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아득히 먼 곳에 있었다(The Defeat of the City)
O Henry
로버트 웜즈리는 도시로 나오는 바람에 재산과 명성을 얻는 데는 성공했지만, 반대로 도시에 삼켜지는 형편이 되고 말았다. 도시는 그에게 사교계의 문을 열어주고, 선택된 사람들만 출입하는 잘 손질된 잔디밭에 그를 가두어 버렸다. 시골스러운 복장과 습관, 예법, 사투리를 벗어버리고, 신경에 거슬릴 정도의 말쑥함과 불균형의 균형을 터득한 것이다. 그래서 맨해튼의 상류계급 신사들조차 우스꽝스런 소인배로 보일 정도로 만들어버렸다.
시골 마을에서는 이 성공한 젊은 변호사를 그 고장이 배출한 훌륭한 인물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얼굴에 주근깨투성인 웜즈리 영감의 맏아들이 그런대로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생활을 내팽개치고 대도시에서 어렵게 생활한다는 말을 듣고 비웃었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워싱턴에서는 로버트 웜즈리의 이름 없이는 어떤 살인 사건의 공판도, 자동차 사고 처리도, 마차 여행의 연회도, 정식 무도회의 커틸리언(cotillion, 2, 4, 8명이 상대를 바꾸어 가며 추는 스텝이 복잡한 프랑스 댄스) 춤도 그 무엇 하나 원활히 진행되지 않았다.
클럽에서는 전통 있는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들까지도 자진해서 그의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체를 했다. 그만큼 그는 유명인사가 된 것이다.
하지만 로버트 웜즈리의 이런 ‘성공’이라는 마터호른(알프스의 최고봉)의 등정도 그가 엘리사 반 데르풀과 결혼함으로써 비로소 그 최고봉을 밟은 것이다. 굳이 알프스의 마터호른을 인용한 것은 도시의 딸 엘리사가 그만큼 높고, 차갑고, 희고, 접근하기 어려운 존재였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이다.
그녀는 맑디맑고, 청초하고, 도도한 자신의 분위기 속에 초연히 치솟아 어떤 샘에도 함부로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그녀는 반 데르풀 가(家)의 고결한 수선화였다.
이것이 바로 로버트 웜즈리가 정복한 알프스의 최고봉 마터호른이었다. 로버트 웜즈리가 마침내 모든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정상에 오른 건각으로서 예지의 눈을 가진 시인처럼 그것을 깨달았다 할지라도. 그는 정상에 오르느라 동상에 걸려버린 아픈 발을 말끔한 외관 밑에 감추고 있었다. 어쨌든 그는 마터호른에 오른 행운아였다.
호화 요트가 있는 외국으로 짧은 신혼여행을 다녀온 이들 마터호른 부부는 상류사회의 그 연못에 화려한 파도를 일으켜 놓았다. 두 사람은 전통 있는 구역에서도 과거의 위대함을 간직하고 있는 붉은 벽돌집 대 저택에서 내로라하는 귀빈들을 초청해 연회를 베풀었다.
어느 날, 엘리사는 남편의 서재에서 그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발견했다. 그것은 농작물의 수확에 관한 얘기로 농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서투른 글씨로 또박또박 써 내려간 것이었다. 로버트의 건강을 걱정하는 고향에서 날아온 흙냄새가 물씬 풍기는 편지로 꿀벌의 전기(傳記)이며, 갓 낳은 달걀에 대한 찬가(讚歌)이며, 양친의 잔소리이며, 마른 사과의 평이 좋지 않다는 비평으로서, 다소 지루하기도 한 편지였다.
“어머님 편지를 왜 저한테 보여주지 않았어요?” 하고 엘리사가 로버트에게 물었다.
그녀의 차분한 어조는 언제나 수녀원 지붕에 쌓인 눈 같은 것이며, 확대경이며, 티파니의 계산서이며, 샹들리에에 매달린 유리 막대기들이 부딪히는 소리이며, 나아가서는 가석방을 반대하는 경찰 간부의 주장 같은 그런 것이었다.
“어머님께서는 우리가 함께 농장에 놀러 오기를 바라시던데요.”
