떨어뜨리니
寒溪漲欲平 찬 시내 물 불어나 평평해지네.
潮光凝不退 조수에 어리어 물러가지 않고
月色曉猶明 달빛은 새벽이 되어도 밝기만 하구나.
巖谷猿啼冷 바위 골짝에 잔나비 쓸쓸히 울고
松梢鶴夢驚 소나무 가지에 학도 꿈에 놀라는구나.
遙知灞橋上 아득히 알겠으니 파교 위에는
詩興未應淸 시흥이 응당 맑지 못하리라.
蔥秀山
蔥秀溪山好 총수산 계곡은 아름다워
儒仙舊揭名 유선이 예부터 이름을 걸었네.
巉巖神所鑿 가파른 바위는 신이 깎아 놓았고
澄澈鏡如明 맑은 물은 거울같이 밝도다.
暗竇寒泉冽 어둑한 구멍에 차가운 샘물 맑고
陰崖細草榮 그늘진 벼랑에는 잔잔한 풀도 무성하다.
經過愜幽賞 지나는 곳마다 그윽한 구경 흡족하니
一笑散塵纓 한 번 웃으며 풍진의 갓끈 흩어버린다.
夏景
蒲席筠床隨意臥 부들방석 대나무 침상에 누우니
虛欞踈箔度微風 빈창과 성긴 발로 미풍이 불어 든다.
團圓更有生凉手 둥근 부채 부치니 다시 서늘해지고
頓覺炎蒸一夜空 찌는 듯한 더위가 이 밤에 없어지려네.
喜雨
同風鏖暑隮氛氳 바람과 같이 더위 쫓으니 무지개가 서고
瓦響騷騷夜轉聞 기와에 소란한 빗소리는 밤에 더욱 요란하네.
已覺滂沱均率土 이미 충분하고 전국에 고루 온 것 알았으니
還將豐穰祚明君 오히려 풍년을 임금에게 축복 드리세.
郊原浩渺猶翻日 들판은 넓어 아득한데 햇살은 번쩍이고
澗谷蒼茫欲漲雲 골짜기는 창망하여 구름이 넘치네.
巖寺閉門紬古史 바위 위 절간에서 문 닫고 옛일 살피는데
映空芳篆擢爐薰 공중에 서리는 연기가 화로에서 피어오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