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뽑기(The Lottery)
Shirley Jackson
6월 27일 아침의 날씨는 맑고 구름 한 점 없었으며 한여름의 신선한 열기가 더욱 상쾌하게 느껴졌다. 만발한 꽃은 향을 내뿜고 있었으며 잔디는 짙푸른 색깔을 띠고 있었다. 마을사람들이 은행과 우체국 사이에 있는 공터에 모이기 시작했다. 시간은 오전 10시 무렵이었다. 다른 마을에서는 주민들의 수가 너무 많아서 제비뽑기를 하는데 이틀이 걸리므로 제비뽑기는 보통 6월 26일에 시작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3백 명 남짓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마을에서는 제비뽑기에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으므로 아침 열 시에 제비뽑기를 시작해도 마을사람들은 정오 때쯤 집으로 돌아가 점심식사를 할 수가 있을 정도였다.
물론 동네 아이들이 제일 먼저 모였다. 여름 방학이 시작된 지 며칠 되지 않아서 그런지 교실에서 해방되었다는 즐거움이 아직 아이들에게는 실감이 나지 않을 때였다. 아이들은 서로 모여 잠시 동안은 얌전히 있다가 곧 요란스럽게 뛰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아이들의 화제거리는 학교나 선생님, 혹은 책이나 선생님이 주는 벌에 관한 것들이었다. 보비 마틴의 주머니에는 벌써 돌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곧 보비를 따라 매끈하고 둥근 돌들을 골라 주머니 속에 넣기 시작했다. 보비와 해리 존스, 그리고 딕키 들라크르와⎯⎯마을 사람들은 그 아이의 이름을 〈델라크로이〉라고 불렀다⎯⎯는 곧 공터의 한구석에 돌을 가득 쌓아두고는 다른 아이들이 그것을 가지고 갈까 봐 지키고 서 있었다. 여자 아이들도 한쪽 옆에 모여 서서 자기들끼리 얘기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틈틈이 어깨 너머로 남자아이들을 힐끔힐끔 쳐다보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주 어린 아이들은 흙바닥에서 뒹굴거나 제 형이나 누나의 손에 매달려 있었다.
이윽고 남자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 농사일이나 비, 트랙터나 농지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자신들의 아이들을 찾고 있었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아이들이 돌을 모아 놓은 곳과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커다랗게 웃지는 않고 미소들만 지어 보였다. 잠시 후 낡은 가사복과 스웨터를 걸친 아낙네들이 공터로 나왔다. 아낙네들은 서로 인사말을 주고받은 뒤 잠시 몇 마디 잡담을 끝내고 남편들 곁으로 가서 섰다. 그리고는 남편 곁에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자기 이름이 서너 번 불린 뒤에야, 마지못해 부모 곁으로 다가왔다. 보비 마틴은 붙잡으려는 제 엄마의 손 밑으로 몸을 빼고는 깔깔거리며 돌더미로 뛰어 달아났다. 아버지가 다시 큰 소리로 부르자 그제야 얼른 뛰어와 아버지와 형 사이에 섰다.
제비뽑기는 남녀 4쌍이 한 조가 되어 추는 스퀘어 댄스나 10대들의 모임 클럽, 할로윈 축제 때와 마찬가지로 서머즈 씨가 진행을 맡았다. 그는 마을의 행사를 위해서는 시간과 정력을 바쳐 헌신하는 사람이었다. 둥근 얼굴과 쾌활한 성격으로 소문난 그는 석탄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자식이 없고 마누라는 잔소리꾼인 그를 측은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가 나무로 만든 검은 상자를 들고 공터로 나오자 마을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손을 흔들며 동네 사람들에게 “여러분, 오늘은 조금 늦었습니다.”라고 인사했다 서머즈 씨 뒤를 따라 우체국장 그레이브즈 씨가 삼각의자를 들고나와 공터 한가운데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서머즈 씨는 검은 상자를 그 위에 올려놓았다. 마을 사람들은 그 의자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었다. 서머즈 씨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 중에서 이리 나와 저를 좀 도와주실 분이 있습니까?”