그러면서 엘리사는 말을 계속 이었다.
“전 한 번도 농장을 본 적이 없어요. 한 번 다녀오기로 해요.”
“그럽시다. 그게 좋겠어.”
대법원 배석 판사가 어떤 의견에 동의할 때 말하듯 로봇은 점잔을 빼면서 말했다.
“난 당신이 가고 싶어 하지 않을 줄 알고 일부러 편지를 보여주지 않았지. 그런데 당신이 먼저 가자고 하니 정말 고마워.”
“제가 어머님께 답장을 쓸게요.”
엘리사는 어렴풋이 기쁨의 빛을 보이면서 말을 이었다.
“가정부 아주머니에게 곧 짐을 꾸리게 하죠. 트렁크가 일곱 개 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몰라······,어머님은 그리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진 않겠지요? 집에서 늘 파티를 하나요?”
로버트는 얼른 농촌지역에 대해 해박한 검사(檢事)의 자격으로, 일곱 개의 트렁크 중에서 여섯 개는 기각하라고 제의했다. 그런 다음 농촌지역에 대하여 설명했다. 로버트는 6년 사이에 자기가 얼마나 철저히 도시화 되었는지에 대해서 지금처럼 강하게 자각한 적이 없었다.
일주일 뒤, 사교계의 명사 부부는 도시에서 다섯 시간쯤 떨어진 어느 시골 마을의 조그마한 정거장에 내려섰다. 노새가 끄는 마차를 타고 나온, 동생이 빙글빙글 웃으면서 로버트에게 인사했다.
“형, 정말 오랜만이야. 자동차를 못 갖고 나와서 미안해. 아버지가 그 차로 밭을 10에이커나 파헤치고 있는 중이거든.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해 떨어지기 전에 충분히 갈 수 있을 거야.”
“반갑다 톰.”
하고 로버트는 동생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말했다.
“그래, 네 말대로 정말 오랜만이구나. 2년 전에 다녀가고 지금 오는 거야, 앞으론 자주 와야겠어.”
노르웨이의 눈 아가씨처럼 엘리사가 투명한 모슬린 의상에 레이스 양산을 팔랑거리면서 정거장 모퉁이를 돌아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자 톰이 그만 침착성을 잃고 말았다. 그는 빛바랜 푸른 작업복 차림으로 엘리사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눈만 껌뻑거리면서 노새에게 지껄일 말만 생각하고 있었다.
기울어진 태양이 풍요로운 보리밭 위에 황금빛을 아낌없이 쏟아 붓고 있었다. 도시는 이제 아득히 먼 곳에 있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숲과 골짜기와 언덕을 돌아 꼬불꼬불하게 굽어져 있었다.
이윽고 우거진 숲에 둘러싸인 농장의 하우스가 차츰 그 잿빛 모습을 드러냈다. 일생은 큰길에서 집으로 통하는 긴 호두나무 오솔길을 지나, 시냇가에 무성하게 자란 수양버들의 시원한 입김과 들장미의 향기를 흠뻑 마셨다.
고향은 그에게 싱그러운 미소를 던졌다. 그는 그 숨결을 느꼈고, 잠시 옛 애인 곁에 돌아온 듯한 기분에 젖어 들었다. 지금 도시는 아득히 먼 곳에 있었다.
이처럼 전원은 고향으로 복귀한 로버트 웜즈리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의 넋을 빼앗아 갔다. 동시에 그는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자기 옆에 앉아 있는 엘리사가 갑자기 남처럼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문득 그녀가 이 세계에 속하지 않는, 지금처럼 손에 닿지 않는 듯한 먼 비현실적인 존재로 여겨진 적은 여태껏 없었다.
