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Pride & Prejudice)
Jane Austen
1
상당한 재산을 가진 독신 남성이 이웃으로 이사를 오면 이웃 사람들은 자신의 딸들 중에서 누군가 그를 차지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독신이며 갑부 총각이 네더필드 파크(저택)를 임대하자, 딸 갖은 부모들이 눈독을 드린다.
그중 베넷 부인은 자기 남편에게 그 청년이 이사 오면 찾아가 보라고 한다.
2
베넷 씨는 가장 먼저 빙리 씨를 방문한 사람들 중에 한 명이었다. 아내에게는 끝까지 찾아가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진작부터 찾아갈 작정이었다. 베넷 부인은 그날 밤까지도 그 방문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그날 저녁 얘기 도중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들은 그날 밤 내내 아버지가 방문한 것에 대한 답례로, 그가 찾아오는 것은 언제이며, 만찬의 초대는 언제가 좋을까 하는 등등의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시간을 보냈다.
3
이사를 오게 되는 빙리 씨는 멋지고 훌륭한 청년으로, 놀랄 만큼 잘생겼으며. 퍽 호감을 주는 젊은이라는 것이다. 이번 무도회에는 많은 친구들이 함께 참석할 것이라고 하니 이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춤을 좋아한다는 것이야말로 곧 사랑에 빠질 첫 단계인 만큼 모두들 빙리 씨의 마음을 끌어볼 생각에 가슴이 몹시 설레었다.
며칠 후에 답례로 찾아온 빙리 씨는 베넷 씨의 서재에 10분쯤 앉아 있었다. 그는 베넷 씨의 딸들이 모두 아름답다는 소문을 미리 듣고 왔기에 딸들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그를 맞아준 사람은 아버지뿐이었다.
곧 만찬 초대장이 건네어지고, 베넷 부인은 음식솜씨를 자랑할 식단을 다각도로 궁리했지만, 빙리 씨가 다음날 런던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모처럼의 초대에 응할 수 없다는 회답이었다.
그러나 곧바로 온다는 소문이 돌았다. 일행은 전부 5명이었다. 빙리 씨와 그의 두 누이, 매형,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젊은 청년이었다.
빙리 씨는 미남에다가 신사다운 인물이었다. 명랑하고, 여유 있고, 가식 없이 편안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누이들은 최신유행의 옷을 입은 멋쟁이 숙녀들이었다. 매형인 허스트 씨는 그저 신사답다는 느낌뿐인 사람이었지만, 친구인 다아시 씨는 훤칠하게 키가 크고 단정한 모습에다, 의젓하고 기품 있는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무도회장에 들어온 지 5분도 채 안 되어 그의 수입이 연간 1만 파운드라는 소문이 돌면서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그의 훌륭한 풍채와 잘생긴 용모에 매력을 느꼈으나, 그의 태도가 모든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었던 것이다. 그는 거만하고 초연한 듯한 태도를 보이며, 사람들 틈에 끼려고 하지 않고 아첨하는 말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 태도 때문에, 비록 더비셔에 막대한 재산과 토지를 갖고 있다고 하지만 명랑하고 자상한 성품인 빙리 씨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평판을 받았다,
마침 엘리자베스 바로 옆에 다아시 씨가 있었으므로, 잠시 춤을 중단하고 그들 틈에 끼라고 권하러 온 빙리 씨와 다아시 씨의 대화를 그만 엿듣고 말았다.
“이봐, 다아시, 자네도 춤을 추게. 나는 자네가 혼자 멍하니 서 있는 걸 보는 건 견딜 수가 없어. 춤을 추는 편이 훨씬 좋아.”
“나는 싫네. 자네도 알고 있지 않나. 나는 어지간히 친한 사이가 아니고서는 춤을 추지 않는다는 걸, 이런 무도회야말로 정말 견디기 어려워, 모르는 여자들과 춤을 추라는 건 벌을 받으라는 것과 다름없네. 자네는 이 자리에서 유일한 미인과 춤을 추고 있네.”
다아시 씨는 베넷 가의 장녀에게 눈길을 던지며 말했다.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은 본 적이 없네, 하지만 자네 바로 뒤에 앉아 있는 그녀의 동생도 아주 예쁘고 상냥한 아가씨야. 내 파트너에게 자네 소개를 부탁해보지.” 빙리 씨가 말했다.
“누군데.”
그는 몸을 돌리다가 얼핏 엘리자베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이내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냉담하게 말했다.
“봐줄 만은 하지만 내 마음을 끌 정도는 아니야. 그리고 지금은 다른 남자들에게 따돌림을 받은 아가씨에게 좋은 점수를 매겨주고 싶은 기분도 아니고. 자네는 어서 파트너에게 돌아가서 그녀의 미소나 즐기게, 여기선 시간만 허비할 뿐이거든.”
빙리 자매는 특별히 관심 있는 눈길을 제인에게 던졌다. 제인도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흡족했고 엘리자베스는 언니의 기쁨을 만족하게 생각했다.
그날 밤, 롱본에 돌아온 베넷 가의 가족들은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다아시 씨 같은 사람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해서 리지에겐 별로 손해날 게 없어요. 우리 리지가 춤을 추고 싶을 만큼 아름답지 않다니!”
4
제인은 빙리의 칭찬을 많이했다. 미남이고 그 정도면 그 사람의 인품이야 더 볼 것도 없다고. 엘리자베스도 맞장구를 쳤다.
“두 번째로 춤을 청했을 땐 정말 기뻤어. 짐작도 못 했거든.”
“짐작도 못 했다고? 나는 짐작하고 있었어. 그게 바로 언니와 나의 큰 차이점이야. 그 사람이 칭찬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야. 언니가 좋아한다면 나도 찬성할게.”
“리지······.”
“언니의 눈엔 세상의 모든 게 선량하고 기분 좋게 보이는 거지.”
“남을 성급하게 비난하고 싶진 않아, 리지, 난 언제나 느낀 그대로를 말할 뿐이야.”
빙리 씨와 다아시 씨는 아주 다른 성격이었지만 꾸준하게 우정을 맺어오고 있었다. 지적인 능력으로 말하자면 다아시 씨 쪽이 나았지만, 다아시 씨는 총기가 있었으나 도도하고 까다로웠으며. 태도는 단정했지만, 사람들에게 친근감을 주지 못했다. 빙리 씨는 언제 어디서나 사람들에게 호감을 사는 편이었다.
메리턴의 무도회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는 그들의 특징을 제각기 보여주었다. 제인은 사랑스러운 아가씨로 평가되었고, 앞으로 사귀는 문제에 대한 어떠한 이의도 달지 않았다.
5
베넷 가가 있는 롱본에서 가까운 곳에 윌리엄 루카스 경이 살고 있었다. 루카스 경은 메리턴에서 장사를 해서 상당한 재산을 모았으며, 메리턴 시장을 역임했고, 그 공로를 인정받아,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국왕에게 기사 작위를 받은 사람이었다. 루카스 부인도 좋은 사람이었으며, 베넷 부인에게는 둘도 없이 소중한 이웃이었다.
루카스 가와 베넷 가의 딸들은 무도회가 끝난 후엔 반드시 모여서 대화를 나누는 습관이 있었다.
“샬럿은 어젯밤 아주 좋았지. 빙리 씨가 너를 처음으로 골랐으니 말이야.”
베넷 부인은 루카스의 맏딸을 한껏 추켜올리며 말문을 열었다.
“네, 하지만 그 사람은 그 다음에 고른 사람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오! 제인 말이지······. 그 애하곤 두 번 춤을 추었으니까.”
“빙리 씨와 로빈슨(다아시) 씨가 하는 애길 제가 엿들었어요. 로빈슨 씨가 ‘누가 제일 아름다운가?’ 하고 물으니, 빙리 씨가 ‘그건 물론 베넷가의 큰딸이지. 거기에 이론은 없어!’ 하고 대답했어요.” 하고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빙리 양의 말에 의하면, 그 사람은 친한 사이 아니고는 별로 얘기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분들에겐 아주 싹싹하고 좋은 사람이래요.”
“그런 말은 한 마디도 믿고 싶지 않아. 만일 그렇게 교양 있는 사람이었다면 롱 부인에게 먼저 말을 건넸을 테니까 말이다. 모두 그 사람은 아주 거만하다고 말하고 있잖니.”
“저는 그분이 롱 부인에게 말을 건네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일라이자하고 춤을 추지 않은 것은 몹시 안타까워요.”
루카스 양이 말했다.
“그 사람은 최고의 가문에 재산도 많고, 좋은 조건이란 다 갖추고 있으니 오만한 거지요.” 하고 샬럿이 말했다.
“그건 샬럿 말이 맞아, 만약 그 사람이 내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았다면 오만함을 나도 쉽게 용서해줄 수 있었을 거야.” 하고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오만이란 매우 흔히 있는 결함이라고 생각해요. 허영과 오만은 가끔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실제로는 다른 것이에요, 오만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기의 의견과 관계가 있지만, 허영은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자기를 이렇게 생각해 달라고 바라는 것에 대한 문제이니까.” 하고 메리가 말했다.
6
롱본의 숙녀들은 얼마 후에 네더필드 가 숙녀들을 정식으로 방문하여 정중하게 대접을 받았다. 제인의 상냥한 태도는 허스트 부인과 빙리 양의 마음에 들어 두 사람의 호의는 더욱 커졌다.
제인은 열정을 품고 있으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항상 쾌활하게 지냈으므로, 세상의 그 누구에게도 환영을 받았다. 엘리자베스는 그것을 기쁘게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친구인 샬럿 루카스 양에게 말해보았다.
“빙리 씨는 확실히 너의 언니를 좋아해. 그렇지만 혹시 네 언니가 자기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감쪽같이 감추면서 애정을 보여주지 않으면, 절대로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는 발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언니는 그 성격으로 보면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하고 있어. 만약에 그 사람이 모른다면 어지간히 둔한 거지.”
“그렇지만 일라이자, 그 사람은 제인 언니의 성격을 너만큼은 잘 모르잖아. 나는 제인 언니가 그 사람과 잘되길 빌고 있어. 그래서 혹시 제인 언니가 그 사람과 내일 결혼한다고 하더라도, 일 년 동안 그 사람의 성격을 연구했을 경우와 마찬가지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 상대방의 성격을 서로 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두 사람의 행복을 향상시키는 것은 아니야. 일라이자, 너도 앞으로 일생을 같이할 사람이라면 결점은 될 수 있는 한 모를수록 좋은 거야.”
샬럿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웃기는 말이야, 샬럿. 그건 건전하지 않아. 너도 알고 있을 거야. 너 자신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다아시 씨는 맨 처음 그 무도회장에서 엘리자베스를 만났을 때 그녀가 특별히 아름답다고 느껴지지 않았고 마음이 끌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짙은 눈빛의 아름다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매우 영리하고 총명하게 돋보인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계속해서 그와 같은 장점을 몇 가지 더 발견했다. 다아시 씨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에서 완전한 균형을 이루지 못한 점을 한두 가지 찾아냈지만, 그녀가 아주 활달하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머가 있고 쾌활하며 약간의 장난기가 있는 모습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엘리자베스는 이런 그의 관심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다아시 씨는 그저 어디서든지 상냥하지 않은 남자이고, 또 자신을 춤추고 싶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 남자였던 것이다.
윌리엄 루카스 경의 저택에서 많은 사람이 모였을 때의 일이었다.
“다아시 씨는 무슨 속셈으로 내가 포스터 대령과 얘기하고 있는 걸 열심히 듣고 있을까?”
엘리자베스가 샬럿에게 물었다.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다아시 씨뿐이야.”
그 후 곧 다아시 씨는 두 사람 쪽으로 다가왔으나, 말을 건네려는 의향은 없는 것 같았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말했다.
“다아시 씨, 방금 전에 제가 포스터 대령에게 메리턴에서 무도회를 열어달라고 말했지요.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단한 열정이시던데요. 여자들은 무도회라면 이상하게 활기에 넘치는 것 같군요.”
“아주 정곡을 찌르는군요?”
“이번엔 일라이자가 곤욕을 치를 차례예요. 자, 피아노를 열겠어, 일라이자. 그 다음엔 뭘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겠지.”
샬럿이 웃으면서 말했다.
“너는 친구로는 참 이상한 아이야. 언제나 아무 앞에서나 피아노를 치게 하고 노래를 부르게 하고 싶어 하니 말이야. 가장 훌륭한 연주자의 연주를 듣는 데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 앞에 앉아서 피아노 같은 걸 두드리고 싶진 않아.”
그렇게 말은 했으나 엘리자베스는 조용하게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엘리자베스의 노래는 결코 훌륭하진 않았지만 모두들 흥에 취해서 듣고 있었다. 한두 곡의 노래를 부른 뒤에 한 곡 더 불러 달라는 몇 사람의 요청에 미처 답하기 전에 동생 메리가 얼른 언니 다음으로 피아노에 앉았다.
윌리엄 경은 그저 미소를 지었을 뿐이었다. 잠시 후, 빙리 씨가 춤추는 사람들 틈에 자연스럽게 합류하는 것을 보며 말했다.
“친구분은 춤을 참 잘 추시는군요. 당신도 숙련된 솜씨가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일라이자, 너는 왜 춤을 추지 않지? 다아시 씨, 매우 훌륭한 댄스 파트너로 이 숙녀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루카스 경은 엘리자베스의 손을 잡아서 다아시 씨에게 넘겨주려고 했다. 그런데 엘리자베스가 뒤로 물러서며 윌리엄 경을 당황하게 했다.
“저는 전혀 춤출 생각이 없어요.”
다아시 씨는 매우 진지하고 예의 바르게, 한 번만 춤을 출 수 있는 영광을 달라고 간청했으나 허사였다.
다아시 씨는 엘리자베스를 생각하며 마음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꼈다. 다아시 씨는 엘리자베스의 아름다운 얼굴 중에서도 특히 빛나는 두 눈이 얼마나 큰 기쁨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 감탄하고 있었다.
7
베넷 씨의 재산은 일 년에 2천 파운드의 수입이 있는 토지가 전부였다. 그런데 딸로서는 운이 나쁘게도, 그 토지는 남자 상속인이 상속하도록 한정되어 있어서 어느 친척 남자가 물려받게 되어 있었다. 베넷 부인의 아버지는 메리턴에서 변호사로 있었는데 그녀에게 4천 파운드의 유산을 남겼다.
그녀에겐 아버지 밑에서 일하다가 그 일을 이어받은 변호사 필립스 씨와 결혼한 동생이 있었고, 사업을 하며 런던에 살고있는 남동생이 있었다.
제인은 캐롤라인 빙리의 루이자 언니와 같이 식사를 하자는 편지를 받고, 비를 흠뻑 맞으며 말을 타고 네더필드 빙리의 집으로 갔다.
이튿날 아침 식사가 끝나자마자 하인이 네더필드로부터 편지를 가지고 왔다. 제인이 많이 아프기 때문에 집에 올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진심으로 걱정이 되어 언니한테 가기로 했다. 그녀는 말을 탈 줄 몰랐으므로 걸어서 갔다. 들판을 가로질러 울타리를 넘고 물이 괸 웅덩이를 뛰어넘어 드디어 저택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엔, 발목은 시큰거렸고, 양말은 흙탕물이 튀어 더러웠으며, 얼굴은 상기되어 홍조를 띠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아침 식사 중인 식당으로 안내되었다. 제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이 모두 모여 있었는데 그녀를 보고 몹시 놀란 모양이었다. 3마일이나 되는 진창길을 이렇게 아침 일찍, 그것도 혼자 온다는 것은 허스트 부인이나 빙리 양으로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며, 엘리자베스는 그들이 경멸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빙리 씨의 태도는 예의 바른 정도를 넘어서서 더없이 상냥하고 친절했다. 다아시 씨는 홍조를 띤 얼굴이 근사하다고 느끼면서, 이렇게 멀리까지 혼자 찾아올 정도의 경우인가 의아스럽게 생각했으며, 허스트 씨는 아침 식사 생각밖에 없었다.
제인은 동생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아침 식사가 끝나자 빙리 자매가 와서 제인을 보살펴주며 호의를 표시했으므로, 엘리자베스도 두 사람 모두를 좋게 생각했다. 이윽고 의사가 와서 진찰을 했는데, 그것은 악성 감기였다. 각별히 조심해야 회복이 빠르다고 말하고, 약을 지어 주었다. 신사들은 모두 외출 중이어서 달리 할 일이 없기도 했다.
3시가 되자, 엘리자베스는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 돌아가 봐야겠다고 말했다. 빙리 양이 마차를 제공하기로 해서 엘리자베스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지만, 제인이 동생과 헤어지는 게 몹시 아쉬운 듯한 기미를 보였기 때문에, 빙리 양은 네더필드에 좀더 머물러 있으라고 하여, 엘리자베스는 아주 고마운 마음으로 그 권유를 받아들였고, 그 소식을 전할 하인을 롱본으로 보냈다.
8
6시 30분에 저녁 식사를 하라는 전갈을 받았다. 식당에선 병세를 묻는 정중한 말들이 오갔다.
그 중에서도 빙리 씨가 특히 진심으로 염려를 해주어 기쁘게 생각했지만, 그 물음에 시원스럽게 대답해 주지는 못했다. 제인의 병세가 전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들의 눈앞에 없을 때 제인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두 사람에 대해 엘리자베스는 그들에게 갖고 있었던 혐오감이 다시금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그들 중에서 조금이라도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빙리 씨뿐이었다. 그는 분명히 언니를 걱정하고 있었고 자기에게도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주고 있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엘리자베스는 곧바로 제인에게 돌아갔고, 빙리 양은 곧 엘리자베스를 흉보기 시작했다. 무례하고 야만적이며, 비사교적이고 품위가 없으며, 취미도 없고 인물도 별로라고 낙인을 찍자, 허스트 부인도 같은 의견으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말하자면, 그녀는 다리가 튼튼하다는 것밖엔 볼 것이 없는 여자지, 오늘 아침 그녀의 모습은 정말 잊지 못할 거야. 꼭 미치광이 같았어.”
“언니에 대한 애정의 표시이니 아주 기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빙리 씨가 말했다.
“다아시 씨, 그녀의 아름다운 눈에 대한 예찬도 이것으로 다소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
빙리 양은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아요! 그녀의 눈은 더욱 생기가 넘치더군요.”
제인이 아직도 몸이 회복되지 않았으므로 엘리자베스는 밤늦게까지 언니 곁을 떠나지 않았다. 겨우 제인이 잠드는 것을 보고서야 안심을 하고, 즐거운 일은 아니지만, 자기도 아래층에 내려가 그들 틈에 섞이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다. 객실에 들어가니 그들은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같이 카드놀이를 하자고 권했지만, 언제 이 층으로 돌아가야 할지 모른다는 구실로 잠시 책을 읽고 싶다고 말했다.
“카드보다 독서가 더 좋아요? 이상한 일이군.”
“일라이자 양은 굉장한 독서가예요. 다른 즐거움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을 정도지요.”
빙리 양이 말했다.
“어머, 그렇게 칭찬을 받을 까닭도, 그렇게 비난을 받을 이유도 없어요, 저는 굉장한 독서가도 아닐뿐더러 여러 가지 일에서 즐거움을 느껴요.”
엘리자베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언니를 간호하는 걸 즐겁게 생각하시는군요. 이제 곧 언니가 회복되어 그 즐거움이 한층 커지기 바랍니다.”
빙리 씨가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그에게 진심으로 고맙다고 말했다.
잠시 후 엘리자베스는 방을 나왔다.
문이 닫히자 빙리 양이 입을 열었다.
“일라이자 베넷은 다른 여자들은 업신여기고 남성에 아부하는 사람이에요. 남자들 중엔 거기에 넘어가는 사람도 많이 있어요.”
다아시 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응수했다.
“그렇지요, 여자가 남자들을 사로잡으려고 하는 술책은 모두 비겁한 거예요. 무엇이든 교활한 것은 경멸해야 합니다.”
엘리자베스가 다시 그들에게 왔는데, 그것은 언니의 상태가 악화되었기 때문에 그 곁에서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아침이 되어 제인 양이 분명히 좋아졌다고 생각되지 않을 경우에 존스 씨를 부르기로 했다.
한편 빙리 씨는 병자와 그 동생을 될 수 있는 대로 잘 보살피라고 가정부에게 말하는 것이 최대한의 위안인 듯했다.
9
엘리자베스는 그날 밤엔 거의 언니 방에서 지냈다. 그녀는 어머니가 직접 제인을 보살피러 와서 병세에 대한 판단을 내려주기 바란다는 내용의 편지를 롱본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베넷 부인은 막내딸을 데리고 아침 식사가 끝난 직후 네더필드에 도착했다.
딸의 병이 놀랄 게 못 된다는 것을 알고서는 아주 안심을 해버리고, 회복이 되면 네더필드를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딸이 빨리 낫기를 바라지 않는 듯했다.
같은 무렵에 도착한 의사도 환자가 움직이는 것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고 했다.
어머니와 딸들은 식당으로 안내되었다. 빙리 씨는 베넷 부인에게, 따님의 상태가 짐작하셨던 것보다 나빴느냐고 물었다.
베넷 부인은 “상태가 짐작했던 것보다 나쁘더군요. 존스 씨도 움직이지 말라고 하셔서, 얼마 동안 더 머물러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움직이다니오? 그건 안 됩니다. 여동생도 그런 제안은 틀림없이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빙리 씨는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부인, 너무 염려 마세요. 저의 집에 제인 양이 묵고 있는 동안은 될 수 있는 대로 잘 보살펴드릴 생각이에요.”
빙리 양은 냉정하고 예의 바르게 말했다. 베넷 부인은 고맙다는 말을 과장해서 했다.
베넷 부인과 막내딸은 집에 돌아가기로 하고, 엘리자베스는 이내 제인에게로 돌아가, 자기 자신과 어머니와 동생의 언동은 두 여자와 다아시 씨의 비판에 맡겼다. 그러나 빙리 양이 아름다운 눈에 대한 재치 있는 말로 수다를 떨었지만 그 아름다운 눈의 소유자에 대한 비난으로 다아시 씨를 끌어들이지는 못했다.
10
그날은 전날과 거의 다름없이 지나갔다. 허스트 부인과 빙리 양은 제인과 함께 오전의 몇 시간을 보냈고, 제인도 천천히 회복되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도 밤에는 응접실에서 그들과 어울렸다. 이날 밤에는 카드놀이를 하기 위한 탁자가 나와 있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자수를 놓으면서 다아시 씨와 그의 상대가 주고받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재미있어 하고 있었다. 여자 쪽에서는 상대방의 필적이 좋고 줄이 고르고 편지 길이가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끊임없이 칭찬을 늘어놓고 있었지만, 남자 쪽에서는 그런 말을 아주 무관심하게 흘려듣고 있었다.
그들의 기묘한 대화는 그들 각자에 대해 엘리자베스가 품고 있는 견해와 꼭 맞는 것이었다.
“일 년 동안에 퍽 많은 편지를 쓰시겠군요. 사업상의 편지도 있을 텐데. 저 같으면 곧 싫증이 날 거예요!”
“편지를 써야 할 사람이 빙리 양이 아니고 저니까 다행이군요.”
“제가 여동생을 무척 보고 싶어한다고 써주세요.”
“그 말은 이미 썼습니다.”
다아시 씨는 편지를 다 쓰고 나자, 그는 빙리 양과 엘리자베스에게 음악을 들려달라고 청했다. 빙리 양은 엘리자베스에게 먼저 연주하라고 정중하게 권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도 정중하게, 그리고 더 완강히 사양했기 때문에 결국은 빙리 양이 먼저 피아노 앞에 앉았다.
허스트 부인은 동생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그동안에 엘리자베스는 피아노 위의 악보를 뒤적이고 있었다. 그러나 다아시 씨의 눈이 줄곧 자기에게 못 박혀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그렇게 훌륭한 사람의 찬탄의 표적이 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싫어서 바라본다고 생각하는 것은 더욱 이상했다.
이탈리아 가곡을 몇 번 연주한 다음에 빙리 양은 분위기를 바꾸어 활발한 스코틀랜드의 가곡을 쳤다. 그러자 다아시 씨가 엘리자베스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베넷 양,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코틀랜드의 경쾌한 춤인 릴을 추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엘리자베스는 미소를 지었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다아시 씨는 그녀의 침묵이 이상한 듯 다시 한번 물었다.
비로소 엘리자베스가 입을 열었다.
“네, 듣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는군요.”
그녀의 태도는 너무나 귀엽고 자연스러웠다. 다아시 씨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이토록 마음이 끌려본 적이 없었다. 사실 그녀의 신분이 그토록 낮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미 상당히 위험한 상태에 놓였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빙리 양은 이것을 눈치챘다. 적어도 의심스럽다고는 생각했는데, 어쨌든 질투를 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사랑하는 친구 제인의 회복을 바라는 마음은, 하루라도 빨리 엘리자베스를 쫓아내어 버리고 싶어 더욱 열성을 기울이게 되었다.
제인은 그날 밤 두 시쯤 자기 방에서 나와 걸어볼 만큼 회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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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식사가 끝난 후 여자들이 거실로 가자, 엘리자베스는 언니에게 올라갔다. 그리고 춥지 않게 옷을 잘 입힌 다음에 언니를 거실로 데리고 나왔다. 그러자 그녀의 두 친구는 그녀를 환영하면서 거듭 기쁘다는 말을 입 밖에 내었다. 적어도 신사들이 나타나기 전까지 엘리자베스는 여자들끼리 그렇게 다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들은 꽤 많은 대화를 활발하게 나누었다.
