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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결혼

정책 결혼

O Henry

 

잡지 <가정>의 편집장은 독특한 방법으로 원고를 채택하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비밀이 아니었다. 그는 마호가니 책상에 앉아서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금테 안경을 벗어 가볍게 자기 무릎을 두드리면서 누구에게나 그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이었다.

"우리 <가정>에 실을 원고는 읽어볼 사원이 필요 없어요. 우리는 사에 들어온 원고에 대한 평을 여러 독자층으로부터 받고 있지요."

이것이 편집장의 주장이며, 다음과 같이 실시하는 것이다.

편집장은 사에 원고가 들어오면 호주머니 속에 가득 넣고 밖에 나가 돌아다니면서 사무원, 수위, 청소부, 엘리베이터 운전수, 사환, 그가 점심을 먹는 식당 보이, 석간을 사는 노점상인, 구멍가게 주인, 우유 배달부, 다섯 시 반 시내 철도 차장, 제 육십 몇 가에서 차표 찍는 사람, 자기 집 요리사와 하인, 이런 사람들에게 나눠줘서 읽게 하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직 호주머니에 원고가 남아 있으면 아내에게 넘겨 어린애가 잠든 후에 읽어보게 한다.

얼마 후에 편집장은 용무로 외출한 길에 원고를 수집하여 독자들의 평을 듣는다.

이리하여 잡지는 대성공을 거두어, 발행 부수와 광고료가 엄청나게 오른다.

<가정사>에서는 또한 일반 도서도 출판하여 꽤 호평을 받았다. 편집장의 말에 의하면, 그 작품들은 모두가 <가정>의 그 원고 선자(選者)들이 추천한 것이라고 한다. 간혹 입이 빠른 편집부원들이 누설하는 소리를 들으면 <가정>의 여러 선자들 중에서 원고를 읽고 평가하는 데 따라서, 필자에게 되돌려준 원고가 다른 출판사에서 발행되어 많이 팔리는 경우가 있었다. 예컨대 <싸이러스 래텀의 흥망>이라는 책은 엘리베이터 운전수가 나쁘다고 말하였던 것이며, <상전>이라는 책은 사무소 급사들이 배격하였다. <스님의 마차 안에서>는 잔차 차장들이 무시해 버린 것이며, <구원>은 잡지 구독 접수원이 배격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장모가 두 주일 예정으로 그의 집에 묵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리고 <여왕의 글>은 청소부가 혹평을 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은 그 방법을 그대로 쓰고 있었다. 원고 검열을 자원하는 사람의 수는 적지 않았다. 각계각층에 널리 퍼져 있는 이 진용은 편집실의 여자 속기사로부터 석탄화부(이 사람이 나쁘게 평하였기 때문에 <하계(下界)>라는 좋은 원고를 남의 회사에 빼앗겼다.)에 이르기까지, 언젠가는 이 잡지의 편집장이 되어 보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랜스레이튼은 <사랑이면 그만이다>라는 중편 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 <가정>의 이러한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여러 잡지사 편집실 주변을 어정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그 내막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가정>의 편집장이 여러 사람들에게 원고를 나눠 주어 읽게 하며, 슬픈 사랑의 이야기는 편집실 속기사 팝킨양의 손에 넘어간다는 것도 알아내었다. 편집장의 이상스러운 버릇의 하나는, 원고를 읽는 사람에게 필자의 이름을 알려 주지 않는 것이었다. 이것은 네일밸류로 말미암아 진정한 평을 못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해서였다.

스레이튼은 심혈을 기울여 <사랑이면 그만이다>를 썼다. 여섯 달 동안 피땀을 짰다. 그것은 순결한 연애소설로, 아름답고 고상하고 로맨틱하고 정열에 불타고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서사시로서, 거룩한 사랑의 축복을 <원고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이 세상의 모든 혜택과 명예보다 우위에 두고, 하늘이 내린 최대의 행복으로 간주하였다. 그의 문학적인 야심은 대단하였다. 그는 작품 분야에서 명성을 얻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모든 이득을 기꺼이 희생시켰다. 애써 쓴 작품 가운데서 하나라도 <가정>에 실리는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기꺼이 바른팔이라도 자르며, 난도질이라도 기꺼이 당할 용의가 있었다.

스레이튼은 <사랑이면 그만이다>를 탈고하고 자기가 직접 <가정사>에 갖고 갔다. 잡지사는 여러 가지 분야로 이루어진 큰 거물 속에 있었는데 아래층에는 수위가 버티고 앉아 있었다.

정문을 지나 엘리베이트 쪽으로 가는데 복도에 난데없이 감자 찧는 기계가 나타나더니 모자를 가로채어 가지고 창문 유리를 산산조각을 내었다. 수위가 뛰어나왔다. 몸집이 큰 수척한 사나이로 바지 끈도 매지 않은 채 거무틱틱한 상판에 겁을 집어먹고 헐떡이며 달려온 것이다. 이어서 매무새가 단정치 못한 뚱뚱한 여자가 머리칼을 휘말리며 뒤쫓아 왔다. 수위는 타일을 깐 복도에 발이 미끄러져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여자는 그를 내려조기며 머리를 마구 잡아 끌고, 사나이는 악을 악을 썼다.

여장부는 원수를 갚고 나서, 미넬바 여신처럼 태연스럽게 활보하며 건물 뒤쪽에 있는 컴컴한 방으로 사라졌다. 수위는 숨을 헐떡이며 일어나 계면쩍은 듯이 농담조로 말하였다.

