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 소리(The clarion call)
O Henry
이 이야기의 절반은 경찰서의 기록으로 알 수 있지만, 나머지 절반은 신문사의 사업부로 가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억만장자 노크로스가 아파트에서 강도에게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 지 2주일이 지난 어느 날 오후, 범인이 태연스레 브로드웨이를 어슬렁거리다가 바니 우즈 형사와 딱 마주쳤다.
"이게 누구야, 조니 캐넌이잖아?" 우즈가 소리쳤다. 그는 5년쯤 전부터 근시가 되어 있었다. "그래"하고 캐넌도 반가운 듯이 소리쳤다. "그리구 넌 분명히 세인트 조의 바니 우즈야, 내 눈은 속이지 못하지. 너 동부에서 뭘 하고 있나? 멀리 이 뉴욕에까지 나오다니 수고가 많군, 그래."
"나는 몇 해 전부터 뉴욕에 와 있지. 시 경찰에 근무하고 있어."
"저런, 그랬었나." 캐넌은 즐거운 듯이 웃으며 형사의 팔을 가볍게 두드렸다.
"잠시 맬러의 카페에라도 들어가서 조용한 테이블이나 찾자구. 자네와 얘기도 하고 싶고."
4시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있었다. 아직은 손님이 뜸해질 시간이 아니었지만, 그들은 카페 안에 들어가 한쪽 구석에 조용한 자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한 치의 빈틈도 없는 복장으로 약간 뻐기면서 자신이 만만한 캐넌이 몸집이 자그마한 형사와 마주 보고 있었다. 형사는 연한 모래빛 수염을 기르고 눈은 사팔뜨기였으며, 체비요트 천의 기성복을 입고 있었다.
"그래, 넌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지?" 우즈가 물었다. "세인트 조를 떠난 것은 내가 너보다 1년 뒤였지."
"동광 주식의 매매업이야. 어쩌면 뮤욕에 사무소를 낼지도 몰라. 그나저나 옛 친구 바니가 뉴욕의 형사가 될 줄이야. 하기야, 넌 옛날부터 그편이 맞는 것 같기는 했지. 내가 세인트 조를 떠난 뒤, 넌 그곳 경찰에 잠시 있었잖나."
"6개월쯤 있었지. 그런데, 또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조니. 난 네가 새러토거 호텔에서 저지른 사건 이래 상세히 네 기록을 조사해 보는데, 넌 전에는 결코 권총을 쏘지 않았더군. 그런데 노크로스는 왜 죽였지?"
캐넌은 잠시 주의를 집중시켜 하이볼 속의 레몬 조각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더니 갑자기 빙그레 얼굴을 구겨 밝은 미소를 띠우면서 형사를 쳐다보았다.
"어떻게 알았나, 바니?" 그는 감탄한 듯이 말했다. "그 일만은 껍질 버긴 양파처럼 깨끗이 해치운 줄 알고 있었었는데, 어니 노끈이라도 한 가닥 걸려 있었나?"
우즈는 시곗줄 장식에 쓰는 조그만 금빛 연필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이건 말이야, 세인트 조에서 마지막 크리스마스 날에 내가 너한테 준 선물이야. 난 아직도 네가 준 면도용 컵을 갖고 있다고. 이걸 노크로스의 방구석 융단 밑에서 발견했지. 아니, 변명은 필요없어. 틀림없이 이건 네 거야. 우린 친구야. 하지만 나는 내 의무를 완수해야 해. 노크로스 사건으로 너도 결국 전기의자에 앉게 되었군 그래."
캐넌은 웃었다. "나한테는 끝발이 있다구. 옛 친구 바니가 나를 붙잡으려구 하고 있는 줄 누가 알았겠나!" 그는 한 손을 웃옷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우즈는 벌써 권총을 그의 옆구리에 갖다 대고 있었다.