사람들이 주저하는 사이, 마틴 씨와 그의 큰아들 박스터 두 사람이 앞으로 나와 서머즈 씨가 상자 속의 종이를 골고루 섞을 수 있도록 뒤섞는 동안 그 상자를 흔들리지 않게 꼭 붙잡아 주었다.
제비뽑기에 쓰이던 상자는 오래전에 분실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이 의자 위에 있는 검은 상자는 이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워너 할아버지가 태어나기 전부터 사용되어왔다. 서머즈 씨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마을 사람들에게 새로운 제비뽑기 상자를 만들자고 제안했으나 마을사람들은 감히 오랜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이 상자를 어찌하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소문에 의하면, 이 검은 상자는 이 마을에 처음으로 발을 들여놓은 개척자들이 만들었던, 존래의 제비뽑기 상자의 부서진 나무 조각들을 얼마간 다시 모아 만들었다고도 한다. 매년 제비뽑기가 끝난 뒤 서머즈 씨는 새로운 상자를 하나 만들자고 얘기를 꺼냈지만, 또한 매년 이 이야기는 아무 결론도 없이 흐지부지 끝나 버리고 말았다. 해가 갈수록 상자는 더욱 초라해졌다. 이제 이 검은 상자는 검은 색깔이 많이 죽어버렸고 한쪽은 심하게 갈라져 본래의 나무 색깔이 드러나 있을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색이 심하게 바랬고 흠집이 나 있기도 했다.
마틴 씨와 그의 장남 박스터는 서머즈 씨가 손으로 종이를 완전히 섞을 때까지 상자가 움직이지 않도록 꼭 붙들고 있었다. 그동안에 잡다한 의식을 간소화시켰고, 또는 아예 없애버리기도 했기 때문에 서머즈 씨는 수 세대 동안 사용되어 왔던 나무 조각들을 종이쪽지로 바꾸어 버렸다. 서머즈 씨의 주장은 마을에 사람 수가 적었을 때에는 나무 조각들이 아주 쓰기 좋았으나, 이제 사람들의 수가 삼백 명을 넘어섰고, 또 계속 증가할 추세이니, 검은 상자에 더 잘 들어가 수 있는 다른 것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제비뽑기가 있는 전날 밤, 서머즈 씨와 그레이브즈 씨는 종이쪽지를 만들어서 상자 속에 집어넣고는, 그 상자를 서머즈 씨의 석탄회사 금고 속에 넣은 뒤, 다음날 서머즈 씨가 다시 공터로 들고나갈 때까지 금고를 잠가 두었다. 제비뽑기가 끝나면 이 상자는 일 년 내내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게 된다. 어느 해에는 그레이브즈 씨 헛간에서, 또 어느 해에는 우체국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의 발끝에 채이기도 했고, 또 어느 해에는 마틴 씨 잡화상 선반에서 먼지에 싸여 잊혀지기도 했다.
서머즈 씨가 제비뽑기를 시작한다는 말을 하기 전에는 늘 대단한 소란이 있게 마련이었다. 왜냐하면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각 가문의 최연장자, 그리고 각 가정의 가장들의 명단이 먼저 작성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각 가정의 가족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제비뽑기의 형식적인 절차로서는 우체국장이 말하는 대로 서머즈 씨가 따라서 선서를 해야만 되었다. 몇몇 사람들의 기억에 따르면, 예전에는 제비뽑기의 집행인이 하나의 형식으로 기계적이고 곡조 없는 구절을 읊어야 했다. 이 절차는 매년 빼놓지 않고 반복되었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제비뽑기 집행인이 이 구절을 읊을 때에는 제 자리에 서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으며,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집행인이 사람들 사이로 걸어 다니면서 이 굴절을 읊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래 전, 이 형식적인 절차는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제비뽑기 집행인은 마을사람들이 종이를 뽑으러 상자 앞으로 다가설 때, 일정한 인사말을 사용하여야 했었는데, 이것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바뀌어져, 이제는 자기 앞으로 걸어오는 사람에게 몇 마디 말만 건네면 최소한으로 필요한 인사는 다 한 것으로 되었다. 서머즈 씨는 이 일을 아주 썩 잘해 내고 있었다. 깨끗하고 하얀 와이셔츠와 청바지를 걸친 채 한 손을 제비뽑기 상자 위에 올려놓고 그레이브즈 씨 가족과 마친 씨 일가에게 말을 건네는 그의 모습은 무척 자연스러웠으며 또한 의적해 보이기도 했다.