그날 밤 인사와 저녁식사가 끝나자. 노랑 강아지 버프까지 모든 가족이 현관 앞마당에 모였다. 엘리사는 엷고 아름다운 잿빛 가운을 걸치고, 그리 뽐내지는 않았지만 입을 다문 체 한쪽 그늘에 앉아 있었다. 로버트의 어머니는 흔들거리는 고리 의자에 앉아 매우 즐거운 듯 도시에서 온 며느리에게 신경통의 민간요법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동생 톰은 돌층계 제일 윗단에 걸터앉고, 누이동생 밀리와 펌은 반딧불을 잡으려고 제일 아랫단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큼직한 안락의자에 묵직하게 앉아 있었고, 노랑 강아지는 마당 한가운데 넙죽 엎드려 있었다. 보이지는 않았지만, 황혼의 요정과 천사들이 살며시 로버트에게 다가와 그의 영혼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로버트와 톰은 마당의 가장자리 풀밭으로 가더니 씨름판의 거인들처럼 마주 잡고 연이어 세 번이나 힘을 겨루었다. 허깨비로만 알았던 도시의 변호사가 과장된 기합 소리와 함께 농군을 두 번이나 풀밭에 쓰러뜨렸다.
힘을 자랑하던 두 사내는 비틀거리며 현관 마당으로 돌아와서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여동생 밀리가 도시에서 온 오빠에게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오빠, 작은 오빠가 일부러 져준 거야. 그러니 그렇게 으스댈거까진 없어요!”
그러자 로버트는 당장 손에 쥐고 있던 징그러운 베짱이를 누이의 얼굴에 갖다 대었다. 밀리는 기겁을 하고 비명을 지르며 울타리 밖으로 달아났다.
이윽고 그녀는 피곤하다면서 방으로 들어가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안으로 들어가면서 그녀는 로버트를 스치고 지나갔다. 머리는 온통 헝클어지고, 얼굴은 시뻘겋게 상기되어 있고. 옷은 마구 구겨지고, 소란스런 희극 속의 우스꽝스런 등장인물 같은 몰골로 로버트는 문 앞에 서 있었다. 인기 높은 클럽의 회원이자 사교계의 스타인, 어느 한 점 나무랄 데가 없는 변호사 로버트 웜즈리의 면모는 이제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엘리사가 옆을 지나갈 때, 로버트는 흠칫 놀랐다. 그녀가 이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엘리사는 남편을 쳐다보지도 않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 뒤 소동은 차츰 가라앉았다. 반 시간쯤 더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로버트도 2층으로 올라왔다. 그가 방에 들어섰을 때, 엘리사는 창가에 서 있었다. 마당에 나왔을 때의 그 잿빛 가운을 아직 그대로 입고 있었다. 창밖에는 꽃이 가득 핀 커다란 사과나무가 덮칠 듯이 가지를 뻗고 있었다.
로버트는 숨을 고르면서 창가로 다가갔다. 그는 속으로 운명과의 대결을 각오했다. 마침내 본래의 정체를 드러내고 만 벼락 명사인 그는 엘리사의 말없는 모습 속에서 심판의 결과를 예견했다. 이제 그는 스스로의 행위로 가면을 벗어버린 것이다. 도시가 만들어준 세련된 몸가짐과 예법도, 시골의 산들바람을 맞자마자 몸에 맞지 않는 망토처럼 쑥 벗겨지고 만 것이다.
로버트는 목전에 다가온 죄의 선고를 망연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문득 성경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로버트!”
하고 재판관의 조용하고도 냉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주 세련된 신사와 결혼한 줄 알고 있었어요.”
‘아, 마침내 왔구나!’ 그런데 심판의 순간에 직면하고서도 로버트는 옛날 이 창문을 통해 자주 기어 올라가곤 했던 사과나무의 커다란 가지를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지금도 그 가지에 얼마든지 기어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나무의 꽃은 천만 송이쯤 될까······?’
그때 다시 심판관이 입을 열었다.
“나는 진정 신사와 결혼한 줄 알고 있었어요.”
이어 그 목소리는 차분하게 말했다.
“하지만······.”
로버트는 만개한 사과꽃을 잠자코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심판관은 가까이 다가서는 것일까?’
“하지만 이젠 알았어요. 내가 결혼한 사람은.”
‘아, 이게 엘리사의 본래의 목소리인가?’
“더 근사한 한 사람의 남성이었다는 것을요. 로버트 제게 입맞춤 해줘요!”
도시는 아득히 먼 곳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