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디슨 스퀘어 아라비안나이트(A Madison Square Arabian Nights)
O Henry
카슨 찰마즈는 매디슨 스퀘어 부근에 있는 아파트에서 급사 필립스로부터 우편물을 받았다. 우편물 중에는 외국의 소인이 찍힌 우편물이 두 가지 있었다.
그 한 장에는 부인이 사진이 들어 있었고, 또 다른 한 장에는 어떤 여성이 보낸 긴 사연이 있었다. 찰마즈는 꽤 오랜 시간을 그 편지를 읽는 데 소비해야 했다. 거기에는 달콤한 꿀을 바른 독 가시가 감추어져 있고 그의 부인에 대한 빈정거림이 가득 적혀 있었다.
찰마즈는 그 편지를 북북 찢어 버리고 큰 걸음으로 방 안을 서성거리면서 비단 주단을 비벼댔다. 밀림의 야수가 우리 속에 갇혔을 때 그러한 것처럼, 남자가 의혹의 밀림 속에 갇혔을 경우에도 이처럼 왔다 갔다 하게 되는 것이다.
겨우 화가 가라앉았다. 그것은 마법의 주단은 아니었다. 16피트 정도라면 운반할 수는 있겠지만 3천 마일이나 되는 먼 곳까지 움직일 힘은 없었다.
필립스가 들어왔다. 그는 결코 보통 걸음으로 들어오는 법이 없다. 언제나 귀신처럼 슬며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식사는 여기서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밖에서·····?”
하고 그는 물었다.
“여기서 먹겠어. 30분 후에 말이야.”
찰마즈는 이렇게 말하고 사람도 별로 없는 거리에서 바람의 신이 트럼펫을 연주하는 1월의 소리에 음울한 기분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리게나.”
하고 찰마즈는 사라지려는 필립스를 불러세웠다.
“아까 돌아올 때 광장 끝을 지나치려니 많은 사람들이 열을 지어있더군, 그리고 어떤 자가 무슨 물건엔가 올라서서 지껄여대고 있었어. 그 친구들은 무슨 일로 그런 곳에서 열을 지어있었지?”
“그 사람들은 갈 곳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고 필립스가 대답했다.
“그 상자 위에 서 있는 남자는 그 친구들에게 하룻밤 재워 줄 곳을 마련하려는 겁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 남자의 얘기를 듣고 돈을 주면, 그 남자는 그 돈으로 재울 수 있는 수의 사람들을 근처 싸구려 여관으로 보내지는 거니까요.”
“그렇다면, 저녁 준비가 되었을 때 그중의 한 사람을 이리로 데려와 주게, 나와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도대체, 어, 어떤 사, 사나이를요?”
필립스가 이 집에 근무하고부터 말을 더듬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무라도 좋다네, 술주정뱅이나 지나치게 지저분한 사람은 곤란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라도 상관이 없어.”
카슨 찰마즈가 아라비아의 임금님 역을 연출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는 그날 밤 매우 울적하였다. 그 우울함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흔히 써오던 해독제로는 전혀 효과가 없을 것 같았다. 어떤 엉뚱한 기상천외의 이야기 같은 굉장히 향기가 좋은 아라비아적인 것이 아니면 어쩐지 기분이 풀릴 것 같지도 않았다.
30분 후, 필립스는 마법 램프의 노예처럼 주어진 임무를 완료하였다. 아래층 식당에서 급사들이 훌륭한 요리를 날라왔다. 두 사람의 자리가 마련된 식당 테이블에는 복숭아 색깔의 갓을 씌운 촛불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이윽고 필립스가 추기경이라도 안내하듯, 혹은 도둑이라도 모시는 것처럼 무료 숙박소행 대열 속에서 뽑아온 덜덜 떨고 있는 손님을 데리고 슬며시 모습을 나타냈다.