서머즈 씨가 막 이야기를 끝내고 마을사람들을 향해 몸을 돌리는 순간, 허친슨의 아내가 어깨에 스웨터를 걸치고, 허겁지겁 공터로 나타나 마을 사람들의 뒤켠에 섰다. 그리고 들라크르와 부인에게, “글쎄, 오늘이 무슨 날인지 깜박 잊었지 뭐예요!”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모두 함께 웃었다. “바깥양반이 무슨 장작을 쌓으러 밖으로 나간 줄로만 알았죠.”라고 허친슨 부인은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창밖을 보니까, 애들이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때야 나는 오늘이 27일인 줄 기억해 내고 얼른 뛰어온 거예요.” 그러면서 그녀는 앞치마로 손에 묻은 물기를 닦았다. 들라크르와 부인도 입을 열었다. “제 시간에 오신 거예요. 저기서 얘기만 계속하고,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어요.”
허친슨 부인은 학처럼 목을 길게 빼, 마을사람들 너머로 남편과 아이들이 앞줄에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들라크르와 부인의 팔을 가볍게 쳐 인사를 한 뒤 마을사람들 사이를 뚫고 앞쪽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상냥하게 길을 비켜 주었다.
“여기 자네 부인 나가시네, 허친슨.” 두세 사람의 마을사람들이 간신히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빌, 아무튼 늦지 않았어.” 허친슨 부인이 남편 옆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서머즈 씨는 명랑한 목소리로, “테시, 당시 없이 제비뽑기를 할 줄 알았소…” 라고 말했다.
그러자 허친슨 부인은, “부엌에서 접시나 닦고 있으란 말은 아니시겠죠, 조?” 라고 대꾸했다. 마을사람들 사이에서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을사람들은 허친슨 부인이 지나가자 다시 제 자리를 잡았다.
서머즈 씨가 태도를 고쳐 진지하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 여러분, 이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어서 시작합시다. 그래야 제때에 일터로 돌아갈 수 있기 않겠습니까? 아직도 안 나오신 사람이 있습니까?”
“던바.”
몇 사람이 대답했다.
“던바가 없습니다.”
서머즈 씨는 갖고 있던 명단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클라이드 던바.”라고 중얼거렸다. “그렇군요. 그 사람은 다리가 부러졌지요. 누가 그 사람 대신에 제비를 뽑겠습니까?”
“제가 하겠습니다. 제가 뽑아야 할 것 같아요.” 라고 한 여자가 말했다.
서머즈 씨는 몸을 돌려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 “아내라면 남편 대신 뽑을 수 있지요. 하지만 제니, 혹시 당신 대신 뽑을 만한 큰 아들은 없습니까?” 라고 서머즈 씨는 물어보았다.
서머즈 씨와 모든 마을사람들은 그녀의 대답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서머즈 씨가 그렇게 물은 것은 제비뽑기 집행인으로서 어쩔 수 없는 형식적 절차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머즈 씨는 던바의 부인이 대답을 하는 동안 정중한 태도로 귀를 기울였다.
“호레이스가 있기는 하지만, 아직 열여섯 밖에 되지 않았어요.” 라고 던바의 아내는 서글픔 듯이 말했다. “올해는 남편 대신 제가 뽑아야 할 것 같아요.”