그러나 신사들이 나타나자 제인은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빙리 양의 눈길은 이내 다아시 씨에게 쏠렸다. 그가 방에 들어와 몇 걸음도 채 옮겨놓기 전에 무언가 말을 건네려고 했다. 그는 제인 양에게 말을 걸며 진심으로 회복을 축하한다고 했다. 허스트 씨도 가볍게 목례를 건네며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장 열렬한 목소리로 기쁨을 나타낸 사람은 빙리 씨였다. 그는 환희에 넘쳐서 제인을 따뜻하게 보살펴주었다.
엘리자베스는 맞은편 구석에서 뜨개질을 하면서 이 모든 상황을 살펴보며 흡족하게 생각했다.
차를 마시자 허스트 씨는 처제에게 카드놀이 이야기를 슬쩍 비쳤으나 헛수고였다. 그녀는 다아시 씨가 트럼프를 하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다아시 씨는 책을 집어 들었고, 빙리 양도 그렇게 했다. 빙리 양은 책을 읽으면서도 끊임없이 질문을 하거나 다아시 씨가 책장을 넘기는 것을 바라보곤 했다.
“이렇게 밤을 지내는 건 유쾌한 일이군요! 확실히 독서만큼 즐거운 일은 없어요. 독서에 비하면 다른 일은 곧 싫증이 나요. 자기 집을 갖고 있으면서 훌륭한 서재가 없다면 정말로 쓸쓸할 거예요.”
“이젠 음악 좀 듣지 않겠어요? 루이자 언니, 형부를 깨워도 될까?”
자기가 끼어들지 못한 대화에 싫증이 난 빙리 양이 말했다. 언니가 안 된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므로 피아노가 열렸다. 다아시 씨는 잠시 그것을 생각한 뒤 조금도 아쉽게 여기지 않았다. 자기가 엘리자베스에 대해 너무나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위험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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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동생 사이에 의견이 일치했으므로, 엘리자베스는 다음날 아침 어머니께 편지를 띄워, 그날 안으로 마차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베넷 부인은 딸들이 다음 화요일까지 네더필드에 있을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전엔 도저히 두 사람을 반겨 맞고 싶지 않았다.
베넷 부인은 화요일 전에는 마차를 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추신으로 빙리 씨와 여동생이 더 묵어달라고 권한다면 조금도 상관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단연코 더 머물러 있지 않기로 결심했다. 필요 이상으로 폐를 끼치고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을까 싶어서, 제인에게 빙리 씨의 마차를 빌리기를 권했다. 두 사람의 의향이 전해지자, 빙리 씨와 캐롤라인은 거듭 염려하는 말을 늘어놓았다. 단 하루만이라도 더 있으라고 간곡히 권하는 바람에 출발은 다음날로 미루어졌다. 그러자 이내 캐롤라인 빙리 양은 제인을 붙잡은 것을 후회했다.
제인은 다음날 출발하기로 했다.
이것은 다아시 씨에겐 반가운 소식이었다. 엘리자베스는 더 이상 네더필드에 머무르지 않는 편이 좋았다. 스스로 못마땅하리만큼 그녀에게 끌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아시 씨는 현명하게 이제는 그녀를 예찬하는 태도나, 혹은 그녀에게 그의 행복을 좌우하는 힘이 있다는 자신감 따위를 갖게 하는 행동은 절대 보이지 않기로 다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토요일 하루 동안에 그녀에게 단 열 마디의 말도 건네지 않았다.
일요일 아침 예배가 끝나자 거의 모두에게 매우 기분 좋은 이별의 순간이 왔다. 빙리 양도 헤어지는 마당에는 제인에 대한 애정만큼 엘리자베스에 대해서도 예의를 지켰다. 엘리자베스는 쾌활하게 웃으며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어머니는 두 사람을 그리 기분좋게 맞이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몹시 무뚝뚝하게 말하면서도 진심으로 두 사람을 반갑게 맞이했다. 두 사람의 존재가 가정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절실히 느꼈다. 그동안 남은 가족들의 대화는 생기를 잃고 있었던 것이다.
메리는 케케묵은 도덕론을 말하면서 귀담아들어 주기를 원하고, 키티와 리디아는 이모부의 집에서 요즘 식사를 한 일과 병사가 징계를 당한 일이며, 포스터 대령의 결혼 소문이 나돌고 있다는 따위의 이야기들이었다.
13
이튿날 아침 식사를 하며 베넷 씨는 아내에게 말했다.
“오늘 만찬엔 맛 좋은 요리를 마련하라고 일러뒀소? 손님이 한 사람 올 것 같은데.”
“누구 말이에요? 누가 온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요. 하긴 샬럿 루카스라면 찾아올지도 모르지만요. 그렇지만 샬럿을 위해서라면 우리 집의 만찬은 늘 훌륭하지요. 그 사람의 집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말하고 있는 건 신사에다 처음 오는 사람이오.”
베넷 씨가 말했다. 이 말에 모두 놀랐다. 베넷 씨는 한 달 전쯤에 편지를 받고서 약 2주일 전에 답장을 보냈다.
“일이 아주 미묘해서 오래 내 버려둘 수도 없다고 생각했거든, 그 편지는 우리와 먼 친척인 콜린스 씨로부터 온 거야. 내가 죽었을 때엔 마음대로 너희들을 이 집에서 쫓아낼 수 있는 사람이지.”
베넷 씨의 소유지가 한정 상속이 되어서 딸들에게 물려주지 못하고 빼앗긴다는 것이며, 베넷 씨가 대책도 없이 그냥 빼앗기는 데에 베넷 부인은 불만이 많은 것이다.
편지 내용은 ‘윌리엄 콜린스의 부친과 베넷 씨와의 관계는 불화가 많았다. 그런 평생 사이가 나빴던 사람과 친교를 맺는 것은, 선친에 대한 불경한 일이라고 생각하나 베넷 씨의 자손들에게 재정적으로 손상되는 일을 염려하여 유감을 표명하는 동시에 보상을 해 줄 생각이라고 했다.
방문일정은 11월 18일 월요일 4시까지 오겠다는 것이며, 다음 주 토요일까지 있겠다는 것이다. 콜린스 목사 교구의 예배 및 행사는 캐서린 영부인의 배려로 대리 목사를 계약했으므로 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콜린스는 시간을 엄수했고, 가족들은 예의 바르게 그를 맞았다. 키가 크고 얼굴은 고상해 보였으며 나이는 25세, 틀에 박힌 예의범절을 지니고 있었다.
베넷 부인에게 따님들은 모두 아름답다고 하며, 실제로 보니 소문 이상이라고 말하고, 머지않아 모두 좋은 데로 출가하게 될 것이 틀림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베넷 부인은 아부하는 말은 어떤 말이든 불평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므로 자못 기분 좋게 응대했다.
“정말 친절하시군요, 진심으로 그렇게 되길 바라고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 애들은 꽤 빈곤하게 될 거예요. 이상하게 결정되어 있으니까요.”
“아마 이 댁의 재산이 한정 상속이 되어 있는 걸 말씀하시는 모양이군요.”
“네, 그렇지요. 정말 딸들에 대해선 너무나 가혹한 처사예요. 재산 같은 것은 한 번 한정 상속이 되어 버리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지요.”
“그건 잘 알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따님들에겐 난처한 일이라서······. 이 문제에 관해서는 드리고 싶은 말씀이 적지 않지만, 너무 성급하게 서두른다고 생각하실 것 같아서 삼가고 있습니다. 다만 젊은 따님들을 보고 싶어서 온 것만은 사실입니다.”
저녁 식사가 준비되었음을 알려오자 그의 말은 중단되었다.
그는 이처럼 훌륭한 요리는 어느 따님의 솜씨인지 알고 싶다고 말했지만, 이 점에 관해서는 베넷 부인으로부터 좀 엄숙한 수정을 받았다. 자기 집에서는 유능한 요리사를 고용할 수 있으므로 딸들은 부엌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얘기를 듣게 된 것이다. 그는 이번엔 부인에게 실언을 용서해달라고 15분 가까이나 계속 사과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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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하는 동안 베넷 씨는 거의 말문을 열지 않았지만, 하인들이 물러가자 손님과 이야기를 나눠야 할 때라고 판단하고 손님이 좋아할 만한 화제를 골라서, 당신은 매우 운이 좋게도 훌륭한 후원자를 얻은 것 같다는 말로 실마리를 풀어나갔다. 캐서린 드 버그 영부인이 당신의 소원을 잘 들어주고 당신을 위안하기 위해 배려하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콜린스는 영부인을 극구 찬양하며, 그처럼 신분이 높으면서 예의 바르고 상냥하고 겸손한 분은 지금껏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캐서린 영부인을 오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있지만 자기로선 부인에게서 상냥함 이외의 것을 발견한 적이 없다고 했다.
베넷 씨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그는 예상했던 대로 어처구니없는 인물이었다. 그는 가끔 엘리자베스 쪽에 눈길을 던지는 것 말고는 같이 우스워할 사람도 필요 없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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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스는 현명한 사람은 아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랬지만 교육이나 세상 사람들과의 교제로 개선되는 일도 거의 없었다. 생애의 대부분은 교육을 받지 못한 인색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유익한 친구를 가져본 일도 없었다.
그는 헌스퍼드 교구의 목사 자리가 비어 있을 때, 마침 운이 좋아 캐서린 드 버그 영부인의 추천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천성적으로 상류계급에 대한 존경심을 지닌 데다 후원자로서의 영부인에 대한 숭배, 그리고 성직자로서의 권위, 교구 목사로서의 권리를 꽤나 훌륭한 것으로 여기고 있어 오만과 추종, 자존과 비굴의 혼합물로 되어 버렸던 것이다.
아침 식사 후 메리턴까지 산책을 하고 싶다는 리디아의 어젯밤 소망이 대두되어 메리를 제외한 다른 딸들은 리디아와 함께 가기로 했다. 콜린스도 베넷 씨의 요구를 받아 그녀들을 따라가기로 했다.
그는 의미도 없는 말들을 수다스럽게 지껄였고, 딸들은 얌전하게 대답하면서 메리턴까지 걸어갔다.
그런데 잠시 후 모든 숙녀들의 주의는 재빨리 한 젊은 청년에게 쏠리게 되었다. 전혀 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 신사다운 풍채로 거리의 반대쪽을 어떤 장교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장교는 바로 데니 씨였다. 키티와 리디아가 길을 건너가서 데니 씨를 만났다. 데니 씨는 그의 친구 위컴 씨를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위컴 씨는 전날 그와 함께 런던에서 왔으며 자기 부대의 장교로 임관되어 오게 되었다는 것 등을 얘기했다.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다아시 씨와 빙리 씨가 말을 타고 거리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두 신사는 거리에 있는 여자들이 누구인지를 알자 곧바로 그녀들 쪽으로 와서 여느 때처럼 인사를 건넸다. 주로 말한 사람은 빙리 씨이고 대상은 제인이었다. 빙리 씨는 문병하기 위해 롱본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하고, 다아시 씨는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절대로 엘리자베스를 보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있는 듯이 눈길을 돌렸지만, 우연히 그 눈은 새로 온 신사를 보게 되었다. 엘리자베스는 두 사람이 서로를 봤을 때 한 사람은 창백해지고 또 한 사람은 벌겋게 상기된 것을 보고 몹시 놀랐다. 잠시 후에 위컴 씨는 모자에 손을 대고 다아시 씨는 그저 고개를 숙였다. 대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엘리자베스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다음 순간에 빙리 씨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했던 듯 작별인사를 하고 친구와 함께 떠나갔다.
데니와 위컴 씨는 젊은 여성들과 필립스 씨 댁의 문어귀까지 와서 허리를 굽혀 작별인사를 했다.
콜린스는 집에 돌아와 필립스 부인의 매너있는 행동을 칭찬하며 베넷 부인을 만족 시켰다.
자기를 내일 밤 모임에 초대해 주었는데, 아마 그것은 이 댁의 집안이기 때문이겠지만 여하튼 자기로선 지금껏 그토록 융숭한 대접을 받아본 적은 없다며 매우 감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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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아가씨들과 이모의 약속에 대해서는 아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고, 베넷 가를 방문하고 있는 중에 하룻밤을 꼬박 실례하게 되는 것을 걱정한 콜린스에게도 전혀 괘념치 말라고 하자. 콜린스는 다섯 자매를 알맞은 시각에 메리턴으로 태우고 갔다.
콜린스 씨는 캐서린 영부인과 그 저택의 웅장함을 말하다가 가끔씩 빗나가 개조 중인 자신의 집을 자랑하며 다른 신사들이 합석하기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신사들이 왔다. 위컴 씨는 그 모습과 용모와 풍채와 걸음걸이 등이 그들 누구보다도 훨씬 돋보였다. 그들이 포트와인의 냄새를 풍기며 뒤따라 들어온 넓적한 얼굴의 딱딱한 이모부 필립스보다 훨씬 멋있어 보였다. 여성들로부터 주목을 받는 점에 있어 위컴 씨나 장교들 같은 적수 때문에 콜린스 씨는 완전히 그림자조차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위컴 씨는 네더필드는 메리턴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묻고, 그 대답을 듣자 망설이는 듯한 기색으로 다아시 씨는 언제부터 거기에 와 있었느냐고 물었다.
“이제 곧 한 달이 됩니다. 그 사람은 더비셔의 대단한 부자인 모양이더군요.”
엘리자베스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요. 그곳에 영지는 엄청납니다. 일 년에 꼬박 1만 파운드의 수입이 있지요. 그런 일에 관해선 나만큼 확실한 정보를 알려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어려서부터 그의 집과는 특별한 관계가 있었으니까요.”
위컴이 대답했다.
“저는 조금밖에 사귀지 않았지만 아주 불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가 이 지방에 오래 머물러 있을 것 같던가요?”
“전혀 모릅니다. 제가 네더필드에 있는 동안엔 다른 데로 가신다는 얘긴 없더군요. 당신의 계획이 그 사람이 근처에 있기 때문에 영향을 받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제가 다아시에게 쫓기는 일은 없습니다. 저를 만나고 싶지 않다면 그편에서 떠나면 되지요. 우리 사이는 별로 좋지 않고 그 사람을 만나는 건 고통스럽습니다. 베넷 양, 이미 세상을 떠나신 그의 아버님은 더없이 좋은 분이었습니다. 그의 아버님의 희망을 짓밟고 그 추억을 더럽힌 일에 비하면 어떤 일이든지 용서할 수 있습니다.”
에리자베스는 화제가 점점 흥미있게 전개되는 것을 느끼고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나 미묘한 이야기여서 그 이상 끼어들어 물어볼 수는 없었다.
“저는 군인이 되도록 교육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사정이 있어서 그렇게 되었지요. 교회의 목사가 되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만일 다아시만 그럴 생각이 있었다면 지금쯤은 매우 가치 있는 성직을 차지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 사람은 대체 왜 그랬을까요?”
“철저하게 저를 싫어했으니까요. 다소 질투가 섞인 것이겠지만 돌아가신 다아시 씨가 그토록 저를 귀여워해 주시지 않았더라면. 그도 그렇게까지 모질게 하지는 않았을지 모릅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에 대한 부친의 유난스런 애정이 그를 못 견디게 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기질은 우리 사이에 존재했던 경쟁의식 속에서 저를 편드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거지요.”
“선친이 이름까지 지어주면서 특별히 아꼈던 사람에게 그렇게 까지 하다니······.”
“그 사람 행위의 거의 대부분은 자존심이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완벽하게 일관된 행동을 할 수는 없는 법이에요. 저에 대한 그 사람의 태도엔 자존심보다 더 강한 동기가 작용하고 있었던 거지요.”
“다아시 양은 어떤 분이세요?”
“귀엽고 친절한 아가씨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만 그 여동생도 오빠를 너무나 많이 닮았습니다. 다아시 가족을 나쁘게 말하는 건 아주 괴롭습니다만······.”
“빙리 씨하고 친밀한 데는 놀랐어요. 착한 성품의 화신 같은, 또 사실 항상 유쾌하고 기분좋게 만드는 빙리 씨가 그런 분과 사이가 좋은 건 어째서일까요? 빙리 씨를 알고 계세요?”
“전혀 모릅니다.”
곧이어 카드놀이가 끝나면서 함께 어울렸던 사람들이 다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앉았고, 콜린스 씨도 엘리자베스와 필립스 부인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카드 테이블에 앉으면 누구나 만사를 운수에 맡기는 수밖에 없지요. 다행히 5실링 정도 잃었다 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경제적인 사정이니까요. 캐서린 드 버그 영부인 덕택에 자질구레한 걱정까지 할 필요는 없게 되었습니다.”
이 말을 귀담아들은 위컴 씨가 잠시 콜린스 씨를 살펴본 다음 낮은 목소리로 엘리자베스에게, 친척 되는 분은 드 버드 가와 가까이 지내고 있느냐고 물었다.
“캐서린 드 버그 영부인이 최근 저분에게 목사직을 주셨대요. 어떤 연줄로 소개를 받았는지는 모르지만 아직 알고 지낸 지 그리 오래 된 것 같지는 않은 듯해요.”
“캐서린 드 버그 영부인과 앤 다아시 영부인은 자매간이십니다. 따라서 캐서린 영부인이 다아시의 이모님이라는 건 물론 알고 계시겠지요.”
“아니에요. 몰랐어요. 그저께까진 영부인의 존재에 대해서조차 들은 적이 없었거든요.”
밤참 때가 되어 카드놀이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다른 여성들도 위컴 씨와 얘기를 주고받게 되었다. 필립스 부인의 밤참 모임이 매우 떠들썩해서 대화를 나눌 수 없었지만, 위컴 씨의 태도는 모든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었다.
17
엘리자베스는 제인에게 위컴 씨와 자기가 주고받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인은 크게 놀라며 걱정을 했다. 그녀는, 빙리 씨와 돈독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 다아시 씨가 그런 하찮은 인물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두 분 모두 우리로선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속고 계시는 거야, 어떤 사람들이 두 분 사이에 오해가 생기도록 이간질했기 때문일 거야, 틀림없어. 두 분 다 실제로 책임이 없는데도, 둘 사이를 벌어지게 해버린 원인이나 사정은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는 거야.”
제인이 말했다.
“얘, 리지, 잘 생각해봐. 아버님이 귀여워한 사람을, 아버님이 부양하기로 약속한 사람을 그처럼 다루었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명예롭지 못한 입장에 서게 되겠어. 그런 일은 불가능해. 자기 명예를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으로선 그런 일은 할 수가 없을 거야. 제일 친한 친구가 그렇게 속는 법은 없어. 그래,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나는 위컴 씨가 어젯밤 나한테 한 얘기가 꾸며낸 이야기라는 생각보다는 빙리 씨도 속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사실은 이름이나 그 밖의 것도 거침없이 말했어. 혹시 그게 사실과 다르다면 다아시 씨에게 반박해보라고 하겠어. 게다가 그 사람의 얼굴은 사뭇 진지했거든.”
“어려운 일이구나. 정말 마음이 무거워져.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지 도저히 모르겠어.”
관목 숲을 거닐며 두 자매가 이런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빙리 씨 일행이 찾아왔다는 전갈을 받았다. 오랫동안 기다린 네더필드의 무도회를 열기로 했다고, 본인들이 직접 전하기 위해서 찾아왔다.
빙리 자매는 사랑하는 친구와의 재회를 기뻐하면서 오랜만이라고 인사를 하고, 헤어진 후로 무엇을 하고 지냈냐고 물었다. 그러나 나머지 가족에 대해서는 거의 묻지 않고 엘리자베스에게도 별로 말하지 않았으며, 빙리 씨는 놀랄 만큼 빠른 동작으로 일어나 베넷 부인이 하는 인사말을 피하겠다는 듯 급히 나가버렸다.
그날부터 무도회가 열리는 날까지 줄곧 비가 내려서 한 번도 메리턴에 가지 못했다. 그나마 화요일에 무도회가 열리기 때문에 키티도 리디아도 그와 같은 금, 토, 일, 월요일을 견딜 수가 있었다.
18
엘리자베스는 네더필드의 객실에 들어가자마자 그곳에 모인 진홍빛 상의를 입은 사람들 속에서 위컴 씨의 모습을 찾았으나 헛수고였다. 그때까지 그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한순간, 다아시 씨로 인해 빙리 씨가 초대한 장교들 속에서 제외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혹이 생겼다. 그의 친구인 데니 씨의 말을 들어보니 엘리자베스가 염려했던 그대로는 아니었다. 위컴 씨는 전날 볼일이 있어 런던으로 떠났으며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데니 씨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덧붙였다.
“제가 짐작하기로는 여기 있는 어떤 신사를 피하고 싶지 않았다면, 이런 때 굳이 급한 볼일 때문에 런던으로 떠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엘리자베스는 자기의 추측이 옳았던 것만큼 다아시 씨가 위컴 씨의 불참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므로 다아시 씨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그 순간의 실망 때문에 몹시 날카로워졌다. 다아시 씨에게는 불쾌한 기색으로 외면을 했지만, 이 불쾌감은 빙리 씨와 말을 주고 받을 때에도 떨쳐지지 않았다.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원래 불쾌한 태도는 보이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날 밤의 기대는 빗나갔지만, 실망이 오래 그녀의 쾌활함을 감춰주진 못했다.
엘리자베스는 두 번의 춤을 콜린스 씨와 추기로 예약이 되어 있었다. 그 두 번의 춤은 고행의 춤이 되었다. 콜린스 씨는 춤동작이 서투르고 딱딱하며 틀린 동작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엘리자베스가 느낀 수치와 비참함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두 번의 춤을 어느 장교와 추었다. 그녀는 춤이 끝나고 나서 샬럿 루카스에게로 돌아가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엘리자베스에게 다아시 씨가 말을 건네며 춤을 청했다. 너무 갑작스런 일이어서 엘리자베스는 자기도 모르게 그 청을 받아들이고 말았다. 샬럿은 그녀를 위로했다.
“저분은 의외로 아주 좋은 분일지도 몰라.”
춤이 시작되었을 때 샬럿은 엘리자베스에게 위컴 씨보다 열 배나 중요한 다아시 씨에게 매정한 태도를 보이지 말라고 귓속말로 충고했다, 엘리자베스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다시 다아시 씨와 마주 서서 춤추는 사람들 틈에 끼어 있는 자신에게 놀랐고, 자신들을 보는 옆 사람에게서도 놀라는 표정을 보았다. 처음 얼마간은 침묵을 깨뜨리지 않을 결심을 했다. 그러나 문득, 상대방에게 말을 시키는 것이 좋은 벌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씩 말을 꺼내보기 시작했다. 다아시 씨는 대답이 끝나자 다시 입을 다물어버렸다. 엘리자베스는 몇 분 간격을 두고 다시 그에게 말을 건넸다. 위컴 씨에 대해서도 말했다.
드디어 다아시 씨가 어색한 투로 말을 꺼냈다.
“위컴은 매우 붙임성이 있는 태도로 쉽게 친구를 만듭니다. 그러나······ 그 친구들과 한결같은 태도로 우정을 유지해 나가고 있는지 어떤지는 그리 확실치 않지요.”
“그 사람은 가엾게도 당신의 우정을 잃어 그 때문에 괴로워하시던데요.”
다이시 씨는 대답하지 않았으며, 화제를 바꾸고 싶은 기색이었다. 마침 그 순간 윌리엄 루카스 경이 다가왔다. 다아시 씨를 발견하자 유난히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고, 그의 뛰어난 춤 솜씨와 훌륭한 파트너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는 빙리 씨와 제인에게 눈길을 돌렸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 씨를 빗대어 “여러 가지 다른 평가가 있어서 정말 난해해요.“
”분명히 그럴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에 관한 여러 가지 다른 소문을 듣게 될 겁니다. 베넷 양, 지금은 제 인격을 표현하는 것을 그만두셨으면 좋겠군요. 그 결과는 그런 사람에게도 표현을 당하는 사람에게도 명예롭지 못할 염려가 크기 때문입니다.
다아시 씨는 엘리자베스에 대해 좋은 감정을 품고 있었으므로 이내 그녀를 용서하고 노여움을 모두 다른 한 사내에게 던졌다.
두 사람이 헤어지고 잠시 후 빙리 양이 엘리자베스에게 다가와 정중하면서도 조소가 섞인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저, 일라이자 양, 당신은 조지 위컴 씨가 무척 마음에 든 모양이지요? 그런데 위컴 씨는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아시 씨의 청지기였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던가요? 그 사람의 주장을 전적으로 믿지 않도록 하세요. 가령 다아시 씨가 그 삶을 학대했다는 얘기 따윈 완전히 거짓말이에요. 오히려 언제나 아주 친절하게 대했지요. 그런데 그 사람은 호의를 아주 파렴치하게 보답했다고 하더군요. 오빠도 장교들을 초대하면서 그 사람을 빼버릴 수는 없었지만 그 사람이 스스로 빠져준 것을 아주 기뻐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그 사람이 이 지방에 온 것 자체가 퍽 뻔뻔스런 일이에요. 당신을 좋아하는 사람의 잘못을 들춰내서 미안해요.”
“그 사람의 죄와 혈통은 당신 말을 들으면 마치 맞는 것 같이 들리는군요. 당신의 비난은 그의 아버지가 다아시 씨 청지기였다는 것 외엔 나쁘지 않군요.”
“무례한 여자!”
엘리자베스는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빙리 씨에게 같은 화제로 질문을 했을 언니를 찾았다. 제인은 흐뭇함과 행복에 빛나는 기색이어서, 엘리자베스는 이내 언니의 감정을 알아냈고, 노여움 따위는 모두 제인의 행복을 위해서 양보했다.