보통 이런 사람은 렉그(난파선)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비유를 그대로 사용하자면 지금 이 자리에 데려온 것은 화재 때문에 불운하게 된 난파선일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꺼지지 않은 불이 표류하는 선체를 비치고 있었다. 이것은 필립스가 무참히 상한 관습의 전별로써 무리하게 밀어부친 의식이었다. 촛불 속에 선 그의 모습은 모든 게 우아한 실내에서 하나의 큰 오점이었다.
그의 얼굴은 병적으로 창백한데다가 아일랜드 산의 털이 빨간 스웨터와 같은 빛깔의 수염이 덥수룩하게 얼굴 전체를 덮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갈색 머리는 항상 쓰고 있는 모자 탓으로 머리에 딱 늘어 붙어 필립스의 빗으로도 어쩔 수 없었다. 그의 눈은 잔혹한 학대자에게 쫓겨온 들개처럼 절망적이고도 교활한, 현명한 반항의 빛이 차 있었다. 초라한 윗도리는 위쪽에 단추가 달려있어 그 위로 옷깃이 반의 반 인치 정도 뾰족하게 나와 있었다. 찰마즈가 둥근 만찬용 테이블 저쪽의 의자에서 일어서도 이 사나이의 태도에는 묘하게도 주저하는 빛이 있었다.
“괜찮으시다면 함께 저녁이라도 합시다.”
하고 방의 주인은 말했다.
“제 이름은 푸르마입니다.”
하고 하이웨이에서 온 손님이 도전적인 말투로 말하였다.
“만일 당신이 내 입장이 되었다면 식사하는 상대의 이름 정도는 알고 싶어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 그건 지금 막 말하려던 참인데요.”
찰마즈는 다소 당황하여 대답했다.
“나는 찰마즈입니다. 자, 앉으십시오.”
푸르마는 옷깃을 여미고 가볍게 무릎을 구부려 필립스가 그 아래로 의자를 가져오기를 기다렸다. 어느 모로 보나 그의 태도에는 급사가 가져다주는 식사를 한 것 같은 그런 품위가 엿보였다. 필립스는 생선 요리와 쇠고기 찐 것을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이건 매우 근사한데요.”
하고 푸르마는 큰 소리로 말했다.
“모처럼 만에 본격적인 만찬을 먹게 됐군요. 인정 많은 바그다드의 임금님, 좋습니다. 저는 이쑤시개가 나올 때까지 기꺼이 당신의 사라자데(페르시아 사산왕조의 왕 샤프리알은 왕비가 바람을 피우자 분노하여 처형해 버렸다. 그 후 모든 여성을 증오한 왕은 계속 왕비를 새로 맞아들이고 하룻밤을 잔 뒤 참수해 버리기를 3년이나 계속했다. 그러자 장관의 아름답고 총명한 딸인 사라자데가 스스로 왕비가 되어 매일 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어 처형을 하루씩 미루게 되어 왕의 마음을 누그러지게 되었다 한다)가 되어 드리지요.
당신은 내가 파산해 버리고 만 이래 처음으로 만나 뵙는, 진실로 동양적인 풍류를 이해하는 임금님입니다. 아아. 참말로 나는 운이 좋았군요. 행렬의 마흔세 번째 자리에서 서 있던 나를, 마침 순번을 세면서 다가온 당신의 급사가 이 향연에 초대해 준 것이지요. 과연 오늘 밤 내가 침대에 눕게 될까. 그렇지 못할까는 차기 대통령에 선출되는 것과 같은 정도의 옅은 확률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론 알 라시드(아바스왕조의 제5대 칼리프로 궁정에 많은 학자·문인을 모아 학술을 보호·장려하여 이슬람 문화를 꽃 피웠다. 천일야화「아라비안 나이트」에 등장인물로 유명하다)님 제 슬픈 신상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 시켜 나가면 좋을까요? 요리가 나오는 코스마다 1장(章)씩? 아니면 담배와 커피를 차례로 즐기며 대단원을 한꺼번에 이야기 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무래도 당신은 이런 경험에 매우 익숙해 있는 것 같은걸?”