“좋습니다.” 서머즈 씨가 짤막하게 말했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명단에 무엇인가 적어 놓았다. 그러고 나서 또 사람들을 향해 “왓슨 군도 올해에는 제비뽑기에 참가합니까?” 라고 물어보았다.
사람들 틈 속에서 키가 큰 소년이 손을 번쩍 들었다. “여기 있습니다. 올해에는 어머니와 저를 대표해서 제가 뽑을 예정입니다.” 그리고는 불안에 찬 눈을 껌벅이며 고개를 숙였다. 몇몇 사람들이 입을 열었다. “잭이 착한 젊은이가 되었구먼. 자네 어머니에게 자네와 같은 아들이 있는 것을 보니 무척 기쁘네.”
“자, 모두 다 모인 것 같습니다. 워너 할아버지, 어디 계십니까?”
“여기 있네.” 사람들 틈 속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서머즈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머즈 씨가 목소리를 가다듬고 마을사람들을 주시하자 갑자기 무거운 침묵이 공터를 휩싸기 시작했다. “모두들 준비는 되셨겠지요?” 서머즈 씨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다. “이제 먼저 각 가문의 호주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그러면 호주되시는 분들은 앞으로 나오셔서 상자에서 종이를 하나씩 꺼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모두 다 한 장씩 상자에서 꺼낼 때까지 손에 들고 절대로 펴보아서는 안됩니다. 모두들 아시겠지요?”
사람들은 이미 여러 차례 이 제비뽑기를 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서머즈 씨의 주의사항을 듣는 둥 마는 둥 하였다. 거의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으며 입술만 적시고 있었고, 주위를 둘러보지도 않았다. 서머즈 씨가 한 손을 높이 쳐들고 “아담스.” 라는 이름을 불렀다. 한 사람이 사람들 틈에서 앞으로 걸어 나왔다. “안녕, 스티브.” 서머즈 씨가 인사말을 건넸다. “안녕, 조.” 사내도 응답했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고 씩 웃었으나 표정은 불안했다. 아담스는 검은 상자로 다가가 접혀진 종이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종이의 한쪽 모서리를 힘주어 쥔 채 몸을 돌려 사람들 틈 속으로 걸어가 제 자리에 섰다. 그러나 자기 가족들과는 약간 떨어진 곳이었으며, 자기 손에 들고 있는 종이를 내려다보지는 않았다.
서머즈 씨는 계속 이름을 불러 내려갔다. “앨런, 앤더슨… 벤덤.”
“정말이지. 해마다 제비뽑기는 무척 빨리 돌아오는 것 같아요…” 사람들 뒷켠에 서있던 들라크르와 부인이 그레이브즈 부인에게 말을 건넸다. “지난번 제비뽑기를 바로 지난주에 치른 것 같은데…”
“그래요. 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요.” 그레이브즈 부인도 맞장구를 쳤다.
“클라크, …델라크로이.”
“우리 바깥양반 차례군요.” 들라크르와 부인이 말했다. 그리고 남편이 앞으로 나가는 동안 숨을 죽이고 있었다.
“던바.” 서머즈 씨의 호명이 떨어지자 던바 부인은 성급히 상자 앞으로 걸어 나갔다. 한 여자가 입을 열었다. “잘 해, 제니.” 또 다른 여자는 “제니가 나갑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다음은 우리 차례군…” 그레이브즈 부인이 말했다. 그녀는 남편이 상자 옆으로부터 돌아 나와 서머즈 씨에게 엄숙한 인사말을 건네고, 상자에서 종이쪽지 하나를 꺼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때쯤, 사람들 틈에는 모든 남자들이 커다란 손으로 쥐고 있는, 작고 접혀진 종이쪽지를 불안한 듯 뒤집어 보고 있었다. 던바 부인은 종이쪽지를 손에 쥔 채 두 아들과 함께 서 있었다.