콜리스 씨가 방금 중대한 발견을 했다고 퍽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상한 우연으로 이 방에 자기의 후원자의 가까운 친척 되시는 분이 계신 것을 발견했다. 이 모임에서 캐서린 영부인의 조카를 만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다. 다행히 그분에게 경의를 표할 기회를 얻게 된 걸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무도회가 끝나고 빙리 씨는 기쁜 듯 감사의 인사를 하고, 내일 이곳을 떠나 잠시 런던에 머물러야 하지만 돌아오면 문안을 드리러 찾아뵙겠다고 선뜻 약속했다.
19
이튿날 롱본에서 새로운 장면이 전개되었다. 콜린스 씨가 격식대로 청혼을 했던 것이다.
허가를 받은 휴가도 오는 토요일까지이므로 결행하는 순간까지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결심한 것이다.
“부인, 오늘 아침에 부인의 아름다운 따님 엘리자베스 양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니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엘리자베스가 놀라서 얼굴을 붉히고 있는데 베넷 부인은 그 즉시 대답했다.‘
“리지, 난 네가 여기 이대로 머물면서 콜린스 씨가 하시는 말씀을 잘 들어야 한다고 분명히 일러둔다.”
그녀는 끊임없이 손을 놀리면서, 난처하면서도 어쩐지 재미있어지는 기분을 애써 감추었다. 마침내 베넷 부인과 키티가 가 버리자 콜린스 씨는 말문을 열었다.
“사랑하는 엘리자베스 양, 당신이 조심성을 보여준 것은 당신을 불리하게 하기는커녕 당신의 다른 장점에 또 하나의 장점을 더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청혼을 하기 전에 존경하는 어머님의 허락을 받았다는 것을 밝힙니다.”
엄숙하고 침착한 콜린스 씨가 너무 감정에 들떠 있다고 생각하니 엘리자베스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제가 결혼하려는 이유는 첫째,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저와 같은 성직자는 그 교구에서 결혼생활의 모범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결혼생활이 크게 제 행복을 증진시켜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셋째로는, 제가 후원자로 부르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는 분의 충고와 권고를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영부인은 ‘당신 같은 성직자는 결혼을 하지않으면 안 됩니다. 부지런하고 쓸모있는 사람, 너무 호사스럽지 않은, 적은 수입으로 살림을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해요.’ 하고 말씀하셨죠. 미안하지만 저는 존경하는 당신의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엔 이 댁의 재산을 상속하기로 되어있는 관계로, 따님들 중에 아내를 골라서 만약 불상사가 생길 경우엔 손실을 최소한도로 막지 않고서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참금 같은 것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재산에 관해서는 항상 침묵을 지키기로 하고, 결혼 후에도 치사한 원망 같은 것은 절대로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을 맹세하는 바입니다.”
엘리자베스로서는 지금이야말로 그의 말을 막을 절대적인 기회였다.
“좀 성급하시군요. 제가 전혀 대답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모르세요? 더 이상 시간을 허비할 필요 없이 대답을 해야겠어요. 호의는 감사합니다. 청혼을 받은 것은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만 거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녀는 큰 소리로 말했다.
“저는 진심으로 거절하고 있는 거예요. 당신은 저를 행복하게 해주실 수 없고, 저도 당신을 행복하게 해드릴 것 같지 않아요. 당신의 후원자이신 캐서린 영부인도 저의 사람됨을 아신다면 제가 모든 점에서 그런 지위에 적합하지 않다는 걸 아시게 될 거라고 믿어요.”
그녀가 말을 마치고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려 하자 콜린스 씨가 다시 말했다.
“당신은 변함없이 매력적이시군요. 부모님의 확실한 승낙을 얻었는데도 제 구혼이 거절당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 하겠습니다. 당신도 분명 제 청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 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콜린스가 끝까지 자기만을 고집하고 있으니 엘리자베스는 대답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곧 말없이 물러났다.
20
엘리자베스가 청혼을 거절한 것은 베넷 부인을 놀라게 했다. 자기 딸이 구혼에 반대 의사를 표명해서 그의 마음을 돋우려는 의도였다면 그녀 역시 만족했겠지만 그녀로서는 도저히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던 것이다.
“콜린스 씨, 기어코 리지를 정신 차리게 하겠어요, 곧 내가 직접 타이르겠어요. 그 애는 정말 고집스럽고 어리석어서 자기의 처지를 전혀 모른다니까요.”
“말씀 중인데 죄송합니다만 부인, 만일 그녀가 정말 고집스럽고 어리석다면 저 같은 입장의 남자, 즉 당연히 결혼으로 행복을 찾으려 하는 사람의 아내로서 바람직한지 어떤지 모르겠군요. 만일 그런 결함에 빠지기 쉬운 기질이라면 행복을 더해주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까요.”
베넷 부인은 콜린스 씨가 대답할 겨를도 없이, 이내 남편을 찾아 서재로 들어가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여보, 곧 이리로 와 주세요. 큰일 났어요, 오셔서 리지를 콜린스 씨와 결혼하도록 설득 좀 해주세요.”
베넷 씨는 그녀가 들어오자 책에서 눈을 들어 침착하고 무관심하게 아내를 향해 눈을 돌렸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구려. 대관절 무슨 얘기요?”
“그 애를 좀 타일러보세요. 제발, 그 사람과 결혼하도록 말이에요.”
“내려오게 해요. 내 생각을 들려주지.”
아버지는 딸이 나타나자 물었다.
“그래, 청혼을 거절했다며?”
“그래요, 아버지.”
“좋아, 그런데 이제부터가 중요한 점이다, 어머니는 청혼을 받아들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그렇지 여보?”
“그럼요, 그렇지 않으면 저 애 얼굴을 난 두 번 다시 안 봐요.”
“이제 너는 두 가지 중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어머니는 네가 콜린스 씨와 결혼하지 않으면 이젠 널 보지도 않는다고 하고, 네가 만일 콜린스와 결혼을 한다면 내가 너를 보지 않을 게다.”
엘리자베스는 아버지의 말에 미소를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남편이 자기와 같은 생각일 줄 믿고 있던 베넷 부인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집안이 이렇게 혼란에 빠져 있을 때 샬럿 루카스가 그들과 하루를 같이 지내기 위해서 찾아왔다. 샬럿을 현관에서 만난 베넷 부인이 소곤거렸다.
“루카스 양, 나 좀 도와줘,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아. 내 편이 되어주지 않는 거야. 정말 괴로워.”
그때 제인과 엘리자베스가 들어왔기 때문에 샬럿은 대답하지 않아도 되었다.
콜린스 씨가 여느 때보다 더 엄숙한 얼굴로 들어왔다. 그를 보자 베넷 부인은 딸들에게 말했다.
“너희는 좀 가만히 있어라. 이젠 콜린스 씨와 내가 얘기할 차례니까.”
엘리자베스는 슬그머니 방에서 나갔고, 제인과 키티도 뒤따랐다.
그러나 리디아는 끝까지 그곳에 남아서 될 수 있는 대로 전부 들어볼 결심이었다.
샬럿은 처음엔 여러 가지로 자기와 가족 전원에 대해 소상하게 안부를 묻는 콜린스 씨에 대한 예의 때문에 머물러 있었으나 나중에 호기심도 있어서 창가로 걸어가 듣지 않는 척하고 있었다.
부인의 말이 끝나자 콜린스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 일에 관해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물론 따님의 태도에 화가 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피하기 어려운 재난은 단념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확실히 저는 단념했습니다. 그래서 따님에의 구혼을 철회하며, 베넷 씨나 부인께서 저를 위해 부모님의 권위로 개입해주실 것을 따로 부탁드릴 일이 없어졌음을 말씀드립니다. 제 목적은 오로지 바람직한 반려자를 얻으려는 것이었으며, 아울러 댁의 이익을 고려했던 것입니다. 혹시 제 태도가 불손한 점이 있었다면 사죄를 드리겠습니다.”
21
콜린스 씨의 구혼에 관한 토의는 일단 막을 내렸다. 그 일로 엘리자베스는 거북한 입장에 처했고 간혹 어머니로부터 짜증스러운 말도 들었다. 콜린스 씨가 엘리자베스에게 베풀었던 세심한 배려는 그 후엔 고스란히 루카스 양에게 옮겨갔다. 그녀는 얌전하게 콜린스 씨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므로 가족 전체, 특히 엘리자베스로서는 더없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아침 식사 후 자매들은 위컴 씨의 소식을 듣기 위해 메리턴으로 갔다. 그들이 거리로 접어들었을 때 위컴 씨의 일행과 합류했고 이모네 집까지 가서 모두들 무도회에 참석하지 않아서 걱정했다는 등의 얘기 등을 나누었다. 위컴 씨는 참석하지 않은 것은 자기가 마음이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시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다아시를 만나지 않는 게 좋겠다는 걸 깨달았던 겁니다. 같은 방에 오랜 시간 같이 있다는 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그의 자제심을 높게 평가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서로 예의바르게 칭찬을 했다.
이윽고 위컴 씨와 한 사람의 장교는 아가씨들과 롱본까지 걸어갔는데, 위컴 씨는 특별히 엘리자베스에게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녀들이 집에 돌아오고 난 잠시 후 제인에게 한 통의 편지가 전달되었다. 네더필드에서 온 그 편지는 곧 개봉되었다. 거기에는 숙녀 특유의 아름다운 글씨가 깨알같이 가득 쓰여 있었다. 제인은 이내 마음을 돌려 편지를 치우고 여느 때와 같이 쾌활하게 여러 사람의 이야기에 끼어들려고 애썼지만, 엘리자베스는 편지가 마음에 걸려서 위컴 씨조차 관심 밖이 되었다.
얼마 후 위컴 씨와 그의 동행자가 물러가자 곧 제인이 엘리자베스에게 눈짓을 했고 두 사람은 이 층으로 올라갔다. 편지를 꺼내며 말했다.
“캐롤라인 빙리한테서 온 편지야, 아주 놀라운 내용이 쓰여 있어. 지금은 모두 네더필드를 떠나 런던으로 향해 가고있는 중이래. 돌아올 생각은 없는 모양이야. 그녀가 한 말 좀 들어봐.”
그날은 그로스브너 거리에 있는 허스트(빙리 양의 형부) 씨 댁에서 저녁을 먹기로 되어 있다고 쓰여있어. 하트퍼드셔(잉글랜드 남부에 있는 주, 런던과 인접해 있다)엔 아쉬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 제인과 자기는 지금과 같은 교재가 이루어지길 바란다. 자주 편지를 주고받았으면 좋겠다. 올겨울에는 하트퍼드셔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빙리 양이 볼 때에 아름다움이나 교양 면에서 조지아나 다아시 양보다 나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빙리 씨가 그녀와 결혼하기를 루이자와 빙리 양이 원한다. 다이시의 가족들도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대체로 그러한 내용이었다.
제인은 실망이 아주 컸으나, 엘리자베스는 의견이 달랐다.
“빙리 양은 자기 오빠가 언니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다아시 양과 결혼을 시키려는 거야, 오빠를 쫓아 런던에 간 이유가 그것이지. 그래서 빙리 씨가 언니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고······. 언니와 빙리 씨를 같이 본 사람이라면 두 사람의 애정을 의심할 수 없어, 빙리 양도 마찬가지야, 바보는 아니니까. 만약 다아시 씨가 빙리 양을, 빙리 씨가 언니를 사랑하는 만큼의 반만 사랑했다면 벌써 결혼 의상을 주문했을걸. 하지만 현실을 보게 된 거야. 우리 집은 부자도 아니고 가문도 좋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게다가 다아시 양과 맺어져서 만일 두 집 사이에 결혼이 이뤄지면 두 번째 결혼이 이뤄지기도 쉽다고 생각할 테니까. 빙리 양도 제법 머리가 좋은걸. 그렇지만 언니, 찰스 빙리 씨가 다아시 양을 퍽 찬미하고 있다고 해서, 또 동생의 설득을 받은 빙리 씨가 이제 언니가 아니라 다아시 양을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돼.”
“혹시 우리가 빙리 양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네 해석이 내 마음을 편하게 해줄 거라고 생각해, 빙리 양은 일부러 남을 속일 수 있는 사람은 아니야. 이 경우 나는 그 사람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기를 바랄 뿐이야.”
제인이 대답했다.
22
베넷 가의 사람들은 루카스 가의 사람들과 같이 만찬을 들었다. 이 자리에서도 루카스 양은 콜린스 씨의 이야기에 친절하게 귀를 기울였다. 엘리자베스는 기회를 보아 샬럿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샬럿은 도움이 되었다면 자기도 흐뭇하고, 시간은 좀 걸렸지만 충분히 보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말 친절한 일이었지만, 샬럿의 호의는 엘리자베스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목적을 가진 것이었다. 그 목적은 콜린스가 다시 엘리자베스에게 구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즉 자기에게 그를 끌어들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콜린스 씨의 열정와 성격을 과소평가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가 이튿날 아침 그녀에게 구혼하기 위해 교묘하게도 몰래 롱본의 집을 빠져나와 루카스 댁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는 베넷 가의 아가씨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성공했을 때가 아니고는 자기 계획이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샬럿은 본래 아둔한 편 이어서 그의 청혼은 로맨틱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여자 쪽에서 구애에 대한 답을 늦출 필요는 없었다.
윌리엄 경과 부인도 그 요청에 기쁘게 승낙을 했다. 콜린스 씨의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자기들이 거의 재산을 남겨줄 수 없는 딸에게는 더없이 바람직한 혼처였으며 장차 그가 부유해지리라는 것도 예측 가능했다. 루카스 부인은 이전의 어떤 문제보다도 더 흥분해서 베넷 씨가 앞으로 몇 해를 더 살 수 있을 것인가를 계산해보기 시작했다.
샬럿은 누구보다도 엘리자베스와의 우정을 소중하게 생각했다. 엘리자베스는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자신을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녀의 결심이 흔들리지는 않겠지만 그런 비난에 부딪히면 틀림없이 마음이 상할 것이다. 샬럿은 자기가 직접 이 사실을 알릴 것이다.
“콜린스와 약혼한다고! 샬럿, 설마!”
“왜 놀라는 거야, 일라이자? 콜린스 씨가 불행하게도 너와 잘되지 않았다고 해서 다른 여성의 호감을 받은 게 그렇게도 안 믿어지니?”
그러자 엘리자베스도 차츰 마음의 평정을 되찾아갔다. 그리고 두 사람이 결혼한다는 것은 자기로서는 기쁜 일이며 행복을 빈다고 말했다.
23
윌리엄 루카스 경이 딸의 부탁을 받고 이 집 사람들에게 약혼을 발표하기 위해서 찾아왔다. 루카스 경은 인사를 한 다음 앞으로 두 가정이 친척 관계를 맺을 전망에 대해 한바탕 축하의 말을 하고 나서 설명을 시작했다.
베넷 부인은 예의에 어긋날 만큼 끈질기게,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주장했으며 언제나 버릇없고 경솔한 리디아는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궁정에 출입하는 사람으로서의 공손함이 없었다면 루카스 경은 도저히 이처럼 무례한 태도를 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윌리엄 경의 점잖은 태도는 이 모두를 극복할 수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윌리엄 경을 그 같은 불쾌한 처지에서 구하는 것이 자기의 임무라고 느끼고는 앞으로 나서서 윌리엄 경이 한 이야기를 샬럿에게서 이미 들었다고 확인시켜주었다. 그리고 나서 윌리엄 경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건넸고, 제인도 재빨리 맞장구를 첬다.
화요일에 아버지 앞으로 콜린스 씨가 약속한 감사의 편지가 도착했다. 마치 일 년이나 신세를 졌을 경우에나 어울릴 어마어마한 사의를 적은 편지였다. 그리고 롱본에 다시 와달라는 친절한 초대에 동의한 것은 오로지 루카스 양과 교재를 즐기기 위해서였다고 말하고, 2주일 후의 월요일에는 다시 뵙게 되길 바란다고 썼다. 베넷 부인으로서는 불만스러운 일이었다. 도대체 그가 루카스 댁으로 가지 않고 롱본에 온다는 것이 우습지 않은가. 몹시 불편하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빙리 씨가 떠난 지 벌써 일주일이나 지났는데도 그가 돌아온다는 소문조차 들리지 않자 언니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은 날이 갈수록 걱정으로 깊어졌다. 언니의 행복을 깨뜨릴 수 있는 생각이나 언니가 사랑하는 사람의 건실함을 의심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의 매정한 자매와 그 뻔뻔스러운 친구가 협력을 하고, 또 다아시 양의 매력과 런던의 오락이 더해진다면 빙리 씨라도 애정의 힘만으로는 도저히 맞설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이 들었다.
콜린스 씨는 약속대로 꼭 2주일 후의 월요일에 다시 찾아왔다. 롱본에서의 환대는 처음 왔을 때만큼 따뜻하지 않았다. 그러나 행복감에 넘친 콜린스 씨에겐 그런 배려는 별로 필요치 않았고. 다행히 청혼 때문에 다른 사람을 별로 상대하지 않아도 되었다. 콜린스 씨는 거의 날마다 루카스 댁에서 지냈으며 롱본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아주 늦었다.
베넷 부인은 몹시 비참한 상태였다. 베넷 부인은 루카스 양을 보는 것조차 싫었다. 항상 빈틈없는 눈초리로 루카스 양을 이 집의 상속자로 보았다.
“그 사람들이 우리 집 재산을 전부 차지한다고 생각하면 견딜 수가 없어요. 정말이지 한정 상속만 없으면 고민하지 않겠어요.”
24
빙리 양의 답장이 와서 모든 것이 명백해졌다. 편지는 겨울 동안 런던에 눌러 있기로 결정했음을 알리면서 오빠가 떠나기 전에 하트퍼드셔의 여러분에게 인사를 드릴 겨를이 없었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인사로 끝났다.
그 대부분은 다아시 양에 대한 찬사로 가득 차 있었고, 그녀의 온갖 매력이 또 소상하게 적혀 있었다. 빙리 양은 기쁜 듯이 서로가 더욱 친밀해졌음을 자랑하고, 먼저 편지에서 말한 희망의 실현을 굳이 예언할 정도였다. 또 오빠가 매우 기뻐하며 다아시 씨 댁에 동거하고 있다고 썼으며 그 집의 새로운 가구에 관한 다아시 씨의 계획 등을 수다스럽게 늘어놓았다.
제인은 베넷 부인이 여느 때보다 더 끈덕지게 네더필드와 그 주인에 대한 언짢은 말을 털어놓은 뒤 2~3일이 지나서야 더는 참지 못하고 엘리자베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아, 어머니가 좀더 자제감을 갖고 계시면 좋을 텐데! 끊임없이 그 사람을 비난하는 게 나를 얼마나 괴롭히는지 전혀 모르시는 거야. 하지만 나는 불평하지 않겠어. 오래 계속될 리는 없으니까. 그 사람의 일은 잊을 수 있으니 그전대로 될 거야.”
오늘도 제인과 엘리자베스는 빙리 씨에 이야기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 사람들은 그 사람의 행복을 바라고 있어. 만일 그 사람이 날 사랑하고 있다면 다른 여자가 그 행복을 줄 수는 없을 거 아니야.”
“언니의 첫 번째 견해가 틀린 거야. 그 사람들은 그 사람의 행복 외에도 바라는 게 많은 거라구. 가령 재산이나 사회적인 지위 상승을 위해 돈, 막강한 친지 관계, 자존심 등 유력한 배경이 있는 여자하고의 결혼을 바라는 거야.”
“맞아, 그 사람들이 다아시 양을 선택하길 바라고 있다는 건 의심할 수 없는 일이야. 그러나 그건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선한 마음에서일 수 있어. 나하고 알고 지내기 훨씬 전부터 그 사람을 잘 알고 있고 하니, 그 사람을 나보다 좋아한대도 조금도 이상할 건 없어,”
그러나 베넷 씨의 대도는 달랐다.
“사실, 리지, 언니는 실연을 당한 것 같구나. 축하할 일이야. 여자는 결혼 다음으로는 간혹 실연당하는 걸 좋아하는 법이지. 생각할 여유가 생기고 친구들 사이에서는 특별한 존재로 취급받고 말이야. 네 차례는 언제 오는 거냐? 너도 제인한테 뒤질 수 없을 텐데. 메리턴에는 젊은 여성들에게 실연을 맛보게 할 장교들이 잔뜩 있지. 위컴은 어때? 제법 유쾌하고 사내고 하니 보기 좋게 돌아설걸.”
하트퍼드셔의 사람들 중에서, 알려져 있지 않은 어떤 사정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제인 하나뿐이었다. 제인은 항상 차분하고 변하지 않는 공정한 마음으로 언제나 다아시 씨를 변호하면서, 오해일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한결같이 다아시 씨를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했다.
25
사랑의 고백과 결혼의 행복한 설계로 일주일을 보낸 후 토요일이 되자 시간은 콜린스 씨를 사랑스런 샬럿에게서 떼어놓았다. 그러나 이별의 괴로움은 그로서는 신부를 맞이할 준비 때문에 완화되었다. 그는 롱본 사람들에게 여전히 엄숙하게 작별을 고하면서 아름다운 친척 아가씨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고 베넷 씨에게는 감사의 편지를 약속했다.
다음 월요일, 베넷 부인은 예년처럼 롱본에서 크리스마스를 지내러 온 남동생 부부를 맞이했다.
가디너 씨는 분별 있는 신사다운 사람으로, 누나인 베넷 부인에 비해 교육 정도라든가 성격이 훨씬 나았다. 가디너 부인은 베넷 부인이나 필립스 부인보다 몇 살 아래였는데, 상냥하고 현명하며 점잖은 여성이어서 롱본의 조카 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가디너 부인은 이미 제인과 엘리자베스의 편지를 받아서 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누이에게는 가볍게 대답만 하고 조카딸들을 위로하는 말로 화제를 바꾸었다.
“제인을 위해 퍽 좋은 혼담이었던 모양인데 틀어져서 안 됐구나. 하지만 그런 일은 흔히 있게 마련이야. 네가 얘기해준 빙리 씨 같은 청년은 예쁜 여자를 보면 이내 사랑에 빠지지만 3주일이 지나 우연한 일로 헤어져 버리면 또 이내 잊어버리고 만단다. 흔한 경우지.”
“저는 더없이 잘될 걸로 믿었어요. 그는 점점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뚝뚝해지고 언니에게만 열중했으니까요. 만날 때마다 더욱 강렬해졌죠. 자기 집에서 열린 무도회에서는 춤을 청하지 않아서 두세 명의 젊은 여자들의 기분을 언짢게 할 정도였어요. 그보다 훌륭한 증거가 있을까요? 사랑의 본질은 다른 사람에게 무례해지는 것 아닐까요?”
“응, 내가 상상한 정도의 사랑이구나. 가엾은 제인! 안 됐구나. 제인의 성격으로 금방 잊진 못할 거야. 너였다면 괜찮았을 거다. 리지. 너 같으면 웃어넘길 수 있었을 텐데. 제인을 우리 집에 같이 가도록 설득할 수 있을까? 환경을 바꾸면 괜찮아질지 모르니까.”
엘리자베스는 이 제의에 무척 기뻐하여, 언니도 이내 승낙할 것이라고 믿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멀리 떨어져 있고, 너도 알다시피 돌아다닐 일도 적고. 그 청년이 찾아오지 않는 한 두 사람이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거야.”
가디너 부인이 말했다.
“외숙모, 정말 잘 생각하셨어요. 다아시 씨도 아마 그레이스처치 가라는 곳이 런던에 있다는 것쯤은 소문을 들어 알았겠지요. 빙리 씨는 다아시 씨와 동행하기 전에는 절대로 나다니지 않을 테구요.”
“그럼 더 좋구나. 나는 두 사람이 전혀 만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그러나 여동생과는 제인이 편지를 주고받고 있지 않니? 여동생은 찾아오지 않을 수 없겠지.”
“절교해버릴 거예요.”
위컴 씨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매력과는 다른 일로 가디너 부인을 기쁘게 해줄 수 있었다. 가디너 부인은 10년인가 12년 전에 아직 미혼이었을 때 더비셔에서 오래 산 적이 있었다. 위컴 씨도 바로 그 지역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공통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위컴 씨는 5년 전에 다아시 씨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그 근처에 거의 가본 적이 없었지만 그래도 부인의 예전 친구들에 관해 그녀가 듣지 못했던 새로운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
26
가디너 부인은 엘리자베스와 단둘이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얻자 이내 친절하게 주의를 주었다.
“리디, 너는 분별이 있는 아이니까 주의를 받고도 설마 사랑에 빠지는 일은 없겠지. 진지하게 말한다만, 조심해야 해. 재산도 없는데 몹시 무모한 애정에 휘말리거나 그 사람을 끌어들여서는 안 돼. 감정에 치우쳐서는 안돼.”
“외숙모, 이건 정말 진지한 얘기군요.”
“그래, 너 역시 진지하게 들어줘.”
“좋아요, 그렇다면 조금도 걱정하지 마세요. 저 자신은 물론 위컴 씨에 대해서도 조심하겠어요. 피할 수만 있다면 위컴 씨가 저를 사랑하게 하진 않겠어요.”
“아마 그 사람이 여기에 오는 걸 너무 권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적어도 어머니가 그 사람을 초대하려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말이다.”
“사실은 전에 제가 부탁한 적도 있는데, 이번 주에 이렇게 자주 초대를 한 건 외숙모 때문이에요. 알고 계시죠? 손님에게는 항상 상대자가 필요하다는 어머니 생각 말이에요. 그러나 정말 명예를 걸고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일을 하겠어요. 이만하면 만족하시겠지요?”
엘리자베스는 생각나는 일이 있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물론이지.”