하고 찰마즈는 미소를 띄며 말했다.
“예언자의 턱수염에 걸고 말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바그다드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빈대가 많았듯이 이 뉴욕에는 품위가 없는 하론 알 라시드가 많이 있습니다. 전 식사와 교환 조건으로 제 신상 얘기를 하면 되었습니다. 뉴욕에서는 공짜로 무언가를 베푸는 일은 좀처럼 없는 것이지요. 호기심과 동정은 그들에게 건축 재료와 같은 것이랍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10센트짜리 은화와 잡탕 요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따금씩 고급품인 등심 고기를 내놓고서 바그다드 임금님 역을 연출하는 사람도 있기는 있지요. 하여간 어떠한 경우에도 그들은 우리들의 자서전을 각본부터 미발표의 단편까지 까뒤집어 내놓을 때까지 해방시켜 주지를 않으니까요. 그런데 자주 들리는 지하철 바그다드 역에서 미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알고 있어요. 아스팔트에다 세 번 얼굴을 문지르고는 저녁을 얻어먹기 위해서 이야기를 짜낼 궁리를 하는 것입니다. 즉 저는 미리 알기 쉽게 편곡된 곡을 대중 앞에서 노래해야만 했던 고(故) 토미 타카의 후계자랍니다.”
“난 당신의 신상 얘기가 궁금한 게 아녜요.”
하고 찰마즈는 말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생전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사람을 갑자기 초대하여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누고 싶었던 것은 갑작스런 내 변덕일 뿐이오. 그러니 내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려고 고생할 필요는 없습니다.”
“천만에요!”
푸르마는 열심히 수프를 마시면서 말했다.
“누가 고생 따위를 한답니까? 저는 임금님이 출현하면 곧 페이지를 자르게 되어 있는 표지가 빨간 동양의 잡지 같은 겁니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잠잘 곳을 구하기 위해 행렬을 지어 있는 그 한패들 사이에는 얘깃거리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조합 같은 게 있습니다.
걸음을 멈추고서, 우리가 망한 이유를 들어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샌드위치와 맥주를 제공하는 사람에게는 술 때문에 이렇게 되었노라고 말해 줍니다. 콘 비프와 카베츠와 커피를 내놓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한 지주와 반년 동안의 긴 입원 생활과 실업 이야기를 한답니다. 또한 비프스테이크와 52센트의 숙박비를 내주는 사람에게는 갑자기 파산하여 몰락해 버린 월가의 비극 이야기를 들려주지요, 우리들의 얘기는 방향이 대체로 그런 순서이지만 참 오늘 밤은 예외가 될 것 같군요. 이처럼 호화로운 식탁을 대하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에 이에 맞먹을 만한 얘기를 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찰마즈 씨. 만약 당신이 듣고 싶으시다면 나는 정직한 실화를 한 토막 얘기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야말로 만들어진 얘기보다도 믿을 수가 없는 얘기이지요.”
한 시간 후에 이 아라비아 손님은 만족스러운 숨을 내쉬고는 의자에 깊이 몸을 파묻었다. 필립스가 커피와 담배를 가지고 나타나서는 테이블을 정돈하고 사라졌다.
“당신은 혹시 세라자드 푸르마 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아리송한 미소를 띠며 갑자기 손님이 물어왔다.
“네, 그 이름 기억에 남는군요. 몇 년 전쯤 꽤 이름을 떨치던 화가였지요. 아마?”
하고 찰마즈가 대답했다.
“바로 5년 전이었습니다.”
손님은 말했다.
“그 5년 전부터 그는 납처럼 가라앉아 버렸습니다. 세라자드 푸르마, 그가 바로 저입니다. 제 손으로 그려진 마지막 초상화는 2천 달러에 팔려나갔습니다. 그런데 그 후로 무료로 그려 주겠다고 하는 데도 제게 초상화의 모델로 나서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건 또 무슨 까닭입니까?”
찰마즈는 이렇게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글쎄, 그게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푸르마는 우울하게 대답했다.