“하버트 …허친슨.”
“어서 나가요, 빌.”
허친슨 부인이 이렇게 말하자 주위 사람들이 웃기 시작했다.
“존즈.”
아담스가 워너 할아버지에게 말을 꺼냈다. “사람들 얘기로는 북쪽 마을 사람들이 이 제비뽑기를 그만 두자고 말하는 모양입니다.”
워너 할아버지는 코웃음을 쳤다.
“얼간이 같은 녀석들. 젊은 녀석들이 내뱉는 소리를 들어봐야 그들에게 이로울 것은 하나도 없다구. 그 다음은 뻔해. 녀석들은 모두 원시적인 동굴생활로 되돌아가길 원할 테지. 일도 하지 않을테구. 얼마 동안 그렇게 살아 보라지. 이런 말이 있네. ‘6월에 제비뽑기를 하면 옥수수 알맹이는 더욱 굵어진다.’ 모두 별꽃 스튜나 도토리를 먹는 꼴을 봐야겠나? 제비뽑기는 언제나 있어 왔네.” 그리고 노인은 얼굴을 찌푸리며 한 마디 더 했다. “저기서 동네사람들과 농담이나 하는 젊은 조 서머즈를 보면 기분이 좋지 않다구…”
“어떤 마을은 벌써 제비뽑기를 중단해 버렸대요.” 아담스 부인이 또 한 마디 했다.
“그래 봐야 화밖에 남는 게 없다구.” 워너 할아버지의 대답은 완고했다. “젊은 얼간이 같은 놈들…”
“마틴.” 보비 마틴은 자기 아빠가 앞으로 걸어 나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버다이크, …퍼시.”
“사람들이 빨리 서둘렀으면 좋겠다.” 던바 부인이 장남에게 말했다.
“제발 서둘러 주었으면….”
“이제 거의 끝나가요.” 아들이 대꾸했다.
“아빠에게 뛰어가 말씀드릴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던바 부인이 아들에게 일러주었다.
서머즈 씨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앞으로 걸어 나와 상자에서 종이쪽지 하나를 꺼냈다. 그러고 나서 워너 할아버지의 이름을 불렀다.
“일흔 일곱 번째 제비뽑기를 하게 되었군.” 워너 할아버지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앞으로 걸어가며 이렇게 말했다. “일흔 일곱 번째야…”
“왓슨.” 키 큰 소년은 어색한 듯한 걸음걸이로 사람들 틈을 빠져나왔다. 누군가 그를 격려하고 있었다. “걱정할 것 없네, 잭.” 서머즈 씨도 한 마디 거들었다. “천천히 해도 된다.”
“쟈니니.”
그리고 숨막히는 긴장 속에 긴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종이쪽지를 쥔 손을 높게 쳐든 서머스 씨가 침묵을 깼다. “자, 여러분.”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잠시 후 모두들 종이쪽지를 펼치기 시작했다. 갑자기 동네 여자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누구죠?” “누가 그것을 집었나요?” “던바 씨 가족인가요?” “왓슨 씨 가족입니까?” 순간, 모두들 “허친슨 씨 가족이야!” 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빌이 가졌어!” “빌 허친슨이 가졌어…”
“어서 가서 아빠에게 알려드려라.” 라고 던바 부인은 장남에게 일렀다.
사람들은 허친슨 가족 쪽으로 모두 고개를 돌렸다. 빌 허친슨은 아무 말 없이 손에 펼쳐든 종이쪽지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테시 허친슨이 서머즈 씨 쪽으로 소리를 질렀다.
“당신이 저이에게 종이쪽지를 신중하게 집을 시간을 주지 않았어요. 내가 보았다구요. 이건 공평하지 않아요.”
“테시, 그것은 말도 안돼요.”라고 들라크르와 부인이 소리쳤다. 그레이브즈 부인도 거들었다. “우리 모두 마찬가지 상황이잖아요.”