외숙모는 만족한다고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외숙모의 친절한 조언에 감사를 표하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가디너 부인과 제인이 떠난 지 얼마 후 콜린스 씨가 하트퍼드셔에 왔지만 이번에는 루카스 가에 묵었으므로 베넷 부인이 불편한 일은 없었다. 결혼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목요일이 결혼식 날이어서 수요일에 루카스 양이 롱본으로 작별인사를 하러 왔다. 엘리자베스는 진정한 호의에서 샬럿을 따라 방을 나섰다. 함께 계단을 내려올 때 샬럿이 말했다.
“일라이자, 자주 편지해줘. 기다리고 있을게.”
“꼭 편지할게.”
제인은 몇 줄 적은 편지를 보내와서 런던에 무사히 도착했음을 알렸다. 다음 편지를 받을 때에는 빙리 가 사람들의 소식을 다소 알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엘리자베스는 기대하고 있었다.
‘외숙모께서 내일 그쪽으로 가실 예정이라 나도 이 기회에 그로스브너 가로 찾아갈 생각이다.'
빙리 양을 방문한 후에 제인은 다시 편지를 보냈다.
‘캐롤라인 빙리는 편지는커녕 한마디의 기별도 없으며, 사람이 아주 바뀌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교제를 하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어, 괴로운 일이지만 비난하지 않을 수 없어. 날 이런 식으로 친구로 선택한 건 좋지 않은 일이야. 확실히 말하지만 친해지려고 다가온 건 그녀였어. 빙리 씨가 조금이라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면 우리는 벌써 만났을 거야. 내가 런던에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캐롤라인 빙리로부터 들었을 테니까. 빙리 양은, 오빠는 두 번 다시 네더필드에 돌아가지 않으며 그 집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확실한 이야기는 아냐.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지 않는 게 좋을 거야.’는 내용이었다.
가디너 부인은 이 무렵 엘리자베스에게 위컴 씨에 관한 약속을 상기시키며 보고하도록 요구했다.
자기를 사랑하는 것같이 기울어지던 관심은 아주 끝나고 위컴 씨는 지금 다른 여자에게 연정을 불태우고 있었다. 위컴 씨가 지금 자꾸 비위를 맞추고 있는 상대자의 가장 두드러진 매력은 1만 파운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느껴서 그도 자기를 버리는 것이 괴로웠을 테지만 그것이 서로를 위해 현명하고 바람직한 행동이라고 인정하고 진심으로 그의 행복을 빌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을 그녀는 외숙모에게 썼다.
27
3월은 엘리자베스가 헌스퍼드에 가는 달이다. 샬럿이 기대하고 있고 그녀도 그날을 즐겁게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이 여행으로 제인을 잠깐 만나볼 수도 있었다. 그런 이유로 떠날 날이 다가오자 기다려지고 혹시 연기라도 되지 않을까 조바심마저 생겼다.
여행의 동반자는 윌리엄 경과 둘째 딸 마리아와 함께 떠나게 되었다. 마리아는 퍽 명랑한 소녀였으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머리는 텅 비어 있어, 귀담아 들을 만한 얘기는 전혀 없었다.
겨우 24마일의 여행이었으므로 정오에는 그레이스처치 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디너 씨 댁 문 앞으로 다가가자 객실 창에서 마차가 도착하는 것을 보고 있던 제인이 마중하기 위해 현관의 복도로 뛰어나왔다. 외숙모를 만나고 사촌들을 만나고 모든 일이 기쁘고 친절한 일로 가득 찼다. 낮에는 물건을 사러 다니고 밤에는 극장에 갔다. 엘리자베스는 겨우 외숙모 옆에 앉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의 최초의 대화는 제인에 관한 것이었다. 늘 쾌활하게 지내려고 하지만 가끔 우울할 때가 있다는 대답을 듣고 엘리자베스는 슬퍼졌다.
“그렇지만 리지, 킹 양은 어떤 사람이야? 유감스럽지만 우리 친구는 돈에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구먼.”
“퍽 좋은 아가씨예요. 나쁜 말을 들은 적이 없어요.”
“하지만 그 아가씨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재산을 얻게 될 때까지 아무런 낌새도 보이지 않았었겠지?”
“그래요. 보였을 리가 없지요. 저한테 돈이 없기 때문에 저의 애정을 구하는 걸 삼갔다면, 사랑하지도 않는 아가씨가 저처럼 가난했다면 그런 사람과 연애를 할 리는 없다는 건 뻔하잖아요?”
“그 사건 직후에 킹 양에게 그런 낌새를 보이기 시작한 건 교양 없는 일같이 보이는군.”
연극이 끝나 헤어지기 전에 엘리자베스는 뜻하지 않은 행복을 맛보았다. 외삼촌과 외숙모가 여름에 계획하고 있는 여행에 같이 가자는 초대를 했던 것이다.
가디너 부인이 말했다. 엘리자베스에게 이처럼 기쁜 계획은 없었으므로 선뜻 감사하면서 그 초대를 받아들였다.
“오, 나의 고마운 외숙모, 정말 기뻐요. 정말 행복해요! 저에게 신선한 생명과 생기를 줄 거예요. 실연이여, 우울이여 안녕, 바위여, 산이여, 그대들 앞에 남자가 다 뭐야. 오오, 얼마나 황홀한 시간이 될까요!”
28
이튿날의 여행에서는 온갖 것들이 엘리자베스로서는 처음 보는 것이어서 흥미로웠다. 그녀의 기분은 아주 좋아서 모든 것을 즐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드디어 목사관이 나타났다. 길 쪽으로 비탈진 정원, 정원 안에 서 있는 집, 푸른 담장과 월계수 울타리 등 모든 것들이 그들의 도착을 알려주고 있었다.
콜린스 부인은 친구를 맞아 진심으로 환영했고. 엘리자베스는 그처럼 애정 깊은 환대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엘리자베스는 콜린스 씨가 결혼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첫눈에 알아챘다.
엘리자베스는 의기양양한 그의 얼굴을 대면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방의 적절한 균형이라든가 방향, 가구를 설명할 때 콜린스 씨는 특별히 엘리자베스에게 말을 건네면서, 자기를 거절함으로써 그녀가 얼마나 큰 것을 잃었는가를 느끼도록 하려는 것 같았다. 아내라면 부끄러울 듯한 발언을 콜린스 씨가 했을 때, 특히 그것은 자주 되풀이 되었는데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시선을 샬럿 쪽으로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한두 번 샬럿은 얼굴을 약간 붉히는 것 같았지만, 대개는 현명하게도 못 들은체했다.
집은 수수했지만 탄탄하게 지어졌고 쓸모 있게 꾸며져 있었다. 모든 것이 깨끗하고 조화롭게 설비되어 있었는데, 엘리자베스는 이것을 모두 샬럿의 솜씨라고 생각했다.
“엘리자베스 양, 다음 일요일에 교회에서 캐서린 드 버그 영부인을 만나 뵐 기회를 얻게 될 겁니다. 물론 당신은 영광으로 생각하실 겁니다. 영부인은 손아랫사람을 상냥하고 친절하게 보살펴주십니다. 틀림없이 당신이 우리 집에 묵고 있는 동안에는 처제 마리아와 함께 당신도 초대에 끼워주실 겁니다.”
이튿날 정오 무렵 아래층에서 느닷없이 소동이 벌어져서 온 집안이 혼란에 빠진 것을 알았다. 한순간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누군가 몹시 급하게 이 층으로 뛰어 올라와 큰 소리로 불렀다.
“오오, 일라이자 언니, 빨리 식당으로 오세요. 굉장한 구경거리예요. 빨리 내려오세요.”
두 여자를 태운 나직한 사륜마차였다.
“캐서린 영부인과 아가씨인 모양이지?”
“아니, 그렇지 않아요, 젠킨슨 부인이에요. 저 노부인은 영부인과 같이 살고 있어요. 또 한 사람은 드 버그 양이고요. 그녀를 좀 봐요. 꽤 작은 사람이네요.”
드디어 할 말을 다하자 그 여자들은 마차로 달려갔고 다른 사람들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로징스에서 내일 그들 모두를 초대했던 것이다.
29
로징스에서의 초대로 인해 콜린스 씨의 승리감은 절정에 달했다. 후원자의 위엄과 사치를 방문자에게 보여주고 놀라게 하는 것과 그의 아내에게 친절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콜린스 씨가 바라던 일이었다. 영부인이 아랫사람들을 잘 보살핀다는 더없이 좋은 증거이며, 이것은 아무리 감사를 해도 충분하지 않은 일이었다.
“영부인께서 만찬에 초대를······게다가 전원을 초대하다니······더구나 이처럼 빨리 초대받게 될 줄을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나는 이런 일에 그토록 놀라지는 않네. 높은 분이라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내 지위로 보아 정말 잘 알고 있으니까. 궁정 주변에서는 그처럼 교양이 있고 점잖은 일이 희귀한 건 아니거든.”
윌리엄 경이 말했다.
콜린스 씨가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하며 가리키는, 적당한 조화되고 정교하게 장식된 현관에서부터 그들은 하인을 따라 대기실을 지나 캐서린 영부인, 그리고 따님과 젠킨슨 부인이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영부인은 아주 겸손한 태도로 일어서서 일동을 맞았다. 콜린스 부인은 미리 남편과 의논해서 소개를 맡기로 했으므로, 콜린스라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겉치레의 인사말은 생략하고 적절히 소개를 해나갔다.
엘리자베스는 이런 장소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침착하게 자기 앞에 세 여성을 관찰할 수 있었다.
캐서린 영부인은 키가 크고 몸집도 큰 부인인데 이목구비가 반듯한 것이 젊어서는 꽤 아름다웠을 것 같았다. 그녀의 태도는 상대방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는 데라고는 털끝만큼도 없었고 그들을 맞는 태도도 손님들의 낮은 신분을 잊게 해주지 않았다.
용모와 태도가 어쩐지 다아시 씨를 닮은 영부인을 관찰하고 나서 딸에게로 눈을 돌렸는데, 작고 가냘프게 보였다. 두 모녀의 모습이나 얼굴 생김새에 비슷한 점은 전혀 없었다. 드 버그 양은 창백하여 병색이 있었고 생김새는 못생기지는 않았지만 별로 두드러지지도 않았다.
드 버그 양은 몹시 낮은 목소리로 젠킨슨 부인에게 한두 마디 했을 뿐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만찬은 매우 화려했다. 하인의 수도 많았고, 다양한 식기도 보였다.
영부인은 엘리자베스에 대해서는 품위 있고 예쁜 아가씨라고 샬럿에게 말한 다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가령 자매는 몇이고, 그 중의 누구에게 혼담이 오가고 있는가, 그리고 교육 정도, 음악, 그림, 등에 대하여 물었다.
엘리자베스는 당돌하리만치 막힘 없이 대답을 했다.
“이거, 놀랍군, 젊은 사람으로서는 무척 명확하고 당돌하게 자기 의견을 말할 줄 아는군?”
캐서린 영부인은 말했다.
엘리자베스도 자기가 그 높은 사람이 무례를 농담으로 받아들인 최초의 인물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신사들이 끼어들어 차를 마시고 나자 카드 테이블이 나왔다.
캐서린 영부인과 드 버그 양이 만족하리 만큼 게임을 하고 나자 탁자는 치워졌고 콜린스 부인은 마차를 내주겠다는 권유를 고맙게 받아들였다.
30
윌리엄 경은 헌스퍼드에 일주일밖에 머물지 않았으나, 그러는 동안에 딸이 훌륭하게 살림을 꾸리며,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남편과 이웃에 둘러싸여 있음을 확신했다.
콜린스 씨가 로징스에 가지 않는 날은 거의 없었고, 샬럿 역시 남편이 그렇게 하기를 바랐다.
엘리자베스는 얼마 후에 이 귀부인이 치안 재판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교구의 가장 활동적인 치안판사라는 것을 알았다. 교구 내의 사건은 콜린스 씨에 의해 낱낱이 귀부인에게 알려졌다. 어느 소작인이 싸우거나 불평을 하거나 가난하다고 하면 이 귀부인이 곧 마을로 가서 불화와 불평을 가라앉히고 꾸짖어서 화해시키고 잘 지내도록 했다.
이런 식으로 조용하게 보내는 사이 2주일이 흘러갔다. 부활제 일주일 전에는 로징스의 가족이 한 사람 늘어날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사람이 적은 집안에서는 중대한 일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두세 주일 안으로 다아시 씨가 오기로 되어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싫은 사람도 없었지만 그가 오면 로징스의 회합에 비교적 새로운 사람이 끼이게 되고, 빙리 양의 그에 대한 의도가 얼마나 가망이 있는 것인지, 다아시 씨가 드 버그 양을 대하는 태도를 판단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캐서린 영부인은 분명히 그를 자기의 딸과 혼사를 맺고 싶어했으므로 다아시 씨가 오는 것을 더없이 만족해하고 최고의 찬사를 보냈으나 루카스 양이나 엘리자베스가 이미 그를 자주 만났음을 알고는 화가 난 것 같았다.
이튿날 아침 그는 경의를 표명하기 위해 로징스로 찾아갔는데, 인사를 받을 사람은 캐서린 영부인의 조카 두 사람이었다.
다아시 씨는 귀족인 그의 백부의 차남, 피츠윌리엄 대령과 함께 왔던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콜린스 씨가 집으로 돌아올 때 이 두 신사가 따라왔다. 샬럿은 남편 방에서 집으로 오는 두 사람을 보고 곧 다른 방으로 뛰어 들어가, 아가씨들에게 어떤 명예를 받게 되는가를 알리고 나서 덧붙였다.
“이렇게 정중한 인사를 받게 된 것은 다 네 덕택이야. 다아시 씨가 나한테 인사하기 위해서라면 이렇게 빨리 오실 리가 없어.”
피츠윌리엄 대령이 앞장을 섰는데 서른 살 정도의 신사다운 사람이었다. 다아시 씨는 하트퍼드셔에서 보았을 때와 똑같아서 예전처럼 신중하게 콜린스 부인에게 인사를 했다. 엘리자베스는 그에게 무릎을 굽혀 인사만 했다.
피츠윌리엄 대령은 교양이 높은 남성인 모양이어서 이내 기분좋게 얘기를 시작했다. 그의 사촌인 다아시 씨는 콜린스 부인에게 집과 마당에 관해 잠깐 감상을 말했을 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엘리자베스에게 집안 식구들의 안부를 물었다. 그에게 적당히 대답한 엘리자베스는 덧붙여서 말했다.
“언니가 석 달 정도 런던에 있는데 혹시 만나지 못하셨나요?
그는 유감스럽게도 베넷 양을 만나지 못했다고 대답했지만 좀 당황하는 것 같았다. 그 화제는 더 진전되지 않았고 신사들은 잠시 후 돌아갔다.
31
피츠윌리엄 대령의 정중한 예의는 목사관에서 매우 칭찬을 받았다. 여성들은 한결같이 로징스의 회합이 무척 즐거워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초대를 받은 것은 며칠이 지난 뒤였다.
그와 같은 영광스러운 초대를 받게 된 것은 그들이 도착한 지 일주일이나 지난 부활절 날이었다.
초대는 물론 수락되어 적당한 시간에 일행은 영부인의 객실에 모인 사람들 틈에 끼었다. 영부인은 예의 바르게 맞았지만, 확실히 다른 손님들이 없을 때만큼 일행을 환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사실 영부인은 조카들에게 마음이 사로잡혀서 방 안의 누구보다도 이 두 사람에게, 특히 다아시 씨에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피츠윌리엄 대령은 일행을 기쁘게 맞았다. 로징스에서는 무엇이든 훌륭하게 기분전환이 되었지만, 콜린스 부인의 아름다운 친구가 특히 그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는 엘리자베스 옆에 앉아 켄트나 하트퍼드셔에 관한 일, 또 여행을 다니는 일, 집에 머물러 있는 일, 새로운 책, 음악 등 여러 분야에 두루 박식하게 얘기했는데, 엘리자베스는 전에는 이 방에서 지금의 절반도 즐겁게 지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아주 쾌활하게 얘기했으므로 다아시 씨와 마찬가지로 캐서린 영부인의 주목을 끌게 되었다.
커피를 마시고 나자 피츠윌리엄 대령은 엘리자베스에게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겠다고 한 약속을 지키라고 했다. 엘리자베스는 곧 피아노 앞에 앉았고 그는 의자를 끌어당겨 그녀의 옆에 앉았다. 다아시 씨는 이모로부터 떨어져 여느 때처럼 신중하게 피아노 쪽으로 와서 아름다운 연주자의 얼굴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자리를 차지했다. 엘리자베스는 그의 동작을 전부 보고 있었는데, 적당한 때가 오자 이내 그쪽을 향해 장난스럽게 미소를 던지면서 말했다.
”그런 엄한 얼굴로 저를 기죽게 할 작정이시군요, 다아시 씨. 그러나 저는 여동생이 아무리 연주를 잘하신다고 해도 기죽지 않아요. 저한테는 고집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놀라거나 하지는 않거든요.
엘리자베스는 다아시 씨에게 눈길을 던져 그의, 사촌 여동생의 칭찬에 대해 그가 얼마나 열렬하게 동의하는가를 보았으나, 그 순간도 또 다른 순간에도 그가 사촌 여동생을 사랑하고 있다는 어떤 징후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32
이튿날 아침 콜린스 부인과 마리아가 읍내에 가고 없는 동안 엘리자베스는 혼자서 제인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그때 벨 소리가 울리면서 누가 찾아온 것을 알았다. 놀랍게도 문이 열리고 들어온 사람은 다아시 씨였다.
그도 엘리자베스가 혼자 있어서 놀란 모양이었다. 그는 여성들이 모두 집에 있는 줄 알았다며 자기의 예고 없는 방문을 사과했다.
그녀가 로징스 사람들의 안부를 물은 다음에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빙리 씨는 다시 네더필드에 돌아가실 생각은 별로 없는 것으로 들었는데요?”
엘리자베스가 말 문을 열었다.
“그가 그렇게 말하는 걸 들은 적은 없지만 앞으로 거기에서는 별로 살지 않게 될 것 같습니다.”
다아시 씨는 이어서. “콜린스 씨는 퍽 좋은 부인을 택하신 것 같군요.”
“정말 그래요. 이웃분들이 그 사람이 좀처럼 찾기 힘든 분별 있는 여성 중의 한 사람을 만나게 된 걸 기뻐하는 게 당연해요.”
잠시 후 일을 끝내고 돌아온 샬럿과 마리아가 방에 들어오는 바람에 그것도 끝나고 말았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은 그들을 놀라게 했다. 다아시 씨는 자신의 잘못으로 베넷 양을 방해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2~3분 더 있었지만, 누구와도 말을 하지 않고 앉아 있다가 가버렸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샬럿은 그가 나가자마자 입을 열었다.
“일라이자, 그 사람은 틀림없이 너를 사랑하고 있는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친근하게 우리를 찾아오실 리가 없어.”
그러나 엘리자베스는 그가 침묵만 지켰다고 말을 했고 샬럿의 생각과는 달리 그건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겨졌다. 여러 가지로 추측한 끝에 그가 별로 할 일이 없어 그냥 찾아왔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33
엘리자베스가 장원(莊園)을 산책하다가 다아시 씨를 만난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과는 아무도 만난 적이 없는 장소에서 그를 만나다니 얄궂은 우연이라고 한탄했다. 이런 일이 두 번 다시 없도록 하기 위해, 처음 만났을 때 여기는 자신이 좋아하는 산책로라고 미리 일러주었다.
그러므로 그런 일이 두 번 생긴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일이 생겼다.
그는 별로 말수가 없었고 그녀도 별로 말하거나 들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그녀가 좀 답답함을 느끼고 있을 때 어느덧 목사관 바로 맞은편 울타리의 문이 보이자 아주 반가웠다.
어느 날 그녀는 산책을 하면서 제인이 최근에 보내준 편지를 다시 읽어보고 있었다. 제인이 편지를 쓸 때 별로 좋은 기분이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되는 대목에 잠시 마음을 쓰고 있는데 그때 마침 인기척이 나서 얼굴을 들어보니 이번에는 놀랍게도 다아시 씨가 아니라 피츠윌리엄 대령이었다.
“당신이 이 길을 산책하실 줄은 몰랐어요.”
“장원을 한 바퀴 돌고 있었습니다. 대개 해마다 하던 대로죠. 목사관을 방문하는 것으로 끝낼 작정이었습니다. 여기서 더 멀리까지 가십니까?”
“아니에요, 저도 조금만 더 갔다가 돌아설 생각이었어요.”
그녀가 방향을 바꾸고 두 사람은 목사관을 향해 같이 걸어갔다.
“그럼 토요일에는 정말 켄트를 떠나세요?”
그녀가 물었다.
“그렇지요. 다아시가 또 연기만 하지 않으면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가 하자는 대로 합니다. 모든 일정은 그가 하자는 대로 조정되지요.”
“빙리 씨는 아시나요.”
“조금 알 뿐이지요. 오빠 되는 분은 매너가 넘치는 친절한 사람이더군요. 다아시와는 절친한 친구고요.”
“네 맞아요. 다아시 씨는 빙리 씨에게 보통이상으로 잘해주시고, 놀랄 정도로 잘 보살펴드리는 것 같더군요.”
엘리자베스는 냉담하게 말했다.
“보살펴준다고요? 그렇지요. 보살펴줄 필요가 있을 때에는 퍽 잘 보살펴주고 있습니다. 다아시에게 신세를 꽤 진 모양이더군요. 이건 빙리 씨가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고 모두가 추측입니다.”
“그건 무슨 뜻이죠.”
“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다아시는 이것이 남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 않아요, 혹은 그것이 여자의 가족에 전해지면 불쾌한 일일 테니까요.”
“저는 절대로 입 밖에 내거나 하진 않을 거예요.”
“또 그것이 빙리 씨라고 짐작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세요. 다아시 얘기는 이렇더군요. 그는 자기가 몹시 분별없고 맞지 않는 결혼으로부터 한 친구를 구해내어서 무척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상대방의 이름이나 그 밖의 자세한 사정은 말하지 않더군요. 다만 저는 빙리 씨가 그런 곤경에 빠지기 쉬운 남자라고 생각했으며, 작년 여름에 두 사람이 같이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을 뿐이지요.”
“다아시 씨가 그 간섭의 이유를 말씀하시던가요?”
“제가 알기로는 여자 쪽에 상당히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방법으로 두 사람 사이를 떼어 놓았을까요?”
“거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어요. 다아시가 한 말은 지금 제가 드린 말씀뿐이었지요.”
피츠윌리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대답하지 않고 그냥 걸었으나 가슴에는 노여움으로 가득 찼다.
제인 언니와 빙리 씨를 떼어놓은 것이 빙리 양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다아시 씨였다는 것을 알고 다아시 씨야 말로 그의 오만과 변덕으로 제인이 받은 괴로움, 지금도 받고 있는 괴로움의 원인이 다아시 씨였다.
그래서 그녀는 마지막 결론으로. 다아시 씨의 오만한 자존심과 자기 여동생을 위해 빙리 씨를 차지해두려는 소망 때문에 그런 간섭을 했다고 생각했다.
34
모두들 가버리자 엘리자베스는 다아시 씨에 대한 노여움을 북돋우려는 듯이, 자기가 켄트에 온 후로 제인이 보내준 편지를 전부 다시 읽어보았다.
그녀는 벨 소리에 흠칫 정신이 들었다. 엘리자베스는 전에도 한 번 밤에 찾아온 적이 있었으므로 피츠윌리엄 대령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오늘 밤은 특히 자기를 살펴보러 왔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문득 활기가 되살아났다. 그러나 놀랍게도 방 안에 들어온 사람은 다아시 씨였다. 엘리자베스의 마음은 예상과는 다른 충격을 받았다. 그는 방안을 서성거렸다. 엘리자베스는 놀랐으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몇 분의 침묵이 흐른 후에 그는 흥분한 기색으로 그녀에게로 다가와서 말했다.
“혼자 애를 써보았지만 허사였습니다. 제 감정을 도무지 억누를 수가 없습니다. 제가 얼마나 열렬히 당신을 동경하고 사랑해왔는가를 말하게 해주십시오.”
엘리자베스의 놀라움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얼굴을 붉히고, 자신의 귀를 의심했으며, 너무 의아스러워서 잠자코 있었다. 이 표정을 본 그는 자기가 느끼고 있는 감정, 오랫동안 느껴온 애정에 대한 고백을 계속했다. 사랑하고 있으면서도 신분과 가문의 차이 같은 것 때문에 이성적으로 거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갖고 있던 증오에도 불구하고 이런 남성으로부터 구혼을 받자 어쩐지 가슴이 설레었다. 그녀는 그가 이야기를 끝냈을 때 참을성 있게 대답하기 위해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다아시 씨는 자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할 수 없었던 깊은 애정을 역설하고 청혼을 받아주기를 바란다고 하며 끝을 맺었다.
“이런 경우에는 고백해주신 애정에, 설사 그것을 보답해드리지 못하더라도 감사의 마음을 표명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해요. 고맙게 느껴진다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 저도 고맙게 생각할 수 있으면 기쁘겠지만 아쉽게도 저로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요. 저는 당신이 저를 좋게 생각해 주기를 꿈에도 바란 적이 없어요. 당신도 분명히 본의는 아니겠지만 그렇게 하셨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무의식적으로 일어난 일이고 그리 오래가지는 않으리라 생각해요.”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던 그는 노여움과 동시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분노로 얼굴이 창백해 졌다.