"그건 넣어 둬." 캐넌은 콧등에 주름을 잡으면서 말했다. "난 다만 조사해 봤을 뿐이야. 후후후, 양복 가게에선 옷 한벌 짓는데 아홉 사람이나 손이 필요하다지만, 사람을 죽이는 덴 한 사람으로 충분하다구. 이 조끼 주머니에 아마 구멍이 뚫어졌었나 보지. 격투가 벌어질 걸 생각하고 일부러 그 연필을 끌러서 조끼 주머니에 넣어 두었었거든. 권총은 치우라구, 바니. 그러면 어째서 노크로스를 쏘아 죽여야 했는지 그 경위를 얘기해 줄 테니까. 그 바보 영감쟁이가 내 웃옷의 등 단추를 겨누고 조그만 22구경 소형 권총을 탕탕 쏘면서 내 뒤를 쫓아 현관 홀까지 따라오잖아. 그래서 나도 그걸 중지시키지 않을 수 없었던 거야. 영감쟁이 마누라는 기특한 여자더군. 침대 속에 기어들어 가서는 1만 2천 달러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들고 가도 우는 소리 한마디 없이 쳐다보고만 있었으니까. 그런데 3달러짜리밖에 안 되는 석류석을 끼운 조그만 얇은 금반지만은 돌려달라고 거지처럼 애걸복걸하지 않겠어. 아마 재산을 노리고 노크로스와 결혼한 여자가 틀림없어. 여자란 죽은 남자한테서 얻은 자질구레한 장신구에는 그리 집착을 안 느끼는 게 아냐? 반지가 여섯 개, 브로치가 두 개, 허리띠 장식용 시계가 하나, 모두 해서 1만 5천 달러나 될까."
"그만해." 우즈가 말했다.
"아니, 걱정할 것 없다구." 캐넌이 대답했다. "물건은 어김없이 호텔의 내 슈트케이트에 들어 있으니까. 그런데 어째서 내가 이런 걸 다 지껄이는지 까닭을 들려 줄까? 지껄여도 하등 걱정이 없기 때문이지. 내가 지껄이고 있는 상대는 내가 잘 아는 인간이거든. 넌 나한테 천 달러 빚이 있어. 바니 우즈. 그래서 설령 나를 체포하고 싶더라도 네 손이 아마 말을 들어 주지 않을걸."
"나도 잊지 않아." 우즈가 대답했다. "너는 아무 말도 없이 20달러짜리 지폐 50장을 선뜻 세어줬거든. 언젠가 꼭 갚을께. 그 천 달러 덕분에 나는 살았으니까. 정말이지, 그때 집에 돌아가 보니까 놈들은 벌써 내 가재도구를 죄다 집 밖에 내다가 쌓아 놓았더군."
"그러니까 말야, 네가 틀림없는 바니 우즈고, 강철처럼 성실한데다가 신사적으로 승부를 해야하는 인간이라면, 은혜를 입은 사람을 체포한답시고 손가락 하나 쳐들 순 없을 거야. 그래, 나도 직업상 예일 자물쇠나 창문 자물쇠를 연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연구해야 하겠군. 그런데 웨이터를 부를 테니까 잠시 얌전하게 있으라구. 나는 지난 1, 2년 동안 금주를 했었지. 좀 괴롭더군. 하지만, 이렇게 나를 붙잡았으니 재수 좋은 형사님으로서라도 그리운 술과 명예를 옛 친구와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겠나. 나는 영업 중에는 절대로 술을 안 마시지. 그렇다지만 작업을 하나 끝낸 지금은 떳떳이 옛 친구 바니와 한잔 기울일 수도 있다 이 말씀이야. 넌 뭘 마실래?"
웨이터가 조그만 술병과 사이펀을 갖다 놓고 갔다.
"네 말대로 승부는 네가 이겼어." 우즈는 첫째 손가락으로 천천히 조그만 금연필을 굴리면서 말했다. "나는 너를 그냥 놔줘야겠지. 너한테 손을 댈 수는 없단 말이야. 그 돈을 갚았더라면... 하지만 아직 갚지 못했거든. 그러니 두 손 들 수밖에. 이런 실수가 또 어딨나. 하지만 나는 어물쩍 이 자리를 넘길 수는 없어. 조니, 전에 너는 나를 도와 주었어. 지금 그것과 똑같은 일이 요구되고 있는 거야."
"암 그렇고말고." 캐넌은 이렇게 말하고 술잔을 쳐들었다. 얼굴 가득히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 있었다. "나는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이 있다구. 자, 바니군을 위해서 건배. 왜나하면, 네가 <유쾌하고 좋은 놈>이기 때문이야."
"정말이지." 우즈는 마치 소리 내어 무엇을 생각하는 것처럼 말을 이었다. "나와 너와의 관계가 깨끗이 청산되어 있었더라면 설령 온 뉴욕의 은행 돈을 다 갖다 쌓아 준대도, 오늘 밤 여기서 너를 놓아주지는 않을 텐데."
"그렇게는 못 할 테지. 아무튼 상태가 너라면, 나도 안심이야."