“입 다물어, 테시.”
빌 허친슨이 아내를 나무랬다.
“자, 여러분, 제비뽑기가 아주 빨리 진행되고 있습니다. 제때에 끝나기 위해서 우리 조금만 더 서두릅시다.” 라고 서머즈 씨가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명단의 다음 장을 들여다 보면서,
“빌, 당신은 허친슨 가의 대표로 제비를 뽑았습니다. 당신 집안에 다른 식구들은 없습니까?” 라고 물어보았다.
“돈과 에바가 있습니다.” 라고 허친슨 부인이 앙칼지게 대답했다. “그 아이들에도 제비뽑기를 시켜야 합니다.”
“테시, 딸들은 자기 남편을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당신도 이점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서머즈 씨의 설명이었다.
“그것도 공평하지 못해요.” 테시는 계속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내 생각은 아내와 틀립니다, 조.” 빌 허친슨이 아내의 말을 막았다. 그러나 목소리에는 안타까움이 역력했다. “딸들은 자기 남편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공평하지요. 그리고 어린 애들 외에 다른 가족들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가문을 대표할 사람은 당신입니다. 그리고 가족을 대표할 사람도 역시 당신입니다. 내 말이 틀립니까?” 서머즈 씨는 빌 허친슨에게 설명해 주었다.
“맞습니다.” 빌 허친슨도 그의 말에 대답했다.
“애들은 몇이나 됩니까, 빌?” 서머즈 씨는 목소리에 공식적인 말투를 넣었다.
“셋입니다.” 빌 허친슨의 대답이었다. “빌 주니어, 낸시, 그리고 어린 데이브뿐입니다. 그리고 테시와 나.”
“좋습니다.” 서머즈 씨는 이렇게 말한 후 “해리, 저분들의 종이쪽지를 거두어 주시겠소?” 라고 지시했다.
그레이브즈 씨는 고개를 끄덕이고 종이쪽지들을 쳐들어 보였다.
“그것을 상자에 넣어 주시오. 빌의 쪽지도 걷어서 상자에 넣어 주시오.” 서머즈 씨가 지시했다.
“나는 이 제비뽑기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허친슨의 아내는 목소리를 최대로 낮추어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것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당신은 저이에게 충분한 시간도 주지 않았어요. 여기 모든 사람들도 보았다구요.”
그레이브즈 씨는 종이쪽지를 다섯 개만 골라서 상자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나머지 쪽지들은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그 쪽지들은 지나가는 바람에 흩날려 버렸다.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여러분…” 허친슨 부인이 주위의 사람들에게 말을 꺼내려고 했다.
“빌, 준비는 되었습니까?” 라고 서머즈 씨가 물어보자 빌 허친슨은 아내와 아이들을 잠깐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머즈 씨가 계속 말을 일었다.
“주의하실 것은 종이쪽지를 꺼낸 뒤 모두가 한 장씩 가질 때까지 펴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해리, 어린 데이브가 쪽지 뽑는 것을 도와주시오.”
그레이브즈 씨는 아무런 주저도 보이지 않는 어린아이 데이브의 손을 잡고 상자 쪽으로 데리고 갔다. “데이브, 한 장만 꺼내야 된다, 알았지?” 서머즈 씨가 다시 한번 주의를 주었다.
“해리, 아이가 뽑은 제비를 대신 들고 계십시오.”
그레이브즈 씨는 아이의 손을 잡고, 아이가 꼭 쥐고 있던 종이쪽지를 빼앗아 자기 손에 들었다. 데이브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눈으로 지어 보였다.
“다음은 낸시.” 서머즈 씨가 호명했다. 낸시는 열 두 살이었다. 낸시가 치맛자락을 흔들며 상자 앞으로 나가 이리저리 신중하게 종이쪽지를 고르는 동안 낸시의 친구들은 숨을 죽이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빌 주니어.” 서머즈 씨가 계속 이름을 불렀다. 불그스레한 얼굴과 지나치게 커다란 발을 가진 빌 주니어는 상자에서 종이쪽지를 꺼내다 상자를 넘어뜨릴 뻔했다.