“제가 기대했던 영광스러운 대답이 고작 그뿐입니까? 왜 그처럼 일언지하에 거절을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화를 낼 이유가 이밖에 또 있어요. 그건 당신도 알고 계실 거예요. 당신에 대한 감정이 분명히 부정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아니, 호의였더라도 제가 가장 사랑하는 언니의 행복을 영원히 깨뜨려버린 한 남성을 받아들이고 싶어 할 줄 아세요?”
이런 말을 듣자 다아시 씨는 안색이 변했다. 그러나 곧 마음을 가라앉히고 엘리자베스가 이야기를 계속하는 동안 귀를 기울였다.
“당신을 좋지 않게 생각할 이유는 충분해요. 당신이 그 일에서 취한 옳지 못하고 비열한 행동은 그 동기가 어떤 것이었든 용서할 수 없어요. 사랑하는 두 사람 사이를 떼어놓고, 한 사람은 변덕스럽고 마음이 변하기 쉽다는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게 하고, 또 한 사람은 슬픔에 빠뜨렸다는 것은 당신 혼자의 뜻이 아니었다 해도 그 책임을 전가하진 못하겠지요.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거예요.”
엘리자베스는 말을 그쳤으나, 다아시 씨의 전혀 뉘우치는 기색이 없는 것을 보고 분노를 느꼈다.
“언니로부터 친구를 떼어놓기 위해 제가 최대의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성공한 것을 기뻐하고 있다는 걸 부정할 생각은 없습니다. 친구를 제 자신 보다 위했던 것입니다.”
엘리자베스는 그가 변명을 하지 않고 예의 바른 태도로 듣고 있는 것이 아니꼽게 생각되었다.
“제가 당신을 싫어하는 이유는 그뿐이 아니에요. 당신의 인격은 몇 달 전에 위컴 씨로부터 들어서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사실을 왜곡해서 남을 속일 수 있겠어요?”
“그 신사에게 관심이 많은 모양이군요.”
“그 사람이 어떤 불운을 겪었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지요.”
“그것이 저에 대한 당신의 평가로군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닌게 아니라 제 죄가 정말 무겁군요,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엘리자베스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만일 좀처럼 결심할 수 없었던 일을 솔직하게 고백해서 청혼을 하지 않았으면 이 죄도 묵인이 되었겠지요. 혹시 머리를 써서 내 마음을 속이고 당신을 기쁘게 했더라면 그런 신랄한 비난은 면할 수 있었겠지요. 그러나 어떤 종류의 기만도 저는 싫어합니다. 또한, 제 감정이 부끄럽지도 않습니다. 극히 자연스럽고 정당합니다. 당신은 가족의 낮은 신분을 기쁘게 받아들이리라고 생각합니까?”
그녀는 큰 분노를 느꼈지만 애써 조용히 말했다.
“다아시 씨가 고백하신 방법에 제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신다면 그건 오해예요. 혹시 좀 더 신사답게 행동하셨더라면 거절할 때 가엾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것뿐이에요.”
“당신이 어떤 방식으로 구혼하셨더라도 저는 받아들일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 거예요.”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당신의 태도는 오만하고 자만심이 강해서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해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분이라는 인상을 뚜렷이 받았고, 그 후에 일어난 사건으로 당신을 아주 싫어하게 되었어요. 알게 된 지 하루도 지나기 전에 당신 같은 분과는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잘 들었습니다. 베넷 양. 당신 마음을 잘 알았어요. 지금은 제 감정을 부끄러워할 뿐입니다. 시간을 빼앗은 걸 용서해주십시오. 건강과 행복을 빕니다.”
그 말과 함께 다아시 씨는 방에서 나갔다. 엘리자베스는 마음이 몹시 흔들려서 괴로웠다.
다아시 씨로부터 청혼을 받다니! 오랫동안 그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었다니! 자신의 친구와 언니와의 애정을 교란하고 결혼까지 방해한 그 모든 이유는 틀림없이 그 자신의 경우에도 같은 정도로 강력하게 나타났을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자기와 결혼하기를 바랄 정도로 사랑하고 있었다니! 그처럼 강한 애정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불어넣었다는 것은 크게 만족감을 주는 일이었다.
35
엘리자베스는 간밤에 있었던 일의 놀라움으로 다른 일을 생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아침 식사 후에는 산책을 했다. 다아시 씨가 가끔 오는 장원을 피해서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오솔길 주변을 두세 번 왕복한 다음 상쾌한 아침 공기에 끌려 장원 입구 근처에 서서 장원을 들여다보았다. 켄트에서 보낸 5주일 동안 이 마을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장원 숲속에 한 신사의 모습이 보였다. 혹시 다아시 씨인가 싶어 즉시 발길을 돌리려 했는데 이미 그녀를 발견하고 급히 다가와 이름을 불렀다. 다아시 씨가 다가와 한 통의 편지를 내밀었다.
“당신을 만날까 싶어 이 숲속을 걷고 있었습니다. 제발 이 편지를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이 편지를 받고 어젯밤 혐오감을 갖게 한 그 감정에 다시 호소하거나 또 한 번 구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는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별로 마음은 내키지 않을 테지만 당신의 정의감에 호소하며 부탁드립니다.
당신은 전혀 성질이 다르고 비중도 상당히 차이가 있는 두 가지 잘못을 저의 책임으로 돌렸습니다. 첫째는 두 사람의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빙리를 당신의 언니로부터 떼어놓았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도의와 인정을 무시하고 위컴의 눈앞에 다가온 행복을 깨뜨리고 장래의 희망을 짓밟았다는 것입니다. 이유도 없이 소년 시절의 친구이며 아버지가 아끼시던 사람을, 또 우리의 후원 없이는 의지할 곳이 없고 그 도움을 믿고 자란 청년을 버린다는 것은, 단지 두세 주일 동안에 애정이 싹튼 두 사람의 젊은 남녀 사이를 갈라놓은 일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큰 배신행위입니다. 그러나 저의 동기와 설명을 들으시면 어젯밤의 비난을 조금은 면할 수 있을 거라고 희망합니다.
하트퍼드셔에 가서 얼마 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빙리가 그 고장 여성들 누구보다도 당신의 언니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루카스 경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로, 빙리가 언니에게 보이는 깊은 관심이 두 사람의 결혼을 모두 기대하게 될 만큼 발전되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친구의 행동을 주시한 결과 제인에 대한 사랑이 제가 지금까지 목격했던 것을 훨씬 초월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언니 역시 주시했습니다. 쾌활하고 애교가 있었지만 특별한 애정의 징후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날 밤에 세밀한 관찰에 의해 저는, 언니가 빙리의 호의를 기꺼이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애정을 품고 그의 애정을 유발시키고 있는 것은 아님을 확신했습니다. 혹시 그렇게 잘못 생각하여 언니를 괴롭게 해드렸다면 당신이 분개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언니의 조용한 얼굴과 차분한 태도를 보고나서는, 매우 예민한 관찰자라면 언니가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기질을 갖고는 있지만 그리 쉽게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 분이라고 거침없이 주장했을 것입니다. 어젯밤에 말했지만 비단 그것만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당신 어머님 가족의 지위와 신분은 과히 바람직하지 못하지만 어머님과 당신의 세 여동생이 거의 예외 없이, 예의라고는 없는 완벽한 무교양에 비하면, 당신과 언니가 그와 같은 비난을 받지 않도록 행동할 수 있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두 분의 건전한 식견과 타고난 본성에 대한 영예일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한다는 사실을 생각하시면 위안이 되실 것입니다.
친구의 자매들도 저와 마찬가지로 몹시 불안을 느끼고 있어서, 우리가 서로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결의를 얼마쯤 흔들리게 하고 주저하게 했더라도 만일 언니가 무관심하다는 증거를 대는 제 장담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그 결혼을 막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한 일을 이해해주십시오. 제가 한 일 가운데 여기까지는 조금도 부끄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꼭 한 가지 떳떳하지 못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언니가 런던에 와 있음을 빙리 양에게 소식이 왔으나 친구에게 감춘 것은 비열한 술책이었습니다. 그것을 친구는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한 일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 더 할 말도, 달리 사과할 말도 없습니다. 저를 지배하고 있던 동기가 당신에게는 부당하게 생각될 것이지만 저는 아직도 그런 동기를 불순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중대한 잘못, 위컴에게 손해를 주었다는 비난을 반박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과 우리 집과의 관계를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위컴은 오랫동안 펨벌리의 영지를 관리하고 있던 사람의 아들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일을 잘하고 임무를 잘 수행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이 사람에게 보답을 해주고 싶어서, 자신이 이름을 지어준 아들이기도 한 조지 위컴에게 아낌없이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아버지는 위컴을 학교에 보내고 나중에는 케임브리지에 진학시켰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허영 때문에 항상 가난해서 그에게 신사로서의 교육을 시킬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으므로 이것은 매우 큰 원조였습니다. 아버지는 항상 매력적인 언동을 하는 그를 높이 평가하고 있어서 목사가 되기를 바랐고, 그 때문에 필요한 준비를 마련해 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자신은 아버지와는 상당히 다른 견해를 갖기 시작한 지 퍽 오래되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후원자에게 자신의 좋지 못한 성격과 무절제한 성품이 알려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었지만, 상대방이 방심하는 순간에 그를 볼 기회가 있는 같은 또래 청년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아버지는 5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위컴에 대한 애착은 마지막까지 지속되어 유언 속에서 용납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을 다해서 성직자의 추천을 꾀하도록 특별히 제게 부탁하셨고, 그가 목사가 되면 중용한 자리의 목사직이 공석이 되는 대로 그 직책을 주길 바라고 계셨습니다. 게다가 1천 파운드의 유산도 있었습니다. 위컴의 아버지도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오래 살지는 못했습니다.
그 후 반년도 채 되기 전에 위컴은 목사가 되지 않기로 결심을 하고, 법학을 공부하겠다고 유산 1천 파운드를 요구하여, 위컴의 성실함을 믿기 보다는 차라리 그러기를 희망하면서 그 요청에 대해서 기꺼이 승낙했습니다. 위컴은 목사가 될 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직에 대한 권리는 모두 파기하고 그 대신 3천 파운드를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 사이의 관계는 이제 모두 끝난 것으로 보였습니다. 주로 런던에 살고 있었을 것으로 알지만 법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구실에 불과했습니다.
그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으며 생활은 나태와 낭비로 물들고 있었습니다. 약 3년 동안 거의 소문도 듣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위컴에게 주기로 되어 있던 직책을 차지하고 있던 목사가 사망했을 때 그는 또 나에게 편지를 보내 목사직에 추천해달라는 의뢰를 해왔습니다. 존경하는 아버지의 의도를 잊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므로 조금도 걱정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만큼 말하면 이 일에 관해서는 더 이상 다른 말씀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동생은 저보다 열 살 아래이며 어머니의 조카인 피츠월리엄 대령과 제가 그 후견인으로 되어있습니다. 일 년 전에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런던에 집을 마련해주었지요.
작년 여름 집을 관리할 부인과 함께 램스게이트에 갔는데. 거기에 위컴이 분명히 계획적으로 찾아왔습니다. 그와 집을 관리하는 부인이 전부터 아는 사이였다는 것이 나중에 판명되었습니다.
위컴은 제 동생 조지아나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아버렸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로부터 받은 친절이 깊이 뇌리에 새겨져 있었기 때문에 마침내는 자기가 그를 사랑한다고 믿고 같이 달아나자는 유혹에 굴복해버린 것입니다. 그 애 나이 열다섯 살이었습니다.
제가, 같이 달아나기로 계획한 날의 이틀쯤 전에 갑작스럽게 여동생을 찾아간 겁니다.
조지아나는 거의 아버지처럼 존경하고 있는 오빠를 슬프게 하고 노엽게 할 것이 견딜 수 없어 고스란히 저에게 고백하고 말았습니다. 제가 어떻게 느끼고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컴의 주요 목적은 물론 여동생에게 속한 3만 파운드의 재산에 있었지만 저에게 복수를 하려는 생각도 강한 작용을 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가 어떤 방법으로 어떤 거짓말을 당신에게 했는지 알 길도 없지만 그의 거짓말이 성공했다는 사실은 의심할 바가 없습니다.
36
엘리자베스의 감정은 아무래도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가 변명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 우선 놀라움을 느끼게 했다. 그가 쓴 한 마디 한 마디에 편견을 품고 네더필드에서 있었던 일에 관한 설명부터 읽기 시작했다. 언니에게 애정이 없는 것으로 믿었다는 말을 곧 거짓말이라 단정하고, 그 결혼의 최악의 난점이라는 것의 설명을 읽고서는 너무 화가 나서 그의 편지에 몰두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였다. 죄를 뉘우치는 사람의 문장도 아니었으며 오만불손했다.
그러나 이 문제 다음에 위컴 씨에 관한 말이 나왔을 때에는 여러 가지 일들이 적혀 있어서 그것이 혹시 사실이라면 위컴 씨를 훌륭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평가는 완전히 뒤집히게 되는 것이었다.
‘이건 거짓말이 틀림없어! 이런 일은 있을 수 없어!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야!’
엘리자베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위컴 씨에 관한 부분을 정독하면서 문장들의 의미를 음미해보았다.
위컴 씨가 목사직에 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그 대신 3천 파운드라는 거액을 받았다는 내용을 읽자 다시 망설여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아무런 의심없이 이 사건에서의 다아시 씨의 행동을 파렴치하다고 믿어버렸지만, 방향을 전환시키면 무조건 무죄가 되는 것이다.
위컴 씨가 어떤 사람인가에 관해서는 혹시 알아낼 방법이 있었더라도 조사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그 생김새와 목소리와 태도만으로 온갖 미덕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아시 씨의 아버지를 존경하기 때문에 아들의 죄를 들춰내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확언을 하면서도 다아시 씨가 떠난 뒤에는 다아시 씨의 인격을 사정없이 내리깎았던 것이다.
위컴 씨와 관계가 있는 모든 일은 이제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킹 양에게 구애한 일도 단순한 연정이라기보다는 궁핍에서 벗어나려 눈앞의 무엇이든지 잡으려고 하는 천박함을 입증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위컴 씨에 대한 호의를 유지해보려는 모든 노력은 점점 약해졌고, 반면에 다아시 씨의 정당성이 더욱 인정되자, 빙리 씨가 얼마 전에 제인의 질문을 받고 이 사건에서 다아시 씨는 전혀 잘못이 없음을 주장했던 일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정말 자기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다아시 씨에 대해 생각하고 또 위컴 씨에 대해 생각할수록 자기가 얼마나 어리석고 불공평하며 편견을 가지고 있었나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이 아니라 허영심이 이 어리석은 행위의 원인인 거야. 한 사람은 자기를 좋아하니 기쁘게 생각하고 또 한 사람은 등한시하니 기분이 나빠져서, 만나게 된 출발점에서부터 편견과 무지에 사로잡혀 두 사람에 관한 한, 이성을 잃어버렸던 거야, 이 순간까지 나 자신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던 거야,’
다아시 씨는 언니가 사랑하고 있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는데, 거기에 관해서는 항상 들어온 샬럿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제인의 태도에 대한 표현에도 일리가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제인의 감정이 열렬하더라도 거의 표면에는 나타나지 않았고, 자기 만족감에 빠져 있곤 했던 것이다.
자기 가족에 대한 비판은 사실 분했지만 당연한 비난이 퍼부어지고 있는 대목에서는 굴욕감을 느꼈다. 그녀는 그 공격이 정당하다는 것에 깊이 충격을 받았다. 이 생각 저 생각에 오솔길을 두 시간이나 걸어다닌 끝에 아주 지쳐버렸다. 즉시 발길을 돌려 집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의 신사가 한 사람씩 찾아왔었다는 말을 들었다.
37
이튿날 아침 두 신사는 로징스를 떠났다. 캐서린 영부인은 너무 적적하니 모두 와서 만찬을 같이 하자는 소식을 전해왔다.
엘리자베스는 캐서린 영부인을 만나자, 자기만 그럴 마음이 있었더라면 지금쯤은 미래의 조카며느리로 소개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영부인이 노여움은 어떠했을까 싶어서 혼자 웃었다.
캐서린 영부인은 만찬이 끝난 후 엘리자베스가 기운이 없는 것을 알아채고 이제 곧 집에 돌아가게 되는 것이 싫은 모양이라고 스스로 추측하고는 상냥하게 덧붙여 말했다.
“혹시 그런 사정이라면 어머니에게 좀 더 있게 해달라고 편지를 써요. 콜린스 부인은 틀림없이 아가씨가 더 머무는 걸 기뻐할 거예요.”
“친절한 말씀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어요. 다음 주 토요일에는 런던에 가야 해요.”
깊은 생각은 혼자 있을 때를 위해 간직해두어야 한다. 혼자 있으면 언제나 거기에 몸을 맡기고 그것이 제일 큰 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하루도 혼자 거닐기를 그만두지 않았다.
다아시 씨의 편지는 이젠 거의 욀 정도였다. 모든 문장을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쓴 사람에 대한 감정은 때에 따라 많이 달랐다. 구혼했을 때의 말투를 생각하며 지금도 노여움에 가득 찼다.
그의 애정은 그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북돋았고 그의 인품은 존경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 사람을 전체적으로 좋게 볼 수는 없었다.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저 모두를 비웃는 것만으로 만족을 하고, 어린 딸들의 경박한 행동을 나무라거나 막으려고 애쓰지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는 그 자신의 습관이 바르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므로 딸들의 그런 불행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것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자주 제인과 협력해서 키티와 리디아의 무분별함을 고쳐주려고 애썼지만, 어머니가 응석을 받아주고 있는 이상은 나아질 가망이 전혀 없었다.
작별할 때 영부인은 잘 가라고 말하고 고맙게도 내년에도 또 헌스퍼드에 오라고 초청해 주었다. 드 버그 양도 몹시 힘들여 무릎을 굽히며 두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
38
토요일 아침에 엘리자베스와 콜린스 씨가 아침식사를 하기 위한 자리에서 만난 것은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기 몇 분 전이었다.
“엘리자베스 양, 방문해 주신 친절에 대해서 아내가 이미 감사의 뜻을 전했는지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 집에 머물러주신 호의는 흐믓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명하고 정말 행복했다고 말했다. 샬럿과 같이 지내면서 여러 가지로 보살핌을 받아 6주일을 즐겁게 지냈으니, 나야말로 무척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드디어 사륜마차가 도착하자, 큰 여행 가방을 싣고 작은 짐꾸러미는 마차 안에 넣어져서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알렸다. 친구와 애정이 깃들인 작별인사를 주고받은 후 엘리자베스는 콜린스 씨를 따라 마차 옆에까지 왔다. 콜린스 씨는 마당으로 내려가면서 가족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말하고, 지난겨울 롱본에서 베풀어주신 친절에 대한 감사와, 가디너 부부에게도 인사말을 전해줄 것을 부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차가 출발한 지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마리아가 침묵을 깼다.
“참 이상해! 우리가 여기 온 지 한 사흘밖에 안 된 것 같은데 그동안 무척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정말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
엘리자베스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로징스에서의 만찬에 아홉 번이나 불려갔고 다과회도 두 번이었어요! 할 얘기가 가득해요.”
엘리자베스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내겐 또 숨겨야 할 일도 많이 있지.’
가는 길에 가디너 씨 댁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사흘정도 묵을 예정이었다.
제인은 건강해 보였다. 외숙모가 마련해둔 여러 가지 즐거움 때문에 그 마음속까지 살펴볼 겨를은 없었다. 그러나 제인은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작정이었으므로 롱본에서라면 잘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39
세 명의 숙녀는 그레이스처치 가에서 하트퍼드셔를 향해 떠났다. 베넷 씨의 마차가 마중을 나오기로 되어있는 여관으로 다가갔을 때, 키티와 리디아가 이층 식당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두 동생은 벌써 한 시간 전부터 이곳에 와서, 맞은편 모자 가게에 들렀다가 보초병을 보고 놀려대기도 하고 샐러드와 오이에 소스를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두 동생은 언니들을 환영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여관의 식당에서 흔히 제공하는, 냉육이 차려진 식탁을 가리켰다.
“언니들을 근사하게 환영해줄 작정이었어. 대신 돈 좀 빌려줘. 저 가게에서 다 써버렸거든. 이 모자를 샀어. 집에 돌아가면 뜯어서 더 멋지게 만들어볼 작정이야.”
“올 여름에 부대가 메리턴에서 떠나면 무슨 옷을 입든 아무런 의미가 없어, 2주일 후에는 부대는 떠난다고 해.”
“정말이야?”
엘리자베스는 아주 만족스러워하며 소리쳤다.
“브라이턴 근처에 주둔하게 될 것 같아. 아버지가 여름에 우리를 데리고 가주셨으면 좋겠는데.”
그 말을 들으면서 엘리자베스는 이렇게 생각했다.
‘정말 끔찍한 계획이야. 우리를 한꺼번에 파멸시킬 생각이군, 기가 막혀!’
“좋은 소식이 있어.”
식탁에 앉으며 리디아가 말했다.
“어떤 거야?”
“위컴 씨가 메리 킹과 결혼 할 위험성은 없어. 어때요! 그녀는 리버풀의 아저씨 댁으로 가서 거기서 살게 됐어. 위컴 씨는 해방된 거야.”
“그리고 메리 킹 양도 무사히 벗어난 셈이군. 무분별한 결혼으로부터······.”
엘리자베스가 덧붙였다.
식사가 끝나자, 언니들은 돈을 치르고 마차를 불렀다.
집에서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베넷 부인은 제인이 여전히 아름다운 것을 보고 기뻐했다. 저녁식사를 할 때 베넷 씨는 엘리자베스를 보고 여러 번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리지, 참 잘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몇 시간도 되기 전에, 리디아가 브라이턴으로의 여행에 관한 계획에 대해 부모에게 자꾸 얘기하고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이내 아버지는 전혀 양보할 의사가 없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 대답이 모호했으며, 어머니는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40
제인에게 자기가 겪은 일을 빨리 알리고 싶은 엘리자베스의 마음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드디어 다음날 아침, 엘리자베스는 언니와 관계가 있는 부분은 모두 접어두고 다아시 씨와 자기 사이에 있었던 일을 대강 얘기했다. 동생을 열렬히 편애하는 제인은 엘리자베스가 어떤 칭찬을 받아도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차츰 놀란 마음이 가라앉았다.
“지나치게 성공을 확신했던 것이 문제였구나. 하지만 그런 만큼 실망은 더 컸을 거야.”
그런 다음 엘리자베스는 편지에 대해 말하고는 조지 위컴 씨에 관한 얘기를 되풀이하여 들려주었다. 그것은 제인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그녀는 전 인류의 사악함을 다 합쳐도 절대로 위컴 씨가 지닌 그런 정도의 사악함은 아닐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놀란 적은 없어. 위컴 씨가 그렇게 나쁜 사람이라니! 정말 마음이 무거워져. 너도 아마 그럴 거야.”
“그 두 사람의 교육에 확실히 문제가 있었던 거야. 한 사람은 모든 선함을 갖고 있고 또 한 사람은 겉모양만 그것을 가진 거야.”
“다아시 씨한테 위컴 씨 얘기를 할 때 그렇게 강한 표현을 한 건 운이 나빴구나. 이제 와서 보면 전혀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말이야.”
“확실히 그래. 하지만 그처럼 운이 나쁘게 지나친 말을 한 것도 따지고 보면 내가 키워온 편견의 당연한 결과야. 한가지 충고를 듣고 싶은 일이 있어. 위컴 씨의 인품에 관한 얘기를 여러 사람에게 알려 줘야 할까, 아니면 그대로 두어야 할까?”
제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지나치게 폭로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네 생각은 어떠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다아시 씨도 그 편지를 공개해도 좋다고 하지 않았거든.”
엘리자베스는 이제 집에 차분히 들어앉아서 언니를 충분히 관찰할 수 있었다. 제인은 행복하지 않았다. 지금도 빙리 씨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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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온 후의 첫 번째 주일은 빨리 지나가 버렸다. 두 번째 주일이 시작되었다. 부대가 메리턴에 주둔하는 마지막 주일로 근처의 여자들은 갑자기 풀이 죽어 있었다. 그 낙담은 거의 그 일대를 휩쓰는 현상이었다. 먹고 마시고 자고 하는 일상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베넷 가에서도 위의 두 딸들뿐이었다. 키티와 리디아의 비참함은 극도에 이르러서 이 두 아가씨는 언니들이 태연한 것을 자주 비난했다.
“아아, 우리는 어떻게 될까! 무엇을 하고 살면 좋을까! 어쩌면 그렇게 생글거릴 수 있어, 리지 언니?”
그러나 리디아의 우울증도 얼마 안 가서 회복되었다. 그녀는 연대 대령의 아내인 포스터 부인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브라이턴에 따라가기로 된 것이다. 이 둘도 없이 귀중한 친구는 아주 최근에 결혼한 젊은 여자였다. 항상 명랑하고 쾌활한 점에서 서로 마음에 들어 알고 지낸 지 3개월 만에 절친하게 지냈던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조리 있는 말로, 제인은 여러 경우의 예를 들면서 단념을 시키려고 애썼지만 허사였다. 리디아가 행실이 몹시 나쁘다는 것, 포스터 부인 같은 사람과 가까이 지내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집에 있을 때보다 유혹이 훨씬 심할 브라이턴에서 그러한 사람들과 같이 지내면 지금보다 더욱 무분별해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아버지는 주의 깊게 듣고 있다가 말했다.
“리디아는 어디든 사람들 속에 나가지 않고서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을 거고, 지금 같은 형편에 이만큼 비용을 들이지 않고, 더구나 집 식구들에게 폐도 끼치지 않고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 거야.”
“제가 불평을 하고 있은 건 더 일반적인 일이에요. 우리 집 평판은 리디아의 그 턱없이 떠들썩하고 뻔뻔스러우며 자제심이 없는 성품 탓으로 아주 나빠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죄송해요. 만약 아버지가 그 자유분방한 태도를 억제해주시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게 될 거예요.”