“저도 전혀 이유를 모르겠다니까요.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일이 잘되어 나갔는데·····.
상류계급에 잘 먹혀들어 가 이곳저곳의 주문에 응하느라 몹시 분주했습니다. 신문은 저를 유행 화가라고까지 평해 주었지요. 그런데 기묘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제가 완성한 그림을 보러 온 사람들이 저희들끼리 얼굴을 맞대고, 기분 나쁘게 무언가를 소곤소곤하는 것입니다. 전 그 이유를 얼마 후에야 알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그린 초상화의 얼굴에는 그 모델의 숨겨진 성격이 나타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참, 본 대로 그리는 것인데 어째서 그것이 그림에 나타나는 것인지요! 하지만 제 그림은 한결같이 모두가 그랬습니다. 모델이 되었던 사람들 중의 몇은 화를 내며 그림을 빼앗아 가 버렸습니다. 한번은 사교계에서 몹시 인기를 모으고 있던 한 아름다운 부인의 초상화를 그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완성된 그림을 보러 온 그녀 남편의 표정이 이상하게 바뀌더니, 다음 주에는 마침내 이혼 소송을 제기해 버린 것입니다. 또, 저를 후원해 주던 은행가의 일도 저로선 잊을 수가 없지요. 저는 그 사람의 초상화를 아틀리에의 벽에다 걸어 놓았는데 때마침 찾아온 그 사람의 친구가 그것을 보고 묻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그 사람이 정말 이런 얼굴을 하고 있습니까?’
나는 충실하게도 아마 그럴 것이라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그자의 눈매에 이런 표정이 있다니, 미처 몰랐던 사실이오. 어서 예금을 모두 찾아 다른 은행으로 옮겨야겠어’라고 말하며 그 길로 시내로 갔습니다만 때는 이미 늦어 버려 그의 예금은 모두 공중으로 떠 버리고 말았습니다.
은행가가 파산하여 자취를 감춰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저는 실직 상태로 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은 미소를 없애거나 얼굴을 기울여 보임으로써 타인에게 다른 인상을 받게 할 수가 있지만 어쩐지 그림으로는 그것이 되지 않았습니다. 초상화 주문이 끊겨 버렸기 때문에 저는 부득이 실업자 신세가 되고 만 것입니다.
잠시 동안 삽화나 석관(시체를 넣기 위해 돌로 만든 관)용 초상을 그려 보기도 했지만, 여기서도 마찬가지 문제가 일어납니다. 사진을 보고 초상화를 그리면 사진에선 볼 수 없었던 표정과 특징이 나타나곤 하는 거예요. 그 표정과 특징은 사진에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분명히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저는 손님들 특히 부인들의 항의 때문에 그 직업에서도 오래 버티기가 힘겨웠습니다. 결국 피로해진 마음을 술로 달래게 되었지요. 그리고 그리 머지않아 갈 곳을 물색하기 위해 지어진 행렬의 일원이 되어 버리고, 엉터리 신상 이야기로 끼니를 때워가야 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자, 어떻습니까, 임금님? 이 거짓 없는 신상 이야기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월가의 비극 쪽으로 이야기를 돌려 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그것은 눈물이 필요한 것이어서요. 이처럼 맛난 식사 후에는 좀 뭣한 얘기가 될 텐데요·····.”
“무슨 그런 말씀을·····.”
하고 찰마즈는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정말 흥미 있는 이야기를 들었는걸요. 그런데, 당신이 그린 초상화 전부가 그 사람의 좋지 못한 특징이 나타난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당신의 특수한 화필의 시련을 받고도 추한 면을 나타내지 않은 사람도 있었습니까?”
“몇몇 사람은 그랬지요.”
푸르마는 대답했다.
“대개의 어린이들이 그랬고, 또 상당수의 여성과 남성도 그랬습니다. 전부가 안 좋은 사람일 리는 없잖습니까? 모델이 되는 인간에게 문제가 없는 한 역시 그림에도 문제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는 설명할 수가 없지만, 나는 사실 그대로를 말했습니다.”