"대개의 인간은."하고 형사는 계속했다. "내 직업을 정당하게 봐주지 않더군. 이 직업을 가진 인간을 결코 예술가나 지적인 전문가와 똑같이 봐주지 않는단 말이야. 하지만 나는 이 직업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긍지를 갖고 있가두. 그러나 이제 다 허사가 됐어. 나는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이거든. 형사이기 전에 말이야. 나는 너를 놓아줄 수밖에 없어. 다음에는 경찰을 그만둬야겠지 뭐. 속달 우편차의 운전사쯤은 할 수 있겠잖나. 하지만 그렇게 되면 네 천 달러는 점점 더 갚기가 어려워지겠는걸, 조니."
"그까짓거 조금도 걱정 말라구." 캐넌은 대범한 어조로 말했다. "그 빚쯤 없는 걸로 해도 좋지만 네가 응낙하지 않겠지. 네가 그 돈을 빌려 간 게 나로서는 행운이었던 셈이야. 아무튼 이 얘긴 이제 그만하자구. 나는 내일 아침 차로 서부로 떠날 참이야. 그리로 가면 노크로스의 귀금속을 처리할 수 있는 곳을 아니까. 자, 신나게 마시라구, 바니. 마시고 고생을 잊어버려. 경찰이 노크로스 사건을 조사하느라고 끙끙 앓고 있는 동안 우리는 유쾌하게 실컷 마시자구. 오늘 밤엔 사하라 사막처럼 목이 몹시 마르구나. 나는 옛 친구 바니에게 붙잡혀 있단 말이야. 경찰에 붙잡혀 있는 게 아냐. 그러니까, 이제 경관은 꿈도 꾸지 않을 거야."
이렇게 말하고 있는 동안에도 캐넌의 민첩한 손가락은 쉴새없이 벨을 눌러 웨이터를 분주하게 뛰게 하였으므로 어느새 그의 약점, 어처구니없는 허영심과 불손한 자존심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다. 그는 보기 좋게 성공한 절도 행위며, 교묘한 수법이며, 아주 파렴치한 범행 같은 것을 잇달아 털어놓았으므로 웬만한 악당에는 꿈적도 하지 않는 우즈도 지난날 자기의 은인이었던 이 대악당에게는 소름이 끼치는 혐오를 느끼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지금 너한테 당하고 있다만." 한참 사이를 두었다가 우즈는 말했다. "그렇긴 해도, 너는 한동안 숨어 있는 게 좋을걸. 신문이 노크로스 사건을 크게 다룰지도 몰라. 워낙 금년 여름에는 이곳에서 강도 사건, 살인사건이 이상하게 많이 일어나고 있거든."
이 말에 캐넌의 분노와 복수심이 맹렬히 불타올랐다.
"신문 따위는 시시하다구 그래." 그는 툴툴거렸다. "큼직한 활자로 요란하게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마구 써 대고는 고작해야 뇌물이나 받아 처먹는 자식들이 뭘 할 줄 안다구 그래, 그 녀석들이 사건을 취급했다고 하자. 그게 어쨌다는 거야? 경찰도 물러빠졌지만, 신문이 대체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먼저 얼빠진 기자들을 잔뜩 현장에 내보내겠지. 그러면 그놈들은 당장 가까운 술집에 틀어박혀서 맥주 한 잔을 기울이며, 바텐더 큰딸에게 이브닝드레스를 입히고 사진을 찍겠지. 그걸 아파트 10층에 사는 젊은 남자의 약혼녀니 어떠니 하고 신문에 실어 버린단 말이야. 그자가 살해되던 날 밤, 아래층에서 무슨 소리를 들은 것 같으니 어떠니 하고 써대는 수법이야. 강도를 찾아내겠다고 큰소리쳐 봤자 신문이 하는 짓이라곤 고작해야 그런 정도라구."
"그래, 나는 잘 모르겠지만." 하고 우즈는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에 잠기면서 말했다. "그래도 개중에는 그 방면에서 훌륭한 활동을 한 신문도 있잖아. 이를테면 <모닝머드>지 같은 게 그거야 몇 가지 단서를 철저하게 조사해서 경찰이 수사를 포기한 뒤에도 끝내 범인을 찾아내고 말곤 하거든."
"좋아. 그럼 보여 주마." 캐넌은 일어서서 쭉 가슴을 펴 보였다. "내가 신문이라는 걸, 특히 네가 말하는 그 <모닝머드>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보여주겠단 말야."