베넷 씨는 엘리자베스가 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부드러운 시선으로 딸을 바라보며 손을 잡고 대답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라. 너하고 제인은 어디를 가도 틀림없이 존경을 받을 테니까. 비록 어리석은 동생이 있더라도 너희들의 가치가 떨어지지는 않을 거야.”
부대가 메리턴에 주둔하는 마지막 날, 다른 장교들과 함께 위컴 씨는 롱본에서 식사를 했다. 엘리자베스는 그와 기분 좋게 헤어지려는 마음이 없었으므로, 헌스퍼드에서는 어떻게 지냈느냐는 물음을 받고 피츠윌리엄 대령과 다아시 씨도 로징스에서 3주일 동안 지냈다고 말하고 대령과 안면이 있느냐고 물었다.
위컴 씨는 놀라서 불쾌한 듯한 표정을 보였으나 평정을 되찾은 듯 전에 자주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
“로징스엔 얼마나 묵고 있었다고 하던가요?”
“3주일 정도였어요.”
“자주 만났습니까?”
“네, 거의 매일 만났어요.”
위컴 씨의 경계하는 기색은 붉어진 안색과 흥분한 표정에 잘 나타났다. 몇 분 동안 말이 없더니 이윽고 어리둥절함을 떨쳐버리고 그녀 쪽을 돌아다보고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다아시에 대한 저의 감정을 잘 알고 있으니. 그가 외견상 만으로라도 다정해질 만큼 현명해진 걸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겁니다. 그 사람의 오만이 그런 식으로 나간다면 그 자신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겠죠.”
엘리자베스는 이런 말을 듣고 고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저 고개를 약간 기울여서 대답을 대신했다. 그는 다아시 씨에 대한 비난이라는 예전의 화제에 그녀를 끌어들이고 싶어했으나, 그것을 가만히 듣고 있을 기분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 이상 특별히 엘리자베스에게 호의를 보이려고 하지는 않았다. 드디어 서로 정중하게 인사를 나누고 진심으로 두 번 다시 만나게 되지 않기를 바라며 헤어졌다.
식사가 끝나고 리디아는 포스터 부인과 함께 메리턴으로 갔다가 거기서 이튿날 아침 일찍 떠날 예정이었다.
42
만일 엘리자베스가 자기 가족에 대한 의견을 말한다면, 결혼의 행복이나 가정의 편안함에 대해서는 별로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호감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젊음과 아름다움만 있으면 누구든지 지닐 것으로 보이는 상냥한 태도에 마음이 사로잡혀, 이해심이 적고 마음이 좁은 여자와 결혼하여 결혼 초기에 이미 아내에 대한 진정한 애정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결혼에서 태어난 자식들에게 따르는 불리함을 지금처럼 뼈저리게 느낀 적은 없었다.
외숙모와 북쪽으로 여행을 하기로 정해진 날이 드디어 다가왔다. 2주일쯤 남았을 때 외숙모인 가디너 부인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와서, 여행 날짜가 연기되었다는 것과 그 범위가 좁혀졌다는 것을 알려왔다. 적어도 기대했던 것만큼 한가하게 구경을 하기에는 기간이 너무 짧으므로 호수 지방으로의 여행은 취소하고 일정을 더 축소했음을 알려왔다.
엘리자베스는 대단히 실망했다. 호수 지방을 가장 보고 싶었고 3주일이면 충분한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족할 수밖에 없었고 즐기는 것이 그녀의 기질이기도 했으므로 이내 생각을 고쳤다.
더비셔라고 하면 거기에 얽힌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 말을 듣고 무엇보다도 먼저 생각나는 것은 펨벌리와 그 소유자인 다아시 씨였다,
기다리는 시간은 이제 두 배로 늘어났다. 외숙모 내외가 도착하려면 4주일이 지나야 했다. 그러나 그 기간도 어느새 지나가고 가디너 부부는 네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드디어 롱본에 나타났다. 딸 둘과 아들 둘은 제인이 보살펴주기로 되어 있었다. 모두 제인을 좋아했고 그녀는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이었으므로, 아이들 보살피는 데는 가장 적합했다.
가디너 부부는 롱본에서 하룻밤을 묵고 엘리자베스를 데리고 신비스러움과 즐거움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 한 가지 즐거움은 정말 잘 어울리는 동반자를 가졌다는 것이다.
지금 지나가고 있는 곳은 더비셔의 극히 작은 부분이다. 램턴이라는 작은 거리가 가디너 부인이 전에 살던 곳인데, 그곳에 예전의 친지가 살고 있다는 것을 요즘에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지방의 주요한 명소를 구경하고 나서 램턴으로 향했다. 외숙모로부터 들은 얘기로는 이 램턴에서 5마일 이내의 거리에 펨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가는 도중은 아니었지만 고작 1~2마일 벗어나 있을 뿐이었다. 전날 밤 그 여정을 의논했을 때 가디너 부인은 다시 한 번 그곳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가디너 씨는 자기도 보고 싶다고 찬성하고 엘리자베스의 의향을 물었다.
“그렇게 자주 소문에 들은 곳을 가보고 싶지않아? 네가 알고 있는 많은 분들과 관계가 있는 곳이야. 위컴 씨도 소년 시절을 거기서 지냈거든.”
“저는 이젠 훌륭한 저택은 싫증났어요. 많이 봤기 때문에 이젠 훌륭한 양탄자나 공단 커튼 같은 것은 보고 싶지 않아요.”
“훌륭한 가구로 장식된 아름다운 저택 같으면 나도 보고 싶지 않아. 하지만 정원이 굉장하단다. 이 지방에서 가장 훌륭한 숲이 있거든.”
엘리자베스는 그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묵인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곳을 구경하고 있는 중에 다아시 씨를 만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생각만으로도 얼굴이 붉어졌다.
그날 밤 침실로 물러갔을 때 여관의 하녀에게 펨벌리에 대하여 묻고, 주인이 여름을 지내러 오는지를 조심스럽게 알아보았다. 기쁘게도 부정하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녀의 근심이 사라졌기 때문에 엘리자베스는 시치미를 떼고 정말 싫어했던 것이 아니라고 선뜻 대답했다.
그래서 세 사람은 펨벌리로 가게 되었다.
43
엘리자베스는 달리는 마차에 앉아 펨벌리의 숲이 나타나는 것을 눈여겨보면서 마음이 설레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마침내 문 안으로 마차가 들어섰을 때 가슴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마차는 가장 낮은 지점으로부터 잠시 넓게 펼쳐진 아름다운 숲을 지나갔다.
엘리자베스의 마음은 너무나도 벅차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에 띄는 모든 곳, 모든 경치를 살피며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숲이 끝나고 골짜기의 맞은편으로 길이 구부러지며 펨벌리의 저택이 나타났다. 크고 아름다운 석조 건물로 언덕의 가장 좋은 위치에 세워졌다. 엘리자베스는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처럼 자연의 아름다움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은 곳은 본 적이 없었다. 펨벌리의 안주인이 되는 것도 과히 나쁠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일행이 저택을 구경하고 싶다고 말하자 곧 현관으로 인도되었는데, 그곳에서 가정부를 기다리는 동안 엘리자베스는 자기 참 엉뚱한 곳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새삼 놀랐다.
나이가 지긋한 부인이 다가와 정중하게 식당부터 안내를 했다. 크고 균형이 잡힌, 훌륭한 장식품이 갖춰진 방이었다. 엘리자베스는 한번 훑어보고 나서 전망을 바라보려고 창가로 갔다. 지형의 안배가 잘 되어있어서 강물과 강가에 있는 나무들 골짜기의 전경들이 모두 아름다웠다. 어느 방에서 보아도 역시 아름다운 전경이었다. 로징스에 장식품에 비해 호화로운 점에는 뒤지지만 참다운 기품을 지니고 있어, 소유주의 취미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가정부에게 주인은 정말 부재중이냐고 묻고 싶었으나 그럴 용기는 없었다. 마침 외삼촌이 그것을 대신했다. 레이놀즈 부인은 정말 안 계시다고 대답하고 덧붙였다.
“하지만 내일은 친구 분들을 많이 모시고 돌아오십니다.”
외숙모는 어떤 초상화를 가리키며 그녀를 불렀다. 위컴의 초상화였다. 외숙모는 미소를 지으며 어떻게 된 그림이냐고 물었다. 레이놀즈 부인은 선대 청지기의 아들로 다아시 씨의 도움으로 교육을 받은 분이라고······ 그런데 좀 지나치게 방탕한 모양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것은 제 주인님이십니다. 아주 잘 그렸지요. 저것과 같은 무렵인 8년 전에 그려졌어요.”
레이놀즈 부인은 또 다른 초상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퍽 미남이시군요. 하지만 리지, 아주 비슷한지 너는 잘 알 테지.”
주인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자 레이놀즈 부인은 엘리자베스를 더욱 존경하는 것같이 보였다.
“저 젊은 주인님을 알고 계세요?”
엘리자베스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제, 조금······.”
“다아시 양도 오빠처럼 아름다운 분입니까?”
가디너 씨가 물었다.
“네, 그렇게 아름다운 분은 없을 겁니다. 그리고 퍽 교양이 있으시고요! 종일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곤 하시지요. 아가씨는 내일 주인님과 같이 오십니다.”
“만약 주인께서 결혼을 하면 여기에 더 오래 계시게 되겠지요?”
“그렇지요. 하지만 언제가 될지, 주인님과 어울릴 만한 분은 생각하지도 못하겠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무심코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니 주인님에겐 명예로군요.”
“저는 사실대로 말하고 있을 뿐이에요. 주인님이 네 살 때부터 쭉 알고 지냈지만, 평생 불쾌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가정부를 바라보았다. 이건 도대체 다아시 씨를 두고 하는 말일까? 그가 온순하다고?
“소작인이나 하인들도 주인님을 칭찬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요. 그분을 거만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제 짐작에는 그저 주인님이 보통 젊인이들처럼 별로 말을 잘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층계 위에 넓은 복도를 지나 매우 아름다운 거실로 안내되었다. 제일 나중에 펨벌리로 온 다아시 양이 이방을 아주 마음에 들어했으므로 그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손질을 했다는 것이다.
“확실히 좋은 오빠군요.”
창문을 향해 가면서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저택의 공개되어 있는 부분을 다 돌아보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가정부에게 작별인사를 한 후, 현관문에서 기다기고 있던 정원사의 인도를 받게 되었다. 엘리자베스가 건물을 돌아보며 지어진 것이 언제일까를 추측하고 있던 차에, 마침 그때 저택의 주인인 다아시 씨가 돌연 건물 뒤 마구간으로 통하는 길에 나타났다.
서로 10야드도 떨어져 있지 않았고 다아시 씨가 너무 갑작스레 나타나는 바람에 어디 숨을 수도 없었다. 눈과 눈이 부딪치고 서로의 뺨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사실 다아시 씨도 몹시 놀라고 아연해서 한동안 움직일 줄을 몰랐으나, 이내 냉정을 되찾고 일행 쪽으로 다가와 예의 바르게 엘리자베스에게 말을 건넸다.
엘리자베스는 본능적으로 돌아서서 걸어가기 시작했으나, 다아시 씨가 다가오자 멈추어서 난처함을 느끼면서 인사를 받았다.
예의 바르게 가족의 안부를 물어보고, 롱본에서 언제 떠났는가. 또 언제부터 더비셔에 와 있었는가를 여러 번 조급한 말투로 되풀이 묻는 것을 보면, 그 역시 상당히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침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게 된 모양이었다. 몇 분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고 서 있다가 돌연 작별을 고하며 가버렸다.
여기에 온 것은 정말 운이 나빴어, 잘못 판단했던 거야! 얼마나 이상하게 보였을까! 마치 내가 의도적으로 그를 기다린 것으로 생각할 지도 몰라! 아아, 왜 나는 여기에 왔을까? 10분만 더 빨랐어도 그 사람이 분간할 수 없는 곳에 가 있었을 텐데, 그녀는 어쩔 수 없었던 이 해후를 자꾸 반복해서 생각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그처럼 달라진 태도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나한테 말을 건네준 것조차 놀랄 일인데 그처럼 정중하게 가족의 안부까지 묻다니! 이 뜻밖에 상봉만큼 태도가 조용했던 적도 없고. 또 그처럼 상냥하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없었다. 로징스에서 마지막으로 말했을 때와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엘리자베스는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가디너 씨는 정원 전체를 한 바퀴 돌고 싶다고 말했으나 아마 걸어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했다. 자랑스런 미소와 함께 둘레가 10마일이라는 정원사의 말을 듣고 그것으로 이야기는 결정되었다.
안내인과 얘기를 하기도 하며 갈 길을 천천히 걸어가다가 일행은 다아시 씨가 상당히 가까이에서 이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엘리자베스의 놀라움은 아까보다 더 컸다. 엘리자베스는 놀라긴 했지만 적어도 아까보다는 침착한 상태여서, 만일 정말 자기들을 만날 작정으로 오는 것이라면 조용한 얼굴로 말을 건넬 심산이었다. 첫눈에 그가 얼마 전의 정중한 태도를 전혀 잃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녀도 목례로 인사를 대신한 후 이내 펨벌리의 아름다움을 칭찬했다. 그녀가 말을 멈추자 다아시 씨는 엘리자베스에게 자기를 일행들에게 소개해주지 않겠느냐고 청했다. 엘리자베스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뜻밖의 친절이었다. 엘리자베스는 그가 자기에게 청혼을 할 때, 그로 하여금 반감을 일으켰던 바로 그 사람들을 이제 알고 지내려 하는 데에 미소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생각했다.
엘리자베스는 곧 그들을 소개했다. 그는 함께 돌아서서 가디너 씨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엘리자베스는 기쁘고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에게도 얼굴을 붉힐 필요가 없는 떳떳한 친척이 있다는 것을 다아시 씨가 알게 되었다는 것이 퍽 다행스러웠다.
화제는 이내 낚시질로 옮겨져서, 다아시 씨는 예의 바르게 근처에 묵고 있는 동안은 언제든지 낚시질을 하러 오라고 초대하는 동시에, 낚시 도구까지 빌려주겠다고 말하면서 한 곳을 가리키며 저곳은 항상 물고기가 제일 많이 낚이는 곳이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엘리자베스는 여러 번이나 되풀이해서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변했을까? 그 변화는 어디서 생긴 것일까? 저 사람의 태도가 저렇게 부드러워진 건 나 때문일 리가 없어. 저 사람이 지금까지도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저희가 베이크웰을 떠나기 전에 여관에서 물어보니, 당신은 오늘 여기 오시지 않을 것으로 알고 있었지요.”
그것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는 집사와 상의 할 일이 있어서 일행보다 몇 시간 빨리 왔다고 말했다.
“일행 중에는 빙리 씨와 그 자매들도 있습니다. 일행 중에 또 한 사람······.”
그는 잠시 후에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특히 당신이 만나주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당신이 램턴에 머무는 동안 제 여동생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너무 무리한 부탁을 하는 걸까요?”
엘리자베스의 마음은 편치 않았는데 그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자랑스럽기도 하고 또 만족스럽기도 했다. 다아시 씨가 자기의 여동생을 소개하려는 것은 굉장한 호의였다. 그들은 두 사람을 훨씬 앞질러버렸다. 두 사람이 마차에 닿았을 때 가디너 부부는 훨씬 뒤떨어져 있었다.
집 안에 들어가 차를 마시고 가라고 권유했으나, 그들은 사양하고 매우 예의 바르게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다아시 씨는 여성들의 손을 잡아 마차에 태워주었다. 출발하고 엘리자베스는 다아시 씨가 집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정말 예의바르고 정중하고 겸손하더군.”
외삼촌이 말했다.
그날 있었던 일들은 너무 흥미로운 것이어서 엘리자베스는 예의 바른 다아시 씨의 태도를 생각하고, 또 여동생을 자기에게 소개시키려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또다시 의혹에 사로잡혔다.
44
엘리자베스는 다아시 씨의 여동생이 펨벌리에 도착하면 곧 그녀를 데리고 그가 찾아올 것 이라고 생각하고, 그날 아침에는 여관에 있기로 마음먹었다. 마차 소리가 들려 창가에 가보니 신사와 여자가 마차를 타고 거리를 올라오고 있었다. 외숙모에게 그것을 알려주어 다시 한번 두 사람을 놀라게 했다. 두 사람은 어안이 벙벙해졌지만, 전날의 여러 가지 일들을 두루 생각한 끝에, 이 일에 대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전혀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으나 지금은 그런 호의를 보여주는 이유를 조카딸에 대한 그의 애정이란 것으로 해석하는 수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었었다.
드디어 다아시 양과 오빠가 나타나면서 다소 어색한 소개가 이루어졌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 양도 마찬가지로 자기만큼 당황해하고 있음을 알았다. 랜텀에 온 후로 다아시 양은 거만하다는 말을 듣고 있었지만 2~3분쯤 지나자 그저 몹시 수줍어할 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다아시 양은 키가 크고 엘리자베스에 비해 몸집도 컸다. 16살밖에 안 되었지만 맵시가 좋고 여성스러우며 우아했다. 얼굴은 오빠만큼 단정하지는 않았지만 분별도 있고 밝으면서 자태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정숙했다. 잠시 후에 다아시 씨는 빙리도 곧 인사를 하러 올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방문자를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빙리 씨의 빠른 발소리가 층계에서 들리더니 이내 그가 방안을 들어왔다. 빙리 씨에 대한 노여움은 훨씬 전에 가셔버리고 없었지만, 혹시 아직 남아 있더라도 다시 그녀를 만나서 보이는 친근한 태도에는 저항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어느 한 사람을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정답게 가족의 안부를 물었는데, 그 얼굴과 말투는 그전처럼 상냥하고 친숙했다.
빙리 씨는 선뜻 즐거워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조지아나는 열망했으며, 다아시 씨는 단호하게 기쁨을 표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돌아가기 위해 일어섰을 때 다아시 씨는 가디너 부부와 엘리자베스에게 이 고장을 떠나기 전에 꼭 만찬을 같이 해달라고 말하고, 여동생에게도 초대하는 말을 하라고 일렀다.
다아시 양은 초대를 하는 데에는 익숙하지 못한 모양이어서 자신없는 듯했으나 곧 오빠의 말을 따랐다. 그래서 만찬은 이틀 후에 하기로 하고 그들은 갔다.
가디너 씨 부부는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조카가 다아시 씨와 서로 알고 있는 것이다. 또 다아시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도 확실했다.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해보았지만 물을 필요도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가디너 씨 부부는 다아시 씨에 대해서 그 사람을 좋게 생각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되었다. 다아시 씨에 대하여는 어떤 결점도 발견할 수 없었고, 그 예의 바른 행동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생각했다. 다아시 씨에 대한 감사였다. 자기를 사랑해준 데 대한 감사가 아니라 그 사랑을 거절했을 때의 건방지고 신랄한 태도를 모두 용서할 수 있을 정도의 애정에 대한 감사였다. 자기를 피할 줄 알았던 그는 뜻밖의 만남으로 자기와의 친분 관계가 계속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엘리자베스의 친척에게 호의를 베풀고 자기 여동생과 친하게 지내게 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이었다. 그처럼 자존심이 강한 사람의 이 같은 변화는 놀라움뿐만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까지 불러일으켰다.
가디너 씨는 아침식사 후에 이내 두 사람을 남겨두고 떠났다. 낚시 계획은 전날 다시 한번 화제에 올라 정오까지 펨벌리에서 몇몇 신사들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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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는 빙리 양이 자기를 싫어하는 것은 질투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지금 자기가 펨벌리에 나타나면 그녀가 몹시 싫어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가 얼마나 예의 바르게 옛정을 되살릴까 하는 호기심도 생겼다.
저택에 닿자 현관을 지나 객실로 안내되었는데, 이 방의 북쪽 전망은 시원한 여름에 알맞은 것이었다.
허스트 부인과 빙리 양 그리고 런던에 같이 살고 있는 부인과 함께 다아시 양은 그 방으로 두 사람을 맞아들였다. 조지아나 다아시 양은 매우 정중하게 맞아들였지만, 허스트 부인과 빙리 양은 엘리자베스에게 약간의 허리를 굽혔을 뿐이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잠시 동안 침묵이 이어졌고 그 침묵이 그야말로 어색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내 품위 있고 명랑한 모습을 띤 앤즐리 부인이 그 침묵을 깨뜨렸다. 앤즐리 부인의 무엇인가 이야기의 실마리를 찾으려는 노력의 결과는 그녀가 빙리 자매보다 참된 의미에서 교양이 있는 여성임을 증명했다. 엔즐리 부인과 가디너 부인과의 사이에 얘기가 오가고, 엘리자베스가 이따금 끼어들어서 대화는 계속되었다. 다아시 양은 자기도 거기에 끼고 싶은 듯한 얼굴로, 가끔 여러 사람들에게 들릴 염려가 없는듯 싶을 때 짤막한 말을 입 밖에 내었다.
엘리자베스는 빙리 양이 자신을 세밀히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특히 다아시 양에게 한마디만 말을 건네도 촉각을 곤두세운다는 것을 이내 알게 되었다.
빙리 양은 엘리자베스를 시기, 질투하는 말을 계속하였으나 엘리자베스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일라이자 베넷은 오늘 아침 무척 초라하게 보이고, 지난겨울 후로 많이 변했어요. 얼굴빛이 아주 검고 천해졌어요! 루이자 언니하고도 말했지만, 도저히 그 사람같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어요.”
이런 말은 귀에 몹시 거슬렸으나 다아시 씨는 볕에 좀 탄 것 외에는 아무런 변화도 볼 수 없었으므로 그것은 여름에 여행을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냉정하게 대답하는 데 그쳤다.
가디너 부인과 엘리자베스는 돌아가는 도중에 그 저택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했으나 두 사람에게 제일 관심이 있었던 일만은 말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가디너 부인이 그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물어보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다. 부인 쪽에서도 조카딸이 먼저 그런 화제를 꺼내주었다면 퍽 만족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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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는 처음 램턴에 도착했을 때 제인으로부터 편지가 와 있지 않아 몹시 실망했다. 사흘째 아침에 제인이 쓴 편지 두 통을 한꺼번에 받았다. 그 중의 한 통은 다른 곳으로 잘못 배달되었던 표시가 있었다.
엘리자베스는 잘못 보내졌던 쪽을 먼저 읽었다.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리디아가 위컴과 같이 스코틀랜드로 도망가 버렸다는 것을 포스터 대령의 심부름으로 말을 탄 사람이 알려주었다. 아마 키티는 이렇게 될 것을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던 같았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위컴이 우리 집에는 재산이 없는 줄 아니까, 재산을 노리고 그런 것은 아니라는 거지, 두 사람은 토요일 밤에 떠난 것으로 짐작되는데, 어제 아침 8시까지는 몰랐던 모양이었다. 리디아는 대령 부인에게 두세 줄의 쪽지를 남겨두고서 떠났다.’
엘리자베스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엇을 느꼈는지도 모르는 채 편지를 다 읽고는 이내 다른 한 통의 편지를 뜯고 읽어 내려갔다.
‘워컴과 리디아와의 결혼은 무분별한 짓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우리로서는 그 결혼이 확실히 이루어진 것을 확신하고 싶어서 애태울 뿐이다. 포스터 대령이 어제 우리 집에 왔는데, 대령 부인에게 남긴 쪽지를 미루어보면 스코틀랜드로 가지는 않은 것 같다.
영국에서 사랑의 도피를 한 남녀들이 결혼하던 곳이었던 그레트나 그린으로 갈 작정인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그러나 위컴의 친구인 데니 씨는 그레트나 그린으로 갈 의도는 없고 리디아와 결혼할 의도도 없다는 거야. 이 말을 듣고 포스터 대령이 놀라서 곧 브라이턴을 떠나 두 사람을 뒤쫓아가려 했던 거야. 클래팜까지는 쉽게 추적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했어. 거기에 도착하자 앱섬에서 타고 왔던 마차를 돌려보내고 임대 마차로 갈아탔다는 거야. 포스터 대령이 하트퍼드셔로 가서 모든 유료도로며 여관에서 물어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던 모양이야, 그곳 사람들은 한결같이 못 보았다고 했어. 포스터 대령이 친절하게도 롱본까지 와서 염려하고 있다는 말을 해주어서 매우 고맙고 기쁘게 생각했어.
외삼촌과 외숙모님을 잘 알고 있으니 이런 부탁을 드리는 것을 주저하지 않겠어, 그리고 외삼촌께는 따로 부탁드릴 일도 있고.
아버지는 포스터 대령과 함께 런던으로 거셔서 리디아의 행방을 찾아내려고 하셔, 내일은 출발하시니 이처럼 위급할 때 외삼촌의 충고나 조언은 더 없이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해. 외삼촌의 호의를 베풀어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엘리자베스는 편지를 다 읽자마자 이런 큰일에 잠시도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를 찾아 나서기 위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문에 다가간 순간 여관의 하인에 의해 문이 열리더니 다아시 씨가 나타났다.
엘리자베스의 심상치 않은 기색에 다아시 씨는 매우 놀랐다. 그가 뭐라고 말문을 열기 전에 리디아의 사건 외에는 염두에 없는 엘리자베스가 정신없이 외쳤다.
“실례지만 잠깐 나가봐야겠어요. 급한 일이 있어서 당장 외삼촌을 찾아야 해요. 1분도 지체할 수가 없어요.”
“아니,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습니까?”
그는 예절보다는 감정이 앞서서 큰소리로 말했으나 곧 그것을 깨닫고 다시 말했다.