“테시.” 서머즈 씨 입에서 그녀의 이름이 떨어졌다. 그녀는 잠시 주저하더니 주위 사람들에게 불만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고 입술을 깨문 채 상자 쪽으로 나갔다. 그리고 종이쪽지를 한 장 신경질적으로 뽑아 등 뒤로 감추었다.
“빌.” 하고 서머즈 씨가 지명하자 그는 상자 앞에 서서 손을 넣어 이리저리 더듬더니 마침내 종이쪽지를 집어 들고는 손을 상자 속에서 빼냈다.
사람들은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한 소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낸시가 아니었음 좋겠어.” 그러나 이 말은 모여 있는 사람들 모두 들을 수 있었다.
“제비뽑기가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워너 할아버지가 한 마디 꺼냈다. “사람들도 예전 같지가 않고…”
“자, 모두 종이쪽지를 펴십시오. 해리, 데이브의 종이쪽지를 펴 주시오.” 라고 서머즈 씨가 지시했다.
그레이브즈 씨가 종이쪽지를 펼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그레이브즈 씨가 쪽지를 들어보이자 사람들은 아무런 표식이 없음을 보았다. 낸시와 빌 주니어도 동시에 종이를 펼쳤다. 그리고 환한 웃음을 얼굴에 띠우며 사람들을 향해 자신들의 종이쪽지를 머리 위로 쳐들어 보여주었다.
“테시.” 서머즈 씨가 다시 재촉했다. 그의 목소리는 아주 조용했다. “빌, 자네 아내의 종이쪽지를 대신 보여주시오.”
빌 허친슨은 아내에게 다가가 아내의 손에서 종이쪽지를 강제로 빼냈다. 그 종이쪽지에는 검은 점이 그려져 있었다.
바로 전날 밤 서머즈 씨가 석탄회사 사무실에서 진한 연필로 표시해 두었던 바로 그 검은 점이었다. 빌 허친슨은 그 쪽지를 높게 들어보였다. 사람들 속에서 소란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자, 다 되었습니다. 여러분.” 서머즈 씨가 말했다. “이제 빨리 끝냅시다.”
마을사람들은 이미 오래전 형식적인 의식을 잊어버렸고 본래의 상자도 없어져 버렸지만, 돌멩이를 사용하는 것만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마을아이들이 모아놓은 돌멩이 더미는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땅바닥에는 바람에 흩날려 버린 종이쪽지들이 돌멩이에 걸려 펄럭이고 있었다. 들라크르와 부인은 돌멩이 하나를 골랐다. 그러나 무겁게 느꼈던지 두 손으로 들어올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던바 부인에게, “어서 와요. 서두릅시다.” 라고 말했다.
던바 부인도 양 손에 작은 돌들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숨을 헐떡이며, “저는 뛸 수가 없어요. 먼저 가세요. 곧 뒤따라가지요.” 라고 대답했다.
아이들도 이미 돌멩이를 집어 들고 있었다. 그리고 몇몇 아이들은 어린 데이브 허친슨에게도 작은 조약돌 몇 개를 쥐어 주었다.
테시 허친슨은 홀로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이 그녀 쪽으로 다가오자 필사적으로 손을 내저었다.
“이것은 공평하지 못한 제비뽑기에요.” 그녀는 절규했다.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 그녀 머리에 맞았다.
워너 할아버지는 사람들을 독촉하고 있었다. “자, 어서, 어서, 여러분.” 스티브 아담스는 제일 앞쪽에 서서 테시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그레이브즈 부인이 있었다.
“이것은 공평하지 못하다구요. 잘못된 것이라구요.” 허친슨 부인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의 몸을 마을 사람들이 덮치기 시작했다.