그들의 테이블에서 3피트쯤 떨어진 곳에 전화 부스가 있었다. 캐넌은 부스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열어둔 채 전화 앞에 걸터앉았다. 번호부에서 번호를 찾아 수화기를 내려 센트럴 국을 불렀다. 우즈는 가만히 앉아 수화기를 귀에 대고 기다리는 조소를 띤 잔인하고 빈틈없는 얼굴을 지켜보면서 비웃는 옅은 웃음에 비뚤어진 얇고 냉혹한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모닝머드>산가요? 주필에게 할 말이있는데... 그래, 주필에게 말 하라구, 노크로스 살인사건에 대해서 할 말이 있다구 말이야. 당신이 주필이오? 그래요. ...나는 노크로스 영감을 죽인 범인인데... 아니, 잠깐 기다리라구! 끊으면 안 돼. 끊으면 쓰나, 나는 흔해 빠진 깡패들과 다르다구... 아니 위험한 조금도 없지. 사실은 지금도 내 친구인 형사와 이야기 하고 있는 중인데 말야, 나는 내일로 꼭 2주일이 되는 오전 2시 30분에 그 영감을 죽였지... 어때 같이 한잔 안 하겠는가? 농담 말라구, 그런 얘기는 당신 신문사의 만화장이한테 맡겨 두면 어때? 내가 당신을 놀리고 있는지, 아니면 당신의 그 걸레 조각 같은 신문이 한 번도 잡아 본 적 없는 대특종을 제공하고 있는지, 당신은 아무 판단도 안 가나? ...그야 그렇지, 어중간한 특종이지만 말야. 뭐 이름과 주소를 똑똑히 말하고 전화를 걸라구? 그건 좀 너무 뻔뻔스럽잖아... 왜냐구? 후후후, 당신 문사는 경찰도 잘 해내지 못하는 미궁에 빠진 범죄를 해결하는 게 장기라고 들었거든... 아니, 그뿐 아니지. 당신네 신문 같은 썩어빠진 엉터리 삼류 신문은 눈먼 푸들 개처럼 영리한 살인범이나 강도를 아무리 쫓아 다녀봐야 아무 소용도 없다는 말을 당신한테 한마디 해 두고 싶었던 거야.. 뭐라구! ...아니 그렇지 않아, 나는 경쟁 신문의 데스크가 아니라구. 정확한 정보야. 노크로스 사건은 내가 했지. 빼앗은 보석은 내 슈트케이스에 몽땅 들어있다구. <이름을 밝힐 수 없는 호텔>에 말이야. 어때, 이 말 알아듣겠나? 알아듣지 못한다면 우스운 걸, 당신네가 자주 쓰는 말인데. 공장하고 정확, 거대하고 전능한 기관이 정체불명의 살인범에게 직접 전화통에 불려 나와 가지구 무능하다니 허풍선이니 실성한 놈이니 하는 말을 들으니까 당신도 조금은 당황하겠지? 아니, 그건 그만두는 게 좋을걸. 당신도 그런 바보는 아닐 테지. 그래, 당신은 내가 거짓말을 하는 줄 알고 있나 보지. 그런 정도야 음성을 들어도 안다구... 알게나, 잘 들어 두라구. 살짝 실마리를 가르쳐 줄 테니까. 물론 당신은 틀림없이 멍청한 풋나기 기자들을 동원해서 이 살인사건을 조사하고 있겠지. 노크로스 노파의 잠옷 두 번째 단추가 반쯤 깨진 것을 아나? 나는 노파 손가락에서 석류석 반지를 뽑늘 때 봤지. 루비인 줄 알았는데.. 아니, 그러진 말라구! 그런 짓을 해 봐야 소용없으니까."
"멋지게 됐어. 이제 내 말을 다 믿는 모양이야. 송화기를 완전히 막지도 않고 누군가가 다른 전화로 센트럴 전화국을 불러서 이쪽 번호를 확인하라고 이르잖아. 한 가지만 더 놀려줘야지. 그런 다음 달아나자구."
"여보세요! 암, 난 아직 여기 있지. 그따위 째째하고 수다스런 편의주의 엉터리 신문한테서, 아니 그래 내가 달아날 수 없는 줄 알아? 나를 48시간 이내에 붙잡아 보겠다고? 이봐, 이봐, 웃기지 말라구. 그보다는 어른이 하는 일에 쓸데없는 참견일랑 말구, 이혼 사건이나 전차 사고라도 쫒든지 아니면 당신네 밥벌이 재료가 되는 독직 사건이나 스캔들이라도 열심히 파헤치라구. 그럼 잘 있어, 영감! 당신을 찾아볼 여지가 없어 유감이군. 정말은 당신에의 그 저능아들 소글 속에 깊숙히 들어가 버리면, 그게 제일 안전한데. 잘 있으라구!"