"이게 결혼 생활이라는 거랍니다. 그리고 저것이 한때 내가 밤잠을 이루지 못하면서 사모하던 여자구요. 모자는 매우 미안하게 되었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제발 말씀 말아 주십시오. 모가지가 달아나니까요."

스레이튼은 낭하 한끝에 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정사>를 찾아가 편집장에게 <사랑이면 그만이다>의 원고를 맡겨두고 사를 나왔다. 한 주일 후에 채택 여부를 알려 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도중에서 명안(名案)이 번개처럼 머리에 떠올라 자기의 천재에 스스로 탄복하여 마지않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날 밤으로 실천에 옮기기로 하였다.

<가정>의 속기사 팝킨양은 자기와 한집에 하숙하고 있었다. 묘령(妙齡)이 좀 지난 여자로, 몸집이 메마르고 남과 어울리기를 싫어하며, 대담하면서도 감상적이었다. 스레이튼은 언젠가 그녀와 인사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의 과감한 작전은 이러하였다.

"<가정>의 편집장은 낭만적이고 센티멘탈한 소설 원고는 팝킨양의 견해에 의해 채택의 가부가 결정됨을 알고 있었다. 이 여자는 그런 장·단편을 즐겨 읽는 많은 여성들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사랑이면 그만이다>의 중심 개념과 기본 사상은 첫눈에 드는 사랑, 즉 남녀 간에 마음이 서로 상통하는 순간에, 심령의 빛을 알아보게 하는 그 황홀하고도 불가항력적인, 넉아웃 되는 감정이었다.

내가 이 신성한 진리를 팝킨양으로 하여금 깨닫게 할 수 있다면, 그녀는 새로운 황홀감에 젖어 내 소설을 편집장에게 기꺼이 추천할 것이다."

스레이튼은 이렇게 생각하고, 그날 밥으로 팝킨양을 극장에 데리고 갔었다. 이튿날 저녁에 그는 하숙집 어둠컴컴한 응접실에서 사랑에 대하여 열변을 토하였다. <사랑이면 그만이다>에서 많은 구절을 인용하여 말을 마쳤을 때, 팝킨양은 그의 어깨에 머리를 파묻었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문학적인 명성이 물결치고 있었다.

그러나 슬레이튼은 그녀와의 연애에 그치지 않았다. 이것이 일생을 좌우하는 분수령이라고 생각한 그는 일을 끝까지 추진하였다. 그는 목요일 밤에 마을의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용감한 스레이튼! 샤토브리앙은 다락방에서 죽고, 바이론은 과부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키이츠는 굶어 죽고, 포오드는 손수 술을 따라 마시고, 드 키시는 아편을 먹고, 에이츠는 시카고에서 살고, 제임스는 생긴 대로 살아가고, 디킨즈는 흰 양말을 즐겨 신고, 모파상은 죄수의 옷을 입고, 톰 왈슨은 대중당원이 되고, 예레미아는 곧잘 울었다.-이 모든 작가들은 오직 자기 문학을 위해 이렇게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그대가 최고이다. 그대는 문학적인 명성을 위해 아내를 맞아들였던 것이다. 금요일 날 아침에 아내는 <가정사>에 가서 편집장이 읽어보라고 내준 원고 뭉치 두 개를 돌려 주고 속기사를 그만두겠다고 남편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돌려주려는 소설 중에서 특별히 재미나는 것이 없어요?"

슬레이튼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하며 물었다.

"하나 있어요. 중편인데요, 참 잘 되었어요. 근년에는 생활의 참된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서 그 절반만큼 되는 작품도 읽어 보지 못했어요."

스레이튼은 그날 오후에 <가정사>에 달려갔다. 애슨 보람이 코앞에 다가온 듯하였다. 자기 중편 소설이 <가정>에 실리는 날이면 곧 문학적인 명성을 떨칠 것 같았다.

급사 아이가 바깥 사무실에 나와 그를 맞아들였다. 채택을 하지 않기로 한 작가는 편집장이 대면하지 않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스레이튼은 기쁨을 억제하며 방금 차례 올 성공으로 하여 급사 아이를 놀라게 하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자기 소설에 대하여 물었다. 급사는 저쪽 방에 들어가더니 수표 천장을 뭉친 것보다 더 두터운 커다란 봉투 하나를 들고 나왔다.

"편집장님이 그러시는데 댁의 원고는 싣지 못하게 되어 죄송하답니다."

슬레이튼은 머리가 아찔하였다.

"혹시 팝양……집의……아니 팝킨양이 읽어 본 소설 원고는 오늘 아침에 올려드렸나요?"

그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 드렸어요. 편집장님이 그러시는데 팝킨양이 좋다고 하더래요. <마주마의 결혼>이라는 작품으로 일명 <직업여성의 승리>라고도 하지요."

급사는 시원스럽게 대답하고 내막 이야기를 하였다.

"선생이 스레이튼씨지요. 제가 그만 실수를 해서 당신의 원고를 뒤섞었나 봅니다. 편집장님께서 며칠 전에 원고 몇 뭉치를 저더러 돌리라고 하실 때 팝킨양과 수위에게 드린 원고가 서로 뒤바뀌었어요. 그러나 무방할 거예요."

스레이튼은 원고 봉투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사랑이면 그만이다>라는 제목 아래 수위는 숯검정으로 이렇게 평()하고 있었다.

"돼먹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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