“1분도 말리지는 않겠지만, 저나 하인이 가디너 부부를 찾는 것이 좋을 듯하군요. 당신은 혈색이 안 좋으니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하인을 불러 외삼촌 내외를 모셔오라고 일렀다.
“곧 하녀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무얼 드시면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포도주라도 한잔 드릴까요? 몸이 편찮으신 것 같은데······.”
“아니, 괜찮아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다만 방금 롱본에서 끔찍한 소식이 와서 무척 속상할 뿐이에요.”
다아시 씨는 몹시 불안한 마음으로 자기가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몇 마디 더듬더듬 말하고는 가만히 동정어린 눈으로 바라보기만 했다.
엘리자베스가 겨우 입을 떼었다.
“조금 전에 제인 언니한테서 편지를 받았는데 아주 놀라운 소식이에요. 막내 동생이 가출을 했대요. 자신을 위컴 씨에게 맡겨버린 거에요. 브라이턴에서 자취를 감추었대요. 다아시 씨는 그 사람을 잘 아시니까 후의 일이 어떻게 될지도 잘 아실 거예요.”
다아시 씨는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 못 박힌 것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정말 슬프고 놀라운 일이군요. 충격이 크시겠어요. 그런데 정말 확실한 일인가요?”
“확실해요. 일요일 아침에 브라이턴을 떠나 런던까지 간 발자취는 추적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은 모른다는군요. 확실히 스코틀랜드에는 가지 않은 모양이에요.”
다아시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돌아가기를 바라고 계신 줄 압니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도와주지는 못하면서 마음에 걸려 이렇게 우물쭈물하고 있지요. 저로서는 무슨 위로가 될 말씀이나 일을 해드릴 수가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쓸데없는 걱정으로 당신을 괴롭히지는 않겠습니다. 그럼 펨벌리에는 못 오시겠군요.”
“네, 그럴 수밖에요. 여동생에게 사과의 말씀을 전해주세요.”
그는 비밀을 지킬 것을 약속하고 다시 한번 그녀의 상심에 유감의 뜻을 표명하고, 외삼촌과 외숙모에게 잘 말씀드려 달라고 말하고는 침통한 작별의 눈빛을 남기고 돌아갔다.
외삼촌과 외숙모도 급하게 준비를 하고 램턴을 출발했다.
47
“위컴이 포스터 대령에게 무례한 짓을 하고 부대에 복귀해야 하는 것, 리디아에게는 돈이 나올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으로 보아, 둘이 사랑해서 결혼할 목적이 아니라면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할 이유가 없다.” 하고 마치를 타고 달려가는 동안 외삼촌이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엘리자베스는 한순간 얼굴이 밝아지면서 힘차게 말했다.
“그래 나도 너의 외삼촌과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리지, 너는 그토록 그 사람이 싫어졌니? 그런 짓을 할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말이다.”
가디너 부인이 말했다.
“자기 이익을 소홀히 하는 짓은 아마 못 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 외에 것은 명예든, 무엇이든지 소홀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두분의 말씀 같이 된다면 얼마나 기쁘겠어요. 하지만 저는 희망을 가질 수 없어요. 그렇다면 왜 스코틀랜드로 가지 않았을까요?”
“아직 스코틀랜드로 가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잖니?”
가디너 씨가 대답했다.
“좋아, 그럼 두 사람이 런던에 있다고 치자. 거기 있더라도 숨기 위해서지, 그 이상의 목적은 없는 게 아닐까? 런던에선 스코틀랜드보다 결혼 비용이 덜 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거야.”
“그럼 왜 비밀로 하고 있을까요? 왜 들킬까 봐 겁내는 걸까요? 왜 결혼이 비밀이어야 하는 것이냐구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에요. 위컴의 친구인 데니 씨도 위컴은 리디아와 결혼할 생각은 없다고 했어요. 위컴은 돈이 없는 여자와는 결혼할 리가 없어요.
리디아의 젊음과 쾌활한 성격 외에 위컴 씨가 리디아 때문에 유리한 결혼을 할 기회를 포기하도록 할 만한 것이 있을까요? 이런 도주가 자기 생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있을까요? 리디아에게는 간섭을 할 오빠들이 없어요. 아버지는 무관심해서 자기 가족에게 일어난 일에도 대부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걸 알고, 다른 아버지가 그런 경우에 하는 것처럼 하시지 않고 될 수 있는 대로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러나 제인은 위컴이 그런 짓을 할 정도로 약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외숙모가 궁금한 듯이 말했다.
“사실은 어떻게 말하면 좋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리디아를 잘못 판단하는지 모르겠지만 리디아는 아직 어린 데다 어떤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가르침을 받지 못했거든요. 최근 6개월 동안, 아니 일 년 동안 쾌락과 허영에 흠뻑 빠져들어 있었다니까요. 부대가 메리턴에 주둔하면서부터 그 애의 머릿속에는 연애라든가 유희 혹은 장교들, 그런 것밖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도중에 하루를 묵고 이튿날 저녁식사 때는 롱본에 닿았다.
가디너 가의 아이들은 마차가 문 앞에 닿자 기쁨과 놀라움이 뒤섞인 표정이 모두의 얼굴을 단번에 밝게 하여 그들은 껑충껑충 뛰고 떠들어대며 그것을 온몸으로 나타냈다.
엘리자베스는 마차에서 뛰어내려 아이들에게 키스를 해주고는 현관으로 급히 걸어가 어머니의 침실에서 황급히 달려 내려온 제인을 만났다.
두 사람은 다 눈물을 글썽이며 도망자들에 관해 무슨 소식을 들었는지 물었다.
“아직 없어. 이제 외삼촌이 오셨으니 모든 일이 잘될 거라고 생각해.”
“아버지는 런던에?”
“그래, 너한테 보낸 편지에 쓴 것처럼 화요일에 떠나셨어.”
“그런데 데니 씨는 위컴 씨가 결혼할 의사가 없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그 사람은 둘이 같이 달아나려는 것을 알고 있었나?”
“대령님이 질문을 했을 땐 두 사람의 계획에 대해 뭔가 알고 있는 건 부인하고, 자기의 의견을 말했던 거야. 두 사람이 결혼 같은 건 하지 않는다는 자기의 주장은 되풀이하지 않았던 모양이야.”
제인은 리디아가 대령 부인에게 남겨 놓은 편지를 보여주었다.
“우리한테 보여주기 위해 갖고 오셨어.”
‘내일 아침에 우리가 없어진 걸 알고 놀라실 것을 생각하면 웃음이 나와요, 누구하고 같이 갔는지 모르시면 바보에요, 제가 편지를 써서 ‘리디아 위컴’이러고 서명을 하면 식구들의 놀라움이 크겠죠. 아주 멋진 장난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프랫에게 오늘 밤 같이 춤을 추지 못한 것을 사과한다고 전해주세요’
편지 내용은 그야 말로 철없는 내용이었다.
“이런! 철없는 리디아!”
“그 와중에 이런 편지를 쓰다니!”
48
베넷 씨로부터는 아무 소식도 없었다. 평소에 편지 쓰기를 싫어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때에는 좀 신경을 써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이다.
가디너 씨가 가면 적어도 진행 중인 일에 관한 소식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외삼촌은 떠날 때 베넷 씨가 롱본으로 돌아오도록 설득할 것을 약속하면서 누나를 안심시켰다. 가디너 부인과 아이들은 2~3일 더 하트퍼드셔에 묵을 예정이었다. 베넷 부인의 간호를 돕고 할 일이 없을 때도 큰 위안을 주었다. 또 한 사람, 이모도 자주 찾아와 자기 입으로 말하듯 모두를 격려하려고 애는 썼지만 결국 위컴 씨의 낭비와 나쁜 행실에 관해 보고하는 것뿐이어서 오지 않을 때보다도 울적하게 만들었다.
메리턴 거리 전체가 빛의 천사와 같았던 위컴을 시커멓게 먹칠을 해버리는 데 한껏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는 메리턴의 모든 상인들로부터 돈을 꾸어 썼고, 온갖 유혹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그의 음모는 상인의 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선고를 받았던 것이다. 너 나 없이 그는 온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사내라고 단언했고 모두들 그의 선량한 듯 싶은 외모를 항상 의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가디너 씨는 일요일 롱본을 떠나서, 베넷 씨를 설득하여 그레이스처치로 오게 했다는 것과 베넷 씨가 에프섬과 클래팜을 갔었으나 만족할 만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으며, 지금은 숙박업소를 조사해 보기로 했다는 것 등이다’ 와 같이 가디너 부인에게 편지를 보냈다.
베넷 씨가 돌아오는 날, 가디너 부인은 집으로 돌아가기를 원했으므로 아이들을 데리고 런던으로 떠났다.
베넷 씨가 도착했을 때엔 늘 그렇듯이 냉정한 태도를 잃지 않고 있었다. 여느 때처럼 말이 없고, 일부러 다녀온 사건에 관해서도 아무 말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말거라. 나말고 누가 괴로움을 겪어야 하겠니.”
“아버지, 너무 자책하진 마세요.”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리지, 5월에 네가 나한테 충고해준 게 옳았다고 해서 조금도 언짢아하는 건 아니야. 이 사건을 겪고 보니 네 속이 얼마나 깊은지 새삼 알겠구나.”
“장교는 이제 단 한 명이라도 내 집은 출입금지다. 아니지, 마을을 지나가는 것도 안돼. 키티는 언니들과 동행하지 않는다면 무도회도 절대로 나갈 생각 말아라. 날마다 10분씩이라도 이성적으로 산다는 것을 증명하기 전에는 집 밖에 한 발자국도 못 나가.”
키티는 이 모든 위협을 곧이듣고 울기 시작했다.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슬퍼할 건 없어. 만일 앞으로 10년 동안 착하게 굴면 그때는 열병식에 데려다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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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무슨 소식이에요? 대체 무슨 소식이냐구요? 외삼촌으로부터 기별이 온 거지요?”
“그래 속달로······.”
“좋은 소식이에요, 아니면 나쁜 소식이에요?”
“좋은 일이 있을 턱이 없잖니? 하지만 너도 읽어 보고 싶을 테지.”
친애하는 매형에게,
‘드디어 조카에 관해 우선은 만족할 만한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토요일에 매형과 헤어지고 나서 이내, 다행히 두 사람의 거처를 알아냈습니다. 자세한 얘기는 만나 뵐 때까지 보류해두겠지만 지금은, 두 사람을 발견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두 사람은 결혼할 의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계약을 이행하실 의사가 있으시다면 머지않아 결혼을 할 것이라고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매형에 대한 요구 조건으로 매형과 누님이 돌아가신 후 딸들을 위해 보장되어 있던 5천 파운드에 대한 동등한 지분을 리디아에게도 분배하겠다고 보증해 주시는 것,
매형이 살아계시는 동안 일 년에 백 파운드의 지급을 약속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매형의 대리라는 자격으로 서슴지 않고 수락해야 할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위컴의 재정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꼭 절망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모든 부채를 갚은 뒤에도 조카의 재산에 곁들여서 다소의 금액이 남겨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희들은 조카를 저희집에서 결혼시키고 싶은데, 이에 대하여 이견이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레이스처치 가에서 8월 2일 에드워드 가디너]
“그래, 답장은 쓰셨어요?”
엘리자베스가 다급하게 물었다.
“아직 쓰지 않았다. 하지만 곧 써야지.”
“아버지, 빨리 돌아가셔서 써주세요. 이런 경우엔 한시가 급하다는 것쯤 아시잖아요.”
“어쨌든 조건에 동의 하시겠지요?”
“동의? 나는 그 녀석의 요구가 너무 적어서 창피할 지경이다.”
“그러나 결혼을 해야지. 다른 방법이 없잖니. 하지만 걱정되는 일이 두 가지가 있다. 너희들의 외삼촌이 이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돈을 얼마나 썼는가 하는 것과 내가 어떻게 그걸 갚아야 좋은가 하는 거다.”
“돈이라고요! 외삼촌이라고요! 그건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
“내 말은, 정신이 올바른 남자라면,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일 년에 백 파운드와 죽은 다음에 5천 파운드라는 치사한 조건으로 누가 리디아 같은 계집애하고 결혼을 하겠느냐는 거다.”
“정말 그래요. 지금까지 미처 그 생각을 못 했네요. 빚을 갚고도 아직 남아 있다고 했지요? 아, 외삼촌이 무리하게 돈을 마련하신 게 아닐까요? 적은 금액으로는 어림도 없었을 텐데, 혹시 외삼촌이 곤란을 당하시는 입장은 아니신지?”
엘리자베스가 말했다.
“그렇지, 위컴은 일만 파운드에서 단 한 푼이라도 모자라면 결코 리다아와 결혼할 리가 없다. 그렇잖으면 바보지. 식구가 되는 마당에 이렇게 나쁜 쪽으로 생각하는 건 안 됐지만.”
아버지가 말했다.
“일만 파운드! 어머나 어떡하지요? 그런 큰돈은 절반만 갚기도 어렵겠지요?”
베넷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머니에게 외삼촌의 편지를 가지고 가서 읽어드려도 될까요?”
“너희들 마음대로 하렴.”
베넷 부인에게 편지를 읽어주고, 리디아가 곧 결혼하게 된다고 하자 그 기쁨이 폭발하여 환희에 넘쳐서 안절부절못하는 것이었다.
결혼을 해서 과연 행복해 질까? 하는 걱정은 뒷전이고, 딸의 단정치 못한 행실을 회상해 본다거나 굴욕을 느끼지도 않았다.
“오, 너무너무 사랑스러운 리디아! 정말 기쁜 일이야! 걔가 결혼을 하다니! 걔를 다시 만날 수있다니! 16세에 결혼을 하는 거야! 내 동생은 정말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야!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지.”
엘리자베스는 이 우스꽝스런 소동에 진저리가 나서, 혼자 생각에 잠기고 싶어 자기 방으로 피신했다. 가엾은 리디아의 처지는 물론 좋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더 나쁘게 되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50
베넷 씨는 젊은 나이 때부터 모든 수입을 다 써버리지 말고 노후를 위하여 저축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아직 실천을 못하고 있었다. 그 때부터 저축을 했다면, 리디아를 위해 구태여 가디너 씨에게 폐를 끼칠 필요는 없었을 터였다. 대영제국에서 가장 형편없는 젊은이 중 하나를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 것도 후회스러움의 하나였다.
베넷 씨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그런 목적을 위해 처남 한 사람만 돈을 쓴 것을 생각하고 몹시 걱정이 되었다. 그 금액을 알아내어 되도록 빨리 빚을 갚을 결심이었다.
딸만 다섯을 낳고 아들을 낳을 수 없어서 한정 상속에 묶이고 말았다. 베넷 부인은 리디아가 태어난 다음에도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일은 끝내 수포로 돌아갔지만 그때는 절약을 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다. 더구나 베넷 부인은 절약을 할 줄 몰랐다. 지출 초과를 막은 것만도 베넷 씨의 자립정신에 의한 것이었다.
처남의 제안을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승낙하고는 매우 간결한 말로 처남의 친절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모든 것을 전적으로 승인할 것을, 또 자기를 위해 맺어진 계약은 기꺼이 이행하겠다고 편지에 썼다. 지금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이 일에 대해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것뿐이었다. 처음에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에 사로잡혀서 딸을 찾아내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녔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도 사라지고 예전 같은 게으름뱅이로 되돌아왔던 것이다.
베넷 부인이 아래층에 내려오지 않은 지가 2주일이 넘었지만 이 행복한 날에 베넷 부인은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식탁의 상석을 차지했는데, 기운이 펄펄 넘치고 있었다. 그녀의 의기양양함은 수치심을 압도했고, 그녀에게서 딸들의 결혼은 맏딸이 16세가 된 이후로 최대의 관심사였고 최고의 목표였다.
베넷 부인은 리디아가 살 집을 구하는데도 어느 집은 작고, 어느 집은 너무 멀고, 어느 집은 거실이 너무 작고, 어느 집은 다락방이 작아서 형편없어 등등 말이 많았다.
베넷 씨는 하녀가 있는 동안은 가만히 있다가 하녀가 물러가자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그런 집들 중에서 어느 것을 사위와 딸을 위해 세를 얻을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전에 한 가지 명심해둬야 할 일이 있어요. 절대로 두 사람을 위해 이 근처에 집을 얻는 것은 허락하지 않겠소. 두 사람은 롱본으로 오게 하진 않을 거요.”
베넷 씨는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얼마 후 두 번째 선언이 내려졌다. 딸의 결혼 의상에 한 푼도 낼 수 없으며, 무엇이건 딸에게 애정의 표시가 될 만한 것은 하지 않겠노라고 발표한 것이다. 베넷 부인은 새 의상이 없어서 딸의 결혼식에 끼치게 될 불명예에는 민감하면서 위컴과 같이 달아나 결혼하기 전에 2주일 동안 동거 생활을 한 것은 별로 부끄럽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부끄럽게 여기고 한탄하며 슬퍼했다.
후회의 마음이 솟구쳤다. 무엇이 후회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아시 씨로부터 호의를 받았던 일을 저버리기는 어렵게 생각되었다. 이제 더 이상은 어떤 호의도 받을 가망이 없게 된 지금에 와서, 어떤 소식을 들을 기회가 아주 없어져 버린 지금에 와서 그에 관해 무슨 얘기든 듣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다. 이제는 두 사람이 만날 일도 없을 듯한 이 상황에서 그를 만나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가디너 씨는 얼마 후 곧 매형에게 편지를 보냈다.
위컴은 결혼이 결정되자마자 부대에서 나오기를 열망하고 있습니다. 위컴은 정규군에 들어가기를 원하고 있는데 예전의 친구들 중에도 정규군에 있게 되면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있더군요. 북부지방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 모 장군이 이끄는 연대의 기수 직책이 약속되어 있답니다.
위컴의 여러 채권자에게 하루빨리 지불 할 것을 확약하도록 부탁을 해두었습니다. 물론 지불은 제가 책임을 지고자 합니다. 그에게 들은 채권자들의 일람표를 첨부했습니다. 모든 채무가 거짓이 없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먼저 롱본에 초대받지 않는다면, 연대로 가게 될 것입니다. 제 안사람 얘기로는 두 사람은 북쪽으로 떠나기 전에 앞서 여러분을 만나 뵙기를 원하고 있다더군요. 리디아는 매우 건강하고 잘 있다고 안부를 전해달라고 합니다.
-가디너-
북쪽으로 가기 전에 집에 다녀가고 싶다는 리디아의 청에 베넷 씨는 완강히 거절했다, 그러나 제인과 엘리자베스는 한결같이 동생의 기분과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결혼한 두 사람을 환영해야 한다고 믿고, 결혼 후 롱본에 초대하라고 너무나 간곡하게. 권했다. 마침내 베넷 씨도 두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허락을 했다.
51
결혼식 날이 되자 제인과 엘리자베스는 본인 이상으로 깊은 감회게 젖었다. 마차는 그들을 마중하기 위해 보내지고, 만찬 때까지는 도착할 예정이었다.
마차가 문 앞에 닿자 베넷 부인은 싱글벙글 웃음이 떠나지 않았고, 그녀의 남편은 엄격하고 딱딱한 표정이었다. 딸들은 긴장하고 불안하여 안절부절못했다.
리디아의 목소리가 현관에서 들렸다. 어머니는 기쁨에 넘쳐 환영하고 위컴 씨에게도 미소를 던지며 손을 내밀었다. 위컴 씨는 자신의 행복을 그대로 보여주는 쾌활한 태도로, 모녀가 오랜만에 재회해서 기쁘겠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베넷 씨 쪽으로 돌아섰지만, 베넷 씨로부터는 그렇게 따뜻한 환영을 받지 못했다. 베넷씨의 얼굴은 더욱 엄숙해졌고 말문도 거의 열지 않았다. 이 젊은 부부의 거리낌 없는 뻔뻔스러운 태도에 불쾌해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혐오감을 느꼈으며 제인까지도 큰 충격을 받았다. 리디아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위컴 씨도 리디아와 마찬가지로 난처하다고나 전혀 곤혹스럽다는 인상은 없었다. 엘리자베스는 그가 이렇게까지 뻔뻔스러워질 수 있으리라고는 지금까지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파렴치한 인간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태도는 한이 없다는 것을 마음 깊이 새겨 넣으며, 그 후안무치에 대해서는 관계를 만들지 않기로 내심 결심을 굳혔다. 그녀와 제인은 얼굴을 붉혔는데 정작 이런 당혹함을 제공한 장본인인 위컴의 안색은 전혀 변할 줄을 몰랐다.
방문자들은 열흘 이상을 머물러 있지 않을 예정이었다. 위컴은 런던을 떠나기 전에 임명을 받았으며 2주일 후엔 입대하기로 되어 있었다.
“리지 언니한테는 결혼식 때의 얘기를 들려주지 못했어. 어머니와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할 때 옆에 없었거든. 어떻게 거행됐는지 알고 싶지 않아?”
“알고 싶지않아, 그런 얘기는 안 할수록 좋아.”
엘리자베스가 대답했다.
리디아가 결혼식 얘기를 하면서 갑자기 다아시 씨가 왔다는 얘기를 했다.
“다아시 씨가 거길 왜?”
그러나 리디아는 비밀이라며 더 이상 얘기를 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외숙모에게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가르쳐줄 수 없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알아낼 수밖에 없을 거예요.’ 하고, 편지를 썼다.
52
회답은 그 이상 바랄 수 없을 만큼 빨리 날아왔다. 엘리자베스는 답장을 남에게 방해를 받을 염려가 없는 잡목 숲으로 급히 가서 벤치에 앉았다.
사랑하는 내 조카에게.
내가 롱본에서 돌아온 그 날, 외삼촌께 매우 뜻밖에 방문객이 찾아 왔다. 다아시 씨가 찾아와서 몇 시간 동안 단둘이서만 얘기를 나누었던 거야.
그 사람은 외삼촌에게 리디아와 위컴의 거처를 알았다는 것을 알리러 왔던 거야. 내가 들은 얘기로 짐작하건대, 그 사람은 우리가 떠나온 다음 날 바로 더비셔를 떠나 두 사람을 찾을 목적으로 런던에 왔던 모양이야. 그는 위컴이 몰지각한 인간이라는 것을 충분히 경고하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자기의 그릇된 자존심 때문이었다고 자기 때문에 초래된 불행을 자신이 제어하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이 일은 자기가 책임지고 해결하겠다고 했다.
다아시 씨가 구체적인 얘기는 하지 않지만, 이것을 수색하는 데 어떤 연줄이 있었기 때문이며, 이 점은 우리로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어,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우리를 뒤쫓을 결심을 했던 모양이야.
위컴은 급히 갚아야 할 부채 때문에 부대를 물러나게 되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리디아가 달아나는 바람에 생기는 재난은 모두 그 애의 단정치 못한 행실 탓으로 돌리더라는 거야. 그리고 미래에 대하여는 아무런 희망도 없는 형편이었대. 어디론가 가야 하지만 갈 만한데도 마땅치 않았을 뿐 아니라 생활 대책도 전혀 서 있지 않았다는 거지. 다아시 씨가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 베넷 씨가 부자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도움은 줄 수 있지 않겠는가. 결혼을 하면 그의 입지도 틀림없이 유리해질 것이 아니냐고 물었대. 이 물음에 위컴은 어느 다른 지방에서 더 유리한 결혼으로 부자가 되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는군.
여러 가지로 의논해 보기 위해 수차례 만난 끝에, 위컴은 물론 터무니없는 조건을 내세웠지만 마침내 적당한 선에서 타협이 되었어, 두 사람 사이에서 모든 일이 결정되자 다아시 씨는 다음 단계로 외삼촌에게 그것을 알리려고 한 거야. 외삼촌이 전부 스스로 처리했다고 생각하지만 두 사람은 오랫동안 서로 양보하지 않고 서로가 부담하려고 했어. 끝내 외삼촌이 꺾여서 조카딸을 도와주지 못하고 그 명예만을 받기로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어.
이건 리지만 알고 비밀에 붙여 주기 바란다. 제인에게는 말해도 되겠지만.
부채는 아마 천 파운드가 훨씬 넘는 금액을 갚았고, 리디아에게는 자기 몫 외에 천 파운드가 더 주어졌고, 위컴이 장교로 임명되는 대가가 치러졌지, 이런 일들을 왜 모두 그 사람이 했는지, 그 이유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일말의 책임이 자기에게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거야.
이제는 전부 얘기한 것 같구나, 리지. 너를 퍽 놀라게 할 테지만 적어도 불쾌한 기분이 들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들이 벌써 30분 전부터 엄마를 부르고 있단다. 잘 있거라, 내 사랑하는 조카야.
-그레이스처치 가에서 9월 6일 외숙모가.-
“위컴 씨 우리는 이제 형제 사이에요. 지나간 일로 말다툼은 하지 맙시다. 앞으로는 의견 차이가 없었으면 좋겠군요.”
엘리자베스가 손을 내밀자 위컴 씨는 다정하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하지만 어떤 얼굴을 보여야 좋을지 몰라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집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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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컴과 리디아가 떠날 날이 다가오자, 베넷 부인은 이별의 슬픔에 잠겨야 했다. 모두 같이 뉴캐슬에 가 보자는 아내의 계획에 베넷 씨가 끝끝내 찬성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 리디아, 언제나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마 앞으로 2~3년은 만나지 못할지도 몰라요.”
딸이 떠나자 베넷 부인은 며칠 동안 우울해했다.
그 무렵 퍼지기 시작한 어떤 소문이 부인의 마음에 희망을 주었던 것이다. 네더필드의 가정부가 2~3일 안에 사냥을 하기 위해 몇 주일 와 있을 주인의 도착에 대비하여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던 것이다. 베넷 부인은 제인을 보면서 즐거워했다.