"놈은 죄를 놓친 괭이처럼 노발대발이야." 캐넌은 수화기를 내리고 나오면서 말했다.
"자, 바니, 극장에라도 가서 잘 시간이 될 때까지 시간이나 보내자. 나는 네 시간만 자면 되니까. 그 후엔 서부로 가는 기차만 타면 돼."
두 사람은 브로드웨이의 어느 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캐넌은 기분이 여간 좋지 않았다. 그는 소설 속의 왕자처럼 물 쓰듯 돈을 썼다. 그런 다음 재미있고 명랑한 뮤지컬 코메디를 열심히 구경했다. 그 뒤에 다시 일품 요리점에서 밤참을 먹었다. 샴페인까지 뽑으면서 캐넌은 아주 흐뭇해했다.
새벽 3시 반에 그들은 철야 영업을 하는 카페 한구석에 앉아 있었다. 캐넌은 여전히 곰팡이 핀 제 자랑을 지리하게 늘어놓고 있었다. 우즈는 법의 수호자로서의 자기 임무를 다 해야 할 때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것을 생각하고 마음이 침울했다.
그런데, 생각이 잠겨 있는 동안 그의 눈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갑자기 빛나기 시작했다.
<가능성이 있을까?>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가능할까?>
그러자 이윽고 카페 밖으로 이른 새벽의 정적을 깨는 가냘프고 희미하여 조그만 반딧불이 외치는 듯한 소리가 들려 왔다. 어떤 것은 차츰 뚜렷해졌고, 어떤 것은 차츰 희미해졌다. 우유 배달차와 이따금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음에 섞여서, 그 외치는 소리는 커졌다 작아졌다 했다. 그것은 가까이 다가왔을 때 들으면 귀청이 떨어질 듯한 큰 외침인데, 이 대도시에서 아직도 자고 있는 몇백만 시민들이 일어나서 들을 때는 갖가지 뜻을 전해 주는 귀에 익은 소리였다. 그 뜻깊고 짧은 음향 속에 인간 세상의 탄식과 웃음과 기쁨과 고통이 담겨서 배달되는 소리였다. 밤이라는 덧없는 덮개의 비호 아래 숨어서 몸을 웅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마음 내키지 않는 눈부신 낮의 도래를 알려 주었고, 행복한 잠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는 어두운 밤보다 더 어둡게 밝아가는 아침을 알려 주었다. 많은 부자들에게는 별이 반짝이고 있는 동안에만 그들의 몫이었던 것들을 쓸어내는 비를 갖다주었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이 또 하나의 가난한 하루를 가져다주었다.
외치는 소리는 이 도시의 구석구석에서 일어났다. 날카롭게 울려 퍼지는 목쇠로, 시간이라는 기계의 한 톱니바퀴가 회전하며 만들어 내는 온갖 기회를 예고하며 다니고, 운명의 손에 몸을 맡긴 채 잠들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달력의 새로운 숫자가 날아오는 복수와 이득과 피해와 보수와 숙명을 배달하며 돌아다녔다. 그 부르는 소리는 드높으면서도 슬픔을 자아냈다. 마치 소리를 외치는 젊은이들이, 그들의 두려움을 모르는 손에 너무나도 많은 악이 있고 너무나도 적은 선이 있다는 것을 슬퍼 한탄하는 것처럼, 그 목소리는 찌르듯이 날카롭고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이리하여 구원 없는 도시의 거리거리에 새로운 신의 말을 전해 주는 신문팔이의 외치는 소리가 우렁차게 메아리쳤다. 그것은 나팔의 음향이었다.
우즈는 10센트 은화를 웨이터에게 주면서 말했다.
"<모닝머드> 한 장 사다 줘."
신문이 오자 그는 일면을 쑥 훑어보았다. 그리고 수첩을 한 장 찢어, 그 조그만 종이에 금연필로 무언가를 적었다. "무슨 소식이라도 있나?" 캐넌이 하품을 하면서 물었다.
우즈는 쓴 종이를 그 앞에 던져주었다.
뉴욕 <모닝머드> 신문사 귀중
존 캐넌의 체포 및 그의 유죄 선고를 하여 저에게 주어질 상금 1천 달러를,
위의 존 캐넌에게 지불해 주실 것을 요망함. 그를 상금 수취인으로 지정함.
버너드 우즈
"신문사는 틀림없이 이런 수법을 쑬 줄 알았지."하고 우즈는 말했다. "네가 전화로 열심히 그들을 놀리고 있을 때 말이야. 자, 조니, 나와 함께 경찰서로 가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