찰마스의 책상 위에는 그날 저녁때 외국으로부터 날아 온 그 사진이 놓여 있었다. 10분 후, 찰마즈는 푸르마에게 파스텔로 그 사진의 여성을 스케치하여 달라고 부탁하였다. 한 시간이 지나 그림을 완성한 화가가 피로한 모습으로 일어서며 기지개를 켰다.
“됐습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너무 시간이 걸려 미안합니다. 아주 흥미 깊게 일했습니다. 어제는 잠잘 곳도 없었다니까요. 자 그러면 자비로운 임금님, 이제 작별을 고해야겠습니다. 참 감사했습니다.”
찰마즈는 그를 문 앞까지 배웅하고 몇 장의 지폐를 그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거 정말 체면 불구하고 받아 갑니다.”
하고 푸르마는 말했다.
“이것만 있으면 따뜻해질 때까지는 문제없이 지낼 수 있겠지요. 고맙습니다. 훌륭한 만찬을 베풀어 주신 점에도 감사드리겠습니다. 오늘 밤은 닭털 침대에 누워 아마, 바그다드의 꿈이라도 꾸게 되겠지요. 아침이 되어도 그 꿈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좋을 텐데·····. 그러면 자애로운 임금님, 안녕히 계십시오.”
다시 찰마즈는 침착하지 못한 걸음걸이를 주단 위에서 되풀이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파스텔의 스케치가 놓여 있는 책상으로부터 방 넓이가 허용하는 한 멀리 떨어져서 걸었다. 그는 두 번, 세 번 그림 곁으로 다가가려고 시도하였지만 어쩐지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어두운 갈색이나 금색, 갈색의 색채를 언뜻 볼 수는 있었지만 그림 주위를 장벽으로 막아서고 있는 공포 탓에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잠시 앉은 채로 기분을 가라앉힌 그는 갑자기 일어서며 벨을 눌러 필립스를 불렀다.
“이 건물 내에 아마 젊은 화가가 한 사람 살고 있을 거야. 라인만이라고 하던가? 아무튼 그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알고 있나?”
초조한 낯빛으로 그는 말했다.
“제일 꼭대기 층에 살고 있습니다.”
하고 필립스는 자신 있게 대답을 했다.
“당장 그리로 가서, 다만 몇 분이라도 좋으니 이곳에 와 주지 않겠느냐고 부탁해 주게나.”
오래 기다리지 않아 라인만이 왔다. 찰마즈는 자기 소개를 마치고 ‘라인만 씨’ 하며 본론을 끄집어냈다.
“그 책상 위에 조그만 파스텔화가 있습니다. 그 예술적인 가치와 그림으로서의 가치에 대해서 당신의 의견을 꼭 들어보고 싶습니다만·····.”
젊은 화가는 책상 곁으로 다가가 스케치화를 손에 들었다. 찰마즈는 반은 더 몸을 눕혀 의자에 기댔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 그림을·····.”
하고 그는 겁에 질려서 물었다.
이윽고 젊은 화가가 말했다.
“이 그림은 아무리 칭찬을 해도 칭찬이 모자랄 정도이군요. 매우 훌륭한 작품입니다. 대담하면서도 섬세하고 또 진실이 나타나 있습니다. 저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의 작품으로, 정말 이렇게 훌륭한 파스텔화는 몇 년 동안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얼굴이나 인물, 주제, 즉 모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얼굴은 분명히 천사의 것입니다. 대체 이 부인이 누구일까요?”
하고 화가는 말했다.
“제 아내입니다.”
찰마즈는 휙 돌아보며 몹시 놀라워하는 화가의 손을 잡고 그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아내는 지금 유럽을 여행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부탁인데. 그 스케치를 가지고 가셔서 당신의 생애를 건 걸작으로 만들어 주시기 않겠습니까? 그 수고비에 대해선 염려 마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