“그게 정말이냐? 그래, 빙리 씨가 돌아온다는 말이군, 동생.”
맨 처음 이 소식을 전해준 사람은 필립스 부인이었다.
제인은 빙리 씨가 온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얼굴빛이 달라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엘리자베스에게 그의 이름을 입 밖에 내어본 지도 벌써 여러 달이 지났다. 단둘이 있게 되자 그녀는 말했다.
“오늘 이모님이 그걸 알려주었을 때, 리지, 너, 내 얼굴을 봤지. 다만 틀림없이 남이 보고 있다고 느껴져서 당황했던 것뿐이야.”
“언니를 위로할 수 있는 말을 해주고 싶어. 그러나 나한테 그럴 힘이 없어. 언니가 내 마음을 짐작해주는 수밖에 없어. 언니의 경우엔 인내는 항상 너무 충분할 만큼 갖고 있으니 그렇게 할 수도 없거든.”
드디어 빙리 씨가 도착했다. 베넷 부인은 하녀들의 도움으로 재빨리 그 소문을 들었으므로 걱정스럽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기분을 최대한으로 맛보았다. 그가 하트퍼드셔에 도착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아침, 베넷 부인은 의상실 창문을 통해 말을 타고 오는 그를 볼 수 있었다.
“어머니, 어떤 신사분이 같이 오시네요. 대체 누굴까요?”
키티가 말했다.
“아는 사람이겠지. 나도 모르겠구나.”
“어머! 전에 늘 같이 다니던 그 사람 같아요. 키가 크고 거만한 사람 말이에요.”
“어머나! 다아시 씨구나! 정말 그런 것 같아. 좋아, 빙리 씨의 친구라면 누구라도 환영을 하지, 그렇지 않으면 저 사람은 정말 보기도 싫어.”
베넷 부인은 두 딸이 창피할 만큼 빙리 씨를 융숭하게 환영했다. 특히 창피한 것은, 그의 친구에게는 대조적으로 냉담하고 의례적인 정중한 태도로 허리를 굽혀서 응대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머니가 가장 아끼는 딸을 돌이킬 수 없는 오욕에서 건져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다아시 씨의 덕택임을 알고 있는 엘리자베스는 어머니의 그릇된 이 차별대우에 마음이 상하고 괴로웠다.
“떠나 신지가 퍽 오래되었군요, 빙리 씨.”
베넷 부인이 말했다.
“네, 그렇군요.”
베넷 부인은 빙리 씨에게 네더필드에 얼마나 머물 예정인지 물었다.
“보름 정도 머무를 예정입니다.”
베넷 부인은 그날도 두 사람이 좀 더 머물러 있다가 식사를 하고 가도록 초대하고 싶었으며, 항상 그럴 만한 식탁은 준비하고 있었지만 사위를 삼으려고 애써 계획을 하고 있는 사람과 일 년에 만 파운드의 수입이 있는 사람의 식성과 자존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코스는 되어야 한다는 점에 생각이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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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가고 난 후에 엘리자베스는 기력을 회복하려고 산책을 나갔다. ‘그저 가만히 앉아 경직된 얼굴을 하고 냉담하게 있을 바엔 대관절 무엇 때문에 왔을까?
“그를 만나고 난 지금은 아주 마음이 편해. 내가 강해졌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젠 또 오더라도 당황하진 않을 거야.”
“그래,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하지만 언니, 조심해.”
“리지, 너는 설마 내가 위험에 빠질 만큼 약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그 사람이 예전처럼 언니를 사랑하도록 할 위험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화요일에는 롱본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가장 열심히 기다리던 두 사람은 영예에 부끄럽지 않게 정확한 시간에 당도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제인에 대한 빙리 씨의 태도는 예전에 비하면 더 조심스러웠으나 모두 제인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는 것이어서, 만일 그가 아주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둔다면 제인과 그 자신의 행복은 신속하게 확보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 씨가 자기 손으로 커피잔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 기회을 놓치지 않고 말했다.
“여동생은 아직 펨벌리에 계세요?”
“네, 크리스마스까지는 그곳에 있을 겁니다.”
“아니, 혼자서요? 친구분은 모두 돌아가셨나요?”
“앤즐리 부인이 같이 있지요. 다른 사람들은 3주 전에 스카버러로 갔습니다.”
베넷 부인은 두 사람의 네더필드의 신사를 밤참 때까지 머물러 있게 하려고 했으나 공교롭게도 그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마차를 준비하라고 부탁했기 때문에 두 사람을 붙들어 놓을 기회를 놓쳐버렸다.
“정말 즐거운 날이었어. 찾아와주신 분들은 잘 선택된 분들이고 저마다 어울리는 분들이었어. 자주 만나 뵙고 싶어.”
제인이 엘리자베스에게 말했다. 엘리자베스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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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며칠 후에 빙리 씨가 이번엔 혼자 찾아왔다. 다아시 씨는 그날 아침 런던으로 떠났는데 열흘 후에 다시 돌아올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한 시간 이상 머물렀는데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여러 가지로 관심을 보이는 말을 하고 다른 약속이 있다고 말했다.
“다음에 오실 때에는 운이 더 좋기를 바랍니다.”
그는 언제라도 문안을 드리러 오고 싶다고 말했다.
“내일 오실 수 있으세요?”
그는 약속이 없으므로 초대를 곧 수락했다. 그리고 다음 날 날이 밝자마자, 여자들이 미처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찾아왔다.
“빨리하고 내려와라, 제인. 빙리 씨가 왔어. 사라는 얼른 큰아가씨 옷 입는 걸 거들어 드려라.”
베넷 부인은 단둘이만 있게 해주는 게 좋다고 다들 피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베넷 부인이 계획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빙리 씨는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가 없었으나 딸의 연인임을 공공연히 나타내는 행동은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의 주책없는 참견을 참아내며 얼굴빛도 변하지 않은 채 들어준 것은 제인으로선 특히 고마운 일로 생각되었다.
빙리 씨는 약속한 대로 베넷 씨와 함께 거의 하루의 시간을 보냈다. 베넷 씨는 상대방이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붙임성이 좋게 느껴졌다.
저녁 식사를 하고 밤이 되자 다른 사람들을 제인의 옆에서 쫓아내려고 하는 베넷 부인의 공작이 다시 시작되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엘리자베스가 들어가자 빙리 씨가 급히 일어서서 제인에게 두세 마디 속삭이고는 방에서 급히 나갔다.
제인은 동생인 엘리자베스에게 조금도 숨기려고 하지 않았다. 엘리자베스에게 이런 얘기를 털어놓는 것은 기쁨이었다. 곧 동생을 껴안고 넘치는 감동을 그대로 드러내며 자기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너무 행복해! 너무너무 행복해. 나는 이렇게 행복해질 가치가 없는데 말이야. 오오, 리치, 왜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행복해질 수 없는 걸까?”
엘리자베스의 기쁨은 평언할 수 없는 성실과 열의와 환희에 가득 넘치고 있었다.
제인은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급히 달려갔다. 혼자 있게 된 엘리자베스는 전에 여러 달 동안 불안과 상심의 불씨가 되었던 사건이 거칠 것 없이 재빨리 끝나버린 것을 생각하고 미소를 지었다.
잠시 후에 빙리 씨가 돌아왔다. 그는 문을 열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
“언니는 어디 있지요?”
“이층의 어머니한테 가 계세요. 아마 곧 내려올 거예요.”
그는 문을 닫더니 엘리자베스에게 다가와 처제로서의 기쁨과 애정을 바라는 말을 건넸다. 엘리자베스는 진심으로 형부와 처제 사이가 되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가족들로서는 더없이 기쁜 하룻밤이었다. 방문자가 작별을 고하고 가자. 베넷 씨는 딸을 보고 말했다.
“축하한다, 제인. 틀림없이 넌 행복한 아내가 될 거다.”
제인은 곧 아버지에게로 가서 키스하고 고맙다고 말했다.
베넷 가의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행운을 차지했다고 소문이 쫙 퍼졌다. 불과 몇 주일 전 리디아가 달아났을 때는 꼼짝없이 불행한 운명을 짊어지게 될 거라고 떠들썩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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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리 씨와 제인이 약혼을 한 지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식당에 모여 있던 이 집 여자들은 마차 소리를 듣고 창문으로 눈길을 돌렸다. 네 필의 말이 끄는 마차가 잔디밭을 지나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마차도, 앞에서 인도하는 하인의 제복도 모두 낯익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누군가 오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에 빙리와 제인은 관목 숲으로 사라졌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방문객이 들어섰다. 놀랍게도 손님은 캐서린 드 버그 영부인이었다.
영부인은 베넷 부인에게도 키티에게도 미지의 사람이었으므로 두 사람 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으나, 엘리자베스가 느낀 놀라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영부인은 여느 때보다 더 거만한 태도로 방에 들어오더니, 엘리자베스가 인사를 하자 고개를 약간 갸웃하기만 하고는 의자에 앉아버렸다. 영부인이 들어왔을 때 엘리자베스는 어머니에게 그 이름을 알려주었다.
“잘 있었어요, 베넷 양? 저 부인은 어머니인가요?”
“그리도 저쪽은 동생이겠군요.”
“그렇습니다, 마님.”
“이 댁의 정원은 퍽 좁군요.”
“로징스에 비하면 틀림없이 보잘 것 없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저택에 비하면 훨씬 넓지요.”
“베넷 양, 잔디밭 한쪽에 좀 호젓한 들판이 있는 것 같더군. 혹시 같이 가줄 수 있다면 그곳을 거닐어 보고 싶군요.”
“베넷 양,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베넷 양이 모를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영부인, 무슨 오해가 있으신 모양이군요. 여기까지 일부러 오신 이유를 저는 전혀 알지 못하는 데요.”
“베엣 양, 날 우습게 보지 말아요.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소용없어. 내가 그렇게 쉽게 넘어갈 거라고 생각했다면 잘못 생각한 거야. 엘리자베스 양이 머지않아 내 조카, 바로 내 조카인 다아시와 맺어질 것이라는 소문을 접했지요.”
“만일 사실일 리가 없다고 믿고 계시다면 왜 이렇게 멀리까지 오시게 되었을까요? 영부인께서는 저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시고 싶으신 건가요?”
“그런 소문이 터무니없는 오해라고 인정해 주길 원하는 거예요.”
“영부인께서 롱본까지 저와 저희 가족들을 만나러 와 주신 건 오히려 그런 소문을 확인하는 셈이 될 거예요. 만일 그런 소문이 존재한다면 말이에요.”
“만일이라고! 그럼 소문을 모른다고 잡아떼기라도 할 작정인가요? 그게 베넷 양 자신이 애써서 퍼뜨린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런 소문이 퍼져 있는 걸 모른다고 말할 작정인가요?”
“전혀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베넷 양, 내 뜻을 잘 새겨듣도록 해요. 다아시는 내 딸과 약혼을 했어요. 어때, 할 말이라도 있나요?”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그 사람이 저에게 청혼을 하셨을 거라고 상상하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캐서린 영부인은 한순간 주춤하다가 대답했다.
“두 사람 사이의 약혼은 특수한 것으로, 요람 때부터 그렇게 정해 져 있던 거예요.”
“어떻게 하는 것이 자기한테 이익이 되는가를 안다면 베넷 양, 자신의 출생 신분을 잊어서는 안 돼요.”
“조카 분과 결혼을 하게 되더라도 제 신분을 버려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신사고 저도 신사의 딸이에요. 그러니 그 점에서는 동등한 입장이지요,”
“하지만 어머니 신분은 어떻지? 대관절 당신 외삼촌은 어떤 신분이지? 내가 그 사람들의 지위를 모르는 줄 알아요?”
“제 친척이 어떤 사람들이건 조카 분이 이의가 없으시다면 부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요.”
“여러 말 필요 없어! 약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그것만 얘기해요.”
“하지 않았어요.”
“그럼 됐고, 약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나하고 약속을 해요.”
“그런 약속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엘리자베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캐서린 영부인도 따라 일어나서 발길을 돌렸다. 영부인은 몹시 화를 내고 있었다.
“내 조카의 명예도 신용도 전혀 생각하지 않겠다는 거로군! 매정하고 제멋대로 되어 먹은 여자야! 아가씨와 맺어지면 내 조카는 모든 사람의 면전에서 명예를 잃게 된다는 생각을 해야지.”
“캐서린 영부인, 이젠 더 들릴 말씀이 없습니다. 제 마음은 충분히 아셨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럼 끝까지 조카를 놓아주시 않을 결심이구먼?”
“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만 영부인과는 관계없이, 또 저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는 누구의 의견이건 상관없이 저의 행복을 쌓아 올릴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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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침 아래층에 내려가자 편지를 가지고 서재에서 나온 아버지를 만났다.
“리지, 찾고 있었다. 잠깐 내 방으로 오너라.”
“오늘 한 통의 편지를 받았는데 몹시 놀라운 것이었다. 주로 너와 관계가 있으니 너는 그 내용을 잘 알아 두어야 할 것이다. 이 편지를 받기 전에는 두 딸이 결혼을 눈앞에 두고 있는 줄을 몰랐었지, 대단한 거물을 잡은 걸 축하한다.”
그 편지는 콜린스 씨로부터 온 것이었다.
“콜린스 씨라구요! 그 사람이 도대체 무슨 할 말이 있을까요?”
“그 사내는 우선 큰딸의 임박한 혼례에 대한 축사로부터 시작했는데. 그 얘기는 아마 루카스 가의 누구로부터 들은 모양이야, 너와 관계된 부분만 읽어주마.”
엘리자베스 양은 언니가 베넷이라는 성을 버린 후 얼마 안 가서 자신도 그 성을 간직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니, 그 평생의 선택된 반려는 이 나라에서도 가장 빛나는 인물의 한 사람으로서 존경받아 마땅한 신사입니다.
“도대체 누구 얘기를 하고 있는지 너는 알겠니?”
엘리자베스 양 및 어르신에게 이 신사의 청혼을 조급하게 승낙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불행한 사태를 초래하게 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자 하는 바입니다.
어르신의 신중한 태도를 촉구하는 동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 신사의 이모님이신 캐서린 드 버그 영부인은 이 혼사를 그리 호의적인 눈으로 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아시 씨로구나! 굉장한 일이지!”
엘리자베스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면서 겨우 한 번만 마지못해 미소를 지었다.
“재미가 없니?”
“아니에요, 재미있어요. 어서 계속 읽어주세요.”
영부인에게 어젯밤 이 결혼이 이뤄질지도 모른다고 말씀드렸더니, 여느 때처럼 친절하게도 그렇게 되는 경우의 자신의 견해를 곧 피력해 주셨는데, 영부인은 엘리자베스 양의 친척 관계의 결함 때문에 그 같은 명예롭지 못한 혼사는 절대 승낙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저의 친척인 엘리자베스 양 및 그 고귀한 찬미자께서는 자신들의 처지를 잘 납득하시어 정당한 승인을 받지 못하는 결혼에 돌입하시는 일이 없으시기를 충심으로 바라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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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영부인이 찾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롱본으로 빙리 씨가 다아시 씨를 데리고 왔다. 제인과 단둘이 자리를 갖고 싶어하던 빙리 씨가 뜻밖에도 다 같이 산책을 나가자고 제의했다.
다섯 사람이 나갔다. 빙리 씨와 제인은 곧 뒤떨어지고, 엘리자베스와 키티와 다아시 씨 세 사람은 별말 없이 루카스 가를 향해 걸었다. 키티는 마리아를 찾아가고 싶다고 가고,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씨 둘이서는 마냥 걸었다. 지금이야말로 결심을 실행할 때가 온 것이다. 용기가 꺾이기 전에 말을 꺼냈다.
“다아시 씨, 저는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어서, 제 기분을 풀기 위해 서슴지 않고 당신의 감정을 상하게 할지도 모르겠네요. 불쌍한 제 동생을 위해 당신이 베풀어주신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친절을 안 후로 제가 얼마나 그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가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리디아가 아무 생각 없이 문득 입 밖에 낸 말을 듣고 당신이 그 일에 어떤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여러 가지 역겨운 일을 겪으신 걸 가족을 대신해서 거듭 감사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 사례를 하고 싶다면 당신만 아는 걸로 해주세요. 저를 그렇게 하도록 부추긴 건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바람이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가족 되시는 분들은 조금도 제 신세를 진 게 없습니다. 저는 당신 일만을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엘리자베스는 너무 어리둥절해져서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당신은 너그러운 사람이니 제 감정을 농락하는 짓은 안 할 겁니다. 만일 당신 감정이 지난 4월과 조금도 변함이 없다면 당장 그렇다고 말해주세요. 제 애정과 희망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당신이 한 마디만 해준다면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영원히 침묵하겠습니다.”
엘리자베스는 그때 이후로 크게 달라졌으며 지금은 그의 청혼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심정임을 곧 납득시켰다. 그 대답이 안겨준 행복감을 그가 여태껏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것으로, 이 경우는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 남자답게 현명하고 열정적으로 자기감정을 표명했다.
엘리자베스는 똑바로 바라보지는 못했지만 들을 수는 있었다.
두 사람은 방향도 모른 채 마냥 걸었다.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말해야 했으므로 다른 것에는 주의를 기울일 수 없었다.
다아시 씨는 자기보다야 못하지만 빙리도 행복할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윽고 집에 닿자 두 사람은 현관에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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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이상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채 조용히 깊어갔다.
공인된 연인들은 웃으며 정담을 나누고 아직 공인되지 않은 사람은 잠자코 있었다.
다아시 씨는 행복에 넘쳐서 명랑해지는 성격이 아니었고, 엘리자베스는 동요되고 혼란에 빠져서 자신이 즐겁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행복하다고 느낄 수 없는 상태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의 재산이나 지위로서도 배제할 수 없는 혐오감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밤이 되자 제인에게 속마음을 모두 털어놓았다. 제인은 남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이 경우는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다.
“어머나! 그런 일이 어떻게 있을 수 있어? 하지만 이젠 믿지 않을 수가 없구나. 사랑하는 리지, 정말 축하해. 그런데······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정말 그 사람과 행복하게 살 자신이 있니?”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부부가 되기로 결심했으니까. 하지만 언니, 언니는 기뻐해 줄 거지? 그 사람이 언니가 자장 사랑하는 동생의 남편으로 괜찮은가 하는 말이야.”
“리지, 솔직하게 말해줘. 언제부터 사랑하게 된 거니?”
“언제부터 사랑하게 되었는지는 나도 정확하게 몰라. 하지만 펨벌리에서 그 사람의 아름다운 저택을 처음 봤을 때부터가 아닐까 싶어.”
그러나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말해달라는 간청을 받자, 농담을 그치고 엄숙하게 자기의 애정을 확인해 줌으로써 제인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그 점이 명백해지자 제인으로서는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가 리디아가 결혼할 때 한 역할에 대해서도 숨기지 않았다. 모든 것은 털어놓아, 그날 밤의 절반은 얘기하는 사이 지나가 버렸다.
“저 보기 싫은 다아시 씨가 나의 소중한 빙리와 또 같이 오고 있잖아! 무슨 속셈으로 귀찮게 자꾸 오는 걸까? 리지, 빙리한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또 저 사람하고 산책이라도 나가주지 않으련?”
엘리자베스는 이런 부탁은 흐뭇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어머니가 늘 그에게 그런 형용사를 붙이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산책을 하는 동안, 오늘 밤 안으로 베넷 씨의 승낙을 자기가 얻어내기로 했다. 대관절 어머니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를 일이었다.
밤이 되어서 베넷 씨가 서재로 들어갔을 때 다아시 씨가 일어서서 그를 따라가는 것을 본 엘리자베스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버지가 반대할 염려는 없었지만, 틀림없이 마음이 무거울 것이다. 다아시 씨가 미소를 띠고 나타나자 엘리자베스는 적이 마음이 놓였다. 이윽고 그가 속삭였다.
“아버님께 가 봐요. 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시니까.”
그녀는 얼른 일어섰다. 아버지는 서성거리며 근심스러운 표정이었다.
“리지,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런 사내의 구혼을 승낙하다니 어떻게 된 게 아니냐? 항상 싫어하지 않았니?”
엘리자베스는 다소 우물쭈물하면서도, 확실히 다아시 씨를 사랑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그 사내와 결혼을 하겠다는 얘기로구나. 확실히 행복해 질 수 있을까?”
“네, 좋아해요. 좋아하고 있어요. 그를 사랑하고 있어요.”
“리지, 나는 승낙했단다. 실제로 그런 사람한테 부탁을 받으면 거절할 수가 없거든. 너도 결혼할 생각이라면 너한테도 승낙을 해주기로 하마. 리지, 진심으로 남편을 존경하지 않으면 행복해지지도 못하고 세상 사람들에 대한 체면도 세울 수가 없어.”
엘리자베스는 더욱 감동을 받아 엄숙하게 대답했다. 다아시 씨야말로 정말 자기가 선택한 사람임을 되풀이해서 확언했다.
“이젠 알았다.”
밤늦게 어머니가 방으로 올라갈 때 뒤쫓아가서 중대한 말을 전달 했다. 그 결과는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어머니는 한참을 한 마디도 말문을 열지 못했다.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자기가 들은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던 모양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아버지가 그와 친밀해지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을 보고 흡족하게 여겼고, 베넷 씨는 매 시간마다 그에 대한 평가가 거침없이 올라가는 말을 들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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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부터 제 용모에 반하지는 않으셨지요. 그리고 예의범절이라는 점에서 말하자면, 당신에 대한 저의 태도는 언제나 무례할 정도였어요. 언제나 말을 건넬 때는 곤란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있었거든요. 그러니 사실대로 말씀하세요. 혹시 무례한 저의 태도가 마음에 드셨던 게 아니에요?”
“확실히 활발한 태도는 마음에 들었지요.”
“그걸 무례라고 말씀하셔도 좋아요. 활발하다는 것은 건방지다는 것과 별 차이가 없으니까요. 사실 당신은 표정을 꾸미거나 생각하거나 하는 여성들에게 싫증이 나셨던 거예요. 제가 그런 사람들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흥미를 느끼셨구요. 일부러 애써서 그렇지 않은 것같이 꾸미고 계시지만 당신 마음은 정말 고귀하고 바르군요. 당신은 속으로 그렇게 열심히 아부를 하는 사람들을 경멸하고 계셨던 거예요.”
“캐서린 영부인에게 이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려드릴 용기가 있으세요?”
“부족한 건 용기가 아니라 시간인 것 같소. 엘리자베스. 그러나 그건 꼭 해야 할 일이지요. 종이를 한 장 주면 곧 끝내죠.”
콜린스 가의 사람들이 루카스 댁에 와 있다는 말을 들었다. 별안간 옮겨온 이유는 곧 밝혀졌다.
캐서린 영부인이 조카의 편지를 받고 몹시 화가 났기 때문에, 이 혼사를 진실로 기뻐하고 있는 샬럿은 그 폭풍이 가라앉기까지 피신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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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로서의 베넷 부인의 마음은 위의 두 딸이 출가하는 날이야말로 더없이 행복한 날이었다. 얼마나 큰 기쁨과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후일 빙리 부인을 찾아가고 다아시 부인에 대해 얘기할지 상상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베넷 씨는 둘째 딸이 출가한 것을 몹시 쓸쓸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둘째 딸에 대한 그의 지극한 애정은 그의 생활 태도까지도 바꿀 정도여서 그는 지금까지와는 딴판으로 집 밖으로 자주 나오게 됐다. 특히 생각하지도 못했을 때 펨벌리로 찾아가서 놀라게 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있었다.
빙리 씨와 제인은 네더필드에 그 후 일 년 동안 머물러 있었다. 그 후 더비셔 근처에 저택을 사게 되었다. 제인과 엘리자베스는 여러 가지 행운을 차지한 데다 서로 30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살게 되었다.
키티는 대부분을 언니들 집에서 지냈다. 그 덕분에 키티는 많이 달라질 수 있었다. 그녀는 여태까지 접촉을 하고 있었던 사람들 보다는 훨씬 훌륭한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눈에 띄게 사람됨이 달라졌다.
펨벌리는 이제 조지아나의 집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올케와 시누이 사이의 애정은 다아시 씨가 원했던 대로였고, 또 두 사람이 바라고 있었던 대로 서로 사랑할 수 있었다.
조지아나는 엘리자베스를 더없이 훌륭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엘리자베스가 오빠를 대하는 발랄하고 놀리는 듯한 말투에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했다.
자기가 늘 경외감을 품지 않을 수 없는 오빠. 그 경외감이 거의 애정을 압도할 정도의 오빠가 지금은 영락없이 농담의 대상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지금까지 생각해본 적도 없는 지식을 얻었다.
캐서린 영부인은 조카의 결혼에 몹시 분노했다. 결혼이 결정되었음을 알리는 편지에 대한 답신으로 욕설을 보냈기 때문에 얼마 동안 접촉이 끊어져 버렸다.
그러나 결국 다아시 씨는 엘리자베스로부터 그 모욕에 대해 눈 딱 감고 화해를 구하도록 설득당했다. 캐서린 부인은 노여움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다아시 씨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혹은 그의 아내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보고 싶은 호기심 때문인지, 얼마 후에는 저자세가 되어서 펨벌리의 두 사람을 찾아오게끔 되었다.
다아시 부부는 가디너 부부와는 계속 친밀하게 지냈다. 엘리자베스와 마찬가지로 다아시 씨도 진심으로 두 사람을 좋아했는데, 그는 특히 더비셔에 데리고 와서 결국 두 사람이 맺어지는 계기를 마련해준 그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언제까지나 간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